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박참봉은 오늘, 유난히 유쾌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가 이 고을에 이사와 근 이십 년 동안 큰일 작은일에 훼방을 놓고, 앞으로 뒤로 방망이를 들던 박리균네 형제가, 인제 드디어 박참봉한테 완전히 굴복할 날이 왔기 때문이다.
두뭇골 집 사랑에서―형걸이 모친 윤씨는 일찌감치 자리를 떠나 안방에서 평양 영감이 잡아들여 온 물고기를 조리는데, 간을 맞추어 장을 두어 주고 갱엿을 청간에서 내다가 간장이 한소끔 끓어 오를 때에 넣으라고 종에게 이르고 있었고, 박참봉은 혼자 자릿속에서 새벽잠에 아직 취해 있었다.
그런데 대문 밖에서,
“박참봉 어른 기침하셨쉥까.”
하는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가 박리균이가 아니면 그의 동생일 게 분명한 건, 어제 저녁에 사랑에 와서 대충 이야기를 맺고, 내일 아침 박리균이든가 박성균이를 직접 들여보내겠노라고 한, 중간에 선 김생원의 말로써 짐작할 수 있었다.
박참봉은 부르는 음성을 듣고, 그게 누구라는 걸 짐작하고도 인차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삼남이란 놈이 대문간에 나갔다 와서 전갈을 할 때까지 베개에 머리를 눕힌 채 있었다.
그는 힘들게 일어나서 옷을 대충 주워 입고 자리를 부욱, 요포단을 가운데로 접어서 뒷목으로 밀어 놓은 뒤에, 사랑문을 열어서 공기를 뽑았다.
“들어오라구 그래라.”
이렇게 이르고 그는 버릇인 기침을 두어 번, 그 다음엔 자리끼 숭늉 남은 걸로 입을 가시어 타구에 뱉었다. 아랫목 보료 위에 돌아와 담뱃대를 들어 소털 같은 기새미를 담으려는데 박리균이가,
“너무 일러서 이거 안됐소외다.”
하며 들어온다. 오십이 넘어 감투 쓴 머리에는 흰 털이 많이 섞이고, 궁이 끼고 초라스럽게 생긴 갤즘한 상에는, 잔주름과 노란 수염이 채신머리없어 보인다. 이 상판때기가 술이 얼근하면, 연신, “성씨는 박귀성의 처니 성논산의 장녀라”만 되풀이하니, 과시 볼 만한 일일 게라고 박참봉은 속으로 생각하면서,
“어서 들어오십시오. 머, 이번에 또 큰 배포를 가지셔서, 아무려나 시세에 따라 남보담 먼저 손을 써보는 것두 괜찮은 일이웬다. 담배나 한 대 붙이우다.”
부스럭부스럭 두루마기 속에서 주머니를 만지는 품이, 집문서를 꺼내려는 게 분명한 걸, 박참봉은 또 한번,
“자 한 대 붙이우다.”
하고 기새미 담은 옥초합을 밀어 내놓는다. 그러니까 박리균이도 주머니 만지던 손을 빼서, 담배를 한 대 담는다. 옥초합을 밀어 놓고, 놋화로에다 긴 담뱃대를 박고 뻐끔뻐끔 빨아 올린다.
“어젯밤 김생원한테서 대강한 이야기는 들었는데, 머 거기에 더 다른 말씀은 없겠습지요.”
담뱃대를 물고, 문갑 옆 사방침에 의지하여 척 한마디를 한 뒤에, 다시 이어서,
“두 집문서에, 사백 냥, 육자 변으루.”
하고 이야기의 요령을 추려서 말하니, 박리균이는 물고 있던 담뱃대를 급작스레 쪽 소리가 나게 입에서 뽑고, 안 나오는 웃음을 노란 수염 오라기 옆에 그려 보면서,
“머 틀릴 리가 있가쉥까.”
하고 저보다 여남은 살이나 아래인 박참봉에게 껀듯 머리를 숙이듯 한다.
박참봉이 쇠를 들고 뒷벽장문을 열려고 일어서는데, 박리균이는 주머니에서 집문서 두 장과 표 쓴 걸 내놓느라고 앉은 자리에서 아무적거린다.
문서와 표를 훑어본 뒤에, 박참봉은 사백 냥의 돈을 박리균이 앞에 내놓았다.
“그럼 집을 곧 떨어 고쳐야 단오에 쓰게 되겠군요. 그러구 이왕이니게루 방선문 비각두 떨어 고치기루 하지요.”
이 마지막 말은 적지 않이 박리균의 귀를 간지럽게 할 줄 알고 하는 말인데, 오히려 그는,
“첨엔 그렇게두 생각해 봤는데, 내 집을 떨어 고치구, 또 내 아우의집두 대강 고칠 곳이 많아서 돈이 자랄 것 같지가 않구만요. 그래 비각 같은 건 차차루 하구, 우선 두 집에 달린 열 넘는 식구가 살구야 볼 일이 아니웽까.”
하고 자기를 완전히 죽여 버리듯이 박참봉의 말에 빌붙고 만다.
“암 그 다 이를 말씀이웽까. 비각이 밥 멕여 주는 건 아니닌 게루. 아무려나 생각은 잘하신 생각입네다. 이제 종차루야 객줏집두 새법을 좇어야지 마방을 가지구야 마바리꾼이나 재웠지, 어데 점잖은 손을 맞을 수가 있쉥까. 신작노두 나구, 인제 평양과 원산 새에 길이 열리구 볼 지경이면, 아마 점잖은 객이 많이 들릴 게구, 지금 칭량사(測量師)나, 모두 이런 신식 양반들이 통히 이 큰 객주에 들게 될 게 아니웽까.”
아무려나, 처음은 적지 않이 마음이 불쾌한 대로 하는 수 없이 김생원을 이 집에 보내 돈 교섭을 시켰을 값이나, 이왕 이리 된 바에는 별수없는 일이었다. 겉으로라도 기쁘두룸해서 물러 나갈밖에, 뒷일을 위해서는 별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박리균이도 단오에 열리는 대운동회를 기회삼아 제 집을 떨어 고쳐 신식 여관을 차리고, 동생 성균네 집은 그래도 좀 성성하니 그대로 낡은 곳만 고쳐서 마방과 국숫집을 차려 보자고, 형제간 성론이 되어 돈을 내려고 할 때, 처음부터 박참봉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집 저집 다녀 보아도 집을 잡고 돈을 줄 곳은 없었으나, 끝으로 나카니시네 집에서는 틀림없이 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운동회 앞두고 잡화상을 부쩍 늘릴 생각인지 돈이 바르다고 거절을 당하여, 결국 하는 수 없이 박참봉에게로 사람을 보내 본 것이었다.
박참봉은 박참봉대로 딴 배짱이 있었다. 종차론 여관이나 잡화상 같은 것이 성해 갈 눈치가 뻔하지만, 제 손으로 그런 걸 벌여 보기엔 아직 시기상조라고 본다. 그러나 이런 걸 남보다 먼저 손쓰는 편이 결국 이긴다는 것도 또한 뻔한 일이고 보니, 구차한 일은 남에게 시켜 놓고 자기는 뒤에서 실권만 잡아 두는 게 어느 모로 따져도 영리한 계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 여관 같은 걸 차려 놓겠다면, 손해나지 않을 정도로 돈을 융통해 주겠다는 것이 박참봉의 본배짱인데, 마침 날아 들어온 불벌레가 박리균네 형제다.
그래 그는 두 집 문서를 잡고, 그 중의 한 채는 단오 전에 곧 떨어 고칠 것을 약조로, 그편에서 요구하는 대로 한 푼도 깎지 않고 알돈 사백 냥을 돌려 주기로 한 것이었다. 여관이 잘 되면 잘 되는 만큼씩 변리를 물어 가느라 바쁠 것이요, 생각대로 잘 안 되면 일이 년 안짝에 집을 뺏기고 바가지쪽을 차게 될 판이다. 그야 어찌 되었건, 박참봉으로서는 무엇으로든지 한번 박리균네 형제를 꿇려 엎으려고 별러 오던 참이다.
박리균이를 보내고 나서, 그가 만족하여 아침 밥상을 든 것도, 과시 까닭이 없지 않진 안 했던 것이다.
그런데 유쾌한 일이 뜻밖에 불쑥 생겨난 뒤에는, 가끔 또 불유쾌한 일이 뜻하지 않은 곳에서 튀어나오는 것도, 살아가노라면 흔히 볼 수 있는 일인 성싶다.
박참봉이 아침을 먹고도 한참 동안이나 두뭇골 사랑에 앉아서, 문서를 정리하고 표를 뒤적여서 채국채국 꿰매 간직하고, 어젯밤 김생원과 먹었던 술찌꺼기를 터느라고 밀수를 타서 시원하니 배를 씻은 뒤에, 오늘은 제법 날이 따가우니 자리 그물이나 한떼 들고 평양 영감과 매생이나 강 위에 띄워 볼까나-―-- 이렇게 척 기분을 돋우면서 감투 바람에 두뭇골서 큰집 사랑으로 나왔던 것이다.
마당엘 들어서니 평양 영감이 그물을 추녀 끝에 널고 있다가,
“날새 안녕하시웽까.”
하고 인사를 한다.
“낮에 어데 넘은 강에나 가볼까요.”
박참봉은 영감을 위로하느라, 얼마 전부터는 깍듯이 예를 하였다.
“나리께서 자리를 치시구, 절랑 어데 쏘가리나 좀 낚아 봅세다. 잠수를 했으믄 쏘가리놈이나 찔러 내겠던 걸, 늙어서 건 못 해두, 돌꼬미나 미끼해서 어데 멫 놈 낚아 봅세다.”
아마 평양 영감도 박참봉의 유쾌한 낯을 대하는 건 기쁜 일임에 틀림없는가 보다.
담뱃대를 물고 박참봉은 마당을 한번 휭하니 돌아본다. 연자간으로, 곡식이 가득하니 들어가 있는 토굴 앞으로, 외양간으로 가서 말을 한참 들여다보고, 그 다음은 다시 이쪽으로 돌아서 바자를 넘어 파종해 놓은 나무샛과, 잎이 파란 과일나무를 바라보고, 뒷대문께까지 갔다가 다시 되짚어서, 사랑 마당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모두 평온하다. 소는 밭갈이를 나가고, 노새는 연자간에서 쌀을 찧고, 그리고 재지풍이 옆에는 두칠이 처 쌍네가 수건을 쓴 채 겨와 먼지에 싸여서 여전히 일을 하고―그래서 그는 유쾌한 김에 중대문을 들어가 안마당을 돌아보는 것이다. 며느리들이 인사를 한다. 큰댁도 인사를 한다. 손주란 놈이 뿌르르 뛰어나온다. 그는 아이를 좀해서 안아 주는 성질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은 어인 일인지 성기가 걸어나오는 걸 닁큼 들고 또 한 대문을 들어가 뒤뜰 안으로 간다. 가시 울타리 앞에 커다란 살구나무가 있고, 그 밑이 대감인가 토궁인가 무슨 귀신인가를 모신 볏집 주저리에 흰 백지를 매단 복낟가리가 있고, 그 주위로 창포가 한창 자라나고 있다. 머리칼로 꼰 빨랫줄이 중간에 장때기를 한 개씩 세우고, 이편 추녀에서 저편 추녀까지 살대처럼 건너가 있다. 움이 저렇게 저만큼 보이는데, 모란꽃과 함박꽃이 푸렇게 자라 나오고 있다. 늦은 봄에서 이른 첫여름으로 옮아 가는 계절의 태양볕은, 뜰 안에 쨍쨍하니 함뿍 퍼붓고 있다.
“이놈, 너 웬 밥을 이렇게 먹었노.”
“뚱게 뚱게 뚱게뚱.”
이렇게 손자보고 중얼대면서 박참봉은 다시 중뜰 안으로 나온다.
“에끼, 그놈 무거워 못 들겠다.”
토방에다 성기를 놓으니,
“얘 성기 오늘 호사했구나, 하루바니한테 다 안겨 보구.”
하고 형식이를 문턱에 세우고 앉았던 그의 할머니는 손을 너울너울 아이에게로 내미는데, 형준이 처는 부엌문에 있었다. 그들은 시아버지가 중대문을 나가서 없어지도록 그럭하고 서 있었다.
집 안팎을 한번 돌아보아, 모두 평온하고 흡족한 것을 제 눈으로 친히 본 뒤에, 박참봉은 더욱 만족하여, 오늘은 강 위에 매생이나 띄우고, 고기나 낚으면서 고추장 불림에 술이나 한잔 들이켜 보자고 내심에 생각하면서, 문갑과 장간과 벽장을 보살핀 뒤에 옷을 깡충하니 갈아입으려던 때이다. 맏아들 형준이가 조용히 할 말이 있다고 사랑으로 나와서 박참봉 앞에 꿇어앉는 것이다.
대님을 풀어서 버선을 바꾸어 신으면서,
“그래 무슨 말인지 해봐라.”
‘혹시 얼마 전처럼 또 잡화상 같은 걸 벌여 보겠다고 그러는 거나 아닌가, 만일 그렇다고 보면 박리균네가 집을 잡히고 돈을 내어다, 마방 대신에 커다란 여관 객주를 시작하겠다는 것까지를, 소상하니 말하여서 이제 일이 년만 그대로 집안일을 보살피고 있으라고 타이르리라.’
속으론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뜻밖에 형준이는,
“형걸이 혼사가 어떻게나 되어 가는가요.”
하고 첫 허두를 시작한다.
‘맏형 된 몸으로, 나이 차도록 장가를 들지 못한 아우의 혼사 걱정을 하는 건, 지당한 일이다. 그래 새삼스럽게 어데 좋은 규수래도 맞차운 곳에 생겼다는 말인가.’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해 보면서,
“지금두 거저 그러하구 있다.”
하고 대답한다.
“머 맞차운 집에 규수가 없어서 그러는 겐가요.”
“글쎄, 말하자믄 그렇다구두 할 수 있지만, 그래 어데 될 만한 곳이래두 있더냐.”
“아니올세다. 너머 좋은 델 고르다가 시기를 놓치든가, 잘못이 생기든가 할까 봐서 하는 말씸이올세다.”
“좋은 델 고르는 게 아니라, 정 너절한 데 피한다는 게 온당한 말일 게다.”
여기서 박참봉은 말소리를 좀 낮추어 가며,
“너이덜과는 사정이 다르질 않냐. 어데 웬만한 데는 그쪽에서 잘 안 들을 것 같애, 멀찌감치 비쳐만 보구서 마는 일이 많구, 또 체면이 있으니 마구 처져 붙을 수두 없구. 그래 안즉은 거저 여기저기 비쳐만 보구 그러한 채루 있다.”
형준이는 아버지의 설명을 듣고도 물러 나가질 않고 한참 동안 그럭하고 앉아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안방을 향하여, 고기사냥 갈 테니 점심 준비를 해서 매생이 맨 데로 가져다 두라고 이르려는데, 피끗 형준이의 얼굴을 보니 아직도 할 말이 남아 있다는 듯이, 입주둥이를 약간 히둘거리고 앉았다. 그래서 다시 박참봉은 자리를 바로하고 한번 아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다름이 아니오라, 형걸이를 그대루 두다가는 창피한 꼴을 보겠습너니다. 어젯밤 으슥해서 마당을 한번 돌아보는데, 형걸이가 두칠네 방에서 나오는 걸 봤습너니다.”
단바람에 죽 일러바치고 형준이는 잠시 낯을 수그리었다. “마당을 한번 돌아보는데” 하고 간단하니 말하였으나, 그 한마디 속에 실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만 곡절이 들어 있던 걸 생각지 않을 수 없었던 때문이다.
물론 박참봉은 이 말에 적지 않이 놀랐다. 아닌밤중에 두칠이 없는 쌍네 방에서 형걸이가 나오는 걸 봤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함인지는 설명치 않더라도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박참봉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형준이는 이러한 아버지의 태도에 기운을 얻었는지, 다시,
“그래, 제가 잡어 세우굴랑, 지금 혼삿말이 여기저기서 빗발치듯 하는데, 네가 몸 처신을 이렇게 하구 보면 어떻게 되겠느냐구 일렀습더니, 그는 잠자코 섰다가, 누가 뭐랬는가구 하는구만요. 그래 밤두 늦었으니 인젠 가 자라구 하구서, 두칠이 처보구 멫 마디 기갈이래두 할까 했다가, 외려 덮어두는 게 창피가 덜할 것 같애서 그대로 내버려뒀습너니다.”
박참봉은 여기까지 말하도록 잠자코 앉았다가 아들의 말이 떨어지자 곧,
“알갔다. 이전 네 일이나 나가 봐라.”
하고 안문 쪽으로 터거리를 돌렸다. 또 무슨 말을 내친김에 좀더 늘어놓으려다가, 형준이는 아버지의 말에 좀 무색해져서,
“예.”
하고 나직이 대답하곤, 푸시시하니 안뜰로 통한 문을 열고 나갔다.
형준이가 나간 뒤에 박참봉은 잠시 동안을 멍하니 앉았다가 바꾸어 입었던 옷을 다시 갈아입었다.
평양 영감이 재촉이나 하듯이 윗마루로 올라와서 방문을 벙싯하니 열어 보는 것을,
“난 또 갑재기 볼일이 생겨서 못 갈까 부외다. 내일이나 가보갔수다.”
하고 말해 버린다.
박참봉은 지금 당한 일이 적지 않게 불쾌했던 것이다. 평양 영감은 얼굴에다 웃음을 띄면서 매생이 놀음을 재촉하려다가, 느닷없이 거절을 당하고 나서 어인 일인지는 모르고, 좀 메사해서, 방문을 닫았다. 그가 그물과 낚시를 들고 매생이죽을 둘러메려 할 제, 박참봉이 감투 바람으로 휭하니 대문을 나가는 걸 바라보고 속으로 혼자, 무슨 일이 생겼나 보다, 하고 생각해 보았다.
박참봉은 담뱃대를 뽑아서 휭휭 내두르며, 향교 골목을 돌아 밭샛길로 들어서서 두뭇골로 댓바람에 쫓아갔다. 물론 형걸이는 학교로 간 뒤이다.
그러나 박참봉이 지금 두뭇골 집으로 되짚어 오고 있는 것은, 형걸이를 불러 세우고 책망을 한다든가, 사실의 진부를 가리려든가, 뭐 그러기 위하여선 아니었다. 그러므로 형걸이야 있건 없건 상관은 없었다.
그러나 대문을 들어서서, 그가 완전히 두뭇골로 돌아왔다는 걸 의식하였을 때, 금방, 제가 하고 있는 행동이 좀 채신머리없이 느껴진다. 그만한 일에 제가 고기사냥 가려던 걸 중지하고, 부리나케 두뭇골로 쫓아왔다는 건 생각해 보면 창피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들이 비복의 방에 들었다는 것―그것이 가령 형준이 말대로 사실이라고 해볼 값이라도, 이렇게 큰 변이 난 것처럼 서둘러 댈 거야 없지 않느냐 말이다.
이렇게 생각이 가니, 그는 그대로 방안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실인 즉 작은댁과 형걸이의 혼삿말이나 두루두루 급히 이야기해 볼 양으로 달려온 것인데, 그것 역시 급히 서둔다고 신통하게 잘 될 일도 아니고, 또 그다지 시각을 다툴 만한 일거리도 아니었다.
사실 박참봉의 이러한 저 자신조차 종잡을 수 없는 수상한 행동의 동기가 된 것은, 유쾌한 아침을 갑자기 흐리게 한, 그것에 대한 분통이었다. 형준이가 그런 걸 듣고 형걸이의 혼처를 너무 고른다느니 뭐니 하는 게, 마치 작첩(作妾)에 대한 무엄한 비평같이 들려서 그게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러나 형준이의 말에 이러니저러니 타박을 하고 싶은 지향없는 격분이, 이렇게 그로 하여금 두뭇골로 통한 길을 부리나케 쫓아가게 마련해 버린 것이다.
그는 다시 마당을 휭 돌아 무어 잊어버린 거나 찾는 양, 구석구석을 기웃거리다가 그대로 대문을 나와 버렸다. 그 다음은 누가 보면, 느지막이 두뭇골 집에서 조반을 먹고, 지금 행길 큰집으로 가는 길이란 듯이, 늘어지게 담배를 뻐금뻐금 빨면서, 왼손을 하나 주먹을 만들어 뒤꽁무니에 대고, 구룡교 옆으로 개울을 끼고 나와서 행길로 올라선 것이다.
평양 영감은 벌써 강으로 나가 버린 뒤였다. 그래서 곧 다래끼나 광주리에 점심을 담아 보내라고 이르고, 박참봉은 무심결로 자리그물을 한떼 더 들고 물역 뒷대문께로 나갔다. 그런데 채 뒷대문을 나서기 전에, 제 방에서 나와 토방으로 돌아드는 두칠이 처 쌍네를 만났다. 오늘 잡아 두 번째 보는 얼굴인데, 형준이의 말을 들은 뒤이라 쌍네의 얼굴이 아까와는 달리 보였다. 그렇거니 해서 그런지, 저편에서 낯을 붉히고 여느 때보다 더 머리를 숙이고 길을 비킨다.
“얘, 너 점심을 넣어 놨을 테니 매생이 있는 데루 니구 나오나라.”
예사대로 이렇게 이르니,
“예.”
하고 대답하기는 하나, 쌍네가 저쪽으로 사라져 없어졌을 때, 박참봉은 제가 지금 말만은 여전히 하였으나 속은 좀 주춤거리던 걸 되새겨본다.
‘저게 처음은 종간나드니, 막서리의 처를 지내서, 인제는…… 그렇다. 인제는 셋째 아들의 정부란 말이다.’
이런 걸 생각해 보면서,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것이 별로 형걸이의 못된 소행인 탓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일을 저질러 놓은 형걸이에게 급작스레 미움이 가든가 그렇진 않던 것이다. 강가에 나서면서는 박참봉은 벌써, 그런 지저분한 시끄러운 생각은 애써 털어 버리려고, 매생이가 있는 방수성 아래를 눈에 손을 얹고 먼발로 내려다보다가,
“페양 영감, 잠시 매생이를 돌려 붙이우. 난두 가치 갑세다.”
하고 고함을 질렀다. 매생이는 기슭을 떠나서 고기잡이터로 막 여울을 훑으려고 하던 참이었다. 그는 삿갓 쓴 머리를 소리나는 쪽으로 돌려 보고, 그것이 박참봉 나리라는 걸 알자, 아무 말도 안 하고 매생이를 궁개로 돌려 대며 다시 말뚝을 박은 기슭으로 저어 온다. 이것을 보고 섰다가 박참봉은 방수성을 내려서서, 어청어청 아래 청파니〔靑坡〕께로 향하여 걸어갔다.
“아니, 머, 일을 다 보셨습너니까.”
하고 비로소 벌죽하니 웃으면서 한 손으론 꽉 매상죽을 붙들고 박참봉을 맞아들이는데, 그는 그물을 먼저 들여놓고 낑 하고 배 안으로 들어서면서,
“대강 다 봤수다.”
하고 배 가운데로 온다. 다시 매생이를 떼려는 걸,
“가만있수, 좀 끓일 것과 술을 넣으라고 했으니 인제 누가 니구 나오리다.”
저만큼 방수성 위에서 아랫길을 잡아 쌍네가 광주리에 무얼 담아 이고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해는 따가우나 바람은 비류강 위를 스쳐서 싸늘하다.
급작스레 쏘가리 생선국을 끓여 반주로 한 그릇 먹고, 박참봉은 얼근히 취해서 두뭇골 집으로 왔다. 어두운 지 한참 되는 초여름 밤인데 저녁때부터 날이 흐릿해 오더니 밤중 안에 비가 오려는지 공기가 제법 훗훗이 물쿤다.
사랑으로 들어오니 작은댁 윤씨가 등잔을 돋우고 자리를 깔아 놓고 기다린다.
“저녁은 머 잡수셨소.”
“잡아 온 걸루 쏘가리 생선을 끓여 먹었지. 그래 참 고기 디레 왔던가.”
“쏘가리 두 놈하구 지가리새끼 메기새끼랑은 끓여서 형걸이랑 주구, 모래무치랑 마지랑은 장조림을 해두었지요.”
박참봉은 발을 뽑고, 자리끼를 부욱 끌어다 벌떡벌떡 마시는데,
“부주주하시거던, 오미자나 밀수를 타올걸요.”
하고 말로만 텀을 한다. 그러나 박참봉은 물을 한참이나 마시고,
“형걸인 집에 있나.”
하고 묻는다.
“좀전에 바람 쏘인다구 나가두군요.”
“또 나가서?”
박참봉의 낯을 다소 언짢은 기색이 지나간다. 그러더니 곧 되짚어서,
“어젯밤은 어느 때에나 돌아왔나.”
하고 묻는다.
“글쎄요, 자정 전이었겠지요.”
윤씨의 대답에 박참봉은 아무 말대꾸를 않고 한참을 멍하니 등잔불만 바라본다. 아직 사십 전인 윤씨는 눈매와 자태가 그대로 이쁘게 젊은 것 같다. 다른 날따라 없이 찌풋한 영감이 어인 까닭인지를 모르고,
“어서 저고리랑, 이 감투랑, 좀 벗으시구 누우시구려.”
하면서 감투를 벗겨 문갑 위에 놓고, 손수 저고리를 벗기고 또 허리끈도 끌러 준다.
“해가 따거운지 좀 타셨구려.”
그러나 몸을 맡긴 채 박참봉은 자리에 누울 염도, 윤씨 말에 대답할 염도 안 하고 있더니,
“형걸이놈이 밤에 어데 가 노는지 몰라.”
하고 느닷없이 형걸이 말을 또 묻는다.
“글쎄요, 저 학도덜끼리 어데 뫼여 놀든지, 교사네 집엘 가든지 그러겠지요.”
박참봉은 자리에 누워 버린다. 그러더니 또 일어나서 물을 한 모금 더 마시고,
“담배 붙일까요.”
하고 묻는 데는 대답을 않고,
“청시울서 무슨 소식이 없었나.”
하고 묻는다.
“오눌 저녁 해 넘어가기 전에 중매 여편네가 왔는데, 하는 말이 채 말은 안 뗐으나 될 성부르다구 하긴 합데다만, 원 색시나 가문이 맘에 들으야지요.”
“왜, 그 집이 어드래서.”
“어드렇다니요. 망조에 들어 기우는 집안이 아니웨까.”
“망조에 들었거나 집안이 기울거나, 규수나 똑똑하믄 그만이지, 처갓집 국물을 얻어먹을 차빈가, 누가.”
“글쎄, 세간이야 어찌 됐건, 규수가 똑똑하믄 그만이라지만, 처갓집두 너무 가난하구 보면 사사모사로 시끄럽지 않은가요. 그러나저러나 규수나 얌전하다믄 모르겠는데, 말을 들이니 질쿠냉이두 변변히 못 하구, 아이가 또 영리하질 못하다누만요. 게다가 또 궁합이 안 맞는다는가 부외다.”
“궁합이 안 맞아? 그럼 그른 혼사지.”
질쿠냉이를 못 한다든가, 생김새가 좀 영리칠 못하다든가, 한다는 것쯤은 어떻게든 우겨 대 볼 길도 있을 것이고, 더구나 사돈집이 쇠운에 들어서 세간이 기울어져 간다는 것 같은 건 소뱅이 문제도 안 되는 말이라고 재겨라도 보겠는데, 실소린진 몰라도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덴, 박참봉도 어이할 방도가 없었다. 그래 그는,
“뭐이 뭐인데, 궁합이 안 맞나.”
하고 좀더 소상히 천착해 본다.
“겉궁합이 토끼하고 뱀이라서 맘이 덜 내키는데, 속궁합은 또 말할 수 없게 나쁘답네다그래.”
이 말을 듣고 박참봉은 붙여 주는 담배를 몇 모금 빨다가 이어 윤씨에게 주고, 자리에 누워 버린다. 누비이불을 사뿐히 덮어 주면서,
“불을 끄리까.”
하고 윤씨가 묻는 것을,
“오눌 밤 형걸이 둘어오거들랑, 인전 밤에 아여 밖에 나가질 말라구 일러두게.”
하고 눈을 한번 감아 본다.
“아니, 왜요. 어데 못 갈 델 간답디까. 기 애가.”
윤씨가 좀 실색한 빛으로 묻는다. 박참봉은 그렇게만 말해 두고, 사실은 깨우쳐 말하지 않으려고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그 녀석이 두칠이 처를 봐 댕긴다니, 원, 하구많은 계집 중에.”
이렇게 말하고 이야기를 채 아물지 아니하니, 윤씨는 깜짝 놀라,
“그게 무슨 말씀이웨까. 형걸이가 막서리 처를 보아 당기다니, 어데서 음해의 말씀이라도 들은 게지. 차마 그럴 리야 있겠소. 그래 어데서 진정을 알아보셨나요.”
“글쎄 그렇게만 알구 있어. 여러 말 옮길 게 없이.”
박참봉은 몸을 한번 뒤채고 푸 술 냄새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윤씨는 무얼 말하려고 입술을 나불나불하며 그의 옆에 앉아 있다.
10
박참봉이 은산서 솔가하여 두뭇골로 왔다가, 행길에다 큰집을 사고 첩 큰댁을 갈라서 두 집 살림을 벌여 놓고 얼마 안 해서, 박리균네 동서끼리와 옆집 음해 잘하는 노파와 셋이, 선앙제터에 갔다 오는 길이라고 두뭇골 작은댁에 들러서, 박참봉의 첩 윤씨의 얼굴 생김새를 보고 간 일이 있었다. 그때 그 음해 잘하는 노파가, 윤씨의 얼굴을 치쳤다 내리쳤다 하던 끝에 그가 알아 온, 열일곱에 시집 와서 열여덟에 첫아들 낳았다는 두 가지 사실에다, 된 소리 안 된 소리를 잔뜩 부연해서 하는 말이, 박참봉 성권이가 한포락 적에 투전판에서, 남의 갓 시집 온 색시를 도적질해 업어 왔다고 훼방을 놓고 다녔다.
그때 이 고을 사람들은 원체 남의 음해 잘하기로 이름이 난 늙은 것의 수작이니, 뭐 믿을 만한 소리가 되겠느냐고 하면서도, 결국 일 종 시기하는 마음이 따라서 그대로 그 말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그 뒤에 다시 그의 내력을 조사해 보는 사람이 있었다면, 사실과 어금비금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었을 것인데, 십 년, 십오 년, 이렇게 살아가면서 아이들이 장성해 가고, 박참봉네도 점차 이 고을선 토박이 사람이 되어 가는 데 따라, 사람들의 호기심은 사라지고 이젠 다시 윤씨의 경력을 알고자 하는 이조차 없어졌다.
윤씨는―그의 아이 적 이름은 탄실(誕實)이었다―사실 열여섯 났을 때 순천(順川) 고을로 시집을 갔던 적이 있었다. 그의 친정은 자산(慈山) 고을서 오 리 가량 시골로 들어간 곳에 있는 파평 윤씨(坡平 尹氏)로서, 처음은 집안도 훌륭하고 세간도 넉넉해서 행세하는 집안이었으나, 말년에 쇠운이 들어서 집안은 갑자기 기울어지고 역참(逆慘)이 잦아서 그만 말 아닌 형편이 되어 버렸다. 친정의 불운을 지니고 시집을 갔었던지, 그가 시집 가 반 년이 못 되어 새서방이 장마 났을 때 창말 앞으로 반두사냥을 나갔다가, 거센 물결에 휩쓸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본시부터 시어머니와 새가 나쁘던 데다, 이런 일이 일어나고 보니, 왕신이 붙어 왔다고 비양청 소리가 높고, 집안이 모두 삘기 뽑듯 하는 바람에, 세간을 둘러 싣고 순천서 자산 친정으로 돌아와 버리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친정에는 늙은 부모와, 올케가 아이 둘을 데리고 살고 있었는데, 오라비는 연전에 상한으로 좀 앓다가 급작스레 죽어 버렸다. 대감이 동했다나 무슨 왕신이 동했다나 해서, 지난 가을에도 큰 도야지를 잡고 굿을 하고 철철이 토사를 하건만, 집안은 바로서지 않고 세간만 점점 줄어들었다. 양주의 희망은 딸 아래로 하나 있는 열 살 난 아들과 손자 오뉘가 있을 뿐인데, 며느리의 청상처럼 혼자 늙는 것도 보아나기 거북스러운 터에, 이번엔 한번 더 덮쳐서 과부 된 딸까지를 한 집에 두고 속을 썩여야 할 판이었다.
딸 탄실이가, 농바리를 싣고 초라한 보교를 타고 대문을 들어서는 날 저녁, 어머니는 방안에서 울기만 하고, 아버지 윤초시는 온다는 소식을 미리 듣고 종일토록 술을 마시느라 집에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집안이 불편하려니 시누이 올케, 두 과부끼리의 새가 또 그렇게 알뜰치를 못했다. 같은 팔자에, 함께 서로 위로하고 도우면서 살아갔으면 좋을 것이, 성격인가 성질인가가 서로 틀려서 하나는 우들푸들하고, 또 하나, 탄실이는 나이 아직 열일곱이니 철인들 뭐 제대로 들었겠나마는, 포돌거리고 용졸거리는 편이어서, 같이 부엌에서 나돌다가도 가끔 충돌이 일어나는 것이다.
말썽이라야 별반 큰일로서 벌어지는 것도 아니고, 찌갯거리나, 행주질이나, 부침개질이나, 또 바느질감 다루는 것 같은, 세세한 일거리로 의견이 맞지 않아 가지곤, 처음은 뭐라고들 쏭알거리다 그 다음은 서로 새프드름해졌다가, 무슨 딴 트집이 생기면 이어 언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러고선 종시 어머니의 귀에까지 들어가 큰말이 나오고, 그러다가 어찌 되면 늙은 아버지 윤초시의 귀에까지 가서, 집안이 발끈 뒤집히는 적지 않은 소동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었다.
가뜩이 화가 나서 마음을 붙잡지 못하던 때에, 안에서 소동이 튕겨 나오고 보면, 윤초시는 그리 잘지는 않으나 바짝 성미를 돋우어서 높은 소리를 지르고, 때로는 다된 세상 잘 되긴 파이니, 모두 다 제각기 집을 떠나고 말자고 고래고래 야단을 부렸다.
‘메누리 성화 딸 성화를 무슨 등이 빠질 염병 앓을 녀석이 보아 간다느냐’고 ‘너이년들이 집안을 옳게 만드는 년들이거들랑, 항우 같은 샛서방덜을 잡아먹구 청승맞게 소년 과부들이 됐겠느냐’고 마지막에는 할 말 못 할 말을 가리지도 않고 입으로 나오는 대로 주워섬기는 것이었다. 이렇게 한바탕을 고아 대고, 어디 또 술을 마시러 나간 뒤에는, 어머니가 안방에서 지청구를 올렸다. 어머니는 절반이 통곡조로 나온다. 그럭하고 보면 올케는 제 방으로 돌아가서 아이들을 안고 역시 울음을 올리고, 시누이는 윗방에 가 콜작콜작 눈을 쥐어짜고 앉았는 것이다. 그러나 소동은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윤초시가 술이 취해 돌아온 뒤가 편안할 리 만무하였다. 그는 문을 들어서면서 손에 닥치는 대로 집어서 땅에 굴렸다. 세간일랑 홰까닥 부수어 버리고 모두 내 손으로 죽여 버리자는 것이다. 아이들 울음 소리가 집 안팎에 떠나가라고 높을 때에, 겨우 어머니는 영감의 몸을 붙잡아 떼어 말리고 며느리는 손을 빌며 죽을 죄로 잘못했노라 빌어 보는 것이다. 그러면 아버지는 생뚱한 어머니를 붙잡고,
“이년, 네년이 바루만 가르쳤으면 집안이 이럴 수가 있능가. 당초에 네년이 낳기를 고약스레 낳고, 길르길 덜되게 길러서 집안이 망조가 들었다.”
하고 고래고래 기왓골이 떠나가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예, 다 내 잘못이왼다. 그러니 어떡허겠소. 마음을 진정하시소. 아이들두 잘못했누라구 일후엔 채심하겠다니 오눌만 참아 두시소.”
하고 어머니는 설설 기면서 영감을 겨우 자리에 눕히는 것이었다.
이렇게 탄실이가 소년 과부가 되어서 친정살이를 해가며, 집안에 적지 않게 염증을 바치고 있을 때, 하루는 사랑에 시퍼렇게 젊은 박성권이가 찾아왔다. 성권이 아버지 박순일이가 다섯 해 전에 삼백 냥을 육자 변으로 지은 것이, 하나도 세음이 되지 않았다고 그 돈을 회계하고자 찾아온 것이다.
그때 박성권이는 아직 은산 있었고, 그의 아버지 순일이가 아편으로 인연해서 평양서 객사를 한 지 일 년 뒤이었다. 순일이가 죽기 전 몇 해 동안 주색으로 아편으로 재산을 탕진해 버리고, 성권이가 스무살이 될락말락한 때 집안을 상속했으나 남은 거라고는 채권(債權)이 얼마 있을 뿐이었다.
열아홉 수가 나빠서 아직도 앞이 청청하던 아버지 순일이를 객지에서 잃었다고 간혹 사람들은 말하였으나, 박성권이나 그의 가족들로 보면, 끝끝내 자식에게 성화를 시키지 않고 그런대로 그만큼 해서 세상을 떠나 준 것이 오히려 다행하다 할 것이다. 남들이 들으면 욕할 말로 성권이나 그의 아내 최씨나가, 아버지 순일이가 세상을 떠났을 때, 어떤 종류의 안도를 품었다는 것이 근경에 가까운 말일 것이다. 사실 얼마 아니 남은 채무자를 찾아다니며 그것마저 말끔하니 싹 씻어 거두어서, 그 껌뎅인가 하이얀 가룬가 한 놈의 약값으로 들이밀었다면야, 장례비조차 없어져서 시체는 거적 장사를 겪고, 남은 가족은 당분간일망정 바가지쪽을 차고야 말았을 것이다. 제아무리 박성권이란들, 소도 디딤발이 있어야 언덕에 오른다고, 맨주먹 둘을 달랑하니 쥐고 나서서는 어디 돌려 대고 발자국도 떼놓지 못했을 것이다. 평양서 시체를 모셔다가 뫼를 쓰고 일년상을 치른 뒤, 문서를 추려 들고 박성권이는 채무자를 쫓아 돌았다. 아버지와 달라서, 포악하고 아귀통이 센 그는 사정없이 채무자를 닦아 세웠다. 아버지라면 낯이 있고 의리가 있어 차마 못 할 짓을, 그는 눈을 내려감고 막무가내라고 닥치는 대로 해냈다.
