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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주드(Jude the Obscure) 1

비운의 주드(Jude the Obscure)

Thomas Hardy

 

1부 메리그린에서

 

그렇다. 여자를 위해 분별심을 잃고 여자를 위해 머슴 되는 자 많다.

여자 때문에 몸을 망친 자, 몸을 그르친 자, 죄를 범한 자도 많다.

, 남자들이여, 여자들로 인한 이와 같은 것들을 보고도 여자를 약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에스드러스

 

1-1

 

학교 선생이 마을을 떠나려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크레스콤의 방앗간 주인은 20마일 정도 떨어진 도시로 떠나는 그의 짐을 운반해주기 위해 하얀 차일이 둘러쳐 있는 작은 마차를 빌려주었다. 작은 마차였지만 떠나가는 선생의 짐을 싣기에는 충분했다.

교사에 비치된 가구들의 일부는 관리인 측에서 제공한 것이어서 선생이 가져가야 할 성가신 짐이라면 책을 꾸려놓은 상자 외에는 작은 피아노 한 대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선생이 기악을 공부해보겠다고 생각했던 그해에 경매로 사두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열의는 곧 식어 버렸고 연주에는 조금도 진전이 없었다. 그렇게 애써 구입한 그 물건은 그 후에 집을 옮겨 다닐 때마다 선생에게는 늘 애물단지가 되어 버렸다.

교구의 목사는 떠나가는 광경을 바라보는 것에 싫증이 났는지 그날은 외출을 해버렸다. 그는 저녁때까지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때가 되면 새로 부임한 선생이 도착해서 정리를 끝내고 모든 일이 본래대로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선생은 대장장이와 농장의 집사와 함께 난처한 모습으로 응접실의 악기 앞에 서 있었다. 선생은 마차에 그것을 싣고 간다고 해도 크리스트민스터에 가서는 우선 임시로 하숙에 들 것이므로 어떻게 해야 할지 속수무책이라고 했다.

어른들 틈에 끼어 사려 깊게 짐꾸리는 일을 도와주고 있던 열한 살짜리 작은 소년이 어른들이 난감해하며 턱을 문지르고 있을 때 자신의 목소리에 스스로 얼굴을 붉히며 큰 소리로 말했다.

"대고모님 댁에 땔감을 저장해두는 커다란 헛간이 있어요. 선생님께서 정착하실 집이 결정될 때까지는 그 헛간에 피아노를 두면 될 거예요."

"그럴듯한 생각인데."

대장장이가 말했다.

그들은 대표 한 사람을 독신으로 살고 있는 노파인 소년의 대고모 댁으로 보내서 필로트슨 선생이 피아노를 찾으러 올 때까지 맡아줄 수 있는지를 물어보기로 결정했다.

대장장이와 집사가 헛간이 쓸만한 지의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자리를 뜨자 소년과 선생만이 남게 되었다.

"주드, 내가 떠나가게 되어 섭섭하니?"

선생이 친절하게 물었다.

소년의 눈에는 눈물이 차올랐다. 소년은 정규의 주간 학생이 아니라 선생의 임기동안에만 야간에 다니던 학생이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정규학생들은 지금 마치 자진해서 열심히 도와주는 것에는 어울리지 않는 유서 깊은 제자들이라도 되는 것처럼 멀리 떨어진 곳에서 팔짱만 끼고 있었다.

소년은 손에 쥐고 있던 책을 조심스럽게 펼쳤다. 그것은 필로트슨 선생이 이별의 선물로 소년에게 준 것이었다. 선생도 섭섭함을 나타냈다.

"나도 섭섭해."

"왜 떠나세요, 선생님?"

"..... 그건, 이야기하자면 길어. 너는 선생님의 기분을 이해하지 못할 거야, 주드. 아마 훗날에는 이해할 수 있겠지."

"저는 지금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선생님."

"그래, 그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하면 안 돼. 너는 대학과 학위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어? 그것은 학생들을 훌륭하게 가르치는 데 있어 중요한 품질 증명서와 같은 거란다. 크리스트민스터나 그 근처에 살게 된다는 것은 말하자면, 본거지에 살게 되는 것과 같단다. 그리고 선생님의 계획을 조금이라도 실행할 수 있게 되면 크리스트민스터에 있는 것이 다른 것에 있는 것보다 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대장장이가 함께 갔던 집사가 돌아왔다. 혼자 사는 나이 많은 폴리부인의 땔감을 쌓아두는 헛간은 건조해서 충분히 사용할 수 있었다. 노파도 기꺼이 맡아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피아노는 다른 여러 사람들의 일손을 더 빌려 옮기기로 하고 저녁때까지는 학교에 두기로 했다. 선생은 마침내 주위를 힐끔 둘러보았다.

주드 소년은 조그마한 물건들을 싣는 일을 도왔고 아홉 시가 되자 필로트슨 선생은 책상과 그 밖의 짐꾸러미 옆에 올라타 동료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주드, 선생님은 너를 잊지 못할 거야."

마차가 떠날 때 그는 빙그레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착한 사람이 되거라, 잊지 말고. 새와 짐승들에게도 친절하게 대하고 읽을 수 있는 책은 다 읽도록 해라. 그리고 만일 크리스트민스터에 들르게 되거든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꼭 나를 찾아오너라."

마차는 삐걱거리면서 푸른 들판을 건너갔고 목사관이 있는 곳쯤에서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소년은 풀밭 가장자리에 있는 우물가로 돌아왔다. 소년은 이곳에 물통을 버려둔 채 자기를 귀여워해 주었던 후원자이며 선생인 그분의 짐 싣는 일을 도와 드렸다. 소년의 입술은 떨리고 있었다.

우물 뚜껑을 열고 두레박을 내리려 하던 소년은 멈추어 서서 이마와 양팔을 우물 가장자리에 기댔다. 아직 나이는 어렸지만 소년의 얼굴에는 생의 괴로움을 느끼는 듯한 사려 깊고 고집스러운 표정이 나타났다.

그가 응시하고 있던 우물은 이 동네만큼이나 오래된 것이었다. 이 우물은 지금 소년이 서 있는 곳에서 보면 백길이나 될 것 같은 깊은 밑바닥에서 일렁이며 빛을 내고 있는 원반처럼 보였다. 우물의 위쪽과 가까운 벽은 온통 푸른 이끼로 덮여 있었고 더 가까운 곳에는 골고사리들이 돋아나 있었다.

그는 변덕 심한 소년들이 그러는 것처럼 비장감을 띤 목소리로, '이런 아침에 선생님은 몇십 번이나 이 우물에서 물을 길으셨지만 이제 다시는 그러시지 않을 거야' 라고 중얼거렸다.

'지금의 나처럼 물을 긷다가 지쳐 물통을 집으로 나르기 전에 약간 쉬며 우물 속을 들여다보시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았었지! 그렇지만 선생님은 너무 똑똑 하셔서 언제까지나 이런 데서 오래 계시지는 않아! 이렇게 작고 지루한 곳에서는 말이야!'

소년의 눈에서 흐른 눈물이 우물 속으로 떨어졌다. 아침에는 약간 안개가 끼어 있었다. 소년이 토해 내는 한숨도 자욱한 안개가 되어 조용하고 묵직한 대기 위로 퍼지며 녹아들었다. 그때 갑작스러운 외침소리가 그의 생각을 깨뜨렸다.

"물 좀 가져와라, 이 게으름뱅이 녀석아!"

그것은 멀지 않은 것에 위치한 이끼 낀 지붕을 이고 있는 오두막집에서 나와 마당문 쪽으로 다가가고 있던 노파가 외친 소리였다. 소년은 재빨리 손짓으로 알아들었다는 신호를 보냈고 그런 소년의 체격으로는 대단히 무거워 보이는 물통을 들어올려 내려놓고는 그 큰 물통의 물을 보다 작은 두 개의 물통에 나누어 붓고서 잠시 쉬며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는 물통을 들고 우물가의 질척질척한 풀밭을 가로질러 갔다.

우물은 작은 마을, 아니 마을이라기보다 더 작은 두메산골의 메리그린이라는 마을의 거의 한가운데 있었다.

이 마을은 작기도 했지만 고풍스럽기도 했으며 부웨섹스의 구릉지대에 인접한 울퉁불퉁한 고지의 산골짜기에 안겨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고풍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이 우물만이 전혀 변하지 않은 채로 이어져 내려오는 이 지방사의 유일한 유적이었다. 갈대로 지붕을 얹고 비탈이 진 지붕 위로 불쑥 튀어나온 창문이 달린 집중에는 그 즈음 헐려버린 것이 많았다. 그리고 녹지의 나무들도 많이 벌목되었다. 무엇보다도 곱사등처럼 목조의 작은 탑이 붙어 있고 기묘한 추녀마루가 있었던 본래의 교회는 완전히 해체되었다. 해체된 교회는 시골길의 포장용 자갈로 쓰였는가 하면 근처 돼지우리의 벽이나 정원의 앉는 돌, 울타리 막이, 화단의 바위와 흙 등으로 이용되었다.

그 대신 영국인의 눈에는 서먹서먹한 최신식 고딕풍의 높고 새로운 건물이 런던을 당일치기 여행으로 다녀온 어느 사적 말살자의 손에 의해 다른 장소에 건축되었다. 그리스도교의 여러 신에게 바쳐져 왔던 옛 사원이 오랫동안 서 있던 자리는 아주 옛날부터 묘지 터였던 푸르고 평평한 풀밭터에 기록조차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무연고자의 묘는 값싼 쇠로 만들어진 십자가로 기념되었지만, 그 십자가도 5년 후에는 훼손될 물건에 지나지 않았다.

 

1-2

 

주드 폴리의 몸은 호리호리했지만 한 번도 쉬지 않고 물이 가득 찬 두 개의 물통을 오두막집까지 운반했다. 대문 위쪽에는 <빵집, 드루르실라 폴리> 라는 노란색의 글자로 페인트칠한 작은 장방형의 푸른 간판이 걸려있었다. 납으로 만들어진 작은 창문 - 이것이 현재 몇 채 남지 않은 구식 집이라는 증거인데 - 안에 과자병 다섯 개와 작은 롤빵 세 개를 담은 버드나무 모양의 접시 한 개가 있었다.

집 뒤쪽에서 물통을 비우고 있을 때 집안에서는 간판의 주인 드루실라 대고모와 몇몇 마을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활기찬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선생의 출발을 전송한 후여서 이사 장면의 세세한 부분과 곁들여 선생의 앞날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 애는 누구죠?"

한 여자가 주드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물었다. 그 여자는 어딘가 외지의 사람처럼 보였다.

"글쎄, 그렇게 물어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윌리엄즈 부인. 저 애는 내 생질의 아들이에요. 요전에 부인께서 다녀간 다음에 온 아이라구요."

이렇게 대답한 나이 많은 토박이는 키 크고 수척한 여자였다. 그녀는 아무리 시시한 화제라도 구성지게 이야기를 해서 주위의 이목을 끌었다.

"저 애는 남 웨섹스의 멜스톡에서 왔는데 벌써 일 년정도가 되었어요. 어쩐지 나쁜 운이 겹쳐서요, 벨린다."

그녀는 오른쪽으로 몸을 돌렸다.

"저 애의 아버지는 멜스톡에 살았는데 심한 전신마비에 걸려 이틀 동안 앓다가 작고했어요, 캐롤라인."

이번에는 왼쪽으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하느님이 네 아버지나 어머니처럼 너도 같이 데리고 갔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가여운 녀석! 그러나 이 아이가 어떻게든 지낼 수 있을 때까지 같이 있기로 하고 데리고 온 거예요. 하지만 이 아이에게 되도록 한 푼이라도 돈을 벌게 해야만 해요. 바로 지금은 농장주 트라우댐을 대신해서 밭의 새들을 쫓고 있어요. 그것이 이 아이를 위한 일인 거예요. 왜 도망치는 거지, 주드?"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때 그 아이는 일제히 쏠리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얼굴을 얻어맞은 듯한 묘한 기분이 되어 옆으로 몸을 피했다.

주드를 데리고 있는 것은 폴리 양 또는 폴리 부인(이곳 여자들은 구별하지 않고 그렇게 불렀다) 의 아주 좋은 계획이라고 이 고장의 세탁 아줌마가 대답했다.

"부인께서 외로울 때는 같이 어울려 주고 물을 길어오게도 하고 밤이면 창문을 닫아주고 빵 굽는 일도 도와줄 수 있겠군요."

폴리 노파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째서 너는 선생님한테 크리스트민스터로 데리고 가서 학자가 되게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는 거냐?"

그녀는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농담조로 말을 이었다.

"선생님이 이 애보다 더 좋은 애를 데리고 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나는 장담해요. 이 애는 진짜 책미치광이예요. 그건 우리 집안의 유전이라고 할 수 있는 버릇이지요. 이 애의 사촌누이인 수도 마찬가지라고 하더군요. 그 조카딸은 이 마을에서 아니, 이 방에서 태어났지만 수년 동안 보지 못했어요. 수의 엄마인 나의 질녀는 과거에 결혼하고 나서 몇 년 동안 집 한 칸도 없다가 그 후에 생겼다고 하는데 - 글세 그 후의 이야기는 하고 싶지도 않아요. 주드, 얘야 , 결혼하지 마라. 폴리가의 사람들에게는 이제 결혼 같은 것은 어울리지 않으니까, 그들의 외동딸 수를 내가 친자식처럼 길렀는데, 그런데 벨린다, 결국 질녀가 세상을 떠나다니! , 나이도 어린 여자가 그런 괴로움을 당하다니!"

주드는 이야기의 전반적인 흐름이 자기에게로 또다시 집중되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 장소를 떠나 빵집으로 가서 아침으로 준비된 얇은 귀리 빵을 먹었다. 휴식시간이 끝났기 때문에 뒤쪽의 생울타리를 넘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소로를 따라 북쪽으로 가다가 마침내 보리씨를 심어 놓은 고원지대의 넓다란 분지에 다다랐다. 이 광막한 분지가 트라우댐 농장주를 위해 주드가 일하는 장소였다. 그는 그곳 한가운데로 내려갔다.

들판의 갈색 표면은 사방 하늘을 향해 펼쳐져 있고 그 끝은 서서히 안개 속으로 사라져 적막감은 더욱더 깊어졌다. 이 단조로운 풍경 가운데 지난 해 수확한 밀집가리로 가까이 아가가면 날아가는 까마귀 떼와 지금 지나온 휴경지를 가로지르는 작은 길 등이 눈길을 끌었다. 이 길은 옛날 수많은 그의 조상들이 밟아서 다져놓았지만 지금은 누가 지나가는지 거의 알 수 없었다.

"정말 싫증 나는 곳이야!"

그는 중얼거렸다.

써레질해서 북돋아 놓은 신선한 골의 열은 새 골덴천의 홈처럼 퍼져 주위에 전반적으로 야박한 공리주의적인 분위기를 더했고 그 농담의 구분을 벗겨 버리고 요즈음 두서너 달간을 넘어서 거슬러 올라가는 모든 역사를 제거했다.

하지만 사실 이 주위의 흙덩이 하나 돌멩이 하나에도 많은 연상이 남아 있었다 - 그 옛날의 추수 날로부터 전해오는 노래, 사람의 입에서 새어 나온 말들, 용감한 공적 등의 메아리가 남아 있었다. 땅의 어느 구석이나 다 옛날의 활기와 행락과 말놀이와 언쟁과 권태 등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은 곳은 없었다. 들판의 어떤 장소에도 이삭 줍는 무리들이 햇빛을 쬐며 웅크려 앉지 않았던 곳은 없었다.

인근 부락의 인구를 늘어나게 했던 연애와 결합도 보리 베기와 그 곡물의 운반작업 중에 이루어졌다. 이 들판을 저 멀리 있는 농장과 갈라놓는 생울타리 아래에서 아가씨들은 다음 수확까지는 자신을 돌아다보지도 않게 될 연인에게 몸을 맡겼다. 그리고 그 오래된 보리밭에서는 많은 남자들이 한 여인에게 사랑의 약속을 하고 가까운 교회에서 약속을 이행한 후엔 다음 해의 파종기까지는 또다시 여자의 소리를 들어도 몸이 떨리지 않게끔 되었다.

그러나 이런 일들에 애해 주드나 그의 주위에 있는 까마귀들은 관심이 없었다. 이곳은 그들에게는 쓸쓸한 장소에 지나지 않았다. 주드의 입장에서 보면 그곳은 일하는 장소에 지나지 않았으며 까마귀 떼들의 입장에서 보면 먹을거리가 풍부한 곡창이라는 그런 차이를 지닌 것에 지나지 않았다.

소년은 앞에서 말한 보릿가리 아래에 서서 이삼 초씩 깡통이나 장난감을 힘차게 흔들었다. 딸랑 소리가 날 적마다 까마귀 떼는 쪼아먹는 것을 중지하고 날아올라 갑옷에 붙은 술 장식처럼 번쩍이는 날개를 펼치고 유유히 날아가 버렸다. 마침내 방향을 바꿔서 다시 날아와 서는 소년을 경계하는 듯이 살피면서 먹이를 찾아 좀 더 은밀한 곳으로 내려앉았다.

그는 팔이 아플 때까지 깡통을 흔들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의 마음속에는 식욕을 방해받은 새들에게 동정심이 생겨났다. 저 까마귀들도 주드 자신처럼 쓸모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왜 새들을 쫓아버려야 하는가? 까마귀들은 더욱더 온순한 친구들이 거나 남에게 신세를 지는 사람들과 같은 태도를 나타냈다 - 까마귀들은 적어도 그에게 관심을 품어주는 것으로 소년이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들처럼 생각되었다. 소년의 대고모조차도 그에게는 관심이 없다고 자주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깡통 흔드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랬더니 새들이 다시 내려왔다.

"가련한 것들!"

주드는 큰 소리로 외쳤다.

"좀 먹어라 - 먹으라고. 우리에게는 많이 있단다. 트라우댐 농장주는 너희들을 먹일 만큼은 있을 거야. 그렇다면 먹어라, 새들아, 마음껏 배불리 먹으라고!"

새들은 밤색의 흙 위에 점점이 쏟아 부은 잉크 자국처럼 멈춰서 모이를 먹었다. 그래서 주드는 그들의 식욕을 즐겼다. 마술 같은 연민의 실오라기가 그의 생활과 그들의 생활을 묶어놓았다. 짧고 가련한 그들의 생활은 주드의 생활과 너무 많이 흡사했다.

그는 이맘때쯤 해서 깡통을 내팽개쳤다. 깡통은 이제 새들에게나 그런 새들의 친구가 된 자기 자신에게나 불쾌하고 보잘것없는 천한 도구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소년은 갑자기 자신의 엉덩이를 심하게 얻어맞고 이어서 깡통이 요란하게 소리를 냈다는 것은 알아차렸다. 새들과 주드는 동시에 놀라 펄쩍 뛰어 올랐다. 놀란 주드의 눈에 저 훌륭한 트라우댐이 그곳에 나타나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비쳐졌다. 화가 나서 붉어진 그의 얼굴은 무서워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주드를 내려깔 듯 째려보고 있었고 손에는 깡통이 들려 있었다.

"그래, '먹어라, 귀여운 새들아' 라고 말했지. 이 꼬마녀석아? '멀어라, 새들아' 라고 말이다, 정말이지! 엉덩이 좀 맞아야겠구나. 그리고 '먹어라, 귀여운 새들아"라고 또 서둘러서 지껄여 보라구! 너는 밭에는 오지도 않고 선생이 있는 곳에 가서 빈들거렸더구나, 그렇지, 이놈아! 네가 까마귀 떼를 쫓는다는 품삯으로 6펜스를 번다는 게 고작 이 짓이냐!"

트라우댐은 이러한 노여움에 찬 말을 주드의 귀에다 마구 퍼부어 대면서 왼손으로 소년의 팔을 나꿔챈 다음 그의 호리호리한 몸뚱이를 팔길이만큼 잡고서 돌렸다. 그리고 주드가 가지고 있던 깡통의 판대기로 또다시 엉덩이를 쳤다. 마침내 주드가 한 바퀴씩 돌 때마다 매 맞는 소리가 들판에 메아리쳤다.

"때리지 마세요 - 제발요!"

빙빙 돌고 있던 소년은 외쳤다. 마치 낚시에 걸려 꿈틀거리면서 육지 쪽으로 끌려오는 물고기 같았다. 그의 몸뚱이는 원심력의 지배를 받고 빙빙 돌았다. 언덕, 보릿가리, 농장, 작은 길, 까마귀떼 등이 대단한 속도로 원주경쟁을 하는 것처럼 그의 주위를 빙빙 달았다.

"나는 - - 주인님 - 여기 땅 속에는 보리가 많이 있다고 생각한 것뿐입니다. 파종하는 걸 보았습니다. 까마귀 떼가 약간은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주인님이 손해보는 일은 없을 거라고요. 게다가 필로트슨 선생님께서 새들에게도 친절하게 대하라고 하셨습니다. 게다가 필로트슨 선생님께서 새들에게도 친절하게 대하라고 하셨습니다 - , , !"

이 솔직한 해명은 주드가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굳게 입을 다물었을 때보다도 더욱더 농장주를 화나게 했던 것 같았다. 그는 계속해서 소년을 질질 끌며 돌리면서 두들겼다. 깡통의 딸랑거리는 소리는 계속해서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멀리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귀에까지 들렸다. 그들은 그것이 주드가 힘을 다해 깡통을 두드리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안개 바로 뒤편에 가려진 갓 지은 교회 탑 간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기부금을 낸 사람은 다름 아닌 이 농장주였다.

