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새의 선물 1

새의 선물

은희경

 

 

아주 늙은 앵무새 한 마리가

그에게 해바라기 씨앗을 갖다주자

해는 그의 어린 시절 감옥으로 들어가 버렸네

- 자끄 프레베르의 시

 

프롤로그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쥐를 보고 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서 이 카페는 정원에 조명이 밝혀져 유럽풍의 화려한 실내장식과 함에 더욱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냈다. 무심코 창밖을 향해 있던 시선 속으로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쥐가 들어왔다. 스테이크 한 조각을 입에 넣고 막 입술 사이로 포크를 내려는 참이었다.

처음에는 잘 손질된 정원수 사이로 뭉클뭉클 움직이는 저 더러운 잿빛 털 뭉치가 무엇인가 싶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연한 수피에 쉴새 없이 이빨을 갉작거리고 있던 쥐와 눈이 마주쳤던 것이다. 머리를 꺼덕일 때마다 그 반동으로 가지 꼭대기가 둔하게 휘청일 만큼 살진 놈이었다.

창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행운은 겨우 십여 분 동안만 유효했던 셈이었다. 나는 내 행운의 유효기간이 짧았던 것보다 행운과 불운은 순서대로 온다는 것을 잊은 채 창가 자리에 들뜬 엉덩이를 내려놓고 있던 자신의 이완이 더 언짢다.

쥐가 짧은 다리를 뻗어 옆 가지로 옮겨 앉자 꼬리가 긴 곡선을 그으며 잽싸게 따라가 숨는다. 꼬리. 나는 저 꼬리를 어린 시절 변소에 쪼그려 앉아서 내려다보곤 했다. 나무 발판 밑의 구덩이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져 아래를 내려다보면 거기 똥 위에 쥐가 있었다. 조금 전까지 수채 구멍의 허연 밥찌끼 위에 엎드려 있던 그 회색 쥐.

그 쥐는 마치 흙손으로 개어놓은 시멘트 반죽처럼 제법 꾸들꾸들한 똥 위에 가볍게 올라앉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누렇게 삭아버린 종이쪽과 불다 만 고무풍선 같은 허연 콘돔 사이를 헤치며 그때마다 꼬리가 유연한 곡선으로 쥐의 행로를 뒤쫓았고 쪼그리고 앉은 채 나는 다리가 저릴 때까지 그 꼬리의 향방을 뒤쫓는 데 열중하였다.

나는 지금도 혐오감과 증오, 그리고 심지어는 사랑에 이르기까지 모든 극복의 대상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언제나 그 대상을 똑바로 바라보곤 한다. 쥐를 똑바로 보면서 어금니에 고인 침 사이로 스테이크를 씹어 넘기듯이. 그것은 나의 오랜 습관이다.

갑자기 화려한 바로크 음악이 귓가를 파고든다. 쥐의 기억에 몰두해 있는 동안 차단되었던 소리가 무감각의 벽을 뚫고 지각의 영역 속으로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 동시에 지금 막 마지막 스테이크 조각을 삼키고 접시 위에 포크를 내려놓는 그의 긴 손가락이 눈에 들어온다.

그를 바라보는 내 눈 속에는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를 볼 때 으레 담게 되는 흠 잡을 데 없는 다정함이 깃들어 있다. 물론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사랑이라고 짐작되는 감정 속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 사랑은 거의 마음 먹은 대로 생겨나고 변형되고 그리고 폐기된다. 삼십 대 중반을 넘긴 나에게 지금까지 사랑으로 인한 가벼운 비탄과 회한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쩌면 그것도 달콤한 구색이었을 뿐이다. 나는 사랑이란 것은 기질과 필요가 계기를 만나서 생겨났다가 암시 흑은 자기최면에 의해 변형되고, 그리고 결국은 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지금 내 앞에 앉아있는 그.

나는 그를 진심으로 특별히 사랑하고 있으며 심지어 어쩌면 내 생애에 단 하나의 '타인을 위한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반해 있다. 그가 내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요구하기만 한다면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분연히 버리고 그와 함께 남도로 떠나는 밤 기차의 창가에 청승맞으나 회망 찬 포즈로 앉아서 그를 위해 삶은 달걀 껍질을 벗길 것이다, 얼마든지!

하지만 돌이켜보면 불과 몇 달 전에도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다른 남자와 마주 앉아 있었다.

나의 분방한 남성 편력은 물론 사랑에 대한 냉소에서 온다.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만이 쉽게 사링에 빠지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을 위해 언제라도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나의 열정은 삶에 대한 냉소에서 온다. 나는 언제나 내 삶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으며 당장 잃어버려도 상관없는 것들만 지니고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해왔다. 삶에 대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만이 그 삶에 성실하다는 것은 그다지 대단한 아이러니도 아니다.

"어젯밤 말야."

웨이터가 날라 온 커피잔에 설탕을 넣으며 그가 입을 연다.

어젯밤? 그가 내 쪽으로 밀어놓는 설탕 그릇 속에 티스푼을 집어 넣으려다 말고 나는 고개를 들어 그의 표정에서 '어젯밤'이 무엇을 뜻하는지 단서를 찾아본다. 있다. 그의 입가에 하기 어려운 말을 꺼내는 사람의 어색한 미소가 떠올라 있다. 그러나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내려간 눈가에 깃든 수줍음으로 보아 그가 꺼내려는 어려운 말이란 곤란하기보다는 은밀한 쪽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섹스에 대해 말하려는 모양이다.

내가 내 삶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나 자신을 '보여지는 나''바라보는 나'로 분리시키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본다. '보여지는 나'에게 내 삶을 이끌어가게 하면서 '바라보는 나'가 그것을 보도록 만든다. 이렇게 내 내면 속에 있는 또 다른 나로 하여금 나 자신의 일거일동을 낱낱이 지켜보게 하는 것은 20년도 훨씬 더 된 습관이다.

그러므로 내 삶은 삶이 내게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거리를 유지하는 긴장으로써만 지탱돼왔다. 나는 언제나 내 삶을 거리밖에서 지켜보기를 원한다.

섹스도 예외일 수는 없다. 나는 섹스의 순간에도 언제나 나를 지켜보고 있다. 관능적 교태와 서정적 수줍음을 적당히 연출함으로써 상대방과의 일치된 행복감을 꾀했을 뿐 스스로가 완전히 몰입해본 적이 없다.

아마 그는 사랑에 빠진 남자의 세심함으로 그것을 간파했을 것이다. 그가 꺼내기 어려워하는 '어젯밤' 얘기란 바로 그런 얘기이리라는 짐작에 나는 조금 마음이 답답해진다. 타인을 사랑하는 감정이란 본질적으로 그렇게밖에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을 서정적인 사람인 그에게 납득시키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때 1969년 겨울, 나는 조그만 앉은뱅이책상 앞에서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라는 제목의 목록을 지우고 있었다. 동정심, 선과 악, 불변, 오직 하나뿐이라는 말, 약속,,,,,, 마침내 목록을 다 지운 나는 내 가운뎃손가락 마디에 연필 쥔 자국이 깊게 패인 것을 한참동안 내려다보았다. 그 이후 지금까지 나는 인간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도 나는 뭔가를 쓰다가 이따금 연필을 내려놓고 가운뎃손가락 마디의 옹이를 한참 내려다보곤 한다. 나는 삶을 너무 빨리 완성했다.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라는 목록을 다 지워버린 그때.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누구의 가슴 속에서나 유년은 결코 끝나지 않는 법이지만 어쨌든 내 삶은 유년에 이미 결정되었다. 그리고 그 순수한 시절에 내 인생을 결정하도록 해준 것은 애초부터 선의라고는 갖지 않은 삶의 그나마의 호의일 것이다.

"어젯밤 말야."

그가 망설이며 내게는 이미 발어사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 그 문장을 한 번 더 발음한다. 섹스에 몰두하지 않는 내 감정을 위선적인 사랑이라고 의심하고 있으므로 그의 목소리는 흔들린다.

하지만 그것은 오해이다. 남자를 위해 허락된 내 사랑은 작위일지언정 위선은 아니다. 그의 의심을 덜어주기 위해서 나는 나의 모든 신체적 재능을 동원할 뿐 아니라 그 기회를 되도록 빨리 갖기 위해 오늘 당장 1를 기꺼이 내 아파트로 유흑하리라.

대답할 말을 이미 정해놓은 나는 그의 다음 말을 재촉하듯 다정하게 턱을 앞으로 내밀면서 그렇게 얼굴을 그에게 향한 채로 눈을 돌려, 쥐를 보고 있다. 거리를 재어보고 있다.

 

 

 

1. 환부와 동통을 분리하는 법

내가 왜 일찍부터 삶의 이면을 보기 시작했는가.

그것은 내 삶이 시작부터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삶이란 것을 의식할 만큼 성장하자 나는 당황했다. 내가 딛고 선 출발선은 아주 불리한 위치였다. 더구나 그 호의적이지 않은 삶은 내가 빨리 존재의 불리함을 깨닫고 거기에 대비해주기를 흥미롭게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어차피 호의적이지 않은 내 삶에 집착하면 할수록 상처의 내압을 견디지 못하리란 것을 알았다. 아마 그때부터 내 삶을 거리 밖에 두고 미심쩍은 눈으로 그 이면을 엿보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삶의 비밀에 빨리 다가가게 되었다.

엄마가 죽은 것은 내가 여섯 살 때라고 한다. 내게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단 한 가지도 없다. 그래서인지 그리움도 없다. 엄마를 떠올리게 하고, 내게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없다는 것을 자각하게 하는 것은 오히려 엄마의 존재를 한사코 감추려 하는 할머니에게서이다.

할머니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모든 할머니에게는 귀하기 마련인 제 손녀딸을 보는 대견함 이상의 안쓰러움이 있다. 그 눈빛이 바로 내게 엄마라는 존재의 상실을 떠올리게 하는 한편, 그 눈빛의 넉넉한 울타리 안에서라면 굳이 엄마를 그리워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지금도 할머니는 부엌문을 열고 나오다가 나를 보고는 눈 속에 그 대견하고 안쓰러운 빛을 담은 채 말한다.

"진회 일어났냐? 이모도 좀 깨워라."

앞섶에 진주색 납작 단추가 주루룩 달린 헐렁한 지지미 웃옷에다 몸뻬 차림인 할머니는 우물가로 가서 손에 묻은 석유풍로의 그을음을 씻어낸다. 나는 마루 위의 기둥에 걸린 색색으로 바랜 칫솔 네 개 중 빨간색 칫솔에 치약을 짜면서 할머니가 머리에 쓰고 있던 수건을 풀어서 손을 닦는 것을 쳐다본다.

"삼촌은?"

"삼촌은 놔두고. 밤에 못 잤을 텐데 늦게까지 자야지."

하지만 할머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삼촌 방문이 열리고 어깨 위에 수건을 걸친 삼촌이 성큼 마루로 내려선다. 삼촌이 나오자 마루 밑에서 강아지 해피도 쑥 빠져나와 머리를 몇 번 흔들어서 먼지를 털어낸 뒤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기 시작한다. 이모를 깨우러 안방으로 들어가는 나를 삼촌이 힐끗 보며 마루기둥의 못에서 초록색 칫솔을 빼고 있다,

할머니가 내게 보내는 대견하고도 안쓰러운 눈빛에서 안쓰러움이 빠진. 그러니까 대견함만 가지고 바라보는 대상이 바로 삼촌이다.

'서흥동 감나무집 아들' 하면 우리 읍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군대에 가기 위해서 지금은 휴학을 하고 집에 내려와 있지만 삼촌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들어가기 어렵다는 서울대학 법대생이다.

"영옥이 아직 안 일어났어요?

"지가 무슨 당나라 소동성이라고 매일 늦잠이다."

"놔두세요.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놔두긴, 말만 한 기집애가 늦게까지 자긴 왜 자. 밤새도록 공부한 지 오래비도 벌써 이렇게 일어났는데."

이모는 이불 속에 엎드려서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추고 있다가 할머니와 삼촌이 밖에서 자기를 두고 하는 말이 들려오자 "어유, 신경질 나" 하면서 이불을 확 젖히고 일어나 앉는다. 그리고는 무릎걸음으로 이불을 질겅질겅 밟으며 욋목으로 가더니 맨 먼저 집어 드는 것이 거울이다.

"밖에 장군이네 식구 나왔디?"

"아니, 아직 , "

"에이 참, 엄마는. 우물가가 복잡해서 그 집 식구들 세수 다 한 다음에 나갈랬더니 ,,, ,,, 나 늦잠 자는 꼴을 그렇게 못 보더라."

'장군이네 식구'라고 표현했지만 이모가 우물가에서 마주치기 싫어하는 것은 장군이네 식구 전체, 즉 장군이와 장군이 엄마, 그리고 그 집 하숙생인 최선생님과 이선생님 모두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중에서 최선생님을 가리키는 말이다. 최선생님은 우리 학교 선생님인데 남자가 무용선생이라서 그런지 여자들과의 신체적 접촉을 스스럼없이 생각한다. 솔직히 말하면 능글맞은 데가 있다. 최선생님이 여자애들의 가슴을 은근히 건드리거나 블라우스 깃의 파인 부분을 유심히 쳐다보거나 하는 일은 이미 학교에서도 소문이 난 사실이다. 그 최선생님이 러닝셔츠와 파자마 바람으로 우물가에 나타나는 아침 시간에 이모가 선뜻 나가기를 꺼리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할머니 말처럼 아예 더 일찍 일어나서 미리 세수를 마치면 되겠지만 그러기에는 또 이모의 게으름이 만만치가 않다.

도로 이불 속으로 들어가 라디오를 끌어당기는 이모를 보면서 나는 일단 할머니의 심부름은 마친 셈이므로 다시 방에서 나온다. 우물가에는 그새 광진테라 아줌마가 나와서 자기가 업고 있는 두 살배기 아들 재성이의 얼굴만 한 감자의 쩝질을 세 개째 벗기고 있다. 광진테라는 우리 집 가게채에 세 들어 있는 앙복점 이름이다. 삼촌 말로는 '테일러'라고 해야 맞다지만 우리 읍내 양복점의 이름은 모두 광진테라처럼 무슨무슨 '테라'자가 붙는다.

우리 집은 마당 안쪽으로 들어앉은 살림집 두 채와 대문 쪽에 자리 잡은 가겟집 한 채까지, 다 합해서 세 채의 집으로 되어 있다.

살림집 중에서 왼쪽 집은 장군이네가 세 들어 살고 있는 곳으로, 방 두 개 가운데 한 방에는 장군이 모자가 살고 다른 한 방은 최선생님과 이선생님이 함께 하숙을 하는 방이다. 그 오른쪽에 있는 집이 주인집인 우리 집인데 부엌과 가까운 안방은 할머니와 이모와 내가, 가운뎃방은 삼촌이 쓰고 있다. 대청마루를 지나서 좀 후미진 곳에 돌아서 있는 조그만 뒷방은 빈방이다.

가겟집은 네 칸 모두 세를 주었다, 가장 넓은 칸이 '뉴스타일 양장점'이고 그 옆이 '광진테라''우리 미장원: 그리고 뉴스타일 양장점 지붕 위로 올린 반쪽짜리 이충은 '문화사진관'이다.

그리고 이 세 채의 집 한가운데에 우물이 있다.

그 우물이야말로 장군이네 집과 우리 집, 그리고 가게 문은 행길 쪽으로 나 있지만 살림하는 방의 문은 모두 우리 집 마당으로 향해 있는 가겟집들까지, 모든 식구들의 끼니 준비며 세수며 설거지며 빨래, 그리고 정보교환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위치로 보아서도 컴퍼스로 그리면 꼭 중심이 되는 삶의 구심점이었다. 몇 년 전 바깥채를 헐어버리고 가겟집을 새로 들일 때에 인부들이 뒤란에 펌프를 하나 설치해주긴 했지만 우리 집사람들은 눈에 번연히 보이는 물을 두레박으로 퍼 쓰는 것에 익숙해져서 안 보이는 물을 뿜어 올려야 하는 펌프질을 낯설어했고 그러다 보니 펌프는 녹이 슬어 쓸 수가 없게 되었던 것이다.

밖에서 들어올 때면 나는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습관처럼 우물 쪽을 먼저 쳐다보곤 한다. 집에 사람이 있다면 으레 그곳에 있게 마련이므로 그런 것이다. 이따금 우물가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마음을 놓았다가 대문 바로 옆에 있는 변소에서 누군가가 불쑥 나오는 바람에 깜짝 놀라는 일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우물가는 우리 집의 모든 소문과 그리고 비밀의 샘터이기도 했다.

우리 집 어른들은 모두 나를 귀여워한다. 장군이 엄마는 내가 부모 없이 외할머니 밑에서 자라는 것이 불쌍해서라고 하고 광진테라 아줌마는 언제나 1등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문화사진관 아저씨는 인사성이 밝아서 그렇다고 하는가 하면 또 뉴스타일 양장점의 시다 미스 리 언니는 내가 예쁘게 생겨서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어른들이 나를 귀여워하는 진짜 이유를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자기들의 비밀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밀을 저당 잡혀 있기 때문에 그들은 나를 귀여워할 수밖에 없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런 비굴함이 있다는 것을 진작에 알았다. 내가 어른들의 비밀에 쉽게 접근한 것은 바로 어린애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해서 ' 어린애로 보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자기들이 다루기 쉽도록 어린애를 그저 어린애로만 보려는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어린애로 보이기 위해서는 예쁘다거나 영리하다거나 하는 단순한 특기만으로 충분하다.

나처럼 일찍 세상을 깨친 아이들은 어른들이 바라는 어린이 행세를 진짜 어린이 수준밖에 못 되는 아이들보다 훨씬 더 그럴듯하게 해낸다. 그래서 어른들 비밀의 겉모습은 조금 엿봤을망정 그 비밀의 본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행동한다. 그것이 어른들을 얼마나 안심시키면서 또한 귀여움을 촉발시키는지 모른다. 비밀이란 심술궂어서 자기를 대 보이기 싫어하는 것만큼이나 누군가에게 공유되어지기를 간청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내가 어른들의 비밀에 접근하는 방법은 관찰이다. 할머니가 늘 칭찬하는 대로 나는 눈썰미가 있는 데다 내가 본 것들을 내 나름대로 분석하는 데 흥미를 갖고 있다. 이따금 나는 동정심, 의리, 탐욕 등 사람의 마음속을 헝클어놓는 것들에 대해 실험을 하기도 한다. 이모 같은 만만한 상대나 장군이처럼 내가 하찮게 여기는 동급생들이 주로 대상이 되는데, 그런 실험은 내게 어른들의 비밀을 해석하는 통찰력을 길러준다.

어쨌든 내가 이렇게 어른들의 비밀 속에서 삶의 비밀을 캐내는 것은 내 삶을 거리 밖에서 보려는 긴장의 한 방법이다. 내 삶을 거리 밖에 떨어뜨리고 보지 못했다면 나는 자폐를 일으켰을지도 모른다.

내가 여덟 살인가 아홉 살 무렵이었다. 도시에서 왔다는 할머니의 조카뻘 되는 친척 아주머니 둘이 방 안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가 내가 들어가자 말을 뚝 멈추었다,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기 위해서 그런 것이었다. 마치 진기한 구경을 하듯 한참 나를 요모조모 뜯어보더니 아주머니들은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얘가 그 앤가 봐요, 그렇죠? 에미가 그랬어도 애는 정신이 온전한가 보죠?"

"그 병이 내림은 아니거든."

"누가 알아요?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튼 부모 없는 애 키우느라고 작은어머니가 고생이구만."

"그러게 말예요. 정신도 성치 않은 것을."

"동생도 참, 어린것을 갖고 무슨 소리야."

"아무리 어려도 저 눈 보니까 귀신이 지키고 있는 것 같아서 어째 등 뒤가 서늘한걸요."

"귀신이라니, 재 에미가 얼마나 참했는데,,,,,, 전쟁 통에 실성한 사람 우리가 어디 한둘 봤어? 다 멀쩡했던 사람들이지 누가 뱃속에서부터 그런 병 지니고 나왔다던가."

"그냥 실성해 죽은 것도 아니고 재 에미는 목을 맸잖아요. 재 삼촌이 제 누이 시신을 거둬다가 화장했다면서요. 저게 커서 뭐가 될지 알고.., ,.. 아무튼 나 같으면 손녀 아니라 뭐라도 께름칙해서 못 키워요.. "

"아이고, 그만해 동생. 작은어머니 들어오실라."

나에게도 귀와 눈이 있다는 것 따위는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그들은 할머니가 들어오실까 봐 바깥 기척에만 신경을 쓰며 내 앞에서는 드러내놓고 그 얘기를 길게 늘어놓았다. 자기들의 얘기를 더욱 실감 나고 흥미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나라는 물증을 수시로 흘깃흘깃 두드려보고 뒤집어보고 흔들어보면서 ,,, ,,,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내가 남의 시선을 싫어하게 된 것은. 한동안은 누가 나를 쳐다보고 수군거리기만 해도 엄마 이야기라고 지레짐작했으며 남에게 그것을 눈치채이기 싫어서 짐짓 고개를 숙여버리곤 했다. 그러나 바로 그렇게 남에게 관찰당하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나는 누구보다 일찍 나를 숨기는 방법을 터득했다.

누가 나를 쳐다보면 나는 먼저 나를 두 개의 나로 분리시킨다. 하나의 나는 내 안에 그대로 있고 진짜 나에게서 갈라져 나간 다른 나로 하여금 내 몸 밖으로 나가 내 역할을 하게 한다.

내 몸 밖을 나간 다른 나는 남들 앞에 노출되어 마치 나인 듯 행동하고 있지만 진짜 나는 몸 속에 남아서 몸 밖으로 나간 나를 바라보고 있다. 하나의 나로 하여금 그들이 보고자 하는 나로 행동하게 하고 나머지 하나의 나는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때 나는 남에게 '보여지는 나'와 나 자신이 ' 바라보는 나'로 분리된다.

물론 그중에서 진짜 나는 '보여지는 나'가 아니라 '바라보는 나'이다. 남의 시선으로부터 강요를 당하고 수모를 받는 것은 '보여지는 나'이므로 '바라보는' 진짜 나는 상처를 덜 받는다. 이렇게 나를 두 개로 분리시킴으로써 나는 사람들의 눈에 노출되지 않고 나 자신으로 그대로 지켜지는 것이다,

진짜의 나 아닌 다른 나를 만들어 보인다는 점에서 그것이 위선이나 가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꾸며 보이고 거짓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나를 두 개로 분리시키는 일은 나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작위'라는 말을 알게 된 뒤부터 그런 의혹은 사라졌다. 나의 분리법은 위선이 아니라 작위였으며 작위는 위선보다 훨씬 복잡한 감정이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부도덕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아는 어른들의 비밀을 털어놓는 데에 나는 아무런 거리낌도, 빚진 마음도 갖고 있지 않다.

 

 

 

2. 자기만 예쁘게 보이는 거울이 있었으니

나에게 모든 비밀을 털어놓은 가장 대표적이고도 중요한 인물은 이모이다. 솔직히 말해서 올해 스물한 살인 이모가 나와 비밀을 공유한다는 것이 결코 어른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상관없다. 무슨 일에 있어서건 어차피 이모는 어른스럽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어줍잖은 어른 행세를 하지 않을 때가 차라리 어른스러웠기 때문이다. 나는 이모의 비밀을 통해 삶을 배웠다.

이모가 펜팔을 취미로 삼은 것은 왜 오래된 일이다. 펜팔이란 것이 정숙한 처녀의 행실로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다소 발랄한 취미였기 때문에 처음 이모가 펜팔을 하게 된 공개적인 동기는 영어 공부를 위해서라고 알려져 있다. 어디까지나 실용 영어를 확실히 공부할 목적이라는 데야 고지식한 할머니도 이모의 해외 꿴팔에 강력한 반대 이유를 대지 못했다. 이모의 직업이라고 하는 것이 명색이 영어 과외선생이었으니 할머니로서는 펜팔이 '쓰잘데없는 편지질'의 다른 표현이라는 짐작은 있었지만서도 직업적 지평을 넓히겠다는 이모의 기백을 막무가내로 가로막을 수만도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 펜팔의 시작은 여간 호들갑스럽지 않았다. 먼저 무슨 국제교류협회인가 하는 회사로 자기 사진과 신청서를 보내야 했다. 그 사진과 신청서를 접수 받은 '협회'는 자체 판단에 따라 조건에 맞는 외국인의 주소를 하나씩 소개해주었다. 이모는 거기에 보낼 사진을 물론 새로 쩍었으며, 한 번은 눈이 짝짝이다 한 번은 너무 촌스럽게 나왔다 하여 두 번이나 다시 찍어달라고 하는가 하면 실물의 특징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면서 문화사진관 아저씨의 직업적 자존심을 건드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나서 협회로부터 소개받은 주소가 캐나다에 사는 해롤드 뭐라고 하는 16세 소년의 주소였다,

막상 편지를 쓰려고 하니 생각처럼 쉽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이모는 포켓판 영어 회화 책과 사전, 고등학교 때의 영어 참고서까지 쌓아놓고 밤늦도록 끙끙대는가 싶더니 간신히 두 장의 편지지를 채웠는데 노력은 쓰고 열매는 달다고, 자기가 쓴 그 편지를 눈앞에 높이 쳐들고 읽어내리는 이모의 목소리는 사뭇 떨렸다.

그날 당장 이모는 영어 과외 교실로 그 편지를 들고 갔다. 학생들에게 '독일어는 울고 들어갔다가 웃고 나오고 영어는 웃고 들어갔다가 울고 나온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을 외국어 학습에 관한 최대의 금언이기라도 한 것처럼 인용하면서 이모는 이번 경험을 통해 영어가 어렵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음을 강조하는 한편 그럼에도 편지를 훌릉하게 완성한 자기의 영어 실력에 대한 감탄을 굳이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 그 편지를 학생들 앞에서 몇 번이나 되풀이하여 읽어주었음은 물론이요, 영어 발음이 좀 되는 학생들의 리딩 연습에 교재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 당시 이모의 과외선생 노릇은 사실 비전문적인 점이 많았다. 이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달 빈둥거리다가 중학교 1학년생만으로 서너 개의 팀을 짜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알파벳과 발음기호, 그리고 고작해야 영어 교과서 탐 앤 주디의 맨 앞 챕터 몇 개만을 가지고 기초적인 리딩 연습을 하는 것이 전부인 그 과외지도는 공부를 가르친다기보다 아이들과 함께 논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듯싶었다.

그동안 이모는 비록 뜻한 바 있어 대학 진학은 하지 않았지만 고등학교 때까지 영어만큼은 남에게 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노라고 공언해왔다. 가끔 포켓판 회화책을 펴들고 이리저리 방안을 걸어 다니면서 영어를 씨부렁대고 팝송을 따라 부르는 걸 보면 자신의 주장대로 영어 실력이 왜 있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이모의 과외지도방식은 그런 정도의 영어 실력조차도 필요 없어 보였다. 마치 사교장 같은 분위기였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서로 만날 기회가 적어진 남학생과 여학생들이 이모의 과외방에 무릎을 맞대고 둘러앉아서 흥조를 띠고 서로를 힐끗거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런 느낌이 들더니, 과연 과외지도 시간이 다 지나고도 돌아갈 생각을 않고 마루 앞의 평상에 앉아서 노닥거리며 다음 팀이 끝나기를 기다리다가 몇몇은 저희들끼리 짝을 이루어 나가기도 하고 나머지 애들은 단체로 과자 파티를 벌이거나 일요일에 놀러 갈 계획을 짜는 것을 한두 번 본 것이 아니었다.

어떤 날은 말이야 그럴듯하게 야외수업이라는 구실로 아예 공부를 때려치우고 근처의 국민학교 운동장에 가서 배드민턴을 치기도 했으며 또 어떤 날은 굳이 자리를 따로 마련하지 않아도 충분히 잘 되고 있는 친목 도모의 날을 정해서 이모가 가르치는 모든 남학생 - 학생들이 좁아터진 방에서 발 냄새와 땀 냄새를 나눠 맡으며 몇 시간이고 키득거리는 것이었다.

그 학생들은 남학생 여학생 할 것 없이 모두가 이모를 '시스터'라는 호칭으로 불렀다. 선생님이라는 말보다는 친근감이 갈 뿐 아니라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자발적으로 수업에 참여할 수 있다는 이모의 교육철학이 담긴 호칭이었다. 하지만 친근감과 가족적 분위기라는 이모의 의도는 지나치게 좁은 의미로만 반영되었다. 중학생들과 죽이 맞아 끼득거리고 있는 이모와 학생들의 모습은 희망원의 자매들처럼 천진하기만 했다. 이모의 과외지도는 따라서 오래갈 수 없었다.

이모는 중학생들이 '시스터'를 그렇게나 따르는 데에 홉족해하면서 계속 그 인기의 비결을 공부를 강요하지 않는 자유스러운 수업 분위기에서만 찾았다. 그 결과 '시스터'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중학생들은 집에 돌아가 '실력 없는 영어 과외선생'을 불평했고 이모의 예상을 뒤엎고 몇 달 안 가 과외 교실에는 학생이 몇 명 남지 않게 되었다.

이모가 해롤드 뭐라는 소년과의 펜팔을 그만둔 것도 그 무렵이었다. 먼 이국에서 온 편지를 받는 재미에 그리고 그것을 중학생들 앞에서 읽어주며 으쓱거리는 맛에 서너 번쯤은 답장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과외 교실을 닫게 된 마당에 환호해줄 중학생들도 없는데 스무 살 넘은 한국 처녀가 열여섯 살의 캐나다 소년과 공통화제가 있는 것도 아니려니와 '디어 해롤드'를 쓴 다음부터는 쓸 말이 막막하여 사전을 끌어다가 문선공처럼 사전 안의 단어를 한 글자씩 조립해가면서 편지지를 메워나가는 일도 여간 실속 없는 짓이 아니었다. 그렇게 해서 이모의 첫 번째 펜팔은 실패로 돌아갔던 것이다.

그러나 이모의 두 번째 펜팔은 좀 달랐다, 상대가 외국인이 아닌 한국인이고 성인 남자였으며 (어쩌면 결혼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것은 중요한 조건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군인이라는 신분이 어느 이국의 여드름 자국 성성한 사춘기 소년의 존재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현실감이 있었다. 맨처음 이모에게 쓴 편지의 서두를 인용하여 본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면 그는 "22세의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 남아로서 국토방위의 의무에 여념이 없는 육군 상병 이형렬"이었다.

이형렬의 첫 편지가 도착한 날 우리 집은 발칵 뒤집어졌다. 남향 마루에 봄볕이 몹시 따사로운 날이었다, 나는 새로 받은 5학년 교과서의 표지를 싸기 위해서 흰 달력 종이를 자르고 있었고 아침부터 심심하다고 노래를 부르던 이모는 마침내 나갈 곳이 생겼는지 우물가에서 머리를 감고 있었다. 머리를 다 감은 뒤 이모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감싼 채 내 옆에 와 앉더니 물기를 털기 시작했다. 고개를 내 반대쪽으로 돌리고 힘차게 머리카락을 터는 이모는 남진의 '미워도 다시 한번'을 보다 구성지게 부르는 일에 정신을 집중하느라고 물방울이 내 책 위로 마구 튀어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내가 그것을 지적하려고 얼굴을 쳐든 순간 갑자기 이모의 노랫소리가 뚝 멈추었다.

"? 우리 집에 편지 왔나?"

이모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커다란 가방을 멘 우체부 아저씨가 막 대문간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 집에 전영옥 씨 있어요?

"전영옥이? 전영옥은 전데 ,,, ,,, "

"여기, 편지요."

우체부 아저씨에게서 그 군사우편을 건네받고 처음에는 의아한 표정이더니 겉봉을 뒤집어본 뒤 이모의 뺨 위로 배시시 흥조가 떠을랐다. 그러더니 몇 줄 읽자마자 갑자기 안절부절 일어서서 읽기 시작했는가 하면 그때부터는 무엇이 그리 급한지 중얼중얼 읽는 속도가 빨라졌으며 편지를 손에 든 채 마루 위를 왔다 갔다 하는 품이 보는 사람을 여간 정신 사납게 만드는 게 아니었다. 다 읽고 난 뒤 이모는 그 편지를 무슨 합격통지서를 내밀듯이 자랑스럽게 팔을 뻗어 내게 건네주었다.

"진회야, 너도 볼려면 봐. 펜팔 편지야."

