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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를 뒤흔든 여인들 4

4부 창업의 새 아침

 

''을 낳은 청하의 요정 -유화부인

 

하늘에서 오룡차가 내려온다. 웅심산으로 오룡차가 내려온다. 휘황찬란한 오룡차에는 천제의 아들 해모수가 타고 있었다.

오룡차 주위로 해모수의 종자들 백여 명이 하늘나라의 신묘한 풍악을 울리며 땅 위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웅심산에 서식하던 산짐승들이 모두 나와 풍악 소리에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자신이 타고 온 오룡차와 종자들 백여 명이 타고 온 백혹을 한쪽 나무 그늘에 세워 둔 헤모수는 까마귀 털로 만든 오우관을 고쳐 쓰면서 어느 사이에 발 아래 구름같이 모여든 주민들에게 위엄을 갖춰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왕이로다. 하늘 나라 천제의 아들 해모수는 오늘부터 여러분의 임금이로다. 나라 이름은 북부여. 웅심산 밑에 왕궁을 짓고 오늘부터 해모수는 여러분들의 임금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로다."

헤모수는 허리에 찬 용관검을 번쩍 뽑아 들고 선서를 하였다.

아침에 웅심산으로 내려와 하루 종일 백성을 다스리고, 밤이면 어김없이 천상으로 승천하는 해모수왕더러 사람들은 천왕랑이라 불렀다. 한나라 신작 3(BC 59) 48일의 일이었다.

해모수는 백성들을 다스리는 틈틈이 웅심산에 올라 사냥을 하기도 하였고, 웅심산 북쪽 청하(지금의 압록강)에 나가 물고기를 낚기도 하였다. 순박한 백성, 비옥한 토지를 가진 북부여에서는 공을 들여 정치를 한다거나 따로 힘을 기울여서 할 일은 없었다. 청하는 아름다운 강이었다.

해모수가 나라를 세운 4월이 지나 나무마다 들마다 신록을 마련하는 여름이 돌아왔다.

청하의 물빛은 연변에 울창한 숲 그늘에 내려앉아 푸르다 못해 검게 일렁였다. 청하 연변에 사는 부여 낭자들은 아침저녁으로 더위를 씻어내려고 이 강가로 몰려들었다. 낭자들은 하나 둘 짝을 지어 강가에 모이기도 하고, 부끄러움에 젖어 있는 낭자들은 혼자 후미진 강굽이로 나가 옷을 벗고 밤목욕을 하기도 했다.

 

강가로 가세

강가로 가세

청하 아름다운 강가로 가서

천왕랑 오룡차 타고

하늘로 가세, 하늘로 가세

 

강가로 가세

강가로 가세

청하 아름다운 강가로 가세

해모수왕 오우관을 쓰고

임금이 될까......? 임금이 될까?

 

노래가 끝나면 으레 낭자들은 허리를 쥐고 한바탕 웃어대는 것이었다.

한여름이다.

찌는 듯한 무더운 강변의 여름.

그날도 하백의 세 딸들은 천왕랑이니 오룡차니 해모수 왕의 오우관이니 하는 들뜬 노래를 부르며 청하 강가로 나왔다.

청하 강가에는 목욕하기에 알맞은 연못이 하나 있었다. 애초에는 청하에 이어진 물줄기였으나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강 한쪽으로 모래가 쌓이고 쌓여진 모래성 안에 웅덩이 물이 고여서 연못을 이루게 된 곳이었다.

하백의 세 딸, 유화, 훤화, 위화 자매는 근동에서 인물이 빼어난 낭자들로 소문이 나 있었는데, 이 세 낭자는 그날도 여느날처럼 연못가에 나와 옷을 벗고 목욕을 하던 참이었다.

그때였다.

허리에 용광검을 번쩍이며 말을 탄 사나이 하나가 연못가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세 낭자는 물어볼 것도 없이 그 사나이가 해모수라는 것을 첫눈에 알아볼 수가 있었다. 세 낭자는 발가벗은 알몸을 해모수에게 보였다는 부끄러움보다도 먼저 겁부터 났다. 웅심산과 청하 일대에서는 해모수의 명을 거역한 사람이 지금껏 한 사람도 없었으니, 해모수가 발가벗은 세 아리따운 낭자 앞에서 어떤 행동을 취해 올는지 그게 궁금한 것이다.

해모수는 말에서 몸을 날려 연못가로 다가갔다.

"내가 찾던 낭자들이 바로 여기에 모여 있었구나. 그대들을 모두 궁궐로 데리고 가서 왕후로 삼고 싶으니 물속에서 나오너라!"

첫마디부터 명령이었다.

세 낭자들은 해모수가 이글거리는 눈을 잠시도 그들의 몸에서 떼지를 않고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물 속으로 몸을 감추었으나, 옷을 벗은 몸으로서는 그 이상 어떻게 부끄러운 알몸을 감출 도리가 없었다.

"저기, 저 키가 크고 눈이 커다란 숫색시가 유화랑이렸다.!"

하백의 첫째 딸 유화는 해모수의 눈이 핥듯이 자기 몸을 쏘아보자 몸을 떨었다.

"그옆에 몸을 담그고 있는 낭자가 하백의 둘째 딸 원화, 그 옆이 셋째 딸 위화, 모두 다 듣던 대로 아름다운 낭자들이로고........."

세 낭자는 당장 용광검을 뽑아 들고 물속으로 걸어 들어올 것 같은 해모수의 당당한 체구 앞에서 그저 말문이 막히고 몸이 떨려 올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갈팡거렸다.

"낭자들읃 듣거라 나는 이 나라의 국왕 해모수로다. 천재의 아들 해모수가 그대들을 맞아 왕자를 갖고 싶으니 부끄러워 말고 나와 옷을 입으라."

둘러보니 주위에는 해모수를 따라온 종자들도 보이지 않았고, 검푸르게 흘러내리는 청하의 물줄기가 발가벗은 세 낭자와 해모수를 지켜볼 뿐이었다.

해모수의 명을 받은 세 낭자 중 맏이 되는 유화가, 물속에 몸을 담근 채 입을 열었다.

"해모수 마마!"

", 유화랑, 할 말이 있으면 어서 말하라."

