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출발
동혁은 어느 날 아침, 아래와 같은 아우의 급한 편지를 받고 한곡리로 돌아왔다.
사업이 첫째구, 연애는 둘째 셋째라고 하시던 형님이 여태 돌아오지를 않으니, 대체 웬일인지요? 그 동안 집에는 별고가 없지만 강기천이가 형님 안 계신 동안에 회원들을 농락해 가지고, 우리 회관을 뺏어 들려구 허니 이 편지 받으시는 대로 즉시 오세요. 건배 씨는 벌써 여러 날째 종적을 감추고 말었으니 이 일을 어떻게 허면 좋을까요?
황급히 연필로 갈겨 쓴 동화의 편지를 읽은 형은 얼굴빛이 변하도록 흥분이 되어서,
“까땍허면 십 년 공부가 도로아미타불이 될 테니까 곧 가봐야겠어요.”
하고 영신의 붕대 교환이 끝나는 것을 기다렸다. 영신이도,
“한 일주일만 더 있으면 퇴원을 헐걸요. 괜히 나 때문에…….”
하면서도 이번에는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여러분이 저렇게 번차례루 와서 간호를 해주시니까, 난 안심을 허구 가겠에요. 자아, 이번엔 우리 또 한곡리서 만납시다!”
하고 굳게 악수를 한 후 병실문을 홱 열고는 뒤도 아니 돌아다보고 나와 버렸다. 영신은 침 대 위에 엎드려 미안과 감사와 섭섭함에 몸 둘 곳을 모르고 한 시간 동안이나 울었다. 두 눈 이 붓도록 울었다. 곁엣 사람들이,
“인제 두 분이 혼인만 하면 한평생 이별 없이 살 걸 이러지 마슈. 우리 다른 얘기나 헙시다.”
하고 간곡히 위로를 해주건만, 영신은,
“어쩐지 또 다신 못 만날 것만 같어요. 이번이 마지막인가 봐요!”
하고 베갯모서리를 쥐어뜯어 가며 느껴느껴 울었다.
동혁이도 무한히 섭섭하였다. 차마 발길이 돌아서지 않는 것을, 영신의 눈물을 보지 않으려고 거머리를 잡아떼듯 하고 나오기는 했어도, ‘이렇게 급히 떠날 줄 알었드면 우리 개인의 장래에 관한 것도 좀 더 이야기를 해둘걸.’하는 후회가 길게 남았다. 그 동안 결혼 이야기만 나오면 서로 손가락 셋을 펴들어 보이며 입을 막았다. 그것은 ‘삼개년 계획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표시였다. 그러나 동혁은, ‘저이가 앞으로 어떡헐 작정인가. 무슨 꿍꿍이셈을 치구 있나?’하고 매우 궁금히 여기는 영신의 표정을 몇 번이나 분명히 읽었었다. 그렇건만, ‘그런 얘기는 건강이 회복된 뒤에 해두 늦지 않다.’하고 일부러 손가락 셋을 펴들어 보였던 것이다.
이런 생각 저런 궁리에 동혁은 눈살을 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쪽 노자는 준비해가지고 갔었기 때문에 빨리 돌아올 수는 있었어도 아버지 어머니는 대뜸 이해 없는 꾸지람을 하는데, 동화의 이야기를 듣고는 더한층 우울해졌다. 저녁때에 들어온 사람이 밥상은 윗목에다 물려 놓고,
“그래, 기천이가 어떡했단 말이냐?”
하고 물었다. 또 어디서 술을 먹었는지 눈의 흰자위가 벌겋게 충혈이 된 아우를 불러 앉히고 물었던 것이다.
“누가 알우. 기천이가 건배 씨를 자꾸만 찾어다니구 장에꺼정 데리구 가서 아주 곤죽이 되두룩 술을 먹이는 걸 두 차례나 봤는데, 지난번 일요회에는 떡 이런 소릴 꺼내겠지요.”
“뭐라구?”
“암만해두 우리 회원 열두 사람만으론 너무 적은데, 회관두 이렇게 새루 짓구 했으니 회원들을 더 모집허세. 그 김에 회를 대표허는 회장두 한 사람 유력자루 내야 관청 같은데 신용을 얻기가 좋지 않겠나? 그러니 내 의견에 찬성허는 사람이면 손을 들라구 그러겠지요.”
“그래서, 몇이나 손을 들었단 말이냐?”
“나허구 정득이허군 그런 일은 급헐 게 없으니 성님의 말을 들어 보구 다시 의논두 해봐야 경계가 옳지 않느냐구 끝까지 우기면서 손을 안 들었지만…….”
“누구누구 들었단 말야? 온 갑갑허구나.”
“석돌이가 맨 먼첨 드니깐, 칠룡이, 삼복이 할 거 없이 여섯이나 들드군요.”
“건배는 도대체 어느 편이야?”
동혁은 시꺼먼 눈썹을 일으켜 세우고 아우가 무슨 일이나 저지른 것처럼 노려본다.
총회와 같은 형식을 밟지 않고도 ‘회원 중 반수 이상의 추천이 있으면 입회를 할 수 있다’는 규약이 있기 때문에, 열두 사람 중에 반수가 이미 손을 들었으니까 건배 한 사람이 어느 편으로 기울어지기만 하면, 좌우간에 작정이 될 형세다. ‘삼십 세 이하의 남자’라는 규정도 과반수의 의견이면 뜯어고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래 건배는 어느 편으루 손을 들었단 말야?”
동혁은 버쩍 다가앉으며 꾸짖듯이 묻는다.
“물어 볼 게 뭐 있수? 으레 강기천이를 입회시키는 데 찬성이지.”
동혁은 입술을 깨물었다. 동화는,
“인젠 고 강기천이란 불가사리가 우리 회의 회장이유, 회장이야!”
하고 소리를 지르며 먼지가 나도록 주먹으로 기직 바닥을 친다. 그 동안 기천에게 매수를 당한 건배는 이른바 합법적으로 기천이를 회장으로까지 떠 받들어주고 어디로 피신을 한 것이 틀림없다. 동화는 끝까지 반대를 하고 회관 마루청을 구르며,
“너희 놈들은 돈을 처먹구 논마지기가 떨어질까 봐 겁이 나서 그 따위 수작을 허는지 모르지만, 우리가 죽을 고생을 해서 지어 논 집을 만만히 내놓을 듯싶으냐? 죽어 봐라, 죽어 봐. 어느 놈이 우리 회관엘 들어서게나 허나. 강기천이 아니라 강기천이 하라비래두 다리 옹두라질 부러트려 놀 테다!”
하고 이빨을 뿌드득뿌드득 갈며 고함을 쳤었다. 그 중에도 동혁에게 절대 복종을 하는 정득이는 분을 못 참고,
“우리는 회장이 일없다! 우리 선생님 하나면 고만이다!”
하고 입에 게밥을 짓는데, 회관의 쇳대를 맡은 갑산이는,
“이 의리부동헌 놈들 같으니라구, 우리가 누구 때문에 이만큼이나 깼느냐? 누구 덕분에 이만큼이나 단체가 됐느냐? 아 그래, 우리 선생님이 없는 동안에, 피땀을 흘려서 지은 집을 고리가시허는 놈헌테 팔어먹어?”
하고 맨 먼저 손을 든 석돌이의 멱살을 잡고 주먹으로 볼치를 후려갈겼다. 건배는 어느 틈에 꽁무니를 뺐는데, 석돌이와 찬성파는 침 먹은 지네 모양으로 꿈쩍도 못하고 머리를 사추리에다 틀어박고 앉았다. 칠룡이는 손을 들어 놓고도 양심에 찔리는지 훌쩍훌쩍 울고 앉았다. 찬성파는 하나도 빼어 놓지 않고 강도사 집의 소작인들인 것이다. 갑산이는 허리띠를 끄르더니 쇳대를 세 번 네 번 이빨로 매듭을 지어 꼭꼭 옭매면서,
“우리 선생님 말이 없인 목이 베져두 안 내놀 테다!”
하고는 회원들이 나갈 때까지 지키고 섰다가 회관문을 단단히 잠근 다음 그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었다.
아우에게서 자세한 경과를 들은 동혁은 영신에게 오래 있었던 것을 몇 번이나 후회하였다. 놀러 갔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연애와 사업은 어떠한 경우에든지 양립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보다도 금방 분통이 터질 듯이 분한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기천이가 조만간 그러한 휼책을 써서 회관을 점령하려는 눈치는 짐작 못 했던 것도 아니니, 도리어 괴이쩍을 것이 없다. 그러나 이제까지 같은 지식분자로 손을 잡고 동네일을 시작하였고, 함께 온갖 고생을 참아 오던 건배가 마음이 변해서 강기천의 주구 노릇까지 하게 된 데는 피를 토하고 싶도록 분하였다. 과거의 자별하던 우정으로서 이번 행동을 호의로 해석하려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고 하면서도, 오직 원수의 구복 때문에 참다못해서 지조를 팔고, 다만 하나뿐이었던 동지를 그나마 출타한 동안에 배반한 생각을 하니 눈물이 뜨끈하게 솟았다. 비록 중심은 튼튼치 못하나마 지사적(志士的) 기개가 있고 낙천가이던 건배로 하여금 환장이 되게까지 만든 이놈의 환경이…….
동혁은 금세 벙어리가 된 것처럼 입을 꽉 다물어 버렸다. 그러면서도, ‘설마 건배가 그다지 쉽게 마음이 변했을라구.’하고 두 번 세 번 아우의 말을 믿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동혁은 불도 아니 켜고 누워서 될 수 있는 대로 냉정히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생각 해 보았다. 무슨 짓을 하든지 유일한 단체인 농우회를, 삼사 년이나 근사를 모아 지은 회관째 기천의 손에 빼앗길 수는 없다. 건배를 불러다가 책망을 하고, 기천이를 직접 만나 단단히 따지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회원의 반수 이상이 울며 겨자 먹기로 생활 문제 때문에 그편에 가 들러붙게 된 이상 일시의 혈기로써 분풀이를 하는 것으로는, 문제가 더 옭혀들어 갈지언정 원만히 해결은 되지 못할 것 같았다. 성미가 관솔같이 괄괄한 동화가,
“아 고놈의 자식을 그대루 두구 본단 말유. 내 눈에만 띄어 보. 뒈지지 않을 만큼 패주구 말 테니. 징역 사는 게 농사 짓는 것버덤 수월허다는데 겁날 게 뭐유.”
하고 팔을 뽐내는 것을,
“아서라. 그건 모기를 보구 환도를 뽑는 격이지, 그버덤 더 큰 적수를 만나면 어떡허련? 완 력으루 될 일이 있구 안 되는 일두 있는 걸 알어야 한다. 넌 아직 나 하라는 대루 가만히 있 어.”
하고 타일렀다. 그것도 폭력으로는 되지 않을 성질의 일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별별 생각을 다 해보다가,
“한 가지 도리밖에 없다!”
하고 부르짖으며 발길로 벽을 걷어차고 일어났다.
“그들의 빚을 갚어 주는 것이다. 강가의 집 소작을 아니 해먹고도 살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말은 간단하다. 단 두 마디밖에 아니 된다. 그러나 그 간단한 말은 동혁의 어깨가 휘도록 무거웠다. 현재의 저의 미약한 힘으로는 도저히 실행할 가능성이 없는 일일 것 같았다. 그 근본책을 알고도 손을 대지 못하는 동혁의 고민은 컸다.
“결국은 한 그릇의 밥이 인간의 정신을 지배한다. 더군다나 농민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고 옛날부터 일러 내려오지 않었는가.”
이것이 흔들어 볼 수 없는 철칙인 이상 이제까지는 그 철칙을 무시는 하지 않았을망정, 첫 손가락을 꼽을 만치 중대히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만은 스스로 부인할 수 없었다.
‘그것은 나 자신이 농촌의 태생이면서도 아직까지 밥을 굶어 보지 못한 인텔리 출신인 까닭이다.’
하고 동혁은 저 자신을 비판도 하여 보았다.
‘이제까지 단체를 조직하고 글을 가르치고 회관을 번듯하게 지으려고 한 것은, 요컨대 메마른 땅에다가 암모니아나 과린산석회 같은 화학비료를 주어 농작물이 그저 엄부렁하게 자라는 것을 보려는 성급한 수단이 아니었던가.’
동혁은 냉정히 제가 해온 일을 반성하는 나머지에,
‘먼저 밑거름을 해야 한다. 흠씬 썩은 퇴비를 깊숙이 주어서 논바닥이 시꺼멓도록 걸게 한 뒤에 곡식을 심는 것이 일의 순서다. 그런데 나는 그 순서를 바꾸지 않었던가?’
하고 혼자말을 하며 또다시 눈을 딱 감고 앉았다가,
‘집 한 채를 가지고 다툴 때가 아니다. 동지가 배반한 것을 분하게만 여기고 흥분할 것이 없다.’
하고 무릎을 탁 치고 일어서서 좁은 방 안으로 왔다 갔다 하다가,
‘이번 기회에 영신에게도 선언한 것처럼, 제일보부터 다시 내디디지 않으면 안 된다. 표면적인 문화운동에서 실질적인 경제운동으로.’
결론을 얻은 동혁은 방으로 들어가 그제야 불을 켜고 서랍 속에서 동리 사람과 회원들의 수입 지출이며, 빚을 진 금액까지 상세히 적어 넣은 이세일람표(里勢一覽表)를 꺼냈다. 그것은 회원들이 여러 달을 두고 조사해 온 것으로 매우 정확한 통계였다. 그때였다. 문 밖에서 두런두런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선생님 오셨지요?”
하고 반대파의 회원들이 정득이를 앞장세우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방 안에 가득 들어앉은 회원들의 입에서 비분에 넘치는 호소를 받을 때, 동혁이도 다시금 흥분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건만,
“참세, 참어. 참을 수 없는 걸 참는 게 정말 참을 줄 아는 거라네.”
하고,
“아무튼 너무 떠들면 일이 되레 크게만 벌어지는 법이니, 얼마 동안 모든 걸 내게 맡겨 주 게. 따루 생각허는 일두 있으니…….”
하고 거듭 제가 그 동안에 동리를 떠나 없었던 것을 사과하였다. 그러나 정득의 입에서,
“건배 씨는 기천이 지시루 군청에 서기가 돼서 아주 이사를 간대요. 한 달에 월급이 삼십 원이라나요.”
하는 말을 들을 때, 동혁은 다시 한 번 놀랐다. 그러면서도,
“설마 그렇기야 헐라구. 자네들이 잘못 들었지.”
하고 그 말까지는 믿지를 않으니까,
“잘못 알다께요. 오는 길에 안에서 이삿짐꺼정 싸는 걸 봤는데요.”
그 말을 듣고도 동혁은 머리를 흔들었다. 군서기가 그렇게 짧은 시일에 용이하게 되는 것도 아니요, 또는 건배가 오래 전부터 뒷구멍으로 운동을 하였으리라고는,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곧이 들리지 않았다. 또는 그에게는 소학교 교원 노릇을 할 자격까지 빼앗긴 것을 잘 알고 있는 터이라,
“그럴 리는 만무허지.”
하면서도 실지를 검사하듯이, 이삿짐을 싼다는 건배의 집에는 가보기가 싫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 동혁은 평일과 조금도 다름없이 일어나 회관으로 올라가서 기상나팔을 불었다. 새벽녘부터 철 아닌 궂은비가 오는 까닭인지, 회원은 물론 다른 조기회원도 올라오는 사람은 그전의 오분의 일도 못 된다. 그 분요통에 건배까지 종적을 감추어서 조기회조차 지도자를 잃고 흐지부지 해산을 한 것과 마찬가지다.
동혁은 웃통을 벗어붙이고 비를 맞으며 체조를 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그제야 이불 속에서,
“에에키, 동혁이가 왔군.”
하고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동혁은 구름이 잔뜩 낀 하늘과 같이 우울해진 머리를 떨어뜨리고 내려왔다.
‘어쨌든 나 헐 도리는 차려야 한다.’
하고 내려오는 길에 건배의 집에를 들렀다.
“건배―”
하고 불러도 대답이 없는데, 마당으로 들어서 보니 시렁 위에 있던 헌 고리짝을 내려서 빨랫줄로 묶어 놓은 것과 바가지와 귀 떨어진 옹솥을 떼어서 돈대 위에다 올려놓은 것을 보고, 그제야,
‘정말 이사를 가려는 게로구나.’
하고 다시 한 번, “건배 있나?”
하고 안방으로 대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이고, 난 누구시라구요. 그저께 나가서 그저 안 들어왔어요.”
하고 젖을 문 어린애를 안고 나오는 것은 건배의 아내다. 세수도 아니 해서 머리는 쑥방석 같고 그 동안에 더 찌들어 보이는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 찼다.
‘그 동안에 속이 상해서 저 꼴이 됐나 보다.’하고 동혁은,
“어딜 갔어요?”
하고 물어 보았다. 건배의 아내는 떼어다만 놓고 닦지도 않아서 거멍이 시꺼멓게 앉은 옹솥을 내려다보더니,
“이 정든 고장을 어떻게 떠난데요?”
하고 금세 목이 멘다.
“아, 떠나다께요?”
동혁은 짐짓 놀라며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뭘, 벌써 다 들으셨을 걸…….”
하고 눈물이 글썽글썽해서 마당만 내려다보더니,
“참 영신 씨가 병이 대단하다죠?”
하고 딴전을 부리듯 한다.
“인젠 많이 나었어요.”
동혁은 의형제까지 한 두 사람의 정의를 생각하며 대답하였다. 그러면서 더 자세한 말을 묻기도 싫고, 그렇다고 그대로 갈 수도 없어서, 잠시 추녀 밑에서 빗발을 내려다보며 서성거리는데,
“주호야―”
하고 어린것의 이름을 부르며 비틀거리고 들어서는 사람! 그는 앞을 가누지 못하도록 술이 취한 이 집의 주인이었다. 썩은 생선의 눈처럼 뻘겋게 충혈이 된 건배의 눈이 동혁의 실쭉해진 눈과 딱 마주치자, 그 전기를 맞은 것처럼 우뚝 섰다. 한참이나 억지로 몸을 꼬느고 섰다가, ‘죽여 줍시사’ 하듯이 머리를 푹 수그리더니,
“여보게 동혁이!”
하고 와락 달려들어 손을 잡는다. 동혁의 표정도 점점 심각해진다.
“여보게 동혁이! 나 술 먹었네, 술 먹었어. 자네 덕분에 끊었던 술을, 삼 년째나 끊었던 술을 먹었네. 그저께 저녁버텀 죽기 작정허구 막 들이켰네. 참 정말 죽겠네, 죽겠어. 이 사람 동혁이 팔어 먹은 양심이 안직두 조끔은 남었네그려!”
하고 앙가슴을 헤치고 주먹으로 꽝꽝 치더니 동혁의 어깨에 가 몸을 턱 실리며,
“여보게, 내 이 낯짝에 침을 뱉어 주게! 어서 똥물이래두 끼얹어 주게! 난 동지를 배반헌 놈 일세. 우리 손으루 진, 피땀을 흘려서 진 회관을, 아아 그 집을, 그 단체를 이놈의 손으루 깨뜨린 셈일세!”
하고 진흙 바닥에 가 펄썩 주저앉더니 흑흑 느끼면서,
“내가 형편이 자네만만 해도, 두 가지 맘은 안 먹었겠네. 내 딴엔 참기두 무척 참었지만 원 수의 목구녁이 포도청이니 어떡허나? 앞 못 보는 늙은 어머니허구 하나 둘두 아닌 어린 새끼들허구, 이 입살에두 풀칠을 해야 살지 않겠나?”
하고 사뭇 어린애처럼 엉엉 울면서,
“우리 내외는 남몰래 굶기를 밥 먹듯 했네. 못 먹구두 배부른 체허기란 참 정말 심드는 노릇이데. 허지만 어른은 참기나 허지, 조 어린것들이야 무슨 죄가 있나? 우리 같은 놈헌테 태어난 죄밖에 이승에 무슨 큰 죄를 졌단 말인가? 그것들이 뻔히 굶네그려. 고 작은 창자를 채지 못해서 노랑방통이가 돼가지구 울다울다 지쳐 늘어진 걸 보면, 눈에서, 이 아비 놈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네그려!”
하고 떨리는 입술로 짭짤한 눈물을 빨면서 문지방에다가 머리를 들부비더니 눈물 콧물로 뒤발을 한 얼굴을 번쩍 쳐들며,
“여보게 동혁이, 자넨 인생 최대의 비극이 무엇인 줄 아나? 끼니를 굶구 늘어진 어린 새끼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걸세! 그것들을 죽여버리지두 못허는 어미 아비의 속을 자네가 알겠나?”
하고 부르짖으며 손가락을 피가 나도록 물어뜯는다.
동혁은 팔짱을 끼고 서서 잠자코 건배의 독백을 들었다. 적덩어리 같은 그 무엇이 치밀어 오르는 듯한 것을 억지로 참고 섰으려니 건배만치나 마음이 괴로웠다. 비록 술은 취했으나마 그 기다란 몸을 진흙 바닥에다 굴리면서 통곡을 하다시피 하는 것을 볼 때, 달려들어 마주 얼싸안고 실컷 울고 싶었다.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아서 말대꾸도 못 하였다. 아내가 듣다 못해서 마당으로 내려오며,
“이거 창피스레 왜 이러우! 어서 들어갑시다. 제발 방으루나 들어가요.”
하고 잡아 끌어도 건배는 막무가내로 뻗딩긴다. 동혁은 그제야 건배의 겨드랑이를 부축해 일으켰다.
“여보게 건배! 어서 일어나게. 가을이 돼두 벼 한 섬 못 들여놓구 지낸 자네 사정을 어째 내 가 모르겠나. 이런 경우에 자네를 힘껏 붙잡지를 못허는 게 무한히 슬플 뿐일세. 이번에 가 면 아주 가겠나! 또다시 모일 날이 있겠지. 더 단단히 악수를 헐 날이 있겠지. 난 이 마당에 서 다른 말은 하기가 싫으이. 기왕 그렇게 된 일이니 자네의 맘이 다시는 변치 말구 있다가, 더 큰 일을 헐 때 만날 것만 믿구 있겠네!”
건배는 동혁이가 뜻밖에 조금도 저의 탓을 하거나 몰아대지를 않는 것이 고마워서 동혁의 손을 힘껏 잡으며,
“아 손을 어떻게 놓나, 응? 이 손을 어떻게 놔. 이 한곡리를 차마 어떻게 떠난단 말인가. 정 을 베는 칼은 없어! 없나? 인정을 베는 칼은 없어?”
하고 손을 벌리더니 연기에 시꺼멓게 걸고 밑둥이 반이나 썩은 마룻기둥을 두 팔로 부둥켜안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한 줌 흙도 움켜쥐고
놓치지 말어라.
이 목숨이 끊지도록
북돋우며 나가자!
하고 ‘애향가’ 끝 구절을 목청껏 부르더니, 그 자리에 쓰러지며 헉헉 느끼기만 한다. 그의 머리와 등허리에는, 찬비가 어느덧 진눈깨비로 변해서 질금질금 쏟아져 내린다.
건배가 떠나는 날 동혁은 오 리 밖까지 나가서 전송을 하였다. 몇 해 전 교원 노릇을 할 때 에 입던 것인지 무릎이 나가게 된 쓰메에리 양복을 입고 흐느적흐느적 풀이 죽어서 걸어가는 뒷모양을 동혁은 눈물 없이는 바라볼 수가 없었다. 밝기도 전에 도망구니와 다름없이 떠나는 길이라, 작별의 인사나마 정다이 하러 나온 사람도 두엇밖에는 눈에 띄지 않았다. 어린 것들을 이끌고, 눈에 잠이 가득한 작은애를 들쳐 업은 건배의 아내는 눈물이 앞을 가려서 걷지를 못하다가, 동리가 내려다보이는 마루터기 위까지 올라가서는 서리 찬 풀밭에 펄썩 주저앉았다. 한참이나 자기가 살던 동리의 산천과 오막살이들을 넋을 잃고 내려다보다가, 남편에게 끌려서 그 고개를 넘으면서도 돌려다보고 돌려다보고 하는 것이 먼 광으로 보이더니, 그나마 아침 햇빛을 등지고 안계(眼界)에서 사라져 버렸다.
기천이가 건배의 빚을 갚아 주고 신분까지 보증을 하여서 하루 일 원씩 일급을 받는 임시 고원이 되어 간다는 것은, 그의 아내의 입을 통해서 알았다. 군청에 사람이 째어서 몇 달 동안 서역을 시키려고 임시로 채용한 것이니까 그나마 언제 떨어질는지 모르는 뜨내기 벌이다. 그러나 조만간 끊어질 줄 알면서도 건배는 그만한 밥줄이나마 물지 않을 수가 없었 던 것이다.
동혁은 동리로 돌아오면서, ‘오는 자를 막기도 어렵고, 가는 자를 억지로 붙들 수도 없는 노릇이다.’하고 긴 한숨을 짓고는, 그 길로 회원의 집을 따로따로 호별 방문을 하였다. 그것은 강기천 이와 겯고 틀려는 음모를 하려는 것도 아니요, 반대운동을 일으키려고 책동을 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자아, 우리 기왕에 그렇게 된 일을 가지구 왁자지껄 떠들기만 허면 무슨 소용이 있나? 누가 잘허구 잘못헌 것두 따지지 말구, 어느 시기꺼정은 우리가 헐 일만 눈 딱 감구 허세.”
하고는 미리 불평을 막았다. 그는 기천에게 매수된 회원에게도 똑같은 태도로 임하였다. 석돌이와 칠룡이 같은 회원은 동혁을 보더니 질겁을 해서 쥐구멍으로라도 들어가려고 드는 것을,
“허어 이 사람, 내 얼굴을 바루 쳐다보지 못헐 짓들은 누가 허랬나?”
