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추적
어느 날 대사부는 제자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그는 준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탐색대가 필요한데 누구 자원할 사람 있느냐?"
"제가 해보겠습니다, 사부님!"
사이훙이 재빨리 지원하였다.
"사실은 내가 사로잡아야 할 놈이 하나 있단다. 그런데 너를 보내도 될지 확신이 서지 않는구나."
"무술 원정이면 훨씬 좋겠는데요!"
사이훙은 열에 들떠 말을 이었다.
"그자가 누구입니까?"
"내가 아홉 번이나 용서했던 자이다. 그렇지만 그놈을 더 이상 용서할 수가 없구나. 실은 나도 강제로 이 일을 맡게 되었단다. 성주가 직접 나를 찾아와서 내가 그자에게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화산에 있는 도관이란 도관은 전부 파헤쳐 버리겠다고 협박을 했단다."
대사부는 잠시 말을 멈추고 사이훙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자에게는 비천지주라는 명칭이 붙어 있단다."
사이훙은 순간 지난번 여행중에 엿들었던 건달들의 대화가 생각났다.
"그자는 최근에 정부의 황금 수송 호위대를 강탈하고 많은 경비원을 살해했지. 이 지붕 저 지붕으로 또, 담을 넘어 날아다닐 수 있는 곡예사 같은 기술은 신기에 가까울 정도야. 두 개의 단도로 싸우면서 <응조권법>을 구사하는 무사지.>"
사이훙은 사부의 말씀을 모아 머릿속에 도표를 그려 보았다. 그는 사냥감을 완전히 이해하고 싶었다.
"그는 악명 높은 난봉꾼이란다. 뚜쟁이인 데다가, 마약 밀매꾼, 녹원회의 일원이다. 사실 성주가 그자를 쫓고 있는 이유를 정확히, 말하자면 이 난봉꾼이 그의 아내를 유혹했기 때문이다. 지금 그는 베이징에 있는데 신문의 지면들이 그에 관한 기사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매주 그의 범죄 행각이 뉴스거리가 되어있다."
"사부님, 사부님께서는 왜 그런 자에게 관심을 쏟으십니까?"
사이훙은 공손히 물었다. 대사부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중대한 결단을 앞둔 듯 사부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나는 그 녀석을 어릴 때부터 키웠다. 그는 바로 너의 사형인 후디에란다."
사이훙은 엄숙해졌다.
"네 개인적 감정을 개입하지 않으리라는 걸 확신할 수 있겠느냐? 성주조차도 사적인 감정으로 공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대사부는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네, 사부님. 그가 너무 지나쳤습니다. 그리고 사부님과 우리 분파를 배반했으니 그를 그대로 놔두지 않겠습니다."
"젊은이다운 말이로구나."
"실패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사부님."
"그렇다면 떠나거라. 내일 감시 업무를 맡고 있는 우잉과 우콴과 함께 떠나거라. 너는 후디에를 쫓아가서 신속히 그를 데려오너라."
"하지만 사부님, 진엔니아오는 어떻게 할까요?"
사이훙이 질문했다.
"그 일은 내가 할 일이다. 그러니 너는 어서 네 사형을 데려오너라. 빨리 가거라. 더 이상 묻지 말고."
그로부터 일주일이 채 못 되어 사이훙, 우잉, 우콴은 서쪽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사이훙은 부유한 무술가의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떠났다. 목깃이 달린 아름다운 문양의 비단옷을 입고, 양끝에 수를 놓은 검은색 비단으로 만든 허리띠를 매고, 검은색의 천의 신발을 신었다. 허리띠에 매달려 있는 값비싼 둥근 옥은 그가 귀족계급 출신임을 상징해 주었다. 사이훙은 긴 머리를 한 줄로 따서 늘어뜨렸다. 변발은 중화민국에서는 불법이었다. 그래서 사이훙은 긴 변발을 몸에 지닌 다른 무기처럼 옷 속으로 숨겨야 했다.
사이훙은 화산을 떠날 때마다 북부 산시성에 있는 관가보에 들렀다. 비록 그가 형식적으로는 가족과의 관계를 단절하기는 했지만 가족들은 귀가할 때마다 항상 그를 반겨주었다. 사이훙 소유의 방들과 개인 서재가 저택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도관에서는 금지 사항이지만 특별히 주문 제작된 사이훙의 무기들이 무기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의 신분은 가난한 도교 수행자가 아닌 부자에다 귀족, 협객으로 상승하였다. 사이훙의 가문은 바로 <전쟁의 신>의 후손이었기에 그에게는 막대한 재산이 떨어졌다. 집에서 그는 비단옷을 걸치고, 옥으로 만든 갖가지 장식품으로 쓰면서 황금으로 비용을 조달하고, 강철로 무장하고 낭만적인 것을 즐길 수 있었다. 사이훙은 이곳에선 강철 사자가 되었다.
사이훙은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우잉과 우콴 형제를 바라보았다. 둘 다 40대인 그들은 속세와 인연을 끊고 도교에 입문하기 위해 화산에 왔었다. 두 사람은 무뚝뚝한 성격에다 미련해 보일 정도로 거구이고 신분 또한 비천했다. 사이훙은 저들은 세상에서 산전수전 다 겪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형제는 살아오다가 언제부터인가 서글픈 이름들을 얻게 되었고 도관에 와서도 그 이름을 떼어 버릴 수가 없었다. 우잉은 <쓸모없는>이란 뜻이고, 우콴은 <무력한>이란 뜻이었다.
형인 우잉은 머리 생김새가 마치 늙은 참외 같았다. 피부는 어린 시절 앓은 병 때문에 몹시 거칠었다. 때때로 눈가가 팽팽하게 긴장할 때는 시름에 잠긴 듯 우울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의 몸은 아주 단단한 근육질이었으며 어깨는 황소처럼 딱 벌어져 있었다.
우콴은 형보다 훨씬 더 네모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짙은 갈색 얼굴은 청동 가면처럼 보였고, 두 눈은 떴는지 감았는지 모를 정도로 가늘고 그늘이 져 있었다. 호전적인 성격을 그의 얼굴과 몸 구석구석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불행하게도 호전성을 지울 만한 자비의 흔적이라곤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갈색과 회색의 옷은 그 거구를 가려 주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이들 형제의 관계는 아주 거칠고 냉담하였다. 피를 나눈 형제끼리 맺은 무언의 동맹이요, 생과 사를 함께 해온 사나이들의 연합이었다. 수년간의 전쟁은 슬픈 눈의 우잉을 미신적으로 만들었다. 우콴은 형과는 달리 다소 냉소적이었다. 그들은 좀체 서로 말을 건네는 법이 없었다. 그들은 고용된 전사였다. 사이훙은 대사부가 모험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대사부는 발빠른 자를 쫓도록 두 명의 무시무시한 킬러를 보낸 것이다.
그들은 밤낮을 기차 속에서 보내며 시달렸다. 딱딱한 의자, 계속되는 기차의 흔들림, 기차 바퀴가 선로에 부딪쳐 나는 듣기 싫은 쇳소리, 여행객들이 크게 떠드는 소리를 견뎌내야 했다. 기차역마다 으깨어질 듯 가득찬 사람들의 냄새, 와글와글 떠드는 소리, 고통스럽게 비틀어대는 몸뚱어리들과 온갖 짐들로 좁은 기차 안이 빽빽이 들어찼다. 사람들은 서로 밀고 찔렀다. 차창 밖으로 몸을 내놓고 덜덜거리는 기차 아래로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세 명의 전사들만은 피해 다녔다. 그들은 세 사람이 입은 옷을 보고, 이어 귀족임을 상징하는 사이훙의 기장을 본 뒤 싸놓은 칼에서 시선을 멈췄다. 청 왕조가 무너진 지 거의 20년이 다 되었건만, 상류층 귀족과 전사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옛 격언을 알고 있었다. <검객은 죽이기 위해 칼을 지니고 다닐 뿐이다. 칼은 피 맛을 보지 않고는 다시 칼집에 꽂히지 않는다.>라는.
사이훙 일행은 베이징 - 상하이 열차 편으로 갈아탔다. 기차를 갈아타는 역은 선로 여기저기에 쓰레기들이 널려있는 불결하고 번잡한 곳이었다. 사이훙은 증기기관차를 타게 되어 무척 기뻤다. 란 남자가 태연히 철로를 따라 걸어가서는 망치로 기차 바퀴를 탕탕 두드리는 것을 본 사이훙은 은근히 적정이 되었다. 아무렇게나 두드려대는 것처럼 보이는 망치질이 새로운 발명품을 더욱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만들 것만 같았다. 우콴은 연결봉들이 제자리에 다시 들어맞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사이훙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들이 탄 기차는 북쪽을 향해 나아갔다. 몇 시간 뒤 기차는 일본 점령지역을 통과했다. 후디에의 갱단이 전쟁 지역에서 활약하기 때문에 그를 사로잡기가 더욱 힘들 것 같았다. 사이훙 일행은 그의 일당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일본 순찰대와 마주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다. 사이훙이 탄 기차는 선로 위를 흔들거리며 진흙 벽돌로 지은 집, 농장과 과수원, 마을을 지나쳐갔다. 그러나 사이훙은 오래된 포탄 구멍, 전혀 복구가 안 된 채 내버려진 마을, 먹이가 될 만한 시체를 찾아 헤매는 피둥피둥 살이 오른 개들도 보았다.
어느덧 전쟁은 중국과 일본 모두의 진을 빼놓는 소모전으로 굳어졌다. 전투 지역은 일본군 행정병, 중국의 관료, 병사, 게릴라와 갱원의 잔류자들로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전투는 우울한 권태를 불러일으켰다. 일본 점령군은 중국의 갱단, 기회주의자들과 자유롭게 거래를 트고 지냈다. 아편과 헤로인은 주요 상품이 되었고 수천 파운드의 마약은 양측 모두를 부자로 만들어 주었다. 황하에서 해안까지 죽음과 잔혹함, 마약 거래, 서투른 군국주의가 초현실적으로 뒤섞여 난무하고 있었다. 영웅주의는 오래전에 실종되고, 불한당들이 활개 치는 곳으로 변해 버렸다.
오후가 되어서 사이훙 일행은 산둥성의 취푸로 가는 역에 도착했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 하늘은 짙은 회색과 자주색 물을 먹인 듯 몹시 어두웠다. 한 차례의 억수 같은 비가 쏟아져 내렸지만 공기는 여전히 후끈했다. 잠시 후 비가 그쳤다. 그러나 벌써 도로는 황토빛 진흙탕이 되어 있었다. 취푸까지는 아직 15킬로나 더 남아있었다. 아마도 이곳이 공자의 탄생지이며 그의 무덤이 모셔진 곳이기 때문에 위대한 성인을 추모하는 심정으로 철도를 연장하지 않은 모양이라고 사이훙은 생각했다.
세 사람은 지나가는 농부의 마차를 세워 올라탔다. 그들은 돌로 만든 아치 아래를 지나갔다. 그것은 오래된 망루였다. 부서진 거리와 좁은 골목길을 지나 대사부가 일러준 주소지를 찾아갔다. 그곳은 자극성 강한 약초 향기가 물씬 풍기는 한약방이었다. 주인은 50대의 땅딸막한 남자였다. 대머리에다 안경을 썼지만, 열정적이고 힘이 세어 보였다. 그는 계산대 뒤에서 그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뭘 사고 싶으신지요?"
한약방 주인이 물었다. 처음 오는 손님들이라는 사실을 안 듯 주인은 한약이 있는 곳을 향해 손짓을 했다. 그의 뒤로는 한약재를 담는 수백 개의 작은 서랍들로 들어 찬 서랍장이 놓여 있었다. 높이가 마룻바닥에서 천장까지 이른 서랍장에는 약재를 분류하는 라벨은 없었지만, 그는 어느 서랍에 어떤 한약이 들어있는지 하나하나 알고 있었다.
건너편 진열장에는 인삼, 호랑이 뼈, 코뿔소 가죽, 영지버섯, 사슴뿔, 말린 도마뱀, 염소 앞다리와 곰, 사슴, 강치의 말린 장기들이 전시돼 있었다. 그 옆으로 중년의 두 남자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들이 거기 있다는 것 자체는 의심을 살 만한 일이 아니었다. 약재상에는 종종 친구들이 찾아와서 한나절씩 떠들어댔다. 그러나 왠지 이 두 사람은 분위기가 살벌하게 느껴졌다.
"소개장을 들고 왔습니다."
사이훙이 말했다.
"그렇습니까?"
한약상은 어물쩍 넘어가려는 듯 대답했다.
사이훙이 편지를 내밀었다. 주인은 편지를 받아 읽었다.
"내일 다시 오십시오. 당신들의 사부님은 지위가 아주 높으시군요. 댁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편지를 다 읽은 뒤 주인이 말했다.
다음 날 사이훙은 다시 찾아가 원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한약상은 요구 사항을 논의했고 동의를 얻어냈다. 이틀 후 평의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사이훙 일행은 <무술계의 원로들>을 배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중국에는 두 개의 거대한 암흑세계가 있었다. 지하 범죄 조직과 무술가들의 세계인 무림이 그것이었다. 선의로든 악의로든 간에 그들은 스스로 무사의 명예와 원칙에 매여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원로 평의회와 왕에게 복종하고 자신들의 법에 따라 스스로 치안을 유지해 나갔다. 특히 범법 행위를 저지른 무술가들은 아주 흥미로웠다. 이들은 스스로를 정의의 사도라고 여겼다. 충성에 보답하고, 배반자에게 벌을 내리고,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은 관대하게 도와주는 것이 이들의 독특한 정서였다. 범죄자였지만 한편으로는 무림의 일원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들 중 일부는 제2의 암흑세계로 빠져들었다. 제2의 암흑 세계는 녹원회, 홍건단, 삼지창회, 백련교 등과 같은 비밀 조직의 통제를 받았다. 이 같은 갱 조직의 상당수는 사부, 도관, 제자나 명예의 전통 중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았다. 그들은 순전히 건달패들이었다. 탐욕적인 아첨꾼이며 오로지 학자와 부자를 울리는 폭력의 배후 조정자들이었다.
홍건단 같은 대다수의 비밀 조직들은 처음에는 청 왕조를 타도하는 데 몸을 바친 반만주계의 애국주의 단체로서 출발했었다. 하지만 수년 동안에 걸쳐 지하 세계는 아편, 헤로인, 매춘, 도박, 금품 강탈 및 암살과 정치적 조종 등의 일에 더욱 깊게 관여했다.
이들 양대 암흑계는 중국 전역에 걸쳐 십자망의 연결 조직을 구축하였다. 그리고 중국 동포들이 있는 세계의 전지역으로 세력을 뻗어 나갔다. 사이훙이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려면 두 암흑 조직은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조직이었다. 지금 사이훙이 무술계와 함께 일을 시작할 필요가 있었다. 그들만이 사이훙이 후디에를 잡을 때까지 화산에 관용을 베풀어 주겠다는 보장을 해줄 수 있었다.
무술계는 지역마다 대표 원로와 원로의 통치를 받았다. 그리고 모든 무술가는 평의회의 명령에 따라야 할 의무가 있었다. 원로들은 분쟁을 해결하고 결투를 허가하고 집단 활동을 지시했다. 그리고 그들은 무사의 규정을 어긴 자들은 처형하도록 명령했다. 사이훙 일행이 청원을 넣기 위해 간 곳이 바로 이 평의회였다.
회의는 무덥고 습기 찬 오후에 어느 개인 저택에서 열렸다. 저택에는 안뜰과 정원, 흐르는 시냇물과 웅장한 정자가 있었다. 어두운 홀 내부에 극장처럼 열을 맞춰 좌석이 마련되었다. 무술계의 다양한 회원들이 좌석에 앉았다.
기둥으로 떠받쳐진 홀 앞에는 10명의 원로들이 앉는 둥근 탁자가 놓였다. 두 명을 제외한 원로들은 긴 중국 의상을 걸치고 있었다. 중국 의상을 입지 않은 두 사람 중의 하나는 하얗게 센 머리에 국민당 군대의 짙은 황록색 제복을 입고 있었다. 다른 한 사람은 불교의 법복을 입은 50대 남자였다. 한데 모인 열 명의 원로는 무술계뿐 아니라, 종교와 정부를 대표하였다. 무술계는 모든 권력에 손을 뻗치고 있었다. 불교 승려가 무술계의 총대표였다. 그의 법명은 준치로, <순수한 정신>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비록 얼굴은 주름이 잡혀 쪼글거리고 눈은 약간 튀어나왔지만, 깨끗하게 삭발한 머리는 단정한 느낌을 주었다.
준치 법사의 수염은 염소 수염처럼 짧고 숱이 적었지만, 어깨는 한때 벌어졌던 흔적이 엿보였다. 녹회색 법복 위로는 벽돌 사이의 모르타르처럼 금색 문양이 있는 짙은 갈색 가사가 가슴과 어깨너머로 비스듬히 내려와 있었다. 법사는 목에 108 염주를 걸고 있었는데 찬란한 제왕의 옥이 36개 염주 알마다 하나씩 끼어있었다. 손가락에는 작은 염주 알 하나가 끼어있었다. 법사가 개회를 선언했다.
"화산에서 온 세 명의 도사를 소개합니다. 앞으로 나오시오."
그들은 일어나 탁자 가까이 걸어갔다. 몇몇 원로들은 그들을 쳐다보며 그저 무관심하게 담배만 피우고 있었다.
"말하시오."
"저는 화산의 호접 도인으로 대사부의 제자입니다."
사이훙은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저는 여러 원로분들이 산시성성주의 청을 거두어 주십사 탄원하러 왔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내를 유혹한 저의 사형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가 즉각 그를 넘겨 주지 않는다면 성주는 화산 전체를 쑥밭으로 만들도록 군에 명령할 것입니다."
준치 법사는 국민당의 장교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는 조롱하는 듯한 미소를 흘리며 타들어 가는 담배 끝은 바라보았다. 왜 하필 여자 문제 따위의 시시한 문제냐는 기색이었다.
사이훙은 계속 말을 이었다.
"저의 사부님의 의견으로는 이 일은 화산이 풀어야 할 내부 문제입니다. 우리는 무림의 범위 내에서 이 문제를 풀겠습니다. 원로 여러분이 우리를 위해 중재해 주십시오."
법사는 탁자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단지 고개를 끄덕이거나 손짓을 할 뿐이었다. 사이훙은 한 사람이 고개를 젓는 것을 보았다. 나머지는 찬성이었다.
법사가 고개를 들었다.
"우리는 세 분에게 꼭 100일을 허락하겠소. 그 후에는 여러분을 보호해 줄 수 없소이다."
"원로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사이훙은 절을 올리며 말했다.
회의장을 나선 사이훙 일행은 여행 준비를 하기 위해 급히 여관으로 돌아왔다. 사이훙은 만족스러웠다. 그는 원로들이 막강한 힘을 발휘해 법을 집행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군의 장교는 정부에 정식으로 명령을 하달할 것이고, 기업가들은 후디에의 조직에 대한 돈과 물품의 지급을 보류할 것이다. 사이훙은 화산이 100일 동안 군대로부터 안전할 것이라는 사실에 추호의 의심도 없었다. 그는 사부가 진엔니아오와 대항해서도 버텨낼 수 있기를 기원했다.
세 사람을 태운 기차는 베이징으로 달려갔다. 태양은 대지를 뜨겁게 달구었다. 건조해진 밭에서는 흙이 떨어져 나가 곳곳에 땅이 패어 있었다. 부지런한 농부들은 전쟁과 자연재해에도 불구하고 땅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고 진흙덩이로부터 옥수수, 밀, 기장, 감자 따위를 긁어 모으기 위해 몇 시간 동안이나 땀 흘려 일했다. 허리를 굽힌 채, 다리를 절뚝거리며 농부들은 푹푹 열이 오르는 땅에 모을 수 있는 물을 모두 모아 군데군데 뿌렸다. 그들은 사막의 거친 돌풍이 뿜어내는 강한 모래 먼지까지 견뎌내야 했다.
왕조가 바뀌고, 몇 세대가 지나고, 수없이 해가 지나갔지만, 베이징은 원래 선택된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매우 이상적인 땅이며 세계의 중심지인 베이징의 실제 상황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뜨거운 황토의 먼지 구름이 마치 대군이 몰려오듯 시내 전역에 온통 먼지 바람을 일으켰다. 태양은 대기를 바싹 건조시켜 숨쉬기조차 어려웠다. 입술 사이와 눈가에는 빠른 속도로 왕모래가 쌓였다. 나무, 양곡, 짐을 싣는 동물과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베이징의 건조한 기후에 쇠약해지고 시들해졌다. 중국 문명의 중추를 확립하기 위해 수도를 베이징으로 정했던 연의 창건자들이 이용했던 비법은 사라져 버렸다. 사이훙은 수 세기에 걸쳐 이 도시를 약탈하고, 황제의 자리를 찬탈하기 위해 대평원을 누비고 다녔던 수많은 군대들을 생각했다. 행진하는 군대의 발길에 짓밟히고, 말발굽에 채고 으깨어지는 모습이 중국의 장구한 역사와 함께 눈앞에 펼쳐졌다. 북쪽에서 쳐들어온 오랑캐, 남부에서 일어난 농민 반란군, 지구 저쪽에서 횡단해 온 유럽 군대 그리고 대양을 건너온 일본의 침략자들은 자금성의 주홍색 성벽을 무너뜨리려고 애를 썼다.
기차의 종착역은 옛 도시의 성벽 외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세 사람은 도심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당장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좋았다. 군중을 이용해 일본군의 눈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항상 감시의 눈을 게을리하지 않는 암흑가의 첩자들로부터 모습을 감출 수 있었다. 그들은 발 디딜 틈 없이 번잡한 거리를 헤쳐 나갔다. 비만 한번 좍 쏟아져도, 지진만 일어나도 땅속으로 함몰될 것 같이 보이는 진흙과 벽돌로 지어진 집들이 길가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사이훙은 마치 미로 속에 빠져든 기분이 들었다. 예전에 자금성보다 더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도록 포고령을 내리기도 했지만, 옛 사람들은 땅에서 멀어지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낮은 건축물과 포장되지 않은 좁은 길들이 마구 뻗어 있었다. 낮고 초라한 담장은 베이징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가옥과 건물에는 담이 둘러처져 있었다. 벽돌을 쌓고 틈새에 황색 모래와 석탄 가루를 발라 만든 담장들이었다. 어떤 담장은 회반죽과 벽돌은 불규칙하게 조각조각 덧대어 만든 것이었다. 창에는 대개 반투명 종이를 발라 붙이거나 먼지가 잔뜩 껴서 건물 내부를 들여다 볼 수가 없었다. 화창한 햇살도 음침한 담장에는 생동감을 불어 넣지 못했다.
옴이 올라 상처투성이인 개들이 통로를 기웃거리며 다니다 쓰레기더미에 코를 쑤셔 박았다. 사람과 짐승이 모두 오줌을 휘갈겨 담벽은 더럽기 짝이 없었다. 깨진 기와들이 쌓여 있는 먼지 구덩이에서 잡초와 풀이 자라나 담장을 덮었다. 문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이따금 반쯤 열린 문 사이로 석탄처럼 시커먼 방이 들여다보였다. 사방이 벽으로 막혀 있어서 담장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추측할 도리가 없었다. 어떤 일이든 감춰질 수 있었다. 십중팔구 그 안에서는 굶주린 가족들이 비좁고 불결한 칸막이 속에서 갇혀 지내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셀 수 없이 많은 이 작고 야트막한 담들이 도시의 기초를 형성한다면, 시 전체는 담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진나라 최초의 황제가 나라 전체에 성벽을 쌓으려고 했다는 이야기도 허황하게 들리지 않았다. 고대의 성벽은 여전히 이 도시에 서 있다. 각을 이룬 높은 벽돌담의 꼭대기는 벌어진 이빨처럼 없어진 벽돌이 만든 틈이 여러 개 있었다. 고대의 성벽은 근접을 불허하는 당당한 자태로 여전히 군림하고 있어 원래의 규모를 짐작하게 했다. 역사와 흘러간 시간을 성벽에 음각이라도 하려는 듯 1900년 동맹군의 기습 공격에 포화를 맞아 벌어진 구멍들이 미복구 상태로 남아있었다.
베이징의 성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여행객들은 시 치안 판사에게 신고해야 했다. 여행객들은 붉은 기둥의 벽돌 건물로 직행했다. 연단이 마련된 텅 빈 접대실에는 무거운 자단목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2마리 학의 벽화는 방에 완벽한 균형미를 주었다.
높은 자리에 놓인 빨간 북은 문 가까이에 놓여 있었다. 노란색의 팽팽한 북 가죽 중앙에 커다란 붉은 점이 찍혀 있었다. 사이훙은 막대를 집어 들고 큰소리가 나게 북을 쳤다. 이렇게 하면 치안 판사와 면담을 할 수 있었다.
황록색의 서양식 제복을 입고 총을 멘 군인들이 방 끝의 문 입구에서 줄지어 나왔다. 그들은 묵묵히 걸어가 계단을 내려갔다. 군인들이 돌아서서 서로 마주 보았다. 어울리지 않는 청색 옷을 입은 수행원이 나왔다. 수행원은 작은 안경을 끼고 염소처럼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베이징의 치안 판사님!"
수행원의 말에 사이훙과 그의 동행자들은 무릎을 꿇었다. 돌바닥은 딱딱하고 차가웠다. 치안 판사는 오페라의 주인공처럼 입장했다. 땅딸막하고 드세고 근엄한 표정을 한 판사는 검은색 비단옷과 조끼를 입고 검은 두건을 쓰고 있었다. 그는 등뼈를 수직 각도에 맞춰 꼿꼿한 자세로 자리에 앉았다. 그의 불그레한 얼굴은 곰을 연상시켰다. 수염은 솔처럼 뻣뻣해 보였고, 둥근 눈은 무겁게 눈꺼풀이 내려와 무관심하고 냉소적인 느낌을 주었다. 사이훙, 우잉과 우콴은 3번 모두 고두하며 예의를 다했다.
"요구 사항을 말해 보시오."
수행원이 지시했다.
"우리는 이 도시에 들어와 한 사람을 추적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기를 요청합니다."
사이훙은 말하면서 바닥을 쳐다보았다. 치안 판사를 마주 보는 것은 무례한 짓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었다.
"서류는?"
수행원이 오만하게 물었다.
사이훙은 머리 위로 올려 신분증을 내밀었다. 그는 계속 아래를 보았다. 수행원이 계단을 내려와서 그들을 치안 판사에게 데려갔다. 치안 판사는 사이훙의 통행증을 펴 보았다. 좁고 가는 주름이 잡힌 긴 종이가 두 장의 딱딱한 종이 사이에 묶여 있었다. 한쪽에 사이훙의 주소, 서명과 함께 타원형 사진이 있었고 그의 여행 목적을 알리는 화산의 대사부가 서명한 글이 있었다. 끝에는 엄청나게 큰 화산의 봉인이 대사부의 봉인과 함께 찍혀 있었다. 통행증 외에도, 여행중에 관청에 등록하기 위한 등록 명부들이 있었다.
치안 판사는 이상야릇한 불만을 나타냈다. 수행원과 경비원들이 그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의 얼굴 표정 하나하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다 뜻이 담겨 있었다. 그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의사소통을 했다. 치안 판사는 자신에게 간청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나 아랫사람에게 말을 거는 일이 거의 없었다.
치안 판사는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생각에 잠기더니 붓을 잡았다. 수행원을 알랑대며 백옥문진을 통행증에 힘있게 놓았다. 그리고 책상 위에 놓인 5개의 잉크병으로 눈길을 돌렸다. 치안 판사가 무엇을 쓰든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잉크의 색깔이 그의 명령을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검은색은 승낙할 수 없다는 뜻이고 녹색은 승낙한다는 뜻이었다. 청색은 그 문제를 고려해 보겠다는 뜻이다. 흰색은 그 요청은 중요하지 않으므로 언급할 가치가 없다는 뜻이며, 빨간색의 증서의 수속이 완료되었다는 의미이다. 사이훙은 근심스럽게 잉크병 위로 움직이는 붓끝을 주시했다. 다행히도, 붓끝은 녹색 잉크로 떨어졌다. 수행원은 뭐가 그리 못마땅한지 통행증들 위에 봉인을 찍는 동안 뿌루퉁해 있었다.
치안 판사는 수행원을 손짓으로 불러 뭔가를 속삭였다. 치안 판사는 몹시 화가 난 듯 책상을 손바닥으로 쳐가며 수행원에게 뭐라고 해댔다. 수행원은 몸 둘 바를 몰라하며 애처롭게 대답했다. 잔뜩 겁을 먹은 수행원이 세 사람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치안판사님께서는 당신들의 사부님을 잘 알고 계십니다."
수행원의 목소리에는 사부의 명령에 대한 비겁한 복종과 야릇한 혐오감이 함께 담겨 있었다.
"판사님은 더할 나위 없이 당신들의 추적이 잘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계시오."
치안 판사는 아무 말도 않고 일어나 방에서 나갔다. 구성원은 그 뒤를 졸졸 따라갔고 군인들은 줄을 서서 나갔다. 단 한 명만이 뒤에 남아 사이훙 일행에게 통행증들을 돌려주었다.
그들은 찻집으로 갔다. 비싼 차값을 내고서 2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곳에서는 시가지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수많은 벽돌집과 안개 사이로 붉은 성벽과 금색 기와를 얹은 자금성의 윤곽이 보였다. 공기는 숨 막힐 듯이 무더웠다. 하지만 백단향의 격자 무늬 창문들에서 향긋한 내음이 풍겨 나왔다. 급사가 급히 올라와서 무슨 차를 들겠냐고 묻고 주문을 받아갔다. 차를 기다리는 동안 사이훙은 어떻게 형을 찾아야 할까 궁리를 했다.
그들은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적당한 곳에 와 있었다. 찻집은 일반적인 만남의 장소였다. 새벽부터 늦은 밤시간까지 문을 여는 찻집에서 사람들은 사교모임을 갖고 시간을 보냈다. 차와 음식은 계속 내올 수 있었다.
더 환상적인 곳에서는 어여쁜 여성 음악가들이나 떠돌이 이야기꾼들이 여흥을 북돋워 주었다. 손님들은 중국 일반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었다. 맹목적으로 차에 열광하는 학자, 결혼을 주선하는 중매인, 손님을 대접한다면서 거북스러워하는 친척들,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학생들, 은퇴해서 여생을 느긋하게 지내는 노신사들이 주된 손님들이었다.
무사들은 보통 손님들과는 매우 달랐다. 그들 중에는 거의 돌연변이에 가까운 거인들도 있었다. 어떤 무사들은 옷을 보고 만주에서 왔는지 산둥에서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언제든 벌떡 일어날 수 있도록 그들은 발을 넓게 벌리고 자리 위에 힘있게 앉았다. 무기는 숨겨 놓지 않는 게 예의였다. 칼, 부채, 단도, 곤봉과 같은 길이가 짧은 무기들은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쇠몽둥이, 창, 봉처럼 큰 무기들은 테이블에 기대어 놓았다. 무사들은 바야흐로 멸종이 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청 왕조가 복귀할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리고 지금까지 크고 작은 전쟁에서 무사들이 일본군을 상대로 그 얼마나 멋진 활약을 해왔는가. 무사도와 작위는 사라졌는지 몰라도 무사의 막강하고 독특한 전형들은 아직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사이훙은 바로 그런 무사로 늙어 가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우잉은 옛 친구를 만나 그의 테이블로 갔다. 온통 검은색 옷을 입은 야윈 남자가 손이 쉽게 닿는 곳에 날이 넓은 칼을 놓고서 우잉을 열렬히 환영했다. 대화를 좀 나누더니 그들 사이에서 은화가 오고 갔다. 그 마른 남자는 우잉이 자리로 돌아올 때는 더욱 노골적인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나는 뇌물을 싫어해."
사이훙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정보 제공자에게 준 차값 정도로 생각하면 돼."
우잉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어쨌든 우리가 그를 만난 건 행운이야. 괜찮은 정보를 얻었거든."
"무슨 정보인데?"
우콴이 물었다.
"후디에는 30대 초반의 부유한 애인과 살고 있대. 그 여자는 암호랑이란 뜻의 핀후란 이름을 가진 가공할 만한 무사라는 거야. 손가락이 꼭 강철 못처럼 몸을 꿰뚫어 버린다지. 그녀의 아버지는 소림의 무사였고, 핀후의 동생은 10살 짜리 소년이래. 핀후가 손위여서 아버지는 자신의 무술을 주저하지 않고 딸에게 먼저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핀후는 아버지부터 거의 모든 걸 배웠다고 하더군. 그리고 후디에가 그녀의 무술 기법을 더 키워 줬을지도 몰라. 하지만 동생은 아버지가 일찍 죽는 바람에 무술을 제대로 못 배웠나 봐."
"그 여자 집으로 가지."
우콴이 성급히 말했다.
"그렇게 빨리는 안 돼."
사이훙이 우콴을 말렸다.
"우리는 더 많이 알아내야 해. 남자보다 무서운 여자 무사도 많이 있으니까."
"맞아. 내일 우리가 검시관의 사무실로 가는 이유도 바로 그거야."
우잉이 동의했다.
세 사람은 그날 유명한 백운관에서 밤을 보냈다. 백운관은 도교에 있어서 매우 성스러운 사원이었다. 백운관은 드넓은 자리에 정확히 남북을 축으로 지어져 있었다. 백운관은 당나라 순종에 의해 그 자리에 처음 세워졌다. 1202년 도관이 불탄 후, 몽고의 징기스칸이 도교의 현인 치우 창춘을 초빙하여 도관을 재건했다. 백운관은 명과 청왕조에 이르러 현재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교리면에서 전적으로 은둔적 도교를 지지해 온 백운관은 장문인들의 전국적인 대집회가 벌어지는 장소였다. 중국의 모든 도교 수행자와 도사의 법명은 수임식이 끝나기에 앞서 이 도관의 기록부에 먼저 올려졌다.
도관의 정문은 잿빛 기와 지붕이 얹어져 있었고, 문에는 금색과 붉은색, 청색을 많이 써 매우 화려했다. 대리석 기둥과 철문 뒤에 넓은 뜰이 있고 세 개의 아치 길과 심홍색의 벽돌 대문이 있었다. 화강암으로 된 수호 사자들과 구름 기둥들이 바깥 세계와의 경계를 지어 주었다. 도관 전체는 높은 담으로 둘러쳐져 있고 안쪽의 대문은 산문이라고 불렸다. 산문에 들어섰다는 건 속세를 떠나 정화된 성지로 들어왔다는 의미를 포함했다.
주요 사당들은 양 측면에 있는 보다 덜 중요한 다른 사당들과는 달리 중심선을 따라 세워져 있었다. 백운관의 중심축에는 도교의 수호신을 모신 영관전, 옥황전, 치우 창춘 조사를 모신 구조전, 사어전, 노율당, 삼청각, 운집산방 등이 들어서 있었다. 동쪽 축에는 양진당, 수진당, 북극성과 북두칠성을 모신 두부궁, 진무전과 화타를 모신 화조전 그리고 오조전이 있었다. 서쪽 경내에는 여동빈을 모신 여조전, 여덟 신선을 모신 팔선전, 도교의 여신들인 낭랑신들을 모신 원군전 그리고 북과 종을 치는 고루와 종루도 있었다. 사원 곳곳에 백운관의 후원자였던 제왕들의 찬사와 경구가 기록돼 있었다.
도인들은 평신도들에게 어려운 철학적 개념을 전하려고 실제 대상물의 단순한 은유를 이용했다. 탁 트인 아름다운 정원과 도시와 떨어진 적막한 도관의 위치가 신도들에게 엄숙한 분위기를 전해 주었다. 봉래의 교설은 사원 뒤의 바위, 정원에 의해 상징화되었다. 신의 세속적 권능은 음양의 상징을 부여받음으로써 현시되었다. 즉, 신의 손에 전 우주를 담는 그림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도관은 종교를 위한 정교한 극장이라고 볼 수도 있었지만, 백운관은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에게 진정한 영혼의 울림을 주었다. 여러 세대에 걸쳐 성인들은 백운관에서 깨달음에 도달했다. 사이훙 같은 사람에게 사원은 혼란스런 도시를 떠나 새로운 기분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차가운 여조전에 들어서자 사이훙은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이훙은 여동빈의 신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먼지 나는 평신도복을 입은 채 사이훙은 무사와 도교 수행자 사이에 나란히 앉아 안식을 찾았다. 그는 무엇을 할까 생각했다. 기도를 할까? 기도를 올릴 자격이 있을까? 승리를 위해? 아니면 앞으로 그가 저질러야 할지도 모를 살인에 대한 용서를 구하기 위해?
