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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의 고향

 

나의 경애하는 동혁 씨!’

 

영신이가 한곡리를 떠난 지 사흘 만에 온 편지의 서두에는 전에 단골로 쓰던 존경두 자의 높을 존()자가 떨어지고 그 대신으로 사랑 애()자가 또렷이 달렸다.

 

무한한 감사와 가슴 벅찬 감격을 한아름 안고 무사히 나의 일터로 돌아왔습니다. 그 감사와 감격은 무덤 속으로 들어간 뒤까지라도 영원히 영원히 잊지 못하겠습니다. 떠날 때의 바쁘신 중에도 여러분이 먼 길에 전송해 주시고, 배표까지 사주신 것만 해도 염치없는데, 꼭 배 안에서 뜯어보라구 쥐어 주신 봉투 속에 십 원짜리 지전 한 장이 들어 있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몇 번이나 다시 돌려보내려고 하였으나, 한창 어려운 고비를 넘는 농촌에서 십 원이란 큰돈을 변통하기가 얼마나 어려우셨을 것을 알고, 또는 제가 떠나 기 전날 밤에, 이 돈을 남에게 취하려고 몇 십 리 밖까지 가셨다가 늦게야 돌아오셨던 것이 이제야 짐작되어서 차마 도로 부치지를 못하였습니다. 몸 보할 약이라도 한 제 지어 먹으라고 간곡히 부탁은 하셨지만, 백 원 천 원보다도 더 많은 이 돈을, 저 한 몸의 영양을 위해서는 쓸 수가 없습니다. 그대로 꼭 저금을 해두었다가 가을에 지으려는 학원 마당 앞에 종을 사서 달겠습니다. 아침저녁 저의 손으로 치는 그 종소리는 저의 가슴뿐 아니라, 이곳 주민들의 어두운 귀와 혼몽히 든 잠을 깨워 주고 이 청석골의 산천초목까지도 울리겠지요.

나의 경애하는 동혁 씨!

자동차가 닿은 정류장에는 부인 친목계의 회원들과 내 손으로 가르치는 어린이들이 수십 명이나 마중을 나와서, 손과 치마꼬리에 매어달리며 어찌나 반가워서 날뛰는지 눈물이 자꾸만 쏟아지는 것을 간신히 참었어요. 더구나 계집아이들은 거진 십 리나 되는 산길을 날마다 두 번씩이나 나와서 자동차 오기를 까맣게 기다리다가 우리 선생님 아주 도망갔다고 홀짝홀짝 울면서 돌아가기를 사흘 동안이나 하였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어느 누가 그다지도 안타까이 저를 기다려 줄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 변변치 못한 채영신이를 그다지도 따뜻이 품어줄 고장이 이 세계의 어느 구석에 있겠습니까?

나의 경애하는 동혁 씨!

이번 길에 저는 고향 하나를 더 얻었어요. 한곡리는 저의 제삼의 고향이 되고 말았어요. 저 와 한평생 고락을 같이하기로 굳게 굳게 맹세해 주신 당신이 계시고, 씩씩한 조선의 일꾼 들이 있고 친형과 같이 친절히 굴어 주던 건배 씨의 부인과, 동네의 아낙네들이 살고 있는 곳이 어째서 저의 고향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새로 얻어서 첫정이 든 그 고향을 꿈에라도 잊지를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저의 가슴에 피를 끓이던 그 애향가의 합창을.

나의 가장 경애하는 동혁 씨!

저는 행복합니다. 인제는 외롭지도 않습니다. 큰덕미 나루터의 커다란 바윗덩이와 같이 변함이 없으실 당신의 사랑을 얻고, 우리의 발길이 뻗치는 곳마다 넷째 다섯째의 고향이 생길 터이니 당신의 곁에 앉었을 때만치나 제 마음이 든든합니다. 저의 가슴은 오직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이 몸의 책임이 더한층 무거워진 것을 깨닫습니다. 청석동의 문화적 개척사업을 나 혼자 도맡은 것만 하여도 이미 허리가 휘도록 짐이 무거운데요, 우리의 사랑을 완성할 때까지 불과 삼 년 동안에 그 기초를 완전히 닦어 놓자면 그 앞길이 창창한 것 같습니다. 양식 떨어진 사람이 보릿고개를 넘기는 것만치나 까마아득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우리들은 가난하고 힘은 아직 약하나, 송백처럼 청청하고 바위처럼 버티네.”하고 애향가의 둘째 절을 부르겠어요. 목청껏 부르세요!

나에게 다만 한 분이신 동혁 씨!

그러면 부디부디 건강히 일 많이 하여 주십시오. 그 동안 밀린 일이 많고, 야학 시간이 되기도 전에 아이들이 몰려와서 오늘은 더 길게 쓰지 못하니 이 편지보다 몇 곱절 긴 답장을 주십시오. 다른 회원들에게 안부 전해 주시고 건배 씨 내외분에게는 틈나는 대로 따로이 쓰겠습니다.

××××

당신께도 하나뿐인 채영신 올림

 

영신은 어머니에게와 아버지가 혼인을 정해 준 남자에게도 편지를 썼다. ‘앞으로 몇 해 동안 결혼 문제 같은 것은 염두에도 두지 않겠고, 또는 이 뒤에라도 당신과는 이상이 맞지 않고 주의가 틀려서 억지로 결혼을 한대도, 결단코 행복스러운 생활을 할 수가 없겠으니 이 편지를 보고는 아주 단념해 주기를 바란다는 최후의 통첩을 띄웠다.

동혁이와 삼십 년 동안이라도 기다리겠다는 언약을 한 이상, 연애니 결혼이니 하는 번거로운 문제로 새삼스러이 머리를 썩일 시간도 없고, 그렇다고 그대로 질질 끌어 나가는 것은 여러 해를 두고 저를 유념해 온 상대자에게 대해서 매우 미안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한 일주일 뒤에야 어머니에게서는, “진정으로 네 생각이 그렇다면 인력으로 못할 노릇이나, 딸자식 하나로 해서 이 어미는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할 줄이나 알어다오.”하는 대서 편지가 왔고, 금융조합에 다니는 남자에게서는, “얼마나 이상이 높고 주의가 맞는 남자와 결혼을 해서 이 세상 복록을 골고루 누리며 사나 두구 보자. 아무튼 조만간 직접 만나서 최후의 담판을 할 테니 그런 줄 알라.”는 저주 비슷한 회답이 왔다. 그 사람이야 다시 오건 말건, 영신은 남이 억지로 짊어 준 무 거운 짐을 벗어 버린 것만치나 마음이 거뜬하였다. ‘, 인젠 일이다! 일을 허는 것밖에 없다! 앞으로 삼 년이란 세월을 지루하지 않게 보내기 위해서래도 힘껏 일을 하는 수밖에 없다.’ 하고 제 몸을 스스로 채찍질하였다. 일주일 동안 한곡리에서 받은 자극도 컸거니와 동혁이와 약혼을 한 것으로 말미암아, 여간 큰 충동을 일으킨 것이 아니다. 그래서 청석골로 돌아 온 뒤에도 며칠 동안은 일이 손에 잡히지를 않고, 그때까지도 흥분이 가라앉지를 않았다. 그러나 그 반면으로 건강은 아주 회복이 되어서, 먼동이 훤하게 틀 때 일어나 기도회에 참례를 하고 낮에는 학원을 지을 기부금을 모집하러 몇 십 리 밖까지 다니거나, 그렇지 않으면 부인 친목계의 계회원들과 같이 발을 벗고 들어서서 원두밭을 매고 풀을 뽑고 하다가 저녁을 먹고 나면, 그 자리에 쓰러지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고 예배당으로 가야 한다. 가서 서너 시간이나 아이들과 아귀다툼을 해가면서 글을 가르치고 나오면, 다리가 굳어 오르는 것 같고 고개를 꼬는 힘까지 빠져서, 길가의 잔디밭만 보아도 턱 누워 버리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사숙하는 집까지 와서는 자리도 펼 사이가 없이 곯아떨어진다. 그렇건만 아침에 벌떡 일어나서 냉수에 세수를 하고 나면 새로운 용기가 솟는다. 아침마다 제 시간이 되면 동혁이가 부는 나팔 소리가 바람결에 들려오는 것 같아서 더 좀 누웠으려야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까지 놀 새가 없는 농번기가 닥쳐왔건만 강습소의 아이들은 나날이 늘어 오 리 밖 십 리 밖에서까지 밥을 싸가지고 다니고, 기부금이 단돈 백 원씩이라도 늘어 가는 것과, 친목계의 계원들도 지도하는 대로 한몸뚱이가 되어 한 사람도 마실을 다니거나 버정거리는 사람이 없이 닭을 기르고 누에를 치고 또는 베를 짠다. 영신은 그러한 재미에 극도로 피곤하건만 몸이 괴로운 줄을 모르고 하루 이틀을 보냈다. 사업이 날로 늘어 가고 모든 성적이 뜻밖으로 좋아질수록, 끼니때를 잊을 적도 있고 심지 어 며칠씩 머리도 빗지 못하기가 예사였다.

그러나 틈이 빠끔하게 나기만 하면 동혁의 환영에게 정신이 사로잡히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바닷가의 기울어 가는 달밤, 모래 위에 그 육중한 몸뚱이를 몸부림치며 사랑을 고백하던 동혁이, 온 몸뚱이가 액체로 녹을 듯이 힘차게 끌어안던 두 팔의 힘, 숨이 턱턱 막히던 불같은 키스. 영신은 그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르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고 얼굴이 화끈화끈 달았다. 그날 밤 그 하늘에 떴던 달이나 별들밖에는 그 장면을 본 사람이 없으니 아무도 두 사람의 마음속의 비밀을 알 리 없건만, 그래도 동혁의 생각이 불현듯이 나서 멀리 남녘 하늘의 구름을 바라다보고 섰을 때에는, 곁에 있는 사람이 제 속을 뚫고 들여다보는 것 같아서 머리가 저절로 수그러들기도 여러 번 하였다.

동혁에게서 꼭꼭 일주일에 한 번씩 편지가 왔다. 사연은 간단한데 여전히 보고 싶다든지 그립다든지 하는 말은 한마디도 없고, 다만 영신의 건강을 축수하는 것과 새로 계획하는 일이나 방금 실지로 해나가는 일이 어떻다는 것만은 문체도 보지 않고 굵다란 글씨로 적어 보내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영신은 그 편지를 틈틈이 꺼내 보는 것, 오직 그것만이 큰 위안 거리였다.

그 동안 영신의 수입이라고는 경성연합회에서 백현경의 손을 거쳐 생활비 겸 사업을 보조하는 의미로 다달이 삼십 원씩 보내 주는 것밖에 없었다. 원재 어머니라는, 젊어서 홀로 된 교인의 집 건넌방에 들어서, 밥값 팔 원만 내면 방세는 따로 내지 않았다. 옷이라고는 그곳 여자들과 똑같은 보병것을 입고, 겨울이면 학생시대에 입던 헌 털재킷 하나가 유일한 방한구인데 구두도 아니 신고 고무신을 끌고 다니니, 통신비 신문 잡지 대금 해서 십여 원만 가지면 저 한 몸은 빠듯이 먹고 지낼 수가 있었다. 그래서 나머지 이십 원도 못 되는 돈으로, 이태 전부터 강습소와 그밖에 모든 경비를 써온 것이다. 월사금을 한 푼이라도 받기는커녕 그 중에도 어려운 아이들의 교과서와 연필 공책까지도 당해 주고, 심지어 넝마가 다 된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보면, 장에 가서 옷감까지 끊어다가 소문 안 나게 해 입힌 것이 한두 벌이 아니었다. 더구나 아이들이 장난을 하다가 다치거나 배탈이 나든지 하면 으레 선생님을 부르며 달려오고, 나중에는 동네 사람들까지 영신을 무슨 고명한 의사로 아는지, “채선생님, 제 둘째 새끼가 복학을 앓는뎁쇼, 신효헌 약이 없습니까?”하고 찾아와서 손길을 마주 부비는 사람에, “아이구, 우리 딸년이 관격이 돼서 자반 뒤집기를 허는데, 제발 적선에 어떻게 좀 살려 줍쇼.”하고 발을 동동 구르는 얼굴도 모르는 여편네에, 낫으로 손가락을 베인 머슴에, 도끼로 발등을 찍힌 나무꾼 할 것 없이, 급하면 채선생을 찾아온다. 영신은, “이건 내가 성이 채가니까 옛날 채동지가 여자루 태난 줄 아우?”하고 어이가 없어서 웃을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네들을 하나도 그대로 돌려보낼 수가 없어서 내복약도 주고 겉으로 치료도 해주었다. 그러니 그 시간과 비용도 적지 않다. 붕대, 소독약, 옥도정기, 금계랍, 요오드포름 할 것 없이 근자에는 한 달에 약품 값만 거진 십 원 씩이나 들었다. 그래도 오히려 모자라는데, 그네들은 채선생이 병만 잘 고칠 줄 아는 것뿐 아니라, 화수분이나 가진 것처럼 돈도 뒷구녁으로 적지 않이 버는 줄 아는 모양이다.

보통 사람은 불러다 볼 생의도 못 하는 공의가 그나마 사십 리 밖 읍내에 겨우 한 사람이 있고, 장거리에 의생이 두어 사람 있다고는 하나, 옛날처럼 교군이나 보내야 온다니, 이 근처 백성들은 무료로 치료를 해주는 채선생을 찾아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영신의 방이 어떤 때는 진찰실이 되고, 벽장 속은 양약국의 약장 같았다. 나날이 명망이 높아 가는 채의사(?)는 병을 고쳐 주는 데까지 재미가 나서, 빚을 얻어 가면서래도 급한 때 쓰는 약을 떨어트리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아메바성 이질로 죽어 가던 사람이 에메틴 주사 한 대로 뒤가 막히고, 가슴앓이로 펄펄 뛰던 사람이 판토폰 한 대에 진정이 되는 것은 여간 신기하지가 않았다. 그래서 자연히 통속적인 의학과 임상에 관한 서책도 보게 되고 실지로 의사의 경험도 쌓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이 이 동리에 특파하신 사도다!’하는 자존심과 자랑까지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수술을 해야 할 환자를 몇 십 리 밖에서 업고 오고, 심지어 보기에도 더럽고 지겨운 화류병 환자까지 와서 치료를 해달라고 엎드려 손이 발이 되도록 비는 데는 진땀이 났다. 그네들이 거절을 당하고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돌아가는 것을 볼 때, ‘왜 내가 정작 의술을 배우지 못했던가.’하고 탄식을 할 때도 많았고 동시에, ‘의료 기관 하나 만들어 놓지를 않구 세금을 받어다간 뭣에다 쓰는 거야. 의사란 놈들이 있 대두 그저 돈에만 눈들이 번하지.’하고 몹시 분개하기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뿐 아니라 영신은 이따금 재판장 노릇까지도 하게 된다. 아이들끼리 재그락거리는 싸움은 달래고 타이르고 하면 평정이 되지만, 어른들의 싸움, 그 중에도 내외 싸움까지 판결을 내려 달라는 데는 기가 탁 막힐 노릇이었다.

어느 비 오던 날은 딱장대로 유명한 억쇠 어머니가 집에서 양주가 머리가 터지도록 싸우다 가, 영감쟁이의 멱살을 추켜 쥐고, 영감쟁이는 마누라의 머리채를 끄들며 씨근벌떡거리고 와서는, “아이고 사람 죽겠네. 채선생님, 이 정칠놈의 영감을 어떡허면 투전을 못 허게 맨듭니까? 술 못 먹게 허는 약은 없습니까?”하면, 영감쟁이는 만경이 된 눈을 휘번덕거리며, “아이구 이 육실헐년, 버르장이를 좀 가르쳐 줍쇼.”하고 비가 줄줄 쏟아지는 진흙마당에서 서로 껴안고 뒹굴며 한바탕 엎치락뒤치락하다가 버럭버럭 대드는 바람에, 영신은 어쩔 줄을 모르고 구경만 하다가 고만 뒷문으로 빠져서 예배당으로 뺑소니를 친 때도 있었다.

한편으로 글을 배우러 오는 아이들은 거진 날마다 늘었다. 양철 지붕에 송판으로 엉성하게 지은 조그만 예배당은 수리를 못 해서 벽이 떨어지고 비만 오면 천장이 새는데, 선머슴 아이들이 뛰고 구르고 하여서 마루청까지 서너 군데나 빠졌다. 그것을 볼 때마다 늙은 장로는, “, 경비는 날 곳이 없는데 너희들이 예배당을 아주 헐어 내는구나. 강습이구 뭐구 인젠 넌덜머리가 난다.”하고 허옇게 센 머리를 내둘렀다. 더구나 새로 글을 깨친 아이들이 어느 틈에 분필과 연필로 예배당 안팎에다가 괴발개발 글씨도 쓰고 지저분하게 환도 친다. ‘신퉁이 개자식이라’ ‘갓난이는 오줌을 쌌다더라하고 제 동무의 욕을 쓰기도 하고, 심지어 십자가를 새긴 강당 정면에다가 나쁜 그림까지 몰래 그려 놓기도 하여서 그런 낙서를 볼 때마다 장로와 전도사는 상을 찌푸린다. 영신은 여간 미안하지가 않아서 하루도 몇 번씩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입이 닳도록 타일렀다. 그러나 속으로는 제가 진땀을 흘리며 가르친 아이들이 하나 둘씩 글눈을 떠가는 것이 여간 대견하지 않았다. 비록 나쁜 그림을 그리고 욕을 쓸망정 그것이 여간 신통하지가 않아서, “장로님, 저희두 따루 집을 짓구 나갈 테니, 올 가을꺼정만 참어 줍시오.”하고 몇 번이나 용서를 빌었다. 그러면 변덕스러운 장로는 대머리를 어루만지며, “원 채선생, 별말씀을 다 허는구려. 다 하나님의 뜻대루 되겠지요. 그게 조옴 거룩헌 사업이오.”하고 얼더듬는다. 그럴수록 영신은 사글셋집에 들어 있는 것만치나 불안스러워서 하루바삐 집을 짓고 나가려고 아니 해보는 궁리가 없었다.

그러나 원체 가난한 동리인데다가, 그나마 돈이 한창 마른 때라 기부금은 적어 놓은 액수의 십분의 일도 걷히지를 않고, 친목계원들이 춘잠을 쳐서 한 장치에 열서너 말씩이나 땄건만, 고치금이 사뭇 떨어져서 예산한 금액까지 되려면 어림도 없다. 닭도 집집마다 개량식으로 쳤지만 모이를 사서 먹인 것과 레그혼 같은 서양 종자의 어미닭 값을 따지고 보면 계란 값과 비겨 떨어진다. 그러니 줄잡아도 오륙백 원이나 들여야 할 학원을 지을 엄두가 나지를 않았다. 영신이가 하도 집을 짓지 못해서 성화를 하니까 다른 회원들은, “급히 먹는 밥이 체헌다우. 우리 선생님두 성미가 퍽 급허셔.”하고 위로하듯 하기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수록 아이들이 한꺼번에 대여섯 명, 어떤 때는 여남은 명씩 부쩍부쩍 는다. 보통학교가 시오 리 밖이나 되는 곳에 있고 간이(簡易)학교라고 새로 생긴 것도 장터까지 가서야 있으니, 배움에 목마른 아이들은 등잔불로 날아드는 나비처럼 청석골로만 모여들 수밖에 없는 형세다. 요새 들어온 아이들까지 합하면, 거진 일백삼십 여명이나 된다. 그러나 장소가 좁다는 이유로 한 아이도 더 수용할 수 없다고 오는 아이를 쫓을 수는 없다. 영신은, ‘아무나 오게. 아무나 오게.’하는 찬송가 구절을 입 속으로 부르며, ‘오냐, 예배당이 터지도록 모여 오너라, 여름만 되면 나무 그늘도 좋고, 달밤이면 등불두 일없다.’하고 들어오는 대로 받아서, 그곳 보통학교를 졸업한 젊은 사람들의 응원을 얻어 남자와 여자와 초급과 상급으로 반을 나누어 가르치기 시작했다. 영신을 숭배하고 일을 도와주는 순진한 청년이 서너 명이나 되지만 그 중에도 주인집의 외아들인 원재는 영신의 말이라면 절대로 복종을 하는 심복이었다. 같은 집에 살기도 하지만 상급학교에는 가지 못하는 처지라, 새새틈틈이 영신에게서 중등 학과를 배우는 진실한 청년이다.

가뜩이나 후락한 예배당 안은 콩나물을 기르는 것처럼 아이들로 빡빡하다. 선생이 부비고 드나들 틈이 없을 만치 꼭꼭 찼다. 아랫반에서, “ ‘자에 ㄱ허면 허구.” “ ‘자에 ㄴ허면 허구.”하면서 다리도 못 뻗고 들어앉은 아이들은 고개를 반짝 들고 칠판을 쳐다보면서 제비 주둥이 같은 입을 일제히 벌렸다 오므렸다 한다. 그러면 윗반에서는 농민독본을 펴놓고, ‘잠자는 자 잠을 깨고 눈먼 자 눈을 떠라. 부지런히 일을 하야 살 길을 닦아 보세.’하며 목청이 찢어져라고 선생의 입내를 낸다. 그 소리를 가까이 들으면 귀가 따갑도록 시끄럽지만, 멀리 축동 밖에서 들을 때, ‘아아, 너희들이 인제야 눈을 떠가는구나!’하며 영신은 어깨춤이 저절로 났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저녁때였다. 영신의 신변을 노상 주목하고 다니던 순사가 나와서 다짜고 짜,

주임이 당신을 보자는데, 내일 아침까지 주재소로 출두를 허시오.”

하고 한마디를 이르고는 말대답을 들을 사이도 없이 자전거를 되집어타고 가버렸다.

무슨 일로 호출을 할까?’

강습소 기부금은 오백 원까지 모집을 해도 좋다고 허가를 해주지 않었는가?’

영신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웬만한 일 같으면 출장 나온 순사에게 통지만 해도 고만일 텐데, 일부러 몇 십 리 밖에서 호출까지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이 붙은 일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영신이가 처음 내려오던 해부터 이 일 저 일에 줄곧 간섭을 받아 왔었지만, 강습소 일이나 부인 친목계며 그밖에 하는 일을 잘 양해를 시켜 오던 터이라 더욱 의심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별별 생각이 다 나서 영신은 그날 밤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이튿날 새벽밥을 지어 달래서 먹고는 길을 떠났다. 이십 리는 평탄한 신작로지만 나머지는 가파른 고개를 넘느라고 발이 부르트고 속옷은 땀에 젖었다.

 

……영신과 주재소 주임 사이에 주고받은 대화나 그 밖의 이야기는 기록하지 않는다. 그러나 호출한 요령만 따서 말하면, ‘첫째는 예배당이 좁고 후락해서 위험하니 아동을 팔십 명 이외에는 한 사람도 더 받지 말라는 것과, 둘째는 기부금을 내라고 돌아다니며 너무 강제 비슷이 청하면 법률에 저촉이 된다.’는 것을 단단히 주의시키는 것이었다. 영신은 여러 가지로 변명도 하고 오는 아이들을 아니 받을 수는 없다고 사정사정하였으나, “상부의 명령이니까 말을 듣지 아니하면 강습소를 폐쇄시키겠다.”고 얼러메어서 영신은 하는 수 없이 입술을 깨물고 주재소 문 밖을 나왔다.

그는 아픈 다리를 간신히 끌고 돌아와서 저녁도 아니 먹고 그날 밤을 꼬박이 새우다시피 하였다. ‘참자! 이버덤 더한 것도 참어 왔는데, 이만헌 일이야 참지 못하랴.’하면서도 좀 더 시원하게 들여대지를 못하고 온 것이 종시 분하였다. 그러나 혈기를 참지 못하고 덧들렸다가는 제한받은 수효의 아이들마저 가르치지 못하게 될 것을 생각하고 꿀꺽 참았던 것이다. 아무튼 어길 수 없는 명령이매, 내일부터 일백사십 여명 중에서 팔십 명만 남기고 오십여 명을 쫓아내야 한다. 저의 손으로 쫓아내야만 한다. “난 못 하겠다! 차라리 예배당 문에 못질을 하는 한이 있드래도 내 손으로 차마 그 노릇은 못 하겠다!”하고 영신은 부르짖으며 방바닥에 가 쓰러져버렸다. 한참 동안이나 엎치락뒤치락하며 홀로 고민을 하였다.

그는 불을 끄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그러나 이제까지 갖은 고생과 온갖 곤욕을 당해 가면서 공들여 쌓은 탑을, 그 밑동부터 제 손으로 허물어트릴 수는 없다. 청석골 와서 몇 가지 시작한 사업 중에 가장 의미 깊고 성적이 좋은 한글 강습을 중도에서 손을 뗄 수는 도저히 없다. ‘어떡허면 나머지 오십 명을 돌려보낼꼬?’ ‘이제까지 두말없이 가르쳐 오다가 별안간 무슨 핑계로 가르칠 수가 없다고 한단 말인가?’ 거짓말을 하기는 죽어라고 싫건만 무어라고 꾸며 대지 않을 수도 없는 사세다. 아무리 곰곰 생각해 보아도 묘책이 나서지를 않아서 그는 하룻밤을 하얗게 밝혔다.

창 밖에 새벽별이 차차 빛을 잃어 갈 때, 영신은 소세를 하고 나와서 예배당으로 올라갔다. 땅 위의 모든 것이 아직도 단꿈에서 깨지 않아 천지는 함께 괴괴하다. 영신은 이슬이 축축이 내린 예배당 층계에 엎드려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렸다.

주여, 당신의 뜻으로 이곳에 모여든 귀엽고 사랑스러운 어린 양들이 오늘은 그 삼분의 일이나 목자를 잃게 되었습니다. 다시 어둠 속에서 헤매일 수밖에 없이 되었습니다! 주여, 그 가엾은 무리가 낙심하지 말게 하여 주시고 하나도 버리지 마시고 다시금 새로운 광명을 받을 기회를 내려 주시옵소서! 오오 주여, 저의 가슴은 지금 미어질 듯합니다.’

영신은 햇발이 등 뒤를 비추며 떠오를 때까지 그대로 엎드린 채 소리 없이 흐느껴 울었다.

 

월사금 육십 전을 못 내고 몇 달씩 밀려오다가 보통학교에서 쫓겨난 아이들이, 그날도 두 명이나 식전에 책보를 들고 그 학교의 모자표를 붙인 채 왔다.

얘들아, 참 정말 안됐지만 인전 앉을 데가 없어서 받을 수가 없으니 가을버텀 오너라. 얼마 있으면 새 집을 커다랗게 지을 텐데 그때 꼭 불러 주마, .”

하고 영신은 그 아이들의 이름을 적고는 등을 어루만져 주며 간신히 돌려보냈다. 그리고는 다른 아이들이 오기 전에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잠 한숨 자지를 못해서 머리가 무겁고 눈이 빡빡한데, 교실 한복판에 가서 한참 동안이나 실신한 사람처럼 우두커니 섰자니, 어찔어찔하고 현기증이 나서 이마를 짚고 있다가 다리를 허청 떼어 놓으며 칠판 앞으로 갔다. 그는 분필을 집어 가지고 교단 앞에서 삼분의 일 가량 되는 데까지 와서는 동편짝 끝에서 부터 서편짝 창 밑까지 한일자로 금을 주욱 그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예배당 문을 반쪽만 열었다. 아이들은 여느 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이 재깔거리며 앞을 다투어 우르르 몰려들어온다. 영신은 잠자코 맨 먼저 온 아이부터 하나씩 둘씩 차례차례로 분필로 그어 놓은 금 안으로 앉혔다. 어느덧 금 안에는 제한받은 팔십 명이 찼다.

나중에 온 아이들은 이 금 밖으로 나가 앉어요. 떠들지들 말구.”

선생의 명령에 늦게 온 아이들은 영문도 모르고, ‘오늘은 왜 이럴까.’하는 표정으로 선생의 눈치를 할끔할끔 보며 금 밖에 가서 쪼그리고 앉는다. 아이들에게 제비를 뽑힐 수도 없고 하급생이라고 마구 몰아내는 것도 공평치가 못할 듯해 서, 영신은 생각다 못해 나중에 오는 아이들을 돌려보내려는 것이다. 나중에 왔다고 해도 시간으로 보면 불과 십 분 내외의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그렇게 하는 도리 이외에 아무 상책이 없었던 것이다.

영신은 아이들을 다 들여앉힌 뒤에 원재와 다른 청년들에게 그제야 그 사정을 귀띔해주었다. 그런 소문이 미리 나면 일이 더 복잡해질 것을 염려하였기 때문이었다. 그 말을 듣는 청년들의 얼굴빛은 금세 흙빛으로 변하였다.

암말두 말구 나 허라는 대루만 장내를 잘 정돈해 줘요. 자세헌 얘긴 이따가 헐게…….”

청년들은 영신을 절대로 신임하는 터이라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침통한 표정을 지을 뿐이다.