이렇게 해서 박성권이는, 자산 파평 윤씨네 이 집에도 찾아오게 되었던 것이다. 성권이는 아버지보다도 연세가 지긋한 윤초시를 사랑에 들어서자 대번에 후려 놓고 보았다.
“그래, 사람이 세상을 떠났는데도 이렇다하는 조상 한마디 없고, 그런 무지몽매한 행동이 어디 있단 말요.”
사실 윤초시는 이 말에 할 말이 없었다. 제 집안에 참변이 잦고 재앙이 떠날 날이 없어서 경황도 없었지만, 박순일이의 아들이 아직 연소하여, 제 아비 순일이처럼 양순하고 보면, 별반 채무 독촉도 안 하리라고 태평하니 생각했던 것이, 제 집에 발을 들여놓고 통성한 뒤에 대뜸 하는 말이 이 말이니, 그러잖아도 정신이 나간 둥했던 윤씨가 질겁을 한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글쎄 여보게 내 사정말을 좀 들어 보게그려.”
이렇게 윤초시가 말 허두를 내다가 박성권이의 기색이 온당치 못한 것을 보곤 이어 말투를 고쳐서,
“바루 춘부장한테 내가 돈을 얻어다 쓰던 그해에, 금점인가 뭔가가 아주 쫄딱 망쌀이 지지 않었겠소. 그렇게 된 다음부터는 어찌 된 세상인지, 머, 내 집안 말 이렇게 털어놓구 하기두 부끄러운 일이지만서두.”
하면서 사정을 말하기 시작한다.
“먼저 내 작은아들놈이, 장가들 달에 등창났다구, 장가를 앞두구 설랑, 덜싹 그렇게 되고 말드니, 그 다음은 큰아들놈마저 이리 되고, 마즈막에는 갓 시집갔던 딸년마저 남편을 앞세우고 내 집에 돌아왔으니…… 자, 이렇게 집안이 아주 마지막 망조가 들고 보니, 어데다 낯을 들구 문 밖에 나가기나 하겠소. 그래 두문불출을 하구설랑, 난두 밖에 나가지 않구, 또 찾어오는 사람두 될수룩 피하구, 이래서 아주 딱 세상관 담을 쌓고 지내 오질 않었겠소. 내가 돌아가신 춘부장 어른과야 의리로 보나 뭘로 보나, 그런 일이 생겼다문야 당장 좇아가, 참 대소 범절을 왼통 맡아 치러두 과하다 하진 못할 겐대, 내가 그만 환장을 했었구려. 아니 참 내길래, 여태 목숨이라고 이걸 붙잡고 살어 나가지, 웬만한 이라면야 벌써 구구하게 이러고 있을 린들 있겠소. 그러니 머 박재장께서두 그걸 언짢겔랑 애여 생각질 마시굴랑 춘부장 살어 계실 때나 조곰두 다름없이…….”
그러고는 안 나오는 웃음까지 주름 잡힌 얼굴에 그려 보는 것이다. 그러나 방갓을 쓰고 앉았던 박성권은, 그의 얼굴은 눈 붙여 보지도 않고,
“아시다시피 우리가 지금 누구 사정을 한가하니 듣고 앉았을 처지가 못 되는 것이, 선친이 그럭허시다 세상을 떠나신 뒤, 내가 오죽하면야 이 모양을 하구서 남의 사랑을 찾아다닐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머, 조상을 했너니 안 했너니 따위는, 거야 말루 지내가는 말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니겠소. 나 역시 잔뜩 쇠운에 든 집안을 맡어 가지구 남의 구구한 사정인들 모를 리야 있갔쉥까. 아니할 말루 과부 사정은 과부가 안다구. 그러니깐두루 조상을 오느니 뭐 이런 따위를 가지구야 어데 이러니저러니 할 건덕진들 되겠습니까. 무철한 맘에 괘씸히 생각이 됐던 걸, 그대루 터져 논 게 그리 된 게니께루. 그러나저러나 저두 안즉 궤연을 모시고 있는 몸에, 오래 타처에 와서 묵을 수도 없는 터인즉슨, 묵은 조를 한번 뒤여서 세음이나 보게 해주셔야 하겠수다.”
박성권이의 말은 추상처럼 윤초시에게는 냉랭하게 생각이 되었다. 제 애비와의 친교를 보더라도 존장에 대하여 이럴 법이 없을 텐데, 아무리 채권자이기로니 포악스런 언행이라고 괘씸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빚진 죄인이란 말처럼 그는 노염이나 분통이 나는 걸 숨기고 어디까지나 이 젊은 놈의 마음을 농간해서, 그걸 풀어 놓도록 힘쓰는 외에 별 방도가 없던 것이다.
“글쎄 온, 아까 말씀 올린 걸 또 되풀이하는 것만 같지만, 내 신상이 지금 이 형편이 됐으니, 아까 박재장 말씀대루 과부 사정은 과부가 안다고, 어데 좀더 액운이 물러가고 형편 몰리는 게 페일 때까지, 참, 이런 말씀 올리기두 미안스럽기 짝이 없지만, 어떻게 좀 사정을 랑, 좀…….”
누가 보기에도 창피하리만큼 윤초시의 입과 눈가장엔 비굴한 표정이 떠돌고, 그의 반백이 된 머리는 저절로 굽신굽신하였다. ‘좀’ 소리를 자꾸만 되씹고 앉았는 품은, 박성권이 눈에도 참말로 보기에 난처하였다.
그래서 애써 그의 얼굴은 보지 않기로 하고, 무어 미리부터 생각해 갖고 온 바를 쪼루루 외어 바치듯 한 뒤에 위선 자리를 털고 자산 고을로 들어가서, 누구든가 앞에 설 사나이를 다시 들여보내, 어떻게든 작정했던 대로 실행을 할 채비를 차렸다.
“글쎄 이러쿵저러쿵 할 거 없이 사 년하구두 일곱 달 치를, 육자 변으로 일 년에 한 번씩 표를 된 셈치고, 회곌 놔보구레. 들으니께루 안즉두 윤초시 집엔 밭두 있구 집두 남었다니, 아무것두 없는 맨 건달판이라믄 몰라두, 지닌 게 있으면서야 남의 빚 못 갚겠다구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다 회곗조를 깨끗허니 해치우굴랑, 그 댐엔 또 누구든 중흥하는 편에서, 서로 도와 주게, 이렇게 하는 게 일의 순조가 아니갔쉥까. 자산 고을 가서 볼일이 좀 있으니깐 밤에 사람을 보내든지, 내가 나오든지 하오리다. 나는 나대로 회계한 게 있으니께루, 자알 어데 바루 문서를 살펴보우다.”
이 말이 떨어지자 박성권은 불쑥 일어선다. 윤초시가 머리를 들지도 못하고 박성권이의 하는 말을 듣고 있다가, 새하얗게 낯이 질려서 따라 일어섰으나, 입술을 파르르하니 떨고 있을 뿐으로 한참 동안은 말도 변변히 못 한다. 방갓 쓴 박성권이의 뒷몸집이 대문으로 없어진 뒤에야 혼자서,
“이런 변이 있나.”
또 한참 만엔,
“이럴 수가 세상에 있나.”
그러고는 푹 바람벽에 기대 앉은 채, 정신이 빠져나간 것처럼 어릿어릿하여 눈을 감고 있었다.
윤초시 딸 탄실이는 사랑에 방갓 쓴 손님이 온 건 알았으나 그게 어인 사람인지는 알 턱이 없고, 전날 같으면 절게든가 막서리든가를 시켜서 물을 길을 것인데, 이즈음은 시누이 올케 간 누구나가 손수 두레박을 들고 물동이를 이지 않으면 안 되는 때문에, 그날도 대문 밖으로 나와서 자산 고을로 통하는 길 어구, 커다란 버드나무가 선 우물가에 나가 물을 길어 갖고 오던 참이었다. 부엌에서 직발 우물로 통하는 뒷문이 있어, 사랑 앞을 지날 턱이 없으므로 바깥 손님에게 얼굴을 보인다든가, 그럴 리는 없었는데, 막 물동이를 이고 우물에서 서너 발자국 길 위로 나서다가, 대문에서 불쑥 휭하니 베로 만든 상복자락을 날리면서 나서는 방갓 쓴 손님과 정면으로 마주치고 말았다.
한 손으로 두레박을 들고, 또 한 손으론 겨드랑 밑까지 내보이도록 팔을 추켜 들어 물동이를 잡고, 입으론 또아리끈을 물고서 오던 이런 때에, 지금 막 저희 집 사랑에서 나오는 손님과 길 위에서 마주치게된 것이다. 탄실이는 눈을 내리깔았을 뿐, 어떻게 몸을 가눌지도 모르고 길 위에 딱 발을 붙이고 서 있다. 머리카락에 물이 흘러서 이마 위에 찟거분하니 흘러내리지는 않았는가, 아니 앞가슴이 어떻게 면바로 아미어지기나 했는가, 치마폭은 제대로 아랫도리를 둘렀는가, 이런 걸 갈피갈피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대로 고 모양을 하고 방갓 쓴 사나이에게 관선을 당하고야 말았다.
박성권은 방갓 밑으로 차근차근히 마주선 젊은 여자, 지금 토실토실 볼편에 살이 오르는 것으로 미루어 열여덟을 넘을 것 같지는 않은 젊은 색시를 훑어보고, 가만히 길을 비키었다. 물동이가 방갓 밑을 스칠 듯이 지나가서, 그것이 윤초시 집 뒷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뒤, 그는,
‘처녀는 아닌데, 그것이 아마 윤초시의 딸로, 바로 과수가 되어 친정살이를 한다는 그 여자이렷다.’
하고 생각해 보며 고을로 들어갔다.
그런데 윤초시는 사랑에서 한참 동안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그대로 나가자빠져 정신을 잃고 까무러쳐 버렸다. 본시부터 들락날락한다던 그의 정신이 그만 아주 틀려지고 만 것이다. 집안이 온통 서둘러서 겨우 정신은 피어났으나, 그는 아무런 말도 자유로 지껄이지 못하게 몸이 아주 반편이 지고 말았다. 눈하고 입하고만 히물히물하고는, 손도 발도 그리고 말하는 것까지도 그의 기능을 잃어버린 것이다.
자산 고을서 일볼 것이 있다고 하던 박성권이는 그날 저녁에 임풍헌네 집에서 술을 먹고 앉아서 윤초시 딸, 탄실이의 일을 미주알고주알 물으며, 임풍헌에게 탄실이를 어떻게 할 수 없겠느냐고 상론을 하다가, 부엌 사람이 전하는 말로 윤초시가 급작스레 전신 불수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성권이는 적지 않게 놀랐다. 그에게 손끝 하나 어쩌지는 않았으나 윤초시가 전신 불수가 되도록, 기절을 했든가 정신을 잃었든가 한 직접 원인이, 그에게 있는 것은 누구나 부인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래 재장이 그만 그 소년 과부한테 홀딱 반해 버렸단 말씀이오니까.”
하고 껄껄 웃어 가며,
“그까짓 것쯤일랑은 염려두 마시우. 지금 그 집에서두 왓작 곔을 받혀 오구, 게다가 또 그 색시 가마 타구 시집가긴 인제 파이니, 어쨌건 내게다 맡겨만 두시소그려.”
하고 떠들어 대던 삼십 활량인 임풍헌도, 윤초시가 전신 불수가 됐다는 말을 듣고는, 취해 오던 술이 금방 깨기나 하듯이 어안이 좀 벙벙해서 멀거니 성권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박성권이는, 저의 생명 같다고 추상같이 울려 대던 채권을,그대로 탄실이와 바꾸어 버리자는 생각을 먹을 만치 호기가 있었으나, 임기하여 웅변하는 재치도 갖고 있었다. 그는 이어 술상을 물리고 임풍헌을 남겨 두고 혼자서 윤초시네 집으로 달려갔다.
그가 윤초시 집 사랑에 이르렀을 때에는, 사랑에는 다른 식구들도 나와 앉았다가 인차 물러가고 윤초시 마누라만이 병자 옆에 앉아 있었다. 윤초시 마누라는 낮에 이 방갓 쓴 젊은 녀석이 다녀가자 이런 변이 생겨난 것을 알고 있기는 하나, 처음부터 언성도 높이지 않고 도란도란 주고받던 이야기 끝에 일어난 일인지라 (어떤 이야기였는지는 지금도 모르고 있으나 그때에 서로 손가락 하나 오락가락하지 않은 것만은 알고 있었다) 그에게 미움이 가기는 했으나, 어인 영문인지를 몰라 가벼운 호기심 같은 것이 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대체로 윤초시 마누라나, 또 이 집 가족이나, 인근 동네 사람들이나는, 이렇게 윤초시마저 이 모양이 된다는 건 소뱅이 귀신이 발동한 것에 틀림없다는 생각을 굳이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누구에게 미움이 가기 전에, 귀신, 말하자면 왕신이든가, 대감이든가, 성주나, 지운이나, 이런 게 동한 게라고 그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우선 앞을 섰다.
“상복을 한 죄인이 이렇게 누누이 찾아와 미안하올세다.”
하면서 좀체로 방안으로 들어오지도 않으려는 것처럼, 성권이는 마루 위에 있었다. 마루 위에 성권이가 올라선 것을 먼발로 희미하게 바라보던 아랫목 자리 위에 번뜻이 누운 윤초시는, 낯색이 좀 달라지며 상판때기가 수상하니 히물히물 경련하고 입 모습을 쭝긋거려, 삽시간에 표정을 자꾸만 번개처럼 바꾸며 돌아갔으나, 그것이 웃는 겐지, 노하는 겐지, 분해하는 겐지, 기뻐하는 겐지는 보는 사람마다 생각할 탓에 달렸었다.
“아, 윤초시 어룬께서 이게 갑자기 무슨 변이오니까.”
이렇게 적이 슬픈 표정을 낯에 띠며 말하니, 윤초시는 성권이의 얼굴을 바라보던 눈을 덥벅 감아 버리고, 그 다음은 어깨를 추면서 눈물을 흘린다. 필시 이 방갓 쓴 젊은 녀석에게 무슨 곡절이 있다고 그의 마누라가 생각하고 있을 때에, 박성권은 여전히 고즈넉한 표정을 낯에서 없애지 않고,
“갑자기 이 변을 당하셔서 대단히 놀랐었을 게라고 짐작됩네다. 저는 은산골 사는 박성권이라는 사람이온데, 제 선친이 바로 순박순(淳)자와 편안일(逸)자로 여쭙는데, 작년에 세상을 떠났습너니다. 선친의 유언이 자산 윤초시 어른께서 사 년 전에 돈 얼마얼마를 돌려 쓴 것이 있는데―”
이렇게 마루에 앉은 채 이야기를 시작하다가, 이 대목에서 뚝 끊고 잠시 윤초시의 얼굴과 그의 마누라의 낯을 번갈아 쳐다본다.
‘인제는 영감이 기절을 한 까닭을 알겠다. 과연 이 박순일의 아들놈이 돈 채근을 와서 무슨 포학한 말찌더기를 한 때문에 이렇게 갑자기 기절을 하여 정신을 잃은 것임에 틀림이 없다.’
하고 윤초시 마누라가 생각하자, 금시에 슬픔과 미움과 원한이 뒤섞여 돌개바람 같은 종잡을 수 없는 표정의 선풍이, 화끈 그의 얼굴을 지나간다. 이 표정을 슬쩍 바라본 박성권은 이어서 곧 다음 말로 옮아간다.
“약차 이만저만한 이유로, 그 윤초시 어른께서도 이 근경에 여러 모로 재산에 손실이 들었어. 그러허니 우리도 함께 기울어 가는 살림에, 본시부터 없는 것과는 달러, 있다가도 없는 것처럼 딱한 일이 또 어데 있느냐. 그런즉슨 일후에 내가 죽은 뒤일지라두, 만약에 윤초시 어른네가 다시 옛날처럼 큰 세상살이를 한다면야 더 말할 나위도 없지만, 그렇지 못할 지경이면 나와의 친교로 보아서도 돈냥간을 가지고 어떻게 머 가박스리 그렇게 할 처지가 아니야, 하니 네가 친히 찾어가서 이 아비의 뜻을 전해 올려라, 이렇게 말씀이 계시고 세상을 떠나셨는데, 내가 미천한 몸으로 큰집을 이었고, 또 한편으론 궤연을 모시고 있는 몸이라서 먼길을 떠나지도 못하다가, 오늘 낮에 겨우 이렇게 댁을 찾어오게 되었던 것이올세다.”
다시 방갓 밑으로 눈을 들어 윤초시 마누라를 쳐다본다. 그는 비로소 안심하는 빛을 얼굴 위에 내고, 지금까지 희미하게나마 원한과 미움이 가던 이 사나이가 결코 그럴 이가 아니고, 어쩌면 뒷날일지라도 저희 집을 돌보아 줄 그러한 사람이 될는지도 모를 게라는 생각을 가짐에 이르렀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나가자 윤초시가 곧 노전 위에 나가자빠져 버렸으니, 그건 또 어인 일일런가. 이렇게 아직도 채 풀리지 않은 의심을 눈과 눈썹 새에 약간 남기고 있는데, 박성권이는 또 이야기를 계속하려고 몸을 좀 도사리고 앉는다. 몸을 움직일 때에야 윤초시 마누라는, 손이 여적 마루 위에 앉아 있는 것을 깨닫고,
“아니 참, 내 정신이 빠져서, 어서 이 방안으로 좀, 들어오시지요. 그리구 문일랑 닫으십세다.”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여기두 좋다고 몇 번을 더 사양하다가, 박성권이는 방안 윗목에 들어와 앉는다. 문을 닫은 뒤 박성권은,
“윤초시 어른께 처음 인사를 여쭙고, 또 선친의 생각하신 바가, 약차 이만저만하시다고 아뢰었더니, 그때에 무척 놀라시는 기색을 보이시고, 좀 어릿어릿하시는 것 같길래, 저는 인차 자산 고을에 볼 것도 있으니 그만 물러가겠노라구 아뢰지 않었겠습너니까. 그랬더니만, 그게 무슨 소리냐구, 내 집이 아무리 누추하나마 그럴 수가 있겠느냐구, 막 제 손을 끌어 앉히고, 피차에 이렇게 지낼 집안간이 아닌데 하시는 걸, 급히 다녀갈 길이라고, 그러시거들랑 잠시 동안 집안 이야기나 서로 나누자구, 이렇게 말씀을 올렸습지요. 그래 저로서도 그간 선친께서 타곳으로 떠다니시다 돌아가신 뒤, 미천한 제가 집이라구 맡아서 생도를 세운다는 게, 다행히 식구가 적어서 이럭저럭 지내는 가지만, 그게 이루 참 형언할 수 없는 역경을 맞은 게나 다름이 없습네다. 안즉 나이 있으니 우리야 머 어떻게든 못 살어가겠습너니까. 그랬삽더니 존장께서는, 아무려나 그렇다니 마음이 적이 놓인다구 말씀하시면서, 내 사정일랑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참혹하다시면서 금점에 실패하신 뒤 가지가지 역참과 화환이 들어서, 대체 어인 변이 이럴 수가 있겠느냐구 그러시더니 적이 흥분하셔서 낯이 하얗게 질리신 채, 지낸 일은 그렇다 치고 종차루 이걸 어찌면 좋겠느냐구, 가령 내가 금시라두 세상을 떠난다든지, 노덕이 아차 하는 날엔, 무철한 것덜이 그대루 쪽박을 차고 나서는 판이 아니냐구. 그러시길래 저는 또 위안엣말씀이나마 그게 무슨 말씀이심너니까, 이 조카가 뼈가 성한 턱까지는 그럴 리가 있갔습너니까 했습더니, 제 손을 꽉 잡으시면서, 이렇게 고마울 게 없겠다구, 다른 것 다 말고, 무슨 순천 고을서 상배를 당하시구 돌아와 계신 아가씨가 계시다든가, 그 말씀을 누누이 하시두만요. 그래서 저두 그런 염려일랑 아여 마시고, 제에게 맡기시라구 이렇게 이야기를 맺구, 자 시각이 바쁘니 고을을 갔다가, 다시 또 찾어뵈올 날 소상한 말씀을 상론합자고, 그 길로 자산 고을로 들어갔던 것이올세다. 그때 어덴가 좀 신색이 달르신 것 같기는 했으나, 또 이런 변이 생길 건 미처 짐작도 못 했었는데, 참 이제 뭐라구 말씀을 올릴는지, 기여 제가 왔기 때문에 이렇게 되셨다는 걸 생각하니, 한 몸을 어떻게 바쳐야 옳을는지…….”
잠시 허리를 굽혔다가, 윤초시의 마누라가 적이 감사해하는 표정을 보고는,
“그저 박복한 놈은 가는 곳마두 일만 저지르고 다니니 참.”
하고 다시 한번 채쳐 본다. 그랬더니 윤초시 마누라는,
“원 그게 무슨 말씀이오니까. 다 그리 되실 팔자 소관이지요. 멫 년째 이 집이 받어 오고 겪어 나가는 액운이, 인자 아마 마즈막 고패를 도는가 보외다. 조상의 뫼를 잘못 썼든지, 전생의 무슨 업원인지, 대체 이럴 변이 어데 있갔소. 인제는 시금쪽해서 설움두 안 나구, 눈물두 안 나구, 아무런 일두 암찍하기 싫어서, 존신 섬길 생각두 없어지고 말었소. 성주가 동하셨다느니, 지운이 동하셨다느니, 대감님이 노하셨다느니, 왕신이 화를 내셨다느니, 그래 마즈막에는 무슨 살이 들었다고 살풀이까지를 해가면서, 굿이라, 경이라, 푸닥거리라, 토사라, 머 이 멫 년간 장구 소리 끊은 적이 없건만, 세상살이는 날로 망조가 들어서 기울어 가니, 이게 대체 무슨 변이겠소. 인젠 입에 신물이 납네다. 아무 꼴 보지 않고 그만 목숨을 끊어 죽어 버렸으면, 이 이상 더 상팔자는 없겠는 걸 자식덜 생각을 해서 그럴 수도 없고, 그래 이걸 세상이라고 살아오자니…….”
윤초시가 이때에 눈을 부릅뜨고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고 몸을 뒤채듯 야단을 치니,
“아니 왜 이러시우. 글쎄 영감마저 왜 이렇게 날 성화를 시키려구 이러우.”
하면서 이불을 덮어 주며, 미음 사발을 들었다, 밀수 그릇을 들었다, 약사발을 들었다 하면서 서둘러 보나, 모두 합당치 않다곤지, 그대로 안면 근육을 히물히물 떨고만 있으니,
“아이구 원통해라, 그럼 씨원히 뭐라고 말씸을 한마디 할 것이지, 이럴 변이 어데 있소.”
하고 울음조로 나온다. 그랬더니 윤초시도, 기여 눈을 감고 쭈루루 낙숫물 같은 눈물만 볼때기로 흘린다.
이때 박성권은 의젓하니 몸을 일으키어 윤초시가 누운 자리께로 가서, 덤덤히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존장 어룬, 마음을 진정하시오. 그렇게 흥분하시믄 신상에 더 해로우십네다. 아무 염려 마시구, 또 부탁하신 말씀은 그대로 제가 뼈가 가루 되는 한이 있을지라두 실행하겠사온즉 아무 염려 마시구, 마음을 진정하셔서 몸을 고치셔야 안 합네까. 지금, 이 오마니께도 다 말씀을 올렸으니 염렬랑 아여 마시구, 푹 마음을 노시구 몸 치료를 하셔야 안 하겠습너니까.”
하고 엄숙하게 위로조로 나오니, 말귀를 알아듣곤지 못 알아듣곤지, 윤초시는 그대로 눈물만 흘린다. 옆에 앉은 초시 마누라도 따라서 홀짝홀짝 울어 대면서,
“영감, 이제 다 이 재장한테서 자상한 말씀을 들었소와요. 뜻대로 할 터이오니 아무 염려 마시고, 하루 바삐 깨끗하니 탈을 놓아 주소고레.”
한다.
“그럼 저는 고을 들어가서 볼일을 마저 보구, 또다시 떠날 길에 한번 찾어뵈옵구 가겠습너니다.”
따로 누구에다 대고 하는 말이 아니고, 두 사람 윤초시 부부에게 아뢰듯 하면서 성권은 몸을 뽑듯이 하여 사랑방 문턱을 넘는다.
“이거 원, 저녁두 못 대접하구, 참, 이게 원 도리가 아니외다.”
이리하여 박성권은 윤초시 집을 물러나와 그 길로 자산 고을 와서 하룻밤을 잤다.
그런데 윤초시는 새벽에 해가 치밀어 오를 때 기여 정신을 잃어, 다시 깨어나지 못한 채, 까무라친 게 영영 주검이 되고 말았다.
아침을 먹기 전 부고를 듣고, 박성권은 고을서 대강 장례에 쓸 물건을 사서 지고 상갓집으로 나가, 사흘 만에 장례를 치르고, 이어 윤초시의 딸 탄실이를 소실로 맞게 마련하였다.
그러나 박성권이가 탄실이를 소실로 맞고도 곧 은산 있는 저희 집으로 데려올 수는 없었다. 전부터 잘살던 끄트럭이라 집이나 방은 넉넉하였으나, 아직 아버지의 삼년상도 치르지 못한 처지였다. 그래서 탄실이가 그 이듬해에 형걸이를 낳고도, 한 해를 지나 삼년상을 치른 뒤에야, 자산서 친정살이를 그만두고 겨우 은산으로 옮겨 왔다.
그 뒤에 곧 갑오년 전쟁이 일어났고, 전쟁이 끝나자 박성권은 솔가하여 지금 사는 이 고을로 이사를 하여 처음으로 두뭇골에 집을 세웠다.
열여섯에 까다로운 시부모 밑에서 시집살이를 했고, 그 다음은 친정살이를 삼 년 가까이 해본 뒤에, 작은집살이로 들어선 윤씨―탄실이었으니, 어디서 한 번이나 남에게 고함을 치며 버젓한 살림을 가져 본 적인들 있었으랴마는, 두뭇골 와서 큰댁과 큰댁의 소생과 함께 작은집에서 볶아 댈 때처럼, 속을 썩이고 속 상하는 세상을 살아 본 적도 없었다. 원체 박성권이가 마누라나 첩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거나, 첩 큰댁 싸움에 참견을 하거나, 그럴 이도 아니고 아예 처음부터 첩 큰댁 간에 말썽 같은 게 생기도록 내버려둘 위인도 아닌 탓에, 작은댁의 대우를 받고, 서자의 취급을 받는, 윤씨와 형걸이만 억울한 세상을 살았다. 이즈막과도 달라서 서모에게는 오문절도 안 하던 그때 시속이라, 언언구구가 수모나 모멸 아님이 없었으나, 이에 대해서 단 반 마디의 대꾸조차 건넬 수 없는 처지다. 이런 생활이 일 년 이상을 계속되었다면 어떻게 그의 팔자를 영영 고치기라도 해야만 할 결심을 먹었을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본시 추근추근치 못한 성질은 올케와의 한부엌 살림에 적지 않게 누군누군해졌지마는, 아직도, 성미껏 해선 한바탕을 포달거려 보아야 시원할 것을 그대로 삭이려니, 하루 종일 골치가 지끈지끈 쑤셔 내는 적이 없지 않았다.
박성권이가 행길 거리에 집을 사고 큰댁과 그의 소생을 그리로 옮긴 뒤, 옹졸스럽기 짝이 없던 첩 큰댁 한집살이를, 이러나저러나 면하게 된 다음에야 숨을 내쉬고 제법 살림 같은 살림을 배포해 볼 수가 있었다.
집도 활짝 늘려서 앞마당을 갖춘 사랑도 세우고, 전에 쓰던 방은 대개 청간이나 토골로 고친 뒤 새로이 의젓하니 안방을 늘려서, 행길 큰집처럼 크지는 않으나, 무어 불편을 느낀다든가 그렇진 않을 만큼은 아담하고 청초해졌다.
비복도 거느리게 되어 부엌에 드나들 염려도 없어졌고, 영감은 거지반 이 두뭇골 집에 와서 자고 조반상을 받았으므로, 음식 시세나 그런 것도 결코 옹색을 느끼지 않게 채비를 차리도록 마련이 되었었다.
윤씨는 작은댁이거나 소실이거나 하는 아름답지 못한 칭호를 받을 값이라도, 인제는 제법 큰집을 도맡아 갖고 사는 어엿한 부인네가 되었다. 아직까지 자산서 살고 있는 친정에는, 박성권이가 얼마간의 재물을 지니게 해주어 재정상 교섭을 끊어 버린 뒤부터는 친정 걱정도덜고, 친정이라야 어머니는 그 뒤 얼마 해서 세상을 떠나고, 남은 건 남동생 하나이었는데 그는 평양 있는 먼 일가로 여각(旅閣)을 보고 있는 집에 가 있는 지 오래이므로, 인제는 그다지 생각을 쓰거나 그렇지 않아도 좋을 식구뿐이었다.
윤씨는 앞이 트이는 제 팔자를 과히 안심하여 느끼게 되었고, 이럴 수록 이게 모두 존신의 점지하신 덕분이라고, 저희 집 친정에서 어렸을 적부터 눈 익히 보아 온 대로 각색가지 귀신을 섬기기 시작하였다. 안방 뒤의 복낟가리하며, 대문에는 수문장, 상기둥엔 성주, 작은 기둥엔 사방으로 지운, 청간엔 제석, 부엌에는 종왕, 방안 천장 밑에는 손각시까지 모셔 놓고 사철로 토사, 때때로 굿과 푸닥거리, 선앙제며, 살풀이며 이루 들어 말할 수 없이 마귀를 섬긴다는데, 또 이 밖에 통선암에 불공이나 치성을 드리는 것까지 잊지 않았다.
그런데 어이 된 일인지 세존님이 노염이나 갔는지, 형걸이를 낳은 뒤에 다시 태기가 없어서 연년이 세존제를 지내고 칠성단 묻어 놓고 밤마다 물을 떠놓고 빌어 모시지마는 그 뒤엔 까막하니 소식이 끊어졌다. 처음 몇 해에는 거의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고, 이 근경에나, 그것도 일 년에 몇 차례씩 겨우 방을 같이하는 큰댁이 딸과 아들을 낳아 보패와 형식이를 얻었는데 윤씨는 그 뒤 어찌 된 셈인지 자식을 가져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단 하나인 형걸이가 그래도 아들인 것, 그 아들이 생김생김도 출중하고 인물도 성글성글하여 사나이답게 생긴 것만은 윤씨에게 더없는 기쁨을 주었다. 어렸을 적엔 서당 아이들과나 또 큰집 형준이나 형선이와도 곧잘 싸움을 하였으나, 한 번도 그 애들한테 져보는 적이 없고 뒷날 말썽거리는 남겼으나, 그런대로 상판때기를 들지 못하고, 매나 얻어 건사하며 풀이 죽어 다니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였다. 더구나 연세로 따져도 형걸이가 셋짼데, 서자라고 분수엘 넣지 않고 형식이를 셋째라고 부르는 대신, 그를 자산놈, 자산놈 하고 불러 대는 것에 참을 수 없는 아니꼬움을 느끼던 윤씨는, 형걸이가 큰집 아이들에게 지지 않고 어디 코통이라도 터치고 들어오는 게, 한편 시원스럽기도 했던 것이다.
작은댁이나, 서자라고 푸대접을 받을 때는 혼자 속을 썩일밖에 별도리가 없던 것이, 형걸이가 나이 차서는 그런 빛만 보이면 어느 놈이고 맞붙어서 해대었다. 항용 제 소생이 누구에게 상처를 입히든가 한 때에는, 뒷마무리를 하느라구 어머니가 그의 집을 찾아가서 미안하단 말이라도 올리는 게 습관이었으나, 아이들 싸움을 갖고 이러니저러니 첩 큰댁 간에 말썽을 만드는 건 박참봉이 극히 싫어하는 성미였으므로, 혼자 속으로는 큰댁 최씨가 무슨 앙심을 먹는지 몰라도, 입 밖에는 터럭끝만큼도 그런 기척을 내발리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건 마침 십상이라고 무슨 일이 있어도 시치미를 똑 뗐다가, 간혹 얼굴을 대할 때거나, 그럴 때에 한두 마디,
“온 형걸이 성화에 참 속상해 죽을 일이외다. 아이놈이 어떻게 그리 세차고 포악스리 생긴 놈인지 원.”
하고 인삿마디나 해두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형걸이가 열 살을 넘어 총각꼴이 보일 때부터는, 윤씨에겐 한편으로 딴 걱정이 새로이 불쑥 솟아올랐다. 그 근심은 형걸이가 열아홉이 잡히도록 줄창 계속되어, 지금 그의 가장 높은 고팽이에 올랐다고 할 것이다. 그것이 형걸이의 혼사 걱정이었다.
형걸이가 돌아오는 걸 기다리느라고 윤씨는 안방에 혼자 불을 돋우고 앉아 있다. 저녁부터 흐리고 물쿠던 날씨는, 밤이 이즈막해지니 기여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빗발은 굵지 않으나 바람이 좀 있어서, 우수수하니 나무를 울리고 마루에까지 빗발이 풍겨들었다. 윤씨는 사랑으로 나가 등잔 심지에 불을 켜보았다. 영감은 종일 강에서 해에 그을려 혼곤한데다, 얼근히 술에 취하여 나직하니 코를 골며 자고 있다. 윤씨는 자리의 주위와 앞뒷문을 한번 보살피고 불을 끈 뒤에 다시 안방으로 돌아왔다. 종을 먼저 재우고 그는 자리도 깔지 않은 채, 구름처럼 솟아오르는 생각과 추억에 서리어서 담배만 빨고 앉아 있다. 박참봉이 제 아버지 윤초시를 지레 죽게 만든 불측스런 위인인 걸 알 턱이 없는 윤씨는, 제가 순천서 첫서방을 여읜 때부터 친정으로 쫓겨와서, 그 다음 올케와 철딱서니 없는 싸움을 거듭하는 생활이며 다시 박참봉을 몸에 가까이할 때로부터 은산 살림, 두뭇골 살림에 이르기까지를, 몇 번이나 되풀이하면서 되새겨 추억하면서도, 종시 그런 건 의심해 볼 염도 아니했다. 물론 지금 그가 그 비밀을 알았다고 했자, 박참봉에게 아버지 원수를 갚거나, 이 집에서 몸을 빼내어 영영 딴사람이 되거나, 그렇진 못했을 값이지만, 무슨 일에 영감더러 화풀이나 넋두리라도 할 때엔 영감을 공박하는 유리한 조건으론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비밀을 대충이나마 눈치채고 있던 임풍헌이 갑오년에 어디론가 종적을 감추어 버린 뒤에는, 이 비밀은 영원히 박참봉 혼자의 비밀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벌써 박참봉과 같이 살게 된 이후로 스무 해 동안, 물론 적지 않게 충돌이 일어났다든가, 불만이 있었다든가 한 일이 없진 않았다고 하여도, 영감이 그를 위하고 사랑한 것만은 사실이라고, 윤씨는 만족하여 그를 섬겨 오는 것이었다.
형걸이의 혼사, 그걸 두고 말해도 제가 작은집이고, 또 형걸이가 서자라는, 어떻게 할 수 없는 팔자 때문에 뒤틀리는 일이지, 박참봉이 큰댁 아이들과 차별을 두든가, 그런 때문에 그리 되는 것이 아니란 건 윤씨도 잘 알고 있다. 영감은 오히려 형걸이가 계집애처럼 얌전하거나 그렇진 못해도, 사나이답고 좀되지 않은 성격에 다른 아이들보다도, 희망이나 기쁨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혼삿말이 한참 잦은 이즈음에, 형걸이가 막서리 처의 방으로 드나든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다. 영감이 적지않이 노해서, 형걸이를 밤엔 일체 문 밖에 나가지도 못하게 하라니, 인제 장차 일어날 일이 혼삿말에 못지않게, 성홧거리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건 또한 종차로 일어날 일이라손 치더라도, 우선 눈앞에 매달린 일로, 형걸이가 들어오면 뭐라고 말을 붙여서, 머리 깎은 이후, 여러 모로 뒤설킨 그의 감정의 문을 두드려 볼 수 있을 것인가―이렇게 사뭇 생각에 잠겨서 윤씨는 대문에서 발자취 소리가 나기만 기다리고 있다. 비가 약간 멈칫했다가 다시 또 퍼붓는다. 그러나 발자취 소리는 좀처럼 들려 오지 않는다.
그리 익숙지도 못한 담배를, 얼마나 정신없이 빨아 뿜었는지, 돌려 닫은 방안에는 연기가 자욱하여, 등잔이 안개 속에 서린 어화(漁火) 같은데, 머리까지 아찔아찔하다. 그는 일어나서 바람이 풍겨들지 않는 윗문을 한 짝 열어 놓았다. 희미하나마 불빛이 쑥 뜰 안으로 내뻗쳐서, 비단실 같은 빗줄이 반뜩반뜩한다. 연기가 외곬로 몰려나가다간, 비바람이 휙 몰아치면 꾸풀꾸풀 천장으로 출렁대면서 찬 공기와 환기가 된다.
담뱃내가 다 나가서 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중대문 소리가 난다. 인제야 형걸이가 돌아오는 것이다. 그는 문에 빗장을 지르더니 어머니 방에서 불빛이 훤하니 비치는 걸 보고, 곧바로 제 방으로 들어가려다가 잠시 이쪽을 바라본다. 우산도 못 얻어 쓰고 삿갓을 쓴 채, 갓신 신은 발은 대님을 풀어 활짝 걷어붙였다.
“형걸이 너, 인제 오네.”