하고 너그러이 웃어 보이면서 전일과 조금도 다름없이 은근하게,
“난 이런 생각을 허는데, 자네들 의향은 어떨는지?”
하고 조끼 주머니에서 서류를 꺼내 놓으며,
“자, 누구누구 헐 것 없이 우리 어떻게 빚버텀 갚을 도리를 차려 보세. 빚진 죄인이라구 남 의 앞에 머리를 들구 살려면 위선 빚버텀 벗어넘겨야 허지 않겠나?”
“그야 이를 말씀이에요.”
어느 회원은 동혁이가 은행의 담이나 뚫어 가지고 온 것처럼 그 말에는 귀가 번쩍 뜨이는 눈치다.
“그렇게만 되면사, 우리두 다리를 뻗구 자겠지만…….”
하면서도 무슨 방법으로 갚자는지를 몰라서 동혁의 턱을 쳐다본다.
“그런데 우리 회원들이 강도사 집에 농채(農債)나 상채(喪債)루, 또는 혼채(婚債)루 진 빚을 쳐보니까, 본전만 거진 사백 원이나 되네그려. 그러니 또박또박 오 푼 변을 물어 가면서 기한에 못 갖다 바치면, 그 변리꺼정 추켜매서 그 원리금에 대한 오 푼 변리를 또 물고 있지 않은가? 허구 보니 자네들의 빚이 벌써 얻어 쓴 돈의 삼 배두 더 늘었네그려. 주먹구구루 따져 봐두 천사백 원 턱이나 되니, 자네들이 무슨 뾰죽한 수가 생겨서 그 엄청난 빚을 갚어 보겠나!”
“어이구, 일천사백 원!”
갑산이가 새삼스러이 놀라며 혀를 빼문다.
“그게 또 자꾸만 새끼를 칠 테니 어떻게 되겠나? 몸서리가 쳐지두룩 무섭지가 않은가?”
“그러니, 세상 별별 짓을 다 해두 갚을 도리가 있어야죠. 그저 텃도지도 못 물구 있는 사람 이 반이나 되는데요.”
“그러길래 말일세. 그 빚을 어떻게 갚든지 내게다만 죄다 맡겨 주겠나? 그것버텀들 말허게.”
“그야 두말헐 게 있에요. 빚만 갚게 해주신다면 맡기구 여부가 없읍죠.”
하는 것이 이구동성이다.
“그럼, 나 허는 대루 꼭 해야 허네. 나중에 두말 못 허느니.”
하고 동혁은 두 번 세 번 뒤를 다졌다. 동혁은 회원이 빚을 얻어 쓴 날짜와 금액을 적은 장부를 꺼내더니,
“그러면 우리 이럭허세. 우리가 삼 년 동안 공동답을 짓구, 닭 돼지를 쳐서 모은 것하구, 이 용조합과 이발조합에서 저금헌 걸 따져 보니까, 회관을 지은 것은 말구두, 사백육십 여원이나 되네.”
하고 일 전 일 리도 틀림없이 꾸며 놓은 회의 여러 가지 장부와 대조를 시켜 보인다.
“야아, 그런 줄 몰랐더니 꽤 많구나!”
하고 회원들은 저희들이 저금한 액수가 뜻밖에 많은 데 놀란다.
“그러길래 티끌 모아 태산이라지. 허지만 그걸 열둘루 쪼개면 한 사람 앞에 삼십팔 원 각수 밖에 더 되나.”
동혁의 말을 듣고 보니 아닌 게 아니라 결코 많달 것이 없는 금액이다. 동혁은 회원들의 기색을 살펴보며,
“우리 그 동안 비럭질(거저 일을 해주는 것)을 해준 셈만 치구, 그걸루 몽땅 빚을 갚어 버리세. 나는 간신히 그 집에 빚을 안 졌지만, 내 몫허구 동화 몫이 남는데 건배군은 취직을 헌 모양이니까, 세 사람 몫은 거저 내놓겠네. 그럼 그걸루 많이 얻어 쓴 사람허구 적게 얻어 쓴 사람허구 액수를 평균허게 만들 수가 있지 않은가?”
회원들은 얼른 대답하는 사람이 없다. 좋고 그르다는 것은, 그네들의 표정이 없는 얼굴을 보아서는 모른다. 몇몇 해를 두고 쪼들리던 부채를 갚아 준다니 귀가 번쩍 뜨이나 죽을 애를 써서 모은 것을 송두리째 내놓는다는 데는 여간 섭섭지가 않은 눈치다. 어린애는 배기도 전에 포대기 장만부터 한다고, 그 돈을 눈 딱 감고 늘여서 돈 백 원이나 바라보면 토담집이라도 짓고 나와서 남의 도짓집을 면해 보려고 벼르고 있는 회원이 거지반이었던 것이 다.
“섭섭헐 줄은 아네. 허지만 눈앞에 뵈는 게 아니라구 그 빚을 그대루 내버려두면, 나중에 무슨 수루 갚어 보겠나? 칠룡이 같은 사람은, 돌아간 아버지 술값까지 짊어졌으니까, 억울헌 줄은 모르는 게 아닐세만…… 억지루 허자는 게 아니니 싫다면 더 우기진 않겠네.”
하고 동혁은 슬그머니 을러도 보았다. 그런 잇속에는 셈수가 빠른 석돌이는,
“선생님이 첫 해버텀 우리허구 똑같이 고생을 허신 것꺼정 내놓으신다는데 두말 헐 사람이 누구예요? 너무나 고맙구 염치없는 일입죠.”
하고 동혁을 빤히 쳐다보더니,
“그럼 변리는 어떡허구 본전만 갚나요?”
한다. 그 말에 정득이와 칠룡이도 매우 궁금하였다는 듯이,
“그러게 말씀예요. 배버덤 배꼽이 커졌는데…….”
하고 거진 동시에 질문을 한다.
“궁금헐 줄두 알었네. 그러길래 그건 무슨 수단을 쓰든지 내게다만 맡겨 달라구 허지 않었 나?”
“안 될걸요. 이마에 송곳을 꽂어두 진물 한 방울 안 나올 사람인데 애당지 생의두 마시지요.”
“아, 노린전 한 푼에 치를 떨구, 사촌 간에두 꼭꼭 변리를 받는 사람이 더군다나 소리 없는 총이 있으면 놓지를 못해허는 우리들의 변리를 탕감해 주겠에요? 어림없지, 어림없어.”
하고 머리를 내젓는 것을 보고 동혁은,
“이 사람, 경우에 따러선 병법을 가꾸루 쓰는 수두 있다네.”
하고 자신 있는 듯이 간단히 대답하고 나서,
“헌데, 한 가지 꼭 지켜야 헐 게 있네. 내가 그 집엘 댕겨오기 전엔, 누구헌테나 이 말을 입 밖에두 내선 안 되네. 그 사람이 미리 알면 다 틀릴 테니 명심들 허게. 그런데 온 전화통이 있어서…….”
하고 슬쩍 석돌이를 흘겨본다. 정득이도 석돌이와 칠룡이를 노려보며,
“천엽에 가 붙구 간에 가 붙구 허는 놈은 이젠 죽여 버릴 테야! 죽여 버려!”
하고 이를 뿌드득 갈며 벼른다.
아무리 비밀을 지키라고 당부를 해도 저녁 안으로 그 말이 새어서 기천의 귀에까지 들어갈 것을 동혁이가 모를 리는 없다. 건배를 작별하고 오다가, 기천이가 자전거를 타고 신작로로 달려가는 것을 제 눈으로 보았고, 기만이가 형이 술에 취해서 자는 사이에 빚을 놓아 먹으려고 금융조합에서 찾아온 돈을 오백 원이나 훔쳐 가지고 도망을 가서 형이 서울로 쫓아 올라갔다는 소문이 벌써 파다하게 났기 때문에 적어도 사오 일 내로는 돌아오지 못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 동안 여러 날을 두고 동혁은 사방에 흩어진 돈을 모아들이느라고 자전거를 얻어 타고 분주히 돌아다녔다. 조합에 예금했던 것은 손쉽게 찾았지만, 그 나머지는 받기가 여간 힘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요행으로 추수를 한 뒤라, 다른 때보다는 융통이 잘 되어서 기천이가 내려오기 전날까지 그 액수가 거진 다 들어섰다.
기천이는, 조끼 안주머니에다가 똘똘 뭉쳐서 넣고 자던 돈을 아우에게 감쪽같이 도적을 맞고 눈이 발칵 뒤집혀서 으레 서울로 갔으려니 하고 뒤를 밟아 쫓아 올라갔다. 그러나 서울은 공진회 때와 박람회 때에 구경을 했을 뿐이라, 생소해서 무턱대고 찾아다닐 수도 없어 경찰서에 수색원까지 제출했건만, 친형제간에 돈을 훔친 것은 범죄가 구성되지 않기 때문에 도리어 ‘찾게 되면 통지할 테니 내려가 있으라’는 주의를 받고 그 아까운 노자만 쓰고 내려왔다. 집에 와서는 콩 튀듯 팥 튀듯 하며, 문문한 집안 식구에게만 화풀이를 한다는 소문이 벌써 동혁의 귀에도 들어갔다. 동화에게 석돌이나 그 집에 가까이 다니는 사람을 감시하게 하는 한편으로 머슴애를 꾀송꾀송해서 물어 보면 단박에 염탐을 할 수가 있다.
‘화가 꼭두까지 오른 판인데 잘 들어 먹을까.’하면서도 동혁은 더 기다릴 수가 없어서 저녁을 든든히 먹은 뒤에 큰마을로 기천이를 찾아 갔다. 가는 길에도,
‘농촌운동을 허는 사람이라도 너무 외곬으로 고지식하기만 허면, 교활한 놈의 꾀에 번번이 속아 떨어진다. 과거의 경험으로 보더라도 제 양심을 속이지 않는 정도로는 패를 써야 하겠다.’
하고 종래와는 수작하는 태도를 변해 보리라 하였다. 사랑마당에서 으흠, 으흠 기침을 하니까,
“누구냐?”
하고 되바라진 소리를 지르며 내다보는 것은, 바로 기천이다.
“그 동안 경행을 허셨드라지요?”
하고 동혁은 뻣뻣한 허리를 될 수 있는 대로 굽혀 보였다.
“아, 동혁인가? 그러잖어두 좀 만나려구 했더니…….”
기천은 마루로 나오며 한 십 년 만에나 만나는 친구처럼,
“어서 이리 들어오게.”
하면서 동혁을 반가이 맞아들인다. 제가 한 깐이 있고, 반대파의 회원들이 저의 집을 습격이나 할 듯이 형세가 위룽위룽한데, 그 질색할 놈의 동화는 저를 보기만 하면 죽이느니, 다리를 분질러 놓느니 하고 벼른다는 소문을 벌써 듣고 앉았다. 속으로는 겁이 잔뜩 나서 동네 출입도 못 하고 들어 앉았는 판에, 몇 번씩 불러도 오지를 않던 동혁이가 떡 들어서는 것을 보니 가슴이 달칵 내려앉았다. 그렇건만 그 순간에, ‘옳지, 마침 잘 왔다. 너만 구슬러 노면야 다른 놈들 쯤이야.’하고 얕잡고는 친절을 다해서 동혁을 붙들어 올린 것이다. 동혁이가,
“계씨두 서울 가셨다지요? 풍편에 놀라운 소식이 들리드군요. 그래 얼마나 상심이 되세요.”
하고 화평한 낯빛으로 동정해 주니까,
“허어, 거 온 첫대 창피스러워서…… 속 상허는 말이야 다 해 뭘 허겠나. 그야말루 아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셈이지.”
하고 매우 아량이 있는 체를 한다. 동혁은 다른 말이 나오기 전에 먼저 기를 누르려고,
“참 이번 저 없는 동안에 귀찮은 일을 맡으시게 됐드군요.”
하고 아픈 구석을 꾹 찔러 보았다. 기천은 의외로 동혁의 말씨가 부드러운 데 안심이 되는 듯,
“하 이 사람, 자네가 먼저 말을 끄내네그려. 난 백죄 꿈두 안 꾼 일을, 건배랑 몇몇이 누차 찾어와서 벼락 감투를 씌우데그려. 자네네 일까지 덧붙이기루 해달라니 젊은 사람들이 떠맡기는 걸 이제 와서 마자는 수두 없구…… 그래서 자네허구 얘기를 좀 허려구 만나려던 찬데, 참 마침 잘 왔네.”
하고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듯이 뾰족한 발끝을 달달달 까분다.
“그야 인망으루 되는 일이니까요. 진작 일을 봐줍시사구 여쭙질 못헌 게 저희들의 불찰이 지요.”
그 말에 기천은 몸을 발딱 일으키며,
“가만있게. 우리 오늘 같은 날이야 한잔 따뜻이 마시면서 얘기를 허세.”
하고 요릿집에서 하던 버릇인지 안으로 대고 손뼉을 딱딱 친다.
전일과 똑같은 대중의 술상이 나왔다. 그러나 오늘은 어란과 육포 조각까지 곁들여 내온 것을 보니, 특별 대우를 하는 모양이다.
“여보게, 오늘은 한잔 들게. 사람이 너무 고집이 세두 못 쓰느니.”
하고 권하는 대로,
“그럼, 나 먹는 대루 잡수실 테지요.”
하고 동혁은 커다란 주발 뚜껑으로 밥풀이 동동 뜬 노오란 전국을 주르르 따랐다.
“자 먼저 한 잔 드시지요.”
“어 이 사람, 공복인데 취허면 어떡허나. 요새 연일 과음을 해서…….”
하면서도 기천은 동혁이가 먹는다는 바람에 숨도 아니 쉬고 쪼옥 들이켰다. 이번은 동혁이 가 불가불 마셔야 할 차례다. 동혁은,
“이거 정말 파계를 허는군요.”
하고 주발 뚜껑이 찰찰 넘치도록 받아 놓았다. 동혁은 원체 주량이 없는 것이 아니다. 고등 농림의 축구부의 주장으로 시합에 우승하던 때에는 응원대장이 권하는 대로 정종을 두 되 가량이나 냉수 마시듯 하고도 끄떡도 아니 하던 사람이다.
“어서 들게.”
“네, 천천히 들지요.”
그러나 이만 일로 여러 회원과 함께 오늘날까지 굳게 지켜 오던 약속을 깨뜨릴 수도 없고, 그 잔을 내지 않을 수도 없어서 어름어름하고 안주만 집는 체하는데, 안에서 계집애가 나오더니,
“아씨가 잠깐 들어옵시래유.”
한다. 기천은,
“왜?”
하고 일어서며,
“아 이 사람, 어서 들게.”
하고 마시는 것을 감시하려고 한다. 동혁은 술잔을 들었다. 돌아앉으며 단숨에 벌떡벌떡 들이켜는 것을 보고야 기천은,
“허어, 어지간허군.”
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저녁상을 내보낼까 물어 보려고 불러들이는 눈치다. 동혁은 씽긋 웃으며 술잔을 입에서 떼는데 술은 고대로 있다. 능청스럽게 소매로 입을 가리고 들이마시는 시늉만 내어 보인 것이다. 그 술을 얼른 주전자에다 도로 따르고 이번에도 안주를 드는 체하고 있는데, 기천은 벌써 얼굴이 술기운이 돌아 가지고 나온다. 동혁은,
“무슨 술이 이렇게 준헙니까? 벌써 창자 속까지 찌르르헌데요.”
하고 진저리를 치는 흉내를 낸다.
“기고(忌故)두 계시구 해서, 가양(家釀)으루 조금 빚어넌 모양인데, 품주(品酒)는 못 돼두 그저 먹을 만허이.”
“이번엔 주인 어른께서 드셔야지요.”
“온, 이거 과헌걸.”
“못 먹는 저두 먹었는데요. 참 제가 술 먹은 걸 회원들이 알아선 안 됩니다.”
“그야 염려 말게. 내가 밀주해 먹는 소문이나 내지 말게. 겁날 건 없네만…….”
하고 기천은,
“핫 하하하.”
하고 간드러지게 웃으며 잔을 들더니 엄지손가락을 제친다.
“이왕이면 곱배기루 한잔 더 허시지요. 저두 따러 먹을 테니…….”
동혁은 석 잔째 가득히 따라 올렸다.
“아아니, 자네 사람을 잡으려나? 이렇게 폭배를 허군 견디는 수가 있어야지.”
하면서도, ‘어디 누가 못 배기나 보자!’는 듯이 상을 찌푸리고 꼴딱꼴딱 마셔 넘긴다. 동혁은 기천의 목줄띠에 내민 뼈끝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을 바라보다가, ‘이번엔 어떡하나.’ 하면서도 그 술잔을 받지 않을 수는 없었다.
“어서 들게 들어. 입에 안 댔으면 모르거니와 사내대장부가 그만 술이야 사양해 쓰겠나.”
독촉이 성화같다. 기천은 벌써 말이 어눌해지도록 취했다.
“온 이건 너무 벅차서…….”
하고 동혁은, ‘이런 때 누가 오지나 않나.’하고 잔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데 마침 밖에서 잔기침 소리가 나더니,
“나리께 여쭙니다. 큰덕미 선인이 들어왔는뎁쇼. 내일 아침에 뱃짐을 내시느냐구 헙니다.”
하는 것은 머슴의 목소리다. 기천은,
“뭐? 뱃놈이 들어왔어?”
하더니,
“자, 잠깐만 기다리게.”
하고 툇마루로 나간다. 그 틈에 주전자 뚜껑은 또 소리 없이 열렸다. 기천이가 벼를 실릴 분별을 하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동혁은,
“어이구, 벌써 가슴이 다 두근두근허는걸요.”
하고 가슴에다 손을 대며 금방 술을 마시고 난 것처럼 알코올 기운을 내뿜는 듯이 후우 하면서 술잔을 주인의 앞에다 놓았다.
남포에 불을 켜는데 밥상이 나왔다. 반주가 또 한 주전자나 묵직하게 나오고, 어느 틈에 닭 을 다 볶아서 주인과 겸상을 하였다. 기천이가 상놈하고 겸상을 해보기는 생후 처음이리라. ‘아무리 요새 세상이기루 볼 건 봐여지. 우리네허구야 원판 씨가 다르니까…….’하고 남의 집 잔치 같은 데를 가서도 자리를 골라 앉는 사람으로는 크게 용단을 내었고 실로 융숭한 대접이다. 동혁은, ‘놈이 발이 제려서…….’하면서도,
“전 저녁을 먹구 왔지만, 세잔갱작(洗盞更酌)이라는데 자 이번엔 반주루 한잔 더 드시지요.”
하고 이번에는 공기에다 가득히 따라서 권하니까,
“이거 자네 협잡을 했네그려. 그저 끄떽없는 게 수상쩍은걸.”
하면서도 기천은 인음증(引飮症)이 대단한 사람이라 인제는 술이 술을 끌어들여서, 동혁이가 받아 든 술은 제 눈앞에서 한 방울도 아니 남기고 주전자에다가 짓는 것을 멀거니 보면서도,
“과헌걸 과해.”
해가며 연거푸 마신다. 그만하면 온 세상이 다 내 것처럼 보일 만치나 거나해졌다.
“참 이렇게 술에 고기에 주셔서 잘 먹습니다만, 특청 하나 헐 게 있어서 왔는데, 들어주시겠에요?”
그제야 동혁은 취한 체하면서 본론을 끄집어냈다.
기천은 몽롱한 눈을 될 수 있는 대로 크게 뜨고 상대자를 보더니, 다 붙은 고개를 내밀며 귓속말이나 들으려는 듯이,
“무슨 특청? 왜 아쉰 일이 있나?”
하고 귀를 갖다가 댄다. 특청이라면 으레 돈을 취해 달라는 줄 알고 취중에도,
‘너두 그예 나헌테 아쉰 소리를 헐 때가 왔구나.’ 하는 듯이 연거푸,
“왜 돈이 소용이 되나?”
하고 엄지와 검지손가락으로 똥그라미를 만들어 보이며 은근히 묻는다.
“돈이 소용이 되는 게 아니라 빚을 갚으러 왔에요.”
“응? 빚을 갚으러 오다께? 자네가 언제 내 돈을 썼든가?”
“전 댁의 돈을 다 갚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위임을 맡어가지구 왔는데요.”
“다른 사람들이라니 누구누구 말인가?”
“이번에 주인어른께서 새루 회장이 되신 우리 농우회의 회원들이 진 빚인데요. 저희들은 와 뵙구 말씀드리기가 어렵다구 제게다 맡겨서 심부름을 온 셈입니다.”
“허, 자네두 호사객일세그려. 더러들 썼지만 몇 푼 된다구. 하두 오래 돼서 나두 잊어버렸는걸.”
하면서도 기천은, ‘너희들이 무슨 돈이 생겨서 한꺼번에 갚는다느냐.’는 듯이 고개를 까땍까땍하면서 따개질을 하듯이 동혁의 눈치를 살핀다.
“수고스러우시지만 뭐 적어 두신 게 있을 테니 좀 끄내 보셨으면 좋겠는데요.”
그 말을 듣자 기천은 딴전을 부리듯,
“여보게, 우리 그런 얘긴 뒀다 허세. 술이 취해서 지금 옹송망송헌데…….”
하고 고리대금업자는 살금살금 꽁무니를 뺀다. 동혁은 버쩍 다가앉으며,
“아니올시다. 일이 좀 급헌데요. 참 술김에 비밀히 여쭙는 말씀이지만, 주인어른께서 우리 회의 회장이 되신 데 대해서 불평을 품는 젊은 사람들이 있는 줄은 짐작허시겠지요? 그 중에 몇몇은 혈기가 대단해서 제 손으루는 꺾을 수가 없는데, 이번에 좀 후허게 인심을 써주셔야 과격헌 행동꺼정 허려구 벼르는 청년들을 어떻게 주물러 볼 수가 있겠에요. 사세가 매우 급허길래 이렇게 찾어뵙구 무사히 타첩을 허시두룩 허는 게니, 나중에 후회가 없으시두룩 허시는 게 상책일 것 같어요. 점잖으신 처지에 혹시 길거리에서래두 젊은 사람들헌테 단단히 창피를 당허시면 거 모양이 됐습니까?”
하고 타이르듯 하니까, 기천은,
“아아니, 자네가 날 위협을 허는 셈인가?”
하며 빨끈하고 쇤다. 동혁은 정색을 하며,
“온 천만에, 위협이라뇨. 그렇게 오해를 허신다면 무슨 일이 생기던 저버텀 발을 뺄 터니 맘대루 해보세요.”
하고 정말 슬그머니 을러메었다. 기천은 상을 물리고 담배를 붙여 물었다. 숨이 가쁜 듯 벽 가 기대어 쌔근쌔근하며 한참이나 대 물뿌리만 잘강잘강 씹다가,
“그야 웃음엣말일세만 내 귀에두 이런 말 저런 말 들리네. 저희들이 날 어쩌기야 허겠나만, 아닌 게 아니라 모두 마구 뚫은 창구녁 같아서 걱정일세. 나 없는 새 회관 문짝을 걷어차서 떼어 놨다니 온 그런 무지막지헌 놈들이 있나. 허나, 자네 같은 체면두 알구 지각 있는 사람이 있으니까 좋두룩 무마를 시켜 줄 줄 믿네.”
하고 금세 한풀이 꺾인다.
“그러니까 뒷일은 제게다만 맡겨 주시구, 그 대신 제 말씀은 들어 주셔야 헙니다.”
하고 동혁은 바짝 들러붙었다.
제아무리 깐죽깐죽한 사람이라도, 술이 잔뜩 취한데다가 말을 아니 들으면 당장에 저를 엎어누를 듯한 형세를 보이는 동혁의 위품에는, 한 손 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신변의 위험을 모면하려는 것뿐 아니라 저 딴에는 술기운에 마음이 커져서,
“어디서 돈들이 생겨서 한몫 갚는다는 건가?”
하며 머리맡의 문갑을 열고 극비밀로 넣어 둔 치부책을 꺼내는데, 열쇠가 제 구멍을 찾지 못할 만치나 수전증이 나서 이 구멍 저 구멍 허투루 꽂다가 열었다. 동혁은 그 돈이 삼사 년 동안이나 죽을 애를 써서 모은 돈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서류를 꺼내서 채권자가 적어 둔 것과 차용증서를 일일이 대조를 해서 금액을 맞추어 본 뒤에 수건에 꼭꼭 싸서 허리에 차고 온 지전 뭉치를 꺼내더니,
“자아, 세보시지요.”
하고 밀어 놓는다.
기천의 눈은 버언해졌다. 담배진이 노랗게 앉은 손가락에 침칠을 해가며 지전을 세어보더니,
“이걸루야 빠듯이 본전밖에 안 되네그려?”
하고 변색을 한다. 동혁은, ‘이때를 놓치면 안 된다!’하고 위엄 있게 기천을 똑바로 쏘아보며,
“아아니, 그럼 오 푼 변으루 놓은 걸 변리까지 다 받으실 줄 아셨든가요? 법정 이자두 두 푼 오 리밖에 아니 되는데 그 사람들의 사폐를 봐줍시사구 제가 일부러 온 게 아니겠에요? 그 사람들이 안 내겠다구 버티면 어떡허실 텝니까? 그 여러 사람을 걸어 재판을 허려면 소송 비용이 얼마나 들지두 따져 보면 아시겠지요?”
