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하는 수도자 관 사이홍의 구도기
덩 밍다오(鄧明道)
도인 1권 THE WANDERING TAOIST
제1부 유년 시절
1. 타이산의 축제
1929년, 관 사이훙은 가족들을 따라서 가파른 타이산 순례 길에 올랐다. 그들은 도교의 최고신인 자미대제의 축제에 참석하기 위하여 정상에 있는 자운궁을 향하고 있었다. 수 주일 동안이나 계속되는 그 축제는 자운궁 마당에서 헌물을 바치는 종교의식이었다. 부유한 무사 가문인 관씨 집안의 식구들은 도교의 독실한 신자이자 후원자였기 때문에 그들의 고향인 산시성에서 산둥성의 타이산까지 8백 킬로가 넘는 거리를 달려온 것이다. 그들은 자운궁에 한 달간 머무를 예정이었다.
타이산으로 오르는 가마의 속도는 대단히 느렸다. 하늘을 찌를듯한 타이산의 절벽들은 하루 만에 올라갈 수 없는 곳이었다. 소나무 숲속에 있는 산골 여인숙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시 한나절을 올라갔을 때에야 비로소 그들은 목욕재계할 수 있었다. 여인숙에서는 채소로 만든 음식들만 제공했다. 동물의 살코기 냄새를 씻어 버리고 명상을 해야 마음을 평화로이 가다듬을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이산은 이미 그 자체로도 순례자들의 마음을 깨끗이 씻어 주는, 중국의 오악 중에서도 으뜸가는 명산이었다. 타이산은 다른 모든 산과 골짜기들을 우습다는 듯 내려다보면서 넓디넓은 산둥성의 하늘을 향해 우뚝 치솟아 있었다. 구름은 산봉우리 중턱에서 한가롭게 흘러가고, 하늘처럼 넓고 큰 타이산은 황제와 같은 고고함과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사람의 기척은 보이지 않고, 차갑고 희박한 공기만이 절벽의 바위들을 감싸고 있었다. 참으로 자미대제가 거처할 만한 곳이었다.
중국인에게 "황제"란 하늘의 천제뿐만 아니라 지상의 천자도 보통 사람들은 결코 보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황제"는 신비한 존재였으며, 기였고, 접근할 수 없는 지배적인 "힘"이었다. 그러나 매년 한 번 열리는 이 축제에서만은 그 "황제"가 세속으로 내려와 백성들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어린 사이훙은 장난꾸러기에다 호기심이 강한 소년이었다. 그는 종교의식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의 할아버지 관 주인과 할머니 마 쓰싱, 그리고 고모인 관 메이홍은 사이훙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사이훙이 도교 순례자의 경험을 할 때가 되었다고 느꼈다.
사이훙의 가족들은 타이산의 사찰로 향하는 마지막 진입로에 다다랐다. 이제부터는 18번을 굽이쳐 돌아가면서 올라가야 하는 구불구불한 산길이 남아 있었다. 그 길은 7천 개의 돌로 짝을 맞추어 놓은 좁은 계단으로 이어져 있었다. 기암괴석들 사이의 거대한 틈을 따라 길이 나 있었지만, 관목들과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는 울퉁불퉁하고 험악한 절벽에 비하면, 그 오솔길은 대체로 다닌 만 했다. 그 길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대자연에 비하면 아주 보잘것 없는 것이었다. 타이산은 보잘 것 없는 오솔길을 간신히 참아 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른들은 가마를 타고 갔고, 사이훙은 하인의 등에 업혀서 갔다. 사이훙은 수많은 돌로 만들어진 층계를 보는 데 정신이 팔려있었다.
이른 아침의 공기는 차가웠다. 사이훙은 긴 갈색 무명옷 위에 깃이 높은 호랑이 가죽 외투를 입고 있었다. 다리에는 각반을 하고, 무릎 부분에 단추가 달린 짧고 헐렁한 바지를 단정하게 입고 있었다. 외투자락 밖으로 살짝 보이는 사자 모양의 돈주머니는 비단으로 만들어 섬세하게 수를 놓은 것이었다. 신발도 역시 비단으로 만들어 수를 놓은 뒤 펠트로 밑창을 댔고, 양쪽 옆엔 하얗고 파란 구름 모양의 장식을, 코끝에는 사자머리 모양의 장식을 달아 놓았다. 사이훙이 입고 있는 옷들은 인격을 함양시켜 주고 그를 악으로부터 보호하면서도 남성적인 면이 돋보이도록 세심히 신경을 쓴것이었다. 가족들은 모두 그러한 호신용 물건에 각별히 신경을 썼으며, 그것도 모자라서 사이훙에게는 부적으로 호랑이 이빨을 목에 걸어 주었다.
외투 외에도 사이훙은 두 가지를 더 걸치고 있었는데 너무 거추장스러워 짜증이 날 정도였다. 막 계단을 뛰어 올라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사이훙은 너무 더워서 모자를 벗어 던졌다. 모자 역시 호랑이 가죽으로 만든 것으로 양쪽에 귀덮개가 달려있고, 정수리 부분에는 사자 귀모양의 장식물이 달려있었다. 사이훙은 그 장식물을 가장 싫어했다. 또 하나는 벙어리 장갑이었다. 그러나 그건 벗어 버릴 수 없었다. 장갑은 외투 소매 끝에 비단실로 튼튼하게 꿰메어져 있기 때문이다. 모자를 벗어버리고 장갑까지 벗은 뒤 사이훙은 이제야 해방되었다는 듯이 층계를 뛰어 올라갔다. 정수리 가운데만 남겨놓고 깨끗이 밀어 버린 그의 머리가 잠깐씩 보였다가 사라지곤 했다.
층계는 끝없이 계속되는 것 같았다. 사이훙이 먼저 올라와 쉬고 있자 집안의 충복들이 뒤따라 올라왔다. 행렬의 선두에 선 가마의 창을 통해 할아버지의 그림자가 어른어른 비치고 있었다. 가마 안에서 사이훙을 유심히 살펴보시던 할아버지는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사이훙, 네 모자는 어디 있느냐?"
사이훙은 순진한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여인숙에 두고 왔나 봐요, 할아버지."
가마 안에서 가벼운 탄식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때 하인 한 사람이 모자를 가지고 왔다. 사이훙은 살짝 얼굴을 찡그리면서 하인의 정강이를 걷어차려고 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다시 날카로운 목소리로 사이훙을 불렀다. 사이훙은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모자를 뒤집어썼다. 앞으로 뛰어가면서 사이훙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자신은 할아버지의 총애를 받고 있으며 할아버지가 엄격하기는 해도 정이 깊은 분이라는 것을 사이훙은 잘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항상 그를 용서해 주셨던 것이다. 마침내 그들은 도관의 정문 앞에 이르렀다. 주지 스님이 직접 나와 그들을 맞이했다. 주지스님은 할아버지의 오랜 친구였다. 주지 스님은 가족들이 머무는 동안 거처할 사찰을 별채 곳곳을 안내해 주었다. 할아버지가 제일 먼저 가마에서 내렸다. 할아버지는 이미 70대에 접어들었으나 여전히 건장한 체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180센티미터나 되는 장신이었기 때문에 체격만으로도 남들과 쉽게 구분되었다. 의복에서 드러나는 신분과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할아버지의 비범한 위풍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소매없이 무릎까지 내려오는 장삼과 바지는 가죽을 대서 만든 것이었다. 수를 놓은 검은 조끼, 사과색의 옥장식이 달린 검은 갓, 백설같이 하얀 수염, 그리고 단정하게 땋아 내린 머리카락.......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진중하면서도 날카로운 무사의 풍모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할머니 마 쓰싱은 할아버지보다 한 살 연하였으며 키도 아주 커서 할아버지보다 약간 작은 정도였다. 할머니도 주지스님에게 인사했다. 할머니는 전족을 하고 있었으나 보조도구 없이도 잘 걸었다. 할머니 역시 가죽을 대서 만든 장삼과 바지를 입고, 긴 앞치마와 승모 모양의 머리 덮개를 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밝은 색깔의 금속사로 독특하게 수놓아져 있었다.
할머니의 옷은 장미, 국화, 작약, 그리고 붓꽃을 복잡하게 수놓은 눈부신 것이었다. 길고 숱이 많은 하얀 머리카락은 뒤로 넘겨 보석이 달린 비녀로 단장하였다. 높은 광대뼈와 달처럼 아름다운 얼굴을 강조해주는 머리 모양이었다. 둥글고 커다란 두눈은 사슴의 눈처럼 온화하게 빛났으나, 그 눈빛 속에는 강렬한 정신력이 숨쉬고 있었다.
할머니는 비록 나이가 들었으나 여전히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축제기간 동안 할머니를 훔쳐본 다른 여인들은 모두 할머니의 아름다움에 질투를 느꼈을 게 틀림없다. 할머니는 은으로 만든 허리띠와 옥팔찌 외에도 언제나 가죽으로 만든 긴 채찍을 왼쪽 어깨에 말아서 갖고 다녔는데, 그 채찍은 할머니의 무기였다.
가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사이훙의 고모 관 메이홍은 할머니보다도 훨씬 더 평범한 외모였다. 50대에 접어든 고모는 푸른 벨벳 옷을 입고 있었다. 고모의 머리덮개와 앞치마에도 수가 놓여져 있었지만, 고모는 단순한 것을 좋아해 어두운 색조의 옷을 즐겨 입었다. 고모는 최근에 와서야 전족을 풀었는데,목발을 짚고 걷는 일조차도 대단히 고통스러워했다.
사이훙은 주지 스님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를 드렸다. 주지 스님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자 사이훙은 살며시 빠져나와 사찰의 대문을 지나 마당 안으로 들어갔다. 사찰의 마당은 밝은 색깔로 꾸며져 있었으며 사람들이 매우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청동 기와로 덮인 사찰의 지붕과 다채로운 처마가 보였고, 비단으로 만든 수천 개의 등과 풍차들, 그리고 풍경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음악가, 곡예사, 인형극단의 사람들, 마술사, 그리고 힘을 자랑하는 역사들이 마당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다. 다 헤어져 여기저기 기운 회색 도복을 입은 도사들이 향과 부적, 봉납물 따위를 팔여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떤 도사들은 조언을 해주고 있었고, 또 어떤 도사들은 점을 쳐주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이훙의 관심을 끈 것은 김이 무럭무럭 나는 신선한 음식들과 맛나고 달콤한 사탕들이 진열되어 있는 음식상이었다. 사이훙이 가장 좋아하는 일은 군것질과 장난을 치며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하지만 장난치는 것보다도 군것질이 훨씬 더 좋았다. 돌아다니며 축제를 구경하고 싶었지만, 맛난 음식 냄새를 물리칠 수가 없었다. 그는 사탕을 여러 개 사서 그 자리에서 몇 개를 먹고 나머지는 주머니에 넣었다. 때마침 꿀을 발라 구운 사과가 보였다. 그것은 사이훙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 사과까지 사 먹고 나서야 축제들은 둘러보기 시작했다.
사이훙은 사람들을 헤치고 마당 한가운데로 비집고 들어갔다. 높은 단상 위에서는 어두운 색깔의 옷을 입은 음악가들이 가극과 대중적인 노래, 고전음악을 번갈아 연주하고 있었다. 그들은 류트와 하프, 바이올린, 플루트, 심벌즈 등 여러가지 악기들은 연주하고 있었다. 막강해 보이는 그 악단은 축제 분위기에 들떠 함성을 질러대는 사람들의 소음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공연을 하기 전에는 항상 선전이 있었다. 공연을 펼칠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환상의 묘기가 펼쳐질 것이라고 큰소리로 외쳐 대며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사이훙은 마술사에게 마음이 끌렸다.
"오세요! 오세요! 아저씨들 아주머니들! 형제자매 여러분! 노인장도 어린이도 오세요! 오세요! 와서 놀라운 묘기들을 보시라. 신도 놀라고 질투할 마술, 당신이 믿지 못할 마술입니다! 오세요! 오세요!"
사이훙은 눈썹을 과장되게 치켜 올리고 있는 키가 크고 거무튀튀한 남자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붉은 비단옷을 입은 마술사는 무대 가장자리로 성큼성큼 걸어가서는 관중들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손에서 비단 손수건들을 꺼내 보였다가는 이내 사라지게 했다. 뒤에 놓여 있던 작은 꽃다발에서 부채와 사발과 화분들을 꺼내는가 하면, 옷소매에서 불길을 뿜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남자는 지금까지 한 것들이 어린애 장난에 불과하다는 듯 무대 위의 마술 상자를 팽개치듯 치워버리고는 관중들에게 소리쳤다.
"신사 숙녀 여러분! 그리고 어린이 여러분! 저는 50년간 마술사 노릇을 했습니다. 저는 불사신과 도사들, 마법사와 은사들과 사귀며 지내왔소이다. 그래서 신비로운 비밀들을 많이 알고 있지만, 최면술만큼 신비로운 것은 없소이다."
마술사는 관중들 가운데서 지원자를 물색했는데, 의심스럽다는 듯이 반문하던 한 뚱뚱한 사내를 앞으로 불러냈다. 마술사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 있는 그 사내의 두 눈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관중들은 조용해졌다. 팔짱을 끼고 있던 사내의 두 팔이 완전히 풀려 아래로 떨어졌다.
"이 멍텅구리 같은 촌뜨기!"
마술사는 저주하듯 소리쳤다.
"너는 촌닭으로 태어났어야 했어!"
그러자 사내는 갑자기 양팔을 닭처럼 퍼덕거리며 모이 쪼는 시늉을 하며 돌아다녔다.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관중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다른 무대에서는 또 새로운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여러분, 와서 몽고의 장사들을 보십시오! 와서 힘의 경연을 보십시오!"
사이훙은 사납고 난폭해 보이는 장사들이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장사들은 서로 손가락질을 해대면서 뭐가 그리 우스운지 폭소를 터뜨렸다. 그때 그들 중에서 가장 몸집이 큰 거한이 앞으로 나왔다. 붉은 가죽 조끼와 하얀 팬티만을 입고 큰 장화를 신은 그는 근육을 꿈틀거려 보이면서 구릿빛 팔과 가슴을 기괴하게 부풀려 보였다. 그는 단단한 철봉을 하나 주워서 엿가락처럼 비틀었다가 다시 펴 보였다.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 장사는 부러진 누런 앞니를 드러내면서 의기양양하게 웃더니 조용히 팔을 치켜들었다. 그는 여러 층으로 쌓아 놓은 한 무더기의 벽돌 앞으로 가서 자세를 잡았다. 기합을 지르며 머리로 벽돌을 들이받자 벽돌들은 모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사이훙은 힘차게 박수를 치면서 하나 남아 있던 사탕을 까서 깨물어 먹었다. 다음에는 무엇을 구경할까? 사이훙은 잠시 망설였다. 아직 곡예사들의 공연과 서유기 인형극, 삼국지 공연이 남아 있었다. 안 먹어 본 것들도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생각에 잠겨 있던 사이훙의 머리를 누군가가 쥐어박았다. 그는 화를 내며 고개를 돌렸으나, 낯익은 지팡이를 보고는 얼른 웃음을 지어 보였다.
"너 도망가더니 여기 있었구나!"
고모였다.
"아, 고모님도 저 장사들을 보셨나요?"
"사이훙, 말 돌리지 마라. 혼자 돌아다니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아무리 멍청이라도 네가 부잣집 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단 말이다. 귀족 집안의 아이라는 것을 말이야. 건달 패거리들도 있고, 너 같은 아이를 유괴하려는 사람들도 있단 말이다."
사이훙은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듯이 고모를 쳐다보았다.
"좀 얌전히 굴어라, 사이훙. 아마 칼을 가진 사람들은 무섭지 않겠지. 그러나 마귀들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지!"
고모가 다시 야단쳤다. 사이훙은 고모를 올려다보았다. 갑자기 고향에 계신 숙부가 들려준 이야기가 생각났다. 고모는 그의 표정을 재치있게 간파했다.
"알겠지, 사이훙? 마귀들은 너같이 통통하게 살이 찐 장난꾸러기 아이들을 기다리면서 그늘 속에 숨어 있단다. 너 같은 아이가 가까이 오면, 마귀들은 아이를 자루에 담아서 동굴에 거꾸로 매달아 놓는단다. 큰 가마솥에 넣어 요리할 준비가 끝날 때까지 말이야."
사이훙은 얼른 고모 옆에 바짝 달라붙었다. 다행히 아직 낮이었다. 사이훙은 고모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나 그렇게 순순히 길들여질 사이훙이 아니었다.
"고모님, 저는 축제를 마저 보고 싶어요."
사이훙은 고모를 애처롭게 쳐다보면서 말했다.
"시간은 많이 있단다, 사이훙. 우리는 여기서 며칠 묵을 거란다."
"하지만 저는 지금 보고 싶은걸요."
"할아버지께서 너를 찾으신단다. 돌아가야만 해. 하지만 돌아가는 도중에 조금은 볼 수 있을 게다."
"좋아요. 고모님?"
"왜?"
"먹을 게 없는데 뭐 좀 사주시겠어요?"
2. 우연한 만남
다음날, 사이훙은 고모와 함께 있는다는 조건으로 축제의 나머지를 볼 수 있었다. 사찰은 이제 그의 놀이터이자 극장이 되었다. 사이훙은 사찰에서 만난 새 친구들과 어울려 맛있는 음식과 신나는 구경거리를 끊임없이 찾아다녔다.
그러나 타이산의 축제는 종교 행사였다. 축제와 함께 일상적 종교 행사가 매일 벌어졌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북두무였다. 북두무는 사찰의 가장 신성한 곳에 설치된 무대에서 49일 동안 공연되었다. 이 춤의 목적은 인간과 우주를 합치시키려는 것으로 - 이는 도교의 기본적인 관심사이다 - 북두칠성의 일곱 별들에 살고 있는 성주들을 지상으로 불러오는 춤이었다. 그 일곱 별은 완전한 세계였기 때문에 그곳에 사는 신들이 자발적으로 인간 세상으로 내려온다는 것을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그러나 도사들이 북두무를 추며 주문을 외우면 그 신들을 불러올 수가 있었다. 지상에 내려온 신들은 인간들을 축복하고 도움을 주었다. 신들이 직접 내려와 현존해야만 그 축제는 참된 영적 힘을 가질 수 있었다.
도사들은 몸을 정화하기 위하여 7일간 단식했다. 사찰 중앙 건물 앞에 세 개의 장대와 제단이 세워졌고, 제단에는 향로와 붉은 초, 성화와 등잔, 공물들이 놓였다. 큰 원이 제단 둘레에 새겨져 있었는데, 원 안에 북두칠성의 모양대로 일곱 개의 점들이 표시되면 비로소 신들을 맞아들일 준비가 끝나는 것이다.
사이훙이 북두무 의식을 보러 간 날에는 주지 스님이 역경에 나오는 음양 기호와 육효가 수놓아진 도복을 입고 사찰에서 나왔다. 축제 기간 동안에 왔다 갔다 하던 도사들은 대부분 낡고 헤어져서 여러 번 기운 너덜너덜한 도복을 입고 있었으나, 지위가 높은 도사들은 깨끗한 도복을 입고 있었다. 주지 스님의 긴 머리카락은 검은 천으로 만든 모자 아래 늘어져 있었다. 기다란 소매로 가려진 손에는 축문이 새겨진 야자나무 판과 버드나무로 만든 목검이 들려 있었다. 주지 스님은 10센티 정도 되는 밑창이 달린 검은 벨벳 신발을 신고 점잖게 제단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신성한 원안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 제단 앞에서 경배했다.
사람들은 그 춤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 서로 밀치며 원둘레에 빙 둘러섰다. 무술 동작으로 구성된 북두무는 그 자체로 검술이 된다. 주지 스님은 북두칠성을 표시하는 각각의 점 위에 차례로 섰다. 인간은 감히 신들을 정면으로 마주 볼 수 없기 때문에 나무판을 얼굴 앞에 바짝 대고서 축문을 외운 뒤 각각 신들의 이름을 외웠다.
사이훙은 그 춤이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사이훙이 신성한 원 속으로 달려 들어가 리듬에 맞춰 주지 스님의 비비 꼬인 보법을 흉내 내면서 따라 걸었다. 그러자 모여 있던 많은 신도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사이훙!"
깜짝 놀란 고모가 소리치며 아주 조심스럽게 원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목발에 의지해서 불안하게 걸어 들어온 고모는 재빨리 사이훙을 원 밖으로 끌어냈다.
"아니,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하는 거냐?"
고모는 차갑게 야단쳤다.
"저 원에 발을 들여놓는 것은 신성 모독이란 말이다. 처신을 잘하도록 해라. 너는 참 문제아로구나. 차라리 건달들이 너를 잡아갔으면 좋겠다!"
사람들의 시선과 수군대는 소리를 무시하고, 고모는 사이훙의 손목을 꽉 잡고 다시 의식을 보기 위해 시선을 돌렸다.
"고모님, 저는 잘 보이지 않아요."
고모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사이훙은 고모가 더 이상 화를 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작은 목소리로 다시 한번 말했다. 고모는 사이훙에게 얼굴을 돌리지 않은 채 그의 손목을 더 꽉 잡았다. 그것은 그가 고모와 함께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사이훙은 순간 우울해졌다. 고모는 정말 화가 난 것일까? 고모는 정말 건달들이 나를 잡아가기를 바라는 것일까? 잠시 뒤 고모의 손에서 서서히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다시 유쾌해져서 웃고 있었다. 고모는 목발을 잡기 위해 사이훙의 손목을 놓으면서 그에게 돌아다니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고모는 다시 춤을 보는 일에 정신을 빼앗겼고, 그 틈에 사이훙은 살그머니 빠져나갔다.
백단나무의 진한 향기가 사이훙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사찰에 머무르는 동안에 그 냄새가 항상 났었는데, 오늘은 유달리 냄새가 강한 것 같았다. 그는 그 향기가 어디서 나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사이훙은 번쩍이는 청동기와로 지붕을 얹은 사찰의 중심 건물에 이르렀다. 웅장한 자태로 서 있는 그 건물은 3층 높이로 지어져 있었다. 단청으로 장식된 처마에는 용과 불사조 그림들이 정성스럽게 그려져 있었다. 짙은 색깔의 나무판들과 붉은 칠을 한 기둥들에 씌어진 금색 글자들이 냉랭하고 어두운 실내로 들어가는 입구를 장식하고 있었다. 실내에서 향 연기가 흘러나왔다.
사이훙은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가 돌문턱 앞에 멈춰섰다. 아이들을 잡아먹는 마귀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사이훙은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이훙은 마귀가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 한번 보고 싶기도 했다. 순례자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 틈을 타 용기를 내어 안으로 들어갔다.
내실에 들어서자 금 도금된 제단에 사람 만한 옥황상제의 상이 놓여 있었으며, 우측으로는 황후, 그리고 좌측에는 벽운공주의 상이 있었다. 그들은 화려하게 조각된 커다란 티크나무 탁자 뒤쪽에 세워져 있었는데, 그 제단에는 필요한 공물들이 모두 진열되어 있었다. 큰 향로와 촛불들, 기름 등잔, 꽃이 가득 꽂힌 도자기 화병, 밥그릇, 차와 술, 온갖 과일과 사탕, 그리고 5방(동, 서, 남, 북, 중앙)과 5 원소(나무, 흙, 물, 쇠, 불)를 나타내는 청, 황, 흑, 백, 적색의 다섯 가지 약초들. 이것은 지상에서 난 모든 것들이 공물로 바쳐졌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순례자들이 향로에 향을 사르고 여러 신들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경배를 올리는 것은 이러한 정신에서 나온 경의의 표시였다.
사이훙은 경건한 마음으로 계단으로 걸어가 무릎을 꿇었다. 그는 옥황상제를 경건한 마음으로 올려다보았다. 옥황상제는 비단으로 만든 황금빛 곤룡포를 입고 있었다. 왕관 위에 수평을 달린 평평한 판에 꿰어진 13줄의 구슬들이 옥황상제의 머리 앞뒤로 늘어져 있었다. 옥황상제는 호랑이 가죽 위에 모셔져 있었으며, 손에는 예전을 들고 있었다. 질흙으로 빚어 구워낸 옥황상제의 손과 얼굴은 살아 있는 실물처럼 보였고, 머리카락과 수염은 진짜 사람의 것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예술적으로는 흠잡을 곳이 없었다. 사이훙은 상제의 자비로운 시선과 마주치는 순간 조각상이란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다.
옥황상제는 도교의 신 가운데 최고의 신으로, 모든 신과 우주를 지배한다. 상제는 하늘의 궁전에 거처하면서 가족과 조종의 신하들에 둘러싸여 우주의 일들을 결정하고, 필요한 경우엔 악과 맞서 싸우도록 하늘의 군대에 명령을 내릴 수도 있었다. 다른 신들과는 달리 옥황상제의 조상이나 두상은 일반 가정에 모실 수 없었으며, 만약 그렇게 한다면 신성 모독으로 간주되었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은 소원을 빌기 위해서는 사찰로 순례를 와야만 했다.
사이훙은 상제 앞에서 엎드려 절한 뒤 황후상 앞으로 갔다. 황후의 얼굴은 장밋빛 홍조를 띄고 있었고 머리카락은 귀한 보석으로 만든 비녀로 잘 단장되어 있었다. 황후는 하늘의 과수원에서 연회를 베풀어 신들과 천도를 먹고 있었다. 천도는 3천 년에 한 번 열매를 맺는 하늘의 복숭아로, 한 번 깨물어 먹을 때마다 수명이 만 년씩 연장된다는 신들의 과일이었다.
마지막으로 사이훙은 벽운 공주에게 예배했다. 상제의 따님인 벽운 공주는 비단옷을 입고 날개를 펴고 있는 세 마리의 새를 묘사한 왕관을 쓰고 있었다. 벽운 공주는 부녀자들을 보호하는 여신이었기 때문에 자식을 얻고 싶은 여성들은 벽운 공주에게 소원을 빌었다.
병을 고치고 싶다거나, 풍년을 바라거나, 또는 아기를 갖고 싶어 하는 신도들은 모두 타이산의 가파른 산길을 올라 여기까지 와야만 했다. 그들은 공물을 바치고 소원을 빌면서 은총을 기대했다. 사이훙은 특별히 바라는 건 없었지만, 독실한 신도들 틈에 끼여서 기도하는 흉내를 내고 참배를 마쳤다.
