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테의 수기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 Rilke)
9월 11일 톨리에 거리에서
그래, 그러니까 사람들은 살기 위해 이리로 온다. 나는 오히려 여기에서 죽어 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말이다. 밖으로 나가 보았다. 그리고 한 사람이 비틀거리며 넘어지는 게 보였다. 사람들이 그 주위에 모여들었고, 덕분에 나머지 일들은 보지 않아도 되었다. 임산부 하나를 보았다. 그녀는 높고 따스한 담가를 따라 무겁게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담이 없어지지 않았나 확인이라도 하는 양 자꾸 더듬어 보곤 했다. 물론 담장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담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지도를 꺼내 찾아보았다. 시립 산부인과 병원이었다. 그렇다. 그 여자는 해산을 하러 가는 길인 모양이다.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걸어가니 생 자크 거리가 나왔는데, 둥근 지붕의 큰 건물이 있었다. 지도에는 발 드 그라스 육군 병원이라 되어 있었다. 원래 이것까지 알 필요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쁠 것도 없다. 골목길을 들어서니 사방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그 복합적인 냄새 중에서도 유난히 요오드포름 냄새와 감자튀김의 기름 냄새, 불안의 냄새가 강렬히 풍겨 왔다. 어느 도시든지 여름이면 냄새가 나게 마련이다. 그리고는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도 않을 것 같은 집을 한 채 보았다.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집이었지만 문 위에는 상당히 또렷한 글씨로 "간이 숙박소"라고 씌어 있었다. 출입구 옆에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그것을 읽어보았는데, 그리 비싸지는 않았다.
그밖에는 무엇이 있었던가? 멈춰 서 있는 유모차 안에 한 아이가 있었다. 그 애는 통통하고 푸른 빛이 돌았으며 이마에는 종기 자국이 선명했다. 종기는 다 나아서 그것 때문에 아프지는 않은 것 같았다. 아이는 잠들어 있었고, 입을 벌린 채 요오드포름과 감자튀김을 불안을 들이마시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살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중요했다.
창문을 열어 놓고 자는 것은 도저히 고칠 수 없는 나의 잠버릇이다. 전차는 내 방을 지나 빵빵거리며 질주한다. 자동차가 내 위로 지나간다. 문이 닫힌다. 어디선가 유리창이 떨어져 깨지는 소리가 나고, 나는 커다란 조각들이 웃는 소리와 작은 파편들이 킥킥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자 갑자기 다른 쪽에서, 그러니까 집안에서 둔탁하고 갇힌 듯한 소음이 들려온다.
누군가 계단을 올라온다. 오고 있다. 쉬지 않고 오고 있다. 거기 있다. 거기에 한참 서 있다. 마침내 지나간다. 그리고 다시 거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한 소녀가 날카롭게 소리를 지른다. "입 닥쳐. 듣기 싫어." 전차가 몹시 흥분해서 달려오고, 저 너머로, 모든 것 너머로 달려가 버린다. 누군가 소리를 지른다. 행여 질세라 사람들이 앞 다투어 달려간다. 개가 짖는다. 개라는 동물은 얼마나 큰 위안을 주는지 모른다. 아침 무렵에 어디선가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 그것을 듣는 것은 한없이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러다 갑자기 잠이 들었다.
이것은 소음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더 무서운 것이 있다. 그것은 침묵이다. 큰 불이 나면 자주 극도로 긴장된 순간이 들어선다. 분수처럼 치솟던 물줄기가 약해지고, 소방관들이 더 이상 사닥다리 위로 기어 올라가지 않고, 누구도 움직이지 않는 순간이 있다. 소리도 없이 시커먼 돌림띠가 밀려 올라가고, 사정없이 솟구치는 불길을 뒤로하고 높은 담이 소리도 없이 기울어진다. 모든 것이 정지하고, 어깨를 움츠리고 이맛살을 찌푸린 채로, 끔찍한 일격을 기다린다. 여기서의 침묵도 그런 것이다.
나는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는 모르겠다. 모든 것이 내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오고, 여는 때 같으면 늘상 사라졌던 곳에서 그치지를 않는다.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내면이 내게 있는 것이다. 이제는 모든 것이 그곳으로 향한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다.
오늘 편지를 한 장 썼다. 그러면서 문득 여기 머무른 지 3주가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곳에서였더라면, 가령 시골에서의 3주라면 하루와 같을 수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몇 해가 흐른 것 같다. 더 이상 편지 따위는 쓰지 말아야겠다. 내가 변해 가고 있음을 누군가에게 말해 무엇 하겠는가? 만약 내가 변해 가고 있다면 당연히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니다. 그리고 만약 내가 지금까지의 나와 다른 그 무엇이라면, 당연히 아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 그러니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말해 낯선 사람들에게 편지를 쓸 수는 없는 일이다.
이미 말했던가? 나는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그렇다, 이제 시작했다. 아직은 잘 안 된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을 잘 이용할 작정이다. 예컨대 얼굴 수가 몇인지 의식해 본 적이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얼굴 수는 그것보다 훨씬 더 많다. 모두들 여러 개의 얼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한 얼굴을 몇 년 동안이나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당연히 얼굴은 망가지고, 더럽혀지고, 주름지며, 여행 중에 끼었던 장갑처럼 늘어난다. 그런 사람들은 검소하고 소박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누가 그렇지 않다고 증명할 수 있겠는가?
이제 문제가 되는 것은, 여러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그 나머지 다른 얼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잘 보관한다. 그들의 아이들이 그것을 달고 다녀야만 한다. 그렇지만 그들이 기르는 개가 그것을 달고 나가지 말라는 법도 없다. 안 될 것도 없지 않는가? 얼굴은 얼굴일 뿐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섬뜩할 정도로 재빨리 하나씩 하나씩 얼굴을 만들어 내고, 갈아 치운다. 처음에는 영원히 그럴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마흔 살도 채 안 돼서 이미 마지막 얼굴이 나오게 된다. 물론 그것은 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경우이다. 그들은 얼굴을 아끼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 마지막 얼굴은 일주일 만에 해지고 군데군데가 종잇장처럼 얇아진다. 그러고는 조금씩 조금씩 밑바닥이 드러나서 얼굴이라 할 수도 없을 지경에 이른다. 결국 그들은 그 모양을 하고 돌아다니게 된다.
그러나 그 여자, 바로 그 여자는 두 손에다 얼굴을 파묻은 채 아주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노트르담 샹 거리의 모퉁이에서였다. 나는 그 여자를 보자마자 발소리를 죽여 조용히 걷기 시작했다. 가엾은 사람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는 방해하지 않는 법이다. 그들에게 어떤 생각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거리는 텅 비어 있었고, 그 텅 빈 거리는 따분해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발걸음을 제대로 뗄 수도 없었다. 나막신이라도 신은 것처럼 걸을 때마다 사방에서 따각따각하는 소리가 울렸다. 여자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너무나 재빠르고 격렬하게 일어났지만 두 손은 여전히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 속에서 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얼굴의 텅 빈 형식이었다. 이 여자의 손만 보고 그 손 틈으로 드러난 갈갈이 찢겨 있는 얼굴을 보지 않기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 손 안에 있는 얼굴을 보는 것도 끔찍했지만, 상처를 입고 드러난 얼굴 없는 머리는 훨씬 더 무서웠다.
무섭다. 일단 무섬증을 느끼면, 이에 대항해서 뭐라도 해야만 한다. 여기서 병이 나는 것은 매우 추한 일이 될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시립 병원으로 옮겨 버린다면, 틀림없이 나는 거기서 죽을 것이다. 그 병원은 쾌적한 병원이고, 환자도 엄청나게 많다. 여기에서는 파리 성당의 전면을 제대로 살펴볼 수도 없을 지경이다. 텅 빈 운동장을 가로질러 그 안까지 전속력으로 달려왔을 게 뻔한 자동차에 치일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소형 마차들은 계속 경적을 울린다. 아무리 별 볼 일 없는 환자일지라도 이 빌어먹을 병원으로 똑바로 가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사강 공작의 마차라도 멈추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죽어 가는 사람들은 완고하게 마련이어서, 마르틸 가의 고물상 르그랑의 마누라가 이곳으로 실려 올 경우라도 파리 시 전체의 교통을 차단시킬 수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지독한 소형 마차들에게는 가장 숭고한 죽음의 고통이 그 너머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상상할 수 있는 매우 자극적인 반투명 유리창이 끼워져 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수위의 상상력 정도면 충분하다. 상상력이 더 풍부해서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간다면 곧 그러한 추측은 한도 끝도 없이 늘어난다. 그러나 덮개 없는 합승 마차와 정상 요금에 따라 운행되는, 덮개를 열어젖힌 시간제 전세 마차가 오는 것도 보였다. 임종의 시간을 맞는 데에 2프랑이 드는 것이다.
이 유명한 병원은 무척 오래 되어서, 클로비스 시대에도 이미 그 병원 안에 있는 몇 개의 침대에서 죽어 간 환자들이 있었다. 오늘날에는 559개의 침대에서 사람들이 죽어 간다. 물론 대량 생산 방식이다. 이토록 어마어마한 대량생산인 탓에 각각의 죽음이 썩 훌륭하게 치러지지는 않지만,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워낙 많이 죽어 나가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훌륭하게 완성된 죽음을 위해 뭔가를 하려는 사람이 없다. 심지어는 풍족하게 죽음을 치러 낼 수 있을 법한 부자들조차 나태하고 냉담해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독자적인 방식으로 죽고자 하는 소망은 점점 드물어진다. 얼마 안 있으면, 독자적인 삶만큼이나 드물어질 것이다.
맙소사, 그것이 전부이다. 세상에 태어나서는, 이미 모든 것이 만들어져 있어 그저 사서 입기만 하면 되는 기성품 같은 삶을 산다. 그리고 이내 사람은 세상을 떠나고 싶어 하거나 혹은 떠나도록 강요를 받게 된다. 이제 죽음을 위한 아무런 수고도 필요 없다. "선생, 이것이 당신의 죽음이오." 그러면 사람은 세상에 태어난 것과 같이 덧없이 죽는다. 그리하여 사람이 갖고 있는 질병의 일부인 죽음에 이른다.(왜냐하면 사람들이 모든 질병을 알게 된 이후, 여러 치명적인 결말이 질병에 속하는 것이지 사람에게 속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함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병자는 속수무책인 셈이다)
의사와 간호사에게 깊이 감사하면서 기꺼이 죽어 가는 요양소에서는 그 시설에 알맞은 죽음이 있을 뿐이다. 기꺼이 봐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집에서 죽을 경우에는 당연히 훌륭한 계층에 어울리는 점잖은 죽음을 선택하게 마련이다. 그러면 상류 계급의 장례가 시작되는 것과 동시에 그들의 놀랄 만한 관습들 전체가 잇따라 나온다. 이때 가난한 사람들은 그 집 앞에 서서 실컷 구경한다. 가난한 자들의 죽음은 진부하고 별반 격식도 없다. 그들은 대충 들어맞는 죽음이면 만족한다. 그것은 조금 헐거워도 괜찮다. 가람들은 여전히 조금씩 자라나고 있으니까. 앞여밈이 채워지지 않을 정도로 꽉 죄거나 숨이 막힐 정도로 목이 죄일 때에만 문제가 된다.
이제 더 이상 아는 사람도 없는 고향을 생각해 보면, 이전에는 사정이 달랐던 게 틀림없다. 예전에는 열매 속에 씨가 들어 있듯이, 죽음 또한 자신들 속에 내재한다고 믿었다(혹은 그렇게 예감했다). 아이들은 조그마한 죽음을, 어른들은 커다란 죽음을 갖고 있었다. 여자들은 뱃속에, 남자들은 가슴 속에 죽음을 담아 두었다. 사람들은 죽음을 갖고 있었고, 그것은 누구에게나 독특한 품위와 조용한 자부심을 가져다주었다. 늙은 시종관이었던 나의 할아버지 브리게도 당신 안에 죽음을 담아 두고 계셨다는 것을 나는 알아챌 수 있었다. 그 죽음은 얼마나 대단했는지 모른다. 그것은 두 달 동안 계속되었고 앞채에까지 들릴 정도로 요란했다.
오래 되고 길쭉하게 생긴 귀족의 저택은 이 죽음을 치르기에는 너무 비좁았다. 할아버지의 몸이 점점 불어났기 때문에 곁방을 더 지어야 할 것처럼 보였다.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다른 방으로 옮겨 다니고 싶어 하셨고, 그날이 채 저물기도 전에 더 이상 가서 누울 방이 남아 있지 않으면 격노하시곤 했다. 그러면 하인과 하녀, 그리고 늘 할아버지 곁에 두셨던 개들이 모두 줄지어 계단을 올라, 집사가 앞장선 가운데 증조할머니께서 임종하셨던 방으로 갔다. 그 방은 23년 전 증조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이래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여는 때 같으면 그 누구도 들어가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 많은 사람들이 비집고 들어와 있었다.
커튼이 걷혀지자, 한 여름 오후의 강렬한 햇살이 겁먹고 깜짝 놀란 모든 물건들을 하나하나 비추었고 천이 걷혀진 거울에 반사되었다. 사람들도 햇살과 다름없었다. 호기심에 가득 찬 하녀들은 어디부터 먼저 손을 대야 할지 몰라 했다. 젊은 하인들은 모든 것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늙은 하인들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지금 들어와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리게 된 이 폐쇄된 방에 관해 들었던 모든 기억을 되살리려고 애썼다. 그러나 다른 누구보다도 모든 물건에서 야릇한 냄새가 나는 이 공간에 들어오게 된 개들이 굉장히 흥분한 것 같았다. 몸집이 크고 길쭉하게 생긴 러시아산 사냥개들은 안락의자 뒤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춤이라도 추는 듯 흔들거리며 방을 가로질러 갔다. 그러다가는 문장에 새겨진 개들 마냥 일어서서 가느다란 앞발을 백금으로 된 문틀에 기댄 채, 바짝 긴장하여 날카롭게 보이는 얼굴에 이맛살을 찌푸리며 마당 이쪽저쪽을 내려다보기도 했다. 누런 장갑을 끼고 있는 듯한 털을 가진 몸집이 작은 닥스훈트는 마치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져 만족스러운 듯한 얼굴로 창가에 있는 넓은 비단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 붉은 빛이 도는 털을 가지고, 불만스러워 하는 듯이 보이는 포인터 종 사냥개는 금빛 책상다리의 모서리에다 등을 문질렀다. 그 바람에 세브르 산 접시가 그림이 그려져 있는 책상 위에서 달가닥거렸다.
물론 영혼도 없고 졸음에 취한 듯한 이 방의 물건들에게는 끔찍한 시간이었다. 심지어는 누군가의 성급한 손에 의해 난폭하게 펼쳐진 책갈피에서 장미 꽃잎이 흩날려 짓밟히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람들은 작고 연약한 것들을 잡아서 망가뜨리고는 얼른 그것을 제자리에 놓았다. 모양이 망가진 많은 것들을 커튼 아래에 숨기거나 난로 앞 금빛 격자망 뒤에다 던지기까지 했다. 때때로 무엇인가가 양탄자 위에 떨어져 감춰지기도 했고, 딱딱한 쪽마루 위로 요란스레 떨어지기도 했다. 너무나 사치스런 이 물건들은 결코 참아 내는 법을 몰랐으므로 여기저기 부서지고 날카롭게 흩어지거나 거의 소리도 없이 깨졌다.
만약 누군가가 이 모든 사건들의 원인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불안하게 지켜 온 이 방을 내려다보며 모든 충만된 몰락을 부르짖고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묻는다면, 그 대답은 단 하나 "죽음"일 것이다. 바로 울스가르 마을의 크리스토프 데틀레프 브리게 시종관의 죽음이었다. 검푸른 제복 위로 팅팅 부풀어 오른 할아버지는 바닥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알아볼 수 없게 된 낯선 얼굴에 눈이 감겨져 있었다. 그러므로 할아버지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지 않아도 되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침대로 옮기려고 했다. 하지만 병세가 악화되었던 그 첫날 밤 이래로, 할아버지는 침대를 지독히 싫어해서 이를 완강히 버텼다. 게다가 준비된 침대는 할아버지에게 너무 작았다. 그래서 양탄자 위에 누일 수밖에 없었다. 땅바닥으로는 도통 내려가려 하시질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할아버지는 거기에 누워 계셨다. 이미 돌아가셨다고 여길 수도 있었다. 날이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개들은 하나 둘 문틈으로 빠져나갔다. 하지만 유독 불만스러운 듯한 얼굴에 털이 뻣뻣한 개만은 주인 곁에 앉아서 넓고 텁수룩한 앞발 하나를 크리스토프 데틀레프의 크고 회색빛이 도는 손위에 얹어 두고 있었다. 대부분의 하인들도 방보다 조금 더 밝은 흰 복도 바깥에 서 있었다. 그때까지 방안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방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크고 어두운 물체를 몰래 힐끔거렸다. 그들은 그것이 시들어 버린 물건 위에 덮어놓은 커다란 옷에 지나지 않기를 소망했다.
그러나 남은 게 있었다. 결코 시종관의 목소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7주전부터는 어느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게 된 목소리, 그 목소리가 남아 있었다. 이 목소리는 크리스토프 데틀레프의 목소리가 아니라 크리스토프 데틀레프가 지니고 있었던 죽음의 목소리였다. 크리스토프 데틀레프의 죽음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울스가르 마을에서 살고 있으면서 모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닥치는 대로 그들에게 요구했다. 다른 곳으로 옮겨 달라고 요구했고, 푸른 방을 요구했고, 작은 살롱을 요구했고, 홀을 요구했다. 개를 요구했고, 사람들에게 웃으라, 말하라, 놀아라, 조용하라고 요구했다. 모든 것을 동시에 요구하기도 했다. 친구를 만나게 해 달라고 요구했고, 스스로 죽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소리소리 질러 요구했다.
밤이 찾아오고, 극도로 피곤하여 밤새워 지키지 않을 하인들 중 몇 사람이 막 잠에 들려고 할 때면, 크리스토프 데틀리프의 죽음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신음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으르렁거려서, 처음에는 함께 짖었던 개들마저 급기야 입을 다물었다. 개들은 드러 누울 생각조차 못하고 그 길고 가느다란 떨리는 다리로 버티고 서서 두려워하고 있었다.
광활한 덴마크의 은빛 여름밤에 그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마을에 들려오면, 사람들은 폭풍우 치는 밤마다 으레 그랬듯이 일어나 옷을 입고 그 소리가 그칠 때까지 말없이 등불 주위에 모여 앉아 있었다. 해산일이 얼마 남지 않은 여인들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방으로 가서 철통같은 잠자리를 마련했다. 그렇지만 그 소리는 여전히 들렸다. 마치 여인들 자신의 몸속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그 여인들은 일어나기를 간청하여 희고 품이 넓은 옷을 입고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된 채 다른 사람들 틈에 끼여 앉았다. 때마침 새끼를 낳던 암소들은 절망적인 상태에 놓이게 되어 음메 소리도 내지 못했다. 달 수를 다 채우고서 새끼가 영 나오려고 하지 않자 사람들은 암소의 몸에서 죽은 새끼를 끄집어냈다.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들이 많아지자, 사람들은 피곤에 절어서 낮에도 제대로 일을 하지 못했다. 심지어 건초를 들여오는 일조차 잊어버렸다. 일요일이 되어 희고 평화로운 교회로 갈 때면, 그들은 더 이상 울스가르 마을에 주인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 드렸다. 그들은 이 주인이 너무나 끔찍했던 것이다. 그들 모두가 생각하고 기도 드렸던 것을 목사는 교단 위에서 큰소리로 설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역시 밤을 새웠고, 신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설교가 끝나면, 밤새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경쟁자를 가지게 된 종이 울렸다. 그렇지만 종이 아무리 힘차게 울린다 하더라도 그 경쟁자에게 대항할 수는 없었다. 물론 모두가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 젊은이는 시종관의 대저택으로 달려가 자신의 더러운 갈퀴로 나리를 쓰러뜨리는 꿈을 꾸기도 했다. 사람들은 너무나 격앙되어 있었기 때문에 모두들 그의 꿈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그가 그런 일을 할 만한 재목인가는 생각도 하지 않고 듣고 있었다.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그 지방 사람들은 시종관을 좋아했고 불쌍하게 여겼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가 이 젊은이처럼 느꼈고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가 이 젊은이처럼 느꼈고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사정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울스가르 마을에 살고 있었던 크리스토프 데틀레프의 죽음을 몰아낼 수는 없었다. 죽음은 10주 전에 왔었고 10주 동안 머물렀다. 그 동안 죽음은 이전의 크리스토프 데틀레프보다 더 강력하게 군림했다. 죽음은 항상 왕과 같은 존재였고, 그것은 끔찍한 왕으로 불려졌다.
그것은 수종증에 걸린 사람의 죽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종관이 평생 지니고 있었고 스스로 부양했던, 고약하고 호사스런 죽음이었다. 시종관 자신이 생전에 평온하게 누릴 수 없었던 오만과 욕심, 그리고 지배력이 이제 울스가르 마을에 자리를 잡고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 죽음 속에 들어가 있었다. 이런 식이 아니라 다른 식으로 죽어야 마땅하다고 하는 사람들을 브리게 시종관은 어떻게 여겼을까? 그는 힘들게 죽었다.
지금까지 내가 겪어 온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그들의 죽음도 할아버지의 죽음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들은 모두 자기만의 죽음을 가지고 있었다. 남자들은 무기 속에다 죽음을 지니고 있었다. 죽음은 마치 포로와 같았다. 여자들은 늙고 쪼그라들어, 무대와 같이 엄청나게 큰 침대에 누워 온 가족과 하인과 개가 지켜보는 가운데, 분별 있고 주인다운 품위를 지키며 숨을 거두었다. 무론 아이들은, 심지어 아주 어린 갓난아이들조차, 아이다운 죽음을 갖지 못했다. 아이들은 정신을 가다듬어 이미 자라온 자신과 앞으로 자라게 될 자신을 합해 놓은 듯 죽어 갔다.
임신 중인 여자가 서 있는 모습은 그녀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아름다움을 주는지 모른다. 가느다란 두 손을 자기도 모르게 올려놓은 커다란 몸집 속에는 두 개의 열매, 말하자면 아이와 죽음이 각각 들어 있다. 그녀의 텅 빈 얼굴에 빈틈없고 거의 생산적이기까지 한 웃음이 퍼져 나가는 것은 그녀가 이 두 가지 열매의 성장을 자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공포에 맞서서 무엇인가를 한 듯했다. 밤새 일어나 글을 쓰고 난 지금, 나는 울스가르 마을의 들판을 거쳐 먼 길을 달려온 것처럼 피곤하다. 더 이상 모든 것이 옛날 같지 않다고, 낯선 사람들이 유서 깊고 길쭉하게 생긴 시종관의 집에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긴 어렵다. 아마 지금도 지붕 아래 하얀 방에서는 하녀들이 잠을 잘 것이다. 저녁부터 아침까지 깊고 곤한 잠을 잘 것이다.
아는 사람도 없고 아는 바도 전혀 없다. 짐가방과 책가방을 달랑 들고 세상을 떠돈다. 원래 호기심이라고는 없다. 집도 없고 유산으로 물려받은 물건도 없고 개도 없다면, 삶이란 본래 어떤 것일까? 그렇지만 적어도 추억은 있을 테지. 그러면 누가 회상하는가? 추억 속에 유년시절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땅 속에 묻힌 것이나 다름없다. 아마도 사람들은 그 모든 것에 닿을 수 있기 위해서 나이를 먹는 게 틀림없다. 나이든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오늘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가을 아침이었다. 튈르리 공원으로 갔다. 동쪽을 향해 있는 모든 것은 햇빛을 받아 눈이 먼 듯했다. 햇살을 받은 것은 엷은 회색의 커튼과 같은 안개에 덮여 있었다. 희끄무레한 새벽 속에 서 있는 동상들이 아직 그 모습을 다 드러내지 않은 정원 가운데에서 햇살을 쬐고 있었다.
긴 꽃밭에는 온갖 꽃들이 잠에서 깨어나 깜짝 놀란 목소리로 "세상이 온통 붉잖아" 하고 말했다. 그때 샹젤리제로 나 있는 골목길을 돌아 키가 크고 비쩍 마른 남자가 한 명 나타났다. 그는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그것을 겨드랑이에 끼지 않고 걸음 앞쪽으로 짚어나갔다. 처음에는 가볍게 짚었으나 나중에는 때때로 힘을 주어 전령관의 지팡이 같이 소리가 커지기도 했다. 그는 기쁨의 웃음을 억누를 수 없었는지 지나치는 모든 것, 태양과 나무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의 걸음은 아이가 걷는 것처럼 흔들거렸지만, 옛날의 걸음걸이에 대한 회상에 듬뿍 젖어, 평소와 달리 가벼웠다.
저렇게 자그마한 달이 못하는 일이 없다니. 달 주변에 있는 세상 만물이 투명하고 경쾌하게 보이고 맑은 공기 속에서 세밀하지는 않지만 뚜렷하게 보이는 날이 있다. 바로 가까이 있는 것이 멀리 있는 듯한 색조를 띤다. 그것은 시야에서 사라지거나, 단지 보이기만 하고 손에 잡히지 않는다. 먼 곳과의 관계가 바뀐 것일까? 강, 다리, 길게 뻗은 거리, 아낌없이 확 트인 광장이 비단 위에 그려진 그림처럼 먼 곳에 놓여 있었다. 그럴 때면 퐁네프 거리에 서 있는 밝은 녹색의 자동차와 멈추지 않고 지나가는 어떤 붉은 물체와 어두운 진주빛 집들의 굴뚝에 덩그러니 붙어 있는 포스터가 얼마나 멋지게 보이는지 이루 말로 다 형용할 수가 없다. 모든 것이 간결해져서 마치 마네의 그림 속에 나타나는 얼굴처럼 똑바르고 밝은 몇 개의 선으로 그려져 있었다. 어떤 것도 모자라거나 넘치는 것이 없다.
강가의 고서점이 가게 문을 열고 있다. 산뜻한 노랑색 표지와 빛깔 바랜 누런색 표지의 책, 자주빛이 도는 갈색의 제본과 초록색 대형 화첩, 이 모든 것이 자발적으로 서로 어울려서 부족함이 없는 완전함을 만들어 낸다.
아래쪽 풍경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한 여자가 작은 손수레를 밀고 간다. 그 앞에는 오르간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뒤에는 아기 바구니가 비스듬히 놓여 있다. 그 속에서 모자를 쓴 갓난아이가 만족한 얼굴로 서서 앉으려 하지 않는다. 때때로 여자가 오르간을 친다. 그러면 어린 아이는 곧 바구니 속에서 발을 구르고, 초록색 여름 원피스를 입은 작은 소녀가 춤을 추며 창문 쪽을 향해 탬버린을 친다.
보는 법을 배우기로 한 지금, 무언가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내 나이 스물여덟, 이루어 놓은 일이 없다. 카르파치오에 관한 논문을 썼지만, 그것은 엉망이었다. 희곡 "결혼"은 애매한 수법을 사용하여 무언가 잘못된 것을 증명하려 했다. 그리고 시들. 아, 하지만 젊어서 쓴 시란 별 것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기다려야만 한다. 평생을 두고, 가능하면 오래 살면서 세상사의 의미와 달콤함을 주워 모아야 한다. 그런 후에라야 아마도 훌륭한 열 줄의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시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감정(그것을 예전에 족히 가졌었다)이 아니라 경험이기 때문이다.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서는 많은 도시를 보아야만 하고, 새들이 날아가는 것을 느껴야만 하고, 작은 꽃들이 아침이면 만들어 내는 몸짓들을 알아야만 한다. 낯선 지방의 길을 돌이켜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기대치 못한 만남과 오랜 시간 후에 맞게 될 이별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아직 해명되지 않은 어린 시절, 아이를 기쁘게 하고도 이해를 받지 못했을 때 마음 상했을 것이 틀림없는 부모님(그것은 다른 사람을 위한 기쁨이었다), 너무나 심각하고 중대하게 변화하면서 아주 이상하게 시작하는 어린 날의 질병, 쥐죽은 듯 조용한 방에서 보낸 날들, 바닷가에서의 아침, 바다의 일반적인 광경들, 숱한 바다들, 바스락거리며 별과 함께 높이 날아간 여행의 밤들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사랑의 밤에 대한 추억과 산고의 외침에 대한 기억과 산고를 치른 뒤 가볍고 하얗게 잠든 산모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죽어 가는 사람의 곁에도 있어야 할 것이고, 창문이 열려 있어 이따금 덜컹거리는 방에서 죽은 사람 옆에 앉아 밤을 지새운 적도 있어야 한다. 여러 가지 추억을 가졌다고 해서 충분한 것도 아니다. 추억이 많다면 잊을 수 있어야 하고 그 추억이 되살아올 때를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한다. 추억 자체는 아직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추억이 우리 마음속에서 피가 되고, 시선이 되고, 몸짓이 되어, 그 이름을 읽고 우리와 더 이상 나누어지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아주 드물게 추억의 한가운데에서 시의 첫 단어가 일어나 추억으로부터 빠져 나올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나의 모든 시는 이와 다른 방식으로 생겨났다. 그러므로 시라고도 할 수 없다. 희곡을 쓸 때도 얼마나 많은 실수를 했는지 모른다. 서로의 삶을 힘겹게 만드는 두 사람의 운명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 제삼자를 필요로 할 정도로, 나는 모방자이고 바보였단 말인가? 너무나도 쉽게 실패했다. 어떤 삶이나 문학에서도 나오지만, 결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이 제삼자라는 환영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틀림없이 이를 거부할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진작에 알았어야 했다.
제삼자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주의를 그 심오한 비밀로부터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항상 애쓰는 자연의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제삼자는 희곡의 진행을 가리고 있는 칸막이와 같다. 그것은 진짜 갈등이 소리 없는 침묵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소음이 된다. 사람들은 문제가 되는 두 사람에 관해 말하는 것이 지금까지 누구에게나 아주 힘든 일이었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제삼자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비현실적인 인물이기에 오히려 쉬운 과제였다. 작가라면 누구나 그런 인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들의 희곡 도입부에는 곧 제삼자에게로 가려는 성급함이 느껴진다. 작가들은 제삼자를 참을성 있게 기다리지 못한다. 제삼자가 나타나자마자 만사가 해결된다. 하지만 만약 제삼자의 등장이 지체되면 얼마나 지루해지는지. 제삼자 없이 순수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없다. 제삼자가 없으면 모든 것이 멈춰 서서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만약 계속해서 이렇게 정체되고 지체된다면 어떻게 될까?
희곡 작가 야 그리고 인생을 아는 관객 여러분, 어떻게 될까요? 여자들에게 인기 있는 이 난봉꾼이, 혹은 복제한 열쇠처럼 모든 부부 생활에 잘 맞는 이 불손한 젊은이가 사라져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가령 악마가 그를 데려갔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고 가정해 보자. 갑자기 극장에는 기교적인 공허감이 느껴지고, 사람들은 위험해진 구멍을 막듯이 극장에다 벽을 두르고, 나방들만이 특별석에서 나와 텅 빈 공간으로 비틀거리며 날아다닐 것이다. 작가들은 더 이상 고급 별장에서 즐기지 못할 것이다. 그들을 대신하여 먼 세상 어딘가에서, 과거에는 연극이 맡았던 유일무이한 짓을 추구하는 노력이 공공연히 있을 것이다.
여기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은 "제삼자"가 아니라, 바로 당사자인 두 사람이다. 그 두 사람에 관해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가 있을 법하지만, 두 사람이 괴로워하고 행동하며 서로를 도울 줄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별로 언급된 것이 없다.
그것은 우스운 일이다. 나는 작은 방에 앉아 있다. 스물 여덟 살이 되었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나, 브레게가 말이다. 나는 여기 앉아 있을 뿐 아무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생각하기 시작하고, 어느 잿빛 오후 파리의 한 오층 방에 앉아 이런 생각을 한다.
어떠한 사실도, 중요한 것도 보지 않고, 인식하지 않고, 말하지 않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사람들은 수천 년 동안 보고, 생각하고, 기록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보낸 세월이 버터 빵 한 쪽과 사과 하나를 먹는 휴식 시간처럼 몰락하게 내버려둘 수 있을까? 물론 그럴 수 있다.
세계사 전체가 오도되는 것이 가능할까? 우리가 항상 불확실한 대중에 관해 말해 왔기 때문에 과거는 잘못된 것이라는 가설이 가능할까? 또 중요한 인물에 대해 말해야 하는 데 그 사람이 이미 죽었고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다는 이유로, 주위에 있던 다른 잡다한 사람을 말해도 괜찮은 걸까? 물론 가능하다.
태어나기 전에 일어났던 것을 모두 체험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각각의 사람들에게 그들이 모든 조상들로부터 생성되었고 그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다른 것을 아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된다고 상기시키는 일이 가능할까? 물론 가능하다.
이 모든 인간들이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를 아주 정확하게 알 수 있을까? 그들에게 모든 현실은 무의미할 뿐이고, 그들의 삶은 빈 방의 시계처럼 그 어떤 것과도 연관되지 않고 진행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물론 가능한 일이다.
지금 살고 있는 소녀들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할 수 있을까? "부인들"과 "아이들", "소년들"을 말하면서, 이 말이 이미 오래 전부터 복수로 사용되지 않아 이제는 불가산 단수 명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예감하지 않을 수 있을까?(어떤 교육을 받았더라도 예감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그럴 수 있다.
"신"을 말하면서 그것을 어떤 공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두 명의 국민학생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한 아이가 칼을 하나 샀다. 옆에 있던 다른 아이도 같은 날 똑같은 칼을 하나 산다. 일주일이 지나서 두 아이는 각자의 칼을 서로에게 보여 준다. 그럴 경우 두 칼은 멀리서 볼 때에만 비슷했을 뿐, 서로 다른 손에서 서로 다르게 변했음이 밝혀진다(물론 한 아이의 어머니가 "네 손에 들어가면 남아나는 것이 없구나"라고 말할 것이다). 아, 그러면 신을 사용하지 않고 신을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일이고, 또한 그런 가능성의 징조가 단 하나만이라도 있다면 세상 만물의 주변에서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야만 할 것이다. 이런 불안한 생각을 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제까지 게을리 했던 일부터 곧바로 시작해야 한다. 비록 그 일에 가장 적합한 사람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그 일은 결코 다른 사람이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찮은 이방인에 지나지 않는 이 젊은 브리게는 오 층 방에 앉아서 밤낮없이 글을 써야 한다. 그가 글을 써야만 한다는 것, 그것이 종결점인 것이다.
그 당시 나는 열두 살, 아니면 기껏해야 열세 살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나를 우르네클로스터에 데려가셨다. 아버지가 무슨 이유로 외할아버지 댁을 찾았는지는 모르겠다. 두 사람은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고, 아버지 자신도 브라에 백작이 물러나 뒤늦게 머물렀던 이 옛 성에 한 번도 온 적이 없었다. 나는 그 이상한 집을 후에 다시는 보지 못했다. 그 집은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자 낯선 사람의 손으로 넘어갔다.
나의 유년기의 기억 속에서 다시 떠올려 본 대로라면 그 집은 더 이상 건물이 아니다. 그것은 내 마음속에서 분해되어 있다. 여기에 방이 하나 있는가 하면, 저기에 또 다른 방이 하나 있다. 이쪽에 복도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두 방을 연결시키지 않고 그 자체로, 하나의 조각으로 놓여 있다. 모든 것이 이런 식으로 내 마음속에 흩어져 있다. 숱한 방들, 엄청나게 형식적인 계단들, 어두컴컴한 곳을 혈관 속의 피처럼 사람들이 오르락내리락했던, 좁고 둥근 모양의 층계들. 탑의 방, 높게 매달린 발코니, 조그만 문을 밀고 나가면 예기치 않게 보게 되는 발코니, 이 모든 것이 여전히 내 마음속에 있었고 계속 존재할 것이다. 마치 이 집의 상이 끝없이 높은 곳으로부터 내 마음속으로 추락해 왔고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산산히 부서진 것처럼.
그러나 매일 오후 7시 경, 만찬 시간이면 모이곤 하던 저 홀만큼은 내 마음속에 온전히 보존되어 있는 것 같다. 낮에는 이 방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 방에 창이 있었는지, 혹시 있었다면 그것이 어느 쪽으로 나 있었는지 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족들이 그 방에 들어설 때면, 항상 검은 촛대에 촛불이 켜져 있었다. 그러면 사람들은 곧 시간을 잊게 되고 그 방 밖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을 잊어버렸다. 짐작컨대, 이 높고 둥근 모양의 방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막강했던 것 같다. 그 방의 어두운 천장과 한 번도 완전히 드러난 적이 없는 구석들은, 다른 대체물이라곤 있을 수 없는 하나의 상으로부터 방 안의 모든 상들을 빨아 당기는 듯했다. 사람들은 멍하니 거기에 앉아 있을 따름이었다. 의지도, 분별력도, 욕구도 없었고 저항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마치 빈 공간과도 같았다. 이 무화된 상황으로 인하여 나는 처음에 메스껍기까지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것은 일종의 멀미와 같은 것이었는데, 맞은편에 앉아 있었던 아버지의 무릎을 발로 건드려 보고서야 가라앉았다. 나중에서야 아버지가 이 이상한 행동을 이해하고 계셨거나, 혹은 참아 주고 계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아버지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거의 차갑다고 까지 할 수 있는 관계 하에서는 그런 행동을 설명할 수 없지만 말이다.
그럭저럭 지내는 동안 나에게는 긴 식사 시간을 참아 내도록 힘을 주는 위안이 생겼다. 투쟁적인 인내의 몇 주가 지나자, 나는 아이들이 가진 거의 무제한적인 적응력으로 그 끔찍한 모임에 아주 익숙해지게 되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두 시간을 꼬박 식탁에 앉아 있어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더욱이 나는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을 관찰하는 데에 열중해 있었기 때문에 두 시간은 상대적으로 더 빨리 지나갔다.
나의 외할아버지는 그들을 가족이라 부르셨고, 다른 사람들도 이 명칭을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완전히 자의적인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비록 이 자리에 모인 네 사람이 먼 친척 관계에 있긴 했지만, 한 집안 사람들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 옆에 앉으셨던 숙부는 연로하신 분이셨다. 검게 그을리고 딱딱하게 굳어 있는 그의 얼굴에는 검은 점이 몇 개 있었다. 들은 바에 의하면, 그것은 화약 폭발로 인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퇴역 육군 소령으로서 모든 것이 불만투성이였다. 그 당시 그는 내가 모르는 성의 어느 곳에서 연금술을 시도하고 있었다. 하인들이 하는 말을 엿들었는데, 그는 일 년에 한두 번 시체를 보내 주는 감옥과 관계를 믿고 있고, 밤낮으로 시체를 해부하고 그것이 썩지 않도록 비밀리에 처리한다는 것이었다.
숙부 맞은편에는 마틸데 브라에 양이 앉아 있었다. 그 여자는 도통 나이를 알 수 없는 인물로 어머니의 먼 친척이라고 했다. 그 여자에 대해 유일하게 알려진 것은, 놀데 백작이라는 오스트리아의 점성술사와 편지 왕래가 빈번하다는 것과 그에게 완전히 푹 빠져 있어서 그의 동의가 없거나 축성이 없는 일은 그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당시 그 여자는 몹시 뚱뚱했다. 말하자면 헐렁한 밝은 색 옷 속으로 아무렇게나 불어넣어 부드럽고 게으르게 꽉 찬 모습이었다. 그 여자의 움직임은 피곤해 보였고 부정확했다. 또한 눈에는 항상 눈물이 괴여 있었다.
그렇지만 그 여자에게는 부드럽고 날씬했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 여자를 뜯어보면 볼수록 얼굴에서 섬세하고 그윽한 특징들을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은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이후로 더 이상 떠올릴 수 없었던 기억들이었다. 마틸데 브라에를 매일 만나게 되고 나서야 죽은 어머니의 모습을 다시금 알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수백 개의 개별적인 모습으로부터 죽은 사람의 형상이 하나 만들어졌고, 나는 어디를 가든지 그것을 지니고 다녔다. 실제로 브라에 양의 얼굴이 어머니의 모습을 결정하는 하나하나의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다만 그들 사이에 낯선 얼굴이 끼어 든 것처럼, 두 사람의 얼굴은 서로 밀려나고 일그러져서 더 이상 관련이 없게 된 것 같았다.
그녀의 옆 자리에는 사촌의 어린 아들이 앉아 있었다. 그 소년은 아마 나와 같은 나이였던 것 같았으나, 나보다 키도 작고 연약해 보였다. 그 아이의 가늘고 창백한 목덜미는 주름 잡힌 옷깃에서 솟아 올라와 긴 턱 아래에서 사라졌다. 그 아이의 입술은 가느다랗고 굳게 닫혀 있었다. 양쪽 코 망울은 낮게 떨렸고, 아름다운 암갈색의 눈동자 중에서 한쪽 눈만 움직였다. 그것은 대개 조용히, 그리고 슬프게 나를 바라보았다. 반면에 다른 쪽의 눈동자는 항상 똑같은 구석을 향해 있었다. 마치 그 눈동자를 팔아 버렸고, 그래서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말이다.
식탁의 위쪽 끝에는 외할아버지의 어마어마한 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 일만을 전담하는 하인이 의자를 외할아버지께 밀어 넣어 드렸고, 노인네께서는 그 넓은 의자의 한쪽 끝에만 앉으셨다. 이 귀먹고 무뚝뚝한 늙은 주인을 각하나 시종관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고, 장군이란 칭호를 사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이러한 직함에 어울리는 품위를 지녔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관직에 계셨던 것이 너무나 오래 전 일이라 이러한 명칭이 잘 납득이 가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는 어느 순간 날카로웠다가 다시금 풀리곤 하는 외할아버지의 인간성에다 어떤 특정한 이름을 붙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비록 외할아버지가 때때로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셨고, 심지어는 내 이름에 익살스런 악센트를 넣어서 부르시기까지 했지만, 나는 외할아버지라고 부를 결심이 서지 않았다. 게다가 전 가족이 외경심과 두려움이 뒤섞인 태도로 백작을 대하고 있었다. 어린 에리크만이 집주인 영감과 모종의 친밀감을 갖고 있었다. 그 아이의 움직이는 한쪽 눈이 때때로 외할아버지의 동의를 쏜살같이 구했고, 그러면 외할아버지도 역시 쏜살같이 응답하곤 했다. 긴긴 오후 시간이면 이따금씩 두 사람이 깊숙한 회랑에 나타나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들이 손에 손을 잡고, 말없이 분명 뭔가 다른 방식으로 마음을 나누며 어둡고 낡은 그림들을 따라 걷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거의 온종일 정원이나 떡갈나무 숲속, 아니면 들판에 있었다. 운좋게도 우르네클로스터에는 나를 따르는 개가 있었다. 여기저기에 소작인의 집과 관리인의 집이 있었다. 거기서는 우유와 빵과 과일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나의 자유를 상당히 마음 편하게 누렸다. 그러고 나면 적어도 그 다음 몇 주 동안, 저녁식사 시간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 상하는 일은 없었다. 나는 거의 아무하고도 말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고독이 나의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이 내킬 때면 개와는 짤막한 얘기를 나누었다. 개하고는 아주 얘기가 잘 통했다. 더욱이 침묵은 일종의 우리 가족의 특성이었다. 나의 아버지가 그러했다. 그렇기 때문에 저녁 식사 시간에 거의 아무런 이야기도 오가지 않는 데에 대해 별로 놀라지 않았다.
물론 우리가 그곳에 도착하던 처음 며칠 동안 마틸데 브라에는 극도로 수다스럽게 행동했다. 아버지께 외국에 살고 있는 옛날 친지들의 소식을 물었고, 먼 옛날의 인상적인 일들이 떠오른 듯 끊임없이 얘기했다. 자기를 사랑했지만 자신은 그 하염없고 절망적인 사랑에 응하지 않았노라고 암시한 어느 젊은 남자와 죽은 여자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브라에는 스스로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는 점잖게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이따금 머리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고 꼭 필요한 대답만을 했다.
식탁의 윗자리에 앉은 외할아버지는 축 처진 입으로 웃음을 금치 못하셨다. 그의 얼굴은 평소보다 훨씬 커 보였다. 외할아버지 자신이 말을 하시기도 했는데, 그렇다고 특별히 누구를 향해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무척 나지막했음에도 불구하고 홀 전체에 울려 퍼질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시계의 행보가 그러하듯 균일하고 중립적인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둘러싼 고요한 속에서 독특하고 공허한 반향이 울렸다. 그것은 각각의 음절이 고르게 울려 퍼진 소리였다.
브라에 백작은 아버지의 죽은 아내에 대해, 곧 나의 어머니에 대해 말하는 것이 특별한 예의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외할아버지는 어머니를 지빌레 백작 부인이라 불렀고 말끝마다 어머니에 대한 물음으로 끝을 맺었다.
왠지 모르게 하얀 옷을 입은 아주 어린 소녀가 화제의 중심이 된 듯한 생각이 들었다. 그 소녀는 금방이라도 우리가 있는 곳으로 걸어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외할아버지께서 어머니 얘기를 하실 때와 같은 음조로 "내 귀여운 안나 소피"에 관해 말씀하시는 것도 들었다. 어느 날 나는 외할아버지의 특별한 총애를 받은 듯한 이 소녀에 대해 물어 보았다. 그래서 그 안나 소피가 콘라트 레벤틀로프의 딸을 일컫는 것으로, 나중에 프리드리히 4세와 신분의 차이를 무릅쓰고 결혼을 했고, 로스킬데에 묻힌 지 150년이나 지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의 흐름은 외할아버지에게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했다. 죽음은 작은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아서 외할아버지는 이를 완전히 무시했다. 한 번 기억해 둔 사람들은 외할아버지에게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었고, 그들이 이미 죽었다고 해서 외할아버지의 기억이 눈꼽만큼도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세월이 많이 흘러 늙은 주인이 죽고 나자, 사람들은 외할아버지가 미래의 일도 완고하게 현재의 일로 느끼셨다고 말했다.
한번은 외할아버지가 어느 젊은 부인에게 그녀의 아들에 대해서, 특히 한 아들의 여행에 관해서 말씀하신 적이 있다고 한다. 바로 첫 임신 3개월째였던 이 젊은 부인은 너무 놀라고 겁이 나서 거의 정신이 없는 상태로, 그 말씀은 태연히 하고 계신 할아버지 옆에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한 번은 내가 웃음을 터뜨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거의 장님에 가까운 늙은 하인이 브라에의 자리 앞에 멈춰 서서는 접시를 내밀었다. 하인은 한동안 그렇게 서 있었다. 그리고는 모든 것이 제대로 되어간다는 듯 만족스러운 얼굴로 품위 있게 다음 자리로 걸어갔다. 나는 이 장면을 지켜보았는데 그 순간에는 그다지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음식을 입에 한 입 물자마자,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와서 사레가 들렸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나는 이러한 상황이 부담스러웠고, 또 어떻게든 진지해지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줄기차게 웃음이 튀어나와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나의 행동을 덮어 주시려는 듯 억눌린 목소리로 "마틸데는 어디 몸이 안 좋은가요?"하고 물으셨다. 외할아버지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시고는, 내 일에 몰두해서 주의해서 듣지는 않았지만, "아프기는, 그저 크리스테닌을 만나고 싶지 않은 게지"라고 대답하시는 것 같았다.
그러자 내 옆에 앉아 있던 갈색 피부의 소령이 일어나서 우물거리는 목소리로 백작의 양해를 구하고는 홀을 나가버렸다. 외할아버지의 말씀 때문인 것 같지는 않았다. 단지 소령이 외할아버지의 등 뒤에 있는 문에서 다시 한 번 뒤돌아보고는 어린 에리크와, 놀랍게도 나에게도 갑자기 눈짓을 하면서 끄덕거리는 신호를 보낸 것만 눈에 띄었다. 그것은 마치 자신을 따라 나오도록 우리에게 명령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너무나 놀라서, 주체하지 못하고 있던 웃음을 뚝 그치고 말았다. 그리고 더 이상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로서는 그 사람이 별로 탐탁치 않았던데다 어린 에리크도 그를 마음에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식사 시간은 늘 그렇듯이 질질 늘어졌다. 식사가 끝나고 후식이 나온 바로 그때, 내 시선은 홀의 뒤쪽, 반쯤 어두운 곳에서 느껴지는 어떤 움직임에 사로잡혔다. 늘 닫혀 있다고 믿었던 그곳의 문이, 중간층으로 통한다고 들었던 그곳의 문이 조금씩 조금씩 열리고 있었다. 호기심과 당혹감이라는, 내게는 새로운 감정으로 보고 있자니, 밝은 색 옷을 입은 늘씬한 부인이 문이 열린 어둠 속에서 나타나 천천히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그 당시 내가 움직였는지, 혹은 어떤 소리를 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의자가 넘어지는 소리로 인해 나는 이 기이한 형상으로부터 눈길을 떼야만 했고, 자리에서 튀듯이 일어난 아버지가 죽은 사람처럼 창백한 얼굴로 주먹진 두 손을 아래로 내린 채 그 부인에게로 다가가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 여자는 이러한 광경에 전혀 개의치 않고 우리 쪽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그래서 여자가 외할아버지 가까이 왔을 때, 외할아버지는 홱 몸을 일으켜 아버지를 붙잡아 식탁이 있는 곳으로 끌어당겼다. 그러는 동안 그 낯선 여자는 천천히, 무관심하게, 이제 아버지가 비켜난 곳을 지나, 어디선가 유리잔이 떨리는 소리 이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침묵 속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 홀의 맞은편 벽에 있는 문으로 사라졌다. 그 낯선 여자 뒤에다 깊게 절을 하고 문을 닫은 것이 어린 에리크였음을 나는 그 순간 알아챘다.
식탁에 앉아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는 내 자리에 너무나 힘겹게 앉아 있어서 결코 혼자서는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잠시 동안 눈 뜬 장님처럼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런 다음 퍼뜩 아버지가 생각나서 보니 외할아버지가 여전히 아버지를 붙들고 계셨다. 아버지의 얼굴은 이제 분노에 차서 시뻘개져 있었다.
그러나 외할아버지는 흰 발톱과 같은 손으로 아버지의 팔을 움켜쥐고, 가면 같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러면서 외할아버지가 뭔가 또박또박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지만,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그 말들은 내 귓속 깊숙이 들어와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대략 2년 전의 어느 날, 내 기억 깊숙한 곳에 있던 그 말들을 기억해 냈고, 그 이후로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외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자네는 너무 성급해. 시종일관, 점잖치도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일에 뭣 하러 참견을 하는가?" 아버지가 중간에 끼어들어 소리를 질렀다. "저 사람은 누굽니까?" "아마도 크리스티넨 브라에지." 그 순간 다시금 그 기이하고 얇은 침묵이 생겨났고, 또다시 유리잔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외할아버지의 손을 완강하게 뿌리치고 홀에서 뛰쳐나갔다.
나는 밤새도록 아버지가 방에서 이리저리 서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나 역시 잠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아침 무렵에 얼핏 잠이 들었지만 이내 화들짝 놀라 깨어나고 말았다. 침대가에 앉아 있는 어떤 물체를 보고는 심장이 멎을 정도로 깜짝 놀랐다. 나는 어쩔 줄을 몰라 하다 결국 이불 속에다 머리를 처박고 불안과 절망감으로 울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울고 있는 눈자위가 시원해지고 밝아졌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았다. 그런데 내 귓가에 몹시 온화하고 달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내가 알고 있는 목소리였는데, 바로 마틸데 양의 목소리였다. 나는 곧 진정이 되었고 이미 완전히 진정된 후에도 마틸데 양이 나를 위로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사실 나는 이 호의가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다고 느끼긴 했다. 하지만 그대로 즐기고 있었고 또 너무나 놀랐던 만큼 어떤 식으로든 위로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아주머니, 그 부인은 누구였어요?"
"아,"
브라에 양은 우스꽝스럽게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불행한 여자지. 얘야, 불행한 여자란다."
