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부 얼드브릭험, 스톡 베어힐스, 케넷브리지와 쿼터쇼트에서
그대의 영묘한 부분과 그대 속에 섞여 있는 모든 불꽃 같은 부분들은, 천성적으로 하늘로 오르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주의 성향에 의해 흔히 육체라고 불리는 복합체의 지배를 받는다. - M. 안토니누스
5-1
잇따른 사건들과 함께 쓸쓸한 몇 달이 계속해서 지나가고 다음 해 2월의 어느 일요일이 찾아왔을 때, 질링엄이 품었던 의혹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는 머지않아 분명해질 것이었다.
수와 주드는 얼드브릭험에서 살고 있었는데, 두 사람의 사이는 지난해에 수가 셰스톤을 떠나 그에게 갔을 때의 관계와 똑같은 상태였다. 법정에서의 소송 절차는 이해하지 못할 공문서가 가끔 날아오는 정도였으므로 별로 절실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들 두 사람은 주드의 문패가 붙은 작은 집에서 평상시처럼, 아침 식사 때 만났다. 주드는 이 집을 연 15파운드로 세냈고, 기타 지방세와 국세로 3파운드 10실링을 냈다. 그리고 그의 대고모가 사용하던 오래되고 어수선한 가구류를 비치했다. 그것들을 메리그린으로부터 운반만 하는 데도 거의 새로 사는 것만큼의 비용이 들었다. 수는 집을 지키며 모든 살림을 맡아 했
다.
주드가 방안으로 들어섰을 때 수는 방금 도착한 편지를 들어 보였다.
"그런데, 무슨 내용이지?"
그는 그녀에게 키스를 하고 나서 물었다.
"필로트슨이 수 필로트슨 부인과 폴리를 상대로 반년 전에 공시했던 잠정 이혼 판결이 결국 확정되었다는 거예요."
"아..."
주드는 의자에 앉으면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
주드가 아라벨라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도 1, 2개월 전쯤 같은 결과가 되었었다. 이들 두 건의 소송은 하찮은 사건이어서 신문의 기삿거리도 되지 못했고 단지 변호사가 할당되지 않는 기타의 많은 사건들의 긴 명단 속에 이름이 올라있을 뿐이었다.
"자, 그렇다면, 수. 어쨌든 이제는 하고 싶은 대로 할 수가 있겠군!"
그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애인을 바라보았다.
"우리-오빠와 나-는 이제 한번도 결혼한 적이 없는 사람처럼 자유롭게 되었다는 건가요?"
"자유롭지. 다만 목사님은 우리가 재혼하는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반대하기 때문에 누군가 다른 목사에게 결혼식을 넘기게 될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난... 궁금해요. 오빠는 정말 우리가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세요?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것은 알지만요. 하지만 나의 자유가 부부관계를 가장했기 때문에 얻은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네요!"
"어떻게?"
"글쎄요. 우리에 대한 진실이 알려졌다면 이런 판결이 공시되지는 않았을 거예요. 이렇게 된 것은 단지 우리가 변호사를 내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재판소에서도 잘못된 추정을 하게 된 것이 아닐까요? 그러므로 나의 자유는 아무리 적절하다고 해도 합법적이진 못하겠지요?"
"글쎄, 그렇다면 너는 왜 이번 일을 거짓으로 가장하자고 했지? 너는 너 스스로를 비난하고 있을 뿐이야."
그는 짓 게 말했다.
"주드, 제발 그러지 말아요! 오빠는 아직 그 문제에 대해 초조하게 서둘면 안 돼요. 오빠는 나를 이대로 받아주어야 해요."
"알았어, 수. 그렇게 할게. 네가 옳을지 모르지. 그 문제의 핵심에 대해서 꼭 무엇인가를 증명해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확정판결을 위해 추론하는 것은 법률가의 일이야. 어쨌든 우리는 동거하고 있는 거야."
"그래요. 비록 그들의 억측과는 다르지만요."
"한 가지는 분명해. 어떤 식으로 법률상의 명령이 떨어지든 결혼은 현실적으로 붕괴될 때 없어지는 것이 확실해. 우리처럼 가난하고 그늘에서 사는 서민들에게는 한 가지 이점이지. 이번과 같은 일이 대단히 거칠고 재빠르게 해결된다는 것이지. 나와 아라벨라의 경우도 똑같았지. 그녀의 범죄적인 재혼이 혹시 발각되어 처벌받지나 않을까에 대해 나는 걱정했지만 어느 누구 한 사람 그녀에게 흥미 같은 것을 품지 않았고, 묻는 사람도 없었어. 의심하는 사람도 없었지. 만일 우리가 특권이 있는 귀족들이었다면 우린 분명히 곤경에 빠져 몇 날 몇 주를 조사받게 되었을 거야."
주드가 들떠서 떠들어대는 해방감 속으로 수도 점점 빠져들어 갔다. 그녀는 저녁은 차가운 음식으로 먹는 한이 있더라도 들판으로 산책을 나가자고 제안했다. 주드는 그말에 동의했다. 그리고 수는 위층으로 올라가서 출발준비를 하고 그녀의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화려한 겉옷을 걸쳤다. 주드도 더 밝은색의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자, 이제 우리 팔짱 끼구 걷자구. 약혼한 사람들처럼 말야. 우리는 합법적으로 그렇게 할 권리가 생긴 거야."
그가 말했다.
그들은 걸어서 읍내를 빠져 나왔다. 읍내와 경계가 되는 저지대의 길을 따라 걸어갔다. 그곳에는 마침 서리가 내려 광대한 들판은 푸르지도 않고 곡물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 두 사람은 자신들에게만 너무 몰두해 있어 그들 주변에서 멀어지는 일들은 거의 알아차리지 못했으며 그들의 의식 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귀여운 수, 결국 우리는 상당한 기간이 지나고 나면 결혼할 수 있다는 거야."
"그래요. 우리는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수는 차분하게 말했다.
"그렇게 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
"꼭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어요, 주드. 하지만 나는 지금도 역시 결혼에 대해서는 여태까지 줄곧 느껴온 것과 똑같은 생각이 들어요. 난 지금도 어떤 철칙 같은 계약으로 인해 오빠의 다정함과 나의 애정을 잃어버리지나 않을까 두렵기만 해요. 마치 과거에 불행했던 우리의 부모님처럼 말이에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겠어? 나는 너도 알다시피, 정말 너를 사랑해, 수."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내 생각엔 늘 그랬던 것처럼 연인 사이로 지냈으면 좋겠어요. 현재 우리가 살면서 낮에만 만나는 것처럼 말이에요. 이런 것이 훨씬 더 아름답지 않아요? 적어도 여자에게 있어서는 그래요. 그리고 여자가 남자의 마음을 믿을 때만 말이에요. 그래서 지금부터는 우리는 과거처럼 이러쿵저러쿵 체면을 따질 필요는 없다고 봐요."
"우리가 각자 다른 사람과 결혼 생활했던 경험이 애초부터 용기를 북돋아주지 못했다고 생각돼."
그는 약간 음울하게 말했다.
"우리의 불가사의한 비현실적인 성품 때문이거나, 아니면 우리의 불행 때문이겠지. 그러나 우리 두 사람은..."
"언제나 불만에 가득 찬 두 사람이 결합하면 전보다 두 배는 나빠지겠지요... 주드, 내 생각은 오빠가 행정당국의 도장을 받아 나를 소중히 받들겠다는 계약을 맺고 같은 지붕 밑에서 내가 오빠에게 사람받는다는 허가를 얻는 그 순간에 오빠를 두려워하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워요. 아, 얼마나 무섭고 몸서리쳐지는 일인지! 오빠와 함께 자유로워진다 해도 나는 이 세상의 어떤 남자보다도 오빠를 깊이 믿고 있어요."
"아니, 안돼. 내가 변심할 것이라고 말하지 마!"
그는 타일렀다. 그러나 목소리도 역시 불안으로 떨고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의 기분과 우리의 가족에 얽힌 불행하고 특이한 성질은 고사하고, 남자의 본성에는 본래 한 여자의 애인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든가 또는 되어야 한다는 소리를 듣게 되면 오히려 그 여자를 사랑하지 않게 되는 희한한 특성이 있는 것 같아요. 사랑해서 안 된다고하면 오히려 더욱더 사랑하게 되지요. 결혼식이 서로를 소유하는 것이 허락된다는 것을 고려하여, 그날 이후에는 사랑하는 것을 그만두고, 가능하면 두 사람은 공석에서 서로 만나지 않는다는 맹세를 하고 서약서에 서명하는 것이라면 서로 사랑하는 부부가 지금보다는 더 많아질 거예요. 그런 식으로 마음에도 없는 서약을 한 부부가 남몰래 만나 몰래 침실 창문을 기어올라 옷장에 숨는다는 경우를 상상해 봐요! 그렇게 되면 부부간의 애정이 식는 법이 없겠지요."
"그래. 하지만 네가 말하는 것, 아니 그와 같은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인정해도 이 세상에서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너만은 아니야. 사랑하는 수, 많은 사람들은 아마 1개월의 쾌락을 위해 일생의 불쾌함을 희생으로 치루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자연력에 항거할 수 없기 때문에 모두가 결혼을 하는 거야. 우리 부모님이나 너의 부모님도 틀림없이 그것을 알고 계셨을 거야. 만일 그분들이 생각하는 습관이 있는 우리를 조금이라도 닮았었다면 그런 것은 아셨을 거야. 그러나 그들도 알면서도 같은 길을 걸었을 거야. 결혼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정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그러나 수가 그런 식으로 망령처럼 보이는 육체없는 사람이라면-이렇게 말하면 나쁘지만-동물적인 정욕이 전혀 없기 때문에 이런 일을 이성으로 처리하는 것이 가능하지. 하지만 우리같이 아주 멋없고 육중한 몸뿐인 천하고 가엾은 자들은 이성적으로 처리할 수가 없지."
"글쎄요."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들도 아마 비참한 결과가 될 거라고 오빠는 말했지요. 그리고 나는 오빠가 생각하는 그런 예외적인 여자는 아니에요. 여자들 중에 결혼을 좋아하는 여자가 오빠가 생각하는 것보다 적어요. 단지 결혼하면 품위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되고 때로는 사회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결혼할 뿐이에요. 나는 품위나 이익 같은 것이 없어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주드는 할 수 없이 옛날에 생각해 보았던 불평을 연상했다. 두 사람은 친했지만 그녀가 그를 사랑한다든가 또는 사랑하는 것이 가능하다라는 정직하고 솔직한 선언을 단 한번도 수로부터 들은 적이 없다는 푸념이었다.
"때때로 나는 네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정말 두려워."
그는 분노에 가까운 의아심을 나타내며 말했다.
"그리고 너는 말수가 너무 적어. 여자들은 남자에게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부 털어놓아서는 안 된다고 다른 여자들한테서 배운다는 것은 나도 알지. 그러나 애정의 최고의 모습은 남자와 여자의 완전한 성실함에 기본을 두고 있는 거야. 그런 것을 배운 여자들은, 남자가 아니기 때문에 남자는 훈훈한 관계를 맺은 사람들 중에서도 진심 어린 행위를 나타내 준 여자에게 가장 마음이 끌린다는 것을 몰라. 견실한 남자는 회피하기도 하고 얼버무려 넘기기도 하는 실속없는 애정에 끌리기는 해도 그것에 구애받지 않지. 언제나 슬쩍 빠져나가는 연애의 유희를 즐기는 여자에게는 네메시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율법의 여신)와 같은 복수의 신이 아주 자주 따라 다니지. 옛날에 그녀를 좋아하던 사람들이 조만간 그녀에게 느끼는 최악의 경멸 상태에서 말이지. 그런 여자는 멸시받아서, 무덤으로 갈 때도 누구 한 사람 슬퍼해 주지 않아."
어딘가를 멀리 바라보고 있던 수의 눈빛에는 죄책감이 나타나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비극적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주드, 오늘 나는 여느때처럼 오빠를 좋아하고 있다고 느껴지지 않아요!"
"좋아하지 않는다구? 왜?"
"아, 글쎄요. 오빠는 친절하지 못해요. 너무 설교조에요. 사실 나는 너무 못됐고 가치 없는 여자라서 어떤 심한 잔소리를 들어도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요!"
"아니야. 너는 나쁘지 않아! 너는 사랑스런 여자야. 하지만 내가 너한테서 어떤 고백을 듣고 싶어할 때면 뱀장어처럼 슬금슬금 빠져나가 버리는 거야."
"아, 아니에요. 나는 나쁘고 고집도 센 그런 여자에요! 내가 그렇지 않다고 해도 아무 소용없어요. 좋은 사람이라면 나처럼 꾸지람당할 필요가 없어요. 그러나 지금 나한테는 오빠밖에는 없고 나를 감싸줄 사람도 없어서, 어떤 식으로 오빠와 생활할까 그리고 오빠와 결혼할까 말까를 결정하는 데 내 맘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해요!"
"나의 동지이자, 사랑하는 수. 나는 너에게 결혼, 아니면 다른 일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아. 물론 안하지! 지금처럼 지나치게 토라지는 것은 좋지 않아! 이제는 이 일에 관해서 더 이상 얘기하지 말자. 그리고 지금까지와 같은 식으로 지내자. 지금부터 산책할 때는 목초지와 홍수와 금년의 수확량에 대한 전망 등등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하자."
이런 일이 있고 나서 며칠 동안 결혼이란 주제는 그들 사이에서 거론되지 않았다. 이제까지 층계참 하나만을 사이에 두고 생활했기 때문에 그들 두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끊임없이 마음에 걸렸다.
수는 지금은 상당히 실질적으로 주드를 돕고 있었다. 주드는 요즈음 독립해서 묘비를 만들기도 하고 비명을 새기기도 하는 일에 몰두해 있었다. 그의 작은 집 뒤에 있는 작은 뒤뜰에는 석재들이 놓여 있었고 수는 가사일을 틈타서 비문의 문자 하나하나를 조각할 큰 글씨로 디자인도 하고 주드가 조각한 후에 먹물을 넣기도 했다.
대사원의 전문적인 석공직과 비교하면 이것은 훨씬 품격이 떨어지는 수공업에 지나지 않고 그리고 그의 단골이라고 해봤자 그의 이웃에 살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뿐이었다. 그의 단골들은 이 '석비직인, 주드 폴리'(문패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에게서 죽은 사람을 위한 간단한 석비를 만들어 받는 데 얼마나 싸게 할 수 있는가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전보다 더 독립성이 확실해 보였다. 그리고 수는 그에게 어떤 부담도 주지 않으려고 특히 마음을 썼기 때문에 그를 도와주는 일이야말로 두 사람이 화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5-2
그달도 끝나가는 어느 날 저녁이었다. 주드는 멀지 않은 공회당에서 고대사 강의를 듣고 막 집으로 돌아온 참이었다. 그가 집안에 들어섰을 때, 그가 없는 동안 집에 틀어박혀 있던 수가 그를 위해서 식탁에 저녁 식사를 차려놓았다.
그녀는 평상시와는 달리 말이 없었다. 주드는 어떤 그림이 있는 신문을 집어 들고 읽다가, 눈을 들어 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에 근심이 있는 것을 느꼈다.
"기분이 안 좋아, 수?"
그가 말했다.
그녀는 잠시 말이 없었다.
"당신에게 전할 말이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누가 날 찾아왔어?"
"그래요. 어떤 여자분이었어요."
수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저녁준비를 갑자기 멈추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손을 무릎에 얹고는 불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나는 내가 옳았는지 아니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녀는 말을 계속했다.
"난 당신이 집에 없다고 말했어요. 그녀가 기다리겠다고 말했을 때, 나는 만나볼 수 없을 거라고 말했지요."
"왜 그렇게 말했어? 그 여자는 묘비가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나? 상복을 입지 않았어?"
"아니오, 그녀는 상복을 입지 않았어요. 그리고 묘비도 필요하지 않았고요. 난 당신이 그 여자를 만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수는 그를 애원하듯이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여자가 누구였는데? 그녀가 말 안해?"
"예, 그녀는 자기 이름을 대려 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난 그녀가 누구였는지 알았어요. 짐작할 수 있었어요. 아라벨라였어요!"
"맙소사! 무슨 일로 아라벨라가 왔지? 당신은 어째서 그녀가 아라벨라라고 생각한 거야?"
"아, 말로 할 순 없어요. 하지만 난 알았어요! 그녀가 나를 바라볼 때 그녀의 눈빛으로 확실히 알 수 있었지요. 그녀는 뚱뚱하고 거친 여자였어요."
"글쎄, 말버릇을 제외하면 아라벨라를 정확히 거칠다고 부를 수는 없지. 하긴 술집에서 일을 하다 보니 지금은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지. 내가 그녀를 알고 있을 때만 해도 그녀는 약간 예뻤거든."
"예쁘다고요! 하지만, 그래요! 그 여자가 예쁘다고요!"
"당신의 작은 입이 떨리고 있군. 좋아, 그건 그렇고, 그 여자는 이제 나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야.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했는데, 왜 이제 와서 우리를 곤란하게 만드는 거지?"
"그녀가 결혼한 게 확실해요? 당신 정확한 소식을 들었어요?"
"아니, 정통한 소식은 아니야. 하지만 그 때문에 그녀가 나한테 자기를 자유롭게 놓아 달라고 한 것이 아니겠어. 그 여자와 그 남자는 둘다 정당한 생활을 할 수 있길 원했겠지."
"아, 주드. 그건, 그건 바로 아라벨라였어요!"
수는 손으로 눈을 가리며 소리쳤다.
"그래서 난 너무 비참해요! 그녀가 무슨 일로 왔는지 모르지만 이건 흉조 같아요. 당신 그녀를 가능한 한, 만나지 않을 거지요. 그렇지요?"
"만나지 않을 거야. 그녀와 지금 얘기한다는 것은 너무 고통스런 일이야. 나 못지않게 그녀를 위해서도 말이지. 하지만 그녀는 갔잖아. 그 여자가 다시 온다고 말했어?"
"아니요, 하지만 마지못해 가는 것 같았어요."
하찮은 일에도 마음이 산란해지는 수는 저녁식사를 전혀 먹을 수 없었다. 주드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그가 불을 끄고 문을 잠그자마자 노크 소리가 들렸다. 수는 그녀의 방에서 당장 뛰쳐나왔다.
"그녀가 다시 왔나 봐요!"
수는 놀란 어조로 속삭였다.
"당신이 어떻게 알아?"
"그녀가 지난 번에도 그렇게 노크를 했으니까요."
그들이 귀를 기울이자 노크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 집에는 가정부가 없어서 만일 누군가가 노크 소리에 대답해야 한다면 그들 중 한 사람이 직접 나가야 했다.
"내가 창문을 열어보지."
주드가 말했다.
"누구든 간에 이 시간에 집안에 발을 들여놓게 할 수는 없으니까."
그는 그의 침실로 들어가 창틀을 올렸다. 일찍 집에 돌아가는 외로운 노동자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리엔 인적이 없었다. 또 한 사람의 모습은 몇 야드 떨어진 가로등 옆을 왔다 갔다 하고 있는 여자였다.
"거기 누구요?"
그가 물었다.
"폴리 씨인가요?"
그 여자가 말을 했고 아라벨라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주드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여자예요?"
수는 입을 벌린 채 문간에서 물었다.
"그래."
주드가 말했다.
"뭘 원하는 거요, 아라벨라?"
그가 물었다.
"밤늦게 미안해요, 주드."
아라벨라는 겸손하게 말했다.
"하지만 아까도 찾아왔었지요. 오늘밤 특별한 용무가 있어서 그럴 수만 있다면 만나보려구요. 난 곤경에 빠졌어요. 그리고 아무도 날 도와주지도 않고요!"
"곤경에 빠졌다고?"
"그래요."
침묵이 흘렀다. 주드의 가슴 속엔 그 호소에 대해 불편한 동정심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당신은 결혼하지 않았어?"
그가 말했다.
아라벨라는 주저했다.
"아니에요, 주드. 결혼 안했어요."
그녀는 대답했다.
"그 남자가 결국에는 결혼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리고 난 지금 무척 어려움에 처해 있어요. 난 다른 술집에서 여급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요. 하지만 시간이 걸려요. 난 정말 지금 굉장한 곤란에 빠졌어요. 왜냐하면 오스트레일리아로부터 내 신상에 부담이 될 일이 닥쳐왔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난 당신을 곤란하게 하지 않을 거예요. 정말로 어렵게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 일에 대해 당신에게 말했으면 좋겠어요."
수는 고통스런 긴장 속에서 한마디 한마디 놓치지 않고 듣고 있었지만 직접 말은 하지 않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당신 돈이 궁한 건 아니겠지, 아라벨라?"
그는 분명히 부드러운 어조로 물어보았다.