영신은 찬찬히 교단 위에 올라섰다. 그 얼굴빛은 현기증이 나서 금방 쓰러지려는 사람처럼 해쓱해졌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무슨 말을 허시려구 저러나.’하고 저희들 깐에도 보통 때와는 그 기색이 다른 것을 살피고는 기침 하나 아니 하고 영신을 쳐다본다. 영신은 입술만 떨며 얼른 말을 꺼내지 못하고 섰다. 사제간의 정을 한칼로 베어 내는 것 같은 마룻바닥에 그어 놓은 금을 내려다보고, 그 금 밖에 오십여 명 아동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무슨 무서운 선고나 내리기를 기다리는 듯한 그 천진한 얼굴들을 바라볼 때, 영신은 눈두덩이 뜨끈해지며 목이 막혀서 말을 꺼낼 수가 없다. 한참만에야 그는 용기를 내었다. 그러다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여러 학생들 조용히 들어요. 오늘은 선생님이 차마 허기 어려운 섭섭헌 말을 헐 텐데…….”

하고 나서 다시 주저하다가,

…… 금 밖에 앉은 아이들은 오늘버텀 공부를…… 시킬 수가…… 없게 됐어요!”

하였다. 청천의 벽력은 무심한 어린이들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 깜박깜박하고 선생을 쳐다보던 수없는 눈들은 모두가 꽈리처럼 똥그래졌다.

왜요? 선생님, 왜 글을 안 가르쳐 주신대유?”

그 중에 머리가 좀 굵은 아이가 발딱 일어나며 질문을 한다. 영신은 순순히 타이르듯이 집이 좁아서 팔십 명밖에는 더 가르칠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과, 올 가을에 새 집을 지으면 꼭 잊어버리지 않고 한 사람도 빼어 놓지 않고 불러주마고 빌다시피 하였다.

그럼 입때꺼정은 이 좁은 데서 어떻게 가르쳐 주셨에유?”

이번엔 제법 목소리가 패인 남학생의 질문이 들어왔다. 영신은 화살이나 맞은 듯이 가슴 한복판이 뜨끔하였다. 그 말대답을 못 하고 머리가 핑 내둘려서 이마를 짚고 섰는데 금 밖에 앉았던 아이들은 하나 둘 앉은 채 엉금엉금 기어서, 혹은 살금살금 뭉치면서 금 안으로 밀려들어오다가,

선생님! 선생님!”

하고 연거푸 부르더니 와르르 교단 위까지 뛰어오른다. 영신은 오십여 명이나 되는 아이들에게 에워싸였다.

선생님!”

선생님!”

전 벌써 왔에요.”

뒷간에 갔다가 쪼금 늦게 왔는데요.”

선생님, 난 막동이버덤두 먼첨 온 걸 저 차순이두 봤에요.”

선생님, 낼버텀 일쯕 오께요. 선생님버덤두 일쯕 오께요.”

선생님, 저 좀 보세요, 절 좀 보세요! 인전 아침두 안 먹구 오께 가라구 그러지 마세요, 네 네.”

아이들은 엎드러지며 고푸러지며 앞을 다투어 교단 위로 올라와서, 등을 밀려 넘어지는 아이에, 발등을 밟히고 우는 아이에, 가뜩이나 머리가 휭한 영신은 정신이 아찔아찔해서 강도상 모서리를 잡고 간신히 서 있다. 제 몸뚱이로 버티고 선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포위를 당해서 쓰러지려는 몸이 억지로 떠받들려 있는 것이다.

선생님!”

선생님!”

아이들의 안타까운 부르짖음은 귀가 따갑도록 그치지 않는다. 그래도 영신은 눈을 내리감고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 뿐…….

내려들 가!”

어서 내려들 가거라!”

말 안 들으면 모두 내쫓을 테다.”

하면서 영신을 도와주는 청년들이 아이들을 끌어내리고 교편을 들고 얼러메건만, 그래도 아이들은 울며불며 영신의 몸에 가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 죽기 기쓰고 떨어지지를 않는다. 영신의 저고리는 수세미가 되고 치마 주름까지 주루루 트더졌다. 어떤 계집애는 다리에다가 깍지를 끼고 엎드려서 꼼짝을 못 하게 한다. 영신은 트더진 치마폭을 휩싸쥐고 그제야,

놔라, ! 얘들아, 저리들 좀 가 있어. 온 숨이 막혀서 죽겠구나!”

하고 몸을 뒤틀며 손과 팔에 매어달린 아이들은 가만히 뿌리쳤다. 아이들은 한번 떨어졌다가도 혹시나 제가 빠질까 하고 다시 극성스레 달려붙는다. 이 광경을 본 교회의 직원들이 들어와서 강제로 금 밖에 앉았던 아이들을 예배당 밖으로 내몰았다. 사내아이, 계집아이 할 것 없이 어머니의 젖을 억지로 떨어진 것처럼 눈이 빨개지도록 홀짝홀짝 울면서 또는 흑흑 흐느끼면서 쫓겨 나갔다. 장로는 대머리를 번득이며 쫓아 나가서, 예배당 바깥문을 걸고 빗장까지 질렀다. 아이들이 소동을 해서 시끄러워 골치도 아프거니와, 경찰의 명령을 듣지 않다가는 교회의 책임자인 자기의 발등에 불똥이 튈까 보아 적지 않이 겁이 났던 것이다.

아이들의 등뒤에서 이 정경을 바라보던 영신은 깨물었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영신은 그 눈물을 아이들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소매로 얼굴을 가리며 돌아섰다. 한참이나 진정을 하고 나서는 저희들 깐에도 동무들을 내쫓고 공부를 하게 된 것이 미안쩍은 듯이 머리를 떨어뜨리고 앉은 나머지 여든 명을 정돈시켜 놓고 차마 내키지 않는 걸음걸이로 칠판 앞으로 갔다. 그는 새로운 과정을 가르칠 경황이 없어서,

오늘은 우리 복습이나 허지.”

하고 교과서로 쓰는농민독본을 펴 들었다. 아이들은 글자 모으는 법을 배운 것을 독본에 있는 대로,

누구든지 학교로 오너라.”

배우고야 무슨 일이든지 한다.”

하고 풀이 죽은 목소리로 외기를 시작한다. 영신은 그 생기 없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듣기 싫은데,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안다고, 이가 빠진 듯이 띄엄띄엄 벌려 앉은 교실 한 귀퉁이가 훠언한 것을 보지 않으려고 유리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창밖을 내다보던 영신은 다시금 콧마루가 시큰해졌다. 예배당을 에두른 야트막한 담에는 쫓겨 나간 아이들이 머리만 내밀고 조옥 매달려서 담 안을 넘겨다보고 있지 않은가. 고목이 된 뽕나무 가지에 닥지닥지 열린 것은 틀림없는 사람의 열매다. 그 중에도 키가 작은 계집애들은 나무에도 기어오르지를 못하고 땅바닥에 가 주저앉아서 홀짝거리고 울기만 한다. 영신은 창문을 말끔 열어 제쳤다. 그리고 청년들과 함께 칠판을 떼어 담 밖에서도 볼 수 있는 창 앞턱에다가 버티어 놓고 아래와 같이 커다랗게 썼다.

누구든지 학교로 오너라.”

배우고야 무슨 일이든지 한다.”

나무에 오르고 담장에 매어달린 아이들은 일제히 입을 열어 목구멍이 찢어져라고 그 독본의 구절을 바라다보고 읽는다. 바락바락 지르는 그 소리는 글을 외는 것이 아니라 어찌 들으면 누구에게 발악을 하는 것 같다.

그러한 상태로 얼마 동안 지냈다. 그래도 쫓겨 나간 아이들은 날마다 제시간에 와서 담을 넘겨다보며 땅바닥에 엎드려 손가락이나 막대기로 글씨를 익히며 흩어질 줄 모른다. 주학과 야학으로 가르고는 싶으나 저녁에는 부인 야학이 있어서 번차례로 가르칠 수도 없었다.

집을 지어야겠다. 무슨 짓을 해서든지 하루바삐 학원을 짓고 나가야겠다!”

영신의 결심은 나날이 굳어 갔다. 그러나 그 결심만으로는 일이 되지 못하였다. 그는 원재와 교회 일을 보는 청년들에게 임시로 강습하는 일을 맡기고는, 청석학원 기성회 회원 방 명부를 꾸며 가지고 다시 돈을 청하러 나섰다. 짚신에 사내처럼 감발을 하고는, 오늘은 이 동리 내일은 저 동리로 산을 넘고 논길을 헤매며 단 십 전 이십 전씩이라도 기부금을 모으러 다녔다. 푹푹 찌는 삼복중에 인가도 없는 심산궁곡으로 헐떡거리며 돌아다니자면, 목이 타는 듯이 조갈이 나는 때도 많았다. 논 귀퉁이 웅덩이에 흥건히 괸 물을 손으로 떠서 마시기도 하고, 어떤 때는 긴긴 해에 점심을 굶어 시장기를 이기지 못하고 더운 김이 후끈후끈 끼치는 풀밭에 행려병자와 같이 쓰러져서 정신을 잃은 때도 있었다. 촌가로 찾아 들어가면 보리밥 한술이야 얻어먹을 수가 없는 것은 아니건만 굶으면 굶었지 비렁뱅이처럼, “밥 한술 줍쇼.”하기까지는 자존심이 허락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가는 저녁까지 굶고 눈이 하가마가 되어서 캄캄한 밤에 하늘의 별만 대중해서 방향을 잡고 오는 날도 겅성드뭇하였다. 집에까지 죽기 기쓰고 기어들어와 턱 눕는 것을 보면 원재 어머니는, “아이고 채선생님, 이러다간 큰 병 나시겠구려. 사람이 성허구서야 학원 집이구 뭣이구 짓지, 온 가엾어라. 아주 초죽음이 되셨구려.”하고는 영신의 다리 팔을 주물러 주고, 더위를 먹었다고 영신환을 얻어다 먹이고 하였다.

그렇건만 기부금을 적은 명부를 펴보면, 하루에 사십 전 오십 전, 끽해야 이삼 원밖에는 적히지를 않았다. 원재 어머니는 이태 동안이나 영신이와 한집에서 살고 밥을 해주는 동안에, 글을 깨치고 쉬운 한문까지도 알아보게 된 것이다. 그는 영신의 감화를 받아 교회의 권사 노릇까지 하게 되었고, 영신이가 와서 발기한 부인 친목계의 서기 겸 회계까지 보게 되었다. 그래서 영신과 정도 들었거니와 그를 천사와 같이 숭앙하고 친절을 다하는 터이다.

청석동 강습소가 폐쇄를 당할 뻔하였다는 것과, 기부금을 모집하러 다닌다는 소식을 영신의 편지로 안 동혁은,

건강을 해치도록 너무 무리하게는 일을 하지 마십시다. 우리는 오늘만 살고 말 몸이 아니 기 때문이외다. 그저 칡덩굴처럼 줄기차게 뻗어 나가고, 황소처럼 꾸준하게만 우리의 처녀지를 갈며 나가면 끝나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하고 몇 번이나 간곡히 건강을 주의하라는 편지가 왔다. 그러나 그러한 편지는, 도리어 달리는 말에게 채찍질을 하는 듯 영신으로 하여금 한층 더 용기를 돋우게 하고 분발케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는 생각다 못해서, 기부금을 십 원이고 이십 원이고 적어 놓고 이 핑계 저 핑계로 내지 않는 근처 동리의 밥술이나 먹는 사람들을 다시 한 번 찾아다녔다. 그 중에도 번번이 따고 면회를 하지 않는 한낭청이란 부잣집에는, ‘어디 누가 못 견디나 보자.’하고 극성맞게 쫓아가서는 기어이 젊은 주인을 만나보고 급한 사정을 하였다. 그러나 여보 이건 빚 졸리기버덤 더 어렵구려. 글쎄 지금은 돈이 없다는데 바득바득 내라니, 그래 소 팔구 논 팔어서 기부금을 내란 말요? , 우리 집 자식들이 한 놈이나 강습손가 허는 델 댕기기나 허나!”하고 배를 내민다. 영신은 참다못해서 속으로, ‘에에끼 제 배때기밖에 모르는 놈 같으니. 그래두 술 담배 사먹는 돈은 있겠지.’하고 사랑마당에다 침을 탁 뱉고 돌아선 때도 있었다. 이래저래 영신은 근처 동리의 소위 재산가 계급에게는 인심을 몹시 잃었다. “어디서 떠들어온 계집이 그 뻔새야. 기부금에 병풍상성을 해서 쏘댕기니. , 나중엔 별꼴 다 보겠군!”하고 귀먹은 욕을 먹었다. 그와 동시에 주재소에서는, 주의를 시켰는데도 또 기부금을 강청한다고 다시 말썽을 부리게 되었다.

 

 

불개미와 같이

 

청석골서 한 십 리쯤 되는 흑석리(黑石里)라는 동리에, 그 근처에서 제일가는 부명을 듣는 그 한낭청 집에서는 주인 영감의 환갑잔치가 열렸다. 한낭청은 한곡리의 강도사 집보다 몇 곱절이나 큰 부자로(천 석도 넘겨 하리라는 소문이 난 지도 여러 해나 되었다) 근처 동리를 호령하는 지주다.

큰 소를 한 마리나 잡아 엎었다더라

읍내에서 기생하고 광대를 불러다가 소리를 시키고 줄을 걸린다더라

인근 각처에 소문이 굉장히 퍼졌다. 청석골서도 그 집의 논을 하는 작인들은 물론, 갓을 빌려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늙은 축들이 십여 명이나 떼를 지어 구경을 갔다. 여편네들도 풀을 세게 먹여서 버석거리는 치마를 빼질러 입고 그 뒤를 따랐다. 소를 통으로 잡아 엎고 기생 광대까지 놀린다는 것은, 이 궁벽한 시골서 구경거리에도 주린 그네들에게 있어서 몇 십 년에 한 번 만날지 말지 한 좋은 기회이다.

떵기덩 떵더꿍.’

닐리리 닐리리 쿵다쿵.’

한낭청 집 널따란 사랑마당 큰 느티나무 밑에는 차일을 치고 마당 양 귀퉁이에는 작수를 받치고 팔뚝 같은 굵은 참밧줄을 핑핑히 켕겨 놓았는데, 갓을 삐딱하게 쓴 늙은 풍악잡이 들이 북, 장구, 피리, 젓대, 깡깡이 같은 제구를 갖추어 풍악을 잡히기 시작한다. 주인 영감이 큰상을 받은 것이다. 덧문을 추녀 끝에 추켜 단 큰사랑 대청에는 군수의 대리로 나온 서무주임 이하 면장, 주재소 주임, 금융조합 이사, 보통학교 교장 같은 양복장이 귀빈들은 물론, 일가친척이 각처서 구름같이 모여들어서 툇마루 끝까지 그득히 앉았다. 교자상이 몫몫 나와서, 주전자를 든 아이들은 손님 사이를 간신히 부비고 다닌다. 읍내서 자동차로 사랑놀음에 불려온 기생들은(기생이래야 요릿집으로 팔려온 작부지만) 인조견 남치마에 무릎을 세고 앉아서 풍악에 맞추어, ‘만수산 만수봉에 만년장수 있사온데, 그 물로 빚은 술을 만년 배에 가득 부어, 이삼 배 잡수시오면 만수무강하오리다.’하고 권주가를 부른다. 주인의 오른편에서 노랑 수염을 꼬아 올리고 앉았던 면장은, “, 간상 드시지요. , 이케다상.”하고 커다란 은잔을 들어 주인과 주재소 수석에게 권한다. 십여 년이나 면장 노릇을 하면서도 한 획 가로 긋고 두 획 내려 그은 것이 자인 줄도 모르건만, 긴상 복상은 곧잘 부를 줄 안다. 달리 부를 수 있는 자리에도 자를 붙이는 것이 고작 가는 존대가 되는 줄 아는 모양이다. 난흥이라고 부르는 기생은, 잔대를 들고 노란 치잣물 같은 약주가 찰찰 넘치는 잔을 들어 손들이 권하는 대로 주인 영감에게 받들어 올린다. 한낭청은 반백이 된 수염을 좌우로 쓰 다듬어 올리고, 그 술이 정말 불로장생의 선약이나 되는 듯이 높이 들어 쭈욱 들이마시곤 한다. 깍짓동처럼 뚱뚱해서 두 볼의 군살이 혹처럼 너덜너덜하는 한낭청에게 버드나무 회초리 같은 계집들이 착착 부닐면서 아양을 떠는 것도 한 구경거리다.

이윽고 풍류 소리와 함께 헌화하는 소리와 웃음소리가 일어난다. 술 주전자를 들고, 혹은 진안주 마른안주를 나르는 사내 하인과 계집 하인이 안중문으로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하는 동안에 주객이 함께 술이 취하였다. 아침부터 안 대청에서 자여질들이 헌수하는 술을 마시고 거나하게 취해 나온 한낭청은, 사방 삼십 센티미터나 됨직한 얼굴이 당호박처럼 시뻘겋게 익었다. 그 얼굴에다가 조그만 감투를 동그마니 올려놓은 것이 족두리를 쓴 것 같아서, 기생들은 아까부터 저희끼리 눈짓을 해가며 낄낄대고 웃었다. 주인과 늙은 손들은 무릎장단을 치며 시조를 부르다가 서로 수염을 끄두르며 기롱을 하기 시작하고, 체면을 차리고 도사리고 앉았던 면장도 분을 횟박같이 뒤집어쓴 기생들의 뺨을 손등으로 어루만지며 음탕한 소리까지 하게 되었다.

여봐라, 큰애 어디 갔느냐?”

한낭청은 위엄 있게 불렀다. 뒤처져 온 손들의 주안상을 분별하던 큰아들이 올라와 두 손길을 마주 잡았다.

여민동락(與民同樂)이라니, 저 손들두 얼른 내다 먹여라. 취투룩 먹여. 오늘 내 집에 술이야 떨어지겠느냐.”

하고는 뜰아래에 쭈그리고 앉고 혹은 멀찌감치 돌아서서 담배를 태우는 늙은 작인들을 턱으로 가리키며 분부를 내렸다.

머슴들은 바깥마당에다가 멍석을 주욱 폈다. 막걸리가 동이로 나오는데 안에서는 고기 굽는 냄새가 코를 찌르건만, 그네들의 안주는 콩나물에 북어와 두부를 썰어 넣고 멀겋게 끓인 지짐이와, 시루떡 부스러기뿐이다. 그러나 그것도 매방앗간에, 지난밤부터 진을 치고 있던 장타령꾼들이 수십 명이나 와르르 달려들어 아귀다툼을 해가며 음식을 집어 들고 달아났다.

삼현 육각이 자진가락으로 영산회상(靈山會上)을 아뢰고, 광대가 마악 줄을 타고 올라설 때였다. 구경꾼이 물결치듯 하는데 거진 오륙십 명이나 됨직한,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여선생의 인솔로 큰 대문 안으로 들어온다. 그 여선생은 영신이었다. 학원을 지으려는 데만 열중한 그는, 그 전날도 기부금을 거두려고 삼십 리 밖 장거리까지 갔다가 날이 저물어서 그곳 교인의 집에서 묵고 아침에 떠나서 오는 길에 서너 집이나 들르느라고 점심때도 겨워서 흑석리 동구 앞까지 당도하였다. 청석골서 아직도 담을 넘겨다보며 글을 배우고 땅바닥에 글씨를 익히고 하던 아이들은 점심들을 먹으러 가는 길에 채선생이 오는 것을 신작로에서 먼발치로 보고는,

, 저어기 우리 선생님 오신다.”

한 아이가 외치자, 여러 아이들은,

선생님!”

선생님!”

하고 부르며 앞을 다투어 달려왔다. 여기저기로 흩어져 가는 동무들까지 소리쳐 불러서, 어느 틈에 삼사십 명이나 영신을 둘러쌌다. 비록 하루 동안이라도 떠나 있다가 타동에서 만나니까, 피차에 몇 달 만에 얼굴을 대하는 것만치나 반가웠다. 영신이가,

너희들은 먼첨들 가거라. 난 저 기와집엘 댕겨갈 테니…….”

하고 떼치려니까, 이이들은,

나두 가유.”

선생님 우리두 갈 테유.”

하고 뒤를 따른다. 영신은 그 집에 오늘 잔치가 벌어진 줄은 까맣게 몰랐건만, 어른들에게 말을 들은 아이들은 선생님이 한 부잣집 잔치에 청좌를 받고 가는 줄만 여기고, 속심으로는 음식을 얻어먹으려고 기를 쓰고 대서는 것이다.

한낭청은 체면에 못 이겨서, 또는 취중에 자기 손으로 기부금을 오십 원이나 적었었다. 그런 지가 벌써 돌이 돌아오건만 요리조리 핑계를 하고 오늘날까지 한 푼도 내지를 않아서 요 전번처럼 영신에게 창피까지 당하였었다.

오십 원짜리가 가장 큰 머리라, 영신은 그 돈으로 우선 재목이라도 잡아 보려고 십여 차나 그 집 문지방을 닳린 것인데, 근자에 와서는 부자가 다 안으로 피하고 만나주지도 않을 뿐더러, 도의원 후보자로 군내에 세력이 당당한 한낭청의 맏아들은, 채영신이가 기부금을 강청해서 주민들의 비난하는 소리가 높다고, 경찰서에 가서 귀를 불었기 때문에 영신이가 주재소까지 불려가서 설유를 톡톡히 받았었고, 강습하는 아동이 제한당한 것만 하더라도 그 여파인 것이 틀림없었다. 그럴수록 영신은, ‘어디 누가 견디나 보자.’하고 단단히 별러 오던 터인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한낭청의 환갑날 또다시 찾아가게 된 것이다. 그 집에 잔치가 있어서 동네 어른도 많이 갔다는 말을 비로소 아이들에게 들은 영신은, ‘옳다구나, 마침 잘 됐다. 오늘이야 설마 아니 만나진 못허겠지.’하고 아이들이 따라오는 것을 굳이 말리지는 않았다. ‘여차직하면 만인좌중에 그 돼지 같은 영감쟁이 고작을 들었다 노리라.’하고는 일종의 시위운동도 될 듯해서 조무래기는 쫓아 보내고, 머리 굵은 아이들을 이십 명 가량만 추렸다. 그러나 큰 구경이나 빼어 놓고 가는 줄 알고,

나두 나두.”

하고 계집아이들까지 중간에서 행렬에 달라붙고 하여서, 그럭저럭 오륙십 명이나 따라오게 된 것이다. 영신은,

그 집에서 음식을 주드래두, 너희들은 받어 먹거나 싸갖구 가선 안 된다.”

하고 단단히 단속을 하였다. 그러면서도 한낭청 집에 솟을대문이 바라다 보이는 큰 마당 터까지 와서는, ‘칩칩허게 음식이나 얻어먹으러 애들까지 데리고 오는 줄이나 알지 않을까.’ ‘아무튼 그 집의 경사날인데, 우르르 몰려가는 건 체면상 좀 재미적은걸.’하고 두세 번 돌쳐설까 하고 망설였다. ‘가뜩이나 나를 못 믿겠다는데, 아주 상스런 여자나 흑작질꾼으로 치부를 하면 어떡허나?’하고 뒤를 사리려고 하다가, ‘계획적으로 하는 일이 아닌 담에야 내친걸음에 여기까지 왔다가 돌아서는 것도 비겁하다.’하고 용기를 돋아 가지고 대문 안으로 들어섰던 것이다.

광대는 꽃부채를 펴들고 몸을 꼬느면서 줄을 타고 앉았다 일어섰다 용춤을 추다가 아래서 어릿광대가,

여봐라, 말 들어라.”

하고 먹이면, 줄 위의 광대는,

오오냐, 말만 던져라.”

하면서 재담을 주고받는다.

높은 산에 눈 날리듯

얕은 산에 재 날리듯

억수 장마 비 퍼붓듯

대천 바다 조수 밀듯

하고 이 댁에 돈과 곡식이 쏟아지고 밀려들라고 덕담을 늘어놓으면, 기생들은 대청 위에서,

얼씨구 좋다 절씨구

지화자 좋다 저리시구

하고 팔을 벌리고 어깨를 으쓱거리며 아장아장 주인의 앞으로 대섰다 물러섰다 하면서 덩실덩실 춤을 춘다. 그 판에 영신의 일행은 사랑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마당의 빈객들은,

이거 별안간 웬 아이들야?”

하고 서로 술 취한 얼굴을 돌려다보는데, 줄 위에 오른 광대는 아이들이 발바닥 밑으로 우르르 달려드는 사품에 깜짝 놀라서 하마터면 발을 헛딛고 떨어질 뻔하였다. 영신이도 잠시 어리둥절해서 당상 당하를 둘러보다가, 여러 사람의 눈총을 한 몸에 받으면서 댓돌 아래로 다가섰다. 몹시 불쾌한 낯빛으로 저 딱장대가 또 뭘 허러 왔을까하고 영신의 행동을 말없이 보고 섰던 도의원 후보자는 여러 사람 앞이라 주인의 체모를 차리느라고 영신의 앞으로 와서 형식적으로 머리를 숙여 보이며,

, 사이상이 어떻게 오셨습니까? 온 허두 정신이 쓰라려서 미처 청첩두 못 했는데…….”

하고 작은사랑 편으로 올라가라고 손바닥을 펴대며 인도를 한다. 영신은 될 수 있는 대로 공손히 예를 하고는,

, 고맙습니다. 올라가지 않어두 좋습니다.”

하고 마주 굽실거리다가 큰마루 위를 향해서 늙은 주인도 들으라는 듯이,

우리는 불청객이올시다. 그렇지만 오늘 같은 경사스러운 날에, 멀지 않은 동네에 살면서 주인 영감께 축하의 말씀 한마디도 아니 드릴 수가 없어서 오는 길에 아이들까지 이렇게 따러 나왔습니다.”

하고 만취가 된 한낭청을 똑바로 쳐다본다. 늙은 주인은 정신이 몽롱한 중에도 영신을 알아본 듯 게게 풀린 눈자위로 마당 그득히 들어선 아이들을 내려다보더니,

허어, 귀헌 손님들이로군. 조것들꺼정 내 환갑날을 어떻게 알었든고?”

하고 수염을 내려 쓰다듬으며 매우 만족한 웃음을 웃고는,

큰애 게 있느냐?”

하고 위엄 있게 큰아들을 불러 세우더니 아이들을 먹일 음식상을 차려 내오라고 명령한다.

아니올시다. 우린 음식을 먹으려구 오질 않었습니다.”

하고 영신은 손을 내저었다. 젊은 주인은 어쩐지 형세가 불온해서 속으로는 적지 않이 켕기건만,

머처럼 이렇게 오셨는데, 도무지 차린 게 변변치 않어서…….”

하고 어름어름하다가 돌아서며,

저 숱한 얘들을 뭘 다 노나 먹인담…….”

하고 군소리를 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마루 위의 손들이 파흥이 된 것을 불쾌히 여기는 눈치를 채고 한낭청은 기둥을 붙들고 일어서며,

아아니, 광대 놈들은 뭘 허는 셈이냐?”

하고 역정을 낸다. 풍악 소리는 다시 일어나고 광대는 비실거리며 줄을 걷는다. 마당 가장 자리에 조옥 둘러앉은 아이들은 광대가 줄을 타고 달리다가 뒷걸음을 쳤다가 하는 것을 정신없이 쳐다본다. 그 중에도 계집애들은 간이 콩만해지는 듯,

애그머니! 저러다 떨어지면 어쩌나.’

하고 아슬아슬해서 손에 땀을 쥔다. 영신이도 광대가 줄을 타는 것을 처음 보아서 그편을 쳐다보고 섰는데, 이 집의 머슴들은 장타령꾼과 머슴애들이 먹던 그릇을 말끔 몰아 가지고 들어갔다. 조금 뒤에는 그 사발 대접을 부시지도 않고, 고명도 없는 밀국수에 장국 국물을 찔끔찔끔 쳐가지고 나와서는 그나마 두세 명에 한 그릇씩 안긴다. 그것을 본 영신은 크나큰 모욕을 느끼고 금시 눈에서 불이 나는 듯 두 손으로 허리를 짚으며,

여보, 우린 그런 음식 안 먹소!”

하고 꾸짖듯 하고는 머슴들의 앞을 딱 가로막아 섰다. 어떤 아이는 일러 준 말을 잊어버리고 국수 그릇에 손을 내밀다가 옴실하고 선생의 눈치를 살핀다.

, 왜 이러시나요? 준비헌 건 없지만 온 주인 된 사람이 무안허군요.”

젊은 주인은 영신의 기색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보고 얼더듬는다. 그 태도는 기부금을 못 내겠다고 버티던 때와는 딴판이다.

한편에서는 배불리 얻어먹은 장타령꾼의 두목인 듯한 푸댓조각을 두른 자가 안중문으로 들이대고 헛침을 튀튀 뱉더니,

얼씨구 들어왔네, 품 품 품바바.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두 않구 또 왔소냉수 동이 나 마셨느냐, 시원시원 잘두 헌다. 뜨물 동이나, 들이켰나, 걸직걸직 잘두 한다.”