사이훙은 찻집에서 봤던 사람들을 다시 생각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가는 자신이 못내 처량하게 생각되었다. 이제까지 그는 자신의 참다운 본분을 찾을 수가 없었다. 사이훙은 어머니가 바라던 학자고, 아버지가 원하던 군인도, 사부의 시자도 원치 않았다. 그가 원한 것은 확실성뿐이었다. 영혼의 진실이 제시하는 확실성, 무술의 확실성, 고결한 미래의 확실성이었다. 그러나 사이훙은 지금 불확실성과 맞닥뜨리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무사들은 현대 앞에서 그 빛을 잃어버렸고 사이훙은 어차피 자신은 무사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완벽한 영혼의 진리 또한 아직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 사이훙은 확신할 수 없었다. 도전자 모두가 그보다 힘이 더 셀지도 모른다. 그는 어떤 싸움이 마지막 싸움이 될지 몰랐다. 사이훙은 수백만이 사는 나라에서 사형을 찾아다니고 있다. 그를 붙잡지 못할지도 모른다. 무릎을 꿇고 있는 바로 그곳에서, 사이훙은 자신이 과연 성스러움에 다가갈 수 있을지 의아해 하고 있었다. 사이훙은 자신의 의혹에 저주를 퍼부었다. 신념 없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무사는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불확실성은 약점이다. 그는 앞으로 있을 싸움을 위해 자신의 심약함을 확인해 봐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 대답은 바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추적에 필요한 힘을 기르기 위해 자신을 더 깊이 탐구하기로 결심했다.
사이훙 일행은 다음 날 아침 임시 시체 안치소로 갔다. 그곳은 음산한 벽돌 건물이었다. 검시관에게 서류를 보여 주고 이틀 전 들어온 시체를 보게 해달라고 설득했다. 검시관은 특이한 사람이었다. 그의 이마와 두 눈은 흐리멍텅한 반면 입술은 아주 신랄한 풍자를 터뜨릴 듯한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검시관은 쾌활했다. 또 자신의 일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임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일단 사이훙 일행의 관심이 합법적임을 확인한 뒤 검시관은 그의 최대 업적을 자랑한다는 흥분에 휩싸여 그들을 복도 아래로 안내했다. 검시관은 긴장보다는 기대감으로 들떠서 가죽처럼 질긴 두 손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검시관은 지하실로 내려가는 길을 안내했다. 포름알데히드 냄새와 해부된 창자에서 나는 악취 때문에 사이훙은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 계단은 둥근 천장을 한 작은 방으로 이어졌다. 방에 놓인 관들이 유등에서 나오는 희미한 불빛을 받고 있었다. 조수가 한 여자의 시체를 막 해부하려는 참이었다. 검시관은 그를 내보내고 기름때가 묻은 천으로 시체를 가만히 덮었다. 그는 사이훙 일행을 어두운 구석으로 안내했다. 검시관은 그들이 찾는 시체를 찾아 관을 열어 보았다. 시체 썩는 악취가 진동했다.
"다행히 아직 석회로 봉하지 않았죠. 조사가 있을 것 같아 하루를 더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살해됐다고 해서 요즘 신경 쓰는 사람이나 있습니까."
사이훙은 시체를 살폈다. 건장한 체구의 불교 승려였다. 삭발을 한 머리가 포탄만큼이나 컸다. 눈썹은 짙고 숱이 많았다. 자줏빛으로 변한 입술이 벌어져 있었다. 입 안 가득 깨진 이빨에 피가 엉켜 있는 것이 보였다. 목에 건 무거운 쇠염주는 알 하나하나의 직경이 4센티는 되어 보였다. 우콴은 칼집에서 칼을 빼내 칼끝으로 승려가 입고 있는 옷을 한쪽으로 밀쳤다. 오른쪽 쇄골 아래와 왼쪽 귀밑에 반점이 있었다. 가장 분명한 상처는 심장 부위에 난 손바닥 모양의 자줏빛 타박상이었다.
"우리는 누가 그를 죽였는지 모릅니다."
검시관이 전문가다운 말투로 말했다.
"그러나 짧은 순간에 일어난 살인 같습니다. 갖고 있던 무기는 부서져 버렸어요."
그들은 깨진 무기를 보았다. 시체 옆에 되는대로 내팽개쳐져 있었다. 불교승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다루는 무기인 철장이었다. 한쪽 끝에 삽처럼 생긴 큰 날이 달려 있었다. 그것은 약초를 캐는 데 쓰는 삽에서 유래되었다. 다른 끝에는 초승달 모양의 날이 붙어 있었다. 양끝에는 강철 고리가 늘어져 있어서 움직일 때마다 차르랑차르랑 쇳소리가 났다. 억센 티크 나무 손잡이가 괴력에 의해 쪼개져 있었다.
사이훙은 검시관에게 잠깐 자리를 비켜 달라고 청하고 우잉에게 시선을 돌렸다.
"정보 제공자가 뭐라고 했으며, 이 일과 후디에는 어떤 관계가 있다고 하던가?"
우잉은 램프를 집어들어 관의 끝에 올려 놓았다. 시체 위로 노란 불빛이 쏟아져 보기 흉한 시체를 밝혀 주었다.
"얘기는 이렇게 되지. 이틀 전 이 승려는 우리와 비슷한 목적을 가지고 베이징으로 상경했던 거야. 그는 후디에와 그의 애인이 더 이상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막으려 했던 거야. 무림의 법을 자네도 잘 알잖아. 선인과 악인은 반드시 맞부딪치게 되어있지. 그는 핀후의 남동생을 이용해 핀후를 끌어내려고 했지. 이 승려는 암흑가의 정보원에게서 소년은 보통 정해진 시간에 집을 나선다고 들었지. 미리 가 기다리다 소년을 만난 승려는 길을 가로막고 두 개의 납공을 땅에 던졌어. 납공은 그 힘과 무게 때문에 진흙탕 속 깊이 박혀 버렸지. 승려는 두 개의 공 위로 뛰어올라 도전장을 던졌지. 만일 소년이 그를 이긴다면, 소년에게 한 수 가르쳐 주기로 한 거지. 소년은 자기 기술에 대한 자신감과 다른 무술인으로부터 더 배우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 경솔하게 공격을 가했지. 불교승은 그의 심장을 손바닥으로 철썩 쳤지. 소년은 피를 토하고 도망가 버렸어. 소년이 누이에게 상처를 보여주자, 핀후는 철사장이 남긴 흔적임을 곧 알아차렸지. 목표물을 손바닥으로 가격하는 훈련을 하고 특수 약초에 손을 담근 사람만이 그런 상처를 입힐 수 있었던 거야. 그녀는 즉각 복수하러 갔지. 불교승은 핀후가 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어. 그는 먼저 맨손으로 그녀와 대적했지. 하지만 그녀의 힘과 능력에 깜짝 놀라 무기를 써야만 했어. 목격자들의 말로는 핀후는 아주 쉽게 그로부터 철장을 뺏어버렸다더군. 동생을 상처 입힌 불교승에게 화가 난 핀후는 동생이 입은 상처와 똑같은 상처를 그에게 돌려주었지. 그녀는 그에게 손을 뻗어 공포의 손가락으로 그의 목숨을 끊어 버렸다네."
사이훙은 뻣뻣이 굳어 있는 시체를 바라보았다. 상처와 부풀어 오른 부위가 우잉의 말이 사실임을 입증해 주었다. 그것은 그녀가 암호랑이라고 불릴만한 가치가 있는 무사임을 말하는 명백한 증거였다.
"가자. 후디에는 벌써 우리가 베이징에 도착한 사실을 알고 있을지도 몰라. 오늘 오후에 핀후의 집을 습격하자구."
사이훙이 말했다. 우잉과 우콴은 동의했다.
그들은 검시관에게 감사의 뜻으로 약간의 은화를 집어 주고 나서 후디에가 사는 북서부를 향하기 시작했다.
"결투가 벌어지는 날 시체 안치소에 가다니 기분이 나빠."
우잉이 투덜댔다.
"그런 생각에 누가 신경이나 쓴대? 시체 썩는 냄세, 그게 바로 진실이란 말이야."
우콴은 형의 미신적인 생각을 비난했다.
"악취와 비교해보면 도시 냄새가 좋긴 좋군."
사이훙이 말했다. 우잉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석탄 냄새가 대기 중에 가득했다. 우잉은 기침을 했다.
"제기랄, 크게 다를 것도 없군."
그가 불평했다.
세 사람은 베이징의 가장 오래된 구역으로 들어갔다. 회색 건물들과 부서진 담장들은 꼬불꼬불한 좁은 길을 만들었다. 베이징은 한대 정확한 격자 모양 위에 풍수지리의 원리에 따라 주도면밀하게 설계된 곳이었지만, 이젠 개인주의의 지저분한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사이훙 일행은 모퉁이를 돌아서서 길게 이어진 광활한 회색 돌담을 보자마자 부유한 핀후의 집이란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핀후의 저택에 둘러쳐진 벽은 그 높이가 10미터도 넘었고 꼭대기는 윤기나는 녹색 기와로 장식되어 있었다. 대문 양쪽에 붉은 기둥들이 서 있고 주홍색의 문은 탱크도 너끈히 이겨낼 만큼 단단해 보였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색은 전부 멋들어진 회색, 붉은색, 녹색이었다. 어디에도 쉽게 열고 들어갈 만한 곳이 안 보였다. 세 사람 중 누구도 후디에의 도약 기술을 갖고 있지 못했다. 밧줄을 사용해서 올라가야만 했다.
사이훙은 난공불락의 울타리 안에 있는 아름다운 정원을 보고 감탄을 했다. 현란한 빛들이 단색조의 고대 도시에 화려한 무늬를 짜 넣고 있었다. 정원과 가옥의 아름다움은 장구한 문명의 흔적을 보여 주고 있었다. 고상한 취미와 건축과 풍경의 세심한 균형은 수많은 세월에 걸쳐 완성된 듯했다. 핀후의 아버지는 틀림없이 이 보물을 황제에게 숨겼을 것이다. 만일 통치자가 알았다면 시기심 때문에 죽여 버렸을 테니까.
인공 연못이 집 앞에 있었다. 굽이굽이 흐르는 시냇물은 안채의 서쪽 뒤로 흘러갔다. 충충한 녹색의 불투명한 수면 위로 여러 그루의 수양버들이 어른거렸다. 연못가에는 기암괴석이 불규칙하게 배열되어 있었다. 마치 그 유명한 <원난성의 바위 정원>이 색다른 형태로 변해 있기라도 한 듯 바위 정원은 동화 속의 산맥을 그리고 있었다.
명상을 하며 자연 속에 파묻힐 수 있게 꾸며진 정원이었다. 정원사들은 이론적인 원근법이나 상상력에 의존하지 않았다. 그들은 정원에 지붕이 있는 산책로를 길게 닦아 놓았다. 각 구역마다 기이하게 꺾인 산책로의 각도는 조화나 균형보다는 산책자의 편의를 우선적으로 고려한 결과였다. 그러나 녹색의 기와 지붕과 붉은 기둥들은 자연과 섬세한 조화를 이루어 자못 경이롭기까지 했다. 포플러, 소나무와 삼목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은 무수한 점이 되어 흩어졌다. 연못 위에 떠 있는 연꽃은 불꽃처럼 붉게 타올랐다. 노란색, 자주색, 적갈색의 국화들이 다소곳이 바위 정원이 드리워진 나무 그늘도 가히 환상적이었다. 전체적으로 정원은 천상의 우아함과 초현실적인 엄숙함을 느끼게 했다.
그들은 벽돌로 지어진 저택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거대한 2층집은 전통적인 버드나무 무늬를 새긴 튼튼한 기둥과 맵시 있게 뻗은 지붕으로 단단히 지어져 있었다. 선인장 화분이 주랑 끝에 가지런히 배열되어 있었다. 빨간 문에는 바다를 연상시키는 진주들이 박혀 있었다. 사이훙은 거추장스러운 겉옷을 벗었다. 한쪽 끝에 칼이 달린 밧줄을 몸에 묶었다. 사이훙은 동료들을 보고 칼을 뽑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부드럽고 둥근 선이 돋보이는 칼날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사이훙은 당나라의 학자 이관이 <무기는 불길한 도구>라고 한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칼은 사용해 주기를 원하고 있었다.
사이훙은 다시 문을 마주 보고 섰다. 그들은 어쨌든 자신들의 출현을 알려야 했다. 사이훙은 거칠게 발로 문을 걷어찼다. 요란한 소리가 났다. 그 아름다운 빨간 문이 떨어져 나갔다. 사이훙과 동료들은 방으로 들어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손잡이에 장식을 조각하고 비단으로 쿠션을 대어 만든 의자들이 탁자 주위에 두 줄로 놓여 있었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꽃 모양의 대형 비단 양탄자가 깔려 있고 벽은 값비싼 두루말이 그림과 도자기로 장식되어 있었다. 홀의 상단에 붉게 빛나는 작약꽃들이 옆으로 길게 있고 두 개의 의자가 문을 향하고 있었다. 방의 불빛은 흐릿하고 실내엔 곰팡내가 스며들어 있었다. 사이훙 일행은 다급하게 뛰어다니는 소리와 여자가 하인들에게 나가라고 명령하는 소리를 들었다.
핀후가 먼저 방으로 들어왔다. 금색과 청색의 비단 상의와 바지를 입고 있었다. 중키에 날씬한 몸매였지만, 운동으로 단련되어 단단해 보였다. 발도 튼튼하고 전족이 아니었다. 피부는 희고 매끄러웠다. 마치 백옥 같았다. 두 눈은 크고 눈썹은 짙었다. 눈꼬리가 가늘고 길게 뻗어 있었다. 핀후의 용모는 섬세하게 그려진 그림 같았다. 잠깐 동안 사이훙은 자신이 방에 들어온 이유를 잊었다. 잔잔한 향기에 취해 버린 사이훙은 핀후 같은 여인에게 유혹을 받으면 자기도 수도 생활을 포기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핀후의 뒤를 이어 동생이 들어왔다. 머리를 삭발하고 호기심이 많은 눈을 가진 그는 말라깽이 10대 소년이었다. 얼마 전에 입은 상처 때문에 불편한 것 같지는 않았다. 붉은색 비단옷을 입은 그는 조심스럽게 웃옷의 가장자리를 검은 허리띠 속으로 밀어 넣어 신속하게 발을 움직일 수 있게 했다. 그는 자기 키만한 창을 들어 사이훙 일행에게 겨누었다.
남매는 방의 한 가운데로 나왔다. 누군가 문가에서 서성대고 있었다. 후디에였다. 평소에 으스대며 자신만만하던 후디에가 아니었다. 과묵해보였고 사이훙은 보는 눈길은 마치 숙명론자 같았다.
"우리가 너를 잡으러 왔다, 후디에!"
사이훙은 방 건너편에서 크게 소리쳤다.
후디에는 고개를 들어 외면했다.
"사부님이 너를 찾으신다. 너는 사부님의 포용 한도를 넘어섰다. 자, 우리와 함께 가자!"
"여기는 내 집이다. 너는 명령을 할 입장이 아니다."
핀후가 말했다.
"이 일에서 손을 떼라. 그렇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
화가 난 사이훙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뒤로 물러서는 후디에를 쳐다보았다.
"공격 개시!"
사이훙은 크게 소리치면서 앞으로 돌진했다.
핀후는 거뜬히 그의 기습을 받아냈다. 사이훙은 자신이 불리하다는 걸 깨달았다. 핀후의 기술은 그보다 몇 수위였다. 단순히 힘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이훙의 체중과 완력이 핀후보다 압도적으로 우세했지만 핀후는 사이훙의 공격을 민첩하게 잘 빠져나갔다. 방어할 생각도 안 했다. 그녀가 반격을 가할 때는 사이훙이 필사적으로 도망쳐야만 했다. 손가락 끝을 이용한 핀후의 가격은 치명적인 것이었다. 사이훙이 옆으로 껑충 뛰어올라 조용히 물러서 있는 후디에에게 달려들었다. 핀후가 사이훙을 향해 뛰어올랐다. 사이훙은 옆으로 살짝 피했다. 그녀는 사이훙을 뒤쪽으로 몰아붙이고 마침내 그의 가슴을 무섭게 걷어찼다. 순간 금속의 섬광이 번뜩했다. 사이훙과 핀후는 순간 놀라서 멈칫했다. 그녀는 신발 끝에 칼을 넣어 두고 있었고 사이훙은 가슴에 강철판을 대고 있었다.
"겁쟁이 같으니."
그녀는 경멸조로 말했다.
사이훙은 어색하게 웃었다. 만용을 부릴 수야 없는 것 아닌가. 눈 깜짝할 사이에 그는 밧줄의 매듭을 잡아당기고 빙빙 돌렸다. 사이훙은 그것을 핀후를 향해 냅다 던졌다. 핀후는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사이훙은 적어도 그녀가 균형이라도 잃게 하고 싶었다. 밧줄은 휘파람 소리를 냈다. 흐느껴 우는 듯한 소리였다. 밧줄을 팽팽히 만들어 공격을 하고 나면 밧줄은 다시 되돌아와야 했다. 밧줄이 되돌아오면 사이훙은 그것을 손목이나 팔목, 다리에 감았다가 예측할 수 없는 각도로 날려 보냈다. 핀후는 사이훙의 묘기에도 완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더욱 밀어붙였다. 사이훙은 5미터 길이의 밧줄과 그 끝에 달린 날카로운 면도칼로 간신히 핀후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는 우잉과 우콴이 잘 싸워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우잉과 우콴은 소년보다 60센티 더 컸다. 그러나 소년은 빠른 속도로 창을 내 찌르며 열세를 극복하고 있었다. 두 검객은 소년에게 손쉬운 상대에 불과했다. 빙글빙글 도는 동작과 정확한 찌르기는 특수한 소년의 무기에 의해 반격을 받았다. 창자루는 야생 덩굴을 잘라 만든 것으로 특수기름에 오래 담가 두었기 때문에 탄력을 잃지 않고 있었다. 사이훙은 핀후의 동생이 고수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핀후는 사이훙에게 달려들었다. 사이훙은 무섭게 되받아치면서 밧줄을 그녀의 정면에다 던졌다. 핀후가 재빨리 옆으로 비꼈으나, 밧줄은 살짝 그녀의 어깨를 베었다. 밧줄이 휘파람 소리를 내면서 되돌아오자 사이훙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밧줄은 손 안에서 힘있게 감겼다. 사이훙은 밧줄을 계속 움직여 방향을 돌려야만 했다. 사이훙은 여자에게서 등을 돌리면서 밧줄을 맹렬히 회전시켰다. 핀후가 사정 거리 안에 들어오자 사이훙은 뒤로 돌아 호랑이 꼬리치기로 그녀를 가격하고 밧줄을 잽싸게 날렸다. 밧줄은 소년에게 정통으로 맞았다. 사이훙은 앞으로 뛰어올라 잽싸게 소년의 목에 밧줄을 휘감았다. 우잉과 우콴은 때를 놓치지 않고 즉각 칼날을 깊숙이 박아 그를 죽여버렸다.
핀후는 슬픔과 분노로 미친 듯이 날뛰었다. 그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제 더 이상의 양보는 없었다. 치밀한 전략도, 우아한 동작도 그녀의 안중에는 없었다. 핀후는 방심을 불허하는 엄청난 괴력을 뿜어냈다. 남자라고 느낄 만큼 강력한 힘으로 사이훙을 가격했다. 사이훙은 몸을 비틀어서 그 힘을 분산시켰으나 균형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그가 비틀비틀 뒤로 물러서자 핀후는 손가락 하나를 그의 목에 겨냥하고 다가왔다. 사이훙은 증오심과 눈물이 뒤범벅이 되어 이글이글 타오르는 그녀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기를 모아 전력을 다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방향을 잡는 동안 쉿쉿거리는 숨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러나 핀후가 찌르기 바로 전에 사이훙의 눈앞이 번쩍하면서 우콴이 그녀의 손을 댕강 잘라버렸다. 숨소리는 이내 단말마의 비명으로 변하고 그녀의 귀중한 손이 마룻바닥에 떨어졌다. 잘려진 손목에서 뜨거운 피가 콸콸 쏟아졌다. 그녀는 포악한 표정을 지으면서 사정거리 밖으로 물러났다. 사이훙 일행은 일단 한숨을 돌렸다.
핀후는 있는 힘을 다해 숨을 가다듬고 일어섰다. 그리고 죽은 동생을 바라보았다. 방안을 한 번 둘러보더니 애인이 자신을 버리고 가버린 것을 알았다. 설상가상으로 핀후는 손까지 잃었다. 치욕을 당한 것이다. 그녀의 명예는 천길나락으로 추락해 버렸다. 핀후의 손가락은 유명했으며 그녀의 무술을 대단한 명성을 얻고 있었다. 이제 핀후는 모든 것을 잃었다. 무술의 영웅은 결코 자존심을 더럽히는 법이 없었다. 게임은 끝났다. 이제 핀후가 할 수 있는 행동은 하나뿐이었다. 꼿꼿한 손가락으로 살인을 할 수 있는 핀후는 힘을 어떤 식으로든 쓸 수 있었다. 신체의 어디로든지 기와 혈액의 방향을 돌릴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제 핀후는 기와 혈액을 전부 혓바닥으로 올려보냈다. 생명의 힘을 다 바쳐 이곳으로 기를 밀어 올리면서 그녀는 혓바닥을 깨물어 장렬한 최후를 장식했다. 목에서 피가 솟구쳤다. 핀후의 영혼은 스스로 입힌 상처를 통해 분출했다. 사이훙은 그녀의 몸뚱어리가 빙글빙글 돌다가 사냥꾼에게 당한 동물처럼 꼬꾸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마지막 춤은 아름다운 암호랑이가 빙빙 선회하다가 심홍색 핏방울의 분수 속으로 묻히면서 막을 내렸다.
사이훙은 소년에게서 밧줄을 풀었다. 시체는 무거웠다. 사이훙은 피 묻은 줄을 감아올린 뒤 조심스럽게 칼날을 닦았다. 피 냄새가 온 방안에 진동했다. 사이훙은 문으로 걸어갔다. 유등이 있었다. 사이훙은 유등의 기름으로 양탄자에 불을 붙였다. 두 남매의 육신은 양탄자 위에서 불꽃으로 타올랐다.
며칠 후 사이훙, 우잉, 우콴은 암흑가의 대규모 첩보망을 통해 후디에를 추적하였다. 사이훙은 <손자병법>에서 따온 한 구절을 떠올렸다.
<지혜로운 장군이 이룬 업적은 그 선견지명 문에 평범한 사람을 능가하는 것이다. 선견지명은 영혼, 신, 과거 사건의 유추에서 얻을 수 없으며 계산으로 얻을 수도 없다. 적의 정세를 아는 사람들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첩자는 손자가 말하는 <신의 실타래>였다. 누군가 끈을 당기는 법을 알면, 그물의 실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뜬 소문만을 쫓다가 귀중한 시간을 낭비했다. 도시와 시골을 닷새 동안 뒤지고 다닌 후, 그들은 후베이성의 다훙이라는 마을로 갔다. 그러다가 어느 초라한 주점에서 정보 제공자를 찾아냈다. 그는 시시한 사기꾼에다 좀도둑이었다. 두둑하게 돈을 지불하자 마침내 그는 사이훙 일행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들려주었다.
"당신들의 친구는 호북삼호 모임에 끼어있소. 한 명은 리라고 불리는 팔괘장의 사부지요. 그의 스승은 선종의 도교 수행자이며 그의 계보는 인 푸가 시조랍니다. 인 푸는 1900년 황태후가 베이징을 탈출할 때 그를 보호했었지요. 또 한 명의 이름이 왕입니다. 그는 유명한 순 루탕의 제자인데 형의권과 육합검의 대가요. 나머지 한 명은 페이마오라고 부른답니다. 자그마한 사람이지만 힘은 정말 무섭습니다. 청 황조의 마지막 기사들 중 한 사람인 비성표자(날으는 성스러운 표범)에서 무술을 철저히 전수받았답니다. 이들은 모두 50대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무술은 최고 전성기를 맞고 있습죠. 댁들은 너무 젊어서 그들을 당해낼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그들을 찾을 수 있는지 제발 말해 주십시오."
우콴이 사기꾼에게 요청하였다.
도둑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소리 내어 웃었다.
"좋습니다, 좋아요. 이리 가십시오. 댁들을 위해 어디로 관짝을 보내야 할지 제가 아니까요."
그들은 능글능글 웃어대는 사기꾼과 헤어져 계획을 세웠다. 이 문제는 이제 실질적으로 무림의 문제가 되었다. 그 자체로서 유일한 방법은 개인적인 도전이었다. 그리고 단 한 사람만이 세 사람에게 도전장을 낼 수 있었다. 그들 모두가 호북삼호 각자에게 집단으로 대항한다면 불명예가 될 터였다. 사이훙은 자원해서 즉각 도전장을 냈다.
날씨는 점점 더 무더워졌다. 사이훙은 후디에를 잡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다. 이틀 후 사이훙은 리와 왕을 만나, 두 사람 모두 묵사발을 만들어 버렸다. 팔괘장을 구사하는 리는 우아하고 교묘하게 잘 빠져나갔지만 사이훙은 리를 번쩍 들어 바닥에 꽂아버리는 몽고 씨름으로 결판을 냈다.
리는 딱딱한 땅바닥에 수차례 던져지자 결국 무릎을 꿇었다. 사이훙은 왕을 대적할 때는 리의 권법을 이용했다. 두 번 다 적을 죽이지 않았다. 이번 결투는 무사의 명예가 걸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후디에를 순전히 우정 때문에 보호해 주었던 것이다.
사이훙은 왕이 패배를 인정하고 난 후, 오해를 풀어 주었다. 그때야 비로소 두 사람은 후디에가 곤경에 처해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사이훙에게 서둘러 남쪽으로 가라고 말해 주었다. 페이마오는 후디에를 호위하고 양쯔강으로 가고 있었다.
사이훙 일행은 허겁지겁 기차역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기차를 놓쳐 버렸다. 우잉은 기차를 놓친 일이 매우 불길하다고 투덜거렸다. 다음 기차가 올 때까지 4시간이 걸렸다. 그들은 기다리다 못해 난징행 열차를 탈 수밖에 없었다. 24시간이 걸려서야 양쯔강 북쪽 강가에 당도했다. 강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폭이 넓은 만에는 건널 다리가 없었다. 다시 배로 실어 나르는 데 몇 시간이 걸릴 것이다. 세 사람은 급히 둑으로 달려가 건너갈 작은 배 한 척을 세냈다.
난징 부두는 임시용 범선, 증기선과 화물선을 타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농산물이 담긴 광주리와 오리와 거위를 담은 상자들이 여기저기 쌓여 있었다. 선창은 가솔린, 기름, 쓰레기와 땀 냄새가 섞인 악취가 진동을 했다.
꼭두새벽인데도 날씨는 찌는 듯이 더웠다. 사이훙은 옷소매로 이마를 훔쳤다. 땀이 흠뻑 젖어 들었다. 태양을 피하느라 눈을 옆으로 뜨는 데 후디에가 보였다. 부자들이 입는 하늘색 비단옷을 입고 갑판 위에 서 있는 후디에의 자태가 눈부셨다. 겉옷 밑으로 앞가슴이 트인 깨끗한 흰색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는 미소를 띤 채 한가로이 걸어 다녔다. 그 옆에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있었다. 사이훙은 사람들 속으로 마구 헤집고 나갔다. 사이훙이 사람들을 밀치자 여기저기서 투덜대는 소리가 났고, 페이마오는 즉각 신경을 곤두세웠다. 사이훙이 마지막 구경꾼을 밀쳐내자 바람을 가르는 휘파람 소리가 그에게 날아들었다. 밧줄 창살의 명수인 페이마오가 무기를 날린 것이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피했다. 그러나 아주 멀리 흩어지지는 않았다. 두려움과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사이훙과 페이마오는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공수 자세를 취했다. 페이마오는 바짝 경계하며 사이훙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는 마르고 키가 작았다. 얼굴을 올리브 씨처럼 생겼고 피부는 질긴 가죽 같았다. 두 눈은 가늘고 날카로웠으며 새까만 머리칼엔 포마드를 잔뜩 칠했다. 밧줄 창살이 날카롭게 날아들었다. 그러나 사이훙은 강철 부채를 펴서 자신을 방어하고 반격을 감행했다. 사이훙은 날렵하게 거리를 좁혔다. 하지만 놀랍게도 페이마오는 그의 주먹을 피했을 뿐 아니라, 근사한 기계체조 기술을 동원하여 사이훙의 머리 위를 뛰어넘었다. 그는 허공에서 사이훙을 발로 차고 나서 다시 한번 밧줄 창살을 날렸다. 사이훙은 널빤지에 넘어졌다. 나뭇조각들이 손바닥을 할퀴었다. 사이훙은 재빨리 날아드는 밧줄 창살을 피했다. 페이마오는 그동안 창살을 회수하지도 않았다. 그는 밧줄을 따라 뛰어오르고 공중에서 고리를 만들어 폭탄을 투하하듯 아래로 던졌다. 그가 다시 뛰어오르자 사이훙은 부채를 뒤로 젖히고 페이마오 앞에다 부채를 찰칵하고 폈다. 사이훙은 부채의 바깥 살에 붙은 비밀 단추를 눌렀다. 사이훙이 빠른 손놀림으로 쏘아 보낸 13개의 가는 바늘은 페이마오의 다리에 명중했다.
우잉과 우콴이 합세했다. 구경꾼이 꽉 들어차서 칼을 빼낼 수가 없자, 그들은 맨손으로 싸웠다. 상처를 입긴 했어도 페이마오는 용감하게 싸웠다. 그러나 사이훙 일행은 곧 그가 부두바닥에서 의식을 잃게 만들었다. 사이훙은 사람들 속을 비집고 나가서 부두 끝으로 달려갔다. 후디에는 벌써 배의 갑판 위에 올라탔고 배는 떠나고 있었다.
"내가 너를 쫓아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너는 하늘로도, 땅속으로도 숨을 수 없다! 내가 꼭 잡고 말 테니까! 꼭 잡고 말 거야!"
사이훙은 무섭게 소리쳤다.
사이훙은 후디에의 무표정한 모습에 놀랐다. 후디에는 그런 얼굴로 사이훙은 시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이훙은 멀어져 가는 배를 바라보며 무슨 대답이라도 들어 보려고 안달을 했다. 그러나 아무 대답도 없었다. 왜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뭐라고 조언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단 말인가?
후디에를 추적하기 위해 사이훙 일행이 탄 증기선을 승객으로 만원이었다. 사이훙은 난간에 서서 물살을 구경하고 있었다. 양쯔강은 수로를 따라 힘차게 흘러갔다. 이 수역은 너무 광활해서 강이라는 호칭이 우습기까지 했다. 양쯔는 깊고 위험하고, 드넓고 힘찬 거대한 바다였다. 불투명한 진흙빛 수면 위로 배에서 나온 온갖 종류의 쓰레기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배가 부두에서 서서히 멀어져 가자 갈색의 광활함은 점점 더 확대되었다. 자유를 얻은 느낌이었다. 매끄럽게 펼쳐지는 강을 표류하노라면, 대모험이 벌어질 것 같았다.
사이훙은 배의 옆에서 물결이 일어났다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하얀 물거품이 겨우 일어날까 말까 하였다. 세상은 아주 간단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수평으로 펼쳐진 푸른 하늘, 신록의 들판, 갈색의 강 속에 세상의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사이훙은 들판의 그림자들이 강을 따라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때때로 그것은 완만한 둑을 이루었고 때로는 그다지 크지 않은 덩어리들이 물로 떨어지기도 했다. 들판을 지나고 진흙 벽돌로 지은 가옥들도 지나갔다. 다른 증기선 한 척이 그들을 지나 상류로 거슬러 올라갔다. 증기선은 점령지역에서 빠져나온 난민들로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사이훙은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거칠어 보였고 절망과 두려움에 빠져 있었다. 놀랄 만큼 많은 수의 사람들이 친척을 찾아서, 일자리를 찾아서 하류로 내려가고 있었다.
"요즘은 일자리가 귀해 점령지에 있는 게 차라리 낫지."
누군가 난민들을 보고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갑자기 배 위가 술렁거렸다. 한 구의 시체가 배 옆으로 둥둥 떠다녔다. 얼마 안 있어 또 한 구가 내려왔다. 물살은 아주 빨랐다. 하지만 시체들은 그대로 있었다.
"자네 봤어? 불길해!"
우잉이 들뜬 소리로 말했다.
"그래. 맨 마지막 시체가 여자였어, 여자였어?"
사이훙이 물었다.
"어떻게 구별하는지 알아? 얼굴이 밑으로 가라앉아 있으면 대개는 남자야. 얼굴이 위로 향해 있으면 대개 여자이고."
우콴이 말했다.
"그런 이상한 얘기를 어디서 주워들었지?"
사이훙이 물었다.
"여행을 하다가 어디에선가 들었지. 여자는 엉덩이가 더 무거워서 아래로 처지고 얼굴은 위로 올라오지. 하지만 남자는 머리가 무겁거든. 그래서 얼굴이 내려가는 거야."
곧 또 한 구가 떠내려왔다. 그들은 우콴의 말을 시험해 보려 했다. 불행히도 이번의 시체는 머리의 반이 달아나고 없었다. 사이훙은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사람들을 비집고 뱃머리로 나아갔다. 이따금씩 물안개가 끼었지만 거대한 삼각형을 이룬 강의 하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파도는 최면술을 부렸다. 사부님이 언젠가 말씀하셨지. 물은 특별한 요소이므로 제대로 성찰하려면 수면을 잘 주시하라고.
사이훙은 베이징에서 살인을 저질렀다. 그가 살아오면서 몇 명이나 죽였는지 누가 알겠는가? 그는 전사의 가문에서 태어났다. 살인 기술은 그가 물려받은 유산인 셈이다. 그는 도적떼들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싸움을 해야 했다. 무사들의 도전을 받아 결투를 벌였고 게릴라병으로도 싸웠었다. 게다가 사이훙과 모든 무술가들이 이해하고 있듯이, 핀후와 그녀의 동생도 싸움이 남긴 최후의 대가를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유와는 상관없이 그들의 죽음이 사이훙에게는 비극적이고 헛된 것이었으며 충격적인 것이었다.
사이훙은 후디에 사형의 연인을 죽인 것이다. 이제 사이훙은 영웅이 아니라 파괴자가 되어 버린 느낌이었다. 사이훙은 자신의 추적에 방해되는 사람들을 죽여 버린 무사였다. 더 이상 이상주의적인 도교 수행자가 아니었다. 그 대신 그는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도전을 받아들인 사나이였다. 사이훙은 도전에 또 다른 윤리가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성공이었다. 도전은 그가 묶여 있는 무사도 규정의 심장부였다. 그러나 의기 속에는 다른 모든 원칙들을 희생하는 슬픔이 감춰져 있었다. 사람은 내내 탐구를 하며 인생을 살아왔다. 하지만 음유시인들은 소년이 어른 되는 진짜 이유를 결코 말하지 않았다. 즉 도덕과 현실의 아이러니를 이해하는 것은 고상함과 우아한 이상을 포기함으로써 가능했다.
무술가로서 현대적 기사로서 사이훙은 자신이 도전을 좋아하고 있음을 알았다. 원칙과 상황 사이에 그가 열망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러나 사이훙은 도전을 떠맡게 될 때마다 새로이 희생과 타협의 똑같은 교훈을 배워야 했다. 사이훙은 갑판에 서서 그가 살인을 했다는 사실을 다시금 받아들였다. 그의 영혼이 그것 때문에 고통을 받으리라는 것도 인정했다. 사이훙은 사형을 잡기 위해 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임을 받아들였다. 그는 배의 옆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최후의 종말을 느꼈다. 마치 무사도의 수호자가 되는 그런 느낌이었다.
사이훙은 유유히 흘러가는 갈색의 강물을 바라보았다. 사이훙은 자신이 지나치게 감상적이라고 생각하면서 무위의 개념을 이해했던 10년 전의 질문을 회상했다.
"무위가 무슨 뜻입니까?"
사이훙이 물었다.
"그 말의 뜻은 네가 하는 일은 모두 자발적이고 자연스럽고 완벽하다는 뜻이다. 아무것도 너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단다. 네가 끊임없이 갈고 닦아 온 귀중한 정적을 방해하게끔 감정을 들쑤시는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사부님에게 영향을 주지 않나요?"