트라우댐은 곧 소년의 형벌에 싫증이 나서 떨고 있는 소년을 세워 놓은 채 주머니에서 6펜스를 꺼내어 그것을 소년에게 그날의 일당으로 건네주고는 다시는 이 들판에 서성대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주드는 황급히 그로부터 물러나 엉엉 울면서 좁은 길을 따라 걸었다. 구타당한 고통은 심했지만 그 때문에 운 것은 아니었다. 신이 창조한 새들에게 이로운 것이 신이 만든 정원사에게는 해롭다는 이 지구 설계상의 결함을 알았기 때문만도 아니었다. 이 교구에 오고 나서 1년도 채 되기 전에 아주 부끄러운 일을 저질러 이제부터는 일생 동안 대고모의 말썽꾸러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에 압도되었기 때문에 울었던 것이다.

주드는 마음속에 이런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채로 마을에 모습을 나타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높은 생울타리 뒤로 이어진 우회로를 따라 목장을 가로질러 집으로 향했다. 그는 목장에서 수십 마리의 지렁이가 이런 계절의, 이런 날씨에 흔히 언제나 그러는 것처럼 축축한 땅의 표면에서 통통하게 몸을 도사려 서로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보통의 걸음으로 걸어가려면 몇 마리쯤은 밟아서 으깨지 않고서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걸어 나아갈 수 없었다.

트라우댐 농장주는 방금 소년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소년은 어떤 것에도 상처를 입히지는 못했다. 그는 새 새끼의 둥우리를 집으로 가지고 오게 되면 이내 애처로워져서 한밤중까지 자지 않고 뜬눈으로 지새다가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새 새끼들과 둥우리를 제자리에 되돌려 놓았다.

그는 나무를 벌채해서 쓰러뜨리거나 나뭇가지를 베어내는 것조차 볼 수 없었다. 가지가 잘린 자리에서 수액이 솟아 나와 나무가 흠뻑 출혈하는 것처럼 보여서 어쩔 수 없이 하는 때늦은 가지치기도 유년시절의 그에게는 대단한 슬픔이었다. 이것은 성격의 연약함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생애가 막을 내리고 모든 것이 다 잘 되었다고 하기 전 까지는 그가 수많은 아픔을 맛봐야 할 운명임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는 지렁이를 단 한 마리도 죽이지 않고 발끝으로 살금살금 걸어 길을 지났다.

오두막집으로 들어갔을 때 대고모가 1페니짜리 빵을 어린 소녀에게 파는 것이 보였다. 어린 손님이 가버리자 대고모는 말했다.

"그래, 벌써 돌아왔니?"

"쫓겨났어요."

"뭐라구?"

"내가 까마귀 떼에게 보리를 조금 먹게 해주었다고 트라우댐 주인이 나를 내쫓았어요. 그리고 이게 품삯이에요. 이젠 이게 마지막 품삯이래요!"

그는 슬픈 표정으로 6펜스를 테이블 위에 던졌다.

"!"

대고모는 숨을 멈추면서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일도 하지 않는 그를 봄 내내 어떻게 먹여 살리느냐고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만일 네가 새들을 쫓지 못한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단 말이냐? 저 봐! 그렇게 언짢은 얼굴을 하지 마라! 근본을 따지자면 트라우댐 농장주가 나보다 나을 것은 하나도 없어. 그러나 욥 (신이 내린 시련을 견뎌 정의로운 사람) 도 이렇게 말했어, '이제는 나보다 젊은 자들이 나를 비웃는구나. 그들의 아비들은 재가 보기에 나의 양께 지키는 개중에도 둘 만하지 못한 자이니라,' (욥기 제 30) 아무튼 트라우댐의 아버지는 내 아버지에게 고용된 날품팔이 장인이었어. 너를 그에게 고용시키도록 한 내가 바보였어. 다만 너에게 쓰라린 일을 경험하지 못하게 하려는 생각에서 그랬는데."

주드가 의무를 등한히 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녀의 품위를 떨어뜨렸기 때문에 대고모는 더욱 화를 냈다. 주로 그런 견지에서 그를 힐책했고 도덕적인 측면에서 그를 나무란다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았다.

"트라우댐 농장주가 뿌린 것을 새들에게 먹이면 못써. 그런 일을 한 건 물론 잘못한 거야. 주드야, 주드, 왜 네 선생님하고 함께 크리스트민스터라는 델 안 갔느냐? 그러나 아, 아냐 - 가엾은 못난이 - 네 집 혈통에 그런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야!"

"그 아름다운 도시는 어디에 있어요, 대고모님? 필로트슨 선생님이 가신 곳 말이에요."

소년은 조용히 생각하고 나서 물었다.

"어이쿠! 넌 크리스트민스터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있어야지. 여기서 20마일쯤은 될 거야. 그렇지만 내 생각에 그곳은 너무 좋은 곳이어서 가엾게도 너하고는 별로 상관이 없단다."

"그런데 필로트슨 선생님은 언제나 거기에 계실까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제가 가서 선생님을 만나볼 수 있을까요?"

"어이쿠 안 돼! 넌 여기서 자라지 않았잖아. 자랐다 해도 그렇게 물어보는 게 아니다. 우리는 크리스트민스터 사람들과는 아무 관계가 없고 그들도 우리와는 아무 관계가 없단다."

주드는 자신의 존재가 아무 가치도 없다는 것을 여느 때보다 더 절실하게 느끼면서 밖으로 나와 돼지우리 옆에 있는 보릿짚 더미 위에 누웠다. 이맘때쯤에는 안개가 보다 엷어져서 태양을 안개 사이로 볼 수가 있었다. 주드는 밀짚모자를 얼굴 위로 끌어당기고 밀짚 틈 사이로 백광을 쳐다보면서 멍하게 생각에 잠겼다.

성장한다는 것에는 여러 가지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세간의 일들은 그가 생각했던 대로 되지는 않았다. 자연계의 이치는 너무 무서워서 도저히 관심을 갖지는 못했다. 살아 있는 것중의 어느 한 무리에게 베푸는 자비가 다른 무리에게는 잔혹한 처사가 된다는 것이 그를 불안하게 했다.

사람은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렸을 때 느끼는 것처럼 원주상의 한가운데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일종의 전율감을 느끼게 된다. 주위 전체는 무엇인가 번쩍이고 현란했으며 딸랑딸랑 울리는 것이 웅성거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잡음과 섬광이 생활이라는 작은 세포에 부딪쳐서 그것을 흔들어놓고 찌그러지게 했다.

만일 그가 성장하는 것을 막을 수만 있다면! 그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때 그는 본래의 소년으로 되돌아가서 이제까지의 낙담을 떨쳐버리고 벌떡 일어났다. 남은 아침나절 동안 그는 대고모를 도왔다. 그러나 오후에는 할 일이 없어서 마을로 갔다. 거기서 그는 어떤 사람에게 크리스트민스터가 어느 쪽에 있느냐고 물었다.

"크리스트민스터라니? , 그래, 저 건너편이란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 가본 적이 없어. 없구말구. 나는 그곳에 볼일이 없었으니까."

그 사람은 북동쪽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그것은 주드가 그렇게도 창피를 당했던 밭이 있는 방향이었다. 이 우연한 일치에 대해서는 잠깐 동안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이번 일로 겁이 났기 때문에 오히려 크리스트민스터라는 도시에 대한 호기심이 더해졌다.

트라우댐 농장주는 주드에게 그 밭에 두 번 다시 나타나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나 크리스트민스터는 그 밭 너머에 있고 그곳으로 가는 길은 누구나 걸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작은 마을을 살짝 빠져나와 그 길에서 한치도 어긋나지 않고 오늘 아침 벌을 받던 우묵한 장소로 내려왔다. 그리고 맞은편의 길고 지루한 오르막길을 올라갔는데 마침내 작은 길이 나무들의 숲 옆에서 고속도로와 마주치는 곳까지 왔다. 여기서 경작지는 끊어졌고 그의 눈앞에 고속도로와 마주치는 곳까지 왔다. 여기서 경작지는 끊어졌고 그의 눈 앞에 펼쳐진 전망은 단지 황량하고 넓은 고원이었다.

 

1-3

 

생울타리 없는 고속도로나 그 양쪽 어느 곳에도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리고 허연 도로는 언덕을 올라가서 하늘 속으로 사라져 가는 것처럼 보였다. 바로 그 꼭대기에서 고속도로와 직각으로 교차하는 푸른 '등성잇길'이 하나 있었다. - 이 지방을 꿰뚫고 있는 이 길은 본래 로마인이 세운 이크닐드 도로였다. 이 고대의 작은 길은 수 마일에 걸쳐 동서로 뻗쳐 있고 아직까지도 기억에 생생할 만큼 양과 소떼를 장터나 시장으로 몰고 가는 데 사용되었다. 그러나 그 길은 이제 버려져서 잡초만 자라 무성했다.

소년은 마을로 온 이래 이만큼 북쪽으로 멀리 나와 본 적이 없었다. 두서너 달 전의 어느, 어두운 밤에 남쪽의 정거장에서 이 마을로 마차꾼에게 이끌려 온 뒤 오늘날까지 이 고원의 바로 가장자리 아래에 이토록 광막하고 평탄한 지대가 가까이에 전개되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동서로 걸친 북쪽의 반원형의 전경은 사오십 마일의 거리까지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곳은 분명히 여기서 숨 쉬고 있는 공기보다도 더욱 푸르고 습기 있는 대기로 가득 차 있을 것이었다.

도로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비바람에 찌들어 붉은색을 띤 회색의 벽돌과 기와로 지은 낡은 헛간 한 채가 서 있었다. 이 지방 사람들은 이곳을 '갈색의 집' 이라고 불렀다. 소년이 이 앞을 지나가려고 할 때에 사다리가 처마 끝에 걸쳐져 있는 것이 보였다. 더욱 높이 오르면 더 멀리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소년은 멈춰서 그것을 쳐다보았다. 비탈진 지붕에서 두 사람이 기와를 손질하고 있었다. 그는 등성잇길로 접어들어 헛간 쪽으로 다가갔다.

소년은 부러운 듯이 얼마 동안 일꾼들을 쳐다보다가 용기를 내서 사다리를 올라가 그들 옆에 섰다.

"그래, 얘야, 그런데 여기에 무슨 일로 올라왔니?"

"크리스트민스터라는 도시가 어디에 있습니까, 가르쳐주시겠어요?"

"크리스트민스터는 나무숲 너머 저 건너편에 있단다. 볼 수도 있단다. 적어도 날씨가 좋은 날이면 말이다. 지금은 볼 수 없지만."

단조로운 노동에서 벗어나 기분전환이 될 만한 화젯거리가 생겨 기쁘다는 표정으로 다른 일꾼도 고개를 돌려 방금 가리켰던 방향 쪽을 쳐다보았다.

"이런 날씨라면 그곳을 못 본단다."

그는 말했다.

"내가 그 도시를 보았을 때는 태양이 뻘겋게 달아서 지고 있을 때였지. 그때의 모습을 어떻다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

"성스러운 예루살렘 같군요."

소년은 진지한 얼굴로 암시했다.

"그거야, 내 머리로는 그런 것이 생각나지는 않지. 그러나 오늘따라 크리스트민스터가 전혀 보이지 않네."

소년도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멀리 떨어진 그 도시는 보이지 않았다. 소년은 헛간에서 내려왔다. 소년과 같은 나이에는 흔히 그렇듯이 그는 갑자기 마음이 변해 크리스트민스터를 체념하고 등성잇길을 따라 걸으면서 무엇인가 흥미를 끄는 자연물이 혹시 없는가 하고 주위의 제방을 돌아보았다. 그가 메리그린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헛간 앞을 다시 지나갈 때 사닥다리는 여전히 그 상태로 있었지만 일꾼들은 그날의 일을 끝냈는지 이미 자리를 떠나고 없었다.

저녁때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직도 안개는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러나 발아래 쪽에 이어진 습한 평원지대와 강줄기 지역을 제외하고는 안개가 약간 개어있었다. 소년은 크리스트민스터가 다시 생각났다. 그가 대고모의 집에서 이삼 마일이나 일부러 멀리 나왔기 때문에 말로만 들어왔던 그 멋진 도시를 적어도 한번만은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곳에서 아무리 기다린들 밤이 되기 전에는 하늘이 개일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소년은 이런 장소를 떠나기 싫었다. 북쪽의 일대는 마을 쪽으로 불과 이삼백 야드 물러만 가도 보이지 않게 되기 때문이었다.

소년은 일꾼들이 아까 가리켰던 방향을 다시 한번 쳐다보려고 사닥다리를 올라갔다. 지붕 기와보다 더 높이 솟아 있는 제일 높은 단까지 기어 올라갔다. 한동안은 이렇게까지 멀리 나오지 못할 것이다. 아마 기도를 하면 크리스트민스터를 보고 싶다는 소원이 성취될지도 모른다. 기도를 해도, 어떤 일은 때로는 성취 안 되는 일이 있지만 반면에 성취되는 일도 있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소년은 어떤 잡지에서, 교회를 짓던 사람이 그것을 마무리할 자금이 떨어져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더니 그 돈이 다음날 우편으로 왔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다른 사람도 똑같은 일을 시도해 보았다. 그런데 그때는 돈이 오지 않았다. 그러나 후에 알고 보니 무릎을 꿇었을 때 입었던 바지가 사악한 유태인이 만든 것이었다고 했다.

낙담할 일만은 아니라고 소년은 생각을 고쳐먹고 사닥다리에서 몸을 돌려 세 번째의 단 위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위쪽으로 몸을 기댄 채 제발 안개가 걷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는 몸을 일으켜 세우고 기다렸다. 10분에서 15분 정도가 지나자 안개가 북쪽의 지평선에서부터 완전히 개기 시작해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맑은 하늘이 되었다. 일몰 되기 약 5분 전에는 서쪽 하늘의 구름도 흩어지고 태양도 약간 드러났다. 그래서 석판 같은 두 개의 붕운 사이에서 찬란한 광선이 뚜렷하게 실낱처럼 새어 나왔다. 소년은 당장 북쪽 방향으로 눈을 돌

렸다.

그의 시야에 누런 옥같은 불빛의 작은 점들이 비쳤다. 공기의 투명도가 시시각각 더해짐에 따라서 불빛의 누런 점들은 풍향계, 창문, 눅눅한 지붕의 석판, 겨우 모습을 드러낸 첨탑, 둥근 지붕, 석회석 건축물 그리고 기타 여러 가지의 윤곽물에 붙은 불빛의 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곳이야말로 확실히 크리스트민스터였다. 직접 본 것이 아니라면 특이한 대기 상태에서 비롯된 신기루였는지도 모른다.

소년이 계속 주시하는 가운데 어느 순간 창문과 풍향계는 불빛을 잃었고 바람에 꺼지는 촛불처럼 갑자기 소란스럽게 사라졌다. 희미해진 도시는 안개 속에 가려졌다. 서쪽을 바라보니 태양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하늘의 전경은 벌써 저승길처럼 어두워졌고 근처의 사물들은 괴물과 같은 색깔과 형태를 띠고 있었다.

소년은 불안해져서 사닥다리를 내려와 곧바로 집을 향해 출발했고 사냥꾼 헌(중세기 전설 속의 망령으로 윈저숲의 감시인) 이나 크리스천을 기다리며 누워 있는 아폴리언(번연의 <철로역정>의 괴물), 이마의 구멍으로 숨을 내뿜는 선장, 악마가 갈아탄 배 위에서 선장 주위에 뒹굴고 있는 시체들이 밤마다 반란을 되풀이하는 이야기 등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는 자신이 이런 공포 담을 믿지 않을 정도로 성장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교회 탑과 어두막집 창문의 불빛이 보였을 때는 기뻤다. 비록 그곳이 자기가 태어난 집도 아니며 대고모가 자기를 별로 도와주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그 노파의 '가게' 창문은 작은 유리가 24장으로 나뉘어져 납세공의 창살에 끼워져 있고 그 중에는 오랜 세월 동안 비바람으로 녹슨 유리도 있어 내부에 진열된 빈약하고 값싼 견본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남아 있는 물건도 힘센 남자라면 혼자서도 넉넉히 운반할 수 있는 양에 불과했다. 그런 가게 내부와 주위에서 소년은 오랫동안 변화도 없이 정말 겉모습만의 생활을 해 왔다. 그러나 그의 제한된 환경에 비하면 그의 꿈은 컸다.

소년은 차가운 백악의 단단한 장벽을 넘어 북쪽으로 늘 화려한 도시를 엿보고 있었다. 그 도시야말로 소년이 새로운 예루살렘으로 비유한 꿈속의 장소였다. <묵시록> 의 저자가 품은 꿈보다도 화가의 상상이 많이 담겨 있었지만 다이아몬드 상인과 같은 상상은 아니었다.

그 도시가 구체성과 영구성을 가지고 소년의 생활 속으로 분명하게 파고 들어온 것은 주로 소년이 그 지식과 목적을 대단히 존경하는 사람이 현재 거기에서 갈고 있다는 - 단지 그것뿐만 아니라 보다 사려 깊고 정신적으로 빛나는 사람들 속에서 생활한다는 사실에서 생겨났다.

음산하고 습기찬 계절에는 크리스트민스터에도 비가 내릴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곳에 이렇게 적적하게 비가 왔으리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소년이 한두 시간 마을의 경계선을 벗어나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어쩌다가 외출하게 되면 언덕에 있는 '갈색의 집' 까지 몰래 빠져 나와 계속해서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았다.

어떤 때는 둥근 지붕이나 첨탑이 나타나서 위안을 받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약간의 연기가 눈에 보이기도 했다. 그 연기에는 어딘가 향연 같은 신비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런 일이 있던 어느 날, 날이 어두워진 뒤 전망대까지 올라가거나 아니면 1, 2마일 앞으로 더 가면 그 도시의 야경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소년에게 불현듯 떠올랐다. 혼자서 갔다가 돌아와야 했지만 상관없었다. 소년은 그런 경우에 약간의 용기를 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계획은 마침내 실현되었다. 소년이 전망대가 있는 장소까지 왔을 때는 별로 늦지 않았다. 해가 막 졌을 뿐이었다. 그러나 동북의 하늘은 이미 어두워졌고 그 방향으로 바람도 가세하여 그곳은 충분히 어두워 보였다. 그는 보답을 받았다. 그러나 소년이 바라본 것은 절반쯤 기대했던 것처럼 열을 지어 늘어선 불빛은 아니었다. 개개의 불빛은 보이지 않았고 다만 희미하고 몽롱한 후광처럼 뿌연 빛이 큰 원을 그리고 있었다. 1, 2마일만 더 가면 그 도시와 불빛이 보일 것처럼 생각되었다.

소년은 저 붉은 후광 속 어느 곳에 선생님이 계실까 하고 생각했다. 이제 그는 메리그린 사람들의 누구와도 연락이 없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에게는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소년은 붉은 안개 속에서 마치 네부카드네자르 왕의 난로 속에 투영된 사람들의 그림자처럼 필로트슨 선생님이 한가로이 산책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소년은 미풍이 한 시간에 10 마일의 속도로 분다고 들었던 것이 지금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소년은 지금 얼굴을 동북쪽으로 향하고 입술을 벌려 달콤한 술이라도 마시는 것처럼 미풍을 들이마셨다.

", 미풍이여."

그는 애무하듯이 미풍에게 말했다.

"한두 시간 전만 해도 크리스트민스터 도시에 있었겠지. 거리를 떠다니고 풍향계를 돌리고 필로트슨 선생님의 얼굴을 만지고 그 선생님께서 들이마셨을 네가 이제는 여기로 와서 내가 들이마시고 있구나 - 넌 같은 바람이겠지."

바람과 함께 소년 쪽으로 무엇인가가 갑자기 날아왔다. 그것은 그곳에서 - 거기에 살고 있는 누군가로부터 날아온 전언문 같았다. 그것은 확실히 종소리였고 도시의 소리였다. 소리는 약했지만 아름다운 소리로 소년에게 외쳤다.

"이곳의 우리는 행복합니다!"

이렇게 정신적으로 비약을 하는 사이에 소년은 자신의 몸이 어디에 있는가를 완전히 잊었다. 그리고 거친 목소리에 겨우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소년이 멈춘 언덕 꼭대기에서 아래로 2,3 야드 떨어진 곳에 한 무리의 말이 나타났는데, 30분이나 걸려 대단히 경사진 바닥에서 꾸불꾸불한 길로 올라와 소년이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말 등에는 석탄 짐이 실려 있었다.

이 고원지대에 연료를 들여오려면 이런 샛길을 지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말을 따라 마부와 조수와 한 소년이 함께 올라왔다. 그 소년이 마차바퀴 뒤에 큰 돌을 발로 차 넣어 허덕이는 말에게 긴 휴식을 주자 고삐를 잡고 있던 나머지 두 사람은 집에서 술병을 꺼내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열심히 마셨다.

나이가 든 이 두 사람은 목소리가 순했다. 주드는 그들에게 크리스트민스터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어림도 없지, 이런 짐을 끌고 어떻게!"

그들이 대답했다.

"내가 말하는 도시는 저 건너의 도시예요!"

소년은 대단해 낭만적으로 크리스트민스터에 애착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에 그 이름을 또다시 말할 때 연인의 이름을 부르려고 하는 젊은 남자처럼 수줍어했다. 그는 먼 하늘의 빛을 가리켰다. 그들 어른의 눈으로는 거의 알아보지 못하는 불빛이었다.

"정말 그렇구나, 동북쪽에 약간 더 많은 불빛이 보이는 것 같군. 그렇지만, 나는 몰라보겠는데. 틀림없이 거기가 크리스트민스터인지는 모르겠어."

이때 이리로 올 때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읽으려고 겨드랑이에 끼고 온 작은 이야기책이 길위에 떨어졌다. 소년이 그것을 주워들고 구겨진 페이지를 펼치고 있을 때 마부는 그 소년의 동작을 지켜보았다.