그날 아침에 나는 방에서 짐을 싸느라고 정신이 없는 하인 몇 명을 보았다. 나는 우리가 여행을 하게 되는구나 하고 생각했고, 아주 자연스러운 일로 여겼다. 아마도 그것은 아버지의 생각이었는지 몰랐다. 나는 왜 아버지가 그날 저녁 일이 있고도 우르네클로스터에 계속 머무르시는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고도 우리는 8주인가 9주인가를 그 집에서 더 묵었고, 그곳의 기묘한 압박감을 참고 있었다. 우리는 크리스티넨 브라에를 세 번 더 보았다.
나는 그 당시 그 여자의 이야기를 전혀 몰랐다. 그 여자는 오래 전에, 아주 오래 전에 이 저택에서 둘째 아이를 낳다가 죽었고, 그때 태어난 남자 아이는 끔찍한 불운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모르고 있었다. 요컨데 그 여자가 죽은 여자임을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것을 알고 계셨다. 열정적이고 무슨 일이든 철저하고 명확한 것을 좋아하던 아버지는 침착하게, 그리고 어느 누구에게도 묻지 않고 이 모험을 감수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나는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아버지가 자기와의 싸움을 벌이는 것을 지켜보았고, 역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아버지가 결국에 가서 체념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우리가 크리스티넨 브라에를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의 일이었다. 이번에는 마틸데 양도 식탁에 함께 있었다. 그러나 마틸데 양은 평소와 달라 보였다. 그 여자는 우리가 도착한 처음 며칠과 같이 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말을 했고, 앉아 있는 동안 계속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뿐만 아니라 그 여자는 육체적으로 불편한 듯 끊임없이 옷이든 머리든 무언가를 매만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여자는 뜻하지 않은 순간에 높은 소리로 비명을 지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라졌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길이 그 문 쪽으로 향했고, 실제로 크리스티넨 브라에가 들어섰다. 내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소령이 짧고 격렬하게 몸서리를 쳤고, 그 움직임은 내 몸 속에 전도되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일어날 힘이 없는 게 분명했다. 그의 늙고 그을리고 반점이 있는 얼굴이 사람들을 차례차례로 쳐다보았다. 입은 열려 있었고, 썩은 이빨 뒤로 혀가 말려 있었다. 희끗희끗한 머리는 식탁 위에 있었고, 팔은 조각처럼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비쩍 마르고 점 박힌 한쪽 손이 어디선가 나와 떨고 있었다.
이제 크리스티넨 브라에가 지나갔다. 한 걸음 한 걸음 병자처럼 천천히 이루 말할 수 없는 침묵 속으로 걸어갔다. 늙은 개 마냥 끙끙거리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그때 수선화로 가득 찬, 음빛 백조 꽃병의 왼쪽으로 희미하게 미소 짓고 있는, 외할아버지는 아버지를 향해 술잔을 들었다. 그래서 크리스티넨 브라에가 아버지의 의자 뒤로 막 지나가고 있을 때, 아버지는 술잔을 잡고 마치 무거운 것이라도 들어 올리듯 책상 위 한 손 너비 정도로 들어올렸다.
우리는 그날 한밤중에 길을 떠났다.
국립 도서관에서
앉아서 어느 시인의 글을 읽고 있다. 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런 느낌이 전혀 안 든다. 그들은 책에 파묻혀 있다. 더러는 책장을 넘기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두 가지 꿈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아, 책을 읽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들이 왜 늘 그렇게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다가가 살짝 건드려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일어서다가 옆에 앉은 사람에게 가볍게 부딪혀서 사과를 하면, 그 사람은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만 끄덕일 뿐, 몸을 돌리거나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의 머리카락은 자고 있는 사람처럼 헝클어져 있다.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나는 앉아서 어느 시인의 글을 읽고 있다. 얼마나 멋진 운명인가. 아마도 지금 이 홀에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은 대략 3백 명쯤 될 것 같다. 그러나 그들 각자가 한 작가를 읽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그들이 무엇을 읽고 있는지 누가 알겠는가). 3백 명의 작가란 존재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운명이란 얼마나 기이한 것인지, 이 방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 중 아마 가장 불쌍한 사람일 내가, 이방인인 내가 어느 시인의 글을 읽고 있는 것이다. 비록 가난하지만 말이다. 비록 날마다 입고 다니는 양복이 몇 군데 낡긴 했고, 내 구두에 대해서 이런저런 흠들을 잡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사실 나의 옷깃은 깨끗하고 속옷도 깨끗하다. 이 상태로 즐겨 가는 제과점에 갈 수도 있고, 시내에 있는 제과점에 가서 태연하게 빵 접시를 잡고 뭔가를 집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나를 꾸짖거나 쫓아내지도 않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어쨌거나 내 손은 훌륭한 집안의 손이고, 하루에도 너댓 번은 씻은 손이기 때문이다. 손톱은 정갈하고, 글을 쓸 때 사용하는 손가락은 잉크 한 방울 묻지 않았으며, 특히 손목은 흠 잡을 데가 없다. 가난한 사람들이 거기까지 잘 씻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말하자면 사람들의 청결함으로부터 어떤 결론을 끄집어낼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다. 사업상 만난 사람들은 그렇게 사람을 판단한다.
그러나 생 미셸 거리나 라신느 거리에는, 손목 같은 것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거나 아예 무시하는 존재들도 몇몇 있다. 그들은 나를 보고 첫눈에 내 사정을 알아본다. 요컨데 내가 그들과 같은 부류의 인간이며, 단지 약간의 희극을 연기하고 있을 뿐임을 알아본다. 지금은 사육제이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나의 즐거움을 망치려 들지 않는다. 단지 살짝 비죽이 웃으며 눈을 찡긋거릴 따름이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 게다가 그들은 주인을 대하는 듯한 태도로 나를 대한다. 곁에 누군가가 있을 때는 심지어 공손하기까지 하다. 마치 내가 모피를 걸치고 있고 전용 마차가 나를 뒤따르고 있는 것처럼 대한다.
대개 나는 그들에게 동전 두 닢을 준다. 그럴 때면 혹시 거절하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하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받아 넣는다. 만약 그들이 또 다시 살짝 싱긋거리며 눈짓을 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제대로 될 것이다. 이 사람들은 누구인가? 나에게서 무엇을 원하는가? 나를 기다렸나? 어떻게 나를 알아보았을까? 내 수염이 다소 텁수룩하게 보여서 조금, 아주 조금은 그들의 병들고 낡고 창백해진 수염을 연상시키는 것도 사실이다. 내 눈엔 그들의 수염이 언제나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수염을 텁수룩하게 할 권리조차 없단 말인가? 일에 쫓기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고, 또 그렇다고 해서 아무도 그들을 실패한 사람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들은 거지일 뿐만 아니라 실패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니, 그들은 원래 거지가 아니었다. 이 점을 구분해야 한다. 그들은 운명이 뱉어 버린 껍질이요, 쓰레기이다. 운명의 타액에 젖어 그들은 담이나 가로등, 광고판에 달라붙어 있거나 골목길을 느리게 달려 내려가 뒤에다 어둡고 더러운 흔적을 남긴다. 도대체 이 노파는 나에게 무엇을 원했던 걸까? 노파는 단추 몇 개와 바늘이 굴러다니는 서랍을 안고 있었고, 굴에서라도 기어 나온 것 같았다. 무엇 때문에 그 노파가 옆으로 따라와서 나를 쳐다보았던 것일까? 병자처럼 벌건 눈꺼풀에다 가래침을 뱉어 놓은 듯이 보이는 움푹 팬 눈으로 나를 알아보려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 그때 그 키 작고 늙은 여자가 내 옆에 있는 진열장 앞에 15분 동안이나 서 있었던 것일까? 나에게 낡고 긴 연필 한 자루를 보여 주면서 말이다. 연필은 꼭 움켜쥔 기형적인 손으로부터 느리긴 하지만 끊임없이 밀려 나오고 있었다. 나는 진열된 물건을 보고 있을 뿐 다른 것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한 듯이 행동했다. 그러나 그 여자는 내가 자기를 보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거기에 서서 "그 여자가 원래 무엇을 하는 사람이었을까"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는 연필이 문제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이 표시임을, 입회의 표시임을, 다시 말해 실패한 사람을 알아보는 표시임을 느꼈던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고 있었다. 어디 다른 곳으로 옮겨 가거나 혹은 뭔가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상한 것은, 실지로 모종의 계약이 성립됐고, 이 표시는 그 계약의 일부이며, 이 장면은 내가 언젠가 예상해야 했던 것이라는 느낌으로부터 한시도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2주일 전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도 그러한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날이 거의 없다. 해질 무렵에만 그런 것이 아니다. 붐비는 한낮의 거리에서 갑자기 키 작은 남자나 늙은 노파가 나타나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뭔가를 보여 주고 할 일을 다한 것처럼 다시 사라지는 것이었다.
어쩌면 어느 날엔가 내 방까지 쫓아올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들은 내가 사는 곳을 알고 있는 게 틀림없었고, 문지기가 그들을 제지하지 못하게 미리 손을 써 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이곳에 있으면 그들로부터 안전하다. 이 홀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특별한 열람권이 있어야 한다. 열람권을 가졌다는 점에서, 나는 그들보다 유리하다. 여느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것처럼, 나는 다소 소심하게 거리를 걸어간다. 그러나 마침내 유리문 앞에 서면 내 집처럼 그 문을 열고, 다음 문에서 나의 열람권을 내보인다(그들이 나에게 그들의 물건을 보여 주는 것과 똑같다. 단지 틀린 점이 있다면,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고 나의 생각을 납득한다는 점이다). 그런 다음 나는 이 책들 사이에 있게 된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그들로부터 풀려나 여기서 어느 시인의 글을 읽고 있다.
그대들은 시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모른단 말인가? 베를렌 정도나 알까, 전혀 모른다고? 기억나지 않는가? 그럴 것이다. 알고 있는 사람들과 시인을 구별하지 못했다는 것인가? 그대들이 아무도 구별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그러나 내가 읽고 있는 시인은 그대들이 알고 있는 사람과는 아주 다른 사람이다.
그는 파리에 살고 있지 않다. 그는 산 속에 있는 조용한 집에 사는 사람이다. 그의 목소리는 깨끗한 대기 속에 울리는 종소리와 같다. 그는 자기 집의 창문에 대해 얘기하고, 생각에 잠긴 듯 사랑스럽고 고독한 들판을 비추는 책장 유리에 대해 얘기하는 행복한 시인이다. 그는 내가 되고자 소망했던 바로 그런 시인이다. 그는 소녀들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데, 나 역시도 소녀들에 대해 많이 알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수백 년 전에 살았던 소녀들을 알고 있다. 그가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 소녀가 죽었다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소녀들의 이름을 말해 본다. 긴 활자체로 고풍스럽게 꼬불꼬불하면서도 날씬하게 씌어진 이 나지막한 이름들. 그리고 그녀들의 옛 친구가 결혼을 해서 달게 된 이름들, 그 속에서는 이미 약간의 운명과 약간의 환멸과 죽음이 공명하고 있다.
시인의 흑단 책상의 한쪽 켠에는 아마도 그 소녀들의 빛 바랜 편지와 일기장이 낱장으로 놓여 있을 것이다. 일기장 속에는 생일날이나 여름날의 일이 적혀 있을 것이다. 혹은 시인의 침실 뒤편에 있는 불룩한 장롱 서랍에 소녀의 봄옷이 보관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부활절을 즈음하여 처음 입었던 하얀 옷들, 원래는 여름옷이지만 그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던, 얼룩무늬가 놓인 무명옷들.
아, 상속받은 집의 조용한 방에서 말없이 살고 있는 물건들 사이에 앉아, 가벼운 연둣빛이 도는 바깥 정원에서 박새의 첫울음과 멀리서 울리는 마을 시계 소리를 듣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운명인가. 그곳에 앉아 오후의 따뜻한 햇살을 바라보며 옛 소녀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시인이 된다는 것은 또 얼마나 멋진 운명인가.
내가 만약 어딘가, 이 세상 어딘가에, 아무도 돌보지 않는 빗장 지른 시골집에 살았다면 나 역시도 그런 시인이 되었을 것이다. 방은 하나 정도면 되겠다(다락이 딸린 밝은 방으로 말이다). 그 방에다 나의 손때 묻은 물건들, 가족사진들과 책들을 갖다 놓고 살고 싶다. 안락의자와 꽃과 개와, 그리고 자갈길을 걸을 때 쓸 튼튼한 지팡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밖에 필요한 것은 없다. 내 앞에 놓여 있는 것으로는, 색 바랜 상아빛 가죽으로 장정되고 고풍스런 꽃무늬 표지를 하고 있는 노트 한 권이면 족하다. 거기에다 글을 쓸 것이다. 많이 생각하고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을 테니 많은 것에 대해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생활은 그렇지 못했다. 그 이유를 누가 알겠는가. 나의 낡은 가구는 창고에서 썩고 있다. 그리고 나 자신은, 슬프게도 내 몸 하나 뉘일 곳이 없고 비를 피할 만한 곳도 없다.
나는 자주 뤼 드 센느에 있는 구멍가게 앞을 지나간다. 골동품 가게나 작은 고서점 혹은 동판화 가게의 진열장은 물건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가게로 들어서는 사람은 없다. 겉보기엔 거래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안을 들여다보면, 아무런 걱정 없이 앉아서 책을 읽고들 있다. 그들은 내일 일을 걱정하지 않고, 이루어야 할 일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그들 앞에는 기분 좋아 보이는 개가 앉아 있다. 혹은 고양이가 앉아 있기도 하다. 고양이는 마치 책 제목을 등으로 지우려는 듯 늘어선 책들을 따라 몸을 문지르며 그 속의 정적을 더욱 크게 하고 있다. 아, 그렇게만 되었으면. 나는 종종 그렇게 진열장이 가득한 곳에 가게를 사서 한 20년 정도 개와 함께 틀어박혀 있었으면 하고 소망하곤 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소."
큰 소리로 이렇게 말하면 된다. 한 번 더 해볼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소."
무슨 소용인가?
또다시 난로에서 연기가 나서 집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그렇다고 특별히 불행한 일은 아니다. 내 몸이 파김치가 되고 감기 기운이 있다는 것도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 온종일 골목길을 쏘다닌 것도 내 탓이다. 루브르 박물관에 앉아 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아니, 그렇게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거기에는 분명 몸을 녹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벨벳을 덧씌운 의자에 앉아, 벗어 놓은 커다란 장화처럼 격자 모양의 난로 앞에다 나란히 발을 얹어 놓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아주 겸손한 사람들이어서, 주렁주렁 훈장을 단 검은 제복을 입은 관리인이 그들을 묵인해 주는 것에 대해 몹시도 고마워한다. 그러나 내가 그곳에 들어서면 비죽이 웃을 것이다. 비죽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릴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림 앞을 왔다갔다하면 모두들 멀뚱한 눈으로 계속 나를 지켜볼 것이다. 그러니 루브르 박물관에 가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었다.
나는 계속 돌아다녔다. 얼마나 많은 도시를, 그리고 도시의 곳곳, 묘지, 다리, 골목들을 돌아다녔는지 모른다. 어디선가 채소를 담은 수레를 밀고 가는 남자를 만난 적이 있다.
"꽃배추요, 꽃배추."
그 사람은 슬프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 옆에는 성격이 모나 보이고 못생긴 여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그 여자는 때때로 그를 쿡쿡 찔렀다. 그리고 그녀가 찌를 때마다 그는 그렇게 소리를 질렀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양배추를 팔아줄 집 앞에 다가서자 그는 곧이어 다시 소리를 질러야만 했다.
그 남자가 장님이라는 말을 했던가? 안 했다고? 그렇다면 말해 둬야지, 그는 장님이었다. 그는 장님이었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만일 내가 그렇게만 말한다면 거짓말을 하는 셈이다. 수레 얘기를 감춘 것이 된다. 그가 "꽃배추요"라고 소리 지르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 것처럼 행동한 것이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설사 중요하다 하더라도 그 일 자체가 내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는 단지 늙은 남자를 보았을 따름이다. 그는 장님이었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내가 본 것은 그 뿐이었다. 나는 그것을 보았을 뿐이었다.
그런 집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믿기나 할까? 아니,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번에는 정말이다. 뺀 것도 없고 보탠 것도 없다. 내가 어디서 그것을 보았느냐고? 아시다시피 나는 가난한 사람이다. 잘 알 것이다. 그런데 웬 집이냐구?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더 이상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 집이었다. 거기 있었던 것은 그 옆에 서있는 다른 높은 집들이었다.
사람들이 그 옆에 있는 모든 것을 없애 버리기 시작한 후로 그 집들도 무너질 위험이 대단히 커졌다. 타르 칠을 한 돛대 모양의 긴 골격 전체가 쓰레기 더미의 땅과 지붕이 벗겨진 담 사이에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이 이 담이라고 말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담은 지금 있는 집들의 담이 시작하는 부분이 아니라(추측해 볼 수밖에 없지만), 옛날 집들의 담이 끝나는 부분인 듯했다.
그 안쪽을 볼 수 있었다. 상당수의 층에서 아직 벽지가 붙어 있는 벽이 보였다. 바닥이나 천장에 붙어 있던 벽지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방의 벽 옆으로는 전체 담을 따라 때 묻은 흰색의 공간이 남아 있었다. 이곳을 통해 말할 수 없이 불쾌하게,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움직임으로, 말하자면 창자의 소화운동과 같은 움직임으로, 화장실의 녹슨 파이프관이 기어갈 듯이 감겨 있었다. 석탄가스가 나갔던 길에는 천장 테두리에 더러운 잿빛 흔적들이 나 있었다. 석탄가스가 나갔던 길에는 천장 테두리에 더러운 잿빛 흔적들이 나 있었다. 그것은 여기저기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둥글게 휘어져 색칠한 벽 속으로 들어가기도 했고 사정없이 검게 뚫려진 구멍 속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잊혀지지 않는 것은 벽 자체였다. 이 방의 질긴 삶은 유린될 수 없었다. 삶은 아직도 거기에 있었고 남아 있는 못들을 지탱하고 있었다. 또 한 뼘 정도 남아 있는 바닥에도 삶은 있었고, 아직 안에 약간의 틈이 잇는 구석 아래에도 삶이 기어 들어가 있었다. 해가 거듭될수록 서서히 변해가는 색깔에서도 삶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푸른색은 기분 나쁜 녹색으로 바뀌었고, 녹색은 회색으로, 노란색은 낡고 찌들린 허연색으로 바뀌고 퇴색해 갔다.
그러나 거울이나 그림, 장롱이 있던 뒷면처럼 비교적 양호하게 보존된 곳에도 삶이 있었다. 그것들의 테두리가 그어지고 모사되어 거미와 먼지로 뒤덮이고 감춰진 이곳이 이제야 드러났기 때문이다. 떼어낸 판자에도, 벽지 아래 테두리가 축축하게 부풀어 잇는 곳에도 삶은 있었다. 삶은 갈갈이 찢긴 천 조각에서 비틀거렸으며, 오래 전에 생겨난 썩은 얼룩으로부터 배어났다.
파괴된 칸막이벽의 깨어진 조각들로 둘러싸인, 전에는 푸른색이나 초록색, 노란색이었던 이 벽들로부터 이 삶의 공기가 나왔다. 그것은 질기고 태만하고 완고한 공기여서 어떤 바람도 그것을 흐트러뜨리지 못했다. 그 속에서 대낮의 냄새와 질병의 냄새와 사람들이 뿜어낸 가스와 케케묵은 연기와, 그리고 겨드랑이를 적신 땀과 입에서 내뱉은 맥 빠진 말들과 더러운 발에서 나는 싸구려 술 냄새가 풍겼다. 그 속에서 코를 찌르는 오줌 냄새와 불타는 매연과 잿빛 감자 냄새와 노화된 기름의 무겁고 미끄러운 악취가 풍겼다. 거기서는 돌보아 주는 이 없는 젖먹이의 달콤하고 쉽게 지워지지 않는 냄새가 났고, 학교에 가는 아이들의 불안의 냄새와 성년이 되어 가는 소년의 침대에서 느껴지는 답답함이 있었다. 거기에는 모든 것이 모여 있었다. 무엇이든 증발시키며 골목의 밑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것과, 더럽혀진 비와 함께 도시의 하늘 위에서 내려오는 것, 이 모든 것이 뒤섞여 있었다.
그리고 같은 거리에 머무는 잘 길들여진 순풍에는 많은 것들이 실려 왔다. 그밖에도 근원을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었다. 모든 담이 다 허물어지고 마지막 담만이 남았다고 내가 말했던가? 지금부터는 이 마지막 담에 대해서 더 이야기하겠다. 내가 그 앞에 오랫동안 서 있지 않았나 생각할 테지만, 맹세컨대 나는 그 담을 보자마자 뛰기 시작했다. 그 담을 보는 것은 너무나 끔찍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 있는 모든 것들을 인식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내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그것은 나를 잘 알고 있다.
결국 나는 기진맥진해졌다. 쇠약해졌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 아직도 틀림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사실은 나에게 너무 벅찬 일이었다. 그자는 내가 계란 프라이를 먹으려고 들어간 조그마한 간이식당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배가 고팠고 하루 종일 먹은 게 없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계란 프라이가 채 되기도 전에 다시 거리로 나오고 말았다. 거리에 나오니 사람들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사육제 저녁이었던 것이다. 모두들 일손을 놓고 거리로 나와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서로 부대꼈다. 그들의 얼굴은 가설 무대의 조명으로 환했고 터진 고름처럼 입에서는 웃음이 솟아나고 있었다. 내가 앞으로 나아가려고 조급하게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그들은 더 많이 웃었고 나에게로 좁혀 왔다. 어찌 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어느 부인의 숄이 내게 걸렸다. 나는 그것을 뒤에 걸고 다녔다. 사람들은 나를 못 가게 만들어 놓고 웃어댔다. 나 역시도 웃어야만 될 것처럼 느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손바닥만한 종이테이프를 내 눈에 던졌는데 마치 채찍으로 맞은 것처럼 화끈거렸다. 길모퉁이에 이르자, 사람들은 서로에게 떠밀려 움직이지 않았다. 사람들 사이에 움직임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마치 서서 짝이라도 짓는 양 나지막하고 연약한 기복이 있을 따름이었다. 나는 약간의 틈이 있던 찻길가로 미친 사람처럼 달려갔지만, 사실은 그들이 움직였고 나는 꼼짝도 하지 않은 것이었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둘러보니 여전히 한쪽에는 똑같은 집들이 늘어서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가설무대가 놓여 있었다. 아마도 모든 것이 고정되어 있고, 나와 그들 사이에만 소용돌이가 있어서 모든 것이 빙빙 도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몸이 땀으로 젖었고 내 몸 속에서는 마취성의 고통이 맴돌았다. 그것은 마치 혈관을 팽창시키는 어떤 것이 내 피 속에서 커질 대로 커지게끔 충동질하는 것 같았다. 오래 전에 공기는 바닥났고 폐가 내뿜어 놓은 것만을 들이마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도 지나간 일이다. 나는 그것을 이겨냈고 지금은 내 방 전등 옆에 앉아 있다. 난로를 시험할 엄두조차 내지 않아서, 방이 약간 쌀쌀하게 느껴진다. 난로에서 연기가 나서 다시 나가야만 한다면 어쩔 것인가? 내가 만약 가난하지 않다면 아마 다른 방에 세들 것이다. 여기처럼 이렇게 낡지도 않고, 이전 세입자들의 손때가 그다지 묻지도 않은 가구들이 있는 방으로 말이다. 처음에는 이 등받이의자에 머리를 기대는 것이 나에게는 정말로 힘든 일이었다. 의자의 초록빛 커버는 회색으로 기름에 찌들어 쑥 들어간 곳이 있는데, 어떤 머리라도 거기에 맞추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머리 아래에다 조심스레 수건을 깔았지만 지금은 그러는 데에도 지쳤다. 그냥 머리를 기댈 수도 있었다. 그럴 경우 약간 들어간 그곳이 내 뒷머리에 정확하게 맞아서 마치 치수를 잰 것 같았다.
만약 내가 가난하지 않다면, 무엇보다도 괜찮은 난로를 사서 화력 좋은 진짜 장작을 지피겠다. 장작은 산에서 패 온 것으로 땔 것이다. 그러면 이 절망적인 조개탄은 지피지 않아도 되리라. 이 조개탄의 연기를 마시면 숨이 콱 막히고 머리가 어지럽다. 그리고 거친 소음 없이 난로를 청소하고 내가 필요로 하는 정도의 불길에 신경을 써주는 하인을 두겠다. 15분 정도 무릎을 꿇고 앉아 난로를 조절하다 보면 가까이에서 이글거리는 불길에 이마가 달아오르고 눈은 열기로 가득 차 버려서 종종 그날 쓸 힘을 모두 다 허비하기 일쑤이다.
그러고 나서 다시 사람들과 섞이면 그들은 당연히 가벼워진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북적거릴 때면 때때로 마차를 사서 그들을 스쳐 지나가고 싶어진다. 매일 "뒤발" 같은 고급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간이식당에는 더 이상 기어 들어가지 않을 것이고... 그 사람이 "뒤발"에도 있지는 않겠지? 그럴 리가 없다. 그런 고급스러운 곳에서 그 자가 나를 기다리도록 내버려둘 리 만무하다. 죽어가는 사람을 그 안으로 들여놓을 리가 없다. 죽어 가는 사람이라?
나는 지금 내 방에 앉아 있다. 물론 내가 만났던 것에 대해 조용히 생각해 보려고 할 수도 있다. 어떤 일도 부정확하게 내버려두지 않는 게 좋다. 그러니까 나는 그곳에 들어섰고 우선은 내가 자주 앉곤 하던 식탁에 다른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작은 주방 쪽을 향해 인사한 후 주문을 하고는 옆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그 순간 그 사람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그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바로 그 움직임이 없다는 사실로 단번에 그것을 알아챘다.
이제 우리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성립되었다. 나는 그 사람이 놀라 거의 몸이 굳어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경악해서, 즉 그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어떤 것에 경악해서 몸이 마비되어 있었다. 아마도 그의 마음속에서 그릇이 산산조각 났는지도 모를 일이고, 오래 전부터 두려워했던 독극물이 바로 지금 심장 속으로 들어갔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아마도 커다란 종기가 세상을 변모시키는 태양처럼 그의 뇌 속에 생겨난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상상 속의 일이었으면 하고 바랐던 까닭에, 그 사람 쪽을 쳐다보는 것이 말할 수 없이 힘들었다. 그러나 그 일은 실제로 일어났고 나는 벌떡 일어나 뛰쳐나오고야 말았다. 잘못 본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두터운 검은 색 겨울 외투를 입고 거기에 앉아 있었다. 그의 긴장된 잿빛 얼굴은 모직 목도리 속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의 입은 무겁게 짓눌린 것처럼 다물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이 뭔가를 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눈앞에 불투명한 회색의 흐릿한 안경알이 있었던 데다, 그것이 약간 떨리기까지 했으므로. 그의 양쪽 콧방울은 찢어져 있었고, 벗겨진 관자놀이 위에 드리워진 머리카락은 뜨거운 햇볕 아래 있었던 것처럼 푸석푸석하고 색이 바래있었다. 길고 누르스름한 빛을 띤 그의 귀는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물론 그 사람도 자기가 다른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것으로부터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잠시 후면, 모든 것은 그 의미를 잃어버릴 것이다. 그가 마주하고 있는 이 탁자며 커피잔이며 의자가, 요컨대 모든 일상적인 것과 가까이 있는 것들이 이해할 수 없는 낯설고 무거운 존재로 변해 버릴 것이다. 그가 마주하고 있는 이 탁자며 커피 잔이며 의자가, 요컨대 모든 일상적인 것과 가까이 있는 것들이 이해할 수 없는 낯설고 무거운 존재로 변해 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거기에 앉아 그런 일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더 이상 저항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저항하고 있다. 설사 나를 괴롭히던 사람이 이제 나를 놓아준다고 해도 이미 심장을 도려내어서 내가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저항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노라고 되뇌어 본다. 그러나 나는 그 사나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를 모든 것과 떼놓고 갈라놓기 시작하는 그 어떤 것이 내 마음속에서도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사람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얼마나 끔찍해 했던가. 아무도 그 죽어 가는 자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는 그 사람의 고독한 얼굴을 상상해 보곤 했다. 그 얼굴은 쿠션에서 일어나 잘 아는 것이 없나, 이미 한 번 본 적이 있는 것이 없나 찾지만 소용없을 것이다.
만약 나의 공포가 그리 크지 않았다면, 모든 것을 다르게 보면서 살 수도 있다고 나를 위로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두려웠다. 이러한 변화가 말할 수 없이 두려웠다. 내 눈에 아름답게 보이는 이 세계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조금도 익숙하지 못했다. 내가 다른 세계에서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내가 사랑하게 된 의미들 사이에 머무르고 싶다. 그리고 만약 무언가가 변화되어야 한다면, 적어도 친숙한 세계와 친숙한 사물이 있는 개들과 더불어 살았으면 좋겠다.
조금만 더 있으면 모든 것을 다 써서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손이 말을 듣지 않는 걸 보니 날이 밝아 오는가 보다. 손에게 글을 쓰라고 명령하면, 손은 내가 말하지 않은 단어들을 써 내려간다. 다른 해석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어떤 어휘도 그 다른 시간 속에 그대로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각각의 의미는 구름과 같이 흩어지고, 물과 같이 흘러간다. 결국 나는 온갖 공포감에도 불구하고, 어떤 위대한 것 앞에 서 있는 느낌이다.
아직 글을 쓰기 시작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종종 비슷한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번에는 나 자신에 대해 쓰는 것이다. 나라는 인간은 시간이 흐를수록 변화해 가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아쉽게도, 조금 모자라긴 하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모든 것을 파악하고 인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밤이면 밤마다 기도했던 것을 내 손으로 쓴 것이 내 앞에 놓여 있다. 내 곁에 두기 위해서, 그리고 내 자신의 것처럼 내 손에서 나오도록 하기 위해서 책에서 몇 구절을 베껴 놓았다. 나는 지금 그것을 다시 한번 쓰고자 한다, 여기 책상 앞에 꿇어 앉아 써 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써 보면 읽을 때보다 더 오래 간직될 것이고, 한마디 한마디가 영속하여 더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못마땅하고 나 자신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한 나이지만, 이제 밤의 정적과 고독 속에서 조금이라도 기운을 되찾고 위안을 얻고 싶다. 내가 사랑했던 이들의 넋이여, 내가 찬미했던 이들의 넋이여, 나에게 용기를 주오. 나를 지켜주오. 이 세상의 허위와 부패한 공기로부터 나를 구해 주오. 신이시여, 저에게 은총을 베푸시어 아름다운 새 몇 줄을 쓰게 하소서. 적어도 내가 그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자가 아니며, 내가 멸시하는 이들보다 더 못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줄 시를 쓰게 하소서.
그들은 본래 미련한 자의 자식이요, 천한 자의 자식으로 고향에서 내쫓겨난 자이니라. 내 이제는 그들의 노래가 되었고 조롱거리가 되었느니라. ...나를 대적하여 멸망의 길을 마련하고... ...아무 돕는 자들이 없어도 나를 망치기란 그들에겐 쉬운 일이었으니. ...이제는 내 마음속에서 흘러내리고 고난이 날이 나를 사로잡았노라. 밤이면 내 뼈를 쑤시고 살을 저며 내며, 내 몸을 깨무는 자는 쉬지를 않는구나. 내 질병의 힘은 커서, 옷은 더러워져 속옷 깃처럼 몸에 붙는구나... 내 창자는 끓어올라 쉴 줄을 모르고 환난의 날은 나를 엄습했나니... 내 비파는 하소연이 되었고, 내 피리는 울음으로 변했노라.
의사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내 얘기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들은 전기요법을 시도하려 했다. 좋다. 종이쪽지를 받았다. 오후 한 시까지 진료실에 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했다. 여러 가건물을 지나고 몇 개의 마당을 거쳐야만 했다. 거기에는 죄수들처럼 하얀 모자를 쓴 사람들이 여기저기 앙상한 나무 아래 서 있었다.
마침내 입구처럼 생긴 길고 어두운 곳에 이르렀다. 그 한쪽에는 흐릿한 녹색 창문이 네 개 있었다. 각각의 창문은 넓고 검은 칸막이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 앞으로는 나무 벤치가 줄지어 있었는데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 거기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 그들은 모두 거기에 있었다. 어둑어둑한 그 방에 익숙해지자, 어깨를 맞대고 끝없이 줄지어 앉아 있는 사람들 중에 내가 모르는 다른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컨대 직공이나 하녀, 마부와 같은 하층민이 섞여 있을 수 있었다. 좁은 복도 한 켠에 있는 특이하게 생긴 의자에 두 명의 뚱뚱한 여자가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자 수위인 듯했다.
시계를 보았다. 1시 5분 전이었다. 이제 5분 후면, 10분 후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내 차례가 될 것이다. 그렇게 나쁠 것도 없었다. 공기는 탁하고 무거웠으며 옷 냄새와 사람들이 내쉰 숨으로 가득했다. 어디선가 문틈으로 에테르의 강하고 서늘한 냄새가 났다. 나는 서성대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이렇게 붐비는 일반 진료시간에 나를 이리로 오게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내가 패배자에 속한다는 최초의 공적인 확인이 된 셈이었다. 의사가 나를 그렇게 생각했단 말인가? 나는 제법 괜찮은 양복을 입고 진료를 받았으며 내 명함을 내밀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의사는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내 이야기를 알게 된 게 틀림없었다. 어쩌면 나 자신이 발설했는지도 몰랐다. 그것이 사실로 드러난 지금, 그렇다고 화가 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조용히 앉아 있었고 아무도 나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몇몇 사람들은 고통스러워했고 보다 쉽게 고통을 견디기 위해 한쪽 다리를 약간 흔들었다. 많은 남자들이 머리를 얇은 손에 파묻고 있었고, 힘들고 기분 상한 얼굴을 하고 깊이 잠들어 있는 사람도 있었다. 목이 벌겋게 부어오른 어떤 뚱뚱한 남자는 몸을 앞으로 수그리고 거기에 앉아 있었는데, 바닥을 노려보다가 가끔씩 적당한 곳에다 침을 뱉었다. 한 아이가 구석에서 훌쩍거리고 있었다. 그 아이는 길고 야윈 다리를 벤치로 끌고 가더니, 마치 이별을 아쉬워하는 듯 벤치를 끌어안고 있었다. 둥글고 검은 꽃으로 장식된 모자를 비스듬히 쓰고 있는 키가 작고 창백한 어느 부인은 메마른 입가에 찡그린 미소를 지었으나, 상처 입은 눈에는 끊임없이 눈물이 괴어 있었다. 그 부인으로부터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둥글고 반짝이는 얼굴과 표정 없이 툭 튀어나온 눈을 가진 소녀 하나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소녀의 입이 벌어져 있어서 썩고 뒤틀린 이빨과 점액질의 허연 잇몸이 보였다. 온통 붕대 천지였다. 머리 전체를 층층이 감은 붕대도 있었다. 결국 한쪽 눈만 남았고 그 눈은 누구의 눈도 아닌 것 같았다. 감추는 붕대가 있는가 하면 그 아래 무엇이 있는지를 보여 주는 붕대도 있었다. 사람들이 풀어 놓은 붕대 안에는, 마치 더러운 침대 속에 눕혀진 것처럼, 이제 더 이상 손이라고도 할 수 없는 손이 들어 있었다. 줄지어 앉은 사람들 사이로 사람의 몸만큼이나 큰 붕대 감은 다리가 튀어나와 있었다.
나는 서성거리며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애썼다. 마주 보이는 벽을 열심히 쳐다보았다. 그 벽에는 외닫이 문이 몇 개 달려 있었는데, 천장까지 닿지 않아서 옆방의 입구를 완전히 나누지 못하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내가 서성댄 지도 한 시간이 흘렀다. 잠시 후 의사들이 들어왔다. 맨 앞에 들어온 젊은 두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를 담당한 의사가 맨 나중에 들어왔다. 밝은색 장갑에 윤이 나는 모자를 썼고 흠잡을 데 없는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그 의사는 나를 보자 모자를 약간 들어 올리고는 별 생각 없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제 곧바로 내 이름이 불려지기를 기대했으나 다시 한 시간이 지났다. 내가 무엇을 하면서 그 시간을 보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시간을 흘러갔다.
일종의 간호인인 듯한 노인이 더러운 앞치마를 두르고 와서 내 어깨를 툭 쳤다. 나는 옆에 있는 방들 가운데 하나로 들어갔다. 그 의사와 젊은이들이 책상을 빙 둘러앉아 나를 쳐다보았다. 그들이 자리를 내주었다. 그러면 나는 내 병세가 어떤지를 설명해야만 했다. 가능한 한 간단하게 해 달라는 주의를 받았다. 아마 신사 분들께서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겐 익숙치 않은 일이었다. 젊은 의사들은 앉아서 우월감이 뒤섞인 전문가다운 호기심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아는 그 의사는 시커먼 뾰족 수염을 쓰다듬었으며 무관심한 듯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기분이었으나 이내 불어로 말했다.
"선생님, 제가 드릴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이 분들에게 말씀드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진료가 끝나고 간단하게 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저로서는 힘든 일입니다."
의사는 친절한 웃음을 띠고 일어나 조수들을 데리고 창가로 가더니 수평으로 손짓을 하며 몇 마디를 나누었다. 3분 후 그들 가운데 근시에다 조심성 없어 보이는 한 젊은이가 책상으로 되돌아왔다. 그 젊은이는 나를 엄하게 쳐다보려고 애를 쓰면서 말했다.
"잠은 잘 주무시나요, 선생님?"
"아뇨, 잘 못 잡니다."
그러자 그 젊은이는 나머지 사람들이 서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거기서 잠시 협의를 하더니 의사가 내 쪽을 돌아보고는 다시 부르겠다고 알려주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의사는 1시에 약속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미소를 지었고 작고 하얀 두 손을 성급하게 내저어 무척 바쁘다는 시늉을 했다.
나는 할 수 없이 공기가 더 탁해진 복도로 되돌아왔다. 완전히 기진맥진했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서성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침내는 여러 가지가 뒤섞인 눅눅한 냄새로 인해 결국 현기증을 느꼈다. 그래서 출입문 앞에 멈추어 서서 문을 약간 열었다. 바깥은 아직 오후의 햇살이 있었고 그것을 보고 있노라니 말할 수 없을 만큼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서 있은 지 채 1분도 되지 않아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두어 걸음 떨어진 곳에 앉아 있던 부인이 치음이 섞인 소리로 나에게 뭐라고 말했다. 누가 문을 열어 놓으라고 했냐는 것이었다. 공기가 탁해서 참을 수 없었노라고 말했다.
"좋아요, 하지만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에요. 문을 닫아 놓아야 한다고요."
"그러면 창문이라도 열어 두면 안 될까요?"
"안 돼요, 금지되어 있어요."
나는 다시 서성거리기로 결심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결국 일종의 최면을 거는 일이었고 어느 누구의 기분도 거슬리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작은 책상 가에 있는 부인이 그것을 탐탁하지 않게 여겼다.
"자리가 없나요?"
"예, 앉을 만한 자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서성거리는 것도 허용되어 있지 않아요, 자리를 찾아보세요. 한 자리 정도는 있을 겁니다."
그 여자의 말이 옳았다. 눈알이 툭 불거진 소녀 옆에 정말로 자리가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 필연적으로 뭔가 무시무시한 일을 예고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그 자리에 앉았다. 그러니까 왼쪽에는 잇몸이 썩은 그 소녀가 있었다. 오른쪽에 무엇이 있는지는 잠시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것은 길고 무겁고 움직임이라고는 없는 손과 얼굴을 한 꿈쩍도 않는 거대한 덩어리였다. 내게 보이는 쪽의 얼굴은 표정도 없고 기억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은 장례용 수의처럼 끔찍했다. 검정색의 가느다란 넥타이는 헐렁하고 특색 없이 셔츠 위에 묶여 있었고, 윗도리 또한 보아하니 다른 사람이 의지 없는 육체 위에 덧 씌어 놓았음이 분명했다. 손은 아무렇게나 바지 위에 놓여 있었고, 머리카락조차 염할 때의 모습처럼 가지런히 빗질이 되어, 박제된 동물의 털처럼 뻣뻣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주의 깊게 관찰하였고 문득 이곳이 나에게 예정된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마침내 내 삶의 자리에 이르러 여기에 머무르게 될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렇다, 운명이란 얼마나 경이롭게 진행되는가.
갑자기 아주 가까운 곳에서 겁에 질려 저항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잇따라 들렸다. 연이어 나지막하고 억지로 참는 듯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디에서 나는 소리인지 살피려고 하는 동안에도 다시 애써 참는 듯한 외마디 비명이 들려왔다. 그러자 낮은 명령조의 목소리가 뭐라고 물었다. 그런 다음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무관심한 기계가 윙윙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무데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이제 나는 반 정도밖에 가려지지 않은 벽을 생각해 냈다. 이 모든 소리가 문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이고, 거기서 이루어지는 작업임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실제로 가끔씩 더러운 앞치마를 두른 간호원이 나타나 눈짓을 했다. 그가 나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나를 찾는 것인가? 아니었다. 두 남자가 휠체어를 끌고 와 있었다. 그들은 내 옆에 놓여 있던 그 덩어리를 들어올렸다. 그제서야 나는 그것이 반신불수의 노인임을 알게 되었다. 흐릿하고 우울하게 한 쪽 눈을 열어 놓은 그 노인네의 다른 쪽 신체는 삶에 마모되어 자그마해져 있었다.
그들은 노인을 실어갔고, 그럼으로써 내 옆자리가 비게 되었다. 나는 앉아서, 그들이 이 겁먹은 소녀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이 소녀도 소리 지르게 될 것인지 생각했다. 저 뒤편에 있는 기계는 공장에서처럼 아주 경쾌하게 윙윙거렸고 전혀 불안하지 않은 듯했다. 그런데 갑자기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그 정적 속으로 귀에 익은 침착하고 자신감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웃어 봐요."
잠잠했다.
"웃어 봐요, 어서요."
나는 이미 웃고 있었다. 저 건너편의 남자가 무슨 이유로 웃으려고 하지 않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기계가 덜컹거리기 시작했으나 곧 다시 멈추었다. 몇 마디 말이 오가고 나서 다시금 이 힘있는 목소리가 명령하는 소리가 들렸다.
"‘앞으로’라고 해보세요."
한 자 한 자 또박또박하게 들려주었다.
"앞, 으, 로..."
침묵이 흘렀다.
"전혀 안 들려요. 자, 다시 한 번..."
그리고 저 건너편에서 너무나 따뜻하고 빨려드는 듯한 소리가 울려왔을 때, 그때 수년 이래 처음으로 다시 생각나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어렸을 적에 열에 들떠 자리에 누워 있었을 때, 처음으로 깊은 공포감을 느꼈던 일이었다.
커다란 것, 그렇다. 모든 사람들이 내 침대 주위에 서서 진맥을 하고 무엇에 그렇게 놀랐냐고 물을 때면 난 항상 "커다란 것이요"하고 말했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의사를 부르고 의사가 와서 나에게 물을 때면, 나는 커다란 것을 쫓아 버리기만 하면 된다고, 다른 것은 아무 문제도 아니라고 의사에게 간청했다. 그러나 의사도 다른 사람들처럼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그 당시만 해도 어린아이였던 나를 납득시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도, 그 의사는 "커다란 것"을 쫓아낼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것이 다시 여기에 나타났다. 그 후에 그것은 간단하게 사라졌고, 열이 나는 밤에도 다시 나타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 열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인 여기에 있었다. 바로 지금 여기에 있었다. 이제 그것은 종양처럼, 혹은 제2의 머리처럼 나에게서 자라나 너무나 커버려 내 신체의 일부일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한 부분이 되었다. 그것은 죽은 동물의 커다란 몸집처럼, 살아 있었을 때에는 내 손이나 팔이었던 것처럼 여기에 있다. 그리고 나의 피는 내 몸을 관통하고 그것의 몸도 관통하여 마치 한 몸에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나의 심장은 "커다란 것" 속으로 억지로 들어가서 병들고 상해서 돌아왔다. 그러나 그것은 점점 부풀어 올라서 푸르스름하고 후끈한 혹처럼 내 얼굴 위로 자라나고 내 입 위로 자라나, 마침내 내 눈 위에 그 주둥아리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내가 어떻게 그 넓은 마당을 지나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때는 저녁 무렵이었다. 나는 낯선 곳에서 길을 잃었고 담을 끼고 끝없이 뻗어 잇는 가로수 길을 한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러고 나서 그것이 끝도 없이 계속되자, 반대 방향으로 뒤돌아 걷기 시작한 끝에 어느 광장에 이르렀다. 그 곳에서 나는 다시 어느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한 번도 온 적이 없는 거리들이 나왔다. 가도 가도 모르는 거리였다. 때때로 전차가 둔탁하게 종을 울리며 눈부시게 질주해 왔다가 지나갔다. 그러나 전차의 번호판에는 내가 모르는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내가 어느 도시에 와 있는지, 여기 어딘가에 집이 있는지, 그리고 더 이상 걷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만 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오래 전에 감염되었던 그 특이한 병이 아직까지도 여전하다. 사람들이 이 병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마찬가지로 다른 병의 의미를 과장하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이 병은 뚜렷한 중상이 없고 병에 걸린 사람에 따라 그 증상을 달리한다. 이 병은 각자에게서 먼 옛날에 사라졌다고 생각되는 가장 깊숙한 곳의 위험을 끄집어내서는 그 사람의 코앞에 들이댄다. 가령 학창 시절, 소년의 가련한 굳은 손을 기만당한 친구로 삼아 곤궁한 장난을 시도한 적이 있는 남자들은 이제 다시 그것을 깨닫게 되거나 아이 적에 극복했던 그 병을 다시 앓기 시작한다.
아니면 아주 오래 전에 잊어버렸던 습관이 되살아난다. 가령 약간 주저하면서 머리를 돌리는 수년 전의 습관을 이제 다시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과 더불어 마치 바다 속에 잠긴 물건에 해조류가 엉겨 있듯이 혼란된 기억 속에 엉켜 있던 것이 솟구쳐 올라온다. 전혀 들어 보지도 못한 삶의 편린들이 솟아올라, 실제로 일어났던 것 사이에 뒤섞이고, 익히 알고 있던 과거사를 몰아낸다. 왜냐하면 솟아오른 것은 이제껏 쉬고 있었던 새로운 힘인 데 반해, 항상 머릿속에 있었던 것은 너무 잦은 회상으로 지쳐 있기 때문이다.
오 층에 있는 내 방 침대에 누워 있다. 아무런 방해물이 없는 나의 하루는 바늘 없는 시계판과 같다. 어느날 아침, 내 침대 위에는 어렸을 적에 잃어버린 것들이 처음 잃어버렸을 때처럼 새 것으로, 또 마치 누군가가 잘 보살폈던 것 마냥 잘 보관된 채 제 자리에 놓여 있는 물건처럼 어렸을 적에 잃어버린 것들이 놓여 있다. 잃어버린 모든 불안들이 거기에 다시 놓여 있는 것이다.
이불 가장자리에서 빠져 나온 털실이 딱딱하다는, 마치 철로 된 바늘처럼 딱딱하고 날카롭다는 불안감. 내 잠옷의 단추가 내 머리보다 훨씬 크고 무겁다는 불안감. 지금 내 침대에서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가 유리같이 조각조각 아래에 떨어져 있을 것이라는 불안감과, 그렇게 해서 모든 것이 영원히 부서져 버릴 것 같은 걱정스러움. 찢어진 편지 조각이 아무도 알아서는 안 되는 금지된 것이고 형용할 수 없이 귀중한 것인양, 책상 안에 두고도 도저히 안심이 안 되는 불안감. 잠이 들 때면, 난로 앞에 있는 한 웅큼의 석탄을 내가 삼켜 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 내 뇌 속에 있는 어떤 숫자가 점점 자라나기 시작해서 마침내 내 몸 속에 더 이상 자리가 없을 것 같은 불안. 내가 누워 있는 곳이 화강암이라는, 회색 화강암이라는 불안. 내가 고함을 지를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사람들이 달려오고, 결국 문을 부수고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불안. 비밀을 누설할 수도, 내가 무서워하는 모든 것을 말해 버릴 수도 있을 것만 같은 불안. 혹은 어떤 것도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말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 그 밖의 불안, 불안들. 나는 유년 시절을 돌려 달라고 기도했고, 그것은 되돌아왔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힘겹다. 나이를 먹었다는 것이 아무 소용없는 일임을 느꼈다.
어제는 열이 좀 내렸다. 그리고 마치 봄처럼, 그림 속의 봄처럼 하루가 시작되었다. 국립 도서관에 나가 그토록 오랫동안 읽지 못했던 나의 작가에게 가볼 생각이다. 어쩌면 그 후에는 느릿느릿 공원을 산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물결이 넘실대는 큰 호수 위로 바람이 불 테고, 붉은 돛단배를 띄우고 바라보는 아이들이 오겠지.
오늘 자연스럽고 간단하기 그지없는 일인 양 그토록 용기 있게 외출할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시 나를 종이조각처럼 말아 내던지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예전에 들어본 적조차 없는 일이었다.
생 미셸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이 낮은 경사길을 걸어가니 기분도 경쾌해졌다. 유리창이 서막처럼 쩌렁거리며 머리 위 창문이 열리고, 창의 광채가 하얀 새처럼 거리 위로 날아갔다. 바퀴를 새빨갛게 칠한 자동차가 한 대 지나갔고, 저 멀리 아랫길에는 연녹색 옷을 걸친 사람이 있었다. 물을 뿌려 깨끗해진 차도에는 번쩍거리는 마구를 단 말들이 달려가고 있었다. 바람이, 신선하고 부드럽게 모든 것을 일깨우는 바람이 일었다. 갖가지 냄새와 소리, 종소리를 일깨우는 바람이 일었다.
저녁이면 붉은 옷을 걸친 가짜 집시들이 연주하곤 하는 카페 앞을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열린 창문으로는 밤새 갇혀 있던 공기가 양심에 거리껴 하며 기어 나오는 것 같았다. 반짝반짝 빗질을 한 급사들이 막 문 앞 청소를 끝내고 있었다. 그 중의 한 급사는 몸을 구부려 누런 모래를 한 웅큼씩 탁자 아래에 뿌리고 있었다. 그때 지나가던 사람이 그 급사를 쿡 찌르면서 길 아래쪽을 가리켰다. 얼굴이 시뻘건 그 급사가 잠깐 날카롭게 그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수염 없는 그의 뺨에 갑작스레 미소가 퍼졌다. 그는 다른 급사들에게도 눈짓을 했다. 그러면서 여전히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으랴 그 자신도 그 장면을 놓치지 않으랴 바쁘게 이쪽저쪽 두리번거렸다. 이제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아래쪽을 보거나 살피고 있었다. 웃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무엇이 우스운 지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답답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마음속에서 약간의 불안이 시작되는 것을 느꼈다. 무엇인가가 나를 다른 곳으로 몰아내고 있었다. 나는 조금 더 잰걸음으로 걷기 시작하며 몇 안 되는 내 앞의 사람들을 무심코 살폈다. 별반 특별난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 중에 푸른색 앞치마를 두른 급사가 어깨에는 빈 바구니를 걸치고서 누군가를 배웅하는 것이 보였다. 충분히 배웅하고 나자, 그 급사는 선 자리에서 카페 쪽으로 몸을 돌려 웃고 있는 지배인에게 누구라도 알 정도로 이마 위를 씰룩거려 보였다. 그러고 나서 까만 눈을 반짝거리더니 만족한 듯이 내가 있는 쪽으로 흔들거리며 걸어왔다.
그 급사가 지나가고 눈앞이 확 트이자, 나는 곧 낯선 무엇인가로 주의를 끄는 사람이라도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내 앞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어두운 외투를 걸치고 짧은 금발에 부드러운 검정 모자를 쓴, 키가 크고 빼빼 마른 남자뿐이었다. 아무리 봐도 이 사람의 옷에서나 행동거지에서 우스꽝스러운 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사람이 뭔가에 걸려 휘청거렸을 때, 나는 이미 이 사람에게서 눈을 떼고 가로수길 아래쪽을 내려다보려던 참이었다. 나는 그 사람의 뒤를 바짝 따라가고 있었기 때문에 조심을 했다. 그러나 막상 그 자리에 갔을 때는 아무것도 없이 깨끗했다.