하고 불을 내대이면서 물으니,
“오마니 여태 안 주무시우.”
하면서 삿갓을 벗으며, 옷에 묻은 빗방울을 턴다.
“네가 안 들어왔는데, 비는 오구 해서 어떡허나 하구 기대리던 참이다.”
“비 같은 거 오는데 머, 무슨 일 있을라구요.”
하면서 형걸이는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리려고 한다.
“그대루 좀 왔다 가거라. 자기 전에.”
한 발을 토방 위에 올려놓다가 주춤하면서,
“저요?”
하고 뻔한 걸 한 번 더 물어 보며, 형걸이는 고개를 숙이고, 토방 위를 삿갓을 든 채 건너온다.
“아니 우산두 못 얻어 쓰구 왔네? 어델 가 놀댔길래.”
어머니의 말에 어디란 말은 못 하고,
“우산이 머, 집집이 그렇게 흔한가요.”
하고 종시 낯을 면바로 들지 않은 채 발에 묻은 진탕을 만지기나 하듯, 어름어름하고 토방에 서 있다.
“좀 둘어오나라.”
“발두 진데, 머.”
“게 걸레 있는데 씻으려무나.”
형걸이는 방안에 들어온다. 그러더니 그제야 대체 무슨 일이요 대관절, 하듯이 낯을 어머니께로 바로 쳐든다.
“게 좀 앉거라.”
담뱃대를 놓고 어머니는 휭하니 아랫목에 가 앉는다. 형걸이도 윗목에 앉았다.
“아버지가 너 어데 밤에 댕기는지 걱정하시더라. 그러구 인제부텀은 밤에 나가지 말게 하라구 말씀하시드라.”
댓바람에 요진통을 쪼루루 말해 놓고, 윤씨는 아들의 표정을 먼발로 바라보았다. 흐릿한 불빛에도 눈에 띄게 휙끈, 낯색이 변해지는 걸 알 수가 있었다. 그러나 형걸이는 아무 대답이 없다. 그저 덤덤히 앉아 있을 따름이다. 그 동안 그의 안색은 몇 번이나 변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윽고 머리를 들어 어머니를 바라본즉 곧,
“그 말씀밖엔 따루 하실 말씀이 없으신가요.”
하고 물어 본다. 별로 아무 감정도 안 섞인 나직한 말소리다. 그러나 어머니는 잠시 당황해한다.
“그렇다. 그래 너는 어째서 어룬 묻는 말엔 대답을 않느냐.”
어머니는 처음은 그렇지도 않았던 것이, 말을 끝막을 때엔, 어딘가 아들을 책망하는 어조로 나온 것 같아서, 제 자신이 가벼운 흥분에 싸인 것을 느낀다.
아뿔싸― 이렇게 감정을 돋우어 할 말이 아니었는데, 이 녀석이 불쑥 밸이라도 나서 뻥하니 건너가 버리든지 하면, 외려 말하지 않음만 같지 못하지 않은가. 어머니는 말만은 그렇게 해놓고도 내심은 어지간히 캥겨도는데,
“어데 갔던 줄을 미리 아시고들, 물으시는 것 같애서 대답지 않었습네다.”
하고 여전히 침착하게 대답한다.
침착하니 존댓말로 대답하는 형걸이의 말이, 윤씨에게는 되레 폐부를 건드리는 데가 있었다. 차마 그렇게 둘러엎어서 말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막서리 처를 보아 다닌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낯을 붉히며 머뭇거리다가, 무어 두어 마디 발명하는 말이라도 중얼대고 말 것이요, 만약 그 말이 생뚱한 지어낸 말이라면, 그게 무슨 당치 않은 말이냐고, 지금 막 아무개네 동무 집이든가, 교사의 집에서 오는 길이 아니냐고 어엿하니 뻐겨 대고, 휭하니 제 방으로 건너가 버릴 줄로 알았던 것이, 어머니의 한 말을 엎어 가지고, 버젓이 내가 두칠이 처를 보아 다니우, 하듯이 밝혀 놓고 마는 것이, 윤씨에게는 천만뜻밖이었던 것이다.
“그래두 난 그 말이 정말루 들리질 않아서 물어 본 말이다.”
어머니는 낯을 좀 수그린다. 이 말을 듣고, 그 말하는 투가 어딘지 쓸쓸한 것 같아서, 형걸이도 좀 마음이 언짢은지 낯을 따라 수그린다.
“원 또 얼마나 미욱스리 자주 단니믄, 남의 눈에 띄게 단긴단 말이냐.”
이 말은 아들의 얼굴을 바로 보지 못하면서 어머니가 하는 말이다.
“누가 자주 갔나요. 큰집 맏형이 저두 맘치구 나왔다, 서루 들킨 게지요.”
‘아니, 맏형 형준이가?’
그러나 이 말은 입 밖에 내지 않고 윤씨 혼자 속으로 중얼거린 말이었다. 그는 다시,
‘그리군 제 스스로 영감에게 고해 바치다니.’
하고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이런 걸 들고 이러니저러니 하면 동기간 의리도 상할 것 같아서, 윤씨는 다시 뇌지 않고 한참을 덤덤히 앉았다가,
“아무리 남아의 몸이라 할지라두 제 몸은 제가 사랑하구, 제 처신만은 바루 가져야 하느니라. 그 애가 아무리 맘에 든다 해두 신분이 있지 않으냐, 또 너는 지금 한창 혼삿말이 사방에서 자자한데, 소문이 밖에래도 나가면 창피두 하려니와, 다른 일에두 밑지는 일이 아니냐.”
그러나 이때에 형걸이는 불쑥 일어났다.
“전 장가 안 갈래요.”
그러고는 훌쩍 문을 열고 아직도 비가 내리는 뜰 안으로 나간다.
“아니 뭐?”
하고 따라 윤씨도 일어섰으나, 다른 말이 나오질 않아, 그는 한참 동안 방 가운데 서 있었다. 이윽고 방문 있는 쪽으로 가보니 형걸이는 벌써 제 방에 들어가 버린 뒤이었다.
11
장로교회당은 구룡교에서 강선루 쪽을 향하여 올라가다가 왼편으로 꼬부라져서 임강정 있는 바로 그 맞은 집, 전날 김이방네 집 자리였다. 모서리에 부엌을 두고 양쪽 기역자로 두 칸씩 방을 들였던 것을, 모두 뜯어고쳐서, 부엌을 메우고 양쪽 바람벽을 친 뒤에 높직하니 마루를 놓아 그곳에 강도상을 만들었다. 행길 쪽으로 있는 기역자의 한쪽 두 칸 방이 남자 예배석이요, 안으로 꺾인 기역자의 또 한쪽 두 칸 방이 부인네들의 예배석이다. 지붕은 영세대로 두어 두고, 대문만 고쳐서 높직하니 돌지붕을 넣고, 그 꼭대기에 맵시나게 나무로 열십 자를 만들어 세웠다. 그 옆에 사다리처럼 다섯 여섯 층계를 만들어서, 노전으로 위를 덮고 그 밑에 종을 매어 달았다. 김이방네가 청간으로 쓰던 방을 고치고 늘려서, 평양서 온 이조사네가 살고, 그 윗방이 새로이 동명학교 교사로 온 문우성이가 기숙을 하고 있었다. 문교사는 평양 일신학교 출신으로 예수교의 독신자였고, 학교에서는 산술, 역사 등을 가르쳐 주는 서른도 안 된 젊은 선생이었다.
모란꽃이 한창이니 오월 단오는 아직도 좀더 있어야 한다. 모란꽃이 져서 떨어지고, 가시울 밑과 논두렁 같은 데 창포가 줄기차게 성하고, 신작로 기슭에 부득꽃이 피고, 마지막으로 함박꽃(작약)이 활짝 피어오르면, 이곳에 단오절이 찾아온다.
그때까지는 아직 보름 하고도 얼마가 더 남아 있다.
밤새에 내리던 비가 활짝 갠 화창한 공일날이다. 동명학교 학도 박형선, 박형걸, 손대봉, 이태석, 김길손 등은 아침 예배를 보고, 찬미책들을 옆구리에 낀 채 우슬렁우슬렁 문교사의 뒤를 좇아 모란꽃이 핀 살구나무 밑으로 몰려 나왔다.
이들 중의 몇 사람, 손대봉이나, 형걸이나, 형선이는 어렸을 때, 아직 동명학교가 생기기 전 서당을 그만두고 기독학교를 얼마간씩 다닌 적이 있어서, 기독교에 대해선 결코 판 백지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요한 삼장 십육절이니, 삼장 찬미니, 주기도문이니, 이런 건, 그 참뜻을 알지는 못할 값이라도 제법 소리 높이 읊어 대기는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안식일을 지킨다든가, 예배를 본다든가, 밥 먹을 때나 잠자리에 들 때에 기도를 올린다든가, 그런 건 도시 할 염도 안 했고, 찬미책도 성경책도 사지 않았다. 학교가 기독학교니 옛말 듣는 조로 성경말을 들었고, 창가 배우는 여대로 찬미를 불렀던 것이다. 무당이 굿할 때 하는 사설이나, 조사나 영수가 올리는 기도나, 때때로 장난삼아 숭내를 내고 웃고 떠드는 장난감이 되기는 매일반이었다.
그러므로 기독학교가 폐지된 뒤에는 예배당엔 갈 염도 안 했고, 성탄일 같은 때에도 구경삼아 가면 가고 안 가면 말고 하는 그런 정도이었다.
그러던 것이 문교사가 부임해서 얼마 안 해, 이들은 다시 예수를 믿는다고 예배당에를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문교사가 부임된 뒤부터라고 하여도, 그가 공부시간마다, 줄창 예수교 선전을 했다든가 그런 때문은 아니다. 본시 문교사는 강서 태생이라고 하는데, 인물이 깨끗하고 새 지식이 해박해서, 이 고장에 오자 곧 학도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말았다. 동명학교 교사라야 한문선생 같은 건 서당 훈장과 다를 게 없었고, 신식 학문을 배워 주는 이라야 어느 시골학교를 한 해나 두 해, 대충대충 건너뛰며 배워 갖고 온 나 많은 분들뿐이었고, 그래도 정영근 교사 같은 이는 체육이나 조련을 가르치는 관계로 젊은이들의 마음을 끌었으나, 이 역시 너무 엄하고 세차서, 학도들이 가까이하긴 힘든 사람이었다. 그러던 판에 대성학교 물도 먹었고, 지난봄에 일신학교도 졸업했고, 그래서 신학문이나 개화사상엔 발이 활짝 넓은데다가, 또 하나 엎쳐서 예수를 믿는 덕에 양인들과도 교제상이 넓어 이즈음은 양서를 이책 저책 뒤적여 보는 판이니 학도들이 홀딱 반해 버릴 건 정해 논 이치였다.
이조사의 소개로 이 고장 학교에 부임이 되었는데, 그는 오는 대로 그의 윗방에 기숙하고 검소한 독신생활을 시작하였다.
처음 그는 처자도 안 거느리고 혼자만 달랑하니 찾아와서, 단정한 독신생활을 하는 것이 일반의 주목을 끌었다. 그가 강서에서도 명문의 자제라는 걸 안 뒤에는, 일반은 더욱 그의 생활을 괴이하게 생각하였다. 마누라와 의가 나쁘든가 그렇지 않으면야, 청청한 몸에 안타까이 외지에 와서 홀아비 살림을 한다느냐고, 부인네들까지 문선생의 이야기를 입심거리로 삼았다. 아마 상처를 한 뒤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어디 첩이라도 두었다가 이 고장 형편을 보아 종차로 데려오려는 겐지 모른다거나, 이렇게들 소문을 놓다가, 이즈음은 예수 믿는 집 부인네들 입에서 나온 말로, 엄격한 양반 집안의 자손이라, 아들은 개화사상에 떠서 교사질을 나다녀도, 자부(子婦)는 타고장에 내보낼 수 없다고, 저렇게 혼자 나와 다니는 게라는 소문이 퍼진 뒤에는, 아마 그 말이 비등할 게라고, 다시 딴 소문을 퍼뜨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학생들간에는 그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는 것이 한 가지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학도들 중에는 유학을 세우는 집안에서 자라나서 서학을 싫어하는 이도 있었으므로, 어떻게 되어 저런 점잖은 선생님이 예수를 믿는다더냐고, 수상히 생각하는 이도 있었지만, 고을서 자라나서 기독학교를 치른 학도들에게는 전과는 다른 태도로 예수교를 다시 한번 돌아보는 힘있는 동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학도들이 문교사를 좇아 예수교 회당엘 드나들게 된 직접 동기는 모두 제각기 딴 모습을 띠고 있었다.
위선 형걸이는 문교사와는 다른 학도들보다 유달리 가까워질 까닭이 있었다.
문교사가 고등과 일년 교실에서 수학을 가르치기 몇 날째 만에, 학과를 마치고 하학할 무렵이 되어, 미취자를 조사해 본 적이 있었다. 장가 아니 간 학도는 두서넛 되었으나, 선치도 안 싸고 통히 약혼조차 안 한 학도는 스무 명 가까운 한 반 학도 중에 박형걸이 혼자뿐이었다.
생김새도 비범하고, 차림차림이나 몸 가지는 품이 결코 가난한 집 아이도 아닌데, 어인 까닭으로 아직 조혼사상의 희생이 되지 않았는가 하여 퍽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물론 개화사상이 들어온 뒤에는, 열 한두 살 나이에 장가를 보내지 않으려는 개화해 가는 집안도 드문하였으나, 열아홉이 되도록 혼사도 정하지 않았다는 건, 그의 집안이 상당히 개명한 신식 집안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필시 무슨 곡절이 숨어 있을 게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문교사는 교실을 나오면서, 형걸이를 불러, 밤에 틈이 있거든, 내가 기숙하고 있는 집이 바로 예배당 안에 있는 이조사네 집 윗방이니, 한번 놀러 오라고 말하였다.
자상한 형걸이의 설명과, 그 설명 속에 얼키고 설킨, 형걸이와 형걸이 모친 윤씨의 고민을 낱낱이 듣고, 문교사는 신분의 차별이나, 적서의 구별 관념이나가, 모두 어떤 시대의 찌꺼긴가를 소상하니 가르치고, 지금 문명하는 시대에는 그런 차별이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것을 말하였다. 이어서 그는 비복을 해방할 것과, 미신을 타파할 것과, 조혼사상을 물리칠 것과, 생활 습속을 개량할 것을 말하고, 이것을 위하여 몸을 바침이 청년 남아의 할 것이라 가르치었다. 형걸이는 문교사의 이야기를 알아들을 대목도 있고, 터무니 무슨 곡절인지 영문인지를 모르고 넘기는 대목도 많았으나, 문교사의 하는 말은 모두 옳은 말이라고 생각하면서 잠잠히 듣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는 형걸이와 문교사와의 사이는 유별난 교의로써 맺어져서, 사제의 엄격한 관계는 잊지 않으면서도 어딘가 그것을 넘는 정의를, 피차간 느끼고 있었다. 바로 형걸이가 쌍네와 가까이하기 비롯한 전후의 일이었다. 그러나 형걸이는 쌍네와의 관계에 대해선 절대로 입을 다물고 아무 의논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인제 다시 혼삿말 같은 덴 귀도 안 기울이리라고, 내심으로 굳이 작정한 것도, 문교사에게는 말하지 아니하였다. 그는 얼마 안 해 공일날이나 삼일밤 예배 같은 때엔, 회당에 다니는 교인이 되어 있었다.
형선이가 예배당에 다니게 된 건, 또 다른 경로를 밟아서였다.
형선이는 그의 갓 데려온 아내, 보부가 예수는 믿지 않노라 하지만, 뒤주 속에 시집올 때 성경책과, 찬미책과, 예수가 승천할 때의 그림과, 십자가 앞에서 꿇어앉은 그림 등속을 넣어 갖고 온 것을 알고 있었고, 정좌수도 회당에 다니진 않으나, 기독교를 배척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예수 믿는다구 뭐랄까 봐 그러나.”
사실 보부는 귀신이나 마귀를 존신이라고 섬겨 오는 집안에서 예수교 문세를 중얼대다가 시집살이도 못 하고 쫓겨온 색시를 알고 있었고, 비록 새신랑 되는 형선이야 그러랴마는, 빈정대는 말에도 틈새기를 보이지 않으려고,
“믿으면 믿는다고 밝히지요. 믿지 않으니까 않는다구 하는 게지요.”
하고 새침을 뗀다.
“그럼 성경책은 웬 겐가. 그리구 목수 아들인가, 그 텁석부리 말이야, 그 사람 하눌루 올라가는 그림인가, 그건 다 웬한 겐가?”
“심심할 때 이야기책 대신에 보믄 어떤가요. 그림이야 머, 비단필이나 삼성에 붙은, 딱지를 모아 두는 어대지요.”
그러나 형선이가 바륵바륵 웃으면, 보부도 그 웃음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면서도 그대로 따라서 바륵바륵 하고 웃었다.
그런데 문우성 교사가 온 뒤에, 그가 예수를 독실하게 믿는 걸 알고 얼마를 지나서, 형선이는 밤에 제 아내더러,
“새루 온 문교사가 예수를 믿는대. 아주 독실하다는데. 난두 회당에나 갈까.”
하고 말해 본 적이 있었다. 이때에도 남편이 제 마음을 중떠보는 줄 알고,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 찬미책하고, 성경책하고, 좀 꺼내 주게.”
그때에야 비로소, 남편의 말이 진정인가 농말인가를 판별해 보려는 듯이, 바느질에서 눈을 떼고 남편의 얼굴을 쳐다본다. 별로 농의 말 같지가 않아서,
“건 뭘 할라구요.”
하고 한번 물어 본다.
“두뭇골 형걸이두 믿구, 모두 가는데, 난두 가볼까 하구.”
“머, 남이 믿으면 믿으시나요.”
“자네가 믿길래 믿어 보려네.”
농말인 줄은 알면서도 보부는 발신하니 웃으면서,
“망측해라, 누가 머 믿는답디까.”
한다. 그러나 그는 곧 옷가지 호던 걸 반짇고리 속에 넣고 일어나서, 옷뒤주를 열고 그 속에서 성경책과 찬미책을 꺼내었다. 어딘가 기뿌드름한 홍조를 띤 빛이 얼굴에 떠올랐다. 형선이가 그걸 한 손으로 받아 쥐니, 보부는 다시 아래께 문을 열고 서랍에서 성화를 꺼낸다.
“이 그림이 십자가에 못 백혀서 사흘 만에 예수 승천하는 그림, 이건 겟세마니 동산에서 예수가 기도드리는 그림, 이건 예수 어렸을 때 그림, 이게 마리아라구 예수 오마닌데, 참 곱게 생겼지요.”
보부가 하나하나 가르쳐 주는 걸, 덤덤히 바라보고 있다가 형선이는, 얼굴을 비스듬히 쳐들어서 보부를 바라보며,
“한다하는 조사 영수 찜쪄 먹겠군.”
하고 히죽이 웃었다. 그는 아내의 지식이 넓은 데 만족한 것이다.
“난두 기독학교 댕겨서 성경줄이나 들었건만 원. 그래두 찬미는 몇마디 하지. 어데 이번 주일에 가볼까.”
“가보시구려. 아무러나 개화하신 이들이야, 마귀 섬기는 것보담 월등 낫지요.”
인제는 보부가 정면으로 권하는 판이다. 형선이도 속으론 ‘짜장 그러렷다’ 하고 생각했으나, 아무 말도 안 하고 성경책을 뿌르르 펼쳐 들었다.
“자네 가구 싶어 어떡하겠나.”
책장을 공연히 펄각펄각 뒤치면서 형선이가 물어 본다.
“가구 싶으면 가나요. 내외하는 아낙이 그렇지요, 머.”
“내 용서 맡어 줄게 자네도 같이 가세나.”
그러나 남편의 이 말이 농말인 건 뻔했다. 그러므로 보부는 씩 웃으면서,
“남덜 다 갈 때 차차 가지요.”
한다.
“지금두 머 남덜이야 안 댕기나, 많이덜 댕기는데.”
“그래두 난 후댐에 갈래요. 어서 당신이나 열심히 믿우. 나야 애기나 낳거던 장옷 쓰구 댕기지요.”
형선이는 아내의 갑자기 발그레해지는 얼굴을 홀린 듯이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인제 밤두 깊었는데 자리 깔구 불 끄지.”
하였다.
형선이는 그 다음 공일날부터 예배당엘 갔다.
이 밖에 손대봉이는 형걸이의 권유, 그리고 김길손이나 이태석이는 다시 이 손대봉이나 형걸이의 인도로 예배당에 출입하게 된 것이다. 대봉이는 예수교란 건 어떤 겐데, 그 진리는 뭐이고, 죽으면 천당에 가고, 뭐, 이러퉁한 말은, 하나도 쓰지 않았다.
“얘 길손아, 이 댐 공일에 회당에 가자.”
한마디 툭 던지면 저쪽에선,
“겐 뭘 하레.”
하고 반문한다. 그러면 곧,
“너, 색시랑 체니 구경 안 할련? 함께 찬미하구, 기도 올리구, 오라바니, 누님 어쩌구 한다. 재미있다.”
이렇게 꼬여 대면 처음엔,
“망할 자식.”
하고 어깨를 툭 치며 웃고 돌아서지만, 공일날 아침엔, 일찌감치 조반을 먹고,
“대봉이 있나.”
하고 찾아왔다. 대문 밖으로 나가면 기척하고, 경례하고, 입나팔 분 뒤에,
“문선생님두 믿는다지.”
하고 엄숙하니 딴전을 울린다. 그러면 대봉이는,
“그럼, 문선생님이 믿길래 가는 게지, 될 말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각각 예배당에 다니기 비롯한 것이다.
예배가 끝나면 남자들이 먼저 다 나가 버린 뒤에 한참을 더 기다렸다가 부인네들이 장옷을 쓰고 회당에서 나와, 자기 집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마침 남자반 예배석에서는 나 많은 축들이 상론할 게 있다고 빈자리가 없으므로, 부득이 문교사는 청년들을 데리고 뒤꼍 살구나무 밑으로 온 것이다.
“지금 조사님 말씀대로 마귀를 불살라 버리는 예배가 두세 고장 있는데, 거기 참례하려거든 점심덜 잡숫고 다시 이리로 모여 주시오. 그러나 머, 장년반에서 참례할 테니까 우리 청년이 전부 몰려갈 필요는 없고, 역시 먼저 주일처럼 미신 타파의 전도대를 두어서 친근한 집이나, 흠없는 집에 가서 각각 성경책과 찬미책을 나누어 주면서, 우리 하느님 말씀의 진리를 펼쳐 놓는 데 노력하시는 게, 더욱 안식일을 지키는 본정신에 합당할까 합네다. 우리의 생활의 실제를 들어서, 귀신이나 마귀를 섬긴다고 굿과, 푸닥거리와, 토사와, 경과, 점과, 살풀이와, 치성 같은 데에 피땀을 흘려 모은 재산이 얼마나 생뚱하게 흘러 버린다는 것을 실지상의 있는 일을 들어서 설명하고, 개화한 외국인들의 훌륭한 생활을 자세하게 비교해 가면서 깨우치도록 말씀하고, 이 찬미책과 성경책과 그림 등속을 두고 보라고 나누어 주시오. 한번 그렇게 해논 집은 그 뒤 끊임없이 자주 놀러 다니면서, 무슨 사소한 일을 들어서라도 늘상 하느님의 진리를 들어 말씀하십시오. 동시에 우리가 날마다 말하는 생활풍습의 개량 같은 거나, 비복의 해방 같은 거나, 이런 걸 널리 들어서, 어서 우리 어두운 생활에서 광명한 세계로 나아가자고 권유하십시오. 끝으로 가장 주의할 것은, 무례하게나, 또는 감정이 상하게 하지 말 것. 무엇보다 먼저 친밀해지는 게 중요하니까. 그리고 가도가 엄격한 집에 무시로 안방을 엿본다든가, 이런 건 우리 청년들이 오해를 받기가 쉬우므로 절대로 주의하고 명심하여야 하겠습네다.”
이 말을 들으며 형걸이는 모란꽃 포기 옆에서 잠깐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안방을 엿본다든가, 이런 건 우리 청년들이 명심하여 삼가야겠다는 걸’ 들으니 언뜻 두칠이 처 쌍네 생각이 났다. 형선이가 빤히 형걸이를 쳐다본다.
‘혹시 형선이도 형준이 입에서, 내가 두칠이 처 방에서 나오더란 말을 듣고, 그 일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형수 되는 정보부나, 온 집안이 알고 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낯이 후끈하면서 형준이에게 미움이 가고 잠시 동안일지라도 제 얼굴을 뻔히 쳐다보던 형선이에게도 미움이 가는 것 같다.
퍼뜩 대봉이를 보았더니, 그는 지금 칠성이 처의 생각을 했었던지 형걸이를 보고 벌쭉하니 웃는다.
“그럼 두 분씩 갈러서, 한 분이 성경과 찬송가를 각각 한 책씩 들고 그림은 큰 거 작은 거 합해서 다섯 장씩, 이렇게 나누어 들고 곧 떠나 주십시오. 밤 예배에 다시 오실 때에, 전도한 결과를 자세하게 말씀하시도록 해주시오.”
잠깐 부인네들의 예배석을 끼웃하여 바라보더니,
“부인네들도 다 갔으니 인제 각각 헤어지시오.”
형걸이와 대봉이는 한패가 되었다. 그들은 임강정 앞으로 나와서 비류강 가장으로 내려왔다. 방수성 위에 서서,
“뉘 집 뉘 집이 가볼까.”
하고 형걸이가 물어 본다.
“네 소견대로 한 집 가구, 내가 앞장서서 한 집 가구, 이번엔 이렇게 한번 갈라서 해보자.”
대봉이의 대답을 가만히 되새기더니,
“넌 어데 갈라구 생각한 곳이 있네? 난 한 군데 있다.”
하고 형걸이가 말한다.
“뉘 집이가? 너부텀 말해 봐라.”
“왜, 방선문께 나가노라믄, 국숫집이 있지, 박 누구라든가, 그 집 아니믄 그의 아우 마방하는 집으로 갈란다.”
형걸이의 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태봉이는 달려들었다.
“이놈 뭐 어드래?”
멱살을 받쳐 쥐려고 하니, 형걸이는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안 그러마, 안 그러마, 다신 안 그러마.”
하고 껄껄 웃어 댄다. 형걸이가 가자는 집은 박리균네와 그의 동생 박성균네 집인데, 대봉이가 인제 며칠 안 있다 박성균의 딸 금네한테 장가드는 걸 놀려 대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대봉이는 성이 삭았어도, 좀 입맛이 밍밍한지 시푸드름해 있다.
“왜, 그 말에 노했나.”
하고 물으니,
“망할 자식, 노하긴 누가.”
하고 씩 웃으며 시원스레 대답은 했으나, 그 싫디싫은 금네한테 장가들 걸 생각하니, 미상불 속이 상해 기분이 울적하지 않진 못했던 것이다.
한참 동안을 아래쪽으로 덤덤히 걸어가다가,
“내가 생각한 곳은 강선루 앞인데, 그리루부텀 댕겨 갈까. 우리 일갓집 뒤채에, 새루 평양서 이사해 온 집이 있다.”
하고 대봉이가 말하는 것을, 형걸이는,
“그럼 그럭하지.”
하고 그 말에 따라간다.
그들은 다시 길을 뒤집어 임강정 골목으로 올라와서 행길로 나섰다. 대봉이는 앞장을 서서 바른쪽으로 올라가다가, 관가 우물께로 꺾어서 돌아간다. 한참을 가다가,
“이 집 뒤채다.”
하고 대봉이는, 어떤 돌집 앞에 와 선다.
“이 뒤꼍으로 돌아 들어가면, 따루 떨어진 집이 있다.”
잠깐 더 그대로 서서 설명을 하다가, 가만히 형걸이 귀밑에다 입을 대고,
“기생집인데 괜찮을까.”
하고 나직이 물어 본다.
“글쎄.”
하고 형걸이도 그의 말이 뜻밖이고, 도시 생각조차 안 했던 곳이라, 잠깐 동안 머뭇거리며 새겨 보다가,
“귀천의 차별이야 두겠나. 그러니 관계야 없겠지만서두, 글쎄 원 우리 학도 신분에.”
하고 망설이는 기색을 보인다.
“그럼 괜찮다. 차별을 없애는 게 종교의 목표가 아닌가. 어쨌거나 뒷감당은 내 할게 따라만 오게. 난두 이사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뿐이지 한번 본 적은 없다. 뽕두 딸 겸 뭣두 볼 겸이지.”
대봉이는 그의 팔을 끌듯이 하며 앞장을 선다. 형걸이도 싫지는 않다. 들어가는 걸 발뺌해 줄 건덕지나, 발명할 수 있을 만한 트집만 있으면, 젊은 사람의 마음이라 입맛이 당기지 않진 못했던 것이다. 모시 다듬은 두루마기를 살랑살랑 휘날리며 한 손으로 책과 그림을 들고 각담을 돌아 뒤꼍으로 갔다.
“아니 계시우.”
하고 문 앞에서 대봉이가 불러 본다. 대문 앞은 채마밭이다. 안에서는 대답이 없다.
“아니 계시우니까.”
하고 또 한번 부르고는 형걸이를 보면서 눈을 하나 찔끔한다.
“거, 누구요.”
가느다란 젊은 여자의 목소리다.
“내웨다.”
하고 제법 어른처럼 대답하곤 또다시 형걸이를 바라본다.
“오만, 누구 찾아오신가 분데, 좀 나가 보시소고레.”
대문 밖에 서서 두 총각은 아름다운 여자 목소리를 흘리듯이 듣고 섰다. 이윽고 회청백이 낡은 걸 끌면서, 오십이 넘었을 부인이, 삼성 치마를 두르고 뜰을 건너 나와서 대문 빗장을 뽑는다.
“어데서 오신 이들인가요.”
대문 앞에 와서 찾는 손이 시퍼런 학도 청년인 것을 본 여인은 좀 의아해서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본다.
“아랫거리서 온 사람인데, 주인 계신가요.”
하고 이번에는 형걸이가 나섰다.
“예, 안주인만 있습네다. 그런데 무슨 일이신가요.”
이렇게 더듬더듬하고 있는데, 안에서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누구시든지 들어오시라구레. 으레껏 찾아오신 이들을.”
이 소리를 듣더니 여인네는 급작스레 벌신하니 웃으면서,
“자, 누추한 방이지만 좀 들어들 오시소고레.”
하고 대문 한편에 비켜 선다.
“에 좋수다, 여기두.”
하고 대봉이는 한번 사양해 보는데, 형걸이는,
“그럼 잠깐만.”
하고 대문 안으로 으쓱하니 들어선다. 그래 대봉이도 따라 들어섰다.
주렴발을 친 윗방에서 갓 단장한 듯한 기생이 쌩긋하니 웃으면서, 한 손으로 발을 들치고, 반들반들하게 물걸레질을 쳐놓은 마루로 나온다.
“수구레 누추한 집을 찾아 주셔서 죄송합네다.”
하고 고요히 한짝 무릎을 꿇고 반절을 하듯 한다. 예사대로 하자면 떨어지게 반말을 할 것이지만, 형걸이는,
“느닷없이 찾어와서 되레 안됐수다.”
하고 어름어름한다.
“자 이리로들 올러오시지요. 방은 누추하지오만, 이리로 들어오시지요.”
기생은 처음 마루를 권하였다가 다시 방안을 권한다. 대봉이는 형걸이를 슬쩍 보더니,
“그럼, 좀 들어가서 이야기하세그려.”
하고 토방에 갓신을 벗고 마루로 올라선다. 기생의 안내로 그들은 방안에 들어갔다. 기생 어미는 부엌 건너 외간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기생이 안내한 방은 늘레로 두 칸 방인데 기직 위에 돗자리를 깔고, 아랫목에는 보료에 사방침을 놓았다. 뒤꼍으로 뒤주, 자개 장롱, 의걸이를 쭈르니 늘어놓고, 아랫목 머리맡에는 문갑이 놓였다. 옷 곁에는 화초 병풍을 나직하니 둘렀고, 그 앞에 놋으로 만든 유경(鍮檠)이 놓여 있다. 문갑 앞에는 흰 옥초합과, 놋재떨이 위에 긴 연죽이 하나 얹혀 있다. 병풍 머리에 세운 가야금이, 천장 밑에 선반을 매고 모셔 놓은 손각시 들어 있는 챙지에까지 올라 대이었다.
“인젠 벌써 여름이라고 낮이면 더우신걸요.”
하고 태극선을 꺼내 권하고, 이어,
“의관 파탈하시고 앉으시지요.”
한다. 두 사람은 들고 온 책과 그림을 놓고 모자를 벗어 보료 뒤로 밀어 놓는다.
보료 위에 두 젊은 손님을 모셔 앉히고 기생은 방 가운데 앉아서, 옥초합을 끌어다 담배를 담는다.
“평양서 온 지 오래웨까.”
하고 형걸이가 말을 걸어 본다.
“한 달포 넘었어요. 일가 사람이 자파에서 사는데, 이 고장이 산수도 좋고 명미하다 하시기에 구경두 할 겸, 그리구 이곳서 옛날 부용(芙蓉)이란 명기가 나지 않았습니까. 제 이름을 바로 부용이라 여쭙길래, 이것저것 그리워서 한번 찾아온 것이야요. 너무 생소한 고장이라, 여러 나릿님 사랑만을 하늘처럼 믿고 온 셈이지요.”
담배가 다 담기었다. 소털 같은 기새미가 노랗게 대통에 들어 담겼다.
“심심하실 텐데 담배 붙이지요.”
가느다란 옥가락지와 금지환 낀 손으로 긴 연죽을 내대이니, 대봉이가 사양 않고 끌어 받아서 입에다 물으려고 하다가, 문득 예수 믿는 사람은 술 담배를 금한다던 말을 생각하고,
“모처럼 붙인 걸 사양키는 어려우나 미처 담배를 못 배왔소.”
하고 점잖게 재떨이 위에 도로 놓는다.
“이 서방님께서도, 그럼.”
하고 형걸이를 쳐다보니, 그는,
“나도 못 배웠습네다.”
하고 대답한다. 그러나 속으론, 부용이가 저더러 서방님이란 게 우스웠다. (이렇도록 장성해서 총각일 줄은 누가 보아야 생각지 못할 것이다.)
“참, 얌전들 하시구려. 무엄한 말씀이지만.”
하고 부용이는 그리 크지 않은 흰 이를 아래쪽만 내보이면서 웃어 본다.
“얌전해 못 배온 게 아니라, 잘 피우든 걸 요즈음 끊어서 못 먹는게라우.”
하고 형걸이도 웃는다.
“아니 담배를 끊으셨어요.”
갑자기 웃음을 털고 낯색을 정색하면서, 부용이는 형걸이를 쳐다본다.
“그런 게 아니라요, 인제 제대루, 우리 화장수를 시작해야겠군, 우리 둘이 화장수를 떠난 게라오.”
잠깐 대봉이를 쳐다보고, 형걸이는 까치다리 했던 걸 좀 풀었다가 도사리고 앉는다.
“우리가 댁을 찾어온 까닭이, 바루 우리들이 담배 술을 끊은 까닭과 같으외다. 직발 지름길을 해서 털어놓구 말해 보면, 부용이한테 우리가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하러 온 게외다.”
얼굴이 달걀같이 개름하고, 눈매가 정기찬 부용이의 얼굴에 잠시 복잡한 표정이 오락가락한다.
예수를 믿으라니, 지나가는 농의 말인지, 혹은 비천한 계집이라고 실없이 놀려 대는 사설인지, 그렇지 않다면 무슨 깊은 딴 뜻을 두고 빗대어 하는 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혹 자기가 잘못 들은 말일 는지도 모르겠다고―이렇게 부용이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온 농의 말씀을 하셔도.”
이렇게 한마디 나직이 종알거리다 말고, 그 아름다운 눈매로 약간 형걸이를 흘겨보듯 하다가 끝을 새름하니 웃어 버린다. 형걸이는 그렇지 않다는 발명의 말을 하려고 입을 날름거리다가, 부용이의 입술이 흩어지는 데 질려서, 얼굴을 바로 보지도 못한 채 한참 동안을 더듬는다.
“그럴 리가 있나요.”
하고 앞을 지르고 나선 건 옆에 앉았던 대봉이었다.
“이걸 보소구려. 이게 찬미책하구 성경책이 아니웨까. 또 이 그림 하며.”
수다스럽게 내놓고 지정머릴 치려고 하는데, 부용이는,
“저 같은 사람을 그처럼 생각들 해주시니 고맙긴 하외다만, 가령 제가 예수를 믿는다면, 어데 회당에라두 제법 갈 수 있는 몸인가요.”
하고 약간 나무람 섞인 한숨조로 나온다.
“왜요. 어데 예수교에서 사람 차별 두는 줄 알우.”
대봉이가 대서기는 했으나, 형걸이는 역시 부용이의 하는 말이 근경에 가깝다고 속으로 생각하였다.
“제가 괜히 예배당에만 가보셔요. 그날부터 점잖은 집 부인네는 하나도 오들 않을 겝니다.”
“그래두 할 수 없지요. 예수라는 이는 사람에게나 어데 귀천을 가리거나 그렇진 않았으니까요.”
