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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 1

삼대

염상섭

 

두 친구

덕기는 안마루에서 내일 가지고 갈 새 금침을 아범을 시켜서 꾸리게 하고 축대 위에 섰으려니까 사랑에서 조부가 뒷짐을 지고 들어오며 덕기를 보고,

", 누가 찾아왔나 보다. 그 누구냐? 대가리 꼴하고...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하는 거야. 친구라고 찾아온다는 것이 왜 모두 그 따위뿐이냐?"

하고 눈살을 찌푸리며 못마땅하다는 잔소리를 하다가 아범이 꾸리는 이불로 시선을 돌리며 놀란 듯이,

", , 그게 뭐냐? 그게 무슨 이불이냐?"

하며 만져보다가,

"당치 않은! 삼동주 이불이 다 뭐냐? 주속이란 내 나쎄나 되어야 몸에 걸치는 거야. 가외 저런 것을 공부하는 애가 외국으로 끌고 나가서 더럽혀버릴 테란 말이냐? 사람이 지각머리가..."

하며 부엌 속에 족치고 섰는 손주며느리를 쏘아본다.

덕기는 조부의 꾸지람이 다른 데로 옮아간 틈을 타서 사랑으로 빠져나왔다.

머리가 텁수룩하고 꼴이 말이 아니라는 조부의 말눈치로 보아서 김병화가 온 것이 짐작되었다.

"야아, 그러지 않아도 저녁 먹고 내가 가려 하였었네."

덕기는 이틀 만에 만나는 이 친구를 더욱이 내일이면 작별하고 말 터이니만큼 반갑게 맞았다.

"자네 같은 부르주아가 내게까지! 자네가 작별하러 다닐 데는 적어도 조선은행 총재나..."

병화는 부옇게 먼지가 않은 외투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른 채 딱 버티고 서서 이렇게 비꼬는 수작을 하고서는 껄걸 웃어버린다.

"만나는 족족 그렇게도 짓궂이 한마디씩 비꼬아보아야만 직성이 풀리겠나? 그 성미를 좀 버리게."

덕기는 병화가 '부르주아, 부르주아' 하는 소리가 듣기 싫었다. 먹을게 있는 것은 다행하다고 속으로 생각지 않은 게 아니나 시대가 시대니만큼 그런 소리가- 더구나 비꼬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들어가세."

"들어가선 무얼 하나. 출출한데 나가세그려. 수 좋아야 하루에 한 끼 걸리는 눈칫밥 먹으러 하숙에 기어들어 가고도 싶지 않은데... 군자금만 대게. 내 좋은 데 안내를 해줄게!"

"시원한 소리 한다. 내 안내할 게 자네 좀 내보게."

"여보게, 담배부터 하나 내게. 내 턱은 그저 무어나 들어오라는 턱일세."

하며 병화는 방 안을 들여다보고 손을 내밀었다.

"나 없을 땐 소통 담배를 굶데그려."

덕기는 책상 위에 놓인 피존 갑을 들어 내던지며 웃다가,

"그저 담배 한 개라도 착취를 해야 시원하겠나? 자네와 나는 착취와 피착취의 계급적 의식을 전도시키세."

하며 조선옷을 훌훌 벗는다.

"담배 하나에 치를 떠는- 천생 그 할아버지의 그 손자다!"

병화는 담배를 천천히 피워서 맛이 나는 듯이 흠뻑 빨아 후우 뿜어내면서,

"여보게, 난 먼저 나가서 기다림세. 영감님이 나와서 흰동자로 위아랠 훑어보면 될 일도 안 될 테니까!"

하고 뚜벅뚜벅 사랑문 밖으로 나간다.

아닌 게 아니라 덕기도 조부가 나오기 전에 얼른 빠져나가려던 참이다. 덕기는 병화의 말에 혼자 픽 웃으며 벽에 걸린 학생복을 부리나케 떼어 입고 외투를 들쓰며 나왔다. 조부는 병화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다만 양복 꼴이나 머리를 텁수룩하게 하고 다니는 것으로 보아 무어나 뜯으러 다니는 위인일 것이요, 그런 축과 얼려서 술을 배우고 돈을 쓰러 다닐까 보아서 걱정을 하는 것이었다.

"내일 몇 시에 떠나나?"

"글쎄, 대개 저녁이 되겠지."

덕기도 유한 계급인의 가정에서 자라니만큼 몇 시 차에 갈지 분명히 작정도 안 하였거니와 내일 못 가면 모레 가고 모레 못 가면 글피 가지 하는 흐리멍덩한 예정이었다.

"언제 떠나든 상관 있나마는 상당히 탔겠네그려?"

"영감님 솜씨에 주판질 안하시고 내노시겠나?"

"기대면 줄 것은 있구..."

"! 그래두 한 달치는 해주어야 떠나보낼 텔세. 있는 놈 집 같으면 그대로 먹어 주겠지만, 주인 딸이 공장에를 다녀서 요새 그 흔한 쌀값에 되되이 팔아먹네그려. 차마 볼 수가 있어야지..."

"..." 하고 덕기는 동정하는 눈치더니,

"자네 따위를 두기가 불찰이지"

하고 웃어버린다.

"그러기에 세상은 살라는 마련 아닌가?"

"딴은 그래!"

"하지만, 자네 따위는 사귀기가 불찰'이란 말은 차마 아니 나오나보이 그려?"

병화는 여전히 비꼬아본다.

"그런 줄은 자네가 먼저 아네그려."

덕기도 지지 않고 대거리를 한다.

"내니까 자네 따위를 줄줄 쫓아다니며 토주라도 해서 먹어주는 줄은 모르구..."

"왜 안 그렇겠나. 일세의 혁명가가 이제 중학교나 면한 어린애를 친구라기는 창피도 할걸세. 대단 광영일세."

일 년에 한두 번 방학 때만 오래간만에 만나는 터이나 이 두 청년은 입심 자랑이나 하듯이 주고받는 말끝마다 서로 비꼬는 수작밖에 없건마는 그래도 한 번도 정말 노해 본 일은 없는 사이다.

중학에서 졸업할 때까지 첫째 둘째를 겯고틀던 수재고 비슷비슷한 가정 사정에서 자랐기에 어린 우정일망정 어느덧 깊은 이해와 동정은 버릴래야 버릴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이지적이요 이론적이기는 둘이 더하고 덜할 것이 없지마는, 다만 덕기는 있는 집 자식이요, 해사하게 생긴 그 얼굴 모습과 같이 명쾌한 가운데도 안존하고 순편한 편이요, 병화는 거무튀튀하고 유들유들한 맛이 있느니만큼 남에게 좀처럼 머리를 숙이지 않는 고집이 있어 보인다.

그 수작 붙이는 것을 보아도 덕기는 역시 넉넉한 집안에 파묻혀서 곱게 자란 분수 보아서는 명랑하지 못한 성미이나 병화는 이 2, 3년 동안에 더욱이 성격이 뒤틀어진 것을 덕기도 냉연히 바라보고 지내는 터이다.

"헌데, 좋은 데 있다더니 어딘가? 자네 말눈치 같아서는 기껏해야 청요릿집에나 오뎅집에나 가는 것이 불평인 모양이니 오늘은 어디 xx관에 가서 기생이라두 불러 볼까?"

덕기는 사실 이때껏 가보지 못한 요릿집에 가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 이건 누구를 병정으루 아는 게로군. 있는 놈의 꽁무니나 따라다니며 등쳐먹는 병정두 아니지만, 그런데는 내 주제에는 어울리지두 않으니까."

", 토주를 하는 것만 고마운 줄 알라고 생색을 내더니 기껏 선술집인가?"

". 선술집 밑천이라두 내놓고 자넬랑은 기생집으로 가게그려."

또 비꼬기 시작이다.

두 청년은 아무래도 발길이 진고개로 향하였다.

"그러지 말구 여기 들어가서 저녁이나 먹세. 하루에 한 끼니라는 곯은 배를 채워야지."

술을 좋아 아니하는 덕기는 몇 번 가본 양요릿집 문 앞에 멈칫하며 끌었다.

"아냐. 저기 좀 더 가면 놓은 데 있어. 정체는 모르겠지마는 놀라 자빠질 미인이,

조촐한 미인이 둘이나 있구..."

병화는 먹는 것보다는 술 생각이 더 간절하였다.

"이제 알았더니 숨은 난봉꾼일세그려. 어디, 자네 가는 데가 오죽할라구. 허허허."

덕기는 비로소 웃으며 따라섰다.

"어제 끌려가보았지만 바커스라구--그 이름이 좋지 않은가--조촐한 데가 있어. 웬일인지 이런 룸펜을 대환영이거든. 원체 잘생겨 그런지, 서울 장안에서 내가 그만큼 대접받기는 처음이야."

병화는 아까와는 딴판으로 신기가 좋아서 기고만장이다.

"..."

하고 덕기는 버커스로 따라선다.

있는 사람을 따라다니며 얻어먹기도 싫다, 화려한 좌석에서 어울리지 않게 놀기도 싫다는 병화의 말이 옳지 않은 것은 아니요, 그 기분을 아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덕기는 자기를 빗대놓고서나 하는 말 같아서 듣기 싫었다. 그뿐 아니라 언제든지 뺏아 먹고 쓰고 할 것은 다 하면서 게걸대고 입바른 소리를 툭툭하는 것이 밉살맞기도 하였다. 있는 사람의 퉁성으로 자기에게 좀 고분고분하게 굴어주었으면 좋았다.

그러나 없는 사람이 있는 친구와 어울리면 병정 노릇이나 하는 것 같은 일종의 굴욕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겠고 또 그렇게 구칙칙하거나 더럽게 굴지 않고 자기의 자존심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것이 취할 모라고 아직 경력 없는 덕기건만 돌려 생각도 하는 것이다.

주부가 술상을 차려 왔다. 술상이래야 고뿌에 담은 노란 술과 김이 무럭무럭 나는 오뎅 접시뿐이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덕기는 더구나 그 유착한 고뿌찜을 보고 눈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모든 것이 그 소위 고상한 취미에 맞지 않았다.

마담은 꼭 째인 얼굴판이 좀 검은 편이었으나 어딘지 교육 있는 여자 같고 맑은 눈 속이라든지 인사성 있는 미소를 띄운 입술을 빼뚜름히 꼭다문 표정이 몹시 이지적인 걸 알 수 있다.

"놀라 자빠질 지경이라던 여자가 지금 그 여잔가?"

덕기는 병화가 주부가 들어가기도 전에 그 큰 고뿌를 들고 벌떡벌떡 다 켜기를 기다려 물어보았다.

병화는 오뎅을 반이나 덤뻑 떼물어서 우물우물 씹느라고 미처 대답을 못하다가 반씩반씩 씹는 말로,

"아니--참 물어볼걸."

하고 입으로는 여전히 씹으면서 손뼉을 친다. 병화는 먹기에 정신이 팔린 것은 아니나, 덕기에게 말은 그렇게 하였어도 실상 이 집에 미인이 있고 없는 데에 그리 마음이 쓰이는 것이 아닌지라 이때껏 무심하였던 것이다.

주부가 오니까 병화는 씹던 것을 이제야 삼키고,

"그 사람 어디 갔소?"

하고 묻는다.

", 지금 막 목욕 갔어요. 곧 오겠지요"

하며 중턱에 서서 상긋 웃고는 시선을 덕기에게 준다.

주부의 눈에 비친 덕기는 해끄무레하고 예쁘장스러운 똑똑한 청년이었다. 이 여자에게는 조선이라는 경멸하는 마음은 그리 없으나 그 해끄무레하고 예쁘장스러운데다가 학생복이나마 값진 것을 조촐하게 입은 양으로 보아서 어느 부잣집 아기거니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약간 얕잡아보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 손님(병화)이 그동안 두어번 보았어도 허술한 위인은 아니 모양인데 그런 사람하고 추축이 되면 저 청년(덕기)도 그런 부잣집 귀동아기로만 자란 모던 보이 같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여자는 올 가을에 처음으로 이 장사를 벌인 터이라, 드나드는 손님이 하도 많지만, 이런 장사에 찌들어서 여간 것은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신경이 굳어지지 못한 탓이라 할까, 여하간 여염집 여편네의 호기심으로 처음 보는 남자마다 유난히 호기심을 가지고 인금 나름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어쩐 일인지 별안간 머릿속에 정자 생각이 떠올랐다. 정자란 조선에 와 있는 xx지방 재판소 오 판사의 맏딸이다. 성은 오가라도 일본말로 '구레'라고 하는 일본 사람이다. 이 주인 여편네가 xx시에서 도 자혜병원에서 간호부장 노릇을 할 때에 오정자가 무슨 병으로든가 입원한 후로 자연히 가까워졌던 것이다.

그러나 왜 지금 그 정자의 생각이 났는가? 어쩐지 덕기에게서 받은 인상이 그 정자와 남매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남매--가당치도 않은 생각이다. 민족이 다른 사람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정자가 퍽 새로운 생각을 가지고 사회 비평이나 정치 비평을 도도히 할 때마다 이 집 주인은 늘 웃으면서 다만 귀엽게 들어주기도 하고 장단을 맞추어주기도 한 일이 있었더니만큼 자기 역시 비교적 신지식에 어둡지 않다고 생각하는 터이라, 머리 텁수룩한 청년(병화)이 친구들과 와서 일본말로 저희끼리 떠드는 소리를 귓결에 들을 때도 소위 '마르크스 보이'로구나 하고 반은 비웃음 섞인 친근한 감정을 느꼈었기 때문에 지금 보는 덕기도 한 종류려니 하는 생각도 부지중에 나서 '마르크스 걸'인 정자가 불시에 연상된 듯도 싶다.

 

 

 

홍경애

주인 여편네는 손님이 심심해하는 양을 보고 가까이 교의를 끌어다놓고 두 사람을 타서 앉으며,

"오늘도 주정허시랍니까, 주정허시면 내쫓습니다."

"내가 주정을?..."

하고 깜짝 놀란다. 사실 그날도 점심 저녁 다아 굶고 술을 과히 먹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지금 어렴풋도 하지만, 혹시는 평시에 계집에게 담백하니만큼 일시 희롱했는지도 모르겠다고 혼자 생각을 하여보았다.

"시치미 딱 떼고 딴전을 붙이시는군요. 약주 취한 체하고!"

주부는 이야깃거리를 만들려고 여전히 병화의 주정부리던 이야기를 계속한다. 그러나 병화는 재미없었다.

"사실 그런 게 아닌데... 당신 같으면 붙들고 시달렸을지 모르지만- 하하..."

"... 그랬더면 큰일났게!"

주부가 이런 소리를 하려니까,

"다다이마(지금 옵니다)."

하고 역시 일복한 여자가 목욕 대야를 들고 들어오다가 손님이 있는 걸 보고 오뚝 서 버린다.

무심코 건너다보던 덕기는 얼음장을 목덜미에 넣는 듯이 모가지를 움츠러뜨리며 눈을 술잔으로 보냈다. 들어오던 여자도 주춤하고 서는 기척이더니 소리없이 살며시 돌쳐나간다.

"경애!"

덕기는 속으로 이렇게 불러보고는 두 눈이 확 달면서 더운 것이 흐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눈물이 날 지경은 아니었다.

다만 칠분쯤 남은 술 고뿌가 위아래로 춤을 추는 것 같고 술을 아무리 못 먹어도 그만 술에 취할 리가 없겠는데 머리가 아찔하고 앉은 자리가 휘휘 둘리는 것 같았다.

"어떤가? 놀라 자빠지지는 않겠나? 허허허... 내 눈도 자네 눈만큼은 높지?"

하며 남의 속은 모르고 취기가 돈 병화는 껄껄 웃는다.

"그야 미인보고 예쁘다 하지. 그렇지만 놀라 자빠질 지경이야..."

주부는 여자 본능으로 엷은 시기를 느끼는 눈친지 병화에게 이런 핀잔을 준다.

"오바상! 술을 또... 그리고 아이꼬상더러 어서 나오라고 해주슈."

'아이꼬상'이라는 것은 이 집에서 경애라는 애 자를 일본말로 부르는 이름이다. 주부는 발딱 일어나서 들어갔다.

"여보게! 그것 누군 줄 아나?"

주부가 안으로 들어간 뒤에 병화가 웃으며 묻는다.

"누구라니?"

덕기는 위아래 어금니가 맞닿는 소리로 대꾸를 하며, 무엇에 놀란 표정으로 친구의 얼굴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이 친구가 그 여자의 내력을 빤히 아는가 싶어 무서웠던 것이다.

"아아니, 지금 그애가 일녀인 줄 아나?"

병화는 또다시 싱글싱글 웃는다.

"그럼 조선여자란 말인가?"

덕기는 역시 자기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가슴이 한층 더

무거워졌다.

"허허허... 나도 처음 봤을 때는 못 알아보았네마는 알고 보니 수원 나그네-가 아니라 수원 여자라네! 이름은 홍경애..."

친구의 입에서 홍경애라는 이름까지 듣고 나니 덕기는 새삼스레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하였다. 아무 말도 못 하였다.

병화는 덕기가 깜짝 놀라리라고 생각하였던 것과 달리 아무 대답도 없이 한 모금 술에 발개졌던 얼굴이 해쓱하여지는 것을 보고 무슨 의민지 해석할 수 없다는 듯이 머쓱한 낯빛으로 친구를 한참 바라보다가,

"자네 그 여자를 아나?"

하고 물어보았다.

"몰라!"

덕기는 약간 떨리는 듯하면서 침통한 소리로 간단히 대답을 하면서도 자기의 낯빛이 친구에게 이상히 보일까보아 술 고뿌를 선뜻 들어서 입에 댄다.

껄떡껄떡... 반 이상이나 한숨에 켰다.

병화는 덕기가 술을 이렇게 단김에 켜는 것을 처음 보았다.

"웬일일까?'

병화는 혼자 의아하였다.

손뼉을 쳤다. 그러나 '아이꼬'가 술을 가지고 나오는 게 아니라 주부가,

"미안합니다."

고 소리를 치며 나온다.

"아이상은 왜 안 나오우?"

병화가 물었다.

"머리 빗어요. 이제 나오겠지요."

주부는 술을 덕기에게도 따랐다. 한 고뿌 다 마셨으니, 다른 때 같으면 덕기는 싫다고 할 터인데 잠자코 있다. 덕기는 어떻게 할지 속으로 망설이었다. 어서 병화를 일어나게 해서 그대로 가버리고도 싶고 이왕이면 좀 더 앉았다가 그 미인을 다시 한 번 만나보고 가고 싶은 충동도 없지는 않다.

"여보게, 그만하고 저녁을 먹으러 가세."

덕기는 암만 생각하여도 자리를 뜨는 것이 옳겠다고 생각하며 발론하여 보았다. 그러나 뒤숭숭한 마음은 조금 안정된 것 같기도 하였다.

"왜 그러나? 모처럼 왔다가 미인도 안보고 가려나?"

병화는 둘째 잔을 반이나 한숨에 마시고 움직일 생각도 없이 매우 유쾌한 모양이다.

"자네두 어서 좀 먹게. 오늘은 좀 취하세그려. 오래 또 못 만날 텐데..."

"왜 이 양반 어디 가시나요?"

주부는 병화의 말에 덕기를 아까보다도 친숙한 눈치로 쳐다본다.

"아직 공부하는 어린 자식놈이 보구 싶기에 동기 방학에 불러왔다가 내일 떠나보내는데 지금 송별연을 차린 거라우."

하며 병화는 껄껄 웃었다.

"호호호... 부자분이 아주 의초가 좋으십니다그려."

하며 주부가 웃으려니까,

"미친 사람!"

하고 그제야 덕기가 픽 웃는다.

"학교는 어디시게요?"

"경도 삼고"

덕기가 딴생각에 팔려서 잠자코 앉았으니까 역시 병화가 대꾸를 하였다.

"예에, 경도? 경도에 오래 계세요?"

하고 주부는 경도라는 데 반색을 하면서 덕기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예에 한 이태쯤!"

덕기는 얼빠진 사람처럼 앉았다가 대꾸를 해주고,

"어서 일어서게."

하고 또 재촉을 한다.

"왜 그러세요? 오시자마자."

주부는 장사치의 인사로만이 아니라 어쩐지 이 젊은 사람들을 더 붙들고 이야기하고 싶은 눈치다.

"떠날 준비도 있고 어디 가서 밥을 먹어야지."

덕기는 경애를 단연코 만나지 않고 가리라고 생각하였다. 그 여자에게 자기로서는 아무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나 어쩐지 만나기가 가슴 아팠다.

더구나 이런 자리에서 술집 작부로 떨어진 경애와 만난다는 것은 의외라도 이런 의외가 있을 리 없고 자기인들 아무리 타락하였기로 만나려고 할 리가 없을 것이니 얼른 피해 주는 것이 옳다고도 생각하였다.

"이 사람아, 밥은 밤낮 먹는 거 아닌가? 좀 가만 앉았게그려."

"술이라면 떨어질 줄을 모르니, 어쩌잔 말야, 자네 그 유명한 청년의 머리를 술에 절여 버리려나?"

덕기는 좌석이 거북하니만큼 거의 노기를 품은 소리로 이렇게 비꼬아 본다.

"사실은 나는 밤낮 먹는 그 밥도 없네마는 술도 못 얻어먹으면 냉수나 마시고 살라는 말인가? 대관절 나 같은 놈에게서 술마저 뺏으면 무에 남겠나? 그래도 술을 먹지 말라는 말인가?"

"암 그렇고말고요! 퍽 유쾌하신 모양입니다그려?"

별안간 이런 소리를 치면서 '아이꼬상'이란 여자가 내달아서 주부 옆에 와 서며 덕기에게는 눈도 거들떠보지 않고,

"긴상(김씨), 저런 도련님과 무얼 그렇게 설교를 하고 앉으셨소? 자아 술이나 잡수세요."

하고 주부 앞에 놓은 술통을 들고 달려든다.

"사실 아이상 말이 옳지? 자아 당신부터 한 잔..."

하고 병화는 의기양양하여 빈 고뿌를 내어민다.

"나두 먹죠."

하고 경애는 선뜻 잔과 술통을 바꾸어 받는다.

병화는 선 채 내미는 경애의 잔에 술을 따랐다.

경애가 고뿌 술을 받아서 마시는 것을 보고 덕기는 외면을 하였다. 처음에 소리를 치며 해롱해롱하며 내닫는 그 꼴에도 가슴이 내려앉듯이 놀랐지만 그 술 마시는 데에 한층 더 놀랍고 밉고 더럽고 가엽고 한 복잡한 감정을 참을 수가 없었다.

부친에게 이 꼴을 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부친에게 대하여 이때껏 느껴 보지 못한 반항심이 부쩍 머리를 들어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경애가 술을 이렇게 마구 먹는 것을 보고 놀란 사람은 덕기만이 아니었다.

"어쩌자구 이래? 오늘이 무슨 일 났나?"

주부는 경애가 장난으로 대객삼아 그러는 줄만 알고 웃으며 바라보다가 정말 반 고뿌 턱이나 흘러들어가는 것을 보자 질겁을 하면서 경애의 입에서 술잔을 빼앗아 버렸다.

"에구 이에 얼마야! 이러구두 사람이 배기나!"

하며 주부는 내려 놓은 고뿌의 술 대중을 본다.

그 말이 지나는 인사거나 주인으로서 부리는 사람을 꾸짖는 어투가 아니라 주책없는 어린 동생이나 나무라는 것같이 다정스러이 들리었다. 두 청년은 그것이 자기에게나 당한 일같이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나두 이만한 술은 먹어요."

경애는 언제 들으나 도리어 얄미울 만큼 혀끝이 도는 일본말로 이런 소리를 하고 무슨 대담한 장난이나 한 뒤의 어린 아이처럼 엉너리치는 웃음을 생글 웃어 보이다가 거기 놓인 피존 한 개를 꺼내 붙인다.

덕기는 담뱃불을 붙이는 동안에 경애의 얼굴을 잠깐 엿보았다. 그렇게 보아서 그런지 새빨간 눈에 성냥불이 어리어서 눈물이 글썽글썽한 것 같다.

'그래도 우는구나!'

고 덕기는 도리어 가엾은 생각이 났다.

예전에 같이 보통학교에 다니고 교당에 다니던 생각을 하면 이렇게도 변하였으랴, 이렇게도 타락하였으랴 싶건마는 지금 이렇게 술을 먹는 것도 화풀이 술이요, 하등 카페의 여급 모양으로 무람없이 손님의 담배를 제 마음대로 피워 무는 것도 화풀이로 그러려니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보다도 눈물을 머금는 것을 보니 그래도 아직 타락하지 않는 곳이 남아 있는 것같이 보이고 그렇게 생각할수록 측은하여 보이었다.

"그 술잔을 내게 돌려보내 주어야지! 괜히들 술 못 먹게 하는군! 아이상! 어서 그 잔을 마시고 내줘."

병화는 가만히 앉아서 이 사람 저 사람 눈치만 보다가 남은 술을 또 경애에게 권한다.

"난 그만해요. 우리 합환주 하십시다. 부잣댁 도련님 술은 얻어먹어두 나 먹던 술은 더러워 못 자시겠에요?"

어느 틈에 병화와 덕기의 새에 돌아와 앉은 경애는 이런 소리를 거침없이 하며 자기가 먹던 술잔을 들어다가 병화의 앞으로 밀어놓는다.

덕기는 경애의 시치미 뚝 떼고 비꼬는 말을 듣고 또 한 번 가슴이 선뜩하면서

무심코 놀란 눈을 경애에게로 보냈다.

대관절 이 여자의 정체를 알 수 없어 도리어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자아 마시세요."

하고 경애는 제가 먹던 잔 위에 더 부어 가득 채운다.

병화는 기다렸다는 듯이 선뜻 들어서 벌떡벌떡 켠다.

"이젠 가세."

덕기는 병화가 안주도 들 새 없이 재촉을 하였다.

도깨비에게 홀린 것 같아서 이제는 더 앉았을 수가 없었다.

"가만 있게! 아이꼬상 말마따나 부잣댁 도련님 술을 얻어먹자니 힘도 무척 드네. 먹을 것 먹어야 가지 않나?"

하고 병화는 주기가 차차 도니만큼 불쾌스럽게 대꾸를 하고 오뎅을 어귀어귀 먹는다.

주부가 깔깔 웃으려니까, 덕기는 좀 머쓱해졌다. 실상 주부가 웃는 것은 병화가 게걸스럽게 먹는 것을 보고 웃는 것이나 덕기 생각에는 병화나 경애가 비꼬는 듯이 주부 역시 자기를 우스꽝스럽게 보고서 비웃는 것인가 하여 열없었던 것이다. 덕기는 잠자코 앉아서 세 사람의 눈치만 보는 수밖에 없었으나 아무리 보아도 그 세 사람이 자기와는 딴 세상 사람 같았다. 세 사람이 입을 모으고 자기만 따돌려 센 것같이 섭섭한 생각도 들었다.

"참 이 양반도 약주를 좀 잡수세요. 색시처럼..."

주부가 인사성스럽게 다시 덕기에게 알은 체하고 술을 권하려니까 경애가,

"아직 도련님을 술을 먹여 되나요. 내나 먹지!"

하고 덕기 앞에 놓인 술잔을 얼른 들어오면서 조선말로 덕기만 알아들을 만큼,

"빨아먹을 수만 있다면 부자의 피를 다아 빨아먹겠는데."

하고는 바로앉는다. '부자'라는 말은 '아비 아들'이란 말인지 돈 있는 부자란 말인지 알 수 없다.

경애는 그 술잔을 들어서 입에 대려고는 아니하였다. 다만 부자의 피라도 빨아먹겠다는 한마디가 하고 싶어서 일부러 덕기의 술잔을 빼앗아 온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을 일부러 한 것은 내가 너를 몰라본 것이 아니라는 예기 지름을 하고 싶었던 까닭이었다.

- 이 술잔은 조상훈이의 아들 조덕기의 술잔이거니 하는 생각을 잊어버리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상훈은 누구요 덕기는 누구냐?...어쨌든 한때는 내 남편이요 따라서 아무리 연상약한 어릴 때의 학교 동무라 하여도 아들이라는 이름이 지어 있던 사람이다!

이런 생각이 앞을 서기 때문에 경애는 덕기의 술잔을 끌어다가는 놓았어도 입에 대려고는 아니하였던 것이다.

덕기는 모든 것이 어이가 없어서 가만히 죽치고 앉았을 뿐이었다.

도리어 경애가 술이 취해서 괴둥괴둥 제 내력을 이야기할까보아 속으로 애가 씌었다.

"아이꼬상! 왜 이래? 또 애인 생각이 나는 게로군?"

주부가 경애를 웃으며 바라보다가 놀리는 듯하면서 이렇게 타일렀다.

'애인 생각!'

하며 덕기는 가슴이 찌르르하는 것을 깨달았다.

"실없는 소리 마슈! 오늘은 유쾌해서 죽을 지경이니까 좀 먹을 테야."

하고 경애는 앞에 놓인 술잔(덕기의 술잔)을 들어서 가운데 놓인 재떨이에 조르르 쏟더니 다시 술잔을 병화에게 내밀며 따르라고 한다.

이번에는 병화가 반 잔만 따랐다.

"저게 무슨 짓이야! 손님 잔을..."

하고 주부가 또 나무라니까 경애는 거기에는 대꾸도 아니하고 덕기에게로 향하여,

"각세이상(학생 양반)! 당신은 안 자시니까 그래두 상관없지?"

하고 보통 손님에게 대하듯이 상냥스럽게 묻는다.

덕기는 얼떨결에 얼굴이 새빨개지며 ''이라고 하였는지 '예에'라고 하였는지 자기도 알 수 없는 대답을 얼버무려 들였다.

"재가 이렇게 술을 먹는다고 누구든지 타락하였다고 하겠지? 허지만 타락하였으니까 술을 먹는다는 말도, 술을 먹으니까 타락하였다는 말도 안 될 말이지. 또 여자가 술을 먹는다고 타락하였다면 술 먹는 남자는 모두 타락하고 술 안 먹는 목사님 같은 사람은 모두 천당 가신다는 말이지? ? 긴상(김씨) 정말 그런가요?"

하고 병화의 무릎을 탁 친다.

경애는 술이 도니까 점점 웅변이 되고 하느작거리는 교태가 여자의 눈에도 한층 더 아름다워 보였다.

그러나 경애가 목사를 끌어내는 말에 병화는 하려던 말을 멈칫하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덕기를 쳐다보았다.