우리 두 사람, 그 사람과 나는 같은 간격을 유지하며 계속해서 걸어갔다. 이제 교차로가 나왔다. 그런데 거기에서 내 앞에 가던 그 남자가 고르지 않은 걸음으로 보도 아래층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뛰는 폼이 마치 아이들이 즐거워서 걷다가 팔짝팔짝 뛰는 모습과 같았다. 그 사람은 큰 보폭으로 저편 보도로 간단히 건너갔다. 그러나 보도로 올라서자마자, 그 남자는 한쪽 다리를 약간 끌어당기더니 다른 쪽 다리로 한 번 높이 껑충 뛰어올랐고 곧 그것을 반복했다. 아마도 거기에 어떤 미세한 것이, 예를 들어 씨앗이라든가 미끄러운 과일 껍질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면 이 갑작스런 행동을 비틀거린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이상한 것은 그 남자 스스로가 걸림돌이 있다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 순간에 사람들이 그렇듯이, 휘청거릴 때마다 반은 불안하고 반은 화가 난 눈초리로 성가신 땅바닥을 쳐다보곤 했기 때문이다.
거리 다른 편에서 어떤 경고문이 다시 한번 나를 부르는 듯 했지만 나는 그 곳으로 가지 않고 내내 이 남자의 다리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그의 뒤를 따랐다. 그 사람이 스무 걸음 정도를 가고서도 껑충 뛰지 않았을 때, 이상하게도 내가 기분이 홀가분해졌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올려다보았을 때, 이 남자에게 다른 어떤 화낼 만한 일이 생겼음을 알게 되었다. 외투 깃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는 어떤 때는 한 손으로, 또 어떤 때는 양손으로 그것을 눕히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것으로 인해 불안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곧 이 사람의 분주한 두 손이 두 가지로 움직이고 있음을 알고 깜짝 놀랐다. 즉 눈에 띄지 않게 옷깃을 치켜 올리는 은밀하고 재빠른 손동작이 있는가 하면, 깃을 내리는 일을 하는 세밀하고 참을성 있는, 말하자면 지나치게 느릿느릿한 손동작이 있었다. 이것을 보고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치켜 올라간 외투와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손 뒤로, 바로 그 남자의 목덜미에서, 방금 그의 다리에서 사라졌던 그 끔찍한 두 박자의 경련이 나타난 것을 2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이 순간부터 나와 그는 결부되었다. 나는 이 경련이 그의 몸속을 헤매 다니며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누군가가 눈치를 챌 경우, 나도 똑같이 비틀거리자고 생각해 두었다. 그것은 호기심에 가득 찬 사람들에게 여기 길에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걸림돌이 있다고, 그래서 우리 두 사람이 우연히 걸려 넘어졌다고 믿게끔 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내고 있는 동안, 그는 스스로 새롭고도 훌륭한 출구를 찾아냈다. 그 사람이 지팡이를 들고 있다고 아직 말하지 않았던가? 그것은 얇고 둥근 모양의 손잡이가 달린 어두운 빛깔의 나무로 만든 보통 지팡이였다. 뭔가 방법을 찾는 그의 불안 속에서 그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우선은 이 지팡이를 한 손으로(나머지 다른 손은 나중에 필요하게 될지 모르니까) 척추를 따라 수직으로 등에 대고서, 요추부를 단단히 누르고는, 둥근 지팡이의 끝을 옷깃 속에 단단하게 밀어 넣어서, 마치 목덜미와 첫 번째 요추부에 받침대를 댄 것처럼 느끼게 했다. 그것은 눈에 띄지 않으면서, 기껏해야 약간 불손해 보이는 정도의 지주가 되었다. 예기치 못했던 봄날에 그 정도쯤은 용서받을 수 있었다. 아무도 돌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아주 잘하고 있었다. 물론 두 번째 교차로에서 두 번 껑충거렸다. 그것은 다소 억눌린 작은 경련이었는데, 아주 사소한 것이었다. 실제로는 한쪽 발이 눈에 띌 정도로 껑충했지만, 그것도 아주 기술적이어서(살수용 호스가 길바닥에 가로놓여 있었다) 걱정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모든 일이 잘되어 갔다. 때때로 그의 다른 손도 지팡이를 잡아 꽉 눌렀고 그러면 곧 위험한 순간이 지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불안이 커 가고 있는 것에 속수무책이었다.
나는 그가 걸어가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하게 보이도록 안간힘을 쓰고 있는 동안에, 그의 몸 속에 끔찍한 경련이 쌓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경련이 점점 커짐에 따라 그의 육체는 더욱 불안해했고 그 불안은 내 마음속에도 있었다. 그의 내부에서 경련이 나타나기 시작할 때면 그가 얼마나 그의 지팡이에 매달리고 있는 지를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나면 너무나 무자비하고 엄격한 고통이 양손에 표현되어 나는 위대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그의 의지에다 모든 희망을 걸었다. 그러나 그의 힘이 다한 순간이 올 것이고 그 순간이 그리 멀지 않을 수도 있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 나는 돈을 모으듯 나의 작은 힘을 모았고 그의 손을 보면서 만약 필요하다면 받아주십사 하고 간청했다. 그는 내가 모은 힘을 받아들인 것 같았다. 더 이상 힘이 남아 있지 않은 나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생 미셜 광장은 많은 차와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로 붐볐다. 때때로 우리는 차들 사이에 있었다. 그러고 나면 그는 숨을 내 쉬었고 마치 몸을 풀기 위한 것인 양, 조금 걷다가 뛰어 보기도 하고 끄덕거리기도 했다. 그것은 아마도 그에게 사로잡힌 질병이 그를 이기고자 하는 잔꾀였는지도 모른다. 그의 의지가 두 곳에서 꺾이고 말았다. 그가 굴복함으로서 근육 속에 자꾸 유혹적인 자극이 남겨 졌다. 결국에는 두 박자의 경련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팡이는 여전히 그의 손에 쥐여져 있었고 그 손은 화가 나고 분노에 가득 찬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다리를 건너게 되었고 별다른 일은 없었다. 사실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걸음이 조금 불안해 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두 걸음 정도를 뛰고서 멈춰 섰다. 그가 멈추었다. 왼 손에서 나지막하게 지팡이가 빠져 나왔다. 그 손을 아주 천천히 들어 올렸다. 허공에서 그 손이 떨리는 것이 보였다. 모자를 약간 뒤로 젖히더니 이마를 쓰다듬었다. 머리를 약간 돌렸다. 어딘지도 모르는 채 하늘과 집들과 물 가운데로 시선이 오갔다. 그리고 그는 굴복했다. 지팡이가 쓰러졌고 그는 마치 날아오르려고 하는 것처럼 두 팔을 벌렸다. 자연력과 같은 힘이 그에게서 터져 나왔다. 그것은 그의 몸을 구부러지게 하고 뒤로 꺾이게 하고 목을 끄덕거리게 했다. 격렬한 춤을 추고 있는 듯한 힘이 그에게서 빠져 나와 군중에게 뿌려졌다. 이미 나는 사람들이 그 주위에 모여들어서, 나는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었다. 그러고도 어디론가 것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나는 빈껍데기와도 같았다. 나는 텅 빈 종이 마냥 집들을 따라 가로수 길을 다시 거슬러 올라갔다.
(다음은 편지의 초안이다)
어찌할 수 없는 이별을 한 뒤라 전혀 쓸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 아니, 나는 편지를 쓰지 않을 수 없다. 팡테옹에서 성녀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고독한 성녀, 지붕, 문, 그 안에서 소박한 빛을 비추는 등잔불, 그 너머 잠들어 있는 도시와 강, 멀리 보이는 달빛. 성녀는 잠든 도시 위에 깨어 있다. 나는 울고 말았다. 내가 울었던 이유는 그 모든 것이 너무나도 예상치 못한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그림 앞에서 울었다. 나 자신도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지금 파리에 머무르고 있다. 이것을 들으면 기뻐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대부분은 나를 부러워할 것이다. 옳은 말이다. 파리는 이상한 유혹들로 가득 찬 커다란 도시다. 나에 대해 말하자면, 이러한 유혹들과 모종의 관계를 맺게 되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르게 예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이 유혹들에 굴복했고 그 결과 내 성격까지는 아니지만 나의 세계관에, 어쨌든 나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그 영향으로 나는 모든 사물에 대해 완전히 다른 견해를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이제까지의 그 어떤 차이점보다도 더 많이 나와 다른 사람들을 구분 짓게 되었다. 변화된 세상.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지닌 새로운 삶. 모든 것이 너무나 새로워서 힘든 순간도 있었다. 나 자신의 매사에 새로 걸음마를 시작하고 있다.
바다를 한 번 볼 수는 없겠느냐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네가 올 수도 있다고 상상해 본다. 올 의사가 있는 지 네가 나에게 말해 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나는 그것에 대해 묻는 것을 잊었었다. 게다가 지금은 필요한 일도 아니고.
보들레르의 그 엄청난 시 "시체"를 기억하고 있니? 나는 그 시를 지금에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 연을 도외시한다면 그가 옳다. 그런 일이 그에게 일어났을 때, 그가 어떻게 해야 했을까? 사실 이렇게 끔찍한 가운데, 겉보기에 그저 거슬리는 정도의 것들에서, 온갖 존재의 바닥에 있는 것을 보는 게 그의 과제였다. 선택이나 거부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너는 플로베르가 생 쥘리엥 정신병원에다 편지를 띄운 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하니? 나병 환자 곁에 누워 사랑하는 사람과 밤을 지새는 따뜻한 마음으로 그 환자를 따스하게 할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 내가 생각하기에 그것이 가장 결정적인 문제일 것 같다. 그럴 마음이라면 나쁜 결과를 가져 올래야 가져 올 수 없겠지. 내가 여기서 환멸감만을 맛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말아 줘. 오히려 그 반대야. 내가 현실적인 것을 위해서는, 설사 그것이 사악하다 할지라도 모든 기대를 포기할 각오가 되어 있다는 데에 나 자신 종종 놀란다.
그 중에 일부라도 나눠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현실은 과연 그럴 수 있는 건가? 아니다. 그것은 오직 고독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얻어지는 것이기에.
공기의 구성 성분 속에는 분명 공포가 존재하고 있다. 그대는 그것을 투명한 공기와 함께 들이마신다. 그러나 그것은 그대 안에서 침전되고 굳어져서 여러 기관들 사이에서 뾰족하고 기하학적인 형태를 띄게 된다. 형장에서, 고문실에서, 정신병원에서, 수술실에서, 늦가을의 다리 아래에서, 고통과 공포에 의해 행해졌던 모든 것이 끈질기게 살아남아, 그 존재를 고집하고,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질투심으로 그 끔찍한 현실에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그 가운데서 많은 것을 잊고 싶어 한다. 잠은 뇌의 주름위를 부드럽게 깎아 놓지만, 꿈은 잠을 쫓아 버리고 고통과 공포의 흔적을 남긴다. 사람들은 잠에서 깨어나 헐떡거리고 어둠 속에서 촛불을 밝힌다. 그리고 마치 단물을 마시듯, 촛불이 희미하게 밝혀 놓을 위안을 들이마신다. 아, 그러나 어느 구석에서 이러한 안도가 유지될 수 있을는지.
고개를 아주 조금만 돌려도 시선은 익히 알고 있는 것과 친숙한 것을 벗어난다. 그리고 방금까지 그토록 위안을 주던 윤곽은 공포의 테두리보다 더 선명해진다. 방안을 텅 비게 만드는 빛을 조심하라. 그대가 앉은 뒤로, 그대의 그림자가 주인처럼 서 있는지 보려고 뒤돌아보지 말라. 그대로 어둠 속에 남아, 그대의 불확실한 마음이 모든 구분할 수 없는 것과 무겁게 한 마음이 되는 것이 더 나은 일일런지 모른다.
이제 그대는 정신을 가다듬었고 그대 손 안에서 그대 자신이 멈추는 것을 본다. 그대는 때때로 부정확한 동작으로 자신의 얼굴을 그려 본다. 그러나 그대가 들어설 공간은 거의 없다. 그대 안의 이렇게 협소한 곳에 엄청나게 거대한 것이 들어설 수 없다는 사실이, 그리고 전대미문의 것이 내부가 되어야 할지라도 상황에 따라서는 제한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그대를 달래 준다.
그러나 외부에서는 무한하다. 만약 그것이 외부에서 커진다면, 어느 정도 그대의 힘이 작용하는 혈관이나 무관심한 기관의 점액 정도가 아니라, 그대의 몸속이 그것으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그것은 모세혈관 속에서 부풀어 올라, 그대의 무수한 현존이 가지 치는 곳으로 관 모양으로 쭉 빨려들어 간다. 거기서 그것은 팽창하고, 거기서 그것은 그대를 뛰어넘는다. 그것은 그대가 최후의 피난처인 양 도망쳐 간 호흡마저도 막히게 한다. 아, 그러면 어디로 가야 하나? 그대의 심장은 그대를 내몰고, 그대는 심장을 남겨 두고 뛰쳐나온다. 그러면 그대는 이미 너의 외부에 서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돌아갈 수도 없다. 사람들의 발에 짓밟힌 딱정벌레 마냥 그대 몸 속에서 그대가 흘러나와 버렸다. 그대가 외적으로 조금 강하다는 것과 적응 능력이 있다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 아무런 대상도 보이지 않는 밤이여. 오, 투박한 창문 너머로 세심하게 닫혀진 문들만이 보이네. 옛날부터 전해 내려와 그 진가가 확인되었지만 결코 완전히 이해 받지 못한 가구들이여.
오, 계단의 정적이여, 지붕 위의 정적이여. 오, 어머니, 어린 시절 이 모든 정적을 바꾸어 놓으셨던 유일한 분이시여. 정적을 당신께서 떠맡으시고 말씀하셨지. "놀라지 말아라, 나란다." 놀라고 두려워 창백해진 아이들을 위해 한밤 내내 정적이 되어 줄 용기를 가지셨던 분이시여. 당신께서 불을 켜시면 당신은 이미 정적을 깨는 소음이 되시죠. 그리고 등불을 들어 보이며 말씀하십니다. "나다. 놀라지 말거라." 그리고는 등불을 천천히 내려놓으십니다. 당신이 곧 불빛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눈에 익숙하고 친숙한 사물들, 그 이면에 어떠한 의미도 감추지 않은 선량한 사물들, 단순하고 명확한 사물들을 밝히는 불빛인 것이죠.
벽 어디엔가 소란한 곳이 있거나 다락방에서 발걸음 소리라도 들리면, 당신은 웃으실 따름이죠. 살피듯 당신을 바라보는 겁먹은 얼굴을 향해 밑바닥까지 환하게 드러나는 투명한 웃음을 지어 보이십니다. 마치 당신께서, 부스럭거리는 모든 소리와 비밀리에 약속을 하고 계시거나 당신이 곧 소리인 것처럼 말이죠. 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 어떤 힘과 당신의 힘을 비교할 수 있을까요?
보세요, 왕들은 자리에 누워 앞을 응시하고 있고 이야기꾼은 그들의 기분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애첩의 복된 가슴에서도 공포가 그들을 상처 내어 흥을 깨뜨립니다. 그러나 당신은 무시무시한 것을 물리치고 그것을 완전히 압도하십니다. 여기저기 아무데나 열어 줄 있는 휘장 같은 존재도 아니죠. 당신을 필요로 하는 부름에는 누구보다 앞서 오실 것입니다. 달려올 수 있는 모든 것을 앞서 오셨을 테지요. 자식을 위해 서둘러야 한다는 마음으로 외길 인생을 사셨고 자식에 대한 사랑의 날갯짓만을 해오셨습니다.
내가 날마다 지나다니는 석고점에는 문 옆에 두 개의 마스크를 내걸어 놓고 있었다. 하나는 시체 공시장에서 떼어온 것으로 물에 빠져 죽은 젊은 여자의 얼굴이었다. 그것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웃고 있었다. 그것도 스스로의 아름다움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듯 아주 취한 듯이 웃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 아래에는 잘 알려진 남자의 얼굴이 걸려 있었다. 여러 감각들이 꽉 묶여진 이 단단한 매듭. 쉬지 않고 뿜어 나오려는 음악을 가차 없이 압축시켜 버린 듯한 이 모습. 자신의 소리 이외의 모든 소리를 없애기 위해 신이 청각을 빼앗아가 버린 자의 얼굴. 이로써 그는 흐릿하고 덧없는 소음으로 인해 오도되지 않는다. 그 자신 속에는 명료함과 영원함만이 있었다. 음을 잃은 감각들이 그에게 음이 창조되기 전의 미완의 세계를, 긴장되고 기대에 찬 세계를 소리 없이 가져다주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빗물이 대지 위와 강물 위로 우연히 아무렇게나 떨어지듯 세계를 완성시키는 당신. 눈에 띄지 않게 자연의 법칙에 즐거워하면서 삼라만상으로부터 다시 일어나 둥둥 떠다니며 하늘을 만드는 당신, 당신으로부터 우리의 침전물이 솟구쳐 오르고 그것은 세계를 음악으로 휩싸이게 한다.
당신의 음악, 그것은 우리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세계를 위한 것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테베의 사람들은 당신에게 피아노를 만들어 주었을 것이고, 천사는 왕과 창녀와 은둔자가 쉬고 있는 사막을 지나 고독한 악기 앞으로 당신을 이끌어 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 천사조차도 당신의 음악이 시작되는 것을 불안해하면서 높이 날아가 버렸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듣지는 못하고 쏟아내는 자, 당신의 발산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우주만이 견뎌낼 것을 우주에게 되돌려 주면서. 아랍의 유랑민들은 미신에 사로잡혀 먼 곳에 도망갔을 테지만 상인들은 당신이 폭풍우인 것처럼, 당신의 음악이 들려오는 곳으로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 밤이면 사자들만이 한 마리씩 멀리서 당신의 주변에 어슬렁거리다가, 격정적인 피에 위협을 느껴 제 자신에게 놀랐을 것이다.
도대체 누가 당신을 지금 이 탐욕스런 귀에서 구원해 줄 것인가? 누가 이 돈에 눈먼 자들의, 한 번 더 잉태한 적 없는 청각을 음악당에서 몰아내 줄 것인가? 그런 자들에게 음악의 씨앗이 뿌려지면 그들은 창녀처럼 드러누워 즐기거나, 혹은 그들이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누워 있는 동안에 수음의 씨처럼 음악의 씨앗이 그들 모두에게 떨어질 것이다.
반면에 더럽혀지지 않은 귀로 동정을 지켜온 자는 어디에선가 당신의 소리와 동침할 것이다. 그는 너무나 복되어 죽고 말거나, 혹은 무한한 것을 품었다가 결실을 맺은 그의 두뇌가 순수한 탄생으로 터지고 말 것이다.
나는 그것을 과소평가 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누군가가 이런 용기를 가졌다고 가정해 보자. 그들이 어디에서 어디로 기어가는지, 수많은 날들을 무엇으로 시작하는지, 혹은 밤에 그들이 잠을 자는지, 이 모든 것을 영원히(왜냐하면 그것을 다시 잊거나 헷갈려 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 알기 위해 그들의 뒤를 쫓을 "사치스런 용기"를 누군가가 가졌다고 잠시 가정해 보자. 그러나 용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들은 사소한 일들이나 잇따르는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오가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기에 서 있는가 하면 다시 출발하고, 장난감 병정처럼 세워져 있는가 하면 어느새 없어진다.
그들을 볼 수 있는 곳은 사람들이 이제 가지 않는 곳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감춰진 곳도 아니다. 그들은 무성한 수풀에서 쑥 들어가 잔디를 끼고 길이 약간 굽어지는 그런 곳에 있다. 그런가 하면 훤히 들여다보이는 커다란 공간을 주의에 두어 종모양의 유리뚜껑같이 보이는 곳에 있기도 한다. 키가 작고 어느 모로 보나 소박하며 전혀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을, 생각에 깊이 잠겨 산책하는 사람들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곧 혼란에 빠진다. 그들이 왼손으로 낡은 외투의 꼬깃꼬깃해진 주머니에서 뭔가를 집어내려고 하는 것을 본다면 말이다. 그리고 찾아낸 그 작은 물건을 꺼내 왼손으로 공중에 이상하게 치켜 올리는 모습을 본다면 말이다. 1분도 안 되어 두세 마리의 참새가 신기한 듯이 폴짝폴짝 모여든다. 그리고 부동성에 대한 새들의 매우 정확한 이해에 부응할 수 있다면, 새들이 더 이상 가까이 다가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 마침내(어떤 새인지는 모르지만) 첫 번째 새가 날아올라, 달리 요구하는 것도 없고 체념의 빛이 역력한 손가락으로 못 먹게 된 빵부스러기를 내밀고 있는 손 위에서 잠시 신경질적으로 짹짹거린다.
주위에 새들이 더 많이 모여 들수록, 물론 적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럴수록 그는 점점 더 새들과 멀어진다. 그 사람은 다 타 버린 촛대처럼 거기 서 있다. 타다 남은 심지로 불을 밟히고 그것으로 그 자신이 데워지면서도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가 어떤 유혹을 하는지, 어떤 미끼로 유혹을 하는지 어리석고 조그마한 수많은 새들은 판단할 수가 없다. 만약 관객들이 사라지고 그 혼자 아주 오랫동안 거기에 서 있게 된다면, 확신하건대, 돌연히 천사가 내려와서 참다가 결국에는 그 구부러진 손바닥 위에 있는, 오래되고 달콤한 빵조각들을 먹게 될 것이다. 천사에게는 항상 사람들이 훼방꾼인 법이다.
사람들은 새들이 오는 데에만 신경을 쓴다. 그 사람들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기며, 이 사나이가 다른 어떤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긴 이 사람이 달리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고향의 작은 정원에 꽂아 둔 뱃머리 수호 인형처럼 땅 속에 약간 비스듬하게 꽂혀 있는 이 낡고 비에 후줄근하게 젖은 인형이 말이다. 그런 자세는 언제 어디선가 가장 격동적인 삶의 와중에 있었던 데에 기인하는 것일까? 옛날에 현란했기에 지금은 저토록 빛바랜 것일까? 물어 보겠는가?
그러나 여자가 모이는 주는 것을 보게 될 때에는, 아무것도 묻지 말자. 아예 그 뒤를 따라가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여자들은 지나가면서 모이를 준다. 쉬워 보인다. 그러나 내버려두자. 그 여자들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들은 갑자기 손지갑에서 커다란 빵을 꺼내거나 얇은 외투에서 약간 갉아먹어서 축축해진 커다란 빵 덩어리를 꺼낸다. 자기들의 침이 약간씩 세상으로 나오는 것이 즐거운 모양이다. 자기들은 곧 잊게 될지라도 자기들의 침이 묻은 이 풍미로운 모이를 작은 새들이 물고 날아오르는 것이 그 여자들에게는 즐거운 모양이다.
그때 나는 완고한 당신의 책을 읽고서, 당신을 온전히 두지 못하고 아전인수 격으로 당신을 이해하고 만족해하는 세인들과 똑같이 당신 책을 이해하려고 했다. 그때까지만 세인들과 똑같이 당신 책을 이해하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직 명성이 성장하는 것을 공공연하게 부숴 놓는 것임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명성이란, 사람들이 공사장에 몰려가 돌멩이를 밀어 넣는 것과 같다.
그러나 어딘가 있을 젊은이에게는, 자신을 전율케 하는 무엇인가가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젊은이에게는, 아무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만약 당신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당신을 비방한다면, 당신이 교류한 사람들이 당신을 완전히 포기한다면, 그들이 당신의 애정 어린 사상 때문에 당신을 송두리째 없애 버리려고 한다면, 이런 것은 눈에 보이는 위험이므로 오히려 당신을 더욱 굳건하게 만든다. 이에 반해 후에 찾아오는 명성은 당신의 이름을 퍼뜨림으로써 당신을 무장 해제시키는 교활한 적대성을 지니고 있다.
제발 당신에 관해 말하게 될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경멸하지 마시오. 시간이 흘러 당신의 이름이 어떻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지 알게 되더라도 당신이 듣게 되는 것이 전부라고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마시오. 차라리 당신 이름이 더럽혀졌다고 생각하고 당신 이름이 아닌 것으로 치시오. 밤에 신께서 당신 이름을 부를 수 있도록 아무 이름이나 하나 정해 두시오. 그리고 그 이름을 세인들에게 감추시오.
모든 사람들과 동떨어진 그대 고독한 자여, 당신의 명성을 듣고 당신의 뒤를 따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근본적으로 당신을 적대시해 왔는가. 그러나 지금 그들은 당신을 마치 자기들과 비슷한 사람인 양 취급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오만의 우리 속에 당신의 말을 가두어 광장에다 내놓고 그들의 안전한 자리에서 약간씩 자극해 본다. 무시무시한 맹수와 같은 당신의 말을...
내가 당신의 글을 처음으로 읽었을 때, 당신의 말들은 나에게 터져 나와 사막에 있던 나에게 떨어졌다. 그것은 절망의 말들이었다. 당신 스스로가 종국에 처했던 절망, 당신이 가야 할 길이 바르게 도약이라도 할 것같이 단 한 번 우리에게로 굽어지더니 깜짝 놀라 우리에게서 멀어진 이 쌍곡선, 당신의 길이 그려 놓은 이 절망의 쌍곡선. 한 여자로 남을 것인가 세상 밖으로 나아갈 것인가, 현기증을 일으킨 것인가 발작을 한 것인가, 혹은 죽은 것이 산 것처럼 보이는가, 산 것이 죽은 것처럼 보이는가 등등의 문제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이 모든 것이 당신에게는 너무나 당연할 것이다.
사람들이 대기실을 통과해 가듯 당신은 거기를 지나갔다. 당신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사가 끓어오르고 가라앉고 색깔을 바꾸는 곳에 당신은 머물렀고 그 손으로 몸을 굽혔다. 이제까지 그 누구보다도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서. 문 하나가 당신에게 열렸고 이제 당신은 불빛이 비치는 가운데 플라스크 앞에 있었다. 불신에 가득 찬 당신이 한 번도 다른 사람을 데려간 적이 없었던 그곳, 바로 그곳에 앉아 변화 과정을 분석하고 있다.
천성적으로 뭔가를 만들어 내거나 말하는 것보다 보여주는 데에 재주가 있었기에, 당신은 그곳에서 아주 무시무시한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당신 자신도 처음으로 유리병을 통해 알게 된 이 미세한 것이 수천 명의 사람들 앞에, 아니 세상사람 모두의 앞에 어마어마하게 나타나도록 혼자서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의 연극이 생겨났다. 당신은 수백 년을 몇 방울로 응결시킨, 거의 무공간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러한 삶이 다른 예술에 의해 발견되고, 점차 개개인에게 가시화 되는 것을 기다릴 수가 없었다.
개인은 느리게 통찰력을 얻으므로, 그들 앞에 펼쳐지는 무대의 비유에서 고귀한 평판이 사실임을 끝내 알게 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당신은 이것을 기대조차 할 수 없었다. 당신은 이미 거의 측량할 수 없는 것을 확인하고 붙잡아 둬야만 하는 단계에 도달해 있었다. 예컨대 반 등급 정도 고양된 감정, 거의 아무런 무게도 실리지 않아 아주 가까이에서나 읽을 수 있을 정도인 의지의 저울 눈금, 한 방울 동경 속의 가벼운 흐릿함, 신의라는 물질 속에서 일어나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색깔 변화 등을 들 수 있다. 우리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와 거의 추측할 수 없을 정도로 후퇴해 버린 삶은, 이제 그러한 현상들 속에나 있기 때문이다.
시대를 초월한 비극 작가여, 당신은 보여 주는 것을 목표로 삼았기에, 이러한 모세관을 가장 확신에 찬 몸짓으로 단숨에, 가장 확실히 존재하는 사물로 전환시켜야만 했다. 바로 그 점에서 당신 작품의 유례없는 폭력 행위가 시작되었다. 당신 작품은 점점 더 초조하게, 점점 더 절망적으로, 볼 수 있는 것들 중에서 내적 사건의 등가물을 찾고 있었다. 그러기에 집토끼가 있었고, 지붕 밑의 방과 누군가가 서성대는 홀이 있었다. 그러기에 옆방에서 들리는 끽끽대는 유리 소리와 창문에서 바라본 화재와 태양이 있었다. 그러기에 교회가 있었고, 교회와 비슷한 바위 골짜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마침내 탑들과 산맥 전체가 등장해야만 했다. 그리고 모든 경치를 뒤덮는 눈사태는, 무형의 것을 위해 유형의 것으로 꽉 채운 무대를 뒤흔들어 놓고 말았다.
그러니 당신도 더 이상 어쩔 수 없었다. 당신이 굽혀서 연결해 놓았던 양 끝은 다시 튕겨져 날아가 버렸다. 당신의 광적인 힘은 탄력 있는 막대기에서 나온 것이었고, 당신의 작품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당신이 항상 그랬듯이 완고하게 생의 마지막에 그 창가를 떠나지 않으려 했다는 사실을 그 누가 알까? 당신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자 했다.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한다면 언젠가는 이 사람들로 뭔가를 만들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나는 느닷없이 사람들이 한 여자에 관해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나는 그들이 그 여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주변을 맴돈다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거명하고 그 주변 환경과 장소와 대상을 묘사했다. 그러다 결국에는 특정한 곳에 이르고 말았다. 그곳은 모든 것이 멈추어 버리는 곳이었다. 거기서는 그 여자를 에워싸고 있는, 한 번도 확실하게 그려본 적 없는 윤곽이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멈추어 버렸다. "어떤 여자였는데?" 내가 물었다. "금발이었어, 너랑 비슷할 걸." 그들은 그렇게 말하고, 그밖에 그들이 알고 있는 잡다한 것을 나열했다. 그러나 그로 인해 그 여자의 모습은 더욱 모호해져서 나로서는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그 여자의 모습을 볼 수 없었던 것은 어머니를 졸라서 들은 이야기뿐이었다.
어머니는 늘 개가 나오는 대목에서 눈을 감고는, 완전히 문을 걸어 잠궜지만 도처에 빛을 발하는 얼굴을, 차갑게 관자놀이를 집어 가는 양손 사이로 어떻게든 절실하게 지탱하곤 하셨다. "난 그것을 보았단다, 말테야." 다시 다짐을 하셨다. "정말로 보았단 말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이미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몇 년 전이었다. 그 당시 어머니는 더 이상 아무도 보려고 하지 않았고, 항상 얇고 자그마한 은빛 체를 심지어 여행길에도 가지고 다니시면서 모든 음료를 걸러 드셨다. 딱딱한 형태의 음식은 더 이상 잡숫지 않으셨지만, 혼자 계실 때에는 비스킷과 빵을 아이들처럼 잘게 부수어 드셨다.
벌써 그 무렵에 어머니는 바늘에 대한 불안에 완전히 사로잡혀 계셨다. 다른 사람에게 변명을 하시기 위해서 어머니는 그저 "소화가 안 되는 구나.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어, 기분은 아주 썩 좋으니까"라고만 하셨다. 그러나 갑자기 나한테 몸을 돌리고 (나도 이미 어느 정도는 성장한 후였으니) 애써 웃으며 말씀하셨다. "웬 바늘이 이렇게 많은지, 말테야, 사방에 널렸다, 그게 얼마나 쉬 떨어지는지 생각하면..." 어머니는 정말 농담조로 말하려고 신경을 쓰셨다. 그러나 어머니는 잘못 꽂아 놓은 바늘이 한순간 어디에선가 떨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놀라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잉에보르크에 대해 말할 때는 무척 즐거워하셨다. 당신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으셨다. 목소리는 커졌고 잉에보르크의 웃음을 떠올리며 웃으셨다. 잉에보르크의 아름다운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 애는 우리 모두를 즐겁게 해주었어, 말테야. 네 아버지도 정말 즐거워하셨단다. 그 애가 죽는다고 했을 때, 단지 가벼운 병치레를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말이다, 우리 모두는 그 이야기를 피했고 그 애에게도 숨겼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애가 침대에서 일어나 앉더니 무슨 소리가 나는지 귀 기울인 사람처럼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조심하실 필요 없어요. 다 알고 있는 걸요. 올 것이 온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요." 한 번 상상해 보렴. 우리 모두를 즐겁게 해주었던 애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요"라고 말했단다, 말테야. 네가 자라면 언젠가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나중에 한 번 생각해 보려무나, 아마 네 머리에 떠오르겠지. "그런 일"에 열중하셨고, 돌아가신 마지막 해에는 늘 혼자 계셨다. 말테야, 나는 죽어도 그런 생각을 못 하겠다."
어머니는 특유의 대담한 미소를 지으며 자주 그렇게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그 미소를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고 싶어하지 않으셨다. 그것은 미소가 지어졌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그 목표가 달성되는 그런 미소였다.
"그런데 그걸 알아내는 데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도 없었단 말야. 만약 내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그래 정말 내가 남자였다면, 나는 거기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을 게다. 일의 순서에 따라서 처음부터 올바르게 말이다. 어쨌든 실마리는 있게 마련이고 그것을 찾기만 한다면 이미 어느 정도는 일이 해결된 셈이지. 말테야, 우리는 그렇게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단다. 사람들은 모두 정신이 산만하고 쓸데없는 일에 마음이 팔려 있어. 우리한테는 제대로 눈길조차 주지 않는구나. 마치 별똥별이 떨어질 때처럼 그것을 보는 사람도 없고 뭔가 소원을 비는 사람도 없어졌어. 하지만 말테야, 소망을 가져야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소망하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법이지. 물론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어. 하지만 일생 동안 내내 간직하고만 있고, 그것이 이루어지리라 아예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소망도 있는 법이란다."
어머니는 잉에보르크의 작은 책상을 방에다 올려놓게 하셨다. 나는 무시로 그 방에 드나들어도 되었기 때문에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어머니를 볼 수 있었다. 나의 발걸음은 양탄자 속에 푹 파묻혔지만, 어머니는 용케도 내 기척을 알아채시고 한쪽 손을 다른 쪽 어깨 너머로 내미셨다. 그 손은 아무런 무게도 싣고 있지 않았다. 나는 밤에 잠들기 전에 내게 내밀어지는 상아 십자가와 같은 그 손에 입 맞추었다. 어머니는 키 작은 책상을 당신 앞으로 열어젖히고 마치 악기 앞에 앉은 것처럼 앉아 계셨다. 그리고 "책상 안에 햇살이 가득하지"라고 말씀하셨다.
실제로 책상 안이 이상하게도 환했다. 그 안에는 빛바랜 노란색 래커가 칠해져 있었고 그 위로 붉은 꽃과 푸른 꽃이 그려져 있었다. 세 가지 빛깔의 꽃이 나란히 그려져 있는 곳도 있었다. 세 가지 빛깔의 꽃이 나란히 그려져 있는 곳도 있었다. 붉은 꽃과 푸른 꽃 사이에 보라색 꽃이 그려져 있어 두 꽃 사이를 갈라놓고 있었다. 수평으로 뻗어 나간 당초무늬의 녹색과 이 빛깔들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어서, 바탕의 노란색이 실제보다 더 환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것으로 인해 기묘하게도 내적인 상호 관계 속에 있는 음조들이 요란스레 떠들어대지 않고도 부드러운 관계를 맺고 있었다.
어머니는 텅 비어 있는 책상 서랍을 열었다. "아, 장미구나"라고 말씀하시고 갖가지 냄새가 뒤섞인 아련한 향기 속으로 몸을 약간 기울이셨다. 그럴 때면 항상 어머니는 비밀서랍 속에서 갑자기 무엇인가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하곤 하셨다. 숨겨 둔 용수철을 누르기만 하면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그 비밀서랍이 열릴 것이라 생각하셨던 것이다. "곧 튀어 나오게 될 거다, 두고 보면 알 게다." 어머니는 진지하면서도 불안하게 말씀하시고 서둘러 모든 서랍을 열어 보셨다. 그러나 실제로 서랍 속에서 종이 뭉치가 나오면 어머니는 그것을 읽지 않고 잘 모아서 간수해 두셨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거다, 말테야. 내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지."
어머니는 모든 것이 어머니에게 너무 복잡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계셨다.
"인생에서 초보자를 위한 반은 없는 것 같구나,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은 항상 고급반이다."
사람들이 들려준 이야기로는 이모가 끔찍하게 돌아가신 후로 그렇게 되셨다는 것이다. 이모인 엘레고르 백작 부인은 무도회가 열리기 전에 촛불이 켜진 거울 앞에서 머리 위의 꽃을 고쳐 꽂으려다 그만 불에 타 죽었다. 그러나 말년의 어머니에게 있어 가장 알 수 없었던 것은 잉에보르크였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내가 어머니에게 조르기만 하면 들려주셨던 이야기 그대로.
잉에보르크의 장례가 끝난 때는 여름날 정오, 목요일이었단다. 차를 마시곤 했던 테라스에 앉아 있으면 커다란 느릅나무 사이로 조상들 무덤의 박공 장식을 볼 수 있었지. 식탁은 더 올 사람이 없는 것처럼 준비되어 있었고 우리 모두는 넓게 떨어져서 둘러앉아 있었어. 그리고 모두들 뭔가를, 예컨대 책이라든가 일거리를 담은 바구니를 가져왔는데, 이상하게 갑갑한 느낌이 들더구나.
벨로네(어머니의 막내 여동생)가 차를 따르고 우리 모두는 차를 돌리는 일에 분주했었다. 다만 너의 외할아버지만은 앉아 계신 소파에서 집 쪽을 바라보고 계셨어. 그러다 우편물이 도착하는 시간이 되었단다. 대개는 식사 준비를 하느라 집 안에 늦게까지 남아 있었던 잉에보르크가 그것을 가져오곤 했었지. 하지만 그 애가 아파 누운 몇 주일 동안 우리는 그 애가 식탁으로 오지 않는 데에 익숙해져 있었어. 그 애가 올 수 없다는 걸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
그러나 말테야, 그 애가 정말로 더 이상 올 수 없었던 그날 오후에 그 애는 왔단다. 아마도 우리 잘못이었을 게다. 아마도 우리가 그 애를 불렀는지도 몰라. 내가 거기에 앉아서 도대체 이제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생각해 보려고 무진 애를 썼던 일이 떠오르니 말이다. 나는 갑자기 무엇이 달라졌는지 말할 수 없게 되었어. 완전히 망각해 버린 거지. 내가 눈을 들어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니 모두 집 쪽을 쳐다보고 있더구나. 특별하거나 이상한 눈빛이 아니라, 실로 조용하고 일상적인 눈으로 기대에 차서 말이다. 그래서 (얘야, 그때를 생각하면 아주 오싹해진다) 하마터면 "얘가 어디 있는 걸까?" 하고 말할 지경이었지. 한데 그 순간 카발리에가, 늘 그러하듯, 식탁 아래에서 튀어나와 그 애를 맞이하는 것이었어. 나는 그걸 보았다, 말테야,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구. 그 애가 오지 않았는데도 그 녀석이 그 애를 맞이했단 말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어. 그 녀석은 마치 우리에게 물어 보기라도 하는 양 두 번 우리 쪽을 돌아보았지. 그리고는 그 애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래 말테야, 여느 때와 똑같이. 그리고 그 아이에게 이르렀어. 왜냐하면 그 녀석은 그 자리에 없었던 그 무언가의 주위에서 뱅글뱅글 뛰어다녔고 그러고 나서는 그 애를 핥으려고 위로 뛰어오르기 시작했거든. 녀석은 좋아서 컹컹거렸고 급하게 여러 번 튀어 올라서, 마치 그 녀석이 그 애를 감추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정도였지 그러나 다음 순간 녀석은 갑자기 울부짖었고 공중으로 뛰어올라 돌더니 이상하게도 서툴게 고꾸라졌어. 그러고는 낮게 드러누워서 움직이지 않았어. 그때 반대쪽에서 하인이 집에서 편지를 가져왔단다. 그 하인은 잠시 망설이더구나. 우리 얼굴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분명히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게지. 그리고 네 아버지가 그 하인에게 서 있으라고 눈짓했어.
말테야, 네 아버지는 동물을 좋아하시지 않았단다. 그러나 그때 네 아버지는 천천히 그쪽으로 걸어갔고 내가 보기에는 개에게 몸을 수그리는 것처럼 보였어. 네 아버지는 하인에게 단음으로 짧게 뭐라 하셨어. 그러자 하인이 카발리에를 들어올리기 위해 그쪽으로 뛰어갔단다. 하지만 네 아버지는 손수 그 동물을 안고 집안으로 들어가셨어. 그때 네 아버지의 모습은 어디로 가야 할지 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언젠가 이 이야기를 듣느라 어둑어둑해졌을 때, 나는 하마터면 어머니에게 "손"에 관해 이야기할 뻔한 적이 있다. 그 순간 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이미 숨을 들이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사람들의 얼굴 앞을 지나갈 수 없었던 그 하인의 마음을 내가 잘 이해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이 어두워졌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보았던 것을 보게 되면 질색하실 어머니의 얼굴이 두려웠다. 나는 전혀 다른 의도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서둘러 숨을 들이마셨다.
우르네믈로스터 마을의 화랑에서 보낸 그 기이한 밤 이래로 몇 해가 지나고, 나는 하루종일 에리크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을 틈을 엿보았다. 그러나 그 아이는 우리가 함께 이야기를 나눈 밤이 지나고 나자 다시 마음의 문을 잠그고 나를 피하는 것이었다. 그 애가 나를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렇게 때문에 나는 그 애에게 "손"에 관해 얘기를 하고 싶었다. 내가 정말로 체험했던 것을 그 애에게 이해시킬 수 있다면 그 애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무슨 이유인지 나는 그것을 절실히 원하고 있었다) 상상했다. 그러나 에리크는 너무나 교묘하게 나를 피하고 있어서 일이 쉽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곧 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해서, 너무나 놀라운 일이지만, 나는 유년 시절에 아련히 묻혀 있던 사건을 (결국 나 자신에게만) 지금 처음으로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아주 작았음에 틀림없다. 그것은 내가 책상에서 편안하게 그림을 그리려면 소파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때는 겨울 저녁이었고, 내가 착각한 것이 아니라면, 시내에 있는 집에서였다. 책상은 내 방 창가 사이에 있었다. 방에는 도화지와 가정교사의 책을 비추는 램프 외에 다른 불빛은 없었다. 왜냐하면 가정교사는 내 곁에 앉아 몸을 약간 뒤로 젖히고서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책을 읽을 때면 자리에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므로 나는 선생님이 책에 열중하고 있는지 않은지도 알 수 없었다. 선생님은 몇 시간이고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책장을 잘 넘기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선생님 아래로 페이지가 더 많아지고 있을런지도 모른다는 인상을 받았다. 선생님은 단어들을 찾고 있었다. 그것도 필요하긴 한데 책 속에는 없는 특정한 단어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느릿느릿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가 그림이 막히면 머리를 약간 오른쪽으로 기울인 채 모든 것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항상 내 머리 속에는 아직도 부족한 그 무엇이 쏜살같이 떠올랐다. 말을 타고 전장으로 가거나 혹은 전장의 와중에 있는 장교들을 그렸는데, 후자는 훨씬 간단한 일이었다. 거기서는 모든 것을 휘감고 있는 연기를 그리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내가 그린 것이 섬이었다고 항상 주장하셨다. 그 섬에는 거대한 나무와 성과 계단이 있고 둘레에는 꽃이 피어 있어 물에 그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어머니가 지어내신 이야기이거나, 아니면 더 시간이 지난 후의 일임에 틀림없다.
확실한 것은 내가 매일 저녁, 기사를 그렸다는 것이다. 매우 선명한 모습을 한 기사 하나가 이상한 차림을 한 말에 올라타 있었다. 말은 형형색색으로 치장하고 있어서 나는 크레용을 자주 바꿔야만 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내가 항상 다시 집었던 것은 빨간 크레용이었다. 그때 나는 빨간 크레용을 다시 한 번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크레용은 불빛이 비치고 있는 도화지 위를 가로 질러 책상 끝으로 굴러갔다(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것은 내가 잡기도 전에 굴러 떨어져서 내 옆을 지나 어디론가 굴러가 버렸다. 나는 그 크레용이 절실하게 필요했고 이제 그것을 찾아 기어 다니는 것은 실로 화가 나는 일이었다. 아직 어려서 매사에 서툴렀던 내가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이만저만 거추장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다리가 너무 길게 느껴졌고 그 다리를 몸 아래로 끌어내릴 수가 없었다.
너무나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탓에 내 사지는 무감각해져 있었다. 어느 것이 내 몸이고 어느 것이 소파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약간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마침내 나는 아래로 내려왔고, 책상 아래부터 벽까지 뻗어 있는 모피 위로 내려서게 되었다. 그러나 거기에서 또 다른 어려움이 발생했다. 책상 위 밝은 빛에 익숙해져 있고 하얀 도화지 위의 갖가지 색에 아직도 열광하고 있어서 나의 눈은 책상 아래를 전혀 알아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어둠은 나에게 완전히 차단된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것과 부딪치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나의 감각을 믿고, 무릎을 꿇고 앉아 왼손으로 몸을 지탱하고서, 다른 손으로 양탄자 사이를 이리저리 빗질해 갔다. 양탄자는 서늘하고 털이 길며 아주 친숙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연필 같은 것이 만져지지는 않았다.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교사를 불러 램프를 비춰 달라고 막 부탁할 참이었다. 그때는,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었던 내 눈에 어둠이 점점 더 투명하게 보였다. 그래서 이미 벽에 밝은 색 굽도리를 친 것을 분간할 수 있었다. 나는 책상 다리 위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물고기와 같이 저 아래에서 헤엄치며 홀로 바닥을 살피고 있는, 쫙 펼쳐진 내 손을 발견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일이지만, 나는 호기심에 가득 차서 내 손을 쳐다보았다. 내가 이제까지 눈 여겨 보지 못했던 움직임으로 저 아래에서 아주 독자적으로 이리저리 더듬고 있는 내 손은 마치 알지 못했던 사물인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것이 나아가는 대로 시선을 쫓았다. 그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다. 만반의 준비를 해두었다.
하지만 갑자기 벽에서 다른 손이 내 손 쪽으로 다가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것은 내가 본 적이 없는, 이상하게 바짝 마르고 커다란 손이었다. 그것은 내 손과 비슷한 방식으로 다른 편에서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펼쳐진 두 개의 손이 서로를 보지 못한 채 움직이고 있었다. 나의 호기심은 아직 다하지 않았지만, 갑자기 호기심이 사라지고 대신 공포만이 남았다. 두 손 중에서 하나는 나의 손이었고, 이제 그 손을 돌이킬 수 없는 어떤 것에 휘말려 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 손에 대해 가지는 당연한 권리로 나는 그것을 붙잡고 손바닥을 위로 해서 천천히 끌어당겼다. 눈은 계속 뭔가를 찾고 있는 다른 손을 놓치지 않은 채였다. 그 손은 찾고 있는 것을 포기할 것 같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다시 일어났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나는 소파 깊숙이 파묻혀 앉았고 이를 악물었다. 내 얼굴은 창백해졌고 내 눈에 푸른빛이라곤 전혀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나는 "선생님" 하고 부르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선생님이 깜짝 놀라, 읽던 책을 던져 버리고는 소파 옆에 꿇어 앉아 내 이름을 불렀다. 그 선생님이 나를 흔들어 깨웠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내 몸이 흔들렸다. 그러나 정신만은 또렷했다. 몇 차례 딸꾹질을 했다. 내가 본 것을 이야기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떻게 한단 말인가? 나는 애써 마음을 가다듬었지만 사람들이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그 사실을 표현할 말이 있다 할지라도 그런 말을 하기에 나는 아직 어렸다. 갑자기 불안감이 나를 엄습했다. 그리고 그 불안은 내 나이를 초월해서 갑자기 거리에 존재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불안이라는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 내게는 무엇보다도 두렵게 여겨졌다. 저 아래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을 다시 한 번 처음부터, 사실과는 좀 다르게 변화시켜서 체험하는 것, 그래서 그 일을 다시 한 번 듣는 것, 그 일을 할 힘이 내게는 없었다.
만약 지금 내가 그 당시에 이미 뭔가 내 삶 속으로 들어왔다고, 그래서 영원히 나 홀로 헤매고 다녀야만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아마 공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내가 아기 침대에 누워 잠 못들고, 삶이 그러할 것이라고, 정확히는 아니지만 어떤 식으로든 예견하는 모습을 그려 본다. 삶은 아주 특별한 것으로 가득 차 있고, 그것은 오직 한 분에게만 의미 있는 것이고 표현될 수 없는 것이다.
확실한 것은 점차 내 마음속에 비극적이고 우울한 자부심이 솟아올랐다는 것이다. 내적으로 충만하면서도 침묵 속에서 이리저리 방랑하는 모습을 나는 상상해 보았다. 어른들에 대해 격한 동정심을 느꼈다. 나는 어른들을 존경하게 되었고 어른들에게 그들을 존경한다고 말하리라 결심했다. 그리고 나중에 기회가 있다면 나는 이 사실을 선생님께 말씀드리겠다고 결심했다.
그러고 나서 이것이 최초의 경험이 아니라는 것을 기어이 증명하려고 애를 쓰는 듯한 병이 나타났다. 열은 나를 헤집어 놓고 저 아래로부터 내가 몰랐던 여러 가지 경험들과 표상들, 사실들을 끄집어올렸다. 나는 그것들에 짓눌려 자리에 누워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질서 정연하고 순서에 맞게 내 속에 쌓이도록 하라는 명령을 받을 순간만을 학수고대했다. 나는 그 일을 시작했지만 그것들은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 반항하기 시작했고, 너무나 많아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윽고 나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 모든 것을 마음속에 꾸러미째로 던져 놓고 억누르려고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나는 반쯤 입을 벌리고 소리를 지르고 또 질렀다.
늘 그런 식이었다. 내가 나 지신의 세계로부터 바깥 쪽을 내다보기 시작하면, 내 침대를 둘러싼 사람들이 오랫동안 서서 내 손을 잡아 주었다. 그 방에는 촛불이 하나 있었다. 사람들 등뒤로 커다란 그림자가 일렁거렸다. 아버지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라고 명령하셨다. 그것은 친절하고 조용한 말투였으나 어쨌든 명령조였다. 그리고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아버지는 초조해 하셨다.
어머니는 결코 밤에 오시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가 밤에 오신 적이 한 번 있었다. 나는 소리를 지르고 또 질렀다. 가정교사가 오고 하녀 시베르젠과 마부 게오르크가 달려왔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러자 결국 사람들은 부모님을 부르러 마차를 보냈다. 부모님들은 성대한 무도회에 참석하고 계셨다. 황태자가 베푼 무도회로 기억된다.
갑자기 마차가 뜰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입을 다물고 앉아 문 쪽을 바라보았다. 다른 방에서 약간의 소란스런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긴 야회복을 입은 어머니가 옷에 신경을 쓰지 않고 들어오셨다. 거의 뛰다시피 들어오시느라 하얀 털외투를 떨어뜨린 어머니는 맨 살이 드러난 팔에다 나를 안으셨다. 어머니의 머리와 화장한 자그마한 얼굴과 귀에 건 차가운 보석과 꽃향기를 풍기는 어머니의 어깨에 걸쳐진 비단을 느꼈다. 이전에 맛보지 못한 놀라움과 황홀경을 느꼈다.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오셔서 우리가 떨어져야만 한다는 것을 느낄 때까지 애정이 넘친 눈물을 흘리고 입을 맞추었다.
"애가 불덩어리예요."
어머니가 겁먹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는 내 팔을 잡고 맥박을 짚으셨다. 아버지는 수렵관 복장을 하고 계셨고 넓고 푸른 물결 모양의 훌륭한 상아 벨트를 하고 계셨다. 아버지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방안에다 대고 말씀하셨다.
"대단치도 않은 걸 가지고 우리를 부르다니."
부모님은 심각한 일이 아니라면 되돌아갈 것을 사람들에게 약속하고 오신 모양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심각한 일은 없었다. 내 이불 가에서 어머니의 무도회 초대장과 흰 동백꽃을 발견했다. 그것은 본 적이 없는 꽃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서늘한지 알아챘을 때 나는 그것을 내 눈 위에다 올려놓았다.