대봉이는 어찌 되었든 건둥건둥 주워섬기고 있기는 하나, 형걸이는 이런 데 와서 전도고 뭐고 하는 게 역시 탈선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이왕 왔던 김이니 그대로 갈 수는 없다고, 가라앉는 제 기분을 속으로 느끼면서 이렇게 말해 보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부용이의 잘못인 줄 압네다. 예수를 믿으라는 건, 그저 덮어두고 회당에나 오라는 말은 아니겠지요. 사람 따라서는 위선 오는 게 장땅이라고, 회당에 부지런히 소일삼아 댕기는 가운데서, 차츰 예수교의 진리나 본정신을 깨달아 가는 이도 있겠지만, 부용이 같은 분이야 그럴 필요도 없겠지요. 회당엘 간다든가 안 간다든가 그런 것보담두, 위선 성경이든가 찬송가를 보구서 그 참정신을 깨닫고 매일 하는 생활 가운데 그 정신을 배어들게 하면 그게 더 중한 줄 압네다. 참 부용이 말마따나, 부용이가 회당엘 온다고 보면, 아직 낡은 습관에 젖은 완고한 분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부인네들 중에는 회당에 안 오게 되는 경우가 생길는지두 모르겠습네다. 한 사람의 진정한 분을 얻기 위해서, 쓸데없는 가짜 신도를 백만을 잃는대도 가당할는지 모른다면, 그 말두 일리는 있지만 아직 이 세상이 그렇게까지 되기야 쉽습니까. 그러니까, 우리들이 부용이 집에 찾아온 진정은 어데 있든 간 전도 나왔던 김에 한번 놀러 들린 걸로 셈을 치고 어떻든 우리의 본뜻만 저버리지 말아 주면 될 게 아니웨까. 이 책일랑 놓구 갈 테니까, 심심파적으로 보아 보소. 우리 생각은 사람은 본대 귀하거나 천하거나 하는 구별이 있을 턱이 없다. 모두 한가지 같은 사람이 팔자를 잘 타구 나면 양반이요, 그렇지 못하믄 상놈이요, 이러니까, 이 뜻을 잊지 말구 마귀나 미신이나 이런 데 잡히지 말구서, 새 문명을 받아서 잘살자는 겝니다. 이거 머, 화장수 타령이 너무 길어졌으니, 이건 이젠 이만해 둠세.”
형걸이는 벌죽하니 웃으면서 대봉이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러는 동안 부용이는 다소 흥분된 빛을 낯에 그리며,
“좋은 말씀을 들려 주셔서 감사하와요.”
하고 진정으로 감사한 생각을 가슴 깊이 새겨 넣은 듯이 가만히 머리를 수그려 인사를 한다.
“허, 머 이럴 것까지 없구. 자 그럼 우린 또 딴 곳에 들러 볼 곳도 있으니까, 인제 가보아야겠수다.”
모자와 나머지 책자를 들고 일어서니,
“아니, 원 이렇게 가시다니 될 말씀이웨까. 식혜나 감주래두 한 잔 씩 올리려구 지금 막…….”
하고 따라 일어서서 문께를 막아 서며,
“오만, 저 화채든가 식혜든가, 얼런 상 좀 차리세요.”
하고 일변 또 건넌방을 향하여 소리를 지른다.
“아니올세다. 뒷날 또 놀러 오지요. 많이 놀았으니께루. 인제 다른 델 또 가보아야지요.”
대봉이는 어느결에 모자를 쓰고 두루마기의 주름살을 털면서, 주렴을 들치고 마루로 빠져나간다. 차마 처음 보는 남의 서방님(사실은 총각이지만)의 손을 붙들 수는 없어, 발을 동동 굴러 보고 싶게 안타까웠으나 어름거리다가는 또 한 분마저 놓칠까 저어하여, 부용은 형걸이 앞에 가로서서 피해 나갈 길을 막아 버린다. 형걸이는 모자를 짚고 다시 그림 뭉텅이를 집어 들다가 문득 생각되는 듯이,
“참 그림두 한 장 받아 두시오. 이게 예수 어렸을 적에 성모 마리아에게 안긴 그림이외다.”
하고 그 중에서 한 장을 뽑아서 문갑 위에 놓다가, 잠깐 마당 밖을 눈길해 보았다. 대봉이는 마당 가운데 서서 형걸이의 나오는 걸 기다리고 있다.
“온 이렇게 여럿을 함께 많이 주셔서 황송하온데. 그런데, 글쎄 저 서방님이 저렇게 나가셨으니 어떻게 합니까. 제가 나가 모시고 올 테니, 잠깐만 이대로 기다려 주세요.”
그러나 형걸이는 모자를 쓰고 두루마기 고름만 고쳐 맨다.
“자 비키시오.”
주렴에 손을 대려는 걸 덥석 두 팔로 잡고, 제가 지금 한 행동이 무언지도 채 생각지 못하면서, 동백기름 냄새가 풍기는 곱게 빗은 머리를 쌀레쌀레 내젓는다. 형걸이가 부용에게 잡힌 제 손을 내려다 볼 제, 비로소 부용이는 물감처럼 낯을 붉혔다. 그러나 그는 손을 놓지 못하고 한참 동안을 그럭하고 서 있었다. 발 친 방안은 아무 데서도 보이지 않았다.
12
며칠 전에 나카니시 상점에서는 이 고장에선 보지 못하던 잡화 상품을, 새로이 평양서 소달구지에 한차판이나 실어 왔다. 여태껏 평양과 이 고을과의 일백육십 리 길에 짐을 나르는 데는 마바리꾼이나 돌림장수 모양으로 당나귀나 노새에 싣고 다니든가, 도부꾼이나 납지개장수처럼 등에 지고 다니든가, 상사에 겨울날 눈과 얼음을 이용하여 소발구를 쓰든가 하는 외엔 별 도리가 없었다. 그러므로 웬만한 이삿짐이나 잡곡이나 소금이나 그 밖에 해산물 같은 큰 짐은, 대동강을 치거슬러서 비류강까지 올라오는 뾰루대와 수상선 편을 이용해 왔었다. 두서너 집 포목점에서 주단이나 포목을 실어 오든가, 칠성이네가 자전거를 타고 평양 가서 물건을 해오는 것도, 이 배 편을 이용하였고, 나카니시네가 부페짐이 되는 잡화를 상자로 해올 때나, 심지어는 김선구네가 그 알뜰한 과자를 몇 상자 해오는 데도 이 뾰루대와 수상선 편을 이용해 왔다.
그러던 것을 단오를 앞두고 날이 가물어서 물이 적어진 관계로 배편은 날이 지체된다고 나카니시네는 단연코 새로 난 소달구지에 한차판을 실어서, 번뜻한 신작로로 밤낮 하루 해를 걸려, 평양서 이 고장까지 운반해 왔던 것이다.
육중한 두 개의 커다란 바퀴가 붙은 달구지를, 황소가 헐떡이며 끌고서 돌차니 고개를 넘어서 망지다리를 지나 방선문으로 들어설 때, 후루매 입고 게다 신은 젊은 나카니시는 물론, 그 밖에 많은 아이들과 일없는 한가한 친구들이 일부러 구경을 하러 마중을 나왔었다. 그들은 달구지를 따라 거리를 올라와서, 그 달구지 위에 실었던 짐짝을 내려놓고 하나하나 끄르는 것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짐을 내려놓은 뒤에 소는 박성균네 마방으로 끌고 가서 여물을 먹이고, 따라온 달구지꾼은 방안에 들어가서, 국수 두 돈 오 푼짜리를 세 그릇이나 조져 대었다. (국수는 박리균네가 누르던 것을 이즈음 집을 떨어 고치노라고, 분채를 성균네 부엌으로 옮겨 놓았던 것이다.)
어린아이들 중에는 달구지가 신통할 뿐 아니라, 달구지 부리는 험상궂은 작자가 국수 세 그릇을 먹어 대는 것이 또한 신기해서, 인차 나카니시네 집 앞에 몰려 있는 저희 동무아이들께로 뛰어가서, 좀더 이야기를 보탬해 가며 인제 달구지 끌고 온 장정이 연거푸 국수 다섯 그릇을 먹어 대더라고 헛소리를 놓았다.
그러나 그까짓 국수를 먹는 것보담 아이들은, 지금 한참 짐을 끄르는 대로 그 상자나 볏집 수세미 속에서 보지 못하던 이상하고 괴상한 물건이 자꾸만 쏟아져 나오는 것이 더 재미나고 신기하였다. 한 가지 물건이 나올 때마다 어른들 틈에 어깨를 걸고 서서, 그들은 그것이 무엇에 쓰는 것인지를 맞춰 대느라고 새새덕거리고 재깔대었다. 나카니시도 우쭐했고, 그 집 고초카이 다로오라고 하는 군청 하인의 아들도 무슨 큰 벼슬이나 한 것처럼 의기양양하다.
달구지에 실어다 부리고, 지금 가게에 벌여 놓고 싸 놓고 하는 상품 가운데서는, 석유(石油) 열 상자가 제일 돈 먹은 물건이었다. 미국 뉴욕 솔표 석유라고 쓴 나무상자 속에 흰 생철로 만든 왜유초롱이 두 개씩 들어 있었다. 이놈을 아홉 상자는 그대로 져다가 뜰 안에 쌓아 놓고 그 분주한 통에 천천히 해도 좋으련만, 여러 사람이 보는 중에서 그 중 한 초롱을 쑥 뽑아 놓더니 아깝지도 않게 장도리로 칼을 대고 구멍을 뚫는다. 그러더니 볏집 수세미 속에서 양철로 만든 펌프를 빼들고 와서 구멍에다 넣고, 연신 쇠줄을 한 손으로 낚았다 놓았다 한다. 수채처럼 된 구멍에서 석유가 쪼루루 갓난아기 오줌 싸듯 나와서는, 남포 방등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뒤꼍에 쭈르니 매단 크고 작은 남포등 중에서 큰 놈을 하나 내리어서 갓을 씌우고, 알을 꽂고, 석유 든 방등 가운데 척 늘어진 심지 위 끝에 성냥을 그어 댄다. 해도 지기 전에 불을 켜놓는 것이다. 길 가운데 둘러서서 나카니시의 하는 품을 보고 있던 고을 사람들은, 신기해서 혀를 빼문다. 연신 그 가격이 얼마냐고 물어 대니, 장기를 보아야 알겠다고 상점 사람은 장한 듯이 뻐겨 댄다.
새것을 갖고 이럴 지경이면, 지금 나카니시가 남포등에 불을 붙여 댄 갑에 든 성냥도, 이 고을엔 처음 오는 물건이었다. 부싯돌이나, 이런 것보다는 편리하다고 많이 사용해 오던 잎성냥 대신에, 끝에 노란 인이 붙은 놈, 아무 데나 되는 대로 대고서 찍 그으면 켜지는, 들고 다니기 간편한 가치로 된 성냥이 지금 처음 이 고장에 들어온 것이다. 이쑤시개나, 댓자박이나, 샅가시 같은 놈을 돌잔등이나, 기둥이나, 바람벽에 그으면 불이 나니 신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담배 붙이는 데는 일등 십상이겠다고 누가 말하니, 어린아이 있는 집에서 밤에 불 켰다 죽였다 하기에 무한 좋겠다는 사람도 있고, 또 밤중에 통숫간에 가기에 알맞겠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구두 버선은 벌써부터 알고 있기는 하였으나 타래째로 묶어 놓은 놈은 처음이다. 갱고지 최관술이가 목다리까지 올려 엮은 구두 속에 꼬여진 놈을 삼성 자박지로 볼을 받아서 신고 다니는 것만 보았지, 무슨 생선 말린 것처럼 툭을 지어서, 맥기를 묶어 놓은 놈은 보지 못하였던 것이다. 갱고지 최주사 나리, 이젠 볼 받은 구두 버선은 안 신게 됐다고 누가 말해서, 둘러선 사람들은 모두 소리를 높여 웃었다.
쪽물을 들인 종이봉지에 불광을 그린 딱지를 붙인 건 양초요, 네모난 양철통에 색시가 서 있는 그림이 붙은 건, 오색이 각각 딴 봉지니 물감통이 분명하고, 단장 모양으로 강충하니 껍데기 구럭을 싸서 넣은 놈은 필시 양산일 게다. 커다란 나무상자를 조심성 있게 뜯고서 많은 수세미, 대팻밥을 집어 내길래, 그것이 무엇일꼬 하고 바라보니, 말깃말깃한 사발과 물이든가 밥알이든가 김치쪽이든가가 빤하니 들여다보이는 유리그릇과, 오줌을 누기엔 너무나 황송한 꽃 그린 찬란한 요강들이었다. 동창(東倉)이나 직동(直洞) 있는 토점이나 사기점에서 왜글지글한 커다란 놈을 시프르덩덩한 바탕에다 왜정빛으로 줄을 돌려 긋고, 생선 같은 걸 되는 대로 짓갈겨 그려서 구워 낸 쌍사발만 보아 오던 눈으로, 이 반들반들한 사기그릇과 유리그릇을 보니, 어디 김치나 된장국이나, 이런 걸 담아서는 금시에 흠이 나고 터질 것만 같다.
마지막으로 그리 크지 않은 상자가 둘이 남아 있다. 하나는 동아연초주식회사라고 쓴 것으로 미루어 히로궐련이 분명하다. 그보다 좀 더 작은 또 한 상자 속에서는 작은 말똥땅지로 만든 서너 너덧 상잣갑이 나왔다. 그 중의 하나를 아깝지 않게 터뜨리니, 그 속에서 작은 종이봉지를 하나 꺼내고, 다시 그 종이봉지를 터뜨려, 팥알처럼 발간 놈을 쪼루루 손에 쏟아 입에다 탁탁 털어 넣는다. 버작버작 씹어 삼키고는 하아 하고 고추 먹은 입을 불듯 한다. 그의 앞에서 입을 헤에하니 벌리고 쳐다보던 김존위(金尊位)에게,
“하나 먹었소까.”
하면서 나카니시가 너덧 알 집어서 치받치는 손에다 놓아 주니,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그는 텁석부리를 헤치고 입 안에 한 알씩 집어넣고 정성들이 어금니로 잘근잘근 씹어 본다.
“맛이 있소까.”
하고 물으니 존위는 후우하니 숨을 내뿜으며,
“맛이 있소. 맛이 있소.”
하고 고개를 꺼뜩꺼뜩한다.
형선이는 학교에서 점심을 먹으러 오다가, 나카니시네 집 앞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선 게 수상해서, 대문간을 들어가다 말고, 그 집 앞에 가까이 와서 사람들의 등뒤로 가게 있는 쪽으로 넘겨다보았다. 불을 켜서 매단 남포등을 바라보고 지금 막 상자와 궤짝 속에서 꺼내서 벌여 놓는 여러 가지 상품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다가, 시간이 늦을까 하여 저희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사랑에 아버지가 있었으나, 그는 안방으로 들어가서, 어머니보고,
“등피랑, 구두 버선이랑, 양산이랑, 머 이런 거 많이 나카니시네 집이 왔습디다. 사랑에나 하구 두서너 방에 쓰게, 석유하구, 남포등 서너 너덧 개 사옵세다.”
하고 말해 본다.
“하나나 사오믄 사왔지, 거 네 개씩 무슨 소용이간. 아지까리 기름 대레 논 게 한 말이나 되는데, 건 언제 쓰간.”
어머니는 실속을 차리려고 아들의 말엔 좀처럼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글쎄 사다 한번 켜만 보시구레, 당초에 낮처럼 밝구, 그놈만 켜놓았으면 넓은 방안이 왼통 낮같이 밝겠습니다.”
“아바지보구 말해 보려므나. 내야 아니.”
형선이는 서너 너덧 개라고 하지만, 두뭇골 집에서도 이곳에서 켜면 본따서, 너덧 개 쓸 것이니 적어도 열 개는 가져야 될 게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온 참, 오마니도 무던히 딱하시외다.”
혀를 차며 제 방으로 들어가는 형선이 뒤에서, 어머니 최씨는,
“무슨 돈으루 기름 세력을 할라구. 등피 없이두 비단저고리에 버선코만 잘 기웠다.”
하고 혼자말하듯 뇌고 있었다.
형선이는 제 방으로 와서 아내가 들어다주는 점심상을 받아 놓고도 한참이나 남포등이며, 구두 버선이며, 양산이며, 이런 걸 본 대로 아내에게 설명해 주고 있었다.
이때에 맏형 형준이는 저희 방 윗목에서 낮잠을 자다가 깨어났다. 그는 낑 하면서 벌써부터 몇 놈씩 밀려 다니며 웅웅거리는 파리떼를, 손으로 휘날린다. 그러더니 아랫목에 앉아서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아내에게,
“형선이는 뭐라구 저리 지껄인다나. 남 잠두 못 자게.”
하고 잠투정을 한다.
“나카니시네 집에 남포등이라나, 등피라나가 왔다구, 오마니보구 사라구 그럽네다.”
하고 아내는 제 말 같지 않다는 듯이 종알거려 댄다.
“사올라믄 사오든지 하지, 떠들기는 왜 떠들어 대는 거야.”
“누가 머 얼마나 떠들었나요. 생뚱한 소리 하지 말우. 또 괜히 의만 덧나지 말구.”
아내가 핀잔 주듯 하니 형준이는 아무 말도 안 하고, 픽 돌아누워 다시 잠을 청해 본다. 그는 아까부터 꿈을 꾸려고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뭣이든 꿈만 꾸면 곧 그놈을 풀어서 해몽을 한 다음 통수로 있는 신도감(申都監)을 따라서, 삼십육계(三十六計)의 덕대가 앉아서 기다리는 박이방네 뒷방으로 갈 참이다. 그런데 대낮에 일부러 잠을 청하려니 그게 좀처럼 올 리도 없거니와, 겨우 들었던 잠은 아이가 울든가, 파리가 콧잔등에 날아와서 간지럼을 피든가, 또 뜰 안에서 뭐라고 중얼거리든가 하면, 꿈도 채 맺기 전에 깨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눈만 벌겋게 퀭해 가지고 아무리 꿈꾼 것을 생각하려고 했자, 무어 시시펑덩한 걸 꾼 것도 같은데, 도무지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도 겨우 으레 눈을 붙이고 잠을 이루었던 것을, 형선이가 안방 마루에서 어머니와 중얼대는 바람에 놀라 깨었는데, 그 다음은 다시 잠을 청하여도 눈만 새록새록해질 따름이었다. 꿈을 꾸었던 것 같기도 해서, 이리저리 머리를 가다듬어 갈피갈피 더듬어 보나, 어딘가 풀숲을 자꾸만 뛰어가다가 무슨 구렁텅이를 보고, 이걸 넘을까, 그렇지 않으면 돌아서 갈까, 하고 망설이다가 깬 것도 같고, 또 어떻게 생각하면 웬 한 처녀하고 나무를 베러 시퍼런 낫을 들고 산 속으로 들어가다가 깬 것도 같아서, 통히 어이 된 판국인 걸 알 수 없어 화만 더럭더럭 나는 판이었다.
염병할 놈의 남포등이고 뭐고, 그놈 까탈에 넝쿨째 떨어지려던 호박이 하늘로 올라가 버린 것 같아 금시 아무개고 손에 잡히는 대로 쥐어박기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도 뒤주 속에 시집올 때 갖고 온 돈을 뒤져 가지고, 며칠째 밖으로 나가는 통에 어지간히 골치가 틀린 아내가, 이런 대목에 화를 터뜨려 놓기만 하면 대낮에 그것도 적지 않이 두통거리겠다고, 그는 천둥같이 동하는 울화를 꿀꺽 들이삼키고 휙 몸을 뒤채 벽을 향해 돌아눕고 말았던 것이다.
형준이가 삼십육계에 손을 댄 것은 불과 얼마밖에 안 되는 최근의 일이다. 그가 남아돌아 가는 정력을 처치할 길이 없어, 하룻밤 막서리 처 방에를 들어가려다가 형걸이와 부딪치던 그때만 해도 형준이는 도박이나 잡기의 성질을 띤 것엔 손도 대지 않았었다. 어렸을 때부터 투전장을 갖고 노는 데는 더러 섞였으나, 투전판을 따라 다닌다든가, 돈을 대고 큰 판을 벌여 놓든가,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두칠이 처 쌍네에 대하여 품었던 정이 제대로 쏠려 흐르질 못하고, 깊은 웅덩이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 오르고 있을 때, 그는 집안에 처박혀 있을 수는 없었다. 이런 때엔 어디, 신선한 산 속이나 해변 같은 데 여행을 하든가 했으면, 정신도 깨끗해지고 마음도 제법 후련해지련만, 그런 데까지는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그는 곡우(穀雨)가 훨씬 지난 어느 맑은 날 아침 소만(小滿)이 가까우니 꺽지가리가 한창이겠다고, 평양 영감에게 자리그물을 한떼 얻어 들고 비류강으로 나갔다. 안집에 처박혀 있으면 마음만 더 초조하고 집안 식구가 눈에 바로 보이지 않아서, 고기사냥이나 하면서 소풍이나 할 참이던 것이다.
갈로 결은 삿갓을 머리 위에 올려놓고, 다리를 종아리까지 활짝 걷어붙여서 맨발로 짚신을 신은 뒤에 으슥한 뒷대문을 나섰다. 방수성을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향교 골목과 직통하는 숭선교 다리에 이른다. 그는 다리에 올라서 난간도 없이 밋밋하니 저편 쪽 회진대 옆까지 뻗친 거머턱턱한 길을 건너간다. 다리 밑에는 맑은 강물이 급류가 져서 흘러간다.
천주봉 앞에서부터 십이봉을 끼고 둥그렇게 커다란 호수처럼 퍼졌던 강물은, 잔잔하니 강선루와 자복사의 탑을 거꾸로 비치면서 기름처럼 유유히 흐르다가 바로 다리 위 출운대 앞에서부터 여울이 져서 다리 밑에 이르러선 제법 욕계를 이룬 곳조차 있다. 초여름 아침 강바람에 볼편을 쏘이면서, 여물물에 어울려서 그는 콧속으로 흥얼흥얼 강서 메나리를 한 곡조 넘겨 본다.
조개는 잡아서 구럭에 넣고,
내 님은 잡아서 품안에 넣네.
이렇게 한 곡조 뽑아 넘기고는 ‘홍야라 뎅야라 앙’ 하면서 후렴을 정조 있게 가늘게 지어 뽑는다.
그는 다리를 다 건너고 산길에 올라섰다. 고개를 넘어서 넘은 강으로 가려는 것이다. 비류강은 반도처럼 된 긴 산을 돌아서 다시 위쪽으로 흘러 오른 것이다. 앞 강에서 산 속으로 숨어들었던 물이 넘은 강에서 콸콸콸 솟아오른다고 비류강이라고 이름지었다고 한다.
고개를 돌아서 강기슭으로 내려오면서 그는 또 한 곡조를, 이번엔 흥에 겨워 소리를 바짝 높여 가지고 뽑아 본다.
당항라 적삼에 소낙비 맞은 님,
오리알 같은 젖통 좀 보소.
이놈을 걸찍하게 한번 섬겨 놓고, 이제 다시 후렴으로 간드러지게 메겨 넘기려는데 산등에 있는 사직정 쪽에서 인기척이 난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어인 소리일런가― 해서 소나무 틈으로 소리나는 쪽을 보니,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웅성거리다가, 누가 이편을 가리켰는지 모두 형준이를 바라본다. 무얼 하는 사람들이 남의 눈을 피하여 저렇게 둘러섰는지,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 그래서 못 본 셈치고 강기슭으로 덥벅덥벅 몸을 피하려고 하는데 등뒤에서,
“형준네 재장 아닌가.”
하고 아는 척하는 목소리가 따라온다. 돌아보니 신도감이었다. 호둘기 바람에 감투만 쓰고 그는 헬레벌떡하며 산을 내려오는 것이다.
“아니 어데루 가는 길이와.”
하고 거반 가까이 와선 발을 천천히 놀린다.
“심심해서 꺽지래두 좀 잡아 볼려구요.”
형준이가 대답하니, 도감은 그의 앞에 와 서면서,
“오라 참 꺽지 가리 할 때로구먼.”
하고 대꾸를 한다. 그러더니 사면을 한번 둘러보고,
“임자 자미난 거 한번 안 해보려나.”
하고 나직이 물어 본다.
그 말로 대강 짐작은 했으나 형준이는 짐짓,
“자미난 거라니요. 머 새박에 술추렴은 아닐 게구.”
하고 반문하였다. 그랬더니 바른손으로 ‘그게 무슨 말이냐’고 툭 공기를 휘젓듯 하면서,
“술추렴이 머 자미나는 겐가.”
하고 다시 바싹 귀에다 입을 대더니,
“육계의 폭지 하나 안 써보려나.”
한다.
“아니오. 내가 무슨 그런 걸 할 줄 아능가요.”
형준이는 낯색을 달리하며 사양한다.
“그것두 머, 할 줄 알구 모르구가 있답마. 꿈꾼 대루 해몽해서 치장 붙이문 되는 게지. 임자는 일수가 좋을 테니까 해볼 만하웨니.”
신도감은 형준이를 꼭 삼십육계판으로 끌고 가려고 한다. 순사의 눈이나 끄나풀의 눈을 피해서 날마다 자리를 옮겨 가면서 하는데, 오늘은 사직정 뒤 수풀 속에서 육계판을 벌여 놓았던 것이다. 인기척이 안 나게 조심해서 하던 차에, 마침 육계문을 열어 보니 만금(萬金)에 대포다. 그래서 육계꾼이 신기한 바람에 그만 처소를 잊고 으아하니 환성을 올렸으나, 문득 아래쪽을 보니 그물을 메고 강가로 내려가는 삿갓 쓴 사람이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막 대치장을 읽기도 전에 주(走)자를 놓으려고 하다가, 신도감이,
“그게 박참봉의 맏아들일세.”
하는 바람에 모두 달아나기를 그만두었던 것이다. 말이 다른 데로 나가면 재미가 없으니, 형준이를 붙들어다 한몫 끼워 놓자고 성론이 되어, 신도감이 그를 쫓아 이리로 내려왔던 것이다.
“인제 만금에 대포가 터졌는데, 육계끈이 일수가 좋은가 볼세. 치장 돈이 백 냥인데 덕대가 삼천 냥을 물으려니 똥을 싸는 판일세. 자 이런 판에 한번 해보지 않구 언제 하겠나.”
그래도 좀처럼 듣지 않으니,
“괜히 쓸데없는 고집은 그만두게. 임자가 너무 제기면 모두 끄나풀인 줄 알구,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구 그러능가.”
하고 은근히 위협하듯이 말이 나온다. 마음이 그리 꿋꿋지 못한 형준이는 하는 수 없이,
“내게 돈 가진 것두 없구.”
“돈이야 내 얼마든지 꾸어 주지. 머, 임자만 해가지구야 돈 안 대줄 사람이 있겠나. 꿈만 바로 꾸었다믄 대구푼 대루 대게나.”
하는 수 없이 형준이는 그를 따라 산으로 올라갔다.
가보니 사람은 불과 여남은 사람밖에 없었다. 그 중에 육계꾼은 다섯 여섯, 그 밖에는 덕대와 치장과 통수들이다. 통수들이 점잖은 사람들한테서 모아 온 폭지와 돈을 맡아 갖고 그들 대신 육계문 열 때 셈을 보아 주는 것이다. 난봉꾼이기는 하나 삼천 냥 돈을 물어내는 덕대는 그래도 상판이 새파랗게 질리었다. 그는 형준이도 잘 아는 이였다. 투전 잘하기로 유명하던 오만달이란, 사십이나 되었을까말까 한 건달놈인데, 눈이 하나 해뜩한 알백이다. 지금 치장을 부르는 대로 커다란 전대에서 돈을 치러 주는데, 정각 뒤 수풀 속 웅덩이가 진 속에서는, 서너 너덧 육계꾼이 처소도 잊어버리고 떠들어 대고 있다.
“자 내 꿈을 좀 보게, 어찌 됐던 간에 흰 백설기를 한 시루 잔뜩해놓구, 이놈을 떡집 작은 메누리하고 마주앉어 서루 시시닥거리며 먹어 냈는데, 양껏 먹구 그 댐엔 그 색시와 또 적지 않게 의좋게 놀았단 말일세. 그러니 이놈이 꿈을 뭘루다 푼단 말인가. 처음은 떡을 실컷 먹은 것보다두, 색시와 논 게 더 생각이 내끼드라니. 사부인(四婦人) 가운데서 명주든가 상초루 쓰려구 했다가, 저 알백이가 사부인을 달았을 것 같진 않단 말야. 그리구 이놈이 또 첫 판이길래, 만금에다 썼네그려. 그랬더니 아 이놈 보게, 대포루 맞어떨어지데그려, 대포루. 참 그놈 신통두 하데.”
이렇게 상투에 그냥 수건만 질끈 동인 젊은 녀석이 지점벌여 대니, 맞은편에 앉았던 곰보딱지가,
“내 평생에 꼬장떡을 또 배가 터지두룩 먹어 본 적은 금시 처음일세.”
하고 꼬장떡 먹은 꿈 꾸고 만금에 붙였다가, 대포가 맞은 게 신기하다고 지저귀어 댄다.
“여보게 말 말게. 난 어젯밤 물 떠놓구 아주 손이 발이 되두룩 빌었네.”
시시펑덩한 꿈타령을 주절대고 있으니 돈을 다 나누어 준 덕대는 눈살을 찌푸리고,
“인제 그만들 떠들게. 또 그러다가 감옥 구덩이 속에서 꿈꾸지 말구.”
하면서 핀잔을 준다. 형준이는 정각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덕대와 통수들과 육계꾼들이 떠들어 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커다란 장지에 누렇게 들기름을 먹인 뒤에, 먹으로다 사람의 몸뚱어리를 그리고, 서른여섯 고대에 각각 육계의 문을 적어 논 것이 판판한 잔디 위에 놓여 있다. 신도감은 그놈을 집어 들고 형준이 앞으로 온다. 또 한 손으론 황양목으로 새긴 각판을 들고서, 종이를 쭉 판판한 땅바닥에 펼쳐 놓더니,
“자 이게 모두 삼십육문일세. 여기서부텀, 점괴(占魁), 판계(板桂), 영생(榮生), 봉춘(逢春).”
한번 뚝 끊어지곤 각판을 찾아서 가르쳐 주고, 다시 이어서,
“그 댐이 사부인으로 간옥(艮玉), 명주(明珠), 상초(上招), 합동(合同). 알지 이건. 부인네와 합동해 본 꿈이거들랑 합동―이렇게 되는 게니께루. 그 댐은 삼괴(三槐), 합해(合海), 구관(九官), 태평(太平), 자 이럭허군 목뎅이가 일산(日山), 의관이나 사포나 이런 건 화관(火官), 정리(井利), 발뒤축이 천량(天良), 눈은 광명(光明), 유리(有利)는 옹(翁) 유리라고 영감이나 두상망택이, 강사(江祠), 복손(福孫), 이렇게 쭉 내려가는 겔세. 아마 알겠지.”
형준이도 대강한 걸 알고 있기는 했으나 잠자코 들었다. 이렇게 신도감이 한참 동안을 설명하느라고 바쁜데,
“인제 앉은 자리에 한번 더 달아매 보자나.”
하고 덕대가 물어 본다. 그는 지금 삼천 냥이나 잃은 놈을 어떻게 반분이라도 봉창을 대고 싶었던 게다. 그랬더니, 웅덩이 속에 있던 곰보가,
“꿈은 어떡허나.”
하고 앉은 자리에서 되짚어 벌여 놓는 것을 못마땅하다는 듯이 말해서,
“아니 여보게, 대포 맞히구 안 하는 법두 있는가. 꿈이야 눈 붙이면 꿀 게지. 인제 하자구 해.”
하고 마주앉은 수건 쓴 녀석이 팔을 두르며 뛰어나온다. 그래 그 자리에서 또 한판을 벌여 놓기로 했다. 신도감이 폭지라고 종잇조각을 갖고 형준이한테로 온다.
“집에 가서 써놔 두면 내 갖고 와두 되는데 한판에 섞이기가 좀 무엇하거들랑 그렇게 해보지.”
그러나 형준이는 아무 대답도 안 하고 폭지를 받았다. 그는 지금 어젯밤 꿈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덕대는 종이와 붓을 갖고 외딴 쪽으로 간다. 그는 목을 매어 달아매일 육계문을 남이 모르게 쓰려고 숲속으로 가는 것이다.
“산꼭대기루 오를 땐 아마 곤산(坤山)이나 지고(志高)를 써널 모양이네그려.”
하고 웅덩이서 나온 곰보가 놀려 대니,
“잘 알거들랑 생각대루 폭지에 써넣게나.”
하고 싱글싱글 웃으며 나무 수풀 속으로 사라진다.
형준이는 부끄러운 일이긴 하지만, 어젯밤 쌍네의 방엘 들어갔다가, 순사에게 붙들린 꿈을 꾸었던 것이다. 어찌 된 판국인지, 반항하는 쌍네를 끌어안고 한참 동안 뒤채고 엎치고 하면서 돌아가는데, 덜컥 문을 열고 달려든 장정이 있었다. 이게 두칠인가, 형걸인가 하고 놀라서 보니 뜻밖에 순사였다. 순사는 네가 지금 강도질을 하러 이 집에 들어온 게 분명하다고, 아무리 변명하여도 박승을 지우며 잔말 말라고 정강이를 후려찬다. 덜미를 짚어 내동댕이치는 바람에, 문으로 내쏠리다가 문턱에 발뒤꿈치가 걸려서 막 앞으로 거꾸러지던 차에, 요행 눈을 뜨니 꿈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 꿈을 갖고 사부인이나, 원길(元吉)이나, 원귀(元貴)나, 길품(吉品)을 써넣을 턱도 안 되고, 불가불 점괴나 써넣어야 할 텐데, 같은 점괴라도, 제 스스로 순검이 되어 봤다든가, 그들과 술추렴을 하든가 했다면 모르겠는데, 남의 유부녀 방에 들어갔다가 강도 혐의를 받고, 순사에게 결박을 당하여 문턱에 발뒤꿈치를 걸고 거꾸로 굴러 떨어진 꿈이 되고 보니, 어딘가 께름칙한 게 불쾌하였다. 그러나 쓰게 된다면, 점괴밖에 쓸 게 없다고 생각하면서, 남들이 모두 써넣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만에 수풀 속에서 덕대가 보퉁이를 꾸려 들고 나오면서,
“육계문 목 매서 달아매네.”
하고 소나무 가장자리가 꾸부정하니 가지를 챈 끝에 그놈을 꾀꼬리 둥지 모양으로 매달아 놓는다.
치장은 흰 종이에 각판을 들고 폭지가 들어오길 기다린다. 통수들도 모여들고, 다른 육계꾼도 어슬렁어슬렁 모여들었다. 그들은 돈과 각판을 기록한 폭지를 치장에게 내밀었다. 형준이도 하는 수 없이 점괴를 쓰고 있는데, 신도감이 찾아와서,
“얼마나 대겠습마. 한 스무 냥 대겠나. 첨인데.”
하고 물어 본다.
“그러시구레.”
형준이는 신도감에게 폭지를 주었다. 폭지를 조사해서 치장 붙이는 것은 형준이도 가까이 와 보았다.
“자, 육계문 연다.”
알백이눈을 샐름샐름하면서 덕대는 나뭇가지에 손을 뻗쳐서 보자기를 따온다. 모두 그 보자기 푸는 것을 눈이 뚫어지게 들여다들 본다. 알백이는 재치 있게 풀어 젖히면서,
“이번에 아마 또 대포 맞는가 보다.”
하고 싱글싱글 웃어 댄다.
“흥, 이번엔 아마 모두 헛불인가 볼세.”
덕대의 웃는 품이 수상하다고 곰보가 건네 보는 수작이다.
“대포라는데 왜 이러나, 자 대포다, 대포 보게.”
그러나 보자기 속의 육계문은, 필득(必得)이었다.
“누가 맞혔나.”
필득을 써넣은 자는 곰보 하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곰보는 제 꿈에 그리 자신이 없었는지 얼마 많은 돈을 대지는 못하였었다. 댄 돈에 사십 곱을 치러 주고 나니, 나머지 붙였던 돈은 모두 덕대가 휩쓸어 갖는다.
한 시간 안짝에 돈 스무 냥을 날리고 보니, 도박이나 잡기에 경험이 없는 형준이는 좀 입맛이 밍밍했다.
“아니 무슨 꿈이길래 점괴를 썼습마.”
하고 신도감이 묻는다. 그래, 쌍네 방에 들어갔다든가 이런 건 쪽 빼고, 그저 순사한테 박승을 지워서 내굴리는 통에, 문턱에 발뒤꿈치가 걸려 넘어진 꿈이라고만 말하니,
“그럼 해몽을 잘못했네그려. 발뒤꿈치가 걸렸으니까, 필득이야 되잖나, 꿈은 참 잘된 꿈인데, 그걸 그만 점괴를 써서 틀렸네그려. 참 그 꿈 용하이, 자네는 좌우간 복은 잔뜩 지구 다니는 사람일세.”
하고 진정으로 탄복을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신도감의 말이 딴은 그럴듯도 했다. 발뒤꿈치가 걸려서 거꾸러지다가 깨었으니 필득이라― 그러고 보니 한 가지 꿈을 갖고도 여러 모로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고 그는 생각해 보았다. 스무 냥을 잃기는 했을 값이라도, 그놈의 노름도 재미나지 않는 건 아니라고 형준이는 신도감의 말마따나, 제가 짜장 일수가 좋거나 횡재할 운이 텄는지도 모를 게라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날은 그걸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돈 스무 냥을 갖고 신도감 집을 찾아갔더니 신도감은 돈을 받으며,
“인제 내 좋은 판엔 가끔 알기울 게니, 꿈만 좋은 놈을 꾸시게. 판에 섞이기 싫으면 폭지만 써서 보내게나. 그러면 다 맡아서 좋도록 하지 않으리. 임자는 모르니 말이지 점잖게 사랑에 앉아서 통수들을 거쳐서 여기다 맛을 붙인 이가, 이 고을 안에도 유만부득일세. 심심파적도 되거니와 가끔 잘 맞아떨어지면 횡재도 하잖나.”
그때에 형준이는 별로 또다시 삼십육계에 손을 댈 생각은 먹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아침에 깨어서 지난 밤 꾼 꿈이, 하도 신기하고 그럴듯할 때엔 조반상도 잘 받지 않고 이러저러 육계문이나 각판에 맞추어서 해몽을 하는 것이 여간 재미나는 게 아니었다. 해몽해 논 게 잘된 것 같으면 한번 붙여 보고픈 생각이 자연히 생겨났다. 그래서는 아침을 먹고 바람을 쏘이는 겸, 아내의 뒤주에서 돈을 한 오십 냥쯤 꺼내 들고 신도감한테로 가보는 것이다.