"오늘밤 묵을 숙박비를 지불할 만큼은 가지고 있어요. 그러나 다시 돌아가는 데 필요한 여비는 충분치 않아요."
"지금 어디서 살고 있어?"
"아직 런던에서요."
그녀는 막 주소를 대려고 하다가 멈추고 말했다.
"누군가가 들을까봐 두려워요. 난 이렇게 큰 소리로 내 자신의 사사로운 일을 외치고 싶지 않아요. 만일 당신이 내려와서 내가 오늘 밤 묵고 있는 프린스 여관 방향으로 나와 함께 좀 걸어가 주신다면 모든 것을 설명해 드릴게요.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당연히 그렇게 해 주시겠지요!"
"가엾어라! 난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들어줘야 해."
주드는 매우 당황하면서 말했다.
"그 여자는 내일이면 돌아갈 테니까 별문제는 없을 거야."
"하지만 내일 그녀를 만나보러 가도 되잖아요, 주드! 지금은 가지 마세요, 주드!"
문간에서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 당신은 걸려들고 말 거예요. 난 알아요. 그 여자가 전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에요! 가지 말아요. 가지 마요, 여보! 그 여자는 너무 음탕한 여자예요. 난 그녀의 생김새에서 그것을 알았고 그녀의 목소리에서도 느꼈어요!"
"하지만 난 가야 해."
주드가 말했다.
"나를 붙들려고 하지 말아 줘, 수. 나는 지금 그녀를 전혀 사랑하지 않아. 하지만 난 그녀에게 잔인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
그는 계단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그 여자는 당신의 아내가 아니잖아요!"
수는 미친 듯이 외쳤다.
"그리고 난..."
"그런데 당신도 역시 내 아내가 아니지, 아직은."
주드가 말했다.
"아, 당신은 그 여자한테 갈 건가요? 집에 있어 줘요! 제발 집에 있어 줘요, 주드. 그리고 그녀한테 가지 마세요. 이제 그 여자는 나와 마찬가지로 당신의 아내가 아니잖아요!"
"글쎄, 누가 실제로 아내인가를 따지자면, 그 여자가 당신보다 오히려 앞서지."
그는 결연한 자세로 모자를 집어 들면서 말했다.
"난 당신이 그렇게 되어주길 바랐지. 그리고 나는 욥의 인내심으로 기다렸어. 난 금욕에 의해 얻은 바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난 확실히 그녀에게 무언가를 해 주어야 해. 그리고 그녀가 나에게 몹시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을 들어 주어야겠지. 남자라면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거야!"
수는 그의 태도로 보아 반대해 보았자 아무 소용없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순교자처럼 온순하게 그녀의 방으로 돌아가서, 그가 아래층으로 내려가 문의 빗장을 벗기고 문을 닫고 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자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게 되자, 그녀는 한 여자가 자기의 체면을 무시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빠른 걸음으로 아래층으로 내려가 소리 없이 흐느꼈다. 그리고 그녀는 귀를 기울였다. 그녀는 아라벨라가 묵고 있는 곳이 얼마나 떨어진 곳인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보통 걸음걸이로 그곳에 당도하는 데 7분 정도 걸리고, 다시 돌아오는데 7분 정도 걸렸다. 그녀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11시 25분 전이었다. 그들이 문 닫기 전에 그곳에 도착한다면 그가 아라벨라와 여관에 들어가 그녀와 술이라도 한잔 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그때 그에게 어떤 재앙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고요한 긴장감 속에 그녀는 계속 기다렸다. 문이 다시 열리기 전까지 마치 모든 시간이 흘러가 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주드가 나타났다. 수는 약간 황홀하게 비명을 질렀다.
"아, 난 당신이 믿을 수 있는 분이라는 걸 알았어요! 당신은 너무 좋은 분이에요!"
그녀가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난 이 거리 어디에서고 그 여자를 찾을 수가 없었어. 난 실내화를 신고 나갔었거든. 그녀는 내가 자신의 요청을 완전히 거절할 정도의 냉혈인이라고 생각하면서 갔나 봐. 불쌍한 여자지. 부츠로 갈아 신으려고 돌아왔어. 비가 오기 시작했거든."
"아, 하지만 당신에게 그렇게 나쁘게 대해 온 여자를 위해 왜 이런 수고를 해야만 하는 거지요!"
수가 실망에 찬 질투를 터뜨리면서 말했다.
"그러나 수, 그녀는 어디까지나 여자야. 그리고 한때는 내가 좋아했던 여자지. 이런 상황에서 잔인한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거야."
"그녀는 더이상 당신의 아내가 아니잖아요!"
수가 흥분되어 열정적으로 고함을 질러댔다.
"당신은 그녀를 찾으러 밖으로 나가선 안 돼요! 옳지 못한 짓이에요! 당신은 그녀를 만나선 안 돼요. 이제 그녀는 당신에게 타인이니까요. 당신은 어떻게 그런 일들을 잊을 수 있지요? 여보, 여보!"
"그 여자는 전처럼 헛점투성이이며 부주의하고 무분별한 여자처럼 보였어."
그는 부추를 신으며 계속해서 말했다.
"런던에서 변호사들이 어떤 장난을 친다 하더라도 그녀와 나의 현실의 관계를 바꿔놓지는 못해. 그녀가 내 아내였다면 오스트레일리아로 다른 남자와 가버렸어도 그녀는 내 아내임엔 틀림없어."
"하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았어요! 그건 내가 알고 있어요! 불합리한 일이지요! 그런데 당신, 몇 분 후면 바로 돌아오실 거지요? 그렇지요? 그 여자는 오랫동안 얘기하기엔 너무 천박하고 거친 여자예요. 주드, 항상 그랬듯이 말이에요!"
"아마, 나 역시 거칠어진 거 같아. 운도 나쁘고! 모든 인간의 결점이 내 안에 싹트고 있는 것이 확실해. 때문에 내가 목사가 되려고 생각햇던 것이 너무 터무니없었다는 것을 알았지. 술마시는 버릇은 고쳤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새로운 형태의 억압하는 악이 내 안에서 일어날지는 알 수가 없어! 난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수, 그렇게 오랫동안 숨가쁘게 당신만을 사랑해도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긴 하지만! 내 안의 모든 고귀한 요소는 당신을 가장 사랑해. 구차한 모든 일들로부터 해방된 당신의 자유로운 마음은 내 사기를 높여주었고 또한 1, 2년 전의 나로서는-어떤 사람도-할 수 있을 거라고 도저히 꿈에도 꾸지 못했던 일들을 할 수 있게 해 주었지. 극기에 대한 충고나 여자에게 무리하게 강요하는 나쁜 점에 대한 충고도 모두 좋아. 하지만 아라벨라와 있었던 과거에 대해서 나를 꾸짖고 그리고 지난 몇 주 동안 당신에게 애태우던 나의 입장에 관해서 꾸짖어 줄 도덕적인 사람들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지 모르겠어! 그들은 내가 언제나 당신의 의향을 존중해 왔다는 것을 알아줄 거야. 우리는 여기 한집에 살면서 우리 사이에 전혀 제3자를 개입시키는 일은 없었으니까."
"그래요. 당신은 나한테 잘해 주셨지요, 주드. 당신이 그렇게 해준 걸 알아요. 나의 보호자여."
"그런데... 아라벨라는 나에게 도움을 호소해 왔어. 따라서 나는 나가서 적어도 그녀의 얘기 상대는 되어 주어야 할 것 같아, 수!"
"난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요! ... 아, 만일 당신이 꼭 그렇게 해야만 하신다면, 꼭 그래야 한다면!"
그녀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이 흐느끼면서 말했다.
"나한테는 당신밖에 없어요, 주드. 당신은 날 버리시는 거예요! 당신이 이런 분인지 몰랐어요. 난 참을 수가 없어요. 참을 수가! 만일 그 여자가 당신의 사람이라면 얘기가 또 다르겠지만요!"
"그러지 말고 허락해 줘."
"좋아요. 내가 해야 한다면 그렇게 해야지요. 당신이 그렇게 하신다면 나도 동의해요! 하겠어요. 그렇게 할 생각은 없지만요! 그리고 재혼하고 싶지도 않았지만요! ... 그렇지만, 동의해요. 동의한다고요! 난 정말 당신을 사랑해요. 결국은 이렇게 당신이 승리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어야만 했어요!“
수는 뛰어가 주드의 목을 팔로 끌어안았다.
"내가 당신에게 거리를 두었다고 해서 성적감정이 없는 차가운 인간은 아니에요! 난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식해요! 기다려 보면 알 거예요! 난 정말 당신의 사람이에요. 그렇지요? 복종하겠어요!“
"그렇다면 내일이라도, 아니면 가능한 한 빨리 당신이 바라는 대로 우리 결혼해."
"그래요, 주드."
"그러면 난 그 여자를 가라고 하겠어."
그는 수를 부드럽게 안으면서 계속해서 말했다.
"난 당신이 그 여자를 만나는 게 부당한 것 같고 그녀에게도 부당할 거예요. 그 여자는 당신 같지 않아요, 여보. 과거에도 그랬지. 솔직하고 냉철하게 판단해서 그렇다는 거요. 더 이상 울지 말아요. 자아, 자아!"
그는 수의 양볼과 이마에 키스했다. 그리고 정문의 빗장을 다시 걸었다.
다음 날 아침에는 비가 내렸다.
"자아, 당신."
주드는 아침 식사 시간에 즐겁게 말했다.
"오늘이 토요일이니까 난 즉시 결혼 예고(결혼식 전에 교회에서 3회 계속 일요일에 공고하여 이의의 유무를 물음)를 부탁하러 갈 생각이야. 그래서 내일 첫번째 예고를 공고하게 말이야. 그렇지 않으면 우린 한 주를 잃게 되는 거야. 결혼 예고만 할 거니까, 우리는 1, 2파운드를 절약할 수 있을 거야."
그녀는 멍청히 결혼 예고에 동의했다. 그러나 이때 그녀는 마음속으로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불그스름했던 그녀의 얼굴빛이 퇴색되면서 맥빠진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내가 지난밤 너무 이기적으로 굴었나 봐요!"
그녀는 중얼거렸다.
"아라벨라를 그런 식으로 다루다니. 너무 불친절했어요. 아니 그보다 더한 짓이었어요. 난 그녀가 어려운 처지에 있다는 것이나 그녀가 당신에게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관심도 없었지요! 아마 그녀는 당신에게 말할 정당성이 있는 무언가가 진짜 있었을 거예요. 그것이 나를 더 나쁜 사람으로 만든 것 같아요! 사랑이라는 경쟁 의식이 생기면 천성적인 음험한 생떼 같은 억지가 나타나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않더라도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요. 그 여자가 어떻게 됐을까요? 그녀가 여관에 잘 도착했으면 좋겠는데, 가엾게도."
"아마, 잘 갔겠지."
주드는 조용하게 말했다.
"그녀가 쫓겨나서 비오는 거리를 헤매고 다니지 않았기를 바래요. 내가 비옷을 걸치고 그녀가 잘 갔는지 가보고 와도 될까요? 오늘 아침 내내 그녀 생각이 났었거든요."
"글쎄, 그럴 필요가 있을까? 당신은 아라벨라가 어떻게 혼자 꾸려나갈 수 있는 사람인지 전혀 상상할 수 없어. 그러나 당신이 가보고 싶다면 가봐요."
자신의 죄를 회개할 기분이 되었을 때의수는 별나게 행동했다. 그녀는 불필요한 속죄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되풀이했다. 분명히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만나는 것조차 꺼려했을, 자신과는 어느 모로보나 엉뚱한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 그녀의 천성적인 버릇이었기 때문에 이 요청이 주드를 별로 놀라게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당신이 돌아오면 난 결혼 예고를 하러 갈 준비를 하고 있겠어. 나와 함께 나갈까?"
주드는 덧붙였다.
수는 동의했다. 주드에게 마으껏 키스를 하게 내버려 두면서 외투를 입고 우산을 쓰고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전에 결코 그런 적이 없었던 키스로 답례했다. 사태는 결정적으로 변했다.
"작은 새가 결국은 잡혔군요!"
그녀는 미소에 슬픈 빛을 띠며 말했다.
"아니야. 단지 보금자리를 찾은 거지."
그는 그녀를 안심시키는 것처럼 말했다.
그녀는 아라벨라가 말했던 술집까지 진창길을 따라 걸어갔다. 그리 멀지 않았다. 그녀는 아라벨라가 아직 떠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듣고 주드의 전 애인 격인 그녀에게 자신을 어떻게 밝혀야 할지 몰라서 스르핑가에 사는 친구가 찾아왔다고 말을 전하고 주드의 주소를 댔다.
수는 2층으로 올라가서 한 방으로 안내되었다. 그 방은 아라벨라의 침실이었다. 아라벨라는 아직 일어나 있지 않았다. 아라벨라가 침대에서, 들어와서 문을 닫으라고 말할 때까지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말대로 따랐다.
아라벨라는 창문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누워 있었는데, 즉시 머리를 돌리지는 않았다. 수는 회개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악한 생각으로 잠시 동안 주드가 먼저 와서 대낮의 햇빛을 받고 있는 이 여자를 봤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는 옆모습이 멋지게 보였을지 모르지만 오늘 아침에는 어딘지 모르게 단정하지 못한 데가 있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신선한 매력 있는 모습을 확인한 수의 태도는 쾌활해졌다. 이 여자에게 얼마나 야비한 성적 감정이 깃들여져 있는가를 생각할 때 그녀는 그것이 몹시 싫어졌다.
"난, 단지 당신이 지난밤에 잘 돌아왔는지 보러 왔어요. 그게 전부예요."
그녀는 부드럽게 말했다.
"난 당신이 무슨 불행한 일이라도 만나지 않았을까 하고 걱정했거든요."
"아, 이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난 나의 방문객이 - 당신의 친구 - 아니 당신의 남편인 폴리 씨인 줄로만 알았지요. 왜냐하면 당신이라면 스스로를 폴리 부인이라고 부를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아라벨라는 실망하면서 베개에 머리를 파묻었다. 그리고 그녀는 애써 만들어냈던 보조개도 없애 버렸다.
"난 그렇게 말하진 않아요."
수가 말했다.
"아, 난 비록 그 남자가 정말로 당신 사람이 아니더라도 당신이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지요. 체면은 어디까지나 체면이니까요. 24시간 어느 때고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요."
수는 거북하게 말했다.
"그분은 내 남편이에요. 만일 당신이 그런 식으로밖에 말할 수 없다면 말이지요!"
"그 분은 어제까지만 해도 안 그랬는데."
수는 장미 색깔처럼 얼굴이 붉어지며 말했다.
"당신이 어떻게 알지요?"
"문간에서 당신이 내게 말했을 때의 당신의 태도로 알았지요. 이봐요, 당신은 상당히 급했군요. 그리고 내가 지난밤에 방문한 것이 일을 서두르게 했군요. 호호! 하지만 난 당신한테서 그이를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에요."
수는 비가 오고 있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리고 너저분한 화장대 덮개와 거울에 아라벨라가 따로 떼어놓아둔 가발을 보았다. 이것은 아라벨라가 주드와 함께 살던 무렵의 모습과 꼭 같은 것이었다.
수는 오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 문간에서 노트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호텔 하녀가 카트리트 부인 앞으로 온 전보를 가져왔다. 아라벨라는 누운 채로 그것을 펴보고, 화났던 안색이 풀어졌다.
"나에 대해 걱정을 하게 해서 미안해요."
하녀가 가버리자 그녀는 부드럽게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그 사람이 결국 나 없이 살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고 지금까지 미루어왔던 재혼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겠다고 동의하고 있어요. 여봐요! 내가 보낸 전보의 답장이 온거예요.“
그녀는 수에게 읽어 보라고 전보를 내밀었으나 수는 그것을 받지 않았다.
"그이가 나한테 돌아오라고 했어요. 람베스에 있는 그의 작은 소매 술집은 내가 없으면 산산조각이 날 지경이래요. 그러나 그 양반이 술을 마신다 해도 우리가 영국의 법에 의해 결합되고 나면 이제는 전처럼 날 학대하지는 못할 거예요. ...당신에게 해 줄 말은 만일 내가 당신의 입장이라면 주드를 설득해 목사님 앞으로 데려가 일을 끝내 버리고 말 거예요. 이건 친구로서 하는 충고예요."
"그는 언제까지라도 기다릴 거예요."
수는 냉랭한 자존심을 가지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꼭 그렇게 하도록 하세요. 결혼 후에는 남자와의 생활은 더욱 사무적이 되지요. 그래서 돈 문제가 훨씬 중요하게 되는 거지요. 그러면 당신도 알다시피 만일 싸움이라도 벌어져서 그가 당신을 집 밖으로 쫓아낸다면 당신을 보호해 줄 법을 찾겠지요. 하지만 남자가 도망가지 못하게 칼로 반쯤 찌르고 부지깽이로 당신의 머리를 때린다면 그렇게 할 수는 없겠지요. 그리고 만일 그가 당신을 져버린다면 - 난 우정으로 하는 말인데요, 여자 대 여자로서 말이에요. 남자들이란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지요. 그런 때는 가구들을 꽉 붙들어요. 아무도 도둑으로 보지는 않을 테니까요. 나는 그 사람과 다시 결혼할 것이며 지금 그는 기꺼이 그렇게 할 거예요. 우리들의 첫번째 결혼엔 약간의 흠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 지난 밤에 보낸 나의 전보에 대한 답장이지요. 난 그에게 주드와 거의 화해했다고 말했지요. 이것이 그를 놀라게 했나 봐요! 아마도 당신이 없었다면 완전히 끝장났을 거예요."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그랬다면 오늘부터 우리들의 인생이 얼마나 달라졌겠어요! 주드 같은 바보는 만일 여자가 곤란에 처해 있다면 견디지 못했을 거예요. 그러니 그를 좀 꾀어 보라고요! 마치 그가 예전에 새와 다른 것들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요. 그러나 공교롭게도 내가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처럼 되어 버렸군요. 난 당신을 용서해요. 그리고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당신이 가능한 한 빨리 법적 수속을 해 두라고 충고하고 싶군요. 당신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후에 아주 귀찮게 될 거니까요."
"내가 당신한테 말했듯이 그는 내게 결혼하자고 청했어요. 우리의 자연스런 결혼을 합법적인 것으로 만들자는 거지요."
수는 더욱 위엄을 보이며 말했다.
"내가 자유로워질 때까지 그 분이 청혼하지 않은 것도 나의 바람이었지요."
"아, 그래요. 당신도 나같이 이기주의자였군요."
아라벨라는 그녀를 찾아온 방문객에게 재미있다는 듯이 비평적인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첫번째 남자한테서 버림을 당한 거지요? 그렇지요? 마치 나처럼요?“
"안녕히 계세요! 난 가봐야겠어요."
수가 서둘러 말했다.
"나도 역시 일어나 가봐야 해요!"
그녀는 대답하면서 침대에서 너무 급히 일어났기 때문에 유방이 흔들렸다. 수는 당황해서 옆으로 비켜났다.
"어머, 난 단지 여자에 불과해요. 6척 장신의 병정도 아닌데!... 잠깐만 기다려요."
그녀는 수의 팔에 손을 얹으며 말을 계속했다.
"내가 주드에게 말했던 것처럼 어떤 일로 주드에게 의논하고 싶어요. 난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있어 온 거예요. 내가 떠날 때 역으로 달려나와 말해줄 수 있을까요? 당신은 아니라고 생각하겠지요. 편지를 쓰겠어요. 쓰고 싶지는 않았지만 난 편지를 쓰겠어요."
5-3
수가 집에 당도했을 때, 주드는 자기들 결혼에 대한 첫 조치를 취하기 위해 문간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팔을 잡았고 마치 진짜 친구들이 종종 그렇게 하는 것처럼 그들은 함께 조용히 걸어갔다. 그는 수가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을 보고 그녀에게 질문하는 것을 삼갔다.
"아, 주드. 그녀와 얘기를 좀 했어요."
결국 그녀가 말을 꺼냈다.
"안 했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어요! 여러가지 일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거든요."
"난 그 여자가 교양 있게 굴었길 바래."
"그랬어요. 난 그녀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아주 조금. 그녀는 관대하지 못한 성품은 아니에요. 그리고 난 그 여자의 어려운 일이 모두 갑자기 해결되어 반가워요."
그녀는 아라벨라가 어떻게 되돌아가게 되었는가를 설명하고 그녀가 제자리를 되찾을 수 있을 거라는 얘기도 했다.
"난 우리의 오랜 문제를 언급했지요. 아라벨라가 내게 말해준 것은 내게 합법적인 결혼이 얼마나 희망 없고 세속적인 제도인가를 느끼게 했지요. 남자를 잡기 위한 덫 같은 것이지요. 난 그것에 대해 생각하면 참을 수가 없어요. 오늘 아침에 결혼 예고를 공고하자는 약속을 하지 않았더라면 좋을 뻔했어요!"
