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大河)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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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을엔 밀양 박씨(密陽朴氏)가 두 집이 있었다. 방선문(訪仙門) 안 향약전 옆, 바로 길서방네 대장간 윗집에서 국수 장사를 해서 그날그날을 살아가는 집이, 이 고을서 벌써 오대째나 산다는 박리균(朴利均)네 집이다. 그의 동생 성균(成均)이네는 그곳서 다섯 집 위로 올라와서 마방을 한다. 아이들은 올숭졸숭 도야지 무리처럼 많으나, 지금 쓰고 있는 초가집 나부랭이밖에 재산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비록 마방이나 국숫집으로 살아가고 땅조각 손뼉만한 거 하나 없다고 하여도, 저는 양반이노라 재었다. 조상에 정승을 지낸 이가 있다든가, 대신이나 명신이나 명장이 난 것이 아니다. 이 고을 와서 이대째 되는 이가 아전을 다니다 청년의 몸으로 죽었는데, 그의 처 성씨(成氏)가 어린 아들을 남겨 두고, 남편을 따라 목을 매어 죽어 열녀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고을 읍지(邑誌)에도 기록되었다고, 박리균네 형제는 술에 얼근하면 그것을 한문으로도 외고, 또 풀어서 염불처럼 흥얼거리기도 한다.
“성씨는 박귀성의 처니 성논산의 장녀라. 부 박귀성이 사하매, 애호하며 자액하야 사하니, 향인이 성씨의 시체를 그 부와 일분에 장하였도다. 성씨의 시년이 이십삼이러라.”
방선문을 척 나서면 왼편에 쭈르랗게 나란히 한 많은 비각 중의 제일 초라한 것이, 성씨의 열녀비가 들어 있는 집이다. 지붕 기왓골에서 잡초가 나오고, 추녀 끝에 참새가 둥지를 틀면 박리균네 형제는 손수 풀을 뽑고 새둥지를 집어 치웠다. 그러나 비각은 바른쪽으로 찌그뚱하니 넘어져 갔다. 수선을 하든가 다시 집을 고쳐 지으려면 적잖은 돈이 들 게다. 기둥을 하나 모양은 숭하나 넘어지려는 쪽에다 버텨서 겨우 그것을 의지해 나갔다. 그것은 마치 양반이라고 으스대는 그의 환상이, 마지막으로 운명(殞命)을 기다리고 있는 거나 같이 적막하게 보이었다.
“박성권이 같은 놈이 합체 뭔가. 밀양 박가노라 해서 남의 체면만 망쳐 놓지만, 그놈이 어데매 돌 박간지 누구 알 놈이 있단 말야. 어데서 돌아먹던 놈이 도덕질이나 해서 돈푼이나 잡아 가지굴랑, 내가 밀양 박감네 하지만…….”
박리균은 국수 먹으러 온 사람을 붙잡고 곧잘 이런 푸념을 하였다.
그의 말처럼 아닌 게 아니라, 밀양 박가노라고 하는 또 한 집안이 이 고을에 살고 있다. 강선루(降仙樓)에서 방선문까지 가는 중턱, 바로 구룡교(九龍橋)가 있는 데서 여남은 집 아래로 내려온, 제일 지대가 높은 곳에 큰 집을 잡고 살았다. 그 집 주인이 금년에 갓마흔인데 이름이 박성권(朴性權)이다.
박리균이가 박성권을 가리켜 돌 박가니 뭐니 하지만 물론 그도 밀양 박씨다. 그의 조상에 아전 이상을 다닌 이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따름이다. 효자문이나 열녀문 선 게 없는 걸 보면 확실히 박리균네처럼 으스대고 내벌일 건덕지는 없는지 모른다.
그는 본시 이 고을 사람이 아니다. 은산(殷山) 고을서 근 이십 년 전에 이 고장에 왔다. 그의 조부는 아전을 다니며 창미(倉米)를 농간해서 적지 않게 돈을 모았다고 한다. 녹미를 저당잡고 돈을 꾸어 주든가, 녹미를 싸게 샀다가 봄이나 여름에 쌀값이 오를 때 팔아서 돈을 잡았다는 게다. 물론 제 앞으로 있는 쌀이나 저당잡은 쌀을 백성에게 쌀 떨어졌을 때 주었다가, 추수 때에 엄청난 이를 붙여 도로 받아서 그것으로 땅을 샀을 게다. 어쨌든 그는 적지 않게 돈을 모았는데, 성권의 아버지가 도박과 말년엔 평양 출입을 하여 이 땅에 갓 들어온 아편까지를 빨며, 주색을 겸해서 홀딱 올려 버렸다. 그가 명껏 살지도 못하고 죽었을 때 재산은 얼마 남지 아니하였다.
아버지의 삼년상을 치르고 나서 얼마 안 지나 곧 갑오년 난을 맞았다. 그때에 박성권은 스물을 넘어서 서너 살, 혈기가 넘쳐흐르는 한 포락이었다. 모두가 산골로 강원도로 피란들을 갈 때에, 이때야말로 대장부가 한번 활약할 시기라고, 박성권은 처자를 피란 가는 친척에게 부탁하고 자기 혼자 집에 남았다. 자산, 순천, 평양, 중화, 황해도에까지 내왕하며 병대를 상대로 장사를 하였다. 농토에서 떠난 대담한 많은 농군들이 이때에 군수품 운반에 종사하였는데, 대부분 그 보수를 은전으로 받았다. 이 은전을 성권은 살 수 있는 턱까지 엽전으로 사서는 남몰래 땅속에 묻어 두었다.
전쟁이 끝나서 피란에서 돌아와 보니, 박성권은 아내와 첩과 자식을 데리고 은산서 들어와 이 고장에 자리를 잡으려 들었다. 그가 어째서 은산서 살지 않고 이 고을로 이사를 하였을까. 뒷날 돌아가는 말엔 그곳에는 가난한 친척이나 푸네기들이 있어서, 돈 잡은 줄 안다면 그 치다꺼리를 일일이 섬겨 나가기가 바쁠 것이매, 전과 같이 붉은 주먹 두 개밖에 아무것도 없노라고 허통을 뽑고, 슬쩍 밥벌이 떠난다고서 이리로 이사해 버린 것이라 한다.
처음 오자마자는 두뭇골에다 자그마하게 집을 세운 걸 보면, 그 말도 딴은 그럴듯한 소리다. 몇 방안 되는 작은 집에다 첩 큰댁을 함께 몰아넣고, 아이들 셋을 각각 제 어미를 붙여 갈라 넣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일 년이 지나서 피란 갔던 읍 사람들이 모두 돌아와서 돈에 궁한 이가 집을 팔 때, 그는 헐값으로다 지금 쓰고 있는 커다란 거릿집을 사고 장터로 나서면서, 예전 살던 집은 새로 꾸리고 늘려서, 첩과 첩의 몸에 생긴 아들을 살도록 맡겼다.
박성권이가 행길 장터로 나서기까지는 그의 아내와 첩을 본 사람이 적었다. 그러므로 밀양 박가라는 낯모를 녀석이 두뭇골에 와서 사는데 대담하기 짝이 없는 젊은 놈이라느니, 그에게는 아들 삼형제가 있는데 건방지게 색시를 둘이나 갖고 산다느니, 그가 소문에 돈이 있다느니 없다느니 하는데, 그게 사실일까 하는 등류의 소문이 고을 사람의 입에 오락가락하였을 뿐이다.
제일 먼저 궁금하게 생각해한 건 물론 박리균네 형제였다. 저놈이 밀양 박가라고 하면서 행세를 해보려 드니 과연 사실일는가. 일변, 여편네들은 그의 아내와 첩의 얼굴을 보고 싶어 애썼다. 그러나 명절 때 소재에도 안 오르고, 그넷줄 밑에도 안 나서고, 널뛰러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던 박성권이가 이 고을서 제일간다는 집을 닁큼 사버리고 첩 큰댁을 갈라서 두 살림을 벌여 놓았다. 시시부시한 풍설이 휙 날아가 버리고, 새 소문이 이어서 홍역처럼 고을 안에 퍼져 나갔다―은산서 온 것만은 확실하다. 그의 사촌이나 육촌이 은산서 더러 산다, 그런데 피란도 안 가고 돈을 잡으려다 고생만 죽게 했지 전과 한 모양으로 백수건달, 하는 수 없어 남부여대하고 고향을 떠났다는 녀석이 갑자기 어인 돈이 솟아나서, 집이니 뭐니 하고 저런 치다꺼릴 하는 것일까―이게 한 가지 의문이었다.
그래서 박리균네 형제가 자기네 영업을 이용하여, 국수 먹으러 오는 사람, 마방에 들어서 자고 가는 사람, 또는 장돌림으로 평안도 일대를 연자매 돌듯 하는 도붓장수나 돌림장수들에게 널리 수소문해 본 결과, 그가 피란 가서 아무도 없는 동안 큰돈을 벌었다는 사실을 탐지해 내었다.
그를 깔보려 차비를 차리던 박리균네 형제는 감칠맛이 덜해서 입이 좀 밍밍했다 뿐 아니라 은근히 그를 그렇게 볼 놈이 아니라고 두려워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네와는 파가 다른 밀양 박가로서 양반이 못 된다고 술만 마시면 여전히 ‘성씨는 박귀성의 처니 성논산의 장녀라’만 되풀이하고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부인네들은 부인네들끼리의 호기심이 따로 있다. 부엌문 틈으로나 바자 틈으로, 의관을 갖추고 오르내리는, 기골이 장대하고 얼굴 생김새가 비범한 박성권을 본 적이 있고, 또 그의 아들도 금년에 대여섯 날지 말지 한 녀석이, 자완두 두루마기에 전반 같은 영초 댕기를 드리고, 절게나 막서리를 따라서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으나, 아낙 두 사람의 얼굴을 영 볼 수가 없었다. 본댁은 어떻게나 생겼는가, 작은댁은 예쁘게 생겼는가, 본댁은 이 고을서 한 십 리 나가 있는 갱고지 전주 최씨의 딸이라는데, 작은댁은 어디서 얻어 왔을까, 새파랗게 젊은 아이 적에 대가리에 피도 채 안 마른 녀석이 어디서 첩을 맞아 왔는가, 그때는 돈도 없고 가난한 때일 텐데― 생각하면 할수록 꼭 고 첩년의 상판때기를 보고 싶어 죽을 지경이다.
하루는 동서끼리 짜고, 그 옆집 음해 잘하기로 유명한 늙은 노파를 꾀어 가지골랑, 두뭇골 위턱에 있는 선앙제터에 가노라고 길을 떠났다. 노파와 리균의 마누라는 삭가지를 쓰고, 성균이 처는 아직 삼십이 안 된 젊은 축이라고 시양목 장옷을 둘러쓰고서 뒷고샅으로 빠져서 두뭇골로 갔다. 선앙제터 부근에서 어물어물하다가, 처음 의논한 대로 그들은 쏜살로 박성권네 첩의 집으로 들어갔다. 밤에는 이곳 와서 자는 일이 많지만, 박성권은 조반만 먹으면 큰집으로 가는 것을 그들은 이야기를 들어 미리부터 잘 알고 있다. 노파가 앞서서 들어가며,
“주인 아주마니, 물 좀 얻어먹으레 들렜소다. 선앙제터에 갔다가 목이 말라서…….”
하였다. 셋이서 한참 앉아 집안의 가도와 작은댁의 생김새를 눈이 뚫어지게 보고 난 뒤 만족하여 돌아왔다.
그런데 집 차림이나 가도 범절에 대한 평판은, 거의 셋이 보는 바가 일치했으나, 얼굴에 대한 비평은 두 패로 갈라졌다. 음해 잘하는 노파와 작은동서가 일치하여, 얼굴 바로 된 데 없다는 주장을 펼쳐 놓고, 맏동서 다시 말하면 리균의 아내는, 여자의 생김새가 아주 놀라운 미인이라 선전했다. 그리고 노파가 저러는 건 원체 음해로 사는 이니까 다시 말할 게 없는 일이고, 작은동서가 그 여편네 얼굴 바로 된 데 없다는 건, 제가 아직 젊으니만큼 샘하는 마음에서 나온 게라 설명하고, 제가 보는 바가 가락꼬치 아니면 관역이라 쟀다.
노파는 노파대로, 또 다른 소문을 퍼뜨려 놓았다. 그가 알아낸 거는, 열일곱에 시집와서 열여덟에 첫아들을 낳았다는 것뿐인데, 그는 활짝 늘이고 부연해서, 박성권이가 한포락 적에 투전판에서, 남의 갓 시집 온 색시를 도적질해 업어 왔다고 훼방을 놓았다. 이 이야기는 사실과는 엄청나게 동떨어진 소리지만, 원체 조작된 말이 재미나서 마치 사실인 거나처럼 퍼져 나갔다. 다른 두 동서도 당자의 입에서 그렇게 들었노라고 허설대었다. 이 소문은 오랫동안 이 고을에 잦아져 있었다.
그러나 박성권네 후간, 토굴처럼 으슥하고 바윗돌처럼 굳은 담벽으로 둘러 지은, 그다지 크지 않은 두 칸에, 한 절반씩 땅을 파고 들여놓은 커다란 독이, 세 개가 있는 것을 아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이것을 손수 들어다 파묻은 절게가 두 사람 있기는 있으나 무엇 하려고 그런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 독 속에 대원 일화 은전이 그득그득 들어가 있는 것을 아는 이는 더욱 없었다. 갑오란에 엽전 몇 냥씩과 바꾸어서 모은 그 은전을, 그는 이렇게 깊게 간직해 두었던 것이다. 집안에서나 혹은 절게나 막서리들이 하는 말엔, 그 후간 토굴에는 특별한 대감님을 모셔 두었다고 한다. 물론 한편 구석에 선반을 매고 백지 조박을 늘인 당지기가 몇 개 올라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소문을 퍼뜨려 놓은 것은 도적을 방지하기 위한 박성권 자신의 계책이었던 것이다.
좋은 밭이나 논이 날 때마다, 은값이 센 것을 보면 조금조금 은전을 팔아서, 남의 눈에 들지 않게 토지를 샀다.
한편 돈놀이를 무섭게 하였다. 기일에 들여놓지 못하면 집이고 토지고 사정 없이, 다 꿰어 들였다. 집 시세는 얼마 보잘 게 없으므로 대개 토지를 잡았다. 세간이 아직 넉넉하고 땅덩어리나 가지고 있는 집이라면, 일 년 만에 이자를 꼬아 매고 꼬아 매고 하여, 이삼 년 안팎에 원금보다 이자가 몇 곱이 되게 만들었다. 그의 재산은 눈 위에 굴리는 눈덩어리처럼 불어 나갔다. 그러나 그가, 이 바닥에서 갑부라는 것을 아는 이는 적었다.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그를 박성권이라고 부르는 이는 없어졌다. 언제 누가 부르기 시작했는지, 세상 사람들은 그를 박참봉이라 존대해서 불렀다. 그의 집에 드나드는 앞에 나선 녀석들이 아첨하느라고 지어 바친 존칭인지 모르나, 박리균이더러 물어 볼라치면 그는,
“아니 여보게. 참봉 참봉 하니 그게, 머, 제법 베슬이나 같애 뵈나, 돈으로 산 차함(借喊) 참봉이라네, 돈으루다 산 거.”
하고 등골에 꽂았던 담뱃대를 쪽 뽑아선, 천둥 같은 화풀이를 하느라 곤지 애꿎은 담배만 푹푹 피웠다.
그러나저러나 그는 박참봉이다. 앞으로 사십을 잔뜩 치어다보는 서른일곱 살 될 때 그는 벌써 다섯 남매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때까지 아들을 부르기를 큰놈이니, 또 은산서 난 놈을 은산놈이니, 셋째니 뭐니 하고 불러 왔는데, 집의 격식을 갖추기 위하여 당당한 항렬을 지어 붙일 생각을 했다. 물론, 그의 부친은 박순일(朴淳逸)이요, 그의 이름은 박성권이니, 금수목화토(金水木火土)로 제법 항렬이 섰던 것이 분명한데, 맏아들을 낳았을 때, 박순일은 주색과 아편에 취해서 바른 이름을 지어 주지 않고 큰놈이니 장손이니 하다가 죽고 말았다. 스물 전후의 박성권―아니 우리도 세상 사람들의 호칭을 따라, 이제부터 가끔 그를 박참봉이라 불러 주자―그 박참봉이 삼십을 넘기까지는 아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지 아니하였다. 원체 어려서 소시적부터 아들이 흔했으니까 대를 못 이을 염려도 없고, 또 쇠운에 처하여 돈을 잡느라 갖은 모험을 다 치러 나는 통에, 통히 처자에 대한 애착을 붙여 볼 날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겨우 서른일곱 살 될 때에, 아들의 이름들을 지어 주게 된 것이다. 죽은 아버지가 ‘순(淳)’자로 삼수 변이고, 자기가 ‘권(權)’자로 나무목 변이니, 이제는 불화(火)자 드는 자를 생각해 내야 한다. 수생목(水生木)이요, 목생화(木生火)이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해를 보내며 이책 저책 뒤적거리다가, 빛날형(炯)자를 생각해 내었다. 자기 이름이 마지막 자에 항렬이 들었으니 이번에는 형자를 가운데 넣어서 지어야 한다. 그래 지어 낸 이름이 이러하다.
형준(炯俊)이, 형선(炯善)이, 형걸(炯杰)이, 형식(炯植)이, 딸이 하나 있으나 제석에 팔았다고 제석네라 부르던 걸 고쳐서 보패(寶貝)라 하고, 그대로 항렬에 넣지는 않았다. 형선이와 형걸이는 동갑인데, 형선이가 한 달 먼저 났다. 형걸이가 첩의 소생, 그러므로 서얼에 드는 때문에 그를 셋째라고 부르지 않고, 금년에 두 살 난 형식이를 셋째라고 불러 왔다. 여태껏 형걸이는, 자산서 저의 어미가 낳아 갖고 은산으로 왔다고 자산놈이라 부르고, 이와 구별하여 형선이를 은산놈이라 했다. 큰놈 혹은 장손이 형준이로 되고, 은산놈이 형선, 자산놈이 형걸, 셋째가 형식으로 되고, 제석네가 보패로 된 셈이다.
이름을 다 지어 놓고, 그는 아들 셋을 죽 불러 앉히고 이것을 발표하였다. 표면에 나타내지는 않았으나, 속으로 제일 반가워한 것은, 셋째는 자기인데도 불구하고 어린 형식이를 셋째라고 부르는 데 반감을 가지고 있던 자산놈, 다시 말하면 형걸이었다. 그는 첩 소생이어서 받는 갖은 차별 중에서, 남에게까지 그대로 내밝히는 이름 위에 있는 모욕을 가장 꺼려 왔다. 그 밖에 다른 아이들도 무슨 놈, 무슨 놈 하고 그 ‘놈’자가 귀에 거슬리던 차라, 대개들 기뻐하는 모양이었다.
“그라구서 제석네의 이름은 보패라구 고쳤다. 보배보자 조개패자, 그러니 보패라구들 불러라. 식구에게나 절게에게나, 막서리에게나, 또 작인이나, 종들에게 전부 일러둘 게니 너이덜두 서루 새 이름으루 불러라.”
아들 셋을 내보낸 뒤에 마누라를 불러서 가르치고, 종들에게 이것을 말해 두라고 명령하였다.
맏아들 형준이는 그때 열아홉 살이어서, 제 방이 따로 있고 또 아내를 갖고 있었다.