사이훙은 제단을 떠나려고 막 일어서다가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았다. 가운데 키가 큰 사람은 길게 수염을 길러 자상히 보이는 도교의 장로였다. 은처럼 하얀 머리칼을 상투 틀어 비녀를 꽂은 그의 뒤에는 두 명의 젊은 시승이 따르고 있었는데, 나이 어린 그의 제자들 같았다. 회색 옷을 입고 상투를 튼 그들의 얼굴을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사이훙은 그들에게로 가서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대고 절을 했다. 갑자기 부드럽고 흥겨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사이훙은 몸을 일으켜 주위를 살펴보았다. 근처에는 제단 앞에 서 있던 순례자들밖에 없었다. 그때 웃음소리가 다시 들려 왔다. 사이훙은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당황하여 얼굴이 붉어진 사이훙은 그 늙은이가 자기를 속인 것에 화가 나 그를 걷어차려고 재빨리 일어섰다. 두 명의 시승이 사이훙을 제지하려 앞으로 나섰다. 사이훙은 떼를 쓰면서 그들을 계속 발로 걷어차며 몸부림쳤다.
문간에서 요란한 비명 소리가 날 때까지 신도들은 그 장면을 보지 못했다. 사이훙의 고모는 사이훙이 유괴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실내를 가로질러 달려왔다. 앞에 있는 사람들이 도사와 두 시승이라는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아이를 유괴해서 노예로 팔아먹거나 몸값을 요구하는 일이 종종 있었던 것이다.
"도와줘요! 포졸! 포졸!"
고모는 사이훙을 구해 내려고 소리치며 그 도사를 때리려고 목발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그 도사는 그저 유쾌하게 웃기만 하다가 긴 소매를 들어 고모의 얼굴 앞에서 한 번 휘둘렀다. 그러자 갑자기 고모는 몸을 움직이지 못하면서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그 도사는 깜짝 놀라 한 걸음 물러서 있는 사이훙에게로 돌아왔다. 사이훙은 그가 축제에서 공연하던 마술사인지, 마귀인지, 아니면 진짜 도사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자기도 고모처럼 움직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한순간, 도사와 사이훙 사이에 신비로운 영적 대화가 이루어졌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사이훙은 깊숙한 내면에서 조용히 불타오르는 무엇인가를 느꼈다. 사이훙은 천천히 상황을 의식하게 되었다. 깜박이는 노란 촛불 아래 천천히 혈색을 되찾아 가는 고모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황홀경에서 깨어나서는 사이훙의 손을 잡고 그곳을 빠져 나왔다.
사이훙과 고모가 거처에 도착했을 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별채의 한쪽에서 차를 마시며 앉아 있었다. 사이훙의 고모는 부모님과 한쪽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손님들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 손님들은 아까 보았던 도사와 시승들이었다. 할아버지는 쩔뚝거리며 걸어오는 고모를 조용히 불렀다.
"메이홍, 얘기는 모두 들었다.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구나. 이분은 산시성 근방의 화산파 장문인이시다. 내 오랜 지우이자 나의 정신적 스승이시지."
할아버지는 그 도사를 향해 돌아섰다.
"대사님, 만약 제 딸이 당신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메이홍은 곧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대사는 메이홍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저 사소한 사건이었을 뿐이오."
대사는 웃으며 사이훙에게로 돌아서서 오랫동안 그를 바라보았다. 대사는 매우 사려 깊은 눈길로 사이훙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관 선생."
"네, 대사님."
"이 아이가 당신의 손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만."
"이 아이의 이마에 푸른 별이 하나 있군요. 이 표시는 대단히 특별한 것이오."
사이훙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도 없었으며, 할아버지가 그 도사에게 이례적으로 경의를 표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도사의 너털웃음과 자상한 눈빛에는 사이훙도 호감을 느꼈다. 가족들은 대사의 말이 이어지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잠깐 뒤 대사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아이의 정신은 먼지로 뒤덮인 속세로 다시 돌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자발적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에게는 한 가지 임무가 주어지죠. 만약 이 아이가 자신의 과업을 완성하려고 한다면 오랜 시간 훈련을 받아야 할 겁니다."
"대사님, 당신께서 그 훈련을 맡아 주시겠습니까?"
할아버지가 말했다. 대사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맑은 두 눈은 붉게 타오르는 석양의 빛을 그대로 반사하고 있었다.
"글쎄요.......나는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출가한 사람입니다. 이제 와서 내가 제자를, 특히 저렇게 어린아이를 제자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어려운 일입니다."
사이훙은 다음 날 아침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났다. 할아버지를 따라 타이산에서 경치가 좋기로 이름난 일출봉에 가기 위해서였다. 그 봉우리는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고 했다. 산동성은 아직 어둠과 구름으로 덮여 있었다. 광포하게 소용돌이치는 구름들이 창백한 빛살을 받아 조금씩 밝아져 갔다. 창백한 빛은 곧 붉어져 막 밤을 지난 눈부신 태양을 불태우고 구름까지 붉게 물들였다. 사이훙은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축제에서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되새겨 보았다. 야외극, 도교 의식, 그리고 어제 만난 대사....... 타이산에서 일어난 축제의 풍요로운 이미지들은 떠오르고 있는 태양의 열기 속에서 하나로 녹아들고 있었다.
3. 관가보
산시성에 위치한 관가보는 60명의 대가족이 사는 씨족사회의 중심지였다. 관가보는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250만 평에 이르는 숲과 농지로 둘러싸여 있었다. 주위의 풍경과 조화를 이룬 고전적인 중국식 건축물은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하나의 요새를 이루고 있었다. 관가보는 관씨 집안이 무사 계급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관씨 집안이 답답하거나 유쾌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무사 집안이면서도 정치가와 학자로 활동했으며, 예술적인 풍취까지 갖추고 있었다. 관가보는 하나의 성역이었고 조용한 나무 그늘과 졸졸 흐르는 시냇물, 아름다운 꽂들이 피어나는 장원이었다. 그곳에는 나무와 기와, 동과 금등으로 솜씨 좋게 만든 누각들이 있었고, 우아한 격자무늬 창문이 난 주택들이 들어서 있었다. 그 주택들의 내부에는 명품으로 칭찬받는 가구들과 값비싼 골동품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관씨 일가는 4대가 넘게 이 관가보에서 살아왔다. 고색창연한 관가보의 구조는 대단히 기묘했다. 성은 산기슭을 돌면서 뱀처럼 구불구불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한쪽 벽과, 강철못이 박힌 대문 하나만이 드러난 전략적 이점도 돋보였지만, 도교의 풍수지리에 따라 설계된 관가보의 구조는 흠잡을 곳이 없었다. 이 관가보를 세웠던 관씨 집안의 옛 어른이 도사에게 성의 위치와 외형적 모습을 결정해 달라고 요청했었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바람과 물과 땅, 그리고 우주의 힘들을 고려하여 위치와 방향이 서로 주고받는 복잡한 영향들을 계산하는 지관의 조언에 따라 주택을 건축한다. 관씨 집안은 가문과 우주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고심했으며, 기의 흐름을 따름으로써 집안이 번영할 수 있도록 하였다. 관가보의 자리를 잡아 둔 도사는 용의 형상을 이루는 산의 가장자리가 가장 이상적인 장소라고 말했었다.
그리하여 관씨 집안의 60명의 식구들과 백여 명의 하인들은, 폭포가 개천이 되어 가로질러 흐르고, 하늘을 찌를 듯한 지붕들이 연이어 보이는 요새에서 살게 되었다. 용의 머리에 해당하는 지역은 그 자체가 천연의 요새였으며, 사이훙의 할아버지와 그의 직계 가족들이 그곳에 모여 살았다. 친척들은 용의 꼬리에 해당하는 곳에서 살았으며, 하인들과 마구간, 강당과 연무실은 용의 등과 배에 해당하는 지역에 있었다. 청기와를 얹은 관가보의 지붕들은 가까이서 보면 용의 비늘을 연상시켰다. 그러나 멀리서 보면, 독특한 건축술과 푸른 나무들에 가려 관가보의 모습은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청나라가 멸망하던 1911년, 할아버지는 정계와 학계, 무림에서 은퇴하여 성벽으로 둘러싸인 관가보에서 생활하였다. 한때 황후의 섭정체제 아래서 문부성 장관을 지냈으며, 사회에서 존경받는 학자이자 무림의 고수였던 할아버지가 이제 고독을 벗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은퇴한 뒤 할아버지는 우아한 미술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평소 시화를 즐기고 도교의 경전 공부를 낙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부유하고 강력한 권력을 가진 귀족 가문의 어른이었기 때문에 세상 일과 완전히 떨어질 수가 없었다. 비록 관가보 안에 은둔해 살았지만 할아버지는 언제나 적에게 둘러싸여 있었으며, 개인적으로 책임질 일들도 많았기 때문에 중국 사회의 혼란으로부터 완전히 격리되어 있을 수 없었다.
관가보는 거의 정기적으로 여러 도적과 적들, 암살자들의 공격을 받았다. 1920년대까지 중국은 아직도 혼란스러운 무법천지였다. 엄청난 무리의 산적들이 정기적으로 마을과 부유한 농가를 습격했다. 관가보 사람들은 무사로 구성된 악당들을 싸워 물리쳐야만 했기 때문에 모두들 무술을 익혀야 했다. 그 당시엔 총이 널리 사용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개인적인 재주가 생존을 보장해 주었다.
당시에는 권력자들과 가문들 사이의 적대관계가 흔한 일이었으며, 해결이 안 된 문제는 음모로 이어지곤 했다. 할아버지는 은퇴한 몸이었지만, 공직자 생활 당시 백성을 보호하던 청렴결백한 관리였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적의를 품고 있었다. 부와 권력과 명성을 놓고 두 가문이 경쟁할 때면, 통상적으로 암살을 계획하여 우위를 차지하려고 하였다.
관씨 집안은 약간 특이한 이유때문에 적대적인 사람들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에는 중원 9대 문파로 대표되는 "무림"이 있었는데, 관씨 가문은 무사 집안으로서 무림에서 쟁쟁한 명성을 얻고 있었다. 무림에는 나름대로 규칙과 예법이 있었는데, 그 규칙들중의 하나는 일 대 일의 대결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무림의 무인들은 단지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서도 서로 도전하고 싸웠다. 자신이 쓰러뜨린 상대가 많을수록 무인으로서의 위신이 높아졌기 때문에 사이훙의 할아버지 같은 사람은 좋은 목표가 되고도 남았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신체적 모멸보다도 중국사회의 혼란상을 더 고통스럽게 받아들였다. 경호원들과 하인들이 꽤 있었으나, 할아버지는 항상 무술훈련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신체적 공격은 그가 간단히 눌러 버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국 내부의 사회적 부패, 근대화의 물결,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 국민당과 공산당 간의 내전, 군벌들의 횡포, 그리고 젊은이들의 가치관의 변화 같은 일련의 사회적, 시대적 문제들은 무시해 버리기에는 너무나 큰 것이었고, 개인이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일이었다.
그는 관가보의 문을 잠가 그 같은 문제들을 잊어버리려고 했지만, 마지막 문제만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성벽은 관가보 내부의 젊은 세대에 의해 무너져 가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대립하던 사람은 바로 그의 아들이며 사이훙의 아버지였던 관 완홍이었다. 관 완홍은 교양 있는 인품을 갖춘 그의 부친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격렬하고 무모한 성격에다 지나치게 야망이 큰 그는 중국 군부의 장군이었다. 그는 오로지 부귀와 권력과 명성만을 추구했다. 완홍은 시화에 대해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으나 부친이 그토록 열심히 수집하는 전통 시화들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의 유일한 관심사는 근대 중국 사회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기질과 잘 맞는 군인이 되었으며, 그것을 출세의 지름길이라고 믿었다. 할아버지 자신은 무인이었으나 완홍이 군대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당시 중국인들의 가치관으로 본다면, 무사가 되는 것과 군인이 되는 것이 반드시 같은 일은 아니었다. 무사는 무술적 기예를 완벽하게 닦아 자기완성을 이루는 데 힘썼을 뿐만 아니라, 중세 유럽의 기사처럼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지키는 정의의 옹호자였다. 무사의 유일한 관심은 완전한 무예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며 정의를 위해 싸우는 영웅의 길을 걷는 것이다.
그러나 군인의 길은 그렇지 않았다. 군인은 도덕에 관심을 갖는 것이아니라, 학살에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군인은 자기와 싸울 만한 상대를 찾는 게 아니라, 자기에게 반대하는 사람을 무분별하게 살상하였다. 자기 자신의 숭고한 원칙을 가지고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 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지휘자의 수중에서 조종되는 도구일 뿐이다. 할아버지에게 군인이란 용병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권력자의 꼭두각시였고, 삼류정치인이자 청부 살인 업자였다.
아버지와 아들은 수년 동안 그렇게 싸웠다. 그 긴장감은 갈수록 더욱 심해져 갔고 마침내는 서로 만날 때마다 말다툼을 하게 되었다. 오래지 않아 두 사람의 갈등은 관가보 안의 거주지를 재배치하는 물리적 조치까지 가져왔다. 할아버지는 완홍과 그의 가족을 할아버지의 처소와 멀리 떨어진 별채로 쫓아 버렸으며, 군복을 입거나 총을 휴대한 채로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것은 낡음과 새로움, 고전과 현대 사이에 일어난 갈등이었다. 어쨌든 완홍은 아직까지는 부친에게 복종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가문의 최고 어른이었으므로, 완홍은 부친 앞에 나타날 때는 언제나 전통적인 복장을 갖추었다. 그러나 완홍이 보여주는 진보적 세계는 소리 없이 중국적 이상들을 잠식해 가고 있었다.
사이훙은 이 두 사람의 갈등 속에서 자라야 했다. 완홍은 사이훙을 자신의 뜻대로 키우려고 했다. 사이훙의 모친은 미술과 음악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으나, 남편의 뜻을 지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사이훙이 학문을 닦기를 원했지만, 궁극적으로는 그가 아버지처럼 군대에서 성공하기를 바랐다. 그들은 자신들의 야망을 위해 네 살 때부터 사이훙에게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부모의 압력은 강력했지만 사이훙은 순종하지 않았다. 결국 그의 부모는 사이훙이 고집 세고 다루기 어려운 아이라고 단정해 버렸다.
사이훙은 할아버지의 생활방식에 더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이것을 알고 있었던 할아버지는 사이훙을 눈여겨보았다. 어느 날, 사이훙이 술에 만취한 아버지에게 곤죽이 되도록 두들겨 맞자 할아버지는 기회를 포착하고 선제권을 잡았다. 가문의 어른으로서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었던 할아버지는 사이훙을 데려다가 자신의 거처에서 살게 하였다. 사이훙은 가끔 부모님에게로 가서 놀다 오기도 했지만, 그때부터 계속해서 할아버지와 같이 살게 되었다. 사이훙이 일곱 살 되던 해부터 할아버지가 그를 키우게 된 것이다.
4. 장난꾸러기 학생
"작은 주인님. 선생님을 뵈러 가야 할 시간에 늦겠는데요."
바위로 꾸며진 정원에 있던 사이훙은 이 말에 온몸이 굳었다. 사이훙은 종복 비운이를 향해 돌아섰다. 비운이는 사이훙의 친구이자 놀이 동무인 열두 살 난 아이다. 사이훙과 비운이는 관가보의 외진 곳을 찾아다니며 놀기를 좋아했다. 만약 할아버지가 아시면 얼마나 야단을 치실까?
할아버지는 동남아산 마이너 새를 대나무 새장에 넣고 사이훙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다니며 마당을 산책했다. 할아버지는 검은색의 우아한 깃털을 가진 마이너 새를 두 마리 갖고 있었으며, 다른 중국 신사들처럼 아침이면 새를 데리고 산책을 나오곤 했다. 새들이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야생 새들의 노랫소리를 배우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섭섭하게도, 그 마이너 새들이 잘하는 말은 "배고파! 배고파!"라는 말처럼 들렸다.
산책을 하던 할아버지는 사이훙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한 손엔 새장을 높이 들고 한 손은 뒷짐을 진 채, 매부리코에 하얀 머리칼을 길게 땋아 늘어뜨린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할아버지의 성품은 손에서도 풍겨 나왔다. 할아버지의 손은 강하고 묵직하며 굵은 마디에 독수리 발톱 같은 손톱을 가지고 있었다. 그 손은 응조권법을 익힌 무술가의 표정이었다.
"사이훙, 선생님께 가거라."
할아버지가 단호하게 말했다.
"네, 할아버지."
"그리고 비운아."
"네, 보주님."
"사이훙이 선생님께 가는지 따라가서 알아보거라."
깡마른 사이훙의 늙은 선생님은 반색을 하며 제자를 반갑게 맞았다. 그 선생님에겐 자신이 높이 받들던 고전을 이 아이를 가르치며 다시 공부할 기회를 갖는다는 게 대단히 흥분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사이훙은 고전강의나 그 선생님에게서 별다른 감동을 받지 못했다. 한 마디로 연로하신 그 선생님은 사이훙이 존경할 만한 사람이 되지 못했다. 대부분이 학자가 아니라 무사였던 집안 식구들과 비교해 보면, 노선생님은 신체에 대해 너무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의 작은 체구는 의복을 걸치기 위한 옷걸이 정도로, 혹은 머리를 지탱하기 위한 골격으로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정말 순수한 의미로 그저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사이훙의 선생님은 해골의 윤곽이 그래도 드러날 정도로 얇은 살가죽에 핼쑥하고 주름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거의 다 빠져 버린 희끗희끗한 머리칼은 변발이었고, 뾰족한 턱에는 얼마 안 되는 턱수염이 힘없이 달려있었다. 선생님이 짓는 얼굴 표현 중에 가장 정열적인 것은 두 눈을 둥그렇게 떠보이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철테 안경을 끼고 있었는데, 푹 꺼져 내려간 코 끝에 걸려 있기가 어려운 듯 자꾸만 아래로 흘러내렸다.
단조로운 일과로 매일 아침이 시작되었다. 강의는 언제나 경문들을 암송하는 것으로 시작되어, 필기 시험과 서예로 이어졌다. 선생님이 가진 유일한 지식의 원천은 유교의 기본 경전인 사서였다. 고전은 어린아이가 이해하기 쉬운 게 아니었다. 그러나 그 선생님은 도덕을 함양하는 군자의 덕목들과 사회와 가정의 위계질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행동들, 그리고 효도를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사이훙에게 강조하면서, 쉬운 문장들을 선택해 가르쳐 주었다. 강의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지루했을 뿐만 아니라, 사이훙의 마음속에 경멸까지 불러일으켰다.
선생님의 강의 중에 하나를 예로 들어 보면, 어떤 아이는 부모님이 모기장 속에서도 매일 밤마다 모기에게 물린다는 것을 알고는 먼저 모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아이는 모기를 몇 마리 잡기는 했지만 모기가 너무나 많아서 다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이는 모기들이 부모님을 물지 않도록 자신의 피를 충분히 빨아먹게 했다는 것이다. 아이의 희생 덕택에 부모님은 편안히 잠을 잘 수가 있었다.
그러나 사이훙은 그걸 바보 같은 짓이라고 여겼다. 그 아이는 지나치게 부모에게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이훙은 그런 예들은 모두 무시해 버렸다. 정작 사이훙의 행동 방식에 영향을 미쳤던 것은 선생님이 가르쳤던 이같은 세부사항들이 아니라, 유교의 가치관에 따른 조부모님들의 인격적 태도였다.
사이훙은 강의를 듣고 경문을 암송하는 일보다는 서예를 더 좋아했다. 비록 고전을 다시 한번 복습해야 했고, 확실하게 암송하기 위해서 반복해서 써야 했지만, 사이훙은 글씨 쓰는 것을 그림 그리는 것처럼 생각했다. 먹물을 흠뻑 머금은 붓을 휘두르는 것은 일종의 미술적 탐험이었던 것이다.
늙은 선생님은 인내심을 가지고 사이훙에 붓 쥐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손에 힘을 빼고 손 안에 작은 호두 하나가 들어갈 만큼의 공간을 남겨 둔 채 붓을 수직으로 가볍게 잡아야 했다. 먼저 먹물에 붓을 담가 적신 다음 벼루에 붓끝을 다듬은 뒤 수직으로 세워서 써야 했다. 글자는 한 획 한 획씩 써야 하며 각각의 획은 순서에 따라 정확한 위치에 비례를 맞춰 가며 긋는다. 운필에는 일정한 속도가 가장 중요했다. 너무 빨리 붓을 움직이면 먹이 골고루 종이에 묻혀지지 않고 붓이 그냥 끌려왔다. 반대로 운필의 속도가 너무 느리면 먹이 변져 종이가 부풀어 올랐다.
서예를 배우는 시간이면 사이훙은 항상 사건을 일으키고 싶었다. 그 시간에 늙은 선생님은 자주 잠이 들었다. 오늘도 평상시처럼 노선생님은 무슨 생각에 잠긴 듯 천장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그의 명상은 낮잠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사이훙은 24개의 획으로 된 복잡한 글자를 다 썼다. 늙은 선생님이 잠들 때마다 사이훙은 공부를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놀러 나갈 것인가 갈등에 빠지곤 했다.
중국의 전통에서 학습을 끝내고자 할 때는 예의와 형식을 갖추고 헛기침을 해서 선생님을 깨워야 했다. 그러나 사이훙은 오늘따라 유난히 강한 유혹을 느꼈다. 기회가 왔다는 생각이 들자 유혹이 점점 더 커졌다. 기회는 곧 행동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조심스럽게 선생님 뒤로 살금살금 기어갔다. 늙은 학자의 변발이 사이훙을 유혹하듯 축 늘어져 있었다. 사이훙은 그 변발을 살그머니 붙잡아서 의자에 묶었다. 문간으로 가서 바깥을 살펴보았다. 비운이가 밖에서 인내심 있게 기다리고 있었다.
"노선생님, 노선생님!"
사이훙은 문간에서 선생님을 불러 보았다.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선생님은 성인들을 만나고 계신 게 틀림없어."
사이훙은 비운에게 속삭이고는 돌아와서 두 손을 입에다 대고 다시 한번 선생님을 불러 보았다. 늙은 선생님의 눈꺼풀이 망설이듯 껌벅거렸다. 하지만 곧 제자의 좌석이 비어있는 것을 발견한 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노선생님!"
사이훙과 비운은 노한 늙은 선생님의 호통을 들으면서도 계속 선생님을 부르며 정원으로 뛰어나갔다.
"작은 주인님, 벌 받는 것이 겁나지 않으세요? 선생님께서 분명히 할머님께 말씀드릴 텐데요."
비운이 사이훙과 함께 낄낄거리다가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사이훙은 사탕을 꺼내려고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으면서 장난꾸러기처럼 웃었다.
"내가 할아버지 옆에 있는 한 할머니는 나를 때리시지 못해."
그날 하루는 놀이와 관가보의 재미난 곳을 돌아다니는 일로 다 지나갔다. 두 소년은 딱지치기를 하고, 소녀들을 놀려먹고, 군신인 관우의 신위를 모신 사당에서 숨바꼭질을 하였다. 사이훙과 비운은 숨바꼭질을 하며 관우 신상과 조상님들의 축문이 새겨진 위패들을 모두 밀쳐 넘어뜨릴 뻔하기도 했다. 사이훙의 애완동물인 팬더 새끼에게 먹이를 주고, 할머니의 애마인 흰 갈기를 가진 검은 색 말도 구경했다. 정신없이 뛰놀고 웃던 그들은 턱까지 차오른 숨을 가다듬으며 할머니의 연무장앞 돌층계에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안에서 뭘 하고 있을까?"
사이훙이 물었다.
"할머님께서 여자들을 훈련시키고 계십니다."
"한번 보자. 우리도 몇 가지 무예들을 배울 수 있을 거야."
비운은 반대했다. 사이훙에게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돌보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의기양양하게 공자님의 말씀을 외운뒤 비운은 위엄있게 말했다.
"그것은 허락되지 않은 일입니다, 작은 주인님."
사이훙은 비운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마치 안경을 끼고 수염을 기른 말라비틀어진 늙은 학자처럼 보였다.
"할머님께서 방문을 허락하지 않으실 겁니다, 작은 주인님."
비운은 평탄한 어조로 낮게 말했다. 사이훙은 웃었다.
"물론 그럴 테지. 그러나 할머니께서 눈치채지 못하신다면 괜찮지 않아?"
비운의 공자님 같은 표정은 곧 놀란 어린아이의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렇군요, 작은 주인님."
사이훙은 웃었다. 비운의 학자적인 벽을 조금이나마 깨뜨려 버린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얄팍한 학자적 태도가 남아 있었다.
"저 지붕 위로 올라가자."
사이훙은 장난꾸러기답게 말했다.
"작은 주인님!"
사이훙은 <저 샌님 보게나. 그래도 어린아이는 어린아이로구나.> 하고 생각했다. 연무실 정원으로 통하는 문들은 잠겨 있었고 격자무늬의 창틀에 끼워져 있는 유리창에는 성에가 끼어 있었다. 지붕 꼭대기로 올라가 기와를 들어낸 뒤 그 틈새로 훔쳐보는 수밖에 없었다. 사이훙은 근처에 있는 나무에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한편 비운은 금지된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판단과, 사이훙이 가는 곳엔 어디든 따라가 그에게 변고가 생기지 않도록 돌봐주어야 한다는 의무감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비운은 사이훙을 따라 낮은 행랑 지붕을 조심스럽게 가로질러 높은 지붕위로 올라갔다. 지붕 위의 오래된 기왓장들은 그리 단단하지 못했고 급경사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지붕 꼭대기의 열 지어 있는 기왓장들을 붙잡고서 약간 평평한 곳으로 움직여 갔다. 비운은 떨고 있었으나, 사이훙은 지붕의 높이에 대해서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들은 지붕 꼭대기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 몇 장의 기와를 들어냈다. 할머니는 대타를 연습하고 있는 여자들을 감독하고 있었다. 재상의 따님이었던 할머니는 쓰촨성의 어메이산에 있는 불교사찰의 비구니로부터 무술을 배웠다. 중국 역사를 돌이켜 볼 때, 고립된 산간에 살며 수도하는 불교의 승려들은 산적과 맹수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했기 때문에, 오랜 세월에 걸쳐 무술 동작들에 형이상학적인 해석을 덧붙여서 절묘한 무예로 발전시켰다. 그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독특한 무예 기법들을 문파의 전통으로 전수하면서 실용적 체험을 쌓았으며, 드물게는 속가의 제자들을 받아들여 기법을 전수하기도 했다. 할머니는 절에서 지내면서 권법뿐 아니라 적을 붙잡아 뼈를 비틀어 꺾는 기술인 "금나수법", 그리고 공중으로 솟구쳐 몸을 유연하게 하여 마음대로 몸을 가볍게 할 수 있는 "경공"과 병기술까지도 모두 통달한 분이었다.
할머니의 기술은 여성에게서 여성에게로 전해지면서 발전된 것이었다. 어메이산의 비구니들은 여성의 약한 저항력과 유연함을 항상 염두에 두고 신체 내부의 힘을 이용하는 독특한 훈련 방법을 개발해 냈다. 그 방법들은 여성의 신체 내부의 화학적 특성에 입각하여 정교한 내공법으로 발전했다. 남자들은 절대로 볼 수 없도록 금지되어 있는 이 훈련을 받은 여성은 강철 같은힘과 기예를 지니게 되어 아무 두려움이 없이 어떤 난폭한 공격자와도 맞서 싸울 수 있었다.