"이봐, 어린 친구, 네 머리의 방향을 바꾸기 전에는 그쪽에는 읽는 책은 읽지 못할 거야."

그는 말했다.

"왜요?"

", 크리스트민스터에서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 이해하는 그런 책은 무엇이나 거들떠보지도 않는단 말이야."

마부는 시간을 때울 요량으로 말을 계속했다.

"같은 말을 지껄이는 집이 전혀 없었던 바벨탑이 세워졌을 때, 도무지 갈피를 못 잡는 말밖에 통용이 안 되는 거야, 그런 이국의 말을 쑥독새가 빠르게 나는 것처럼 그들은 빠르게 읽는다는 거지. 거기에선 모든 게 학문이란다. 학문 아닌 게 없단다. 종교만 빼고 말이다. 그런데 그것도 따지고 보면 학문이지. 왜냐하면 우리가 이해를 못 하는 것이니까. 그렇단다, 그곳은 진지한 고장이란다. 밤거리에 매춘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모판에서 모를 기르는 것처럼 거기서는 성직자들을 양성한다는 거지? 빈둥거리는 풋내기 소년을 행실이 부정한 번뇌도 하지 않는 엄숙한 전도사로 만들어내는 데 - , 몇 년이 걸린다던가? 5년은 걸린다지만, 5년 걸려서 된다면, 과연 해볼 만도 하네. 그들은 성직자 만드는 기술자니까. 갈고 닦고, 긴 얼굴을 모나지 않게 하고, 길고 검은 코트와 조끼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종교의식의 옷깃과 모자 등을 씌워보라지. 전도사의 어머니도 종종 전도사를 알아보지 못할 테니까. 그것이 그들의 장사란다. 다른 사람들의 장사도 매한가지란다."

"그렇지만 아저씨는 어떻게 그런 것을 아세요?"

", 끼어들지 말라구. 얘야, 어른이 말씀하시는 데 끼어드는 건 못쓴다. 앞쪽의 말을 옆으로 치워, 바비. 무언가 오는 것 같아. 내가 지금 대학 생활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거 알지. 생활 수준도 한층 높을 거야. 두말할 나위도 없단다. 하기야 선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 산 위에서 몸뚱이를 좁게 하고 있지만 그들은 정신이 높다는 거야 - 정말 고상한 기질의 사람들이지 - 그중에는 - 큰 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떠벌려서 수백 파운드나 버는 사람들도 있다지. 그리고 그중에는 체격이 튼튼해서 은잔 가득 돈을 벌어들이는 젊은이도 있다. 음악으로 말할 것 같으면, 크리스트민스터에서는 어디를 가도 멋진 음악을 들을 수 있지. 신심이 있어서 노래를 하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모두 타인과 어울려 기분 좋은 소리를 내지 않고서는 있을 수가 없단다. 그리고 훌륭한 거리도 있지 - 큰 거리야 - 세계에서 어디를 가도 그런 곳은 없어. 나는 크리스트민스터에 관해서는 조금 알고 있지."

이때쯤 되어 말들은 기력을 회복했고 마구도 다시 달았다. 주드는 먼 쪽의 후광에 찬양하는 듯한 고별의 눈길을 보내면서 방향을 바꾸어 그의 뛰어날 정도의 박식한 친구와 같이 걸었다. 마부는 계속 걸으면서 그 도시에 관해 더 많이 자세하게, 즉 탑과 회관과 교회 등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다. 마차가 십자로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주드는 마부에게 이야기를 해준 데 대해 따뜻하게 감사를 표시했고 자신도 크리스트민스터에 관해 그의 반만큼이라도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좋을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건 사람들이 말한 것들은 것에 불과하지."

마부는 전혀 자만하지 않았다.

"나 역시 너와 마찬가지로 그곳을 한번도 가본 일이 없어.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너에게 말했을 뿐이야. 나처럼 세상을 떠돌아다니고 온갖 계급의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여러 가지 것을 듣지 않을 수 없단다. 내 친구가 젊었을 때 크리스트민스터의 크로지어 호텔에서 구두닦이를 했는데, 그의 말년에는 형제처럼 잘 지내고 있지."

주드는 집으로 혼자 걸어오면서 너무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밤길의 무서움도 잊었다. 그는 갑자기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무엇인가를 찾아서 그곳에 닻을 내려 매달리고 싶은 것이 주드의 간절한 마음이었다. 그는 갑자기 마음을 먹었다. 무언가 동경할 만한 어떤 장소를 찾고 싶었다. 만일 그 도시에 간다면 그런 장소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그곳이야말로 농장주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하등의 장해물도 없으며 비웃음의 대상도 안 될 것이고 언제까지나 지켜보고 기다리는 것이 가능하고 소문으로 들었던 옛날의 사람들처럼 어떤 멋진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장소는 아닐까? 15분 전에 바라본 그 후광이 소년의 눈에 비쳤던 것처럼 그 장소가 지금 어두운 길을 더듬어 가는 그의 마음에 다가왔다.

"그곳에는 광명의 도시다."

그는 중얼거렸다.

"그곳에는 지혜의 나무가 자란다."

그는 두서너 발짝 걸어가면서 부언했다.

"그곳은 사람을 가르치는 교육자들이 나오고 들어가는 것이야."

"그곳은 학문과 종교로 무장된 성이라고 불러도 좋은 곳이야."

주드는 이런 비유를 중얼거리고 나서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마침내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그런 곳이라면 나에게 적격일 거야."

 

1-4

 

소년은 마음을 집중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발걸음도 느려졌는데 - 어느 면에서는 생각하는 것이 노인과 같았고, 또 어떤 면에서 생각하는 것을 보면 자기 나이보다도 훨씬 어린애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문득 발걸음도 가벼운 보행자가 그를 지나쳐갔다. 날씨가 어둑어둑해졌는데도 불구하고 소년은 이 사람이 뛰어나게 높은 모자와 연미복을 입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었고 소리가 나지 않는 장화를 신은 탓인지 발을 옮겨 날쌔게 걸을 적마다 회중시계의 줄이 마구 흔들려 야광이 번쩍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드는 문득 외로워져 그를 따라잡으려고 애썼다.

"이봐! 난 바빠. 그러나 나하고 같이 가려거든 빨리 걸어야 하겠어. 너 내가 누군지 알아?"

", 빌버트 의사 선생님이시죠?"

"- 난 어디든지 알려져 있군.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는 직업이니까 당연하지."

빌버트는 떠돌이 돌팔이의사로 시골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었지만 그 외에는 주구 하나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조사를 피하기 위해 극도로 몸조심을 했기 때문이었다. 마을 사람들만이 그의 환자들이었고 웨섹스 일대에 퍼져있는 그의 평판도 마을 사람들 사이에만 한정되어 있었다. 그의 신분은 자본과 광고의 조직적인 제도를 가진 돌팔이의사들보다 훨씬 낮았고 그의 구역도 더욱 애매했다. 그는 사실 시대에 뒤떨어진 생존자였다. 그가 돌아다니는 지역은 상당히 없었다. 웨섹스 지방의 사방에 그의 발길이 거의 미치고 있었다.

어느 날 주드는, 이 남자가 어느 노파에게 아픈 다리의 묘약이라고 하면서 색을 넣은 돼지기름 한 병을 파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효험이 뚜렷한 그 연고는 돌팔이의사의 말을 빌리면 시나이 산(모세가 하느님에게서 십계를 받은 곳)의 풀을 뜯어 먹고 살며 생명을 걸지 않고는 포획할 수 없는 어떤 특별한 동물로 만든 약이라고 했는데, 노파는 그 대가로 보름에 1실링씩 분할 지급해서 1기니를 지불하기로 했다.

주드는 이 의사의 약에 관해 벌써 의혹을 품고 있었지만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는 인물임에는 틀림없으며, 별로 그런 전문적인 것에 관해서가 아니라면, 신용할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의사 선생님, 선생님은 크리스트민스터에 가보신 적이 있으시지요?"

"그럼, 여러 번 갔었지."

키가 크고 후리후리한 그가 대답했다.

"그곳은 내가 제일 자주 가는 것 중의 하나지."

"학문과 종교로 유명한 도시지요?"

"얘야, 네가 거기를 가 보았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 여하튼 대학 세탁부의 아들들까지도 라틴어로 말할 수 있다니까. 비평가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훌륭한 라틴어는 아니지만. 내가 대학 학부시절에는 그런 걸 자주 '부정확한 라틴어'라고 냉대했었지."

"그리고 그리스어는요?"

"글세 - 성직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신약성서를 원서로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 독학으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공부하고 싶습니다."

"멋진 희망이다. 각 언어의 문법부터 공부해야지."

", 언젠가 크리스트민스터로 갈 생각입니다."

"네가 그곳에 갈 때는 반드시 천식과 숨찬병은 물론 온갖 종류의 위장병을 모두 정확하게 고치는 묘약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오직 빌버트 의사뿐이라고 소문을 퍼뜨려주길 부탁하네. 한 통에 2실링 3펜스야. 특별히 정부의 보증인에 의한 인가도 받은 거니까."

"만인 제가 이 일대에서 선전해 주면 문법책을 구해주시겠어요?"

"너한테 내 것을 기꺼이 팔겠다. 내가 학교 다닌 때 사용했던 거야."

", 선생님. 고마워요!"

주드는 헐떡이며 감사를 표했다. 왜냐하면 의사의 걸음이 놀라울 정도로 빨라 주드는 옆구리가 쑤실 정도로 종종걸음을 쳐야 했기 때문이었다.

"넌 뒤에 처지는 게 좋겠구나, 어린 친구. , 이렇게 하자. 만일 네가 동네 집집마다 가서 빌버트 의사 선생의 환금연고와 구명수와 부인용 환약에 대해 선전을 꼭 해준다면 나는 너에게 문법책을 주고 기초를 가르쳐 주겠다.

"문법책은 어디로 가져오실 거지요?"

"나는 2주일 후의 같은 일요일, 725분에 꼭 여기를 지나갈 거야. 나의 행동은 유성이 궤도를 도는 것처럼 아주 정확하지."

"그럼 여기에서 만나 뵙도록 하겠습니다."

"내 약의 주문도 받아 가지고 오는 거지?"

", 의사 선생님."

주드는 말을 마친 다음 뒤쳐져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크리스트민스터로 접근하기 위해서 가능한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후 2주일동안 주드는 열심히 뛰어다녔고 그 생각이 마음속에 떠오를 때마다 얼굴에도 그것이 나타나서 미소지었다. 그 생각들은 소년을 맞이해주고 고개를 끄덕여 주는 사람들과도 같았다 - 그리고 그의 맑은 웃음소리에서 어떤 멋진 아이디어의 실마리를 잡았을 때 젊은이들의 얼굴에서 볼 수 있는 희한하게도 아름다운 그 빛이 나타났다.

마치 그들의 투명한 천성의 내면에 초자연적인 등불이 내걸려 그들의 주위가 천국이라는 기분 좋은 공상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았다.

주드는 많은 치료법을 알고 있는 그 남자와의 약속을 정직하게 지켰다. 주드는 이제야 마음속으로 그 남자를 신뢰했고 의사한테서 선금을 받은 대리인처럼 근처의 작은 마을들을 이리 저리로 걸어 돌아다녔다.

약속한 저녁, 그는 고원에서 몸도 움직이지 못한 채 - 그곳은 빌버트와 헤어졌던 장소였는데 - 서 있었다. 그리고 빌버트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돌팔이 의사는 정확하게 그 시간에 왔다. 그러나 놀랍게도 주드는 빌버트의 보조에 맞춰서 걸었지만 이 보행자는 단 일보도 속도를 늦추지 않고 젊은 동반자를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비록 2주일이 지난 저녁이지만 날이 꽤 밝았는데도 불구하고.....

주드는 틀림없이 자기가 다른 모자를 쓰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의사에게 격식을 갖추어 인사를 했다.

"그런데, 왜 그러지?"

의사는 아무 생각이 없는 듯이 말했다.

"제가 왔습니다."

"넌 누구지? - 그렇군! 주문 좀 받았니, 얘야?"

"."

주드는 세간에서 유명한 환약과 연고를 시험해 보겠다는 마을사람들의 이름과 주소를 알려주었다. 돌팔이의사는 주의 깊게 이들을 머리 속에 기억해 두었다.

"그런데 라틴어와 그리스어 문법책은요?"

주드의 목소리는 불안으로 떨렸다.

"그게 어떻다는 거야?"

"선생님이 학위를 얻기 전에 사용한 문법책을 가져다주시기로 했는데요."

", 그래, 그래! 깜빡했구나 - 깜빡! 너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내 어깨에 걸려 있어서 말이다. 얘야, 다른 일은 생각해 볼 겨를도 없었어."

주드는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충분히 자제했다. 그리고 무뚝뚝하고 괴로운 목소리로 거듭 말했다.

"가지고 오시지 않았군요!"

"그래. 그런데 환자들의 주문을 좀 더 많이 받아와야 한다. 그러면 다음번에 문법책을 가지고 오마."

주드는 뒤에 남았다. 그는 순진한 소년이었다. 그러나 때로는 어린이에게 주어지는 순간적으로 번쩍이는 천부적인 직관에 의해 그 돌팔이 의사가 얼마나 비열한 근성의 소유자인가를 곧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본성을 가진 사람으로부터는 어떤 지적인 빛도 얻을 수 없었다.

그가 상상 속에서 그리던 월계관의 잎은 떨어져 버렸다. 그는 대문 쪽으로 가서 그곳에 기대어 비통하게 울었다.

이러한 실망 끝에 잠시 망연한 기분이 계속되었다. 아마 알프레드스턴에 문법책을 주문하면 입수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돈이 필요했고 어떤 책을 주문해야 할지 사전 지식도 필요했다. 비록 몸은 의지할 곳이 있어 걱정 없었지만 어디까지나 남의 집에 얹혀서 얻어먹는 신세이기 때문에 그 자신이 자유롭게 쓸 돈은 한푼도 없었다.

오늘 날짜로 필로트슨 선생으로부터 피아노를 보내 달라는 편지가 와서 주드는 한 가지 생각을 짜냈다. 선생님께 편지를 보내 크리스트민스터에서 문법책을 입수해달라고 부탁하면 어떨까? 피아노의 상자 속에다 살짝 넣으면 반드시 수신인의 눈에 띄게 될 것이다. 낡은 헌책이라도 보내 달라면 어떨까? - 그것들도 대학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매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도를 대고모에게 말한다면 그것은 실패로 끝나게 될 것이다. 혼자서 결행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이삼일 더 숙고하고 나서 그것을 실행했다. 피아노가 발송되는 날 - 그날은 때마침 그의 생일이었지만 - 주드는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 앞으로 보내는 짐꾸러미 상자 속에 몰래 편지를 끼워 넣었다. 이런 소행이 드루실라 대고모에게 들통나 그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까봐 걱정되었다.

피아노는 발송되었다. 주드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고 아침이 되면 대고모가 일을 시작하기 전에 시골 우체국으로 가서 확인해 보았다. 마침내 한 개의 소포가 마을에 도착했다. 소포 안에 두 권의 얇은 책이 들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그것을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지고 가서 벌목한 느릅나무 아래에 앉아 펼쳐보았다.

주드가 처음 크리스트민스터에 대해 환희를 느끼고, 환영을 그리며 그 가능성을 꿈꿔 온 이래, 한 언어의 표현을 다른 언어로 바꾸는데 관련되는 그 모든 과정을 그는 호기심 있게 생각했다. 그가 배우고 싶다고 생각하는 언어의 문법은 우선 첫째로 비밀의 기호의 성질에 관한 규칙, 처방, 단서 등을 포함하고 있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리하여 일단 알게 되면 그것을 단지 응용함으로써 자국어의 무든 말들을 외국어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의 어린아이 같은 생각은, 사실은 '그림의 법칙' (그림이 발표한 인도 유럽 기어에서 게르만 기어로의 자음 추이에 관한 법칙)으로 보통 알려진 것을 극단의 수학적인 정밀함까지 추진한 것으로, 조잡한 규칙을 이상적인 완성까지 확대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필요한 언어의 단어는, 그것을 발견하는 기술을 습득만 하면 그것이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문법책이 이런 기술을 가르쳐줄 것이라고 그는 믿었다.

그렇게 때문에 그는 소포의 소인이 크리스트민스터국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끈을 풀고 책을 펼쳐 보았는데, 제일 먼저 나타난 라틴어 문법책이 눈에 띄었을 때 자신의 눈을 거의 믿을 수 없었다.

그 책은 낡은 것이었다. 낯선 이름들이 적혀 있는, 30년이나 묵은 얼룩진 책으로 본문에 대한 온갖 적의에서 장난기 섞인 낙서가 마구 씌어져 있었다. 또한 주드 자신의 연대보다도 20년이나 앞선 날짜가 제멋대로 휘갈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주드를 놀라게 하지 않았다.

그가 순진하게 상상한 것과 같은 음운전환의 법칙은 전혀 없었고 (있기는 좀 있지만 이 문법가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라틴어와 그리스의 모든 단어들을 꾸준히 수년간의 희생을 치루어 샅샅이 암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주드는 그 책들을 던져버렸고 느릅나무에 의지해 뒤로 누운 채 15분 정도 아주 비참한 기분이 되었다. 그는 전에도 자주 그랬듯이 모자를 얼굴 위까지 눌러쓰고 밀짚모자의 코 사이를 통해서 살짝 스며드는 태양을 지켜보았다. 이것이 라틴어이고 그리스어란다. 그렇다면 이성을 잃은 엄청난 환상을 본 것이다! 그가 장차 다가올 것일 라고 생각했던 매력은 정말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맛본 노고(출애굽기 제 1, 12에서 14)와 같았다.

크리스트민스터에 있는 위대한 학교의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두뇌를 가지고 있길래 몇만 개나 되는 단어를 하나하나씩 익힌다는 것일까! 하고 그는 곧 생각했다. 그의 머리로는 이런 것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그르다란 햇빛이 모자의 코를 통해 계속해서 그의 얼굴에 흘러들어올 때 그는 책 같은 것을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고 그러면 또 다른 책은 보고 싶지도 않게 되었을 것이며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이쪽으로 다가와 그의 고뇌를 물어보고 그의 생각이 문법학자보다도 훨씬 진보한 것이라고 말해 원기를 북돋워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무도 위로해 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오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주드는 자신의 대단한 오류를 인정하고 기세가 푹 꺾이어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다고 계속 생각했다.

 

1-5

 

계속해서 삼사 년 동안 메리 그린 마을 부근의 작은 길과 샛길을 따라서 이상하고 독특한 모양의 마차가 역시 이상하고 독특하게 지나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주드는 책을 받고 나서 한두 달이 지나는 동안 이제는 사어가 연출하는 빈약한 속임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실은 이런 고어의 본질에 대한 실망이 결국 크리스트민스터의 학문을 더욱더 숭배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어든, 활어든 언어에는 본래의 고유한 까다로움이 있다는 것을 주드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를 습득하는 것은 헤라클레스와 같은 대사업(네우스의 아들로 불사가 되기 위해서 12가지의 위업을 수행함)이기 때문에 거기에 끌려 가정했던 속성 학습법보다는 일보일보의 정복에 서서히 더 큰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소위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먼지 낀 책 속에 감겨 있는 관념 위에 세워진 산더미 같은 자료의 무게는 그를 자극해서 집요한 생쥐와 같은 교활성으로 그 무거운 것들을 하나씩 부분적으로 움직여 보려고 했다.

주드는 무뚝뚝한 독신인 대고모를 능력껏 도와서 방해가 되지 않도록 애를 썼다. 그래서 작은 시골 빵집의 장사도 자연히 커졌다. 늙고 머리가 축 처진 말도 경매에서 8파운드로 사들였고 포장을 엷은 갈색으로 칠한 덜거덕거리는 마차도 이삼 파운드 더 주고 샀다. 이 마차로 일주일에 세 번씩 바로 메리 그린 주위에 거주하는 마을 사람들과 외로운 소작인들에게 빵을 배달하는 것이 주드의 일이었다.

앞에서 언급한 독특한 모양이란 결국 마차 그 자체보다도 주드가 길을 따라 배달 가는 행동을 지칭한 말이었다. 이 마차는 주드가 '독학'으로 자신을 교육하는 장소였다. 말이 길과 어느 집에서 잠시 멈추어야 하는가를 알게 되자, 주드는 전면에 자리잡고 고삐를 축 늘어뜨리고, 읽고 있던 책을 포장에 매달린 가죽 줄로 눌러가면서 재치있게 펼친 채로 무릎 위에서 사전을 찾았고,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지만 시저, 베르길리우스 또는 호라티우스 등의 비교적 쉬운 문장을 잘 알지도 못한 채로 반소경이 비틀거리는 것처럼 더듬거리면서 읽었다.

이런 장면을 마음씨 좋은 선생이 바라보았다면 반드시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가 읽은 부분은 그 뜻을 파악하고 원문의 정신을 이해한다기보다는 추측하는 정도였지만, 그래도 타인으로부터 배우고 얻는 것과는 어딘가 다른 의미가 있는 것처럼 생각되는 때가 종종 있었다.

주드가 입수할 수 있었던 유일한 책은 프랑스 왕자판(루이 14세 때 왕자의 교육을 위해서 편집한 라틴어 교과서)의 낡은 책이었다. 왜냐하면 그 책들은 폐품이 되어 값도 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책도 태만한 학생들과는 달리 주드에게는 도움이 되었다. 그는 힘들고 외로운 행상의 나날 속에서도 최소한의 독서 량은 채웠다. 모르는 구문은 간혹 지나치게 되는 학생이나 가정교사에게 물었다. 이런 조잡한 임시변통의 방법으로 학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별로 없었겠지만 그는 자기가 더듬어 가고 싶은 길을 점점 파고 들어갔다.