하고 곤댓질을 하니까, 머리를 충충 땋아 늘인 총각 녀석이 뒤를 대어,

하늘천자를 들구 봐, 자시에 생천하니 호호탕탕 하늘 천, 축시에 생지하니 만물창생 따아지.”

하고 천자 뒤풀이를 청승맞게 한다.

광대는 줄에서 뛰어내려 땅재주를 훌떡훌떡 넘다가,

사부댁 존전에 그저 처분만 바랍니다.”

하고 댓돌 위로 홍선을 펴들고 기생들에게 눈짓을 슬쩍 한다. 기생들은 그 눈치를 약빨리 채고,

아이고 영가암, 몇 장 처분해 줍쇼그려어.”

하고 화롯가에 붙인 촛가락처럼 이리 곤드라지고 저리 곤드라지는 양복쟁이들의 옆구리를 찌른다. 그것을 본 한낭청은,

옜다, 그래라. 이런 때 돈을 못 쓰면 저승에 가 쓰겠느냐.”

하고 새빨간 염낭을 끄르더니 지전 한 장을 집히는 대로 꺼내서, 광대의 얼굴에다 끼얹듯이 내던진다. 가랑잎처럼 휘돌다가 댓돌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언뜻 보기에도 일 원짜리는 아니다. 어릿광대는 지전을 집어 들고 주인에게 수없이 합장을 하며 덩실덩실 춤을 추다가 수없는 사람의 손때가 묻은 지전을 입에다 물고 배운 재주는 다 부리는데, 대청 위에서는 기생들이 손들과 어우러져 춤을 추기 시작한다.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섰던 영신의 눈은 점점 이상한 광채가 돌기 시작한다. 한낭청은 첩에게 부축이 되어 비틀거리며 안으로 들어가다가, 아이들이 그저 마당에 가 쪼그리고 앉은 것을 보고 혀꼬부라진 소리로,

쟤 쟤들은 왜 여태 저 저러구 앉었느냐?”

하고 만경이 된 것 같은 두 눈의 흰자위를 굴리며 영신을 내려다본다. 영신은 마당 한복판으로 썩 나섰다.

우리들이 댁에 뭘 얻어먹으러 온 줄 아십니까?”

그 목소리는 송곳 끝 같다.

그 그럼 뭐 뭘 허러 왔노?”

돈을 하두 흔허게 쓰신다길래 여기 손수 적어 주신 기부금을 받으러 왔습니다.”

영신은 주인을 똑바로 쳐다보며 기부금 명부를 싼 책보를 끄른다. 낭청은,

기부금? 아 그래 쇠털 같은 날에, 하 하필 오늘날 성군작당(成群作黨)을 허구 와서 내란 말야. 기 기부금에 거 걸신이 들렸군.”

하고 사뭇 호령을 하고는 돌아서려고 든다. 영신은 뚱뚱보의 앞을 떡 가로막아 서며,

안 됩니다. 오늘은 만나 뵌 김에 천하 없는 일이 있어두 받어 가지구야 갈 텝니다.”

하고 야무지게 목소리를 높인다. 손들과 구경꾼들이며 기생 광대 할 것 없이 어안이 벙벙해서 여선생을 주목한다. 영신은 마당 가득 찬 여러 사람을 향해서,

여러분, 이런 공평치 못한 일이 세상에 있습니까? 어느 누구는 자기 환갑이라구 이렇게 질탕히 노는데, 배우는 데까지 굶주리는 이 어린이들은 비바람을 가릴 집 한 간이 없어서 그나마 길바닥으로 쫓겨났습니다. 원숭이 새끼처럼 담이나 나뭇가지에 가 매달려서 글 배는 입내를 내고요, 조 가느다란 손고락의 손툽이 닳도록 땅바닥에다 글씨를 씁니다!”

하고 얼굴이 새빨개지며 목구멍에 피를 끓이는 듯한 어조로,

여러분, 이 아이들이 도대체 누구의 자손입니까? 눈에 눈물이 있고 가죽 속에 붉은 피가 도는 사람이면, 그 술이 차마 목구녁으루 넘어갑니까? 기생이나 광대를 불러서 세월 가는 줄 모르구 놀아두, 이 가슴이양심이 아프지 않습니까?”

하고 부르짖으며 저의 앙가슴을 주먹으로 친다.

손들은 도가 넘도록 취했던 술이 당장에 깬 듯 서로 얼굴만 쳐다보는데, 한낭청은 어느 틈에 안으로 피해 들어가고 젊은 주인은 영신의 앞을 막아서며,

사이상, 온 이거 어느새 망령이시구려. 오늘 같은 날 참으시지요. 일이 잘못 됐으니 그저 참어 주세요. 그 돈은 저녁 안으루 꼭 보내 드리리다.”

하고 말씨가 명주 고름 같아지며 머리를 수없이 숙여 보인다. 영신은 흥분을 가라앉히느라고 숨만 가쁘게 쉬고 섰는데, 처음부터 누마루 한구석에 앉아서 영신의 행동을 노리고 내려다보던 주재소 수석의 눈은 점점 날카롭게 빛났다.

 

……그날 저녁부터 일주일 동안이나 영신은 경찰서 유치장 마루방에서 새우잠을 잤다. 본서까지 끌려가서 구류를 당하던 경과며, 그 까닭은 오직 독자의 상상에 맡길 뿐이다.

 

동혁은 청석골이 가보고 싶다. 날이 가고 달이 바뀔수록 사랑하는 사람과 그가 활동하는 모양이 보고 싶었다. 날마다 이 일 저 일에 얽매어서 잠자는 시간밖에는 공상할 틈조차 없기는 하지만, 일을 하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무뜩무뜩 영신의 생각이 나면 손을 쉬고 발을 멈추고 넋을 잃은 사람처럼 머엉하니 하늘을 쳐다보는 습관이 부지중에 생겼다. ‘그가 꿈결같이 댕겨간 지가 언제이던가.’하면 적어도 사오 년은 된 성싶었다. 편지만은 끊임없이 내왕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웬일인지 열흘이 훨씬 넘도록 영신의 소식이 끊어져서 여간 궁금히 지내지를 않았다.

그러다가 일전에야 기다란 편지가 왔는데 한낭청이란 부잣집에 기부금을 걷으러 가서 창피를 당하고 분풀이를 실컷 하다가, 일주일 동안이나 고초를 겪었다는 것과 앞으로는 기부금 명부에 이름을 적은 사람에게도 자발적으로 주기 전에는 독촉도 하지 못하게 되었고, 예배당 문까지 닫으라고 딱딱 얼러메는 것을 간신히 양해를 얻기는 했으나, 무슨 수단을 써서든지 청석학원 하나는 기어이 짓고야 말겠다고 새로운 결심을 보인 사연이었다.

그러면서도 한번 구경이라도 와달라는 말은 비치지도 아니한다. 반드시 청좌를 해야만 갈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혹시나 와달랄까 하고 동혁은 편지마다 은근히 기다렸다. 그러나 오는 편지마다 판에 박은 듯한 사업보고요, 고생하는 이야기뿐이다. 동혁은 그런 편지를 받을 적마다, ‘나두 어지간히 버티는 패지만, 나버덤두 한술 더 뜨는걸.’하고 편지를 동댕이치는 때도 있었다. 가기만 하면야 반가이 맞아 줄 것은 물론이나, 사실 내왕 노자도 어렵고, 별러 별러서 간댔자 급한 볼일 없이 며칠 동안이나 버정거리다가 오기는 싱겁고 멋쩍은 일일 것 같았다. 첫째, 남자 친구를 찾아가는 것과 달라서 하룻밤이나 마 묵을 데도 만만치 않을 듯하고, 둘이 함께 얼려 다니고 마주 붙어 앉아 이야기라도 하면 노처녀인 영신이가 제가 당한 것보다도 곱절이나 부질없는 놀리움을 받을 것도 상상되었다. 그래서, ‘좋은 기회가 올 때까지 꾹 참자.’하고 피차에 일하는 것밖에 다른 생각은 아주 책장을 덮어 두자고 몇 번이나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러나 늙은 총각의 가슴속에 한번 호되게 붙어 당긴 사랑의 불길은 의식적으로 참고 억지로 누른다고 쉽사리 꺼질 리가 없었다. 시뻘건 정열이 휘발유를 끼얹은 듯이 확 하고 붙어 당길 때는 머리끝까지 까맣게 그슬릴 것만 같다. 그럴 때면, ‘일이다, ! 그저 들구 일만 허는 것이 그와 완전히 결합될 시기를 지루하게 기다리는 동 안의 최면제도 되고 강심제도 된다.’하고 식전부터 오밤중까지도 동네일과 집안 일로 몸을 얽어매었다. 돈 있는 집 자식들이 몸뚱이가 아편쟁이처럼 비비 틀리도록 무료한 세월을 술과 계집 속에 파묻혀서 보내려고 드는 것처럼. 그래도 억제하기 어려운 청춘의 본능이 피곤한 육체를 괴롭게 굴 때에는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어나갔다. 아랫도리까지 발가벗고 냉수를 끼얹고는, 엇 둘 엇 둘 하고 체조를 한바탕 하고 들어와서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눈을 딱 감으면 한결 잠이 쉽게 들었다.

한편으로 그가 영신을 될 수 있는 대로 호의로써 이해하려는 것도 물론이다. 그만한 나이에 다른 여자들 갔으면 몸치장이나 하기에 눈이 벌겋고, 돈 있고 소위 사회에 명망이 있는 신사와 결혼을 못하면, 첩이라도 되어서 문화생활을 할 공상과, 그렇지 않더라도 도회지에서 땀 아니 흘리는 조촐한 직업도 없지 않건만, 유독 채영신에게는 다만 한 가지 허영심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못 속이지.’하고 동혁이가 자신 있게 맥을 짚어 본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청석학원을 온전히 저 한 사람의 힘으로 번듯하게 지어 놓고, 교장 겸 고쓰가이(小使) 노릇까지 하더라도, 내가 이만헌 사업을 하고 있노라.’하고 백현경이나 다른 농촌 운동자들에게 보여 주고, 애인인 저에게도 자랑하고 싶은, 그 허영심만이 충만한 것이 틀림없으리라 하였다. 그러니까 자기의 사업의 기초는 어느 정도 까지 잡혔더라도, 외형으로 눈에 번쩍 띄는 것을 만들어서 보여 주기 전에는 저를 청석골로 부르지 않으려는 그 여자다운 심리가 들여다보이는 것 같았다.

한곡리의 안산인 소대갈산 마루터기에, 음력 칠월의 초생달은 명색만 떴다가 구름 속으로 잠겼는데, 동리 한복판인 은행나무가 선 이 언덕 위에는 난데없는 화광이 여기저기서 일어난다. 농우회의 열두 회원들은 단체로 일을 할 때면 입는 푸른 노동복 저고리를 입고 수건으로 머리를 질끈 동이고 모여 섰다. 동혁이 형제와 건배는 기다란 장대에 솜방망이를 단 것을 석유를 찍어 가며 넓은 마당을 밝히고 섰는데, 바람결을 따라 석유 그을음 냄새가 근처 인가에까지 훅훅 끼친다.

, 시작허세!”

동혁의 명령이 한마디 떨어지자, 회원들은 굵다란 동아줄을 벌려 잡았다.

에에 에헤라, 지경요

열두 사람의 목소리가 목구멍 하나를 통해서 나오는 듯 우렁차게 동네 한복판을 울리자, 커다란 지경돌이 반 길이나 솟았다가 쿠웅 하고 떨어지면, 잔디를 벗겨 놓은 땅바닥이 움푹움푹하게 패어 들어간다. 여러 해 별러 오던 농우회의 회관을 지으려고 오늘 저녁에 그 지경을 닦는 것이다.

회원들의 마음은 여간 긴장되지 않았다. 자자손손이 대를 물려가며 살려는 만년주택을 짓기 시작하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생각으로, 자기네들이 웅거할 회관을 지으려는 것이다.

달구질 소리가 들리자, 야학을 다니는 아이들과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든다. 아직도 이 시골에는 누구나 집을 지으면 터 닦는 날과 새를 올리는 날은 품삯을 받지 않고 대동이 풀려서 일을 보아 주는 습관이 있어서 회원들 외에 어른들과 아이들이 벌써 수십 명이나 들러붙었다.

에에 헤에라, 지경요

에에 헤에라, 지경요

고요한 바닷가의 저녁 공기를 헤치는 달구질 소리는 점점 더 커지는데, 큰 마을 편에서 징, 장구, 꽹과리를 두드리는 소리가 가까이 들려온다. 여러 사람은 잠시 팔을 쉬고 그편을 바라본다. 레인 코트(우장옷)의 허리띠를 졸라맨 기만이가 저의 집 머슴꾼이며 작인들을 말끔 풀어서 술까지 취토록 먹인 뒤에, 두레를 떡벌어지게 차려 가지고 오는 것이다. 높이 든 깃발은 선들바람에 펄펄 날리는데, “깽무깽, 깽깽, 깽무, 깽무, 깨갱깽.” 상쇠잡이가 앞장을 서고, “떵떵 떵더꿍 떵기떵기 떵더꿍.” 장구잡이는 뒤를 따른다. 징소리는 점잖이 꽈응, 꽈응 하고 이슬이 흠씬 내린 잔디밭과 들판으로 퍼지다가 사라지는 그 여운이 웅숭깊다. 마중을 나간 솜방망이 불빛에, 컴컴한 공중으로 우뚝 솟아 너울거리며 다가오는 것은, 이등 삼등까지 무등을 선 머리 땋은 아이들이 고깔을 쓰고 장삼자락을 펼치면서 나비처럼 춤을 추는 것이었다. 터를 닦는 마당까지 올라오더니, 풍물 소리는 자진가락으로 볶아치기 시작한다. 조금 있자, 풍물 소리를 듣고 성벽이 난 작은 마을과 구엉 마을에서도, 낮에 두레로 논을 매던 야학의 학부형들이 잡이를 차려 가지고 와서는 큰마을 두레와 어울렸다.

그럭저럭 언덕 아래는 머슴 설날이라는 이월 초하루나 추석날 저녁보다도 더 풍성풍성해졌다. 각처 두레가 다 모여들어 한데 모였다 흩어졌다 하며, 징 꽹과리를 깨어져라고 두들겨 대는데, 장구잡이도 신이 나서 장구채를 이손 저손 바꾸어 치며 으쓱으쓱 어깨춤을 춘다. 거북이라는 총각 녀석이 어둠침침한 소나무 밑에 가 쭈그리고 앉아서 청승스러이 꺾어 넘기는 새납(胡笛)소리는 밤바람을 타고 바다 건너까지도 들릴 듯. 잡이꾼들은 수구를 들고 장단을 맞추어 가며, 패랭이 위의 긴 상모를 돌리느라고 보는 사람까지 현기증이 나도록 곤댓짓을 한다.

얼시구 좋다, 어리시구.”

나중에는 구경꾼까지도 어깻바람이 나서 개구리처럼들 뛰면서 마른 흙이 뽀얗게 일도록 한바탕 북새를 논다. 그 광경을 바라다보고 섰던 동혁은, “야아, 오늘 밤엔 우리가 산 것 같구나!”하고 부르짖으며 징을 빼앗아 들고 꽝꽝 치면서 잡이꾼 속으로 뛰어들었다. 키장다리 건배가 깃대를 꼬나들고 섰다가 그 황새 다리로 껑충껑충 춤을 추며 돌아다닌다. 다른 회원들은 어느 틈에 두레꾼 속으로 하나 둘씩 섞여 들어갔다.

아들이 동네 일만 한다고 눈살을 찌푸리던 동혁의 아버지 박첨지도, 늙은 축들과 술이 거나하게 취해 가지고 와서는, “아아니, 내가 옛날버텀 맡어 논 좌상님인데, 어떤 놈들이 날 빼놓구 논단 말이냐.”하고 난쟁이 쇰직하게 키가 작은 석돌이 아버지의 수염을 끄두르며, “여보게 꽁배, 어서 따러오게.”하면서 군중을 헤치고 들어선다. 그는 석돌이 아버지와 술을 먹다가 풍물 소리를 듣고, “내 자식 놈이 둘씩이나 덤벼들어서 짓는 집인데 아비된 도리에 안 가볼 수가 있나?”하고 기운이 나서 올라온 것이다.

박첨지는 언덕 위에 올라서서 팔을 걷고 곰방대를 내두르며 목청을 뽑아 달구질 소리를 먹인다.

산지조종은 백두산이요(山之祖宗 白頭山).”

하고 내뽑으면, 달구질꾼들은 그 소리를 받아,

에에 헤에라, 지경요

하며 동시에 지경돌을 번쩍 들었다 놓는다.

수지조종은 한강수라(水之祖宗 漢江水).”

에에 헤에라, 지경요

땅을 다지는 동네 사람들은 목이 쉬어 가는 줄도 모르는데, 그날 저녁 동혁은 젊은 사람과 조금도 다름이 없이 싱싱하고 씩씩한 아버지의 목소리를 생후 처음으로 들었다.

 

한 달 하고도 보름이나 지났다. 그 동안 한곡리 한복판에는 커다란 새 집 한 채가 우뚝하게 솟았다. 커다랗다고 해야 두 간 겹집으로 폭이 열 간쯤 되는 창고 비슷이 엉성한 집이지만, 이 집 한 채를 짓기에 회원들은 칠월 염천에 하루도 쉬지 않고 불개미와 같이 일을 하였다.

논에는 아시 두 번 호미질과 만물까지 하였고, 이제는 피사리만 하면 힘드는 일은 거진 끝이 난다. 그 동안의 한 달 반쯤은 농군들이 추수를 할 때까지 숨을 돌리는 농한기다. 그 틈을 이용해서 농우회관을 지은 것이다.

엉부렁하게나마 거진 이십 평이나 되는 집을 얽어놓는데 그 건축비가 불과 몇 십 원밖에 들지 않았다면 누구나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 회원들끼리 거진 삼 년 동안이나 농사를 지어 모은 것과, 술 담배를 끊은 대신으로 다달이 얼마씩 저금을 한 것과, 또는 도야지를 치고 이용조합에서 남은 것을 저리로 놓은 것을 걷어 모으면 거진 오백 원이나 된다.

이발부의 수입은 모았다가 동리서 공동으로 쓸 솜틀을 칠십여 원이나 주고 샀고, 포패조합 (捕貝組合)을 만들어서(회원은 다 여자인데, 앞바다 건너 안섬에다가 이 년 작정을 하고 굴을 번식시킨 뒤에, 조합원끼리 따먹고 장에 갖다가 파는 권리를 가지는 것) 불가불 소용이 참되는, 조그만 나룻배를 사십 원 가량 들여서 지은 것밖에는, 한 푼도 쓰지 않은 채 있었다. 그들 중에서 이 회관을 짓는 데는 오십 원도 다 들이지를 않았던 것이다.

첫째, 기지가 민유지라 땅값이 아니 들었고, 재목은 단단해서 썩지도 않는 밤나무, 참나무, 아카시아나무 같은 것을 회원들의 집앞이나 멧갓에서 베어 왔고, 수장목은 오동나무와 미루나무를 썼는데, ‘영치기 영치기하고 회원들끼리 목도질까지 해서 운반을 했으니 돈이 들 리 없었다.

터를 닦고 주춧돌을 박는 것부터 자귀질, 톱질이며, 네 올가미를 짜서 일으켜 세우고 새를 올리고 욋가지를 얽고 토역을 하는 것까지 전부 회원들의 손으로 하였다. 이엉을 엮을 짚도 농우회에서 연전부터 유념해 두었었는데, 여러 사람이 입에 혀같이 봉죽을 들었거니와, 회원 중의 석돌이는 원체 지위(목수)의 아들인데다가 눈썰미가 있어서 수장은 물론 문짝까지 제 손으로 짜서 달았다. 품삯이라고는 한 푼도 아니 들었지만, 다만 화방 밑에 콘크리트를 하는 데 쓰는 양회와, 못 이나 문고리며 배목 같은 철문만은 할 수 없이 돈을 주고 사다가 썼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손을 빌지 않고 거진 두 달 동안이나 열두 사람의 회원들이 땀을 흘린 기념탑이 우뚝하게 서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서투른 목수와 토역장이들이 얽어 놓은 집이라 장마를 치르고 나니까 지붕이 새고 벽이 허물어져서 곱일을 하느라고 동혁이도 몇 번이나 코피를 쏟았다. 그랬건만 다 지어 놓고 보니 겉눈에 번듯하게 띄지는 않아도 거진 이백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수용할 수가 있게 되었고, 엉부렁하게나마 헛간으로 쓸 모채까지 세웠는데, 안으로 들어가 보면 사무실, 도서실까지 오밀조밀하게 꾸며 놓았다. 도서실에는 기만이가 사서 기부한 농업강의록과 농촌운동에 관한 서책이 오륙십 권이나 되고, 동혁이가 보는 일간 신문과 회원들이 돌려보는 서울시보, 농민순보같은 정기간행물이며 각종 잡지까지 대여섯 가지나 구비되어서, 회원들은 조그만 틈이라도 타면 언제든지 모여 와서 새로운 지식을 얻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형편을 짐작할 수 있도록 차려 놓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오락부를 새로 두었다. “사철 일만 하는 우리의 생활은 너무나 빡빡하고 멋이 없다. 좀 더 감정을 윤택하게 하고 모 두 함께 즐기는 기회도 지어서 활기를 돋우려면 적어도 한 가지 통일된 음악이 필요하다.”는 견지에서 건배가 주창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말을 빌리면 콩나물 대가리(보표(譜表)라는 뜻) 하나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라, 무슨 관현악대를 조직하는 것이 아니요, 우리 농촌에 재래로 있던 징, 꽹과리, 장구, 수구, 호적 같은 악기를 장만한 것이다.

그런 건 천천히 장만해두 좋지 않은가. 날마두 뚱땅거리구 뚜들기면, 공청을 지어 놓구 놀 려구만 드는 줄루 오해들을 허면 재미 적으이…….”

하고 동혁이가 반대를 하면,

온 별소릴 다 허네. 자넨 구데기 무서워서 장두 못 당그겠네그려.”

하고 건배는 기만이를 구슬러서 새로운 풍물 한 벌을 사들인 것이다. 그래서 회원들끼리만 잡이꾼이 되어서 노는 방식을 개량하고 두레를 노는 것까지도 통제를 하게 되었다.

, 우리 인제 낙성연을 해여지.”

추렴이래두 내서 내일 하루만 실컨 놀아 보는 게 어떤가?”

, 좋구말구. 이새 저새 해두 먹새가 제일이라네.”

우리가 두 달 동안이나 집의 일은 내버려두구설랑 그 뙉볕에서 죽두룩 일을 했는데, 하루 쯤 논다구 누가 시빌 허겠나.”

여보게, 우리끼리만 암만 공론을 허면 소용이 있나? 우리 대장헌테 하루만 술을 트자구 졸라 보세. 건깡깡이루야 신명이 나여지.”

애당초에 그런 말은 비치지두 말게. 일전엔 동화가 또 몰래 주막엘 갔다가 성님헌테 단단히 혼이 났다네.”

얼굴이 새까맣게 그을다 못해서 오지그릇처럼 빤들빤들해진 회원들이 회관 한 모퉁이에 모여 앉아서 새로 사온 풍물을 두드려 보다가 낙성연을 할 음모를 한다.

저녁때였다. 찌는 듯하던 더위가 한 걸음 물러서고 축동 앞 미루나무에 쓰르라미 소리가 제법 서늘하게 들린다. 회원들은 서퇴도 할 겸 하나둘씩 은행나무 아래로 내려가서 재벽한 흙이 채 마르지도 않은 집을 쳐다보고 앉았다. 그 집을 바라다보는 그들의 기쁨은 형용할 수 없을 만치나 컸다.

힘만 모으면 무슨 일이든지 되는구나! 땀만 흘리면 그 값이 저렇게 나타나고야 만다!’

그네들은 회관 집 한 채를 짓는 데 단결의 힘이 얼마나 크다는 것과, 또는 노력만 하면 그 결과가 작으나 크나 유형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비로소 체험한 것이다. 동시에 움집 속에서 또는 남의 집 머슴 사랑에서 구차히 모이던 때를 생각하니 실로 무량한 감개가 끓어올랐다. ‘저게 내 손으로 지은 집이거니.’하면 무한한 애착심도 느껴졌다. 그 집을 바라다보고 앉았으려면, 끌구멍을 파다가 손가락을 다쳤거니, 사닥다리에서 떨어져서 허리를 삐고는 동침을 맞느라고 혼이 났거니, 중방 과 도리를 잘못 끼다가 석돌이 녀석한테 핀잔을 맞았거니이러한 추억만 해도 여간 정다운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자네 저 기둥감을 베다가 영감님헌테 몽둥이 찜질을 당했지?”

그건 약괄세. 이걸 좀 보게그려. 여태 이 지경이니.”

하고 회원들 중에 제일 다부지고 땅딸보로 유명한 정득이가 헝겊으로 칭칭 감은 발을 끌러 보인다. 그것은 저의 집 산 울안에 선 참죽나무를 밤중에 몰래 베다가, 저의 아버지가 도둑야!’ 소리를 지르며 시퍼런 낫을 들고 쫓아 나오는 바람에 어찌나 급해 맞았던지 담을 뛰어넘다가 탱자나무 가시에 발을 찔렸었다. 누렇게 곪은 것을 그대로 끌고 다니며 일을 해서 그저 아물지를 못한 것이다. 사실 그네들이 부모나 동네 어른들의 반대 속에서 초가집 한 채를 짓기는 대궐 역사만치나 거창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쉬이, 대장 올러오신다.”

하고 정득이가 구렁이 지나가는 소리를 한다. 동혁이는 건배와 기만의 가운데에 서서 올라온다. 기만이는 여전히 건살포를 짚었는데, 오늘은 헬멧(박통 같은 모자)을 썼다.

거기들 모여 앉아서 자네들 역적모의를 허나?”

건배도 그 넓적한 얼굴이 눈의 흰자위와 이빨만 남기고는 흑인종의 사촌은 될 만치나 그을렀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끼리 무슨 비밀헌 공론을 했는데요…….”

하고 석돌이가 세 사람의 눈치를 번갈아 본다.

무슨 공론?”

동혁은 농립을 벗어 던지며 은행나무 뿌리에 가 걸터앉는다. 응달에서만 지낸 기만의 얼굴과 비교해 볼 때 동혁의 얼굴도 더한층 그을은 것 같다. 손바닥이 부르터서 밤콩만큼씩 한 못이 박혔고 손톱은 뭉툭하게 닳았다.

저어…….”

하고는 석돌이가 뒤통수만 긁적거리니까,

왜 목들이 컬컬헌 게지.”

동혁이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러잖어두…….”

하고 이번에는 칠룡이가 응원을 한다. 건배는 기만의 눈치를 보면서,

아닌 게 아니라, 이 기만 씨가 낙성연을 한번 굉장히 차리구 놀자는데…….”

하는 말이 끝나기 전에, 동혁은 손을 들어 건배의 입을 막는다.

안 되네, 낸들 벽창호가 아닌 담에야 그만헌 생각이 없겠나? 허지만 말썽이 많은 판에 동네가 부산허게 떠들구 놀면 되레 오해를 받기가 쉬우이. 지금두 면장이 나와서 나를 보자구 헌대서 큰말로 갔다 오는 길일세.”

하고 반대를 하였다.

왜 무슨 말썽이 생겼수?”

나중에 올라온 동화가 눈을 둥그렇게 뜨며 묻는다.

차차 알지.”

형은 자리가 거북한 듯이 대답하기를 꺼린다.

우리 회와 상관이 되는 일이면 회원들두 다 알어야 헐 게 아니유? 면장이 우리 일에 무슨 참견이라우?”

글쎄 뒀다 알어.”

동혁은 기만의 등 뒤에다 눈짓을 해 보인다. 청년들의 일이라면 한사코 반대를 하는 기만의 형인 기천이가, 면장이 나온 김에 무어라고 음해를 한 것이거니 하고 동화와 다른 회원도 짐작은 하는 눈치다. 그러나 기만이는 형과 달라 이편을 들고, 농우회의 일이라면 금전으로까지 후원을 많이 해오는 터이지만, 아우가 듣는데 형의 욕은 할 수가 없었다. 또는 경우에 따라서는 초록은 동색이라고 저의 집에 이해관계가 되는 일이면 형에게 무어라고 연통을 할는지도 몰라서, 항상 경계를 하고 있는 터이다.

동혁은 기천의 집에 다녀오는 길에 건배와 기만이를 만나서 같이 오기는 했어도, 그들에게도 그 내용을 말하지 않았다. 건배는 탕탕 대포를 잘 놓는 대신에 말이 헤퍼서 비밀을 지킬 만한 일을 들려주기를 삼가지 않을 수 없었다. 회원들은, ‘무슨 일이 단단히 생겼나 보다.’하고 불안을 느끼면서도 더 재우쳐 묻지를 않고, 낙성하는 날 술 한잔도 못 먹게 하는 동혁이가 원망스러운 듯이 쳐다보다가 애매한 북과 장구만 두드린다.