할머니의 병기는 여성적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었지만, 대단히 무서운 것이었다. 할머니의 병기는 23개의 마디로 된 긴 날가죽 채찍이었다. 채찍의 마디마디에는 작고 둥그런 칼날이 달려 있었으며, 그 칼날들은 서로 사슬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할머니가 즐겨 사용하는 또 다른 병기는 할머니의 허리에 감긴 띠였다. 강철선을 섬유처럼 짠 것으로, 양쪽 끝에는 쇠로 만든 공이 달려 있었다. 매우 유연하여 언제든 사용할 수 있었으며, 조르거나 채찍처럼 후려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의 머리 장식은 표창으로 사용할 수 있었고, 예리한 단검은 소매 속에 숨겨져 있었다.
사이훙은 훈련생들의 대부분이 소녀들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는 한밤중에 하녀들이 침입자들과 격투 끝에 강철 섬유 끈으로 그들의 목을 졸라 죽였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었다. 이제 그는 권법형의 연무와 대타, 모래주머니를 차거나 나무 인형들을 가지고 연습하는 소녀들의 훈련 방식을 상세하게 볼 수 있었다.
연무실 한가운데에는 경공을 공부하는 훈련 기구가 있었다. 작은 질그릇 밥공기들을 5개씩 묶어서 이층으로 쌓아 놓은 것들로, 모두 108개가 있었다. 그 각각의 훈련 기구들은 4개의 밥공기를 바닥에 사각형 모양으로 뒤집어 놓고, 그 위에 1개의 밥공기를 엎어 놓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 109개의 그릇 묶음은 한 걸음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었으며, 전체적으로 보면 연무실 바닥에 꽃송이가 크게 그려져 있는 것 같았다. 두 명의 소녀가 경공을 연마하기 위해 그 밥공기 기둥 위에 올라가서 걸음을 내딛거나 뛰어오르면서 기예를 겨루고 있었다. 작은 밥공기 위를 밟아야 했으므로, 서로 몸의 균형을 맞추느라 다리에 한껏 힘을 주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서로의 급소만을 노리며 공격과 수비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경공 실력이 대단했기 때문에, 밥공기들의 위치를 흐트러뜨리거나 깨뜨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한순간 실수를 저지르자 연무실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던 할머니는 대나무 회초리를 휘두르면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5미터가 넘는 거리를 단숨에 날아가 크게 호통을 쳤다.
수련이 끝나자 수련생들은 모두 해산했다. 사이훙은 할머니의 연무 광경을 구경하기 위해 열심히 마당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다른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가 버렸다. 할머니가 연습하는 것은 누구도 보아서는 안 되었다.
저녁이 되자 사이훙은 할아버지가 머무르는 누각으로 갔다. 어슴푸레하던 초저녁의 하늘은 곧 진한 암청색으로 물들며 점점 암흑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점점 커져가는 달 주위에는 분무기로 뿜어 놓은 듯 별들이 점점이 박혀있었다. 밤공기는 쌀쌀했고, 잔잔한 바람은 노랗게 물든 단풍잎을 조용히 흔들고 있었다. 호수 가운데에는 연꽃으로 뒤덮인 작은 섬이 있었다. 거기에는 경치를 감상하며 휴식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정자가 있었다. 붉은 칠을 한 나무 기둥에 첨탑이 있는 기와 건물로, 창문은 없이 창틀만을 내놓은 정자였다. 관가보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은 건물의 윤곽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희미했다. 정자 안에는 등불 하나만이 켜져 있었다. 사이훙은 깜박이는 등불 속에서 홀로 정자에 앉아 있는 할머니를 보고 있었다.
할머니 옆에는 비파가 놓여 있었다. 혼자 앉을 만한 좁은 공간에 앉아 있는 할머니는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사람처럼 보였다. 할머니의 짙은 갈색 비단옷에는 거북이와 낙엽들이 수놓아져 있었는데, 주위 배경과 메아리처럼 잘 조화되고 있었다. 할머니는 일과에서 벗어나 조용히 휴식을 취하면서 시간의 흐름을 음미하고 있었다. 이윽고 할머니는 상아로 깎아 만든 듯한 그 고운 손으로 조용히 비파를 들었다. 할머니는 악기의 현을 손끝으로 퉁겨 보며 음을 조절했다. 이어서 할머니의 노랫소리가 조용한 정원의 밤공기를 흔들었다. 날카롭게 끊는 짧은 음들이 단검처럼 밤공기를 찢는가 하면 낮고 부드러운 선율이 호수의 수면 위로 잔잔히 퍼져 나갔다. 끝날 때는 현 하나가 곡조의 끝을 알리듯 길게 떨리며 여운을 남겼다.
할아버지는 자택의 서재에서 소동파의 얇은 시집을 읽고 있었다. 마침 비파의 곡조는 시의 운율과 딱 들어 맞는 것이었다. 할아버지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평화로웠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든간에, 저녁에는 조용히 홀로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때로 아내와 시를 짓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썼다. 무예에 관한 지식을 서로 교환하기도 하고, 같이 책을 읽기도 했다. 무슨일을 하든 그는 아내와 손자와 함께 하는 시간을 무척이나 귀중하게 여겼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옆에 앉아 있는 사이훙을 바라보았다.
"이야기를 해주세요, 할아버지."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으냐?"
사이훙은 할아버지의 손을 바라보면서 "혈창"을 연무하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렸다. 혈창은 할아버지가 스스로 창안해 낸 창술이었다.
"백미도인에 대해서 듣고 싶어요."
사이훙은 재빨리 대답했다.
할아버지는 웃으시면서 책을 내려놓았다.
"사이훙, 잘 들어 보아라. 지난번엔 하얀 눈썹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백미도인에 관해서 막 이야기를 꺼냈을 뿐이었단다. 그는 훌륭한 도사였다. 훌륭한 내공을 몸에 지녔기 때문에 주먹이나 병기로는 그의 몸을 상하게 할 수가 없었지. 그는 또한 독특한 권법을 창안해 냈는데, 그것은 철학적 사상에 바탕을 둔 것도 아니었고 동물의 동작을 본떠서 만든 것도 아니었단다. 그의 무술은 인간의 동작에 입각해서 만들어진 것이었지. 백미는 진정으로 세상을 떠나 출가한 사람이었으나 세상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가 어디를 가건, 사람들이 그를 쫓아갔지. 그 이유는 모두 백미 도인이 갖고 있는 무학에 관한 지식 때문이었단다. 한 무리는 청조의 통치자들이었고, 또 다른 무리는 그 청조를 무너뜨리려는 모반자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백미를 자기편에 두고 그에게 무술을 배우려고 하였지. 양편 모두 그에게 자기편에 들어오도록 협박을 가했고 말을 듣지 않는다면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백미는 그 어느 편에도 관심이 없었지. 자존심과 신념을 가지고 있던 그는 마침내 자금성을 직접 공격함으로써 권력자들의 압력에 정면으로 맞섰단다. 백미는 72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황제의 자금성을 기습 공격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패로 끝났지. 미리 정보를 입수한 황제의 친위대가 매복해있다가 그들을 함정에 몰아넣은 것이다. 하지만 현명한 황제는 백미와 그의 제자들에게 자기에게 복종한다면 사면해 주겠다고 말했지. 거기에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리하여 백미는 황제의 개인 수행원이 되었단다. 황제는 자기가 암살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단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뛰어난 무사였고, 사람들을 이용하는 조종술이 매우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황제는 백미보다도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들을 궁 안에 많이 거느리고 있었단다. 그들 중에는 외국인들도 많았는데, 티베트와 페르시아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다.
한편, 모반자들은 청조를 전복시킬 계획을 짜고 소림사에 숨어 있었단다. 승려로 변장하고 소림사에서 무술을 닦고 있던 그들은 기회만 노리고 있었지. 그들은 모두 뛰어난 무사였기 때문에 황제는 그들은 모두 섬멸하기로 작정했단다. 황제는 백미와 황제의 친위대를 소림사로 보냈지. 그리하여 소림사의 주지는 백미와의 대결에서 패하여 목숨을 잃었고, 소림사는 불타고 거의 모든 승려들이 살해되었단다.
그때 살아남은 승려가 둘 있었는데, 소림 백학권법의 사범과 후권의 사범이었다. 그들은 복수를 하기 위해 30년간 무공을 연마한 뒤 백미를 추적했단다. 두 승려는 무공을 쌓으면서 백미에게 한 가지 약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단다. 백미의 갑옷 같은 신체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었지. 그러나 그 문이 있는 곳은 사람마다 다르단다. 결투가 벌어졌을 때 두 승려는 그 문을 발견할 수가 없었단다. 백미를 협공해 사타구니를 걷어찼지만 백미는 음낭을 하복부 속으로 빨아들이는 흠음법이라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 백미의 눈을 찔러 봤지만 그의 눈꺼풀은 마치 강철처럼 단단했다. 그러는 동안에 백미는 두 사람 모두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지. 그 두 명의 고수들은 심한 부상을 당해 피를 토하고 있었다.
마지막 필사적인 공격에서 후권사는 백학권사가 공중으로 높이 뛰어올라 솟구칠 수 있도록 그는 받쳐 주었지. 백학권사는 내려오며 백미의 정수리를 힘차게 내려쳤다. 그러자 백미의 방어망은 사라졌다. 그곳이 백미의 급소였던 거지. 그리하여 세 사람은 용호상박의 결전을 벌였다. 백미는 아직 그 두 사람을 물리칠 정도의 여력은 충분했기 때문에 용케 도망갈 수가 있었다. 그러나 결국 며칠 뒤에 죽고 말았단다. 그 소림사의 두 고승들 역시 중상을 입었지. 백미가 그들의 육체를 못 쓰도록 망가뜨려 놓았던 거지. 그들은 죽는 날까지 10년간을 침대에 누워 고통을 받으며 살아야만 했단다."
사이훙은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정신을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이야기가 끝나자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저도 백미 도인처럼 무림의 영웅이 되고 싶어요."
할아버지는 사이훙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사이훙, 인생에는 그런 것들보다도 가치 있는 일들이 참으로 많단다. 너는 단순하게 무사나 군인이 되겠다고 결정하면 안 된다. 진정한 영웅이 되려면 먼저 교양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단다. 너는 반드시 도를 배워야 한다. 명예라든가 행운은 다 팔자가 정해 놓은 것이란다. 권모술수나 부리는 마음씨를 어디다 쓸 수 있겠느냐? 언제나 진리를 찾고, 자신의 원칙을 준수하며, 위엄을 잃지 말도록 해야 한다. 도를 닦아라. 물을 역류해 가려 하지 말아라. 물의 흐름을 타며 헤엄쳐야만 재난을 피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사람은 모두 팔자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이 험한 세상의 생리란다. 때로 사람은 동쪽으로 가고 싶어도 반대로 서쪽으로 휩쓸려 갈 수도 있고, 북쪽으로 가고 싶어도 남쪽으로 밀려갈 수도 있는 것이란다. 선택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지. 이 진리를 찾는 것이 곧 도란다. 길이 곧 도인 것이지. 도는 우주의 흐름이며, 신비로운 것이다. 그것은 평형을 뜻하는데, 평형 상태란 깨지기 쉬운 것이란다. 악에 의해 방해받을 수도 있는 것이지. 악은 우리가 때로 머리를 맞대고 싸워 이겨야만 하는 것이다. 악은 반드시 파멸되어야만 하는 것이고, 도를 따르는 사람은 반드시 악과 맞서 싸워야만 한단다. 만약 네가 도와 함께 사는 방법을 배운다면, 그리고 악과 맞서 싸우는 일에 너의 재주를 사용한다면, 그떼 너는 진정한 영웅으로 칭송받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사이훙의 어깨를 다정하게 다독거려 준 뒤에 일어섰다. 사이훙은 말없이 그대로 있었다. 가르침을 받을 때는 그 가르침에 관해서 명상하고 깨달음이 올 때까지, 때로는 깨달음이 온 뒤에도 오래도록 그 선물을 음미해야 한다. 사이훙은 조부모님들의 지혜를 믿었다. 그들의 세계는 자연의 맥박과 가까웠으며, 과거와 현재가 이음매 없이 연결된 것이었다. 기억의 혼합체요 신화였으며, 경험이자 전통이었다. 그것은 사이훙이 보기에 완전한 세계였고, 거인의 세계였다. 할아버지는 대나무로 만든 퉁소를 집어 들고 문가로 걸어갔다.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퉁긴 비파 소리가 칠흑같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자 할머니는 소리 없이 정자를 빠져나갔다. 할머니의 비단옷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호숫가로 걸어갔다. 백발을 날리며 걸어가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하얀 눈이 쌓인 나무 같았다. 할아버지가 퉁소를 들어 입술에 대자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제비처럼 노랫가락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박자가 점점 느려지는가 싶더니 음정은 낮게 떨어졌고,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떨림이 수면 위를 떠돌았다.
어두운 하늘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던 호수의 조용한 수면이 퉁소 소리에 응답하듯 잔잔히 흔들렸다., 동심원의 잔물결이 호수 건너편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물고기들이 할아버지 앞에 나타나서 수면 위로 머리를 들고 최면술에 걸린 듯 춤을 추었고, 관가보의 밤은 그렇게 깊어 갔다.
5. 두 시자와의 여행
다음 날 아침 일찍이 할아버지는 사이훙을 서재로 불러들였다. 하인 하나가 할아버님이 곧 나오실 것이라고 귀엣말을 해주면서 그를 큰 방으로 안내했다. 사이훙은 옷깃을 여미고 정숙한 태도로 할아버지 방으로 들어갔다. 전에는 할아버지 방에 들어와 본 일이 거의 없었다. 서재에는 할아버지가 가장 아끼는 물건들이 있었다. 벽을 따라 각각 다른 양식으로 만들어진 최고급 책장들이 있었다. 어떤 것들은 들쭉날쭉한 선반이 있는 직사각형 모양이었으며, 어떤 것들은 선반의 외곽선 모양이 큰 표의 문자가 되도록 배열되어 있었다. 열대산 자단목으로 만들어진 기이한 선반 위에는 값비싼 책과 두루마리, 청자, 당나라 때 만들어진 마상, 그리고 조각하는 데만도 수십 년이 걸렸을 옥으로 만든 조각품 등 진귀한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그 방에서 가장 돋보이는 물건들이 윤기 있는 자단목 매듭걸이 위에 놓여 있었다. 거기에는 질흙으로 빚은 신장들과 성인들의 상이 있었고, 높이가 150센티나 되는 그림이 그려진 화분이 몇 개 있었다. 유명한 산수화와 초상화, 절묘한 필체의 두루마리들이 벽에 걸려 있었다. 그곳에 진열된 물건들 중 상당수는 계절에 따라 바뀌었다. 사이훙은 그중에서도 기묘한 풍경을 담은 산수화 한 점을 제일 좋아했다.
방안에 있는 모든 물건은 그 불멸의 예술작품을 만든 장인의 예술적 성취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중의 대부분은 수백 년씩 된 물건들이었으며, 전문가들에 의해 조심스럽게 보전되어 온 것들이었다. 옥이라든가 도자기라든가 그림들이 고대에 관한 방대한 지식을 담은 책들과 함께 아름답게 방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런 예술품들과 고서들이 그 방을 탁하고 천한 세상과 차단시켜 주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작게 들리더니 할아버지가 들어왔다. 화려하게 조각해 자개를 박은 자단목과 이탈리아제 대리석으로 만든 책상에 앉은 할아버지가 하인들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하인들이 두 젊은이를 서재로 들여보냈다.
두 젊은이는 사이훙이 타이산의 축제에서 보았던 도교 수련자의 옷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검은색 바지에 흰색 각반을 하고 그 위에 긴 소매가 달린 회색 장삼을 걸치고 있었다. 그들이 신은 짚신은 험한 자갈길을 걸어온 탓에 해어져서 발 아래 깔린 값비싼 양탄자와 너무나 대조되었다. 두 젊은이는 상투를 튼 머리에 투박하게 기운 검은 모자를 쓰고 있었으며, 모자 아래로 드러난 용모는 모두 준수하고 침착해 보였다. 할아버지는 사이훙을 그들에게 인사시켰다. 한 젊은이는 호리호리하지만 근육질의 몸매를 가지고 있었으며 말하는 태도가 진지했다. 그의 이름은 린 쭝우였다. 그의 동료는 몸집이 더 크고 건장했는대, 마치 미소를 지으려고 준비하고 있는 듯했다. 할아버지 그를 칭 수이셩이라고 소개했다. 사이훙은 그들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나는 너를 당분간 이 젊은이들과 함께 떠나보내겠다. 네 외조부님께서 당분간 너의 교육을 돌봐 주실 것이다. 너는 새 사람들을 만나고 새 재주들을 배우게 될 것이다."
사이훙은 크게 기뻐했다. 그 소식은 새 놀이 친구들이 생기고, 재미난 일들이 많아진다는 것과, 또 공부할 필요도 없고 야단맞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뜻했기 때문이다.
다음날, 세 사람은 관가보를 떠났다. 말을 타고 간다는 것은 분에 넘치는 사치였기 때문에 걸어가야 했다. 두 시자들은 친근하고 관대했으며, 사이훙을 잘 돌보았다. 사이훙은 실컷 놀고 싶어했고 사탕도 먹으려 했으며, 그 여행을 대단히 재미있게 생각했다. 그는 산시성과 주민들과 드넓은 농토를 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시자들의 등에 업혀 이것저것 구경도 했다. 열여덟 살 난 두 시자들과 이제 아홉 살 난 소년이 함께 길을 가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었다. 특히 봇짐과 딸랑이 장난감을 든 사이훙의 모습은 더욱 눈에 띄었다. 그러나 그들의 앞길을 막아서며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었다. 시자들의 의복과 상투 지팡이 등이 그들의 신분을 말해 주고 있었다. 도사를 가로막는 것이 중대한 죄였던 자미 대제의 축제를 기억하면서 사람들은 그들을 공경했다. 시자들은 많은 이방인과 군인들 사이를 지나갔지만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여행을 하는 동안 사이훙은 두 시자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린쭝우는 조용하고 침착했으며 진지했다. 그는 큰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넓고 멀리 보았다. 그는 중국 악기 대부분을 다룰 수 있는 훌륭한음악가였으며, 언제나 대금을 가지고 다니며 휴식시간마다 그것을 연주했다. 길을 가면서도 자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공손한 태도로 친절하게 대했다.
칭 수이셩은 재주 있는 목수였으며, 실용주의자 였다. 린 쭝우가 이지적인 데 반해 그는 맹렬하고 적극적이며 세속적인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두 시자는 모두 출가한 사람이였기 때문에 사회적인 문제에는 관심이 없었다. 때때로 다른 여행객들이 노상에서 그들의 앞길을 방해하기라도 하면 린 쭝우는 상관치 않았지만, 칭 수이셩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질렀다. 한 번은 어떤 못된 사람이 뱃사공과 뱃삯을 가지고 옥신각신하면서 출발을 지연시키고 있었다. 승객들은 그 사람 때문에 뜨거운 태양 아래서 마냥 기다렸다. 잠시 참고 있던 칭 수이셩이 눈을 부라렸고 칭 수이셩은 그를 강제로 밀어내 비켜 세웠다. 그 와중에도 린 쭝우는 한쪽에서 조용히 있었다. 비록 그는 칭 수이셩과 성품이 달랐으나, 칭 수이셩의 공격적인 성향도 역시 도교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둘은 떼어놓을 수 없는 단짝으로, 언제나 함께 있기로 약속한 사이였다. 린 쭝우는 행동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암묵적으로 칭 수이셩의 견해에 동의하곤 했다.
밤이 되면 그들은 시골의 여인숙에 머물렀는데, 세 사람이 모두 한 방에서 잠을 잤다. 날은 점점 추워지고 있었다. 그들은 장작으로 불 때서 덥혀 놓은 온돌 침상에서 잠을 잤는데, 사이훙은 여러 겹으로 된 비단이불을 덮고 시자들 가운데서 잠을 잤다. 시자들은 고향을 멀리 떠나 온 사이훙의 마음을 편안히 해주려고 자기들 사이에 재웠다. 사이훙은 두 사람 사이에서 이쪽 품에 안겼다 저쪽 품에 안겼다 하면서 잠을 잤다. 어느 날 밤, 린 쭝우는 사이훙이 일어나 방안을 두리번 거리는 것을 보게 되었다.
"무슨 일이니, 사이훙?."
사이훙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의 두려움을 말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얇은 창호지 위에 어른거리는 그림자와 벽을 긁는 듯한 이상한 소리가 귀신이나 식인귀가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게했다. 사이훙은 더욱 무서워졌다. 따지고 보면 두 시자도 아직 소년들이었다. 귀신이 자기들을 모두 잡아먹으려고 오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게...... 이게 귀신이에요?"
사이훙은 겁에 질려서 속삭이듯 물었다.
"어디?"
린 쭝우가 물었다. 사이훙은 소리 나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칭 수이셩은 역시 일어났다.
"이봐, 그렇게 속살거리고 있으면 어떻게 잠을 자겠어?"
칭 수이셩은 사이훙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다가 벌떡 일어섰다.
"안 돼! 오, 악마야!"
칭 수이셩이 외쳤다. 사이훙은 그들의 등뒤로 숨었다.
"다행히도 대사님께서 우리에게 악마를 막을 수 있는 부적을 주셨지. 그러나 그것은 두 사람밖에 지켜주지 못해."
사이훙은 칭 수이셩의 말에 겁을 먹고 자기 목에 걸린 호랑이 이빨 부적을 꼭 붙잡았다.
"사형은 그놈이 보여?"
사이훙이 물었다.
"물론 나는 볼 수 있지."
칭 수이셩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는 안 보이니? 저기 있잖아! 그놈이 지금 창문을 넘어서 들어오고 있어. 빨간머리를 하고 있꼬 시퍼런 얼굴에 큰 혹이 달렸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침을 질질 흘리고 있단 말이야. 그놈은 큰 황마포대를 가지고 있어."
"포대라구?"
"그래, 알잖아, 어린아이를 잡아 갈 포대말이야. 그런데 사제와 나는 너무 껄끄럽고 질기단 말이야. 저놈은 살이 포동포동 오른 부잣집 어린아이를 먹고 싶어 하는 것 같아."
사이훙은 비명을 질렀다.
린 쭝우는 벌떡 일어서서 사이훙을 침상에서 끌어냈다. 사이훙은 린쭝우가 자기를 창문의 그림자로 끌고 가려고 하자 미친 듯이 저항했다.
"넌 악마를 본 적 있니?"
린 쭝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없어. 하지만 사형은 볼 수 있잖아!"
"잘 들어봐, 사이훙. 죽어 가고 있는 사람이나 몹시 아픈 사람만이 악마를 본단다. 너는 그 어느 쪽도 아니지 않니?"
그는 창문을 열어제쳤다.
"밖을 봐라. 이 나뭇가지들이 창문에 어른대는 그림자를 만들고 벽을 긁어댄 거야."
사이훙은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럼 악마는 없다는 말이에요?"
린 쭝우는 확신시켜 주듯이 웃었다. 사이훙은 사실을 직접 확인했다. 사이훙은 칭 수이셩이 웃고 있는 잠자리로 다시 돌아와서 화를 내며 그에게 올라탔다.
"이 거짓말쟁이, 거짓말을 했어!"
이젠 소용없는 일이었지만 그는 칭 수이셩을 때리면서 소리쳤다. 칭 수이셩은 뒤로 드러누우면서 더 크게 웃어댔고 사이훙은 계속 그를 걷어차고 주먹으로 두들겼다. 그들이 관가보를 떠난 지 열흘쩨 되던 날 아침에는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고 어두웠다. 가을이 깊어져 거센 추위가 닥쳐오고 있었다. 산시성의 곡창지대에 인접한 삼림지대의 나무들은 오색찬란한 무지갯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바람이 옷 안으로 스며들자 사이훙은 겉옷을 단단히 여미며 먼 곳을 바라보았다. 지평선 저 끝에 화산의 산등성이가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화산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평지보다 훨씬 높게 솟아오른 산이었다. 거칠고 경사가 수직에 가까워서 보통 사람들은 올라가 보려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절벽 산이었다. 화산은 웅장했고, 접근할 수 없는 위용을 갖춘 무적의 산이었다. 그 탈속의 장암함은 도교의 성지로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어린아이인 사이훙에게 화산은 접근이 금지된 거대한 성처럼 보였다. 그는 겁에 질려 집으로 돌아가자고 졸라댔다.
"사형, 이건 별로 재미있지 않아요. 이제 그만 돌아가서 다른 놀이를 찾아보자구요."
사이훙은 잠깐 쉬는 사이에 화산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시자들은 서로 쳐다보았다. 칭 수이셩은 사이훙의 봇짐에서 딸랑이 방울을 끄집어냈다.
"자, 동생, 잠깐 여기서 재미있게 놀다가 저 위에 무엇이 있는지 보러 가자."
"나는 집에 가고 싶단 말이야."
사이훙이 칭 수이셩에게 등을 돌리며 말했다.
"사탕이 열리는 사과나무는 어떠니? 사람들이 그러는데 저 산꼭대기에는 제일 맛난 사탕사과들이 열린다는 거야."
"아니야, 아니야. 이제 더 이상 재미있지 않아."
두 시자는 떼를 쓰는 사이훙을 당황한 듯 바라보았다. 칭 수이셩은 낙담해서 한숨 쉬며 물러났다.
"아, 참 사이훙, 우리가 너에게 비밀을 말해 주지 않았지?"
린 쭝우는 사이훙의 어깨위에 친근하게 손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그는 현명했다. 사이훙은 금방 호기심이 발동했다.
"무슨 비밀인데?"
칭 수이셩은 린 쭝우의 말뜻을 금방 알아차렸다.
"쉬! 얘한테는 말해 주지 마. 대사부님께 약속했잖아."
"말해 줘! 말해 줘!"
"안 돼! 말하지 마!"
칭 수이셩은 린 쭝우의 입을 가로막았다.
"아니야, 우리는 사이훙에게 말해 줘야만 해."
린 쭝우가 칭 수이셩을 보며 심각하게 말했다.
"그래! 그래! 말해 줘!"
사이훙이 린 쭝우의 옷자락을 잡고 재촉했다.
"사이훙, 우리는 너를 놀라게 하려고 말하지 않고 있었던 거야. 이제 어쩔 수 없이 네게 말해 줘야만 할 것 같애. 너의 외조부님뿐만 아니라 할아버지도 저 꼭대기에서 너를 기다리고 계시단다."
"정말?"
"그럼, 정말이고 말고. 이제 가자꾸나. 우리는 오늘 밤까지 여관에 도착해야 한단 말이야. 우리는 내일 산을 오르기 시작할 거야. 그것만도 이틀은 걸릴걸?"