"아, 내 걱정은 하지 마. 나에겐 어느 때라도 괜찮으니까. 지금은 당신이 그 문제를 빨리 극복해내는 것이 좋겠어."
"사실 난 전보다 더 걱정하지는 않고 있어요. 아마 다른 남자와 함께 있다면 좀 걱정했을지도 모르지만요. 그러나 당신 가족과 내 가족이 가지고 있는 약간의 미덕이라고 생각되는, 아주 적지만 그래도 충실 견고한 정신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난 당신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두렵지 않아요. 이제 난 정말 당신 것이고 당신은 정말 나의 것이 된 거예요. 사실 그 전보다 내 마음은 더 편해졌어요. 왜냐하면 리처드에 대한 나의 양심이 명백해졌으니까요. 그분도 지금은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을 테니까요. 난 전에는 우리가 그를 속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수, 당신은 이럴 땐, 굉장했던 옛날 문명 시대의 여인 같아. 그런 여인들은 단순한 일개 그리스도교국의 주민 따위가 아니고 내가 일찍이 무위도식하면서 고전만 뒤지던 때의 책 속에 나오던 당당한 여자들이지. 요즈음 당신은 비아 사크러(로마의 가장 신성한 큰길)에서 만난 친구와 함께 옥타비아(옥타비아누스의 누이이며 마크 안토니우스의 아내)나 리비아(옥타비아누스의 아내)의 최근 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든가, 또는 아사파시아(아테네의 정치가인 페리크레스의 정부)의 웅변에 귀를 기울인다거나 아니면 파렉스텔리스(그리스의 유명한 조각가)가 그의 최근의 비너스상을 다듬고 있는 것을 지켜본다거나, 아니면 피리인(파렉스텔리의 유명한 조각의 모델)이 모델로 포즈를 취하다가 지쳐 불평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든가 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두 사람은 이제 교구 서무계원의 집에 당도해 있었다. 수는 그녀의 애인이 대문 쪽으로 올라서자 뒤로 물러섰다. 그가 막 노크를 하려고 손을 들어 올렸을 때 그녀가 말했다.
"주드!"
그는 돌아보았다.
"잠깐 기다리세요. 그렇게 해주시겠어요?"
그는 그녀에게로 돌아왔다.
"우리 다시 생각해 봐요."
그녀는 소심해져서 말을 꺼냈다.
"난 간밤에 무서운 꿈을 꾼 것만 같아요! ...아라벨라가...."
"아라벨라가 당신에게 뭐라고 말했지?"
그가 물었다.
"아, 그 여자 말로는 사람들이 결혼했을 때, 만일 남자가 때린다면 그 남자를 고소하면 승소한다나요. 그리고 부부가 싸울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은지에 대해서도 말했지요... 주드, 당신이 법으로 나를 당신에게 묶어 두고도 우리가 지금처럼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우리 가족의 남자와 여자는 모든 일이 자신들에게 호의적일 때는 상당히 관대해지지만 그들은 강요에 대해서는 항상 반발하지요. 법적인 제약 때문에 일어나는 것들이 두렵지 않으세요? 정열의 본질은 근거가 없을 때 파괴되는 것이라고 생각지 않으세요?"
"정말이지, 또 당신은 그런 불길한 예감에 대한 말로 나를 두렵게 만들기 시작하는군! 좋아, 돌아가서 다시 생각해 보자고."
그녀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래요, 우리 그렇게 해요!"
그녀가 말해다. 그래서 두 사람은 교구 서무계원의 집 현관 앞에서 즉시 등을 돌리고 집을 향했다. 수는 주드의 팔을 잡고 걸으면서 중얼거렸다.
'당신은 벌들이 꽃을 찾아 날아다니지 못하게 할 수 있는가
또는 비둘기의 목둘레의 털빛이 변하는 것을 막을 수가 있는가
안돼! 속박하는 연애도... (토머스캠벌의 '노래'에서 인용) '
두 사람은 그 일을 신중히 생각했다. 아니 생각하는 것을 연기했다. 확실히 실행에 옮기는 것도 연기했다. 그리고 꿈같은 낙원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2주일이 지나고 또 3주일이 지났지만 사태는 진전이 없었고 결혼 예고의 통지는 얼드브릭험의 어떤 장로회에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들이 이렇게 연기에 연기를 거듭하고 있던 어느 날, 아침 식사 전에 아라벨라로부터 편지와 신문이 왔다. 주드는 편지를 보고 나서 수의 방으로 올라가 그녀에게 사실을 말했다. 그녀는 옷을 갈아입자마자 급히 내려왔다. 수는 신문을 펴 보았다. 주드는 편지를 보았다. 그녀는 신문을 샅샅이 보고 나서 주드 앞에 내밀고 제1면의 어느 기사를 가리켰다. 그러나 주드는 편지에 너무 몰두해 있어서 돌아다 보지 않았다.
"이것 봐요!"
그녀가 말했다.
그는 신문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그 신문은 남부 런던에서만 배포되는 것이었다. '카트리트-돈'이라는 이름으로 게제된 광고는 워털루 로드에 있는 성 존 교회에서 있었던 결혼식을 간단히 알리는 광고였다. 신랑과 신부는 아라벨라와 술집주인이었다.
"그래요, 이건 만족스러워요."
수가 흡족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지난번과 비슷하게 행한 처사는 저속해 보이는군요. 그런데 나는 기뻐요. 왜냐하면 그녀가 이번에는 그런 대로 자리를 잡은 것 같아요. 그녀에게 어떤 과오가 있었더라도 가엾게 생각하겠어요. 우리가 그녀에 관해서 불안해하는 것보다 이편이 속은 훨씬 편해요. 나도 리처드에게 편지를 써야겠어요. 그가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봐도 되지요?"
그러나 주드는 딴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는 언뜻 결혼 광고에 눈을 돌렸을 뿐 잠시후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편지 좀 봐요. 난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지?"
사랑하는 주드(난 당신을 폴리 씨라고 부를 만큼 거리를 두고 싶지 않아요.). 오늘 신문을 보내 드립니다. 고지서 난을 살펴보면, 지난주 화요일 카트리트와 재혼했다는 사실을 아시게 되겠지요. 마침내 일은 잘되었고 바르게 수습되었어요.
그러나 내가 특별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내가 얼드브릭험에 갔을 때 당신에게 말하고 싶은 사적인 일입니다. 난 차마 당신의 여자 친구한테는 그것을 말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난 꼭 직접 당신에게 그 일을 알려드리고 싶었는데, 난 편지보다 말로 전하는 것이 더 잘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요.
주드, 사실은 내가 전에 한 번도 이야기한 적이 없었지만 우리 사이에는 사내아이가 있습니다. 당신과 헤어지고 나서 여덟 달 후에 내가 양친과 함께 시드니에 있을 때 낳은 아이입니다. 이것은 모두 용이하게 설명할 수 있어요.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하고 당신과 헤어진 후 부모님에게 갔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지독하게 싸움을 했기 때문에 출산에 대해서는 알리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당신 훌륭한 직장을 찾았기 때문에 부모님이 그 아이를 떠맡아 주셨고, 그 후 줄곧 부모님 슬하에 있었습니다. 때문에 크리스트민스터에서 당신을 만났을 때나, 이혼 수속으로 법적 절차가 진행 중일 때는 이 말을 할 수 없었어요.
아이는 물론 이제는 분별력 있는 나이가 되었어요. 그런데 부모님이 최근에 보낸 편지에서 말씀하시길 그들이 거기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고 난 여기서 편안하게 정착해 있는데 왜 아이 때문에 고생햐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아이의 부모들이 살아 있는데 말이에요. 난 그 애를 물론 여기서 데리고 있고 싶지만 술집에서 데리고 있기에는 너무 어리고 또 오래 동산 여기 있을 수도 없어요.
카트리트도 그 애를 자연히 귀찮게 대할지도 모르니까요. 그런데 부모님께서는 공교롭게도 이곳으로 오는 몇몇 친구분들에게 아이를 맡겨 나한테로 내쫓아 버렸습니다. 그래서 난 그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아이가 도착하면 좀 맡아달라고 당신한테 부탁하는 거예요.
그 애는 법적으로 당신의 아이라는 것을 엄숙히 맹세해요. 만일 누가 아니라고 한다면 나를 위해 지독한 거짓말쟁이라고 매도해 주세요. 결혼 전후에 내가 어떤 일을 했든간에 결혼한 그때부터 이별을 하는 날까지는 난 당신을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 아라벨라 카트리트 씀
수는 의기소침한 표정이었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당신?"
그녀는 힘없이 물었다.
주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수는 그를 걱정스럽게 지켜보다가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날벼락이군!"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사실일 거야! 이해가 안되는군. 만일 아라벨라가 말하는 대로 그때 아이가 확실히 태어났다면 그 애는 내 아이인 것이 확실해. 왜 그녀가 크리스트민스터에서 만났을 때 내게 말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그날 저녁 그녀와 함께 여기에 왔을 때 왜 말하지 않았는지 알 수가 없어! ...아, 이제야 기억나는군. 만일 우리가 다시 함께 살게 된다면 내게 알려주고 싶은 어떤 얘기가 있다고 말했던 것 말이야."
"가엾게도 그 아이가 누구에게나 버림을 받다니!"
수는 눈에 눈물이 고인 채로 대답했다. 주드는 이미 제정신을 차렸다.
"내 아이건 아니건간에 그 애도 어떤 인생을 가져야 하지 않겠어!"
그는 말했다.
"내가 만일 좀 더 나은 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 애가 누구의 자식인가는 잠시라도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그 애를 데려와서 키우겠어. 부모가 누구냐는 문제, 그것이 어떻다는 거야?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아이와 혈연관계가 있느냐 없느냐라는 것은 대단한 문제는 아니잖아? 이 시대에 태어난 모든 어린아이들은 이 시대 어른들의 아이들이고, 모든 어른들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어. 세상의 부모들이 자기 자식만 지나치게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의 아이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것은 계급 의식과 애국심 그리고 말세가 가까우니 네 영혼을 구하라고 설교하는 주의라든가, 그 외의 다른 미덕들처럼 그 바닥에는 비열한 배타주의가 깔려 있어."
수는 벌떡 일어나 정열적인 애정으로 주드에게 키스를 했다.
"그래요. 바로 그거예요, 여보! 우리 그 애를 여기로 데려와요! 그리고 만일 그 애가 당신 애가 아니라도 좋아요. 난 정말 그 애가 당신 애가 아니길 바래요. 물론, 그렇게 느껴서는 안 되겠지만! 만일 아니라면 난 그 애를 우리 양자로 삼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글쎄, 그 애에 관해서는 당신이 좋을 대로 생각하라구!"
그는 말했다.
"어쨌든 나는 그 불행한 꼬마 아이를 팽개쳐 버리고 싶지가 않아. 람베스의 술집에서 있을 아이의 생활을 생각해 봐. 현재 변변히 그 애의 얼굴을 본 적도 없고 키우고 싶지도 않은 어머니와 그 애를 전혀 알지도 못하는 계부와 함께 람베스의 술집에서 어떤 생활을 보낼지, 어떤 나쁜 영향을 받을지 등을 생각해 봐요. '내가 태어난 그 날을 멸망하게 하라. 그리고 남자아이를 배게 된 그날 밤도 멸망하게 하라!'(욥기, 3장 3절) 그 아이가, 어쩌면 내 아이일 수도 있는데, 머지않아 이런 말을 중얼거리게 될 것을...!"
"아, 아니에요!"
"내가 이혼 소소의 신청인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그 아이의 후견인이 될 자격은 있다고 생각해요."
"어떻든간에, 그 애를 데려와요. 이제 알겠어요. 난 그 애한테 좋은 엄마가 되도록 최선을 다할 거예요. 그리고 우리는 그 애를 기를 여유가 어느 정도는 있으니까요. 더 열심히 일하면요. 그 애가 언제 도착할까요?"
"2, 3주 내에 도착하겠지."
"그랬으면 좋겠네요. 우리는 언제쯤 용기를 내서 결혼할까요, 주드?"
"당신이 용기만 있으면 언제라도 가능하지. 그거야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린 거야. 결혼하겠다고 말만 하면, 결혼은 한 거나 같지."
"그 아이가 오기 전에요?"
"물론이지."
"그게 어쩌면 그 아이한테 더욱 자연스러운 가정을 만들어 주는 일이 되겠어요."
그녀는 중얼거렸다.
마침내 주드는 그 아이가 도착하는 대로 자기들에게 곧 보내주기를 바란다는 것을 한껏 격식을 차린 어투로 부탁했다. 그리고 아라벨라가 보낸 소식에 대한 느낌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또 이 아이의 아버지에 대한 것이라든지 또한 진상을 완전히 파악했다 하더라도 아라벨라에 대한 자신의 태도 어떠했을 거라는 것에 대해서도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다음 날 저녁 10시쯤 얼드브릭험 역에 도착하는 하행 열차에서 키가 작고 창백한 얼굴을 한 아이가 어두운 3등칸 객실에서 보였다. 이 아이는 놀란 듯한 커다란 눈을 가졌고, 흰 털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다. 그 위에는 흔한 줄에 열쇠를 하나 달아서 두르고 있었다. 이 열쇠가 이따금 등불에 비쳐 번쩍였기 때문에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모자끈에는 이 아이의 반액 기차표가 달려 있었다. 아이의 시선은 맞은편 좌석 뒤쪽에 고정되어 있었다.
역에 도착해서 역명이 들려와도 결코 창문 쪽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맞은편에는 두서너 명의 승객이 앉아 있었다. 그중의 한 사람은 바구니 하나를 무릎 위에 올려놓은 노동자 차림의 여자였다. 그 속에는 얼룩무늬 새끼 고양이가 들어 있었다. 그 여자가 가끔 뚜껑을 열면, 고양이는 머리를 내밀고 익살을 부렸다. 이것을 보고 모든 승객들이 웃었다. 그러나 열쇠와 기차표를 가진 이 쓸쓸해 보이는 아이만은 예외였다.
이 아이는 접시처럼 둥근 눈으로 고양이를 지켜보면서 말하는 것 같았다.
'모든 웃음이란 오해에서 생기는 거야. 사태를 올바르게 바라보면 태양 아래 이 세상에는 웃을 일은 하나도 없어.'
때때로 정차할 때면 차장이 칸막이 안을 들여다보면서 이 소년에게 말했다.
"괜찮아, 얘야. 너의 짐은 화물차 속에 안전하게 있으니까."
소년은 기운없이 대답했다.
"알았어요."
소년은 웃음을 지으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이 아이는 '소년'의 가면을 쓴 '노인'이었다. 게다가 가면을 쓴 것이 지극히 서툴렀기 때문에 여기저기의 틈바구니로부터 이 아이의 본래의 모습이 보였다.
옛날의 영원한 어두움에서 생겨난 대지는 이렇게 아직 인생의 여명기에 있는 아이를 때때로 높이 들어올리는 것 같았다. 이때, 이 소년의 얼굴에는 막막한 '시간'이라는 대해원을 멀리 뒤돌아보고 무엇 하나 마음에 새기려는 모습이 조금도 없었다.
다른 승객들이 하나씩 눈을 감았고 새끼 고양이조차도 지루한 놀이에 지쳐 바구니 안에서 몸을 웅크렸다. 소년만은 전과 같은 상태로 남아있었다. 소년은 마치 노예가 되어 왜소해진 신처럼, 두 배로 눈이 커진 듯했다. 수동적으로 앉아 다른 승객들을 바라보는 모습이 마치 바로 눈앞에 있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 그들이 다 살고 난 전생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아이가 바로 아라벨라의 아들이었다. 아라벨라는 몇 주 전부터 근간에 아이가 곧 도착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편지에 열심히 쓴 것처럼 올드브릭험을 방문했던 주요한 이유는 아이가 있다는 것과 근간 그 아이가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주드에게 알리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평상시의 부주의 때문에 아이가 도착하는 전날까지 주드에게 편지 쓰는 것을 미루고 있었다.
그녀가 전 남편으로부터 답장을 받은 바로 그 날 오후에, 아이는 런던의 부두에 도착했다. 그를 데려다 주기로 했던 가족은 람베스로 가는 마차에 아이를 태우고 어머니 집으로 데려다 주라고 마부에게 지시하고는 아이에게 작별을 고하고 떠나버렸다.
아이가 호른 3번가에 도착했을 때, 아라벨라는 그 아이가 자신이 예상했던 것과 너무 똑같다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빤히 쳐다보았다. 그 후 아이에게 먹을 것을 잘 먹이고 돈도 조금 주어 늦기 전에 다음 기차 편으로 주드에게로 보냈다. 이것은 오로지 외출 중인 남편 카트리트의 눈에 아이가 띠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기차가 얼드브릭험에 도착했다. 아이는 쓸쓸한 승강구에 내려 짐꾸러미 옆에 섰다. 개찰 계원이 아이의 표를 거두고 사태가 정상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이한테 이 밤중에 혼자서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다.
"스프링가에 갑니다."
작은 아이는 태연하게 말했다.
"거긴 왜 가니? 거긴 여기서 먼데. 시골에서도 가장 외진 곳이란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미 잠자리에 들었을 거야."
"난 거기에 가야 해요."
"짐꾸러미도 있으니 마차를 타거라."
"아니에요. 걸어가야 해요."
"아, 그래. 네 짐꾸러미는 여기다 맡겨놓고 나중에 사람을 보내 찾아가거라. 거기는 반은 버스로 가지만 나머지는 걸어가야 한단다."
"난 무섭지 않아요."
"친구들한테 마중 나오라고 하지 그랬어?"
"내 생각에 그분들은 내가 오는 것을 모를 거예요."
"너의 친구분들이 누군데?"
"엄마가 말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걸 맡아주는 것밖에 없겠구나. 자, 되도록 빨리 걸어가거라."
소년은 더이상 대답하지 않고 거리로 나왔다. 누가 따라오거나 그를 살피고 있지는 않는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얼마간의 거리를 걸어간 다음 아이는 행선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도시의 교외까지 곧장 걸어가라는 말을 들었다.
아이는 기계처럼 일정하게 느린 발걸음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그 발걸음 하나하나는 무엇인가 인간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마치 파도와 바람과 구름이 움직이는 것과 흡사했다. 가르쳐 준 그 길을 더듬거리면서 걸었고 주변의 것들에 대해서는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소년의 생활관은 이 고장의 애들과는 달랐다. 대개의 아이들은 우선 부분적인 것부터 시작해서 일반적인 것을 배우고, 인접한 것에서 시작하여 보편적인 것을 배운다. 이 아이는 인생의 일반적 원리에서 출발하여 자세한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았다. 이 아이에게 있어서 집들과 버드나무와 멀리 어둠에 싸인 들판은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있는 벽돌집이고, 가지 자른 나무이며, 목초지 따위로 보이지는 않았고 다만 추상적인 주거, 추상적인 식물, 단지 넓은 암흑의 세계로만 생각되었다.
소년은 작은 골목으로 들어서서 주드의 집 대문을 노크했다. 주드는 피곤해서 막 잠자리에 들었고 수가 옆에 있는 그녀의 방으로 막 들어가려고 하다가 노크 소리에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여기가 아버지가 사시는 곳입니까?"
아이가 물었다.
"누구 말하는 거니?"
"폴리 씨요. 그분 이름인데요."
수는 주드의 방으로 뛰어올라가 그에게 말했다. 그는 되도록 빨리 서둘러 내려왔지만 조바심에 차 있는 수에겐 그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뭐 – 그 애라구 - 이렇게 빨리?"
주드가 이렇게 말하며 들어섰을 때 그녀는 아이의 모습을 샅샅이 훑어보다가 옆에 있는 작은 거실로 가버렸다. 주드는 아이를 자기와 같은 위치에 올려놓고 침울하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금방 올 줄 알았더라면 마중을 나갔을 거라고 그 아이한테 말했다.
그 아이를 임시로 의자에 앉히고 나서 수에게 갔는데, 극도로 예민한 성품을 지닌 그녀는, 그가 생각했던 대로 마음이 혼란스러운 것 같았다. 그는 어둠 속에서 안락의자에 기대고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그는 팔로 그녀를 안았고, 그녀의 얼굴에 자기의 얼굴을 갖다 대었다. 그리고 속삭였다.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아라벨라가 말한 게 사실이에요. 사실이라구요! 난 그 아이한테서 당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그럴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여하튼 나의 분신이니까 당연하겠지."
"그러나 그 아이의 나머지 반은, 그 여자예요! 그걸 생각하면 도저히 참을 수 없어요. 하지만 참아야지요. 그러나 익숙해지도록 하겠어요. 그럼요, 힘써야지요!"