"그런 것은 없다."
"사부님이 명상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 사부님을 죽이려고 하면 어떻게 하십니까?"
사이훙이 물었다.
"그들이 나를 죽이려고 한다면, 내가 먼저 죽여 버릴 테다."
"그다음에는요?"
"그리고는 다시 앉아 명상을 하지."
"그게 전부인가요?"
"그렇다."
"다른 사람을 죽인 것 때문에 괴로워하지는 않으시겠죠?"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들이 먼저 나를 죽이려고 했으니까. 나는 단지 그들을 훼방 놓았을 뿐이다."
"속으로도 사부님은 괴로워하지 않으십니까?"
"그렇단다. 그게 무위이니라.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면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한다. 네가 진정 무위를 이해한다면 그때 너는 평온해질 것이다."
사이훙은 당황했다. 대사부는 결국 이런 식으로 그 점을 해명해 주었다.
"무는 없다는 것이니라. 위는 <위해서>와 <대해서>의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결과를 뜻하기도 한다. 무위는 너의 행동이 형이상학적으로나 네 자신 속에서 어떤 결말도 갖지 못하는 것을 뜻한단다."
"또 사부님의 내면에서도."
사이훙은 흔들리는 배의 난간에 기대어 낮게 읊조렸다. 명상 속의 정적은 이제 아주 먼 곳에 있었다. 사이훙은 산에 있을 때는 그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추적을 벌이는 이곳에서는 감정의 장막에 감춰져 버렸다. 또 한 구의 시체가 흘러갔다. 이번에는 여자였다. 양쯔강은 시체들로 가득 찬 것 같았다. 사이훙은 죽은 자들의 행렬을 바라보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와 시체는 양쯔 강 하구의 똑같은 지점으로 가고 있었다. 바로 상하이로.
7. 상하이
여기가 지옥인가? 사이훙은 상하이의 선창에 서서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지금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 이국적이고 너무 놀라워서 차라리 지옥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사이훙은 흔들거리는 이를 데 없는 사람들 속에 펼쳐진 상하이의 지평선을 보았다. 하늘을 찌를 듯한 빌딩들이 긴 성벽으로 유명한 부두를 따라 늘어서 있었다. 빌딩들은 이제껏 그가 본 어떤 건물보다도 높았다. 쭉쭉 뻗은 빌딩의 선들, 네모반듯한 창문들, 그리스 로마의 건축 양식을 본뜬 건물들 그리고 위풍당당한 회색 기둥과 마천루는 사이훙이 본 어떤 것보다도 기이하였다. 그것들은 하늘을 뾰족한 선으로 그어 놓고 유럽의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었다.
한때 상하이는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었다. 푸른 하늘엔 구름이 둥실둥실 높게 떠다니고 대양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은 넓게 펼쳐진 상공으로 불어왔다. 황푸강과 우쑹강이 상하이를 관통했으며 조금 북쪽으로 올라가면 양쯔강이 있었다. 기름진 옥토가 상하이 서쪽으로 끝없이 펼쳐졌다. 전쟁으로 인해 농토는 많이 유실되었지만, 여전이 그 땅은 신선한 농산물과 녹색의 아름다움도 가져다주었다.
<바닷가>라는 뜻을 가진 상하이는 맑은 햇살이 비추는 정말 아름다운 도시였다. 그러나 시계탑과 호텔, 빌딩이 들어선 상하이는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았다. 사이훙이 보기에는 추했다. 선창의 생선 냄새와 노동자들의 땀 냄새로 상하이는 불쾌하기까지 했다. 모터 소리, 경적 소리, 고함 소리가 나무하는 상하이는 결코 천국이 아니었다. 이제 그는 바위 같은 건물들 속에서 인간의 물결에 묻혀 상하이의 일부분이 되어 갔다.
선창에 발을 딛고 서니, 사이훙과 두 동료는 인파에 파묻힌 어린아이들 같았다. 사람들이 어찌나 밀어대는지 신경질이 났다. 걸어갈 수조차 없었다. 사이훙은 팔꿈치로 밀며 군중 속을 헤집고 나갔지만, 몇 걸음 떼어놓기가 쉽지 않았다. 거리의 모퉁이까지 간신히 갔을 때, 그의 감각은 냄새와 소음으로 완전히 마비 상태가 되었다. 강에서 들이마셨던 그 신선한 공기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이제 그는 기름 타는 냄새밖에 맡을 수 없었다.
사이훙은 거리를 바라보았다. 나이든 남자들이 삼륜 자전거를 끌고 거리를 누볐다. 사이훙은 자동차에 치여 몇 번이나 죽을 뻔했다. 기름 타는 냄새는 바로 그것들 때문이었다. 부르릉 소리를 내고 연기를 뿜어내며 광택을 발하는 검은 자동차들은 잘 차려입은 사람들을 태우고 번잡한 대로를 마구 달리고 있었다.
사이훙과 우잉, 우콴은 식민 세력의 거대한 전초 기지인 도시의 감각적 이미지에 완전 무방비 상태였다. 홍콩과 상하이 방파제의 빗장 걸린 창문, 롤스로이스에서 야하게 걸어나오는 러시아 여인, 찻집에 가면 성공한 선박 중개상들이 있었고 시궁창에는 뻣뻣한 시체가 버려져 있었다. 몹시 여윈 늙은 도붓장수가 사과를 팔았다. 동양인 은행원이 멋진 비단 모자에 서양 코트를 입고 있었다. 코를 킁킁대는 헤로인 중독자, 만취한 군인들, 사이훙은 난징 거리에서도 보았던 도시의 혼탁한 모습을 거슬러 길을 재촉해 갔다. 사이훙이 본 거리의 모습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정도가 심해져 갔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갱들이 보였다. 그들은 원하면 누구든 괴롭힐 수 있는 젊고 건방지고 상스러운 자들이었다.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은 그들은 거리낌 없이 웃옷의 단추를 풀고 밑에 받쳐 입은 옷을 꺼내 놓았다. 보통 사람들은 옷소매를 풀어 내리는 데 그들의 옷소매는 감아 올려져 있었다. 그들은 전통 중국 의상을 입고 약간 서양식으로 멋을 부렸다. 사과모자, 선글라스, 넓은 가죽 벨트, 가죽신이 요즘 그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옷 밑에는 전통적 암살 도구가 있었다. 칼, 쇳조각, 가죽 곤봉과 피스톨이었다. 어딜 가나 깡패가 있었다.
사이훙은 이 건달패들에게 크게 관심을 두었다. 상하이에서는 무슨 일을 하려면 지하 세계를 통하지 않고는 할 수 없었다. 그들의 동의가 없이는 어떤 일도 불가능했다. 그들은 도시를 장악하고 은행, 정부, 경찰을 전부 통제하였다. 유럽인 거주지와 전시에 와해된 사회의 틈바구니에서 몸을 보전하였다. 양쯔강보다 더 세차게 흐르는, 도시에서 유통되는 엄청난 액수의 달러는 지하 세계에 의해 완전히 오염되었다. 그것이 산업이든, 운송이든, 아편이든, 헤로인이든, 노예 거래이든 갱조직이 모든 돈을 관할했다.
상하이에서는 그 누구도 홍건단과 녹원회의 세력권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쑨 원,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같은 유명 인사들이 이런 저런 식으로 모두 연루되어 있었다. 장제스는 정확히 말해 자금과 음모 그리고 상하이의 대부인 두 웨선의 폭력 때문에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두 웨선의 세련된 감각을 따라올 자가 없었고 그의 방탕함 역시 극치에 이르렀다.
사이훙 일행은 호텔에서 나오는 음악과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향긋한 음식 내음도 맡을 수 있었다. 빵 굽는 냄새와 고기 냄새 그리고 바다에서 바람이 불면 가끔씩 아편 냄새가 묻어났다. 그리고 거리의 더 자극성 있는 냄새도 섞여 있었다. 직접 다가가서 코로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외국인한테서 다른 냄새도 난다고 우잉은 말했다. 이를테면 꽃 냄새, 후추 냄새, 가죽 냄새, 나무 냄새 같은 것이었다.
지금은 사실 사이훙이 외국인을 구경할 수 있는 몇 번 안 되는 기회였다. 관가보에서 대규모 연회가 열리는 동안 몇 사람의 외국인을 보았지만 소수에 불과했었다. 이제 상하이는 도시 전체에 외국인이 득실거렸다. 그는 여러 가지 끔찍한 소문을 떠올리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들에겐 꼬리가 달렸을까? 그들의 몸은 전부 털로 덮여 있을까? 어린애를 잡아먹을까? 외국인은 정말 자신이 원숭이의 후손이라고 믿고 있는 것일까? 사이훙이 상하이에서 외국인의 역사를 더 많이 알게 된 것은 간이 숙박소에서 우콴이 해준 설명 덕택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외국인은 계속 사이훙 일행을 당황시켰다.
수십 년을 지나오면서 외국인이 이 도시에 유명한 외국인 조계를 만들었다고 우콴이 설명해 주었다. 영국은 부두의 끝에 있는 최고의 땅을 점령한 반면, 프랑스는 영국령과 그 남쪽의 고대 성곽 도시 사이의 지대를 차지하였다. 우쑹 강 건너 북부 지역은 미국 조계였다. 그러나 미국은 별짓을 다 해도 그 땅을 다스릴 수 없게 되자 영국과 합동으로 <국제 조계>를 만들었다.
<국제조계>는 시의회를 두었는데 의회는 유력 인사의 하수인들이 지배했다. 프랑스도 유사한 통치 기구를 만들었다. 양쪽 다 자체 경찰 병력을 보유했지만, 그것은 식민 통치의 정신적 상징물에 지나지 않았다. 조계는 범죄를 부추겼다. 자국 법망을 피해 이곳으로 쉽게 피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범죄자들은 끊임없이 이것을 이용했다. 경찰은 상하이를 지배하는 범죄 조직과 협력하면 많은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외국인의 위용은 1937년 일본이 이 도시에 쳐들어와서 대다수 서양인을 상하이맨션이라 불리는 추한 고층 빌딩으로 몰아넣었을 때 크게 손상되었다. 일본은 한번 정착하고 나서는 부정부패, 사악함과 타협을 했다. 식민정책은 가장자리부터 조금씩 썩어들기 시작했다. 도시는 이제 정치가, 암살자, 첩자, 군국주의자, 갱과 자본가의 손에 넘어갔다. 일본군은 여전히 들볶고, 흥청대고, 강간하고, 약탈하는 위험한 존재였다. 수행자는 주의를 해야만 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상하이에 오면 누구나 상하이의 방식을 추종하게 만드는 상하이의 무시무시한 괴력을 도저히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마약과 섹스는 도시의 근간이 되었다. 격정과 정치와 장삿속 그리고 드물지만 때로는 사랑마저도 나름대로 이 둘과 함수 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마약과 섹스를 지배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돈이었다. 육신의 고통을 덜기 위해서건 마약 중독자의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서건, 아편이든 모르핀이든 헤로인이든 모두 구할 수가 있었다. 아편굴과 사창가에서는 <꽃과 향기>, 즉 여자와 아편 연기를 구할 수 있었다. 상하이에서는 어떤 여자든 돈을 주고 살 수가 있었다. 고급 살롱의 창부나 기생에서 골목길에서 값싸게 살 수 있는 매춘부까지 있었다. 동성 연애자들도 무시를 당하지 않았다. 원하는 사람은 자기 취향에 맞는 미소년을 얼마든지 구할 수가 있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뭐든 돈이든 살 수 있었다. 이 모든 활동이 갱들에 의해 조직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며칠 동안 사이훙 일행은 거리 모퉁이의 건달패들과 접촉을 했다. 뇌물을 주고 감언이설로 속여 범죄자들의 위계 조직 속으로 파고들었다. 경극장에서 배우들 꽁무니를 좇고, 다방에서 놀고, 자신들의 실력을 입증하기 위해 싸움을 벌이다가 마침내 그들은 <회색 백조>와 함께 온 청중과 말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회색 백조>는 상하이 지하 세계의 두목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회색 백조>는 암살을 두려워하여 몸조심을 하는 여자였다. 그녀는 꼭 한 사람만 만났다. 사이훙은 자신이 그 한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사이훙이 약속한 날은 화창했지만 후덥지근했다. 프랑스 조계를 통과하는 동안 사이훙의 옷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땀방울이 목덜미에서 뚝뚝 떨어졌다. 사이훙은 연도에 심어 놓은 나무들이 만들어 주는 그늘을 따라 걸었다. 공기는 눅눅하여 숨쉬기도 어려웠다. 별장에는 회색 벽토를 바른 담장이 솟아 있었다. 별장들이 있고 그 뒤에 규모가 상당히 큰 목재와 벽돌로 지은 저택들이 있었다. 저택의 양식이 사이훙에게는 이국적으로 보였다. 그는 아직까지 파리, 런던, 베를린에 가본 적이 없었다. 외국의 도시에서라면 이런 것들이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경비가 삼엄한 구내로 갔다. 철문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은 전부 권총을 차고 있었다. 그들은 무기를 찾으려고 조심스럽게 사이훙의 몸을 수색한 다음 모양이 흉한 벽돌 건물의 굽은 진입로 아래로 호위해 갔다. 건물의 정면은 오직 견고함과 화려함만을 고려하여 지어진 듯했다. 가짜 돌기둥들이 육중한 나무 문의 테두리를 두르고 있었다. 카펫이 깔린 현관 복도로 들어서자 역겨운 냄새가 났다. 곰팡이 냄새 같았다.
6명의 남자가 사이훙과 함께 거실로 갔다. 거실은 중국식으로 아주 세련되게 장식되어 있었다. 사이훙은 놀랐다. 많은 갱들은 인정받는 자리를 차지하고 난 후엔 예술과 문화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그들의 취미는 야하고 거들먹거리는 천박한 경향을 띠었다. 그런데 여기 놓인 도자기와 장식용 옥 조각품들은 박물관에 놓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것들은 방에 빙 둘러서 있는 험악한 남자들과 커다란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회색 백조님이시다!"
경호원이 회색 백조의 등장을 알렸다. 예술품과 살인자들이 가득한 미색의 방 위쪽에 가냘픈 여인 하나가 앉아 있었다. 머리에는 두건을 쓰고 검은 담비 색깔의 스카프에는 은과 금, 옥으로 만든 핀을 꽂고 있었다. 불거진 뺨과 활처럼 휜 눈썹, 얇은 입술은 알맞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두껍게 화장한 얼굴은 여자의 전성기를 살짝 지났음을 말해 주었다. 어깨는 조금 넓었지만 가슴은 균형미가 있고 풍만했다. 몸에 달라붙는 비단 드레스의 길게 벌어진 틈으로 드러난 다리는 길고 미끈하게 뻗어 있었다. 그녀는 흔들거리는 귀걸이를 만지작거리며 장난하고 있었다.
"야! 아주 잘생긴 미남이시네!"
회색 백조가 말했다. 사이훙은 얼굴을 붉혔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내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네! 정말 근사한 체격이야! 오, 오! 내 입에서 군침이 도는 것 좀 봐!"
그녀는 곰처럼 거대한 체격의 경호원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내 마음에 들어. 피부도 부드러운 게 너희들 무법자들의 피부와는 다르군!"
경호원은 이를 드러내고 씩 웃었다. 사이훙은 그의 이빨이 여러 대 나간 것을 보았다.
"이것 봐요. 나랑 놀러 왔나?"
그녀는 환심을 사려는 듯 알랑거렸다.
"미안하지만, 그게 아니라......."
사이훙은 말을 더듬거렸다.
"저는 녹원회의 일원인 사형을 찾고 있습니다."
"저런 갑갑한 친구 봤나!"
그녀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저러니 남자들은 골치가 아프단 말이야. 항상 곧바로 사업부터 하고 싶어 한다니까! 물론 댁이 여기 온 이유는 알겠어요. 그 남자가 그렇게도 필요하다면, 지금 그가 어디에 있는지 말해 줄 수도 있어. 그런데 그 보답으로 청년은 나에게 무엇을 줄 테야?"
"무엇을 원하십니까?"
"당신과 단둘이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면 정말 황홀할 텐데! 얼마나 황홀한지 상상이 되고도 남아. 하룻밤의 쾌락을 나에게 준다면 청년의 사형을 넘겨줄게."
회색 백조가 이렇게 말했다. 사이훙은 흥분하여 목 양쪽에 있는 정맥이 쿵쾅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미안하지만, 저는 출가인이고 지금 수도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도교 수행자입니다."
사이훙이 말했다.
"그래서? 왜 도교를 위해 기둥서방이 되면 안 된다는 거지?"
그녀는 수줍게 미소지었다.
"말도 안 됩니다!"
회색 백조는 소리내어 웃었다.
"저렇게 솔직한 청년을 볼 수 있다니, 정말 신선해. 골목대장들은 생김새도 훌륭하다니까. 상하이에서는 저런 사람을 볼 수가 없어."
경호원들이 빈정거리듯 킬킬댔다. 사이훙이 다시 얘기를 꺼냈다.
"당신한테 내 사형이 없기 때문에, 어쨌든 공평하게 거래를 하지 못할 거요."
"맞아요. 미남이기도 하지만 약삭빠른 사람이군."
그녀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제가 시간 낭비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겠습니다. 떠나도록 허락해 주세요."
"내 허락이 내리기 전에는 떠날 수 없어요. 하지만 당신 문제에 관심 있는 다른 사람이 있는데, 소개해 드리지."
회색 백조가 정답게 말했다.
"그 사람이 누굽니까?"
"두 웨선."
사이훙은 멈칫했다. 두는 상하이 암흑가의 왕이었다. 그가 관심을 기울인다고 반드시 좋은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이훙은 상하이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일을 두가 모를 리 없다는 걸을 알았다.
"그를 만나게 해주는 대가는 뭐죠?"
"당신과 나는 둘 다 무림의 일원이에요. 그것으로 족해요."
"정말입니까?"
"그래요. 내가 본심을 오로지 탐욕에만 두고 있다고 멋대로 추측하지 말아요."
"상하이의 법도로군요."
"맞아요, 맞아."
회색 백조가 웃었다. 사이훙은 속으로 욕했다. 사이훙은 아마도 두가 빈틈없이 지시를 내린
모양이라고 추측하였다.
"가도 좋아요. 내일 두를 만나라고. 그들이 당신을 안내해 줄 거야."
그녀가 말했다. 사이훙은 그러마고 말하고 돌아서서 나왔다.
"행운을 비오!"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사이훙은 몸을 돌렸다. 경호원이 감히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사이훙은 회색 백조의 웃는 얼굴을 보려고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것은 틀림없는 남자의 웃음이었다. 회색 백조는 여장 남자였던 것이다.
"내가 행운을 빈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반복했다.
"오, 오! 너를 침실로 데려갈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사이훙과 우잉, 우콴은 눈을 가리운 채 리무진에 태워져 발코니가 있는 3층 저택으로 갔다. 저택은 콘크리트와 벽돌로 지어져 있었다. 창틀과 난간은 베니스풍으로 붉게 칠해져 있었다. 집 앞의 좁은 안뜰에 리무진이 몇 대 더 주차되어 있었다. 사이훙은 주위를 슬쩍 살폈다. 벽들은 거의 4미터 높이나 되었다. 대문은 무거운 철판이 씌워져 있었다. 한구석에 시들어 빠진 작은 정원과 붉은색과 녹색으로 칠해진 중국식 전망대가 있었다. 담장 너머로 프랑스풍의 건물이 몇 채 더 보였다.
그들은 몇 걸음 올라가 현관으로 갔다. 선인장, 야자수가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넓은 현관 입구는 니스를 칠한 참나무 격자에 비스듬히 유리판이 끼워져 있었다. 어두운 실내는 마호가니의 벽과 딱딱한 나무 마룻바닥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루 끝까지 양탄자가 깔려 있었다. 칙칙한 빛깔의 옷을 입은 경호원들은 마치 유령의 집에 갑옷을 입고 서 있는 기사 같았다. 거리를 오가는 뚜쟁이와 도둑, 바람둥이와는 달리 이 사람들은 반백의 머리를 한 엄격한 직업인이었다. 옷이 부풀어 오른 것은 그 속에 근육과 총이 들어 있다는 신호였다.
경호원 한 명이 이중으로 된 참나무 문을 열자 큰 방을 빙 둘러선 더 많은 남자들이 있었다. 서양식 소파와 의자가 놓여 있었고 한결같이 똑같은 갈색 덮개가 씌워져 있었다. 사진과 어두운 유화 몇 점이 벽을 장식했다. 로코코식 금색 틀 속의 거울은 싸늘한 흑색 벽난로 위에 걸려 있었다. 창가에 길게 뻗은 야자수 화분이 있었다. 하지만 무거운 휘장이 반쯤 내려져 있었다. 수정 샹들리에가 높은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방 끝의 녹색 램프 옆에 두 웨선이 앉아 있었다.
두는 사이훙 일행에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사이훙은 그를 자세히 뜯어봤다. 바짝 친 상고머리가 사각형 얼굴을 반원을 그리듯 살짝 덮고 있었다. 이마는 조금 튀어나와 있었고 숱이 무성하고 짙은 눈썹은 활처럼 휘어 있었다. 두 눈은 본능적인 냉혹함이 번들거렸다. 콧날이 우뚝했고 커다란 콧구멍은 벌어져 있었다. 입술은 관능적이고 매우 컸다. 귀는 벌어져 있는데 이것 때문에 그가 싫어하는 별명인 <당나귀 귀 두>가 생겼다. 피부는 탱탱했지만 몇 년간 아편을 한 탓에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한때 두툼했을 두 어깨가 지금은 가냘펐다. 깃이 세워진 가운 밑에 있던 옛날의 근육은 온데간데없었다. 단지 툭툭 불거지고 단단한 육체밖에는 없었다. 두 웨선은 노련했고 나름대로 성공도 거두었다. 45살인 두는 권력의 정상에 있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홍콩에서든, 충칭에서든, 상하이에서든 그는 아편 수송에서부터 장제스 집권과 관련된 정치적 음모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좌지우지했다.
두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그 많은 인생의 역사를 알아내기란 정말 어려웠다. 그는 황푸강 건너편 푸동에서 태어났다. 처음엔 시시한 마약 밀수업자와 뚜쟁이로 시작했다. 상하이가 한창 쾌락과 부패에 젖어있던 시절이었다. 그는 황 진룽의 부하가 되어 곧 녹원회의 대열에서 급부상하였다. 그는 아편 거래와 모든 범죄 활동을 중앙에 집중시키는 일을 도왔다. 또 다른 갱조직과 협정을 맺거나 아니면 송두리째 제거해버렸다.
1927년까지 두의 조직은 장제스가 중국 정부를 장악하도록 도왔다. 두는 헌신적인 반공주의자였다. 1927년의 유명한 대학살을 배후에서 조종한 사람도 바로 그였다. 그대 두의 부하는 상하이 거리에서 5천 명(혹자는 십만 명이라고 말한다) 이상을 살해했다. 살육을 하는 데는 불과 몇 시간밖에 안 걸렸다. 그러나 시체를 실어 나르는 데는 몇 날 며칠이 걸렸다. 그와 동시에 두는 금융계의 대부가 되었다. 이것은 그 당시에 반드시 이례적인 일은 아니었다. 부패와 부와 권력의 남용은 상하이 금융가에서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는 멋진 비단옷, 턱시도, 비단 모자를 걸치고 다녔다. 자가용 운전사를 고용해 두 가지 색의 비싼 리무진을 타고 다니면서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았다. 그는 상하이 도시 연합의 대표이고 중국 은행의 이사였다. 통화 준비위원회의 일원이 되었고 청년 학교를 설립하고, 성실 협회라 불리는 동업 조직을 결성했다.
두는 열성적인 국민당원이었다. 게다가 일본인을 증오했다. 비록 문어발식으로 뻗어 가는 일부 갱 조직의 점령군과의 마약 거래를 막지는 못했지만, 1937년 일본이 상하이를 침략했을 때 두는 그의 선박들을 모두 침몰시켜 항구를 폐쇄할 것을 제안했다. 그의 부하 중 일부는 일본에 저항하여 지하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두의 여러 면모를 한데 조화시키기가 어려웠다. 잔혹한 살인자, 아편 밀매업자, 저명한 은행가, 파렴치한 호색가, 헌신적인 국민당원, 마약 중독자, 경극 애호가 그리고 부유한 명사가 그의 모든 모습이었다. 두의 성격을 푸는 열쇠는 무림 규약에 대한 그의 신념에서 찾을 수 있었다. 양쯔강 계곡을 무대로 한 무림 분파의 원로이자 대부로서 그는 <이기>를 신봉했다. 그것은 번역하기 어려운 개념이었다. 함축된 뜻은 정의, 명예, 원칙, 기사도와 관용이었다. 두는 자신을 무술가요, 정의의 수호자로 간주하였다.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공평하게 대우하고 그의 규정을 어긴 자들에겐 징계를 한다고 생각했다. 무사는 자신이 떠받드는 주인에게 질문을 하지 않는 법이다. 단지 도전자들을 죽일 뿐이다. 두가 떠받드는 주인은 권력과 아편, 돈의 삼위일체였다. 그는 그것들을 위해 싸우는 무사였다.
두의 정의감은 원시적이고 야만적이면서 순수했다. 아무리 비뚤어져 있어도 명예 의식은 그를 갱 이상의 존재로 만들어 주었다. 후세 사람들은 두 웨선을 악당 만화의 주인공으로 그리고 있지만, 두라는 인간은 관대함과 조직범죄, 이상주의와 기회주의가 어우러진 아주 무한한 복합체였다. 그러나 두가 무시무시하다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사이훙은 그를 바라보면서 두의 잔인성을 느낄 수 있었다.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두였다.
"자네가 사람을 찾고 있다고?"
두는 짧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무림의 이름으로 그를 찾을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시겠습니까?"
사이훙이 말했다.
"그럴 수도 있지."
긴 침묵이 흘렀다. 사이훙은 두가 생각에 잠겨 있는지 몽롱한 환각 상태인지 알 수 없었다. 모두들 공손히 둘러서 있었다. 위인은 영광과 권위의 빛을 발산한다. 하지만 두 웨선의 첫인상은 달랐다. 그는 창백한 모습으로 꼼짝 않고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그러나 두 눈은 생기 있고 또렷했다.
"너는 무술가지?"
아까와 달리 두의 목소리에는 힘이 담겨 있었다. 사이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한번 해봐라."
사이훙은 옷자락을 걷어 올렸다. 사이훙은 자신의 장기 중의 하나인 유엽장을 펼쳐 보였다. 사이훙이 동작을 마무리 짓자마자 두의 눈에 생기가 도는 것이 보였다. 사이훙은 두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주어야만 했다. 사이훙은 근육이 구부러지는 것을 느꼈다. 발은 회오리 공격술을 펼치기 위한 기본자세를 취했다. 그의 허리가 세차게 비틀어졌다. 어깨는 재빨리 포물선을 그리는 양팔에 힘을 붙였다. 사이훙은 기쁨과 몸 안의 열기가 밀려드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자랑스럽게 독전극에 몰입했다.
"최고야! 최고!"
두는 사이훙이 짧은 무술 시범을 마치자 이렇게 환호했다. 사이훙은 깜짝 놀랐다. 두는 송장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이었다.
"자네 둘은 어떤가?"
두가 우잉과 우콴에게 물었다. 두 사람은 미리 정해 놓은 형의권의 연습 대련을 시범 보였다. 내공 무술인 형의권은 무서운 파괴력을 뿜어내는 직접 공격법이었다. 후퇴는 없고, 단지 옆으로 피하거나 회전하는 것뿐이었다. 모든 동작을 하나하나 직접적이고 맹렬하게 퍼붓는 공격 기술이었다. 상대의 공격에 대한 반응은 역공뿐이었다.
두는 점점 흥분하더니 수연통을 가져오도록 수행원에게 손짓을 보냈다. 수행원이 검은 타르 방울 같은 것을 가득 채워서 그에게 주었다. 두는 성냥불을 붙였다. 검은 아편이 빨갛게 타들어 갔다. 그가 숨을 들이마시자 파이프에서 물이 꾸르륵 흐르는 소리가 났다. 푸르고 흰 연기가 그를 둘러싸며 올라갔다. 아편 특유의 향긋하고 달콤하고 맛있는 연기가 방을 가득 메웠다. 두 형제가 무술 연기를 끝냈을 때쯤 두는 원기가 왕성해져 흥분하고 있었다. 그는 무술 광신자였다.
"젊은 영웅들에게 내가 인사해야겠군."
두는 인사의 표시로 두 손을 모아 쥐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는 소년 같은 미소를 지었다."
"나도 시범을 보여 주지!"
경호원이 칼집에 든 두 개의 칼을 가져왔다. 두 웨선은 손잡이를 쥐고 두 개의 번쩍이는 칼을 꺼냈다. 사이훙은 쓸어 내는 듯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칼집에서 나는 날카로운 쇳소리였다. 날이 넓은 칼은 잡아 빼거나 넣을 때면 칼날에서 날 가는 소리가 났다.
"팔괘쌍검!"
두가 큰소리로 말했다. 그는 독특한 검법을 선보이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두의 검법은 두 팔을 나란히 들면서 시작했다. 칼날들은 양쪽으로 베고 선회하고 다시 베었다. 자르고, 지르고, 여러 방향으로 꿰뚫기 시작했다. 한 칼이 차단을 하면 다른 칼은 공격을 했다. 때대로 동시에 두 칼로 베어 넘겨 버리기도 했다. 두의 긴 팔은 큰 새의 날개처럼 끝에서 끝까지 거의 3.5미터나 되는 범위까지 닿을 수 있었다.
두는 가공할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는 무사였다. 어떤 적이든 프로펠러처럼 선회하는 두의 칼날들을 피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피할 수 있다고 해도 발로 차기, 뛰어오르기, 날아서 차기와 공중에서 자르기 검법은 거의 모든 노련한 적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 두의 칼들은 속도가 아주 빨랐다. 사이훙은 드릴 넘치는 두의 얼굴 표정을 볼 수 있었다. 연기가 그의 몸속으로 들어가자 피가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저미는 칼날의 힘은 두에게 확실히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빙글빙글 선회하는 칼날이 흐려졌다. 너무 빨리 베기 때문에 공중에서 나오는 칼소리는 마치 천이 단번에 찢어지는 소리 같았다. 노련하게 찌르는 검술, 정확한 방어, 발레를 하듯 발로 차면서 위아래로 움직이는 두 개의 가위날 공격등은 순간적으로 번쩍이는 섬광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우아함, 스피드와 힘이 하나로 결합되어 완벽한 살인적인 힘으로 변했다. 그의 얼굴에서 물방울이 희미하게 반짝였다. 두는 만족하여 입을 벌리고 씩 웃었다.
이번에는 사이훙이 흥분할 차례였다. 그는 혼자서 팔괘검법을 배웠었다. 그러나 날이 넓은 칼이 하나밖에 없을 때 쓰는 검법이었다. 두의 기술을 놀라웠지만, 목숨을 부지할 수 없게 하는 잔인한 기술이었다. 사이훙은 그것을 배우고 싶었다. 시범을 끝낸 두는 사이훙의 눈에서 열광적인 무술가에게서 볼 수 있는 낯익은 광기를 보았다.
"마음에 드나?"
두가 물었다.
"네, 그렇고 말고요!"
사이훙이 대답했다.
"배우고 싶은가?"
"몰론이지요!"
잠깐 동안 사이훙은 후디에의 일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대화를 다시 현실로 되돌린 사람은 오히려 두였다.
"자네는 후디에를 원하지. 내가 내 영토에서 그를 찾게 해주지. 그런데 반대급부가 필요하다네."
"그게 무엇입니까?"
사이훙이 물었다.
"화산의 무술은 자고로 유명하지. 자네들 셋이 방금 보여준 대로야. 나는 다섯 권의 비법 입문서가 있다는 걸 알지. 죽서칠판을 완전히 통달한 사람이 쓴 책 말이야. 내면의 에너지 배양을 통한 치명적인 무술 기법이 나와 있지. 그 책을 나에게 주게. 그러면 후디에를 갖게 해주지."
사이훙은 잠시 머뭇거렸다.
"사람을 보내서 가져와야만 할 겁니다."
사이훙은 걱정스러웠다. 너무 비싼 값인 데다 화산에서 동의할지도 알 수 없었다.
"좋아. 일주일 안에 내 손에 넣어 줘. 그동안 자네는 이 검법을 배울 수 있을걸세."
특사를 통해 책이 상하이에 도착한 날은 흐리고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었다. 윤기 흐르는 비단옷 위에 떨어진 진한 먹물처럼 구름은 큰 폭풍우가 아닌 음울한 이슬비를 몰고 올 것 같았다. 사이훙은 네모 탁자 위에 짐꾸러미를 올려놓고 짐을 풀었다. 천으로 된 상자는 색 바랜 자주색 실크 뚜껑으로 덮여 있었다. 안에 다섯 권의 책이 들어 있었다. 사이훙이 책을 펼치자 희미한 불빛이 노란 종이 위의 검은 글씨를 비췄다.
상하이의 두 웨선이 화산의 도인들이 보관하는 비법 소책자에 대해 어떻게 알았을까 하는 호기심이 일었다. 그것은 두의 지위뿐 아니라 소문과 무림의 정보망을 통한 것임을 가늠케 했다. 사이훙은 책자를 읽기 시작했다. 곧 두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책에는 내적인 배양에 대한 심오한 이론적 원칙이 적혀 있고 어떻게 하면 싸우는 동안 내부기관을 터뜨리기 위해 적의 몸에 초인적인 힘을 투사할 수 있는지 적혀 있었다. 두 같은 살인자의 손에 이 살인 기술을 넘기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임이 분명했다. 사이훙은 화산의 원로들이 후디에를 잡으려는 마음이 너무 절실해서 죽서칠판을 걸고 도박을 한다고 생각했다.
사이훙이 삼륜 자전거를 타고 두의 저택에 도착했을 때 두는 평소의 습관대로 아편 흡입에 열중하고 있었다. 천식기가 있는 두는 숨쉬기가 어려운 것 같았다. 그리고 눈가가 충혈되어 눈물이 글썽했다. 아편은 그에게 쾌락이자 악습이었다. 그러나 또한 숨을 쉴 때 씨근덕거려 호흡이 짧아지는 괴로움을 덜어주었다. 아편을 빨지 않고서 두는 그의 무술 실력을 불러낼 수 없었다. 많은 무장 경호원들이 어디서나 그를 수행하고 두가 늘 아편에 절어 지내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두는 상자를 열면서 음침하게 사이훙을 보았다.
"여기에 든 책은 세 권뿐이군."
"저를 순진하다고 생각지는 않으셨겠지요?"
사이훙이 감히 이렇게 대꾸했다.
"확실히 믿기 때문에 세 권은 드립니다. 그러나 제 사형은 어디 있습니까? 제 손에 잡히면 나머지 두 권을 드리겠습니다."
"네가 나를 배반하지는 않겠지."
두가 험악하게 나왔다.
"물론입니다. 그러나 거래는 거래입니다. 후디에와 책의 거래이지요. 상품이 없는데 대금을 지불하지는 않으시겠죠?"
"좋다."
두는 사이훙을 유심히 살피고 나서 말했다.
"네가 원정을 끝내는 그때 마지막 두 권을 나에게 넘겨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우정은 없을 것이다. 너를 찾아내어 너의 도관에 불을 질러 버리겠다."
"알겠습니다."
사이훙은 천연덕스럽게 웃어 보였다.
"이제 어디 가면 그를 찾을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산둥성."
두가 털어놓았다.
"그는 덕망 있는 스승인 투즈선의 집에 있다. 이것이 세 권의 책 대신 내가 줄 수 있는 정보의 전부이다."
"그만하면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오늘 밤 충칭으로 떠나겠다. 일본인들이 수상쩍은 짓을 하고 있다. 곧 돌아오게 될지 또 우리가 다시 만날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기억해라. 녹원회는 중국 전역에 퍼져 있다. 그러니 나는 어디에도 있는 것이다. 내가 그 책들을 원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거래는 거랩니다. 제가 산둥성에서 후디에를 잡으면 원하시는 것을 얻게 될 겁니다."
"그래. 나는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다. 나는 탐나는 것은 항상 차지하고야 마니까."
