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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하는 수도자 관 사이홍의 구도기 2

3부 전쟁, 방랑, 명상

 

14. 우당산

십대 초반에 이른 사이훙은 무술가들로부터 무학 수업을 받기 위해 각지를 두루 여행했다.

"그 사람들은 뭔가 독특한 재주를 가지고 있는 무술의 고수들이야. 그러나 그들은 후계자도 없이 죽어 가고 있어. 이제 네가 그들에게 가서 무술을 익히는 게 좋겠다. 권법을 익히는 것은 너의 정신력이나 실전 기법을 모두 향상시켜 줄 게다."

사부님의 말씀에 따라 사이훙은 무학을 배우기로 하였다. 사부님과 사이훙의 할아버지는 무림의 고수이자 높이 존경받는 분들이었다. 덕택에 사이훙은 무림의 유수한 고수들로부터 무학 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무술 공부는 사이훙이 가장 강렬하게 흥미를 느꼈던 분야인데, 나중엔 도교 공부보다 더 더 중요한 것처럼 되어버렸다. 그 때문에 사이훙은 자주 지방 무술 대회에 출전했다. 사이훙에게 권법을 가르친 사범들은 그를 대단히 엄격하게 훈련시켰다. 사이훙은 개인 지도든 단체지도든 가리지 않고 유명한 사범이라면 모두 쫓아가서 사사 받았다. 그가 무술 수업을 쌓으면서 여행했던 곳 중에서 가장 영험한 곳은 우당산이었다. 우당산은 도교 무학의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도교의 북두궁 분파에서 신성하게 받드는 산이다. 북두궁 분파가 중심으로 추구했던 것은 내공법과 무술이었다. 수세기 동안 무수한 권법가들과 심오한 내공력을 성취한 사람들이 72개의 봉우리가 첩첩이 쌓인 우당산에서 배출되었는데, 14세기의 유명한 고수이자 태극권을 창시해 냈던 장삼봉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또한 한때 소림사에 원한을 쏟아 부었던 복수의 화신 백미도인도 우당산 출신이었다. 실전 위주의 우당파 무술을 사이훙은 네 사람의 권법가에게서 배우게 되었다.

네 명의 무술 사범은 도사가 아니라 무사였는데, 다만 우당산에 은둔하여 생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과거에 무림에서 저질렀던 무수한 살인을 참회하고 도교에 귀의하게 위해 우당산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받아준 도사들의 관용에 대한 보답으로 철나한권, 백학, 후권, 사형도수를 도교의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있었다.

철나한권을 가르치는 사범은 40대의 남자였는데, 실전에 통달한 무사였다. 소림사의 승려였던 그는 근육질의 체격과 이상적인 기질의 소유자였다. 그 사범은 항상 영웅적인 무사의 이미지를 보여 주고 싶어 했다. 그야말로 방랑하는 정의로운 무사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이상도, 자비심도 없이 오로지 살생만 일삼는 무사들은 그를 깔보았다. 그러나 철나한권 사범은 자신의 원칙에 따라 약자를 도와주었으며, 제자들에게 권법과 아울러 영웅적인 심성을 심어 주려고 노력했다.

철나한권은 단가 권법과 장권, 철사권, 그리고 108나한권으로 구성되며, 강인한 근력을 강조하였다. 그 사범은 온몸이 강철처럼 거칠고 단단해야 한다고 가르쳤으며, 가장 중요한 곳은 팔의 하박골이라고 하였다. 만약 하박골이 튼튼하지 못하면 방어를 제대로 할 수 없고, 상대방을 붙잡는 힘이 약해지며, 권법에도 힘이 없게 된다.

하박골을 단련하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사이훙은 양팔을 옆에 붙이고 두 개의 의자 등판 꼭대기에 머리와 발목만 걸친 채 공중에 떠 있는 훈련을 했는데, 점점 더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두 손목에 매달아 훈련의 강도를 높여 갔다. 그뿐만 아니라 넓이뛰기, 높이뛰기, 주먹 힘 기르기 훈련도 쉴 새 없이 해야만 했다. 철나한권 사범은 탈진할 정도로 엄격한 훈련을 매일 계속해야 건강한 힘을 갖출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백학권을 가르치는 사범은 지독하게 깡마른 50대의 사나이였다. 그의 얼굴은 길쭉하고 턱은 뾰족했으며, 흰자위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검은 눈동자가 컸다. 숯이 적은 머리는 변발은 하고 있었다. 두 팔은 풀잎처럼 가늘었으며, 긴 다리에 발가락을 내놓고 마치 학처럼 걸어다녔다.

백학권은 기와 자세를 최대한으로 사용하는 권법이었다. 몸의 균형과 기의 순환은 중요한 문제였다. 철나한권 사범이 근력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백학권 사범은 기를 품고 사지를 넓게 펼치며 정확한 자세를 잡으라고 가르쳤다.

그 사범은 끝없이 대련을 시키면서 자신이 가르치고자 하는 요점을 직접 실습해 보였다. 사이훙은 철나한권으로 자신 있게 돌격했다. 그러나 그는 백학권 사범의 몸에 손가락 하나 댈 수 없었다. 그 사범은 사이훙의 공격을 막지 않고 다만 새처럼 우아하게 계속 자세를 바꿔가면서 사이훙의 공격을 피하기만 했다. 그는 날아가는 학처럼 보였고, 한쪽 다리로만 서서도 사이훙의 공격을 피했다.

이윽고 사범은 강의를 시작했다.

"학은 새다. 새들은 자부심이 있고 도도하다. 새들은 자세 잡기를 좋아한다. 날씬한 몸을 자랑하는 것이지. 이것이 바로 백학권의 특징이다. 적이 공격해 온다고 치자. 그러나 너는 가장 아름다운 자세를 유지하는 것에만 관심을 두면 된다. 그가 공격하도록 내버려 두어라. 너는 오로지 자세를 잘 잡는 일에만 신경 쓰면 된다. 만약 적이 네 날개 곁을 스치다가 네 부리에 쪼였다면, 그것은 네 자세 때문인 것이다. 먼저 공격 방법을 구상해 놓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백학권 사범은 곧 파괴적인 공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는 다섯 손가락은 한데 모아 새부리처럼 만든 학권을 좋아했다. 공격 방식은 아주 교묘했다. 모든 힘이 아주 적은 범위에 집중되어 충격의 강도를 높인 것이었다. 학권은 급작스러운 돌려 치기라든가 지그재그 공격법 같은 것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모든 공격이 전혀 예상치 못한 각도로부터 이어졌다. 백학권 사범은 갑자기 방향을 바꾸며 사이훙의 방어망을 뚫고 들어와 눈, , , 혈도 등을 쪼아댔다.

원숭이의 동작을 본뜬 후권을 가르치는 사범은 광대처럼 보였다. 그는 진지해 보이는 적이 거의 없었으며, 쉬지 않고 웃고 떠들어댔다. 그는 외로운 원숭이처럼 작고 음습한 숲속에 진흙으로 지은 허술한 집에서 살았다. 다리는 짧고 굵었으며, 팔은 괴상하게 길고 축 처져 있었다. 유쾌해 보이는 넓적한 얼굴은 짧게 깎은 머리 때문에 더 크게 보였다. 그는 농담을 즐겼으며, 자주 원숭이를 흉내내며 재주를 넘어 수련생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후권은 곡예, 기공, 유연한 몸, 집중력, 그리고 체력이 기본 조건이었는데, 유연함이 특히 중요했다. 사범은 유연성이 신체와 정신 상태뿐만 아니라 영성계발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원숭이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도교의 문하생들아, 봐라."

사범은 언제나 킬킬대며 말했다.

"언젠가 너희도 커서 어른이 되고 오랜 명상의 세월과 더불어 도교의 법사가 될 테지만, 원숭이들은 너희들 보다 명상을 더 잘한단다. 원숭이들은 이미 명상하는 방법을 알고 있거든. 숲속을 조용히 돌아다니다 보면 개울가에 앉아 있는 원숭이나 망연히 물을 바라보고 있는 원숭이를 만날 수 있을 게다. 움직이지도 않고 아무것도 안 하면서 그냥 앉아 있을 뿐이지. 원숭이는 완전한 정적 속에 있다. 다만 생각할 뿐이다. 자기를 가르쳐 줄 도사도 필요 없다. 또 너희는 높은 나무 꼭대기에서 완전히 자기를 잊어버리고 앉아 있는 원숭이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땅에서 30미터는 됨직한 높이에도 떨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기가 똑똑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원숭이는 전략을 알고 있다. 그는 <나는 적보다 나중에 움직이지만 적보다 먼저 도달한다.>는 격언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원숭이를 때려보거라. 그놈은 굴러서 도망가면서 경계하는 자세를 보일 것이다. 그놈은 상대가 또다시 움직일까 봐 거기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그대로 앉아서 상대방의 거동을 살핀다. 원숭이가 정신을 놓고 있는 틈을 노려 그놈을 붙잡으려고 해도 소용이 없단다. 너희가 움직이면, 그놈은 너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잽싸게 반응한다."

후권의 공격 방법은 양주먹 동시에 뻗어 치기, 깨물려고 하다가 꼬집기, 따귀 때리듯 손바닥 치기, 손가락을 갈퀴처럼 만들어 할퀴기 등 독특하고 다양했다. 사이훙은 이상한 원숭이 보법도 배웠다. 다리를 활처럼 벌리고 중심을 잡지 않고 걷고 뛰는 것이었다.

"원숭이는 똑바로 설 수가 없기 때문에 언제나 움직이고 있다. 너희는 이러한 동작을 반드시 시합에서 사용해야 한다."

후권 사범과 대련하는 것은 웃기면서도 무서운 것이었다. 매번 대련이 시작되기 전에 그는 사이훙이 먼저 공격하도록 허점을 보이면서 정신없이 사이훙의 주위를 뛰며 돌아다녔다. 그는 자신의 주전자 같은 머리를 흔들어대며 언제나 원숭이처럼 겅중거리면서 사이훙을 놀려댔다. 그러나 사범이 한번 공격하고자 결심하면 참으로 두려웠다. 사이훙은 거의 예외없이 도망조차 칠 수가 없었다. 사범은 가혹하게 그를 추적했고, 마치 고통 따위는 느끼지 않는다는 듯이 원숭이처럼 펄쩍뛰면서 사이훙을 잡아먹을 듯이 덮쳤다.

사이훙이 네 번째로 사사한 우당산의 무술가는 사형도수를 가르치는 차갑고 사악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을 존경하기를 바라지도 않고 인정을 바라지도 않았다. 그는 무서운 사람으로 남기를 바랐으며, 다른 사범들조차 모두 그를 피했다. 큰 키에 비석처럼 단단한 신체를 가진 그는 언제나 어두운 그늘에 몸을 숨기고 파충류 같은 살벌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쏘아보았다. 그는 음식도 차가운 음식만 먹었다.

그는 화산의 박쥐신선이 연마하던 태음공과는 또 다른 음공을 쌓았다. 그의 음공은 어둡고, 축축하며, 지옥과 같은 것이었다. 그의 영혼은 저승의 귀신들과 내통하고 있었다. 힘말고는 모든 것이 부차적인 것이었다. 그는 춥고 깊숙한 곳에서 자신을 고수로 만들어 준 살인적인 권법과 잔인한 신념을 이끌어냈다.

사이훙은 여러 스승을 대해 봤지만 이 사람만큼은 정말 두려웠다. 사형도수 사범은 대련할 때에도 아주 잔인했다. 그는 무덤의 묘비명 같은 침묵을 깨고 칼로 자르듯이 짧게 말했다. 겉으로 보면 제자를 가르치면서 잘못을 고쳐주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제자들의 인격이나 자세에서 결함을 발견해 내었다. 그의 됨됨이와 무술은 모두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

사형도수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공격 방식은 손을 펴서 손가락 끝으로 찌르는 것이었다. 철나한권은 주먹으로 치는 것이었고, 백학권은 손으로 쪼는 것이었고, 후권법은 손가락을 갈퀴처럼 만들어서 할퀴는 것이었다. 사형도수 사범은 말은 안 했지만 사이훙을 믿는 눈치였다. 사범은 때때로 문하생들을 이끌고 도살장으로 가서 소의 옆구리에 손을 찔러 넣는 것을 보여 주었다.

"꿰뚫는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공을 쌓아야만 한다. 내공은 풀잎처럼 연약해 보인다. 풀잎은 바람에 몸을 맡긴다. 그러나 태풍조차 풀잎을 꺾거나 뿌리뽑지 못한다. 풀잎은 너무나 유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풀잎은 너희들의 손을 벨 수가 있다. 너희들이 찾아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유약한 힘이다. 적이 공격해 오면 너희들은 힘을 굽히고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처럼 몸을 흔들어 그의 공세에 길을 열어 주어라. 그의 힘이 극한에 이르렀을 때 그 힘을 흡수하고, 바로 그 순간 가차없이 휘둘러 쳐라."

사이훙의 공격을 유도하는 사범의 두 눈은 번쩍거렸다. 그는 마치 뱀처럼 몸을 휘두르면서 공격을 피했다. 사이훙은 사범을 붙잡고 꺾어 조르려고 시도해 보았다. 그러나 사범의 두 팔은 마치 고무 같았다. 사범은 경멸하듯, 그 상황에 쾌감을 느낀다는 듯 사이훙을 반격해 왔다. 사범의 팔이 사이훙의 머리 언저리를 감돌며 칠 듯 말 듯 놀려대다가 순식간에 사이훙의 온몸이 멍들도록 손가락 끝으로 쑤셔 버렸다.

"네 방어법은 너무 열려있다."

사범이 냉소하듯 알려 주었다. 그는 사이훙의 아픈 곳을 주무르는 모습을 곁눈질로 보면서 말했다.

"만약 내가 너를 아프게 하지 않았다면 너는 어디를 공격받았는지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네가 지금 맞은 곳이 네가 가진 약점이다. 이제 그곳을 방어하는 것을 잊지는 않겠지."

사형도수 사범은 치명적인 급소들만 공격했다. 그의 공격은 상대방을 불구로 만들거나, 오장육부를 상하게 했으며 심지어는 죽게도 만들었다. 사이훙은 열심히 손가락으로 땅을 짚고 팔굽혀펴기를 하고, 딱딱한 모래주머니를 손가락 끝으로 찌르며 부단히 연습을 했다. 사범은 손가락이 적의 몸을 3센티 정도는 꿰 뚫을 수 있어야만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뱀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적을 살해한다. 뱀은 물거나, 몸을 감아 졸라서 질식시키는데, 언제나 적의 급소를 공격한다. 뱀은 먹이를 몸으로 감은 뒤, 먹이가 몸부림치는 동안에 먹이의 급소를 꼬리로 공격한다. 사형도수는 이것을 관찰하여 얻은 기술이다. 사형도수의 공격은 신체적으로 근육의 힘을 사용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내공 또한 사용한다. 손가락이 목표물을 찌를 때 기를 손가락 끝에 모아라. 정확하게, 한 치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는 사이훙을 가볍게 쳤다. 그러자 사이훙은 곧 숨이 막혔고, 필사적으로 숨을 들이쉬기 위해 헐떡였다. 사범은 사이훙이 한참 동안이나 고통스러워하면서 몸부림치도록 내버려두었다. 잠시 뒤에 그는 추궁과혈법을 사용해서 사이훙의 몸을 마사지해 주고, 등을 두드려서 사이훙의 막힌 혈도를 풀어주었다.

"이것이 바로 사형도수다. 사형도수는 적은 완전히 정복하는 것이다.“

사형도수 사범은 정신병자 같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도사들은 그를 우당산에 머물게 함으로써 그가 더 많은 죄를 짓지 않도록 통제하고, 좋은 뜻으로 무술을 전승시킬 수 있도록 만들려고 했다. 화산의 사부님이 사이훙을 가르칠 때 반복해서 강조한 것이 있었다. 무술사범의 기술을 배워서 받아들이는 것은 현명한 일이지만 전체적인 인격까지 모두 모방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점이다. 사이훙은 우당산에서 가르치는 모든 무술을 배우면서도 자신의 도교철학은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사이훙은 이제 대단한 무술 실력을 쌓았으며, 그 기술은 급한 성질과 결합되어 호전적인 기질을 띠게 되었다. 그러나 그를 언제나 잘 살펴보고 있던 도관의 사부님들은 그에게 언제나 겸손해야 한다고 주의를 주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그와 동문 사형제들은 우당산을 떠나서 화산으로 돌아오는 여정에 올랐다.

길가의 어느 찻집에 머무르고 있을 때였다. 그들을 인솔하던 도사 한 분이 다음과 같이 도교의 입장을 설명해 주었다.

"무술을 배우는 것은 자신감을 얻으면서도 교만한 마음을 없애기 위해서이다. 너희들의 자신감은 너희들을 이 세상에서 가장 온화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만약 너희가 무술 실력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너희에게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너희들은 그들은 무시하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힘없는 이들이 너희들에게 해코지할 수는 없단다. 그들이 너희들을 상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스스로 잘 싸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능력을 드러내지 말거라. 폭력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위험한 사람은 무사가 아니라 소인배들이다. 그들은 힘이 없기 때문에 언제나 자기들이 <힘이 없다고 보여 주어야만>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나약함과 무지는 그들을 교만하게 만든다."

"여러분, 저 도교의 나이 어린 시자들을 좀 보소!"

찻집에 있던 어떤 사람이 떠들었다.

"여자 맛도 보지 못한 애송이들이잖아!"

그의 옆에 있던 동료가 맞장구치며 웃어댔다. 사이훙의 기질이 즉시 불붙었다. 그러나 사이훙 일행을 인솔하던 도사는 그 사람들을 훑어보더니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적대적인 장면에서 초연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 가버리는 것은 그를 더 강한 사람으로 만든다. 너희들은 누군가를 살상하기 위해 무술을 배웠던 것이 아니며, 유명해지기 위해서 그랬던 것도 아니다. 또한 종교적으로 높은 차원에 이르기 위해서 배운 것도 아니다. 너희들에게 무술을 가르쳤던 목적은 극기와 자기 방어를 위해서였다."

"저 애송이들이 전부 다 숫총각들이란 말이야?"

그 남자가 동료에게 말했다.

"그런 것 같아. 사실 말이지. 저 송사리 같은 애들은 불알도 가지고 있지 않을 거야! 이것 봐, 꼬맹이 도사님들, 불알이나 달고 있나?"

그의 동료가 큰소리로 합세했다.

"뭐 달려 있다고 해도, 저 애들 것은 요 복숭아 씨보다도 작을 거야!"

"저 애들이 여자를 본적이나 있는가 몰라? 여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나 있을까?"

"! 저놈들은 아마 여자를 놓고도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모를거야!"

사이훙은 금방이라도 뛰어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의 근육은 잔뜩 긴장되어 있었다. 그는 도사의 허락하는 눈빛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도사는 한가로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웃고 있는 두 사람을 온화한 눈빛으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도사의 집요하고도 그윽한 시선에 붙잡히자 그 두 사람은 당혹스러웠든지 점차 조용해졌다. 잠깐 침묵이 흐른 뒤에 도사는 사이훙 일행에게 떠나갈 채비를 하라고 신호를 주었다.

"무지함을 드러내 보이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싸움질을 하면 안 된다. 너희들은 자신의 실력을 알고 있으니, 그들이 너희에게 당하게 될 고통을 먼저 생각하고 이해해 주어야 한다. 그들을 미워하는 대신 자비심을 가져야 한다."

 

15. 양 청푸와 태극권

사이훙은 계속해서 사부와 할아버지의 소개로 무림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권법의 고수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당시 무림의 대표적인 고수들로는 형의권의 쑨루탕과 바오 톈이, 팔괘장의 푸정쑹, 장 자오동, 그리고 태극권의 양청푸 등이 있었다.

사부는 사이훙에게 무림을 두루 다니며 내공의 기초를 닦으라고 일렀다. 기술과 기교로 싸우는 외공에 비해 내공 무술은 기공과 명상을 응용해 내적 에너지를 분출시키는 데 더 주안점을 둔 무술이다. 형의나 팔괘, 태극은 그 내공이 각기 독특해 나름대로 한 유파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태극권은 최상승의 내공법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당대 태극권의 최고수인 양 청푸는 베이징에 개인 도장을 열고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해마다 여름이면 양 청푸가 화산에 들렀기 때문에 사이훙은 어릴 적부터 그를 잘 알고 있었다. 어린 사이훙은 그를 <양 아저씨>라고 불렀고, 양 청푸는 사이훙을 <꼬마 원숭이>라는 애칭으로 불렀었다. 그런데 그 꼬마 원숭이가 벌써 혼자 여행을 다니고, 마냥 재롱을 떨며 달라붙던 아저씨를 사부라고 부를 만큼 장성한 것이다.

양 청푸는 사이훙을 따뜻하게 반겼다. 양 청푸는 180이 넘는 거한으로, 뾰족한 정수리가 드러나도록 깎은 머리와 강인한 얼굴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듯이 단단해 보였다.

양 청푸에게 가르침을 받는 동안, 사이훙은 양사부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되었다. 사이훙이 어려서부터 알고 있던 양사부의 모습은 온화하고 세련된 모습이었다. 안경까지 걸친 그의 모습은 일생을 책 속에서 파묻혀 지낼 서생처럼 보였다. 사이훙은 그런 양사부의 모습을 좋아했다. 하지만 양사부가 일단 싸움을 시작하면 잔인하고 악랄한 초수를 펼친다는 것이다.

베이징에 있는 양 청푸의 도장에 도착한 사이훙은 곧 양 청푸의 제자가 되었다. 고명한 고수의 손자로서, 또 화산파의 제자로서 태극권 대가의 몇 안 되는 수련생 반열에 들 수 있었던 것이다.

몇 주 뒤에는 양사부와 사형으로부터 태극권의 기초를 전수받기 시작했다. 태극권은 내공을 증진하기 위한 체조와 명상, 그리고 실전에서 쓰이는 무술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권법이다. <최상의 권법, 궁극의 권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양한 수련 자세와 수련 기구를 이용하였다.

사부와 사형은 먼저 물 흐르듯 유연하게 움직이는 몸 동작과 태극권 고유의 내공 수련 자세를 가르쳤다. 기립 명상과 가부좌 명상 자세는 물론이고, 효과적인 수련을 위해 태극봉(양 끝에 손잡이가 달리고 가운데 구멍이 파진 나무 막대)과 태극구(직경 1미터의 둥근 돌과 작은 구슬)를 사용하는 방법 등을 가르쳐 주었다. 이 모든 방법은 수련자들이 스스로 정문과 심문을 열 수 있게끔 내공을 단련시키고 증강시켜 주었다.

사이훙이 기본 동작을 익히자 태극권의 자세는 운기행공으로 넘어갔다. 행공에는 소주천을 따라 기를 상반신에서 수직으로 환류시키는 것과 대주천을 따라 사지 전체로 골고루 순환시키는 것이 있었다. 이 같은 운기 과정을 통해 모인 내공은 자연스럽게 정문을 쳐올리고 심문을 뚫어 주어 인간 내면에 잠재된 에너지를 물 흐르듯 모아주었다. 기를 순환시켜 증강된 내공은 심적 안정과 근육 이완 효과를 가져왔으며, 신경 및 장기, 골격 등에 생긴 이상을 회복시키는 치유 기능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상대의 몸에 직접 손을 대지 않고도 적을 물리치는 투기로서의 기능을 아울러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태극권의 고수가 내공을 사용하여 적을 공격하면 그의 몸에서 나간 기가 주먹으로 직접 때린 것보다 훨씬 큰 힘으로 상대의 몸 구석구석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태극권이 가진 특성은 이런 파괴와는 거리가 멀다. 다른 권법이 힘과 강한 타격을 기본으로 하는 데 반해 태극권은 부드러움과 유연함을 강조했다. 태극권을 수련한 자들은 공격에 대해 유연하게 반응한다. 머릿속의 잡념을 지우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근육이 긴장되어 기의 흐름을 막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싸우는 동안에도 편안한 자세와 냉정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 신체의 긴장이 풀리면 오히려 적의 공격 방향과 공격 강도를 쉽게 알아챌 수 있으며, 동시에 몸을 움직이는 것도 훨씬 수월해진다. 그러니 이 부드러움이야말로 내공 무술의 정수인 것이다.

기본 훈련과 행공을 거친 사이훙은 태극추권을 수련하면서 더욱 심화된 태극권을 맛볼 수 있었다. 이는 민감한 손을 회전시켜 공격해 오는 상대의 가격을 막고 동시에 내공으로 그를 밀쳐내는 권법으로, 수많은 대련 과정을 통해 동작을 완벽하게 익혀야 한다. 태극권은 그야말로 <최상의, 궁극의> 권법이었고 양 청푸는 수십 년에 걸친 수련으로 그 사실을 충분히 입증해 주었다.

사이훙은 의외로 빨리 양사부의 냉혹함을 목격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양사부는 가족과 제자들을 데리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양 청푸는 식사를 마치고 식구들보다 앞장서 식당을 나섰다.

"뒤로들 물러서라!"

식당을 나서던 양 청푸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고 동시에 두 명의 괴한이 나타나 돼지 잡는 바구니를 양 청푸에게 뒤집어씌웠다. 등나무 줄기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폭이 좁은 바구니가 양사부의 팔과 몸통을 꽉 죄었다. 양사부가 바구니를 벗으려는 순간, 괴한 중의 하나가 바구니를 식당 아래 언덕으로 차버렸다.

아마도 양 청푸를 꺾어 무림의 명성을 얻고자 하는 자들인 듯싶었다. 바구니가 굴러 내려가기 시작하자 두 괴한은 칼을 빼들고 언덕 아래로 줄달음을 쳤다. 언덕 아래에는 동료로 보이는 또 다른 두 명의 괴한이 칼을 치켜들고 바구니가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네놈들이 다냐?"

바구니가 멎자 양사부가 물었다. 언덕에서 달려 내려온 자들까지 가세해 모두 네 명이 된 괴한들은 대답 대신 칼을 치켜들며 바구니로 다가섰다.

"좋았어!"

양사부는 흔쾌히 외치고 나서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부드러운 손동작 하나로 바구니는 쉽게 벗겨졌다. 양 청푸는 괴한들 앞에 우뚝 섰다. 거리의 어슴푸레한 빛에 드러난 그의 모습은 이미 험상궂은 신상의 모습이었다.

"나를 죽이고 싶다 이거지?"