만일 세 번이면 세 번, 그것이 전부 헛방을 놓았다면, 꿈이고 벼락이고, 무에 맞을 턱이 있는 노름이냐고 쉬 집어쳐 버렸겠는데, 장님도 문걸쇠 잡을 때 있다고, 그것이 꼭 한 번 맞아떨어진 적이 있었다. 그래 한 번 꿈이 들어맞은 데 입맛이 당겨서, 그 다음도 틈틈이 이 육계에다 손을 대게 된 것이다.
밥 먹으면 잠을 잔다고 야단이었고, 잠을 잔다고 누우면, 꿈이 꾸어지이다, 라고 일부러 손을 숨통 있는 가슴에다 올려놓고 빌어섬기며 지랄이고, 자다 깨어나선 미친놈 모양으로 눈이 멀개서 꿈을 풀어 보느라고 정신이 빠져 앉아 있는 것이다.
그의 아내는 처음, 제 남편이 이즈음 어이 된 일인 줄을 몰랐다. 가끔 바깥 출입이 잦고, 출입했다 돌아오면 노상 잠이다. 그래 미상불 어디 계집을 하나 두고 보아 다니는 겐 줄 알았다. 그러고 보니 남편의 태도도 어딘가 그전처럼 저에게 삽삽지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하룻날은 남편더러,
“요지음, 머 볼일이 생겼소.”
했더니 그는,
“볼일은 무슨, 누가 금점이 좋은 게 있다길래 좀 가보는 게지.”
하고 대답한다.
‘금점? 금점이라면 아버지도 알게 하지 않고 무슨 금점이랄까.’
그래서 다시 한번,
“어데 머 금점을 시작했소.”
하고 물어 보니,
“금점을 시작했다나. 좋은 겐가 나쁜 겐가 알구야 시작하지. 여편네가 공연한 참견이야.”
하고 성까지 내는 바람에 다시 그 이상은 캐어 묻지도 못했다.
오늘은 그런데 형준이는 낮잠을 자고 있다. 판이 좋고 육계꾼도 많을 텐데, 장근 산에서만 하는 것도 들킬 염려가 있다고, 이번엔 박이방네 집 뒷방에서 치장을 붙이고 육계문을 열기로 작정한 것이라고 신도감은 말한다. 그래서 아침부터 어젯밤 꿈은 신통치 않다고, 이렇게 새 꿈을 얻기 위하여 낮잠을 자고 있던 것이다. 겨우 눈을 붙여서 소원대로 꿈을 꾸었는지, 형준이는 인차 방을 차고 밖으로 나간다.
꿈은 커다란 배를 타고 비류강을 건너 본 것이니, 판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 제 손에 있는 대로 서른 냥을 댈 건가, 아내나 어머니에게 얼마를 더 타내서 한 쉰댓 냥 댈 건가, 하고 망설이다가 그대로 삼십 냥을 들고 신도감한테로 갔다. 신도감은 여태껏 기다리던 참이라고 그래 꿈을 잘 꾸었는가 묻더니, 오늘은 방이 좁고 그래서, 여럿이 모이는 건 위태한데 그래도 가보겠는가고 묻는다. 그렇다면 구태여 갈 필요도 없을 게라고 폭지에 ‘판계’라고 써서 꽁꽁 말아 주고 돈냥을 곁붙여 주었다. 육계문은 밤중 으슥해서 열게 될 테니 어디 만날 장소를 정하고 기다리라고 한다. 형준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러면 우리 뒷대문 밖, 가시울타리 앞에서 만나자고 말하였다.
벌써 저녁때였다. 그는 집으로 오다가 아까 형선이의 말을 생각하고, 나카니시네 집엘 들러 보았다. 거기서 이것저것 새로 들어온 물건 구경을 하다가 집으로 와서 저녁을 먹었다.
밤이 이슥해지도록 그는 방안에 들어 있었다. 형선이가 저녁을 먹고 사랑으로 안방으로 나들더니, 종시 남포등하고 석유 한 초롱을 사왔다. 큰놈은 사랑에 매달고, 작은 걸 안방에 하나, 형준이 방에 하나, 형선이 방에 하나씩 매어 달았다. 저녁을 먹고는 이 남포등이 신통해서 모두 이야깃거리가 그것뿐이었다. 안방에서는 보패가 등잔불하고 비교해 본다고, 둘을 내놓고, 껐다 켰다 하면서 재깔대었다.
형준이 처도 밝은 불 밑에서 고운 옷을 해본다고 시집올 때 해갖고 온 영초 저고리에 깃을 달고 앉았는데, 성기와 어린 딸아이가 무릎에 기어올라서 성화를 부린다고,
“넌 좀 아버지한테루 가려무나.”
하고 성기를 형준이에게로 떠민다. 형준이는 삼십육계 생각을 하느라고 아이고 뭐고 그런 덴 도시 정신이 가질 않았다. 그런 걸 모르고 아이를 떠맡겼으니, 남편이 발끈하니 성을 내는 것도 까닭이 없지는 않았다. 그는 아이들 성화 받기 싫다고 벌떡 일어나더니 밖으로 나가 버린다.
“아이 안 보랄 게, 나가지 마시구레.”
하고 나직이 불러 보았으나, 그 말엔 귀도 안 기울이고 어디론가 상투 바람으로 나가 버렸다. 그는 남편이 이즈음 집안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는 게 제 불찰인 것 같아서 내심에 조심하고 오던 차이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제가 남편에게 한 거동에 대해서도 곧 뉘우침이 갔다. 그러나 그만 일에 성을 내던 남편은 아니었다. 이러다간 남편의 애정을 영영 잃어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들어 간다. 쫓아 나가 남편의 팔이나 옷자락을 안고, 제발 안 그럴 게 나가지 말라고, 어리광이라도 피워 보고 싶었으나, 아직 시어머니와 시누이도 안방에 앉아 있고, 또 맞은 방에는 작은동서가 시아우와 자지 않고 불을 켠 채 있으니, 무엄하게 아무렇게나 굴어 댈 수도 없다. 하는 수 없이 화나는 것을 아이들께로 돌릴 수도 없어서, 옷가지를 반짇고리에 틀어박고 새침하니 입술을 다문 채 아이들을 끼고 누웠다. 그는 마음이 언짢아서 갑자기 울고 싶었다.
형준이는 사랑 마당 가운데 서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날이 찌풋하다. 그믐이 가까우니 아직 달은 없고 별도 큰 것만이 이따금 반쩍반쩍한다. 저녁 바람은 선선하다. 박참봉이 나가 버린 사랑엔 오늘 새로 사온 대등피에도 불을 켜지 않았다. 마루에 와서 궁둥이를 걸치고 앉아 보나 삼십육계 생각만이 머리에 떠올랐다.
대체 대낮에 꾼 꿈하고는 여간 뚜렷하고 신통한 게 아닌데―커다란 너벅선을 뱃사공이 이편 저편 장대로 짚으면서 건너던 것이며, 함께 배 위에 탔던 나뭇단을 옆에다 한 단씩 놓은 여편네들 하며, 이런 게 모두 지금도 눈앞에 선하니 나타난다. 그런데 한 가지, 무엇 하러 십이봉에로 갔다가 배를 타고 오던 길인지, 그게 똑똑질 않았다. 그러나 그까짓 배를 타게 된 원인 같은 건 별로 소용이 없을 게다. 배를 타보았으니 ‘판계’면 그만이다―이렇게 혼자 두루두루 생각해 가며 생담배가 타는 줄도 모르고, 이번엔 영락없이 떼어 낸 육계문이라고 좋아서 앉았는데, 두칠이가 뒷간 뒷길로 제 방에서 나오더니, 큰 대문으로 나가려고 마당을 건너다가 형준이를 보고 인사를 한다.
“어데 가나.”
하고 물으니,
“일꾼두 두엇 얻구, 또 제삿집이두 좀 들렀다 올라구 합네다.”
하고 공손히 서서 대답한다.
“누가 제산가?”
해서,
“문길덱(文吉德)이 아버지 첫돌이 아니웨니까.”
하고 대답한다. 그는 잠시를 더 발을 땅에다 붙이고 주춤주춤하다가, 다시 인사를 하고 대문으로 나가 버린다. 그러더니 몇 발자국도 안 나가서, 도로 돌아서 들어와 안으로 빗장을 질러서 대문을 닫고 저는 온 길로 되짚어 돌아간다. 큰대문을 잠가도 좋을 시각이라, 그는 제 손으로 큰대문을 닫고, 물역 뒷대문으로 나가려는 것이다.
삼십육계의 ‘판계’ 생각을, 마치 노루 때린 몽치, 삼 년 동안 우려먹듯 하고 있던 형준이는, 이때에 문득 두칠이 처 쌍네의 생각을 하였다.
‘형걸이는 그 뒤에도 두칠이가 어데 간 줄만 알면 그대로 드나드는 모양이다. 대체 아버지는 형걸이보고 무슨 책망의 말이나 했는가. 책망을 했는데도 형걸이는 저렇게 다니는 것일까.’
형준이는 지금 이런 것을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실인즉 형걸이는 이틀밖에는 드나들지 않았다. 형준이한테 들킨 건 별로 마음에 치부도 해두지 않은 양, 그 이튿날도 쌍네 방에 왔었으나,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가서 어머니에게 핀잔을 듣곤 발을 끊듯이 여태껏 한 번도 발길을 안 했다. 하기는 그 이튿날 하루를 지나서 곧 두칠이가 돌아왔으니 올래야 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오늘 밤도 두칠이가 좀 늦게야 돌아올 테니, 형걸이가 기색을 알었으면 또 올는지도 모르렷다. 이번엔 아주 단단히 타이르든가, 집안에 모두 알게 하든가, 그렇게래도 해야만 할 게다.’
이렇게 생각이 갔으나, 그의 마음 한쪽에서는,
‘쌍네보고 형걸이와의 관계를 갖고 위협을 하면서 신도감이 찾아오는 걸 기다리기도 할 겸, 한번 장난이래도 쳐볼는가.’
이런 걸 열심히 생각하고 있었다.
삼십육계로 인해서 얼마간 잊었던 딴 정력이, 이때에 불쑥이 치밀어 오르는 걸 형준이도 의식한다.
‘어데까지든지 형 된 도리를 해야만 한다. 형의 책임이란 건 동생들의 행동을 감시하야 그릇됨이 없게 경계해 주는 데 있다.’
겉으로는 이렇게 저 자신에게 타이르면서, 또 한편 깊숙한 속으론,
‘두칠이가 없는 방으로 들어가서, 쌍네에게 한 손으론 사탕을 주면서, 또 한 손으로 칼로 위협도 하면서, 그러면 염려없이 제 손아귀에 들게 되렷다. 그래서 한껏 속이 후련해져서 있노라면 신도감이 판계로 육계문이 딱 맞아떨어졌다고 삼십 냥의 삼십 곱이나 되는 돈을 듬뿍이 날라다 줄 것이고, 그럭하면 얼마를 처억 집어서, 신도감 수고했다고 쥐여 주고, 그 나머지에서 한 절반은 갈라서 쌍네에게다 주어 버릴 것이다. 안 받으려고 하면, 상전 서방님이 주는 돈은 받아야 한다고, 의젓하니 꾸짖으며 그에게 억지로라도 들려 줄 것이다.’
이런 걸 생각하면서, 그는 마루에서 통숫간 뒤로 통한 길을 걸어 뒷대문께로 갔다.
두칠네 방은 캄캄하다. 벌써 자지는 않을 텐데―바로 얼마 전에 상전댁 부엌에서 짐승의 여물을 들고 외양간으로 나들다가 제 집으로 밥광주리를 이고 나갔으니, 두칠이와 저녁을 먹고 지금쯤은 제 부엌을 겨우 치우고 난 뒤에, 방안에서 종일 고되게 일한 몸에 다시 바느질 같은 걸 들고서 남편 돌아올 동안을 기다리고 있을 것인데, 이렇게 일찌감치 불을 껐다면, 이것이 혹 두칠이가 없다는 표적으로 형걸이를 끌어들이는 수단이나 아닌가. 그러나 쫙 열린 뒷대문 밖에서 흰 것이 하나 어른거리는 게 보이었다.
쌍네는 저녁을 먹은 뒤 겹옷 두어 가지를 애벌빨래를 해다가 지금 뒷대문 바깥 가시울타리 옆에 고잇다리를 걸쳐서 널어 놓고 있던 참이었다.
대문 밖에 나서서 형준이는 쌍네가 빨래를 다 널기까지 그를 바라다보고 섰다가, 쌍네가 버주기를 한옆에 끼고 들어오려고 할 때에, 그의 옆구리 괴춤을 꽉 잡았다. 버주기를 빼앗아 겨우 깨지지나 않을 정도로 토방 위에 동댕이쳐 놓고, 덤석 쌍네의 허리를 돌려 안았다.
쌍네는 형준이의 행동이 뜻밖이었다. 얼마 전에 두뭇골 도련님이 제 방에 들어왔다 나가는 것 잡아 갖고 책망을 하더니, 그 이튿날은 기어이 그걸 상전 나리에게 일러바쳐 말썽을 일으켰고, 그뿐 아니라 늙은 종의 귀에까지 가게 이야기를 퍼뜨려 놓은 이가, 지금 스스로 내 몸에 손을 댄다는 건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것도 늙은 종이 쌍네를 불러 갖고 부엌에서 들었노라고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알 턱이 없다. 사나이답지 않게 샐샐거리고 다니는 것이 아니꼽고 이튿날 다시 두뭇골 도련님이 왔다 간 뒤론 얼씬 발길도 안 하는 것이 필시 그 탓이라고 적지 않이 얄미웁게 생각하고 있는 터에, 이번엔 제 몸을 통째로 낚아 보려고 팔을 걷고 대서는 것이 아무리 상전 서방님의 하는 행동일망정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몸을 꽉 가다듬었다.
“노시라구요.”
이렇게 말하면서 제 허리에 감긴 팔을 홱 뿌리쳐 버렸다. 그럴 줄은 몰랐던 터에 뜻밖에 쌍네의 하는 품이 왈패스러운 데 놀라, 뒷들뒷들 한 발자국을 물러섰다가,
“아니 네가 이럴 참이냐.”
하고 적이 위협조로 다시 대선다.
“이러지 않으면 어떻게 해요.”
그 다음 말은 입 밖에 내진 않았으나,
‘내가 남편에 대한 정조는 못 지킬 갑시, 인륜을 깨트리진 못해요.’
하는 도고한 심보가 드러나 보인다.
“아니 너 정말 이러기냐.”
하고 재우쳐 말하는 데는 쌍네는 아무 말도 대답지 않고, 딱 얼굴을 바로 세우고 쳐다보았을 뿐이다.
“오냐 그럴락커던 두칠이보구 말해서, 도무지 너들을 내 집안에 두질 않게 매련해 줄 테다.”
이렇게 말해 놓곤 ‘이래도 좋으냐’ 하듯이 또 한번 쌍네의 얼굴을 바로 본다. 쌍네가 아무 말 못 하는 걸 보고, 이건 필시 굴복임에 틀림없다고, 얼굴의 표정을 느긋하니 늦추고 바른손을 다시 내밀어 본다.
“맘대루 하시구려, 죽기밖엔 더 할라구요.”
그러나 ‘맘대루 하라’는 것이 ‘내 몸을 서방님께 맡기니 마음대로 주무르며 놀아 대슈’ 하는 뜻이 아니고 ‘죽으면 죽었지 난 당신 소청 들을 순 없소’ 하는 의미라는 건 그의 어조로 넉넉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쌍네의 뺨을 하나 갈겨 대곤 그대로 가시울 문을 지나 물역으로 나갔다. 강기슭 방수성 위에 서서 잠시 기다리면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는데 신도감이 아래쪽에서 온다. 물어 보니 육계문은 ‘판계’가 아니고 ‘청운(靑雲)’이었다고 한다. 그는 아무 말도 안 하고 휭하니 문길덕이네 집으로 갔다.
싸리문 밖에서 웅성대는 안뜰을 향하여,
“두칠이 예 왔나.”
하고 부르니 두칠이가 헐레벌떡하며 뛰어나온다.
“저를 부르셨습너니까.”
형준이 앞에 서 있는 두칠이에게 그는,
“자네 아내가 행실머리가 없어 두뭇골 형걸이가 드나드는데, 그대루 두단 집안에 창피한 일 생길 테니 어데루 떠나가게.”
느닷없이 하는 말이 무엇을 뜻함인지, 한참 동안 두칠이는 영문조차 몰랐었다.
13
바로 형준이가 쌍네한데서 마음을 이루지 못하고 삼십육계마저 헛방을 짚은 뒤에, 문길덕이네 집으로 쫓아와 두칠이를 불러 내다, 형걸이와 쌍네의 행동을 꼬챙이질하고 있을 때, 형걸이는 강선루 앞 관가 우물께를 호둘기 바람으로 거닐고 있었다.
형걸이는 어머니한테 두칠이 처를 보아 다닌다고 꾸중을 들은 이후, 어머니의 말대로 다시 쌍네의 방에 들어가지는 않았으나, 밤에는 일체로 밖에 나가지 말라는 훈계의 말은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한 이틀 동안은 나가지 않았으나, 삼일 예배에 회당에 간다고 나간 뒤부터는, 안 나가는 날도 없지 않았으나, 무슨 일이 있으면 서슴지 않고 나다녔다. 박참봉이나 윤씨는 나가지 말라고 한번 이르기는 했으나 시퍼렇게 젊은 놈을 울 속에 가두어 둘 수도 없을 뿐더러, 이루 못 나간다고 잘게 굴기도, 나이 찬 아들에게 미안스런 일이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저야 장가 안 가겠노라고 한마디 뿌루퉁했던 김에 내뱉은 말이 있기는 하나 하루바삐 맞차운 규수를 탐문해서, 형걸이의 혼사를 작정해 놓는 게 부모의 할 도리라고 생각했었다.
형걸이는 오늘 밤 저녁을 먹고 날은 흐릿하고, 공부라고 별로 책도 읽기 싫고, 문교사의 집에나 놀러 갈까 하고 집을 나섰다. 그러나 대문 밖에 나서 구룡교 쪽으로 걸어나오며 생각하니, 문선생의 집에도 너무 자주 가면 외려 방해가 될 것 같다. 어젯밤에도 갔었는데, 오늘 밤 또 찾아간다면 언제 가나 싫은 낯 하지 않고 반갑게 맞아 주긴 해도, 문선생 할 공부도 따로이 있을 텐데 역시 체면을 차려야 할 것도 같다. 그래 나왔던 김이라, 대봉이를 찾아갔더니, 그는 벌써 어디로 나가고 집에는 없었다. 이칠성이가 어디 간 눈치나 알고, 지금은 칠성이 처한테 가서 화투라도 치면서 놀고 있을 게 분명하다. 칠성이 처는 평양 사창마당에서 국수장사하는 집 딸인데 처녀 적부터 좀 난봉기가 있었으나, 그런대로 어디 상원으론가 시집을 갔던 것이 남편이 어리고 정이 붙지 않는다고 제 편에서 남편을 소박하고 친정에 와 있었다. 칠성이는 본시 돌림장수할 때부터 평양엔 자주 다녔으나, 좌전에서 세매끼장수로 돌아설 무렵엔, 사창마당 국숫집엘 제 집 다니듯 드나들었다. 그러다가 새서방 싫어 친정살이하는 그 집 딸과 눈이 맞아서, 부담마(負擔馬)를 태워다가 살림을 차린 것이다. 살림은 차렸으나, 제 버릇 개 주지 못하고, 칠성이가 장사로 다른 고장에 여행할 땐 심심해서 견딜 턱이 없다. 혼자서 투전목이나 화투장을 주무르고 앉았는 것도 한두 번이다. 시골에 와서 처박혀 고적도 하고, 칠성이가 오면 원체 정없이 붙은 남편은 아니므로 그런대로 재미가 날 만했으나, 그가 어디론가 다니러 가면 혼자서 죽을 지경으로 쓸쓸하였다. 자행거 구경 왔던 대봉이는 그래서 곧 좋은 말동무가 되었고, 처음부터 대봉이를 딴생각 있어 놀러 오란 건 아니지만, 날이 거듭해 친근의 도수가 잦아지면, 나이 찬 총각이라 무슨 일이 지금쯤은 생겨났는지 아무도 알 이가 없다.
형걸이는 대봉이의 근경을 대체로 짐작은 한다. 그러므로 칠성이네 집으로 대봉이를 찾아갈 생각은 먹을 염도 안 했다. 대봉이가 혼자서들어가 논다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않고 뜻밖에 칠성이라도 나오면 면구스런 일이기 짝이 없다. 그때 형걸이는 쌍네 생각이 잠시 나긴 했으나 두칠이도 집에 있을 것이고, 또 그가 없다고 하여도 좀처럼 가고 싶진 않았다.
그래 그는 집으로 돌아와 잠이나 자버릴까 했다가, 문득 일전에 전도를 한답시고 찾아갔던 부용이 생각이 났다. 대봉이의 훌렁이로 들어가서 객쩍은 수작을 늘어놓고 나오긴 했으나 기생이 예절답고 몸가짐이 품위가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렴발 옆에서 제 손목을 잡았다가 낯이 발개져서 어쩔 줄을 모르던 생각이 간절해서, 그는 저도 채 의식지 못하면서 강성루 쪽으로 거리를 올라가다가, 이렇게 관가 우물께로 휘어 돈 길을 거닐고 있던 것이다.
휘파람도 불지 않으면서 천천히, 그러나 속으론 부용이 생각을 이리저리 해보면서 걸음발을 옮겨 놓는다.
부용이는 지금 무엇 하고 있는가. 평양서 처음 온 기생이라 널리 알려지진 않았다고 해도, 그의 용모와 몸맵시와 사람 대하는 품으로 보아, 한번 본 사람이면 누구나 놀러 갈 만한 인물이니, 이렇게 날이 어둡고 별조차 드문 밤엔 한량이나 난봉꾼이 아니라도, 그의 집을 찾아가서 주안을 베풀고 가야금이라도 들으면서, 운치 있게 밤을 새기를 아끼지 않으리라 생각되었다. 달 밝은 밤에는 달이 밝아 맑게 노는 게 좋을는지 모르나, 이렇게 날씨가 묵죽한 기분을 돋우는 날, 오히려 술잔을 들어 감격을 나누는 이가 더 운치를 아는 이일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예수교 전도라고 한 번 들렀던 저 같은 약관이, 학도의 신분으로 기생의 집을 엿본대야 차례가 올 리도 없고, 차례가 왔단들 어느 기생이 있어 반갑게 맞아 줄 인들 있으랴 생각이 든다. 결국 그를 찾는다는 것도 공연한 허사라 생각이 되는 마음은 더한층 울적하다. 그러나 그대로 돌아가기는 싫다. 담장 밖을 배회하며 방안에서 나는 가야금 소리라도 듣고 싶다. 간혹 새어 나오는 맑고 고운 목소리라도 듣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천천히 발을 옮기고 있는데 얼추 대봉이네 일갓집 된다는 그 집 대문 앞에 왔을 때,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지거리를 하며, 얼건하니 취한 젊은이 둘이 부용이 집 담장을 돌아 행길로 나선다.
“촌놈들 버릇없이, 사람 잘못 봤다야 늘상 경이나 치기 알맞지.”
이렇게 누구를 보고 하는 말인지 모르게 중얼거리며, 형걸이 쪽으로 가까이 오는 젊은이는 국자보시를 저마다 쓰고 지카다비를 신은 양다리에는 감발을 치고 저고리는 꺼머룩한 양복을 걸쳤다. 목에 수건을 매고 절반도 안 탄 히로담배를 휙 던지며 나오는 게, 이 고장선 며칠 전부터 처음 볼 수 있는 측량사이기 갈 데 없다. 그런데 뒤이어서 옷자락이 흩어진 채 몸을 가누지 못한 사십 줄 든 사나이가 하나, 누구에게 부축을 당하여 가느다랗게 아이구 소리를 뇌며, 바로 그 담장을 나오더니 저편으로 내려가 버린다.
측량사들은 휙 형걸이 옆을 지나친다. 지금 사람을 치고 나온 힘이 아직도 어깻죽지에 남아서, 형걸이 같은 건 보는 둥 만 둥, 툭 부딪쳐서 밀친 채 길 위에 침을 테 하고 내뱉는다. 저편에 선 또 한 자는,
“무에구 닥치는 대루 파김치를 만들어 버려.”
하고 마치 지금 어깻죽지로 부딪쳐 밀친 어린아이놈도 걸리는 대로 후려갈기라는 말조다. 형걸이는 가슴에 뭉클하는 것이 올라 솟구는 걸 느낀다. 그는 얼굴을 돌렸다.
“여보게, 자네덜 사람 그렇게 잘 치나.”
깔보는 데 분이 난다기보다는, 지금 싸움이 필시 부용이 집에서 일어났으리라는 데 더 격분이 동한다.
“그래 좀 겪어 보려나.”
국자보시는 일시에 머리를 뒤로 돌리고 이제라도 덤벼들어 올 자세를 취한다. 형걸이는 침착하니 서서 그들을 살펴본다.
“너이들 사주 막 냈구나.”
어린아인 줄 알았던 것이 돌이켜보니, 두 발로 꽉 땅을 딛고 태연하니 팔장을 결었다. 건방진 자식이―이렇게 생각하면서, 얼찐하니 취한 머릿속에 은근히 격정이 화염처럼 퍼져 나갈 때, 어느결엔가 형걸이의 두 팔이 하나씩 그들의 멱암치를 받쳐 들었다. 머리로 받으려는 걸 미리 앞질러 놓는 태세다. 대가리를 둘러 보았자 동발처럼 터거리를 받친 형걸이의 팔 힘을 이길 수가 없다. 바른손에 붙들린 자가 날쌔게 발길질을 하려 대드는 걸, 인차 멱암치를 낚아채며 앞 이마를 갖다 대니, 떡 소리가 나면서 이어 파김치가 되어 쓰러진다. 인제는 한 사람 대 한 사람이다. 그러나 숨을 돌릴 겨를도 없이 형걸이의 왼편 팔에 돌처럼 굳은 두 개의 손이 달려들어 온다. 두 손은 대장간 집게처럼 형걸이의 주먹을 부여뜯더니, 만신의 힘을 갖고 팔뚝을 휘어서 제 배통 가까이로 끌어 낚는다. 인제 다리만 후려차면 팔이 꺾이면서 형걸이는 저만치 가서 나가떨어질 판이다. 형걸이는 머리로 상대편의 앙가슴을 황소처럼 받으며, 왼팔을 잡힌 채 바른손으로 다시 멱암치를 놀려 잡는다. 손이 잘못하여 입술에 가 닿으니 수염이 지저분한 넓은 입이, 날쌘 앞니로 형걸이의 손잔등을 물어뜯는다. 갑자기 전 몸뚱이를 휩쓸고 스쳐 가는 아픔은 그러나 오히려 마지막 힘을 다하게 하는 자극물이 되었다. 손이 찢어져도 좋다. 욱 하고 밀어서 맞은 집 바람벽으로 몰아넣고, 죽으라고 배통이와 앙가슴을 받고 있는데, 저편도 기진하여 입도 팔도 맥을 잃고, 그대로 건들거리다가 바람을 등진 채 물러앉고 만다. 몸을 뽑고 갓신발로 대가리께를 한 번 넘겨 차니, 국자보시가 머리에서 떨어져 구르고 사람은 맥없이 돌베개를 벤다. 피가 흐르는 손을 꽉 붙들고 다시 길 위에 나서니, 캄캄한 밤에 사람의 그림자가 웅성웅성한다.
“거 맞은 건 누군데, 때린 건 누군가.”
형걸이는 행길 쪽으로 뒤를 사리고 뺑소니를 쳤다. 순사가 오든가 하면 이편에 잘못은 없지만, 시끄러울까 저어한 까닭이다. 강역으로 빠져나가서 가만히 숨을 돌리려는데 등뒤에 쫓아오는 이가 있다. 그는 그 그림자가 가까이 오기 전에 몸을 감추려고 방수성 밑으로 내려 뛸까 한다. 그러나 뒤쫓아 골목길을 더듬어 내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거칠지 아니하여, 그는 잠시 동안을 엉거주춤한 자세대로 서 있어 본다. 제 어깨에 닿는 손이 저를 해하려 들면, 그대로 방수성 밑으로 끌고 떨어져 물 속으로 굴러들면 그만이다. 그러나 거칠지 아니한 발자취마저 딱 멎어 버리고 강가는 예전처럼 고요해진다. 승선교 밑 여울물 소리가 멀찌감치 들려 온다. 그는 고개를 돌이켜보았다.
손을 내밀면 잡힐 만한 곳에 뜻하지 아니한 웬 한 젊은 여자가 서 있다.
“누구요.”
하고 물어본다. 필시 싸움터에서 따라온 여자이기 분명한데, 이렇게 자기 등뒤에 와서 아무 말 없이 서 있을 여자는, 이 윗동네에는 있을 성부르지 않다.
“저올세다.”
하고 대답하는 목소리는 아직도 기억이 찬란한 부용의 것이었다.
“부용이.”
가느다랗게 형걸이도 중얼거려 본다. 그만큼 그는 뜻밖이고 또 반가웠던 것이다. 지금 제 손에 넘어진 두 측량기사, 부용이 집에서 행패를 하고 나오던 길인 줄은 짐작하였으나 싸움터에 구경꾼이 끼여서 부용이가 섞여 있던 것을 알 턱이 없었고, 뒷감당이 귀찮아서 주(走) 자를 놓을 때에 뒤를 밟아 따라온 이가 부용이었을 줄은 꿈 밖의 일이었던 문제이다.
형걸이는 길 위로 한 발자국 물러선다. 그곳에 부용이가 있다. 얼굴도 자세히 보이지 않는다. 가만히 걸어서 부용이 옆에 와 선다. 향긋한 기름 향기가 풍겨 돈다. 부용이는 아무 말도 못 한다. 형걸이도 아무 말을 못 한다. 가지런히 섰다가 형걸이가 한 발자국 위쪽으로 옮겨 놓으니, 가벼운 마른 갓신 소리가 그의 옆을 따라온다.
그들은 덤덤히 이화정 쪽을 향하여 비류강 안을 거슬러 올라간다.
강에서는 개구리 우는 소리가 나직이 들려 온다. 개구리 알을 까느라고 별 없는 캄캄한 밤에 개구리는 이를 갈듯이 안타까운 소리를 내는 것이다.
부용이는 나이 열여덟이 되도록 누구의 앞에서 이렇도록 말 움이 오무라들어 보긴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손님 앞에서 인사성 있고 이야기를 잘 받는다고 귀염을 산 그였다. 인사 한마디 변변히 못 하고 치하의 말 한마디를 올리지 못한 채, 이렇게 덤덤히 사나이의 옆을 따라가 보기란 난생 처음 겪어 보는 일이었다. 가슴 안에 꽉차 있는 사연을 말해 보려고 애를 써본다. 그러나 입술을 열고 나오는 말이란 말이 하나도 제 마음을 그대로 아뢰어 주지는 못할 것 같다.
부용이는 오늘 저녁 어떤 선비처럼 차린 손님을 뫼시고, 술상을 배설한 뒤에 추수 김부용(秋水金芙蓉)의 시담(詩談)으로 기름 조는 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밤이 이슥할 무렵에, 본 데 없는 왼데 녀석 둘이 보쌈에 꺽지 격으로 뛰어들어 휘두를 때였다. 손님이 있다고 좋은 말로 얼러 주는 것도 종시 듣지 않고, 생트집을 잡아서 드디어는 손님에게 무엄한 행패질까지 하고 말았다. 뫼시고 왔던 가신이 겨우 손님을 부축해 갖고 나간 뒤에, 조금 있자 밖에서는 또다시 사람 싸우는 소리가 요란스럽다. 혹시 금방 옷고름도 가누지 못하고 돌아간 손님에게, 그 녀석들이 포학스런 행패질을 거듭하는 건 아닐까 하고 부리나케 쫓아나와 보니, 그 손님의 그림자는 간 곳 없는데, 행길 가까운 곳에서는 트리싸움이 벌어졌다. 벌써 구경꾼은 네다섯 모였는데 캄캄하여 똑똑지는 않으나, 세 사람 중의 두 사람은 조금 전에 제 집을 나간 외방 사람인 게 분명하였다. 한 자는 길 위에 거꾸러져서 두꺼비처럼 우무럭거리며 신음 소리를 올리고 있고, 또 한 자는 호둘기 바람인 웬 한 청년과 얼러붙어 돌아가고 있다. 부용이 집에서 나오다가 이 청년과 다시 싸움이 어우러진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때는 벌써 여남은 사람 모인 군중 틈에서, 두 사람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 이가 누군지를 알려고 부용이는 안타까이 머리를 솟구어 본다. 그러나 바람벽으로 몰아다가 머리를 상대편의 배통이에 박고 처박아 대는 청년의 얼굴을 찾아볼 길은 바이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 맞붙어서 한참 동안을 비벼 대고, 윽박질하고, 헛발질을 하고, 후려갈기고 하면서 옴짝을 안 한다. 한참 만에 어디를 단단히 꼬집히든가 물리든가 했는지, 씩씩거리는 숨결에 섞여서 외마디 비명이 들릴 때, 부용이는 그 목청이 어디서 들은 법하였고, 그래서 더 안타까이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는데, 휙 그의 아는 얼굴이 하나 지나간다. 바람벽에 몰아박고 맥을 못 추게 굴렁이를 지운 뒤에, 민첩하게 몸을 뽑아 달아나는 청년의 얼굴―그것은 일전 공일날 예수를 믿으라고 부용이 집에 찾아왔던 그 학도 청년의 얼굴이기 갈 데 없었다.
그 학도―이름도 성도 모르지만 두 손목에서 울리는 억센 혈맥을, 그는 한참 동안이나 제 손목에 넣어 본 일이 있다.
항우 같은 두 외방 사람을 거꾸러뜨리기는 했으나, 한참 어울려 싸울 땐 비명을 올리리만큼 그도 피곤하였을 것이다. 비호처럼 몸을 뽑아 행길을 건너 강기슭으로 달아나는 학도의 뒤를 쫓아, 부용이는 저도 모르는 흥분에 싸여 골목길을 뛰어내려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그 청년 학도의 옆에서 덤덤히 위쪽을 향하여 고요한 강기슭을 걸어올라가면서, 부용이는 심장에서 뭉쳐들던 솜방망이 같은 것이 사뿐히 풀어지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와사처럼 가슴에 찼다가 목구멍과 코를 통하여 얼굴로 퍼져 올라간다. 그것이 전 몸뚱이에 퍼질 때 비로소 부용이는, 제가 행복된 분위기 속에 싸여 있다는 것을 느낀다.
“여기 앉아 봅시다.”
이화정이 저 언덕에 우중충하니 서 있을 것이나, 칠흑 같은 밤엔 그것조차 보이지 않는다. 수양버들이 머리 위에서 간지럼을 피우는 걸로, 그들은 버들 포기 밑에 온 것을 아는 것이다.
늙은 버드나무 긁을 손으로 더듬어서 가지런히 두 자리를 찾아본다. 형걸이는 다치지 않은 한 손을 캄캄한 속에 내밀어 본다. 치마에 손끝이 스치는 듯하는데, 곧 따가운 섬섬옥수가 그의 손을 찾아든다. 먼저 제가 앉고, 그 옆에 부용이를 이끌어 앉혔다. 여자의 향기가 버드나무 밑에 엉켜 돈다. 천주봉만이 겨우 하늘 속에 희미하게 제 모습을 드러내고, 그 밑에 흐르는 강물도, 정각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승선교 위에 어화가 하나 별처럼 간들간들 졸고 있다. 개구리 소리조차 멀어졌다.
“내가 누군지를 아시겠소.”
형걸이는 가만히 물어 본다.
“모르는 이를 따라서 별 없는 밤에 이렇게 무엄스리 굴 년이 있겠습니까.”
형걸이는 한 손으로 부용이의 두 손을 꼭 잡아 본다. 가락지가 따끈한 손 속에서 산뜻하니 차다. 한 손 속에 두 손을 넣고, 부용이는 비로소 사나이의 바른손을 생각한다. 그리고 아까 싸움터에서 울리던 외마디 소리를 연상한다.
“오른손을 다치셨나요.”
“대단친 않으나, 그 녀석이 물어뜯은 모양입니다.”
“본데없는 치사한 놈들.”
부용이는 꾸짖으며, 사나이의 손 속에서 두 손을 가만히 뽑아 손수건을 찾아보나, 엉겁결에 뛰쳐나오느라 그것조차 잊고 나왔다. 그는 소리 안 나게 치마 고름의 한끝을 끊는다.
“이걸로 동여맵시다.”
“피는 멎은 모양이니 그대루 두어도 좋을 텐데.”
“아뇨, 이걸로 더 맵시다.”
캄캄한 속에서 잔등이 부풀어 오른 손을 부용이는 터매 준다. 그 손을 제 손 속에 가만히 올려놓고 쓰다듬듯 해본다.
“쑤시지 않아요.”
“술 취한 김에 물어뜯었을 테니까, 무슨 독을 깊이 먹었겠소. 두어 두면 낫겠지요.”
그들은 이 이상 더 싸움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아름답고 좋은 밤에, 그런 쌍스러운 생각을 갖고 싶지 않았던 때문이다.
“이 고장이 마음에 듭니까.”
이 말엔 선뜻 대답지 아니하고 부용이는 가만히 웃어 본다. 산도 좋고 물도 좋으나, 당신 탓에 더욱 마음에 든다고 대답하고 싶으나, 그 말이 차마 입 밖에 나오질 않던 때문이다. 그는 한참 만에 이렇게 대답하였다.
“뫼는 푸르고 물은 깊은데, 사람조차 외로우니, 여기가 도원이 아니겠소.”
형걸이는 부용이가 무산 십이봉과 비류강과 강선루를 읊은 옛 시를 들어 말함인 줄 알고 속으로 그 원시를 외워 보았다. 장문보의 시에,
山碧水深人寂寂(산벽수심인적적)
不知何處問桃源(부지하처문도원)
이라는 게 바로 그것이었다. 이것을 입 속으로 외우고 나서, 형걸이는 부용이더러 물어 본다.
“부용이, 강선루의 압축(壓軸)을 들은 적이 있소.”