병화의 아버지가 현재 장로요, 덕기의 아버지도 목사 장로는 아니나 교회 사업을 하고 있는 터이다. 물론 경애가 병화나 덕기의 부친을 알리 없으니 빗대놓고 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였지만 병화는 현재 자기가 장로인 부친과 사상충돌로 집을 뛰쳐나와서 떠돌아다니는 신세이니만큼 평범한 그 말이 몹시 가슴에 찔리었다. 그러나 덕기는 경애의 말을 결코 무의미한 말로 듣지는 않았다. 무의미는 고사하고 자기더러 들어보라고 한 말임을 짐작하자 뒤달아 또 무슨 소리가 나올지 몰라 이제는 정말 일어서버려야 하겠다고 속이 달았다.

"난 결단코 타락하지 않았어요! 설사 내가 타락하였더라도 그것이 남의 탓이라고 칭원을 하지는 않지만 재가 타락하였다면 이 세상 연놈은 어떻게 하게요? 난 천당에 자리를 비워놓았대도 가지 않겠지만..."

경애는 점점 더 취기가 돌아서 가다가다 혀 꼬부라진 소리를 내지만 목사니 천당이니 하는 소리를 연발하는 것을 보면 이 여자가 어떤 교회 학교 출신인가 하는 생각을 병화는 하였다.

"그렇구말구요. 그런 소리는 마시우.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이 있으니까... 당신은 언제든지 그런 생각으로 굳세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병화도 얼굴이 시뻘개져서 맞장구를 치고 공연히 흥분이 되었다.

"헌데 당신은 대관절 무얼 하는 양반요?"

경애가 별안간 병화에게 이렇게 묻고 이야기판을 차리려는 듯이 달려든다.

"? 나요? 흐흥... 당신 눈에는 무얼 하는 사람같이 뵈우?"

하고 병화는 여전히 웃는다.

그러나 문이 휙 열리면서 다른 손님 한 축이 서넛 몰려들어오는 바람에 말허리가 잘렸다.

 

 

 

이튿날

"어서 일어나요. 어머니 오셨어요."

아내가 건넌방 창으로 달려와서 깨우는 바람에 덕기는 그제야 우뚝 일어나 앉았다.

"어제 늦은 게로구나? 그래 오늘 떠나니?"

모친은 들어오면서 말을 건다. 아들이 떠난다니까 보러 온 것이었다.

"봐서 내일 떠나지요..."

덕기는 일어서며 하품 섞인 소리로 대답을 한다.

아내도 뒤따라 들어와 부리나케 자리를 게 얹는다.

안방 식구는 내다보지도 않는다. 안방 식구란 덕기의 서조모 식구다. 말하자면 서시어머니가 안방에 있을 터이나 덕기의 모친은 건너가 보려고도 아니하고 또 나어린 서시어머니는 조를 차려서 들어와 보려니 하고 버티고 앉았는지 내다보지도 않는다.

서시어머니가 안방을 차지 한 지가 5, 따라서 덕기의 부모가 따로 나간 지도 5년이다.자기보다도 다섯 살이나 아래인 서시어머니하고 한 솥의 밥을 먹기가 싫었다. 싫기는 피차 일반이었다.

부자간에도 역시 그러하였다. 노영감은 손주는 귀애하여도 아들은 못마땅하였다. 게다가 귀한 젊은 첩을 들어앉히자니 아들 식구는 밀어내었던 것이다. 또 피차에 난편도 하였던 것이다.

70 당년에 첩의 몸에서 고명딸 겸 막내딸을 낳았다. 지금 네 살, 이름은 귀순이다.

덕기의 부모가 따로 날 때 중학에 다니던 덕기도 물론 부모를 부모를 따라 나갔었다. 그러나 중학교 4년 때 장가를 들자 반년쯤 부모 앞에서 지내다가 이 할아버지 집으로 옮아왔다. 어머니는 내놓으려고 아니하였다. 색시의 친정에서도 젊은 시서조모 밑에 두기를 싫어했다. 그러나 조부의 엄명을 거역하는 수는 없었다. 조부의 엄명은 서조모의 엄명이다. 서조모가 만만한 어린 내외를 데려다두고 휘두르며 부려먹기에도 알맞고 또 한가지는 나먹은 며느리- 눈 안 맞는 며느리를 고독하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래도 노영감으로서는 손주 내외가 귀여워서 데려온 것일지 모른다. 또 덕기도 제 아버지보다는 조부를 따랐던 것이다. 게다가 재산이 아직도 조부의 수중에 있고 단돈 한푼이라도 조부가 차하를 하는 터이라 조부의 뜻을 맞추어야 하겠다는 다짐도 있었다.

혼인한 이듬해에는 건넌방에서도 아이 우는 소리가 나게 되었다. 첫아들이었다. 집안이 경사났다고 떠들었다. 그러나 입으로만이었다. 서조모는 소견이 좁고 보고 배운 것이 없었다. 공연히 건넌방 아이, 증손자를 시기하는 것이었다. 네 살짜리의 할머니와 세 살 먹은 손주가 자랄수록 손이 맞아서 일을 일리고 어른 싸움이 벌어지게 하였다.

증조부가 간혹 건넌방 아이를 좀 안아주면 안방마마의 눈귀가 가로 째지는 것이었다.

노영감도 불공평하자는 것은 아니나 몸이 괴로웠다.

결국에는 자기 딸이 귀엽고 젊은 첩에게로 쏠리건마는.

"아버니 지금 계세요?"

덕기는 마루로 나와서 또 한 번 커다랗게 하품을 하고 건넌방에다 대고 물었다. 부친에게 길 떠나는 문안을 갈 생각이다.

"몰라! 사랑에 계신지 나가셨는지."

모친의 대답은 냉담하였다. 원체 이 중늙은이 내외는 이름만 걸리 내외였다.

식사도 사랑, 잠도 사랑, 세수까지도 사랑에서 내다가 하는 것이었다. 남편의 코빼기도 못 보는 날이 많다. 그래도 남 보기에는 그리 의가 좋지 않은 것 같지도 않다. 검다 희다 말이 도대체 없기 때문이다. 그가 특별히 하느님의 아들 노릇을 하기 때문에 세속 일에 대범하고 초연해서 그런지? 도를 닦아서 여인에게는 근접을 아니하느라고 그런지는 몰라도 어쨌든 40에 한둘 넘은 이 중년 부인은 얼굴을 잊어버리게 된 남편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것이었다.

"이애는 어디 갔니?"

모친은 손주새끼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업고 나갔어요. 사랑마당에서 노는지요."

하고 어린 며느리는 안방 애 보는 년을 불러내어서 나가보라고 이른다.

", , 사랑에 나가건 영감님께 화개동 마님께서 오셨다고 여쭈어라."

며느리는 안방 아이를 업고 마루로 내려가는 계집애년에게 소곤소곤 일렀다. 자기 시어머니가 시할아버지께 문안드릴 기회를 만들자는 분별이다.

아이년이 나가자 노영감이 곧 들어왔다. 며느리가 그리 급히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온종일 할 일이 없어서 하루에도 몇십 번씩 들락날락하는 것이 유일한 소일인데 성미가 급하여서 듣기가 무섭게 들어온 것이다.

사랑문에서부터 기침을 칵하는 소리에 건넌방에서 며느리가 나왔다.

"..."

며느리를 쳐다보고는 이렇게 한마디하고 마루 끝에서 자리옷을 입고 세수를 하다가 일어서는 손자를 보고,

"무슨 옷을 저렇게 헤갈을 해 입었니?"

하고 우선 한 번 쏜 뒤에,

"어제는 어디를 갔다가 몇 치에 들어왔단 말이냐?"

하고 역정을 낸다. 몇 시에 들어온 것은 오늘 아침에 벌써 안방마마의 보고로 알고 있으면서 묻는 것이다.

덕기는 물 묻은 얼굴로 가만히 비켜섰을 수밖에 없었다. 영감이 안방으로 들어가니까 며느리도 따라 들어가서 절을 하였다. 비로소 시서모와 대면을 하였다.

", 별고 없지?"

영감이 출입이 별로 없고 며느리도 이 집에를 여간한 일이 아니면 오기를 싫어하니까 시아버지 문안이 한 달에 한 번도 될까말까하다.

"내일 모레 제사까지 묵어갈 테냐?"

며느리는 천만 의외의 소리를 시아버지에게 들었다. 잠자코 섰을 뿐이다.

생각해 보니 모레가 바로 시할아버니 제사- 이 영감에게는 친기인 것을 깜박 잊어버렸던 것이다.

"급한 일 없거든 왔다갔다하느니 아주 묵으려무나. 어린것들만 맡겨두어두 안 될 것이고 하니..."

며느리 입에서는 '' 소리가 좀처럼 아니 나왔다. 시아버지는 못마땅하였다.

"그럼! 좀 있어서 차려주어야지. 나 혼자서는 어린것을 데리고 이 짧은 해에..."

한옆에 모로 앉았던 젊은 시서모가 비로소 말참견을 했다. 어린것들에게만 내맡겨둘 수 없다는 영감의 말이 며느리 앞에서 자기에게 모욕이나 준 것 같아 못마땅하여서 슬쩍 이렇게 돌려댄 것이다. 며느리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여전히 입을 봉하고 섰다.

첫째 그 반말이 듣기 싫었다. 마주 반말을 해도 좋으나 그래도 밑지는 수밖에 없는 것이 분하다.

'첩 노릇은 할지언정 원 바닥이 있고 얌전하다면서 소대상을 차리니 말인가 무슨 장한 제사를 차린다고 엄두를 못 내는 것이람! 어린애 핑계를 하니 아이 기르는 사람은 제사도 못 지내던감.'

이런 생각도 하여보았다.

"너희는 예수굔지 난장인지 한다고 조상 봉제사가 무엇인지도 모르나보더라마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막무가내다!"

며느리가 끝끝내 잠자코 섰는 것이 못마땅하니까 연년이 제사 지낼 때마다 부자간에 충돌이 생기던 것을 생각하고 주름살 많은 얼굴이 발끈 상기가 되며 치미는 화를 참는다. 며느리는 좀 선뜻하였으나 무어라고 입을 벌릴 수는 없었다.

"그래 너두 이제는 천주학쟁이가 되었니? 내가 죽은 뒤에는 물 한 방울 떠놓겠니?"

시아버지의 언성은 점점 더 높아갔다.

수원집(시서모는 수원 태생이다)은 영감이 며느리를 꾸짖는 것을 보고 까닭 없이 시원하였다. 며느리가 무어라고 말대답이나 한마디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아녜요. 쟤 떠나는 것도 보고 아주 제사까지 치르고 가겠어요. 그렇지 않어두 그럴 생각으로 왔어요."

며느리의 말이 의외로 온순하여지니까 영감은 도리어 김이 빠지는 것을 깨달으면서도 마음이 적이 풀리었다. 그러나 수원집은 마치 불구경 나갔다가 연기만 모락모락 나고 그만두는 것을 보고 돌아올 때와 같은 싱거운 생각이 들었다.

예수교 아니라 예수교보다 더한 것을 믿기로 그래 조상 정사--부모 제사 지내는 게 무에 틀린다 말이냐? 예수는 아버지를 모른다더라마는 어쨌든 예수도 부모가 있었기에 태어나지 않았겠니? ...덕기도 잘 들어두어라."

하고 영감은 마루 편으로 소리를 치고 나서 또 밤낮 듣는 잔소리를 꺼낸다.

예수교 논래- 뒤따라서 아들의 논래를 한참 늘어놓고 나서는,

"덕기야!"

하고 제 방으로 들어가서 수건질을 하고 섰는 손주를 불렀다.

"..."

하고 건너왔다.

"그 일복 좀 벗어버려라. 사람이 의관을 분명히 하고 있어야지!"

하고 우선 꾸지람을 한 뒤에,

"너도 제사 지내고서 떠나거라!"

하고 엄명을 하였다.

"..."

덕기는 고단도 하고 어제 의외에 만남 경애를 그대로 내버려두고 가기가 좀 마음에 걸리던 차에 도리어 잘되었다고 생각하였다. 경애 일에 몸달 일이야 없고 그것으로 출발을 연기까지 할 묘리는 없으나 이래저래 잘된 셈이다.

그러나 덕기는 조부가 부친에게 대하여 육장 줄로 친 듯이 꾸지람을 하는 것이 듣기 싫었다. 누구 편은 더 들고 주구 편은 덜 드는 것이 아니지만 조부의 결은 잔소리- 그거나마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예수교 논래에는 시비는 하여간에 이제는 머리가 띵하였다. 일년에 몇 차례씩 되는 제사 때면 한층 심한 것이다.

더구나 자기 마님 제사- 즉 덕기에게는 조모 제사요 부친에게는 친기가 되지만 그 때가 되면 연년이 난가가 되는 것이다.

"에미도 모르는 자식!"

이 소리가 사랑으로 안으로 들락거리는 노영감의 입에서 몇십 번 몇백 번이나 나오는지 파제삿날 저녁때나 되어서 눈에 뛰는 사람이 없어져야 간정이 되는 것이었다.

"대체는 영감마님이 의는 퍽 좋으셨던 게야."

젊은 여편네들이 수원집더러 들어보라고 짓궂이 이런 소리를 하면 덕기 모친은,

"내외분의 의가 좋으셨기나 했기에 혼쭐나게 얌전하고 유명짜한 그런 아드님을 나셨지."

하고 자기 남편을 비웃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친은 끝끝내 자기 어머님 제사 참례도 아니하고 영감님 분별로 덕기 모자와 일가에서 모여드는 동할렬끼리만 지내는 것이었다.

게다가 할머니 제사에 또 한 가지 겸치는 것은 수원집이 까닭도 없이 방구석에만 죽치고 들어앉아서 꽈리주둥이가 되어 아이들만 들볶는 것이었다. 여편네들은 영 그 꼴이 미워서 잔칫집처럼 깔깔대고 법석을 하면 서 영감님이 친기보다도 마님 제사는 더 위하신다는 둥- 하는 소리를 수원집 턱밑에서 주거니받거니하고 밤새도록 떠드는 것이었다.

덕기는 조부의 제사에 정성이 부족하다는 훈계를 들으면서도 지끈지끈하는 무거운 머리로,

'오늘 저녁때 바커스에 다시 한 번 가볼까?'

하고 생각이 떠오를 뿐이요, 조부의 쓴 안경알이 꺼멓게 어른거리는 것조차 멀리 어렴풋이 바라다보였다.

어제 왔던 그런 좋지 못한 친구하고 어울려서 밤늦도록 나다니지 말라는 훈계가 끝나자 덕기 모자는 겨우 안방에서 풀려서 건넌방으로 건너왔다.

덕기는 밥상을 받고, 화롯가에 담배를 피워 물고 가만히 앉았는 모친을 바라보고는 또다시 어제 만난 경애 생각이 났다.

'어머니는 대관절 그 일을 아시나? 아신다면 그 당시에 어쨌을꾸?.. .그러나 어떻게 돼서 언제 헤지구 말았는구? ...분명히 소생- 내게는 누이동생이나 코빼기도 보지 못한 고마울 것도 없는 누이동생이 하나 잇다는 말을 들었는데...'

덕기는 혓바닥이 헤어지고 머릿속에서 그저 지진이 나는 것 같은 것을 참고 물말이를 정신없이 퍼 넣으며 혼자 생각을 하였다.

'어머니께 여쭈어볼까?'

이런 생각도 하여보았다. 그러나 모친에게 묻기가 너무 잔인한 것 같기도 하고 알든 모르든 가엾은 생각이 나서 그만두리라고 돌려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 수수께끼 같은 일을 뉘게 물어보나? 하고 공연히 갑갑증이 났다. 부친에게 직통대고 묻는 수도 없고 집안에서도 물어볼 사람이 없다. 시급히 알아 보아야 할 일은 아니건마는 그래도 궁금하였다.

부친의 친구를 찾아가서 물으면 알리라 하는 생각이 들자 물어봄직한 사람을 속으로 골라보았다. 몇 사람 머리에 떠오르기도 하나 부친은 혼자만 속에 넣어 두는 일생의 비밀일 터인데 섣부른 짓을 하다가 덧드러나게 되면 큰일이라고 이것도 돌려 생각을 하였다. 교회 속 일이니만큼 그리고 아직도 부친이 교회의 신임을 받고 그 사회 속에서는 그래도 웬만큼 알리어 있느니만큼 부친의 전비는 어쨌든지 명예를 위하여 함부로 발설 못할 일이었다.

그러나 부친을 위하는 마음이 생길수록 이상하게도 한옆에서 부친을 미워하는 마음이 머리를 들었다. 부자의 정리보다도 부친에게 대한 인격적으로 존경할 수 없는 불쾌한 감정이 불현듯이 떠올라왔다. 그와 동시에 혹은 그와 같은 정도로 옆에 앉았는 모친과 경애가 가엾이 생각되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 수 없는 경애가 낳은 딸- 보지 못한 누이동생 그리고 자기 남매까지 불행하고 측은히 생각되었다.

부친이 그리 잘난 인물은 못 되더라도 인격으로 아들에게만이라도 숭배를 받았던들 얼마나 자기는 행복하였을까?

덕기는 부친에게 인격적으로 경의를 표할 수 없는 것을 몹시 괴로워하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설혹 부친이 자기에게 냉담하더라도 자기가 진심으로 섬겨 보고 싶었다.

'할아버지께서 이해가 없으신 것도 사실이지만 아버지만 그러시지 않아도 어머니도 행복이시고 우리도 행복이었을 것이다. 경애도 제대로 올곧게 제 운명 제 길을 찾아나갔을 것이 아닌가?...'

이번 양력설을 쇠고는 스물 세 살이 된 그다. 세상의 못된 물이 들지 않고 지각도 들 만큼 들어갈 때다.

"어머니! 요새두 아버지께서 약주 잡수세요?"

덕기는 숭늉을 천천히 마시다 말고 옆으로 앉은 모친을 쳐다보았다.

"누가 아니! 약주를 잡숫든 기생방에 가든!"

하고 모친은 핀잔을 주다가 자기 말이 너무 몰풍스러운 것을 뉘우친 듯이,

"술상 보아 내오라는 말씀이 없으니 안 잡숫는 게지."

하고 다시 웃는 낯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모친의 나중 말도 덕기에게는 부친을 비웃는 말로밖에 아니 들렸다.

"아버님께서 잡숫는 걱정은 말고 당신이나 주의를 해요!"

시어머니와 화로를 격해서 윗목에 쪼크리고 앉았던 아내가 오금을 박는다.

"잔소리 말어!"

하고 핀잔을 주고 덕기는 담배를 들고 가만히 화롯불에 꼭꼭 눌러붙인다.

"너두 술 먹니?"

하며 모친은 얼마쯤 놀란 듯이 아들을 쳐다본다.

"어제두 곤드레만드레가 되어서 오밤중에나 들어왔습니다."

며느리는 남편이 행여 무어랄까 보아 얼른 고자질을 하고는 밥상을 번쩍 들고 나가 버렸다.

"내력 술이니까 하는 수 없지만 벌써부터 술을 배워 되겠니...?"

모친은 가볍게 나무라두었다.

"친구에게 끌려서 부득이... 몇 잔 먹구 취하나요. 하지만..."

하고 덕기가 말을 끊으려니까 모친은 덕기의 뒷말을 기다리고 앉았다가,

"너 아버지 말이냐? 너 아버지야 그저 그런 이로 돌리려니와..."

하고 말을 미리 받는다.

"글쎄 금주 선전 신문인가 무엇엔가 글이나 쓰지 말으셨으면 좋지 않아요! 도무지 교회도 나와버리시구 그런 데 간섭을 마셨으면 좋을 게 아니에요. 10시까지는 설교를 하시고 그리고 10시가 지나면 술집으로 여기저기 갈 데 안 갈 데 돌아다니시니 그러면 세상이 모르나요. 언제든지 알리고 말 것이요... 그것도 거기다가 목숨을 매달고 서양 사람의 둔푼이나 얻어먹어야 살 형편이면 모르겠지만..."

덕기는 일전에 병화가 세문 밖 냉동 근처의 좋지 못한 술집에서 자기 부친을 분명히 만나보았다고 신야 넋이야 하며 싫은 소리를 주절대던 것을 생각하며 분해 못 견디겠다는 듯이 이런 소리를 조용조용히 하였다.

"그런 소리를 왜 날더러 하니? 너 아버지한테 가서 무슨 소리든 시원스럽게 하렴!"

하고 모친은 핀잔을 주었다.

'그러는 어머니도, 당신 그러면 그러지, 뉘 아나! 하고 남남끼리처럼 하시지 말고 지성껏 아버지를 받들고 그렇게 못 하시게 하시면 자연히 아버지 신상이나 집안 꼴이나 나아가지 않아요!'

덕기는 이런 말을 하려다가 참아버렸다.

말은 그쳤다. 모자는 담배만 피우며 싸운 사람들 같이 가만히 앉았다.

중문간에서 아이 우는 소리가 엉엉 난다. 모친은 앞창을 열고 내다보며,

"추운데 어디를 이렇게 싸지르는 거냐?"

하며 애년을 나무라고 나서,

"어 우지 마라, 어어 우지 마라!"

하고 건너다보고 어른다.

며느리가 얼른 가서 우는 아이를 받아 안고 들어왔다. 할머니가 손을 내밀어 보았으나 아이는 어머니 겨드랑이만 파고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이게 무슨 짓이야? 할머니께 안녕 안녕-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어미는 나무라면서 그래도 시어머니 앞에서 젖통이를 내놓기가 부끄러운지 머뭇머뭇하니까,

"어서 젖을 물리렴!"

하고 시어미니는 그래도 귀한 손주새끼를 넘겨다본다.

어린애는 젖을 물자 눈을 감아버린다.

"잠이 와서 그러는구나."

"새벽같이 깨어서 바스락거리니까요..."

고식도 더 말할 게 없는 사람처럼 다시는 입을 아니 벌렸다. 이 방(건넌방)의 아이 보는 계집애년은 세 식구가 잠잠히 앉았는 것을 보고 심심해서 스르르 마루로 나가버렸다. 그 바람에 시어머니는 말을 꺼낸다.

"이 추위에 얼마나 고생이냐? 손등에 얼음이 들었구나!"

하며 시어머니는 아이를 안고 앉은 며느리의 새빨간 두 손을 바라보고 눈을 찌푸렸다.

"무어 그저 그렇지요."

며느리는 예사롭게 대답을 하며 싱끗 웃었다.

"안방에서는 여전히 쓸어 맡기고 모른 척하니?"

"그러믄요!"

하고 어린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다정한 말에 눈물이 글썽해진다.

"밤낮 그 아이 하나로 온종일 헤어나지를 못하고 방문 밖이나 나오시나요."

하고 하소연을 한다.

"계집애년두!"

"그럼요. 버릇을 애초에 잘못 가르치셨으니까요."

"행랑것은 새로 들어왔다더니 어떠냐?"

"밥이나 짓지요마는 온 지 며칠 안 된 것이 능글능글하게 엉너리만 치고 안방에만 들락날락거리고 가관이죠."

"지시는 누가 했는데?"

"모르겠어요. 할아버지께서 사랑에서 데리고 들어오셔서 오늘부터 두게 된 것이라고 하셨으니까 아마 사랑 손님이 지시한 것이지요."

"어쨌든 그래서 안 됐구나."

"무어요?"

"아니, 글쎄 말이다. 안방에만 긴한 듯이 달라붙어 버리면 어지중간에 너만 괴롭잖겠니?"

"......"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동정에 감격해서인지 고개를 숙이고 콧등을 훌쩍 들이마신다.

"어리다고 하속배라도 넘볼 것이요 윗사람이라고 그 모양이니... 네 고생도 다 안다. 내가 너희들만 데기로 있다면야 낸들 무슨 걱정이 되고 불평이 있겠니! 그것두 모두 내 팔자 소관이니까."

시어머니는 이런 소리도 하였다. 이 부인은 야소교인이 아닌지라 '그것두 모두 하느님의 뜻'이라 하지 않고 내 팔자 소관이라고 한다.

덕기는 더 듣고 앉았기가 싫어서 벌떡 일어났다.

쓸데없는 소리 말라고 핀잔을 주려다가 모친 앞이라 참아버렸다. 덕기는 사랑으로 나오면서 혼자 한숨을 쉬었다. 집안이 어찌 되려고 이러는고 싶었다.

사랑 댓돌 위에는 고무신 경제화가 네댓 켤레 놓여 있다. 할아버지의 그 쌀쌀한 규모로 사랑에도 60먹은 지 주사 한 사람 외에는 군식구를 두지 않건마는 그래도 놀 데 없고 먹을 것 없는 노인들은 모여드는 것이었다. 덕기는 제 방으로 들어가 누우면서 지금 안에서 듣던 말을 생각해 보았다.

지체 보아서 한다고 할아버지가 야단야단치고 얻어 맡긴 아내는 또 그것도 처음에는 좋다가 일본 갈 때쯤은 싫증도 났던 아내이건마는 시서모 앞에서 남편도 없는 동안에 고생하는 생각을 하면 가엾기도 하였다.

사실 소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하고 구식 가정에서 자랐기에 이 속에서 배겨 있지 요새의 신여성 같으면야 풍파가 나도 몇 번 났을지 모를 거라는 생각을 하면 신지식 없다고 싫어하던 것이 이제는 도리어 잘되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어느덧 한잠 푹 들어버렸다.

"...덕기도 제사까지 지내고 가라고 하였다..."

덕기는 분명히 조부의 이런 목소리를 들은 법하다. 꿈이 아니었던가 하며 소스라쳐 깨어 눈을 떠보니 머리맡 창에 볕이 쨍쨍히 비친 것이 어느덧 저녁때가 된 것 같다. 벌써 새로 3시가 넘었다. 아침 먹고 나오는 길로 따뜻한 데 누웠으려니까 잠이 폭폭 왔던 것이다. 어쨌든 머리를 쳐드니, 작취가 이제야 깨인 듯이 거뜬하고 몸도 풀린 것 같다.

"네 처두 묵으라고 하였다만 모레는 너두 들를 테냐? 들르면 무얼 하느냐마는..."

조부의 못마땅해하는- 어떻게 들으면 말을 만들어보려고 짓궂이 비꼬는 강강한 어투가 또 들린다.

덕기는 부친이 왔나보다 하고 가만히 유리 구멍으로 내다보았다. 수달피 깃을 댄 검정 외투를 입은 홀쭉한 뒷모양이 뜰을 격하여 큰 마루 앞에 보이고 조부는 창을 열고 내다보고 앉았다. 덕기는 일어서려다가 조부가 문을 닫은 뒤에 나가리라 하고 주저앉았다.

"저야 오지요마는 덕기는 붙드실 게 무엇 있습니까, 공부하는 애는 그보다 더한 일이 있더라도 하루바삐 보내야지요..."

이것은 부친의 소리다. 부친은 가냘프고 신경질적인 체격 보아서는 목소리라든지 느리게 하는 어조가 퍽 딴판인 인상을 주는 것이었다. 그 부드러운 목소리와 느린 말투는 젊었을 때에도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예수교 속에서 얻은 수양인가 보다고 덕기는 늘 생각하는 것이다. 거기다가 비하면 조부의 목소리와 어투는 자기 생긴 거와 같이 몹시 긴경질적이요 강강하였다.

"그보다 더한 일이라니?"

시비를 차리는 사람이 저편의 말끝을 잡은 것만 다행이라는 듯이 조부의 목소리는 긴장하였다.

부친은 잠자코 섰는 모양이다.

"계집 자식이 붙드는 게 그보다도 더한 일이냐? 에미 애비가 숨을 몬다면 그보다 더한 일이냐?"

"왜 불관한 일에 그렇게 말씀을 하세요?"

똑같이 부드럽고 똑같이 이분간에 50마디밖에 아니 되는 듯한 말소리다. 그러나 노영감은 아들의 그 말소리가 추근추근히 골을 올리려는 것같이 들려서 더 못마땅하였다.

"그래 무어 어쨌단 말이냐? 에미 애비 제사도 모르는 놈이 당장 내가 숨을 몬다기로 눈 하나 깜짝이나 할 터이냐? 그런 놈을 공부는 시키면 무얼 하니?"

영감은 입에 물었던 담뱃대로 재떨이를 땅땅 친다. 방 안에 좌우로 늘어앉은 노인축들은 두 손을 쓱쓱 비비며 꾸뻑꾸뻑 조는 사람처럼 고개들을 파묻고 앉았을 뿐이다. 이 사람들은 주인 영감의 말이 꼭 옳은지 안 옳은지 뚜렷이 판단할 수는 없으나 어쨌든 일리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종교가 달라서 제사 안 지낸다고 반드시 부모의 임종까지 안하리라고야 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들의 말을 들으면 그도 그래!'

하는 생각을 노인들은 하였으나 그래도 제사 안 지낸다고 야단치는 점만은 주인 영감이 옳다고 속으로 시비를 가리는 것이었다.

"무슨 잔소리를 그래도 뻔뻔히 서서 하는 것이냐? 어서 가거라! 네 자식도 너 따위를 만들 작정이냐? 덕기는 내가 기르고 내가 공부를 시키는 터이다. 너는 낳았달 뿐이지 내 손으로 밥 한술이나 먹이고 학비 한푼이나 대어 주었니? 내가 아무러면 너만큼 못 가르쳐놓겠니! 잔소리 말고 어서 가거라! 도덕이니 박애니 구원이니 하면서 제 자식 하나 못 가르치는 놈이 입으로만 허울좋은 소리를 떠들면 세상이 잘될 듯싶으냐!"

이것도 이 영감에게서 한두 번 들은 말이 아니다. 옳은 말이라고 노인들은 생각하였다.

"영감, 고정하지요. 영감 말씀이 저저히 옳으신 말씀이지만 저 사람도 사회에 나가서 일을 하려니까 제사 참례만 안 한다는 것이지 어디 누가 반대를 하는 건가요."

저녁때가 되어서 사람이 삐어 식구가 줄면은 술상이 나올까 하고 배를 축이고 앉았던 제일 연장되는 노인 한 분이 중재를 하는 것이었다.

덕기는 더 참을 수가 없어서 아랫방에서 나왔다.

"오늘 가 뵈려고 하였어요. 글피쯤 떠날까봅니다."

덕기는 부친 앞에 가서 이런 소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하고 재촉을 하였다.

부친은 잠자코 아들을 바라보다가 모자를 벗고 방 안에다 대고 인사를 한 뒤에 안에는 아니 들르고 대문 편으로 나가버렸다.

조부가 창문을 후닥닥 닫았다.

올 적마다 조부에게 꾸중만 맞고 안에도 들르거나 말거나 하고 훌쩍 가 버리는 부친의 뒷모양을 바라보고 덕기는 민망한 생각이 들었다.