주드는 지금쯤 무덤 속에 묻혀졌을 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이 낡은 책장들을 부지런히 읽었다. 그토록 먼 옛날에 씌어졌는데도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풍기는 선현들의 사상을 주드가 한창 파내는 동안, 뼈만 앙상한 늙은 말은 터벅터벅 그의 정해진 길을 따라 걸어갔다.

바로 그때, ' 빵장수, 오늘은 두 덩어리 주세요. 이렇게 오래된 빵은 반납이에요.'라는 노파의 외침소리가 나고 마차가 서면 디도의 비탄(아이네아스 영웅에 대한 연모의 정에 애타는 디도 여왕의 비탄소리)에서 깨어나 주드는 제정신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는 작은 길에서 자주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들을 알아차리지는 못했다. 점차 이웃 사람들은 주드의 일과 놀이(그들은 독서도 노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의 방식에 대해 입방아를 찧기 시작했다. 그런 방식은 본인에게는 편리할지 모르지만 같은 길을 여행하는 타인들에게는 아무래도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이웃에 사는 어느 주민이 그 지역의 경찰에게 소년이 마차를 몰면서 독서하는 것을 허용하지 말 것과 그를 현행범으로 체포해 알프레드스턴 경찰의 즉결 재판소에 끌고 가 노상에서의 위험한 행위를 한데 대해 벌금형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경찰은 주드를 잡기 위해 잠복했고 마침내 어느 날 그에게 경고 조치가 내려졌다.

주드는 매일 새벽 3시면 일어나 오븐에 불을 지피고 빵을 반죽해 구워야 했기 때문에 밤에는 빵 재료를 들여놓자마자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그래서 만일 마차를 타고 가는 동안 고전을 읽지 못한다면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한 한 전방이나 주위를 잘 살펴 멀리서 누군가가, 특히 경찰이 나타나면 빨리 책을 무릎 밑으로 숨기는 것만이 유일한 방안이었다. 하지만 경찰들도 주드의 배달마차가 지나가는 길을 되도록이면 피했다. 그렇게 외진 지역에서 어떤 일이 닥쳤을 때 가장 위험한 것은 주드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종종 생울타리 너머로 그의 마차가 눈에 띄면 경찰들은 다른 방향으로 순찰길을 바꾸어 가곤 했다.

주드 폴리가 16살쯤 되어 학업에 현저한 진보를 나타내던 어느 날, 귀로에 <백년 제가, (호라티우스가 지은 4행시. 19년으로 이루어진 범신론적인 찬가로 이교의 일신, 월신 등을 비롯한 로마의 산하, 영토, 영웅 등을 찬양함)를 더듬거리며 읽던 중 그는 때마침 '갈색의 집'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다. 어느새 주위 광선의 상태가 면했기 때문에 그는 퍼뜩 정신이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태양은 졌지만 반대 방향의 숲 뒤에선 보름달이 때마침 떠오르고 있었다. 마음 가득 시상이 차 오른 그는 문득 말을 멈추고 마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펼쳐진 책을 지닌 채 길가의 뚝방 위에 무릎을 꿇었다.

수년 전에 주드를 사닥다리 위에서 무릎 꿇게 한 일이 있던 때와 같은 충동적인 감격이 그의 몸을 휩쌌다. 그는 우선 월신을 향해 기도하고 그러고 나서 반대쪽 하늘에서 사라져가는 광채를 향해 '일신이여! 숲을 비추는 월신이여!(<백년 제가>의 제1) 라고 소리 내어 시를 읊었다. 그러자 월신들은 그의 거동을 부드럽게 꼬치꼬치 캘 듯이 지켜보는 것 같았다.

주드는 한낮의 햇빛 속에서는 결코 만족시킬 수 없는 범신론적 환상에 빠져들면서 이 찬가를 되풀이했다. 말은 그의 찬가가 끝날 때까지 조용히 서 있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자신의 미신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학자가 아니면 기독교 성직자기 되겠다는 자가 상식과 습관으로부터 이토록 빗나가 망각에 빠진다는 것은 자신의 소망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이것은 이단의 서적을 너무 읽었기 때문이었다.

순간 주드는 자신이 모순에 빠져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는 과연 인생의 목적에 들어맞는 완전히 올바른 서적을 읽고 있는지, 아닌지를 의아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교 문학과 크리스트민스터의 중세기풍의 대학, 즉 종교적 낭만이 배어 있는 석조의 전당 사이에는 어떤 조화도 거의 없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는 결국 독서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 기독교의 젊은이로서 잘못된 감정을 길러냈다고 결론을 내렸다. 사무엘 클라크가 편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초보자용의 그리스 원문대역판은 즐겼지만 헌 책방에서 우편으로 손에 넣은 그리스어 원문인 <신약성서>는 아직 공부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여태까지 익숙해진 이오니아 방언인 그리스어를 버리고 다른 새로운 방언을 택했으며 그후 오랫동안 그리스 바하(1745-1812, 독일 학자로 그리스어의 <4복음서> <사도서>를 출판했음) 의 원문으로 된 <복음서><사도행서>에만 독서를 국한했다.

게다가 어느 날 알프레드스턴에 갔을 때, 책방에서 이웃의 목사가 남겨놓았다는 초대 그리스도교 교부들의 서적을 발견해서 처음으로 교부문헌(초기 기독교 시애의 교부나 신학자들이 남긴 문헌)에 입문하게 되었다.

이러한 방침 변경으로 그는 일요일마다 걸어갈 수 있는 교회는 다 방문했고 15세기 제의 놋쇠와 묘석에 새겨진 라틴어의 비문을 판독하면서 다녔다. 이 와중에 그는 지력이 뛰어난 곱사등이 노파를 만났다. 그녀는 무엇이든지 악치는 대로 다 읽었고 광명과 학문 도시의 낭만적인 매력을 주드에게 소상하게 말해주었다. 그곳으로 꼭 가겠다고 주드가 굳게 결심한 것은 그 후부터였다.

그러나 그 도시에 간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현재도 한 푼의 수입이 없었다. 몇 년이 걸릴지 모를 지적 노동을 끝내는 동안 호구지책을 할 수 있는 직업다운 직업이나 안정된 일거리를 그는 한 가지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시민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먹는 것과 입는 것과 자는 곳이다. 그러나 먹을 것을 준비하는 노동으로 인한 수입은 너무 부족했다. 입을 것을 장만하는 일에는 마음이 내키질 않았다. 그러나 잠잘 곳을 마련하는 데는 마음이 내켰다.

도시에서는 집이 세워진다. 그래서 그도 집 짓는 일을 배우기로 했다. 그는 알지도 못하는 백부를 떠올렸다. 백부는 종매 수잔나의 아버지이고 교회 전속의 세금 공이었으며 어떤 재료로도 여하한 중세풍의 기술을 내보일 수 있는 수완이 있었다.

그런 일이라면 그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백부의 업적을 더듬어 보면, 그리고 학자의 혼을 담고 있는 건물의 뼈대들과 지내는 것이 그렇게 아주 빗나간 일도 아닐 것이다.

연습 삼아 그는 자그마한 석회암 덩어리를 얻어 공부는 잠시 중단하고 틈을 내 교구의 교회에 있는 성인상의 머리와 기둥의 머리 장식을 복사하는 데 열정을 쏟았다.

알프레드스턴에는 보잘것없는 석공 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래서 주드는 대고모의 작은 가게에서 자기 대신 일할 일군을 발견하자 곧 이 석공에게 노동을 하는 대신으로 적은 임금을 받기로 하였다. 여기서 주드는 적어도 석회암 가공법의 기초를 배우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얼마 후 그는 같은 장소의 교회설계사를 만나 이 건축가의 지도를 받으면서 기술을 익혔다. 마을 교회의 황폐한 석조 건물을 능숙해질 대까지 개수하며 솜씨를 익혔다.

이러한 기술을 익히는 것은 더욱 큰일을 하기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러나 석공이라는 직업 자체도 흥미를 느끼게 했다. 그는 이제 알프레드스턴의 작은 읍에서 주당 6일은 하숙을 하고 토요일 저녁때가 되면 메리그린 마을로 돌아왔다. 이리하여 그는 19세가 되었으며 20세가 되어갔다.

 

1-6

 

그의 생애 중에 잊지 못할 어느 토요일 오후 3시쯤, 주드는 알프레드스턴에서 메리그린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화창하고 온화한 여름 날씨였다.

그는 등에 연장을 짊어지고 걸었고 바구니에서는 작은 끌이 큰 것과 부딪치며 희미하게 짤랑거렸다. 주말이라 그는 일을 일찍 끝내고 평소에 잘 다니지 않던 우회로를 따라 시내를 빠져 나왔다. 대고모의 부탁으로 크레스콤 근처의 제분소를 방문하기로 약속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열에 들떠 있었다. 일이 년 후면 크리스트민스터에서 살게 되고 그렇게도 꿈꾸어오던 배움의 문을 두드리게 될 자신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 듯했다. 물론 그는 어떤 자격으로든 지금 당장 그곳에 갈 수 있었지만 그러나 그는 현재 그가 할 수 있는 것보다 조금은 더 확실한 생계수단을 가지고 그 도시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가 지금까지 해놓은 일들에 생각이 미치자 그는 온화한 만족감으로 전신이 충만해지는 것 같았다.

그는 때때로 길을 따라가면서 양쪽의 시골 풍경에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그것들은 거의 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런 행동은 그가 일에 몰두하지 않을 때에도 그가 하는 일에 익숙해진 습관화된 어떤 행위를 자동적으로 반복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를 정말로 집중하게 하는 한 가지는 자신이 이룩해 놓은 지적재산을 머리 속으로 평가하는 것이었다.

"나는 보통의 고존, 특히 라틴어를 읽는 데는 여느 학생의 능력 정도는 가지고 있단 말야."

이것은 사실이었다. 주드는 혼자 길을 걷는 외로움을 라틴어로 가상의 대화를 나누면서 달랠 수 있을 만큼 그것에 능숙했다.

"나는 <일리아드>를 두 번이나 읽었고 게다가 제9권의 피닉스의 연설이나 제 14권에 있는 헥토르와 아이아스의 싸움, 8권의 아킬레스가 무장하지 않고 싸움에 나오는 대목과 그가 입은 천상의 갑옷, 23권의 장례경기와 같은 대목들은 꽤 친숙해 있다. 나는 또한 헤시오도스를 얼마간 공부했고 투키디데스의 모음글 몇 편과 많은 희랍 성서 등도 공부했지. 다만 그리스의 방언에 대한 책이 한 가지만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유클리드 기하학의 첫 번째 6권과 11, 그리고 12권을 포함해서 수학도 어느 정도 공부했지. 그리고 대수학에 있어서도 간단한 문제 정도는 해낼 수 있어."

"난 유클리드 기하학의 첫 번째 5권과 11, 그리고 12권을 포함해서 수학도 어느 정도 공부했지. 그리고 대수학에 있어서도 간단한 문제 정도는 해낼 수 있어."

"나는 교부에 대해서도 좀 알고 로마와 영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좀 알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단지 초보일 뿐이다. 그러나 책을 구하기 어려운 여기에서는 더 많은 진전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크리스트민스터에 정착하는 것에 내 모든 심혈을 기울여야만 한다. 거기에서 나는 상당한 진전을 보게 될 것이고 내 현재의 지식은 어린애의 무지함처럼 보이게 될 것이다. 나는 돈을 모아야만 한다. 아니 모을 것이다. 그러면 어느 대학이든 한 군데쯤은 나에게 문호를 개방할 것이고 지금 당장은 나를 외면할지 몰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환영해 줄 것이다."

"나는 신학 박사가 될 거야."

그는 계속해서 꿈을 꾸었다. 그리고 순수하고 열성적이며 현명한 기독교인으로서 생활을 한다면 주교가 될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가 주교가 된다면 얼마나 좋은 모범이 되겠는가! 만약 그의 수입이 5천 파운드가 되면 45백 파운드를 어떤 형태로든 기부하고 나머지로 살아도 그에겐 사치스러운 생활이 될 것이다. 글세, 다시 생각해보니 주교는 어림없는 일이다. 그는 대수사에 밑줄을 그었다. 아마도 수사의 자격으로도 주교만큼이나 훌륭한 학식이 있으며 유용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주교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크리스트민스터에 정착하게 되면, 여기서는 구할 수 없는 책들을 읽게 될 것이다. 리비우스, 타키투스, 헤로도토스, 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아리스토파네스와 같은 것들을 말이야."

"하하하! 저런, 저런!"

다른 편 산울타리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는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의 생각은 계속되고 있었다.

"-에우리피데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루크레티우스, 에피테투스, 세네카 그리고 안토니우스. 그밖에도 나는 다른 것들을 섭렵해야만 한다. 교부들에 관해 철저하게 읽고 비드나 교회사도 일반적인 것은 보아야 한다. 히브리어도 훑어보아야 한다. 난 아직 글자밖에 모르니까."

"-그러나 나는 열심히 공부할 수 있다. 고맙게도 내겐 지구력이 있다.....크리스트민스터가 내게 입학을 허락해서 내 모교가 되게 해야지. 그리고 나는 그 학교가 가장 만족하는 그의 사랑하는 동문이 될 것이다."

미래에 대한 생각에 몰두하느라 주드의 걸음은 느렸다. 그리고 그는 마술램프에 의해 미래가 그곳에 던져지기라도 한 것처럼 땅을 쳐다보며 이제는 아주 조용히 서 있었다. 그때 갑자기 무엇인가 그의 귀를 날카롭게 철썩하고 때렸다. 그는 부드럽고 차가운 물체가 그에게 날아와 그의 발밑에 떨어졌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언 듯 보니 고기 조각이었다. 그 지방 사람들이 부츠에 윤을 내는데 사용하는 거세된 돼지의 특정부위였다. 돼지는 이 근방에는 아주 많았다. 불 웨섹스의 일부 지방에서는 많은 수의 돼지를 사육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울타리의 건너편에는 시냇물이 있었다. 그제야 처음으로 그는 작은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깨달았고 웃음소리가 그의 꿈들과 뒤섞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둑을 올라가 울타리 쪽을 보았다. 멀리 시냇물 쪽에 정원과 돼지 울타리가 있는 작은 농가가 있었다. 그 앞의 개울 주변에 돼지의 내장을 담은 바구니와 접시를 지닌 젊은 여자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흐르는 물에 그것들을 씻고 있었다. 마침내 그의 시선이 자신들에게 향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지 한두 명이 장난스럽게 그를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그 여자들은 주드가 자신들을 관찰하고 있는 것을 의식하고 얌전한 척 입을 다물고 열심히 헹구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

"고맙군요, 그래!"

주드가 간단히 말했다.

"난 던지지 않았어."

한 처녀가 옆사람에게 말했다. 마치 이 젊은 남자의 존재를 깨닫지 못했다는 투였다.

"나도 아니야."

두 번째 처녀가 대답했다.

", 애니, 너 어떻게 그럴 수 있니!"

세 번째 처녀가 말했다.

"만약 내가 무엇인가를 던진다면 그런 것은 안 던졌을 거다."

"후후! 나는 저런 남잔 싫어!"

그들은 웃었다. 그리고 위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보란 듯이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면서 그들의 일을 계속했다.

주드는 자기의 얼굴을 닦으면서 냉소적으로 그들의 말을 받아넘겼다.

"당신이 그것을 던지지 않았다. 이 말이죠!"

상류 쪽에 있는 세 사람 중 한 소녀에게 말했다.

그녀는 검은 눈동자의 처녀로 그렇게 예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봐줄 만한 용모였다. 비록 피부와 성격이 좀 거칠어 보이긴 했지만, 그녀는 둥글고 풍만한 가슴과 두터운 입술, 완벽한 치아 그리고 코친 종닭의 알 같은 풍만한 피부색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완전하고 실질적인 암컷에 지나지 않았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주드는 그의 마음속에 부글거리는 학문의 꿈을 방해한 것이 바로 이 여자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절대로 말해주지 않을 거예요."

그녀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누가 그랬건 남의 재산을 낭비해선 안됩니다."

", 그건 별거 아니에요."

"그러나 내 생각엔 당신은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은 모양인데?"

", 그래요, 만약 당신이 좋으시다면요."

"내가 내려갈까요? 아니면, 당신이 여기 위에 판자 다리로 오겠소?"

아마도 그녀는 이런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가 말을 하고 있을 때 그녀의 눈이 그의 눈에 와서 머물렀고 거기엔 앞으로 일어날 어떤 가능성에 대한 무언의 선언이 그녀와 그 사이에서 순간적으로 번뜩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드 폴리에 관한 한. 거기에는 어떤 종류의 예견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셋중에서 선택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여자는 이러한 경우 선택되어지는 것이고, 좀 더 친해지고자 하는 어떤 목적도 없이 사령부에서 오는 접촉 명령에 단순히 복종하듯이 그의 장래 계획과는 무관하게 인생의 최후 목표를 여성에게 두고 있는 그런 불행한 남자들의 부름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

게 된다.

그녀는 벌떡 일어서면서 말했다.

"거기 떨어져 있는 것을 갖다주세요."

주드는 그제서야 그녀가 자기 아버지의 사업과 관련된 어떤 문제에 대해 전할 말이 있었기 때문에 신호를 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연장이 든 바구니를 내려놓고 고기 덩어리를 주워 막대기로 좁은 길을 헤치면서 울타리를 넘어갔다.

판자 다리를 향해 그들은 시내의 양둑을 각기 평행으로 걸었다. 그 아가씨는 둑방이 가까워지자 주드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양쪽 뺨의 안쪽을 약간 빨아들였다. 그런 방법에 의해서 그녀가 마술 같이 웃고 있는 한, 그녀는 계속 머금고 있을 수 있는 완벽한 보조개를 만들어냈다. 자기 마음대로 보조개를 만들어내는 것은 알려지지 않은 기교는 아니었지만, 많은 여자들이 시도하는데 비한다면 석 훌륭하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들은 판자 다리 중간에서 만났다. 주드는 그녀의 활 같은 무기를 되던져주면서 그녀가 왜 그에게 손을 흔드는 대신에 이 기발한 대포를 사용해 그를 무례하게 멈추게 했는지 그 설명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다리의 난간을 손으로 잡고 몸을 앞뒤로 흔들면서 다른 쪽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연애의 호기심으로 그녀는 눈을 돌려 그를 샅샅이 훑어보았다.

"당신은 내가 그런 수치스러운 물건을 던졌다고 생각하시진 않으시겠죠?"

", 물론 아니에요."

"우린 어떤 것도 내버리기를 싫어하시는 성격인 아버지를 위해 이일을 하고 있었어요. 그는 그것을 가죽에 바르는 방수지로 사용한대요."

그녀는 잔디 위에 있는 고깃덩어리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그것을 던졌을까요?"

주드는 그녀의 말을 의심하고 있었지만 예의상 정중하게 물었다.

"뻔뻔스럽기 때문이죠. 하지만 아무에게도 내가 말했다고 하지 마세요, 꼭이요!"

"내가 어떻게 말할 수 있겠어요, 난 당신의 이름도 모르는데."

", 이런, 내 이름을 말해드릴까요?"

"그래요!"

"아라벨라 돈이에요. 나는 여기 살고 있어요."

"내가 만일 이 길로 자주 다녔다면 그 사실을 이미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주로 큰길을 따라 곧장 다니거든요."

"우리 아버지는 돼지를 치세요. 친구들은 내가 순대를 만들 내장 씻는 것을 돕고 있어요."

그들은 주금씩 이야기를 진행시키며 다리 난간에 기대어 서 있었다. 아라벨라의 몸집과 인품이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는 남자에 대한 여자의 무언의 부름은 드디어 주드를 본의 아니게 그 장소에 못박아 놓았다. 그것은 그에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지금 이 순간까지 주드는 여자를 조금도 여자로 보지 않았고 성이란 것도 마치 그의 인생과 목적 밖의 어떤 존재로 막연히 여겨왔을 뿐이었다. 그는 그녀의 눈에서 입으로, 입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고의 노출된 둥근 팔로 시선을 옮겼다. 팔은 차가운 물에 젖어 얼룩덜룩하게 반점이 생겨 있었고 대리석처럼 단단해 보였다.

"당신은 정말 멋진 처녀로군요!"

그는 중얼거렸다. 그녀의 매력에 대한 그의 느낌을 표현하기에는 말조차 필요하지 않았다.

", 당신은 나를 일요일에 보셔야만 해요!"

그녀는 기분이 좋아져서 말했다.

"그래도 될까요?"

그가 물었다.

"그것은 당신 생각 여하에 달려 있어요. 지금은 나를 따라다니는 사람이 없지만 한두 주일 후면 생길지도 모르지요."

그녀는 웃지 않고 말했다. 그래서 보조개가 사라졌다. 주드는 이상하게 기분이 붕 떠 있는 느낌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당신은 날 만날 건가요?"

"좋아요."

그녀는 이맘때쯤 잠시 옆으로 얼굴을 돌려서, 말하기 전에 뺨 안쪽을 빨아들여 다시 한 번 보조개를 만들었다. 그러나 주드는 아직 그녀의 전반적인 인상에 대해서는 더 깊이 알지 못했다.

"이번 일요일은요?"

그는 크게 마음먹고 말을 했다.

"그건 내일이지요?"

"그래요."

"내가 찾아갈까요?"

"."

그녀는 승리감에 들떠 얼굴이 상기되었고 되돌아서면서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시냇가의 풀밭으로 내려가 그녀의 동료들과 다시 합류했다.