두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사이훙은 마지막 작별을 고하고 급히 우잉과 우콴이 기다리고 있는 호텔로 돌아갔다. 그들은 짐을 챙겨 그날 오후에 출발했다. 그러나 사이훙은 후디에가 산둥에 나타났다는 말만 해주고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사이훙은 갈라지는 게 어떠냐고 그들에게 제안하고 중국의 5대 성산의 최고봉인 타이산에서 만나자고 말했다. 그 산은 도인들에게는 성지로 간주되고 있었다. 도인이라면 평생 한 번이라도 성지 순례를 하고 싶은 곳이었다. 그곳은 회교도들이 메카를 순례하는 것과 흡사했다. 도교 수행자로서 두 형제는 타이산 정상에 올라가 본 적이 없었으므로 사이훙의 제안에 동의했다. 그들은 사이훙이 후디에의 은신처를 알고 있으리라고 결코 생각지 못했다.
투즈선의 집은 산둥 중심부의 산속에 외따로 떨어져 있었다. 담장 안에 지어진 궁전 같은 별장이었다. 산봉우리들은 화산처럼 금욕적인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져 있지 않았다. 그 대신 그것들은 오랜 세월의 비바람에 모서리가 둥글게 마모되고 부서져 있었다. 쪼개지고 부서져서 바윗덩어리와 흙더미로 변해 버린 산봉우리들은 안개가 자욱한 숲속에 묻혀 있었다. 산의 경관은 진짜 요새가 될 만한 천혜의 배경을 형성하였다. 높은 담장은 유령 같은 산속에서 고독한 존재였다.
투즈선은 사이훙 할아버지의 친구였다. 그래서 그는 사이훙을 따뜻이 맞아 주었다. 투즈선 할아버지는 강한 어깨와 손을 가지고 있었고 손가락은 철도에 쓰는 못 같았다. 하얀 수염으로 덮인 얼굴은 쪼글쪼글했다. 앞이마가 툭 튀어나오고 콧등이 다소 넓적한 매부리코였다. 두툼한 눈썹 사이는 좁았고 노려보는 듯 긴장감이 감도는 두 눈은 어둡고 불안해 보였으나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그는 사이훙의 편지를 받았었다. 문제에 휘말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후디에에게 도망치지 말고 그대로 남아있다가 사이훙을 만나보라고 권했다. 계속 도망가 봤자 아무런 이득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투즈선의 의견이었다. 두 형제가 원만히 문제를 해결하면 모두에게 이로울 터였다.
2개월간 계속된 추적이었다. 그동안 사이훙은 중국을 위아래로 왔다 갔다 했다. 마침내 사이훙은 후디에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는 몸을 씻고 어두운색의 비단옷으로 갈아입고 정원으로 나갔다. 깨끗이 회반죽을 바른 담에 난 반달문의 틈으로 풍상에 깎인 바위들이 작약꽃에 둘러싸여 완벽하게 배치된 것을 보았다. 사이훙은 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돌아가 육각형의 아치 길에 이르렀다. 그 위에는 <고대의 영원한 향기>라고 새겨져 있었다. 아치 길을 따라가면 녹음진 정원이 나왔다. 정원에는 터키 옥으로 장식된 풀장, 회색빛 바위 정원, 수양버들 그리고 늙은 소나무가 있었다. 사이훙은 길을 따라 다른 벽이 하나 더 있는 위쪽으로 걸어갔다. 정자 옆의 타원형 문으로 걸어 들어갔다. 직경이 5미터쯤 되는 인공섬이 있는 커다란 연못이 흐린 빛 속에 가물거리고 있었다. 등 뒤에 손을 마주 잡고서 파란 비단옷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후디에가 먼 곳의 산봉우리를 응시하며 서 있었다. 연못의 다리는 30센티 두께의 견고한 화강암 석관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전망대의 화려한 색과 후디에의 정지된 모습이 버드나무와 함께 연못 위에 비쳤다.
"결국은 내가 형을 따라잡았어."
사이훙이 퉁명스럽게 말을 던졌다. 후디에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우아한 동작이었다. 사이훙은 그의 피부가 여전히 매끄러우며 변함없이 미남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조금도 고민하는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하고 침착했다. 그는 활짝 미소지었다.
"형은 그 이유를 잘 알겠지. 대사부께서 형을 찾고 계셔. 형이 크게 문제를 일으켰으니까."
"내가 말이냐?"
후디에는 둘 사이에 놓인 팔각형 대리석 탁자를 손짓으로 가리켰다. 결이 부드러운 우윳빛 대리석 의자 4개가 북 모양으로 다듬어져 있었다. 북 가죽에 박힌 못과 손잡이 따위가 아주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명 왕조에서 내려온 멋진 그림이 그려진 자기 쟁반에 소나무 그루터기 모양의 찻잔이 있고 두 개의 작은 컵도 있었다.
"차 좀 마셔라."
사이훙과 후디에는 서로 마주 보고 앉았다. 후디에는 찻잔을 멋들어지게 내려놓고 수선화 향기가 나는 차를 따랐다.
"형은 이 문제를 간과하고 있어."
사이훙이 단호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형은 죄를 많이 지었어. 많은 사람들을 죽였지. 형의 재주를 남용한 거야. 내가 형의 잘못을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면 거짓말 일 거야."
"너도 살인하지 않았니? 너는 나의 애인과 그녀의 남동생을 죽이지 않았니?"
"그들은 무술가였어. 우리는 모두 무림의 일원으로서 결투를 벌이다 죽을 가능성을 인정했어."
"너도 도인이라서 잘 알겠지만 무슨 이유를 갖다 붙이더라도 사람을 죽인 건 죽인 거야."
"빙빙 돌려서 말하지 마. 형은 자꾸 관심을 형으로부터 돌리게 하려는 거야."
"내가? 난 숨길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하나도 없다고? 형은 정말 뻔뻔스럽군! 형은 정원에 서서 형이 유혹했던 여자들을, 사창가에 팔아넘긴 여자들을 모르는 척하는 거야. 마약으로 형이 망쳐 놓은 사람들, 단지 형을 방해했다는 이유 때문에 죽어야 했던 무고한 사람들을 까맣게 잊고 있어. 형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도 않아? 죄의식도 없느냐고?"
후디에는 생각에 잠겨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는 사이훙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죄의식?"
후디에가 반문했다.
"너, 아주 현란한 화술의 웅변가가 다 되었구나. 넌 정말 죄가 뭔지나 알고 있니?"
그 질문에 사이훙은 말이 막혔다.
"죄는 열등한 자의 피신처란다. 그들은 범죄라고 말하는 것을 저질러놓고 죄의식을 느낀다며 우는 소리를 한다. 죄의식이 잘못을 깨끗이 씻어준다고 생각하니?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고 말하고 똑같은 것을 몇 번이고 반복하는 거야. 그들의 죄는 더욱 무거워지는데 말이야. 스스로 변할 수도 없고 인정할 수도 없게 되어 계속 죄의식을 느끼기 때문에 열등감에 빠진단다. 자기들이 지은 죄 뒤에 숨어서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멀어져서 은밀히 그 고통을 즐기는 거야. 이게 바로 그들이 사는 방식이 되어 그 사람들을 완전히 불구로 만들어 버리지."
사이훙은 혼란스러웠다. 전에는 이런 문제가 아주 확실한 것이었다. 사이훙은 지금 그게 왜 이리 복잡한지 이해하지 못했다. 후디에의 주장은 논리적이었지만, 결과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죄는 그의 행위가 틀렸다고 사람이 인정할 때 성립되는 거야. 하지만 죄는 병이지. 죄를 다스리는 유일한 약은 앞을 내다보고 참아 내는 것뿐이야. 밧줄을 타고 산에 올라갈 때는 오직 정상만을 바라보고 도중의 모든 것은 무시하는 거지. 죄는 불필요하다. 올라가는 것을 방해하니까. 사람이 살아가면서 얼마간의 잘못을 범하는 것은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보통 사람은 죄의식을 가지고 죄 뒤에 숨어 버린다. 하지만 똑똑한 사람은 행위의 잘못된 점을 인정하고 나서 두번 다시 그 잘못을 저지르지 않지. 그런 사람은 약점을 깨끗이 씻을 뿐만 아니라 죄의식의 필요성도 제거해 버리는 것이다."
"이것 봐, 형.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집어치워. 이제 형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는 게 어때?"
"이제 네가 나를 재판하는구나. 죄를 재판하는 너는 과연 누구냐? 누가 다른 사람을 재판할 권리가 있단 말이냐?"
"법이 있고 규칙이 있잖아."
"법은 인간이 만든 개념이야. 그것은 인위적이고 독단적인 기준이란다. 나는 법의 멍에를 인정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대중들이나 법을 가지라고 해. 상상력 없이 관습을 따르게 내버려둬라. 무리에게는 구속이 필요하니까. 그러나 나는 도덕과 같은 어리석은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형은 괴물이 다 되었군. 올바르게 사는 생각들을 악용하다니."
사이훙은 성을 냈다.
"너는 고작 하는 일이 거기 앉아 비난이나 퍼붓는 것뿐이구나. 만일 네가 나의 인생을 산다면, 너는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비난하고 판단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그들보다 더 고매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특권이 있는지 자문해 봐야 할 것이다. 사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 너무 빨리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려 들지 마라."
후디에는 한숨을 쉬며 일어났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단지 인생을 깊이 있게 경험하고 내 운명에 충실하는 것뿐이란다."
후디에는 조용히 말했다.
사이훙은 잠시 생각했다. 그것은 후디에에게 아주 타당성 있는 목표 같았다.
"우리는 모두 운명을 지니고 이 세상에 태어났단다."
잔잔한 수면을 바라보며 후디에에게 말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운명을 완수하는 것이지. 그것은 완전한 정직성을 요구한다. 무엇보다도 나는 불량한 사람이 되려고 한 적이 없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죄를 열등한 자들의 피신처로 경시하는 이유다. 그들은 단지 자신으로부터 숨어 있을 뿐이다. 나는 그렇지 않단다. 나는 나를 수용한다. 나 자신에게 어떤 인위적 개념을 속임수로 쓰지는 않는다. 나는 현인이나 죽서칠판 같은 책에서 이상적인 생활 양식을 취하지도 않거니와 눈이 멀어 그 속에 빠지는 일도 없다. 나를 거기에 매이게 하지도 않는다.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냐! 경전은 신이 쓴 것이 아니라 인간이 쓴 것이다. 내가 왜 그 말을 인정해야 한단 말이냐? 나는 정직하게 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개념을 빌어 나의 본성을 거스르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무엇이든 나의 운명을 받아들이련다. 오로지 나 자신의 주체성을 따라 살아갈 것이다. 그 기준이야말로 나의 유일한 옳고 그름의 기준이다. 내가 그것을 탐구하고 심사숙고하여 그 의미를 알 수 있게 내버려 두어라. 다른 사람이 나에게 주지 않을 것을 내가 이해하고, 오늘의 나를 있게 한 본질의 의미를 해독할 수 있게 내버려 두어라. 그렇게 할 때에야 비로소 나는 망상에 속지 않고 진짜 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단다."
"형, 형의 말은 정말 훌륭해. 그렇다고 해서 형이 저지른 살인과 강도, 매음을 정당화시키지는 못해."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내 운명을 회피해야 한다는 거냐? 아니면 내 운명이 멋지고 존경받을 만하지 못한다고 해서? 나는 이 역할에 대해 불평을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시시한 드라마에 불과하니까. 극의 막이 내리고 나면 나는 다른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살인은?"
"나는 살인에 대해 이처럼 까다롭게 구는 무술인은 거의 만난 적이 없구나. 아니다. 내 그 말을 취소하마. 전설은 감상적인 검객들의 얘기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항상 일찍 죽는다."
"형, 나는 형이 하는 말에 동의할 수 있어. 그러나 너무 늦었어. 그리고 형의 말은 악한 인생에 대한 합리화에 불과해."
"너는 어리구나. 너무 어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나는 여자에게 반해서 여자를 유혹한 적이 없다는 거야. 나는 나를 죽이려 하지 않은 사람을 살해한 적도 없고, 독직과 부패를 통해 황금을 취하지 않은 사람의 것을 빼앗지도 않았어."
사이훙은 침묵했다.
"이제 너의 그 잘난 도덕을 만족시켰니?"
후디에가 비꼬는 투로 물었다.
사이훙은 어느 정도는 그렇다고 스스로 인정을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후디에는 사이훙에게 호소하는 눈길을 보냈다.
"얘야, 너는 내 생명을 손에 쥐고 있다. 제발 나를 놓아줘. 만약 내가 화산에 갇히고 나면 나는 결코 편히 쉴 수 없을 거야. 나의 혼은 파괴되고 말 거야."
사이훙은 가슴이 뭉클했다. 이 사람은 사형이다. 어린 시절부터 줄곧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생각 좀 해봐라, 얘야. 사실 우리가 우리 힘으로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인생에서 얼마나 있니? 계절의 변화가 우리에게 영향을 준다. 별들은 우리에게 방향을 지시한다. 환경이 우리를 가로막는다. 운명은 우리를 인도한다. 너의 인생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으니까, 너는 지금 그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너는 선택을 했다. 하지만 대개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즉 네가 경험하는 모든 것 중에서 너는 너에게 적절한 것을 실행하기로 결정했다. 이제 나에 대해 생각해 봐라. 도의 다른 물결이 나에게 흘러왔다. 여인들이 나와 사랑에 빠졌다. 부는 나에게 쉽게 찾아왔다. 무사의 용맹은 나의 강점이다. 그런데 나는 이것들을 요구하지 않았다. 나는 운명의 일부로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 찾아왔다. 그리고 나는 운명에 대한 책임감을 인정했다. 우리는 둘 다 이름이 후디에야. 우리는 자유롭게 날아다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을 운명인 것이다. 나에게 훨훨 날아다닐 수 있는 기회를 다오. 내 운명을 추구할 수 있게 해줘."
"그러다간 죽게 될 거야."
"그건 촌부들이나 갖는 생각이야. 너와 나는 영웅처럼 살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우리는 어차피 모두 죽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돌아와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너에게 너의 역이 있듯이 지금 내가 맡은 역할은 이것이다. 내 역을 끝까지 맡아서 할 수 있게 해다오."
사이훙은 시간을 벌기 위해 차 한 잔을 더 따랐다. 그는 후디에의 의견에 동의했다. 형의 통찰력에 거듭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후디에처럼 특별한 인간의 생명을 단축시켜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후디에는 독특하고 특별한 사람이다. 이 혼탁하고 속된 세상에는 그런 웅대한 인간이 필요한 것이다.
사이훙은 자리에서 일어나 형을 마주 보았다. 그는 순간적으로 고독과 정적을 맛보았다. 사이훙은 자신이 형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깨달았다. 사이훙은 형의 손을 움켜잡고 조금 고개를 숙였다.
"더 이상 죄를 지으며 살지는 않을 테지?"
"이제 내 사정을 이해하는구나. 그만두겠다는 것을 보장한다."
"형, 제발 몸조심해. 당분간 숨어 있도록 해봐."
"그렇게 하마."
"내가 먼저 갈게."
"조심해서 걸어라."
사이훙은 다리를 건너 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는 흔들리는 웅장한 나무들의 꼭대기 위로 눈을 돌렸다. 멀리 있는 산맥의 청자빛 봉우리가 짙어가는 자줏빛 하늘을 배경으로 뚜렷이 윤곽을 드러냈다. 사이훙은 이를 수 없는 산의 정상, 저 먼 곳에 있는 사부님을 생각했다. 그는 얼마나 먼 곳에 있는가. 산 위의 그의 삶은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얘기 같지 않은가. 사이훙은 평원에서 자신이 겪은 일을 사부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사부에게 있는 대로 말씀드리기로 결심했다. 확실한 것은 그들에게 하나의 대안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사이훙은 정자 모퉁이에 있는 정원의 담에 이르렀다. 화단에서 막 장미꽃봉오리가 터지려 하고 있었다. 짙은 녹색 가지 끝에 붉은색과 분홍색의 장미 봉오리가 이슬처럼 매달려 있었다. 산들바람이 한들한들 가지를 흔들었다. 사이훙은 돌아보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사이훙은 타이 산의 기차역에 당도했다. 터덜거리는 버스를 타고 태산의 자락까지 갔다. 후디에와 만난 지 4일이 지났다. 그는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다. 이제 남은 것은 우 형제들을 모아 화산으로 돌아가는 일뿐이었다.
사이훙은 이번 원정을 아주 흡족하게 여겼다. 여행도 많이 했고 견문도 많이 넓혔으며 유별난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몇 번의 어려운 결투에서 승리하였다. 이것이 사이훙이 사랑하는 인생이었다. 진실로 스스로 무술인이 된 느낌이 들었다. 모험을 위해 사는 사나이, 정의를 위해 싸우는 기사가 된 느낌이었다. 조만간 그도 사부나 베이징의 찻집에서 만났던 사람들처럼 유별난 사람들의 독특한 관계에 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안개와 구름이 낀 흐린 날이었다. 타이 산의 정상은 안개에 가리어져 흐릿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훙은 여전이 타이산의 전설적 위용을 느낄 수 있었다. 중국의 5대 성산 중 최고봉인 타이 산은 거대한 화강암 봉우리들이 우뚝 솟아 있었다. 가장 높은 곳의 높이는 해발 1,525미터가 넘었다. 신비한 장소로서의 그 명성은 일찍이 진 왕조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진 시황제는 11번씩이나 몸소 찾아와 하늘의 옥황상제에게 경의를 표했다. 장구한 역사를 볼 때 중국의 황제들은 나라를 위해 제물을 바치고 기도를 올리기 위해 타이산에 찾아왔다. 기록을 보면 역대 왕조 가운데 72명의 황제들이 타이산에 올라갔다는 문서가 남아있다.
수많은 사당과 도관들이 울퉁불퉁한 경사면에 점점이 흩어져 있었다. 상징적인 장소들의 대다수 - 불사신의 다리, 8인의 불사신의 다리, 태양수도원과 달 수도원 - 가장 도교적인 장소였다. 정상에 있는 사원들은 오로지 도교를 위해 세워졌다. 이 산은 도교의 신인 옥황상제가 땅에 세운 집이라고 전해졌기 때문에 그의 신당은 타이산의 정상에 세워졌다. 사이훙은 정상이 아닌 작은 봉우리에서 우잉과 우콴을 만나기로 했었다. 사이훙은 타이산으로 올라가는 동쪽 길에 있었다. 우 형제들을 만나 후디에와의 만남을 전하기로 한 곳이 바로 거기였다. 이제 그들은 돌아갈 수 있다. 화산은 안전했다. 그들은 준치 법사가 정한 시한인 2개월을 조금 초과했을 뿐이다.
"너 미쳤니?"
우콴은 사이훙의 설명을 듣고 버럭 화를 냈다.
"그 자식을 네 손아귀에 잡아 놓고서도 그냥 놓아주다니!"
"큰 실수를 저질렀군."
우잉도 거들었다.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사이훙이 반문했다.
"그건 오해였어. 그는 변명도 제대로 못한 채 비난만 받았던 거라구. 게다가 그는 나에게 눈에 띄지 않게 살겠다고 약속까지 했단 말이야."
"이 어리석은 녀석 같으니! 그는 결코 달라지지 않을 거야. 그놈에게 홀렸구나."
우잉이 욕을 했다.
"나를 홀렸다고? 당치 않아. 나는 수년 동안 명상을 해왔는데, 내 정신은 강인해."
"눈 좀 떠라, 이 얼간아."
우잉이 빈정거렸다.
"너는 아직 흑과 백도 구별하지 못하고 있어. 우리에게 내려진 명령은 그를 잡아 오는 것이었다. 네가 실수해서 망쳐 버렸어. 이제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만 해."
"안 돼!"
사이훙이 소리쳤다.
"그에게 기회를 줘야 해. 그는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단 말이야. 나는 어릴 때부터 그를 잘 알라. 그는 거짓말 안 할 거야."
"정말 순진하군!"
"그 말이 사실이라고 치자. 그래도 그 놈은 과거에 저지른 죄에 대해 벌을 받아야 한단 말이야."
"다 지난 일이야."
사이훙이 단호하게 말했다.
"나에겐 달라진 게 없어. 나는 명령을 수행해야만 한다."
우잉이 응수했다.
"나도 동의해."
우콴이 말했다.
"가서 대사부에게 결정을 맡겨 보자."
사이훙은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빈 손을 내밀라고? 그러면 벌을 받는다는 걸 너도 알잖아!"
우잉은 비꼬는 투로 물었다.
"그리고 두는 어떻게 하지?"
우콴이 물었다.
"너는 그와 거래를 했잖아. 이제 그가 우리 뒤를 쫓아올 거야."
"나는 그에게 책을 세 권밖에 안 줬어. 그리고 투즈선의 저택에서 후디에를 데려오지 않았잖아. 그건 중요하지 않아."
사이훙이 소리쳤다.
"그러나 그는 책을 가지고 있어."
"내가 다른 두 권을 보관해 두었어. 여기에 기술이 담겨 있어. 처음 세 권은 그저 이론일 뿐이야. 나는 그 책들을 원로들에게 돌려줄 거야. 우리가 잃은 것은 많지 않아."
"시간과 후디에를 잃어버렸잖아. 이 얼간아! 네가 일을 크게 망쳐버린 걸 알기나 해?"
우잉은 마침내 폭발했다. 사이훙은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당황스러웠다. 처음으로 후디에를 놔 준 것이 잘못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원에 있을 때는 그렇게도 분명해 보였는데 지금은 확신이 잘 서지 않았다. 우잉은 사이훙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조금 누그러졌다.
"자, 이렇게 하자. 녹원회의 조직을 통해 후디에를 추적해 보자. 그가 개과천선한 것 같아 보이면, 돌아가서 대사부님과 의논하자. 만일 그렇지 않으면 그땐 다시 정해진 시간 안에 그를 잡는 거야."
우콴은 동의했다. 사이훙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말은 없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욱 우울했다.
다음 며칠 동안 행운은 그들을 외면했다. 기차 운행이 예정표에서 벗어나 후디에의 흔적을 찾아낼 수 없었다. 그가 녹원회 쪽으로 끌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절망적인 가정을 따라 양쯔강을 통해 남쪽으로 정처 없이 길을 떠났다. 그런데 이 추적 방법은 많은 정보를 얻게 해줬다.
중국은 떠돌이들의 나라였다. 사이훙이 중국인에 대해 늘 증오해 왔던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그 점에 대해 감사하고 있었다. 시골은 사람들로 북적대었다. 그들 속에는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나 누군가의 행동거지를 낱낱이 목격할 수 있는 사람이 항상 있었다. 지하 세계에서 그런 호기심은 정보를 얻는 데 필수적인 수단이었다. 그 정보는 돈만 주면 다시 살 수 있었다.
이윽고 후디에가 개과천선은 커녕 더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세 사람에게 정신을 아득하게 하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후디에가 상하이에서 몇 명의 정치인을 암살했는데 도망갈 목적으로 아편 수송선을 이용하여 양쯔강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이었다.
사이훙의 마음은 몹시 무거웠다. 이제 더 이상 낭만은 남아 있지 않았다. 사이훙은 후디에가 단순한 갱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했다. 사이훙은 처음 후디에를 추적하면서 정의로운 성전에 뛰어든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저 경찰의 업무 수행과 같은 느낌뿐이다. 세속적일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끔찍한 현실로 추락시켰다. 사이훙은 자신이 자기도취에 빠져서, 이상주의에 사로잡혀서 본연의 의무를 망각했던 경솔한 젊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후디에는 충칭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일단 충칭에 들어가면 그를 사로잡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두 웨선과 장제스가 거기 있기 때문이다. 세 수도자는 그 도시에서 죽임을 당할 터였다. 그들은 후디에를 당장 잡아 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첩자들은 후디에가 난징에서 하룻밤 묵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사이훙 일행은 난징에서 매복하기로 하였다.
난징은 양쯔강 남쪽 기슭에 있는 대도시였다. 그곳은 공산품 해상운송의 중심지였다. 또한 역사적으로 위대한 수도였다. 중국의 8대 고대 수도들 중 하나인 난징에는 도시 성벽의 일부분이 남아있었고 명조의 왕릉이 가까이 있었다. 또한 얼마 동안 장 제스 정부의 수도 역할을 하기도 했다. 비록 일본군이 1937년 12월 잔혹한 유혈 전투에서 그를 몰아내기는 했지만.
베이징과는 대조적으로 난징은 제국적인 완고함과 엄격한 분위기가 전혀 없었다. 날씨는 더 화창했고 음식도 더 풍부했다. 집과 상점들은 햇빛과 맑은 공기를 받아들이기 위해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었다. 사람들이 걸어가는 속도는 느렸다. 황사 현상도 없고 물도 풍부했다. 시골 여기저기에 연못이 있고 푸른 식물들이 무성하게 자라났다. 사람들의 얼굴은 북부 사람들과 달랐다.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더 육감적이고 근육과 뼈대도 덜 단단했다. 그들의 나른한 기풍은 건축에까지 이어졌다. 건축물은 둥글고 유연했으며 담도 물결 무늬를 이루었다. 난징은 계곡의 뜨거운 열기가 서서히 식어 드는 19세기 초엽의 강변 도시였다.
그러나 도시의 대부분은 이제껏 베이징도 당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폐허 상태였다. 도시 전체가 전쟁의 상처를 입고 있었다. 전쟁의 잔해와 시체가 여전히 눈에 띄었다. 완전히 타버린 빌딩, 흙먼지와 막대로 변한 집들, 철조망이 쳐진 다리와 철로 그리고 포탄에 맞아 조각난 나무들이 아직도 여기저기에서 뒹굴고 있었다. 사지가 절단된 채 절뚝거리는 불구자들, 얼굴에 진흙을 뒤집어쓰고 이빨은 다 깨진 아이들, 말라붙은 눈물이 한 꺼풀 덮인 노인들. 그러나 누구 하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폐허로 변한 난징에는 몸이 성한 자가 없었다. 이곳은 바로 전쟁 지역이었다. 아직 일본군이 도시를 점령하고 있었다. 그들은 거리를 순찰하고 기분 내키는 대로 누구든 희생물로 삼았다. 무사의 미덕도, 정의로움도, 영웅주의도 더 이상 이곳엔 존재하지 않았다. 중국의 영웅들은 불쌍한 낙오자가 되어 거리를 배회하고 다녔다. 정의로운 자들은 공동묘지 속에 누워 있었다. 미덕을 갖춘 자도 겁에 질려 무관심하게 살아갔다.
중국은 변해 가고 있었다. 세계도 변해 가고 있었다. 청 왕조는 완전히 타락하여 몰락했다. 썩기 시작하자 악취가 진동했다. 국가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사이훙은 이 죽어 가는 중국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난감했다. 운명의 장난이었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무사로서의 꿈을 키우다가 도인 수련을 받은 그가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은 확실히 지독한 장난이었다. 귀족은 벼락부자에게 암살 당하고 무사는 총을 갈겨대는 무지막지한 군인 앞에서 죽어가고 현자는 자기 제자 하나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있었다.
사이훙은 여인숙의 숨 막힐 듯한 2층 방에서 몇 시간 동안 기다렸다. 이 추적은 원래 성전으로 시작했었다. 사이훙은 고귀한 명분을 위해 무림에 탄원을 낸 화려한 전사였었다. 취푸에서 일찌감치 깨달았어야 했다. 무림의 반은 사업가였다. 군인도 있었다. 상대가 자기와 같은 세계에 속해 있을 때 사이훙은 용감하게 영웅적으로 싸웠다. 하지만 이제 그는 세상이 두 웨선과 같은 인물에게 속해 있다는 걸 알았다. 총과 대포를 든 무리가 이제는 전사의 자리를 차지했다는 걸 깨달았다.
사이훙은 잡념을 떨치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발코니가 있는 안들을 가로질러 맞은편으로 눈을 힐끗 돌렸다. 여관의 담장은 한때는 흰색이었으나, 지금은 빗물과 검댕으로 줄이 그어져 있었다. 사이훙은 우잉과 우콴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들은 말이 없었다. 냉혹한 표정이었다. 그들은 칼집에서 칼을 빼놓고 있었다. 후디에는 길 건너편 방에 있었다.
해 질 무렵 몇 명의 남자가 허둥거리며 방에서 나왔다. 한 사람은 후디에였다. 사이훙은 동료들에게 신호를 보내기 위해 급히 머리를 흔들었다. 그들은 소리 없이 빠져나와 발코니 벽에 바짝 붙었다. 사이훙은 1미터 20센티 길이의 화살통을 들고 방에서 나왔다. 그는 형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그다음 오랫동안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횡경막이 긴장하고 목이 조여드는 듯했다. 사이훙은 모든 회한과 이상, 감정이 화살과 함께 폭발하였다. 시위를 당긴 화살이 튀어나와 소리 없이 하늘을 가르고 후디에의 목에 맞았다. 다른 남자들은 소리를 지르며 혼비백산하였다. 사이훙은 재빨리 2발을 더 쏘았다. 그때 우잉과 우콴이 비호같이 튀어 나갔다. 즉시 권총이 발사되었다. 사이훙은 일제 사격을 피하려고 몸을 납작 엎드렸다. 그는 격자무늬 틈새를 통해서 재빨리 살펴보았다. 우 형제는 얼른 갱들을 처치했다. 사이훙은 후디에가 걱정이 되어 어떻게 되었는지 살펴보았다. 형은 발코니의 난간 끝에 서 있었다. 후디에는 창살을 꺼냈지만 너무 늦었다. 그는 휘청거렸다. 우잉과 우콴이 덮치자 후디에는 뛰어내려서 달아나려고 했다. 그러나 곧 의식을 잃고 정원 아래로 떨어졌다.
화산으로 돌아가면서 사이훙은 후디에와 심하게 언쟁을 벌였다. 배신당한 사람의 울분이었다. 한때 사이훙은 후디에를 숭배했었다. 지금은 그에게 화살을 쏘아 재판을 받도록 끌고 가는 중이었다.
"나는 어떻게 되는 거니?"
후디에가 물었다.
사이훙은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손은 등 뒤로 묶여 있었다. 두 발 역시 어깨 넓이 간격을 두고 묶여졌다.
"전에 형은 좋은 말을 많이 해줬지. 나는 형을 믿었어. 하지만 형은 계속 살인을 저질렀어."
"우리는 각자 선택을 해야만 한다."
창밖을 보면서 후디에가 말했다.
"때때로 그건 틀리단다. 현실은 천국이 아니란다. 우리 모두가 불사조처럼 행동할 수 없지."
"인생은 항상 시험이야. 천국에 들어가려면 올바르게 행동을 해야 해. 그럴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네가 나의 삶을 산다면 그렇게 말하지는 않을 거야. 나처럼 되지는 마라. 나의 실수를 보고 배워라. 열심히 공부하고 훈련해라. 선하고 바르게 살 거라."
"나는 믿을 수가 없어. 형은 나쁜 행동을 하고선 나를 바로잡아 주려고 하는 거야?"
"네가 나의 동생이기 때문이란다."
""형은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려는 거야? 투즈선의 집에서 나를 홀렸던 값싼 감상은 아니겠지? 다시는 형의 얘기를 듣지 않을 테야!"
"고집부리지 마라. 언젠가 너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걸 깨닫게 될 날이 있을 것이다. 그때가 오더라도 죄의식은 느끼지 말아라. 그러나 스스로에게 죄를 숨기지는 말아라. 앞으로 더 잘할 생각만 하고."
"그 말은 형한테 더 어울릴 것 같은데. 사부님은 형의 능란한 화술에 말려드시지 않을 거야."
"나는 벌이 두렵지 않아."
"기다려. 다 왔으니까."
기차는 천천히 멈췄다. 우콴은 후디에를 거칠게 일으켜 세웠다.
"여기가 화인역이다. 가자, 이 나쁜 놈아."
우콴이 고함을 질렀다.
그들은 화산의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 늦은 오후에 남봉 사원에 도착했다. 도관 생활은 정말 도시와 대조적이었다. 공기는 깨끗하고 땅은 쓰레기, 배설물, 시체 따위에 오염되지 않았다. 늙은 소나무는 구름 아래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었고 학과 제비들이 하늘에 점점이 떠 있었다. 아름다운 새소리가 감미롭게 들려 왔다. 비록 가난하고 초라했지만 도관은 청결하고 조용했다. 평화로운 느낌이 사이훙을 감쌌다. 그는 질서와 정적을 음미했다.
도관 안에서 사이훙이 어린 시절 이후 들어온 찬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이훙이 몹시도 싫어했던 소리가 지금 그를 감상에 젖게 할 줄이야. 사향과 백단향이 은은하고 부드럽게 배어 있는 찬 공기를 마셨다. 화산에 돌아오니 참으로 좋았다.
대사부와 사형들이 재판관들처럼 본당에 일렬로 앉아 있었다. 사이훙은 진엔니아오와 츠쑹이 빠진 것을 흥미롭게 눈여겨 보았다. 사이훙과 우잉, 우콴은 무릎을 꿇었다. 후디에의 반항적인 태도를 보고 우콴이 그의 발목을 묶은 밧줄을 잡아당겨 억지로 그를 앉혔다. 조용했다. 대사부는 그에게 본당 옆의 작은 방으로 가도록 손짓했다. 그들은 그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창이 하나뿐이고 작은 제단이 있는 조그만 방이었다. 의식 중간에 도사들이 휴식을 취하는 방으로 다른 장식은 하나도 없었다. 두 시자만이 대사부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대사부는 눈을 똑바로 뜨고 후디에 앞에 섰다. 그러나 말은 없었다. 손이 꽁꽁 묶인 후디에는 고개를 당당히 쳐들었다.
침묵은 사이훙에게 아주 고통스러운 긴장감을 안겨 주었다. 그는 후디에를 바라보았다. 반쯤 스며든 주홍빛 햇살이 그의 등뒤에 내리쬐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 자줏빛 그늘을 만들었다. 산을 올라오느라 땀이 흘러 피부가 촉촉했다. 머리카락이 얼굴 위로 흘러내렸다. 사이훙은 후디에가 자기를 길러준 분 앞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대사부는 한 점 흐트러짐 없이 검은색 도복을 단정히 입고 있었다. 반듯하게 주름이 잘 잡혀진 모자까지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다. 사부의 흰 수염은 검은 도복과 눈부신 대조를 이루었다. 한 올의 머리카락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사이훙은 사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당신의 제자가 이렇게 된 것을 안타까워하실까? 슬프거나 화가 나 있을까? 과연 사부는 후디에를 용서할 것인가?
두 시자는 완전한 금욕주의자였다. 그들의 얼굴에는 감정이 하나도 없었다. 눈에도 움직임이 없었다. 운명적으로 얼굴을 마주 보고 있어야 하는 두 조각상 같았다.
갑자기 대사부의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그는 앞으로 한 걸음 나오더니, 손바닥으로 후디에의 심장을 세차게 내리쳤다. 무사가 된 지도 오래되었지만 사이훙은 심장이 터지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후디에의 입과 코에서 피가 솟구쳐 올랐다. 눈은 완전히 뒤집어져 흰자위만이 남아있었다.
"안 돼! 안 돼!"
사이훙은 비명을 질렀다.
시자들도 쓰러지는 후디에의 시신을 붙잡으면서 깜짝 놀랐다.
"왜 그랬어요?"
칭 수이셩이 소리쳤다.
"왜 그랬어요? 왜?"
사이훙은 비탄에 젖어 쓰러진 후디에의 시체 옆에 무릎을 꿇고 메아리처럼 외쳐댔다. 대사부는 단지 두 손을 포개었을 뿐 무뚝뚝하게 돌아서서 나가 버렸다. 사부는 본당을 홀로 떠났다.
8. 한 줌의 재
아직도 향 연기가 타오르고 있었다. 초는 환하게 불꽃이 되어 타올랐다. 촛물이 녹아 핏방울처럼 떨어졌다. 꽃들은 화려하고 싱싱하여 마음까지 즐겁게 했다. 하지만 사이훙에게는 꽃들이 곧 시들어 마르고 나면 노랗게 변색되리란 생각만이 들었다. 그는 들고 있던 항아리 속에 엄숙한 마음으로 손을 넣었다. 먼지 같은 재와 뼛가루가 손에 잡혔다. 그는 길 잃은 유령처럼 비탈길을 올라오면서 화장한 사형 후디에의 마지막 유해를 천천히 산에 뿌렸다.