나 혼자만 듣기에는 이모의 목소리가 너무 컸다. 그 목소리는 그대로 방문을 뚫고 들어가서 동여맨 머리띠 아래로 반만 내놓아진 삼촌의 귀에까지 전해졌다. 삼촌이 곧바로 방문을 박차고 나왔다면 나는 이형렬의 첫 편지를 읽지 못했을 것이다. 삼촌은 경솔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모의 두 번째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아마 삼촌은 바깥 동정을 살피느라 방문께로 돌렸던 시선을 그냥 다시 책상 위의 법전으로 가져갔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원래는 할머니의 한복 허리끈이었던 머리띠의 한끝을 분연히 휘날리며 이모의 뺨을 갈기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서 편지를 다시 돌려받으며 이모가 내뱉은 말은 내가 생각해도 누이동생을 가진 오빠를 충분히 흥분시킬 만했다.

"인제 군인이 애인 되면 통닭 사 가지고 면회도 가고 재밌겠지? 면회 가면 길 가던 군인들이 막 휘파람 불고 히야까시한다던데. 아유, 얼마나 웃길까."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삼촌 방문이 거칠게 열렸고 "아이고, 엄니?" 하면서 자지러질 듯 놀라는 이모의 얼굴 위로 손바닥이 날아왔던 것은 그러니까 어느 모로 보나 이모의 자업자득인 셈이었다.

저녁에 밭에서 돌아온 할머니는 아직까지 울컥거리고 있던 이모를 보더니 일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나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나자 그 얼굴이 한충 더 일그러졌다. 이모를 소리쳐 부르면서 부지깽이로 마구 정지 바닥을 두드리는 것이 당장이라도 이모를 후려칠 기세였다. 이모가 두 팔로 머리를 싸안고 똥개처럼 옆걸음을 치면서 슬금슬금 정지로 들어오자마자 할머니는 이모의 팔을 거칠게 붙들어서 바닥에 앉힌 뒤 또 한 번 부지깽이로 바닥을 세게 내리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삼촌이 겁을 주었다면 할머니는 가시를 박는 격이었던 것이, 그때부터 끈질긴 문초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모의 자백에 따르면 이모는 그 펜팔을 잡지나 가요 책 뒤의 펜팔난에서 주소를 보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명랑이라는 잡지의 펜팔란에서 한 군인의 주소를 베껴와 펜팔을 시작한 것은 이모가 아니라 이모의 친구인 면장집 딸 경자 이모였다. 경자 이모는 펜팔 상대인 군인으로부터 자기에게 진실한 친구가 하나 있는데 그에게 어울릴만한 진실한 상대를 한 명 소개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래서 경자 이모는 그 진실한 상대로서 우리 이모를 점찍었고 이 이상 진실한 상대를 찾을 수 없으리라는 주석과 함께 이모의 주소를 적어 보냈다. 이모는 "네가 하도 쑥맥이라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아서 무조건 주소를 먼저 보내놓았으니 편지를 받더라도 놀라지 마라"는 경자 이모의 말을 듣고는 "너 나를 어떻게 보고 그런 짓을 하는 거니? 하고 펄쩍 뛰면서 절교를 선언하고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여기까지가 이모가 할머니에게 자백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물론 왜곡이 있었다. 경자 이모가 자기의 애인에게 이모의 주소를 써 보낸 뒤 이모에게 그 사실을 말했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인생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모 쪽에서 경자 이모에게 압력을 가해 펜팔 상대를 소개받은 것임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모가 펄쩍 뛴 것은 사실이었지만 뛴다는 말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 '뛸 듯이 놀랐다'는 말도 있지만 이모의 경우는 그보다는 '뛸 듯이 기뻐했다' 쪽의 해석이 타당할 듯하다. 그리고 이모가 절교 선언을 하고 돌아와 버렸다는 것도 사실과는 다르다. 그 장면은 이모가 취조관인 할머니를 따돌리고 훗날 나에게만 털어놓은 '사실과 진실' 인터뷰에서 이렇게 정정된다.

자기에게도 펜팔 상대가 생기게 될 것이란 소식을 미리 전해 듣고 이모는 크게 기뻐했다. 상대에 대한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기에 경자 이모에게 연거푸 질문을 퍼부어대기도 했다.

"근데 어떻게 생긴 사람이래? 키는 크다니?"

", 미남인가 봐, 별명이 록 허드슨이래,"

"? 그럼 순 아저씨같이 생긴 거 아니니? 록 허드슨이 뭐야, 제임스 딘이라면 몰라도."

그러더니 이모는 경자 이모 쪽으로 바싹 다가앉으며 또 물었다,

"너 그쪽에다 내 별명은 뭐라고 했어? 너도 나에 대해 뭔가 소개를 했을 거 아냐."

"했지. 문회 뺨친다고."

"얘는 문희가 뭐니, 나탈리 우드라고 할 것이지. 그리고 너, 취미는 독서와 음악감상이라고 했겠지?"

"그래애, 장래 회망은 현모양처고."

절교 선언을 하고 당장 집으로 돌아와 버리기는커녕 이모는 이런 식으로 경자 이모와 더욱 긴밀한 우정을 나누다가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아처운 마음으로 혜어졌다. 그날의 헤어짐이 특히 아쉬웠던 것은 경자 이모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모조리 이모의 마음을 달뜨게 했기 때문이었다. 경자 이모에 따르면 이형렬이라는 군인은 서을 사람에다가 부잣집 아들, 대학생, 취미는 영화감상, 특기는 오토바이 타기 ,,,,,, 들으면 들을수록 설레는 얘기뿐이었다. 이모는 자기에게 닥쳐온 행운이 믿어지지 않아 가장 연한 허벅지 안쪽 살을 살짝 꼬집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므로 그날 이모가 할머니의 부지깽이 앞에서 자기의 잘못을 심각하게 반성하고 다시는 펜팔 따위를 하지 않겠다고 두 손을 싹싹 모아 빌며 개전의 정을 호소한 것은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라는 제 나름의 전략적 속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초를 끝낸 할머니는 "나가봐라" 한 마디를 마지막으로 등을 돌리더니 말없이 뒤주에서 쌀을 퍼내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말 없는 등에는 삼촌과 할머니가 이모에게 이처럼 과격해졌던 것은 어디까지나 가족애의 표현이라는 함축이 깃들어 있었다. 이모는 소리 높여 흐느껴 울면서 그 가족애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바로 그날 밤 당장 이모는 그 가족애에 배반되는 심각한 제의를 내게 하였다. 앞으로 이형렬의 편지 관리를 나더러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정지에서 물러 나온 뒤 한동안 앉은뱅이책상에 엎드려 있다가 반성의 기색이 역력한 표정을 지은 채 기운 없이 밖에 나갔다 들어오더니 사실은 어느새 그 길로 경자 이모한테 찾아가 이형렬의 편지가 경자 이모네 집으로 배달될 수 있도록 일을 꾸며놓은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맡게 될 관리란 경자 이모한테서 편지를 찾아다가 무사히 이모에게 전달하는 역할이었다.

나는 한순간 어리둥절해졌다. 이형렬의 편지를 갖고 있다가 들키는 일이 문제인 것이지 경자 이모네 집에서 편지를 찾아오는 일이야 이모가 하든 내가 하든 상관없는 일 아닌가. 나에게서 그 사실을 지적받고 이모는 잠시 혼란에 빠졌다. 그러더니 깜빡 잊었다고 사과를 하며, 사실 자기가 나에게 그 중책을 맡기는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 들켰을 때에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형렬과 펜팔하는 것을 들키더라도 내가 연루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 내가 우리 집에서 차지하는 위상으로 보아 이모 자신에게 미칠 파문이 적어질 게 아니겠냐며 나에게는 무척 미안한 일이고 이모로서의 체면도 서지 않는 일이긴 하지만 달리 좋은 방법이 없어 부탁하는 것이라고 거듭 사과를 했다.

하긴 어린애들의 편지 심부름이란 하나의 유행 같은 것이었다.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상대일지라도 자신이 젊은 베르테르나 된 것처럼 동생 흑은 조카를 시켜 편지를 전하게 하는 것이 청춘남녀가 상상해낼 수 있는 낭만의 일종이었다. 이모가 편지 심부름을 원하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인 것 같았다. 아마 이모는 유행에 따르고 싶기도 하려니와 자기의 편지질을 더욱 낭만적으로 하기 위해 비밀의 고리를 만들고 싶어 한 것인지도 모른다. 비밀을 공유한 대가로, 또 비밀을 지키겠다는 결심을 보여주는 한 방법으로서 나는 이모의 제안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이제 6월도 막바지에 접어들었으니 이모가 이형렬과 편지를 주고받은 지도 그럭저럭 석 달이 되어간다. 그러나 이모의 감정 기복에 꽤나 시달렸던 때문에 나는 그 펜팔이 한 삼 년은 된 기분이다. 그동안 삶에 대한 이모의 응석을 나는 정말 싫도록 보아왔던 것이다. 우선으로는 조금만 편지가 늦어도 조바심이 나서 들쓰고 눕기 일쑤였다. 밥상을 들이밀면 겨우 일어나 힘없이 벽에 기대앉는 게 영락없이 한국영화에 자주 나오는 비련의 여주인공이었고 밥맛이 없다며 슬프게 도리질을 할 때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부잣집 외동딸 같기도 했다. 할머니의 계속되는 채근에 밥을 먹기는 하되 그 젓가락질이 모래알 헤는 양했고 할머니가 상을 들고 방문을 나가기가 바쁘게 그동안 어렵사리 벽에 지탱하고 있던 몸을 내 쪽으로 던지며 급기야는 "진희야, 난 어떡해, ? 어떡하면 좋아"라는 대사를 읊을 때는 "문회 뺨친다"는 경자 이모 말대로 연기력이 문희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그러다가도 이형렬한테 편지만 오면 이모는 그날로 사람이 달라졌다. 하루종일 콧노래를 부르는 것은 물론이요, ", 가끼우동 사 먹어도 사십 원은 남을 거다?" 하면서 웬일로 생색도 전혀 안 내고 내게 백 원짜리 종이돈을 주는가 하면 할머니에게 다가가 "엄마, 힘들죠? 내가 시집가면 식모 두고 엄마 잘 모실 테니 기다리세요, ?"라고 안 하던 짓을 하여 할머니를 걱정시켰다.

그런 날이면 또 거울을 들여다보며 하루의 거의 절반을 보내는 게 예사였다. 여드름을 짜거나 족집게로 눈썹을 고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주로 표정 연습이었다. 치켜올린 턱을 모로 비틀며 거만한 표정을 지어보더니 이내 눈을 내리깔고 이마를 찡그리며 슬픈 표정을 짓고. 다시 눈을 치떠서 사선으로 시선을 주면서 화난 표정, 다시 고개를 젖히면서 눈을 가늘게 뜨고 먼 곳을 보며 아련한 표정, 다시 눈을 내리깔고 천천히 도리질을 하며 무슨 말을 할 듯이 입을 쫑긋거리는 애처로운 표정, 다시 입술을 내밀고 고개를 트는 토라진 표정, 다시 턱을 약간 든 다음 눈에 힘을 빼고 입을 조금 벌리는 유혹적인 표정, 그리고 무슨 표정인지 입을 꼭 다물고 눈을 동그랗게 뜬 뒤 고개를 짧게 젖히면서 '? 하는 콧소리를 내보고서야 비로소 이모의 표정 연습은 끝이 난다. 어떤 때는 그 실없는 훈련을 몇 번이나 진지하게 되풀이할 때도 있다.

그러고도 도저히 제 기분을 이기지 못하는 날은 할머니 몰래 내게 이형렬의 편지를 보여주는데 중요한 문서를 열람하기 전 비밀엄수 등의 여러 가지 다짐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봉투를 건네주는 마지막 순간까지 처녀의 수줍음을 가장한 값 올리기 작전을 어찌나 오래 끄는지, 단지 이모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서 그 편지를 보고 싶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나를 번번이 포기 직전에까지 끌고 가곤 했다. 그렇게 해서 받아든 이형렬의 편지는 나의 수고를 전혀 보상해주지 못하는 그저 그런 글솜씨였다.

그의 편지는 항상 "보고 싶은 영옥씨"로 시작되었다. 그다음에는 언제나 날씨 이야기가 이어졌는데, 지난봄에서 초여름을 거치는 동안 그의 편지 서두는 항상 비슷했다. "따뜻한 날씨입니다" "날씨가 따뜻해졌습니다" "점점 따뜻해집니다""여름이 오는가 봅니다" "여름이 오고 있습니다" "이제 여름인가 봅니다" 정도에서 더 바뀔 줄을 몰랐다.

날씨 다음에 이어지는 말은 으레 "누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로 시작하는 명언 명구였다. 그것이 명구라는 것은 알겠지만 그다음 나오는 내용과 어떤 연관을 갖고 인용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이를테면 "소크라테스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습니다"라고 써놓고 "그동안 안녕하신지요?"로 이어지거나, "패트릭 헨리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했습니다" 다음에 대뜸 "오늘은 아침 일찍 눈을 떴습니다"가 나오는 식이었다.

그러나 일단 그 관문만 지나면 어려운 단어나 비유법 없이 평이한 문장이 죽죽 나열되므로 아주 읽기가 편하다는 것이, 짧다는 사실과 함께 그의 편지의 장점이었다.

내용을 간추려본다면 대강 이런 이야기였다.

, 이형렬은 서올에서 사업을 하는 이아무개 씨의 2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나이는 22. 대학에서의 전공은 토목과. 누나는 시집을 갔고 형은 가업을 물려받기 위해 아버지의 회사에서 사회 경험을 쌓는 중이다. 장래 소망은 전공을 살려 토목회사에 취직을 하거나 공부를 계속하여 교수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고리타분하게 살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으며 결혼을 빨리해서 가정을 이룬 다음부터는 아내와 함께 테니스도 치고 여행도 다니며 즐겁게 살 계획이다. 다를 줄 아는 악기는 하모니카이고 취미는 오토바이 타기인데 애인을 뒷자리에 태우고 숲길을 쌩 달려보는 게 오랜 꿈이었지만 아직 애인이 없어서 그렇게 해보진 못했다. 그동안은 공부밖에 몰랐고 아직 그럴 때가 아닌 것 같아서 여자를 사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옥씨의 사진을 받아보고 특히 눈이 아름답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동안 영옥씨의 편지를 받아볼 때마다 어쩌면 이렇게 순수한 마음을 가졌을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름답고 순수한 영옥씨를 알게 된 것은 신의 은총이다,,, ,,,

이모가 편지를 쓰는 시간은 대개 할머니가 잠든 밤이었다. 할머니는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들어오면 연속극을 듣기 위해 라디오 앞에 앉곤 했다. 하지만 초저녁잠이 많아서 그 좋아하는 연속극을 언제나 끝까지 듣지 못하고 코를 고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귀로 듣기만 하면 되는 라디오인데도 연속극 시간에는 다른 일을 모두 폐하고 꼭 그 앞에 바짝 앉아 굳이 라디오를 쳐다보면서 연속극을 듣곤 했다. 그렇게 보고 있지 않으면 그사이에 이야기가 그냥 지나쳐버리기라도 한다는 듯이 라디오에서 눈길을 테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중요한 대목에서 할머니 쪽을 쳐다보면 대개는 곤하게 잠이 들어 있기 일쑤였다. 내가 할머니를 흔들면서 "할머니, 할머니! 들어보세요. 지금 드디어 그 딸이 엄마하고 만났어요. 지금요?"라고 연속극의 진행 상황을 설명해주면 그토록 중요한 순간에 잠이 들어버렸다는 데 무안해진 할머니는 전혀 졸지 않았던 사람처럼 목소리를 높게 내며 "나도 안다, 알어" 하고 눈꺼풀에 힘을 주지만 조금 있다 보면 어느새 또 푸푸, 하는 일정한 리듬의 숨소리를 내며 도로 잠들어 있었다.

할머니의 초저녁잠이 그렇게 깊었기 때문에 이모는 마음껏 금지된 편지를 썼고 나는 그동안 이모가 우리 미장원에서 빌려온 선데이 서울을 뒤적이고 있다가 이모가 맞춤법이나 표현에 대해서 물어보면 자문관 역할을 해줄 수 있었다.

이모가 이형렬에게 보내는 편지는 대충 이런 식으로 이형렬이 이모에게 보내는 편지와 사이좋은 대구를 이루었다.

, 전영옥은 경찰 고위직에 있었던 전아무개 씨의 11녀 중 막내이다. 오빠는 현재 법대 3학년이고 어머니가 농업과 건축업(가겟집 세놓은 일을 표현할 고상한 말을 찾던 이모는 집과 관계된 직업 중에 이 말이 가장 무난하다고 생각했다)에 종사한다, 아버지가 6.25 때 순직하여서 국가 유공자 집안이다. 나이는 21.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지만(이 사실은 나도 처음 듣는 일이지만 이모가 원서를 낸 것까지는 사실이라고 얼굴을 붉혀가며 주장했기 때문에 더 이상 진위를 가리지 않기로 했다) 어머니 곁을 떠날 수 없어 학업을 포기하고 고향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성격이 조용하여 취미는 독서와 음악감상이고 장래 소망은 현모양처. 남자 친구는 전혀 없으며 기회는 많았지만 집안이 엄격하여 교제를 해보지 못했다. 좋아하는 계절은 가을, 좋아하는 꽃은 '나를 잊지 마세요'라는 꽃말을 지닌 물망초. 그리고 이상적인 남성형은 변함없이 나를 아껴주는 진실한 남성.

그러나 이모의 편지가 언제까지나 이런 입문단계에 머물렀던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모의 편지는 점점 센티멘탈하게 변해갔다. 그러더니 그리움이라는 단어가 이따금 눈에 띄고 애틋한 구절이 많아진다 싶을 무렵부터 더 이상 편지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때부터는 표현에 대한 자문도 구하지 않았고 그런 형식적인 포장을 극복할 만큼은 이형렬과의 관계가 발전한 것인지 맞춤법을 물어오는 일도 거의 없어졌다. 이제 그에게서 온 편지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래도 편지를 전해주는 일은 여전히 내 소관이었으므로 나는 여전히 이모의 비밀을 혓바닥 밑에 감추고 있는 셈이었다.

 

 

 

3. 네 발밑의 냄새 나는 허공

내가 장군이 엄마의 비밀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모의 경우와는 좀 다르다. 그것은 어떤 비밀스러운 사건을 알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시샘 많고 심술궂은 장군이 엄마의 속마음을 정확히 간파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단지 장군이 엄마만이 아니다. 말 잘 듣는 어린애가 갖기 십상인 장군이의 의문스러움을 비롯해서, 여자들 곁눈질하기에 바쁜 최선생님의 능글맞은 심보, 늘 얼굴을 찡그리고 다니는 이선생님의 만성 치질과 편두통에 이르기까지 나는 그 집식구들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다. 바로 그랬기 때문에 장군이 엄마와 장군이를 골탕 먹일 방법을 찾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달 초부터 한 보름 동안이었던 것 같다. 나는 장군이의 책 읽는 소리에 아침잠을 깨곤 했다. 전에는 늘 새벽녘 부엌으로 나가시는 할머니의 기척에 잠을 깼었다. 눈을 떠보면 언제나 어슴푸레한 새벽빛 속에서 윗목에 앉아 머리를 만지고 있는 할머니의 구부정한 등을 볼 수 있었다. 할머니의 머리는 우리 미장원 아줌마가 볼 때마다 파마를 하자고 성화를 부리고 장날에는 가발공장에 팔기 위해 머리카락을 사가는 장사꾼이 뒤를 따라다니면서까지 탐을 냈음에도 고집스럽게 지켜온 쪽 찐 머리였다.

머리를 다 만지고 난 할머니는 기름기 자르르한 붉은 참빗의 빗살에 끼어 있는 머리카락을 훑어내고 왼쪽 오른쪽 어깨 위에서도 번갈아 머리카락 몇 올을 집어낸 다음 그것들을 함께 말아서 뭉쳤다. 그리고는 머리 위로 횐 수건을 둘러 뒷목께에서 매듭을 짓고는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오른쪽 손으로 오른쪽 무릎을 짚으며 끙, 소리를 내고 일어설 때 보면 언제나 아래는 몸뻬 차림이었다.

할머니는 방문을 열고 나가기 전에 꼭 한 번은 이모와 내가 잠들어 있는 아랫목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어쩌다 내가 눈을 뜨고 있음을 알아차렸을 때는 더 자라는 표시로써 오른손을 들어 가만히 위아래로 흔들었다. 마치 허공에 누워 있는 아기를 토닥이는 것 칼은 몸짓이었다. 그러면 나는, 살그머니 방문을 열고 할머니의 뒷모습이 빠져나간 뒤 그 문틈으로 스르르 들어와서 방안을 한 바퀴 휘둘러보는 여명을 어렴풋이 느끼며, 아침 준비를 끝낸 할머니가 깨우러 올 때까지 다시 잠속으로 들어가곤 했다. 나에게 있어 이 모든 것은 아침을 시작하는 평화로운 습관이었다. 그런데 장군이의 책 읽는 소리 때문에 평화가 깨진 것이었다.

장군이 엄마는 스물세 살에 육군상사였던 장군이 아버지에게 시집을 왔다, 읍내에서 20리나 더 들어가는 작은 깡촌에서 소작인의 여섯째 딸로 태어나 권세 없고 가난하게 살아온 장군이 엄마는 제복을 입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직업군인이라는 남편의 직업에 더없이 만족했다. 부하들 사이에 '독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는 장군이 아버지의 모진 성깔도 '아랫것'들을 부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용해야 하는 '윗분'들의 권위라고 여겼다. 장군이 엄마는 이삿짐 옮길 때라든지 김장독을 묻을 때 권력의 끄트머리에서 나는 향내를 조금 맛보았다. 그러나 장군이 엄마가 그 썩은 향내를 일 년도 채 누려보기 전에 장군이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남긴 것이라고는 유복자인 장군이뿐이었다. 게다가 군인으로서 장렬하게 순직한 것도 아니고 사병들 기합을 주면서 제풀에 화가 뻗친 나머지 길길이 뛰다 녹슨 못을 밟아 어이없이 파상풍으로 죽은 것이었다.

그러나 장군이 엄마는 남편이 그렇게 죽었다는 것을 까맣게 잊은 듯했다. 언제나 자기 남편이 군인으로서 훌륭하게 죽었다고 떠벌리고 장군이에게도 그것을 되풀이해서 주입시키다 보니 그만 스스로도 제가 꾸민 말을 그대로 믿게 됐는지도 모른다. 남편이 대한민국을 위해 젊음을 바쳤다고 하도 내세우고 다니자 그런 훌릉한 군인 이야기는 6,25 때나 있는 줄 알았던 어린 장군이가 "엄마, 그럼 우리 아버지는 육이오 때 돌아가셨어? 라고 물었다는 얘기는 우리 동네에서는 알려질 만큼 알려진 만담이다. 장군이 말처럼 6-25 때 죽었다면 장군이 아버지는 자기 아들이 태어나기 오 년 전에 끝난 전쟁에서 전사한 셈이니 장군이 엄마도 그 말을 듣고 기겁을 하긴 했다. 하지만 그 정도에 기가 눌려 자기의 남편이 훌륭한 군인이었다는 신념, 아니 당위성을 내칠 장군이 엄마는 아니었다. 장군이 엄마는 아들의 질문에 대해 즉각 대답했다.

"그거야 나이가 적어서 못 그런 거지, 십 년만 일찍 태어났어도 네 아버지는 육이오 때 전사하셨을 거다 암, 틀림없어."

장군이 엄마의 상무 정신은 남편뿐 아니라 아들에게까지 작용되었다. 장군이의 장래 포부가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은 훌륭한 장군"이 된 것도 장군이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순전히 장군이 엄마 혼자서 결정을 본 부분이었다. 어쨌든 장군이 엄마가 그 결정을 온 동네에 떠들고 다닌 이후 장군이는 '김영수'라는 버젓한 이름을 놔두고 보통 '장군이'라고 불렸는데, 그 호칭 속에 별 네 개짜리 장성이라는 진짜 장군의 뜻보다는 야유 쪽에 가까운 어감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장군이 엄마는 혼자만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엄마가 드세기 때문에 그 아들로서는 드센 성정이 개발될 필요가 없었는지 장군이는 성격이 조용하고 소심했다. 장군이네 방 앞을 지나다가 방에서 새어 나오는 모자의 말소리를 들을라치면 엄마는 화통을 삶아 먹은 것 같고 아들은 개미 기어가듯 꼬물꼬물하는 게 여간 대조적이지 않았다. 만약 장군이가 정말로 장군이 된다면 박정희 대통령 같은 장군은 절대 아닐 것이며, 지금 그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장군이 되고 싶어 하는 것과 반대로 장군이를 보고는 많은 사람들이 장군을 시시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어쩌면 시시한 장군이란 것은 군인이란 개념을 전혀 다른 뜻으로도 보여줄 수 있다는 상징적 의미에서 훌륭한 장군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이 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군이는 장군이 되기는 틀렸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장군을 시시하게 여길 수 있도록 시시한 장군의 역할을 할 기회마저 분명히 없을 테니 그것이야말로 장군이 엄마의 비애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 장군이 엄마가 어디선가 삼국지를 많이 읽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 당장 할부로 삼국지 전집 여덟 권을 들여놓았으며 아들로 하여금 아침마다 소리 높여 읽게 하였음은 물론이다. 장군이 엄마의 귀에는 이른 아침에 삼국지를 낭랑하게 읽는 장군이의 목소리가 진짜 장군이 병서를 읽는 것 못지않게 위엄있게 느껴졌다. 덕분에 장군이네 방과 제일 가까운 방에서 잠을 깨는 나는 아침마다 삼국시대 중국의 전장에서 눈을 떠야 했던

것이다.

내게는 짜증스럽기만 한 그 소리가 할머니에게는 얼마간 대견하게 들렸던 모양이었다. 아니면 그 시각에 함께 부엌에 있다는 이유로 아침마다 '책 읽는 장군'에 대해 자랑단지가 깨지는 장군이 엄마의 호들갑에 마음이 동했는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장군이 엄마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삼국지가 그렇게 좋은 책이면, 그럼 우리 진회도 좀 빌려다 읽혀볼까?"

그랬더니 장군이 엄마는 금방까지도 자랑을 늘어놓느라 헤벌어졌던 입을 돌연 거만하게 다물면서,

"그래보라고 하죠 뭐. 헌데 개는 그 책 끝까지 읽기 힘들 거예요. 아무리 똑똑하다 어쩌다 해도 결국 계집애들은 그저 계집애더라구요."

하고 눈을 내리깔더라고 한다.

장군이 엄마의 그 말을 애써 심상하게 전하려고 했을 텐데도 저녁 밥상머리에서 그 얘기를 꺼내는 할머니는 언짢은 기색을 완전히 감추지는 못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이모는 유치한 반응을 보이며 발끈했다.

"아니, 그러는 자기는 계집애 아니었나? , 기가 막혀서?"

나는 그까짓 초보적인 성 대결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거니와, 단순히 성별에 의해서라고 할지라도 이모나 장군이 엄마와 같은 편에 속하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었다. 다만 나를 '그저 그런 계집애'라고 평가한 장군이 엄마의 확신과는 정반대로 어느 면으로 보나 애초부터 내 상대는 될 수 없으며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 그것을 잘 알고 있을 장군이의 동글넓적한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을 뿐이다.

장군이는 나와 같은 5학년이었다. 2학년 때부터 같은 집에서 살았다고 하여 광진테라 아줌마는 우리를 '소꿉친구'라는 단어로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꿉친구라는 말은 도무지 경우에 맞지 않는 말이었다. 흥내 내고 싶은 어른들의 세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꿉놀이를 해본 적이 없는 나에게 '소꿉친구라는 말이 애당초 성립될 수도 없었거니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장군이를 단 한 번도 ' 친구'로 여겨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장군이는 친구가 아니라 차라리 실험대상에 가까운 존재였다. 그동안 삶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나의 위악적인 실험에, 장군이는 언제나 자발적으로 생체를 제공해왔다. 나는 그런 종류의 실험을 마칠 때마다 내가 그애에게 진 빛을 갚는 방법은 그 실험의 결과를 맨 먼저 그 애에게 적용시켜 주는 것뿐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나는 인간의 잔혹과 배신 등의 감정을 실험할 때 그 애의 감정을 이용했고 그리고는 그 잔혹이나 배신을 고스란히 그에게 맛보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장군이는 변함없이 나를 좋아했다. 그 애가 나를 좋아하는 감정이 어떤 정도의 모멸까지를 감당할 수 있을지 그 한계를 알았기 때문에 나는 그런 모멸들이 항상 은유적으로 표현되도록 배려를 했다. 그리고 은유가 가지는 다의적인 속성 덕분에 때로 그것은 그 애에게 기대에 찬 오해를 불러일으켰으며 그 애를 한층 내게로 끌어들이는 결과를 낳곤 했던 것이다

장군이 엄마는 특히 숙제를 도와주라거나 장군이가 두고 간 신주머니를 갖다주라거나 하는 식으로 자기 쪽에서 필요할 때에만 우리에게 '친구'라는 말을 적용시켰다. 그럴 때마다 장군이와 동등한 선에서 취급받는 게 불쾌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애써 장군이와 나의 상하관계를 규명할 필요까지는 느끼지 않았다. 만약 내가 "장군이와 저는 친구가 아녜요, 전 재 안 좋아해요." 하고 도리질을 한다면 장군이 엄마는 "그래 그래, 아무렴 그렇겠지" 하고 깔깔거리면서 내가 장군이를 진짜로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고 멋대로 단정해버린 다음, 그 사실을 누구한테 먼저 떠벌릴까 머릿속에서 하릴없는 수다쟁이의 명단을 급히 뒤적일 것은 뻔한 일이었다. 그러니 더군다나 내가 "장군이 재는 제 실험대상일 뿐이라구요." 했을 때의 장군이 엄마의 천지개벽할 노여움은 어느 정도겠는가, 상상하기도 귀찮았다.

하지만 삼국지 때문에 나는 노선을 조금 바꿀 수밖에 없게 되었다. 언젠가는 자기 인생에 승전보를 전해줄 게 틀림없는 존귀한 자기의 장군이 '그저 그런 계집애'일 뿐인 나의 발밑에 망토를 깔고 엎드려 있다는 것을 장군이 엄마에게 보여줄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 갔던 것이다. 나는 장군이 엄마를 화나게 하면서 한편 그 화를 드러내놓고 표현할 수도 없도록 창피하게 만들어줄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노골적으로 장군이 엄마를 골탕 먹이려면 쉬운 방법도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그런 단순한 장난질은 언제라도 욕을 먹어도 되는 악동들이나 하는 짓이지 나 같은 모범생이 할 일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장군이 엄마를 골탕 먹이기 위해서는 안 했지만, 이번에도 또 장군이를 실험대상으로 삼아서 원격조정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장군이를 변소에 (내가 목적하는 바의 본질에 좀 더 근접한 말을 쓰자면 똥통에) 빠뜨려보면 어떨까 싶었다. 똥통에 빠진 장군과 그 어머니, 그 장면의 주연으로서 장군이 엄마는 나에게 실컷 표정을 관찰당할 또 한 번의 기회를 갖는 셈이었다. 장군이가 똥통에 빠지려면 먼저 발밑의 깊은 똥구덩이 속으로 팔을 뻗치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만 몸이 구덩이 속으로 빨려들어갈 수 있다. 나는 그 실험에는 질투심을 이용해보자고 작정했다

작년 이맘때 우리 학교에 새로 전학 온 남자애가 하나 있었다. 군수 아들인데다 얼굴이 귀공자처럼 잘생기고 공부도 잘했는데 바로 우리 반 반장인 김범진이란 아이였다. 여자애들한테 그 애의 인기는 굉장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만은 예외였다, 처음에는 나도 그 애의 깨끗한 서울 말씨와 하얀 얼굴에서 도시에 대한 동경심을 자극받았다. 그러나 그 애가 아직은 관찰단계로서 상대에 대한 총체적 판단을 유보하고 있는 나에게 친하고 싶다는 눈길을 노골적으로 자주 주었고 시종일관 쌀쌀맞게 대하는 내 작전에 말려들어서 내 환심을 사려고 애를 태웠기 때문에 얼마 안 가 나에게 시시한 존재가 되었다. 학급 회의 시간에 내가 손을 들면 더듬거리면서 내 이름을 지목하는 걸 보며 나는 그 애의 잘생긴 얼굴 속에서 바보스러운 갈망을 보는 것이었다. 누구를 좋아하게 되면 약점이 생기고 어리석어진다는 사실을 알기에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그 애는 결국 내 마음을 끝까지 붙들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 애에 대한 장군이의 질투심은 같잖게도 왜 집요한 것이었다. 나와의 관계를 견제하는 부질없는 질투심이기도 했지만 반장이 갖추고 있는 조건을 질투하는 열등감이기도 했다. 그 애의 이야기를 꺼내면 장군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내가 기대하는 바였다.