"좋아."
사이훙이 다시 흥겨워져서 말했다. 그는 칭 수이셩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사형, 나 업어 줄 거야?"
"내가?"
칭 수이셩은 등을 돌렸다.
"절대로 안 돼. 너는 몸무게가 거의 30킬로나 나간단 말이야. 너를 업으면 내 등은 휘어지고 말 거야."
"나는 이제 사형이 싫어! 나는 큰 사형한테 부탁할 거야."
사이훙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뭐 돌아볼 것 없어. 큰 사형은 벌써 저 아래로 내려가고 있으니까."
칭 수이셩은 웃으며 사이훙을 쳐다보았다.
"나는 걷지 않을 거야."
사이훙은 고집스럽게 주저앉았다.
"마음대로 해."
칭 수이셩은 봇짐과 지팡이를 들고는 앞서 걸어가 버렸다.
"나는 움직일 수가 없어!"
사이훙은 소리를 질렀다.
칭 수이셩은 곧 그의 사형을 따라잡았다. 수백 보도 못 가서 세 사람은 다시 나란히 길을 가고 있었다.
6. 신선계에 들다.
다음날 세 사람은 화산 기슭에 당도했다. 깎아지른 듯이 하늘로 치솟아 오른 절벽은 보통 사람들이 감히 올라갈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였다. 화산의 계곡으로 들어가는 입구로는 비좁은 길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산등성이들이 서로 만나는 아름다운 소나무 숲속에 위치한 청가평에 도달하기까지는 네 시간이 걸렸는데, 두 번이나 높은 산비탈과 깊숙한 골짜기를 넘어야만 하는 길이었다. 거기에는 작은 도관이 있었는데, 그들은 거기서 하룻밤을 묵고 기운을 차렸다. 거기에는 다른 도사들과 시자들도 머무르고 있었으며, 린 쭝우와 칭 수이셩은 그들과 친밀하게 담소를 나누었다.
청가평의 도관은 숨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곳에 있었다. 노송들의 그림자 너머로 보이는 화산은 마치 하늘에 세워진 성처럼 훌륭했다. 폭포의 물소리는 마음을 평온하게 달래 주는 음악처럼 들렸으며, 차갑고 깨끗한 공기는 활기를 불러일으켰다. 화산에서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대자연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인간이 화산을 범한 흔적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화산은 태초의 순수한 상태로 서 있을 뿐이었다.
다음날, 세 사람은 화산의 다섯 주봉 가운데 첫 번째 주봉인 북봉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하늘 높이 날카롭게 솟은 북봉은 화산을 지키는 수문장처럼 서 있었고, 나머지 네 개의 봉우리들이 그 뒤로 펼쳐져 있었다. 그 길만이 화산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이었는데, 올라가기가 대단히 힘들었다,
"마음을 바꾸어라."라는 문구와 "돌아가는 것이 안전하다."라는 문구들이 멋진 필체로 새겨진 두 개의 커다란 바위가 위험을 경고하고 있었다. 린 쭝우와 칭 수이셩은 "부모님을 생각하라.", 그리고 "용감하게 앞으로 전진하라."는 글귀가 새겨진 지점을 지나서 회심석이라고 불리는 바위가 있는 곳으로 사이훙을 인도했다.
그들은 너비가 60센티밖에 안 되는 좁은 길을 따라 세 곳으로 나뉘어있는 북봉으로 올라갔다. 그 길은 바위를 깎아 만들어 놓은 돌층계로 길게 이어졌으며, 길 가장자리에 쇠사슬이 연결되어 있었다. 천척동의 계단을 올라가 백척협을 지나 상천제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간이 걸렸으며, 그들은 마침내 정상에 도착했다.
북봉은 수직으로 뻗어 솟아오른 칼날 같은 바위산이었다. 깨끗하게 깎은 듯한 측면에는 아주 작은 틈새가 하나 있었는데, 그 틈새로 드문드문 작은 관목들과 소나무들이 나 있었다. 산꼭대기의 길은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비좁았다. 건물 입구의 두 개의 돌문으로 이어지는 돌층계만이 양쪽 절벽 위에 좁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 암자의 기반은 절벽 경사면의 양쪽을 의지하고 있었고, 폭은 5미터가 좀 넘었다. 암자의 벽은 벽토를 쌓아 회를 바른 것이었으며, 진흙으로 경사지게 만들어진 지붕은 두 개의 붉은 기둥을 떠받치고 있었다. 높이가 각기 다른 암반에 세워진 작은 건물들이 연이어 붙어 있었다. 지붕들은 암반의 차이를 고려하여 높이를 일정하게 맞추어 놓았기 때문에 마치 절벽 위에 걸쳐진 말안장처럼 보였다.
길의 폭이 좁아 그들은 한 줄로 걸어서 암자에 이르렀다. 사이훙은 고개를 이쪽저쪽으로 돌려 가면서 가파르게 깎인 양쪽 절벽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주랑(, 여러 개의 기둥만 있는 복도)앞으로 가서 사이훙은 손으로 빚은 모양이 제 각각인 벽돌들로 만든 건물의 기초 부분을 볼 수 있었다. 사이훙은 그 건물이 전혀 안전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간에 이르자 싸늘한 바람이 그들을 감쌌다. 바둑판 모양의 논들이 지평선까지 이어져 있는 산시 분지는 노을빛 아래 그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었다. 힘찬 도약을 위해 몸을 웅크리고 있는 맹수의 잔등처럼 구름이 둥실둥실 피어오르고 있었다. 더 먼 곳을 바라보니 은빛 리본처럼 구불구불 흘러가는 황하의 모습도 희미하게 보였다. 이제 황혼녁의 태양은 둥그렇게 빛나는 시뻘건 불덩어리가 되었다. 화산이 온통 금빛으로 빛났다. 그들은 신선의 세계로 들어온 것 같은 황홀함을 느꼈다.
화산의 대사부가 그들을 맞아들였다. 세 사람은 모두 일제히 엎드려 큰절을 했다. 사이훙은 큰절을 하며 타이산에서 처음 보았던 대사부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때 대사부의 모습은 마치 조각상 같았는데, 지금 대사부의 모습은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대사부는 그들을 일으킨 뒤에 반가운 미소로 답했다.
대사부는 화산파의 도관과 도사들, 수련자들을 관장하는 장문인이었다. 날씬하고 키가 큰 대사부는 새처럼 우아하고 가볍게 움직였다. 그의 꼿꼿한 자세에는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있었으며, 활처럼 휜 그의 흰 눈썹은 마치 백설이 내린 듯했고, 수염은 폭포가 흘러내리는 듯 아름다웠다. 눈썹 언저리에는 주름살이 거의 없었고, 두 눈은 안광을 감추려는 듯 평안한 모급으로 반쯤 감겨 있었다. 한쪽 입가에는 찢어졌던 흉터가 있었다. 흉터만이 화려한 그의 무술 경력을 말해 주고 있었다. 대사부는 늙어 보였지만, 여전히 강렬한 영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는 화산의 성품을 그대로 담고 있는 화신이었다. 마치 태초에 화산과 함께 태어난 듯이 보였다.
린 쭝우와 칭 수이셩은 도관의 무거운 문을 닫았다. 멀리 집을 떠나 도관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있으려니 사이훙은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두 시자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사이훙은 대사부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그도 역시 침묵하고 있었다. 대사부는 지난 한 달간 독거와 침묵의 생활을 끝내고 막 돌아오나 터였으므로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호흡은 생명의 기이기 때문에 낭비해선 안 되는 것이다. 그는 정신을 집중하고 묵묵히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는 어디 계셔요?"
사이훙이 침묵을 깨고 물었다.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단다."
칭 수이셩이 대답해 주었다.
"또 나를 속였군요!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어요."
사이훙은 큰소리로 악을 쓰고는 자신도 속으로 깜짝 놀랐다. 전 같으면 두 시자는 사이훙을 놀려 주었을 텐데 지금은 모두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를 집에 데려다 줘요! 집에 데려다 달란 말이예요!"
사이훙은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책상이 부서질 정도로 힘껏 걷어찼다. 도관의 가구를 만드는 칭 수이셩은 눈에 띌 정도로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사이훙은 칭 수이셩의 표정을 보고는 일부러 더 세게 의자를 걷어찼다. 시자들은 도자기와 가구들을 보호하기 위해 황급히 다가와 얼른 그를 에워쌌다. 사이훙은 비명을 지르고 울면서 그들을 걷어차며 바둥거렸다. 대사부는 시자들이 사이훙을 달래도록 내버려두고 혼자 조용히 방을 나갔다.
사이훙은 목이 쉴 때까지 한 시간이 넘도록 울어댔다. 울고 바둥거리느라 완전히 탈진한 사이훙은 모퉁이에 앉아 흐느끼고 있었다. 오랜 여정과 등산에서 온 피로, 그리고 대성통곡은 그를 지치게 만들었다. 이제 앙탈을 부리기엔 너무나 지친 사이훙은 심하게 채찍질당한 동물처럼 힘없이 쓰러졌다. 그때 대사부가 돌아와서 그의 앞에 섰다. 대사부는 손을 뻗어서 검지를 사이훙의 이마에 가볍게 갖다 댔다. 그러자 사이훙은 갑자기 마음이 텅 빈 듯한 기분이 들었다. 대사부는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너는 이제 다른 세상에 들어왔다. 오늘부터 너의 인생은 완전히 변하게 될 것이다. 나는 너를 그릇으로 만들어 주겠다. 너는 도교에 들어온 것이다."
제2부 화산에서의 어린 시절
7. 장엄한 화산
화산은 고립되어있는 종교 공동체이자 교육 공동체였다. 또한 화산 자체가 경배의 대상이었으며, 전설이었다. 도사들은 화산에서 특수한 지식을 연구하며 보존해 왔고, 그 지식을 전수자들에게 교육시키면서 명상과 수련을 주로 하는 은둔자의 생활을 추구했다. 다섯 개의 주봉에는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도관과 별채가 있었는데, 곳곳마다 도사들과 제자들이 있었따. 비록 그들 모두가 대사부의 지도 아래 있기는 했으나, 각각 자치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도교의 여러 분파들은 상당한 차이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분파는 경전 연구와 주술, 무술을 강조했지만, 사이훙이 들어간 분파는 양생법과 내공법, 고행을 강조했다. 그러나 분파를 막론하고 도교의 도사들에게는 공통되는 기본 원칙이 있었으며, 서로간에 많은 토론과 교류가 있었다.
이 같은 다양함이 화산을 풍요롭고 이상적인 교육기관으로 만들어 주었다. 교육을 받는다는 일이 특권이었던 그 시대에, 화산의 도교 사찰들은 대학과 같은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주로 아홉 살난 아이들을 제자로 받아들였다. 그 아이들 중의 일부는 도사의 길을 걸었으나, 대다수는 화산 교구 내의 전통적인 교육장소로 보내졌다. 사찰 안에 살고 있는 수백 명의 소년들은 전문 분야를 맡고 있는 여러 학자들로부터 전 과목을 학습했다.
도사가 되기 위하여 화산에 들어오는 학생 수는 대단히 적었다. 도교의 어떤 분야를 추구하든 간에 수도자는 스승을 정신적 아버지로 모시며 공부해야만 했다. 스승은 자신이 직접 가르침을 전해 줄 뿐만 아니라 자기 제자를 다른 스승에게 보내어 공부하게 하기도 했다. 화산의 스승들은 거의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일단 제자로 삼으면 도교의 모든 전통을 그 제자들을 통해 전수했다.
가르침과는 별개로, 화산에서 가장 걸출한 수련자들은 그들 스스로 연구하고 실천하는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도교는 무한정한 것이며, 더욱더 높은 지식을 일생토록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도사들은 약초나 의약을 연구하기도 했고, 어떤 도사들은 시와 서예, 음악 연구에 일생을 바치기도 했다. 또 불사를 추구하여 내공법에 몰두하는 도사들도 있었다.
반면 은둔해 살거나 세속에서 은퇴하여 만년을 보내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순수한 목적을 가지고 출가한 사람들 중에는 이미 불사의 신선이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거의 없었다.
화산의 도관들은 모두 출가와 고행이라는 철학을 공통으로 갖고 있었다. 그 가운데 특히 화산파는 일심도와 자아 완성의 철학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사이훙을 도교의 풍부한 전통에 입문시켜 장난꾸러기 소년에서 완전한 영적 인간으로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대사부는 현명했다. 사이훙이 도교를 공부하는 것이 어려우리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이훙은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는 지금 그 훈련을 시작해야만 했다. 어린이에게는 자유롭게 커나갈 수 있는 자유와 동시에, 바르게 이끌어주는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크게 자랄 나무는 떡잎부터 잘 돌봐 주어야 하는 것이다. 대사부는 시자들에게 사이훙을 천천히 이끌어 가도록 명했
다.
대사부는 사이훙이 화산의 생활을 차츰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화산은 너무나도 깨끗한 곳이었고 깨달음을 성취한 도사들의 광채로 짙게 물든 곳이었으므로, 틀림없이 사이훙에게 강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이훙이 억지로 해야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이훙은 도교의 전통을 아주 자연스럽게 흡수할 아이였다. 사이훙이 화산에 도착한 지 꼭 하루가 되자 린 쭝우와 칭 수이셩은 사이훙을 화산의 정상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사이훙에게 도교 교육이 시작된 것이다.
북봉의 산등성이에 나 있는 길은 자미대제의 길로, 다른 네 개의 봉우리들로 갈 수 있는 통로였다. 자미대제의 길은 아주 좁았으며, 거의 수직으로 뻗은 절벽 속에 선반처럼 나와 있었다. 어떤 곳은 암벽 때문에 거의 통과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절벽은 안개에 가려 있었으며 절벽 아래는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사이훙은 칭 수이셩의 손을 꼭 잡고 따라갔다.
뒤틀린 듯 구불구불한 산등성이는 중간 높이의 봉우리까지 급히 떨어져 내려가는 절벽이었다.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숲 사이로 작은 도교 사찰들이 있었다. 소나무 숲을 지나 그들은 창룡령으로 올라가는 중봉의 아래쪽에서 다시 급경사를 만났다. 깎아지른 듯한 그 절벽에는 돌을 깎아 만들어 놓은 계단들이 있었다. 도사들의 풍수지리학에 따라 설계된 계단은 상당히 가파르고 올라가기 어려웠다. 화산의 외곽선을 따라 이어져 있는 길들은 화산의 경치를 망치지 않고 오히려 등산객과 화산이 조화를 이루도록 해주었다. 창룡령은 곧바로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하지만 그 길은 등산객과 화산과의 신비로운 조화를 보여 주는 길이기 이전에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다. 계단은 풍화되어 형태를 할수 없게 되었고, 난간도 없었다.
북봉으로부터 창룡령을 지나 금쇄관으로 이르는 고개는 두 시간이 걸리는 등반길이었다. 그 동안 그들은 여러 도사들과 제자들을 만났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으며, 어떤 사람들은 명상하며 산책하고 있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도관으로 식량을 운반해 가느라고 몹시 바빴다. 금쇄관에서 길은 오른쪽으로 중봉, 동봉, 서봉, 그리고 금쇄관으로 돌아가는 길 등 다섯 방향으로 나뉘었다. 그들은 소나무 숲과 큰 도교 사찰이 있는 중봉에서 나와 동봉으로 갔다. 동봉은 조원동이라고 불렸는데, 정상에서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동봉에 있는 도교 사찰은 하얀 회벽에 기와지붕이 얹혀져 있었고 사각형의 건물들이 큰 사변형을 이루고 있었다. 거기에는 또 나무에 진흙을 발라 지은 작은 오두막들이 있었다. 쇠로 만든 큰 종을 걸어 놓은 종각과 이슬을 받아 모으는 돌컵 뒤를 지나 오두막에 이르렀을 때 사이훙은 버드나무 가지처럼 가느다란 몸을 가진 어떤 남자가 테라스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회색빛 장삼을 입고 사각형의 옥을 앞에 매단 검은 두건을 쓰고 있었다. 시자들은 그가 법술사라고 알려 주었다. 사찰들마다 조용히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대체로 강인하게 보였다. 그들 가운데는 시자들도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린 쭝우와 칭 수이셩은 자기들도 언젠가는 이 동봉에 와서 그들처럼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자들과 사이훙은 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 박태라고 불리는 흙 위로 노출된 바위 봉우리에 이르렀다. 박태라는 곳은 너무나 높고 외진 곳이었으며 뒤쪽은 절벽이었다. 10세기경 송나라의 태조는 군사적, 전략적 가치 때문에 화산을 원했다. 그러나 도사들은 화산을 신성한 곳으로 지킬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진둔"이라는 불사의 신선은 황제에게 바둑을 두자고 제의했다. 승자가 화산을 갖는다는 조건으로 그 외딴 박태의 꼭대기에서 바둑을 두었으나 황제는 연전연패하고 말았다. 마침내 그 신선은 황제가 놓는 수를 모두 예측할 수 있게 되었고, 황제는 패배를 시인했다. 박태라는 이름은 그때 생긴 것이고, 이후로 화산은 그대로 도교의 성지로 남게 되었다.
세 사람은 낭떠러지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거기에서 그들은 가장 위험한 곳인 장공기라는 통로 앞에 이르렀다. 그 길은 가파른 절벽 면에 강철심을 박아 거기에 나무판들을 깔아 놓은 길이었다. 거기에는 1천 미터가 넘는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 줄 난간도 없었다. 오직 쇠사슬들만이 벽에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칭 수이셩은 사이훙을 그의 등 뒤에 묶었다. 그들은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아갔다. 널빤지들이 흔들거리면서 삐거덕 소리를 냈다. 암벽을 향해 몰아쳐 오는 찬바람에 사이훙의 땀이 싸늘하게 식었다. 그는 두 눈을 꼬옥 감았다. 공중에 떠 있다는 생각에 겁에 질린 사이훙은 온 힘을 다해 칭 수이셩만 붙잡고 있었다.
남봉은 화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였다. 양 옆은 완전히 수직을 이루는 절벽이었기 때문에 나무도 잘지 못했고 눈조차 쌓이지 못했다. 이 왕관 같은 봉우리에서 사방을 바라보면 중원이 멀리 보였고 황허와 뤄허, 웨이허가 지평선까지 늘씬하게 뻗어 있었다. 남봉에는 화강암으로 이뤄진 움푹 팬 분지가 있는데, 그곳에는 겨울에도 얼지 않고 솟아 나오는 샘물이 있었다. 시자들은 앞으로 사이훙이 살게 될 남봉의 도관을 보여주었다.
마지막 봉우리는 서봉이었다. 거친 돌길이 산등성이까지 이어져 있었고, 그 봉우리의 줄기를 따라 감히 올려다볼 수도 없을 만큼 높이 솟은 도관이 있었다. 이것도 역시 풍수지리설에 따른 것이었다. 도사들은 땅의 중심이 되는 용맥을 중요하게 여겼다. 인체에 있는 경혈과 마찬가지로 길은 혈이라고 불리는 몇개의 힘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혈의 위치가 북봉과 서봉처럼 산꼭대기가 될지라도 도사들은 그 힘점들 위에 도관과 사찰을 세웠다. 건물들은 언제나 벽돌과 돌, 나무 등의 천연 건축자재들로만 만들어졌으며, 주위를 둘러싼 자연과 절묘한 조화를 잘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가까운 거리에서도 잘 보이지 않았다. 서봉에 있는 사찰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약 60도가량 되는 경사면 위에 세워진 소봉의 사찰은 암석들과 나무들에 가려져 있었다.
서봉은 기묘하게 외떨어져 있었다. 어떤 낭만적인 사람들은 전설에 따라 서봉을 연등봉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 전설은 옥황상제의 일곱 따님 중의 하나와 어떤 잘생긴 목동 사이에 있었던 사랑에 관한 것이었다. 인간 세계의 목동과 사랑에 빠진 옥황상제의 따님은 아버지 몰래 목동과 함께 살았다. 목동과 함께 살던 그녀는 아이까지 낳았는데, 이 사실을 안 상제는 그녀를 소봉 속에 감금했다. 후에 그녀의 아들은 자라서 도교의 도사를 찾아가 법술을 가르쳐 주기를 청한다. 때가 무르익자 도사는 그에게 하늘의 도끼를 준다. 그는 그 도끼를 가지고 하늘의 군대를 무찌른 뒤 서봉을 가른다. 그러나 그 하늘의 장수가 천군을 이끌고 다시 돌아와 모자상봉은 무산되고 만다. 아들은 하늘의 도끼를 들고 싸웠고, 그의 모친은 아들과 함께 천군을 무찌르기 위해서 연등을 무기로 해서 술법을 썼다. 옥황상제는 그들의 정성에 감동해서 마침내 모자를 용서해 주었다. 그때부터 서봉은 도끼로 내리쳐 생긴 틈과 함께 연등봉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화산의 경치와 전설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사이훙에게는 화산이 수직으로 솟은 절벽으로만 보였다. 화산은 구름들로 가려져 있었다. 전설과 신화, 비범하고 강력한 힘을 지닌 도사들, 그리고 선반같이 비좁은 틈에 위치한 작은 도관들, 화산은 신비로운 곳이었고 성스러운 곳이었다. 비록 강제로 화산에 살게 되었지만 사이훙은 그 아름다움에 외경심마저 느꼈고,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느끼게 되었으며, 화산에 압도적으로 가득 차 있는 위엄에 감동을 받았다.
시자들은 사이훙을 남봉의 앙천지라는 연못 아래에 있는 대사부의 거처로 안내했다. 대사부의 거처인 금천궁은 흙으로 구운 벽돌을 쌓아 회를 바른 담장으로 둘러쳐져 있었다. 여러개의 건물과 정원을 갖춘 금천궁은 전통 건축술로 지어진 것이면서도 평면적으로 보면 약간 비대칭을 이루었다. 시자들은 방과 건물들이 별자리의 모양에 따라 배열되어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금천궁의 주실은 대사부의 거쳐였다. 앞에는 청동으로 만든 큰 향로가 놓여 있었는데, 그것은 화산의 상징이었다. 계단을 올라가면 바로 대문으로 이어졌다. 머리에 등을 단 청동으로 만든 두 마리의 학이 돌계단 아래 세워져 있었으며, 건물의 기둥과 대문을 받치고 있는 대들보는 조각이 되어 있었고, 붓글씨로 씌어진 현판이 문간에 걸려 있었다. 두 개의 현판에는 "모든 세속의 생각들을 잊으라." 그리고 "오로지 채식하는 사람만이 들어올 수 있다."라고 씌어 있었다.
화산에 있는 다른 도관들과 마찬가지로 금천궁 역시 평범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돌은 세월에 닳아 있었고, 나무는 바람과 비에 삭아 있었다. 주실은 물질적으로는 빈곤해 보였지만, 정신적으로는 충만한 느낌을 주었다. 좋은 향내가 복도 전체에 흘러넘쳤고, 누군가가 경문을 외우는
나지막한 소리가 들려 왔으며, 창문들은 먼산들을 볼 수 있게 높이 만들어져 있었다.
도관은 도사들이 관리했다. 청소하고 음식을 준비하는 일에서부터 건물을 고치는 일까지, 몸으로 해야 하는 모든 일은 도사들이 각각 분담해서 하고 있었다. 대사부를 빼고는 모든 도사들이 함께 노동하며 도관을 관리했다. 크고 작은 모든 노동이 도사들의 화합을 강화시켜 주는 촉매제였다.
수개월 동안 두 시자는 사이훙이 도관의 생활에 익숙해지도록 도움을주었다. 그들은 같은 침상에서 잠을 잤고,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아침 일과를 시작했다. 도관의 하루는 기상하자마자 시작되는 종교적인 의무와 도관을 보수하는 의무로 채워졌다. 사이훙이 매일 아침마다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창문을 열고 1년 내내 냉기가 감도는 음습한 방에 햇빛을 비추어 습기를 말리는 것이었다.
세수한 뒤에는 푸른 새벽빛을 헤치며 주실로 갔다. 아침을 먹기 전에 도관의 모든 수도사들은 그곳에 모여 기도하며 경서를 외웠다. 음식은 야채와 나물로만 만들어졌고, 지극히 간소했다. 한 사발의 쌀죽과 식초에 절인 채소 한 접시, 차 한 잔이 전부였다.
사이훙의 아침 일과는 도교의 전통적인 교육을 받는 일로 시작됐다. 사이훙은 시자들에게서 교육을 받았지만 때로는 다른 도관에서 교육을 받기도 했다. 읽기, 쓰기 등의 과목뿐만 아니라 맨손체조와 곡예까지 배웠다.
점심을 먹기 전에 또 한 번 경전을 암송하는 시간이 있었다. 경전을 암송하는 일은 도교에 귀의 하는 마음과 호흡력을 키우는 두 가지 목적을 가진 것이었다. 암송하는 것 자체가 기를 기르는 일이었기 때문에, 아직 어린 사이훙을 제외한 모든 수도사들은 열심히 암송에 임했다.
사이훙은 조용히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는 암송이 한 번 끝날 때마다 웃고 두리번거리며 뭐라고 흥겹게 종알대곤 했다. 사이훙은 다른 수도사들처럼 그렇게 경문을 암송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점심 식사로는 주로 국수와 야채가 나왔는데, 때로는 빵을 먹기도 했다. 음식을 먹는 동안에는 모두가 침묵을 지켜야 했으며, 옆 사람이나 앞사람을 쳐다보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음식을 먹는 동안에도 정신을 집중해야만 했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린 쭝우와 칭 수이셩이 대사부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았고, 그동안 사이훙은 치우고 닦는 일을 했다. 이러한 일들을 통해 사이훙은 책임감과 인내심을 배워야 했다. 그러나 책임감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사이훙은 재미도 없고 진지하고 덤덤한 수도생활이 무료하기만 했다. 천성적으로 놀기를 좋아하는 사이훙은 그에게 주어진 허드렛일들을 흥겹게 해냈다. 그러나 그런 태도는 종종 불미스러운 결과들을 만들어 냈다.
사이훙은 창호지를 바른 섬세한 격자무늬 창문들을 발로 걷어차서 열어 제쳤다. 겅둥대면서 총채를 휘둘렀고, 꽃에 물을 줄때는 위에서 아래로 양동이째 퍼부었다. 경전을 외우다가 경문 구절이 생각나지 않을 때에는 자기 마음대로 지어내서 중얼거리기도 했다. 병풍처럼 접어 만든 경전들에 바람을 쐴 대는 책의 한쪽 끝을 잡고 아무렇게나 펼쳐서 마당까지 책장이 널려 있곤 했다.
사이훙이 맡은 일들을 제멋대로 해버리면, 언제나 반드시 응분의 징벌이 따랐다. 때때로 저녁을 굶어야 하기도 했고 또 경전들을 함부로 다루었을 때는 칭 수이셩이 그를 심하게 때리기도 했다. 칭 수이셩은 사이훙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잘못에 대해서는 엄하게 징벌했다.