모든 것이 현실 그대로였지만, 사이훙은 후디에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사이훙은 직접 뻣뻣하게 굳은 후디에의 무거운 시신을 깨끗이 씻기고 옷을 입혔다. 그는 시신에 기름과 참깨를 뿌리면서 부풀어 오른 차가운 살을 만졌다. 사이훙은 장례를 치르면서도 살아서 움직이던 후디에를 생각하며 오랫동안 시신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땅으로 내려가 한 줌의 흙을 보탤 뿐이었다. 통곡 소리도 사이훙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그는 슬픔도 느끼지 않았다. 단지 운명의 법칙이 가진 절대성에 몸서리가 쳐졌다. 그는 기진맥진해서 허탈감에 빠졌고 피곤했다. 사이훙은 오랫동안 고군분투하였다. 그리고 지금 모든 것은 끝나버렸다. 무사의 역할을 수행하려고 몸을 가다듬었지만, 그 추적의 영향을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이 추적에 너무 깊이 몰입했기 때문에 추적을 다하자 기운이 쭉 빠져 버렸다.
대투쟁의 일부는 진엔니아오와의 싸움이었다. 사이훙은 돌아와서 그 도전에 응하려고 했다. 그런데 원로들은 은밀한 회동을 갖고 진엔니아오와 츠쑹, 투오구이를 화산에서 추방시켰다. 사이훙은 불합리하게 자신의 충성심이 거절당했다고 느꼈다. 그는 사부를 위해 싸우고자 했다. 그의 용맹과 정의감을 보여 주고 싶었다.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사부는 사이훙 없이도 승리를 쟁취했으며 반란은 이미 진압된 것이다.
사이훙은 산 밑에서 나는 자동차 소리를 듣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화산의 성스러운 고독을 방해하는 사건은 어떤 것이든 사소한 일 일리 없었다. 후디에의 납골 단지를 꼭 움켜쥔 채 사이훙은 머나먼 하산 길을 떠나는 세 여행자를 보았다. 푸른색 도복을 입은 그들이 떠나가자 야유와 돌아오라는 절규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그들은 추방당하는 도전자들이었다. 사이훙은 그들의 떨리는 걸음걸이에서 패배의 쓰라림을 보았다. 진엔니아오, 츠쑹, 투오구이는 너무 기고만장해서 날뛰었다. 대사부의 총명함은 그들의 거만한 날개를 녹여 버렸다. 이제 그들은 땅으로 떨어졌다. 하늘의 제단인 화산을 떠남으로써 그들은 도교 수행자들만의 고결하고 드높은 영혼의 영광을 잃었다. 사이훙은 그들을 증오했다. 그는 고분고분 하지 못한 그들을 때려눕히고 싶었었다. 그러나 지금 사이훙은 그저 서글펐다. 따지고 보면, 갈등과 싸움, 심지어 전에 다른 사람들에게 했던 가시 돋친 장난들이 오히려 정상적이었고 그것들은 이상하게도 그의 마음을 편하게 했었다. 그렇게라도 하면 최소한 관계는 단절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이훙은 한때 사형들에게 굉장한 사랑을 느꼈다. 그들의 도전 때문에 생긴 증오심은 그 사랑의 감정과 밀착되어 있었다. 이제는 사랑도 미움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부와 제자들의 완벽한 공동체가 이제는 회복 불능의 상태로 파손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사태였다. 사이훙은 자기가 없을 때 사형들이 원로들에게 한 도전에 대해서 더 알아내려고 신경을 쓰지도 않았고 그들을 다시 찾으려고도 않았다. 그들의 추방이 그에게 처절한 외로움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다.
대사부는 후디에도, 쫓겨난 수도자들도 다시는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리고 사이훙으로서는 감히 물어 볼 수 없는 수많은 의문을 남겨 놓았다. 사부는 하늘이나 땅에 대해 무엇이든 명쾌한 답변을 해주곤 했었는데 개인적 문제를 질문하면 최고 권위자의 고고함을 방패 삼아 슬쩍 물러나 버렸다. 사이훙은 아무리 터무니 없는 얘기라도 사부에게 얘기하려면 할 수도 있는 관계였지만 이젠 노인의 침묵에 소외감을 느꼈다.
그 뒤 몇 주일 동안 사이훙은 도관 생활에 다시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착잡한 마음과 실망이 그의 노력을 가로막았다. 내핍 생활을 하는 금욕주의자의 명상은 사이훙의 용기를 꺾어 놓았다. 그는 나이 많은 도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굶고 스스로를 희생하고 청정한 생활에 열성적으로 몸을 바쳤지만, 성공한다는 확신은 아직 없었다. 그들은 건강이 나빠 보였다. 주름살이 생기고 허리가 굽었지만, 줄어들지 않는 신앙심으로 해가 갈수록 수행에 정진했다. 그러나 사이훙은 더 이상 그들의 방식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마침내 그는 산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사이훙은 여행을 하고 모색하고 싶었다. 하지만 목표가 있어야 하고 길잡이별과 역할이 필요했다. 그는 무술을 생각해 봤다. 그러나 더 이상 무사는 없었다.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귀족의 삶도 퇴색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사이훙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은 그저 혼자 떠돌면서 예술과 인생을 감상하는 것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이제 목표가 생긴 것이다.
사이훙은 자신의 마음을 궁전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순화된 궁전의 최대 목표는 아름다움이었다. 마음의 궁전은 평온하게 감상하며 한가롭게 거닐 수 있는 광막한 장소가 될 것이다. 사이훙은 마음의 궁전에 정원을 만들고 맛있는 음식을 마련하고 환상적인 예술품과 전문 공예가의 우아한 가구를 들여놓을 것이다. 또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특별하고 성공한 사람들을 초대할 것이다. 각각의 방은 특별한 활동을 위해 할애될 것이다. 어느 방이든 아름다운 가구들로 아주 균형 있게 채워질 것이다. 방마다 명상에 필요한 예술품이 가득 찰 것이다.
사이훙에게 있어 아름다움이란 세상의 평범함을 초월하였다. 만일 그가 무언가를 두려워한다면, 보통 사람들이 <행복한 생활>이라고 부르는 평범한 삶의 늪에 빠지는 것이다. 그는 풍부한 아름다움이 없는 삶을 혐오했다. 사이훙은 인류 최고의 업적과 예술과 지식의 최대 성취를 감상하고 흡수하지 않고 살아가는 삶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사이훙은 양자를 모두 소유하고 그것들을 수집하고 보존하고 자신의 궁전에 배열하고 싶었다.
예술품은 구입할 수 있다. 훌륭한 도자기, 귀한 골동품, 회화, 고서, 수공예 가구 - 모두 살 수 있는 것들이며 정돈된 실내에 기술적으로 배치할 수 있다. 그러나 지식은 약간 달랐다. 그것을 소유하려면 배우고 경험을 해야만 한다. 지식은 잘 빠져 나간다. 간수하지 않으면 사라져 버릴 수 있다. 반면에 물건은 먼지밖에 낄 것이 없었다. 사이훙은 그런 자극이 필요했다.
인생의 모든 조각들이 제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모든 다양한 관심사를 조직화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침내 사이훙은 모든 것이 어떻게 인생에서 적당한 비율을 차지하는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의 신체는 풍경이 될 것이고 그의 생각은 주홍색 담이 되며 두 눈은 하늘로 가는 평화의 문이 될 것이다. 정자와 안뜰에서 그는 무술을 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높은 탑에서는 명상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신의 탁월함 속에는 또한 사람들이 있게 될 것이다. 사이훙을 특별히 도왔던 사람들, 여행 중에 만나서 함께 살려고 데려온 사람들, 각자는 자신의 정원과 정자를 소유할 것이다. 사부와 사형이 있을 것이다. 그의 궁전 한 곳에 화산 전체가 있게 될 것이고 그의 가족들은 다른 곳에 있게 될 것이다. 두 웨선과 같은 사람들은 독특한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사이훙의 궁전에 있을 것이다. 후디에, 핀후 그리고 당나라의 시인들도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각각의 예술품과 개개인은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사이훙은 사부에게 도관을 떠나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그리고 나서 공식적으로 사부를 찾아뵈었다.
"저는 속세에서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겠습니다. 저의 영혼은 평화롭지 못합니다. 화산에 있을 수 없고, 신과 함께 할 수도 없습니다.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합니다."
사이훙은 겸손하게 말했다.
"사람의 인생에는 견디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에게 강한 소명 의식이 있다 해도 여전히 걱정이 있을 수 있다. 그런 감정을 고려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소명을 지닌 사람은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속세로 나갈 수도 있다. 그는 항상 기댈 곳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철학 없이 배회하면 안 된다. 네 청춘의 튼튼한 기반을 유지해라. 너의 의도는 한 곳에 고정시켜 놓아라.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고 밖으로 나가라."
대사부가 조용히 말씀하셨다.
"아마도 저는 헌신적인 수도자는 결코 못 되었던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저는 도교를 이해도 못 한 채 마음이 끌렸습니다. 수련은 앞으로도 제 생활의 중요한 일부가 되겠지만 저는 거기에 평생 매달릴 수가 없습니다."
"성직의 화려한 장식에 오도되어선 안 된다. 경전의 암송은 좋다. 그러나 사람은 살아가면서 선행을 해야만 한다. 중요한 것은 너의 인생이다. 하늘이 너를 심판할 때는 너의 인생이 기준이 된다. 너는 항상 선을 위해 살도록 열심히 노력해야만 하느니라. 많은 사람들이 오로지 공포심 때문에 선량하게 산다. 다른 사람들은 단지 위신과 그것이 제공하는 자부심을 얻기 위해서 자선을 베푼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선행을 한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선행을 연기하는 배우에 지나지 않는다. 성인의 역할에 집착하지 말아라. 집착은 너를 다른 사람들과 똑같게 만든다. 선행은 그저 진실된 동정심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제게 무엇이든 입증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느낌이 안 듭니다. 다른 사람에게 모범을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겠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현명치 못한 것이니라. 뭔가를 입증하려고 애쓰지 말아라. 그냥 원하는 대로 행하되 위선자는 되지 말아라.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느니라. 불사신도, 신도 결코 완벽하지 않다. 심지어 원왕도 품행이 나빴단다. 동방삭도 도둑질을 했잖느냐. 북해의 불사신도 한때 악행을 저지르고 벌을 받아 하늘에서 쫓겨나기도 했지. 중요한 것은 네가 열심히 분투하기 위한 목표를 채우는 것이다. 정직하게 도전하다 보면 수련을 하게 될 것이다. 단지 순결함을 목표로 취해라. 만일 네가 진정으로 그것을 원한다면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다른 것은 모두 제쳐놓을 것이니라."
"사부님, 저는 확신이 안 섭니다. 저는 실망스럽습니다."
대사부는 잠시 침묵했다.
"너한테는 평범함을 인정하는 면이 하나도 없구나."
"사실입니다."
사이훙이 동의했다.
"그렇다면 어려운 과제를 주마. 순결을 너의 목표로 삼아라. 그것이 너를 특출 나게 만들어 줄 것이다. 평범한 사람에게는 의지력, 불굴의 정신과 힘이 결여되어 있다. 특별한 사람은 최고의 결단력을 가진 자다. 일단 정신으로 최고의 결단력을 발휘하게 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느니라. 현인들은 바위에 완전한 믿음을 받쳐 숭배하면 바위도 살아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정신력이니라. 방랑할 때는 그 힘을 하나의 목표, 즉 순결에 쏟아라."
"무엇을 위한 순결인가요?"
사이훙은 우울하게 물었다.
"선인이건 악인이건 결과는 같은 것 같습니다. 죽어서 묻히는 겁니다. 수도자는 여기 화산에 올라와 순수해지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제껏 신을 만난 적이나 있습니까? 그들은 절대적인 신앙 속에서 수십 년을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들이 보답을 받으리라는 쥐꼬리만한 증거도 없습니다."
"신을 위해 선량해지려고 하지 말아라."
대사부는 참을성 있게 말했다.
"너 자신을 위해 선량해지거라. 그러면 신들이 네 속에 있기 때문에 너는 성인을 위해 저절로 선행을 하게 될 것이니라. 최고의 신성은 우리 모두의 내부에 존재한다. 그것을 밖에서 구하지 말아라. 안을 들여다보아라. 그러나 불량함, 탐욕, 욕망과 집착으로 오염되지 않은 시선으로 보아야 하느니라. 명심해라.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우리 스스로가 한다는 것을. 신들은 간섭하지 않는다. 너는 네가 원하는 그대로 될 수 있다. 성스러움을 얻으려 하지 말고 단지 한 개인의 목표로서 특별한 사람이 되어라."
"왜 제가 무엇이든지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까? 왜 저는 그토록 종교적이어야만 합니까?"
"나는 종교에 대해서 말한 것이 없다. 종교는 역시 네 인생행로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의미이다. 그들은 너를 질질 끌고 갈 것이다. 너는 너 자신이 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이상을 추종하는 것은 거부해야만 한다. 너 자신을 다른 사람의 생각으로 채워 넣으면 너는 제한을 받게 된다. 너는 혼자 힘으로 너의 본성을 터득해야만 하느니라. 혼자 수련을 하며 깨달음을 얻는 것이 중요한 열쇠이다. 너는 네 스스로 자유로워질 수 있을 뿐이다. 너는 너 자신을 알아야만 한다. 그래야 내부에 든 것이 결실을 맺을 수 있느니라. 내 목적은 단 한 가지, 네가 네 인생을 성취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너는 성직의 체제가 없는 세상으로 나갈 것이다. 나는 너에게 내부의 구조를 보여 주고 싶다. 즉, 혼란스럽게 넘쳐나는 세속의 영향력에 맞서는 방법이니라."
"사부님, 제발, 계속 말씀해 주세요."
사이훙은 사부의 얘기를 더 듣고 싶었다. 뭔가 이해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인생은 놀이이고 한 편의 연극이다. 이 서사극의 무대는 무수한 인물들로 꽉 채워져 있다. 각자에게는 구성과 줄거리가 있다. 그들은 시시하고 애처로운 상황에 처해 있느니라. 너는 어떻게 이 영원한 연극에서 길을 찾아 나아갈 것이냐? 광대가 될 테냐? 영웅이 되고 싶으냐? 비극의 왕자? 아니면 얼간이가 될 것이냐? 너는 원칙과 철학을 지켜야만 하느니라."
"저는 원칙이 있는 남자가 되겠습니다."
사이훙은 얼른 이렇게 대답했다.
"철학은 싫다는 거냐?"
대사부가 물었다.
"너는 인생의 실상을 참되게 인식하고 인간의 정서를 이해하는 철학을 가져야만 한다. 어떤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기 전에 모든 것을 주의 깊게 관찰하여라. 결정을 내리기 전에 신중하여라. 너의 이성과 분별력을 발휘해라. 선과 악이 존재하는 이유를 이해해라. 어떻게 해서 둘 다 파괴할 수 없으며 선과 악이 상호의존적으로 존재하는지 알아야 한다. 융통성을 가져라. 너의 철학이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게 하여라. 너의 사고가 발전하면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 형태가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인식하여라. 단지 현재가 아니라 너의 인생 전체에 비추어서 생각하여라. 네가 하는 것은 평생 동안 지속될 것임을 확신하여라."
대사부는 사이훙을 한 번 쳐다보고 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꼭 한 가지 인생에서 새겨둘 것이 있다. 너는 너의 존재 구조를 깊이 통찰해야만 하느니라."
"충고를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이훙은 진심으로 대사부에게 감사드렸다.
사이훙은 자신의 방랑이 한없이 계속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의 결정은 옳았다. 하지만 그의 가슴은 아직 머리가 내린 결정을 쫓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사이훙은 대화를 매듭짓기로 다부지게 마음먹었다.
"제가 산을 내려가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오냐.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느니라."
휴! 사이훙은 속으로 절망했다. 언제나 나를 옭아매려 드신다니까.
"모든 사람은 인생에서 과업을 가져야만 한다. 특히 화산을 떠나는 사람에겐 일생 동안 완수해야 하는 과업이 있다."
그 말은 사이훙에게 탐구하라는 말처럼 들었다. 다 잘될 것이다. 자신의 마음에 궁전을 지었으므로 그것을 요새로 이용하면서 탐구를 활발히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신나는 일이 될 거야. 사이훙은 혼자 생각했다. 화산이 주는 즐거운 마지막 기념품!
"과업이란 무엇입니까?"
사이훙이 물었다.
"나는 너에게 죽서칠판으로부터 과업을 하나 주겠다. 너는 그것을 완수할 것을 맹세하느냐?"
"그것이 무엇입니까?"
"나는 너를 타협할 줄 모르는 철저한 무사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무엇인지 곡 알아야겠단 말이냐? 그것을 수용할 만한 용기가 네겐 없단 말이냐?"
이건 속임수다. 사이훙은 생각했다. 제자를 통제하려는 또 다른 시도다. 그러나 호기심도 생겼다. 그는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 정말 좋은 것이라면.
"받아들입니다."
"좋다. 고통받는 자를 만나면 너는 네 힘이 닿는 데까지 어떤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그들은 도와야만 하느니라. 이것이 너의 과업이다."
사이훙은 기다렸다. 대사부는 말없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게 전부인가요?"
사이훙은 무례한 말투로 물었다.
"그래."
대사부는 조용히 대답했다.
사이훙은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그것은 전혀 매력적인 과업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집가, 예술품 감정가, 무술가가 되려는 그의 목표를 방해하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수억이 비참하게 살고 있는 중국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면, 자신의 목표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기억해라. 너는 이 과업을 받아들였으니 네 마지막 날까지 그것을 완수해야만 한다."
대사부는 의자에 깊숙이 앉으면서 다시 한번 말했다.
"고통당하는 자들을 만날 때마다 너는 그들을 도와야만 하느니라."
산에서 내려온 사이훙은 빙글빙글 정신없이 돌아가는 속세에 합류했다. 화산을 떠난 이래 수개월 동안 급류에 정신없이 휘말리느라 모험은 해보지도 못했다. 그는 사부의 충고를 훌훌 털어버리고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기로 결심했다.
가족에게 돌아간 사이훙은 풍요로움과 사치스러운 예술품 속에서 편안하게 보냈다. 그는 예술품과 희귀한 서적을 수집하느라 많은 재산을 썼다. 그러나 사이훙은 초조하고 불안했다. 그는 모험을 원했다. 인생을 경험하는 대 경기장에서 그의 기술을 시험하고 싶었다. 그래서 사이훙은 상하이로 갔다.
사이훙은 후디에를 추적하는 동안 상하이가 색다른 곳으로 보였었다. 위험, 오락과 악이 뒤섞인 미궁 같았다. 그런데 지금 다시 본 상하이는 거대한 도시였다. 돈이 많고 혼잡한 세계적인 도시였다. 유럽식 빌딩은 이국적이었다. 화강암과 강철로 지은 거대한 건물들. 그것들은 도시의 성벽보다 거대했고 정확한 크기의 창문과 높이 치솟은 그리스풍 둥근 기둥들이 기하학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는 태평양과 황푸에서 불어온 바람에 깃발이 휘날리는 돔과 탑들이 마음에 들었다. 빌딩은 중국 건축물처럼 여러 빛깔로 세심하게 칠해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사이훙은 모서리, 부벽, 아치 길, 아치 천장의 쐐기들에 완전히 매료당했다. 멀리서 보니 광활하고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선 건물들이 요새처럼 보였다. 중국 건물은 금이 많이 가 있고 혼란스럽게 마구 뻗어 있었다. 적갈색의 벽돌, 진흙, 점토와 나무로 된 중국 건물은 사람들로 번잡하고 시끄러웠다. 요리하고, 소리지르고, 세탁하고, 장사하느라 분주했다. 유럽 건물의 위풍은 장엄하고 화려했다. 서양 도시를 중국에 그대로 접붙여 놓은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조금씩 자기를 드러내 마침내는 이상한 도회적 공생 관계가 나타났다.
상하이에는 동서양의 이색적인 만남이 조화를 이루었다. 돈 많은 은행가, 꼭두각시 정치인, 무자비한 군인, 탐욕스런 갱, 아편 중독자, 섹시한 여자, 불행한 노동자, 성실한 학자, 부패 관료, 강인한 부두의 인부와 평범한 사람들이 이렇게 저렇게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돈과 권력, 흥분과 쾌락, 독직과 마약의 기름진 혼합 상태에서 상하이는 번성하였다.
사이훙이 존재를 탐구했던 곳은 바로 이 부유한 도시 속에서였다. 사이훙은 값싼 하숙집에서 묵었다. 6명의 다른 남자들과 같이 방을 썼는데 그들은 하루 종일 들락거렸다. 사이훙은 트렁크에 자물쇠를 채워 두었다. 그것은 도인으로서, 귀족으로서의 과거를 잠가 둔 것이었다. 사이훙은 모든 판단을 중지하고 내성을 단념했다. 그의 인격은 포위 상태에 빠지고 독재자의 지배를 받았다. 그 독재자는 바로 젊음이었다. 많은 젊은이들처럼 그 역시 경험의 시간을 맞이하였다. 쉽게 버는 돈과 손쉬운 기회에 이끌린 사이훙은 카지노에서 마작과 도미노 딜러로 일했다. 그러나 그는 이내 그곳에서 벗어났다. 다음에는 도박과 아편 소굴에서 경비원으로 일했다. 사이훙은 돈 지불을 거부하는 말썽꾸러기와 손님을 흠씬 두들겨 패주었다. 이 일은 더욱 재미가 생겼다. 그는 다양한 무기에 의존하는 잔인하고 사악한 무사가 되었다. 방어용 쇳조각은 사이훙이 즐겨 사용하는 무기였다.
사이훙은 자신도 모르게 무술 지도자들의 심미관으로 빠져들어 갔다. 예를 사람을 질식시킬 때는 그가 피를 쏟고 혓바닥을 늘어뜨릴 때까지 계속한다. 갈비뼈를 주먹으로 치면서 뼈 부서지는 소리에 쾌감을 느낀다. 비틀고 졸라서 근육에 심한 고통을 준다. 신음 소리를 듣는다. 몸의 기관이 끊어지는 소리가 나기를 기다린다 등등. 매일 그곳의 매점과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하숙집에서 잠깐 눈만 붙이고 나왔다. 사이훙은 아편 연기 자욱한 뒷골목에서 싸움이 터지기를 간절히 기대하며 돌아다녔다.
사이훙은 자신이 냉혹하게 변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사이훙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느끼는 두려움을 존경심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원하는 것을 원하는 때에 했다.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 그를 방해하는 자들은 무자비하게 끌려갔다.
상하이는 사이훙의 암자였다. 고층 건물은 산맥이었고 아편 연기는 신비로운 안개였다. 술은 맑은 시냇물처럼 성스러운 강이었다. 네온과 백열등이 별과 태양과 달을 대신했다. 뚜쟁이, 마약 중독자, 도박꾼, 매춘부들이 사이훙의 사형이자 사부였다. 그의 육체는 사원이요 다리는 기둥이며 강력한 손은 무거운 대문이 되었다. 하루하루 사이훙은 계속 해 나갔다. 결코 도전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경비를 서면서 못 하는 일이 없었다. 그는 인생을 이해하고 자신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었다. 사이훙은 자신이 전투를 벌이고 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비록 내부에선 감정의 갈등이 일어나기도 하고 현재의 삶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사이훙은 싸움의 유혹이 생기면 물러서지 못했다. 그것은 단순한 생존의 문제였다. 상처를 입히느냐 당하느냐. 겨울이 되자 추워지기 시작했다. 사이훙은 하숙집과 멋없는 생활에 싫증을 느꼈다. 사이훙은 베이징에서 상하이로 옮겨 온 옛날의 무술 스승을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왕 쯔핑의 저택을 방문한 날은 첫눈이 내렸다. 하인이 그를 안뜰로 안내해 주자 사이훙은 중년의 스승이 웃옷을 벗고 쇠와 돌로 된 역기를 들고 이두박근을 비틀고 있는 것을 구경했다. 사이훙은 물결무늬를 일으키는 근육과 단호한 표정에 감탄해 마지않았다. 사이훙은 왕의 193센티의 단단한 체구가 그대로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동안 턱수염이 자랐지만 여전히 그의 얼굴에서 유머 감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아, 둘째로구나. 여기는 웬일이냐?"
왕은 사이훙의 가족이 쓰는 명칭을 사이훙에게 썼다. 왕은 사이훙의 가족의 절친한 친구였다. 그는 사이훙을 둘째 아들로 알고 있었다.
"함께 일하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다시 저를 받아주시겠습니까?"
"왜 화산에는 안 가느냐?"
"저는 경험을 얻기 위해 산을 내려왔습니다."
왕은 특유의 우렁찬 소리로 크게 웃었다.
"좋다, 좋아. 네 할아버지를 봐서 특별히 너를 받아들여 주마. 내가 너를 돌봐주지 않으면, 할아버지께서 나를 용서치 않으실 것이다. 가서 짐을 챙겨 오너라."
"감사합니다, 사부님."
사이훙은 안심이 되었다. 지금 그에겐 정신적인 사부가 절실히 필요했다. 비록 그가 한때 방황하고 반항하면서 독립하기 위해 분투하기도 했지만 사부가 다시 지도해 준다고 하니 마음이 매우 편안해졌다. 사이훙은 이렇게 해서 얼마 안 왕과 함께 살게 되었다. 그는 왕의 집에서 숙식하는 제자들과 함께 배우며 왕의 정골 요법의 보조사로 일하고 왕이 회원으로 있는 경무운동협회에 참석했다. 1909년 창설된 이 협회에 왕 쯔핑은 회장으로 있었다. 1918년 이 협회는 우한, 광저우, 바오산, 샤먼에 지부를 두었다. 사이훙이 가입했을 때에는 42개의 지부와 40만이 넘는 회원이 중국과 동남아 전역에 퍼져 있었다. 급진적 혁신을 추구하는 경무운동협회는 무술의 발전을 저해해 온 엄격한 양식주의를 타파하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전통적인 스승들은 그들의 스타일에 대해 비밀을 지키고 제자들이 다른 운동체제의 기법을 익히지 못하게 금지시켰다. 반면 경무운동협회는 중국무술 양식의 최고 장점들을 모두 취합하여 하나로 모을 것을 주장했다.
수십 명의 사부들이 상하이에 있는 경무운동협회의 건물에서 학생들을 지도했다. 학생들은 수십 가지의 양식을 통달하고 많은 무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법을 배웠다. 경무는 최초이자 제일의 무술학회였지만, 중국의 싸움 기술에만 그치지 않았다. 사부들은 곧 서양의 복싱과 레슬링, 축구, 역도 그리고 수영과 체스를 교과 과정에 통합시켰다. 그 기원에 상관없이 모든 기술의 장점을 수용하려는 의지는 곧 미종권(종)의 품질을 보증해 주었다. 미종권은 경무회 무술 체제의 중심이자, 이 학회의 창설자의 전문 기술이기도 했다. 여러 가지 무술 양식의 합성체인 미종권은 그 자체로 기법의 총집합체였다. 미종권은 숙련도를 얻기 위해서 50가지의 기술을 섭렵해야만 했다. 미종권의 특징은 아주 교묘하게 빠져나가 상대로 하여금 자신의 동작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이었다.
왕의 수제자 5명 중의 하나인 사이훙은 미종권의 독자적이고 비밀스러운 전통을 배웠다. 왕 쯔핑의 이 비장의 무술을 배우기 위해선 108개의 무기를 통달하고 두 가지의 기술을 섭렵해야 했다. 그 첫 번째 기술은 천보섭운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천 가지 무술 가운데 최고 기법을 취한 것으로 아주 유명하고 포괄적인 기술이었다. 두 번째는 만보파산이라고 불리는 독특한 기술이었다. 이 기술은 아주 복잡하고 긴 체제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이 기술을 익힌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하였다. 제자들은 각자 소책자에서 한 부분을 선택하여 일생 동안 그 부분을 전공했다. 만보파산의 원조는 청조 시대의 3명의 사부이며 10대를 거친 끝에 비로소 성문화되었다.
사이훙은 종종 왕 쯔핑이 가르쳐 준 기법을 시험하기 위해 거리로 나갔다. 그는 사과 모자를 즐겨 썼다. 말썽꾸러기처럼 모자를 한쪽으로 비뚜름하게 쓰고 다녔다. 그러나 사이훙은 때로 싸움에 지고 나서 왕에게 찾아가 그의 기법이 비실용적이라며 불평을 터뜨리곤 했다. 싸움에서 패한 학생으로 인해 항상 불쾌한 악담이 일자 왕은 재도전을 하도록 사이훙을 지도했다.
사이훙의 유일한 사교 생활은 전영이라고 불리는 발명품을 즐기는 것이었다. 그것은 영화였다. 빨간 벨벳을 씌운 좌석과 호화로운 로코코풍의 금박으로 장식된 극장으로 최근의 할리우드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 상하이에서는 가장 유행하는 취미 활동이었다. 불행히도 젊은이 혼자 극장에 입장할 수가 없었다. 궁여지책 끝에 사부를 동반해서 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사이훙은 왕 쯔핑에게 엄숙하게 말했다. 미국인의 삶을 보여주는 <교육용 영화>가 있는데 미국의 전사들이 싸우는 방법도 보여 준다고 둘러댔다. 그래서 사부와 제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자막이 나오거나 더빙이 된 영화를 보러 갔다. 그 영화들은 더글라스 페어뱅크스, 제임스 캐그니, 커크 더글라스와 험프리 보가트가 주인공이었다. 최신 영화와 2차 세계대전의 뉴스 영화도 보았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미국을 갱과 해적, 로빈 후드, 인간 늑대, 카우보이들의 이상한 나라로 생각했다.
캐그니는 사이훙이 제일 좋아하는 배우였다. 연기에서 나타나는 거친 말투와 강하고 약삭빠른 성격은 사이훙의 성격과 아주 비슷했다. 영화의 배경은 미국이었지만 영화의 세계는 기이하게 보이지 않았다. 갱들이 하는 짓, 돈, 남자들의 허세 그리고 이상한 사람들의 거리, 완벽하게 차려입은 사람들과 번지르르한 리무진은 상하이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아마도 시카고와 뉴욕은 상하이와 비슷한가 보다고 사이훙은 추측했다. 또한 바로 그 점이 할리우드가 사악할 정도로 세련된 도시의 본질을 알고 있는 이유일 것이며, 젊은이는 거칠어야 한다는 캐그니 같은 사람이 있는 이유겠지.
사이훙은 왕 사부를 모시고 이 극장 저 극장을 돌아다녔다. 재상영화든 무성영화든 상관하지 않았다. 왕과 사이훙은 영화관에 가기를 좋아했다. 때로는 다른 어른들을 설득해서 서양에서 들어온 이 놀라운 발명품을 직접 시사해 보도록 했다. 프랑켄슈타인의 시사회에서 사이훙은 류를 만났다. 뚱뚱한 체격의 류는 소림의 무사에다 사부와 동갑이었다. 불이 희미해지자 류는 자리에 평화롭게 석가처럼 앉았다. 그는 완전히 명상에 잠겨 있었는지도 모른다. 얼마 뒤 괴물이 화면에 나타나자 깜짝 놀란 류는 벌떡 일어나 도리깨질을 하듯이 옆 사람들의 얼굴을 연타하여 묵사발을 만들어 버렸다. 극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러나 사이훙은 즐거웠다.
"바로 내가 다음번에 도전할 사람은 바로 저 사람이다."
사이훙은 류를 보고 중얼거렸다.
류는 도시에서 크게 명성을 날렸다. 하지만 그는 늙고 뚱뚱했으며 시골뜨기였다. 만일 서부의 총잡이들처럼 사이훙이 그를 이길 수 있다면, 사이훙은 무사로서 더 큰 명성을 쌓아 올릴 수 있다. 사이훙은 다음 날 정식으로 류에게 도전장을 냈다. 답장은 짧았지만 신속했다. 그는 다음 날 사부의 학교에 도착해서 계속 낄낄대고 웃었다.
"아, 네가 왕의 제자로구나."
류가 말했다.
"네."
사이훙은 공손히 대답했다.
"제 도전을 용서하십시오. 저는 무모합니다. 그리고 충고를 해주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러나 사이훙의 속마음은 달랐다.
<준비나 하시지, 돼지야. 내가 여기 있다.>
"좋다. 싶은 대로 공격을 하려무나."
"선생님은 사부님입니다. 제가 조심할 필요는 없겠는지요?"
"그렇게 한다면 내가 아주 실망할 텐데."
사이훙은 씩 웃었다. 그는 두 개의 예리한 단도를 꺼냈다. 류 사부는 옷의 가장자리를 걷어 올리고 몇 가닥 안 남은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그의 두꺼운 입술은 굳게 다물어져 있었다. 그는 당당하게 서서 자기가 쓸 무기를 찾으려고도 안 했다.
<긍지가 무슨 소용이람.>
사이훙은 혼자 생각했다.
류 사부가 처음부터 쉽사리 단도를 쳐내자 사이훙은 놀랐다. 류 사부는 큰 주먹을 휘둘러 사이훙의 복부를 치면서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나 한 번의 강타로 수년간 쌓은 훈련을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사이훙은 후퇴했다. 사부는 열심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사이훙은 힘을 다해 몇 번 그를 가격했다. 그러나 고래를 건드리는 편이 오히려 나았을 것이다. 초조해진 사이훙은 일부러 시간을 끌기 위해 탁자 뒤로 달려갔다. 사이훙은 탁자 위로 뛰어올라 구르는 류의 뚱뚱한 몸에서 거대한 포탄처럼 힘이 솟아나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사이훙은 레슬링을 이용해야 자기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류 사부의 옆으로 비껴선 후 사이훙은 뒤에서 류를 꼭 눌렀다. 이제 그는 사부를 이길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 갑자기 류 사부가 강한 폭발음 같은 방귀를 뀌었다. 사이훙은 그보다 더 심한 악취를 맡아 본 적이 없었다. 메스꺼워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사부는 쉽게 방향을 틀더니 주먹으로 사이훙을 쳐서 쓰러뜨렸다. 그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사이훙이 깨어났을 때 오만상을 찌푸린 왕 쯔핑이 그의 상처에 약을 바르고 있었다. 뒤에는 걱정과 환희가 엇갈린 얼굴을 한 류 사부가 서 있었다.
"이제 왕 사부는 제자가 패했으니 며칠 동안 속이 타게도 됐다."
류 사부가 이죽거렸다.
"이 멍청아, 류 사부는 너보다 한참 위란 말이다. 너는 내 명예에 먹칠을 하고 말았다."
왕이 꾸짖었다.
"너무 심하게 꾸짖지 말게, 이 친구야."
류가 위로했다.
"그는 훌륭해. 나는 내 비장의 무기를 할 수 없이 쓰고 말았네."
"아니, 그럴 수가!"
왕이 놀라 크게 소리쳤다.
"사실은 얘야, 나는 그 기술을 숙달하느라 몇 년간 훈련을 했단다. 나는 고기, 달걀과 특수 약초를 무진장 먹는단다. 네가 원하면 너에게 그 기술을 가르쳐 주마."
류는 사이훙의 위로 몸을 굽히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사부님은 굉장히 친절하시군요."
사이훙은 간신히 중얼거렸다. 아직도 토할 것만 같았다.
"이 점을 명심해라."
류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사부는 항상 속임수를 몰래 준비해 두어야만 한단다."
두 사람은 문으로 가서 소년들처럼 킬킬거렸다. 류는 어슬렁거리며 나가면서 말했다.
"극장에서 또 만나자."
9. 나비의 꿈
화산을 떠난 지 거의 2년이 지난 어느 날 사이훙은 극장의 무대 옆에 서 있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세상의 여러 방면에서 인생 경험을 쌓으면서 많은 곳을 여행해 보고 싶었다. 사이훙은 경극단의 일원이 됨으로써 자신의 소망을 성취할 수 있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던 시기에 배우란 직업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경극은 연기자의 표현력과 문학성이 고도로 요구되는 종합예술이었다. 배우의 창조성을 사랑했던 사이훙은 극단이 전국을 순회하는 동안 재미있는 관객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배우의 창조성은 관객에게 흥분과 인생에 대한 새로운 충격을 준다는 점에서 영성과 유사한 면이 있었으며, 사이훙이 가장 싫어했던 평범함을 뛰어 넘는 것이었다. 사실 배우로서의 창조성은 수도 생활이나 무림과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었으며, 창조성의 주체만 달리한 것에 불과했다.
사이훙은 여러 신장과 장군들의 배역을 맡았다. 대부분의 경극은 종교적인 주제를 가진 것이었다. 사이훙은 경극에서도 무술을 구사해야 했다. 그는 장생불사의 선인들과 연금술, 은둔자(특히 관직을 내던지고 산속으로 들어간 역사적 인물들), 천상의 여러 신들과 노자 등의 인물이 등장하는 극에 많이 출연했다.