"아무리 마마의 명이시라 하더라도 발가벗은 몸으로 어찌 마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나이까?"

해모수는 무릎을 쳤다.

"그렇지 그래. 장차 내 비가 될 사람들이 함부로 알몸을 드러내고 나올 수는 없으렷다. 내 당장 그대들이 머물 집 한 칸을 마련해 놓을 터이니 그리로 와서 옷을 갈아입도록 하라."

해모수는 즉시 청하 강가 숲 그늘에 숨어 있던 종자들을 시켜 나무집을 짓게 하고 술통을 마련해 놓으라 일렀다. 청하 강가 야트막한 숲속에는 순식간에 통나무 집이 세워졌고 토주까지 한 통 마련되었다.

유화를 비롯한 훤화, 위화 세 낭자는 통나무 집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값진 옥패로 몸을 단장하였다. 몸에는 향유를 뿌리고 곱게 빗어 올린 머리에 황금 비녀를 꽂았다.

통나무 집 밖에는 해모수가 한꺼번에 세 낭자를 맞이할 양으로 용광검을 절그럭거리며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초조한 마음은 통나무 집 안에 있는 유화, 훤화, 위화랑도 마찬가지였다.

세 낭자는 머지않아 이 나라의 국왕 해모수가 자기 몸을 요구하러 들어올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머리 속을 어지럽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미리 준비된 술을 마시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다. 몸에 술이 들어가자 방금 목욕을 마친 세 낭자의 모습은 더욱 요기를 띠고 아름답게 보였다.

이윽고 해모수왕은 세 낭자가 취해 쓰러져 있는 통나무 집 안으로 들어왔다.

", 몸에 향유를 뿌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겠다. 밖에 종자들도 멀찍이 물리쳤으니 그대들은 부끄러워 말고 나와 인연을 맺도록 하자."

해모수가 손을 뻗쳐 세 낭자를 한꺼번에 이끌어 당기려 하자, 세 낭자는 일제히 몸을 날려 통나무 집을 뛰쳐나갔다.

그러나 술이 취한 몸들이라 발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다. 죽어라 하고 몸을 날렸으나, 세 낭자 가운데 유화는 끝내 해모수왕에게 손목을 잡히고 말았다.

"하하하, 너희들이 도망을 치면 어디로 간단 말이냐? 앞에는 장강이 성처럼 두르고 흘러 건너뛸 수가 없고, 뒤에는 첩첩산중이라 연약한 여자의 힘으로는 백보도 뛰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릴걸? 자아, 기왕지사 두 낭자는 나하고 인연이 없어 이 통나무 집을 빠져나갔다. 하나, 유화 낭자는 가장 나이 많고 힘이 센 몸이 도망치지를 못하고 남게 된 것으로 보면 이 또한 어쩌지 못할 천제의 명이시라 여겨지니, 부끄러워 말고 옷을 벗어라."

유화 낭자는 눈을 지그시 감고 해모수가 하는 대로 몸을 내맡기면서 나직한 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소녀 유화가 이곳에 남게 된 것은 천제님의 뜻이 아니옵니다."

", 천제님의 뜻이 아니였다면?"

"전혀 소녀가 택한 길이옵니다. 해모수 대왕마마."

"유화 낭자가 스스로 택한 길!"

"그렇사옵니다, 마마. 소녀 유화는 일찍부터 해모수 대왕마마를 뵈올 날만 고대하였나이다. 소녀 유화가 어린 훤화와 위화를 데리고 연못에 나와 목욕을 하게 된 것도 실은 낚시하러 나오시는 대왕마마를 행여 먼 발치에서나마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였나이다."

"오호, 과연 미색이 신자 염려한 유화낭자의 뛰어난 지모에 나는 다시 한 번 놀랐구나."

유화의 말은 사실이었다.

유화는 힘도 세고 담력이 강한 하백의 딸로서 만족할 낭자는 아니었다.

유화에게는 남이 꿈조차 꿀 수 없는 이상이 일찍부터 그녀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껏해야 사냥꾼 하백의 딸이라 는 것을 앞세우고 아버지와 똑같은 젊은 사냥꾼을 맞아 정혼 할 수는 없다 했다.

'아무렴, 나의 미모와 지략은 이 근동에서 소문이 자자할 만큼 인정된 터다. 이러한 내가 범부의 아내가 되어 한평생을 늙어갈 수는 없지. 아무렴, 내 상대는 적어도 오룡차를 타고 옆구리에는 용광검을 차고, 하늘과 땅 위를 마음대로 오르내릴 수 있는 천제님의 아들 해모수 대왕이어야 한다. 해모수 대왕....... 나는 그 대왕을 함락시켜야 해......'

이튿날부터 유화는 동생들을 데리고 산으로 들로 나물을 캐러 다니기 시작했다. 웅심산 깊숙이 인적이 드문 골짜기까지 기어들어 가서 사냥 나온 해모수를 만나보려고 했으나, 어찌된 셈인지 해모수와 유화 일행은 단 한 번도 부딪칠 수가 없었다.

그 봄이 지나고 여름이 돌아오자 아직도 몸을 담그기에는 이른 청하 강가로 나와 유화는 옷을 벗었다. 물론 그 자리에는 훤화, 위화 두 여동생이 언제나 시녀처럼 따라 나와서 함께 옷을 벗긴 하였으나 무엇인지 기대를 가지고 연못 속에 몸을 담구는 유화와는 달리 유화의 동생들은 차가운 5월의 연못 속에 쉽사리 몸을 담그려 하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다. 산은 산대로 신록을 마련하기에 바빴고, 강물은 또 몇백 리씩 흘러내리면서 그 연안에 여름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해모수왕은 강가에 그림자도 비쳐주지 않았다.

유화는 여름이 와도 강가에 나타나지 않는 해모수왕이 차츰 원망스럽기까지 하였다.

유화의 속마음을 모르는 훤화, 위화 두 낭자도 차츰 짜증이 나는 모양이었다.

"에유, 언니는 덥지두 않은 날에 맨날 옷을 벗고 목욕을 하라시니 이러다가는 이 여름이 다 가기 전에 고뿔 감기에라두 걸리겠수."