"질투심 많은 귀여운 수! 당신한테 성적 감정이 없다고 말했던 것은 취소하겠어. 걱정하지 말아요!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그리고 수, 나한테도 생각이 있지. 대학을 목표로 그 아이를 교육시킵시다. 나 스스로 못한 일을 아마도 그 아이에게는 시켜볼 수 있을 거야. 이제는 가난한 학생이라도 대학 가는 것쯤은 마음만 먹으면 훨씬 쉽게 할 수가 있으니까."
"아, 당신도 몽상가예요!"
그녀가 말하고 나서 그의 손을 잡고 아이한테로 돌아왔다. 그 소년은 그녀가 자신을 쳐다보았던 것처럼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줌마가 결국 내 진짜 엄마가 되는 겁니까?"
소년이 물었다.
"왜? 내가 네 아버지 부인같이 보이니?"
"글쎄요, 그런 것 같네요. 아버지가 아줌마를 좋아하시고 아줌마가 아버지를 좋아하시는 걸 보면요. 엄마라고 불러도 되지요?"
그런 다음 소년의 얼굴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빛으로 변하더니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수도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가슴에서 나오는 한 가닥의 최소한의 감정이라도 그녀의 마음을 쉽사리 뒤흔들 수 있도록 만들어진 하프와도 같았다.
"네가 부르고 싶다면 엄마라고 불러도 좋다. 가엾게도!"
그리고 그녀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아이의 뺨에 자기 뺨을 갖다 대었다.
"목에 두르고 있는 이건 뭐야?"
주드가 애정이 가득한 침착한 태도로 물어보았다.
"역에 맡겨둔 내 짐꾸러미 상자 열쇠예요."
두 사람은 각각 부산하게 움직여 아이에게 늦은 저녁밥을 차려 주었다. 그리고 임시로 잠자리도 만들어 주자 아이는 곧 잠이 들었다.
두 사람은 아이가 자고 있는 방으로 가서 그 애를 쳐다보았다.
"이 녀석이 잠들기 전에 두서너 번이나 당신을 엄마라고 불렀지."
주드가 중얼거렸다.
"그 애가 그렇게 불러보고 싶어하다니 희한한 일인데!"
"글쎄요, 색다른 의마가 있는 것 같아요."
수가 말했다.
"하늘에서 반짝이는 모든 별들보다도, 이 어리고 배고픈 한 사람의 마음을 우리가 더 생각하지 않으면 안돼요. ...내 생각으로는 우리도 용기를 내어 결혼식을 올리는 게 어때요? 시류에 반대해서 싸워 봤자 아무 소용이 없군요. 난 여성이라는 나 자신의 신분에 차츰 스스로 얽매이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아, 주드, 당신은 이제부터 날 많이 사랑해 주실 거지요? 그렇지요! 난 이 아이한테 친절을 베풀고, 이 아이의 엄마가 되고 싶어요! 우리의 결혼에 합법적인 형식만 갖춘다면, 내가 이런 일을 하는 게 훨씬 쉬워질 거예요."
5-4
두 사람의 두번째의 시도는 더욱 신중하게 행해졌다. 비록 그 일이 그들 집에 이 이상한 아이가 도착한 다음날 아침에 시작되긴 했지만 그들은 아이가 조용히 앉아 있는 습관이 있고 그 애의 얼굴 생김이 이상하고 불가사의한 데가 있다는 것과 아이의 시선이 그들이 실질적인 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것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애의 얼굴은 멜포미니(그리스 신화의 비극의 신)의 비극적인 얼굴 같아요."
수가 말했다.
"너의 이름이 뭐지, 얘야? 우리에게 말했었니?"
"애들이 나를 '꼬마 영감'이라고 불렀어요. 이건 별명이에요. 왜냐하면 내가 너무 나이들어 보인다고 애들이 그랬어요."
"그런데 넌 말도 그렇게 하는구나."
수가 부드럽게 말했다.
"주드, 이렇게 불가사의한 고대의 소년들은 언제나 대부분 새로운 나라에서 온다는 게 이상하죠? 그런데 너의 세례명은 뭐니?"
"안 받았어요."
"왜 안 받았지?"
"왜냐하면 지옥에서 죽으면 기독교식 장례비용이 절약된데요."
"오, 너의 이름이 주드는 아니구나?"
그의 아버지는 약간은 실망하며 말했다. 그 소년은 머리를 저었다.
"그런 이름은 못 들어 봤어요."
"물론, 못 들어 봤겠지."
수가 잽싸게 말했다.
"왜냐하면 그 여잔 항상 당신을 미워했을 테니까요!"
"우리가 이 애를 세례받게 해주자구."
주드가 말했다. 그리고 수에게 은밀히 말했다.
"우리가 결혼하는 그날에 말야."
그러나 그 아이의 출현은 그에게 당장 지장을 주게 되었으며 그들의 처지를 어색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그들은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보다는 경정의 등록사무실에서 은밀하게 결혼 절차를 밟기로 했다. 그들은 이번엔 교회를 피하기로 결정했다.
두 사람은 결혼을 통고하기 위해 그 경정의 사무실로 갔다. 그들은 그렇게 동행을 했기 때문에 서로에게 동행이 되어 준다는 것 외에는 더 이상의 어떤 중요한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주드 폴리는 통지서 양식에 서명을 했다. 수는 그의 어깨너머로 낱말들을 쫓아가는 듯한 그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각형 보증서를 보았을 때 그 안에 자신의 이름과 주드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것에 의해 서로에 대한 그들의 사랑이 가변적인 본질이 영구적인 것이 된다는 생각이 들자 그녀의 얼굴에는 고통스런 표정이 짙어지는 듯했다.
'양쪽의 이름과 성'(그들은 이제 결혼하는 양측이지 애인이 아니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신분'(끔찍한 생각), '지위 혹은 직업', '나이', '거주지', '거주시간', '결혼식이 거행될 교회 또는 건물명', '양측 당사자가 각각 거주하는 지역과 지방'.
"정말 기분을 망치게 하는군요. 그렇잖아요!"
그녀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교구회에서 계약에 서명하는 것보다 더 너저분한 일인 것 같아요. 교회엔 약간의 과정이 있잖아요. 하지만 우리가 그 일을 끝내도록 노력해야겠지요."
"그래야지. '여자와 혼약을 맺어놓고 아직 그 여자를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는 자 누구리오? 그로 인하여 그의 집으로 돌아가게 할지어다. 그가 싸움터에서 죽으면 다른 남자가 그녀를 차지하리라'('구약성서' 신명기, 20장 7절)라고 유대인의 율법자는 말했지."
"당신 성경을 정말 잘 아시네요, 주드! 당신은 정말 목사가 되었어야 해요. 난 세속적인 작가들의 글만 인용할 수 있어요!"
결혼 허가증이 나오기 전까지 수는 가끔 집안일로 사무실을 지나다녔다. 어느 날 슬쩍 안을 들여다보니 두 사람의 결합을 매듭짓기 위한 고지서가 벽에 붙어 있었다. 그녀는 고지서를 보자 참을 수가 없었다. 이전에 결혼생활에 대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현재 상황을 같은 범주에 놓고 본다면 그들 애정의 모든 낭만은 사라져 버리게 될 것 같았다.
그녀가 곧잘 꼬마 영감의 손을 잡고 다녔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애를 그녀의 자식으로 생각할 거라 짐작되었다. 그리고 옛날의 잘못을 보상하는 마음으로 결혼식은 꼭 올려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동안 주드는 메리그린에서 보낸 그의 어린 시절과 연결되는 이 세상에 남은 유일한 사람을 결혼식에 초대하여 작게나마 그의 현재를 과거와 이어놓겠다고 결심했다.
그 사람은 대고모의 친구이며 임종 때까지 그녀를 돌보아주던 에들린 부인이었다. 그녀도 이제 나이도 들었고 혼자 살고 있었다. 그 노파가 와줄 것인가는 기대하기 어려웠는데, 그 노파는 사과와 잼, 놋쇠로 만든 심지 다듬기, 낡은 백랍 접시, 난방용 냄비 그리고 침대보에 넣은 거대한 거위털 꾸러미 같은 진귀한 선물들을 가지고 왔다.
그녀는 주드의 집에 있는 빈방에 숙소를 정했다. 방으로 일찌감치 들어간 그는 예배의 규정에 있는 대로 큰소리로 하나님의 기도문을 제창했으면 그 소리는 천장을 뚫고 아래까지 들려왔다. 그러나 그녀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수와 주드가 자지 않고 있는 걸 알아차린 그녀는 - 사실 10시밖에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 다시 옷을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그들은 모두 늦게까지 난로 옆에 앉아 있었다. 꼬마 영감도 함께 앉아 있었는데 전혀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거의 그를 인식하지 못했다.
"그런데 난 너의 대고모가 그랬던 것처럼 반대하지는 않겠다."
과부댁이 말했다.
"그리고 난 이번엔 어느 모로보나 너희를 위해 즐거운 결혼식이 되길 바란다. 어느 누구도 나만큼 너희 집안에 대해 아는 사람도 없으므로 현재 살고 있는 어떤 사람도 나만큼 기쁘지는 않을 거다. 왜냐하면 폴리 집안사람들은 연분을 맺는 것에는 운이 없는 편이거든."
수는 불안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또, 항상 마음씨가 좋았지. 파리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단다."
결혼식에 초대 받은 손님은 말을 계속했다.
"그러나 뜻밖의 일들이 생겨났고 만약 모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그들은 뒤죽박죽이 되곤 했지. 정신이 이상해지고 말았기 때문에 그런 짓을 저지르고 말았겠지만... 그 사람도 너희 집안 사람 중의 한 사람이지.“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주드가 물었다.
"응, 그 얘기 너도 알고 있잖니. 브라운 하우스 옆 언덕 위에서 교수형을 당한 그 남자 말야. 메리그린과 알프레드스톤 사이에 마일 표지석을 조금 지나 다른 길로 갈라지는 그곳 말이야. 하느님 맙소사! 우리 할아버지 때의 일이었다. 그 미친 사람이 너희 가족 중의 하나였을지 몰라."
"교수대가 서 있던 곳은 아주 잘 압니다."
주드가 중얼거렸다.
"그러나 들어보지 못했는데요. 우리 조상이며 수의 조상인 이 사람이 무슨 일을 했나요? 그의 아내를 죽였나요?"
"정확히 그렇지는 않아. 마누라가 애를 데리고 친구의 집으로 도망을 쳤는데 그러는 동안 그 애가 죽어 버렸다는군. 그는 조상들이 묻혀 있는 곳에 묻으려고 그애의 사체를 달라고 했으나 그녀가 내어주지 않았지. 그 여자의 남편은 어느 날 밤에 수레를 끌고 와서 집에 침입해 관을 훔쳐 가려 했는데 그만 잡히고 말았지. 화가 나서 무엇 때문에 그 집에 들어왔는지 말하지 않았던 거야. 사람들은 그것을 강도죄로 몰아 잡아갔고 그는 브라운 하우스 언덕에서 교수형을 당했어. 그의 아내는 그가 죽은 후에 미쳐 버렸고. 하지만 그 사람은 우리쪽보단 너희 가문에 속한 사람인 것 같아."
작고 느린 목소리가 땅에서 솟아나는 것처럼 난로 그늘 쪽에서 들려왔다.
"만약 내가 엄마라면 난 아빠와 결혼하지 않겠어요!"
그 소리는 꼬마 영감 입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들 모두 놀랐던 것은 지금까지 그를 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그건 단지 얘기일 뿐이야."
수가 명랑하게 말했다. 예식 전날 밤에 할머니로부터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님에게 잘 자라고 인사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한 수는 집을 나서기 전에 은밀히 주드를 거실로 불렀다.
"주드, 애인이었을 때처럼 키스해 주세요."
그녀는 속눈썹이 젖은 채로 떨면서 그에게 바짝 다가서면서 말했다.
"더 이상 이런 기분이 들지는 않겠죠? 그렇겠죠! 우리가 이 일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걸 그랬어요. 하지만 그 일을 계속해 나가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어젯밤 그 얘기는 너무 무서웠어요! 그 얘기가 오늘 내 기분을 망쳤어요. 아트레우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 아가멤논의 아버지)의 집안에 덮인 것 같은 비극적인 운명이 우리 가운데도 덮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아니면 에로보암(B.C 926-906년 재위 ; 처음에는 솔로몬 왕에게 기용되었다가 나중에 반란을 일으켜 이집트로 도망간 이스라엘 북왕조의 창시자의 집안. '구약성서' 열왕기 상 2장 26~40절)의 집안같이 말이야."
"그래요. 결혼하러 간다는 것이 우리 두 사람에게는 너무 무모한 짓인 것 같아요! 내가 전남편에게 맹세했던 것과 같은 말로 맹세를 하게 되겠죠. 그리고 당신도 당신의 전 아내에게 했었던 것과 같이 나에게 맹세하겠지요. 우리가 이미 예전의 경험에서 배운 교훈을 고려하지 않은 채."
"만약 당신이 불안하다면 나도 붕행하게 될 거야."
그가 말했다.
"난 당신이 정말 즐겁게 느끼길 바랐는데 만약 당신이 그렇지 않다면 그렇지 않은 거겠지. 즐거운 척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지. 당신에게 무시무시한 일이라면 내게도 그런 거야!"
"어제 아침같이 기분이 좋지 않아요. 그뿐이에요."
그녀는 중얼거렸다.
"자, 이제 가요."
그들은 팔짱을 끼고 앞서 말한 사무실을 향해 출발했다. 에들린 할머니를 제외하고는 그들과 동행하는 증인은 아무도 없었다.
날씨는 흐리고 쌀쌀했으며 '왕위가 있는 탑이 비치는 템즈강'(밀튼의 시, 'At a vacation Excercise')에서 불어오는 냉습한 안개 바람이 도시를 통과하여 불어왔다.
사무실 계단에는 그곳으로 들어간 사람들의 진흙 발자국이 찍혀 있었고 입구에는 물기있는 우산들이 있었다. 사무실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군인과 젊은 여자의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그 두 사람은 볼 수 있었다.
수, 주드 그리고 에들린 할머니는 이 예식이 진행되는 동안 뒤쪽에 서 있었다. 수는 벽에 붙어 있는 결혼통지서를 읽고 있었다. 그 방은 자주 드나드는 사람에게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방이었지만 현재의 수와 주드에게는 불쾌한 곳이었다.
5-5
여러 가지 감정이나 여러 행위를 기록하는 기록자에게 앞서 말한 중대한 논쟁에 대한 그의 개인적 견해를 표현할 것을 요구받지는 않는다. 그 한 쌍의 남녀는 행복했다-그들의 슬펐던 시간들 사이에서도-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주드의 아들의 뜻하지 않은 출현도 처음의 양상만큼 방해가 되는 사건도 되지 못했다. 그 일은 오히려 그들에게 새로운 삶과 자잘구레한 일들에 대해 부드러운 관심을 갖게 해주었다. 그들의 행복을 해치기보다는 오히려 행복해지기를 도와주는 사건이 되었다.
또한 확실히 상냥하면서도 근심스러워하는 존재인 그들에게(토마스 그레이, '시골 묘지에서 쓴 애가'의 86행) 그 소년이 온 것은 미래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특히 그 아이가 소년시절에 흔히 갖는 일반적인 희망이 결여되어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더 그랬다. 그러나 두 사람은 적어도 잠시동안은 너무 지나친 기대는 걸지 않으려 노력했다.
북웨섹스에는 2천 내지 1만 명의 인구가 사는 오래된 도시가 있다. 스톡 베어힐스라고 불리는 곳이다. 그 도시에는 백악층 곡물지대와 볼품없고 오래된 교회 그리고 새로 지은 붉은 벽돌의 교외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고 얼드브릭험의 시내와 윈톤세스터 그리고 쿼터쇼트의 중요한 군사기지를 연결하는 삼각형의 중앙 부분에 위치해있는 곳이었다.
런던에서부터 뻗은 커다란 서부 외곽도로가 그 도시를 통과해 가면 얼마 안 되는 지점에서 둘로 갈라지고 멀리 서쪽으로 20마일쯤 되는 곳에서 다시 합쳐진다.
나뉘었다가 다시 만나는 이 길은 철도 시대 이전에 마차로 여행하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을 제공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일도 옛날 할당세를 분수에 맞게 잘 지불하던 자유 소지주나 가도의 마차꾼, 우편마차의 마부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오늘날 스톡 베어힐스 주민 중 단 한사람도 자기 마을 통과한 두 길이 다시 만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왜냐하면 서부 대로를 왕래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스톡 베어힐스에서 가장 친숙한 대상물은 철도 뒤의 묘지였다. 근대식 예배당과 근대식 무덤, 근대식 관목숲이 덩굴로 뒤덮여 사그라진 고대의 성벽에 에워싸여 주제넘게 끼어든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 이야기는 특정한 해의 어느 날에 이르게 된다. - 그달의 초순이었다. 이 도시의 모습은 조금도 흥미로운 것이 없었지만 기차를 이용해 많은 방문객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특히 하행열차는 여기서 거의 텅텅 비게 되는 것이었다.
대 웨섹스 농업 쇼가 열리는 주간이었다. 그 쇼를 위해 광대한 천막촌이 포위 부대의 천막처럼 그 도시의 확 트인 외곽에 퍼져 있었다. 몇 줄이고 줄줄이 이어 선 대천막, 가장자리에 있는 유숙장, 토막집, 아케이드, 현관, 주랑들에 이르기까지 영구적인 구조물이 아닌 모든 종류의 가건물이 반 마일 정도 사방에 걸쳐 녹색의 들판을 뒤덮고 있었다.
이곳에 도착한 군중들은 떼를 지어 시내를 통과해 그 전람회장으로 곧바로 갔다. 거기까지 가는 길에는 여러 가지 전시물과 가게들과 봇짐장수들이 있어서, 전람회장으로 가는 길 전체를 상설시장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래서 구경하러 온 박람회 문이 채 도착하기도 전에 호주머니가 가볍게 되어 버리는 사람도 약간 있었다.
대중들을 위한 날이며 1실링의 날이었다. 그래서 서로 다른 방향에서 오는 빠른 유람 열차가 거의 같은 시간에 역사에 들어오기도 했다. 하나는 턴에 도착했던 몇 개의 열차처럼 런던으로부터 온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교차하는 지선에 의한 것으로 얼드브릭험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런던에서 온 열차에서 한 쌍의 남녀가 내렸다. 키가 작고 비만인 편이며, 불룩한 배 아래로 짧은 다리가 솟아 나와 못 두 개 위에 얹혀 있는 팽이같이 보이는 사나이와 동행한 사람은 약간은 얼굴빛이 붉고 세련되어 보이는 자태의 여인이었다.
그녀는 의상 전체가 검은색이었는데 보닛에서 스커트까지 염주 구슬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에 쇠사슬로 엮어 만든 갑옷을 입고 있는 것 같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들은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남자가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대여 마차를 빌리려고 하자 여자가 말했다.
"그렇게 서두를 것 없어요. 카트리트. 전시장까지는 그리 멀지 않아요. 그곳까지 우리 걸어가요. 어쩌면 싸구려 가구나 오래된 도자기를 건질 수도 있잖아요. 내가 여기 온 지도 오래 되었군요. 얼드브릭험에서 아직 처녀였을 때를 빼고는 온 적이 없군요. 젊은 남자친구와 가끔씩 짧은 여행을 하곤 했었죠."
"유람 열차로 가구 같은 건 가져갈 수 없어."
그녀의 남편이자 람베스의 술집 주인인 사내는 무뚝뚝한 소리로 말했다. 그들은 '진짜로 술꾼이 많고,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인 람베스의 술집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그 남편도 그의 손님들과 마찬가지로 그가 거래하는 술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는 것을 그의 몸짓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만약 값어치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부치면 되죠."
그의 아내가 말했다. 그들이 어슬렁어슬렁 걸으며 시내를 들어서는 순간 아이를 동반한 젊은 부부의 모습이 그녀의 시선을 끌었다. 그들은 수증기를 내뿜는 얼드브릭험에서 온 열차가 있는 2번 플랫폼에서 나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선술집을 경영하는 부부 바로 앞을 걷고 있었다.
"이런, 세상에!"
아라벨라가 말했다.
"뭔데?"
카트리트가 물었다.
"저 부부가 누구라고 생각해요? 당신 저 남자 모르시겠어요?"
"모르겠는데."
"사진으로 보여준 적이 있잖아요. 그래도 모르겠어요?"
"폴리란 말야?"
"예, 확실해요."
"오, 그래. 그 사람도 우리들처럼 관광을 하고 싶었나보지."