자기 부친에게 잘못이 없다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남에 없는 위선자거나 악인은 아니다. 이 세상 사람을 저울에 달아본다면 한 돈도 못 되는 한 푼 내외의 차이밖에 없건만 부친이 어떤 동기로이었든지- 어떤 동기라느니보다도 2, 30년 전 시대의 신청년이 봉건사회를 뒷발길로 차버리고 나서려고 허비적거릴 때에 누구나 그리하였던 것과 같이 그도 젊은 지사로 나섰던 것이요, 또 그러느라면 정치적으로는 길이 막힌 그들이 모여드는 교단 아래 밀려가서 무릎을 꿇었던 것이 오늘날의 종교 생활의 첫 발길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만일 그가 요샛말로 자기 청산을 하고 어떤 시기에 거기에서 발을 빼냈더라면 그가 사상으로도 더 새로운 시대에 나오게 되었을 것이요, 실생활에 있어서도 자기의 성격대로 순조로운 길을 나아가는 동시에 그러한 위선적 이중 생활 속에서 헤매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도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이나 기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의 현실상 앞에 눈이 어두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살아온 시대상과 너희의 시대상의 귀일점을 찾으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네 사상과 내 사상이 합치되는 소위 "3 제국"을 바라는 것이다. 너희들은 한 걸음 나아갔고 나는 그만큼 뒤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너의 시대에서 또 한 걸음 다시 나아가면 그 때에는 도리어 내 시대의 사상, 즉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사상의 어떠한 일부분이라도 필요하게 될지 누가 아니? 나는 그것을 믿고 그것을 믿고 그것을 찾는다...'

이번에 덕기가 돌아와서 부친과 병화의 이야기를 하다가 사회사상 문제와 실제 운동 문제에까지 화제가 돌아갔을 때 덕기가 부친에게 종교를 내던지라고 하니까 부친은 이와 같은 대답을 하였던 것이다.

덕기는 부친의 이러한 의견에 반대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역시 구습상 부친에게 반대할 수도 없고 또 제 주제에 길게 논란할 수도 없는 터이어서 그만두었다. 그뿐 아니라 부친이, 생각하였던 것보다는 현대 사상 경향이나 사회 현상에 대하여 아주 어둡고 무관심한 것이 아닌 것을 발견한 것이 반갑기도 하고 부자간의 이런 토론은 처음이었으나 그로 말미암아 부친과 자기 사이가 좀 가까워진 것 같은 기쁜 생각이 들어서 그대로 웃고만 말았지만 어쨌든 부친은 봉건 시대에서 지금 시대로 건너 조부와 덕기 자신의 중간에 끼여서 조부 편이 될 수도 없고 아들인 덕기 자신의 편도 못 되는 것과 같은 어지중간에 처지라고

새삼스러이 생각하였다. 따라서 그만큼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또는 자기의 사상 내용으로나 가장 불안정한 번민기에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므로 덕기는 부친에게 대하여 가다가다 반감이 불끈 치밀다가도 한편으로는 가엾은 생각, 동정하는 마음이 나는 것이었다.

안으로 들어온 덕기는 제 방에서 어젯밤에 들어와 벗어 건 양복을 주섬주섬 갈아입었다. 웬 셈인지 오늘은 더욱이 사랑에 나가서 혼자 오뚝이 앉았기도 맥없고 안에 들어와서 고식이 마주 앉아 안방 논래나 부친 논래를 하고들 있는 것을 듣기도 싫었다.

"저녁두 안 먹고 지금 어디를 가니?"

모친은 나무라듯이 물었다.

"잠깐 바람 쐬고 들어와요."

"아버지 뵈러 가지 않니?"

"아버닌 지금 다녀가셨는데요."

"?..."

모친은 놀라는 소리를 하다가 입을 꼭 다물고 말았다. 자기가 와 있어서 안에는 안 들러 갔구나-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럼, 안에 어쩌면 좀 안 들어오시고 그대로 가셨어요?"

아내도 섭섭한 듯이 시어머니 대신에 묻는다.

"바쁘시니까 그런 게지!"

하고 덕기는 핀잔을 주었다.

덕기는 잔소리를 길게 늘어놓기가 싫어서 그런 것이지만 모친은 속으로 아들도 못마땅하였다.

'너두 네 아비 편만 드는구나!'

하는 약속한 생각으로.

"어머니- 그런데 오늘 묵어가세요?"

덕기는 다시 온유한 낯빛으로 물었다.

"그럼 어쩌니! 나는 40을 먹어도 호된 시집살이다!"

모친은 이렇게 자탄을 하다가 나가는 길에 화개동 집에 가서 자기가 묵는다는 말을 이르고 누이동생을 데리고 오라고 한다.

"글세- 갈 새가 있을라구요. 아무쪼록 가겠습니다마는 누구든지 보내십쇼그려."

덕기는 정처가 있어서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 화개동 막바지까지가 가기가 싫어서 이렇게 일러놓고 나오면서 지갑 속에 든 돈 요량을 하여보았다. 아직 노비와 학비를 분명히 타지 않았기 때문에 병화의 밥값 한 달치를 주기는 어려웠다.

 

 

 

하숙집

진고개로 올라가서 무어나 사 볼까?- 꼭 무엇이 살 게 있는 것이 아니라 돈푼 있는 사람의 버릇으로 막연히 이런 생각을 하다가,

'오늘 떠날 줄 아는데 병화가 기다리고 있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어제 취중에 병화더러 밥값을 해 가지고 하숙으로 가마고 약속을 한 듯도 싶으나 기억이 몽롱하다.

덕기는 지나가는 전차에 뛰어올랐다. 서대문에서 내려서 몇 번이나 물어 홍파동에까지 와 가지고 수첩을 꺼내 보고, 이 골목을 꼬불꼬불 뺑뺑이 돌아야 양의 창자다. 서울서 20여 년을 자랐지만 이런 동네에는 처음 와보았다. 반시간 턱이나 휘더듬어서 짧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나 되어서 바위 위에 대롱 매달린 일각대문 앞에 와서 딱 서게 되었다. 이 동네를 휘더듬는 동안에는 이런 집도 많이 보았지만 그래도 하숙이라 하니 의연만한 집인 줄 알았다.

덕기는 참 정말 이런 집은 처음 본 것 같았다. 쓰러져가는 일각대문이라도 명색이 문이 있으니 물론 움은 아니다. 그러나 마치 김칫독을 거적으로 싸듯이 꺼멓게 썩은 거적으로 뺑 둘러싼 집이다.

'이놈이 여기 들어엎대서 게다가 외상밥을 먹어!'

이런 생각을 하니 병화가 불쌍하다느니보다도 너무 무능한 것 같고 밉살맞은 생각이 났다.

세 번 네 번 불러도 대답이 없다. 기웃이 들여다보니 고양이 이마만 한 마당인데 안이 무엇이 멀다고 안 들릴 리는 없다.

얼마 만에 발소리도 없이,

"어디서 오셨에요?"

하는 소리가 들린다. 문틈으로 보니 머리는 부엌방석 같고 해끄무레한 얼굴만 없었더면 굴뚝에서 빼놓은 족제비다. 아니, 그보다도 깜장 토시짝 같다. 이 아낙네는 그렇게 가냘프고 키가 작았다. 목소리도 그렇지만 얼른 보기에도 40이 넘어 보인다.

"김 선생요? 편찮어 누셨에요."

대번에 뛰어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혹시 자기 집에나 갔는 것을 길이 어긋나서 못 만나 보는 게다 하였더니 그래도 집에 있다는 데에 덕기는 반색을 하였다.

"못 나오면 좀 들어가보아도 좋을까요?"

덕기는 조금 문을 밀치며 이렇게 물었다.

주부는 사나운 꼴을 보이는 것이 부끄러워서 찔끔하면서도 손님의 얼굴을 보려는 듯이 말끔히 내다보다가,

"잠깐 가만히 계셔요."

하고 들어가려니까 안에서 창문 열리는 소리가 나며,

"조군인가? 들어오게!"

하고 병화의 목쉰 소리가 난다.

덕기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들어섰다.

주부는 안방 문을 열면서도 손님을 또 한 번 돌아다보았다. 덕기도 무심하고 마주 쳐다보며 얌전한 아낙네라고 생각하면서 가엾은 생각이 들었다.

'딸은 지금 없나? 어머니가 저럴 제야 딸도 예쁘장하고 얌전하겠다.!'

하고 생각을 하면서 병화를 쳐다보고,

"웬일인가? 이태백도 술병 날 때가 있나?"

하고 웃고만 섰다. 마루 꼴하고 움속 같은 방 안에 들어갈 생각은 아니 났다.

"어서 들어오게. 에 추워!"

하며 병화는 입고 자던 양복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어깨통을 흔든다. 입고 자던 양복이 아니라 출입벌이고 무어고 단벌이다. 덕기는 먼지가 뿌옇게 앉은 그 양복 바지를 비참하다는 눈으로 한참 바라보고 섰다.

"왜 이렇게 얼이 빠져 섰나? 모든 것이 너무 비참한가?"

병화는 막걸리에 결은 사람 같은 거센 목소리로 이런 수작을 하였다.

"나가세..."

"나가더라도 좀 들어오게. 난 게다가 감기가 들고 허기가 져서 꼼짝할 수 없네."

병화는 떼를 쓰듯이 이런 소리를 한다.

덕기는 난망하였다. 더구나 안방 영창에 붙은 유리 구멍으로 누가 내다보는 것이 공장에 다닌다는 딸인가 싶어서 호기심도 없지 않았으나 열없는 생각이 들어서 어느 때까지 그대로 섰을 수가 없었다.

"그럼 약이라도 어서 먹어야지!"

덕기는 이런 인사를 하며 껑충 뛰어 툇마루로 올라섰다.

"허기가 져서 죽겠다는데 약은 무슨 팔자에..."

병화는 일종의 분기를 품은 목소리로 책망하듯이 중얼댄다.

"그러기에 어서 나가자는밖에! 어서 선술집이구 설렁탕집이구 가세그려."

하며 방에 들어서보니 발밑에 닿는 방바닥이 얼음장이다.

이 때까지 들쓰고 누웠던 이부자리는 어디가 안이요 어디가 거죽인지 알 수가 없다. 발바닥에서부터 찬 기운이 스며올라오건마는 퀴퀴한 기름때 냄새 같은 사내 냄새가 코를 찔러서 비위를 뒤흔들어 놓는다.

덕기는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 책상 위의 성냥통을 집었다. 책상에는 잡지 권이 되는대로 흐트러져 있고 잉크병밖에는 눈에 띄는 것이 없다.

머리맡에는 신문이 헤갈을 하여 있다.

'이런 생활도 있다.'

덕기는 속으로 놀라면서 병화가 가엾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 궁극에 달한 생활을 하면서도 남에게 굽히지 않고 자기 주위를 위하여 싸우는 것이 말하자면 수난자의 굳건한 정신이 있기 때문이려니 하는 동정이 한층 더 깊어졌다.

'나 같으면 하루도 못 배기겠다. 벌써 다시 집으로 기어들어가서 부모의 밥을 먹었을 것이다.'

고 덕기는 생각하였다.

"안 나가려나?"

또 한 번 재촉을 하여보았다.

"자네 같은 귀골은 일분이 민망할걸세마는 어쨌든 이리 좀 앉게."

하고 방주인은 이불을 밀쳐놓고 앉는다. 그러나 덕기는 구중중해서 앉기가 싫었다.

"이는 없네. 이 올릴까봐서 못 앉겠나?"

그런 중에도 병화는 연해 비꼬는 소리만 한다.

"미친 사람! 그러지 말고 어서 옷을 입게."

"머리가 내둘려서 못 나가겠어. 그런데 오늘 떠나나?"

"사흘 동안 물렸네."

"?"

병화는 실망한 낯빛으로 물었다. 이 사람이 오늘 안 떠나면 어제 약조한 돈이 오늘 틀리기 때문이다.

"증조 할아버지 제사 지내고 가라고 하셔서."

"자네, 증조부 뵈었나?...코빼기도 못 본 증조부 제사에 자네가 꼭 참례를 해야 제사를 받으시겠다고 천당인지 극락 세계에선지 라디오가 왔던가?"

하며 병화가 웃으려니까 덕기도 마주 웃으면서,

"에이 미친 사람!"

하고 눈을 찌푸려 보인다.

"하여간 자네 증조부 덕에 내 일이 낭팰세."

"?"

"자네가 어서 떠나야 내 형편이 피지 않겠나!"

"그렇게 급한가?"

"급하고말고- 오늘은 안집에서 그대로 있네. 사람들이 무던해서 내게는 아무 말도 없지만 그런 눈치기에 이래저래 싸고 드러누워서 실상은 자네 오기만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네."

덕기는 무엇보다도 주인집이 가여웠다.

"딸은 공장에도 아니 갔나?"

"간 모양이지만 뭘하나. 당장 몇 푼이라도 들고 돌아오는 게 아니니까."

"주인 사내는 무얼 하게?"

"놀지! 집안 모탬이라고는 유치장 밥이나 콩밥을 나가 먹어서 한 식구 덜어 주는 것 외에는 별수 있나!"

하며 병화도 코웃음 치고 덕기가 내놓은 담뱃갑에서 담배를 꺼내 붙인다.

"? 부랑잔가? 주의잔가?"

덕기는 놀라운 눈치로 묻는다.

"그저 그렇지!"

하고 병화는 말을 돌려서,

"아무것도 가진 것은 없나?"

하고 급한 문제부터 꺼낸다.

"글쎄 아직 노비를 못 타서 많이는 없어두 한 5원 내놓고 가려던 참일세."

"그럼 됐네. 이리 주게."

병화는 급한 듯이 손을 내민다. 병화는 5원을 받아들고 마루로 나가면서 아주머니를 부른다. 안방에서도 마주 나오며 수군수군하다가,

"에구 손님께 미안해서 어떡하나!"

하고 주부의 얕은 목소리가 두세 번난다.

덕기는 좋은 일 하였다는 기쁜 생각과 주인에게 대한 자랑도 느꼈지만 처음 목도하는 이 광경이 너무나 참담하여 도리어 송구스러웠다.

"자아, 이젠 나가세."

병화는 이제는 한시름 잊었다는 듯이 화기가 돌면서 부덩부덩 옷을 입고 앞장을 선다. 덕기는 무엇 하나 놓치고 가는 듯이 서운하였다. 생각해보니 이 집에는 또다시 올 일이 없을 텐데 주인이란 사람과 주인 딸이 보고 싶다. 주인보다도 이 집 살림을 혼자 벌어대고 주의자 사이에서 똑똑하다고 칭찬이 놀랍다는 주인 딸이 까닭없이 호기심을 끌었다. 실상 생각하면 오늘 여기 나온 동기가 딸도 좀 보겠다는 몽롱한 호기심이 반은 되었던지도 모른다.

"자네 자당께서는 자네가 여기 있는 걸 아시겠지? 설마 이 꼴을 보시면야 어느 때까지 그대로 내버려 두시겠나?"

덕기는 잠자코 걷다가 지금 속생각과는 딴전의 소리를 하였다.

"가만 내버려 두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냐마는 우리 어머님도 하느님의 딸이 아닌가?"

하고 병화는 냉소를 한다.

 

 

 

너만 괴로우냐

병화가 자기 모친까지를 비웃는 듯한 빙퉁그러진 소리를 하는 것이 덕기에게는 못마땅한 생각이 들었다.

계모 같으면 그도 모르겠지마는 병화의 모친이 계모가 아닌 것은 번연히 아는 터이다.

중학교 시대에는 병화의 부친이 황해도 지방에 목사로 내려가 있었기 때문에 그 부모를 별로 만나본 적이 없었으나 그래도 졸업 임시에는 한두 번 학교로 찾아온 것을 보았었다.

3년 전 일이니 기억에서 몽롱하나 그래도 얌전한 기솔 아낙네이었던 인상이 남아 있다. 지금이지만 중학교를 졸업한 후 덕기는 3년이나 경도에 가 있었고 병화는 일년 뒤떨어져서 동경에 건너갔다가 올가을에- 해가 바뀌었으니 작년 가을이다- 서울로 돌아왔었기 때문에 두 청년은 그리 자주 만남 기회가 없었더니만큼 피차에 더욱이 덕기는 병화의 부모를 만나 볼 새가 없었다.

따라서 그들의 인품은 짐작할 수 없으나 아무러면 같은 서울 안에서 자식이 이렇게 곤궁한 것을 모친까지 모른 척하고 내버려두랴 싶었다. 그건 하여간에 이 두 청년이 졸업 후에 만남 것은 병화가 도경에 갈 적 올 적에 경도로 들른 것과 이번에 와서 만난 것 얼러 세 번째요 그럭저럭 상종이 드물었었다.

학교에 있을 때도 그리 자별한 친구는 아니었다. 그간 피차의 부모가 교회의 교역자라는 것과 또 자기 자신들이 교회에 다니는 점으로써 얼마쯤 서로 친하였던 것이다. 그것도 xx고등보통학교 3학년부터는 병화가 덕기를 따라서 x교 예배당으로 올라온 뒤부터이었다.

그러나 이 천진스러워야 할 두 아이들이 교제도 어른들의 버릇으로 친하긴 하면서도 제각기 제 생활을 들추어 보일까보아 경이원지하는 그러한 친절로써 사귀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중학교를 떠난 뒤에 피차 교회와 멀어지게 되니까 또 다시 새로운 친분이 서로 생기게 된 것이다.

경성제국대학의 법문과에 지원을 하였다가 실패한 병화가 일 년을 부모가 있는 해주로 내려가서 다음 해의 입학 준비를 하여 가지고 일 년을 뒤떨어져서 동경 가는 길에 경도에 들렀을 때 병화는 덕기더러 이런 소리를 하였다.

"아버니께서 동지사(경도에 있는 대학) 신학부에 들어가거나 거기서도 안 되거든 동경으로 가서라도 신학을 공부하라고 하시기에 네에 네에 하고 떠나오긴 했지만, 난 죽어도 목사 노릇은 아니할 텔세. 목사는커녕 실상 내 짐 속에는 바이블(성경책)도 없네."

이 말을 들을 때 덕기는 친구의 말에 놀라기보다도 내심으로 반색을 하였었다. 종교 생활에 대하여 병화처럼 노골적으로 대담히 반기를 들 수 없이 머뭇머뭇하고 있던 차에 옛 동무- 더구나 같은 처지에 놓인 교회 동무가 이러한 말을 할 제 동감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당장 학비가 오지 않을 게 아닌가? 더구나 자네 아버지께서는 어떻게 해서 입학만 되면 교회 속에서 학비라도 끌어내실 작정이실지도 모르지?..."

병화의 집이 그리 넉넉하지 않은 것을 아는 덕기는 그때부터 이러한 염려까지 했던 것이다.

"그야 내가 자네보다 더 생각했지! 허지만 몇 해 동안 학비 얻어쓰자고 자기를 팔 수 있나?- 자기의 신념을 팔 수야 있나? 만일 신앙을 잃고서 그 잃은 신앙의 내용을 공부한다면 그건 대관절 무엇인가? 예수를 팔아먹는 것이 아닌가? 송장을 빼놓고 장사 지내는걸세그려! 죽은 자식의 수의는 지을지언정 파묻은 자식의 설빔을 짓는 사람은 없겠네그려? 여보게, 사리가 그렇지 않은가?..."

그때에 병화는 이렇게 떠벌려놓으면서 기고만장이었다.

"여보게, 세상은 움직이네. 가령 종로 바닥에 자선 냄비를 걸어놓고 기도를 올리는데 사대문 바람에 이리 휩쓸리는 거지 깍쟁이가 돈 지키는 사람이 조는 줄 알고 그 자선 냄비에서 동전 한푼을 훔치다가 들킬 때 자네는 그 거지를 붙들어 때리고 절도범으로 옭아 넣겠나? 혹은 회개하고 부활하라고 기도를 또 한 번 하겠나? 우선 그것만 말하게!... 여보게, 세상은 움직이고 앞에서는 거지가 훔치네! 그리고 자네나 내나- 아니 자네 부친이나 우리 아버지나 그 자선 냄비를 털외투를 입고 나서서 지키고 섰어야 옳을 건가?..."

그 때 병화는 입에서 거품을 품고 팔짓을 해가며 이러한 열변도 토하였던 것이다. 그는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중학교를 졸업하자 사상이 돌변하였고 첫 서슬이니만큼 유치는 하였어도 순진하고 열렬하였었다. 그 병화를 지금 앞에 세우고 석다리(서대문 밖)를 지나 내려오며 덕기는 그 뒤의 병화의 생활과 지금 생활을 곰곰 생각하여 본다.

-그렇게 하고 동경으로 간 병화는 와세다 전문부의 정경과에 이름을 걸어 놓고 한 학기쯤 다녔으나 부친이 학비를 보낼 리가 없었다. 애초에 경성제대의 법문과에 입학하려는 것을 허락하였던 부친이니 제대로 내버려두고 아무리 어려운 중에라도 뒤를 대어 주었더라면 모든 일이 순편하였을지 몰랐으나 두 고집이 맞장구를 쳐서 학비는 끊어지고 말았었다.

거기에는 물론 병화가 노골적으로 반항하는 편지를 한 탓도 있었다. 제 사상이 변했더라도 어름어름 부친의 비위를 맞춰나갔더라면 좋겠지마는 변통성 없는 어린 마음에 곧이곧대로 나갔었던 것이다.

그러나 굶으며 동경 바닥에서 일년간 뒹구는 동안에는 생활이 그러니 만큼 사상이나 기분이 더욱 과격하여졌다. 부친과의 거리가 천리 만리 떨어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할 수 없이 경도까지 노자를 만들어 가지고 덕기에게 귀국을 시켜 달라고 왔을 때 덕기도 자기와도 사상으로 거리가 여간 멀어지지 않은 것을 보고 놀랐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두 달도 못 되어서 부친과 충돌이 생겼다. 밥상 받고 기도 아니하는 데서부터 충돌이 생겼던 것이다. 아비 말 안 듣고 신앙도 빠뜨리고 다니는 자식은 어서 뒈져버리든지 나가버리든지 하라고 야단을 친 것이었다.

"죽기는 싫으니까 나는 나갑니다."

하고 덮어놓고 나왔던 것이다.

"여보게, 그러지 말고 그때 얌전히 신학교에나 들어갔었더면 좋지 않았겠나!"

덕기는 혼자 생각에 팔려서 걷다가 밑도 끝도 없는 말을 불쑥 내놓으며 웃었다.

"무어? ?"

병화는 마주치는 찬바람에 눈물이 글썽하여진 눈을 안경 속에서 번득거리며 불쾌한 듯이 묻는다. 자기의 처지가 이 사람에게 가엾이 보여서 이런 소리를 듣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조금 아까 5원 받던 것까지 손에 쥐었으면 내던지고 싶을 만큼 불쾌한 것을 참았다.

"아니, 자네 뒷머리를 늘인 것을 보니 경도에서 만났을 제 생각이 별안간 나네그려..."

"그래 어쨌단 말인가?"

병화는 점점 시비조다.

"그렇게 골을 낼게 아니라 그랬더라면 지금쯤은 편안히 자선 냄비를 지키고 섰을 것이란 말일세. 하하하."

하고 덕기는 또 웃었다. 덕기는 물론 그때에 병화의 말을 되풀이하여 목사가 되었더면 좋지 않았느냐는 말이었으나 병화 귀에는 몹시 거슬렸다.

"자네의 그 5원은 자선 냄비에서 훔친 것은 아닐세. 언제든지 갚음세!"

병화는 이런 소리를 내던지고 휙 돌아서서 인사도 없이 가버린다. 덕기는 웃으면서 바라보다가 잠자코 따라섰다.

"어린애처럼 왜 그러나?"

"머리가 아파서 난 들어가 누워야 하겠네."

병화는 여전히 걷는다.

"내가 공연한 소리를 해서 잘못 되었네. 하지만 그까짓 돈 말은 꺼내지 말게. 내가 아무려면 그따위 소견으로 그랬겠나. 다만 자네가 좀 돌려 생각을 하고 머리를 숙이고 집으로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그런걸세."

덕기가 손을 붙들고 달래니까, 병화도 하는 수 없이 멈칫 선다.

"어쨌든 자네와 언제까지 이대로 교제해나가기는 어려울 것 같으이. 자네가 내게로 한 걸음 다가오거나 내가 자네에게로 한걸음 양보를 하지 않으면... 그러나 피차에 어려운 일이요 이대로 나간다면 무의미할 뿐 아니라 공연히 자네게 신세나 지는 셈쯤 될 거니까."

병화는 종래의 교분으로 현상 유지를 해오기는 하나, 돈 있는 친구와 사귀기가 어려운 것을 행각하고 친구의 교의도 아주 청산을 해버리겠다는 불끈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도 그런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닐세마는 하여간 가세. 어디든지 들어 가서 천천히 이야기하고 헤어지세그려."

하며 덕기는 붙들고 발길을 돌렸다. 병화도 잠자코 돌아섰다. 다시 감영 앞까지 와서 저녁 먹을 데를 찾다가 남대문 편으로 그대로 내려서서 일본 국숫집 앞까지 왔다. 쌀쌀한 저녁 바람이 어두워가는 길거리를 휩쓸었다. 전등불이 환한 문 안으로 덕기가 앞장을 서 들어가려니까, 두어 걸음 뒤떨어졌던 병화가 들어오려다 말고 또 돌아나간다. 덕기는 이 사람이 또 그래도 객기를 부리나 하고 따라나가보니 병화는 문 밖에서 남대문 편을 바라보고 섰다. 한간통 앞에서는 흰 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은 색시 하나가 목도리를 오그려 두 볼을 가리고 총총걸음을 걸어온다. 병화는 이 여자를 기다리고 섰는 모양이다.

머리는 틀어 올렸으나 열 예닐곱쯤 되어 뵈는 어린 아가씨다.

덕기는 병화의 하숙집 딸이군 하고 생각하였다.

"선생님, 여기 웬일이세요?"

하며, 덕기를 바라보는 필순도 그 학생이 누구인 것을 대번에 짐작하자 부끄러운 듯이 외면을 하고 잠깐 멈칫하다가 그대로 지나치려 한다.

"춥지?..."

병화는 인사로 한마디하고 무슨 말을 걸려니까 덕기가 다가서며 귀에 다 대고,

"추운데 잠깐 녹여 가랬으면 어때?"

하고 수군거린다.

실상은 병화도 그러고 싶은 생각은 있으나 모르는 남자와 음식집에 끌고 들어가기가 안 되었을 뿐 아니라, 당자도 들을 것 같지도 않고 지금 막 말다툼을 한 끝이라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덕기의 말이 퍽 간절하고 또 아침도 변변히 먹지 못하고 갔을 텐데 이 쌀쌀한 날 용산서 걸어들어오는 것을 생각하면 무어나 먹여 보냈으면 하는 생각이 역시 간절하였다. 그뿐 아니라 자기 친구의 사진들을 구경시키다가 덕기 사진을 보고 칭찬을 할 때 언제든지 놀러 오면 인사시켜 주마고 실없는 소리도 한 일이 있던 것을 생각하면 당자도 좋아할지 몰랐다.

병화는 그래도 주저주저하며 뒤만 바라보다가 몇 걸음 쫓아가며,

"필순아 이리 좀 와."

하고 불렀다.

"왜요?"

하고 싹 돌아선다.

"글쎄 이리 좀 와."

필순은 느럭느럭 다가온다.

"춥지? 그 먼 데를 걸어오느라 다리도 아플 테니 나하고 잠깐만 쉬어서 같이 가."

"싫어요."

하고 한간통이나 떨어져 섰는 덕기를 바라본다.

"상관없어. 그때 내가 말하던 친군데 잠깐 이야기하고 갈 게니 같이 들어가서 불이나 쬐고 가요."

하고 병화는 덮어놓고 끈다.

필순은 좀 망단하였다. 병화의 친구들이 오면 같이 앉아 놀기도 하고 또 병화의 친구는 대개 자기 부친의 친구이어서 모두 통내외하고 무관히 지내니까 다른 때 같으면 조금도 꺼릴 것 없으나 저 사람이 부잣집 아들 조덕기거니 하는 생각이 앞을 서서 어쩐지 제 꼴 사나운 게 부끄럽고 더구나 음식집에 끌려가는 것이 구칙칙한 듯하여 창피스러웠다. 뱃속이 비었을수록 더 그런 생각이 들어서 용기가 아니 났다.

"상관없어! 요릿집도 아니요, 일본 소바(국수)집인데 불만 쬐고라도 가요."

하고 병화는 잡담 제하고 앞장을 세우고 들어갔다. 필순도 하는 수 없이 끌려들어갔다.

먼저 들어와서 난로 앞에 섰던 덕기는 반색을 하면서 자리를 비켜선다. 세 사람은 난로를 옹위해 섰다.

"자아, 이 친구는 조덕기라는 모던 보이, 이 아가씨는 고무 공장에 다니시는 이필순양- 조군이 불량 소년 같으면 이렇게 소개를 할 리가 없지만 그래도 불량은 아니니까 이런 영광을 베푸는 걸세."

병화는 아까 불뚝 심사를 부리던 것은 잊어버린 듯이 너털웃음을 내놓았다.

두 남녀는 웃으면서 고개를 숙여 보였으나 필순은 얼굴이 발개지며 난로 연통 뒤로 얼굴을 감추어 버렸다.

덕기의 눈에는 필순이 미인으로 보였다. 아직 자세히 뜯어볼 수 없으나 밝은 데서 보니 나이는 들어 보이면서도 상글상글한 앳된 티가 귀여운 인상을 주었다.

옷 입은 것도 얄팍한 옥양목 저고리 하나만 입은 것이 추워 보이기는 하나 깨끗하고 깜장 세루치마 밑에 내다보이는 버선 등도 더럽지는 않다 공장에 다니는 계집애들이 구두 모양을 내고 인조견으로 울긋불긋하게 차린 것에 비하면 얼마나 조용하고도 수수한지 몰랐다.

테이블로 와서들 앉으니까 필순은 손에 들었던 조그만 보따리를 무릎 위에 가만히 숨기듯이 내려놓았다. 도시락갑이 땡그렁 소리를 낼까보아서 조심하는 것이다. 병화는 또 그 도시락 그릇을 보고 아침을 못 먹었는데 어제 저녁밥을 싸두었다가 가지고 갔는가 하는 생각을 하니 가엾은 정이 났다.