다음날은 마침 일요일이었다. 오후가 되자 집안이 텅 비고 장군이와 나만 집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장군이를 붙들고 말을 떼기 시작

"우리 반 반장 말야."

"김범진? 개가 왜?

"나한테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 어쨌는데? ?

연달아 세 번 말끝을 올리며 다가앉는 장군이에게 나는 반장과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을 천연덕스럽게 늘어놓았다. 며칠 전부터 반장이 자꾸 내게 무슨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내 주위를 맴돌았다. 어제는 토요일이었지만 다음 주에 있을 환경미화 심사에 대비하느라고 학급 임원들이 다 학교에 남아 늦게까지 게시판을 꾸몄는데 그때도 반장은 계속 내 쪽만 기웃거렸다. 우리가 게시판을 다 꾸미고 나서 교실 문을 나서니 벌써 밖이 어둑어둑했다, 아이들 모두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 쪽으로 가는데 무심코 돌아다보니 반장이 혼자서 뒤처져 오다가 나를 향해 손짓을 했다. 나는 다른 아이들이 눈치채지 않게 걸음을 조금 늦추어 걸으며 반장을 기다렸다. 그런데 우리가 나란히 걸을 수 있을 만큼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교무실 쪽에서 누군가 우리를 부르는 목소리가 났다. 교무실 쪽을 돌아본 아이들이 담임 선생님임을 확인하고 우르르 그쪽으로 되돌아 뛰어갔다. 하는 수 없이 우리도 그 아이들 틈에 섞여 선생님 쪽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이 환경미화를 하느라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있던 우리들 모두를 학교 앞 만두집으로 데려갔다. 우리는 선생님이 사주는 만두를 먹고 각기 집으로 돌아갔다. 반장이 사는 군수 사택은 향교 밑에 있었다. 우리 집과는 반대 방향이었다 만두집 문을 나오면서 나는 바로 내 뒤에서 반장이 바짝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반장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선생님이, , 김범진 같이 가자, 하며 반장을 불렀다. 선생님의 하숙집도 군수 사택 뒤에 있는 향교 밑에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합창으로 "안녕히 가세요"를 외치고 선생님이 "조심해서들 가라"로 대답하는 동안 나는 선생님의 등 뒤에서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반장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게 끝이야."

나는 일부러 여운을 두었다. 그리고는 조금 뒤에 혼잣말처럼 이렇게 덧붙였다.

"반장네 도로 서울로 이사 간다더니 나한테 서울 주소라도 알려주려고 쫓아다니는 건가?

그런 다음 나는 장군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덧붙였다,

"무슨 편지 같은 것을 주려고 그러는 것 같기도 하고,,,"

그 말을 들은 장군이의 얼굴에는 대번에 긴장이 떠올랐다. 환경미화 심사와 학교 앞 만두 가게가 등장하는 나의 구체적인 이야기에서 전혀 허구성을 느낄 수 없었던 장군이는 조금 식식거리기까지 했다.

다음날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마루에 나와 앉아서 얼핏 보아 편지로 보이는 종이쪽을 들고 읽고 있었다. 누가 오면 은근히 감추는 척하면서 장군이가 반응을 보일 때까지 그렇게 했다, 이윽고 장군이의 시선을 완전히 끌어당겼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그것을 구겨서 손에 들고 변소로 갔다. 변소에서 나을 때 내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장군이는 변소 쪽으로 눈길만 줄 뿐 짐짓 태연한 척하고 있었다. 궁금하긴 하지만 나에게 자기 마음의 속 풍경을 들킬까 봐 자존심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감으로써 장군이에게 염탐의 기회를 제공했다. 우리 방 방문이 닫히자마자 장군이는 얼른 변소로 들어갔다. 장군이가 변소에 쭈그리고 앉아서 구멍 사이로 내가 구겨서 버린 그 가짜 편지를, 똥의 켜 위에 얹혀 피어난 그 종이꽃을 내려다보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거기에 팔을 뻗을까.

늘 나는 세상일은 우연한 행운이 쥐고 흔드는 거라고 생각해왔다. 그 생각은 행운을 가질 기회를 얻기까지는 스스로가 노력을 해야 한다는 왜 건전한 정강으로 보완돼왔다. 그러므로 장군이가 변소에 빠지고 안 빠지고는 이제 내 손을 떠난 문제였다. 그때 변소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 행운은 순진한 장군이보다는 간교한 나의 편을 들었다. 나는 변소로 가볼 필요도 없이 곧바로 뒤켠에서 김칫거리를 다듬고 있던 장군이 엄마에게로 파발마처럼 달려가서 장군이가 똥통에 빠졌다는 비보를 전했다. 그런 다음 재빨리 우리 집 마루로 돌아와서 구경할 자리를 잡고 편안히 앉았다. 장군이가 너무 놀라서 발버둥을 심하게 치는 바람에 장군이 엄마 혼자 힘으로는 그 애를 똥통에서 빼낼 수가 없었다. 문화사진관 아저씨까지 힘을 합해서야 겨우 똥통에서 끄집어내졌다. 어렵사리 우물로 끌려나온 장군이는 자기에게 닥친 환난이 무섭기도 하고 부당하기도 하고 그리고 창피하기도 해서 마치 도살장에 끌려 나온 돼지처럼 쉴새 없이 소리 지르며 울고 있었다. 정말 볼 만한 풍경이었다. 옷을 다 벗기자 똥으로 칠갑을 한 장군이의 알몸이 드러났는데 똥이 문신 같은 무늬를 이루며 온몸에 덮인 탓인지 남자애

의 벗은 몸이라는 생각은 애초에 들지 않았다. 소리 높여 울면서도 장군이는 고추가 창피하여 한사코 두 다리를 오므리고 쭈그려 앉았다. 장군이 엄마는 다급하게 두레박질을 하며 장군이에게로 물을 쫘악 끼얹었다. 열 번도 넘게 물을 끼얹고 나서 수건에 비누질을 하여 먼저 얼굴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다음에는 목 가슴을 그리고 고추와 사타구니를 사정없이 문질러댔다. 그러는 동안 장군이는 울음을, 장군이 엄마는 욕설을 그치지 않았으며 내게는 그것이 절묘한 이중창으로 들렸다. 우물가는 순식간에 똥으로 범벅이 되었다. 수채 구멍에는 빠져나가지 못한 덜 삭은 똥덩이가 뭉쳐져 있었고 온 집안에 똥 냄새가 진동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문화사진관 아저씨는, 우물가에 널린 똥덩이를 볼 때는 이맛살이 찡그러지지만 똥통에 빠진 아이를 보며는 도저히 웃음을 참지 못하다는 듯 반은 찡그리고 반은 웃는 낯을 하고 있었다. 광진테라 아줌마가 장군이의 우는 소리를 듣고 방문을 열어보더니 "세상에, 이게 웬일이야" 하고 질겁을 했다. 아줌마는 급히 고무신을 신고 우물가로 달려와서는 장군이 엄마의 두레박질을 거들었다. 뉴스타일 양장점과 우리 미장원에서는 이 소식을 뒤늦게 문화사진관 아저씨에게 듣고 한참 뒤에야 구경을 와서는 "어머, 벌써 다 씻었네" 하고 애석해하면서 킥킥거리며 돌아갔다.

돼지 멱따는 소리가 나서 나와봤다는 옆집 아줌마가 "아이고, 누군가 했더니 장군이 아닌가벼? 어쩌다 장군께서 똥통에 빠졌어 그래? 하고 장군이 엄마의 복장을 지르고 갔다. 조금 있다가는 중학교 다니는 그 집 딸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슬그머니 대문 뒤에서 엿보고 가더니 집에 가서 소문을 냈는지, 늘 고추를 내놓고 돌아다니는 다섯 살배기 그 집 막동이가 와서는 자기도 여전히 고추를 드러내놓은 채 아예 우물가에 버티고 서서 장군이의 고추를 찬찬히 구경했다.

물에 빠진 생쥐 같은 장군이를 수건으로 감싸서 방으로 들여보내는 장군이 엄마의 얼굴은 차마 쳐다보기가 민망할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장군이 엄마는 우물가의 똥에 물을 화락 부으며 엉뚱한 화풀이를 했다.

"벼락 맞을! 어떤 망할 년이 이런 것을 버렸다냐."

그것은 콘돔이었다. 똥 속에 버려졌다가 장군이의 몸에 묻어서 다시 세상 구경을 하게 된 콘돔 하나가 수채 구멍에 아무리 물을 부어도 내려가지를 않았던 것이다. 엄밀히 잘잘못을 따지자면 과실은 콘돔을 변소에 버린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다시 꺼내 온 자기 아들에게 있으련만, 이런 때 과부인 자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물건을 트집 잡아 괜한 화풀이를 하는 것은 장군이 엄마다운 뻔뻔스러운 방법이었다.

콘돔을 보자 광진테라 아줌마는 제풀에 얼굴이 붉어지더니 비누로 손을 싹싹 씻고는 자기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거의 사리 분별을 할 수 없게 된 장군이 엄마는 아줌마가 사라진 쪽에 대고 아니꼬운 시선을 던졌으며 이 상황에서 도저히 맥락에 닿지 않는 밑도 끝도 없는 과부의 신세타령을 늘어놓으면서 대충 우물가를 치웠다. 장군이는 그때까지도 울음을 그치지 못하고 있었다. 갑자기 당한 봉변에 놀라서 충격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데다 창피해서 더욱 그러는 모양이었다. 또 거기에는 자기의 비극을 과장함으로써 자기가 충분히 시련을 받았다는 점을 부각시켜 제 엄마의 꾸지람을 줄여보겠다는 음흉한 계산도 없지 않을 것이었다,

저녁이 되자 식구들이 하나둘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대문간에 들어서면서 내뱉는 첫마디가 한결같이 "이게 무슨 냄새야"였다. 그날 저녁 내내 그리고 다음 날과 그다음 날, 별다른 화제도 놀잇거리도 없는 주로 여자들뿐인 우리 집에서는 그 얘기가 끊임없이 화제가 되었다.

똥통에 빠진 후로 장군이는 패 오랫동안 앓았다. 아직 5월이라 밤으로는 바람이 선선할 때인데 그렇게 발가벗고 오랫동안 물을 뒤집어썼으니 감기에 걸리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똥독이 그렇게 무섭다더니 사실이었다. 온몸에 발진이 생겨서 큰 곤욕을 치렀다. 그러나 끙끙 앓고 나서 오랜만에 학교에 간 장군이에게는 똥독보다 더 지독한 수모가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이고 아이들이고 장군이를 볼 때마다 그냥 지나쳐주질 않았다.

"장군이 너 똥통에 빠졌다며? 괜찮니?"

"어째 아직도 똥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한 선생님은 '장군'이란 별명을 아예 '똥장군'으로 바꿔 부르며 노골적으로 이죽거렸다.

"어이고 똥장군, 다 나아서 학교 나오셨나. 똥장군이 똥장군 속에 빠지면 어떡하나, ?"

복도에서 마주친 여자애들은 저희들끼리 손을 꼭 붙잡고 장군이 옆을 너무 조용하다 싶게 지나쳤다 그러더니 등을 돌리자마자 손으로 입을 가렸음에도 도저히 참지 못하고 새어 나오고 만 한 여자애의 ?’ 소리가 신호라도 되는 듯이 한꺼번에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뛰어가기 일쑤였다.

그리고 이것은 장군이네 반 애한테 전해 들은 얘기이다. 체육 시간에 비가 와서 운동장 수업을 못 하고 교실에 발이 묶이자 아이들이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다. 선생님은 처음에 생각나는 이야기가 없다고 난처해하더니 장군이를 보고는 갑자기 생각이 났다 하면서 들려주는 얘기가 주먹 장군 설화였다.

주먹이 유난히 컸다는 그 주먹 장군의 밑에는 장수들이 많았다. 그들은 칼이나 활을 잘 다룬다든지 병법에 뛰어나다든지, 제각기 장기를 갖고 있었다. 도무지 쓸모가 없어 천덕꾸러기인 장수가 하나 있었는데 굳이 특기라면 오줌을 잘 눈다는 것이었다. 헌데 전쟁이 나자 웬걸,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은 바로 그 오줌 장수였다. 그의 오줌발이 홍수를 이루어 적들이 모두 빠져 죽었던 것이다, 공을 세운 오줌 장수는 오줌을 잘 누어줬다 하여 큰 상을 받았다. 그 얘기가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일제히 장군이를 쳐다봤으며 하나둘씩 웃기 시작했다. 한번 시작된 웃음소리는 그 시간이 다 끝나도록 그치지를 않았다.

아들에게 그런 얘기를 낱낱이 전해 들으며 그때마다 장군이 엄마는 분하고 창피해서 화병이 날 정도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분풀이할 대상이 없었다. 자기 아들을 통해 똥통에 빠지게 된 경위를 캐보려 했지만 실수로 발이 미끄러졌다는 말 외에는 아무 말도 들을 수 없었다.

이번에도 나는 내 실험에 생체를 제공한 보답으로 장군이에게 위선을 선사했다. 누구나 웃음거리로 삼고 싶어 하는 장군이에게 스스럼없이 대했으며 학교에 나오지 않는 동안 뒤처진 과목을 공부하라고 그 반 아이의 공책을 빌려다 주기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자기의 창피한 동기를 일러바치지 않는 나의 성숙된 인품에 감탄하고 있던 장군이는 거의 감격했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나이에 비해 속이 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기회에 마음씨까지 착한 것을 알게 되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거짓과 위선이 한통속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느 날인가 나는 어슴푸레한 새벽빛 속에 밥을 지으러 나가는 할머니의 흰 머릿수건과 나를 돌아보고는 더 자라고 허공을 토닥이는 그 꿈결 같은 손놀림을 보면서 문득 언제부턴가 장군이의 삼국지 읽는 소리가 들리지 않음을 깨달았다. 다시 아련한 잠 속으로 빠져들며 나는 되찾게 된 아침의 평화를 마음껏 음미하였다.

 

 

 

4. 까탈스럽기로는 풍운아의 아내 자격

광진테라 아저씨의 최고의 비밀은 병역기피자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우리 주위에 아무도 없다. 작년에 어른들은 모두 주민등록증이란 것을 만들었는데 그때 아저씨는 병역문제가 말썽이 될까봐 미리 군청 직원에게 돈을 썼다. 그런데 그 직원이 주민등록증에 붙일 증명사진을 찍으러 온 곳이 우리 읍에 있는 세 개의 사진관 중에 하필 문화사진관이었다. 그는 남을 가르치기 좋아하거나 혹은 직업정신이 투철한 공무원이었던지 무장 공비 김신조, 푸에블로호 납치, 통혁당 사건을 열거하며 보안 시국에 대한 일장 연설을 늘어놓은 뒤, 증명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주민등록증 발급의 의의를 잘 설명해주라고 몇 번이나 당부하는 것이었다.

그가 제시한 주민등록증 발급의 의의 중에는 "이 기회에 병역기피자도 색출할 수 있다"는 것도 있었는데 그는 "실제로 돈을 주면서 사바사바하려는 사람이 있다"고도 발설하였다. 그리고는 문화사진관 아저씨의 표정이 원래 좀 뚱한 편인데 그것을 자기 말의 설득력이 약한 거라고 판단하고 초조해진 나머지, 돈을 주고 병역 기피 사실을 숨겨달라고 하는 사람이 바로 이 동네에도 있다고까지 말해버렸다. 그 바람에 광진테라 아저씨가 병역기피자란 사실은 우리 동네의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

남의 비밀을 알게 된 뒤 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로 반응한다. 그 비밀을 이용하려는 사람과 덮어주려는 사람 사이에 비열함과 관용의 뚜렷한 구별이 생기는 것이다. 남의 비밀에 대해 비열함 쪽으로 반응하는 사람은 바로 장군이 엄마 같은 사람이었다.

그날도 우물가에서 설거지를 하며 장군이 엄마는 광진테라 아줌마를 상대로 한참 수다를 늘어놓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모의 월남치마를 두고 폭이 좁다, 무늬가 요란하다, 하면서 한바탕 참견을 해대더니 이왕 나온 월남 이야기를 얼마 전 월남에서 돌아온 자전거포 작은아들로 자연스럽게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펌은 사람이 안 됐어. 다리가 그 지경이 되었으니 시집올 처녀나 있겠어?"

이렇게 동정하는 척하면서 불운을 강조하는 것이 남의 험담에 이력이 붙은 장군이 엄마의 요령이다. 거기 비해 성품이 순박한 광진테라 아줌마의 대꾸는 언제나 솔직하다.

"다들 월남 가기만 하면 테레비 사 오고 전축 사 오고, 그런 것만 보다가 이번에 그 총각 다쳐서 돌아온 것 보니까, , 월남 간다는 말 쉽게 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데요. 요새 남자들 기술 있으나 없으나 툭 하면 월남이나 가서 돈 벌어오겠다는 말들 잘하잖아요."

", 재성이 아빠가 그래?"

"아아노, 재성이 아빠야 어디 그런 실없는 소리 할 사람인가요 뭐."

그 말을 해놓고 광진테라 아줌마는 켕기는 데라도 있는지 갑자기 양은 냄비를 힘주어 문질러댄다.

재성이 아빠, 즉 광진테라 아저씨인 박광진 씨야말로 실없는 소리를 안 할 사람이기는커녕 실없는 소리 외에는 안 할 사람이라는 것은 동네에서 공인된 사실이다. 그런데도 광진테라 아줌마는 남편을 곧 죽어도 하느님 받들 듯이 떠받든다. 천하에 둘도 없는 남편이라도 된다는 듯이 말끝마다 재성이 아빠 재성이 아빠, 있는 칭송 없는 칭송에 침이 마르는 것은 물론이요 누가 아저씨 험담이라도 할 기색이 보이면 언제나 지금 같은 식으로 선수를 친다.

그 붙임성 있고 상냥한 천성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아저씨를 나쁘게 말했다 해서 저고리 소매 걷어붙이고 윗마을 사는 과부를 찾아가 따지고 드는 바람에 "젊은 년이 서방 있는 유세도 유만부득"이라는 반격을 받고 "그러면 조선천지 젊은 년들 다 과부 팔자가 돼야 네년 속이 시원하겠냐" 하며 서로 머리끄덩이를 쥐어뜯고 싸운 일까지 있다.

장군이 엄마는 시원찮은 남편을 자나 깨나 싸고도는 이 젊은 새댁을 아니꼬운 눈으로 쳐다보며 뭐라고 한 마디 미운 소리를 마저 박아주려고 입술을 몇 번 움찔거렸다. 그러다가 광진테라 아줌마가 양은 냄비 문지르는 일에 하도 열심히 몰두하는 척하는 것을 보고 크게 봐준다는 듯이 눈자위를 한번 위아래로 굴리고는 다시 월남 얘기로 돌아갔다.

"아무튼 세상일이란 그런 거야. 상이군인이 되니까 죽자 사자 하던 애인도 떨어져 나간 모양이야."

"죽자 사자 했으면 그 정에 그냥 시집와서 살 일이지 떨어져 나가긴 왜 떨어져라 갔을까. 남의 가슴에 못 박고 가서 얼마나 큰 영화를 볼 거라고 참, 애인이 누군지 아가씨 마음이 얄궂기도 하네."

"죽자 사자 덤볐던 년들 끝까지 지조 지키는 거 봤어?"

"헌데, 그 총각이 그래도 돈은 좀 벌어왔다면서요."

"돈을 벌어와? 건달 깡패 노릇하다가 월남 가서 돈푼이나 만져봤다니까 신통해서 하는 소리지 뭐 큰돈 벌어서 하는 얘긴 줄 알아?"

"그 총각이 깡패였어요?"

"왜 김추자 노래에도 있잖아. 말썽 많은 김상사 월남에서 용사 됐다고 말야. 남자는 모름지기 군대를 가야 사람이 되는 거야."

장군이 엄마는 종종 김추자 노래를 무슨 고사성어나 되는 듯이 인용하곤 했다. 노래를 좋아해서라기보다 사실은 자기의 이름이 '이추자'이기 때문에 김추자를 들먹거리는 것이었다. 재작년인가 우리나라 여자 농구가 세계 대회에서 준우승을 했을 때 장군이 엄마가 설쳐댔던 것도 국위 선양의 감격에서가 아니고 선수 중에 김추자라는 이름을 발견한 뒤부터였다. 그때부터 "추자라는 이름 가진 사람치고 재주 없는 사람 없다"고 한동안 말끝마다 추자 타령이었다.

모름지기 군대를 가야 사람이 된다는 장군이 엄마의 말에 광진테라 아줌마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장군이 엄마는 어디 이번에도 그냥 넘어 가줄까 보냐 하는 눈길로 은근히 광진테라 아줌마를 쳐다본다.

"관데 참, 재성이 아빠 군대 갔다 왔던가?"

그러자 광진테라 아줌마의 목청이 갑자기 높아진다.

"그러믄요. 나이가 몇인데 군대를 안 갔겠어요?"

"아이고 깜-이야. 왜 갑자기 큰소리야, 큰소리는."

장군이 엄마는 짐짓 놀랐다는 식으로 호들갑을 떨면서 눈으로는 계속 광진테라 아줌마의 표정을 살핀다.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뻔히 알면서 짐짓 그의 약점을 툭툭 건드려보는 데에 재미를 느낀다는 점에서 장군이 엄마는 시험감독 선생님과 비슷한 데가 있었다. 시험문제를 푸느라 진땀을 흘리는 학생들에게 "힌트 좀 줄까아 말까아" 하면서 지휘봉으로 교탁 끝을 톡톡 치며 빙글거리는 선생님들 말이다. 행여나 하고 "선생님, 제발 힌트 좀 주세요, ? 하고 애원하던 아이들의 희망은 "이놈아, 그러니 평소 때 공부를 해야지" 하는 상투적인 해답으로 번번이 좌절되기 마련이었다.

나는 광진테라 부부가 왜 그렇게 뻔한 일을 끝끝내 잡아내어 기꺼이 사람들의 농담거리를 자청하곤 하는지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럴 만도 했다, 내 생각에도 군대에 가기를 피했다는 사실은 인간성으로 봐서도 상당한 비겁자라는 인상을 줄 뿐 아니라 바야흐로 군인의 시대인 요새 세상에 여간한 약점이 아니었다 극장에서까지도 대한뉴스 시간에 영화배우 백일섭이 나와서 진짜 사나이라면 군대에 가야만 한다고 못 박아 말하는 시대가 아닌가. 광진테라 아저씨가 한사코 잡아뗌으로써 자기가 그 일에 연루됐건 아니건 병역 기피에 대해 근본적으로 반대한다는 의사만이라도 강력하게 표명하지 않았다면 동네 다방과 당구장, 비어홀 같은 곳에서 아저씨가 자신의 이미지로 내세우기 좋아하는 남자다움은 그 정도로라도 지켜지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내가 요새 세상을 군인의 시대라고 생각하는 것은 학교에서 운동장 조회 때마다 군인처럼 구령을 붙이고 강재구 소령이 얼마나 훌륭하며 그의 신조인 '굵고 짧게 살자'가 얼마나 좋은 말인지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만은 아니다. 아이들이 '맹호부대 용사들아'하는 노래에 맞춰 고무줄놀이를 하고 라디오에서 "신병 훈련 육 개월에 작대기 두 개, 그래도 그게 어디냐고 신나는 김일병" 하는 노래를 틀어대서도 아니다, 장군이 엄마가 걸핏하면 자기 아들의 장래가 장군으로 결정된 것을 공언하는 은유적 선포로서 우리나라에 장군 이상 가는 존재는 없다는 것을(물론 더 높은 사람으로 대통령이 있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경우만 보더라도 어쨌든 장군을 거쳐야 대통령으로 올라가는 것이니까) 입버릇처럼 강조해서도 아니다. 내가 결정적으로 군인의 힘을 통감한 것은 언젠가 군용트럭 때문에 흙탕물을 뒤집어쓴 뒤부터였다.

설날을 지낸 지 며칠 되지 않은 무렵이었다. 날씨가 패 푸근한 탓에 눈이 다 녹아서 길바닥이 마치 팥죽을 깔아놓은 듯이 질척거렸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검은 흙 속으로 발밑이 미끈덕거리며 빠져들었고 수렁에서 건져낸 것처럼 운동화가 진흙범벅이었으므로 나는 발밑만을 쳐다보면서 조심스럽게 발을 떼고 있었다. 그때 건너편에서 맹렬한 속도로 군용트럭이 달려왔다. 내가 요란한 차바퀴 소리에 얼굴을 드는 것과 그 트럭이 내 얼굴과 몸 전체에 흙탕물을 끼얹고 사라져버린 것은 거의 동시의 일이었다. 언제나 우리를 위해 밤낮으로 고생하는 국군 아저씨들이 이런 짓을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기에 나는 머리 꼭대기에서 발등 위까지 온몸에 팥죽 같은 진흙물을 뒤집어쓴 채 한참을 그대로 서 있었다. 그다음부터는 군인을 야만스럽다고 내리 보는 마음도 조금 생겼지만, 솔직히 말해서 군인이 못 할 것은 없겠더라는 두려움을 느끼게 된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병역기피자란 것이 광진테라 아저씨의 최고의 비밀이긴 하지만 나만 아는 비밀은 아니다. 좀 더 은밀한 비밀을 들라면 역시 아저씨의 여자관계일 테지만 그것 역시 아저씨의 오토바이를 알아볼 정도의 작은 주의력만 갖고도 얼마든지 알아챌 수 있는 일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길가에 세워져 있는 아저씨의 오토바이를 흔히 발견하곤 했다. 군청 앞과 극장, 차부 등 이른바 아저씨가 있을 만한 유흥가를 두루 거쳐서 돌아오기 때문이다. 아저씨의 오토바이는 그중에서도 차부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다. 차부는 시외버스가 도착하기도 하고 나가기도 하는 버스 배차장으로 우리 읍에서는 가장 부산한 장소이다. 그곳은 세워져 있는 버스 밑으로나 이미 버스가 떠나고 없는 빈자리에 기름이 새어나와 번들거리고 폐타이어와 휴지, 빈 병들이 발밑을 뒹굴고 있어 언제나 지저분했다.

기름때에 찌든 전대를 허리에 차고 손에는 버스표 뭉치와 끈으로 이어진 볼펜을 들고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돌아다니는 남자 차장들 헤어진 누더기를 입고 버스들 사이를 어슬렁거리는 불량스러워 보이는 거지 애들, 그리고 떠나는 사람 오는 사람, 마중객과 배웅객들이 뒤섞여 어수선한 그곳에는 깡패와 소매치기가 언제나 빈둥거렸으므로 늘 주먹질과 시비가 그치지 않았고 그래서 바로 코앞에 파출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파출소 옆으로는 주로 멀미약과 까스명수를 파는 '차부약국 : 망으로 세 개씩 엮인 사과와 오징어 따위를 가게 밖으로 내놓고 팔고 있는 잡화점 '형제상회' '오고파 미장원' '풍년 종묘상' 그리고 간판도 없는 허름한 식당이 있었는데 아저씨의 오토바이는 주로 그 식당 옆의 '아리랑 비어홀' 앞에 세워져 있는 날이 많았다.

한번은 아리랑 비어홀 앞을 지나다가 아저씨의 오토바이를 발견하고 조금 기웃거려본 적이 있다. 아직 본격적으로 영업이 시작될 시간이 아니라 막 청소를 끝냈는지 문이 반쯤 열어젖혀졌는데 그 문 뒤에서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치마가 왜 이렇게 짧다냐. 미니 스카트가 아니라 미니빤쓰네,"

"빤쓰면 어떻고 고쟁이면 어때요? 사장님이 하나 맞춰줄 것도 아니면서. ?"

여자는 "맞춰줄 것도 아니면서"에다 한껏 콧소리를 섞어서 자기의 의도를 암시했다.

"아 빤쓰라면야 내가 하나 맞춰주지."

아저씨는 여자의 수완에 일단 넘어가는 척해본다.

"정말? 그럼 나 내일 뉴스타일 양장점 가서 치수 잰다?

떠보는 여자.

"그러기 전에 내가 먼저 치수 좀 재보고."

아저씨의 말에 여자는 필요 이상으로 소리를 높여 깔깔댔다.

"아이, 그런 게 어딨어요? 그러지 말고 허리 치수 가르쳐드릴 게 치마 하나 맞춰주세요. ?"

"빤쓰 맞추는데 허리 치수 갖고 되나? 그러지 말고 나하고 저 방에 들어가서 치수 좀 재자니까."

그다음부터는 여자의 웃음소리가 더 높아져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들었다 해도 무슨 뜻인지 모르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어쨌든 남녀 간의 은밀한 수작이라는 분위기 파악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오니 우물가에는 할머니와 광진테라 아줌마가 나와 있었다. 삶은 빨래를 흔들어 헹구던 할머니는 내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는 "이제 오냐? 하면서 잠간 허리를 폈고 재성이를 업고 쭈그려 앉아 쌀을 씻던 아줌마도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조금 전까지 비어홀에서 허튼소리를 하고 있던 광진테라 아저씨가 떠오른 탓인지 내 눈에는 아줌마의 알뜰한 모습이 어쩐지 청승스러워 보이기만 했다.

"장군이네 어디 갔어요?

아줌마가 할머니에게 물었다.

"모르겠는데. 곗날인가? 계가 하도 많으니"

"그렇게 계도 많이 하고 오지랄도 넓고, 그러면서 하숙까지 치는 걸 보면 참 어지간해요. 나 같으면 생각도 못 할 거야."

남편을 두둔할 때의 전투적인 변신을 빼고는 광진테라 아줌마는 아무리 봐도 착하고 인정이 많다. 점심때마다 양장점 안에서 혼자 끼니를 때우는 미스 리 언니가 안됐다고 김치를 한 보시기씩 갖다주는가 하면 보통 낮에는 아무도 없는 우리 집의 문지기 노릇도 도맡아 한다. 날마다 일에 치여 쩔쩔매면서도 아줌마의 얼굴은 늘 명랑하다.

"장군네 오지랄 넓은 거야 저 좋아서 하는 일이고, 그저 말없이 일 잘하고 마음씨 곱기로는 재성이 엄마만 한 사람 없지."

"아이고, 아녜요."

"재성이 엄마가 재성이 아빠 말 하는 걸 싫어하니까 긴 얘기는 않겠지만, 말이야 바른 말이지, 재성이 아빠는 조선 천지에서 장가 제일 잘 간 사람이야. 양복점 장사도 어디 재성이 아빠가 하나? 재성이 엄마가 다 하지. 남편 그렇게 밖으로 도는데 재성이 엄마처럼 항상 낯꽃 하나 안 변하고 살림 야무지게 하는 사람 어디 또 있겠어? 재성이 아빠는 장가 잘 갔지, "

자기 남편의 얘기가 아줌마로서는 워낙 민감한 화제인지라 나는 우려 섞인 눈으로 그들을 보았다. 혹시 아줌마가 화라도 내면 할머니가 민망할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의외로 아줌마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할머니 말을 묵묵히 듣는가 싶더니 놀랍게도 쌀 씻는 양은 함지 위로 굵은 눈물까지 한 방을 빠뜨렸다. 언제나 밝고 씩씩한 아줌마답지 알게 허물어진 모습이었다.

"재성이 엄마 속 내가 다 알지. 세상에 남들이 서방 욕한다고 맞장구치는 것들은 배알 창시가 없는 것들이여 어찌 됐든 내외간은 한배 팔자인데 뱃머리가 기울면 뒤에서라도 단단히 눌러줘야 할 거 아닌가. 남 보매 집안이 기우는 배 같아 보여서 좋을 게 뭐 있겠어. 입이 방아라고, 말 좋아하는 여편네들한테나 좋은 일 시키는 거지. 지 속에서 검은 연기 나는데도 서방 떠받치는 거 보고 내 재성이 엄마 속 깊은 거 진즉 알아봤어."

"진희 할머니..."

아줌마가 말을 잇지 못하자 할머니는 그 마음 다 안다는 표시로써 아줌마의 등을 두어 번 토닥였다.