밤에 일찌감치 자리에 누워서, 젊은 아내가 등잔불 밑에서 물레질을 하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붕붕, 붕붕 찌끄덕, 붕붕, 붕붕 찌끄덕, 하는 단조로운 물레질 소리가 기름 조는 소리와 어울려서 그의 귀에 자장가처럼 숨어들었다. 그는 졸림이 오는 것 같아서, 낑 하고 돌아 엎드려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아내는 실토리가 불룩하니 배가 불러지면, 가락꼬치에서 뽑아 내고 새것을 꽂았다. 물렛줄이 닿는 가락꼬치에, 나무꼬챙이로 기름을 묻혀서 바르고 흘낏 남편 있는 쪽을 바라본다. 남편은 담배를 다 빨고, 그의 옆구리 있는 쪽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아내의 힐끗 보는 눈초리를 받아 씽끗하니 웃는다. 아내는 부끄러워 물레를 아까보다 더 빠르게 돌려 댔다. 남편은 줄을 올리느라고 벙끗 왼손을 들 때마다, 높이 졸라맨 띠가 끌러져서 흰 살이 젖통 있는 옆으로 희게 번뜩번뜩 보이는 것을 그대로 바라보고 있다가,
“귀드끄런데 고만두구 이전 자.”
하고 털썩 베개 위에 머리를 눕히었다. 밝은 데서 말을 주고받기는 아직 서로 부끄러운 시절이다. 젊은 아내도 남편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곧 일어나서 불을 끄고 옷을 끄르기가 부끄러웠으나, 남편의 명령이니 감히 뉘 말이라고 거역할 게냐고 제 자신에게 타이르면서, 인차 물레질을 그만두었다. 물렛줄을 벗겨 놓고, 입을 모두어 동그랗게 구멍을 만든 뒤에, 그 구멍으로 숨을 혹 내뿜어서 그는 등잔불을 껐다. 캄캄한 밤이다. 옷 벗는 소리가 살랑살랑 들려 온다. 저고리를 벗고, 치마를 벗어서 윗목으로 둘러친 병풍에, 남편의 옷이 걸린 옆을 손으로 더듬어서 걸어 놓는다. 다시 앉아서, 손으로 곰곰이 누벼 놓은 누비 허리띠를, 젖가슴과 허리로부터 끌러 놓고 삼성 바지를 벗는다.
남편은 한 가지 한 가지 아내의 몸에서 벗어지는 것을 안타까이 기다리다가, 여기까지 와서는 나직이 참았던 한숨을 내쉬었다. 아내는 마지막으로 버선을 뽑고, 무명 속옷 하나만 입은 채 가만히 이불을 들친다. 아내는 긴 원앙침―시집올 때 해가지고 온 베개 한옆에 머리를 눕히고, 곱게 빗어서 땋아 얹었던 머리코를 가만히 끌러서 머리맡에 풀어 놓고, 남편 있는 쪽에 등을 돌리고 모로 누웠다.
“오늘부터 이름이 달라졌다.”
느닷없이 하는 남편의 말에 자칫하면 웃을 뻔했다. 낮에 시어머니한테 들은 말이다. 그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캄캄한 속에서 처음 입을 생끗이 열고 마음놓고 웃어 보았다.
한참 있더니 남편은 아내 있는 쪽으로 몸을 돌이키고, 다리로 약간 아내의 무종아리를 새려 감듯 하면서,
“내 이름이 형준이다. 빛날형자 준걸준자. 형준이. 이 댐부턴 그렇게 불러라.”
하고 얼굴로 그의 등골을 부빈다. 이번에는 남편의 하는 말이 진정 우스웠다. 대체 자기가 어디다 대고 남편의 이름을 부른단 말인가. 시집온 지 이 년이 되건만, 여보 하고, 남편을 불러 본 적도 한두 번이 되나마나 하다. 그런 자기를 보고 이 담부턴 형준이라고 부르라는 건, 과시 어처구니없는 장난의 말이 분명하다. 장손이든가 큰놈이든가 남이 부르니, 그것은 남들이 부르는 이름인 줄만 알았지, 여편네가 입 밖에 낼 이름이 아닌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남편이 등골에 얼굴을 부비는 것이 간지러워, 온몸에 오싹하니 소름을 돋치면서 아내는 홱 돌아누웠다.
“둘째 이름은 형선이, 두뭇골 자산 놈 이름이 형걸이, 애기 이름이 형식이, 그리고 제석네는 보패라고 했다.”
다시 한번 ‘내 이름은 박형준’ 하더니 한 팔을 북 아내의 목 밑으로 넣어 그의 머리를 끌어안는다. 아내는 가슴이 벅차서 한참 막혔던 숨을 푸― 쉬면서,
“이제 여름부텀 애기 아버지라구 그럴 테에요.”
하고 간신히 말하고는, 엉겁결에 왼손으로 남편의 등을 안았다. 형준은 비로소 다섯 달 뒤에는 그가 아버지가 될 것을 생각하고, 아내의 약간 두둑한 배를 속옷 위로 가만히 만져 보았다.
그럭하고 삼 년이 지났다. 박참봉 성권이가 갓마흔에 난다. 아들의 이름을 애명 이름으로 부르는 이는 하나도 없어졌다. 오직 보패만은 금년에 열두 살이 나건만, 모두 제석네라고 부르지, 좀처럼 보패라고 부르는 이는 적었다. 그러나 그까짓 계집애 이름 같은 건 아무렇게 부르거나 계관할 게 없다. 이 밖에 맏아들 박형준이가 벌써 일남일녀를 갖고 있다. 손자놈이 네 살에 난다. 그리고 금년에 갓 낳은 딸년이 있다. 손자 이름을 성기(成基)라고 지었다.
마흔이 되어도 박참봉의 포학하고 아구통 센 성격은 수그러지지 않았다. 원체 사십이 인생의 한창이니 정력은 더욱 왕성하여 갔다. 큰댁 최씨(崔氏)는 마흔두 살인데 가끔 영감이 한방에 들건만 금년 다섯살 나는 형식이를 막내둥이로 하고, 단산이 된가 보다. 형걸이 어머니, 다시 말하면 박참봉의 작은댁 윤씨(尹氏)는 서른일곱이니 아직도 한창인데, 어찌 된 셈인지 열여덟에 날 때 자산서 형걸이를 낳은 뒤, 그 아이가 금년에 열아홉이 되도록 아무 소식이 없으니, 그도 또한 단산이 된 지 오랜가 보다. 서른일곱이라도, 생산이 적고 바탕이 이쁘던 윤씨는, 얼굴에 주름 하나 없이 젊은이 같았다. 두뭇골집 뒤뜰 안에다 돌로 칠성탑을 모아 놓고, 생산이 있게 해달라고 치성을 드리고, 영감이 젊은 작첩을 않게 해달라고, 후간에 대감을 모셔 놓고 날마다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이렇게 마음을 쓰는 탓인지, 아직 눈에 띄게 박참봉은 몸을 달리 갖지는 않았다. 염려될 것까지는 없어도 그 대신 그는 술을 몹시 좋아하였다. 큰집에 있을 때나 작은집에 있을 때나, 무시로 술상을 청하므로, 안사람들은 항상 술안주를 준비해 두었다. 포육이니, 명태니, 과일이니, 건조구니―이런 것은 언제나 벽장에서 떠나지 않았고, 육질도 어교 같은 걸 끊지 않았다. 고기사냥 잘하는 영감을, 평양서 하나 데려다가 큰집 사랑 뒷방에 두어 전념하여 물고기를 낚게 하고, 겨울에는 젊은 축들을 시켜서 매〔鷹〕를 가지고 꿩사냥을 시켰다. 소시적부터 잘하는 술인지라, 이즈음은 한포락 때처럼 폭음은 하지 않으나, 술을 몸에서 떼는 날이 적었다. 손수 술은 양조해 쓰고, 가끔 배와 새앙을 담가서 이강주를 만들고, 살구를 넣어서 술맛을 돋우어도 보고, 때로는 살모사나 구렁이를 독한 술에 녹여서 보약으로 마시기도 하였다. 술 탓에 다소 위장이 상한 것도 사실이겠으나, 원체 기운으로는 무엇에게나 져본 적이 없는 강인한 분인지라, 그런 건 조금치도 괘념치 않았다.
술은 취하여서도 돈과 밭과 집안 가도와 자식들은 잊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상의하는 적이 없는 그는, 술이 얼근해서 혼자 사랑에 누운 채, 노 이것저것 궁리하고 있었다. 무엇을 한번 결정하면 무엇이든지 해놓고야 마는 괴팍한 성질이 있다. 자신만만하여 묵묵히 실행하는 그의 꿋꿋하고 휠 수 없는 성격은, 그의 생각한 바가 한 번도 그릇된 적이 없는 데서 오는 자신에 의하여 배가되었다. 그리고 그는 돈의 위력을 누구보다도 확신하는 날카로운 선견의명을 갖고 있다. 그는 아직 문벌이나 가문이 행세를 하는 세상인 줄 알건만, 이런 것이 자기의 돈 앞에 궤배할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을 확신한다. 무엇보다도 이십 년 전에 사두었던 은전이 이즈음 행세하게 되는 것을 은근히 믿는 때부터 그의 자신은 더욱 든든해졌다.
맏아들은 서당에서 한문 공부를 시킨 후엔 별반 신식 공부를 시키지 않는다. 그는 집을 물려 지킬 장남이니, 그만 공부면 충분하다 하였다. 돈놀이하는 것과, 추수하는 것과, 집안일 전체를 감독하고, 사람을 부리는 재주만 배워 두면 그만이라 하였다. 또 아들 자신도 제 동생놈들이 기독학교(基督學校)가 생겼다고, 서당을 집어치우고 그리로 들어갈 때에, 함께 몰려갈 염을 내지 않았고, 삼 년 만에 이것이 없어지고 군수가 주해서 동명학교(東明學校)가 설립될 때에도 새 학문을 배우려 하지 않았다. 하기는 동생들이 대번에 심상과 삼년생이 되고, 이듬해에는 고등과 일년이 될 판인데, 지금 겨우 일학년 학생이 되는 것이 부끄러워서 안 가겠다고 했다는 말도 지어낸 말만은 아닐 것이다.
아들의 혼인에도 박참봉은 머리를 썼다. 맏아들 형준은 이미 삭명(朔明) 경주 김씨(慶州金氏)와 혼사를 지내, 벌써 장손과 손녀를 보았고, 또 보아하니 가도 범절이 옳아서, 며늘아이의 하는 품이 상냥하고 손 쓰는 법도, 맏며느리 되기에 흠잡을 곳이 없다.
둘째 아들 형선이는 한고을 안 상부(上部), 강선루 뒤에 있는 연일 정씨(延日鄭氏)와 혼사를 작정하여, 편지도 부쳤고 선채도 보냈다. 오래지 않아 장갓날이 올 것이다. 정씨 집안일은 한고을 안이니 손에 끼어들게 잘 안다. 지금은 그만두었으나 벼슬도 높았고, 또 재산도 상당하다.
염려가 된다면 형선이와 동갑 되는 형걸이가 다소 문젯거리가 된다 하겠다. 서자인 때문에 좀처럼 좋은 혼처가 생길 성싶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어디 상당한 집안에 규수가 있는 줄만 알면야, 못 될 일이 세상에 있으랴 하고, 그것도 별반 마음에 언짢게 새겨 두지는 않는다. 형걸이놈이 성질이 왈패스럽고, 키도 한 달 먼저 낳은 형선이보다 훨씬 큰 것은 그렇다 쳐놓고, 제 맏형놈보다도 닷 분 가량이나 커 보이는 것이 좀 못마땅하였다. 크는 키는, 안 자라는 키와 함께 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 쳐놓아도, 심술이 짓궂은 것만은 딱 질색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서당에서나 학교에서 남의 아이를 상처가 나도록 때려서 말썽을 일으키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작은댁이 귀하다고 밸을 길러 그런가 하면 또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박참봉 자기가 어렸을 때 그렇게 포학스런 말썽꾼이던 것을 그는 형걸이놈이 일을 저지를 때마다 가끔 생각해 보고, 혼자 속으로 빙그레 웃어도 보는 것이다.
그건 어쨌건 박참봉 성권네 가운은 활짝 뻗칠 대로 올라 뻗친 셈이다. 그가 만족할 뿐 아니라 온 가족이, 그리고 표면으로 보기는 종이나, 절게나, 막서리나, 작인이나, 모두 만족해하는 것 같았다. 그는 때때로 뒤꼍에 나가 십이봉(十二峰) 밑으로 유유히 흘러 대동강을 이루는 비류강(沸流江)의 강물을 만족하니 바라보았다. 이십 년 가까운 동안 저 강물은 나와 함께 노력과 공포와 기쁨을 일시에 휩쓸어 삼키면서, 몇천 년 한날처럼 대동강으로, 황해 바다로 흘러가는, 그의 걸음을 멈춘 적이 없었다.
2
복수(福手)나 복인(福人)을 갖고 말하자면, 박참봉 이상 갈 사람이 이 고을 안에 있을 성부르지 않다. 재산을 두고 보아 그러하고, 자식이 사남일녀요, 손자 손녀가 모두 건강할 뿐 아니라, 생산된 자식 중에 역참을 당한 것이 하나도 없으니, 이것을 두고 일러도 또한 그러하다. 가족이 모두 산해진미에 짓물리고, 사라능단(紗羅綾緞)에 휘감기어 있고, 비복이 방안에 찼고, 막서리와 절게가 앞뒷방에 그득하고, 소와 말이 또한 한두 필이 아니니, 어느 모로 따져도 복에 떠 있는 사람을 부르자면 그 이상 가는 이가 없을 게다. 그러나 자기 일에, 자기가 나설 수는 없다. 그래서 자식 잘 기르는 구훈장(具訓丈)을 데려다, 형선이의 머리를 올리고 성복을 시키기로 했다.
오늘은 박참봉의 둘째 아들 형선이가, 강선루 뒤 정씨 집으로 장가를 드는 날이다.
박참봉은 지난밤은 큰집 사랑에서, 처남 되는 최관술(崔寬述)이와 같이 잤다. 그는 형선이가 장가가는 데 후행을 가기 위하여, 어제저녁 이 고을서는 한 십 리 폭이나 되는 갱고지서 일부러 들어온 것이다. 최관술이는 삼십 고개나 겨우 넘었겠는데, 주둥이 위에 자개 수염을 뻐드럭하니 기르고, 또 머리를 반반히 깎았던 것이 적지 않이 좋았다. 낡은 습관을 엄숙하게 지키는 집안이라면 동학(東學)에 취한 최관술이를 보내서 안 될 일이 많겠으나, 마침 사돈 되는 정봉석(鄭鳳錫)이가, 이즈음 예수를 믿기 시작했다는 말이 돌아다니리만큼 개화사상에 흥미를 갖는 이므로, 이 고장서는 하나밖에 없는, 서울 출입 자주 하는 처남으로 손우수를 작정한 것이다. 신식으로다 내뻗치자면, 최관술이 당할 놈이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둘이 다 한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참봉은 머리맡에서 살쩍을 내어, 머리카락을 몇 번 상투 있는 쪽으로 치쓸어 올리고, 안방에서도 들릴 만큼 한 번 목을 돋우어 침을 뱉었다. 하기는 이 기침 소리는 자고 깨나면 이즈음 유난히 목이 걸걸해지는, 가래를 돋우느라고 하는 것만이 아니라, 비복이나 마누라에게 자기가 기침을 하였노라고 알리는 신호로도 되었다. 자리끼 물을 북 끌어다가 양치를 울걱울걱 하고, 옷 괴춤을 허리띠로 가눈 뒤에 담뱃대를 끌어 나무재떨이에 떵떵 울렸다.
관술이는 윗목에 깔았던 요 속에서 닁큼 일어나서, 조끼 주머니를 만지더니 담뱃갑을 꺼낸다.
“히로가 마츰 두 대 남았으니, 형님 이거 한 가치 피워 보소.”
하고 한 가치는 제가 물고 또 한 가치를 내대면서, 이편 한 손으론 담뱃갑을 비비어 내버린다.
“응, 히로.”
하고 입 속에서 중얼거리더니, 담뱃대에 담으려던 잎담배를 놓고, 관술이가 주는 궐련을 받아 든다. 입술 가운데에 오므라뜨려 물고 주머니에서 부싯돌을 꺼내서 불티가 튀게 마주치고 있는데,
“아니 이 닢성내를 쓰지, 거, 머 시끄럽게.”
하면서 선반 위에 올려놓은 긴 대팻밥을 하나 꺼낸다. 대팻밥 끝에는 노란 인(燐)이 유황색으로 반짝반짝한다.
“다 됐쉐. 괜한 돈을 색여, 이게믄 심심치두 않구 좋은걸.”
손끝으로, 불붙어 오르는 불깃을 꼬집어 들고 궐련 끝에 갖다 댄다. 서너 모금 뻐금뻐금 빠니 불은 담배에 옮아 붙는다. 관술이는 슬며시 잎성냥을 다시 바나나 뭉치처럼 묶어 놓은 속에 꽂고, 박참봉에게서 담뱃불을 빌려 온다.
“이놈 좀 독했으믄 좋겠데, 원 김빠진 술맛 같애서.”
“깡초만 잡숫던 이야 뽕닢 말리어 피우는 맛일걸요.”
안방에서 마누라가 나오더니,
“구훈장 아직 안 왔지요.”
하고 물으며 자리를 가만가만히 개어 놓는다.
“내 자리는 내 개리다. 두어 두소, 뉘님.”
하는 것을,
“두어 두게. 내 개게.”
하면서,
“누구 사람 보낼까요?”
하고 재처 묻는다.
“두어 두소. 어젯밤 사람 보냈으니, 안 오리. 머, 그리 바쁘게 하구 어데 한 백 리 길을 갈랴우. 한 고을 안인걸. 어서 최주사 세숫물이나 떠다 올리우다.”
안으로 난 외짝문을 열고 마누라는,
“세숫물 사랑에 떠라.”
하고 소리를 지른다. 문을 열어 잡은 채,
“어떻게, 조반 전에 해장들 하실라우.”
하면서 영감과 제 오라비를 번갈아 본다.
“누님 고만두슈. 오늘 남의 집이 가면서 새벽부터 취하겠소.”
하고 관술이가 말하는데, 참봉은 못 들은 척하고 나직이,
“구훈장이나 오거든.”
할 뿐이다. 마침 구훈장이 마루 위에서 기침을 두어 번 한다.
“들어오우. 지금 안 온다구 사람 보내려든 참이오.”
흰 두루마기에 갓을 단정히 쓰고 두 손을 맞비비면서, 오십 줄에나 든 구훈장이 들어서니, 최관술이 약간 궁둥이를 들었다 놓고, 주인 마누라는 살며시 뒷문으로 나간다.
“아직 새벽엔 춥습니다.”
바른손으로 수염을 한번 싹 내려 쓸더니,
“얼음 풀린 데가 얼마 됐다구 춥지 않겠수.”
하는 주인의 말에 또 한번 손을 마주 비비며 세웠던 다리를 주저앉힌다.
세숫물이 나오고 이어서 술상이 들어왔다. 그러나 모두들 가볍지 않은 책임을 앞에 둔 만큼 석 잔 이상은 하지 않았다. 곧 술상을 물리고 조반상을 받았다.
아침을 먹고 나선 구훈장을 데리고 안방 윗간으로 들어갔다. 이 방에서 형선이가 땋아 늘였던 머리를 올려 틀고, 옷을 바꾸어 입고 사모관대를 하게 마련이다.
문을 열어 보니 방안이 텅 비었다.
“형선이 건너오구, 또 대야에 물이랑, 얼깃이랑, 모두 준비해 오나라.”
이렇게 부엌과 맞은 방 쪽을 향하여 분부를 내리고,
“자 구훈장 들어앉으소. 최주사두. 난 밖에 나가 마바리꾼이랑, 권매상꾼이랑, 모두 조반들 먹었나, 좀 돌아보구 올 게니.”