양사부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그것 참 안됐군. 그럴 수가 없을 테니. 주위나 한 번씩 둘러봐. 오늘 저녁이 네놈들의 제삿날이 될 테니 말이야."

네 명의 괴한은 양사부를 향해 재빨리 칼을 내 찔렀다. 양사부는 느릿한 동작으로 칼을 피하더니 두 사람의 심장에 각기 한 초를 펼쳤다. 거의 같은 동작으로 몸을 돌리며 다른 두 명의 목을 가볍게 틀어쥐었다. 네 명의 괴한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양사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손을 툭툭 털고 언덕을 올라왔다.

무림계에서 최상의 무술이란 없다. 단지 고수에 의해서 증명될 뿐이다. 태극권도 수많은 도전자들을 물리치면서 무림의 독특한 유파로 자리 잡았다. 양사부는 물론 그의 아버지, 숙부, 할아버지, 동생까지도 모두 태극권의 고수였고, 이들은 태극권의 이름을 꺾어 고수의 반열에 들고자 하는 도전자들을 수없이 물리쳐 왔다. 경쟁 상대는 형의권과 팔괘장 뿐이었다. 당시 <내공 무술>로 지칭되던 형의나 팔괘, 태극은 서로 나란히 어깨를 견주고 있었다.

양사부의 도장 별채에는 한 남자가 기거하고 있었는데 그는 거의 종일을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 남자는 형의권의 고수인데, 넉 달 전 양사부에게 도전했다 패하여 부상을 치료하는 중이라고 했다.

두 사람의 결투는 특이했다. 싸움이 시작되고 한 식경이 지나도록 양청푸는 형의권 고수의 공격을 피하기만 했다. 상대의 공격이 워낙 세차 계속 관찰만 한 것이었다. 공격자 역시 내공이 뛰어난 고수인지라 약점을 찾는 일이 그리 쉽지가 않았다. 한 사람은 차고 찌르고, 한 사람은 이리저리 피하는 싸움이 계속되었다. 형의권의 고수가 양 청푸의 머리를 향해 손을 내리치는 순간 양 청푸는 얼른 꽃병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막았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상대는 미처 손을 거둘 새도 없이 꽃병을 내리치고 말았다. 잠시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곧 양 청푸의 손에 들린 꽃병이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랗게 부서져 내렸다. 양 청푸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손바닥을 펴서 앞으로 쭉 뻗자 형의 권 고수는 문 앞까지 날아가 문을 부수며 쓰러졌다. 그의 입, , 귀 등 모든 구멍에서 선혈이 흘러내렸다. 양 청푸는 제자들에게 그를 별채에 눕히고 내상을 치료해 주도록 지시했다. 형의권의 고수는 아직 회복을 못하고 있었지만 그의 내공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죽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았다.

사이훙은 태극권을 익히다 문제가 생길 때 마다 양사부의 도장에 들르곤 했다. 양사부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사이훙은 양사부의 도장에 발길을 끊지 않았다. 사이훙이 태극권 수련을 어느 정도 마무리 짓고 처음 도장을 떠나기 전 날, 팔괘장의 장문인인 푸 정쑹이 양사부에게 도전했다.

푸 정쑹은 땅딸막한 체격의 젊은 사람이었다. 그는 용형팔괘장의 자세를 갖추고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양 청푸의 주위를 끊임없이 돌았다. 양 청푸는 두 눈을 감고 꼼짝 않고 서서 내공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30분이 넘었지만 푸 정쑹의 도는 자세나 속도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양 청푸도 일체 움직임이 없었다. 순간 갑자기 푸 정쑹이 손을 내밀며 양 청푸를 향해 돌진하자 양 청푸는 눈을 번쩍 뜨더니 그의 손을 맞받았다. 푸 정쑹의 몸이 중심을 잃고 쓰러지자 양 청푸는 상대의 몸이 땅에 닿기도 전에 가슴을 향해 한 초를 다시 내질렀다. 내공으로 단련된 사람이었으므로 다행히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푸 정쑹은 큰 상처를 입고 양 청푸의 도장을 떠났다.

이 두 대가의 싸움에서 사이훙은 명상을 통한 내공의 힘과 태극권의 우수성을 알 수 있었다. 사이훙은 자신의 권법에 태극권을 접합시켜야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태극권을 완벽하게 소화해 내려면 25년이 걸리니, 사이훙이 양사부의 도장에 묵었던 그 짧은 시간은 겨우 태극권의 맛을 본 것에 지나지 않았다.

 

16. 사부와의 대결

사이훙은 열 다섯 살이 채 되기도 전에 상당한 경지의 무술을 지니게 되었다. 도장을 떠나 속세에 내려와서는 지방 무술 대회에 나가 당당히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각 지방을 유람하는 사이훙의 모습은 멋지고 낭만적이었다. 영민하고 준수한 외모와 늘씬한 체격, 잘 발달된 근육으로 인해 사이훙은 나이보다 성숙한 장부로 보였다. 또한 매끈한 피부와 화산에 들어가면서부터 기른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은 사이훙을 한층 돋보여 주었다.

사이훙은 자신감이 넘치는 젊은이였으며, 다소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자신의 무술을 시험하고 싶어했다. 한 번은 당랑권의 두 제자에게 도전해 그들을 꺾기도 했다. 두터운 옷 아래 숨겨 깐 철판 덕분이었지만 사이훙은 그들을 꺾었다고 큰소리쳤다. 다른 지방에 가서 더 대담한 도전을 하기도 했다.

어느 날 사이훙은 한 마을을 지나다가 광장 한 가운데 걸린<백학촌>이라는 팻말을 보았다. 가까이 가보니 그 팻말에는 큰 글씨로 <백학촌 - 하늘 아래 우리가 최고다. 우리가 여기 있으므로 둘째란 없다.>라는 글귀가 씌어 있었다. 사이훙은 바로 붓을 꺼내 그 글귀 아래 첨언을 했다. <이제 내가 왔으므로 너희들은 둘째다.> 다음날 팻말에는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만일 용기가 있다면 내일 이곳에 나타나거라.> <물론.> 사이훙은 다시 글을 보탰다.

다음날 광장에 얇은 비단 장삼을 입은 청년 다섯이 나타났다. 사이훙은 성긴 베로 지은 회색 도교 법복을 입고 있었다.

"뭐야, 저건. 어린애잖아."

그중 우두머리인 듯한 스물 여덟쯤 돼 보이는 청년이 사이훙을 손가락질하며 비아냥거렸다.

"저놈이 뭘 믿고 그렇게 큰소리를 쳤지? 더구나 도사 복장까지 하고 말이야. 나는 스님들과 싸우지 않아."

"나는 중이 아냐. 산천을 유랑하는 은자이자 무인이지."

"버릇없는 놈. 난 눈감고도 네놈을 처치할 수 있어."

"그래. 꿈속에서는 가능하겠지."

"입 닥치지 못해!"

제일 키가 큰 청년이 으르렁거리듯 소리를 질렀다.

"몇이나 덤빌 거지?"

사이훙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하긴 몇이 덤벼도 상관없기는 하지만."

"건방진 녀석. 몇은 몇이야, 나 하나면 충분하지. 어이, 꼬마 중놈, 너 어디서 왔어? 그걸 알아야 냄새나는 시체라도 돌려보내지."

"그럴 필요 없어. 입만 나불거리지 말고 사내라면 어디 덤벼봐."

사이훙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키가 큰 청년이 돌진해 왔다. 사이훙은 가만히 기를 끌어올린 뒤 그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쯤 몸을 빙글 돌며 엉덩이를 걷어차고, 휘청거리는 청년의 발목을 다시 한번 걷어차 무릎을 꺾었다. 청년은 마치 개구리처럼 납작 엎드려 고통을 참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된다고 말했지?"

사이훙은 조롱 투로 한마디 내뱉고는 유유히 일어섰다. 그는 승리를 만끽했으며 자신의 무공에 대해 진실로 자부심을 느꼈다. 화산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자 사이훙은 망설였다. 속세에서 만끽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즐거움이 그의 발목을 붙들었다. 사이훙은 관씨 가문의 부와 영예를 향유했다. 훌륭한 저택과 멋진 옷, 생산과 거위 요리, 웅담으로 만든 산해진미를 두고 산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더욱이 사이훙은 결투 때마다 승리를 거두러 소년 영웅으로서의 명예도 막 쌓아 가고 있었다. 화산파의 검소함과 철저한 극기가 요구되는 수련 생활을 이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사이훙은 다시 산으로 가야 했다. 산을 오르는 그의 발걸음은 한숨으로 시작되었다. 산에 도착하자마자 사부님은 훈계를 시작했다.

"얘야, 넌 이제 너의 무공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사이훙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단다. 운이 조금 좋았을 뿐이야. 정말 훌륭한 무공을 터득하려면 명상을 더 해야 한다. 너는 기본이 잘되어 있어. 기본은 힘을 내기 위한 원천이기는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란다. 발전하기 위해서는 더 깊이 연마하고 네 신체 전체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저는 무술 대회에서 우승도 했고 여러 번 도전자들을 꺾고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실제로 기를 쓰는 것보다는 키우는 게 더 바람직하단다. 그래야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폭발력이 생기는 거지."

"저는 벌써 내공을 익혔습니다, 사부님. 싸울 수 있어요."

"하지만 너는 무념의 명상을 통해 영성을 지니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어. 사이훙, 영성을 지니는 것이 싸워 이기는 것보다 훨씬 고귀한 일이란다."

"저는 그런 데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저 아래 세상을 보세요. 재미있는 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저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흥미로운 일들을 많이 겪었습니다. 경극도 보고 서커스도 보고 또 여러 무인들과 결투도 벌여 많은 걸 배웠습니다. 만일 제가 도관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결코 그런 일들을 겪어 보지 못했을 겁니다. 평생 예전만을 떠받치고 사느라고 생생한 무림의 기술을 배우지도 못할 거고요. 저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무예를 배우고 싶습니다. 이제 이 산 위에서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을 것 같아요."

"네 무술이 그렇게 뛰어나다고 생각하느냐?"

사부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 그렇습니다."

"그럼 나와 한번 싸워 보련? 만일 네가 이긴다면 내 속세에 있는 여러 고수들을 소개해 주마. 그때는 네 마음껏 가서 배우고 또 싸워도 좋다. 그렇지만 네가 지면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거다. 알겠지?"

사이훙은 사부님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장엄한 산을 배경으로 두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이훙은, 이 고독한 장소에서 편안하게 은둔하시는 분과 무슨 얘기를 하겠다고 헐떡이며 산을 올랐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사부님은 이제 여느 노인네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그는 머릿속으로 사부님의 몸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자신보다도 훨씬 가벼울 것 같았다.

", 알겠습니다."

사이훙은 자신감에 차서 엷은 미소까지 띠며 대답했다.

"그래, 한 번 덤벼봐라."

사이훙은 사부의 말이 끝나기 전에 무섭게 강하게 한 초를 출수했다. 속도가 너무 빨라 다른 사람 같으면 도저히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부는 태연히 슬쩍 몸을 비켜 피해 버렸다. 사이훙은 그때까지 배운 모든 기술을 동원하여 사부를 공격했다. 그러나 수십 차례 출수를 했지만 사부님의 몸은 커녕 옷자락에도 손가락 하나 대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이훙은 화도 나고 부끄럽기도 했다. 사이훙은 내공을 끌어모아 다시 한번 주먹을 내질렀다. 사부는 학처럼 우아한 자태로 훌쩍 몸을 날리더니 사이훙의 어깨를 뛰어넘었다. 사이훙이 놀라 몸을 돌리는 순간 얼굴 쪽으로 세찬 기운이 불어오는가 싶더니 뭐가 철썩하고 뺨을 때렸다. 사부님의 옷소매가 슬쩍 얼굴에 스친 것이다. 사이훙은 연신 팔을 내두르며 뒷걸음질을 쳤다. 사부님의 번쩍이는 눈빛과 함께 옷소매가 끝없이 자신을 향해 다가왔다. 휘두르던 팔이 사부님의 소맷자락에 맞자 팔이 마비되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사이훙은 팔을 들 수가 없었다. 사부님의 손바닥이 다시 보인다고 느낀 순간 사이훙은 자갈이 깔린 좁은 길로 날아가 길게 나자빠지고 말았다. 사이훙이 맥을 놓고 쓰러져 있자 사부가 걸어왔다. 번쩍이던 눈빛은 이미 사라지고 다시 미소 띤 인자한 얼굴이 돌아와 있었다. 그는 사이훙은 안아 일으키고는 어깨를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네가 졌다. 네가 진 이유는 집중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야. 나는 완벽하게 집중력을 유지했기 때문에 이긴 것이고. 명상 없이는 집중력을 얻을 수 없단다."

사이훙은 일어나 숨결을 가다듬었다.

"저는 그래도 떠날 겁니다. 행자로 떠돌며 살겠어요. 사부님 모습을 한 번 보세요. 그래요, 사부님은 훌륭하신 분이죠. 하지만 그래서 얻으신 게 뭐죠? 사부님은 늘 배고픈 상태로 이 외로운 산꼭대기의 습기 찬 방에서 살고 계십니다. 이게 성공하신 겁니까? 신들이 사부님의 말을 듣고 있나요? 천상으로 가신다고 하셨죠? 대체 천상 따위가 있는지 어떻게 아신다는 겁니까?"

절규에 가까운 사이훙의 물음에 사부는 차분하게 답을 해주었다.

"사이훙, 이 세상을 다 알아야 신과 하늘도 알 수 있는 거란다. 이곳의 모든 이치를 깨달으면 그때는 다른 세계를 볼 수 있지."

"천상이 보여야 믿지요. 설사 믿는다고 해도 어떻게 하늘로 올라갈 수가 있습니까? 몸이 떨어질 텐데."

사부는 싱긋이 웃었다.

"몸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란다. 네 영이 올라갔다 오는 것이지."

"영이라고요? 그게 몸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겁니까?"

"그럼. 하지만 먼저 오감을 다스려야만 한다. 이 세상이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때부터 오감을 다스리고 세상 이치를 터득하기 시작하지."

"세상이 환영이라고요?"

"그래. 세상이란 실재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곳이란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실재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뇨? 여기 이렇게 산도 있고, 저도 존재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단다. 그게 바로 환영이야. 네가 일단 오감을 다스리고 다섯 가지 원소의 이치를 이해하게 되면 모든 것이 단지 환영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저는 사부님의 말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오감을 다스린다느니 세상의 이치를 터득한다느니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사부는 사이훙의 눈을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 이런 것이 네가 궁금해하는 사물을 다스리는 것이다."

사부는 천천히 손을 들어 제단에 놓인 향다발을 가리켰다. 순간 마른 향에 불이 붙더니 흰 연기와 함께 백단향의 내음이 바람에 실려 왔다. 사부의 손길은 다시 2미터쯤 떨어져 있는 탁자 위의 청동 주전자로 옮겨 갔다. 그러자 주전자가 공중으로 서서히 떠오르더니 옆의 탁자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사이훙은 벙어리가 된 것처럼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다섯 원소를 지배하면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단다. 하지만 그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수련을 더 해야만 한다. 잘 생각해 보고 결정을 내리거라. 말년에 성취를 맛보려면 젊을 때 시작해야 하는 일이 있단다. 마치 큰 나무가 작은 씨앗에서 자라듯이 말이다. 물론 이런 일들을 믿기 어렵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얘야, 너는 아직 어려서 수행을 통해 얻게 되는 과실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지금 네게 그 열매를 보여 준 것이란다. 하지만 사이훙, 무슨 일을 시작하면서 언제나 완벽한 증거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무조건 맹목적으로 믿어야 하는 일들도 있는 법이지. 신은 초월적인 존재이고, 네가 모든 것을 스스로 알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17. 수련

"명상은 명상 하나만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란다. 다른 훈련들이 보완 작용을 해줘야만 완전한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지."

사부님의 가르침은 은은하게 이어졌다.

"명상에 필요한 힘과 생기는 무예 훈련을 통해 얻을 수 있지만, 진정한 명상에 몰입하려면 그 정신이 음악, 서예, 회화, 철학 등으로 닦여져 있어야 한다. 음악은 영혼과 성스러움을 이어주는 구실을 한다. 사람의 육신은 속이 빈 갈대와 같은 데 음악은 그 빈 곳을 신의 노래로 가득 채워 준단다. 음악은 너를 편안케 하고 곤두선 신경을 진정시키며 다른 세계의 존재를 체험케 할 것이다. 아무리 시끄럽고 어지러운 가운데서도 마음의 평안을 느낄 수 있지. 어느 누구도 음악 없이는 살 수가 없단다. 음악을 연주하는 법을 배우거라. 듣기에도 좋지만 육신의 건강에도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가령 피리를 불게 되면 마음의 평정을 얻고 기도 조화를 이루지만, 동시에 피리를 잡고 있는 손가락을 통해 정문을 자극하기도 한다. 음을 듣고만 있든지, 혹은 직접 연주를 하든지 간에 음악은 네 영혼을 맑게 해준다. 음악이란 평화요, 감동이요, 표현이며 성스러운 소리다. 서예라는 것은 고요함과 통일성을 의미한다. 붓은 손이 연장된 것으로, 그 놀림에 따라 정문이 자극되며, 신경도 안정된다. 또 시와 경을 반복해서 쓰면, 읽으면서는 느낄 수 없었던 어감과 미묘한 의미를 깨닫게 된단다. 시경을 한 획 한 획 따라 쓰다 보면 시인들과 현인들이 본래 가졌던 의도를 알 수 있게 되지. 글씨를 직접 쓰거나 잘 쓴 글씨를 감상하는 것은 고요하고 점잖은 성품을 길러 주어 너를 이성적이고 지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회화 역시 이러한 두 가지 의도를 다 지니고 있다. 회화는 한 예술가의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방법인 동시에 외부 세계와 영적 세계를 연결시키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아름다움에는 감사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단다. 화가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그림을 통해 표현하지. 눈에 보이는 자연을 영혼 속에서 녹여 내는 것이다."

사이훙은 기본 과목인 철학, 인류학, 고고학, 천문학, 상학뿐만 아니라 음악과 서예, 회화까지 학습하였다. 모든 교육과정은 사이훙의 정신세계를 확대시키고, 육신을 단련시키며, 기질을 정화시키기 위해 계획되었다. 사부는 또 부적의 추상예술, 초혼, 점에 대해서도 강의를 하였다. 영적 수련을 주축으로 예술과 형이상학에 대한 학습이 사이훙의 명상 수련에 기초가 되었다.

역학은 사이훙에게 도가의 우주관을 친근하게 느끼도록 해주었고, 신의 언어를 받아들일 수 있는 길을 제공해 주었다. 사부는 보지 않고 듣지 않는 것은 믿지 않으려 하는 사이훙의 기질을 이해하였다. 그런 것들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통해 신과 영적 대화를 나누어야 했다.

주역은 우주의 원리를 음과 양의 교류 및 8괘의 변형을 통한 변화로 규정하였는데, 이는 우주의 모든 상태를 표현해 놓은 64괘로 설명되었다. 주역 자체는 복희씨에 의해 창안된 우주 구조를 성문화한 경전이다. 5천 년 전에 살았던 이 전설적인 현인은 극지의 힘인 음과 양을 끊어진 선과 끊어지지 않은 선으로 나타냈다. 무의식 속에서 그는 희미하게 거북의 껍질을 보았고 그것을 8괘로 구체화시켰는데, 이것은 여덟 개의 끊어진 선과 끊어지지 않은 세 개의 선들을 조합시킨 패였다. 각각의 괘는 각기 다른 자연, 즉 하늘, , 천둥, , , 나무, , 호수의 힘을 나타내었다. 바로 이 같은 추상적인 전제를 바탕으로 도가에서는 자연에 의해 창조된 움직임과 정체의 개념을 예언하고 설명하였다.

후에 8괘는 이 여덟 개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64괘를 구성하여 주역의 기본으로 자리 잡는다. 주문왕은 기원전 12세기에 감옥에 갇혀 지내는 동안 이 경전을 완성하였다. 문왕의 사후, 그의 아들 주공이 64괘의 각 효에 주석을 달았다. 이들 두 사람의 작업이 주역의 내적 구조를 형성하였고 공자를 포함한 후대의 수 많은 학자들에 의해 여러 세기에 걸쳐 보완되면서 점차 완성된 구조를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현명하게도 사부는 그 어렵고 오래된 경전을 사이훙에게 아무렇게나 가르쳐 주지는 않았다. 사부는 사이훙이 점술과 주역의 철학을 보다 직접적으로 이해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산 증인을 보여 주기 위해 사이훙을 데리고 먼 산으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하는 동안 사부는 그들이 찾아가는 성인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5백 년 전 화산의 도인들이 거의 다 죽어 가는 어떤 사람을 발견했단다. 아무도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 몰랐고, 그도 자신의 과거에 대해 밝히지 않았지. 다만 도교와는 관련이 없다고 했다. 그는 너무나 쇠약했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다른 장소로 옮길 엄두를 내지 못했다. 도인들은 그를 그가 있던 산꼭대기에서 간호를 해주었고 마침내 그는 건강을 되찾았다.

건강을 회복한 그 사람은 밑도 끝도 없이 도술을 수련하기 위해 그곳에 머물겠다고 했단다. 그의 도술이 무엇인지 모두들 궁금해했지. 그날부터 그는 높은 벼랑 끝에 있는 큰 편백나무 아래 앉더니 전혀 움직이질 않았다.

도인들이 그에게 음식과 물을 가져다주었지만 그는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았지. 그의 머리카락이 점점 자라서 나무 속으로 파고들었다. 머리카락을 통해 나무로부터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받았던 거지. 그는 절대로 자기 머리카락을 자르지 말라고 했다. 머리카락은 자기 생명 줄이라고.

그런데 어느 날 호기심 많은 수련생 하나가 벼랑을 기어 올라가 그의 머리카락을 몇 올 잘라 냈단다. 그러자 그 사람은 마술을 써서 그 수련생을 얼려 버렸단다. 그 후 그 사람은 심하게 앓았으며 그사이 나무도 시들어 버리고 말았지.

그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른 수련생에게 <네가 내 말을 어기고 장난을 쳐서 내 생명을 빼앗으려 했으니, 하는 수 없이 너를 쓸 수밖에 없도다.>라고 말하더니 그 수련생을 나무로 변하게 했단다. 수 세기가 지난 뒤에도 그의 머리카락은 계속 자라 소년이 변한 나무 속으로 파고 들었단다. 지금도 도인은 그곳에 있고, 도인을 보호하고 있는 나무는 바로 그 수련생의 화신이라고들 말한단다."

사이훙과 사부는 풀과 나무가 무성한 길을 따라 산 위로 계속 올라갔다. 그곳에는 정말 편백나무에 기대어 앉아 있는 도인이 있었다. 함께 간 사람들이 모두 도인 앞에 엎드렸다. 사이훙은 늙고 쭈글쭈글한 도인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은 감겨 있었고, 피부는 말라 있었으며, 수염도 자르지 않아 까칠해 보였다. 누군가 표범 가죽을 그의 어깨와 무릎에 덮어 주었고, 그의 낡고 누더기가 된 옷을 다시 걸쳐 주었다. 벌거벗은 손과 발에는 길게 자란 손톱과 발톱이 지저분하게 구불거리고 있었다. 사이훙은 사부의 말대로 도인의 치렁치렁한 백발이 나무 속으로 파고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도인이 눈을 뜨자 사이훙은 역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그는 잠깐 사이훙에게 말로써 괘와 그 변화를 설명해 주었다. 그의 설명을 통해 사이훙은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사이훙은 여러 번 그곳에 들렀다. 그 도인은 사이훙이 들를 것을 미리 알았을 뿐만 아니라 사이훙이 할 질문도 미리 알고 있었다. 사이훙이 찾아갈 때마다 도인은 답변을 준비해 놓고 그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사이훙은 스스로 주역을 사용하는 법을 배웠고, 일상의 삶에 역을 적용하는 실용적인 수련을 하게 되었다. 사이훙이 동전의 앞면을 양으로, 뒷면을 음으로, 또는 앞면을 음으로, 뒷면을 양으로 정한 다음 동전을 던져 괘를 얻으면, 주역은 바로 해답을 주었다. 사이훙은 복희씨가 예전에 했던 그대로 거북 껍질 위에 세 개의 동전을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동전이 땅에 떨어질 때까지 거북 껍질을 흔들었다. 동전이 떨어지는 형태에 따라 선이 그어졌고, 그 선은 각각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 선은 음일 수도, 양일 수도, 또는 장영음일수도, 장영양일수도 있었다. 여섯 번을 던져 6효가 정해지자 사이훙은 얻어진 효와 변효를 역경에 대입해 보았다.

이 같은 학습과 수련을 통해 사이훙은 역이 가지고 있는 지혜와 교훈을 배웠다. 변화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어떤 일이든지 정점에 올라서면 반드시 그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 사부는 사이훙에게 기본적인 명상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모든 수련 과정이 그렇듯이 사부의 가르침은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쉬운 것에서 어려운 것으로 점진적으로 옮겨 갔다. 사부는 모든 과정을 엄격하게 통제하면서 사이훙이 다음에 해보겠다고 미루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사부는 수련 방법을 설명하면서 수련할 때 일어날 수 있는 문제점들을 미리 경고해 주었다. 사이훙에게는 언제나 명상을 통해 성취해야 할 과업이 주어졌다. 사이훙은 명상 중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사부에게 말했다. 사이훙의 말을 신중히 들으면서 사부는 발전의 징후는 인정하였지만 환상은 거부하였다.

"우리의 전통에서 보면 명상은 순수한 신체, 개방된 성격, 기 이 세 가지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네가 어릴 적부터 내 입버릇처럼 말했다만, 기가 없다는 것은 영혼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명상을 하는 수련생들은 성정을 순화해야 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수련 중에 입마의 화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지. 그리고 자신과 세상에 대해 뚜렷한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것만이 올바른 이해를 제공하니까 말이다. 너는 이 세 가지 기본을 명심하고 명상을 시작해라. 명상법엔 세 가지가 있다. 동체명상, 기립명상, 가부좌 명상이 그것이다. 이미 형의권과 팔괘장, 또 태극권과 오금희를 배워서 알겠지만, 동체 명상이란 신체를 격렬하게 움직이면서도 내면은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기립 명상은 몸은 조용히 서 있으되 내부는 움직이는 것이다. 너는 기립 명상부터 시작하거라."