그런 병을 앓고 있으면 오후가 길게 느껴진다. 밤에 잠을 설치고 으레 아침에 잠이 들게 마련이었다. 깨어나 다시 새벽이 되었구나 생각할 때가 바로 오후였고 오후는 계속 남아 지나갈 줄을 몰랐다. 이렇게 정돈된 침대에 누워 있으면 관절이 약간씩 자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너무나 지쳐서 뭔가를 상상하는 일조차 힘들었다. 사과 소스의 뒷맛이 오랫동안 남아서 나도 모르게 신맛을 어떻게든 없애 버리고 깔끔한 신맛이 돌게 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좀 지나서 다시 힘이 나자 등뒤에다 쿠션을 쌓고 앉아 병정놀이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비스듬하게 생긴 침대 책상에서는 병정들이 쉽게 쓰러졌고 그러면 곧 대열 전체가 무너졌다. 그리고 언제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힘이 나지는 않았다. 갑자기 힘겹게 느껴져서 얼른 모든 것을 치워 달라고 부탁했다. 이제 다시 텅 빈 이불 위에 덩그러니 남은 두 손을 보는 데에서 즐거움을 찾았다.
어머니가 30분 정도 머무르면서 동화를 읽어 주실 때가 있었다(오랜 시간 올바르게 낭독하는 일은 시베르젠이 했다). 어머니는 동화를 읽어 주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와 나는 동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치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경이로운 것에 대해 남다른 개념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관계를 맺을 때 가장 경이롭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게 하늘을 나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고, 요정들도 기대를 채워 주지 못했으며, 다른 특이한 형식으로 변신하는 모든 것을 단지 외형적인 변화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는 동화를 열심히 읽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약간씩은 동화를 읽었다. 왜냐하면 누군가 방에 들어왔을 때 우리가 방금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그다지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 아버지에 대해서 우리는 지나치게 분명한 태도를 보였다.
훼방꾼이 없다는 것을 확신했을 때에만, 그리고 밖이 어둑어둑해졌을 때에만, 비로소 우리는 추억에 흠뻑 젖을 수 있었다. 그것은 어머니와 나에게는 이미 오래 된 일처럼 여겨지는 둘만의 추억이었고, 그것을 말할 때면 늘 웃음이 번졌다. 그 일이 있고 나서 훨씬 성숙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때 어머니는 내게 사내아이가 아니라 작은 계집아이였으면 하고 바라신 적이 있었다. 어찌어찌해서 나는 그것을 알게 되었고 오후에 가끔 어머니 방을 노크해 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거기 누구냐고 물으시면 밖에서 "소피예요"라고 소리치는 것이 매우 즐거웠다. 그럴 때 내 작은 목소리는 아주 상냥하게 변해 있어서 목이 간지러웠다. 그러고 나서 내가 방에 들어서면(그렇지 않아도 내가 입고 있었던 옷은 소매를 부풀려 올린 여자 옷 비슷한 것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귀여운 소피였다.
소피는 집안일에 열심이었고 어머니는 소피에게 머리를 땋아 주셔야 했다. 다시 들어올지도 모르는 고약한 말테와 혼동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말테가 들어오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았다. 어머니도, 소피도, 말테가 나가 있어서 즐거웠다. 그때 주고받은 대화의 대부분은 (소피는 내내 같은 톤의 고음으로 재잘댔다) 말테의 나쁜 행실을 나열하고 그 애에 대해 불평하는 것이었다. "그 녀석은, 정말" 하고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게다가 소피는 남자아이에 대한 일반적인 단점을 산더미처럼 많이 알고 있었다.
그런 추억을 떠올릴 때면 문득 어머니는 "소피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구나"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물론 말테도 거기에 대해서 알려 드릴 게 없었다. 그렇지만 어머니가 소피는 아마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얘기하시면, 말테는 그렇지 않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리고 소피의 죽음이 증명되지 않았는데도 소피가 죽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어머니에게 받았다.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이 열병의 세계로부터 다시 돌아와 공동체의 삶 속으로 편입되었다는 데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 공동체의 삶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잘 아는 사람들 속에 있다는 느낌에 위안을 받았고, 서로의 이해 속에서 조심스레 행동했다.
그곳에는 기대가 있었다. 그것은 실현되기도 하고 실현되지 않기도 했다. 제3의 선택이라곤 있을 수 없었다. 그곳에서는 영원히 슬픈 일도 있었고, 즐거운 일도 있었으며, 대수롭지 않은 일도 많았다. 누군가에게 기쁨이 준비되어 있다면 그것은 기쁜 일이고 그 사람은 기쁜 대로 행동해야만 했다. 기본적으로 모든 것이 단순해서 기쁜 일을 찾아내기만 하면 저절로 일이 결정되었다. 모든 것은 이 약속된 구분 속으로 편입되었다.
예컨대 바깥이 여름인데도 길고 단조로운 수업을 받기도 하고, 불어로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산책 시간도 있었다. 방문객이 있으면 거기에 불려갔고, 금방 슬픈 얼굴을 지으면 웃음을 샀다. 그들은 우울한 얼굴 외에 달리 가진 것이 없는 새를 보는 듯 놀려댔다. 물론 생일날에는 잘 알지도 못하는 아이들이 초대되었다. 다른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어 놓고는 자기도 당황해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의 얼굴을 할퀴고 방금 선물 받은 것을 부숴 놓는 뻔뻔스러운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 아이들은 모든 것을 상자에서 꺼내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는 가버렸다. 그러나 여느 때처럼 혼자서 놀 때면, 전체적으로 무해한 이 합의된 세계의 경계선을 자기도 모르게 넘음으로써 간파하지 못했던 전혀 다른 상황에 빠질 수 있었다.
가정교사는 이따금 엄청나게 심한 편두통을 앓았는데, 그런 날이면 나는 사람들이 잘 찾지 못하는 곳으로 숨어 버렸다. 그럴 때 만약 아버지께서 나를 부르시려면 나를 찾으러 마부를 정원으로 보냈지만 나는 그곳에 없었다. 나는 손님방의 위쪽에서 마부가 달려 나와 길게 늘어선 가로수길 입구에서 나를 부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란히 서 있는 이 손님방은 울스가르의 박공지붕 아래에 있었고 그 당시에는 찾아오는 손님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거의 비어 있었다.
그리고 손님방과 연결된 커다란 구석방이 하나 있었는데, 나는 그곳에 들어가고픈 유혹을 강하게 느꼈다. 그 안에는 낡은 흉상밖에 없었다. 기억하기에 그것은 주엘 제독의 흉상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사면의 벽에는 속이 깊어 보이는 회색 붙박이장이 있었고, 창문은 그 붙박이장 위의 하얀 벽에 나 있었다. 나는 붙박이장의 문에 걸려 있는 열쇠를 발견했다. 그 열쇠는 모든 문에 다 맞았다. 그래서 나는 곧 모든 것을 살펴볼 수 있었다.
18세기 풍의 시종관 연미복 여러 벌이 은실을 섞어 짜서 서늘한 느낌을 주었고, 거기에다 멋있게 수놓은 조끼가 걸쳐 있었다. 백십자 훈장과 코끼리 모양의 훈장을 단 제복은 너무나 화려하고 정교하며 안감의 감촉이 부드러워서 부인복이 아닌가 할 정도였다. 그리고 진짜 연회복도 있었다. 속이 벗겨진 탓인지 약간 뻣뻣하게 매달린 꼴이 마치 꼭두각시처럼 보였다. 이젠 완전히 유행에 뒤떨어진 대규모 인형극의 인형을 그 머리만 떼어서 다른 데 쓰고, 동체만 남은 듯했다. 그 옆으로 옷장이 몇 개 있었다. 열어 보니 높게 봉해진 제복들로 인해 어두컴컴했다. 그 제복들은 다른 옷들에 비해 훨씬 낡았고 원래 보관해 둘 만한 것도 못 되는 듯했다.
내가 이 모든 것을 죄다 끄집어내어서 빛에 비춰 보았다고 해서 놀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이것저것 몸에 대보거나 걸쳐 보기도 했다. 맞을 만한 옷을 서둘러 입어 보고는 흥분과 호기심에 찬 마음으로 그 옆의 낯선 방에 있는 길쭉한 거울 앞으로 달려갔다. 하나하나 다른 초록 빛깔의 유리 조각으로 만든 거울이었다.
아, 그 속에 자신을 비추어 보는 것은 얼마나 가슴 떨리는 일인지, 그런 사람이 되어 보는 것은 얼마나 매혹적인 일인지 모른다. 흐릿한 거울 속에서 무엇인가가 나타나 실제보다 더 천천히 다가왔다. 그럴 것이 거울은 제 눈을 믿지 않았고, 졸음에 겨워서, 앞에서 말하는 것을 곧바로 흉내 내려고도 하지 않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물론 거울은 비추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이제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르게, 얼핏 보았다가 다음 순간에야 그것이 자신임을 알아챌 수 있는, 뭔가 놀랍고도 낯선 것, 갑작스럽고도 독자적인 것이 나타났다. 그것에는 자칫 잘못하면 모든 즐거움을 망칠 수도 있는 어떤 반어적 의미가 다분히 담겨 있었다. 그러나 곧장 말을 걸고 인사를 하면서 눈짓을 해보기도 하고, 계속 뒤를 바라보면서 물러났다가 결심한 듯 흥분해서 되돌아오기도 하면서, 생각이 떠오르는 한에서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다.
그때 나는 특정한 복장에 의해 직접적으로 촉발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런 옷들 중의 한 벌을 몸에 걸치자마자 그것이 나에게 힘을 행사하기 시작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옷은 나에게 몸놀림과 표정, 심지어 생각까지도 지시했다. 뾰족한 소맷부리가 손 위로 흘러내려서 올리면 다시 흘러내렸다. 결코 평소의 내 손이 아니었다. 그것은 배우처럼 움직였고, 과장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아예 자기 스스로 알아서 하는 듯했다. 그렇다고 내가 나 자신을 낯설게 여길 정도로 꾸몄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보다 다양하게 바뀌면 바뀔수록 나에 대한 확신은 더해 갔다. 나는 점점 더 용감해졌다. 나는 나를 점점 더 높이 던져 올렸다. 멋지게 받아낼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급속히 더해 가는 이러한 확신 속에 담겨진 유혹은 알아채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드디어 큰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나는 여태껏 열 수 없다고 생각했던 마지막 옷장을 간신히 열 수 있었다. 그 옷장에는 특정한 의복들 대신에 정확한 용도를 알 수 없는 갖가지 가면 도구들이 들어 있었다. 이 환상적인 우연이 빚어내는 흥분으로 인해 나의 볼이 벌개졌다. 뭐가 있는지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지금도 생각나는 바우타 외에도 여러 가지 색깔의 도미노와, 동전이 바느질되어 있어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부인복도 있었다. 그리고 바보처럼 보이는 피에로들과 주름이 잡힌 터키 풍의 바지와 페르시아 풍의 모자가 있었다. 모자에서 자그마한 좀약이 굴러 나왔다. 무디고 무덤덤한 보석을 박은 왕관도 있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것들은 너무나 옹색한 비현실에 속해 있었고 칠이 벗겨진 채 초라하게 거기에 매달려 있었다. 끄집어내 빛을 쏘이면 아무런 의지도 없이 축 늘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나를 일종의 도취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것은 품이 넓은 망토와 목도리, 숄과 베일이었다. 보통 잘 사용하지 않는 이 재료의 흐느적거리는 질감은 연약하고 간질간질한 것이 있는가 하면, 너무나 매끄러워서 잘 잡히지 않는 것도 있었다. 너무 가벼워서 바람처럼 날리는 것도 있었고 단순히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도 있었다.
나는 그 속에서 비로소 정말로 자유롭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팔려 가는 여자 노예가 되거나 잔 다르크가 되거나 아니면 늙은 왕이나 마법사가 되어 보는 것이었다. 이제 이 모든 것을 손아귀에 넣게 되었다. 특히 가면들을 가지게 된 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진짜 수염과 짙은 눈썹, 치켜 올라 뜬 눈썹을 단 아주 위협적인 얼굴과 깜짝 놀란 표정의 얼굴들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나는 전에 가면을 본 적이 없었지만 곧 가면의 필요성을 통찰하게 되었다. 마치 그 중의 하나를 쓰고 있는 것 같은 우리 집 개가 생각이 나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나 털이 복슬복슬한 얼굴을 뒤에서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그 녀석의 다정스런 눈이 떠올랐다. 나는 옷을 바꿔 입는 동안에도 여전히 웃고 있었고 본래 뭘로 분장하려고 했는지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
일단 거울 앞에 서 보고 나중에 무엇이 될지를 결정하는 것은 새롭고 긴장스러운 일이었다. 내가 쓰고 있는 얼굴에서는 특이하게도 공허한 냄새가 풍겼다. 그것이 내 얼굴 위에 단단히 씌워져 있었지만 편안하게 내다볼 수 있었다. 나는 우선 가면을 쓰고 나서 여러 가지 목도리를 골라 터번식으로 머리에 둘렀다. 그러자 가면의 가장자리가 거대한 회색 망토까지 내려왔고 위와 양 옆도 완전히 감춰지고 말았다. 결국 내가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었을 때에야 비로소 충분히 변장했다고 여겨졌다. 그러고도 나는 커다란 지팡이를 잡고 팔이 미치는 한 멀리 내 옆으로 짚어 갔으나 힘이 들어 질질 끌었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위엄을 잃지 않으면서 손님방 안에 있는 거울 앞으로 나아갔다.
정말로 모든 기대를 넘어서는 어마어마한 모습이었다. 거울은 순식간에 내 모습을 비추었다. 너무나 자신감에 가득 찬 모습이 보였다. 크게 움직일 필요도 없는 듯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이 모습만으로 완벽했다. 그러나 도대체 내 모습이 어떠한지를 알아야 했기에, 약간 몸을 돌려도 보고, 마침내 두 팔을 치켜 올렸다. 흡사 주문을 외는 듯한 커다란 동작이었다. 이미 알아챈 사실이지만, 그것은 유일하게 올바른 동작이었다.
그러나 바로 이 엄숙한 순간에, 변장으로 인해 낮게 들리긴 했지만, 바로 내 옆에서 여러 가지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소음이 들렸다. 나는 깜짝 놀라서 저 건너편 거울 속에 보이던 존재를 그만 눈에서 놓치고 말았다. 도무지 어떤 물건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아마 잘 부서지는 물건들이 놓여 있었던 듯한 작고 둥근 책상을 쓰러뜨린 것을 알고 나는 의기소침해졌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몸을 숙여 보고는 예상했던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음을 확인했다. 모든 것이 둘로 부서진 것처럼 보였다. 연둣빛과 자줏빛의 별 쓸모없어 보이는 한 쌍의 앵무새 도자기가 보기 싫게 부서진 것은 물론이었다. 어떤 깡통에서는 사탕이 굴러 나와서 마치 누에고치처럼 보였다. 깡통 뚜껑은 멀리 달아났는데, 그것도 반쪽은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고 반쪽만 눈에 띄었다. 하지만 가장 화가 나는 것은 산산이 조각난 향수병이었다. 거기서 남아 있던 내용물이 흘러나와 사방으로 튀어서, 깨끗한 널마루에다 보기 싫은 얼룩을 만들고 말았다. 나는 걸치고 있던 것으로 얼룩을 문질러 보았으나 점점 더 검어지고 보기 싫어질 따름이었다. 실로 절망적이었다. 나는 일어나서 모든 것을 해결할 물건을 찾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았다.
자유롭게 볼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지만, 더 이상 파악할 수 없는 이 어리석은 상황에 대해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것저것 잡아당겨 보았지만 그럴수록 더 옥죄일 따름이었다. 망토의 끈은 나를 숨막히게 했고 머리 위의 연장은 나를 짓눌렀다. 마치 점점 더 많은 것을 올려놓은 것 같았다. 게다가 공기는 혼탁했고 엎질러진 액체의 묵은 냄새가 어찌나 코를 찔러대던지.
열이 받치고 화가 치밀어 오른 나는, 거울 앞으로 가서 내 손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가면 사이로 힘겹게 보았다. 그러나 거울은 이것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거울에게 앙갚음의 순간이 왔던 것이었다. 점점 더 옥죄어 오는 가운데 내가 어떻게든 변장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동안에, 거울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지금도 알 수 없지만, 나에게 쳐다보기를 강요했고 나에게 하나의 이미지를, 아니 현실을 보여 주었다. 저항하는 의자에도 불구하고 나는 낯설고 파악할 수 없는, 이 괴물 같은 현실에 그만 젖고 말았다. 거울은 이제 강자가 되었고 나는 곧 거울이었다. 나는 내 앞에 서 있는 이 거대하고 끔찍하며 알 수 없는 존재를 노려보았다. 그것과 단둘이 있다는 것이 무시무시했다.
그러나 내가 이러한 생각을 하는 순간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다. 모든 감각을 잃어버리고 픽 쓰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뭐라 형용할 수 없지만 가슴 저미는 헛된 동경, 나에 대한 동경을 가졌다. 그러나 그러한 동경도 사라지고 오직 그 알 수 없는 존재만은 남아 있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듯 달려 나왔으나, 달려 나온 것은 그 알 수 없는 존재였다. 그것은 여기저기 부딪혔고 집이 어딘지도 알지 못했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랐다. 그것은 계단을 내려갔고 복도에서 어떤 사람 쪽으로 넘어졌다. 그 사람은 소리를 지르면서 비켜났다. 문이 열리고 몇 명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아, 아는 사람들이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랐다. 그들은 시베르젠, 그 마음씨 착한 시베르젠과 하녀와 은을 관리하는 하인이었다.
이제 뭔가를 결정해서 행동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달려와서 나를 구해 주지 않았다. 그들의 잔인함은 한도 끝도 없었다. 그들은 거기에 서서 웃었다. 맙소사, 그들은 거기에 서서 웃을 수 있었다. 나는 울음을 터뜨렸으나 가면에 가려서 눈물이 보이지 않았다. 눈물은 내 얼굴 위로 흘러내려 이내 마르고 다시 흘러내리고 마르고 했다. 마침내 나는 인간이 그런 적이 없을 정도로 그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무릎을 꿇고 양 손을 들고 애원했다.
"나 좀 꺼내 줘, 아직 꺼낼 수 있겠지, 이것 좀 치워 버려."
그러나 그들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시베르젠은 내가 쓰러질 때의 모습과, 또한 장난이라는 생각에 그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던 광경을 죽는 날까지 얘기했다. 그들은 장난꾸러기였던 나에게 익숙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일어날 줄 모르고 대답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정신을 잃고 온갖 천을 휘감은 나무토막처럼 쓰러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 경악스러움이란.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가 순식간에 목사 예스페르젠 박사가 초대되었던 시기에 이르렀다. 그 사람이 오고 나면 아침 식사가 힘겹고 지루해졌다. 그를 위해서라면 온갖 정성을 다하는 아주 신심 깊은 이웃들에 익숙해 있던 그 사람에게 우리 집은 전혀 어울리는 자리가 아니었다. 말하자면 그는 물고기가 물을 떠난 것처럼 헐떡거렸다. 그가 습득했던 아가미 호흡은 힘겹게 이루어졌고, 거품이 일었다. 위험에 처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화제도 궁색했다. 팔다 남은 것들이 믿기지 않을 가격으로 청산되고 모든 재고가 처분되었다. 예스페르젠 박사는 우리 집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자신을 제한해야 했다. 그러나 그 사람은 한 번도 그렇게 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영혼의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영혼은 공공기관이었고, 그는 그것을 대변했다. 그는 늘 자신의 본분을 다했다. 그는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그것을 잊지 않았다. 그의 아내는 라파터가 다른 자리에서 표현했던 것처럼 "소박하고 충실하며, 아이를 낳는 것으로 성스러워진 레베카"였던 것이다.
(다음은 원고지 여백에 씌어진 것이다.)
게다가 아버지로 말하자면, 신에 대한 그분의 태도는 완벽했고, 흠잡을 데 없이 공손했다. 교회에서 서서 기다리다가 허리를 굽히실 때면, 나에게는 마치 아버지가 신에게 봉사하는 수렵관이 된 것처럼 보였다. 어머니께서는 그와 반대로 신에게 공손한 태도를 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거의 모욕으로까지 여기셨다. 만약에 의식이 분명하고 까다로운 종교에 빠지셨다면, 몇 시간이고 꿇어앉아 있거나 엎드리거나 가슴과 어깨 위로 성호를 긋는 것이 행복한 일이었을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아예 나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으셨다. 하지만 내가 기꺼이 무릎을 꿇고, 내가 생각해도 보다 더 인상적이었지만, 두 손을 구부렸다 앞으로 쭉 폈다하는 것에 위안을 받으셨다. 성격이 상당히 조용했던 나는 아주 어릴 적에 일련의 종교 과정을 겪었다. 하지만 그것을 신과 관련지을 수 있었던 것은 절망의 시간을 보낸 훨씬 후였다. 그것도 아주 격렬한 것이어서, 신의 모습이 형상화된 거의 같은 순간에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그 후로 내가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음은 자명한 일이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시작하는 데에 어머니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종종했다. 비록 혼자서 신을 체험하는 것이 보다 올바른 일이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오래였다.
예스페르젠 박사에 대해 어머니는 조금도 거리끼시는 것이 없었다. 어머니는 그가 진지하게 나누는 대화에 끼어드셨고, 그러다가 그가 이야기를 들으면 이제 됐다고 생각하셨는지, 그가 가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그를 잊고 말았다. 어머니는 자주 그를 두고 "어떻게 저런 사람이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곧 죽을 사람 집에 들어갈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셨다.
그 사람은 어머니가 임종하실 때에도 왔다. 하지만 어머니는 더 이상 그를 알아보실 수 없었다. 어머니의 감각들은 하나하나 죽어 갔다. 그것은 맨 먼저 얼굴에 나타났다. 때는 가을이었고 시내로 이사해야 했지만, 바로 그때 어머니께서는 병이 나시고 말았다. 그보다는 죽어 가기 시작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의사들이 왔다. 어떤 날은 의사들이 모두 모여 집안 전체를 휘젓고 다닌 때도 있었다. 이제 그것은 추밀 고문관과 그의 조수들의 일이 되었고 우리에게는 더 이상 아무런 발언권도 없어 보이는 두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그런 다음 곧 그들은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았다. 순전히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인 듯, 개별적으로만 찾아와 여송연을 피우고 포도주를 마시곤 했다. 그러는 동안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이제 어머니의 하나뿐인 남동생인 크리스티안 브라에 백작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일이지만, 외삼촌은 오랫동안 터키에서 일하신 적이 있었는데, 소문에 의하면 그곳에서 큰 성공을 거두셨다고 한다.
외삼촌은 어느 날 아침 이국의 하인을 대동하고 오셨다. 나는 외삼촌이 아버지보다 키가 크고 얼핏 보기에 더 나이 들어 보인다는 사실에 놀랐다. 두 사람은 재빨리 몇 마디의 말을 나누었는데, 추측컨대 어머니와 관계된 말인 듯했다. 침묵이 흘렀다. 그러고 나서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많이 일그러졌어."
나는 그런 표현을 알지 못했지만, 그 말을 듣자 오싹해졌다. 아버지께서도 그 말씀을 입 밖에 내시기 전에 틀림없이 힘드셨으리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 말씀을 하시면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자존심이 아니었던가 싶다.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다시 크리스티안 백작에 관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우르네클로스터에 있을 때였는데, 마틸데 브랑에는 그를 무척 좋아하며 곧잘 그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몇 가지 에피소드는 그녀가 상당히 자기 마음대로 각색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외삼촌의 삶은 항상 소문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며, 심지어 가족들에게조차 그러했기 때문이다. 외삼촌이 한 번도 반박한 적이 없는 이 소문들은 해석의 가능성이 무한한 것들이었다.
우르네클로스터는 이제 외삼촌의 소유였다. 그러나 외삼촌이 그곳에 살고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아마도 습관처럼 여전해 여행을 계속하고 계실런지도 모른다.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머나먼 이국땅 어딘가에서 낯모르는 하인의 손에 의해 서투른 영어로 씌어지든가 아니면 미지의 언어로 씌어져 전해질런지도 모른다. 아니, 이 하인이 어느날 혼자 남겨졌을 때에는 아무런 소식도 보내오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두 사람이 사라진 지는 오래 되었고, 아마 실종된 배의 선원 명부에 그들의 가명이 올려져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당시 우르네클로스터에 마차가 도착하면 나는 항상 외삼촌을 볼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었고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틸데 브라에가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사람들이 전혀 가능하지 않다고 여길 때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외삼촌의 버릇이라는 것이었다. 외삼촌은 오지 않았지만 나의 상상력은 몇 주일이고 외삼촌에게 열중해 있었다. 나는 우리 사이에 어떤 관계가 성립되어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고 외삼촌으로부터 그 사실을 확인 받고 싶었다.
그럭저럭 지내는 동안에 곧 나의 관심도 바뀌어, 어떤 사건에 즈음해서는 크리스티넨 브라에로 완전히 옮겨 갔다. 그러나 그 여자의 삶에 관한 시시콜콜한 얘기를 알려고 애쓰지는 않았다. 다만 그 여자의 초상화가 화랑에 걸려 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불안해졌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너무나 일방적이고 고통스럽게 자라나서, 나는 며칠 밤이나 잠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나는 나도 모르게 밤중에 일어나서 두려움에 떠는 촛불을 들고 계단을 올라갔다.
나로서는 무섭다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서 걸어갔다. 높은 문들은 내 앞에서, 혹은 내 위에서 너무나 손쉽게 열렸고 내가 지나간 방들은 조용했다. 그리고 마침내 깊숙한 곳에 와 있다는 느낌으로 미루어 화랑에 도착했음을 알 수 있었다. 오른쪽에는 밤 기운이 가득한 창들이 느껴졌다. 왼쪽에 그림들이 있는 것이 확실했다. 나는 가능한 한 높게 촛불을 들어올렸다. 과연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처음에는 여자들의 그림만 찾아볼 작정이었다. 그러나 울스가르에 걸려 있는 것과 비슷한 한두 개의 그림을 알아보게 되었다. 아래에서 그림들을 비추면 그것들은 움직이기 시작하여 촛불 쪽으로 다가서려 하는 것 같았다. 그것을 지켜보지 않고 지나치는 것은 너무 냉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넓고 완만한 원형의 뺨 밑으로 머리를 아름답게 땋아 내린 크리스티안 4세의 초상화가 보였다. 아마 그의 부인들인 듯한 그림들도 있었지만, 그 중에서 내가 아는 것은 크리스티안 뭉크뿐이었다. 갑자기 엘렌 마르스빈 부인이 미망인의 옷을 입고 높은 모자의 테두리에 진주 장식을 달고 심술궂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크리스티안 황제의 아이들 그림도 있었다. 항상 새 부인에게서 얻어 낸 새로운 아이들. "절세가인" 엘레오노레는 백마 위에 올라타 있었다. 그녀가 재앙을 맞기 전인 전성기에 그려진 그림인 듯했다.
길렌레베 가의 사람들. 그 중에는 스페인 부인네들이 화장했다고 여길 정도로 혈색이 좋았던 한스 울리크와 사람들의 기억에 아직도 생생한 울리크 크리스티안도 있었다. 그리고 울펠트 가의 사람들은 거의 다 그려져 있었다. 눈을 검게 덧칠한 저 사람은 서른 세 살에 백작이자 원수가 된 헨릭 홀크인 듯했다. 전해지는 얘기로, 그는 힐레보르크 크라프세라는 처녀를 찾아가는 도중에 자기를 기다리는 것은 약혼녀가 아니라 시퍼런 칼이라는 꿈을 꾸고는 그것을 마음에 새겨 중간에 돌아와 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후 페스트로 생을 마치기 전까지 짧고 무모하게 살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이 모든 사람들을 나는 알고 있었다. 님베겐 회의 때 모였던 사람들의 그림도 울스가르에 걸려 있었다. 그들 모두는 한꺼번에 그려져서 서로 약간씩 닮아 있었다. 모두가 감각적이고 거의 주시하는 듯한 입 위에 가늘고 짧은 수염을 달고 있었다. 물론 나는 울리히 후작을 알고 있었고 오토 브라에와 클라우스 도우, 그리고 이 가계의 마지막 후손이었던 스텐 로젠스파레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 모든 사람들을 울스가르의 홀에서 보았거나 혹은 오래된 화집에서 이들을 묘사한 동판화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많았다. 모르는 여자들은 몇 명 안 되었지만 못 본 아이들은 많았다. 나는 팔이 아파 이제는 떨리기까지 했지만, 나는 그 아이들을 보기 위해서 매번 다시 촛불을 높이 들곤 했다. 손에 새를 올려놓고 그것을 잊어버린 듯한 조그마한 소녀들이 보였다. 대개는 발치에 작은 개가 않아 있거나, 공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뒤 기둥에는 그루베나 빌레, 로젠크란츠의 문장이 임의로 조그맣게 걸려 있었다. 마치 많은 것들이 그렇게 보상되어야 하는 것처럼 아이들 주위에 모여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기다렸다.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렇게 되고 보니 다시 부인들 그림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크리스티안 브라에를 찾아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화랑 끝으로 빨리 달려가서 거기서부터 되돌아오면서 그림을 찾으려고 했다. 그런데 거기서 무엇인가에 부딪히고 말았다. 내가 불시에 몸을 휙 돌리자, 에리크는 뒤로 팔짝 뛰면서 "촛불 조심해" 하고 속삭였다.
"너 여기 있었지?"라고 나는 숨죽이며 말했다. 나는 이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애는 웃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들고 있던 촛불이 깜빡거려서 그 애의 얼굴 표정을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자 그 애가 다가오면서 말했다.
"그 여자의 그림은 여기 없어. 우리는 위층에서 찾고 있어."
그 애는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한쪽 눈을 움직여 어딘가 위쪽을 가리켰다. 지붕 밑 다락방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
내가 물었다.
"그 여자가 위층에 있다고?"
"그래."
에리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옆에 바싹 다가왔다.
"그 여자도 함께 찾고 있다는 말이니?"
"그래, 우린 찾고 있어."
"그렇다면 누군가가 그림을 치웠다는 거야?"
"응, 그런 것 같아."
그 애는 성이 나서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 여자가 자신의 초상화로 무엇을 할 생각인지 알 수 없었다.
"제 모습을 보고 싶은 거지."
그 애는 바짝 다가와서 속삭였다.
"아, 그래."
나는 이해한 듯이 대꾸했다. 그때 그 애가 촛불을 불어 꺼버렸다. 그 애가 몸을 앞으로 숙이고 밝은 곳으로 들어가서 눈썹을 치켜 올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고 나서 어두워졌다. 나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도대체 뭐 하는 거야?"
나는 의기소침해져서 소리를 질렀고 목에 침이 말랐다. 그 애는 내게 달려와 내 팔에 매달려 킥킥거렸다.
"도대체 뭐야?"
그 애와 부딪힌 나는 그 애를 떼 내려고 했지만 그 애는 더 바짝 매달렸다. 그 애가 팔로 내 목을 감는 데야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말해 줄까?"
그 애는 귀엣말을 했고 약간의 침이 내 귀에 튀었다.
"그래, 그래, 어서."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그 애는 이제 나를 완전히 껴안고 몸을 쭉 폈다.
"내가 그 여자에게 거울을 가져다주었거든."
그 애는 다시 킥킥거렸다.
"거울을?"
"그래, 초상화가 없으니까."
"설마, 그럴 리가."
에리크는 갑자기 나를 창가 쪽으로 몇 걸음 끌고 갔다. 내 팔을 너무나 아프게 꼬집어서 나는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 여자는 안에 없어."
에리크는 내 귀에다 입김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 애를 밀쳐내고 말았다. 뭔가 빠직하는 소리가 나서 내가 그 애의 뼈를 부러뜨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 저리 가."
이제 나야말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안에 없다고? 도대체 어떻게 안에 없을 수 있니?"
"넌 바보로구나."
그 애는 화가 나서 대꾸했다. 더 이상 속삭이지도 않았다. 이제 에리크는 전혀 새로운 장난을 시작한 듯 목소리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저 안에 있다면,"
그 애는 조숙하고 엄숙한 목소리로 명령조로 말했다.
"여긴 없는 거구, 또는 여기에 있다면 저 안에는 없는 거지."
"당연하지."
나는 생각해 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애가 가버리고 나만 홀로 남을 것 같아 불안해졌다. 그래서 심지어 그 애를 붙들기까지 했다.
"우리 친구가 되는 거지?"
내 제안에 에리크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아무래도 좋아."
나는 우리의 우정이 시작됨을 알리고 싶었으나 감히 그 애를 포옹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간신히 "에리크" 하고 이름만 부르고 그 애의 몸 어딘가를 약간 건드려 보았을 뿐이었다. 갑자기 피곤함을 느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가 여기까지 왔으며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았다. 어디에 창이 있고 어디에 그림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가 걸어갈 때는 에리크가 나를 안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그 애는 자만심에 가득 차서 나를 안심시키고 다시 킥킥거렸다.
사랑하는 에리크. 아마도 너는 나의 유일한 친구였던 것 같다. 나에게 친구라곤 없었으니까 말야. 네가 우정을 전혀 중요시하지 않았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네게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아마도 사이좋게 지낼 수도 있었을 텐데. 알 수 없는 일이다. 난 네 초상화가 그려진 때를 기억하고 있단다. 할아버지가 네 그림을 그려 줄 누군가를 부르셨지. 매일 아침 한 시간씩 말이야. 그 화가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마틸데 브라에가 매번 그 이름을 반복했는데도 그 화가의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구나.
그 화가도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네 모습을 보았을까? 넌 혈옥석 빛깔의 벨벳으로 만든 양복을 입고 있어. 마틸데 브라에가 이 옷에 아주 정신을 빼앗겼었지. 하지만 지금 그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단지 그 화가가 너의 모습을 보았는지가 궁금할 뿐이다.
진짜 화가라고 가정해 보자. 자기가 그림을 완성하기도 전에 네가 죽을 수도 있음을 생각하지 못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사람이 결코 그 일을 감상적으로 보지 않고 그저 그림만 그렸다고 가정해 보자. 너의 갈색 두 눈이 똑같이 않은 데 대해 그 사람이 매력을 느꼈다고 가정해 보고, 그 사람이 움직이지 않는 눈동자를 한순간이라도 꺼린 적이 없다고 가정해 보자. 아마도 네가 약간 기대고 있을 탁자 위에 네 손밖에는 아무것도 더 늘어놓지 않을 만큼 분별력도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밖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정해 보도록 하자. 그러면 그림이 있게 된다. 너의 초상화, 그것은 우르네클로스트 화랑의 맨 마지막에 걸리게 된다.
(그럴 수만 있다면, 모든 그림을 다 보았다면, 한 소년의 그림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순간 생각한다. 누구더라? 브라에 집안의 사람일 것이다. 그 순간 생각한다. 누구더라? 브라에 집안의 사람일 것이다. 어두운 들판에 세워져 있는 은빛 말뚝과 공작의 깃털을 너는 보고 있니? 거기에는 이름도 씌어져 있다. 에리크 브라에. 처형당한 에리크 브라에를 말하는 건가? 물론 그것은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그 사람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이 소년은, 소년일 때 죽었다. 언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을 볼 수 없단 말인가?)
방문객이 있어서 에리크가 불려가면, 마틸데 양은 매번 에리크가 브라에 노백작 부인, 즉 나의 외할머니와 얼마나 닮았는지 믿어지지 않을 지경이라고 말했었다. 외할머니는 풍채가 매우 큰 부인이셨다고들 했다. 나는 그분을 뵌 적이 없었다. 하지만 울스가르의 실제 여주인이셨던 내 할머니의 기억은 생생하다. 어머니가 수렴관의 아내로서 집으로 들어온 것에 할머니는 얼마나 화가 나셨던지 끝내 여주인의 자리를 내놓지 않으셨다. 어머니가 집으로 들어오신 후로 할머니는 항상 뒷전에 물러나신 것처럼 행동하셨다. 그렇지만 당신이 중요한 일들을 조용히 결정하고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고 처리하시는 동안에, 할머니는 하인을 시켜 자질구레한 일들을 끊임없이 어머니에게 보내셨다. 내 생각으로는 어머니께서도 달리 여주인의 자리를 원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어머니는 큰살림을 꾸려나가는 데 익숙하지 않았고 중요한 일과 부차적인 일을 잘 구분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어머니에게 말해 주는 것을 어머니는 곧이곧대로 믿었고, 그러면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아 있는데도 그것을 잊어버렸다. 어머니는 시어머니에 대해 불평한 적이 없었다. 하기야 불평하려고 해도 붙잡고 할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지극히 공손한 아들이었고 할아버지는 말씀이 적으신 분이셨다.
내가 기억하기에, 마르가레테 브리게 할머니는 키가 크고 범접하기 힘든 노인이셨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이라곤 할머니가 시종관 할아버지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다는 것뿐이다.
할머니는 다른 사람들을 전혀 개의치 않고 우리들 가운데에서 살아가셨다. 할머니는 우리들 중에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신 적이 없었고 일종의 말동무로서 백작의 늙은 딸 오크세를 가까이에 두셨다. 오크세는 어떻게 은혜를 입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한없이 그 책임을 다하는 여자였다. 할머니는 살아생전 선행이라곤 모르셨던 분이었기 때문에 이것은 유일한 예외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할머니는 아이들을 귀여워하지도 않으셨고, 동물들도 가까이 두려고 하시지 않았다. 할머니가 그 밖에 어떤 것을 사랑하시기나 했는지 궁금하다. 들리는 얘기로는, 할머니가 아주 어린 소녀였을 때 펠릭스 리히노포스키라는 잘생긴 청년과 약혼을 했었는데, 그 사람이 프랑크푸르트에서 무참하게 죽었다고 했다. 실제로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공작의 초상화가 발견되었다. 내가 지금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그 그림을 가족에게 돌려보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마도 할머니는 해가 거듭될수록 더해 가는 이 고독한 울스가르의 전원생활에 묻혀 할머니의 본성에 맞는 삶의 다른 면, 즉 찬란한 삶을 등한시했던 게 아닌가 싶다. 할머니가 그 점을 애석해하셨는지는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 아마도 할머니는 재능과 재치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당신께 오지 않았거나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던 것을 대신해서 찬란한 삶을 경멸하셨던 것 같다. 할머니는 이 모든 것을 마음속 깊이 묻어 두셨고 그 위를 껍질로 덮으셨다. 그것은 매우 여러 겹이었고 깨지기 쉬웠으며 약간 금속성의 빛을 띠었고, 그때마다 맨 위의 껍질이 새롭고 차갑게 보였다. 물론 이따금 소박한 초조함으로 인해 사람들이 당신을 충분히 생각해 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는 식탁에서 갑자기 사레들린 시늉을 하시곤 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되는, 비록 한순간이나마 이목을 집중시키고 긴장시키는 분명하고 복잡한 형태의 사레였다. 너무 자주 발생하는 이 우연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사람은 아마 아버지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아버지는 공손하게 몸을 숙이고 할머니를 쳐다보셨다. 아버지는 마음으로나마 자신의 정상적인 기관을 할머니에게 드리고 사용하시도록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물론 시종관 할아버지도 식사를 멈추셨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포도주를 한 모금 마시시고는 이렇다 저렇다 말씀이 없으셨다.
할아버지가 식탁에서 할머니에 대해 당신의 의견을 고집하신 적이 단 한 번 있었다.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심술궂고 은밀하게 계속 전해졌다. 물론 금시초문인 사람도 어디에나 있긴 하지만 말이다. 얘기인즉슨, 언젠가 시종관 할아버지의 부주의로 인해 식탁보에 생긴 포도주 얼룩을 두고 할머니가 몹시 화를 내셨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생긴 얼룩이건 간에 얼룩은 할머니의 눈을 피할 수 없었고 심한 핀잔을 면치 못했다. 게다가 그날은 저명한 손님들이 여러 명 초대된 날이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전혀 악의 없이 만들어 놓은 몇 개의 얼룩에 대해 지나치게 조롱하고 잔소리를 늘어놓으셨다. 할아버지가 눈에 띄지 않는 표시와 농담조의 말로 경고하려고 애쓰셨건만 할머니는 고집스레 잔소리를 계속하셨다.
그러자 좌중에서 할머니가 잔소리를 멈추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일어났다. 말하자면 이제까지 일어난 적이 없는 일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시종관 할아버지께서는 좌중에 돌아가고 있던 적포도주를 가져오게 해서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이제 막 당신의 잔을 채우시려던 참이었다. 놀랍게도 할아버지는 잔이 넘치는데도 술병을 내려놓지 않고 숨죽인 듯 조용한 가운데 서서히 조심스레 계속해서 술을 따르셨다. 결국 참다못해 어머니가 웃음을 터뜨리셨고, 그 웃음으로 사건이 해결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사람들이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그제야 사람들을 쳐다보고 하인에게 포도주병을 건네셨다.
그 후 할머니에게는 다른 성격이 두드러졌다. 할머니께서는 집 안에서 누군가가 아프다는 것을 참지 못하셨다. 한 번은 부상당한 요리사가 손에 붕대를 감고 있는 것을 우연히 보시고는 요오드포름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한다고 고집을 부리셨다. 그런 일로 사람을 해고시킬 수는 없다고 아무리 설득을 해도 막무가내셨다. 할머니에게 질병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존재였다. 만약 누군가가 부주의하게도 할머니 면전에서 사소한 불쾌감을 표시했다면, 그것은 할머니에게는 개인적인 모욕이었기 때문에 두고두고 그 사람을 원망하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그 해 가을에 할머니는 소피 오크세와 함께 당신 방의 방문을 걸어 잠그시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다. 당신의 아드님도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어머니의 죽음이 시기적으로 적합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방은 불이 들어오지 않아 꽁꽁 얼었고, 난로에서는 연기 냄새가 났으며, 쥐들은 집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쥐들 앞에서 한시도 안심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마르가레테 브리게 할머니의 화를 북돋운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 말하기조차 싫은 일이 번듯이 일어났다는 것에 대해 할머니는 화가 나셨다. 받아 놓은 날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당신보다 앞서서 젊은 부인이 감히 우선권을 주장한 것이었다. 할머니는 당신이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자주 생각하셨다. 그러나 당신이 독촉 받는 입장이 되고 싶지는 않으셨다. 할머니께서는 틀림없이 당신이 내키실 때 돌아가실 테고, 그런 다음이면 모두들 서둘러 가더라도 편히 죽을 수 있을 것이다.
할머니는 어머니의 죽음이 우리 탓인 듯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셨다. 더욱이 그 해 겨울을 나는 동안 할머니는 눈에 띄게 노쇠해지셨다. 걸어가실 때 할머니의 모습은 여전히 훤칠했지만, 소파에 앉아 계실 때에는 푹 가라앉은 모습이었고 귀도 점점 멀어져 갔다. 앞에 앉아 몇 시간이고 할머니를 쳐다보고 있어도 할머니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셨다. 마치 어떤 곳으로 들어가 버린 것 같았다. 아주 가끔씩 그 곳에서 나와, 더 이상 할머니가 살고 있지 않은 텅 빈 할머니의 정신으로 잠깐 동안 돌아오는 듯했다. 그럴 때면 할머니는 외투를 내미는 백작의 딸에게 뭐라 말씀하시고는 깨끗하고 큼직한 손으로 옷을 받으셨다. 마치 물이 엎질러져 있기라도 한 듯, 아니면 우리가 불결하다는 듯한 태도였다.
할머니는 봄이 가까워 오는 어느 날 밤 시내에 있는 집에서 숨을 거두셨다. 문을 열어 놓고 있던 소피 오크세도 아무 소리를 듣지 못했다. 사람들은 아침에야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알았다. 그때는 이미 할머니의 몸이 유리잔처럼 차가워진 후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직후 시종관 할아버지의 그 끔찍한 병이 시작되었다. 할아버지는 누구에게도 신경 쓰지 않고 죽음을 맞기 위해 할머니가 돌아가시기만을 기다리신 듯했다.
내가 아벨로네를 알게 된 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듬해였다. 아벨로네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그것은 그녀에게 막대한 손해를 입혔다. 아벨로네는 붙임성이 없는 여자였다. 나는 일찍이 어떤 기회에 이러한 사실을 확인했고, 그리고 나서는 이런 생각을 진지하게 검토해 본 적이 없었다. 그 당시 나는 아벨로네에게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묻는 것이 우습게 여겨졌다. 아벨로네는 항상 같은 자리에 있었고 사람들은 그녀를 함부로 여겼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왜 아벨로네가 여기 있는 거지? 우리 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여기 있어야 할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비록 오크세 부인처럼 그다지 의미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벨로네가 여기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가 휴식을 취하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말이 잠깐 나온 적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곧 잊어버렸다. 아무도 아벨로네가 휴식을 취하도록 신경을 써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인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장점이 있었다. 노래를 잘 불렀던 것이다. 그 말은 그녀가 노래하는 시간이 있음을 뜻한다. 그녀에게는 강렬하고 혼돈 되지 않은 음악이 있었다. 천사가 남성이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아마 그녀의 목소리에는 남성적인 것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빛나는 천사의 목소리였다. 내가 비록 어릴 때부터 이미 음악에 대해 불신을 품고 있기는 하지만(음악이 다른 무엇보다도 강하게 나를 고양시켜서가 아니라, 음악이 내가 있던 곳에 나를 되돌려 놓지 않고 심오한 곳으로, 미완성의 곳으로 나를 데려간다는 것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이 여자의 음악은 정말이지 들을 만했다. 그녀의 노랫소리를 듣고 있으면, 잠시나마 나 자신이 곧바로 위로 솟아 점점 더 높이 올라가고 결국에는 이것이 아마도 천국의 세계임이 틀림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게끔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벨로네가 나에게 또 다른 천국의 문을 열어 주리라는 것은 예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선 우리 관계의 본질은, 그녀가 나에게 어머니의 처녀 시절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데에 있었다. 그녀는 어머니가 얼마나 용기 있고 젊었던가를 나에게 확신시켜 주려 애썼다. 그녀의 확언에 따르면 그 당시 춤추기나 말타기에서 어머니와 견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분은 용기가 철철 넘치고 결코 지치는 일이 없는 분이셨어요. 그러더니 갑자기 결혼을 하시더라구요"라고 아벨로네는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놀랍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라서 아무도 이해할 수 없었어요."
나는 아벨로네가 왜 결혼하지 않는지 궁금했다. 그녀는 비교적 나이가 들어 보였고 아직도 결혼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사람이 없었어요"라고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을 했고, 그럴 때면 정말 아름다워 보였다. 아벨로네가 정말 아름다운가? 나는 깜짝 놀라 생각해 보곤 했다. 그러던 중 나는 집을 떠나 귀족들을 위한 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견디기 힘든 답답한 시절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소레시에서 다른 학생들과 떨어져 조금이나마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면, 나는 창가에 서서 그 너머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그런 순간이나 밤이면, 내 마음속에 아벨로네가 아름답다는 확신이 자라났다. 그러고 나는 그녀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길고 짧게 쓴 편지, 그리고 울스가르 시절에 대해 쓰거나 나는 지금 불행하다고 쓴 많은 비밀편지.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것들은 연애편지였던 것 같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결코 올 것 같지 않던 방학이 마침내 오자,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만났기 때문이다.
우리 사이에 약속이 있었을 리 만무하지만, 마차가 정원으로 접어들었을 때 나는 마차에서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집을 모르는 낯선 사람처럼, 집 앞까지 마치를 대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이미 여름이 한창이었다. 나는 한길로 들어가 금잔화가 피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곳에 아벨로네가 있었다. 아름답디 아름다운 아벨로네가. 나는 네가 나를 쳐다보았을 때의 광경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너의 시선을, 고정되지 않은 어떤 것을 뒤로 젖혀진 얼굴에다 붙잡고 있는 그 모습을.
아, 기후가 바뀐 것이 아닐까? 우리들의 온기로 가득 차서 울스가르 주변이 더 온화해진 것은 아닌가? 이제 정원의 장미꽃들은 한겨울까지 피어 있지 않을까?
아벨로네, 난 너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서로를 속이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사랑하는 이여, 네가 그때나 지금이나 결코 잊지 못할 단 한 사람만을 사랑한 데 반해, 나란 사람은 그저 여자를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다. 다만 말이란, 항상 부당한 결과만을 낳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것이다.
아벨로네, 여기 융단이 있다, 벽걸이용 융단이. 네가 여기 있다고 상상해 본다. 이건 여섯 폭의 벽걸이다. 그럼, 우리 한 번 둘러볼까? 하지만 우선 뒤로 물러나 전체를 보자. 정말 평화로운 풍경이지, 그렇지 않니? 그 안에서는 거의 아무런 변화도 없으니 말야.
이 타원형의 푸른 섬이 붉은 바탕에 둥둥 떠 있는데 바탕에는 온갖 꽃들이 만발해 있고, 제 일에 열중하고 있는 자그마한 동물이 살고 있다. 마지막 벽걸이에만 좀 가벼워진 듯 섬이 약간 솟아올라 있다. 섬은 항상 한 인물을 담고 있는데, 같은 여자가 여러 가지 옷을 갈아입고 있다. 때때로 그녀 곁에는 작은 인물이, 다시 말해서 하녀가 있다.
그리고 섬과 줄거리에 걸맞게 문장 모양의 큼직한 동물이 항상 함께 하고 있다. 왼쪽은 사자이고 오른쪽은 밝은 빛의 유니콘이다. 그것들의 머리 위 높은 곳에는 같은 모양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깃발에는 막 솟아오르는 은빛 다링 세 개 그려져 있다. 붉은 바탕의 그것은 푸른색 끈으로 묶어져 있다. 너도 보았니? 자, 이제 처음부터 시작해 볼까?
그 여자는 매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눈이 부시도록 화려하다. 옷자락이 흘러내린 손 위에 매가 앉아 움직이고 있다. 그녀는 새 쪽을 쳐다보면서, 새에게 뭔가를 주기 위해 하녀가 가져온 접시로 막 손을 뻗고 있다. 오른쪽 아래 옷자락에는 비단결 같은 털을 가진 조그마한 개가 지키고 있다. 개는 자기를 기억해 주기를 바라면서 쳐다보고 있다.
섬 뒤로 나지막이 장미 울타리가 쳐져 있는 것을 너도 보았겠지. 문장 모양의 동물들은 말 그대로 용기백배해 있다. 동물들은 문장이 그려진 망토를 몸에다 다시 한번 두르고 있다. 아름다운 브로치가 채워져 있다. 바람이 분다.
굳이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죽여 그 다음 벽걸이로 가지 않아도, 곧 여자가 생각에 골몰해 있는 광경을 보게 된다. 그 여자는 화환을 만들고 있다. 그것은 작고 둥근 화관이다. 자기 앞의 꽃을 엮는 동안, 여자는 하녀가 들고 있는 얇은 대야에서 다음에 어떤 색깔의 패랭이꽃을 고를까 생각에 잠겨 있다. 뒤에 있는 벤치 위에는 원숭이가 찾아온, 장미꽃이 가득한 바구니가 아직 사용되지 않은 채 놓여 있다. 이번에도 패랭이꽃이어야만 하는 모양이다. 사자는 더 이상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른쪽에 있는 유니콘은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정적 속에 음악이 필요 없다면 그것은 이미 음악이 울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여자는 무겁고 단아하게 치장을 하고(아마 천천히 걸어가겠지, 그렇지 않니?) 파이프 오르간 앞으로 걸어가서 선 채로 연주를 한다. 저 건너편에서 풀무질을 하고 있는 하녀와는 파이프 오르간으로 나뉘어져 있는 듯한 모습이다. 여자가 이보다 더 아름다운 적은 없었다. 머리를 두 갈래고 땋아서 머리핀으로 올린 모습은 너무나 멋지다. 머리끝이 투구 장식처럼 짧게 머리끈에서 솟아 올라와 있다. 사자는 못마땅한 얼굴로 울음을 참느라 입을 깨물고 묵묵히 소리를 듣고 있다. 그러나 유니콘은 파도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모습이다.