"글쎄 말이다. 추운 날에 목욕을 자주 하라시는 언니 마음도 모르겠거니와, 목욕하러 온 여자들이 몸에다 값진 옥패를 두르시라는 것도 정말이지 귀찮은 일이야."

이런 불평 속에서 가까스로 만난 해모수왕이었다.

유화는 해모수가 목욕하는 세 자매의 벗은 몸을 탐내어 가까이 다가왔을 때 그야말로 하늘이 준 절호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겠다고 마음을 다잡아 먹었다.

해모수가 시키는 대로 유화는 겁에 질린 동생들과 함께 통나무 집에 들어갔던 것이고, 동생들보다 술을 많이 마셔서 취해 있었던 것도 실상 유화 쪽에서 미리 계산해 놓은 함정이었던 것이다.

급기야 야욕에 이글거리는 해모수의 몸이 유화에게 던져졌을 때 유화는 비로소 자기가 만든 함정이 행복으로 이끄는 길잡이였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유화....... 유화....... 너는 내 여자다. 이 넓은 부여의 국모란 말일세. 유화, 오늘은 이 통나무 집에서 인연을 맺고 내일이라도 왕궁의 의식을 갖추어 대례를 치르도록 하자."

해모수를 소유하고 싶었던 유화의 꿈은 이제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해모수왕과 유화 부인의 결합이 그렇게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해모수가 천제의 아들임을 확인한 하백이 성대한 의식을 갖추어 혼인 대사를 치르긴 하였으나, 하백은 자기 딸의 앞날이 그저 걱정스럽기만 했다.

'천제의 아들이 땅 위에 사는 여자를 평생토록 데리고 살 것 같지 않거든. 해모수, 놈은 언제고 내 딸을 버리고 하늘나라로 올라가고 말 거란 말야.'

하백은 그런 생각 끝에 하나의 묘한을 안출해 내었다.

해모수에게 술을 취하도록 마시게 한 뒤 유화와 함께 커다란 가죽 주머니 속에 가둬 놓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설사 해모수가 하늘나라로 승천한다 해도 자기 딸을 버리지는 않겠지.......

하백은 계획대로 해모수에게 독한 술을 먹여서 유화와 함께 커다란 가죽 주머니 속에 가둬 놓고 말았다. 해모수가 마시고 취한 그 술은 한 잔만 마셔도 일주일 뒤에 가서 취기가 깬다는 독한 술이었다.

햇볕이 한 점도 들지 않는 가죽 주머니 속에서 술에 취해 있던 해모수는 일주일이 지난 뒤에야 겨우 눈을 떴다.

", 큰일이로다. 나는 햇볕을 보지 못하면 죽어 버리는 몸. 이 가죽 주머니를 어떻게 뚫고 나간다?"

해모수가 안타까워 하는 모습을 보고 유화는 머리에 꽂았던 황금 비녀를 뽑아 주었다.

"이 비녀로 구멍을 뚫어 보셔요."

구멍이 뚫렸다. 해모수는 구멍만 있으면 얼마든지 몸이 빠져나가는 천제의 아들.

신묘한 기술을 가진 해모수는 한번 가죽 주머니를 빠져나가자 하늘나라로 승천한 뒤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부터 유화 부인의 슬픔이 시작되었다.

화가 난 하백은,

"이년 꼴두 보기 싫구나, 스스로 천제의 아들을 골라 몸을 더럽히고 집안 망신을 시킨 년이니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느니!"

이러면서 펄펄 뛰었다.

하백은 유화의 입술을 길게 잡아 빼어 꿰맨 뒤 시종 두 사람을 붙여 우발수 가로 내쫓아 버렸다.

그때부터 유화 부인의 눈에서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그러나 유화부인은 언제까지나 슬픔을 씹고 앉아 있을 나약한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의 총명한 머리는 부단히 무엇인가 생각을 했고, 그녀의 예리하고 빛나는 두 눈은 전후 좌우 사물을 열심히 관찰하기에 바빴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유화 부인은 왕이 행차하는 길가 우물가에 선녀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아가 앉아 있었다.

당시의 부여와은 금와왕이었는데 그날은 수렵을 좋아하던 금와왕이 우발수 쪽으로 납시는 날이었다. 유화 부인은 그것을 그녀 특유의 직감으로 알아 버린 것이다.

금와왕이 탄 수레가 우발수에 이르렀을 때다.

수레의 휘장 밖으로 멀리 우물가에 청초한 차림새의 선녀(?) 하나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왕은 수레를 멈추게 하였다.

종자를 시켜 유화 부인을 수레 곁으로 불러들인 금와왕은 첫눈에 유화의 아름다움에 반해 버렸다.

"선녀, 그대는 뉘집 딸이기에 이렇듯 후미진 우발수 물가에 나와 넋을 잃고 있느냐."

", 이 몸은 청하 강가에 사는 하백의 딸로서 아버지에게 죄를 지어 쫓겨난 유화입니다."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물가에서 남자를 사귀어 몸을 내맡겼다가 그 남자에게 버림을 받았다 하여 쫓겨났나이다."

"허허허, 내 그대의 슬픔을 함께 나누고 싶구나. 궁궐로 가기를 권하는 바이니 허락해 주겠는고?"

", 대왕마마 뜻대로 하시와요."

뜻대로 하란다. 그렇다. 유화는 이 기회를 은근히 노리고 있었던 중이다. 금와왕은 말하자면 자기를 버리고 승천한 해모수의 손자였다. 해모수에게는 원래 해부루라는 아들이 있었다. 그러나, 아들이 없던 해부루는 어느 날 돌 속에서 금빛 나는 개구리 같은 아이를 얻게 되었는데, 이 아이가 금와왕이었다.

유화 부인은 그러니까 자기를 버린 최초의 남성 해모수에 대한 보복으로 해모수의 후손인 금와왕을 소유해 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아니, 유화 부인은 어쩌면 해모수를 그리는 간절한 이성에의 정을 그의 후손인 금와왕에게서 찾으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어떻든 금와왕은 유화 부인을 맞아 혼례를 치렀고, 그해 안으로 유화 부인은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이게 또 무슨 조화인가. 유화 부인이 낳은 아들은 아들이 아니라 ''이었다.