덕기가 음식을 시키려니까 병화가 필순의 몫은 닭고기 얹은 밥을 시키라고 하였다. 그러나 필순은 자기만 밥을 먹이려는 것은 굶은 줄 알고 그러는 것 같아서 얼굴이 빨개지며 싫다고 굳이 사양하였다.

우선 국수가 나오고 술이 벌어졌다. 구수한 국수 냄새에 비위가 당기기도 하나 지금쯤 집에서는 밥이나 지었나? 그대로들 앉으셨나? 하는 조바심에 필순은 젓가락 들기가 어려웠다. 그뿐 아니라 걸신 들린 사람처럼 허겁지겁을 해 먹는 것같아 보일까 보아서 머뭇거리기만 하고 앉았다.

"집엔 걱정 없어 내가 어떻게 해놓았으니까 염려 말고 어서 먹어요."

병화가 툭 터놓고 이런 소리를 한다. 필순은 이 말에 안심은 되었으나 병화가 떠드는 게 또 창피스럽기도 하였다.

부친과 병화들의 감화를 받아서 구차라는 것을 창피한 것, 부끄러운 일리라고는 생각지 않으나 집안 이야길랑은 여기 들어오기 전에라도 하여주든지 스스러운 사람 앞이니 잠자코 있어주었으면 좋을 것을 기탄없이 탕탕 말하는 것이 듣기 싫었다.

'잔칫집에 데리고 다녔으면 꼭 좋을 사람이다!'

필순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점점 더 자리가 불편하여 그대로 가버리는 것을 공연히 들어왔다고 후회를 하였다.

그러나 그건 고사하고 돈이 변통되었으면 쌀 나무를 사들여오고 할 사람이 없는데 어쩌나? 아버지는 단 벌 두루마기를 빨아 입느라고 어제부터 갇혀 들어앉았는 터이요... 어머니가 두루마기를 오늘 다아 지셨을까?... 이러한 자질구레한 걱정을 하느라니 날은 추운데 모친이 혼자 쩔쩔매는 양이 눈에 선히 보이는 것 같아서 좀이 쑤시고 곧 일어나고만 싶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 돈이 어디서 생겼을까 하는 생각이 돌 제 눈이 번쩍 띄는 것 같고 얼굴이 확확 달아 올라왔다. 사실 찬바람을 쐬다가 더운데 들어오기는 하였지마는.

"어서 자시지요. 우리 집에 한번 놀러 오세요. 내 누이하고 사귀어 노세요. 올에 열일곱, 아니 양력설을 쇠었으니까 열여덟이 되었습니다."

덕기가 비로소 이런 말을 붙였다.

필순은 덕기의 말이 귀에 들어오는 둥 마든 둥하였으나 고개만 꼬박해 보였다. 속으로는 여전히 딴생각- 필시 돈이 덕기에게서 나온 것이리라, 덕기가 오늘 찾아왔다가 밥 못 진 것을 보고 돈을 내놓고 종일 굶어 누운 김 선생을 끌고 나온 것이리라 하는 생각에 팔려서 앉았었다.

"참 어서 식기 전에 먹어요."

병화도 뜨거운 국수를 걸신스럽게 쭈룩쭈룩 먹다가 이렇게 권하고 나서,

"참 자네 누이가 벌써 그렇게 컸나? 꼭 동갑세로군! R학교 고등과에 다니지?"

", 이제 4년급 되는군."

"허지만 자네 누이와 교제는 안 될걸! 나는 자네를 감화를 시킬 자신이 있어도 여자란 암만해두 마음이 약해서 그런 부르주아의 온실 속에서 자란 귀한 따님하고 놀면 허영심만 늘어가고 못쓰지!"

필순이 부잣집 딸과 사귀면 마음이 변해갈 것을 염려해하는 말이나 덕기는 듣기 싫었다.

"부르주아란 우리가 무슨 부르란 말인가? 일본 정도로만 본대도 중산계급도 못 되는 셈일세.

그는 하여간 내 누이가 그런 요새 계집애는 아닐세."

덕기는 심사 틀리는 것을 참고 조용히 이런 변명을 하였다. 필순은 병화가 너무 사리는 것 없이 남 듣기 싫은 소리를 텅텅 하는 것이라든지 자기가 아무러면 그런 허영심 많은 사람이랴 하는 마음이 들어서 못마땅하였다.

", 어서 좀 같이 드십시다요. 시간이 늦으면 댁에서 궁금해하실 텐데 외려 미안합니다."

덕기가 또 이렇게 권하는 바람에 필순은 겨우 저를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늦어져서 애가 씌는데 그런 사정까지 보아주는 남자의 다심한 인사가 필순에게는 고마웠다.

병화는 필순의 몹시 수줍어하는 것이 못마땅하였다.

다른 남자에게는 아무리 초대면이라도 할말은 또랑또랑하게 하고 과똑똑이란 별명을 들은 만큼 매섭게 굴던 사람이 오늘에 한하여 덕기의 앞이라고 별안간 꼭 들어앉았던 구식 처녀처럼 몸둘 곳을 몰라하는 양이 보기 싫었다.

'돈 있는 남자라니까? 조촐한 미남자니까?...'

병화는 공연히 소개를 하지나 않았나? 하는 엷은 후회도 났다. 결코 질투심은 아니다. 어린애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들어놓거나 모처럼 공들여서 길러 가는 사사의 토대가 흔들려서는 안 되니까 걱정이 된다고 병화는 자기의 심중을 홀로 살펴보며 스스로 변명을 하였다.

필순은 그래도 '덴뿌라 우동' 한 그릇을 그럭저럭 다 먹었다.

저를 짓고 가만히 입가를 씻은 뒤에 병화를 보고 먼저 가겠다고 소곤소곤한다.

덕기는 무엇을 더 먹여 보내려 하였으나 병화가 늦기 전에 보내야 한다 하여 두 청년은 문간까지 필순을 배웅하여 내보냈다.

"공부라도 좀 시켰더면 좋을 것을, 똑똑하데!"

하며 덕기는 진심으로 가엾은 생각하고 진심으로 칭찬하였다.

"정 그렇거든 자네가 공부나 시켜주게그려."

"당자가 그럴 생각만 있으면 그리 어려울 것도 없지. 화개동 집에 가서 있으면 누이도 혼자 적적해하는데 마침 좋고 아무러면 학교 뒷배야 하나 못 보아 주겠나."

병화는 실없이 한 말인데 덕기는 진담이다.

"날 좀 그렇게 시켜주게그려. 나는 사내니까 안 되겠나?"

하고 병화는 비꼬아보다가,

"돈 있는 놈이 여학교 공부시키는 것은 알조 아닌가? 자네두 자네 부인 하나에만은 만족을 못 하겠나보이마는 그애가 첫눈에 그렇게 드나? 허허허..."

하고 또 듣기 싫은 소리를 한다.

"어디까지든지 나를 그렇게 모욕을 주어야 시원하겠나?"

덕기는 불쾌히 대거리를 하다가,

"허지만 자네두 우리 아버지와 타협을 하겠거든 방 하나 치우라 하고 가서 있게그려."

하며 웃어버린다.

"고만두게. 자네 부친하고 타협하려면야 우리 부친하고 벌써 타협했게!"

하고 병화는 머리가 그저 내둘린다고 고뿌를 가져다가 또 고뿌찜을 한다.

"이렇게 먹고 내일 또 머리가 내둘린다고 또 먹어야 할 테니 언제 맑은 정신이 들어보나?"

덕기는 딱한 듯이 친구의 술잔을 바라보다가,

"그러지 말고 그야말로 타협을 하고 댁으로 들어가게. 언제까지 이런 방랑 생활을 하고서 무슨 일이 되겠나?"

하며 진담으로 권고를 하여보았다.

"타협? 요컨대 아버지와 타협이 아니라 밥하고 타협하고 밥을 옹오하는- 부르주아의 파수 병정하고 타협을 하라는 말이지?"

"부자간에 그런 이론을 세워서 담을 쌓는다는 게 말이 되는 수작인가? 타협이 아니라 인륜으로 생각하면 어떤가?"

"하여간에 자기의 직업적 신앙에 따라오지 않고 입내를 내지 않는다고 내쫓는 부모면야 자식이 부모의 소유물이나 노예가 아닌 이상, 자식도 제 생활이 있는 이상 어찌하는 수 없지 않은가?"

병화는 취기와 함께 점점 열변이 되어간다.

"그는 하여간에 부자간 윤리라는 것이야 어찌하는 수 없지 않은가? 거기에는 타협이니 자기 생활이니 하는 문제가 애초에 붙을 리가 있나!"

적기는 자기가 꺼내놓은 타협이란 말을 병화가 부자간의 관계를 두고 한 말인 줄 오해할까보아 또 한 번 따졌다.

"그따위 소리 이젠 집어치우세. 자네는 자네 길로 가고 난 내 길로 가면 그만 아닌가."

병화는 내던지는 소리를 한다.

"자네는 아까도 곧 절교라도 할 듯이 날뛰대마는 나 같은 놈은 실상은 있어 필요할 걸세."

덕기도 냉연한 어조다.

"무엇에? ! 가끔 돈푼 구걸해 쓰니까?"

", 그것두 말이라고 하나?"

하고 덕기는 쏘아본다.

"하여간 정말 우정이란 것은 없네. 더구나 동지애면야!"

병화는 무슨 생각에 팔려 앉았다가 한마디 내놓는다.

"소위 동지애- 동지의 우정이란 점으로는 자네게 불만일지 모르네마는 어쨌든 자네만이 괴로운 것은 아닐세..."

덕기도 침울한 표정이었다.

"그런 건 부르주아의 호사스러운 고통- 호강스러운 센티멘틀이겠지."

병화는 또 비꼰다.

"자네 같은 사람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지 모르지만 우선 우리 집안- 삼대가 사는

우리 집안 속을 모르니까 타협할 수 있듯이 안더러도 타협 하네그려? 그야 상속받을 것도 있으니까!"

하고 병화는 또 시달려준다.

덕기는 잠자코 일어나서 셈을 한다.

 

 

 

새 누이동생

덕기는 조부 몰래 빠져나와 총독부 도서관에 들어가 앉아서 반나절을 보냈다. 급히 참고하여야 할 것은 아니나 어디서 시간 보낼 데가 없기 때문이다. 제삿날 집에 들어앉았으면 영감님이 안방으로 드나들며 잔소리하는 것도 듣기 싫고, 안에서는 여편네들이 법석들을 하는 통에 부쩝을 할 수 없는 데다가 생전 붙잡아 보지 못하던 모필로 조부 앞에 꿇어앉아서 축문을 쓰기도 싫고 제물을 괴어 올리는 데 시중을 들기도 싫었다. 하여간에 오늘 은 조부의 분부가 내리기 전에 일찌감치 빠져나왔다가 어둡거든 들어가자는 것이었다.

덕기는 전깃불이 들어오기 전에 도서관에서 나와서 어디 가 차나 먹을까 하고 진고개로 향하였다. 병화 생각도 나기는 하였지만 병화를 끌면 또 술을 먹게 되고 게다가 사람을 꼬집는 그 찡얼대는 소리가 머릿살도 아파서 혼자 조용히 돌아다니는 편이 좋았다. 우선 책사에 들어가서 책을 뒤지다가 잡지 두어 권을 사들고 나와서 복작대는 거리를 예서 제서 흘러나오는 축음기 소리를 들어가며 올라갔다.

일전에 병화가 갔던 바커스 생각이 났다. 경애가 여전히 잘 있나? 하는 생각도 떠오른다. 그 동안 며칠이 퍽 오래된 것 같기도 하고 그날 저녁 일이 먼 날 꾸었던 꿈같이 기억에 흐릿하기도 하다. 떠나가기 전에 한 번 더 가서 경애를 만나보고 자세한 사정이나 물어보고 가려는 생각이 없지 않았고, 또 그저께 저녁에 병화와 새문 밖 '소바' 집에서 나와 끌고 그리 가볼까 하는 생각도 하였으나 병화를 데리고 가면 조용히 이야기가 되지 못할 것이요, 공연히 부친의 감추어진 허물까지 병화에게 알리게 될 것이 싫어서 언제든지 가면 혼자 가보리라 하는 생각이었었다. 그러나 좀처럼 갈 용기가 아니 났다. 진고개로 향할 때부터 몽롱히 그런 생각이 아니 나는 것은 아니었으나,

'하지만 거기에는 술뿐이요 밥이 없어...'

바커스가 가까워오니까 덕기는 이런 생각을 하고 그만 두어 버리겠다고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안가려는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 못 가면 못 가보고 떠나는 게다. 그 동안에- 봄방학에 다시 귀국할 동안에 또 어디로 불려갈지 모르니까 결국 다시는 영영 못 만날지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래도 그대로 가버리는 것이 섭섭하고 인사가 아닐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안 찾아가본다고 인사가 아닐 것이야 무어 있나! 자기네들이 해결할 문제면 자기네들이 해결할 것이요, 또 벌써 해결되었으면 고만 아닌가...'

이렇게 내던지는 생각으로 단념해버리려고도 하였다. 그러나 딸- 누이가 살았다면 문제가 그렇게 간단할 것도 같지 않다.

'간단치 않으면 어떻게 또 하나? 간단치 않을수록 내 힘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요, 자기네들도 그만 생각들이야 있겠지!... 그러나 한 핏줄이다!... 부모가 다아 세상을 떠난다면 그 애는 누가 거두나?'

덕기는 머릿속이 띵하였다. 부모들의 일이니만큼 또 게다가 경애란 사람이 단순히 서모이었던 사람이 아니라 자기와는 어렸을 때 동무니만큼 모든 일이 거북하다. 덕기는 성질이 무뚝뚝하게 무어나 딱 끊어버리는 사람 같으면 아무 일 없지만 그렇지도 않은 성미다. 너무 다심하고 다감하니만큼 무엇을 보거나 듣고는 혼자 꺼림해하는 것이다.

'어쨌든 차나 먹어가며 좀 더 생각을 해보고 가든 말든 하자.'는 생각을 하며 찻집을 고르며 천천히 걷는다.

"어디 가요?"

진고개 복작대는 길바닥이라 뒤에서 이런 여자의 목소리가 들릴 법하나 덕기는 그대로 걷는다.

"나 좀 봐요!"

바로 뒤에서 같은 목소리가 난다. 덕기는 귀가 번쩍하며 휙 돌아다보았다.

경애가 딱 섰다!

웃지도 않는 얼굴로 누구를 나무라는 사람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주 바라본다.

덕기는 마침 이렇게 만난 것이 신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어디 가슈?"

경애는 그제야 조금 상글해 보인다.

"좋은 찻집은 없나 하고 찾는 중인데..."

하고 덕기도 의미 없이 웃어 보인다.

"그런데 왜 그저 안 떠났소?"

"내일이면 떠날 텐데..."

덕기는 말끝을 어떻게 아물려야 좋을지 몰라서 어름어름한다. 깍듯이 공대도 하기 싫고 반말도 하기 어려운 터이다.

"내가 바쁘지만 않으면 어디든지 같이 가서 이야기라도 좀 하겠지만..."

하며 경애는 눈을 말똥히 뜨고 무슨 생각을 한다.

"그리 늦지도 않았는데 잠깐 근처에서 저녁이나 먹읍시다그려. 그렇지 않아도 좀 다시 한번 들러볼까 하였던 터인데..."

"이야기할 것도 별로 없지만, 아이가 감기로 대단해서 지금 가는 길인데..."

"어디루든지 잠깐 갑시다."

'아이'라는 말에 덕기는 더욱이 붙들어 물어보고 싶었다.

"그럼 잠깐만..."

하고 경애는 따라섰다.

덕기는 나란히 서서 걸으면서 이전 경애와 지금 경애를 비교해 보았다. 벌써 5년만에 비로소 만났건마는 얼굴은 조금도 상한 데가 없어 보이고 키도 그때보다 더 컸을 것 같지도 않았다. 다만 얼굴 표정과 몸 가지는 것, 수작 붙이는 것이 달라졌을 뿐이다.

'이 여자가 바커스 같은 그런 조그마한 술집의 고용살이꾼이라고 누가 곧이 들을꾸?'

덕기는 경애의 양장한 모양을 보고 혼자 생각을 하였다. 속에다가는 무엇을 입었는지 어스름한 속에서 보이지 않으나 위에 들쓴 짙은 등황색 외투와 감숭한 모자와 서슬 있는 에나멜 뾰족구두로 보아서 어디 무도장이나 무대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만한 차림차림이다.

"아이는 지금 어디 있는데, 대단하진 않으우?"

한참만에 덕기가 입을 벌렸다.

"창골 어머니한테. 그런데 돌림감긴지 벌써 사흘째나 되는데 점점 더해 가나 봐- 뒈질 거면 어서 뒈저버려두 좋겠지만."

경애는 이런 소리를 하고 입을 뾰족 내민다.

다른 데는 번화할 것 같아서 역시 일본 국숫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할말이 많을 것 같으나 막상 마주 앉고 보니 할말이 없었다.

"다들 안녕하슈?"

경애가 먼저 입을 벌렸다.

"예에."

"아버지께서는 여전히 '아아멘' 하시구?"

경애는 모멸하는 냉소를 띄운다.

"그렇지요."

덕기도 열없는 웃음을 띄웠다. 부친의 말이 나오는 것은 괴로웠다.

경애는 저녁을 먹고 나왔다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덕기도 한편이 가만히 앉았으니 먹고 싶지 않아서 국수 한 그릇만 시켰다.

"지금 있는 데는 어떻게 간 거요?"

덕기는 우선 궁금한 것을 묻기 시작하였다.

"왜요?"

하고 경애는 웃기만 하다가,

"그 주인 여편네가 내 동무지요. 그래서 첫솜씨고 하니 같이 해보자고 끌어서 심심하기에 그대로 가본 것인데 재미있어요."

하고 살짝 웃는다.

덕기는 더 캐어묻기도 어려웠다.

"그애 몇살 되었소? 계집애던가..."

"이제 다섯 살이라우. 허지만 아들이었더면 더 성이 가셨을 게야."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이렇게 대답을 하다가,

"그애야말로 예수--계집애 예수지."

하고 또 냉소를 한다.

"왜요?"

"애비 없는 아이니까 말요."

"?"

"호적이나 했다구? 예수교인--목사님은 그런 딸은 소용없고 조씨 댁의 가문을 더럽히니까 으레 그럴 것 아니오."

뱉듯이 이런 소리를 할 때 경애의 얼굴에는 살기가 잠깐 떴다 꺼진다.

덕기는 잠자코 국수만 쫓겨가는 듯이 먹고 일어섰다.

"집은 좀 외지지만 한번 안 가 보시려우? 지금 와서야 어린 게 불쌍하니 어쩌니 하고 싶지도 않지만 어쨌든..."

경애는 '소바' 집에서 나와서 진고개 길을 같이 내려오며 이런 소리를 꺼냈다.

경애는 '어쨌든...' 하고 말끝을 흐려버리는 것은 '어쨌든 한 핏줄이 아니냐' 하고 싶었으나 차마 입에서 나오지를 않았던 것이다.

덕기도 말눈치를 못 알아들은 것은 아니나 가자고 선뜻 대답은 아니 하였다.

처음부터 모른 척해 버리거나, 자란 뒤에는 몰라도 앓는 아이를 일부러 찾아가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이도 생각이 들었다. 찾아가 볼 성의- 성의라는니보다도 애정이나 의리가 있다면 그것은 부친의 일이다. 쥐뿔나게 자기가 튀어 나설 일이 아닐 성도 싶었다.

'대관절 아버지는 어떤 생각이시고 얼만한 정도의 책임을 느끼시는 건가? 그는 그렇다 하고 민적을 안 해주면 그 애는 자라서 어떻게 되라는 샘인고!...'

이런 생각을 하니 경애가 가엾고 보지 못 한 이복동생이 불쌍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 두 모녀가 가엾으면 가엾을수록 부친이 또 못마땅하였다.

"내가 어째서 그렇게 되었는지 또는 어째서 지금 이렇게 되고 말았는지 그건 혹시 덕기씨도 알지 모르지만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내버려두고 내게 물을 것도 못 될 거요, 또 내가 말을 내놓고 시비를 따지고 싶지 않지만 어쨌든 그 애나 한번 가서 만나 보아 주시구려. 가만히 생각하면 역시 쓸데없는 일이요, 덕기씨로서는 성가신 군일이겠지만 그래도 그 애 쪽으로는 일 년 열두 달 한 번 들여다보는 사람도 없으니까. 아무리 어린것일지라도 너무 가엾어서..."

경애의 말은 의외로 감상적이었다.

'이 여자도 역시 보통 여성, 가정적 어머니로구나!'

덕기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가자고 응낙을 하였다.

"내 처지는 실상 생각하면 우스꽝스럽게 난처는 하지만 그 애를 생각하면 가 보는 것도 옳은지 모르고... 또 더구나 아버지께서 그대로 내버려 두신다면- 그리고 역시 조가로 태어난 다음해는 10년 후 20년 후에 아무도 돌볼 사람이 아주 없어진다면 나마저 시치미를 뗄 수도 없지 않소. 이왕이면 잘 길러놓아야지 어리삥삥하게 내버려두었다가 사람들 버려놓는다든지 한 뒤에 거둔댔자 꼴만 안 될 것이오..."

덕기는 말하기가 퍽 거북한 듯이 떠듬떠듬 이런 소리를 해 들려주었다. 조가의 집 가문 더렵히지 않게 주의하라는 다짐이다.

경애는 찬찬히 걸으면서 귀만 귀울이고 아무 대꾸도 아니하였다. 어쨌든 그만큼이라도 생각해주는 것이 나이 보아서는 숙성하고 고맙기도 하였다. 그뿐 아니라 사실 말하자면 네 아버지 대신에 너라도 맡아가거라 하는 생각이 있어서 데리고 가서 보이려던 것인데 이편이 꺼내기 전에 저편에서 그만큼 생각하고 있는 것은 반가웠다.

'어쨌든 한번 만나뵈어 놓고 자주 찾아다니게 하면 그러는 동안에는 버리지는 못하게 되는 게다!'

이런 생각도 경애는 하는 것이다.

경애의 집은 북미창정 쑥 들어가서였다. 덕기는 처음 오는 길이라 다시 찾아나가기도 어려울 만큼 구석지다.

"약이나 좀 지어 가지고 왔니?"

모친은 기다렸다는 듯이 내달으며 소리를 치다가 덕기가 뒤에 섰는 것을 보고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집은 비교적 오똑한 얌전한 기와집이라 전등을 환히 켠 마루 안을 들여다보아도 살림이 군색하지는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누구하고 사나? 아버지가 차려준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덕기는 마루 위로 뒤따라 올라섰다.

누웠던 어린 아이는 엄마를 보고 금시로 캥캥거린다. 하루에 한 번식 보지만 이 엄마에게 안겨보는 일은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누워서 짜증을 낼 뿐이지 엄마더러 안으라고는 아니한다.

"우지 마라, 손님! 손님!"

하고 덕기를 가리키니까 낯 서투른 손님을 말끔히 쳐다보다가 이번에는 아주 울어 버린다.

"우리 예수씨- 우리 그리스도!"

젊은 어머니는 외투를 벗어서 벽에 걸고 와서 앉으며 누운 아이를 무릎 위에 안아 올린다.

덕기도 아랫목 발치에 앉았다.

"오빠! 오빠야. 너 아빠 보고 싶다고 하였지?"

하며 경애는 아이를 추슬러서 덕기 편으로 얼굴을 내민다. 열기로 해서 얼굴이 빨갛게 피어오른 아이는 오빠라는 소리에 눈물 어린 두 눈을 놀란 듯이 크게 뜨고 바라보다가 어머니 겨드랑 밑으로 고개를 파묻는다.

"? 오빠 안 것 같으냐?"

하고 경애는 덕기에게로 향하여 웃는다. 자기 입에서 오빠라는 말이 거침없이 나오는 것이 속으로 우습고 열없기도 하지만 덕기의 귀에도 서툴렀다.

영리한 예쁜 애라고 덕기는 생각하며 벙벙히 앉았기가 안되어서,

"아직두 열이 있겠군! 한약을 좀 써보지요."

하고 경애의 모친을 쳐다보았다.

모친이란 사람은 좀 수다스럽고 좀 거벽스러워는 보이나 함부로 된 위인 같지는 않다.

이 때까지 눈치만 슬슬 보고 앉았던 모친은 입을 벌린 틈을 탄 듯이,

"이 양반이 맏아드님?"

하고 딸에게 눈짓을 슬슬 한다.

딸도 눈으로 대답을 하며,

"우리 어머니세요."

하고 덕기에게 인사를 시킨다.

", 이 양반이 맏아드님이야!"

하고 누구를 놀리듯이 뇐다.

아까부터 오빠라는 말에 알아차렸던 것이나 좀 못마땅한 얼굴빛으로 호들갑스럽게 대꾸를 하고 나서 수다를 늘어놓으려 한다.

어쩌면 그렇게 발을 뚝 끊으신단 말이오? 이 때 3년이 되어야 같은 서울 안에서 자식이 궁금해서라도 좀 들여다보아 줄 게 아니오? 내 딸하고 무슨 원수를 졌기로 그럴 수는 없는데..."

딸이 눈짓을 하다못해,

"그런 소리는 왜 이 양반보고 해요!"

하고 핀잔을 주니까 말을 멈칫하다가 그래도 분이 치미는 듯이,

"어쨌든 이걸 이만치라도 켜놓을 제야 이 늙은 년의 뼛골이 얼마나 빠졌겠는가를 좀 생각해보라고 가서 말씀이나 하우."

하고 얼굴이 시뻘개진다.

덕기는 의외의 큰소리에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꿀 먹은 벙어리처럼 고개를 수그리고 앉았을 따름이다. 애초에는 어떻게 된 일이요 또 무슨 까닭에 헤어졌는지 궁금은 하나 물어볼 수도 없었다.

", 장한 집 한 채 맡기었다고 어린애도 아니 돌아보니 그럴 자식을 왜 낳아 놓았더란 말이오?"

모친이 또 말을 꺼내려니까, 경애는 암상을 내며 모친더러 건넌방으로 가라고 소리를 친다. 덕기는 애매한 야단을 만나나 어찌하는 수 없었다. 그러면 ', 이 집은 아버지가 사주신 집이로군!' 하며 무슨 새 소문이나 들은 듯싶어 노파의 입에서 또 무슨 말이 나왔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하였다.

"왜 말 못할 게 무어냐? 무슨 죄졌니? 부자간이면야 부친에게 당한 듣기 싫은 소리라도 듣는 것이지... 당신이나 이애(어미 무릎에 안긴 애를 가리키며)나 아버지 잘못 만난 탓이지. 어쨌든 이제는 이 애를 데려 가슈. 당신두 이제는 공부 다하고 나온 모양이니 아버지가 안 데려다 기른다면 당신이라도 데려다가 기르슈. 어엿한 누이동생인데 데려다 기르기로 억울할 건 조금도 없을 게니!"

"가만히 계셔요. 어떻게 하든 좋도록 조처를 하지요. 그보다도 어서 약을 써서 병부터 나아야 하지 않아요?"

덕기는 겨우 이렇게 한마디를 하였다.

"어머니는 괜히 까닭도 모르는 이를 붙들고 왜 이러슈. 참 정말 어서 건너가세요."

하고 딸은 모친을 또 윽박지른다.

 

 

 

추억

"아버지께는 만났단 말씀도 말우."

경애는 모친이 나간 뒤에 이런 소리를 꺼냈다. 모친을 제지할 때와는 딴판으로 암상이 난 소리다. 모친이 충동여놓은 바람에 잠자던 노염이 다시 머리를 든 것이다.

"이것 하나만 없어도 덕기씨를 이 집에 오시라고도 하기는커녕 길에서 만나도 알은 체도 아니하였을지 모르지! 교회 안의 소문이 무섭고 사회 시비가 무서워서- 말하자면 남은 몸을 버렸던지 자식이 있든지 없든지 남의 사정은 손톱만큼도 모르고 나 하나만 사회적 생명을 이어나가면 고만이라고 걷어 찰 제, 누가 비릿비릿하게 쫓아다니자던 것도 아니요, 다시는 잇새도 어우르자는 게 아니니까..."

경애는 조용조용히 이야기를 하면서 뼈에 맺힌 무엇이 있는 듯한 말소리다.

"그야 내 잘못도 모르는 것은 아니야요. 그렇게 말씀하는 어머님두..."

경애는 또 한참만에 이런 소리를 하다가 뚝 끊어버리고 무슨 생각을 하는 모양이더니 머리맡에 놓인 약봉지를 꺼내서 환약을 세면서 건넌방에다 대고 아이년더러 물이 더웠느냐고 소리를 친다.

경애가 제 잘못도 안다는 것은 자기의 허영심이 이렇게 일을 벌여놓은 것이라는 뜻이요, 모친도 지금은 큰소리를 하지만 잘하였을 것은 없다는 말이다. 이태 동안이나 미국 다녀온 사람, 그리고 도도한 웅변으로 설교하는 깨끗한 신사- 그 때는 덕기의 부친도 40이 아직 차지 못한 한창때의 장년이요 호남자이었다. 게다가 뒤에는 재산이 있으니 교회 안의 인기는 이 한사람의 독차지였다. 20 전후의 젊은 여자의 추앙이 일신에 모인 것도 사실이었을 것이다.

건넌방에서 그 조그만 계집애년이 어린애 놋대접에 물을 가지고 건너왔다.

조금 간정하고 코가 막혀서 쌔끈쌔근하던 아이는 약과 물그릇을 보더니 불이 붙은 듯이 울어젖힌다. 그래도 어쩐둥해 세 알갱이 약이 어린아이의 입에 들어갔다. 무릎에서 미끄러져 내려와서 발버둥치는 것을 덕기도 거들어서 먹이고 나서는 어린애를 붙들었던 것을 생각하고 덕기는 속으로 웃었다.

덕기는 지난날의 일이 머리에 어제 일같이 떠올랐다.

덕기와 경애는 남대문 x소학교에서 한해에 같이 졸업한 것이 벌써 8,9년 되나 보다. 물론 남녀부가 다르고 경애는 덕기보다 두 살이 위지마는 학년은 같았다. 경애는 3년급에 중간에 들어와서 같은 해에 졸업한 것이다.

이 학교는 덕기의 부친이 돈을 조금 내는 관계로 설립자의 명의를 한몫 가지고 있는 교회 학교였다. 덕기의 부친이 원시 이 교회와 관계가 깊었기 때문에 학교에도 돈을 기부한 것이요, 또 아들도 교인인 관계도 있어서 다른 공립 보통학교에 보내지 않고 화개동에서 남대문까지 먼 데를 다니게 한 것이었다.