참봉은 담뱃대 쥔 손으로 뒷짐을 지고 중대문을 지나 마당으로 휭하니 나간다. 허리끈에 찬 주머니와 담배쌈지와 돋보기가 움직일 때마다 일시에 출렁출렁 그네를 뛴다.
산산이 풀어 헤친 머리를 한편 목에 늘어뜨리고, 형준이와 함께 형선이가 토방으로 나서서 이편 마루로 옮아 선다. 형준이는 벙글벙글 웃는데, 형선이는 윗눈시울을 내리깔고 얼굴이 불그레해서 부끄러워한다.
“어째 머릴 안 깎구 그러는가 했더니, 장가갈 때 상투 한 번 틀어서 색시한테 뵐랴구 그랬구나.”
하면서 저이 외삼촌인 최관술이가 바라보며 웃으니, 신랑 될 사람은 아무 말도 안 하고 씽긋이 웃기만 한다.
“왜, 좋으냐.”
하고 껄껄 웃다가, 문지방으로 들어갈 때 펑퍼짐한 웃지개를 보고는,
“아, 저 녀석, 저 어깨통 보게. 옛적으로 치자면 아들 삼형제는 밑졌다.”
사실 열아홉 살이라면 대단히 늦은 장가다. 지금 머리를 밴밴히 깎고 히로를 붙여 물고, 서울 출입만 하는 최관술이 자신이, 열네 살에 장가를 들었는데, 그때에는 이것도 늦은 장가라고 아들 둘을 밑졌다고들 야단이었다.
“너이 색시가, 열아홉 되두룩 장가두 못 간 게 대체 어찌 된 병신인가 하구, 지금쯤은 조마조마해서 아침두 못 먹었을라.”
하고 또 한번 제쳐서 놀려 대니, 건넌방에서 주인 마누라가 신부 댁에서 어저께 살쌍과 함께 가져온 신대의 옷을 들고 건너오면서,
“색시두 열아홉인걸, 이즈음 개화한 사람들이라 그래야 된답데.”
하며 말참견을 한다. 문 밖까지 와서 마루에 아직도 그대로 서 있는 저희 오라비에게 옷보를 주며,
“아니 들어가지 왜 이러구 섰누.”
한다. 관술이는 그제야 옷 보퉁이를 받아 들고 방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굳이 닫았다.
밑으로 땋아 내렸던 머리카락을 잡아 올려다 바짝 죄서 상투를 틀고, 농이로 바드득바드득 죄니 머리 밑이 아픈지, 형선이는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 꿇어앉아 있다.
“아프냐? 고것쯤이야 뭘, 남의 체니를 잡앗또리 할래문, 그만 아픔은 참으야지, 고, 좀, 밧싹 더 잡어댕겨 주우.”
“외삼촌은 괘니 그럽네다레.”
하고 형선이는 처음으로 입을 연다.
“어째서 언짢으냐. 네 형보구 물어 보름. 내 말이 괜한 말인가. 그런데, 너 참 색시를 한번 본 적이나 있니?”
이 말에는 형준이가 웃으면서,
“아마 본 적이 있게 혼삿말이 난다니 좋와서 하루 종일 밥두 안 먹었지.”
하니, 형선이는,
“내가 왜 밥을 안 먹어, 여느 때보다 한 그릇이나 더 먹은걸. 뭐이 슬퍼서 밥을 안 먹어.”
하고 흥 하니 코웃음을 친다.
“옳다. 그 말이 잘한 말이다. 늦장가들면서 기쁘믄 기뻤지, 슬퍼서 밥 안 먹을 일이야 없을 거라.”
이러는 새에 상투는 다 틀어 올렸다. 상투 끝에 새빨간 산호를 꽂고 나서는,
“인젠 세수를 하시게.”
하고 구훈장이 다시 한번 낯을 숙이어 형선이의 새로 단장한 얼굴을 엿본다.
머리채가 드리어서, 해에 그을리지 않은 곳이 유난히 희었다. 뒷데 석이 허청하여 솜털만이 보르르하고, 덜미가 형선이 자신에게도 한결 가뿐하다. 온순한 얼굴이, 덤부룩하던 머리카락을 다듬어 올리니, 갸름하여 더욱 이쁘장스럽다. 코밑에 수염으로 될락말락한 솜털이 아직 애숭이답게 보수수하다. 그러나 웃통을 벗어붙이고 꺼꿉 서서 세수를 하는 걸 보니, 팔과 어깨와 가슴이 어른 부럽지 않게 두드럭두드럭하다.
‘저 팔과, 저 가슴과, 저 어깨로…….’
이렇게 등뒤에서 멍하니 아우의 모양을 내려다보던 형준이는, 제가 장가들던 날을 생각하면서 속으로 빙그레 웃었다. 이제 다시 올 수 없는 시절이나, 지금 생각하여도 가슴이 울렁거리는 감격의 날이었다. 형선이 혼사가 대략 작정되었을 때 색시 선을 본다고, 어머니와 두뭇골 서모와, 그리고 형준이의 처가 셋이서, 정봉석이네 집을 찾아갔던 일이 있다. 이제 혼사는 절반 이상 된 혼사요, 이것은 일종의 형식에 지나지 않지만 다녀온 뒤엔 모두 색시 인물이 깨끗한 것을 칭찬하였다. 밤에 형준이가 아내더러 물으니, 얼굴은 반달처럼 실한데, 눈이 갸름하고, 콧날이 오뚝하고도 끝이 뾰죽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자그마한 입술이 귀엽더라고 한다. 뒷자태가 바르고, 땋아 늘어뜨린 머리채가 궁둥이 밑에까지 치렁치렁하더라고. 그래 은근히,
“자네 체니적보담두 곱던가.”
하고 물었더니,
“별말씸을 다.”
하면서 옆구리를 약간 찌르는 듯하고,
“나 같은 촌 체니가 머.”
하면서 씩 웃는다.
“난 그래두 자네가 제일 고운데.”
하고 또 한번 빈정대었더니, 진정 노하기나 한 듯이,
“아이가 둘씩 되는 늙은 할밀 두구…….”
하면서 나직이 한숨까지를 짓는다. 지금 겨우 스물셋에 이렇게 낙심을 하는가. 그래서 두득두득 잔등을 두들겨 주었다. 그러나 그의 육체에서 전날과 같은 땐땐한 굳은 탄력이 없어진 것만은, 형준이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튿날 형선이놈이 학교에 갔다가 오는 걸 붙들고서, 연자간 뒤로 갖다 세우고,
“너 형선이, 호박이 넝쿨째 떨어졌다.”
하니, 무슨 영문인 줄은 모르고,
“왜, 내가 무슨 삼십육계를 했소.”
한다.
“엑키, 삼십육계에만 호박이 떨어지냐. 그보담두, 이건 참 진짜루다 횡재한 셈이다. 아니, 네 혼삿말 난 정좌수 딸이 양귀비 찜쪄 먹게 곱드라는구나.”
하고 어깨를 툭 내려쳤다. 아우는 와락 형의 팔을 자기 어깨로부터 뿌리치고 힝하니 달아나며,
“괜한 소리.”
하였지만 그의 입은 터진 팥자루처럼 벌어져 있었다.
이렇게 한갓 되지 않은 생각을, 형준이가 두루두루 하고 있는 동안, 형선이는 소금으로 양추질을 하고, 더운 물에다 낯을 씻었다. 그리고는 옷보퉁이를 끌러서 흰 명주바지에 옥색 저고리를 입고, 그 위에 도리불수 조끼를 입은 뒤에, 삼성 버선을 한편으로 몰아쳐 신고 나서 옥색 대님을 질끈 졸라매었다. 훌쩍 일어나서, 장날 화장수한테 갓 사다 매었던 실로 땋은 허리끈을 뱀 사리듯 내동댕이치고, 전반처럼 넓게 접어 온 새 끈으로 바지 괴춤을 느즉하니 잡아맨다. 새총 바지가 된 무종아리를, 잡아 내려서 옹구뿔 바지통을 만들고, 덤덤히 자기 옷 입는 품을 바라보고 섰는 세 사람의 눈이 부끄러워, 슬그머니 돌아서서 두루마기를 쳐들어 올렸다. 그래도 웃음이 자꾸 나와서 참기가 거북하다. 괜한 실없는 웃음이 이렇게 실뚱한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지, 자기로서도 제 마음을 알 길이 없다.
두루마기를 입고 난 뒤에, 다시 단령을 입고 사모를 쓰고 각띠를 띠었다. 이제는 사선을 들고 말안장 위에 올라앉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곧 출발을 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성복을 하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뵌 뒤에, 다시 두루마기까지를 벗고 나서 그는 비로소 여태껏 굶었던 빈 뱃속에 아침밥을 넣었다. 그러나 밥도 잘 안 먹혔다.
십이봉 밑을 꽉 얼어붙었던 두터운 땅덩지 같은 얼음이, 시루떡처럼 구멍이 숭숭 뚫어져서 그것이 노전떼만큼씩이나 크게 틈이 갈라지더니, 연사흘을 두고 쉬일 새 없이 너부주룩하니 흘러내렸다. 이것이 맑히 흘러내린 뒤엔, 물이 유난히 탁해지고, 수위가 눈에 띄게 부풀어 오른다. 다시 물이 맑아지고 수위도 제대로 가라앉을 무렵이면, 십이봉 양지바른 곳엔 산들산들 바람이 불고, 나뭇가지마다 물이 올라서 목화씨같이 엄눈에 살이 오른다. 아침 저녁은 추우나, 대낮에 해가 쨍쨍 내리쬘 때엔 포근하게 따스하다. 긴 하루 해가 지리하게 졸림을 부르는 시절이다. 바로 오늘이 그런 날씨다.
얼마 아니해서 오정이 되리라는 때에, 형선이는 많은 사람이 둘러선 가운데서 받들어 주는 사람도 없이 말안장 위에 닁큼 올라앉았다.
박참봉네 행길 건넛집은 이칠성(李七星)이네 집이고, 윗집은 나카니시 상점이고, 아랫집은 조그만 사탕장수라고, 깨엿도 놓고 호두엿도 놓았는데 진소위 사탕이라 명칭이 붙는 것으론 채다리과자와 얼음과자가 작은 나무통에 들어 있는, 김용구네 집이다. 사나이라고 생긴 건 아이까지 나서고, 늙은 여편네들도 부엌 챙 바자 앞에 나섰다. 바자 틈으로 힐끗힐끗 흰 그림자가 보이는 것은, 행길가에 나설 수 없는 젊은 아낙네와 나이 찬 처녀들이 숨어서 행길 쪽을 엿보는 탓이다. 나카니시네 집에서는 본시 나카니시가 혼자 홀아비생활을 하고 있으니, 다른 누구가 나설 이도 없다. 처음에 체부(遞夫)를 다니면서 처음 이곳에 온, 이 나카니시는, 그 뒤에 진위대(鎭衛隊)가 없어지면서 수비대가 얼마간 주둔해 있을 때에, 용달을 맡아서 일 년 안짝에 적지 않은 이를 보아 지금은 제법 큼직한 잡화상이 되었다.
아래 윗거리에서도, 부잣집이고 행세하는 집들간의 혼삿날이니만큼, 많은 사람들이 쓸어 모이었다. 이 집과 친히 내왕하는 사람은 박참봉 옆에 서 있고, 거래가 그리 많지 않은 사람은 저희끼리 두세 사람씩 패를 지어 수군거리며 말 있는 행길 가운데를 구경하고 있다.
신랑이 타고 있는 둘째 번 흰 말이나, 후행이 탈 갈색으로 팡파짐하니 다부지게 생긴 노새나, 안부(雁夫)가 탄 맨 앞에 자그마한 당나귀나, 모두 박참봉 제 집에서 친히 기르는 짐승들이다. 흰 말과 당나귀는 먼 길을 갈 때나, 추수할 때 타작하러 가느라고 가끔 타고, 노새는 연자질을 시키느라고 손수 먹여 기른다. 길 가운데 서서 수많은 눈이 저희들을 보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발굽을 울리며 커다란 눈을 꺼벅거리고 탈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마바리꾼에게 줄 것으로 흰 무명 세 필을 한 끝씩 풀어서, 안장과 짐승의 코숭이와 꼬리 있는 데까지 희게 줄을 늘인 것이, 풍족해 보여 볼품이 좋았다. 말꾼들은 말초리가 끝에 붙은 채찍을 등골에 꽂고, 말꼽지를 단단히 밭게 붙들고서, 그 중의 한 사람은 말의 머리를 가만가만히 쓸어 주고 서 있다. 기러기를 안은 구훈장이 탄 당나귀 앞에 저만치 앞서, 권마성꾼 둘이 서서 박참봉 쪽을 눈이 찌그뚱해서 바라보고 있다. 이들의 고함 소리가 청 높은 염불처럼 거리를 뒤흔들 때엔, 말방울이 울고, 말꾼의 채찍이 보기 좋게 말 궁둥이를 후려갈기는 때이다.
모든 준비가 되었는데 박참봉과 후행 갈 최관술이가 대문 안에서 무슨 일인가 수군거리고 있다.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그쪽으로 쏠려 있다. 말탄 채 벌써 적지 않은 동안을 기다리고 서 있는 구훈장과 신랑도, 궁금해선지, 하나는 기러기를 안고, 또 하나는 뻔히 사선을 든 채 그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야기는 최관술이가 쓰고 있는 국자보시를 벗고, 갓을 대신으로 쓰라는 교섭이다. 그러나 최관술이는 좀처럼 박참봉의 말을 듣지 않는다.
지금까지 이 고을서 쓰는 개화된 신식 모자는 두 가지밖에 없었다. 학도들이 쓰는 삽포―다시 말하면 학생모자가 그의 하나요, 학도 아닌 사람이 쓰는 국자보시가 다른 또 하나다. 국자보시라는 건 헌팅 비슷한 건데, 이곳서는 그것을 도리우치라고도 안 하고 국자보시라 한다. 물론 그것을 쓰는 사람도 별로 없다. 최관술이가 금테로 만든 개화경을 코허리에 걸고 검정 명주두루마기에 발목덜미까지 높이 엮어 올린 구두를 신고, 반반히 깎은 머리 위에 뎅그렁하니 올려놓은 것이, 이 국자보시란 게다. 그는 다시 울퉁불퉁한 황양목을 껍질을 벗겨서, 옹지 있는 곳을 약간 불로 태워 그것을 개화장이라 짚고 다닌다.
다른 것 다 말고, 저 덥부룩하니 깎은 머리 위에 홀랑하니 방정맞게 올라앉은 꼭지 있는 바리깨 같은, 국자보신가 젓가락보신가 한 것만 벗어 버리고, 그 대신 구훈장처럼 점잖은 감투와 갓만 써준다면, 그까짓 코허리가 시근시근한 개화경이니, 개백정들이나 들고 다닐 개화장이니 한 것 같은 건, 그런대로 모른 척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 박참봉은 이왕 신식 사람을 보내는 바엔, 그가 어떠한 모양을 하건 눈감아 두려 했었는데, 정작 말이 나서고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서 처남이 하고 있는 품을 바라보니, 아무래도 마음 한모퉁이가 께름하고 믿음성이 가지 않아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당자가 우겨 대는 판국이니, 지금 이 자리에서 아웅다웅 다투고 있을 수도 없는 형편이다. 소견대로 하라고 내맡기니, 최관술이는 자개 수염을 한번 비비고, 성큼성큼 개화장을 둘러 가며 노새 있는 쪽으로 걸어간다. 말을 타고 개화장을 두를 수도 없는 터이라, 말 옆에 우뚝 서서 몽둥이를 휭휭 객쩍게 둘러본 뒤에, 그놈을 난뜨럭 말안장 앞에다 가로 찔러 끼운다. 휙하니 말 위에 올라타더니 한번 개화경을 햇빛에 번쩍하니 빛내이고,
“자, 가자구.”
하면서 발뒤꿈치로 노새 배통머리를 가만히 두어 번 찌른다.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잔뜩 대기하고 있던 권마성꾼이,
“아― 아으아―”
하고 앞에서 목청을 돋워 세워서 소래기를 지른다. 당나귀가 아장거리고, 신랑 탄 흰 말이 꼬리를 두어 번 치다가 떼꾹떼꾹 걸어간다. 새서방은 사선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앞에 우쭐거리는 먼 앞길을 황홀하게 비치어 본다. 손우수가 탄 노새도 냉금냉금 발굽을 두어 번 구르듯 하더니, 방정맞게 외해행 소리를 치며 앞말을 따라간다. 말이 강선루를 바라보며 앞으로 움직이는 대로, 권마성과 말방울 소리에 맞추어 구훈장의 갓과 신랑의 사모와 손우수의 국자보시가 후물후물 춤추듯 한다.
강선루 앞에서 망을 보던 아이놈이, 먼 데서 권마성 소리가 나고, 말과 사람이 움직이는 것을 보더니, 풀맷돌처럼 날쌔게 달음질을 쳐서 정좌수네를 향하여 뛰어간다. 눈앞에 정좌수네 집 대문이 보이고 그 앞에 많은 사람이 아물거리는 걸 보고는 바른팔을 내두르며,
“샛시방 온다. 구릉다리께 지냈다.”
하고 아직 구룡교에 다다를 겨를도 못 된 것을 보탬을 해서 지저귀어 댄다. 이 아이놈의 소리를 받아 가지고, 대문 밖에서 어정대며 잔심부름을 하던 축들이, 두서넛 안마당으로 뛰어들어가며,
“샛시방 구릉다리께 지낸 지 오래다니, 어서 상 준비하우.”
하고 소래기를 지른다. 이 말은 순식간에 마당과, 후간과, 청간과, 부엌과, 움 안에까지 퍼져 나갔다.
과방간에서 큰상을 고이 든 과방꾼들이 약과 과줄을 산같이 괴어 놓은 목구를 옮겨 주고 옮겨 받으며,
“빨리빨리 합세다. 샛시방 문 밖에 왔답네다.”
하고 수선을 피운다. 신랑이 들어앉아 큰상을 받을 안방 웃간에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호랑요를 깔던 이 집 막서린가 누군가는 뒤꼍에 펼쳐 놓은 산수 병풍을 바라보면서 툇마루로 뒷걸음을 치다가, 엉겁결에 실족을 하여 뜰 가운데 비스듬하니 나가떨어져 뒹굴었다. 남이 아프거나 말거나, 모두 와― 하고 웃는 가운데서, 넘어졌던 자는 궁둥이를 턱턱 털며, 소리난 것 봐선 별로 다친 곳도 없는지 제풀에 벌씬 웃고 돌아서는데, 사랑 뒷문을 열고, 떠들어 대는 안마당에 눈을 돌렸던 정좌수가 일의 사연을 알고 별반 상처난 것도 없는 것을 안즉,
“덤베지들 말구 조심조심히 해라.”
하고 나직이 기별을 하고는 문을 도로 닫는다. 부엌에서도 이것을 내다보고, 국숫물을 끓이던 용네 어미가, 뒤뜰 안 움 잔등에서 떡에 참기름을 바르고 있던 주인 마누라에게 달려가서,
“마루에서 떨어져서 누가 다리를 상한가 봐요. 지금 막 밖에까지 샛시방이 왔다는데. 다리를 삐었는지 부러뜨렸는지 일어나질 못하고 쩔름거립네다.”
누가 상하였다는 바람에 주인 마누라가 떡함지를 놓고 부엌으로 뛰어나와 안뜰을 내어다보니, 별로 그런 일이 일어난 것 같지도 않다. 모두 음식을 들고, 과방간으로 왔다갔다하는데, 어디 한 사람치고 몸에 상처를 입은 이가 있는 성싶지 않다.