섬이 넓어진다. 천막이 쳐져 있다. 푸른 비단으로 만든 천막에서 금빛이 난다. 동물들이 그것을 걷어치울 것 같은데, 그 여자가 왕후의 옷을 입고 순박한 얼굴로 등장한다. 그녀에 비하면 진주는 너무 초라해 보인다. 하녀가 조그마한 상자를 열었고 여자가 이제 목걸이를 꺼낸다. 그것은 늘 간직해 두었던 무겁고 빛나는 장신구겠지. 여자 곁에 있던 자그마한 개가 몸을 높여 제자리에서 그것을 지켜본다. 천막 테두리 윗부분에 씌어진 글을 넌 보았니? "나의 사랑하는 단 한분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작은 토끼가 왜 저 아래에서 뛰어나오는 걸까? 그것이 왜 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 모든 것이 너무 소심해 보인다. 사자는 상관하지 않는다. 여자 스스로 깃발을 들고 있다. 아니면 거기에 기대고 있는 걸까? 다른 손으로는 유니콘의 뿔을 잡고 있었다. 상중일까? 상을 당한 사람이 이토록 꿋꿋할 수 있을까? 군데군데 주름이 잡힌 이 검은녹색의 벨벳 옷처럼 이토록 말없는 상복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다시 축제가 벌어지고 거기에 초대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기대해도 소용없다. 없는 것이 없다. 영원히 그러하다. 사자가 위협적으로 둘러본다. 아무도 와서는 안 된다는 눈치다. 그 여자는 전에 없이 피곤해한다. 피곤한 것인가? 아니면 무거운 것을 들고 있어서 축 쳐져 있을 따름인가? 들고 있는 것은 성체현시대인 것 같다. 그러나 그녀는 한쪽 팔을 유니콘 쪽으로 기울이고 있다. 그 동물은 아양을 피우듯 우뚝 서서 무릎에 기대고 있다. 그녀가 들고 있는 것은 거울이다. 그녀는 유니콘의 모습을 비춰 주고 있다.
아벨로네, 나는 네가 거기에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이해하지, 아벨로네? 네가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여인과 유내콘"이라는 그 벽걸이는 이제 더 이상 부사크의 옛 성에 걸려 있지 않다. 때는 바야흐로 모든 것이 집을 떠나는 시대이다. 집은 더 이상 아무것도 간직할 수 없다. 위험이 안전보다 더 안전하게 되었다. 델 비스트 종족의 맥을 잇고 그 피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주위에 아무도 없다. 모든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삐에르 드뷔송, 그는 아주 오래 된 가문이 낳은 위대한 기사인데, 이제 아무도 그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찬미하고 어떤 것도 체념하지 않는 이 그림들은 아마도 그 사람의 뜻에 따라서 짜여진 것 같다(아, 시인들은 이제까지 여인들에 대해 다르게 기술해 왔다. 그들이 생각한대로 보다 언어적으로 기술해 왔다. 확실한 것은 우리가 그 이상을 알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제는 어쩌다가 모인 사람들 틈에 끼여 우연히 그 그림 앞에 서 있으면 자신이 초대받지 않았다는 데에 깜짝 놀라게 된다. 그러나 거기에 있는 다른 사람들 중에는, 많지는 않지만 그냥 지나가는 사람도 있다. 젊은이들 중에 발길을 멈추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아마도 이런 저런 특성에 비추어볼 때 이런 것을 한 번이라도 보았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전문 분야에 속한다고 여기기 때문인 듯하다.
물론 어린 소녀들이 그 앞에 서 있는 일은 왕왕 있다. 원래 박물관에는 어린 소녀들이 많게 마련이다. 소녀들은 더 이상 어떤 것도 간직할 수 없는 집에서 나와 어디로든 돌아다닌다. 소녀들은 이 벽걸이 앞에 서서 조금씩 자신을 망각한다. 소녀들은 이러한 삶이, 즉 느린 몸짓의 나지막한 삶이, 한 번도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나지막한 삶이 있다는 걸 항상 느껴왔다. 그리고 한때 이것이 그들의 삶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어둡게 회상한다.
그러나 그 즉시 소녀들은 공책을 꺼내 스케치하기 시작한다. 무엇이건, 한 송이 꽃이라도 좋고 만족한 얼굴을 조그마한 동물이라도 좋다. 그런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사람들이 그들에게 말해 주었다. 실제로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걸 위해 소녀들은 어느 날 집을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상당히 무리한 일이었다.
소녀들은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지금 그림을 그리면서 소녀들이 손을 치켜들면, 등뒤에 단추가 채워져 있지 않거나 열려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옷에 단추가 몇 개 있긴 하지만 손이 닿을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이 옷을 맞출 때에는 소녀들이 갑자기 혼자 집을 나갈 것이라고 이야기된 바 없었던 까닭이다. 가정에는 이 단추를 채워 줄 누군가가 항상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여기, 이 거대한 도시에서 그런 일을 해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친구를 사귀는 도리밖에 없다. 하지만 친구들도 같은 형편이고 보니 결과적으로 서로 옷을 채워줄 수밖에 없다. 그것은 우스운 일이고, 떠올리고 싶지 않은 가족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때때로, 집에 있을 수도 있지 않았나 하고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만약 얌전하게 있었다면, 다른 사람들과 보조를 맞춰 진심으로 얌전할 수 있었다면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동으로 그렇게 해보는 것도 바보 같은 짓으로 보인다.
어쨌든 길은 더 좁아졌다. 가정은 더 이상 신으로 인도될 수 없다. 그러므로 궁한 대로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은 몇 개의 다른 것들뿐이었다. 그러나 진정으로 나누어 가지면 개개인에게 돌아가는 것은 별로 없어서 치욕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나눌 때 속임수를 쓸 경우 반목이 생겨났다. 그러니 무엇이든 상관없으니 그림을 그리는 것이 실제로 더 나은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 비슷하게 보일 것이다. 그리고 기술이란, 점진적으로 생기긴 하지만, 그래도 실로 부러움을 살 만한 것이다.
그리하여 계획했던 것을 공들여 열심히 하느라 이 어린 소녀들은 고개 들어 쳐다볼 틈도 없다. 소녀들이 온갖 그림을 그리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은, 이 직조된 그림 속에서 빛을 내며 그들 앞에 무한히 펼쳐지는 불변의 삶을 억눌러 놓는 것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소녀들은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수많은 것이 달라진 지금, 소녀들도 변화하고 싶어 한다. 소녀들은 하마터면 자신을 포기하고 남자들이 뒷공론으로 말하는 그런 부류의 여자라고 스스로 생각할 뻔했다. 그런 것이 소녀들에게는 발전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향락을 추구한다고 소녀들은 확신했다. 어리석게 삶을 상실하고 싶지 않다면, 삶의 본질은 그렇게 하는 데에 있다고 확신했다.
소녀들은 주위를 둘러보고 이미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소녀들의 강점은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찾는 데에 항상 있었는데 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소녀들이 지쳤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소녀들은 수백 년 동안 내내 사랑을 베풀었고 항상 넘치는 대화를 양편에서 이끌었다. 남자들이란, 여자들을 따라 말했을 따름이고 그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리고 남자들의 산만함과 게으름, 또 일종의 게으름이었던 시기심으로 인해 여자들은 제대로 학습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은 밤낮으로 참고 견뎠고, 사랑과 비참함을 더해 갔다. 한도 끝도 없는 궁핍함을 억누르고 위대한 사랑을 이룩한 여인들도 나왔다. 여인들이 남자들을 소리쳐 부르는 동안, 여인들은 남자들을 능가해 버렸다. 남자들이 돌아오지 않는 동안 여인들은 남자보다 더 성장했던 것이다. 가스파라 스탐파와 포르투갈의 그 여인은 고통이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준엄하고 차가운 찬미로 바뀔 때까지 성장을 멈추지 않았던 여인들이었다.
우리는 이런저런 여인들에 관해 알고 있다. 기적처럼 보존된 편지들이 있기 때문이고, 비탄에 젖은 시들로 가득 찬 책이 있기 때문이며, 화랑에서 울음 섞인 눈으로 우리를 보고 있는 그림들이 있기 때문이다. 화가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몰랐으므로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여인들이 있었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편지를 불태워 버렸고 또 다른 이들은 아예 편지를 쓸 기력조차 없었다. 무감각해 보이는 노파들에게도 감추어진 값진 추억이 있었다. 도저히 여자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살이 찐 여인들이, 삶에 지쳐 살찐 채 남자와 비슷하게 되도록 자신들을 방치해 두었지만, 그럼에도 내면은 완전히 달라서 그 어두운 곳에는 아직도 사랑의 불씨가 남아 있다.
결코 아이를 갖고 싶지 않았지만 아이를 가지게 된 여자가 결국에는 여덟 번째 출산을 하다가 죽고 말았다고 할지라도 그녀에게는 사랑에 들뜬 소녀의 몸짓과 가벼움이 남아 있다. 광폭한 자들과 술 마시는 자들의 곁에 있는 여인들은, 마음으로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아무도 모르는 곳에 있을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 곁에 머무를 수 있었다. 그 여인들은 사람들 틈에 섞여 있어도 그것을 감출 수 없었고 늘 복되게 산 사람처럼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런 여인들이 얼마나 되고, 또 어떤 여인들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아마도 자신들을 파악할 수 있을지도 모를 말들을 이 여인들이 미리 없애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많은 것들이 달라진 지금, 우리가 바뀌어야 될 차례가 아닌가? 약간이나마 우리를 펼쳐 보이고 사랑하는 일에 우리가 점차적으로 참여하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들은 용케 이 여인들의 비참함을 모면해 왔고 그럼으로 인해 정신이 산만해졌다. 마치 아이들이 때때로 장난감 상자로 떨어진 진짜 레이스 조각을 처음에는 좋아하다 마침내 싫증이 나게 되면 부서진 물건들과 분해된 물건들 사이에 넣어 두고 다른 것들보다 더 나쁘게 취급하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는 모든 딜레탕트들이 그렇듯이, 가벼운 향락에 취해 타락하고 대가인양 냄새를 풍겼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성공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그래서 항상 우리가 받아왔던 사랑의 일을 완전히 처음부터 배우기 시작한다면 어떨까? 모든 것이 바뀐 지금, 우리가 그리로 가서 초보자가 되면 어떨까?
지금도 나는 어머니가 자그마한 레이스 조각을 펼칠 때면 어떠했는지를 알고 있다. 어머니는 잉에보르크의 책상 속에 있는 서랍들 중의 하나를 당신을 위해 사용하셨다.
"말테야, 이것 좀 보렴?"하고 말씀하시고, 노랗게 래커칠이 된 작은 서랍에 들어 있는 것을 전부 당신이 선물 받은 양 기뻐하셨다. 그럴 때의 어머니는 너무나 기대에 부풀어 있어서 비단 같은 종이를 펼칠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므로 매번 그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은 나였다. 그러나 레이스가 삐쭉이 나오기 시작하면 나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레이스는 가려서 전혀 보이지 않는 나무 실패에 감겨져 있었다. 이제 우리는 그것을 천천히 풀었고 거기에 수놓인 무늬를 보았다. 그리고 레이스 하나를 다 풀 때마다 약간씩 놀랐다. 너무나 갑자기 뚝 끝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비로소 이탈리아풍의 레이스가 나왔다. 그것은 잡아 늘인 실로 짠 질겨 보이는 조각들이었는데, 거기에서는 모든 것이 반복적이어서 농가의 정원처럼 선명했다.
그 다음에는 갑자기 베니스풍의 뾰족뾰족하게 생긴 레이스가 나와서, 수도원이나 감옥에 있는 것처럼 우리의 시선을 가둬 놓고 말았다. 그러나 다시 자유의 몸이 되자, 우리는 점점 더 기교를 부린 정원에 깊숙이 들어가 있었고 마침내 온실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촘촘하고 온화하게 보였다. 난생 처음 보는 화려한 식물들이 커다란 잎을 펼쳐 보이는가 하면, 넝쿨들이 현기증이 난 듯 서로 얽혀 있고, 포앙알랑송의 탐스런 꽃이 꽃가루를 날려 사방에 뿌옇게 되었다. 갑자기 완전히 지치고 어질어질해져서, 발랑시엔의 기다란 길로 들어섰을 때는 겨울날 이른 아침에 서리 내린 풍경이었다. 벵슈의 눈 덮인 숲을 뚫고 나오자, 아직 아무도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는 곳에 이르렀다. 나뭇가지들이 아주 이상하게 앞 쪽으로 걸려 있어서 그 아래에는 아마도 무덤이 있으리라고 생각됐지만, 우리는 서로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추위가 점점 더 우리를 파고들었다.
마침내 조그맣고 섬세하게 짠 레이스에 이르렀을 때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어휴, 눈에 성에가 끼겠다." 그러고 보면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우리들 마음속은 아주 따뜻해졌기 때문이었다.
우리 두 사람은 레이스를 다시 감는 일을 두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은 아주 지루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누구에게 떠넘기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가 이런 걸 직접 만들어 쓰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 번 상상해 보렴" 하고 어머니는 말씀하시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셨다. 나는 그런 것을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늘 쉬지 않고 실을 짜는 작은 동물이 있다면 사람이 그 일을 하지 않고 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아니, 그럴 필요도 없었다. 실을 짜는 일은 물론 여자들의 몫이었다.
"이것을 만든 사람들은 아마도 천국에 가 있을 거예요" 하고 나는 감탄해서 말했다. 지금도 기억하는 일이지만, 그 당시 나는 오랫동안 천국에 대해 묻지 않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어머니가 한숨을 내쉬었다. 레이스가 다시 감겨 있었다.
한참 후 내가 말한 것을 잊고 있었을 때, 어머니가 느린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천국이라고 했니? 분명히 거기에 가 있을 테지. 만일 그렇다면 아주 영원토록 행복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런 일은 잘 알지 못하는 법이란다."
가끔씩 손님이 와서 슐린 씨 집안이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고들 말했다. 유서 깊은 거대한 성은 몇 해 전에 화재로 불타 버렸고, 지금은 양쪽에 달린 협소한 방에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손님을 청하는 것은 그 집안사람들에게 대대로 내려오는 일이었다. 그 일을 하루아침에 그만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우리 집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올 때가 있었는데, 그는 아마도 슐린 씨 집에서 오는 눈치였다. 그리고 만약 누군가가 갑자기 시계를 보고 깜짝 놀라서 서둘러 떠났다면, 그 사람은 뤼스타로 간 것이 확실했다.
어머니는 원래 아무데도 나가시지 않았지만 슐린 씨 부부에게 그것을 이해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할 수 없이 어머니는 그 집에 한 번 들르시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일찍이 두어 차례 눈이 내리고 난 12월이었다. 썰매는 3시에 오기로 되어 있었다. 나도 함께 가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정확한 시간에 출발해 본 적이 없었다. 마차가 도착했다는 통고를 받고 싶지 않으셨던 어머니는 대개 너무 일찍 아래로 내려오셨다. 그리고 아무도 와 있지 않으면, 이미 오래 전에 해두어야 했던 일들이 생각나 위층 어딘가를 뒤지거나 정리하시기 시작해서 다시 내려오는 일이 거의 없으셨다.
결국 모든 사람들이 서서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어머니가 오셔서 짐이 꾸려지면 뭔가 잊은 것이 있게 마련이고 시베르젠이 불려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는 시베르젠만이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베르젠이 돌아오기도 전에 갑자기 출발을 했다.
이 날 날씨는 전혀 청명하지 않았다. 나무들이 안개 속에서 앞을 알 수 없다는 듯이 서 있었다. 그 속을 달려가는 것이 어쩐지 고집스런 일로 여겨졌다. 이따금 조용히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그러면 마지막 눈에 보이던 것마저도 지우개로 지워 버리고 새하얀 종이 위를 달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들리는 것이라곤 방울 소리뿐이었다. 원래 어디가 어디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방울 소리마저 뚝 멎는 순간이 있었다. 그럴 때면 마치 마지막 방울 소리가 울린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방울 소리는 다시 모여들었고 또 힘껏 울려 퍼졌다.
왼쪽에 교회 탑이 있지 않았나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공원인 듯한 윤곽이 나타나 높다랗게 거의 머리 위로 지나갔고 우리는 어느새 기다란 가로수 길을 달리고 있었다. 다시는 방울 소리가 그치는 일이 없었다. 마치 나무의 오른쪽과 왼쪽에 포도송이처럼 방울이 달려 있는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 몸이 흔들렸고 뭔가를 빙 돌아 오른쪽에 있는 뭔가를 지나가더니 한가운데에서 썰매가 멈추었다.
집이 거기에 있지 않다는 것을 게오로그는 까맣게 잊고 있었고, 이 순간 우리 모두에게 집이 거기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옛 테라스로 통하는 실외 계단을 올라갔다. 집이 너무 깜깜해서 놀라울 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아래 왼쪽에 있던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여기에요" 그러면서 손을 들어 희미한 불빛을 흔들어 보였다. 아버지는 웃으시며 "여기를 오르내리고 있으니 유령이 된 것 같구나" 하고 말씀하시면서 우리가 계단을 다시 내려가는 것을 도와 주셨다.
"하지만 방금 거기에 집이 있었는데요."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따뜻하게 웃으며 달려나온 베라 슐린과 어머니는 금방 친해지실 수가 없었다. 이제 물론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야만 했고 집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었다. 비좁은 현관에서 옷을 벗자 우리는 곧 등불 아래에서 따스함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슐린 가의 여자들은 자립심이 강한 힘있는 사람들이었다. 아들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세 자매만이 생각난다. 맨 위는 나폴리의 한 후작과 결혼을 했다가 수차례의 소송 끝에 이혼한 지 오래 된 여자였다. 둘째가 초에였는데 모르는 게 없다는 소문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이 베라, 그 마음씨 따뜻한 베라였다. 그녀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백작부인은 나리스킨의 여자였는데, 본래 넷째 딸로 태어났기 때문인지 아직도 어떤 면에서는 가장 어렸다. 그 부인은 아무것도 몰랐고 모든 일을 세 자매에게서 배웠다. 그리고 마음씨 좋은 슐린 백작은 이 네 명의 여자와 결혼을 한 것처럼 이리저리 오가면서 상황에 따라 아무하고나 입을 맞추었다.
백작은 중간중간에 소리 내어 크게 웃었고 우리에게 자세하게 안부를 물었다. 여자들이 나를 가운데에 두고 만져 보거나 이것저것 물어 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끝나기만 하면 어떻게든 여기를 빠져 나가 집을 둘러보기로 단단히 결심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집이 그곳에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곳을 빠져 나오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옷들이 걸려 있는 틈으로 개처럼 아래를 뚫고 나오자 현관으로 나가는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그러나 완전히 바깥으로 나가는 문은 쉽지가 않았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장치들, 즉 쇠사슬과 빗장이 걸려 있어서 서두르고 있던 나는 그것들을 잘 다룰 수가 없었다. 그래도 용케 문이 열리긴 했지만 큰소리가 나서 밖으로 나가기도 전에 붙잡혀 되돌아오고 말았다.
"그만둬요. 여기서 빠져 나가지는 못해" 하고 베라 슐린이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그 여자는 내게 몸을 숙였다. 나는 이 따뜻한 사람에게 아무것도 누설하지 않기로 결심을 했다. 그러나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 여자는 생리적인 욕구가 나를 문밖으로 내몬 것이 아닌가 하고 그 자리에서 추측해 버렸다.
베라 슐린은 내 손을 잡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반 정도는 친밀하게, 반 정도는 오만하게 나를 어딘가로 데려가려고 했다. 이 내밀한 오해로 인해 나는 말할 수 없는 모욕감을 느꼈다. 나는 손을 뿌리치고 성이 나서 그 여자를 쳐다보았다.
"집을 보려고 했던 거라구요."
나는 자존심을 세워서 말했다. 그 여자는 알아듣지 못했다.
"계단에 있는 저 바깥 집 말이예요."
"바보같이."
그녀는 나를 붙들고 말했다.
"저기에는 더 이상 집이 없어."
그래도 나는 고집을 부렸다.
"낮에 한 번 가보자."
베라 슐린은 유도하는 제안을 했다.
"지금은 돌아 다닐 수가 없단다. 구멍도 많고 바로 저 뒤에는 아빠의 양어장이 있는데 아직 얼지도 않았어. 거기 빠지면 고기가 된다구."
그러면서 그 여자는 나를 앞세우고 걸어가 밝은 방으로 밀었다. 거기에는 사람들이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사람들은 집이 없을 때만 거기에 가는 걸 꺼야", 나는 경멸하듯 생각했다. "만약 어머니와 내가 여기에 산다면 집이 언제나 여기에 있을 텐데." 사람들이 모두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어머니는 무관심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도 집 생각을 하고 계신 것이 분명했다.
초에가 내 옆에 앉아서 몇 가지를 물었다. 그 여자의 얼굴은 반듯이 정돈되어 있었다. 지속적으로 뭔가를 통찰하는 듯 이따금 얼굴에 새로운 통찰의 빛이 어리곤 했다. 아버지는 오른쪽으로 몸을 약간 기울이고 앉아서 후작부인의 웃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계셨다. 슐린 백작은 그의 부인과 어머니 사이에 서서 뭔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백작 부인이 남편의 말을 중간에 가로막았다.
백작은 "아이, 어린애 같구려. 그건 당신의 상상일 따름이오." 하고 온화하게 말했지만, 두 부인과 마주하고 있던 백작의 얼굴은 갑자기 불안한 빛을 띠었다. 백작 부인은 그 상상에서 물러날 수가 없었다. 부인은 방해받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으레 그러듯이 무척 힘들어 보였다. 부인은 반지를 낀 연약한 손으로 거부하듯 조그맣게 손을 내저었다. 그때 누군가가 "쉿" 하고 말했고, 방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오래 된 집에서 나온 거대한 물건들이 사람들 등뒤로 바짝 가까이 밀려드는 것만 같았다. 가보인 무거운 은그릇이 반짝반짝거렸고 확대경을 통해 보는 듯 둥글게 보였다. 아버지는 알 수 없다는 얼굴로 두리번거리셨다.
"어머니가 냄새를 맡고 계세요. 그럴 때면 모두 조용히 해야만 해요. 어머니는 귀로 냄새를 맡으시거든요."
베라 슐린이 아버지 뒤에서 말했다. 그러나 그녀 자신도 눈썹을 치켜세우고 서서 주위를 살피고 코를 내밀었다.
화재가 일어난 이후로 슐린 가의 사람에게 이러한 상황은 특별한 데가 있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것을 조사해 보고 각자의 의견을 내놓았다. 초에는 난로를 맡아 사무적으로 성실하게 살폈다. 백작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방 모퉁이에 서서 잠깐 기다리고는 "여기는 아닌데" 하고 말했다. 백작 부인은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어디를 찾아보아야 할지 몰랐다. 아버지는 냄새가 당신 주위에서 나는 것처럼 천천히 한 바퀴를 돌았다. 곧 구역질나는 냄새가 난다고 생각한 후작 부인은 손수건을 가리고 이 사람 저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냄새가 지나갔는지를 살폈다. "여기에요, 여기"하고 베라는 문제의 장소를 발견한 듯 이따금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매번 말소리가 날 때마다 그 주위가 이상하게도 조용했다. 나도 같이 부지런히 냄새를 맡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그것은 방의 열기 때문이었거나 혹은 너무 가까이 둔 등불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생전 처음으로 유령에 대한 공포 비슷한 것이 나를 엄습했다. 방금까지 웃고 떠들던 멀쩡한 어른들이 몸을 숙이고 이리저리 오가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어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고 시인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 모두보다 더 강하다는 사실은 끔찍한 일이었다.
나의 불안은 점점 커져 갔다. 그들이 찾고 있는 것이 나에게서 종기처럼 갑자기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러면 어른들이 그것을 보게 될 것이고 나를 가리키게 될 것이다. 나는 절망적으로 어머니 쪽을 쳐다보았다. 어머니는 본래의 자리에 앉아 계셨다. 나를 기다리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 곁으로 가자마자 나는 어머니가 마음속으로 떨고 계신 것을 느꼈다. 그래서 이제야 집이 다시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테, 이 겁쟁이."
어딘가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베라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어머니와 나는 떨어지지 않았고 함께 참아냈다. 집이 다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어머니와 나,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었다.
내게 거의 이해할 수 없었던 경험들을 가장 풍부하게 가져다준 것은 생일날이었다. 삶이란 어떠한 구분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날이면 사람들은 의심할 바 없이 즐거울 권리를 가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추측컨대 이러한 권리에 대한 감정은 아주 일찍이 모든 사람들에게서 생겨났던 것 같았다. 다시 말해 무엇에선 손을 뻗고 무엇이건 순수하게 얻을 수 있었던 때, 막 붙잡은 물건을 혼란되지 않은 상상력으로 지배적인 욕구의 원색적인 강렬함으로 고양시킬 수 있었던 때, 바로 그런 때에 생겨난 것 같았다.
그러면 다음 순간 갑자기 저 기이한 생일날이 오게 된다. 그날 사람들은 이러한 권리에 대한 의식을 굳건히 하고서, 다른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것을 보게 된다. 아마도 이전처럼 아직도 옷을 입혀 주기를 바라고 그 밖의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누군가가 케이크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혹은 옆에서 생일상이 준비되는 동안 무엇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니면 누군가가 들어와서 창문을 열어 두는 바람에 너무 일찍 모든 것을 보기도 한다. 이것은 마치 수술대에 오르는 순간과 비슷하다. 미쳐 버릴 것처럼 고통스러운 짧은 순간의 수술. 그러나 수술하는 손은 능수능란하고 확실하다. 곧 끝날 것이다. 그것을 참아내자마자 자신을 잊고 만다.
필요한 것은 생일을 구원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살피는 것이고, 그들이 저지를지도 모르는 실수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적절히 극복하고 있다고 상상하게 하여 사람들을 북돋워 주는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사람들이 유례없이 미숙하고 거의 어리석기까지 하다는 사실은 이미 증명된 바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위해 마련된 선물 꾸러미를 아무것이나 가지고 온다. 그들을 맞으러 안에서 달려 나가고 나중에는 특별한 뜻이 없는 것처럼 움직이느라 방안을 하릴없이 오가는 시늉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은 사람을 놀래고 싶어 한다. 그들은 기대에 찬 표정을 피상적으로 흉내 내면서 대팻밥밖에 들어 있지 않은 최하급 장난감 상자의 상태를 벗어나고자 한다. 그럴 때는 그들의 당혹스러움을 덜어 주어야만 한다. 혹은 사람들은 기계로 조작하는 것을 선물해 놓고는 처음으로 태엽을 감으면서 너무 돌려 버리기도 한다. 그러므로 때때로 태엽이 끊긴 쥐나 그 비슷한 것을 눈에 띄지 않게 발로 계속 미는 법을 익혀 두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해서 종종 그들을 속일 수 있고 그들이 부끄러워하지 않게 할 수 있다.
결국에는 이 모든 것이 요구하는 대로, 특별한 재능이 없이도 그것을 하게 되었다. 재주란 원래 노력을 했을 때에만 필요한 것이다. 재주는 의미 있고 선량하게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그렇다치더라도, 그것이 전혀 다른 사람을 위한 기쁨이고 완전히 낯선 기쁨이란 것을 멀리서도 알 수 있다. 그런 기쁨에 어울릴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것은 너무나 낯선 기쁨이었기에.
사람들이 이야기를 한 것은, 그것도 정말 이야기다운 이야기를 했던 것은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나는 누군가가 이야기하는 것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아벨로네가 나에게 어머니의 처녀 시절을 말해 줄 때도 그녀가 이야기를 할 줄 모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혹 브라에 노백작이라면 이야기를 할 줄 알았는지도 모른다. 아벨로네에게서 들은 것을 여기 적어 보려고 한다.
아벨로네는 처녀 시절에 자기만의 폭넓은 감동을 누렸던 시기가 있었음이 틀림없다. 브라에 가문은 그 당시 시내 대로변에 살면서 사교계에 상당히 깊이 관계하고 있었다. 저녁 늦게 자기 방으로 올라올 때면 아벨로네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피곤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갑자기 아벨로네는 창이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내가 들은 게 틀리지 않다면, 그녀는 몇 시간이고 밤의 창 앞에 서서 그것은 자기와 관련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죄수처럼 거기에 서 있었어요. 그리고 별들은 자유의 상징이었지요."라고 아벨로네는 말했다.
그 당시 그녀는 어렵지 않게 잠들 수 있었다. "잠에 빠져든다"라는 표현은 이러한 소녀 시절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잠이란 누군가와 함께 솟아오르는 어떤 것이었다. 가끔씩 눈을 뜨고 자기도 했고, 오랫동안 밑바닥에만 있다가 새롭게 떠오른 표면 위에서 잠들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났다. 다른 사람이 늦잠을 자고 아침식사에 늦게 나타나는 겨울에도 변함없이 일찍 일어났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저녁에는 모든 사람을 위한 등불, 공동의 등불이 항상 켜졌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새날의 여명을 밝히는 두 개의 촛불은 한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촛불은 나지막한 두 개의 촛대에 서서, 작고 둥글며 장미가 그려진 망사 갓을 통해 고요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가끔씩 망사 갓을 뒤로 젖혀야 했다. 하지만 그 일이 조금도 성가시게 느끼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전혀 마음이 급하지 않았고 편지나 일기를 쓸 때면 자주 눈을 들어 생각에 잠겨야 했기 때문이다. 일기는 언젠가부터 완전히 다른 글씨체로, 불안하고 아름답게 씌어지기 시작했었다.
브라에 백작은 딸들과 아주 동떨어져 살았다. 만약 누군가가 삶이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라고 주장을 하면 백작은 그것을 망상이라고 여겼다. 그는 "예, 나누십시오" 하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에게 딸들에 관해 말하는 것조차 싫어한 것은 아니었다. 백작은 딸들이 다른 도시에 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주의 깊게 사람들의 얘기를 들었다.
그러므로 백작이 어느 날 아침식사를 마치고 아벨로네에게 눈짓을 해보인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보아하니 우리는 같은 습관을 가졌구나. 나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글을 쓰지. 넌 나를 도울 수도 있겠구나."
아벨로네는 그 일을 어제의 일처럼 잘 기억하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부터 아벨로네는 아무나 불러들이지 않는 아버지의 방으로 불려갔다. 아벨로네는 방을 둘러볼 여유조차 없이 곧바로 백작 맞은편의 책상에 앉았다. 책상은 아벨로네에게 평야처럼 넓었고 책들과 서류 꾸러미가 촌락처럼 흩어져 있었다.
백작은 구술했다. 브라에 백작이 회고록을 쓰고 있다는 사람들의 주장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긴장해서 기대하고 있는 주제인 정치, 군사와 같은 기억들을 다루고 있지는 않았다. 누군가가 그런 사실에 관해 말을 꺼내면 노신사는 "그런 일은 다 잊어버렸소"라고 짧게 말하곤 했다. 백작이 기억하고 싶어 하는 것은 유년 시절이었다. 백작은 그 시절을 소중히 여겼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저 멀리 놓여 있는 시절들이 이제는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되었고, 마음속으로 시선을 돌리면 북구의 환한 여름밤처럼 그 시절이 감격적으로 잠 못 이루고 놓여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때때로 백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촛불에다 대고 그것이 펄럭거린다고 말을 했다. 혹은 전체 문장들을 완전히 다시 지우게 하고는 격렬하게 이쪽저쪽을 오가면서 검은 녹색의 비단 잠옷으로 바람을 일으켰다.
그런데 그 방에는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스텐이라는 유틀랜드 태생의 늙은 하인이었다. 그의 임무는, 백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 흩어져 있는 낱장의 종이 위에다 재빨리 손을 올려놓는 것이었다. 가득히 메모가 된 종이들이 책상 위에 흩어져 있었다. 그의 주인은 지금 쓰고 있는 종이가 아무 소용이 없다고, 그것이 너무 가벼워서 사소한 일에도 날아가 버릴지 모른다고 상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긴 상체만이 보이는 스텐은 이러한 걱정을 이해하고 있었고, 부엉이처럼 빛에 눈먼 진지한 얼굴로 손을 짚고 앉아 있었다.
이 스텐이란 사람은 일요일 오후를 "스웨덴 보르크"를 읽으면서 보냈다. 동료 하인들 중 누구도 그의 방에 발을 들여 놓고 싶어하지 않았다고 한다. 얘기인즉슨 그가 주문으로 혼령을 불러낸다는 것이었다. 스텐의 집안 사람들은 예로부터 혼령과 교류했고 이러한 교류는 스텐에게 태어날 때부터 특별히 예정된 것이었다.
스텐을 낳던 날 밤 그의 어머니에게 무엇인가가 나타났었다. 스텐은 둥글고 커다란 눈을 갖고 있었다. 그의 시선 한쪽 끝은 그 눈으로 본 모든 사람들의 뒤통수에 꽂혀 있었다. 아벨로네의 아버지는 집안 식구에 대해 묻는 것처럼 스텐에게 혼령에 대해 자주 묻곤 했다. "그들이 올 것 같은가, 스텐? 오면 좋겠는데" 하고 백작은 기분 좋게 말했다.
며칠 동안 구술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한 번은 아벨로네가 "엑케른페르데"란 단어를 쓸 수 없었던 적이 있었다. 그것은 고유명사였다. 아벨로네는 그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백작은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백작은 벌써부터 자신의 기억력에 비해 너무 느린 이 받아쓰기를 그만두게 할 핑계거리를 찾고 있었다.
"그걸 쓰지 못한다고?"
백작은 날카롭게 말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읽을 수도 없겠구나. 그렇게 되면 그 사람들이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을 보기라도 해야 한단 말이냐?"
백작은 화가 나서 말을 계속했고 아벨로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 사람, 생 제르맹이란 자를 보겠느냐 말이다."
그는 딸에게 고함을 질렀다.
"생 제르맹이라고 했니? 그걸 지워 버려라. 폰 벨마레 후작이라고 써라."
아벨로네는 지우고 다시 썼다. 그러나 백작이 너무 빨리 이어서 말하는 통에 따라 쓸 수가 없었다.
"이 탁월한 벨마레는 아이들의 존재를 못 견뎌했지만, 그분은 아주 어렸던 나를 무릎에 앉혀 놓곤 했다. 그럴 때면 난 그분의 다이아몬드 단추를 깨물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곤 했다. 그분은 그것을 재미있어 하셨지. 그분은 웃으면서 나를 머리 위로 번쩍 들어올렸다. 우리는 서로 눈을 맞추었다. 그러고는 "너는 아주 훌륭한 이빨을 가졌구나, 뭐라도 해낼 이빨이야" 하고 말씀하셨어. 하지만 나는 그분의 눈을 알아보았다. 나중에 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갖가지 눈을 보았지만 그러한 눈을 다시는 볼 수 없었지. 그 자체에 이미 모든 것이 존재하는 신비한 그의 눈을 위해 있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나 할까. 베니스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니? 좋아. 너에게 얘기해 주마. 그 눈은 베니스를 이 방으로 가져와 들여다보는 것 같았어, 여기에 책상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한 번은 구석에 앉아서, 그분이 할아버지에게 페르시아 얘기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한데 손에서 페르시아 냄새가 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단다. 지금까지도 말이야. 네 할아버지는 후작을 알아주셨다. 주 장관이었던 당신이 말하자면 후작의 제자 격이었다. 하지만 후작이 마음속에 있는 과거사만을 믿는 것을 두고, 그에 대해 험담하는 사람들도 제법 많았다. 잡동사니도 몸에 지니고 태어났을 때에만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그 사람들이 이해할 턱이 없었지."
"책이란 공허한 것이다."
백작이 성난 몸짓으로 벽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중요한 것은 피다. 사람들은 그 안에 든 것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벨마레 후작은 놀라운 이야기와 기이한 삽화를 피 속에 가지고 있었다. 후작은 원하는 곳에서 그것을 펼쳐 보일 수가 있었다. 그러면 무엇인가가 묘사되었다. 피 속에 있는 어떤 페이지도 그냥 넘겨 버릴 수 없었다. 때때로 후작이 칩거에 들어가 혼자서 책장을 넘길 때면 연금술이나 보석이나 색채에 관해 적혀 있는 곳을 보기도 했다. 어떻게 그런 것들이 후작의 피 속에 적혀 있지 않았겠느냐? 분명히 어딘가에 적혀 있을 것이다."
"만약 그 사람이 혼자 있었다면 충분히 진실을 벗삼아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진실과 단둘이 지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후작은 사람들을 초대해서 그들에게 진실과 지내는 자신의 모습을 보일 정도로 그렇게 멋없는 사람도 아니었다. 진실이 구설수에 올라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지. 게다가 그 사람은 동양적인 데가 많았다. "아듀, 부인" 하고 그 사람은 진실을 향해 사실대로 말했다. "다시 뵐 날까지. 아마도 천 년 후에는 우리도 더 강해지고 방해받지 않게 되겠지요. 하지만 당신의 아름다움은 이제야 피어나는군요, 부인." 그것은 단순히 예의를 갖춘 말이 아니었다. 그렇게 말하고 그 사람은 가버렸다. 그리고 사람들을 위해 바깥에다 동물원을 조성했다. 그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일종의 더 큰 거짓말을 모은 동물 훈련소와 같은 것이었고, 과장의 열대 식물 온실이었으며, 거짓된 비밀로 가득 찬 잘 손질된 작은 동산이었다. 그러자 사방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다이아몬드를 단 장화를 신고 여기저기를 다니며 완전히 자신의 손님들을 위해 살았다."
"그것을 피상적인 실존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서? 기본적으로 그에게는 진실이라는 부인에 대한 기사도정신이 있었다. 그 점에서 후작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이미 오래 전부터 백작은 더 이상 아벨로네를 향해 말하고 있지 않았다. 딸의 존재조차 잊고 있었다. 백작은 성난 듯이 서성댔고, 어느 순간에는 스텐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인물로 바뀌어야 한다는 듯 강요하는 눈빛을 스텐에게 던졌다. 그러나 스텐은 바뀌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 사람을 보아야 할 텐데."
브라에 백작은 계속했다.
"그 사람이 완전히 그 모습을 드러낸 시기가 있었다. 그 사람이 받은 편지들이 많은 도시에서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편지에는 장소만 적혀 있을 뿐 그 밖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를 본 적이 있다."
"잘 생긴 얼굴은 아니었어."
백작은 서둘러 특유의 웃음을 터뜨렸다.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하거나 기품 있다고 부를 만한 것도 없었다. 그 사람 옆에는 더 기품 있는 사람들이 항상 있었으니깐. 그 사람은 부자였다. 하지만 그것은 그에게 단지 하나의 착상에 지나지 않았고 지탱될 수도 없었다. 그 사람은 훌륭하게 자랐지만 사실 다른 사람들이 더 나아 보였다. 물론 그 당시 나는 그 사람이 똑똑한지, 이런 사람인지 저런 사람인지, 어디에다 가치를 두는 지 판단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내 눈 앞에 있었어."
백작은 부들부들 떨며 서 있었다. 그리고 남아 있는 어떤 것을 방 안에다 들여 놓으려는 몸짓을 했다.
이 순간 백작은 아벨로네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이 보이냐?"
백작은 버럭 고함을 쳤다. 그리고 갑자기 은촛대를 잡더니, 눈이 부셔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아벨로네의 얼굴에다 비추었다.
아벨로네는 그 사람을 보았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 다음 날에도 아벨로네는 규칙적으로 불려갔다. 이 돌발 사태가 있은 후로 구술은 훨씬 순조롭게 계속되었다. 백작은 여러 가지 서류를 보고 자신의 아버지가 어떤 역할을 수행했던 베른스트로프 써클에 관한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정리했다. 이 무렵 아벨로네는 자신이 맡은 일의 특별함을 아주 잘 파악하게 되어,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것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유익한 공동 작업으로 인해 정말로 친해졌다고 쉽게 생각할 수 있었다.
언젠가 아벨로네가 방에서 물러 나오려 하자, 노백작은 딸에게 다가갔다. 뒷짐 진 손에다 놀라운 일을 감추고 있는 것 같았다. "내일은 쥴리 레벤틀로프에 관해 쓰도록 하자"하고 백작은 말했고, "그 여인은 성녀였어"라고 자기가 한 말을 음미했다.
아마도 아벨로네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아버지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암, 암, 아직도 있고 말고", 그는 명령조로 주장했다.
"세상에는 모든 것이 다 있단다, 내 귀여운 딸 아벨로네야."
그는 아벨로네의 손을 잡고 책처럼 툭툭 쳤다. "그 여자는 성흔을 가지고 있었다" 하고 말하고는, "여기하고 여기" 하면서 차가운 손가락으로 아벨로네의 양 손바닥을 짧고 세게 쳤다.
성흔이라는 표현을 아벨로네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곧 알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보았다는 성녀의 얘기를 듣고 싶어 정말이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벨로네는 더 이상 불려가지 않았다. 그 다음 날에도, 그 훗날에도.
더 이야기해 달라고 내가 부탁하자 아벨로네는 "레벤틀로프 백작 부인에 대해서는 여기에서도 자주 얘기되었을 거예요" 하고 짧게 말을 끝맺었다. 아벨로네는 피곤해 보였다. 또한 대부분의 일은 잊어버렸노라고 했다. "하지만, 난 아버지가 짚어 준 그곳을 아직도 느껴요" 하고 아벨로네는 웃었고 어쩔 수 없었던지 텅 빈 자신의 손을 신기하다는 듯이 들여다보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미 모든 것들이 달라졌다. 울스가르는 더 이상 우리 소유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시내 아파트에서 돌아가셨다. 그곳은 내게 적대적이고 낯설게 느껴졌다. 그 무렵 나는 이미 외국에 머물고 있어서 아버지가 임종하실 때 너무 늦게 도착했다.
아버지는 높은 촛불이 두 줄로 늘어선 안마당에 안치되어 있었다. 꽃들의 향기가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동시에 나는 것처럼 하나하나 구분되지 않았다. 눈이 감겨진 아버지에게는 수렵관 제복이 입혀져 있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푸른색 벨트 대신에 하얀색 벨트를 채워 놓았다. 양 손은 포개지지 않고 서로 비스듬히 놓여 있어 무언가를 흉내 낸 듯 무의미하게 보였다.
아버지가 고통을 많이 받으셨다고 사람들이 재빨리 이야기해 주었다. 하지만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의 표정은 사람이 떠나 버린 객실의 가구처럼 잘 정돈되어 있었다.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을 자주 보았던 것처럼 아버지의 얼굴에서 친밀감을 느꼈다. 그 모든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주위 환경이 새로웠고 그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 아마도 다른 사람의 창문인 듯한 것이, 맞은편에 보이는 이 답답한 방이 낯설었다. 시베르젠이 때때로 들어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 있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시베르젠은 늙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아침식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침식사가 준비되었노라고 여러 번 나에게 알려왔다. 이런 날 아침을 먹는 것은 나에게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나를 내보내려고 한다는 것을 나는 눈치채지 못했다. 결국 내가 나가지 않자, 시베르젠이 의사들이 와 있다는 사실을 어떤 식으로든 내비쳤다. 무엇 때문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아직 할 일이 남았다고 시베르젠이 말했고 충혈된 눈으로 애써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두 명의 신사가 약간 서두르면서 들어왔다. 의사들이었다. 앞에 오던 의사가 안경 너머로 우리를 보기 위해서 머리를 숙였다. 처음에는 시베르젠을, 그 다음에는 나를 보기 위해서 단숨에 머리를 푹 숙였다. 마치 뿔이 달려 있어 우리를 박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의사는 학생처럼 형식을 갖춰 몸을 숙였다. "수렵관님께서 원하신 바가 있어서" 하고 의사는 들어올 때와 같은 정확한 말투로 말했다. 그 사람이 서두르고 있다는 느낌이 다시금 들었다. 나는 어떻게든 안경 너머 그의 시선이 나를 피하지 못하게 했다. 그의 동료는 뚱뚱하고 피부가 얇으며 금발이었다. 그 사람의 얼굴을 붉히게 만들기는 쉬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수렵관이 지금도 원하는 바가 있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나도 모르게 아버지의 균형 잡히고 잘생긴 얼굴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아버지가 확실한 것을 원하신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기본적으로 항상 확실한 것을 원하셨다. 이제 당신은 그것을 얻어야만 했다.
"심장의 통증 때문에 오셨군요, 그럼."
나는 인사를 하고 뒤로 물러났다. 두 사람도 동시에 인사를 하고 그들의 작업에 대한 의견을 재빨리 나누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벌써 촛불을 옆으로 옮겨 놓았다. 그런데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의사가 다시 내 쪽으로 몇 걸음 다가왔다. 마지막 걸음을 줄이기 위해, 적당히 가까워지자 몸을 앞으로 내밀고 사납게 나를 쳐다보았다.
"필요 없으실 것 같군요. 다시 말해서, 제 말은, 나가 계시는 게 더...“
말을 아끼고 서두르는 태도로 보아 게으르며 닳고 닳은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시 또 몸을 수그렸다. 그러고도 다시 몸을 수그렸다.
"감사합니다."
나는 짧게 말했다.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내가 이 일을 견뎌낼 것이고 이러한 일을 거부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되어야만 했다. 그것이 아마도 전체 의미였을 것이다. 가슴을 관통해서 찌르면 어떻게 되는지를 본 적도 없었다. 강요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주어진 이 이상한 경험을 거부하지 않는 것이 나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 당시 나는 실망이라는 것을 더 이상 믿지 않고 있었다. 그러므로 두려울 게 전혀 없었다.
아니, 아니다. 세상에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 할지라도. 모든 것은 간과될 수 없는 수많은 개별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상상 속에서는 그것을 휙 지나쳐 버리고 그것이 빠져 있다는 사실조차 눈치 채지 못한다. 그러나 현실은 느리게 진행되고 형용할 수 없이 상세하다.
예컨대 이런 저항을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넓고 높다란 가슴이 드러나자마자 키 작고 성급한 남자가 문제되는 곳을 찾았다. 그러나 급하게 댄 메스가 그곳을 뚫고 들어가지는 못했다. 갑자기 모든 시간이 이 방으로부터 달아나 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우리는 그림 속에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미끄러지는 듯한 작은 소음과 함께 시간이 몰려왔다. 그리고 사용된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이 그 자리에 있었다. 느닷없이 어디선가 뭔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지껏 그렇게 두드리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따뜻하고 폐쇄적이며 이중적이 두드림. 나는 계속 귀를 기울였고, 동시에 의사가 바닥까지 찔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나에게 두 가지의 인상이 합치되는 데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그래, 그래, 이제 끝나는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박자에 관한 한, 두드리는 소리는 거의 심술궂기까지 했다.
나는 이제 얼굴이 눈에 익은 그 의사를 쳐다보았다. 의사는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재빨리 사무적으로 일하는 그 의사는 금방 다음 일을 계속해야 했다. 거기에 향유나 만족의 흔적이라곤 조금도 없었다. 다만 오래 된 본능으로 왼쪽 관자놀이에 몇 가닥의 머리카락을 세우고 있을 뿐이었다. 의사는 조심스럽게 메스를 끄집어냈다. 입이 벌어진 것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뭐라고 두 음절의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거기서 두 번 잇따라 피가 쏟아져 나왔다. 금발의 젊은 의사는 우아한 동작으로 재빨리 그것을 탈지면으로 닦았다. 이제 상처는 감겨진 눈처럼 고요했다.
이번에는 실로 경황없이,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지 않나 싶다. 어느 순간인가 내가 혼자 있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누군가 제복을 다시 입혀 놓았고 흰 벨트가 전에 있던 대로 그 위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이제 수렵관은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분 혼자 돌아가신 것이 아니었다. 이제 심장이, 우리의 심장이, 우리 집안의 심장이 찔린 것이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말하자면 투구가 박살이 나고 만 것이었다. "오늘로 브리게 집안은 사멸하리라", 내 마음속에 있는 그 무엇인가가 그렇게 말을 하고 있었다.
나의 심장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중에 내 심장이 생각났을 때, 아버지를 대신해서 그것이 고려될 수는 없다는 것을 처음으로 아주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그것은 아버지와 무관한 개별적인 심장이었다. 이제 처음부터 시작할 때가 되었다.
금방 다시 떠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상상했던 게 기억난다. 모든 일이 정리되어야지, 나는 몇 번이고 다짐을 했다. 하지만 무엇을 정리해야 하는지도 불명확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나는 시내를 헤매 다니면서 도시가 변모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내가 묵었던 호텔을 나와 시내를 구경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누구든 이방인처럼 경계하는 도시는 어른들의 도시였다. 모든 것이 약간씩 작아졌다. 나는 저 멀리 떨어진 등대가 있는 곳까지 산책하고 다시 되돌아오곤 했다.
아말리에 구역에 이르자, 오래 전에 익숙했던 것들이 어디선가 튀어나와 그 힘을 발휘하려고 했다. 그곳에서는 모퉁이 창이나 들창, 가로등이 나를 잘 알고 그것을 이용해 나를 위협했다. 나는 그것들을 정면으로 보면서 내가 피닉스 호텔에 묵고 있으며 언제라도 다시 떠날 수 있다는 것을 느끼려 했다.
그러나 들쑤셔진 나의 양심은 그것만으로는 가라앉지 않았다. 이러한 영향과 연관들 가운데 어떤 것도 실제로 극복되지 않았다는 의혹이 마음속에 커져 갔다. 어느 날엔가 남몰래 이것들을 등졌고, 결국 이것들은 있는 그대로 미완성으로 남았다. 말하자면 만약 유년 시절을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으려 했다면 아직도 유년 시절이 계속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 시절을 어떻게 잃어버렸는지를 생각하는 동안에는 내가 의지할 수 있는 다른 어떤 것을 결코 갖지 못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루 중 두어 시간을 나는 드론닝엔스 트바엘의 좁은 방에 가서 보내곤 했다. 그곳은 누군가가 죽어 나간 여느 셋집이 그렇듯이 모욕을 받은 듯이 보였다.
나는 거대한 하얀색 타일 난로와 책상 사이를 오가면서 수렵관의 서류들을 불태웠다. 우선 묶여진 편지 꾸러미를 불 속에 던지는 일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조그마한 꾸러미가 어찌나 단단히 묶어졌는지 테두리만 새까맣게 탔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힘겹게 풀어야 했다. 대부분 매캐한 연기를 뿜었다. 마치 나에게 옛 추억을 되살리게 하려는 듯 내 주위로 잔뜩 몰려와 나를 설득하는 듯한 연기였다. 그러나 아무런 추억도 없었다.
그러자 다른 것들보다 무거웠는지 사진들이 미끄러져 나왔다. 사진들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서서히 타들어 갔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그 안에 잉에보르크의 사진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그러나 눈에 띄는 것은 성숙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여인들의 사진뿐이었다. 그것은 나에게 또 다른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이었다. 말하자면 내게 추억이 전혀 없지는 않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었다.
내가 성인이 되어 아버지와 함께 길거리를 걸어갈 때면 바로 그런 눈들이 곧잘 나를 쳐다보곤 했었다. 이런 눈들은 마차 안에서 벗어날 길 없는 시선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볼 수 있었다. 그 눈들이 그 당시의 나와 아버지를 비교했을 것이고, 그 비교의 결과가 나한테 유리하지 않았으리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수렵관인 아버지는 비교 따위를 두려워하시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아버지가 무엇을 두려워했는지는 지금에야 와서 알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 해서 이런 추측을 하게 되었는지를 먼저 들려주겠다. 아버지의 지갑 깊숙한 곳에서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종이는 접혀진 지 꽤 오래 되어 부스러지고 마디마디가 찢겨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불태우기 전에 읽어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의 훌륭한 필체로 질서정연하고 반듯하게 씌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필사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곧 알아챌 수 있었다.
그것은 "돌아가시기 세 시간 전" 하고 시작되었는데, 크리스티안 4세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물론 내가 그 말 하나하나를 지금 반복할 수는 없다. 죽기 세 시간 전에 왕은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의사와 시종 볼미우스가 왕을 부축하여 일으켰다. 왕은 약간 불안하긴 하지만 어쨌든 서 있었고 두 사람이 왕에게 누빈 잠옷을 입혔다. 그러자 갑자기 왕은 앞에 있는 침대 끝에 앉아서 무엇인가를 말했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왕이 침대로 나자빠지지 않도록 의사가 내내 왼손을 잡아 주었다.
그렇게 그들은 앉아 있었고 왕은 때때로 힘겹게 이해할 수 없는 모호한 말들을 했다. 마침내 의사가 왕에게 말을 건넸다. 왕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미루어 짐작하고자 했다. 잠시 후 왕이 그의 말을 가로막고 갑자기 또렷하게 말했다.
"오, 주치의, 자넨가? 이름이 뭐지?"
의사는 갑작스런 질문을 받고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썼다.
"슈페를링입니다, 폐하."