사이훙이 도관 생활에 익숙해지자 더 어려운 임무들이 주어졌다. 온실에서 야채를 재배하는 일, 손님들과 몸이 아픈 수도사들이 먹을 병아리와 물고기를 키우는 일, 그리고 땔감을 모으는 일들이 주어졌다. 그는 그런 일을 해본 적이 없었으므로 문제가 생길 때마다 다른 도사들에게 가르침을 청해야 했다. 스스로 배움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도록 동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대사부의 교육 방법이었다.
늦은 오후에는 시자들을 따라 산을 산책했다. 화산을 돌며 그들은 사이훙에게 화산과 자연에 관해서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기도 했고, 때로는 그저 묵묵히 산책만을 하기도 했다.
사이훙은 저녁 암송이 끝나면, 야채와 국수, 그리고 찐빵으로 식사를 하고 또 학습을 했다. 그 뒤에 체조를 연습하고, 허드렛일들을 했다. 취침시간은 10시였다.
이러한 일과는 어느 하루도 쉬는 날 없이 계속되었고, 사이훙은 어느덧 도관의 수도 생활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그는 엄격한 수도 생활의 분위기를 흥겹게 만들어 보기 위해 농담을 하고 장난도 치고 노래도 부르면서 수도 생활을 즐겼다. 도관의 많은 수도사들은 사이훙의 어린아이다운 밝은 모습에 기쁨을 느꼈으며, 사이훙의 명랑하고 자유분방한 성격을 좋아했다. 도교는 또 하나의 제자를 키워 낼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그 제자는 비밀스러운 도관에 밝은 웃음을 가져다주었다.
8. 자연으로부터의 배움
사이훙은 자연 곳곳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두 시자는 사이훙에게 세상에 관해 설명해 주거나 도교의 기본 개념들에 대하여 알려 주었다. 사이훙은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 도관 안에 있을 때나 화산 주위를 산책할 때면 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을 수없이 발견했다. 시자들의 설명은 그에게 지적인 만족감과 도교 수행을 위한 준비를 갖춰 주었다. 어느 날, 세 사람은 청아한 종소리에 눈을 떴다. 린 쭝우는 자신이 데리고 있는 고양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도관에서는 쥐를 잡기 위해서 고양이들을 많이 키웠는데, 갈색과 흰색 털이 어우러진 그 고양이는 세 사람을 잘 따랐다.
"도사들은 위대한 자연주의자들이란다, 사이훙. 그들은 동물들이 어떻게 건강하게 살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어떻게 영성을 보전하는지 알기 위해 동물들을 연구한단다. 우리가 이 산꼭대기에서 하는 일 또한 단순하고 자연적인 것이며, 동물들이 하는 것보다 더 특이할 것은 없단다. 그러나 동물들이 하는 것들에 관해서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것과 도사들이 관찰하는 것은 때로 아주 다르단다."
그 암코양이는 푸른색 깔개 가장자리에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팔짱을 끼듯 겹쳐 놓은 두 발 사이에 코와 꼬리를 파묻고 있었다. 린 쭝우는 설명을 계속했다.
"옛날의 도사들은 건강하게 살며 노화 현상을 늦추기를 바랐단다. 그들은 사람들이 늙는 이유를 몸 속의 기가 빠져나가기 때문이라고 믿었단다. 기를 몸속에 그대로 유지하는 방법을 찾는 동안 그들은 이 고양이 같은 동물들에게서 영감을 얻었단다. 그들은 동물들이 몸속에 기를 가두어 둘 수 있는 이유는 몸을 웅크려서 기가 빠져 나갈 수 있는 항문과 다른 구멍들을 잘 닫고 잠을 자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단다. 고양이가 바로 그렇단다. 자, 완만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고양이의 배를 봐. 호흡이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이지 않니? 도사들은 오랜 연구 끝에 하복부 전체를 가득 채우는 깊고 순조로운 호흡이 아주 유익하다는 것을 깨달았단다."
린 쭝우가 그 고양이를 쿡 찌르자 고양이는 즉시 잠에서 깨어났다. 고양이는 눈을 뜨고서 귀를 곧추세웠다.
"이 암코양이는 게으르고 뻣뻣한 사람들과는 달리 즉시 깨어난다. 저 기지개 켜는 모습 좀 보려무나. 고양이조차 체조를 할 줄 알고 자기 몸을 관리할 줄 안다는 증거지. 도사들은 저런 체조가 건강을 지키는 데에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단다. 만약 고양이가 병이 들면 어떻게 할 것 같으냐? 물론, 저놈은 집쥐나 들쥐 같은 몸이 작은 동물들을 잡아먹고 살지만, 자기가 병이 들면 스스로 몸을 다스리기 위해서 약초나 풀 같은 것도 먹고 산단다. 끝으로 고양이는 신령한 동물이라는 것을 알아둬라. 저 놈은 명상을 한단다. 저놈이 창가나 쥐구멍 앞에 조용히 앉아 있을 때는 우리 사부님처럼 움직이지 않고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때란다. 저놈이 들쥐를 기다리고 있을 때는 아무것도 저놈의 정신을 흐트러뜨릴 수가 없단다. 저놈의 마음이 오로지 한 점 위에 있기 때문이지. 저놈은 쥐가 구멍에서 나올 때까지 거의 하루 종일 앉아서 기다렸다가 쥐가 나타나면 잡아 버리지. 음과 양, 완벽한 정적과 집중, 완벽한 행위와 힘. 고양이는 스승이 필요 없단다. 고양이는 스스로 배우지. 저놈은 호흡하는 방법을 알아 기를 보존하고, 스스로 병을 치유하고, 명상으로 정신을 집중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지. 고양이를 연구해 보거라. 사이훙. 네가 배워야 할 것은 고양이도 알고 있단다."
그날 오후 시자들은 사이훙을 나무가 빽빽이 들어차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시자들은 사이훙을 절벽 꼭대기로 데리고 갔는데, 절벽 끝에는 소나무가 이리저리 휘고 비틀린 뿌리에 의존해서 매달려 있었다. 푸르른 소나무에는 커다란 학 한마리가 움직이지 않고 한쪽 다리로 서 있었다. 학은 사람들의 출현을 알고 있는 듯했으나,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화산에 사는 동물들은 도사들이 자기들을 결코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그 학 역시 그것을 믿고 있는 듯 품위를 지키며 서 있었다. 그 학의 자세에 대해 칭 수이셩이 설명을 해줬다.
"옛날의 도사들은 동물들이 제각기 가지고 있는 비밀들을 배우려고 했단다. 그리고 그렇게 연습해 보았지. 처음에는 모든 것을 한 번에 알 수 없었지. 네가 오늘 아침에 고양이를 보았듯이, 몇 가지 의혹을 느꼈을 뿐이었어. 저 새를 보아라. 얼마나 소용없는 짓인가! 새들은 저렇단 말이야. 건방진 태도, 저 자세. 그러나 다시 보아라. 사이훙. 저놈은 아주 몸집이 크단다. 그런데 저놈이 어떻게 날 수 있을까? 어떻게 저놈이 가냘픈 한쪽 다리로만 저렇게 서 있을 수 있을까? 문제는 기에 있어. 기를 담은 호흡이 저놈의 몸을 날아오를 수 있을 만큼 가볍게 만들어 준단다. 자기 자신을 공기로 가득 채워 날아오르거나 한쪽 다리로 서 있을 수 있는 것
이지. 그러나 저놈은 왜 한쪽 다리로 서 있을까? 그 이유는 고양이와 마찬가지란다. 저놈도 기를 보존하기 위해서 몸을 봉쇄하고 있는 것이지. 도사들은 학의 세 가지 특징 있는 봉쇄기법들로 몇 가지 명상자세를 만들어내어 도교의 양생론을 완성했지. 학은 머리를 뒤로 젖혀서 두부를 막고 있고, 눈은 위로 치켜 떠서 이마에 있는 정신의 중심부를 본다. 가슴은 풍만하게 부풀려서 횡경막을 잠그고, 한쪽 다리를 들어 올려서 항문을 닫는단다. 다른 동물들도 이와 같이 기를 보존하기 위해 몸의 곳곳을 잠가 놓고 있단다. 사이훙. 개는 몸을 웅크리고 잠을 자고, 사슴은 잠잘 때에 한쪽 발굽으로 항문을 막고 잠을 잔단다. 잘 관찰해 보거라. 사이훙. 어리석은 인간을 제외한 자연의 모든 것들이 기를 보존하는 방법인 차페술을 잘 알고 있단다."
사이훙이 나이가 들어가자, 칭 수이셩은 더 이상 그를 데리고 다니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이훙은 화산의 가파른 산등성이를 혼자서 올라다녀야만 했다. 그런 일은 힘이 들었으므로, 그는 쉽게 피곤해졌다. 두 시자는 사슴과 호랑이를 예로 들어 가르쳤다.
"언덕을 올라가거나 내려갈 때 넌 피곤함을 느낄 게다, 그렇지 않니?"
린 쭝우가 물었다.
"움직이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지. 사슴들을 여러 번 보았겠지? 그놈들이 언덕을 올라갈 때는 발굽이 거의 당에 안 닿는 것처럼 보여서 마치 떠다니는 것 같지. 사슴들은 몸속의 기를 상승시키는 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 사슴이 달릴 때는 모든 에너지가 극한에 달해서 발굽들과 꼬리와 뿔, 모든 곳에까지 기가 도달한단다. 사슴은 아주 힘이 센 동물이지. 자신의 몸에 있는 기를 봉쇄함으로써 기를 보존하고 그 기를 바깥쪽으로 순환시킨단다. 이 기가 겉으로 뻗쳐 나온 것이 꼬리와 뿔이다. 사슴의 뿔과 꼬리는 강력한 생기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아무리 노쇠한 사람이라 해도 그것을 먹으면 원기를 회복할 수 있는 것이란다. 사슴은 모든 에너지를 위로 상승시켜 보낼 수가 있기 때문에, 언덕을 쉽게 뛰어 올라갈 수 있는 것이란다. 네 몸 속에 있는 기를 순환시키는 방법은 나중에 배울 수 있을 게다. 그러니 지금 산 위로 올라가면서는 오직 사슴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거라. 그놈들에게서 어떻게 힘을 안 들이고 올라갈 수 있는지 배워 보도록 하려무나."
린 쭝우의 설명에 이어 칭 수이셩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산을 내려가는 데에도 역시 특별한 방법이 있단다. 산을 내려갈 때 가장 나쁜 것은 뼈가 시큰거리는 느낌이지. 도사들은 이 점을 주목하고 호랑이에게서 영감을 얻었지. 그 누구도 호랑이처럼 산을 내려갈 수는 없다. 호랑이는 서두르지 않으며, 동작이 여유 있어 보인다. 그놈은 조용하고 은밀하게 산을 내려간다. 그놈의 발걸음은 힘 하나 안들이고 자리에서 떨어진다. 기우뚱거리며 볼품없이 산을 내려가는 사람과는 달리, 그놈은 유연하고 미끈하지. 호랑이는 뼈와 힘줄이 튼튼한 동물이다. 산을 내려올 때 호랑이는 이완된 힘과 유연한 관절들을 사용하면서 아주 편안하게 내려 오지. 그놈은 결코 뼈가 시큰거리는 일이 없단다. 왜냐하면 호랑이는 탄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동물 중에서 가장 튼튼한 뼈를 가지고 있지. 그래서 호랑이 뼈는 강장제로 쓰이기도 한단다. 산을 내려갈 때는 호랑이처럼 느슨한 힘을 사용해서 속도를 늦추거라. 그리고 뼈를 보호하기 위해서 관절들을 부드럽게 유지하거라. 산을 올라갈 때는 사슴처럼 힘을 안 들이고 올라갈 수 있도록 상승하는 기를 사용해서 몸을 가볍게 해라."
점심을 먹기 위해서 호숫가에 멈춰 섰을 때 시자들은 사이훙을 약초 캐러 다니는 킬로 데리고 갔다. 때는 늦은 봄이었고, 호숫가는 잠자리, 새, 나비, 개구리, 거북이등으로 생동감이 넘쳐 흘렀다. 사이훙은 두 시자에게 물방울을 튀겼다. 그러자 그들은 사이훙을 호수로 밀어 버렸다. 사이훙은 중심을 잡으려고 애를 썼지만 곧 진흙탕 속으로 넘어졌다. 사이훙이 화난 표정을 지으며 옷에서 진흙을 털어내는 동안 두 시자는 내내 큰소리로 웃어댔다. 사이훙은 벌거벗은 채 햇빛이 따사로운 바위 위에서 의복이 마르기를 기다려야 했다.
사이훙은 옷이 마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긴 갈대를 꺾어 늙은 거북이 한 마리를 쿡 찔렀다. 그러자 그 거북이는 머리를 움츠렸다. 사이훙은 네 발이 다 움츠러들 때까지 쿡쿡 찔러댔다. 거북이는 마지막으로 꼬리까지 안으로 감추었다. 거북이는 사이훙의 장난이 그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른 바위로 어기적어기적 기어 올라갔다. 사이훙은 그놈이 튼튼한 걸음걸이를 살펴보았다.
"저 늙은 놈을 보아라. 어린아이가 자기를 찔러대는데도 품위를 유지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거든. 저 거북이는 아마 너보다도 더 오래 살 것이다. 거북이란 놈은 대단히 오래 사는 동물이지. 저놈은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우리 사부님들이 언제나 한가롭게 거니시는 것도 서두르는 것이 곧 명을 재촉하는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란다."
칭 수이셩이 속삭이듯 얘기해 주었다.
"북봉에 있는 도관의 궁주님은 어떤데요? 그분의 머리는 너무나 나이가 들고 주름이 잡혀서 벌써 거북이처럼 보이는걸요!"
사이훙은 그 모습을 떠올리면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두 시자도 폭소를 터뜨렸다.
"그래, 그분은 정말 그렇게 보여. 우리 그분은 앞으로 거북 사부님이라고 부르자.“
칭 수이셩은 낄낄거리며 웃었다. 거북 사부님이 숙소에 불이 났을 때 과연 달려나오실 것인가 아닌가에 관해서 시끌벅적하게 웃고 이야기 한뒤에 칭 수이셩은 강의를 계속했다.
"저기 일광욕을 하고 있는 다른 거북이를 보렴. 저놈은 머리를 길게 내놓고 눈을 한데 모아 위를 바라보고 있지? 저놈은 명상을 하고 있어. 저놈의 모든 기가 상승하고 있는 것이지. 그리고 저 늙은 거북이가 잠자는 것을 봐. 저놈은 모든 것을 껍질 속으로 집어넣고 있어. 자, 이젠 알 수 있겠지? 저놈은 몸의 세 곳에 자물쇠를 잠그고 있는 거야. 저놈은 모든 기가 저 딱딱한 껍질 속에 가두어져 있단다."
사이훙은 두 마리의 거북이를 연구해 보았다.
"그래도 나는 거북이처럼 곱사등이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그리고 또 저 개구리들처럼 뚱뚱하고 못생긴 아이가 되기는 더 싫구요."
사이훙은 불만을 나타냈다.
"뚱뚱하다구?"
칭 수이셩은 소리를 질렀다.
"오호! 저 개구리들은 뚱뚱하지도 않고 못 생긴것도 아니란다. 오히려 도사들은 저놈들을 대단히 칭찬한단다!"
"윽!"
사이훙은 비명을 질렀다.
두 시자는 사이훙 옆에 앉았다. 날씨는 화창했고 오후의 햇빛은 뜨거웠다. 그들은 모두 신발과 각반을 풀고 차갑고 맑은 물에 발을 담갔다. 린 쭝우는 반짝이는 푸른색 피부에 검은 점들이 정교하게 박힌 큰 황소개구리 한 마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크기가 주먹 만한 그 개구리는 쭈그리고 앉아, 하얀 목을 엄청나게 부풀리고 있었다.
"저 개구리는 기공의 사범이란다. 저놈은 언제나 자기 몸을 잠그는 것을 수련하고 있지. 쭈그리고 앉는 것은 항문을 막기 위한 동작이고, 가슴을 부풀리는 것은 횡격막을 막는 동작이다. 두 눈은 한 점에 모으고 있는 것은 머리의 기가 빠져나가는 정문을 잠근 거야. 저놈은 기공을 연마할 때 마음으로는 신령한 것은 명상하고 몸에는 자물쇠를 채워 기가 빠져 나가지 못하게 하고 있단다. 개구리의 기공은 가장 훌륭한 기공법 중에 하나란다. 개구리는 엄청난 거리를 뛰어넘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양의 기를 쌓을 수 있단다."
린 쭝우는 개구리의 기공을 설명한 뒤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몇 번 첨벙거리며 실패를 하더니 간신히 개구리 한 마리를 잡았다. 그는 개구리를 가지고 사이훙에게로 돌아와서는 개구리의 어깻죽지를 잡아 보였다. 그 개구리는 가냘프게 축 늘어져 버렸다.
"봐라, 사이훙. 개구리란 놈은 뚱뚱하지 않단 말이야. 개구리가 뚱뚱해 보이는 것은 이놈의 기공 능력 때문이야. 도사들은 이 개구리 흉내를 내지. 이놈은 기공의 대가인 데다 명상하는 힘이 아주 안정되어 있기 때문이란다."
동물들이 기를 어떻게 보존하는가를 깨달을 때까지 비슷한 강의를 몇 번이나 들었다. 사이훙이 청년기에 접어들자 시자들은 그에게 성과 독신생활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다. 사이훙은 봄철에 교미하는 동물들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놈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시자들은 재생산의 순환회로를 충분하고 솔직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들은 인간의 성적 기능들을 책과 그림으로 보여 주기도 했다. 교미는 자연스러운 사건이었고 도사들은 자연적인 것은 어떤 것이든 거부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자들은 절제도 역시 자연적인 것임을 지적했다. 그들은 교미에 관해서 충분하게 설명한 뒤에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들려주었다.
"동물들은 오로지 봄철에만 교미를 한단다. 어떤 동물들은 암수가 자주 섞이지 않기도 하자. 그러니까 모든 동물들은 독신생활을 하는 셈이지. 동물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생명력을 보존한단다."
린 쭝우가 말했다.
"우리 사부님들이 성취하신 경지를 보거라. 만약 네가 건강을 유지하고 장수하며 생명의 신비를 꿰뚫어보고 싶다면, 너는 반드시 세 곳의 문을 봉쇄하고 성의 정수인 정액 속에 들어 있는 생명력을 보존하고 순환시키는 기공과 명상을 수련해야만 한단다."
칭 수이셩이 말을 이었다. 그들은 그에게 인체의 해부도를 더 많이 보여주었다.
"신체에는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여러 가지 중심부들이 있단다. 각각은 몸통 밑에서부터 머리 꼭대기까지 배열되어 있는데, 그 중심부가 바로 수련자에게 힘을 주는 곳이란다. 이러한 중심부들을 열기 위해서는 기가 필요하자. 가장 높은 곳은 정수리인데, 기를 정련해서 그렇게 높이 상승시키기는 어려운 일이란다. 정은 숨과 반응하여 기가 된단다. 기는 순환하여 신으로 변화하는 것인데, 이 신기가 정수리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란다. 초를 비유로 들어서 말한다면, 초의 몸체는 정이요, 불꽃은 기이며, 촛불의 빛은 신이라고 할 수 있단다. 동물들은 우리가 이미 얘기했듯이 수련과 독신생활을 통해 정을 보존하고 신령한 상태에 남아 있게 된단다. 만약 네가 성생활에 탐닉하게 되면 너는 정을 고갈시키게 된다. 정이 없으면 기가 있을 수 없고, 기가 없으면 신령스러움도 있을 수 없다."
린 쭝우가 그림을 보며 설명해 주었다.
두 시자는 사이훙은 도관의 학당으로 데려가 앞으로 일어날 육체적 변화를 미리 알 수 있도록 여러 나이층의 소년들을 보여 주었다. 그들은 사이훙이 순조롭게 사춘기의 변화를 받아들이기를 바랐으므로 충분하고 철저하게 준비하도록 도와주었다. 축제일이 되면, 그들은 사이훙을 유일하게 대중에게 공개되는 북봉 사찰로 데리고 갔다. 거기에서 그들은 결혼한 속세의 사람들을 가리키면서 독신생활의 중요성을 또다시 설명해 주었다.
"저 사람이 얼마나 쪼글쪼글하게 늙었는가를 보아라. 40세도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얼굴에는 주름이 잡히고 머리카락은 하얗게 세어 버렸잖니? 더군다나 그나마 많이 빠져 있고. 왜 그럴까? 정이 적기 때문이다. 그는 기가 몸 밖으로 새는 것을 막는 차폐술과 기를 위로 상승시키는 행기법을 알지 못해서 정력을 너무 많이 소모한 거야. 등이 벌써 굽었고 숨결은 얕으며, 몸은 뻣뻣해서 부서질 것만 같구나. 그는 80살 먹은 화산의 도사들만도 못하구나."
사이훙은 도사들과 보통 사람들의 차이점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직 사춘기도 안 된 어린아이였으나, 독신을 지키며 수도하는 것이 더 좋게 생각되었다. 그는 이제 서로 상충하는 유혹 없이 순수한 도교의 세계를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시자들의 가르침을 하나씩 깨우치게 되었다. 사이훙은 곧 사부님들이 성취하신 높은 정신세계를 동경하게 되었다.
9. 순환의 지혜로움
사이훙이 시자들과 생명의 순환, 즉 윤회에 관하여 토론할 즈음 그의 나이는 열 한 살이었다. 때는 정신을 잃은 정도로 무더운 한여름이었고 공기는 서봉의 꼭대기조차 후덥지근했다. 사이훙은 오르락내리락하며 지평선 끝까지 이어진 화산의 푸른 산등성이를 바라보았다. 또한 빛나는 하늘 아래 드러난 화산의 산등성이를 따라 눈을 옮기며 깊은 골짜기를 둘러보았다. 린 쭝우는 지금까지 사이훙에게 대화로 자연스럽게 가르쳐 주었던 것들을 정리하기 전에 사이훙이 화산의 장관을 음미하며 즐길 여유를 주었다.
"모든 것은 순환한단다. 세계는 계절을 좇고, 사계절은 차례로 이어진다. 동물들은 사계절과 조화를 이루며 살지. 동물들은 봄철에 교미를 하고, 여름에는 새끼를 낳고, 가을에는 어린 것들을 키우며 겨울을 준비한단다. 겨울에는 조용히 지내거나 사는 곳을 옮겨 가는 데, 동물이 하는 모든 일은 생존을 위한 것이지. 설치류는 땅을 하고, 거북이와 곰은 겨울잠을 자며, 병들고 노쇠한 것들은 죽는다. 너도 역시 사계절을 따라야 해. 봄은 새로운 성장과 운동, 신선한 활동을 위한 때이며, 여름은 힘을 충분히 끌어내면서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 일들은 해야 할 때다. 가을은 추구하는 때이지만, 동시에 겨울을 준비하는 때이기도 하지. 겨울은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때다. 모든 것들이 땅속으로 숨어 들어가거나 죽는다. 그때는 너도 너 자신에게로 들어가서 명상을 해야 할 때란다.
너의 생명도 역시 계절을 따르는 것이다. 지금의 너는 네 인생에서 봄철에 해당한다. 지금은 자꾸 발전해서 꽃나무의 꽃봉오리처럼 꽃을 피워야만 한다. 그리고 어떤 식이든 네가 느끼는 대로 움직여라. 너는 아직 어린아이다. 만약 네가 장난꾸러기나 개구쟁이 짓을 하지 않는다면, 너는 정상적이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봄은 네 미래를 위한 씨앗을 심기에 가장 좋은 때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네 인생에서 여름에 해당하는 때는 강하고 자부심이 넘치고 능력 있는 젊은이의 시기이다. 너 자신을 계발하고 목표들을 성취하며, 시작해 놓고 마치지 않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모든 것을 행하고 모든 정서적 감정들을 만족시켜라. 그러나 중도를 지키며 자신의 철학적 바탕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앞으로 네가 위대한 인물이 되든지 평범한 사람이 되든 간에, 또는 선인이 되거나 심지어 악인이 된다 해도, 너는 네 인생의 여름철에 최고의 일들을 해내야만 한다.
가을이 되면 너는 네가 뿌린 것들을 거두게 될 것이다.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게 되면, 너는 네 인생의 진로를 설정하게 될 것이다. 그때는 네가 앞서 행한 행동과 결정의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다. 아무런 후회 없이 이러한 단계에 도달한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중년이 되면 너는 남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네 자신이 행한 일들의 인과응보를 받기 위하여, 그리고 노년을 준비하게 위하여 서서히 너의 속도를 줄이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노년은 겨울이라고 할 수 있지. 너는 조용해지게 된다. 머리칼은 눈처럼 하얗게 되고, 너는 명상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고찰하며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이번엔 칭 수이셩이 주제를 골랐다. 사이훙은 차분한 태도로 그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칭 수이셩은 조용하고 느릿느릿한 속도로 말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한단다. 죽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언제 찾아올지를 모르기 때문이지. 사람들은 죽음이 그저 종말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 죽음이란 변형의 과정이야. 생명은 멈추는 것이 아니고 계절처럼 순환하는 것이란다. 너의 가족들 중에서는 아직 아무도 죽지 않았지. 그러나 너는 죽음을 본 적이 있어. 쓰러져 죽은 나무를 보았고, 말라비틀어진 들꽃을 보았고, 눈길에 쓰러져 얼어 죽은 동물들의 시체를 보았다. 그러나 그것들이 모두 삶에 종말을 고하더냐? 죽음이란 단순히 움직이지 못하고 썩어 가는 상태로 전락해 버리는 것이냐? 아니, 죽음이란 껍질을 벗어 던지는 것일 뿐이란다.
너의 존재, 나의 존재, 동물들의 존재, 이런 것들은 우리가 만져 볼 수도 없는 것이고 파괴될 수도 없고 형체도 없는 것이란다. 과거, 우주의 흔적과 뒤섞인 기억의 집합일 뿐이지. 우리는 정신체들이고, 우리 각각의 영체는 태초부터 있어 왔단다. 또한 앞으로도 계속해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우주 공간을 계속 이동해 갈 것이다. 변화하고 진화하며 그렇게 무한히 계속 나아갈 것이란다.
네가 동물이라고 알고 있는 것들도 항상 동물이었던 것은 아니고, 또 언제나 동물로 남아 있을 것도 아니란다. 그것들은 다만 금생에서 동물의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을 뿐이지. 그것들은 각자에게 중요한 무엇인가를 배우기 위하여, 그리고 신성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나타난 영체들이지. 그것들이 이 세상에 나타나려면 껍질 같은 것이 필요한데, 그것이 육신이다. 그러므로 육신은 진정한 자아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다만 그릇일 뿐이거든. 또 다른 현실 체로 몸을 바꾸어야 할 때에는 이미 그릇으로 사용되었던 육체는 버려지고 영체만이 남게 되지.