"다 팔잔데 어쩌겠어. 여자 팔자가 뒤웅박 팔자라."

나는 할머니의 결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할머니 말대로 아줌마는 양복점 일이고 집안일이고 간에 깔끔하고 바지런한 데다 심성도 고왔다. 그런데도 사나흘에 한 번씩은 아저씨에게 발길질을 당하는 것이었다. 여러 가구가 사는 집이라 '에고? 소리도 마음대로 내지 못한 채 비명을 참는 아줌마의 헉헉 소리를 밤늦게 변소에 다녀오다가 내 귀로 직접 들은 것만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 때 아저씨의 단골 대사는 "이게 인간 박광진이를 뭘로 알고? 였다. 인간 박광진-아저씨가 자신을 지칭하는 이 말은 언제나 '왕년에'라는 말과 짝을 이루었다. "이 인간 박광진, 왕년에 말야." 하긴 아저씨가 늘어놓는 왕년 자신의 연대기는 꽤나 거창했다. 병역 기피자, 양복집 주인, 바람둥이, 아내를 때리는 불성실한 가장-우리가 알고 있는 아저씨는 이 정도였지만 자기 자신이 알고 있는 ' 인간 박광진'은 단지 돈 없고 빽 없어서 불운해진 천하의 풍운아였다.

허풍선이인 아저씨 자신의 말은 물론이요, 그에 대한 어른들의 견해를 정리해보더라도 아저씨가 왜 복잡한 삶을 산 것만은 사실이었다. 먼저 아저씨의 말에 따르면, 아저씨네 집안은 원래 만석꾼은 안 되어도 천석꾼 부자였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했고 아버지는 일제시대에 읍면장을 지낸 뼈대 있는 집안으로 아저씨 자신도 '왕년'에는 공무원 신분이었고 일이 잘 풀렸으면 지금쯤 주사는 하고 있을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일제시대 읍면장이면 친일파가 아니냐, 할아버지가 독립투사라면서 왜 아버지가 친일파가 됐냐고 물으면 한숨을 내쉬면서 "다 시대를 잘못 만난 탓"이라면서 민족의 수난사에 대해 산증인을 자처했다.

아저씨와 동향인 성림제재소 아저씨 말을 들으면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아저씨 집안은 천석꾼 집안에서 대대로 머슴 노릇을 했다고 한다. 아저씨의 할아버지는 주인댁 큰아들이 뜻을 품고 만주로 떠날 때 모든 식솔을 주인댁에 맡기고 주인을 따랐다. 그리고 만주에서 죽었다. 그 대가로 아저씨의 아버지는 가족을 이끌고 주인댁을 나을 수 있었다, 아저씨의 아버지는 자기 아버지가 평생을 바치고 목숨까지 바친 주인댁이 그동안 자기 식구를 박대한 데다가 자립을 위한 재산으로는 너무 박한 처우를 해주었다고 한을 품는 한편 개처럼 부려지고 소모될 뿐인 자기의 비천한 신분을 뛰어넘을 투지에 불타는 젊은이였다. 그는 신분 상승을 위해 주재소의 앞잡이가 되었고 일본의 개로서 하부권력이 맡을 수 있는 뼈다귀의 맛을 조금 맛보았다.

해방 되던 해에 그는 마당으로 골목으로 쏟아져 나와 덩실덩실 춤을 추던 동네 사람들에 의해 당연히 삽에 맞아 죽어야 했지만 아버지가 만주에서 죽었다는 점이 참작되어 어찌어찌 살아남았다. 이런 연유로 독립투사의 자손이면서 친일파의 자손이 되어버린 그의 두 아들 중 큰아들은 아버지의 죄를 씻기 위해 경찰에 지원했다. 둘째 아들 박광진 씨는 기회주의자를 택했다. 6.25를 겪으면서도 그는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하고 낮밤이 다르게 주인이 변하는 그야말로 혼돈의 시기에 때론 지주에게 착취당한 인민으로서, 때론 독립투사의 후예로서, 때론 경찰 가족으로서 적당히 처신하여 세상이 바뀔 때마다 바뀐 세상을 큰 소리로 찬양했다. 동네 사람들은 아저씨와 같은 핏줄이면서 다른 맥을 형성하는 그의 할아버지와 형을 생각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아저씨 자신이 위협적인 적도 되지 못할 위인임을 알기에 그것을 내버려 두었다. 아무튼 세상이 자꾸 뒤엎어지고 혼돈 속에 싸여 있을 때 그때가, 스무 살이 될까 말까 한 그 시절

이 아저씨가 그토록 못 잊어 하는 '왕년'인지도 모른다. 그가 스스로를 지칭하기 좋아하는 '풍운아'라는 말도 풍향에 따라 이리 저리 바뀐다는 의미에서 그때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세상이 질서가 잡혀갈 무렵 아저씨는 주인댁의 도움으로 농림국 밑의 영림서에 임시직으로 취직이 되었다, 급사와 다를 바 없는 보잘것없는 자리였는데 거기에서 그만 아저씨는 자기 아버지가 일제의 개로서 핥았던 하부권력의 뼈다귀 맛을 알게 되었다. 그는 국유림을 지키는 일에 관계했었는데 벌채꾼들에게 돈을 받고 나무를 몰래 벨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러다가 들통이 나자 이번에도 농림국의 높은 자리에 있는 주인댁의 어느 아들이 막아주어서 감옥에까지는 가지 않고 파면만 당하도록 해결이 되었다.

떳떳하지 못하게 직장을 쫓겨난 아저씨는 당분간 고향을 떠나 있는 것이 좋기도 하겠거니와 도시로 가서 남아로서의 새로운 인생을 펼쳐볼 마음이 들었다. 형의 친구이기도 한 국민학교 선배가 도청 소재지에서 양복점을 하고 있었다. 그는 우선 그곳을 자기의 포부를 펼 교두보로 정했다. 자기의 인생이 양복쟁이로 결정지어질지는 꿈에도 몰랐던 풍운아 박광진 씨는 그 선배가 폐병에 걸렸다는 걸 알고는 그 집에서 나오려고 했다. 선배 부인의 성화에 양복점 일을 돕는답시고 건성으로 뒤에 얼쩡거리기만 했을 뿐 사실은 쏘다니는 게 주된 일과였던 그로서는 선배가 죽고 나면 그곳에 머물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결정마저 쉽지 않았던 것은 그 집 식모인 순분이와의 관계 때문이었다.

순분이는 선배의 부인이 친정 마을에서 데려다 놓은 식모였다, 싹싹하고 바지런해서 살림은 물론 양복점 일도 곧잘 도왔다. 아저씨는 촌스러운 순분이가 그리 눈에 차는 건 아니었다. 헌데 어느 날 어쩌다가 양복점 뒷방에서 순분이를 강제로 욕보이고 말았다. 순분이는 울었지만 자기 인생에 닥친 불운을 체념으로 받아들였다. 얼마 안 가 선배의 부인도 이 일을 알게 되어 아저씨에게 마음잡고 한번 잘 살아보라고 간곡히 간언했다. 사실 폼만 잡았지 도시에서의 삶을 따로이 개척해볼 배짱도 없는 그는 한때 양복 기술을 적극적으로 익혀보려 하긴 했다. 그러나 타고나기를 재박덕박하게 태어난 그는 곁눈질로 배우는 순분이보다 솜씨는 훨씬 못하였다. 어쨌든 선배가 병을 못 이기고 죽자 아저씨는 한동안 선배의 양복점을 돌봤으며 이듬해에 선배의 부인이 가뿐하게 재가를 할 때 그동안 가게를 지킨 공로를 인정받아 양복점 시설을 물려받았다. 그리고는 순분이가 모아둔 얼마간의 돈을 가지고 고향에서 가장 가까운 우리 읍에 '광진테라'를 내고 순분이와 결혼식을 올렸던 것이다,

결혼식을 올리기까지 순분이의 마음고생은 아무도 몰랐다. 도시에서 선배의 양복점을 돌보는 동안에도 아저씨는 가게에 붙어 있는 시간보다 '청년 실업가'를 자처하며 술집을 순례 도는 시간이 더 많았으며 가게에 있을 때조차도 양복점 안에 있기보다는 가게 앞길에 나와서 여점원이나 식모들에게 추파를 던지는 것이 주요일과였다. 결혼식을 올리고 나서 순분이는 드디어 이제 고생이 끝나나 보다 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양복장이로서 하지 않을 수 없는 다리미질을 전혀 안 하는 것만 봐도 아저씨가 얼마나 방만하게 양복점을 운영하는지 엿볼 수가 있다. 뜨거운 김을 쐬면 남자의 몸에 좋지 않다나 어쨌다나 하는 이유로 다리미질을 하지 않는 그로서는 가위질이나 재봉틀질 따위의 남자답지 못한 일도 물론 할 수 없었다. 사실 풍운아인 그가 양복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모든 일은 풍운아의 아내가 했으며 그녀는 풍운아의 권좌를 이어갈 왕자를 생산하지 못한다고 시시때때로 찾아와 욕설을 퍼부어대는 풍운아의 어머니에게 차마 '하늘을 봐야 별을 따죠' 따위의 말대꾸를 하지 못해 죽도록 시달리면서도 나무랄 데 없이 풍운아의 아내 역할을 해냈지만 역시 풍운아의 아내 역할이 어렵기는 어려운 것이라서 걸핏하면 풍운아에게 손찌검을 당해야 했다. 그들이 우리 집 가게채에 자리를 잡은 지 몇 년 만에 작년에야 풍운아의 아들인 재성이가 태어났는데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는 풍운아 어머니의 압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풍운아의 아내 자리를 사직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풍운아의 어머니는 독립군과 경찰의 집안에다가 인물 좋고 기술 있는 풍운아가 도시까지 원정을 나가서 데려온 여자가 하필 풍운아의 아내가 되기에는 학력이나 인물, 집안 모든 면에서 처지는 '촌년낀 것을 알고 보통 실망한 것이 아니었다. "저렇게 못나 빠졌어도 어디서 서방 복은 있어 갖고"가 며느리에게 풍운아의 아내된 자세를 가르치려 할 때 내뱉는 제일성이었다. 일자무식임에도 불구하고 풍운아의 어머니는 칠거지악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오입을 하고 새벽에 들어오는 풍운아에게 꿀물을 타서 들여가는 풍운아 아내의 뒷덜미에 대고 눈꼬리가 곱지 않다고 호통을 치면서 들먹이는 말이 "칠거지악에 첫째가 투기여. 이년아?"였다. 그런가 하면 고기반찬이 없다고 밥상 앞에서 획 돌아앉으며 하는 말은 "칠거지악 중 가장 싸가지 없는 항목이 바로 부모 봉양 소흘한 것이란 걸 몰라?"였다. 칠거지악 중에 하나라도 거스르면 풍운아의 아내 자리를 언제라도 박탈당하고야 말 것이라는 협박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자주 들먹이는 칠거지악의 항목은 물론 자식을 낳지 못하는 악이었다,

풍운아의 어머니는 보름에 한 번씩은 와서 몹시 거친 방법으로 칠거지악에 대해 긴 훈시를 늘어놓고 독립투사를 낸 명가문에 후사가 없다 하여 풍운아 집안의 장래를 방바닥을 치며 걱정한 다음 언제나 적지 않은 돈을 치마말기 밑에 채워가지고 돌아갔다. 풍운아의 아내 자리가 그렇게나 탐탁한 것인지 오직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자기 삶을 송두리째 바치는 광진테라 아줌마를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저 지경으로 살면서 양잿물 한번 마시지 않는 것이 차라리 이상했다.

풍운아라서 바람을 타는 것인지 박광진 씨츤 귀가 얇아 툭하면 남의 말에 넘어가기 일쑤였다. '가오' 잡는 일이라면 낄 데 안 낄 데 가리지 않고 실속도 없이 고개를 디미는가 하면 '기마이'마저 갖추었는지라 돈 씀씀이가 결코 적지 않았다.

재작년 국회의원 선거 때는 야당 후보의 운동을 한답시고 앞장서서 막걸리 잔을 돌리며 다녔다. 대통령 선거 때 실컷 들어서 이미 아무런 신선감도 설득력도 없는 "틀림없다 공화당, 황소 힘이 제일이다"와 이에 맞서는 "지난 농사 망친 황소, 올봄에는 갈아치자"를 인용하며 집권당의 실정에 대해 거품을 물고 떠들어댔는데 말끝마다 독립투사의 후손임을 내세워가면서 자기 돈 들여 신명을 바쳤지만 나대고 다니기만 했지 사람들을 끌어들이지는 못하고 오히려 뒷전에서 욕을 얻어먹는 축이다 보니, 장군이 엄마가 야당 후보의 사모님한테 듣고 온 바로는 아저씨가 지지하는 야당 후보 진영에서도 그의 운동원 노릇을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선거가 끝나자 오직 진정한 민주주의의 정착이라는 대의를 위해서 사재를 털어 오토바이까지 장만하고(그에게 다른 속셈이 없진 않았던 것이 그는 자기가 미는 후보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신문사 지국장 자리를 얻어서 오토바이 뒤에 신문사 깃발을 달고 읍내를 누빌 꿈을 갖고 있었다) 정치적 신념을 불태웠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손가락질과 빛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아저씨는 단지 어쩌면 세상은 이처럼 끝까지 자기에게 등을 돌리며, 자기의 불운한 풍운아로서의 운명이 어쩌면 이렇게 철저하고 치밀하게 계획되어 있는가에 대한 놀라움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 아저씨는 그 놀라움을 감추지도 않았다 "인간 박광진이는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는 비탄을 몇날 며칠 술주정으로 풀어대는 바람에 온 동네 사람이 다함께 그의 운명의 질곡을 짊어져야만 했던 것이다.

신문사의 깃발을 달고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위세를 떨치고 싶었던 소원은 이루지 못했지만 얼마 안 가 아저씨는 오토바이를 장만한 보람을 다른 데에서 찾았다. 신문사의 깃발 대신 스카프를 머리에 맨 여자들을 뒷자리에 태우고 다니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아저씨의 허리는 여자의 가냘픈 팔로 둘러져 있는 날이 많았다. 커브길이나 비탈길을 달릴라치면 깍지낀 두 손에 더욱 힘을 주어 아저씨에게 몸을 밀착하는 것은 물론이요 "어머나?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등에다가 그 작은 얼굴을 꼭 붙이는 귀여운 모습들에서 아저씨는 정치판에서 꿈을 펴지 못하고 좌절한 야당 정객의 포한을 달랬다,

한번은 정다방 레지와 놀러 갔다가 예의 커브길에서 무섭다고 몸을 꼭 붙이는 아가씨의 소리에 자극받아 남자로서의 기개를 좀 심하게 보여주려다가 속력을 견디지 못한 오토바이가 뒤집어지는 바람에 그만 창피는 창피대로 당하고 팔이 부러져 깁스를 한 적도 있었다. 지금도 그 후유증으로 손가락 한 개를 자유스럽게 움직이지 못한다. 정다방 레지 미스 양이 군데군데 찰과상만 입은 것만도 천만다행이었다.

순분이, 즉 광진테라 아줌마는 이 모든 것을 견뎌냈다. 아줌마가 삶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것이 바로 자기의 삶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아저씨가 어떤 사람이든 간에 양복점 뒷방에서 강제로 순결을 잃은 순간 이미 자기의 삶은 결정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 아저씨가 자기 삶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달라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줌마는 그런 생각을 꿈에도 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아줌마들은 자기의 삶을 너무 빨리 결론짓는다. 자갈투성이 밭에 들어와서도 발길을 돌려 나갈 줄을 모른다. 바로 옆에 기름진 땅이 있을지도 모르는데도 한번 발을 들여왔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뼈 빠지게 그 밭만을 개간한다.

나는 아줌마가 자기의 삶을 벗어나서 보았으면 하고 생각해왔다. 그것은 성실하고 선량한 사림의 삶에 드리워지는 그늘에 대한 안타까움이기도 했다. 유치한 어린애 짓은 절대 하지 않는 나이지만 만약 아저씨와 아줌마의 사이를 갈라놓는 데 도움이 된다면 고자질 정도야 못할 것도 없었다.

"저기, 아까 차부에 보니까 아저씨 오토바이가 거기 있던데"

아줌마는 가만있었다 대신 할머니가 물었다.

"차부에?"

". 정님이 고모네 맥주흘 있잖아. 그 앞에서 봤어."

아줌마는 별 반응 없이 조리로 쌀을 일기 시작했는데 손놀림이 아주 규칙적이었다 쌀을 다 일고는 말없이 놋숟가락으로 무 껍질을 긁어낼 뿐 여전히 말이 없었다. 엄마가 오랫동안 쭈그리고 앉아 있자 등 뒤에 업힌 재성이가 답답하다고 꼬물거리는 것을 뒤로 손을 돌려 아기 엉덩이께를 두어 번 탁탁 두드려주고 계속 무껍질만 긁어대는 모습이 그런 것은 전혀 대수로운 일이 못 된다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로는 그런 아줌마의 표정은 오래전에 끝난 전쟁의 뒷소식을 듣는 담담함이라기보다는 폭풍 전의 고요 같은 불길함이 있었다. 단단하게 다문 입속에서 아줌마의 혀는 어떤 반란의 격문을 부르짖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줌마처럼 자기의 고통을 드러내놓지 않는 사람은 그 고통을 가슴속에 쌓아놓고 있는 것이다. 해소되지 못하고 가슴속에 차곡차곡 압축 저장된 그 고통은 언젠가는 엄청난 폭발력으로 터져 나올 수도 있다. 그렇게 가슴속에 고통을 꾹꾹 눌러 저장하고 있다는 것이 아줌마가 품고 있는 진정한 비밀일지도 모른다.

 

 

 

5. 일요일에는 빨래가 많다

이모에게 편지 심부름을 부탁받은 이후 나는 학교에서 돌아올 때마다 경자 이모네 집에 들렀다. 경자 이모가 집에 없는 날도 있고 또 이따금 내가 건너뛰는 날도 있으니 매일은 아니라고 해도 아무튼 배달부로서의 내 임무는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이모의 성화를 견디느니 차라리 다리품을 좀 파는 게 얼마든지 나은 일이라서 나는 내 임무에 대체로 충실했다.

며칠 전에도 경자 이모네에 들러 편지를 찾아온 나는 집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는 이형렬의 편지가 든 책가방을 마루에 던져두고 뒤껼으로 나갔다. 혹시 할머니가 뒤란 텃밭에 계신가 싶어서였다. 그러나 텃밭으로 통하는 나무 문에는 달팽이 집 모양의 빙빙 돌아가는 철사 텟장이 질러져 있었다. 다시 앞마당으로 돌아왔는데, 언제 왔는지 어깨에 멘 핸드백도 미처 내려놓지 못하고 선 채로 내 책가방을 뒤지고 있는 이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이모? 하고 냅다 소리를 질렀다. 화들짝 놀라면서도 이모는 내 책가방을 뒤져서 찾아낸 편지만은 떨어뜨리지 않았다. 나의 험상궂은 표정을 보더니 되레 "책가방 뒤졌다고 그러니? 내 편지 내가 가져가는데 뭐 어때?라고 소유권 주장을 하는 것이었다. "쪼꼬만 게 무슨 비밀이라도 있나? 책가방 좀 봤다고 저 야단이야"라며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리는 이모의 행동이, 스스로도 떳떳치 않다고 생각한 행동을 현장에서 들켰을 때 어른의 권위를 되찾는 마지막 방법으로 택한 뻔뻔스러움이란 걸 알긴 하면서도 지금까지 성실하게 수행해온 배달부나 자문관의 권위를 잃은 나는 자존심에 작은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불과 오 분도 지나지 않아 그 상처 위에는 억지로 딱지가 내려앉았다. 쪼꼬만 게 어쩌구 하면서 팡 닫고 들어간 바로 그 방문을 황급히 도로 열고 이모가 쏟아질 듯 방에서 뛰쳐나오며 아직까지 상한 자존심에 대한 정리가 끝나지 않아 마루 앞에 그대로 서 있는 내 목을 너무나 사랑스럽다는 듯이 꼭 끌어안았던 것이다.

이모는 정말이지 제멋대로 행동했다. 이모의 머릿속에서 세상사 람은 언제나 자기를 몹시 좋아하는 사람과 자기를 알아볼 줄 모르는 사람, 두 부류로만 나뉘었다. 또 세상일은 언제나 사랑과 미움 두 가지뿐이었다. 따라서 그런 몇 가지 생각의 틀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이모의 행동에 사려라고는 있을 수 없었다. 이모의 부드러운 팔 안에 목을 죄어 안겨 있는 짧은 순간 나는 앞으로도 내가 이 흥분된 처녀의 연애에 어쩔 수 없이 계속 동참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진희야, 다음 주에 휴가래! 휴가 내서 나 만나러 온대?"

이모는 내 목을 확 죄고 있던 팔을 조금 풀어내 어깨 위에 걸쳐놓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내 눈을 쳐다보고 그 말을 했지만 나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가볍게 이마까지 비벼댔지만 그것 역시 내 이마를 비비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형렬의 눈을 쳐다보고 그의 이마를 비비는 것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다, 이모가 사랑스럽게 쳐다보고 또 비벼대는 것은 자신의 젊음과 연애 감정이었다.

그날부터 이모는 첫 데이트에 대한 설렘으로 흥분하여 그렇지 않아도 덜렁대는 성격에 한층 정신머리가 없어졌다. 경자 이모네 집을 뻔질나게 드나들며 데이트에 관한 여러 가지 조언을 구하는가 하면 옷장 속에서 옷이란 옷을 다 꺼내놓고 신경질을 부렸으며 거울을 아예 무릎 위에 올려놓고 살았다. 오늘도 아침밥을 먹자마자 목욕탕에 가겠다고 대야를 들고 설치는 바람에 할머니에게 기어코 잔소리를 듣고야 만다.

"며칠 됐다고 벌써 또 목욕을 가냐? 일요일이라 사람도 많을 텐데"

"그러니까 일찍 가려는 거지. 아침 설거지 끝날 시간에 가면 아줌마들이 애들 데리고 떼거리로 몰려들어서 앉을 자리도 없단 말야."

"목욕은 내일 가고 집에 있다가 진희 점심이나 차려줘라."

"엄마는 어디 나가? 할머니는 그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다. 지금 할머니가 머릿수건과 밀짚모자, 그리고 호미를 챙겨 드는 것을 보면 밭에 나가는 길임은 물어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뻔한 일을 아무 짐작 없이 일일이 물어보는 것이 이모의 버릇이라면 그렇게 뻔한 일에는 절대 대답을 해주지 않는 것이 또 할머니의 고집이다.

할머니가 대문간으로 사라지자마자 이모는 다시 대야에 비누곽을 담는다. 이모에게는 오늘 꼭 목욕탕에 가야 할 이유가 있다. 그렇다. 이모는 내일 이형렬을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꿈에도 그리던 이형렬과의 첫 데이트, 드디어 그날이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마침 삼촌은 얼마 전에 서울에 가고 없었다 삼촌네 학교에서 며칠 전 헌법을 수호하자는 학생총회가 열렸다는데 그 소식도 좀 들어보고 오랜만에 바람도 쉴 겸 며칠 다녀온다고 올라간 거였다. 신경질적이면서도 한편 마음이 약하고, 할머니에게 이따금 연애소설을 읽어드릴 만큼 다감한 구석이 있는 삼촌은 서울 가기 전날 저녁상을 물리고는 할머니와 왜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할머니가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대통령을 두 번 이상 하지 못하게 한 헌법을 고쳐서 박정희 대통령이 그대로 대통령 자리에 눌러앉으면 왜 안 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주었다. 할머니는 무슨 말인지 다는 알아듣지 못할 텐데도 잠자코 그 설명을 듣고 있었으며 삼촌의 말이 끝나자 결론 격으로 "다 네가 알아서 하-. 몸조심해라"라고만 대답했는데, 삼촌은 그 말을 듣자 무슨 엄중한 비밀지령이라도 받는 것처럼 무겁게 두어 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할머니와 삼촌 사이에 흐르는 진지한 기류의 정반대 쪽에서 혼돈의 춤을 추는 난기류가 형성돼 있었다. 바로 삼촌의 서울행에 내심 희희낙락하는 이모였다. 남몰래 데이트를 앞둔 이모로서는 무서운 감시관이 사라지니 그런 행운이 없는 셈이었다. 가방을 든 삼촌의 뒷모습이 골목으로 사라지자 이모는 너무 좋아서 두 손을 맞잡고 장판 위에서 빙그르르 돌기까지 했다. 집안에 남자가 있다가 없으니 밥상머리까지 허전하다며 찬물에 밥을 몇 숟갈 말아서 억지로 점심을 밀어 넣는 할머니한테 그 모습을 들키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모가 목욕탕에서 돌아온 것은 거의 두 시간이 지나서이다. 뜨거운 김에 얼굴이 익을 대로 익어서 발그스레하고 때수건으로 문질러 댄 팔꿈치는 거의 딱지가 앉을 정도로 빨개졌지만 그럼에도 목욕을 마친 이모는 물에서 씻어 막 건져낸 자두처럼 싱싱하다. 우물가 바닥에 대야를 내려놓은 이모는 그 속에서 수건을 꺼내 비틀어 짠 다음 마당의 빨랫줄로 간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엉덩이의 양감이 도드라지면서 폭 좁은 월남치마의 선이 부드럽게 출렁거린다. 높은 빨랫줄에 수건을 널기 위해 키발을 딛고 두 팔을 위로 뻗쳐 들자 이모의 블라우스가 앞쪽으로 팽팽히 잡아당겨져 몸에 감겨든다. 그런데 빨랫줄이 너무 높아 손이 닿지 않는다. 이모는 할머니가 아침에 빨래를 널고 나서 빨랫줄을 너무 높이 올려놓은 것을 불평하며 바지랑대 쪽으로 걸어간다. 바지랑대를 내려서 빨랫줄을 낮추려는 것이다. 그러나 빨랫줄에는 젖은 빨래가 빽빽이 널려 있어 바지랑대가 빨래의 무게를 간신히 지탱하고 있다. 이모가 바지랑대를 끌어내리자 바지랑대가 흔들하면서 그것을 잡고 있던 이모의 몸도 기우뚱한다. 재빨리 몸의 균형을 잡느라 이모는 순간 바지랑대를 더욱 세게 움켜잡았는데 그것이 너무 과격한 동작이었던지 바지랑대와 함께 그대로 마당에 고꾸라지고 만다. 빨랫줄이 철렁 내려앉으며 빨래가 모두 마당에 끌린다. 월남치마가 젖혀져 하얗게 드러난 종아리 위로 치마를 끌어내리며 이모의 입에서는 짜증 섞인 불평이 터져 나온다. 누가 보더라도 이모가 넘어진 것은 할머니 말대로 '갈상머리가 없어서'이지 빨래나 바지랑대의 잘못은 아니다. 일요일에 빨래가 많은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일요일이라서 장군이네 하숙생 최선생님도 지금 이렇게 마루에 나와 앉아 있는 게 아니겠는가. 일요일에 최선생님이 장군이네 마루에 나와 있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다. 줄무늬 파자마 차림으로 마루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하릴없이 우물가나 마당에 시선을 주고 있는 모습이 한가하게 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모나 뉴스타일 양장점 미스 리 언니의 이동 반경에 따라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방안에서 우물가의 기척을 다 듣고 있는지는 몰라도 그 두 처녀가 우물가에 나오면 최선생님이 꼭 어슬렁거리며 방에서 나오곤 한다. 오늘은 이모의 젖혀진 치맛속까지 봤으니 최선생님으로서는 운수 좋은 날이다.

최선생님이 아까부터 자기를 보고 있다는 걸 전혀 몰랐던 이모는 그가 슬리퍼를 끌고 다가와서 어디 다친 데 없냐고 묻자 질겁을 한다. 최선생님이 치마의 흙을 털어준다고 엉덩이를 가볍게 치자 이모는 왜 이래요, 하면서 눈알이 아프도록 눈을 흘긴다. 최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바지랑대를 겨우 제자리에 받쳐놓은 이모는 어린애가 시위를 하듯이 몸을 약간 비틀면서 팔을 앞뒤로 내두르고 무릎을 크게 올리는 의식적인 거친 걸음으로 마루로 돌아와서는 신발을 획 벗는다. 방안에 들어오더니 숙제를 하고 있던 나에게 "넌 애가 집에 있으면서 저 기다나이 선생 있다고 왜 말 안 해줬니?" 하면서 엉뚱한 화풀이까지 한다. 실제로는 그리 화가 난 것도 아니면서 과장되게 화난 척하고 있는 이모. 최선생님은 그런 처녀의 속마음을 다 안다는 듯 우리 방문에 대고 유들거리는 웃음을 던진 다음 천천히 자기 방 쪽으로 돌아간다.

이모는 앉은뱅이책상 앞에 털쌕 주저앉더니 "재수 없어?" 하고 혼잣말을 뇌까리면서 거울을 끌어당긴다. 그리고는 거울을 한참동안 쳐다보는데 이빨에 긴 고춧가루를 찾을 때처럼 어떤 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턱을 조금 쳐들어서 보고 얼굴을 옆으로 돌려서 보고 하는 품이 조금 아까 최선생님의 눈에 자기의 모습이 어떻게 비쳤을지 그것을 염두에 두고 하는 짓이 틀림없다. 최선생님을 능글맞고 징그럽다면서 끔찍하게 싫어하여 이모는 그를 기다나이 선생 (이모는 징그럽다는 말을 마음껏 내뱉고 싶으나 차마 한집에 살면서 노골적으로 그런 말을 할 수는 없다면서 일본말을 조금 안다는 이유로 할머니에게 아이디어를 구한 후 '질색'이라는 뜻의 이 말을 차용했다)이라 불렀다. 그런데도 그 기다나이 최선생님한테까지도 여자로서의 흠모를 받는 것은 그다지 싫지 않은 모양이었다. 입으로는 최선생님이 제발 다른 집으로 하숙을 옮겨주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종알거리지만 속으로는 자기를 향해 집중되어있는 남자의 시선이라는 면에서 최선생님의 존재가 이모에게 반드시 싫은 것만도 아닌 것 같았다.

이모가 부엌에서 날달걀을 가져온다. 내 도시락에 달걀부침을 해넣으려고 할머니가 아껴둔 달걀이 분명한데 이모는 그것을 뒷마루 모서리에 대고 톡톡 건드려 깨더니 노른자만을 갈라 그릇에 담는다. 마사지를 하려는 것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숙제를 다 마치고 일어나서 돌아보니 이모는 달걀노른자를 얼굴에 바른 채 뒷마루에 누워 잠이 들었다. 노랗게 굳어진 얼굴 어딘가에 구멍이 나서 호흡기로 이어져 있는지 이모의 데드 마스크에서는 고르게 숨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아까 장군이 엄마는 장군이를 앞세우고 밖에 나갔고, 뉴스타일 양장점은 오늘 문 닫는 날이고 또 부지런한 광진테라 아줌마는 오전에 집안일을 다 마치고는 재성이를 들쳐 업고 시댁에 갔다. 노는 일에는 언제나 앞장을 서는 아저씨는 친목계인지 뭔지라며 토요일 날 벌써 여수 오동도로 놀러 가고 없다. 최선생님도 그새 당구장이라도 갔는지 조용하기만 하다.

일요일 한낮 온 집안이 정적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정적이 깊다 보니 골목을 지나가는 아이들의 무심한 노랫소리만 크게 울린다.

-남편이여 그대, 월남 가서 돈 부치고 빈총 맞아 죽어라.

후렴귀가 한 번 더 들리면서 점점 멀어진다.

-빈총 맞아 죽어라.

 

 

 

6. 데이트의 어린 배심원

학교가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가방을 들고 교실문을 나서려는데 뒤에서 봉희가 나를 부른다. 자기 집에 가자는 것이다. 나를 자기네 무리에 자꾸 끌어들이려는 봉희의 속셈이 무엇인지 알기에 내 대꾸는 퉁명스럽다.

"오늘은 안 돼. 이모하고 어디 가기로 했거든."

"너희 이모? 시스터 말이니?"

봉희의 '시스터'라는 발음 뒤에서 들려오는 묘한 어감이 불쾌하다 중학교에 다니는 봉희의 언니 민희도 작년에 이모에게서 영어를 배웠는데, 발음에 유난히 혀를 굴리며 젠체하는 게 꼴불견이더니 집에 가서는 또 이모에 대해 어떤 험담을 했는지 봉희의 '시스터'를 발음하는 억양에는 언제나 야릇한 여운이 감돌았다.