주드 폴리는 연장 바구니를 어깨에 메고 자신이 생각해 봐도 어이가 없을 정도의 정열을 지닌 채 멍하니 그의 외로운 길을 다시 걸어갔다. 그가 지금 들이키는 공기는 아주 새로운 공기였다. 이것은 그가 어딜 가든지 따라다녔으며 그것이 얼마나 계속될지는 알 수 없지만 여하튼 한 장의 유리로 가리는 것처럼 그의 현실의 호흡에서 나누어진 새로운 것이었다. 단지 이삼 분 전까지만 해도 그가 그렇게 명확하게 틀에 짜놓은 독서, 노동과 배움에 대한 목적들이 자신도 모르게 와르르 무너져내려 한구석으로 밀려가고 말았다.

"그래, 이건 단지 잠깐의 즐거움이야."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를 끌어들이는 그 처녀의 본성에는 무언가 부족함이 있었지만 어떤 풍부함이 막연하게나마 느껴졌다. 상식 있는 사람은 그것을 인식할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 여자를 잠시동안의 위안거리 정도로 단정해둘 필요가 있었다.

그녀에게 있는 어떤 것은, 문학의 연구나 크리스트민스터로 가는 장대한 꿈에 몰두하는 주드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전적으로 반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것이었다. 그녀가 처음에 그를 공격할 때 그런 화살 같은 무기를 선택한 것은 그녀가 정숙한 아가씨가 못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런 것을 그는 지적인 안목으로 깨닫게 되었지만 그것마저 금방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마치 반짝이는 등불에 의해 벽에 새겨진 비명이 일순간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과도 같은 이치였다. 스쳐 가는 이러한 분별의 힘이 곧 사라지자 밀려오는 신선하고 격렬한 쾌락에 대한 생각으로 주드는 온전히 자신을 가눌 수가 없게 되었다. 바로 자기 옆에 놓였는데도 지금껏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감각적 흥미의 새로운 수로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가슴에 불을 질러 놓은 이성의 한 여자를, 다가오는 일요일에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는 동안 그 아가씨는 동료들과 합류해서, 맑은 시냇물에 물을 튕겨가며 내장을 두드리고 헹구는 일을 조용히 다시 시작했다.

"너 그 사람을 사로잡았니?"

애니라고 부르는 소녀가 간단히 물었다.

"몰라, 그것보다 다른 걸 던질 걸 그랬어!"

아라벨라가 후회스러운 듯이 중얼거렸다.

"괜찮아! 비록 네가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몰라. 그는 메리그린에 있는 두르실라 폴리 할머니의 빵마차를 몰다가 알프레드스턴에서 일한 애. 그때부터 그는 매우 콧대가 높아졌고 항상 책을 읽고 다닌대. 사람들이 그러는데 그는 학자가 되고 싶어 한대."

"그가 무엇이 되든 상관 안해. 그러니 너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말아줘."

", 넌 아니라고! 우릴 속이려고 할 필요는 없어! 만일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그이와 이야기한 거니? 네가 좋아하든 안 하든 그는 아이처럼 단순한 사람이야. 난 다 알고 있었단다. 네가 다리 위에서 말을 건넸을 때 마치 태어나서 여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너를 쳐다보는 그를 말이야. 그러니까 그 사람이 조금이라도 좋아하는 여자라면 얼마든지 그를 낚아챌 수 있어, 만일 옳은 방법으로 그를 잡기만 한다면 말이야."

 

1-7

 

다음날 주드 폴리는 비스듬히 천장이 기울어져 있는 방에서 탁자 위에 있는 책들과 그 위 벽토에 지난 몇 달 동안 등불 연기에 그을린 검은 반점을 바라보며 쉬었다.

그가 아라벨라 돈을 만나고 24시간이 지난 오후였다. 그는 지난주 동안 하나의 목적 - 그리스 성서를 다시 읽는 것 -을 위해 오늘 오후를 비워놓기로 결심했었다. 그의 새로운 성서는 그가 가지고 있는 낡은 복사본보다 더 훌륭한 것으로 많은 교정자들에 의해 수정된 것이었다. 그리스 바하의 원전을 따랐고, 여백에는 주석이 있었다. 그는 이 책을 자랑스러워했는데 대담하게도 런던에 있는 출판업자에게 주문하여 얻은, 이전에는 시도해 본 적이 없는 방식으로 구입한 책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일주일에 이틀밖에 자지 않는 대고모의 조용한 지붕 밑에서 전과 같이 오후의 독서가 주는 기쁨을 즐길 작정이었다. 그러나 그의 원활하고 조용한 일상생활에 방해가 되는 새로운 사건이 어제 일어났다. 당장 그의 기분은 겨울의 허물을 벗어버린 뱀이 새로 생긴 피부의 훌륭함과 민감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느낌이 되었다.

그는 절대 그녀를 만나러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앉아서 성서를 펴들고 양 팔꿈치를 탁자 위에 꼿꼿이 세워 관자놀이를 손으로 짚은 채. <신약성서>를 읽기 시작했다.

H KAI NH I AHKH.

그녀를 데리러 가겠다고 약속했던가? 분명히 그랬다. 가엾게도 그녀는 집에서 기다리겠지. 그리고는 그 때문에 오후를 망치겠지. 약속은 고사하고라도, 그녀에게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녀와의 신용을 깨뜨려서는 안 되었다.

비록 일요일과 평일 저녁만이 그의 유일한 독서시간이었지만, 다른 젊은이들이 그토록 여러 번 놀면서 오후를 지내는 것에 비하면, 오후를 한 번쯤 이런 일로 보낼 여유를 가져도 지장은 없을 것이다. 오늘이 지나면 아마도 그녀를 다시 만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장래의 계획을 고려하면 이와 같은 일은 있어서도 안 되었다.

요약컨대, 엄청난 억센 어떤 힘이 현실적으로 그에게 강하게 작용했다. 지금까지 그를 움직였던 정신이라든가 감화력 같은 것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힘이었다. 이 힘은 그의 이성과 의지를 조금도 돌보아주지 않는 듯했고, 이른바 그의 고상한 의도를 위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 같았으며, 난폭한 교사가 짓궂은 학생의 목덜미를 잡고 끌고 감으로써, 그가 결국 존경도 하지 않고, 한 지역의 같은 주민이라는 점 말고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는 한 여인의 포옹을 향해서 떠밀려 가는 듯이 느껴졌다.

<신약성서>의 문구도 지금은 더 이상 주드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미 마음을 굳힌 주드는 벌떡 일나서서 방을 가로질러 나갔다. 사실 그는 이런 경우를 예상하고 이미 나들이옷을 입고 있었다. 3분이 지나자 그는 집을 나서서 고지대의 맞은편 언덕에 있는 아라벨라의 외딴집과 마을 사이에 있는 텅 비어 공허하고 넓은 보리밭을 가로질러 길을 내려갔다.

그는 걸으면서 시계를 쳐다보았다. 두 시간 후면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았고 마차 시간이 지난 후엔 책 읽을 시간도 있을 것 같았다.

작은 길이 차도와 맞닿은 곳에 있는 몇 그루의 생기 없는 전나무와 한 채의 작은 집을 지나치자, 그는 서둘러 그 옆을 자나 돌아볼 틈도 없이 왼쪽으로 험한 내리막을 따라 '갈색의 집' 서쪽으로 걸어갔다.

거기 백악층 모양으로 된 곳에서 주드는 시냇물을 따라 걸어서 마침내 그녀의 집에 도착했다.

돼지우리 냄새가 집 뒤에서 흘러나왔고, 그 냄새의 주인공들이 꿀꿀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마당으로 들어서서 지팡이 손잡이로 문을 두들겼다.

누군가가 창문으로 그를 보았는지, 집안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라벨라! 네 남자 친구가 너를 꾀러 온 모양이다. 서둘러 가봐라, 얘야!"

주드는 그 소리에 움찔했다.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그녀를 꾀러 온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는 그녀와 함께 거닐 참이었으며, 아마도 키스는 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꾀다'는 말은 너무 목적성이 강한 느낌이 들어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문이 열리고 그가 들어서자 눈부신 나들이옷을 차려입은 아라벨라가 2층에서 내려왔다.

"앉게나,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가?"

검은 구레나룻이 나 있는 정력적인 그녀의 아버지가 밖에서 들었던 것과 같은 사무적인 어조로 말했다.

"곧 밖으로 나가는 게 좋지 않겠어요?"

그녀가 주드에게 속삭였다.

"그러지요."

그가 말했다.

"'갈색의 집' 까지 갔다 오지요. 30분이면 될 겁니다."

아라벨라는 누추한 환경 속에서도 너무 예뻤기 때문에 그는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으며, 지금까지 자기를 괴롭혔던 모든 불안이 사라졌다.

두 사람은 우선 넓은 고지대의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오르막길을 오르는 동안 그는 이따금 그녀의 손을 잡아 도와주었다. 그러고 나서 산꼭대기를 따라 왼편으로 꺾어 들어 '갈색의 집'에서 큰길과 교차하는 지점까지 산마루 길로 들어섰다. 이곳이 바로 크리스트민스터를 보고 싶은 마음에 가끔 찾아오곤 하던 곳이었다.

그는 아라벨라에게 이 지방의 가장 흔해 바진 객담을 이야기했는데 이때의 열성은 최근에 찬양 받는 대학의 모든 특대 연구생들과 철학을 논할 때 느꼈던 열의보다 더 대단했다.

그가 무릎을 꿇고서 다이아나 여신이나 피버스 일신에게 소원을 빌었던 장소들을 지나면서도 신화에 그러한 신들이 있었는지 생각하지 못했고 태양은 아라벨라의 얼굴을 비추는 데 필요한 등불일 뿐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는 형용할 수 없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었다.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초기의 학자, 미래의 문학박사, 교수, 고위직 성직자 등이 되어야 할 주드는 나들이옷에 리본을 달고서 자기와 산보를 해주고 있는 이 예쁜 시골 아가씨의 은혜를 베푸는 듯한 태도에 명예와 영광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갈색의 집'에 도착했다. 이 지점에서 주드는 되돌아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광활한 북쪽 풍경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들로부터 2마일쯤 떨어진 거리에 있는 작은 도시 근방에서 짙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불이 났어요!"

아라벨라가 말했다.

"달려가서 구경해요. 그리 멀지 않으니까요!"

주드의 가슴속에 꿈틀거리기 시작한 그 정 때문에 이제 그녀의 기호를 꺾어보겠다는 의지는 남아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와 더 오래 있을 구실이 생겨 그는 더욱 기뻤다. 그들은 바른 걸음으로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언덕 밑 평지에 도착해서 1마일쯤 걸어갔을 때 그들은 화재 현장이 생각보다 훨씬 더 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가보기로 시작한 바에야,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5시 정각에 이르러서야 그들은 화재가 난 장소에 도착했다. 메리그린에서 약 6마일 정도였으며 아라벨라의 집에서는 3마일 덜어진 곳이었다. 그들이 거기에 도착하지 화재는 이미 진화되었으므로 처참한 화재 현장을 잠시 살펴본 후에 왔던 길로 되돌아섰다. 그들은 알프레드스턴의 시내를 거쳐 돌아가기로 했다.

아라벨라가 차로 마시고 싶다고 말해서, 그들은 그다지 훌륭하지 않은 선술집에 들어가 차를 주문했다. 맥주를 주문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들은 오래 기다려야만 했다. 여종업원이 주드를 알아보고는 안에 있는 여주인에게 속삭이듯 놀라움을 표시했다. '유별나게 거들먹거리던' 그 학생이 저속하게 몸을 굽혀 아라벨라와 교제한다는 내용이었다. 아라벨라는 어떤 말인가를 추측하고 애인의 진지하고 온화한 시선을 응시하면서 웃었다. 그것은 사냥감을 손에 쥐고 있는 여자의 야비한 승리감에 찬 웃음이었다.

그들은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벽에 걸려있는 삼손과 데릴라의 사진과 탁자 위에 있는 둥근 맥주의 앙금을 보았고 발밑에 있는 톱밥으로 가득한 타구를 둘러보았다. 이 장소의 전경은 주드에게 실망을 주었다. 저녁 해가 비스듬히 비치고 있던 일요일 저녁이라 술마시기에는 때가 너무 이르고 달리 쉴 만한 곳도 찾지 못해서 운 나쁜 여행자가 하는 수 없이 묵고 있는 술집 같은 느낌을 주었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차가 나오기를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어쩔 도리가 없잖아요?"

주드가 말했다.

"당신 집까진 3마일을 더 걸어가야 하니까요."

"맥주 같은 건 있을 거예요."

아라벨라가 말했다.

"맥주요, , 그래요. 그걸 잊고 있었군요. 일요일 저녁에 선술집에 와서 맥주를 주문한다는 데 좀 별나기는 하지만요."

"그렇지만 우린 그럴 생각은 없었어요."

"그랬지요."

주드는 이쯤 되자 이렇게 성미에 맞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빠져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맥주를 시켰고 맥주는 곧 나왔다.

아라벨라가 그것을 맛보았다.

"으아! 맛이 없어요."

그녀가 말했다.

주드도 맥주 맛을 보았다.

"왜 그래요?"

그가 말했다.

"사실 난 맥주 맛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꽤 좋아하지요. 그런데, 독서하는 데 좋지 않아서 커피를 더 즐겨요. 그러나 이 맥주는 괜찮은 것 같은데요."

"섞였단 말이에요 - 마시지 못하겠어요!"

그녀가 이 맥주에서 맛을 가려낸 성분 중에는 맥아와 호프 외에도 서너 가지를 더 언급했기 때문에 주드는 깜짝 놀랐다.

"별걸 다 알고 있군요!"

그는 기분 좋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녀는 맥주에 대한 불평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몫을 다 마셨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 길을 나섰다. 이제는 날이 거의 저물어 시내의 불빛이 비추지 않는 곳까지 오게 되자 그들은 바짝 붙어서 걸었고 드디어 몸과 몸이 맞닿게 되었다. 그녀는 그가 왜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지 않는지 의아해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는 아주 대담한 것처럼 보이는 것을 말했을 뿐이었다.

"내 팔을 잡아요.'

그녀는 그의 팔을 잡고서 그의 어깨 쪽까지 접근했다. 주드는 여체의 온기를 느끼면서 한 팔에는 지팡이를 끼고 오른팔로는 제자리에 있는 그녀의 오른팔을 잡았다.

"우린 이 정도면 친한 사이인가요?"

그가 그녀를 살폈다.

"그래요."

그녀는 말하며 혼자 속으로 덧붙였다.

'좀 미지근한 사내군.'

그도 혼자 생각했다.

'내가 얼마나 타락했는가!'

이렇게 두 사람이 고지대의 기슭에 다다르자 어둠 속에서도 희뿌옇게 도로가 오르막길로 뻗어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 지점에서 아라벨라의 집으로 통하는 외길은 경사면을 올라가서 오른쪽의 골자기로 다시 내려가도록 되어 있었다. 그들이 다 올라가기 전에 두 남자와 거의 부닥칠 뻔했다. 이들은 풀밭 사이로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연애하는 사람들은 - 사시사철 날씨를 가리지 않고 바깥에서 쏘다니는 걸 볼 수 있지요. 연애하는 사람들과 집없는 개들 말이요."

그들 중 한 사람이 말하더니 함께 언덕을 내려가 자취를 감추었다.

아라벨라는 가볍게 킥킥거렸다.

"우리는 연인들인가요?"

주드가 물었다.

"그쪽에서 더 잘 알면서요."

"그런가요, 그쪽에서 말할 수도 있잖아요?"

그들은 대답 대신으로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주드는 그 몸짓을 알아차리고 그녀의 허리에 한쪽 팔을 감고서 끌어당겨 그녀에게 키스를 했다.

그들은 더 이상 팔짱을 끼고 걷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원하는 대로 서로 부둥켜안았다. 주드는 날이 어두운데 어떻겠느냐고 혼잣말을 뇌까렸다. 그들은 긴 오르막길을 어느 정도 올라갔을 때 약속이라도 한 듯이 멈추었는데 그때 그는 다시 그녀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들이 정상에 오르자 그는 다시 한번 그녀에게 키스를 했다.

"손은 그대로 두어도 괜찮아요, 원한다면요."

그녀가 상냥하게 말했다.

그는 그녀가 말한 대로했다. 그리고 그녀가 얼마나 믿음직한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천천히 그녀의 집을 향해 걸어갔다. 그가 자신의 집을 나섰을 때의 시간은 세시 반이었고 다섯시 반까지는 집에 돌아와 <신약성서>를 읽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다시 포옹하고 나서 그녀의 집까지 데려다주었을 때는 이미 아홉 시였다.

그녀는 잠깐만이라도 집으로 들어가자고 권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이상하게 생각되어 마치 어둠 속을 혼자서 걸어온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양보를 했고 그녀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열리자, 그녀의 부모님 외에도 몇몇 이웃사람들이 빙 둘러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모두 축하한다는 듯한 말을 했고 주드를 장차 아라벨라의 남편감으로 진지하게 맞아들였다.

그들과 주드는 전연 별개의 세계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 장소의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아 당황했다. 그는 이럴 생각은 아니었다. 오늘 오후 단 한 번만이라도 아라벨라와 유쾌하게 산책하고 싶은 것뿐이었다. 이것이 전부였다. 그는 아라벨라의 계모인, 평범한 생김새에 품격이고 뭐고 없는 단순하고 조용한 여자와 대화를 나누었을 뿐 오래 머물러 있지는 않았다. 그는 그들 모두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안도감을 느끼면서 고원을 넘어가는 길로 뛰쳐나왔다.

그러나 그런 기분도 잠시일 뿐 얼마 안 있어 아라벨라가 다시 그의 마음을 독차지하게 되었다. 그는 걸으면서 어제의 주드와는 별개의 인간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책이 도대체 어떻다는 것인가? 여태까지 매일 한순간도 헛되지 않으려고 그렇게 엄격하게 고수해 온 의지란 뭣이란 말인가? '헛되도다!' 이것은 보는 사람의 견해에 따라서 뜻이 달랐다. 그 자신은 이제 처음으로 삶의 보람을 맛보게 되었다.

생을 헛되게 산 것이 아니었다. 대학졸업생이 되거나 목사가 되거나 아니면 교황 따위가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여자를 사랑하는 편이 더 멋있었다.

그가 집에 돌아왔을 때, 대고모는 이미 잠자리에 들어있었다. 공부를 게을리했다는 막연한 느낌이 자신의 눈앞에 있는 모든 사물들의 표면에 씌어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는 등불을 켜지 않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의 방의 어두운 내부는 그를 맞아서 슬픈 인사로 말을 건넸다.

책은 마치 그가 버리고 가버린 듯 펼쳐져 있었고 표지에 대문자로 씌어 있는 '신약성서(H KAI NH I AHKH.)'라고 죽은 사람의 아직 덜 감긴 눈처럼, 어두운 별빛 속에서 원망이라도 하듯 자기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주드는 다음 날 아침 일찍, 늘 그렇듯이 일주일간 집을 비우기 위해 대고모의 집을 떠나야만 했다. 연장과 필수품, 읽지 않고 내버려 둔 책등속을 바구니에 넣었을 때 그는 허망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자신의 열광적인 행위를 위해 자기 자신에게까지도 숨기려고 했다. 이에 반해 아라벨라는 그녀의 모든 친구와 친지들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는 몇 시간 전 어둠 속에 싸여 연인과 나란히 거닐었던 그 길을 어슴푸레한 새벽빛에 의지해 더듬더듬 언덕의 아래쪽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천천히 걷다가 그는 처음으로 그녀와 키스했던 자리에 섰다.

해가 방금 전에 떴기 때문에 아마 그후로 그곳을 지나갔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주드는 지면을 바라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그가 허리를 굽혀 가까이 바라보니 그들이 서로 꼭 껴안고 서 있을 때 생긴 그들의 발자국이 축축한 흙 위에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 가까스로 보였다. 그녀는 지금 그 자리에 없지만 자연이라는 천 위에 상상력이 아로새겨진 자수모양(워즈워스와 키츠의 시 인용구)은 고거 그대로의 그녀의 존재를 너무 잘 나타내주었기 때문에 그의 가슴속에는 무엇으로도 메꿀수 없는 공허함이 차지하고 있었다.

가지를 자른 버드나무 한 그루가 그 장소 가까이에 있었다. 그 나무는 세간에 있는 보통의 버드나무와는 달라서 언젠가 본 기억이 있었다. 약속한 대로 그녀를 만날 수 있는 날까지의 6일간이 사라져 버릴 수만 있다면, 가령 자기의 명이 이번 주로 한정된 것이라고 해도 무방할 터였다 - 이것을 그는 얼마나 절실하게 소망했던가.

한 시간 반쯤 지나자 아라벨라가 같은 길을 토요일에 함께 있었던 두 명의 친구와 걸어갔다. 그녀는 키스했던 그 장소와 그것을 알려주는 버드나무도 무심코 지나쳤다. 그러나 키스한 사실에 대해서는 다른 두 사람에게 그저 털어놓기만 했다.

"그리고, 그가 너한테 뭐라고 하든."

", 그러니까....."

그녀는 주드의 부드러운 말들을 차례차례로 들려주었다. 만일 주드가 울타리 뒤에서 전날 저녁에 있었던 자신의 비밀과 행동들이 모조리 폭로되는 것을 들었다면 분명히 대경실색했을 것이다.

"그 남자가 너한테 푹 빠졌나봐! 빠져도 대단히 말야!"

애니가 분별 있는 척 속삭였다.

"넌 좋겠다!"

잠시 후에, 아라벨라는 묘하게도 나직하고 굶주린 듯한 육감적인 어조로 대답했다.

"그 사람 나한테 반했어. 틀림없어! 그러나 난 반했다는 건 마음에 안 차. 그 사람의 것이 되고 싶어 - 결혼해줘야 해! 난 그 사람을 가져야 해. 만일 내가 그에게 나 자신을 바치지 못한다면 난 미쳐버릴 거야! 내가 그를 처음으로 보았을 때 그렇게 해야 한다고 느꼈었어!"