주드에 대한 카트리트의 관심은 아라벨라가 그에게 다시 돌아왔을 때에는 어느 정도 있었지만 그녀의 매력, 그녀의 기벽, 그녀의 여분의 가발 그리고 그녀가 순식간에 만들어낸 보조개가 모두 거짓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나서는 시들해져 버렸다.
아라벨라는 자기 발걸음과 남편의 발걸음을 조절해서 세 사람의 바로 뒤를 따르도록 보조를 맞추었다. 보행자들의 큰 흐름 속에서 남의 눈에 띄지 않고 그 일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카트리트의 질문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애매하고 미온적이었다. 왜냐하면 그녀에겐 주위의 어떤 광경보다 그녀 앞에서 걸어가는 그 세 사람이 더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서로 좋아하기 때문에 그들의 아이도 좋아하는 것 같은데."
술집 주인이 말을 이었다.
"그들의 아이라고요! 저 애는 그 사람들의 애가 아니에요."
아라벨라는 기묘하고도 탐욕스러운 말투로 갑자기 이렇게 대답했다.
"그들은 저 정도 나이의 애를 가질 만큼 결혼생활을 오래 하지 않았어요."
남편의 추측을 정면으로 논파하고 싶을 만큼 끓어오르는 모성 본능이 강했지만, 그녀는 필요에서라기보다 공정한 판단 아래 그만두자는 생각이 들었다. 카트리트는 그의 아내가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는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외조부모와 함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 내 생각도 그래. 저 여자는 처녀 같아 보여."
"그들은 단지 연인이거나 아니면 최근에 결혼해서 저 아이를 맡아 기르고 있는 거예요. 누구라도 알 수 있어요."
모두가 앞으로 움직여 나갔다.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한 수와 주드는 자기 마을에서 20마일 내에서 개최되고 있는 농업 박람회에 당일치기 유람 여행을 하기로 결정했다. 적은 비용으로 학습과 오락을 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 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은 꼬마 영감을 데리고 왔던 것이다. 그들은 다른 소년들처럼 그 애도 떠들고 웃게 만들려고 모든 수단을 써서 노력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여행을 즐기면서 나누려 했던 친밀한 분위기에는 다소 장애가 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 그 애를 감시자로 여기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수줍어하는 연인들도 못내 감추지 못할 상냥한 마음 씀씀이를 서로에게 베풀면서 여행을 즐겼다.
완전히 낯선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생각에서인지 그들은 집에서 그렇게 했던 것보다 더 그들의 감정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새로 지은 여름옷을 입은 수는 새처럼 유연하고 가벼워 보였으며, 그녀의 작은 엄지는 흰 면직 양산의 손잡이를 받쳐 세우고 있었다. 그녀는 거의 땅에 닿지 않는 듯한 걸음걸이로 걸어갔다. 그래서 마치 강한 바람이 한번 불면 그녀는 울타리를 넘어 옆 들판으로 떠올라 버릴 것 같았다.
밝은 회색의 휴일용 정장을 입고 있는 주드는 그의 동반자를 진정으로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녀의 외적인 매력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녀의 동정 어린 말과 태도 때문이었다. 매번의 눈길과 움직임 속에 상호 간의 완전한 이해는 그 둘 사이에 정보를 교환하기 위한 언어로서 효과적이었고 그들을 한 개의 원을 구성하고 있는 두 부분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맡아 기르고 있는 아이를 데리고 있는 이 한 쌍이 통행문을 지날 때, 아라벨라와 그의 남편은 그들 뒤에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구내에 들어섰을 때 선술집의 여자는 앞의 두 사람이 살아 있거나 죽어 있는 수많은 흥미로운 대상들을 가리키며 어린아이에게 애써 무엇인가를 설명하려고 하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애의 무관심을 깨뜨려 보려는 그들의 노력이 매번 실패하자 그들 얼굴에 스치는 슬픔도 볼 수 있었다.
"어떻게 저 여자는 그에게 저렇게 붙어 있지!"
아라벨라가 말했다.
"오, 이런, 그들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거야. 아니면 저렇게 서로에게 다정할 수 없지. 의심스럽군!"
"그런데 당신은 저 남자가 저 여자와 결혼했다고 말했잖아?"
"난 그가 그럴 예정이라는 말까지만 들었어요, 그뿐이에요. 한두 번의 연기 후에 다시 시도할 예정이라고... 두 사람 사이에 관한 한 그들은 쇼에 나오는 사람 바로 그들과 같죠. 내가 만약 저 남자의 처지였다면 내 자신을 그렇게 어리석게 만든 것에 대해 부끄럽게 여겼을 거예요!"
"난 저 사람들의 행동에서 어떤 주목할 만한 게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만약 당신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면 난 저들이 사랑하고 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거야."
"당신은 결코 어떤 것도 볼 수 없겠죠."
그녀는 되받아 대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트리트의 연인이나 결혼한 부부의 행동에 대한 견해가 일반 군중의 견해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아라벨라의 예리한 시야가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이 일반 대중의 주의를 끌 길은 없는 듯 보였다.
"저 남자는 마치 그 여자가 요정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에게 홀려있어요!"
아라벨라가 계속해서 외쳐댔다.
"보세요. 그가 얼마나 그녀를 두루 보아주는지. 그리고 그녀에게만 시선을 두고 있잖아요. 어쩐지 그가 저 여자를 사랑하는 만큼 그녀가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녀는 내 생각엔 특별히 다정한 여자는 못 되는 것 같아요. 하긴 그녀는 그를 웬만큼 좋아하는 것 같긴 해요. 그녀가 할 수 있는 한은 말이죠. 그래서 그가 그렇게 하려고만 한다면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도 있겠죠. 그는 너무 순진해서 그렇게 할 수 없겠지만요. 저기, 그들이 짐마차 전시장으로 건너가네요. 어서 가요."
"난 짐마차 같은 건 보고 싶지 않아. 저 두 사람을 따라다니는 게 우리 일도 아니잖아. 쇼를 보러 왔으면 우리 식대로 구경하고 그들은 그들 식대로 하도록 하자고."
"그럼, 우리 한 시간 후에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는 게 어때요? 저기 다과점 천막 있는 데가 어때요? 각각 돌아다니면? 그러면 당신은 당신이 선택한 것을 볼 수 있고 그리고 나 역시 그렇고요."
카트리트가 주저 없이 동의했기 때문에 그들은 따로 떨어졌다. 남편은 맥주를 양조해 내는 과정을 진열한 천막 쪽으로 가고, 아라벨라는 주드와 수가 지나간 방향으로 갔다. 그러나 아라벨라는 그 부부의 흔적을 찾아내기도 전에 어떤 웃는 얼굴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녀는 처녀시절의 친구 애니와 마주친 것이었다.
애니는 너무나 우연한 재회라는 사실에 애정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나 아직 거기 살고 있어."
웃음이 그치자마자 그녀가 말했다.
"나 곧 결혼할 거야. 그런데 내 약혼자는 오늘 여기 못 왔어. 우리 모두 같이 유람 여행으로 여기 왔어. 지금은 뿔뿔이 헤어졌지만."
"너 주드와 그의 젊은 여자를 만났지? 아내인지 뭔지 말야? 조금 전까지도 그들을 봤는데."
"아니, 몇 해 동안 코빼기도 못 봤는걸!"
"그래? 그들이 여기 어딘가 가까이 있었는데. 그래, 저기 그들이 있다. 저기 회색말 옆에!"
"오, 저쪽이 그의 현재 젊은 여자 아니 아내라고 말했지? 그가 다시 결혼한 거니?"
"몰라!"
"저 여자 예쁘구나. 그렇지!"
"그래. 흠잡을 데가 없구나. 하지만 덤벼들 정도는 안 되어 보이는데, 저런 여자는 쓸 만하지 않아. 호리호리하고 저렇게 침착하지 못한 여자는."
"그도 멋진 남자가 되었구나! 아라벨라, 너 저 사람에게 달라붙어 있을 것 그랬다."
"모르겠어. 하지만 그랬으면 좋았겠어."
그녀는 중얼거렸다. 그러자 애니가 웃어댔다.
"아라벨라, 그게 너야! 항상 자기 남자보다는 다른 남자를 원하잖아."
"글쎄, 그런데 남의 남자를 탐내지 않는 여자도 있니? 그와 함께 있는 저 여잔 적어도 내가 사랑이라 부를 만한 그런 사랑이란 걸 모른다구. 그녀가 사랑을 모른다는 건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어."
"하지만 아라벨라. 아마도 넌 그녀가 사랑이라 부르는 것이 뭔지 모르는 것 같은데."
"그런 건 몰라도 돼! ... 아! 그들이 그림이 전시되어있는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어. 나도 그림을 좀 보고 싶은데. 우리 저기로 갈까? 놀랍구나. 웨섹스의 모든 사람들이 다 여기 있는 것 같지 않니! 저기 몇 해 동안 보지 못했던 빌버트 의사 선생도 있구나. 그런데, 그는 내가 전에 그를 알았을 때보다 조금도 나이가 들어 보이지 않는데? ... 안녕하셨어요. 의사 선생님? 전 지금 방금 선생님께서 제가 처녀시절을 알던 때보다 조금도 나이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오로지 나의 환약을 규칙적으로 복용한 결과입니다. 부인, 한 상자에 2실링 3펜스밖에 안 하는, 효능은 정부 면허의 보증품이죠. 나의 예를 따라 세월의 맹위로부터 똑같이 면역을 얻을 수 있는 약의 구입을 권해 드려도 될까요? 단돈 2실링 3펜스."
의사는 조끼 주머니에서 상자를 끄집어냈고 아라벨라는 그 말에 현혹되어 약을 사게 되었다. 그녀가 약값을 치르려 하자, 그가 물었다.
"어느 댁 부인이시더라...?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부인은 확실히 한때 미스 돈이었고 메리그린 마을 근처에 살던 폴리 부인이군요?"
"네, 하지만 지금은 카트리트 부인이에요."
"아, 사별하신 건가요, 그럼? 유망한 젊은이였는데! 당신도 아시다시피 내 제자였죠. 난 그에게 라틴어 같은 사어를 가르쳤죠. 그는 거의 내가 알고 있는 정도는 금방 알게 되었지요. 믿어주세요."
"난 그를 잃었어요. 하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것 같은 것은 아니에요."
아라벨라는 냉정하게 말했다.
"법률가들이 우리를 갈라놓았죠. 그는 살아 있어요. 보세요. 원기 왕성하잖아요. 저 젊은 여자와 나란히 무술 전람회장에 들어가고 있잖아요."
"아, 이럴 수가! 분명히 저 여자를 좋아하나 본데."
"그들은 사촌 간이란 말이 있던데."
"사촌간이 오히려 그들의 감정 교류에는 편리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래요. 그래서 저 여자의 남편도 그렇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가 그녀
와 이혼할 때 말예요. 우리들도 그림을 구경할까요?"
이 세 사람도 풀밭을 가로질러 그곳에 들어섰다. 주드와 수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그들의 관심을 깨닫지 못한 채 그 건물의 한쪽 구석에 있는 모형으로 가서 그들이 다가오기 전까지 오랫동안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아라벨라와 그녀의 친구들이 그것에 다가가서 보니 거기엔 '크리스트민스터 대승정의 모형' J. 폴리와 SFM 브라이드헤드 작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자화자찬하고 있었군."
아라벨라가 말했다.
"얼마나 주드다운 일인지. 오로지 대학과 크리스트민스터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다니까!"
그들은 그림들을 호기심 있게 훑어보다가 야외 연주장으로 걸어갔다. 그들이 군악대의 연주 음악을 들으며 잠시 서 있을 때 주드와 수 그리고 그 아이가 반대편에 나타났다. 아라벨라는 그들이 자신을 알아보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 깊게 자신들의 삶에 빠져 있었고 군악대의 음악에 빠져 있어서 구슬 달린 베일 속의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녀는 음악을 듣고 있는 군중의 바깥쪽을 돌아서 그 연인들의 뒤를 스쳐 지나갔다. 그들의 거동은 오늘따라 그녀에겐 뜻하지 않은 매력을 던져주고 있었다. 뒤에서 주의깊게 관찰해보니 주드의 손이 수의 손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아라벨라는 알아차렸다.
그 두 사람은 서로 간에 나타내는 무언의 표현을 숨길 수 있다고 여겼는지 그렇게 가까이 함께 서 있었다.
"멍청한 바보들, 마치 두 명의 어린애들 같군!"
아라벨라는 내뱉듯이 혼잣말을 하고 그녀의 동반자들과 합류했지만 그녀는 생각에 잠긴 듯 침묵을 지켰다.
그러는 동안 애니는 아라벨라가 그녀의 첫 남편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며 농담조로 빌버트에게 말했다.
"그런데, 부인."
좀 떨어져 있는 아라벨라에게 의사가 말을 건넸다.
"이런 것 좀 써 보시지 않겠습니까? 이건 내 정규 약국에서 제조한 것은 아니지만 가끔 이런 걸 원하는 사람이 있죠."
그는 맑은 액체가 든 작은 약병을 끄집어 냈다.
"고대 희랍인들도 약효가 뛰어나서 애용하던 사랑의 묘약이죠. 그들의 문헌을 연구해 발명해낸 것인데, 실패했다고 알려지지는 않은 물건이죠."
"뭐로 만들어졌죠?"
아라벨라는 호기심에 차서 물어보았다.
"그건 말이죠. 작은 비둘기의 심장, 아니면 보통 비둘기의 심장에 있는 주요 성분 중 하나죠. 이 작은 병 하나를 다 채우려면 거의 100마리의 심장이 있어야 하죠."
"그렇게 많은 비둘기를 어떻게 손에 넣었죠?"
"이건 비밀인데 비둘기는 무턱대고 암염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우리 집 지붕에 있는 비둘기 집에 그걸 넣어 두죠. 몇 시간 내에 사방 동서남북에서 비둘기들이 모여들기 때문에 난 내가 원하는 만큼 손에 넣을 수 있죠. 당신이 이 물약을 쓰려면 우선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이걸 10방울 정도 떨어뜨린 술을 마시게 하는 겁니다. 그러나 명심하세요. 당신이 사겠다는 의사를 보였기 때문에 당신 질문에 이 모든 것을 말해준 겁니다. 당신은 신의를 지켜주시겠죠?"
"좋아요. 한 병쯤은 상관없겟죠. 친구나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의 남자들에게 시험해 보라고 주면 되죠."
그녀는 15실링을 꺼냈다. 그리고 그 물약을 그녀의 풍만한 가슴 사이에 밀어 넣었다.
남편과 만날 약속 시간이 다 되었다고 말하며 그녀는 식당 쪽으로 슬슬 걸어가 버렸다. 그곳에서 아라벨라는 장미가 떼지어 피어 있는 곳에 그들이 서 있는 것을 힐끗 보았다. 그녀는 그들을 관찰하며 몇 분 정도 더 서 있다가 그의 남편에게 갔지만 어떤 사랑스런 감정도 생기지 않았다. 그녀는 그 바에서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그에게 술을 가져다준 화려한 차림의 여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
"이런 일은 집에서도 충분하실 텐데!"
아라벨라는 침울하게 말했다.
"당신은 또 다른 술집에 머므르려고 50마일이나 되는 길을 온 것은 아니시죠? 이리 오셔서 다른 남자들이 그의 아내에게 하듯이 내게 쇼를 구경시켜 주세요! 당신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돌볼 줄 모르니 사람들이 당신을 젊은 미혼 남자라고 여길 거예요!"
"하지만 우리 여기서 만나기로 약속했었잖아. 내가 기다리는 것 말고 뭘 할 수 있었겠어?"
"이제 만났잖아요. 따라오세요."
그녀는 되받아 말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비치는 태양하고라도 싸울 기세였다. 그래서 그들은 함께 그 천막을 나왔다. 배불뚝이 남편과 사치스런 아내는 평범한 그리스도 교도 부부들의 반감과 비난 속에 있었다.
그러는 동안 가장 예외적인 한쌍의 부부와 소년은 꽃이 있는 천막 안을 여전히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관상에 취미가 있는 그들에겐 마법의 궁전과 같은 곳이었다. 평상시엔 창백한 수의 뺨에 그녀가 바라보는 장미의 분홍빛이 반사되어 있었다. 즐거운 광경과 공기와 음악 그리고 주드와 함께 밖에 나온 날의 흥분이 그녀의 혈액을 빠르게 순환시켰고 그녀의 눈을 활기로 빛나게 했다.
그녀는 장미에 대해 찬탄하고 있었다. 아라벨라가 확인할 수 있는 바로는 수는 다양한 종류의 꽃 이름을 배우며 주드의 의사에 반하여 그를 붙들어두고 있었다. 그리고 냄새를 맡으려고 그녀의 얼굴을 꽃 가까이에 갖다대고 있었다.
"꽃 속에 얼굴을 파묻고 싶을 정도예요. 사랑스런 것들!"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그들을 만지는 건 규칙 위반이죠. 주드?"
"그래, 내 사랑."
그는 말했다. 그리고는 장난스럽게 그녀를 살짝 밀자 그녀의 코가 꽃잎 사이로 들어갔다.
"경찰이 와서 나무라면 내 남편 잘못이라고 말할 거예요!"
그리고 나서 그녀는 주드를 올려다보며 웃었는데 그 태도가 아라벨라의 마음에 거슬렸다.
"행복해?"
그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지? 당신이 웨섹스 대 농업 쇼에 왔기 때문이야? 아니면 우리가 함께 왔기 때문이야?"
"당신은 항상 내게 모든 종류의 불합리함을 고백하게 하려고 노력하시는 군요. 물론 이런 증기 경작기나 탈곡기, 건초 절단기, 암소나 양 같은 것을 봄으로써 내 마음이 호전되었기 때문이죠."
주드는 도피하는 동반자의 애매한 대답에 꽤 만족해 했다. 그러나 그가 그런 질문을 했던 걸 잊어버릴 때쯤, 그리고 그가 더 이상 대답을 바라지 않게 되었을 때 그녀는 말을 계속했다.
"난 우리가 희랍시대의 환희로 되돌아간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 자신의 아픔과 슬픔으로 눈이 멀어서 그들 시대 이래로 그 종족에게 2천 5백 년 세월 동안 가르쳐 온 것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있었다고요. 당신이 좋아하는 크리스트민스터의 석학의 말을 빌면, 눈앞에 다가선 그림자 하나가 있으니, 오직 하나뿐이라고요."
그녀는 나이 들어 보이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비록 그들이 그 아이의 어린 지성을 끌 만한 모든 것을 가져다 주었지만 그의 흥미를 끄는 데는 완전히 실패했다. 그 아이는 그들이 무엇을 말하며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고 있었다.
"정말, 정말 미안해요! 엄마, 아빠."
꼬마가 말했다.
"하지만 제발, 신경 쓰지 마세요! 나도 어쩔 수가 없어요. 나도 꽃을 무척 좋아하긴 하지만 그들도 며칠이 지나면 모두 시들거란 생각이 자꾸 들어요!"
5-6
지금까지 남의 눈에 띄지 않았던 두 사람의 생활은 결혼식을 연기한 그날로부터 아라벨라 이외의 사람들에게도 관찰되기 시작하면서 입에도 오르내리게 되었다. 스프링 가 주변의 사회와 이웃들은 수와 주드의 사적인 마음과 감정, 지위나 두려움을 이해할 수 없었고 아마 이해되어질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뜻밖의 한 아이가 들어오게 된 이상한 사실 그리고 그 아이가 주드를 아빠라고, 수를 엄마라고 부르는 점, 등기소에서 조용히 결혼식을 올리려다 지장이 생긴 점이 이런 여러 가지 기묘한 사실을 도저히 변호할 수 없는 재판소 소문과 함께 평범한 사람들에게 한 가지 해석만을 낳게 했다.
꼬마 영감- 비록 그는 공식적으로 '주드'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그에겐 적절한 별명이 붙어 있었다 -은 저녁때 학교에서 돌아와서 다른 소년들로부터 들었거나 얘기했던 것을 반복해서 말해주었다. 주드는 커다란 고통과 슬픔으로 그 얘기를 들었다. 따라서 그들은 등기소 사건 이후 얼마 안 되어서 어딘가로 - 런던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 소년을 돌볼 사람을 고용해 두고 며칠간 가버렸다. 두 사람은 돌아와서 결국 법률상 정규의 수속을 밟아서 결혼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나마 알리려는 말들을 비치기 시작했다.