너는 두 벌의 옷을 걸칠 필요가 없겠지. 한 건물 안에 들어앉아 있으면서 동시에 다른 건물로 들어갈 수는 없다. 육체라는 껍질은 완전히 사용되어야만 하는 것이란다. 육체는 낡고 부서지고 파괴되는 것이야. 그러나 영은 결코 파괴될 수 없는 것이란다. 그러므로 죽음에 대해 겁을
먹을 필요는 없을 거야. 사람들은 죽음이 언제 닥쳐 올지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두려워한단다. 이것이야말로 신들이 인간에게 걸어놓은 저주 가운데 한 가지란다. 인간의 변태적 성향과 사악함 때문에 내려진 천벌이지. 신들은 죽음이 임박해 오는 때를 인간이 알 수 없도록 차단하여 그 벌을 대신했지.
그러나 동물들은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알 수 있단다. 동물들은 언제나 신과 합일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신들은 인간과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우리 인간은 슬픔과 무지와 교만함, 환영 속에서 살기 때문에 더 높은 차원과 합일을 이루지 못하고 살아가는 거란다. 오로지 순수한 생활을 영위함으로써만 우리는 이 저주에서 벗어날 수가 있단다. 그러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사이훙. 오히려, 죽음이 다가올 것을 준비하고 있어야 하며, 사는 동안 다음 생애에서 너를 더 높은 차원으로 이끌어 갈 올바른 지식을 찾으려무나. 그러면 죽음의 순간에도 너는 아무 두려움 없이 육체를 벗어 던지고 다음 생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10. 장생불사의 신선들
자연으로부터도 끊임없이 가르침을 받았으나, 사이훙은 그가 이제 막 배우기 시작은 도술을 몸으로 그래도 구현시키는 화산의 도사들에게 완전히 매료되었고 깊은 영감을 받았다. 도교의 모습은 도를 따르는 사람과 그의 개성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도사들은 중국과 도교의 은자적인 전통을 잘 보여준다. 도술을 완성시키고 높은 차원의 지식을 얻기 위하여 세속의 환상과 위험에서 스스로를 이탈시킨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부도 명예도 권력도 그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이 세상은 거미줄처럼 연약하고 허망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도교의 수련자들 중에는 먼 옛날부터 살아온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름도 없이 안개 낀 골짜기에 숨어 살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크나큰 공헌을 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본질적으로는 같은 전통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이뤄 놓은 일들은 모두 마음속을 탐구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고대 삼황 중의 하나인 황제는 황제소문내경이라는 책을 썼는데, 그것은 오늘날까지도 읽히고 있다. 신농씨는 수천 가지의 약초들을 직접 자기 몸에 시험해 보았는데, "창문을 가진 위"라는 말은 그의 명상적 능력을 비유해서 하는 말이다. 복희씨는 팔괘를 배열한 선천도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역경과 점술 학의 근간이 되었다. 화타라는 의사는 외과 의술을 완성했으며, 질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오금희라는 체조 법을 창안해 내었다. 노자와 장자는 도교의 경전들을 저술했다. 이 세상을 아무도 모르게 떠났거나, 또는 큰 업적을 남기고 갔거나 간에 도교의 수련자들은 자신의 학문과 도술을 위해 세상을 떠나 은둔해 살았던 사람들이었다.
도교의 은자들 가운데서 특이했던 자들은 내금단을 연구해서 장생불사하는 방법을 찾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런 은자들 가운데 포박자를 쓴 갈홍 같은 사람은 장생불사하게 만들어 줄 금과 진사, 그리고 수은과 납을 섞은 혼합물을 연구하다가 이 세상을 떠났다. 화산의 도사들은 아직까지도 그러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선대 도인들과는 달리 독성을 지닌 금속 원소들은 버리고, 기공과 명상, 약초들을 사용했다.
화산의 사부들 중 몇몇은 이미 죽지 않는 신선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들은 평판이 매우 높았으며, 모양새도 전혀 나이 든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들에게 붙여진 칭호는 "깨달은 사람들"이었다. 그 사부들은 장수와 해탈, 생명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는 의미였다. 또한 육신을 이탈하여 유체로 여행하기 위하여, 그리고 수백 권에 달하는 도교 경전들을 모두 암송하기 위한 비법을 이룩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한 경지에 오른 불사의 신선들은 장문인의 권위로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장문인도 그런 신선들이 자기보다 더 높은 차원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사부는 사이훙을 오랫동안 자기 옆에 데리고 있었다. 사이훙은 사부님의 머리를 빗겨 드리고 발을 씻어 드렸다. 글을 쓰실 때는 먹을 갈아드렸고, 사부님이 여행하실 때는 약상자를 들고 따라다니며 사부님의 시중을 들었다. 대사부로서는 사이훙을 잘 관찰해 볼 수 있는 기회였고, 사이훙에게는 사부님의 생활방식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또한 사이훙은 사부님을 따라다니며 화산에 기거하는 고승들을 만나 볼 수도 있었다.
어느 날 오후, 사이훙은 사부님을 찾으러 갔다가 화산에 사는 불사의 신선을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사이훙은 기쁜 듯이 사부님께로 달려 올라갔다.
"공공! 공공!"
그는 사부님을 마치 할아버지를 부르는 것처럼 불렀다.
"나 여기 있단다!"
사부님은 돌아서서 한 손을 사이훙에게 올려놓으며 웃었다.
"공공, 제가 공공의 귀에다 새로 만든 쥐노래를 들려 드릴게요. 여기 계신 아저씨들처럼 저도 동물들한테서 노래를 배웠어요. 들어보세요!"
사부님이 허리를 굽히자 사이훙은 그의 귀에 대고 노래를 불렀다. 그의 사부는 노래를 듣고 즐겁게 웃었다.
"아주 좋은 노래로구나, 사이훙."
사이훙이 노래를 다 부르자 사부님이 말했다.
"또 있어요."
사이훙은 흥분한 듯이 말했다.
"나중에 듣자꾸나. 나는 지금 만나 뵈야 할 분이 있단다."
"태극권 사부님이신 양 아저씨 말씀이세요? 그분이 돌아오셨나요?"
"아니다, 사이훙. 지금 뵐 분은 네가 아직 뵙지 못했던 분이란다."
사부와 제자는 한 시간을 넘게 걸어서 벽에 회를 바른 작은 건물에 도착했다. 몇 개의 사각형 창문들과 오래된 기와로 덮여 있는 건물은 평범했다. 여름이면 화산의 모든 건물은 햇볕이 들도록 창문을 열어 놓았다. 그러나 이 건물의 창문들만은 꼭 닫혀 있었다. 그들은 약간 틀이 어긋나 맞지 않는 문을 두드려 꼭 닫은뒤, 안으로 들어섰다.
실내는 대단히 어둡고 조용했으며, 안으로 들어서니 차가운 기운이 담긴 바람이 불어왔다. 갑자기 어두운 곳으로 들어서니 왕이 전혀 안 보였다. 한참 뒤에야 사이훙은 그곳을 살펴볼 수 있었다. 아주 검소했다. 낮은 사각형 탁자와 표주박이 달랑 있었으며 그사이에 큰 관이 하나 있었다.
사이훙은 사부님이 큰절을 하는 것을 보고 얼른 따라서 큰절을 했다. 그는 당황스러웠다. 사부님이 큰절을 하는 경우는 제가를 지낼 때뿐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제단이 없지 않은가? 더욱이 관에다 대고 큰절을 하는 것은 아주 이상한 일이었다. 절을 마치고 위를 올려다보자 그들 앞에는 키가 큰 사람이 서 있었다. 그 사람은 서서 약간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들의 절을 받고 있었다.
"이것 봐요! 당신은 왜 절하지 않는 거예요? 당신은 이분이 얼마나 높은 분인지 모른단 말이예요?"
사이훙이 외쳤다.
"사이훙!"
사부님이 날카롭게 호통쳤다.
"무례하게 굴지 말아라. 이분이 사부님이시지, 내가 사부가 아니다."
사부님은 그 사람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박쥐 신선께 문안드립니다!"
박쥐 신선이라는 사람은 가볍게 웃었다. 큰 키에 가냘픈 몸매를 가졌고, 여자처럼 움직였다. 수염과 머리카락은 땋아서 리본으로 묶었다. 얼굴은 작고 피부에는 주름살 하나 없었으며, 핏기도 없이 창백했다. 쑥 들어간 눈언저리가 검게 죽었으며 두 눈은 거의 감겨 있었다. 그러나 가늘게 내리뜬 눈에서 감춰진 내부의 빛을 엿볼 수 있었다.
"저는 경전들의 요점을 여쭈어보러 왔습니다."
사부가 말했다.
박쥐 신선은 앞으로 한 걸음 다가와 승낙을 대신했다. 그는 문틈으로 들어오는 햇빛조차 피했으며, 발걸음도 소리가 없었다. 박쥐 신선이 사이훙 앞에 멈추어 섰다. 눈꺼풀이 약간 올라가자 그의 눈에서 쏟아져 나오는 빛이 더욱 강렬해졌다.
"이 아이가 당신이 말했던 그 아이인가?"
박쥐 신선이 가늘고 속이 빈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습니다."
사부가 대답했다.
박쥐 신선은 사이훙을 향해 돌아섰다. 사이훙은 박쥐 신선을 올려다보는 순간 그가 눈을 감고도 자기를 꿰뚫어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이훙이 잠깐 정신을 잃었다가 의식을 찾았을 때 박쥐 신선은 이미 저만치 멀리 떨어져 있었다. 사부는 사이훙에게 밖으로 나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사부님은 한 시간쯤 뒤에 밖으로 나오더니 곧장 걸어갔다. 사이훙은 그의 뒤를 따랐다. 30분정도 침묵을 지키며 걷기만 하던 사부님이 박쥐 신선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박쥐 신선은 태음공을 연마하고 계신다. 저분이 박쥐 신선이란 이름을 얻게 된 이유지. 저분은 관 속에서 주무시면서 태양빛을 피하고 찬 곳에서만 기거하시지. 결코 더운 음식을 드시지 도 않는단다. 저 분은 태음기를 쌓고 계시며, 그것이 바로 저분의 영성의 원천이 되고 있다."
"검은 동그라미가 그려진 옷을 입고 귀신처럼 움직이셔서 악한 사람같이 보여요."
사이훙이 말했다.
"저분을 약하다고 하지 마라. 저분이 보통 사람과 같지 않아서 네가 겁을 먹은 것일 게다. 당연한 일이지. 저분은 불사의 신선이시란다. 저런 분을 만나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
사부님은 주의를 주었다.
"그렇지만 공공, 저는 공공께서 왜 그분께 절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언제나 공공께 절을 하지 않습니까?"
"사이훙, 언제나 더 훌륭한 스승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는 그분들에게 언제나 경의를 표해야 한단다."
"저분은 왜 훌륭한 분입니까?"
"박쥐 신선은 경전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최고의 권위자 중의 한 분이란다. 저분은 도장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에 대해 해명해 주실 수 있단다. 실제로 저분은 도장의 경전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계시단다."
사이훙은 학당에서 소리 내어 읽으면서 외워야 했던 수백 권의 경전들을 생각해 냈다. 그런 도교는 별로 재미가 없었다.
"그러나 공공, 공공께서는 이미 경전들을 다 배우시지 않았어요?"
"나는 저 박쥐 신선에 비하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단다. 도사는 끊임없이 배워야만 한다. 그리고 가르침이 필요할 때는 반드시 가르침을 찾아야 한다. 자, 내 설명을 들어보렴. 우리가 처음에 너에게 온실을 관리하라고 맡겼을 때, 너는 온실 가꾸기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너는 먼저 일을 시작해야 했을 테고,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봐야만 했다. 그렇지?"
사이훙은 사부의 말에 동의했다.
"마찬가지로 사부라 해도 끊임없이 무지를 일깨우기 위해서 노력해야만 한단다. 우리는 모두 깨달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지식을 완벽한 것으로 만들어야 하지. 우리는 노사부님께 물어야 한다. 만약 그분이 모르고 있다면, 더 나이가 많으신 스승님이 항상 계시지 마련이다."
사이훙은 나중에 두 분의 신선을 더 만났다. 그들은 지식을 탐구하는 방법이 서로 달랐을 뿐만 아니라 그 지식을 화산의 공개 토론회에서 다른 사부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 두 신선은 작은 도관에 살고 있었으며 서로 단짝을 이루어 음양 신선이라고 불렀다.
한 번은 대사부가 사이훙을 그들의 강연에 데리고 갔다. 음양신선은 강단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은 작고 가무잡잡했으며,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다른 한 사람은 큰 키에 뽀얀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꿰뚫을 듯한 시선으로 청중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참으로 기묘한 한 쌍이군요!"
사이훙은 탄성을 질렀다.
"이 쥐방울 같은 녀석아! 경의를 표하도록 해라."
사부님이 사이훙의 뒤통수를 치면서 야단을 쳤다. 사이훙은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젊어 보이는 음양 신선에게 눈길을 돌렸다. 음신선은 전혀 중국인 같아 보이지 않았다. 피부는 상당히 검었으며, 검은 곱슬머리는 상투를 틀어 올렸고, 수염 역시 곱슬곱슬했다. 그는 헐렁한 회색 장삼을 입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으며, 왼쪽 어깨에서부터 대각선으로 흰 띠를 두르고 있었다. 사이훙은 그렇게 생긴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나중에 인도를 방문하고 나서야 사이훙은 음신선의 조상을 알게 되었다.
반면, 양신선은 키가 크고 건장했으며 얼굴이 붉었다. 그의 굵고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은 칠흑처럼 검었으며, 커다란 얼굴에 수염은 기르지 않았다. 그의 회색 장삼은 가슴의 단단한 근육 때문에 거의 터질 지경이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던 사이훙은 양신선이 화산의 절벽 사이를 성큼성큼 걸어 올라가는 것을 본 적이 있음을 기억해 냈다.
사부님은 사이훙에게 음양 신선들만큼 도가 나아갈 길을 잘 설명해 주는 신선은 없다고 알려주었다. 그들은 도를 각각 다른 방식으로 이해했다. 음선인은 명상의 나날을 보내면서 가장 깊은 의식의 세계를 탐구한 뒤에 자신이 깨달은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하여 돌아왔다.
양선인은 화산을 돌아다니며 별과 자연, 날씨에 관한 모든 현상들을 관찰한 뒤에,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하여 상세하게 강연해 주었다. 둘 다 자신들의 특별한 능력을 경전과 잘 결합시키면서 도교 전체의 지식을 설명하고 또 탐구를 계속했다.
토론의 열리기 직전, 사부님은 사이훙을 음양 신선들에게 소개시킨 뒤 두 시자에게 돌려보내며 말씀하셨다.
"너무 서두를 것은 없다. 도교에 입문한 사람은 단계적으로 전진해야 한다. 준비가 될 때까지는 결코 다음 단계로 나가면 안 되지. 너무 초조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단다. 자기가 맡은 일을 성실히 하면서 인내심을 가지고 훈련을 한다면 도는 자동적으로 상승되어 간다. 사이훙, 너는 아직 나이가 어리니까 지금의 너로서는 음양 신선 같은 분들이 계시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사부님은 키가 크고 힘이 센데다 다리가 길었기 때문에 사이훙에게는 사부님과 함께 다니는 일이 더 고되고 지루했다. 그러나 사부님을 따라다니면 배울 게 많았다. 시자들 역시 자연에 널려있는 사물들에 대해 가르쳐 주었으나, 사부님이 가르쳐 주시는 것과는 아주 달랐다. 한 번은 사부님이 어떤 흔적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신비로운 궁전이 나타나지. 하지만 네가 감히 저 길의 흔적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면 결코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어떤 때는 안개로 뒤덮인 작은 협곡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 길은 장생불사로 가는 길이니라."
또 사부님은 이마에 큰 혹을 달고 고독하게 혼자 있는 도사를 가리키며 사이훙에게 말했다.
"저분은 태양신선이시다. 여러 왕조가 흥망 하는 것을 봐오신 분이시지."
어느 날 사부님은 사이훙을 남봉에 있는 앙천지로 데리고 갔다. 거기에는 머리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며 쭈그리고 앉아 있는 사람이 있었다. 이 신선은 지금까지 사이훙이 본 신선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신선인 것 같았다. 손을 앞으로 뻗어 땅을 짚고 머리를 치켜든 채 쭈그리고 앉은 그의 모습은 거대한 개구리를 연상시켰다. 두 시자가 개구리도 명상을 한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지만, 이 사람은 그저 잠만 자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사부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사부님은 합장하고 존경을 표시하며 옆으로 비켜섰다. 깨어나길 기다리는 것이었다. 사이훙은 그 개구리 같은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몇 분 정도 지나자 사이훙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봐, 이봐! 우리 사부님이 당신을 만나러 오셨단 말이야! 당신은 왜 일어나지 않는 거야, 이 멍텅구리야!"
"사이훙, 너 정말 버릇이 없구나!"
사부님이 호통을 치셨다.
"그렇지만 공공, 저 사람은 저렇게 쭈그리고 앉아서 죽은 듯이 잠만 자고 있잖아요! 저 사람은 정말 큰 개구리 같아요. 얼마나 큰지 한번 보세요! 공공, 저렇게 큰 개구리는 어떻게 요리해 먹죠?"
"사이훙, 버릇없는 말을 삼가거라!"
사이훙은 그 사람에게로 더 가까이 갔다. 얼마나 큰 머리인가! 턱은 늘어지고 얼굴은 넓적했다. 코는 크고 뭉툭했으며, 얄팍한 입술은 양쪽 귀밑까지 찢어질 듯 벌어져 있었고 두 눈은 꼭 감겨 있었다. 수염도 없었으며 벗겨진 머리는 총알 같았다.
<왜 이 사람은 잠만 자고 있을까? 이 사람이 이걸 느낄 수 있을까?>
사이훙은 일부러 주먹으로 그 사람의 이마를 쿡 쥐어박았다. 그러나 반응이 없었다. 그가 다시 한번 쥐어박으려고 하는데, 사부님이 그의 뒤통수를 가볍게 쥐어박았다.
"얌전히 있거라, 이 쥐방울만한 녀석아!"
사부님은 언성을 높였다.
"사부님은 언제나 똑같은 자리만 때리신단 말이야!"
사이훙은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러나 만지지 않고 보기만 하는 것은 괜찮을 것 같아 사이훙은 다시 몸을 구부려 그 사람의 얼굴을 아주 가까이서 들여다보았다. 갑자기 그가 눈을 번쩍 뜨고 사이훙을 쳐다보는 바람에 사이훙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고무관 같은 얼굴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변하자 사이훙은 급히 뒤로 물러섰다.
"공공! 깨어났어요! 이 사람은 눈동자가 초록색이에요!"
사부님이 조용히 무릎을 꿇자 사이훙도 그래도 따라서 했다.
"개구리 신선께 문안드리나이다."
사부님은 경건하게 예의를 표했다. 개구리 신선은 거추장스럽다는 듯이 목에서 끄륵끄륵 하는 소리를 내면서 그들의 인사를 받았다. 그리고는 귀찮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리더니 곧 다시 잠들어 버렸다. 기나긴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도사가 저분과 같은 경지에 올라가면, 그 도사는 영원한 정신을 가지게 된단다. 자기 자신을 완전히 잊게 되고 감각의 자각도 없어지게 되지. 우주적 정신과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이란다. 개구리 신선께서는 기공과 명상의 행공법을 수련하셔서 도교에서 가장 높은 단계에 이르셨단다. 저분은 허공과 같으신 분이다. 저분이 잠자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항상 깨달음의 상태에 계시기 때문이란다."
사부님은 사이훙에게 속삭이듯 말해 주었다. 개구리 신선이 다시 눈을 떴다.
"이 아이가 제 제자입니다."
사부님은 절을 하면서 말했다. 개구리 신선은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5미터도 넘게 펄쩍 뛰어올랐다가 다시 아까와 똑같이 개구리 자세로 내려앉았다. 그러더니 다시 뛰어올라 눈을 둥그렇게 뜬 채 멍청히 서 있는 사이훙 앞에 가볍게 내려앉았다. 그는 사이훙을 자세히 살펴보더니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네가 나를 보기 위해서 찾아왔단 말이냐?"
그는 전혀 감정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신, 신선님"
사이훙은 엉겁결에 말까지 더듬으며 말했다.
"흐음! 너는 이것을 이해 못 하겠지."
"기묘한 일처럼 보입니다."
"기묘하다고!"
개구리 신선은 무시하듯이 소리쳤다.
"기묘하다고? 이게 바로 나의 명상이야! 나는 아주 높이 날아오를 수 있어. 나의 몸은 기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지! 나는 공기보다 가벼워질 수 있단 말이야. 이렇게 이 호숫가에서 명상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물 위에 떠 있는 나뭇잎에서도 명상을 할 수가 있다. 물의 나의 일부분이지. 물은 전기를 가지고 있어. 육체도 전기를 가지고 있지. 바깥의 전기가 몸속의 전기를 일깨우는 것이야. 알겠니?"
"네, 알겠습니다."
"아니야, 너는 모르고 있어!"
개구리 신선이 말했다. 사이훙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뒤에 있는 사부님을 돌아다 보았다. 개구리 신선은 잠깐 사이훙의 대답을 기다렸으나 곧 가엾다는 듯이 말했다.
"꼬마야, 언젠가 너에게 몇 가지 가르쳐 줄 만한 것들이 있을 게야."
그는 그 말을 내뱉은 뒤 다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래지 않아 사이훙은 자신이 음양 신선들과 박쥐 신선, 개구리 신선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사이훙의 꿈에 규칙적으로 나타나 그가 기억해 낼 수 없는 어떤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사이훙은 그들이 자기를 이끌어주고 있다고 느껴서 그 이야기를 시자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러나 그들도 그러한 현상에 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사이훙은 사부님께 그 신선들이 자신의 꿈속에 나타날 수 있는가를 물어보았다. 그러나 사부님은 무뚝뚝하게 등을 돌리고는 조용히 자리를 떠나 버렸다.
11. 화산의 사부님들
사부님과의 관계는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처럼 가까웠지만, 사이훙에게 사부님은 여전히 권위와 지혜를 갖춘 외경스러운 인물이었다. 그는 친절하고 인내심이 있었으나, 때로는 매우 엄격했다. 중국의 여느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사부님은 제자의 잠재력을 계발시켜 주는 일에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이며, 단계에 맞게 사이훙을 키웠다. 사부님의 권위에 대한 질문은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이훙은 사부님의 배경에 대해서는 질문할 수 없었다. 도교에서는 사부님에 대한 개인적인 행동이나 인생사를 묻거나 캐내어서는 안 되었다.
그러나 제자들이 사부님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고 그에 관한 이야기들 을 궁금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부님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을 때는,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거나 사부님을 가까이 모시면서 살펴보아야만 했다. 사부님은 자신의 출생이나 나이, 학식에 대해서는 한 번도 얘기하지 않았다. 아무런 말씀도 없이 몇 달이나 어디론가 다녀오셔도 말씀을 해주시는 법이 없었다.
사부님이 자신에 관해 사이훙에게 말해 준 것이라고는 사부님 역시 화산에서 자랐다는 사실이었다. 사이훙은 나중에 다른 늙은 수도사와 이야기 하던 중에 사부님이 다른 곳에서 오셨다는 것을 알고는 크게 놀랐다. 사이훙은 그 늙은 수도사와 도관의 부엌에서 일하면서 사부님에 대해 수다를 떨고 있었다.
"공공께서 그러셨는데, 그분은 어릴 때부터 여기 화산에서 자라셨고 지금은 벌써 90세가 되셨대요!"
"쉿! 우리가 그분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을 그분이 눈치채시면 안 된다."
그 수도사는 사이훙에게 조용히 하라고 일렀다.
"그렇지만 공공께서는 멀리 나가 계셔요."
"아니야! 그분은 뭐든 다 알고 계셔! 너는 아직도 모른단 말이냐? 여기 계시는 사부님들을 모든 것을 아실 수가 있단 말이다!"
그는 사이훙을 쌀가마와 약초들이 쌓여 있는 부엌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그는 사방을 조심스럽게 살펴본 뒤에 허리를 숙여 나직하게 말했다.
"절대로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는 것을 사부님께 말하면 안 된다. 사실 그분은 다른 곳에서 오셨단다."
"정말이에요? 분명한가요?"
"나는 어렸을 때부터 화산에서 자랐지. 나를 보렴.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백발이 성성하지? 네 사부님께서 이곳에 오셨을 때 이미 그분의 머리는 새하얀 백발이셨단다. 그때 내 나이는 스무 살밖에 되지 않았고 이제 나는 나이가 들어 늙었지만 너의 사부님은 옛날의 그 모습 그대로란
다. 대사께서는 중국 전체를 돌아다니셨고 인도와 티베트, 페르시아까지도 다녀오셨다고 하더구나. 다만 그분이 도인이신지 아니면 무사인지는 알 수 없단다. 그분께서 쌓으신 위업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지. 그러나 어쨌든 그분께서 수십 년간 방랑하신 것은 틀림없어.“
그 늙은 수도사가 너무나도 조용히 속삭였기 때문에 그의 말을 들으려면 얼굴을 바짝 갖다 대야 했다.
"잊지 말아라. 절대로 이런 이야기를 나한테 들었다는 말을 하면 안 된다. 만약 너의 사부님이 이것을 아셨다가는 분명히 역정을 내실 게 틀림없으니까 말이다."
늙은 수도사는 낮은 목소리로 사이훙에게 신신당부했다. 사이훙은 나중에 시자들에게 물었다.
"공공께서 진짜 도교의 사부님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지요?"
사이훙이 질문했다.
"사부란 자신에게 떠오르는 많은 질문들에 해답을 얻은 분이며, 또한 제자의 물음에 대답해 주실 수 있는 분이지. 사부란 반드시 자신의 해답에 대해서 증거를 댈 수 있어야 한단다. 또한 자신이 가르친 것을 몸소 실천하는 모습을 항상 제자들에게 보여 주셔야만 한다. 아주 건강한 사람이어야 하며 밝고 분명한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단다. 또 제자가 스스로 스승과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기도록 스승으로서 이끄는 힘을 갖고 있어야만 하는 거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부님은 이기적인 마음 없이 제자를 가르치고 도와주며, 제자에게 끝없는 가르침을 줄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런 사람만이 스승이라고 할 수 있지."
린 쭝우가 차근차근히 대답해 주었다.
"그렇지만 공공이 하시는 일이라고는 돌아다니시는 일밖에는 없는걸요."
사이훙이 반박했다.
"사이훙, 너는 몰라. 그분께서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계시단다. 그분은 다만 겸손하게 그것을 감추고 계실 뿐이야."
칭 수이셩이 말했다.
"그게 뭔데요?"