기만이도 그 눈치를 챘건만, 이런 경우에 아무 말도 아니 하는 것은 도리어 여러 사람에게 오해를 살 듯도 해서,

그런데 센세이(선생)가 또 뭐래?”

하고 들띠어놓고 묻는다. 그래도 동혁은,

그까짓 건 알어 뭘 허우. 우린 우리가 헐 일이나 눈 딱 감구 허면 고만이니까…….”

하고 역시 자세한 말대답하기를 피한다. 기만이는 자리가 거북하니까 꽁무니에다가 손을 찌르고 간다는 말도 없이 슬금슬금 언덕 아래로 내려간다. 제가 하는 일을 반대하고 양반을 못 알아보는 발칙한 놈들과 얼려 다니고 돈을 쓰고 한다고, 눈에 띄기만 하면 얼굴에 핏대를 올리며 야단을 치는 저의 형이, 면소나 주재소까지 가서 무어라고 쏘새기질을 하고 온 것만은 묻지 않아도 짐작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농우회관을 짓게 된 뒤부터 가뜩이나 시기심이 많은 기천이가, 두 눈에 쌍심지가 돋아서 그 태도가 부쩍 악화된 것만은 사실이었다. 동혁이가 입을 꽉 다물어 버리니까, 다른 회원들도 어떠한 예감을 느끼면서도 말이 없다.

건배는 무슨 일인지,

저기 좀 다녀옴세.”

하고는 기만의 뒤를 따라서 내려갔다. 조그만 일에도 궁금증이 나면 안절부절을 못하는 성미라, 동혁이가 말을 하지 않으니까 혹시 기만에게 들을 이야기나 있나 하고 그 속을 떠보려고 따라가는 눈치였다.

동혁은 한참이나 꿈쩍도 하지 않고 앉아서 창호지로 새로 바른 들창이 석양에 눈이 부시도록 반사하는 회관을 쳐다보면서 무슨 생각을 골독히 하다가 회원들을 돌려다보며,

우리 낙성식두 못 해서 피차에 섭섭헌데, 그 대신 기념될 일 하나 해볼까?”

하고 벌떡 일어선다.

무슨 일요?”

하는 회원들의 얼굴에서는,

간신히 오늘 하루나 쉬려는데, 또 무슨 일을 허자누.’

하는 표정을 역력히 읽을 수 있다.

그저 괭이하구 삽허구만 들구서 나만 따러들 오게나.”

하고 동혁은 회관으로 올라가서 지붕을 이을 때에 쓰던 사닥다리를 둘러메더니 산등성이를 넘는다. 회원들은 멋도 모르고 동혁의 뒤를 따랐다.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매미 쓰르라미 소리도 점점 엷어질 무렵에는, 회관 앞마당이 턱 어울리도록 두길 세 길이나 되는 나무가 섰다. 전나무, 향나무, 사철나무 같은 겨울에도 잎사귀가 떨어지지 않는 교목(喬木)만 골라서 봄이나 가을에 심어야 잘 산다고 고집을 하는 회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파다가 옮겨 심은 것이다. 그것은 동혁이가 근처를 돌아다니며 미리 보아두었다가, 나무 주인에게 파다 심을 교섭까지 해두었던 싱싱한 나무들이었다.

새로운 회관에 들게 되는 날 아침에 동혁이가 부는 나팔 소리는 더한층 새되고 씩씩하였다. 조기회원들이, “엇둘! 엇둘!”하고 체조를 하는 소리도, 애향가의 합창도, 전날보다 곱절이나 우렁찬 것 같았다. 새 집을 구경도 할 겸 새로 닦아 놓은 운동장에서 체조를 하는 바람에, 그 동안 게으름을 부리던 조기회원들도 전부 다 오고, 타동에서 온 구경꾼도 오륙십 명이나 되어서 운동장이 삑삑하게 찼다.

오늘은 영신이가 조직해 주고 간 부인근로회의 회원들도 십여 명이나 건배의 아내를 따라서 참례를 하였다. 아무에게도 낙성식을 한다고 광고를 한 것도 아니요, 건배는 무슨 일이든지 크게 버르집고 뒤떠들려고만 든다고 동혁이와 의견 충돌까지 되었지만, 오늘 아침만은 누구나 은연중에 농우회관의 낙성식을 거행하는 기분으로 모인 것이다. 그래서 여러 사람은 평소와 같이 조기회가 끝난 뒤에도 헤어지기가 섭섭한 듯이 어정버정하며 동혁을 바라다본다. 그 눈치를 챈 건배는,

여보게, 회원두 더 모집해야 헐 텐데, 여러 사람이 모인 김에 연설 한마디 허게그려.”

하고 동혁의 옆구리를 찌른다.

그건 선전부장이 헐 일이지, 왜 나더러 허라나?”

하고 동혁이가 사양을 하니까, 건배는 그 말을 못 들은 체하고 회관 정문 앞으로 나서더니,

여러분, 잠깐만 기다려 주시오. 지금 이 회관을 짓자고 맨 먼저 발설을 했고, 우리들을 헌신적으로 지도해 주는 박동혁 군이 여러분께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하고 공포를 하고 나서는, ‘인젠 말을 허든지 말든지 나는 모른다.’는 듯이 슬그머니 자리를 비켜선다. 운동장에서는 박수 소리가 일어났다. 동혁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너 어디 두고 보자는 듯이 건배의 뒤통수를 흘겨보고는 회원들의 앞으로 나섰다. 엄숙한 태도로 여러 사람의 긴장된 얼굴을 둘러보다가,

준비 없는 말씀을 드리게 됐습니다.”

하고 한마디 하고 나서 등뒤의 회관을 가리키며,

이만한 집 한 채를 얽어 놓은 것이 결코 자랑할 거리는 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이 집을 지으려고 여러 해를 두고 별러 오다가, 오늘에야 낙성을 하게 된 것을 여러분도 함께 기뻐해주십시오. 다만 한 가지 자랑하고 싶은 것은, 이 집은 연재 가락 하나, 짚 한 단까지도 회원들이 가져온 것이요, 목수나 미장이 한 사람도 대지 않고 우리가 이 염천에 웃통을 벗어붙이고 불개미처럼, 참 정말 불개미처럼 두 달 동안이나 일을 했기 때문에 오늘날 이만한 집 한 채나마 우리 한곡리 한복판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집은 농우회원 열두 사람의 집이 아니요, 여러분이 유익하게 이용하시기 위해서 지어 놓은 집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한곡리의 공청, 즉 공회당으로 써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잠깐 눈을 내리감았다가 얼굴을 들고 목소리를 높여,

여러분! 여러분은 이 말 한마디만 머릿속에 깊이깊이 새겨 두십시오. ‘여러 사람이 한맘 한뜻으로, 그 힘을 한곳에 모으기만 하면 어떠한 일이든지 이루어질 수가 있다!’는 것을우리는 여름내 땀을 흘린 그 값으로 이 신념 하나를 얻었습니다. 처음으로 귀중한 체험을 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버덤 더 많은 사람이 똑같은 목적으로 모여서 꾸준히 힘을 써나간다면, 이버덤 더 어려운 일도 성공할 수가 있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여러분과 함께 믿고저 하는 바입니다.”

하고 부르짖고는 숨을 돌린 뒤에 목소리를 떨어뜨려,

우리는 일을 크게 버르집고 겉으로 떠들기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낙성식 같은 것도 하지를 않습니다마는, 그 대신 우리는 우리 동리 여러분께 좋은 음악을 들려 드렸다고 생각합니다. 집터를 닦는 달구질 소리, 마치질 자귀질 허는 소리가 온 동리에 울리지 않었습니까? 저 소대갈산까지 찌렁찌렁 울리지 않었습니까? 그 소리가 무엇버덤도 훌륭한 음악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것을 무너버리고 깨뜨려 버리는 파괴의 소리가 아니라, 새로 짓고 일으켜 세우는 건설의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소리가 어찌나 반갑고 기쁜지 조금도 괴로운 줄을 모르고 일을 했습니다.”

동혁은 그 말에 매우 감격해하는 여러 사람의 얼굴을 둘러보다가,

여러분! 이 집이 터지도록 우리의 장래의 일꾼들을 보내 주십시오! 아침저녁으로 글 배우는 소리가 그칠 때가 없도록 해주십시오! 이 집이 꽉 차면 우리는 이 집버덤 더 큰 집, 또 그 버덤도 더 굉장히 큰 집을 짓겠습니다!”

그 말에 회원들은 손바닥이 뜨겁도록 박수를 한다. 그때에 건배는 여러 사람의 앞으로 썩 나서면서,

한곡리 만세!”

하고 두 팔을 번쩍 쳐든다.

만세!”

여러 사람이 고함지르듯 하는 만세 소리에, 새로 심은 동청나무에 앉았던 참새들이 깜짝 놀라 푸르르 날아갔다.

 

하루는 동혁이가 회관에서 주학을 마치고 나오는데(새 집으로 옮겨 온 후 아이들이 부쩍 늘어서 주학까지 하게 되었다) 석돌이가 문 밖에서 기다리고 섰다가,

저 강도사 댁 작은사랑 나으리가 저녁때 잠깐 만나자구 허시는데요.”

한다.

?”

동혁은 불쾌히 대답을 하였다. 석돌이는 눈썰미가 있고 영리한 대신에 얕은 꾀가 많아서 항상 경계를 하는 회원이다. 더구나 강도사 집 전답에 수다식구가 목을 매어단 사람이어서, 이 집에 심부름을 다니는 것은 물론, 박쥐구실이나 하지 않는지가 의문이었다. 강도사 집 살림살이의 실권을 쥔 맏아들인 기천이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처지에 있는 까닭에 더욱 조심스러웠다.

글쎄, 왜 또 오라는 거야?”

동혁은 거듭 물었다.

알 수 있에요. 조용히 꼭 좀 만나자구 일러 달라구 헙시니까요?”

누가 왔든가?”

아니오, 혼자 계시든걸요.”

, 알었네.”

동혁은 확실한 대답을 아니 하고 집으로 내려갔다.

기천이는 면협 의원이요, 금융조합 감사요, 또 얼마 전에는 학교 비평 의원이 된 관계로 면장이 나와서 한곡리도 진흥회라는 것을 만들어서, 그 회장이 되도록 운동을 해보라고 권고를 하고 갔었다. 기천은 명예스러운 직함 하나를 더 얻게 된 것은 기쁘나, 군청이나 면소에서 시키는 대로 무슨 일이든지 하는 체해야만 저의 면목이 서겠는데, 제가 수족같이 부릴 만한 청년들은 말끔 동혁의 감화를 받고, 그의 지도 밑에서 한 몸뚱이와 같이 움직이고 있으니, 저는 개밥에 도토리 모양으로 따로 베져났다. 저의 집의 논을 하고 돈을 쓴 낫살 먹은 작인들 같으면, 마구 내리누르고 우격다짐을 해도 그저 잡아 잡수하고 꿈쩍도 못하지 만, 나이 젊고 혈기 있는 그 자질들은 까실까실해서 당초에 말을 들어먹지 않는다. 워낙 기천이가 대를 물려가면서 고리대금과 장릿벼로, 동리 백성의 고혈을 빨아서 치부를 하였고(주독으로 간이 부어서 누운 강도사는 지금도 제 버릇을 놓지 못한다. 당장 망나니의 칼에 목을 베지려고 업혀 가는 도적놈이, 포도군사의 은동곳을 이빨로 뽑더라는 격으로 여전히 크게는 못 해도 박물 장수나 어리장수에게 몇 원씩 내주고 오 푼 변으로 갉아 모아서는, 기직자리 밑에다 깔고 눕는 것이 그의 마지막 남은 취미다. 몇 해 전까지도 아들만 못지않게 호색을 해서, 주막의 갈보, 행랑 계집 할 것 없이 잔돈푼으로 낚아 들여서는, 대낮에 사랑 덧문을 닫기가 일쑤더니, 운신을 못할 병이 든 뒤에야 그 버릇만은 놓을 수밖에 없이 되었다) 저 혼자 사람의 뼈다귀인 것처럼 양반 자세가 대단해서 적실인심을 한 터이라, 새로운 시대에 눈을 뜨기 시작한 청년들은 기천이만 눈에 띄면 무슨 노린내가 나는 짐승처럼 얼굴을 돌리고 슬금슬금 피한다. 그 중에도 성미가 부푼 동화는, ‘조놈의 발딱 제치구 당기는 대가리는 여부없이 약오른 독사뱀 같드라.’하고 먼발치로 눈에 띄기만 해도 외면을 해버린다. 그 아우는 노새라고 놀리기는 하면서도, ‘그래두 기만이는 강가의 중시조지하고 간신히 사람대우를 하지만……. ‘또 무슨 얌치빠진 소릴 헐려누.’하고 동혁은 집으로 돌아와서도 기천이를 보러 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동화가 자꾸만 묻고, 건배까지, “왜 혼자만 꿍꿍이셈을 치나?”하고 궁금히 여기는 일은 다른 것이 아니다. 면장이 왔던 날, 기천이는 술상을 차려 놓고 동혁이를 청하였다. 그날은 면장 앞이라 그런지, 평소처럼 점잔을 빼고 사람을 깔보는 태도를 보이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이 박군이야말로 참 대표적으로 건실헌 우리 동지입니다. 이번 그 회관집만 허두래두 이 사람이 혼자 지은 거나 다름이 없으니까요.”하고 새삼스러이 동혁을 소개하였다. 소개가 아니라, 이러한 모범 청년이 제 수하에서 일을 한다는 태도다. 동혁은 동지라는 말을, 기만이 입에서 들을 때보다도 구역이 나서, 입에도 대지 않은 술잔을 폭삭 엎어 놓았었다. 그래도 기천이가 연방 동지를 찾으면서 하는 말을 종합해 보면,

면장께서 바쁘신데도 일부러 나오신 건 다름 아니라 우리 동네두 진흥회를 실시해야 되겠는데, 내야 어디 그런 일을 아는 사람인가? 허니 자네들이 힘을 좀 빌려 줘야겠네. 자네야 중요한 역원이 돼줄 줄 믿는 자리지만 다른 젊은 사람들두 다 함께 회원이 돼서 일을 해보두룩 허세.”

하고 애가 말라서 간청을 하는 것이었다. 동혁은 생각해 볼 여지도 없이,

난 헐 수 없에요. 우리 농우회 일만 해두 힘에 벅찬데, 한 몸으로 두 가지 일은 도저히 헐 수 없쇠다.”

하고 딱 잡아떼고 일어섰다.

동혁이가 이번에는 버티고 가지를 않으니까, 기천이는 호출장처럼 명함을 들려 집으로까지 머슴을 보냈다.

작은사랑 나으리께서 꼭 좀 건너오래유. 안 오면 이리루 오시겠다구 그러세유.”

하고 머슴애는 어서 일어서기를 재촉한다. 기천이는 면협 의원이 되던 날 아침에 행랑 사람과 머슴들을 불러 세우고,

오늘버텀은 서방님이라구 그러지 말구 나으리라구 불러라.”

하고 일장의 훈시를 하였던 것이다.

동혁은 중문간 문지방에 걸터앉아서 입맛을 다시다가,

저녁 먹구 건너간다구, 가서 그러게.”

해서 머슴을 보냈다. 가고 싶은 생각은 손톱끝만치도 없지만, 집으로까지 찾아온다는 것이 싫어서 가마고 한 것이다.

저녁 뒤에 그는 말대답할 것을 생각하면서 큰마을로 발길을 옮겼다. 대문간에 들어서는데 작은사랑 툇마루에서,

아 그래 제깐 녀석이 명색이 뭐길래, 내가 부른다는데 냉큼 오질 못헌다드냐?”

하고 그 되바라진 목소리로 머슴애를 꾸짖는 목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동혁은 나 여기 대령했소하는 듯이 바로 지척에서 으흠으흠 하고 기침을 하고,

저녁 잡수셨에요?”

하며 들어섰다. 기천은 도적질이나 하다가 들킨 것처럼 옴씰해서 반사운동으로 발딱 일어서기까지 하며,

, 자네 오나?”

하고 반색을 한다. 그 푼푼치 못하게 생긴 얼굴을 횟배 앓는 사람처럼 잔뜩 찌푸리고 있다 가, 뜻밖에 동혁이와 마주치는 순간 금시 반가운 낯으로 표변하는 표정 근육의 민첩한 움직임은 여간한 배우로는 흉내를 못 낼 것 같다.

아 이 사람아, 난 여태 저녁두 안 먹구 기다렸네.”

하는 것도 허물없는 친구를 대하는 태도다.

그럼 시장허시겠군요.”

하고 동혁은 할 말이 있으면 어서 하라는 듯이 툇마루 끝에 가 걸터앉았다. 방으로 들어가자는 것을,

회관을 지은 뒤에 처음 총회가 있어서 곧 가봐야겠에요.”

하고 한사코 들어가지를 않았다. 방으로 들어만 가면 으레껏으로 술상이 나오고 술을 억지로 권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럼, 예서래두 한잔 해야겠네, 술을 입에두 안 댄다니 파계(破戒)를 시키군 싶지만, 워낙 자넨 고집이 센 사람이 돼놔서…….”

하고 준비해 놓았던 술상을 내왔다. 술이란 저의 집에서 사철 떨어뜨리지 않고 밀주를 해먹는, 보기만 해도 고리타분한 막걸리 웃국이요, 안주라고는 언제 보아도 낙지 대가리 말린 것에 마늘장아찌뿐이다. 칠팔 년이나 면서기를 다니는 동안에 연회석 같은 데서는 남이 태우다가 꺼버린 궐련 꼬투리를 주워 피우면서도 단풍 한 갑 아니 사먹던 위인으로는, 근래에 교제가 부쩍 늘어서 면이나 주재소에서 양복쟁이가 나오면 으레 술까지 내는 것이다.

하아 이거, 내가 사람을 앉혀 놓구서 인호상이자작(引壺觴而自酌)을 허니 어디 맛이 있나?”하고 고문진보뒷다리나 읽어 본 티를 내지 못해서 애를 쓴다. 그러나 숙습(熟習)이 난당(難當)이라고 써야 할 자리에 수습이 난방이로군하는 따위가 예사여서, 정말 글방에서 종아리깨나 맞아 본 사람의 코웃음을 받는 때가 많다.

기천은 말을 꺼내기가 어려워서 술기운을 빌리려는 것이다. 사실 동혁의 앞에서는 무슨 말이고 함부로 꺼내기가 어려웠다. 농우회에도 다른 회원들 같으면 그 반수가 저의 논의 소작인이니까 여차직하면 논 내놔라한마디만 비치면은 설설 기는 터이니 문제가 되지를 않고, 건배만 하더라도 키 크고 싱겁지 않은 사람 없다고 원체 허풍선이가 돼서 술 몇 잔에 속을 뽑히는데 농사터는 한 마지기도 없이 엉터리로 사는 사람이니까 돈을 미끼로 물려서 낚아 볼 자신도 있다. 그러나 유독 동혁이만은 그야말로 눈의 가시다. 천생으로 사람이 묵중해서 당최 뱃속을 들여다볼 수가 없는데, 근처에 없는 고등교육까지 받아서, 마주 앉으면 제가 도리어 인금에 눌리는 것 같다.

기천은 다리를 도사리고 앉아서 고무신의 때가 고약처럼 묻은 버선 바닥을 쓰다듬던 손으로 술잔을 들고 쭈욱 들이켜고는, 족제비 털 같은 노랑 수염을 배비작거려서 꼬아 올리더니,

좀 허기 어려운 말일세만…….”

하고 반쯤 외면을 한 동혁의 눈치를 곁눈으로 훑어본다.

말씀허시지요.”

동혁은 또 무슨 말을 꺼내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나하면서도 들으나마나 하다는 듯이 어둑어둑해가는 땅바닥만 내려다보고 앉았다. 기천이는 실눈을 뜨고 손톱 여물을 썰더니,

자네 그 회관 짓기에 얼마나 들었나?”

하고 다가앉는다.

돈이요? 돈이야 얼마 안 들었지요.”

기천은 다리를 도사리고 고쳐 앉으며 용기를 내어,

이런 말을 자네가 어떻게 들을는지 모르겠네만 진흥회가 생기면 회관이 시급히 소용이 되겠는데, 당장 지을 수는 없구…… 거기가 동네 한복판이 돼서 자리가 좋아. 그러니 여보게, 거 어떻게 재목 값이든지, 품삯꺼정 넉넉히 따져서 내게루 넘길 수가 없겠나? 자네들은 한번 지어 봐서 수단이 났으니까, 딴 데다가 다시 지으면 고만일 테니…… 자네 의향이 어떤가?”

하고 얼굴을 반짝 쳐든다. 너무나 염치 빠진 소리에 동혁은 어이가 없어서, ‘얼굴 가죽이 간지럽지 않느냐.’는 듯이 기천을 뻔히 쳐다보다가,

왜 돈 만 원이나 내노실 텝니까?”

하고 껄껄껄 웃었다. 기천은,

아아니, 이 사람 웃음엣말이 아닐세.”

하고 금시 정색을 한다.

글쎄 웃음엣 말씀이 아니니까 웃을 수밖에 없군요.”

동혁은 별이 반짝이기 시작한 하늘을 우러러 다시 한 번 허청웃음을 웃었다.

허어 이 사람, 그래두 웃네그려. 그 집을 이문을 붙여서 팔라는데 실없이 웃을 게 뭐 있나?”

기천은 동혁이가 저를 놀리는 것 같아서 눈살을 찌푸린다.

글쎄 생각을 좀 해보세요. 그 집은 돈 아니라 금덩어리를 가지구두 팔거나 사지를 못헙니 다. 돈만 가지면 무슨 일이든지 맘대루 될 줄 아시는 모양이지만, 억만 원을 주구두 남의 정신만은 사지를 못헐걸요. 그 회관을 팔려면 단돈 백 원 어치두 못 될는진 모르지만 우리 열두 사람이 흘린 땀으루 터를 닦었구요, 붉은 정성으루 쌓어논 기념탑이니까요. 우리 손으루 부셔 버린다면 모르지만, 다른 사람은 아무두 그 집엔 손가락 하나 대지를 못헙니다!”

아아니, 글쎄 그런 줄 모르는 건 아니지만, 혹시나 허구 헌 말일세.”

혹시나라뇨? 한 단체가 공동으로 합력을 해서 지어 논 집을, 나 한 개인이 팔어 먹을 생각을 혹시나 허구 있을 것 같어서, 그런 가당치 않은 말씀을 끄내셨나요?”

이 한마디에 기천은 고 빳빳하던 모가지가 자라목처럼 옴츠러들지 않을 수 없었다.

……

기천은 눈만 깜짝깜짝하고 담배를 붙여 물었다 부벼 껐다 하며 속으로 안간힘만 쓰고 앉았다. ‘돈으로도 굴레를 씌울 수 없는 이 젊은 녀석을 어떡허면 꼼짝 못하게 옭아 넣을까.’하고 벼르고 있는 것이다. 한곡리서 대를 물려 가며 왕 노릇을 해오던 터에 역시 대를 물려가며 소인 소인하고 저의 집 전장을 해먹던 상놈인 박가의 자식 하나 때문에, 위신이 떨어지고 돈놀이 해먹는 세력까지 은연중에 꺾이는 생각을 하면 이가 뽀드득뽀드득 갈렸다. 그러나 자는 호랑이 코침 주기로 동혁이를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열두 회원이 이해관계를 떠나서 벌떼처럼 일어날 듯한 데는 겁이 버럭 났다. 더구나 한번 심술만 불끈 하고 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동화가 무슨 짓을 할는지 그것도 무서웠다. 동화에게는 두어 번이나 여러 사람들 앞에서 모양 사나운 꼴을 당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근자에 와서, 눈이 제자리에 박히고 귀가 바로 뚫린 사람이면 한곡리에서는 박동혁이가 중심이 되어 동리 일을 하고, 인망과 인심이 농우회원에게로 쏠린 줄로 인정을 하는 데는, 눈에서 쌍심지가 돋으리만치 시기심이 났다. 그래서 어떠한 수단이든지 써서, 젊은 사람들이 하는 일을 헤살을 놓을 계책을 생각하느라고 밤이면 잠을 못 자는 것이다. 그러다가 장차 발기될 진흥회의 역원이 되어 달라고 간청을 해도 말을 아니 들으니까, 그 회관을 몇백 원이라도 주고 매수를 할 꾀를 낸 것이었다. 동혁은 갑갑한 듯이,

그만 가봐야겠에요.”

하고 뻣뻣하게 한마디를 하고 일어선다. 기천은 놓치면 큰일이나 날 듯이 동혁의 손을 잡고 매달리듯 하며,

여보게 동혁이, 낫살이나 먹은 사람이라구 너무 빼돌리질 말게. 나두 동네 일이 허구 싶어 서 그러는 게 아닌가?”

하고 사뭇 애원을 한다. 동혁은, 잡힌 손이 냉혈동물의 몸에나 닿은 듯이 선뜩해서 슬며시 뿌리쳤다. 기천은 또다시 실눈을 뜨고 무엇을 생각해 보더니,

그럼, 자네들 회에 나 같은 사람두 회원 될 자격이 있나?”

하고 마지막으로 타협안을 제출한다.

“‘만 삼십 세 이하의 남자로 회원 반수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입회를 허락한다는 농우회의 규약이 있으니까요.”

동혁의 대답은 매우 냉정하다.

그럼, 사십이 넘은 나 같은 인생은 죽어 버려야 마땅허겠네그려?”

기천은 간교한 웃음을 짓는다.

, 그래서 어떡허게요. 그렇게 유력허신 분이 돌아가시면 우리 동네의 큰 손실일걸요.”

하고 동혁은 씽긋 웃으며 돌아섰다.

 

 

그리운 명절

 

얘 금분아.”

네에.”

, 저 달이 뭐만큼 커 뵈니?”

……양푼만해요.”

? 창례는?”

……맷방석만헌데요.”

아유! 가지뿌렁허지 마라 얘. 어쩌문 저 달이 맷방석만허다니?”

쟨 누구더러 가지뿌렁이래. , 그래 저 달이 양푼만허문, 고 속에서 옥토끼가 어떻게 방아를 찧는단 말이냐?”

그럼 얘야, 맷방석 속에선 어떻게 방아를 찧니?”

마루 끝에 걸터앉아서 송편을 빚던 두 소녀는 팔월 열나흗 날 밤 구름 한 점 없는 중천에 둥 두렷이 떠오른 달을, 눈 하나를 째굿하고 손가락으로 재보다가 서로 호호거리며 웃는다.

그렇죠, ? 선생님. 그런데 참 정말 저 달 속에서 옥토끼가 방아를 찧는대유?”

영신은 바늘을 잡았던 손을 쉬며 달을 유심히 쳐다보다가,

그건 옛날버텀 전해 내려오는 얘기란다. 그런 건 없어두, 커다란 망원경이란 걸 대구 보면 은 사람이나 짐승 같은 건 없지만 달 속에두 산이 있구 시내 같은 게 있단다.”

그럼, 그 물이 어디루 쏟아진대유?”

아이구 어쩌나. 우리 머리 위루 막 쏟아지문…….”

아냐, 달 속의 냇물은 바짝 말러붙었단다.”

날이 가물어서요?”

그럼 달 속엔 줄창 숭년만 들겠네.”

참 햇님은 신랑이구, 저 달님은 새색시라죠? 그게 정말이야유?”

계집애들이 줄달아 묻는 말에 영신은,

글쎄…… 그런 건 다 지어낸 말이니깐…….”

하고 웃으며 우물쭈물하는 수밖에 없었다.

우주의 신비에 눈을 뜨기 시작한 천진덩이인 아이들의 질문에, 영신은 똑바른 대답을 해줄 만한 천문학의 지식도 없지만, 설명을 해준대도 계집애들이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그 동안 한곡리에서는 농우회관을 낙성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영신은 슬그머니 성벽이 나서, ‘청석골은 그버덤 곱절이나 큰 학원집을 짓고야 말겠다.’는 야심이 불 일 듯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기부금도 걷지 못하게 되어서, 백방으로 생각하다가 추석날을 이용해서 이 시골구석에서는 처음인 학예회 같은 것을 추석놀이 겸 열고, 다소간이라도 집을 지을 밑천을 얻으려고 두 달째나 그 준비에 골몰해 왔었다.

오늘 저녁은 학예회에 출연할 아이들을 마지막으로 연습을 시켜서 돌려보내고, 유희하는 데 나오는 여왕에게 씌워 줄 종이 면류관을, 마분지로 오리고 금지로 배접을 해서는 그것을 꿰매고 앉은 것이다. 그날 입힐 복색까지도 영신이와 원재 어머니가 며칠씩 밤을 새우며 꿰매 놓았다.