하고 무릎이 마주 닿도록 더 부쩍 다가앉는다. 기천은 바윗덩이만한 사람에게 짓눌릴 것 같아서, ‘저눔이 여차직허면 날 한구석에다 몰아넣구 목줄띠라두 조르지 않을까.’하고 속으로는 겁이 났다. 그러면서도,
“여보게, 내가 자선사업으루 돈놀이를 허는 줄 알었나? 인제 와서 천 원 돈에 가까운 이자를 한 푼두 받지 말라는 거야 될 뻔이나 헌 수작인가?”
하고 실토를 하면서 앙버틴다. 동혁은 그 말에 정말로 흥분이 되어서,
“아, 그래 회장 체면에 앞으루두 고리대금을 해자실 텝니까? 그만큼 긁어모았으면 흡족허지, 죽지 못해 사는 회원들의 고혈까지 긁구두 양심에 가책을 받지 않을까요? 그 돈인즉슨 조합에 근저당을 해놓구 한 푼두 못 되는 변리루 얻어다가 오 푼씩, 심허면 장변까지 논 게 아닙니까?”
하고 목소리를 버럭 높이며 목침을 들어 장판 바닥이 움쑥 들어가도록 탁 내리쳤다. 그와 동시에 기천의 가슴도 쿵 하고 울렸다. 그래도 기천은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 노랑 수염만 배틀어 올리면서 꽁꽁 하고 안간힘을 쓰더니 최후로 용기를 내어 발악한 듯,
“난 헐 수 없네!”
하고 똑 잡아뗀다. 기한을 몇 번만 넘기면 채무자를 불러다 세워 놓고 ‘이놈아, 이 목을 베 고 재칠 놈 같으니라구. 외손씨아에 불알을 넣고는 배겨두 내 돈을 먹군 못 배길라’하고 진땀이 나도록 기름을 짜던 솜씨라, 아무리 동혁의 앞이라도 돈에 들어서만은 저의 본색을 나타내는 것이다.
“저엉 헐 수 없을까요?”
동혁의 얼굴이 뻘개졌다. 씨근거리는 숨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두 번 말헐 게 있나. 헐 수 없으니깐 헐 수 없다는 게지.”
그 말을 듣자 동혁은,
“그럼 나 역시 헐 수 없쇠다. 우격으루 될 일이 아니니까요.”
하고 기천의 앞에 내놓았던 지전 뭉치를 도루 집어 꼭꼭 싸서 허리춤에다 차며,
“허지만 이 돈은 졸연히 받지 못헐 줄 아세요. 앞으루 무슨 일이 생기든 나는 책임을 질 수 두 없구요.”
하고 목침을 걷어차며 벌떡 일어섰다.
동혁이가 장지를 탁 닫고 나갈 때까지 기천은 달싹도 아니 하고 앉았다. 신발 소리가 어둑침침한 마당으로 내려가는 것을 듣고야 발딱 일어나서,
“여게, 날 좀 보게.”
하고 쫓아 나갔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동혁의 말따나 까딱하면 본전도 건지기가 어렵고, 두고두고 녹여서 받는대도 여간 힘이 들 것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기만이에게 오백 원이나 급전을 도적맞아서 그 벌충을 대야만 되게 된 형편인데, 또 한편으로는 동혁이가 감정이 잔뜩 난 회원들을 선동해 가지고 밤중에 습격이라도 할 것 같아서 미상불 겁이 났던 것이다.
“왜 그러세요?”
동혁의 대답은 매우 퉁명스럽다.
“이리 잠깐만 들어오게.”
“들어감 뭘 허나요.”
“글쎄, 잠깐만 들어와. 이 사람, 왜 그렇게 변통수가 없나?”
동혁은 못 이기는 체하고 따라 들어갔다.
“그거 이리 내게. 오입해 없앤 셈만 치지.”
하고 기천은 손을 벌린다. 동혁은,
“그럼 그 차용증서 모아 둔 걸 이리 주시지요.”
하고 돈과 차용증서를 바꾸어 들었다. 그러고는 눈을 꿈벅꿈벅하더니,
“매사는 불여튼튼이라는데, 돈을 한 푼두 안 남기구 다 받었다는, 표를 하나 써주시지요.”
해서 빚 갚은 증서를 씌우고 도장까지 찍게 하였다. 동혁은 그제야 수십 장이나 되는 인찰지를 구겨 쥐고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재떨이 위의 성냥을 집어 확 그어 대었다.
이 별
그 뒤로 회원들은 물론 동네의 인심은 동혁에게로 쏠렸다. 젊은 사람들의 일에 쫓아다니며 훼방까지는 놀지 않아도,
“저 녀석들은 처먹구 헐 짓들이 없어서 밤낮 몰려만 댕기는 게여.”
하고 마땅치 않게 여기던 노인네까지도,
“미상불 이번에 동혁이가 어려운 일 했느니.”
“아아무렴, 여부지사가 있나. 우리네 수루야 어림두 없지. 언감생심 변리를 한 푼두 아니 물다니.”
하고 동혁의 칭송이 놀라웠다. 너무나 고마워서 동혁을 찾아와서 울면서 치사를 하는 부형도 있는데, 그 통에 박첨지는 아들 대신으로 연거푸 사나흘씩이나 끌려다니며 막걸리를 얻어먹고 배탈이 다 났다. 동혁은, ‘자아, 빚들은 다 갚었으니까 앓던 이 빠진 것버덤 더 시원허지만, 이젠 어떻게 전답을 떨어지지 않구 지어먹을 도리를 차려야 셈들을 펴구 살어보지.’하고 제이단책(第二段策)을 생각하기에 골몰하였다. 그러다가, ‘급허다구 우물을 들구 마시나. 처언천히 황소 걸음으루.’하고 저 자신과 의논을 해가면서 회원들의 생활이 짧은 시일에 윤택해지지는 못하나마, 다시 빚은 얻지 않을 만치 생계를 독립할 수 있는 정도까지는 끌어올리고 말리라 하였다. 농지령(農地令)이라는 것이 발포되었대야 결국은 지주들의 맘대로 할 수가 있게 된 것이니까, 어떻게 강도사 집뿐 아니라 다른 지주들까지도 한 십 개년 동안만 도지로 논을 내놓게 만들었으면, 힘껏 개량식으로 농사를 지어 그 수입으로 땅 마지기씩이나 장만을 하게 될 텐데…… 하고 꿍꿍이셈을 치고 있는 중이다. 회원들의 돈은 빚을 깨끗이 청산하고도 육십 여 원이나 남아서, 그것을 밑천으로 새로이 소비조합을 만들 예산을 세웠다.
그러나 형의 속을 이해하지 못하는 동화는 다른 반대파의 회원들보다도 불평이 많았다. 워낙 저만 공부를 시켜 주지 않았다고 부형의 탓을 하는 터에 제 말따나 형 때문에 장가도 들지 못해서 그런지 계모 손에 자라난 아이 모양으로 자격지심이 여간 대단하지가 않다. 이번 일만 해도,
“성님두 물렁팥죽이지, 그깐 녀석을 요정을 내버리지 못헌단 말요? 겨우 변리 안 받은 게 감지덕지해서 우리 회의 회장이란 명색을 준단 말요? 난 나 혼자래두 나와 버릴 테유. 그 아니꼰 꼴을 안 보면 고만이지.”
하고 투덜댄다. 그러면 동혁은,
“네 형은 창피하거나 아니꼬운 줄을 몰라서 죽치구 있는 줄 아니? 호랑이 굴속엘 들어가야 호랑이 새끼를 얻는 법이란다.”
하고 섣불리 혈기를 부리지 말라고 타이르건만, 그래도 아우는,
“흥 어느 때구 두구 보구려. 내 손으루 회관을 부숴 버리구 말 테니…….”
하고 입술을 깨물며 벼른다.
“글쎄 얘야, 지금 회관을 쓰구 못 쓰는 게 시급헌 문제가 아니라니깐 그러는구나. 언제든지 우리 손으루 다시 들어오게 허구야 말걸. 왜 그렇게 성미가 급허냐.”
하면서도 어느 때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라서 형은 마음이 놓이지를 않았다.
조기회는 여전히 하나, 회관은 커다란 자물쇠를 채운 채 쓰지를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쓰지를 않는 게 아니라 그 동안 기천이가 여러 번 열라고 명령을 하였어도 동화와 갑산이가 쇳대를 감추고는 서로 밀고 내놓지를 않아서 쓰지를 못하고 있다.
“얘 동화야, 인제 그만 쇳대를 내놔라. 이렇게 켕기구 있다가는 필경 기천이가 남의 힘을 빌려서까지 강제루 열기가 쉬우니 그때두 너희들이 안 내놓구 배길 테냐. 무슨 회든지 우리끼리 합심만 허면 또다시 만들어질걸.”
하고 순순히 타일러도, 동화는,
“아, 어느 놈이 우리가 지은 회관을 강제루 열어요? 흥, 난 그럴 때만 기다리구 있겠수.”
하고 끝끝내 형하고도 타협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야학도 새 집에서 못하고 전처럼 남의 머슴사랑을 빌려 가지고 구석구석이 하게 되었다.
영신에게서는 하루 걸러큼 편지가 왔다. 침대 위에서 따로따로를 하다가 송엽장(松葉杖)을 짚고 걸음발을 타게까지 되었는데, 인제는 밥을 먹고도 소화가 잘 된다는 것이며, 의사는 좀 더 조섭을 하라고 하나, 비용 관계로 더 있을 수가 없어서 불일간 퇴원을 하겠다는 반가운 소식이 뒤를 이어 왔었다. 공책에다가 일기를 쓰듯이 감상을 적은 것을 떼어 보내기도 하고, 이번에 당신이 아니었더면 벌써 황천길을 밟았을 것을 살아났다는 만강의 감사와, 떠나보낸 뒤의 그립고 아쉬운 정을 애틋이 적어 보낸 것이었다. 이번 편지는 퇴원을 하느라고 부산한 중에 급히 쓴 연필 글씨로,
청석골의 친절한 여러 교인과 학부형들에게 에워싸여서 지금 퇴원을 합니다. 그러나 천만 사람이 있어도 이 영신에게는 새로운 생명을 주신 은인이시고 영원한 사랑이신 우리 동혁 씨와 이 기쁨을 노느지 못하는 것이 무한히 섭섭합니다.
그러나 또 한 가지 기쁜 소식을 전해 드리는 것은 일전에 서울 연합회에서 백현경 씨가 절 위해서 내려왔었는데, 정양도 할 겸 횡빈(橫濱)에 있는 신학교로 가서 몇 해 동안 수학을 하도록 주선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올라갔는데요, 여러 해 벼르고 벼르던 유학을 하게 된 것은 기쁘지만 또다시 당신과 더 멀리 떨어져 있을 생각을 하니 무한히 섭섭해요. 지금 버텀 눈물이 납니다. 어수선스러워서 고만 쓰겠어요. 답장은 청석골로―
××월 ××일 당신의 영신
동혁은 즉시 답장을 썼다. 편지가 올 때마다 간단히 회답은 하였지만, 수술한 경과가 좋아서 안심도 되었고 동네 일로 심정이 쓰라려서 긴 편지는 쓰지 못하고 있었다. 영신을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간호를 해주고 있는 동안에 무언중에 정이 더 깊어진 것을 깨달았고, 피차의 성격이나 사랑하는 도수는 가장 어려운 일을 당해 보아야 비로소 알아지고 그 깊이를 측량할 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동혁은(영신도 그렇지만) 영신이가 연애하는 사람이라느니보다도, 이미 자녀까지 낳고 살아오는 아내와 같이 느껴졌다. 그만치나 미덤성스럽고 듬숙한 맛이 있어서, 편지를 쓰는 데도 남들처럼 달콤한 문구는 쓰려야 써지지가 않았다.
무사히 퇴원하신 것을 두 손을 들어 축하합니다. 즉시 뛰어가서 완쾌하신 얼굴을 대하고는 싶지만, 지금 내가 떠나면 동네 일이 또 엉망으로 옭힐 것 같어서 험악한 형세가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중이니 섭섭히 아셔도 헐 수 없는 일이외다.
유학을 가시게 된다구요? 내가 반대를 한대도 기어이 고집하고 떠나가실 줄은 알지만, 신학교로 가신다니(지원한 것은 아니라도) 신앙이 학문이 아닌 것은 농학사나 농학박사라야만 농사를 잘 지을 줄 아는 거와 마찬가지가 아닐는지요. 하여간 건강상태로 보아 당분간 자리를 떠나서 정양할 기회를 얻는 것은 나도 찬성한 것이지만…….
우리가 약속한 삼개년 계획은 벌써 내년이면 마지막 해가 옵니다. 그런데 또 앞으로 몇 해를 은행나무처럼 떨어져 있게 될 모양이니 실로 앞길이 창창하고 아득하외다.
영신 씨! 우리의 청춘은 동아줄로 칭칭 얽어서 어디다가 붙들어 맨 줄 아십니까? 우리의 일 이란 관 뚜껑을 덮을 때까지 끝나는 날이 없을 것이니, 사업을 다하고야 결혼을 하려면 백 살 천 살을 살어도 노총각의 서글픈 신세는 면하지 못하겠군요. 조선 안의 그 숱한 색시들 중에 ‘채영신’ 석 자만 쳐다보고 눈을 꿈벅꿈벅하고 기다리는 나 자신이 못나기도 하고 어찌 생각하면 불쌍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결코 동정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나 하루바삐 우리 둘이 생활을 같이 하고 힘을 한데 모아서, 서로 용기를 돋워 가며 일을 하게 되기를 매우 조급히 기다리고 있소이다. 며칠 틈만 얻게 되면 또 한 삼백 리 마라톤을 하지요. 부디부디 몸을 쓰게 되었다고 무리한 일은 하지 마십시오! 그것만이 부탁이외다.
당신의 영원한 보호 병정
어느덧 해가 바뀌어 음력으로 정월이 되었다. 학원은 구습에 의해서 일주일 동안 방학을 했지만, 명절이라 해도 계집아이들이 울긋불긋한 인조견 저고리 치마를 호사라고 입고 세배를 다닐 뿐. 흰떡 한 모태 해먹는 집이 없어, 떡 치는 소리 대신에 여기저기 오막살이에서 널을 뛰는 소리만 떨컹떨컹 하고 들린다. 한곡리에는 풍물이나 장만한 것이 있어 청년들이 두드리지만, 그만한 오락기관도 없는 청석골은 더한층 쓸쓸하다.
연일 눈이 쏟아지다가 햇발이 퍼져서 땅은 질척거려 세배꾼들의 모처럼 얻어 입은 때때옷 뒤와 버선이 진흙투성이다. 지붕에 쌓인 눈이 고드름과 함께 추녀 끝으로 녹아내려 뚜욱뚜욱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영신은 책상 앞에 턱을 괴고 앉아서 생각에 잠겼다. 의식적으로는 센티멘털리즘(哀傷主義) 을 송충이와 같이 싫어하면서도, 소복을 잘못해서 건강이 전처럼 회복되지 못한 탓인지 고요한 시간만 있으면 저의 신세가 고단하고 공연히 서글픈 생각이 들어 저도 모르는 겨를에 눈물이 흘러내리는 때가 있다.
‘동혁 씨 말따나 아까운 청춘을 이대로 늙혀서 옳은가. 인생이란 본시 이다지도 고독한 것인가.’하고 스스로 묻기도 하고 한숨도 짓는다.
‘왜 너에게는 박동혁이가 있지 않으냐. 그 튼튼하고 미덤성스러운 남자가 너의 장래를 맡지 않었느냐?’
‘그렇다. 그와 평생의 고락을 같이 할 약속을 하였다. 나는 그이를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사랑한다. 열렬히 사랑한다. 그러나 결혼을 한다고 나 한몸을 그에게 의지하려는 것은 아 니다. 밥을 얻어먹고 옷을 얻어 입고, 자녀를 낳어주기 위한 결혼을 꿈꾸는 것은 결단코 아니다. 두 사람이 육체적으로 결합이 된대도 내가 할 일이 따로 있다. 이 현실에 처한 조선의 인텔리 여성으로서 따로이 해야만 할 사업이 있다. 결혼이 그 사업을 방해한다면 차라리 연애도 결혼도 하지 말어야 한다. 청상과부처럼, 미스 필링스처럼 독신으로 늙어야만 한다.’
‘그러나 외로운 것을 어찌하나. 이다지도 지향 없이 헤매는 마음을 어디다가 붙들어 맨단 말 이냐.’
‘너에게는 신앙이 있지 않으냐.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불러 왔고, 그의 독생자에게서 희생과 봉사의 정신을 배웠고, 가장 어려울 때와 괴로울 때에 주를 부르며 아침저녁 기도를 올리지 않었느냐.’
‘그렇다. 그러나 인제 와서는 무형한 그네들을 믿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가 없다. 사람을 믿고 싶다! 육안으로 보이는 좀 더 똑똑한 것, 확실한 것, 즉 과학을 믿고 싶다! 직접으로 실험할 수 있는 것을, 노력하는 정비례로 그 효과를 눈앞에 볼 수 있는 그러한 일을 하고 싶다!’
영신은 마음속의 문답을 제 귀로 들을수록 생각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그는 퇴원을 한 후 에 달포나 누웠다 일어나 보니, 학원 일은 청년들만 맡겨 놓아서 뒤죽박죽이다. 그밖에도 부인들의 모임이나 모든 것으로 보아 그네들의 손으로 자치를 해나가려면 아직도 이삼 년 동안은 열심으로 지도를 해주어야만 될 것 같다.
영신은 더 누웠을 수가 없었다. 몸을 조금만 과히 움직이면 수술한 자리가 당기고 아픈 것을 억지로 참고 하루 몇 차례씩 학원으로 오르내렸다. 이것저것 분별을 하고 돌아다니려면 자연히 운동이 과도하게 되고, 따라서 한번 쓰러지면 일어날 수가 없도록 피로하였다.
‘이러다가는 안 되겠다. 어쨌든 내 몸이 튼튼해지고 볼 일이다.’
하면서도 타고난 그의 성격이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하게 한다.
‘아무튼 이번 기회에 눈 딱 감고 건너가서 공부를 하고 돌아오자. 나만한 지식으로 남을 지도한다는 것부터 대담하였다. 양심에 부끄러운 일이다.’
하고 다시 한 번 청석골을 떠날 결심을 하였다.
‘동혁 씨는 왜 온다온다 하고 선문만 놓고 아니 올까. 또 동네에 무슨 일이 생겼나?’
하고 별별 생각을 다 해보다가, ‘서울서 노자가 오는 대로 음력 보름께쯤 떠날 예정이니, 그 안에 꼭 와달라’고 편지를 썼다. 다시 한 번 만나서 전후 일을 의논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동안 기천이는 장근 두 달째나 누워 있었다. 병을 앓는 것이 아니라, 타동에 나가서 양반 자세를 하다가 임자를 톡톡히 만나서 졸경을 쳤는데, 골통이 깨어지고 가슴에 담이 들어서 꼼짝 못하고 누워서 음력 과세를 하였다.
회장이 된 첫 번 행세를 하려고 제 동네서는 못해도 저도 돈 십 원이나 기부를 한 읍내 소방조 출초식(消防組出初式)에 참례를 했다가, 술이 엉망진창으로 취해서 밤중에 자전거를 끌고 오다가 신작롯가에 있는 주막으로 비틀거리며 들어갔다. 계집이라면 회를 치려고 드는 기천은, 그 주막 갈보의 소위 나지미상이었다. 술김에 더욱 안하무인이 된 기천은 제가 맡아논 계집이라 기침도 아니 하고 방문을 펄썩 열었다. 허술하게 박은 돌쩌귀가 떨어지면서 문은 덜커덕 열렸다. 방 안은 캄캄하다.
“옥화야!”
“……”
대답이 없다. 기천은 구두를 신은 채 방으로 들어서며 성냥불을 확 켰다. 옥화란 계집은 발가벗은 몸을 불에 데인 버러지처럼 옴치러뜨리는데, 커다란 버선발이 이불 밖으로 쑥 비어져 나왔다. 동시에 만경을 한 듯한 기천의 눈에는 질투의 불길이 타올랐다.
“누구냐?”
소리를 바락 지르며 이불을 홱 벗겼다.
“이눔아, 넌 누구냐?”
감때가 사납게 생긴 사내는 벌떡 일어났다. 기천은 그자의 얼굴을 보고,
“이놈, 너 용준이 아니냐? 발칙헌 놈 같으니라구, 너 이놈 양반을 못 알어보구, 내가 댕기는 집인 줄 뻔히 알면서 이 죽일 놈 같으니…….”
기천의 구둣발길은 대뜸 용준이라고 불린 사내의 허구리를 걷어찼다. 그 다음 순간 기천의 눈에서는 번갯불이 뻔쩍하였다. 따귀를 한 대 되게 얻어맞고 정신이 아뜩해서 쓰러지는 것을, 그 왁살스러이 생긴 사내는,
“요놈아, 술 파는 계집꺼정 다 네 계집이냐? 타동에 와서두 양반 행세를 해. 너 요놈의 법이 이 어따가 발길질을 허는 거냐?”
하고 호통을 하더니,
“아무튼 잘 만났다. 양반의 몸뚱이엔 매가 튈 줄 아느냐?”
하고 기천의 멱살을 바싹 추켜잡고 컴컴한 마당으로 끌고 나가더니,
“너 요놈의 새끼, 네놈의 집 머슴살이 삼 년에 사경두 다 못 찾아 먹구 네게 얻어맞구서 쫓 겨난 내다. 어디 너 좀 견뎌 봐라.”
하고 마른 정강이를 장작개비로 패고 발딱 자빠트려 놓고는 발뒤꿈치로 가슴을 사뭇 짓밟았다. 기천은 한마디 못 하고 깩! 깩! 거리며 죽도록 얻어맞는 것을 계집이 버선발로 뛰어 내려가서 간신히 뜯어말렸다.
용준이는 삼 대째 강도사네 행랑살이를 하다가 언사가 불공하다고 기천에게 작대기찜질을 당하고 쫓겨나서, 그 원한을 품고 잔득 앙심을 먹고 벼르는 판에 외나무다리에서 호되게 걸려들었던 것이다.
기천은 아주 초죽음이 되었다가 새벽녘에야 간신히 저의 집으로 기어들었다. 머슴 놈에게 얻어맞았다기는 창피해서, “취중에 자전거를 타다가 봉변을 했다.”고 꾸며 대고 산골을 캐어 오너라, 약을 지어 오너라 하고 야단법석을 하였다. 분한 생각을 하면 용준이란 놈의 배를 가르고 간을 날로 씹어도 시원치 않겠지만, 창피한 소문이 날까 보아 단골 버릇인 고소도 못하고 속으로만 꽁꽁 앓고 있었다.
그러나 그 소문은 온 동네는커녕 읍내까지도 좌악 퍼져서, “아이고 잘코사니나! 그래두 뼈다귀는 추다렸던가?”하고 고소해서들 하는 소리를 제 귀로만 듣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면역소의 지휘로, 음력 대보름날을 기회삼아 한곡리 진흥회의 발회식을 열게 되었다. 낮에는 편을 갈라 윷놀이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까지도 갑산이와 동화는 회관의 열쇠를 내놓지 않았다. 발회식만 할 테니 임시로 빌려 달라고 기천이가 사람을 줄달아 보내도, “천만읫말씀이라구 여쭤라.”하고 끝끝내 버티었다. 기천이가 읍내로 장거리로 돌아다니며 ‘우리 한곡리 진흥관만은 미상불 다른 동네 부럽지 않게 미리 지어 놓았다’고 제 손으로 짓기나 한 것처럼 생색을 뿌옇 게 내는 것이 깨물어 죽이고 싶도록 얄미웠던 것이다.
집에서 형제가 가마니를 치고 있던 동혁은 틈틈이 손을 쉬고 눈을 딱 감고는 대세를 살펴보았다. ‘허어, 이러다간 큰일나겠군. 양단간에 귀정을 지어야지.’하고는,
“얘, 동화야!”
하고 아우를 넌지시 불렀다.
“너 인제 고만 회관 열쇠를 내놔라. 누구헌테든지 저의 주장을 굽혀선 못 쓰지만, 일이란 그때그때 형편을 봐서 임시변통을 허는 수두 있어야지, 너무 곧이곧대루만 나가면 되레 옭히는 경우가 있느니라.”
하고 타일러도, 동화는 머리를 끄덕이지 않는다.
“넌 날더러 물렁팥죽이라구 별명을 짓지만, 형두 생각허는 게 있어서 그러는 거야. 들어 봐 라, 입때까지는 우리 청년들 열두 사람만이 단합해서 일을 해오지 않었니? 헌 일두 없다만 …… 그런데 이번엔 기회가 좋으니 우리 온 동네 사람이 다 모이는 김에, 우리의 운동허는 범위를 훨씬 넓혀서 한번 큼직하게 활동을 해보자꾸나. 인심이 우리헌테루 쏠릴 건 정헌 이치니까, 결국은 우리들이 주장허는 대루 될 게 아니냐. 진흥회란 무슨 행정 기관두 사법 기관두 아니구, 그저 일종의 자치기관 비슷헌 게니까, 웬만헌 일은 우리 손으루 다 헐 수가 있단 말이다. 아무튼 강기천이 한 사람을 상대로 끝까지 다투는 동안에 동네일은 아무것두 안 되구 그 애를 써서 지은 회관두 우리 맘대루 쓰지를 못허니 실상은 우리의 손해지 뭐냐? 그러니 모든 걸 형헌테 맡기구, 문을 열어 놔라. 잘 질 줄을 아는 사람이라야 이길 줄두 안단다.”
하고 진심으로 권하였다. 동화는 그제야 마지못해서,
“난 몰루. 성님꺼정 아마 맘이 변했나 보우.”
하고 갑산이와 번차례로 차고 다니던 열쇠를 끌러서 기직 바닥에다가 퉁명스러이 던졌다.