기립 명상은 고요한 가운데 몇 가지의 정교한 손동작이 연속해서 이어졌다. 사이훙은 미세한 동작으로 장기를 자극하고, 고요함으로 기를 운행하여 정문에 이르게 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물론 신체 동작도 몇 가지 있었지만, 훈련의 주안점을 내부에 맞춰져 있었다.

기립 명상은 아주 미세한 부분에까지 정확하게 집중할 수 있는 정신력을 키워 주었다. 정신을 집중시키는 능력은 심상훈련과 호흡, 기도에 의해 그 능력이 강화된다. 기립 명상에서는 배꼽과 태양신경총(위 뒤편에 있는 교감신경 집합처)과 이마에 단전을 만들었다.

사이훙은 각 단전에 힘을 모으고 입으로는 신의 이름을 쉬지 않고 부르면서 마음속에 신의 모습을 떠 올렸다. 자신의 수련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가 자문할 겨를도 없었다. 그 대답은 명상 중에 저절로 나타났다. 사이훙의 몸은 점점 뜨거워졌고 손바닥은 붉은색으로 변해갔다. 명상이 막바지에 이르자 사이훙은 일련의 분산을 수행했다. 이는 도가들이 명상 훈련 중에 집적된 기와 피를 분산시키는 과정이다. 명상 중에는 여러 곳에 기와 피를 집중시키게 된다. 기와 피가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은 머리였다. 만약 축적된 기와 피를 분산시키지 않고 평상시의 상태로 되돌아 오게 되면, 몰린 피로 인해 두통이 생기고 머리칼이 빠지며,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지고 심장에 문제가 생기거나 치질을 앓기도 했다.

명상은 오랫동안 준비하여 신체적으로도 완벽히 건강을 갖춘 뒤라야 수행할 수 있는 훈련이다. 신체 내부에 흩어져 있는 거대한 힘을 자유롭게 움직이게 하고 기의 순환을 촉진시키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건강한신체가 아니면 그 충격을 견딜 수가 없다. 때로는 명상 도중에 호흡이 느려지다가 갑자기 멈출 수도 있다. 그래서 기공 훈련의 기본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명상을 하다가 목숨을 잃기도 한다.

", 이제 네가 얼마나 변했는지를 보거라."

사이훙이 명상 훈련을 시작한 지 1년 정도가 지나자 사부가 말했다.

"네가 이전에 배웠던 세 가지 공부가 명상 훈련을 할 때 매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너는 이제 조용한 기질을 갖게 되었다. 명상이 너를 그렇게 변화시킨 것이다. 네가 쌓은 훈련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다. 이제 너는 내재자가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했을 것이다. 외부 세계는 이제 비교할 사물이 없다. 이제 명상은 네 삶의 기본이며 앞으로 그것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4부 탈적

 

18. 출가

수행을 마친 사이훙에게 스스로 결단을 내릴 때가 왔다. 보통 그 정도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은 수도 생활에 입문한다. 그러나 사이훙은 다른 졸업생들과는 입장이 달랐다. 그는 특별한 신분이었고 가끔 속세를 여행하도록 허락도 받았다. 할아버지 관 주인은 사이훙을 특별히 화산에서 교육시켰지만 수련을 마친 뒤에는 속세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사부 역시 까다로운 소년을 잘 길러 관씨 가문의 기준대로 교육시키는 데 관심이 있었지 출가를 시키려던 건 아니었다. 이제 수련 과정은 끝났고 사이훙의 결정만 남아 있었다. 사회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고행의 길로 들어설 것인지를 결정해야만 했다.

중국에서는 열여섯이면 혼자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성인이다. 할아버지와 사부는 그가 신뢰하는 분들이었지만 두 분 다 그에게 영향을 미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사이훙은 모든 것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었다. 사부는 사이훙은 하산시키며 가족에게 돌아가 신중히 생각해 보라고

일렀다. 화산의 도인들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신비롭고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도교 신자들은 금욕주의자들이기 때문에 사회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삶과 죽음까지도 그들에게는 하나였다. 세상에 속한 모든 것들과의 결별은 도인들에게는 두렵고도 매력적인 일이었다.

사이훙은 지금 두 개의 평행선이 갈라지는 지점에 서 있었다. 사이훙은 고행의 길과 가족과 사회가 추구하는 세속적인 길을 모두 경험해보았다. 예전엔 어려서 그런 문제를 전혀 생각지 못했는데, 장성한 지금 사이훙은 자신의 미래를 선택해야 할 시기를 맞은 것이다. 사이훙은 산시성의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수련으로 얻은 건강과 자신감을 몸 전체로 발산하며 걸어가는 사이훙의 모습은 남다른 데가 있었다. 사람들은 대개 열띤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전쟁과 가난으로 찌든 평원에 그처럼 건강한 젊은이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1930년대에 산시성은 대격전지였다. 북부는 공산당과 국민당의 전투 이후 복구도 안 된 채 방치되어 있었다. 대지는 폐허가 되었고 주민들은 굶주림에 허덕였다. 전에도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지역의 참혹한 광경에 좌절감을 느꼈었다. 하지만 사이훙은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그 모든 광경을 자세히 관찰했다. 그리고 자신이 과연 이 참혹한 세상의 일부가 되기를 원하는지를 끊임없이 자문해 보았다.

산시의 평원은 중국 문명의 싹이 텄던 곳이다. 기다란 줄기 끝에서 꽃이 활짝 피어나듯이 역사는 수세기 동안 산시의 종착지인 실크로드로부터 뻗어 나와 번영을 거듭했다. 황폐한 대지에 일어난 황허의 범람은 냉혹했다. 산시 지방은 문화, 정치, 전쟁뿐만 아니라 자연재해도 황허처럼 그렇게 들이닥치곤 했다. 그 뒤 며칠 동안 사이훙은 간접적으로 전해진 역사가 아니라, 사람의 판단이 가해지지 않은 격동의 현장을 직접 보고 느꼈다. 중국 사회에 박혀 있는 비정상적인 역설, 즉 지혜와 무지, 부와 가난, 자비심과 노예근성, 풍요로움과 기아, 힘과 무기력의 양극단이 그의 마음속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사회로 돌아가면 자신의 운명은 어찌 될까를 생각해 보았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남자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연스럽게 떠오른 의문이었다. 농부로 남아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기근과 징집으로 열에 하나는 죽었고, 남은 사람들 역시 매춘, 도박, 노예 매매 등의 불법

활동을 일삼고 있었다. 농부들의 생활을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은 바짝 타버린 토지를 일궈 조금이라도 수확해보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정 안되면 다른 사람들을 속이거나 착취하며 삶의 나락으로 떨어져 갔다.

농부들은 조상들이 남긴 땅에 의존하고 있었지만 그 땅은 이미 척박하게 변해 있었다. 토담집도 쓰러졌다. 군인들이 땔감으로 쓰려고 방에 달린 문짝까지 떼어 가버린 것이다. 그나마 남아 있는 식구들이 북적대며 모여 살던 작은 방마저 비바람에 허물어져 버렸다. , 바퀴벌레들만이 제 세상을 만난 듯 기어 다녔다. 필사적으로 먹이를 찾는 쥐새끼들에게 돌보는 이 없이 버려진 아이들이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도둑을 막기 위해 안으로 들여 놓은 돼지와 가축들은 여기저기 오물을 늘어놓았다. 불결한 환경 때문에 질병이 만연했다. 그렇게 비참한 환경 속에서도 아직도 그렇게 많은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공산당과 국민당은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에게서 오히려 물건을 공출해 갔다. 공산당은 반일 감정에 호소하며 농지 개혁이라는 이상론을 폈고, 국민당은 공산주의에 반대하며 현재의 중앙 정부가 이룬 영광을 찬양했다. 그런 말에 귀기울이는 사람은 새파란 젊은이 들뿐이었다. 노인들은 이미 그런 약속에는 식상할 대로 식상해 있었다.

어떤 점에서 보면 공산당이 국민당보다 나았다. 공산당은 이상적인 계획을 반복해서 선전하곤 했지만, 국민당처럼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하는 일은 없었다. 당원들 대신 군인들이 들어왔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공산주의자건 국민당원이건, 전제 군주이건 간에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 였다. 집과 식량을 강탈하고 겨우 자라난 곡식을 짓밟는 것도 모자라 사찰에까지 군인을 배치시키고 법당을 마구간으로 쓰기도 했다. 더 끔찍한 일은 자신들의 적뿐만 아니라 양민들까지 닥치는 대로 강간, 약탈하고 고문하며 살인까지 저지르는 만행이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이었다. 군인들의 변태적인 즐거움을 위해, 사람들은 너무 끔찍한 일들을 당해야 했다. 급기야 생존자들은 그 정도의 공포쯤은 당연하게 여길 정도로 감각이 마비되고 말았다.

생물체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게 마련이다. 사람들 역시 이 끔찍한 상황에 적응해 보려고 애를 썼다. 사이훙은 사람들의 비인간적인 행동에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노예를 얻기 위해 갓난아이를 내다 파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인육을 돼지고기라고 속여 파는 사람들도 있었다. 온갖 추하고 역겨운 일들이 난무했다. 속임수를 쓰는 장사꾼, 부패한 관리, 제멋대로 날뛰는 군인들, 지나치게 열성적인 백인 선교사들, 유럽에서 온 노예 매매상들.......모두가 썩은 사회에 기생하는 자들이었다. 미덕과 정의를 수호해야 할 사람들마저도 자신의 안락을 위해 백성들을 이용했다.

전에는 정의의 표본처럼 보였던 학자와 귀족이 이제는 가장 위선적이고 경멸스러운 족속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이웃의 비참함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급 비단옷을 걸치고 우아한 부채를 펄럭이면서 거리를 활보했다. 그들은 거리에 득실거리는 거지들과 빈민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이훙은 그들이 백성들의 불행을 즐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기막힌 생각마저 들었다. 거지와 빈민들이 많아질수록 그들의 지위는 높아지고 이익을 챙길 기회도 많아졌다. 힘없는 사람들을 억압하는 이기적인 자들, 그들에겐 착취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한 아무것도 걱정할 게 없었다. 집으로 가는 동안 사이훙은 제 살을 파먹는 한심한 사회를 목격하고 아연실색했다. 그 자신도 이 광란의 축제의 한 일원이었다. 가도 가도 시체의 행렬은 끝이 없었다. 개와 까마귀들이 떼를 지어 시체를 파먹고 있었다.

환락가로 팔려 가는 소녀들, 강요에 못 이겨 결혼하는 여자들, 터진 상처, 불거진 종기, 잘려나간 팔과 다리, 곱사등이, 일그러진 얼굴....... 사이훙은 가진 돈을 몽땅 털었지만 그 모든 사람들을 돕기에는 너무 적은 돈이었다. 고향집에 도착할 때까지 공포 속에서 허우적대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눈에 밟혔다.

육중한 문이 등 뒤에서 닫혔다. 가족과 하인들이 그를 반갑게 맞았다. 드디어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어린 시절을 보냈던 관가보는 친숙하고 편안했다. 아름다운 건축물, 정적이 깃들인 정원, 높은 담, 모든 게 떠날 때 그대로였다. 사이훙은 등나무가 얽혀 있는 아치 밑을 지나 정교하게 조각된 돌다리를 건넜다. 네 세대 전 조상들이 심은 나무 사이를 지나면서 사이훙은 자신이 변한 것인지 세상이 달라진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사이훙은 지금까지 지나쳐 온 전쟁의 소용돌이와 낙원 같은 이 집을 연결시켜 보려고 애를 썼다. 전에도 그 둘을 연결해 본 적이 있었나? 아니면 알고 있었지만 자신에겐 의미 없는 일이라 의식하지 못했을 뿐인가?

사이훙은 자신이 인생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할아버지가 정해준 길을 그대로 따랐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사이훙은 부와 빈곤, 명분과 실제, 단념과 세속적 욕망이라는 양극 사이에서 고뇌하고 있었다. 사이훙은 훈련에 몰두할 때도, 특별히 허락된 여행길에서도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심각한 관심을 기울지 않았었다. 화산에서는 새로운 지식을 얻는 기쁨을 맛보았고, 집에서는 좋은 의복, 혈통 좋은 말, 진수성찬, 진귀한 예술품들을 즐겼다. 이제껏 그는 자기의 특별한 양육 과정에 있는 모순점이나 부모의 요구, 가문의 책임 등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 모든 책임을 회피해 온 것이다.

사이훙은 어린 시절 조부모님과 함께 자주 연못의 전망대 앞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런 기억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야만 했다. 사이훙은 여러 가능성들을 샅샅이 검토해본 후에, 집을 떠나기로 마음을 정했다. 조부모님께서는 정신적으로나 재정적으로 계속 자신을 뒷받침해 주실 것이다. 사이훙은 두 분을 존경했다. 하지만 그분들의 시대는 기울고 있었다. 부모님은 분명히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사이훙은 부모님의 기준을 혐오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의 생각은 지워버렸다. 삼촌과 고모들에 대해서도, 그들이 벌이는 하찮은 말다툼과 가족 간의 음모에 신물이 난 터였으므로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다. 사이훙은 자신의 결정이 몰고 올 가족의 분노에 대비했다. 조부모님이야 결국 그의 결정을 허락하실 테지만, 다른 가족들은 전부 반대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속세를 떠나 종교로 출가하는 것이 가족들에게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출가한 사람은 문자 그대로 가족을 버린 사람이었다. 효를 으뜸으로 여기는 중국 유교 사회에서 출가를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죄악이었다. 가족을 떠나면 그는 비개인적인 존재가 된다. 가족에게 있어 사이훙이란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름, 호적, 사찰에서의 자리 등 신분을 알아볼 수 있는 흔적은 모두 지워진다. 후손을 낳아 가문을 유지하고 재산을 늘릴 사람이 아무도 없으므로 가족은 그를 철저히 부정해 버리는 것이다.

사이훙은 할아버지를 만나러 서재로 가서는 자신의 결심을 조용히 밝혔다. 관씨 집안의 어른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생각에 잠긴 채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는 한참 동안 손자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는 네가 힘을 기르고, 흔들림 없는 원칙과 의지를 가지기를 바랐기 때문에 산으로 보냈다. 하지만 모든 공부를 마치면 다시 가족들에게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이훙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 수련을 마친 뒤 학자나, 예술가, 무술가, 또는 기이한 방랑자가 되기 위해 속세로 돌아간 많은 친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은 모두 비범했지만 속세와 인연을 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산에서 많은 교육을 받았지만 고행의 길을 선택한 자는 드물었다. 어쩌면 그럴 만한 자격을 갖춘 이가 드물었던 것일 게다. 솔직히 사이훙도 망설여졌다. 할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너는 대단한 가문의 자손으로서 부와 명예, 권력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 모든 것이 권리이기도 하지만 네가 지켜야 하는 의무기도 하다. 너는 아니라고 할 지 모르지만 네 마음속에도 그것들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을 게다. 네가 집에 머무른다면 문제 될 건 아무것도 없지. 그런데도 정말 이 모든 것을 버리고 싶은 게냐?"

거대한 용의 형상으로 언덕에 누운 저택의 영광이 한순간 사이훙의 머리를 스쳤다. 다시 한번 자신의 판단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후회보다는 자신이 내린 결정이 초연하고 당당하게 느껴졌다. 사이훙은 떨구고 있던 시선을 올려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 그렇습니다, 할아버지."

관주인은 한숨과 함께 그의 요청을 허락했다.

사이훙이 집을 떠난다는 소식은 바로 퍼졌다. 그는 정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가족들의 따가운 시선이 너무도 괴로웠다. 그렇다고 부모님과의 대면을 피할 수는 없었다. 부모님들은 매일 사이훙과 충돌했다. 관씨 집안의 어른이 이미 사이훙의 결정을 지지했으므로 그들이 서로 논쟁을 벌이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부모님들은 끝까지 사이훙의 결정에 반대했다. 어머니는 학자가 되라고 했고 아버지는 군인이 되라며 사이훙에게 화를 냈다. 그들은 사이훙이 출발하는 날까지도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사이훙은 견디다 못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두 분께서는 저 자신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안 쓰시는군요. 제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진짜 이유는 제 성공이 가문과 부모님께 명예를 가져다 드리기 때문이죠."

그러자 어머니가 반박했다.

"우린 다만 네가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다하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불효막심한 녀석 같으니, 너는 네 본분이 무엇인지를 잊었느냐? 너는 가문의 이름에 걸맞게 살아야 해. 네가 무시하고 있는 책임들을 좀 생각해 보거라."

아버지도 드디어 감정을 터뜨렸다.

"그래, 너도 한 번 생각해 봐라. 해야 할 일들은 모두 팽개쳐 버리고 산으로 도망가 더러운 도사 짓이나 하고 싶다니, 말이 되는 소리냐? 산을 떠돌며 되지도 않는 이야기나 꾸며대는 비쩍 마른 영감이나 따라다니는 게 뭐 그리 좋단 말이냐? 온종일 현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체하며 앉아 있는 일 외에 하는 일이 뭐가 있어? 그 밑에 있는 자들도 모두 마찬가지지. 그들은 사회의 짐 밖에 안되는 굼벵이 같은 자들이라구. 일도 안 하며 놀고먹는 거지 같은 것들 말이다. 수행하는 체하며 다른 사람들의 선의에나 의존하며 살아가는 거지. 중이란 다른 사람들 노동의 대가를 갉아 먹으며 살아가는 자일 뿐이다."

"네가 출가를 하면 네 가족들이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겠니? 너는 키워준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마음을 바꿔 먹으렴.“

어머니가 다시 당부를 했다. 사이훙은 벌떡 일어났다. 그의 부모는 굳은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사이훙은 감정을 억누르고 싶었지만 재치 있는 말을 찾지 못했다. 머릿속이 터질 것 같아 그는 하고 싶은 말들을 모두 쏟아 내고야 말았다.

"어머니, 아버지, 저는 작별 인사를 드리러 온 것뿐이에요. 제가 두 분이나 다른 식구들에게 관심이 없었다면 말 한마디 하러 이곳까지 돌아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냥 혼자 수도 생활을 하면서 세속적인 기회주의자들은 모두 지옥으로 꺼지라고 내버려 두었을 거란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돌아왔습니다. 그러니까 아들로서의 의무는 다했습니다. 저는 집을 떠날 겁니다. 결심을 바꿀 순 없어요."

사이훙은 성난 아버지의 저주를 뿌리치며 방에서 나왔다. 곧 집을 떠나고 싶었지만 아직도 벗어야 할 책임의 굴레가 하나 더 남아 있었다. 약혼녀에게도 그 사실을 알려야 했다. 사이훙은 다섯 살 때 그보다 두 살 아래인 소녀와 약혼을 했었다. 소녀는 장래의 시댁에서 교육을 받기 위해 아홉 살 때 이 집으로 들어왔다. 시집 식구와 잘 지내게 하려는 중국의 전통이었다. 그녀는 사이훙이 작별을 고하려고 들어오자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를 버리시면 이대로 늙어 죽고 말 거예요."

약혼녀는 말을 마치고는 더욱 서럽게 울었다. 사이훙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성장을 하고 단정히 빗은 머리에 꽃을 꽂고 깨끗한 응접실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세계는 그 방 밖을 넘지 못했다. 약혼녀는 권세 좋은 장군의 딸이었다. 그들의 결혼은 정략결혼이었다. 사이훙은 그녀가 원하는 것이 자신의 아내가 되는 것뿐임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가정 교육은 신부 교육뿐이었다.

"저는 벌써 열여덟 살이에요. 이제 저를 원하는 남자는 아무도 없을 거예요. 당신이 떠나면 당신 가족의 보호도 잃게 될 거고요."

"미안해. 하지만 당신은 언제든지 다른 남자와 결혼할 수 있어."

"나는 나이가 너무 많아요. 한번 당신과 약혼도 했고요. 어떻게 그처럼 잔인하게 우리의 약혼을 깰 수 있는 건가요?"

사이훙은 대답하려고 했다. 그러나 떠나고 싶은 마음이 더욱 요동을 쳤다. 사이훙은 논리적으로 생각하려고 애썼다. 그가 정상적으로 살았다면 열다섯 살에 잘 알지도 못하는 소녀와 벌써 결혼했을 것이다. 설명을 하려고 했지만 약혼녀는 계속 울기만 했다. 사이훙은 여러 분야의 학문을 배웠지만 울고 있는 소녀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를 배운 적은 없었다. 약혼녀에게 연민을 느꼈지만 빨리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더 절박했다. 사이훙은 제발 울지 말라고 간청했지만

소녀는 막무가내였다. 드디어 사이훙은 체념하고 내뱉었다.

"나는 당신 몸에 손도 안 댔어! 다른 남자와 자유롭게 결혼하라구. 난 당신이 그 남자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구!"

사이훙은 방에서 뛰쳐나와 격자무늬 문을 쾅하고 닫아 버렸다. 찢어질 듯한 여자의 울음소리를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사이훙은 바로 물건을 챙기러 자신의 방으로 갔다. 가족들의 저주와 비웃음, 비난을 들으며 사이훙은 집을 도망치듯 뛰쳐 나왔다. 그를 축하하거나 성원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육중한 문들이 다 닫혀 버리자, 사이훙만이 홀로 남겨졌다.

 

19. 입문

사이훙은 남봉사원의 대웅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대웅전에는 도교의 삼신인 노자, 옥황상제, 태초신이 모셔져 있었다. 천장이 높고 널찍한 대웅전의 실내는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으며, 가느다란 수백개의 촛불이 켜져 있었다. 대웅전을 떠받치고 있는 밋밋한 나무 기둥에는 하늘 나라 원왕이 악마를 무찌르는 모습이 조각되어있었고, 기둥 뒤에는 다른 많은 신들에게 둘러싸인 삼신의 모습이 그려진 두루마리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림은 천장과 바닥 중간 정도 높이에 걸려 있었는데, 마치 하늘에서 천사의 무리가 내려오고 있는 듯, 웅장하고 압도적인 장관을 이루었다.

사이훙은 그곳에 무릎을 꿇었다. 자단으로 만든 육중한 제단 위에는 여러 가지 제물들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보통 제단과는 달랐다. 출가의 상징인 조롱박, 도교의 달인을 상징하는 말총으로 만든 솔, 의식을 올릴 때 쓴 빗 등이 그 위에 놓여 있었다. 벽면에는 다른 두루마리들이 걸려 있었다. 붓글씨가 씌어진 것들과 고행자들과 역대 대사부들의 초상화를 그린 것도 있었다.

삼신, 옥황상제, 여덟 명의 불사신, 관음, 일곱 명의 공주, 도교의 지옥에서 온 신 등 우주의 신들이 전부 모여 사이훙의 출가 의식을 지켜보았다.

사이훙은 입문식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때 남봉사원 사람들, 사부님, 두 명의 사형 사이로 조부님이 언뜻 보였다. 사이훙은 겁이 날 때마다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는 버릇이 있었는데 조부모님들이 처음부터 자신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에 적이 안심이 되었다.

사이훙은 자신이 그 의식을 끝까지 이겨낼 수 있기를 빌었다. 나이 든 분들은 엄숙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중요한 행사이기도 했지만 사이훙의 내면에서 일고 있는 갈등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직 젊은 두 명의 사형만이 사이훙에게 연민의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들은 미소를 띤 채 은밀히 사이훙을 격려해 주었다. 두 사형만은 사이훙의 내면에 일고 있는 갈등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드디어 식이 시작되었다. 종과 징, 목어를 치는 소리가 멈추자 사부가 경전을 암송했다. 향 연기가 대웅전 안을 가득 메웠다. 등과 촛불에서 불꽃이 일렁이더니 대웅전을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경전을 암송하는 동안 사이훙은 자신이 세상을 떠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향을 올리면서 제단에 아홉 번 절을 하고, 과거 속세 사부님께 절을 한 뒤 화산의 대사부에게 아홉 번 절을 올렸다. 그리고 나서 음식, , 포도주를 바쳤다. 대사부님은 사이훙 뒤로 걸어와 길게 자란 검은 머리를 빗겨 주셨다. 이것은 과거의 삶에 대한 집착인 명환을 떨어낸다는 뜻이었다. 사부님은 사이훙의 머리카락을 둥글게 말아 올려 나무 비녀를 꽂아주었다. 이로써 사이훙은 가족을 떠난 것이다.

사부님은 사이훙에게 <천자경>에서 따온 이름을 지어주고, 법명도 따로 내렸다. 법명을 글자 순서를 따르기 때문에, 다른 신자들도 그의 이름만 알면 서열까지 곧 알 수 있게 된다. 법명을 사이훙이 출가인이며 사이훙이 속한 분파 내에서의 서열과 계급, 그리고 분파 자체의 서열을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두 사제가 단정히 개켜진 회색 법복, 면혜, 기도용 방석, 동발과 경전을 선물해 주었다. 앞으로 사이훙이 12년 동안 사용할 것들이었다.

경전 암송을 마친 뒤에, 사이훙은 삼신, 불사신, 그리고 분파와 관련되어있는 고행자들을 모신 다섯 개의 다른 사당에서 혼자 의식을 치렀다. 그 후, 사이훙은 다시 성대한 채식 축제에 참석했다.

그 모든 의식을 사이훙은 열심히 치렀지만 마음속에는 의심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자신이 꼭 이 길을 택해야 했는지 불안하고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중국과 자신의 가족이 사는 집을 잘 알고 있었다. 그곳은 둘 다 사이훙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택한 길만이 유일한 선택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다짐했다.

 

20. 불사신의 동굴에서 꾼 꿈

사이훙은 먼저 자신이 속한 화산파의 비법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그 비법은 자기 치유, 명상 등을 통해 내면에 변화를 일으켜, 아주 특별한 절정에 이르게 하는 것이었다.

도교 신자들은 정신적 성장에 장애가 되는 독소를 신체에서 씻어 내어 몸을 정화시켰다. 아주 꼼꼼하게 짜여진 식단과 기공 수련에도 불구하고 도교 신자들은 아직도 몸에 독이 쌓여 있다고 생각했다.

"매일 숨을 쉬는 동안에도 너의 몸은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와 티끌, 다른 더러운 입자들을 끌어들인다. 수면 중일 때는 그 물질들이 폐 속에 그대로 남아 핏속으로 흘러 들어가지. 게다가 인체는 자체 내에서 독소를 생산하고 있다. 그러니 그 모든 것들을 매일 씻어 내야 하는 것이니라."