"시스터하고 어디 가는데?

봉희가 다시 물었지만 더 이상 상대하기가 싫어진 나는 애매하게 웃어 보이며 그대로 교실 문을 나선다. 그럼 내일이다, 내일은 꼭 같이 가야 해..,,,,등뒤에서 들려오는 봉희의 목소리를 거부하는 의사표시로써 나는 걸음을 빨리한다.

봉희네 무리는 아이들 사이에 여자 깡패로 통한다. 몇 명이서 떼를 지어 다니며 일부러 눈에 거슬리는' 짓만 한다 수업 시간에는 이유 없이 다리를 포개고 앉아 건들거리는가 하면 양계장 집 선자에게 매일 달걀을 하나씩 바치라고 윽박지르고 그렇게 해서 상납받은 날달걀을 아이들 앞에서 깨 먹어 보이는 묘기도 선보인다, 책가방에 주머니칼이 들어 있다는 암시를 하기도 하고 대단한 칼부림이라도 한 사람처럼 손목에 손수건을 붕대처럼 칭칭 동여매고 다니는 것이 내 눈에는 보통 유치해 보이는 게 아니다.

나는 봉희처럼 어른스럽게 보이려고 하는 어린애들을 경원한다, 어른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것처럼 스스로 어린애임을 드러내 보이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어른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가장 어린애답게 보이는 것이다. 어린애로 보이는 것은 편리하기도 하지만 비상시에는 강력한 무기도 된다. 그런데도 아무런 이지적 노력 없이 가만히 있기만 해도 시간이 해결해주는 그따위 신체적 성장을 남의 눈앞에 앞당겨서 보이려 한다거나 다만 금기라는 사실 때문에 본뜰 가치도 없는 어른 흉내에 매료된다거나 하는 것은 역시 봉희 같은 어린애들만의 생각이다.

대성약국 앞을 지나면서 약국 안의 시계를 힐끗 보고 난 뒤 내 걸음은 다시 빨라진다. 지금쯤 이모는 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한 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건만 제대로 준비된 것은 하나도 없이 내가 아직 안 왔다는 사실에만 신경질을 내고 있을 것이다. 뻔한 일이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직 외출복도 갈아입지 않고 마루 끝에 서서 머리를 빗고 있던 이모가 나를 보자마자 대뜸, 왜 이렇게 늦게 오니? 신경질을 낸다. 아직 채비를 갖추려면 멀었으면서 마치 나 때

문에 시간이 지체되었다는 말투다,

방안은 온통 난장판이다. 내 책상이기도 하지만 이모의 화장대이기도 한 낮은 탁자 위에 뚜껑도 제대로 닫히지 않은 화장품 병들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널려 있다. 옷장 문은 옷소매가 빠져나와 문에 낀 채로 억지로 닫아서 비죽이 열려 있고 양말 서랍, 벽장 문까지 활짝 젖혀져 있다. 어찌나 발밑이 어지러운지 내 책가방 하나 내려놓을 곳도 마땅치 않다.

"엄마가 어디 갔다 왔냐고 물으면 뭐라고 할까. 경자랑 셋이서 놀러 갔다고 할까?"

"경자 이모 어제 큰언니네 집에 갔다면서 벌써 왔어?"

용의주도하지 못한 이모의 빈틈을 내가 막아준다.

"아 참, 그렇구나. 그럼 그냥 너하고 둘이 갔다고 해야겠구나."

이모는 방으로 들어가 괘종시계를 한 번 힐끗 보더니 소스라치게 놀라는 시늉을 하더니 난데없이 핸드백을 열어 그 속에 든 지갑을 꺼내 확인하고는 ", 있구나" 하며 가슴까지 쓸어내리면서 별일 아닌 일로 꽤나 안심을 한다. 만날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긴장하여 정신을 수습하지 못하는 이모는 언제나처럼 자기 자신보다 보는 사람을 더 불안하게 만든다.

오늘 이모의 의상은 큼직한 물방을 무늬가 있는 흰색 원피스인데 같은 천으로 머리띠도 맸다. 뉴스타일 양장점 미스 리가 두 번이나 가봉 날짜를 어겼다고 그 옷을 입을 때마다 잊지 않고 욕을 하는 옷이다. 미스 리 언니가 약속을 어긴 것은 그녀 쪽 잘못이라기보다는 열흘 걸리겠다고 하면 일주일 안에 해달라고 하고 일주일은 잡아야 한다고 하면 닷새 뒤에 찾으러 오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이모의 조급한 성미 탓인데도 말이다. 무턱대고 빨리 해달라는 것 말고도 이모의 옷에 대한 까탈은 보통 심한 것이 아니다. 이 물방울 무늬 옷도 이모가 잡지책에서 보고 마음에 들어서 직접 책을 들고 가 똑같은 디자인으로 맞춘 것인데 이모는 생각보다 옷이 안 나왔다며 미스 리 언니를 얼마나 타박했는지 모른다. 잡지책의 모델이 입었을 때 풍기던 화려함이 똑같은 옷을 이모가 입었을 때는 왜 변형을 일으켜서 촌스러움으로 나타나는지 이모는 그것이 불만이다. 내가 보기에 그 촌스러움은 이런 소읍 양장점의 시다일 뿐인 미스 리 언니의 솜씨가 모자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루비나'라는 예명까지 가진 그 모델의 서구적 분위기를 흥내조차 낼 수 없는 이모의 체형에 절대적인 원인이 있었다.

"이 베니 색깔 괜찮니? 너무 옅지 않아?"

이모의 입술에는 요즘 한창 유행인 죽은 분홍색 립스틱이 칠해져 있다. 할머니가 "요새 구찌베니는 색깔이 왜 그러냐. 밖에 나가보면 젊은것들이 다들 입을 송장같이 허옇게 칠하고 돌아다니더라" 하자

"정말 별놈의 유행도 다 있다니까요. 얼른 보면 입술이 까진 것 안 같아요? 째보 같기도 하고,,, ,,, "라고 장군이 엄마가 냉큼 말을 받던 바로 그 색깔이다.

쌍꺼풀이 없는 이모는 쌍꺼풀 자국을 만드느라 로통 때는 언제나 눈꺼풀 위에 투명한 유리테이프를 붙이고 있었는데 그것을 떼어낸 지 얼마 안 되어 아직 눈두덩에 빨간 자국이 남아 있다. 속눈썹에다 마스카라를 덧칠하고 검은 아이라인 밑에 녹색 눈썹연필로 선을 넣은 것이 누가 보더라도 공들인 화장이었다.

이모의 모습은 꽤나 예쁘다. 비록 잡지 속의 모델처럼 세련돼 보이지는 않지만, 물방울무늬의 원피스와 머리띠도 초여름 햇살 아래에서 그런대로 시원스러운 느낌을 준다. 게다가 스물한 살이 나이는 신기하게도 이모의 하얀 피부와 크고 검은 눈동자 쪽에는 햇살을 쏟아붓는 한편 퍼진 엉덩이와 굽은 어깨 쪽에는 그늘을 드리워주는 모양이다.

댓돌 위의 구두를 신고 나서 이모는 마지막으로 마루 끝의 기둥에 걸려 있는 작은 거울에 자기의 모습을 비쳐 본다. 상당히 의식적인 동작으로 머리카락을 한 번 쓸어넘겨 보더니 옆으로 몸을 틀며 어깨를 살짝 들어 올리면서 가볍게 고개를 젖혀보기도 한다, 그리고는 자기의 모습에 대한 흡족함의 표시로 괜스레 비뚤어지지도 않은 내 옷깃을 바로잡아준다. 자기의 모습이 만족스러운 데다 나를 들러리로 앞세우고 나서니 비로소 일전을 불사할 자신감이 생기는 듯하다, 그 자신감을 미소로 드러내 보이느라고 이모의 번들거리는 죽은 분흥색 입술이 살짝 젖혀진다.

첫 만남을 위해 이모는 장소에 대해 왜 신경을 썼다. 고심 끝에 이모가 결정한 평생 잊혀지지 않을 낭만적인 장소는 산성 안에 있는 '성안'이다. 우리 읍에는 유서 깊은 산성이 있다. 관광명소는 아니더라도 경치로는 그다지 빠지지 않는 곳이다. 성을 둘러싸고 성곽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매년 가을 '군민의 날'에는 성 밟기 행사가 성대하게 치러진다. 또 백일장대회나 미술대회가 열리기도 하고 읍의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읍민들의 결집장소가 되기도 하며 연못과 잘 가꾸어진 숲길이 데이트 코스로도 인기 있는 장소이다. 읍내 아이들은 그곳 나무숲에서 놀며 자랐고 휴일에는 도시락을 먹을 만한 조촐한 나들이 장소로서, 우리 읍에서는 유일한 유원지이자 공원 구실도 해준다. 그래서 읍내 사람들에게는 '성안'이라는 말은 성의 안쪽 숲이라는 뜻의 보통명사보다는 우리 읍의 산성을 가리키는 지명으로 쓰인다. 그 성안이 바로 이모의 첫 만남의 성지이다,

성안으로 가기 위해서는 차부 앞을 지나가야 한다. 언제나처럼 차부는 지저분하고 소란스럽다. 막 공중변소에서 나온 한 아주머니가 이마를 잔뜩 찡그리고 발바닥에 묻은 것을 떼내려고 고무신 바닥을 이쪽저쪽 돌려가며 대합실 계단 모서리에 비비고 있다. 파출소 바로 옆에 있는 '형제상회'에서는 늘 다투기로 소문난 만복이 홍복이 아저씨가 말다툼을 하고 있고, 뒷바퀴가 다 빠져 있는 고장 난 버스 뒤에서 껌 파는 아이들이 모여앉아 저희들끼리 뭘 주고받는 모습도 눈에 띈다. 내 시선은 종묘상 옆의 허름한 식당에서 염주 모양의 발을 들치며 나오고 있는 한 군인에게 가서 멈춘다.

지나치면서 옆눈으로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국밥을 먹고 나오는 길인지 번들거리는 입가를 손바닥으로 쓱 문지르는 그는 다행히 사진으로 본 이형렬과는 전혀 닳지 않은 군인이다. 그러나 이형렬과 전혀 닳지 않은 군인 뒤로 그 군인을 내보낸 뒤 아직까지 흔들리고 있던 발을 들치고 나오고 있는 남자, 그는 분명히 내가 아는 사람이다. 그를 본 순간 나는 이모의 팔꿈치를 쿡 찌르며 작게 속삭인다.

"이모, 저기 홍기웅,,,,,,"

그 남자의 존재를 확인하자마자 이모는 못 볼 것을 봤다는 듯이 재빨리 고개를 돌리고는 걸음을 빨리한다. 뜀박질을 해서라도 그의 시야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지만 그런 돌출된 행동이 오히려 그의 시전을 이쪽으로 돌리게 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발놀림을 극히 조심하면서 속도만 내느라고 이모의 걸음은 뒤뚱거려진다. 그러나 그 노력도 허사이다. 이모는 그 남자의 매서운 눈을 벗어날 수는 없다. 이미 남자의 굵직한 목소리가 바로 등 뒤에서 들려온다.

"영옥이 어디 가냐?"

"남이사 어딜 가든 말든?"

발걸음을 조심하던 것에 비하면 이모의 태도는 상당히 당돌하다. 샐쭉하게 대꾸를 하면서 혹시 지금 고와 말을 나누는 것을 아는 사람이 볼까 봐 주위를 한번 휘 둘러본다, 발걸음은 이형렬이 기다리고 있는 성안을 향해 멈추지 않은 채,

"그렇게 쪽 빼고 어디 가냔 말야?"

이모는 한번 대꾸해준 것만도 커다란 선심이었다는 표정을 노골적으로 지으며 거만하게 걷기만 한다. 그러나 홍기웅은 이모가 서너 걸음에 걸쳐 걸어간 거리를 한 걸음으로 성큼 따라잡으며 따라온다. 홍기웅은 깡패다. 그가 어떻게 깡패질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이따금 어른들의 화제에 등장할 때 그가 맡은 역이 늘 깡패이다. 그는 중앙극장 집 아들인데 그냥 아들이 아니고 '작은 각시'가 낳은 아들이라고 한다. 어릴 때는 착하고 유순했던 그는 중학교 때 어머니가 죽은 뒤부터 빗나가기만 하더니 아버지에 대한 강렬한 포한 때문에 결국에는 반항적인 삶을 택했는데 그것이 바로 깡패질이라는 것이다.

여고 2학년 때인가, 이모는 친구들과 함에 딸기밭에 놀러 갔다. 원두막에 둘러앉은 이모네는 주로 선생님 얘기인 기나긴 수다를 떨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문득 포플러 사이로 쏴아쏴아 하고 바람 소리가 들려오자 '센치한' 기분이 들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는 그래도 이모의 노래가 출중한 편에 속했다. 친구들의 잘한다 소리에 고무된 이모는 바우고개 산타루치아를 불렀고 그 뒤에도 잘한다 소리가 계속 나오자 펄 시스터즈의 찻집의 고독으로 보답했으며 예스터데이를 불러 팝송 실력까지 과시했다.

그날 여러모로 기분이 좋았던 이모는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그만 다리를 삐고 말았다. 명자 이모가 "영옥아, 니 다리 밑에 뱀 지나간다? 고 소리치자 이모는 친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엄마야? 하면서 다리를 한껏 쳐들었고 그대로 논둑길에 엎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애먼 나들이인 데다가 논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모는 어쩔 줄을 몰랐다. 그때 논이 끝나는 저편 언덕에 서 있던 한 남자가 이모에게로 천천히 다가왔다. 그는 이모를 부축했다. 아니 거의 겨드랑이에 끼다시피 했다. 남자의 어깼죽지에 머리를 묻게 된 이모는 창피하긴 했지만 갑자기 혹기사처럼 출현한 그 덕분에 마녀의 첨탑 속에 갇혔다가 구출된 공주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기에 싫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남자가 바로 홍기웅이었다. 이모를 겨드랑이에 낀 채 홍기웅이 앞장서고 그 뒤를 세 명의 여고생들이 키득거리며 따라가고 있는 장면은 모두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 특히 홍기웅에게는. 읍내가 가까워지자 홍기웅은 자기의 겨드랑이에서 이모를 꺼내 친구들에게 맡겼다, 수줍음과 내숭 때문에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함축적인 눈길만 던지는 이모에게 홍기웅이 돌아서며 남긴 말은 이 말뿐이었다.

"아까 바우고개 부른 게 너지? 우리 어머니가 좋아하던 노래다."

홍기웅의 보잘것없는 정체를 알기까지 그 말과 그 말을 할 때의 야성적이고 우수 어린 표정은 맨발의 청춘에서 신성일이 엄앵란에게 그랬듯이 꽤나 이모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자기가 흑기사가 아닌 깡패에게 구출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모는 친구들에게 아예 그때의 일을 입 밖에 꺼내지도 못하게 했을 뿐 아니라, 잊을 만하면 불쑥불쑥 나타나 앞을 가로막는 바람에 홍기웅이라면 이를 갈게 되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얄궂게도 홍기웅의 마음속에는 이모가 영원한 연인으로 깊숙이 자리 잡았다.

눈앞에 버티고 선 홍기웅을 한껏 노려보면서도 이모의 표정은 여간 불안하지 않다. 두 사람의 사연을 모두 알고 있는 나 역시 이모 못지않게 불안하다. 특히 걱정인 것이 홍기웅이 계속 이런 기세로 따라오다가 성안까지 간다면, 거기서 이모를 기다리고 있는 남자를 목격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제아무리 용감한 대한민국 군인이라 해도 이형렬 따위는 홍기웅의 주먹 아래 늘씬하게 때려 눕혀질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이모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우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녹색 아이라인이 일그러지면서 그렇지 않아도 허옇게 칠해진 이모의 입술이 조바심으로 한층 창백하다. 이 정도 위기관리도 못 하는 이모가 한심해서 나는 되레 용기가 생긴다. 바로 이럴 때에 어린애라는 것이 무기가 되어준다. 하룻강아지인 나는 범 무서운 줄을 모르기 때문에 대담하게도 홍기웅에게 반말로 소리친다.

"우리 이모 보내줘! 나 상 타러 간단 말야?"

속으로는 홍기웅이 금방이라도 그 험상궂은 얼굴로 "뭐야?" 하면서 내게 주먹을 내두를까 봐 조마조마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겨우 열두 살인 나의 반말지거리를 모욕이라기보다는 어리광이라고 해석해버린다. 당돌함이 귀엽다는 듯 오히려 그는 내게 빙긋 웃어 보인다. 하기야 그는 언제나 내게는 너그럽다. 어쩌다 길에서 마주치면 다정하게 알은 체를 하고 가볍게 손까지 들어 보인다.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은 이모한테는 으름장을 놓느라 인상을 쓸 때도 있지만 그 이모의 조카인 나에게는 언제나 선심 공세 아니면 이런 식의 너그러움으로 대하는 것이다.

"진회 너 상 타러 간다고?"

그의 눈길은 대견한 빛을 떤다. 착한 아이들이란 언제나 어른에게 공통된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이 순간 나는 이모와 홍기웅의 공동의 조카가 되는 것이다. 나로 인해 유발된 공통된 정서에 의해 이모와 편이 지어진 채 나란히 서서 대견한 어린애인 나를 내려다보는 그의 표정은 행복하기까지 하다. 행복감을 맛본 그는 이모를 놓아줄 마음이 든다. 그는 발길을 돌리면서 이모를 향해 이 말 한마디만 뱉는다

"집에 일찍 들어가?"

이모는 기가 막히다는 듯이 차부 쪽을 향해 돌려진 그의 등 뒤에 뭐라고 한 마디 쏘아붙이려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 가벼운 입을 용케 다물고는 다시 성안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어서 가자고 재촉하는 이모에게 팔을 잡혀 그 자리를 떠나면서 나는 딱 한 번 뒤를 돌아다보았는데 홍기웅의 떡 벌어진 어깨를 감싸고 있는, 계절에 맞지 않는 가죽점퍼는 내가 익히 아는 아리랑 비어홀 안으로 사라지고 있다.

"하필이면 이런 때 저 자식을 만날 게 뭐야. 아유, 신경질 나."

이렇게 말하며 손목시계를 보는 이모의 얼굴에는 첫만남에서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교양을 과시하지 못할까 봐 초조함이 깃든다. 여자는 약속 시간에 조금 늦게 나타나서 애교스럽게 "코리안 타임이잖아요. 호호"하면서 비싸게 굴어야 한다지만 편지에 썼듯이 진실한 여성을 좋아하는 이형렬이고 보면 시간을 지키는 편이 교양있게 보이리라 싶었던 것이다.

홍기웅의 마음속에는 이모뿐이다. 그러나 지금 이모의 머릿속에는 이형렬뿐이다. 홍기웅이라는 꼭짓점에서 뻗어 나온 선은 이모를 향한 직선을 그리지만 이모라는 꼭짓점에서 시작된 선은 이형렬을 향한다 그러면 이형렬의 선은? 그 선은 과연 화살표를 달고 이모 쪽으로 그어질 것인가? 그것은 어쩌면 오늘의 만남에 달려 있다. 만약 이형렬의 선이 이모 쪽으로 그려져 삼각관계를 이루면 팽팽한 도형이 된다. 도형이란 직선과 달리 폐쇄된 것이므로 더 이상 뻗어나갈 수가 없어 그중 한 개의 선이 비켜나갈 때까지 고착돼버릴 것이다. 그러면 어떤 꼭짓점도 서로 가까워지지 못한다. 앞으로 지켜보게 될 삼각관계라는 새로운 실험에 나는 흥미를 느꼈다.

큰길을 벗어나 오솔길로 접어든 뒤 오르막길을 오 분쯤 올라가면 작은 내가 흐르고 그 뒤부터가 성안이다. 우리가 오르막길로 접어들었을 때 성문 쪽에서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성문의 굵은 기둥에 기대어 군인이 하나 서 있다. 그 모습을 보더니 이모가 잽싸게 윗입술과 아랫입술에 힘을 주어서 두어 번 맞비벼대며 내게 속삭인다.

"진희야, , 얼굴 괜찮니?" 그러는데 그 군인이 성큼 다가와서 힘차게 경례를 붙인다.

"상병, , , , 애인에게, 인사드립니다?"

수줍은 미소로 그 인사를 받아들이면서도 이모는 군인의 높이와 체적, 그 비율, 이목구비의 균형을 재빨리 훑어본다. 군인 또한 이모의 수줍은 미소와 미소를 만들어내고 있는 입술, 물방울 무늬 원피스로 감싸인 스물한 살의 곡선을 본다.

"얘는 제 조카 진희예요."

"네가 진희구나? 이모가 편지에 네 자랑 많이 하더라."

친근하게 말을 붙이는 이형렬에게 나는 고개를 까딱하고 인사를 한다. 처녀들이 데이트에 아이들을 앞세우고 다니는 것은 아이들이 편지를 전하는 것처럼 일종의 유행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은 남녀 사이의 서먹서먹함을 눅여줄 뿐 아니라 상대방에게 직접 말하기 껄끄러운 어색한 말을 간접화법으로 바꿔 할 때도 편리하다. "오늘 네 이모 참 이쁘다 그치?" "이모보고 아저씨가 좋아한다고 해라" 하는 식 말이다. 처녀 쪽에서는 아이들을 대동하여 데이트에 공개성을 부여함으로써 남자 쪽에 자신의 정숙함을 암시하게 되며 그럼에도 데이트의 배심원이 철모르는 어린애라는 점 때문에 데이트 자체의 은밀성은 크게 방해받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남녀가 가까워지기 전까지만의 일이다. 두 사람이 공유하고 싶은 은밀함의 정도가 철모르는 아이마저 걸림돌이 되는 단계에 이르면 더이상 아이들은 필요가 없어진다. 젊은 남녀를 감시한다는 것 자체가 다 헛된 일임을 뻔히 알면서도 어린애들을 동원하는 것이 어린 배심원들 입장에서 보면 기만이 아닐 수 없다.

"영옥씨는 영어를 가르친다고요?"

"."

"실력 있으신가 봐요. 난 영어에 제일 자신이 없는데."

이형렬과 이모는 이렇게 몇 마디 말과 눈길을 나눈 뒤 비탈길을 조금 올라가서 나무 밑의 벤치에 앉는다. 이형렬은 글보다는 말 쪽에 더 소질이 있는지 그의 짧고 평이한 편지에서 느꼈던 것보다 훨씬 쾌활하고 또 넉살이 좋다.

"글쎄, 그 고참이 그러는 거예요. 찬물도 위아래가 있다, 자기도 애인이 없는데 졸병이 애인이 있다는 건 영창감이다, 그러니 애인을 상납해라."

"어머, 뭐 그런 고참이 다 있어요. 그래서요?

"다른 여자라면 몰라도 제가 영옥씨를 양보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기합받을 각오를 하고 딱 잘라 이렇게 말했죠. 안 됩니다, 병장님. 영옥씨는 제 목숨을 바칠 애인입니다, 라고요."

이모가 얼굴을 붉히면서 좋아하는 기색을 도저히 감추지 못하는 걸 보며 나는 나의 '어린 배심원' 역할이 이렇게 빨리 끝난 것이 차라리 다행스럽다.

그리 가파르지도 않은 비탈길을 내려오면서도 이모의 걸음은 비틀거린다. 이형렬은 이모를 부축해주고 싶다는 몸짓을 여러 번 해보였지만 선뜻 팔을 내밀기는 망설여진다는 눈치이다. 위태롭게 걸음을 옮기던 이모가 갑자기 발밑의 풀이 스르륵 흔들리는 것을 보고 비명을 지른다. 금방이라도 이형렬에게 매달릴 듯이 그쪽으로 한껏 몸을 돌리고 멈춰 서 있는 이모의 동그란 두 눈은 겁에 질려 있고 입술은 귀엽게 벌어져 있다. 마침내 결심했다는 듯이 이형렬이 이모에게 말한다.

"제 팔을 잡으시죠."

이모는 똑같은 호들갑을 두어 번 반복한 뒤에야 짐짓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어렸을 때부터 오르내린 익숙한 이 길이 이렇게 가파른지 처음 알았다는 듯이, 그리고 정말 그러고 싶진 않지만 넘어지는 것보다는 처녀의 수줍음을 조금 유보하는 편이 낫다는 듯이(그런 의사가 전달되지 않을까 봐 기어코 한숨이라도 내쉬어 자기의 마음속에 불순한 의도란 아무것도 없음을 상대에게 확인을 시킨 다음) 가볍게 이형렬의 군복 소매를 잡는다.

군인과 그의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긴 머리의 여자. 이형렬과 이모의 뒷모습은 어쩐지 상징적으로 보인다. 군복이 한시성을 표상한다면 긴 머리는 처녀성을 나타내고, 또한 군복이 구속을 나타낸다면 긴 머리에서는 자유로운 젊음이 풍겨 나온다. 군복이 제한된 현실에 대한 보상심리를 자극받았을 때 긴 머리의 처녀성은 제물이 될 수밖에 없으며, 긴 머리의 젊음이 자유를 구가할 때 군복에게는 그녀의 배신을 돌이킬 수 있는 개인적 시간이 허용되지 않는다. 군복과 긴 머리 여자의 뒷모습에는 배신의 뇌관이 들어 있다,

그동안 해가 많이 기울었는지 할머니는 우물가에서 벌써 저녁밥에 안칠 보리쌀을 갈고 있다. 가운데가 움푹 파인 돌확에 물과 보리쌀을 넣고 그 위로 주먹만 한 돌을 빙빙 돌려 갈면서 할머니가 묻는다.

"왜 혼자 오냐? 이모가 너 데리고 어디 나가더라던데."

"같이 성안에 놀러 갔다가 나 먼저 왔어."

"?"

"이모는 전에 가르치던 학생 만났는데 뭐 물어볼 게 있다고 해서 가르쳐주러 그 집에 갔고."

나의 말투는 천연덕스럽다, 할머니는 혼잣말로 욕을 한다.

"지랄한다. 지 앞가림은 손톱 처맬 것도 안 해놓은 주제에 남을 가르치긴 뭘 가르쳐. 밤에 돌아다니는 계집들은 사내들한테는 익혀놓은 음식이라고 그렇게 말을 해도 들어먹어야 말이지. 늦도록 싸돌아 다니다가 아침에는 지가 무슨 당나라 소동성이라고 해가 머리끝에 와야 일어나고, 도대체가 갈상머리라곤 없는 년,,,,,, "

이모가 그렇게 늘 늦잠을 자지 않았다면 나는 천년도 전에 중국에 살았던 잠꾸러기 소동성을 알 리가 없을 터였다. 할머니의 욕 중에서 가장 심한 것으로는 '씹어가네''오살년'도 있지만 이모가 여고를 졸업하고부터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나한테는 절대 그런 욕을 하지 않는다. 할머니가 저녁을 다 짓고 석유풍로에서 콩나물국을 내려놓을 때까지도 이모는 감감무소식이다.

"몽바우 서울 심부름 보내나 마나라고, 근데 이년이 어디 갔길래 아직도 안 와."

해가 길기는 해도 이미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한 때이다. 나도 은근히 걱정이 된다. 이모의 데이트에 배심원 역할을 너무 빨리 끝내버린 것이나 아닌지 조금 후회스럽다,

"진희야, 네 이모 어디로 간다고 하더냐? 학생인지 동생인지, 따라갔다는 그 집이 어디야?

"모르는데 ,,, ,., "

"넋 빠진 년! 또 어디서 장타령을 늘어놓느라고 해 떨어진 지도 모르고 퍼질러 있겠지. 그저 나가면 함흥차사니, 쯧쯧."

동그란 나무상에 숟가락을 놓으며 할머니가 한참 욕을 하고 있는데 그제서야 이모가 대문간으로 들어선다. 걸음걸이가 고르지 않은 품이 금방 내뱉은 할머니 욕대로 어딘가 넋이 빠진 모습이다. 할머니의 입에서 쏟아지는 지청구도 귀에 들이는 둥 마는 둥, 저녁밥도 먹는 둥 마는 둥, 계속해서 이모는 허공에 초점을 두고 입을 벙싯거리더니 할머니가 부엌에서 저녁 설거지하는 틈을 타서 살짝 신발을 신는다. 벼락이 떨어질 각오를 무릅쓰고 경자 이모한테 가는 것이다.

그러나 나간 지 얼마 안 돼, 경자 이모가 큰언니네에서 아직 안 왔더라며 그냥 돌아온다. 나는 할머니의 설거지가 거의 끝날 시각이 되었으므로 언제 불호령이 떨어질지 걱정이던 참에 이모가 일찍 돌아와서 은근히 마음이 놓이는데, 반면 이모는 언제부터 그렇게 배짱이 세졌는지 할머니의 야단쯤은 아랑곳없고 단지 오늘 자기에게 닥친 운명을 축복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만 안타까워한다.

결국은 나한테라도 털어놓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모양이다. 할머니가 서울 간 삼촌에게 소식이 없다고 한바탕 긴 한숨을 쉰 뒤 자리에 누우시자마자 곧바로 내 쪽으로 돌아앉더니 참았던 말을 쏟아 내놓기 시작한다.

"자꾸만 내 얼굴이 어디선가 본 얼굴이라는 거야. 그러더니 국민학교 오학년 때 이사 간 옆집 여자애하고 똑같다며 무릎을 치더라. 자기 첫사랑이래."

"커피잔에 설탕을 넣는데 손이 부들부들 떨리더라. 데이트 경험이 별로 없나 봐. 담배를 집으려고 손을 뻗다가 팔꿈치로 커피잔을 탁 쳐 버렸어. 내가 닦으라고 손수건을 꺼내줬거든. 그랬더니 영원히 간직하다면서 내 손수건을 가져가 버리는 거 있지."

"식구들이 각자 바빠서 외롭게 자랐대, 영화에서만 봐도 부잣집들은 좀 그렇잖아. 그 말을 하면서 고개를 옆으로 싹 돌리는데 얘, 쌍꺼풀이 왜 그렇게 멋있니?"

나는 자꾸만 눈이 감겨서 급기야는 참지 못하고 하품을 해버린다. 그런데도 사방무의 벽지에 몸을 기대고 앉은 이모는 거의 혼잣소리에 가까운 이야기를 계속 늘어놓는다. 자기 딴에는 클라이맥스라고 생각되는 부분에서는 이불 속에서 무릎을 야단스럽게 흔들어대기까지 할 만큼 제 기분에 취해 있다. 이모의 호들갑에 할머니가 갑자기 끙 하고 돌아눕는다. 이모는 이불을 입까지 올려 틀어잡고 과장된 몸짓으로 동작을 정지했다가 할머니가 다시 코를 골자 내게 공범임을 확인시키는 웃음을 던진다. 이모는 지금 자기 인생이 장밋빛으로 물드는 것이 신기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그 장밋빛과 보색관계에 있었던지 광진테라 쪽에서는 거무튀튀한 색의 고함소리가 나더니 와장창 소리가 이어진다.