저녁때에야 회관문은 열렸다. 연합진흥회장인 면장과 협의원들과 주재소에서 부장이 나오고, 금융조합 이사며 근처의 이른바 유력자들이 상좌에 버티고 앉았다. 한곡리에 거주하는 백성들은 매호에 한 사람씩 호주가 참석을 하게 되었는데, 상투는 거진 다 잘랐지만 색의를 장려한다고 면서기들이 장거리나 신작로에서 흰 옷 입은 사람만 보면 잉크나 먹물을 끼얹기 때문에 미처 흰 두루마기에 물감을 들여 입지 못한 사람은 핑계 김에 나오지를 않았다. 그래도 대동의 큰 회합이니만치 회관이 빽빽하게 들어찼다.
기천이는 맨 나중에 단장을 짚고 기엄기엄 올라왔다. 그 푼더분하지 못하게 생긴 얼굴은 노랑꽃이 피었는데, 머슴에게 얻어맞은 자리가 몸을 움직이는 대로 결리는지, 몇 발자국 걷다가는 가슴에다 손을 대고 안간힘을 쓰며 낙태한 고양이 상을 한다. 그러면서도 면장과 기타 공직자에게 최경례를 하듯이 허리를 굽히는 것은 물론, 동민들이 인사를 하면 전에 없이 은근하게 답례를 하고, 그 중에도 말마디나 할 만한 사람에게는 얄궂은 추파까지 던진다.
기천이가 맨 앞줄에 가 앉자, 구석에 한덩이로 뭉쳐 앉은 회원들의 눈은 빛났다. 기천의 사촌인 구장이 개회사를 하고, 면장이 일어서서 진흥회의 필요와 역사와 또는 사명을 거진 한 시간 동안이나 늘어놓은 뒤에, 순서를 따라 회장을 선거하는 데 이르렀다. 임시 의장인 구장이 일어나서,
“지금부터 새로 창립된 우리 동네 진흥회를 대표할 회장을 선거하겠소. 물론 연령이라든지 이력이나 재산 같을 것을 보아 회장 될 만한 자격이 충분한 분을 선거할 줄 믿는 바이오.”
하고 저의 사촌형을 곁눈으로 흘겨보며,
“자, 그럼 간단하게 호명을 해서 거수로 결정을 하는 것이 어떻겠소?”
하고 동민들에게 형식적으로 묻는다. 그러나 농우회의 회원들밖에는 호명이라든지 거수라든지 하는 말조차 못 알아듣고 어리둥절 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좀 시간은 걸리지만 신중히 선거할 필요가 있으니 무기명으로 투표를 헙시다.”
하고 동혁이가 일어서며 반대를 하는 동시에 동의를 하였다.
“찬성이오―”
“찬성이오―”
소리가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일어났다.
구장이 기천의 이름을 부르고 찬성하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하면, 기천의 면전이라 속으로는 마땅치 않으면서도 면에 못 이겨 남의 뒤를 따라 손을 들게 될 것을 상상한 까닭이다. 동혁이 자신은 결코 경쟁자는 아니면서도 정말 민심이 어느 편으로 돌아가나? 그것을 참고로 보려는 것이었다. 또는 기천이가 전례에 없이, 정초라고 동리의 모모한 사람을 불러다가 코들을 골도록 술을 먹였고 이러한 수단까지 쓴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단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바로 섣달 대목에 기천의 집의 이십 원을 주마 해도 아니 판 큰 돼지가 새끼를 낳다가 염불이 빠져서 죽었다. 저의 집에서는 꺼림칙하다고 먹는 사람이 없고 장거리의 육지기를 불러다 팔려니 죽은 고기라고 단돈 오 원도 보려고 들지를 않는다. 기천은 큰 손해를 보아서 입맛은 썼으나 썩어 가는 고기를 처치할 것을 곰곰 생각 하던 끝에 묘안을 얻고 무릎을 탁 쳤다. 그날 저녁 동네의 육십 이상 된 노인이 있는 집에는 죽은 지 이틀이나 되어서 검푸르게 빛 변한 돼지고기가 두 근, 혹은 세 근씩이나 세찬이란 명목으로 배달되었다. 북어 한 쾌 못하고 과세를 하는 그네들에게…….
무기명으로 투표를 하는 데도 대필로 쓴 사람이 많았다. 여러 해 가르쳐서 한곡리 아이들은 남녀를 물론하고 글자를 모르는 아이가 거진 하나도 없게 되었건만 어른들은 반수 이상이 계통문(禊通文)에 제 이름을 쓴 것도 알아보지 못하는 까막눈들이다.
매우 긴장된 공기 가운데 개표를 하게 되었다. 투표된 점수를 적어 들고 이름을 부르는 구장의 손과 입은 함께 떨렸다.
“강기천 씨 육십칠 점!”
손톱 여물을 썰고 앉았던 기천의 얼굴에는 남의 눈에 띄지 않을 만한 안심의 미소가 살짝 지나갔다.
“박동혁 씨 삼십팔 점!”
하고 나서,
“이 나머지는 몇 점씩 되지 않으니까 읽지 않겠소.”
하고 구장은 목소리를 높여 투표한 사람들을 둘러보며,
“여러분의 추천으로, 당 면의 면협 의원이요 금융조합 감사요 학교 비평의원인 강기천 씨가 절대 다수로 우리 한곡리 진흥회의 회장이 되셨소이다.”
라고 선언을 하였다. 내빈들 측에서 박수 소리가 일어났다. 동혁은 의미 깊은 미소를 띠고 앉아서 박수하는 광경을 바라다보는데,
“반대요!”
“썩은 돼지고기가 투표를 헌 게요―”
“암만 투표가 많어두 그건 무효요― 협잡이 있소!”
동화와 정득이가 번차례로 일어서며 얼굴이 시뻘개 가지고 고함을 지른다. 회관에 가득 찬 사람들의 시선은 농우회원들이 몰려 앉은 데로 쏠렸다. 기천도 그편을 힐끔 돌려다보는데 동혁은 어느 틈에 아우의 곁으로 갔다. 동화는 눈을 부릅뜨고 더한층 흥분이 되어서,
“아무리 우리 동네에 사람이 귀하기로서니, 고리대금업자가 아니면 회장감이 없단 말이오? 주막거리 갈보년허구 상관을 하다가 머슴 놈헌테…….”
하고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다가 형에게 입을 틀어 막히듯 해서 말끝을 맺지 못하며 주저앉는다. 동혁은 아우의 내두르는 팔을 잡아 누르고 무어라고 귓속말을 하다가 손목을 잡고 밖으로 끌어냈다. 동화는 뻗딩기다 못해 끌려 나가면서도,
“너 이놈, 어디 회장 노릇을 해먹나 두구 보자! 이건 우리 회관이다. 피땀을 흘리며 지은 집이야!”
하고 고래고래 지르는 소리가 들리는 대로, 머리를 떨어뜨리고 앉은 기천의 얼굴은 노래졌다 하얘졌다 한다. 장내는 수성수성하고 살기가 떠도는데, 구장은,
“여러분 조용허시오. 성치 못한 사람의 말을 탄할 게 없소이다.”
하고 내빈들의 긴장된 얼굴을 둘러보며 연방 허리를 굽힌다. 동혁은 갑산이와 정득이를 불러내어,
“이 사람들아, 혈기를 부릴 자리가 아니야. 어서 나가서 동화가 또 못 들어오게 붙들구 있 게.”
하고 엄중히 명령을 한 뒤에 다시 회관으로 들어갔다. 기천은 여러 사람에게 눈총을 맞아서 얼굴 가죽이 따가운 듯 고개를 수그리고 있다가 발딱 일어서더니,
“온, 동리에 미친놈이 있어서 창피해 견딜 수가 있어야지.”
하고 중얼거리다가,
“몸이 불편해서 먼저 실례합니다.”
하고 내빈석을 바라보고, 나를 좀 붙들어 달라는 듯이 허리를 굽히고는 앞에 앉은 사람을 떠다 밀며 나간다.
“아, 어딜 가세요?”
“교오상, 왜 이러시오? 어서 이리 와 앉으시지요. 주책없는 젊은 것들의 함부로 지껄이는 말에 개계할 게 있소?”
하고 면장과 구장은 기천의 소매를 끌어들인다. 기천은,
“내가 이까짓 진흥회장을 허구 싶댔소? 불러다 앉혀 놓구 욕을 뵈니 온 그런 발칙한 놈들 이…….”
하고 한사코 뿌리치는 체하는 것을,
“자, 두말 말우. 지금버텀 교오상이 회장이 됐으니, 역원들이나 선거를 허시오.”
하고 면장은 명령하듯 하고 회장석에다 기천을 앉혔다. 기천은 마지못해서 붙들려 들어온 체하면서도, 독을 못 이겨 쌔근쌔근한다. 동혁이도 억지로 흥분을 가라앉히며 기천의 하는 꼴을 바라다보았다. 유력한 편의 지지로 기천은 몇 번 사양하다가 못 이기는 체하고 회장의 자리로 나갔다.
“애헴, 애헴.”
하는 밭은 기침 소리는 염소라고 별명을 듣는 저의 아버지의 목소리와 똑같다.
“에에, 본인이 박학천식임을 불고하고 회장의 책임을 맡게 된 것은 전혀 여러 동민이 자별히 애호해 주는 덕택인 줄 아오. 굳이 사퇴하는 것은 도리어 여러분의 호의를 어기는 것 같어서 부득이 이 자리에 나오게 된 것이오. 미력하나마 앞으로는 관청에서 지도하시는 대로 우리 농촌의 진흥을 위해서 전력하겠으니 여러분도 한맘 한뜻으로 나아가 주기를 바라는 바이오.”
새로운 회장이 일장의 인사를 베푼 후, 금융조합 이사며 군서기와 기타 내빈들의 ‘이러니 만치’ ‘저리니만큼’식의 형식적인 축사가 끝났다.
역원 선거에 들어가, 동혁은 차점인 관계로 부회장 겸 서기로 지명이 되었다. 그러나 동혁은 나이도 젊고 강씨처럼 재산도 없을 뿐 아니라, 아무 이력도 없다는 이유를 내세워 끝까지 사퇴를 하였다. 서기가 되는 것만 하더라도 이 회관을 같이 지은 농우회의 회원 열두 명을 전부 역원으로 뽑아 주지 아니하면 나 홀로 중요한 책임을 맡을 수가 없다고 끝까지 고집을 해서 기어이 농우회 회원들이 실지로 일을 할 역원의 대다수를 점령하게 되었다. 오직 동화가 역원이 되는 것만은 회장과 구장이 극력으로 반대를 하여서 보류하기로 되었고, 늙은 축에는 교풍부장(矯風部長) 같은 직함을 떼어 맡겼다.
회가 흐지부지 끝이 날 무렵에야 동혁은 서기석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회원들의 박수 소리가 일제히 일어났다.
“대동의 여러분이 한자리에 모이신 계제에, 잠시 몇 마디 여쭈어 두구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우렁찬 목소리와 위풍이 있는 동작에 장내는 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 그의 곁에 쪼그리고 앉은 기천의 존재가 납작해질 만치나 동혁의 윤곽은 큼직하였다.
“우리 동네에는 오늘버텀 진흥회라는 것이 생겼고 강기천 씨와 같은 유력하신 분이 회장이 되신 것은 피차에 경축할 만한 일이겠습니다. 저 역시 서기 겸 회계라는 책임을 지게 되어서 두 어깨가 무거운 것을 느끼는 동시에, 여러분께서는 과거에 오랜 역사를 가진 농우회를 사랑하시던 터이니까 앞으로도 더욱 편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여러 사람의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서며 그 검붉은 얼굴이 매우 긴장해진다. 내빈들은 물론 기천이도 동혁의 입에서 무슨 말이 떨어질지 몰라서 노랑 수염을 배배 꼬아 올리며 눈만 깜박깜박하고 앉았다. 동혁은 여러 사람의 주목을 한몸에 받으며,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 동네에도 진흥회가 생긴 까닭과, 진흥회란 무엇을 하는 기관이라는 것은 면장께서 자세히 설명하신 것을 들으셨으니까 잘 아실 줄 압니다. 그러나 남이 시키는 대로 덮어놓고 복종하는 것보다, 우리들의 일은 다른 사람의 손을 빌지 말고 자발적으로 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자력갱생입니다! 그러려면 우리 농촌에서 가장 폐단이 많은 습관과 우리의 생활이 이다지도 빈곤하게 된 까닭이 도대체 어디 있나? 하는 것을 냉정허게 생각해 보고, 그것이 그른 줄 깨닫고 그 원인을 밝힌 다음에는, 즉시 악습을 타파하고 나쁜 일을 밑둥부터 뜯어고치기 위해서 용기를 내어야 합니다. 누가 무어라든지 용단성 있게 싸워 나가야만 비로소 우리의 앞길에 광명이 비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농촌이, 줄잡어 말씀하면 우리 한곡리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가난한가! 손톱 발톱을 닳려 가며 죽두룩 일을 해도 우리의 살림살이가 왜 이다지 구차 한가? 여러분은 그 까닭이 어디 있는 줄 아십니까?”
하고 대답을 기다리는 듯이 장내를 둘러보더니,
“그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까닭은, 이 자리에서 말씀하기가 거북한 사정이 있어서 저버텀도 가려운 데를 버선등 위로 긁는 것 같은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마는 가장 직접으로 우리네같이 없는 사람들의 피를 빨어 가는 것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하고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첫째는 고리대금업자입니다!”
하고 언성을 높인다. 여러 사람의 시선은 말끔 새로 난 회장의 얼굴로 쏠렸다.
“옳소―”
그것은 갑산의 목소리였다. 저녁때가 되니까 창 밖에는 바람이 일어 불김이 없는 회관 안은 냉기가 돌건만, 누구 하나 추워하는 눈치가 보이지 않는다. 동혁은 신중히 말을 이어 고리대금업자의 발호와 간교한 착취수단으로 말미암아 빈민들의 고혈이 얼마나 빨리우고 있나 하는 것을 숫자를 들어가며 폭로하고,
“앞으로 진흥회 회원은 과거에 중변으로 쓴 돈도 금용조합에서 놓는 저리(低利) 이상으로 갚지 말고, 더구나 회의 책임자로는 절대로 돈놀이를 해먹지 못할 것을 이 자리에서 맹세 하고 또 실행해야 합니다.”
라고 부르짖은 다음, 목소리를 떨어트리더니,
“오늘 회장이 되신 강기천 씨는 우리 농우회원들이 진 여러 해 묵은 빚을 변리는 한 푼도 받지 않으시고 깨끗이 탕감해 주셨습니다.”
하고 증서를 내보이면서,
“이번 기회에 그 갸륵한 처사를 여러분께서도 칭송하실 줄 아는 동시에, 강기천 씨는 이번에 진흥회장이 되신 기념으로 여러분의 채권까지도 모조리 포기허실 줄 믿고, 조끔도 의심치 않는 바입니다.”
하고는 슬쩍 기천을 흘겨본다. 이번에는 산병전(散兵戰)을 하듯이 여기저기 끼여 앉은 회원들이 마루청을 구르며 손뼉을 쳤다.
기천은 여러 사람을 바로 볼 용기가 없는 듯이 실눈을 감고 아랫입술만 자근자근 깨물고 앉았다. 팔짱을 꼈다, 손을 옆구리에 찔렀다 하는 것을 보면 앉은 자리가 바늘방석 같은 모양이나 체면상 퇴석은 하지 못하는 눈치다.
동혁은 말에 점점 열을 띠며 고리대금과 다름이 없는 장릿벼를 놓아먹는 악습까지 타파하라고 강도사 집과 그밖에 구장과 같은 볏섬이나 앞세우고 사는 사람들에게, 역시 세밀한 통계를 뽑은 것을 읽으며 경고를 하였다. 그 중에는 행전에다가 대님을 친 것만치나 켕겨서 슬금슬금 꽁무니 빼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동혁은 꾸짖듯이,
“안직 회가 끝나지 않았쇠다. 이것은 우리 같은 없는 사람들의 생사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문젠데, 무단히 퇴장허는 사람이 누굽니까?”
하고 회관 안이 찌렁찌렁 울리도록 소리를 질렀다. 그 바람에 담배를 태우는 체하다가 다시 들어오는 사람은 모두 양반 행세를 하는 갓쟁이들이다.
기천은 날도 저물고 하니 말을 간단히 하라고 주의를 시키려다가, 동혁에게 우박을 맞을까 보아 내밀었던 고개가 옴씰 하고 들어갔다. 실상인즉 기천이가 진흥회장을 보느라고 갖은 수단을 다 쓴 것은, 그것이 무슨 명정감이나 되는 듯이 명예심이 발동한 까닭도 있거니와, 그보다도 취리와 장리를 놓는 데 편의를 얻고, 진흥회장이라면 무슨 권세가 대단한 벼슬로 여기는 백성들에게 위엄을 부려 재산을 늘리는 간접적 효과를 얻어 보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던 것이 관공리들과 동민들의 눈앞에서 동혁의 입으로 구린 밑천이 드러나고, 여러 사람의 결의에 복종하지 않을 수도 없는 처지를 당하고 보니 참말로 입맛이 소태 같았다.
그 눈치를 모를 리 없는 동혁은, ‘헐 말은 다 해버리고 말 테다.’하고 시꺼먼 눈동자를 굴리더니,
“또 한 가지 중요헌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빚을 갚고 장릿벼를 얻어먹지 않게 된대 도, 지금처럼 논 한 마지기도 제 것이 없어 가지고는 도저히 먹구살 도리가 없습니다. 아무 리 농사를 개량한대도 지주와 반타작을 해가지고는 암만해도 생계를 세울 수가 없지 않습니까? 농지령이라는 것이 생겨서 함부로 소작권을 이동허지 못허게는 됐지만, 지금 같어서는 지주들이 얼마든지 역용을 헐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 도내(道內)만 해도 농지령이 실시된 뒤에 소작쟁의의 건수가 불과 오 개월 동안에 천여 건이나 되는 것을 보아 짐작헐 수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지주나 소작인이 함께 살려면 적어도 한 십 년 동안은 소작권을 이동시키지 말고 금년에 받은 석수로 따져서 도지로 내맡길 것 같으면, 누구나 제 수입을 위해서 나농(懶農)을 헐 사람이 없을 겝니다. 이만헌 근본책을 실행치 못하면 ‘농촌진흥’이니 ‘자력갱생’이니 허는 것은 모두 헛문서에 지나지 못합니다.”
하고 주먹으로 테이블을 탁 치고는,
“이 밖에 우리 남쪽 조선에밖에 없는 양반과 상놈을 구별하는 케케묵은 습관과 관혼상제의 비용을 절약할 것 등 허구 싶은 말씀이 많습니다마는 한꺼번에 실행하기 어려운 문제일 것 같어서 그것은 뒤로 미루겠습니다.”
하고 후일을 기약한 후 단에서 내려섰다.
밤은 자정이 넘은 지도 오래다. 초저녁에는 여기저기 머슴사랑에서,
“의이잇, 모다―”
“이이키, 걸이다―”
하고 미친놈이 생침을 맞는 듯한 소리를 지르며 장작윷을 노느라고 떠들썩하더니, 밤이 이슥해지며 한집 두집 불이 꺼지고 지금은 큰 마을 편짝에서 개 짖는 소리만 이따금 컹컹컹 들릴 뿐…….
날은 초저녁보다도 강강한데 싸래기눈이 쌀쌀하게 뿌리기 시작한다. 회관 앞에 심은 전나무 동청나무에 잎사귀는 점점 백발이 되어 간다. 대보름달은 구름 속에 잠겨 언저리만이 흐릿한데, 그 사이로 유난히 붉은빛이 도는 별 서넛은 보초병의 눈초리처럼 날카로이 땅 위에 깊이 든 눈밤을 감시하는 듯.
새로운 간판이 걸린 회관 근처는 인가와 멀리 떨어져서 무섭도록 괴괴한데, 위아래가 시꺼먼 사람이 성큼성큼 올라온다. 장성이 세지 못한 사람이 마주쳤다가는 ‘에그머니!’ 하고 소리를 지를지도 모른다. 시꺼먼 사나이는 눈 위에 기다란 그림자를 이끌고 올라오다가, 우뚝 서서 좌우를 둘러보고 인기척이 없는 것을 살피고서야 달음질을 해서 올라간다.
기다란 그림자는 휘젓한 회관 뒤로 돌아갔다. 조금 있자 난데없는 불이 확 켜지더니 그 불덩어리는 도깨비불처럼 잠시 왔다 갔다 하다가, 새빨간 불꽃이 뱀의 혀끝처럼 날름거리며 추녀 끝으로 치붙어 오른다.
그때다. 검은 그림자가 올라오던 길로, 조금 더 큰 시커먼 그림자가 쏜살같이 치닫는다. 회관 뒤꼍에서 큰 그림자는 작은 그림자를 꽉 붙잡았다.
“너 이게 무슨 짓이냐?”
형은 아우의 손목을 잡았다. 석유에 담근 솜방망이에 불을 붙여 추녀 끝에다 대고 섰던 동화는 불빛에 머리끝이 쭈뼛하도록 무섭게 부릅뜬 형의 눈을 힐끔 쳐다보았다.
“이까짓 놈의 집 뒀다 뭘 허우?”
그의 입에서는 술 냄새가 훅 끼쳤다.
“이리 내라!”
동혁은 아우의 손을 비틀어 솜방망이를 꿰어 든 작대기를 뺏어 던지더니 눈 바닥에다 짓밟아서 껐다. 그러고는 아우를 꾸짖을 사이도 없이 철봉을 하듯 몸을 솟구어 창틈을 붙잡고 지붕으로 올라가려다가 추녀 끝이 잡히지 않으니까 다시 쿠웅 하고 뛰어내려서 굴뚝으로 발돋움을 하고 지붕 위로 올라가더니,
“얘, 흙이래두 끼얹어라, 어서 어서!”
동혁은 나직이 호통을 하며 새집막이 속으로 붙어 댕긴 불을 사뭇 손으로 몸뚱이로 부벼서 간신히 껐다. 그 동안 동혁의 동작은 비호같이 날래었다. ‘불야!’ 소리를 지르거나 샘으로 물을 푸러 간다든지 해서 소동을 일으킬 것 같으면 아우가 방화범이 되어 잡혀갈 것이 아닌가.
초저녁에는 강도사 집 마당에서 젊은 사람들이 편윷을 놀았었다. 기천이가 새로 선거된 임원들을 불러 저녁을 먹이는데, 동화가 술이 취해 가지고 달려들었다.
“어째서 나 하나만 따돌리느냐? 너희 놈들버텀 의리부동헌 놈들이다.”
하고는 작대기를 들고 회원들을 닥치는 대로 두들겨 패고,
“너 이놈, 강기천이 나오너라! 네깐 놈이 회장이 되면 난 도지사 노릇을 허겠다. 너 요놈, 땀 한 방울 안 흘리구 우리 회관을 뺏어 들어?”
하고 소리를 벽력같이 지르며 사랑으로 뛰어드는 것을 동혁이와 정득이, 갑산이가 간신히 붙들어다가 집으로 끌고 가서 눕혔었다. 동화가 미친 사람처럼 날뛰는 바람에 윷놀이판은 흐지부지 흩어지고, 겁이 나서 안방으로 피해 들어갔던 기천은 동화가 끌려간 뒤에야 나와서,
“그렇게 양반을 못 알어보구 폭행을 허는 놈은 한 십 년 징역을 시켜야 헌다.”
고 이빨을 뽀드득뽀드득 갈며 별렀다.
동혁은 어찌나 속이 상하는지 아우를 퍽퍽 두드려 주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우의 정열과 혈기를 사랑하는 터이라,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와서,
“어서 자거라! 과붓집 수캐 모양으루 돌아댕기며 일만 저지르지 말구…… 넌 술 때문에 큰 코를 한번 다치구야 말리라.”
하고 곁에 누워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던 끝에, ‘떠나기 전에 꼭 한 번 만나야겠는데…….’하고 영신의 생각을 하다가 잠이 어렴풋이 들었었다. 그러다가 자는 체하던 동화가 슬그머니 빠져나간 것을 헛간에서 덜커덕거리는 소리로 알고 깜짝 놀라 뛰어나가서 뒤를 밟았던 것이다.
동혁은 온통 거멍투성이가 되어 씨근거리며,
“얘 누가 알었다간 큰일 난다, 큰일 나!”
하고 쉬이쉬이하며 아우의 손목을 잡아 끌고 내려오는데, 뜻밖에 등 뒤에서,
“거기서 뭣들을 하셨에유?”
하는 소리가 들렸다. 형제는 머리끝이 쭈뼛해서 문칫하고 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석돌의 목소리인 것이 틀림없었다.
……영신은 조선을 떠나기 전날까지 동혁을 기다렸다. 눈이 까맣게 기다리다 못해 반신료까지 붙여서 전보를 쳤다. 그래도 아무 회답이 없어서, ‘이거 무슨 일이 단단히 생겼나 보다.’하고 짐은 먼저 철도편으로 부치고 빈몸으로 한곡리를 향하여 떠났다. 동혁을 만나 보지 않고는 떠날 수가 없었고, 또는 두 사람의 장래에 관한 일도 충분히 상의해서 이번에는 아주 아퀴를 짓고 떠나려 함이었다.
영신은 허위단심으로 두 번째 제삼의 고향을 찾아왔으나 동혁의 형제와 건배는 물론 의형제를 맺었던 건배의 아내까지도 없었다. 집에만 없는 것이 아니라 온 동네가 텅 빈 듯 그네들의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다.
동혁의 어머니는,
“아이구 이게 누구요?”
하고 영신이의 손을 잡고 과부가 된 며느리를 맞아들이듯 하는데 말보다 눈물이 앞을 선다.