한편으로는 부인 친목계의 회원들이 조석으로 한 숟가락씩 모은 쌀을 빻아 풋밤과 호박고지를 넣고 시루떡을 찌고, 그들이 손수 심고 거두어들인 햇팥과 콩으로 소를 넣어 송편을 빚는데, 금분이랑 창례랑 집 가까운 아이들이 모여 와서 한몫을 본다. 이 떡은 내일 추석놀이가 끝이 나면 아이들에게 상금처럼 나누어 주려는 것이다.

영신은 달빛에 번쩍번쩍하는 가위를 놀리다가 몇 번이나 그 손을 쉬고 머리를 떨어뜨렸다. 금분이나 창례만할 때에, 그때도 추석 전날 오늘처럼 달이 초롱같이 밝은데, 낮에 동산에서 주워다 둔 밤과 풋대추를 가지고 마루에서 사촌동생과 공기를 놀던 생각이 났다. 그것을 죽은 오라비에게 송두리째 빼앗기고 몸부림을 치며 울다가 어머니한테 꾸지람을 듣던 생각이 났다. 울다 울다 지쳐서 잠이 들었다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밤과 대추가 대소쿠리에 소복이 담겨서 머리맡에 놓여 있지 않았었던가. 그 신기하던 생각이 바로 어제런 듯 눈에 선하다.

얘들아, 창가나 하나 허렴.”

향수에 잠긴 영신은 면류관을 집어 던지고 방으로 들어가 손풍금을 들고 나왔다. 그것을 본 계집애들은 미리 신이 나서,

선생님 뭘 허까유? ‘이태백이 놀던 달아를 허까유?”

하면서 손뼉을 쳐서 떡가루를 털며 영신의 앞으로 옹기종기 모여 앉는다.

왜 요전번에 가르쳐 준 거 있지? 낼 저녁에 너희 반에서 헐 거 말야. 그 창가를 날 따라서 불러 봐.”

옳지, 난 알어. 그 창가 난 알어.”

맨 꼬랑지에 앉았던 복순이가 내닫는다. 손풍금은 처음에는 조선의 꽃을 타다가, 어느덧 갈매기의 노래로 멜로디가 옮겼다. 제 손으로 고요히 반주를 해가며 그 처량한 노래를 나직이 부르는 영신의 눈에는 고향의 산천과 한곡리 바닷가의 달밤이 번차례로 지나간다.

안개 속과 같이 아련히

꿈속처럼 어렴풋이

그러다가 영신은 노래를 그치고 손풍금을 힘없이 무릎 위에 떨어뜨리며 기다란 한숨과 함께 눈을 내리감았다. 계집애들은 멋도 모르고, “아이 재밌다! 재밌다!”하고 손뼉을 치는데, 평생을 외롭게 사는 원재 어머니도 처량한 생각이 들어서 행주치마 끝으로 눈두덩을 누르며 돌아앉았다.

그날 밤 영신은 어머니를 꿈속에 만나서 마주 붙들고 느껴느껴 울었다. 그러다가 새벽녘에는 동혁이와 첫날밤을 치르는 꿈을 꾸었다. 엄마가 그리워 헤매어 다니던 어린 물새처럼 지쳐 늘어진 날개를 그의 따뜻한 품속에 조심스러이 깃들인 꿈을…….

 

추석날은 장거리에서 물 위와 물 아래 동리를 편을 갈라서 줄을 다린다고 떠들었다. 그러나 그리로는 장정들만 한 십여 명쯤 갔을까, 그밖에 청석골의 남녀노소가 모두 예배당으로 모여들었다. 몇십 리 밖에서 단체를 지어 온 사람도 수십 명이나 된다. 말똥구리 굴러가는 것도 구경이라고, 구경이라면 머리악을 쓰고 덤벼드는 여편네들은, 정각 전부터 예배당 마당이 빽빽하도록 모여들었다. 그 중에는 시집올 때 입었던 단거리 비단 저고리 치마를, 개켜둔 자국도 펴지 않은 채 뻗질러 입고, 두 눈구멍만 남기고는 탈바가지처럼 분을 하얗게 뒤집어쓴 새댁네도 섞였다. 그네들은 사철 동이를 이고 논 귀퉁이의 샘으로 물을 길러 다니고, 이웃집에 마실을 다녀 본 것밖에 소위 명절날이라고 구경을 나서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예배당 벽을 의지하고 송판 쪽으로 가설한 무대 좌우에는 커다란 남포를 켜고 검정 장막을 내리쳤다. 흙방 속에서 면화씨만한 등잔불에 눈이 어두운 사람들은, 전등이란 구경도 못하였지만 이 남폿불만 하여도 대명천지로 나온 것만치나 눈이 부시도록 밝았다. 청년회(그것도 근자에 영신이가 발설을 해서 조직을 한 것이다)의 회원들과 부인 친목계의 회원들은 가슴에다가 종이꽃을 하나씩 꽂고 나섰다.

아이들은 앞줄에다 앉히고, 물밀듯이 달려들며 떠드는 구경꾼들의 자리를 정돈시키느라고 거진 한 시간 동안이나 걸렸다. 동네에 있는 멍석과 가마때기를 깡그리 몰아다가 깔았건만, 땅바닥으로 밀려나간 사람이 태반이다. 나중에 온 사람들은, 그때 쫓겨 나간 아이들처럼 담 밖에서 넘겨다보고 뽕나무로 올라가는 성황을 이루었다. 영신이도 새 옷을 깨끗하게 갈아입고 처음으로 분때를 다 밀었다.

, 오늘 저녁엔 우리 선생님이 여간 이뻐 뵈지 않는구나.”

언젠 우리 선생님이 숭허드나? 분 한번 안 바르시니깐 사내 얼굴 같지.”

무대 앞에 앉은 계집애들이 개막할 시간이 되어서 쩔쩔매고 오르내리는 영신을 쳐다보고 소곤거린다. 아닌 게 아니라, 오늘 저녁의 영신은 달빛에 보아 그런지 담 밖을 넘겨다보는 한 송이 목련화처럼 탐스러워 보였다.

따르르…….”

목각종 치는 소리가 나더니 막이 드르르 열렸다. 선생이 막 뒤에서 반주하는 손풍금 소리를 따라, 공작새처럼 색색이 복색을 한 계집애들이 나와서 창가를 한다. 눈이 푹푹 쌓이는 날도 홑고쟁이를 입고 다니던 금분이가 연분홍 치마저고리를 입고 나와서 유희를 해가며 가냘픈 목소리로 동요를 한다.

, 아무튼 가르치구 볼 게여.”

여부가 있나. 선녀들 놀음 같은걸.”

늙은이 축에서도 매우 감탄하는 모양이다. 막은 몇 번이나 열렸다 닫혔다. 손뼉도 칠 줄 모르고 떠들던 구경꾼들은 평생 처음 구경하는 아이들의 재롱에, ‘내 딸은 언제 나오나.’하고 마른침을 삼키며 다음 순서를 기다린다.

휴식 시간이 지난 뒤에 학예회는 제이부로 들어갔다. 여자 상급반의 아이들이 나와서 가극 비슷한 여왕 놀음을 하는데, 황금빛이 찬란한 면류관을 쓰고 옥좌 위에 가 점잖이 앉았던 옥례가, 서캐가 무는지 자꾸만 뒷머리를 긁다가 그 관이 앞으로 벗어졌다. 황급히 집으려는데 마침 바람이 홱 불어 종이 면류관은 떼굴떼굴 굴러서 무대 아래로 떨어지려고 한다. 옥례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애구머니! 절 어쩌나.”하며 그 관을 집으려고 허겁지겁 달려들다가 그만 미끄러졌다. 넘어졌다 일어나 보니, 면류관은 자반처럼 납작하게 찌부러졌다. 그것을 보자 마당에서는 떼웃음이 까르르 하고 터졌다. 어떤 마누라는 부처님 앞에 절을 하듯이 연방 합장을 하면서 허리를 잡는데, 옥례는 엉엉 소리를 내어 울면서 무대 뒤로 뛰어 들어갔다.

끝으로 남학생들의 흥부 놀부놀음도 여러 사람의 웃음보를 터트렸다. 흥부가 어색하게 달고 나온 수염이 붙이면 떨어지고 붙이면 떨어지고 하다가, 나중에는 머리카락으로 만든 수염이 콧구멍을 간질어서, ‘앳취!’ 하고 재채기를 하는 바람에 수염은 몽땅 떨어져 달아났다.

여러 사람의 웃음은 한참만에야 진정이 되었다. 이번에는 올해 일곱 살밖에 아니 된 갓난이란 계집애가, 반은 선생에게 떠다 밀려서 무대 한복판으로 나왔다. 커다란 리본을 단 머리를 숙여 나비처럼 곱다랗게 절을 하고는, 딱 기착을 하고 서서 두 눈을 깜박깜박하더니 은방울을 굴리는 듯한 목소리로,

오늘 저녁에 아무것도 준비한 것이 없는데, 이처럼 여러분께서 많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부자연하게나마 글을 외듯이 한마디를 하고는 말문이 막혀서 할낏할낏 뒤를 돌려다 본다. 선생이 막 뒤에 숨어서,

우리들이 살기는 구차하지만…….”

하고 뚱겨 주는 소리가 여러 사람의 귀에까지 들린다.

우리들이 살기는 구차하지만, 열심으로 배우면 이렇게 창가도 하고 유희도 할 줄 안답니다.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우리 강습소를 도와주시고, 하루바삐 새 집을 커다랗게 짓고, 내년에는 그 집에서 추석놀이를 썩 잘하게 해주십쇼.”

하고는 다시 예를 납신 하고 아장아장 걸어 들어간다. 앵무새처럼 선생의 입내를 내는 것이 어찌나 귀여운지,

아이 고것 앙증두 스러웨. 조게 사봉이 딸년이지?”

하고 어떤 마누라는 한번 안아나 주려고 무대 뒤로 쫓아 들어간다. 끝으로 손풍금 소리가 다시 일어났다. 아이들은 무대 위와 아래로 가지런히 벌려 서서 일제히 목청을 높인다.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이 주신 내 동산 하고 제 이백십구 장 찬송가를 부른다. 일하러 가세! 일하러 가!하고 후렴을 부를 때, 아이들은 신이 나서 팔을 내저으며 발을 구르며 목청껏 소리를 지른다.

어느 틈에 원재를 위시하여 청년들과 친목계의 회원들까지 따라 불러서 예배당 마당이 떠나갈 듯하다. 이 노래는 한곡리서 애향가를 부르듯이 무슨 때에는 교가처럼 부르는 것이다. 찬송가가 끝나자 원재 어머니는 회원들을 대표해서 먹글씨로 커다랗게 쓴 백지를 무대 정에다가 붙이고 내려간다.

一金 貳百七拾圓也 靑石洞婦人親睦契員 一同

이 종이쪽을 보고 놀란 것은 비단 학부형뿐이 아니다. 이때까지 여러 사람 앞에 나타나지 않던 영신이도 무대 뒤에서 제 눈을 의심할 만치 놀라서,

저게 웬일이야요?”

하고 한달음에 원재 어머니의 곁으로 갔다.

아까 회원들이 다 모인 김에 우리가 입때꺼정 저금헌 걸 새 집 짓는 데 죄다 내놓기루 했어요.”

한다. 영신은 감격에 겨워 눈을 딱 감고는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섰다. 영신의 덕택으로 호미와 절굿공이와 오줌동이밖에 모르고 지내던 자기네부터 글눈을 떴거니와, 오늘 저녁에 자기네가 금지옥엽같이 기르는 자녀들이 그처럼 신통하게 재주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평생 처음으로 크나큰 감동을 받은 그들은,

오냐, 우리네 자녀도 가르치면 된다. 남부럽지 않게 개화를 한다.’

하는 신념을 얻었다. 그래서 원재 어머니의 발설로 몇몇 해를 두고 별별 고생을 다 해가며 푼푼이 모은 저금을 한 사람의 반대도 없이 송두리째 학원을 짓는 데 기부를 하게 된 것이다.

허허, 이거 부인네들이 저 어려운 돈을 내놨는데, 사내 코빼기라구 가만 있을 수 있나?”

하고 늙은이들은 주머니 털음을 하고 타동 사람까지도 지갑을 뒤져서 당장에 칠 원 각수가 모였다. 몇 백 명 틈에서 단돈 칠 원! 그러나 그네들이 시재 가진 돈이라고는 그밖에 없었다. 그것도 뜻밖의 큰돈인 것이다. 구경꾼들은, ‘좀 더 구경헐 게 없나.’하고 서운한 듯이 떠날 줄 모르다가 하나씩 둘씩 흩어졌다. 영신은 아이들의 옷과 유희하던 제구를 챙겨 넣은 뒤에, 어젯밤 밤늦도록 빚은 송편과 시루떡을 아이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다. ‘, 저이들두 인제는 저만치나 깨어 가는구나.’하니 저의 헌신적 노력이 갚아지는 듯 다시금 감격에 겨워 몇 번이나 그 떡이 목에 넘어가지를 않았다.

일 년 중에도 가장 밝고 맑고 서늘한 추석날 저녁의 달빛은 예배당 마당으로 쏟아져 내린다. 영신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그 달이 기울도록 노래를 부르며 어린애와 같이 뛰놀았다. 기쁨과 행복이 온몸에 넘쳐서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 보이기만 하면 와락 달려들어 한바탕 머리를 꺼둘러 주고 싶었다. 뺨을 대고 그 기쁨을, 그 행복을 들부벼 주고 싶었다.

영신은 그 돈 이백칠십 원 중에서 반만 학원을 짓는 데 쓰리라 하였다. 그 돈을 다 들인대도 도저히 설계한 대로 지을 수는 없지만, 근근자자히 모은 근로계의 돈을 내놓았기로, 냉큼 송두리째 집어 쓸 수는 없었던 것이다.

위선 이것만 가지고 시작을 해보겠어요. 시작이 반이라는데, 설마 중간에 못 짓게야 될라구요. 기부금 적은 것만 들어오면…….”

하고 회원들의 특별한 호의라느니보다도 일종의 희생적인 기부금을 굳이 반만 쓰겠다고 사퇴를 하였다. 또 한편으로는, ‘아무리 같은 통속이래도 잔약한 그네들에게만 의뢰를 하는 것은 근본 취지에 어그러진다. 내 힘으로 해야지, 내 힘껏 해보다가 쓰러지는 한이 있드래도, 전수이 남의 도움만 받으려는 것은 우리네의 큰 결점이다.’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자 이젠 집을 짓는구나!’하니, 그는 미리부터 흥분이 되어서 잠이 아니 왔다. 어떻게 무엇부터 시작을 해야 할는지 엄두가 나지를 않아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러니 교회에 관계하는 사람도 집 짓는 데는 모두들 손방이라, 누구와 의논조차 해볼 데가 없다.

동혁 씨나 핑계 김에 공사 감독으로 불러 댈까? 한번 집을 지어 본 경험이 있으니…….’하다가, ‘아니다. 그건 공상이다.’하고 어떻게든지 한곡리 회관보다 번듯하게 지어 놓은 뒤에, 낙성식을 할 때에나 버젓이 초대를 하리라 하였다. 그때까지는 아무리 만나고 싶어도 꽁꽁 참으리라 하였다.

동네에 지위 명색이 두어 사람 있기는 하지만 닭의 장, 돼지우리나 고작해야 토담집이나 얽어 본 구벽다리뿐이다. 영신은 생각다 못해서 삼십 리 길을 걸어서 장터로 목수를 부르러 갔다. 재목은 마침 근동에서 발매를 하는 사람이 있다니까, 생목을 잡아 쓸 셈만 치고, 우선 안목이 있는 목수를 불러다가 의논이라도 해볼 심산이었다.

영신은 수소문을 해서, 면역소나 주재소 같은 관청 일을 도급으로 맡아 지었다는 젊은 목수 한 사람을 찾아보고는 무작정하고 데리고 왔다. 데리고 와서는,

여보 피차에 젊은 터이니 품삯 생각만 허지 말구 모험을 한번 헙시다요. 우리 둘이서 이 학원 집을 짓는 셈만 치구 시작을 해서, 성공만 허면 당신의 이름두 나구 큰 공익사업을 허는 게 아니겠소?”

하고 학원을 시급히 지어야 할 사정과 돈이 당장에는 백여 원밖에 없다는 것을 툭 털어놓고 이야기를 한 후, 서랍 속에서 여러 가지로 그려 본 설계도를 꺼내어 보였다. 설계도를 한참이나 들여다보고 앉았던 서글서글하게 생긴 목수는,

그러십시다. 제 힘껏은 해봅죠. 돈 바라구 허는 일두 있구, 일 재미루 허는 일두 있으니깐 입쇼.”

하고 선뜻 대답을 하였다. 바다 밖으로까지 바람을 잡으러 다녀서 속이 터진 목수는 영신의 활발한 첫인상도 좋았거니와 자기의 사사로운 일이 아닌데, 물정을 모르는 신여성이 삼십 리 밖으로 저를 데리러 온 열성에 감복하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핫비를 걸치고 짜개발을 하고는 남의 지청구만 받으며 따라다니던 사람이라, 처음으로 도편수가 되어서 제 의사껏 일을 해보게 되는 데 미리부터 어깻바람이 났던 것이다.

재목도 우거지 같은 떼를 써서 헐값으로 잡아서 실어 오고, 벽련하는 꾼에 자귀질 톱질꾼까지 불러다가는 엉터리로 일을 시작하였다.

집터는 온 동리가 내려다보이는 예배당 맞은쪽 언덕에다가 잡았다. 어느 교인의 소유로 삼 백여 평이나 되는 것을, ‘돈이나 땅을 많이 가진 부자가 천당에 들어가기는 약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보다도 어렵다고 예수가 말한 비유까지 해가면서 사뭇 강제로 빼앗다시피 하였다.

집터를 닦는 날은 한곡리만치 풍성하지는 못하였다. 인심도 다르거니와 한창 벼를 베고 한 편으로는 바심을 하기 시작한 때라 장정은 얻어 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영신은 청년회원들과 아이들까지 총동원을 시켰다.

체면이구 뭐구 다 볼 때가 아니다!’하고 그는 다리를 걷고 버선까지 벗어 던지고 덤벼들었다. 주춧돌을 메고 목도질을 해오려 면 어깨의 뼈가 으스러지는 듯이 아팠다. 키 동갑이나 되는 거성(큰톱)을 다려 주고, 껍데기도 아니 벗긴 물먹은 기둥 나무를 이리저리 옮기고 하느라고, 해 뜰 때부터 어둑어둑할 때 까지 봉죽을 들어 주고 나면, 허리가 참나무 장작이나 댄 것처럼 꼿꼿하고 뼈끝마다 쏙쏙 쑤셔서 그 고통은 이루 형용할 수가 없었다.

저러다 큰병이나 나면 어떡허시료?”하고 부인네들은 쫓아다니며 한사코 말리건만, 영신이 자신부터 그런 일까지 나서서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은 어정버정하고 일들을 아니 한다. 또는 모군꾼 한 사람의 품삯이라 도 절약을 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달밤을 이용해서 영신은 모래를 날랐다. 들것을 만들어 가지고 청년들과 마주잡이를 해서, 시냇가의 모래와 자갈을 밤늦도록 나르기를 여러 날이나 하였다. 한창 기운의 남자도 힘이 드는 일을 하다가 몹시 피곤하면 시냇가 모래밭에 두 다리를 뻗고 주저앉아서, 지쳐 늘어진 다리팔을 제 손으로 주물렀다. 그것을 본 계집아이들은,

내 주물러 드리께유.”

선생님, 내 주물러 드리께유.”

하고 달려들어 다투어 가며 선생의 팔을 주무르고 다릿마디를 쳐준다. 영신은 마전을 한 통무명을 펼쳐 놓은 것같이 달빛에 비치는 시내를 내려다보다가 소녀시대의 생각이 어렴풋이 나면은,

, 우리 소꿉질허련?”

하고 사기그릇 깨진 것이나 조약돌을 주워 모아 제단을 만들었다 허물었다 하기도 하고, 모래로 성을 쌓기도 한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주께 새 집 다구.”

해가며 도두룩하게 쌓아 올린 모래를 토닥토닥 두드리기도 한다. 그러면 참 정말 소녀와 같은 기분으로 돌아가서 지나간 그 옛날을 추억하느라고 비록 잠시나마 극도로 피곤한 것을 잊을 때도 있었다. 토역을 할 때에도 손이 째이면 맨발로 들어서서 흙을 이기고, 죽가래를 들고 진흙을 섬겨 주노라면 땀이 철철 흘러서 눈을 바로 뜰 수가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틈만 있으면 모여들었다. 그러나 그네들은 집 짓는 것을 조금이라도 거들어주려고 오는 것이 아니요, 젊은 여자가 아슬아슬한 데까지 걷어붙이고 상일을 하는 것이 신기해서 구경차로 모여드는 것이다. 남은 죽기 기를 쓰고 일을 하는 것을 입을 헤벌리고 바라다보는 것을 보고, ‘왜 저렇게 얼이 빠진 사람처럼 머엉허니들 섰을까.’하고 혀를 끌끌 차면서도, 그는 비릿비릿하게 일을 도와 달라는 말은 한마디도 아니하였다.

 

……그럭저럭 집을 짓기 시작한 지 한 달이나 지나갔다. 젊은 목수는, “이런 일은 번갯불에 담배를 붙이듯이 해치워야지 오래 끌수록 내 손해다.”하고 다른 봉족꾼들을 휘몰아서 일은 여간 빨리 진행이 되지를 않는다. 그래서 벌써 중방까지 꿰고 욋가지를 얽게 되었다.

이때까지 구경만 하던 동네 사람들도 영신이가 진종일 매달려서 일을 하는 것을 보고 매우 감동을 받아, “우리가 사내 명색을 허구, 그대루 볼 수는 없네.”하고 바심이 끝나자 와짝 모여들어서 청솔가지를 꺾어다가 두툼하게시리 물매를 잡아 새를 올리며 일변 초벽까지 끝이 났다. 그 중에도 부인 친목계의 회원들은, “채선생님 혼자서 저렇게 일을 허게 내버려뒀다간 참말 큰일나겠구려. 집안일은 못 해두 위선 저 집버텀 지어 놔야 맘을 놓겠수.”하고 자기네 남편을 하나씩 끌고 와서 일이 부쩍부쩍 늘었던 것이다. 영신은 평생소원이던 학원집이, 비록 설계한 대로 되지는 않았어도 한간 두간 꾸며 나가는 데 재미가 나서 여전히 침식을 잊고 지냈다. 늙으신 어머니를 그리워할 겨를도 없고, 토요일 저녁이면 무슨 일이 있든지 동혁에게 꼭꼭 써 부치던 편지도 두 번씩이나 거르기까지 하였다. 그래서 동혁에게서는,

너무 과도하게 노력을 하다가 병이나 나지 않었느냐.”

고 매우 궁금히 여기는 편지가 연거푸 왔다. 영신은,

아이, 내가 집 짓는 데만 절망구를 해서…….”

하고 어느 날 밤은 속눈썹이 쩍쩍 들러붙는 것을 참으면서 그 동안의 경과를 소상히 적고 인제는 만날 날이 가까워 온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다.

 

두 달 열흘 남짓해서 청석학원은 문패까지 걸게 되었다. 가장 돈이 많이 드는 내부의 수장은 손을 대지도 못하고 창에 유리도 끼지 못하였지만, 인제는 마루까지 놓았으니까 급한 대로 쫓겨간 아이들도 수용할 수는 있게 되었다. 아이들은 재벽한 것이 미처 마르기 전부터 모여들었다. 그 아이들이 우리 속에서 뛰어나온 토끼처럼 넓은 마루에서 깡충깡충 뛰고 미끄럼을 타고 뜀박질을 하다 못해서, 펄떡펄떡 재주를 넘으며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것을 볼 때, 영신은 기쁜 눈물이 옷깃을 적시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 자리에 쓰러져 죽어도 눈이 감길 성싶었다.

……낙성식을 하기 닷새 전기해서 영신은 동혁에게, “무슨 일이 있든지 그날 꼭 와달라.”는 편지를 썼다. 그러나 좋은 일에 마가 든다는 것은 이런 경우에 쓰는 말일까. 영신은 그 이튿날 아침 천만뜻밖에, ‘모친위독즉래.’라는 급한 전보를 받았다. 그날 밤으로 부랴부랴 길을 떠난 영신은 자동차에 시달린 몸을 기차에 실린 뒤까지도 놀란 가슴이 가라앉지 않았다. 기차는 그믐밤의 어둠을 가르며 북으로 북으로 숨가쁘게 달린다. 한정거장 두정거장이 휙 휙 뒷걸음질을 쳐서 고향이 가까워 올수록, 불안과 초조는 점점 더해 가는데 앞에 앉은 사람이 누군지 거들떠보지도 않고 두 눈을 꽉 감은 채 생각에만 잠겼다.

전보까지 쳤을 땐 암만해두 어머니가 돌아가신 거야.’하는 방수끄런 생각까지 들었다. 그다지도 못 잊어하던 딸의 얼굴을 끝끝내 보지 못하고 외로이 숨을 거두는 어머니의 임종을 눈앞에 그려 보니 쌓이고 쌓였던 묵은 설움이 북받쳐 올랐다.

김정근과의 혼인 일로 청석골까지 오셨을 때 이틀 밤을 울며 밝히시다가, “넌 내 자식이 아니다.”하고 돌아서실 때의 그 쓸쓸하던 뒷모양! 자동차가 떠날 때 차창을 스치는 저녁 바람에 한 가닥 두 가닥 휘날리던 서릿발 같은 머리털! 정처 없이 굴러다니는 가랑잎처럼 마르고 찌든 그 노쇠한 자태!

아아, 그 얼굴이 마지막이로구나!’

영신은 차창에 이마를 들부비며 소리를 죽이면서 흐느껴 울었다. 저 하나 공부를 시키려고 육십이 넘도록 생선 광주리를 내려놓지 못하시던 홀어머니를, 다만 몇 달 동안이라도 제 곁에 따뜻이 모시지 못한 생각을 할수록 저의 불효하였음이 뼈에 사무치도록 뉘우쳐졌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슨 병환이 드셨는지는 몰라도 노환일 것 같으면 급작히 위독하다는 전보까지는 치지를 않았을 터인데, 수산조합엔가 다니는 외삼촌이 한집에 모시고 있으면서 여지껏 엽서 한 장 아니 해주었을 리야 없지 않은가. 그럼 어느 해 여름처럼 뇌빈혈로 길거리에 졸도나 하지 않으셨을까.

오둑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들끓어서 영신은 잠시도 눈을 붙이지 못하였다. 창밖의 그믐밤보다도 마음속이 더 캄캄한데 입술이 타도록 조바심이 나서 좀 눕는 체하다가는 다시 일어앉았다 하는 동안에 기차는 북관 천리를 내처 달렸다.

기적은 동해변의 조그만 항구의 새벽 공기를 새되게 찢었다. 밤새도록 차창에 들부빈 머리를 빗어 올릴 사이도 없이 뛰어내렸건만, 플랫폼은 기차가 떠난 뒤처럼 휘덩그렇게 비었는데, 마중을 나온 몇 사람 중에서 영신을 맞아 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출찰구에는 여관 이름을 쓴 초롱을 켜든 차인꾼들이 양 옆으로 벌려 서서 졸린 듯한 목소리로 손을 끄느라고 법석이건만, 거기서도 영신의 손을 잡아 줄 사람은 아무리 둘러보아도 눈에 띄지 않았다. ‘마중을 나와 줄 경황두 없나 보다.’하니 영신은 한층 더 불안해졌다. 그는 마악 전깃불이 나가서 황혼 때와 같이 으스레한 정거장 넓은 마당에서 머리를 들었다.

삼 년 만에 우러러보는 고향의 하늘! 그러나 영신은 아침볕이 벌겋게 물들어 오는 동녘 하늘을 빡빡한 눈으로 쳐다보면서도 이렇다 할 감상이 일어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일 분 일 초가 바쁘게 집으로 가고는 싶건만, 바다와는 반대 방향으로 오 리나 되는 언덕 밑까지 타박타박 걸어 올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아직 점방의 문도 열지 않은 길거리를 도망구니처럼 바스켓 하나를 들고 줄달음질을 쳐서 수산조합까지 왔다. 그러나 외삼촌이 다니는 사무소의 문은 굳게 닫혀 있지 않은가. 영신은 문을 흔들어 보다가 돌쳐서서 언덕길로 올라가다가 뿡뿡 하고 달려드는 버스와 마주쳤다. ‘, 그 동안 버스가 댕기게 됐다는 걸 까맣게 잊어버렸었네.’하고 혼자말을 하고는 되돌아오면 타고 갈 양으로 정류장 앞에 가 비켜서는데 등 뒤에서,

영신 씨!”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귀에 익은 목소리에 영신은 깜짝 놀라서 고개를 홱 돌렸다. 버스가 미처 정거를 하기도 전에 허둥지둥 뛰어내리는 사내그는 틀림없는 김정근이었다.

, 웬일이세요?”

영신은 창졸간 부르짖듯 하였다. 여기서 만나기는 천만뜻밖이면서도 얼떨김에 정근이가 반갑기도 하였다.