유화 부인이 크기가 닷되들이만한 알을 낳자 금와왕은 화가 나서 그 알을 내다 버리게 하였다.

그러나 개와 돼지에게 주어도 먹지 않는 알, 길 가운데 버려도 소와 말이 피해서 가는 이 신기한 알을 끝내는 들에 내다 버렸지만 새들이 모여들어 날개로 알을 덮어 주고 감싸 주기를 잊지 않았다.

알을 낳은 어미였으나 그래도 유화 부인은 산모였다.

유화 부인은 자기가 낳은 알을 값비싼 천으로 싸서 따뜻한 곳에 갖다 두었다. 그랬더니 며칠이 못 가 그 알 속에서는 골격이 준수하고 영특하게 생긴 사내아이가 나왔다.

아이의 나이 일곱 살이 되자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서 쏘기도 했는데 화살을 쏠 때마다 백발백중이었다.

부여의 속어에 활 잘 쏘는 사람을 주몽이라 했는데 사람들은 유화 부인의 아들을 주몽이라 불렀다.

고주몽. 이가 곧 후에 고구려의 시조가 된 동명성왕이었으니 유화 부인은 스스로 선택한 남자와의 사이에서 이를테면 왕을 얻은 셈이었다.

그녀의 몸에서 한 나라의 시조가 될 왕을 얻음으로써 유화 부인의 한은 풀렸다. 해모수에게 버림받은 나약한 여자에서 끝내는 자기의 지모와 미색을 함게 버리지 않고 활용한 나머지 비로소 왕의 생모로서 추앙받는 자랑스러운 여인이 된 것이다.

 

 

여왕이 불 밝힌 통일의 전야 -선덕여왕

 

진평왕은 좌우 대신들을 한 자리에 불러 놓고 연방 기쁨의 웃음을 터뜨렸다. 이 자리에는 전에 없이 왕의 장녀인 덕만 공주도 나와 있었고, 왕비 마야 부인도 나와 있었다. 왕은 당나라에서 보내온 모란꽃 그림과 그 씨앗을 앞에 놓고 대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그런데 아직 나이 어린 덕만 공주가 한참 동안 모란꽃 그림을 감상하고 나더니 진평왕을 바라보고 자기의 느낌을 말하는 것이었다.

"아바마마, 이 모란꽃 씨를 뿌려서 꽃이 피어도 꽃에는 향기가 없겠나이다."

"그러냐? 엇허허허, 어째서 이 꽃에는 향기가 없다는 게냐?"

왕은 귀여운 공주의 의견이 기특하게 생각되었다. 모란꽃 그림과 그 꽃씨에 관심을 보이는 공주는 그만큼 어른스러워 보이기까지 하였다.

모란꽃에 향기가 없을 것이라는 덕만 공주 말에 대신들은 모두 이상하게 생각되었는지 공주 쪽을 바라보았다.

"이 그림을 보옵소서, 아바마마."

"그래, 그림에 무슨 잘못된 점이라도 있다는 얘기냐, 공주?"

"그렇사옵니다. 당나라에서 보내온 이 모란꽃 그림은 매우 아름답게 그려졌지만, 그림 안에 벌과 나비가 없는 것을 보니 앞으로 씨앗을 뿌려서 모란꽃을 가꾸어도 향기가 없겠나이다."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놀라워하였다.

왕은 더욱 공주가 사랑스러워서 연방,

"엇허허허, 공주의 생각이 그럴듯하구나. 엇허허허........" 하고 유쾌하게 웃었다.

덕만 공주는 조금 더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던지 말을 이었다.

"무릇 여자로서 나라 안에 제일 가는 국색이면 남자들이 색에 흘러 빠지는 법이고, 꽃에 향기가 있으면 벌과 나비들이 따르는 법 아닙니까? 거듭 아뢰옵니다만 당나라에서 보내온 이 모란꽃이 아주 아름답기는 하오나 그림에 벌과 나비가 없으니 반드시 향기가 없겠나이다."

두 번씩이나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공주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혀를 내둘렀다.

왕은 곧 모란 씨앗을 뿌려 꽃나무를 가꾸어 보라 일렀다. 과연 모란꽃이 탐스럽게 피었으나 덕만 공주의 말대로 그 꽃은 향기가 전혀 없었다.

덕만 공주. 뒷날 선덕여왕이 된 그 덕만 공주는 이렇듯 어릴 때부터 모든 일을 판단하는 식견이 명석하였다.

신라 제26대 진평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덕만 공주는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사리에 밝고 민첩하였다. 진평왕이 대를 이을 왕자가 없이 돌아가자 나라 사람들은 덕만 공주를 임금으로 세우고 성조황고라는 호를 올렸다.

신라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상 이례적으로 여왕이 된 선덕은 신라의 귀족 성골 출신이었다.

여왕은 나라를 다스리는 동안 이웃 백제와 고구려의 세력을 견제해 가며 이른바 삼국 통일의 초석을 다졌다.

여왕 5(636) 5월의 일이었다.

두어 달 전부터 여왕은 병환이 나서 치료를 받아 오고 있었으나 이렇다 할 효력이 없자 황룡사에다 백고좌를 열어 중들이 인왕경을 강독하는 등 경황이 없었는데 설상가상으로 나라 안에 변고가 일어난 것이었다.

"변고라니, 무슨 일이 일어났단 말이오?"

여왕은 아직도 쾌차하지 않은 몸을 일으켜 왕 앞에 나타난 대신을 바라보았다.

"전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하도 기이한 일이라 아뢰지 않을 수 없나이다."

"글쎄 슨 일인지 냉큼 말하오."

"궁성의 서쪽 옥문지에 두꺼비와 개구리 떼가 모여들었나이다, 마마."

"두꺼비와 개구리 떼가?"

", 마마. 실로 기이하고 불길한 일이라 나라 안 사람들이 모두 두려움에 떨고 있는 줄 아뢰오."

여왕의 심상치 않은 분부가 떨어지자 군신들은 하던 일을 제쳐놓고 달려왔다.