"네가 아직 배우지 못한 것이지."
린 쭝우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사부님에 관한 이야기들을 몇 가지 해주지."
칭 수이셩이 기억을 되살리며 얘기를 시작했다.
"그분의 경공은 정말 대단하시단다. 축제일이었어. 많은 순례자들이 북봉으로 참배를 왔었지. 비가 와서 바위들이 아주 미끄러웠어. 그런데 한 어린 소녀가 절벽 끝에서 놀다가 발을 헛디뎌 절벽 아래로 떨어져 버렸다. 바로 그때 사부님이 그 소녀의 뒤를 쫓아 몸을 던지셨어. 그분은 절벽에서 뛰어내리셔서 그 아이를 붙잡아 품 안에 안으시고는 절벽 아래 약간 튀어나온 바위 위에 사뿐히 내려앉으셨지. 그리고는 다시 기어 올라오셔서 그 아이를 엄마 품에 안겨주셨단다."
린 쭝우가 덧붙여 말했다.
"우리는 사부님이 공중에 떠 계시는 것도 보았어. 일정 기간 동안 사부님은 매일 밤 11시부터 새벽 2시까지 명상을 하셨는데, 명상을 하실 때면 그분의 몸속에서는 엄청나게 열이 나곤 했지. 우리가 할 일은 때때로 들어가서 새로 향을 피우고 표주박에 신선한 샘물을 가득 채워 놓는 일이었어. 우리는 조용히 사부님의 방으로 들어갔지. 방은 어두웠는데, 그분이 보이지 않아 침대를 살펴보았지. 침대는 비어있었어. 위를 올려다보니 사부님께서 가부좌를 하고 공중에 떠 계시지 않겠어! 우리는 속임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손으로 사부님 아래를 휘저어 보았어. 심지어 칭 수이셩 사형은 목수 일을 할 때 쓰는 자를 가지고 사부님이 떠 계신 높이를 재보려고 했지. 그러나 자를 가지러 가기 전에 사부님께서 웃음을 터뜨리시며 서서히 내려오셨지. 사부님은 우리를 쥐방울만한 놈들이라고 하시면서 물을 달라고 하셨지."
"그러니까 공공은 법술사이시군요!"
사이훙은 알았다는 듯이 소리쳤다.
"아니야, 아니야, 법술사는 아니야. 그런 법술들은 우리 파에서 금지되어 있어. 너는 이걸 알아야 해. 법술사는 저승에서 귀신들을 불러와서 부려먹지. 그럴 때마다 법술사는 자기의 일부분을 팔아먹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결국 완전히 사도로 떨어지고 만단다. 사부님은 초자연적인 일들을 해내실 수가 있는데, 그것은 그분의 정신력이 뛰어나시기 때문이란다. 그분의 능력은 신들로부터 선물로 받은 것이지, 귀신들에게 자기를 팔아서 얻은 것이 아니란 말이야."
린 쭝우가 말했다.
"공공께서 어떻게 공중에 몸을 뜨게 했는지 설명해 주셨나요?"
사이훙이 물었다.
"아니, 그분은 그런 말씀은 안 하신단다. 우리가 그분의 힘을 직접 경험했을 때에도 그분은 어떤 설명도 해주시지 않으셨어. 한 번은 사부님과 인체의 모든 경락을 열어주는 약초를 캐러 나갔었지. 우리는 동물들이 그 약초들을 캐먹기 전에 손에 넣어야 했어. 동물들도 그것을 약으로 쓰거든. 그래서 우리는 동이 틀 무렵에 길을 떠났지. 그 약초는 어둑어둑할 무렵에만 보이는 신비로운 빛을 내기 때문이란다.
이른 아침이었어. 비가 몹시 많이 왔기 때문에 우리가 평소 건너다니던 강물이 불어나, 물살은 대단히 세차고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떠내려가고 있었지. 강을 건널 때는 언제나 우리가 사부님을 보호해 모셨는데, 이번에는 오히려 우리가 떠내려갈 것 같았단다. 사부님은 우리가 강 앞에 멈춰서 머뭇거리고 있는 동안 앞장서서 강을 건너기 시작하셨지. 푸른 새벽빛 아래 강을 건너서는 그분의 모습은 더 없이 신비로웠단다. 사부님은 우리 보고 당신이 밟은 길을 그대로 따라오라고 소리를 지르셨지. 그분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셨던 거야. 우리는 망설임 없이 그분의 뒤를 따랐지. 어둠 속에서 우리는 사부님의 등에서 쏟아져 나오는 한 줄기의 빛을 보았는데, 그 빛은 우리의 배꼽으로 연결되었어. 우리는 몸이 젖었지만 물의 압력은 전혀 느낄 수가 없었어. 그리고 나뭇가지들은 우리를 비켜 갔고, 건너편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사부님께 물어보았지.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도 않으셨어.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 빗줄기가 거센 강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었다는 것을 확실히 믿고 있어."
칭 수이셩의 말을 들은 사이훙은 사부님에게 새로운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 사부님은 무림의 고수였다. 사부님은 도관의 마당에 혼자만 사용하는 연무장을 가지고 있었다. 사이훙은 사부님이 무술을 연습하는 모습을 몰래 훔쳐보곤 했다. 사부님은 기립 명상으로 내공을 끌어올리시고는 무술을 연습하시기 시작했다. 기립명상은 몇 가지 발과 손동작으로 이루어진 고요한 동작이었다. 명상을 하면서 몸속의 응결되어있는 기를 풀어주는 굴신 동작과 근육을 풀어주는 운동이 끝나면 사부님은 곡예 같은 체조를 연습했다.
중국에서의 싸움은 공중제비돌기, 공중회전, 공중 돌아 뛰기, 공중에서 몸 퉁기기 같은 것이 빠질 수가 없었다. 그것들은 모두 무사라면 당연히 수련해야 하는 것들로, 공격과 방어에 모두 사용할 수 있었다. 옆으로 재주를 넘는다거나 땅 짚고 재주넘는 것 같은 동작은 병기의 공격권에서 벗어나는 기술이었으며, 돌기나 구르기 같은 것은 공격에 힘을 더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한 기술은 손발의 권법과 결합되어 사부님의 동작을 더욱 위력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180센티미터나 되는 큰 키에 60킬로밖에 안되는 날씬한 체격의 사부님은 숨 막힐 듯이 이어지는 격투기 동작들을 계속하며 권법을 연무했다. 크게 휘두르는 발동작과 힘찬 도약, 발놀림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앞차기는 수직으로 힘차게 뻗어 나가 꽂혔으며, 독특한 발동작은 한쪽 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연속적으로 휘몰아치는 돌풍처럼 이어졌다.
장법이란 손바닥으로 후려치는 기술이었다. 장법은 내공이 손바닥에서 나와 겉으로는 상처하나 없이 오장육부를 파열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사부님은 다섯 가지 장법을 알고 있었는데, 호접장법, 버들장법, 음양장법, 뇌장, 그리고 오행장법이 그것이었다.
사부님은 그 다섯 종류의 장력을 야간에 연습했는데, 그것들은 곧 구별할 수 있었다. 호접장법은 나비가 날개를 접듯 두 손바닥을 붙여 공격하는 것이었다. 버들장법은 바람에 날리는 버드나무 가지처럼 동작이 비비꼬였다. 음양장법은 위와 아래를 교대로 공격하는 것이었다. 뇌장은 허리를 축으로 해서 번갯불처럼 직선으로 공격하는 것이었다. 오행장법은 몸 중심에서부터 끌어낸 기로 공격하는 것이었으며 모든 장법 중에서 가장 신속한 장법이었다. 연무가 절정에 도달할 때쯤이면 사부님의 형체는 마치 소용돌이 바람처럼 보였다.
사부님은 언제나 도전을 받았으며, 결코 그 도전을 거절하지 않았다. 사부님은 정해진 장소로 가서 적을 무찌르고 조용히 돌아왔다. 도전자들은 여러 부류였다. 단순히 자기 무예의 기량을 시험해 보고자 하는 도전자도 있었으며, 목숨을 걸고 도전해 오는 사람도 있었다. 시합은 대체로 지상 3미터 높이에 설치된 단 위에서 벌어졌다. 단에서 떨어지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고 때로는 치명적이기도 했다. 시합을 하는 사람은 땅에서 단 위로 뛰어 오를 수 있을 만큼의 경공을 갖추고 있어야만 했는데, 이러한 조건은 실력없는 경쟁자가 도전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
이었다.
단을 만들 때에도 여러 가지 덧붙여지는 것들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찻잔들을 뒤집어 쌓아 놓은 1.5미터 높이의 네모난 탁자 위에서 시합을 벌였다. 시합하는 사람은 컵 위에서 중심을 잡고 움직여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면 자동적으로 실격이 되었다. 또 어떤 때는 높이가 3미터나 되는 나무기둥 49개를 꽃 모양으로 세운 뒤 땅에는 수많은 칼들을 거꾸로 꽂아 놓았다. 그런 곳에서 대결하는 사람들은 나무기둥 꼭대기에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싸워야 했다.
가장 독특한 단은 사부님에게 도전했던 오독도사들이 사용한 것이었다. 사이훙은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그 시합에 참석할 수 없었지만 나중에 시자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몇 달 전, 사부님은 쓰촨 지방에 계율을 어기는 다섯 명의 도사들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은 오독도사라고 불렸는데, 첩을 거느릴 뿐만 아니라 매춘을 알선하고, 의약품과 노예를 매매하고 밀수하며, 도박을 일삼았다. 사부님은 공개적으로 그들을 비난했으며, 만약 그들이 개과천선하지 않는다면 조정에 탄원문을 내겠다고 위협했다. 오독 도사들은 정식으로 사부님께 도전해 왔다. 사부님은 그 도전을 받아들였지만 시합은 화산 아래에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이 신성한 화산을 더럽히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단을 세울 사람들을 보냈다. 그 사람들은 북봉 아래에 5미터 높이의 나무 기둥들을 둥그런 모양으로 땅 위에 세운뒤 거미집 모양으로 밧줄들을 걸었다. 사부님은 하얀 평상복을 입고 그의 유일한 무기인 그물을 가지고 결전장으로 나갔다. 오독 도사들은 그들이 사용하는 독극물 때문에 시퍼렇게 독이 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온통 검은 복장을 한 그들은 기세등등하게 기둥위에 올라섰다. 사부님도 곧 그 거미줄의 중심부로 뛰어 올라갔고 싸움이 시작되었다. 오독 도사들은 8괘형으로 만들어진 진법으로 공격을 펼쳤다. 연합해서 공격하기도 했고, 또 때로는 일 대일로 공격해 오기도 했다. 사부님은 이 결투를 오래 끌 생각이 없었으므로 속전속결로 적들을 처리했다. 오독 도사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 도교 성직자의 상징인 말갈기채를 미친 듯이 휘둘러대면서 공격해 왔다. 그러자 사부님은 그물로 말갈기채를 잡은 뒤 무서운 발길질로 적을 처리했다. 그 도사는 앞으로 몇 걸음 비칠비칠 걸어 나오더니 입에서 푸른 독을 뿜어냈다. 사부님은 옷 소매로 독을 막고 그 도사를 단 아래로 내팽개쳐 버렸다. 밧줄 위에서 날렵하게 움직이며 사부님은 나머지 네 명의 도사들 중 두 명의 도사와 정면으로 맞부딪쳤는데, 한 사람은 독이 묻은 쇠솔을 들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사부님의 얼굴에 태양빛을 반사하기 위해 둥근 거울을 들고 있었다. 사부님은 먼저 첫번째 도사를 붙잡았으나 다른 도사가 거울을 던져 그물의 일부분을 찢어 놓았다. 사부님은 신속하게 앞으로 뛰어나가 붙잡은 도사의 팔을 후려치면서 그의 독솔을 다른 오독 도사에게 던졌다. 나머지 두 명의 도사들 중에 한 사람은 독바늘이 꽂힌 접는 부채를 무기로 쓰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독물을 묻힌 쇠가시들이 뾰족하게 솟은 창을 쓰고 있었다. 창을 쓰고 있던 사람은 사부님의 급소를 공격하기 전에 두 팔부터 못쓰게 만들 궁리를 했다. 사부님은 공중으로 높이 솟구쳐 빙글 돌아 창과 부채에서 나온 12발의 금침공격을 피했다. 사부님이 공중에서 부채 도사의 목을 걷어차자 그 도사는 그만 한 방에 죽고 말았다. 그리고 나서 사부님은 그물로 창잡이 도사를 옭아맨 뒤 몸을 날려그 도사를 땅바닥으로 내팽겨쳐 버렸다.
사이훙은 그 싸움을 이야기로만 전해 들어 몹시 실망했지만, 곧 사부님의 격투 장면을 목격할 기회가 왔다. 어느 날, 사이훙은 물을 붓고 먹물이 걸쭉하게 될 때까지 힘겹게 먹을 갈고 난 뒤 부채처럼 접힌 긴 종이를 준비했다. 사부님이 글을 써나가면 사이훙은 끝에서 글씨가 마르도록 책상 아래로 길게 펴나갔다. 사이훙은 사부님의 힘찬 붓놀림과 멋진 초서체를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두 젊은이가 뛰어 들어왔다. 그들은 몰래 북봉과 남봉 사이에 자리한 사부님의 처소로 숨어들어 왔던 것이다. 먼저 들어온 사람은 자줏빛 옷에 주황색 허리띠를 두르고 머리에는 두건을 쓰고 있었으며, 양날검은 들고 있었다. 뒤따라 들어 온 사람은 같은 옷차림에 검은 허리띠를 두르고 있었는데, 직경이 50센티나 되는 커다란 강철 방망이를 들고 있었다.
"우리는 무술 비급을 얻기 위해 왔다. 그리고 우리는 당신이 그 비급을 보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
칼을 든 사람이 사부님에게 건방진 태도로 말했다.
"그 비급을 우리에게 넘겨라. 너는 이제 늙은이에 지나지 않아. 저항하지 않는다면 너를 해치지는 않겠다."
방망이를 든 사람이 덧붙였다. 사부님은 긴 옷소매가 아직 마르지 않은 글씨들은 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붓을 놓았다.
"인생사에서 쉬운 일이란 없지. 원한다면, 와서 가져가거라. 만약 너희의 운명의 별이 제대로 운행하고 내가 오늘 죽게 되어 있다면, 너희들은 그 비급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너희들의 별이 옳지 않다면 나는 너희들이 오늘 죽어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해주겠다."
사부님은 꿰뚫는 듯한 시선으로 그들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사부님은 양팔을 세 번씩 휘둘러서 긴 소매를 손목 둘레에 감았다. 그리고는 탁자 위를 걸어서 바로 그들의 앞에 차분히 내려선 뒤 둘둘 말았던 옷소매를 다시 풀어 채찍처럼 휘둘러서 모욕적으로 그 두 명의 뺨을 동시에 후려쳤다. 침입자는 곧 정신을 차리고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사부님이 그 검을 피하면서 긴 옷소매로 칼을 둘둘 말아 버리자 사내는 칼을 뺄 수가 없었다. 사부님이 한 번 걷어차자 그 사내는 격자무늬의 창을 버리고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또 다른 침입자가 공격해 왔다. 사부님은 그의 방망이를 살짝 피하여 그가 자기 동료와 부딪히게 만들었다. 사부님은 조소를 머금은 뒤에 무서운 장력으로 그들을 무력화시켰다. 갑작스런 소동에 놀라 뛰어 들어온 두 시자가 그들을 끌고 나갔다. 탁자 밑에 숨어 있던 사이훙이 뛰어나와 사부에게 수많은 질문을 해댔지만, 사부는 언제나처럼 침묵을 지키며 밖으로 걸어 나갔다.
12. 열두 살의 전환기
사이훙의 열두 번째 생일날, 사부님은 그를 거실로 부르셨다. 화산에서 보낸 3년 동안 그는 많이 변했다. 그의 고집스러운 성격과 수다스러움이 조금 사라졌으며, 사부님의 지혜에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 시자들은 그의 배움에 대한 열정을 격려해 주었으며 사부님이 베푸시는 모든 기회를 붙잡아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사이훙은 기대감에 부풀어 사부님을 뵈러 갔고 사부님은 편안하게 말씀하셨다. 이제는 사이훙이 자신의 훈련에 대해 결단을 내려야 할 때였다.
"인생은 12지에 따라 단계적으로 발전하는 것이란다. 사람들은 인간이 교육이나 사회에 의해서 형성된다고 믿지. 그러나 사실상 인간을 만드는 것은 계절과 별자리와 운명이란다. 인생은 하늘에 의해 이미 내정되어있는 것이다. 너의 운명은 이 세상에서 수명을 다해 사는 것이지만 아직도 선택해야 할 것들이 많을 것이다. 너는 인생은 사는 동안 수없이 결단과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늘이 너를 시험하는 방식이다. 너는 어떻게 응답하겠느냐?
인간은 수레바퀴와 같고 인생은 수레바퀴의 빗살과 같은 것이다. 수레바퀴가 돌에 부딪히면, 바퀴는 멈추거나 부서지거나 또는 뒤집어질 것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 너는 인생사에 맞서야만 한다. 반드시 수레바퀴의 빗살이 움직이듯이 차례차례 인생의 단계를 거쳐 가거라. 각각의 단계마다 새로운 지식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 지식을 사용하고 네 인생이 변화하는 대로 따라야 네 운명을 충족시킬 수 있다. 떠날 때는 슬픔을 느낄 수도 있지.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그러나 떠나는 것, 변화하는 것은 올바른 일이다. 한 곳에 괴어 있지는 말 거라. 후회하지 말아라. 감정이란 네가 이산에 올 때 가지고 온 것 같은 장난감 같은 것이다. 한때 너는 그 장난감을 손에서 놓으려 하지 않았지. 하지만 이제 그것은 필요 없게 되었잖니? 언젠가 또 너는 네 소년기에 해당하는 다른 것들을 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슬퍼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네가 자라는 것은 올바른 일이기 때문이다. 각각의 단계가 끝날 때쯤 되면, 너는 영감과 호기심과 탐구심을 느끼게 될 것이다. 너는 지식을 바라게 될 것이고, 일단 지식을 얻게 되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은 갈증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것은 바른 일이다. 너는 인간이고 지식을 찾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망설이지 말고 지식을 추구하고 그 지식을 따르거라. 그러나 정교하게 맞춰진 수레바퀴의 빗살처럼 인생의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전환해 가는 시간은 정밀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만약 네가 어떤 단계를 건너뛰거나 대충 넘어간다면, 너의 인격은 뒤틀려 버릴 것이다. 또한 네가 한 단계에만 머무른다면 네 발전은 지체될 것이다. 성장의 단계를 회피해서도 안 되고 서둘러서도 안 된다. 너는 반드시 그것들을 하나하나 밟아 가야만 한다. 이 과정에는 안내자가 필요하다. 오로지 스승만이 너를 인도하여 네가 가야 할 단계를 밝혀 줄 것이며, 스승만이 완벽한 경지로 너를 이끌어 줄 수 있다.
사이훙, 이제 너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다. 너는 이제 소년기에 들어선 것이다."
그날 이후로 사이훙은 남봉의 도관에 있는 기숙사로 보내져 그곳의 많은 학생들과 함께 살았다. 그는 다른 소년들과 어울리기도 하고 여러 선생님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으며, 다른 도관에서 행해지는 특별 강좌들에도 참석했다. 그는 남봉의 도관에서도 여러 허드렛일을 모두 해냈다. 일거리의 양도 늘어났고 그에 따라 책임도 늘어났다. 나무를 패고 물을 긷고 바느질이나 세탁, 요리를 하고 사부님의 시중을 드는 것이 사이훙이 하는 일들이었다. 사이훙은 더 이상 장난을 치지도 않았고, 자신이 해야 하는 일들을 싫어하지도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도관의 생활에 한몫을 하고 있었다. 오로지 협동에 의해서만 산악 생활의 궁핍함과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사이훙도 깨달았다.
그러나 사부님은 일의 중요성에 관해서 한층 더 깊은 깨달음을 얻게 해주었다. 어느 날 저녁, 사이훙이 사부님께 저녁을 가져다드리자 사부님은 웃으며 말씀하셨다.
"예전에는 일상의 잡일들을 안 하려고 그렇게 꾀를 내더니....... 때때로 버릇없이 굴어 그 벌로 저녁을 굶기까지 했지. 하지만 이제는 이해하겠지? 일하지 않으려면, 먹지도 말라는 의미를 말이다. 일과 보답은 함께 가는 것이다.
도관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반드시 일해야 한다. 그러면서 겸손함이 길러지는 것이다. 일하는 사람, 봉사하는 사람은 건방진 태도를 보이지 않지. 이것이 중요한 점이다. 네가 최상의 지식을 얻어 네 힘을 옳게 사용한다면, 그때는 남들을 도울 수 있게 된단다. 너는 일과 근면을 통해서 자비를 알게 될 것이다.
또한 네가 산을 내려갔을 때 속세에서 만난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너는 직업을 가질 수도 있고 생계를 유지할 만한 재주도 가지게 될 것이다. 일은 네 수련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네게 협동과 겸손, 자비심과 재주를 가르쳐 줄 것이다. 그러니 일을 열심히 하도록 하려무나, 사이훙."
그가 하는 일들은 대부분 지저분했다. 그러나 사이훙에게는 고전과 윤리학을 배우는 일이 더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5백 명의 소년들과 함께 학습에 참석했다. 그들은 모두 도사들로부터 엄격한 통제를 받았다. 수업 시작은 도관의 종소리로 알 수 있었다. 소년들은 종소리가 나면 강당으로 들어가 제갈공명의 사당에 참배하고, 열 지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어야 했다. 서로 대화할 수도 없었으며, 앞만 보고 있어야 했다. 선생님들은 교단에 앉아 강독, 서법, 역사, 지리, 수학, 고전, 그리고 윤리학 등을 공부하는 지루한 시간동안 학생들에게 집중할 것을 엄격히 명령했다.
고전과 도교의 경전이 학과목의 중심이었는데, 사이훙이 매일 읽고 베끼고 암송하고 토론했던 유고의 교과서들은 사서오경이었고, 황정경 같은 도교의 경전들은 도교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해 주었다.
도사들은 도교와 유교 사이에 갈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두 학파가 효라는 주제에 있어서 만큼은 일치한다고 강조하면서 두 학파의 고전들을 모두 완벽하게 익힐 것을 요청했다.
"거짓말하지 말아라. 왜 거짓말하면 안 되는가? 성인들께서 말씀하시기를 <남들이 네게 잘못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네가 먼저 남들에게 잘못하지 말라.>고 하셨다. 예를 들어보겠다. 너희들이 밤에 화산을 산책하고 있었다고 가정해 보자. 너희는 등불을 가지고 있는데, 너희가 만난 어떤 길잃은 소년은 등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너희가 장난으로 그에게 길을 틀리게 알려주어서 그 아이가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면, 너희들은 거짓말을 한 것이다. 사악한 생각을 하지 말아라. 그러면 잘못된 일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못된 짓을 하는 이유는 그들이 유혹에 항복해 버리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그러한 유혹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어떤 것에도 항복할 필요가 없게 된다."
윤리학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사이훙은 그것 참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이훙은 고향에서 선생님의 변발을 의자에 묶었던 일을 떠올렸다.
"사이훙!"
선생님의 호통이 들려 왔다.
"너 또 무슨 나쁜 생각을 하고 있지?"
윤리학 강의는 강의실 밖까지 연장되었다. 도관은 24시간 내내 수업이 진행되는 폐쇄된 교실이었다. 도관 안에는 글자 그대로 유혹이란 있을 수 없었다. 도사들은 세상사에 초연했고, 완전한 깨달음과 정신적 능력으로 제자들의 마음을 읽어 가며, 오로지 제자들을 올바로 키워 내는 일에만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도사들은 예를 들어 가르치거나 설득하는 방법을 썼으나, 거짓말쟁이나 사기꾼, 도둑, 그리고 남을 때리면서 못살게 구는 학생들에게는 엄한 벌을 주었고, 심하면 파문시켜서 내쫓기도 했다. 이 같은 엄격한 감독과 철저한 가르침은 대부분의 학생들을 지적이고 조숙한 소년들로 성장시켰다. 사이훙은 그의 잠재적인 재능을 키워가며 빠르게 피어났다.
사부님은 사이훙과 이야기를 할 때에는 겸손에 관해 자주 말씀하셨다.
"네가 많은 것을 배울수록, 너는 남들을 위하여 네 지식을 더 많이 사용해야 한다. 현명해질수록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단다. 너의 경험이 깊어질수록, 그리고 네가 점점 겸손해질수록 깊이를 알 수 없는 지식을 얻게 될게다. 최고의 경지에 오른 도인들과 비교해 보면 너의 능력이 얼마나 미미한 것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결코 교만하고 편협한 마음을 가질 수 없지. 남을 위하여 봉사하는 일에 너의 지식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두거라. 그러나 보답을 바라지는 말아라. 너의 노고에 대해서 결코 보답을 찾지 말거라. 왜냐하면 그것은 곧 죄악이기 때문이다."
13. 108 나한, 약초, 그리고 기공
도사들은 정신적인 것은 육체적인 것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육체적 훈련이 내공을 연마하는 전주곡이 된다고 믿었다. 몸과 마음이 하나다. 정신은 두뇌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의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정신의 중심점들에 있는 것이다. 육체는 수련자가 초월하기 위한 기초이며, 건강한 정신을 담는 그릇이다. 사부님은 이러한 개념을 사이훙에게 철저히 알려주었다.
"너 자신은 언제나 지금 보이는 대로의 너였던 것은 아니며, 앞으로도 언제나 지금의 너로만 남아 있지도 않을 것이다. 너는 전생에 저지른 잘못들로 인한 징벌과 금생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완전히 해결해야 한다.
모든 세속적 야망들에 얽매인 집착과 욕망을 버려라. 그리고 지식을 향한 갈증을 식히도록 하거라. 어떠한 경험도 거절하지 말고 너의 모든 장애들을 극복해야 한다. 그렇게 한 뒤에야 너는 이 세상의 의무를 만족시키고 더 높은 차원의 세계로 올라갈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이 자신의 운명과 업보를 깨끗이 하는 것이다. 이것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가 필요로 하는 만큼 건강한 상태로 살아야만 한다. 너는 네가 전생에 저지른 일들에 대한 업보를 불사르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지, 새로운 고난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육체를 정화하고 정신적인 무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처음에 시작해야 할 일은 육체적인 훈련을 쌓는 일이다."
"대사님."
사이훙은 이제 성숙한 소년이었기 때문에, 사부님을 공식적인 칭호로 불러야 했다.
"대사님께서는 왜 이 세상에 머무르고 계시는 것입니까? 대사님께서는 이미 환골탈태해서 끝없는 자유를 얻고 등선의 경지에 오른 분이 아니십니까?"