어쨌든 이 두 아이는 같은 3학년 때의 크리스마스 축하 연극을 할 때부터 서로 알게 되었다. 열 살 먹은 덕기와 열두 살 먹은 경애는 학교의 재동이로 장을 쳤었다. 둘이 똑같이 예쁘고 둘이 똑같이 창가와 연설과 연극이 능란하고 재롱거리였던 것이다. 그때 덕기는 아직 어렸으니까 어리둥절하게 지낸 일도 많지만 계집애요 또 열두 살이나 된 경애는 덕기를 어린애다운 우정으로 퍽 귀애하였던 것을 지금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학교에서 파해서 혹시 어린애들끼리 몰려나오게 되면 두 아이는 그 중에서도 함께 걸어 남대문 밑까지 와서는 경애는,

"잘 가거라!"

하고 소리를 치며 봉래교 편으로 떨어져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애가 수원서 올라온 아인지, 제 아버지가 감옥에 들어가 있는지, 미근동 근처의 외삼촌 집에 붙어 있는지 그런 것은 조금도 모르고 지냈던 것이다.

지금도 제일 기억에 똑똑한 것은 4년급 때던가 5년급 때 크리스마스 연습으로 학교에 모였던 날 점심시간에 경애가 문밖에 끌고 나가서 모찌떡을 사서 저도 먹고 덕기에게도 한턱 내던 것이었다. 이것은 같은 동무애가 고자질해서 덕기는 상관없었으나 경애는 열 세 살이나 도는 커다란 계집애가 군것질이 무슨 군것질이냐고 여선생님에게 몹시 꾸지람을 듣고 창가도 아니 시키고 반나절이나 교실 밖에서 울고 섰던 모양, 지금도 덕기의 머리에 분명히 떠오른다.

그러던 경애가 지금 덕기 앞에 덕기의 누이동생을 안고 앉아서 자기 부친의 원망을 하고 있다. 덕기는 웃어야 좋을지 울어야 좋을지 그때가 꿈인지 지금이 꿈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것도 없는 탓이지만 아버지께서 살아만 계셨어도 이렇게는 아니 되었을 것을... 우리 아버지 못 보셨는지?"

덕기와 경애는 소학교를 마친 뒤에 교제가 없었고 소학교에 다닐 때에는 감옥에 들어앉았던 경애의 부친을 보았을 리가 없다.

"우리 아버지는 너무 호활하시고 살림에 등한하셔서 3,4천 하던 재산을 모두 학교에 내놓으시고 소작인에게 탕감해주어 버리시고 감옥에 들어가시기 전에는 무슨 장사를 해서 다시 번다고 하시다가 3/1운동이 덜컥 나서 감옥에 들어가시게 되니까 옥바라지하고 변호사 대고 어쩌고 저쩌고 한다고 자꾸 끌려들어가기만 해서 나중에는 집까지 팔아가지고 올라왔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서울로 올라온 것이 내 신상에도 좋을 건 조금도 없건마는..."

경애는 자기가 그렇게 된 변명을 하느라고 그러는지 조금 아까 살기가 돌 때와는 딴판으로 재미있는 옛이야기나 하듯이 자기 집 내력, 자기 내력을 풀어낸다.

덕기는 그런 변명이나 하소연을 들을 묘리도 없고 더구나 자기 부친에게 대한 푸념을 듣고 앉았는 것은 불쾌도 스러웠으나 남의 내력을 듣는 호기심으로 귀를 기울이고 앉았다.

"집 팔고 어쩌고 해서 어머니께서 돈 1000원이나 가지고 올라오신 모양이나 당장 집을 사려야 마땅한 게 나서지도 않고 해서 외삼촌 집에 가서 붙어 있으면서 그 돈을 외삼촌에게 맡겼더니 아저씨가 몽땅 가지고 들고뺐겠지요..."

"! 난봉이던가요?"

덕기는 놀라는 소리로 장단을 맞춘다.

"아니에요. 자기 딴은 무슨 일을 해본다고 상해로 뛴 것이지만 우리집에는 큰 못할 일을 해놓았군요."

두 남녀는 서모 뻘이라는 격이 스러지고 옛날 친구라는 생각이 앞을 서서 서로 공대를 한다.

"어쨌든 그래서 아버니께서 옥중에서 병환으로 집행정지가 되어 나오시니까 약은 고사하고 여전히 외갓집 구석에서 세 때가 분명치 못한 형편인데 거진 일 년이나 앓아누셨으니 기막힌 사정 아녜요."

경애는 급작스레 말을 뚝 끊는다. 별안간 무슨 생각이 나서 말하기가 거북해진 눈치다.

"헤에...?"

하고 덕기가 말 뒤를 기다리다가 가만히 쳐다보았다. 경애는 어린 아이에게로 눈을 떨어뜨리고 앉았다. 어린애는 쌔근쌔근 겉잠이 어리어리 든 모양이더니 가위에 눌린 것처럼 몸을 뒤흔들며 찌르는 듯이 또 울어젖힌다.

"난 가겠소."

하고 덕기는 마침 잘되었다고 일어서버렸다.

"그럼 내일은 떠나슈?"

하고 경애는 앉은 채 쳐다본다. 좀 더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나, 더 붙들고 싶지 않았다.

"봄방학에 혹시 오게 되면 그때나 또 만납시다."

"그럼 난 못 나가요."

경애는 우는 아이를 달래면서 일어선다.

"에에, 바람을 쐬면 안 될 테니까."

덕기는 마루로 나와서 구두를 신으려니까 모친이 건넌방에서 나와서,

"어둔데 살펴가슈."

하고 인사를 한다.

또 무슨 수다가 나오려니 하였더니 의외로 인사가 간단하다.

안방에서도,

"먼 길에 조심해 가셔요."

하는 경애의 목소리가 난다.

대문 밖을 나서니 선뜻한 밤바람이 시원하였다. 훗훗한 방 속에 있어서도 그렇겠지만 무엇에 갇히었다가 빠져나온 것같이 기분이 거뜬해 진다.

'- 그 때부터이었다! 그때가 시초였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말을 하다가 뚝 끊어버린 것이다.'

덕기는 꿈틀거리는 밤길을 더듬어 나오면서 혼자 이렇게 생각하였다.

벌써 5년이 되었는지 6년이 되었는지 그 겨울에 덕기는 화개동 집으로 경애가 부친을 찾아왔던 것을 잠깐 본 기억이 지금 새삼스러이 난다. 그 때 덕기는 아직 화개동 집에 있을 때다.

소학교에서 헤어진 지 3,4년이 되었고 그 후 덕기는 화개동에서 가까운 안국동 예배당에 다녔기 때문에 오래 못 보았지만 그동안 경애는 놀랄 만큼 커져서 어른 꼴이 박히고 자기 따위는 어린애로 내려다보는 것 같아서 반가우면서도 말도 변변히 붙여 보지 못하고 경애보다도 자기 편이 더 열없어하던 생각이 난다.

그때 부친에게,

"그 애가 왜 왔었에요?"

하고 물어보니까 제 어머니 심부름으로 왔단다 하면서 경애 모친이 남대문 교회에 다닌다는 것과 또 부친은 감옥에서 나와서 근 일년이나 앓아 누웠는데 이제는 죽기나 기다리는 터라는 말을 간단히 들려주었다. 그때는 다만 가엾다고만 생각하고 신지무의 하였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때 아마 모친의 심부름으로 돈을 취하러 왔던 것 같았다.

경애의 부친은 애국지사였다. 수원의 누구라면 알 만한 교역자일 뿐 아니라, 감옥 소식을 전할 때나 집행정지로 나오게 될 때에 신문에 여남은 줄이라도 기사가 날 만한 인물이었다. 경애의 모친이 그 부인이라 하니 교인들도 알아보았었다. 목사의 기도 속에 경애 부친의 이름이 나오니 교인들도 알아보았었다. 목사의 기도 속에 경애 부친의 이름이 나오고 '이 병든 아드님을 아버지의 뜻이옵거든 좀 더 이 세상에 머무르게 하사 저희 일을 더 돕게 하여주옵소서' 하고 경애의 부친의 중병이 낫게 하여지이다고 기도를 드린 뒤부터 경애의 모친의 존재는 교회 안에 뚜렷해지고 경애의 미모는 한층 더 빛났던 것이다. 예배가 끝나면 경애 모친은 보지도 못하던 뭇 형님 아우님과 이름도 모르는 오라버니의 호들갑스러운 인사- 남편의 병 위문받기에 얼굴이 취하도록 한바탕 분주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되고 보니 이제는 병이 근심이요 병구완이 걱정이 되기는 일반이나 호강스럽기도 하였다. 그 오라버니 중에는 물론 조상훈이 빠질 수 없었다. 자선심 많고 돈 많은 목사보다도 신임과 경애를 받고 세력을 가진 조상훈-덕기 부친-에게 친절한 인사를 받는 것은 다른 교인의 열 몫이나 되는 것이었다. 더구나 조상훈은 이 부인에게 한층 더 친절하고 은근하였다. 그렇다고 결단코 자기 학교에서 길러내고 또 교회 안에서도 재색이 겸비하다고 손꼽는 경애의 모친이라 하여서 그런 것이라 하여서는 조상훈의 명예와 인격을 위하여 큰 모욕이다. 적어도 모든 사람이 그렇게 보지도 않았고, 또 조상훈 자신도 그렇게 생각해 본 일은 없었다.

"아버님 병환이 요새는 좀 어떠신가?"

조상훈 선생은 경애를 만나면 자상하고 온유한 말소리로 이렇게 물었던 것이다. 그리고 모친을 만나면,

"차도가 계신가요? 한번 가뵌다 하며 바빠서 못 갑니다. 선생님은 이때껏 뵈온 일은 없지만 병환이 안 계시더라도 선배로서 찾아가 뵈어야 할 텐데!..."

하고 가볼 시간을 묻는 것이었다.

그러기를 한 서너번 한 뒤에 그해 겨울 어느 일요일에 예배를 마치고 경애 모녀를 앞세우고 조상훈은 목사와 함께 미근동 경애 외삼촌 집으로 선배에 대한 경의를 표할 겸 병 위문을 갔던 것이다.

병인은 반가워하였다. 신장염에 기관지병이 겹쳐서 중태이었으나 강기로 버티고 누웠던 사람이 일어나서 손을 맞았다. 그는 고사하고 상훈을 첫대하기에 놀라게 한 것은 그 마님이 40쯤밖에 안 되었는데 영감은 60을 훨씬 넘은 듯한 백발이 성성한 것이었다. 사실 경애의 모친은 이 영감의 첩장가나 다름없는 삼취이었고 경애는 전무후무한 이 삼취 소생이었다. 이 몸에서 남매가 겨우 나서 경애 하나가 자란 것이다.

동지 전 추위에 방은 미지근하고 머리맡의 양약병에는 먼지가 앉고 중문 안에 놓인 삼태기에 쏟아버린 약찌꺼기는 얼고 마르고 한 것이 상훈의 눈에 띄었다. 약이나 변변히 쓰랴 하는 생각을 하니 늙은 지사의 말로가 가엾었다. 병인과 감옥 이야기, 교육계 이야기, 사회 이야기를 하다가 돌아갈 때 상훈은 부인을 조용히 불러서 이따가 3시 후에 따님아이든지 누구든지 자기 집으로 보내 달라 하고 주소를 두 번 세 번 일러주었다.

"왜요? 왜 그러세요?"

하고 부인은 물었으나 속으로 그 뜻을 대강 짐작치 못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선생님 병환에 맞을 약이 집에 있을 법한데 좀 보내드릴까 해서 그래요."

상훈은 다만 이렇게 귀띔만 하여주었다.

이리하여 경애가 화개동으로 찾아간 것이요, 그때에 덕기가 만나본 것을 지금 기억에서 찾아낸 것이다.

그 때 상훈은 집에 있는 인삼 몇 뿌리에 자기 부친이 지금도 경영하는 남대문 안 대성 정미소에서 찾을 쌀 한 가마니 표와 돈 10원을 넣은 봉투를 경애에게 주어 보냈던 것이다. 그 속에는 물론 아까 만나고 온 노선배에게 얌전한 붓끝과 맵시 있는 편지투로 보내는 것을 받는 사람이 부끄러이 여기지 않게 정중한 편지를 써 넣을 것을 상훈은 잊지 않았다.

그러나 이 모든 호의가 늙은 지사의 비참한 말로를 동정하는 데서 나온 것이요, 결코 오늘날 경애의 무릎에서 신열이 40도 내외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가운데 신음하는 딸 하나를 얻고 싶어서 계획적으로--그 값으로 보낸 것은 아니었다.

며칠 후에 상훈은 병인을 또 위문갔었다. 결코 전일의 호의에 대한 인사를 받고자 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세 식구는 상훈을 에워싸고 엎드러질 듯이 치사하였다. 또 이 사람도 어쩐지 이 세 식구가 마음으로 가엾었다.

하여간 치사를 받을수록 호의는 더 높아갔다. 그리하여 그날은 자기집 단골 의사를 소개하여 진찰을 시켜 주었다.

아주 절망 상태이기에 가출옥이 된 것이요 워낙 노인이라 병도 하도 여러 가지니까 이루 이름을 주워섬길 수 없지만 그래도 감옥에서 나와서는 좀 돌리는 눈치더니 심한 추위와 구차로 해서 또다시 기울어져갈 뿐이었다. 상훈이 댄 의사도 별 도리는 없었다.

해가 바뀌어서는 한층 더하였다. 약을 쓰는 것은 마치 죽기를 재촉하느니나 다름없이 말라가는 등잔불이 깜박거리다가 홀깍 꺼지고 말았다. 살려 하고 살리려 하여 애는 썼지마는 설사 살아났어도 얼마 안 남은 그 목숨을 또 시기하고 노리고 있는 편이 있는 바에야 남은 징역살이를 하다가 옥사를 하게 하느니보다는 처남의 집에설망정 편안히 눈을 감은 것이 차라리 다행하다고들 생각하였다.

임종에는 목사도 있었고 상훈도 있었다. 유언이란 것은 별로 없었으나 남기고 가는 처자가 마음에 놓이지 않아서 안타까워하였다. 그러나 조상훈을 얼마쯤은 믿었다. 사귄 지는 얼마 안 되어도 그처럼 친절히 해주는 것을 보고 아무리 보통 사람과 다른 종교 사업가라 하여도 지금 세상에는 어려운 일이라고 가상히도 생각하고 고마운 생각이 그지없었다.

"여러분이나 가족에게 그렇게 폐를 끼치지 않고 어서 하느님의 안온한 품으로 들어가고 싶었더니 이제야 때가 온 것 같소이다. 가는 사람은 편안하고 행복되나 남은 사람은 여전히 괴로운 것이오. 우리 동포 우리 동지- 이 사회를 그대로 두고 먼저 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걸리오. 여기 앉았는 이 자식을 혈혈단신으로 내던져두고 가는 것도 마음에 아니 놓이지마는 60 평생에 그래도 무슨 일이나 하나 남겨 놓고 가자 하였더니 남은 것이라곤 이 자식- 벌거벗겨 길거리에 내놓으나 다름없는 이 자식 하나와 이 세상에 오랫동안 끼친 신세뿐이오. 하여간 사회의 일은 여러분이 잘 맡아 하시려니와 저 어린것도 여러분이 잘 돌보아주시오. 조 선생께는 무어라고 치사를 다할지 결초보은 하여도 오히려 족하지 않겠지마는 나 죽은 뒤라도 이 두 모녀를 걷으뜨려 주시기를 염치 없는 말이나마 부탁하오..."

운명할 때까지 의식이 말짱한 병인은 이러한 장황한 감회와 부탁을 남겨놓고 여러 사람의 기도와 축복 속에 운명을 하였던 것이다.

상훈은 힘 자라는 데까지는 죽은 이의 뜻을 받겠다고 맹세하였다. 그 맹세를 지키고 안 지키는 것은 물론 죽어간 사람의 알 바 아니나, 그러나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은 한 가지로 증인이 되었다. 아니, 그보다도 존엄한 하느님이 천만 인간에 못지 않은 증인이었을 것이다.

초상은 치렀다. 교회와 수원 학교측과 유지 인사의 기부와 열성으로 호상이었다. 상훈은 경성축의 장의위원장 격이었고 장비로도 50원을 내놓았다.

장례는 xx문 예배당에서 치르고 수원까지 운구를 하여 거기서 영결식을 하고 선영에 안장을 하였던 것이다.

초상을 치르고 나니 살아서는 쌀 한 되 값 나무 한 단 값에 그렇게 쩔쩔맸어도 5, 600원 돈이 남았다. 그것도 전재산을 사회와 교육계를 위하여 내던진 보람이었다.

하여간 그 500여 원 돈은 우선 생활에 큰 도움이라느니보다도 한밑천이 되었다. 상훈과 의논한 결과 그것으로 조그만 전셋집을 얻기로 하였다. 흐지부지 녹여 써 버려도 안 되겠거니와 오라범댁과 그대로 살림을 한다면 안방 식구와 여전히 한데 먹어야 할 것이니 그것도 할 수 없는 일이라 역시 아무 턱없는 오라범집 식구를 그대로 두고 나오기는 박정한 노릇이나 펀둥펀둥 노는 맏조카 자식더러 벌어먹으라 하고 나오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경애가 그해 봄에 여학교만 졸업하면 어떻게든지 벌어먹을 수 있는 큰 희망도 있었다.

상훈은 이것저것 많이 애도 쓰고 앞일에 무엇에나 의논에 대거리가 되어 주었지만 집을 정하고 들어앉으면 경애가 두 달 후에 졸업하고 취직이 될 때까지 식량만은 몇 달 대어 주마고 자청하였었다. 그리하여 두 모녀의 앞길은 도리어 환하였다.

당주동에다가 조그만 전세 한 채를 얻고 떠나니, 이 역시 돌아간 영감이 남겨 놓고 간 유산이나 다름없고 영감의 덕이라 하겠지마는 일편 생각하면 상훈의 주선 아니더면 엄두도 못 내었을 것이니 상훈의 덕이기도 한 것이다.

"조 선생의 신세를 무얼루 이루 다 갚는다 말이냐?"

모녀가 마주 앉으면 그 때나 이 때나 부친이 매삭 대어 주는 것으로 사는 터이라, 넉넉지는 않으나 기위 손을 댄 터에 야멸치게 물러서기도 어려워서 그랬겠지마는 쌀이야 부친의 정미소에서 떨어질 새 없이- 떨어질새 없이라느니보다도 쌀 주고 떡 사 먹게까지야 주책없지 않았을망정, 젓갈장수 기름장수의 외상값을 쌀로 에낄 수 있을 만큼은 흥청망청 대어 주었고, 경애가 졸업하고 자기 학교로 오게 될 때까지 두서너 달 동안 뒤치다꺼리도 지성껏 해주었던 것이다.

상훈이란 사람은 물론 시정의 장사치도 아니요 매사를 계획적으로 앞질러 보려는 속다짐이 있어서 소금 먹은 놈이 물켜겠지 하는 따위의 딴 생각을 먹고 이런 일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도리어 나이 40을 바라보도록 세상 고초를 모르니만큼 느슨하고 호인인 편이요, 또 그러니만큼 어려운 사정을 돕는다는 데에 일종의 감격을 가지고 더욱이 저편이 엎드러질 듯이 감사하여주는 그 정리에 끌려서 이편도 엎드러졌다 할 것이다. 그러나 다만 한 가지 경애가 귀엽게 보이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혹은 만일 경애 같은 예쁜 딸이 없었던들? 하고 반문할지 모르나 그것은 너무나 잔인한 말이다.

하여간 교회 안에서도 상훈의 애국지사의 유가족을 끝끝내 돌보아주는 그 독지에 대하여는 칭송이 자자하였다. 그러나 그 칭송이 어느덧 시기와 의심으로 변하였다.

"그러기루 아침 저녁으로 문안까지야 다닐 게 무언구?"

"그만 정성이면야 효자로도 몇째 안 가겠수."

이런 소리가 마님네들 모인 자리에서 이야깃거리가 되기 시작하였다. 아닌게아니라 큰댁 문안은 일주일에 한 번, 고작해야 두 번이나, 학교에서 화개동 집에 올라가는 역로이기도 하지마는 하루가 멀다고 들렀던 것이었다.

"아니, 늙은 과부댁만 죽치고 엎댔으면야 나부터두 갈 재미 있겠나마는, 딸이 있거든..."

편이 있으면 적도 있는 것이다. 학교 안의 젊은 교원축끼리도 이런 실없는 소리가 나왔다.

그러던 경애가 여학교를 졸업하고 나니까 설립자 대표인 상훈의 천으로 학교에 들어오게 되었다. 교원들은 이 미인 신임 선생을 배척하도록 싫은 것은 아니면서도, 돌아서서는 입을 딱 벌리며 서로 눈짓 콧짓을 하는 것이었다.

그라나 세상에 갓 나온 경애는 그런 영문을 눈치챌 수가 있을 리 없었던 것이다.

경애로서 조상훈을 대할 때 그는 다만 존경과 흠모의 대상일 뿐 아니라 은인이다. 부친의 생전 사후를 통하여 은인일 뿐 아니라 자기의 현재와 앞길이 그의 지도에 달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사람이 살라면 살고, 죽으라면 죽어도 아까울 것 없을 만큼 마음을 턱 실리려는 믿음과 애정을 느꼈고 또 그 모친도 친오라비 이상으로 믿은 것이다. 그러나 경애의 그 믿음과 그 애정은 부친이나 오라비나 혹은 친한 동무에게 느끼는 소녀다운 그런 애정이었다.

그러던 것이 동무들의 뒷공론이 점점 노골적으로 맞대해놓고 입을 비쭉거리며 비웃게까지 되었을 데 놀랍고 분한 한편에 차차 조 선생을 슬슬 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조 선생에 대한 공포심은 일어날지언정 결코 조 선생이 미운 것은 아니었다. 미워졌으면 좋겠는데 밉지가 않은 자기 마음이 도리어 밉고 안타까웠다. 사실 생각하면 조 선생을 미워할 아무 건더기가 없었다. 조 선생은 예나 이제나 다름없는 조 선생이다.

그러나 동무들의 면대해서 쏘지도 않고 빗대놓은 조롱은 점점 더 늘어갔다. 빗대놓고 들컹거리는 말이니 탄할 수도 없고 변명할 길도 없다. 울분과 번민이 어린 가슴을 터지게 하였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거죽으로는 조 선생을 슬슬 피하면서 속으로는 무서워하던 마음까지 스러지고 한층 더 경애하는 마음이 스며 솟았다. 모친에게도- 이 세상에서 단 하나 의지할 모친에게도 터놓고 하소연할 수 없는 그 분한 말을 조 선생에게는 다 쏟아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경애는 3학기도 거의 가까워졌을 때 조선생과 한번 만나서 의논을 하고 싶었다. 모든 사람의 눈총을 맞아가며 학교에 다니기가 싫도록 경애의 신경도 쇠약하여졌던 것이다.

그러나 조용히 만날 틈이 없었다. 이때쯤은 조 선생도 경애에게서 멀어져 가는 듯이 설면하게 굴고 경애 집에도 들러주지를 않았다. 그러므로 아무래도 자기 집으로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가면 작년 겨울과 같이 덕기와 마주칠 것이 싫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학교 안에서나 예배 파한 뒤에 만나자면 남의 눈에 뜨일 것이니 그보다는 낫다고 생각하였다. 집으로 청해다가 이야기하고는 싶었지마는 그것도 모친 때문에 어려웠다.

그래도 얼마나 망설이다가 조 선생이 감기로 이틀이나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모친에게도 조 선생이 감기로 이틀이나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모친에게도 조 선생님 위문을 잠깐 갔다 오마 하고 학교에 다녀오는 길로 책보만 내놓고 큰마음 먹고 나섰다. 모친도 앓는다는 말에 놀라면서 같이 가도 좋을 듯이 말을 하다가 저녁도 지어야 하겠다고 우선 딸을 내보내어 전갈만 시켜 놓고 병이 더하다면 자기도 나중에 가리라는 생각으로 어서 가보라고 하여 내보냈다.

경애는 사실 병 위문도 겹쳤을 뿐 아니라 모친에게까지 알리고 가는 것이니까 조금도 떳떳치 못할 게 없겠으나 화개동이 차차 가까워오니까 혹시 학교에서나 교회에서 누가 위문을 오지 않았을까 하는 애도 쓰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왕 왔다가 발길을 돌이킬 수도 없었다.

문 앞에 다 와서도 차마 들어가지를 못하고 또 망설이었다. 누구나 나왔으면- 하고 문전에서 기웃거리려니까 마침 행랑어멈이 벌써 저녁이 되었는지 밥그릇을 들고 나온다.

어멈은 안으로 들어갈 줄 알았더니 사랑으로 들어갔다가 나와서 들어오라 한다. 주인이 저녁밥을 먹는다면 안에 있을 터인데 사랑에 있다면 필시 손님이 있는 것인데 누굴까? 학교에서 누가 온 것은 아닐까?...상관은 없는 일이지만 이런 걱정을 하며 들어가 보니 아무도 없이 주인 혼자 마루 끝에 나와서 반가이 맞아 준다. 말소리를 들어서는 그리 심한 감기도 아닌 모양이었다.

"잠깐 추운데 미안하지만 기다려주. 급히 어디를 갈 데가 있어서 만나려던 터이니..."

하고 상훈은 방으로 다시 들어가서 입고 있던 두루마기 위에 외투를 입고 모자를 손에 들고 급히 나온다.

유리창 안으로 보니 밥상을 막 내다놓은 모양이다.

"진지 잡수세요. 저는 가겠습니다. 편찮으시다니까 어머니께서 다녀오라구 하셔서 왔었에요."

경애는 이렇게 인사를 하면서도 이왕이면 같이 나가는 것이 덕기에게나 다른 손님에게 안 들키겠느니만큼 도리어 안심이 된다고 생각하였다. 상훈도 역시 그래서 앞질러 급히 나온 것이요 또 마누라의 공연한 잔소리가 듣기 싫은 것도 한 가지 이유이었다.

경애를 앞세우고 상훈이 나오려니까 어멈이 숭늉을 떠 가지고 나오다가 이쪽을 바라보느라고 정신이 팔려서 축대에 낙수가 얼어붙은 데에 미끈하면서 놋쟁반에 얹힌 숭늉 대접도 미끄러져서 하마터면 언 마당에 뗑그렁 떨어뜨릴 것을 질겁을 해서 붙들기는 하였으나 물은 반나마 출렁하고 엎질러졌다.

문 밑까지 나가던 사람들은 어멈이,

"에그머니!"

소리를 치는 통에 멈칫하고 돌려다보았다.

"조심을 하고 다녀!"

하고 주인나리는 불쾌히 소리를 쳤다. 어멈은 무색해서 진지를 잡수셨나? 상을 들여갈까 물어보지도 못하고 얼이 빠져 섰었다.

상훈은 이때까지 돌아오지 않는 덕기와 길에서 마주칠까보아 삼청동으로 빠져서 영추문 앞 넓은 길로 길을 잡아 들었다.

두 사람은 언제까지나 말이 없었다.

'엎질러진 물이다!'

상훈은 금방 집에서 나올 때 본 광경이 머리에 떠올라와서 무심코 이런 생각을 하다가 그것이 자기의 지금 심리를 설명하는 말인 것 같아서 선뜻한 생각이 들면서,

'언제 엎질러졌나?'

하고 변명을 하였다. 귓속에는,

'조심해 다녀!'

하고 나무라던 자기 말이 그저 남았다.

"집으로 바로 갈 텐가?"

영추문 앞까지 나와서 상훈은 비로소 입을 벌렸다.

"... 한데 선생님께 조금 말씀할 게 잇는데요."

경애는 망설이다가 결단을 하고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

"무슨 말?..."

하고 상훈은 발을 멈칫하고 계집애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길 한가운데 섰을 수가 없어서 장담 밑으로 와서 나란히 섰다. 그러면서도 상훈은 가슴속이 설렁설렁하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 동안 상훈도 경애만큼 혼자 번민을 하던 것이었다. 자기 귀에 여러 가지 소리가 떠들어오는 것을 처음에는 귀를 막고 지내려 하였다. 또 그 다음에는 어서 경애의 혼처만 골라서 그 부친의 초상을 치르듯이 얼른 결혼식까지 치러주면 모든 오해가 일소될 뿐 아니라 자기의 낯이 한층 더 나타나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자 멀리하자 하면 마음으로는 이상히도 한 걸음씩 더 다가서는 것 같았다. 혼처를 구하자면 마땅한 데가 금시로 나설 수도 있겠으나 그럴 기력까진 없었다. 자기의 마음을 채찍질해도 보았으나 그러면 그럴수록 번민은 늘어갈 뿐이었다. 감기가 들었다 하고 이틀 동안 가만히 누워 보았다. 그러나 별도리도 없고 마음은 간정이 되지를 않았다. 거기에 무엇이 지시를 하여 끌어다댄 듯이 경애가 달려든 것이다. 사실은 감기로 앓는다는 말을 듣고 경애나 경애 모친이 오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어렴풋이 있었던지도 모를 것이다.

"왜 무슨 일이 있어?..."

경애의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올지 공연히 애가 쓰이면서 또다시 물었다.

"글쎄, 학교를 어떻게 할지요... 다른 데로 주선해주실 수 없을지요?"

삼각산에서 내리지르는 저녁 바람이 영추문 문루의 처마끝에서 꺾이어서 경애의 말을 휩쓸고 날아간다.

두 사람은 다시 걷기 시작하였다.

"왜 별안간 그런 생각이 든 거람?..."

물론 그 심중을 못 살피는 것이 아니나 이런 소리를 하였다.

"......"

말은 또 끊겼다.

총독부 앞으로 나오려니, 전등불이 환한 전차가 효자동서 내려와 닿다가 떠난다. 상훈은 어찌할까 망설이었다. 이야기를 좀 하자면 어디로든지 들어가 앉아야 하겠는데, 갈 만한 데도 마땅치 않고 전차를 태워가지고 진고개 방면으로 가자 해도 우선 차 속에서부터 누구를 만난다든지 하는 것이 싫었다.

황토현 앞까지 내려오면서도 두 사람은 또 아무 말도 없었다. 말을 꺼내기에는 똑같이 가슴이 벅찼던 것이다.

경애는 따라가면서도 일종의 불안과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잠깐 만나서 몇 마디 이야기만 하고 헤어지면 고만이었을 텐데 일이 이렇게 되니 남의 눈을 기우면서 무슨 나쁜 짓이나 하는 것 같은 이상한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유혹의 감미라 할까 어쨌든 뿌리치고 가고 싶지는 않았다.