“온 지 얼마 되지 않어서 아즉 들은 적이 없습니다. 어떤 선비다려 물으니 그 양반도 모르노라 말하시둔요.”
“난두 들은 데 얼마 되지 않은데, 가르쳐 주는 이도 지은이의 이름은 모르면서.”
잠시 말문을 닫았다가,
“응상에 운유습이요(凝想雲猶濕), 영정에 우불수라(榮情雨不收), 서기 조모우하야(庶幾朝暮遇), 십일에 구등루라(十日九登樓).”
한 번을 다시 외우고 난 뒤,
“별루 잘된 것 같지 않은데, 신선 내리는 누각이란 이름을 따서 지은 글 같습니다.”
부용이는 가만히 입 속으로 한구 한구 새겨 보다가,
“마지막이 어떻게 되던가요.”
하고 물어본다. 형걸이가 한 번을 읽으니 뒤이어,
“거이 아침나죽 만날까 하야 열흘에 아홉 번 다락에 오르더라.”
하고 글자를 따라 새겨 본다. 바람이 우수수하니 인다. 버드나뭇가지 흐느적거리는 소리가 솨하니 들린다. 이어서 바람은 자는 듯하면서 비가 푸뜩푸뜩 내린다.
“비가 오나.”
하고 형걸이는 손을 내밀어 본다. 빗방울이 하나 손 위에 떨어진다.
“비가 옵니다. 옷을 맞추기 전에 어서 갑시다.”
형걸이는 일어서나, 부용이는 자리가 아까운 듯이 일어나지 않는다.
“비 좀 맞으면 어떤가요.”
하고 한번 졸라보았으나, 형걸이가 일어서서 움직이지 않으니, 하는 수 없이 그도 따라 일어선다.
“비 오시는데 제 집에 들렀다 가세요.”
하고 형걸이 옆에 와 서면서, 부용이는 졸라 본다.
“난 시하에 달린 몸이라, 일찍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두 비가 오시지 않어요.”
“비가 오니까, 비 맞지 않게 얼른 가야 안 합니까.”
그들은 올라왔던 길을 천천히 내려가면서 도란도란 이야기한다.
“집에 들러 우산 쓰고 가시면 되지 않아요.”
형걸이는 아무 말도 안 한다.
“전날에 오셨다가두 총총히 가셨는데. 전 아직 성함도 모릅니다. 그게나 알으켜 주시구 가셔요.”
“이름 같은 거야 아나마나, 또 아시려면 여기서도 넉넉하지요.”
그러나 그는 길 가운데서 제 이름자를 가르쳐 주려곤 하지 않았고, 강선루 앞 골목으로 올라서서 행길가에 나서면서도, 부용이가 이끄는 손을 뿌리치려곤 하지 않았다. 아까 싸움하던 자리엔 개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예까지 오니 빗발만 제법 잦아졌다.
형걸이는 부용이 뒤를 따라 그가 안내하는 대로 대문을 들어섰다. 대문의 빗장을 들이고 제 방으로 들어서면서, 마루에 선 채 허성대는 형걸에게 수건을 내어 준 부용이는,
“어서 들어오세요. 비가 풍길는지도 모르니까.”
하면서 발을 들치고 내어다본다. 형걸이는 전날 대봉이와 대낮에 찾아왔던 이 방이, 어쩐지 처음 보는 딴 방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는 윗문으로 가만히 방안에 들어선다.
“온, 자리를 깔어 놨으니, 참 어머니두 무던히는 성급하시지.”
혼자 종알종알하며, 붉은 깃 달린 남빛 차렵이불을 접어서 발치 구석으로 몰아놓고, 보료를 내려 깔면서,
“비 맞으셔서 선선하실 텐데 아랫목으로 내려오세요.”
하고 웃어 본다.
“비야 무슨 비를 맞었을까마는, 이렇게 호둘기 바람으로 파탈한 몸이라서 되려 미안하외다.”
물기가 남아 있는 손으로, 얼굴을 내려 쓰다듬으면서 형걸이도 버륵하니 웃어 본다.
“온 별말씀도 다 하시네. 그러시지 마시구 어서 이리 좀 내려오세요. 방이 누추하다구서 너무 흠 삼지 말으시구.”
제 방안에 들어와서 유경에 켜놓은 불이 벌겋게 밝은 가운데를, 치마폭도 가볍게 오락가락하면서 주고받는 부용이의 말은, 밖에서보다 퍽 가벼워진 것 같다. 어석버석한 느낌이 없고, 마음을 허락한 사나이란 듯이 거침없이 하는 말조다. 형걸이는 부용이가 그렇게 친밀스레 저를 대해 주는 게 되레 고마워서, 권하는 대로 아랫목에 와서 펄석하니 까치다리로 앉는다.
사나이를 아랫목에 모셔다 앉히고, 부용이는 다시 가만히 그의 얼굴을 쳐다본다. 이마, 코, 눈, 입, 귀―부용이는 만족한 듯이 낯을 수그려 가슴과 무릎을 본다. 그러나 무릎 위에 놓인 손을 보고 그는 깜작 놀라 일어난다. 그 발로 장롱에서 눈덩이 같은 솜을 꺼내, 사온 지 얼마 안 된 석유를 묻혀 오는 것이다.
“아이머니나.”
손으로 헝겊을 끌러서 상처를 보고 부용이는 또 한번 놀란다. 부풀어 오른 손잔등에 이빨 자국이 또렷하다. 석유를 바르고 입술을 가까이 대고 여러 번을 불어 주다가,
“솜으로 좀 지져 볼까요.”
하는 것을,
“내버려두시오. 만지믄 되레 오래 간다우.”
하고 형걸이는 웃어 버린다. 그러나 부용이는 솜으로 지지는 대신, 문갑 서랍에서 흰 오징어 뼈를 내어, 칼로 갈아서 상처에 뿌려 준다.
형걸이는 이렇게 부용이의 쓰다듬을 받으면서, 이상한 감흥을 느낀다. 만일 이대로 집에 들어간다면 어머니가 눈이 동그래져서 이게 어인 상처이냐고 법석을 대며 일변 솜으로 지진다, 약을 바른다 하고 서둘러 대고, 한편으론 상노아이 삼남이든가 종을 시켜 의술을 불러들이며 야단이 날 만치 치료에 극진할 것이지만, 어머니의 애무와는 다른, 어떤 형언할 수 없는 감흥을, 그는 부용이에게서 느끼는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을 때는, 사랑을 받는 자기보다, 사랑을 주는 어머니가 더 행복되리라 생각이 갔는데, 지금 그는 비로소 사랑을 받는 자기의 행복감에 그윽이 취하여 있는 것이다. 상처를 쓰다듬어 주는 부용이보다, 안심하여 가끔 사양하면서 상처를 내맡기고 앉았는 형걸이 자신이, 한없이 행복되어 보인다. 그는 일순간 이 상처가 길이길이 나을 날이 오지 않고, 이렇게 섬세하고, 따스한 체온이 흐르는 부용이의 두 손길이, 언제까지나 제 옆에서 떠나지 않을 것을 상상해 본다. 아름답고, 행복되고, 윤택이 나는 생활일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해 본다.
“무얼 그리 생각하십니까.”
묻는 말이 곱고 아름다워서 형걸이도 빙그레 웃어 본다.
“엉뚱한 생각에 잠겼던 중이었소.”
이 말을 채 끝마치지 못했는데, 형걸이의 왼팔은 가만히 부용이의등을 기어올라간다.
“몸은 문 위에 서 있으나, 마음은 그대 따라 길 위에 가도다.”
이렇게 읊어 본다. 이윽고 부용이의 머리를 만져 보다 말고, 얼굴을 돌려 유경 있는 윗목을 바라본다. 병풍 앞에 놓인 등잔불이 너울너울 붉은 춤을 추고 있다.
身離倚門立(신리의문립)
魂逐美人去(혼축미인거)
그러나 부용이는 옛날 추수 김부용처럼,
驢勞凝我重(여로응아중)
添載一人魂(첨재일인혼)
이라고 대놓을 수가 없었다.
나귀 힘들어하매
어인 줄을 몰랐더니,
그대 마음 더 엎쳐서
이토록 무거웁네.
이토록 뾰족하니 놀려 댄 추수의 마음이, 사나이를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곤, 부용으로서 상상할 수 없었다. 이백 년도 더 오래인 옛날의 일이매, 지금의 부용으로서는 상상키도 힘드는 일이나, 옛날의 추수 김부용이가 어느 선비의 노래에 대하였다는, 그와 같은 구절 속에 품기어 도는 마음씨는, 결코 사랑하는 생각 속에선 나올 수 없는, 깜찍한 재주라고 오늘날의 부용이에게는 생각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걸이의 읊는 노래에 그는 추수의 구를 갖고 대놓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렇듯 형걸이가 저에게 마음을 주는 것이 고마워, 지금은 아늑한 행복 속에서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있으나, 인제 한번 환선(紈扇)을 들어 갈라진 뒤엔, 언제라고 다시 만날 기약인들 있으랴 생각하니, 추수의 유명한 상사시(想思詩)가 머리에 떠오른다. 그래 그 중의 한 구절을 들어,
“사건에 눈물은 젖었으되, 만날 기약이 막막하외다.”
하고 어리광 피운 말에 섞어서 가만하니 외워 보고, 얼굴을 들어 사나이를 본다. 바른팔을 뻗쳐 문갑 위에서 붓을 들어 둘둘 만 장지 위에,
紗巾有淚(사건유루)
紈扇無期(환선무기)
라고 적어 본다. 붓을 놓는 걸 기다려 형걸이는 왼손으로 다시 부용의 허리를 휘감아 본다.
“진정 그렇게 생각하오.”
그러나 부용은 아무 말이 없다. 얼굴을 바짝 들고, 이렇게 젊은 여자의 마음을 다짐받는 청년의 열정이 어떤 것인가를 찾아보기나 하려는 듯이 형걸이의 두 눈을 바로 들여다본다. 두 눈이 딱 마주쳤다. 그러나 눈보다 입이 먼저 쭝굿쭝굿 흩어진다……. 껴안았던 팔을 놓고 형걸이는 부용의 손을 장난질한다. 마디가 없이 날씬하니 쪽 빠진, 옥 같은 손이, 발그스름한 핏빛에 홍도색을 띠고 있다.
“추수 비상에 각수명가(秋水臂上刻誰名), 묵입 설부 자자명이라(墨入雪膚字字明).”
가만히 중얼거려 보니, 부용이는 곧 걸게 실을 꿴 바늘과 벼루를 가져다 놓고,
“차라리 비류강물이 다하여라(寧有沸流江盡), 어이 그대와의 이 기약을 잊으리오(妾心終不負初盟).”
한참 동안을 그렇게 쳐다보다가 먹을 진하게 갈고, 제 왼팔을 걷어붙인다. 형걸이는 동여맨 바른 손에 먹칠한 바늘을 들었다.
“무어라 새길까요.”
“성함을 새기세요.”
그때야 그는 부용이가, 아직 제 이름을 모르고 있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는 제 이름을 기다랗게 부용의 팔뚝에 새기고 싶진 않았다.
“우리는 별이 됩시다. 해도 말고, 달도 말고, 캄캄한 밤에 혼자 빛을 내는 별이 됩시다.”
형걸이는 부용이의 팔에 바늘 끝을 가져간다. 날카로운 바늘 끝이 하이얀 부용의 피부를 뚫는다. 까만 흑점이 또렷하니 새겨지도록 부용은 만족하니 웃고 있었다. 다시 형걸이의 바른 팔뚝에 까만 수영을 꿰고 나서, 둘은 덤덤히 기름 조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첫닭이 울어도 형걸은 부용의 집을 나오지 않았다.
14
문길덕이네 제사를 끝까지 보지 않고, 두칠이는 비가 푸뜩푸뜩 듣을 때에 제 집으로 돌아왔다.
처음 상전 댁 맏서방님 형준이의 말을 듣고, 그는 댓바람에 제 집으로 쫓아오고 싶었다. 아내에게 사연을 다져서 묻고, 대답이 애매하고 모호하면 분나는 대로 한바탕 후려갈기기라도 해야만 속이 후련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어이 된 일인지를 좀 더 자기 혼자 되새겨보려고, 그대로 가만히 아무 일 없은 듯이, 같은 친구들이 모인 방안으로 들어가 앉아서 한참 동안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디로 하루바삐 떠나 달라는 말은, 물론 대수롭게 여길 건덕지가 되지 못한다. 제아무리 맏서방님이라 할 값이라도, 집안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날이 오든가, 박참봉이 세상을 떠나든가 하기 전에는, 그가 나가라 들어오너라 할 그런 계제는 되지 못하는 걸 두칠이는 잘 알고 있다. 형준이가 박참봉보고 말해서 박참봉이 다시 이러니저러니 할 수는 있다 쳐도 형준이 그의 말만 갖고는 곧 집을 떠난다든가 그러지 않더라도, 과히 뒤탈이 없을 것쯤은 두칠이로서도 짐작이 된다. 박참봉까지도 친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라면, 뒷날 다시 자기를 불러 놓고 분부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형준이가 하루바삐 이 집을 떠나 달라는 말은, 그렇게 겁나는 말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실을 따져 놓고 보면, 집을 떠나 달라는 말이 사실이라고 하여도, 그로서는 결코 그것만으로 인하여 뼈아픈 일이 생기든가 그렇진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단 두 식구, 이즈음 농토를 떠나서 신작로 닦는 델 쫓아다니든가, 측량대를 둘러메고 싸다니든가, 남의 짐을 지고 다녀도, 입에 풀칠이나 하기엔 그리 힘들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성한 몸이 하루 종일 뼈가 노곤하도록 일해 주고, 어디 가선 못 살 것이냐 하는 생각이 가끔 들었으나, 저에게 쌍네를 아내로 주고, 다시 절게로부터 막서리로 한 등 높여 주기까지 한 박참봉 나리 댁을, 아무 분부 없는데 제 편에서 뛰쳐나오는 것은, 배은망덕도 심한 일이라고 제 스스로 단념하고 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박참봉이 친히, 이러저러한 까닭으로 인연해서, 너는 차후로 내 집을 떠나서 살아라, 하고 말한다면 모르거니와, 그러기 전에는 형준이 말쯤을 갖고, 봇짐을 싸서 지는 게 되레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칠이의 생각이 외곬으로 흘러 웅덩이 속으로 침전해 버리는 것은, 그의 아내의 소위 ‘행실머리’와 두뭇골 도련님과의 관계 여부에 있었다.
두칠이도 물론 아내가 그를 달가워하지 않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머리를 올려 주기 퍽 전에 제가 아직 절게로 있을 때 일만 해도 그렇고, 그 뒤 두칠이가 분명히 쌍네의 남편이 된 뒤에도 아내가 그를 정성껏 모시든가 그러지 않는 것쯤은 두칠이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어떻다고 반항을 하거나, 실없이 포달거리거나, 구박을 하려 들거나, 그런 일은 없었으니, 날이 가고 아이가 생기고, 그러노라면 저절로 화합한 가정이 되리라고,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다. 으레 잉태했던 아이를 유산을 해버려, 적지 않이 낙망이 갔으나, 그는 그것으로 결코 절망하지는 않았다. 아내는 그대로 아름다웠고, 비록 말은 없고, 보는 사람 따라서는 서먹서먹하다고도 할 것이나, 결코 그에게 슬픔을 주든가 그렇진 않았다. 부잣집 색시나, 첩들이 하는 것처럼, 간사하고 삽삽하고 살뜰스러운 맛은 없으나, 가난하고 비천한 집 아내답게, 건강하고 부지런하고 순박하다고 생각해 온 것이다. 그는 아내를 믿어 왔다.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은, 절게 시절보다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십 년이 하루 같은 고된 일을 하면서도, 아내를 생각하면 즐거움이 되었고, 하루 종일 일에 시달린 몸에서 감발을 풀고, 저녁상을 받으면서 아름다운 아내의 얼굴을 보면, 이튿날 호미 들고 집을 나설 생각이, 괴로움이 되진 않았던 것이다. 쌍네만 옆에 있다면, 그는 무슨 일이라도 할 것 같았고, 그가 손을 잡고 쫓아만 온다면, 어디라도 무서울 것 없이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던 쌍네였고 그러던 아내이다.
지금 제 아내가 자기를 속이고 마음을 다른 사람과 나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두칠이가 한참 동안 그게 어이 된 수작인지 종잡을 바가 없었던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속으로 몇백 번을 도리질을 하고 나서, 그러나 머리를 들어 보니 역시 맏서방님이 움직이지 않는 표정으로 제 앞에 서 있다. 분함보다 슬픔이 앞을 섰다. 말할 것을 간단히 해치우고는 형준이는 노한 사람처럼 뚜벅뚜벅 걸어가 버린다.
제 아내와 통한다는 사나이가 다른 사람이 아니고 바로 두뭇골 도련님이라니, 그렇다면 어이 된 영문으로 그 말을 맏서방님, 친히 제가 와서 나에게 일러바치는 것일까―물어보고도 싶었으나 이미 형준이는 그 자리에 없었다.
두칠이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어디 뒷간이라도 잠깐 다녀올 사람처럼 길덕이네 집을 나왔다.
“주안 나오게 됐는데 어데 가나?”
하고 길덕이가 묻는 것을,
“요, 밖에 잠깐 다녀오겠네.”
하고 대답해 버리었다. 대문 밖에 나서니 비가 푸뜩푸뜩 떨어진다.
걸음을 바삐 옮겨 놓으면서 얼굴과 머리에 찬 빗방울을 맞으니, 마음은 더한층 초조해진다. 강역으로 돌아서, 가시 울타리께로 와서 제방을 바라보았을 때, 그는 난생 처음 무서운 격정이 화염처럼 가슴속에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홱 문을 낚아채고 들어가면, 캄캄한 방 가운데서 뭣이든가 손에 잡히는 대로 휘둘러 칠 것 같다. 그는 제 자신이 두려웠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어디로 뛰어다닐지 모를, 성난 말처럼 생각이 갔다. 그는 손으로 울타리 문을 열고 뒤뜰로 들어서, 제 방문을 연다. 방안은 캄캄하다. 문 여는 기척이 나면 안에서 일어나는 인기척이 있어야 할 텐데 그것이 없다.
“어데, 갔나?”
대답이 없다. 문 옆에 세운 물푸레채로 방안을 휘저어 본다. 반짇고리가 걸리고는 아무것도 닿는 것이 없다. 방안은 텅 빈 것이다.
‘이것이 어데로 갔을까.’
‘과연 형준이 서방님이 이르는 말은 사실일까.’
두칠이는 방안에 들어갈 염도 하지 않고, 빗발이 제법 잦아진 뜰을 향하여 문턱에 허리를 걸치고 앉았다.
한참 앉았으려니 뽕밭 머리에서 발자취 소리가 잦게 들리고, 이윽고 가시울타리 문을 밀더니, 쌍네가 비를 피하여 들어온다. 토방에 올라서서, 어디서 얻어 쓴 것인지, 낡은 자루를 한 귀퉁이를 넣어서 꼬깔처럼 둘러썼던 것을 벗어 놓고, 덥벅 문설주로 대서다가, 무릎으로 남편의 정강이를 건드렸다.
“아이머니나.”
하고 그는 약간 놀란다.
아내의 살 냄새가 비에 젖어서 두칠의 코숭이 앞에 풍겨 돌았다. 그는 가만히 앉은 채로 묻는다.
“어데 갔더랬어?”
아내는 주춤거리다가 엉겁결에,
“품 한 자루 빌릴까 해서 꼬맹이 집에.”
그 다음은 마무리를 채 않고 남편의 몸을 피해서 방안으로 들어간다. 눅눅하니 젖은 치마폭이 두칠이의 볼편을 스치고 방안으로 넘어간다.
쌍네는 방안으로 들어가더니 천연스럽게 자리를 깔아 놓는다. 그는 지금 엉겁결에 한마디 내붙인 거짓말에 용기를 얻은 것이다.
형준이한테 그 일을 당할 뻔하곤, 쌍네는 한참 동안을 생각다 못해 점 잘 친다는 보살할미를 찾아갔었다. 조용히 늙은 노파를 마주 대하고 앉아서,
“내가 지금 무슨 죽을 혼이 들었는지 큰일이 났소와요.”
하고 이야기를 시작할 땐, 그는 부끄럼도 아무것도 생각지 못하였다.
“임자 나이 몇이든가.”
“스물둘입지요.”
까맣게 때에 전 등잔에 콩알만한 작은 불심이 기름을 빨아 올리고 있다. 그 밑에 쭈그렁 바가지처럼 오골쪼골한 보살할미가 개다리상에, 길게 꿴 엽전 타래와 따로 몇 닢 꿰지 않은 엽전을 들고, 까치다리를 야무지게 한 채 당돌하니 앉아 있다.
“임자 서방의 나이는 몇이와.”
“아마 서른하나입지요.”
“서른하나?”
지렁이 같은 가느다란 눈을 비집듯이 흡떠 본다.
“그래 말해 보시게.”
쌍네는 잠시 눈을 밑으로 깔고 가만히 생각해 본다. 생각이 먹혀서 찾아오긴 했으나, 털어놓고 제 몰골을 이야기하자니 부끄럽기 짝 없는 일이었다. 낯을 들어 한번 작은 방안을 두리번두리번하는데,
“아무두 내 집엔 없으니 마음을 턱 놓으시게.”
하고 보살할미는 재촉한다. 쌍네는 손을 오므락오므락 만지면서, 가끔가다 주춤주춤하면서도, 쪼루루 단숨에 이야기를 놓는다.
“꽃 떨어질 때니께, 한 달반이나 된가 보외다. 우리 집에서 촌에 한 이틀 보항간 새, 늘상 날보구 수상시레 구시던 셋째 도련님이, 밤에 내 방엘 들어왔으니 어떡할 도리가 있사와요. 그래 난두 젊은 마음에 장난으루다 치부대일 생각 치구서 그랬더니만, 그게 무슨 되집어쓴 병집인지, 두 번 되온 그이 생각이 도무지 머리빡을 떠나질 않소와요. 그러자 우리집에서 돌아왔으니, 도련님을 뵈올 길은 없어졌는데, 또 일 숭하게 되려니 맏서방님마저 내게다 마음을 치시고 찐덕거리시는구만요. 그이는 내가 셋째 도련님과 그런 걸 알구 있지요. 인젠 오늘 밤 안으로 필시 우리집에서두 알게 될 테구, 이리 되믄 한 세상 구박받구 사는 바엔, 아여 일을 터쳐 버리는 게 외려 속 시언할 것두 같구, 아니 머 내 손으루 일을 저지르지 않는대두, 세상은 뒤죽박죽되구 말 테니, 종차루 어찌야 좋을지 도무지 염이 나질 않는구려. 그러니 처음부텀 맘에 없는 서방 털어 버리구 사는 게 팔자소관인지, 도련님이 그러시는 게 진정의 마음인지, 한번 장난에 그치는 겐지, 모두를 신령님께 물으시어, 청청히 밝혀 주시도록 한 괘 놓아 주시우다.”
보살할미는 반백이나 된 머리빡을 끄떡끄떡한다. 터거리로 쌍네의손 있는 편을 한번 눈질하여 쌍네는 바른손에 쥐고 있던 백통전을 가만히 상 위에 올려놓았다. 돈을 본 다음에야 보살할미는 엽전을 들고 중얼대기 시작한다. 한참을 중얼대다가 엽전 타래를 휙 상 위에 던져본다.
“본서방과는 팔자에 없는 연분이군.”
이 말을 들으면서, 쌍네는 가슴이 덜럭 물러앉는 것 같은 착각을 맛본다.
“정녕 그런지 또 한번 던져 보시우다.”
이렇게 말하는 쌍네의 목소리는 약간 떨리는 듯하였다.
‘역시 팔자에 없는 연분임에 틀림없는가 보다. 처녀 적에 그렇게 싫던 두칠이다. 억지로 한자리에 누워서도, 아무 감흥이 내솟구지 않던 두칠이다. 내 속에 들었던 그의 씨가 세상 밖에 나오기 전에 흘러 버린 것도, 인연을 뒷날까지 남기지 않으려 한 때문일 게다. 모든 것이 높으신 존신께서 점지하시는 일임에 틀림이 없다.’
개다리상 위에 두 닢 맞붙은 엽전이 하나도 없는 것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며 쌍네는, 두칠이와는 갈라져야 할 팔자소관인 걸 거듭 생각하고 앉았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은 하고 있으면서도, 장차 그와 갈라지게 되기까지의 일이 한심하고 두려웠다. 한편 측은한 생각이 두칠이에게로 가는 것도 속일 수 없는 진정이다. 두칠이가 그를 얼마나 미칠 듯이 사랑하고 있는지 쌍네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 점괘에 틀림이 없는가를 다져 보듯이, 또 한 번 엽전 타래를 던져보라고 졸라 보는 것이다. 그러나 보살할미는 머리를 쌀레쌀레 내젓는다. 그는 염불 소리처럼 곡조를 붙여서,
“두 번 세 번 시끄럽게 굴면 존신 대감께서 노염이 나신답니다.”
하고 쌍네의 요구를 거절해 버린다.
쌍네는 하는 수 없이 박참봉네 셋째 도련님, 두뭇골 도련님과의 연분이 팔자에 있는 것인가를 물어볼밖에 없었다. 머리를 흔들흔들 놀리며 엽전 타래를 바른 손으로 들 때에, 쌍네는 한없이 긴장하였다. 보살할미가 던지는 엽전 타래에 나타난 대로, 그의 운명은 결정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도련님, 두뭇골 도련님, 키 크고 미츳하고 사나이다운 훌륭한 도련님. 어이 이 비천한 몸이 작히 귀하신 몸을 섬길 수 있겠나이까. 팔자에 없으소서, 지내가던 길에 한 번 걷어차 본 돌멩이로 대해 주시소사.’
입 밖에 낼 듯이 쌍네는 속으로 빌어 섬긴다. 그러나 그의 내심이 이런 말과는 딴판이었던 것은, 보살할미가 휙 던지는 엽전 타래 맨 마지막에, 두 닢의 엽전닢이 맞붙은 걸 보고, 눈물을 흘릴 만치 기꺼워한 걸로도 족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두뭇골 도련님과 쌍네는 하늘이 정해 준 배필이며, 존신이 점지해 놓은 연분이라고, 상 위에 흩어진 엽전 타래는 말하고 있지 아니한가.
쌍네는 보살할미의 집을 나왔다. 비가 내린다. 마음 같아선 비가 줄기차게 오는 속을 흠뻑 물에 젖으면서 걸어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꿰어진 자루 하나를 얻어서 고깔처럼 머리에 쓰고, 가만히 생각에 잠겨서 걷는다. 이미 그의 갈 길을 환하니 아는 바엔, 그것을 어떻게 실행에 옮길까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뭣이든가 부딪치고 싶은 대로 부딪쳐 오라. 이미 하늘이 정해 논 배필이다―이렇게 생각하면 팔을 걷어붙이고, 칼로 두붓모를 가르듯이, 썽둥썽둥 잘라 댓바람에 두칠이와의 관계도 처리해 버리고, 그리고 두뭇골 도련님과 어디 먼 곳으로 도망이라도 치고 마는 게 마땅할 것 같다. 그러나 과일이 여물어 꼭지가 물러서 떨어지도록, 나무 아래 누워서 입을 벌리고 기다리라, 이미 존신이 점지한 인연이니, 저절로 두칠이는 물러가고, 도련님이 무르익은 과일처럼 내 품에 떨어질 것이다― 하고 생각하면, 아무 말 않고 잠잠히 날이 오기를 마음을 굳게 먹고 기다리는 것이 온당할 것도 같다.
두루두루 이런 생각으로 맴을 돌듯 하다가, 채 생각이 결론을 잡기 전에, 그는 제 집에 다다랐던 것이다. 품 한 자루 내달라고 꼬맹이 집에 갔던 길이란 말은, 엉겁결에 지어 만든 생뚱한 거짓말이었다.
캄캄한 방안에서 이불을 깔아 놓고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쌍네는 치마를 벗고 자릿속에 누워 버린다.
“냉수 한 그릇 떠와.”
두칠이는 문턱에 앉은 채 심부름을 시킨다. 그러나 쌍네는 숨을 죽이고 가만히 누워 있다.
“귀가 메였나.”
결코 이런 말을 재차 할 만한 사나이가 아니었다. 냉수를 떠다 달라는 것까지도, 두칠이 입에서 나옴직한 말이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먹고 싶으면 아무 말 없이 제 발로 부엌까지 가서 제 손으로 사발을 들어 퍼먹었다. 설사 냉수를 떠오라고 심부름 조로 말했을 값이라도, 아무 대답이 없으면 혼자말로 ‘벌써 잠이 들었나’ 하고쯤 말해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야 할 두칠이가 오늘은 볼멘소리로 ‘귀가 메였나’고 호령이다. 필시 무슨 말이 두칠이 귀에 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래두 생게 냉큼 못 니러날까.”
이 말이 채 떨어지기 전에, 쌍네는 푸시시 이불을 들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남편의 이 목소리를 들으면서 등살에 오싹 소름이 칼처럼 끼치는 것을 느낀 때문이다. 그는 비로소 사나이의 힘을 눈앞에 의식한다. 어떤 공포가 무서운 폭발력을 감싸고 이 캄캄한 비 내리는 어둠 속에 장비되어 있어, 어느 한귀퉁이를 잠시 건드리기만 하면, 벼락처럼 온 우주를 뒤엎어 버릴 것 같은, 그런 힘이 쌍네의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만 같다. 왕대 사발에 냉수를 떠들고, 발끝을 조심히 더듬어서 남편이 앉은 곳으로 간다.
쌍네가 떠다 주는 물사발을 받아 들고, 두칠이는 일순간 아내의 얼굴에 물벼락을 들씌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그는 펄떡펄떡 뛰는 팔을 꾹 자제하면서, 사발의 물을 요란한 소리가 나게 덜컥덜컥 마셔 버린다. 비는 아직도 내린다. 한 방울이나 남았을까 한 빈 사발을 뜰 안쪽으로 쏟아 버리듯 하고, 그는 사발을 도로 아내에게 주었다.
“더 떠올까요?”
하고 묻는 말엔 두칠이는 아무 대답도 못 한다. 이렇게 물어본 쌍네의 가슴에도, 불현듯이 남편에 대하여 측은한 생각이 솟아오르지 않진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남편 두칠이에 대한 애정이 소생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이 결코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의식하였을 때, 쌍네의 가슴엔 눈물이 어리었다.
두칠이는 가만히 문턱에서 일어난다. 방안에 들어서더니, 아내의 옆에 아무 말 없이 서 있다. 빗소리와 낙숫물 소리를 귀따갑게 들으며, 그는 아내의 잔등에 왼손을 감았다. 그는 무서운 힘을 갖곤 아내를 부둥켜안았다. 두 눈으로 펑펑 쏟아지는 눈물을 덜컥덜컥 삼키면서,
“먼 데루 가 살자.”
아내의 앙가슴에 낯을 비비며,
“단둘이 먼 데루 가 살자.”
쌍네도 함께 솟아오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면서, 그러나 두칠이가 하는 말이 무엇을 뜻함인지 깨달았을 때, 소스라칠 듯이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놀라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이튿날 아침 두칠이는 일찌감치 조반은 먹고도, 해가 한 발이나 퍼지도록 밭으로 갈 염을 내지 않았다.
쌍네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것을, 예전대로 상전 댁 부엌에서 늘상 하는 맡은 일을 습관대로 해내치고 있었다. 그러나 여느 때와는 다른 남편의 수상한 태도가, 장차 무슨 일을 저지를 생각인지, 종잡을 길이 없어 일이 손에 붙질 않았다. 연자간으로 겨를 푸러 갔다 오는 길에 두칠이가 사랑 마루에서 주춤거리고 있는 것을 보고, 그는 겨 담은 버주기를 마당에 놓고 그늘에 숨어서, 남편의 하는 양을 눈붙여 보고 있었다. 흰 갓신이 놓인 것을 보니, 박참봉 나리가 두뭇골서 막 조반을 먹고 금박 나온 김인 듯싶다.
“나릿님, 저올세다.”
손을 읍하고 두칠이는 서 있더니,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 뒤에,
“긴하게 여쭈울 말씀이 있사와 왔습너니다.”
하고 두어 번 헛기침을 해본다. 들어오라는 분부가 났는지, 신을 마루 밑에 벗어 놓더니, 두칠이는 사랑방 문을 가만히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그 다음은 목소리가 연자간 앞까지는 들려 오지 않는다.
쌍네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필시 적지 않은 사태가 종차로 벌어질 것 같은 무서운 예감이 가슴속을 구렁이처럼 설레고 돌아간다. 그는 허둥지둥 중대문을 들어서서 사랑방 부엌으로 들어갔다. 여물을 끓이는 겸 사랑에 군불을 때는 부엌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방안의 말소리는 들려 오지 않았다. 부엌과 방과의 사이에는 두꺼운 바람벽이 가로막혔을 뿐으로 한 짝의 문도 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미친 사람 모양으로 뿌르르 안부엌에 들어갔다. 찬장에서 놋대접을 꺼내 바리에 숭늉을 떠서 받쳐 들고 다시 사랑으로 나갔다. 부엌 안에는 아무도 없고, 둘째 아씨가 혼자서 볏짚물에 머리를 감고 있었다. 사랑에서 숭늉 떠오라는 호령이 언제 났던가 싶어, 꺼먼 머리칼을 놋대야에 담근 채 둘째 아씨는, 쌍네의 나가는 양을 잠깐 동안 바라보다가 만다.
사랑문 밖에 서서 쌍네는 물그릇을 든 채 귀를 기울인다.
“글쎄 자네 생각이 그렇다니, 나루서는 뭐라 말할 수는 없어 하대, 누가 도로 공부(道路工夫)루 나가 본 친구래두 있능가. 공연히 남의 꾀임에 떠서, 인간은 많지 않다 해두, 솔가해 몰려갔다가, 낭패 보는 수두 많으닝께루.”
이렇게 천천히 말하는 것은 박참봉이었다.
“따루이 또 이 고장을 떠나야만 할 긴요한 사정두 생겠삽구, 그래서 겸사겸사 한번 가보려구 결심한 것이올습너니다.”
“응, 글쎄 그렇다믄 하는 수 없지. 지어 오던 농사나 누구에게 맡기구, 또 이왕이니 단오나 내 집에서 새구 가게 하시게. 지금 신작로가 어데까지 갔는지 모르나, 자네 내외가 내 집에 와서 해준 일이 적지 않어. 그러니 게까지 가는 노비나 그러한 건, 내 결코 섭섭하게 안 할 테니께. 단오나 지내서 떠나게 하게.”
의젓하니 박참봉은 두칠이의 요구를 허락하고 앉았다. 이 고장을 떠나야 될 긴요한 사정이 무엇인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묻지도 않고, 두칠이가 이 집을 떠나서 원산 방면으로 도로공부가 되어 가겠다는 것을 허락하고 앉아 있는 것이다.
쌍네는 이 이상 더 방안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없었다. 들고 있던 숭늉 같은 건 방안에 들여놓으나마나, 그는 그것을 그대로 들고 다시 부엌으로 돌아왔다. 돌상 위에 물그릇을 놓고, 둘째 아씨의 눈마저 피하여 그는 혼자서 뒤꼍으로 나간다. 멍울이 밤알만큼씩 큰, 함박꽃 포기 앞에 와서 시름하니 쭈그리고 앉아, 그는 흐르는 눈물을 어이할지 모른다.
둘째 아씨 보부는 머리를 볏집물에서 빼서 다시 맑은 물에 헹구고 있었는데, 쌍네가 치마폭에서 바람이 날 지경으로 부엌을 앞뒤로 드나드는데, 보아하니 신색과 거동도 수상하고 금방 들고 나갔던 물그릇을 그대로 들고 들어온 것도 무슨 곡절이 있어 보인다. 얼마 전에 맏동서한테서 귀넘겨 들은 말로, 두뭇골 시아우가 쌍네 방엘 들어갔다는 걸 들은 법한데, 그런 걸로 인연해서 무슨 사연이 벌어진 것은 아닐까 생각이 간다. 수건으로 물을 적셔 내고, 머리카락을 대충 틀어서 비녀로 꽂은 뒤에, 그는 넌지시 부엌 뒷문으로 쌍네의 모양을 살펴보았다. 복낟가리가 있고, 창포가 줄기차게 무성하고 빨랫줄이 건너간 뒤꼍에, 함박꽃 포기를 마주 대하고 앉아서, 쌍네는 어깨를 추며 있다. 울고 앉았는 것에 틀림없었다. 보부는 민망스런 생각이 가서, 잠시를 그대로 문설주에 손을 대고 내어다보다가, 가만히 발을 옮겨 놓아 쌍네의 곁으로 갔다. 뒤에 가서 섰는데도 쌍네는 돌아다도 안 본다. 아는지 모르는지―그래서 보부는 한 발자국 그의 옆으로 대서면서, 바른 손을 쌍네의 어깨에 얹어 보았다.
역시 손을 얹는 이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는 양, 돌아다보지도 않고 쌍네는 슬며시 일어난다.
“왜 울어, 무슨 일이 생겼는가.”
부드럽게 말을 건네니, 쌍네는 한 번 더 덜컥 울음을 삼키고 발을 옮겨 놓아 움등으로 들어간다. 밀은 땅속으로 움이 되고, 그 위는 광이 된 컴컴한 두 칸 방이다. 떡시루, 모랭이, 다랭이, 체, 도투마리, 바가지짝, 쳇다리, 콩나물 시루―이런 것이 지저분히 놓여 있을 뿐, 퀭하니 어둑시근한 시서늘한 방이다. 귀신을 모신 당지기가 벋장 밑에 선반으로 얹히어 있고 그 밑에 늘어뜨린 백지장이 너울너울 창살로 숨어드는 바람에 나부낀다. 보부도 따라 들어갔다. 조용한 곳에서 호소라도 해보고 싶다는 쌍네의 심보가 엿보였고, 그것이 그대로 젊은 보부의 마음을 건드리는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쌍네는 낡은 노전을 아무렇게나 깔아 놓은 데를 신발째 올라서서, 가만히 방 가운데 도사리고 앉는다. 무릎 위에 팔굽을 괴고, 한곳을 눈붙여 보고 있더니, 푸우 한숨을 내짚는다. 보부가 아직도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에서 흐르는 물을 수건으로 묻혀 내고, 쌍네의 옆에 엉거주춤히 섰으려니,
“아씨, 저의 일을 어떡허면 좋사와요.”