"경들은 들으시오. 옥문지에 떼지어 나타난 두꺼비와 개구리 떼는 참으로 흉한 징조이니, 지금 곧 알천과 필탄 두 장군은 궁성 서남쪽에 있는 여근골 이라는 데로 군사를 이끌고 달려가 적을 토평토록 하오."

"적이라니오, 마마?"

"필시 그 곳에 가면 적병이 잠복해 있은 터이니 사각을 다투어 달려가도록 하오."

알천과 필탄 두 장군은 무슨 영문인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지만 어떻든 적이 나타났다는 데는 시각을 지체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여왕이 지시한 대로 여근골에 가 보니 과연 백제 군사 500명이 그곳에 와서 복병을 설치하고 있었다. 신라 군사는 알천, 필탄 두 장군의 작전 지시를 받아 백제 군사를 남김없이 잡아 죽였다. 알고 보니 백제 장군 우소가 독산성(지금의 충주와 괴산 부근)을 치기 위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숨어 있었던 것이다.

두꺼비와 개구리 떼가 모여든 것을 보고 적병이 잠입해 왔다는 것을 알아낸 선덕여왕은 그 같은 사실을 어떻게 알아내었는지 궁금해하는 군신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옥문이라는 함은 곧 여근(여자의 중요한 곳)이란 뜻이요, 내 일찍이 여근골이라는 곳이 궁성 서남쪽에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적병은 반드시 그 여근골에 있음을 알겠으며, 또한 개구리나 두꺼비는 성낸 눈을 가졌으므로 곧 적병이 왔음을 알겠으며, 남근이 여근에 들어가면 반드시 여근이 죽는 법임은 음양의 이치이니 적병을 쉽게 잡을 수 있음을 알았도다."

듣고 있던 남자 대신들은 남근이니 여근이니 하는 은근한 비유로 적병이 신라 영토 안에 들어왔음을 알아낸 여왕의 기지에 탄복하고 얼굴을 붉히며 혀를 내두를 따름이었다.

여왕이 보위(왕좌)에 오른 지 오륙 년 동안은 분황사를 완공하고 각 고을의 민심을 안정시키는 등 제세와 치적에 힘쓰며 태평성대를 구가해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나라 안팎 사정은 늘 선덕여왕 편만은 아니었다.

"이런 변이 있나. 칠중성(지금의 경기도 적성) 남쪽에 있는 큰 돌이 저절로 35보나 옮겨 앉았다는군."

"돌이 저절로 옮겨 갔다? 35보나?"

"그렇다니까."

"흉조로고."

흉한 징조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노란 비가 내렸다네, 이번엔."

"노란 비라니?"

"꽃과 같은 노란 비가...... 저 봐. 여기에도 지금 내리고 있잖은가!"

스스로 옮겨 간 돌. 노란 비. 언젠가는 또 크기가 밤알만한 우박이 내리질 않았던가.

선덕 여왕은 지난번 우소의 백제 군사 500여 명을 섬멸시킨 공으로 대장군에 오른 알천을 급히 불러들였다.

"장군은 서둘러 군사를 이끌고 칠중성에 나아가 적을 맞아 싸울 태세를 갖추시오."

여왕은 이미 알고 있었다. 머지않아 고구려 군사가 칠중성을 노리고 침공해 올 줄을 알았던 것이다.

"칠중성 남쪽에 있는 돌이 저절로 옮겨 앉았다 함은 고구려의 군사가 남침을 하여 백성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함이니, 오래지 않아서 침공해 올 고구려 군사를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섬멸시키도록하오."

여왕의 예감이나 판단은 언제나 정확했다. 선덕여왕 710, 기어코 일은 터지고 말았다.

"전하, 급보를 아뢰옵니다."

"말하오."

"고구려 군사가 마침내 칠중성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하옵니다."

그러나 염려할 것은 없었다. 대장군 알천의 군사가 이미 적을 맞아 싸우기 위해 왕성을 출발했기 때문이었다.

알천 장군은 사방으로 도망가는 백성들을 안정시키고 칠중성 밖에서 고구려 군사와 격전을 벌여 승리를 거두고 돌아왔다.

이 무렵 신라, 백제, 고구려 등 3국을 포함하여 동양 여러 나라에서는 전쟁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중국에서는 당나라가 등장하여 한반도의 여러 나라를 기웃거렸고, 신라의 북쪽 고구려에서는 연개소문이 나타나 영류왕을 죽이고 실권을 잡았는가 하면, 신라의 서쪽에 자리 잡은 백제는 호탕한 의자왕이 왕위에 올라 신라에게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때마침 동해 바닷물이 붉게 끓어올라 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나라 안은 다시금 술렁거렸다. 미구에 무슨 재앙이 있을 것이라고 수군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백제 의자왕은 스스로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적지에서는 속속 불행한 소식만이 날아들었다.

"우리 신라의 서쪽 지방 성이 10여 개나 적의 수중에 들어갔나이다."

그런 보고가 있던 것은 그나마 싸움을 시작한 지 얼마 뒤의 일이었다.

날이 갈수록 신라군 전지는 사기를 잃어갔다.

"40개 성, 실로 나라의 위기로다."

선적 여왕 117, 녹음을 틈탄 백제군은 신라 영토를 침범 40개 성이나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2월에 또다시 의자왕은 고구려와 힘을 합하여 당나라로 가는 지름길인 당항성(지금의 수원 서쪽 남양)을 쳐서 차지하였다.

일은 참으로 급박했다. 여왕은 즉각 당나라에 이 사실을 알리고 방책을 구했다.

그 사이 백제군은 또다시 장군 윤층을 보내어 대야성(지금의 합천)을 공격해 왔다.

전지에서는 여전히 비보가 날아들었다.

---대야성이 함락되었다.

---도독 김품석 장군이 전사했다.

---죽과 용석이 전사했다.

---춘추공의 딸(품석의 아내)도 함께 죽었다.

여왕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찬 김춘추를 불러들였다. 자기 딸이 죽었다는 비보에 접하고 김춘추는 기둥에 의지하여 서서 종일토록 눈도 깜박이지 않고 비통해하다 대궐로 들어갔다.

"마마, 대야성의 원수를....... 기필코 대야성의 원수를 갚겠나이다."