당주동 자기 집 들어가는 골목 앞을 지나치면서도 경애는 잠자코 말았다.

두 남녀는 황토현 네거리에 있는 파출소 옆 식당으로 들어갔다. 누구나 저녁 먹을 때다. 식당 안은 불만 환하고 난로 앞에 일본 계집애들이 옹기종기 앉았다가 우중우중 일어난다. 미인을 앞세우고 들어가는 훌륭한 신산지라 대우가 융숭하다. 난로와는 떨어졌으나 구석배기에 가서 경애는 돌아앉아서 자리를 잡았다.

"다니기가 고단해서 그러는 거야?"

상훈이 아까의 말의 계속을 꺼냈다.

"고단두 하고 성이 거셔서 수원 xx학교로나 가볼까도 하는데요?..."

xx학교란 경애 부친이 설립한 학교요 경애도 어려서 3년급까지 다니던 학교다.

"거기서 오라고 하던가?"

"아녜요, 하지만..."

하고 상훈은 웃으며 한참 기색을 바라보다가,

"설사 자리가 있다기로 서울서 살림을 벌였다가 또 내려간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여기 학교에서 누가 무어라기에... 혹 젊은애들이 성이 가시게 굴어?"

"아뇨!"

하고 경애는 얼굴이 발개진다.

"그럼 알 수가 없지 않은가?..."

하고 상훈은 아무 눈치도 못 채는 듯이 시치미 뗀다. 자기의 가슴속도 입덧 난 사람처럼 근질거리는지 느글거리는지 알 수가 없지마는, 내색을 보일 형편도 아니 되고 모든 것을 모른 척하는 수밖에 없다.

"모두들 듣기 싫은 소리만 하고 놀려요."

한참 만에 경애는 속의 말을 쏟아놓아버리자고 결심한 듯이 하소연을 하고 나서는 입이 배쭉배쭉해지며,

"분해서..."

하고 고개를 푹 수그린다.

"누가 무어라고 놀린단 말이오? 놀리건 받아주기만 하면 그만 아니겠나?"

하고 상훈은 대담하게 타이르듯이 위로를 해주었다.

"나만 놀렸으면 좋겠지만 공연한 선생님까지..."

경애는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는 말을 꺼내고 나서는 눈물이 걷잡을 새 없이 쭈르르 흘러서 고개를 둘 데가 없었다. 자기도 무슨 까닭에 이렇게 눈물이 나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실상인즉 교원 자리를 다른 데로 하자는 것인데 딱 마주 대하고 보니 정작 의논보다도 억울하고 분하던 생각부터 앞을 섰다.

"울 거야 뭐 있소. 남은 무어라든지 나만 정당하면 그만이지!"

상훈은 나무라듯이 이런 큰소리를 하였으나 그 눈물이 측은도 하고 자기 마음이 자기 말과 같지 않은 것을 무어라고 형용할 수 없이 괴로워하였다. 두 남녀가 맥맥히 마주 앉았으려니까 음식을 날라온다.

상훈은 좀 멈칫하다가 맥주를 청하였다. 경애는 놀라는 기색으로 치어다보았다. 그러나,

"약주를 잡수세요?"

하고 묻기도 싫고 그건 왜 먹느냐고 말리기도 싫었다. 그보다도 감기는 들었다면서 이 추운 날에 찬 맥주를 마시면 어쩌나 하고 애가 씌었다.

"술은 먹지 않지만 가슴이 답답하고 홧홧할 때 맥주 한 잔쯤은 좋아요."

하고 상훈은 변명하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조 선생이 술을 마신다는 것은 의외이었고 절대로 믿느니 만큼 인격을 의심하는 생각이 어렴풋이 든다. 그러면서도 과히 책잡고 싶은 미운 생각까지는 아니 났다. 맥주를 따라놓은 것을 들고 벌떡벌떡 반이나 마시는 것을 경애는 곁눈으로 슬슬 보았다.

"신열이 나셔서 홧홧하시다면서 그 찬 것을..."

하고 눈을 찌푸려 보였다.

상훈은 거기에는 들은 척 만 척하고 성난 사람처럼 잠자코 접시의 안주만 먹는다. 가슴이 홧홧하다는 말을 신열이 난다는 뜻으로 알아들은 것이 다행하기도 하나 얼마쯤 섭섭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경애는 공연히 머리가 뒤숭숭하고 앉은 자리가 불편하여 먹어보지 못하던 양요리건마는 접시마다 건드려만 보고 들여보냈다.

"실상은 나 역시 학교에 그리 간섭하기도 싫고 다른 사람한테 맡겨버리고 싶지만..."

그는 한 잔만 먹는다던 맥주를 어느덧 한 병 다 마시고 두 병째도 가져오는 대로 내버려 둔다.

"그까짓 것 언제까지 붙들고 있자는 것도 아니요, 차차 무어나 큼직한 일을 해야 하겠지만 요새 같아서는 사는 것조차 짐이 되고 귀치않은 증이 나서..."

상훈은 이래저래 홧김에 술을 먹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두 병이나 먹고도 그리 취기가 없는 것을 보고 이제 알았더니 술을 퍽 먹는구나고 경애는 어이가 없었다.

신성에 대한 환멸을 느꼈다. 예수교인이라면 으레 술 담배 안 먹는 사람이요, 계집은 자기 아내밖에 모르는 사람이 어찌 한자리에 누울꼬? 하는 어렴풋한 생각을 혹시 하여도 그런 더러운 일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경애가 그 신성하여야 할 조 선생님이 술을 마시고 얼굴이 벌개진 것을 보고는 딴사람 같아서 마주 보기가 도리어 겸연쩍었다.

조 선생님이나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신성한 사람으로 보아온 것이 잘못이었던가? 자기가 아직 철이 덜 나고 경력이 부족해서 이만쯤한 일에 놀라는 것인가? 혹시는 그들이 신성한 체 얌전한 체를 눈 가리고 아웅하는 셈으로 꾸미었던 것인가? 또는 세상이란 으레 그러한 것이요 세상 사람이란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모르고 유달리 생각하던 자기가 어리석었던가? 우리 아버지도 그런 양반이었던가?...

숭배하던 조 선생이 맥주를 조금 먹었다는 일이 이 소녀의 머리를 한층 더 뒤숭숭하게 했다.

두 사람은 식당에서 나와서 오던 길로 다시 향하였다. 경애는 자기 집으로 가는 지름길로 들어가려 하였으나 조기까지만 걸어보자고 하여서 따라나선 것이었다.

"왜 내가 술을 먹었다고 못마땅해서 입을 봉하고 있소?"

육조 앞 컴컴한 넓은 길로 들어서니까 상훈이 입을 벌렸다.

"아뇨."

하면서도 경애는 자기 마음을 속인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조 선생이 자기의 눈치를 짐작해준 것도 좋고 사과하듯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정히 말을 붙이는 것도 얼마쯤 마음을 눅여주는 것이었다.

"추운데 목도리를 꼭 해요."

하며 상훈은 목도리 뒤를 추켜 주었다. 경애는 전신이 오싹하면서 뱃속에서 무엇이 찌르르 스며 내려가는 것 같은 느낌을 깨달았다. 머리 쪽지에는 어느 때까지 상훈의 손이 닿은 감촉이 남아 있었다.

"이 야기에 감기 안 들게 조심해요."

어린 사람을 가꾸는 자애스러운 목소리다. 경애는 얼굴이 홧홧이 달아오르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래도 상훈이 밉거나 무서운 생각은 아니 들었다. 술을 먹은 데 대한 책망도 잊어버렸다.

'그러나 내가 왜 이런가? 누라 어쩌기에?...추우니까 감기 들까보아 목도리쯤 추켜 주었기로...'

경애는 자기를 되레 꾸짖고 울렁거리는 가슴을 간정시키려 하였다. 보병대 앞까지 왔을 제 경애는 헤어져 가려 하였다.

"그럼 늦기 전에 어서 가우, 그리고 공연한 생각 말고 잘 다니면 차차..."

하고 상훈은 말을 얼버무려뜨리며 헤어지려는 눈치더니 다시 발을 아래로 떼어 놓으며 어두워서 호젓할 테니 데려다 주마고 한다. 경애는 싫다고 하였으나 역시 따라온다. 싫을 것도 없다.

"성이 가시고 괴롭기는 피차일반이오!"

상훈은 애수에 잠깐 목소리를 가라앉혀서 이런 소리를 하다가 자기의 감정을 좀 더 분명히 표시하고 싶어서 다시 말을 잇는다.

"남이 들으면 웃을지 모르지만, 40이나 된 놈이 나이 아깝다고 욕을 할지 모르지만 아직 20 때의 생각- 내 자식 보기가 부끄럽고 경애양에게 눈치를 보일까 봐 부끄러운 그러한 10년 전 20년 전의 정열과 얼마나 싸웠는지 아무도 모를게요."

기어코 이런 말을 하고야 말았다. 상훈은 자기가 지금 무슨 말을 하였는지 귀가 먹먹하였고 숨이 목 밑까지 차올라 왔다.

경애도 주기를 품은 남자의 더운 입김이 반만 내놓은 뺨 옆에 스치는 것을 깨달았으나 지금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머릿속이 띵하였다. 한 말도 한마디도 입을 벌릴 기운이 아니 났다. 다만 가슴이 울렁거릴 뿐이었다.

당주동으로 돌아 들어가는 동구에 왔을 때 경애는 상훈더러 이제는 가라고 하고 싶었으나 말이 목밑에 붙어서 아무래도 나오지를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또 다시 캄캄한 길로 들어섰다. 아무쪼록 한 걸음 뒤서려고 애를 쓰면서...

"그러나 그까짓 소리는 다아 그만두고..."

상훈은 다시 말을 꺼내면서 한 걸음 멈칫하여 나란히 서며,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어쨌든 곧 결혼을 하우! 결혼만 하면..."

하고 말을 딱 끊는다. 경애는 다소 안심이 되며 말 위를 기다리려니까 별안간 손에 무엇이 와서 닿는다- 상훈의 화끈하는 손이다. 경애는 감전된 듯이 전신이 찌르르하여 하마터면 발부리가 채여 엎드러질 뻔하였다.

경애는 붙잡힌 손을 뿌리칠 수도 없이 놀란 비둘기는 소리는 치련마는 숨을 죽이고 몇 걸음 따라가려니까 상훈은 별안간 손이 으스러질 듯이 꽉 쥐었다가 탁 놓으며 노한 사람처럼,

"가우!- ."

하고 돌쳐서 가버린다.

컴컴한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어른어른 움직이는 것을 경애는 잠깐 바라보다가 고개를 떨어뜨리고 그대로 한참 섰었다. 지나던 사람이 돌아다보고 간다.

경애의 머리에는 아무 생각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까닭없이 울고만 싶었으나 눈은 보송보송하다.

이 두어 시간 동안 경애의 눈에 비친 세상은 금시로 변하였다. 조상훈의 세상이 아니어든 조상훈에 대한 관찰이 변하였다고 세상까지 돌변해 보이랴마는 세상이 우스꽝스럽다 할지, 무섭다 할지, 더럽다 할지, 재미있고 희망에 가득하다 할지, 형용할 수 없는 것이 이 세상인 듯하였다.

이튿날 경애는 학교에 아니 갔다. 갈 용기가 아니 났다. 온밤을 모친 몰래 꼬박 새고 나서 머리가 내둘리기도 하지만 학교에 가면 오늘쯤은 조 선생이 나왔을지도 모르는데 얼굴을 맞대야 할 것이 걱정이었다. 부끄럽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했다. 겁도 났다. 아니, 그보다도 무슨 중대한 일을 해결해야 할 것 같았다. 하나 그 중대한 일이 무엇인지는 자기도 알 수가 없었다.

모친은 간밤에 야기를 쐬어서 감기가 들었느냐고 애를 쓰며 약을 지어다 주마고 서둘렀다. 그러나 모두 싫다 하고 하루를 버둥버둥 누워서 지냈다. 아무쪼록은 모친과 떨어져서 혼자 있고 싶었다.

'조 선생이 미쳤단 말인가? 술이 취해 그랬나? 미쳤거나 술이 취하지 않았으면 어제 헤질 때 그게 무슨 짓이더람...'

그러나 암만 생각해도 실신한 사람은 아니다. 그리 취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자식 보기에 부끄럽고 어쩌고 하던 말을 생각하여 보았으나 머리에 다시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다만 한 가지 뜻은 어렴풋이 알 수 있는 것 같았다. 천만 의외이었다. 그러나 그러면 또 나중에 어서 결혼을 하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쓸데없는 소리 말고 결혼만 하면...'

하고 조 선생이 말을 뚝 끊던 것을 생각하여 보았다- 쓸데없는 소리는 누가 하였던가? 결혼만 하면... 어떻게 되리라는 말인가? 경애는 알 수가 없었다.

실상은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한 말이었다. 그따위 쓸데없는 소리 말고 경애를 혼인만 시키면 상훈 자신도 마음이 가라앉고 아무 일 없어지리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상훈은 자기 마음이 위험해 가는 것을 피할 도리가 다만 경애를 얼른 결혼시키는 데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루 쉬고 다음날은 학교에 가보았다. 둘째 시간 에 들어갈 때 조 선생은 사무실에 들어왔었다. 여러 사람이 병 위문을 아니하는 것을 보니 조 선생은 어저께도 왔던 모양이다. 조 선생은 그제 저녁에 보던 조 선생이 아니었다. 그 전대로의 조 선생이다. 경애에게 인사를 하고 수작을 붙이는 것도 조금도 그 전과 다를 것이 없다.

경애는 또 한 번 얼떨떨한 생각에 끌려들어갔다. 그저께 일이 꿈결 같고 사람이란 옷 한 겹만 입은 깃이 아니라 마음과 몸 위에 몇백 겹 몇천 겹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으로 싸고 살아가는 것 같았다. 조 선생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조 선생 같아 보였다. 대하는 사람마다 새삼스러이 얼굴이 치어다보였다. 그 중에 오직 자기만이 아무것으로도 싸지 않고 난 대로 벌거벗고 있는 것 같고 또 그것이 자랑이라는니보다도 이상스러웠다- 허위의 갑옷을 입을 것을 배웠다.

하학 후에 누구보다도 먼저 책보를 싸들고 나가려니까 문간에서 마주 들어오는 조 선생과 마주쳤다. 조 선생은 눈으로 좌우를 경계하는 표정이더니 외투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어 약삭빠르게 준다. 경애는 얼굴이 화끈하여 급히 받았다. 결코 그 편지가 반가운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들킬까보아 아무 소리도 못하고 받아서 책보 밑에 감춘 것이다.

편지에는 아무 말 없이 어저께 왜 아니 들어왔더냐는 인사와 그저께 일은 아무 일 없었던 듯이 피차에 기억에서 없애자 하고 용서하여 달라고 여러 번 진심으로 뇌었을 뿐이다. 가슴을 두근거리며 몰래 펴던 경애는 도리어 김이 빠졌다. 좀 더 무슨 뼈진 말이 있을 것같이 생각되었고 또 그런 말이 없는 것이 이상히도 섭섭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결코 상훈을 그립게 생각하거나 뼈 있는 말이 듣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편지가 너무 싱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5년 전의 이러한 갈피를 누가 알랴? 덕기는 물론이요 경애의 모친도 결과만을 알 뿐이지 자초를 알 리가 없었다. 지금 어미의 무릎 위에서 잠든 이 아이인들 그 결과를 설명할지언정 그 갈피야 알 것이냐! 당자까지들도 이제는 가끔 머리에 떠오르는 추억에 그치고 말 것이다.

경애가 상훈의 첫 편지를 받은 지 다섯 달도 못 되어서 경애는 학교를 나오고야 말았다. 경애는 그때 학교를 나오면서 서울을 떠났던 것이요, 또 사실 동경에 안 간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호화로운 유학이 아니라 할 수 없이 피접 나간 것이었다.

학교에서 들은 동경 유학이란 말을 들을 제,

"그러면 학비는 누가?"

하고 서로 웃는 입들을 치어다보았다. 다른 사회에서면야 그런 것이 그다지 문제도 되지 않았겠지만 교회 속이니까 문제는 수군거리며 커 가는 것이었다.

어쨌든 경애가 동경 가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시외 '오모리' 한구석에 박혀 있던 석 달 동안은 징역살이였다. 몸 고된 일이 있고 돈에 군색해서가 아니라 적막하기가 귀양살이 같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만날 사람을 못 만나는 고민이 피차가 일반이었다. 그러나 상훈은 서울을 떠날 수가 없었다. 서울에서 단 일주일이라도 소문 없이 자취를 감춘다면 비평이 스러져가려던 판에 또다시 동경으로 경애의 뒤를 따라갔다는 소문이 짝자그르 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경애는 동경 간 지 3개월 만에 다시 도망꾼처럼 서울로 기어들었다. 용산역에서 내려서 사람의 눈을 피하여 밤중에 자동차로 모친에게 끌려들어온 경애는 지금 들어 있는 북미창정 이 집에 처음 집알이를 하게 된 것이었다.

이 집은 물론 상훈이 경애를 위하여 마련해놓았던 집이다. 하필 교회와 학교에서 가까운 이 근처에 정할 묘리는 없었으나 경애의 모친이 당주동으로 떠난 뒤에는 그 근처의 종교 예배당에를 다닌 관계로 우대에서는 살기 싫고 삼청동 근처도 아니 되었고 또 집도 알맞은 것이 나서지를 아니하리까 부친이 경영하는 이 근처인 대성 정미소의 주무에게 부친이 빌려주었던 이 집을 내놓게 하고 들여앉힌 것이었다. 그렇게 해놓고 보니 등하불명이란 말이 예두고 맞힌 듯싶게 도리어 상관없을 성싶었다.

하여간 예닐곱 달 된, 남의 눈에 뜨일 만한 배를 안고 새 집에 들어와 앉으니 경애는 그래도 마음이 후련하고 다시 살아난 것 같았다.

모친은 처음부터 아무 말 없었지만 석 달 만에 만나서도 별말 없었다. 이왕지사 떠들면 무얼 하랴는 단념으로인지? 자기 남편 때 일을 생각하고 은인이라 하여 그것을 딸의 몸으로 갚겠다는 생각인지 혹은 명예 있고 아니 그까짓 명예라는 것은 무엇 말라뒈진 것이냐-돈 있는 사람이니 이 사람의 첩 장모 노릇이라도 하여 두면 죽을 때 육방망이는 못 써도 마주잡이를 해서 나가지는 않으리라는 속다짐으로인지... 그러나저러나 이 속다짐이 무엇보다도 앞을 섰던 것일 것이다.

이 늙은 부인은 손에 성경책 넣은 헝겊 주머니를 달고 다니는 전도 부인이다. 그러나 살아나가야 할 수단을 잊어버린 어리보기는 아니었다. 게다가 첩에서 조금 면한 삼취댁이다. 만일 예수 믿고 사회일 하는 남편을 만나지 않았다면 장거리에서 술구기를 들었을지 딸자식을 기생에 박았을지 누가 알랴. 이것은 이 노부인을 모욕하여 하는 말이 아니라 이 부인의 성격이 그만치나 걸걸하고 수단성 있다는 말이요, 또 누구나 그 놓인 처지에 따라서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도 된다는 말이니 만일에 자기 남편이 단 4,50석의 유산만 남겨주었던들 이 부인은 조상훈의 은혜를 받을 기회는커녕 서울로 올라오지도 않았을 것이 아니냐?... 그러나저러나 이 부인은 새 집 든 지 석 달만에 손주딸을 보았다. 쉬쉬하고 세상을 숨기고 낳은 목숨이다. 그러나 이 손주새끼는 외할머니로 하여금 교회에서 멀어지게 하였던 것이다.

 

 

 

1 충돌

"글쎄, 아버니께서는 망령이 나셔서 그리시든 옛날 시절만 생각하고 그러시든 형님으로서는 되려 그러지 못하시게 말려야 할 것이 아닌가요?"

"자네가 못하는 일을 내가 어떻게 말리나? 자네가 못하시게 하지 못하기나 내가 여쭈어 안 들으시거나 매한가지가 아닌가?"

"못하시게 하기는 고사하고 그렇게 하시도록 충동이고 다니는 사람은 누구게요?"

"글쎄, 이 사람아, 딱한 소리도 하네그려. 그래 아저씨께서 누구 말은 들으시던가? 내가 다니면서 일을 꾸며놓은 것같이 생각을 하지만 자네 어쩌자고 그런 소리를 하나?"

"어쨌든 이 전황한 판에 무슨 정성이 뻗쳤다고 별안간 10대조니 10몇 대조니 하는 조상의 산소 치레를 하고 있단 말씀이오?"

상훈은 문제의 산소가 몇 대조의 산손지도 모른다.

"아버니께 여쭈어보게그려!"

상훈의 재종형 창훈은 핏대를 올리고 소리를 높인다.

제삿날이라 10시가 넘으니까 당내가 꾸역꾸역 모여들어서 사랑 건넌방 안은 뿌듯하고 담배 연기가 자욱하다. 상훈은 제가 참례는 아니하여도 으레 제삿날이면 사랑에 와서 앉았다가 음복까지 끝나야 가는 것이다.

영감님은 모든 분별을 하느라고 안방에 들어가 앉았고 사랑 큰방에는 윗항렬 노인들과 제삿밥 기다리는 노인축이 점령하고 떠든다. 덕기도 아까 8시가 넘어서 들어와서 제삿날 나다닌다고 조부에게 한바탕 꾸중을 듣고 안에서 제물을 올리는 시중을 들고 있다. 일할 사림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어동육서(魚東肉西)니 조율이시(棗栗梨枾)니 하는 절차부터 가르치기 위하여 꼭 손자를 시키는 것이다. 영감으로서 생각하면 죽은 뒤에 아들의 손으로 제사받기는 틀렸으니까 장손에도 외손자인 덕기 하나를 믿는 것이었다.

내가 죽은 뒤에 기도를 어떤 놈이 하면 내가 황천으로 가다 말고 돌아와서 그 놈의 혓바닥을 빼놓겠다고 노영감은 미리미리 유언을 해둔 터이다. 아들이 예수교식으로 장사를 지내줄까보아 그것이 큰 걱정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죽으면 호상은 사랑에 있는 지 주사로 정하고 모든 초종범절은 지금 사랑 건넌방에서 상훈과 말다툼을 하고 있는 당질 창훈더러 서로 의논해 하라는 것이 벌써부터의 유언이다. 아들더러는 프록 코트나 입고 마차나 자동차를 타고 다르든지 기생집에서 콧노래를 부르고 누워 있든지 너 알아 하라고 일러두었다.

도대체 영감의 소원은 앞으로 15년만 더 살아서(15년이면 여든 두셋이나 된다) 안방차지인 수원집의 몸에서 아들 하나만 더 낳겠다는 것이다. 이제라도 태기가 있다면 죽을 때는 열 다섯 먹은 상제 하나는 삿갓가마를 타고 따르리라는 공상이다- 영감의 걱정이란 대개 이런 따위다. 창피해서 입밖에 내지는 않았으나 작년 올에 있을 태기가 없어서 아들 낳는다는 보험만 붙은 계집이면 또 하나 얻어도 좋겠다는 속셈이다... 날마다 지 주사는 아랫방 마루 안에 놓인 약장 앞에서 15년 더 살 약과 아들 낳을 약을 짓기에 겨울에는 발이 빠질 지경이다.

그러나 이 영감은 15년을 더 사는 동안에는 호상 차지할 맞늙는 지 주사와 50 넘은 창훈이 먼저 죽을지 모를 것이다.

"대관절 대동보소(大同譜所)를 이리 옮겨온 것도 형님이 아니오?"

상훈은 종형을 또 들이댄다.

"옮겨 오고 말고가 있나. 그런 일이란 집아 어른이 하셔야 할 것이요, 나는 영감님 분부대로 심부름만 한 게 아닌가? 자네는 나마 보면 들컹거리네마는 대관절 내가 무얼 잘못했단 말인가?"

창훈은 다시 순탄한 목소리로 눅진눅진 대거리를 하고 앉았다.

"그야 큰댁 형님 말씀이 옳지요. 또 사실 사무소를 둘 만한 곳이 어디 있습니까?"

옆에 앉았던 젊은 재종이 창훈 편을 든다.

"대동보소로 모두 얼마나 쓰셨소?"

상훈은 자기 부친이 족보 인쇄하는 데 적어도 삼사천원은 그럭저럭 부스러뜨렸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 역시 나도 모르지. 장부에 뻔한 것이요, 회계 본 애가 있으니까?"

창훈은 냉연히 이렇게 대답하다가,

"자네 생각에는 내가 거기서 담배 한 갑이라도 사먹고 밥 한 그릇이라도 먹었을 성싶지만 없네 없어! 나도 조가로 태어났으니까 싫어도 하고 좋아도 하는 노릇이 아닌가?"

하고 코웃음을 친다.

서울 올라올 제의 고무신짝이 구두고 변하고 땟덩이 두루마기가 세루 두루마기도 되더니 올 겨울에는 외투가, 그 위에 또 는 것은 어디서 생긴 것이오? 하고 들이대고 싶은 것을 상훈은 참았다.

"그래 대동보소 문패는 언제 떼게 될 것인가요?"

한참 만에 상훈은 또 비꼬아서 말을 꺼냈다.

"인쇄가 다 되었으니까 떼지 말래도 떼게 되겠지."

", 그러니까 일거리가 이제는 없어져서 여관 밥값들이 밀리게 되니까 또 새 일거리를 꾸며냈단 말이지..."

좌중은 아무도 대꾸를 안하고 조용하다.

수하동 조 의관 댁 문지방 없는 솟을대문에는 언제부턴가 xx조씨 대동보소라는 넓고 기다란 나무패가 붙기 시작하였었다. 근 이태 동안 무릇 xx조씨라고 하는 '종씨' 쳐놓고 안 드나드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종씨 종씨- 보도 듣도 못하던 종씨의 사태가 났던 것이다. 그 종씨가 상훈에게는 구살머리적고 못마땅하였다. 그러나 조 의관은 그 무서운 규모로도 이 종씨를 할아버지 아저씨하고 덤벼드는 시골꼬락서니 젊은애들을 며칠씩 묵혀서는 노잣냥 주어 내려보내는 것이었다.

조 의관에게는 평생의 오입이 세 가지 있다. 하나는 을사조약 한창 통에 그 때 돈 2만 냥, 지금 돈으로 400원을 내놓고 40여 세에 옥관자를 붙인 것이니 차함은 차함이로되 오늘날의 조 의관이란 택호가 아주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요, 또 하나는 6년 전에 상배하고 수원집을 들여앉힌 것이니 돈은 여간 2만 냥으로 언론이 아니나 그 대신 귀순이를 낳고 또 여든 다섯에 죽을 때는 열 다섯 먹은 아들을 두게 될지 모르는 터인즉 그다지 비싼 오입이 아니나, 맨 나중으로 하는 오입이 이번 이 대동보소를 맡은 것인데 이번에는 좀 단단 걸려서 2만 냥의 열 곱 20만냥이나 쓴 것이다. 그것도 어엿이 자기 집 자기 종파의 족보를 꾸민다면야 설혹 지금 시대에 역행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덮어놓고 오입이라고 하여서는 말이 아니요 인사가 아니겠지만 상훈으로 보아서는 대동보소라는 것부터 굳이 반대는 안한다 하여도 그리 긴할 것이 없는데 게다가 xx씨의 족보에 한몫 비집고 끼려고- 덤붙이가 되려고 4000원 템이나 생돈을 내놓는다는 것은 적어도 오입 비슷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돈 주고 양반을 사!'

이것이 상훈에겐 일종의 굴욕이었다.

그러나 조 의관으로서 생각하면 이때껏 자기가 쓴 돈은 자기 부친이 물려준 천냥에서 범용한 것이 아니라 자수로 더 늘린 속에서 쓴 것이니까 그리 아깝지도 않고 선고의 혼령에 대하여도 떳떳하다고 자긍하는 것이다. 저 잘나면 부조(父祖)의 추증(追贈)도 하게 되는 것인데 있는 돈 좀 들여서 양반되기로 남이 웃기는 새로에 그야말로 이현부모(以顯父母)가 아닌가 하는 용량이다. 어쨌든 4천 원 돈을 바치고 조상 신주 모시듯이 xx조씨 대동보소의 문패를 모셔다가 크나큰 문전에 달고 xx조씨 문중 장손파가 자기라는 듯이 버티고 족보까지 박게 되고 나니 이번에는 xx조씨 중시조인 xx당 할아버지의 산소가 수백 년래에 말이 아니 되었으니 다시 치산을 하고 그 옆에 묘막보다는 큼직한, 옛날로 말하면 서원 같은 것을 짓자는 의논이 일어났다.

지금 상훈이 창훈더러 일거리가 없어져가니까 또 새판으로 일을 꾸민다고 비꼬는 말이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제절 앞의 석물도 남 볼썽사납지 않게 일신하게 하여야 하겠고 묘막이니 제위답이니 무엇무엇... 모두 합하면 한 1만 원 예산은 있어야 할 터인데 반은 저희들이 부담하겠지만 절반 5천 원은 아무래도 조 의관이 내놓아야 하겠다는 것이다.

양자를 들어가면 재산 상속을 받을 권리도 있지만 없는 양부모면야 벌어서 봉양할 의무도 지는 것이다. 조씨 문중이 돈 낼 만한 사람이 없고 또 벌이지 않으면 모르거니와 벌인 일인 바에야 시종이 여일하게 깡그러뜨려야 할 일이다. 그러나 5천원을 저희가 분담한대야 그것에는 이 영감에게서 우려내려는 미끼로 하는 헛말임은 물론이요, 이 영감이 내놓는 5천원에서 뜯어먹으려고나 안했으면 다행이나 원체가 뜯어먹자는 노릇인 다음에야 더 말할 것도 없는 일, 어쨌든 뭇놈이 드나들며 굽실거리고 노영감을 쑤석대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못하겠다는 말이 입에서 아니 나와서 울며 겨자 먹기로 추수나 하면 내년 봄쯤 어떻게 해보자고 아직 밀어나오는 판이다. 내년 봄이래야 음력설만 쇠면 석 달이 못 가서 한식이다.

이 영감에게 제일 신임 있는 창훈을 앞장세우고 요새로 부쩍 조르고 다니는 것은 어서 급급히 착수할 준비를 하여 한식 차례를 잡숫게 하고 이눌러 일을 시작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영감으로서는 이렇게 쌀값이 폭락하여서는 도저히 힘에 겨우니 좀 더 연기를 하였다가 추석에나 가서 착수를 하든지 또다시 내년 한식 때에 의논을 해 보자는 것이다.