이모는 자리에 눕자 오래지 않아 작게 코를 곤다. 저녁 세수도 하지 않고 잠이 든 이모의 감긴 눈꺼풀 위에서 마스카라와 반쯤 지워진 아이라인이 검게 남아 있는 모습은 처연하고도 흉하다. 이모는 잠들어 있지만 눈이 다 안 감겨 있는 모습이다. 눈가가 거북한지 이모는 잠결에 손을 들어 눈꺼풀에 남아 있던 아이라인을 비벼댄다. 그러자 이모의 눈꺼풀 위에 남아 있던 검은 눈동자가 사라지고 눈동자를 완전히 덮고 있는 밋밋한 살덩이만 남는다

나는 일어나서 형광등에 달린 끈을 잡아당겨 불을 끄고는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한껏 소리를 죽였을 텐데도 광진테라 쪽에서 회미하게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먼 데서 개 짖는 소리는 제법 사방으로 울려 퍼지는데 마루 밑의 행복한 강아지 해피는 바스락 소리도 없이 자고 있다. 정적이 내 잠을 완전히 깨워놓는다,

 

 

 

7. 그 도둑질에는 교태가 쓰였을 뿐

삼촌에게서 편지가 왔다. 며칠 내로 다녀온다며 서을 올라간 지 열흘이 넘도록 소식이 없다가 온다는 사람이 안 오고 편지가 대신 도착하니 할머니는 긴장한다. 이모한테 푄지를 건네주며 빨리 읽어보라고 재촉하는 얼굴에 유난히 주름살이 깊이 팬다. 다행히 삼촌의 편지에는 건강하게 잘 있으며, 친구의 하숙방에 신세 지고 있다는 얘기, 며칠 후에 내려오겠다는 얘기 등으로 할머니가 걱정할 만한 사연은 들어 있지 않다.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졌다는 안 좋은 소식도 있긴 했지만 그 휴교령 때문에 예정보다 더 빨리 내려오게 되었다는 문맥이고 보니 비록 서울 가기 전날 삼촌에게 들은 말이 있다고는 하나 할머니는 은근히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이다. 할머니와 이모, 내가 마루에 앉거니 서거니 하고 편지를 읽고 있는 양을 보고, 장군이 아버지 제삿날이라고 오랜만에 아침부터 우물가에 나와 있던 장군이 엄마가 뭘 보고 있냐고 참견한다. 삼촌이 늦어진다는 편지라고 하자 "혹시 서울에 숨겨둔 아가씨라도 있는 것 아녜요?" 하고 밑도 끝도 없는 말을 불쑥 던지는데 때마침 변소에 갔다가 우물로 손을 씻으러 나오던 미스 리 언니가 그 말을 듣고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삼촌은 고시 공부에 열중하여 대부분 방에만 처박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머리를 식히러 마루에 나와 앉아있을 때면 마치 긴 은둔생활을 마치고 갓 속세에 나온 수도자처럼 한 손으로 햇빛을 가리며 얼굴을 찡그리곤 했는데 그것이 그의 창백한 얼굴에 귀족적인 거만함을 던져주어 미스 리 언니의 가슴을 그렇게 졸아붙게 만드는 모양이었다. 나는 삼촌을 바라보는 미스 리 언니의 눈길에서 이미 그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사실 비밀을 저당 잡힌 탓에 나를 귀여워할 수밖에 없는 우리 집의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이모보다는 미스 리 언니인지도 모른다. 미스 리 언니 쪽에서 스스로 비밀을 고백해왔기 때문이다. 이미 짐작하고 있던 일이기는 했어도 어쨌든 언니가 제 입으로 털어놓음으로써 비밀의 공유는 훨씬 공고해진 셈이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나를 통해서 삼촌의 마음을 움직여보겠다는 미스 리 언니의 계산이기도 했다. 비밀을 털어놓은 뒤부터 미스 리 언니는 삼촌에 대해 내게 시시콜콜 물어오기 시작했다. 방안에서 하는 공부가 무엇이며 잘 되어가고 있느냐에서부터 무슨 반찬을 잘 먹느냐 서울에 친구가 많으냐에 이르기까지 안 묻는 게 없었다. 또 언젠가는 스웨터라도 뜰 작정이었는지 양장점 줄자를 가져와서 삼촌의 가슴 치수를 재달라고 하는가 하면 심지어 좋아하는 여자 배우가 누구인지 알아봐 달라고까지 하는 것이었다. 나는 물론 전혀 협조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언니는 언제나 내게 상냥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지기 위해서라면 얼마간의 수모는 참을 수 있는 것이 미스 리 언니의 야무진 면이었다

"어디서 편지 왔어요?

미스 리 언니는 두레박을 우물 속에 빠뜨리며 짐짓 심상하게 묻는다. 하지만 장군이 엄마가 실없이 던진 말 때문에 속마음은 초조하다. 우리 쪽을 쳐다보느라고 두레박의 물을 대야에 붓는다는 것이 우물 바닥에 다 쏟았는데도 모르고 있다.

"편지, 방에다 갖다 둬라."

이모에게 이 말을 던질 뿐 할머니는 미스 리 언니에게는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은 채 부엌으로 들어가 버린다. 미스 리 언니의 지나치게 붙임성 있고 야무진 면을 그닥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군이 엄마가 할머니를 뒤따라 부엌으로 들어간 뒤 나와 둘만 남게 되자 미스 리 언니는 다시 내게 상냥하게 말을 붙인다, 금방 무안을 당했는지라 노골적으로 삼촌 소식을 묻지는 못하고 뉴스타일 양장점에서 해 입은 내 옷을 먼저 서두로 삼는다.

"진희 오늘 그 옷 입었구나? 할머니가 소매가 너무 넓다고 하시더니 것 봐라, 내 말이 맞지. 그렇게 해놓으니까 훨씬 편하지?"

까탈스러운 양장점 여자 손님들 비위를 맞춰본 언니의 말솜씨는 계속해서 내 환심을 살 기회를 찾아낸다.

"어머 너 슬리퍼 신었구나? 애들이 슬리퍼 신은 건 처음 본다야. 여화 아줌마가 갖고 오셨니?"

여화 아줌마는 한 달에 한두 번씩 서울에서 옷이며 신발, 화장품 따위를 가져다 파는 보따리장수 아줌마이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라서 여호와 아줌마라고 부를 것을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여화 아줌마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소읍에서 구경하기 힘든 물건들을 갖고 오기 때문에 여화 아줌마가 오는 날은 장군이네로 동네 아줌마들이 한방 가득 모여들어 아줌마의 보따리를 요술 보따리 풀 듯이 재미나게 구경하곤 한다. 할머니도. 자신의 것은 한 번도 산 적이 없지만 여화 아줌마의 단골 중 하나였다. 손녀에게 후하다는 것을 아는 여화 아줌마가 내게 어울릴만한 물건이면 가장 먼저 할머니에게 선을 보이기 때문이다. 미스 리 언니의 짐작대로 내 슬리퍼도 그렇게 해서 아줌마의 보따리에서 나온 신문물이다.

미스 리 언니는 두 번이나 손을 씻는다. 양은 대야 속에 담긴 두 번째의 비눗물을 소리 나게 버려버리고는 그러고도 자리를 뜰 생각을 안 하고 다시 두레박을 첨벙 우물 속에 빠뜨려 물을 긷는다. 이번에는 되도록 천천히 발을 씻는다. 그러나 치마를 가랑이 틈에 끼워 넣고 선 채로 대야의 물을 발등에 확 끼얹는 것까지 끝냈건만 내가 입을 열지 않자 언니는 한쪽 발씩 번갈아가며 고무신 코를 발끝에 걸어서 몇 번 흔들어 신 안의 물을 빼낸 다음 마침내 양장점 쪽으로 걸음을 옮겨놓는다. 고무신 안에 남아 있던 물이 발바닥과 마찰을 일으켜 걸을 때마다 찌걱찌걱 소리를 낸다. 손을 씻으려고 기다리고 있던 나는 그제서야 우물로 내려선다, 우물 속으로 두레박을 내리고 있는데 대여섯 번쯤 가겟집 쪽으로 나던 찌걱찌걱 소리가 멈춰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미스 리 언니의 목소리가 나를 돌아본다.

", 너희 삼촌은 서울서 언제 오니?"

'' 소리를 유난히 길게 끌어 강조했지만 갑자기 생각난 물음은 절대 아니다.

"며칠 있다가."

내 대답은 심드렁하다.

"며칠 있다가?

"."

"그럼 몇일 날 오는데?

"몰라."

"왜 몰라? 편지에 날짜는 안 썼어, ?"

말문이 트이자 망설임은 사라지고 궁금증만 더 커진 언니가 다그치듯이 묻는다. 그러고 있는 참에 할머니가 부엌에서 나오신다. 찌걱찌걱 소리를 급한 간격으로 내면서 미스 리 언니의 뒷모습이 재빨리 가게 쪽으로 사라진다.

"미스 리가 너한테 뭐라고 하냐?

"삼촌 언제 오느냐고."

"? 언제 오면 지가 뭐할려고 그런다냐? 참 요즘 것들은 도둑질도 너무 이르다니까."

할머니에게는 세월을 오래 산 사람만의 통찰이 있다. '도둑질도 이르다'는 말은 미스 리 언니가 나이에 비해 하는 짓이 너무 약빠르고 음흉하게 보여서 해본 비유겠지만 미스 리 언니가 삼촌을 좋아하는 것도 어떤 점에서는 사실 '도둑질'과 비슷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스 리 언니에게는 야심이 있었다. 그리고 야심을 실현시키기에 자기가 어떤 부분에서 역부족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나마 갖고 있는 자신의 능력을 어떻게 과포장하여 최대 효과를 얻어내야 할지를 알았다. 나는 그녀의 비밀을 조금 더 알고 있다. 미스 리 언니가 처음 시작한 '도둑질'은 삼촌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라 바로 최선생님을 겨냥했다는 것을 미스 리 언니는 뉴스타일 양장점에 온 지 얼마 안 돼 자기가 늦게 출근해도 문화사진관 아저씨가 대신 양장점의 문을 열어놓도록 만들었으며 풍년 쌀집과 붙어있는 석유 가게의 심부름꾼 종구에게 공짜로 석유를 얻어 쓰거나 극장 매표원인 영근이에게 영화표를 선물 받는 방법을 터득했다. 심지어 광진테라 아저씨에게도 다리미나 자 같은 것을 아무때나 빌려 쓰고 양복 재단할 때 쓰는 초크를 마음대로 갖다 쓸 만큼 수완이 좋았다. 그 모든 일을 미스 리 언니는 오직 처녀의 웃음소리와 데이트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방법만으로 이뤄냈다. 같은 처녀로서 이모가 미스 리 언니를 도저히 흥내 낼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대담성과 교태였다. 그리고 그 대담성과 교태는 대신 가게 문을 여는 것이나 잡다한 물질적 친절을 위해서만 쓰여질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장차 미스 리 언니의 진정한 목표인 신분 상승의 야심을 위해서 쓰여지기를 기다리며 실력을 연마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스 리 언니는 본격적인 실력 발휘를 할 대상으로 최선생님을 점찍었다. 유들유들하다는 것을 빼고는 최선생님은 그녀에게 과분한 신랑감이었다. 그만하면 인물도 괜찮은 편이었고 무용으로 균형 잡힌 체격도 멋있었지만 무엇보다 학교 선생님이라는 지적인 직업을 갖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중졸이라고 말은 하고 다니지만 깡촌에서 국민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미스 리 언니가 감히 넘볼 상대도 아니었다. 미스 리 언니는 최선생님을 신분 상승의 발판으로 삼기로 마음먹었고 그것을 실현시켜줄 유일한 밑천인 자기의 교태를 기회 있을 때마다 열심히 과시했다. 그녀는 최선생님이 장군이네 앞마루에 나와 앉아있을 때면 마치 우연이라는 듯이 재빨리 우물로 나와서 그렇지 않아도 눈요기가 없을까 하는 최선생님의 시야 속에 출연했다. 그리고는 엉덩이를 유난히 들썩이며 빨래를 했고 치마를 허벅지 높이까지 말아 감고 서서 하얀 종아리에 물을 끼얹곤 했다. 또 한 가닥으로 꼭 묶고 있던 긴 머리를 풀어 헤치는가 싶더니 가볍게 턱을 내밀고는 막 잠자리에 들려는 새색시처럼 나른하게 눈을 내리깔았다. 머리를 다시 하나로 묶어 높이 치켜올림으로써 까만 머리 밑에 자기의 하얀 목덜미가 드러나 보이도록 하기도 하였다. 미스 리 언니의 그런 모습을 보고, 할머니를 포함하여 우리 집식구 중 몇몇은 미스 리 언니가 최선생님에게 추파를 던진다는 것을 짐작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목격한 것은 추파가 아니라 거의 옷깃을 붙잡아 끄는 정도의 노골적인 호객이었다.

삼촌이 휴학을 하고 내려오기 두어 달쯤 전이니까 아마 작년 겨울방학 때였을 것이다. 그날 최선생님은 당직이었는데 몸도 좋지 않은데 학교가 너무 추워서 점심 무렵에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최선생님이 그렇게 일찍 돌아오리라는 것을 알 리 없는 장군이 엄마는 방에 모두 다 자물쇠를 채워놓고 외출 중이었다. 주머니를 뒤져 자기 방의 열쇠를 찾던 최선생님은 그것을 학교에 놔두고 와버린 것을 알았다. 하는 수 없이 학교로 돌아가야 했던 최선생님은 마당가에 받쳐두었던 자전거의 받침쇠를 다시 발로 올려 대문간으로 끌고 가면서 더욱 피로한 표정을 지었다. 날씨가 몹시 추웠다, 얼굴을 마구 갈겨대는 매운 바람을 받아내면서 최선생님은 있는 대로 옷깃을 세웠다. 그때 최선생님의 머릿속에는 학교까지 가기 전에 길에서라도 장군이 엄마를 만나게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생각뿐이었을 것이다. 최선생님은 뉴스타일 양장점 앞을 지나다가 문이 조금 열린 것을 보고는 혹시 장군이 엄마가 그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별로 가능성이 없는 희망일 뿐이었지만 당장이라도 따뜻한 아랫목에 몸을 눕히고 싶은 열망 때문에 그 생각은 선생님으로 하여금 양장점 문을 열어보게 만들었다. 거기에서 최선생님은 자기가 그렇게도 눕고 싶어 하는 따뜻한 방에서 마치 옆자리에 누군가가(바로 최선생님이) 함께 누워주기를 기다리는 듯한 다정한 자세로 잠들어 있는 미스 리 언니를 보았다. 그것이 자신이 학교에서 돌아올 때부터 줄곧 문틈으로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 그녀의 계획적인 유흑이란 것을 최선생님은 알 턱이 없었다. 최선생님은 당황했다. 그때 미스 리 언니가 잠결에 몸을 뒤척였는데 그 바람에 치마가 그만 훌렁 들쳐지고 말았다. 치마 속의 다리는 뜻밖에도 맨다리였다. 순간 핏기가 몰려서 최선생님은 얼굴이 붉어졌다. 뉴스타일 양장점의 여닫이문을 후다닥 열고 뛰쳐나간 최선생님은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려는지 잠시 동안 자전거 안장에 한 손을 얹은 채 서 있었다 이윽고 범죄 현장을 벗어나는 범인의 황급한 동작으로 자전거 위로 서둘러 올라타더니 페달을 세게 밟아서 자전거를 출발시키는 최선생님의 모습이 쇼윈도로 비쳐졌다. 잠자는 연기를 하고 있었던 미스 리 언니는 자동인형처럼 가볍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쇼윈도가 있는 문 쪽으로 다가가 문틈에 눈을 대고 최선생님이 사라져간 바깥을 허탈하게 내다보며 서 있었다. 미스 리 언니는 길가 쪽으로 향해 나 있는 양장점 정문을 쳐다보며 연기를 했기 때문에 안채 쪽에서 나타나 마악 쪽문을 통해 양장점 안으로 들어가려던 나를 발견할 수가 없었겠지만, 나는 이 모든 장면을 낱낱이 보았다. 마침내 미스 리 언니가 몸을 돌려 아까 자신이 누워있던 방으로 다시 걸어왔다 미스 리 언니가 너무 실망한 표정이었기에 나는 차마 양장점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할머니가 나눠 먹으라던 삶은 고구마 소반을 손에 든 채 발소리를 죽이며 그대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미스 리 언니는 결국 고구마만 손해를 본 셈이었다.

한동안 미스 리 언니의 야심은 완전히 꺾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삼촌이 서울서 내려온 뒤부터 언니의 교태는 새로운 대상을 향해 맹렬한 기세로 되살아났다. 삼촌은 최선생님과 달리 여간해서는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또 최선생님과 같은 유들유들한 훔쳐보기에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미스 리 언니의 작업은 더욱 어려워졌다. 하지만 그녀의 투지는 최선생님의 경우와는 비교도 안 되게 거세게 불타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삼촌은 주인집 아들에다 미남이고 지적이었으며 무엇보다도 고시 공부를 한다는 점에서 미스 리 언니의 야심인 신분 상승의 한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미스 리 언니는 나뿐 아니라 이모의 환심을 사려고도 해보았다. 피부가 희어서 아무 색이나 어울린다는 등 팔이 가느니까 '소대나시'를 입어보라는 등 듣기 좋은 소리로 기분을 맞추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사근시근하게 대하는데도 미스 리 언니에 대한 이모의 평판은 언제나 "건방지다"였다. 이모가 특히 무시하는 부류가 있다면 그것은 영어에 관해 일자무식인 사람이었는데 그 점에서 미스 리 언니는 이모에게 돌이킬 수 없는 흠을 잡힌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일을 떠올릴 때마다 콧속의 물기가 콧김의 추진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밖으로 몇 방을 튈 만큼 세차게 콧방귀를 끼게도 된 것이, 미스 리 언니는 삼촌을 유식하게 부른답시고 '미스터 리 전'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거기에는 미스 리 언니보다는 뉴스타일 양장점의 주인 아줌마에게 더 큰 책임이 있었다. 미스 리 언니는 사실은 미스 리가 아니라 미스 정이었다. 정금례가 미스 리 언니의 이름이니까. 헌데 시다로 들어온 첫날부터 주인아줌마가 그녀를 그냥 미스 리라고 불렀다. 주인 아줌마는 '미스' 다음에 붙어있는 ''('도 아니고)가 성을 가리킨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미스 리'라는 말이 아가씨를 가리키는 일반적인 호칭인 줄로만 알았던 아줌마는 총각들은 또한 다 미스터 리라고 불렀는데 그동안은 석유 가게 종구나 매표원 영근이 등에게 그 호칭이 잘만 통했다. 미스 리 언니는 주인아줌마의 양재 기술과 함께 그 화술과 유식함도 눈치 빠르게 배워갔으므로 아줌마의 말 쓰임새대로 남자는 당연히 모두 미스터 리라고 불러야 유식한 호칭이 되는 거라고 알게 되었다. 그런데 미스 리 언니는 아줌마보다는 한 수 위였다. 삼촌의 성이 ''이라는 걸 알자 당장 응용력을 발휘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낸 호칭이 바로 '미스터 리 전'이었던 것이다.

나는 할머니나 이모에게 나만 알고 있는 미스 리 언니의 비밀을 고자질할 마음은 없다. 그녀가 눈독 들인 물건을 결코 가질 수 없으리라는 단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한 가지 이유는 미스 리 언니의 교태와 동갑내기인 이모의 표정 연습 사이에 별 차별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 다 제 몫으로 주어진 삶의 조건에 대한 반응인데, 단지 이모 쪽이 약간 더 운 좋은 경우일 뿐 아닌가.

저녁 무렵이 되자 이모는 할머니에게 넌지시 묻는다.

"엄마, 떡 없어?"

"떡이라니?"

"오늘 장군이 아버지 제삿날이라면서? 근데 떡도 안 했어?"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더니."

"진짜 안 했나 보네? 어떻게 남편 제사에 떡도 안 하냐."

떡 먹을 기대가 왜 컸었는지 이모는 할머니가 방을 나간 뒤까지도 투덜댄다.

"나물 몇 가지 가지고 제삿상 차리는 게 말이 되니? 신세타령할 때는 우리 장군이 아버지, 우리 장군이 아버지, 그렇게 들먹거려 쌌더니."

"아까 할머니가 떡 안 했냐고 물어보니까 그러던데? 오늘이 무미 일인데 쌀밥 짓는 것만 해도 양심이 찔린다고."

"아이고, 둘러대는 것 좀 봐. 그러면 나물이랑 전은 왜 그렇게 변변찮게 한다니?"

"가정의례준칙 지킨다나 봐."

"웃긴다 웃겨. 누가 그 속 모를 줄 알고? 어디 우리 아버지 제삿날 떡 먹겠다고 기웃거리기만 해봐라."

마침 마루로 올라오던 할머니가 이모의 큰 목소리와 그 목소리에 어울리지 않는 어린애 같은 말투를 함께 나무란다.

"아직까지도 떡 타령이냐? 여자 목소리는 문지방 넘어가면 소문이 되는 법인데 어째 그래 목청은 커 가지고."

"엄마는 맨날 그 소리야. 여자니까 어째야 한다. 여자니까 어쩠다,,,,,, "

이모의 불평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이모의 앉은 모습을 보자 한 번 더 여자의 몸가짐에 대해 잔소리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여자는 문턱에 앉으면 안 된대도."

"알았어, 알았다니까."

입술을 비죽거리며 방바닥으로 내려앉는 이모는 스무 살을 어디로 다 먹었는지 아무리 봐도 어른스러운 모습을 느낄 수가 없다. 저렇게 어린애 상태에서 머물러버린 것은 어쩌면 어린 시절을 고뇌 없이 보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내게 있어서는 태생의 고뇌야말로 성숙의 자양이었다. ' 고뇌'라는 그 자양이, 삼촌 방의 다락에서 이루어진 '독서'라는 자양과 합해지면서 비로소 삶에 대한 나의 통찰을 완성시켰던 것이다.

 

 

 

8. 금지된 것만 하고 싶고, 강요된 것만 하기 싫고

삼촌이 휴학을 하고 내려오기 전까지 삼촌 방은 빈방이었다. 그 방에는 다락이 하나 있었는데 그 속에는 삼촌이 고등학교 때 쓰던 교모며 겉장이 뜯겨나간 공책, 끈 떨어진 낡은 가방 따위의 잡동사니 틈에 섞여서 오래된 잡지나 소설책들이 굴러다녔다. 나는 그 책들을 방바닥에 끌어내려서 엎드려 읽기도 하고 나 정도는 얼마든지 누워 잘 수도 있는 깊은 다락에 그대로 기댄 채 읽기도 하였다. 그것은 독서라는 어엿한 이름보다는 훔쳐보기 쪽에 더욱 가까웠다. 삼촌이 보낸 사춘기라는 호기심 많은 시절의 한 편린이 고스란히 폐기돼있는 그 벽장 속에는 이른바 고전으로 분류할 수 있는 책보다는 무협지나 통속소설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많은 무협지와 통속소설에 왜 재미를 붙였으며 삼촌의 의협심과 감수성도 바로 그 책들에서 비롯되었을 거라고 짐작하게 되었다.

독서가 취미라고 말은 해도 이모에게는 책이 그다지 없었다. 여고 시절 하얀 책상보로 덮여 있던 앉은뱅이책상의 책꽃이에 부활좁은 문’ ‘적과 흑등이 꽂혀 있긴 했지만 책 임자가 그 책을 얼마나 열심히 봤나 알아보기 위해 꼭 책의 밑바닥을 뒤집어서 책 두께의 더럽혀진 선이 어디까지인가를 확인하는 버릇이 있는 나는 그 책들의 책장이 결코 20페이지 이상은 넘겨진 적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여고를 졸업한 뒤 이제 책과의 강요된 인연에서 벗어나게 된 이모는 책상과 함께 책꽂이의 책을 내게 물려주었다. 이제 내 책이 된 그 고전들을 나는 삼촌의 무협지 못지않게 열심히 독파했지만 명성만큼의 감동을 얻진 못한 걸 보면 나는 일찍부터 삶 속에서 진지한 의미를 찾는 일을 거부했던 모양이다.

이모가 물려준 책 중에는 책상 위의 책꽂이에 버젓이 꽂히지는 못하고 늘어진 책상보에 가려 책상 밑에 쌓여 있던 잡지 책도 있었다. 그중에는 새농민같은 재미없는 책도 있었지만 닥치는 대로 소설을 읽어대던 내게는 새농민의 연재소설도 빠뜨릴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통속소설이든 고전이든 어느 소설에서나 침대, 허벅지 때론 대퇴부라고 표현되기도 하였으므로 그런 경우 나의 독서는 국어사전을 찾느라 중단되었다. 젖가슴, 포옹이란 말이 나오면 특히 신중하게 그 부분을 읽어나가곤 했다. 신문소설을 읽어본 뒤 그것이 내가 원하던 읽을거리, 즉 성적인 인상을 강렬하게 주기로 의도한 읽을거리라는 판단을 한 것도 그 무렵이다. 그때부터 신문소설을 샅샅이 읽기 시작했는데 특히 역사소설의 찐득하면서도 내숭이 많은 성애장면은 두 번씩 읽는 일이 예사였다. 갈수록 신문소설 읽는 법을 터득한 나는 먼저 삽화를 보고 나서 내가 원하는 내용이 있을지 없을지 짐작할 수 있게 되었고 나 같은 독자를 위해 몇 회에 한 번 정도는 꼭 그런 장면을 집어 넣어주는 작가의 치밀한 구성력에 감탄하기도 하였다.

나는 삼촌의 다락을 점점 깊이 파고 들어갔다. 고전해학전집이라는 이름의 두꺼운 책은 두껍기는 해도 막상 책장을 펼쳐보면 속이 휑한 게 글씨가 얼마 없어서 오히려 다른 소설보다 쉽게 책장이 넘어갔는데 나는 그 고전해학전집 중 셋째 권인가 하는 고금소총에서, 개에게 입술을 물어뜯기자 마침 오줌을 누고 있던 며느리의 볼기짝을 엉겁결에 떼어서 입술을 이어 붙인 시아버지가 밤마다 어떻게 고통을 당해야 했는지도 읽었다,

그즈음 학교에서 돌아오기만 하면 삼촌 방에 들어가 처박혀버리는 나를 할머니가 근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할머니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드디어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알게 된 거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나에게 부쩍 선물 공세를 폈다. 잔치 때 아니면 구경할 수도 없던 마른오징어 '쓰르매'를 한꺼번에 세 마리나 사주는가 하면 비싼 자석 필통도 사주었는데 기가 막힌 것은 드레스를 입은 금발의 고무 인형까지 사주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푹 패인 눈구멍 속에 덜그럭거리는 눈알이 들어 있었는데 끝에 눈썹 모양으로 까만 줄이 칠해져 있어서 눕히면 눈을 감았다가 일으켜 세우면 다시 눈을 뜨는 인형이었다. 인형을 보고 환호성을 지른 것은 내가 아니었다. 이모였다.

"어머! 인형이 빤쓰도 입었네. 구두도 벗길 수 있게 돼 있고, 아유, 저 눈 반짝 뜨는 것 좀 봐. 너무 이쁘다. 그치, 진희야? 이모는 당장 반짇고리를 찾아서 엉성한 인형 이불을 하나 꾸며주었고, 할머니는 저녁에 라디오 연속극을 들으면서 그 서양 인형이 입을 한복 치마저고리 한 벌을 완성하였다. 그러나 이따금 바늘귀에 실을 베어 할머니에게 건네주면서 그 옆에 엎드려 잡지 책만 뒤적거리고 있던 내 가슴 속에는 애초에 모성애 같은 부드러운 정서가 결핍되었던 것인지 이모와 할머니가 그렇게 정성을 들이는데도 그 인형을 껴안고 자거나 살뜰하게 보살피기는커녕 머리 한 번 쓰다듬어줄 마음조차 생겨나지 않았다. 몸통과 다리 부분을 어떻게 이어붙였나 보기 위해서 팬티를 한번 벗겨보았을 뿐이다.

이런저런 방법을 써봤음에도 내가 여전히 삼촌의 다락방에만 틀어박혀 있자 할머니는 다른 수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하였다. 할머니는 내가 다락방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이모를 시켜서 넌지시 물어보게 했다.

"진희야, 너 거기서 뭐 하느라고 한번 들어가면 꼼짝을 안 하는 거니? 무슨 비밀 있어? 이모한테는 괜찮으니까 다 말해봐, ?"

"그냥 책 보는 거야."

"?"

그래서 할머니가 생각한 것이 이번에는 동화책이었다. 할머니는 이모에게 내가 볼 책을 사 오게 했다. 내 마음을 달래주고 착하고 예쁜 생각을 하게 하는 재미있는 책이라고 이모가 골라 사 온 것은 대부분 공주가 주인공인 책이었다. 긴 속눈썹을 내리까는 일 외에 하는 일 없이 드레스 자락만 사뿐사뿐 끌고 다니다가 너무 예쁘거나 착하다는 이유로 마법에 걸려 억지로 슬픔을 자아내는, 그러다가 왕자를 만나서 결혼하여 행복해지는 서양 동화들을 나는 지루함을 참고 읽어주어야 했다.

책상 위에 일부러 백설 공주를 펼쳐놓고 나는 여전히 다시 삼촌 방으로 기어들었다. 언젠가는 다락 속을 더 깊이 뒤적거리다가 시멘트 부대같이 누렇고 거친 종이 위에 아무것도 씌어지지 않은 표지의 책을 발견했다. 한 장을 넘겨보니 차례 위에 음모를 불태워라?’는 제목이 박혀 있었다. 나는 사전을 세 번이나 뒤적거려야 했다. '음모'를 찾아보니 '거웃'을 찾아보라고 되어 있어서 다시 '거웃'으로 가보았지만 '사람의 외부 생식기 주위. 곧 음부에 난 털'이라는 설명을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또 '생식기'를 찾아보았는데 '생물의 유성 생식을 하는 기관, 교접기'라는 말을 보고 골치가 아파져서 포기를 할까 하는 순간에 맨 마지막에 내가 아는 단어, '성기'를 발견하여 겨우 뜻을 알게 되었다. 한꺼번에 세 개의 단어를 알게 되었으므로 나는 지적 만족감 속에서 그 책을 읽어내려갔다.

여자가 순진한 권투선수를 유혹하고 있었다. 내일 시합을 할 상대 선수의 매니저에게 돈을 받고 순진한 권투선수를 파멸시키러 온 여자였다. 키스 장면이 나왔다. 여자는 거칠게 입술만 비벼대는 권투선수가 답답해서, 키스란 입을 벌리고 혀를 교환하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순진한 척해야 하기 때문에 그저 '아이,,,,,,' 소리만 연발한다. 그날 밤 여자는 그 '아이,,,,,.' 소리를 무기로 권투선수를 한잠도 재우지 않는다. 그리하여 권투선수는 다음날 시합에서 다리를 가누지 못하고 상대 선수를 끌어안기만 하다가 제풀에 미끄러져 다운, 다시는 링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시합에 진 그 순진한 권투선수의 매니저는 원래 무시무시한 깡패였다. 그는 자기 선수를 유혹한 여자를 끝내는 찾아내서 납치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는 돈을 주어 자기 선수를 유혹하게 한 놈의 이름을 불라고 하면서 단도를 들이댄다. 여자가 쉽게 털어놓지 않자 그는 여자의 옷을 다 벗긴다. 팬티가 흘러내리고 음모가 드러나자 그는 라이터로 음모에 불을 붙인다. 그런 다음 그 라이터로 자기 담배에도 불을 붙인다. 음모에 불이 붙자 여자가 비명을 지르고 싱겁게도 모든 것을 자백하는 데서 그 소설은 '1부 끝'이라는 말로 끝이 났다,

그 책을 읽은 뒤 며칠 동안 나는 여자의 음모가 불에 타는 영상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는 목욕탕에서 벌거벗은 여자들을 무심히 보아넘겼는데 그 뒤부터는 자꾸만 음모를 불태워라?’는 소설이 연상되었다. 목욕탕에 갔다가 마침 그때 내 눈에 띄었다는 이유만으로 음모를 불태우는 가학적 영상에 출연하게 된 낯선 음모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일도 많아졌다. 그 죄책감이 절정에 이른 것은 내가 마침내 나와 관련 있는 한 특정한 음모를 만나 상상 속에서 자행해버린 그 대담한 화형식 이후였다. 그 음모는 삼 년 전 담임 선생님이었던 노처녀의 것이었다. 그녀는 신경질과 히스테리라는 야만적인 방법으로 2학년밖에 안 된 아이들의 공포심을 완전히 장악했다. 늘 대나무 자를 갖고 다니면서 아무 때나 그것을 세워서 아이들의 손등을 때리는 것을 '편달'의 실천으로 여겼던 그녀는 단지 자기가 우아하게 풍금을 칠 때 무감동하게도 창밖을 보았다는 이유 하나로 백묵 두 개를 씹어서 삼키게 했으떠 "너희들 그러면 시험 본다, 부모님 부른다. 운동장 서른 바퀴다"하는 말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하는가 하면 "너희들은 다 도둑놈이야, 미친 새끼들이야, 개자식이야" 하는 말은 수백 번씩 했다, 벌을 줄 때도 단순히 팔을 쳐들고 무릎을 꿇리는 게 싱거웠던지 개에게 뼈다귀를 물라고 하듯이 우리에게 더러운 신발을 물게 하는 것이 누가 봐도 성격이상자가 분명했다. 그녀가 신발을 입에 물라고 소리치면 언제나 고무신에 황토흙이 잔뜩 들러붙어 있는 촌에서 온 아이들이 가장 먼저 울상을 지었으며 방금 변소에서 똥 묻은 자리를 피해 발을 옳겨 딛으며 겨우 오줌을 누고 온 아이들도 얼굴이 질리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아이를 두고 금방이라도 눈 속에 집어넣을 듯이 귀여워하다가 언제부턴가 돌연 사사건건 그애에게만 욕을 퍼부어대는 선생님 앞에서 아이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행동의 일관성을 찾지 못해 단지 숨을 죽이고 그녀의 일인극을 조마조마하게 지켜봐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목욕탕에서 본 그녀는 전혀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다. 교실이라는 위압적인 배경도 공포의 대나무 자도 갖고 있지 않은 그녀는 지팡이를 맡긴 마녀같이 보잘것없었으며 벗은 몸만으로 평가하자면

더욱이 형편없는 살덩이였다. 욕탕 속에 뚱뚱한 몸을 척 부려놓고 누워 있는 모습이 어쩌면 삶은 밤 속에 들어 있는 살진 밤벌레 같기도 했다. 조그만 바가지로 물을 떠서 끼얹을 때 그녀의 팔을 따라 흔들리는 늘어진 젖가슴은 오히려 연민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때수건으로 종아리를 밀 때도 하체가 짧은 그녀는 다른 사람에 비해서 다리 위에 긋는 직선이 짧았다. 그녀는 대나무 자로 아이들의 손등을 내리칠 때와 같은 짧은 스타카토로 다리의 때를 밀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모멸감을 갖는 것만으로 그녀에 대한 단죄를 마칠 뻔했다. 그러나 바로 그때 내 눈앞에 그녀에 대한 모멸감에 전의를 불러일으키는 광경이 펼쳐졌다. 그녀가 빨간 때수건을 사타구니 쪽으로 옮겨 가져가며 갑자기 다리를 좌 벌렸던 것이다. 거침없이 벌려진 다리 사이에서 불태우기 좋을 만큼 무성한 음모가 내 시선을 붙잡았다. 나의 잔혹성은 상상력 속에서 맹렬한 기세로 가동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음모에 사정없이 불을 놓았다.