김춘추는 어전에 꿇어 엎드려 다시 울부짖었다. 나약하기 쉬운 여왕의 눈에서도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찬, 어떻게 해야 원수를 갚을 수 있을지 말해 보오."

"신이 원하옵기는 고구려에 원병을 청하여 백제를 티는 것이 어떠할까 하옵니다."

"좋은 생각이오. 고구려도 우리 신라의 적국이나 장차 백제를 치기 위해서는 고구려와 손을 잡지 않을 수 없구려." 여왕은 김춘추가 고구려로 떠나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고구려의 보장왕은 '죽령은 본디 우리 땅이니 신라가 만약 죽령 서북 지방을 돌려보낸다면 군사를 내어 신라를 돕겠다.'라고 나왔다.

결국 김춘추의 고구려행은 실패로 끝나 보장왕은 김춘추를 가두어 버리고 말았다.

이에 김춘추는 몰래 사람을 보내어 이 사실을 알리자 여왕은 대장군 김유신에게 명하여 결사대 1만 명을 거느리고 나가서 김춘추를 구원하게 하였다. 고구려 보장왕은 이 말을 듣고 겁이 나서 김춘추를 돌려보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선덕여왕은 장차 고구려를 쳐서 통일시킬 것을 결심하였다. 여왕은 재위 121월에 당나라로 사신을 보내어 방물을 바쳤고, 그 뒤에 또 사신을 보내어 고구려, 백제를 치기 위한 군사를 청하였다. 선덕 여왕은 왕위에 오른 지 16년 만에 삼국 통일의 위업을 완수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여왕이 계획한 통일의 의지는 그 뒤 진덕 여왕을 거쳐 태종 무열왕대에 이르러 기어코 실현을 보게 되었다.

 

 

용꿈 꾸고 얻은 '주름 왕자' - 장화왕후

 

고려 태조 왕건이 대광왕 규의 딸을 맞아 열여섯 번째의 비로 삼았는데 태조의 아들 혜종이 또한 규의 딸을 맞아 부인으로 삼았으니 부자가 같은 집 딸을 아내로 얻은 셈이었다.

이렇듯 고려 왕실에서 근천혼을 하게 된 것은 왕씨가 용의 자손이기 때문에 그 겨드랑 밑에 비늘이 있어 이 비늘의 비밀이 밖으로 새어 나갈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자기의 식구들끼리 결혼하게 된 것이라고도 전해 온다. 용종이니 용자리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전설로 전해오는 이야기지만, 태조 왕건이 용의 자식을 낳았다는 기록과 함께 들째 부인 장화왕후와의 정담을 빼어 놓을 수가 없다.

오 소저는 전라도 나주 고을에서도 후미진 목포에 살고 있었다.

오 소저의 아비는 뒷날 다린군이라 하였는데, 이 다린군은 연위의 딸 덕교에게 장가를 들어 오 소저를 낳았다고 한다. 오 소저는 비록 구차하고 지체가 변변치 못한 가정에 태어나기는 했어도 용모만은 남달리 아름다웠다. 게다가 오 소저가 우물에 나가 실을 씻으면 언제나 우물 위로 오색 영롱한 구름이 비단결처럼 펼쳐지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신기한 눈으로 그 구름을 바라보곤 했는데 그런 연유로 하여 오 소저가 실을 씻던 우물은 뒷날 '완사천'이라 불리게 되었다.

어느 날 밤 오 소저는 용꿈을 꾸다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말 별 요상한 꿈도 다 있네요, ."

"무슨 꿈을 꾸었길래 이렇게 놀라 일어나 앉느냐, 얘야."

덩달아 잠에서 깬 부모가 딸의 얼굴을 살핀다.

", 글쎄 저 바다에 살고 있는 용이 말이어유."

", 용이라니. 그럼 네가 용꿈을 꾸었더란 말이냐?"

"하면유....... 용이 바다에서 기어 나와서 내 뱃속으로 쏘옥 들어갔는디....."

"아이고 망측해라. 처녀가 용꿈을 꾸다니 용꿈이란 아이 밴 여자들이나 꾸는 꿈인디......"

오 소저의 부모는 하도 기가 막혀 말을 잇지 못했다.

'처녀가 아이 밴 꿈을 꾸다니, 처녀가 아이 밴 꿈을 꾸다니........'

오 소저는 자기의 배를 슬면시 쓸어 보면서 탄식의 한숨을 내쉬었다.

'망측도 해라. 내가 태몽을 다 꾸다니, 용꿈을 꾸다니.......'

그날 하루를 우물터에서 보낸 오 소저는 해가 지고 어둠이 깔려도 일어설 줄을 몰랐다.

마침 동산에 달이 떠오르자 그녀는 아무도 보는 이 없는 우물가에서 옷을 벗었다. 오 소저는 두레박으로 물을 퍼서 온몸을 씻어내리기 시작했다. 바다에서 기어 나온 용이 자기 뱃속으로 들어갔으니 우물물로 배를 씻어내리면 그 용이 배 안에서 나가 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한번 오 소저의 배 안으로 들어간 용은 다시 배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다.

아랫배를 문지르고 또 문질러 보아도 허사였다. 부끄럽고 죄스러운 그 밤이 기울도록 자기의 배를 문질러 보는 것이었으나 한 번 자기 뱃속으로 들어가 버린 용은 좀처럼 배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다.

이튿날 밤에도, 사흘째 되는 날 밤에도 우물터에서 자기 배를 씻어내리던 오 소저는 바로 사흘째 되던 날 밤, 달빛을 안고 달려온 늠름한 사내에게 그만 그녀의 알몸을 들켜 버리고 만다.

", 댁은 뉘시기에 아녀자가 몸을 씻고 있는 자리에 기침 소리도 없이 나타나는 겁니까......"

허겁지겁 서둘러 옷을 입은 오 소저가 별처럼 쏘아대는 말에, 그러나 말을 타고 달려온 무장과 그의 막료들은 당당하기만 했다.

"낭자는 이 마을에 사는가?"

", 그러하옵니다마는........"

"먼 길을 달려 왔더니 피로하구먼. 낭자의 집에 가 하룻밤 유하고 갈거나."