……

검정 세루 신사 양복을 입은 정근은 모자를 벗고 은근히 인사를 하면서도 우물쭈물하고 얼핏 말대답을 못 한다.

언제 이리루 오셨에요?”

영신은 정근이가 그 동안 이곳의 금융조합으로 전근이나 해온 줄 알고 채우쳐 물었다. 정근은 여자의 날카로운 시선을 피하면서 지난봄에 결혼 문제를 해결지어 달라고 청석골까지 갔을 때보다도 더 여윈 얼굴에 아침볕을 모로 받으며,

…… 지금 마중을 나가는 길인데요, 버스가 고장이 나서…….”

하고는 계집애처럼 머리를 숙이고 말끝을 맺지 못한다.

마중을 나오시다뇨? 누굴요?”

영신은 더욱 이상스러워서 연거푸 묻는다.

영신 씨가 오실 줄 알구…….”

아아니, 내가 올 줄 어떻게 아셨에요?”

영신은 한길에서 정근에게 불심신문(不審訊問)이나 하듯 한다.

얘긴 차차 허구 집으루 가시지요.”

정근은 영신의 집 방향으로 돌아서며 무슨 죄나 지은 사람처럼 비실비실 걷기를 시작한다. 영신은 그 뒤를 바싹 대서며,

그럼, 우리 집엘 가보셨겠군요?”

하고 조급히 물었다. 정근은 어려서부터 이웃집에서 자라나서 영신의 어머니를 아주망이라고 부르며 따르던 터이라, 무슨 일로든지 여기까지 왔으면야 저의 집에를 들렀을 듯해서 물어 본 것이다. 정근은 여전히 선선하게 대답을 못하고 버스를 기다리는 듯이 연방 정거장 편만 돌려다본다.

, 어머니가 위독허시단 전보를 받구 오는 길인데요, 왜 말씀을 못 허세요?”

영신은 갑갑해 못 견디겠다는 듯이 발을 멈추며 정근을 돌려다보았다. 정근은 그제야,

아무튼 같이 갑시다. 대단친 않으시니 안심허시구요.”

한다. 다년 책상 앞에 꼬부리고 앉아서 주판질을 하고 철필 끝만 달리느라고 워낙 잔졸하게 생긴 사람이 허리까지 구부정해졌는데, 팔꿈치와 양복바지 꽁무니는 책상과 의자에 반질반질하게 닳아서 걸음을 걷는 대로 번쩍거린다. 영신은 한 걸음 다가서며,

정말 대단친 않으세요?”

하고 정근의 말을 흉내 내듯 하였다. 어머니가 그 동안 돌아가지 않으신 것만은 확실해서 우선 마음이 놓이면서도, ‘그럼, 어째서 전보까지 쳐서 바쁜 사람을 불러내렸을까?’하는 의증이 더럭 났다.

대체, 전본 누가 쳤어요?”

하고 의심에 빛나는 눈초리로 정근의 옆얼굴을 노려보는데, 등 뒤에서 버스가 달려왔다. 정근은 대답할 것을 모면하고 손을 들어 버스를 세우더니,

타구 가십시다.”

하고 저부터 뛰어오른다. 영신은 잠자코 그 뒤를 따라 올랐다. 영신은 멀찌감치 떨어져 외면을 하고 앉았다. 어머니의 소식을 대강이나마 안 담에야 여러 사람 틈에서 이말 저말 묻기도 싫어서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얼마나 이상이 맞는 사람과 결혼을 해서 갖은 복록을 다 누리며 사나 두고 보자.’고 저주까지 하던 남자가 어쩌면 저다지도 떡심이 풀린 것처럼 풀기가 없을까? 왜 말대답도 시원히 못 할까? 대관절 여기는 무얼 하러 와서 나를 마중까지 나왔을까? 하니 눈앞에 앉은 정근이가 점점 더 의심스러워졌다.

어려서부터 학교에 다닐 때 보아 오던 거리에는 초가집이 거진 다 헐리고 얄따란 함석지붕에 낯선 문패가 붙었다. 무슨 양조장이니 조선 요리 무슨 관()이니 하는 커다란 간판만 눈에 띄는데, 어머니가 생선을 받아 가지고 다니던 수산조합 도매장을 지날 때에 생선 비린내만은 여전히 코에 끼쳤다.

아하, 우리 고향두 어지간히 변했구나!’

영신은 터져 나오는 한숨을 금할 수 없었다. 영신을 불러 내린 것은 정근의 조화였다. 영신이가,

어머니!”

하고 집으로 뛰어 들어가 보니, 어머니는 병들어 눕기는 커녕 정지에서 아침 반찬을 할 것인 지 생선을 다루고 섰지 않은가.

앙이 우리 영싱이!”

하고 반색을 하며 마당의 아침볕을 받으며 내닫는 어머니의 눈물이 글썽글썽해진 얼굴은 지난봄에 보았을 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 영신은 어머니가 반가운 것보다도 정근에게 속은 것이 몹시 불쾌해서, 어머니에게 잡힌 손을 뿌리치며 바스켓을 마루 끝에다 내던지고는,

, 어머이가 돌아가신 줄 알았구려!”

하고 저의 뒤를 따라와서 구두끈을 끄르는 정근을 돌려다보고 눈을 흘겼다.

어미래 숨으 몬다구나 해야 집에 오지비.”

딸의 성미를 잘 아는 어머니는 눈 하나를 찌긋하고 심상치 않은 영신의 기색을 살피면서,

어서 구둘루 들어가자야.”

하고 어름어름한다.

자네두 들어오랑이.”

어머니는 정근이가 정말 사위나 되는 듯이 불러들였다. 정근이가 슬금슬금 곁눈으로 저의 눈치를 보며 들어와 윗목에 가 앉는 것을 보자, 영신은 발딱 일어서고 싶도록 불쾌해졌다. 양회 푸대로 바른 장판만 들여다보고 입을 꼭 다물고 있으니까, 어머니는,

어째 저리 실룩해 썼소? 너 멫 해 만에 집에 온 줄 아능야? 그러다간 과연 에미래 죽어두 모르지 앙켕이.”

하고 흥분한 딸의 얼굴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요모조모 뜯어보다가,

앙이 어째 저러구 앉었기만 하오?”

하고 정근이더러 무슨 말이라도 꺼내라고 재촉 비슷이 한다. 그래도 정근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 하고 넥타이만 만지작거리고 앉았는데, 영신은 무릎을 세우며,

어머니가 저렇게 정정허신데 전보를 친 사람이 누구야요?”

하고 반쯤은 정근을 향해서 새되게 쏘아붙인다. 속고 온 것보다도 어머니가 돌아가셨나 보아 애절초절을 하던 것이 몹시 분하였다. 그보다도 어머니를 살살 꾀고 어수룩한 늙은이와 짬짜미를 해가지고 거짓말 전보를 친 정근의 비열한 태도가 주먹으로 그 핏기 없는 얼굴을 후려갈기고 싶도록 밉살스러웠다.

그거사 차차루 알지비. 아척이나 먹으면서 천청이 얘기하지비…….”

하고 어머니는 정지로 내려가서 수산조합에 다니는 동생의 댁과 아침상을 차린다.

조금 있자 생선 굽는 냄새가 풍겨 들어오건만, 방 안의 두 사람은 피차에 쓰디쓴 얼굴을 하 고 말은커녕 마주 쳐다보지도 않는다. 밤새도록 기차 속에서 시달리면서 불안과 초조에 지지리 졸아붙은 듯하던 영신의 신경은 다시금 불쾌한 흥분으로 옥죄어 드는 것 같다.

정근은 양복 앞자락의 먼지를 손가락으로 톡톡 튀기고 있다가,

너무 불쾌허게 생각은 마세요. 전보는 어머니가 치라구 허셔서, 치긴 내가 쳤지만…….”

하고 간신히 한마디를 꺼낸다.

알았어요!”

영신의 대답은 얼음같이 차다.

지낸 봄의 그 편지 한 장으루는…….”

단념을 할 수 없었단 말씀이죠?”

…….”

그래서 어머니를 꼬드겨서 말짱헌 노인이 돌아가신다구 가짓말 전보를 쳤군요?”

영신의 눈초리는 마주 쳐다보기가 매섭도록 날카롭다.

방 안의 공기는 찢어질 듯이 빡빡한데, 어머니는 손수 딸의 아침상을 들고 들어왔다. 밥상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 영신은 발딱 일어나 밖으로 나가서 세수를 하고 들어왔다. 잠시 자리도 피할 겸 머리를 식히기 위함이었다. 오래간만에 모녀가 겸상을 하고, 정근은 산지기 모양으로 윗목에 가 외상을 받았다. 영신은 어머니가 그 동안 지낸 일과 수다스레 늘어놓는 잔사설을 귀 밖으로 흘리며 입맛이 깔깔해서 밥은 두어 술 뜨는 둥 마는 둥하고 물러앉았다. 어머니는 정근이가 너를 불러내린 것이 아니라는 발뺌을 뿌옇게 하고는,

여러 말 할 거 없당이. 이번에사 귀정으 내야지 어찌겠능야. 앙이 몇몇 해르 두구서리, 너 만 고대한 사람으 무쉴에 마다능야. 그건 죄 앙이 되갠? 난 이젠 저 사람이 안심치 않아 못 보겠다.”

하고는 연방 딸의 눈치를 살핀다. 영신은 속아서 내려온 분도 채 꺼지지 않았는데, 들어 단짝 그런 말을 꺼내는 어머니의 태도가, 뚜쟁이만치나 비열한 것 같아서 입술만 자근히 깨 물고 있다가, ‘직접으로 단판을 하고 말리라.’하고 입 속으로 양치질을 하고 있는 정근의 편짝으로 반쯤 돌아앉았다.

날 좀 보세요!”

여자의 말에 따라 정근은 뇌란 얼굴을 쳐들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다시 무릎 위로 떨어졌다.

아무튼 위조 전보까지 쳐서 날 불러 내리신 건 비겁한 행동이야요. 더군다나 어머니가 돌아가신 줄 알구 속구 온 게 몹시 불쾌허지만, 될 수 있는 대루 냉정허게 얘길 허겠어요.”

하고 헛기침을 해서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원체 사랑이라는 건요, 한편 쪽에서 강제헐 수도 없는 거구요, 또는 상대자의 사정을 봐서 제 몸을 바칠 수두 없는 줄 알어요. 그건 동정이지 진정헌 사랑은 아니니까요.”

하고 설교를 시작하듯 한다. 정근은 그제야 영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만치 용기를 내었다.

나두 그만 걸 모르는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어려서버텀 단단히 믿어 오던 터에, 편지 한 장으루야 첫 번 사랑허든 사람을 단념헐 수가 있어요? 그런데 집에선 결혼 문제루 너무나 귀찮게 구니까, 좌우간 탁방을 내려구, 일테면 비상수단을 쓴 겐데…….”

하고는 바늘방석에나 앉은 것처럼 불안해한다. 영신은 남자의 앞으로 조금 몸을 다그며 눈을 아래로 깔고,

나 역시 정근 씨헌테 미안헌 생각이 없진 않어요.”

하고 진심으로 동정하는 빛을 보이더니,

허지만, 우리 두 사람의 관계는 첨버텀 나뻤어요. 당자의 장래는 어떻게 될는지 모르구, 부모들이 덮어놓고 혼인을 정했다는 건 다시 비판할 여지두 없지만, 개성에 눈을 뜬 우리가 옛날 어른들의 약속을 지켜야만 헐 의무는 손톱끝만치두 없어요. 그렇지 않어요?”

하고 억지로 평화스러운 얼굴빛을 짓는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뭐야요?”

난 오늘까지두 영신 씨 한 사람만을 사랑허구 있는데…….”

……

이번에는 영신이가 대답에 궁한 듯 입을 뾰족이 다물고 있다가,

나 같은 여자를 그다지 꾸준허게 사랑해 주신다는 데는 고맙다구 해야 헐지 미안스럽다구 해야 헐지 모르겠어요.”

하고 여전히 눈을 내리깔고 있다가 목소리 보드러이,

정근 씨!”

하고 손톱 여물을 썰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런데 두 사람 중에 한편의 짝사랑만으로 결혼이 성립될 수가 있을까요?”

그 말에 신경질인 정근의 눈꼬리는 샐쭉해졌다.

그야 성립될 수가 없겠지요.”

하고 영신의 얼굴에 구멍이라도 뚫을 듯이 똑바로 노려보더니,

도대체 어째서 뭣 때문에 나를 사랑헐 수 없다는 거야요? 그 까닭이나 똑똑히 말해주세요.”

하고 바싹 다가앉는다. 단둘이서만 이야기할 기회를 주려고 어머니는 자리를 피해서, 영신과 정근은 피차에 최후의 담판을 개시하였다. 그러나 무슨 까닭으로 나를 사랑하지 않느냐.’는 어리석은 듯하고 거북한 질문에는 얼른 대답이 나오지 않아서 영신은 잠시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의 감정이란 인력으룬 억지루 못 허는 거야요. 허지만 난 인간적으룬 정근 씨를 싫어 허지 않어요.”

그럼요?”

정근은 약빨리 말끝을 채뜨린다.

일이 기왕 이렇게 됐으니 솔직허게 말씀허지요.”

하고 영신은 무슨 셈을 따지듯 엄지손을 꼽는다.

첫째, 돈을 모아서 저 한 사람의 생활안정이나 꾀하려는 정근 씨의 이기주의가 싫어요!”

이기주의가 싫다구요? 우리에겐 경제생활의 토대가 없으니까 따라서 문화두 없는 게지요. 그러니까 우린 첫대 돈을 모아 가지구 모든 걸 사야만 해요. 결국은 모든 걸 돈이 지배허구 해결 짓는 게니까요.”

그건 퍽 영리허구두 아주 현실적인 사상인진 모르지만요, 제 목구녁이나 금전밖에 모르는, 호인이나 유태 사람은 되구 싶지 않어요! 저라는 개인 이외에 사회두 있구 민족두 있으니까요.”

암만 사회를 위허느니 민족을 위허느니 허구 떠들어두, 위선 돈을 안 가지군 무슨 일이든지 손두 대볼 수 없는 게 엄연한 사실인데야 어떡허나요?”

물론 돈이 필요허지요. 그렇지만 우린 필요한 것과 귀한 걸 구별헐 줄 알어야겠어요. 더군 다나 계몽운동이나 농촌운동은 다른 사업과 달러서, 오직 정성으로 혈성으로 허는 게지, 돈을 가지구 허는 건 아니니까요. 실상 우리 같은 새빨간 무산자가 꿈에 광맥지나 발견허기 전엔, 돈을 모아 가지구 사업을 헌다는 건 참 정말 공상이지요. 사실 남의 고혈을 착취 허지 않구서 돈을 몬다는 건 얄미운 자기변호에 지나지 못허는 줄 알아요.”

이 말에 정근은 불복인 듯이 상체를 뒤흔들며,

천만에, 그렇지 않…….”

하는데, 영신은 급작히 손을 들어 정근의 말문을 막으며,

여러 말씀 헐 게 없어요. 누가 무슨 말을 허든지 내 신념만은 굽히지 않을 테니까요. 그리구 둘째는요…….”

하고 바로 정근의 턱밑에서,

난 지금 연애니 결혼이니 허는 문제를 생각헐 겨를이 없어요! 오해허시면 안 됩니다. 이것 두 핑계가 아니구 사실이야요. 내가 청석골다가 이일 저일 벌여논 걸 직접 보셨지만, 지금 학원집을 엉터리루 지어 놓구 허리가 휘두룩 빚을 졌는데요, 바루 낼모레가 낙성식을 헐 날이야요. 한눈을 팔기는커녕 죽을래야 죽을 틈이 없는 터에, 연애는 뭐고 결혼은 다 뭐야요.”

말이 여기까지 이르자 부드럽던 영신의 말씨는 점점 여무져 가고, 잠 한숨도 못 자서 흐릿하던 눈에서는 영채가 돈다. 정근은 질문할 말도 대답할 말도 궁해서 과식한 사람처럼 어깨로 숨만 가쁘게 쉬고 있다가,

그럼 모든 게 안정된 장래까지두 생각을 다시 고칠 수가 없을까요?”

하고 은근히 후일을 기약하자는 뜻을 보인다. 영신은 그 말대답도 서슴지 않았다.

장래까지두 다시 생각헐 여유가 없어요! 난 내 맘대루 약혼헌 남자가 있으니까요.”

? 정말요?”

정근은 입을 커다랗게 벌리며 몸을 반쯤이나 일으켰다. 영신이가 약혼을 하였다는 것을 여태까지 한낱 핑계로만 여겼던 것이다.

박동혁이라구 저어 한곡리라는 데서 농촌운동을 허는 사람인데요, 돈은 한 푼두 없어두 황소처럼 튼튼허구 건실헌 동지입니다. 올봄에 그이의 일터루 찾어가서 앞으루 삼 년 계획을 세우구 왔어요. 그래서 정근 씨한테 단념허라는 편지를 헌 거야요.”

하고는,

마지막으루 한마디 해두구 싶은 말이 있어요.”

하고 목소리를 흠씬 낮추어 가지고,

어려서버텀 한 고장에서 자라났구, 또는 여러 해 동안 나 같은 여자를 유념해 주신 정분으루 충고를 허는 건데요, 정근 씨가 지금 같은 개인주의를 버리구 어느 기회에든지 농촌이 아니면 어촌이나 산촌으로 돌아가서 동족이나 같은 계급을 위헌 일을 해주세요! 우리 같은 청년 남녀가 아니면 뉘 손으로 그네들을 구원해 냅니까?”

영신의 목소리에는 정근의 머리가 저절로 수그러들 만한 열과 저력이 있었다.

두 사람은 함께 묵묵하였다. 그러다가 영신은 인제 더 할 말이 없다는 듯이,

난 좀 자야겠어요.”

하고 일어서더니 윗간으로 올라가 턱 누워 버린다.

점심때가 훨씬 겨워서 영신은 동혁이가 청석골로 와서 기다리는 꿈을 꾸다가 소스라쳐 깨었다. 눈을 부비며 아랫방으로 내려가 보니, 정근은 그림자도 찾을 수 없는데, 어머니 홀로 벽을 향해서 훌쩍훌쩍 울고 누웠다.

어머니 그이 어디 갔수?”

하고 딸은 어머니의 어깨를 흔들었다.

뉘 아능야. 내게두 말없이 가방으 들구 나갔당이.”

어머니는 돌아 누운 채 울음 반죽으로 대답을 한다. 영신은 그 곁에 한참이나 잠자코 앉았으려니, 저에게 너무나 매정스러이 퇴짜를 맞고 다시 머나먼 길을 인사도 아니 하고 떠나간 정근이가 가엾은 생각이 들었다. ‘차차 그이헌테두 좋은 배필이 생기겠지.’하고 눈을 내리감고는 그의 장래를 마음속으로 축복해 주었다. 그러다가 어머니의 뼈만 남 은 손을 잡으며,

어머니!”

하고 불렀다.

어째 그리능야?”

어머니는 그제야 반쯤 돌아 눕는다.

너무 그렇게 섭섭해허지 마슈. 그 사람버덤 더 잘 나구 튼튼헌 사윗감을 보여 드릴게, .”

하고 영신은 응석조로 어머니를 위로한다.

사윗감이사 어디 없겡이. 그러나 정긍이만치 어려서부터 정이 들구 얌전스리 구는 사람이 그리 쉬운 줄 아능야.”

하더니,

네 그럴 줄이사 몰랐지. 에미 마지막 소원두 끊어지구…….”

하는 어머니의 눈은 또 질금질금해진다.

글쎄 그렇게 언짢어허지 마시라니깐. 어느새 무슨 소망이 끊겼다구 그러슈? 몇 해만 눈 꿈쩍허구 기다려 주시면 내가 잘 뫼시구 살 텐데…….”

듣기 싫다야. 내사 하두 여러 번 속았다. 이전 금방석으 태운대두 곧이 들리지 않는당이.”

하고 한숨만 들이쉬고 내쉬고 한다. 영신은 동혁이와 약혼을 하기까지의 자세한 경과와 청석학원을 짓느라고 죽을힘을 다 들인 이야기를 좌악 하고 나서,

나는 물론 어머니가 낳어서 길러 주신 어머니의 딸이지만, 어머니 한 분의 딸 노릇만은 헐 수가 없다우. 알아들으시겠수? 어머니 한 분헌텐 불효허지만, 내 딴엔 수천수만이나 되는 장래의 어머니들을 위하지 일을 허려구 이 한 몸을 바쳤으니까요. 그러는 게 김정근이 하나헌테만 이 살덩이를 맡기는 것버덤 얼마나 거룩허구 뜻있는 일인지 몰라요. 네 그렇죠? 어머니!”

어머니는 일어나 앉으며 파뿌리 같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어 올리더니,

모르겠다. 내사 평생으 이렇게 혼자 살란 팔자지비…….”

하고는 다시 말이 없다.

어머니, 우리 청석골루 갑시다. 아무럭허문 어머니 한 분이야 굶겨 드리겠수.”

싫당이, 싫어!”

어머니는 그것도 생각해 보았다는 듯이 체머리를 앓는 사람처럼 머리를 흔든다.

밥술으 놓는 날꺼지는 내 앙이 벌어먹으리. 네 입 하나 감당으 하게두 어려운데, 이까지 쓸데없는 늙응이, 무쉴에 쫓아가겡이? 네 출가허는 날꺼지 살기나 하문 그제나 구경을 가지비.”

그 말에 영신은 참았던 눈물이 핑 돌았다. 얼핏 저고리 고름으로 눈두덩을 누르고 온몸의 용기를 내어,

아무튼 내가 없인 낙성식을 못 헐 테니깐 저녁 차루 떠나야겠수.”

하고 차마 하기 어려운 말을 꺼냈다.

앙이, 오늘 나조루 떠나? 정말잉야? 어미허구 하룻 나조 자보지두 앙이하구…….”

마르고 주름 잡힌 어머니의 얼굴은 무한한 고독과 섭섭한 빛에 뒤덮인다. 딸은 그 얼굴을 마주 쳐다보다가,

그럼 어떡허우! 어머니, 그럼 난 어떡허우?”

하고 목소리를 떨다가 어머니의 무릎에 이마를 들부비며 느껴느껴 울었다.

 

……어머니는 정거장까지 전송을 나왔다.

호각 소리가 들리고 기차바퀴가 구르기 시작하는데, 치맛자락을 들추어 다 떨어진 주머니를 끄르며 따라오더니 딸이 얼굴을 내민 차창으로 그 주머니를 들여트리고는 잠자코 돌아 섰다. 그 주머니 속에는 생선 광주리를 이고 다니면서 푼푼이 모아 넣은 돈이 묵직하게 들어있었다.

 

 

반가운 손님

 

낙성식에 와달라는 영신의 청첩을 받은 동혁은 저의 일과 조금도 다름이 없이 기뻤다. ‘아무렴 가구말구. 오지 말래두 갈 텐데…….’하고 혼자말을 하면서 벽에 붙은 일력을 쳐다보았다. ‘내일은 떠나야겠는걸.’하고 노자를 변통할 궁리를 하였다. 추수라고는 하였지만, 잡곡을 섞어 먹는데도 내년 보리 때까지 댈 양식조차 없었다. 간신히 계량이나 하던 것을, 그야말로 문전의 옥답을 반나마 팔아서 강도사 집의 빚을 청산하였기 때문에, 풍년이 들었어도 광속에는 벼라고 겨우 대여섯 섬밖에는 들어가지 못하였다.

각종 세금과 비료대와 곗돈과 온갖 추렴이며, 동화가 각처 주막에 술값을 진 것과 일 년 동안에 든 가용을 따지고 보면, 그 벼 몇 섬까지 마저 팔아도 회계가 닿지를 않는다. 노인을 모신 사람이 생선철이 되어도 비린내조차 맡아 보지를 못하고 제법 광목 한 필 사들인 적이 없건만 씀씀이는 논 섬지기나 할 때버덤 더 줄지를 않는다. 그것은 동혁이가 집안일에만 매어달리지 않는 까닭도 다소간은 있겠지만, 소위 자작농이 그러하니 남의 소작을 해먹는 사람들은 참으로 말이 못 된다. 회원 중에도 건배는 실농군도 되지 못하지만 남의 논 한 마지기도 못 얻어 하는 사람이라 가을이 원수 같았다. “난 타작마당에서 빗자루만 들구 일어서는 꼴을 당허지 않으니까 배포만은 유허거든.”하고 배를 문질러 보이지만, 그 뱃속에서는 쪼르륵 소리가 나는 것이다. 실상은 삼사 년씩 묵은 빚만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해서, 어떻게 해야 할는지 도무지 엄두가 나지를 않는 모 양이다. 그는 입버릇처럼,

노름허다 밤샌 건 제사지낸 셈만 치구, 돈 내버린 건 도적맞은 셈만 치면 고만이지.”

하고 제 손으로 패가한 것을 변명하며 낙천가의 본색을 발휘하지만, 실상은 어린것들의 작은 창자조차 곯리는 때가 많다.

생활의 안정을 얻지 못하는 그는 동네일을 한다고 덜렁거리고 다니기는 해도 노상 횃대에 오른 오리 모양으로, 어느 때 어느 바람에 불려서 어디로 떠달아날지 모를 것 같은 기색이 올 가을부터 현저히 보일 때, 유일한 친구인 동혁의 마음은 어두웠다. 제 코가 석 자 가웃이나 빠져서 물질로 도와 줄 수 없는데, 그렇다고 끼니를 굶고도 먹은 체하고 농우회 일을 보는 것이 여간 마음 아픈 것이 아니다. 회의 일만 해도 그렇다. 회원들이 그렇게 집안의 반대와 괴로움을 무릅쓰고 일을 하건만 실상 생기는 것이라고는 드러내어 말할 것이 못 된다. 공동답의 수확은 작년보다 대여섯 섬이나 늘었다. 개량식으로 지은 보람이 있어 재미나고 구식만 지키는 사람들에게 자랑도 되지만, 한 마지기에 석 섬 마수나 타작을 하였대도 반은 답주인 강도사 집으로 들어가니, 그것을 노느면 한 사람 앞에 한 가마니도 차례가지 못한다. 그것이나마 회관의 비용을 쓰려고 팔아서 저금을 하는 것이니 실속을 따지고 보면 헛수고를 한 셈이다. 회원들은, “이거 너무 섭섭해서 안됐는걸.”하고 겨우 고무신 한 켤레와 삽 한 자루씩을 사서 노났을 뿐이다.

그러나 한 길이나 되는 볏단을 조리개로 큼직하게 묶어서 개상에다가 둘러메치자, 싯누런 몽근벼가 와르르 쏟아질 때 회원들은 재미가 쏟아졌다. 도급기(稻扱機)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바심꾼들의, “어거윗윗.”하고 태질을 하는 그 기운찬 소리를 들을 때, 황금 가루로 뫼를 쌓아 놓은 듯한 볏무더기 속에 발을 푹 파묻고 벼를 끌어 담으며, “두 말이요두 말. 서 말이요서 말.”하는 처량스러운 듯한 소리를 들을 때만은, “아이구, 이걸 다 남을 주다니…….”하는 분한 생각이 들어 한탄을 마지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대견하기도 해서 잘다란 걱정을 잊을 수 있었다.

노자를 변통할 궁리를 하던 동혁은, ‘적어도 십 원 한 장은 가져야 헐 텐데…….’하고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언뜻 눈앞에 나타난 것은 기만의 얼굴이었다. 그러나 치사하게 그 자헌테 돈을 취해 가지구 가긴 싫다.’하고 튼튼한 두 다리로 걸어서 산을 넘어 물이라도 건너갈 결심을 하였다.

 

낙성식 전날 영신은 십 리도 넘는 자동차 정류장까지 마중을 나갔다. 의외로 근친을 하였기 때문에 그럭저럭 사흘 동안이나 빠져서, 급자기 준비를 하느라고 잠시도 떠날 사이가 없건만, 별러별러 찾아오는, 더구나 청해서 오는 사랑하는 사람을 앉아서 맞을 수는 없었 던 것이다.

낮차에 헛걸음을 치고 돌아와서, ‘저녁차에는 꼭 오겠지.’하고 저녁때 또다시 나갔다. 가슴을 졸이며 자동차를 기다리는데 멀리서 엔진 소리가 들렸다. 영신은 신작로로 뛰어나가며 손을 들었다. 차는 브레이크 소리를 지겹게 내며 우뚝 섰다. 동혁은 벌써 알아보고 뛰어내릴 텐데, 만원도 아니 된 승객을 훑어보았으나 땅이 두 쪽에 갈라져도 꼭 올 줄 알았던 사람은 그림자도 없다. 영신은 실망 끝에 어찌나 화가 나는지, ‘이놈아, 왜 그이를 안 태워 가지구 왔느냐?’하고 운전수를 끌어내려 퍽퍽 두드려 주고 싶었다. 그는 그만 낭판이 떨어져서, 가로수 밑에 가 펄썩 주저앉아서 거진 한 시간 동안이나 뻘겋게 놀이 낀 하늘만 원망스러이 쳐다보았다.