그러나 그날의 쾌거로 인해 나는 심한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성이라는 금지된 영역에 상상력을 사용했고 학생의 본분을 저버리고 선생님에게 잔흑행위를 했으며 게다가 일제시대 이후 모든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엄하게 다루는 게 교시로 되어 있는데 거기에 불만을 품고 불경죄를 저질렀으니 상명하복의 시대정신을 위배하기까지 한 나로서는 당연히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죄책감을 느끼다가 어느 순간 나는 불현듯 내게 씌워진 그 죄목이 타당한지 아닌지에 대해서 한 번도 검토해보지 않았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추리소설도 적지 않게 읽어본 나로서는 피의자의 권리인 공정한 재판을 받아보지 못했다는 점이 억울하게 느껴졌다, 내 마음속의 변호사가 변론을 시작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피고는 부당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대체 무엇에 대해 죄책감을 느껴야 합니까? 피고는 성격이상에다 폭력 교사인 여교사를 스승으로 존경할 수 없었습니다. 비교육적인 여교사의 태도가 학생들을 바른 길로 이끌지 못함은 물론 바람직한 스승 상을 망치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주어지자 여교사를 정의의 이름으로 단죄했던 것입니다. 피고의 이런 균형 잡힌 이성이 죄가 됩니까? 또한 피고는 음모를 보면서 성과 관련된 이미지를 상상했다는 이유로 기소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피고는 그런 자연스러운 상상을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했을까요? 그것은 창조주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이 아닙니까? 만약 그것이 죈로 성립될 수 있다면 먼저 원인 제공자인 창조주를 이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창조주를 증인으로 요청합니다.

내 마음속의 판사가 판결을 내렸다.

금기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금기를 깨뜨리는 죄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피고에게 죄책감은 부당하게 강요된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나는 무죄를 선언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사실은 피고 자신이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으며 다만 강요된 죄책감을 치러내고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판사의 말이 옳았다. 곰곰이 자신을 돌이켜보건대 나는 실제로는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으며 단지 어린애에게 부과된 금기에 불편함을 느낄 따름이었다.

금기에 대한 불편은 몇 가지 양상으로 나타났다. 한동안 나는 남자들에게 성기가 있다는 사실 때문에도 불편을 겪었다. 남자에게는 여자가 드러내놓고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되는 부위가 있는데 그곳이 바로 저 바지 속에 있다는 사실이 자꾸만 의식된다는 것만이 크나큰 불편이었던 것이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남자들의 성기에 내포된 성적인 의미가 아니라 단지 그것이 바지 안에 감춰져 있다는 사실 자체였다. 나에게는 내가 그것의 존재함(존재 자체가 아니라)을 의식하는 것이 지나치게 의식되었다. 혹시 부주의한 내 눈길이 내 이성의 만류를 배반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 성기가 있는 부분으로 향해지지나 않을까 의식했으며, 그래서 번번이 일부러 다른 곳을 쳐다보려고 하다 보면 또 그러고 있는 나 자신이 견딜 수 없이 의식되었다. 동네 아저씨나 가겟집 총각들은 물론 교장 선생님, 대통령의 사진, 심지어는 액자 속에 들어 있는 예수의 거룩한 모습을 볼 때마저도 나는 '저 사람도 그것을 갖고 있겠지' 하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즈음에는 어떡해야 저들에게 성기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남자들을 바라볼 수 있는지 그것이 문제였다. 남들의 오해를 받을까 봐 남자 허리띠의 버클조차 쳐다볼 수 없게 되었다.

"선생님! 남대문 열렸어요."

이런 말로, 아직 어린애일 뿐인 반 아이들이 담임 선생님을 당황하게 하는 장난을 할 때마저도 나는 그 애들처럼 천연덕스럽게 선생님의 바지 앞 단추를 쳐다보는 대신 '성기의 존재함에 대한 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그것은 성에 대한 고민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해서 금기에 대한 번민이었다. 삶에 대한 깊은 관심과 관찰력 탓에 성에 대한 금기를 조금 일찍 의식하게 되었다는 사실, 단지 그것 때문에 나는 고통받았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대책 없이 그런 고통을 받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고통을 이길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고통에는 그것을 은근히 즐길 만한 점도 없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쉽게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벗어나려고 마음먹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일단 마음만 먹으면 고통은 어느 정도는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나는 비위가 약한 편이었다. 특히 벌레에 대해 신경이 예민했다. 변소 바닥에 허연 밥알처럼 흩뿌려져 있는 구더기, 걸어가는 아이들의 뒷머리에서 어깨 위로 보리 톨처럼 툭툭 떨어져 내리는 이, 궂은날이면 방구들 밑에서 기어 나오는 노린재, 배추 잎사귀나 탱자나무에 붙어 수많은 마디를 따로따로 놀리며 느리게 움직이는 녹색 벌레, 소나무 아래의 나무벤치 위를 남김없이 뒤덮은 채 꿈틀거리고 있는 송충이 -시골에 사는 아이가 벌레에 예민하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었다.

어느 날인가 나는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있다가 내 발밑에 수많은 털로 뒤덮인 벌레 한 마리가 기어가는 것을 보았다. 연한 회색 몸통에 진한 검은색의 가로줄이 렉하게 그려져 있었고 스무 개쯤 되는 마디마다 양쪽에 발이 두 개씩 달려 있었는데 줄잡아 팔십 개쯤 되는 발이 각자 따로따로 움직이면서 느리게 배밀이를 하는 그 벌레를 처음 발견했을 때, 나는 곧바로 구역질을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이 벌레에 대한 징그러움에 굴복할 수 없다는 강한 반발심이 들었다.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벌레가 발등으로 기어 올라올 때까지 참고 견디기로 결심했다. 수많은 털에 싸여 수많은 발을 각각 움직이며 배밀이를 하던 그 벌레가 드디어 내 발끝에 닿았을 때 내 팔에는 굵은 소금처럼 단단한 소름이 돋아났으며 배에는 어찌나 힘이 들어갔던지 목에서 막혀 버린 숨이 빠져나오지 못할 지경이었다. 벌레가 발등 위로 올라왔다. 그러나 나는 참았다. 죽을힘을 다해 벌례가 내게 강요하려던 징그러움에 저항한 나는 벌레의 의도대로는 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어쨌든 성취감도 조금 맛보았다. 벌레를 쳐다보고 있는 동안 입안에 가득 고였던 침을 뱉어버리고 나서 징그러움의 대상에서 경멸의 대상으로 전락한 발등의 벌레를 차내 버리기 위해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다음 순간 머리털이 쭈뼛 서고 말았다. 일어나보니 내 주위에는 적어도 50마리가 넘는 그 회색 벌래가 수천 개의 다리로 털을 움직이며 기어 다니고 있었다. 보는 즉시로 숨이 멈춰졌지만 한편 그것은 강한 적의에 불을 붙였다. 나는 찡그리지도 눈길을 피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눈을 똑바로 뜨고 그 벌레를 낱낱이 관찰함으로써 내게 징그러움을 강요하는 그 벌레들의 기대를 좌절시켰다. 자세히 보니 벌레들 중에는 두 마리가 겹쳐져 엎드려 있는 것도 있었다. 스무 개의 마디에서 나온 다리들이 이중으로 겹쳐져 있는 것은 한 마리의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보다 적어도 여섯 배는 지독한 징그러움을 강요했다. 더구나 그런 자세로 두 마리가 겹쳐져 있는 것들은 무엇을 하는 중인지 죽은 듯이 움직이지도 않았다. 나는 그런 것들을 발끝으로 뒤집어버리는 데 성공했다. 두 마리가 겹쳐진 채 옆으로 뒤집어진 벌레들은 위험을 감지하고 몸을 둥글게 말면서 수십 개의 발을 꿈틀거렸다. 아직 밟아버리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어도 한참 동안이나 그것들을 눈 부릅뜨고 지켜본 결과 징그럽다는 느낌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징그러움을 이기는 훈련의 성공에 고무된 나는 금기를 이기기 위한 훈련에도 그 방법을 쓰기로 했다. 우선 남자들을 만나면 일부러 바지 앞섶을 꼭 쳐다보기로 했다. 벌레를 피하지 않고 눈 부릅뜨고 쳐다보았듯이 모든 남자에게 성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를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일부러 확인함으로써 그 사실로부터 자유스러워지려는 훈련이었다. 훈련을 시작한 첫날 아침에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이 이선생님이었다. 나는 일부러 그 부분을 똑똑히 쳐다보았다. 괜찮았다. 얼굴이 붉어지지 않았다. 다음으로 세수를 하다 마주친 것이 최선생님이었다. 역시 그리 거북스럽지 않았다. 재성이의 아빠인 광진테라 아저씨, 미지 아빠인 문화사진관 아저씨도 내게 성적 이미지를 연상시키지 않았다. 학교 가는 길에 대성약국 아저씨, 서울상회 아저씨, 풍년 쌀집 종구, 은혜서림 아저씨, 담배가게 종성이 할아버지, 대건화물 트럭 조수 등등을 만났지만 그들이 성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리 의식해봐도 특별한 느낌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무심코 남자들을 지나쳐가다가 한참 후에야 내가 '성기의 존재함'을 확인하지 않고 그를 보내버렸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일이 점점 많아지더니 나중에는 그것조차 거의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 보려고 애쓰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보지 않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극기 훈련을 훌륭히 성공시킨 것이었다. 그러자 이제는 어쩐지 나 자신이 성의 본질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아버린 것처럼 생각되었다.

한마디로 나는 성을 시시하게 여기게 되었으며 봉희네가 어른스럽게 보이려 함으로써 되레 어린애임을 노출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 역시 금지되었을 때만 매력을 갖는 삶의 오류라고 단정 지어버렸다. 내가 아이들이 '침대 놀이'라고 명명한 난교파티에 초대받은 것은 바로 그즈음이었다.

침대는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이었지만 아이들은 그 놀이에 대한 명명을 할 때 침대에서 이미지를 빌려왔다. 물론 여자애들끼리의 제한된 내부자 모임이었다. 워낙 은밀하고 금지된 놀이였기 때문에 내부자가 되기에는 왜 조건이 까다로웠다. 금지된 놀이를 할 만한 배짱과 반항성. 그것을 어른들에게 비밀로 할 수 있을 만큼의 주의력과 지능 등등.

침대 놀이에 참석한 아이들은 우선 조를 나누었다. 그런 다음 일부는 망을 보고 일부는 두 명씩 차례로 이불속에 들어가 아랫도리를 벗었다. 어지간한 일로는 긴장하지 않는 나도 거기까지 지켜볼 때는 왜 긴장이 되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이불 속에서 하는 일이라곤 다만 휴지를 잠시 아랫도리에 대고 있는 것뿐 다시 옷을 입고 이불 속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금기에 대한 흥분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파트너를 쉴 새 없이 바꾼다는 면에서 보면 그것은 대단한 난교파티였지만 자위행위를 흥내 내는 것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싱겁기 짝이 없는 장난이었다, 남녀를 느끼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오히려 소꿉장난보다 훨씬 덜 성적이었다. 나는 그 애들의 어린애스러움이 딱했다.

그애들이 나를 그 침대놀이에 끌어들이려 하는 이유는 뻔했다. 봉희네가 나를 자기들의 깡패 모임에 참석시키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애들은 모범생인 나를 끌어들여 자기들 파티의 질을 높이고 자기들이 완전히는 떨쳐버리지 못한 죄의식에 대한 포장지로 사용하려 했다. 그 포장은 아이들이 몰려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어른들에게도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었다. 이를테면 이미지 제고를 위한 스카웃인 셈이었다.

아이들은 내게도 휴지를 쥐어주었다. 그 애들의 눈빛을 보면서 나는 지금까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점 한 가지를 발견했다, 내부자 모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능도 신의도 아닌 가담 정도였다 모임의 비밀이 깨지는지 지켜지는지는 참가자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가담했느냐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나를 이불 속으로 밀쳤다. 그때 언제나 목구멍에 장전돼 있던 치밀한 거짓말이 내 입을 뚫고 발사되었다. 나는 봉희가 오늘 줄곧 나를 따라다녔으며 지금도 이곳으로 나를 찾으러 오는 길이라는 거짓말을, 만약 그 자리에 있었다면 봉희라도 믿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설득력 있게 개진하였다.

아이들은 그 현실을 파악했다. 폭력과 도덕적 타락은 언제나 서로에게 의존하면서 한편 서로를 견제한다.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 자리에서 도덕의 타락을 즐겼던 세력은 폭력을 과시하는 봉회네 세력에게 약점을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으므로 나를 문밖으로 내보내 주었다.

나의 훔쳐보기 독서의 마지막 단계는 우리 미장원 안에서 이루어졌다. 이따금 이모는 우리 미장원에 '고데'를 하러 가면서 나를 데리고 갔다. 연탄 구멍 속에서 벌겋게 달궈진 고데기를 꺼내서 젖은 수건에 한 번 적시면 그것은 '치익? 소리를 내며 알맞은 온도로 식었다. 그러면 우리 미장원 미용사는 이모의 머릿카락에 오린 종이를 댄 다음 그 고데기를 마치 엿장수 가위처럼 짤깍거리면서 머리끝을 말아 올리는 것이었다. 종이 타는 냄새를 맡으며 나는 이모가 고데를 마칠 때까지 줄곧 -선데이 서울의 '어른만 보는 페이지'에 고개를 묻고 있었다.

'어른만 보는 페이지'는 책의 맨 뒤 컬러 화보의 바로 앞쪽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늘 선데이 서울을 뒤에서부터 넘겼다. 거기에는 매회마다 앞가슴과 엉덩이의 굴곡이 균형 있게 에스자를 그리고 있는 벌거벗은 아가씨가 등장하여, 금지된 성에 대한 욕망이 얼마나 엉큼하고 뻔뻔스러운 것이며 반면 공식적으로 허락된 성이 얼마나 미지근하고 권태로운 것인지를 가르쳐주었다. 내게는 그 만화가 그 책에 같이 연재되고 있던 어느 소설가의 '60년대식이라는 소설보다 인간의 욕망이나 그 비극성을 훨씬 더 실감 나게 그리고 있는 듯이 여겨졌다. 나는 거기에서 성에 대한 냉소를 터득했다. 이제 성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알 것이 없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른다. 그렇게 닥치는 대로 미친 듯이 읽어대던 책이며 잡지를 나는 이제 더는 보지 않았다. 좁고 밀폐된 느낌이 좋아서 여전히 삼촌 방의 다락에는 이따금 올라가 누워있었지만, 책장을 들춰볼 마음은 생겨나지 않았다. 할머니의 걱정은 조금씩 사그라들었고, 그리고 얼마 안 가서 삼촌이 휴학을 하고 내려와 자기의 방을 되찾아감으로써 완전히 해소가 되었다. 나는 이제 다시 예전처럼 학교에서 돌아오면 마루에 나와 앉아서 숙제를 하거나 어른들을 관찰했다.

그 독서 편력을 끝낸 뒤 나의 달라진 점이라면 성을 우습게 여기게 되었다는 사실인데, 삶의 이면을 보려고 든다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그런 당연한 일을 굳이 나의 비밀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는지는 잘 모르겠다.

 

 

 

9. 희망 없이도 떠나야 한다

"어이구, 이 냄새"

장군이 엄마가 아침 밥상을 마루 위에 내려놓으며 얼굴을 찡그린다. 오늘처럼 흐린 날은 아랫동네 유지공장에서 나는 비릿한 냄새가 유난히 심하다.

"공장 바로 옆에 사는 사람들은 오죽하겠어."

할머니도 밥상을 들고나오며 이마에 맞주름을 놓는다.

"접때 그 동네 만미식당에 곰보 아줌마 만났더니 그러대요. 밥숟가락 들기 전에 다들 애밴 사람 모양 헛구역질부터 한다고요. 그래도 그 사람들은 살판 났죠 뭐. 논 한 마지기에 얼마라더라? 그 잣 한 마지기에 쌀 몇 섬도 안 나오는 땅, 식구대로 죽어라 파고 있어봤자 뭐해요? 목돈 만져 장사라도 하는 게 백번 낫지."

장군이 엄마는 척박한 논을 좋은 값에 공장 부지로 팔아치운 덕분에 갑자기 목돈을 쥔 그 동네 사람들한테 배가 아프다.

"그래도 끼니때 사람 입속으로 어디 빨랫비누 들어가는가? 농사가 제일이지."

"옛날에나 농삿일이 벼슬 다음이라고 했지, 그게 요새도 통하나요?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요. 다들 서울 서울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어요. 돈이 다 서울에 몰려 있으니 부스러기라도 주워먹으려면 하꼬방에서 살아도 서을 하꼬방에서 살아야 한다고요. 농사 천년 지어보세요. 어느 세상에 만석꾼 되나."

저처럼 돈 몰리는 이치에 밝은 사람인데도 부자가 되지 못한 걸 보면 장군이 엄마가 말끝마다 스스로를 "운도 지지리 없는 년"이라고 지칭하는 데도 근거는 있다, 물론 할머니의 낯빛을 좋지 않게 만든 걸로 보면 장군이 엄마는 운이 없다기보다는 덕이 없는 것이지만.

할머니도 전에는 일꾼을 두고 직접 농사를 지었다. 그런데 일 감독을 하는 것만도 할머니 혼자로는 힘에 부쳐서 작년부터는 소작을 주었다. 안 그래도 소작 부친 사람들 일하는 게 제 맘 같지 않아 작년 소출이 할머니 감독으로 할 때보다 적게 나와서 내심 언짢았던 할머니에게 장군이 엄마가 하는 말이 듣기 좋은 말은 아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쯤에서 입을 다물고 만다. 삼짇날 벽장에서 묵은 빨래 풀려나오듯 풀려나오는 저 입을 어떻게 막아.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이런 생각으로 아무 말 없이 방안으로 밥상을 갖고 들어온다.

"날씨도 더운데 방안에서 드시게요?"

장군이 엄마가 한창 말발이 선다 싶을 때 사라지려는 청중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한다.

"저놈의 냄새 펌에 어디 여기 앉아서 밥 들어가겠어?"

할머니는 밉살스러운 장군이 엄마에 대한 마음을 유지공장에 대한 거부감으로 바꿔놓고 삭여버리려고 한다. 그런데 방으로 들어오자 이모가 장군이 엄마 못지않게 할머니 속을 뒤집는다. 아직 잠옷 차림으로 이불 속에서 라디오 다이얼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던 이모는 한쪽으로 이불을 밀치고 일어나 밥상 앞으로 다가앉으며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아유, 또 청국장이야. 밥 안 먹고 다른 것 먹으면서 살 순 없나?"

"미친년."

한마디로 잘라 말하는 할머니의 힐난에 이모는 어린애처럼 샐쭉해진다.

"엄마는 꼭 나만 갖고 그러더라."

하더니 엉뚱하게도 막 숟가락을 들고 있는 나를 걸고넘어진다.

"어떤 땐 진희가 꼭 엄마 딸 같애. 나는 아니고."

그런데 이모의 당치 않은 응석에 대해서 또 한 번 "미친년? 이라고 욕을 하거나 "시끄럽다? 라고 그 허튼 말문을 막아버릴 줄 알았더니 할머니는 뜻밖에 그러지 않는다,

"자식은 주고 싶은 도둑놈이라는데 어디서 주는 것 없이 미운 놈이 생겨나 갖고,,, ,.. "

라고 혼잣말을 할 뿐이다.

할머니는 가끔 이렇게 이모의 응석을 은근히 받아줄 때가 있다. 내가 아는 할머니라면 그렇게 비논리적이고 나이와 처지에 어울리지 않는 억지 애교를 받아들일 리 없다, 그러나 이모의 어머니이기에 할머니는 그것들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모양이다. 할머니가 나의 할머니이기에 앞서 이모의 어머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 내게는 어쨀 수 없이 배신감과 질투가 함께 온다. 이모는 늘 할머니에게 퉁박을 받지 않을 수 없게 행동한다, 반면 나는 언제나 할머니의 마음에 딱 맞는 존재이다. 대화가 성립된다는 점에서도 할머니는 이모보다는 차라리 나를 상대하는 편이 나았다. 어떤 점에서 보더라도 할머니의 계보에 가까운 것은 분명 이모가 아닌 내 쪽이다. 그런 생각은 내가 할머니의 적자이고 이모는 서자 같다는 느낌을 주면서 정통성을 확보한 나에게 우월감을 심어주었다. 나는 이모의 어리석음을 경원하는 한편으로 이모가 계속 어리석은 서자로 남아 내가 할머니의 사랑이라는 보위에 등극하는 데 장애가 되지 않기를 은근히 기대해왔다. 그러므로 지금처럼 할머니가 마땅히 이모를 야단을 쳐야 할 때 어이없이 너그러운 태도를 보이면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내 정통성이 뿌리를 내린 곳은 할머니의 사랑이 아닌 책임감이나 의무 따위의, 그러니까 사랑보다 훨씬 저급한 감정이 아닌가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에는 이쁘고 좋기만 한 고운 정과 귀찮지만 허물없는 미운 정이 있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언제나 고운 정으로 출발하지만 미운 정까지 들지 않으면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고운 정보다는 미운 정이 훨씬 너그러운 감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확실한 사랑의 이유가 있는 고운 정은 그 이유가 사라질 때 함께 사라지지만 서로 부대끼는 사이에 조건 없이 생기는 미운 정은 그보다는 훨씬 질긴 감정이다. 미운 정이 더해져 고운 정과 함께 감정의 양면을 모두 갖춰야만 완전해지는 게 사랑이다. 할머니의 사랑 중에 고운 정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나라면 이모는 물론 미운 정 쪽이다. 이모는 고운 정을 갖기는 틀렸기 때문에 할머니에게서 완전한 사랑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나뿐이다. 그러나 나는 미운 정을 얻기 위해 할머니에게 함부로 군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자신이 없다 어쩌면 미운 정이란 고운 정보다 훨씬 더 얻기 힘든 무르익은 감정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장면을 가끔 상상하곤 했다, 기우제 때 처녀를 바치는 제단이 있다. 비가 오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무기에게 처녀를 바쳐야 하는데 처녀라고는 이모와 나뿐이다. 이때 할머니는 우리 둘 중에 과연 누구를 그 컴컴한 동굴 속에 집어넣을까. 그에 대한 내 대답은 놀랍게도 나였다. 또한 그럴 줄을 알면서도 번번이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내가 가진 간절함이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일찍이 광진테라 아줌마의 인생 속에서 통찰했듯이 사람이 자기에게 주어진 삶에 갖는 애정이란 집요한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배신감과 질투 탁류 속에 버려두지는 않는다. 내가 나를 탁류가 아닌 옥류로 데려와 정결하게 씻긴 다음 날개옷을 입히는 방법은 이러하다. 먼저 나는 이무기에게 처녀 바치는 일은 항상 있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하고 반문한다. 우리가 흔히 부닥치는 것은 누가 아름답고 누가 아름답지 않은 처녀인가는 일상적인 문제이지 어떤 처녀를 죽음의 동굴 속에 집어넣는가는 극적인 문제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누구를 선택함으로써 누구를 배반해야 하는 극한상황은 자주 오는 것이 아니다. 이모냐 나냐 하는 기회가 온다면 할머니는 이모를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그 기회는 일상적인 것이 아니다.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그리고 '운명'이라고 부르는 그런 기회는 어디까지나 우연히 오는 것이다.

따라서 이모가 아닌 내 자신이 폐기되고 말 그런 운명의 순간을 평소에 굳이 의식할 필요는 없다. 평소에는 일상적인 현실 안에서의 우월감을 갖고 살면 그만이다, 서자를 선택할 기회는 극한상황에서나 있는 것이지만 보통의 현실에서 공개적 사랑을 받는 것은 언제나 적자가 아닌가, 나와 이모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상황이 할머니의 여생에 오지 않기가 쉽다, 그렇게 생각하자, 적자에 의해 일단 권좌에서 배척당한 서자가 조개젓에 젓가락을 대며 묻는다.

"오빠 오늘 내려오겠네?"

"온다고 했으니 오지."

이모에게는 삼촌이 오는 게 달갑지만은 않다. 만약 이형렬과의 펜팔 사연을 안다면 삼촌은 이모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책가방을 들고 일어서니 할머니가 언제나처럼 묻는다.

"학교 끝나고 오는 길에 입이 궁금하잖냐? 뭐 사 먹게 돈 좀 줄까?"

"괜찮아요, 할머니"

우리의 이 문답은 연속극에서 잘 나오는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오냐, 조심해 다녀오거라"라는 문어체 문답의 구어체 변형이다. 문어체가 어색한 사람들의 환치법이기도 하고. 이런 생활의 지혜도 모르는지 이모는 그 환치법에 대해 직설법으로 반응한다.

"엄마, 나도 돈 필요한데 돈 있으면 나나 좀 주지 않고."

"너 줄 돈 있으면 해피 주겠다."

그렇게 받아치면서도 할머니는 밥상을 들어 올리며 별 기대는 말라는 양 무심히 "돈은 뭐할려고?"라고 말을 흘린다. 할머니가 이모를 해피에 비유한 것은 옳았다. 그 말에 반색을 하는 이모의 표정은 밥그릇을 보고 할머니의 치마로 달겨드는 해피와 그다지 다를 바가 없다. 흔들리는 꼬리 때문에 해피는 제 감정을 절대 감추지 못한다. 이모의 벌어지는 입도 마찬가지이다.

마당에 나오니 장군이도 학교에 가려고 신발을 신고 있다. 운동화 앞부리를 바닥에 두어 번 탁탁 찍어 신발을 신은 장군이는 장군이 엄마한테서 도시락을 받아든다.

"진희도 지금 가냐? 우리 장군이하고 같이 가면 되겠구나."

장군이 엄마의 목소리가 어쩐지 부드럽다 했더니 금방 속셈을 드러낸다.

"변또가 두 개니까 이선생님 변또는 진희 네가 좀 들고."

짐짓 못 들은 척하고 걸음을 빨리하여 장군이네 집 앞을 지나치는데 장군이가 종종걸음으로 나를 따라온다. 대문을 열면서 힐끗 보니 장군이는 제 엄마에게 다시 붙들려서 운동화 끈을 고쳐 매고 있다. 그런 장군이 모자가 조금은 정답고, 그리고 얄미워 보인다.

"혼식 검사한다면서? 밥에 보리 좀 섞었으니까 꼭꼭 씹어 먹어라"

"알았어, 엄마."

그다지 다정한 편도 아니면서 아들에게만은 이 세상 온갖 자상한 척은 혼자 다 하고 있는 장군이 엄마 목소리도 듣기 싫지만 장군이의 '엄마' 소리는오늘따라 더 듣기가 싫다.

내가 학교에 가는 길은 두 갈래이다. 중앙통으로 해서 다리를 지나가는 신작로로 가면 걷기에도 편하고 아이들을 많이 만날 수 있지만 제방으로 해서 올라가는 길은 길이 험해도 흔자 생각에 골몰할 수 있어 좋다. 오늘 내 발길은 제방 쪽으로 향한다. 탱자나무 울타리에서 탱자잎이 무성하게 뻗어 나와 있다, 잎이 세 갈래로 갈라진 탱자잎은 며칠 전 인숙이가 공부 시간에 몰래 보다가 선생님에게 빼앗긴 만화책 요괴 인간에 나오는 베로의 손 같다. 아이들은 이 탱자잎을 따서 점을 치곤 한다. 눈을 감고 머리 뒤로 잎을 던져서는 뒤집어지면 그날은 재수가 없는 것이고 똑바로 떨어지면 재수가 좋은 것이다. 자기가 던진 잎이 뒤집어져 나오면 아이들은 구구단을 못 외웠거나 숙제를 안 한 것이 갑자기 께름칙하다. 자기의 잎이 똑바로 떨어진 애들은 자기최면에 의해 돌연 자기가 행복한 아이인 것처럼 여겨진다. 실제로는 그날 안 좋은 일이 계속 생겨도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점괘를 믿으려고 애쓴다. 그것이 철저한 우연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들은 미래에 대한 궁금증을 그런 식으로 해소한다. 스스로도 믿지 않는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미래에 대한 단서를 찾는 마음은 늘 화투로 운수점을 메는 장군이 엄마와 마찬가지이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서서 탱자잎을 딴다. 그러나 점을 쳐볼 기분은 들지 않는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내 발걸음이 왜 무거웠다는 것만을 깨닫는다. 왜 이러지? 내 기분을 살펴본다. 내 감정에 대한 거리 유지가 몸에 배다 보니 나의 정서적 반응은 이렇게 한참 뒤에 온다. 때문에 나는 내가 지금 왜 이런 기분인지 항상 돌이켜서 그 이유를 유추해내곤 한다. 탱자잎을 손에 쥔 채 나는 한참을 그대로 서 있다. 자신이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않은지 기억을 더듬어가면서.

식은 잿더미를 천천히 헤쳐보니 그 안에 불씨가 하나 있긴 있었다. 깊이 묻혀 있던 불씨는 잿더미 밖으로 나오자 산소를 빨아들이며 갑자기 불꽃이 커진다.

'그거였어?"

나는 짜증이 난다, 아무 잘못도 없이 나에게 극복해야 할 상처가 주어졌다는 점에서 어른들에게 적의가 생긴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루어진 부모의 인연으로 인해서 왜 이런 과제들을 짐져야 하는 것인지 부당하다. 나는 지금 엄마와 아버지 생각으로 마치 돌덩이가 얹힌 듯이 가슴속이 묵직한 것이었다.

지난봄에 우리 읍내에는 미친년 하나가 흘러들어왔었다. 치마는 몇 겹을 입었지만 죄다 나달나달하여 걸을 때마다 땟국에 전 종아리가 다 드러났고 색깔을 알아보기 힘든 누더기 저고리 속에서 젖가슴이 뭉클뭉클 흔들렸다, 손에 작대기 하나를 들고 아무 데나 툭툭 건드리며 돌아다니다가 ", 이년아 여기가 자치기 마당이냐 저리 못 비켜"라고 소리치면 그 소리친 사람이 코흘리개일지라도 무서워하며 비실비실 뒷걸음질을 쳤다.