사부는 사이훙이 더 열심히 기공 훈련을 하도록 가르치고 몸에 정기가 일게 하는 특별한 약초를 소개해 주었다. 다섯 가지 꽃잎으로 만들어진 차는 그의 소화 기관을 깨끗이 해주었고, 뿌리와 잎으로 만든 차는 혈액을 정화시켰다. 그 밖의 다른 차들은 응고된 피를 용해시켰고, 모여 있는 기를 분산시키거나 균형을 잃고 불안정해져 있는 기관이 평형을 이루게 했다. 인삼과 다른 약초들을 사용하자 강장 효과와 함께 정화 작용이 생겼다. 새로운 약초들은 사이훙이 전에 훈련받을 때 먹었던 약초보다 약효가 훨씬 강했다. 약초들은 몸을 유지시키거나 강화시킬 뿐만 아니라, 사이훙의 체질을 영구적으로 변화시키려는 목적으로도 쓰였다.

약초를 사용하는 것과 더불어 명상 훈련은 내부의 변화를 실행하는 데 빠뜨릴 수 없는 필수 요소가 되었다. 인체를 변화시키는 것은 영원불멸의 생명을 얻는 데 관심을 쏟고 있는 도교의 뿌리 깊은 전통이었다. 분파가 다르면 그 방법도 달라졌다. 어떤 사람들은 고기와 빵, 곡물은 절대 먹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금, 적색 황화수은, 납 등 여러 가지 금속들을 섞어 만든 금단을 섭취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12세기 북부 학파의 시조였던 전설적인 왕제 같은 사람은 육신의 호흡을 대신하는 신성한 호흡을 주장하였고, 그러기 위해서는 감각을 즐겁게 하는 모든 것을 피하라고 가르쳤다. 수면을 절제하고 완전한 명상에 잠길 것을 요구한 것이다. 그 밖에도 죽지 않는 것은 단전에서 영원한 생명을 가진 배가 자라면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마침내 불멸이란 모두 상징적인 것일 뿐이라고 결론지었다. , 납은 양을 뜻하고 수은은 음을 뜻하며 배는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태초의 정신으로 돌아가면 얻는 깨달음이라고 했다.

그러나 어떤 분파든 내부의 변화가 명상과 화학적 변화에 관련되어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내부의 변화를 시도하던 많은 사람들이 불사의 생명을 얻지 못하고 죽었다. 물론 그런 경우에도 도교 신자들은 그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어 하늘로 올라갔다고 주장했다.

수많은 방법들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는 사부의 지도를 따랐다. 사이훙의 사부는 광적인 것은 모두 반대했다. 그는 화학적 요소인 약초는 단전의 큰 솥에서 용해되며 연금술적인 변화는 약초의 힘과 명상을 통해 완성된다고 강조했다. 사부는 진정한 의미의 불멸은 없다고 말했다.

"불멸은 장수를 뜻한다. 수련에 정진하며 생명을 또 다른 한계로 연장시킬 수 있고, 병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영원히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신조차도 죽어야 하느니라. 우리는 장생불사하는 것이 아니라 장생불사의 맛을 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수련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 너의 몸을 무시하지 말라. 마음을 훈련하되 육체를 하찮게 여기면 발육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육체와 정신은 하나이다. 사람은 죽음을 뛰어넘기 위해 육체와 정신의 에너지를 함께 모을 수 있느니라. 또한 그것이 바로 장생불사의 맛을 보는 비결이니라."

명상자들을 위해 따로 마련된 작은 오두막에서 사이훙은 내적인 변화를 수련하고 있었다. 그는 소주천을 따라 자신의 정문을 열기 위해 49일 동안 오두막에 머물 생각이었다. 오두막은 기와지붕에 창문 한 개, 야트막한 문 하나, 그리고 진흙으로 바른 벽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 안에 있는 가구라고는 침대, 촛대, 그리고 의자 한 개가 고작이었다. 처음 사부가 이 오두막으로 자신을 데려왔을 때, 사이훙은 폐소공포증에 걸리지나 않을까 걱정되었다. 방은 너무 비좁아서 중앙에 서서 팔을 뻗으면 사방의 벽이 손에 닿을 지경이었다. 사이훙은 의자 위에 밀짚 모자를 얹어 놓고 그 위에 사슴 가죽과 무릎 깔개를 내려놓았다. 밀짚모자는 절연체 구실을 할 것이며, 사슴 가죽은 영적 에너지를 나눠줄 것이고, 무릎 깔개는 명상할 때 사용 할 것이다. 사이훙은 49일 동안 매일 그 자리에 몇 시간씩 앉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부는 사이훙에게 올바르게 정좌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사부가 가르쳐 준 대로 발을 바닥에 내려놓고 의자 끝에 앉은 뒤, 긴장을 완전히 풀고 등을 곧게 폈다. 그 다음 턱을 바짝 잡아 당겨 머리를 들고 나서 기도하는 자세로 두 손을 마주 잡았다. 사부는 향을 주면서 향내음이 감각을 풀어주고 집중력을 모아 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사이훙은 향내란 항상 마음을 산란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므로 그것을 받지 않았다.

그는 사부가 주신 책자들을 보았다. 거기에는 목표 달성을 도와줄 지시문과 도해가 실려 있었다. 특히 사이훙은 몸의 중심선에 위치한 두 개의 정문에 대해 공부했다. 해부학과 정문, 혈도에 대해서도 자세히 공부해야 했다. 사부는 각각의 그림을 설명해 주었고, 지시를 내리기도 하면서, 사이훙이 그 오두막에서 처음으로 명상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그가 명상을 끝내고 경험한 것을 자세히 이야기 하자, 사부는 그가 명상을 정확하게 수행하고 있다고 확인해 주고는 방에서 나갔다. 그런 다음 사부는 문을 닫고 문 아래쪽 테두리에 종이 띠를 붙였다. 악령을 쫓는 동시에 사이훙이 나가거나 다른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부적이었다. 사이훙은 햇빛을 쬐거나 음식물을 들이고 그릇을 내보내기 위해 문의 윗부분만 열 수 있었다. 소주천은 중심선에 있는 두 개의 정문을 연결시키고 기의 흐름을 정신적으로 조종하기 위한 것이었다. 두개의 정문이 열리면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한 주기 동안 한번의 운기를 끝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호흡 회로가 완성되면 두 개의 정점과 여덟 개의 영적 회로를 통해 계속해서 기를 보낼 수 있다. 만일 그가 성공을 거둔다면 그의 몸은 깨끗하게 씻길 것이고, 육체의 병도 치유될 것이다. 더 나아가 기를 정신으로 변형시키는 법을 배우고 정태와 동태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게 된다.

명상은 배꼽에서 시작되었다. 사이훙은 심상을 떠올리고 주문을 외우며 배꼽에 정신을 집중시켰다. 반 시간쯤 후 윙윙 소리가 나며 진동이 시작되었다. 따뜻한 기운이 돌면서 심하게 팔딱거렸다. 그는 배꼽에 모인 기를 회음부의 다음 지점으로 보내려고 애썼지만 무척 어려웠다. 사이훙은 정신을 완전히 집중시켰다. 극심한 고통이 찾아오면서 정문이 열렸다.

그는 첫 시도가 성공을 거두자 적이 안심했다. 너무 깊은 정점을 갖고 있거나 명상은 별로 하지 않는 어떤 수행자들은 기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약초나 마사지, 침술 혹은 자신의 몸에서 나오는 기까지도 이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49일 동안 사이훙은 수련 단계를 차츰 높여 나갔다. 꼬리뼈에서 콩팥 사이로 뜨거운 기를 밀어 올려 견갑골 사이의 한 곳으로 모았다. 다시 그 기를 정수리까지 한 부분씩 밀어 올린 다음에는 마지막으로 윗입술의 종착지로 밀어내었다. 혀를 입천장에 밀착시켜 앞뒤 정점을 연결시키고 등과 배꼽을 연결하는 마지막 통로가 열리면 순환이 끝난다. 기를 순환시키는 동안 열이 나면서 전기에 감전된 듯한 느낌과 함께 기가 모인 곳에서는 소용돌이 치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등뼈에는 율동적으로 당기는 듯한 느낌이 났다.

도교적 명상은 실재한다는 감각을 확인시켜 주었다. 사이훙은 모든 수련 과정이 성공하자 무척 행복했다. 침묵 속에서 생활하며 경전을 읽고 운동도 하였다. 절제된 식사와 약초를 섭취하면서 명상을 하는 생활이 사이훙은 지극히 만족스러웠다. 처음 걱정했던 것처럼 폐소공포증에 걸리지도 않았다. 탈진할 정도로 힘든 수련을 마치고 내면의 상상력을 갖게 된 사이훙은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내면으로 향하는 세계였다. 그의 앞에 열린 내면의 세계는 무한의 경지였다.

사이훙은 소주천을 마친 뒤에도 계속해서 수련을 했다. 그렇다고 그가 초인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수련은 오히려 인간으로서의 잠재력을 한층 키워준다. 사이훙은 이상하게도 힘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안내서에는 이 상태가 바로 금강불괴지신, 즉 질병이나 자연의 재앙도 침범할 수 없는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발육시키는 과정이라고 씌어 있었다.

49일째가 되는 날 오후, 사이훙은 산 속의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앉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임무를 완수했다. 힘든 과정이었지만 보답을 받은 느낌이었다. 그는 변했고, 그의 내면은 크게 도약했다.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오두막에 올라온 사부가 위쪽에 난 문을 열어주자, 그곳을 통해 햇빛이 비쳐들었다. 사부는 문을 봉했던 부적을 뜯고 사이훙을 해방시켰다. 두 사람은 반가운 미소를 교환하며 서로 손을 굳게 잡았다. 사이훙은 몇 주일 만에 처음으로 입을 열고 자신의 경험담을 낱낱이 털어 놓았다. 사부는 이따금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두 사람은 오두막을 나와, 산으로 올라갔다. 화산이 지닌 아름다움이 다시 한번 그의 마음속으로 밀려들었다. 숨이 막힐 듯한 거대한 바위와 소나무, 구름, 웅장한 폭포와 상큼하게 부는 산들바람으로 화산의 풍치는 더욱 돋보였다. 자연이 한데 어우러져 그에게 축하를 보냈다. 사이훙은 자신의 성취를 소중히 여겼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자신만의 것이었다.

사부는 사이훙을 데리고 동쪽 봉우리에 난 문을 통해 <두 불사신의 동굴>로 들어갔다. 사이훙은 그 깊은 동굴 속에서 꿈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이 두명의 불사신들은 원래 화산파 제자였던 장난꾸러기 소년들이었다.

어느 날 아침, 길에서 놀던 두 소년은 농부 차림을 한 근육질의 탄탄한 남자를 만났다. 백발이 성성한 그 남자는 어깨 위로 큰 복숭아가 몇 개 달린 나뭇가지를 걸치고 있었다. 그는 북해 불사신의 제자인 동방삭이었다. 불사신의 제자가 되기 전에는 도둑이었던 동방삭은 도둑질에 대한 충동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엄격한 생활에 지치고, 내적인 변화를 기다리다 못해, 동방삭은 서왕모의 뜰에서 천도를 몇 개 훔쳐냈다. 도둑질을 하고 오던 동방삭이 우연히 두 소년을 만났던 것이다. 동방삭은 이내 쾌활하고 영민한 두 소년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보냈다. 소년들의 재치와 영민함에 흥미를 느낀 동방삭은 어려운 수수께끼를 하나 냈다. 놀랍게도 그들은 문제를 간단하게 풀어냈다.

"너희들이 참 마음에 드는구나. 뭘 좀 주고 싶은데 특별히 줄 만한 것이 없구나. 이 천도 하나 가질 테냐? 한 입만 먹어도 4만 년을 살 수 있단다."

동방삭의 말을 듣고 소년들은 기뻐서 손뼉을 쳤다. 그가 떠나자 두 소년은 복숭아를 다 먹어 치웠다. 두 소년은 그 즉시 불사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옥황상제는 그들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깜짝 놀라 물었다.

"너희들은 어떻게 불사의 생명을 얻게 되었느냐?"

"한 낯선 사람이 저희 에게 천도를 주었습니다."

소년들이 대답했다.

"그렇다면 너희들에겐 틀림없이 운명을 정한 별자리가 있을 것이다."

옥황상제는 대신들을 시켜 그들의 운명을 조사하게 했다. 대신들은 두 소년이 불사신이 될 운명으로 성부에 올라 있음을 확인했다.

"너희들이 불사의 생명을 얻도록 허락하노라."

옥황상제는 이렇게 선언했다.

"너희들은 어린 나이에 불사신이 되었으니 영원히 어린아이로 남게 될 것이다. 또 둘이 좋은 친구 사이이니 두 명의 불사신이라 부를 것이니라."

옥황상제는 소년들의 세 번째 눈을 만져 인식의 눈을 뜨게 하고 신의 지혜를 내렸다. 그런 다음 성전을 주고는 지상으로 돌아가 인간을 가르치도록 명했다. 두 불사신은 화산으로 돌아와 사이훙이 지금 스승과 함께 찾아 온 바로 그 동굴에서 갈았다. 도교 신자들은 불사신들이 거기에 남겨 놓은 기나 그들이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것 때문에 그곳이 다른 제자들의 탐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깊고 드넓은 동굴은 수세기 동안 자라난 종유석과 석순들로 꽉 차 있었다. 섬뜩하고 기이한 형상들이 광물질로 인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무지개빛 종유석에 의해서만 빛을 발하는 밤의 동굴이었다. 사이훙은 횃불을 들었다. 굽이치는 불꽃이 들쑥날쑥하게 동굴 안에 그림자를 던졌다. 그러나 횃불을 켰음에도 불구하고 동굴 끝은 보이지 않았다. 거대한 암석층으로 걸어 들어가자 희미한 영상이 물에 비쳐 보였다. 지하로 흐르는 강은 너무도 깊고 맑아서 종유석 천장을 거울처럼 비춰 주었으며 잔물결도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둑에 있던 대나무로 만든 뗏목에 올라탔다. 사이훙은 횃불을 뗏목 머리에 고정시킨 다음 기다란 노를 들고 강으로 뗏목을 밀어냈다. 노젓는 소리가 동굴 속의 정적을 갈랐다. 동굴 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바위 때문에 소리가 막혀 사면이 고요했다. 강물은 완전한 정적 속에서 거대한 동맥처럼 흐르고 있었다. 강물이 갈라지면서 여러 동굴로 나뉘어 흘렀다. 하지만 사부는 길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횃불, 어른거리는 그림자, 그리고 영롱한 빛을 내는 바위에 그들은 넋을 잃고 있었다.

이윽고 그들은 뗏목을 한 석굴에 대었다. 강가에서 50보쯤 떨어진 석굴 끝을 향해 걸어가자 널찍한 반석이 나왔다. 측면에는 이상한 형태의 신 같기도 하고 인간 같기도 한 형상이 조각되어 있고, 흘려 써서 읽기조차 어려운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사부가 사이훙에게 손짓을 했다. 사이훙은 사슴 가죽과 무릎 깔개를 내려놓고 반석 위에 드러누웠다. 사부가 그의 자세를 바로잡아 주었다. 사이훙은 왼팔을 굽혀 머리를 괴고 옆으로 누워 왼손으로 귀를 막았다. 그리고 오른손은 생식기에 댔다. 왼쪽 다리를 곧게 편 다음 오른쪽 다리는 구부려 발목을 왼쪽 무릎에 기댔다. 꿈을 꾸기 위한 자세인 것이다. 이런 자세를 하고 사이훙은 꿈속의 환상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사부는 떠났다. 다음 날 아침에 돌아와 꿈을 해석해 줄 것이다. 그때까지 사이훙은 잠을 자면서 꿈을 꾸면 되었다. 그 반석 위에 누운 사람은 누구나 다 꿈을 꾸었다. 꿈을 꾸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런데 꿈은 여러 가지로 다르게 나타났다. 어떤 사람은 금욕적인 훈련으로는 더 이상 진전될 수 없으니 사회로 돌아가라는 계시를 꿈속에서 받았다. 또 어떤 사람은 앞으로 닥칠 끔찍한 위기를 보기도 했다. 몇 사람에게는 특별한 임무가 내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일단 계시가 내리면 그것이 어떤 내용이든 제자와 사부는 그 계시를 따라야 했다. 대개의 경우 개인의 꿈은 달인의 삶을 받아들이는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꿈은 보물과 다름없다. 그를 위해서만 빛을 발하고 어두운 삶속에서 길잡이가 되어주는 보석이었다. 사이훙은 깊고 고르게 숨을 쉬며 고요히 누워 있었다. 신비로운 기운이 그의 전신을 감싸자 사이훙은 순식간에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사부가 혼자 뗏목을 저으며 쪽빛 물 위에 그 모습을 나타냈다. 사이훙이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하자 사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너의 꿈이다, 사이훙. 몇 년간 애쓴 끝에 절정에 이른 것이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그것은 너의 비밀의 근원이다. 그 꿈은 앞으로 삶을 살아가는 동안 너를 이끌어 주고, 어려울 때는 너를 지탱시켜 줄 영감이 될 것이다."

 

21. 본초학을 배우다

사이훙은 다른 도량을 거처를 옮겨 나이와 학습 정도가 엇비슷한 동료들과 함께 기거했다. 그곳에서도 문파의 여러 가지 공동 작업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그의 최우선 과제는 수행에 정진하는 일이었다. 사이훙은 경전을 비롯해 많은 서적을 섭렵하고 신체를 단련하며 치유법을 배우는 한편, 명상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노력했다.

전체적으로 사각형을 이룬 도량의 건물들은 진흙으로 만든 두툼한 담장을 따라 늘어서 있었고, 담장 너머로는 널따란 풀밭이 말발굽 형상으로 펼쳐져 있었다. 건물과 풀밭 전체는 높은 화강암 절벽에 둘러싸여 있었는데, 절벽 여기저기에서 구불구불한 소나무들이 위태로운 모습으로 자라고 있었다. 바위가 침식되면서 생긴 도랑에는 맑은 샘물이 콸콸 흐르고 있었고 절벽에는 뛰어난 솜씨로 씌어진 글씨가 이곳 저곳에 아로새겨져 있었으며 명상을 할 수 있게 된 동굴도 간간이 보였다. 몇몇 수석 도인들이 도관의 살림을 주관하면서 수련생들을 지도, 감독했다. 그들은 낮에는 수련생을 가르치고, 밤에는 경전이나 과거에 수련을 했던 도인, 혹은 수련생의 수행 진척도등을 주제로 살아 토론을 주재했다.

수련생들은 각각 다른 사부를 모시면서 각자에게 가장 알맞은 방식으로 수련을 쌓아 나갔으며, 사부들은 정기적으로 수련생들을 방문해 가르침을 베풀곤 했다. 도관의 목표는 기본적인 과목을 가르치는 동시에 수련생들 간의 동료 의식과 협조 정신을 고취시켰다. 그러므로 수련생들 사이에는 곧 강력한 유대감이 형성되었다.

그들이 배우는 중요한 과목 중의 하나가 본초학 이었는데, 그 과목을 가르치는 사부는 펑쉰이었다. 호리호리한 몸매, 햇빛에 그은 피부, 하얗게 센 머리카락, 새까맣고 커다란 눈동자를 지닌 펑쉰 사부의 가볍고도 고매한 모습을 볼 때마다 사이훙은 한 마리 사슴을 연상하곤 했다. 펑쉰 사부의 식사는 언제나 약간의 약초와 한 줌의 쌀뿐이었다. 펑쉰 사부는 항상 약실 한쪽에 설치된 신농씨사당에 절을 하는 경건한 자세로 맡은 일에 임했다. 수업을 듣다 보면 펑쉰 사부가 방대한 지식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수많은 서적을 외우고 있었으므로 수업 도중에 책을 들여다보는 일은 전혀 없었다.

장기, 혈도, 신체구조 등에 대한 지식에 뿌리를 두고 있는 본초학은 완벽할 정도로 명상과 서로 보완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명상은 우리 몸에 산재한 경락들과 관련이 있으며, 약초는 바로 그 경락을 자극하여 치료 효과를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초학계에 전해 내려오는 격언 가운데는 "아는 게 있어야 남을 가르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 옛날 신농씨가 자신이 직접 각종 약초의 효용 여부를 알아보았듯이, 가슴속에 청운의 뜻을 품은 수련생들 역시 본초의 효과를 몸소 체험해 보았다. 사이훙도 다른 동료의 몸에, 혹은 자신의 몸에 실시한 실험 실습을 통해 안마, 본초학, 침술 등의 지식을 쌓아 나갔다.

사이훙은 먼저 안마부터 배웠는데, 그 이유는 안마란 몸과 몸이 부딪치는 <비교적 단순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때때로 약초나 침 같은 도구를 함께 사용하며 안마를 익혔다. 안마를 이용해 병을 치료하는 것은 약초나 침을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치료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나중에 명상만으로 병을 치유하는 단계에 이른다 해도 그 기본을 사용하는 것은 똑같았다.

사이훙은 안마를 통해 해부학, 압점, 혈도 등을 익혔다. 또한 기를 손끝에 모아 물건을 꽉 움켜쥐는 훈련을 거듭했다. 그런 훈련은 환자의 몸을 완전히 장악하여, 규칙적인 움직임으로 환자의 경직된 부위를 풀어 줄 때 필요한 훈련이었다. 환자가 달가워하지 않거나, 혹은 긴장하거나 두려워할 때 재빨리 근육과 뼈를 열어 안마의 효과를 받아들이기 쉽게 만드는 데도 필요했다.

어느덧 사이훙은 삐거나 부러진 뼈를 맞추는 것뿐만 아니라, 타박상과 출혈, 근육통, 혈맥이 꼬이는 것도 치료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핏속의 독소를 제거하고, 응고된 피를 풀고, 신경통을 치유하고, 제자리를 잃은 내장 기관을 제자리로 되돌리는 등의 많은 병을 안마만으로도 고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또한 영양실조로 인해 생기는 몇몇 사형들의 가벼운 근육 이상 증상을 치료하는 광경을 몇 차례 목격하기도 했다.

안마의 두 번째 단계를 성취하려면 우선 자기의 기를 환자의 몸에 주입하는 매우 어려운 기술을 터득해야만 했다. 환자의 몸속 깊은 곳에 있는 독소라든가 응고된 피를 피부 가까운 곳으로 이동시켜 제거하고, 또한 생명력을 불어넣어 꺼져가는 생명을 되살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펑쉰 사부가 그 방법을 설명하며 사이훙의 몸에 기를 주입하자 그는 전류 같은 에너지가 자신의 몸으로 흘러들면서 온몸이 따뜻해지며 따끔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사이훙은 동료에게 기를 주입해 보려 했지만 웬일인지 그런 에너지가 몸 밖으로 흘러나가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러

자 펑쉰 사부는 동료의 몸에 두 손을 대라고 한 다음 자신의 두 손을 사이훙의 어깨에 갖다 대어 사이훙을 통해 그의 동료에게 기를 주입했다. 그때 사이훙은 기가 흘러들었다가 팔을 통해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펑쉰 사부는 그 느낌을 되살려 기를 몸 밖으로 흘러나가게 하

라고 일러주었다.

치료에 꼭 필요한 요소 중 하나는 진단이다. 진단은 진맥을 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펑쉰 사부는 최소한 10년 이상 진맥을 보아야 비로소 올바른 진단을 내릴 수 있다고 가르쳤다. 진맥을 보아 진단을 내리는 일은 인간의 신체를 부분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오장 육부의 상태가 건강 여부를 결정한다는 가르침을 배운 한의사들은 손목에서 감지되는 열두 개의 서로 다른 맥(오른쪽 손목의 여섯 개, 왼쪽 손목의 여섯 개)을 통해 오장육부의 상태를 알 수 있다. 그 열두 개의 맥은 거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손목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압박감을 통해, 그리고 치료자의 손끝에서 환자의 핏속으로 주입되는 기를 통해서만 감지될 수 있다. 환자의 핏속으로 주입된 기는 수중음파탐지기 같은 역할을 한다. 치료자는 자신이 내보낸 기가 일으키는 반향과, 혈관 속에서 반동하는 방식을 분석해 진단을 내린다. 치료자는 음인가 양인가, 딱딱한가 부드러운가, 안인가 바깥인가, 뜨거운가 찬가, 혹은 단순한가 복합적인가를 살핀다. 그리고 나서 오장육부 각 기관의 상태를 분석 판단하며 질병의 유무와 질병의 정체를 진단하는 것이다.

펑쉰 사부는 엄격한 표정으로 환자의 진맥 결과만을 알려주고는 수련생들에게 진단을 내려보라고 요구하곤 했다. 그러나 주관적 판단과 객관적 판단이 절묘하게 절충되어야 올바른 진단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수련생들은 실수를 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펑쉰 사부는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는 거짓말과 상상은 집어치우라고 호통을 쳤다. 펑쉰 사부는 무술의 고수이기도 해서 손끝이 매서웠다. 사이훙은 일찍이 들어보지 못했던 바보 천치라는 욕을 먹기 일쑤였으며, 어린 시절에도 잘 맞지 않던 매를 맞곤 했다.

사이훙은 본초학을 철두철미하게 배워 나갔다. 종종 펑쉰 사부는 사이훙에게 약초 도본과 목록을 내주면서 그 약초들을 캐어 오라고 지시했다. 짧은 웃옷에 바지, 끈으로 묶는 납작한 가죽신, 어깨까지 가릴 만큼 옆으로 퍼진 등나무 모자, 괭이 한 자루, 약초 담을 자루 하나, 조롱박으로 만든 물병 하나, 칼 한 자루. 약초 채집에 나서는 사이훙의 복장과 휴대품은 언제 똑같았다. 가끔 밤새워 동료들과 함께 여행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보통은 혼자 약초를 수집하러 다녔다.

수련생들이 채집해 온 약초는 모두 깨끗이 다듬고 분류해서 보관했다. 펑쉰 사부는 약초들의 역사를 이야기 하는 한편 효능이 있는 부분과 가공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어떤 약초는 말리고, 또 어떤 약초는 잘게 부수었다. 음식을 익히듯이 열을 가하거나 가루로 만드는 약초도 있고, 뿌리를 얇게 썰어두는 것도 있었다. 그렇게 만든 약초들은 도자기나 금속, 나무로 만든 용기에 넣은 다음 조심스럽게 저장해 두었다.

약을 조제할 경우에는 열 가지에서 열두 가지의 성분이 들어가도록 약초를 배합해 몸의 모든 부분을 동시에 치료할 수 있게 만들었다. 도교 계통의 한의사들은 우리의 몸이 내적으로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균형을 유지해 나가는 조직체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처방할 때 아픈 부위만을 치료하는 법이 없었다.