". 그러심 절 따라 오셔유......."

젊은 무장과 무장의 막료 부하들을 데리고 오 소저는 별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오 소저는 실상 젊은 무장의 늠름하고 당돌한 부탁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뿌리치기는 켜녕 무장의 강렬한 눈길이 자기 얼굴에 내리꽂혔을 때 그녀는 자기 뱃속으로 용이 들어올 때처럼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떨었다.

'옳아. 바다의 용은 바로 이분인지도 몰라. 바다의 용이 내 뱃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나서 이 사나이를 만났으니 이것이 또한 인연이라면 인연일시 분명하이.'

오 소저의 아비는 무장의 이름을 한 번 듣고 차마 그의 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젊은 무장은 그 당시 남정 북벌의 용장으로 이름이 파다하던 왕건 바로 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왕건 일행을 맞아 오 소저의 집에서는 접객 준비로 한창 부산하게 돌아갔다.

누추한 방에 새 자리를 구해 깔고 오 소저의 아비는 딸을 불러 장군을 정중하게 모시라 당부하는 것이다.

"얘야, 저분의 함자를 들어 보니 장차 크게 되실 어른이시다. 실수 없이 잘 모시도록 하여라."

".........."

고개를 숙인 오 소저는 부끄러움과 기대가 뒤엉킨 심정으로 아비의 말을 듣고 있다.

"내 집에 든 귀한 손님에게 값진 음식을 대접하지 못하는 대신 저분의 객고를 풀어 드림은 바로 이 애비의 일이 자네 정성이니라. 알아들었느냐."

"........"

이번에는 어미가 거들고 나선다.

"가뜩이나 너는 용이 네 배 안으로 들어가는 꿈을 꾸고 저 분을 만났으니 반드시 귀한 아들을 보게 될 게다. 자고로, 달이 품에 안기면 귀한 아들을 보게 될 게다. 자고로, 달이 품에 안기면 귀한 자식을 낳고, 해와 달이 방에 들어오면 역시 아들을 낳고, 호랑이가 남자를 낳으면 또한 아들을 낳고, 학이 품에 와 안기면 귀한 자식을 낳는다 했니라. 알아들었냐?"

", 엄니........."

"그럼 어서 방 안으로 들어가 보렴."

어미에게 들이 떼밀려 오 소저는 왕건이 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수군 장군으로 나주에 출진, 목포에다 배를 머무르고 있었던 왕건이 그날 밤 오 소저의 시중을 받게 된 데에는 또한 기이한 점도 없지 않았다.

"오 소저."

낭자를 품에 안으며 왕건은 무장답지 않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낭자를 찾아낸 거 전혀 하늘의 뜻이었네."

"........."

"배를 머무르고 산천을 바라보니, 아 저것 좀 보거라! 오색 영롱한 구름이 한 곳을 내리비치질 않았겠나."

"........."

"나는 부하들을 데리고 서둘러 말을 달렸네. 오색구름이 내려앉은 곳에 다다라 보니, 어허 그 곳에 바로 낭자가......"

"부끄럽사와요, 장군."

왕건은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고 앉아 있는 오 소저를 지그시 끌어당겨 자리 위를 뒹굴었다. 이미 여자를 다루는 일에 서두르지 않은 왕건이었다. 비록 시골구석에 자란 미천한 신분이기는 했으나 오 소저의 성숙한 몸은 미지의 건장한 남성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래, 바다의 용은 바로 이분일게야. 바다의 용이 내 뱃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나서 이 사내를 만난 건 또한 무슨 인연일 것이니, 나는 이 사내와의 인연을 내 것으로 비끄러매야겠다.'

오 소저는 왕건의 남성을 받아들이면서 한 가닥 희망에 가슴을 떨었다.

'난 이분의 아기를 낳고 싶어. 이분처럼 늠름한 아들을 낳고 말 테야.'

그러나 왕건의 생각은 조금 엉뚱했다.

'오색구름을 따라 낭자를 만나게 되었지만 미천한 이 낭자에게 아기를 낳게 해서는 아니된다.'

그리하여 왕건은 오 소저의 몸 깊숙이 꽂아 넣었던 자기의 남성을 결정적인 순간에 뽑아내어 자리 위에 정액을 쏟아 버렸다. 글 인하여 토정은 모두 오 소저의 몸속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자리 위에 흥건하게 흘러 버린 것이다.

오 소저는 순간 왕건의 가슴을 밀쳐 버리고 발딱 일어나 앉았다.

'무슨 짓이에요, 장군.......'

오 소저의 입에서 그런 항변이 쏟아져 나오지는 않았으나 그녀는 분명히 그렇게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다음 순간 오 소저는 자리 위에 얼굴을 묻고 토정한 왕건의 그것을 모두 입안으로 넘겼다. 그러고는 다시 한번 다져두는 것이었다.

'한 번 더 장군을 모셔서 이번에는 실수 없이 이분의 씨를 받아 넣어야지......'

오 소저는 제쪽에서 열을 올려 왕건의 목을 쓸어안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왕건은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의 남성을 뽑아 버리는 것이었다. 그로 인하여 토정은 모두 자리 위에서 흥건하게 묻어 버리고 말았다.

오 소저는 깜짝 놀라 이번에도 몸을 발딱 일으켰다.

그녀는 자리 가까이로 입을 벌리고 가서 토정한 왕건의 그것을 모두 목으로 넘겼다.

'이 어른이 내가 임신하는 걸 원치 않으시지만 난 기필코 이 어른의 아기를 낳고 말 테다.'

이튿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왕건은 결정적인 순간에 자리 위에다 사정하는 것이었으나 그때마다 오 소저는 자리 위의 정액을 모두 목으로 넘겨 버리는 것이었다.

며칠 밤을 그렇게 오 소저의 집에서 묵고 왕건은 다시 길을 떠났다.

몇 년 뒤 왕건은 북으로 궁예의 군사를 누르고, 남으로 견훤의 후백제를 토평한 뒤 급기야 개경에 도읍을 정하고 고려를 세웠다.