언젠가 장날이었다. 할머니를 따라 광주리와 고무줄 같은 것을 사 가지고 오는 길에 저만치에서 난전을 기웃거리고 다니는 미친년을 보았다. 이리저리 쫓기면서도 미친년은 여전히 히죽거렸다. 고개를 옆으로 까닥거리면서 걸어오고 있는 미친년의 표정은 천진난만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런데 그때 미친년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아주 이상한 짓을 했다, 나를 보더니 반색을 하며 마구 달려오는 것이었다. 조금 전까지의 백치 같은 표정은 간데없고 마치 전쟁 통에 잃어버린 딸이라도 찾은 듯이 감격적인 얼굴이었다. 미친년의 눈은 내 손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검은 무쇠솥에서 막 쪄낸 찐빵이 들려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얇은 종이에 싸여있긴 했지만 뜨거운 김이 종이에 들러붙어서 누가 봐도 알 수 있도록 찐빵 모양을 유지하고 있었다. 미친년이 탐나는 것을 발견하고 취한 갑작스런 행동일 뿐이었지만 내게로 달려오는 미친년을 보고 할머니와 나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내 코앞에 다가와서 히죽거리는 미친년을 할머니는 끝내 빵 한 개 안 주고 매몰차게 쫓아버렸다. 미친년은 막대기를 땅바닥에 질질 끌며 도망쳐 갔다. 미친년 따위에게 곤혹을 치른 것이 억울해서일까. 내 눈에는 의미 모를 눈물이 매달려 있었다.

내가 나약하게 자랄 것을 염려해서인지 할머니는 내게 드러내놓고 애정 표현을 해 본 적이 없다. 정이 뚝뚝 듣는 말을 들으면 나는 감동하기보다는 유치함을 느끼도록 길러졌다. 또한 내가 할머니를 통해서 은연중에 배운 바로는, 감정의 균형을 유지해야만 타인에게 굴복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감상을 싫어하거나 혹은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전쟁영화에서 기둥에 묶여 총살을 기다리는 포로를 볼 때 마음이 조마조마하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가 비록 목숨을 잃을 위기일발의 상황에 처하긴 했어도 그렇게 손을 등 뒤로 하고 묶여 있으니 굽은 등뼈를 펼 수 있어 시원할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 내가 미친년을 보고 눈물을 지은 것은 할머니에게 충격을 주었다. 할머니는 내 눈물이 엄마에 대한 연상작용임을 알았다 하는 수 없이 엄마에 대해 무거운 입을 떼어야 했다. 엄마의 병은 남 앞에서 해괴한 짓을 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절대 남의 눈에 띄기 싫어하는 대인기피와 우울증이었으며 때때로 거의 나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결혼할 무렵만 해도 그 믿음직한 청년과의 행복을 아무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결혼 후 서울로 올라간 엄마는 이제 내 아버지가 된 그 청년이 직업상 객지로만 돌고 있는 사이에 혼자서 나았다 도졌다 하는 병을 끌어안고 여위어가다가 어느 날 나의 극성스런 울음소리에 방문을 열어 본 안집 주인에 의해 자살이 미수로 끝났고 며칠 안 돼 그 소식을 듣고 달려온 아버지에게 반쯤 죽을 정도로 얻어맞자 아버지가 떠난 뒤 나를 마루기둥에 묶어놓고 집을 나가버렸다, 그 뒤 할머니가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서울로 올라간 지 5일 만에 우리가 살던 효창동에서 멀리도 떨어진 뚝섬 파출소의 순경에게 발견된 거지나 다름없는 엄마를 할머니가 요양원으로 데려갔다, 그런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들은 뒤 나는 다시는 엄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 이야기에서 나는 슬픔을 느꼈으며 그런 슬픔이 나에게 약점을 만드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엄마에게나 나 자신에게 연민을 느끼기를 원치 않았다. 건드려질 때마다 아픔을 느끼는 상처를 갖는다는 것은 내 삶에 대한 스스로의 조절 능력을 상실하는 거였다. 나는 내 상처를 건드리는 사람의 의도대로 반응하면서 살고 싶진 않았다.

교과서가 효심을 고취시킨다는 목적으로 한 단원쯤은 반드시 어머니의 사랑을 환기시키고 모든 어린이용 동시와 동화가 어머니를 아름답고 그리운 존재로 찬미할 때마다 나는 어진 치마 사이로 땟국에 전 다리가 내비치던 장터의 미친년을 떠올렸다. 그때 비로소 죄의식이나 공포 같은 강력한 것보다 그리움이나 사랑 따위의 보드라운 것을 이겨내기가 훨씬 힘들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에 대해서는 엄마에 대해서 아는 것만큼도 모른다. 어른들이 우물가에서 하는 말을 얼핏 들으니 아버지가 새장가를 갔다고도 하고 할머니에게 돈을 부쳐왔다고도 한다. 나를 만나러 왔다가 그냥 돌아갔다고도 하며 먼발치에서 나를 봤다고도 하는데 말 만들기 좋아하는 장군이 엄마와 누구한테든 맞장구를 잘 치는 광진테라 아줌마 사이에 오고 가는 대화라서 완전히 믿을 것은 못 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나에게 아버지가 있고 엄마와 달리 그 아버지는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아버지는 엄마의 존재보다 더 강도 높은 극기의 대상이다. 엄마가 죽었기 때문에 엄마에 대한 그리움에는 절망이 동반된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희망을 동반하고 있기에 이겨내기가 훨씬 더 힘들다. 어제 음악 시간에 꽃밭에서라는 노래를 합창할 때였다. 선생님은 특히 가사를 잘 새겨가면서 노래를 부르라고 말했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아빠는 꽃처럼 살라 하셨죠.

꽃을 보며 꽃처럼 살라 하셨죠.

나는 그 노래를 통해서 아빠라는 발음을 처음 해보았다. 꽃을 보면서 노래 속의 아이는 '아빠'를 생각하지만 나는 그 노래를 부를 때만 발음할 수 있는 '아빠라는 말'을 떠올릴 뿐이다.

오늘은 금요일이라 5교시 끝나고 특활시간이 있다. 내가 무용반의 집합 장소인 강당에 들어갔을 때는 벌써 아이들이 줄을 맞춰 나란히 앉아있었다. 오늘은 무용 연습을 하지 않는다. 며칠 뒤에 도 대항 무용대회가 열리는데 거기 나가는 아이들만 무대 뒤로 가서 옷을 '의상'으로 갈아입는 것이다. 무대 밑에서 올려다보는 아이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으며 나도 무대 뒤로 간다. 이번 무용대회의 주제가 '온고지신'이라서 우리는 흥부전을 연습하고 있다. 내가 맡은 역은 흥부 역이다.

연습은 흥부가 놀부의 처에게 쫓겨나는 2막에서부터 시작된다. 막이 열리며 흥부인 내가 놀부 처에게 주걱으로 얻어맞고는 뒷걸음질로 무대에 나타난다. 그리고 무대 중앙으로 오자마자 그대로 쓰러져 어깨를 들썩인다.(이 부분에서 선생님은 항상 자신의 어깨를 크게 들먹이며 내게 어깨 동작을 크게 하라고 더 크게, 더 크게라고 소리치곤 한다) 이제 흥부 처인 신화영이 등장할 차례이다. 그런데 최선생님이 갑자기 음악을 끈다. 흥부의 슬픈 마음을 만천하에 알리려고 소리 높이 흐느끼던 단소 소리가 딱 멈추며 대신 선생님의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신화영, 옷이 그게 뭐야?"

무대 밑에서 구경하던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신화영의 옷으로 쏠린다. 그 애가 입고 있는 한복은 날아갈 듯 화사하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 애가 맡은 흥부 처의 처지에 맞도록 누더기를 입어야 한다. 흥부 처가 지성으로 공경해 마지않는 남편 흥부, 즉 나의 한복에도 누더기를 흥내 내느라고 얼룩덜룩한 천이 아무렇게나 덧꿰매져 있다. 늘 자기의 수예 솜씨를 자랑해왔던 이모의 '아플리케 스티치'에 의존했다가 단단하게 꿰매진 게 하나도 없다며 어젯밤 늦도록 할머니가 다시 꼼꼼이 바느질을 해주었던 것이다.

주인공은 맡고 싶고, 그러나 누더기옷을 입기는 싫고,,,,,, 신화영의 속마음은 누가 봐도 뻔했다. 병원 집 딸인 그 애는 어디서나 돋보이는 화려한 존재가 되고자 했다. 남자 옷을 입기 싫어해서 언제나 여자 주인공 역만 탐을 냈다. 대부분의 여주인공은 착하고 가냘프고 순종적이라서 완전히 그것과는 반대 성격인 그 애가 소화해내기 어려웠지만 병원 집 사모님의 물질적 후원을 포기할 수 없는 최선생님은 무용대회를 할 때마다 첫 번째 고민이 신화영을 위해 여주인공으로 '보이는' 역할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최선생님이 아까 야단치던 말투를 부드럽게 고쳐서 "내일까지 다른 옷 갖고 오든지, 아니면 헝겊을 대서 꿰매 와야 한다. 되도록 많이" 하고 당부하지만 고집스럽게 입을 빼물고 있는 품이 신화영은 내일도, 물론 대회 날에도 그 날아갈 듯한 갑사 한복을 포기하지 않을 기세다. 무대 밑의 아이들은 감탄 반 질시 반으로 저희들끼리 귓속말을 하느라 야단이다.

음악이 다시 틀어지고 무용 연습이 계속된다. 흥부 부부가 뒤쪽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팔 동작만 하면서 서 있는 동안 흥부의 자식들이 모두 나와 한 명씩 돌아가며 무대 중앙에서 독무를 춘다. 밥 달라, 떡 달라, 장가보내달라, 하면서 보채는 장면이다, 나는 오른쪽으로 두 팔을 크게 벌려 왼쪽 허리를 한번 싸안고 그다음 다시 왼쪽으로 팔을 벌려 이번에는 반대쪽 허리를 싸안는 춤동작으로 무능한 아버지의 안타까움을 표현하게 되어 있다. 헌데 그 순간 어쩐 일인지 코끝이 아리다. 자식들이 원하는 것을 주지 못하는 아버지인 나의 무능을 참을 수가 없다. 아니 아버지라는 가장의 존재를 참을 수가 없다. 박자를 놓친 나에게 선생님이 소리친다.

"강진희! 거기서 틀리면 어떡해, 네가 주인공이란 걸 항상 명심해야지. 심사위원은 주로 너를 본단 말야."

바로 옆에서 나의 처인 병원집 딸이 고소하다는 듯 웃고 있다. 다른 때 같으면 나는 그런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갚아줄 셈으로 당장 내 마음속의 치부책에 줄 하나를 그어놓는다. 하지만 이 역시 어쩐 일인지 시들하다. 어서 연습이 끝나고 혼자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뿐이다.

일부러 아이들이 다 나가고 난 뒤까지 기다렸다가 나는 혼자 천천히 교실문을 나선다, 운동장을 빙 둘러서 깔린 자갈길을 따라 터덜터덜 교문 쪽으로 걸어 나간다. 그네에서 누가 부르는 것 같았지만 그냥 지나쳐버린다. 교문 앞에 서 있는 커다란 나무 밑에 설탕을 녹여 오뚜기 모양의 모양틀로 찍어주는 '띠기' 장수 둘레로 아이들이 모여 있다. 거기서 또 누군가 부를 것만 같아 교문 앞을 지나는 내 걸음이 빨라진다. 지금 기분 같아서는 이 세상에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면 싶다, 그런데 군청 앞 큰길로 꺾어지는 길목에서 나는 길 건너편에 서 있는 광진테라 아줌마를 보았다. 이런 날이면 꼭 아는 사람도 자주 만난다. 아마 아침에 탱자잎으로 점을 쳤다면 분명 잎이 뒤집어져 나왔을 것이다. 아줌마는 재성이를 포대기로 업고 손에는 기저귀 가방을 들고 서 있다.

군청 앞은 시외버스가 서는 정류장이기도 하다. 표지판 같은 것은 없어도 차부에서 출발한 시외버스가 빠지는 길목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으레 여기에서 기다렸다가 버스를 타고 간다. 아줌마의 기저귀 가방이 유난히 무거워 보였기 때문에 나는 아줌마가 어디 멀리 가는가 보다 하고 짐작한다.

우리집 우물가에서 푸성귀를 다듬고 기저귀를 빨 때는 별로 몰랐는데 지금 보니 아줌마는 굉장히 촌스럽다. 앞 단추가 주르륵 달린 블라우스 위를 덮고 있는 낡은 포대기가 아줌마의 차림에 어울리는 초라함을 더하고 있다, 재성이의 엉덩이를 받치느라 뒤로 모아진 손에 꼭 쥐어진 기저귀 가방, 왼쪽 가슴께에 꽃은 옷핀 두 개, 그리고 신발은 언제나처럼 어김없이 고무신이다. 그 고무신 뒤축으로 땅을 콕콕 찍으며 서 있는 것이 버스를 기다리는 것이 분명하다.

이윽고 다리 쪽에서 먼지를 일으키며 버스 한 대가 나타난다. 그러더니 차가 달릴 때보다 훨씬 많은 먼지를 피워올리며 아줌마 앞에 멈춰 선다. 버스에 가려서 아줌마는 내 눈앞에서 잠깐 사라진다. 바퀴 사이로 고무신을 신은 발목만 언뜻 보일 뿐이다. 버스는 잠시 멈추었다가 마침내 먼지의 회오리를 탈출하는 듯이 기세 좋게 출발한다, 저만치 버스가 멀어진 뒤 비로소 먼지가 가라앉는다. 그런데 그 먼지 속에 아줌마가 여전히 서 있다. 아줌마는 버스가 사라진 쪽을 쳐다보며 서 있었다. 아까의 그 자세 그대로 등 뒤로 손을 돌려 포대기를 받친 채 버스가 간 쪽으로 고개만 돌리고 있는 아줌마의 모습은 한 장의 사진처럼 정지되어 마음속의 음영을 강한 부조로 나타내고 있다. 아줌마는 갈 곳이 있는 게 아니었다. 떠나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고달픈 삶을 벗어난들 더 나은 삶이 있다는 확신은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떠난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기보다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아무 확신도 없지만 더 이상 지금 삶에 머물러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 때문에 떠나는 이의 발걸음은 가볍다. 그런 떠남을 생각하며 아줌마는 사라진 버스 쪽을 그렇게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는 것이리라.

다시 고개를 제자리에 돌리더니 아줌마는 엉덩이를 한번 들썩여서 등에 업은 아기를 추스린다. 넋 나간 듯 버스 꽁무니를 보고 있던 자기의 현재를 되찾는 신호이다. 그것은 또 자기의 헛된 꿈에 마침표를 찍는 동작이 되기도 한다. 무겁게 발을 끌며 다리 쪽으로 걸음을 옮겨놓는 아줌마는 언제나 보는 광진테라 아줌마, 그녀였다. 아줌마의 등 뒤에서 그녀의 고달픈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희망을 주는 한편 그녀를 바로 그 고달픈 삶에게로 묶어놓는 재성이가 엄마의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며 논다. 재성이가 잡아당기는 대로 가볍게 머리채를 흔들리며 그녀는 뒤웅박이 되어 걸어가고 있다. 뒤웅박 팔자라는 할머니의 해석이 옳았다. 노인과는 지혜 겨룸을 할 일이 아니다.

아줌마가 사라진 다리 쪽에서 직각으로 방향을 틀어 나는 아침에 걸었던 제방 길로 접어든다. 버스가 가버린 쪽으로 돌려져 있던 아줌마의 고개의 각도가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버스가 아줌마 앞에 섰을 때 아마 아줌마는 충동을 느꼈을 것이다. 그때 버스에 한 발을 올려놓는 것으로 아줌마의 인생은 달라질지도 모른다. '지금의 삶'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 순간 아줌마가 느꼈을 복잡한 갈등이 내 가슴으로 들어와 스몄다 나도 떠나고 싶은 건가. 나에게도 지금의 삶에 대한 번민이 있어 여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건가.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다른 삶은 어떤 것인가. 엄마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또 아버지라는 발음을 극복하지 않아도 되는 삶?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나는 더욱 우울해진다. 내 삶이 이어지는 한 그들의 이미지를 떠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런 뜻에서 내게는 '다른 삶'이란 없었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 제방 길은 책에서 흔히 보는 고향 마을 같은 풍경이 된다. 그래서인지 초가집과 탱자나무 울타리 위로 불 구름이 번져가는 모습을 보며 어쩐지 누군가 그립고 마음이 심란해지는 때도 있다. 저만큼 탱자나무 울타리 아래에 책보를 내려놓고 놀고 있는 아이들 몇이 보인다. 그중에 민자의 자주색 치마가 섞여 있는 것을 보자 나는 울타리와 반대편인 물가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지나친다. 그러나 소용없다. 민자의 목소리가 뒤통수에 와서 꽂힌다.

"진회야! 같이 가자?

민자를 뒤따라서 선숙이와 동생 즉숙이도 탱자나무 울타리에서 뛰쳐나와 내 곁으로 온다 쉴새없이 재잘대며 말을 붙여오는 것이 귀찮았지만 그 셋은 모두 우리 동네에 살았기 때문에 함께 가는 수밖에 없다.

얼마 가지 않아서 우리는 황흔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말과 마부를 발견했다, 말은 반수레를 끌고 가는데도 침을 질질 흘리며 헉헉대고 있다. 제깐에는 죄병을 부리는 것인지 땅바닥에 발을 끌며 느릿느릿 걷는데 그럴 때마다 못마땅한 마부는 고삐를 더욱 세게 잡아당기며 발걸음을 빨리한다. 그러면은 말은 느릿느릿 걸어가는 중에도 앞다리와 뒷다리를 바꿔 딛는 사이사이에 넓적한 똥을 퍽퍽 떨어뜨림으로써 주인에게 모욕을 준다. 말하자면 말과 주인이 신경전을 벌이는데 배짱은 말이 더 센 것 같았다. 그 마부는 우리들이 잘 아는 털보 아저씨로, 제방 끝 동네에 살고 있는 순덕이라는 좀 모자라는 애의 아버지이다. 어른들의 말로는 순덕이가 그렇게 된 것은 순덕이 어머니가 순덕이를 가졌을 때 뱃속의 것을 떼려고 무슨 약을 먹었기 때문이라고 하며 순덕이 어머니가 남몰래 애를 메려고 한 것은 순덕이 아버지의 애가 아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순덕이 아버지는 볼 때마다 아주 무서운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길게 기른, 아니 정확히 말해서 아무렇게나 자라난 채로 길어진 검은 수염이 우리 동네 중국집 '중앙관'에 걸려 있는 삼국지 그림 속의 장비처럼 거칠고 무자비한 인상을 주었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순덕이 아버지와 말의 모습이 저 멀리 보일라치면 손뼉으로 운을 맞추며 "순덕이 어머니, 약 먹었대요. 순덕이 아버지, 핫바지래요"라고 따라가면서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다가도 순덕이 아버지의 험상궂은 얼굴이 한번 뒤돌아보기만 하면 혼비백산 달아나버리는 것이었다.

아이들이란 쉽게 패를 짓고 그것을 공통된 정서로 묶어서 세()를 형성하기를 좋아했으므로 누구를 괴롭힌다는 데 신이 나서 그렇게 짓궂은 반복 음률을 만들어내 남을 놀리곤 한다. 나는 그런 데에 한 번도 끼어본 적이 없다. 아이들 특유의 그런 하찮은 위악성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이들의 군중심리에서 전혀 즐거움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사실은 순덕이 아버지에 대해 그 아이들보다는 조금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언젠가 나는 방둑을 걸어오다가 흐르는 물에 말을 씻기고 있는 순덕이 아버지를 보았다. 목욕을 하는 것은 말뿐이 아니었는지 말 주인인 순덕이 아버지도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 내가 서 있는 방둑에서 순덕이 아버지가 몸의 중심에 자기의 수염 같은 시커먼 수염을 하나 더 달고 말을 씻기고 있는 냇가와는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순간, 즉 어린애가 금지된 장면을 훔쳐보는 순간에는 꼭 순덕이 아버지 쪽에서 고개를 들도록 되어 있다. 과연 그는 고개를 들어 방둑에 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남자 어른의 벗은 몸을 우연히 보게 된 순진한 아이로서, 처음 보는 물건에 조금은 놀랐지만 거기에서 무슨 성적인 이미지를 연상하기에는 내가 너무 어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봤다는 사실 자체에만 스스로 겁을 먹고 있다는 식의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내게서 이내 고개를 돌려 매끈하게 젖은 고동색의 말등에 물을 끼얹는 순덕이 아버지의 심상한 손놀림에서 내 의도가 충분히 성공을 거두었음을 알았던 것이다. 순덕이 아버지의 몸 중심에 있는 시커먼 수염은 그가 팔을 크게 움직일 때마다 그 반동을 받아서 팔이 왼쪽으로 움직이면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다시 왼쪽으로, 팔 동작보다 꼭 한 박자씩 늦게 따라 움직였다.

그 일로 인해 나는 순덕이 아버지와 나 사이에 약간의 비밀이 생긴 것이라고 여겼다. 내가 본 것을 발설하지 않는 점으로 해서 순덕이 아버지 쪽에서 뭔가 내게 빛진 것이 있는 듯한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지금 제방길에서 마주친 순덕이 아버지의 행동을 보면 한껏 순진한 척해 보였던 나의 그날의 연출은 순덕이 아버지같이 질박한 사람에게 지나친 성공을 거두었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나를 보고도 언제나처림 심술궂고 심드렁한 순덕이 아버지의 표정에 아무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민자와 선숙이가 살금살금 달구지에 다가가서 비어있는 짐수레에 살짝 책보를 올려놓는다. 그리고는 소리를 죽여 낄낄거리며 마차를 뒤따라간다. 제 언니의 하는 짓을 보고 용기가 생긴 차숙이도 따라한다. 그애들은 마부가 눈치채지 못하는 것에 고무되어 책보뿐 아니라 자기들의 상체까지 달구지에 올려놓아 본다. 달구지 위에 엎드린 채 다리를 대롱거리면서 한참동안 마차에 실려 갔다가 마부가 뒤돌아볼 때가 됐다 싶으면 도둑고양이처럼 재빨리 내려서곤 하는 일을 신이 나서 되풀이하는 것이다. 나 혼자만 묵묵히 책가방을 들고 발밑을 쳐다보며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다 갑자기 ", 이놈들아? 하는 천등 같은 소리에 이어 아이들이 달아나는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얼굴을 쳐드는 순간 나는 갑자기 몸이 허공으로 떠오른다. 순덕이 아버지가 머리채를 잡아서 나를 들어올린 것이다. 순덕이 아버지의 손아귀 힘은 너무나 셌다. 양 갈래로 땋은 내 머리채를 한 손에 움켜쥐고 번쩍 들어 올려 그악스럽게 그것을 흔들어대는 바람에 나는 책가방을 든 채로 허공에서 다리를 대롱거려야 했다. 머릿가죽이 벗겨져 나갈 듯이 아파서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식식거리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그의 털복숭이 얼굴 위에 번들거리는 땀과 분기가 느껴질 뿐이다. 아이들은 도망치면서 자기들의 도망에 더욱 극적인 성취감을 느끼기 위해 기어코 손뼉을 쳐가며 문제의 그 후렴귀를 목청껏 외친다.

"순덕이 어머니 약 먹었대요, 순덕이 아버지 핫바지래요."

그 소리를 듣자 순덕이 아버지는 내 머리채를 잡은 나머지 손에 쥐고 있던 말고삐마저 던져 버리고는 아이들을 향해 종주먹을 들이대는데, 그 주먹 소리는 단지 허공을 가를 뿐인데도 꽤나 살벌한 획획 소리를 낸다. 입에서는 더러운 욕설과 침이 함께 튀어나와 내 얼굴에 뿌려지고 있다. 이윽고 내 머리채를 놓아줄 때 그의 우악스런 손아귀에서는 그 손이 자랑하는 완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가느다란 머리카락이 한 줌이나 붙어 있다가 힘없이 땅으로 떨어진다. 나는 절대로 울지는 않을 작정이었다. 그리고 고자질 따위도 하지 않는다. 자꾸만 파들거리는 입술을 진정시키느라 확 깨물고 있기 때문에 얼펏 우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자세히 본다면 내 뺨이 경직되고 또 차갑게 메말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책가방을 내려놓고 나는 먼저 목 뒤로 손을 돌려서 순덕이 아버지가 뒤집어놓은 블라우스 깃을 바로잡는다. 왼쪽 옆구리에 있어야 할 치마의 지퍼도 엉덩이까지 돌아가 있다. 제자리로 치마를 돌리고 나서 치맛단을 두어 번 턴 나는 책가방을 열어 가방 속을 정리한다. 필통이 열려서 연필이며 지우개, 칼이 따로따로 흩어져 있고 책과 공책, 책받침 같은 것도 제멋대로 섞여 엉망이 되어 있다, 쭈그리고 앉아 가방을 정리한 다음 나는 발을 제방 돌 위에 올려놓고 탁탁 쳐서 운동화의 먼지까지 털어낸다. 머리만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손가락으로 갈퀴를 만들어 대충 빗어넘겼지만, 머리카락이 다 빠져나와서 할머니가 정성스레 땋아주었을 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할머니 생각을 하다니 실수였다. 눈물샘에 금방이라도 넘칠 듯 고여 있던 눈물의 '폭포 중 한 줄기가 미처 붙잡을 틈도 없이 뺨 위로 미끄러져 버린다. 나는 더 이상 눈물의 이탈자가 없도록 고개를 한껏 뒤로 젖혀서 아예 눈물샘을 봉쇄해버린다. 그리고는 가던 길을 다시 걷기 시작한다.

커다란 돌이 차곡차곡 쌓인 제방은 언덕처럼 비스듬하다. 이 길을 가면서 나는 이따금 일부러 길에서 벗어나 제방의 돌 위에 올라가서 위태롭게 걸음을 옮겨보기도 했었다. 내가 그렇게 두 팔을 벌려 균형을 잡으며 걸어보곤 하는 제방 위에 지금 염소가 한 마리 매어져 있다. 언젠가의 나처럼 염소도 균형을 잡으려고 사선으로 서 있다. 사선으로 선 채 매애애 하고 운다. 하얀 털에 황혼이 불붙어 불그레해진 그 염소는 나를 보더니 또 한 번 매애애 하고 운다. 고개를 길게 빼며 목젖을 오래 떠는 그 울음소리에 나는 걸음을 멈추고 잠깐 염소를 바라본다. 아예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린 채 매애애 매애애, 계속해서 애처로운 울음소리를 내는 이 염소를 누가 빨리 와서 풀어주고 데려갔으면 싶다.

그런데 그 생각을 하자마자 마치 그런 지시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했다는 듯이 염소의 뒤로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난다. 젊은 남자다. 그는 염소를 몇 걸음 거리 밖에서 내려다본다. 그는 키가 크다. 염소를 풀어줄 생각은 하지 않고 한참 눈길을 던지는 것으로 보아 염소의 임자는 아닌 듯하다, 염소를 풀어주지 못해 미안한 그는 염소 옆의 돌 위에 앉는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하모니카를 꺼내 분다. 염소는 자기를 위로하는 하모니카 연주에 깊은 인상을 받았는지 울음을 멈추고 가만 있는다. 그 하모니카 소리, 그리고 황흔을 배경으로 한 염소와 남자의 실루엣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웬일인지 내 마음속은 휑하니 비어있었던 모양이다. 하모니카와 염소가 들어오자 비로소 꽉 찬 느낌이 든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벅찬 느낌이 대문을 들어서는 나를 보자마자 할머니는 두레박질을 하던 손을 그대로 멈추고 입을 떡 벌린다.

"머리가 왜 그렇게 수세미가 됐냐?"

나는 고집스럽게 입술만 물고 있다. 할머니는 더 이상 묻지 않겠다는 듯이 눈길을 아래로 내리는데 옆에서 빨래를 하던 미스 리 언니가 조금 상기된 목소리로 한마디 한다.

"진희 머리 다시 빗어야겠다. 삼촌도 오셨는데"

"삼촌?"

"좀 전에 제방 쪽으로 바람 쐬러 나갔다."

할머니가 대답한다. 그제서야 부엌에서 풍겨 나오는 고기 냄새가 내 코로 스며들어온다. 그리고 미스 리 언니가 왜 그렇게 들떠 있는지 알 것도 같다. 빗을 가져오자 할머니는 내 머리를 풀어서 고무줄 한끝을 입에 물고 돌려서 단단히 묶어준 뒤 평소와 그다지 다름없는 담담한 말투로 말한다.

"머리 다 빗거든 가서 이모 좀 찾아와라. 오늘 삼촌 오니까 얌전히 집에서 기다리라고 그렇게 일렀는데 밭에 다녀왔더니 또 나가고 없어."

아마 경자 이모네 집에 갔을 것이다. 무용연습이 바빠서 이틀째 경자이모네 집에 들르지 않았더니, 그사이 편지가 왔을까 봐 조바심을 참지 못하고 경자 이모한테 간 것이 틀림없다. 경자 이모네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문간 쪽에 있는 경자 이모의 방에서 이모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이형렬이 이모를 만나고 간 뒤 편지가 더욱 자주 오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경자 이모와 하루종일 머리를 맞대고 꾼임없이 이야기를 엮어갈 정도로 많은 화젯거리가 담겨 있을 성싶진 않다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의 이야기이니 그래도 이모 쪽에서는 하루종일 되풀이해도 싫증이 안 날지 모른다. 신기한 것은 경자 이모다. 친구의 이야기일 뿐인데 경자 이모 역시 자기 이야기라도 되는 듯이 흥미 있어 하는 것이다.

애초에 이형렬과 이모를 소개해준 것은 경자 이모다. 그런데 이 운명적인 일의 계기를 만들어준 경자 이모의 애인이 요즘 편지를 잘 하지 않아 경자 이모는 몹시 괴로워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즐거운 이야기를 많이 들려줘야 한다. 경자 이모에게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실컷 늘어놓고 나서 이모는 이런 이유를 달아 그 긴 수다를 우정의 증명으로 삼곤 했다.

삼촌이 왔다는 소리에 이모는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난다.

"벌써 집에 도착했어? 그럼 나는 죽었다."

"넌 왜 그렇게 오빠를 무서워하니? 나는 오빠 하나 있는 게 소원인데. 그리고 너희 오빠는 공부만 아는 얌전한 샌님이잖아."

자기의 애인을 죽 오빠라고 불러왔던 경자 이모는 이렇게 말하며 이모를 마중하려고 함께 일어선다.

", 샌님이 화나면 얼마나 무서운지 너 아니?"

이모는 편안히 수다를 떨기 위해 풀어놓았던 치마의 '호크'를 채우느라 왼쪽 허리춤을 붙잡고 일어선다. 허리를 꽉 조이면 배가 더 나와 보이는데도 이모는 항상 옷을 작게 입기 때문에 집에서도 자주 '호크'를 풀어놓고 있는다. 문쪽으로 걸어 나오던 이모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방 한가운데 서 있는데 엉덩이께에 어색하게 힘이 들어가 있다. 이모가 경자 이모에게 눈짓을 하며 말한다.

"경자야, 묻었니?"

"어디?"

잠깐 동안 이모의 엉덩이를 유심히 살펴본 뒤 경자 이모가 "아니, 괜찮아"하면서 고개를 흔든다. 이모는 생리 중인 모양이다. 생리 때마다 이모는 그 단속을 잘 못 해서 자고 일어나면 이불에 얼룩을 남기기 일쑤였다. 치마에 얼룩이 묻어 있는 일도 다반사였다. 할머니가 이 자리에 있었으면 꼭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저 갈상머리 빠진 년.

그러나 이모는 경자 이모네 대문을 나서면서 이모로서의 어른스러움을 담은 말투로 말한다.

"나 어디 아프니? 얼굴이 노랗다."

내 머릿속에는 적자가 가진 운명의 양면성, 엄마의 이미지와 아버지라는 발음, 흥부, 떠나버린다는 것, 그러나 내게는 결코 없을 '다른 삶: 순덕이 아버지, 황혼의 실루엣 따위가 두서없이 떠오른다.

"왜 그래? 말도 안 하고."

나는 고개를 저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표현하려다가 지금 내가 그 동작을 하면 어쩐지 슬픈 동작일 것 같아 그만둬버린다. 제발 누구라도 다정한 말투로 말을 붙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삼촌은 우물에서 손을 씻고 있다가 나를 보고 환하게 웃는다.

"진희야 삼촌 왔다."

하고, 눈으로 보면 다 아는 사실을 입으로 공언하여 반가움을 대신한다. 그러나 내 눈길은 삼촌보다 막 삼촌 방에서 나오고 있는 남자를 먼저 보았다. 염소에게 하모니카를 불어주던 바로 그 남자다. 그 남자가 내 쪽으로 천천히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제방에서 본 그 실루엣이 너무나 생생하여 나는 다가오는 남자의 뒤에 염소를 매단 끈이라도 달려 있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내 가슴이 약간 뛴다. 오늘 나에게는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난다.



목차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