"그는 낭만적으로 곧고 정직하니까, 네가 올바른 방법으로만 그를 붙들면 남편으로 삼을 수 있을 거야."

아라벨라는 잠시 생각한 후에 물었다.

"올바른 방법이 뭐야?"

"아니, 모르고 있어 - 정말 몰라!"

세 번째 여자인 사라가 말했다.

"난 정말 몰라 - 그렇지만 보통 하는 것처럼 사랑을 설득하기는 해도 사내가 너무 기어오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정도지!"

세 번째 여자가 두 번째 여자를 보면서 말했다.

"얘는 정말로 모르고 있나봐!"

"분명히 모르고 있어!"

애니가 말했다.

"도시에서 살았다고 해도 괜찮을 애가 말야! 그럼 우리가 좋은 걸 가르쳐줘야겠구나. 나한테도 배울 게 있을 테니까."

"그래, 어떻게 하면 좋은데, 남자를 틀림없이 잡는다는 게? 난 순진해서 아무것도 모르니까 아는 대로 다 털어놓아 봐!"

"남편으로 만드는 거야."

"남편으로."

"그 사람같이 의리 있고 진실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시골 사람을 골라서. 군인이라든가 뱃사람이라든가 여기저기 도시에서 온 사람이라든가 그리고 불쌍한 여자들을 속이는 남자들은 안 돼. 난 친구가 그런 해를 입는 건 원치 않아."

"그런 사람 같으면 좋겠는데!"

아라벨라의 친구들은 서로 쳐다보고 나서는 익살맞게 눈을 치켜뜨고 능글맞게 웃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한 여자가 아라벨라에게 가까이 다가가서는 근처에 아무도 없는데도 낮은 목소리로 내용을 말해주었고 다른 여자는 아라벨라가 어떤 반응을 보여줄 것인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지켜보았다.

"어머나!"

아라벨라는 천천히 말을 했다.

"난 그런 생각은 전혀 못 했어! 그렇지만 그 남자가 의리 없는 인간이라면? 그렇다면 여자가 그런 짓을 안 하느니만 못하지!"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 새끼를 잡지! 게다가, 너는 일을 벌이기 전에 그 사람이 의리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해. 너는 틀림없이 안전할 거야. 나한테 그런 기회가 오기만 한다면! 많은 아가씨들이 그렇게 한단 말이야. 그렇지 않고서야 도대체 여자들이 어떻게 결혼을 한단 말이니?"

아라벨라는 생각에 잠겨 조용히 걸어갔다.

"해보겠어!"

그녀는 속삭였다. 그러나 친구들에게 말한 것은 아니었다.

 

1-8

 

어느 주말, 주드는 여느 때처럼 알프레드스턴에 있는 그의 하숙집을 나와 메리그린에 있는 대고모에게로 떠났다. 이 길은 이제 침울한 늙은 친척을 만나고 싶은 것과는 전혀 다른 큰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언덕을 오르기 전에 오른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것은 정해진 약속에 의해서가 아닌 단지 지나는 길에 잠깐 아라벨라를 보려는 의도였다. 그녀의 집에 도착하기 전에 그의 민첩한 눈은 마당 생울타리 너머에서 여기저기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그녀의 머리를 알아볼 수 있었다. 문안으로 들어서자 세 마리의 살찌지 않은 돼지새끼들이 우리를 훌쩍 뛰어넘어 도망쳤고 그녀는 우리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몰아넣으려고 혼자서 애를 쓰고 있었다.

주드를 보았을 때 그녀의 표정은 돼지들을 몰고 있었던 딱딱함에서 사랑으로 가득찬 부드러운 표정으로 변했다. 그녀는 연민의 눈으로 주드를 보았다. 돼지들은 그 틈을 이용해 몸을 돌려 도망쳐버렸다.

"아침에 겨우 가둬 놓았는데."

그녀는 소리지르며 애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돼지를 쫓는 데만 몰두했다.

"스패들홀트 농장에서 바로 어제 데리고 온 것들이에요. 거기서 아버지가 아주 비싸게 사오신건데 - 제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모양이네. 어리석은 것들! 마당문 좀 닫고 돼지 모는 것 좀 도와주실래요? 집에 남자라고는 아무도 없고 어머니만 계세요. 신경 쓰지 않으면 놓쳐버리거든요."

그는 그녀를 돕기 위해 쌓아둔 감자나 양배추를 뛰어넘으며 잽싸게 움직였다. 가끔씩 둘이 함께 뛰기도 했고 그때마다 그녀를 붙들고 잠시 동안 키스했다. 첫 번째 돼지는 금방 돌아왔고 두 번째 것은 약간 힘들었다. 그런데 다리가 긴 세 번째 놈은 고집이 세고 날쌔서 마당 생울타리의 구멍을 빠져나가 샛길로 도망쳐버렸다.

"따라가지 않으면 놓쳐요!"

그녀가 말했다.

"빨리 날 따라오세요."

아라벨라는 단숨에 돼지 뒤를 따라 밖으로 뛰어나왔다. 주드는 그녀와 나란히 뛰었고 달아나는 돼지를 시야에서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이따금 그들은 지나가는 소년에게 잡아달라고 외쳐 보았으나 돼지는 교묘하게 빠져나가 전처럼 계속 뛰어갔다.

"내손을 잡아."

주드가 말했다.

"숨이 찬가봐."

아라벨라는 기꺼이 뜨거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뛰어갔다.

"돼지를 사올 때 집까지 몰고 왔기 때문에 이렇게 된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그렇게 하면 꼭 돌아가는 길을 알게 되거든요. 마차로 실어왔어야 하는 건데."

이때쯤 돼지는 넓은 고지로 통하는 열려진 문까지 도달했다. 문을 통과한 돼지는 짧은 다리가 할 수 있는 한, 민첩하게 달렸다. 만일 수적 자들도 문안으로 들어와 고지의 꼭대기까지 올라가 돼지를 계속 쫓으려 한다면 전주인 집까지 달려야 할 게 분명했다. 정상에서 보이는 돼지는 마치 작은 점처럼 보였다. 먼저 살던 집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이젠 다 틀렸어요."

아라벨라는 소리쳤다.

"그놈은 우리가 그곳에 도착하기도 전에 벌써 가 있을 거예요. 도중에 잃어버리거나 도둑맞은 것이 아니니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그 집에선 우리 돼지란 걸 아니까 바로 돌려줄 거예요. - 너무 덥네."

그녀는 주드의 손을 꼭 잡은 채 한쪽으로 몸의 방향을 바꿔 성장을 멈춘 왜소한 가시나무 아래쪽의 잔디 위에 몸을 내던지며 갑자기 주드를 끌어당겼다.

"어머, 미안해요. 넘어뜨릴 뻔했군요. 하지만 나도 너무 지쳐서요!"

언덕 꼭대기의 비탈진 흙 위에 아라벨라는 무기력하게 누워 몸을 화살처럼 쭉 뻗고는 푸른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여전히 주드의 손을 따뜻하게 잡은 채였다. 주드는 그녀 옆에 팔꿈치를 괴고 누웠다.

"이렇게 달려 왔는데, 모두 헛수고예요."

그녀는 계속 말해였고 너무 숨이 가빠 몸을 들썩거렸다. 얼굴은 홍조를 띄었고 도톰한 붉은 입술은 벌어졌으며 피부에는 땀이 영롱한 이슬처럼 맺혀 있었다.

"- 그런데 왜 아무 말도 안해요?"

"나도 숨이 차요. 언덕을 단번에 올라왔더니."

두 사람은 환전한 정적 속에 잠겨 있었다 - 주위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없었다. 1마일 이내에 누군가가 있다면 반드시 그들의 눈에 띄게 될 것이다. 사실, 그들은 이 마을의 언덕배기 중 한곳에 와 있었기 때문에 크리스트민스터 주위의 모든 풍경은 두 사람이 누워 있는 곳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주드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머, 이 나무 위에 이렇게 귀여운 것이 있네요."

아라벨라가 말했다.

"쐐기 벌레의 일종일까. 전엔 못 보던 아주 예쁜 녹색과 황색벌레예요!"

"어디?"

주드는 몸을 일으키면서 말했다.

"거기선 안 보여요. 이리 와야 해요."

주드는 몸을 굽혀 더욱 그녀 가까이 가서 머리를 그녀의 얼굴 바로 앞까지 내밀었다.

"아냐, 난 안 보여."

그는 말했다.

"저기 봐요. 가지가 갈라진 곳, 잎이 흔들리고 있는 바로 옆 - 저기!"

그녀는 주드를 부드럽게 자기 옆으로 끌어들였다.

"안 보이는데."

그는 반복해서 말했다. 그의 뒤통수가 아라벨라의 볼과 맞닿아 있었다.

"그렇지만 일어서면 볼 수 있을 거야."

그래서 그는 일어나 그녀의 시선이 뻗고 있는 방향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쩜 그렇게 둔할 수가 있어요?"

그녀는 짜증스럽게 말하면서 얼굴을 돌려버렸다.

"난 그런 건 보이든 말든 상관없어. 그렇잖아?"

그는 말하고 나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일어서요."

"왜요?"

"난 키스를 하고 싶어. 너무나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단 기다리고 있었단 말야."

그녀는 얼굴을 홱 돌리고서 잠시 동안 주드를 곁눈으로 빤히 들여다보고 있더니 이윽고 입술을 약간 삐죽거리며 벌떡 일어나서는 갑자기 고함을 쳤다.

"나는 빨리 가야 해요!"

그리고는 집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버렸다. 주드는 그녀를 따라 함께 걸었다.

"한 번이면 돼!"

그가 애원했다.

그렇게는 안될걸요!"

그는 놀랐다.

"왜 그래?"

아라벨라는 화가 난 듯 입술을 꽉 다물었다. 주드는 귀염받는 새끼 양처럼 그녀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때 그녀는 발걸음을 늦추고서 나란히 걸으면서 조용히 다른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손을 잡으려 하거나 허리를 끌어안으려 할 때면 아라벨라는 어김없이 손을 뿌리쳤다. 이리하여 두 사람이 그녀의 집 근처까지 내려왔을 때 아라벨라는 오만불손한 태도로 주드에게 살짝 머리를 숙이고는 집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내가 그녀에게 너무 편하게 대했나?"

주드는 혼자 중얼거리고 한숨을 내쉬면서 메리그린으로 돌아갔다.

일요일 아침, 아라벨라의 집안에서는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매주 한 번꼴로 벌어지는 안식일의 특별한 저녁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창틀에 매달린 작은 거울 앞에서 수염을 깎았고 바로 그 옆에서 어머니와 아라벨라는 콩깍지를 까고 있었다.

이웃집 여자가 근처 교회에서 아침 예배를 보고 오는 도중에 면도칼을 손에 쥐고 창 옆에서 수염을 깎고 있는 돈을 보자 고개를 끄덕이면서 안으로 들어왔다.

그 여자는 느닷없이 아라벨라에게 농담조로 말을 걸었다.

", 네가 그 남자하고 같이 달려가는 걸 봤단다. 아무쪼록 잘 됐으면 좋겠구나."

아라벨라는 눈도 깜박이지 않고 다만 생각에 잠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듣기론 그는 곧 크리스트민스터로 갈 모양이더라."

"그 말을 최근에 들으셨나요, 요 최근에 말예요?"

아라벨라는 사납게 숨을 들이쉬었다.

", 아냐! 그에게 그런 계획이 있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다 알고 있었어. 그는 단지 기회만 엿보고 있던 중이라던데. , 그래. 그 사람도 같이 다닐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요즘 젊은 사람들은 믿을 수가 있어야지. 여기저기 여자만 집적거리고 다니거든. 우리 젊었을 때하곤 너무 틀려."

수다쟁이가 나가자 아라벨라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있잖아요, 아빠, 엄마께서 오늘 저녁에 차를 마신 후에 애들린 댁으로 가주셨으면 해요. 다들 잘 있는지 안부도 전해주시고요. 그게 싫으시거든 펜즈워스에 저녁 예배가 있으니까 그리로 가보시든지요. 걸어서 갈 수 있을 거예요."

"그래? 그럼 오늘 저녁에 무슨 일이라도 있니?"

"아니요, 그저 혼자 있고 싶어서 그래요. 그 사람 부끄럼을 많이 타는 사람이라서 식구들이 다 있으면 안 찾아오거든요. 전 그 사람을 무척 좋아하는 데 마음을 쓰지 않으면 그 사람을 붙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단 말이에요."

"날씨도 좋구, 네가 원한다면 우린 나가도 상관없다만...."

오후에 아라벨라는 주드와 만나 산책을 했다. 그는 이번 주 내내 희랍어나 라틴어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언어에 관한 책은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두 사람은 언덕길을 배회하며 올라가서 산등성이를 따라 가파르게 뻗어있는 경주로까지 간 다음 근처에 있는 고대 브리튼의 유적이라는 원형의 흙으로 만든 둑이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주드는 이 경주로가 개척되었던 웅대한 시대의 일이나, 아마도 로마인이 이 지역을 아직 모르고 있던 시대에 이 길을 수시로 왕래하곤 했었을 가축상인들을 생각했다. 그들의 아래쪽 평지에서 교회의 종소리가 들려왔다. 그 수리가 점점 약해지면서 단음으로 되었다가 빨라지더니 멈추고 말았다.

"이젠 돌아가요."

종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아라벨라가 말했다.

주드도 동의했다. 그녀가 옆에만 있다면 어디에 있으나 상관없었다. 그들이 아라벨라의 집에 도착했을 때, 그는 우물쭈물 거리며 말했다.

"난 들어가고 싶지가 않아. 그런데 왜 당신은 그렇게 서두르는 거요? 아직 어두워지지도 않았는데."

"잠깐 기다려봐요."

"어머! 모두 교회에 가셨나봐."

그녀는 구두닦개 뒤를 더듬어 열쇠를 찾아 문을 열었다.

"그럼, 잠깐만 들어오시겠어요?"

아라벨라가 가벼운 기분으로 물었다.

"우리 둘뿐이에요."

"들어가고 말고요."

주드는 뜻밖에도 사정이 변했기 때문에 쾌활하게 대답했다.

두 사람은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차가 마시고 싶어서였을까? 아니다. 그러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오히려 아라벨라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녀는 상의와 모자를 벗었고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딱 붙어 앉았다.

"제발 내 몸엔 손대지 마세요."

그녀는 상냥하게 말했다.

"난 달걀을 갖고 있거든요. 이걸 다른 안전한 곳에도 넣어두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녀는 상의의 깃을 풀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요?"

그녀의 연인이 물었다.

"달걀이에요. 코친 달걀이에요. 난 지금 신기한 종을 부화시키려고 하는 중이에요. 어딜 가나 항상 지니고 다니지요. 이렇게 해서 3주정도만 있으면 병아리가 나와요."

"어디다 두는 거요?"

"여기요."

그녀는 가슴에 손을 넣어서 달걀을 꺼냈다. 그것은 양모로 싸여져 있었고 만일의 경우를 위해 돼지 방광으로 감싸둔 것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주드에게 보이고 나서 제자리에 도로 넣고서 말했다.

"이젠 내 옆으로 오지 않도록 해요. 깨고 싶지 않아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니까요."

"당신은 왜 이런 이상한 짓을 하지?"

"옛날부터 해온 습관인 걸요. 생물을 낳게 하는 것은 여자의 본성일 테니까."

"나에겐 몹시 성가신데."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거참 잘 됐군요! 이 정도로 참으셔야 해요."

아라벨라는 의자의 방향을 바꾸고 그 뒤에서 조심스럽게 뺨을 주드에게 내밀었다.

"너무 째째하군."

"아까 달걀을 꺼냈을 때 나를 잡았더라면 좋을 뻔했는데요! 어서!"

그녀는 도전해오듯 말했다.

"다시 꺼낼께요!."

그녀는 다시 한 번 달걀을 재빨리 끄집어냈다. 그러나 주드가 그녀 쪽으로 손을 뻗기도 전에 아라벨라는 그것을 또 제자리에 넣고 말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계략에 흥분해서 웃었다. 하지만 약간의 실랑이가 있은 후에 주드가 달걀을 향하여 돌진해가서 의기양양하게 그것을 손에 넣고 말았다. 그녀의 뺨이 빨개졌고 그 역시 두 사람이 하고 있었던 일을 깨닫고 나서 얼굴을 붉혔다.

두 사람은 숨을 몰아쉬면서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한번만 키스해 줘. 이제 난 달걀을 안 깨고서도 키스할 수 있게 됐으니까. 그리고 돌아갈게!"

그러나 아라벨라는 벌떡 일어나면서 외쳤다.

"그 이전에 날 먼저 잡아야 해요!"

그녀가 도망치기 시작했기 때문에 주드는 그 뒤를 쫓았다. 벌써 방안은 어두워졌으며 작은 참문에서 스며드는 빛으로는 그녀가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웃음소리로 아라벨라가 계단을 뛰어 내려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주드는 그녀 쪽을 향해 달려갔다.

 

1-9

 

그로부터 2개월쯤 시간이 흘렀다. 그 동안에도 그들은 자주 만났다. 아라벨라는 불만스러워 보였다. 그녀는 언제나 상상 속에 잠겨 기다리기도 하고 동시에 의아해하기도 했다.

어느 날 그녀는 순회의사 빌버트를 만났다. 그녀는 그 근처의 시골집에 살고 있는 농부들처럼 이 돌팔이 의사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경험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라벨라는 요즘 약간 우울해 있었지만 의사가 떠나기 전쯤에 그녀는 좀 더 명랑하게 되었다. 그날 밤도 그녀는 주드와 만날 약속을 지켰다. 주드는 슬퍼 보였다.

"난 떠날 거야."

그는 아라벨라에게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야 할 것 같아. 그렇게 하는 것이 당신이나 나에게 더 좋을 거야. 이건 내 생각인데-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야 했어! 물론 내가 더 잘못했지만, 돌이키기에는 아주 늦진 않았어."

아라벨라는 울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니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말은 참 쉽게 하시네요! 나는 아직 당신에게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서 눈물이 젖은 눈으로 그의 얼굴을 바라다보았다.

"무슨 일이야?"

그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설마?"

"그래요! 당신이 날 버리면, 난 어떡해요!"

"아라벨라, 무순 말을 그렇게 하는 거요. 당신! 내가 당신을 버리지 못한다는 걸 잘 알면서."

"그렇다면......"

"당신도 알고 있듯이 난 아직 임금도 제대로 못 받는 일을 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어. 이런 일을 먼저 생각했어야 했던 거요. 일이 이렇게 되기전에 - 그러나 당신의 사정이 그렇다면 우리는 결혼을 해야겠지! 그 밖에 내가 뭘 더 생각할 일이 있겠어?"

"난 생각해 봤단 말이에요. 당신, 일이 이렇게 되어 버리면 더욱 도망치고 싶어질 거라고요. 그 일을 혼자 떠맡을까 봐!"

"내가 생각지도 않고 있는 것까지 알고 있나 보군. 하긴 6개월 저에, 아니, 3개월 전까지만 해도 결혼 같은 건 꿈에도 생각 안 했었지. 결혼은 내 계획을 완전히 무너뜨릴 테니까. 당신하고 알게 되기 전에 세운 계획이었지만 이제 와 보니 계획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여러 가지 책에 관한 일이며 학위의 일, 엄두도 못 낼 특대 장학금에 관한 일 같은 여러 가지로 꿈꿔 왔었지만, 좋아. 우리 결혼합시다. 그럴 수밖에 없어."

그 날밤 그는 어둠 속을 거닐면서 자신을 반성했다. 그의 생각으로는, 아라벨라가 여성의 표본으로서 별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지나칠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주드가 경험한 것처럼 여자와 친해져 길을 잘못 든 명예심 있는 청년들 사이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만이 시골의 풍습이었기 때문에 그는 아라벨라에게 했던 말을 굳게 지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책임을 질 각오가 되어 있었다.

자기 자신을 달래려고 하는 말인지는 몰라도 그는 아직도 아라벨라에게 인위적인 믿음 같은 것을 간직하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아라벨라 자신이 아니라. 그녀를 보는 그의 관점에 있다고 그는 때때로 간결하게 생각했다.

교회에서의 결혼 예고는 접수되어 다음 일요일로 날짜가 잡혔다. 교구의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젊은 폴리가 얼마나 우매한 사람인지에 대해 이야기들을 했다. 그토록 수많은 독서의 결과가 이 모양이 되어서 저러다가는 애써 모은 책을 팔아 냄비를 살 지경이 되겠다고들 말했다.

대체로 그러한 사정을 추측했던 사람들은, 아라벨라의 양친들도 그 속에 끼어 있었지만, 주드와 같은 정직한 청년이 순진한 여인에게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것을 보상해 주기 위해서는 결혼하는 것이 당연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을 결혼시킨 목사 역시 만족스러워 하는 것처럼 보였다.

두 사람은 앞에서 말한 그 주례목사 앞에서, 지난 몇 주일 동안에 믿고 느끼고 원했던 것과 같은 신뢰와 애정과 희망을 죽을 때까지 간직하겠다고 맹세했다. 이 맹세 못지않게 주목할 만한 것은 어느 누구도 그들의 맹세를 듣고서 놀라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제빵업에 종사하고 있는 폴리의 대고모는 결혼 케이크를 만들고, 이것이 가난하고 어리숙한 조카를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그가 살아서 대고모에게 폐를 끼치느니보다 그의 양친들과 함께 저 세상으로 가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라벨라는 케이크 몇 조각을 잘라 흰 편지지에 싸서, 순대 채우는 작업을 같이 했던 동료인 애니와 사라에게 보냈다. 각 묶음에는 '유익한 충고에 감사하며' 라는 쪽지가 붙어 있었다.