“누가 업구 사랑엘 갔나.”
하고 용네 어미가 그 뒤의 일을 조사하러 뜰 안으로 나가려는 것을 원반 할 만두를 빚고 있던 부인네 하나가,
“상하긴 뭐이 상했다구 용네 엄매는 저러구 댕기나.”
하는 바람에, 두룩두룩 여러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는데 벌써 주인 마누라는 용네 어미의 허풍선인 것을 알아차리고 그대로 떡함지 있는 움 잔등으로 간다.
사랑에서는 신랑 일행이 오기를 대기하고 있는, 인접과 손대들이 모두 의관을 갖추고 부슬부슬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권마성 소리가 안 들리니 아직 강선루 앞에두 안 온가 부다. 너머일즉 나가 뭘 하간.”
하고 정좌수는 여러 젊은이들에게 말하였으나, 자기 자신도 일어나서 갓을 쓰고 흰 두루마기를 입었다.
강선루의 옆 담장을 휙 돌아서니,
“아― 아으아―”
하는 권마성 소리가 유난히 높이 들려 오고 이어서 구훈장 탄 당나귀가 빼뚝빼뚝 나타난다. 신랑 탄 흰 말과 그 뒤로 최관술이의 국자보시가 보이면서, 올숭졸숭한 많은 아이들이 옆으로 뒤로 따라선 것이 보인다.
“기러기 안은 건 구훈장이구, 손우수는 갱고지 최주사로구만.”
하고 눈 밝은 젊은이들이 떠들어 대는 것을, 정좌수는 대문 아래 서서 먼발로 일행이 올라오는 쪽을 바라보고 있다.
새서방이 왔다는 바람에, 일하던 사람들까지 일손을 놓고 모두 대문 밖으로 몰려나왔다. 부인네들만이 안타까운 생각을 누르고서 부엌 안에서 허성대었다. 본시 바탕이 없는 여편네들만은 사나이 장정들 틈에 끼어, 시시덕거리며 말 위에 탄 신랑을 보고, 다시 노새를 탄 최주사의 모양을 웃었다. 이 고장서는 볼 수 없는 가죽구두를 신고 머리 위에도 뭔가 별스러운 걸 썼다. 미상불 이들에게는 생각도 못 했던 일이므로, 놀랍고도 우습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럿이 부축해서 신랑을 말께서 내려 세우니, 파란 명주두루마기를 입은 젊은 인접이 두 사람, 그를 안내해 대문 안으로 데리고 가고, 안부와 후행은 손대가 나서서 사랑으로 인도한다.
“최주사, 수구러히 오셨습네다.”
하고 인사를 하니, 어느 새에 빼어 들었는지, 개화장을 두르며 걸어오던 최관술이는, 바른손으로 국자보시를 벗어 들고,
“천만에 말씀이올세다. 퍽이나 바쁘시겠습네다.”
하고 전부터 안면이 있는 정좌수에게 마주 인사를 한다.
“춘부장께서도 안녕하시겠습지요.”
하고 다시 한번 정좌수가 인사말을 하니,
“덕분에 건강하올세다.”
하고 대답한다. 그들은 사랑으로 들어갔다. 엮어 올린 구두끈을 끄르느라고, 한참이나 마루에 꺼끕 서서 어물거리는 최관술이를, 행길에 서서 바라보고 있던 어린 아이놈들은 구두 속에서 나오는 것이 흰 버선이 아니고 까마툭툭한 양말인 데 또 한번 놀라,
“야 저게 구두 버선이다. 가죽으루다 맹그른 겐데, 아마 백 냥 남아 한대.”
하고 한 아이가 아는 듯이 설명을 한다. 나카니시 상점에서도 구두 버선은 파는 것이 없었다. 한 켤레밖에 없는 구두 버선은, 가죽으로 만들기는 샘스러, 발뒤꿈치가 나간 것을 삼성 조박지로다 잡아 옭아 매었다. 그러나 최관술이는 의기양양해서 개화장을 마루에 세워 놓고, 개화경을 번쩍이면서 방안으로 들어간다.
안방 윗간에서는 지금 막 큰상을 들인다. 가운데 앉은 신랑의 상이 들어가고 양쪽에 앉은 두 사람 인접의 상이 들어간다. 절편, 증편, 이차떡, 조차떡, 설기떡으로 높직하니 다섯 목구가 높은 축대처럼 올라 앉았는데 흰 과실, 붉은 과실이 한 목구씩, 약과가 첨성대처럼 한 목구, 이 밖에 깨다식, 콩다식, 지짐, 산적, 행적, 파적, 사과, 배, 날밤, 대추 빠진 거 없이 듬뿍이 쌓아 올렸다. 그 위에는 오색이 영롱한 갈꽃이 한 떨기씩 꽂히어 있다. 세 개의 상이 가지런히 놓인 앞으로, 국수 그릇과 술잔과 은수저가 놓인 작은 상이 곁따라 놓였다.
구훈장네 서당에서 지난 밤새도록 구훈장더러 단자를 베껴 가지고 온 어린 총각아이들이, 마루에 한 뭉치 모여 앉아서 단자 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 ‘입월복기삼(立月卜己三)’이니, ‘좌칠우칠횡산도출(左七右七橫山倒出)’이니 뭐니 하고 여남은 장 써가지고 그 중의 한 장을 인접을 통해서 들이니, 신랑의 학식을 시험하느라 사람은 백차일 치듯 마루와 뜰 안에 둘러섰다.
부엌 안에서 작은사위의 얼굴을 엿보지도 못하고 서 있는데, 큰딸이 쪼루루 사람들 등뒤에서 신랑의 얼굴을 보고 와서,
“얌전한 게 새서방이 곱게 생겠소다.”
하는 바람에 주인 마누라는 벌써 오무라지기 시작한 볼편과 입 가상으로 해족하니 웃음을 짓는다. 용네 어미가 또 손을 내두르면서 뛰어 들어오며, 큰딸이 있는 것도 모르곤지,
“큰사위 둘 가지구두 못 당하겠쇠다. 아니 이게 남중절색이 아니외까. 오마니두 참 잘 맞었단 말요. 엥이 나두 고런 새서방이나 한번 얻어 봤으믄.”
하고 객쩍게 웃어 보다가, 옆에 입을 딱 다물고 섰던 이 집 큰딸을 발견한즉,
“어머니는 딸두 잘 나섰거니와 사위두 잘 맞으신단 말이에요. 아니 어쩌면 큰사위가 그렇게 인물이 절색인데 또 작은사위마저 저렇게 곱답네까.”
하고 다시 마당으로 뛰어나간다.
인접에게서 단자가 온 것을 힐끗 보더니 들려 주는 붓은 받지도 않고, 형선이는, 옆에 있는 인접에게,
“그대루 물레 주우.”
하고 나직이 말한다. 모든 사람은 적지 않이 실망하였다. 서당 공부도 상당히 했고, 벌써 몇 년째 기독학교니 동명학교니를 다니는 학도니 만큼, 십여 장의 단자 같은 건 훌훌 써 내갈길 줄 알았던 그들은, 아예 들이댈 척도 안 하는 신랑의 태도에 실망을 느낀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상을 안 주겠다면커니와, 딴말 없이 물리라는 데는 다시 두말이 있을 수 없다. 인접이 대신하여 커다랗게 ‘퇴(退)’자를 써서 내갈기니, 이 소리를 부엌에서 들은 신랑의 장모는,
“단자상은 따루 채려 올릴 게니, 큰상은 그대루 둬두소.”
하고 밖을 향하여 소리를 질렀다.
“큰상은 웃어룬들이 계시다니 보내 올려야 하겠소다.”
하고 다시 뇌우친다.
큰상을 놓아 둔 채 원반상이 들어왔다. 만둣국에 흰밥을 만 것이다. 인접이 권하는 대로 신랑은 술을 들어 원반을 몇 술 떠먹었다.
“만두 세 개는 먹어야 첫아들을 본다네.”
하고 어느 늙은 노파가 놀려 대니 모두들 와 하고 웃어 댄다. 그러나 형선이는 만두 한 개를 먹었을 따름이었다. 사랑에서는 주안이 한참 벌어져 있었다.
3
보부(寶富)는 사촌 오라비 되는 강선루 앞, 정영근(鄭永根)네 집에서 하룻밤을 잤다. 윗방에는 오라비 되는 정영근이가 큰아들을 데리고 자고, 아랫방에는 올케가 작은아들과 젖붙이 아이를 끼고 아랫목에서 잤다. 비록 사촌 오빠네 집이라도 이렇게 제 집을 나와서 딴 곳에서 자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정영근은 진위대에 장교로 다니다가, 그것이 없어진 뒤엔 학교에 체육교사로 있다. 새벽에 일어나면 일곱이 난 아들을 깨워 가지고, 비류강에 가서 낯을 닦고 강변으로 다니면서 나팔을 불었다. 그는 학도들에게 나팔도 배워 주었다.
이불 속에서 오무라져서 자던 잠이 헌뜻 깨니, 아랫방에서는 아직 모두 새벽잠에 취하여 있다. 먼저 천장을 보고, 바람벽에 걸린 것을 휘 둘러보고, 이것이 내 집이 아니라, 사촌 오라비네 집 아랫방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동시에 제가 어젯밤 올케와 함께 강선루 뒤, 자복사 골목을 지나서 물 옆길로 이곳까지 온 것을 연상한다. 처음 언뜻은 그가 어째서 이리로 와서 난생 처음 딴 집에서 밤을 새지 아니하면 안 되었는가를 생각지 못한다. 그러나 어젯밤 이곳까지 와서 아랫목에서 자라고 권하는 것을 기어코 윗목에다 자리를 잡던 것과, 불을 끄고 자리 속에 들어서 모두 숨소리를 높이고, 또는 코를 골면서 잠에 깊이 취하도록, 자기는 두 눈이 새록새록한 채 잠이 오지 않던 것과 구름 같은 생각과, 또 생각에 따르는 까닭 모를 가슴의 심한 동기와, 약간 잠이 들면 꿈이나 가위에 눌리어 이불만 뒤채던 모든 것을 두루두루 생각하고는, 비로소 훤하게 밝아 오는 오늘이 자기에게 있어 일생에 가장 큰 날이라는 것을 의식하는 것이었다. 오늘, 열아홉 살 맞는 처녀 정보부는, 여태껏 자랑으로 삼아 왔던 삼단 같은 긴 머리를 끌러서 틀어 올리고 연두 회장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입고, 생전 처음 보지도 못한 남의 집 총각과 더불어 앞으로 아득하게 벌어질 생활의 광야를 향하여 처음 그의 열쇠를 열어 젖히려는 것이다. 오늘 하룻밤 동안에 운명의 신이 가져다 주는 열쇠를 그가 두 손으로 꽉 바로잡는가 못 잡는가로써, 그의 일생의 행복은 결정이 된다. 그의 가슴이 두근거려 거의 덮은 이불을 울릴 듯하고, 그의 머리가 천근인 양 무거운 채 지척을 가눌 수 없는 건, 모두, 이 긴박하고 재릿재릿한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여, 당연히 가져야 할 순결한 육체와 정신의 피할 수 없는 자세인 것이었다. 호기심과 초조와 알지 못할 환희와, 감격과 흥분이 함께 뒤엉켜서 장마 때의 성난 비류강처럼, 마지막에는 묵직한, 공포의 한줄기 흐름이, 옥같이 맑고도 돌같이 딴딴한 그의 야무진 탄력 있는 육체를 스치고 흘러갔다.
그 사람은 어떠한 사람일런가. 이런 생각도 가끔 머리에 떠오르지 않음이 아니었다. 아버지 어머니나 웃어른들께서 오죽이나 자기를 위하여 잘 택하여 놓았으랴마는, 그럴수록 자꾸만 생각히는 것도 남편될 사람의 얼굴 모습과 몸가짐이었다. 안 생각하려고 해도, 그리고 이런 걸 생각하는 건 자식 된 도리로서나, 또는 이무 백 년을 같이 늙게 마련이 된 그이를 위하여서나, 그릇된 행위인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자기도 모르게 꿈결같이 사나이의 얼굴이 빙그레 웃으며 지나간다.
물론 이 젊은 총각의 얼굴이, 박참봉, 박성권의 둘째 아들, 박형선이의 틀림없는 얼굴인지는 알 길이 없고, 또 사진도 아니고, 초상화도 아니고, 머리에 떠올랐다가는 구름같이 사라지는 하나의 환영이매, 누구를 붙들고 물어볼 길도 없다.
언젠가 저녁녘에 행길로 난 부엌문 챙 바자 안에서 구정물을 내버리려는데, 영근이오빠와 또 한 총각이 나팔들을 끼고 위쪽으로 올라간다. 이화정이나 천주봉 앞으로 나팔 연습을 가는 모양이었다. 영근이오빠를 따라가는 총각은 검정 두루마기에 머리채는 땋아 늘인 채 사포를 썼는데, 콧날이 세고, 눈이 이글이글하고 웃을 때는 옥 같은 흰 이빨이 가지런히 나타났었다. 활개를 치면서 영근이에게 무슨 말을 하면서, 언뜻 보부가 있는 쪽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지나간다. 물론 잘게 수숫대로 엮은 바자 안에 있는 이가 젊은인지 늙은인지, 밖에서는 거의 여잔지 남자인지도 분간치 못하였을 것이되, 처녀의 마음은 무슨 죄 될 일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부엌 안으로 옹패기를 들고 뛰어들어왔다. 놀란 비둘기의 심장처럼, 그의 가슴은 발딱발딱 뛴다. 그는 부끄러워, 종에게 그대로 부엌일을 맡겨 버리고, 어머니가 있는 방으로 올라와 버렸다. 조금 지나더니, 위쪽 강가에서, 띠따띠따 하는 쌍나팔 소리가 산을 울리며 그의 귀에까지 들려 왔다.
어머니가 꿰매고 앉았는 삼성 버선에, 볼을 받느라고 무릎 앞에 다가앉아 보나, 유랑한 나팔 소리가 일으키는 심장의 고동은 머물려고 하지 않았다. 저 나팔 소리는 오빠의 것인가, 총각의 것인가. 아마 먼저 가르치듯이 거침없이 조자가 맞아떨어지는 것은 오빠의 것이리라, 그리고 좀 서투르게 이따금 동떨어진 큰 소리를 내는 것은 혈기가 가슴에 넘쳐 있는 총각의 것이리라. 다시 함께 어우러져서 쌍나팔이 맞은 산에 우렁차게 반향이 될 때엔, 어느 것이 뉘의 소린지 분간할 수가 없고, 이상스럽게 가슴만 두근거렸다. 가끔 나팔 소리는 멎고 조용해진다. 벌써 다 불었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장옷도 쓰지 않고 영근네 언니가 왔다. 그래서,
“오라바니는 이제 누군가하구 나팔 끼구 위쪽으로 가시드라.”
하고 넌지시 알려 대었더니,
“응, 박참봉네 작은아들하구 나팔 불레 가시는가부든.”
하고 올케도 천연히 대답한다. 그래 그 적에 본 키 크고, 눈이 으글으글하고, 웃으면 흰니가 새하얗게 내보이는 총각이, 박참봉네 작은아들인 것을 비로소 알았고 이따금 언뜻 그 얼굴이 그의 눈앞을 지나가곤 하였다. 그 뒤 얼마 지나서 박참봉네 둘째 아들과 보부의 혼담이, 정식으로 벌어지려 할 때, 밤 깊어 남들이 이무 잠들었을 때, 혼자 총각의 얼굴을 생각해 내려 했으나, 여태껏 무시로 나타나던 그 얼굴이, 머리에서만 아물거리고 도시 눈앞에 떠오르지를 않았다. 그는 이것이 무슨 조화의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른아른 나타날 듯 나타날 듯하다가도, 바람에 불려서 흩어지는 안개처럼 휙 산지사방으로 날아가 버리곤 한다. 귀신에 홀린 거나 같아, 밤새껏 안타까워한 적이 있었는데, 또 그 뒤엔 무슨 일을 할 때 같은 때, 생각도 안 하는데, 마름질하던 옷감이나, 아궁이에 이글이글하게 타오르는 불길 가운데, 그 얼굴이 뻔히 떠오르는 때도 가끔 있었다. 그는 자기와 혼사가 된 박참봉의 둘째 아들 박형선이는 그때의 총각인 줄 확신하였다. 연세로 따져 보아도 그러하고 학교의 학급으로 생각해 보아도 틀림없는 그 총각이었다. 그는 은근히 만족하였다.
그러므로 신랑이 장가오는 날은, 색시 될 처녀가 집에 있으면 안 된다고, 이렇게 하룻밤을 사촌 오빠 집에서 지내고, 아침―그에게 있어서는 다시 두 번 올 수 없는, 이 거룩한 아침을 이불 속에서 맞이하면서, 적지않이 흥분과 감격을 맛보아 가며 그의 눈앞에 문득 그려 보곤 하는 사나이도 또한 나팔을 끼고 사촌 오빠와 웃으며 지나가던 억세게 생긴 그 총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도 어느 결엔가 박참봉은 연세가 같은 아들을, 하나는 큰댁의 소생으로, 또 하나는 작은댁의 소생으로, 갖고 있다는 소리는 들은 법도 하건만, 이 경우에, 그때에 본 총각이 혹은 작은댁 몸에서 난 서자는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을 가져 볼 여유는 없었고, 통히 그런 것을 기억조차 하고 있지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분지로 얼굴을 단장하고, 녹의홍상에 칠보 족두리를 한 뒤에 신랑 방에 들어가서 내리깐 곁눈으로 흘낏 새서방의 얼굴을 볼 때까지, 이런 환영을 품은 채로 있었다면, 그는 졸지에 사람이 바뀐 거나처럼 놀라서, 기절을 하였을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운명은 그에게 끝까지 짓궂지는 않았다. 졸지에 환영을 갈기갈기 부숴 버려서, 처녀의 가슴을 대번에 몽땅 구렁텅이로 차 던져 버리지는 않고, 먼저 그에게 자그마한 암시를 보내서 처녀의 굳은 가슴속을 헝클어 놓았다.
정오가 가까워서 신랑의 일행이 권마성 소리와 말방울 소리를 울리면서, 영근네 집 앞을 지나갈 때까지도, 보부는 영창에 구멍을 뚫고 잠깐 남몰래 행길 쪽을 내다보기는 하였으나, 아무것도 그곳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지는 못하였었다. 방안에 아무도 없는 것에 용기를 얻어 떨리는 손으로 그 짓을 하기는 했으나, 강아지가 떨렁거리는 소리를 사람의 발소린 줄 알고 엉겁결에 아랫목에 와서 두 손으로 머리를 괴고 앉아 버렸고, 그 짧은 순간 손가락으로 뚫은 작은 구멍으로 한 눈깔을 감고 내다본 것은, 벌써 담장 옆을 올라가는 신랑의 잔등뿐이었고, 무어 이상한 거, 가끔 영근이 오빠도 쓰는 국자보신가를 쓰고 개화경을 낀 삼십 줄 난 자개 수염만 옆얼굴로 보았을 뿐이었다. 그러니 신랑의 얼굴 같은 건 통히 새롭게 문제가 될 이유조차 없었다. 그러던 것이 그만 늙은 종이 점심인가를 가져오느라고, 대낮이 훨씬 기울어서 부엌문으로 들어와 펼쳐 놓은 일장 보고가, 의문을 던져 주는 계기가 되어 버렸다.
“아니 참 샛시방두 곱기는 한걸. 키는 자그마한 이가, 얼굴이 갤숨하구, 눈이 또 자그마하니, 생글생글한 게, 퍽 정지가 있고 상냥하실 게라구 말씀이 많습데다. 거저 복받으시는 집안덜은, 사위를 맞어두, 고렇게 얌전한 이만 쏙쏙 뽑아다가 삼으신단 말이에요. 자, 어서 마음놓구 원반이나 좀 잡수아 보시굴랑, 인제 아마 누가 초벌 단장시키러 오실 게구만요.”