그러나 이제는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자신의 말을 사람들이 이해하는 것을 들은 왕은 그에게 남아 있던 오른쪽 눈을 치켜 세우고 얼굴에 모든 힘을 집중시켜 단 한마다, 몇 시간 전부터 그의 혀가 만들고 있던, 유일하게 남은 말을 했다, "죽음"이라고. 그는 "죽음"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 이상의 얘기는 적혀 있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불태우기 전에 몇 번이고 읽었다. 그제서야 나의 아버지가 마지막에 많은 고통을 받으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나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그 이후로 나는 죽음의 공포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그 가운데는 내가 겪은 경험들이 간과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고 생각한다. 그 공포는 도시 한복판에서 사람들 가운데 끼여 있는 나를 아무런 이유도 없이 엄습했다. 물론 여러 가지 원인들이 중첩될 때도 있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누군가가 벤치에서 쓰러져서 모든 사람들이 그를 빙 둘러서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그 사람에게서는 공포를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그의 공포가 내게 돌아오는 것이었다.
예컨대 나폴리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 전차에서 내 맞은편에 앉아 있던 젊은 사람이 죽었다. 처음에는 기절한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우리 차는 조금 더 달려갔다. 하지만 우리가 멈추어야 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었다. 우리 뒤에서는 차들이 멈춰서 그 방향으로는 더 이상 가지 못할 것처럼 밀려 있었다. 얼굴이 창백하고 뚱뚱한 그 소녀는 옆자리에 앉은 여자에게 기대어 아주 얌전하게 죽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녀의 어머니는 딸의 죽음을 믿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소녀의 어머니는 상황을 엉뚱하게 몰아갔다. 어머니는 소녀의 옷을 흐트러뜨려 놓고 더 이상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입에다 무엇인가를 흘려 넣었다. 누군가가 가져다준 액체를 딸의 이마에다 문지르기도 했다. 눈동자가 약간 말려 올라가자 시선을 다시 앞으로 모으기 위해 딸의 몸을 흔들기도 했다. 듣지도 못하는 눈에다 대고 소리를 질렀고 소녀의 몸을 인형처럼 이리저리 끌어 당겼다. 결국에는 얼굴이 죽지 못하게 하려는 듯 손을 들어 있는 힘껏 살찐 얼굴을 때렸다. 그때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내가 두려움을 느꼈던 것은 훨씬 전부터였다. 예를 들면 기르던 개가 죽었을 때였다. 마지막 순간 단 한번 나를 원망했던 그 녀석. 그놈은 중병에 걸려 있었다. 나는 온종일 개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때 갑자기 개가 짖기 시작했다. 낯선 사람이 방에 들어왔을 때 늘 하던 대로 짧게 컹컹거렸다. 낯선 사람이 들어오면 그렇게 짖기로 우리 사이에는 약속이 되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문 쪽을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들어와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불안하게 개의 시선을 찾고 있었고 개도 나의 시선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이별을 고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개는 경직되고 낯선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개는 내가 그것을 들여보냈다고 비난하고 있었다. 내가 그것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듯했다. 그 녀석이 항상 나를 과대평가했다는 것은 그 순간 자명해졌다. 그러나 녀석에게 설명할 시간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개는 숨을 거둘 때까지 낯설고 고독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어느 가을 날 처음으로 밤서리가 내리고 나서 파리들이 방으로 날아와 따뜻한 공기로 몸을 데웠을 때에도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파리들은 이상하게도 바짝 말라 있었고 자기들이 윙윙거리며 내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더 이상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몇 시간이고 한 자리에 앉아 있기도 하고, 아직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이리저리 날아다니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앞을 못 보고 아무 곳에나 몸을 던지고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저 위나 어딘가에서 파리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마침내 온 방을 기어 다니며 서서히 방 전체를 묘지로 만들어 갔다.
심지어 혼자 있을 때조차도 두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있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로 깨어 앉아, 적어도 앉아 있는 것이 살아 있는 것이라고 마음을 졸이던 저 밤들을 내가 숨길 이유는 없을 것이다. 죽은 사람은 앉아 있지 못하는 법이다. 그것은 항상 이렇듯 우연히 들른 방에서였다. 이런 방들은 대개, 심문을 받거나 사악한 내 일에 연루되는 것이 두려운 듯, 내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면 곧 나를 외면할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런 방에 나는 앉아 있었다. 아마도 내가 아주 끔찍하게 보여서 그 어떤 것도 내게 속마음을 고백해 올 용기가 없었을 것이다. 방금 켜 놓은 불빛도 결코 나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은 텅 빈 방에 있는 것처럼 혼자서 타들어갔다. 그러면 나의 마지막 희망은 항상 창문뿐이었다. 저 창밖에는 반드시 내 편을 들어주는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갑자기 엄습해 온 죽음이란 역경 속에서도 나를 도와줄 그 무엇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상상해 보았다. 그러나 그쪽을 바라보자마자 나는 창문이 벽처럼 막혀 있기를 바랐을 뿐이다.
바깥으로 나가 보았자 냉담한 상황은 마찬가지라는 것을, 즉 바깥에도 고독만이 있을 따름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고독은 내가 초래한 것이었고 나의 심장은 그것의 위대함과 더 이상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옛날에 두고 온 사람들이 떠올랐다. 어떻게 그들을 떠나올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 아, 그런 밤들이 아직도 내게 남아 있다 하더라도, 적어도 내가 때때로 할 수 있었던 그런 생각들일랑 그만두었으면. 내가 지금 요구하는 것이 그렇게 무분별한 소리는 아니다. 왜냐하면 공포가 너무 커서 그것으로부터 나온 생각들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나는 곧잘 얼굴을 두들겨 맞았고 겁쟁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쓸데없이 두려워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나는 진짜 공포를 맛보면서 두려움을 배우게 되었다.
진짜 공포란, 그것이 만들어 내는 힘이 커질 때에만 커지는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공포 속에서라면 모를까, 이러한 힘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힘은 너무나 불가사의하고 또 완벽해서, 우리가 그것을 생각하려고 애쓰는 순간 뇌가 산산조각 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부터 나는 그것이 우리보다 훨씬 더 강한 우리의 힘, 우리의 모든 힘이라고 믿고 있다. 사실 우리는 그 힘을 모르고 있지만, 우리가 그것을 극히 조금밖에 모르고 있다고 해서 우리의 것이 아니란 말인가?
나는 천국과 죽음이 어떻게 해서 생겨났을까 하고 자주 생각해 본다. 다른 할 일이 많다는 이유로, 또 시간에 쫓기는 우리 곁에 안전하게 둘 수 없다는 이유로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을 우리로부터 떼놓으면서부터가 아닐까? 이제 세월이 흘러갔고 우리는 보다 사소한 것들에 익숙해졌다. 우리는 이제 자신의 독자성을 알 수 없게 되었고 그것의 엄청난 크기에 경악할 뿐이다.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아버지가 임종을 묘사한 글을 서류 지갑 깊은 곳에 넣어서 몇 해씩이나 지니고 다니신 것을 지금은 이해하고도 남는다. 특별한 죽음일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임종의 시간은 거의 희기하기까지 한 것을 갖는 법이다.
가령 필릭스 알베르의 죽음을 베끼는 사람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병원에서였다. 그 사람은 부드럽고 태연한 얼굴로 죽었다. 그래서 수녀는 그가 이승을 떠나 멀리 가버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수녀는 어디에 가면 그 자리에 무엇이 있으니 찾아오라고 지시를 내리느라 시끄럽게 소리를 질렀다. 상당히 교양이 없는 수녀였다. 그런데 "복도"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이 있었는데, 수녀는 그 말이 씌어진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복도를 의미할 마음으로 "뽁도"라고 말하고 말았다. 그 순간 알베르는 죽음을 미루었다. 이것을 설명해 줄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그 사람은 정신이 멀쩡해져서 그것이 "복도"라는 것을 수녀에게 설명했다. 그러고 나서 그 사람은 죽었다. 그 사람은 시인이었고 대충대충 쓰는 말을 아주 싫어했다. 혹은 그 사람에게는 진실의 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세상이 그렇게 나태하게 계속된다는 사실을 마지막 인상으로 가져가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확실히 결정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고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같은 비난을 성자 쟝 드 디외도 받아야 할 것이다. 그 사람은 죽어가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정원에서 막 목을 매단 사람의 끈을 가까스로 끊어 주었다. 놀랍게도 목을 맨 사람이 있다는 말이 단말마의 숨 막히는 긴장 속으로 뚫고 들어갔던 것이다. 그 사람 역시 해야 할 올바른 일을 했을 뿐이다.
눈에 들어와서 전혀 무해한 존재가 있다. 그런 것은 보자마자 금방 다시 잊게 된다. 그러나 그런 존재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어떻게 해서 귀에 들어올 경우에는 그 즉시 자라난다. 말하자면 그것이 알을 까고 나와 사방을 기어다니는 꼴이 된다. 그래서 그것이 뇌 속으로 뚫고 들어가 이 기관 속을 황폐하게 만들면서 창궐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코를 통해 들어가는 개의 폐렴균과 비슷하다.
이러한 존재는 이웃이다.
홀로 방황을 시작한 이래로 나는 수많은 이웃을 사귀어 왔다. 위아래를, 오른쪽과 왼쪽을, 대개는 사방을 동시에 이웃하고 살았다. 단순히 내 이웃의 이야기를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필생의 작품이 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들이 내 마음속에 심어 준 병이 발병하는 이야기는 더 길어질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조직에서 야기된 혼란을 틈타서만 그 존재가 증명된다는 점에서, 이웃과 병적인 존재는 일치한다.
속을 짐작할 수 없는 이웃이 있는가 하면 매우 규칙적인 이웃도 있다. 나는 자리에 앉아 그들의 법칙을 발견하려 했다. 그들도 하나의 법칙을 가진다는 사실은 명백했기 때문이다.
만약 정확하게 생활하는 이웃이 어느 날 저녁에 돌아오지 않고 있으면, 그 사람에게 어떤 일이 닥쳤을까 하고 공상의 나래를 폈다. 그리고 불을 켜 두고 그 사람의 젊은 아내처럼 불안해했다. 증오심에 가득 찬 이웃이 있는가 하면, 격한 사랑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는 이웃도 있다. 한밤중에 누군가가 다른 한 사람의 주위를 깡총깡총 뛰며 도는 일도 있었다. 물론 그럴 경우 잠자는 것을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잠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잦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때 관찰할 수 있었다. 예컨대 페테르스부르크에 있었던 두 명의 이웃은 잠에다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한 사람은 일어서서 바이올린을 켰다. 나는 그 사람이 믿기지 않는 8월의 밤을 환하게 밝히며 밤을 지새는 집들을 내다보고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오른편에 있는 다른 이웃은, 내가 아는 한, 늘 누워 있는 눈치였다. 내가 일어나 있는 동안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었다. 심지어 눈을 감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자고 있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는 누워서 긴 시를 암송했다. 푸시킨의 시와 네크라소프의 시를, 아이들이 누가 시키면 하듯이 단조로운 톤으로 암송했다. 왼쪽 이웃의 음악 소리에도 불구하고, 내 머릿속에서 고치가 된 것은 기를 외우는 이 사람이었다. 어느 날엔가 가끔씩 그 사람을 찾아오는 학생이 방문을 헷갈려 하지 않았다면 그 고치에서 어떤 벌레가 기어 나왔을지 모를 일이다. 그 학생은 자기가 알고 있는 이 사람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것은 어느 정도 안심이 되는 이야기였다. 어쨌든 그것은 내 추측이 낳은 수많은 벌레들을 없앨 수 있는, 말 그대로 분명한 이야기였다.
옆방의 이 하급관리는 어느 일요일, 이상한 과제를 풀어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사람은 자신이 정말 오래 살 것이라고 가정했다. 50년을 더 살 것이라고 해두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그 사람은 관대해지고, 그로 인해 행복감을 느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스스로 더 많은 과제를 풀어 보고자 했다. 그 사람은 50년의 세월을 날로 환산하고, 시간과 분으로 환산하고, 할 수만 있다면 초 단위로까지 환산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계산에 계산을 거듭해서 그때까지 본 적이 없는 총액에 이르렀다.
어지럼증을 느꼈다. 그래서 조금 쉬어야 했다. 시간은 돈이다, 그는 이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었다. 그렇게 엄청난 시간을 차지하고 있는 인간을 전혀 감시하지 않고 있다는 데에 그는 놀랐다. 어처구니없이 도둑질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곧 그 사람은 기분이 좋아졌고 거의 들든 기분이 되다시피 했다. 가슴이 넓고 당당해 보이도록 외투를 입고, 약간 교만한 태도로 "니콜라이 쿠스미치"하고 스스로를 부르면서, 천문학적인 전 재산을 자신에게 증여한다는 가정 하에 상관의 흉내를 내보는 것이었다.
"니콜라이 쿠스미치"하고 그 사람은 친절하게 말을 하고는, 또 다른 그가 외투도 없이 비쩍 말라 볼품없이 말털 소파에 앉아 있다고 상상을 했다. "니콜라이 쿠스미치, 나는 자네가 부에 대해서는 상상조차도 하지 않기를 희망하네.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걸 항상 생각하게. 가난한 사람들 중에도 정말 존경할 만한 사람들이 있다네. 가령 가난한 귀족이나 장군의 딸들이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하면서 자선가로서의 니콜라이 쿠스미치는 전 도시에 잘 알려진 갖가지 일화들을 예로 들었다.
말털 소파 위에 앉아 있는 니콜라이 쿠스미치는 전혀 오만해 보이지 않았다. 분별력 있는 사람으로 추측되었다. 사실 그 사람은 검소하고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바꾸지 않았다. 그리고 일요일이면 남은 재산을 계산하는 데에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몇 주가 지나지 않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지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찍 일어나고 얼굴도 시간을 아껴 후다닥 씻고, 서서 커피를 마시고 관청으로 달려가고 서둘러 나왔다. 어떻게든 시간을 아꼈다. 그러나 일요일이면 전혀 절약된 것이 없었다. 그러자 속았음을 깨달았다. "잔돈으로 바꾸지 않는 건데 그랬어." 그 사람은 혼잣말을 했다. "일 년이란 얼마나 긴 시간인데..." 하지만 이렇게 파렴치한 푼돈으로 바꿔 놓으면 어떻게 썼는지도 모르게 다 나가 버린다.
그 사람이 소파 모퉁이에 앉아 외투를 입은 그 신사를 기다리는 오후에는 추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는 그 선사에게 자신의 시간을 반환해 달라고 할 참이었다. 그가 그것에 응하기 전에 달아나지 못하도록 빗장을 질러 둘 생각이었다. "어음으로 주시오. 나로서는 10년짜리면 좋겠소"하고 말할 작정이었다. 10년짜리 어음 네 장과 5년짜리 한 장, 그리고 나머지는 더럽지만 그 사람이 보관해야 할 것이다. 아니, 말썽 없이 해결할 수만 있다면 그 신사에게 나머지를 기부할 용의가 있었다. 그는 흥분한 얼굴로 말털 소파에 앉아서 기다렸다. 하지만 그 신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니콜라이 쿠스미치는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쉽게 그려 볼 수 있었지만 실제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지금, 외투를 입은 오만한 모습의 또 다른 니콜라이 쿠스미치를 상상할 수는 없었다. 그 니콜라이 쿠스미치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아마도 사기 행각이 발각되어 어딘가에 구금되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로 인해 불행하게 된 사람이 자기 혼자만이 아닌 게 확실했다. 대개 그런 사기꾼은 늘 일을 꾸미는 법이다.
문득 최소한 이 쓸모 없는 초 단위들의 일부라도 바꿀 수 있는 국가 기관, 즉 일종의 시간 은행 같은 것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 단위도 결국에는 진짜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기관이 있다고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마도 주소록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Zeitbank(시간 은행)이므로 Z를 찾아보면 나올지도 모른다. 혹은 Bank fur Zeit(시간 취급 은행)라고 되어 있는지도 모르므로 B항목을 찾아보자. 혹 Kaiserlich(왕립) 시설로 되어 있을 지도 모르니까 K항목도 한 번 들여다봐야 한다.
후에 그 사람이 늘 확신하는 바이지만, 그 일요일 저녁 그가 비록 기분이 저조했던 것은 사실이나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전해 주는 바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 그는 술기운이 하나도 없이 말짱했다. 아마도 그 사람은 소파 모퉁이에 앉아 깜빡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이 짧은 잠으로 기분이 가벼워졌다. "숫자에 말려 들었군" 그는 혼잣말을 하고는 계속 생각에 잠겼다. 그렇지만 나는 숫자에 대해서는 문외한인데. 하지만 분명한 건 숫자에다 너무 큰 의미를 두어서는 안 된다는 거야. 말하자면 숫자란, 질서를 위해 국가가 마련한 것일 따름이다. 종이 말고 딴 곳에서 숫자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어. 가령 모임에서 누군가가 "7"이나 "25"를 만났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렇게 간단히 존재하는 숫자란 없었다. 그러므로 시간과 돈, 이 두 가지를 한가지로 여기는 것은 순전히 정신이 산만한 데서 비롯된 조그마한 혼동이었다.
니콜라이 쿠스미치는 웃음이 날 뻔했다. 이렇게 책략을 알아채게 되었으니 다행이야, 그것도 적절한 때에. 중요한 것은 적절한 때에 알아챈 것이지. 이제 상황이 달라져야만 했다. 시간, 그래, 그건 귀찮은 것이었어. 하지만 그런 사실이 그 혼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 그가 발견한 것과 같은 시간이 다른 사람에게도 있지 않을까? 비록 그들이 알고 있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매 초마다 시간이 흘러가고 있지 않은가?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고 즐거워하는 속성이 니콜라이 쿠스미치에게도 아주 없지 않았다. "그 사람들이야 상관할 게 뭐람." 막 그렇게 생각하려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느닷없이 바람이 그의 얼굴에 불어와 귓가를 스쳐 갔다. 바람이 손에 와 닿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두 눈을 부릅떴다. 창문은 굳게 잠겨져 있었다. 깜깜한 방에 그렇게 눈을 뜨고 앉아 있으면서 그는 자신이 방금 느꼈던 것이 흘러가는 진짜 시간이라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는 시간의 형태를 인식했던 이 자그마한 1초 1초들이 한결같이 미온적이긴 하지만 빠르게, 아주 빠르게 지나갔다. 그것들이 무슨 맘을 먹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어떤 형태의 바람이라도 모욕으로 느끼는 그였기에 그런 일이 일어난 게 틀림없었다. 이제 가만히 앉아 있을 것이고 바람은 평생 불어올 것이다. 그는 그렇게 해서 걸리게 될 신경통을 예견했다. 화가 치밀어서 미칠 것 같았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나 놀랍게도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의 발치 아래에도 어떤 움직임이 있었다. 하나의 움직임이 아니라 많은 움직임이, 기이하게도 서로 뒤엉킨 움직임이었다. 그는 숨이 막힐 정도로 놀랐다. 지구가 움직인 걸까? 그래, 지구가 움직인 것임에 틀림없다. 어쨌든 그건 돌고 있으니, 학교에서 그렇게 얘기했지만 그런 이야기 따위는 서둘러 피해 갔고 나중에도 묵살해 버렸다. 그런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적당치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자신이 예민해지자 그것을 느끼게 된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이것을 느꼈을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걸 내보이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선원에게는 이런 일 따위가 대수롭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니콜라이 쿠스미치는 이런 점에서 예민했다. 심지어 전차까지도 타지 않았다. 갑판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방에서 비틀거렸고, 오른쪽 왼쪽으로 몸을 가누어야만 했다. 불행하게도 그는 지축이 비스듬하게 기울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그 사람은 눈꼽만큼의 움직임도 견딜 수가 없었다. 비참함을 느꼈다. 누워서 안정을 취하라고 한 것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났다. 그 후로 니콜라이 쿠스미치는 누워 있었다.
그 사람은 누운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참을 만한 시간들이, 말하자면 움직임이 덜한 날들이 있었다. 그런 날이면 시를 읊어 보려는 생각을 해냈다. 그것이 도움이 된다고 믿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각운에다 똑같은 강세를 주면서 그렇게 시를 천천히 암송하면, 어느 정도 안정감이 생기고 거기에 온 주의를 기울일 수 있었다. 그가 이 모든 시를 알고 있었던 것은 다행스런 일이었다. 그는 늘 문학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 왔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처지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다고 그를 잘 아는 학생이 몇 번이고 말했다. 다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는 이 학생처럼 지구의 움직임을 참고 돌아다닐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해 지나치게 경탄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이 이야기가 나에게 무한히 위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마 이 니콜라이 쿠스미치만큼 기분 좋은 이웃을 두 번 다시 갖지 못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역시 나에 대해 경탄했을 테지만.
이런 일이 있고 나서 항상 나는 비슷한 경우에 곧 사실에 부딪혀 볼 생각을 하게 됐다. 추측에 비하면 사실은 얼마나 단순하고 마음을 가볍게 하는 것인지 모른다. 이렇게 말하면 통찰이란 항상 추후에 이루어지는 것이고 종결이 이루어지면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그 전에는 몰랐던 것처럼 들린다. 아무튼 종결된 직후에는, 이전의 것이 넘어오지 않고 새로운 면이 완전히 다르게 시작된다. 현재의 경우 서로 유희하듯 확정될 수 있는 몇 가지 사실이 내게 무슨 도움이 되었겠는가? 지금 몰두하고 있는 것을 말하게 될 경우, 나는 곧 몇 가지 사실들을 늘어놓게 될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지금 내가 고백하게 될 것처럼) 실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나의 처지를 더욱 곤란하게 만들었다.
명예롭게도 요 며칠 많은 글을 썼다. 발작적으로 글을 쓴 듯싶다. 하지만 일단 밖에 나가면 집에 돌아오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심지어 나는 길을 우회해서 오느라 글을 쓸 수도 있었을 30분 정도를 낭비하기도 했다. 이것이 결점이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일단 방에 있으면 비난받지 않을 만큼 열심히 했다. 글을 썼다. 나는 나만의 삶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나와 전혀 무관한 완전히 다른 삶이 있었다. 그것은 시험을 위해 공부하는 의대생의 삶이었다. 나는 그와 비슷한 것을 준비한 적이 없으니 그것만으로도 결정적인 차이점이 생겨난 셈이었다. 그 밖에도 우리의 사정은 판이하게 달랐다. 그 모든 것이 나에게는 분명한 일이었다. 그러나 일이 터질 것을 알게 된 그 순간까지 우리 사이에 어떠한 공통점도 없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나는 심장의 고동 소리가 들릴 정도로 귀 기울여 들었다.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일이 터지고 말았다. 내 예감이 빗나간 적은 없었다.
대개 누구나 양철로 된 둥근 물건이 미끄러질 때 내는 소리를 알고 있다. 예컨대 통조림 뚜껑을 가정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대개 그런 것은 한 번의 시끄러운 소리로 끝나지 않고 짧게 떨어져서 둥글게 계속 굴러간다. 그리고 진동이 끝나고 바로 놓이기 전에 비틀거리면서 사방에 부딪히며 내는 소리는 정말로 듣기 싫다.
요컨대 이런 이야기이다. 그런 양철 물건이 옆에서 떨어졌고, 굴러가서 멈추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 찧고 빻는 소리가 났다. 반복되어 나는 모든 소음이 그렇듯이 이것도 내적으로 조직되어 있었다. 그것은 변화에 변화를 거듭해서 한 번도 정확히 같은 소리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법칙성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것은 격렬 소리를 낼 수도 있었고 부드럽거나 우울한 소리를 낼 수도 있었다. 말하자면 허겁지겁 지나가는 소리가 있는가 하면 조용해질 때까지 한없이 길게 미끄러지는 소리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흔들림은 항상 놀라운 것이었다. 이와 달리 그 다음 구르는 소리는 어딘지 기계적인 데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항상 소음을 다르게 구분 지었다. 거기에 그 임무가 있는 것 같았다.
지금 나는 이런 하나하나의 개별 사실들을 훨씬 잘 내다볼 수 있다. 옆방이 비어 있기 때문이다. 그 학생은 시골집에 가고 없었다. 휴식이 필요했을 것이다. 나는 맨 위층에 살고 있다. 오른쪽은 다른 집이고 아래층은 아직 아무도 이사를 오지 않아 비어 있다. 이웃이 없는 셈이다.
이런 상태에서 내가 사물을 보다 가볍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은 거의 놀랍기까지 한 일이다. 매번 느낌이 미리 경고를 해주는데도 말이다. 그것을 십분 이용할 수도 있었을 텐데. 놀라지 마라, 이제 시작이다, 그렇게 스스로 타일렀더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내가 한 번도 잘못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무론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가 되었던 것은 내가 언젠가 들은 바 있던 사실들이었다. 사실을 알고 나니 더 끔찍해졌다. 이 소음을 야기한 것이 저 작고 느린, 소리 없는 움직임이었다는 사실에 나는 유령을 보는 듯 오싹해졌다.
그것은 학생이 책을 읽는 동안 오른쪽 눈꺼풀이 저절로 내려앉아 눈을 감게 만드는 움직임이었다. 이것은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그 학생의 이야기에서는 아주 본질적인 것이었다. 학생은 이미 시험에서 몇 차례나 실패했다. 그래서 그의 명예욕은 더욱 민감해져 있었고, 고향에 있는 가족들은 편지마다 독촉을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는 도리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전의 날을 며칠 앞두고 이 무력감 증세가 나타났다. 즉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이 보잘것없는 무력감은 마치 위로 올려도 올려도 자꾸만 내려오는 커튼처럼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었다.
확신하건대, 학생은 처음 몇 주일 동안 이런 것쯤은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그에게 내 의지를 제공할 생각을 전혀 갖지 않았을 것이다. 말하자면 어느 날 나는 그 학생의 의지가 바닥났음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 나는 때가 되었다고 느껴지면, 벽에 붙어 서서 내 의지를 사용해 달라고 간청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학생이 승낙을 했음이 분명해졌다.
하지만 학생이 그러지 말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것은 본질적으로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특히 그렇다. 설령 우리가 그 일을 조금 더 버티게 되었다 치더라도, 학생이 그렇게 해서 얻어낸 순간을 실제로 얼마나 잘 이용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내 의지가 방출되는 것에 관한 한 나는 그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게 계속해도 무방한지 나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바로 그날 오후에 누군가가 우리 층에 들어왔다. 작은 호텔은 입구가 비좁은 관계로 이런 일을 할 때마다 항상 많은 불편을 낳았다. 잠시 후 그 사람은 내 이웃의 방에 들어서는 것 같았다. 우리 두 사람의 방문은 복도 맨 끝에 있었고, 그의 문은 내 방문과 비스듬하게 바싹 붙어 있었다. 종종 그에게 친구가 찾아온다는 것은 그 동안 알고 있던 터였다. 이미 말한 것처럼, 나는 그 학생의 상황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의 방문이 여러 번 열리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었고, 저 밖에서 사람들이 오가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실제로 그런 것은 내가 책임질 바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날 밤은 어느 때보다도 험악했다. 그다지 밤이 깊지는 않았지만 나는 지쳐서 벌써 잠자리에 들어 있었다. 아마도 잠이 들었던 듯하다. 그런데 갑자기 어느 순간 나는 누가 나를 건드린 것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 나서 곧 일이 시작되었다. 양철 같은 것이 떨어지고 굴러가고 어딘가에서 부딪히고 흔들리다 쨍그랑 하고 멈추었다. 찧고 빻는 소리가 무시무시했다. 그 사이사이에 아래층에서 화가 난 듯 천장을 두드리는 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새로 들어온 사람에게도 방해가 되었다. 지금 나는 소리는 그 사람의 방문 소리임에 틀림없어. 나는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 있어서, 놀랍게도 아주 조심스럽게 나는 소리인데도 그 사람의 방문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는 듯했다. 어느 방에서 나는 소리인지를 알고 싶은 것이 분명했다.
이상한 것은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이 집에서 조용한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란 걸 눈치챌 수 있었을 텐데. 뭣 때문에 저렇게 한껏 발소리를 죽이는 걸까? 잠시 내 방문 앞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그 사람이 옆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 사람은 다짜고짜 옆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제 (그것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단 말인가?), 조용해졌다. 고통이 멈춘 것처럼 조용해졌다. 상처가 아무는 듯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알알한 고요함. 곧 잠을 잘 수도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잠이 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조금 전 놀랐던 탓으로 나는 잠들지 못하고 깨어 있었다. 누군가가 옆 방에서 얘기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고요함의 일부였다. 이런 고요함이 어떤 것인지 사람들은 겪어 보았을 것이다. 그것은 재현될 수 없는 것이다. 저 바깥도 모든 것이 평정을 되찾은 듯했다.
나는 일어나 앉아 귀를 기울였다. 시골에 있는 듯했다. 아, 어머니가 와 계셨구나. 어머니가 등불 옆에 앉아 아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구나. 아마도 아들은 어머니에게 머리를 약간 기대고 있을 것이다. 곧 어머니는 아들을 잠재울 것이다. 이제 나는 바깥 복도에서 들리는 낮은 발소리를 들었다. 아, 저런 걸음도 있구나. 그런 존재 앞에서라면 문들도 우리 앞에서와는 다르게 열리는 것 같았다. 자, 이제 잠들 수 있겠다.
나는 그 이웃을 거의 잊고 지냈다. 내가 관여한 것이 그를 위해 올바르지 못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사실 가끔씩 아래층을 지나가면서 그 사람에 대한 소식이 있는지, 또 있다면 어떤 소식인지를 묻기도 한다. 그리고서 좋은 소식이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지나친 것이다. 원래 그런 것을 알 필요도 없다.
옆방에 들어가고픈 충동을 자주 느끼는 것은 그 학생과 전혀 무관하다. 내 방에서 옆방까지는 한 걸음밖에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방문은 잠겨 있지도 않다. 그 방이 본래 어떠한지가 흥미로운지도 모르겠다. 어떤 방이라도 가볍게 상상해 볼 수 있고 그것이 대충 들어맞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옆방만큼은 생각한 것과 완전히 다른 법이다.
내가 옆방에 끌렸던 건 이런 정황에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양철로 된 어떤 물건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실제로 문제가 된 것이 통조림 뚜껑일 것이라고 추측해 보았다. 물론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것으로 인해 불안하지는 않다. 그 일을 통조림 뚜껑에다 전가시키는 것은 내 성향에 맞는 일이었다. 학생이 그것을 갖고 가버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혹 누군가가 나중에 가서 방을 치우고, 뚜껑을 원래 있던 제자리에 갖다 놓았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뚜껑과 통 두 개가 합쳐져 양철통이나 통조림통이라는 개념이 형성된다. 엄밀하게 표현하자면 둥근 통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간단하고 잘 알려진 개념이다. 통을 형상화하는 두 가지가 벽난로 위에 있는 것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혹은 거울 앞에 놓여 있어서 거울 속에 또 하나의 통이 생겨난다. 그것은 깜박 속을 정도로 실물과 비슷한 상상의 통이다. 그 통은 우리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지만, 만일, 원숭이라면 그것을 잡으려고 할 것이다. 심지어 두 마리의 원숭이가 그것을 잡으려고 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원숭이가 벽난로 가까이에 있는 거울 앞에 오기만 한다면 거울에 비쳐서 두 마리로 보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제, 이 통의 뚜껑이야말로 나를 노리고 있었던 셈이 된다.
다음과 같은 점에서 우리는 일치한다. 통의 뚜껑이라면, 그것도 그 둘레가 독자적인 모양으로 구부러진 튼튼한 통의 뚜껑이라면, 뚜껑이 바라마지 않는 것은 그 통에 얹혀 있는 것뿐이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뚜껑이 상상할 수 있는 최대의 소원이었다. 그것은 너무 지나치지 않는 만족감이고 모든 소원의 성취이다.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 부드럽고 참을성 있게 돌아가 약간 반대로 튀어나온 데에다 균일하게 무게를 싣고, 딱 맞물리는 모서리를 자기 속에서 느끼는 것이다. 그것은 만약 우리가 뚜껑과 통을 따로 두면 그 경계선에 우리 자신이 있을 정도로 아주 날카롭고 탄력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아, 하지만 그런 일을 평가할 줄 아는 뚜껑은 얼마 되지 않는다. 여기서 인간과의 교류가 사물에게 얼마나 혼란스럽게 작용해 왔는가가 실로 자명해진다.
예를 들어 잠시 인간과 사물을 비교해 볼 것 같으면, 인간이라는 뚜껑은 정말 마지못해 일이라는 통 위에 앉아 있는 셈이다. 너무 서두른 나머지 올바른 일을 찾지 못한 경우도 있고, 화가 나서 삐딱하게 일을 하는 경우도 있으며, 서로에게 물린 테두리가 제각각 휘어져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기본적으로 인간은 기회만 있으면 아래로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가서 요란한 양철통 소리를 낼 궁리만을 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의 이른바 기분전환을 위한 시끄러운 놀이라든가 그것이 야기한 소음은 어떻게 해서 생겼단 말인가?
사물들은 이미 수백 년 전부터 그런 일을 보아왔다. 그러므로 사물들이 사람을 본떠 타락했다고 해서, 사물들이 그 자연적이고 조용한 용도에 대한 취향을 잃어버리고 주위에서 본 대로 그 존재를 소모시킨다고 해서 놀랄 일도 아니다. 사물들은 자신들이 원래의 용도대로 사용되는 것을 피하려 한다. 즐거워하지도 않고 태만해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사물들의 탈선 현장을 잡고서도 놀라지 않는다.
사람들 스스로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화를 내는 까닭은 자신들이 강자이기 때문이고, 변덕을 부릴 권리를 자기들이 더 많이 가졌다고 여기기 때문이며, 사물들이 자기들을 모방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사물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둔다.
그러나 만약 정신을 차린 사람이 있다면, 자신을 의지 삼아 진지한 자기 생활을 건설하려고 실로 밤낮으로 노력하는 고독한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은 곧 타락한 도구들의 저항과 조롱, 증오와 싸우게 된다. 사악한 양심에 빠진 이 도구들은 어느 누가 정신을 차리고 그 의미를 찾아 고군분투하는 꼴을 참을 수 없다. 그러므로 도구들은 그런 사람을 파멸시키고 놀래고 현혹시키기 위해 서로 힘을 모은다. 자신들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것들은 서로 눈짓을 해가면서 유혹을 시작한다. 그러면 유혹은 한없이 커지고 이 고독한 이에게서 모든 존재, 신조차도 빼앗아 버린다. 그러나 아마도 이 고독한 자, 성자는 이러한 유혹을 극복할 것이다.
지금에 와서야 내가 이 기묘한 그림들을 이해하게 되다니. 그 그림 속에서 온갖 사물들은 제한적이고 규칙적인 사용에서 해방되어 음탕하고 호기심에 찬 눈으로 서로에게 눈짓을 하면서 심심풀이로 음란한 짓을 하려 한다. 솥은 끓어 넘치고, 플라스크는 딴 생각을 품고 들어가 있다, 그리고 시기심에 가득 찬 허무가 내던진 사람의 사지와 그 마디가 있었고, 거기에다 뜨뜻한 것을 토해내는 얼굴들과 얼굴에다 교태를 부리는 부풀어 오른 엉덩이도 있다.
그리고 성자가 한 사람 몸을 움츠리고 있다. 이런 괴상한 것들이 가능하다는 눈빛이다. 그는 그쪽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영혼이 밝게 용해되어 성자의 감각들은 이미 가라앉아 수풀처럼 그의 입에 붙어 있었다. 그의 심장은 멈추었고 희뿌연 안개 속으로 흘러 들어가 버렸다. 성자의 채찍은 파리를 쫓는 꼬리처럼 힘없이 찰싹거릴 분이다. 그의 성기는 기운을 읽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있어 여자가 풍만한 가슴을 풀어 헤치고 헉헉거리며 곧장 달려들더라도 그것은 손가락만 해질 따름이다.
이 그림을 낡아빠진 구식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이 그림 자체를 의심한 것은 아니다. 나는 이것을 성자들에게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즉 그 당시에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곧 신의 문제에 착수하려는 조급증자들에게 일어난 일이라 생각했다. 우리 자신에게 이런 일을 더 이상 기대할 수는 없다. 신은 우리에게 너무나 힘겨운 대상이다. 우리는 신과 우리를 나누는 긴 작업을 서서히 하기 위해서 신을 미루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지금 나는 이 일이 성자의 삶만큼이나 값을 치렀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일을 하느라 고독해진 모든 사람들 주위에서 이런 희생은 생겨난다. 마치 일찍이 동굴과 텅 빈 오두막에서 고행하던 신의 고독한 제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고독에 대해 말할 때면 사람들은 항상 너무 많은 것을 전제로 한다. 사람들은 무엇이 문제인지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니다. 그들은 잘 모르고 있다. 그들은 고독한 사람을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면서 싫어할 뿐이다. 그들은 고독한 이를 소모시키는 이웃들이었고 고독한 이를 유혹하는 옆방의 목소리였다. 그들은 사물들을 유혹하여 지독한 소음을 내게 해서 고독한 자의 소리를 들리지도 않게 했다.
이 고독한 자는 연약한 아이에 불과했기 때문이 아이들도 힘을 합쳐 그를 배척했다. 그리고 고독한 이가 점점 자랄수록 어른들과 멀어졌다. 어른들은 숨어 지내는 그를 사냥감으로 느꼈다. 더구나 동물과는 달리 그의 오랜 어린 시절은 보호 기간조차 갖지 못했다. 그가 지칠 대로 지쳐 빠져 나오면, 그에게서 나온 것을 두고 그들은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추하다고 했으며 의심스럽게 여겼다.
그래도 그가 자신의 고독한 생활을 그만두지 않으면, 그들은 보다 분명한 태도를 보였다. 그의 음식을 빼앗고 그를 숨 막히게 하고 그에게 적대적이었을 "가난"에다 침을 뱉었다. 전염병자를 대하듯이, 그를 비방하고 더 빨리 쫓아내려고 돌을 던졌다. 그들의 오랜 본능에서 볼 때 그들은 옳았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는 그들의 적이었으므로.
그러나 고독한 자가 주위를 쳐다보지도 않자, 사람들은 생각에 잠겼다. 그들은 결국 이 고독한 자의 뜻에 따랐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그를 혼자 있게 함으로써 더욱 강인하게 만들었고, 그들로부터 영원히 멀어지도록 도와주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그들은 태도를 바꾸어 최후의 수단을 강구했다. 그것은 저항의 또 다른 형태로 몹시 극단적인 것이었다. 바로 "명성"이 그것이었다. 명성의 소음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쳐다보게 되고 정신이 산만해지는 법이다.
이 밤 왠지 어렸을 적에 갖고 있었던 초록색의 작은 책이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책이 마틸데 브라에에게서 받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책을 가지게 되었을 때는 별로 읽어 볼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몇 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그 책을 읽었다. 울스가르에서 방학을 보낼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그 책을 읽는 첫 순간부터 그게 중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책은 겉으로 보기에도, 완벽한 표지를 하고 있었다. 초록색 제본은 의미하는 바가 있었다. 책 내용으로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음을 곧 알 수 있었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처음에는 흰 물결 무늬가 넘실대는 매끄러운 면지가 나오더니, 그 다음 페이지에는 비밀에 가득 차 보이는 목차가 나왔다. 안에 그림이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하나도 없었다. 미련이 남긴 했지만 이내 그것도 잘된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가느다란 책갈피 끈이 나왔다. 그것으로 다소나마 어떤 식의 보상이 이루어진 셈이었다. 그 끈은 세월에 삭고 약간 비스듬하게 끼워져 있었으나, 아직도 분홍빛이 남아 있어 그것이 주는 친밀감으로 가슴이 뭉클해졌다. 언제부터 이 페이지 틈새에 끼워져 있었는지 누가 알까?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제본공이 잘 살피지도 않고 잰 솜씨로 부지런히 끼워 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연이 아닐 수도 있었다. 누군가가 거기까지 읽고는 더 이상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바로 여기까지 읽는 순간에 운명이 그 사람의 문을 두드려 일에 몰두하게 하고 책으로부터 멀어지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책이란, 삶이 아니므로. 이 책이 거기서 더 읽혀졌는지는 알 수 없다. 이 페이지를 되풀이해서 펼치는 것이 단지 문제였다고, 비록 밤늦은 시간이긴 했지만 그렇게 했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었다.
어쨌든 나는 거울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두 페이지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내가 그 책을 다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책은 그리 두껍지 않았지만 많은 이야기들이 씌어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대개 오후가 되면 읽곤 했는데, 거기에는 항상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이야기가 꼭 하나는 들어 있었다.
지금 기억나는 것은 두 가지뿐이다. 어떤 이야기냐 하면, 가짜 황제 그리샤 오트레피에프의 종말과 용장 샤를 대공의 몰락이다.
그 이야기를 읽었던 당시에 감동을 받았는지의 여부는 지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수년이 흐른 지금, 가짜 황제의 주검이 군중들 가운데에 던져서, 갈기갈기 찢기고 창에 찔리고 얼굴에 가면을 쓴 채 사흘간이나 방치된 광경을 그린 대목은 기억이 난다. 물론 그 작은 책이 다시 내 손에 들어올 가능성은 전혀 없다. 하지만 이 부분만은 지금 읽어 보더라도 큰 감동을 받을 것이 틀림없다.
어머니와의 만남이 진행되는 과정을 다시 읽고 싶기도 하다. 그가 어머니를 모스크바로 오게 할 때는 저 자신이 아주 안전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사실 어머니를 불러들여도 괜찮다고 생각할 만큼 그 당시 그는 자신을 강하게 믿고 있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리고 초라한 시골 수도원에서 올라온 마리 나고이는 동의를 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지위를 얻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를 인정하면서 그의 지위는 흔들리기 시작하지 않았던가? 그가 변신할 수 있었던 힘은 더 이상 그가 누구의 자식도 아니라는 사실에 있었다고 나는 확실하게 믿고 있다.
-결국 이것은 집을 뛰쳐나온 모든 젊은이들을 지탱시켜 주는 힘이다.
(원고지 여백에 적어 두었던 것임)
그가 누구인지 상상도 못하고 그를 받아들였던 민중은 그의 가능성을 더 자유롭고 더 무제한적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속임수를 쓴 것이긴 하지만, 어머니의 해명은 그의 힘을 약화시키고 말았다. 어머니는 충만한 허구의 세계로부터 그를 끄집어내 무기력한 모방의 세계에다 그를 묶어 두었다. 어머니는 그를 평범한 개인으로 격하시켰다.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또 어머니는 그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여기에 마리나므니체크가 소리 없이 녹아들면서 합세했다. 결국 이 여자도, 나중에 증명되는 바이지만, 그를 믿은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믿음으로써 그를 부인하는 셈이 되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저 책 속에서 얼마나 정확하게 기록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내가 보기에 이런 줄거리로 서술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것을 도외시하더라도 이 사건은 전혀 낡아 빠진 것이 아니다. 그의 최후의 순간에 대해서 자세한 고찰을 함으로써 한편의 소설로 엮어 보려는 작가도 있을지 모른다. 그런 구상은 있을 수 있다.
가령 마지막 장면에서도 많은 일이 일어난다. 황제가 깊은 잠에서 깨어 벌떡 일어나 창가로 달려가 그 너머 보초들 사이에 있는 마당으로 뛰어내린다. 그는 혼자서 일어설 수가 없다. 보초들이 도와줄 것이다. 아마 발이 부러진 것 같다. 두 사람에 기대어, 황제는 그들이 자기를 믿고 있음을 느낀다. 사방을 둘러본다. 다른 병사들도 그를 믿고 있다. 이 용맹스런 친위병, 그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이 상당히 진행되었음에 틀림없다. 그들은 실제로 이반 그로스니가 어떠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를 믿어 주고 있다. 그들에게 사실을 고백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입을 열면 고통에 찬 비명 소리만 나올 뿐이었다. 발의 통증으로 미칠 것만 같았다. 이 순간 얼마나 고통이 심하던지 그는 하찮은 존재에 불과해서 그가 아는 것은 고통뿐이었다.
시간이 없다. 머지않아 그들이 쳐들어올 것이다. 슈이스키가 보이고 그 뒤로 많은 이들이 따르고 있다. 이젠 끝장이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 위병들이 그를 빙 둘러싼다. 그들은 그를 내놓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난다. 오랫동안 그를 받들었던 이 남자들의 믿음이 모든 사람들에게 퍼져 나간다. 갑자기 아무도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는다. 그 앞에 바짝 다가와 있던 슈이스키는 할 수 없이 창문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그는 돌아보지 않는다. 거기에 누가 서 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곧 조용해지리라는 것도, 쥐죽은 듯 조용해지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이제 그가 잘 알고 있는 목소리가 들릴 것이다. 톤이 높고 애써 꾸민 거짓된 목소리. 그때 그를 부인하는 어머니, 황태후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까지 사건은 저절로 진행된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작가에게 부탁을 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남아 있는 몇 줄에서 모든 모순을 뛰어넘는 막강한 힘이 솟아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말해지건 말해지지 않건 간에, 어머니의 목소리와 총 소리 사이에서, 그의 마음속에 황제가 되고자 했던 의지와 힘이 무한히 응축되어 다시 되살아난 것은 의심할 바가 없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한 인간의 강인함을 찌르듯이, 그의 잠옷을 갈기갈기 찢고 그의 몸을 사정없이 찌른 것이 얼마나 빛나는 결말인지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그가 이미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는 가면을 죽어서도 사흘간이나 쓰고 있었던 것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생 동안 같은 모습으로 화강암처럼 강인하고 변화가 없었으며 주위의 모든 이들을 힘겹게 했던 샤를 대공의 말로가 그 책에 같이 서술되어 있다는 것도 이상한 인연이다. 디종에 그의 초상화가 있다. 그걸 보면 그의 성격이 불같고 비뚤어진 데다 고집이 세고 필사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손만큼은 전혀 뜻밖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항상 서늘해지고 싶어해서 저도 모르게 차가운 데에 올려져 있고, 손바닥을 쫙 펴서 손가락 사이로 공기가 통하게 해야 하는 지독히 뜨거운 손이다. 흔히 사람들은 머리로 피가 몰린다고 하지만 그는 손으로 피가 몰리는 것이었다. 실제로 두 손을 미친 사람의 머리처럼, 광적인 생각에 빠져 주먹을 꼭 움켜쥐고 있었다.
이런 피를 지니고 살려면 대단한 조심성을 필요로 한다. 그리하여 대공은 늘 자기 속에 틀어박혀 있었다. 어둠 속에 몸을 숙인 채 피가 자신을 둘러싸고 돌 때면 때때로 그는 두려움을 느꼈다. 피는 그 자신에게조차 끔찍할 정도로 낯설었다. 포르투갈인의 피가 섞인 이 기민한 피를 그 자신도 잘 몰랐다.
그는 종종 자신이 자고 있는 동안 피가 덤벼들어 자신을 갈기갈기 찢어 놓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불안해했다. 그는 그것을 제어한 것처럼 행동했지만 사실은 항상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피가 질투심에 불타는 것이 두려워 감히 여인을 사랑하지도 못했다. 피는 너무나 격렬해서 한 방울의 술도 입에 대지 않았다. 술을 마시는 대신에 그는 장미잼으로 피를 부드럽게 했다.
하지만 그랑송이 함락되었을 때 단 한 번 로잔 진영에서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병중이었는데 홧김에 혼자서 독한 술을 많이 마셨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 그의 피는 잠들어 있었다. 무의미했던 만년에, 그의 피는 종종 짐승과 같은 무거운 잠에 빠져 있곤 했다.
그럴 때면 그가 얼마나 피의 손아귀에 잡혀 있는지가 드러났다. 그도 그럴 것이 피가 잠이 들면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주위에 있는 그 누구도 들어와서는 안 되었다. 그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도 알아듣지 못했다. 외국 사신들도 만나지 않았다. 그는 가만히 앉아서 피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그의 피는 갑자기 깨어나 솟구쳤고 심장에서 터져 나와 으르렁거렸다.
그는 이 피를 위해 자신에게는 별 쓸모 없는 많은 물건들을 끌고 다녔다. 세 개의 커다란 다이아몬드와 갖가지 보석들과 플랑드르산 레이스와 알라스의 양탄자 따위를 산더미처럼 가지고 다녔다. 황금을 꼬아 만든 실로 된 비단 천막과 신하들을 위한 4백 개의 천막들도 있었다. 나무에다 그린 그림들과 순은으로 만든 12 사도상도 있었다. 타랑의 왕자들과 클레이브 공작, 바덴의 필립과 샤토 기용의 성주들도 끌고 다녔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신이 황제이고 최고의 자리에 있다는 것을 피를 향해 설득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피가 그를 두려워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의 피는 그러한 증거품에도 불구하고 그를 믿지 않았다. 그것은 불신에 가득 찬 피였다. 아마 그는 절망적으로 피를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스위스 군의 영광이 그를 배신했다. 그 후로 피는 자기가 패배자의 몸속에 있는 것을 알고 밖으로 터져 나오려는 듯했다.
지금 내게는 그것이 눈에 선하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다니던 주현절 대목이었다.
이상하리만치 서둘러 끝난 전투를 치른 직후, 며칠 이르게 비참한 낭시에 들어와 있었던 로렌의 젊은 제후가 이른 새벽에 측근들을 깨워 대공의 소식을 물었다. 계속해서 전령을 보내고, 때때로 제후 자신도 불안하고 걱정된 얼굴로 창가에 나타났다. 수레나 들것에 실려 오는 이들을 모두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그것이 대공이 아닌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부상자들 가운데에서도 대공은 보이지 않았다. 끊임없이 끌려오는 포로들 중에도 대공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피난민들이 가져온 소식은 모두 제각각이어서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피난민들은 제후 앞에 서게 된 것이 두려운 듯 겁먹은 얼굴들이었다. 벌써 날은 어두워졌고 대공에 대한 소식은 없었다. 긴 겨울밤은 대공이 사라졌다는 소문이 돌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소식이 전해진 곳에서는 대송이 살아 있다는, 성급하고 지나친 안도감이 생겨났다. 아마도 이날 밤처럼 모든 사람들이 대공을 마음속에 떠올린 적은 없었을 것이다. 모두 일어나 앉아 대공을 기다렸으며, 대공이 자기 집 문을 두드릴지도 모른다고 상상하고 있었다. 그래도 대공이 오지 않자 이미 이 지방을 지나갔으리라고 여겼다.
밤이 깊어지자 주위가 온통 얼어붙었다. 대공이 살아 있으리라는 생각도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만큼 확실해졌던 것이다. 그런 생각이 사라지지 않은 채 해가 바뀌었다. 잘 모르던 사람들도 한결같이 대공을 마음속에 그렸다. 대공이 국민들에게 가져다준 운명은 그의 모습을 대함으로써만이 견뎌 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대공의 존재를 너무나 힘겹게 배웠었다. 하지만 대공의 사람됨을 알게 된 지금에 와서는 대공을 마음에 그리며 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음날 아참, 1월 7일 목요일에 수색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안내자가 한 명 있었다. 대공의 시동이었다. 그 소년의 말에 의하면, 대공이 말에서 떨어지는 것을 멀리서 보았다는 것이었다. 이제 소년이 그 장소를 가리키는 일만 남았다. 소년 스스로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고, 캄포바소 백작이 소년을 데려와 대신 상황을 설명했다. 이제 소년이 앞장서고 다른 사람들은 바싹 그 뒤를 따랐다. 소년은 변장을 한데다가 불안한 빛까지 역력했으므로 사람들은 그 소년이 소녀처럼 아름답고, 날씬한 팔다리를 가진 것으로 유명한 장 바티스타 콜로나라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소년은 추워서 덜덜 떨고 있었다.
밤 서리가 내려 공기가 살을 에는 듯했다. 발을 내딛을 때마다 뽀드득하는 소리가 났다. 사람들 모두 꽁꽁 얼어 있었다. 루이온즈라고 불리는 대공의 어릿광대만이 자유로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개 흉내를 내느라, 앞으로 달려갔다 다시 돌아오고 소년 옆에서 낮은 포복으로 잠시 깡총대기도 했다. 하지만 저 멀리서 시체가 한 구 보이면, 그쪽으로 달려가서 시체에다 대고 정신을 차리기를 간절히 바라며 우리가 찾고 있는 대공이신지 하고 말을 걸었다. 그는 시체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고는, 당연한 일이지만, 아무 대답이 없자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 죽은 사람의 옹고집과 게으름을 위협하고 저주하며 불평했다.