영감도 결단코 어수룩한 사람은 아니다. 어수룩이라니 거의 후반생을 산가지와 주판으로 늙은 사람이다.

속에서 쪼르륵 소리가 나면서 천냥 만냥 판으로 돌아다니거나 있는 집사랑 구석에서 바둑으로 세월을 보내는 조가의 떨거지들이 다른 수단으로는 이 영감의 주머니 끈을 풀게 할 도리가 없으니까 족보를 앞장세우고 삶고 굽고 하는 바람에 조츰조츰 쓰기 시작한 것이 3천여 원 근4천여원을 쓰게 되고 보니 속으로 꽁꽁 앓는 판인데 또 xx당 할아버지가 앞장을 서서 5천원 논래가 나온 것이다. 그러나 5천원을 부른 사람도 그만큼 불러야 3천원은 우려내려니 하는 것이요, 조 의관도 5천원의 반절은 아무래도 또 털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죽을 날이 얄팍하여가니까 xx조씨 문중에서 자기가 둘째 중시조나 되는 셈치고 이 세상에 남겨놓고 가는 기념 사업이라는 생각도 없지 않아 해보려는 노릇이다.

그래서 요새로 부쩍 달고 치는 바람에 그러면 우선 천 원 하나를 내놓을 터이니 500원은 산역에 쓰고 500원은 묘막을 짓되 부족되는 것은 묘하에 있는 조씨들이 금력으로 보태든지 돈 없는 사람은 부역으로 흙 한줌 떼 한 장씩이라도 떠다가 힘으로 보태라고 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 제위답으로는 다소간 나중에 마련해 노마고 하였다. 조 의관 생각에는 그렇게 하면 천 원 내놓고 2천 원 들인 생색은 나려니 하는 속다짐이었다.

"그래야 결국 아저씨께서는 돈 천 원 하나밖에 안 내노신다니까 나중 뒷갈망은 우리 발바투 돌아다니며 긁어모아야 할 셈이라네. 말 내놓고 안할 수 있나! 이래저래 뼈끝만 빠지고 잘못되면 시비는 우리만 만나고..."

창훈은 한참 앉았다가 혼잣말처럼 이런 소리를 한다.

"장한 사업 하슈. xx당 할아버지가 묘막 지어달라고, 제절 앞에 석물이 없어서 호젓하다고 하십디까?"

상훈은 '합디까'라고 입에서 나오는 것을 겨우 '하십디까'라고 존대를 하였다. xx당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것도 좀 어설프다. 예수교인이라 하여 자기 조상을 존경할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부친이 새로 모셔온 십 몇 대조 할아버지라 하니 좀 낯 서투른 때문이다.

"그런 소린 아예 말게. 자네는 천주학을 하니까 이런 일에는 반대인지 모르지만 조상 없이 우리 손이 어떻게 퍼졌으며 조상 모르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어떻게 우리 조씨도 그렇게 해서 남에 빠지지 않고 자자손손에 번창해 나가야 하지 않겠나."

창훈은 못마땅한 것을 참느라고 더욱 이죽이죽 대거리를 한다.

"조가의 집이 번창하려고?...하지만 꾸어온 조상은 자기네 자손부터 돕는답디다..."

상훈은 불끈하여 소리를 높이며 또 무슨 말을 이으려다가 마루 끝에서 영감님의 기침 소리가 나는 바람에 좌우 방안은 괴괴하여졌다.

"왜들 떠드니?"

화를 참는 못마땅한 강강한 목소리와 함께 건넌방 문이 활짝 열린다. 방 안의 젊은애들은 우중우중 일어서며 아랫목에 앉았던 상훈은 윗목으로 내려섰다.

방 안에서는 더운 김이 서린 담배 연기가 뭉긋뭉긋 흘러나온다.

"이게 굴뚝 속이지, 젊은것들이 무슨 담배를 이렇게 피우며 주책없는 소리들만 씨부렁대는 거냐?"

영감은 방 안을 들어서며 우선 나무라놓고 아랫목으로 가서 앉으며 자기의 발끈한 성미를 속으로 간정시키려는 듯이 목소리를 가라앉혀서,

"어서들 앉어라."

하고 무슨 잔소리를 꺼내려는 지 판을 차린다. 영감은 제청을 다아 배설해 놓고 시간을 기다리느라고 사랑으로 나오다가 종형제간의 말다툼을 가만히 듣고 섰다가 참을 수 없어 뛰어든 것이다.

"너 어째 왔니? 오늘은 예배당에 안 가는 날이냐?"

영감은 얼굴이 발끈 취해 올라오며 윗목에 숙이고 섰는 아들을 쏘아본다.

"어서 가거라! 여기는 너 올 데가 아니야! 이 자식아! 나이 50줄에 든 놈이 젊은것들을 앞에 놓고 철딱서니 없이 무어 어쩌고 어째? 조상을 꾸어왔어? 꾸어온 조상은 자기네 자손만 도와? 배지 못한 자식!"

영감은 금시로 숨이 넘어가려는 사람처럼 헐떡거리며 벌건 목에 푸른 힘줄이 벌렁거린다. 상훈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한구석에 섰다.

"너두 내가 낳아놓은 자식이면야 사람이겠구나? 부모의 혈육을 타고났으면 조상은 알겠구나? 가사 젊은 애들이 주책없는 소리를 하더라도 꾸짖고 가르쳐야 할 것이 되려 철부지만도 못한 소리를 텅텅하니 이게 집안이 되려고 이러는 거란 말이냐? 안 되려고 이러는 거란 말이냐?"

여기서 영감은 한숨을 돌리고 나서 다시 목청을 돋운다.

"이 집안에서 나만 눈을 감아보아라! 집안 꼴이 무에 되나? 가거라! 썩썩 나가거라! 조상을 꾸어왔다니 너는 네 아비도 꾸어왔겠구나? 꾸어온 아비면야 조금도 네게는 도울 게 없을 게다!- 다시는 내 눈앞에 뜨일 생각도 말아라!"

오른손에 든 장죽을 격검대 모양으로 들었다 놓았다 내밀었다 들이켰다 하며 펄펄 뛴다.

4천 원 돈이나 드는 줄 모르게 들인 것을 속으로 앓고 또 앞으로 돈 쓸 걱정을 하는 판에 앨 써 해놓은 일에 대하여 자식부터라도 그따위 소리를 하는 것이 귀에 들어오니 이래저래 화는 더 나는 것이다. 게다가 원래 못마땅한 자식이요 또 오늘은 친기라 제사 반대꾼을 보니 가만 있어도 무슨 야단이든지 날 줄은 누구나 짐작했지만 마침 거리가 좋아서 야단이 호되게 된 것이다.

"아니에요. 그런 말씀이 아니에요. 아저씨께서 잘못 들으셨나보외다."

창훈은 속으로 시원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인사치레로 한마디 하였다.

"잘못 듣다니? 내가 이롱증(귀먹음)이 있단 말인가?"

"그만해두세요. 상훈군도 달래 그렇겠습니까? 이 전황한 통에 꿈적하면 돈이니까 그것을 걱정해서 그러는 것이지요."

창훈은 이렇게 변명해주었다. 그러나 상훈으로서는 때리는 사람보다 말리는 놈이 더 미웠다.

"누가 돈 쓰는 아랑곳하랬나? 누가 저더러 돈을 쓰라니 걱정인가? 내 돈 가지고 내가 어떻게 쓰든지!..."

"아버니께서 하시는 일에..."

조금 뜸하여지며 부친이 쌈지를 풀어서 담배를 담는 동안에 상훈은 나직이 말을 꺼냈다.

"...돈 쓰신다고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마는 어쨌든 공연한 일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첫째 잘못이란 말씀입니다."

"무어 어째 공연한 일이란 말이냐?"

부친의 어기는 좀 낮추어졌다.

"대동보소만 하더라도 족보 한 길에 50원씩으로 매었다 하니 그 50원씩을 꼭꼭 수봉하면 무엇하자고 삼 사천원이 가외로 들겠습니까?"

"삼사천 원은 누가 삼사천 원 썼다든?"

영감은 아들의 말이 옳다고는 생각하였으나 실상 그 삼 사천원이란 돈이 족보 박는 데에 직접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xx조씨로 무후한 집의 계통을 이어서 일문일족에 끼려 한즉 군식구가 늘면 양반의 진국이 묽어질까보아 반대를 하는 축들이 많으니까 이 입들을 씻기기 위하여 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난봉 핀 돈 액수를 줄이듯이 이 영감도 실상은 한 1000원 썼다고 하는 것이다. 중간의 협잡배는 이런 약점을 노리고 우려 쓰는 것이지만 이 영감으로서는 성한 돈 가지고 이런 병신 구실 해보기는 처음이다.

"그야 얼마를 쓰셨든지요. 그런 돈은 좀 유리하게 쓰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입니다."

'재하자 유구무언'의 시대는 지났다 하더라도 노친 앞이라 말은 공손했으나 속은 달았다.

"어떻게 유리하게 쓰란 말이냐? 너같이오 육천원씩 학교에 디밀고 제 손으로 가르친 남의 딸자식 유인하는 것이 유리하게 쓰는 방법이냐?"

아까부터 상훈의 말이 화롯가에 앉아서 폭발탄을 만지작거리는 것 같아서 위태위태하더라니 겨우 간정되려던 영감의 감정에 또 불을 붙여놓고 말았다.

상훈은 어이가 없어서 얼굴이 벌개진다.

부친의 소실 수원집과 경애 모녀와는 공교히도 한 고향이다. 처음에는 감쪽같이 속여 왔으나 수원집만은 연줄연줄이 닿아서 경애 모녀의 코빼기도 못 보았건마는 소문을 뻔히 알고 따라서 아이를 낳은 뒤에는 집안에서 다 알게 되었던 것이다. 덕기 자신부터 수원집의 입에서 대강 들어 안 것이다. 그러나 상훈 내외끼리 몇 번 싸움질이 있은 외에는 노영감도 이때껏 눈감아버린 것이요, 경애가 들어 있는 북미창정 그 집에 대하여도 부친이 채근한 일은 없는 것이라서 지금 조인광 좌중에서 아들에게 대하여 학교에 돈 쓰고 제 손으로 가르친 남의 딸 유인하였다는 말을 터놓고 하는 것을 들으니 아무리 부친이 홧김에 한 말이라 하여도 듣기에 괴란쩍고 부자간이라도 너무 야속하였다.

"아버니께서 너무 심한 말씀을 하십니다마는 어쨌든 세상에 좀 할 일이 많습니까. 교육 사업, 도서관 사업, 그 외 지금 조선어 자전 편찬하는데..."

상훈은 조심도 하려니와 기를 눅이어서 차근차근히 이왕지사 말이 나왔으니 할 말은 다 하겠다는 듯이 말을 이어나가려니까 또 벼락이 내린다.

"듣기 싫다! 누구 네게 그따위 설교를 듣자든? 어서 가거라."

"하여간 말씀입니다. 지난 일은 어쨌든 지금 이 판에 별안간 치산이란 당한 일입니까. 치산만 한대도 모르겠습니다마는 서원을 짓고 유학생들을 몰아다 놓으시렵니까? 돈 돈이거니와 지금 시대에 당한 일입니까?"

"잔소리 마라! 그놈 나가라니까 점점 더하고 섰구나. 내가 무얼 하든 네가 무슨 총찰이란 말이냐. 내가 죽으면 동전 한 닢이라도 너를 남겨줄 테니 걱정이란 말이냐. 너는 이후로는 아무리 굶어죽는다 하여도 한푼 막무가내다. 너는 없는 셈만 칠 것이니까... 너희들도 다아 들어두어라."

하고 좌중을 돌려다 보며 말을 잇는다.

"내 재산이래야 얼마 있는 게 아니다마는 반은 덕기에게 물려줄 것이요, 그 나머지로는 내가 쓰고 싶은 데 쓰다 남으면 공평히 나누어주고 갈 테다. 공증인을 세우든 변호사를 불러대든 하여 뒤를 깡그러뜨려 놀 것이니까 너는 이제는 남 된 셈만 쳐라. 내가 죽으면 네가 머리를 풀 테냐? 거상을 입을 테냐?"

영감은 사실 땅문서도 차츰차츰 덕기의 명의로 바꾸어 놓아가는 판이요 반은 자기가 쓰다가 남겨서 수원집과 막내딸의 명의로 물려줄 생각이다.

만일에 15년 더 사는 동안에 아들 하나를 더 본다면 물론 그 아들을 위하여 반 물려 줄 요량도 하고 있는 터이다.

이때까지 술이 취하면 주정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듣기도 많이 하였지만 오늘은 친기라 하여 술 한잔 안 자신 이 영감이 맑은 정신으로 여러 젊은애들 앞에서 이런 말을 떠들어놓는 것은 처음이다. 그래야 이 방중은 고사하고 이 집안 속에서 자기 편을 들어줄 사람이라고는 하나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상훈은 새삼스러이 고독을 느끼고 모든 사람이 야속하였다.

"애비 에미도 모르고 계집 자식도 모르는 너 같은 놈은 고생을 좀 해 봐야 한다. 내가 돈이 있으니까 네가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들여다보는 것이지 내가 아무것도 없어 보아라. 돌아다보기는커녕 고려장이라도 족히 지낼 놈은 아니냐. 어서 나가거라. 이 자식, 조상을 꾸어왔다는 자식은 조가가 아니다."

하고 노인은 별안간 벌떡 일어나서 아들을 떼밀어 내쫓으려는 듯이 덤벼든다. 젊은 사람들은 와 달려들어서 가로막는다.

"상훈이, 어서 나가게. 흥분이 되셔서 그러시니까..."

창훈은 상훈을 끌고 마루로 나왔다.

부친이 망령이 나느라고 그러는지는 모르겠으나 젊은 사람들이나 자식 보는데 창피도 스러웠다. 상훈은 안방으로 들어가는 수도 없고 아랫방에도 덕기 또래의 아이들이 모여 있으니 그리 들어갈 수도 없다. 하는 수 없이 모자를 집어 쓰고 축대로 내려오니까 덕기가 아랫방에서 나와서 뜰로 내려온다.

"아랫방으로 들어가시지요."

덕기는 민망한 듯이 이렇게 부친에게 말을 걸었으나 부친은 잠자코 나가버린다.

 

 

 

2 충돌

파제삿날 아침에도 간밤 2시에나 취침한 영감이 첫새벽에 일어나서(이날은 사랑에서 자는 사람이 많아서 영감은 안방에서 잤다) 아침 술 석 잔을 마시고 사랑으로 나갔다. 밤을 새다시피 한 젊은 사람들을 들쑤셔 깨우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영감이 사랑으로 막 나가자 사랑 편에서 방문을 우당탕퉁탕 여닫는 소리가 나고 지껄지껄하는 소리가 안방에 앉았는 수원집의 귀에까지 들렸다. 부엌에서 어제 휩쓸어두었던 그릇을 설거지하던 손주며느리가 깜짝 놀라서 귀를 기울이다가 옆에서 쌀을 일고 섰는 어멈더러 나가보고 들어오라고 재촉을 하려니까 안방에서도,

"어멈, 사랑에 좀 나가보고 들어오게."

하고 소리를 친다. 사랑으로 내닫던 어멈은 단걸음에 되짚어 뛰어들어오면서,

"에구 안방마님! 어서 나가보세요. 큰일났에요. 영감마님께서 댓돌에 미끄러져서 넘어지셨에요."

하고 소리를 친다.

"무어?..."

안방에서는 수원집이 경풍*을 해서 뛰어나와서 고무신짝을 거꾸로 꿸 듯이 하고 사랑으로 내달았다. 손주며느리도 뒤따르고 어멈도 다시 줄달음 쳐서 나갔다. 안방 계집애년도 뛰어나왔다. 그 바람에 안방에서는 어린애가 잠을 깨어 킹킹대며 울기 시작한다.

건넌방에서 아침잠이 뭉긋이 들었던 덕기는 그제야 눈이 뜨여서,

"왜들 그러니?"

하고 미닫이를 여니까 아랫방에서 모친이,

"어서 사랑에 나가봐라. 할아버니께서 넘어지셨단다."

하고 소리를 친다. 모친은 어제 와서 같이 잔 딸이 학교에 가느라고 머리를 빗는데 일어나는 길로 뒷머리를 땋아주고 앉았었기 때문에 얼른 일어서지 못하였다. 한방에 자던 여편네들도 이제야들 일어나 앉아 씩둑거리고 있다가 매무시도 채 못해서 곧 나오지들 못했던 것이다.

덕기가 바지저고리만 꿰고 뛰어나간 뒤에야 비로소 모친과 덕기 누이 덕희가 사랑으로 나갔다.

덕기 모친은 먼저 나갔단 사람들과 사랑 문간에서 마주쳤다. 수원집은 암상이 나서 못 본 척하고 지나쳐버린다. 늦게 나온다고 못마땅해서 그러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덕기 모친도 심사가 났다.

"좀 어떠시냐? 다치시지는 않으셨니?"

그래도 노인이 빙판에 넘어졌다니 애가 씌어서 시서모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며느리더러 물어보았다.

"다치신 데는 없에요. 들어가 누웠에요."

사랑방에 누운 영감도 며느리가 늦게 나와 보는 것이 못마땅하였다. 그래도 며느리는 아들보다 낫게 생각하는 터이라 내색은 보이지 않고 며느리가 문안 겸 인사를 하니까,

", 허리가 좀 아프지만 별일 있겠니?"

하고 나서 손주딸을 쳐다보고 온유한 낯빛으로,

"학교 가기 곤하겠구나? 그저 잤던?"

하고 말을 붙인다. 그저 자리 속에 있어서 이제야 나왔나 하고 묻는 것이었다.

"아녜요. 머리 빗느라고 어머니가 막 땋는데 넘어지셨다죠."

하고 덕희는 어리광삼아 생글 웃고 옆에 섰는 오라비를 돌려다보고,

"오빠 같은 게름뱅이나 이때까지 자지요."

하고 놀린다.

"예끼 년! 이때까지 머리를 제 손으로 못 땋는단 말이냐?"

할아버지는 이런 소리를 하고 웃었다.

"저두 땋는답니다. 하지만 숱이 많아서... 그리고 제 손으로 땋으면 하이칼라가 못 돼서요."

하고 덕희는 또 색색 웃는다.

"조년 벌써 하이칼라만 하려 들고... 그럼 학교 안 보낸다."

조부는 재롱을 보느라고 연해 웃으며 대거리를 하여준다. 방 안에는 웃음소리와 화기가 가득하였다. 사실 이런 때의 이 노인은 천진한 어린아이와 같이 백발 동안이 온화하였다.

조부가 몸을 추스르다가 허리가 아픈 듯이 에구구하며 눈살을 찌푸리니까,

"너 좀 주물러 드려라."

하고 모친이 시키는 대로 덕희가 가까이 가려니까,

"그만두어라. 학교 갈 시간 늦는다. 의사를 부르러 갔으니까 이제 올게다."

고 하며 안으로 쫓아 들여보내고 어서 수원집을 나오라고 불러내었다. 바지와 마고자에 흙이 묻어서 수원집은 가림것을 가지고 사랑으로 나왔다.

"어쩌면 집안이 그렇게 떠드는데 모른 척하고 들어앉았드람..."

수원집은 영감 들어보라고 혼잣말처럼 며느리 모녀를 두고 하는 말이다.

"계집애년 머리를 땋아주느라고 그랬다지만 아무러면 상관 있나."

영감이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 수원집은 싫었다. 맞장단을 쳐주어야 좋을 것인데 며느리 역성을 들어주는 것 같은 말눈치가 싫은 것이다.

"내일 모레면 시집갈 년의 머리를 일일이 빗겨주다니 공연한 소리지. 아까부터 약주상을 들여가고 해야 모른 척하고 들어앉어서..."

수원집은 아까부터 못마땅하였던 것이다.

"그야 어제 늦게 자고 또 새애기가 없으면 모르거니와 그애가 나와서 일을 하니까 그렇겠지."

영감의 말은 옳았다. 그러나 수원집은 점점 더 뾰롱통하여졌다.

영감은 허리가 아파서 옷은 이따가 갈아입는다 하여 수원집은 마지못해 잠자코 영감의 허리만 주무르고 앉았다.

며느리가 늦게 나왔다고 시비를 하면서도 허리를 주무르기는 귀찮았다. 더구나 한통이 돼서 며느리 흉하적을 하지 않는 것이 못마땅하니까 더욱이 싫증이 났다. 그건 고사하고 영감이 넘어졌다 할 제 그렇게 허겁을 해서 뛰어나오면서 얼마나 애가 키었던가? 지금 이 당장에는 제 생각이 어떠한가? 이보다 좀 더 몹시 다쳐더면 생각이 어떠하였을꼬... 모를 일이다.

의사가 오니까 수원집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의사나 누구나 내외를 하는 것이 아니니 진찰하는 것을 보고 들어가도 좋으련만- 하는 생각이 영감에게도 없지 않았다.

의사는 그리 대단치는 않으나 혹시 삐었는지 모르니까 반듯이 누워 있는 것이 좋겠다 하며 약을 바르고 찜질을 해놓고 갔다.

안방에서 아침밥을 먹을 제 여편네들은 영감님 넘어지신 것으로 떠들어댔다.

"그래두 그만하시니 다행이지, 노래(老來)에 빙판에 넘어지셨으니 속으로 골탕을 잡숫거나 하였더면 어쩔 뻔했어?"

한 여편네는 이런 소리를 했다.

"저기서 누구도, 최사천 영감 말야, 그 영감은 빙판도 아니요 댓돌에서 내려서다가 허리를 삐어서 석 달을 꼼짝 못하고 누웠대..."

침모는 이런 소리도 했다.

"음 참 최사천 영감?...어디 댓돌에서 넘어졌나? 젊은 댁을 너무 바치다가 어느 날은 자리 속에서 그렇게 되어서 이내 못 일어났는데."

하며 돌아간 마님의 친구 늙은이가 웃었다.

"마님두, 무에 그렇게 되었단 말씀예요.?"

하고 침모도 따라 웃는다. 방 안에서는 수원집과 주인 고식만 빼놓고 모두 웃었다. 수원집은 얼굴이 발개졌다.

"그래도 퍽 정정하신 셈야. 십년은 넉넉히 더 사실걸."

당숙모 마님이 이런 소리를 한다.

"하지만 마님의 주의를 해드려야지."

침모가 또 짓궂이 이런 소리를 하였다. 수원집은 점점 더 듣기 싫었다.

"강기로 버티시기는 하시지만 이제는 아주 그전만 못하세요. 살만큼도 사셨지만..."

덕기 모친은 무심코 이런 소리를 하였지만 수원집은 귀에 예사로이 들리지 않았다.

"그래두 더 사셔야지 천량 많것다, 저런 귀한 마님과 따님이 있것다..."

또 누군지 이런 소리를 한다. 그러나 '저런 귀한 마님'이란 말이 또 수원집의 귀를 거슬렸다. 아까부터 모두들 자기만을 놀리는 것 같아서 점점 더 심사가 좋지 못한 것이다.

"더 사시기로 무얼 보시겠에요. 그저 돌아가실 때 되면 편안히 돌아가시는 게 좋지요."

덕기 모친은 또 이런 소리를 하였다. 물론 무슨 생각이 있어 한 말은 아닐 것이요, 자기가 세상이 상상하니까 무심코 한 말일 것이나 수원집은 매섭게 눈을 뜨고 쳐다본다.

"말을 해두 왜 그렇게 해!"

수원집은 손위 며느리의 밥술이 들어가는 입을 노려보다가 한 마디 툭 쏘았다.

"무엇을 말인가?"

덕기 모친에게는 당숙모요, 수원집에게는 사촌 동서 뻘인 노마님이 영문을 모르는 듯이 탄한다.

"아니, 글쎄, 말예요. 어서 돌아가셨으면 좋을 것같이 말을 하니 말씀이죠."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돌아가시라고 했단 말야?"

하고 덕기 모친도 눈을 똥그랗게 뜨고 쳐다보았다.

"사람 잡겠네!"

하며 코웃음을 치고 먹던 것을 먹는다. 두 암상이 마주쳤으니까 그대로 우물쭈물하고 싱겁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여간 좋은 구경거리가 생겼다고 다른 여편네들은 말리려고도 아니하고 물계만 보고 있으나 손주며느리는 애가 부덩부덩 쓰였다.

"그래 내 말이 틀리단 말이야? 그야말로 참 사람 잡을 소리 하네. 나만 들었으면 모르겠지마는 다른 사람은 고만두고 쟤(손자며느리를 가리키며)더러 물어봐요. 죽을 때가 되건 어서 죽어야 한다고 당장 한 소리를 잊어버리지는 않았겠지?"

수원집은 밥술도 짓고 아주 시비판을 차리는 모양이다.

"그래 내가 아버니께 돌아가시라고 그랬어? 아버니께서 더 사신대야 시원한 꼴을 못 보실 테니까 그게 가엾으시다는 말이지."

덕기 모친은 말끝이 잡힌 것이 분하기도 하거니와 해혹을 하기가 좀처럼 어렵게 된 것이 더 분하였다.

"왜 시원한 꼴을 못 보신단 말이야? 누구 때문이기에?"

"누구 때문이기에라니? 나 때문이란 말이야?"

덕기 모친도 발끈하였다.

"자기 입으로도 그러데. 아드님을 잘 두셨다고,."

"아드님을 잘 두셨든 못 두셧든 자기가 낳아놓았으니 걱정인가! 누구나 내 똥 구린 줄은 모르겠다!"

"무어 어째? 내가 구린 게 뭐야? 구린 게 있건 대! 대요! 무에 구리단 말야?"

수원집은 얼굴이 파래지며 달려든다. 아닌게아니라 덕기의 모친은 급한 성미에 감잡힐 소리를 또 무심코 하여 놓고 보니 말문이 꼭 막히고 말았다.

"왜 안방 차지가 하고 싶어서 사람을 잡는 거야? 안방에 들고 싶거든 순순히 내놓으라지, 왜 사람을 잡아흔들어서 내쫓지를 못해서 야단이야!..."

"누가 안방 내놓으랬어?"

"그럼 무어야? 무에 구리다는 거야?"

수원집은 점점 악을 쓰고 덤비나 덕기 모친은 잠자코 앉았을 뿐이다.

"어디 무슨 뜻이 있어서 그런 말인가, 처음에 한 말은 무심코 한 말이요 말다툼이 되니까 자연 그런 말이 나온 것이지 잡자면 모두 시비가 되는 것이지."

당숙모가 이렇게 변명을 해주었다.

"그러기로 무슨 까닭이 있어서 그러는 게지? ! 내가 소년 과부가 되어 팔자를 고쳤다고 깔보고 그러는 것이지?..."

수원집은 바르르 떨다가 그만 울음이 확 쏟아지고 말았다.

"팔자가 사나워 이렇게 와 있기로 나중에는 들을 소리 못 들을 소리 다 듣고..."

울음 섞인 푸념을 하려니까 밖에서 인기척이 난다. 새며느리가 내다보니 시아버지다. 여편네들은 우우 나와서 인사를 하였으나 싸우던 두 사람만은 앉은 채 있었다.

상훈이는 딸이 학교에 가는 길에 기별을 해서 급히 병문안을 왔으나 부친이 잠깐 눈을 떠보고는 그대로 눈을 감고 자는 척하기 때문에 곧 나와서 안에 들른 것이었다.

"추운데 어서 들어오게."

하며 당숙모가 권하는 데는 대꾸도 아니하고,

"왜들 그러니?"

하고 축대에 내려서 있는 며느리를 바라본다.

"아녜요..."

안방에서는 한층 더 섧게 운다.

상훈은 벌써 알아차렸다.

"왜 지각없이 그 모양이야? 이집 저집으로 다니면서!"

안방에다 대고 자기 마누라를 꾸짖고 다시 며느리더러,

"어서 너 어머니 집으로 가시라고 해라."

하고 상훈은 훌쩍 나가버렸다.

덕기 모친은 영감이 가는 기척을 듣고 건넌방으로 건너가 버린다.

수원집은 손님들이 가도 변변히 인사 한마디 없이 입을 봉하고 있다가 다 가기를 기다려서 사랑으로 나갔다.

영감은 운 눈이 벌겋고 눈등이 통통히 부은 것을 보고 놀랐다.

말이 없이 옆에 족치고 앉은 것을 한참 보다가,

"왜 그래?"

하고 물으니까,

"저는 여기 있을 수 없어요. 여관 구석으로든지 어디로든지 나갈 테야요."

하고 눈물이 글썽글썽해진다.

영감은 놀라면서도 화가 났다.

"무슨 주책없는 소리야! 왜 그러는 거야? 말을 시원히 해야지?"

하고 소리를 벼락같이 질렀다.

"나중에 차차 아세요. 전 어쨌든지 나가요."

하고 수원집은 참 정말 당장 나갈 듯이 막 잘라 말을 하고 일어선다.

영감은 일어나려야 일어날 수 없는 몸이다. 성한 몸 같으면 급한 성미에 벌떡 일어나서 머리채라도 휘어잡을지 모르나 꿈쩍할 수 없다.

"거기 앉어! 사람이 왜 그 모양이야?"

하고 몸을 놀리지 못하는니만큼 소리만 고래고래 높아간다. 수원집은 잠자코 반 간통이나 떨어져 앉았다.

"누구하고 싸운 거야?"

며느리와 평시부터 맞지 않는 것은 알지만 며느리와 싸웠느냐고 묻기는 싫었다.

"제가 아무리 이렇게 이 댁에 들어와 있기로 어쨌든 아랫사람인데 아랫사람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먹고서야 어떻게 한신들 붙어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누가 무어라기에?"

"덕기 어멈이 영감님은 어서 돌아가셔야 하고 저는 제 똥이 구린 줄을 모른다고 제멋대로 야단이니 이 댁은 며느리만 사람입니까?..."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럴 법이 있나? 그 애가 그런 애는 아닐 텐데..."

영감은 노기를 감추고 도리어 나무라는 어조이다.

영감은 그렇게밖에 할말이 없었다.

"그래도 영감께서는 그런 소리를 하시죠. 내 말씀은 또 못 믿으셔도 며느님 말은 믿으시겠다는 말씀이죠?"

또 발끈하며 대들었다.

"잔소리 말어. 이 집안에는 그래 어른이 없고 예절도 없다는 말이냐? 그래 그런 소리를 좀 들었다기로 나간다는 것은 무슨 당치않은 소린가. 이 집안에는 덕기 모만 있고 덕기 모를 바라고 이 집안에 와서 사는 거란 말인가? 생각을 좀 해 보아! 그만 요량은 들었을 게 아닌가?"