자신이 맡은 역을 소화하기 위해 하루에 몇 시간씩 무술을 연마해야 했던 사이훙은 덕분에 무술에 대한 욕구도 충족시킬 수 있었다. 많은 경극계의 거장들이 사이훙에게 연기와 가창 기술 그리고 경극에 사용되는 특수한 무술을 가르쳐 주었다. 사이훙은 경극의 소재가 되는 고전문학에 깊이 빠져 들었다.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 양문여장 등과 같은 전쟁을 주제로 한 고전들이 대부분이었다. 사이훙은 극중에서뿐만 아니라 실제로 무술을 사용해야 할 때도 종종 있었다. 관객들 중에는 무사 역을 하는 배우가 정말 무술 솜씨가 좋은지 시험해 보려는 짓궂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극 배우로서의 삶은 사이훙 스스로 원했던 것이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지칠 줄 모르는 모험심과 상상력이 불타고 있었다. 그는 스타였다. 사람들은 그가 연기를 펼쳐 보일 때마다 환호를 보냈다. 수없이 좌절하고 속박을 당하며 매일매일 자신의 결점을 찾고 이를 고쳐 나가야 하는 도관의 수도 생활과는 달리 사이훙은 경극단에서 끊임없는 찬사를 받았다.
사이훙은 아름다운 추억 거리를 만들고 여러 가지 다양한 경험과 기술을 쌓으려는 자신의 목표를 실현해 나가고 있었다. 그의 마음의 궁전은 많은 별채와 넓은 정원을 갖춘 대저택으로 변모해 가고 있었다. 자금성의 삼층 무대와도 같이 그의 생활은 화려한 구경거리와 환상적인 무대 의상, 아름답고 달콤한 음악 그리고 가수들의 매혹적인 노랫소리로 가득 찬 경극 주위를 회전하기 시작했다. 사이훙은 경극이 주는 즐거움에 푹 빠져들었다.
영성에 대한 생각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만약 사이훙에게 심경의 변화가 온다면 초야로 돌아간 관리들이나 사부와 같이 그도 고산준령의 은둔지로 돌아갈 것이다. 그대가 올 때까지 사이훙은 자신의 가슴속에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황금기 인생의 추억 거리를 새겨 넣을 것이다. 경극의 무대 위에는 모든 사람들의 눈을 눈부시게 하며 휘둥그렇게 만들 모든 것이 있었던 것이다.
캄캄한 무대 가운데 휘황찬란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배우는 서 있었다. 담배 연기 자욱한 허공을 파랗게 물들이며 무대 중앙을 비추는 한 줄기 광선 밑에는 화려한 반사광을 사방으로 뿜어내는 무대의 상을 입은 배우가 있었다. 그는 짧고 재빠른 걸음으로 무대 한가운데로 옮겨 갔다. 순간 찢어지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으며 관중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와 환호성이 장내를 가득 채웠다.
배우는 장자 역을 맡고 있었다. 그는 장자라는 인물을 상징적인 의상으로 연출해 내고 있었다. 배우는 금실 은실로 팔괘를 수놓은 밤색 장삼을 입고 있었다. 장삼의 소매는 하얀 꽃 소매로 되어 있었다. 턱에는 말총으로 만든 긴 수염을 달았으며 하얗게 분장한 얼굴은 붉은 연지를 바른 뺨으로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주홍색 아이새도를 바른 눈 위에는 둥근 눈썹을 그렸다. 그리고 왼손에는 용의 머리를, 오른손에는 말총으로 만든 채를 들고 있었다.
"나는 용의 머리를 들어 올리고 있습니다."
장자가 말했다.
"나의 말은 사람들의 가슴에 두려움을 심어 줄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을 때는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지만 일단 그가 죽으면 <무덤아, 빨리 말하라.>하고 부채질만 해댑니다."
그는 위엄 있게 보이려는 듯이 수염을 쓰다듬었다.
"우리는 사람의 얼굴은 바로 볼 수 있지만 감춰진 가슴은 볼 수가 없습니다."
그는 자기 가슴을 가리키다 말고 갑자기 머리를 들어 올리며 청중을 쳐다보았다. 날카로운 박수치는 소리가 그의 몸짓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나는 죽었습니다. 진짜 죽었습니다. 나는 도사입니다. 장자는 일단 죽은 체하기로 했습니다......."
그가 어둠 속에서 말총채를 유성처럼 날리는 동작에 맞춰 악단은 또 한차례 효과 음악을 연주해 주었다.
중국 경극의 줄거리는 청중들에게 친숙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원작을 보러 극장에 가지는 않았으나 대신 똑같은 주제의 경극들을 수도 없이 보러 다녔다. 따라서 배우들의 연기는 관객들의 주된 구경거리가 되었으며 관객들은 자유롭게 의사 표시를 하며 극의 내용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심지어 배우가 대사를 틀리게 외면 그걸 수정해 주기까지 했다.
<나비의 꿈> 역시 관객들에게 친근한 내용이었다. 이 극에서 학자이며 술법가인 장자는 스승에게 허락을 얻어 그의 처 티안 시와 재결합 하기 위해 산을 내려온다. 그는 집으로 가는 도중 무덤에다 부채질을 하고 있는 여자를 만난다. 이유를 묻자 그녀는 죽은 남편에게 남편 무덤의 흙이 마를 때까지는 재혼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장자는 술법을 써서 무덤을 말린다. 감사의 뜻으로 여인은 부채에다 다음과 같은 글을 써서 건네준다.
<나를 불쌍히 여긴 방랑하는 도인에게 그대 부인에게 말해 주시오. 나뿐 아니라 그대 부인 역시 덕스럽지 못하다고>
집으로 돌아온 장자는 부채를 자기 아내에게 건네준다. 장자의 아내는 영원히 정절을 지키겠다고 맹세한다. 장자는 그녀를 시험해 보기 위해 술법을 써서 죽은 척한 뒤 멋있게 생긴 학자를 만들어 내었다. 학자와 사랑에 빠진 장자의 아내는 상중임에도 불구하고 그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그 남자는 첫날 밤 혼수상태에 빠지고 만다. 이때 장자가 종이 인형으로 만들어 낸 하인이 나타나 죽은 지 얼마 안 된 가족이나 친척의 썩지 않은 뇌로 만든 약만이 그를 구할 수 있다고 말해준다. 장자는 죽은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다. 그녀는 매우 꺼려했지만 결국 전 남편의 관을 열기로 결심했다.
이상은 누구나 알고 있는 줄거리였다. 2장이 끝나갈 즈음 하얀 비단옷을 입은 티안 시가 단촐한 제단 앞에 서 있었다. 단 위에는 촛불 두 개, 향로 하나 그리고 장자의 이름이 새겨진 명판이 놓여 있었다. 그 뒤에 관이 있었다.
"안 돼!"
티안 시는 찢어질 듯한 소리로 외쳤다.
"그이는 나의 남편이었어. 어떻게 내가 그럴 수 있단 말이야? 안 돼. 난 결코 그런 끔찍한 짓은 할 수 없어."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는 관에서 몇 발자국 물러섰다.
"나의 죽음은 얼마나 비통한 것인가?"
무대 뒤에서 죽은 애인의 음성이 들려 왔다.
"오! 첫 남편을 잃은 내가 이제 두 번째 남편마저 잃어야 하다니! 이관을 열어 젊은 부군의 생명을 구해야겠구나!"
티안 시가 사라지자 무대는 장자가 독백했을 때처럼 다시 어두워진다. 막 뒤에는 무대 담당원이 대나무 막대를 잡고 있었다. 막대의 조종을 받으며 종이 나비가 장자의 관 위에서 펄럭거렸다. 종이 인형에 술법을 걸어 만들었던 하인이 부채를 들고 무대 위에 나타났다. 곡예와 무술 동작을 하면서 무대 앞으로 다가온 그는 꼭두각시 흉내를 내며 나비를 쫓기 시작했다. 하인은 손을 뻗어 나비를 잡으려 했으나 나비는 재빨리 달아났다. 손목을 휙 쳐서 부채를 접은 그는 쪼그리고 앉은 채로 나비가 앉아 있는 곳까지 살살 기어갔다. 하인은 숨을 죽이고 두 손으로 나비를 잡으려 다시 한번 시도했다. 그러나 관객을 향해 양손을 벌린 그를 허공을 움켜쥐고 있었다. 더욱 세련된 동작을 관객에 선보이고 난 하인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화를 버럭 내었다. 한쪽 다리를 올린 그는 부채를 휙 펼치고는 거친 동작으로 부채를 좌우로 휘저으며 나비 잡기를 또다시 시도했다. 그러나 하인은 다시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하인은 과장된 동작으로 부채를 접은 뒤 꼭두각시 걸음으로 무대 밖으로 사라졌다.
이 장면은 관객들이 너무 잘 알고 있어 대사나 변사의 설명 없이 진행되는 장이었다. 이 이야기는 장자가 한때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세상의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며 즐거움을 누리다가 꿈에서 깨어나서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꿈에 나비가 되었는지 나비가 꿈을 꾸어 장자가 되었는지 모르겠구나.> 나비를 잡으려다 실패하는 장면은 인생의 허무함과 분별 의식을 풍자한 것이었다. 그러나 풍자의 초점은 나비를 쫓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 종이 인형이라는 점에 있었다.
사이훙은 뒷무대의 분장실로 걸어갔다. 그는 온갖 종류의 의상을 입고 있는 배우들 곁을 지나갔다. 극장의 어두컴컴한 분장실 통로에 서 있는 그들 중에는 갑옷을 입고 얼굴에 색칠을 한 장군, 아름다운 여인들(실제로 그들은 모두 남자 배우들임.), 거북이와 새우 같은 옷을 입은 기묘한 모습의 어릿광대들, 눈썹을 매달아 놓은 익살스런 스님, 수많은 연기용 무기를 들고 있는 곡예사등이 있었다. 모든 색깔은 선명하게 눈에 띄는 것들이었다. 남청색, 강렬한 주홍색, 짙은 녹색, 석양의 심홍색 등 다양하고 풍부한 색조로 물들인 비단옷에는 무수한 작은 은거울이 빛을 반사하고 있었으며 금실과 진주가 매달려 있었다. 호화로운 색깔은 인물을 더욱 생동감 있게 만들어 주었다.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었다. 흥얼거리는 노랫소리, 음정을 맞추는 소리, 지나간 시대의 시를 읊는 소리들, 특히 시는 몇 구절씩 인용하여 필요한 자리에 넣어 부르면 한층 경극의 흥취를 돋우어 주었다.
사이훙은 자신의 분장 테이블에 앉아 거울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눈은 무대 위에서는 큰 자신이 되었다. 툭 튀어나온 광대뼈와 넓적한 얼굴은 전형적인 무사의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 얼굴은 세심한 학자의 배역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베이징 경극의 배역에는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져 있다. 주역, 여자역, 어릿광대, 호걸.악한, 단역으로 나뉘고 각 유형은 문인과 무인으로 또 나뉜다. 주역은 남자역으로 노인, 어린이, 학자, 무사가 있었다. 학자역은 완벽한 말솜씨와 뛰어난 가창력이 요구되었으며, 무사역은 곡예술과 무술 동작이 강조되었다. 학자나 관리, 퇴역 장군들이 대부분인 노인역은 길다란 수염을 달고 위엄 있는 연기를 하며 가창력이 매우 뛰어나야 했다. 어린이역은 세련된 용모에 가성을 써서 어린이 흉내를 잘 내야 했다. 여자역은 경극단원으로 여자는 쓰지 않는다는 오랜 전통 때문에 남자가 맡아야 했다. 사이훙은 여자역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이 전통도 서서히 변해 가고 있었으며 여자 배우들도 점차 베이징 경극단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여자역은 다섯 종류로 나뉘어졌다. 점잖은 중년 부인, 충실한 아내, 효성스런 딸과 같은 부류와 활달한 성격의 하녀 또는 문제 있는 여자(나비 꿈의 티안 시 같은 여자)와 같은 부류, 그리고 악한 여자, 여류 무사, 나이 많은 할머니 등으로 나뉘었다. 어릿광대역은 언제나 하얀 얼굴을 하고, 자신의 특성을 나타내는 두어 개의 까만 선을 얼굴에다 그리고 있었다. 그들의 역할은 물론 관객을 웃기는 것이었으며, 얼굴의 선은 의미심장한 내용을 담았으며 때로는 외설스러운 것도 있었다.
사이훙은 호걸. 악한 역에 일가견이 있었다. 그는 많은 의상을 껴입고 위엄 있게 행동하며 성량이 풍부한 음성으로 노래를 불러야 하는 뚱뚱한 배역의 조건을 완벽하게 맞출 수 있었다. 이 역에는 문인과 무사역이 있었는데 사이훙은 무사역을 선택하였다.
호걸. 악한역의 배우들이 자신의 얼굴을 분장하는 형태에는 개인적인 차이가 있었지만, 여러 가지 색깔은 배우가 나타내고자 하는 극중 인물의 특성을 강조해 주었다. 적색은 용기와 정열을, 흑색은 거칠고 난폭한 성격을 나타내었다. 청색은 잔인함과 변태 성욕, 흰색은 배신, 금색과 은색은 신장의 얼굴을 나타내는데 쓰였다. 그리고 동물의 영혼과 불교의 108 나한, 색다른 인물을 묘사하는 데도 금은색이 사용되었다.
사이훙은 언제나 이러한 도상에 따라 분장을 하였다. 그날 밤 사이훙은 천군을 지휘하는 장수의 하나인 어랑역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어떻게 어랑이 자미대제의 조카가 되었는지 생각하고 있었다. 어랑은 어느 여신의 아들이었으나 인간의 몸이었으므로 천상에 들어갈 자격이 없었다. 그래서 어랑은 천견한 마리를 데리고 천상의 변방에 살고 있었다. 경극에서 어랑의 역할은 하늘의 사자역이었다. 극단에서는 어랑의 두 가지 특이한 점을 중요시하였다. 첫째는 그의 옷의 등 뒤에 붙어 있는 네 개의 군기였는데, 군기는 장수가 군령을 내릴 때 사용되는 것이었다. 둘째는 그의 이마에 있는 제3의 눈이었다. 그것은 어랑에게 투시력과 초능력이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사이훙은 먼저 머리끈을 단단히 묶었다. 이렇게 해야 눈썹을 더욱 격렬하게 위아래로 흔들 수 있었으며, 눈을 더 크게 뜰 수도 있었다. 격렬한 노여움이나 강력한 힘을 나타내는 일반적인 방법은 날카롭고 강렬한 안광을 쏘아 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이훙은 이어 기초화장으로 얼굴 전체에 흰 크림을 발랐다. 흰 크림은 그의 붉은 피부와 까만 눈썹을 가려 주었다. 이마와 눈 주위에는 하얀색을 칠했다. 그런 다음 하얀 파우더를 발랐는데 그것은 하얀색을 균일하게 해주며 윤기를 없애 주었다. 이어서 그는 기름칠한 금박을 이마와 코, 양뺨, 턱에 입혔다. 다른 부위에는 번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그는 코팅을 마쳤다. 그의 모습은 금으로 만든 신상처럼 되었다. 이어서 박쥐의 날개처럼 눈썹을 그린 사이훙은 뾰족한 붓으로 까만 수염을 그렸는데, 윗입술까지도 까맣게 칠해 놓았다. 까만 물감은 마치 면도 후에 남아있는 까무잡잡한 얼룩처럼 그의 금빛 얼굴 위로 퍼져 나갔다.
사이훙은 얼굴을 앞으로 기울이고 자신의 작업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얼굴에 바싹 달라붙은 물감은 제2의 피부처럼 원래의 피부 위에서 말라가고 있었다. 이제 거의 마무리되었다. 그는 붓을 들어 붉은 물감을 찍어 아랫입술을 칠했다. 붉은 아랫입술은 까만 윗입술과 어울려 개가 으르렁거리며 짓는 모습을 연상시켜 주었다.
분장을 하는 데 엄청나게 긴 시간이 소요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배우로서의 삶을 준비하는데 있어서도 엄청나게 고된 훈련이 필요했다. 일반적으로 정식 배우가 되는 데는 7년이 걸렸다. 그러나 연기 지도자와 연출가들은 그의 배경을 인정하고, 사이훙이 1년 만에 스타로 부상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그 1년은 매우 힘든 시간이었다. 그는 하루에 몇 시간씩 노래 연습을 해야했다. 오랫동안 결투를 벌인 뒤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야 하는 연기는 호흡 조절도 제대로 못 할만큼 힘들었다.
곡예 담당자의 주문은 그에게 또 하나의 고통이었다. 경극에서는 모든 종류의 공중 낙법과 재주넘기, 공중제비와 도약을 하였다.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얼음 위를 목발로 걷는 훈련도 있었다. 배우들 사이로 표창이나 무기를 던질 수 있는 정교한 투척 솜씨도 요구되었다. 분장 전문가로 부터 세심한 분장 기술도 배워야 했다.
작은 돔 모양의 금속체를 집어 든 사이훙은 접착제를 바른 다음 양미간에 붙였다. 그곳은 제 3의 눈이 열리는 곳이다. 사이훙은 화산에서 수행했던 시절을 생각했다.
<투시력을 얻는 일이 이렇게 쉬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이훙은 머리에 달라붙는 속모자를 쓰고 청색과 주홍색의 갑옷같이 생긴 의상을 입었다. 등에 4개의 깃발이 달린 그 옷은 무게가 9킬로나 되었다. 4킬로가 넘는 투구에는 청색, 주홍색, 금색, 적색의 인조 진주 수십 개가 달려 있었으며 가벼운 털로 만든 동그란 장신구는 조그만 움직임에도 예민한 반응을 보이며 몸을 떨었다. 사이훙은 이런 거추장스러운 장신구를 단 채 결투를 벌이고 노래를 불렀으며, 제자리에서 공중으로 뛰어올라 몇 바퀴 회전하고는 단 위에 사뿐히 내려앉는 묘기를 펼쳐 보였다.
악단의 격렬한 연주가 극의 절정을 알려 주자 관중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성이 터져 나왔다. 극은 끝났다. 장자의 관을 부숴 열어 제친 티안 시는 아직도 살아 있는 까만 장삼의 시체와 마주치게 되었다. 정조를 버린 자신을 비난하는 장자의 노한 음성을 들은 티안 시는 애인의 모습이 환영이 되어 나타나자 스스로 자신의 목을 도끼로 잘라 버렸다.
관중들의 박수갈채는 사이훙에게 큰 자극제가 되었다. 그는 흥분으로 피가 솟구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이훙이 무대 위에서 좀처럼 놀라지 않고, 부담 없이 관중 앞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얼굴에 물감을 발라 자신의 본 모습을 가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화산의 거의 모든 수도자들처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수줍음을 탔던 사이훙은 분장을 통해 수줍음을 털어 버릴 수 있었으며 무대는 그에게 자유로운 공간이 되었다. 한숨을 쉬며 무대 앞에 달려 나온 장자역의 사이훙은 제자리에 멈춰 선 다음, 앞에 선 사람에게 말총채를 던지고 수염을 뜯기 시작했다. 다섯 명의 하녀는 급히 무대 밖으로 사라졌다. 사이훙은 창을 뽑아 들고는 무대 앞으로 걸어갔다.
이 경극은 허베이 경극 <요술등>을 각색한 것이었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셍무라는 아름다운 여신<화산에도 그녀를 모신 사당이 있었는데, 사이훙은 경극에 나오는 것과는 좀 다르게 알고 있었다.>이 뤼안창이라는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에 격분한 어랑은 그들의 결합을 방해하기 위해 지상으로 내려온다. 그러나 셍무에게는 그를 피할 수 있는 요술등이 있었다. 어랑을 피한 셍무는 뤼 안창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는데, 애기의 백일 잔칫날 어랑은 자기가 기르는 천견을 그곳으로 보낸다. 힘이 부족한 여신은 천견을 물리칠 수 없었다. 어랑은 화산 기슭에다 그녀를 감금시킨다. 쫓겨난 셍무의 남편은 아들 첸시앙을 천둥 도사에게 맡긴 후 결국 죽음을 맡게 된다. 아들은 무술을 배우며 법술을 터득하게 된다. 마침내 도사는 그의 어머니가 처해 있는 곤경을 알려 주며 그에게 마술 도끼를 선사한다. 첸시앙은 화산을 박살내고 그의 어머니를 구출한다.
사이훙은 어두운 무대 가장자리에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관객 앞에 있는 셍무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악단의 불협화음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관중은 어둠 속에 혼자 서 있는 그를 볼 수 없었다. 그가 천국 밖에서 영원한 세상을 기다리는 하늘의 무사 어랑이란 말인가? 그가 지난 사대의 장군과 영웅 그리고 신장 역을 하는 배우란 말인가? 그가 타락한 수도자란 말인가?
북과 징으로 한바탕 요란한 화음을 연주한 악단은 곧이어 잔잔한 멜로디를 내보냈다. 몇 차례 종이 울렸다. 그것은 사이훙이 무대에 오른다는 신호였다. 그는 그것이 도관의 종소리라고 생각하며 무대 위로 나갔다. 관객들의 박수 소리는 언제나 그를 흥분시켰다. 사이훙이 이번에 출연한 경극은 자운화라는 무술 경극이었다. 이 극은 비교적 관객들에게 덜 알려진 것으로서 인간의 삶을 가장 풍자적으로 묘사한 극이었다. <백사전>이라는 유명한 경극을 조금 변형시킨 이 극은 자운화라는 미모의 여검객이 중병에 걸린 애인을 구하기 위해 화산 꼭대기에 있는 약초를 구하러 나서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그 약초는 다른 데서는 구할 수 없는 희귀한 풀이었다. 오랜 여행 끝에 그녀는 화산에 도착하지만 약초를 지키는 도사들은 그것을 줄 수 없다고 말한다. 그 약초는 아주 희귀한 것이며 은자들과 속세인은 무관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녀는 공격을 개시한다. 도사들도 뛰어난 검객이었지만, 그녀는 많은 도사들에게 죽음을 선사한다. 아무리 뛰어난 자운화였지만 숫적으로 밀리는지라 쌍방의 결투는 교착 상태에 빠져 사흘이라는 긴 시간이 흘러간다. 배우들은 이 대목에서 자신의 무술 솜씨를 마음껏 뽐낸다. 주직은 마침내 약초를 주는 대가로 자운화의 독특한 검법을 가르쳐 달라는 제안을 한다. 이 부분이 극의 절정에 해당한다. 도사들에게 무술을 가르쳐 주고 약초를 건네받은 자운화는 집으로 돌아가 애인을 구한다.
이 경극에는 많은 호기심을 자아내는 주제가 들어있다. 첫째, 뛰어난 무술을 가지고 활동을 벌이는 사람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점이다. 둘째, 화산과 같은 특별한 곳에서 기르는 약초는 도사들이 연금술을 통해 이루려 하는 불로장생의 반향이라는 점이다. 셋째, 약초가 아무리 귀한 것이라 해도 도사들은 성지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그것을 내준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세속적인 일에 전혀 무관한 듯이 보이는 도사들도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일만은 외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주제는 무림과 도사들 세계에도 세속의 즐거움과 크게 다르지 않은 요소가 많이 있음을 암시해 주었다. 이러한 주제는 전설이나 신화에 그칠 뿐이지 영적 구원을 찾아 나서라는 유혹은 되지 못했다. 그러나 남다른 영적 배경을 갖고 있는 사이훙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받아들였다. 수많은 경극이 도사들을 주제로 한 것이지만 이번 경극은 그의 인생과 특별한 관계가 있었다. 이 경극은 사이훙으로 하여금 자신이 걸어온삶을 뒤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느 날 밤 사이훙은 안후이성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사이훙은 자신도 헤아리지 못할 만큼 여러 번 도사의 역을 맡아 연기를 하였다. 파우더를 바른 하얀 얼굴에 아치 모양의 까만 눈썹, 무겁게 느껴지는 속눈썹 화장, 자줏빛 아이새도 그리고 빨간 볼 화장을 한 사이훙은 회색 무명 장삼을 입고 연기용 검을 휘두르며 자운화와 결투를 벌였다.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무대 위에서 도사의 역할을 하고 있는 진짜 도사가 맞이하게 될 기막힌 삶의 전환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날 관중은 유난히 시끄러웠으며 들뜬 분위기였다. 극은 저녁때부터 상연되었으나 가곡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문학적인 경극은 부유한 사람들이 많이 오는 늦은 시간대에 주로 공연되었다. 그래서 공연의 초반부는 언제나 대사나 노래가 거의 없는 액션이 주종을 이루었다. 무식하고 불량기가 많은 초저녁의 관객들은 잠시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잡담을 하거나 노래를 불러댔다. 극장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가 하면 바닥에 참외 씨와 땅콩 껍질을 버리고, 배우들에게 외설스런 소리를 지껄여 댔다. 언제나 그런 소리를 무시하고 연기를 해왔던 사이훙은 자기 차례가 되자 무대 가운데로 걸어갔다.
악단은 빠른 템포로 북을 치며 징을 몇 차례 울려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사이훙은 거만한 자세로 무대 한가운데 서서 자운화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름에 걸맞게 화려하고 사치스런 비단옷을 입고 있었다. 사이훙의 거만스러운 태도에 지지 않으려는 듯 왼발을 한 발짝 앞으로 내디딘 채 서 있는 그녀의 등 뒤에는 비단 장식이 달려 있는 검이 꽂혀 있었다. 검법의 자세를 취한 그녀의 두 손은 사이훙을 향하고 있었다. 얼굴에는 물감을 칠한 채 서로를 응시하고 선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두 개의 인형처럼 보였다.
"우리 도사들은 세속을 떠난 은자들이다. 우리는 하찮은 세상사에 관여하지 않는다."
사이훙은 이렇게 말하면서 말을 알아들었으면 속히 이곳을 떠나라는 손짓을 하였다. 악단은 그의 동작에 맞춰 한 차례 효과음악을 연주했다. 자운화는 자세를 바꾼 다음 원을 그리며 한 바퀴 걷고 나서는 다시 손을 뻗어 사이훙을 가리켰다.
"여하튼 나는 약초를 가져가야 해."
자운화가 소리쳤다. 사이훙은 무대 위의 각광이 그의 눈동자를 비추게끔 전방으로 발걸음을 옮긴 다음 눈을 크게 떴다. 그의 두 눈은 보석처럼 반짝였다.
"우리는 사흘 동안이나 싸웠다."
사이훙의 음성이 실내에 울려 퍼졌다.
"우리 중 어느 쪽도 상대를 제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한 차례의 음악이 나왔다.
"그러니 흥정을 하는 게 어때? 당신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 즉 당신의 검술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면 우리도 그 약초를 당신에게 주겠다."
"그게 정말이야?"
자운화가 반색을 하며 물었다.
"그렇다. 우리는 도를 닦은 은자들이다. 우리는 세상사에 관여하지는 않지만 당신의 지극한 정성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 거야."
"이보게, 배우 양반."
사이훙은 관객의 외치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당신이 은둔이 뭔지 알기나 해?"
관객석에서 다시 한 음성이 들려왔다. 사이훙은 급히 얼굴을 돌려 관중석을 쳐다보았다. 그는 자운화의 대사를 기다리는 것보다 그 사람을 찾는 것이 더 중요했다.
"은둔이란 세상을 버리는 것이지만 깨달음은 세상을 방랑하는 데서 얻어지는 것이야."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낸 사이훙은 즉시 고개를 돌려 연기를 계속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두 사람을 유심히 관찰했다. 경극 공연 중에 현인을 만난다는 것은 매우 진기한 일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경극을 보러 오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백발이 성성한 머리에 상투를 꽂고 긴 수염을 기른 그들은 짙은 청색 장삼을 입고 거기에 앉아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결코 다른 사람들과 혼동될 수 없을 정도로 확연하였다. 한 장면이 끝나자 사이훙은 급히 무대 뒤로 달려가 무대 보조원에게 그들을 공연 후 식사에 초대하겠다는 전갈을 보냈다.
자정이 조금 지나서야 사이훙은 공연을 끝낼 수 있었다. 짙은 청색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그는 다시 한번 얼굴을 닦아 내었다. 분장을 닦아 내는 것은 아주 성가신 일이었다. 파우더는 조금만 지나고 나면 땀구멍과 주름 속으로 들어가 쌓였다. 모든 베테랑 배우들의 얼굴은 마치 송장 같이 핼쑥했다.
사이훙은 극장 로비에 있는 두 도사를 찾아내고는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두 도사는 답례의 표시로 합장을 하였다. 어둠과 담배 연기가 깔려 있지 않으니 사이훙은 그들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한 사람은 매우 야위었으나 키는 큰 편이었다. 그는 자신은 시후 신선이라고 소개했는데, 세자를 쓴 이유는 외모를 보면 알 수 있었다. 달걀형으로 생긴 얼굴은 하얗고 매끄러웠으며, 커다란 두 눈은 평온해 보였으나 사물을 보는 눈은 날카로울 듯했다. 하얀 턱수염을 길게 뻗어 있었으나 숱은 적어 보였으며 꼭 다문 두 입술에는 자상함이 배어 있었다. 또 한 사람은 뚱뚱하지도 야위지도 않았다. 시후 신선과는 달리 징취안은 쾌활하였으며 얼굴에는 익살스런 표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는 무슨 일에나 웃음을 터뜨리고 미소를 지었으며 장난기 있는 눈을 깜박거렸다. 수염은 풍부하고 안색은 붉었으며 행동 하나하나에는 힘과 장난기가 넘쳐 흘렀다.
두 도사를 근처의 음식점으로 안내하는 동안 사이훙은 내내 기억을 되살려내고 있었다. 그는 이 두 신선의 이름을 들은 적이 있었다. 두 도사는 그들이 이룬 높은 차원의 영적 성취를 인정받아 신선이라는 칭호를 듣게 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두 사람은 서로의 진정한 영적 우정을 발견하고는 2백년이 넘도록 친구로 지내오고 있다고 하였다. 그들의 머리는 하얗게 세어서 겉으로 보기에 그들은 칠십 중반 정도 되어 보였다. 외관상으로 추측하는 나이는 실제의 나이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지만 사이훙은 원래 현실적인 성격이었기 때문에 전설 따위에는 회의를 품었다. 그는 그저 이 두 사람이 태도나 하얗게 센 머리카락으로 보아 나이가 좀 들어 보인다는 것만 인정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모든 점에서는 그보다도 훨씬 젊고 정력적인 것 같았다. 세 사람이 이층 조용한 방에 자리를 잡고 나자 이번에는 두 도사가 그를 시험하기 시작했다.
"자네는 도교에 관심이 있다고 했지?"
시후 신선이 물었다.
"예."
사이훙은 겸손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전 상당 기간 공부를 못했습니다."
"글세....... 인생 자체가 공부지. 그렇지 않아?"
징취안 신선이 말했다.
"그건 그렇습니다, 대사님."
사이훙은 경의를 표하며 그 말에 동의해 주었다.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두 분께서는 굉장한 경지에 올라있는 것 같습니다."
"아, 그야 물론이지."
징취안 신선은 도사답지 않게 터무니 없는 어조로 대답했다. 그는 이빨이 드러나도록 싱긋 웃으며 사이훙을 쳐다보았다.
"우리는 수많은 비법을 터득했지. 세상을 두루 다니면서 우리는 신비의 문을 찾았지. 우리는 몸을 감출 수도 있고 공중을 비행할 수도 있어.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천국에 가 있지. 어때? 이만하면 괜찮지 않아?"
사이훙은 시후 신선을 쳐다보았다. 그는 잔잔한 미소만 짓고 있을 뿐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사이훙에게 고정된 채 움직이지 않았다. 사이훙은 그들이 자기를 시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보게 젊은 양반, 전에 날개 없이 나는 걸 배운 적 있나?"
징취안 신선이 계속 말을 이었다.
"예, 있습니다. 날 수가 없다면 어떻게 천국에 올라갈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그렇고말고"
징취안 신선은 키득키득 웃으며 대답했다. 시후 신선이 몸을 앞으로 당기며 말을 꺼냈다.
"그건 어떤 술법이지?"
"날개 없이 난다는 건 물론 비유로 한 표현입니다."
사이훙은 조용히 대답했다. 그러나 징취안 신선의 낄낄거리는 웃음이 사라졌다.
"그것은 사람의 기를 척추로 끌어올리는 걸 말합니다."
"장신술의 비결은 무엇이지?"
"그것은 고요히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는 도마뱀처럼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사람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겁니다."
"천국에 가는 법을 말해 보아라."
시후 신선이 명령하듯 말했다. 사이훙은 이마를 만지며 대답했다.
"천국은 두개골에 있는 영문을 비유해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자네의 머릿속에 노자가 있는 걸 아느냐?"
징취안 신선이 물었다. 사이훙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 성인 역시 뇌하수체와 연관된 영문을 상징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노자의 외단을 먹어 본 적은 있느냐?"
시후 신선이 물었다.
"불행히도 아직 먹어 보지 못했습니다. 저의 도는 아직도 미천합니다."
시후 신선은 다시 허리를 뒤로 기대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징취안 신선은 사이훙을 쳐다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는 자네의 상태를 솔직히 말해 주었어. 도를 닦는 친구를 만나게 되어 영광이야."
징취안 신선은 결론을 짓듯 말했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오히려 제가 영광입니다."
사이훙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음식이 나오자 테이블은 조용해졌다. 신선한 야채 요리는 그들의 식욕을 돋우어 주었다.
"자네는 정말 친절하군."
징취안 신선이 말했다.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제 초대를 받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이훙은 겸연쩍어하며 말했다.
그들은 조용히 식사를 하였다.
"두 분의 전력에 대해 알고 싶은데요."
잠시 후 사이훙이 이렇게 물었다.
"우리는 그런 거 없어."
징취안 신선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러나 사이훙은 신선들이 결코 자신의 행적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이훙은 그들의 행적에 대해 알아보겠다는 생각이 부질없는 짓임을 깨달았다. 그들에게 질문은 필요치 않았다. 그는 가장 정확한 방법, 즉 순수한 느낌으로 그들이 이룬 영적 성취를 이해해야 했다. 사이훙이 영적인 인물과 다시 마주하게 된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두 신선과 마주 앉아 있는 시간은 사이훙에게 있어서 축복과 평정의 시간이었다. 그는 두 사람으로부터 뿜어 나오는 영력을 느낄 수 있었다. 화산을 떠난 지 수십 개월이 지난 그 즈음 사이훙은 사람들이 뿜어내는 영력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단순히 지나치기만 하는 사람도 다른 사람에게 순간적인 즐거움이나 활력을 가져다 줄 뿐 아니라. 행복의 눈물을 흘리게 할 수도 있었다. 지금 두 신선과 함께 있는 사이훙은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자기가 신선들과 같이 앉아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였다.
두 신선들이 맛있게 식사를 마치기까지는 꽤 시간이 흘렀다. 사이훙은 마치 고향에 온 듯한 행복감을 느꼈다. 그는 그러한 감정이 단순히 도사들과 같이 있다는 사실 때문은 아닌지 궁금해졌다. 어쨌든 그는 아홉 살때부터 도사들과 같이 생활해 왔다. 사이훙은 이 도사들과의 만남을 계기로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에서 너무 벗어나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대사님들과 같이 도를 닦고 싶습니다."
사이훙이 말했다. 두 신선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우리는 도관에 살고 있지 않아. 방랑자들이지."
시후 신선이 대답했다.
"그런 건 관계없어요. 나도 같이 가겠습니다."
"우리 생활은 매우 가난해. 일류 배우들의 생활과는 아주 딴판이지."
그는 사이훙의 결심을 시험하려는 듯 이렇게 말했다.
"난 무대를 알기 전에 이미 신단을 알고 있었어요."
"우리는 오늘 밤 떠나려 한다."
징취안 신선이 말했다. 사이훙의 마음은 확고하였다.
"좋습니다. 소지품을 챙기고, 극단에 통보하고 오겠습니다."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는 동문에서 기다리고 있겠다."
"한 시간 안에 그리고 가겠습니다."
사이훙은 극장으로 급히 달려갔다. 유흥 생활을 즐기는 배우들이라 거의 다 밖으로 나가고 몇 명만 자고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잠시 생각을 한 그는 편지를 써 놓은 다음 소지품을 챙기기 시작했다.