사람들은 계속 나아갔다.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시내가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날씨가 추웠음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하늘은 문을 닫은 것처럼 흐려졌다. 잿빛 안개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들판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나지막하게 놓여 있었다. 바짝 붙어가는 몇 안 되는 수색대는 더 멀리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점점 더 길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함께 따라온 노파가 뭐라고 중얼거리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마도 기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갑자기 맨 앞에 가던 소년이 길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그러고는 포르투갈 출신의 주치의 루피 쪽으로 몸을 돌려 앞을 가리켰다. 몇 걸음 앞에 얼음장이 놓여 있었다. 일종의 웅덩이 같기도 하고 연못 같기도 했다. 거기에 반쯤 들어간 형태로 여남은 시체가 쓰러져 있었다. 그것들은 거의 약탈을 당해 알몸이나 다름없었다.
루피는 몸을 수그리고 그 시체 하나하나를 주의 깊게 살폈다. 따로따로 돌며 살핀 끝에 올리비에 드 라 마르슈와 사제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새 노파가 눈 위에 무릎을 꿇고 흐느끼며 커다란 손 위에 몸을 숙이고 있었다. 쪽 펼쳐진 손가락이 위를 향해 뻣뻣해져 있었다. 모두 서둘러 그쪽으로 갔다. 시체가 엎어져 있었으므로 루피와 몇 명의 신하들이 그것을 뒤집으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얼굴이 얼어붙어 있었다. 억지로 잡아 일으키자 한쪽 뺨이 얇게 갈라지면서 벗겨졌다. 다른 쪽 뺨은 늑대와 들개에게 뜯어 먹혀 있었다. 얼굴 전체가 귀에서부터 시작된 상처로 갈라져 있어서 도저히 누구라고 말할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한 사람씩 차례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뒤에 대공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화가 난 듯 얼굴이 벌개져 달려오는 광대뿐이었다. 그는 뭔가를 털어내려는 듯 외투를 벗고 흔들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표시가 될 만한 것을 찾기 시작했다. 대공의 몸에는 그런 표시가 될 만한 것이 몇 군데 있었다. 불을 피우고 따뜻한 물과 술로 몸을 씻어 냈다. 묵의 상처가 드러났고 화농을 입은 두 군데의 자리가 발견되었다. 주치의는 더 이상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외의 몇 가지를 더 비교했다.
루이온즈는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검정말 모로의 시체를 찾아냈다. 그날 대공은 낭시에서 이 말을 타고 출전했었다. 대공이 이 말 위에 앉으면 짧은 다리가 허공에서 덜렁거렸다. 말은 아직도 코에서 입으로 피가 흘러들어 가고 있었다. 마치 피를 마시고 있는 것 같았다. 신하들 가운데 한 명이 대공의 왼쪽 발에 발톱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광대가 간지러움을 타는 듯 움찔움찔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아, 전하, 전하의 하찮은 결점을 찾고 있는 저들을 용서하십시오. 전하의 미덕이 어려 있는 소인의 이 기다란 얼굴에서 전하를 알아보지 못하는 저 어리석은 자들을 용서하십시오."
다음은 원고지 여백에 써 놓은 글이다.
(대공의 주검이 안치되었을 때, 그 방에 제일 먼저 들어온 사람은 어릿광대였다. 게오르크 후작이라는 사람의 집에서였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관은 아직 천을 덮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대공의 전체 인상을 볼 수 있었다. 천개와 바닥의 검은색 사이에서 하얀색 조끼와 진홍색 망토가 서로에게 퉁명스러운 듯 확연히 나뉘어져 있었다. 앞에는 커다란 금빛 박차가 달린 주홍색 장화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왕관이 놓여 있다고 해서, 그 자리에 머리가 있는지 없는지를 따질 필요는 없었다. 그것은 갖가지 보석이 박힌, 대공의 커다란 왕관이었다. 루이온즈는 분주히 돌아다니면서 모든 것을 면밀히 살폈다. 심지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공단을 만져 보았다. 훌륭한 공단인 것 같았다. 하지만 부르고뉴 왕가에 비하면 다소 싼 감이 없지 않았다. 그는 전체를 둘러보기 위해 다시 물러났다. 눈처럼 하얀 불빛 속에서 색깔들이 이상하게도 지리멸렬하게 느껴졌다. 그는 각각의 색깔을 마음에 새겼다. "훌륭하게 치장을 했어" 하고 마침내 그는 인정을 했다. "흔적이 너무 뚜렷한 것 같군." 그에게는 죽음이 마치 꼭두각시 조종자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그 꼭두각시 조종자에게는 갑자기 대공의 죽음이 필요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바뀌지 않는 어떤 일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에 익숙해 있다. 그들은 사실을 두고 슬퍼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그런 입장에서 본다면 내가 한번도 올바른 독자가 되지 못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어린 시절, 독서는 나에게 훗날 하나하나 다가와 떠맡게 될 하나의 사명과 같았다. 솔직히 말해서, 언제 그럴 수 있을지는 특별히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다만 삶이 어느 정도 변화해서 이전의 삶이 내부에서 온 것과 같이 외부에서 오게 되면 그 시기를 알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렇게 되면 삶은 확연하고 분명해져서 전혀 오해의 소지가 없을 것이라고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물론 아주 간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오히려 요구하는 바가 많고 일이 얽혀 있어서 나 같은 경우는 힘겨울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꿰뚫어볼 수는 있을 것이다. 이런 시절에 꼬리표처럼 따라붙기 일쑤인 애매모호함과 불균형과 무분별함도 그때의 가서 비로소 극복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물론 어떻게 극복될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근본적으로 볼 때 그런 삶은 점점 증가하여 사방을 둘러싸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멀리 내다보면 볼수록 더 많은 내부의 것들이 들끓게 되었다. 그것이 어디서 온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추측컨대 그것은 극단적으로 자라나 한 방에 터져 버렸을 것이다. 어른들이 그런 것으로 거의 동요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고도 그들은 잘 다니고 판단하며 행동한다. 만약 어른들이 처하게 되는 어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외적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의 독서도 그러한 변화의 초기 단계로 옮겨졌다. 그러면 책과의 관계는 잘 아는 사람과의 관계처럼 될 것이다. 일정하고 규칙적이며 즐겁게 책을 읽기 위한 독서 시간이라는 것이 만들어질 것이다. 물론 때로는 어떤 특별한 책과 친해져서, 그래서 책을 읽느라, 산책을 하거나 약속을 지키거나 연극 관람을 하거나 급한 편지를 쓰는 데에 30분 정도 지체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하지만 눌린 듯이 머리가 헝클어지거나, 귓불이 벌겋게 달아오르거나,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지거나, 혹은 옆에 있던 긴 초가 녹아 내려 촛대 속으로 타들어 가는 경우는 맹세코 없을 것이다.
내가 이런 현상들을 언급하는 이유는, 울스가르에서 보낸 그 해 방학에 이런 일들을 수없이 많이 겪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해 갑자기 독서에 몰두하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제대로 독서를 할 수 없음을 곧 알게 되었다. 나는 독서를 위해 예정된 시간이 전에 독서를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해 소레에서 같은 나이 또래의 아이들과 함께 학교생활을 하면서 나의 이런 계산은 빗나가고 말았다. 거기서 나는 전혀 예기치 못한 경험들을 했다. 그들이 나를 어른으로 대한다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삶에서 실제로 부딪힐 수 있는 경험들로서 그것 자체가 나를 힘겹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가 그 현실의 무서움을 깨닫게 되면서 어린 시절에 지녔던 무한한 진실에 대해서도 눈뜨게 되었다.
나는 아이로서의 존재가 없어지지 않았다는 것, 그렇다고 해서 어른으로서의 삶이 시작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삶의 단계를 나누는 것이 각자의 자유이며, 나 또한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그런 것을 생각해 내기에는 너무나 서투르다는 것이 곧 밝혀졌다. 내가 단계를 나누려고 할 때마다, 삶은 그런 것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는 암시를 보냈다. 그래도 내가 어린 시절이 지나가 버렸다고 주장을 하면, 그 순간 다가오던 모든 것도 달아나 버렸다. 그래서 서 있을 수 있기 위해 아래를 무겁게 한 납 병정처럼 너무나 많은 과거의 무게가 나에게 남아 있었다.
이러한 발견으로 내가 더욱 더 고립되어 갔다는 것은 납득이 가는 일이다. 나는 이런 생각에 골몰했고 그것으로 인해 일종의 궁극적인 기쁨에 충만해 있었다. 그 기쁨은 내 나이를 훨씬 앞지른 것이어서 나는 오히려 그것을 슬픔이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의 나는 특정한 시기를 위해 예견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이제, 사람들이 많은 것을 놓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불안해했다.
그렇게 울스가르로 돌아와서 책을 대했을 때, 나는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실로 성급하게, 그리고 거의 양심을 속이기까지 하면서. 나중에 종종 느꼈던 것을 이미 그 당시에 나는 어떤 식으로든 예감하고 있었다. 즉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을 자에게는 책을 펼칠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매 행마다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책 안의 세계는 완전했고 아마도 그 뒤에서 다시 완전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제대로 책을 읽을 줄 몰랐던 내가 그 모든 것과 어떻게 겨룰 수 있었겠는가? 책은 이 소박한 서재에조차 그토록 전망 없이 무한히 쌓여 있었다. 나는 고집스레 달려들었고 절망적으로 이 책에서 저 책으로 오갔으며 뭔가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처럼 페이지를 뚫고 들어갔다.
그 당시 나는 쉴러와 바켄센을 읽었고 슐레겔과 슈타펠을 읽었으며 서재에 있던 윌터 스콧의 작품과 칼데롱을 읽었다. 진작 읽었어야 할 많은 책들이 수중에 들어왔지만 다른 것에 비해 너무 이른 감도 있었다. 그 당시의 나에게 시기적으로 맞는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읽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이따금 밤중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깨어 있을 때가 있었다. 별들이 너무나 선명하게 빛났고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어떻게 사람들이 이토록 많은 세계를 잊고 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책에서 눈을 들어 어느 곳이 여름인지, 어디에서 아벨로네가 부르는지 볼 때마다, 내게는 그와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거기에는 꼭 불러야만 했던 그런 갑작스러운 느낌이 담겨 있었지만, 나는 한 번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때는 우리가 행복의 절정기에 있었을 때였다. 하지만 그때 나는 한 번 책에 빠지면 미친 듯이 그것에 매달렸고, 우리들이 함께 보낼 휴일을 피해 고집스레 몸을 숨겼다. 종종 눈에 띄지 않고 자연스런 행운을 잡을 수 있는 기회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십분 이용하는 데에는 어찌나 서툴렀는지 모른다. 다투는 시간이 늘어났고 훗날의 화해에 기대를 거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화해를 미루면 미룰수록 그것은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
더욱이 나의 이 독서삼매경은 시작될 때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끝나 버렸다. 우리는 서로에게 깊이 화가 나 있었다. 왜냐하면 아벨로네가 온갖 조롱과 우월감을 내게 내밀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정자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책을 읽고 있었다고 얘기했다. 어느 일요일 아침, 아벨로네는 책을 옆에다 덮어 두고 있었지만, 사실 그녀는 까치밥 열매에 더 열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포크로 조심스레 열매를 벗겨내고 있었다.
그날은 7월의 여느 아침 중 하나였음에 틀림없다. 푹 쉬고 난 새로운 시간에는 어디에서나 뭔가 생각치 못했던 즐거운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억제할 수 없는 수백만의 작은 움직임으로 가장 자신감에 넘치는 존재의 모자이크가 만들어졌다. 사물들은 공기 속으로 이쪽저쪽 흔들린다. 아침 공기의 서늘한 기운이 선명한 그림자를 만들고 태양은 가벼운 영적이 빛으로 빛난다. 그럴 때 정원에서 주된 것이란 없다. 사방에 모든 것이 흩어져 있어 사람들은 그 어떤 것도 놓치지 않기 위해 모든 것 속에 들어가 있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아벨로네의 섬세한 손길에는 전체가 한 번 더 들어가 있었다. 바로 그런 손놀림을 하는 것, 그녀가 하고 있는 그대로의 손놀림은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그늘진 곳에서 밝게 빛나는 그녀의 양손은 아주 가볍게 움직이고 있었다. 포크를 움직일 때마다 둥근 열매가 제멋대로 튀어나와 포도 나뭇잎을 깔아 놓은 접시 속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이미 열매들이 쌓여 있었다. 빨간 열매와 파란 열매가 새콤한 속살 속에 건강한 씨를 가지고 반짝거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바라보는 것 외에 내가 더 바랄 것은 없었다. 그렇지만 아마도 사람들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일 테지만, 모르는 척하기 위해 책을 잡고 맞은편에 앉았다. 오래 뒤적거리지도 않고 아무데나 읽기 시작했다.
"좀 큰소리로 읽어 보시지 그래요, 책벌레 선생."
잠시 후 아벨로네가 말했다. 그 목소리는 더 이상 싸움을 거는 소리로 들리지 않았다. 나는 지금이 그녀와 화해할 적당한 때라고 여겨졌기 때문에 곧 크게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한 대목을 끝내고 계속해서 그 다음 제목을 읽었다.
"베티네에게 보내는 편지."
"아녜요, 답장은 읽지 마세요."
아벨로네가 끼어들었다. 갑자기 그녀는 지친 듯이 작은 포크를 내려 놓았다. 그러고 나서 이내 그녀는 내가 짓고 있는 표정을 보고 웃었다.
"맙소사, 어쩌면 그렇게 형편없이 읽지요, 말테."
한순간도 정신을 차려 읽지 않았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신이 끼어들게 하기 위해서 읽었을 따름이지요."
나는 고백을 했다. 얼굴이 붉어져서 책장을 넘기고 책 표지를 들여다보았다. 그제서야 어떤 책인지를 알게 되었다.
"왜 답장을 읽지 말라는 건가요?"
나는 호기심에 차서 물었다.
아벨로네는 내 말을 듣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환한 색의 옷을 입은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그녀의 눈이 어두워진 것처럼 내면도 어느 곳이나 어두워진 것처럼 보였다.
"이리 줘 보세요."
그녀는 갑자기 화가 난 듯이 말하고 내 손에서 책을 빼앗아 그녀가 원하는 페이지를 정확하게 펼쳤다. 그리고 베티네의 편지 한 통을 읽었다.
나는 그 편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될 날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서 마침내 노래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는 동안, 나는 우리의 화해를 그토록 하찮게 생각했던 것이 부끄럽게 여겨졌다. 왜냐하면 바로 이것이 화해임을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화해는 아주 위대한 것 안에서, 내 손이 닿지 않는 곳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언젠가 그 책이 나의 책들 가운데서, 나와 뗄레야 뗄 수 없는 몇 권의 책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라는 그 약속은 지금까지도 지켜지고 있다. 이제 나에게도 곧 내가 찾는 페이지가 펼쳐질 것이다. 그곳을 읽으면 내가 베티네를 생각하는지 아벨로네를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다.
아니, 베티네는 내게 보다 실제적인 인물이었다. 내가 알고 있던 아벨로네는 베티네를 위해 준비된 인물이었다. 이제 아벨로네는 베티네를 위해 준비된 인물이었다. 이제 아벨로네는 내 마음속에 베티네로, 자기도 모르는 독자적인 존재로 화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놀라운 베티네는 그녀가 남긴 모든 편지로 광활한 형상의 공간을 제시했다. 그녀는 처음부터 마치 죽은 다음처럼 모든 것 속에 널리 퍼져 있었다. 어디서나 그녀는 존재 깊숙이 들어가 있었고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 그녀에게 일어난 것은 자연 속에 영원했다. 거기서 그녀는 자신을 드러내고 거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마치 전설로부터 힘겹게 자신을 되찾는 듯했다. 정령을 불러내듯 자신을 불러내어 가까스로 지탱했다.
베티네, 너는 방금도 여기 있었어. 나는 너를 보고 있어. 너로 인해 대지가 아직도 온기를 잃지 않고 있고, 새들도 너의 목소리를 위해 자리를 내준다. 아침 이슬은 어제의 것이 아니지만 별들은 너의 밤하늘에 떠 있던 별들이다. 아니면, 세계가 온통 너의 것인지도 모른다. 얼마나 자주 너는 사랑으로 세상을 불 지르고 그것이 훨훨 타오르는 것을 지켜보았던가. 그리고 모든 이가 잠들면 그 낡아 버린 세계를 대신할 다른 세계를 가져다주지 않았던가. 신이 창조한 모든 세계를 오게 하기 위해, 네가 매일 아침 신께 새로운 대지를 달라고 졸라댈 때면 너는 실로 신과 일치됨을 느꼈다. 세계를 아끼고 더 좋게 고치는 것은 너에게 궁색하게 여겨졌다. 너는 그것을 아낌없이 써버리고 다른 세계를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그것은 너의 사랑이 삼라만상에서 자라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세상 사람들이 모두 네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녀 이후로 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너 자신도 네 사랑의 가치를 알고 있다 너는 너의 위대한 시인 앞에서 그가 네 사랑을 인간적으로 만드노라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럴 것이 네 사랑은 그때까지 아직 자연의 원소에 불과했다. 하지만 시인은 너의 사랑을 사람들에게 다 털어놓고 말았다. 시인이 네게 편지를 썼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은 이 답장을 읽었고 그 이상을 믿었다. 그들에게 시인은 자연보다 더 뚜렷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 그 위대한 시인의 한계가 있었음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이 사랑하는 여인이 그에게 짐 지워졌지만 시인은 이 여인을 감당하지 못했다. 시인이 답할 수 없었던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런 사랑은 구태여 대답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 사랑은 유혹의 소리를 내지만 대답은 그 자체에 있다. 그것은 자신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하지만 나라 전체를 다스리는 시인이라 할지라도 사랑 앞에서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그것이 부르는 대로, 파트모스의 요한처럼,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받아쓰고야 말았을 것이다. "천사의 직분을 수행하는" 목소리 앞에서 선택의 여지란 없었다. 그 목소리는 시인을 에워싸고 여원 속으로 데려가려고 찾아왔다. 그의 불타는 승천의 마차가 당도했다. 어두운 신화가 시인의 죽음을 위해 준비되어 있었다. 시인은 그것을 비워 두었다.
운명은 갖가지 무늬와 도형을 꾸며 내기를 좋아한다. 운명이 처한 어려움은 복잡함을 고집하는 데에 있다. 하지만 삶이 힘겨운 것은 단순함에서 오는 듯하다. 삶에서 우리에게 맞지 않는 크기의 것은 단지 몇 가지뿐이다. 운명을 거부한 성인들은 신에 맞서 이러한 몇 안 되는 선택을 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 본성상, 여자들은 남자와 관련하여 같은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사랑과 관계된 모든 숙명을 불러일으킨다. 이미 결정 난 일이고 운명에서 벗어난 일인데도, 영원처럼, 여인들은 변화한 남자 옆에 서 있다. 사랑하는 여인이 사랑 받는 이보다 항상 나은 이유는 삶이 운명보다 더 위대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의 헌신은 무한한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행복이다. 그래서 여인들의 사랑에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주는 것은 항상 이러한 헌신적 사랑을 제한하려는 세상 사람들의 요구에서 오는 것이다.
예로부터 여인들이 다른 일로 하소연한 적은 없었다. 엘로이즈가 쓴 최초 두 통의 편지는 이런 하소연만을 담고 있고, 5백 년 후 포르투칼의 한 수녀의 편지에서도 이런 내용이 나온다. 사람들은 새의 지저귐처럼 이 하소연을 다시 듣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통찰의 밝은 공간을 관통해서 갑자기 아득히 머나먼 사포의 형상이 스쳐 지나간다. 그것은 사람들이 수세기 동안 거친 운명 속에서 찾으려 애썼으나 발견하지 못했던 형상이다.
나는 아무래도 그 사람에게서 신문을 살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가 뤽상부르 공원 바깥에서 저녁 내내 천천히 왔다 갔다 할 때면, 그가 정말로 몇 부의 신문이라도 갖고 있는 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그 사람은 담의 창살에다 등을 기대고 있다. 손은 먼지가 쌓인 돌담가를 스치고 있다.
아주 낮게 몸을 숙이고 있어서 매일 그를 보지 못하고 지나쳐 가는 사람도 많았다. 그에게 아직 남아 있는 목소리가 가끔씩 사람들을 향해 신문을 사라고 재촉해 보기도 하지만 그것은 등불이나 난로 속에서 그 특유의 간격을 두고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와 같이 들리기도 했다. 그리고 세상은 이상하게도 그가 휴식을 취할 때에만 사람들이 그를 지나가게끔 되어 있었다. 그러나 휴식 시간이면 그는 그 어떤 것들보다 소리 없이, 시계바늘처럼, 시계바늘의 그림자처럼, 아니 시간처럼 계속 움직였다.
잘못된 일이긴 하지만 나는 그 사람을 마지못해 쳐다보았다. 이렇게 쓰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그 사람의 사정을 모르는 사람처럼 종종 다른 사람들과 같은 걸음걸이로 그의 곁을 지나왔다. 그러면 "신문이요" 하는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곧 다시 한 번, 재빨리 틈을 두고 세 번째 소리가 들렸다.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뒤돌아보았고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두리번거렸다. 나 혼자만이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처럼, 생각에 깊이 잠긴 사람처럼 누구보다 서둘러 지나갔다.
사실 나는 그렇기도 했다. 나는 그 사람을 상상하는 일에 골몰하고 있었다. 그를 상상하느라 애를 써서 진땀이 날 정도였다. 더 이상 근거도 없고 구성 성분도 남아 있지 않은 죽은 사람을 만들어 내듯이 그 사람을 만들어 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순전히 마음속에서나 만들어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 고물상에나 널려 있는, 줄무늬 상아로 만들어진 야윈 예수 상을 떠올린 것이 조금은 도움이 되었다 예수를 안고 슬퍼하는 마리아 상이 언뜻 스쳐갔다. 이 모든 것은 아마도 그의 긴 얼굴에 깃들인 어떤 애정과, 그늘진 뺨에 위로 받지 못하고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과 비스듬하게 앞으로 기울이고 생각에 잠긴 표정에서 읽을 수 있는 궁극적으로 고통에 찬 눈먼 모습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일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는 그 외에도 특징이 많았다. 그에게서 중요하지 않은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이미 그때 나는 알고 있었다. 양복 웃저고리나 외투가 뒤로 젖혀진 채 칼라를 보이게 하는 방식도 그랬다. 이 낮은 칼라는 불결한 목덜미 주위에 커다란 원을 그리면서도 목에는 닿지 않았다.
헐렁하게 매어져 자꾸 움직이는 암녹색 넥타이도 그랬다. 흔히 장님들이 쓰곤 하는, 낡고 높게 둥글진 뻣뻣한 펠트 모자는 특히나 그랬다. 그것은 얼굴의 폭과 전혀 무관했고, 거기에 부착된 것과 자신으로부터 어떤 새로운 외적 통일성을 만들어 낼 가능성도 없었다. 그것은 쓰기로 약속된 낯선 물건에 지나지 않았다.
제대로 쳐다볼 용기가 없었기 때문에 이 남자의 모습이 더욱더 아무 이유 없이 강렬하게 고통스럽게 내 마음에 파고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견딜 수 없이 비참한 일이었다. 나는 그것에 점점 더 압박감을 느끼며, 드디어 그의 실제 모습을 봄으로써 더욱 뚜렷해져 가는 내 상상물을 깨뜨릴 결심을 하게 되었다. 때는 저녁 무렵이었다. 나는 깊게 주의하면서 재빨리 지나갈 생각이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봄이 가까워졌다는 사실이다. 낮에 불던 바람은 잠들었고 긴 골목길은 평화로웠다. 골목이 끝나는 곳에는 집들이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것은 흡사 하얀 금속이 금방 갈라진 자리처럼 새롭고 신선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금속이 너무나 가벼운 데에 깜짝 놀랄 것 같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넓은 길은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는데, 아무도 차들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일요일임에 틀림없었다. 생 쉴피스 첨탑은 바람이 잠든 가운데 높고 선명하게 솟아 있었다. 로마풍의 건물이 줄지어 있는 길쭉한 골목길에도 어느새 봄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공원과 그 앞에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어서 그 남자를 금방 찾을 수가 없었다. 아니면 이미 보았는데도 이 많은 무리 사이에서 내가 그를 알아보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곧 내 상상이 가치 없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의 비참함의 정도는 아무리 조심을 하고 변장을 해도 한이 없어서 나의 상상력을 초월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자세가 그런 각도로 기울어 있었는지도 눈치 채지 못했고, 눈꺼풀 안처럼 끊임없이 넘쳐흐르는 듯한 공포도 몰라봤다. 배수구처럼 오그라든 그의 입에 대해 생각해 본 바도 없었다.
아마 그에게도 추억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영혼에 다가오는 것은 매일매일 그의 손이 돌담에서 느끼는 무정형의 감촉뿐이었다. 나는 멈춰 서 있었다. 이 모든 것을 거의 동시에 보는 동안, 나는 그가 여느 때와는 다른 모자와 틀림없이 나들이용으로 보이는 넥타이를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거기에는 노란색과 보라색의 사각형 무늬가 비스듬하게 찍혀 있었다. 모자로 말하자면 녹색 리본이 달린, 싸구려 밀짚모자였다.
물론 이런 색깔들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내가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중요하지 않다. 단지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들이 새의 아래 부분 가장 부드러운 곳처럼 눈물을 자아낼 듯이 보였다는 점이다. 그 자신은 그런 것을 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을 것이다. 도대체 이 중의 누가(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러한 치장을 그 자신을 위한 것이라 여길 것인가?
아, 지금 주체할 수 없이 끓어오르는 생각이 있다면, 그것은 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신의 존재를 증명한 것들은 언제나 있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잊고 있었고 그런 것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신의 존재에 대한 확신 속에는 어마어마한 의무가 들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내게 그 증명이 보여진 것이다. 이것은 당신의 취향이다. 여기서 당신은 그 눈먼 남자에게 모자와 넥타이를 주고 흡족해 한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보다 참고 견디며 쉽게 판단해 버리지 않는 것을 배웠다. 힘든 일이란 어떤 것일까? 자비로운 일이란 어떤 것일까? 신만이 그것을 알고 있다.
다시 겨울이 오고 내가 새 외투를 입어야만 한다면, 외투가 새 것인 동안만은 나도 그렇게 그것을 걸치게 하소서.
처음부터 내 것으로 만들어진 옷을 좀더 낫게 입고 어딘가에 안주하기를 고집한다고 해서 내가 그들과 다르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나라는 인물은 그 정도로 못된다. 내겐 그들 삶에 뛰어들 용기가 없다. 만약 내 팔이 말을 듣지 않는다면 나는 그것을 감추어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그녀가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날마다 카페의 테라스에 모습을 나타냈다. 외투를 벗고 어떤 무늬인지 분명하지 않은 겉옷과 속옷을 벗는 것이 그녀에게는 무척 힘들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아주 오랫동안 옷을 벗었다. 더 이상 천천히 벗을 수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천천히 벗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비쩍 마르고 불구가 된 팔을 드러내고 우리 앞에 겸손하게 섰다. 그것은 매우 근사해 보였다.
아니다, 내가 그들과 다르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만약 내가 그들과 같아지려고 한다면 그것도 자만이다. 나는 그렇지 못하다. 내게는 그들과 같은 강인함도, 절제력도 없다. 나는 먹고 살 만하다. 나는 매 끼니를 때울 수 있고 전혀 비밀스러운 데도 없다. 하지만 그들은 영원에 속하는 사람들처럼 목숨을 부지해 갈 따름이다.
11월에도 그들은 그날그날의 모퉁이에 서 있다. 겨울이 다가온다고 소리를 지르는 행위 따위는 하지 않는다. 안개가 내려와 그들의 모습을 불확실하게 만든다. 그래도 그들은 개의치 않는다. 나는 여행을 떠났고 병에도 걸렸다. 많은 일들이 나에게 일어났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다음은 원고지 여백에 써 놓은 글이다.
(잿빛 냉기가 자욱한 방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일어나 학교에 갈 수 있는지 정말 모르겠다. 누가 이 정신없이 서두르는 작은 해골 같은 아이들을 강인하게 하는가. 그래서 아이들은 어른들의 도시로, 밤의 음울한 찌꺼기 속으로, 휴일 없이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수업 속으로, 여전히 작은 몸집을 하고 항상 예감에 가득 차서 달려가지만 늘 지각이다. 나는 수많은 원조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 도시는 그들과 같이 서서히 미끄러져 내려가는 처지의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대부분 처음에는 저항한다. 하지만 결국에는 얼굴이 창백하고 겉늙어 가는 소녀들과 같이 아무 저항도 못하고 끊임없이 저편으로 넘어가 버리게 된다. 그 소녀들은 한 번도 사랑 받아 본 적이 없는 강인하고 내적으로 순결한 처녀들이다.
오, 신이여. 아마도 당신은 내가 이 모든 것을 집어치우고 그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면 왜 나를 앞서가는 그들을 따르지 않는 것이 이토록 힘겨운 것일까? 나는 왜 느닷없이 밤에나 속삭일 것 같은 달콤한 말들을 꾸며내는 걸까? 내 목소리는 목과 심장 사이에 부드럽게 담겨 있다. 나는 왜 그들에게 말할 수 없이 조심스럽게 내 숨을 불어줄 상상을 하는가. 삶이 희롱하고 있는 이 인형들, 그들에게는 봄이 한 해 두 해 지나가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고, 어깨가 헐렁해질 정도로 두 팔을 흔들어대는 것도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그들은 높은 희망에서 떨어져 본 적이 없으므로 부서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쇠약해졌고 삶을 이어가기에는 이미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 길 잃은 고양이들만이 저녁이면 그들의 방으로 와서 남몰래 그들을 할퀴고 곁에서 잠들 따름이다. 나는 곧잘 그런 사람을 두 골목 정도 따라가 보곤 한다. 그들은 늘어선 집들에 의지해 걸어간다. 끊임없이 오가는 사람들이 그들을 가려 준다. 그리고 사람들 뒤에서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만약 누군가가 지금 그들을 사랑해 주려 한다면, 그들은 너무 멀리 걸어 나와 더 이상 걷지 못하는 사람처럼 그에게 기대는 것조차 힘들어 할 것이다. 아마도 부활의 힘을 가지고 있는 예수만이 그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불 꺼진 등불처럼 작은 재주로 사랑 받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직 사랑을 주는 사람만이 예수를 유혹할 수 있다.
만약 나에게 최악의 운명이 결정되어 있다면, 내가 더 나은 옷으로 변장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란 걸 잘 안다. 왕실의 한가운데에서 밑바닥 인생으로 미끄러진 사람도 있지 않은가? 그런 사람은 상승하지 못하고 대신에 밑바닥으로 가라앉고 만 사람이었다. 비록 병기창이 지금은 아무것도 증명해 주고 있지 못하지만, 사실 나는 때때로 다른 모습의 왕을 믿어 왔다.
그러나 지금은 밤이고 겨울이다. 내 몸은 얼어붙었고 나는 몰락한 왕을 생각한다. 왜냐하면 영광은 한순간일 따름이고, 그것이 비참함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왕의 자리는 오래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는 밀랍 꽃이 유리 뚜껑 아래에서 살아가듯이 광기 속에서 살아간 유일한 왕이 아닐까? 사람들은 다른 왕들을 위해서는 교회에 모여 왕의 만수무강을 기원했지만, 이 왕의 생명이 영원하기를 빌었던 것은 오직 쟝 샤를리에 제르송 재상 한 명뿐이었다. 그때 이미 그는 가장 곤궁한 처지에 있었다. 왕관을 쓰고는 있었지만 실로 가난하고 힘든 처지였다.
때때로 얼굴을 검게 칠한 낯선 남자들이 침대에 누워 있는 왕을 덮쳤다. 종기로 썩어 들어간 셔츠를 찢어 내기 위해서였다. 왕은 그 옷을 이미 오래 전부터 입고 있었다. 방은 어둑어둑했다. 그들은 왕의 뻣뻣한 팔 아래에서 썩어 문드러진 천 조각을 잡히는 대로 끌어당겼다. 그러고 나서 누군가가 불을 밝혔다. 그제서야 그의 가슴에 상처가 드러났다. 철로 된 부적이 가슴의 상처 속에 파묻혀 있었다. 왕이 매일 밤 사력을 다해 만든 부적으로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부적은 왕의 몸 속 깊이 박혀 있었다. 그것은 성 유물함의 함지 속에 담겨 있는, 기적을 행하는 유물처럼 진주알 같은 고름에 둘러싸여 굉장히 귀중하게 보였다.
거친 일꾼을 구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플란넬 천에서 구더기가 그들을 향해 어지럽게 기어 나오고 주름에서 떨어져 그들의 소매 어딘가에서 줄지어 기어 다닐 때면 구역질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파르바 레지나가 함께 한 후로 왕의 병세가 더 나빠졌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었다. 그럴 것이 그녀는 젊고 총명했는데도 왕의 곁에 누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제는 그녀마저 죽고 없다. 이제 감히 이 썩은 고깃덩어리 같은 육체 옆에서 자려고 하는 여자는 아무도 없었다. 파르바 레지나는 왕을 위로할 만한 부드러운 말과 상냥함을 남겨 두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누구 한 사람 왕의 이 거친 정신 속으로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그리고 아무도 영혼이 심연으로부터 그를 구해 주지 못했다.
어느 날 왕이 목초를 찾아 나선 동물과 같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갑자기 혼자 걸어 나왔을 때도 그의 마음을 알아주는 이는 없었다. 그는 언뜻 쥐베날의 분주한 얼굴을 알아보자 갑자기 나라의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리고 왕은 이제까지 자신이 태만히 했던 것을 만회하고자 했다.
하지만 일련의 시국사건들은 그 성질상 관대하게 처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다 하면 그것은 내내 어려움을 동반한 것이었고, 그 모든 것들은 한 덩어리의 사건처럼 여겨졌다. 왕의 동생이 살해되고, 어제는 왕이 늘 사랑하는 누이라고 부르던 발렌티나 비스콘티가 비탄에 젖은 일그러진 얼굴로 미망인의 설움을 하소연하며 검은 베일을 걷고 그의 앞에 엎드렸다. 그리고 오늘은 입심 좋고 끈덕진 변호사가 몇 시간이나 서서 제후 살인자의 권리를 증명했던 것이다.
오히려 범죄가 투명해지고 환하게 하늘 높이 승천하려는 듯했다. 공평한 정치라는 것은 모든 사람 각자의 정당한 점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했다. 오를레앙 고의 비 발렌티나에게 복수를 약속했는데도 그녀는 비탄에 빠진 나머지 죽고 말았다. 부르고뉴 공작을 용서하고 또 용서한들 무슨 소용이 있었으랴. 그는 칠흙 같은 절망의 격정에 빠졌다. 그래서 그는 이미 수주일 전부터 아르질리 숲 속 깊은 곳에 천막을 치고 기거하면서 밤이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사슴들이 우는 소리를 듣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 일을 끝까지 지켜본 국민들은 왕을 보기를 열망했다. 그리고 이러한 국민들의 눈에 비친 것은 어찌할 바 몰라 하는 왕이었다. 하지만 국민들은 그 광경에 만족해했다. 그들은 이 사람이 국왕임을 알았다. 이 조용하고 참을성 있는 자는 자기가 뒤늦게 초조해 할 때 그의 위에서 신이 일을 처리해 주었노라 인정하기만 하면 되었다. 아마도 모든 것이 해명된 이 순간, 왕은 생 폴 궁전의 발코니에서 자기의 비밀스런 발전을 예감했는지도 모른다. 로스베케에서의 그날이 왕의 머리에 떠올랐던 것이다. 그날 폰 베리 숙부가 그의 손을 잡고 처음으로 승리를 거두게 이끌어 주었다.
이상하게 날이 길었던 11월의 그날, 그는 사방으로 포위된 강트 시의 사람들이 궁지에 몰려 목을 매고 죽어 간 모습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마치 사람의 거대한 뇌수처럼 서로 엉키고 설켜서 무더기로 쓰러져 있었다. 죽음의 순간을 함께 하고자 서로를 묶어 놓았던 것이다. 여기저기 널려 있는 질식한 얼굴들을 보자 마치 공기도 그 부피 때문에 위로 달아나 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람들은 수없이 많은 절망한 영혼이 갑자기 나타나 군중 앞에 서 있는 시체 너머로 자기들을 떠밀어 버릴 것이라고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건들은 그의 명성의 시작으로 많은 사람들의 머리에 각인 되었다. 그도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죽음의 승리였다면, 지금 그가 약해진 무릎으로 모든 사람의 눈앞에 똑바로 선 이 광경은 사랑의 신비였다. 왕은 그날의 전투가 얼마나 끔찍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서 읽었었다. 하지만 오늘의 이것은 이해될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언젠가 상리스 숲에 나타났던, 황금 목도리를 한 사슴에 버금갈 만큼 놀라운 일이었다. 다만 여기서는 그 자신이 기적적으로 현현했고 사람들은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왕은 그들이 숨을 죽이고 기대감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의심치 않았다. 그것은 언젠가 청년이었던 그가 사냥을 갔을 때, 조용한 얼굴이 자기를 주시하면서 나뭇가지에서 나오는 듯한 기대감에 사로잡혔던 것과 같았다. 그의 용모에는 국민 앞에 모습을 드러낸 왕의 신비함이 어려 있었다. 왕은 쓰러질까 두려워하면서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넓고 소박한 얼굴에 퍼진 엷은 미소가 강인한 성자의 얼굴에서처럼 자연스럽게 흘렀다. 그렇게 왕은 지탱하고 있었다. 그것은 영원을 축약해 놓은 한 순간이었다. 군중들은 더 이상 그것을 참아낼 수 없었다. 지치지 않고 늘어나는 위안에 힘을 얻은 그들은 끝내 정적을 깨뜨리고 기쁨의 함성을 울렸다. 하지만 저 위 발코니에는 쥬베날 드 위르생만이 있을 따름이었다. 곧 조용해지자 그는 왕이 생 드니 거리로 가서 수난절 교단의 신비극을 보실 것이라고 소리 높여 알렸다.
그 무렵 왕은 온화한 의식에 충만해 있었다. 만약 어느 화가가 그 당시 이상향을 그리기 위해 현존하는 근거를 찾고 있었다면, 루브르 궁의 창가에서 어깨를 늘어뜨리고 서 있는 왕의 조용한 얼굴 이상으로 완벽한 모델을 찾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왕은 크리스틴 드 피장이 쓴 자그마한 책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머나먼 배움의 길"이란 제목으로 그에게 헌정된 책이었다. 왕은 세상을 지배할 만한 제후를 찾을 생각으로 의회가 벌이는 현학적인 논쟁을 읽지 않았다. 왕은 항상 가장 간단한 페이지를 펼쳤다. 예컨대 마음에 관해 언급된 부분이었다. 마음이 고통의 불꽃 위에 얹힌 플라스크처럼 두 눈을 위해 괴로움의 물을 증류시키는 일로 13년 동안이나 헌신했다는 대목이었다. 그는 행복이 지나가고 영원히 되돌아오지 않게 되고서야 비로소 참된 위안이 시작됨을 알게 되었다. 왕에게 이러한 위안보다 더 절실한 것은 없었다.
얼핏 시선을 저편 다리에 두고서, 왕은 이렇듯 강한 쿠메아의 무녀에게 감동되어 큰 길로 나아간 피자의 마음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기 좋아했다. 그 당시의 세상이란 모험의 바다, 광야에 짓눌려 문을 닫아 버린 듯한 낯선 탑의 도시들, 첩첩산중에서의 황홀한 고독, 외경스런 회의 속에서 연구를 거듭한 끝에 마치 젖먹이의 두개골처럼 이제 막 닫혀 버린 천체, 그런 것들이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들어오면 왕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의 정신이 서서히 녹스는 것 같았다. 왕은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창가에서 떨어졌고 그들이 하라는 일에 몰두했다. 몇 시간이고 삽화를 보며 소일하는 것이 그에게 습관이 되었다. 그는 이것에 만족해했다. 하지만 책에서 더 많은 삽화가 나오지 않거나, 이 절로 분리되어 있어 보기 힘든 삽화일 경우에는 마음 상해했다.
그러자 누군가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카드놀이를 기억해 냈다. 왕은 카드를 가져다준 사람을 특별히 좋아했다. 이 두꺼운 카드 종이는 색깔이 화려하고 낱장으로 움직이며 그림이 가득해서 그의 마음에 쏙 들었다. 그렇게 해서 카드놀이가 다시 궁정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한 데 반해, 왕은 서재에 앉아 혼자 카드놀이를 했다. 그가 우연히 두 장의 킹카드를 나란히 젖힌 것처럼, 신은 최근에 그와 벤첼 황제를 만나게 했다. 어떤 때는 카드의 퀸이 죽을 때도 있었다. 그러면 그는 하트 에이스를 그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은 마치 묘비처럼 보였다. 이 놀이에 여러 명의 교황이 나온다고 해서 그가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는 책상의 한 끝을 로마로 정했다. 그리고 여기, 그의 오른쪽 아래는 아비뇽이었다. 그에게 로마는 아무래도 좋았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대강 로마를 상상했던 것으로 더 이상 로마를 고집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비뇽은 잘 알고 있었다. 그곳을 생각하자마자 그의 기억은 높고 폐쇄적인 교황청의 궁전을 내내 맴돌았고, 그는 그것으로 인해 지쳤다. 왕은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내쉬어야 했다. 그날 밤에 나쁜 꿈을 꿀까 두려웠다.
하지만 대개 카드놀이는 실제로 편안하게 열중할 수 있는 놀이였다. 매번 그에게 그것을 권한 사람들의 말이 옳았던 것이다. 그런 시간만큼은 그도 자신이 국왕 샤를 6세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가 지나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결코 한 장의 종이 이상이라는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특정한 카드라는 확신이 그에게 힘을 북돋워 주었다. 아마도 그의 카드는 패가 좋지 않아서 늘 지는, 그래서 화가 나서 던져 버리는 그런 카드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의 카드는 늘 같은 것이었고 한 번도 다른 적이 없었다. 이렇게 한결같이 자기를 확인하면서 일주일을 보내고 나자, 그는 답답함을 느꼈다. 마치 너무나 또렷한 자신의 윤곽을 갑자기 느끼듯 이마 둘레와 목덜미가 팽팽해졌다.
그러자 왕은 신비극에 대해 물었다. 그것이 시작되기를 기다릴 수조차 없었다. 왕이 어떤 유혹에 이끌리고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왕은 생 폴 궁전에서보다 생 드니 거리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지게 되었다.
신비극에서 상연된 시들의 운명적인 결함은 그것이 끊임없이 보충되고 확장되어서 수만 자의 시행으로 늘어났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마침내 극 속에서의 시간이 현실의 시간과 다름없이 되어 버린 것이다. 마치 지구를 척도로 지구의를 만들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무대의 아래는 지옥이고, 위는 난간 없는 발코니를 기둥에다 장치하여 수평의 낙원을 의미했다. 하지만 그것은 상상을 반감시키는 역할을 할 따름이었다. 왜냐하면 사실 그 세기가 천국과 지옥을 현세화했기 때문이었다. 그 세기는 자기극복을 위해 두 세력에서 힘을 얻어 살아갔던 것이다.
그때는 반세기 전 요한 22세를 중심으로 집결했던 아비뇽의 그리스도 시대였다. 그는 뜻하지 않게 피난을 너무 많이 다녀서, 그의 사후에야 비로소 교황청의 궁정을 건립하게 되었다. 커다란 덩어리의 건축물은 무겁고 폐쇄적이어서 모든 집 잃은 영혼들이 최후에 찾아드는 곳처럼 보였다. 하지만 교황 자신은 작고 가볍고 정신적인 노인이어서 여전히 확 트인 곳에서 살았다.
아비뇽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일을 미루지 않고 사방으로 민첩하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에 식탁에는 독약을 탄 음식이 자주 놓여 있곤 했다. 첫 잔의 술은 항상 버려져 있게 마련이었다. 이 일흔 살의 노인은 자기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밀랍인형을 들고 다니며 어디에다 감추어야 할지 몰라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인형에 꽂혀 있던 긴 바늘에 긁히기도 했다. 그것을 녹여 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 무시무시한 물건에 너무나 경악한 나머지, 그의 강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불 속에 던지면 그 자신도 이 밀랍인형처럼 죽어서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왜소한 그의 몸이 공포로 인해 더욱 말랐지만 강단지게 보였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그의 왕국의 몸체에도 덤벼들었다. 그라나다에서 유대인들이 모든 기독교인들을 말살시키기 위해 일을 꾸민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무시무시한 집행인을 매수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처음 소문이 돈 직후, 누구도 나병 환자의 음모를 의심치 않았다. 그들이 나병균 묻은 오물을 우물에다 던지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들이 이미 여럿 있었다. 그럴 수도 있다고 여기는 것은 결코 신앙이 가벼워서가 아니었다. 그 반대로 신앙이 너무 무거워서 떨고 있는 사람들 손에서 미끄러져 우물 바닥에까지 떨어지고 만 것이었다.
그리고 이 열성적인 노 교황은 피에 독이 들어오지 못하게 다시금 조심해야 했다. 그렇게 미신이 엄습한 시기에, 그 자신은 물론이고 주위 사람들을 위해 어둠의 악마를 막기 위한 신탁의 기도를 처방으로 내놓았다. 그래서 이제 밤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이 기도가 흥분된 세상 전체에 울려 퍼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밖에 그로부터 나은 칙서와 교서는 탕약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향료를 넣은 술에 가까웠다. 제국은 그의 조종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지치지 않고 제국이 병들었음을 증명해 갔다. 이미 사람들은 머나먼 동방에서 와서 주인이 된 이 의사에게 마음이 쏠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만성절 날 그는 여느 때보다 길고 따뜻한 설교를 했다. 스스로를 뒤돌아보고자 하는 갑작스런 욕구에서 그는 자신의 믿음을 내보였다. 85년 동안이나 영혼의 감실에 간직해 두었던 믿음을 온 힘을 다해 천천히 꺼내어 교단 위에다 펼쳐 보였던 것이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에게 소리를 질렀다. 유럽 전체가 비난의 소리를 질렀다. 그의 믿음은 이단시되었다.
그 무렵 교황은 사라졌다. 그는 며칠 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기도실에서 무릎을 꿇고, 자기들의 영혼을 훼손시키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비밀을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는 드디어 모습을 나타냈다. 힘든 명상으로 인해 지칠 대로 지친 모습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믿음을 철회했다. 거듭해서 철회했다. 그의 정신은 철회를 하는 데에 마지막 남은 노쇠한 정열을 모조리 바쳤다. 심지어 밤에 추기경들을 깨우게 해서 자신의 회한에 대해 그들과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의 생명을 과도하게 연장시킨 것은 그를 싫어한 나를 레옹 오르시니 경 앞에 굴복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는 희망뿐이었을 것이다.
자콥 폰 가오르 역시 자신의 믿음을 철회했다. 그 직후 신은 리니 백작의 아들을 불러들이셨기 때문에 신 스스로가 자신의 오류를 증명하려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이 백작의 아들은 영혼의 환희에 가득 찬 천국의 생활로 들어가기 위해 지상에서 성년이 되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았다. 살아 있는 사람들 중에는 사제 시절의 이 명석한 소년을 기억하거나, 막 청년이 되자마자 주교가 된 모습과 열여덟 살이 채 되기 전에 자신이 완성된 데에 희열을 느끼며 죽고 만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유를 되찾고 순수한 생명이 들어 있는 그의 무덤가 공기가 아직도 오랫동안 시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 사람들은 죽은 존재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일찍이 성자가 된 그에게도 어떤 절망이 있지 않았을까? 이 소년의 순수한 영혼이 마치 진홍색 염료통과 같은 시대에 빛나는 색칠을 하는 것만이 중요한 일인 듯이 금방 스쳐 지나갔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는 불공평한 일이 아니었을까? 이 젊은 귀공자가 지상을 떠나 정열적으로 승천해 버렸을 때 사람들은 일종의 반감 같은 것은 느끼지는 않았을까? 왜 영혼의 빛을 밝힌 사람들은 고단한 양초 제조인들인 우리들 가운데 머물지 않았던 것일까? 요한 22세가 최후의 심판 전에는 어떤 복됨도 없다고, 그 아무데도, 복된 사람들 가운데에도 지복이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 것도 이 칠흙 같은 어둠 때문이 아니었을까?
사실, 여기 이 지상이 그토록 혼란스러운데, 천사에게 몸을 기대어 신에 대한 한없는 기대로 평온해진 얼굴들이 어딘가 신의 후광 속에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얼마나 독선적이고 완고한 생각인지 몰랐다.
추운 밤에 일어나 글을 쓴다. 이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마도 어렸을 때 그 남자를 만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무척 키가 컸다. 유난히 큰 키로 인해 쉽게 사람들의 눈에 띄는 그런 사람이었다.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는데, 어느 날 저녁 무렵 어찌된 셈인지 나는 집에서 빠져 나올 수 없었다. 달려가 막 모퉁이로 돌아 들어가는 순간 그 사람과 부딪히고 말았다. 그때 일어난 일이 어떻게 해서 대략 5초 만에 끝날 수 있었는지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무리 요약을 해도 말로 하면 더 오래 걸릴 것이다. 그와 부딪혔을 때는 몹시 아팠다. 어린 내가 울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일이었다. 나도 모르게 위로 받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 순간 나는 그 사람이 당황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일을 모면할, 재치 있는 농담이 그의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나는 그를 도와줄 용의도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얼굴을 볼 필요는 없었다. 앞서 말했듯이 그는 키가 큰 사람이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텐데도, 그는 나에게 몸을 숙이지 않아서 그의 얼굴은 여전히 저 높은 곳에 있었다. 내 앞에 있는 것이라곤 그의 양복에서 느낄 수 있던 딱딱한 감촉과 냄새뿐이었다. 갑자기 그 사람의 얼굴이 다가왔다.
어떻게 된 일이었을까? 지금도 모를 일이고 알고 싶지도 않다. 그것은 적의에 가득 찬 얼굴이었다. 그 사람은 무시무시한 눈과 같은 높이로, 마치 제2의 머리처럼 주먹을 그 얼굴 옆에다 바짝 들이대고 있었다. 나는 얼굴을 돌릴 틈도 없이 뛰기 시작했다. 그 사람의 왼쪽으로 빠져서 텅 빈 무서운 골목길을 정신없이 달려 내려왔다. 그 길은 어떤 것도 눈감아 주지 않는 낯선 도시의 골목길이었다.
그 당시 경험했던 것을 나는 지금에 와서야 이해하고 있다. 중세기는 무겁고 거대하며 절망적인 시대였다. 그 시대에 화해한 두 사람이 나누는 입맞춤은 여기저기 서 있는 자객에게 내리는 신호일 뿐이었다. 그들은 같은 잔으로 술을 마시고,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같은 말에 올라탔다. 밤에는 한 침대에서 잔다는 말이 나돌았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관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반목은 너무 골이 깊어서, 서로 상대방의 맥박이 뛰는 것을 볼 때조차 두꺼비를 보고 있는 듯한 병적인 구역질이 솟구쳤다. 그 시대는 형이 더 많은 유산을 노려 아우를 덮치고 가두는 시대였다. 왕은 학대받는 자의 편을 들어 동생에게 자유와 재산을 되돌려 주었다. 다른 운명에 휩쓸려 간 형은 아우에게 싸움을 그만둘 것을 맹세하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편지를 썼다.
평정을 되찾지 못했다. 동생은 순례복을 입고 날마다 이상한 축원을 울리면서 이 교회 저 교회를 떠돌았다. 목에 부적을 걸고서 그는 생 드니 수도사들에게 자신의 의구심을 속삭였다. 이 수도원의 장부에는 그가 성 루이에게 축성하려고 생각했던 백 파운드짜리의 초가 수도사들의 목록에 오랫동안 표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끝내 본연의 삶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죽는 순간까지 그는 가슴 위 일그러진 자리에 형의 시기와 분노를 느꼈다.
모든 사람들이 경탄했던 저 프아 백작 가스통 페부스, 그는 자신의 사촌 에르노를, 즉 영국 왕에 충성한 루르드의 대장을 공공연하게 죽이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 명백한 살인을 백작이 아들을 죽인 그 끔찍한 우연에 비할 수 있을까?