“아아니, 다들 어디 갔습니까?”
영신은 부지중 노인의 소매를 끌어다렸다.
“그 앤 읍내루 잡혀갔다우!”
“잡혀가다뇨?”
영신은 목소리뿐 아니라 몸까지 오들오들 떨렸다.
“그 심술패기 동화란 녀석이 회관 집에 불을 지르다가 형헌테 들켜서 그날 밤으루 어디룬 지 도망을 갔는데…….”
“아, 그래서요?”
“그 다음날 경찰서에서 어떻게 벌써 알았는지 동화를 잡으려구 순사 형사가 쏟아져 나왔구려.”
“그럼, 큰 자제는요?”
“큰앤 상관두 없는 일인데, 아우 성제가 뭐 공모를 했다나, 그러구 조련질을 허다 못해서 ‘동화가 도망간 델 넌 알 테니 바른 대루 대라’구 딱딱거리니까, ‘모르는 건 모른다지 거짓말은 헐 수 없다’고 막 뻗대던 끝에…….”
어머니의 눈에서는 눈물이 쉴 새 없이 질금질금 흘러내린다. 그러면서도,
“아무튼 춘데 방으루나 들어갑시다.”
하고 영신을 끌어들이고는 한 말을 되하고 되하고 하면서,
“아이구, 인젠 자식이 둘 다 한까분에 없어졌구려. 영감마저 동혁이 밥이나 사들여 보낸다구 읍내루 쫓아가셔서…….”
하고는 싸늘한 자리 위에 가 엎으러진다. 그 동안 혼자서 곡기도 끊고 며칠 밤을 울며 밝힌 모양이다.
영신은 아랫입술을 꼭 깨문 채 가엾은 노인을 위로해 줄 말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남을 위로해 줄 마음의 여유가 없다느니보다도, 제가 먼저 방바닥이라도 땅땅 치며 실컷 울고나 싶은 것을 억지로 참느라고 꽁꽁 안간힘을 썼다. 실망과 낙담을 한 끝에, 영신이도 윗목에 가 쓰러졌다. 황혼은 자취 없이 토담집 속까지 스며드는데, 주인을 잃은 도야지가 우릿간에서 꾸울꾸울거리는 소리만 들린다.
얼마 있자 읍내로 동혁의 소식을 알려고 갔던 정득이와 갑산이가 찾아와서, 영신은 그들에게서 그 동안의 자세한 경과를 듣고 궁금증만은 풀 수가 있었다. 그들의 말을 모두어 보면 윷을 놀고 오다가 동화가 회관에 불을 놓는 것을 목도한 석돌이는, 동혁의 단단한 부탁도 듣지 않고 전화통의 본색을 발휘하느라고 그 길로 기천을 찾아가서, 제 눈으로 본 것을 저저이 고해 바쳤다. 기천은 귀가 반짝 뜨여서, “옳다구나, 인제두 이놈!”하고 이튿날 훤하게 동이 틀 무렵에 편지를 써서 머슴에게 자전거를 내주어 읍내에 급보를 하였다.
저녁때에 중대 사건이나 난 듯이 자동차를 몰아 온 경관대는, 추녀가 불에 끄슬린 회관을 임검한 뒤에, 동혁과 농우회원들의 집을 엄밀히 뒤졌다. 동시에 눈에 핏줄을 세워 가지고 방화범을 찾다가,
“네가 어디다가 숨겨 뒀거나 도망을 시킨 게 아니냐?”
고 종주먹을 대어도, 동혁은,
“백판 모르는 일을 안다구 헐 수는 없소.”
하고 끝끝내 강경히 버티다가 기어이 검거를 당해서 증인인 석돌이와 함께 읍내로 끌려갔는데, 다른 회원들도 날마다 하나둘씩 호출을 당한다는 것이었다. 영신은 저도 함께 겪은 것처럼 모든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가뜩이나 파리한 몸의 피가 졸아붙는 듯한 고민의 하룻밤은 밝았다. 아침 뒤에 영신은 동혁의 어머니를 위로해 주고 읍내를 향하여 떠났다.
하늘은 짙은 잿빛으로 잔뜩 찌푸리고, 비와 눈을 섞은 바람은 신작로 위를 씽씽 불어 숨이 턱턱 막힌다. 퇴원한 뒤로 조섭도 변변히 하지 못한 사람이 사십 리 길을 내처 걷기는 참으로 어려운 노릇이었다. 그러나 영신은 한시바삐 동혁을 만나보고 싶은 생각에 마음이 죄어서 그런지 의외로 걸음이 빨리 걸렸다. 그러나 돌부리에 무심코 발끝이 채어도 아랫배가 울리고 수술한 자리가 당겨서, 한참씩 움켜쥐고 섰다가 다시 걷기를 몇 번이나 하였다.
경찰서에서는 동혁의 면회를 시켜 주지 않았다. 졸라서 들을 일도 아니지만, 사법계에서는 고등계로 밀고, 고등계에서는 사법계에서 관계한 사건이니까 우리는 모른다고 딱 잡아떼어서, 가슴속에 첩첩이 쌓인 만단설화를 어디다가 호소해야 할지 차디찬 마룻바닥에 몸부림이라도 치고 싶었다.
영신은 하도 망단해서 이 방 저 방으로 풀이 죽은 걸음걸이로 드나들다가, ‘인제는 억지를 쓰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은 후, 다시 고등계실로 쑥 들어갔다. 겉으로는 방화사건이나, 동혁은 고등계에서 취조를 받는 듯한 낌새를 형사들의 눈치를 보아서 짐작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영신은 주임의 책상 앞에 가 버티고 앉아서,
“난 그 박동혁이란 사람허구 약혼을 헌 사람인데요, 이번에 멀리 떠나가게 돼서 단 몇 분 동안이래두 꼭 만나야겠어요.”
하고는 사뭇 떼를 썼다. 이마와 양미간이 좁다랗고 몹시 신경질로 생긴 경부보는 안경 너머로 영신을 노려보며,
“한번 안 된다면 고만이지 무슨 여러 말야. 여기가 어딘 줄 아는가?”
하고 소리를 바락 지르며 부하를 시켜 당장 내쫓을 듯한 형세를 보인다. 그래도 영신은,
“여보슈, 당신두 인정이 있거든 남의 일이래두 좀 동정을 해주구려.”
하고는 듣든 말든 그 동안에 제가 다 죽게 된 것을 그 사람이 살려 주었다는 것과, 두 사람 의 장래의 가장 중요한 일을 의논하지 않고는 떠날 수가 없다는 사정을 좍 쏟아 놓았다.
주임은 깜박깜박하고 듣다가,
“우루사이 온나다나(귀찮은 여자를 다 보겠다).”
하고 상을 찡그리며 일어서더니, 무엇을 생각했는지 ‘이리 나오라’고 해서 영신을 밖으로 불러내었다. ‘옳지 인제야 면회를 시켜 주려나 보다.’하고 영신은 우선 가슴이 설레는 것을 진정시키며 주임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영신이가 끌려 들어간 곳은 햇빛도 새어 들어오지 않는 음침한 조그만 방인데, 무시무시한 기구가 놓인 것을 보아 취조실인 것이 틀림없었다. 주임은 묻는 대로 모든 것을 속이지 않고 저저이 대면은 면회를 시켜 주겠다고 달래기도 하고 위협도 해가면서, 동혁이와의 관계며 어떻게 연락을 취해 가지고 무슨 일을 해온 것 까지 미주알고주알 캐어 묻는다.
배에 휘둘리고 먼 길을 걸어와서 두세 시간이나 뜻밖의 취조를 받기는 실로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그러나 영신은 흥분하는 것이 불리할 줄 알고 될 수 있는 대로 냉정히 대답을 하면서도, ‘단순히 방화 범인을 숨겼다는 것이 아니고, 무슨 다른 사건이 있는 줄로 지레짐작을 허구 서 이러는 게 아닐까. 이번 기회에 생트집이라도 잡으려는 게 아닐까.’하니 말대답하기가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았다. 마주앉은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만치나 어둔 뒤에야 취조가 끝이 났다. 주임은 그제야,
“그럼, 면회는 내일 아침에 시켜 주지.”
하고 한마디를 던지고 나가 버렸다.
기름이 졸아붙은 남폿불을 돋워 가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겨울밤은 길기도 길었다. 일부러 경찰서와 담 하나를 사이에 둔 여관에 들어서, 동혁의 괴로이 내쉬는 입김이 유치장의 철창을 새어 저의 폐 속까지 스며드는 듯. 영신의 솜같이 풀어진 온몸의 세포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액체로 스르르 녹아 버리는 듯하다.
천 갈래 만 갈래로 흐트러지는 심사를 주워 모을 길 없어서 잠이나 억지로 들어 보려고 미지근한 방바닥에 쓰러지면, 마룻바닥에 얄따란 담요 한 자락을 뒤집어쓰고 새우잠을 자는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온돌에 누웠기가 몸이 군시럽도록 미안쩍은 생각이 들어서 영신은 다시 일어나 앉기도 몇 번이나 하였다.
빠듯한 노자에서 사식이라도 차입할 생각을 하다가 새벽녘에야 간신히 눈을 좀 붙이려는데, 주정꾼들이 바로 옆방과 문간방으로 우르르 몰려들어왔다. 수작하는 것이 군청패나 경찰서 축 같은데, 계집을 하나씩 끼고 와서 추잡한 소리를 하며 떠들어 대어서 간신히 청한 잠을 또다시 놓쳐 버렸다.
……뒤숭숭한 꿈자리에서 눈을 떠보니 어느덧 날이 밝았다. 영신은 잔입으로 출근 시간이 되기를 기다려 경찰서로 갔다. 취조를 해보니 사실 별일은 없는데 언질을 잡힌 터이라 고등계 주임은 마지못해서 면회를 허락하였다. 취조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바작바작 졸이고 섰던 영신의 가슴은 달칵 내려앉았다. 옷고름을 떼어 버린 솜바지 저고리를 비둔하게 입고 떡 들어서는 동혁이! 그 얼굴에는 반가운 웃음이 가득 찼다.
“내 오실 줄 알었지요. 엊저녁 꿈에…….”
하고 달려들어 악수를 하려다가 곁에 붙어선 형사를 흘깃 보고는 주춤 물러섰다. 영신은 너무 반가워서 말문이 꽉 막힌 듯 눈물이 핑 돌아 가지고 입술만 떠는 것을 보고 동혁은,
“영신 씨 같은 여자두 이런 자리에서 눈물을 보이나요?”
하고 너그러이 웃는 입모습으로 나무라듯 한다. 동혁의 태연자약한 태도와 얼굴빛을 보아 가장 염려했던 일은 당하지 않은 줄 알고 영신은,
“얼마나 고생이 되세요?”
하고 그제야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고생이랄 게 있나요. 아무 것두 듣구 보질 않으니까 되레 편헌데요. 조용히 생각헐 기회두 얻었구요.”
하고는 영신의 아래위를 훑어본다.
“아직두 건강이 전만허려면 멀었는데 또 무리를 허셨군요. 그래 언제 떠나세요?”
“떠나기 전에 뵙구 가려구 왔다가 한곡리서 하룻밤 자구 왔는데, 차마 나 혼자 어떻게…….”
“천만에, 내 걱정은 조금두 허지 말구 오늘이래두 떠나세요. 공부는 둘째 문제구 위선 정양 을 허실 필요가 있으니까 당분간 청석골을 떠나실밖에 없어요. 그러면 자연 기분 전환두 될 수 있을 테니까요. 어디서든지 그저 건강에만 힘을 써주세요! 우리의 장래 일은 나간 뒤에 의논 헙시다.”
“그 일이 급허겠어요? 그저 속히 나오시기만 빌지요. 나 때문엔 너무 염려허지 말어 주세요. 힘자라는 데꺼정은 조섭을 헐 테니까요. 그렇지만 또 어느 때나 만나게 될지…….”
영신은 고개를 돌리며 눈물을 깨문다.
“사실 아무 일두 없어요. 허지만 동화가 어디루 간 걸 알 때꺼정은 나가지 못헐 것 같으니 까, 좀 오래 걸릴 것두 같어요. 아무튼 나가는 대루 곧 전보를 치지요. 그때까지 맘놓구 기다려주세요.”
하면서도 동혁은 여전히 참기 어려운 마음속의 고민을 웃음으로 싸서 보이려고 애를 쓴다.
“그럼, 나오신 뒤엔 어디서 만날까요?”
살아생전 다시는 만나 보지 못할 것처럼 영신의 표정은 전에 없이 애련하다.
“우리의 일터에서 만나지요. 한곡리허구 청석골허구 합병을 해놓구서, 실컷 맘껏 만납시다.”
하는데, 동혁은 등을 밀리었다. 형사가 잠깐 돌아선 사이에 동혁은 영신의 손을 덥석 잡았다. 두 사람의 혈관이 마주 얽혀서 떨리는 듯한 악수의 순간!
“허어, 손이 이렇게 차서…….”
동혁은 입 속으로 부르짖고 다시 한 번 가냘퍼진 영신의 손을 으스러지도록 쥐고 흔들다가, 두 번째 등을 밀려서 그 손을 뿌리치며 홱 돌아섰다. 유치장으로 통한 복도의 콘크리트 바닥에 영신의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서 돈짝만큼씩 번졌다.
이역의 하늘
영신은 차마 발길이 돌아서지 않는 것을 하는 수 없이 조선을 등지고 떠났다. 그렇건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동혁에게서는 전보도 편지도 오지 않았다. 차디찬 다다밋방에서 얄따란 조선 이불을 덮고 자고, 입에 맞지 않는 음식으로 겨우 요기만 하며 지내는 영신에게는 기숙사생활이 여간 신산한 것이 아니었다. 동무들도 친절하기는 하나 속마음을 주고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 어울리지 않는 일본 옷을 입은 것처럼 동급생들하고도 얼리지를 않았다. 학교도 예상하였던 것보다는 취미에 맞는 것이 없고 농촌에 관한 것은 거의 한 과정도 없어, ‘이걸 배우러 여기까지 왔나.’하는 후회가 났다. 정양할 겸 온 것이라서 수토가 달라 몸은 점점 쇠약해질 뿐.
학교에 가서도 층층대를 오르내리려면 다리가 무겁고 시큰시큰하여서 매우 괴로웠다. 부었다 내렸다 하는 다리를 눌러 보면, 손가락 자국이 날 만치나 살이 무르다. 같은 방에 있는 학생에게 물어 보니,
“암만해도 각기병 같은데 얼른 병원에 가 진찰을 해봐요. 각기가 심장까지 침범허면 큰일 난답디다.”
하면서도 전염병이 아닌데도 같이 있기를 꺼리는 눈치까지 보였다.
“아이고! 또 병원엘 가야 허나!”
말만 들어도 병원 냄새가 코에 맡히는 듯 지긋지긋하였다. 가보려야 진찰료와 약값을 낼 돈도 없지만…….
‘이런 구차스러운 유학이 어디 있담.’ 영신은 만사가 도시 귀찮았다. 공부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고향에 가 눕고만 싶었다.
오락한 곳마다 모두 방황하여도
일간두옥 내 집만한 곳이 없고나!
소녀 시절에 부르던 ‘홈 스위트 홈’을 그나마 남몰래 불러 보려면, 떠나올 때에도 찾아가 뵙지 못하고 온 홀어머니 생각에 저도 모르게 베개를 적시는 밤이 계속되었다.
‘내가 천하에 불효녀지, 무슨 사업을 헌답시구 그 불쌍헌 어머니 한 분을 모시고 지내지를 못허니…….’
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밤이면 밤, 꿈이면 꿈마다 보이는 것은 청석골이다. 인제는 제이의 고향이 아니라, 저를 낳아 길러 준 어머니가 계신 고향보다도 청석골이 그리웠다. 어느 것이나 정다운 추억이 아닌 것이 없다.
“오오 청석골, 그리운 내 고향이여!”
시를 지을 줄 모르는 영신의 입에서 저절로 새어 나오는 영탄사건만, 그대로 내뽑으면 시가 되고 노래가 될 듯싶다.
정을 가득 담은 원재 어머니의 편지를 받을 때마다, 뒷일을 맡은 청년들의 자세한 보고를 접할 때마다, 사랑하는 사람의 편지를 받을 때만치나 가슴이 설레었다. 그 중에서도 제가 ㄱ, ㄴ부터서 가르치고 가장 불쌍히 여기던 금분이가 공책에다가 연필로 꼭꼭 박아서,
전 선생님 보구 싶어요. 오늘두 선생님 편지 기다리다간, 체부가 그대루 가서, 옥례허구 필순이허구 자꾸만 울었에요. 우리들은 선생님이 이상스런 옷을 입구 박히신 사진 보구 깜짝 놀랐지요. 아이 숭해, 인전 그런 옷 입지 마세요. 그래두 우리들 보구 웃으시는 걸 보니깐 어떻게 반가운지 눈물이 나겠지요. 아이 그런데 난 몰라요. 그걸 서루 뺏다가 찢었으니 어쩌문 좋아요? 옥례가 찢었에요. 그래서 반씩 노나 가졌는데, 또 한 장만 보내 주세요 네네. 아무두 안 뵈구 저만 두구 보께요.
글자도 몇 자 틀리지 않고 정성을 들여 반듯반듯이 쓴 글씨를 볼 때, 영신은 어찌나 귀엽고 반가운지 그 편지에 수없이 입을 맞추었다. 눈보라치는 겨울에도 홑고쟁이를 입었던 금분이를 저의 체온으로 품어 주듯 그 편지를 허리춤에다 넣고 틈만 있으면 꺼내 보았다.
어떤 날은 사내아이들과 계집아이들의 편지가 소포처럼 뭉텡이로 와서 부족을 물었다. 편지마다 선생님 보고 싶다는 말이요, 사연마다 어서 오라는 부탁이다. 어떤 아이의 편지에는 누런 종이 위에 눈물을 뚝뚝 떨어뜨려 글씨가 번진 흔적처럼 보여서,
“오오, 이 세상에서, 어느 누가 이다지도 보고 싶어 하겠느냐. 이다지도 작은 가슴을 졸이며, 고 어여쁜 눈에 눈물을 짜내며 이 나를 기다려 줄 사람이 누구냐. 너희밖에 없다. 온 세계를 헤매 다녀도 우리 고향밖에 없다. 청석골밖에 없다!”
하고 그 편지 뭉텡이를 어린애처럼 붙안고 잤다. 그는 홈식(思鄕病)이란 병까지 침노를 받은 것이다.
한편으로 동혁의 소식이 끊겨서 가뜩이나 심약해진 영신의 애를 태웠다. 한곡리로 몇 번이나 편지를 했건만 답장이 없다가, 하루는 뜻밖에 정득의 이름으로 편지가 왔다. 동혁은 도청 소재지의 검사국으로 넘어갔고, 동화는 만주에 가 있는 듯하다는 것과, 수일 전에야 동혁이와 한방에 있던 사람이 나와서 일부러 찾아왔는데,
‘검사국까지 넘어오기는 했으나, 면소(免訴)가 되어 불원간 나갈 자신이 있으니, 영신 씨에게도 그 말을 전해 주고 아무 염려 말고 건강에만 주의하라고 부탁을 하고 갔으니 안심하라.’
는 사연이었다.
영신은 비로소 마음을 놓고, 그날 밤은 일찍 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곁에 누운 학생이 늦도록 촛불을 켜놓고 복습을 하느라고 부스럭거리고 드나들고 하여서, 잠은 들었다가도 몇 번이나 깨었다. 청석골의 환경이 머릿속에 환하게 나타나고, 학원과 아이들의 얼굴이 핀트가 어그러진 활동사진처럼 어른어른하다가는 한곡리의 달밤, 그 바닷가에서 동혁에게 사랑의 고백을 받던 때의 정경! 병원에서 그에게 안겨, 지궁스러운 간호를 받던 생각이 두서없이 왕래해서, 그 환영을 지워 버리려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며 무진 애를 쓰다가 근근근 쑤시는 다리를 제 손으로 주무르며 간신히 잠이 들었다.
“땡그렁― 땡그렁―”
청석학원 앞에 새로 단 종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종대에 돌연히 나타나 종을 치는 사람을 보니, 용수를 써서 얼굴은 보이지 않으나 시꺼먼 두루마기 앞섶에 번호를 붙였는데, 그 건장한 체격이 동혁임에 틀림없다. 동혁은 커다란 수갑을 찬 두 손을 모아 줄을 쥐고 매달리며 힘껏힘껏 잡아다린다.
“땡그렁― 땡그렁― 땡그렁―”
종이 사뭇 깨어지는 듯한 소리가 온 동리에 퍼진다. 불 종소리나 들은 듯, 동네 사람들은 운동장에 백결치듯 모였다. 동혁은 무어라고 소리소리 지르며 수갑을 낀 팔을 내두르면서도 한바탕 연설을 한다.
그 말은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으나, 군중은 우아! 우아! 하고 고함을 지른다. 그러다가 동혁은 무참히도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모양으로 말을 탄 사람들에게 붙들려 질질 끌려간다.
“동혁 씨!”
“동혁 씨!”
영신은 외마딧소리를 지르며 허급지급 그 뒤를 쫓아가는데,
“사이상, 사이상, 네고도 잇데루노? 아 고와(영신 씨, 영신 씨, 잠꼬대를 하오? 아이 무서)!”
하고 어깨를 흔드는 것은 새벽 기도회에 참례하려고 잠이 깬, 곁에 누웠던 동급생이었다.
영신은 전신에 소름이 오싹 끼쳤다. 이마의 식은땀을 손등으로 씻으면서도, 꿈의 세계를 헤매는 듯 눈을 멀거니 뜨고 한참 동안이나 천장을 쳐다보았다. 몸서리가 쳐지는 지겨운 환영에서는 깨어났으나, 종소리만은 현실이었다. 학교 안에 예배당으로 쓰는 강당 앞에서 늙은 교지기가 쉬엄쉬엄 치는 종소리가 졸린 듯이 들린다. 꿈자리 산란한 이역의 서리 찬 새벽하늘에―
영신은 기도회에 참례를 하려고 밤사이에 더 부어오른 다리를 간신히 짚고 일어서 세숫간으로 나가다가 머릿속이 핑 내둘리고 다리의 힘이 풀려 문지방에 허리를 걸치고 쓰러졌다. 학생들은 벌써 기도회로 다 가고 굴속같이 컴컴한 기다란 복도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없다.
영신은 의식을 회복하고 눈을 떴을 때에야 제 몸이 의료실로 떠메어 와서 누운 것을 깨달았다. 숙직하는 교원에게 응급치료를 받은 후 교의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에, 영신은 몽유병 환자와 같이 눈을 멀거니 뜨고 누워서, 수술실처럼 흰 휘장을 친 유리창이 아침 햇발에 뿌 옇게 물이 드는 것을 넋을 잃고 보고 있었다. 그제야 맹장염 수술한 자리가 뜨끔거리는 것을 깨닫고,
“아이고! 인전…….”
하고 절망적인 한숨을 내뿜었다.
백발이 성성한 교의는 실내에까지 단장을 짚고 들어와서 영신을 자세히 진찰해 본 뒤에,
“몸 전체가 대단히 쇠약헌데, 각기병은 짧은 시일에 쉽사리 치료를 헐 수 없는 병이니, 고향으로 돌아가서 편안히 쉬며 치료를 허는 게 좋겠소. 복부의 수술도 완전히 하지 못해서 재발될 증조가 보이니 특별히 주의를 허지 않으면 큰일 나오.”
하고는 비타민 B가 부족해서 나는 병이니 현미나 보리밥을 먹으라는 둥, 심장이 약하니 절대로 과격한 운동을 하지 말라는 둥 주의를 시키고 나갔다.
경험 있는 의사의 권고까지 받고, 영신은 더 있을 수가 없었다. 고명한 의사가 들이 쌓였고, 의료기관이 아무리 발달된 곳인들, 고향으로 돌아갈 노자 몇 십 원이 없는 영신에게 있어 무슨 소용이 있으랴. 가나오나 남의 신세만 지는 몸이 더구나 인정 풍속이 다른 수천 리 타향에서 그네들의 진심에서 우러나지 않는 친절을 받느니보다는, 하루바삐 정든 고장으로 돌아가서 피골이 상접해 가는 몸을 편안히 눕히고 싶었다. 편안히 눕히지는 못하더라도 여러 해 만에 어머니를 곁에 모셔 오고, 청석골의 산천을 대하고, 꿈에도 밟히는 어린 학생들의 손을 잡고 뺨을 부벼 보면, 정신상으로나마 얼마나 큰 위로를 받을지 몰랐다. 그는 마침내, ‘가자, 죽드래도 내 고향에 가 묻히자!’하고 비장한 결심을 하였다. 서울 연합회의 백씨에게 급한 사정을 하고 노비를 보내 달라고 편지를 써서 항공 우편으로 부쳤다. 돈 말을 하기는 죽기보다 싫지만, 남에게 구구한 사정을 하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인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한 달 학비를 다가 쓰는 셈만 친 것이다.
노비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영신의 고민은 거의 절정에 이르렀다.
‘우리의 결혼 문제는 어떡헐까.’