예컨대 감기 치료제에는 폐로 들어가 작용하는 약초, 재채기를 멎게 하는 약초, 폐의 기능을 강화하는 약초, 머리를 맑게 하는 약초, 창자를 세척하는 약초 등이 골고루 들어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중국의 한의사들은 8천 가지 약초에 들어있는 성분을 조심스럽게 혼합해 복잡 미묘한 증상들을 치료하는 것이다.

도인들은 병을 고치기보다는 원기를 돋우어 주는 약초를 이용해 병을 예방하고자 한다. 권위 있는 여러 의학 서적들을 보면 병에 걸린 뒤에 고치는 행위는 <목이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우물을 파는 행위>, 혹은 <폭동이 시작된 뒤에야 진압에 나서는 행위>와 같다고 표현한다.

사이훙은 날이 갈수록 예방 의학에 정통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환자의 병세가 위중할 경우에는 예방 의학 이전에, 침술, 수술, 부적 등 모든 치료 방법 가운데 가장 우수하고 효과적인 치료 방법을 먼저 썼다.

어느 날, 뚱뚱한 중년 사내가 화산에 실려 왔다. 그는 한마디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얼굴엔 푸르스름한 기운이 감돌고, 혀가 퉁퉁 부어 질식사할 위험까지 있었다. 그 남자는 매우 부유한 귀족이었지만 병을 고쳐 줄 수 있는 용한 의원을 찾아내지 못했고, 절망 끝에 화산에 와서 도움을 청하게 된 것이었다. 펑쉰 사부는 즉시 용태를 살펴보았다. 그 사람은 독약에 중독된 상태였다. 그의 경쟁자의 음모로 해를 입은 것이다. 펑쉰 사부는 진단을 내렸다.

"이대로 시간을 끈다면 질식사하거나, 독기운이 심장에 퍼져 심장마비로 죽게 될 겁니다."

도인들은 회의를 열어 그의 병을 고쳐 주기로 결정했다. 펑쉰 사부는 남자의 등에 두 손을 얹은 다음 정신을 집중했다. 두 시간 가량이 흘렀을 때 펑쉰 사부가 갑자기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는 창백한 얼굴로 손끝 하나 까딱하지 못했고 두 손바닥은 검게 변해 있었다. 두 의원이 그를 부축해 바위 옆으로 데려가자 펑쉰 사부는 자세를 바로잡은 다음 두 손을 바위에 대고 빨아들인 독을 발산시키기 시작했다. 이윽고 펑쉰 사부가 바위에서 손을 떼자 놀랍게도 그곳에는 검은 손자국이 뚜렷이 찍혀 있었다. 수련생들은 곧 그 바위를 땅속에 묻어 버렸다.

기진맥진한 펑쉰 사부는 그 후 생기를 회복하기 위해 3개월 동안 사당 안에서 칩거하며 명상에 전념했다. 물론 목숨을 건진 환자는 약초치료를 통해 건강을 회복해 나갔다.

사이훙은 펑쉰 사부의 희생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훗날 더욱 높은 수준의 도를 터득하고 훌륭한 능력을 얻은 뒤에도 사이훙은 펑쉰 사부의 사심 없는 자세를 돌아보곤 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사부가 보여 준 헌신적인 의료인의 모습을 회상하면서 마음을 가다듬곤 했다.

 

22. 상승명상법

사이훙이 배운 명상법 중 최상의 단계는 몸의 모든 영문을 여는 영구이었다. 엉치 위의 천골문에서 시작하여 척추를 따라 생식문, 단전문, 심문, 후문, 삼안문, 황문 등의 영문이 있는데, 그 영문은 각기 고유의 치유 기능과 영력을 가지고 있었다. 영구 명상법은 모인 기를 일직선으로 끌어올려 각각의 영문을 통과시켜 황문에 이르게 하는 것이었다. 인도의 쿤달리니 명상과 마찬가지로 도교도 들도 적정에 이를 때까지 영문을 여는 명상을 지속했다. 힌두교에서는 사마디(Samadhi)라 하고, 불교에서는 열반이라 일컫는 상태를 도교도들은 적정이라고 했다. 사이훙도 적정에 이르기 위한 명상 수련을 시작했다. 해부학적 구조로 보면 각 영문은 영력을 일으키는 동시에 위치에 따라 인접한 기관, 즉 생식기, 배꼽, 심장, , , 뇌를 제어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명상을 통해 영문이 단련되면 관련된 기관들은 무한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사부는 사소한 성취로 이루어진 힘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고 줄곧 사이훙에게 경계하였다. 많은 고행자들이 영구 명상에 실패하는데, 그 이유는 영력이 아직 완전하게 개통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기간의 수련으로 얻어진 힘을 남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모든 영문을 열기 위한 명상에 몰입하기에 앞서 사이훙은 우선 도해를 보면서 영문의 구조를 살피고 생김새를 관찰하는 한편, 기도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구했다. 기도가 계속됨에 따라 연꽃의 봉오리로 연상되는 영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꽃봉오리들에는 저마다의 색깔과 형태가 있었다. 사이훙이 각각의 꽃봉오리에 정신을 몰입하고 명상을 시작하자 봉오리의 윗부분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고 마침내 봉오리마다 향기를 내뿜었다. 사이훙은 몸 전체에 소용돌이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기가 영문을 지날 때만다 따뜻한 기운이 감도는 것을 느꼈다. 사이훙이 명상을 마치자 영문들은 다시 닫혔고 몸을 들썩거리게 하던 기운도 점차 수그러들었다.

척추가 끝나는 부분에 있는 첫 번째 영문은 외부의 기를 받아들여 내공으로 바꾸는 기의 원천이었다. 그곳을 통해 모여진 기가 천골과 생식문을 거쳐 가면 단전문에서는 활력을 불어넣었다. 명상이 계속되면 육신이 가벼워지면서 몸에서 힘이 솟구치고 성적 욕구도 강해졌다. 사부는 사이훙이 그 상태에 머무르지 못하도록 주의를 주었다. 많은 수련생들이 천골과 생식문에 비정상적으로 기를 모아 두기 때문에 힘과 성욕이 용솟음쳐 진정한 명상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영문을 열기 위해 명상을 거듭하면서 사이훙은 사부의 말이 사실임을 경험했다. 두 곳의 영문에 기가 모이면 성에 대한 깊고 강렬한 욕망과 상승 무공을 성취할 수 있다는 유혹이 끊임없이 생겨나 수련을 방해하고는 했다. 일단 단전문이 열리자 욕망을 참아야 하는 고통도 그쳤다. 몸에는 활력이 샘솟았으며 병에 대한 치유 능력이 생겼다. 본초학을 강의하던 펑쉰 사부가 병의 치유와 단전문의 관계를 말했었는데 그 말이 옳았다. 심문은 미적 감각과 관련이 있는 영문이었다. 사부는 아름다움을 지각하는 능력과 창조성이 심문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사이훙의 사형인 린 쭝아 음악에 탁월한 재능을 지니게 된 것도 모두 심문을 열었기 때

문이다. 후문을 여는 것은 목소리뿐만 아니라 날카로운 통찰력과도 관련이 있다. 사물에 대한 인지 능력은 후문과 삼안문이 상호작용을 하며 발달되는 것이다.

삼안문, 즉 상단전은 다른 차원의 세상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시키는 곳이었다. 사부의 말대로 사이훙을 비롯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기의 눈으로 보는 것, 즉 실재하는 것만을 인식한다. 하지만 존재하는 것이 모두 사실인 것은 아니다. 세상은 여러 차원의 세계가 마구 뒤섞인 환영에 불과할 따름이다. 사이훙은 삼안문이 열리자 환상의 세계 뒤에 숨어 있는 진정한 존재를 바라볼 수 있었다. 명상이 깊어질수록 사이훙의 수련은 도가 깊어졌다. 사이훙은 육신의 힘을 길러 무공을 연마하고, 문학과 예술과 과학에 대한 안목을 넓혀갔다. 또한 마침내 존재의 실체를 인지해 정신적 지혜를 한껏 늘렸다. 사이훙의 명상은 이윽고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 많은 세월에 걸친수련 생활과 고통의 연속은 황문을 열기 위한 걸음마였던 것이다. 마침내 수천수만의 연꽃잎들이 꽃망울을 활짝 터뜨렸다. 사이훙의 정신은 아득한 곳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곳에는 외부의 존재도, 내부의 존재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에게는 아무 생각도 아무 감정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이훙의 완전한 무의 경지에 몰입되었다.

 

23. 영생

그날 새벽에는 짙은 안개가 끼었다. 안개는 풀밭을 어루만지고 도량의 지붕에 부딪히면서 영롱한 이슬을 빚어냈다. 매일 새벽이면 햇살이 퍼지기 전부터 소리 높이 지저귀던 새들도 모두 어디로 갔는지 사방이 고요하고, 바람조차 숨을 죽이고 있었다. 사이훙과 동료들은 샘에서 물을 긷고 있었다. 짙은 안개 때문에 샘 가까이 몸을 굽혀야 물을 퍼올릴수 있었다. 샘물은 맑고 아주 차가웠다. 힘차게 솟구치는 샘물에 팔을 적신 사이훙은 벌에 쏘이기라도 한듯 그 시원함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때 동료 한 명이 사이훙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키 큰 사람 하나가 천천히 풀밭을 가로지르는 모습이 보였다. 전통 의상을 걸친 도인이었다. 몹시 냉랭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는, 두 발로는 이 세상을 밟고 있지만 영혼은 이 세상이 아닌 곳에서 노닐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걸음걸이 또한 매우 가벼워 마치 땅을 밟지 않고 걸어가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안개에 가려 흐릿한 모습을 자세히 보기 위해 눈을 가늘게 뜬 사이훙은 그의 이마에 난 혹을 볼 수 있었다. 바로 불사(불사)의 태양 신선이었다! 사이훙은 7년 전 멀리서 그를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이훙 일행은 급히 도량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문을 들어서니 태양 신선이 사부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사이훙 일행이 우르르 몰려가 꾸벅 인사를 하자 태양 신선은 사이훙 일행을 데리고 여기저기를 거닐면서 각자의 자질과 능력을 살폈다.

새벽 햇살이 퍼지고 있었다. 사이훙은 태양 신선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굵고 빳빳한 하얀 머리칼은 뒤로 단정하게 묶여 있었고, 턱수염은 뻣뻣한 실뭉치를 매달아 놓은 것처럼 억세 보였다. 피부에는 잔주름이나 있었고, 매부리코와, 얇은 입술에는 날카로움이 어려 있었다. 이마에 돋은 큰 혹은 괴상망측한 종양처럼 보였다.

태양 신선은 걸을 때 전혀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가 입고 있는 겉옷도 길고 헐렁해 다리의 움직임을 전혀 볼 수 있었다. 사이훙은 그에게 다리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양 신선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사이훙을 바라보더니 다시 걸음을 옮겼다. 태양 신선은 사이훙을 포함해 세 명의 신출내기를 선택했다. 태양 신선이 문가에 서 있는 동안 사부 중의 한 명이 입을 열었다.

"태양 신선께서는 진정한 불사의 경지에 도달하셨다. 태양 신선께서 지금처럼 도관에 오시는 일은 거의 없다. 저분께서는 화산파의 제자들 가운데 너희 셋을 택해 당신의 제자로 삼으시려 하신다. 제자가 되면 불사의 도를 배우게 되지만, 일단 태양 신선을 따라가면 너희는 세상에서 잊혀진 존재가 되어 다시는 인간 세상을 볼 수 없게 된다."

사이훙은 고민했다. 영생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으나 막상 영원히 산다고 생각하니 안 마신 술까지 깨는 느낌이었다. 사이훙은 진정으로 영생을 원하는지를 스스로 물어보았다. 첫 번째 문제는 태양 신선에 대한 느낌이었다. 사이훙은 자신의 사부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따랐지만, 웬일인지 태양 신선에 대해서는 호감이나 친밀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두 번째 문제는 태양 신선의 외모였다. 태양 신선은 정자를 몸 밖으로 배출시키지 않는 몇몇 도인 중 한 명이었다. 그들은 심지어 오줌에 섞인 정자를 걸러 내는 능력도 지니고 있었지만, 그런 반면 몸속 어딘가에 모아 둘 수밖에는 없었다. 태양 신선의 이마에 있는 혹은 바로 그 정자를 축적한 곳이었다. 옷으로 가린 몸 여기저기에는 더 많은 혹이 있을 게 뻔했다.

", 이제 마음을 정했으면 한 발 앞으로 나서도록 하거라."

사부의 목소리가 사이훙의 귀를 파고들었다.

<아니야, 나는 아직 자격 미달이야. 모든 신께서도 알고 계시겠지만 내게는 추악한 면이 너무 많아. 혹투성이 몸으로 더러운 냄새를 풍기면서 영생할 수는 없잖아? 차라리 이대로 살면서 명상을 수련하는 편이 낫지.>

사이훙은 두 동료와는 달리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사이훙은 두 동료가 태양 신선과 함께 자욱한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태양 신선 일행은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고, 그날 이후 사이훙은 그들을 보지 못했다.

 

24. 전쟁 속으로

1937년에 발발한 중일 전쟁의 소식이 매달 올라오는 생활용품에 섞여 화산에 전해졌다. 식량을 구하러 산을 내려갔던 동료들도 속속 산으로 귀환하여 전쟁 소식을 전해 주었다. 일본군이 얼마 전 베이징 외곽에 있는 마르코폴로교를 기습하여 장악한 다음 철과 석탄이 풍부하게 매장된 산시 지방의 산악지대로 진격했고, 이제는 톈진에서 난징에 이르는 전선에서 2차 공세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주도권을 장악한 일본군은 서서히 해안 지대를 벗어나 비교적 궁벽한 내륙지방으로 밀려들었다.

중국 군대와 국민은 나름대로 저항을 시도했다. 그러나 사기만 드높을 뿐 훈련이 불충분한 데다가 장비마저 부족해 변변히 싸워 보지도 못한 채 패주를 거듭했다. 특히 북쪽 지방의 소규모 비정규군과 주민들은 탱크와 비행기로 무장하고 돌진하는 잘 훈련된 일본군에 의해 전멸되고 있었다.

전투와 일본군의 잔학한 행위를 알게 된 화산파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분노와 증오심이 애국심으로 이어졌고, 화산에 있는 모든 도관에서 연일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사부와 사형과 수련생들이 각기 다른 의견을 펼쳤다. 어떤 이들은 흥분한 나머지 감정을 앞세웠고, 얘기가 전쟁과 일본군을 비난하는 대목에 이르면 너나없이 한 가지로 입을 모았다.

마침내 전쟁은 화산의 일상생활마저 뒤흔들기 시작했으며, 얼마 뒤에는 전쟁 소식에 귀를 기울일 필요마저 없어지고 말았다. 멀리서 폭탄 터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머리 위로 전투기가 날아다니더니, 백 킬로 떨어진 시안 쪽에서 불그스레한 불길과 함께 거대한 검은 연기가 치솟아

올랐다.

많은 도인들이 전쟁에 휩쓸리면 안 된다고 외쳐댔다. 집과 가족을 등진 수도자는 더 이상 세상일에 관여해선 안 되며, 오랫동안 갈고 닦아온 청정한 마음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속세는 전쟁, 속임수, 거짓말, , 살인, 정치 등의 위험 요소가 가득한 곳이니 수도자에게 부여된 계율을 엄수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애국심에 불타는 도교인들은 즉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만약 중국 땅에 도적이 들끓는다면 마음놓고 수도에 전념할 수 있는 장소조차 없을 것이라고 언성을 높였다. 정의감에 불타는 그들은 제한적으로나마 전쟁에 참여해야 하며, 자신들이 세상에서 잊혀진 존재이든 아니든 간에 국가와 국민은 자신들을 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논쟁이 거세지면서 내분의 조짐이 엿보이자 화산의 대사부는 전원 회의를 소집했다. 화산의 다섯 봉우리에 기거하던 모든 사부들과 수련생들이 남봉에 있는 도관으로 모여들었다. 도관의 뜰로 들어서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수심이 어려 있었지만, 입에서는 여전히 찬반의 열변이 쏟아져 나왔다.

사부는 뜰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본청 현관으로 걸어 나갔다. 등 뒤의 고색창연한 도관 건물 때문인지 그날따라 유난히 사부의 키가 커 보였다. 대사부는 카랑카랑하면서도 묵직한 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리는 도교를 신봉하는 사람들로, 세상에서 잊혀진 존재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등졌고 따라서 소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다툼에 관여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세상으로 돌아간다면 그동안 이 신성한 산에서 갈고 닦은 청정한 마음을 잃게 될 겁니다. 속세에 기거하면서 몸과 마음을 더럽히지 않기란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우리 역시 중국인입니다. 지금 외적이 우리나라를 침략하고 있으니, 모든 국민이 나라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되도록 맡은 일을 충실히 수행해야 합니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필요합니다. 정신 수양 외에도 그만큼 중요한 요소들이 더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반드시 총이나 칼을 들고 싸워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각자 가기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공헌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모두들 자신이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자문해 보십시오. 산을 내려가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만한 것을 구해 줄 수도 있고, 또 아픈 사람을 치료해 줄 수도 있습니다. 미래를 위해 전통 기법을 익히고 보존할 수도 있겠지요. 다시 말하거니와 적군을 죽이지 않고도 나라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길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또 여러분 중에는 권법 등 무술을 익힌 사람도 있는 줄 압니다. 그런 사람들은 무술로 나라를 지키십시오. 전사가 할 일은......."

사부의 말은 계속되고 있었지만 사이훙의 머리는 벌써 전쟁터로 달려가고 있었다. 아직 젊기만 한 사이훙의 혈기가 들끓었다. 사이훙은 당장 싸움터로 달려가 위기에 처한 국가와 국민을 구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상대로 만행을 저지른 자들에게 응분의 대가를 돌려주고 싶었다. 그날 저녁, 사이훙은 두 사형과 함께 앞으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두고 토론을 벌였다.

"우리는 지독할 정도로 고된 수련을 쌓았고, 덕분에 제법 출중한 무예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 무예로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이훙은 저도 모르게 뜨거운 입김을 내뿜었다. 그러나 두 사형은 진지한 자세로 귀를 기울였을 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린 쭝우는 좀처럼 자기감정을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했으며, 칭 수이셩은 일단 말을 꺼내면 숨김없이 툭 털어놓기는 하지만, 마음속으로 내린 결정에 대해서는 쉽사리 입을 열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한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던 칭 수이셩이 갑자기 하산을 선언했다.

"우리는 무술을 배웠으니 싸워야 해. 여자와 어린아이와 노인들이 당한 비인간적인 행위가 생각날 때마다 참기 어려울 정도로 울화가 치밀어. 더 이상 수수방관할 수 없어. 그놈들을 죽여 버리고 말겠어."

"저도 그럴 작정입니다."

사이훙이 사형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사이훙과 칭 수이셩은 동시에 린 쭝우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린 쭝우는 두 사람을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이훙과 칭 수이셩은 평소 논쟁을 싫어하던 린 쭝우가 곧 자리를 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종단에 적을 둔 채 참전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쟁터에서 계율을 지키기란 불가능 할 테니까요. 또 하산하면 이런저런 세상사에 휘말릴 수밖에 없으니 아예 종단을 떠날까 합니다."

사이훙의 말이 끝나자마자 린 쭝우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사이훙, 탈적은 안 돼."

"저는 어느 도관에도 속하지 않는 떠돌이 도인이 되겠습니다. 이제야 솔직히 말씀드립니다만 저는 가끔 이곳 생활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배불리 먹지도 못하며 온종일 수련에 매달리다 보니 의기소침해진 거지요. 매일 새벽에 일어나 경전을 외고, 아침 먹고 경전을 외고, 점심 먹고도 경전을 외고, 저녁을 먹고도 경전을 외고, 심지어 잠자리에 가서도 경전을 외고....... 저에게는 떠돌이 도인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칭 수이셩이 사이훙에게 과거의 일을 깨우쳐 주었다.

"자네 스스로 서약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

"명심하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평생 도인의 길을 걷겠습니다. 그렇지만 전쟁터에서도 계율을 암송한다면 위선자가 될 뿐입니다. 저는 살아남기 위해 계획을 세워 싸우고, 고기를 먹고, 악한 일도 불사하고, 살인까지 할 생각입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 싸움에 전념해야 할 판국에 어떻게 계율을 지키란 말입니까?"

두 사형은 서로 멀거니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자네 마음대로 하게, 사이훙."

린 쭝우가 침통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나는 산을 내려가더라도 계율을 지키도록 노력할 생각이네."

"나 역시 그렇게 할 작정이네."

칭 수이셩이 린 쭝우에 동의를 표했다.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두 분께서도 어쩔 수 없이 살인을 하게 될 겁니다. 두 분은 사부님께서 미쳐 날뛰는 살인자를 응징해야 한다는 말을 듣지 못하셨나요?"

사이훙은 또다시 뜨거운 입김을 토해냈다.

"그분 말씀은 다른 사람을 죽이는 일은 죄악이라는 뜻이네. 인간으로서 어찌 그렇게 잔악한 짓을 저지르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겠나?"

칭 수이셩은 잘 들으라는 듯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주었다. 칭 수이셩이 말을 마치자 린 쭝우가 덧붙였다.

"사이훙, 우리는 악을 물리쳐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하네. 즐기기 위해 생명체를 죽이지는 않지만 우리를 해치려는 산적과 산짐승에 대항해 싸움을 벌인 적은 있네. 성인이라 해도 자기 몸을 보호할 필요는 있으니까. 우리 모두 이유 없는 공격에 응전을 한 경험이 있지. 자신을 지키는 일은 권리이니까 말이야."

다음날 사이훙은 사부를 찾아갔다. 사부는 길고 헐렁한 평상복 대신 손목과 발목 부분을 동여맨 검은색 무복을 입고 있었다. 사이훙은 절을 한 다음 안으로 들어갈 것을 청했고 사부는 허락한다는 표시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산하고자 합니다."

사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사이훙을 주시했다. 사이훙은 사부가 뭐라 대꾸할 틈도 주지 않고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리고 영영 종단을 떠나고자 합니다."

사부는 손바닥으로 책상을 힘껏 내리치고는 사이훙을 노려보았다. 사부가 화를 내는 모습을 처음 본 사이훙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뻔뻔스러운 놈! 지금 네놈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하느냐?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지 말아라!"

"전쟁터에서 계율을 지킬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 네놈에게 하산해도 좋다고 허락하더란 말이냐!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줄 아느냐? 어떻게 그런 건방진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이냐! 변덕스러운 생각을 쫓아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돼. 잠자코 수련에 힘을 기울이도록 하거라."

"무슨 일이 있어도 참전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참전을 하면 세상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계율을 지키거라!"

"우리 몸이 바로 신들이 거주하는 도관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사이훙은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면 어떻게 싸울 수 있겠습니까? 정말로 그렇게 해야 한다면 도관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영양분을 섭취해 몸을 보존해야 합니다. 신들도 낡아빠진 <도관>에는 머무르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머릿속이 불량한 생각으로 꽉 차 있구나. 한 마디로 주제넘은 놈이란 말이다!"

"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조차 없다면 배추나 무와 똑같다고 해야겠지요."

사부는 벌떡 몸을 일으키고는 무시무시한 눈길로 사이훙을 바라보았다.

"이놈, 혈기에 의지해 너무 천방지축이로구나! 후회할 짓을 하기 전에 잘 생각해 보도록 하거라!"

"저는 떠돌이 도인이 될 생각입니다. 이곳을 떠나면 그 어떤 도관에도 적을 두지 않겠습니다."

사이훙의 목소리는 조용하면서도 단호했다.

"이제 떠나면 돌아올 생각은 하지 말거라."

사부의 최후통첩이 떨어지자 사이훙은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할 얘기는 모두 마친 셈이었다.

"사부님,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사부는 다시 자리에 앉아 꼴도 보기 싫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화산파의 무예는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어, 화산 출신의 제자들은 크게 환영을 받았다. 산을 내려온 사이훙과 린 쭝우와 칭 수이셩은 각기 다른 게릴라 부대에 들어갔다. 그들이 정규군 대신 게릴라 부대를 선택한 이유는 정규군은 상급 부대의 명령을 따라야 하지만 게릴라 부대는 어떤 통제도 받지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싸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이훙이 소속한 게릴라 부대의 우두머리는 차이 딩지에와 바이쑹지였다. 사이훙 부대는 적의 후방을 배회하거나 정찰 부대처럼 최전방 지역을 들쑤시면서, 적군을 공격하기도 하고, 때로는 적군의 장비를 파괴하며, 적군의 기밀을 몰래 빼내기도 했다. 무술이 뛰어났던 사이훙과 동료 대원들은 총보다는 전통 무기를 선호했다. 정규군과 함께 전투에 참여할 경우에만 총을 사용했다.

사이훙이 즐겨 사용하는 무기는 한쪽 날이 선 칼과 창이었다. 검은색 무사복에 짚신을 신고 땋은 머리는 위로 감아올려 두건 속에 집어 넣었다. 사이훙은 높은 이상을 가슴속에 품은 채 성난 종마처럼 적을 무찔렀다. 그는 특히 단독으로 적진에 뛰어들어 적군을 하나씩 쓰러뜨리길 좋아했다. 사이훙은 새벽이나 황혼 무렵, 때로는 훤한 대낮에도 풀숲에 몸을 숨기고는 지나가는 적병을 몰래 쓰러뜨렸다. 창에 목을 찔린 적병은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죽었다.

접근전이 벌어지면 사이훙은 칼을 휘두르면서 상대방에게 바싹 다가가 상대방이 총 대신 대검을 사용하도록 했다. 차가운 소리를 내며 칼집을 나온 사이훙의 묵직한 칼은 어김없이 위력을 발휘했다. 사이훙은 몸을 빙글 돌리거나 펄쩍 뛰어 공격을 피하면서, 번쩍 칼을 휘둘러 상대방의 사지를 잘라버렸다. 사이훙은 찌르고 베고 피하고 휘두르는 법을 가르쳐 준 무인들의 철학을 명심하고 있었다.