하고 다시 한숨을 내짚는다. 이 바람에 보부도 눈을 약간 찡그리면서 그의 옆에 따라 앉았다.
“무슨 일인지 얘기해서 될 일이면 들어래두 보자꾸나. 들어서 될 일두 아니겠지만.”
하고 보부는 미간 새에 수심을 그려 보인다.
“전 인제 아씨 옆에두 못 있구, 먼 데루 가게 된답니다.”
이야기를 시작하면, 잠시 설움이나 탄식은 잦아드는 법이다. 제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 같아야, 이야기 투가 풍겨 내는 짠조롬한 구슬픈 맛에, 저 자신도 취하여 버린다. 이야기를 듣는 보부도, 어느결에 이 애처로운 조자에 휩쓸리듯, 마음속에 솟아나는 애끊는 애상을 맛보게 된다. 보부는 저보다 나이는 위이지만, 이렇게 어리광 조로 호소를 하는 쌍네의 감정이 어린애의 것처럼, 귀염성이 가고 애처로운 생각이 들었다.
“무슨 재미에 아무도 없는, 쌍트런 노동꾼만 사는 산 속에 가서, 무서운 세상을 살어야 한답니까.”
그러나 보부는 잠시, 그의 이야기하는 사연이, 어찌 된 것인지를 알아듣지 못한다.
“아니, 난 듣는 배 처음인데, 그게 어찌 된 일인가, 좀 자상히 말을 해 봐야지.”
나직하니 다정스레 보부는 재촉한다.
“어데서 무슨 소문을 듣구―”
여기서 잠깐 말을 끊더니 무슨 커다란 비밀이나 건드리는 것처럼, 목소리를 한층 더 낮추어서,
“맏서방님이 제 욕심 못 채우시군, 공연한 꼬창질을 해서, 인제 우리는 이 고장을 떠나야 될 판국이야요. 평시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라믄 산 속에믄 어떻구 물 속이믄 어떻겠소마는, 팔자에두 없구 한 걸 어떻게 서늘쩍하게 살어간답니까. 그런데 그 화상은 부득부득 찰거머리처럼 못살게만 구는구만요. 이렇게 아씨랑, 마나님이랑 계실 땐, 이런 거 저런 거 마음이래두 쏘여서 그런대루 살어가든 걸, 인제 단둘이 떠나서 허구헌 날 그 화상을 눈앞에 보구, 어떻게 살아간단 말이웨까.”
“그러니 어떡허니, 팔자 소관이 그래서, 연분으로다 작정된 남편인데, 바늘이 가는 데면, 실이란 건 따라가지 않을 순 없는 법이 아니냐. 마음을 돌려잡어서 여태껏 살아왔으니, 인제라구 급작스리 못살 변 있겠니.”
“아니와요. 그런 것만두 아니와요, 어찌어찌해서 길을 잘못 잡은 게지, 팔자에두 없는 연분이랍니다. 생뚱한 딴사람 될 그런 화상이랍니다.”
“그럼 무슨 딴 인연이, 어데서 불쑥 솟아난다는 말이냐.”
이 말에 쌍네는 아무 대답도 아니한다. 낯을 푹 수그리고 덤덤히 앉아 있는 것을 보면서, 이때에야 문득 보부는 두뭇골 도련님의 생각을 하였다. 쌍네는 지금 제가 두뭇골 도련님과 하늘이 정해 놓은 배필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런가. 쌍네의 여태껏 해온 말과 전날 동서에게서 들은 소문과, 그리고 거침없이 해오던 말이 지금에야 급작스레 주춤거리는 품이 필시 두뭇골 도련님을 마음속에 그려 놓고 하는 말임에 영락이 없다고 보부는 생각해 본다.
그러나 보부도 생각이 여기에 미치매, 무어라고 입을 열어 말문을 터줄 수는 없었다. 오늘 아침 시어머니한테서 들은 말엔, 두뭇골 도련님의 혼사가 어젯밤으로 작정이 되었다는 것이다. 남전(南田) 강릉 최씨(江陵崔氏)의 규수인데 근본은 한다하는 양반이나 가세가 빈한해서, 측출(側出)과 혼사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혼사가 작정되었으니, 이젠 부랴부랴 편지 부치고 예장 싸고 장가를 들여야 한다고 한다. 늦어진 장가이고, 또 그대로 두면 무슨 일이 생길는지도 모르니, 어서 급히 서두는 게 무방하다고, 시어머니는 며느리들 앞에서도 서슴지 않고 말하였다. 그러니 쌍네에게 이렇게 된 사유를 털어서 들려 주고, 공연한 딴마음일랑 먹지도 말고, 마음을 잡아서 여필종부의 부덕(婦德)을 지킴이 가당하다고 타이르고도 싶어지나, 그렇게 하는 것이 박정하다기보다는, 무슨 불순한 질투 비슷한 생각에서 나오는 언행 같아서, 보부로서는 선뜻 입 밖에 내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사실 보부는, 지금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고, 또 저 혼자밖에는 그 일을 속속들이 아는 이조차 없다 쳐도, 기왕에 아무 일도 없었던 시아우라고 그대로 넘겨 버릴 수 없는, 한 가닥의 희미한 줄기가, 아직도 두뭇골 시아우에 대하여 뻗쳐져 있는 것이 진경에 가깝다. 남편 형선이와 시동생 형걸이를 바꾸어 보고, 고이고이 닫아 두었던 가슴을 열어 처음으로 잔잔한 물결 속에 파문을 그린 이가, 실로 두뭇골 시동생이 아니었더냐. 지난 늦은 겨울, 형선이가 저에게 장가를 드는 날까지, 보부는 형걸이에게 사모하는 마음을 보냈고, 장가온 새서방이 형걸이가 아니고 형선인 것을 알았을 때에도, 특별히 어떻다고 불만을 표시하든가, 불행을 예측하든가 그렇지는 않았을 값이라도, 역시 서운하고 쓸쓸하고 죄스러웠던 것만은 사실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날 밤 마루에 큰 돌을 던진 키 큰 사나이는 혹시 형걸이, 그 사람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않다. 그 뒤에 자기가 이 집에 시집온 뒤에도 형걸이는 친밀히 드나들지 않았고, 저에게 대하여도 어떻다 할 행동이나 예절의 표시가 없다. 형수면 형수, 그에 마땅한 예절의 표시가 있어야 안 하냐. 그러나 간혹 안뜰에까지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하여도, 그는 보고 못 보는 태도다. 그럴 때마다 보부는 형걸이에게 대하여 뼈간지러운 부끄러움을 느꼈다.
형걸이가 두칠이 처 쌍네의 방에 들어갔었다는 말을 맏동서의 입에서 들었을 때, 그는 처음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아무런 관계도 없는 그러한 시아우의 일이라면,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남편에게만은 잠자리 속에서라도, ‘두뭇골 작은 이에게 이런 말이 들리는데’ 하고, 오늘 아침 부엌에서 형님한테서 이러저러한 말을 들었노라고, 장난삼아라도 옮겼을 것인데 보부는 그대로 귓등에 흘려들어 두었을 뿐, 누구에게 그 말을 옮기지도 않았다.
지금 이렇게 쌍네의 입에서 눈물 섞인 절절한 고백을 들으면서 컴컴한 광 안에 앉아 있으니 이상한 느낌이 가슴속에 떠오른다.
두뭇골 시동생이 쌍네의 방에 들어간 것이 사실이라 하여도, 그리고 쌍네와 단둘이서는 어떠한 맹서를 하였는지 몰라도, 그가 쌍네와 더불어 한평생을 같이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저 발걸음 내치는 대로 한번 들러 본 술막임에 틀림없을 것 같다. 그것이 공교롭게 퍼져 나가서 일이 여기까지 되었는데, 아무리 비천한 쌍네의 몸이라고 할지라도, 형걸이의 행동엔 난폭하고 비겁한 데가 있다고 아니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수상하리만큼 보부는 시동생 형걸이가 저지른 행동에 대하여 잘못을 가릴 생각이 나질 않았다. 결코 행실머리를 아무렇게나 가질 그러한 온당치 못한 청년같이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맏동서는, 첩 자식이니 행실머리를 가지는 게 아무래도 바르질 못하다고 입을 삐죽거렸으나, 그 말을 들을 때에도, 보부로서는 한결로 그렇게 생각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면 자기는 역시 두뭇골 시아우에 대하여, 아직 한 가닥의 애끓는 사모의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것도 죄스럽고 불순한 온당치 못한 수작이었다. 그는 도리질을 한다. 역시 보부 자신이 형걸이와는 아무런 관계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처럼, 육체를 서로 나눈 쌍네도 차후에는 형걸이와 아무 관계 없는 딴사람이 되어 버릴 것이다. 막연하니 이렇게 생각하면서,
“두뭇골 도련님두 장가는 안 간다구 뻐기두만서두 어찌할 수 없는가 보데, 웃어른이 작정해 주시는 걸 거역하는 법은 없으니께. 그러니 이왕 남편이라고 섬겨 오던 바에야 지금 갑작스리 이러니저러니 할 수야 있나.”
하고 말하였다. 이러한 말을 해가면서 보부는 뜻밖에 어떠한 가벼운 쾌감을 맛보았다. 이러한 자기의 말에 안색이 어두워 가는 쌍네의 표정을 말끔히 쳐다보고, 보부의 쾌감은 조장되는 것 같았다. 이 쾌감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의 잔인스런 성미의탓이 아니라, 형걸이에 대한 질투에서 나온 감정의 한 가닥이라고 생각이 갔을 때, 보부는 제 자신에 대하여 한없이 놀라며 낯이 화끈 붉어지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이러한 야속스런 자기의 심정에 염증을 느끼며, 몸을 털듯이 불쑥 일어난다.
“자, 누가 보나다나 해두 흉하겠다. 어서 밖으로 나가자. 생각한다구 별수가 나는 게 아니다. 될 대로밖에는 안 되는 세상이다. 자 어서 밖으로 나가자.”
보부는 앞서서 쨍쨍하니 밝은 초여름의 태양 밑으로 나서면서, 속으로, ‘두뭇골 형걸이는 나의 시동생이다’ 하고 뇌어 보았다.
15
단오가 왔다. 단오를 맞고, 단오를 이용하기 위하여, 이 고을은 새로운 활기를 띠었었다. 그것이 드디어, 제철 만난 함박꽃과 부득꽃과 싱싱한 창포와 더불어, 난만하니 피어 터진 것이다.
방선문 안 박리균네는 박참봉한테서 집문서를 잡히고, 육자 변으로 사백 냥의 돈을 취해다가 집을 활짝 떨어고쳤다. 국수장사를 그만두고 방을 많이 갈라서 신식 여관을 차려 놓았다. 동명여관이라는 넉 자와, 주인에 박리균이란 다섯 자가 먹 냄새 상끗하니 나무현판 위에 찬연하다. 백묵을 갈아 나무에 바르고 지게 간 먹으로다 반초로 흘려서 써붙인 것이다. 그의 동생 박성균네 집도 대충 낡은 군데를 고쳐서, 리균이가 하던 국숫집을 인계하여 크게 벌여 놓고, 전에 하던 마방도 그대로 겸하였다. 단오에 이 고장에 모여들 씨름꾼과, 각처에서 운동회로 인연해서 몰려들 학도들이 이 집에 들게 될 것을 미리부터 예상했던 것이다. 운동회가 끝난 뒤에도 손님이 잇대어 끊일 날이 없을는지는, 아무도 단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위선 출발만은 화려하였다.
눈치 빠른 나카니시네가 단오 전에 달구지에 한 차판을 실어 온 잡화 상품은, 단오도 되기 전에 대부분이 팔리어서, 그는 몇 가지 운동회 때 쓰일 상품을 더 첨가해서 다시 한 달구지 가까운 짐을 평양서 해왔다. 집집이 남포등 없는 집이 없고, 양말 신지 않은 젊은이가 드물었다. 대팻밥으로 만든 농립도 순식간에 팔려 버렸고, 몇 통씩 해온 히로담배도 날개가 돋친 듯이 사람사람의 호주머니 속에 날아가 들었다.
박참봉네 아랫집 김용구네는, 남처럼 밑천이 없어서 활짝 가게를 번화하게 늘리지는 못했으나, 어떻게 재치 있게 이익을 취해 보자고, 커다란 납지게를 하나 장만해다가 이층으로 덕대를 매고, 나무목판 두 개를 질 수 있도록 마련하였다. 이 지게에다, 호두엿이며, 쳇다리 과자며, 얼음과자며, 깨엿이며, 과실이며, 혹은 둥굴레나 각색 과일 같은 것까지라도 듬뿍 실어 가지고, 씨름터와 운동회장과 부인네들이 오르는 소재에를 번갈아 행상해 볼 생각을 먹었다. 밑천이 밭으면 밭은 대로, 자분자분히 이익을 내보자는 게 그의 심보다.
이 밖에 자행거를 처음 사온 것과, 평양서 하이칼라 색시를 얻어 온 걸로 인기를 끌었던 세매끼장수 이칠성이는, 이번 기회에 포목점을 벌여 보든가, 잡화상을 차려 놓든가 할 생각으로 두루두루 생각한 끝에, 포목점이라야 이 고장엔 벌써 다섯 개두 더 넘는 큰 상점이 전부터 있어서, 그 틈에 끼여 이익을 취하기도 힘들었고, 잡화상은 어름거리는 통에 나카니시네한테 눌리어서 단념해 버리고, 그 대신 자그마하니 두세 종목을 골라서 그들과 경쟁해 볼 채비를 차렸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날래게 평양과 기타 원산지(原産地)를 오락가락하면서, 단오에 옷감으로 많이 쓰일, 당항라, 명주항라, 갑사, 모시, 고사, 이렇듯 한 것만 골라서 여러 필씩 사다가 싸게 팔았고, 한편 잡화로는 석유하고, 농립하고, 양말하고, 성냥 같은 몇 가지만 밑지지 않을 정도로 헐값으로 팔아서 싸게 판다는 효과를 내어 인기를 끌었다. 그 덕에 쌀, 미역, 소금, 명태, 준치, 이런 것을 위주로 하던 세매끼장사가 제법 번화시리 잘 팔리었다.
떡장사, 국수장사, 지짐장사, 묵장사, 술장사― 이런 음식점들도 각각 양껏 지략을 짜내어서 판로를 열어 보려고 애썼고, 이 밖에 서너 너덧 집 되는 마방에서도, 비록 박리균네처럼 신식 여관은 못 차려 놓았으나, 깨끗한 손님을 맞아서 재울 수 있도록 설비를 고쳐 놓았다.
이리하여 이 고장에 근래에 없는 호화스런 단오가, 한창 가문 쾌청한 천후를 타서 유감없이 벌어졌다.
오월 초사흗날부터 놀이를 시작하여, 첫날은 부인네들로 하여금 금산(錦山)에 올라 그네를 뛰게 하였는데, 특히 이날, 사자춤과 학춤의 구경이 있었고, 이튿날 초나흗날은, 부인네들의 놀이는 저대로 맡겨 놓고, 이와 어울려서 방선문 밖, 소우전 마당에서 씨름을 붙였다. 씨름꾼이 양덕(陽德)이나 강동(江東), 삼등(三登) 등지의 다른 고을에서도 많이 쓸려온 탓에, 이틀을 잡아서 일정을 변경한 것이다. 대운동회가 이 고을에서 열리는 발련으로 씨름꾼이 이렇게 많이 모여들게 된 것이다. 상품은 처음 송아지로 했다가, 여러 고을서 쉽지 않게 모여들었는데 좀더 남부끄럽지 않은 걸로 높여야 한다고, 송아지는 이등으로 돌리고 일등엔 살진 암소 한 마리를 내걸었다. 이렇게 이틀을 씨름으로 보내고 단오 이튿날, 마지막 날에 이 고장서 처음인 대운동회가, 향교밭 삼일경을 헝클어서 갓 닦아 놓은 동명학교 넓은 운동장에서 열리게 된 것이다.
소재에 오르는 부인네들의 놀이도, 첫날은 금산, 둘쨋날은 십이봉, 셋쨋날은 향교 솔밭으로, 남정들의 씨름과는 관계없이 모이었으나, 대운동회가 열리는 날만은, 딴 모임은 일체 갖지 못하도록 명령이 내리었다. 씨름은 사나이들의 노름이라, 부인네들의 구경꾼은 하나도 없었으나, 운동회는 개화된 모임이어서 스스로 씨름 같은 것과는 다른 것이라고, 어린 색시나 처녀나, 새파란 집난이들은 할 수 없다 치고, 삼십을 넘어 사십 줄을 접어드는 삭가지 쓰는 축들이나, 늙은이, 기생들만은 많이 관람할 수 있도록, 날짜도 요량해서 작정하고 널리 장려도 하였던 것이다. 특히 동명학교의 문우성 교사나 정영근 교사나가 열심히 주장하여, 체육사상과 건강증진의 필요를 이런 기회에 부인네들 속에까지 널리 선전하여, 부인네들이 솔선하여 자녀들을 학교로 보내어 신학문을 공부하도록 장려하자는 취지를 대회의 주지로 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므로 대회의 참모 본부가 있는 바로 옆자리, 가장 점잖은 자리를 택하여, 넓은 차일을 치고 부인 관람석을 특설해서까지, 이네들의 참관에 편의를 돕고자 한 것이다. 대운동회의 회장은, 이 고을 군수요, 동명학교 교장인 강문필(姜文弼) 군수가 되었다. 그는 까만 연미복에 윗부리가 쫙 퍼진 윤나는 산고모를 쓰고, 앞자락에 커다란 꽃을 달고 운동회장에 임석하였다.
운동회에는, 평양서 대성학교와 일신학교 학도가, 각각 열 명씩 온외에, 용강(龍岡)과 강서(江西)와 영유(永柔)의 앞대에서 다섯 명 여섯 명씩 참가하였고, 가까운 고을에선 순천이 빠지고, 은산, 자산서 열 명씩, 그리고는 이 고장서 고을보다도 먼저 개화사상을 받아들인 대드리, 갱고지, 남전서 학교 생도 전부가 거진 참례하여서, 동명학교 학도까지 합하니 이백오십 명이 훨씬 넘었다. 동명학교 학도 중에는 머리를 아직 깎지 않은 학생까지 있어서, 운동회에 참여하지 않는 작자까지 있었으니 제복도 일치하지 못했으나, 평양이나 앞대에서 온 학도들은, 무명에다 검정 물을 들여서 양복을 일치하게 해 입고, 신발은 그대로 참신이나 메투리나 짚신이었으나, 흰 각반까지 한결로 깍듯하니 올려쳤고, 한두 명씩 나팔수까지 끼여 있어서, 그 복색 하며, 조련하며, 거동이 제법 군대처럼 놀라웠다. 그들은 운동회를 앞두고, 혹은 초닷샛날, 초나흗날 가까운 곳에서는 당일 아침 새벽에, 각각 열을 정비하여 갖고, 한패는 평원 도로를 거쳐 방선문으로, 한패는 서쪽으로부터 승선교 다리로 비류강을 건너서, 또 한패는 윗길로부터 산비탈을 돌아서, 마중 나간 시민과 동명학교 학도들에게 영접되어 나팔 소리 유량하게, 이 고을로 들어와서, 숙소를 따라 흩어졌던 것이다. 동명학교 운동장으로 들어가는 향교 골목 입구에는 물론, 읍내의 처처에 커다란 솔문을 세우고, 솔문에는 현판에 메밀이나 좁쌀로 크게 축하와 환영의 문자를 새겨, 흥성흥성한 기분을 돋우어 놓았다. 운동장에는 새끼줄을 돌려 치고 만국기를 오색이 찬란하게 날려 띄우고, 한쪽으론 차일을 치고, 그 밖에 일반 관람석에는 멍석과 노전을 깔아 놓았다. 아침이 되자, 조반을 먹어 치우고, 집집에는 운동장으로 행렬을 지어서 올라가는 학도들을 구경하느라고, 남녀와 노유가 모두 문밖에 나와 서 있고, 내외하는 아낙들도 대문 틈과 바자 틈으로, 설거지를 하다 말고, 이 광경에 눈을 쏟고 있었다. 학도들이 숙소 따라 한패 한패 향교 고샅으로 올라가니, 그 뒤에는 운동을 관람하려는 시민의 무리가, 흰 새의 떼처럼 몰리어 꼬리를 물고 줄을 만들어 뒤따라 섰다. 엄하게 내외하는 집 색시 처녀를 남겨 놓고, 이날 고을 안의 집집은 빈집처럼 텅 비었었다.
이 찬란하고, 화려하고, 흥분을 자아내는 날, 박성권, 박참봉은 다른 사람 따라없이, 무척 유쾌하였다. 그는 오늘에야 갓마흔에 첫 버선이란 격으로 사십 평생 처음 하늘을 얻은 것처럼, 마음이 흡족하였다. 대운동회에 기부금을 오백 냥이나 하고, 씨름대회에도 이백 냥을 한 탓인지 모르나, 대운동회 부회장의 직함이, 그의 가슴에 커다란 붉은 꽃송이를 달게 한 것이었다. 진사, 초시도 많고, 생원, 좌수, 참봉, 이 밖에 아전의 경력을 가진 이가 한둘이 아닌데, 차함 참봉 박성권에게 부회장의 명예직이 떨어지게 된 것은, 시세가 벌써 어이 된 것을 말하는 증거이기도 하나, 한편 돈의 힘을 무언중에 설명하는 좋은 재료로도 될 것이다. 그러나저러나 박성권, 박참봉은, 이 고을 사람이 추대했고, 관청에서 인정한 운동회의 부회장 바로 강군수의 다음가는 자리에 올라앉게 된 셈이다. 그가 오늘 아침 유난히 유쾌하고 반가운 새날을 대하게 된 것도, 결코 이유 없음이 아닐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시끄럽던 형걸이의 혼사도 편지까지 부쳤으니, 이젠 다 된 혼사다. 마차운 곳이 없어서 이곳저곳 물색하던 중, 뜻밖에 좋은 혼처가 생겨났다. 세간이 기울어서 가난하다고는 하나, 문벌은 쩡쩡하는 남전 강릉 최씨다. 사돈집 가산이나 재물에 딴맘을 갖지 않은 바에야, 가난 같은 게 무슨 상관일 것이냐. 궁합도 맞고, 형걸이 모친 윤씨가 친히 승교를 타고 가서 간선을 한 것이니, 인물도 나무랄 데 없을 게라고 생각했다. 두칠이 처 쌍네의 문제 같은 건, 본시 문제라고 할 것도 없었는데, 그것마저 두칠이가 먼 데로 색시를 둘러 지고 이 고장을 떠나가겠다니, 마침 십상으로 잘된 일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사사모사로 일은 쫙 펴이는데, 운동회의 부회장의 직함이 호박처럼 떨어져 굴러왔으니, 이제야 운이 뻗칠 대로 뻗쳤다고 은근히 만족하는 것이다. 형걸이가 제 모친더러, 자기는 누구에게나 장가를 안 든다고 푸념질을 했다고는 하나, 덧나갔던 어린 마음에 한번 중얼거려 보는 말임에 불과할 것이다. 일은 잘된다 잘된다, 고 그는 혼자서 속으로 중얼거려 보았다.
지금, 대운동회 회장 강군수는 학도 일동을 모아 놓고 개회 연설을 한 뒤에 아침 한때만 회장석에 앉아서 시상을 하다가 오정 가까워 관가로 돌아가 버리고, 부회장 박참봉이 점심을 치른 뒤에 점잖게 앉아서 회장의 대리를 보고 있다. 그의 옆에는 벼슬 있는 사람과 이 고을 유지가 나란히 해 앉았는데, 넓은 운동장 안에서 지금 한창 경기중에 있는 줄다리기를, 흥미있게 바라보고 있다. 학도 전부를 두 번에다 나누어서, 그것을 다시 두 패로 갈라 갖고 굵고 기다란 줄을 양쪽에서 당기는 것이다. 한편에서 발을 벗디디고 힘을 다하여 ‘영차’ 하면 또 한편에서도 이를 악물었다가 ‘영차’ 하고 맞당기어, 굵은 닻줄은 활찍처럼 곧게 움직일 염을 안 한다. ‘영차’ 소리만 세차게 들려 오다가, 한편 쪽의 땅을 벗디딘 발이 앞으로 더듬더듬하는 듯하다간, 그만 쏴르르 무너져서, 줄은 순식간에 한편으로 끌리어 가고, 이어서 ‘와―’ 하는 함성과, 군중의 우레 같은 박수 소리가 하늘을 뒤흔들 듯이 요란스럽게 일어난다. 자리를 바꾸고 다시 경기가 시작되려고 할 때에, 비로소 관람석에서는 재재하니 이야깃소리가 떠오르는 것이다.
박참봉은 커다란 갓을 단정하니 올려놓고, 기골이 장대하고 관골이 찬 얼굴로 운동장 쪽을 향해서, 버륵하니 의젓한 미소를 입가상에 띤다. 다듬은 모시 두루마기에 항라 겹바지를 옹구뿔로 척 늘어뜨렸는데, 두 짝의 흰 갓신이 삼성버선을 뺑뺑하니 둘러싸고, 책상의 밑다리 위에 올려놓여 있다. 이윽고 그는 커다란 부채를 들어 두어 번 쓰적쓰적 앞자락께를 부쳐 본 뒤에, 옆에 앉은 사돈 정좌수더러,
“이런 습속이 앞대에는 아직도 남아 있는 모양입지요.”
하고 물어서, 정좌수도,
“아직 남쪽에서는 쥐불이라든가 이런 것과 함께 퍽 치성한 모양입니다마는, 그것을 개화된 운동으로 고쳐 놓고 보니, 상당히 자미스런 경기 같으오.”
하고 대답한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운동장에서 일어나는 함성에 휩쓸리어 이야기하던 것을 중지하고 앞을 바라본다.
줄다리기가 끝나니, 이긴 편이 쭈르니 나란히 하여 대표가 받아 간 상품, 연필 두 자루씩을 나누어 받고 있는데, 이편 준비를 맡아 보는 쪽에서는, 나팔을 한번 띠따띠따 불어서 일반의 주의를 환기한 뒤에, 다음은 기마전(騎馬戰)이라고 경기자들의 출동을 외치고 있다.
“기마전이라면 말을 타고 싸우는 것인가요.”
하고 누가 물어서,
“말이야 있겠소마는, 어떤 자는 말이 되고, 어떤 자는 기수가 되겠지요.”
하고 대답하는 이가 있다.
‘추립’ 소리가 나고 ‘기척’, ‘우로 나란히’, ‘번호’ 소리가 연달아 난 뒤에, 두 패로 갈라 선 학도들은, 각각 인솔자의 뒤를 따라 운동장 가운데로 들어온다.
박참봉은 얼굴에 점잖은 미소를 띠고 누가 누군지 분별키 힘든 학도들의 행렬을 바라보다가, 붉은 끈을 머리에 동인 형걸이를 오른편 쪽 패 첫머리에서 발견하고, 잠시 그의 거동을 눈붙여 보았다. 윗저고리는 벗어붙여서 흰 속적삼만 입은 형걸이가, 세 사람으로 된 말 안장을 툭툭 두들겨 보면서, 기고만장하여 싱글벙글하고 있는 것이 보이었다.
‘그렇게 내세우고 보니 그놈만한 인물이 없겠군.’
하고 박참봉은 속으로 만족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다. 무어라고 삑 호령을 치니 양쪽이 모두, 어슬렁거리며 말안장 위에 기어올라간다. 튼튼한 자가 앞에 서고, 그 뒤에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어깨와 손을 잡아 안장을 만든 것이다. 형걸이는 저희 집 흰 말을 타던 본새로 대번에 휙 하고 올라 앉는다. 바른손으로 잠시 말이 된 앞사람의 머리를 어루만지듯 하다가, 이윽고 높직이 하늘가로 팔을 들어 본다. 한편에 기마가 열 필씩이다. 도합 스무 필의 기마가, 홍백으로 갈라 서서 백병접전을 할 판이다. 정영근 교사가 마당 가운데서 두 편을 바라보며 기합과 호흡을 맞추다가 장안이 숨을 죽이고 조용해졌을 때, 호각을 불고, ‘시작, 접전’ 하고 하늘이라도 울릴 듯이 호령을 부르니, 기수들은 번쩍 손을 들고 쌍방에서, ‘아―’ 하는 함성을 지르고 어슬렁어슬렁 뛰어나온다.
박참봉은 이러한 ‘으아’ 하는 젊은이들의 함성에 가슴이 뿌엿하니 끓어 오르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울렁거리려는 제 가슴의 고동을 가만히 향락하면서, 형걸이를 찾아보았다. 홍군 쪽의 선두를 서서 말잔등에서 익숙한 몸짓으로, 연신 허리를 일으켜 세우고, 바른손을 높직이 들고서 적의 진지로 달려들고 있다. 마침 저편에서 선두를 선 기마와 처음으로 접전을 하려고 달려붙는다. 왼손으로 말 된 사람의 어깨를 툭 쳐서 무어라고 신호를 건네니, 말은 비스듬히 커브를 돌아서 적수의 옆으로부터 습격해 들어간다. 백군의 기수가 양손을 뻗쳐서 형걸이의 가슴 있는 쪽을 잡을 듯하는 것을, 몸을 휙 비틀어서 피하고 난 뒤, 인차 바른손을 밑으로 솟구어 적군의 팔때기를 잡아 휘둘러 친다. 안 떨어지려고 말 위에서 허우적대는 것을, 멱암치를 잡아서 또 한 번 밀어 버려서, 적수는 몸의 균형을 잃어버리고, 드디어 헝클어지는 안장에서 미끄러 떨어진다. 말에서 떨어지든가, 머리에 동인 끈을 빼앗기면 전사자로 된다. 하나를 거꾸러뜨린 형걸이는, 헝클어진 자세를 정비하여 갖고, 지금 한창 벌떼처럼 맞붙어서 닝닝거리고 돌아가는, 백병전이 벌어진 가운데로 들이덤빌 채비를 차렸다. 말머리를 쓰다듬듯, 앞장선 친구의 어깨를 뚜덕뚜덕 두드려 주면서 막 앞머리를 돌리려고 하는데, 뒤로부터 제비처럼 날쌔게 적기 하나가 달려든다. 서로 맞붙어 싸우자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옆을 한번 뽐내면서 스쳐가고 말 듯이, 적기는 비스듬히 곡선을 그으면서 화살처럼 몸을 뽑아 나가더니 형걸이의 뒷잔등께서 꿩 채려는 매마냥으로 그의 머리에 동인 붉은 끈을 낚으려 한다. 하마터면 앗기고 말 것을, 용하게 몸을 돌려 손을 맞잡아서, 그대로 접전이 되고 말았다. 처음은 허리를 돌리고 맞잡고 싸우다가, 형걸이 탄 말머리가 돌아서서 겨우 본 격식대로 싸움이 벌어졌다.
박참봉은 눈덩어리 굴듯이 돌아가는 마당 가운데에서는 좀 떠나서, 변두리 가까운 귀퉁이에서 벌어진 두 적수의 접전을 흥미있게 바라보고 있었다. 형걸이가 먼저 하나를 무난히 넘어뜨리는 데는 별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하더니, 지금 간간한 위기를 벗어나서 겨우 몸을 제 자세대로 가지려고 할 때엔, 이상하게도 두 주먹이 꽉 쥐어졌다.
몸을 내솟구기는 했으나, 형걸이는 힘에 꿀리는지 덮치는 손을 피하면서, 말 한편 잔등으로 자꾸만 밀려가는 것 같다. 말안장이 된 두 학도가 연신 팔에다 힘을 주어, 형걸이를 말께서 떨구지 않으려고 젖먹은 힘까지를 다하여 뻗대는데, 앞장선 학도는 자꾸만 몸이 흔들리어 사시나무처럼 상반신을 후들후들 떨고 있다. 이것이 한참을 계속하니, 박참봉은 가슴 조이던 것을 좀 풀어놓고, 주먹 쥐었던 것을 가만히 펼쳐 본다.
‘내 자식이라서 이토록 마음이 조이는가.’
생각해 보니 우스웠다. 제 편벽된 생각이, 아이들처럼 채신머리없이 보여서 눈을 딴 데로 팔려고 하나, 시선은 다시 형걸이에게로 옮아간다.
형걸이는 월등히 말에 능하다. 말잔등에서 떨어져서 배통 옆구리에 달리어서도 좀처럼 굴러 떨어지질 안 했다. 왼손으로 저희 편 앞장선 학도의 어깨를 북 끌어서 누르는 듯하더니 형걸이의 몸은 금시에 불길처럼 솟아오른다. 밑에서 허우적대던 것이 절굿공이처럼 불쑥 치솟는 바람에, 상대편 기수는 형걸이의 바른손에 머리를 눌리었다. 어느 새에 낚아채는 손길에 머리에 동인 끈을 앗겼을 뿐 아니라 남은 힘에 밀려서, 뒤꼍으로 허공에 두 손을 허우적대다가 발디딤보를 잃어서, 마당에 떨어진다.
몇 초 동안에 번개처럼 해내치는 형걸이의 표범 같은 거동을 바라보고 있다가, 박참봉은 하마터면 무릎을 딱 칠 뻔했다. 들었던 손은 아무도 모르게 가만히 무릎 위로 내려놓았는데, 갑자기 옆자리의 부인석에서 높은 함성이 들리어서, 그 소리는 마치, 제 손으로 무릎을 때린 소리처럼 박참봉의 귀에는 들리었다. 어떤 부인이 안타깝게 마음을 졸이다가, 저렇게 감탄하는 함성을 부끄럼 없이 내쏟고 있는 것일까, 필시 형걸이의 눈부시는 경기를 보다가, 엉겁결에 지르는 소리임에 틀림없는데, 자기는 아비라서 그렇다 한들, 차일 속에 앉은 부인 중에 누가 있어서 그렇도록 유심히 형걸이를 보고 있던 것인가, 아닌 게아니라 괴이쩍은 생각도 안 나는 것이 아니었다.
적기 둘을 넘어뜨리고, 형걸이는 의기가 양양해서 진(陳) 가운데로 들어온다. 벌써 말잔등에서 내려서 마당에 앉아 전사자가 된 이가 수두룩하다. 남은 것은 오륙 기, 그러나 남은 오륙 기가 어우러져 붙기 전에 정전(停戰)의 호각이 울었다. 한 개의 차로써 백군이 이겼다. 만세를 부르며 패군의 장수 형걸이는 제 진지로 말을 탄 채 들어온다. 박참봉은 만족하였다. 그리고 스무 살 전후의 자기의 생활이 눈앞에 뻔히 떠오르는 것 같았다.
만장의 박수 소리를 젊은 벌판을 휘몰아치는 비바람 소리처럼 들으면서, 박참봉은 저의 가슴속에 젊은 혈기가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청춘―생각하니 마흔에 있는 그는 이미 청춘이 갖는 모든 즐거움을 잃어버린 것 같다.
좌석을 돌아다보니, 점잖은 유지 신사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하면서, 조용히 경기를 구경하고 있어, 자기처럼 흥분한 혈조를 몸이나 낯에 나타내인 이는 하나도 없는 것 같다. 박참봉은 일시에 제 가슴속을 찬 가을바람이 스쳐가는 듯한 쓸쓸함을 맛보았다.
재산을 모으기에 이십 년 동안, 그는 모든 젊음과 열락을 버렸던 자기를 지금 새삼스럽게 발견하였다.
경기는 그러는 동안에 이인삼각을 지나 장내 일주 경주의 결승전이 시작되었다. 각 곳에서 온 학도들과 동명학교 대표 선수와의 전부의 예선에서 선발된 여덟 사람의 경주였다. 그 중에 형걸이가 있었다. 형선이도 경주는 잘했으나 결승에까지는 못 오고 떨어졌다. 대봉이도 떨어지고, 이 고장 출신으론 형걸이와 또 한 학도의 두 명이 겨우 뽑히고 그 외에는 전부 딴 고장 학도였다. 힘이나 기운으론 이 고장 학도들이 개시개시 꿀릴 리 만무였으나, 워낙 바르게 훈련을 받은 평양이나 앞대의 학도들에게 뜀박질에 견딜 턱이 없다. 그래도 그 틈에 두어 사람 뽑힌 것만 다행이라고 모두 이들이 이기기만 바랐다.
“자제분께서는 개사 명창이군요.”
하고 뒷자리에서 누가 말을 건네서,
“몸은 성해서 다행이올세다.”
하고 박참봉도 대답하였다.
여덟 사람의 경주자는, 횟가루로 줄을 그은 마당에, 왼발을 하나씩 내짚고, 호각 소리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주먹을 쥐고, 다리엔 아킬레스건을 긴장시키고, 두 눈은 땅 위를 뚫어지라고 내려다보고 있다. 미상불 귀는 초롱불처럼 밝게 뚫려 있을 것이다.
“하나.”
하고 정영근 교사가 쨍쨍 울리는 목소리로 손을 들며 외치니, 일반 관중은 모두 그쪽으로 눈을 쏟는다.
“둘.”
그 다음은 삑 하고 호각을 분다. 다듬이질 소리 같은 궁글르는 소리가 일어났다. 여덟 명의 경주자는 마당을 달아난다. 둥그렇게 양쪽으로 새끼줄을 친 가운데를 쏜살처럼, 달음박질치는 것이다. 윙하니 커브를 도는 것을 보니, 형걸이가 앞장을 섰다. 이것을 본 관중은 와 하고 소리친다. 박참봉도 남이 지르는 소리를 좇아서 와 하고 소리를 한번 질렀으나, 인차 본정신이 들어서 그만두었다. 그런데 형걸이의 바로 뒤에서, 부리나케 쫓아가는 선수 하나가 있었다. 그는 그다지 악도 안 쓰면서 한 발자국 떨어져서 유유히 따라간다. 그곳에서 서너 자 가량 떨어져서야, 나머지 여섯 명은 각각 삼등을 다투면서 따라가고 있었다.