이런 말도 그대로 어리벙벙하니 지나쳐 버렸으면 좋을 것을, 무슨 혼으론지, 그만 정신이 별똥같이 말똥말똥해서 처음 몇 마디를 놓치지 않고 귀담아들어 버린 것이, 약이라면 약이요 탈이라면 탈이었다.
키는 자그마하고, 얼굴이 갤숨하고, 눈이 또 자그마하니 생글생글 하다―이 늙은이의 하는 말을 몽땅 그대로 귀담아듣는 것도 안 될 말이지만 보부 자신이 생각하던 것과는 너무도 뒤틀리는 형용이었다. 아무리 늙은 눈이기로서니, 어금비금한 건 몰라도, 이렇게 정반대의 것을 보았을 리야 있을 텐가. 두어 술 떠먹고, 또다시 음식을 권하며 수선을 피우려 드는 것을, ‘어서 가서 우리 오라비를 보내라’고 부탁해서 노파는 쫓아 버렸다. 그를 보낸 뒤에 방안에 혼자 앉아서, 다시 제가 기억하고 있는 총각의 얼굴과, 늙은 종이 한 말을 대조해서 이리저리 되새겨 가며 생각해본다. 아무리 새기고 되새겨 보아도, 도무지 통하질 않는 말이었다. 고얀 년의 늙은 것이 나를 놀려먹느라고, 조작의 말을 가지고 씩둑거린 것이나 아닐까, 그래서 일부러 생김새와는 정반대의 형상을 그려서, 나를 깜박 속였든가, 밤에 신랑 방에서 어리둥절한 채 흠뻑 흠살을 맞히려던 거나 아닐까. 정녕 그럴 것이다. 그년의 늙은 것이 나를 골릴 양으로다 심술궂게…… 하고 픽 웃으려던 때에 문득 번개처럼 생각히는 것이 있다. 박참봉 성권이는 나이 비등비등한, 아니 동갑 연세의 아들을 둘을 두었다는 말, 그중의 하나는 큰댁의 소생이요, 또 하나는 작은댁의 소생이라던 말, 쌍둥이같이 자라나지만 불과 한 달의 차이라는 것, 그러고서 새겨 보니 아우가 형보다도 훨씬 크고 장대하다던 말까지 언젠가 귓등으로 들은 법하다. 아뿔싸, 자기는 어째서, 여태껏 이것을 까막하니 잊고 있었던가.
여태껏 머릿속으로 그려 보고, 눈앞에 나타내어 보고, 남몰래 가슴속에 품어 보던, 나팔 든 키 크고, 눈이 이글이글하고, 웃으면 가지런한 이빨이 새하얗게 내뵈는 총각은, 오늘 밤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하면서, 백 년 앞날의 생활의 첫 열쇠를 같이 더듬어 찾을 남편 될 사람이 아니었고 야속스럽게도 시동생이 될 사나이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로 시동생이 될 사나이, 그를 남편과 바꾸어서 남몰래 사모해 왔다는 것은, 이 어이 이렇도록이나 야속할까 보냐.
부끄럼이 일시에 솟구쳐 오른다. 이런 변도 세상에 있을 거냐. 사연이 확실히 드러나진 않았더라도, 보부가 사람을 바꾸어 생각했던 것만은 틀림없는 일이라 확신해 버리는 것이다. 아니, 확신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는 이 이상 더 이 자리에 머물러서, 저 억세게 생긴 나팔 든 총각을 눈앞에 그려 보며, 마음을 즐겁게, 또는 안타깝게 향락해 볼 수는 없었다. 그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원망스런 환영을 가루가 되도록 부숴 버리고, 그 가루를 다시 안개처럼 날려 없앨, 새로운 또 한 개의 환영을 급작히 붙들어 세워야만 한다. 여태껏 사나이다운 얼굴이라고 생각하던 총각의 얼굴은, 지금 이 시각부터 당장에, 징그럽고, 추잡하고, 망측하고, 해괴하고, 더러운 얼굴이라는 것을, 억지로라도 제 마음에 타일러야 한다. 눈에도 보여서는 아니 된다. 머리에 떠올라도 아니 된다. 마음속에 숨어들어서는 더욱 아니 된다. 웃거든 침을 뱉어야 하고 가까이 오거든 밀치고 윽박질러야 하고, 뭐라고 말이라도 건넬 듯이 입술을 벌름거리거든, 주먹을 부르쥐고 볼편을 후려치든가, 코와 입술 있는 데를 각재고 쥐어뜯고 해야만 한다.
그러나 대체 자기는 그 원망스러운 총각 대신에, 어떠한 새로운 환영을 그려 보아야 한단 말인가. 키가 작다고 한다. 아니 자그마하다 했으니 채 작다는 것과는 다르다. 눈도 자그마하다고 말했다. 얼굴은 개르스름하고―그러나 이런 것만으로는 도무지 사람의 형상을 그려 볼 재주가 없다. 밤까지 기다려야 할 것인가. 그러면 밤이 될 때까지 아직도 몇 시간을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백지상태를 유지해 갈 수가 있다는 말일까. 이왕에 아무 일도 없다면야, 앞으로 아무것도 생각지 않으며, 일 년도 이 년도 기다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마음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있던, 총각의 환영을 들어내기 위하여는, 그것에 대신할 새로운 것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귀신 당지기를 들어내려면은, 성경책과 예수가 필요하지 않았던가. 보부는 제 마음을 도무지 가눌 수가 없었다.
사실 그가 번개같이 이곳에 생각이 미쳤을 때, 귀밑과 얼굴에 솟구쳐 오른 것은, 부끄럼으로밖에는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여러 갈래 복잡한 생각이, 일시에 머릿속을 향하여 몰아쳐 쏟아지는 바람에, 가슴은 물차관처럼 설레이고 폭포처럼 쿵덩시어 한참은 정신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말하여 부끄럼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죄스러운 생각, 남편으로 작정된 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 아뿔싸 이 일을 어쩐단 말인가, 하는 마지막 판국에 항용 사람들이 가지는 일종의 낙심, 그리고 확실히 그 어디엔가, 여태껏 마음속에 그리고 있던 사나이를 놓쳐 버리는 데서 오는 가벼운 미련과, 거기에 따르는 실망에 가까운 심리, 다시 마지막으론 그 총각이 다른 사람 아닌 제 시동생 될 사람이라는 데서 오는 망측스런 생각, 이런 것이 뒤범벅을 개는 가운데를, 설령 아무도 알 리 없고, 또 누구 하나 본 이도, 엿들은 이도 없다손 치더라도, 그의 마음에 오랫동안 품고 지냈던 것이 사실이므로, 마치 몸을 간음 당한 때나처럼 줄기찬 자책과 회오가 등골을 스치고 지나가지 않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는 두 다리를 세운 가운데로 얼굴을 푹 파묻고 오랫동안 낯을 들지 못하였다. 두 눈과 코와 볼편을, 함께 쳐받치고 있는 손가락 사이로 어느 새엔가 눈물이 쭈르르 젖어 흐른다. 이 눈물이 어이 된 것인지, 무슨 영문으로 흘러내리는 것인지 그것은 보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얼마를 지나니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마음과 머리가 가뿐하다. 구름은 지나가고, 햇빛이 환하니 그의 가슴을 비추는 것 같다. 가장 중대하고 거룩한 시각을 앞둔, 처녀의 마지막 감상인 것처럼 눈물은 그의 마음에 있던 모든 협잡물을 맑히 씻어 가지고 깨끗하니 흘러가 버린 것 같다.
올케가 늙은이를 한 분 데리고 초벌 단장을 시키러 온 것은 마침 다행이었다.
‘이저는 쉬 저녁때는 됐으니, 어서어서 서둘러서 몸을 닦고 단장을 하자’는 게다. 목욕은 어젯밤 집에서 하고 왔으니, 지금 다시 할 필요도 없고 또 할 수도 없었다.
올케는 젖먹이를 아이에게 업히어 밖으로 내몰더니 부엌으로 가서 물을 끓여 왔다. 웃옷을 벗고 속적삼만 입으니, 가슴이 구릉처럼 부풀어서 앞이 잘 여미어지지 않는다. 꼭 집어 허리띠에 꽂아 놓으나, 꺼꿉 서면 흰 가슴이 팡파짐하니 엿보여서 부인네들끼리지만 부끄러웠다.
단장시켜 주는 늙은이는 옛날에 기생으로 있던 이다. 항용 불러 평양집 어머니라고 한다. 빗접고비와 분합과 분첩을 내놓고, 다시 쪽집게와 실꾸리를 꺼내어 대야 옆에 펼쳐 놓는다. 명주실을 가늘게 비벼서, 이것으로 얼굴에 아직도 보르르한 솜털을 밀어 버렸다. 배배 비벼서 상에다 대고, 쭉 밀면서 끌어 젖히면, 눈물이 폭폭 쏟아지게 때끔때끔하다. 다른 곳은 그런대로 참을 수 있겠는데, 이마의 관자놀이와 목덜미를 밀 때는, 땀이 바지바지 솟아나는 것이 노상이 참을 수가 없었다. 입을 다물고 다리에 힘을 주었다. 평양집의 손이 떨어질 때엔 저도 모르게 긴 한숨이 터져 나왔다.
“뻐근하웨니. 체니루 색시 되기가 엔간한 줄 암마.”
이렇게 늙은이는 비수까지 먹이며 암팍스럽게 털을 밀었다. 낯이 술 먹은 사람처럼 후끈후끈하다. 이것이 끝나면 쪽집게를 들고 눈썹과 이마를 지었다. 이것은 때끔때끔하여 누선(淚線)을 직접 건드리는지, 눈물과 콧물이 연해 흐르기는 하지만, 아까 것에 비하면 한결 덜 아팠다. 위선 이렇게 해놓고는 평양집은 가버렸다. 나머지 두벌 화장은 저녁을 먹고 집으로 가서 신랑 방에 들어가기 전에 마저 하자는 것이었다.
이러구러 긴 이른 봄날도 저물어 갔다. 비류강 위에는 산산한 찬바람이 움직이지 않는 물 위에서 잔잔한 물결을 희롱하고 있다. 움이 트일락말락한 나뭇가지들이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포르르하니 떨었다. 십이봉 화줏머리〔華柱峰〕위에 낫 같은 뾰족한 달이 파랗게 질려서 걸려 있다.
이제는 영락없는 밤이다. 자복사 골목을 올케와 함께 올라가서 살그머니 뒷문으로 들어가는데 개가 뿌르르 쫓아 나오며, 앞발을 들고 쿵쿵 냄새를 맡느라곤지 코끝을 박는다.
“이가이, 이가이.”
올케가 회청박이 신으로 개를 뿌리치며 가는 것을, 보부는 나직이,
“월아 월아.”
하며 손을 내두르며 따라갔다. 하루 종일 안 보았다고 개일망정 반가워하는 것이다. 오늘 집에서는 큰 잔치가 벌어졌었는데 보부, 너는 어디 갔다가 해가 지고 바람이 찰 때에 뒷문으로 찾아 들어오느냐고 짐승은 수상스레 생각하지는 않는가. 부엌으로 들어가니 모두들 큰방에 들어가고, 넓은 부엌엔 등잔불이 하나 부뚜막과, 찬장과, 돌상과, 토방 위에 지저분한 음식 그릇을, 간들간들 졸며 비추어 주고 있다.
부엌 이편 두 칸 방으로 보부는 올케를 따라 들어갔다. 그곳에는 어머니와 언니와 평양집이 있을 따름이다. 모두 그를 쳐다보며 해족하니, 벌심하니, 또는 바륵바륵하니 웃었으나, 보부는 이내 눈을 깔고 낯을 돌려 버렸다. 마음이 어딘가 설뚱하다. 발치 구석에는 단장하고 입을 옷과, 머리에 지니고, 옷고름에 찰 패물이, 혹은 보퉁이에 싼 채, 혹은 상자에 든 채 채근채근히 널려 있다.
다시 웃통을 벗어붙이고 목에서, 가슴에서, 겨드랑에서 얼굴에 이르기까지 한번 더운물로 씻어 내렸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단장이 시작되는 것이다.
얼굴에는 분을 뽀얗게 바르고, 볼편과 입술엔 약간 연지를 찍었다. 난생처음 바르는 분이건만, 본시 살결이 고운 보부의 얼굴은 분첩으로 두어 번 두들기기가 무섭게 혹은 코에 혹은 볼편에 혹은 양미간과 이마에, 얼룩이 안 가게 골고루 퍼져서, 물을 뿌려 놓은 흰 옥처럼 깨끗하고도 부드러웠다. 연지를 찍은 곳은 붉은 혈조가 떠오른 것처럼 귀엽다. 입술은 본래 앵두보다도 빨갛다. 눈썹은 실낱같이 있는 듯 만 듯하면서도, 정기차게 뻣뻣하니 여덟팔자를 그리며, 관자놀이께를 향하여 꼬리를 빼물고 뻗쳐 나갔다. 듬뿍한 숱진 머리칼은, 윤나고 향기 좋은 동백기름을 함뿍이 머금고, 까만 공단처럼 반뜩거린다. 이것을 성키성키 땋아서 뒤로 나지막하니 쪽을 짓고, 작은 비녀와 커다란 뚝절을 일직선으로 가로질렀다. 나래를 활짝 벌린 두 놈의 봉황이 입을 맞비비고 있는 장식이 노랗게 눈부시다. 칠보 족두리를 바르게 탄 흰 가리마 위에, 냉큼하니 가볍게 올려놓고 멀찌감치 눈을 떼어 바라보니, 그리 밝지 않은 불빛에서도, 금, 은, 유리, 마노, 파려, 진주 등이 영롱하게 반짝거려, 마치 하늘의 한 부분을 떠다 얹어 놓은 것 같다. 모두, 아무 말이 없다. 평양집은 황홀히 바라보다가 혀를 한번 찬다. 말은 안 하여도, 과시 하늘에서 따온 선녀가 어찌 이럴 수 있으랴는 감탄하는 표정이다. 어머니도 언니도 올케도, 한가지 여자의 몸으로 태어나서, 이렇게 이쁘게 생겨날 수 있는 것은 어느 신령님의 점지하시는 일인가 싶이, 그리고 자기네들도 젊었을 처녀 시절에 이렇도록이나 아름답고 이뻐 본 적이 있었던가 싶이, 멍하니 보부의 단장한 얼굴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다시 딸기처럼 빨간, 밤알만한 알에, 은실과 금실을 수놓은 두 알의 타니가, 얼굴보다도 더 하얀 두 귀밑에 매어달렸다. 목을 약간 움직이는 대로 타니는 풍경처럼 귀엽게 하늘하늘 떨고 있다.
꼿꼿하게 치뻗친 오뚝한 콧날의 동그스름하니 모가 죽은 봉우리가 팔신 무너지듯 하면서 콧구멍이 약간 발름발름하더니 드디어 한 입술이 발신하니 웃는다. 개름한 두 눈의 시울이 긴 속눈썹에 덮이어 까만 손톱자리같이 움직이지 아니한다. 둥그스름한 탐스런 얼굴이 만족하게 미소를 띠어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인차 머리를 돌려서, 발치 구석에 놓은 옷보퉁이를 어루만지듯 하여, 이 웃음은 아무개의 눈에도 띄지 아니하였다. 부리나케 웃음을 삼켜 버리고, 그대로 조심성 있게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는다. 연두회장 도리불수 저고리에 버선 바닥에까지 치렁치렁하는 노을처럼 붉은 홍치마다. 저고리 앞자락이 치마에 잇닿는 데서부터, 노리개며, 장두며, 치통이며, 호랑이 발톱이며 하는 갖은 패물이 연달아 매어 달렸다.
밤은 얼마나 으슥했는가. 파탈하고 아랫목에 뎅그렁하니 앉아 있는 신랑의 방에는, 흰쌀 위에 세워 놓은 촉대 위에서 붉은 홍촛불이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다. 사모와 단령은 모두 벗어서 넣고, 두루마기까지도 벗어서 뒷병풍 위에 걸어 놓았다. 이야기하러 왔던 말동무들도 일찌감치 밤참을 먹고 물러간 뒤이다. 아랫방과, 뜰 안과, 사랑과, 건넌방과 부엌이 웅성웅성하건만 벌써 한참 동안이나, 형선이가 무료히, 그러나 적지않이 긴장하여 홀로이 앉아 있는 이 방안은 괴괴하다시피 고요한 분위기에 싸여 있다.
갑자기 밖이 요란스러워졌다. 이 급작스레 요란스러워진 동정 속에서, 신랑은 시각이 임박한 것을 알아차린다. 일어나서 옷을 입을까 하다가 모른 척해 버리는 것도 한 재미라고 언뜻 생각해본다. 그는 침착해지려고 애쓴다. 누군가 나직하나 똑똑히 들릴 수 있도록 ‘색시 잡아넣는다’ 하는 소리를 지저귀며 마당을 건너간다. 방마다 문이 열리는 소리. 어스름하던 뜰 안이 문마다 불빛을 배앝아 갑자기 새벽 먼동이 튼 것처럼 훤해진다. 누가 문밖에 와서 창문에 기댄다. 이어서 창구멍 뚫는 기척이 들리고,
“샛시방이 아랫목에 반뜻이 앉아 있다.”
하는 소리가 들린다.
“두루마기 닙언?”
“다 파탈하구 그린 듯이 앉았다.”
아뿔싸, 이 소리는 어서 두루마기를 입으라는 말은 아닌가, 참말 신부를 처음 대하면서 아무리 사나이기로니 두루마기도 안 입는다는 것은 이치에 어그러지고, 예법에 뒤틀려도 한방이 없는 소리다. 그는 갈팡질팡하는 자리잡지 못한 그의 두 다리를 의식하면서, 발딱 일어나서 두루마기를 병풍에서 집어 들었다.
두루마기를 들고 그것을 채 펼치지도 못했는데, 마루 위에 유난히 높은 비단 쓸리는 소리가 나고 이어 앞문이 방싯하니 열린다. 촛불이 한번 활개를 치고 꾸풀꾸풀 뱀처럼 몸을 뒤챈다. 두루마기를 입을 겨를도 없이 벙하니 들어오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데, 중늙은이의 여인네가 앞서 들어오고, 이어서 찬란한 눈부시는 의상이 고요히 움직이며 방 가운데로 들어온다.
“머 안 닙으믄 멜한가. 어서 벗은 채루 두시게.”
하고 여인네가 인상 있게 웃으면서 두루마기를 손에서 빼앗듯 하여 다시 병풍에 건다. 색시는 무릎을 세우고 불을 향하여 신랑에겐 옆얼굴을 보이며 가만히 앉는다. 형선이는 비로소 새색시를 보았다. 붉은 치마가 아랫도리를 휘감고 꽃화분처럼 단장한 미인을 쳐받들고 있다. 이쁜 꽃화분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언뜻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기름을 발라 틀어 올리고, 명주실로 빤질빤질하게 밀어 올린 얼굴이건만, 볼편에서 목과 귀밑으로 흐른 곡선이 얼마나 부드러운 것인가를 겨우 인식한다. 그는 만족하였다. 그리고 아직도 연두 도리불수의 비단이 반사하여 붉은 촛불과 어울려서, 아름다운 무지개가 뽀오얗게 품기는 색시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그새에 데리고 들어온 여인네는―아마 이 집 친척 부인네로, 다복하고 팔자 좋으신 부인넬 게다―병풍을 한목으로 몰고 그 뒤엔 준비하여 두었던 요와 이불을 내려다가, 아랫목에다 깔아 놓는다. 이불을 들고 그의 옆을 지나가려 할 때에야, 비로소 신랑은 한참 동안이나 자기가 굶주린 사람처럼 색시의 얼굴을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던 것을 깨닫고, 부끄러운 김에 눈을 아랫목으로 돌리고 허성대어 본다.