못 오면 그 성실헌 이가 전보래두 쳤으련만…….’하고 여러 가지로 추측도 해보고 공상도 해보다가, 내왕 이십 리 걸음이나 곱팽이를 쳐서 그만 풀이 죽어 가지고 어둑어둑할 무렵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공연히 짜증이 나서 학원에는 들르지도 않고 바로 사숙으로 갔다. 낙성식 준비래야 지도책을 펴놓고 만국기를 헝겊조각에다 물감 칠을 해서 달 것과, 상량(上樑)할 때도 쓸쓸히 지낸 목수며 저와 함께 죽도록 애를 쓴 청년들을 점심이나 대접하려는 그 준비를 하는 것뿐이다. 소위 내빈이라고는 청하지도 않았으나, 학부형들이나 모아 놓고 그 동안 경과를 보고하려는 것이다. 서울 연합회에 청첩을 보내지 않을 수가 없어, 회장이 못 오면 간사라도 한 사람 보내 달라고는 했으나, 속으로 오지 말았으면 하였다. 농촌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서울서 눈은 한껏 높은 하이칼라가 내려오면 보여 줄만한 것도 없거니와, 대접하기만 거북할 것 같았다. 그런데 내빈의 총대표라고 할 만한 동혁이가 오지를 않으니(건배 내외와 농우회원들에게도 형식적으로 청하기는 하였지만) 낙성식이고 무엇이고 다 집어치우고 싶도록 부아가 났다. 내일 온대도 정각인 아침 열시까지는 도저히 대어 들어올 수가 없지 않은가. 영신은 컴컴한 중문간에서,

원재 어머니!”

하고 불쾌히 부르며,

서울서 아무두 안 왔어요?”

하고 물으면서 운동화를 벗어 던졌다. 서울로 통한 길은 다른 방향인데 그 길로는 원재를 보냈던 것이다. 집으로 들어오자 자기가 쓰는 방에 불이 켜진 것을 보고, ‘혹시 서울서나 누가 왔나?’하고 물었는데 아무 대답이 없다. 영신은, ‘원재 어머니꺼정 어디루 갔을까?’하고 입 속으로 꾸짖으며 방문을 펄썩 열고 들어서다가 깜짝 놀라 문칫 하고 뒤로 물러섰다.

왜 서울서 오는 사람만 찾으세요?”

방 한구석에 앉아서 각반을 풀다가 검붉은 얼굴에 웃음을 가득히 담고 돌려다보는 것은 동혁이다! 천만뜻밖에 떡 들어와 앉은 사람은 틀림없는 동혁이다!

이게 누구세요?”

영신은 놀라움과 반가움에 겨워서 가슴속은 두방망이질을 한다. 동혁은 벌떡 일어나 영신의 두 손을 덥석 쥐고 잡아 흔든다.

아아니, 어디루 어떻게 오셨어요?”

어떻게 오다니요? 이 두 바퀴 자동차를 타구 왔지요.”

하고 동혁은 제 다리를 탁 쳐보인다. 영신은 혀끝을 내두르며,

아이고 어쩌문! 배두 안 타구 돌아오셨으면, 한 삼백 리나 될 텐데…….”

하니까,

아따, 삼천 리는 못 올까요?”

하고 동혁은 그저 손을 놀 줄 모른다.

그래 언제 떠나셨어요?”

어저께 새벽에요.”

영신은 그만 동혁의 가슴에, 그립고 그립던 그 널따란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동혁은 두 팔로 영신의 어깨를 힘껏 끌어안았다. 두 사람은 함께 한참 동안이나 말을 못 하였다.

영신은 얼굴을 들었다. 등잔불빛에 번득이는 두 줄기 눈물! 그것은 반가움에 겨워서만 흘러내리는 것이 아니다. 거칠고 어두운 벌판을 홀로 헤매 다니다가 어버이의 따뜻한 품속으로 기어든 듯한 느낌과, 살이 찢기고 뼈가 깎이도록 고생한 것을 무언중에 호소하는, 그러한 눈물이었다. 동혁은 눈을 꽉 감았다가 뜨며,

신색이 매우 못허셨군요.”

하고는 손등으로 눈물을 부비고 난 영신의 얼굴을 무한히 가엾은 듯이 들여다본다. 반년 남짓이 만나지 못한 동안에 영신은 그 탐스럽던 두 볼이 여위고, 눈 가장자리에는 가느다란 주름살까지 잡혔다. 더운 때도 아닌데 입살이 까맣게 탄 것을 보니, 그 동안 얼마나 노심초사를 했나하는 것이 역력히 들여다보여서, 동혁은,

그래 집 짓기에 얼마나 애를 쓰셨에요?’

하는 말이 입 밖까지 나오려는 것을 도로 끌어들였다. 그런 인사치레는 일부러 하기가 싫었던 것이다. 등잔불은 고요히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을 흔드는데,

우리 집 보셨지요? 동혁 씨 집버덤 잘 지었지요?”

한참만에야 영신은 딴전을 부리듯이 묻는다.

아까 잠깐 바깥으루만 둘러봤는데, 너무 훌륭허드군요. 한곡리 회관쯤은 게다 대면 행랑 채 같어요.”

하고는,

집들은 엄부렁허게 지어 놨지만, 이젠 내용이 그만큼 충실허게 돼야 해요.”

하고 동혁은 제가 주인인 듯이 영신의 손목을 끌어다 앉혔다. 회관의 설계도를 보고 또는 편지로 자세히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여자 혼자 시작한 일로는 엄청나게 규모가 큰 데 두 번 세 번 놀랐다.

좀 누세요. 여간 고단치가 않으실 텐데…….”

하고 영신은 목침을 내어놓고 일어서며,

시장두 허실걸. 원재 어머닌 어딜 가서 여태 안 들어와.”

하며 일어나는데,

아이고, 선생님이 벌써 오신 걸 몰랐네.”

하고 마주 들어오는 것은 이 집의 주인이었다. 그는 손님이 혼자 와서 기다리는 것이 보기 딱해서 영신의 뒤를 쫓아 보낼 사람을 얻느라고 회관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온 것이었다. 영신은 원재 어머니에게만은 동혁이와의 관계를 이야기하여서, 그 역시 동혁이를 여간 기다리지 않았었다. 그는 부엌으로 들어가며,

어쩌문 그렇게 대장감으루 생겼어요? 첨 봐서 그런지, 마주 쳐다보기가 무서웁디다.”

하고 혀끝을 내둘러 보이면서 밥상을 차린다. 청석골 밖에는 나가보지도 못하였지만, 동혁이처럼 건장하고 우람스럽게 생긴 남자를 처음 보았던 것이다. 천사와 같이 숭앙하는 채 선생의 남편 재목이, 방 안이 뿌듯하게 들어설 때 그의 마음속까지 뿌듯하였다. 영신이도 동혁이를 칭찬하는 말이 듣기 싫지 않아서,

그렇게 무서워 봬요? 아무튼 보호병정 하나는 튼튼허게 뒀죠?”

하고 느긋한 웃음을 웃어 보였다. 원재 어머니가,

찬이 없어서 어떡헌대유?”

하고 성화를 하니까,

, 돌멩이를 깨물어 먹어두 새길걸.”

하면서도, 밥상을 들고 들어가서는,

한곡리처럼 대접을 해드릴 수는 없어요. 우린 쩍의 반찬(배고플 적이란 뜻)밖에 없으니까요. 당최 벜에 들어설 틈두 없구요.”

하고는,

호호호호.”

하고 명랑히 웃는다. 동혁은,

내가 요릿집을 찾어온 줄 아슈?”

하고는 밥상을 들여다보더니,

외상을 먹구는 언제 갚게요. 밥 한 그릇만 더 갖다가 우리 같이 먹읍시다.”

하고 우겨서, 둘이 겸상을 해서 먹으며 피차에 지낸 이야기를 대강 주고받았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저 사람을 그다지두 그리워했었던가.’하는 듯이, 피차에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고 기계적으로 숟가락질을 했다. 동혁은 숭늉을 마신 뒤에 입이 찢어지도록 하품을 하더니,

이 근처에두 주막이 있겠지요?”

하고 억지로 몸을 일으킨다. 제아무리 장사라도 이틀 동안에 거진 삼백 리 길이나 줄기차게 걸어왔으니 노그라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주막은 왜 찾으세요? 어느새 망령이 나셨담.”

하고 영신은 동혁을 붙잡아 앉히고는 홑이불을 새로 시친 저의 이부자리를 펴주고 나서,

허구 싶은 얘긴 태산 같지만 오늘은 일찌감치 주무세요. 조옴 고단허실까.”

하고 일어선다. 동혁은,

아닌 게 아니라 내쫓아도 못 가겠쇠다.”

하고 못 이기는 체하고 자리 위에 쓰러졌다. 영신은 안방으로 건너갔다가 자리끼를 들고 들어와서,

문고리를 꼭 걸구 주무세요, .”

하고 의미 깊은 웃음을 웃어 보이고는 나간다. 동혁이도 한곡리 바닷가의 오막살이에서 영신이가 오던 날 밤에 제가 한 말이 생각이 나서 빙긋이 웃으며,

굿 나잇!”

하고 손을 들었다. 조금 있자, 문풍지가 진동하도록 드르렁드르렁 코를 고는 소리가 안방에서 잠을 얼핏 이루지 못한 영신의 귀에까지 들렸다.

동혁은 한곡리서 나팔을 부는 시간에 자리를 걷어차며 벌떡 일어났다. 정신없이 쓰러져 잤건만, 온몸의 피곤이 회복되지를 못해서 사지가 나른한데, 잠이 깨어 누웠자니 비록 깨끗하게 빨아서 시치기는 했으나 영신이가 베던 베게와 덮던 이불에서 아렴풋이 풍기는 여자의 살 냄새는 코를 자극시킬 뿐이 아니었다.

그는 대문 밖으로 뛰어나가 체조를 한바탕 하고, 샘을 찾아가서 냉수로 세수를 하고는 학원으로 올라가서 두어 바퀴나 돌면서 야릇한 흥분을 간신히 가라앉혔다. 늦은 가을 서리 찬 아침은 정신이 번쩍 나도록 상쾌하다. ‘아아, 여기가 청석골이었구나!’하고 동혁은 산중 벽촌의, 하나도 신기할 것이 없는 자연을 둘러보았다. 띄엄띄엄 선 초가집 앞의 고욤나무는 단풍이 지고, 미루나무는 벌써 낙엽이 져서 가지만 앙상한 것이 매우 소조해 보인다. 다만 흰 벽이 찌들은 예배당만이 한곡리에 없는 귀물이었다.

조반을 같이 먹으면서도 두 사람은 보통 연애를 하는 남녀와 같이 깨가 쏟아지는 듯한 이야기는 없었다. 영신이도 수다스러이 재잘대기를 좋아하는 성미가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은 가슴속에 첩첩이 쌓였건만, 입은 나분나분하게 놀려지지를 않았다.

이따가 내빈 총대(內賓總代)로 한마디 해주세요. 기부금 적은 사람들이 감동이 돼서 척척 내놓게요.”

하고 특청을 하였고,

어디 연설 말씀을 헐 줄 알어야지요.”

한 것이 중요한 대화였다.

시간이 될랑 멀었건만 아이들은 거진 다 모여들었다. 그 중에도 계집애들은 명절 때처럼 울긋불긋하게 입고 어깨동무들을 하고는 학원 마당으로 모여들었다. 어떤 계집애는 추석놀이를 하던 날 밤에 꽂았던 풀이 죽은 리본을 꽂고 자랑스러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다닌다.

동혁은 운동장으로 내려가서 나비를 움켜잡듯이 제일 조그만 계집애 하나를 붙들어 번쩍 들고, 겁이 나서 빨개진 뺨에 입을 맞추고는,

이 색시, 몇 살인구?”

집은 어디지?”

그래 채선생님이 좋아?”

하고 말을 시킨다. 다른 아이들은 고만 꼬리가 빠질 듯이 풍지박산을 하는데, 동혁에게 붙들린 계집애는 처음에는 겁이 나서 발발 떨며 울지도 못하다가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 아닌 줄 알고,

일굽 살유.”

우리 집은 청석굴이래유.”

하고 사투리를 써가며 곧잘 말대답을 한다. 동혁은 체격과는 정반대로 아이들을 보면 귀여워서 사지를 못 쓴다.

이걸 누가 해주든?”

하고 리본도 만져 보고 어깨 위에다 둘씩이나 올려놓고 얼싸둥둥을 하고 춤을 추듯 하며 다니는 것을 보고는,

어디서 저렇게 생긴 사람이 왔을까?’

하고 도망을 갔던 아이들이 살금살금 모여들어서 동혁을 에워쌌다.

저어, 이 아저씨가 사는 한곡리란 동네엔, 너희 같은 애들이 창가두 잘허구 유희두 썩 잘 허는데 너희들은 아주 바보로구나.”

하고는, 저 먼저 굵다란 목소리로 동요도 하고, 그 큰 몸집을 굼뜨게 움직이며 유희하는 흉내도 내어 보인다. 아이들은 그것이 우스워서 깔깔거리며 자지러지게 웃다가,

애개개, 우리더러 창갈 헐 줄 모른대여.”

하고 도리어 놀려먹으려고 든다. 동혁이가,

그럼 어디 한번들 해봐라.”

하고 꾀송꾀송하면, 아이들은 성벽이 나서 추석날 하던 유희와 창가를 되풀이하느라고 시간이 된 줄도 몰랐다.

땡그렁 땡땡, 땡그렁 땡땡.

언덕 위 학원 정문에 달린 종이 울린다. 그 명랑한 종소리는 맑고 푸르게 갠 아침, 한없이 높은 하늘로 퍼지는데, 아이들은 와아 소리를 지르며 앞을 다투며 달려간다.

땡그렁 땡땡, 땡그렁 땡땡.

그 종은 새로 사다가 한 번도 울려 보지 않았던 것이다. 동혁은 머리를 들어 종을 치고 선 영신을 쳐다보았다.

이 돈은 꼭 저금을 해두었다가 새로 지으려는 학원 마당 앞에 종을 사서 달겠습니다. 아침저녁 내 손으로 울리는 그 종소리는 나의 가슴뿐 아니라, 이곳 주민들의 혼곤히 든 잠을 깨워 주고 청석골의 산천초목까지도 울리겠지요.’라고 띄웠던 편지 사연이 생각났다. 오늘 아침의 그 종소리는 누구보다도 동혁의 가슴 한 복판을 울렸다.

학부형들과 집을 짓는 데 수고를 한 사람들이며 부인근로계원들은 물론 교실의 간을 터놓은 새 학원이 비집고 들어설 틈이 없도록 꽉 찼다. 동혁은 맨 뒷줄에 가서 앉았다가 구경꾼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어서 떠들어 대는 것을 보고, ‘손님처럼 서서 구경만 헐 게 아니다.’하고,

여보슈, 어른들은 뒤루 나섭시다. 나서요.”

떠들지들 맙시다.”

하고 사람의 틈을 부비고 다니며 장내를 정돈시켜 주었다. 여러 사람은,

저게 누군가?”

어디서 온 사람이여?”

하고 두리번거리면서 비슬비슬 비켜선다.

그러자 교회의 장로인 대머리 영감이 단 위에 올라섰다. 장로는 서양 사람의 서투른 조선말을 그나마 어색하게 입내 내는 듯한 예수교식의 독특한 어조로 개회사를 하고 일부러 떨리는 목소리로 기도를 인도한다. 겉장이 떨어진 성경책을 들고 예배나 보듯이 성경까지 읽는다. 그 동안 동혁은 꿈벅꿈벅 하며 교단 맞은편 벽에 붉은 잉크로 영신이가 써 붙인 몇 조각의 슬로건(표어)을 쳐다보고 있었다.

갱생의 광명은 농촌으로부터!’

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

우리의 가장 큰 적은 무지다.’

일하기 싫은 사람은 먹지도 말라.’

우리를 살릴 사람은, 결국 우리뿐이다.’

이러한 강령 비슷한 것이 조금도 신기한 것은 아니건만 그 장로와 비교해 볼 때, 동혁은, ‘이것도 조선의 현실을 그려 논 그림의 한 폭인가.’하고 속으로 쓸쓸히 웃었다. 그러나 이러한 모임에 양복쟁이들이 와서 앞줄에 가 버티고 주욱 늘어앉지 않은 것만은 유쾌하다면 유쾌하였다.

귀에 익은 손풍금 소리가 들리며,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을 부르는 찬미 소리가 일어났다. 그제야 장래는 활기가 돌기 시작하는데,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목청을 높여,

일하러 가세 일하러 가!”

하고 소리를 지를 때는,

그런 찬송가는 꽤 좋군.’ 하고 동혁이도 따라 부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찬송가가 끝난 후 장로는 일어서서 매우 경건한 어조로, 그러나 여전히 서양 선교사의 입내를 내듯이,

먼저 여러분께셔, 이처럼 마안히 와주신 것 감샤합네다. 오늘날 우리가 이와 같은 큰 집 짓고오, 낙성식을 서엉대히 열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 것은, 다아만 우리 청석동의 무지한 백성을 불쌍히 여기사, 당신의 귀한 따님 한 분을 보내 주신 은택인 줄로 압내다.”

하고 연단 아래서 머리를 숙이고 선 영신을 가리키며,

지금 채영신 선생이, 그 동안에 고생 마안히 하신 말씀하시겠습네다.”

하고 뒤로 물러가 앉는다. 아이들이 딱딱딱 치기 시작한 박수 소리가 소나기처럼 장내를 지나갔다. 동혁이도 그 넓적한 손바닥이 아프도록 쳤다. 영신은 발갛게 상기가 되어서 연단 위로 올라갔다. 먼 광으로 보니, 영신의 얼굴이 파리하고 몸이 수척한 것이 더 분명해서, 동혁은 바로 보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여러분께서 이 새 집이 꽉 차도록 많이 와주셔서 여간 기쁘고 고맙지가 않습니다.”

하고 말을 꺼내는 목소리만은 여전히 짜랑짜랑하다. 영신은 말끝을 얼핏 대지를 못하고 아이들과 학부형을 둘러보더니,

여러분은 이 집을 짓는 것을 처음버텀 여러분의 눈으로 보셨으니까, 얼마나 어렵고 힘이 들었다는 말씀은 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또는 이만한 학원 하나를 짓느라고 고생한 것도,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니까, 생색이나 내는 것 같어서 얘기하기도 싫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결국은 여러분의 자녀를 길를 집이니까 어떠한 예산을 세워 가지고 얼마나 들여서 지었는지, 그것은 아셔야 할 것입니다.”

하고 들고 올라온 책보를 끄르더니 계산서를 꺼내 들고 공사비가 든 것을 조목조목 따져서 들려주고 나서,

들어 보십시요, 여러분! 우리가 덤벼 들어서 품삯 한 푼도 덜 들이려고 죽기 작정하고 일을 했건만 칠백여 원이나 들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얼마를 가지고 착수를 한 줄 압니까? 단 돈 백여 원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그 돈이나마 누구의 돈인 줄 아십니까? 이 치마를 둘른 여자들이 죽지 못해 살어가는 처지에서, 삼사 년을 두고 푼푼이 모은 돈을 아낌없이 내놓은 겝니다! 여러분, 그 나머지 육백 원이나 되는 빚은, 조 어린애들이 졌습니다. 각처에서 꾸어 대고 외상 일을 시킨 채영신이가 물론 책임을 집니다마는, 사실은 조 어린애들이 배우기 위해서, 길거리로 헤매다닐 수가 없어서, 저희들로서는 태산 같은 빚을 진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당신네의 귀여운 자녀들이 이 집에서도 쫓겨나가는 걸 보시렵니까? 간신히 뜨기 시작한 조 영채가 도는 눈들을 다시 뽀얗게 멀려 노시렵니까!”

하고 주먹을 쥐고 목청껏 부르짖자 그는 몹시 흥분되었다. 발을 탁 구르며 무슨 말을 하려고,

, 여러분!”

하고 목소리를 높이다가 별안간 무엇에 꽉 질린 것처럼 바른편 옆구리를 움켜쥔다. 금방 얼굴이 해쓱해지더니 앞에 놓인 교탁을 짚을 사이도 없이 그 자리에가 고꾸라지듯이 엎으러졌다.

!”

저게 웬일야?”

여러 사람은 동시에 부르짖었다. 그 소리와 함께 동혁의 눈은 휘둥그레지더니 두 팔로 헤 엄을 치듯이 사람의 물결을 헤치며,

애그머니, 우리 선생님!”

절 어쩌나? 절 어째!”

하고 새되게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을 사뭇 파밭 밟듯 하고 연단으로 뛰어올라갔다. 같은 연단 위에 있던 장로는 손도 대지 못하고 쩔쩔매는 것을, 동혁은,

비키세요.”

하고 밀치며 대들어서 침착히 영신을 안아 일으켰다. 입술까지 하얗게 바래 가지고 까무러친 것을 보고는,

뇌빈혈이로군!’

하고 사지를 늘어뜨린 영신의 다리와 머리를 번쩍 들고 사무실로 쓰게 된 옆방으로 들어갔다. 원재 어머니와 청년들이며 아이들이 우르르 따라 들어와서는 말도 못 하고 바들바들 떨기만 하는 것을,

너희들은 나가 있거라.”

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내몰고는, 저의 노동복 저고리를 벗어서 마루에 깔고 영신을 그 위에 고이 눕혔다. 그리고는,

냉수를…….”

하고 원재 어머니에게 명령하였다. 원재 어머니가 당황히 나가는데, 지카다비를 신은 사람이 술이 취해서 얼굴이 삶은 게빛이 되어 가지고 냉수 사발을 들고 찔끔찔끔 엎지르며 마주 들어온다.

도 도무지 대체 우리 채선생이, 아아니 이게 웬일이란 말씀요?”

하고 모주 냄새를 풍긴다. 그는 영신의 감화로 오늘날까지 품삯도 못 받고 일을 한 목수였다. 아무튼 낙성식까지 하게 된 것이 덩달아 좋아서, 아침부터 주막에 가서 주렸던 막걸리를 잔뜩 마시고는 엉덩춤을 추며,

에헤 에헴, 내 손으루 지은 집 낙성식을 허는 데 한몫 끼어야지, 아무렴 그렇구말구, 어느 놈이 날 빼논단 말이냐.”

하고 혼자말을 주고받으며 한창 뽐내고 들어오다가 영신이가 넘어지는 광경을 보고 허겁지겁 뛰어나가서 이력차게 냉수를 떠온 것이다. 동혁은 냉수를 영신의 얼굴에 두어 번 뿜어 주고 원재의 웃옷을 벗겨서 방석처럼 접어 어깨 밑에 괴어 머리를 낮추어 놓고, 두 팔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천천히 인공호흡을 시킨다. 그리고 원재 어머니더러, “아랫두리를 가만가만 주물러 주세요.” 하였다.

영신은 한 오 분 동안이나 숨을 괴롭게 몰아쉬더니, “휘유!” 하고 악몽에서나 깬 듯이 정기 없이 눈을 뜨고, ‘여기가 어딘가?’하는 듯이 실내를 둘러본다.

정신이 좀 나세요?”

동혁이가 나직이 묻는 말에 그는 눈을 커다랗게 뜨며,

……

하고 안심과 감사의 뜻을, 잡힌 손에 힘을 주는 것으로 표시한다.

아이들은 다 어디루 갔어요?”

밖에들 있어요, 마룻바닥이 차서 어떡허나?”

원재 어머니도 겨우 숨을 돌린 듯 동혁의 얼굴을 쳐다본다.

좀 더 진정을 해야 해요.”

하고 동혁은 강당으로 나가서, 돌아앉아 중얼중얼 기도를 올리고 있는 장로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절대루 안정을 시켜야 허겠는데, 고만 다들 헤지라구 해주시지요.”

하고 일렀다. 아이들은 문 밖에서 홀짝홀짝 울면서 가지를 않는다. 금분이는,

우리 선생님! 아이고 우리 선생님!”

하고 선생이 죽기나 한 듯이 사뭇 통곡을 하다가, 동혁의 소매에 매달려 들어오더니 영신의 앞으로 달려들며 흐느껴 운다. 영신은,

금분아, 너 왜 우니? 응 왜 울어? 선생님은 아무렇지두 않단다.”

하고 달래 주고는, ‘나가 봐야 헐 텐데…….’ 하고 억지로 몸을 일으키다가,

아이구 배야!”

하며 아까 쓰러질 때처럼 오른편 아랫배를 움켜쥐며 지독한 고통을 참느라고 입살을 깨문다. 이제까지 태연한 기색을 보이던 동혁의 얼굴에도 당황한 빛이 떠돈다. 너무나 과로한 끝에 흥분이 되어서 일어난 단순한 뇌빈혈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아무튼 집으루 내려갑시다.”

하고 동혁은 영신을 들쳐 업고 뒷문으로 빠져서 원재 어머니의 집으로 내려갔다.

영신이가 거처하는 방은 사내아이 계집아이들로 두겹 세겹 에워싸였다. 부인친목계의 계원들은 얼굴이 흙빛이 되어 가지고 방으로 꾸역꾸역 들어오는 것을 동혁은,

안됐지만 나가들 주세요. 조용히 누워 있어야 헙니다.”

하고 원재 어머니만 남겨두고 다 내보낸 뒤에 문고리를 안으로 걸어 버렸다. 땀이 이마에 숭숭 내배었건만 그는 씻으려고도 아니 하고 영신의 앞으로 가까이 앉는다. 영신은 고통이 조금 진정된 듯하나 기함이나 한 것처럼 누워 있다. 동혁은 한참 동안 눈을 꽉 감고 있다가,

똑바루 누세요.”

하고 영신을 반듯이 눕혔다. 그는 의사처럼 이마를 짚어 신열이 있고 없는 것을 보고 맥박을 세어 본 뒤에,

여기에요? 아픈 데가 여기에요?”

하면서 영신의 배를 명치로부터 배꼽까지 여기저기 꾹꾹 눌러 본다. 영신은 말대답을 할 기신도 없는 듯 아프지 않은 데는 조금씩 고개를 흔들어 보일 뿐.

그럼 여기지요?”

동혁의 손가락이 영신이가 두 번이나 움켜쥐던 오른편 배꼽 아래를 누르자, 영신은,

아야야!”

하고 비명을 지르며 상체를 펄쩍 솟치다가 불에나 데인 것처럼 온몸을 오그라뜨린다. 동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떡였다. 서투른 의사의 진찰이건만, 저도 학창시대에 풋볼에 열중하다가 된통으로 앓아 본 경험이 있는 맹장염인 것이 틀림없었다.

맹장염 같은걸요.”

? 맹장염!”

하고 영신은 간신히 동혁의 말을 흉내 내듯 한다. 그러다가 금시 아랫배가 뻗치고 땡기고 하다가는 사뭇 송곳으로 쑤시는 것 같아서 자반뒤집기를 한다. 그는 고통을 참느라고 이를 악물고 있다가, ‘아이고 그럼 어떡해요?’하는 듯이 동혁의 얼굴을 쳐다본다.

안심허세요, 아는 병이니까요. 나두 한번 혼난 적이 있는데…….”

하고 위로를 시키면서도 동혁의 마음속은 먹장구름이 뒤덮은 듯이 캄캄해졌다. ‘급성이 돼서 까땍허면 큰일나겠는데, 이 시굴 구석에서 이를 어떡헌담.’하고 뒤통수를 북북 긁는데, 그 머릿속에 번개같이 떠오르는 것은 급성 맹장염은 이십사 시간 이내에 수술을 해야 한다. 때가 늦으면 생명을 빼앗긴다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생리 시간에도 배웠고 저를 치료해 주던 의사에게도 들은 말이다. 그러나 서울 큰 병원은 생각도 할 수 없고, 도청 소재지에 있는 자혜의원 같은 데로 간대도, 꼼짝도 못 하는 사람을 어떻게 추슬러 가지고 갈는지 난감하였다. 그는 곰곰 생각을 해보다가 대야의 냉수를 떠오래 서 수건을 담가 이마에 냉습포를 하게 한 후,

영신 씨!”

하고 가만히 손을 잡았다.

……?”

영신은 눈을 감은 채 간신히 입을 연다.

급성이면 한 시간이래두 빨리 수술을 해야 허는데요, 나 허자는 대루 허시지요?”

어떻게요?”

지금이래두 떠나서, 자혜의원에 입원을 허두룩 헙시다.” “……

영신은 한참 만에 머리를 흔든다.

왜요?”

난 싫여요.”

이번에는 머리를 더 내두른다.

수술허는 건 겁낼 게 없어요. 오래 되지 않었으면 퍽 간단허게 된다는데요.” “……

영신은 다시 아픈 것을 이기지 못해서 동혁의 손을 사뭇 쥐어뜯으면서도, 병원으로 가는 데는 승낙을 하지 않는다. 배를 째는 것이 겁이 나서 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없는 중에도 학원을 지은 빚도 많은데, 수술비와 입원비용이 적지 않이 들 것을 생각한 것이다.