그것은 물론 시급히 닥쳐오는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은 자유를 잃은 몸이 되어 있고, 저는 무엇보다도 첫째 조건인 건강을 잃은 몸이다. 그러나 이미 약혼을 해놓고 이제까지 기다리던 터이니, 그 문제가 가장 큰 고민거리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이는 불원간 나올 자신이 있다구 허지만 내 몸이 이 지경이 된 것을 보면 얼마나 낙심을 헐까. 그이는 오직 나 하나를 기다리고 청춘의 정열을 억지로 눌러 오지 않었는가. 나이 삼십에 가까운 그다지 건장헌 청년으로 보통 남자로는 참을 수 없는 것을 점잖이 참어 오지 않었는가. 다른 남자는 술을 마시고, 청루에까지 발을 들여놓는데, 그이는 생물의 본능을 부자연하게 억제하며 오직 일을 하는 것으로 모든 오뇌를 잊으려고 하지 않었는가. 더군다나 늙은 부모를 모신 맏아들로 오직 나 때문에 이 변변치 않고 보잘것없는 나 하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동혁에게 대해서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나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남의 청춘을 무참히 짓밟는 것이 아닐까. ○○일보사 누상에서 첫 번 얼굴을 대한 후 벌써 몇몇 해를 사모해 오고 사랑해 오는 동안, 나는 그이에게 털끝만한 기쁨도 주지 못하였다. 도리어 적지 않은 정신상 육체상 고통을 주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인제 와서 무슨 매매계약을 한 것처럼 약혼을 해약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영신의 여윈 뺨을 소리 없이 흘러내리는 것은, 아직도 식지 않은 눈물이다. 좀체로 모든 일에 비관치 않으려던 전일에 비해서 너무나 마음까지 몹시 약해진 것을 스스로 깨달을수록, 눈물은 그 비례로 쏟아져 소매를 적시고 베개를 적신다. 사랑하는 사람은 돌덩이 같은 육체와 무쇠 같은 의지력을 가진 사람이니까, 감옥에서 고생 쯤 하는 것으로는 끄떡도 아니 할 것만은 믿는다. 그저 무사히 나오기만 축수할 뿐이다.
‘그렇지만 그이가 나온 뒤까지 오래오래 두고 이 지경대로 있으면 어떡허나. 하나님께서 설마 나를 이대로 버리실 리는 만무하지만…….’
하고 아직도 신앙을 잃지 않으려고 정성껏 기도를 올려 본다. 주를 부르며 저의 고민을 하소연도 해본다.
‘내가 만일 건강이 회복되어서, 그이와 결혼생활을 헌다면 어떻게 될까? 구차한 살림에 얽매고, 어린것들이 매어달리고, 시부모의 시중을 들고, 집안 식구의 옷 뒤를 거두고, 다만 먹기를 위해서 이른 아침부터 밤늦도록 다른 농촌의 여자와 같이 집구석 벜구석에서 한평생을 헤어나지 못하고 말 것이다.’
하고 앞일을 상상해 볼 때, 영신의 머릿속은 또다시 시꺼먼 구름이 끼는 것처럼 우울해진다. 아직까지 사업에 무한한 애착심을 가지고 한 몸을 이 사회에 바쳐 온 영신으로서는, 두 가지 길 중에 어느 한 가지 길을 밟아야 옳을는지 방황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떡허나? 아아, 어떡허면 좋을까?’
영신은 이불 속에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내가 그이를 진심으로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지금의 나로서는 꼭 한 가지밖에 취할 길이 없다!’
영신은 무한히 고민한 끝에 한 가지 결론을 얻었다.
‘나와의 결혼을 단념시킬 것뿐이다!’
이 말 한마디는 창자를 끊어 내는 듯한 마지막 가는 말이다. 그러나 영신은 그렇게 부르짖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이는 웃음엣말이래도 조선 안의 허구많은 여자 중에 하필 채영신 석 자만 쳐다보고 두 눈을 꿈벅거리고 있는 나 자신이 불쌍해 보인다고 하였다. 그 말이 어느 정도까지는 속임 없는 고백일 것이다. 기막히는 일을 당할 때에 웃음이 터져 나오고, 가슴이 답답할 적에 트림이 끓어오르는 것과 같이, 그는 하도 기다리기가 지루해서 그런 말을 허게까지 된 것이 아닐까.’
하니 두 사람을 만나게 한 운명을 저주하고도 싶었다.
‘왜 곧잘 참어 오던 내가 내 발로 걸어서 한곡리를 찾었고, 달 밝은 그날 밤 바닷가에서 경솔히 마음을 허락했던가. 일평생의 고락을 같이 할 맹세까지 했던가.’
하고 그때의 기분이 너무나 로맨틱하였던 것을 몇 번이나 후회하였다.
‘아아 그러나, 나는 그이를 지극히 사랑한다. 그이를 사랑하게 된 뒤로부터 나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심까지 엷어졌다. 지금의 ‘박동혁’은 나의 생명이다! 내 맘이 그이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무슨 일이 있든지, 어떠한 고통을 당하든지, 이 세상에 다만 한 사람인 그이의 행복을 위해서 참는 도리밖에 없다.’
‘자아를 희생할 줄 모르는 곳에, 진정한 사랑이 없다. 사업을 위해서 이미 희생이 된 이 몸을 사랑하는 사람의 장래를 위해서 두 번째 희생으로 바치자! 이것이 참되고 거룩한 사랑의 길이다!’
하고 영신은 두 번 세 번 제 마음을 다질렀다.
‘이번에 만나는 때에는 단연히 약혼을 해소하자고 제의를 하리라. 의논을 할 것이 아니라 이편에서 딱 무질러 버리고 말리라.’
하고 단단히 결심을 하였다.
그러나 저의 건강으로 말미암아 이런 결심까지 하게 된 것이 서럽다. 그다지 사랑하던 남자를 놓칠 생각을 하니 분하기도 하였다. 동혁의 넓은 품안에 그 아귀힘 센 팔에, 채영신이가 아닌 다른 여자가 안길 것을 상상만 해보아도, 이제까지 느끼지 못하던 질투의 불길이 치밀어 얼굴이 화끈 하고 다는 것이야 어찌하랴.
‘시기를 하거나 질투를 하는 것은 가장 야비하고 천박한 감정이다.’
하고 제 마음을 꾸짖어도 본다. 그러나 꾸지람을 듣는 것쯤으로 그 분이 꺼질까 싶지가 않다.
기숙사의 밤이 깊어 가는 대로 영신의 고민도 깊어 가고, 마음이 괴로울수록 안절부절을 못 하는 육신도 어느 한군데 괴롭지 않은 데가 없었다.
……영신이가 떠나는 날 아침, 널따란 학교 마당에 전송하여 주는 사람은, 사감과 한방에 있던 학생 두엇뿐이었다. 몇 달 동안 숙식을 같이 하던 여자는 매우 섭섭한 표정을 지으면서 현관까지 따라 나와,
“사요나라, 오다이지니(잘 가요, 몸조심하세요).”
하고 굽실해 보이고는 게다짝을 달각거리며 뒤도 아니 돌아다보고 들어가 버린다. 제 방에서 환자를 내보내는 것이 시원섭섭한 눈치다. 오래간만에 조선옷으로 갈아입고, 고리짝 하나를 인력거 앞에다 놓고 정거장으로 나오는 영신의 행색은 초라하였다. 그는 인력거 위에서 흔들리며,
‘내가 지금 어디루 가는 셈인가.’
하고 번화한 시가지를 둘러보았다. 돈 있는 집 딸들이 음악학교 같은 것을 졸업하고 그야 말로 금의로 환향하는 광경을 상상해 보고는,
‘내가 얻어 가지고 가는 것은 병뿐이로구나!’
하고 어이없는 웃음을 웃었다.
그러나 청석골서 정이 든 여러 사람이 마중을 나오고 그 귀여운 아이들이 ‘선생님! 선생님! ’ 하고 달려들 생각을 하니 어찌나 기쁜지 몰랐다. 미리부터 가슴이 설레서,
‘비행기라두 타구 어서 갔으면.’
하고 기차를 탄 뒤에도 마음이 여간 조급하지가 않았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동혁 씨가 나와서 나를 버썩 안고 차에서 내려놓아 주지나 않을까.’
하였다. 그것이 공상이 되지 말기를 빌었다.
자동차 정류장에는 청석골의 주민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마중을 나왔다.
“아이구, 웬 사람들이 저렇게 모여 섰나? 장날 같으이.”
하고 영신은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저의 전보를 보고 그렇게 많이들 나왔을 줄은 몰랐다. 멀리 언덕 위에 우뚝 솟은 학원집의 유리창이 석양을 눈이 부시게 반사하는 것을 볼 때 영신은,
“오오, 저 집!”
하고 저절로 부르짖어졌다. 죽을 고생을 해가며 지은 그 집이, 맨 먼저 주인을 반겨 주는 것 같았다.
자동차가 정거를 하기 전부터 아이들은 어느 틈에 보았는지,
“선생님!”
“선생님!”
하고 손을 내저으면서 엎드러지며 곱드러지며 앞을 다투어 쫓아온다.
“금분아!”
“옥례야!”
영신도 차창으로 머리를 내밀며 외치듯이 아이들의 이름을 불렀다. 영신이가 내리기가 무섭게 백여 명이나 되는 남녀 학생은 벌떼처럼 선생의 전후좌우로 달려들었다.
“채선생님 오셨다!”
“우리 선생님이 오셨다!”
계집애들은 동요를 부르듯 하면서 영신의 손에 소매에 치맛자락에 매어달려서 까치처럼 깡충깡충 뛴다. 영신은 눈물이 글썽글썽해 가지고 그 꿈에도 잊지 못하던 아이들을 한아름씩 끌어안고,
“잘들 있었니! 선생님 보구펐지?”
하고 이마와 뺨에 입을 맞추어 주었다.
청년들과 낫살이나 먹은 남자들은,
“안녕히 다녀오셨습니까?”
하고 모자나 수건을 벗고 허리를 굽히는데, 원재 어머니는 영신의 두 손을 쥐고,
“병이 덧치셨다는구려?”
하고는 목이 메어서 말을 눈물로 삼킨다. 부인 친목계의 회원도 대여섯 사람이나 나왔는데, 모두 ‘떠날 때버덤두 더 못해 왔구나’ 하는 듯이 무한히 가엾어 하는 표정으로 영신의 수척한 얼굴과 다리를 절름거리는 모양을 바라다보며 따라온다. 영신은 원재 어머니의 어깨를 짚고 무거운 다리를 질질 끌며 맨 먼저 학원으로 올라갔다.
“바루 집으루 갑시다.”
하는 것을,
“우리 집버텀 가봐야지요.”
하고 간신히 올라가서는 안팎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 동안에 집은 매우 찌들어 보였다. 걸상과 책상이 정돈이 되지 못하고, 벽에는 여기저기 낙서한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는데, 제가 연설을 하다가 쓰러진 강당 맞은편짝에 정성을 다해서 소나무와 학을 수놓아 건 수틀이 삐딱하게 넘어간 채 먼지가 켜켜로 앉도록 내버려두었다.
‘이걸 어쩌면 이대로 내버려들 뒀을까.’
하고 영신은 원재더러 발판을 가져오래서 손수 바로잡아 놓고 먼지를 털고 내려오다가 하마터면 넘어질 뻔하였다. 아이들은 저희들의 선생님을 다시는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열겹 스무겹 에워싸고 원재네 집으로 내려왔다. 금분이는 반가움에 겨워 자꾸만 저고리 고름으로 눈두덩이를 부비며 홀짝홀짝 울면서 영신의 손을 땀이 나도록 꼭 쥐고 따라다닌다.
영신이가 쓰던 방은 전처럼 깨끗이 치워 놓았다.
“아아, 여기가 내 안식처다!”
하고 영신은 불을 뜨뜻이 때어 놓은 아랫목에 가 턱 쓰러졌다. 다다밋방에서 다리도 못 뻗고 자던 것이 아득한 옛날인 듯, 여러 날 기차와 기선에서 시달린 피곤이 함께 닥쳐와서 몸은 꼼짝도 할 수 없다. 아이들은 방에까지 따라 들어와서 빽빽하게 콩나물을 길러 놓은 것 같다. 부모의 사랑을 모르고 자라난 천애의 고아들이, 뜻밖에 자애 깊은 어머니를 만난 것처럼 영신의 곁을 떠나려고 들지를 않는다.
영신은 하관(下關)서 사가지고 온 바나나 뭉치를 끌러 달라고 해서 세 토막 네 토막에 잘라, 아이들의 입맛만 다시게 하였다. 기찻삯만 빠듯이 와서 벤또도 변변히 사먹지 못하고 오면서도, 빈손을 내밀 수가 없어 주머니를 털어서 사가지고 온 것이었다.
원재 어머니는 저녁상을 들고 들어오며,
“너희들두 이젠 고만 가서 저녁들 먹어라.”
하고 아이들을 내보냈다.
통배추김치에 된장찌개를 보니, 영신은 눈이 버언해져서 저도 모르는 겨를에 일어앉았다. 보기만 해도 입에 침이 고여서 기숙사 식탁에 허구한 날 놓이는 미소시루와 다꾸앙쪽을 생각하였다. 영신은 이야기도 못 하고 장위에 배인 고향의 음식을 걸터듬해서 먹었다.
영신은 마음을 턱 놓고 뜨뜻한 방에서 오래간만에 잠을 잘 자서 이튿날은 정신이 매우 쇄락하였다. 다리가 부은 것도 조금 내려서 걷기가 한결 나은 것 같아 예배당으로 올라가서는 감사한 기도를 올리고 내려왔다. 동시에, 동혁이가 하루바삐 무사하게 나오기를 축원하고, 내려오는 길로 한곡리 농우회원들에게,
‘나는 그 동안 귀국해서 무사히 있으니, 동혁 씨의 소식을 아는 대로 즉시 전해 달라.’
고 편지를 써 부쳤다.
당자는 동혁의 생각을 잊으려고 애를 쓰건만, 원재 어머니가,
“아이고, 그이가 얼마나 고생을 헐까요? 그렇게두 지궁스레 간호를 해주더니…… 내가 가끔 생각이 날 적에야…….”
하고 자꾸만 일깨워서,
“나오는 날 나오겠죠. 인전 그이 말을랑 우리 허지 맙시다요.”
하고 동혁의 말은 비치지도 못하게 하였다.
겨우 한 사나흘 동안 쉰 뒤에 영신은 전과 같이 학원의 일을 보고 주학은 물론 야학까지도 겹쳐서 교편을 잡았다. 그 동안 청년들에게만 맡기고 내버려두어서 저희들은 힘껏 일을 보느라고 하건만, 지도자를 잃은 그들은 제멋대로 가르쳐서 조금도 통일이 되지 않는데, 생기는 것이 없는 일인데다가, 그도 하루 이틀이 아니어서 싫증이 나고 고만 귀찮은 생각도 들어, 그럭저럭 시간만 채우고 달아날 궁리를 하는 청년이 없지 않았다.
‘이래선 안 되겠다. 내가 또 본보기를 보여야만 다들 따러온다.’
하고 최대한도의 용기를 내었다. 제가 입원한 동안에 기부금이 다 걷혀서 학원을 지은 빚만은 요행으로 다 갚았으나, 집만 엄부렁하게 컸지그려, 인제는 그 집을 유지해 나아갈 경비가 없다. 등뒤에 무슨 재단이 있는 것도 아닌데, 월사금 한 푼 아니 받으니 수입은 없고 지출뿐이다. 심지어 분필이 떨어지고 큰 남포를 서너 개나 켜는 석유를 대지 못해서 쩔쩔 매는 형편이라, 신병이 있다고 가만히 보고만 앉았을 수가 없었다.
조금만 오래 섰으면 다리가 무겁고 신경이 마비가 되어 오금이 들러붙는 것처럼 떼어 놓을 수가 없는데, 학원과 예배당으로 오르내리는 데도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해서 그 자리에 넘어질 것 같건만,
‘난 기왕 청석골의 백골이 되려고 결심한 사람이다. 다시 쓰러지는 날, 그때 그 시각까지는 손끝 맺고 앉었을 수가 없다.’
하고 학부형들이나 원재 모자가 지성으로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난 우리 청석골을 위해서 생긴 사람이야요. 내가 타고난 의무를 다허다가 죽으면 고만이 지요. 되레 내 몸에 넘치는 기쁨으루 알구 있어요.”
하고 눈시울에 잔주름살을 잡아 가며 웃어 보였다. 한편으로는 동혁이가 죄 없이 감옥에서 저보다 몇 곱절이나 되는 고생을 하는 생각을 할 때,
‘오냐, 내 맥박이 끊길 때까지!’
하고 오직 일을 하는 것이, 차입 하나 못 해주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대해서 정신적으로나마 어떠한 선물을 보내 주는 것 같기도 하였던 것이다.
약은 얻어먹을 생의도 못 하고, 또 각기증에는 특효약도 없다지만, 의사의 권고대로 현미에다가 보리를 많이 섞어 먹어도, 병이 나아가기는커녕 증세가 점점 더 악화가 되어갈 뿐이다. 다리가 붓고 무릎이 쑤시기는 했어도 그닥지 아픈 줄을 몰랐더니, 줄곧 그 다리를 놀려 두지를 않아서 그런지 띵띵해진 종아리는 건드리기만 해도 펄쩍 뛰도록 아프다. 밤에는 고통이 더 심해서 뜬눈으로 밝히는 날까지 있으면서도, 그는 이를 악물고 하루도 빼어놓지 않고 교단에 서기를 거진 한 달 동안이나 하였다.
그 동안 하나 둘 흩어져 있던 아이들은, 영신이가 돌아온 뒤에 신입생이 열씩 스물씩 부쩍 부쩍 늘었다. 때마침 농한기라 어른들은 물론 오십도 넘는 노파가 손녀의 손을 잡고 와서는,
“죽기 전에 글눈이나 떠보게 해주시유.”
하고 진물진물한 눈으로 칠판을 쳐다보고,
“가―갸―거―겨―”
하고 따라 읽는 것을 볼 때, 영신은 감격에 가슴이 벅찼다.
‘내가 오기 전에는 이 동네 사람이 거진 구 할 가량이나 문맹이던 것이, 이제는 글자를 알어보는 사람이 칠 할 가량이나 된다. 오십 이상 늙은이와 젖먹이를 빼어놓으면 거진 다 눈을 띄어 준 셈이다. 더구나 부인 친목계를 중심으로 부인네들이 깨인 것과, 생활이 향상된 것은 놀라울 만허지 않느냐.’
하고 자못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그럴수록 사업에 대한 애착심은 고향을 떠나 보기 전보다 몇 곱이나 더해져서, 육신의 고통을 참아 나가는 힘을 얻었다. 한두 가지도 아닌 병마에 사로잡혀 거의 위중한 상태에 빠진 영신으로는, 사실 기적과 같은 힘이었다. 그러다가 하루아침은 천만뜻밖에 동혁의 편지가 왔다. 동경 역에서, 못 받아 보려니 하면서도 ××형무소로 부친 엽서를 본 답장인 듯, 모필로 쓴 필적이며 계호 주임의 도장이 찍혀 나온 것이 분명히 동혁에게서 온 것이다. 영신은 손보다도 가슴이 떨리는 것 을 진정하고, 바늘구멍처럼 뚫어 놓은 봉함엽서의 가장자리를 조옥 뜯었다.
이제야 취조가 일단락이 져서 편지를 할 수 있게 되었소이다. 청석골로 다시 돌아오신다는 엽서도 어제야 받고, 그 병이 재발이나 되지 않었는지 매우 놀랐습니다. 긴 말은 쓸 수 없으나 오직 건강에 각별히 주의해 주십시오. 또다시 억지를 쓰고 일을 하실 것만이 염려외다. 나는 아직 수신대학 본과에는 입학할 자격을 얻지 못하였으나, 예과에서도 보통 사람으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깁니다. ‘수양하고 반성하고 싶은 자는 다 이리 오라’ 하고 외치고 싶소이다. 몸은 여전한데 하루 세 끼 조막덩 이만한 콩밥이 겨우 간에 기별만 해서,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는 것만이 불평이외다. 나는 좀 더 묵고 싶지만 아마 여관 주인이 불원간 내쫓을 것 같은데, 나가는 대로 먼저 그리로 가겠으니 부디 혈색 좋은 얼굴을 보여 주십시오.
영신은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먹이 입술에 묻도록 편지에 키스를 하였다. 그러고는,
‘혈색 좋은 얼굴! 혈색 좋은 얼굴!’
하고 혼자말을 하며 조그만 손거울을 꺼내서 제 얼굴을 들여다보다가는 그 거울을 동댕이를 쳤다. 거울은 문지방에 가 부딪치며 두 쪽에 짝 갈라졌다. 영신은 가슴이 선뜩해서,
‘아이, 왜 저걸 내던졌던가.’
하고 금방 후회를 하고 거울을 집어 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탄식을 한들, 한번 깨어진 유리쪽을 두번 다시 붙여 보는 재주는 없었다.
학원 마당에서 종소리가 들린다. 철모르는 아이들은 한 떼가 몰려 와서,
“선생님, 어서 가세요. 어서요, 어서.”
하고 영신을 일으켜 세우고 잡아다리며 떠다 밀며 학원으로 올라갔다. 그날은 웬일인지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을 그는 억지로 꺼둘려 가서 새 과정을 가르치려다 말고 복습을 시켰다. 계집애들은 채선생이 아니면 배우지를 않기 때문에, 두 반씩이나 맡아 가르칠 수밖에 없어 왔다 갔다 하며 복습을 시키는 데는 더구나 힘에 부쳤다. 그러나
‘그 속에서, 그 지독헌 고생을 달게 받는 이도 있는데…….’
하고 기를 쓰며 눕지를 않으려고 앙버티었다.
‘그이가 나오면 이 얼굴, 이 몸뚱이를 어떻게 보이나.’
하고 이번에는 교실 유리창에 척수한 자태를 비추어 보다가,
‘오지 말었으면. 차라리 영영 만나지나 말었으면…….’
하고 제 꼴이 제 눈으로 보기가 싫어 발꿈치를 돌리기를 몇 번이나 하였다.
‘그렇지만, 혈색 좋은 얼굴을 보여 주진 못하드래두, 앓어누운 꼴이나 보여 주지 말리라.’
하고 아침에 종소리만 들리면 입술을 깨물며 문고리를 붙잡고 일어났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밤에는 학부형회에 참례를 하고 늦도록 학원의 유지 방침을 의논하다가, 별안간 심장의 고동이 뚝 그치는 것 같아서 원재에게 업혀 내려왔다. 내려와서는 턱 쓰러지며 고만 정신을 잃었다.
천사의 임종
이튿날 저녁때에야 공의의 진찰을 받게 되었을 때 영신은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눈은 정기 없이 뜨고도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데,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소리만 높았다 낮았다 할 뿐…….
영신의 선성을 들은 공의는, 원재 어머니만 남겨 놓고 방 안에 그득히 찬 사람을 다 내보낸 뒤에 거진 한 시간 동안이나 정성껏 신체의 각 부분을 진찰해 본다. 그는 환자에게서 손을 떼고 한참이나 눈을 딱 감고 앉아서, 머리를 외로 꼬고 바로 꼬고 하다가 청진기를 집어넣고는 잠자코 일어서 밖으로 나간다.
“어떻습니까? 대단허죠?”
원재 어머니는 조급히 물었다. 공의는 알코올 솜으로 손을 닦으며,
“대단 섭섭헌 말씀이지만…….”
하고 주저주저하다가,
“내 진찰이 틀리지 않는다면 며칠을 못 넘길 것 같소이다.”
하고 고개를 떨어뜨린다.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여러 사람의 눈은 동시에 둥그레졌다. 원재 어머니의 눈에는 벌써 눈물이 괴었다.
“각기가 심장까지 침범헌 것만 해도 위중헌데, 원체 수술을 완전히 허지 못헌 맹장염이 재발이 됐습니다. 염증이 대단허니 어디다가 손을 대야 헐지 모르겠는걸요.”
하고 입맛을 쩍쩍 다시다가,
“왜 좀 더 일찌감치 서두르지를 못했나요?”
하고 눈살을 찌푸리며 알코올 솜을 튀겨 던진다.
“누가 이럴 줄 알었나요. 엇저녁까지 기동을 했었으니까…… 어떻게 다시 수술이라두 해봐 주실 수 없을까요?”
학부형 중에서 한 사람이 나서며 물었다. 공의는,
“지금은 수술두 못 해요. 몸 전체가 몹시 허약허니까요.”
하고는 가방을 들고 일어서며,
“그래두 혹시 천행이나 바라려거든 큰 병원으로 데리구 가보시지요.”
하고 마당으로 나간다. 원재 모자는 버선발로 쫓아 나가서 공의의 소매를 붙잡으며,
“아이구, 이를 어쩌나. 참 정말 아무 도리두 없습니까? 네 네?”
“우리 선생님을 살려 줍쇼! 어떻게든지 살려 주구 가세요!”
하며 엎드려서 말 반 울음 반으로 애원을 한다.
“주사나 한 대 놔드리지요.”
공의도 한숨을 쉬며 다시 들어와 캄플 한 대를 놓고 나왔다. 의사에게 죽음의 선고를 받은 줄도 모르는 영신은 주사 기운에 조금 의식을 회복하였다.
“원재 어머니!”
손을 공중으로 내저으며 부르는 목소리는 모기 소리처럼 가늘다. 원재 어머니는 앓는 사람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한참이나 지게문 밖에 돌아서서 눈두덩을 부비다가 들어갔다.
“의사가 뭐래요?”
진찰을 받을 때는 몰랐다가 주사침이 따끔 하고 살을 찌를 적에야 의사가 온 줄은 알았던 모양이다.
“……”
“뭐라구 그래요?”
영신은 채우쳐 묻는다.
“……”
그래도 원재 어머니는 대답이 목구멍에서 나오지를 않았다.
“살지 못허겠다죠?”
영신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목젖만 껄떡거리고 섰는 사람의 눈치를 살핀다.
“수술을 허면 낫는다구…… 그러구 갔어요.”
그 말에 영신은 베개 너머로 머리를 떨어트리며,
“아이구! 또 수술…….”