떠날 채비를 끝낸 사이훙은 얼마 동안 분장 테이블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쪽빛 조명 아래서 자신의 모습을 유령으로 만들 수도 있었다. 분장용 접시들은 한쪽 구석에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접시 가장자리에는 빨간색, 황금색, 검은색, 자주색, 녹색 등 갖가지 물감이 묻어 있었다. 사이훙은 자신이 조금 전에 쓴 편지를 들여다 보았다. 반투명의 하얀 종이 위에는 자신의 인생 전환을 알리는 까만 글씨가 적혀 있었다. 테이블의 옆에는 장군역에 쓰는 투구가 놓여 있었다. 은거울들은 희미한 빛을 내고 있었으며 빨간 아닐린과 주홍색 물감을 들인 가벼운 털로 만든 동그란 장신구는 미동도 없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1미터나 되는 꿩의 깃털을 만져보았다. 그는 깃털을 잡아 아래로 당겼다. 그는 손끝에 깃털의 부드러운 탄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 관중의 박수 소리가 그의 귓가에 희미하게 들려오는 듯했다. 사이훙은 깃털을 놓고 용수철처럼 그곳을 뛰쳐나갔다.
밤공기는 차가왔다. 등불이 없는 사이훙에게 만삭이 되어 가는 밝은 달은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추위로 몸을 떨었지만 반짝이는 밤하늘의 별빛은 그의 마음을 희망으로 가득 채워 주었다. 사이훙은 어렵지 않게 두 신선을 발견할 수 있었으며 그들은 따뜻이 사이훙은 맞아 주었다. 세 사람은 곧바로 길을 떠났다. 얼마 가지 않아 긴나무 다리를 만나게 되었다. 사이훙은 다리를 건너면서 이 다리가 현재의 상황에 참 적절한 상징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 다리를 되돌아가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을 다졌다. 세 사람이 다리를 절반 이상 건너갈 즈음 징취안 신선이 갑자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좀처럼 웃지 않는 시후 신선이 사이훙을 향해 이해하기 어려운 눈빛으로 미소를 지었다.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 들어 봐."
징취안 신선이 킬킬 웃으며 말했다.
"우리 발자국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요."
"우리라고? 다시 들어 봐."
징취안 신선이 말했다.
사이훙은 그때서야 자신의 발자국 소리만 들릴 뿐 두 신선에게는 발자국 소리가 나지 않음을 깨달았다. 사이훙이 다리를 다 건널 때까지 그들은 유쾌하게 웃었다.
"자네는 갈 길이 많이 남았어."
징취안 신선은 웃으며 사이훙의 등을 두드렸다. 그들은 한 폐찰에서 밤을 보냈다. 폐찰은 두 신선이 매우 좋아하는 곳이었다. 사람들의 왕래가 없는 그곳은 그들에게 이상적인 안식처가 되어 주었다. 사이훙은 열성을 다해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그는 새벽같이 일어나 조롱박에 물을 길어 놓고 땔나무를 주워 모았다. 한때 일류 배우였던 그의 두 손은 이제 차가운 아침 물에 적셔졌고 매끈한 피부는 쪼개진 나뭇가지에 긁히었다. 그러나 그는 행복했다. 화산에서는 그렇게 일하는 걸 싫어했던 자신이 지금은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하는 생활을 하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두 신선이 그에게 일용품을 사 오라고 했을 때도 그는 즉시 제자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사이훙은 이제서야 종교인의 헌신적인 마음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먼동이 채 뜨기 전이었지만 길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각자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많은 어른들과 아이들로 거리는 생기가 넘쳐 흘렀다. 당나귀에 잔뜩 짐을 싣고 가는 농부들도 있었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나무를 지고 가는 나무꾼도 있었다.
사이훙은 가슴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는 불현듯 자신이 매우 어리석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사이훙이 화산을 떠난 지도 3년이 지났다. 그 3년은 양심의 속삭임을 애써 외면하고 영적인 삶에서 벗어난 기간이었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신의 뛰어난 무술을 과시했으며 그로 인해 상처를 입기도 했다. 그는 예술의 영광, 관중들의 환호에 깊이 빠져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펼쳤던 배우였다. 그리고 그는 젊고 부유한 신사가 되었으며 마음 속에 아름다운 궁전을 수없이 지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와서야 그런 것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사이훙은 앞날을 내다볼 줄 몰랐던 자신을 책망했다. 그는 자신의 가장 큰 결점이 충동적이고 성급한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화산에서 다른 수행자들과 같이 수업을 받았을 때 그는 주의가 무척 산만했었다. 스승들은 결코 같은 내용을 반복하지 않았다. 그들은 사이훙이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걸 알면서도 그대로 지나쳐 버렸다. 사이훙은 지난날을 돌이켜보면서 이제 그 귀중한 여러 비법을 영영 배울 수 없게 되었으며, 화산을 떠난 후 보냈던 3년이란 세월도 자신의 영적 수련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음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사이훙은 대사부가 그에게 당부한 과업을 떠올렸다. 그러나 대사부의 당부와는 달리 사이훙은 거지에게 동전 몇 닢을 던져 준 것 외에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준 일이 없었다. 그의 유일한 관심사는 자신의 변덕스런 욕구를 이루는 것이었다. 그는 세상의 명성과 성취에 사로 잡혀 있었다. 실패하지 않고 어떻게든 자신의 친척이나 동료, 나아가 스승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은 심정에서 사이훙은 대사부가 그에게 준 마지막 선물을 희생시켰던 것이다.
사이훙은 이제 다시 수행을 할 수 있는, 다시 제자가 될 수 있는, 자신을 도로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었다. 그는 어떤 용서나 사과도 자신의 실수를 덮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 지난 일은 잊어 버리고 더욱 정열적으로 앞날을 살아가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했다.
사이훙은 후디에가 옳았다고 생각했다. 후디에가 그에게 기친 불행에도 불구하고 투즈선의 별장에서 했던 말을 옳았다. 죄의식에 대한 유일한 처방은 앞날을 내다보고 인내하는 것뿐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운명을 쫓아가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운명이 영적 구도자가 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물건을 구입한 사이훙은 오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절은 걸어서 두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그는 한 발 한 발 내딛는 발걸음을 고행의 발걸음으로, 한 번의 들숨과 날숨을 하나의 염주알로 생각했다. 신시가 되어갈 무렵 시후 신선은 사이훙을 그늘진 마당 귀퉁이로 데리고 갔다. 폐찰의 마당에는 부서진 건물 조각들과 잡초들이 한데 섞여 있었다.
"나와 징취안 모두 너를 지도해 줄 것이지만 나는 우선 도를 닦는 방법의 윤곽을 잡아 주겠다. 어젯밤에 가르쳐 주었던 것에 이어 말하겠다. 자네는 신비의 문을 찾아내야 해. 그러나 그 문은 신장들이 지키고 있지. 자네는 먼저 신장들에게 줄 공물을 마련해야 하고 다음에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그곳을 통과할 수 있도록 몸을 감추는 능력을 가져야 할 거야. 그와 함께 하늘까지 날아갈 수 있는 법을 배워야 해. 그리고 방 안에 있는 노자를 놀라게 해서 그가 갖고 있는 금단의 병을 낚아채야 돼. 그리고 그곳을 지키는 신장들을 죽이고 궁전의 담을 허물어뜨린 다음 신선이 되어 지상에 되돌아올 수 있는 모든 능력을 배워야 해!"
"<손오공>이란 경극과 비슷하군요. 저는 거기서 원숭이 역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경극이 아니야."
사부는 준엄하게 말했다.
"자리에 앉아서 내 말을 계속 들어. 첫째 할 일은 신장들에게 줄 공물을 준비하는 것이야."
"그게 뭔데요?"
"금이나 보석 따위로는 신장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그건 인간의 영혼이야. 그건 자네를 이 지상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금단을 얻고, 자네가 그 비결을 제자에게 가르쳐 주어 도맥을 이어 놓기 전에는 영원한 세계로 떠나지 않겠다는 맹세야."
"맹세하겠어요. 성스러운 길을 걸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어요."
사이훙이 말했다.
"성급하게 굴지 말아라."
시후 신선이 주의를 주었다.
"자네에게 결단력이 있는 건 분명하지만, 언제나 변함없는 마음, 항심을 가져야 해. 항심이 없으면 우주를 날 수 없어. 우주를 난다는 것은 무중력 상태가 되었다는 걸 의미하는 거야. 자네는 지나치게 성공에 집착하고, 실패할까 우려하고 있어. 그런 마음은 오히려 커다란 장애가 될 뿐이야. 자네는 그런 태도를 버리지 않으면 안 돼. 내 말 알아듣겠지?"
"예, 사부님."
"몸을 안 보이게 한다는 것은, 어젯밤 자네도 말했지만, 명상의 적정상태를 의미하는 거야. 그 상태가 되어야 신비의 문을 미끄러져 통과할 수가 있다. 이 문은 눈썹 사이의 제 3의 눈에 위치하고 있다. 이 제3의 눈을 통해 자네는 언젠가 신성한 빛을 볼 수 있을 거야. 정, 기, 신을 하나로 통일시킬 수 있을 때, 다시 말해 그것들은 신비의 문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때 자네는 하늘을 날수 있는 거야. 금단을 낚아챈다는 말은 경락이 열려 자네의 기가 신비의 문을 깨뜨리며 지나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야. 그러나 그 마지막 단계에서 그곳을 지키는 신장들이 나타나는 데 자네는 그들을 죽여야 하는 거야."
"그 신장들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망상의 대리인들이지. 자네는 가아는 자네가 영적 성취를 얻는 걸 원치 않아. 왜냐하면 자네가 깨달음을 얻게 되면 가아를 부정하게 되기 때문이지. 가아는 자네와 싸워 자네가 바라는 목표를 성취하지 못하게 할 거야."
"가아는 진정한 자아가 아니군요?"
"가아는 가고 오는 것이며 태어났다가 죽는 것이지. 하지만 진아는 영원한 것이야. 그것은 변하지도 않고 형체도 없는 것이지."
"그러면 가아를 죽인다는 것은 진아가 가아를 제압한다는 걸 의미하는군요."
시후 신선은 빙그레 웃었다.
"사실은 가아는 존재하지 않는 거이야."
"가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어떻게 그것이 온갖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겁니까?"
"거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자네 스스로 그 답을 찾아라. 그 온갖 문제가 누구에 대한 것이냐? 가아는 상상의 산물이야. 그런데 우리는 가아에 실체를 부여하고 있어. 그 결과 우리는 고통과 쾌락을 경험하게 되지. 그래서 우리는 가아의 포로 상태에 있는 거야. 만약 우리가 가아의 본질을 탐구해 들어간다면, 그것이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낸 것임을 알게 된다면 그 순간 가아와 고통과 쾌락은 사라지게 될 것이니라."
"그러면 괴로움도 상상으로 인한 것입니까?"
"그렇다. 자네는 자신을 실제의 자네와 다른 인물로 상상하기 때문에 괴로움을 느끼는 거야. 사실 자네에겐 진아 하나밖에 없어. 자네는 어떤 인간적인 속성도 없는 진아, 즉 <본래의 나>야. 그것은 이름도 형체도 없는 거지. 자네가 그런 사실을 깨닫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형체와 감정과 생각 따위에 매달려 있는 거야. 가아가 생기면서 자네에게 형체를 준 거야. 지혜로운 사람은 단순히 존재할 뿐이지. 그는 생각에 매달리지 않는다. 그는 머물러 있으면서 자신이 하나의 신이라는 걸 알고 있지."
"전 아직 가아를 죽이는 법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자네는 아직도 두 개의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나? 정신 차려! 가아는 단지 상상물일 뿐이야. 자네 자신밖에는 아무것도 없어. 자네는 망상을 벗어 던지고 상상적인 형체를 버리기만 하면 돼."
"그러면, 그 망상을 벗어 던지는 주체는 누구입니까?"
"<본래의 나>가 망상을 벗어 던지는 거야. 그러면 <본래의 나>만 남게 되지."
"그 <본래의 나>가 나를 망상에 묶어 두는 상상의 가아를 벗어 던지는 거군요."
"그렇다. 우리 모두는 망상의 무지에 빠져있는 거란다. 네 자신이 좋은 예가 아니야? 우리는 무대 위에 서 있던 자네를 보았지. 그것처럼 완벽한 예가 어디 있느냐? 자네는 관객들이 보고 그대로 믿는 극중 인물의 역을 하는 배우였지. 배우와 관객은 연극이 끝날 때까지 내내 환상의 희생물이 되었어. 그것은 우주의 연극 속에 있는 또 하나의 연극이었어. 그것이 자네의 지난 삶이었지. 명상 중에는 자네의 개체 의식에 매달리면 안 돼. 인생이라는 이 애처로운 작은 연극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야. 우리는 단순히 배우의 역을 하고 있을 뿐이야. 어떤 이유로 한 장면에 등단하지만 역이 끝나면 무대에서 내려와야 해. 하지만 분칠한 얼굴 뒤에 숨어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자아의 의식을 진정한 본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자아의 의식, 그 신장을 죽여야 하는 거야. 그렇게 되면 이제 한 가지 과제만 남게 된다. 마음의 궁전을 허물어뜨리는 것 말이다."
사이훙은 불현듯 어떤 충격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은 불안감으로 이어졌다.
"궁전의 벽은 반드시 허물어뜨려야 한다. 그것은 자네와 자네 본체 사이에 놓인 마지막 장벽이기 때문이야. 이 벽을 무너뜨려야만 우리는 우리의 본체로 돌아갈 수가 있어. 일단 우리가 명상 중에 우리의 본체와 한순간이라도 합일되기만 하면, 우리는 세상과 우리의 개체성에 대한 모든 의식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포기라구요?"
"자네 같은 무사에게 포기란 불가능할지도 모르지. 그러나 자네도 결국은 그렇게 해야 될 거야. 그것은 모든 행위와 욕구, 결정 따위를 포기하는 걸 의미한다. 명상의 형상까지도 초월하는 것이야. 궁전의 벽은 형상의 세계인 거야."
"어떻게 궁전의 벽을 포기로써 허물어뜨릴 수 있습니까? 어떻게 망상을 그런 식으로 극복할 수가 있겠습니까?"
"망상은 헛된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것의 활동적인 면이라고 보아야 해. 이러한 활동성은 형상을 만들어 내지. 그 다양한 형상으로부터 망상이 오게 되는 거야. 하지만 모든 형상과 변화는 모두 마음속에 있는 거야. 자네는 나를 쳐다보기도 하고 도관과 산들을 쳐다보기도 하지. 이런 것으로 인해 자네는 자네 본질을 잊어버리고 있는 거야. 형상을 버리고 의식에 초점을 맞추어라. 그러면 다양하고 분리된 형상은 한 편의 꿈과 같이 부서져 버린다. 마음의 움직임을 그치고 적정으로 들어가라. 활동성에서 물러 나와 무위로 들어가라. 근본으로 물러나 있을 때 모든 망상은 스스로 그치게 될 것이다. 그대 자네는 노자와 금단과 신장과 궁전의 벽이 단지 자네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에 불과함을 알게 될 것이야. 유일한 진실은 자네 자신을 형체 없는 하나로서 깨닫는 데 있는 것이야. 하지만 말로써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노력 없이는 어떤 성공도 있을 수 없다."
시후 신선은 사이훙에게 올바른 명상 자세를 가르쳐 주고는 명상에 잠겨 있는 사이훙을 남겨 두고 그곳을 떠났다.
조그만 폐찰의 방에는 아무런 장식이나 가구도 없었다. 회반죽을 바른 벽은 오랜 세월 비바람에 씻겨 더럽다는 느낌마저 들지 않았으며 오히려 고풍스런 멋이 배어 있었다. 멀리서 종소리가 들려 왔다. 백단향의 엷은 향기는 마치 옛날의 추억처럼 마당 가득 퍼지고 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맑은 대기가 코끝으로 느껴졌다. 정적은 손으로 만질 수 있을 정도로 무겁게 깔려 있었다. 사원의 경계선에는 깊은 정적의 웅덩이가 패어 있는 것 같았다. 사이훙은 그 웅덩이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물속 가장 깊은 곳까지 침잠해 들어간 그는 거대한 피라미드 같은 자세로 깊은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사이훙은 실제로 물에 빠진 것과 같은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의 코, 입, 그의 모든 구멍으로 물이 들어오는 걸 느낄 수 있었으며 얼마 후에는 뼛속까지 물로 적셔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사이훙은 그곳에서 유동성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묵직한 도관의 공기를 호흡했다. 그는 바위가 되었다. 고요의 바다 밑바닥에서 성스러운 커다란 바위가 되어가고 있었다. 외부 세계와 내면 세계가 하나로 되어갔다. 내면은 외부와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명상의 세계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시간은 우주의 주기인가? 아니면 그의 척추를 타고 올라가는 기의 박자인가? 그는 그의 스승들이 인간의 몸은 소우주라고 한 말이 사실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그 자신이 우주가 아닌가? 태초의 어둠 속에서 수천 개의 태양과 수백 개의 은하를 만들어 낸 것은 그의 생각이었다 우주를 움직인 것은 그의 숨결이었다. 그의 우주는 5대 원소와 만 개의 물질로 진화해 갔다. 그 많은 것 중 몇 개만 이름이 붙여지고 대부분은 이름도 없이 그 마음속에서 경이로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사이훙은 자신의 몸이 기능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신경 조직이 정보를 전달하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으며 미묘한 전기 에너지의 흐름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는 여러 다양한 냄새도 맡을 수 있었다. 어떤 냄새는 향기가 났으며, 어떤 것은 악취가 풍겼는데, 그런 냄새는 몸의 각 기관으로부터 올라오고 있었다. 그는 액체와 가스의 흐름도 감지할 수 있었다. 그 우주는 기계가 아니었다. 그것은 미천한 인간이 만든 가련한 발명품에 비유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유기체도 아니다. 그것은 영원한 것이지만 신성한 존재는 아니었다. 그것은 생각과 비생각, 존재와 비존재를 모두 다 포용한다. 그러한 모든 정의와 비유는 모두 뒤집어야 할 것이다. 그 우주는 무한히 컸다. 그는 소우주였다.
스승들은 세상은 망상이라고 했다. 단순한 논리로 생각한다면, 인간이 외부 세상의 소우주라면 사이훙 역시 존재하지 않는 세계 안에 존재하는 환영, 즉 망상일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명상이 어떤 상태이기도 하지만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수단이라고 알고 있었다. 자신이 존재하는 실체이건 존재하지 않는 망상이건 그런 것은 그에게 관심 밖의 문제였다. 사이훙은 내부의 모든 힘을 집중시켜 한 점으로 향하게 했다. 그러나 망상도 실체를 갖고 있었다. 그는 그 막을 꿰뚫고 이 문제의 해답을 구하기로 결심하였다.
사이훙의 몸 속에서는 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는 따뜻함을 느꼈다. 그는 더욱 정신을 집중시키면서 호흡을 깊이 가져갔다. 그의 마음은 몸속 깊은 곳까지 잠수해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것은 몸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정액을 휘젓는 것 같았다. 어릴 때부터 명상 생활을 해왔던 그는 쉽게 정, 기, 신을 하나로 합칠 수 있었다. 그런 다음, 그는 액상의 빛 덩어리 같은 기의 정수를 위로 끌어올렸다.
명상은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기의 상승이 곧 높은 영적 차원으로 올라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의 움직임은 정교한 것이었다. 그는 영문이 빙빙 돌면서 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그와 동시에 엄청난 힘이 솟구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전에 까마득하게 보였던 스승들의 모든 능력들이 그의 손바닥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사실 그런 능력들은 알고 보면 너무 쉬운 것들이 다. 그것들은 어린애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처럼 쉽게 손에 잡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는 황홀경에 빠져들어 갔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자존심과 자아의식이 날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신비한 능력에 마음을 빼앗길수록 그러한 유혹은 더욱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고전압의 인간 에너지의 가느다란 기둥 위에서 가까스로 균형을 잡은 사이훙은 거기서 떨어지는 것 또한 너무나 쉬운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핵융합으로 생성되었던 태양이 스스로 타면서 빛을 발산하는 것처럼 정.기.신이 합일된 기의 정수가 내뿜는 광채 또한 점점 커져 갔다. 여기 신비의 문을 미끄러져 통과해 나가는 금빛 찬란한 빛이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영원의 흐름을 막는 무엇이 있다. 그것은 엄청난 긴장감이었다. 그것은 자신이 곧 맞게 될 와해를 방해하는 가아였다. 그는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으나 어떤 것이 그를 뒤로 잡아당기고 있었다. 빛은 깜박거리고 있었다.
사이훙은 신비의 문을 물밀듯 통과해 가는 빛을 다시 보았다. 그것은 커다란 힘이었다. 사이훙이 해야 할 일은 그저 그대로 자신을 내맡기는 것 뿐이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그 빛이 자신의 존재를 접수해 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뿐이었다. 사이훙은 이번에는 잠깐 동안만 망설였다. 그는 그 다음 순간 올라오는 광채 속으로 자신을 송두리째 밀어 넣었다. 사이훙은 짧은 순간이었지만 어떤 강력한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폭발로 인해 자신의 몸이 찢겨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지나가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더 이상 무엇을 느낄 자아가 없었다. 거기에는 오직 금빛 찬란한 빛과 자아가 굴복한 흔적뿐이었다.
사이훙이 다시 인식 속으로 돌아오기 가지는 몇 시간이 걸렸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생각하려고 할수록 점점 더 죽음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의 모든 정수는 빛의 흐름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러나 그것을 제외한 그의 몸 전체는 어둠 속으로 말려 들어갔다. 사이훙은 내면에서 생명감 넘치는 한낮을 창조해 내었다. 그러나 그것은 또 하나의 자신에게 춥고 외로운 밤을 남겨 주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갇혀 있었던 그의 영혼은 밝은 빛 가운데로 떠올라 마치 잠에서 깨어난 아름답고 새하얀 백조처럼 마음껏 호흡하며 즐거워했다. 그의 영혼의 황금빛 찬란함과 기의 자취는 길다란 천국의 깃발 같았다. 그러나 그의 몸은 시들어가기 시작했다.
사이훙은 기를 흐트러트리는 동작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 현실 세계로 돌아오기 위해 그의 소우주를 다시 작동시키고 있었다. 그는 49일간의 명상으로 영적 죽음 - 열반을 맞이 했던 도사들을 알고 있었다. 사이훙은 이제까지의 명상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자신이 하는 것과 같은 49일간의 명상은 자신을 완전한 영적 존재로 만들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 그의 육체는 죽어갈 것이다. 그 긴 시간을 아무것도 먹지 않고 견딘다는 것 또한 경이로운 일이라 생각되었다.
금욕 생활과 식이요법, 휴식, 운동등을 하는 이유는 바로 에너지의 낭비를 막기 위해서였다. 사이훙은 이제 그것들이 수도 생활의 겉치레가 아니라 깨달음을 향한 구도 생활 도중에 죽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처절한 수단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제 명상과 더불어 약초와 식이요법, 운동을 균형 있게 맞춰 나가리라 결심했다. 그리고 사이훙은 이제 남을 돕기로 굳게 맹세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다 영원의 세계로 들어간다면 지상에 남아 가르쳐 줄 사람도 필요치 않게 될 것이다.
사이훙은 얼마 동안 휴식을 취했으나 아직 완전히 회복된 것 같지는 않았다. 저쪽에 불을 쬐고 앉아 있는 두 사부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사이훙이 명상 중에 일어났던 일을 말하자 미소를 지으며 곧 몸과 마음의 균형을 되찾게 될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명상은 더욱 부드러워질 것이고 몸도 기의 급격한 흐름에 적응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시후 신선은 사이훙이 죽음에 대해 느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했다. 그것이 사이훙이 탐구하는 목표에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징취안 신선은 그것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궁극적인 목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죽음은 우리 인생에서 유일하게 확신한 것이지. 어떤 면에서 도사들은 죽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어. 왜냐하면 그들의 관심사는 죽음의 차원을 초월하여,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야. 그러나 한편으로 그들은 죽음에 연연해하지 않아. 그들은 죽음을 단지 변화의 한 주기로 보기 때문이야. 노상강도의 희생자에 대한 우화가 있지. 자기 지갑에 금덩어리가 가득 차 있다고 믿고 있었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강도를 만날까 봐 줄곧 공포에 싸여 있었어. 그러나 그 사람이 자기 지갑에 금이 없다는 걸 깨닫기만 했다면 두려운 마음도 갖지 않았을 것이고 지갑은 던져 버렸을 거야. 사실 지갑에는 낙엽만 가득 차 있었지. 지갑은 인간의 육체와 같은 것이야. 낙엽은 개체성의 환영이지. 인간에겐 진실한 것이 있어. 그것은 금덩어리보다도 훨씬 귀중한 것이야. 하지만 그건 우리의 소유물은 아니야. 그것은 우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처럼 자라지도 않아. 그리고 우리가 죽음을 맞이할 때에도 살아 있단다. 도사들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아무것도 아니란다."
"저는 사부님이 저를 버릴까 두려워요."
사이훙이 말했다.
"호접 도사!"
징취안 신선은 웃으며 사이훙의 법명을 불렀다.
"자네는 나비의 우화를 모르는가? 자네 극단에서 공연했던 경극에도 나오던데."
"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무슨 관련이 있죠?"
"내가 말해 주지."
징취안 신선이 말했다.
"나, 장자는 내가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그러나 꿈에서 깨어난 나는 내가 나비 꿈을 꾼 장자인지, 나비였던 내가 꿈에서 장자가 되어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저도 그 설화는 잘 알고 있어요."
"자네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
징취안 신선은 장난기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걸 지켜본 관객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사이훙은 당황했다. 그는 단순히 장자와 나비의 역설로만 알고 있었을 뿐이다.
"모르겠어요."
그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관객들도 달리 보지 않았을 게야."
사부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사이훙은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변화는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야."
시후 신선이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나 모든 변화의 바탕에는 변하지 않는 하나의 법칙이 있어. 물을 예로 들어 보자. 물은 증발하여 구름이 된다. 구름은 비나 진눈깨비, 눈이 되어 내리지. 호수의 물은 얼음이 되기도 하지. 그러나 이 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물은 그 본질적인 성질을 잃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물이 얼음이 되면, 물이 <죽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또 물이 증발해도 물이 <죽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은 말이다. 마찬가지로 죽음은 단순한 형태의 변화일 뿐 종말은 아닌 것이야. 우리는 죽음에 대해 공포심을 가질 필요가 없어. 사실 우리가 갖는 감상적인 감정 같은 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야."
징취안 신선은 잠시 쉬었다가 덧붙여 설명했다.
"자네는 이렇게 생각할지 몰라. 장자 자신이 잘 몰랐을 수도 있고 아니면 우리에게 영적인 유희를 주려고 한 말인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하지만 그는 장자도 아니고 나비도 아니야. 그는 둘 다야. 중요한 것은 장자가 이 사람이 아니면 저 사람이냐 하는 이원적인 질문에 속지 않고 그 모두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핵심을 깨닫는 것이다."
"명상 중에 느끼는 감각에 대해 두려움을 가져서는 안 된다."
시후 신선은 모든 결론을 짓듯 말했다.
"명상중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오고 가는 대로 내버려두어라. 죽음조차도 그런 망상의 한 부분이야. 그런 현상에 동화되지 말고 도와 그 근본에 대해 깊이 탐구하도록 하여라. 분리된 존재의 망상을 잊어버려라. 자신과 도를 분리시키는 그 상상의 한계를 집어던져라. 자네의 유한성을 무한성과 합일되도록 하여라. 자신을 비하시키지 말고 영원한 존재가 되도록 하여라. 이런 인식을 가질 때 자네는 현자들의 참된 비밀을 알게 될 것이다. 근본으로 돌아간 사람의 마음은 근본 자체가 되는 것이다."
10. 황금태
사이훙은 두 신선과 함께 몇 달을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그들은 마치 유목민처럼 광활한 중국 대륙을 누볐다. 어떤 사건, 어떤 장소를 접할 때마다 그들은 거기서 영감을 얻어냈다. 안개에 싸인 신비한 산봉우리, 북부 사막의 삭막한 평야, 인파로 북적거리는 도회의 한복판, 그 어디에서건 두 신선은 사이훙에게 모든 것은 도의 일부라고 설파했다.
사람이 우주와 합일되었다고 느낄 때 우주는 현실이 된다. 우주를 자기 밖에 있는 것으로 여길 때 우주는 비현실이 된다. 환영과 현실은 음과 양이며 따라서 동일하다. 그러므로 우주의 흐름 속에서 헤엄치는 것은 고요한 명상 못지않게 중요하다. 인생을 맛보고, 배움이나 철학은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 틈에서 자신의 배움과 철학을 검증하고, 명상 안에서 샘솟는 결실을 확인하는 작업이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한다. 인생의 체험은 단순한 독서나 수도원 세계의 인위적 생활보다 한 차원 높은 것이라고 두 신선은 가르쳐 주었다.
틀에 얽매이지 않은 방식과 깊은 통찰력을 앞세우는 그들의 가르침은 확실히 달랐다. 그들은 사이훙의 귀에 익은 도교의 경구도 가끔씩 원용했지만 그 해석 방식은 완전히 새로웠다. 그들은 <문 밖을 나서지 않고도 현인은 하늘과 땅을 알 수 있다.>는 구절에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구도의 길을 보았다. 사이훙은 이 구절을 명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표현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두 신선은 그게 아니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들은 이 경구를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해석했다. <문밖을 나서지 않고도>는 너무 빨리 죽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늘과 땅을 알 수 있다>는 인생의 과업을 완성하고 전생의 모든 결과를 씻어 버린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들이 그 표현에서 간파한 의미는 사람은 한 번 목숨을 받고 태어났을 때 자신의 지상적 운명을 완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도관에서 구도 생활만 해 가지고는 그러한 목표를 이룰 수가 없다. <하늘과 땅을 안다>는 것은 개인적 탐구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정작 자신들도 교육을 받았고 독서량이 풍부한 지식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전통적인 책 속의 지식과 학문적 연구 결과를 우습게 여겼다. 이론이란 타인이 행한 한가로운 사변일 뿐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그럴듯한 이야기도 생생한 모험에는 비교할 수 없고 아무리 주옥같은 글도 스승이 직접 전수하는 가르침에 견줄 수는 없는 것이다. 학파와 학풍을 가르는 분파와 파벌은 헛된 짓거리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통해 검증되고 증명된 지식만이 지식으로서의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책을 통한 배움은 인간 본성에 어긋난다. 예의범절은 인간의 자발성에 멍에를 씌운다. 사회적 의무는 생기발랄한 정신을 무디게 만든다. 윤리는 억압이라고 두 신선은 설파하였다.
중국을 떠도는 그들의 발길은 중국의 산간오지 마을까지 닿았으며, 때로는 그보다 더욱 원시적으로 살아가는 소수 민족의 생활을 접하기도 했다. 유교의 엄격한 사회하에 세뇌 당하지 않은 이 무지한 사람들 속에서 그들은 순수하고 깨끗한 이상적 인간상을 발견했다. 정직, 만족, 느긋함, 대지와 절기에 바탕을 둔 소박한 생활은 이 사람들의 아름다운 덕목이었다. 두 신선은 이들의 때묻지 않은 본성은 책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그럼에도 이 단순한 사람들은 지혜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혜가 필요한 것은 인간이 추론하고 더 깊이 배울 수 있는 타고난 능력을 가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혜가 필요한 이유는 적절한 이해가 정신적 해방을 낳기 때문이다. 도인이 요구하는 수준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방대한 지식을 쌓아야 한다. 그러나 두 신선은 기술과 이해를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균형추로서 <깎이지 않은 덩어리>를 강조했다. 완성을 향한 지난한 탐구 과정에서 이상적인 상태는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멀건 가깝건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해야 한다.
그리하여 두 신선은 역설의 가르침을 주었다. 그들은 교육을 비웃었지만 그러면서도 사이훙에게는 스스로 배움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들은 도관 생활을 거부했지만 명상을 위해 매일 조용한 곳을 찾아 다녔다. 그들은 순결함을 강조했지만 복잡한 기예를 닦았다. 그들은 각계각층의 세상으로 떠돌면서도 음식, 사고, 몸가짐, 행동 면에서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우리는 지식의 극단적 한계에 서 있을 때만 역설과 마주친다."
징취안 신선이 입을 열었다.
"전통적 논리는 사물은 언제나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고 못을 박는다. 사람은 수도자 아니면 보통 사람 그 둘 중 어딘가에 속해 있다. 머리가 텅빈 바보든지 아니면 매사를 삐딱하게만 보는 먹물 둘 중의 하나다. 유교와 불교가 독단적 교리의 감옥에 갇힌 것은 이런 이분법적 사고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도인을 싫어한다. 우리의 비순응주의를 거북해한다. 그러나 그들은 경직된 세계간으로 인해 우리네 수행법의 본질과 거기에 잠재된 창조성을 보지 못한다."
"결국, 역설을 깨닫는다 함은 유위이면서 동시에 무위인 경지에 올라섬을 뜻한다."
시후 신선이 가세했다,.
"그렇다. 둘 다라야 한다. 음양이니까. 음과 양은 서로 대립하지만 서로를 정의 내리고, 서로를 보완하고, 서로를 파괴한다. 깨달음을 얻으려면 너 또한 그러해야 한다. 역설을 끌어 안으라.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는 머지않아 모순에 직면한다."
징취안 신선이 말했다.
"뭐라고 하셨죠?"
사이훙이 물었다.
"모순! 모순과 역설을 혼동하면 안 된다. 그걸 구분 못 하면 지금 하는 얘기가 다 부질없다."
"죄송합니다. 설명해 주십시오."
"내 말은 지식 안의 역설을 끌어안지 못하는 사람은 합리적, 논리적 추론에서 불가피하게 떠오르는 모순의 덫에서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기의 고정된 틀 안에서 모순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니까 그런 사고는 무익한 사고가 된다."
지식과 지식의 역사는 전통을 구성한다. 그리고 우상 파괴를 지향하는 도인에게도 전통은 유용한 것이다. 전통적 지식은 초심자의 서투른 수행을 가다듬는 데 쓸모가 있다. 전통은 검증된 모든 과정과 개선된 방법들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실패로 끝난 탐구의 기록까지도 간직하고 있다. 전통은 인간 상상력의 한계를 보여 준다. 그 한계선 안으로 떠나는 자발적인 여행을 권유하거나 혹은 한계선을 넓히려는 자연스러운 시도를 허용함으로써 전통은 개인적 발전의 모체가 된다.
전통적 지식은 어떤 개인의 지식보다도 크기 때문에 수행자에게 수많은 선례를 제공한다. 두 신선은 사이훙에게 전통은 분명히 초심자나 무지한 사람의 자기 노력보다는 한 수 위에 있다고 말했다. 현실의 변경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지식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남겨 둔 창조적 역량은 미지의 세계로 도약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배우려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지만 아무리 천재라고 할지라도 백과사전적 지식을 가질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 개인의 머리에 인간의 지식을 모두 담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록에 남아있는 약초만 해도 1만 2천 가지가 있지만 아무리 뛰어난 한의사도 그것을 모두 쓰지는 못한다. 한자의 수는 1만 개가 넘지만 아무리 실력 있는 학자도 그 뜻을 모두 풀이하지는 못한다. 지식을 추구한다는 것은 굽이돌아 자시 자신으로 돌아오고 결국에 가서는 역설과 모순으로 귀결되는 무한한 우주를 탐구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이훙이 배우고 경험을 쌓는 노력을 계속하되 개별적 내용에 고착되지 않고 도를 바라보는 것이다.
배움과 단련에 대한 두 도인의 입장은 <마술을 알되 마술을 멀리하라.>는 말로 집약되었다. 그들은 사이훙에게 마술이 실재한다고 가르쳤다. 사람은 마술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피하기 위해서 배워야 한다. 무지한 사람은 피해를 당한다. 지식은 방어 수단이 될 수 있다. 사람은 마술을 알아야만 마술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들은 이러한 논리를 비단 마술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지식, 전통, 무술, 정치학 등 온갖 분야에까지 확대시켰다.
사이훙은 두 신선과 함께 있는 동안 한 번도 위험에 처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이 철학의 진실성을 절감했다. 산적도 출몰하지 않았고 짐승도 공격해 오지 않았다. 그들을 불러 세우는 군인도 없었다. 두 신선과 같이 다니면 아무런 갈등이 생기지 않았고 따라서 싸울 필요가 없었다. 사이훙의 두 사부는 유위와 무위를 초월해 있었다. 그들은 마치 다리를 사뿐히 건너듯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도의 길을 걸어갔다. 그들은 두려움 없이 마음대로 떠돌아다녔다. 그들은 배움의 극치에 도달했으면서도 완전한 자발성과 자연스러움을 잃지 않았다. 물론 그것은 그들이 마술을 알면서 그것을 멀리했기 때문이었다. 사이훙이 자기 생각을 말하자 두 신선은 멀리 떨어진 도관 하나를 가리켰다.