“자, 오늘은 곤할 텐데 어서덜 자리에 들으시게. 그러구 큰상에 놨든 사과하구 배하구 밤이 있으니, 다른 건 말구래두 이 사과 한 알만은 둘이서 나누어 먹으시게. 전해 오는 말에 이걸 나누어 먹어야, 의좋게 아들 딸 낳구 잘산다니, 자, 그럼 넌두.”
하고 이번에는 색시를 향하여,
“넌두 인제 딴사람이 아니니 그렇게 앉었지만 말구. 자, 그럼 난 나갈 게 첫날밤을 재미나게덜 보내시게.”
다시 한번 병풍 뒤를 살펴본다. 병풍 뒤는 두꺼운 바람벽밖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다시 한번 살핀 뒤에 두 젊은 남녀가, 하나는 자리 옆에 서 있고, 또 하나는 아까대로 불 있는 쪽을 향하여 그린 듯이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는 것을 보면서, 절반은 뒷걸음을 치듯 사뿐히 앞문을 열고 나간다. 밖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둘러서서, 숨을 죽이고 방안에서 들려 오는 말소리를 엿듣고 있었는지, 여인네가 문을 나서자 웅성웅성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말소리가 일어난다. 말소리는 인차 조용해졌으나, 이따금 키득거리는 소리와, 참았던 숨을 깊게 짚는 소리가 들려 오는 것을 보면, 아직도 사람들은 흩어지지 않은 모양이다. 이들은 오랫동안 문밖을 떠나지 않는 풍속인 것을 방안에 있는 두 사람은 잘 알고 있다. 새로 이루어지는 침방을 지켜 주는 것이 처음 이런 풍속의 근원이었는지 모르나, 그들은 호기심이 명령하는 대로 불을 끈 뒤에도 손가락으로 문풍지나 창호지를 뚫고, 귀나 눈을 들이대고, 방안에서 나는 소리와 눈에 띄는 광경을 보고 듣고 하며, 즐거워하는 것이었다.
한참 그대로 사진을 박으려는 사람들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신랑과 신부는 서 있다. 누가 먼저 뭐라고 할런가, 또 하여야 하는가, 이들은 아는 것 같으면서도 모르는 것 같다.
무료히 그럭하고 섰다가 무슨 결심이나 새로이 먹은 것처럼, 앉은 사람에게 시위하는 것 같은 심리상태를 제 스스로도 의식하면서, 뚜벅뚜벅 신부의 앞을 지나간다. 그리고 촛불 앞에 가서 우뚝 선즉, 무슨 말을 할 것처럼 멍하니 서서 신부를 머리 위로부터 내려다본다.
“어서 옷을 벗기지 않구.”
이런 소리가 문밖에서 들려 온다. 누가 구멍으로 엿보다가 안달증이 나서 하는 소린가, 그렇지 않으면 놀리는 소린가, 이 소리에 용기를 얻어서 신랑은 바른 손을 약간 들었으나, 그 손으로 신부의 몸을 만지지 못하고, 훌적, 아직도 너펄거리는 촛불로 손을 가져간즉, 불 심지의 밑을 자르듯 하여 불을 꺼버린다. 방안은 캄캄해졌다. 신부는 사나이의 손이 몸에 닿을 것을 의식하고 마음 졸여 하다가, 불이 껌뻑 꺼지는 바람에 등골에 냉수를 끼얹힌 듯한 놀람을 느끼고, 캄캄한 질식할 듯한 공기 속에서 비로소 푸 한숨을 나직이 짚었다.
조심성 있이 신랑은 신부의 앞을 걸어간다. 그는 잘못하여 신부의 발이나 손을 짚을까 저어하는 것보다, 치마를 짓밟든가, 또 활기를 치다가 족두리나, 뚝절이나, 타니를 후려 떨구지나 않을까를 마음에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아랫목에 가더니 펄석 주저앉아, 대님을 풀고 제 조끼 단추를 끄른다. 캄캄한 데서 하는 것을 볼 리야 있으랴마는, 밖엣사람들은 비단 쓸리는 소리로 이것을 분별하였는지,
“샛시방두 원, 제 옷고름만 끌르지, 재미없다. 색신, 뭐, 꾸어 온 보릿자룬가.”
하는 실없는 부인네들 소리가 난다. 그러는데 누가 아마 신부의 어머니든가 친척 되는 이의 목소린지,
“인전 고만덜 보시소, 젊은 사람덜이 주름이나 좀 페라구, 인전 고만덜 두소.”
하고 말소리가 뜰 가운데서 들려 온다.
“그러잖아두 재미없어 고만두겠소다. 어린애덜두 아닌 나차른 색시 샛시방이, 이야기덜이나 좀 하던가 하지 슴슴해서 어디 보갓쉥가.”
문설주에서 두서넛 물러가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는,
“그럼 안녕히들 주무시우, 난 내려가겠소다.”
하는 인사의 말도 들려 온다. 이제는 보는 사람이 없어졌을 게다. 설령 밑질긴 한두 사람이 보고 있다손 치더라도, 어서 사나이 할 구실을 하고, 편히 쉬어야 되겠다고, 신랑은 생각하면서, 그러나 역시 말로는 내지 못하고, 가만히 팔을 뻗쳐 신부의 손목을 더듬어 쥐었다. 따끈하고 포근하다. 그러나 아무 반응도 없이 잡히는 대로 가만있다. 가만히 이쪽으로 이끄는 듯하니, 색시는 제 편에서 몸을 쳐들고 끌리는 쪽으로 쏠리듯 한다. 가만히 있었으나, 역시 조그만 인력으로도 움직여 동할 만한 준비는 되어 있었던 것이다.
보부는 삼촌댁에게 이끌리어 신랑의 방에 들어와서, 불이 꺼질 때까지 눈을 깔고, 땅 밑만 바라보았지 곁눈 하나 팔지 않았다―이렇게 삼촌댁에게나, 신랑에게나, 또는 문구멍으로 들여다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모르게, 그는 재치 있게 꼭 한 번 신랑을 쳐다본 적이 있었다. 얼굴이 잘생겼는가, 못생겼는가, 대체 눈은 어디에 붙었고 코는 어디로 솟아났는가 이런 것을 알기 위하여 사나이의 얼굴을 도적질해 본 것은 아니었다. 내일 아침 문창이 훤히 밝아 오면, 자는 얼굴을 제 얼굴 바로 밑에서 얼마든지 바라볼 수 있을 것이요, 또 바라보고 그것이 어떻게 생겼든 간에 이제 이렇게 그와 한자리에서 잠을 이루고, 그것을 예식을 갖추어 세상에 발표해 논 뒤이니, 어떻게 할 도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부모가 작정했고, 세상에 발표했고, 그리고 오늘 모든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 축복을 받았다. 그가 절름발이라도 살아야 하고, 그가 애꾸눈이라도 모셔야 하고, 그가 곱사등이라도 섬겨야 할 것을 보부는 잘 알고 있었다. 남이 수상히 생각하리만큼 눈알을 굴리며, 남편의 생김새를 물색하려 들 만큼 조급하지도 않다.
그러나 그는 조심성 있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라도 해서, 그의 얼굴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보지 않고는 참을 수 없었다. 삼촌댁이 자리를 들고 아랫목으로 가고, 사나이의 타는 듯한 눈길이 자기의 얼굴에서 그쪽으로 쏠리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내리깔았던 윗눈시울이 파뜩하니 나래를 치면서 사나이의 얼굴을 날쌔게 보아 놓았다. 비록 바로 보지는 않았을 때에도, 얼굴 앞에서 허청대는 사나이의 키가 대충 얼마나 하다는 것은 그림자처럼 눈어림으로 짐작할 수 있었고, 그래서 그의 키가 큰 키는 아니라는 생각을 가만히 품어 볼 수는 있었으나 제 눈으로 비록 짧은 순간이나마 바라본 사나이는 예상과 같이 사촌 오빠와 나팔을 끼고, 언젠가 구정물을 쏟을 때에 행길을 지나, 이화정으로 올라가던 그 총각은 아니었다. 결코 놀라지는 않았다. 역시 ‘생각대로 그이는 아니었구나’ 하는 체념은 필시 가벼운 실망의 이면인지도 모르기는 하지만, 어떻게도 할 수 없는 불행이 이제부터의 자기의 생활을 찾아올 것 같은, 그런 불길한 예감은 조금치도 들지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던지, 그것을 확실한 인상으로 의식지 못하면서도―사실, 그는 그가 나팔 든 총각인가 아닌가를 직감적으로 분별하였을 뿐이지, 이 사나이의 얼굴이 어떤 인상을 주었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사나이가 손을 뻗쳐서 제 손을 더듬어 이끌 때에, 사나이의 입김 가까이 제 몸을 실릴 만한 마음의 여유는 가지고 있었다.
나는 오늘부터 이 사람의 것이다. 이 사람에게 몸과 마음을 통히 바쳐 버린 사람이다. 아니 그대로 속속들이 이 사나이에게 맡겨 버려야 할 몸이다. 그러므로 여태껏, 자기의 마음 한귀퉁이에서 어른거리던 나팔 들고 키 큰 총각의 환영은, 그것이 설령 자기의 시동생이 될 사람이건, 누구이건, 한 개의 마귀에 불과하였다. 이리하여 그는, 여태껏 총각을 그리던 제 마음을 마귀가 가르친 사념(邪念)이라 생각하고, 더일층 자기를 죄인으로 의식하면서 미안한 마음으로 새로이 맞는 남편에 대한 깊은 애정을 인도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사나이의 손이 긴 뚝절을 더듬어 뽑고 있다. 침착하나, 더운 입김이 그의 귓바퀴에 와서 설렌다. 손은 약간 떨리는 듯하나, 실수 없이 그것을 머리에서 뽑는다. 다시 족두리를 내린다. 사나이의 두 손이 앞 이마 위에서 간지럼을 피우듯 허청거릴 때 색시는 손수 그의 손을 끌어다가 함께 족두리를 끌러 내리었다. 끌러 놓은 것을 가만히 윗목 상 위에 옮겨 놓고는 한참 아무 말이 없이 앉아 있다. 족두리를 끄를 때에 손을 도왔으니, 인제는 제 스스로 옷고름을 끄르라는 것일까. 그러나 족두리나, 뚝절이나, 비녀와 달라, 어떻게 제가 제 손으로 옷고름이야 끄른단 말인가. 여태까지 속옷으로 감싸고, 허리띠로 동여매고, 속적삼과 저고리, 바지와 치마로, 누가 볼세라 보일세라 감축하여 둔 가슴과 배와 다리를 어떻게 대담하게, 버릇없게도 내 손으로 끄를 수 있단 말인가. 만일, 이대로 사나이가 내버려두고, 저 혼자 자릿속에 누워 버린다면, 자기는 이대로 혼자, 요렇게 청승맞게 댕그러니 앉아서, 동녘이 훤히 트이고, 창문에 해가 들도록 눈 깜박 안 하고 세워도 그만이다―이렇게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러나 사나이란 역시 다정하였다.
치마끈을 끄른다. 장난을 하느라고 여러 곱을 매어 논 것이라, 한 매듭씩 끄르고 있다. 미안해서 그다음은 제가 맡아서 끌렀다. 그랬더니 사나이는 저고리 고름을 끌러 준다.
끌러 줘야 되는 건 다 끌러 주었다. 치마끈과 패물 찬 끈을 끌렀으니, 바지나 속옷 끈은 제 스스로 어떻게든지 할 게다. 저고리 고름도 끌러 주었으니, 벗거나 말거나는 색시 제 마음에 달렸다. 그래서 형선이는 제 해만 훌쩍 벗고 속옷만으로 자리에 들어가 버렸다. 이 이상, 사나이기로니 어떻게 뻔뻔스레, 추근추근하게, 손을 끌든가, 말을 붙이든가 할 수야 있을 것이냐. 그래 베개 위에 머리를 눕히고, 조용히 색시의 거동만 캄캄한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 잠시 조용하다. 형선이의 가슴이 둘럭둘럭하는 것이 들려진다.
보부는 사나이의 벗은 옷을 채국채국 접어 개킨다. 그러더니 그것을 윗목 병풍 밑에 사뿐히 올려 민다. 한참 또 가만히 앉아서 어떻게 할 바를 모른다. 아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빤히 알고 있으나, 그걸 내처 할 용기가 더럭 나지 않는 것이다. 누가 말을 걸든가, 아까처럼 손목은 아니라도 바지 밑이라도 잠깐 잡아당기는 체해도, 그는 그걸로 언저리를 삼아 대담한 용기를 내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안타까운 경우를 만들어 놓은 사나이는 야속하게도 자기를 혼자 내버려 둔 채, 잠자리 속에서 까딱도 안 한다.
그러나 형선이 역시 그렇게 짓궂지는 않다. 제가 어떻게라도 손을 쓰지 않으면, 색시는 언제까지나 저렇게 끈을 끌러 놓은 옷을 입은 채, 이부자리 옆에 앉아서 밤을 샐는지도 모르겠다는 것을 생각지 못할 만큼 무정하지도 박절하지도, 또 등신도 아니다. 그래 성큼 일어나서, 저고리를 활짝 벗겨 버리고, 치마도 훌훌 풀어 버린 뒤에, 덤석 팔을 끌어다 긴 베개의 한옆에 머리를 베어 주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나, 그렇게 왁살스런 행동도 할 수 없어, 그에게 행동의 디딤보가 될만한 구멍수만 퇴게 주는 것이다. 형선이는 낑 하고 기지개나 펴듯이, 한 다리로 이불의 절반을 둘러 감고 아랫목으로 돌아 뒤채어 누웠다. 이불 소리가 와스럭와스럭 나고, 사나이의 낑 하는 소리와, 가볍지 않은 몸집이 뒤채는 소리가 함께 엉켜서 뒤설릴 때에, 색시는 눈치 빠르게 치마와 웃저고리만을 벗어 버리고 가만히 자리로 몸을 옮겨 놓았다. 그러나 몸을 누이는 처럼만 하였으나, 살이 사나이에게 닿을세라, 얼굴이 베개에 닿을세라, 이러노라니 다시 몸을 도사리고 댕그러니 앉아 있는 거나 같았다.
이때에야 나 어린 사나이의 가슴엔 표범 같은 피가 꿀드럭하니 목구멍을 치받았다. 그는 비로소 성난 짐승처럼 몸을 뒤채면서 색시를 베개에 눕히고 또다시 이불을 그의 몸 위에 덮어 주었다.
모든 것이 끝났다. 이불 안이 몹시 더우나, 이젠 잠만 들면 그만이다.
그런데 아뿔싸, 또 한 가지 잊은 것이 있다. 아까 여인네가 신신부탁하던 큰상에 놓았던 사과 한 알―이것을 먼점 생각한 건 형선이었을는지도 모르나, 곧 몸을 일으켜 사발에서 사과를 집어 온 건 오히려 보부였다. 이것을 잊어버린 채 사나이가 자버리면, 이거야말로 큰 낭패가 아니냐, 그는 속으로 행복되게 부귀를 누리면서 첫아들 낳고 잘살아 보기를 이렇도록이나 저도 모르게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사과를 집어 가지고 와서 다시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는 용기를 내어 그것을 가만히 사나이의 얼굴 위에다 가져갔다. 사나이는 그것을 받아서 한 입 덜컥 깨물어 서벅서벅 씹으면서 그대로 색시에게 준다.
캄캄한 가운데서 비로소 해죽이 만족한 웃음을 웃어 보며, 그리고 비로소 이불 속에서 사나이의 체취가 코로 풍기는 것을 취하듯이 느끼면서, 먹다가 준 사과를 입으로 가져간다.
그때이다. 바로 그때이다. 마루가 쿵 하고 울리고 적지 않은 돌덩어리 같은 것이 꽝 하고 문설주를 짓부순다. 덜컥 놀랐다. 사과는 손에서 떨어뜨리지 않았으나, 거의 기겁을 하여 색시는 사나이 가슴에 낯을 묻듯 하였다.
“아니 거 누구?”
뒤이어 문 여는 소리, 하나, 둘, 셋― 아랫방과 건넌방과 사랑방의 문이 어금비금하여 일시에 열린 것이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없다. 개 짖는 소리가 난다.
농 하고는 너무 심하다―이렇게 생각한 건 보부뿐만도 아니었다. 뜰 안이 소란해졌다. 누가 마루에 와서 그곳에 던진 큰 돌을 들어 내리는지,
“아니 이게 웬 돌이야. 적지 않게 큰데. 이런 원 망할 놈들이 안 있나.”
누가 대문 밖에 쫓아 나가 보고 오는지,
“발세 강 있는 쪽으루 없어졌는데, 누군지 알 수 있나. 키는 훨씬 큰 놈 같은데…….”
이 말에 보부는 가슴이 뚱하였다. 키 큰 사람―그것이 누구였을까. 만일 이것이 단순한 농이나 장난이 아니라면, 두 사람의 결혼에 불만이나 불평을 갖고 있는 자의 행위라는 건, 언뜻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까닭인지, 뜰 안에서는 대문 닫는 소리만 이어서 나고는,
“거, 누가 농두 세게 한다.”
정좌수의 일부러 신랑 들으란 듯이 하는 말을 마지막으로, 모두 제방으로 들어가서 조용해지고 말았다. 자기 딸에게 마음을 두고 있던 놈의 행위라고 보는 게 누구나의 첫 짐작이니 만일 이야기가 벌어지는 때엔 결코 적지 아니한 문제로 될 것을 그들은 알아채고 있는 것이다.
보부는 부모나 또는 새로 맞는 남편에게 자기가 오해를 받을까 두려웠다. 아무도 없었다. 실로 자기가 누구에게 손짓, 눈짓 한번 해본 일도 없거니와, 또 어느 사나이한테선가 그런 걸 받아 본 적도 없었다. 단 하나, 그러나 생각히는 당자도 결단코 모르게, 시동생이 될 나팔 든 총각을, 지금 같이 누워 있는 남편인 줄 알고, 마음에 홀로 그려 본 바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것을 알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알고 모름이 문제가 아니리라. 그렇기 때문에, 돌 던지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나고, 이어서 키 큰 놈이 물가로 뛰더란 말을 듣고는, 보부 역시 그의 마음을 선뜻 두드리고 지나는 것이 없지 않진 못했다. 키 큰 사람이 어찌 한둘일 것이냐. 그러나 키 큰 놈이 물가로 뛴다는 말과 함께, 그의 가슴을 두드린 것은 역시 나팔 든 총각, 아니 자기의 남편과는 불과 달로밖에 차이가 없는 시동생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그이는 아닐런가―자기 자신으로서도 수상하리만큼 이런 생각이 문득 난다. 만일 그이라면 어째서 자기 형 되는 사람의 장가 든 방에 와서 이런 행패를 할 것인가. 그가 나를 사모할 리는 만무한 일, 자기가 그를 홀로 생각해 온 것은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가 자기를 자기처럼 이토록 생각해 오지 않은 것만 사실이 아닐 거냐. 그렇다면 그가 오늘 우리들의 행복을 방해하거나 불만해하거나 할 리도 없을 것이요, 다시 이러한 행패질을 할 리도 만무한 일이 아니냐. 역시 그는 아니다. 그러면 대체 누구일까. 까마득하다.