<고통을 주려면 슬쩍 베고, 자비를 베풀려면 목을 자르라.......>

사이훙은 시간이 날 때마다 온 힘을 기울여 권법을 수련해 왔기 때문에 손발의 위력이 마치 쇠뭉치를 휘두르는 듯 했다. 그 동안 금욕 생활을 한 덕에 기가 온전히 보존되어 있었으며 피나는 수련을 계속 한 탓에 여러 가지 무예도 시간이 갈수록 나아졌다. 사이훙은 무시무시한 전사가 되었다. 손과 발을 한 차례만 휘두르면 적군이 죽어 넘어졌고, 목을 비틀어 적군을 죽이기란 식은 죽 먹기였다.

날이 가고 달이 지남에 따라 사이훙은 여지껏 품어 온 이상이 사라지는 대신 증오심이 커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처참한 전쟁 속에서 지성은 마비되고, 동정심은 철저히 상실되었다. 사이훙은 화산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하지만 일본군의 잔혹성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자 그는 사람을 증오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적들이 유린한 마을에 들어설 때마다,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악행의 극한을 낭자한 선혈과 함께 목격했다. 찢겨진 시체, 강간당한 여자들, 호되게 구타당한 육신, 총검에 찔린 어린아이들, 사지가 달아난 소년들, 성기에 말뚝이 박히고 불살라진 몸뚱어리. 사이훙은 신물이 날 정도로 그런 끔찍한 장면들을 보았다. 잔인한 죽음의 현장을 목격하면서 사이훙은 그런 증오심을 키웠으며 예리한 칼날을 곧추세웠다. 전쟁의 잔혹상은 동료들의 감성도 모두 마비시켜 버렸다. 그들은 단호하고 냉정해졌다. 사이훙은 아직 그러질 못했다. 명분을 따르느냐, 들뜬 광기를 따르느냐를 놓고 갈팡질팡했다.

계속된 전투로 정신이 흔들렸다. 전쟁터의 폭음과 비명소리에 몸과 마음은 상처를 입었다. 그는 시도 때도 없이 전쟁 소리와 마주쳤다. 폭탄의 불길한 굉음, 자동 소총의 미칠 듯한 소리, 심지어는 자신의 칼날이 살점을 도려낼 때 내는 희미한 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이훙의 영혼을 직접 파고든 것은 인간의 소리였다. 갈피를 못 잡고 공포에 질린 어린아이의 흐느낌, 죽어 가는 동료의 비명, 적의 마지막 신음....... 그 속에서 사이훙은 <?>라는 질문을 던지곤 했다. 사이훙은 전쟁터가 잠잠해지는 그런 순간을 동경했다. 파괴의 불협화음이 잠잠해지면 사이훙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이제껏 배워 온 것과 실제 전쟁 사이의 기묘한 딜레마를 해결해 보려고 했다. 엄격하고 절대적인 금욕에 초점을 둔 화산의 순결성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기회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화산에서는 죄를 지을 만한 유혹이 없었다. 그곳은 헌신적인 인간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였다. 도인이든 견습생이든 모두가 영적인 상태로 몰입하기 위해 힘을 썼다. 화산에서 가장 싫었던 것은 지겹도록 규칙적인 금욕 생활뿐이었다.

화산은 전쟁터의 더러움과 타락에 비하면 천국이었다. 전쟁터에서는 산과 천국이 너무 멀어 닿을 수 없는 곳처럼 보였다. 이제 사이훙은 분노로 인해 살인과 모함을 일삼는 망가진 생활을 하고 있었다. 훔칠 수 있는 건 뭐든지 훔쳐 먹어야 했으며, 생물을 죽이기 위해 덫을 설치하는 일에 온갖 머리를 다 써야 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을 완벽하게 하기 위해 자신의 영적인 모습은 완전히 제쳐두어야 했다. 옛 도인들의 말이 옳았다. 속세에 뒤엉키지 않고 살아가는 일은 정말 어렵고도 순결한 일이었다.

사이훙은 세상사에 완전히 얽혀 들었다. 까마귀밥이 되어버린 썩은 육신을 볼 때마다 그는 복수의 열정에 사로잡혔다. 전쟁터의 비명 속에서는 경전의 속삭임도 덧없는 일이었다. 격분은 이제 일상사가 되어 인내심을 밀어냈다. 사이훙은 백성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했다. 어린 시절부터 살생은 영원한 천벌을 가져온다고 배웠다. 그는 그 교훈을 받아들였다. 후회 없이 지옥에 갈 것이다.

화산에 대한 생각도 점점 씁쓸하고 냉소적인 것으로 변해갔다. 도인들이 그토록 위대하다면 그들은 왜 전쟁을 중단시키지 못하는가? 물론 대답은 있었다.

<도인들은 속세와 인연을 끊은 사람들이다.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그러므로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사람이 아닌가? 그들은 중국인이 아닌가? 그들은 왜 그들의 특별한 능력으로 무의미한 침략 행위를 중지시킬 수 없는가? 문답 끝에 사이훙은 도인들이 할 수 있다 해도 하지 않으려 할 것이라는 사실을 명료하게 깨달았다. 누구나 자신의 운명이 있고, 선과 악을 어차피 선택해야 했다. 전쟁은 운명이고, 운명은 신으로서도 어찌해 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영혼은 분명한 길을 제시하지 못한다. 영혼은 인간의 열망이 구체화된 것이지만 그것이 기적을 낳지는 않는다.>

도교도들도 결국 인간이라는 점을 사이훙은 슬픈 마음으로 깨달았다. 평범한 인간.......

흔히 사람들은 도교도를 일컬어 자기 파괴적이고 자기몰입적이라고 한다. 물론 도교도들이 타인의 비극에 등을 돌렸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도교의 길을 걷는 사람은 자신의 완성을 모색하는 동시에 타인의 완성을 위해서도 모든 것을 다한다. 문제는 인간 사회가 각각의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고, 개인들은 고상한 의식을 위해 희생할 것이냐 타락의 길로 빠져들 것이냐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의지와 기회를 갖추고 태어났다는 점이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의무이자 인간이라는 사실의 의미이다. 악이 없다면, 결과도 선택도 없을 것이다. 인간성에는 늘 선택이 존재한다. 그리고 인간의 자유는 꾸준하고 지속적인 노력으로만 얻을 수 있다. 도교도들이 나라 전체와 지구 전체를 구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그런 행위는 최상의 자비 행위를 드러내는 것이지만 그런 일은 옥황상제의 능력도 벗어난 영역일 것이다.

사이훙은 명상을 통해 통찰력을 얻었다. 인간의 생활은 고상한 의식과 막연한 느낌의 중간이다. 인간은 아직 진화 단계상의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지 못했다. 진화 단계의 한순간에 일어난 전쟁이 사이훙에게 갑자기 하찮고 의미 없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런 철학적 비약이 불행하게도 전쟁터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사이훙은 그곳에 있었다. 그를 둘러싼 현실적 죽음과 철학적 고뇌는 그곳에서는 해결될 수 없었다. 싸움을 계속해야만 했다. 그는 죽고 싶지 않았고 살해당하고 싶지도 않았다. 사이훙은 화산과 신과 인간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한 뒤에 결론은 아주 단순하게 내렸다. 자기를 죽이려는 자는 누구라도 죽일 것이라고. 그렇게 하는 것만이 현재 자신의 임무를 다할 수 있는 것이라고.

 

25. 귀향

전사로서 생활하는 동안 항상 끔찍스러운 일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전쟁 중 사이훙은 베이징에서 광둥으로, 허난에서 쓰촨으로 중국 전역을 돌아다녔다. 전쟁의 참화도 중국의 장엄한 경치와 황홀한 아름다움을 가리지는 못했다.

지인을 만나는 즐거움도 있었다. 다른 부대가 지나가거나 부대가 서로 합치게 되면 사이훙은 친구들을 찾았으며, 두 명의 사형과 재회하는 기쁨도 누렸다. 운이 엄청나게 좋은 날 이따금 보게 되는 닭 한 마리도 전쟁터에서는 행복이었다. 닭이 보이면 사이훙과 동지들은 행복한 미소를 짓고는 닭에 진흙을 발라 굽는 <거지식 닭구이> 요리를 했다. 그렇게 만들어 먹는 음식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려 준 성찬이었으며, 그렇게 먹는 물 한 모금은 천년 된 포도주보다도 달콤했다.

언제나 일본군을 죽이는 일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한 번은 사이훙과 부하들에게 같은 편인 장 제스 사령관 집에 침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장 제스는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장군들의 충성심을 확인하거나 징계를 주어야 할 경우, 인질을 잡아 가두는 방법을 즐겨 사용했다. 시안 사건(군벌 장 쉐량이 마오 쩌둥이 이끄는 공산당과의 합작을 종용하기 위해 시안에 들른 장 제스를 감금한 일) , 장 제스는 북로군을 이끌고 있는 장군의 열 살 먹은 손자를 인질로 자신의 집에 데려다 놓았다. 사이훙 부대의 사령관인 차이 딩지에는 이 일에 크게 분개했다. 내전이 다시 벌어지려 했고 북로군은 국민당에서 떨어져 나가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분열을 막고자 하는 차이 딩지에가 사이훙에게 내린 명령은 난징으로 가 인질을 구출해 오는 일이었다. 물론 그 계획은 총사령관에 대한 반항이자 모반이었지만 차이 딩지에는 사이훙이 일을 잘 처리하리라 믿고 있었다.

사이훙은 난징에 도착하자마자 지하 스파이를 통해 장 제스가 살고 있는 집의 도면을 입수했다. 장 제스는 신중한 사람이었다. 그의 저택에는 높은 담이 둘러쳐져 있었고, 군인들과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스파이는 그 집의 도면을 주면서 경계를 뚫고 잠입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총사령관 장 제스의 집에 들어가는 것은 도전이었고, 사이훙은 언제나 도전을 좋아했다. 사이훙은 초승달이 뜨는 날을 잠입 날짜로 잡고 부하들과 함께 작전을 세웠다.

그날이 되자 사이훙은 부하 한 명과 함께 어린 인질이 갇혀 있는 건물 바깥의 수풀 사이에 미리 몸을 숨겼다. 약속된 시간이 되자 사이훙의 다른 부하들은 정원의 맞은편에서 짐짓 취한 체하고 싸움을 벌였다. 밖이 웅성거리자 많은 경호원들이 소리 나는 쪽으로 모여들었고 사이훙은 소란을 틈타 담을 넘어 정원으로 잠입했다. 바깥에서는 싸우는 소리가 한층 더 커지고 있었다.

건물 입구에 두 명의 보초가 보였다. 사이훙은 나무 틈을 살며시 헤치고 나가 보초들이 그를 발견하기도 전에 둘의 혈도를 눌렀다. 보초들이 거꾸러지자 사이훙은 그들에게서 열쇠를 꺼내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 안에는 보초가 몇이나 되는지 알 길이 없었다. 두 사람은 융단이 깔린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갔다. 멀리 복도 끝에 보이는 전등빛으로 보아 안에 두 명의 경호원이 더 있는 것 같았다. 사이훙이 들어온 문은 자물쇠가 걸려 있었기 때문에 보초들은 그쪽에는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옷자락 스치는 소리도 없이 접근한 사이훙은 단 두 주먹으로 보초들의 급소를 찔렀다. 보초들이 쓰러지자 사이훙의 부하가 문을 부수었다. 안에는 소년이 잠들어 있었다.

시안에 돌아온 사이훙은 소년을 아버지에게 보냈고 북로군은 다시 사기를 되찾았다. 장 제스로서는 빼앗긴 인질을 다시 데려올 방법이 없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겠지만 자존심 강한 장 제스는 인질을 놓쳤다는 사실을 떠벌일 형편도 아니었다. 더욱이 일본에 전면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내전을 그치겠다던 장 제스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북로군 사람들은 활기를 되찾아갔다.

끔찍스런 2년 동안의 전쟁은 사이훙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화산에서 받은 수련과 후천적으로 길러진 무자비함으로 살아남을 수는 있었지만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사이훙은 사태를 가늠해 보고 미래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1939년경 진격하는 일본군에 쫓겨 내륙으로 들어간 군대가 야산과 계곡을 따라 방어선을 구축하자 전투는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일본군은 부대 훈련도 시키고 위협도 할 겸 방어선 지대에서 소규모 전투만을 계속 벌였다. 그들은 전선 깊숙이 침투했다가 퇴각하면서 약탈과 방화를 자행했다. 중국군은 그런 소규모 전투에서 언제나 물러섰고, 퇴각하는 일본군을 괴롭히는 정도의 대응밖에 하지 못했다. 철통 같은 일본군 진지는 물론이고 양 진영 사이에 넓게 자리한 대치 공간도 그들에게는 넘지 못할 벽으로 자리 잡았다. 일본군은 시도 때도 없이 방어선 주변에 출몰했다. 도시들이 하나씩 파괴되어 갔으며 농부들은 수천 명씩 죽어갔다. 황폐한 대지는 흥건한 그들의 피로 마를 날이 없었다.

사이훙은 지치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개인 참호 속에서 무감각하게 다음 공격을 기다리며 상처를 치료했다. 열병에 목숨을 잃기도 했다. 전쟁은 점점 의미를 잃어갔다. 사이훙은 그제야 전쟁과 무관한 세상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곳이야말로 아직도 배울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허가 바다와 만나는 산둥의 끝자락에서 사이훙은 자신이 이끌던 유격부대를 해체했다. 화산으로 돌아갈 작정이었다. 하지만 사이훙의 마음 뒤켠에는 산에 돌아가도 환영받지 못하리라는 불안감이 있었다. 도량을 뛰쳐나올 때 사부는 다시 돌아올 생각은 말라고 했었다. 재입산이 허락될지 의심스러웠다.

화산으로 가는 길에 관가보에 들렀다. 조부모님들은 전쟁 직후 화산으로 피난을 가셨으며, 지금은 벌목꾼의 오두막에 두 분 다 몸져 누워계시다는 걸 알았다. 사이훙의 아버지는 아직도 전장에 있었고, 다른 가족들은 내륙 깊숙이 피난을 떠나고 없었다.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버린 것이다. 사이훙은 저택을 버리지 않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다시 한번 보고 싶었다. 그는 선조들이 살아온 집에 도착했다. 그를 맞이해 주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사이훙이었지만 폐허가 돼버린 집을 보니 애절한 슬픔이 밀려왔다. 넓은 대지, 정원, 장려한 건물로 우뚝 섰던 관가보는 불에 탄 채 잔해만이 산산이 흩어져 있었다. 관가보는 관씨 4대가 영화를 꽃피웠던 곳이었다.

일본 군대가 저택을 습격했던 게 확실했다. 총탄 구멍이 나무벽 군데군데 시커먼 흉터를 남겨 놓았고, 포탄에 맞아 생긴 구멍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수려했던 격자무늬 창살은 격렬한 총격으로 산산조각이 났으며, 정자와 고목들은 이미 불에 타버리고 없었다. 냇물과 우물은 독약이 뿌려져 폐쇄돼 있었고, 사당은 마굿간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부귀영화의 상징이던 예술품들도 모두 약탈되었거나 부서져 있었다. 부서진 벽의 틈새로 새어 나온 희미한 불빛이 마당에 널려 있는 수십 구의 시체를 비춰 주었다. 일본군과 중국군의 시체도 더러 보였지만, 대부분은 집에 있던 종들이었다. 그들은 사지가 뒤틀린 채 죽어있었다. 몇몇은 사이훙이 어렸을 때부터 잘 아는 이들이었다. 한쪽 그늘에 널브러져 있는 강간당한 소녀의 시체가 눈에 들어왔다. 허리 부위에 피가 그대로 응고되어 있었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이가 부러졌으며, 벌거벗은 다리를 쭉 뻗고 있었다. 사이훙에게 말 타는 법을 일러주던 나이 든 마부는 서까래에 매달려 있었다. 살점이 거의 없어 몽둥이를 끈으로 매달아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모든 시체의 얼굴에 죽음의 공포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자신들의 마지막 순간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사이훙은 천천히 정원을 거닐며 예전의 기억을 되살려 보려고 애를 썼다. 소용없었다. 살 썩는 냄새가 가족들이 거닐던 뜰의 재스민 향과 맑은 공기의 추억을 압도했다. 다채로운 색으로 치장된 날렵한 기둥들 대신 까맣게 그을은 채 뼈만 남은 폐허만이 한때 영화롭던 관가보의 멸망을 말해 주고 있었다. 이곳에는 생명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이곳에서 산다면 아무런 도움도, 아무런 동정도 받지 못한 채 이 가련한 시체들의 썩는 냄새만을 맡아야 할 것이다.

사이훙은 정자가 있던 곳으로 갔다. 할아버지가 피리를 불던 장소였다. 독약이 뿌려진 연못에는 죽은 물고기들만이 허연 배를 하늘로 드러낸 채 둥둥 떠 있었다. 그의 가족이 살던 집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사이훙은 발길을 돌려 그곳을 떠났다. 울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하늘의 뜻이었다.

사이훙은 화산에 이르는 가파른 길을 올라갔다. 바람은 잦나 하고 공기는 신선했다. 햇빛이 맑게 빛나고 있었다. 화산은 얼마나 성스러운가! 화산의 엄숙한 고요와 전쟁터의 추악한 더러움이 뚜렷한 대조를 이루었다. 사이훙은 산을 오르는 동안 시냇물에서 두 번이나 몸을 씻었지만 참담하고 씁쓸한 마음까지 씻어 내기는 힘들었다. 오히려 산의 성스러움을 더럽히는 느낌이었다.

사이훙은 비감한 마음으로 산길을 올랐다. 전에는 화산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처음에는 꾐에 빠져 그곳에 갔었다. 다음에는 그곳을 지긋지긋한 기숙 학교처럼 여겼다. 나중에는 조금 동기를 찾긴 했지만 여전히 불완전한 신념이었다. 사이훙의 마음속엔 언제나 의심이 가득 차 있었다. 이제야 사이훙은 엄숙함과 깨달음에 헌신할 준비를 하고 돌아올 결심을 한 것이다. 손에 피를 묻히고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채 의지할 곳을 찾아온 것이다. 화산만은 그를 받아줄 것 같았다.

몇몇 수련생들이 먼발치서 사이훙을 발견하고 그를 맞기 위해 다가왔다. 사형과 사제들은 기뻐하며 사이훙과 자신들의 경험담을 나눴다. 몇몇은 자신들의 맹세 때문에 산을 내려가지 않았었다. 또 몇 명은 치료를 위해서, 혹은 싸우기 위해서 산을 떠났었다. 사이훙은 사부의 안부를 물었다. 사부의 분노가 단순히 형식적이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런 얘기는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도량의 나이 든 주방장이 커다랗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분도 자주 모습을 감추셨어. 가시는 곳은 말하지 않고 항상 <일이 있네.>라는 말씀뿐이셨지. 그리고 몇 달 동안 나타나시지도 않았네. 하지만 나는 그분이 종종 산 밖으로 나가 싸움에 참가하셨다는 걸 알고 있지."

"그걸 어떻게 아시죠?"

사이훙이 노인에게 물었다.

"매달 올라오는 신문에 지팡이를 든 도인에 관한 기사가 주기적으로 실렸거든. 대사님만이 그런 지팡이를 가지고 다니시지. 그 기사에 대해 대사님께 물어본 적도 있었는걸. 물론 그분은 모든 것을 부인하셨지만."

"그 기사에 뭐라고 씌어 있던가요?"

"일본 무사들의 도전을 받기 위해 상하이와 베이징을 가셨다고 나와 있었네. 마지막 기사가 난 게 1936년이었지."

"전 그때 여기에 있었는데 왜 절 데려가지 않았을까요?"

"자네의 고약한 성깔 때문에 자네가 직접 링에 뛰어 올라가 죽게 될까봐 그러셨던 게지."

"아하."

"일본놈들이 우리를 동양의 환자라고 불렀다네. 그래서 대사께서 그들의 도전을 받아들이기 위해 가신 거고. 그분은 두 손가락만으로 황소처럼 커다란 스모 선수의 목을 공격해서 쓰러뜨리셨지. 베이징 시합에서는 손목과 손바닥만을 사용하셨어. 그때는 가라테 유단자 두 명, 검도 사범 한 명, 그리고 유도 사범들이 한꺼번에 공격을 했는데 말이야."

"그렇다면 사부께서도 몸소 싸움판에 끼어들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지 않으신 거네요!"

사이훙이 소리쳤다.

"분명히 그렇지. 그런데 또 다른 시기에 똑같은 도인이 쓰촨에 나타났어."

"쓰촨에? 우리 사부님이오? 그분이 거기서 무슨 일을 했습니까?"

"같은 일이지. 그곳에 일본군대가 점령한 찻집이 있었네. 그들의 사령관이란 작자는 가라테 4단으로 알려져 있었고. 사령관은 찻집에 있었고 대사께서 곧장 안으로 들어가서 차를 마시기 위해 점잖게 자리를 잡고 앉으셨지. 중국인이 들어왔으니 큰일 났다며 겁에 질린 채 종업원들은 차를 대접했네. 그 사령관은 자신의 기술을 뽐냈고 중국 무인을 경멸하고 얕잡아 보았지. 그때 대사께서는 찻잔을 내려놓고 가소롭다는 웃음을 날렸네. 그러자 사령관이 대사님을 공격했지. 하지만 대사님은 한 손으로 그를 던져 버렸네. 아주 큰 싸움이 벌어졌어. 물론 그 찻집을 걸어 나온 사람은 대사님뿐이었다지만."

"나쁜 노인네 같으니라구. 그랬으면서 나한테는 그 난리를 쳤단 말이에요? 가서 앙갚음을 해야겠어요."

사이훙은 짐짓 화가 난 듯 대꾸했다.

"그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사이훙. 자네가 가서 싸워봐야 최후의 승리자는 언제나 대사님이시니까."

노인은 낄낄거렸다.

"그건 사실이에요. 이번에도 확실히 그분이 이기셨으니까."

사이훙은 미소지으며 그 말에 수긍했다. 그들은 남봉 사원에 당도했다. 수도승들이 그를 안으로 인도했다. 사이훙은 서재에 있는 사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사부는 그를 무덤덤하게 내려다보았다. 사부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깜박거림 없이 차분하게 주시하는 눈, 눈처럼 하얀 머리카락과 수염, 똑바른 자세가 전과 다름이 없었다. 사이훙은 사부의 말을 기다렸다.

"그래. 돌아왔느냐?"

사부가 조용히 물었다.

"그렇습니다, 사부님."

"왔으면 다시 수련을 해야지."

그게 다였다. 사부는 돌아온 제자를 받아들였고 부드러운 미소로 지난 일을 용서했음을 알렸다.

 

 

5부 진정한 자아를 찾아서

 

26. 미로

화산으로 돌아와 일주일 뒤 사이훙은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동굴에서 홀로 지내며 금욕 생활을 하기로 맹세했다. 사이훙과 사부는 길일을 택해 화산의 서봉으로 향했다. 그들은 동굴 입구 옆에 있는 넓적한 바위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사부가 사이훙은 향해 돌아서면서 말했다.

"바로 이곳이다. 여기에 머물면서 네 참모습을 깨닫도록 해라."

그들은 동굴 안의 비탈길을 따라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곳곳에 수많은 샛길과 방 같은 공간이 있어 사이훙은 마치 미로 속을 헤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동굴 깊숙이 들어갈수록 공기는 더욱 더 차가워졌고, 발자국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간간이 비좁은 길을 지날 때마다 몸을 옆으로 틀어 지나가야 했다. 동굴 속은 숨이 막힐 정도로 어두웠으나 가끔 반짝이는 광석 덕분에 제법 환한 곳도 있었다. 암석이 녹아 내려 생긴 듯한 수많은 종유석은 밑에서 솟아오른 석순과 닿을 듯 말 듯했다. 한동안 꽤 큰 개울물을 옆에 기고 걷던 두 사람은 마침내 횃불과 기름 등으로 밝혀진 다섯 개의 석실에 도착하였다. 그곳이 바로 사이훙과 사부의 목적지였다.

석실 부근에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복도와 웅덩이들이 수없이 많았다. 천장에는 자연적으로 생긴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그 구멍들은 통풍구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 구실도 했다. 사이훙은 빛을 받아 모습이 드러난 물건들을 바라보았다. 돌침대, 향로, 기름 등, 몇 권의 서적, 호리병 물통, 물시계, 악기, 필기구, 일기장과 여벌의 옷.

그곳에는 명상에 전념할 수 있도록 분리된 석실이 있었다. 개울물이 그 방 안으로 흘러들어 중앙에 깊은 웅덩이를 거친 뒤 밖으로 흘러 나갔다. 석실 한쪽에는 나무로 만든 커다란 명상용 제단이 있었다. 용의 발톱 모양을 한 바닥에는 고대의 암호가 새겨져 있었고, 학 모양을 한두 개의 철제 향로가 제단 좌우에 놓여 있었으며, 모래로 덮인 돌바닥에는 커다란 원이 새겨져 있었다.

사이훙은 풀로 엮어 만든 방석과 표범 가죽과 명상용 깔개를 제단 위에 깔았다. 사부는 사이훙에게 팔괘경을 건네주고 목에 부적을 매주며 마지막 훈시를 하였다.

"많은 도인들이 이곳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네 사형들 역시 이곳을 거쳤다. 정진하고 인내하거라, 사이훙. 너 또한 성공하리라 믿는다."

사이훙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사부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이제 사이훙은 외톨이가 되었다. 사이훙은 매일 아침 명상을 하고, 별자리를 관찰하며, 경전을 암송하고 저녁 명상을 통해 수련을 쌓아 갔다. 그 외의 시간은 동료가 가져오는 세 번의 식사와 무술 수련, 악기 연주, 서예, 그림 그리기, 동굴 답사 등을 하며 보냈다.

사이훙은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하고 목욕으로 몸을 청결히 한 다음 체력을 단련하였다. 그러고는 명상용 석실로 가 신성한 원형 속의 제단 위에 앉아서 모래 위에 특이한 그림을 그렸다. , 사각형 등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그 그림은 천지의 모든 힘과 열 방향, 다섯 원소를 상징하는 도형이었다. 사이훙은 각각의 신을 나타내는 한 획 한 획을 신에게 호소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려 나갔다. 자신을 보호해주고 지원해주는 도형을 힘들게 만들어 낸 뒤 사이훙은 그 중심부에 들어가 앉았다. 그 도형과 목에 매단 부적은 사이훙의 정신이 신체를 떠났을 때 외부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런 보호막이 없으면 사이훙의 육신은 들어앉을 육신을 찾아 헤매는 수많은 악령과 악마에게 침해를 받을 것이다. 악령과 악마들은 육신의 아홉 구멍으로 들어와 정신이 회복되는 것을 방해했다.