하고 오장이 썩는 듯한 한숨을 내쉰다. 장로와 다른 교인들이 들어와 병원으로 가기를 번차례로 권하였다. 그러나 영신은,
“싫여요, 싫여. 난 청석골서 죽구 싶어요!”
하고 맥이 풀린 손을 내저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병세는 시시각각으로 더해 가는 한편이건만, 영신은 어머니에게도 편지를 못하게 하였다. 고통이 조금 덜해서 정신만 들면 유리틀에 끼워서 책상머리에 모셔 놓은 어머니의 사진을 내려 달래서, 멀거니 들여다보다가 눈물을 지으면서도 곁엣사람이,
“오시든 못 오시든 사람의 도리가 그렇지 않으니 전보나 한 장 칩시다.”
하고 저다지도 그리운 어머니를 마지막 뵙지 못하면 눈이 감기겠느냐는 뜻을 비치건만, 영신은,
“우리 어머니헌테, 마지막 가는 효도는…….”
하고 한숨을 섞어,
“내 이 꼴을 뵈어 드리지 않는 거야요!”
하고 기별을 하지 말아 달라고 두 번 세 번 간청을 하였다. 영신의 고집을 아는 원재 어머니는,
“그럼 서울로나 통기를 헙시다요.”
하여도,
“내 병을 고쳐 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하고 머리를 흔들다가,
“하나님이 나를 설마…….”
하고 다시 살아날 자신이 있는 듯이 가냘픈 미소를 띠어 보인다. 그러다가도 반듯이 누워 가슴 위에 합장을 하고 허옇게 바랜 입술을 떨면서,
“주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오오, 주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고 연거푸 부른다. 그것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며 최후로 부르짖은 말이었다.
등잔불에 어룽지는 천장을 쳐다보는 그의 눈동자에는 원한과 절망과 참을 수 없는 슬픈 빛이 어리었다. 닥쳐오는 죽음을 짐작하면서도, 인력으로 어길 수 없는 가장 엄숙한 사실인 줄 번연히 알면서도, 그 사실을 억지로 부인하려는 마음! 끝까지 신앙심을 잃지 않고 그 대상자를 원망하지 않으면서도 이적(異蹟)이라도 나타내어 주기를 안타까이 기다리는 그 심정―
창 밖에서는 아이들이 추운 줄도 모르고 열 겹 스무 겹 선생의 방을 둘러싸고 땅바닥에가 쪼그리고 앉아서 흐느껴 운다. 그 소리가 방 안에까지 들려서 영신은 베개에서 조금 머리를 들며,
“저게 무슨 소리요?”
하고 묻는다.
“……아마 바람 소린가 봐요.”
원재 어머니의 목소리는 문풍지와 함께 떨렸다. 영신이가 평시에 가장 귀여워하고 불쌍히 여기던 금분이는 이틀째나 밥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선생의 머리맡을 떠나지 않으며 시중을 든다. 가뜩이나 헐벗고 얻어먹지 못해서 파리한 몸이 기신없이 쓰러졌다가도 바스락 소리만 나면 발딱 일어나,
“선생님, 왜 그러시유?”
하고 영신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앓는 사람과 간호하는 사람들이 나가 있으라고만 하면,
“난 싫여, 난 싫여. 왜 날더러만 나가래.”
하고 발버둥질을 치며 통곡을 내놓아서 하는 수 없이 내버려두었다.
한편으로 교인들은 예배당에 모여서 밤늦도록 기도를 올린다.
“저희들을 창조하시고 길러 주시는 아버지시여, 당신이 모처럼 이 땅에 내려 보내신 귀한 따님을 왜 어느새 부르려 하십니까? 이것이 과연 당신의 뜻이오니까? 그 누이는 이곳에 와서 무식한 저희들을 위해 뼈가 깎이도록 일을 했습니다. 육신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넘어지는 그 시각까지 불쌍한 조선의 자녀들을 위해서 걱정했습니다. 자기의 손으로 지은 학원 하나를 붙잡으려고 온갖 고생을 참아 왔습니다.
주여! 그는 청춘입니다. 열매도 맺어 보지 못한 순결한 처녀입니다. 인생의 기쁨도 즐거움도 맛보지 못하고, 다만 당신 한 분을 의지하고 동족을 사랑함으로써 그 귀중한 몸을 바쳤습니다.
주여! 오오, 사랑이 충만하신 주여! 그에게 생명수를 뿌려 주소서! 저희들의 천사인 채영신 누이를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우리 청석골에서 떠나지 않도록 붙들어 주시옵소서!”
“아아멘”을 부르는 남녀 교인의 목소리는 일제히 울음으로 변하였다.
학부형들은 사십 리 오십 리 밖까지 가서 고명하다는 한의를 데리고 왔다. 칠십도 넘어 보이는 노인을 가마에 태워 가지고 온 성의에 감동이 되어서 영신은,
‘저 늙은이가 뭘 알꼬.’
하면서도 맥을 짚어 보라고 팔을 내밀었다. 그들이 집증하는 것은 다 각각이나, 화타(華陀) 편작(扁鵲)이가 와도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하리라는 데는 의견이 일치하였다. 그래도 학부형들은 화제를 내어 달라고 부득부득 졸라서, 또다시 장거리로 약을 지으러 가는 것이었다.
오늘은 초저녁부터 영신의 숨소리가 더 거칠어졌다. 목구멍에서 가래가 끓는 소리까지 그르렁그르렁 한다. 아랫도리는 여전히 감각을 잃고 있기 때문에 고통을 몰라도 가슴이 답답해서 몹시 괴로워한다. 병마가 사방으로부터 심장을 향하고 몰려들기를 시작한 모양이다. 그러나 이상스러이도 영신의 정신만은 그 말과 함께 똑똑하다.
“자꾸 울지들 말어요. 나두 안 우는데…….”
하고 간호하는 부인네들을 둘러보기도 하고,
“너희들은 어서 가 공부해. 응, 어서!”
하고 상학 시간이 되면 저의 주위로 모여드는 아이들을 학원으로 올라가라고 손짓을 하였다. 그는 자기가 누운 동안 하루도 주야학을 쉬지 못하게 하였다.
창밖은 별빛조차 무색한 그믐밤이다. 앞뜰과 뒷동산의 앙상한 삭정이를 휩쓰는 바람 소리만 파도 소리처럼 쏴아쏴아 하고 지나간다. 떨어지다 남은 바싹 마른 오동 잎사귀가, 창밖 툇마루에 버스럭 하고 떨어지는 소리에 영신은 고이 감았던 눈을 떴다. 사람의 발자국 소리로 들렸는지,
“문 열어요. 동혁 씨 왔나 봐…….”
하고 잠꼬대하듯 헛소리를 하며 뒤꼍으로 통한 문으로 고개를 돌린다. 벌써 그 눈동자에는 안개가 뽀얗게 낀 것처럼 정기가 없다.
“아이, 그저 안 오네!”
영신은 한숨과 함께 원재 어머니 편으로 머리를 돌렸다. 무슨 생각이 번개같이 나는 듯,
“저어기, 저것 좀.”
이번에는 머리맡에 놓인 책상 서랍을 입으로 가리킨다.
“어머니 사진요?”
원재 어머니는 책상 앞으로 갔다.
“아아니, 그이 편지…….”
동혁의 편지를 받아 든 영신은, 감옥에서 나온 봉함엽서의 획이 굵다란 먹글씨를 희미한 불빛에 내려보고 치보고 한다. 동혁이와 처음 만나던 때부터 경찰서에서 면회를 하던 때까지의 추억의 가지가지가 환등처럼 흐릿하게나마 주마등과 같이 눈앞을 지나가는 모양이다. 그는 조심스러이 편지에 입을 맞추고 나서, 어눌하나마 목소리를 높여,
“동혁 씨, 난 먼첨 가요! 한곡리허구 합병두 못 해보구…… 그렇지만 난 행복해요. 등 뒤가 든든해요. 깨끗헌 당신의 사랑만은 영원히 변허지 않을 테니까요. 그러구 끝까지 꿋꿋허게 싸우며 나가실 걸 믿으니까요…….”
하고 나서, 숨을 가쁘게 들이쉬고 나더니,
“동혁 씨! 조끔두 슬퍼하진 마세요. 당신 같으신 남자는 어떤 경우에든지 남에게 눈물을 보 여선 못씁니다!”
하고는 몹시 흥분해서 헐떡이다가, 원재 어머니를 보고,
“그이가 오거든요, 지금 헌 말이나 전해 주세요, 뭐랬는지 들었죠?”
하고 당부를 한다. 붓을 들 기력도 없는 그는, 말로나마 사랑하는 사람에게 몇 마디를 남긴 것이다.
그리고는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앙가슴을 헤치더니, 그 편지를 속옷 속에 꼭 품고 저고리 앞섶을 여민다. 이제까지 그들은 사진 한 장 바꾸어 가진 것이 없었다.
새로 두시― 세시―
간병하던 사람은 여러 날 눈도 붙여 보지 못해서 꼬박꼬박 졸고 앉았고, 그다지 떨어지지 않으려던 금분이마저 기진맥진해서 선생의 발치에 쓰러진 채 잠이 깊이 들었다. 태고의 삼림 속과 같이 적막한 방 안에 홀로 깨어 있는 것은 영신의 영혼뿐. 지새려는 봄 밤, 한곡리 앞바다에 뜬 새우잡이 배의 등불처럼 의식이 깜박깜박하면서도, 악박골 약물터 우거진 숲속의 반딧불과 같이 반짝 하다가 꺼지려는 저의 일생을, 혼몽 중에 추억의 날개로 더듬어 보는 듯.
“꼬끼요오―”
건넛마을에서 졸린 듯한 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이어 안마당에서도 홰를 치며 우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영신은 반쯤 눈을 뜨더니 가까스로 손에 힘을 주어 원재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잡아다린다.
“워 원재를 좀…….”
원재는 눈을 부비며 황급히 들어왔다. 안방에 모였던 다른 청년들도 서넛이나 원재의 뒤를 따라 들어왔다. 남편의 임종을 한 경험이 있는 원재 어머니는, 이웃집에서 숯불을 피어 놓고 약을 달이다가 이 구석 저 구석에 쓰러진 부인 친목계의 회원들까지 깨워 가지고 와서, 방 안은 그들로 가득 찼다. 청년들은 영신의 머리맡에 둘러앉았다. 여러 사람은 숨소리를 죽여 방안은 무덤 속같이 고요한데, 영신은 할딱할딱 숨을 몰아쉬다가 원재의 손을 잡고 나머지 힘을 다 주며,
“원재, 내가 가드래두…… 우리 학원은 계속해요! 응, 청년들끼리…….”
하고 여러 청년의 수심이 가득 찬 얼굴을 둘러보며 마지막 부탁을 한다. 원재는 무릎을 꿇고 다가앉아 두 손으로 식어 가는 영신의 손을 힘껏 쥐며,
“선생님, 왜 그런 말씀을 허세요? 네, 선생님!”
하고 목이 메었다가,
“염려 마세요! 저희들이 무슨 짓을 해서든지 학원을 붙잡으께요. 죽는 날꺼정 해나가께요!”
하고 굳은 결심을 보였다. 여러 해 동안이나 영신에게 지성껏 지도를 받아 온 청년들의 눈에서는 굵다란 눈물방울이 뚜욱뚜욱 떨어진다.
“울지는 말어. 못난 사람이나 울지.”
그 목소리는 간신히 알아들을 만해도, 아우를 달래는 친누이의 말처럼 정답고 은근하다. 영신은, 치맛자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소리를 죽이는 부인네들을 보고,
“청석골 여러 형젤 두구…… 내가 어떻게 가우?”
하다가, 그저 잠이 깊이 든 금분이를 가까이 안아다 눕히게 한 뒤에 발발 떨리는 손끝으로 앞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이것들을 어떡허나?”
하고 가늘게 가늘게 흐느낀다.
“걱정 마슈. 얘 하난 내가 맡어 길를께.”
울음 반죽인 원재 어머니의 말에, 영신은 고맙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이다가 다시금 깜박 하고 정신을 잃었다. 호흡은 점점 가빠 가는데, 맥을 짚어 보니 뚝뚝 하고 절맥이 된다. 그렇건만 영신은, “끄응!”하고 안간힘을 쓰며 턱밑까지 닥쳐온 죽음을 한 걸음 물리쳤다.
“나, 날…….”
하고 혀끝을 굴리지 못하다가,
“학원집이 뵈는 데다…… 무 묻어…….”
하는데, 인제는 말이 입 밖을 새지 못한다. 입에다 귀를 대고 듣던 원재 어머니는 커다랗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영신은 또다시 기함을 했다가, 그래도 무엇이 미진한 듯이 헛손질을 하는데, 벽에 걸린 손풍금을 가리키는 것 같다. 원재는 냉큼 일어나 그것을 떼어 들었다. 그는 일상 영신의 것을 장난해 보아서 곧잘 뜯을 줄 안다.
“찬미 하나 허까요?”
“……”
영신은 고개만 뵈는 듯 마는 듯 끄덕여 보인다. 원재는 눈을 감고 생각하다가,
날빛보다 더 밝은 천당
믿는 것으로 멀리 뵈네.
있을 곳 예비하신 구주
우리들을 기다리시네.
를 고요히 고요히 뜯기 시작하는데, 영신은 그것이 아니라는 듯이 머리를 흔든다. 원재가 손을 멈추고,
“그럼 무슨 곡조를 허까요?”
하고 귀를 기울이니까, 영신은,
“사 사 삼천리…….”
하고 자유를 잃은 입을 마지막으로 힘껏 움직인다.
손풍금 소리와 함께 청년들은 입술로 눈물을 빨다가 일제히 목소리를 내었다.
……(찬송가 전문 생략)……
목청을 높여 후렴을 부를 때, 영신은 열병 환자처럼 몸을 벌떡 일으켰다. 여러 아이들 앞에 서 그 노래를 지휘할 때처럼 팔을 내젓는 시늉을 하는 듯하다가,
“억!”
소리와 함께 고개를 제치고는 뒤로 덜컥 넘어졌다.
……기름이 졸아붙은 등잔불이 시름없이 꺼지자 뿌유스름한 아침 햇빛은 동창을 물들이기 시작하였다. 청석골은 온통 슬픈 구름에 싸였다. 학부형과 청년과 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친목계의 회원들은 영신의 수시를 거두고, 수의를 지어 입혀 입관까지 자기네 손으로 하고, 그 관을 둘러싸고 잠시도 떠나지를 않는다.
부모의 상사를 당한 것만치나 섧게들 울며 밤낮을 계속하는데, 그 중에도 금분이는 사흘씩이나 절곡을 하고 참새 같은 가슴을 쥐어짜며 울다가, 지금은 선생이 입던 헌 재킷을 끌어안은 채 관머리에 지쳐 늘어졌다.
명복을 비는 기도와 찬미 소리는 만수향의 연기와 같이 끊길 사이가 없고, 수십 리 밖에서까지 일부러 조상을 하러 온 조객들도 적지 않은데, 영신이와 처음 역사를 시작하던 목수는, 친누이나 궂긴 것처럼 제 손으로 세워 놓은 학원의 기둥을 붙안고 소리를 죽여 울면서,
“내 손으루 관까지 짤 줄을 누가 알았드란 말요?”
하고 여간 원통해하지를 않았다. 군청과 면사무소에서도 조상을 나왔는데, 영신의 일동 일정을 감시하고 말썽을 부리던 주재소 주임까지 나와서 관머리에서 모자를 벗었다. 빈소 방에는 어느 틈에 책상 하나만 남기고, 영신이가 쓰던 물건이라고는 불한당이 쳐간 듯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영신의 손때가 묻은 손풍금은 원재가 가져가고, 바람 차고 눈 뿌리는 밤이면 저를 품어 주던 재킷은 금분의 차지인데, 부인네들은 요 이불 베개 하다못해 구두, 고무신까지 다투어 가며 짝짝이로 치맛자락에 싸가지고 갔다. 그만 물건이 탐이 난 것이 아니라, ‘우리 선생님 보듯이, 두구두구 볼 테다.’하고 서로 빼앗기까지 한 것이었다.
그러나 장사를 지낼 날짜 때문에 의논이 분분하였다. 고인의 유언대로 청석학원이 마주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묏자리를 잡았는데 (공동묘지의 구역 밖이건만 면소에서 묵인을 해주었다), 서울서 급보를 접하고 내려온 백현경은 감옥에 있는 사람이 부고를 받더라도 때 맞춰 나올 리가 만무하다고 삼일장으로 지내기를 주장하고, 원재 어머니와 회원들은,
“우리 한 이틀만 더 기다려 봅시다. 그래두 어머니나 박씨가 혹시 올지 누가 알어요? 장사 지내기가 뭐 그렇게 급해요?”
하고 오일장으로 지내자고 우겼다. 작고한 사람의 친척이나 애인을 기다린다느니보다도 영신의 시체나마 하루라도 더 자기 집에 두고 싶었던 것이다. 어머니에게는 물론 당일로 전보를 쳤건만 외딸을 그리다 못해서 먼저 자진을 했는지 회답조차 없었다.
그러자 사흘 되는 날 아침에 뜻밖으로 동혁의 편지가 왔다. 백씨는 수신인이 없는 편지를 황급히 뜯었다.
지금 놓여 나오는 길입니다. 형무소로 부치신 편지는 두 장 다 오늘에야 받어 보았는데, 이번에는 각기로 고생을 하시다가 돌아오셨다니 참으로 놀랍소이다. 또다시 학원의 일을 보시든지 하였다가는 참 정말 큰일납니다.
바로 그리로 가려고 했으나, 동화는 멀리 만주로 뛴 듯한데 어머니가 애절하시던 끝에 병환이 대단하시대서 집으로 직행합니다. 가보아서 조금만 감세가 계시면, 백사를 제치고 갈 터이니 전처럼 먼길에 마중은 나오지 마십시오. 흉중에 첩첩이 쌓인 말씀은 반가이 얼굴을 대해서 실컷 하십시다.
×월 ××일 당신의 박동혁
일부인(日附印)을 보니, 사흘 전의 날짜가 찍혀 있지 않은가.
“아이고 이를 어쩌나. 이리루 바루 왔드면 마지막 대면이나 했을걸.”
하고 백씨는 즉시 특사 배달로 한곡리에 전보를 치도록 하였다.
……전보를 받은 동혁은,
“엉? 이게!”
하고 외마딧소리를 질렀다. 심장의 고동이 덜컥 그치고 온몸을 돌던 피가 머리 위로 와짝 거꾸로 흐르는 듯 아뜩해서 대문 기둥을 짚었다. 하늘은 샛노란데 그네를 뛰면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땅바닥이 움푹 꺼졌다 불쑥 솟아올랐다 한다. 억지로 버티고 선 두 다리에 맥이 풀려서 앞으로 고꾸라질 것만 같아서 그는 문지방에 가 털썩 주저앉았다. 극도에 이르는 놀라움과 흥분을 억지로 눌러서 가라앉히기는 참으로 힘드는 노릇이었다. 돌멩이나 깨무는 것처럼 아래웃니를 응물고 두 번 세 번 전보지를 들여다보는 동혁의 입에서는,
“꿈이다! 거짓말이다!”
하고 다시 한 번 부르짖어졌다.
그날 저녁 동혁은 거의 실신이 된 사람처럼 청석골을 향하여 길을 떠났다. 발길을 내어딛기는 하면서도 다리는 기계적으로 움직일 뿐이요, 제정신으로 걷는 것 같지는 않았다. 평소에는 너무 무뚝뚝하리만치 건전하던 동혁의 심리상태가 이처럼 어지러운 것을 경험하기는 생후 처음이다. 다만 커다란 몸뚱이를 화물처럼 배에다 실리고 자동차에다 붙였을 따름이었다.
청석골의 산천이 가까워 올 때까지 동혁은 영신의 죽음을 억지로 부인하려고 저의 마음과 다투었다. 기적이 나타나기를 빌고 바라는 미신 비슷한 생각에 잠겨 보기도 또한 이번이 처음이다.
자동차는 정류장에 와 닿았다. 영신이가 손수건을 흔들며 달려오는 환영이 눈앞을 어른거리다가, 원재가 홀로 나와 서서 저를 보고는 머리를 푹 수그리는 현실로 변할 때, 혹시나 하고 기적을 바라던 동혁의 공상조차 조각조각 깨어졌다.
병원에서 같이 영신을 간호할 때에 정이 든 원재는 동혁에게 손을 잡히자 말 대신 눈물이 앞을 가렸다. 동혁은 입술을 꽉 깨물고 원재의 뒤를 따라 묵묵히 논틀밭틀을 걸었다. 이제 와서 동혁의 다만 한 가지 소원은, 온 세상에 둘도 없이 사랑하던 사람의 길이길이 잠이 든 그 얼굴이나마 한번 보고 싶은 것뿐이었다.
“입관은 했나?”
비로소 동혁의 말문이 열렸다.
“벌써 했어요.”
이 한마디는 그의 마지막 소망까지 끊어 버렸다. 동혁은 커다란 조약돌을 발길로 탁 걷어차고 하늘을 원망스러이 흘겨보다가 다시 걷는다. 원재는 그제야 띄엄띄엄 울음을 섞어 가며 그 동안의 경과를 이야기한다. 영신이가 운명하기 전에 저의 어머니를 통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해 달라던 유언과, 감옥에서 나온 편지를 가슴속에 품고 갔다는 것이며, 벌써 해가 기울어 가니까 집에서는 발인을 해서 학원 에서 영결식을 할 터이니 그리로 바로 가자고 한다. 동혁은,
“음, 음.”
하고 조금씩 고개를 끄덕여 보이다가, 그 유언을 다시 원재의 입에서 들을 때는 발을 멈추고 우뚝 서서 팔짱을 끼고 한참이나 눈을 딱 감고 있었다.
동혁은 학원 마당에 허옇게 모여 선 조객들의 주목을 받으며 현관 앞에 세워 놓은,
우리의 天使 蔡永信之柩
라고 흰 글씨로 쓴 붉은 명정 앞까지 와서 모자를 벗었다. 여러 달 동안 면도도 못 해서 수염과 구레나룻이 시꺼멓게 났고 그 검붉던 얼굴이 누루퉁퉁하게 부어서, 문간만 내다보고 있던 원재 어머니는 동혁을 얼른 알아보지 못하다가,
“아이고, 인제 오세요?”
하고 나와 반긴다. 그는 입술을 떨면서,
“채선생 저기 계세요!”
하고 교단 위에 검정보를 덮고 가로누운 영구(靈柩)를 가리킨다. 영결식도 끝이 나서 마지막 기도를 올리느라고 남녀 교인들과 아이들은 관 앞에 엎드려 흐느껴 우는 판이었다.
동혁은 눈 한번 꿈벅이지 않고 관을 바라보며 대여섯 간통이나 걸어 들어온다. 관머리까지 와서는 꺼먼 장방형의 나무궤짝을 뚫어질 듯이 들여다보는 그의 두 눈! 얼굴의 근육은 경련을 일으킨 듯이 실룩거리기 시작한다. 어깨가 떨리고 이어서 온몸이 와들와들 떨리더니 그 눈에서 참고 깨물었던 눈물이 터져 내린다. 무쇠를 녹이는 듯한 뜨거운 눈물이 구곡간장으로부터 끓어오르는 것이다.
“여, 여, 영신 씨!”
그는 무릎을 금세 꺾어진 것처럼 꿇으며 관머리를 얼싸안는다.
그 광경을 보자 식장 안에서는 다시금 흑흑 흐느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최후의 일인
동혁은 관 모서리에 얼굴을 부비며 연거푸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영신 씨, 영신 씨! 내가 왔소. 여기 동혁이가 왔소!”
하고 목이 메어 부르나 대답은 있을 리 없는데, 눈물에 어리운 탓일까, 관 뚜껑이 소리 없이 열리며 면사포와 같은 하얀 수의를 입은 영신이가 미소를 띠고 푸시시 일어나 팔을 벌리는 것 같다.
이러한 환각에 사로잡히는 찰나에, 동혁은 당장에 뛰어나가서 도끼라도 들고 들어와 관을 뻐개고 시체를 끌어안고 싶은 충동을 받았다. 그는 가슴 벅차게 용솟음치는 과격한 감정을 발뒤꿈치로 누룩을 디디듯이 이지의 힘으로 꽉꽉 밟았다. 어찌나 원통하고 모든 일이 뉘우쳐지는지, 땅바닥을 땅땅 치며 몸부림을 하여도 시원치 않을 것 같건만, 여러 사람 앞에서 그다지 수통스러이 굴 수도 없었다. 다만 한마디,
“왜 당신은, 일허는 것밖에 좀 더 다른 허영심이 없었드란 말요!”
하고 꾸짖듯 하고는 한참이나 엎드려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다가,
‘영신 씨 같은 여자두 이런 자리에서 남에게 눈물을 보이나요?’
라고 경찰서에서 마지막 만났을 때에 제 입으로 한 말이 문뜩 생각이 나서 주먹으로 눈두덩을 부비고 벌떡 일어섰다. 그는 다시 관머리를 짚고 기도를 올리는 것처럼 침묵하다가, 바로 영신의 귀에다 대고 말을 하듯이 머리맡을 조금씩 흔들면서,
“영신 씨 안심허세요. 나는 이렇게 꿋꿋허게 살어 있소이다. 내가 죽는 날까지 당신이 못다 허구 간 일과 두 몫을 허리다!”
하고 새로운 결심과 영결의 인사를 겹쳐 한 뒤에, 여러 사람과 함께 관머리를 들고 앞서 나 와서 조심스러이 상여에 옮겼다.
영신의 육신은 영원한 안식처를 향하여 떠나려 한다.