남편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만일 남편이 자기를 의심하려 들면 얼마든지 의심할 수 있는 건덕지다. 애매한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사나이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숨도 변변히 못 쉬며 처분만 기다릴밖에 없다. 무슨 변명이 있을 것이냐, 아니 터무니 자기에게 알 수 없는 영문 모를 일에 대하여, 뭐라고 입을 떼서 이러니저러니 할 수가 있을 것이냐. 매를 치면 매라도, 벌을 주면 벌이라도 받아야 할 판국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대로 남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는데,
“어서 사과나 마자 잡수.”
이어서 사나이의 억센 팔이 그의 가슴을 둘러 감는다. 남편에게서들은 첫 번 음성이고, 그에게서 받는 첫번 포옹이다. 아니 어머니의 품을 떠나 나이 찬 이후, 고이고이 감축해 두었던 제 몸에 다른 사람의 팔이 와 닿은 처음이다.
아무렴, 역시 남편밖에는 없다, 그의 말 한 마디와 한 번의 억센 포옹이 모든 것을 원만하게 해결하는 것을 지금 그는 감격과 함께 느끼고 있다. 이 남편을 무슨 일을 겪으면서도 섬겨야 한다. 아니 몸을 부숴서 가루를 만들어 모시고 섬겨도, 결코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존재로 생각히었다. 그는 눈물이 풍풍 솟구쳐 오르는 것을 참지도 않으면서, 사나이 품에 안겨 그가 먹다 준 사과를 깨물었다. 눈물이 사과에 묻었는지 입맛이 짜다. 그는 한입 두입, 덤성덤성, 소리가 나게 씹고 있었다. 눈물은 사나이의 가슴에까지 번져 옮았다.
4
다른 날따라 없이 형걸이는 늦잠을 잤다. 여느 날 같으면 학교 뒤 솔밭이든가, 강가에 나가서 나팔을 불든가, 그러잖으면 학교 운동장에 가서, 철봉을 하는 것이 아침 먹기 전에 형걸이가 하는 버릇처럼 된 일과이었는데 오늘따라 그는 늦잠을 자고 있다.
그러나 창문이 훤하니 밝은 것을 모르고, 이불을 막 쓰든가, 베개에서 떨어져서 침을 흘리든가 하면서 늦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두 눈을 멀뚝멀뚝 뜨고서 뎅그렁하니 번듯이 자리 위에 누운 채 일어나지를 않는 것이었다. 그는 처음 어째서 이날 아침이 다른 날 아침과 달라서,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싫은지 자기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어젯밤은 큰집에서 자고 없으니, 늦게 일어나도 꾸중할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그러나 아버지는 그가 늦게 일어나건 이르게 일어나건, 그런 데는 별반 참관하지 않는 이다. 지금 저 사랑방에 아버지가 앉아서 담뱃대를 땅땅 뚜드린다든가, 그러잖으면 기침을 유별나게 한다든가, 또는 아침상을 설령 받고 있다고 하여도,
“형걸이놈은 생게두 안 니러났니. 어젯밤 늦두룩 논 게로군.”
하고쯤 상귀에 나앉은 작은댁에게 물어 볼는지는 몰라도, 그 이상 이러니저러니 하든가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어머니는 일어나는 것이 늦으면, 그의 방에 찾아 들어왔다.
“해가 한 빨이나 솟았던데 넌 생게두 자네.”
라든가, 그러잖으면,
“오늘은 나팔 불러 안 가네.”
라든가 하고 그의 자리 옆에 서서, 발심하니 웃으면서 아들의 자는 얼굴을 내려다보는 것이다. 오늘도 벌써 한참 전에 방문을 열어 보고 갔었다. 그러나 아들이 눈이 멀뚱멀뚱한 채 누워 있는 것을 보고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방싯하니 열었던 방문을 닫아 버렸다. 형걸이는 눈닦아 보진 않았으나, 어머니가 어째서 오늘따라 아무 말이 없는지, 그리고 어째서 나들이옷을 갈아입고 새벽부터 집을 나가는 것인지, 그리고 다시 아침도 먹지 않고 어디로 가는 것인지, 이런 걸 그는 비로소 똑똑히 의식한다.
아니, 그가 이렇게 오늘따라 해가 한 발은 샘스러, 좀 허풍을 치는이라면, 거의 중천에 올라왔다고까지 서둘러 댈 시각에, 잠도 안 자며, 시름없이 자리 위에 누워 있는 것은, 그런 걸 모두 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는 잘 알고 있다. 왜 자기가 자리 속에 누워서 일어나기가 싫고, 어머니도 아무 말을 못 했는지, 형걸이는 잘 알고 있다. 오늘 아침은 불과 한 달 상관으로 어엿한 형이고, 뿐만 아니라 큰어미의 소생이기 때문에 자기보다도 소중한 대우를 받는 형선이가 정좌수 집으로 장가를 드는 날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어젯밤, 두뭇골로 오지 않고, 그대로 큰집에서 잔 것이고 (물론 아버지라고 장근 두뭇골만 와서 자는 것은 아니었으나) 다시 어머니도 새옷을 갈아입고 아침도 들기 전에 큰집으로 간 것이고, 방문을 방싯하니 열고 아들의 누워 있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 말 못 하고 그대로 문을 닫아 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가서 한참 만에 큰집에서 사환아이가 왔다고, 삼남(三男)이가 문을 열고 전고를 한다.
“큰댁에서 조반 잡수시라구, 나오시라구, 사람이 왔어요.”
그대로 큰댁에서 조반 나와 잡수시라구 사람이 왔다면 될 것을, 혹시나 실수할까 어린것이 지나치게 마음을 쓰노라다, 되레 우스꽝스런 말이 된 것이, 어쩐지 불쾌해서 형걸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뻔하니 듣고도 대답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건만, ‘잡수시라구 나오시라구’를 또 한번 외고 섰다. 만일 대답이 없으면 작인의 아들 삼남이는 하루 종일이라도 이러고 섰을 참인가 하고 생각하니, 형걸이는 와락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서도, 한편 가련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여기서’까지는 성난 목소리를 질렀다가, 그다음 ‘여기서 먹는다구 그래라’는 나직이 부드럽게 말하였다. 그러나 성이 나서 말하거나, 부드럽게 말하거나, 그런 건 아무것도 아랑곳할 게 없다는 듯이 그대로 표정 없는 얼굴을 한 채 문을 닫고는,
“여기서 잡수신다구 그러시라구 그러시래.”
한다. 형걸이는 이 말소리를 방안에서 가만히 듣고 누웠다가, 작은 발자국 소리 둘이 대문으로 사라지는 것을 들으면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놈의 하는 짓도 좀되고 불쾌한데, 아침들이 이러고 누워 있는 자기 모양도 어지간히 싱겁게 보여지는 것이다.
‘우리 청년 학도들은 용감하고, 쾌활하고, 대범하고, 희생심이 있어야 한다.’
산술선생이나, 역사선생이나, 지리시간에나, 체조시간에나 언제나 들어 온 말이다.
옷을 주워 입고, 공기를 바꾸느라 마당으로 난 문을 열어 젖혔다. 일어서서 자리를 개려고 하는데, 부엌에서 중년세나 되는 종이 들어와서, 이게 무슨 일이시냐구 말로는 안 냈으나, 황송해하는지 황겁해하는지, 분간할 수 없는 표정으로 이불을 빼앗듯 한다.
그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밖으로 나왔다. 봄날 아침의 해는 광선이 따사하다. 한참 눈이 시도록 태양을 겨누어 응시를 한 다음 그는 낯을 닦았다. 방안에 들어오자 밥상이 나온다. 방금 함지에 이고, 큰집 종이 아침을 날라 온 걸 그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예전대로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갈 준비를 한다. 혹시 학교가 늦을는지도 모른다고, 좀 황황히 서두르면서 두루마기를 입고, 등골로 주의 속에 들어간 머리채를 쭉 뽑아 내다가 문득 생각히는 곳이 있다. ‘이 머리채’―그것을 앞으로 끌어다 놓고 한참 동안이나 들여다본다. ‘이 머리채’―세 갈래를 잡아서 미츳하니 땋아 내려가다가 맨 끝이 꺼먼 댕기로 맺혀 있는 이 머리채.
“에히, 오늘은 세상없어두 이놈의 머리채를 잘러 버리구야 만다.”
다시 휙 잔등께로 넘겨 버리는데 체조하듯 하는 그의 바른손 속에 굳은 결심이 들어 보이었다.
사포를 쓴 뒤에 문 밖에 놓은 갓신을 신고 집을 나섰다. 학교는 얼마 멀지 않다. 두뭇골 개울의 징검다리를 건너서, 논두렁길 같은 작은 길을 한참만 가면 곧 학교의 운동장이 나선다. 솔밭 중턱에 문묘(文廟)가 있고, 그 옆에 서원(書院) 자리가 있다. 이것이 교실이었다.
대문을 나서서 큰 버드나무와 우물과 느티나무만 돌아서면 학교 운동장이 바라보인다. 검정 두루마기를 입은 채, 새끼줄 넘이를 하는 학생도 있고, 주의를 벗어 걸고 철봉에 매달린 학도도 있다. 아직 시간이 좀 있는 성싶다. 그러고서 쳐다보니 해는 생각던 것보다는 그리 높이 솟진 않았다. 학교 뒷산 솔밭 위에 한 칸쯤 솟아 있다. 그는 뛰지 않고 책보를 바른손에 들고, 갓신에 힘을 주어 병정처럼 뚜벅뚜벅 걸을 때 만족을 느낀다. 머리채가 물결치듯 잔등에서 꾸풀대며, 궁둥이께를 댕기가 스척거리는 것이 오늘 아침은 유난히 마음에 거슬린다. 제법 철석 소리가 나는 것도 같다. 이놈을 오늘 몽땅 잘라서 내 버려야 속이 시원할 게다 하고 생각하니 마치 누구에게 오래 묵은 원수를 갚는 것 같은 통쾌한 생각이 들었다.
형걸이는 고등과 일년이다. 그러므로 심상과(科) 생도는 그를 만나면 걷던 다리를 딱 모아 붙이고 경례를 한다. 그 대신 고등과 이년생, 삼년생을 만나면, 그가 경례를 해야만 한다. 경례를 하는 것이나 받는 것이나 모두 유쾌하였으나, 윗학급에서 자기보다 나이 어린 놈이 없는 건 더욱 다행하였다. 어떤 자는 경례를 붙이고는 격식을 갖추느라곤지, 입으로 나팔을 부는 자도 있다. 손대봉(孫大鳳)이가 그 중의 하나다. 이는 그의 어머니가 양덕 온천(陽德溫泉) 대탕지(大湯池) 뒷산, 대봉산(大鳳山)에서 산신령께 치성을 드리고 온정을 했더니 산덕과 물덕을 입어 잉태해 낳았다 해서, 이름마저 대봉인데, 부모가 완고해서 승혈(僧血)이 만강(滿江)이라고 머리를 깎지 못한 채 있으나, 신식이라면 머리를 싸매고 대서는 자이다. 그는 상급생을 만나면, 제가 그렇게 하고, 하급생을 만나면 그들에게 이 짓을 시켰다.
지금 형걸이가 운동장 어귀에 세운 ‘동명학교’의 현판이 붙은 대문을 지나가는데 운동장의 커브를 손대봉이가 껑충껑충 뛰면서 이편으로 굽어 돈다. 조끼 바람에 사포는 벗어 던지고, 머리채는 거치적거린다고 뱅뱅 둘러 머리에 가뜬하니 틀어 붙였다. 재빠르게 다리를 놀리지 않고 성큼성큼 조자를 맞추는 품이 아마도, 대운동회에 할 이인삼각(二人三脚)을 연습하고 있는 모양이다. 먼눈만 팔다가 형걸이의 한 칸쯤 앞에서 비로소 그를 발견하고, 엉겁결에 넘어질 듯이 다리를 가누지 못한 채, 겨우 기척을 하고 경례를 붙인다. 형걸이도 걷던 걸음을 멈추고 경례를 받는데, 숨이 하늘에 닿도록 헐럭시면서도 왼손을 말아서 입에 대고, 대봉이는 나팔조로 기운 있게 한 곡조 불어 넘긴다.
“띠다디따, 띠다디따, 땃따띠따 띠 띠다디 따―”
손대봉이는 심상과 삼년생인데, 작년에 평양서 열린 대운동회에 갔다 와서부터는, 이렇게 경례 뒤에는 꼭 나팔을 불었다. 대봉이를 본떠서 이렇게 하는 학교가 늘어 갔으나, 또 같이 평양 나갔던 학도 중에는, 손대봉이가 하는 것은 괜한 제 조작이지 평양 대성학교라든가 다른 곳 학도들 중에 나팔 부는 시늉을 하는 자는 하나도 없다고, 그의 하는 것을 비방하는 자도 있었다. 그러나 대봉이는 태연하니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내려왔다.
퍽 전에 한 학도가 체육교사 정영근에게, 경례 붙이면서 나팔 부는 것이 격에 어그러지지 않는 게냐고 질문한 적이 있었으나, 교사는 그렇게 하는 것도 무방하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정교사 역시 손대봉이를 두고 말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대봉이는 상급생뿐만 아니라, 선생을 만나도 한가지로 경례 뒤엔 나팔을 불었기 때문이다. 정교사는 처음 손대봉이한테서 이런 경례를 받을 때, 잠시는 웃으면서도, 좀 얼떨떨했었다. 그러나 그의 하는 품이 군대식으로 엄격했기 때문에, 적지 않이 만족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형선이 장가간다구 오늘 아침은 늦었구나.”
경례를 치를 때만 엄숙하고, 이것이 끝나면 그들은 너, 나 하는 장난 친구다.
“남이 장가드는데 내가 늦을 턱이 뭔가. 앞집 체니 시집가는데, 뒷집 총각은 목매러 간다든가.”
농말을 하면서도 형걸이는 좀 언짢았다. 시간에 늦어진 것은 아니나, 여느 때보다 늦게 온 것은 사실이고, 또 늦어진 까닭이 형선이의 장가든다는 데 있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 게 아니라, 내가 결심한 게 하나 있넌데, 넌두 나하구 같이 하자.”
“결심이 또 무슨 결심인가. 네가 결심을 했건 말었건, 내가 너하구 같이 따라가야 된다껀 또 어떻게 하는 말인가. 내가 네 색시란 말가, 네 집 비복이란 말가.”
“이놈은 색시하구 비복밖엔 모르냐. 그런 게 아니다, 좀 이리루 오나라.”
형걸이는 대봉이를 끌고 커다란 은행나무 곁으로 간다.
“너 인제 이걸 짤라 버리자.”
그리고는 빙그레 웃으면서 머리채를 만져 보았다.
“지금 난 깎군 못 배겨 낸다.”
대봉이는 여느 때 없이 얼굴 위에 난색을 나타낸다.
“난두 내 오마니 때문에 못 깎구 뒀넌데 오눌은 결심했다. 쓸데없넌 걸 붙여 둘 리가 하나두 없구, 매사에 방해되는 놈을 달아 둘 턱이 하나두 없구, 또 이가 끓구 구질구질하다. 자 인제 난 깎는다.”
“우리 청년학도는 용기가 있어야 된다. 엣다 나두 깎았다.”
둘이는 하하하 웃고 학교 사무실께로 올라간다. 형걸이는 머리채를 뽑아서 한 손으로 주무르면서 걷는데, 대봉이는 머리에 틀었던 놈을 끌러 내리고 이마와 머릿속에 젖은 땀을 댕기 끝으로 묻혀 낸다. 그러더니 별로 길지도 않은 노르스름하니 불이 붙은 머리채를 횅횅 둘러대며,
무쇠 골격 돌근육
소년 남자야,
문명의 정신을
잊지 말아라.
우리는 덕을 닦고
지혜 길러서
문명의 선도자가
되어 봅세다.
하고 창가를 불러 댄다. 두 사람은 조자를 맞추어 걸으면서 언덕을 올라갔다. 그들은 한번 결심한 생각이 다른 데로 흩어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저도 모르게 애써 딴 잡념이 섞이지 않게 노력하는 것이다. 깎은 뒤에 일어날 것을 생각하면 혹 이 결심이 흩어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곧 학교의 심부름꾼인 사채를 불러서 이발 기계를 들고 나오라고 했다.
“이제 얼마 안 해 상학 나팔 불 텐데.”
하는 것을 강제로 끌고 나오면서 형걸이는,
“나팔은 내 불게 우선 대봉이부텀 머리를 깎아.”
하면서 달래었고, 한편 대봉이는 언덕 옆에 있는 돌각담 위에 올라서서, 운동장과 교실을 향하여 커다랗게 소래기를 질렀다.
“고등과 일년생 박형걸이와, 심상과 삼학년생 손대봉이가 머리를 깎는다.”
머리 깎느라고서 시간에 늦어졌다면 선생도 그다지 나무라지 않을 걸 그들은 알고 있다. 학도들은 머리 깎는 걸 보자고 모두 이리로 쓸어 올라왔다. 그들은 황철나무 밑에 놓인 청결통 옆으로 가서 쭉 둘러선다. 손대봉이가 웃저고리의 동정을 꺾어서 밖으로 접고, 둘러선 가운데 가 꺼꿉 서 앉는다.
“형걸이하구 대봉이하구 머리를 깎으니 아무래두 내일 해는 서편에서 뜰라는가 부다.”고 누가 중얼대는데, 벌써 삭발한 지 오래인 길손이가 가운데로 들어서면서, “머리채는 내 들구 있지.”하고 댕기를 잡아 쳐들어 준다.
“내 머리에 기계가 와 닿을 때에 창가나 한마디 불러 주게.”하는 손대봉이의 말이 농말 같지 않고, 어딘가 비장한 데가 있는 것 같아서, 형걸이는 솔선해서 창가를 메겼다.
왔도다 왔도다
봄이 왔도다.
하고 메길라치면 일동은 거기 맞추어서,
왔도다 왔도다
봄이 왔도다.
하고 우렁차게 따라갔다.
새벽 맞는 이 산천에
봄이 왔도다.
만물은 때를 좇아
빛을 발하니,
춘풍 화기중에
은혜 깊도다.
창가 소리가 나는데, 똑딱거리면서 이가 드문드문 빠진 기계는, 대봉이의 머리를 밑으로부터 깎아 올라간다. 가장자리부터 올라가다가 맨 위 꼭대기에 가서 잠깐 기계를 멈추었다. 댕기 들고 있던 길손이가 바른손으로 잡아당겨 보니, 한 줌만큼만한 머리카락이 아직도 머리 위에 붙어 있다.
“자 마저 깎는다.”
사채도 좀 긴장해서 두 손으로 기계를 머리카락 속에 박는다. 모두 조용하다. 기계 소리가 사채의 두 손이 움직거리는 대로 유난히 높이 들려 온다. 마지막 한 번을 휙 밀어 내면서 기계를 뽑아 올리니, 댕기 달린 머리채는 홀랑 머리에서 떨어졌다. 길손이가 고놈을 냉큼하니 쳐들고, ‘손대봉이 만세’를 부른 뒤에 청결통에다 집어넣는다. 대봉이는 머리를 털며 헤벌심하니, 웃는지 또 울지나 않으려는지, 분간키 어려운 표정을 하며 서운해서 일어선다.
인제 형걸이 차례가 왔다. 그는 각담 위에 책보와 사포를 놓고, 그 위에 다시 두루마기를 벗어 얹는다. 팔소매를 성금성금 걷어붙이려니, “옛다, 형걸이 큰일 치를낸다.”하고 누가 놀려 댄다. 그러는데 마침 사무실에서 상학 나팔이 들려 온다. 이 소리를 들으며 사채가, “한 시간 하구던가, 점심시간에던가 마저 깎자.”는 걸, 모두,“그래서는 안 된다.” “그리다간 못 깎구 말는지두 모른다.”고 반대해서, 곧 깎기로 하고 둘러섰던 학도들은 교실로 갔다.