이 신혼부부의 전도는 가장 낙천적인 사람들에게조차도 그리 아름다운 것이 못되었다. 석공의 도제였던 19세의 그는 견습 기간이 끝날 때까지는 절반의 임금밖에 받지 못했다. 그는 처음에 시내에서 살 필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렇게 되면 아내는 아무 쓸모 없는 존재가 될 뿐이었다. 그래서 아주 작을지라도 조금씩 수업을 늘려 나아가야만 한다는 다급한 필요에 의해 그는 '갈색의 집'과 메리 그린 사이에 있는 쓸쓸한 길가의 오두막으로 거처를 정했다.

여기서 살게 되면 야채 밭에서 수익을 올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기대해 왔던 생활은 절대 아니었고, 게다가 매일 알프레드스턴을 왕복하는 먼길을 걸어야만 했다. 그러나 아라벨라에게는 이 모든 임시변통이 일시적인 것으로만 여겨졌다.

그녀는 남편을 얻었다. 그만해도 대단한 일이다. 벌이 능력이 있는 남편은 약간만 겁을 줘도 옷이나 모자를 사줄 테고, 장사에 매달리게 되면 저 어리석은 책들을 던져 버리고 실질적인 일에 매진할 것이다.

주드는 결혼식 날 밤에 댁고모집에 있는 그의 낡은 방-아주 열심히 회랍어와 라틴어를 공부했던-을 포기하고 이 작은 오두막집으로 신부를 데리고 왔다.

아내가 처음 옷을 벗는 걸 보았을 때 그의 온몸엔 소름이 돋았다. 아라벨라가 머리 뒤에 크게 쪽을 틀어놓았던 머리카락을 고의적으로 풀어서 빗어 내리더니 그가 사준 화장대 위에 걸쳐놓았던 것이다.

"맙소사! 당신 머리가 아니잖아?"

그는 혐오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요. 요즘 점잖은 사람들은 다 이런 것을 써요."

"말도 안 돼! 도시에선 그럴지 몰라도 시골에선 달라. 더욱이 당신은 본래의 머리카락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아?"

"그래요, 시골 사람으로선 그렇겠지요. 도시 남자들은 머리숱이 많은 편을 더 좋아한 대요. 또한 내가 올드브릭햄에서 술집 여종업원이었을 때......."

"올드브릭햄에서 여급 노릇을 했다고?"

"그래요. 정확히 말하면 여급은 아니지만, 선술집에서 술을 따르곤 했지요. 아주 잠깐 동안이에요. 그뿐이에요. 누군가가 이걸 사보라고 해서, 단지 호기심에서 사봤던 거예요. 돈만 많으면 올드브릭햄이 당신이 늘 말하던 크리스트민스터보단 훨씬 더 좋은 도시예요. 지위 있는 집안의 여자들은 다 가발을 쓴다고- 이발소의 조수가 말해 주던데요."

주드는 기분이 나빴다. 비록 그 말이 어느 정도는 사실일지 모르지만 도시에 나아가 몇 해 동안 사면서도 소박한 생활이나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순진한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아타깝게도 어떤 여자들은 기교를 향한 본능이 혈관 속에 흐르고 있기 때문에 처음 보는 순간부터 남을 흉내 내는 명인이 되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여자가 가발을 쓰는 것이 그렇게까지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이 일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갓 시집온 새색시는 비록 집안 형편이 신통치 않을 때라도 이삼 주 동안은 흥미를 일깨워 보려고 궁리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아라벨라 역시 그녀의 새로운 처지나 주변 환경에 대해 남다른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그런 것들이 음울한 현실의 그림자를 씻어 버리고 사뭇 보잘것없는 새댁에게도 잠시 현실 세계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주드 폴리의 새댁도 이런 기분으로 어느 장날 알프레드스턴의 거리를 걷고 있었을 때, 그녀의 오랜 친구인 애니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이 친구와 결혼식 이후 처음으로 마주쳤다.

두 사람은 전처럼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우선 웃기부터 했다. 비록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 세상이 재미있게만 보였다.

"거봐! 그 계획이 잘 들어맞았지?"

그 처녀가 유부녀에게 말했다.

"그런 사람한텐 잘 먹혀들 줄 알았어. 그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 넌 자랑해도 돼, 그런 사람이라면."

"그래."

폴리의 아내가 조용히 대답했다.

"그리고 그건 언제쯤이니?"

"! 그런 것은 없어."

"?"

"내가 잘못 알았어."

"어머, 아라벨라, 어쩜...... 네 속을 알 수 없구나! 잘못 알았다니! 너 참 영리하구나........ 그만하면 천재 못잖은 솜씨로구나! 나 같은 건 거꾸로 서도 모를 일이다. 난 또 네가 진짜로 낳을 것으로만 알고 있었어....... 그렇게 속일 줄은 몰랐구나!"

"너 내가 속임수를 썼다고 말하지 마! 거짓말은 아니었단 말야. 난 정말 몰랐었어."

"그가 틀림없이 떠들어댈 거야! 토요일 밤 같은 땐 너에게 바람을 피웠다며 덤벼들게 될 거고! 어쨌든 완전히 걸려들었다고 할 텐데...... 두 번씩이나 계략에 빠져버렸다고 말이야!"

"첫번 일은 인정하더라도, 둘째번 일은 말 안 하겠어..... , 그는 어차피 신경도 안 쓸 테니까! 내 말이 잘못됐다고 하면 오히려 기뻐할 거야. 그 밖에 내가 무슨 짓을 학 수 있겠어? 어차피 결혼하고 말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라벨라가 소란을 피우게 된 일이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당연히 고백해야 할 시기가 오자 그녀는 약간 불안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 기회는 어느 날 밤 잠자리에 들 때쯤에 닥쳐왔다. 두 사람은 길가의 쓸쓸한 오두막집에 있었다. 주드는 매일 그날의 일이 끝나게 되면 여기까지 걸어서 돌아왔다. 그날 따라 12시간을 꼬박 일했기 때문에 그는 아내보다도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아라벨라가 방으로 들어섰을 때 그는 벌써 반쯤 잠이 들어 있었다. 그래서 아내가 작은 거울 앞에서 옷을 벗는 것도 거의 의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내는 한 가지 행동에 그는 번쩍 눈을 뜨게 되었다. 그녀는 마침 얼굴이 그의 쪽으로 반사되게끔 앉아 있었기 때문에 양뺨의 보조개를 교묘히 만드는 데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볼 수가 있었다. 이것은 그녀가 자신의 뜻대로 해낼 수 있는 기묘한 기술로 한 번에 쪽 빨아들일 수가 있었다. 그는 요즘 함께 살면서 처음에 알고 지냈을 당시보다 그 보조개가 훨씬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만해, 아라벨라!"

그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별로 해로울 건 없지만, 그런 짓을 하고 있는 당신이 보기 싫어."

아라벨라는 돌아다보면서 웃었다.

"아니, 안 주무셨어요?"

그녀가 말했다.

"당신도 꽤나 촌스러우시네요! 아무것도 아닌 걸 가지고 말이에요."

"어디서 배웠지?"

"어딘지 모르겠어요, 선술집에 있었을 때 내 보조개는 별로 힘을 안 들여도 사라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젠 틀렸어요. 그때는 얼굴이 통통했었으니까요."

"난 보조개 같은 건 상관하지 않아, 보조개로 여자가 예뻐지는 건 아닐 테니까. 특히 결혼한 여자로선...... 그리고 당신과 같이 육체가 풍만한 여자는 말이오."

"대부분의 다른 남자들은 당신과 달라요."

"다른 남자가 어떻게 생각하건 그건 내가 알 바 아니오. 어떻게 당신은 그런 걸 다 알고 있단 말이오?"

"선술집에 있었을 때 듣곤 했어요."

"....이제 알겠군. 언젠가 일요일날 오후에 둘이서 나들이 갔을 때 맥주에 무슨 불순물이 있다든지 했던 것도 결국 그때의 경험에서 나온 거군. 당신과 결혼했을 때만 해도 당신이 아버지의 집에서만 살았을 줄 알았는데."

"더 잘 알아보셨어야 했어요. 태어난 고향에서만 있기보단 조금이라도 세련된 것은 다 보고 싶었던 거예요, 집에선 벌로 하는 일 없이 밥만 축내고 있었던 때라 3개월 정도 나가 살았어요."

"당신도 곧 일거리가 많이 생겨나겠지. 안 그래?"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야 물론 애들을 낳아야 하단 말이지."

"어머."

"언제쯤 태어날까? 늘상 애매하게만 말하지 말고 정확히 말해 줄 수 없소?"

"말하라고요?"

"그렇소. 예정일 말이오."

"말할게 없는데요."

"뭐라고?"

"잘못 알았나 봐요."

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아라벨라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또 그럴 수가 있지?"

"여잔 가끔 잘못된 공상을 하는 일이 있어요."

"그러나..... 내가 물론 너무 준비 없이 덤볐기로서니, 가구 하나 없고 돈도 한푼 없는데, 그런 식으로 서둘러 결혼식을 올리고서 집 마련도 제대로 안 되어 오두막으로 당신을 데리고 오게 하다니. 그 말을 들었기 때문에 당신 쪽 입장을 봐주어야 했어. 내 쪽의 준비가 채 되기도 전에 말이오. 맙소사!"

"그렇게 흥분하지 마세요. 엎지른 물을 주워담을 수는 없잖아요."

"난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주드는 간단히 대답을 하고 나서 누워 버렸다.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만 이 흘렀다.

다음날 아침 주드가 눈을 떴을 때, 그는 이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문제가 되었던 점에 대해서는 아라벨라의 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경우에 처하게 될 때, 세상의 통념의 힘이 작용하는 한은 결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왜 그러한 통념이 통하는 걸까?

주드에게는 희미하고 몽롱하지만 사회의 풍습에는 무엇인가 부당한 것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오랜 세월의 사색과 노고를 다 바쳐 훌륭하게 세워놓은 계획을 말살시키지 않을 수 없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사회의 관습 탓이 아니었는가.

하급동물보다 우월한 존재임을 보여주기 위해서 조금이나마 자신의 과업을 세대의 일반적인 진보에다 공헌해 보겠다던 사나이의 유일한 기회를 빤히 바라보면서 놓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사회의 관습 때문이 아니었는가. 악이라는 성질은 조금도 내포되어 있지 않고, 고작 사람의 약점이라고 묵과해 버릴 수도 있을 정도의 처음으로 경험한 일시적인 본능에 허를 찔렸다고 하더라도- 자기가 과연 이 점에서 무엇을 했던가, 아니야. 그녀에게 어떠한 손해를 입혔던가- 그녀 자신은 차지하고라도 생애의 나머지를 불구자인 양 속박 당하고 말 그러한 함정 속에 빠져들었던가.

그는 자신에게 되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라벨라와의 결혼에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문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다행스러웠다. 그러나 결혼 그 자체만은 엄연한 사실로 남아 있었다.

 

1-10

 

가을 내내 주드와 그의 아내가 살찌운 돼지를 잡을 때가 다가왔다. 주드는 보통 때보다 6시간 이상 늦지 않고 알프레드스턴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날이 새기 시작하자마자 곧 도살할 채비를 갖추었다.

그 날밤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하였다. 날이 새기까지는 아직 한참이 남아 있을 즈음 주드는 창밖을 내다보다 지면이 눈으로 덮여 있음을 알아챘다. 눈은 계절에 비해 꽤나 깊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몇 송이가 내리고 있는 듯했다.

"돼지 도살꾼이 오지 않을 수도 있겠어."

그가 아라벨라에게 말했다.

"아니에요. 올 거예요. 빨리 일어나서 물을 끓이도록 하세요. 당신이 챌로우에게 돼지를 데치도록 하려면요. 난 털을 그을리는 일이 제일 좋지만."

"일어날까. 난 우리 고향 식이 제일 좋아."

주드가 말했다.

그는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구리 솥 밑에 불을 지피고 콩깍지를 밀어 넣었다. 촛불을 켜지 않았기 때문에 활활 타는 불꽃이 방안까지 기분 좋게 빛을 던지고 있었다. 그러나 불을 때고 있는 목적에 생각이 미치자 좋은 기분이 사라지고 말았다. 마당 구석에서 끊임없이 꿀꿀 소리를 내고 있는 아직 살아 있는 동물의 껍질을 태워 털을 벗기기 위해 물을 끓여야 한다니. 푸줏간 주인이 오기로 되어 있는 6시 반에 물은 끓었고 주드의 아내가 밑으로 내려왔다.

"챌로우 왔어요?"

아라벨라가 물었다.

"아직."

두 사람은 기다리고 있었다. 눈 내린 아침은 을씨년스런 빛으로 차차 밝아져 왔다. 아라벨라는 밖으로 나아가 길가를 바라보다가 돌아왔다.

"안 와요. 간밤에 술을 마셨나 보죠. 첼로우가 못 올 정도로 눈이 내리진 않았어요."

"그럼 연기해야겠어. 아무 소용없이 물만 끓였군. 저지대엔 눈이 높이 쌓여 있을지 누가 알아."

"연기 못해요. 이젠 돼지 식량이 다 떨어졌을걸요. 어제 아침에 먹인 보릿가루 섞인 먹이가 마지막이었어요."

"어제 아침이라고? 그 후엔 뭘 먹였다는 거지?"

"아무것도."

"...... 그럼 굶겼단 말이오?"

"그래요. 마지막 하루 이틀은 그렇게 해요. 말끔한 창자를 얻기 위해서죠. 그런 것도 모르니 참 딱하시기도 하지."

"그러고 보니 저렇게 우는 이유를 알겠군, 가엽게도."

"그나저나 도살하는 일은 당신이 맡아야겠어요. 할 수 없는 일이지요. 하는 방법을 가르쳐 드릴 테니까요. 차라리 내 자신이 해치워 버릴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첼로우에게 부탁해야 할만큼 큰 돼지이긴 해도. 그 사람의 칼과 도구가 달린 바구니는 미리 갖다 놨으니까. 둘이서 하면 될 것 같군요."

"물론 당신이 해선 안 돼."

주드가 말했다.

"내 손으로 해야지 꼭 해야 하는 일이니까."

그는 돼지우리 쪽으로 걸어 나가 2야드쯤 삽으로 눈을 치워놓고 정면에다 대를 세워 칼과 밧줄을 준비했다. 바로 근처의 나무에서 울새 한 마리가 내려다보고 있다가 앞으로 벌어질 불길한 장면을 예상했는지 배가 고픈데도 날아가 버렸다. 이때쯤에 아라벨라가 합세했다.

주드는 손에 밧줄을 쥐고 돼지우리 안으로 들어가 겁먹은 동물에게 올가미를 씌웠다. 돼지는 놀라 비명을 질렀고, 그 비명이 마침내 분노의 소리로 변했다. 아라벨라는 돼지우리의 문을 열었다. 이리하여 두 사람은 힘을 합쳐 이 희생물을 대()위로 끌어올려 놓았다. 주드가 돼지를 찍어누르고 있는 동안 아라벨라가 돼지를 뒤집은 다음, 대에 묶어 꿈틀대지 못하도록 네 발을 줄로 챙챙 동여맸다.

돼지가 질러대는 소리는 갑자기 다른 소리로 변해 버렸다. 이제는 분노의 소리가 아니고 절망의 외침으로 변했는데. 오래오래 길게 끌며 늘어지고 체념해 버린 소리가 되고 말았다.

"이런 일을 하게 될 줄 알았다면 차라리 돼지를 기르지 말걸! 내 손으로 밥을 쥐서 길렀는데."

주드가 말했다.

"그렇게 마음 약한 말을 하면 안 돼요! 찌를 칼은 여기 있어요. 끝이 뾰족해요. 어떻게 하든 좋지만 너무 깊이는 찌르지 말아요."

"시간이 안 걸리게 효과적으로 찌르도록 하겠어. 그게 중요하단 말이야."

"그러면 안 돼요!"

아라벨라가 외쳤다.

"살에서 피를 충분히 뽑아야 해요. 시간을 끌어 천천히 죽여야 해요. 살에서 피가 덜 빠져 빨개진 것을 갖고 가면 20파운드당 1실링씩 손해를 보게 되요 혈관을 건드리기만 해요. 그렇게 배우고 자랐기 때문에 제대로 알고 있어요. 피를 오랫동안 흘리게 하는 것이 훌륭한 도살업자지요. 적어도 8분이나 10분쯤은 죽이지 않고 시간을 끄는 거예요."

"살빛이야 어떻든 상관없어. 가능하면 30초도 안 걸리게 해서 죽여 버리고 말겠어."

주드는 단호하게 말했다.

도살업자가 하는 식대로 그는 벌렁 누워 있는 돼지의 목덜미 털을 깍아내고 지방육을 갈라놓았다. 그리고 힘껏 칼을 밀어 쑤셨다.

"제기랄! 이런 건 처음 봤어요!"

그녀가 말했다.

"너무 찔렀어요! 그렇게 말했는데...."

"조용히 해요. 아라벨라. 조금은 불쌍하다고 생각 좀 해!"

"피 받는 통이나 갖다 대요.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그것은 서툴기 그지 없었지만 자비롭게 이루어졌다. 피는 쭉 뻗쳐 나와서 아라벨라가 바랐던 것처럼 졸졸 흘러내리지 않았다. 죽어가는 짐승의 외침은 제 3의 음조를 나타냈고 그것은 고뇌의 비명으로 바뀌었다. 마침내 유일한 친구로만 알았던 자에게 배반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돼지는 그 응시하는 눈을 아라벨라에게 고정한 채로 격렬한 원한의 빛을 던지고 있었다.

"울음소리를 못 내게 해요."

아라벨라가 말했다.

"그는 소리를 내게 내버려두면 누군가가 올 거예요. 나 우리 손으로 이런 짓하는 것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단 말이에요."

아라벨라는 주드가 땅에 내던진 칼을 집어들고서 상처를 쑤셔 기관을 잘라 버렸다. 돼지 울음소리는 곧 그치고 다 끝나가던 숨소리가 끊어진 그 끝에서 새어 나왔다.

"좀 낫군요."

그녀가 말했다.

"못할 짓이군."

주드가 말했다.

"어차피 돼지는 죽기 마련이에요."

동물을 움찔하며 마지막 경련을 일으켰으며 꽉 매어진 줄에도 불구하고 있는 힘을 대해 가며 발길질을 계속했다. 한순간에 떨어지던 붉은 피가 멈추더니 커다란 숯덩이 같은 검은 응혈이 나왔다.

"못된 녀석 같으나라구..... 언제나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버티려고 한다니까요."

피가 뜻밖에 왈칵 쏟아져 나왔기 때문에 주드는 놀라 비틀거렸다. 그는 균형을 잡으려다가 그만 피를 받아 놓은 통을 차 버렸다.

"이봐요!"

아라벨라가 화가 나서 소리쳤다.

"이제 검은 순대는 못 만들게 됐어요. 너무나 아까워요. 다 당신 때문이에요!"

주드는 통을 바로 세웠으나 이미 그 속에는 김이 나는 액체가 겨우 3분의 1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거의 다 눈 위로 튀어 무섭고도 추한 광경을 만들었다. 이것은 고기를 손에 넣는 일반적인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잔혹하게만 보였다. 돼지의 입술이나 콧구멍은 창백해졌으며 이윽고 하얗게 변했고, 수족의 근육도 축 늘어졌다.

"고마워라! 죽었어!"

주드가 말했다.

"돼지 도살이 이렇게 더러운데 뭐가 그렇게 고마운지 모르겠네요!"

아라벨라가 질책하듯이 말했다.

"못사는 사람들도 먹고살아야 해요!"

"알아요. 알고 있어요. 당신을 나무라고 있는 게 아니오."

갑자기 옆에서 사람 소리가 들렸다.

"어이. 젊은 부부들. 잘 해치웠는데요! 제가 했던들 그쪽보다 솜씨 좋게는 못했을 거요. 그렇고 말고요!"

칼칼한 목소리가 마당 문간에서 들려왔다. 돼지를 도살한 장소에서 그들은 딱딱하고 억센 몸짓으로 기대어 서서 두 사람이 해 놓은 결과를 비평하듯 바라보고 있는 챌로우를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서서 웃고 있으니 기분 놓으시겠지요!"

아라벨라가 말했다.

"당신이 늦어지는 바람에 고기는 피투성이가 돼서 반은 못쓰게 된 걸요! 20파운드에 1실링꼴로 쳐도 팔릴까 말까 에요."

첼로우가 사과했다.

"조금만 기다렸으면 좋았을 텐데."

그가 말하고 나서 머리를 저었다.

"그리고 이런 일을 해선 안 돼요. 젊은 새댁. 홀몸도 아닐 텐데. 무리를 하더라도 정도가 있어야지."

"그런 건 당신이 상관할 필요 없어요."

아라벨라는 웃으며 말했다. 주드도 웃었지만 그의 웃음 속에는 강한 고통 같은 것이 감돌고 있었다.

챌로우는 도살 작업이 늦어진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 더운물로 돼지를 씻기도 하고 털을 깎기도 했다. 주드는 자기 상식이 모자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자기 대신에 남에게 이런 일을 시킨다 하더라도 역시 같은 결과가 올 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데도 자기가 한 일을 남자로서 만족할 수가 없었다.