마음이 고요해지면 사이훙은 24가지의 손동작을 하며 생각을 중단하고 집중력을 심화시켜, 마침내 정신이 육신을 떠날 수 있는 준비를 했다. 그러한 동작들은 바로 우주가 진화해 온 전체 과정을 상징하고 있었다. 사이훙의 명상은 우주 생성의 최고점에 올라 있었다. 사이훙은 완전히 다른 세계에 있으면서 조용히 앞에 있는 받침대 위에 놓인 경전을 읽었다. 힘을 지닌 경전의 각 단어들은 사이훙의 영혼이 여행을 떠나도록 만들었다.

사이훙은 경전을 암송해 신들에게 기도하였다. 사이훙이 여행 중에 모든 신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자 도교의 삼신을 비롯한 하늘의 모든 신들이 사이훙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이훙의 영혼은 육신을 떠나 용을 타고 하늘로 향했다. 하늘에 도착하면 사이훙은 일단 신들 앞에 자세를 낮춘 다음 계시를 기다리면서 명상의 자세를 취했다. 신들이 입을 열지 않을 경우에는 사이훙이 신들에게 궁금한 사항을 질문하였다.

두 시간 뒤, 그는 경전의 다른 부분을 암송하면서 의식 상태로 되돌아왔다. 그는 환영을 사라지게 하는 동작을 하며 도형의 한 획 한 획을 지웠다. 도형을 지우며 도형에 의해 불려 온 신들을 놓아주기 위하여 경전을 암송하였다.

경전을 읽는 일 또한 중요한 일과였다. 매일 점심을 들기 전에 사이훙은 신들을 향해 과거에 맺은 인연의 끈을 깨끗이 없애 달라고 호소하는 경전을 암송하였다. 신들은 하루에 두 번 내려왔는데, 양신은 낮에, 음신은 저녁에 강신하였다. 동굴 속의 신비를 탐험하는 자유시간 무렵의 정오 경이면 사이훙은 재차 명상에 돌입하였다.

동굴 안의 구조는 매우 복잡하고 불규칙했다. 어떤 곳은 비좁은 바위틈새를 통과해야만 했고, 어떤 곳은 물밑을 헤엄치거나 자연적으로 생긴 돌다리를 지나야 도달할 수 있었다. 앞서 수행했던 은자들이 동굴 속에 은둔하며 많은 곳을 탐험하고 표시를 해 놓았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밝혀 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그 중에는 매우 위험스러워 보이는 곳들도 있었다. 어떤 곳에는 출입하지 말라는 경고판이 있었다. 특별히 마음에 들어 즐겨 찾는 곳도 있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낯선 곳으로 갈 때면 새로운 경험에 따른 신비감과 경이로움을 느끼곤 했다. 동굴에 머무른 지 얼마 안 되서 사이훙은 바위를 타고 내려가 긴 복도를 찾아냈다. 복도 안쪽으로 몇 미터 들어가 보니 바닥 아래쪽으로 또 다른 동굴이 뚫려 있었다. 그 동굴 속을 살피다가 무너진 고대의 계단과 벽에 박힌 쇠사슬을 보았다. 사이훙은 횃불을 손에 쥐고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사이훙은 아래로 걸어 내려가면서 발자국 수를 세었다. 아래로 내려가면 갈수록 위쪽 동굴에서 비치는 빛이 희미해지더니 마침내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횃불만이 유일한 길이었다. 사이훙은 계속 발자국 수를 세었다. 발자국 소리는 사이훙에게 최면을 걸었고, 어둠은 사이훙을 더욱 당황하게 만들었다. 단단한 동굴 벽에 의지해 끝이 보이지 않는 동굴 속으로 이끌려 갔다.

그가 5백 번을 세었을 때였다.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사이훙은 천을 세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12백을 세었다. 그것이 목소리였던가? 13백을 세었다. 틀림없이 목소리였다. 이상하게 억눌린 비명소리와 울음소리였다. 위쪽을 쳐다보았지만 칠흑같은 어둠만이 보일 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엎드린 자세로 15백보까지 내려갔을 때 비로소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그는 누군가 자신에게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자신이 지나온 곳을 돌아보았지만 계단과 쇠사슬마저 어둠 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가 그에게 가까워졌다. 놀란 사이훙은 재빨리 몸을 돌려 위쪽으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동굴을 벗어날 때까지 사이훙은 멈추지 않았다. 가슴이 격렬하게 뛰었다.

사이훙은 다시는 그 동굴 근처에 가지 않았으며, 두려움은 곧 사라졌다. 다음에는 동굴의 크기를 알아보기 위하여 답사를 해보았다. 그는 화강암 사이에 난 비좁은 틈새로 흘러들어 오는 희미한 빛을 향해 전진했다. 바위 틈바구니 끝에 이른 그는 맞은 편 출구를 통하여 밝은 빛과 안개를 보았다. 사이훙은 화산을 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급히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사이훙은 화산의 봉우리 대신 지평선 너머로 펼쳐져 있는 숲을 보았다. 사이훙은 어리둥절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쪽 방향에 숲이 있을 리 만무했다. 설사 그가 가보지 못한 장소가 있다 해도 화산 부근에 그처럼 광활한 지역이 존재하기란 지형상 불가능했다.

사이훙은 동굴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나가기가 내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동굴 입구에서 풍경 하나 하나를 세세히 살펴보기만 했다. 대부분의 나무는 굵고 비틀어진 소나무들이었다. 넓은 잎사귀를 가진 나무들이 전혀 없어서 마치 원시 상태의 숲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원시의 숲은 그지없이 조용하기만 했다.

사이훙은 발걸음을 돌려 비좁은 틈새를 지나 그의 거처로 되돌아갔다. 그는 그날 본 것은 모두 일기에 적었으며 나중에 사부에게 질문하였다. 질문을 받은 사부는 자신도 무한한 숲을 보았다고 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숲의 끝을 보지는 못했고, 이전에 득도한 사부들조차 그곳을 답사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했다. 사부의 말에 의하면 어떤 사람을 그곳으로 들어갔다가 길을 잃어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어느 날 오후, 사이훙은 우연히 전에는 보지 못했던 출구를 발견했다. 그 출구는 좁은 동굴의 높다란 벽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는 출구까지 기어올라가 햇빛이 비치는 바위 위로 나갔다. 그곳은 깎아 지른듯한 절벽 표면이 움푹 패면서 생긴 곳이었는데 몸을 뻗고 늦은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을 즐길 수 있을 만큼 넓었다. 그는 바위틈으로 꼭대기에 숲이 있는 또 다른 절벽을 보았다. 그는 느긋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곳곳의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잠시 후, 바위 틈새 저편에서 이상한 동물이 나타나더니 사이훙 앞으로 다가와 껑충껑충 뛰기 시작했다. 언뜻 보기에는 조랑말 같이 생겼으나 전에는 보지 못한 동물이었다. 조랑말과 같은 발굽과 형태를 가지고 있었지만 사슴 머리에 솜털 같은 꼬리가 달려 있었고, 몸에는 비늘이 있었다. 그 동물은 껑충껑충 뛰면서 원을 그리는가 하면 감춰진 다리로 진흙을 긁으며 때때로 말처럼 낑낑거렸는데, 마치 사이훙에게 같이 놀자고 하는 듯했다. 그러나 사이훙은 그럴 수가 없었다. 커다란 바위가 둘의 만남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 동물은 모습을 감추었다가는 나무 뒤에서 다시 조심스럽게 머리를 내밀고 엿보았으며, 그러다가는 다시 사이훙 앞으로 껑충껑충 뛰어나왔다.

사이훙은 해가 질 때까지 그 동물이 춤추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저녁 수련을 하기 위해 돌아섰다. 그 동물은 몹시 실망한 듯 슬픈 모습으로 벼랑 끝에 서 있었다. 사이훙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동물을 바라보았다. 동물이 반짝이는 햇빛 아래 머리를 흔드는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다

웠다. 사부가 방문하자 사이훙은 사부에게 그 동물에 관해 물어보았다.

"사부님, 평범해 보이지 않는 동물들을 봤습니다. 이틀 전에는 이상한 조랑말이 보이더니 오늘은 토끼를 봤습니다."

사이훙은 그 동물들의 모습을 묘사했다. 사부가 대답했다.

"네가 접한 풍경과 동물은 너에게 다 의미가 있는 것들이다. 그 의미를 알아내느냐 못 하느냐는 전적으로 너 자신에게 달려 있다."

"조랑말은 그렇다 치더라도 토끼는 더욱 이상했습니다."

"무슨 말이냐?"

"저는 매일 어떤 작은 동굴을 지나가는데 그 동굴 바닥에는 잔디가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오늘 그곳에 한 무더기의 버섯과 토끼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동굴을 떠났다가 채 5분도 안 되어 되돌아가 봤는데 토끼와 버섯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토끼가 버섯을 먹어 버렸을까요? 토끼가 버섯을 먹었다면 잔디 위에 버섯이 있었던 자국과 토끼가 버섯 줄기를 씹다버린 흔적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마 신들이 너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는 모양이다."

"신들의 신호라구요? 그렇다면 그 신호는 무슨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스스로 알아보거라. 만약 알아내지 못하면 명상을 통해 직접 신들에게 물어보거라."

6개월이 지나는 동안 사이훙은 일기를 쓰면서 그간의 경험들을 평가했다. 그는 이제 진정으로 명상을 즐기고 있었다. 즐거움으로 자신도 모르게 웃으며 생활했다. 화산에서 10년동안 수련한 끝에 마침내 그런 경지에 이른 것이었다. 평온하고 즐거우며 건강하다는 느낌, 새로운 배움에 대한 기대감으로 사이훙은 도취되어 있었다.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명상은 그를 예민하게 만들었으며 인간에 대한 그리움 대신 고독을 즐기는 기쁨을 안겨 주었다. 명상으로 계발된 그의 감성과 감정은 동굴 곳곳에서 자극을 받았다. 사이훙은 그림과 음악을 통해 기분 전환을 하였고 자아를 발견하며 안목을 넓혀 나갔다. 실재이건 환상이건 간에 그의 경험은 놀라운 경험임에 틀림없었다. 사이훙은 각각의 경험들에 대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것들은 수수께끼였고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어느 동굴에서 들려 온 목소리, 무한한 숲, 조랑말, 토끼....... 그것들은 실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환상의 소산인가? 광란의 상태에 빠져서 그런 것들을 본 것일까? 그의 인지능력에 의해 나타난 것인가? 아니면 그의 인지 능력과는 상관없이 나타난 것일까? 어쩌면 잘못된 것은 단지 그의 견해뿐인지도 모른다. 혹은 실재에 대한 그의 생각이 잘못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경전들은 한결같이 서로 다른 물체들은 환상의 소산이라고 강조하였다. 어쩌면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차원이 겹쳐 있는 까닭에 개개의 실체가 동시에 여기저기에 나타나는지도 모르고, 또 어쩌면 모든 것이 동시에 같은 곳에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혹시 조랑말 같은 동물은 실재하는 반면 인간은 실재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사이훙은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 오던 동굴과 지평선 너머로 뻗어 나간 숲속으로 빠져 들거나, 조랑말 같은 동물을 만난 암석에서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경험 자체를 의심하지는 않았다. 그는 기이한 동물과 풍경이 자신의 존재와 상관없이 존재하는지, 아니면 자신의 영혼이 만들어 낸 환상에 불과한지에 대해 끝없는 의문을 던졌다. 깊은 인상을 심어 준 몇몇 경험들 때문에 사이훙의 생각과 판단은 날이 갈수록 모호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실재의 근원이 어디에 있든 사이훙은 그것이 자신의 육체와 정신, 영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7. 유혹

처음 동굴에 들어올 때는 그곳에서 9개월 동안 머물 예정이었다. 그러나 9개월은 이미 오래 전에 지났고, 이제는 언제 떠나느냐고 더 이상 묻지도 않았다. 사부의 대답은 늘 같았다.

"아직 공부가 끝나지 않았다."

사부는 매주 동굴을 방문하여 사이훙을 계속 수련시켰다. 사부는 사이훙에게 도덕경, 황제내경, 다경 등을 읽게 하고, 보다 깊은 명상법들을 소개하였다. 그는 사이훙에게 자신의 힘으로 끊임 없이 내면의 세계와 맞닥뜨릴 것을 강조하였다. 사부는 마음을 열고 영적 경험들을 받아 들일 것을 지시했으나 진정한 인식과 수련에 방해가 되는 경험은 반드시 구별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사부는 종종 사이훙에게 무엇이 문제인가를 상기시켰다. 사이훙은 사부의 말을 통해 동굴 생활에 대한 긴장감으로 정신을 잃고 일생을 동굴 속에 갇혀 사는 몇 사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고독과 그릇된 명상법으로 정신적 균형을 잃었는지, 혹은 말하기 어려운 외부 요인에 의하여 균형을 잃었는지는 모르지만 몇몇은 자살을 했다고도 하고 또 다른 몇몇은 미로의 터널을 헤매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사부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성공을 거둔 사람들을 언급하면서 사이훙을 격려하였다. 1년 반이 조용히 흘러갔다. 사이훙은 그 사이 동굴 안에서 친구까지 사귀게 되었다. 사이훙은 음식을 아껴 새들에게 먹이를 주었고, 저녁 식사인 과일을 아껴 원숭이를 친구로 삼았다. 그들은 매우 가까워졌다. 원숭이는 사이훙의 넓은 어깨를 차지하고 앉아서 있지도 않은 이를 잡는 흉내를 내곤 했다.

어느 날, 사이훙은 단상에서 명상을 하다 단 아래의 물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한 남자의 얼굴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길쭉하고 빗질도 하지 않은 머리카락과 수염이 덥수룩한 그 얼굴은 도교 관상학자들이 <음상>이라 부르는 얼굴이었다. 얼굴 한쪽은 초록빛이었으며 눈은 비정상적으로 크고 검어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으나, 다른 한쪽은 인간의 모습으로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음상은 초자연적인 훈련을 거쳐 인간의 형태에서 진화된 동물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어떠한 창조물도 그 원래의 형태를 벗어날 수는 없었으므로 일부는 사람의 얼굴로 있고 남은 반쪽은 파충류의 형상을 지니게 된 것이다. 사이훙은 그 얼굴이 유령일 뿐이라고 자신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 얼굴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사이훙을 쳐다보았다. 사이훙 역시 고집스럽게 그를 마주 쳐다보았다. 그 얼굴이 말했다.

"나는 이 동굴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너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지?"

"나는 금욕을 수련하는 수도자입니다."

"네가 어떻게 금욕을 수련할 수 있어? 너는 어린아이일 뿐이야. 너는 별로 알고 있는 게 없어. 나는 여기서 벌써 5백 년을 수련해 왔는데 아직 5백 년을 더 수련해야 해."

"나를 유혹하지 마! 그렇지 않으면 한 방에 너를 납작하게 해줄 테니까."

사이훙이 크게 소리를 지르자 기이한 얼굴의 눈이 놀라 더 커졌다. 그 사람은 연못에서 솟아 나오더니 단숨에 바위 위로 올라앉았다. 그의 몸은 작고 야위었으며, 덜렁덜렁하게 붙은 팔에 손가락이 길게 나 있었다. 머리카락은 무릎까지 덮여 있었다. 그 사람은 서서 웃고 있었다. 사이훙은 그가 벌거벗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그는 금세 그것을 알아차리고는 원을 그리며 돌아서서 즉시 도교의 법복으로 자신의 몸을 덮었다. 그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나는 박해받는 두꺼비 도인이다. 너는 누구냐?"

"나는 관 사이훙이며 화산정일파의 제자다."

"정일파라고? 네 스승이 누구지."

"화산의 대사이다."

"누군지 알고 있어."

두꺼비 도인이 웃었다.

"멍청하고 바보 같은 늙은이지. 너는 왜 이런 멍청한 짓을 그만두지 않고 계속하고 있지?"

"닥치지 못해? 너는 존재하지 않잖아!"

두꺼비 도인은 발작하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사이훙은 그를 무시하고 경전을 암송하기 시작했다. 두꺼비 도인은 네 시간 동안이나 사이훙을 조롱하고 웃어댔으며 모욕하였다. 그렇게 떠들면서도 전혀 숨 가빠하지 않았고 오히려 목소리가 바위에 부딪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아무리 해도 사이훙이 요동을 않자 그는 점차 물러나기 시작했다. 사이훙이 마지막 암송을 마치자 두꺼비 도인은 그에게 회유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어느 누구도 운명이 정해 놓지 않는 한 나를 만날 수는 없어. 너는 무엇을 원하지?"

"아무것도 없어."

사이훙이 대답하자 두꺼비 도인은 다시 웃었다. 그는 두꺼비같이 물 위를 뛰어넘더니 사이훙 바로 앞에 내려앉았다. 사이훙은 일어섰다. 두꺼비 도인은 그의 뒤로 다가섰고 사이훙과 같은 자세로 서서 다시 조롱하기 시작했다. 사이훙은 왼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도 따라 했다. 사이훙은 원을 그리며 걸었다. 그 사람은 그림자처럼 정확히 따라 했다. 사이훙이 걸을 때마다 그 두꺼비 도인도 사이훙의 움직임을 똑같이 따라 했다. 화가 미친 사이훙이 뒤를 돌아보자 두꺼비 도인은 히죽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사이훙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두꺼비 도인은 사이훙의 어깨에 몸을 기대고 쳐다보며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얼마 뒤 그가 다시 말했다.

"너는 잘 배운 애로구나. 내가 인정하마."

그렇게 말하면서 두꺼비 도인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어쨌든 정일파가 똘똘한 놈을 제자로 두었구나. 잘 들어 둬, 꼬마야. 너는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아느냐?"

"아니."

"수세기 전 나는 큰 싸움을 벌였지. 그래서 벌로 이 동굴에 천년 동안 갇혀 있어야 한단다. 이제 벌을 반 정도 마쳤는데 아직도 나는 끊임 없이 수련을 하고 있다. , 너는 어떠냐? 뭘 수련하고 있지?"

"나는 도교의 비법과 명상을 수련하는 중이다."

"그래?"

두꺼비 도인은 무엇을 생각하는 듯이 천천히 말했다.

"그러면 반드시 영구 명상을 해야 한다."

"나는 벌써 그렇게 하고 있다."

"아까도 말했듯이 성부에 정해지지 않는 한 그 어느 누구도 나를 만날 수 없다. 너는 나를 만날 운명이었던 게 틀림없지. 내 그 선물로 말해 줄 것이 하나 있다. 네가 도교 명상의 수도자라면 영구 명상이 수련을 진보시키기 위해 필수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겠지. 하지만 너는 명상으로 기를 보내는 그 영문들이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 그것들은 사실 네 신체 어디쯤에 있으리라고 추측한 형태에 불과하다. 그것들은 네가 알고 있듯이 어떤 영성의 중심이 아니고 단순한 상상에 불과해. 내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겠어? 사람에게는 정신이 전부야.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는 정신이 모든 것이라는 말이지."

그는 사이훙에게로 다가와서 부드러운 동작으로 손을 사이훙 앞으로 내밀었다.

", 여기 그릇이 있다. 그리고 과일이 있다. , 포도, 복숭아, 보이지?"

사이훙은 조심스럽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과일들을 만져 보았다. 진짜였다. 그렇지만 의심이 들었다. 두꺼비 도인이 사이훙에게 선물한 것은 수수께끼였다. 사이훙은 다시 되돌려 생각했다. 잠시 자신의 얼이 빠져 있었음을 깨달았다. 사이훙은 머리를 흔들어 두꺼비 도인의 형상을 지워 버리려 했다. 두꺼비 도인이 다시 허리를 굽혀 사이훙에게 무슨 말을 하려 하자 사이훙은 도인을 향해 말했다.

"그 포도는 나뭇가지다."

사이훙이 이렇게 말하자 포도가 즉시 나뭇가지로 바뀌었다.

"귤은 바위이고 나머지 과일들은 잎사귀이다. 그 그릇은 널찍한 바위에 지나지 않아."

그러자 과일들은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고 두꺼비 도인의 손에서 떨어졌다.

"네가 영리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두꺼비 도인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는 정신이 얼마나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게다. 너는 그 과일들을 먹을 수도 있었다. 정신이 그것을 결정하지. 이 동굴도 그 자체로 인식되어야만 한다. 우리는 이 동굴이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우리의 정신이 강력하게 그렇지 않다고 여기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둘에 무슨 차이가 있지? 영문이란 존재하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 것이야!"

두꺼비 도인은 공중으로 뛰어올랐다가 물 속으로 들어갔다. 그의 머리가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몸이 완전히 가라앉기 전에 그는 사이훙에게 말했다.

"명심해라, 꼬마야, 무만이 참된 실재다."

그 뒤 두꺼비 도인은 사이훙을 규칙적으로 방문하고 했으나 늘 이상한 방법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어느 날 사이훙은 방을 나와 물 위에 있는 돌다리를 건넜다. 다리 건너편에 노인과 늙은 여인이 서 있었다. 옷차림이 시골 사람 같았다. 노인은 흰 머리카락은 상투를 틀어 올렸고 손에 긴 담뱃대를 쥐고 있었다. 여자는 발목까지 머리카락을 늘어뜨렸으며 짚으로 엮은 빗자루를 들고 있었다. 사이훙이 다가가자 그들은 인사를 건넸다.

"우리는 2천 년이 넘은 대나무들이야."

"2천 년된 대나무는 있을 수 있지만 2천 년이 지났다고 대나무가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사이훙의 말에 여인이 대꾸했다.

"네 옷차림과 부적을 보니 도교도로구나. 도교도들도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해."

이번에는 노인이 입을 열었다.

"아득한 옛날에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모든 사물이 고정되어 있을 필요가 없었던 거지. 너는 평범한 인간에 불과해. 네가 얼마나 오랫동안 살 수 있겠어? 백 년? 아니, 150? 너는 옛날에 존재했던 것들의 힘을 이해하지 못한다."

여인이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 말을 건넸다.

"너는 도인이지? 우리는 도교도가 불멸을 추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네게 불멸을 줄 수 있어. 그렇게 되면 너는 고대에 존재했던 것들의 힘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상상 속에서조차 할 수 없던 것들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것이다."

"그 대가는 무엇이죠?"

사이훙의 질문에 노인이 탄성을 질렀다.

"그래, 정직한 친구로군! 우리가 보살펴 줄 테니 잠시 동안만 대나무가 되어주면 된다. 너는 건강하기 때문에 커다란 대나무가 될 수 있을 게야. 그 대나무는 다시 대나무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이고, 결국 온 땅을 대나무 숲으로 덮을 수 있을 거야. 네가 대나무를 도처에 증식시키고 나면 너는 불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늘을 날 수도 있고, 형체를 바꿀 수도 있으며, 눈에 안 보일 수도 있지. 다른 크기로도 될 수 있고, 더 나아가 신의 경쟁자도 될 수가 있지. 우리를 따라와. 그러면 너는 불멸할 수 있어."

사이훙은 웃으면서 조롱하듯이 응답했다.

"저를 즐겁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사는 기간은 이미 예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장수는 신이 주는 선물이지 흥정거리가 아니지요. 난 당신들의 힘이 필요하지 않아요. 그것들은 단지 환상일 뿐입니다."

노인은 갑자기 고함을 지르면서 달려와 사이훙을 공격했다. 사이훙은 노인의 공격을 물리치면서 반격을 하였으나 노인은 사이훙의 주먹을 피했다. 잠자코 있던 여인도 사이훙에게 뛰어올라 얼굴을 할퀴려 들었다. 사이훙은 다리에서 뛰어내려 그의 앞에 있는 모래에서 부적 하나를 꺼냈다. 격노한 노인은 담뱃대에서 기다란 빨대를 꺼내더니 사이훙에게 뿌연 연기를 내뿜었다. 여자는 비를 휘둘러 연기를 사이훙 쪽으로 보냈다.

"너희들은 악마로구나! 내 악마 잡는 경을 암송할 것이다!"

사이훙은 그들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사이훙의 말에 화들짝 놀라 동작을 멈추더니 경소리가 입에서 나오자마자 달아나기 시작했다.

석달 뒤, 사이훙이 다시 그 다리를 건너는데 방망이같이 생긴 커다란 물체가 다리에 매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사이훙이 가까이 가서 보니 그 물체는 소년이었다. 사이훙이 쳐다보자 소년은 다리 난간에서 뛰어내렸다. 소년은 동물과 식물을 합쳐 놓은 듯한 괴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키는 120센티 정도였으며, 창백한 얼굴에 가느다란 눈과 뚜렷한 콧구멍, 날카롭게 벌어진 입을 가지고 있었다. 소년은 입술만을 달싹달싹 움직이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자기 이빨을 감추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소년은 무인의 옷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옷이 너무나 잘 어울려 사이훙은 소년에게 매료되고 말았다. 소년은 비단으로 짠 옷과 푸른색 바지를 입고, 흰색 바탕에 검은색으로 그림을 그린 곤봉을 지니고 있었으며 별과 꽃을 수놓은 띠를 두르고 있었다. 그 위에 진한 청색 망토를 입고 있었으며 옥구슬과 단백석부적을 가지고 있었다. 사이훙은 아름다운 구름을 수놓은 소년의 파란 신발을 황홀한 듯 쳐다보았다.

"나는 놀고 싶어요. 나와 같이 놀아 줄 수 있어요?"

소년이 처량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나는 할 일이 있어."

"제발 나와 함께 놀아 주세요. 나는 당신이 놀기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어요. 나는 숲속의 모든 곳을 알고 있어요. 어떤 인간도 보지 못한 장소를 당신에게 보여 줄 수 있어요. 상상할 수도 없는 보물들을 당신에게 줄 수도 있구요. 제발 내 놀이 상대가 되어주세요!"

"미안해, 오늘은 놀수가 없구나."

소년은 낙심한 듯이 바위로 걸어가 앉았다. 그리고는 얼굴을 양손에 묻은 채 흐느끼기 시작했다.

"당신은 몰라요. 내가 얼마나 외로운지 이해 못 해요. 어떤 때는 몇십 년 동안 아무도 오지 않았어요. 나는 여기에 몇 세기 동안 있었어요. 내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당신은 상상할 수 있어요?"

사이훙은 떠나려고 일어섰다.

"기다려요, 기다려! 당신은 무술을 좋아하지 않나요?"

사이훙은 그 말에 흥미를 느꼈다.

"보세요."