"어떤 도인들은 그들이 전생의 업보에서 벗어나는 바로 그 순간 이 세상을 떠난다. 그러나 도사들은 자기들의 지식을 보존하고 다음 세대의 사람들이 이 길을 잘 따라오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믿고 있단다.“
"그러면 떠나실 수도 있었겠군요?"
"아니,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그건 네가 내게 내린 저주일지도 모른다."
사부님은 농담을 던졌다. 사부님이 농기 어린 농담을 하며 웃음을 짓자 두 눈가에 잔주름이 잡혔다. 사이훙은 얼굴을 붉혔다.
"정말이에요, 대사님?"
사부님은 폭소를 터뜨리면서 사이훙의 마음이 편해지도록 등을 두드려주었다.
"내가 너를 가르치는 것은 나의 의무란다. 나는 평생토록 의무를 가지고 있지. 나는 그 의무가 끝난 뒤에야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단다."
"저도 의무를 가지고 있나요?"
"물론 가지고 있지."
"그것이 무엇입니까?"
"너는 너무나 성급하구나. 넌 벌써 그것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만약 네가 그것을 알고 싶다면 너는 수행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부님은 흥겨운 듯 말했다. 사이훙이 해야 할 육체적 훈련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은 108나한이었고, 다음은 곡식과 약초들을 날로 먹는 벽곡법, 그리고 마지막은 기공이었다. 그 과정들은 사이훙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훈련시켜 더 높은 단계로 향할 수 있게 그의 몸에서 독소를 빼내 육체적 구조를 조정해 주었다.
108나한은 체조와 몸을 가볍게 하는 방법, 반사작용의 훈련, 호신술, 그리고 혼자서 연습하는 권법들로 이루어져 있다. 대단히 힘겹고 어려운 훈련 과정이었으며, 완전히 익히는 데만도 2년이 걸렸다. 화산의 도사들은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하는 108나한의 동작들이 근육의 공동 운동과 신축성, 힘을 길러 주며 체내에 산소를 풍부하게 해줘 소년들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원래 108나한은 불교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당나라 때 화산에 전해졌다. 그 당시 분파에 얽매이지 않았던 힌두교와 불교의 승려들, 도교의 도사들은 지식을 나누기 위하여 종종 함께 모였다. 힌두교의 쿤달리니 요가와 도교의 행공법 사이에 유사성이 있음을 깨달은 도사들과 힌두교의 수행자들은 함께 육체를 훈련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도사들은 불교의 수행자들에게 오랫동안의 좌선에서 생긴 두통과 치질을 치료할 수 있는 명상법과 행공법을 가르쳤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불교의 승려들은 도사들에게 외공법을 가르쳐 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108나한이었다.
108나한은 체조로 시작했다. 전설에 따르면 불교의 성자들인 108나한들이 각각 한 동작씩 만들어 냈다고 한다. 108나한은 마치 놀이처럼 재미있는 것이어서 어린 소년기부터 연마할 수 있었다.
"이 동작을 따라 할 수 있겠니? 저 동작은 아주 어려울 걸.“
108나한을 가르치는 사범은 새 동작을 가르쳐 주기 전에 언제나 이런 말로 소년들을 자극했다. 그러면 소년들은 사범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듯이 열심히 따라 했다.
도마뱀의 움직임을 본뜬 운동은 두 손을 둥글게 휘저으면서 엉덩이를 빙글빙글 돌리는 것으로, 척추를 유연하게 만들어 주었다. 고양이의 동작을 모방한 운동은 허리를 숙이고 양팔을 쳐든 뒤 두 다리에 곧게 힘을 주고 왼쪽 팔과 오른발, 그리고 왼발을 맞추어 동작하는 것인데, 근육을 이완시키고 등의 근육과 무릎 뒤의 힘줄을 단련시켰다. 원숭이를 모방한 운동은 원숭이처럼 쭈그리고 앉아서 등을 긴장시키고 두 팔을 옆으로 벌리고 걷는 동작으로, 다리를 튼튼하게 하고 평형감각을 키워 줬다.
악어를 모방한 운동은 팔 굽혀 펴기를 하는 자세로 엎드린 뒤 손만을 움직여서 기어 다니면서 팔 힘을 기르는 것이었다. 소년들이 이 108나한을 모두 배우고 나면 그들의 근골과 오장육부와 관절들은 튼튼하게 다듬어지고, 신진대사가 원활해지고, 지구력은 강해졌다.
다음 단계는 몸을 가볍게 하는 운동이었다. 이 제주는 도약과 공중회전의 바탕이 될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발전도 돕는 것이었다. 도사들은 몸이 가벼워야 축적되는 지방과 독소, 그로 인한 둔중함과 체력의 낭비를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가벼운 몸은 내공법을 연마하기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했다. 108나한의 사범들은 이것을 철저하게 믿었으므로 제자들을 훈련시킬 때 절벽 아래로 밀어뜨렸다. 높이는 2미터에서부터 시작해서 나중엔 5미터로 높아졌다. 사범들은 제자들을 사정없이 밀어 떨어뜨렸는데, 바닥에는 충격을 흡수할 만큼 푹신하지는 않았지만 몇 장의 매트리스들이 깔려 있었다.
"누가 제일 먼저 뛰어내리겠느냐?"
사범이 물었다.
<내가 먼저 해서 다른 제자들을 압도해야지. 만약 내가 완벽하게 성공한다면, 모두 나를 부러워할 거야.>
사범은 사이훙의 속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의미 있게 웃으면서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사이훙을 떠밀어 버렸다. 사이훙은 소년들의 웃음소리 속에서 아래로 내리꽂히듯 떨어졌다. 그러나 잠시 후엔 웃고 있던 소년들도 삐고 다친 무릎을 만지면서 신음 소리를 내야 했다. 사범은 언제나 그들에게 발을 단단히 딛고 착지하도록 가르쳤다. 사이훙은 그렇게 할 수 있기까지 며칠이 걸렸으나, 결국 그렇게 해냈다. 그는 피나는 수련을 통해 모든 종류의 낙하를 성공적으로 해냈다. 사범은 사이훙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 그는 높이를 30센티 정도 더 높였다. 그 높이에서 낙하할 수 있는 사람은 아직 없었다. 사이훙은 다시 자원해서 손을 들었다.
"정말 이것을 해낼 수 있겠느냐?"
"그렇습니다."
"좋아. 이번에는 손을 합장하고 해보거라."
사이훙은 기분 좋은 듯 두 손을 합장했다.
"하강 준비."
사이훙은 자신감은 가지고 하강 지점에 섰다.
"그리고 한쪽 다리로만 착지해 보거라."
겨울이 오자 수업은 실내에서 이루어졌다. 이제 모든 소년들이 5미터 높이에서 편안하게 뛰어내릴 수가 있었다. 다음에 그들은 탁자 위에서 뛰어내리는 훈련을 받았다. 소년들은 모두 그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면서 낙하하는 동안 몸의 균형을 잡는 훈련을 쌓았다. 그러나 탁자에서 사범이 밀었을 때는 몸의 균형을 잡을 여유가 없었다. 재빨리 군형을 잡기가 대단히 어려웠던 것이다.
사이훙은 가부좌를 하고 낙하하는 법과 한쪽 다리로 착지하는 법, 물구나무서서 착지하는 법을 터득하였다. 그가 터득한 기술 중에는 마룻바닥에 착지하는 법을 터득하였다. 그가 터득한 기술 중에는 마룻바닥에 부딪히기 전에 튀어 놀라 몸을 뒤트는 것도 있었다. 사이훙은 체조를 통해 근력을 조화시켜 속도와 시간차를 맞출 수 있었다.
반작용의 시간을 맞추는 것은 세 번째 단계였다. 이것은 지금까지 했던 곡예 같은 낙하 훈련과는 약간 달랐는데, 사이훙은 손과 눈의 협력체계를 개발하기 위하여 그에게 날아오는 물건들을 피하거나 붙잡았다.
세 번째 단계의 훈련을 시작하던 날, 소년들은 모두 검은 도복을 입도록 지시를 받았다. 사범은 끝에 백묵 가루를 묻힌 봉을 가지고 있었는데, 제자들은 사범이 그 봉을 휘두르거나 찌를 때 그것을 피해야 했다. 그러나 사범은 봉술에 통달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범의 봉을 피하기는 대단히 어려웠다. 사이훙은 열심히 노력해서 그의 옷에는 백묵 자국이 두 군데만 묻었다.
그들은 콩을 넣은 주머니를 잡는 훈련도 받았다. 처음에는 몇 개의 주머니만 잡으면 되었다. 그러나 상황은 곧 당황스럽게 변했다. 그들은 여러 사범들이 한꺼번에 던지는 주머니들을 붙잡아야 했다. 그 혹독한 훈련은 콩주머니를 어떻게 붙잡아야 하는가 하는 규정이 첨가되자 훨씬 더 어려워졌다. 사이훙은 뒤에서 던지는 주머니들을 잡으라거나 다리 아래로 잡으라거나, 또는 두 손가락만으로 잡으라는 명령에 몹시 당황했다.
호신술은 신체를 강하게 하는 운동부터 시작되었다. 108나한은 거칠고 힘든 운동이었다. 그것은 속도와 근력을 이용하여 먼 거리의 목표물을 공격하는 발차기, 그리고 날카로운 후려치기 같은 것들로 구성되었다. 사범들은 제자들이 산적과 동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서, 혹은 육체적 훈련으로서의 무술을 익히기 위해서 튼튼한 기초를 다질 수 있기를 바랐다.
호신술은 커다란 환약을 붙잡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사이훙은 환약을 붙잡기 위해 빙빙 돌다가 어지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자주 쓰러졌다. 하지만 이내 사이훙은 이 새로운 단계도 익숙하게 해냈다. 다음엔 막기 단계로 넘어갔다. 사이훙은 날아오는 환약을 붙잡지 않고 이마, 어깨, 등, 다리, 그리고 배로 막아냈다. 다음 단계는 자세와 보법 학습이었다. 중국의 모든 무술은 자세에 입각해서 만들어진 것들이므로 많은 종류의 세련된 보법들이 개발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기마세였는데, 두 발을 벌려서 말을 타듯 몸을 낮추고 양 허벅지를 활모양으로 만들어 서는 자세였다. 무술가의 재능은 기마세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리의 힘을 키우기 위해 물살이 매우 센 강물속에 들어가서 사이훙은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를 강의 상류 쪽으로 번갈아 놓으면서 기마세를 포함하여 궁세, 학세등의 여러 가지 자세를 연습했다. 하지만 호신술은 실제로 상대가 있어야만 익힐 수 있는 것이었다.
"너는 이미 대표적인 기법들을 보여 주는 권법형 들을 모두 배웠다. 그러나 호신술은 홀로 연습하는 것이 아니다. 먼저 그 기법들을 완전히 익힐 때까지 반드시 약속된 동작들로 구성된 약속 대련과 자유 대련을 수련하면서 실력을 완전히 양성해 나가야 한다. 권법형의 이론적 근거를 이해해야만 그 권법을 계속 배워 나갈 수 있다. 그리고 나면 완성 단계는 쉽게 온다. 어떤 권법들은 인간의 움직임에 입각한 것들이고 또 어떤 것들은 동물들의 움직임에 근거한다. 108나한은 이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신체 움직임에 따라 만들어진 권법에 익숙해질 때까지는 동물들의 모양을 본뜬 상형 권법을 연습하지 말아라. 상대와 더불어 익히는 호신술이 바로 무술의 시작이니라."
호신술에 대해 사범은 이렇게 말했었다. 호신술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 사이훙은 그때까지 배웠던 모든 것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이미 얻은 힘과 평형감각에 의해 사이훙은 막기, 치기, 차기 등의 기법과 공격과 방어 동작을 쉽게 익힐 수 있었다. 사이훙이 처음부터 무술을 완벽하게 갈고 닦을 수 있었던 것은 초창기 훈련에서 닦았던 튼튼한 힘과 기초 덕택이었다.
눈물겹고도 고된 네 단계를 거치고 맞은 마지막 단계는 사이훙을 몹시 흥분시켰다. 마지막 단계에서 그는 독특한 형식을 갖추고 있는 권법형과 기법들을 배웠다. 이 권법들은 반복해서 똑같은 형식을 되풀이해 연습하는 것이었다. 묵직한 주먹을 뻗는 장중한 나한 권법에서부터 오행장법과 같이 손바닥으로 후려치는 권법도 있었다. 대부분은 나포술이라든가 손바닥으로 후려치기, 똑바로 내지르기, 위로 올려치기, 팔꿈치 공격, 발차기 등의 여러 가지 공격법을 포함하는 것들이었다.
하나의 권법형에는 여러 가지 자세가 들어있었는데, 어떤 것은 천 가지 동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권법형은 공격과 방어의 기본들을 가르치면서 정력과 내기를 양성시켜 건강을 증진시켜 주었다. 사이훙은 정확한 힘으로 시간을 조절하면서 낱낱의 격한 동작들을 계속 이어 나가 마치 돌개바람처럼 보였다. 그는 마지막 시험을 통과하면서 스스로 훈련 과목을 잘 마쳤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그는 전 과정을 마쳤다는 사실에 긍지를 느꼈다. 졸업하는 날 사이훙은 사범들의 평가를 듣기 위해서 앞으로 나갔다.
"괜찮은 편이야."
그것이 사범들의 평가였다. 그들은 수련생들을 끝까지 밀어붙이려 했다. 칭찬이나 찬사는 아직 해줄 때가 아니었다. 사부님과의 대화에서 사이훙은 어릴 때 열심히 육체를 단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뼈와 근육이 아직 부드럽고 유연하기 때문이다. 육체의 외형을 이상적으로 만들고 그렇게 형성된 골격을 평생토록 유지하기에 가장 적당한 때가 바로 유년기였던 것이다. 오장육부를 튼튼하게 만드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다. 도관 사람들은 채식을 주로 했는데, 식물성 음식은 사이훙의 기질을 조용하고 청결하게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채식만으로는 고된 육체적 훈련을 견뎌내기에 충분치 못했다. 사이훙은 매일 약초를 달여 만든 차를 마셨는데, 그 차는 양생을 돕고 운동을 보강시켜 주었다.
이러한 보약들은 산에서 채취된 것들로서, 풍부한 비타민과 영양분을 공급하여 신체의 특정 부분을 집중적으로 강화시켜 주었다. 도관의 사부님들은 사이훙의 신체에서 어느 부분이 강화되어야 하는가를 판단해서 그의 신체적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적절한 약들을 처방해 주었다. 도교의 의약학은 치료 목적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양생을 위해서 연구된 것이기도 했다. 먼저 그들은 신체를 강화시키고 다음에 신체를 최적의 상태로 만들 수 있도록 정화시켰다.
계절약초로 만든 보약을 외금단이라고 불렀는데, 이 약은 사이훙의 신체를 잘 조절해 주었다. 이것은 우주의 흐름과 더불어 조화를 이루며 사는 도교 철학의 실용체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특히 내부 기관인 오장에 손상을 준다는 것이었다. 신체는 지난 계절에 쌓인 독소를 제거하여 청결히 함으로써 다음에 닥쳐올 계절을 준비해야 했다. 불행하게도, 도교의 의약학 이론과 철학은 아직 사이훙의 구미에 맞지 않았다. 뜨겁기만 한 탕약은 시커먼 데다 때로 참을 수 없을 만큼 맛이 썼다. 사이훙은 보약을 먹으면 언제나 더 강해지고 힘이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보약의 맛이 싫었고, 보약을 먹을 때마다 매번 사부님께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때마다 사부님은 사이훙을 타이르셨다.
"이 약들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 보약들은 너의 육체를 변화시켜 줄 것이다. 네가 훈련을 다 마치면 너는 보통 사람의 육체와는 다르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제가 이 약을 먹어야 하나요?"
"물론 먹어야지!"
사부님은 웃었다. 그는 사이훙에게 허리를 굽혀 말했다.
"사이훙, 옛날에 도인들은 딱딱한 음식을 전혀 먹지 않았단다. 그들은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을 만큼 몸을 가볍게 만들려고 했기 때문에 약초만을 먹었단다."
사이훙은 신선이 되기 위해서 평생토록 쓴 약을 먹어야만 한다는 말인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그 약들의 효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때로 사부님은 사이훙이 시험에 합격할 수 있도록 정신을 맑게 해주는 보신비약을 지어주셨고 사이훙은 그것들을 즐겁게 먹었다. 비록 장생불사를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사이훙은 그 약들이 대단한 가치를 지닌 것은 틀림없다고 믿었다. 108나한의 수련과 탕약들은 기공이 향상되도록 도와주었다. 기공은 신체의 생명력을 순환시켜 기를 증강시켜 주었으며, 백회혈을 개통하는 개정대법의 행공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사부님은 기에 대해 말씀하셨다.
"우주가 시작되던 태초에는 오로지 순수한 생명력인 기만이 있었단다. 기는 응결되어 금, 목, 수, 화, 토(쇠, 나무, 물, 불, 흙)의 오행이 되었으며, 오행은 다시 음과 양으로 합해졌다. 음과 양은 인간의 성품을 만들어내었으며, 음양은 다시 합쳐져서 궁극적인 것, 즉 태극이 되었다. 태극은 무극이 되었으며, 무극은 그야말로 무였다. 그리고 무는 고요함이 되었다. 그다음에 모든 과정은 다시 반복되어 다시 시작이 있게 되었다. 이렇듯 우주는 항상 팽창과 수축을 거듭해 왔다. 우리 인간은 작은 우주다. 우리는 이러한 우주의 과정을 기공으로써 다시 만들어낸다. 먼저 너의 정은 태양신경총으로 모여, 호흡을 통해 들어온 우주의 기와 하나가 되어 몸 속에 머무르는 기가 된다. 그 기는 배꼽 아래에 있는 단전으로 내려가서 음과 양으로 나뉜다. 음과 양은 정신이 모이는 곳인 세 번째 눈으로 올라오는데, 그 세 번째 눈은 너의 미간에 있다. 그리하여 그 음과 양은 인간에게 궁극적이고 신령스러운 정신이 되며 정신은 상승하여 무가 된다.
우리는 도교에 몸담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도는 어디에서 시작한단 말이냐? 우리는 가까운 곳에서든 먼 곳에서든 도를 찾을 필요가 없다. 도는 몸 밖의 다른 어떤 곳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는 바로 여기, 태양신경총에서부터 시작한다. 도는 곧 한 인간의 생명과 우주의 보편적인 기가 만나 하나가 되면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니 너는 반드시 기를 양성해야만 한다. 그 살아 있는 기의 끝없는 흐름과 축적을 확실히 믿고 행해야 한다. 너는 기가 너의 몸을 가득 채운다는 사실을 느끼게 될 것이다. 너는 온 우주를 마셔 버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난 다음에는 기를 이끄는 행기법을 수련해야 한다. 기는 보편적인 정수이다. 기는 너의 몸을 강하게 만들어 주며 병든 곳을 고쳐줄 것이다. 여러 가지 행기법의 자세들은 기를 순환시켜주므로 어떤 곳도 기가 부족하거나 도달하지 못해 끊기는 일이 없을 것이다.
셋째로, 너는 반드시 모든 혈들을 개통시켜야만 한다. 우주의 기는 막힘 없이 흐른다. 인간의 에너지는 반드시 그 우주의 기와 똑같이 흘러야만 한다. 원래 인간의 몸에 에너지가 흐르는 통로들은 완전히 열려 있었다. 인간은 날아다닐 수도 있었고,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으며, 영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잘못 사용했다.
신은 벌로 인간의 몸에 세 개의 문을 만들어 놓았는데, 우리는 이것을 삼관이라고 부른다. 이 문들은 척추의 꼬리뼈에 있는 미려혈과 견갑골, 그리고 해골의 기저부에 있는데, 기의 흐름을 제한하며 인간의 잠재력이 개발되는 것을 막는다. 너는 온몸의 혈도를 열기전에 반드시 기공을 수련해서 이 문들을 깨뜨려야만 한다. 그래야만 너는 충분한 에너지를 받아들여서 신령스러운 세계로 들어갈 수가 있게 된다.
사이훙과 그의 동문 사형제들은 기공 사범이 거처하고 있는 도관으로 파견되었다. 기공 사범은 각각의 자세들이 가진 이론적 근거를 설명한 뒤에 시범을 보여 주었다. 사이훙은 일주일에 하나씩 자세를 배워 108개의 자세를 모두 익혔다. 기공은 그의 폐활량을 증대시켜 주었다. 사부님이 말씀하셨듯이 그는 정문을 열어 삼관을 깨뜨려 나갔다. 2년간 의 수련 뒤에 기공 사범은 각각의 수련생들에게 일생토록 신체를 유지할 수 있는 10개의 자세들을 가르쳐 주었다.
기공은 허리에 큰 띠를 두르고 시작해야 했는데,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허리띠는 열세 번 계속 숨을 들이쉰 뒤에 한 번 숨을 내쉬는 열장흡열법을 수련할 때, 단전 부위의 점점 커지는 엄청난 압력으로부터 오장을 보호하는 기능을 했다.
또한 허리띠는 목구멍에서 단전으로 내려가는 기도인 임맥을 여는 것을 도와주었다. 임맥을 열지 못하면 기공은 결코 성공할 수 없었다. 보통 기는 혈액의 흐름과 오장을 따라 아래쪽으로 지그재그 모양으로 움직이며 내려갔다. 허리띠는 기가 항문으로 가라앉지 않도록 하면서 하단전으로 내려가도록 밀어주는 작용을 했다. 단전까지 기를 밀어 넣는 호흡을 해야 미려골까지 기를 연결시키고 척수로 기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끝으로, 허리띠는 몸을 움직이면서 동공을 수련할 때, 기를 사지에 운행해서 흐트러뜨리는 산기행공법을 보조해주었다.
태양 신경총에서 기가 생성될 때 띠의 압력은 기를 극한 상태로 밀어내는 일을 도와주었다. 첫 번째 자세는 신체 중앙의 임맥을 개통시키는 행공법이었는데, 사이훙은 두 손으로 하단전 부위를 누르면서 턱을 가슴까지 당기는 비둘기발 자세를 배웠다.
"이 자세에 주목하거라. 여기에는 중요한 원리들이 내포되어 있다. 먼저 삼관을 주의하거라. 머리와 가슴과 손과 발, 그리고 발가락을 끌어당겨서 꼭 오므리고 힘이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봉쇄한다. 어깨를 둥글게 하고 척추를 곧추세우고 가슴을 동요시키지 말아라. 이것은 가슴을 비우고 기를 단전으로 가라앉히는 방법이다. 기를 삼켜라. 그리고 혀를 가볍게 차서 기도의 압력을 풀어라. 2년 정도 수련하면, 기가 곧바로 단전까지 내려가게 된다. 이 수련 뒤에는 신체적으로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기를 삼킬 때 개통된 임맥을 따라 뱃속에서 기가 구르는 소리가 들리고, 진짜 임맥이 피부 위에 푸른 선으로 나타나게 된다.
기공에서는 다른 모든 도교의 수행법들과 마찬가지로 분명한 징조를 찾아야 한다. 기공을 수련할 때에는 반드시 온몸에 열기를 느끼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에너지인 것이다. 예를 들어서 그 에너지가 삔 손목 같은 곳으로 옮겨가면 너는 열기와 진동을 느끼면서 기가 그 부분에 집중되는 것을 느낄 것이다. 만약 이러한 징후를 느끼지 못한다면 수련을 잘못하고 있는 것이고, 기공 수련의 효과를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몸을 다치게 된다.
기공 사부의 가르침을 따라 기공을 수련하는 사람은 상처를 받지 않도록 극히 주의해야만 한다. 수련을 잘못하게 되면, 가슴에 통증을 느끼게 되고 속이 메스꺼워져서 구토증이 나거나 어지럼증이 생기고 내출혈을 하게 된다. 자세를 조심해서 똑바로 하도록 해라. 숨을 깊이 들이쉬고 에너지를 잘 이끌도록 정신을 집중해라."
사이훙은 기공 사부의 가르침을 따라 각각의 자세를 배운 뒤에 기를 중화시키는 행공법을 수련했다. 행공법은 기공 사부가 경고한 상처를 받지 않도록 해주는 것으로, 기가 지나치게 강력해지는 것을 막아주었다. 수련생은 많은 양의 기를 흡입했는데 그렇게 쌓은 기는 몸속에 괴어 있지 않고 배출되어야 한다. 그 방법은 강하게 숨을 내뿜고 난 뒤에 어깨를 굴려 폐 속에 생긴 기포들을 풀어버리고 다시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가 마지막으로 내뿜는 것이었다.
단전으로 기를 삼켜 내려보낸 뒤에 중화시키는 것은 각 자세의 시작과 끝에 이루어졌는데, 자세들은 광범위한 목적을 위해 조합되어 있었다. 그것들의 이름은 듣기만 해도 바로 뜻을 알 수 있는 것들로, 기를 모으는 자세, 독소를 제거하는 자세, 기를 피부로 운행하는 자세, 기를 사지로 보내는 자세, 기를 심장에 모으는 자세, 기를 폐로 보내는 자세, 그리고 기를 횡격막으로 보내는 자세가 있었다. 오장과 육부를 조화시키는 자세도 있었고, 또 기를 배꼽으로 보내서 신체를 청결하게 하는 자세도 있었다. 또 어떤 자세는 12경락과 연결되는 기경팔맥을 개통시키는 자세였다. 이렇게 해서 전체의 자세는 108개가 있었는데 모두가 필수적인 것들이었다.
수련생들이 앓고 있던 모든 질병은 2년간의 수련으로 치료되었다. 기공 사범은 행공 자세들이 많은 고질병들을 낫게 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전립선으로 기를 보내는 행공은 전립선염을 예방하거나 완화시켜 줄 수 있었다.
개 걸음 모양의 구보법은 허리로 혈액을 보내 주어서 결장암을 막아주었으며, 기를 골수로 보내는 행공은 루머티즘을 완화시켜 주었다. 머리로 기를 보내는 행공은 신경계의 이상과 신경쇠약을 치료해주었으며, 기억력을 증진시켰다.
기공과 약초로 만든 외금단과 108나한은 육체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 모두에 걸쳐 효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들은 정신과 육체를 결합시켜 주었으며, 사이훙의 인격이 완전한 전체성을 성취하여 더 높은 단계에 이르도록 고양시켜 주었다.
사이훙은 자신이 변한 것을 느끼고 있었다. 사이훙은 이제 보통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건강한 신체를 뛰어넘어 자기 자신이 감탄할 정도로 완벽한 신체를 가지게 되었다. 이제 그는 도교에서 말하는 건강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오장을 지구와 연결시키고 모든 경락을 별들의 운행에 맞춰 움직이게 하며, 모든 신체의 동작을 태양계의 행성들처럼 운행시키는 것이었다. 그의 신체는 청결해졌으며, 그의 마음은 상쾌해졌으니, 사이훙은 진정한 육체와 정신의 조화를 얻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