어떻게 여기서 낫게 헐 수 없을까요?”

하고 애원하는 것을, 동혁은,

안 돼요, 한약으룬 안 돼요!”

하고 벌떡 일어서며 밖으로 나가서 자동차 시간을 물었다. 마침 오후 두 시에 S읍으로 가는 자동차가 있었다. 동혁은 한사코 싫다고 고집을 세우는 영신을,

사람이 살구 볼 일이지, 내가 당신이 죽는 걸 보구 가만히 있을 듯싶어요?”

하고 강제로 들쳐업고는 한 번도 쉬지 않고 십 리 길을 내처 걸었다. 학부형들과 청년들이며 아이들은 울면서 자동차 정류장까지 따라 나왔다. 친부모만큼이나 정이 들고 은혜를 입은 선생이 불시에 세상을 떠나서 영구차나 전송하는 것처럼 아이들은 자동차 차창에 가 매달려 우는 것을,

어서들 들어가거라, 내 열 밤만 자구 오마, .”

하고 영신은 동혁에게 안겨서 손을 내젓는데 차는 가솔린 냄새를 풍기며 떠난다. 원재 어머니와 청년들이 앞을 다투어 차에 오르며 간호를 하러 가겠다는 것을 다 물리쳤건만 중간에서 원재가 뛰어올랐다. 차는 두어 간 거리나 굴러 나가는데,

여보 여보잠깐만 기다류.”

하고 헐레벌떡거리며 쫓아오는 것은, 교회의 회계를 보는 장로의 아들이었다. 동혁은 자동차를 정거시켰다. 회계는 숨이 턱에 닿아서 땀이 나도록 쥐고 온 것을 영신에게 내주면서,

학부형들이 급히 추렴을 낸 건데요, 위선 급헌대루 쓰시라구요.”

하고는 뒤도 아니 돌아다보고 뺑소니를 친다. 영신의 손에 쥐어진 것은 십 원, 일 원짜리가 뒤섞인 지전이었다.

얼마예요?”

모르겠에요. 온 염치없이…….”

영신은 그 돈을 동혁에게 준다. 동혁은 돈을 세어 보고,

이것만 가지면 급헌대루 쓰겠군.”

하고 집어넣는다. 그는 하도 일이 급하니까 자동차 삯이나 병원에서 들 것은,

설마 어떻게든지 되겠지.’

하고 닥치는 대로 떼거리를 쓸 작정으로 영신을 업고 나섰던 것이다. 그는 그때에 처음으로,

왜 내가 돈이 없었던가.’

하고 돈 있는 사람이 부러워서 탄식을 하였었다. 영신이가 쓰러지는 것을 목도한 학부형들은 눈들이 휘둥그레져서,

허어, 이거 큰일 났군!”

아무리 억지가 세지만 잔약헌 여자가 석 달 동안이나 염체에 헐 일을 했나베.”

그러구 보니 우리들은 남의 집 색시 하나를 잡은 셈이 되지 않겠나.”

두말 말구 우리 기부금 적은 거나 빚을 얻어서래두 이번엔 다 내놉시다.”

하고 이 구석 저 구석 모여서 공론을 하고 제일 머릿수가 큰 한낭청 집으로 몰려가서 그제야 그 말썽 많던 돈을 받아 낸 것이다.

 

……자동차 속에서도 차체가 자갈을 깐 길바닥에서 들까부는 대로, 영신은 창자가 울려서 아픔을 참기 어려웠다.

아이고! 갈구리쇠루 막 찍어 댕기는 것 같어요.”

하고 동혁의 팔과 손등을 막 물어뜯기를 여러 차례나 하였다.

동혁은 아프단 말도 못 하고,

몇 시간만 눈 딱 감구 참읍시다.”

하면서도 가엾고 애처로운 생각에, ‘내가 대신 앓었으면.’하다가, ‘마침 내가 왔기에 망정이지 혼자 이런 일을 당했드면 어쩔 뻔했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의료기관 하나도 없는 곳에서 고집을 세우다가 비참한 최후를 마쳤을 것을 상상하니 몸서리가 쳐졌다. ‘우리가 이생에 연분이 단단히 닿나 보다. 오늘 이런 일이 있을 걸 미리 알구 누가 불러 댄 것 같으니…….’하고 미신 비젓한 운명론자가 되어 보기도 하였다.

자동차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또 기차를 기다려 타고 날이 어둑어둑할 때에야 S읍에 도착하였다. 정류장에서 환자는 인력거를 태우고 삼마장이나 되는 언덕 길을, 원재와 둘이서 뒤를 밀어 주며 병원을 찾아 올라갔다. 자혜의원은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문이 굳게 닫혀서 다시 개인병원으로 찾아갔다. 두 사람이 점심 저녁을 굶어서 몹시 시장할 것을 생각하고 영신은,

어디서든지 요기를 좀 허세요, ?”

하고 몇 번이나 돌려다보며 간청을 하는 것을,

걱정 마슈! 하루쯤 굶어서 죽을라구요.”

하면서도 동혁은 고기 굽는 냄새가 나는 음식점 앞에서는 외면을 하고 숨을 들이쉬지 않고 걸었다. 속옷에 땀이 흠씬 배도록 인력거를 몰아 왔건만 병원문은 걸렸다. 초인종을 한참이나 누르니까 그제야 간호부가 나와서 분을 하얗게 바른 얼굴을 내밀더니,

선생님 안 계세요. 연회에 가셨어요.”

하고 슬리퍼를 짝짝 끌고 들어가 버린다.

여보, 시각을 다투는 환자가 있는데 연회가 다 뭐요?”

동혁의 호령을 듣고서야 간호부는 요릿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의사는 한 삼십 분 뒤에야 인력거로 달려왔다. 진찰실에 전등은 환하게 켜졌다. 나이 사십 남짓한 의사는 술 냄새를 제하느라고 가오루를 깨물며 끈끈이로 붙여 놓은 것처럼 어여쁜 수염을 배비작거리고 앉아서 동혁에게 대강 경과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짐작하겠소이다.”

하고 영신을 눕히고 자세히 진찰을 해본다.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군요. 노형 말씀대루 급성 맹장염인데, 밤에는 설비 관계루 헐 수 없 으니, 내일 아침에 수술을 헙시다. 위선 진통제나 한 대 놔드릴게 절대루 안위를 시키시오.”

하고 영신의 팔을 걷고 주사를 놓고는,

요행으루 맹장염인 줄 알어서 일찌감치 서둘렀으니까 수술만 허면 고만이지만, 이분은 몸 전체의 각 기관이 여간 쇠약허지가 않은걸요. 첫대 영양이 대단히 부족헌 것 같은데, 게다가 너무 무리허게 노동을 헌 게 맹장염까지 일으킨 원인이 됐나 보외다.”

하고 일어서 손을 씻는다. 동혁은 비로소 안심을 하고,

아무튼 선생께서 생명 하나를 맡어 줍시오.”

하니까,

네 염려 마시오.”

하고 간호부더러 인력거를 부르라고 명령한다. 다시 연회로 가려는 눈치다. 동혁과 원재는 주사 기운에 말도 못 하는 영신의 어깨를 부축해서 병실로 데려다가 눕혔다. 자궁을 수술하였다는 환자가 옆방에서 신음하는 소리에 동혁은 잠을 잘 수 없었다. 원재와 둘이서 영신의 침대 밑에 담요 한 자락을 깔고 누웠는데, 삼백 리나 걸은 노독도 채 풀리기 전에 종일 굶고 꺼둘려 와서, ‘눈을 좀 붙였다가 일쯕 일어나야 헐 텐데…….’하고 억지로 잠을 청하였다. 그러나 맘이 바짝 쓰이는데다가 창자가 달라붙도록 속이 비어서 잠은 올 듯하면서도 아니 와 주었다. 원재도 춥고 시장한 듯 사추리에다가 두 손을 찌르고 새우처럼 꼬부리고 누워서 잠을 못 자는 것이 여간 가엾지가 않다.

영신이가 잠꼬대하듯 무어라고 혼자말을 하는 소리에 동혁은 벌떡 일어났다.

왜 그러세요? 나 여깄에요.”

하고 희미한 전등불빛에 환자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영신은 주사 기운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듯 눈을 반쯤 뜨고,

뭘 좀 잡수세요, 원재두…….”

하면서 어서 다녀오라고 손짓을 한다.

난 괜찮어요. 우리 걱정은 허지 마세요.”

하면서도 동혁은 원재 때문에 더 고집을 세울 수가 없어서,

여보, 일어나우. 일어나.”

하고 원재의 어깨를 흔들었다. 길거리 목롯집에서 술국에 밥 한 덩이씩을 꺼먹고 들어오는 걸 보고 영신은 가냘픈 웃음을 띠며,

근처에 음식집이 있어요?”

하고 반겨 준다. 원재가,

선생님, 시장허셔서 어떡허나요?”

하고 혼자 먹고 들어온 것을 미안쩍게 여기니까,

시장헌 게 뭐요. 일부러 굶기두 허는데.”

하고 동혁은 침대에 반쯤 걸터앉아서 영신의 손을 잡았다. 흐트러진 머리를 쓰다듬어 올리며,

안심허구 잠을 청허시지요. 나두 눈을 붙여 볼 테니…… 가을밤이라 꽤 지루헌데요.”

하고 위로해 준다. 영신은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며 창밖의 귀뚜라미 소리를 꿈속처럼 듣고 있다가, 처량스러이 동혁을 쳐다보며,

동혁 씨, 난 지금 죽어두 행복해요!”

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끌어다린다.

천만에, 죽다니요. 우리 둘이 이렇게 떠나지 않구 오래오래 살면, 더 행복허지 않겠에요!”

동혁은 사랑하는 사람의 여윈 빰과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영신은 눈을 내리감고 뜨거운 키스를 받았다. 시계의 초침이 돌아가는 소린 듯 창 틈에서 재깍거리는 버러지 소리에 가을 밤은 쓸쓸히 깊어 갔다.

 

수술대 위에 올라서도 영신은 동혁의 손을 놓지 않았다. 하얀 소독복을 입고 매우 긴장한 빛을 띄우면서 수술할 준비를 하고 난 의사와 간호부가 두 번째나,

고만 밖으로 나가 주시지요.”

하고 재촉을 하여도, 영신은,

나가지 마세요. 여기 꼭 서 있어 주세요!”

하고 온몸의 힘을 다해서 동혁의 손을 끌어다린다.

, 지키구 섰으께 걱정 마세요!”

하고 동혁은 환자의 머리맡을 떠나지 않았다. 의사가 가재를 덮은 코 밑에 마취액을 방울방울 떨어뜨려 들이마시게 하면서,

하나…… …… …….”

하고 부르는 대로 영신은 따라 부른다. 오 분도 못 되어 영신은 핀셋으로 살을 찔러도 모를 만치 전신의 감각을 잃고 손에 힘이 풀려서 동혁의 손을 놓았다.

동혁은 수술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서 수술실 밖으로 나갔다. 응접실로 대합실로 복도로 왔다 갔다 하며 생명이 좌우되는 일이 무사히 끝나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몹시도 초조하였다. 예수교 신자인 원재는 대합실 문 밖에 가 꿇어 엎드려 정성껏 기도를 올리고 있다. 동혁은 안절부절 못하고 왔다 갔다 하면서도, 원재와 같이 일종의 엄숙한 기분에 머리가 들리지 않았다.

배를 가르고 맹장에 달린 버러지 같은 것을 잘라 버리고 다시 꼬매면 고만인 비교적 간단 한 수술이건만, 그것이 거진 두 시간이나 걸린다. 몇 번이나 수술실 도어에 귀를 대고 들어 보아도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 없다. 동혁은 점점 불안해졌다.

왜 여태 아무 소리두 없을까요?”

원재는 겁이 나서 우둘우둘 떨기까지 한다.

글쎄…….”

하면서도 동혁은 속이 바작바작 타서,

좀 들어 볼까.’

하고 수술실 도어의 손잡이를 비틀어 열고 들어서는데, 그와 동시에 소독약 냄새가 확 끼치며 의사가 손을 닦던 수건을 던지고 마주 나온다. 수술대 위에 허어연 홑이불을 씌워 놓은 것이 언뜻 눈에 띄자 동혁은 가슴이 선뜩 내려앉아서,

어떻게 됐습니까?”

하고 당황히 물었다. 의사는 수술복 소매로 이마에 흘린 땀을 씻으며,

혼났쇠다! 맹장이 썩두룩 내버려뒀으니, 까땍허면…….”

하고 담배를 피워 물고 쭈욱 들이빨다가 한숨과 함께 후우 하고 연기를 토해 낸다.

, 그래서요?”

동혁이와 원재의 눈은 의사의 입에 가 매달렸다.

그 수술만 같으면 문제가 없지만, 대장허구 소장이 마주 꼬여서 간신히 제 위치로 풀어 놨 는데…….”

하더니,

아아니, 여자가 무슨 일을 창자가 비꾀두룩 허게 내버려뒀드란 말씀요?”

하고 동혁을 나무라듯 한다.

……

동혁은 그 말대답을 할 수 없었다. 간호부가 눈앞을 지나 제약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니, 맵고 뜨거운 음식을 먹고 나온 것처럼 얼굴에 땀이 주르르 흘렀다.

너무나 수고를 허셨습니다. 이젠 염려 없겠지요?”

나 아는 대루 힘껏은 했소이다마는, 퇴원헌 뒤에두 여간 조심을 허지 않으면 재발될 염려 가 있으니까, 거기까지는 보증헐 수가 없는걸요.”

하고 시원하지 않은 대답을 하는 데 동혁은 또다시 우울해졌다.

병실로 떠메어 들어온 뒤에야 영신은 차츰차츰 의식을 회복하였다.

…… 어머니! 어머니!”

하고 헛소리하듯 어머니를 찾다가,

, …… 동혁 씨!”

하고 머리맡을 더듬는다. 동혁은,

내 여깄에요. 이젠 아주 안심허세요.”

하고 가만히 그의 두 손을 잡았다.

물을 좀. 어서 물을 좀…….”

영신은 조갈이 나서 식도가 타는 듯이 목을 쥐어뜯으며 물을 찾는다. 원재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안 돼, 지금 물을 마셨다간 큰일나게.”

하고 붙들었다. 그래도 환자는,

한 모금만. , 한 방울만…….”

하고 어린애처럼 안타깝게 조른다. 물이 있고도 못 주는 동혁의 마음은 환자만치나 안타까웠다.

다행히 수술한 경과는 좋았다. 식욕도 나날이 늘어서 인제는 죽을 먹고도 잘 삭이고 붙들어 주면 일어나 앉아서 이야기를 해도 피곤을 느끼지 않을 만치나 원기가 회복되었다.

그 동안 청석골서 원재 어머니가 와서 아들과 교대를 하고, 교인과 친목계의 회원들이 그 먼길에 반은 타고 반은 걸어서 문병을 왔었다.

아이고 여기꺼정 어떻게들 오셨어요?”

영신은 고마움에 겨워 그들의 손을 잡고 말도 못 하기를 몇 번이나 하였다. 그 중에도 원재 어머니가,

인전 아무 염려두 마시구 어서 퇴원이나 허세요. 일전에 학부형들이 모두 새 집에 모여서 기부금 적은 걸 죄다 내기루 했어요. 집 짓느라구 빚진 건 한 푼두 안 남기구 갚게 됐으니깐, 학원 때문엔 조끔두 걱정을 마세요.”

하는 보고를 들을 때, 영신은 어찌나 기쁜지 금세 날개가 돋쳐서 훨훨 날아다닐 듯싶었다. 전장에서 부상을 당한 병정이 승전고 울리는 소리를 듣는 것만치나 감격하였다.

그러나 영신은 수술한 뒤로 마음이 여려져서 애상적인 감정에 지배를 받는 것은 물론 한 가지 까다로운 습관이 생겼다. 그것은 동혁이가 제 곁에 있지 않으면 긴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신앙심도 있거니와 여자로는 보기 드물게 중심이 튼튼하던 사람이건만, 난산을 하고 난 산모와 같이 곁에 사람이 없으면 허수해서 못 견디어 한다. 어느 때는 도깨비나 보는 것처럼 손을 내두르며 헛소리를 더럭더럭 할 때가 있다. 그러면 문병을 온 부인들이 성경을 읽고 찬송가를 불러서 들려 주고 하건만 귀에 들어가지 않는 듯, “동혁 씨 어디 갔어? 동혁 씨!”하고 사랑하는 사람만 찾는다. 그러면 동혁은 길거리로 산보를 나갔다가도 붙들려 들어와 서 그에게 손을 잡혔다. 그래야만 환자는 비로소 마음을 놓고 잠이 든다.

저렇게 잠시잠깐두 떨어지질 못허면섬 입때까진 어떻게 따루따루 지냈다우?”하는 것을 문병 온 부인네들의 뒷공론이었다. 동혁은 그런 말을 귓결에 듣고 싱글벙글 웃으면서도, ‘이거 한곡리 일 때문에 큰일 났군. 강기천이가 그 동안 또 무슨 흉계를 꾸밀지 모르는데, 온 편지 답장들이나 해주어야지.’하고 몹시 궁금해하였다. 동화와 건배에게 거진 격일해서 편지를 했지만, 무슨 연고가 있는지 답장이 오지를 않아서 몸이 달았다. 그러나 동혁이 역시 어떤 때는 어린애처럼 응석을 더럭더럭 부리며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마를 때가 없는 영신을 차마 떼치고 떠나갈 수 가 없었다. 아무리 호인처럼 무뚝뚝한 사람이기로 죽을 고비를 천행으로 넘겨서 아직도 제 몸을 맘대로 추스리지 못하는 사람을 보고, “난 볼일이 급해서 가야겠소.”하고 휘어잡는 소매를 뿌리치며 일어설 용기가 나지를 않았다.

그래서 동혁은 그 사정을 건배에게 편지로 알리고, 밤이 들면 꼭 환자의 침상머리에 앉아서 신문이나 잡지를 얻어다가 읽어 주고, 어느 때는 흑인종으로 무지한 동족을 위해서 갖은 고생과 백인의 학대를 받으면서 큰 사업을 성취한 푸커 티 워싱톤 같은 사람의 분투한 역사를 이야기해서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농촌운동에 관한 의견도 교환하고, 시간을 될 수 있는 대로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 하였다.

그러다가 밤이 깊어 영신이가 잠이 드는 것을 보고야 동혁은 벽 하나를 격한 대합실로 가서 의자를 모아 놓고 그 위에 담요 한 자락을 덮고는, 다시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공상에 잠겼다가 잠이 드는 것이었다.

인전 갑갑해 못 견디시겠죠? 그렇지만 퇴원헐 때꺼정은 꼭 붙들구 안 놀걸요.”

하고 영신은 하루 한 번씩은 동혁을 놀리듯 한다. 아닌 게 아니라 동혁은 펄펄 뛰어다니던 맹수가 별안간 철창 속에 갇힌 것 같아서 여간 갑갑하지가 않았다. 위험한 시기를 지나서 마음이 턱 놓이니까, 그 동안 바짝 옥죄었던 온몸의 신경과 근육이 가닥가닥 풀리는 듯 아무데나 턱턱 눕고만 싶었다. 사지가 뒤틀리도록 심심해하는 눈치를 챈 영신은,

이런 기회가 아니면 나허구 이 주일씩이나 같이 있어 보시겠어요? 이것두 하나님의 덕택 이지요.”

하고는 염치불구하고 하루라도 더 붙들려만 든다.

그 하나님 참 감사허군요. 죽두룩 일을 헌 상급으루 그 몹쓸 병이 나게 허구, 그것두 부족 해서 배꺼정 짼 게 다 하나님의 덕택이지요?”

동혁이도 영신을 놀리며 청석골 교회의 장로처럼 합장을 하고 일부러 목소리를 떨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감사감사하나이다.”

하고는 껄껄껄 웃어제친다.

그렇게 하나님을 놀리면 천벌이 내리는 법이야요. 아무튼 나 같은 사람을 영영 버리지 않으시구 이만침이나 낫게 해주신 게 다 하나님의 뜻이지 뭐야요.”

하고 영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곁눈으로 살짝 흘겨본다. 영신이가 평소에 동혁에게 대한 다만 한 가지 불평은 저와 같이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다. 부모형제간에도 종교를 믿는 것은 절대 자유요, 신앙은 강제로 할 수 없는 것인 줄 알면서도, 이 세상을 톡톡 털어도 단지 한 사람인 저의 애인이, 저와 똑같은 믿음을 가졌으면 얼마나 좋을는지 몰랐다. 믿지를 않으면 국으로 가만히나 있지를 않고, 제가 밥상 앞에서 눈을 내리감고 기도를 올릴 때면 곁에서 일부러 헛기침을 칵칵 하기, 김이 무럭무럭 나는 찌개 냄비를 코밑에다 들여대기가 일쑤다. 그럴 때면, “저리 가세요! 자기나 안 믿으면 안 믿었지 왜 그렇게 비방을 해요?”하고 여무지게 쏘아붙이기를 한두 번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끝에는 처음으로 악박골 샘물터에서 밤을 새울 때에 뿌리만 따다가 둔 종교 문제를 끄집어내어 가지고 서로 얼굴에 핏대를 올려 가며 토론을 하였다.

동혁은 인류와 종교의 역사적 관계를 모르는 것도 아니요, 편협한 유물론자처럼 덮어놓고 종교를 아편과 같이 생각하지는 않으면서도, 근래에 예수교회가 부패한 것과, 교역자나 교인들이 더 떨어질 나위 없이 타락한 그 실례를 들어, 맹렬히 공격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는,

권세에 아첨을 허다 못해 무릎을 꿇구, 물질과 타협을 허다 못해 돈 있는 놈의 주구(走狗)가 되는, 그런 놈들 앞에 내 머리를 숙이란 말씀요? 그 따위 교회엘 댕기다간 정말 지옥엘 가게요!”

하고 마룻바닥에다 헛침을 탁 뱉었다. 그러나 영신은,

교회 속은 누구버덤두 직접 관계를 해온 내가 속속들이 잘 알어요. 아무튼 루터 같은 분이 나와서 큰 혁명을 일으키기 전엔 조선의 예수교회두 이대루 가다간 멸망을 당허구 말 게야 요!”

하고 저 역시 분개하기를 마지않다가,

나는 그리스도가 인류를 위해서 십자가에 피를 흘리신 그 정열과 희생적인 봉사의 정신을 숭앙허구 본받으려는 것뿐이니까요. 그 점만은 충분히 이해해 주셔야 해요.”

하고 변명을 한 후 새삼스러이,

도대체 동혁 씨는 아무것두 믿으시는 게 없어요?”

하고 정중하게 질문도 하였다.

천만에, 믿는 게 없이야 사람이 살 수 있나요?”

하고 동혁은 두 눈을 꿈범꿈범하고 잠시 침묵하더니,

똑똑히 들어 두세요. ‘익숙한 선장은 폭풍우를 만나면, 억지로 폭력에 저항하려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으나, 그렇다고 미리 절망을 해서 배가 풍파에 뒤집히도록 내버려두지도 않는다. 항상 굳은 자신과 성산(成算)을 가지고 최후의 순간까지 온갖 지혜와 갖은 능력을 다해서 살어 나아갈 길을 열려고 노력한다라고 한 맥도널드란 사람의 말이, 조선의 청년인 나로서의 인생철학이구요, 이것도 학창시대에 어느 책에서 본 것이지만 아무리 약한 사람이라도 그 전력(全力)을 단 한 가지 목적에 기울여 쏟을 것 같으면 반드시 성취할 수가 있다라고 한 칼라일이란 사람의 한마디가, 일테면 내 신앙이에요.”

하고 실내를 거닐다가 한곡리 편으로 뚫린 유리창 밖으로 눈을 달리더니, 독백하듯이,

곡식이 무럭무럭 자라는 시퍼런 벌판을 바라보는 게 내 눈을 시원허게 해주는 그림이구요, 저녁마다 야학당에서 아이들이 글을 배우는 소리가 내 귀를 즐겁게 해주는 음악이에요. 난 그밖에는 철학이구 종교구 예술이구 다 몰라요. 더 깊이 알려구 들지두 않어요.”

하고는 다시 입을 다물어 버렸었다.

가장 불행한 일로 두 사람은 고요히 반성할 기회를 얻었다. 이 일 저 일에 책임을 무거이 지 고, 그야말로 연자매를 돌리는 당나귀처럼 좌우를 돌려다볼 사이가 없이 눈앞에 닥치는 일만 하여 왔다. 사실 그들은 자기가 계획한 일을 맹렬히 실행은 하여 왔으나, 오늘날까지 실천해 온 것을 제삼자의 입장으로 냉정히 비판해 볼 겨를을 갖지 못하였던 것이다. 또는 그날그날 노동을 해야만 먹고 사는 품팔이꾼처럼 먼 장래를 바라다보고, 그 나아갈 길을 더듬어 볼 마음의 여유가 없이 지내 온 것도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동혁은 환자가 피로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틈틈이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면 영신은,

난 좀 더 공부를 해야겠어요. 원체 무엇 한 가지 전문으로 배운 것두 없지만요, 그나마 인 전 밑천이 달랑달랑허는 것 같어요.”

하고 어떻게든지 공부를 더 할 의향을 보인다.

그렇지요. 좀 더가 아니라 이제버텀 공부를 하기 시작해야겠에요. 농촌운동이란 결코 우리 가 처음에 생각허던 것처럼 단순헌 게 아닌 줄을 깨달었에요. 그렇지만 피차에 거진 삼사 년 동안이나 농촌 속으로 파고들어가서 실지로 일을 했으니까, 그 체험헌 걸 토대삼어서 제 일 보버텀 다시 내디뎌야 되겠는데, 그게 지금 형편으로는 용단하기가 어려워요. 아무튼 영신 씨는 이번에 퇴원허시면, 적어도 몇 해 동안은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헐 수 없으니까요. 병이 재발이 되는 날이면 정말 큰일이 날 테니, 여간 주의를 허지 않으면 안 돼요. 청석골은 어느 정도까지 일에 터가 잡혔구, 영신 씨가 당분간 떠나 있드란대두 원재 같은 착실헌 청년들을 길러 놔서 학원 일은 해나갈 만허니까, 휴양허시는 셈 치구 떠나 보시는 게 좋겠지요.”

동혁은 이번 기회에 영신이가 해외로라도 나가 보기를 권고한다. 저와 더 멀리 떨어져 있을 것은 무한히 섭섭하지만, 만일 영신이를 다시 청석골로 보냈다가는 그의 성격이 몸만 자유로 쓰게 되면 잠시도 쉬지 않고 또 그러한 과도한 노동까지라도 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두 연합회에서 명색 사업보조비라구 보내 주는 게 있지요?”

한 삼십 원씩 오더니 그나마 벌써 두 달째나 꿩 구워 먹은 자리야요. 거기서두 경비가 부족해서 쩔쩔들 매니까요.”

집으루 가서, 어머니 슬하에서 얼마 동안 쉬어 보시는 게 어떨까요?”

싫여요. 나는 그저 어디서든지 몸 성히 있다는 소식이나 전허는 게 효돈데, 이 꼴을 허구 집으로 기어들어 보세요. 가뜩이나 나 때문에 지늙으신 우리 어머니가 얼마나 간장을 태우실까.”

그두 그렇겠지만…….”

동혁이도 좋은 방책이 나서지를 않았다.

제에기, 우리 집 형편이 웬만만 허면…….’

해보기도 하나 그것도 공상이기는 매일반이다.

동혁 씨는 앞으로 어떡허실 테야요?”

영신은 침대에서 반쯤 몸을 일으키며 묻는다.

내야 한곡리 송장이 될 사람이니까요. 내가 없으면 처리헐 수 없는 복잡헌 문제가 많어서, 그 동안 나와서 있는데두 몹시 궁금헌데…… 사실 안직은 믿을 만헌 사람이 없에요.”

하고 여러 날 빗질도 못 해서 푸스스하게 일어난 머리를 북북 긁으며 한참이나 무엇을 생각한다.

입때까지 우리가 헌 일은 강습소를 짓고 글을 가르친다든지 무슨 회를 조직해서 단체의 훈련을 시킨다든지 하는, 일테면 문화적인 사업에만 열중했지만, 앞으로는 실제 생활 방면에 치중해서 생산을 하기 위한 일을 해볼 작정이에요. 언제는 그런 생각을 못헌 건 아니지만 외면치레가 아니고 내부적인 문제를 생각허구, 또 실행해야 될 줄루 생각해요.”

참 그래요. 무엇버덤두 먼저 생활이 있구서, 그 다음에 문화사업이구 계몽운동이구 있을 것 같어요.”

영신이도 매우 동감인 뜻을 보인다.

그러니까 이런 점에두 우리에 고민이 크지요. 우린 가장 불리헌 정세에 지배를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니만치, 우리 힘으로 헐 수 있는 한도까지는 경제적인 사업까지, 끈기 있게 헐 결심을 새로 허십시다.”

하고 두 사람은 밤 깊도록 그 구체적인 방법을 토론할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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