"마술은 얼간이를 위한 것이고 우상은 머저리를 위한 것. 진실은 미묘하고 포착하기 어렵다. 네가 방금 깨달은 것은 지식의 산물이 아니고 그보다 더 큰 무엇의 단초이다. 지식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궁극 목적은 아니다."
징취안 신선이 말했다.
"지식이란 무엇일까?"
시후 신선이 거창하게 물었다.
"우리는 무엇을 믿을 수 있을까? 이 세상은 아니다. 결국 이 세상은 헛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화려한 의상과 눈부신 무대장치, 사람을 홀리는 음악, 매혹적인 인물이 등장하는 한 편의 연극이다. 그것은 비애와 비극, 행복과 열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것은 네가 한때 배역을 맡았던 경극보다도 현실적이지 않다. 네가 경험하는 모든 것, 네가 보는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요소들로 이루어진 연극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다섯 가지 색을 보고, 다섯 가지 맛을 느끼고, 다섯 음조를 듣고 이것을 현실로 받아들이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마술을 알되 마술을 멀리하라.>고 우리는 너에게 말했다. <세상을 경험하라.> <도를 따르기 위해 여행하라.> 결국 이런 말들도 잠정적인 가치밖에 못 갖는다. 이 익살맞은 무대에서 네가 맡은 배역을 충실히 연기할 수 있게끔 도움을 줄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세상은 소극, 다채로운 명암과 색상과 반사광이 어지러이 뒤섞인 만화경이다."
징취안 신선의 말이 이어졌다.
"모든 지식은 무한하다. 그러나 궁극적인 진리와 비교하면 그것은 부정확한 근사치에 지나지 않는다. 지식을 멀리하기 위해서 지식을 알아라. 너의 내관밖에는 믿을 것이 없다. 믿음의 토대를 신에다 둘 것인가? 그러나 우리는 신에 대해 하는 바가 거의 없다. 우리 눈앞에 나타나는 신은 신의 본래 모습이 아니다. 도관과 경전은 범인을 위한 종교적 극장일 뿐이다. 신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진실의 토대는, 아무리 숭고한 이상이라 할지라도 그 어떤 이상에 두어서는 안 된다. 무언가 다른 것이라야 한다."
"하지만 경전은 성스럽습니다. 경전은 진실이 아닌가요?"
사이훙이 따지고 들었다.
그러자 시후 신선이 차근차근 설명했다.
"경전은 인간이 쓴 것이다. 대략적인 길잡이로서는 유용하지. 경전에 담긴 진실은 일반인의 몽매한 상태와 견줄 때 대단히 높은 수준에 있으니까. 그러나 깨달은 자에게는 경전이 하찮은 부조금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화산 시절에 사람들은 저더러 죽서칠판에 통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을 읽지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나아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을 끝까지 읽었다고 하더라도 저의 노력은 헛된 것이었다는 말씀인가요?"
"전설에 따르면 죽서칠판은 장수신이 지상에 보낸 것이다. 아득한 옛날에도 지구는 영적 정화 상태에 이르지 못했었고 신들은 지구로 밀사를 보내 사람들을 도왔다. 밀사는 이따금 경전을 가지고 와서 가치 있는 사람이 지침으로 삼을 수 있도록 그것을 남겨 두고 갔다. 죽서칠판은 그런 선물이었다. 신은 그것을 쿤룬 산맥에 있는 한 고봉의 동굴에다 두었다. 인간이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하려면 영웅을 보내 그것을 가져와야 했다. 현자들은 한 아이를 선택했다. 그 아이는 어릴 때부터 "너는 그 거룩한 선물을 찾아와야 한다."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그 아이는 보통 아이가 아니었다. 전설에 따르면 그 아이는 숲에서 나무를 하던 농부가 발견한 알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농부와 아내는 알을 집으로 갖고 왔다. 알이 부화하고 준수한 소년이 나타났다. 모험에 나서야만 하는 운명을 갖고 태어난 소년이었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까마득한 과거에 죽서칠판을 가지고 돌아왔다. 원래의 것은 아직도 남아 있지만 영국과의 아편 전쟁 기간 중에 마오산 어딘가에 숨겨졌다.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여러 세대에 걸쳐 권위자들이 많은 주석을 달아 놓은 사본이다. 가문이나 분파에 따라 각기 다른 판본이 존재한다.
한마디로 죽서칠판은 깨달음에 이르는 360가지 방법을 상술한 책이다. 360이라는 수는 원의 360도에 대응하는 숫자이다. 별의별 분야에서 쓰이는 방법론이 여기 총망라되어 있다. 고도로 금욕적이고 명상적인 방법에서 상호 절정에 이르는 성교 기법 같은 물의를 일으킬 만한 내용도 있다. 철학, 호흡법, 연금술, 약학, 제례, 의식, 기도 등 인간을 의식의 고양 상태로 이끌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논의하고 분석하고 미래의 세대를 위해 기록으로 남겼다. 심지어 무술도 격투기로서가 아니라 자기 수련에 이르는 완벽한 방법으로서 진지하게 검토된다.
죽서칠판은 네가 익혀야 하는 모든 것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완전히 숙지했다고 해서 기고만장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너의 영적 과제를 완수하는 것이니까."
이번에는 시후 신선이 입을 열었다.
"이 책 너머를 보아라. 여기 360가지 방법이 수록되어 있듯이 너는 다재다능하고 모난 데 없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편협한 이론을 고집하지 말아라. 이론은 오직 틀로, 발판으로 삼아라. 전통으로 되돌아가더라도 다시 하늘 높이 솟구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시 징취안 신선이 말했다.
"죽서칠판을 네가 읽고 안 읽고는 중요하지 않다. 너는 그것을 사전처럼 지루한 느낌을 가지고 읽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것을 다 읽으려면 상당한 의지력이 필요하니까 말이다. 읽고 난 다음 너는 거기서 성분을 추출하여 마치 합금이라도 만드는 사람처럼 인생의 용광로에 그것을 녹여 너의 독특한 개성으로 변모시켜야 한다. 교조적으로 어떤 책을 따르지 말아라. 아무리 성스러운 경전이라고 할지라도, 어떤 책을 놓고 신의 말씀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다."
기다렸다는 듯이 시후 신선이 말했다.
"진리는 결국 배움에 있지 않다. 사람은 불가피하게 자기 기예의 한계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리는 자아의 초월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명상을 통해 사람은 영성과 융합된다. 최고 단계에 이르면 자아는 더 큰 의식 안으로 흡수된다. 개체성은 상실되고 기예를 통한 성취는 있으나 마나 한 것이 된다. 지식의 추구는 수행자의 지속적인 성장과 건강에 꼭 필요하며, 타인을 돕고 완전론(인간이 현세에서 완전한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 유익하다. 그러나 인간이 궁극적으로 이루려는 것은 명상의 최고 경지다. 모든 기에를 넘어서는 그런 경지다."
진리. 사이훙 내면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이제까지 그는 지식을 축적하느라 발버둥 쳤고 방법론을 완성하느라 골머리를 앓았으며 고대의 문헌을 수집하고 수많은 스승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나 도관의 울타리 속에서 그가 지난 세월 동안 쌓은 경험과 지식은 공허하기만 했다. 사이훙은 노상강도와 지갑의 우화를 떠올렸고 죽서칠판도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스승들은 그의 지갑에 낙엽밖에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현자들의 그 모든 지식은 지식과 기예 너머에 무언가가 있다는 깨달음으로 제자를 이끌기 위한 방편이었다. 모든 문명은 그림자 인형극이었다. 개념화할 이유도 구조화할 이유도 없는 진리의 빛이 닿은 조잡한 투영물이었다.
사이훙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그러나 평생 부끄러움을 맛보느니 잠시 곤혹스러움을 겪는 편이 낫다고 자신을 다독거렸다. 그는 산마루로 나갔다. 그리고 화산에 있는 대사부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사이훙이 여기까지 온 것은 그분 덕택이었다. 사부는 사이훙이 이렇게 성장할 때까지 오랜 세월 말 없는 도움을 베푸셨다.
산속에 있으면 사이훙은 늘 마음이 차분했다. 평지에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르게 삶에 대한 새로운 전망이 열리는 기분이었다. 수많은 인간들이 바글거리며 각자의 생업에 종사하는 저잣거리가 산속에 들어앉아 있으면 그렇게 왜소해 보일 수가 없었다. 드높은 산봉우리에 있으면 이 세상의 변경에 와 있다는 느낌, 천상의 세계가 코 앞에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밀려들었다. 드넓은 지평선을 바라보노라면 모든 갈등과 정신적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그의 영혼은 날아가기를, 두둥실 떠오르기를, 저 산과 하늘의 좁은 틈새로 빨아 들여지기를 갈구했다. 포근하고 화창한 날이었다. 그는 위엄 있는 소나무 그늘에 앉아 시후 신선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몸과 상상력과 호흡은 영적 수련을 하는 수행자가 곧바로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다. 심오한 상태에 즉시 이를 수는 없다. 우리는 의식의 통제 아래 가장 쉽게 둘 수 있는 우리 안의 부분들을 먼저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좀 더 특수한 기능들로 서서히 접근해야 한다. 몸과 상상력과 호흡을 그대로 방치했을 경우 그것들은 오히려 장애물이 된다. 이것이 바로 역설이다. 우리의 몸은 아예 수련을 쌓기 어려울 정도로 상태가 악화된다. 우리의 상상력은 멋대로 흘러 우리의 참모습을 가린다. 잠재의식의 기계적 통제 아래 놓인 호흡은 육체라는 껍질에 단순히 산소만을 공급하는 기능으로 전락한다.
영적 수련의 첫 단계는 실재적인 것과 더불어 시작된다. 몸은 손발 뻗기, 자세, 약초, 무술, 명상을 통해 단련된다. 몸이라는 기초 재료가 튼튼해야 수행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다.
상상력은 목표를 제시하고 보통 때는 의식으로 통제되지 않는 에너지의 운동을 이끈다. 상상력의 강력한 힘은 몸과 마음을 모두 압도할 수 있다. 호흡은 우리의 의식적 통제 아래 둘 수 있는 일차적 대상이지만 동시에 마음과 육체를 연결하는 고리다. 호흡의 리듬, 비율, 강도, 빠르기에 따라 마음도 제각각 다른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규율은 완성을 앞당긴다. 재갈이 사나운 말을 길들이듯 규율은 정신을 길들인다. 활시위를 팽팽히 당기면 화살은 가장 억제되고 긴장된 상태에서 조준된다. 시위를 놓으면 화살은 정확히 과녁에 가 박힌다. 오늘 나는 네가 발전하는 데 아주 중요한 수행법 한 가지를 가르치겠다. 황금태를 만드는 일이다. 황금태는 복부에 만든 강한 역장을 말한다. 황금태는 몸을 강화하고 장기를 튼튼히 한다. 머리가 빠지고 주름살이 늘고 관절이 굳고, 눈과 귀가 어두워지고 기억력이 감퇴하고 근육이 약해지고 생기가 사라지는 것은 우리 몸의 내분비선과 장기 기능이 저하 되어 생기는 현상이다. 열심히 수련을 쌓으면 황금태는 몸에 활기를 다시 불어넣는 생명력의 보고가 된다."
"그럼 죽지 않게 되나요?"
사이훙이 물었다.
"그렇다. 하지만 언젠가 썩어 없어져야 하는 이런 육신 속에서 영원히 사는 것은 아니지. 내 말은 너의 호흡과 수명이 깨달음을 얻기에 충분할 만큼 오래도록 존속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와 관련하여 또 하나 중요한 것이 바로 영적 죽음이다."
"영적 죽음이 도교의 전유물은 아니다."
징취안 신선이 끼어들었다.
"불교에서는 그것을 <니르바나>라고 부르고, 힌두교에서는 그것을 <마하사마디>라고 부른다. 도교에서는 이것을 <공과의 융합>이라고 부른다. 황금태를 설명하려면 죽음도 다루어야 한다."
그들은 사이훙에게 모든 인간은 세 개의 자아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육체의 자아는 본능, 충동, 정욕이다. 탄생과 함께 몸 안에 갇혀 있다가 몸과 함께 서서히 퇴락하며 죽음을 맞이한다. 유체의 자아는 유전적 자아다. 부모를 빼다 박은 부분인데 신체적으로도 닮았을 뿐 아니라 심리적, 성격적으로도 닮았다. 이 물려받은 개성이 한 개인의 운명을 상당 부분 좌우한다. 부모의 형이상학적 자질이 여기 담겨 있고 잠재적 발전의 기본적 토대 또한 여기 있다. 교육, 부모의 가르침, 개인 스스로의 노력이 그의 운명을 결정짓는 나머지 부분들이다. 유체의 자아는 이 밖에 판단, 추리, 학습 기능을 담당한다. 영체의 자아는 어떤 물리적 힘으로도 파괴할 수 없는 불멸의 정신이다. 영체의 자아가 갖는 유일무이한 목적은 우주의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전일자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배우고 정화하고 모든 부정성을 털어 내야 한다. 이 세 자아들은 평상시에 모두 활동한다. 행동이 필요할 때 이들은 재판관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자아 도는 저 자아가 결정을 주도하여 개인을 특정한 방향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두 신선은 사이훙에게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영적 죽음을 맞이하는 것, 즉 공과 융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려면 사람은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상에 인연을 맺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아이를 낳게 되면 윤회의 사슬에 자동적으로 편입된다. 자신의 형이상학적, 형이하학적 유전자를 후손에 전함으로써 사람은 업을 영속화한다. 깨달은 자가 생물학적 후손을 두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모든 자격을 구비한 수행자는 이 세 자아를 융합시켜 새로운 역동적 자아를 만든다. 새로운 자아는 지상의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나 높이 상승하여 또 다른 새로운 존재의 평면에 도달한다. 현자 중에서도 우주의 근원으로 곧바로 되돌아간 사람은 극소수다. 그 대신 더 이상 태어남도 없고 죽음도 없고 모든 것이 생각만으로 이루어지는 천계에서 머물다가 더 큰 변화를 거쳐 마침내는 공과 합일되기에 이른다. 여러 자아를 묶어 현실 지평을 넘어서는 것은 초인적인 작업임에 틀림없지만 두 신선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고 사이훙에게 말했다. 사람은 무로 돌아가기 위해서 39가지의 존재 단계를 거쳐야 한다. 지상의 삶은 가장 낮은 단계였다.
한 가지 신기한 점은 사부가 죽으면서 자신의 황금태를 제자의 몸에 집어넣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제자는 사실상 사부의 자식이 되는 셈이었다. 제자는 놀라운 힘을 전수 받게 되지만, 이 과정에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사부의 운명까지도 물려받는다. 제자가 좀더 큰 힘을 가지고 운명을 극복하면 사부는 지상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그런 기술을 거의 사용된 적이 없었다.
황금태 수행법에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사이훙은 복잡한 기공, 즉 호흡조절법을 완전히 익혀야 한다. 방법은 여러 가지였다. 소주천 운행, 열두 경락 명상, 기를 통해 기경팔맥열기 등등. 사이훙은 화산에서 이미 그것들을 터득했다. 그들은 모두 12정경과 기경팔맥을 열었다. 그러자 사이훙은 신비의 문의 빛을 그저 상상이 아니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순수한 생명력의 빛이었다. 사이훙은 그 빛을 단전으로 끌어내려야 했다. 그런 다음 단전에서 심장 바로 밑의 강궁까지 끌어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이 에너지의 흐름에서 황금태가 만들어졌다.
사이훙이 이 새로운 명상법을 처음으로 연습한 것은 어두운 밤이었다. 그는 일행이 임시로 기거하던 폐허가 된 도관에서 빈방을 하나 찾아냈다. 어떻게 이 신성한 장소가 파괴되고 구도자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을까? 어떤 미신과 위험이 이곳을 이토록 황폐하게 만들었을까? 그러나 주인 없는 건물이기에 그들이 머물기에는 오히려 좋았다. 사이훙은 앞서 살았던 이들의 구도를 향한 열망이 배어 있는 허름한 방에서 명상에 들어갔다. 그는 풀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양탄자와 사슴 가죽을 깔고 앉았던 화산 시절의 호사스러움은 간 데 없었다. 사지를 정확한 위치에 놓고 두 손은 정해진 방식대로 깍지를 꼈다. 사이훙은 이상적인 자세를 취했다. 일상의 어지러움에 길들어 있던 몸과 마음은 점차 안정된 구조를 되찾았다. 사이훙의 개성은 정확한 조화의 집합에 자리를 내주었다. 그는 생명의 뿌리까지 깊숙이 숨을 쉬었다. 풀려난 에너지는 그가 열어 둔 통로로 올라갔다.
사이훙의 명상은 고유한 기하학적 구조에 따라 진행되었다. 몸에 있는 영적 중추들은 직선상에 있었다. 그것들은 고유한 빛깔과 내적 얼개를 갖고 있었다. 그의 에너지는 선으로 흘러 들어가 경락을 통과했다. 선은 점을 이어 주었다. 연결망이 움직이면서 높은 에너지로 찬연히 타올랐다. 체계에 연속성이 등장했다. 펼침이 시작되었다. 사이훙은 에너지의 흐름을 통제하기 위하여 정확히 사부가 지시한 바대로 했다. 일상 생활에서는 에너지, 몸 속 점들 사이의 거리, 마음이 항상 맴돌고 바뀌었다. 그러나 이제 자신의 개성 구조를 특정한 형태 안에 묶어 두자 집중력이 강화되었다. 도교는 물질과 정신을 가르지 않았다. 육체적이고 가시적인 세계에서 시작하여 형이상학적이고 초월적인 세계로 넘어갔다.
사이훙은 힘을 느꼈다. 가슴 뿌듯했다. 그것은 자신감과 확신이었으며 동시에 위기의식이기도 했다. 그는 명상을 통하지 않고는 결코 영적 성숙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몸 속에서 끌어올린 에너지는 그에게 탐구를 완수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그러나 그가 편입된 기하학적 틀은 도덕과 무관했다. 점과 선의 얼개는 윤리를 몰랐다. 사이훙은 명상을 통해 힘을 얻었지만 선악의 선택은 여전히 그의 손에 남겨져 있음을 깨달았다. 명상은 악한 사람을 선하게 만들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무기를 손에 쥐게 되면 아무리 선한 사람도 유혹을 느끼게 된다. 사이훙은 엄청난 힘과 능력을 확보할 수 있는 영역에서 머물고 싶은 유혹을 억누르면서 자신의 에너지를 더 높이 끌어 올렸다. 그는 스스로를 심장보다 높은 영역으로, 외부 세계와 감각 세계에 무관심해질 수 있는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사위는 쥐죽은 듯 고요했다. 외부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움직임도 이 아슬아슬한 진로의 방향을 바꾸어 놓을 수 있을 것이다. 사이훙은 정수리로 들어가는 문, 즉 정문을 열고 라오쯔의 작은 동굴로 들어섰다. 그의 영혼은 황금빛에 잠겼다. 사이훙은 생명을 주는 태양의 광휘처럼, 수많은 별들의 신성한 불꽃처럼, 그 빛을 받아들이고 끌어안고 그것에 녹아 들고 그것을 사랑했다. 그는 지고의 행복을 맛보았다. 거기에 신이 있었고, 선이 있었고, 거룩하고 신성한 힘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 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완전한 평온과 불멸성이었다.
이 얼마나 간단한가! 사이훙의 사부들은 너무나 당연한 말을 했었다! 그는 사부들을 우둔하고 현실 감각이 없고 가르침에 인색한 별스런 인간들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사부들은 너무도 자명한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를 오히려 안타까이 여겼음에 틀림없다. 신성과 불멸성은 우리 모두의 안에 있었다. 그것은 <문 밖을 나서지 않고도> 알 수 있는 진리였다. 당신들에게 너무도 당연한 것을 입으로 설명하느라 스승들은 얼마나 애를 먹었을까. 이제 사이훙은 보았다. 이제 그는 외부 세계의 그 어떤 것도 이것과 견줄 수 없음을 알았다. 무술도, 아름다운 도자기도, 위대한 문학도, 명성도, 행운도 이 활활 타오르는 생명력에 비할 수는 없었다. 이 순수한 에너지, 활력의 정수는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을 갖고있었다. 그것은 우주의 운행을 최초로 야기한 움직임이었다. 어두운 혼돈의 세계를 처음으로 베어 내어 거기서 현실을 이끌어낸 빛줄기였다. 이제 그 빛줄기는 그의 몸을 따라서 단전까지 내려왔다. 그것은 태양의 따사로운 햇살처럼 반짝거렸고 수분으로 적셔진 영혼의 비옥한 흙을 매만졌다. 그것은 계곡을 덥혀 주었다.이제 그는 창조가 일어나리라는 것을, 황금태가 나타나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말은 헛되다. 그것은 영적 완성의 오묘함을 그리지 못한다. 감정 또한 헛되다. 그것은 탄생의 심오함을 담아 내지 못한다. 남자와 여자는 함께 아이를 만들 때 두려움과 경이에 젖는다. 영적인 탄생을 이해하기란 그보다 몇백 배 더 어렵다. 결국에 가서는 지식도 헛되다. 이 육신의 껍질 또한 헛되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이 육신의 고치에 의지하여 산다. 우리는 피와 살로 된 이 그릇을 사랑한다. 그것은 숭배와 욕망의 대상이지만 질병과 폭력으로 파괴되기도 한다. 다른 생명체로 주린 배를 채우고 어떨 때는 순수한 사랑을, 어떨 때는 추잡한 사랑을 나눈다. 젊었을 때는 그것을 흥청망청 소진한다. 나이 들어서는 그것이 나를 배신했다고 원망한다. 결국은 평생 동안 점점 썩어 문드러지는 육체의 기둥에 갇혀 살아왔음을 깨닫게 된다.
도인들은 인간의 잠재성을 찾아냈다. 그들은 인간의 가능성과 생명력을 찾아냈다. 그들은 불멸의 것을 육신의 껍질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게끔 그 생명력을 변형시키고 인도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불멸의 영혼이 온전하게 모습을 나타낼 때까지 육신을 보존하는 것, 이것이 바로 황금태 명상법의 목적이었다.
사이훙은 새롭게 태어났다. 탄생을 알았고 창조를 알았다. 그러나 죽음 없이는 삶도 없다. 사이훙은 삶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죽음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해 말, 추분이 막 지났을 때 세 사람은 장쑤성의 마오 산으로 향했다. 그들은 산으로 들어가서 외부와 격리된 아늑한 동굴을 찾아냈다. 아침 저녁 하루에 두 번씩 안개가 산허리를 휘감아 돌았다. 그러면 산 아래는 보이지 않았다. 외로운 산정에는 인적이 없었다. 새가 울고 작은 시내가 졸졸 흐르고 바람은 마른 나뭇가지를 흔들어 대었다. 사이훙은 두 신선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더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머지않아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
시후 신선이 말했다.
"이 풍진을 떠돌아다니기 벌써 몇 해인가. 아, 덧없도다."
징취안 신선이 옆에서 거들었다.
"저자에 가서 물건을 좀 사 오너라. 그리고 나서 우리를 위해 장작더미를 쌓아다오."
시후 신선이 말했다.
사이훙은 절을 하고 산 밑으로 내려왔다. 말없이 물러 나오기는 했지만 마음속은 어지러웠다. 그는 화산에서 다른 사부들이 육신을 떠나는 모습을 보았고 도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성취를 두 눈으로 목격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자기의 사부가 아니었기 때문에 별다른 느낌도 없었다. 그러나 시후 신선과 징취안 신선이 이 세상을 하직한다는 소리에는 가슴이 철렁했다. 그들은 죽을 것이다. 이제까지의 공부를 통해 사이훙은 정상인의 죽음은 단순한 변형이며 영적 죽음은 더 높은 의식의 차원으로 올라서는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갑자기 밀려오는 외로움은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은 이제 사이훙을 홀로 남겨 두고 떠나려 한다. 사이훙은 그의 행동을 하나하나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주었던, 하늘 같이 믿었던 사부를 잃게 된다. 이제 겨우 사부를 모시는 일에 익숙해져 있건만. 사실 사이훙은 한 번도 그 틀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가 했던 반항도 사실은 자신이 거부한다던 권위와 긴밀히 얽혀 있었다. 사부가 곁을 떠나면 이제부터 어떻게 지낼지 사이훙은 걱정스러웠다. 화산, 경극단 아니면 왕 쯔핑한테로 돌아갈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했다. 어떤 행태로건 늘 영적 탐구와 관련을 맺고 지내리라는 것이다. 나머지는 모두 덧없고 불안정했다. 여러 날 동안 나무를 하여 장작 더미를 쌓으면서도 사이훙은 인간이 만드는 모든 것은 언젠가 종말을 맞이한다는 생각을 했다.
약속한 날이 밝아왔다. 냉랭하고 안개가 자욱한 이른 새벽이었다. 동굴 속의 두 신선은 앉아서 명상을 하고 있었다. 사이훙은 모닥불 옆으로 그들을 훔쳐보았다. 비쩍 말랐으면서도 대꼬챙이처럼 꼿꼿한 시후 신선은 좀 더 늙어 보였고 주름도 많아진 것 같았다. 불빛에 반사된 그의 백발은 하늘을 가르는 번갯불 같았다. 맑은 눈동자는 영롱한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징취안 신선은 더욱 침착해 보였다. 동굴 어귀를 담담히 응시하는 그의 얼굴은 평정을 잃지 않는 영웅의 모습이었다. 불과 몇 시간 뒤에 이 두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사이훙은 믿을 수가 없었다.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을 앞두고 그들은 어떤 감정이나 그리움을 느끼고 있을지 사이
훙은 궁금했다.
"현자는 자신의 영혼을 저 너머의 위대한 세계로 보내는 방법을 알고 있다."
시후 신선이 속삭였다.
"그는 이미 존재의 더 높은 지평들을 보았다. 그리하여 죽음을 앞두고도 자기가 떠나고 싶어하는 곳에다 마음을 단단히 묶어둘 수 있다. 죽으면 그의 영혼은 그리로 간다."
이번에는 징취안 신선이 입을 열었다.
"보통 사람은 세 자아가 뿔뿔이 흩어져서 삶의 수레바퀴로 다시 말려든다. 새로운 형식을 부여받지만 슬프게도 그가 떠났던 악마 같은 세상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수행을 게을리하지 마라. 그래야 이 필멸의 지평에서 너 자신을 구할 수 있다."
다시 시후 신선이 정감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아직 젊다.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러나 우리는 살 만큼 살았다. 구도의 길을 계속 걸어라. 화산의 네 사부 곁으로 돌아가라. 너를 자상하게 이끌어 줄 분이다."
"우리가 떠난다고 섭섭해하면 안 된다."
사이훙이 눈시울을 붉히는 것을 보고 징취안 신선이 말했다.
"이것은 육신의 껍질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벗어 던지는 옷가지와도 같다. 우리의 참된 자아는 순수한 빛으로 나타날 것이다. 슬퍼하지 마라. 우리의 승리를 기뻐해 다오."
"잘 있거라."
시후 신선이 눈을 지그시 감으며 말했다.
"저 너머 세계를 보아라."
징취안 신선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 역시 눈을 감았다. 사이훙은 꼼짝 않고 있는 두 육신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그 부동성의 내부에서 역동적인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사이훙은 알고 있었다. 그 안에서는 이제껏 어떤 인간이 보여 주였던 에너지보다도 더 강한 에너지의 흐름이 정수리를 향해 솟아오르고 있었다. 서서히 그들의 몸은 어둠으로 접어들었다. 동맥은 힘을 잃어 갔다. 장기는 기능을 멈추고 말라 갔고 신경들은 무디어 갔다. 생명의 모든 자취가 위로 몰렸다. 거기서 끝이 났다. 육신은 기울었다. 태양은 머릿속에 갇혔다. 세 자아는 하나가 되고 그 강력한 융합 속에서 영혼은 스스로 떠나갔다.
지켜보는 사이훙의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20분쯤 걸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다림의 시간이 사이훙에게는 영원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세상을 하직했는가? 아니면 가만히 있는 것인가? 사이훙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를 아까부터 내내 생각하고 있었다. 마치 그래야 기운을 조금이라도 차릴 수 있는 것처럼.
드디어 사이훙은 알아보기 위해 일어섰다. 숨도 맥박도 없었다. 그들은 죽어 있었다. 그들은 삶을 초월했다. 초인적으로 죽었다. 마치 우주의 윤회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사이훙에게 남은 것은 두 신선의 비범한 삶에 대한 기억뿐이다. 사이훙은 이제 부상, 사고, 질병, 운명의 장난, 성격적인 약점을 혼자서 감당해야 했다. 그는 자신이 길 잃은 아이처럼 여겨졌다. 어른들이 모두 떠나간 집에서 알 수 없는 물건들에 둘러싸여 갇혀 있는 아이처럼.
사람들은 누구나 영웅은 패배하지 않으며 은둔자는 불멸의 육체를 가진다고 믿고 싶어 한다. 그들은 죽음을 모면할 수 있다는 증거를 갖고 싶어 한다. 전설과 종교, 심지어는 어린아이가 읽는 동화를 보아도, 죽음에 대한 즉물적인 공포와 죽음이라는 절대 법칙을 깨뜨릴 수 있는 사람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가 나타나 있다. 영웅의 경지에 올라서지 못한 사람들이 마지막 적수를 쳐부수는 누군가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얻는 심리적 위안, 이것이 바로 영웅의 존재 이유였다.
어느 시대에서건 사람들은 쓰러진 인간을 신화를 통해 절묘하게 포장했고 죽음을 교묘하게 숨겼다. 사실은 적에게 참수당한 구안 공이 불멸의 존재로 떠받들어졌다. 수많은 도인들이 용의 등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존재라고 미화되었다. 수없이 많은 연금술사들이 - 심지어는 진시황까지도 - 자기들이 불사의 영약이라고 믿은 물질을 먹고 죽어갔다. 인간은 어리석게도 영웅을 쥐어짜 냈다. <보살>, <예수>, <불사신>을 원했다. 자기의 육신으로 전 인류의 어마어마한 죄를 감내하려는 인간을 애타게 갈구했다. 죽음의 형벌로부터 누군가가 자기들을 구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사이훙은 여기 혼자 있었다. 스승들은 가버리고 이제 그는 자신의 모든 육체적, 정신적 나약함을 혼자 힘으로 극복해야 한다. 그들은 사이훙의 세상살이와 초월을 모두 그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것으로 남겨두고 말 없이 떠났다. 그들은 종교라는 익살극을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자기 자신을 위해서 죽음을 초월하는 방법을 보여 주었다. 사이훙은 자신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모든 고통과 질병을 견뎌내고 자신의 유한성에서 갖가지 고난을 이겨내어 마침내 고독하고 순결하게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사이훙은 자리에 앉았다. 그가 온몸으로 빨아들이려고, 생생한 증인이 되려고 애썼던 순간을 기리기 위해서. 나도 죽는다는 생각에 사이훙은 자기도 모르게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는 두 도인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미 작아져서 인간에게서 멀어진 것처럼 보였다. 촛불과 향만 있었더라면 사이훙은 산 속의 작은 사당에 있는 셈이나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그들은 깎아 놓은 상처럼 단단히 그 자리에 박혀 있었다. 2년을 함께 보냈건만 그들을 처음 만난 날 밤 이후 그들이 살아온 내력이나 배경에 대해 새로 알게 된 것은 없었다. 그들은 여전히 수수께끼였다. 사이훙은 묻고 싶은 질문이 수없이 많았지만 그들은 사이훙에게 아무런 답도 주지 않고 이승을 떠났다.
사이훙과 두 도인 사이에 쳐진 장막은 거둬 낼 수가 없었다. 그 장막은 불투명했다. 죽음의 장막 뒤에서 그들이 말을 걸어오면 얼마나 좋을까, 사이훙은 턱없는 기대를 걸었다. 죽음 너머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 그들의 입에서 들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이훙은 한숨을 내쉬었다. 산자에게 죽음은 끝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동굴이 희뿌옇게 밝아왔다. 사이훙은 그제서야 자기가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살아 있는 사람이 할 일을 가졌다는 것은 다시 없는 복이라고 그는 새삼스럽게 생각했다. 죽음이 나타나면 인간은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지만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그 무서운 마비 상태에서 헤어나오는 것이다. 사이훙은 한 사람씩 동굴에서 꺼내 관 위에 눕혔다. 사이훙은 불이 잘 붙도록 참깨 씨를 두 도인의 몸에다 뿌렸다. 어쩌면 그들이 돌아올지 모른다. 사이훙은 왠지 조금 기다려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잠시 꿈나라에 간 것처럼 너무도 멀쩡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이훙의 감상이었다. 두 도인은 영원히 가버렸다.
사이훙은 동굴에서 횃불을 가져온 다음 장작더미에 불을 붙였다. 처음에는 점잖게 조그맣게 타올랐다. 그러나 얼마 뒤 겹겹이 쌓인 장작을 단숨에 타고 오른 불길은 두 시체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솟아오르는 화염을 보니 와락 겁이 났다. 육신이 불에 타는 광경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사이훙은 달려가서 불을 끄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눌렀다. 무력하게 허물어지는 인간 앞에서 느끼는 정의감은 과연 뿌리 깊은 것이었다.
육신에서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불길은 순식간에 옷을 집어삼켰다. 불꽃이 더 높이 치솟고 나무가 갈라지고 불꽃이 튀었다. 연기가 솟아 올랐고 사이훙은 뜨거운 열기를 피하기 위해 뒤로 물러서야 했다. 안개는 여전히 자욱했다. 태양은 창백하게 빛나고 있었다. 사이훙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조용한 아침은 온통 불꽃으로 물들었다.
이틀 뒤 사이훙은 재를 수습하고 조각난 뼈를 바수어 숲에다 뿌렸다. 그는 동굴로 돌아와서 자신이 머물렀던 흔적을 주의 깊게 없앴다. 모닥불을 피웠던 자리의 흙은 뒤집고 바위는 물로 깨끗이 씻었다. 그 길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다. 두 사람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졌다. 사이훙은 깎아지른 벼랑 위에 서서 은빛 안개를 내려다보았다. 지금껏 살아온 삶이 꿈처럼 느껴졌다. 이것이 꿈이라면 지금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한때 도에서 벗어났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것을 다시 찾아낸 그 자신이었다. 도를 추구하는 사람은 혼돈과 감상주의 그리고 도와의 합일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물리쳐야 한다. 반평생을 살아오면서 사이훙은 그의 가문, 장난기, 우유부단한 성격, 호전성, 미적 도취, 규율에 대한 반감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거기에 굴복할 때마다 그는 도에서 멀어졌다. 화산을 떠나 상하이 거리로 나섰을 때 그는 한 마리 부유하는 나비와 다를 바 없었다.
시후 신선과 징취안 신선은 사이훙의 시야를 감정 너머로 열어 주었다. 그들의 가르침 덕분에 사이훙은 자신이 격정과 맹목적인 반항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날개 없이도 정말로 날 수 있게 감정을 두고 떠나는 방법을 배웠다.
두 신선은 단순한 기술적 지식과 주지주의, 심지어는 경전도 맹종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신전은 바로 그의 몸이었고 신성은 그의 안에 깃들여 있었다. 그런 간단한 이치를 파악하게 된 연후에는 모든 배움은 번거롭게 된다.
사이훙은 진리를 향한 도정에서 자꾸만 발을 헛디뎠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밥 먹듯이 되풀이했지만 그것은 그가 성장에 이르기 위해 거쳐야 할 피할 수 없는 과정이었다. 그는 노력했다가 실패하고 다시 기어올랐다. 사이훙은 그의 안에서 무언가가 성장하는 것을 절감했다. 그것은 수행을 통해 얻을 수 있다던 단순한 신체적 에너지의 차원을 넘어선 새로운 본성의 발현이었다.
원래의 참된 자아가 마침내 싹이 터서 만개한 것이다. 사이훙은 <깎이지 않은 덩어리>가 무엇인지를 알았다. 그것은 감정적 동요와 오해와 사회화로 손상되지 않은 청정무구함이었다. 도를 통해서 그의 안에서는 빛과 순결의 황금태가 자라나고 마침내는 그것이 진리에 닿게 될 것이다.
날이 밝자 사이훙은 하산하기 시작했다. 파릇파릇한 나뭇잎들은 하얀 줄기와 대비되어 더욱 선명해 보였다. 빨갛고 노랗게 물든 잎들도 있었다. 숲은 떨어진 단풍잎으로 덮여 있었다. 앙상한 줄기는 하늘로 뻗어 있었다. 사이훙은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촉촉한 흙냄새가 맡아졌다. 식물도 숨을 쉬고 있었다. 구름 사이로 해가 나왔다. 사이훙은 웃었다. 그는 떠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