이윽고 두 사람은 결승점으로 달려 들어온다. 그러나 박참봉이 앉은 방향에선 똑똑히 보이질 않는다. 둘이 똑같이 줄을 넘는 것만 같다. 관중은 와하니 고함을 지르며, 손뼉을 두드리며 야단들이다. 부인석에서도 고함 소리가 들린다.
“누가 일등입니까.”
하고 묻는 소리가, 이곳저곳서 들렸으나,
“나두 잘 모르겠쇠다.”
하는 소리뿐, 아무도 똑똑히는 모른다. 그러나 상을 타러 오는 것을 보니, 일등은 평양서 온 학도였다. 결승점 바로 앞에서 형걸이는 이등으로 떨어졌던 것이다. 형걸이는 둘째로 서서 벌건 깃발을 메고 싱글싱글 웃으면서 이쪽으로 걸어온다. 박참봉이 일등에게 상을 주면서,
“참 장하오.”
하고 말하다가, 흘낏 뒤꼍에 선 형걸이를 보니, 그는 부인석으로 딴 눈을 팔고 있다.
상을 다 받아가지고 박수 소리에 싸여 선수들은 제자리에 물러간다. 박참봉은 가만히 얼굴을 돌려 부인석을 보았다. 엇비스듬하니 앞이 휘어서 차일 속은 안 보였으나 앞쪽은 엿볼 수가 있었다. 중늙은이들 틈에 이쁜 젊은이가 하나 유난히 눈에 띈다. 장옷도 안 쓰고, 머리를 기름 발라 빗은 품으로 기생이 분명하다.
박참봉은 인차 눈을 돌렸으나, 운동장 저편을 멀리 바라보는 양하고, 또 한번 부인석을 엿보았다. 기생은 마침 이쪽을 바라본다. 눈이 마주치니, 기생은 얼굴에 부끄럼을 그리고 곧 낯을 돌린다. 일찍이 본 기억 없는 기생이다.
박참봉은 다시 운동장을 보았다. 장애물 경주의 준비로, 경주장 군데군데에, 그물, 사다리, 밧줄, 이런 걸 배설해 놓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러나 박참봉의 눈앞에는 금시 옆자리에서 본 기생의 얼굴이 떠나질 않았다. 남에게 눈치채이지 않도록 또 한번을 슬며시 바라보니, 아름다운 젊은 여자의 그림자는 그때엔 벌써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갔을까. 그는 나의 눈길을 의식하고 어디로 몸을 감추어 버린 것일까. 그렇다면 대체 나의 눈에 어떤 수상한 기색이 나타났었다는 말인가. 먹을 것을 노리는 이리 같은 눈길이었단 말인가, 그렇지 않으면, 젖을 달라는 어린 아기의 눈동자였단 말인가. 그는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대체 그는 어디서 온 기생일런가― 박참봉은 자기가 속으로 이런 것을 몸달게 안타까이 천착하고 있는 것이 괴이쩍고도 부끄러웠다. 나이 찬 자식이 수북하고, 손자까지를 두고, 첩 큰댁을 두고, 방금 형걸이가 헛눈을 팔고 있던 부인석을 흘낏흘낏 엿보고서 마음이 들떴다면, 그리고 이런 걸 누가 안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냐 싶었다.
‘나는 어느새에 이렇게 늙었는가.’
그러나 운동장에서 일어나는 호각 소리에 정신을 차리면서 그는,
‘그러나 나는 아직 사십이 아니냐.’
하고 혼자 속으로 뇌어 보았다.
16
대운동회마저 지나고 나니 웅성대던 고을 거리는 장마 걷힌 뒤인 것처럼 갑자기 쓸쓸해졌다. 각처에서 모여들었던 씨름꾼과 학도들이 제 고장을 따라 뿔뿔이 흩어지고, 운동 구경한다고 가까운 농촌에서 쓸려들었던 늙은이 젊은이가 하루 사이에 없어지고 난 뒤엔, 지저분한 종잇조각, 대팻밥, 쓰레기가 디굴디굴 굴러다니는 어수선하고 허청한 거리로 변하였다. 색이 낡아서 누르스름한 솔문이 떨어져 가는 현판을 매어단 채 이곳저곳 우중충하니 서 있고, 씨름터와 운동장과 소재와 산에는, 짓밟힌 풀과 흩어진 쓰레기만이 지저분하다. 변화가 한번 지나가고, 숙조한 기색이 초여름이 찾아드는 이 고을의 거리를, 애수를 담북이 지니고 흘러간다.
오늘은 오월도 초여드레, 운동회가 지나서 벌써 사흘째 되는 날이다.
쌍네는 저녁도 아니 먹고 실낱 같은 야윈 달이 모우봉 위에 잠깐 솟았다가 그대로 넘어가 버리는 것을, 실심하니 바라보면서 뒤꼍 토방 위에 앉아 있다.
두칠이는 얼마 되지도 않는 짐을 대충 꾸려 놓더니, 친구들끼리 헤어지는 마지막 술추렴을 한다고 조금 전에 집을 나갔다.
쌍네는 인제 마지막 순간이 찾아온 것을 느끼면서, 제 몸을 어떻게 조처를 대어야 할지를 차근차근히 되새겨 보려고, 이렇게 캄캄한 토방에 혼자 앉아 있는 것이다. 두칠이는 박참봉의 허락을 맡아 가지고, 제가 부치던 밭과 논을 남에게 떠넘긴 뒤에 내일 아침 새벽 원산 방면으로 길을 떠날 차비를 차린 것이다.
두칠이를 따라 원산 방면으로 가야 할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생활을 개척하여야 할 것이냐. 그는 보살할미의 점괘를 지금도 잊어버리지 않고 생각하고 있다. 그곳에 믿음을 걸고 있는만큼, 이렇게 궁경에 빠져 있는 이 찰나에라도 어떤 기적이 생겨날 것만 같아서 그것을 한편으론 무한히 갈망하고 있다.
절망에 빠져서 어이할 바를 모르고, 이렇게 이 궁리 저 궁리를 되풀이하다가, 아무러한 줄걱지도 붙잡지 못한 채, 드디어 마지막 길을 택하여 허둥지둥 캄캄한 밤길을 깊숙한 심연을 향하여 걷고 있을 때, 난데없는 빛이 나타나든가, 옛날이야기책 모양으로, 비몽사몽간에 허이연 영감이 나타나서 갈 바를 지시해 주든가―그런 것이 다 허황하다면, 내가 내일 남편과 함께 먼 곳으로 떠나는 것을 알고, 두뭇골 도련님이 나를 구하러 무슨 계책을 세워 갖고, 지금 저기 저 강가로 뽕밭 머리를 지나, 가시울타리께로 성큼성큼 뛰어오는 그런 기적 아닌 이변이라도 일어나 줄 것을 안타까이 바라보기도 하는 것이다. 꼭 있을 것만 같다. 꼭 있어야 할 것만 같다. 그는 귀를 기울인다. 벌떡 일어나 본다. 캄캄한 뽕밭 머리에서 거친 사나이의 발소리가 들리지는 아니하는가. 캄캄하여 보이지는 않으나, 저기 저 가시울타리께 도련님이 살며시 찾아와서 기색을 살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퍽 전부터 그러고 서서 뜰 안쪽이 고요하여 생각을 단념하고, 그대로 돌아갈 생각을 먹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이렇게 안타까이 되새겨 보면, 꼭 그럴 것 같고, 그럴 것임에 틀림없을 것 같다.
쌍네는 뿌르르 맨발째로 토방을 뛰어내린다. 가시울타리 문께로 뛰어와 본다. 문은 열렸다. 두 손으로 허공과 앞뒤를 저어 보나, 아무것도 손에 걸리지 않는다.
“여보세요.”
하고 불러 보아도 아무 대답이 없다. 제 숨소리가 제 귀에 높다.
“거 누구요.”
불러 보나 숨을 쉬고 있는 동물은 쌍네 저 혼자뿐이었다. 아무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거짓이었던가.
푸 한숨을 짚고, 울타리 문에 손을 얹은 채, 암담한 절망에 흠뻑 젖어 본다.
‘역시 모든 것이 꿈이고, 거짓이었다. 보살할미가 형걸이와 내가 연분이라고 한 것도 거짓 점괘였다. 하늘이 정했고, 존신이 점지한 나의 남편은, 저 못생기고, 징글징글하고, 염치없고, 소처럼 둔하고, 송진처럼 추군추군한, 저 두칠이가 아닌가. 두뭇골 도련님에겐 새로운 배필이 어엿하니 작정되었다. 이쁘고, 나이 젊고, 살매가 곱고, 몸맵시가 날씬하고, 귀태가 나고, 학문이 있고, 그런 색시가 양반집에서 도련님의 품안에 찾아들기로 이무 작정이 된 뒤이다. 도련님이 지나치던 길에 한번 들러 본 술막을, 지금까지 생각에 묻어 두었을 턱이 있을 거냐.’
다시 쌍네는 토방으로 돌아와 앉는다.
‘결국 나는 두칠이를 따라가야만 한다.’
이런 생각을 제 마음에 타이르고, 그것이 가장 온당한 처사라고 생각해 본다. 저 같은 것이 어디다 머리를 솟고, 도련님에게 염을 낸다는 말일까. 하룻낮의 꿈이었다. 일생에 단 한 번 위태위태하나, 찬란한 무지개를 타본 데 지나지 않는다. 이무 무지개는 없어졌고, 저는 저대로 두칠이의 옆에 앉아 있다. 어이 무지개가 다시 그려지길 기다릴 것이며, 무지개가 뻗쳐진다 한들, 어이 저 같은 몸이 두번 다시 그 위에 올라앉을 수 있을 것이냐.
‘할 수 없다. 그것만은 내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다.’
그는 머리를 감싸 들고, 등골을 떨면서 토방에서 일어났다. 여태껏 어떻게 그의 옆에서 잠을 이루었는지, 이상하다. 여태껏 어떻게 그와 함께 잠자리를 같이 할 수 있었는지 수상하다. 여태까지 어떻게 저의 몸을 그가 주무르는 대로 내맡겼었는지 괴이쩍다.
그는 발검음이 내치는 대로, 울타리 문을 벗어나서, 허둥지둥 캄캄한 가운데를 줄달음질 쳤다. 눈물이 자꾸만 볼편을 뜨겁게 적시면서 흘러내렸다.
한참을 미친 사람 모양으로 뛰다 멎으니 두뭇골 앞이다. 개울물의 징검다리를 건너뛰고, 느티나무가 선 가까이로 가면 두뭇골댁이다. 그는 발을 멈칫하고 사방을 두루 살핀다. 넓은 들 위엔 캄캄한 암흑이 가득 차 있을 뿐, 아직 밤이 마악 찾아드는 초아지내, 드문드문 창문에 비치는 불광이 눈에 든다.
그러나 쌍네는 그리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는 그대로 낯익은 작은 길을 더듬어서 개울께로 내려가, 성큼 징검다리를 넘어 뛴다. 자갈을 밟는 소리가 우쩍 한다. 이 소리에 개가 겅겅 짖는다. 그러나 쌍네는 개 짖는 소리를 개의치 않고 느티나무께로 걸어간다. 그는 박참봉 댁 사랑 마당과 통하는 대문 앞에 서서야, 걷던 다리를 멈추었다.
사랑방은 캄캄하다. 벌써 박참봉은 잠자리에 든 것일까. 저녁을 먹은 지 얼마 안 되는 초아지내이니, 그가 벌써 잠자리에 들었을 리는 없을 텐데…… 그러고 생각하는데 퍼뜩, 박참봉이 저녁에 강군수의 초청으로, 강선루에 대연이 있어서, 저녁도 안 먹고 그리로 행차하던 것을 생각하였다. 그는 강선루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지금 이 집에는 종과, 상노아이와 윤씨와, 도련님만이 있을 것이다. 도련님은 제 방에 혼자 누워 있는가,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가―두루 이런 것을 생각해 보다가 그는 대문턱 위에 올라섰다.
인제는 마지막 이야기라도 들어 보고, 아니 그것이 안 되면 얼굴이라도 한번 바라보고, 나의 갈 길을 떠나리라. 무엇이 무서우며, 무에 겁날 것이냐. 쌍네는 마음을 도고하게 먹고 대문을 들어섰다. 그러나 문을 들어서서 그는 다시 걷던 다리를 멈추었다. 개라도 컹컹 짖으면 하는 수 없이, 개를 꾸짖으며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가야 할 것을, 개마저 어디로 숨었는지, 안방엔 불이 밝고, 도련님이 있는 방에도 불이 환한데, 발길이 차마 앞으로 나가질 않는다. 어느 문 앞에 가서 누구를 찾을 것이냐. 안방 앞으로 가서 마나님을 부르고, 내일 떠난다는 인사나 여쭈자면 못 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목적은, 어떻게 도련님을 만나 보는 데 있었다. 그리고 욕심대로 한다면, 대체 나를 어떻게 해주겠느냐고, 단 한마디 도련님의 대답을 듣고 싶은 데, 여기까지 달려온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마나님을 불러 놓고야 어떻게 다시 도련님을 뵈올 길이 있을 것이냐. 역시 성큼 뜰 안으로 내려서서, 안방 앞으로 갈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도련님 방으로 곧바로 찾아갈 수는 더욱 힘드는 일이 아니냐― 이렇게 잠시 동안을 서서 망설이고 있는데, 도련님 방에서 불빛이 확 뜰 안으로 빗자루처럼 뻗치더니, 이어 방문 여는 소리가 난다. 엉겁결에 쌍네는 문턱을 도로 넘어서 대문 밖으로 나왔다. 대문 옆에 숨어서 귀를 기울여 본다. 신발 소리가 나고, 그 다음엔 분명한 도련님의 목소리.
“어머니, 문선생 댁에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안방문이 열리는 소리. 이어서 윤씨의 대답.
“아버지두 안 오셨는데, 그럼 속히 다녀오너라.”
다시 문 닫는 소리. 그리고 대문께로 점점 가까이 오는 갓신 끄는 소리. 발자취 소리는 이쪽으로 가까워 온다. 그것은 대문으로 들어선다. 문턱을 넘는다. 드디어 보이지 않는 검은 그림자가, 공기의 파동을 지으며 힝하니 쌍네의 앞을 지나갔다. 쌍네는 문판장에 붙이고 섰던 몸을 떼었다.
단오를 지난 뒤 동명학교는 한 주일 동안 임시 방학을 하였다. 형걸이는 운동회가 지난 뒤 외지에서 왔던 단체가 출발할 때마다, 잠시 잠시 전송을 나갔을 뿐, 사뭇 집 안에 처박혀서 이무 결정이 된 제 혼사에 대하여 생각하여 보았다. 남전 사는 강릉 최씨의 딸이라고 하나, 어떻게 생겼는지, 성품이 어떤 인지는 알 턱이 없다. 어머니는 큰댁 어머니가 친히 승교를 타고 가서 간선을 하여, 아주 마음에 딱 맞는 색시라 하였으나, 그이들의 보는 눈, 보는 생각이 젊은 형걸이의 생각과 일치할 리도 만무할 터이요, 설사 그것이 장님 문걸쇠 잡는 격으로, 용하게 일치했다고 할 값이라도, 형걸이로서는 부모의 작정대로 호락호락 따라갈 수 없을 몇 개의 곡절이 있다.
두칠이 처 쌍네의 생각은 그렇게 깊게 생각지도 않는다. 그 역시 자기를 아무렇게도 생각지 않으리라고 쓸어 버리는 것이다. 맏형 형준이가 가운데 나서서 이러니저러니 하고 쏘다니는 것도 귀찮았고, 실상인즉 이무 부용이와 같은 세련된 아름다움을 경험한 형걸이에게는, 쌍네에게 갖던 강렬한 애욕은 잠시 동안 그의 가슴에서 한 보를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혼에 대하여 곡절이 있다는 것은 결코 부용이와의 약속을 염두에 둔 것만은 아니었다. 무어라무어라 하여도 부용이는 기생이다. 아무개나 꺾을 수 있는 노류장화다. 그리고 서로 나눈 정을 영원히 잊지 말자고, 살에 수영을 끼어 서로 맹서는 하였으나, 그것은 결코 형걸이의 결혼과는 별문제라고 부용이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처음 부용이가 형걸이를 알아 사귀고, 비로소 애정을 팔뚝에 새겨서 맹서할 때에도, 형걸이도 이무 처자가 있는 남의 새서방인 줄 알고 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형식상으로 보자면 형걸이는 결혼을 하든, 장가를 가든, 부용이의 애정에 변함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당하고 보니, 형걸이로서 부용의 애정은 적지않이 그의 행동을 견제하였다. 부용이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나, 형걸이 자신만은 부용이를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그와 어엿하니 결혼생활을 이루어 보자면, 어떻게, 무엇부터 차비를 차려야 옳을는지 도무지 염이 나질 않았다.
이러한 생각 외에 그는 문우성 교사에게 말로 서약은 안 했으나, 그의 앞에서 조혼사상에 대한 자상한 설명을 들을 때에, 아직도 미혼인 것을 좋은 기회로 뜻을 세우기까지는 완고한 풍습에 희생이 되지 않으리라, 내심에 결심한 바가 있었다. 그는 문교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저 혼자 제 자신과 굳게 약속한 이 결심을, 그대로 흐르는 물 가운데 쉽사리 씻어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생각을 세우자니, 종차로 벌어질 일이 결코 단순치가 않을 것 같다. 싫어서 죽겠다고 야단이던 손대봉이도 오는 보름날, 박성균네 집 금네한테 종시 장가를 들기로 되었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는 제 앞에 다가오는 문제를, 점점 초조하게생각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문우성 교사에게나, 혹시는 부용이에게나, 이런 걸 털어놓고 상의하는 건,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닐 것 같다. 될수록은 말썽을 일으키지 않고 해결을 지을 수 있는 방책을 찾아보든가,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조력이라도 구하여, 어떻게든지 이 난관을 벗어나야, 첫번 당하는 희생에서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되었다. 어찌 되면 문교사에게 부용이의 이야기까지 털어놓아도 괜찮으리라 생각되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은 저녁을 먹고, 군수가 운동회의 관계자를 초청하여 강선루에서 베푼 대연에서,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못해, 지금 제 방을 나와 대문 밖으로 나서던 참이다. 그는 어머니에게 허락을 맡아 갖고 마당을 지나 대문으로 올라섰다. 대문턱을 나서서 버드나무와 우물이 있는 옆으로 느티나무 그늘을 선선하게 느끼면서, 징검다리를 건너지 않고 개울을 낀 채 실금실금 걸어가는데, 뒤에서 발자취 소리가 나는 것 같다. 그는 제 귀를 의심하면서, 그 자리에 멈칫하고 서보았다.
“도련님, 저올세다.”
나직한 떨리는 목소리는 틀림없는 쌍네의 것이었다. 형걸이는 뜨거운 불길이 등골을 스치고 지나가는 듯하였다. 진정 뜻밖이었다. 그러나,
“도련님, 저와요.”
하고 또 한 번 등뒤에서 들었을 때, 형걸이는 낯을 돌리었다. 짜장 뜻밖이기는 했으나, 돌이켜 생각하면 쌍네가 저를 찾아온 데 까닭이 없다 할 수는 없었다. 그는 내일 두칠이와 함께 먼 곳, 원산 방향으로 일터를 찾아서 길을 떠난다고 아니하는가. 길을 떠난다는 소리를 듣고 형걸이는, 그것으로 쌍네와의 관계는 짧은 한 토막의 삽화처럼, 영구히 그의 청춘의 한 모퉁이에 잠겨 버리고 말 것이요, 쌍네 역시 기구한 일생에 한 점 색채를 점 찍은 채, 그대로 평범한 생애의 가운데로 다시 흘러 들어가는 기회가 되고 말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커다란 비류강의 강물 같을는지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물은 웅덩이에서 오랫동안 감돌다가, 때로는 급한 여울물을 흐를 때도 있다. 작은 바위가 있으면, 그와 부딪쳐서, 구슬을 뿌리며 물결은 찢어지고 흩어지나, 곧 그것을 넘으면, 다시 제결대로 넘쳐서 대동강으로 황해바다로 흘러간다. 형걸이나 쌍네나, 감격에 넘치고 정열에 싸였던 이틀 밤은 결국, 물결이 작은 바위를 만났던 거나 같은 것일 게라고 생각해 본 것이었다. 커다란 강물이 바다를 향하여 흐르면서, 도중에서 만났던 바위와 돌멩이를 생각지 않는 것처럼, 쌍네도 형걸이도, 그 짧은 기억을 오랫동안 담아 두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렇게 생각했던 쌍네가, 중대한 시일을 앞두고 밤을 타서 형걸이를 만나러 왔다. 형걸이의 가슴에는, 뭉게뭉게 회오와 자책에 섞인 뉘우침이 떠오르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런 걸 되새겨 볼 필요나 경황조차 없이, 캄캄하여 보이지는 않으나, 형걸이의 얼굴에는 당황해하는 기색이 붉은 혈조를 그리면서 지나쳤다.
형걸이가 몸을 돌이키는 것을 보더니 희끄무레하게 희미한 쌍네의 몸은, 자분자분 몇 발자국을 앞으로 걸어온다. 형걸이는 그러나 화석이 된 것처럼 암찍을 못 하고, 그 자리에 덤덤히 서 있을 뿐이다. 쌍네는 형걸이의 한 발자국 앞에서 겨우 발을 멈췄다. 그는 억한 생각에, 형걸이의 손길이 치마폭에나 옷자락에 스치기만 하여도, 그대로 푹 몸을 실리든가, 뜨거운 열정에 내맡겨서, 형걸이의 몸을 부여뜯고야 견딜 것 같은 욕망을 겨우 억제하고 섰는 것이다. 형걸이의 대답, 그것이 입술에서 떨어지기만 하면, 쌍네는 아무것도 돌보지 않고, 사나이에게 온몸을 맡겨서 처분대로 내버려둘 것 같다. 가슴속이 뜨거운 질식할 듯한, 마른 증기로 꽉차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형걸이는 아무 말이 없다. 그는 쌍네의 욕망과 애욕을 의식지 못하는 것일까. 얼굴도 몸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슴에 떠오르는 화염같이 강렬한 정열을 누르느라고, 몸을 떨고 서 있는 난만한 육체의 파동이 끼치는 첫여름의 캄캄한 공기를, 형걸이의 젊은 피부는 감촉하지 못하는 것일까.
“도련님, 저와요.”
또 한마디를 가만히 뇐 뒤에, 그러나 그 이상, 쌍네는 저의 가슴을 억제할 길이 없었는지, 덤석 형걸이의 가슴을 향하여 조약돌처럼 날려들더니, 그 다음은 어깨를 추며 흑흑 느껴 운다. 두 팔은 형걸이의 몸뚱이를 끌어안고, 눈물이 뜨겁게 흐르는, 불덩이처럼 달뜬 쌍네의 얼굴은, 황소처럼 사나이의 가슴에서 몸부림쳤다.
형걸이는 적지 않이 쩔쩔맨다. 그러나 그는 두 팔을 들어 미친 물결처럼 덤비는 쌍네의 몸을 가만히 안아 주었다. 그러고는 두 손으로 쌍네의 얼굴을 찾아서, 눈물을 흘리는 두 눈을 입술로 찾았다. 다시 얼굴을 가슴에 묻어 주었으나,
“길에서 누가 보믄 어쩌는가. 자 저리로 비켜, 응.”
하고 쌍네를 달랠 만큼, 그는 냉정한 기색을 잃지 않았다. 쌍네는 어리광처럼 또 한 번을, 온 몸뚱어리로 사나이의 살을 부비어 보았으나, 이윽고 가만히 그곳서 물러났다. 그들은 길가에서 두어 발자국 밭두둑께로 물러섰다. 둘은 잠시 덤덤한 채 서 있었다. 상긋한 풀 냄새를 풍기며 초여름 바람이 길을 건너, 벌판으로 뻗어 나간다. 바람은 두 사람을 어루만지며 캄캄한 밤에 개울을 건너 버드나무와 느티나무를 우수수 울린다.
쌍네는 달떴던 얼굴에 바람이 스쳐서 한결 두 눈이 버석버석해졌다. 다소곳하니 식어 내리는 격정을 맛보면서, 그는 잠시 무엇 하러 제가 도련님을 찾아왔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마지막으로 그를 만나 보러, 그리고 그의 마지막 말을 들어 보려고 찾아온 것임에 틀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나 본 뒤엔 어떻게 하려던 것일까. 그와 같이 도망이라도 쳐달라고, 어떻게 하든지 두칠이의 손아귀에서 자기를 뽑아내 달라고 요구하러 온 것이었던가. 처음 생각은 또렷하니 그랬던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이렇게 그의 옆에 와서, 바로 칠흑 같은 장막 속에 싸여서, 그의 체온을 제 근육으로 느끼고 마음속으로 향락하고 있으려니, 슬며시 그러한 욕망이 생겨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보살할미의 점괘가 그의 머리를 스쳐간다. 그러나 한편 제 마음대로 사나이의 몸뚱어리를 주무르고 나서도, 역시 저와는 어떠한 상거가 있는 사람 같은 느낌을 금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두 몸이 한 몸이 된다든가, 두 마음이 그대로 한 마음이 된다든가―높고 강렬한 감격 속에서도 이러한 통일된 생각을 맛볼 수가 없고, 어딘가 자기는 이 사나이를 남편으로 섬기든가 그럴 수는 없는 사람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와 나는 피가 서로 다른 사람일런가. 쌍네는 다시 쓸쓸해졌다. 두칠이의 얼굴이 눈앞에 선하니 떠오른다.
“어째 이 밤에 이런 델 왔어.”
쌍네에게 던지는 첫마디 말이다. 그러나 무척 서먹서먹한 말이다. 어째 이 밤에 이런 델 왔는가고, 형걸이는 묻는 것이다. 대체 그는 그 까닭을 몰라서 묻는 것일까. 쌍네는 대답지 아니하였다. 대답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대답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쌍네는 순간에 퍼뜩 본정신이 든 듯이 낯을 들었다. 머릿속을 찬바람이 씽 하고 지나가는 듯하다.
“도련님은 까닭을 모르십니까.”
난생처음 말해 보는 날카로운 말이었다. 쌍네는 이 말을 가까스로 뱉어 놓곤,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자리에 이렇게 더 섰을 수가 없도록 몸과 마음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그는 힝하니 그곳서 몸을 돌렸다. 길로 내려서서 캄캄한 가운데를 덤성덤성 걸어갔다. 형걸이, 그이에게 걸었던 가느다란 희망의 닻줄은 끊어져 버린 것이다. 단 한 마디의 그 말, 이무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말이 아니었다.
‘나는 어째서 그를 찾어, 염치도 무서움도 돌보지 않고, 이렇게 밤을 타서 그를 만나러 왔던 것일까.’
“여보.”
“여보.”
하고 부르는 형걸이의 목소리가 들려 온다. 그러나 들을 필요가 없었다.
“내 말을 듣고 가요.”
“이럴 게 아닌데그래.”
뒤쫓아 오다가 길 가운데 서서, 형걸이는 안타까이 쌍네의 등뒤로부터 중얼거린다. 그러나 쌍네는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구룡교로 통한 길을 눈물에 어리어서 덤성덤성 달음질치듯 하였다. 그는 제 집 가는 길로 올라서지 않고 비류강 방수성 있는 쪽으로 나갔다.
자정이 훨씬 넘도록, 두칠이가 기다리는 방안에는, 쌍네의 몸은 나타나지 않았다.
캄캄한 장막 속으로 덤성덤성 뛰어가는 쌍네를 불러 보다가, 멍하니 길 위에 서서, 형걸이는 금방 저와 만났던 여자가 쌍네가 아닌 딴사람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는 역시 틀림없는 쌍네였다.
무엇으로 얻어맞은 듯이 머리빡이 뗑하다. 여태껏 대수롭지 않게, 문제 밖으로 밀어 놓았던 사건이 불쑥, 아닌밤중에 솟아나서 홍두깨처럼 그의 머리를 후려갈기고 달아났다. 그는 비로소 제가 저지른 행동에 대하여, 뼈아프게 책임을 느꼈다. 그것은 난생처음으로 겪어 보는 경험이었다. 지금 그는 쌍네에 대하여 생각지 않을 수가 없어졌다. 그러나 그까짓 생각 같은 것이 쌍네에게 무슨 일을 치를 것이냐. 그는 나의 단 한마디 말에서, 모든 것을 예단하고 그대로 줄달음질치고 말았다. 그는 내일 아침이면 나와 모든 사람과 이 고을을 아주 하직하고, 좋건 글렀건 새생활의 개척을 위하여 길을 떠날 것이다. 이 지경에 이르러 저는 어떠한 행복을 쌍네에게 덧붙여 줄 수 있을 것이냐. 그러나 어쩐지 마음 한귀퉁이에, 묵직한 납덩어리 같은 것이 엉켜돌아서 마음이 가볍지를 않다.
누구에게 모든 것을 말하고, 제 행동의 그릇됨을 사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는 다리를 옮겨 놓았다. 역시 문교사를 만날밖에 없다. 결혼문제, 쌍네에 대한 문제, 그리고 끊을 수 없는 애정의 뿌리가 박혀 버린 부용에 대한 문제―이런 걸 털어놓고 상론해 볼 수 있는 사람, 그는 문우성 선생밖엔 없었다. 그러나 교회당으로 가는 길 도중에서 부용이의 집 앞을 지나치려니, 역시 부용이를 먼저 만나 보고 싶은 생각이 난다. 쌍네에게 얻어맞은 머리를 깨끗이 씻어 줄 이는, 그리고 그에게 상처당한 가슴을 고스란히 풀어 줄 이는, 우선 부용일 것같이 그의 젊은 마음에는 생각되는 것이다. 그는 골목 어귀에서 한참 동안을 서서 망설이다가, 종시 발길을 부용이의 집으로 돌려 놓았다. 그를 만난 지도 퍽 오래된다. 운동회 때문에 못 만나고, 그 뒤에도 운동회날 운동장에서 먼발로 그의 웃는 낯을 눈넘겨 바라보았을 뿐, 한 번도 만나지 못하였다. 눈앞에 가로누운 이 집 안에서, 부용이가 달림하니 앉아서 추수의 상사리를 읊으면서, 생각에 잠겼을 걸 그려 보니, 발꿈치를 윗길로 떼어 놓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골목을 지나 대문께로 갔다. 지금 누가 나왔는지, 혹은 금방 누가 안으로 들어갔는지, 대문이 걸리지 않고, 방싯하니 열려 있다. 그래서 주인을 부르지 않고, 잠시 문 앞에 서서 귀를 기울이려니, 부용이 방에서 이야기 소리가 난다. 누구 손님이 온 것인가, 그렇다면 하는 수 없이 문선생 댁을 먼저 다녀올밖에 없다고 두루 생각하면서, 불이 빤히 밝은 방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그 순간 형걸이는 얼굴을 대문에서 떼고, 귀를 의심하였다. 방에서 들려 오는 목소리는 몹시 귀에 익다. 아니 귀에 익다뿐 아니라, 그 목소리는 바로 그의 아버지 박참봉의 목소리가 아니냐. 그는 저도 모르는 짧은 시간에, 몸을 그늘에 숨기고 막혔던 숨을 겨우 쉬었다. 아버지, 그가 어째서 이 집에를 오게 된 것인가. 그는 형걸이와 부용이의 관계를 누구한테 듣고, 차후를 조심해 달라고 부탁의 말을 하러 온 것일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상스런 수단을 취할 아버지가 아니었다. 역시 강선루에서 오는 길에, 좌석에 불리었던 부용이와 함께 돌아오다, 지나는 걸음에 잠시를 들른 것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겨우 형걸이는 숨을 돌렸다. 그리고는 약간 미소까지 입가장에 그려 보았다. 그는 호기심에 끌리어 다시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본다.
“그래 그렇도록 너는 내가 싫으냐.”
아버지답지 않은 목소리에, 형걸이는 낯이 화끈 달아올랐다. 아버지는 적지않이 취하였다. 부용의 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 뭐라고 도란도란 대답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탁하고 늘어진 아버지의 목소리가 덮치듯이,
“그럼 어째, 내 말은 안 들으려니 응.”
하고 추근스레 들려 온다. 또 아무런 대답이 부용에게서는 들리지 않는다. 형걸이의 눈앞에는, 지금 방안에서 벌어지고 있을 광경이 자꾸만 선하게 나타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부용이는 어떡하고 앉았는가, 몸을 도사리고 아버지 입에서 나오는 요구를 좋은 말로 흘려 넘기면서. 그리고 아버지는 어떡하고 앉았는가. 갓을 쓴 채, 술이 잠뿍이 취하여, 눈과 얼굴에는 이글이글한 정이 차서, 두 손으로…… 형걸이는 얼굴을 문에서 떼고 등살을 폈다. 그는 가슴속에 이상한 격정이 끓어 오르는 것을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아― 아버지는 취하셨다. 정신을 잃고 계시다.’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려 보나, 가슴은 가라앉지 않는다. 그러나 어떻게 할 도리가 있단 말인가. 가도오도 못 하고 대문에 서성대고 있는데, 갑자기 부용이의 깔깔대는, 교태가 담북하니 담긴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 웃음에, 부용이답지 않은 교태가 섞인 것이 형걸이에게는 적지 않게 불쾌하였다.
“나리가 참 미치셨나. 그러시지 마시구 어서 약주나 드세요.”
“허허, 난 인제 술은 싫다. 그래 무엄하게, 나 나더러 미쳤다니. 그래 내가 미쳤다. 아닌게아니라 너한테 내가 미쳤다.”
말이 끊어졌다. 형걸이는 이 이상 말을 더 들으려고도 아니한다. 그러나 대화가 끊어진 동안, 방안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 있는 거냐, 그것을 깨우쳐 생각하는 건 더욱 무서운 일이었다. 귀를 기울이니, 역시 목소리를 낮추어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그래 그 뜻을 말 해봐라.”
아버지의 말소리가 높아져서 나직하나 똑똑하게 들려 온다.
“그래 어서 그 뜻을 말해 봐. 아무렴 내가 노헐 턱이 있겠나 원.”
한참 동안을 묵직한 침묵이 흐르더니, 이윽고 적지 않게 당황해하는 어조로,
“아니 말은 않고 어째 우느냐.”
이 소리를 들으며 형걸이는 긴장하였다. 몸을 바위처럼 굳게 땅 위에 붙이고, 저도 의식지 않으면서 귀를 기울이는데, 그 다음엔 울음에 섞여서 무어라고 두어 마디 부용의 말이 들리고,
“아니 뭐.”
하는 돌연스레 높직한 놀라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문풍지를 울린다.
“천륜을 깨뜨려?”
훤한 문풍지 위에 육중한 박참봉의 그림자가 우뚝 솟았다. 그 그림자가 갑자기 커졌다가 이어서 문 여는 소리.
“나리, 잠깐만 참으셔요.”
하면서 쪼루루 뒤따르는 긴 치마의 그림자. 그러나 박참봉은 벌써 뜰안에 내려서서 갓신을 발부리에 꿰고 있었다.
형걸이는 엉겁결에 캄캄한 그늘에 몸을 숨겼다. 대문을 잡아 젖히더니, 성난 짐승처럼 씨근거리며 박참봉이 대문을 넘어선다. 갓이 후들후들 떨리면서, 그는 격분한 감정을 누르지 못한 채 골목을 지나서 없어진다. 아버지의 뒷모양을 배웅하고 나서도 형걸이는 그림자 속에서 훤한 데로 나설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는 그대로 한참 동안을 숨을 죽이고 그늘 속에 파묻혀 있었다. 부용이가 뜰을 건너 대문께로 온다. 그는 박참봉이 간 방향을 잠깐 바라보고는 문설주에 손을 얹고 푸 한숨을 짚고 있다.
형걸이는 부용이의 얼굴을 살피었다. 피로가 가득 찬 얼굴에 눈물 줄기가 먼 불광에 한번 번뜩 하고 빛난다. 형걸이는 가만히 가서 등뒤로부터 부용이를 껴안고 그의 등을 어루만져 주고 싶었다. 그는 그의 얼굴에서 어떤 성스러운 표정을 발견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의 발은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윽고 부용이는 문을 잠그고 뜰을 건너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방문이 닫히는 것을 기다려, 형걸이도 비로소 대문 앞까지 나섰다. 대문 판장 틈으로 부용이 방의 불광이 은은히 보인다. 그는 잠시 종교적인 정신적 분위기를 그 불광에서 느껴 본다. 그는 한참 동안을 그럭하고 서 있을 뿐이었다.
만나고 싶고, 만나면 아무 말도 않고 그의 아름다운 얼굴을 마주쳐다만 보고 싶었으나, 그는 찾지도, 그의 방에 들어갈 수도 없는 자기를 마음속 깊이 깨달아 본다.
그는 애끓는 생각에 서리어서, 다시 눈익혀 부용이의 방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용기를 내어 발을 옮겨 놓았다.
길 가운데 나서서, 사방이 괴괴해진 걸 느꼈다. 아직도 선선한 바람이 행길을 휭하니 지나간다. 어디로 갈 것인가.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뻔한 일처럼 생각되었다. 그는 제가 아까 문우성 선생의 집을 찾아서 교회당으로 가던 것을 다시 한번 뇌보듯 생각해 보았다. 머리가 갑자기 거뿐해지는 것 같다.
문선생한테로 가자! 그러나 문선생을 찾아가는 목적은 아까와는 판판 달랐다. 어떻게 할 바를 몰라 해결의 방도를 상론하고 위안을 받으러 가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결심을 실행하는 첫 계제로 그를 찾는 것이다. 문선생은 벌써 전도자의 지위에서, 수단을 조력해 주는 원조자의 지위에 내려선 것이다.
형걸이의 마음속에 이루어진 결심, 그것은 막연하기는 하나, 오늘 밤 안으로 이 고장을 떠나서 평양으로든가, 더 먼 곳으로든가, 새로운 행방을 잡아 보자는 것이었다. 그는 몇 시간 뒤에 평원 도로를 향하여, 방선문 밖 신작로를 걸어나갈 것을 상상하며, 문우성 선생이 기숙하고 있는 예배당으로 병대처럼 뚜벅뚜벅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