동혁의 기념품인 학원의 종을 아침저녁으로 치던 사람의 상여머리에서 요령 소리가 땡그랑땡그랑 울린다. 상여는 청년들이 메었는데, 수백 명이나 되는 아이들과 부인네들과 동민이 가득 들어선 속에서 다시금 울음소리가 일어난다. 아이들은 장강목에 조롱조롱 매달려 제 힘껏 버팅겨서 상여도 차마 못 떠나겠는 듯이 뒷걸음을 친다. 앞채를 꼬나 주던 동혁은 엄숙한 얼굴로 여러 사람의 앞으로 나섰다.
“여러분!”
조상 온 사람 전체를 향해서 외치는 목소리는 여전히 우렁차다.
“여러분! 이 채영신 양은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농촌의 개발과 무산 아동의 교육을 위해서 너무나 과도히 일을 하다가, 둘도 없는 생명을 바쳤습니다. 완전히 희생했습니다. 즉, 오늘 이 마당에 모인 여러분을 위해서 죽은 것입니다.”
하고 한층 더 언성을 높여,
“지금 여러분에게 바친 채양의 육체는 흙 보탬을 하려고 떠나갑니다. 그러나 이분이 끼쳐 준 위대한 정신은 여러분의 머릿속에 살어 있을 것입니다. 저 아이들의 조그만 골수에도 그 정신이 박혔을 겝니다.”
하고는 손길을 마주 모으고 서고, 혹은 머리를 떨어트리고 듣는 여러 청중들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서며,
“그러나 여러분, 조금두 설워허지 마십시오. 이 채선생은 결단코 죽지 않었습니다. 살과 뼈는 썩을지언정, 저 가엾은 아이들과 가난한 동족을 위해서 흘린 피는 벌써 여러분의 혈관 속에 섞였습니다. 지금 이 사람의 가슴속에서도 그 뜨거운 피가 끓고 있습니다!”
하고 주먹으로 제 가슴 한복판을 친다. 여러 사람의 머리 위로는 감격의 물결이 사리 때의 조수와 같이 밀리는 듯. 서울서 온 백현경은 몇 번이나 안경을 벗어서 저고리 고름으로 닦았다.
동혁은 목소리를 낮추어,
“사사로운 말씀은 하지 않겠습니다마는, 나는 이 청석골에서 사랑하던 사람의 사업을 당분간이라도 계속하고 싶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 변변치 못한 사람이나마 소용이 되신다면 모든 것을 버리고 이 길을 밟는 것이 나 개인에게도 가장 기쁜 의무일 줄로 생각합니다.”
말이 끝나자, 청년들은 상여를 메고 선 채 박수를 하였다.
장사가 끝난 뒤에, 백현경과 장래의 일을 의논하며 산에서 내려왔던 동혁은 황혼에 몸을 숨기고 홀로 영신의 무덤으로 올라갔다.
이른 봄 산기슭으로 스며드는 저녁 바람은 소름이 끼칠 만치 쌀쌀하다. 그러나 그는 추운 줄을 몰랐다. 머리 위에서 새파란 광채를 흘리며 반짝거리는 외따른 별 하나를 우러러보고 섰으니까, 극도의 슬픔과 원한에 사무쳤던 동혁의 머리는 차츰차츰 식어 가는 것 같다. 마음이 가라앉는 대로 사람의 생명의 하염없음과 인생의 무상함을 새삼스러이 느꼈다.
‘그만 죽을 걸 그닥지도 애를 썼구나!’
하니, 세상만사가 다 허무하고 무덤 앞에 앉은 저 자신도 판결을 받은 죄수처럼 언제 어느 때 죽음의 사자에게 덜미를 잡혀갈는지? 제 입으로 숨 쉬는 소리를 제 귀로 들으면서도 도무지 살아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수수께끼다! 왜 무엇 하러 뒤를 이어 낳고, 뒤를 이어 죽고 하는지 모르는 인생―요컨대 영원히 풀어 볼 수 없는 수수께끼에 지나지 못한다.’
‘내가 이 채영신이란 여자와 인연을 맺었던 것도 결국은 한바탕 꾸어 버린 악몽이다. 이제 와서 남은 것은 깨어진 꿈의 한 조각이 아니고 무엇이냐.’
될 수 있는 대로 인생을 명랑하게 보려고 노력하여 오던 동혁이건만, 너무도 뜻밖에 사랑하던 사람의 죽음을 눈앞에 보고는 회의와 일종 염세의 회색 구름에 온몸이 에워싸이는 것이다.
‘별은 왜 저렇게 무엇이 반가워서 반짝거리느냐. 뻐국새는 무엇이 서러워서 밤 깊도록 저다지 청승맞게 우느냐. 영신은 왜 무엇 허러 낳었다 죽었고, 나는 왜 무엇 허러 이 무덤 앞에 올빼미처럼 두 눈을 껌벅거리며 쭈그리고 앉었느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까닭을 알 수 없다. 순환소수와 같이 쪼개 보지 못하는 채 사사오입을 하는 것이 인생 문제일까? 쳇바퀴를 돌리는 다람쥐 모양으로, 까닭도 모르고 또한 아무 필요도 없이 제자리에서 맴을 돌며 허위적거리는 것이 인생의 길일까? 오직 먹기를 위해서, 씨를 퍼트리기 위해서, 땀을 흘리고 피를 흘리고 서루 헐뜯고 싸우고 잡어먹지를 못해서 앙앙거리고 발버둥질을 치다가, 끝판에는 한 삼태기의 흙을 뒤집어쓰는 것이 인생의 본연한 자태일까.’
동혁의 머릿속은 천 갈래로 찢기고 만 갈래로 얽혀서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그는 가슴이 무엇에 짓눌리는 것처럼 답답해서 벌떡 일어났다. 팔짱을 끼고 제절 앞을 왔다 갔다 하다가, 봉분의 주위를 돌았다. 열 바퀴를 돌고 스무 바퀴를 돌았다. 그러다가는 무덤을 베개 삼고 쓰러지며, 하늘을 쳐다본다. 별은 그 수가 버쩍 늘었다. 북두칠성은 금강석을 바수어서 끼얹은 듯이 찬란히 빛나고 있다. 그 중에도 큰 별 몇 개는 땅 위의 인간들을 비웃는 듯이 눈웃음을 치는 것 같다. 동혁은 그 별을 향해서 침이라도 탁 뱉고 싶었다. 그러다가 그는 생각을 홱 뒤집었다.
‘그렇다. 인생 문제는 그 자체인 인생의 머리로 해결을 짓지 못한다. 인류의 역사가 있은 후 수많은 철학자와 사상가와 예술가가 머리를 썩히다가 해결의 실마리도 잡어 보지 못한 문제다. 그것을 손쉽게 풀어 보려고 덤비는 것버텀 망령된 짓이다.’
하고는 단념을 해버린 뒤에,
‘그렇지만 채영신이가 죽은 것과 같이, 박동혁이가 살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신병자가 아닌 다음에야 누구나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니 우리가 생명이 있는 동안은 값이 있게 살어 보자! 산 보람이 있게 살어 보자! 구차하게 살려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지만, 타고난 목숨을 제 손으로 끊어 버리는 것도 또한 어리석은 일이다.’
하고 영신이가 반은 자살한 것처럼 생각도 하여 보았다.
‘일을 하자! 이 영신이와 같이 죽는 날까지 일을 하자! 인생의 고독과 고민을 잊어버리기 위해서라도 일을 해야만 한다. 사랑하던 사람의 사업을 뒤를 이을 사람은 나밖에 없다. 울어주고 서러워해 주는 것버덤, 내가 청석골로 와서 자기가 끼친 사업을 계속해 준다면, 그의 혼백이라도 오죽이나 기뻐할까. 든든히 여길까. 일에 바쁜 꿀벌은 슬퍼할 겨를도 없다는 격언이 있지 않은가.’
하고 몇 번이나 생각을 뒤집었다.
‘그럼, 우리 한곡리는 어떡허나? 흐트러진 진영(陣營)을 수습할 사람도 없는데…….’
동혁은 다시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혁은 앞으로 해나갈 일을 궁리하기보다도 우선 저의 신변이 몹시 외로운 것을 느꼈다. 애인의 무덤을 홀로 앉아 지키는 밤, 그 밤도 깊어 가서 저의 숨소리조차 듣기에 무서우리 만치나 온누리는 괴괴한데, 추위와 함께 등허리에 오싹오싹 소름이 끼치게 하는 것은 형용할 수 없는 고독감이다.
처음부터 서로 믿고 손이 맞아서 일을 하여 오던 동지에게 배반을 당하고, 부모의 골육을 나눈 단지 한 사람인 친동생은 만리타국으로 탈수한 후 생사를 알 길 없는데, 목숨이 끊어지는 날까지 저의 반려를 삼아 한 쌍의 수리와 같이 이 세상과 용감히 싸워 나가려던 사랑하던 사람조차 죽음으로써 영원히 이별한 동혁은 외로웠다. 무변대해에서 키를 잃은 쪽배와도 같고, 수백 길이나 되는 절벽 아래서 격랑에 부닥기는 불 꺼진 등대만치나 외로웠다. 무한히 외로웠다.
그러나 한참 만에 동혁은 무거운 짐이나 부린 모군꾼처럼, “휘유―”하고 한숨만 길게 내쉬었다. 다시 마음을 돌이켜 보니, 저의 일신이 홀가분한 것도 같았던 것이다.
‘채영신만한 여자를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진댄, 차라리 한평생 독신으로 지내리라. 아무 데도 얽매이지 않는 몸을 오로지 농촌사업에다만 바치리라.’
하고 일어서면서도 차마 무덤 앞을 떠나지 못하는데 멀리 눈 아래에서 등불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원재와 다른 청년들이 동혁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혹시 산소에나 있나 하고 떼를 지어 올라오는 것이었다. 동혁은 잠자코 청년들의 뒤를 따라 내려왔다. 장로의 집에 잠시 들러 곤해서 쓰러진 백현경을 일으키고, 몇 마디 앞일을 의논해 보았다. 백씨는 여전히 값비싼 화장품 냄새를 풍기며 종아리가 하얗게 내비치는 비단 양말을 신은 것이 불쾌해서, 동혁은 될 수 있는 대로 외면을 하고 그의 의견을 들었다.
“여기 일은 우리 연합회 농촌사업부에서 시작헌 게니까, 속히 후임자를 한 사람 내려보내서 사업을 계속하기로 작정했어요. 영신이만 헐 수야 없겠지만 나이두 지긋허구 퍽 진실헌 여자가 한 사람 있으니까요.”
하는 것이 그의 대답이다. 동혁은 더 묻지 않았다. 부탁 비슷한 말도 하기 싫어서,
“그럼 나두 안심허겠소이다.”
하고 원재네 집으로 내려왔다. 영결식장에서 여러 사람 앞에 선언한 대로 당분간이라도 청석골에 머물러 있어 뒷일을 제 손으로 수습해 주고 싶은 생각은 간절하였다. 그러나 이미 후임자까지 내정이 되고 진실한 사람이 온다는데, 부득부득 ‘나를 여기 있게 해주시오’ 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영신이가 거처하던 원재네 집 텅 비인 건넌방에서 하룻밤을 드새자니, 동혁은 참으로 무량한 감개에 몸둘 바가 없었다. 앉았다 누웠다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세상모르도록 술이나 취해 봤으면…….’하고 난생 처음으로 술생각까지 해보는데, 원재가 저의 이부자리를 안고 건너왔다. 두 사람은 형제와 같이 나란히 누워서 불을 끈 뒤에도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였다. 동혁은,
“나는 새루 온다는 여자버덤두 원재를 믿구 가네. 나도 틈이 있는 대루 와서 보살펴 주겠지 만 조끔두 낙심 말구 일을 해주게!”
하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원재도,
“채선생님 영혼이 우리들헌테 붙어 댕기시는 것 같어서 일을 안 헐래야 안 헐 수가 없겠에 요.”
하고 끝까지 잘 지도를 해달라는 말에 동혁은 이불 속에서 나 어린 동지의 손을 더듬어 꽉 쥐어 주었다.
닭은 두 홰를 울고 세 홰를 울었다. 그래도 동혁은 이 방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던 사람과 지내 오던 일이 너무나 또렷또렷이 눈앞에 나타나서 머리만 지끈지끈 아프고 잠은 아니 왔다. 그러다가 어렴풋이 감기는 눈앞에서 뜻밖에 이러한 글발이 나타났다. 청석학원 낙성식 때 식장 맞은편 벽에 영신이가 써붙였던 슬로건 같은 글발이 비문처럼 천장에 옴폭옴폭하게 새겨지는 것이었다.
과거를 돌려다보고 슬퍼하지 마라. 그 시절은 결코 돌아오지 아니할지니 오직 현재를 의지 하라. 그리하야 억세게, 사내답게 미래를 맞으라!
이튿날 아침 동혁은 산소로 올라가서, ‘당신이 못다 한 일과 두 몫을 하겠다.’고 맹세한 것을 이제로부터 실행하겠다는 말을 다시 한 번 자신 있게 한 뒤에 홱 돌아서서 그 길로 내처 걸어 한곡리로 향하였다. 그러나 시꺼먼 눈썹이 숱하게 난 그의 양미간은 생목(生木)이 도끼에 찍힌 그 흠집처럼 찌푸려졌다. 아마 그 주름살만은 한평생 펴지지 못하리라.
어머니의 병이 염려는 되었으나, 그는 바로 집으로 가기가 싫어서 역로에 몇 군데 모범촌이라고 소문난 마을을 들렀다. 어느 곳에서는 농업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온 청년이 오막살이 한 채를 빌려 가지고 혼자서 야학을 시작한 곳이 있고, 어떤 마을에서는 제법 크게 차리고 여러 해 동안 한글과 여러 가지 과정을 강습해 내려오다가, 당국과 말썽이 생겨 강습소 인가를 취소당하고 구석구석이 도적글을 가르치는 것을 보았다. 한곡리서 오십 리쯤 되는 장거리에서 멀지 않은 촌에서는 청년이 서너 명이나 보수 한 푼 받지 않고 삼 년 동안 주야학을 겸해서 하는 곳이 있는데, 그들은 겨우내 두루마기도 못 얻어 입고 동저고리 바람으로 손끝을 호호 불어 가며 교편을 잡는 것을 볼 때, ‘우리는 편허게 지냈구나.’하는 감상이 들었다. 그는 그러한 지도분자들과 굳게 악수를 하고 하룻밤씩 같이 자면서 의견을 교환하고 새로운 방침을 토론도 하였다. 어느 곳에를 가나,
“지금 우리의 형편으로는 계몽적인 문화운동도 해야 하지만, 무슨 일에든지 토대가 되는 경제운동이 더욱 시급하다.”
는 것을 역설하고 저의 경험을 이야기하였다. 그러는 동시에 그는,
‘이제부터 한곡리에만 들어앉었을 게 아니라 다시 일에 기초가 잡히기만 하면, 전 조선의 방방곡곡으로 돌아다니며 널리 듣고 보기도 하고, 또는 내 주의와 주장을 세워 보리라. 그네들과 긴밀한 연락을 취해서 같은 정신과 계획 아래에서 농촌운동을 통일시키도록 힘써 보리라.’
하니, 어느 구석에선지 새로운 기운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남들이 그러한 고생을 달게 받으며 굽히지 않고 일을 하는 것을 실지로 보니 동혁은 한곡리서 처음으로 일을 시작할 때의 생각이 바로 어제런 듯이 났다. 동시에 옛날의 동지가 불현듯이 보고 싶었다. 일체의 과거를 파묻어 버리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아가려는 생각이 굳을수록 동지들의 얼굴이 몹시도 그리워졌다.
‘건배를 찾어가 보자.’
지난날의 경우는 어찌 되었든 맨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건배였다. 보고만 싶은 게 아니라 제가 감옥에 있는 동안 박봉생활을 하는 사람이 두 번이나 적지 않은 돈을 부쳐 준 치사도 할 겸 그가 일을 보는 군청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건배는 군청에도, 거기서 멀지 않은 사글세로 들어 있는 그의 집에도 없었다. 건배의 아내와 아이들은 반겼으나,
“엊저녁에 한곡리꺼정 다녀올 일이 있다구 자전거를 타구 가서 여태 안 들어왔어요.”
하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무슨 일일까? 나를 찾어가지나 않었나.’
하고 동혁은 일어서는데, 안주인이 한사코 붙들어서 더운 점심을 대접받으며 지내는 형편을 들었다.
“노루꼬리만한 월급에 그나마 반은 술값으루 나가서, 어렵긴 매일반이야요. 일구월심에 다시 한곡리루 가서 살 생각만 나요. 굶어두 제 고장에서 굶는 게 맘이나 편하죠.”
건배의 아내는 당장에 따라 일어서고 싶은 눈치였다. 그러나 동혁은 그와 의형제까지 한 사이를 알면서도 영신의 죽음은 짐짓 말하지 않았다. 그가 영신의 소식을 묻고 혼인 때는 꼭 청해 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
“네에, 청허구말구요.”
하고 쓰디쓴 웃음을 웃어 보였다.
한곡리가 십 리쯤 남은 주막 근처까지 왔을 때였다. 자전거를 끌고 고개를 넘는 양복쟁이와 마주치자 동혁은,
“여어, 건배 군 아닌가?”
하고 손을 들었다.
“요오, 동혁이!”
키장다리 건배는 자전거를 내던지고 달려들어 동혁의 어깨를 끌어안는다. 피차에 눈을 꽉 감고 잠시 말이 없다가,
“이게 얼마 만인가?”
“어디루 해 오는 길인가?”
하고 동시에 묻고는 함께 대답이 없다.
“아무튼 저 집으루 좀 들어가세.”
건배는 동혁을 끌고 주막으로 들어갔다.
“아, 신문에까지 났데만, 영신 씨가 온 그런…….”
건배는 대뜸 동혁의 가슴속의 가장 아픈 구석을 찌르고는 말끝을 맺지 못한다. 동혁은 손을 들며,
“우리 그 사람의 말은 입 밖에두 내지 마세. 제발 그래 주게!”
하고 손을 들어 친구의 입을 막았다. 건배는 머리를 떨어트리고 있다가 한숨 섞어,
“그렇지, 남자헌테는 사랑이 그 생활의 전부가 아니니까…… 허지만, 어디 그이허구야 단순한 연애관계뿐이었었나? 참 정말 아까운…….”
하는데,
“글쎄 이 사람, 그만둬!”
하고 동혁은 성을 더럭 내었다. 두 친구는 말머리를 돌렸다. 둘이 서로 집을 찾아갔더라는 것과 그동안에 격조했던 이야기를 대강대강 하는데, 청하지도 않은 술상이 들어왔다. 건배는,
“나 오늘은 술 안 먹겠네.”
하고 막걸리 보시기를 폭삭 엎어 놓더니 각반 친 다리만 문지르며 말 꺼내기를 주저하다가,
“자네, 그 동안 한곡리서 변사(變事)가 생긴 줄은 모르지?”
한다.
“아아니, 무슨 변사?”
동혁의 눈은 둥그레졌다.
“그저께 강기천이가 죽었네!”
“뭐? 누가 죽어?”
동혁은 거짓말을 듣는 것 같았다.
“사실은 강기천이 조상을 갔다 오는 길일세.”
하고 건배는 듣고 본 대로 놀라운 소식을 전한다. 기천이는 연전부터 주막 갈보에게 올린 매독을 체면상 드러내 놓고 치료를 못 하다가, 술 때문에 갑자기 덧쳐서 짤짤 매던 중, 그 병에는 수은을 피우면 특효가 있다는 말을 곧이 듣고 비밀히 구해다가 서너 돈쭝씩이나 콧구멍에다 피웠었다. 그러다가 급작스레 고만 중독이 되어서, 온몸이 시퍼래 가지고 저 혼자 팔팔 뛰다가 방구석에 머리를 틀어박고는 이빨만 빠드득빠드득 갈다가 고만 뻐드러졌다는 것이었다, 동혁은,
“흥, 저두 고만 살걸.”
하고 젓가락도 들지 않은 술상을 들여다보며 아무런 감상도 더 입 밖에 내지를 않았다.
건배는 마코를 꺼내 붙이며,
“가보니, 아주 난가(亂家)데 난가야. 헌데, 형이 죽은 줄도 모르는 건살포는 서울서 웬 단발 헌 계집을 데리구 왔네그려. 마침 쫓겨갔던 본처가 시아주범 통부를 받구 왔다가, 외동서끼리 마주쳐서 송장을 뻗쳐 놓구 대판으루 쌈이 벌어졌는데, 참 정말 구경헐 만허데.”
하고 여전히 손짓을 해가며 수다를 늘어놓는다. 동혁은 고개만 끄덕이며 듣다가,
“망헐 건 진작 망해여지.”
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한참 만에,
“그런데, 자넨…….”
하고 전보다도 두 볼이 더 여윈 건배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다가,
“자네 그 노릇을 오래 할 텐가?”
하고 묻는다. 건배는 그런 말 꺼내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고만 집어치겠네. 이 연도 말꺼정만 댕기구, 먹거나 굶거나 한곡리루 다시 가겠네. 되레 빚만 더끔더끔 지게 돼서 고만둔다는 것버덤두 아니꼽구 눈꼴 틀리는 거 많어서 이젠 넌덜머리가 났네.”
하고 담배 연기를 한숨 섞어 내뿜으며,
“월급푼에 목을 매다느니버덤은, 정든 내 고장에서 동네 사람이나 아이들의 종노릇을 허는 게 얼마나 맘 편허구 사는 보람이 있는 걸 인제야 절실히 깨달었네.”
하고 진정을 토한다. 그 말에 동혁은 벌떡 일어서며,
“자아 그럼, 우리 일터에서 다시 만나세! 나는 지금 자네가 헌 말을 다시 한 번 믿겠네.”
하고 맨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처럼 굳게굳게 건배의 손을 쥐었다.
“염려 말게. 자넬랑은 벌판의 모래버덤 한 줌의 소금이 되어 주게!”
건배도 잡힌 손을 되잡아 흔들었다.
아무리 지루하던 겨울도 한번 지나만 가면 봄은 기다리지 않아도 저절로 닥쳐온다. 반가운 손님은 신 끄는 소리를 내지 않듯이, 자취 없이 걸어오기로서니, 얼어붙었던 개천 바닥을 뚫고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말랐던 나뭇가지에서 새 움이 뾰족뾰족 돋아나는 것을 볼 때, 뉘라서 새봄이 오지 않았다 하랴.
동혁은 신작롯가에서 잔디 속잎이 파릇파릇해진 것을 비로소 보았다. 미루나무 껍질을 손톱 끝으로 제겨 보니, 벌써 물이 올라서 나무하는 아이들의 피리 소리도 멀지 않아 들릴 듯.
“인제 완구히 봄이로구나!”
한마디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부르짖어졌다.
그는 논둑으로 건너서며 발을 탁탁 굴러 보았다. 흠씬 풀린 땅바닥은 우단 방석을 딛는 것처럼 물씬물씬하다. 동혁은 가슴을 봉긋이 내밀며 숨을 깊닿게 들여마셨다. 마음의 들창이 활짝 열리며 그리로 훈훈한 바람이 쏟아져 들어오는 듯, 그는 다시 속 깊이 서리어 있는 묵은 시름과 함께, “후―”하고 마셨던 바람을 기다랗게 내뿜었다. 화로에 꺼졌던 숯불이 발갛게 피어난 방 속같이 온몸이 후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동혁이가 동리 어귀로 들어서자 맨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불그스름하게 물든 저녁 하늘을 배경삼고 언덕 위에 우뚝우뚝 서 있는 전나무와 소나무와 향나무들이었다. 회관이 낙성되던 날 그 기쁨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서 회원들과 함께 패다 심은 상록수들이 키돋움을 하며 동혁을 반기는 듯.
“오오, 너이들은 기나긴 겨울에 그 눈바람을 맞구두 싱싱허구나! 저렇게 시푸르구나!”
동혁의 걸음은 차츰차츰 빨라졌다. 숨 가쁘게 잿배기를 넘으려니까 회관 근처에서 ‘애향가’를 떼를 지어 부르는 소리가 바람결을 타고 웅장하게 들려오는 듯하여서, 그는 부지중에 두 팔을 내저었다. 그리고는 동리의 초가집들을 내려다보며 오랫동안 떠나 있던 주인이 저의 집 대문간으로 들어서는 것처럼,
“에헴, 에헴!”
하고 골짜구니가 울리도록 커다랗게 기침을 하였다.
그의 눈에는 회관 앞마당에 전보다 몇 곱절이나 삑삑하게 모여 선 회원들이 팔다리를 벌렸다 오므렸다 하며 체조를 하는 광경이 보였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 눈을 꿈벅 하고 감았다가 떴다. 이번에는 훠언하게 터진 벌판에 물이 가득히 잡혔는데, 회원이 오리떼처럼 논바닥에 가 하얗게 깔려서, 일제히 ‘이앙가(移秧歌)’를 부르며 모를 심는 장면이 망원경을 대고 보는 듯이 지척에서 보였다.
동혁은 졸지에 안계가 시원해졌다. 고향의 산천이 새삼스러이 아름다워 보여서 높은 묏부리에서부터 골짜구니까지, 산허리를 한바탕 떼굴떼굴 굴러 보고 싶었다.
앞으로 가지가지 새로이 활동할 생각을 하며 걷자니, 그는 제풀에 어깻바람이 났다. 회관 근처까지 다가온 동혁은 누가 등 뒤에서,
‘엇, 둘! 엇, 둘!’
하고 구령을 불러 주는 것처럼 다리를 쭉쭉 내뻗었다.
상록수 그늘을 향하여 뚜벅뚜벅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