그 사이 아들을 낳은 오 소저는 태조 왕건의 부름을 받고 개경으로 올라왔다. 왕후에의 꿈을 안고 달려간 오 소저에게 왕건은 그녀를 제1왕후로 맞아들일 수 없는 사유부터 설명했다. 1왕후 유씨는 왕건이 남정을 떠나는 길에 정주에서 얻은 여자라 했다.

정주 부호 유천궁이 유씨의 아비여서 왕건은 그녀의 집에서 군자금을 보태어 쓰기도 했다는 것이다.

"나와 중전(유씨)이 처음 만난 곳도 그대처럼 우물터에서였소."

왕건은 회상에 잠겼다. 유 중전이 아직 물 오른 수양버들 가지처럼 여리고 싱싱하던 시절. 어느 해던가, 더위 속을 달려 우물터에 다다른 왕건은 두레박 속에 떠 있는 나뭇잎을 후후 불어 가면서 물을 마셨다.

물 한 두레박을 다 마시고 난 왕건은 그제서야 궁금한 것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대는 어찌하여 내가 마시는 물에 버들잎을 띄웠는가."

". 그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장군님을 뵈오니 먼길을 달려온 듯 하와 너무 목이 마르던 참에 급히 물을 마시다 사레가 드시면 큰일이다 싶어 버들잎을 띄웠나이다."

", 그랬던가.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구먼."

유씨가 두레박 물에 버들잎을 띄운 슬기는 왕건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였다.

그날 밤 자기 집에서 왕건을 모신 유씨는 그 뒤 소식이 끊긴 왕건을 기다려 지조를 정결하게 지켰을 뿐만 아니라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가 태조가 등극한 뒤 부름을 받아 왕후가 되었다.

오 왕후보다 한 발 앞서 대궐로 들어온 유 왕후에게는 웬일인지 아직 왕자가 없었다. 오 왕후는 그게 다행이다 싶어 자기 소생의 왕자 무를 왕건에게 보였다.

오씨 소생의 어린 왕자 무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던 왕건은 그만 실소를 금치 못했다.

"마마, 이 아이의 얼굴에 무엇이 씌어 있기라도 한지요?"

"아니 아니, 그런 건 아니네만 무의 얼굴에 이 무슨 자리 자국인고?"

"자리 자국이라니오, 마마!"

"보시오, 얼굴에 분명한 이 자리 자국!"

기실 왕자 무의 얼굴에는 태어날 때부터 자리 자국이 선명하게 돋아나 있었는데,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오 왕후가 왕건과 시침할 때 자리 위에 사정한 정액을 목으로 넘겨서 임신한 때문이었다.

오 왕후 소생 무 왕자는 자라나면서 차츰 이상한 짓을 곧잘 했다. 무 왕자는 자기가 자는 자리 위에다 항상 물을 뿌려 두는가 하면, 또 큰 병에 물을 담아 놓고 팔꿈치 씻기를 좋아하였다. 이 모양을 본 대궐 안 사람들은 모를 두고, '용의 자식'이니 '용자'니 하고 수군거렸다. 용의 자식이라 물을 좋아하고 물로 씻기를 즐긴다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오 왕후는 부끄럼 없이,

"아무렴, 내 아들 무는 용의 자식이고 말고. 용꿈을 꾸고 마마를 모셨으니 용의 자식이고 말고." 하면서 대견해하였다.

어느덧 무의 나이 일곱 살이 되었다.

그때까지 태조 왕건은 무를 태자로 봉하지 않고 있었다. 무의 용덕이 뛰어나고 담력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어머니가 미천하여 장차 사위함을 얻지 못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오 왕후 소생 무를 태자로 봉하는 데는 약간의 장애가 없지도 않았다.

원래 태조 왕건의 아들은 30명이나 되는 왕비와 후궁들 사이에서 스물여섯이나 탄생하였으니 그 가운데서 차기 왕위에 오를 태자를 정한다는 것이 그렇게 수월한 노릇만은 아니었다. 오 왕후 소생 무를 비롯하여 제16 왕후인 광주원 부인 소생과 유검필의 딸 동양원 부인의 소생이 각각 태자와 왕위 계승을 동시에 노렸다.

오 왕후는 지난날 태조를 모실 때 일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매일같이 초조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지난날 태조와 교섭을 가질 때 자리 위에 쏟아 버린 정액을 오 왕후는 재빨리 목으로 넘기질 않았던가.

그때는 부끄러운 줄도 몰랐었고 불결한 줄도 몰랐었다. 오 왕후의 오직 한 가닥 바람을 그저 어떻게 해서든지 왕자를 낳아서 왕의 관심을 끌어 보자는 마음뿐이었다.

그녀의 욕심대로 태조의 아들을 낳기는 하였지만 왕자가 일곱 살이 되도록 아무 조치도 내리지 않았다.

오 왕후는 자기보다 뒤늦게 대궐로 들어온 왕비들이 왕자를 낳을 때마다 무가 밀려나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오 왕후의 그 같은 기우는 뒤늦게 태조에게 전달되었다.

어느 날 태조는 오 왕후에게 옷상자 한 개를 하사하였다.

"이는 옷상자가 아니옵니까, 마마?"

"그렇소, 옷상자일세."

"이 안에 무슨 옷이 들어 있나이까, 마마?"

"상자를 열어 보면 알리라."

태조가 돌아간 뒤 오 왕후는 상자를 열어 보았다.

", 이는 자황포가 아닌가."

자황포란 와아가 입는 옷이었다. 태조가 자황포를 보낸 것은 왕자 무를 태자로 삼겠다는 의사 표시였다.

오 왕후는 그 길로 대광 박술회를 찾아가 왕이 자황포를 내린 사실을 알렸다.

박술회는 태조의 뜻을 알고 무를 세워 태자로 삼을 것을 청하였다. 그리하여 오 왕후는 그녀의 숙원을 풀게 되었다.

뒷날 태자 무가 고려의 제2대 임금이 되었을 때 그에게는 접왕이라는 별명이 붙어 다녔다.

접왕이란 곧 '주름진 임금'이란 뜻이니, 혜종의 어머니 장화왕후 오씨가 자리에 버린 태조 왕건의 정액을 목으로 넘겨 태어났다는 내력이 그 접왕이란 말 속에는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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