전에는 브라이드 헤드라고 불리던 수는 이제 공개적으로 폴리 부인이란 이름을 택했다. 여러 날 동안의 그녀의 무디고, 겁먹은 듯했던 멍한 태도는 이 모든 사실을 입증해 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 일을 하기 위해 아주 비밀리에 집을 떠났었던 그 잘못(그들은 그렇게 표현했다)은 그들 삶에 대한 더 많은 수수께끼를 더해 주는 결과가 되었다. 그래서 그들이 이웃과 관계가 좋아지리라 기대했던 것 만큼의 진전은 없었다. 살아있는 수수께끼는 죽은 추문보다는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빵집 젊은이와 식료품 가게 소년은 그들이 용무를 보러왔을 때 처음엔 수에게 친절하게 모자를 벗어가며 인사를 했으나 요즘에는 더이상 그런 경의를 보이려 애쓰지 않았다. 그리고 이웃의 아낙네들은 보도에서 그녀와 마주쳐도 길을 따라 똑바로 앞만 보고 갔다.
어느 누구도 그들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숨 막힐 듯한 분위기가 그들의 영혼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특히, 그들이 농업 쇼를 보러 갔던 유람 여행 후엔 더 그랬다. 마치 그 나들이 자체가 그들을 억누르는 사악한 영향을 가져다 준 듯했다. 그리고 그들의 기질은 이런 분위기로부터 분명히 고통받는 그런 종류의 것이었고 단호하고 공개적으로 성명을 발표함으로써 그것을 밝힐 마음도 내키지 않는 것이었다. 명백히 보상하려는 그들의 시도는 너무 늦어서 효력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묘의 두판석이나 비명의 주문도 줄어들었다. 2, 3개월이 지나 가을이 다가오자 주드는 출장 일을 다시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난해의 소송비용을 지불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지게 된 부채를 아직 정리하지 못해서 지금 더욱 불행한 과정을 겪고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어느 날 저녁 그는 평상시처럼 수와 그의 아이와 함께 평범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내 생각엔 말이야."
그가 수에게 말했다.
"난 더 이상 이곳에서 살 수가 없을 것 같아. 생활면에서 이곳은 우리에게 알맞은 곳이지만. 만약 우리가 잘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간다면 우리는 더 가벼운 마음이 될 테고, 더 나은 기회를 가질 수 있겠지. 당신에겐 어색하겠지만 여기 일은 청산해 버리자고!"
수는 항상 자신이 연민의 대상이 된다는 생각이 들 때면 몹시 동요를 일으켰다. 그래서 그녀는 슬퍼졌다.
"그런데 난 슬프지 않아요."
그녀는 곧 말했다.
"난 여기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태도에 많이 짓눌려 있었어요. 당신은 나와 아이를 위해 이 집과 모든 가구를 유지해 왔죠! 당신은 스스로 그걸 원치는 않았고 따라서 비용은 불필요한 것이었죠.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하든 어디에 가든 당신은 내게서 아이를 떼어놓지는 않을 거죠, 주드? 난 이제 이 아이를 보낼 수가 없어요! 그 어린 마음속에 있는 어두운 구름이 내겐 너무 애처롭게 여겨져요. 난 언젠가 그것을 모두 걷어주고 싶어요! 그리고 아이는 날 너무 사랑하고 있어요. 당신은 나에게서 이 아이를 떼어놓지 않으실 거죠!"
"틀림없이 그렇게 안할 거야. 아, 사랑스러운 사람! 어디든 다른 곳으로 가서 집을 얻을 수 있을 거야. 아마도 난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일해야 할 것 같아."
"나도 뭔가 해야겠어요. 물론, 지금, 지금까지는... 그런데 난 비문을 새기는 일에는 소용이 되지 못하니까 그밖의 다른 일을 내 손으로 찾아봐야겠어요."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서두르지 마."
그는 불만스러운 듯 말했다.
"난 당신이 그런 일을 하길 원치 않아. 당신이 그 일을 하지 않았으면 싶어, 수. 저 애와 당신 자신에게만 신경 쓰는 걸로 충분하니까."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으므로 주드가 나가 보았다. 수는 그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폴리 씨 계신가요? 바일즈 앤 윌리스 건축 청부회사에서 왔는데요. 당신이 최근 이 근처의 시골에 재건축을 하는 작은 교회의 십계의 비문을 다시 새기는 일을 맡아주실 수 있는지를 알아보라고 하더군요."
주드는 생각 끝에 그 일을 맡을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 일은 예술적인 일은 아닙니다."
심부름 온 사람이 말을 계속했다.
"목사님이 너무 구식인 분이라 교회를 청소하고 수리하는 일 외에 더 이상의 일은 어떤 일도 하기를 거부하신답니다."
"훌륭한 노인이군!"
수는 혼잣말을 했다. 그녀는 지나치게 이루어지는 교회 재건축의 처참한 실상에 감성적으로 반대하고 있었다.
"십계는 동쪽 끝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심부름꾼의 말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나머지 벽면도 손봐주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거래 방식대로라면 건축업자의 소관일 뿐인 낡은 재료들을 마차로 실어 나르는 걸 목사님이 원치 않으시거든요."
조건에 관한 것도 정해지자 주드는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것 봐."
그는 명랑하게 말했다.
"어쨌든 한 가지 일이 더 생겼군. 그러니 당신도 그 일을 도울 수 있어. 당신이 할 수 있는 데까지. 나머지 일은 끝났으니까 우리끼리만 교회 전체를 가질 수가 있어."
다음날 주드는 2마일밖에 떨어지지 않은 그 교회로 갔다. 건설 청부업자의 서기가 한 말은 사실이었다. 유태 법률이 씌어진 명판은 그리스도교적인 우아함이 충분한 성기류 위에 엄숙하게 솟아 있었고, 그것이 교회당 안의 동쪽 끝에 주된 장식으로 되어 있었다.
지난 세기의 가늘고 건조한 문체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액자세공은 장식 달린 백토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수선을 위해 따로 떼어낼 수가 없었다.
어떤 부분은 습기로 가루가 되어 부서져서 재생을 해야 했다. 그리고 이 일이 모두 끝나자 전체를 깨끗이 하고 그는 다시 글씨를 새기기를 시작했다. 둘째날 아침에 수는 그녀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는가 보기위해 왔다. 그리고 또한 그들이 함께 있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그 건물의 고요함과 공허는 그녀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그래서 주드가 만들어 준 낮고 안전한 단 위에 서 있었다. 거기서 그녀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두려워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제2명문 어떤 부분을 수선하고 있는 동안 그녀는 제1명문의 글자를 칠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능력에 꽤 흐뭇해하고 있었다. 크리스트민스터의 교회용 미술 장식점에서 일하면서 경문류의 글자체를 쓰곤 했을 당시에 얻어진 능력이었다.
어느 누구도 그들을 방해하지 않는 듯했다. 새들의 즐거운 지저귐과 10월의 나뭇잎의 살랑거림이 열린 창문을 통해 들어왔고 그들의 말과 함께 섞였다. 그러나 아늑하고 평화로운 시간은 오랫동안 계속되지 않았다. 12시 반쯤 자갈길을 밟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늙은 목사와 집사가 들어왔다. 일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를 보기 위해 왔다가 젊은 여자가 보조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는 듯했다.
그들은 복도로 통과해 갔으나 바로 그때 문이 다시 열리더니 다른 사람이 나타났다. 작은 사람, 바로 꼬마 영감이 울고 있었다. 수는 수업시간 중에 언제라도 그가 바란다면 그녀를 만나볼 수 있게 장소를 알려주었다.
그녀는 단에서 내려와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일 있었니, 아이야?"
"난 학교에서 저녁식사를 먹기 위해 남아 있을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애들이 이상한 말을 해서..."
그는 어떤 아이들이 네 엄마는 진짜 엄마가 아니라고 그를 조롱했다고 설명했다. 수는 너무나 슬퍼져서 단 위에 있는 주드에게 그녀의 분노를 터뜨렸다. 그 아이가 묘지 쪽으로 가버리자 수는 자신의 일로 돌아왔다.
그러는 사이 문이 다시 열리고 무슨 용무로 왔는지 발을 질질 끌며, 하얀 앞치마를 두른 여자가 들어왔는데, 그녀는 교회를 청소하는 여자였다. 수는 그 여자가 스프링 스트리트에 있는 그녀의 친구들을 가끔 방문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교회 청소부는 수를 보더니 벌어진 입을 안 다물어지는 듯 양손을 들어 올렸다. 그녀는 분명히 수가 그녀를 알고 있는 것처럼 그녀를 주드의 동반자로 인지하고 있었다. 이어서 두 명의 부인이 들어왔다. 그리고 수가 위쪽으로 발을 뻗치고 서있을 때 그들은 수의 손이 벽면의 경문을 따라가는 것을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의 신경은 몹시 예민해지면서 남의 눈에도 띄일 정도로 몸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그 두 부인은 다른 사람들이 서 있는 곳으로 돌아가 작은 목소리로 소근거렸다. 그중 한 사람이 말했다.
"저 여자가 그 사람의 아내인가?"
이 말을 수는 들을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은 맞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아니라고 해요."
청소하는 여자가 대답했다.
"마누라가 아니라고? 그렇다면 내연의 처이거나 다른 남자의 아내겠지. 아주 분명하잖아!"
"아무튼 저들은 결혼한 지 몇 주밖에 안 되었다고 하더군요."
"십계명의 명문을 저 이상한 부부에게 칠하게 하다니! 바일즈 앤 윌리스 건축회사가 하필이면 저런 사람들을 고용할 생각을 했을까!"
교회 집사가 바일즈 앤 윌리스 건축회사는 잘못이 있는 걸 전혀 몰랐을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늙은 여자에게 말을 하고 있던 다른 한 부인이 그녀가 왜 그들을 이상한 사람들이라 불렀는지를 설명했다.
대략 어떤 일을 근거로 귓속말을 했는지가 명백해진 것은 교회 집사가 갑자기 어떤 일화를 말하기 시작한 때부터였다. 교회에 있는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였으며 분명히 현재 상황에 의해 나온 말이었다.
"글쎄, 현재론 그 일도 이상한 일이지만 내 할아버지께서 가장 부도덕한 어떤 이상한 얘기를 내게 해주셨죠. 여기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는 게이미드 옆에 있는 한 교회에서 십계의 명문을 새길 때 생긴 일이죠. 그 시절에 십계는 거의 검은 판 위에 금박 글씨로 썼는데 지금은 다 벗겨지고 말았죠. 그 낡은 교회가 재건되기 전의 일이니까요. 여기 우리 교회가 하는 것처럼 약 백 년 전에 그들도 십계를 수리하려고 했었다는군요. 그래서 그들은 얼드브릭험으로부터 그 일을 할 사람을 벌렀대요. 그들은 특정한 일요일까지 그 일을 끝마쳐지기를 바랐고 그래서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토요일 밤늦게까지 일을 해야만 했죠. 왜냐하면 계약한 시간을 넘기는 것은 지금과 같이 돈이 지불되지 않았거든요. 그 당시 그 고장에는 성직자며, 교회 서기며 사람들에게 신실한 신앙이란 게 없어서 인부들이 그들의 일을 계속하게 하기 위해 목사가 그날 오후 내내 충분한 술을 마시도록 해 주었대요. 그런데 저녁때가 되면서 술을 더 마시게 해 들라고 그들이 요청하자 목사님은 빚을 내서 럼주를 내놓으려 했다는군요. 밤이 점점 더 깊어 가자, 그들은 점점 더 취해갔죠. 결국 그들은 럼주 병과 큰 술잔을 성찬대 위에 올려놓고 의자 대신에 발판을 한 두 개를 끌어다가 탁자 둘레에 술자리를 차려놓고는 다시 배짱 좋게 잔이 넘치도록 말술을 마시게 되었답니다. 마침내 술을 있는 대로 다 마신 그들은, 이 얘기가 중요한데, 모조리 정신을 잃고 쓰러졌대요. 얼마나 오래 그렇게 있었는지 몰랐으나 그들이 정신이 들었을 때 그곳은 몹시 천둥이 치고 있었는데 희미한 어둠 속에서 아주 가는 다리에 이상한 부츠를 신은 사람이 사다리 위에 서서 그들의 일을 마무리하고 있는 것을 본 듯했다는군요. 날이 밝자 그들은 일이 정말 끝마쳐진 것을 볼 수 있었죠. 그런데 그들은 스스로 그 일을 끝낼 마음이 없었죠. 그들은 집으로 가버렸고 그다음 그들의 귀에 들린 것은 그 일요일 아침 교회에서 커다란 사건이 발생했다는 거였죠. 왜냐하면 사람들이 와서 미사가 시작되었는데, 금방 칠한 십계에 '말지어다'가 빠져 있는 걸 모두가 보았기 때문이었죠. 점잖은 사람들은 한동안 그 교회의 미사에 참석하려 하지 않았죠. 그 교회의 봉헌 재개의 기원식을 올리기 위해 주교가 파견되었다는군요. 이게 바로 내가 어렷을 때 들었던 얘깁니다. 당신들도 이 이야기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생각해 봐야 해요. 오늘 이 경우가 내게 그 일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그 방문자들은 마치 주드와 수가 그와 같이 '말지어다'가 빠진 십계문을 쓰는지 보려는 듯 한 번 더 힐끗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서 제각기 교회를 떠났고 마침내 청소하는 늙은 여자까지 나가 버렸다. 일을 멈추지 않고 있던 수와 주드는 아이를 학교로 돌려보내고 말없이 남아 있었다. 그녀 쪽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을 때 그는 조용히 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경 쓰지 마!"
그는 말했다.
"다 알고 있으니까!"
"어떤 사람들이 그들 방식대로의 삶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모두가 그들을 사악한 사람이라 생각한다는 건 참을 수 없어요! 가장 최상의 의도를 가진 사람들을 무분별하고 부도덕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다름 아닌 바로 이런 의견들이죠!"
"그렇게 낙심하지마! 그건 단지 우스꽝스러운 얘기에 불과한 거라고."
"아, 하지만 우리가 그 얘기를 연상시켰다고 하잖아요! 주드. 와서 당신을 돕기는 커녕 난 당신에게 해를 끼치게 되었어요!"
그런 얘기를 연상시켰다는 것은 심각한 그들의 처지에서는 분명히 매우 유쾌한 일은 못되었다. 그러나 몇 분이 지나자 수는 오늘 아침에야 그들의 처지를 깨닫기라도 한 듯 눈물을 닦고는 웃어 보였다.
"결국 모든 사람들 중에서 이상한 경력을 가진 우리 두 사람이 여기서 십계의 경문을 칠하고 있다는 것이 우스운 일이 된 거죠. 당신은 신에게서 버림받은 사람이고 난 이런 처지에 있다니, 오 이런!"
그리고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다가 다시 조용히 띄엄띄엄 웃기는 했으나 그녀는 왠지 상당히 약해져 있었다.
"더 좋군."
주드는 쾌활하게 말했다.
"우리가 또 옳았던 거야, 안그래, 귀여운 사람!"
"아, 하지만 역시 그 일은 심각한 거죠!"
그녀는 한숨을 쉬면서 솔을 꺼내고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결혼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당신도 잘 알고 계시죠? 그들은 믿으려 하지 않아요!"
"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건 말건 내겐 상관없어."
주드가 말했다.
"그 사람들에게 그런 생각을 하도록 수고하는 건 난 딱 질색이란 말야."
그들은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으려고 싸가지고 온 점심을 먹기 위해 앉았다. 점심을 다 먹고 나서 막 새로 일에 착수하려 할 때 한 남자가 교회 안으로 들어왔다. 주드는 그가 건축 청부업자 윌리스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주드를 손짓해 부르더니 따로 떨어져 그에게만 말했다.
"사실, 이 일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는 숨을 죽여가며 어색하게 말했다.
"무슨 사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난 문제를 만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난 당신과 저 여자가 떠나줄 것을 요청해야만 할 것 같군요. 그리고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이 일을 끝내 달라고 해야겠습니다. 모든 불쾌한 일은 피하는 게 최선입니다. 일주간의 임금은 지불해 드리죠."
주드는 너무 자립심이 강해서 어떤 소란도 일으키지 않았다. 따라서 건축 청부업자는 그에게 임금을 지불하고 떠나버렸다. 주드는 그의 연장들을 집어 들었고 수는 솔을 깨끗하게 씻었다. 그때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우린 함께 이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죠!"
그녀가 슬픈 어조로 눈물을 떨구며 말했다.
"물론 우리가 해서는 안 될 일이거나 내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나 봐요!"
"이렇게 외진 곳까지 와서 우리를 볼 사람이 있다고는 생각지 못했던 거지!"
주드가 대답했다.
"자, 할 수 없군, 수. 난 여기 머물러 있으면서 윌리스의 장사를 망치고 싶지 않아."
그들은 몇 분 동안 앉아 있다가 교회 밖으로 나왔다. 앞서 나간 아이를 따라잡고는 얼드브릭험까지 사색의 길을 걸어갔다.
아직까지 폴리는 교육의 대의에 대단한 열의를 가지고 있었고, 그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에겐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그는 어떤 비굴한 방법으로든 그에게 열린 '기회의 균등'을 외곬으로 밀어붙이려 했다. 그가 이 도시에 왔을 당시에 설립된 직공상호 향상 협회에도 지체않고 입회했다.
그 회원은 영국 국교도, 조합교회신도, 침례교도, 유일신회파, 실증주의파 등을 포함한 온갖 신조나 종파에 속한 젊은이들이었다. 불가지론자라는 말은 그 당시 거의 들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넓혀 가고 싶다는 공통된 하나의 희망은 그들을 결속시키기에 충분했다.
불입금은 작았고 방은 검소한 편이었다. 그러는 동안에 주드의 활동이나 수준 이상의 학식이 특히, 어떤 서적을 읽어야 하는지, 어떤 일을 착수해야 하는가에 대한 특이한 직감- 좋지 못한 운세와 여러해 맞붙어 싸워온 고투에서 생겨난 -이 스스로로 하여금 그 모임의 위원의 자리에 참석케 했다.
그 교회 수선에서 해고된 후 어느 저녁 때, 그는 다른 일을 얻기 전에, 앞서 말한 위원회의 회의에 참석하러 갔다. 그의 도착이 약간 늦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이미 와 있었다. 그가 들어왔을 때 그들은 의심쩍은 눈으로 바라볼 뿐 반기는 말은 좀처럼 하지 않았다. 뭔가 자신과 관계 있는 일이 의제가 되어 논의되고 있는 중이란 걸 주드는 직감했다. 그러나 별다른 얘기는 없었고 사무적인 논의가 처리되고, 이번 4분기 동안에 기부 건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사실이 발표되었다. 한 사람의 위원- 정말 선의적이고 정직한 사람-은 그 원인에 대해서 수수께끼 같은 어조로 말했다. 그는 위원회의 체질을 잘 조사할 필요가 있고, 만일 위원회가 존중받지 못한다면 또 각각 다른 행동을 해서 품행이라는 일반적인 기준에 만 분의 일이라도 미치지 못하는 행위가 있다면 위원회는 깨지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주드는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그는 그 자리에서 즉시 사표를 써서 테이블 쪽을 향해 홱 던져 버렸다.
이제 극도로 민감해진 이 부부는 더욱더 이곳을 떠나야만 했다. 그러자 계산서들이 날아들었다. 또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생겼다. 만약 그가 어딘지 알지 못하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 이 도시를 떠난다면 대고모의 무겁고 오래된 가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러한 가구들을 현금으로 바꿀 필요가 있었으므로 그는 어쩔 수 없이 경매에 부칠 결심을 했다. 그는 가능하다면 가치 있는 물건들은 간직하기를 더 좋아했지만...
매각하는 날이 왔다. 그리고 그가 가구를 비치해 두었던 그 작은 집에서 수는 자신과 아이 그리고 주드의 아침식사를 마지막으로 요리하고 있었다. 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수는 몸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이런 우울한 분위기 속에 불쌍한 주드를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잠시동안은 그곳에 있어야 했기 때문에 그녀는 경매인에게 부탁하여 2층 방으로 몸을 숨겼다.
그곳은 방이 가지고 있어야 할 안락함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래서 경매자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잠가두었다. 잠시 후 주드가 그녀를 발견해 냈다. 아이와 그들의 몇 개 안되는 트렁크와 바구니와 꾸러미들 그리고 두 개의 의자와 탁자, 팔지 않은 것들과 함께 두 사람은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했다.
깔 것이 없는 맨 계단을 오르내리며 꽝꽝 소리를 내는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물건을 보러 온 사람들이었다. 물건들 중 일부는 너무 기이하고 고풍스러운 것이라 예술품으로도 충분히 값어치가 있는 것도 있었다. 그들이 있는 방문을 열려는 시도가 한두 번 있었다. 이러한 방해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주드는 '사실'이라고 쓴 종이조각을 문의 경판에 붙여 두
었다.
두 사람이 이내 발견한 사실은 경매 참가자들이 가구 대신에 그들의 개인적인 경력과 과거의 행동에 대해 의외로 그리고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논의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남의 눈에 띄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바보들의 천국에서 그들이 지금껏 살아왔다는 것을 그들은 그제야 알게 되었다. 수는 조용히 주드의 손을 잡고 서로의 눈을 마주치며 이런 스쳐 지나는 말들을 듣고 있었다. 꼬마 영감의 이상하고 신비한 성격이 화제가 되는 듯했고, 그것이 암시와 풍자의 주된 구성요소가 되어 있었다.