소년은 사이훙이 전에 보지 못했던 특이한 자세를 취했다. 그것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소년의 장력은 사부와 견줄 만 했고, 공중 회전과 곡예 기술, 경신술은 마치 나는 듯이 가벼웠다. 소년은 시범을 마무리 지으며 말했다.

"당신이 보고 싶어 한다면 어떤 무술도 보여 줄 수 있어요! 나의 동료가 돼주세요. 그러면 당신은 경쟁자가 없는 영웅이 될 겁니다. 나는 어둠 속에서도 악마를 볼 수가 있어요. 나와 함께 있어요. 우리는 친구가 되어 영원히 재미 있게 보낼 수 있을 거예요. 어때요, 흥미 있지요?"

"흥미가 있다면?"

"단 한 가지, 문제가 있어요. 당신이 유한하다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내게는 꿀을 바른 사과가 하나 있어요. 그 사과를 먹으세요. 그러면 당신은 영원할 거예요."

"사양하겠어."

소년은 눈살을 찌푸렸다. 잠시 후 소년은 다른 제안을 내놓았다.

"그럼 이것은 어때요? 시합을 합시다. 내가 이기면 당신은 이 사과를 먹고 나의 놀이 상대가 되어야 하고, 내가 지면 다시는 귀찮게 하지 않겠어요."

그가 사과를 꺼냈다. 사이훙은 그것을 차서 소년의 손에서 떨어뜨렸다. 소년은 성이 나 소리질렀다.

"이래선 안 되는데. 내 요청을 거절한 사람은 누구든지 목숨을 잃지!"

소년은 뛰어오르면서 사이훙을 공격했다. 소년의 기술이 사이훙보다 훨씬 나았다. 사이훙은 한 번도 반격할 수가 없었다. 사이훙이 돌아서는 곳마다 소년의 손바닥이 막고 있었다. 사이훙은 발놀림조차 제대로 못하고 소년에게 보기 좋게 반격당했다.

", 이제 사과를 먹는게 좋을 거야."

소년은 사이훙의 몸을 팔로 죄면서 말했다.

"그게 뭐 그리 잘못됐어? 먹으면 불멸하는데!"

사이훙이 강력하게 뒷발질을 해 소년을 떼어냈다. 소년이 다시 공격해 오자 사이훙은 옷 속에 있는 팔괘경을 꺼내 들어 소년을 비췄다. 거울을 본 소년은 흐느끼면서 얼굴을 가리고 도망쳐 버렸다.

거처로 돌아온 사이훙의 몸은 땀에 젖어 싸늘했다. 그는 목욕을 하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전에 들었던 낮은 목소리가 다시 부드럽게 윙윙거리며 들려 왔다. 사이훙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언젠가 저 윙윙거리는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밝혀내고야 말겠어."

기회는 곧 왔다. 사이훙은 물살로 가려진 동굴의 입구를 발견했다. 그 앞에서 윙윙거리는 소리는 더욱 커졌다. 물을 헤엄쳐 건너보니 위쪽으로 가파르게 뚫린 통로 하나가 보였다. 사이훙은 위쪽에 있는 작은 원형 동굴로 기어 올라갔다. 눈부신 방이었다. 천장에 뿌리를 박고 있는 거대한 산삼이 보였다. 산삼은 천장에서 밝은 빛과 함께 윙윙 소리를 내고 있었다. 산삼의 몸체는 황갈색이었고 머리카락만큼이나 많은 잔뿌리가 달려있었다. 찬찬히 살펴보자 잔뿌리들이 가늘게 떨면서 노래부르듯 윙윙거리고 있었다.

"실례합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사이훙은 뿌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나는 산삼이야. 네가 와서 아주 기쁘구나."

산삼에게서 나온 목소리는 여자의 목소리였다.

"나는 이곳에 천 년동안이나 매달려 있었어. 이렇게 매달려 있는 동안 내 뿌리는 상처를 받았고, 새들은 내 몸통을 쪼아 먹으려 해. 지금까지는 잎과 가지가 나를 보호해 주었지만 이제 그것들마저 벌레들이 갉아먹어 버렸어. 네가 나를 구해 주지 않으면 나는 죽게 될 거야."

"하지만 내가 어떻게 당신을 구할 수 있나요? 당신은 화산의 육중한 바위를 뚫고 자라고 있잖아요. 더구나 가느다란 뿌리들이 너무 많이 달려 있어 자칫 잘못하면 그것들을 부러뜨릴까 봐 걱정이 돼요."

"네가 나를 구해 주려고만 한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 네가 바위를 잘 모르기 때문에 단단하다고 생각할 뿐이야. 사실 바위는 많은 틈과 수백 개의 갈라진 줄기를 가지고 있어. 막대기를 하나 들고 내가 말하는 곳을 두드려 봐."

사이훙은 산삼의 지시에 따라 두 시간 이상 바위를 두드렸다. 바위는 놀랍게도 부드러운 조각들로 되어 있었다. 산삼은 계속해서 사이훙에게 바위의 약한 곳들을 지적해 주었다. 충분한 공간이 생기자 사이훙은 살며시 산삼을 끌어 내렸다. 그는 잎과 가지들을 조심스럽게 떼어내고 산삼을 천으로 감쌌다.

"고맙다! 정말 고마워!"

구원을 받은 산삼을 감격스러운 소리로 말했다.

"제발 나를 햇빛이 비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가 줘. 그러지 않으면 나는 말라 죽을 거야."

사이훙은 산삼을 어둡고 차가운 곳으로 가져온 다음 산삼의 몸에 둘렀던 천을 풀었다. 산삼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산삼은 생명을 주는 약초야. 네가 나의 생명을 구했으니 나도 너에게 주고 싶은 게 있어. 나는 도인들이 불멸을 원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 명상에 들어갈 때 나를 네 머리 위에 놓아두면 내가 네 몸속에서 자랄 수 있어. 그러면 우리의 삶은 영원히 지속될 거야."

"식물의 본성은 움직일 수 없는 것입니다. 나는 인간이고요. 만일 내가 당신의 요청을 받아들인다면 나는 다시는 움직일 수가 없게 되지요."

"그러나 불멸할 수 있잖아."

"당신은 인간이 아니지만 나는 인간입니다. 당신은 내가 불멸에 대해서 아무런 욕심도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무들은 천 년간을 생존할 수 있지요. 하지만 그들은 살아 있지만 움직일 수는 없어요."

산삼은 한숨을 쉬었다.

"내가 시간 낭비를 했구나."

사이훙이 위협하듯이 말했다.

"난 당신을 먹을 수도 있어요."

그 말에 산삼은 몸을 떨면서 우는 소리를 했다.

"나는 살아 있어. 제발 나를 먹지는 마. 나는 도인들이 살아 있는 것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 너는 나를 죽이지 못해! 내 요청을 받아들여. 우리는 영원히 같이 살 수 있어."

"안 되겠어요. 나는 수련을 하고 있어요. 이제 그 시간도 거의 끝나가고 있답니다. 사부님이 곧 올 거예요. 그가 당신을 발견하면 아마 당신을 먹는 것을 별로 주저하지 않을 거예요."

"너의 스승이 누군데?"

산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화산의 대사입니다."

"뭐라구? 그 늙은 여우가 아직도 돌아다녀?"

"그래요. 그러고 보니 사부께서 산삼 하나를 어딘가에 잘못 두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세상에! 이럴 수가! 제발 나를 자유롭게 해줘! 내가 천년 동안 봐왔던 일들을 너에게 말해줄게. 그리고 본초학의 역사도 얘기 해 줄께. 그러니 제발 나를 살려 줘."

사이훙은 산삼의 제의에 동의하였고 그들은 그날 밤을 얘기를 하면서 날을 지새웠다. 아침에 사이훙은 풍부한 토양과 햇빛, 작은 샘이 있는 동굴을 찾아가 산삼을 심었다. 그는 가끔씩 찾아와 물을 주었고, 산삼이 새로운 싹을 틔우는 것을 즐겁게 바라보았다.

어느 날 저녁, 사이훙은 명상대에 편안하게 앉아 있었다. 동굴 속에서 2년 동안 지내자 이제는 경전 전체를 거의 외울 수 있었다. 밝은 등불 아래서 묵상에 몰두하고 있던 사이훙의 눈에 갑자기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명상대의 반대편 둑에 바구니를 든 여인이 하나 나타났다. 여자는 가냘 퍼 보였고 복숭아 빛 비단옷에 투명한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여자의 존재는 거친 동굴과는 대조적으로 풍요로워 보였다. 사이훙은 더 자세히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여자는 커다란 갈색 눈을 가졌는데, 눈에서는 최면이라도 걸 듯한 요염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여자의 살갗은 비단같이 부드러웠고 홍조 띤 뺨이 붉은 입술과 함께 야릇한 음영을 드리우고 있었다. 말끔하게 단장한 윤기 나는 여자의 검은 머리카락에 금비녀가 구름에 걸린 듯 꽂혀 있었다.

사이훙을 보자 여자는 바구니를 옆으로 내려놓으며 소매에서 장밋빛 스카프를 꺼냈다. 여자는 몹시 부끄러운 듯 코와 입을 가리고 물가로 다가서서는 큰소리로 외쳤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당신을 만난 건 정말 행운이군요. 길을 잃을까 봐 두려웠어요."

사이훙은 놀라서 여자를 쳐다보았다. 그는 수도자임을 알리기 위해 손을 수도자의 가슴에 모았다.

"선생님,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여자가 계속 말을 걸자 사이훙은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 경전을 암송하였다. 여인은 뒤로 물러나면서 풀죽은 목소리로 물었다.

"왜 경전을 외죠? 그럴 필요 없어요. 나는 당신을 해치지 않을 거에요. 춤으로 당신을 즐겁게 해주겠어요. 아마 춤을 추게 되면 당신도 내가 순수한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되실 거예요."

여자는 높고 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면서 우아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노래와 춤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그녀는 여성 자체를 표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여자가 정중한 인사와 함께 춤을 마쳤을 때까지도 사이훙은 움직이지 않고 계속해서 경전을 암송하고 있었다.

", 당신은 금욕주의자군요. 당신이 그런 데 흥미를 가지고 있다면 내가 이룬 성취를 말해 주겠어요. 나는 다섯 원소를 조절할 수 있어요. 바람과 비도 움직일 수 있지요. 나는 무한한 부를 갖고 있으며 항상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어요. 그리고 끝없는 사랑의 기쁨을 즐길 수 있고요. 그런 것들이 당신이 지키는 전통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요? 도교도들은 항상 가난하고, 가까스로 불멸을 성취하였다해도 아름다움과 젊음을 잃게 되지요. 당신들의 또 다른 못된 전통은 독신주의를 내세운다는 것이에요. 금욕생활이 생명력을 유지한다고 믿으면서 말이죠. 그러나 나는 사랑으로 병약해지는 것을 이길수 있어요. 나의 연인들이 그랬듯이 말이에요. 당신 자신을 보세요. 당신의 근육은 강건하고 얼굴도 미남이에요.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누더기 회색 장삼을 걸친 수도승보다는 멋진 왕자가 분명히 당신의 운명일 거예요. 내게 와서 연인이 되어 줘요. 여자와 사랑을 나누는 즐거움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당신의 사부를 능가하는 힘을 가지게 될 거예요."

사이훙은 암송을 계속했다. 여인은 한숨을 지었다.

"왜 이런 어리석은 짓을 계속하나요, 선생님? 저를 믿지 못하나요? 아니면 당신은 오로지 자신이 보는 것만을 믿는 그런 사람인가요?“

사이훙은 땀을 흘리면 힘겨운 암송을 계속했다. 그는 두려운 눈길로 여인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결심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여자는 그에게서 뒤돌아서더니 비녀를 뺐다. 비녀가 어둡고 깊은 폭포로 떨어졌다. 여자의 머리카락이 매혹적인 행수 내음을 풍기며 가까이 다가오자 사이훙은 그 향그러움에 흥분되어 나머지 숨을 들이쉬었다. 여자는 망토를 벗더니 속옷만 남을 때까지 나머지 옷들을 벗었다. 이윽고 여자는 시선을 사이훙에게서 떼지 않으면서 천천히 속옷 끈을 풀었다. 사이훙은 여자의 목 아래로 길게 뻗은 나체의 투명한 살갗을 보았다. 여자의 몸은 완벽했다. 부드럽고 완만한 어깨로부터 풍만한 가슴, 날씬한 엉덩이를 넘어 길고 모양새 있는 다리까지, 여자는 마치 금과 옥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으로 몸을 가렸으나 그것은 장막이 아니라 대담하게 열려져 있는 문이었다. 여자의 입술이 살짝 열렸다.

"나는 이런 얘기를 듣곤 했어요."

여자는 숨을 헐떡이면서 말했다.

"남자들은 모든 종류의 여성을 원한다구요. 어떤 여인이 당신이 가지고 있는 환상에 딱 들어맞을까요? 어떤 여인이 당신 육체의 갈망을 폭발하게 할 수 있을까요? 나는 어떤 여자로도 될 수 있어요. 나는 당신의 모든 환상을 만족시켜 줄 수 있어요. 보세요!"

여자는 자신의 모습을 힌두 여자로 바꾸었다. 가느다란 타원형 눈은 마치 마노 같았고 피부는 매끄럽게 빛났다. 여자의 가슴은 욕망으로 충만해 있었다.

"아니면 당신은 이런 쪽을 좋아하나요?"

여자는 다시 긴 머리와 풍만한 모습의 페르시아 여인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그녀의 피부는 희고 보드라웠으며 움직임은 빛과 그림자처럼 부드럽고 유혹적이었다.

"모든 남자들은 힌두여인들과 페르시아 여인과 사랑을 나누길 원하죠. 그들이 대단한 사랑의 기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여자는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나는 모든 형태의 사랑을 알고 있어요. 이리 와서 나를 안으세요. 영원한 젊음을 가지세요. 당신은 굉장한 힘을 휘두를 수 있어요. 나를 소유하세요. 나를 가지세요. 나는 영원히 당신 것이에요. 내 안으로 들어오세요. 나를 사랑해 주고 또 사랑해 주세요. 당신은 언제나 처녀처럼 순수한 여인과 사랑을 나누는 것처럼 느낄 거예요. 또 최대한의 기교를 발휘해 당신을 즐겁게 해드리겠어요. 당신께 타오르는, 내적인 갈망을 만족시켜 주는 사랑을 드릴께요. 무한한 사랑을 갈망하여 당신 자신까지 잊게 하는 즐거움을 가져다 주겠어요."

사이훙은 고집스럽게 목석같이 앉아 양손을 마주잡고는 입으로 끊임 없이 경전을 암송하고 있었다. 사이훙이 꼼짝도 않는 것을 보고 여자는 버럭 화를 냈다.

"어떻게 감히 나를 경멸할 수 있어! 어느 누구도 그러진 않았어. 너는 멍청한 수도승이야. 모두 네 것인 세상의 부와 권력과 즐거움을 다른 사람이 다 차지하는 동안 너는 거기에 앉아 헛소리나 중얼거리고 있어라. 그 모든 바보 같은 지껄임은 너를 어떤 곳에도 이르게 하지 못할 것이며 너를 보호하지도 못할 거야."

여자는 춤을 추며 사이훙의 주위를 빙빙 돌았고, 관능적인 여자의 나신이 서 있던 곳에는 이제 기분 나쁘게 떨고 있는 녹색 기둥 같은 물체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 기둥은 천천히 원을 그리기 시작했고 기둥의 꼭대기엔 여인의 얼굴이 있었다. 여자의 얼굴도 녹색으로 변하면서 길어지기 시작했다. 눈이 점차 튀어나오고, 머리카락은 비늘로 변해갔다. 발이 나타났다. 여자는 180센티나 되는 도마뱀으로 변하였다. 도마뱀은 뒷다리로 서서 쇳소리를 내면서 혀를 내둘렀다. 도마뱀은 위협적으로 사이훙을 공격하려고 했지만 경전의 힘을 침투할 수는 없었다.

사이훙은 두려움과 무능으로 인해 비참한 기분을 느꼈다. 그의 손을 땀에 젖었으며 옷도 흠뻑 젖어 있었다. 그러나 암송만은 계속하였다. 경전 암송을 그치는 것은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이다. 도마뱀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지더니 어둠 속에서 한 점이 나타났다. 그 점이 점차 여자의 얼굴로 확대되었다. 아름답던 그 얼굴은 이제 잔인하게 웃고 있었다. 여자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은 이제 뱀처럼 여자 주위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여자는 쏘는 듯이 그를 쳐다보며 주위를 돌았다. 여자가 주변에 다가올 때마다 사이훙은 단전에 통증을 느꼈다. 여자가 한 시간 정도 공격을 계속하자 사이훙은 열이 올랐다. 독경 소리와 울부짖음이 석실을 가득 채웠다. 그는 메스꺼움으로 한순간 현기증을 느꼈다.

갑자기 여자의 모습이 사라졌다. 사이훙은 감히 암송을 멈추질 못했다. 여자가 사라진 곳에서 바람이 일더니 기름등이 일렁거렸다. 곧 등의 유리가 깨지고 기름이 흘러 걷잡을 수 없는 불로 번졌다. 불기둥이 세차게 솟아올라 동굴 주변에 퍼졌다. 그것은 파도처럼 사이훙의 주변에서 일렁거렸고 그의 보호막을 계속 공격하였다. 사이훙은 불기둥의 공격이 명상대 앞의 원을 침투해 점점 자신에게 다가옴을 느꼈다. 신경은 머리끝까지 곤두서고 두려움이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불기둥이 사이훙 앞에서 폭발하더니 여자의 얼굴이 다시 나타났다. 여자의 머리카락이 밤 공기 속에서 휘날리고 있었다. 여자는 조롱하듯이 입을 크게 벌리고 웃어댔다. 여자는 그를 향해 다가서며 입을 점점 더 크게 벌렸다. 여자는 그를 삼키려 들었다. 멀리서 희미하게 도관의 종소리가 들려왔다. 새벽이 오고 있었다. 여전히 여자는 그를 압박해 오고 있었다. 사이훙은 동물의 체취와 뜨거운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줄기 서광이 내려와 여자의 얼굴을 강렬하게 내리비쳤다. 여자는 물러섰다. 여자의 얼굴은 처음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바뀌었다. 동굴을 밝아졌고 여자는 신음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사이훙은 환한 대낮이 되어서야 독경을 멈추었다. 그는 안도감을 느끼며 일어섰다. 팔이 몹시 아팠으며 다리는 마비될 정도로 굳어 있었다. 사이훙은 깜짝 놀라 자신을 내려다 보았다. 너무 놀란 나머지 부끄럽게도 바지가 젖어 있었다.

사이훙은 옷을 벗고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한쪽 구석에서 뭉툭한 코가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두꺼비 도인이었다. 두꺼비 도인은 사이훙쪽으로 헤엄쳐 다가와 말했다.

"여자가 너를 가지려고 하는 것을 봤지."

사이훙은 자신이 시련을 극복했음을 상기하는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꺼비 도인은 낄낄거리며 물을 그에게 튀겼다.

"너는 강인한 정신을 가졌더라."

두꺼비 도인은 사이훙을 물 속에 처박으며 축하했다.

"좋은 일이지. 언젠가는 세상 전체를 휩쓰는 위기가 올 것이다. 선과 악의 대립이지. 살아남으려면 힘이 필요하게 될 거야."

 

28. 완성

사이훙은 자신의 신체 내부를 들여다 보았다. 모두가 투명했다. 명상은 결코 고요함이 아니었다. 신체는 항상 움직이고 있었다. 심장은 박동하고, 피는 흐르고 열정은 신경을 자극하고 있었다. 또한 기는 영문을 통하여 순환하고, 내장 기관은 서로 연관되어 움직이고 있었으며, 폐는 조용한 가운데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인간은 계속 움직이면서 변화해가는 존재이다. 인간은 우주이며 신비한 진화의 산물로 놀라울 정도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사이훙은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몸과 마음을 다해 내면에 몰입하였다. 내부와 외부가 하나가 되었다. 그는 내면 깊숙이 잠겨 완벽한 깨달음에 다다를 수 있었다. 내부와 외부의 것이 합쳐져 무한이되었다. 그는 한 점에 이르렀다. 우주의 한 점, 무한함이 운동과 경험의 집적으로 응결된 곳, 끼는 오행이 되고, 음과 양이 되고, 한 인간이 되었다. 그는 영원히 존재하는 소우주였다.

사이훙은 북두칠성을 상상하였다. 침묵. 공간. 모든 것이 진실이다. 동시에 어느 것도 진실이 아니다. 양쪽 다 동일하다. 시간과 공간은 서로 겹쳐서 쌓여 가고 마침내 각각의 특성이 없어진다. 진실이면서 동시에 진실이 아닌 이 이중성을 누가 뛰어넘을 수 있겠는가? 북두칠성이 없어져 버렸다. 인간은 우주 속의 소우주이다. 우주와 소우주는 하나이다. 하나는 모든 것이다. 행성은 내장 기관이다. 영성의 중심은 바로 초신성이고, 각 영문들은 별이다. 그 영문들은 하늘에 이르는 길이다. 북두칠성이 그에게 왔다. 사이훙은 그것을 불렀다.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북두칠성은 높은 구름을 지나 어둡고 매끄러운 밤하늘로 사이훙을 들어올렸다. 별을 제외하곤 모두가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우주의 밤 속에서 낮이 폭발하여 불타고 있었다.

그는 하늘에 매달려 떠나갔다.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사이훙은 별들을 자신 속에 집어넣었고 별과 함께 자신에게 몰입하였다. 사이훙의 신체는 하나의 행성이었다. 유성. 태양. 그러나 더욱 깊어져야 하는 상태가 있었다. 그는 아직도 한 신체였다. 왜 그것이 저기에 있지 않고 여기에 있을까?

그의 몸은 소리 없이 폭발하면서 팽창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의 완벽한 신체 구조가 상처 하나 없이 천 갈래 방향으로 흩어졌다. 신체는 사라지고 없었으나 정신은 남아 있었다. 먼 곳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기억이 있었다. 이상한 한 줄기 빛이 우주를 떠다니고 있었다. 그 빛은 무한한 공간에 놓여 있는 것들을 꿰뚫으며 별과 행성과 모든 차원 너머로, 그리고 주마등 같은 모든 실재 너머로 흩어져 갔다. 오로지 무만이 있었다.

사이훙은 동굴 속에 앉아 있었다. 그는 왜소함과 초라함을 느꼈다. 그는 아무것도 아닌 작은 점이었다. 사이훙이 바라는 바는 고독과 묵상뿐이었다. 왜 돌아와야만 했는가? 신들이 그렇게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수행해야 할 과업이 있었다. 그 과업을 마칠 때까지 그는 이 세상에 얽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신들은 그에게 잠시나마 다른 측면을 보게 하였다. 그는 그것을 보았다. 만약 돌아오지 않아도 되었다면 그는 그곳에 머물렀을 것이다. 사이훙은 이곳에 있기를 바라지 않았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실재가 아니다. 문명이란, 즉 완벽을 향한 거대한 문화적 탐색이라 일컬어지는 것은 단지 괴상한 인간의 자아 도취를 위한 축제일 뿐이었다. 또한 감정이란 타락을 향한 본능적인 수련일 뿐이었다. 아무것도 그를 부르지 않았다.

사이훙은 정적의 상태를 유지하며 앉아 있었다. 자신에게 과업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바로 그 과업 때문이었다. 그의 내면에서 무언가가 어린 시절의 추억처럼 희미하게 빛났다. 연민이었다. 자신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서, 그리고 남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그는 돌아와야 했다. 사이훙은 기척 소리를 들었고 움직이는 횃불을 보았다. 사부였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다."

사부는 사이훙의 어깨에 부드럽게 손을 얹으며 미소를 지었다. 사부는 햇빛으로부터 사이훙의 눈을 보호하기 위해 눈가리개를 씌운 다음 사이훙을 밀폐된 사당으로 데려갔다. 사이훙은 약초를 넣은 목욕물에 들어가 굴 속에서 지내면서 광천수로 목욕한 탓에 푸르게 변한 몸을 씻어냈다. 사부는 사이훙의 눈이 햇빛에 적응할 수 있도록 눈에 약을 넣어 주었다. 한 달이 흐르는 동안 사부는 사당 천장에 있는 채광 창문의 폭을 서서히 넓혀 갔다. 그러나 창문을 통해 보이는 것이라곤 푸른색뿐이었다.

드디어 사이훙이 사당 밖으로 나갈 시간이 되었다. 그는 사부가 봉인을 뜯어내고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다. 어두컴컴한 오두막 속에서 사이훙은 사부 앞에 무릎을 꿇었다.

"너는 완벽한 시험을 거쳤고 오랫동안 단식을 하였다. 오늘에서야 도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게 되었구나. 도인의 유일한 과제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일이다. 본성이라는 면에서 볼 때 사람은 하늘과 땅같이 넓으며, 해와 달같이 밝으며, 사계절과 같은 규칙성을 지니고 있다. 도를 깨달은 사람이 하늘보다 앞설지라도 하늘은 그 사람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하늘이 행하려는 것처럼 행하기 때문이다. 도의 순환을 따라 공격적인 성향을 피하고 과다한 기의 방출을 피하면서 행한다면,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 힘과 역량을 얻기 위한 노력은 작은 성공은 가져다 줄 수 있지만 그런 성공은 결국 죽음만을 재촉할 뿐이다.

도덕경은 분명히 말했다. 어떤 사물이 절정에 다다르면 노쇠하기 시작한다고. 지나친 힘은 도와는 반대되는 것이며, 도에 반대되는 것은 금방 끝을 보게 된다. 이런 연유로 어떤 사람은 자기 자신의 힘을 기르려 하지 않고 도와 결합하려고 한다. 그 사람은 공격적이기도 않고 힘이 세지도 않으며 오히려 겸손하고 평화스럽다. 그 사람은 세상 사람의 길을 가지 않고 자연의 순환을 좇으려 한다. 그런 경지에 이른 사람은 재생의 기쁨을 맛보게 된다. 그 사람은 되돌아옴과 앞으로 나아감, 팽창과 수축을 통해 무한함과 불멸을 알게 된다. 이때 그 사람은 도와 결합하는 것이다. 그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의 생명력에 집중하며, 가장 유순한 방법으로 반응한다. 그렇게 해서 그 사람은 새로 태어난 갓난아이 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부는 문을 열었다. 한 줄기 빛이 쏟아져 들어오자 사당 안이 눈부시게 빛났다. 사이훙은 새로운 세계로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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