백작이 비난하듯 움찔하면서 누워 있는 아들의 드러난 목을 쳤을 때 아름답기로 유명한 그의 손에는 작고 날카로운 손톱칼이 쥐어져 있었다. 방 안은 어두웠으므로 피를 보기 위해서는 불을 밝혀야만 했다. 피는 이제 이 기진맥진한 소년의 작은 상처에서 비밀스레 흘러나와 이 유례없이 훌륭한 일족으로부터 떠났다.
이런 시대에 누가 살인의 충동을 자제할 수 있었겠는가? 극단적인 행동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있었을까? 여기저기서 즐기는 듯한 살인자의 눈빛과 마주치면 사람들은 이상한 예감이 들곤 했던 것이다. 그러면 곧장 집으로 돌아와 방 안에 틀어박혀 제 의지로 쓰는 마지막 글을 썼다. 그리고 끝으로 버들가지로 엮은 상여와 셀레스틴 파의 수도복과 매장에 쓸 잿가루를 구해 오도록 지시했다.
낯선 음유시인들이 성 앞에 나타나 자신의 막연한 불안감과 들어맞는 노래라도 부르면 후하게 상을 내렸다. 개들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고 전처럼 안전하게 주인을 보살피지 못했다. 일생 동안 가치 있다고 여겼던 격언에 새로운 의미가 나지막하게 부가되었다. 오래 된 많은 습관들이 낡은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것을 대신할 그 무엇이 만들어질 것 같지도 않았다. 계획들을 세우기로 하는데 그럴 경우, 실제로 그것을 믿지도 않으면서 대개 계획들을 궁리하기만 하는 것이었다. 그와 반대로 모종의 추억이 뜻하지 않게 궁극적인 것이 되고 마는 경우도 있다.
저녁이면 불 앞에 앉아 추억에 젖었다. 하지만 저 바깥의 밤은 더 이상 알 수 없는 것이 되었고 갑자기 소리 높여 울려왔다. 그 많은 밤을 들판에서 보낸 경험이 있거나 혹은 위험한 밤을 겪은 적이 있는 귀는 하나하나의 정적을 구분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이 밤은 어제와 오늘 사이에 있는 밤이 아닌, 그냥 하나의 밤이었다. 오, 이 밤이 가고 나면 부활이 있으리라. 그런 시간에 연인을 칭송하기 시작하자마자 그 시간들은 모두 연애시와 헌시로 바뀌었고, 길고 어마어마하게 호사스런 이름 속에 숨어 알 수 없는 존재로 변해 버렸다, 그 시간들은 기껏해야 어둠 속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아이의 눈동자처럼 희미한 모습으로 있을 뿐이었다.
그러고 나서는 늦은 밤참을 먹기 전에 은대야에 담근 두 손에 대해 숙고해 본다. 바로 자신의 손이다. 이 두 개의 손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물건을 잡고 놓고 하는 것에 무슨 연결성이 있었던가? 아닐 것이다. 두 개의 손은 서로 대립적인 일을 시도했다. 모든 손들은 스스로를 지양했고 이루어진 행위는 아무것도 없었다.
수난절 교단에게만은 행위가 있었다. 그들의 신비극을 본 왕은 친히 그들에게 허가증을 만들어 주었다. 왕은 그들을 "사랑하는 형제"라 칭했다. 그러한 왕의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믿음을 전파하며 세속을 순회하는 것이 승낙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왕은 그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사상을 전파하고 질서 지워진 그들의 막강한 행위 속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 자신에 관한 한, 왕은 그들에게 배우기를 열망했다. 왕도 그들과 똑같이, 의미의 표시를 달거나 의미의 옷을 입지 않았던가? 그들을 볼 때면 이것이야말로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무대 위에서 걸어오고 걸어가고 말하고 몸을 숙이고 하는 행위에는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왕의 마음은 엄청난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왕은 조명이 불안하고 이상하게 불명료한 이 요양원 홀에 날마다 나와서 특별석에 앉아 흥분하고, 마치 학생처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었다. 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왕은 마음속으로만 빛나는 눈물을 쏟을 뿐 눈물이 밖으로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해 차가운 양 손을 굳게 잡을 뿐이었다. 대개 클라이막스에 이르러 대사를 마친 배우가 갑자기 그의 시야에서 사라지면, 왕은 얼굴을 치켜들고 깜짝 놀라곤 했다. 언제부터 등장했는지, 성 미하엘이 빛나는 은빛 투구를 하고 저 위, 무대 모퉁이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런 순간이면 왕도 일어났다. 그리고 중대한 결심을 내린 사람처럼 주위를 둘러보았다. 왕은 무대 위의 수난극에 대응해서 펼쳐지는 세속의 수난극을 거기서 통찰할 수 있었다. 왕은 거대하고 불안하며 세속적인 수난극을 연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별안간 끝나고 말았다. 모두가 의미 없이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횃불이 그에게 다가왔고 둥근 천장 위로 형태 없는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왕을 끌어당겼다. 그는 맡은 역을 연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입에서는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그의 움직임은 어떠한 몸짓도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들이 이상하게 왕이 주위로 몰려왔다. 그는 자신이 십자가를 져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왕은 그들이 십자가를 가져오기를 기다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점점 더 강해져서 서서히 왕을 몰아내고 있었다.
외적인 것들은 많이 달라졌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부는 어떠한가? 신 앞에서는 어떠한가? 관객이신 신 앞에서 우리는 행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마도 우리는 자신이 맞은 역할을 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거울을 찾고 있다. 분장을 지워 버리고 거짓을 없애 버리고 진실한 모습이고 싶다. 하지만 아직도 한 조각의 분장물이 우리 몸 어딘가에 붙어 있다. 그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과장의 흔적이 눈썹에 남아 있다. 입술의 각도가 이지러져 있다는 것도 알아채지 못한다. 그런 모습으로 우리는 돌아다니고 있다. 우리는 하나의 조롱거리일 뿐이다. 진실한 존재도 아니고 배우도 아닌 어중이떠중이들이다.
오랑주의 원형 극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는 주의 깊게 볼 생각도 않고, 단지 극장의 전면을 이루는 거친 폐허를 마음속에 그리면서, 수위가 있는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다. 나는 쓰러져 있는 원기둥과 아르테아 나무 사이에 서 있었다. 그것으로 인해 일시적이나마 관객석이 있던, 조개 모양의 확 트인 경사면이 가려졌다. 그것은 오후의 그늘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마치 오목하고 거대한 해시계처럼 보였다. 서둘러 그곳으로 가 보았다. 열지어 놓여 있는 객석 사이를 올라가면서, 내가 이 거대한 주위 환경 속에서 작아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위쪽에서는 몇몇 이방인들이 한가한 호기심을 보이며 아무렇게나 나뉘어져 여기저기 서 있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은 불쾌할 정도로 원색적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수준은 말할 가치도 없었다. 그들은 잠시 나를 훑어보더니 변변치 않은 내 모습에 놀라는 눈치였다. 나는 돌아서고 말았다.
아,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연극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거대한, 초인적인 드라마가 진행되었다. 그것은 수직의 뼈대가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 어마어마한 무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그 규모는 술렁일 정도로 위협감을 느끼게 했고, 또 그로 인해 지나치게 조화를 느끼게 하는 압도적인 무대가 연출되었다. 나는 놀라운 행복감에 젖었다. 높이 솟아 있는 이 무대는 그로 인해 생긴 그늘의 질서가 사람의 표정과 비슷했다. 중앙에 입이 될 자리가 어둠에 싸여 있었고, 이와 경계하여 처마 끝의 장식은 곱슬머리처럼 장식되어 있었다. 이것은 모든 것으로 변장할 수 있는 고대의 막강한 가면과도 같았다. 그것을 쓰면 세계가 얼굴 모양으로 응축되었다.
여기 이 거대하고 둥근 모양의 객석에는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무엇이든 빨아들이는 텅 빈 존재가 지배하고 있었다. 모든 사건은 저쪽 무대에서 일어났다. 신들과 운명이 모두 거기에 있었다. 그래서 거기서부터 (높이 쳐다보면) 뾰족한 벽 너머로, 천국으로 영원히 들어가는 길이 가볍게 열려 있었다.
지금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그때부터 나는 우리의 연극에서 영원히 배제되었다. 거기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 이 벽(러시아 교회의 성상이 그려진 벽)이 헐려 버린 무대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그 벽의 견고함을 통해서 무거운 기름방울이 넘쳐 기체 형태가 되어 버린 행위를 더 이상 억지로 짜낼 힘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벽을 허물었던 것이다. 이제 무대는 구멍이 성긴 체와 같아서 작품들이 부스러기로 떨어지고 쌓이며, 넘친다 싶으면 재빨리 치워진다. 그것은 거리나 집에서 볼 수 있는 미숙한 현실이다. 다만 무대에서는 현실의 하루 저녁에 일어나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모여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말이다.
원고지 여백에 쓴 글.
(솔직히 말해서 우리에게는 신도, 연극도 없다. 그것들을 모두 갖기 위해서는 공동의 정신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특별한 착상과 두려움을 갖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이용 가치가 있고 적합하다고 생각될 때만 내보일 뿐이다. 우리는 공동의 고뇌를 상징하는 벽에다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대신에, 우리의 이해력을 충분하게 만들기 위해 그것을 끊임없이 희석시킨다. 그 벽 뒤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모여 들어 적응할 채비를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만약 우리에게 연극이 있다면, 너 비극이여, 너의 드러난 고통에서 성급한 호기심을 충족하는 사람들 앞에서 다시금 그토록 가냘프게, 그렇게 벌거벗은 채로, 그렇게 형상을 구실로 삼지 않고 서 있겠는가? 말할 수 없이 감동적인 너는 그때 베로나의 무대에서 이미 네 고뇌의 현실적인 존재를 예견했다. 그때 너는 아직 어린아이의 몸으로 연기를 하면서, 점점 더 너를 감추어야 하는 가면의 앞면처럼 장미 꽃다발을 네 앞에 내밀고 있었다.
사실 너는 배우 집안의 자식이었다. 네 가족들이 연기를 할 때면 그들은 자신이 보여지는 존재이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너는 그 방식을 깨뜨렸다. 너에게 있어 이 직업은 변장이어야만 했다. 마리아나 알코포라도에게 수녀 생활이 변장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이 변장은 그 뒤에서 아무 숨김없이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천국의 복된 사람들이 행복에 취하듯 고뇌에 몰두할 수 있도록 충분히 촘촘하고 튼튼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네가 간 도시마다 사람들은 너의 연기에 열광했다. 하지만 그들은 네가 얼마나 하루하루 전망도 없이, 네가 가려지든 그렇지 않든 문학작품으로 스스로를 감추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너는 투명하게 비치는 곳을 너의 머리카락이나 손 따위의 뭔가 촘촘한 것으로 가렸다. 투명한 곳에다가는 입김을 서리게 했다. 몸을 조그맣게 만들어 보기도 했다. 아이들이 숨바꼭질을 하듯 숨어서 짧고 행복에 겨운 소리를 내보곤 했다. 기껏해야 천사나 너를 찾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다음 순간 너는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사람들이 내내 너를 보았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움푹한 눈알같이 불쾌한 곳에서 모두가 너를 보고 있었다. 바로 너, 너를, 다른 어떤 것도 아닌 너만을 보고 있었다.
그래서 너는 악의에 찬 시선에 대항하는 손가락 표시를 하면서 움츠린 팔을 그들에게 내밀었다. 그들은 먹이가 된 네 얼굴을 빼앗았다. 너는 너 자신이 되었다. 너의 동료 연기자들은 겁을 먹었다. 마치 암표범과 한 우리에 갇힌 것처럼, 그들은 무대 세트 가장자리를 따라 기어 다니며, 단지 너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자기 차례에 대사를 외울 뿐이었다.
그러나 너는 그들을 앞으로 끌어내어 세우고는 현실 속에서 대하듯 그들을 대했다. 헐거워진 문짝과 눈속임용 커튼과 뒷면이 없는 소도구들이 너를 모순으로 내몰았다. 너의 심장이 거대한 현실로 쉴 새 없이 치솟는 것이 느껴졌다. 놀랍게도 너는 다시 한 번 늦여름의 긴 거미줄과 같은 시선들로부터 빠져 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극단적인 것에 대한 불안 속에서 이미 박수를 치고 있었다. 마치 그들의 삶을 변화시킬 것만 같은 그 어떤 것으로부터 마지막 순간 몸을 돌려 버리는 듯했다.
사랑 받는 이들은 행복하게 살지 못하고 곧잘 위험에 처하는 법이다. 아, 그들이 스스로를 이겨내고 사랑하는 이들이 된다면 얼마나 좋으랴. 사랑하는 이들에게 위험이라곤 없다. 그들은 더 이상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자신의 의도를 무의식적으로 드러낼 까닭도 없다. 그들에게 비밀은 온전한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통채로 나이팅게일처럼 노래 부른다. 부분적인 면이 없는 것이다. 그들은 어떤 사람을 두고 탄식을 한다. 하지만 전체 자연이 그들에게 화음을 맞춘다. 그것은 영원한 자에 대한 탄식이다.
그들은 길 잃은 자에게 쏜살같이 달려간다. 하지만 한 걸음이면 이미 따라잡을 수 있다. 그들 앞에 있는 것은 오로지 신뿐이다. 그들의 전설은 리키아까지 카우노스를 쫓아간 비블리스의 전설이다. 사모의 마음이, 끊임없이 고동치는 그녀의 심장이 카우노스의 자취를 찾아 여러 나라로 그녀를 내몰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힘이 다하는 순간이 왔다.
하지만 그녀의 존재가 보여 준 감동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그녀는 쓰러지며 죽음의 피안에서 샘물로 다시 소생했다. 발걸음을 재촉하여 부지런히 솟아나는 샘물로 다시 태어났다.
포르투갈의 여인 마리아나 알코포라도의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니었던가? 그녀의 마음속에도 샘물이 넘치지 않았던가? 엘로이즈는 어떤가? 그 비탄이 오늘날까지 전해 오는 사랑하는 이들이여. 가스파라 슈탐파, 디에 백작부인, 클라라 당뒤즈, 루이스 라베, 마르셀린 데스보르드, 엘리자 에르꾸르가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대 가련하고 경망스런 여인 아이세는 머뭇거리다가 끝내 굴복하고 말았다. 쥘리 레스피나스는 지쳐 버렸고, 마리안 드 클레르몽은 행복한 동산의 절망적인 전설이 되고 말았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지만, 언젠가 일찍이 집에서 보석 상자를 찾아낸 적이 있었다. 그것은 두 손을 모두 펼친 것 만한 크기로, 암녹색의 모로코가죽으로 된 부채꼴 모양에 꽃무늬로 테두리 쳐진 상자였다. 열어 보니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그런 사실을 세월이 지난 지금에야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열었던 당시에는 단지 이 허전함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 건지만을 생각했다. 그것은 더 이상 새것 같지 않은 밝은 빛깔의 벨벳, 작은 언덕이 만들어진 쿠션, 고통의 흔적만큼 밝고 허무하게 흘러온 움푹 팬 자리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마도 사랑 받는 이로 남아 있던 사람들 앞에서 그것은 항상 그러할 것이다.
일기장을 다시 넘겨보라. 항상 봄이 가까워질 무렵이면, 터져 나오는 새로운 해가 자신에 대한 비난처럼 여겨지던 때가 없었는가? 마음은 즐겁지만 막상 광활한 평야로 나서면 바깥의 공기에는 이상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러면 갑판 위를 걷는 것처럼 더 나아가는 것이 불안해졌다. 정원은 봄을 맞을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겨울과 지난해를 질질 끌어들였다. 우리들에게는 연속적인 것이 가장 나아 보였다. 우리의 영혼이 봄이 오는 데에 함께 하기를 기다리면서도, 갑자기 팔다리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병이 날 것 같은 예감 비슷한 것이 우리의 마음속으로 너무 얇은 옷을 일단 보류하고 어깨에다 목도리를 매고 가로수 길을 끝까지 달려 보게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 가슴을 두근거리며 원형의 꽃밭에 서서, 모든 것과 하나가 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새 한 마리가 홀로 지저귈 뿐, 우리를 눈여겨보지 않는다. 아, 우리는 죽었어야 했을 존재란 말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극복해낸 것, 새해와 사랑이야말로 새로운 일일지도 모른다. 꽃과 열매는 익어서 자연히 떨어진다. 짐승들도 서로 느끼고 마주보고 만족스러워 한다. 하지만 우리는, 신을 귀결점으로 택한 우리는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없다. 우리의 본성은 미루어진다. 아직도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일 년이란 무엇인가? 무수한 세월이란 무엇인가? 신을 알기도 전에 이미 우리는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밤을 견디게 하소서. 그런 다음 병을 이기게 해달라고, 그 다음에는 사랑을 얻게 해달라고 기도를 올렸다.
클레망스 드 부르주는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쳤다. 그와 같은 여인이 또 어디 있으랴. 그녀가 다룰 줄 알았던 갖가지 악기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그녀의 나지막한 목소리였다. 그것이 울리는 소리는 결코 잊을 수 없다.
그녀의 처녀다운 마음에는 너무나 숭고한 결심이 차 있어서, 사랑이 넘실대는 한 여인이 피어나는 가슴에다 소네트 시집을 바쳤다. 시행마다 잠재울 길 없는 고뇌와 열정이 담겨 있었다. 루이스 라베는 그녀가 사랑의 긴 번뇌로 놀라게 될 것을 걱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밤이면 더해 가는 동경을 소녀에게 보여 주었다. 그리고 더 넓은 세상과 같은 고통을 소녀에게 약속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경험한 아픔이 이 소녀를 아름답게 하는 아픔, 아직 막연히 기다릴 뿐인 아픔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내 고향의 소녀들이여, 그대들 중 가장 아름다운 이가 여름날 오후에 어둑어둑해진 도서관에서 장 드 투르네가 1556년 출판한 루이즈 라베의 작은 책을 찾아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소녀가 서늘하고 매끈매끈한 책을 가지고 나와 벌들이 윙윙대는 과수원이나 저 너머 협죽초가 있는 곳으로 가면 좋겠다. 너무나 달콤한 협죽초의 향내에는 실로 단맛을 내는 침전물이 들어 있을 것이다. 소녀가 그 책을 좀 더 일찍 찾아냈더라면. 소녀들의 눈은 자기를 의식하기 시작하지만 눈보다 아직 어린 입은 사과를 더 크게 베어 물고 입 안을 가득 채우는, 그런 나이면 좋겠다.
그러고 나서 감동 어린 우정을 맺을 수 있는 시절이 오면, 소녀들이여, 서로를 디카나 아낙토리아, 기리노 혹은 아티스로 부르는 것이 그대들의 비밀이 될 것이다. 누군가가, 아마도 어느 이웃이, 젊었을 때 여행을 많이 했고 오랫동안 별종으로 여겨졌던 중년 남자가 그런 이름을 그대들에게 흘렸을지도 모른다. 그 남자는 그대들을 자주 초대할 것이다. 그의 집에 있는 유명한 복숭아를 먹어 보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하도 입에 오르내려서 보지 않고는 못 배기는, 위층 하얀 복도에 걸려 있는 리딩거의 동판화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대들은 그에게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를 것이다. 혹 그대들 중 누군가 해묵은 여행 일기를 가져오라고 청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소녀는 어느 날 사포의 시 몇 구절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그 사람의 마음을 구슬릴 줄도 안다. 그래서 은둔해서 살고 있는 이 남자가 때때로 사포의 시를 번역하면서 소일하기 좋아한다는, 이 비밀에 가까운 사실을 알아낼 때까지 쉬지 않고 조른다. 그는 한참 동안 그것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지금으로서는 말할 가치도 없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지금, 이 소녀들이 졸라댄다면, 이 순진한 소녀들 앞에서 한 구절을 읊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심지어 그리스 원문을 기억 속에서 되찾아 내고 그것을 낭송하기도 한다. 번역으로는 그다지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더불어 강렬한 불꽃 속에서 달구어져 거대하게 치장한 언어의 아름답고 참된 단절을 이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는 이 일에 다시 흥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래서 거의 젊은 시절에 보낸 것과 같은 아름다운 저녁을 보낸다. 예컨대 고요하고 기나긴 밤을 앞둔 가을날의 저녁을 들 수 있다. 그런 날이면 그의 서재에 오랫동안 불이 켜진다. 그렇다고 책상 앞에서 내내 몸을 숙이고 있지는 않다. 종종 몸을 일으켜 다시 읽은 시행을 생각하며 눈을 감는다. 그러면 그 의미가 피 속으로 퍼져 나간다.
그에게 고대의 모습이 그렇게 확실히 파악된 적은 없었다. 그는 자신들이 꼭 출연하고 싶었던 연극이 어느 틈엔가 끝나 버린 것처럼 사라진 고대를 애도하는 사람들을 거의 비웃고 싶어진다. 이제 그는 일순간 저 고대 세계의 통일성이 보여 주는 역동적인 의미를 깨닫는다. 그것은 모든 인간 활동을 새롭게 동시적으로 수용한 것과 같았다. 저 일관성 있는 문화가 그것의 거의 완전한 가시화로 후세 사람들의 눈에 완전한 세계를, 총체적인 과거의 문화를 형성한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는 혼란스러워 하지 않는다.
사실 두 개의 반구가 하나의 온전한 금빛 구형을 이룬 것처럼, 고대에는 실제로 천상의 반쪽 삶과 현존의 그 나머지 삶이 조화를 이루었다. 하지만 이것이 일어나자, 곧 그 속에 틀어박힌 정신들은 이러한 완벽한 실현도 불완전한 표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러자 거대한 천체가 무게를 잃고 떠올랐다. 그리고 그 금빛 구형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세계에 대한 비애가 조심스레 비치고 있었다.
그는 한밤중에 홀로 이런 것을 생각하고 통찰하다가 문득 창가 의자에 과일 접시가 놓여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사과에 손을 뻗어 책상 위 자기 앞에 둔다. 나의 삶은 이 과일을 어떻게 둘러싸고 있는 것일까 하고 그는 생각한다. "완성된 것"의 주위에는 "실행되지 않는 것"이 늘 상승하고 점점 더 부풀어 오르게 마련이다.
그러자 무한에 이르기까지 팽팽해진 작은 형상이 "실행되지 않는 그의 삶"에 거의 쏜살같이 소생한다. 그것은 (갈리엔의 증언에 의하면) 모든 사람들이 여류 시인을 말할 때 염두에 두는 사포의 형상이다. 헤라클레스의 위업이 있고 나서 세계가 붕괴되고 새로 개조되기 시작한 것과 마찬가지고, 다음 시대를 위해 준비되었던 기쁨과 절망이 소생하여, 존재의 저장고로부터 그녀의 심장으로 몰려가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사랑을 끝까지 성취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사포의 굳은 마음을 갑자기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그것을 오인했다고 해서 놀랄 일도 아니다. 사람들은 미래에서나 볼 수 있을 사랑의 선구자격인 이 여인에게서 정열의 과잉만을 보았을 뿐, 사랑과 고뇌의 새로운 통일체를 보지는 못했다.
그녀의 묘비명은 그 당시 누구나 믿고 있던 상식 수준에서 새겨졌다. 그래서 마침내 그녀의 죽음은 아무런 보답 없이 스스로를 희생하여 사랑하도록 신이 부추긴 사람의 죽음으로 돌려졌다. 그녀에게서 감화를 받은 친구들 중에서도 아마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가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사랑이 도달한 높은 경지에서 자신의 포옹을 저버린 남자를 애석해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사랑에 비견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음을 슬퍼했던 것이다.
명상에 잠긴 이 남자는 여기서 일어나 창가로 간다. 천장이 높다란 그의 방이 낮게 느껴진다. 가능하면 별을 보고 싶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감동이 그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웃에 사는 처녀들 가운데 한 처녀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녀를 위한) 소망이 있다. 긴 밤을 지새우며 그는 그녀에 대한 진실한 사랑의 요구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홀로 깨어나 그녀를 위해 생각해 주는 것, 이것이 가장 애달픈 사모라고 생각했다.
그는 베푸는 사랑을 한 여류 시인이 얼마나 옳았던가를 생각해 보았다. 사포는 두 사람의 결합이란 곧 고독의 성장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녀는 성의 허무한 목적을 그 무한한 의도로써 파괴해 버렸다. 그녀는 포옹의 어두움 속에서 만족을 구하지 않고 동경을 구했다. 그녀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사랑하는 자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 받는 자라는 사실을 경멸했다. 그녀는 침실로 데리고 간 사랑 받는 자가, 그 연약하던 이가 스스로 사랑하는 이로 달구어져 그녀를 떠나가게 했다. 그러한 숭고한 이별의 순간에 그녀의 심장은 자연 그 자체가 되었다.
운명을 초월해서 그녀는 옛 사랑하는 여인들에게 신부의 노래를 불러 주었다. 그들의 결혼식을 찬양하고 남편에게 더 가까이 가도록 했다. 그들이 마치 온 정성을 다하여 신을 위하듯 남편을 위하게 하고 남편의 훌륭함까지도 넘어서기를 원했던 것이다.
아벨로네, 최근 몇 년간 나는 다시 그대를 느끼게 되었다. 오랫동안 그대를 생각하고 있지 않아서 이것은 전혀 기대하지 않은 일이었다.
어느 가을, 베니스에서 있었던 일이다. 여느 살롱에서처럼 지나가던 외국 관광객들이 역시 이방인이었던 그 집 여주인을 둘러싸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홍차를 들고 어슬렁거리다가, 사정에 밝은 이웃이 베니스 식으로 들리는 이름을 그들에게 속삭일 때마다 문 쪽을 남몰래 살짝 돌아보고는 기뻐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기대를 단단히 하고 있었기 때문에 웬만한 이름은 들어도 놀라지 않았다. 아무리 평범한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라도 베니스에 이국의 여행자로서 머물게 되면 가장 극단적인 가능성에 몰두하게 되는 모양이다. 평범한 실존 속에 있는 그들은 비범한 것과 금지된 것을 항상 혼동한다.
이제 그들에게 허용된 놀라운 것에 대한 기대는 노골적이고 방종한 표정으로 얼굴에 나타나 있다. 고국의 연주회에서나 집에서 홀로 소설을 읽고 있을 때, 순간적으로 머리에 떠오르는 것들이 이 기분 좋은 상황에서는 합법적인 상태로 드러나는 것이다.
마치 그들이 전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어떠한 위험도 모르면서, 무분별한 육체나 거의 치명적인 음악의 고백에 선동될 수 있는 것처럼, 그들은 베니스의 실체를 전혀 극복하지 않고서, 곤돌라의 무기력한 도취에 몸을 내맡긴다. 더 이상 신혼이라고 할 수 없는, 여행하는 동안 내내 악의에 찬 대화만을 일삼은 부부도 여기서는 말없이 타협하게 된다. 남편에게는 이상이 지쳐 버린 즐거운 현실의 시간이 다가오고, 젊음을 느낀 아내는 나태한 이 고장 사람들에게 격려하듯 활기찬 웃음으로 인사를 보낸다. 그녀의 이빨은 끊임없이 녹아내리는 설탕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 잘 들어보면 그들이 내일 혹은 모레, 아니면 주말에나 떠나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때 나는 그들과 함께 있었고, 여기를 떠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기뻤다. 곧 추워질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의 선입견과 요구로 만들어진 유약하고 취한 듯이 베니스는 이 혼수상태의 외국인들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어느 날 아침이면 산산이 부서질 것만 같은 또 다른 현실의 베니스,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발랄한 베니스가 나타난다. 그것은 가라앉은 숲의 무 한가운데에서 의도되고 강요되어, 끊임없이 그렇게 철저히 존재했던 베니스이다. 잘 단련되고, 고행을 거친 육체를 통해, 밤을 세운 병기고가 그 노동의 피를 몰아넣었다. 그리고 이 육체에 배어든, 끊임없이 자기 확장을 거듭하는 정신은 이국의 강렬한 향기보다 더 강력했다.
다른 민족의 보물과 가난한 제 나라의 소금, 유리를 교환했던 암시적인 국가. 그 장식물에 이르기까지 더욱 더 섬세해진 잠재 에너지로 충만해 있는 아름다운 균형의 세계, 여기 베니스.
너무나 많이 착각하고 있는 이 사람들 가운데에서 내가 진정한 베니스를 알고 있다는 의식이 들어서 나는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알리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이 홀에 있는 누군가가 이 환경의 본질을 해명해 주기를 자기도 모르게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여기가 향락을 열어 주는 곳이 아니라, 어느 곳보다도 더 엄격한 모습을 보여주는, 즉 의지의 예증을 열어 주는 곳이란 사실을 금방 이해할 젊은이가 있지 않은가?
나는 서성대기 시작했다. 내가 알고 있는 진실로 인해 불안해졌다. 이곳의 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는 나는 진실에 사로잡혔고, 그것이 말해지고 변호되고 증명되기를 소망했다. 모든 사람들이 지껄이는 몰이해에 대한 증오심으로 나는 다음 순간 손뼉을 쳐 소리를 내고 싶은 그런 기괴한 생각이 들었다.
이 우스꽝스러운 분위기에서 나는 그녀의 존재를 알아챘다. 그녀는 환한 창문 앞에 혼자 서서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진지하고 생각에 잠긴 듯한 눈으로가 아니라, 내 얼굴에 나타난 명백하게 화난 표정을 반어적으로 흉내 내고 있는 입으로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나는 곧 내 표정에서 초조한 긴장을 느꼈고 냉정한 얼굴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이내 그 여자의 입도 자연스러워지고 자신감에 넘쳐 보였다. 그러고 나서, 잠시 생각해 본 후에 우리는 서로 동시에 미소를 지었다.
그녀에게는 시인 바겐센의 일생에 한몫을 했던 아름다운 여인, 베네딕트 폰 크발렌의 처녀시절을 연상시키는 데가 있었다. 그녀의 눈에 깃들인 어두운 정적을 보고 있노라면 그녀 목소리의 맑은 어두움을 추측해 볼 수 있었다. 게다가 머리를 땋은 모습과 밝은 옷이 목 부분이 너무나 코펜하겐풍이어서 나는 덴마크어로 말을 걸어 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떨어진 자리에 있었다. 그때 다른 편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녀에게 몰려갔다. 여주인도 애교 있고 흥분된 얼굴로, 노래 부를 곳으로 그녀를 안내하기 위해 많은 조력자들과 함께 달려왔다. 나는 이곳에 있는 어떤 사람도 덴마크 노래를 듣는데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그녀가 양해를 구하리라 확신했다. 그녀 역시 내가 듣기에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 밝은 여인을 둘러싼 무리들은 점점 더 열을 냈다. 그녀가 독일 노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누군가 알고 있었다. "이탈리아 노래도 하지" 하고 어디선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심술궂게 덧붙였다. 나는 그녀가 어떤 적절한 핑계거리를 댈지는 알지 못했지만, 그녀가 끝까지 버틸 것이라는 것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랜 웃음으로 지친 얼굴들 위에 벌써 건조하게 못마땅한 기색이 퍼져 갔다. 마음씨 좋은 여주인도 체면이 손상될 것을 우려해서인지 동정적이고 품위 있는 태도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때,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 없는 그 순간에 그녀는 승낙했다. 실망한 나머지 나는 내 얼굴색이 창백해짐을 느꼈다. 나의 시선은 비난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나는 돌아서 버렸다. 그녀에게 그것을 보게 할 가치조차 없었다. 그런데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벗어나 어느 새 내 곁에 와 있었다. 그녀의 옷이 나에게 비쳤고 그녀의 따뜻한 꽃향기가 나를 감쌌다.
"정말로 노래를 부를 거예요."
갑자기 그녀는 덴마크어로 내 뺨에 대고 말을 했다.
"저 사람들이 원해서가 아니에요. 겉치레가 아니라, 지금 노래를 부르고 싶어졌기 때문이에요."
그녀의 말투에는 심술 어린 초조함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방금까지 내가 느꼈던 것과 같은 그런 초조감이었다.
그녀와 함께 멀어져 가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따라 나는 천천히 걸어갔다. 하지만 나는 높은 문가에 남아 사람들이 떠밀리고 정돈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검은 유리문 안쪽에 몸을 기대고 기다렸다. 누군가가 무슨 준비를 하는지, 누가 노래라도 부르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모르는 척했다. 이렇게 거짓말을 하는 동안 그녀는 이미 노래를 시작하고 있었다.
내 자리에서는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이탈리아 노래가 서서히 홀에 울려 퍼졌다. 그것은 명확히 합의된 노래여서 이방인들은 매우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노래하는 그녀는 그런 것을 별로 믿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녀는 애를 쓰며 곡조를 들어 올리듯이 노래했다. 너무나 무겁게 들렸다. 앞쪽에서 나는 박수 소리에 노래가 끝났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우울해졌고 부끄러움을 느꼈다. 약간의 동요가 있었다. 누군가가 걸어 나오면 나도 따라 나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갑자기 조용해졌다. 조금 전까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뜻밖의 정적감이 감돌았다. 정적은 계속되었고 긴장감을 가져왔다. 그러자 그 속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벨로네, 나는 아벨로네라고 생각했다.) 이번 노래는 힘이 있고 풍부하면서도 무겁지 않았다. 끊어진 곳이나 이음새가 없고 꾸밈이 없는 목소리였다. 노래는 잘 알려지지 않은 독일 노래였다. 그녀는 마치 어떤 필연적인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이상할 정도로 단순하게 노래를 불렀다.
나 그대에게 말하지 않으리
나 밤에 울며 잠 못 이루노라
요람처럼 흔들며
나를 지치게 하는 그대의 존재
그대 나에게 말하지 않네
나로 인해 그대 깨어 있노라
어찌 우리 이 즐거움을
잠 재우지 않고
우리 마음속에 참아낼까?
(잠시 쉬다 망설이듯)
사랑하는 이들을 보라
겨우 첫 고백을 하고서
얼마나 쉽게 거짓을 말하는가
다시 조용해졌다. 누가 만들어 낸 침묵인지 아무도 몰랐다. 그러자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서로 쿡쿡 찌르고 양해를 구하고 잔기침을 했다. 이미 그들은 명확하지 않게 웅성대는 일반적인 소음으로 옮아가고 있었다. 그 순간 느닷없이 그녀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결의에 가득 찬, 폭 넓고 일시에 몰려나오는 듯한 소리였다.
그대 나를 외롭게 하네
나 그대만큼은 바꿀 수 있어라
잠시 그 댁 머물다 간 자리
다시 바람 소리가 나고
남김 없는 향기 있어라
아, 내 품에 안긴 모든 것이 사라져도
그대만은 영원히 다시 태어나리
나 그대를 품은 적 없으니
그대 내게 영원하여라
누가 이런 노래를 기대나 했을까. 모두가 이 목소리에 굴복한 듯이 서 있었다. 마지막 부분에 이르자 그녀는 이 순간에 서게 될 것을 수 년 전부터 알고 있기나 했다는 듯 확신에 찬 모습이었다.
일찍이 나는 왜 아벨로네가 그녀의 커다란 감정을 신에게 돌리지 않았는지 자주 숙고해 보곤 했다. 나는 그녀가 자기의 사랑에서 모든 수동적인 요구를 없애기를 열망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참된 마음이, 신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오직 사랑의 방향일 뿐이란 것을 잘못 생각할 수 있었을까? 신에게서 보답 받는 사랑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걸 그는 몰랐을까? 우리들 같은 느림보가 마음을 다해 사랑할 수 있도록, 사랑하는 즐거움을 조용히 미룬, 이 훌륭한 신의 자제심을 그녀는 몰랐단 말인가?
아니면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를 피하려 했던 것일까? 도중에 그에게 붙잡혀 그의 사랑을 받을까 봐 두려웠던 것일까? 그 때문에 쥴리 레벤틀로프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일까?
메히틸드 같이 소박하게 사랑한 여인이나, 테레세 폰 아빌라처럼 그토록 격정적인 사랑을 한 여인이나, 혹은 "리마의 성스러운 장미"라고 불린 한 여인과 같이 그토록 상처받는 사랑을 한 여인들이 신의 위안을 받으며 쓰러졌음을, 비록 그들이 굴복은 했지만 사랑 받는 존재였음을 생각해 보면 어쩐지 내게 그런 믿음이 생겼다.
아, 약한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자가 이 강인한 여인들에게는 부당한 존재였다. 만약 그 여인들에게 남아 있는 기대라고는 끝없이 계속되는 길밖에 없었다면, 천국에 이르는 넓은 입구길에 다시 한번 형상화된 남자가 이 여인들에게 다가와서 잠자리로 여인들의 마음을 유약하게 하고 남성다움으로 그녀들을 혼란스럽게 만들 것이다.
그의 마음의 고굴절 렌즈가 이미 평행이 된 이 여인들의 마음의 광선을 다시 한 번 초점으로 끌어 모을 것이다. 그리하여 천사가 이미 전적으로 신을 위해 데려가기를 희망했던 이 여인들의 영혼은 동경의 사막에서 한순간에 불타오를 것이다.
원고지 여백에 씌어진 글
(사랑 받는 것은 불태우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하는 것은 마르지 않는 기름으로 빛을 발하는 것이다. 사랑 받는 것은 사라져가는 것이요. 사랑하는 것은 영원한 것이다.)
아마도 말년의 아벨로네는 직접적으로 신과 관계를 맺기 위해 마음을 다해 생각했을 것이다. 아말리에 갈리친 공작부인이 썼던, 깊고 내적인 명상을 연상시키는 편지를 그녀도 썼을 것이라 상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몇 해 동안 가까이 지낸 누군가에게 그녀가 이 편지를 부칠 경우, 그 사람은 그녀의 변모한 모습에 괴로워할 것이다. 그녀 자신도 괴로울 것이다. 추측컨대, 그녀는 무엇보다 유령과 같은 모습으로 변모할까 두려워했을 것이다. 그것은 얼마나 낯선 존재였던지, 그에 대한 모든 증거들이 사람들의 손에서 빠져나가 사람들이 그 모습을 알아채지 못할 지경일 것이다.
뭐니뭐니해도 나는 탕아의 이야기가 사랑 받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의 전설이라 확신한다. 그가 어렸을 때 그의 가족들은 모두 그를 사랑했다. 그는 그러한 사랑 속에서 자라났다. 아직 어렸던 그는 달리 생각하지 않았고 가족들의 연약한 마음에도 익숙해졌다.
그러나 소년이 되자 그는 이 익숙함을 떨쳐 버리려 했다. 그것을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하루종일 바깥을 쏘다니면서도 더 이상 개들을 데리고 다니지 않으려고 한 까닭은 개들까지도 그를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개들의 시선에도 관찰과 참견과 기대와 걱정의 빛이 들어 있었다. 그것들 앞에서조차 기뻐하거나 마음 상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지만 그가 그 무렵 의도했던 것은 마음의 내적 무관심이었다. 이른 아침 들녁에서 그는 그러한 마음의 상태에 순수하고 강렬하게 사로잡혔고 그럴 때면 아무 말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아침이 깨어나는 그 가벼운 순간보다 더 가벼워질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아직까지 실현되지 않은 삶의 비밀이 그 앞에 펼쳐졌다. 어느새 그는 오솔길을 벗어나 팔을 쫙 펼친 채 들판을 가로 지르고 있었다. 마치 그 너비만큼 사방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기라도 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 다음 덤불 숲 어딘가로 몸을 던졌다. 아무도 그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는 피리를 만들어 불기도 하고 작은 짐승을 향해 돌을 던지기도 했다. 그가 길을 막아 버리자 딱정벌레는 오던 길로 되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운명이 될 수는 없었다. 하늘은 마치 자연을 덮듯이 그의 머리 위를 덮었다.
이윽고 오후가 되자 갖가지 착상들이 떠올랐다. 투르투가 섬의 부카닐이 되어 보기도 했다. 그곳에는 아무런 의무도 없다. 캄페슈를 포위하기도 하고 베라쿠르스를 정복하기도 했다. 전체 군대나 말을 탄 지휘관이나 바다 위의 배가 될 수도 있었다. 느끼는 대로 다 되었다. 잠시 생각을 돌려 무릎을 꿇고 있으면, 곧 데오다트 폰 고존이 되어 용을 무찌르고, 그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런 영웅적인 행위는 복종을 모르는 불손한 행위라는 소문이 들리는 것이다. 그럴 것이 자유로운 공상은 놓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공상의 나래를 많이 펼친다 하더라도 새가 되고 싶다는 공상은 언제나 그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떤 새인지는 확실하지 않아도 좋았다. 다만 집으로 돌아가는 새만 아니면 되었다.
아, 얼마나 벗어 던지고 잊고 싶은 것이 많았던가. 완전히 잊는 일이 필요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사람들이 졸라대면 말하고 말 것이다. 아무리 주저하고 주위를 둘러보아도, 결국에는 지붕머리가 나타나고 말았다.
위층 첫 번째 창문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누군가가 거기에 서 있을 것이다. 온종일 기다리다 지친 개들이 수풀 속으로 달려와서 그를 원래의 소년으로 몰아갔다. 그리고 그 나머지 일은 집에 들어서면 저절로 해결되었다. 그 집안 가득한 냄새 속으로 들어서기만 하면 이미 대부분의 일은 결정되어 있었다. 물론 사소한 몇 가지는 바뀔 수도 있다.
대개는 이미 그들이 생각하고 있던 그로 돌아와 있었다. 얼마 안 되는 그의 과거와 자신들의 소망으로 그들이 오래 전에 삶을 결정해 놓았던 그로 돌아와 있었다. 이 공동의 존재는 밤이고 낮이고 그들 사랑의 암시 속에 있었고, 그들의 희망과 시기심 사이에 있었으며, 그들의 비난과 갈채 앞에 있었다.
그러므로 말할 수 없이 조심하면서 계단을 올라간들 소용없는 일이었다. 모두가 거실에 모여 있을 것이고 문이 열리기만 하면 일제히 쳐다볼 것이 틀림없다. 그는 어둠 속에 남아 그들의 질문을 기다릴 것이다. 하지만 다음 순간 가장 화나는 일이 벌어진다. 그들은 그의 손을 잡고 식탁으로 끌고 간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호기심 어린 눈으로 등불 앞으로 몸을 내민다. 그들은 그리 나쁠 것도 없다. 그들은 여전히 어둠 속에 있다. 그만이 불빛을 받아 얼굴이 훤히 드러나는 모욕을 받았다.
언제까지 거기 남아서 그에게 부가된 대강의 삶을 흉내 내고 얼굴까지도 그들과 비슷해지도록 방치할 것인가? 그의 의지가 가진 연약한 진실성과 그 자신을 타락시킬 상스러운 속임수 사이에서 그는 분열된 것인가? 여전히 연약한 심장만을 지닌 그 집안 사람들을 모욕할 수도 있는 사람이 되기를 포기할 것인가?
아니다, 그는 떠날 것이다. 그들 모두가 그의 생일상을 마련하느라 열중하는 동안, 그는 떠날 것이다. 영원히 가버리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 받는 끔찍한 상황에 빠뜨리지 않기 위해 결코 사랑하지 않기로 그가 그 당시 얼마나 굳게 결심했는지는 훨씬 뒤에야 깨달았다. 수년이 흘러 이것이 머리에 떠올랐을 때는, 다른 계획들처럼 이 계획도 실현이 불가능해져 있었다. 그럴 것이 그는 고독 속에서 사랑하고 또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매번 그의 온 정력을 소비하면서 상대방의 자유를 빼앗을까 봐 말할 수 없이 불안했다. 그는 자기감정의 빛을 태우는 대신 그것으로 사랑 받는 대상을 비추는 법을 서서히 배웠다. 그래서 사랑 받는 이의 형상이 점점 더 투명해지고, 그것을 통해 그 형상이 그의 무한한 소유욕에다 열어 준, 더 넓은 세계를 인식하는 데에 매혹되어 마음이 약해졌다.
자기도 그렇게 투명해지기를 동경하면서 그는 얼마나 여러 날 밤을 울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소망에 응한 사랑 받는 여인이라고 해서 아직 사랑하는 이는 아니다. 아, 그가 선사한 사랑의 선물을 조각조각 되돌려 받았던, 위로 받을 길 없는 밤들이여, 무상함의 무게여. 그럴 때면 두려워하는 것이라곤 자기들의 청이 받아들여지는 것뿐이었던 음유시인들을 얼마나 생각했던가. 그는 이런 일을 경험하지 않기 위해 점점 늘어나는 돈을 마구 뿌렸다. 그는 무례하게 돈을 지불하여 여자들의 마음을 상하게 했고, 여인들이 그의 사랑을 승낙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으로 매일매일 불안해했다. 왜냐하면 자신을 산산이 부서지게 할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희망을 그는 더 이상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날마다 더 가혹해지는 가난에 그가 깜짝 놀라게 되었을 때조차도, 그의 머리가 비참의 애호품이 되고 온몸이 완전히 닳고 닳았을 때조차도, 어두운 재앙에 몰린 궁핍한 눈동자와 같이 종기가 그의 몸 여기저기에 솟아올랐을 때조차도, 그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그를 버려 둔 쓰레기더미에서 스스로 자기의 더러운 꼴에 전율을 느꼈을 때조차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가장 경악할 일은 사랑에 응답을 받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저 포옹의 슬픔에 비하면 칠흙 같은 어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미래가 없다는 느낌으로 깨어나지 않던가? 위험에 처할 자격도 없이 무의미하게 헤매고 다니지 않던가? 죽지 않을 것이라고 수백 번 더 맹세해야 하지 않았던가?
숱한 추락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명을 지속시켜 준 것은 아마도 이 고약한 추억이 부리는 고집이었을 것이다. 추억은 자꾸만 되돌아가서 제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다. 결국 그는 다시 돌아오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야 즉 목자의 삶을 시작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많은 과거들이 조용해졌다.
그 당시 그에게 일어났던 일을 설명할 자 누구인가? 어느 작가가 길었던 그날들과 짧은 인생을 조화시켜 설득력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야윈 몸에 외투를 걸친 그의 형상과 온 방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던 거대한 밤의 암흑을 동시에 그릴 수 있는 예술이 어디 있으랴?
마치 머뭇거리는 회복기의 환자처럼 자신이 일반적이 존재이며 익명의 존재라고 느끼기 시작한 시기가 있었다. 그는 사랑하지 않았다. 아마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다. 몰고 다니던 양떼의 단순한 사랑에 그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구름 사이로 비친 햇살처럼 양떼의 사랑은 그를 둘러싸고 흩어져 초원 위로 부드럽게 빛을 발했다. 그 사랑의 배고픔이 남긴 천진무구한 자취를 밟고 그는 말없이 세계의 목초 위를 걸어갔다.
이방인들은 그를 아크로폴리스에서 보았다. 아마도 그는 보 지방에서 오랫동안 목자 생활을 하면서 석화된 시대가 고귀한 일족을 이겨내는 것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그 일족은 7과 3이라는 숫자로 고군분투했음에도 불구하고 열여섯 개의 별빛을 제압할 수 없었다. 아니면 오랑주에서 조야한 개선문에 기대어 쉬고 있는 그를 상상해 볼까? 혹은 아를의 지하묘지, 영혼이 묵고 있는 그늘에 서 있는 그를 상상해 볼까? 그의 시선은 부활자의 무덤처럼 열려 있는 무덤들 사이에서 잠자리를 쫓고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좋다. 나는 그의 모습보다 더 많은 것을 본다. 나는 그 무렵 신에 대한 긴 사랑을, 그 조용하고 목적 없는 일을 시작했던 그의 현존을 본다. 그럴 것이 영원히 자제하려고 했었던 그였지만 다시 한 번 그의 마음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자신의 청을 들어주기를 소망했다. 긴 고독 속에서 예감하고 확고해진 그의 존재가 그에게 약속했다. 이제 그가 생각하는 저 신이 투명하게 빛나는 사랑으로 그를 사랑해 줄 수 있으리라고. 하지만 마침내 그토록 훌륭하게 사랑 받게 되기를 그가 동경하는 동안에, 들판에 익숙해진 그의 감정은 신이 너무나 멀리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밤이 오면 자신이 신에게 내던져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일처럼 일어나는 마음에다 대지를 끌어올리기 위해, 대지로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드는 그런 시간들이 있었다.
그는 눈부신 언어에 귀 기울이고 열에 들떠 시를 쓸 궁리를 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전에 이 언어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서 당황해 하고 있었다. 우선 그는 의미 없는 첫 문장을 지어내는 데에 긴 생애가 흘러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경기장에 선 달리기 선수처럼 배움의 길로 달려갔다. 하지만 극복되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아 걸음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이렇듯 초보자라는 마음보다 더 겸허한 마음은 있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지혜의 돌"을 발견했지만, 이제 그는 급히 만들어진 행복의 황금을 쉬지 않고 참을성의 납덩이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한때 넓은 곳에 적응했었던 그가 이제는 출구도 없고 방향도 없이 벌레처럼 구불구불 기어다녔다. 그토록 힘겹고 괴롭게 사랑하는 법을 배운 이제, 그는 그때까지 행하려고 했던 사랑이 얼마나 나태하고 보잘것없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어떻게 그런 사랑에서 그 무엇이 생성될 수 있었겠는가. 사랑을 행하고 실현시키는 일을 그는 시작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때쯤 그의 마음속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신에게 가까이 가기 위한 혹독한 일을 하느라 신을 거의 잊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가 신에게서 얻게 되기를 바랐던 것은 "한 영혼을 지탱해 줄 인내" 뿐이었다.
인간들이 중요시하는 우연적인 운명에서 그가 벗어난 지는 이미 오래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즐거움과 고통조차 그 풍미를 잃고 그를 위한 순수한 자양분이 되었다. 그의 존재의 뿌리에서는 한파를 견뎌낸 단단한 식물이, 풍성한 결실을 맺을 기쁨의 식물이 자라났다. 그는 자신의 내적 삶을 형성할 자양분을 흡수하는 데에 완전히 전념했다. 그는 그 어떤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 어떤 것에도 그의 사랑이 들어 있고 점점 자라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의 마음의 내적 평정은 그가 일찍이 실행할 수 없었던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단지 소박하게 기다릴 따름이었던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만회할 결심을 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는 유년 시절을 생각했다. 조용히 생각해 보면 볼수록 유년 시절이 공허하게 지나간 것처럼 여겨졌다. 모든 추억들은 그 자체로 예감과 같이 모호한 데가 있었다. 그 추억들을 이미 지나간 일로 간주하는 것은 추억을 거의 미래의 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을 다시 한 번, 그리고 이제 정말로 겪어 보자는 것이 떠났던 자가 고향으로 돌아온 까닭이었다. 그가 거기에 남을런지는 알 수 없다. 그가 돌아왔다는 사실만을 알 따름이었다.
이 이야기를 했던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우리에게 그 고향이 어떠했는지를 상기시키려 했다. 그곳에서는 세월이 얼마 흐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아 있는 사람들이 얼마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헤아려지는 세월이었다.
개들은 늙었지만 아직 살아 있었다. 그 중 한 마리는 쫓아 나와 짖었다고 한다. 하루 일과가 중단되었다. 사람들이 창문에다 얼굴을 내밀었다. 어른이 되어 이제는 늙어 버린 얼굴들, 감동을 줄 정도로 닮은 얼굴들이었다. 그리고 완전히 늙어 버린 한 얼굴이 갑자기 창백해져서 그를 알아보았다. 알아보았다? 정말 단지 알아보기만 했단 말인가? 용서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을 용서한단 말인가? 그것은 사랑하는 얼굴이었다. 아, 사랑의 얼굴이었다.
이제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게 된 자, 그는 너무 바쁘게 사느라 그런 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이제 일어난 일들 가운데 그의 몸짓, 누구도 들어 본 적 없는 그 몸짓에 대해서만 전해져 온다는 것도 납득이 가는 일이다. 그는 간청하는 몸짓으로 그들의 발에 몸을 던지고는 그들이 자신을 사랑하지 말 것을 애원했던 것이다. 그들은 깜짝 놀라며 황급히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들은 그를 용서하면서, 격렬한 그의 태도를 나름대로 해석했다. 그의 태도가 분명히 절망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이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그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해방감을 가져다주었다.
아마도 그는 전처럼 고향에 머무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그토록 공허하게 느끼고, 서로 비밀스레 경쟁하는 사랑이 그에게는 해당되지 않음을 하루하루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애쓰는 것을 볼 때면 우습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들이 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으리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들은 전혀 알 수 없었다. 이제 그를 사랑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리고 단 한 분만이 그것을 할 수 있음을 그는 느꼈다. 하지만 그분은 아직 그를 사랑하려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