마침내 바로 아랫방에서 경매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자신들이 소중하게 소유했던 예술품들이 최저가로 팔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살 때는 비싼 것이었는데 예상치 못했던 헐값으로 팔려나갔다.
"사람들은 우리를 이해 못해."
그는 무겁게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떠나기로 결정하길 잘 했어."
"문제는 어디로 가느냐죠."
"런던으로 가야겠지. 거기에선 자신이 선택한 대로 살 수 있을 테니까."
"아녜요. 런던은 안 돼요. 난 잘 알아요. 우린 거기서 불행하게 될 거예요."
"왜지?"
"생각 안나세요?"
"아라벨라가 거기 있기 때문인가?"
"그게 주된 이유죠."
"그러나 시골에서 살면 이번 경험보다 더한 일이 있지 않을까 항상 불안할 텐데. 그리고 난 이 아이의 연혁에 대한 모든 것을 설명하고 싶지 않아. 이 애의 과거로부터 이 애를 떼어내기 위해서라도. 난 침묵을 지키기로 결심했어. 난 이제 교회의 일엔 신물이 난다고. 그래서 만약 내게 일을 준다 해도 그 일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당신은 희랍과 로마의 고전을 공부했어야 했어요. 고딕 양식은 야만적인 예술이죠. 푸진(1912-52, 영국의 고딕양식 건축가 오거스틴 푸진, 장식적 섬세함을 숭상하는 고딕 건축 부흥의 선구자로 유명)은 틀렸고, 렌(1632-1723, 영국의 고전식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 그의 대표적 건축은 런던에 있는 성 파울로 사원)이 괜찮았어요. 크리스트민스터 성당의 내부를 기억하세요? 우리가 서로의 얼굴을 처음으로 보게 된 곳이죠. 노르만식 세부 장식의 그 그림같은 취향 속에는 이상한 유치함이 있었죠. 거친 민족이 소실해 버린 고대 로마의 형식을 흉내내려고 시도해 본 거죠. 어두운 전통만이 연상될 뿐이었죠."
"그래, 당신이 전에 말했던 그 견해로 나도 반쯤은 개종되었지. 그러나 사람은 일을 할 수도 있고 자신이 한 일을 경멸할 수도 있지. 만일 고딕이 아니라면 다른 일을 해야 하겠지."
"개인적인 상황이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직업을 우리들이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무언가를 동경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웃어 보였다.
"당신이 교회의 예술품을 만들 자격이 없는 거처럼 나도 가르치는 일을 할 자격이 없어요. 당신은 철도역이나 다리나 극장, 음악 홀, 호텔 같은 곳에 의지할 수밖에 없겠군요. 사사로운 행동과 관련이 없다면 무엇이든 말예요."
"난 그런 일엔 재주가 없어. 난 빵 굽는 일을 해야겠어. 난 대고모와 빵 굽는 일을 하며 자랐거든. 당신도 알겠지만. 그러나 그나마도 단골을 얻으려면 빵 굽는 사람도 관습을 따라야만 하지."
"시장이나 장날에 케이크와 생강빵을 파는 가게 같은 것을 열면 어떨까요?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제품의 질 외에는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으니까요."
그들의 그런 생각은 경매꾼의 목소리에 의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자, 이제 고풍스런 참나무의 등높은 긴 의자입니다. 옛날 영국 가구의 독특한 예로 모든 수집가들의 주목을 끌 가치가 있는 물건입니다!"
"저 물건은 나의 증조부님 거였어."
주드가 말했다.
"저 불쌍한 오래된 물건을 가지고 있었으면 했는데!"
하나씩 하나씩 가재도구들이 팔려나가면서 그날 오후가 다 지나가고 있었다. 주드와 다른 두 사람은 지치고 배가 고파졌다. 그러나 그들은 구매자들이 그 두 사람에 대해 했던 이야기 때문에 구매자들이 물러간 후에도 방 밖으로 나가기가 부끄러웠다. 그러나 마지막 물건이 팔려나가자 임시숙소에 있는 수의 물건들을 옮기기 위해 곧 비속으로 나와야 했다.
"자, 다음은 두 쌍의 비둘기입니다. 모두가 팔팔하고 통통합니다. 다음 일요일 만찬에 손님을 위해 좋은 파이를 만들기에 적당하겠군요!"
이 새들의 매각이 임박했다는 것은 그날 오후에 일어난 모든 일 중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걱정거리였다. 그것들은 수의 애완동물이었다. 그녀는 그들을 곁에 둘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자 모든 가구들과 헤어지는 것보다 더 큰 슬픔으로 몸부림쳤다. 수는 눈물을 떨쳐버리려고 애썼다. 왜냐하면 그녀는 소중한 새가 결국 경매에 붙여져서 값이 오를 듯 말 듯하다가 하찮은 가격에 팔리는 걸 결국 듣고야 말았기 때문이었다.
구매자는 이웃의 새장수였다. 의심할 것 없이 비둘기들은 다음 장날 전에 죽을 운명이 될 것이었다. 수가 애절한 고통을 떨쳐내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주드는 그녀에게 키스를 해 주었다. 그리고 숙박 준비가 다 되었는지 가봐야 할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년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가 곧 그녀를 데리러 올 거라고 말했다. 그녀는 혼자 남겨지자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그러나 주드는 빨리 돌아오지 않았다. 주위에 인기척이 없어지자 결국 그녀도 그 집을 출발했다. 그리멀지 않은 새장수의 가게를 지나면서 그녀는 자신의 비둘기가 문 옆에 뚜껑 달린 큰 새장에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을 보게 되자 그녀의 감정은 더욱 격렬해졌고 저녁의 짙어가는 땅거미에 힘입어 그녀는 충동적인 행동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먼저 주위를 잽싸게 둘러보고서 뚜껑 아래에 채워진 자물쇠를 빼내 버리고는 재빨리 걸어갔다. 뚜껑이 안으로부터 밀려 올라와 열리고 비둘기들은 날개를 펄럭거리며 날아가 버렸다. 이 소리에 달려 나온 새장수는 이를 갈며 문을 향해 욕을 퍼붓고 있었다.
수는 떨면서 하숙집에 도착했다. 주드와 소년이 그녀를 위해 그곳을 편안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구매자들이 물건을 가져 가기 전에 돈을 지불하나요?"
그녀는 헐레벌떡 물었다.
"그래, 그러리라고 생각하는데, 왜?"
"왜냐하면 내가 아주 나쁜 짓을 했거든요!"
그리고 그녀는 그 이유를 몹시 후회스러워하며 설명해 주었다.
"만약 새장수가 비둘기들을 잡지 못하면 내가 그 값을 지불해야 할지도 모르지."
주드가 말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 당신이 그런 일로 조바심낼 것 없어."
"너무 어리석었어요! 오, 왜 자연의 법칙은 서로 살생하는 것을 일삼게 되었죠!"
"그런 건가요, 엄마?"
소년이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그렇단다."
수는 격한 감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제 그들의 기회를 잡아야겠군. 불쌍한 것들!"
주드가 말했다.
"매각에 대한 계산이 끝나고 우리가 계산할 돈만 지불하고 나면 바로 떠나자."
"어디로 가는 거죠?"
걱정스러운 듯 꼬마 영감이 물었다.
"우리는 극비리에 떠나야만 한다. 아무도 우리를 추적할 수 없게. 우리는 알프레드스톤이나 맨체스터나 셰스톤 혹은 크리스트민스터로 가서는 안 돼. 그런 곳과 멀리 떨어진 곳이라면 어디든지 갈 수가 있단다."
"왜, 우리는 그곳엔 가서는 안 되는 거죠, 아버지?"
"우리 머리 위로 먹구름이 모여들이 때문이지. 비록 나는 누구에게도 불의를 저질렀거나 그 누구를 해쳤거나 속여 빼앗은 일은 없다!('신약' 고린도 후서 7장 2절)와 같은데 말야. 그리고 비록 우리 눈에 올바로 비친 일만을 해왔지만('구약' 사사기 7장 6절) 말이야."
5-7
그 후로 주드 폴리와 수는 더이상 얼드브릭험 마을의 거리를 걷지 않았다.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몰랐는데 왜냐하면 가장 큰 이유로써 어느 누구도 그 사실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처럼 불행하기만한 그 남녀의 종적을 찾아내려고 하는 호기심이 가득 찬 사람이 있다면, 그들이 도처에서 적응할 수 있는 직공기술을 이용해서 주소불명의 유목민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리라는 것 그리고 그러한 일에는 한동안 즐거움이 없으리라는 사실을 별로 큰 어려움 없이 발견해 낼 수가 있었을 것이다.
주드는 석회석에 가공할 일이 있다면 어디든지 찾아갔다. 다만 자신이 옛날에 자주 들렀던 곳이나 수의 연고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만을 골라 다녔다. 그는 장기간 일을 할 때도 있었고 짧게 할 때도 있었다. 그는 일을 했고 그 일이 끝나면 다시 이동해 갔다.
2년 반의 세월이 이처럼 흘러갔다. 가끔 그는 시골 저택에 있는 장식용 세로 중방 창살을 바로잡았고, 때로는 공회당의 흉벽을 손질했다. 어떤 때는 샌드본 호텔에서 벽돌을 쌓았고, 가끔씩은 캐스터브리지, 또 이따금씩 멀리는 엑손베리 그리고 어떤 때는 스톡 베어힐스에 있는 박물관에서 벽돌을 쌓고 있는 모습이 발견되었다.
한참 후에 그는 케닛브리지에 있었는데, 그곳은 메리그린에서 남쪽으로 12마일도 채 떨어져 있지 않은 번창하는 도시였다. 그 때의 그는 자신에 대해 알려져 있는 마을에 가장 가까이 근접한 셈이었다.
그의 열렬한 학구열과 희망으로 가득찬 청춘 시절 동안에 일어났던 짧았지만 불행했던 결혼 생활의 내막을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이 현재 자신의 생활상태나 신상 이야기를 물어볼까봐 그는 민감한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주변 마을 중의 몇몇 곳에서는 그를 몇 개월씩 잡아두는 곳도 있었는가 하면, 기껏해야 2, 3주 정도 있으면 되는 곳도 있었다.
감독 교회파와 비국교파 어느쪽이든 교회라는 곳에서 하는 공사에 대해 주드는 기묘하고도 갑작스런 반감을 품기 시작했다. 그러한 반감은 오해받아 왔다는 쓰라린 의식 속에서 생겨났지만 냉정한 상태로 돌아온 지금도 여전히 그와 함께 있었다. 세상의 비난이 다시 되살아 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그의 인생 방침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로부터는 생계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는 결백성 때문에 그 반감이 생겼던 것이다. 아니, 그뿐 아니라 교리에 대해 품어왔던 그의 신념과 그의 현재의 실천 사이에 나타난 모순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그것은 생겨났던 것이다. 처음 크리스트민스터로 나갔을 당시의 신념은 이제 눈곱만큼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가 수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점하고 있던 그 위치에 정신적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농업 박람회에서 아라벨라가 수와 주드의 모습을 확인한 후 거의 3년이 다 되어가는 5월의 어느 토요일 저녁에, 우연히 만나게 되었던 그들이 또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날은 케닛브리지의 봄 장날이었다. 비록 이 오래된 거래의 행사가 옛날보다는 훨씬 규모면에서 축소되기는 했지만 자치구의 긴 외길은 한낮의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바로 그때 이륜 경마차 한 대가 북쪽 가도에서 다른 차들과 섞여서 시내로 들어서서 금주여관의 문 앞에 정차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내렸다. 한 사람은 흔히 볼 수 있는 시골 사람에 불과한 마부 그리고 다른 한쪽은 모습이 대단히 훌륭한 인물로 그녀의 거무스름한 정장은 그녀를 지방 장날의 시끌벅적한 모습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처럼 보이게 했다.
"어디인가를 찾아봐야겠어. 애니."
어쩐지 과부인 듯한 여자가 그녀의 동료에게 말했다. 바로 그때 밖으로 나온 남자에게 마차를 맡기면서 그녀가 말했다.
"곧 돌아올게. 여기서 기다려 줘. 그리고 안에 들어가서 뭔가 좀 먹도록 해. 나도 배가 고파 쓰러질 것 같아."
"알았어."
동반한 여자가 대답했다.
"나 같으면 왕수헌(영국 수상 별장)이나 재크정 같은 데서 머무르겠어. 이런 금주여관 같은 데서는 제대로 얻어먹지 못할 테니까."
"그런데, 아귀같이 먹어대서는 안 돼."
상복을 입은 여자가 꾸짖듯이 말했다.
"이곳이 딱 알맞군. 그래 좋아. 나랑 함께 가서 새 예배당의 부지가 어딘지 찾아주지 않으려거든 30분 후에 다시 만나면 어떨까?"
"상관없어. 나중에 나에게 말해 줘."
일행인 두 사람은 제각기 다른 길을 걸어갔다. 검은 옷차림의 여자는 잡다한 주위 환경과는 무관하다는 태도로 곧바로 걸어갔다. 이곳저곳을 물어가면서 그녀는 저장소에까지 오게 되었는데, 그 안에는 구멍이 몇 군데 패여 있었으며 그것은 그곳에 건축물의 기초가 깔려질 예정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내부의 판벽에는 커다란 포스터가 한두 장 붙어 있었고 예배당의 초석이 오후 3시에 런던의 인기 있는 어느 목사에 의해 세워지게 된다는 공고가 나붙어 있었다.
그러한 사실들을 확인한 상복을 입은 과부는 다시 여관으로 되돌아왔다. 그러자 장날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싶은 여유가 생겨났다. 이윽고 그녀의 관심은 케이크와 생강이 들어 있는 당밀과자를 팔고 있는 조그마한 가게로 이끌려졌다. 가게는 커다란 기둥에다 넓은 캔버스를 두른 매우 큰 건축물 사이에 있었다. 가게는 무늬 없는 천으로 덮여 있었고 어쩐지 장사에 익숙해 보이지 않는 젊은 여자가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그녀는 사내아이의 도움을 받고 있었는데, 그 아이는 80대의 노인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럴 수가?"
그 미망인은 혼자 중얼거렸다.
"주드의 처 수가 틀림없어. 만약 그녀가 법률적으로 입적이 되어 있다면!"
그녀는 그 가게에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안녕하셨어요, 폴리 부인?"
그녀가 부드럽게 말했다.
수의 안색은 변했고 그 흑사의 베일을 통해 아라벨라를 알아보았다.
"안녕하세요, 카트리트 부인?"
그녀는 딱딱하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아라벨라의 상복을 알아보고는 수의 목소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동정적으로 변했다.
"어머, 바깥 분께서...?"
"네, 돌아가셨어요. 6주 전에 갑작스럽게. 비록 그는 생전에 제게 친절했지만 혼자가 되고 보니 편치 않답니다. 술집을 경영하고는 있지만 양조업자들이 모든 이익을 차지해 버리고, 소매업자에게는 돌아오는 것이 없죠...네가 바로 내 아들이구나! 너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구나?"
"예, 알아요. 잠시 아줌마가 우리 엄마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그러나 당신은 우리 엄마가 아니에요."
꼬마 영감은 대답했다. 그의 말에는 이제 자연스럽게 웨섹스 사투리가 배어 있었다.
"좋아요. 신경쓰지 말아요. 난 친구일 뿐이니까."
"얘야!"
수가 갑자기 말했다.
"이 접시를 가지고 아래 정거장에 다녀오너라. 또 다른 기차가 들어올 테니까."
아이의 모습이 보이게 되지 않자 아라벨라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 앤 미남이 되긴 틀렸나 봐요. 불쌍한 아이! 그 아이는 내가 자기 진짜 엄마인 줄 알까요?"
"아뇨, 그 애는 자신의 태생에 대해서는 어떤 불가사의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죠. 그게 전부예요. 그가 좀 더 자라면 주드가 그에게 얘기할 거예요."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이런 일을 하게 되었죠! 놀랐어요."
"임시로 하는 장사일 뿐이에요. 우리가 어려울 때 잠시 재미로 하는 것뿐이죠."
"그럼 그분과 여전히 함께?"
"네."
"결혼하셨어요?"
"물론이죠."
"애들은 있어요?"
"둘이요."
"그리고 또 한 아이가 태어날 것 같군요."
수는 딱딱한 심문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어 몸을 떨었다. 그녀의 부드러운 작은 입술이 떨리기 시작했다.
"어머나... 나는 나쁜 뜻에서 그런 것은 아닌데... 왜 우시죠? 남들은 자랑스럽다고들 하는데!"
"부끄러워서 그러는게 아니에요... 댁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고요! 그러나 이 세상에 생명체를 가져 온다는 것은 매우 끔찍하고 비극적인 일 같아요... 너무 외람되는 것 같기도 하고... 때때로 내가 그럴 권리가 있는가 하고 의문스럽기도 하고요!"
"진정하세요. 그런데 당신은 왜 이런 물건을 팔고 있는지 나에게 말하지 않았어요. 원래 주드는 기품 있는 양반이었거든요. 거의 어떤 장사든 내려다보곤 했지요. 하찮게 보고 어찌되든 내버려 두었는데..."
"내 남편은 그때 이후로 좀 바뀌었어요. 나는 그가 지금은 거만하지 않다고 확신해요."
그리고 수의 입술은 또다시 떨렸다.
"이런 일을 내가 하게 된 것은 올해 초에 그이가 쿼터쇼트에 있는 어떤 음악홀 공사에서 벽돌 쌓는 일을 했는데 정해진 기간 내에 끝마쳐야 했기 때문에 비를 맞아가며 하다가 감기에 걸린 뒤부터죠. 그때보단 건강이 좋아졌지만 워낙 길고 피곤한 시간이었죠! 혼자 사시는 친척 할머니의 도움을 받았지만 곧 그분도 세상을 떠나시겠죠."
"그런데, 남편을 잃고 나서부터는 나도 이제 진지한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당신은 어째서 생강이 들어 있는 당밀과자 같은 것을 팔 생각을 하셨죠?"
"그건 아주 우연한 일이었죠. 그는 빵집에서 태어난 거나 다름없었죠. 그래서 한 번 이걸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어요. 우리는 이것들을 크리스트민스터 케이크라고 해서 팔고 있어요. 대성공이었죠."
"난 이런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어머나! 창의 형태와 탑과 그리고 소첩탑의 모양을 한 것까지 있군요! 게다가 아주 맛있네요."
아라벨라는 격식도 차리지 않고 케이크 한 개를 집어 와삭와삭 먹기 시작했다.
"그래요. 크리스트민스터 대학을 추억하는 과자예요. 트레이서리 장식의 창도, 수도원식 회장도. 정말 그분다운 변덕이에요. 한결같이 크리스트민스터에 집착하고 있군요... 케이크까지!"
아라벨라는 웃었다.
"완전 주드식이네요. 절대적인 정열이야. 어쩌면 이렇게 괴상한 분일까! 앞으로도 계속 그러겠지만."
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주드가 비판당하는 것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곤혹스러워했다.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어서 말해 보세요. 비록 당신이 그분을 좋아하지만 사실 그렇죠!"
"물론 크리스트민스터는 그분에게 있어서 일종의 고정된 환상일지도 모르죠. 나는 그분이 그러한 믿음에서 벗어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분은 또 그곳이 고상한 장소이며 두려움을 모르는 사상의 중심지라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진짜 현실은 전통에 대한 비굴한 아첨으로 특정지을 수 있는 평범한 교사들의 소굴일 뿐이죠."
아라벨라는 수가 얘기하고 있는 내용보다는 수가 처해 있는 상황에 빗대어 그녀를 놀리고 있었다.
"케이크를 파는 여자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면 사람들이 얼마나 이상하게 생각하겠어요?"
그녀는 말했다.
"왜, 당신은 교직 생활로 다시 돌아가지 않죠?"
수는 머리를 저었다.
"그들이 받아주지 않아요."
"이혼했기 때문인가요?"
"다른 이유도 있죠. 게다가 지금은 다시 돌아갈 이유도 없고요. 우린 모든 야망을 포기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그 분이 병에 걸리기 전까진 평생 처음으로 행복했죠."
"지금 어디에 살고 계시죠?"
"말하고 싶지 않아요."
"여기 케닛브리지에요?"
수의 태도는 아라벨라에게 자신의 추측이 들어맞았음을 보여 주었다.
"애가 다시 돌아오네요."
아라벨라가 계속해서 말했다.
"내 자식이며 주드의 아들이죠."
수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텐 데요."
그녀는 소리쳤다.