횐 눈이 짐승의 피로 더렵혀졌다는 사실이 그리스도교 교도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정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에게는 어쩐지 불길한 일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이 일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할지 알 수 없었다. 확실히 자신은 아내의 말처럼 정이 너무 깊은 바보였다. 그는 이제 알프레드스턴으로 가는 길이 싫어졌다. 길이 그의 얼굴을 비웃는 듯이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길가에 있는 사물들은 아내에게 구애하던 당시의 여러 가지 일을 회상시켜 주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눈에 띄지 않게끔 주드는 일터에서 돌아오면 가능한 한, 책을 읽었다. 그러나 독서를 좋아한다 해도- 요즈음은 노동자라도 독서 정도의 취미는 갖고 있으니까-보통사람의 영역을 탈피하거나 새로운 사상을 얻기란 거의 어렵다고 느끼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최초로 아라벨라를 알게 되었던 시냇가를 지나고 있을 때, 마침 그전과 다름없는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아라벨라의 친구 중 한 아가씨가 오두막집에서 그녀의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주드의 일이 화제가 되었던 것은 아마도 먼 발치에서 그의 자태가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오두막집 벽이 얇아서 지나가는 주드의 귀에 그들끼리 하는 말이 그대로 들릴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 그 애에게 꾀를 부리게 한 것은 바로 나란 말이야!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를 얻는다.'고 해주었거든. 내가 만일 꾀를 이용하게 하지 않았다면 그 앤 우리처럼 그런 남자의 정부가 될 순 없었을 거야."

"틀림없이 그 앤 그에게 그런 말을 했을 때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야."

아라벨라가 이 여자에게서 무슨 꾀를 빌려 그의 정부니 아내니 하는 신분을 얻었단 말인가? 이 암시는 불쾌했고 또 그의 마음을 괴롭혀 놓았기 때문에 집에 도착했을 때도 그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마당 문간에 바구니를 던져놓고 그냥 지나쳐 버렸다. 그리고 대고모의 집에 가서 거기서 저녁밥을 얻어먹기로 했다.

이 때문에 그는 약간 늦게 집에 도착했다. 그러나 아라벨라는 도살한 돼지의 비계 덩어리에서 라드(돼지기름을 정제한 것)를 녹이느라 분주했다. 그녀는 하루종일 마을에 가 있었기 때문에 일이 밀려 있었다.

자신이 들었던 말을 아내에게 내뱉지 않으려고 주드는 거의 입을 떼지 않았다. 그러나 아라벨라는 매우 수다스러웠으며 무엇인가 말하는 도중에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의 호주머니 속에 책이 꽂혀 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좀 더 많이 벌어야 하겠다고 덧붙여 말했다.

"견습공의 급료는 아내를 부양할 만큼 넉넉하지 못해."

"그럼 마누라를 얻지 말았어야죠."

"이봐, 아라벨라! 그거 안됐군. 어떻게 결혼하게 됐는지 자신이 더 잘 알면서."

"그때 당신에게 말했던 것은 사실이었어요. 하나님께 맹세코 정말이라니까요. 빌버트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요. 임신이 안 된 것만도 당신에게는 다행인 줄 알아요!"

"그걸 말하는 게 아니야."

주드는 성급히 말했다.

"그 얘기 말고, 당신을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당신 친구들이 나쁜 꾀를 쓰게 한 거 말이요. 만일 그 여자들이 그런 짓을 하도록 하지 않았다면 우린 현재와 같은 속박에서 자유로웠을 텐데. 솔직히 말한다면 이 속박때문에 우린 서로가 몹시 고통받고 있는 거요. 슬픈 일인지는 모르지만. 이건 사실이오."

"누가 당신에게 내 친구들 이야기를 했지요?" 어떤 나쁜 꾀를 말이에요? 꼭 듣고 싶어요."

"푸우.....말하지 않겠어."

"그렇지만 당신.....말해야 해요. 말 안 하면 비겁해요..."

"좋아."

주드는 자신이 알게 되었던 사실을 살짝 암시해 주었다.

"그라나 이런 얘기를 더 이상 들먹이고 싶진 않소. 이제 이 이야기는 하지 맙시다."

아라벨라의 변명하려던 태도는 수그러들고 말았다.

"그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녀가 차가운 웃음을 띄며 말했다.

"어떤 여자라도 그 정도의 권리는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 잘못되는 쪽은 여자일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 않아, 아라벨라. 남자가 그 때문에 평생 동안 붙어 다니는 벌을 안 받아도 된다던가 혹은 또 남자가 결혼 않고 버려도 여자가 일생 괴로워하지 않는다면 여잔 그런 권리를 가져도 좋을지 모르지. 더욱이 한때의 잘못이 그때만으로 끝장나거나 그 해만으로 끝나 버린다면 그런 일을 해도 괜찮을지 몰라. 그러나 일이 벌어지게 되면, 남자가 정직한 사람이라면 여자는 남자를 함정에 빠뜨리는 결과가 되고 남자가 나쁜 사람일 경우에 여자는 자기가 파놓은 함정에 자신이 빠져들고 마는 격이니까.... 그런 짓은 할 게 못되는 거야."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았겠어요?"

"내게 생각할 시간을 줬어야 했지..... 그런데 당신은 왜 오늘밤 안달을 해가면서 돼지 비계를 녹이고 있는 거요? 이제 그만 둬요!"

"안 그러면 내일 아침에 해야 해요. 오래 두면 굳어 버리니까."

"그럼 내일 해요."

 

1-11

 

일요일인 다음날 아침 열시에 아라벨라는 다시 간밤의 일을 시작했다. 이 일감은 전날 밤에 있었던 화재를 떠오르게 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를 지난밤과 똑같이 걷잡을 수 없는 기분으로 몰아넣었다.

"메리그린에선 나에 관해 그런 식으로 얘길 하고 있나요-내가 당신을 옭아맸다고? 대단한 분을 잡았군요.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을요!"

화가 나 있던 그녀의 눈에 주드의 중요한 책 몇 권이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식탁 위는 책 같은 것이 놓여있어서는 안 되는 장소라고 생각했다.

"이런 책을 여기에 두다니!"

그녀는 화가 나 고함을 지르며, 책을 한 권씩 집어들어 마룻바닥 위에다 던졌다.

"내 책에 손대지 마!"

그가 말했다.

"그러고 싶거든 내던져도 좋지만 그렇게 더럽히는 것은 참지 못하겠군!"

라드를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아라벨라의 손은 뜨거운 기름으로 더럽혀져 있었다. 그래서 책표지에는 그녀의 손자국이 역력히 남았다. 그러나 그녀는 일부러 몇 권의 책을 더 마룻바닥에 내던졌다. 마침내 주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치밀어서 그녀의 양팔을 잡아 중지시켰다. 그러던 중 우연히 그녀의 묶였던 머리카락이 풀어지면서 귓전까지 흘러내렸다.

"놔요!"

"책에다 손대지 않겠다고 약속해!"

그녀는 주저하듯 망설였다.

"놔줘요!"

잠시 후에 그녀는 말했다.

"약속해!"

주드가 손을 놓아주자 그녀는 방을 가로질러 문까지 가서 결의에 찬 표정으로 한길로 나갔다. 아라벨라는 여기저기 거닐면서 줄곧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주드가 했던 것보다 더욱 헝클어지게 만들었고 윗도리의 단추도 몇 개 풀었다. 일요일 아침은 맑고 깨끗했으며 서리가 내려 있었다. 알프레드스턴 교회의 종소리가 북쪽에서 미풍을 타고 들려왔다. 사람들은 나들이옷을 입고 길을 따라 걷고 있었는데 대게는 연인들이었다. 몇 개월 전, 같은 길을 시시덕거리며 걷고 있었던 주드와 아라벨라를 연상시키는 차림새들이었다.

행인들은 그녀의 기이한 모습에 놀라 되돌아보곤 했다. 모자도 쓰지 않은 채로 산발이 된 머리칼을 바람에 날리면서 속옷은 벌어져 있고, 일할 때의 모습 그대로 소매는 팔꿈치까지 걷어 올려졌고 양손은 녹은 기름 냄새를 마구 풍겼다. 지나가던 어느 사람은 겁난다는 시늉을 해보이면서 '하느님 저희들을 구원해 주소서!' 하고 말했다.

"그가 나를 어떻게 했는지 좀 보세요!"

그녀가 소리쳤다.

"교회에 나가야 할 일요일 아침마다 일만 부려먹고 머리채를 잡아당기고 옷을 뜯어 놓아요!"

주드는 격양되어 우격다짐으로 그녀를 끌고 들어오려고 바깥으로 나갔으나 갑자기 분노가 사그라들었다. 두 사람 사이는 이미 끝나 버렸으며 그녀가 어떤 짓을 하든 자신이 무슨 일을 하든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멈추어 서서 아라벨라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일생이 무너지고 말았다고 주드는 생각했다. 그것은 결혼이라는 두 사람의 근본적인 과실에 의해 무너져 버렸다. 친근하기만 하면 한 평생의 동반자로, 어떻게 해서든 꾸려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으로 인해 필연적인 관계도 없이 일시적인 감정으로 결혼하게 된 데 따른 결과였다.

"당신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학대했던 것처럼 그리고 당신 고모가 당신의 고모부를 학대했던 것처럼 당신도 나를 학대하는 거죠?"

그녀가 물었다.

"당신네 집안은 남편이든 아내든 죄다 이상한 운명이군요!"

주드는 멍하니 그녀를 놀란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그러나 아라벨라는 그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고서 지칠 때까지 걸었다. 그도 그 자리를 떠나 잠시 동안 정처없이 방황한 후에 메리그린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는 대고모댁에 들렀다. 대고모의 병세는 최근 들어 더욱 악화되고 있었다.

"대고모님, 우리 아버지가 어머니를 학대하셨나요? 그리고 고모도 고모부를!"

주드는 난로 옆에 앉으면서 불쑥 물었다.

노인은 항상 쓰고 있던 유행에 뒤진 모자의 챙 밑으로 쇠약해진 눈을 치켜뜨고 말했다 .

"누가 그런 소릴 하더냐?"

"다 들었어요. 난 전부 알고 싶어요."

"네 마누라가 - 난 그런 걸로 보고 있다만 - 그런 것을 폭로하다니 바보로구나! 결국 대단치도 않은 일인데 말이다. 너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함께 지낼 수가 없어서 헤어졌을 뿐이다. 네가 아직 아기였을 때다만, 알프레드스턴의 시장에서 이리로 오던 길에 - '갈색의 집' 옆의 산꼭대기에서 말이다 - 그게 마지막 싸움이었지. 그 길로 헤어지고 말았다. 네 에미는 그리고 나서 곧 세상을 떠났단다. 간단하게 말해서 물 속에 뛰어들었던 거지. 네 애비는 널 데리고 남부 웨섹스로 갔고 그 뒤로 두 번 다신 이 마을에 오지 않았단다."

주드는 아버지가 북부 웨섹스나, 모친에 관해 임종하던 날까지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았음을 상기했다.

"너의 고모도 마찬가지다. 남편에게 학대를 당해 나중엔 도저히 같이 살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자그마한 계집애를 데리고 런던으로 가버렸단다. 폴리 집안은 혼인하고는 맞지 않는가 보구나. 아무래도 우리하곤 맞지 않나 보다. 우리 혈통엔 내버려두면 곧잘 하던 짓도 억지로 해야 한다면 영 기분이 내키지 않는 성미가 있단다. 이것이 너도 내 말을 듣고서 장가를 들지 말았어야 하는 이유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헤어진 장소가 '갈색의 집' 옆이라고 말씀하셨던가요?"

"조금 더 가서 펜워스로 가는 길로 갈라지는 곳에 표지가 서 있지. 그곳이야. 이 얘기하곤 상관없다만 옛날엔 그곳에 교수대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 얘기는 하지 말자꾸나."

그날 저녁 주드는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인사하고 대고모의 집을 나섰다. 그러나 탁트인 고지대에 도달했을 때 길을 벗어나 어떤 큼직한 둥근 못가로 다가갔다. 유달리 몸에 스며들 정도는 아니었지만 서리가 계속 내리고 있었고 머리 위에는 커다란 별이 서서히 나타나서 반짝였다. 주드는 먼저 한 다리를 연못 가장자리의 얼음 위에 내딛은 다음 또 다른 다리를 내딛었다. 그러자 몸무게로 인해 얼음에 금이 갔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연못의 중심을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갔다. 발밑에서는 얼음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었다. 한복판쯤 왔을 때 그는 주위를 둘러보고 펄쩍 뛰어보았다. 금이 가는 소리는 되풀이되었지만 얼음은 깨지지 않았고 그는 연못 속으로 빠지지 못했다. 다시 한번 뛰어보았으나 얼음 깨지는 소리는 이미 멈춰있었다. 주드는 가장자리로 되돌아와 땅 위로 올라섰다.

그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무엇 때문에 얼음이 깨지지 않았을까? 자신은 자살할 수 있을 정도로 위엄 있는 인간도 못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평화로운 죽음은 그를 그들의 신하로 삼기 싫어했고, 그를 받아들여 주지도 않았던 것이다.

자살보다도 더 저급한 어떤 행동을 그가 할 수 있겠는가? 현재의 타락한 상태와 맞먹을 보다 더 저속한 행위는 대체 무엇이 있겠는가? 술에 취해 볼 수도 있었다. 그런 방법이 있다는 것을 그는 잊고 있었다. 술에 탐닉한다는 것은 절망에 빠진 무기력한 인간이 통례로 빠져드는 판에 박은 상투수단이다. 그는 어째서 많은 사람들이 선술집에 북적거리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북쪽을 향해 언덕을 성큼성큼 내려가서 잘 모르는 이름 없는 술집에 들렀다. 안으로 들어가 앉자마자, 벽에 걸린 삼손과 데릴라의 그림을 보고 그는 여기가 아라벨라와 처음 사귀게 되었던 일요일 밤에 함께 왔던 장소임을 알았다. 그는 술을 청하고 한 시간 동안을 줄기차게 마셔댔다.

그날 밤 늦게 비틀거리며 집을 향할 때 주드는 의기소침한 기분이 깨끗이 걷히었고 머리도 아직은 꽤 맑아 있었다. 그는 소리내어 크게 웃으면서 지금까지와는 달리 변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자신을 아라벨라가 어떤 태도로 맞이할 것인지 궁금했다.

그가 들어섰을 때 집안이 캄캄했기 때문에 그는 비틀거리면서 가까스로 등불을 켰다. 바로 그 순간 돼지고기를 요리하고 남은 비계와 넓적한 냄비가 눈에 띄었으나, 돼지머리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낡은 봉투의 안쪽에 쓴 단 한 줄의 사연이 난로의 면직물에 덮인 통풍기에 핀으로 꽂혀 있었다.

-친구들에게 갑니다.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다음날 아침 그는 하루종일 집에 남아서 돼지의 잔해를 알프레드스턴으로 보냈다. 그리고 나서 집안을 청소하고 문에다 자물쇠를 채운 후 아내가 돌아오면 이내 알 수 있는 장소에 열쇠를 두고서 알프레드스턴의 석공 직장으로 되돌아갔다.

그날밤 그는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와 보았는데, 아라벨라가 돌아왔다는 흔적은 없었다. 다음날도 같은 식으로 지나갔고, 또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로 지나갔다. 그후 아라벨라로부터 편지가 왔다.

그녀는 그에게 싫증이 났다고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는 느림보인데다 그가 보내고 있는 그런 종류의 생활은 신물이 나고, 그녀도 좋아질 가망성이 없지만 그도 역시 좋아질 가망성이 없다고 했다. 그와 같은 일을 써 내려간 뒤에 그녀는 계속해서 이렇게 썼다. 그가 아는 바와 같이 요즘은 돼지 장사도 잘 안되어 양친은 호주로 이민을 떠날 문제를 생각해 오다가 마침내 가기로 결심이 섰기 때문에 이의가 없다면 자기도 양친과 함께 갔으면 한다고 했다. 자기 같은 여자는 시시한 고장에 있기보다는 그쪽으로 가게 되면 운이 트일 기회도 많아질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주드는 그녀가 이민을 가는 문제에 대해 추호도 이의가 없다고 답장을 써서 보냈다. 그녀가 가고 싶어하니까 이것은 현명한 처사이며 양쪽에 이익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썼고, 편지 속에다 돼지를 팔아 얻은 돈 이외에 많지는 않지만 그가 가진 돈을 동봉했다.

그날 이후로 주드는 아내의 소식을 듣긴 했는데 아라벨라의 아버지나 가족은 당장 떠나지는 않았고 가재도구를 팔아 치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이었다. 돈의 집에서 경매가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서 주드는 자기 자신의 가재류를 간추려 달구지 편에 아라벨라 앞으로 보내주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라벨라가 딴 도구와 함께 경매에 팔 수도 있을 것이며 아니면 그녀가 좋아하는 물건을 빼고 나머지만 팔아서 돈을 만들 수도 있으리라.

그런 뒤에 알프레드스턴의 하숙집으로 돌아간 주드는 어떤 가게 앞에 나붙어 있는 조그마한 광고지에 자기의 장인이 가재를 팔고 있다는 전단이 나붙은 것을 보고서 그 날짜를 유심히 보았다. 그러나 막상 당일에도 주드는 그 장소에 가지 않았고 알프레드스턴에서 남쪽가도를 통해서 왕래하는 사람과 달구지가 그 경매 때문에 눈에 띄게 많아진 것도 깨닫지 못했다.

며칠 후에 그는 거리의 한길에 면한 그을린 어느 고물상의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쪽에는 경매에서 사온 것이 분명한 소스팬이나 의류, 국수 방망이, 놋쇠 촛대, 회전 거울 등 잡다한 물건들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주드는 액자에 들어있는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그 사진은 바로 자신의 초상이었다.

이것은 아라벨라에게 주기 위해 일부러 찍었던 것으로 어느 지방 사람을 시켜 단풍나무로 액자를 만들게 하여 결혼식 당일 아라벨라에게 주었던 것이다. 사진 뒷면에 날짜와 함께 써넣은 '주드가 아라벨라에게' 라는 글귀는 아직 그대로 있었다. 그녀는 다른 물건들과 함께 이 사진을 경매에 붙여 처리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

사진과 함께 무더기로 쌓여 있는 물건들을 바라보고 있는 주드에게 고물상은, 그것이 주드 자신의 것인 줄도 모르고 이렇게 말을 건넸다.

"그건, 메리그린으로 가는 길에 있는 한 농가에서 제가 경매를 통해 구입한 물건들이지요. 사진만 빼내면 그 액자만으로도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1실링에 드리죠."

벌써 아내에게 그에 대한 모든 감정조차 깡그리 사라지고 없었는지 그가 보내준 사진까지 팔아넘겼다는 말 없고 무심한 증거가 그나마 남아 있던 주드의 희미한 애정을 결정적으로 잠재워 버렸다. 그는 1실링을 지불하여 사진을 사 가지고 하숙집으로 돌아와 액자도 함께 모두 불태워 버렸다.

이삼일 후 그는 아라벨라의 부모가 출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편지로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만나고 싶다는 의향을 전했으나 그녀에게서 자신은 이왕 떠나기로 했으니 만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전갈을 받았을 뿐이었다. 이쯤 되면 떠난다는 것은 틀림없었다. 그들이 이민을 떠난 다음 날 주드는 일과를 끝내고 저녁 식사를 한 뒤 밖으로 나갔다. 그는 별빛 속을 걸으면서 생애에서 가장 큰 감동을 경험했던 바로 그 고지대를 향해 눈에 익은 길을 따라 걸어갔다. 그것은 다시 그의 것인 된 것 같았다.

주드는 현재의 자신을 확실히 자각할 수가 없었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그 길을 따라 걷고 있는 자기가 아직도 소년처럼 느껴졌다. 저 꼭대기에서 꿈꾸며 서 있었던 그때의. 크리스트민스터와 학문에 대한 열정이 다시금 마음속에 타올랐다. 그때로부터 아직 단 하루도 지나가지 않았으며 자신이 마치 그때의 그 소년인 듯했다.

"그러나 난 어른이야."

그는 중얼거렸다.

"내겐 아내가 있어. 더욱이 아내와 다투고, 헤어지는 등 더욱 성숙한 경험을 했지."

이윽고 그는 그의 부모들이 이별을 고했던 바로 그 장소 근처에 자신이 서 있다는 것을 상기했다. 조금만 더 가면 그는 그 꼭대기에 이르를 것이었다. 옛날에 크리스트민스터가 보인다고 생각했던 곳이다. 혹시 그것은 그가 크리스트민스터라고 착각했던 장소에 불과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길가 바로 옆에는 여느 때처럼 이정표가 서 있었다. 주드는 그쪽으로 가까이 가서 그 도시까지의 거리가 표시된 숫자를 읽는다기보다는 오히려 손가락으로 만져보았다.

그는 옛날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이 이정표의 뒷면에 예리한 끌로 야망을 나타내는 글씨를 의기양양하게 파놓았던 것이 떠올랐다. 그것은 도제 생활에 들어갔던 첫째 주에 했던 일로 그대까지만 해도 어울리지 않는 여자에 빠져 있긴 했지만 아직 희망을 굽히지는 않았었다. 그 글자를 아직 읽어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쐐기풀을 헤치고 뒤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오래 전에 그토록 열중해서 파놓은 흔적을 그는 성냥불빛으로 분간해낼 수 있었다.

 

저곳으로 가자

주드 폴리

 

잡초와 쐐기풀 속에서도 상처 하나 입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흔적을 보고서 주드의 혼에는 옛날의 불꽃이 타올랐다. 확실히 자기 계획은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전진하는 것 - 설혹 이 세상의 추한 것을 보더러도 병적인 비탄만은 피해 보자는 것 - 이 아니었던가? Bene agere et loetari - 선을 행하여 기뻐함 - 이것이 스피노자라는 사람의 철학이라는 말을 들었

지만 지금은 자기 자신의 철학이었다.

조금 떨어진 장소로 가서 그는 동북쪽에 떠올라 있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그저 믿음으로 보지 않았다면 거의 알아볼 수가 없을 만큼의 희미한 후광 - 작고 흐린 성운 - 이 실제 거기에 있었다. 그가 바라던 바였다. 이제, 도제 기간이 끝나게 되거든 크리스트민스터로 가볼 것이다.

그는 한결 기분이 나아져 그의 하숙집으로 돌아와서 기도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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