영감은 천천히 나무랐다. 수원집은 당신 말씀이 옳소이다 하는 듯이 고개를 숙이고 앉았다. 새삼스럽게 이 영감의 말에 감동이 되어서 마음을 돌렸으랴. 처음부터 나간다는 것은 한번 트집을 잡고 말썽을 만들어 보자는 것인 거야 영감도 짐작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아무러면 나더러 어서 죽어라고야 할까. 설사 그런 악독한 생각이 있기로서니 제 속에 넣어둘 게지 입 밖으로 낼 리야 있나. 그래 당장에 내 귀에 들어울 것을 알면서 자네 듣는데 그런 소리를 할 사람이 있단 말인가?..."

역시 며느리 두둔만 하는 것같이 들렸다.

"그런 생각이 노상 마음속에 있으니까 무심중에 나오는 것이지요. 암상 많은 사람이 발끈하면 무슨 말은 아니할까요."

그렇게 듣고 보니 그도 그럴듯하다. 영감은 잠자코 눈만 껌벅거리고 누웠다.

"그래 무엇 때문에 그 애가 나 죽기를 바란다던가?"

하고 말을 시켜보려 한다.

"무엇 때문은 무에 무엇 때문예요. 영감 돌아가시면 나는 자연히 밀려 나갈 테니까 그러면 제가 안방차지를 하고 아들 내외와 재밌다랗게 살자는 것이죠."

듣고 보니 그 역시 그럴 듯도 하다. 영감은 잠자코 화를 참는다.

"그래 자네한테는 무에 구리다던가?"

영감의 입에서 또다시 그런 말은 말라고 달래는 듯 나무라는 듯하는 소리가 나오지 앉는 것을 보니 영감의 마음이 차차 돌아서는 기미다. 수원집은 좋아라고 얼굴을 쳐든다.

"누가 압니까. 제가 못된 짓을 하는 것을 본 게지요!"

하고 아랫입술을 악물다가,

"그런 소리를 내놓아서 정 안 되면 내쫓자는 게지요!"

하고 치를 떤다.

이 말도 또한 듣고 보니 그럴듯한 말이다.

"그것두 아무도 없는 데면 모르겠지만 손님들이 열좌를 하고 어린 며느리가 있는 앞에서..."

수원집은 말을 맺지도 못하고 울어버린다. 영감은 첩이 볶이는 것이 가엾은 생각이 들었다.

 

 

 

3 충돌

덕기는 떠나는 것을 또 하루 이틀 물리는 수밖에 없었다. 부친이 시탕(侍湯)을 한다든지 하면 걱정이 없겠지만 펀펀히 제가 앞에 있으면서 조부가 기동이나 하는 것을 보기 전에는 떠날 수가 없었다.

조부도 떠날 테거든 떠나라고는 하지마는 그래도 앞에 있어주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그러나 집에 들어앉았기도 싫었다. 모친과 서조모의 충돌이 생긴 이후로는 제 처와 안방 식구와도 싸우고 난 닭 모양으로 지내는 것이 보기 싫었다.

이튿날 덕기는 부친에게 가보았다. 이것저것 이야기할 것이 많았다. 경애 이야기도 물론이려니와 그저께 저녁에 조부와 충돌된 데에 대해서 제 의견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부친은 아직 일어나지 않아서 안으로 들어갔다. 모친이 조부의 증세를 물은 뒤에 서조모가 무어라 하더냐고 물었으나 모른다고만 하였다. 어제 사랑에 나와서 울며불며 무슨 말을 한 것은 몰라도 제 처를 가지고 나는 나갈 테니 잘들 살아보라느니, 너의 세 식구가 입을 모아 나를 쫓아내려 한다느니 하고 까닭 없이 들볶는 것을 못 들은 것도 아니요, 또 아내에게 자질구레한 사연을 듣고는 분하기도 하고 의아한 점도 있었으나 그까짓 말은 모두 귓가로 넘기자는 것이었다.

"또 네 처를 볶겠구나? 할아버니께 또 있는 말 없는 말 쏘삭이는 것은 어쨌든지간에 그 어린 것을..."

모친은 새삼스럽게 분해한다.

"그런 줄을 뻔히 아시면서 덧들여놓으시는 어머니께서 딱하시지 않아요? 무어라든 어쩌든 가만 내버려 두시면 그만 아녜요?"

"사람을 까닭 없이 들큰거리는 것을 어떻게 가만있니? 어제 아침만 해도 사랑에 좀 늦게 나갔다고 시비요, 네 처를 보고 시아버니가 숨을 몰아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사람이니 어서 돌아가셔서 모두 제 차지가 되었으면 너희들은 춤을 추겠구나- 하고 생트집을 잡더라니 그게 말이냐? 제가 그따위 앙심을 먹고 어서 돌아가셔서 볏백*이고 꾸려 가지고 한 살이라도 더 늙기 전에 조씨 집에서 빠져나가려는 생각이니까 그러는 게 아니냐."

모친은 이에서 신물이 나는 듯이 펄펄 뛴다.

"글쎄, 어머니께서부터 그 사람을 그렇게 생각하시니 그 사람도 우리를 또 그렇게 들씌우는 소리를 하는 게 아닙니까? 첩이라 하고 게다가 나이 젊으니까 하는 수 없지만 더구나 네 똥 구린 줄을 모르느니 하는 말씀을 하시면 누구는 가만있을까요?"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이라 덕기는 자기 모친 편을 들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기 모친이 매사에 좀 더 점잖게 해서 수원집을 꽉 누르고 채를 잡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부족했다.

"아무러면 내가 공연한 소리를 했겠니? 제삿날만 하더라도 그 부산통에 어멈과 틈틈이 수군거리다가 남들은 바빠서 쩔쩔매는데 친정에서 누군가 올라와서 무슨 여관에선가 앓아 누웠는데 곧 가보아야 할 일이 있다고 영감님이 안 계신 틈을 타서 휘 나가버리니 제 어멈이 숨을 몬대도 그럴 수 없는데 그게 말이냐? 그건 고사하고 간난이년이 보니까 최 참봉하고 문간에서 또 수군거리다가 최 참봉은 사랑으로 들어가 버리고 수원집은 허둥지둥 나가더라니 저희끼리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지 암만해도 수상하지 않으냐? 아무리 정성이 없고 할 줄 모르는 일이라 하기로 대낮까지 경대를 버티고 앉았던 사람이 겨우 나물거리를 뒤적거리는 체하다가 쓸어 맡겨 놓고 휘 나가는 그런 버릇은 어디 있고, 원체 그 어멈이 최 참봉의 천으로 들어온 거라는데 들어온 지 며칠이 못 되어서 부동이 되어 숙덕거리고 또 게다가 나갈 제 대문 안에서 최 참봉과 수군거린다는 것은 무엇이냐. 어쨌든 저희들끼리 무슨 내통들이 있는 것이 뻔한 게 아니냐마는 할아버니께서는 그런 걸 아시기나 하시니!"

덕기는 수원집이 제삿날 조부가 출입한 틈을 타서 한 시간 동안이나 나갔다 들어왔다는 말을 아내에게 들었으나 그다지 의심스럽게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모친의 말대로 그렇다 하면 좀 의아하기는 하다.

건넌방 아이 보는 간난이년이 보고 들어와 한 말이, 최 참봉하고 수원집이 문간에서 만나본 것은 사실일 것이나 애초에 수원집을 조 의관에게 대어준 사람이 최 참봉이니 들어오고 나가고 하다가 우연히 문간에서 만난 것인지도 모르겠고, 어멈을 최 참봉이 지시하여 들인 것도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지 반드시 그지간에 맥락이 있는 일이라고만 생각할 수도 없으며, 또 수원집이 제삿날 나갔다는 것만 하여도 사실 친정에서 누가 와서 있다가 독감이고 걸려서 누워 잇게 되어 사람을 보내서 만나자고 기별하니까 어멈이 말을 받아넘기느라고 수군수군하고 뒤미처 나갔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친정에선 누가 왔대요?"

덕기가 물으니까,

"오라비라고 하더라마는 오라비면야 왜 사랑에 와서 판을 차리고 누웠지 않고 여관에 가서 자빠졌겠니? 어쨌든 오라비기로 그렇게 불이시각(不而時刻)하고 뛰어갈 건 무어냐?"

하는 모친의 눈초리는 어디까지든지 의심을 내는 것이었다.

"그 역시 사람의 일을 누가 안다고 그렇게만 밀어붙여 둘 수 있나요? 할아버니께는 벌써 말씀해 두고 나갔던 것인지도 모를 것이요..."

덕기는 그래도 모친의 그런 생각을 말리려 하였다. 수원집을 두둔하려는 게 아니라 어쨌든 구순하게 지내게 하자는 생각으로이었으나 모친은 아들이 자꾸 수원집 편을 드는 것 같아서 못마땅하였다.

모자는 잠깐 말을 그치자 덕기는 일어서면서,

"할아버니께서 이따고 내일이고 좀 오시라고 하시더군요."

하고 조부의 명을 전하였다.

"어차피 어떠신가 가뵈려 했지만 무슨 말씀이 계신 게로구나?"

모친은 잠깐 뜨끔한 생각이 들었다.

"몰라요. 수원집이 무어라고 했는지요."

"그야 묻지 않아도 뻔한 노릇이지만..."

모친은 아무래도 뒤가 꿀리는 말을 해놓아서 애가 씌었다.

부친은 사랑에서 밥상을 받고 앉았었다.

"오늘 못 떠나겠구나?"

"..."

덕기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만 그러시지 않았으면 저야 가도 좋겠지요만...이라고 하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를 않았다.

"이번 봄이 졸업 아니냐? 그래 어디를 들어갈 테냐?"

부친이 아들의 공부에 대하여 묻는 것은 처음이다. 절대 방임주의, 절대 자유주의라 할지 덕기가 꼼꼼 혼자 생각하고 결정을 하여 조부에게 말하면 이 양반은 신지식에 어두워 그런지 학비만 내어줄 뿐이요, 부친에게 허락을 구하면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그것으로 보면 덕기가 이만큼이나 되어가는 것은 제가 못생기지 않고 재주도 있거니와 철도 일찍 들어 그렇다고 할 것이다.

"경도제대로 들어갈까 하는데요."

"그럴 게 무어 있니? 경성제대로 오면 입학에 경쟁이 심한 것도 아니요 또 집안 형편으로도 좋지 않으냐?"

"글쎄올시다. 그래도 좋겠지요."

덕기는 아무쪼록 서울을 떨어져 있고 싶었으나 경성으로 오게 되면 와도 그리 싫은 것은 없었다.

"그렇게 해라. 그렇게 하는 게 무엇보다도 집안 형편에 좋고..."

부친은 말끝을 아물리지 않았다. 실상은 '내게도 좋겠다'는 말을 하려다가 만 것이었다.

상훈의 생각으로 하면 부친이 이대로 나아가다가는 어떠한 법률상 수단으로든지 자기를 쑥 빼어 놓고 한 대 걸러서 이 아들에게로 상속을 시킬지도 모르겠고 또 게다가 수원집의 농락이 있으니까 아무래도 뒷일이 안심이 안 된다. 그렇다고 요사이의 누구누구의 집 모양으로 부자가 법정에서 날뛰는 그따위 추태는 자기의 체면상으로도 못할 일이요, 더구나 종교가라는 처지로서 재산 문제로 마구 나설 형편은 못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쨌든 덕기를 꼭 붙들어 앉혀서 수원집이나 기타 일문 일족의 간섭이나 농간을 막게 하고 한편으로는 덕기를 자기 손에 쥐고 조종해나가는 것이 제일 상책이라고 생각한 것이요, 또 그러자면 아무리 부자간이라 하여도 지금까지와는 태도를 고치어서 비위를 맞추어주고 살살 달래서 벗으러져 나가지 않게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 무슨 과를 택하란?"

"법과루 가겠에요."

덕기는 법과 중에도 형법에 주력을 써서 장래에는 변호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형사 전문의 변호사는 아니더라도 어쨌든 조선 형편으로는 그것이 그것이 자기 사업으로 알맞을 것 같았다.

병화에게 언젠가 그런 말을 하니까,

", 자네는 전선(戰線)의 후부(後部)에 있어서 적십자기 뒤에 숨어 있겠다는 말일세그려?"

하고 비웃은 일이 있었다.

"군의총감(軍醫摠監)이 되겠다는 말인가?"

병화는 이런 소리도 했다.

"군의총감이 아니라 일 간호졸(看護卒)이 되겠다는 말일세."

덕기가 이렇게 대거리를 하니까,

"간디도 변호사 출신이었다!"

하고 짓궂이 놀렸다.

어쨌든 덕기는 무산 운동에 대하여 무관심으로 냉담히 방관만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제일선에 나서서 싸울 성격도 아니요 처지도 아니니까 차라리 일 간호졸 격으로 변호사나 되어서 뒷일이나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덮어놓고 크게 되겠다는 공상도 가지고 있지 않으나 책상물림의 뒷방 서방님으로 일생을 마치기도 싫었다. 제 분수대로는 무어나 하고 싶었다.

"법과보다는 경제과나 상과를 하면 어떻겠니?"

부친은 아들을 실업 방면으로 내보내고 싶어하는 말눈치였다. 그렇게 되면 자기는 그것을 이용하여 자기대로의 무슨 사업을 해보겠다는 셈속이다.

"경제과는 해도 좋지만 상과는 싫어요."

여기에도 덕기는 몽롱하나마 제 속다짐이 있는 것이었다.

"너 알아 하렴."

부친은 아무쪼록 아들의 말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듯이 가벼이 대답을 해 집어치우고 나서 목소리를 낮추어서,

"그건 그렇다 하고 너 일전에 어느 카페에 갔었니?"

하고 조용히 묻는다.

덕기는 깜짝 놀랐다. 카페에를 갔기로 부친이 별안간 물을 리가 없다.

'이 양반이 벌써 어디서 듣고 묻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며,

"네에, 김병화에게 끌려서 가본 일이 있어요."

하고 부친의 눈치를 쳐다보았다. 그러면서도 도리어 덕기의 얼굴이 벌개졌다.

"거기서 누구 만났니?..."

덕기는 부친에게 앞질려서 한 수 넘어간 듯도 하여 무어라 대답할지 맥맥하였다.

"대강은 짐작하는 터요 상관없는 일이지만..."

부친은 또 말을 시키려고 애를 쓴다.

"홍경애...를 만났지요."

홍경애라는 이름을 부르기가 서먹서먹하고 거북하였다.

"어느 카페든?"

"카페가 아니예요. 바커스라는 술집... 오뎅야더군요."

덕기는 이렇게 대답을 하면서도 조금도 겸연쩍은 낯빛은 없이 남의 일처럼 묻는 부친의 얼굴이 빤히 보이었다.

"무얼 하고 있든?"

한참만에 또 묻는다.

"술을 팔더군요."

"제 손으로 경영을 해?"

"아뇨, 고용살인가 봐요."

덕기는 그 주인과 동무로서 같이 하자고 하여 소일 삼아 하느니 어쩌느니 하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도리어 가엾은 사정이요 타락한 모양이더라고 하고 싶었다.

그것은 경애에게 동정이 가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여자가 당신 때문에 그렇게 되었습네다...고 오금을 박고 싶은 충동으로이었다.

"꼴은 어떻든?"

"그저 그렇지요. 일본 옷조각을 입고..."

부자의 수작은 잠깐 끊기었다.

"그건 어디서 들으셨에요?"

한참 만에 덕기가 물었다.

"글쎄 어디서 잠깐 들었기에 말이다."

하고 부친은 웃어버린다.

덕기는 더 캐어볼 수도 없고 궁금증이 났다.

"김병화가 그런 말씀 해요?"

"아니, 김병화를 내가 만나기나 하였니?"

하고 또 웃으면서,

"하여간 그런 데로 술을 먹고 다니지 마라. 벌써부터 술을 그렇게 먹고 다녀서 쓰겠니?"

하고 부친은 타일렀다.

그 말이 옳기는 하면서 덕기에게는 도리어 반항심을 자극하고 말았다. 하여간 술을 그렇게 먹지 말라는 말을 들으니 그란 몹시 취한 김에 뉘게 그런 말을 해서 부친의 귀에까지 들어가지 않았나 싶었다.

그러나 뉘게 이야기를 하였을꼬? 생각이 막연하다.

그란 취중에 아내에게 경애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하였던가? 그래서 아내가 어머니께 말씀하고 또 말이 아버지께로 들어가고 만 것인가?- 덕기는 이렇게 생각하여 보았다.

사실은 그 추측이 옳았다.

모친은 가뜩이나 한 판에 며느리에게 '어제 애아범이 홍경애인가를 일본 술집에서 만났대요' 하는 소리를 들을 제 한동안 잊었던 일이 다시 머리를 쥐어뜯었고 영감이 그저 끼리 돌면서 밑천을 대어주어서 그런 하이칼라 술집까지 경영시키는 것이라고만 믿어 버렸다.

모친은 아들을 보고 너까지 그년과 한편이 되어서 술을 얻어먹으러 다니느냐고 듣기 싫은 소리를 하고 싶었으나 그동안 큰집에서는 이런 말을 꺼낼 틈이 없었고 아까 안방에서는 수원집과 싸우고 다니느냐고 야단을 칠 때 마누라의 입에서 홍경애 논래가 나오고 말았다.

마누라의 말은 네 살이나 다섯 살 먹은 자식까지 달렸는데 좀처럼 헤어질 리가 있겠느냐고 상성이요, 영감의 말은 헤어지든 말든 아랑곳이 무어냐? 지금이라도 이혼해 달라면 이혼해 주마고 맞장구를 친 것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마는 저대루 내버려두시면 어떻게 합니까?"

덕기는 말을 꺼내기가 거북한 것을 억지로 부리를 땄다.

"내버려 두지 않으면 어떻게 하니? 내 처지도 내 처지요, 제가 발광을 하고 떨어져나간 것을..."

"말눈치가 그렇지 않은가 보던데요. 어쨌든 아버지 체면만 생각하시고 거기 달린 두 사람 세 사람을 희생을 해버리시고 마는 것은 아무리 아버니께서 하신 일이라도 저는 큰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덕기는 당돌히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네가 참견할 것 아니야!"

하고 부친은 소리를 친다.

"제가 참견할 것도 아닙니다마는 처음 일이고 나중 일이고 모두 아버지 책임이 아닙니까? 그 책임을 어떻게 하시렵니까?"

아들은 대드는 수작이다.

"책임이 내가 무슨 책임이란 말이냐? 어쨌든 네가 쥐뿔나게 나설 일이 아니야!"

부친은 또 불쾌히 핀잔을 주었다. 학교 이야기를 할 때까지는 덕기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 잘 어루만져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였으나 지금은 그것도 잊어버리고 전대로의 까닭 모를 못마땅한 사람이 머리를 든 것이다.

"어쨌든 저편에서 일을 버르집어낸 것도 아닐 것이요, 저편에서 물러선 것은 아니겠지요. 세상에서 떠드는 것이 무서우니까..."

"잔소리 마라! 어린 게 무얼 안다고 주책없이 할 소리 못할 소리 기탄없이..."

부친은 듣기도 싫지만 아비 된 성검을 세우려는 것이다.

덕기는 잠자코 앉았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말이 난 김이니 하고 싶던 말은 다 하고야 말겠다고 단단히 결심했다.

"어쨌든 그 애가 불쌍하지 않습니까? 그 애까지야 무슨 죄로 희생이 됩니까? 제가 감히 아버지의 잘잘못을 말씀하려는 게 아닙니다마는 뒷갈망을 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나더러 무슨 뒷갈망을 하라는 말이냐? 그 자식은 내 자식이 아니야!"

하고 부친은 소리를 한층 더 버럭 지른다.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 저도 그제 저녁에 가보고 왔습니다만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안 할 말씀으로 아버니께서 책임을 모피하시려고- 허물을 저편에 들씌우고 발을 빼시려고 그렇게 모함을 잡으신 것은 설마 아니시겠지요?"

덕기는 상성이 났다.

"무어 어째? 그게 자식으로서 아비에게 하는 말버릇이냐?"

하고 부친은 화를 참느라고 소리를 낮추어서,

"어서 가거라! 어서 가!"

하고 들것질을한다. 마치 제삿날 조부가 자기에게고 돌아앉는다. 마치 제삿날 조부가 자기에게 한 말을 대를 물리듯이 나가라고 한다.

부친은 덕기가 아이까지 보았다는 말에는 역정을 내면서도 궁금증이 났다. 그러나 그것을 다시 따져서 물어볼 형편도 아니다.

지금 덕기에게 그 자식은 내 자식이 아니라고 막가는 말을 하기는 하였지만, 이 때까지 교회 사람이나 일반 사회에 대하여 경애와 아무 관계가 없는 듯이 변명하기 위하여 해 내려 온 말을 자식에게도 되풀이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나 자기 마음을 혼자 몰래 쪼개놓고 본다면 내 자식이 아니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더욱이 자식보다도 경애 자신에게 대하여까지라도 3년이 넘은 오늘날까지 아주 잊어버린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 와서는 새삼스럽게 가까이 할 기회도 멀어졌고 만나볼 면목도 없고 보니 애를 써 묵은 부스럼을 건드릴 필요가 있으랴마는 생각으로 내버려 둘 뿐이다.

지금의 상훈만 하여도 그때에 경애를 매정스럽게 떼버리지 않고도 다른 도리가 있었을 것이지만 그 당시의 상훈은 대담치가 못하였다. 세상- 세상이라느니보다도 교회 속에 소문이 퍼지는 것만 무서워서 겁을 벌벌 내다가 그야말로 어떻게 뒷갈망을 할 수 없으니까 흐지부지 떨어지게 되고 만 것이다. 그때 돈 천 원 가량만 들여서 멀리 딴 시골로만 보내버려도 좋았겠지만, 부친의 손에서 명목 없는 돈을 천 원씩 끌어내기 어렵고 화개동 집의 집문서조차 부친의 수중에 있으니 불시에 빚을 내는 수도 없는 터에 동경 간 경애는 미칠 듯이 돌아오겠다 하고 또 사실 몸이 무거워 가는 것을 내버려 둘 수도 없고 하여 데려 내오기로는 하였으나 나와서 당주동 집에 있으면 드나드는 교회의 전도 부인들의 눈이 무섭고 하니까 급한 대로 북미창정 집으로 숨겨 버린 것이었다.

남 듣기에는 딸은 여전히 동경서 공부하고 자기는 서울서 혼자살이하기 어려우니까 수원으로 다시 내려간다 하고 교회 사람의 전별까지 무서워서 어름어름하고 수원으로 잠깐 갔다가 올라와서 집 정돈을 하고 딸을 맞아들인 것이다. 모녀의 종적이 감쪽같아진 것을 보고 누구나 천당에 먼저 올라가서 있으리라고 생각지는 않았던 것이다. 감추고 숨기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요 좁은 서울 바닥에서 전차 속에서나 길거리에서 전일의 교회 형님 아우님을 만날 때 시골서 잠깐 다니러 왔다는 핑계도 한두 번이다. 소문은 얼토당토않은 데서부터 점점 정통을 쏘아들어가게 되니 어지중간에서 볶이는 사람은 경애 모친이요, 상훈은 얼굴이 노래서 돌아다닐 뿐이었다. 아주 교회와 담을 쌓고 패를 차고 나선다면 첩 하나 얻었다고 세상에 없는 죄를 지은 것이 아니요 도리어 떳떳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세간적 명예를 희생할 용기는 아니 났다. 그러면서도 아직은 멀리 보내거나 떨어지기도 싫었다. 그 동안에 아이는 낳았다.

"자아 인제는 멀리 떨어져 가 살 테니 한 밑천 해 주우. 죄인같이 서울 속에서 숨어 살수도 없고 수원으로 갈 수가 없지 않소. 자식은 물론 길러 바칠 것이요, 인연을 끊자는 것도 아니오."

경애 모친은 또다시 돈 놀래를 꺼냈다. 생각해보니 상훈이 교인이라 아내가 죽기 전에야 이혼을 할 수 없고 이혼 못하면 떳떳이 내놓고 살 수 없다. 그것도 자기네들이 교회 방면에 연이 없었다면 모르겠으나 그렇지 못한 사람의 유족으로서 가위 조상훈의 첩 노릇을 한 대서야 상훈의 체면도 체면이려니와 죽은 이의 낯도 더럽히는 것이다. 어쨌든 서울은 떠나고만 싶었다. 그러나 상훈은 몇 달 전에 경애를 동경서 불러내려 할 때보다도 돈 순환이 더 어려웠다. 그것은 수원집이 그동안에 수원 떨거지 편으로 소문을 듣고 영감님에게 고자질을 했 때문이다.

영감은 아들에게는 이런 말 저런 말 안 하였으나 한층 더 돈 한 푼 자유로 쓰지 못하게 단속을 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돈을 시원히 해줄 수 없는 한편에 소문은 점점 퍼져가고 게다가 수원집이 덕기 모친의 속을 태워주느라고 이런 사연을 짓궂이 들려주고 나니 덕기 모친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덕기 모친은 부부끼리 옥신각신 하기 전에 수원집이 가르쳐주는 대로 단통 북미창정으로 뛰어가서 모녀를 붙들고 머리채만 내두르지 않았을 뿐이지 갖은 욕설, 갖은 위협을 다하였던 것이다. 위협이라는 것은 너희가 떨어지지 않으면 교회 속에 소문을 퍼뜨리고 우리 시어머니를 시켜서 너의 고향인 수원에까지도 발을 들여 놓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상훈의 부부는 아주 등을 맞대고 살게 된 것이다.

덕기 모친이 방망이를 들고 난댔자 그것이 무서운 것은 아니요,또 덮어놓고 세상을 꺼린다 하여도 상훈으로서는 세상 사람이 경애의 부친이나 그 가족에게 친절히 한 것이 처음부터 그 딸 하나를 보고 야심이 있어서 한 것이라고 오해할 그 점이 싫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다만 지사요 선배요 또한 그들의 가긍한 처지를 동정하여서 도운 것이요 나중에 경애와 그렇게 된 문제건만 그것을 혼동해 생각할 것이 자기의 인격상 큰 차이가 있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시퍼렇게 살아 있는 자기 아내와 교인인 처지로서나 장성한 자식들의 낯을 보아서나 도저히 이혼할 수 없는 처지니 어차피 오래가지 못할 바에야 아이는 얼른 떼어서 누구에게나 내맡기고 제대로 시집이나 가게 하자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러재도 역시 얼마간 주어서 시골로--아무쪼록 학교에 취직할 자리가 있을 만한 시골로 쫓아보내는 게 상책이었으나 그렇게 입에 맞는 떡이 여기 있소 하고 나설 리도 없으니 차일피일하고 지냈던 것이다.

그러나 경애 모로 생각하면 이런 억울한 일이 없다. 딸 버리고 넓은 세상을 좁게 살고 욕더미에 앉아서 소득이라고는 성이 가신 외손자 새끼 하나뿐이다. 들어 있는 집도 문서가 남의 손에 있으니 내 것이 아니다. 만일 이 사람이 한 가지 굽죄는 일만 없으면 멱살이라도 들고 날 것이요, 둘러치나 메치나 매한가지니 벗고 나서서 세상에 떠들어 욕이라도 보이고 싶으나 그럴 수도 없는 의리가 있다.

우선 돈 천 원 해달라고 하여 어디로든지 서울을 뜨자는 것이나 그 역시 정말 힘에 겨워 그런지 마음에 없어 내대는 수작으로 그런지 어름어름하고 그날그날을 보낼 따름이었다.

그러다가 하루 와서는 큰 결심이나 한 듯이 척 하는 소리가,

"아이는 뉘게 맡기고 우선 이것을 가지고 어디로든지 가시오. 자식은 꼭 내 자식이란 법도 없고 내 자식이기로 없었던 셈만 치면 그만 아니오?"

하고 돈 3백 원을 내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다는 소리가 당주동 집을 떠날 때 5백 원 전셋돈 찾은 것이 있으니 그럭저럭 천 원 돈은 되는 셈이 아니냐는 것이다. 5백 원이라는 것은 이사하고 세간 장만하고 해산하고 하는 데 상훈이 대어주었대도 넉넉지 못하니까 찔러 들어가고 그동안 몇 달 사는 데도 식량 이외에는 날돈으로 대준 게 없으니 자연 흐지부지 다 쓰기도 하였지마는 어쨌든 하는 말이 괘씸하였다. 또 그것은 고사하고 딸자식은 꼭 내 자식이란 법도 없고, 내 자식이라 하여도 없었던 셈만 치자는 말을 들을 제 트집을 잡을 말이 없어서 한말이라 하기로 이것이 사람의 탈을 쓴 놈의 말인가 하고 어이가 없어 말이 아니 나왔다. 대자바기*만큼 싸워야 소용이 없었다. 남은 것은 단돈 3백 원이요, 그 이튿날부터는 상훈이가 발그림자도 안 하였다.

상훈이는 그렇게 해서 피차에 정을 떼자는 것이요, 세상에 대하여도 변명거리가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 경애 모녀가 종적을 감춘 것은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그 아이 아비 되는 남자와의 연애 문제 때문이라고 소문을 내놓기에 편리하기 때문이었다. 그뿐 아니라 그렇게 해놓고 보면 싫어도 하는 수 없이 조만간 자기 손으로 뒷갈망을 못 할 것이니까 자연히 해결되게 할 도리는 그밖에는 상책이 없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경애 모녀는 그대로 오늘날까지 3, 4년간을 그 집 속에 들엎드려 사는 것이다.

경애 모친도 사내같이 걸걸한 성미에 그까짓 사람답지 못한 놈과 다시 잇새는 어울러서 무엇하겠느냐는 뻗대는 생각과 또 하나는 그래도 전일의 은인이라는 의리를 저버릴 수 없어서 모든 분을 참고 제대로 내버려 둔 것이었다.

한 달 두 달이 일년이 되고, 일년이 이태가 되니 분도 식어간 것이다. 그동안 상훈이는 은근히 소문을 들어 알았으나 집을 내놓으라고 채근한 일은 없었다. 노영감도 그 집에 대하여는 세전 안받고 빌린 셈치고 내버려두었다. 그것은 수원집이 한고향이라 하여 그럼인지 쏘닥이지 않은 관계도 있지만 노영감으로 생각하면 잘못은 아들에게 있고 경애 편이 가엾다는 생각이 든 것과 또 하나는 그래도 아들의 명에를 위하여 집사단으로 문제를 또 일으키기 싫기 때문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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