"알았어요... 그렇지만 내 곁으로 그 애를 데려가고 싶어요! 그러나 걱정 마세요. 당신에게서 그 애를 빼앗아가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렇게 얘기하다간 벌 받게 되죠. 당신의 자식들로만 충분하다면 모르지만. 그 애가 보살핌을 잘 받고 있다는 건 나도 알아요. 나는 하느님께서 정해주신 일에 대해 비난하는 여자는 아니에요. 사실 나는 더욱 체념한 상태죠."
"정말이겠지요! 나도 제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노력해야겠지요."
아라벨라가 대꾸했다. 이 말은 정신적으로뿐만 아니라 사회적 우월감을 의식하고 있는 사람의 편안함에서 나온 말이었다.
"내가 각성했다는 것을 자랑하고 있는 게 아녜요. 단지 저는 옛날의 제가 아니죠. 카트리트의 죽음 이후에 우리 가게의 다음 거리에 있는 교회를 지나다가 소나기를 만나 비를 피하기 위해 그 안으로 들어갔죠. 나는 남편과 사별 후에 뭔가 의지할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독한 술에 의지하기보다는 예배당에 의지하는 것이 더 옳았죠. 나는 그곳에 정기적으로 갔고, 큰 위안을 얻었죠. 그러나 나는 지금 런던을 떠나 당신도 알다시피 현재 알프레드스톤에서 친구 애니와 함께 살고 있어요. 고향도 가깝고 해서요. 오늘 장날 때문에 여기에 온 것은 아니에요. 낮부터 새로운 예배당의 초석을 까는 예식이 있어요. 유명한 런던의 목사님에 의해서 이루어지지요. 그래서 나는 지금 애니와 함께 마차를 타고 왔어요. 이제 나는 그녀를 만나러 다시 돌아가야만 해요."
그리고 나서 아라벨라는 수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떠나가 버렸다.
5-8
그날 오후에 케닛브리지의 장날에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는 수와 그밖의 다른 사람들은 거리의 아래쪽에서 플란카드가 붙은 저장물 축적소로부터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안을 들여다본 사람들은 검은 옷을 입은 한 떼의 사람들이 그들의 손에 성가집을 들고 새 예배당 벽을 만들기 위해 파낸 구덩이 둘레에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상복을 입은 아라벨라 카트리트가 그들 속에 서 있었다.
그녀의 깨끗하고 힘찬 목소리는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에 맞추어서 곡조에 맞게 올라갔다 낮아졌다 하면서 명확하게 들려왔다. 그녀의 부푼 가슴이 함께 움직이고 있는 것도 보였다.
애니와 카트리트 부인이 금주여관에서 가벼운 식사를 끝내고 케닛브리지와 알프레드스턴 사이에 널리 펼쳐진 고지를 걸어 귀로의 여행을 시작했던 것은 같은 날 두 시간 뒤였다.
아라벨라는 상념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생각은 애니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처럼 그 새로운 예배당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아냐, 그건 딴 일이야."
마침내 아라벨라가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나는 오늘 여기에 와서 불쌍한 카트리트 외에는 딴 사람에 대해서 결코 생각하지 않았어. 또 오후부터 시작한 예배당을 짓는 일을 계기로 해서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어. 그러나 내 마음을 딴 곳으로 돌려놓는 일이 발생했어. 애니, 나는 또 그사람에 대한 얘기를 들었어. 나는 오늘 그녀를 만났단 말이야!"
"누구 말야?"
"주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그의 부인을 만났단 말이야. 그리고 그후부터 쭉 내가 무엇을 하든 전심을 다해 찬송가를 불러 보려고 해도 나는 그 사람에 대한 생각으로 어쩔 수가 없었어. 나는 예배당 회원으로서 찬송가를 부를 권리가 없어."
"오늘 런던에서 오신 목사님의 설교가 네 마음을 꽉 잡아두지 못했다는 말이냐? 그래서 그렇게 떠돌아다니는 너의 바람기를 없애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말이야?"
"몰론 했지. 그러나 나의 사악한 마음은 나도 모르게 날뛰고 있는 거야.“
"그래... 나도 마구 날뛰는 마음이 어떤지 알아! 나도 가끔 내 뜻과 상관없이 어처구니없는 꿈을 꾸는데 만약 네가 안다면, 넌 내가 갈등에 빠졌다고 얘기할 거야!"(애니 또한 그녀의 애인이 자신을 버렸기 때문에 최근에 조금 심각해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아라벨라는 신경질적으로 재촉해 물었다.
"죽은 전남편의 머리카락 한줌을 너의 상복 브로치에 꿰매 두었으면 좋을 뻔했구나. 하루종일 그것을 쳐다볼 수 있을 테니까."
"한 줌도 없단 말이야... 그리고 만약 내가 그것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소용없는 짓이야... 종교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가 있다고들 얘기하지만, 주드를 되찾았으면 좋겠어!"
"안돼. 너는 그 감정에 맞붙어 용감하게 싸워나가야 해. 그는 남의 남편이잖아. 그리고 나는 또 하나의 좋은 방법에 대해서 들었어. 정이 깊은 과부가 그러한 감정으로 괴로워지면 저녁때의 야음을 틈타 죽은 남편의 묘지에 가서 오랫동안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다는 거야."
"흥, 내가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이미 익히 알고 있었어. 단지 그렇게 하지 않을 뿐이지."
그들은 한동안 침묵하면서 일직선의 길을 따라 마차로 달렸다. 마침내 길가의 왼편으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메리그린 마을이 지평선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그 마을로 통하는 울타리 길과 본도로가 십자로로 만나는 교차점에 다다랐을 때, 마을 교회의 탑이 비스듬한 들판을 통해 아라벨라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곳에서 조금 더 먼곳의 아라벨라와 주드가 처음 몇 개월 동안 결혼생활을 했던 외딴집과 돼지 도살을 했던 장소를 지나칠 때 아라벨라는 더이상 자신을 절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분은 그 여자의 것이 아니고 내 거야."
아라벨라는 갑자기 외쳤다.
"그 여자가 무슨 권리를 가졌다는 거야. 난 알고 싶어! 할 수만 있다면 난 그를 뺏고 말 테야!"
"저런, 안돼! 네 남편은 고작 6개월 전에 세상을 떠났어! 기도를 해서 그런 생각을 없애버려!"
"기도 같은 건 이제 그만 둘 테야. 감정은 감정이라고! 나는 더이상 위선자의 탈을 쓰고 싶지 않아. 이 꼴을 보라고!"
아라벨라는 그 순간, 장날에 모인 사람들에게 줄 생각으로 가지고 왔던 회당 건립 취지서 다발에 손을 넣어 그중에서 몇 장을 꺼내 내동댕이쳐 버렸다.
"기도고 예배고 다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어. 난 그냥 타고난 대로 살 거야."
"그만! 너 흥분했어!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서 차나 한 잔 하자. 그리고 그 얘긴 이제 그만 하기로 하자. 다시는 이 길을 벗어나서 그분이 사는 데로는 가지 말자. 그쪽으로 가기만 하면 너는 이렇게 흥분하니까, 너는 이제 곧 괜찮아질 거야."
아라벨라는 차츰 흥분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구릉의 등성이를 가로질러 갔다. 그들이 그 길고 쭉 뻗은 언덕의 내리막길에 닿았을 때 조그마한 키의 한 노인이 멍한 자세와 생각에 잠긴 걸음으로 그들 앞을 터벅터벅 걷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손에 광주리를 들고 있었다. 그 복장에는 단정치 못한 데가 있었기 때문에 혼자서 가정부, 식료품 배달인, 상담의 세 가지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이란 걸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를 위해 그러한 자격으로 일해주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다시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여정의 나머지는 내리막길이었고, 그 노인도 알프레드스톤에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그에게 마차에 타라고 했고 그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라벨라는 그를 보았다. 그리고 또다시 보았다.
마침내 그녀가 말했다.
"제가 잘못 봤는지 모르지만 당신은 필로트슨 씨가 아닙니까?"
그 노인은 돌아다보면서 차례로 아라벨라를 쳐다보았다.
"예, 맞습니다. 내 이름은 필로트슨이요. 그러나 나는 당신을 모르겠는데요, 부인."
"나는 선생님이 메리그린에서 교직에 계실 때를 잘 기억합니다. 그리고 나는 선생님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에요. 저는 매일 크레스콤에서 그곳으로 걸어다녔죠. 왜냐하면 크레스콤에는 여자 선생님 한 분만이 계셨는데 선생님의 교수법이 훨씬 좋았죠. 그런데 선생님은 저처럼 저를 기억하시지는 못하세요? 저는 아라벨라예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점 게 대답했다.
"기억하지 못하겠는 데요. 현재의 부인의 당당한 풍채 속에서 아마도 그 당시의 훌쭉한 학생을 기억해내는 것은 무리일 것입니다."
"글쎄요, 전 항상 뼈에 살이 많이 붙어 있던 편이었죠. 그러나 나는 현재 몇몇의 친구들과 여기에 정착하고 있어요. 아시는지요. 제가 누구와 결혼했는지?"
"모르겠는데요."
"주드 폴리예요. 그 또한 당신의 제자였죠. 야간반이었어요. 잠깐 다녔던 걸로 생각되는 데요? 제가 착각하지 않았다면 나중에 그가 선생님과 가까이 지냈던 것으로 아는데요."
"이럴 수가, 이럴 수가."
필로트슨은 놀라며 그의 딱딱한 태도를 없앴다.
"당신이 폴리 군의 부인인가요? 확실히, 그의 부인이 있었나보군! 아! 알겠소."
"저와 이혼해 버린 거예요. 선생님이 이혼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아마도 더 좋은 사연이 있었나 보죠."
"정말로?"
"글쎄요, 그가 저와 이혼한 것은 잘한 일인지는 모르죠. 아니면 두 사람 모두에게 잘된 일인지도 모르죠. 왜냐하면 저는 곧 재혼했거든요. 그리고 제 남편이 최근에 돌아가실 때까지 꽤 잘 살았죠. 그런데 선생님은... 선생님은 결정적으로 이혼을 잘못한 거예요!"
"아니오."
그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는 차라리 이것에 대해서 얘기하지 말았어야 해요. 그러나 나는 내가 옳은 일을 했다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정당하고 도덕적이기도 하지요. 나는 내 행동과 생각으로 인해 고통을 당했지만 난 여전히 내 소신을 지키고 있소. 비록 그녀를 잃은 것이 여러 가지 면에서 내게 손실을 가져다주었지만 말이오!"
"선생님은 그녀 때문에 선생님의 학교와 좋은 수입을 잃어버렸죠, 그렇지 않나요?"
"나는 그것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소. 어쨌든, 나는 최근에 이곳 메리그린에 다시 돌아왔소."
"선생님은 그 전처럼 다시 메리그린에서 학교를 운영하실 건가요?"
솟아오르는 슬픔이 그의 가슴속을 열어놓았다.
"나는 저기에 있소만."
그는 대답했다.
"그러나 그 전처럼이라니, 그건 말이 되지 않소. 나는 지금 남에게 폐를 끼치고 있는 중이오. 그것은 내 마지막 보루요. 내가 높은 지위를 얻어 난 후에 그리고 오랜 세월의 소망 끝에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보잘것없는 출발이지만. 남에게 굴욕을 톡톡히 당한 후에야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 같군요. 그러나 그곳은 은신처이기도 해요. 나는 그곳의 속세를 떠난 것 같은 분위기를 좋아해요. 그리고 그 마을의 목사는 내가 마누라에 대해서 기괴한 행동을 한 것 때문에 학교 교장으로서의 명성을 망치기 전부터 서로 알고 지내던 친구로 그는 다른 모든 학교들이 나로부터 등을 돌릴 때 나를 구원해 주었죠. 비록 다른 곳에서 연간 200파운드 이상을 받았지만 이곳에서는 단지 50파운드뿐이예요. 그렇지만 나는 옛날의 부부생활에 대해서 꼬치꼬치 흠을 잡히기 보다는 이 생활에 만족하고 있소. 내가 전입이라도 해보려고 하면 그런 곤경에 빠지기가 일쑤이기 때문이오."
"선생님 말씀이 맞아요. 만족해 하는 마음만이 끊임없는 향연이죠. 그녀도 당신보다 더 잘 지내고 있지는 못해요?"
"그녀가 잘 지내지 못한다고 말했소?"
"나는 오늘 우연히 케닛부리지에서 그녀를 만났어요. 그리고 다시 한번 얘기하는 것이지만 선생님은 그 여자에게 과분한 배려를 하신 거예요. 게다가 선생님은 자신의 보금자리를 자신의 손으로 더럽히셨지요. 그것이 되돌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말이오?"
"그녀는 죄를 짓지는 않았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들은 그 재판에서 변호조차 하지 않았소!"
"그것은 단지 그들이 변호하기 싫어했기 때문이죠. 제 얘기는 선생님이 이혼 소송에서 승소하셨지만 선생님을 소송에서 이기게 했던 죄에 대해 그녀는 전혀 혐의가 없다는 말이죠. 재판이 끝난 후에 저는 그녀를 만났고 그때 그녀와의 대화에서 전 확신하게 되었어요."
필로트슨은 용수철 달린 경마차의 가장자리를 꽉 쥐었다. 그는 이 얘기에 몹시 충격을 받고 괴로워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집을 나가고 싶어 했소."
"그래요. 그러나 선생님은 그녀가 그렇게 나가도록 해서는 안 되었죠. 죄가 있든 없든 간에 그렇게 건방지게 이치나 캐는 여자는 내보내지 않는 게 상책이예요. 여자란 다 그렇죠! 습관은 어쩔 수 없는 것이거든요. 결국엔 다 똑같죠! 그런데 그 여자는 여전히 자기 남편을 좋아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남자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그녀에 대해서 너무 성급하셨어요. 저 같으면 못 가게 했을거예요! 사슬에 매어 놓아서라도 -비록 그녀가 차버리고 뛰쳐 나가려 할지라도 말예요. 우리 여자들을 길들이는 최상의 수법은 뭔가로 묶어두는 거지요. 게다가 완고하다면야 더할 나위 없을 텐데. 그것은 모세도 잘 알고 있었죠. 그분이 하신 말씀을 기억 못하시겠어요?"(민수기, 5장. 여자의 불의와 남자의 태도에 관한 법)
"기억이 안 나는데요, 부인. 미안한 말이지만."
"그러니까 학교 선생님이시죠! 저는 교회에서 읽을 때마다 항상 그 말을 생각하고 실천도 했어요. 조금이지만요. '이렇게 함으로써 남편된 자를 죄 없게 하며, 아내는 그 죄가 있으며 짊어지게 되리라'(민수기 5장 31절). 그것이 우리 여자에게 가혹하다고 생각돼나요? 그러나 빙긋 웃고 그것을 참아내며 살아가야 되지요. 하하! 그렇지만, 이제 그녀는 자신의 업보를 받게 된 거예요."
"그렇군."
슬픔을 참으려는 듯 이를 악물며 필로트슨이 대답했다.
"잔혹함 - 그것만이 인간사회와 자연계에서 통하는 법이지. 그것으로부터 우리는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지!"
"그렇지만 잊지 말고 다음 기회에는 지금 얘기한 대로 해보셔야 해요."
"부인, 나로선 그것에 대답할 수 없소. 나는 여인들의 변덕스러움을 다 경험한 사람은 못 되니까요."
이미 그들은 알프레드스톤 경계의 낮은 평지에 도달해 있었다. 그리고 곧 방앗간에 다다랐다. 필로트슨은 그곳에 용무가 있다고 말했다. 거기에 다다르자, 필로트슨은 마차에서 내려 정신없이 두 여자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때쯤 수는 케닛브리지 시장에서 시험적으로 케이크를 판매하는데 주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 성공은 슬픔에 젖은 그녀의 얼굴을 일시적으로 밝게 만들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크리스트민스터 케이크가 모두 팔려 그녀는 빈 바구니를 팔에 끼고 좌판과 덮고 있던 천을 거두었다.
다른 물건들은 소년에게 들게 하고 그 애와 함께 그 거리를 떠났다. 그들은 반 마을쯤 좁은 길을 따라가다가 양손에 짧은 옷을 입은 아이와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데리고 가는 늙은 여자와 마주쳤다.
수는 아이들에게 키스를 했다.
"그분은 어떠세요?"
"훨씬 좋아졌어!"
에들린 부인이 쾌활하게 말했다.
"네가 2층에 올라가기 전에 네 남편은 아마 다 나을 거다. 걱정하지 마라."
그들은 모퉁이를 돌아 약간 오래되고 붉은 기와가 얹혀 있는, 작은 마당과 과실 나무가 있는 오두막집들이 있는 곳으로 왔다. 그 집들 중의 한 곳으로 그들은 노크도 하지 않고서 자물쇠를 열고 들어갔다. 그곳엔 바로 객실 겸용의 거실이 있었다. 거기서 그들은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주드에게 인사를 했다. 원래 섬세한 그의 얼굴은 수척해져서 더 섬세하게 보였고 그의 눈에 내비치는 어린아이 같은 기대의 눈빛은 그가 중병을 앓고 난 사람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말해주고 있었다.
"뭐, 당신이 다 팔았다고?"
그가 말했다. 희미한 빛이 그의 얼굴을 밝게 했다.
"그래요. 아케이드도, 박공도, 동종면창도 모두 다요."
그녀는 그에게 매상 결과를 말하고는 주저앉았다. 그들 둘만 남겨지자 그녀는 아라벨라와의 뜻밖의 만남에 대해서 그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미망인이 된 사실도 말했다.
주드는 침착성을 잃었다.
"뭐, 그 여자가 여기에 산다고?"
"아니요, 알프레드스톤에서요."
주드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난 당신에게 말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는데요?"
그녀는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그래, 잘했어. 여보! 아라벨라가 런던 밑바닥에서 살지 않고 여기서 살다니! 시골길로 가게 되면 알프레드스톤까지 12마일이 조금 넘는 거리밖에 안 되지. 그 여자는 거기서 뭘 하는데?"
수는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그에게 말했다.
"예배당에 다니기 시작했다던데요. 그 여자 말에 의하면요."
수는 말을 덧붙였다.
"그래, 우리가 이사가기로 결정한 것은 참 잘한 일이야. 오늘은 아주 좋아졌어. 한두 주 후면 떠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좋아질 거야. 그러면 에들린 부인도 다시 집에 갈 수 있겠지. 우리에겐 너무 고마우신 분이야.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가진 유일한 친구지!"
"어디로 가실 생각이세요?"
수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걱정스러움이 섞여 있었다.
그래서 주드는 그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털어놓았다. 너무 오랫동안 정든 옛 고장을 피해 다닌 후라서 그가 말하는 것이 그녀를 놀라게 할지도 모른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이모저모 따져보고서 최근에 그는 크리스트민스터를 많이 생각하게 되었고 만약 그녀가 상관없다면 그곳으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그들의 얼굴이 알려지든 말든 그것에 대해 그들이 왜 걱정해야 하겠는가? 그렇게 신경쓰는 건 쓸데없는 과민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케이크 파는 일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고 그도 더 이상 가난하게 사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의 건강이 회복된다면 거기서 석공일을 하는 가게도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왜 당신은 그렇게도 크리스트민스터를 좋아하시죠?"
그녀는 생각에 잠겨 말했다.
"크리스트민스터는 당신을 조금도 돌봐주지 않는데, 가엾은 분!"
"그래도 난 거기가 좋아. 어쩔 수가 없어. 난 거기가 좋아. 나 같은 소위 독학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업신여김을 받는지, 노동해가며 힘들게 얻은 우리의 교양과 지식에 대해 그곳만은 앞장서서 존경해 줄만도 한데, 오히려 그 얼마나 경멸하는지 난 잘 알아. 그곳은 우리들의 성조와 발음이 잘못되었다고 낄낄거리며 웃어대지. 그곳도 알고 있어. 정말 미안하지만 그 점은 교정을 받도록 하시오 하면 될텐데 말이야. 일부러 사람을 보고 낄낄대지 않아도 될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어린시절 꿈 때문인지 그곳은 나의 우주의 중심이거든. 어떤 일이 있어도 그것을 바꿀 수는 없어. 아마도 그곳은 깨어날 거고 관용도 가지게 되겠지. 난 그렇게 되길 기도해! 돌아가서 난 거기서 살고 싶어. 아마도 그곳에서 숨을 거두게 되겠지! 2, 3주 안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러면 벌써 6월이 되겠군. 난 그곳을 아주 특별한 날에 가고 싶어."
완쾌되어 간다고 보는 그의 희망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그로부터 2, 3주가 지나 그들은 많은 추억이 깃들어 있는 그 도시에 도착했다. 그는 결국 꿈이 아닌 현실에서, 크리스트민스터의 보도 위에 두발을 딛고 허물어져 가는 벽에 기대어 따가운 햇살을 받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