“선생보구는 내 말하마.”하고 손대봉이는 아까보다는 좀 기운이 나서, 학도들과 어깨를 걸고 가는 것이 보인다. 형걸이는 한번 손을 둘러 뵈고 가만히 앉았다. 사채는 빗자루로 기계를 한번 쓴다. 나사를 풀어서 소제를 하고, 안약 병에 넣은 석유를 꺼내서 쇠자박이 맞닿는 데다 바른다. 다시 나사를 죄고 귀밑에다 대는 듯하면서 팔로 기계를 가만가만히 놀려 본다. 만문한가 뻑뻑한가 그 소리를 들어 보는 게다. 사온 지 일 년이 남짓한 것인데 이 고을서는 둘밖에 없는 기계인지라, 하루도 열 명 가까운 사람을 깎아 대니 그놈이 성할 이치가 없다. 언저리에 동녹이 슬고, 이가 두세 개 빠져서 가끔 털을 꽉 문 채 옴짝도 안 하는 때가 있다. 그러나 기계는 으레 좀 뜯고 아픈 것으로 모두들 알고 있기 때문에 그만 것쯤은 상관치 않았다.
선뜩하고 쇠가 형걸이의 데석에 와 닿는다. 그러더니 똑딱 소리를 연신 내면서, 찬 금속물은 머리를 한 바퀴 오르내린다. 머리에 부는 바람이 갑자기 차서 등골이 산뜩하였다. 머리채가 털석 하는 소리를 내며 귀 옆을 스쳐서 그의 눈앞 까만 흙마당 위에 떨어져 뒹군다. 그러나 기계는 아직도 머리를 다스리느라고 그냥 오르내리기만 한다. 빗자루로 머리를 확확 쓸어 내리니 시원하기는 비할 데 없으나, 또 한편으로는 걷잡을 수 없는 서운한 생각이 뿌엿하니 가슴을 치받쳤다. 바른손으로 가만히 머리를 만져 보니, 여느 때 같으면 기름진 머릿발이 미츳할 텐데, 바늘 끝처럼 손뼉을 찌르면서 착각같이 손은 허전허전하다.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손맛이 온통 변해 버렸다.
“수구했네.”하고 옷을 털며 일어서서, 머리채를 청결통에 팽개쳐 넣는데, 까만 긴 머리채에 어리어서, 어머니의 적막한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눈앞에 떠오르는 어머니의 얼굴을 뿌리치듯 하면서, 곧 두루마기를 입고 사포를 썼다. 사포가 귀 있는 데까지 거침없이 쑥 떨어지고 안에 대인 가죽이 싸늘적하다. 그는 책보를 끼고 장달음을 놓아 교실로 뛰어들어갔다.
점심시간에는 집에 오지 않고, 형걸이는 향교 가까이 있는 길손네 집에 가서 그와 둘이 길손이의 점심밥을 나누어 먹었다. 어쩐지 집에 오기가 싫었다. 어머니는 아직 두뭇골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므로 머리 깎은 것을 들킬 염려도 없을 것이요, 하기야 아무 때라도 한 번은 겪어야 할 판이니, 어머니의 눈을 피하느라고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나, 여러 가지 생각이 겹쳐서 그저 어쩐지 집으로 가기가 싫었던 것이다. 오후에 한 시간을 하고는, 백 명 가까운 전교 생도가 두루마기를 벗어붙이고 신에 들메를 한 뒤에 대운동회의 준비를 위하여, 연합체조의 연습을 정교사의 지휘로 한 시간쯤 하였다. 이것이 끝난 다음엔 형걸이는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대로 산에나 강에나 가서 나팔이라도 불고 싶으나, 우선 책보를 집에 갖다 두어야 할 게요, 책보는 아무렇게나 들든가 또는 병대들의 가죽부대 모양으로 둘러진다손 치더라도 나팔이 집 안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교문을 나서며 한참 생각다 못하여 그대로 혼자서 산으로 올라갔다. 따스한 양지바른 곳에서 낮잠이나 자보려는 것이다.
대성전(大成殿) 뒤 솔밭 속을 지나서 삼송정(三松亭) 앞 언덕으로 돌아왔다. 작년 가을에 말라 버린 누런 잔디에 봄날의 따스한 태양이 함뿍 내려쏟고 있었으나, 아직 푸른 움은 트지 않았다. 그는 책보를 베고 사포로 얼굴을 가린 뒤에 번뜻하니 나가넘어졌다.
역시 눈을 감아도 잘라 버린 머리채와 어머니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어머니는 삭발한 것을 보고 놀랄 것이다. 여태껏 형걸이가 몇 번이나 머리를 깎으려고 할 때마다, 관례(冠禮) 지내는 것을 본 뒤에 깎으라고 한사코 말려 온 것을 오늘 아침 이렇게 깎아 버렸으니, 그의 삭발과 형선이의 혼례식과를 맞붙여서 생각할 것은 사실이었다. 어머니는 기필코 형선이가 장가드는 것에 불만하여 삭발을 해버린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자기가 어엿한 본댁이 아니고, 또한 단 하나뿐인 아들이 서자의 대우를 받는 것을 마음 아파하던 윤씨로서 형걸이의 이 행동은 적지 않은 충격으로 될 것이다. 형선이가 오늘 장가를 든 정좌수 집 둘째 딸 보부를 본 적은, 형걸이로서는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윤씨는 처음 형걸이를 보부와 혼사 지낼 의향으로 그를 수소문해 보았고, 다시 그는 영감더러 그 뜻을 전해 본 적도 있었다. 박참봉은 혼처는 적당하고 규수가 인물로나 무엇으로나 훌륭한 것을 듣기는 하였으나, 정좌수가 필시 형걸이를 서자라고 나무랄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윤씨의 말이 나오자마자 지금 정씨 집 규수하고는 형선이와 혼삿말이 있다는 헛소리를 하고, 또 혼사는 비록 한 달의 차이라도 순서가 있으니, 우선 형선이를 보낸 다음에야 형걸이 차례가 아니냐고 말했다.
영감이 적자나 서자를 그다지 차별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아무리 마음은 내켰었다고 할지라도 이 말에 거역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만 형선이와 정씨 집 규수와 혼사가 되어 버린 것이다. 형걸이는 이런 것을 자상하게 알지는 못하나, 한번 어머니가 정씨 집 딸이 훌륭한 게 있다는데, 네 맘이 어떠냐구 물어 본 일이 있었다. 그 뒤 그는 윗동리에 사는 동무들께 눈치채이지 않게 의중을 떠보고, 그 규수가 인물이 절색이고, 또 자기 부친에게서 한문과 언문 공부를 했고, 바느질도 잘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다시 그러한 말을 하지 않았고, 뒤이어 형선이와의 혼사가 성립이 되고 말았다.
어머니가 오늘 아침 형걸이의 태도에 아무 말을 못 건넨 것도 이런 일이 있는 때문이었고, 또 형걸이 자신도 어머니의 심경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가슴에 솟구쳐 오르는 지향없는 울분을 또한 어떻게 처치할 길이 없었다. 그 울분을 억눌러서 삭발로 인도해 놓은 것만 지극히 온당한 행동이었다고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머리는 깎아 버렸다. 어떻게 되었든 이왕 머리는 깎아 버린 게다. 사실 장가를 들 때 머리를 깎았으면 어떻고, 또 상투를 틀었으면 어떨 게냐. 사모, 단령에 각대와 목화를 몸에 안 붙이고, 그대로 사포와 두루마기라도 그만이 아니냐. 언제 갈지도 모를 장가를 기다리면서 오래잖아 오월 단오가 오면, 대운동회가 있어, 각처에서 많은 학도가 모여들 텐데, 그때까지 귀찮게 머리 꽁지를 달고 다니는 것만이 더한층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건 그렇다 치고 어머니의 슬픔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게냐.
생각이 자꾸 두루두루 맴을 돈다. 아무것도 생각지 않기 위하여 잠을 청하나 좀처럼 눈을 붙여 볼 수가 없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으로 늘상 잠 안 올 때마다 해보는 방법을 써본다. 콧속에다 힘을 주어 어느 정도까지 숨을 막아 놓으면, 머리의 중추가 뗑해진다. 이것을 잠깐동안 계속하면 머릿속이 혼란해지고, 와사 같은 것이 꽉차는 것 같아지면서 이윽고 진공상태에 가까워지는 것을 느낀다. 이렇게 해놓으면서 일변 건둥으로 하나 둘을 세어서 백까지만 가면 알 도리가 있다. 과시 머리가 휭해 오면서 여든여섯을 세는데 팔삭하니 눈가위가 무거워 온다. 여든일곱은 채 세지도 못했다. 그는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나 잤는지, 누가 고양이처럼 살그머니 와서 그의 얼굴을 가렸던 사포를 젖힌다. 눈을 떠보니 장옷도 안 쓴 젊은 색시다. 해는 이미 지고 사방엔 산산한 저녁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솔밭을 지나는 바람소리가 개울물 흐르는 것 같다.
웬 한 여자가 이런 산등에, 장옷도 안 쓰고 또 남의 젊은 총각이 자는 데를, 버릇없이 무엄하게도…… 하면서 자상히 쳐다보니 두칠이 아내 쌍네였다.
쌍네라면, 장옷을 쓸 리는 없다 쳐도 어인 일로 해 저물어 이런 곳에를 왔었을까. 나무하러 갔던 두칠이를 마중 나왔다가, 해 지는 줄을 모르고 찬 땅 위에 누워 있는 젊은 총각이, 상전댁 도령님인 것을 발견하고 잠을 깨우는 것인가, 하고 뻐언히 쳐다보아도 얼굴을 숙인 채 아무 말이 없다.
형걸이는 슬며시 일어나 앉았다.
“누구, 두칠이를 마중 나온 길이냐?”
물어 보아도 대답이 없고 손을 읍한 채 가만히 서 있다. 슬그머니 화가 동했다. 그래서 훌쩍 일어서서 마주서는데, 핏뜩 마주 쳐다보는 얼굴이 한없이 아름답다.
스물두 살, 형걸이보다 그러므로 세 살이나 위이다. 그는 비로소 그의 앞에서 어려서부터 그의 집에 팔려 와서 잔뼈가 굵은 종간나도 아니요, 지금은 막서리 두칠이의 아내도 아닌 하나의 난만한 원숙한 여자의 육체를 발견하는 것이다. 붉게 큼직한 입술이 쭝긋쭝긋하고, 퀭하니 뚱그런 눈에는 꺼먼 그림자가 약간 어리어 있는 듯하다. 머리는 좀 흩어진 채, 흰 수건 뒤로 꺼먼 댕기의 꼬둘채가 늘어져 있다. 앞섶을 팽팽하니 여미어서 불룩하니 터져 오르는 젖가슴을 겨우 가누고 있다. 그는 손과 팔을 본다. 추운 삼동간 물에 튼 손잔등은, 그러나 벌겋게 달뜨면서, 팔소매 안에서 흘러 내려온 흰살과 비스듬하니 잇대어서 아마, 그것이 어깨와 가슴으로 부드러운 구릉처럼 뻗어 있을 것이다.
이렇도록 아름답고 탐스런 색시를 어째 자기는 여태껏 몰라 보았을까―이렇게 생각에 취해 황홀히 바라보는 순간, 그는 색시의 손을 덤석 쥐었다. 색시의 얼굴에 붉은 물감이 쪽 돈다. 귀는 얼굴보다도 더 빨개졌다. 폭 수그린 얼굴, 등골에 나풀거리는 솜털이 형걸이의 두 눈을 간지럽게 한다. 무어라고 말하려고 하나, 말문이 막혔는지 목구멍이 움직이지 않는다. 밤은 벌써 산을 캄캄하니 둘러 감았다. 가슴을 치받는 정열이 가리키는 대로, 그는 색시의 손을 이끌고 솔밭 숲속으로 뛰어든다.
덤성덤성 끄는 대로 소와 같이 유순하게 따라올 줄 알았던 색시가, 그 자리에 오뚝 선 채 움쩍도 안 한다.
“저는 남의 아내 된 몸이에요.”
그러나 지금 와서 이 소리는 형걸이의 행동을 제어할 아무 힘도 없었다. 그것은 쌍네 자신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대체 두칠이는 뭐고, 두칠이의 아내란 뭐냐. 그는 삼십이 되도록 절게로 있다가, 작년에 겨우 쌍네를 아내로 맞은 것이 아니냐. 쌍네를 주지 않았으면 그는 지금도 더벅머리 늙은 총각으로, 을씨년같이 지냈을 것이요, 쌍네 역시 종간나로 늙어 꼬부라질 것이 아니냐. 지금 그들이 어엿한 부부처럼 제법 ‘남의 아내 된 몸이에요’ 하지만 지금도 그대로 박참봉네 집에 매여 있는 비복과 다를 게 없다. 도련님이 이끄는데 ‘남의 아내 된 몸이라’니 어디다 대고 하는 무엄한 수작이냐―그러나 이런 것까지를 구차하니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성난 호랑이처럼 휙하니 쌍네의 몸을 낚아 들고, 성큼 앞으로 바꾸어 안은 뒤에 그는 으슥한 솔밭 속으로 뛰어들어간다.
색시는 발버둥을 치며 네굽질을 하는 듯하더니, 그대로 털썩 몸을 도련님께 실으며 두 팔로 그의 목을 둘러 감는다. 뜨거운 입김을 사나이의 목덜미에 쏟으면서, 그러나 그것과 함께 형걸이의 귀에 들린 말은 뜻밖이었다.
“아무리 매인 사람이래두, 너무 숙보지 않아요.”
그러나 그 다음 말은 더욱 그를 놀라게 하였다. 떨어지게 해라를 하면서,
“넌두 첩자식이라고 수모 사는 일은 없냐.”
도무지 쌍네의 말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어디다 뫼를 쓰고 어느 하늘에다 머리빡을 솟구고 이런 죽여 마땅할 수작을 쏟아 놓는 게냐, 하고 품에 안은 쌍네를 보니, 그는 조금 전에 낚아 안은 쌍네가 아니었다. 녹의홍상에 큰머리를 해 얹은 새색시, 이는 정녕 정좌수 집 둘째 딸이 아니냐고 기겁을 하는데―
빽 그의 귀에서 요란한 소리가 난다. 깨어나니 꿈이었고, 그의 옆에는 나팔을 든 손대봉이가 웃고 서 있다.
“산에서 낮잠이 뭐야. 귀신한테 홀릴라구. 옛말도 몰라, 산에서 자다 여우한테 홀린 말.”
대봉이의 말이 귀에 잘 들리지 않는다. 그는 지금껏 취해 있던 꿈에서 아직 깨지 못한 채 있는 것이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리는 뗑하고, 나팔 소리에 고막이 윙 운다. 아직 긴 봄날의 해는 십이봉 화줏머리 위에 높이 떠 있다.
“머, 정말 꿈이래도 꿔댄나.”
털썩 그의 옆에 앉는 대봉이를, 윙하니 덮쳐서 깔고 앉고, 멱암치를 내리눌렀다. 느닷없이 몰아치고 덮쳐 대는 바람에, 미처 손쓸 새도 없이 밑에 깔린 대봉이는, 들었던 나팔을 마른 잔디 위에 내던지고 바른팔로 형걸이의 한 손을 잡아 비틀었다. 두 다리에 힘을 넣어 뒤채는 바람에 둘은 함께 부여안은 채 언덕을 굴러 내려간다.
한 번 뒤채고, 두 번 고비를 돌고, 또 한 번 굴러 내리려는데, 조그만 솔포기에 걸려서 두 살덩어리는 멈칫하니 언덕에 걸렸다. 밑에 깔린 건 형걸이고, 위에 타고 앉은 것이 대봉이다.
‘이 자식’ 하고 멱살을 내리누르려다 두 눈이 서로 마주쳤다. 밑에 깔린 형걸이가 먼저 벌심하니 웃는다. 위에 타고 앉았던 대봉이도 따라서 웃었다. 그다음엔 소리를 내서 웃었다. 이윽고 그들은 손을 털고 일어났다.
우물에 물을 뜨러 나왔던 길손이 어머니는, 바로 조금 전에 집 앞을 지나 올라가던 손장이 아들 대봉이가, 삼송정 앞에서 웬 총각하고, 맞닥뜨려 단판씨름을 해서 나가뒹구는 걸 보고, 물동이를 우물가에 놓은 채 집으로 뛰어들어왔다.
톱으로 널쪽을 헤고 앉았는 길손이를 보더니,
“어서 손장이네 집에 가 알려라. 큰일났다, 큰일났어. 그 애가 누구하고 칼을 번쩍이면서 맞닥뜨릴 하는데, 지금쯤은 모두 누혈이 낭자해서 나가넘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어서 손장이네 집에 가 알리우라구. 원 저 일을 어떡허나. 남의 집 외아들, 불공 디리고 치성 디려서 낳은 걸 원 하눌도 무심하다.”
길손이가 뛰어나와 보니 언덕 위에는 두 총각이 가지런히 서 있다. 하나는 대봉이고 하나는 형걸이다. 그래서 지금도 야난났다고 덤벼 대면서 대문 밖으로 나오는 어머니를 보면서,
“아니, 어데서 누가 싸웠단 말인가.”
하고 의아해하니,
“넌 눈깔이 썩어졌네, 저 삼송정 언덕도 안 보이네, 저기 저.”
하며 삼송정을 가리키나, 안개 낀 그의 눈에도 나란히 서 있는 두 총각밖에 보이는 게 없었다. 아, 이놈들이 대체 어이 된 일인가, 눈을 비비며 다시 보는데,
“엄맨 노망했건, 노망해서, 어서 물이나 길어라 얘.”
하고 길손이는 늙은 어머니를 핀잔 준다. 이윽고 산에서는 나팔 소리가 들려 온다. 길손이 어머니는 아직도 혼자 마당귀에 서서 삼송정 쪽을 바라보며, 내가 아마 죽을 날이 머지않은가 보다 하고 쓸쓸하니 제 신세를 한탄하고 있었다.
두뭇골 집에 돌아와서 종보고 물어 보니, 형걸이는 아무 말 없이 큰집에서 가져온 조반을 먹고, 학교로 시간 맞추어 갔다고 한다. 그가 대문을 나간 뒤에도 퍽 오래 지나서야, 나팔 소리가 학교에서 났다고 하니, 그리 늦게 일어나지 않은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점심을 먹으러 오지 않았다고 한다.
무슨 바쁜 일이라도 생겼던 게지, 아침 잘 먹고 갔으면 뭐 그리 배가 고프랴, 하고 저로서도 생각하고, 또 근심하는 종에게도 말하였으나, 학교가 필한 뒤에도 일찌감치 돌아오지 않으니, 윤씨로서는 근심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삼남이와 종을 시켜 학교와 또 강가에 나가 찾아보라 했으나, 학교는 텅 빈 채 아무도 없고, 강가에도 그럴듯한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해가 거의 넘어갈 무렵에야 손장이 아들하고 둘이서 대문을 들어선다. 형걸이는 모자를 푹 쓴 채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손대봉이가 일부러 안마당을 겅충겅충 걸어오더니, 영창문을 열고 앉았는 윤씨를 보고, 토방 밑에서 사포를 벗어 인사를 한다.
“그새 안녕하신가요.”
“대봉이 오래간만에 오는구나. 그런데 너 머린 웬일이가.”
대봉이는 머리를 한번 바른손으로 북 쓸어 보면서,
“거치적거리구, 말째서 오눌 깎았이오. 학교에서도 깎으라고 해서.”
그러고는 헤벌심하니 웃어 보인다. 그러나 윤씨는 웃지 않고,
“너 어머니랑 아버지 보이셨네.”
하고 재우쳐 묻는다.
“낮에 뵈었어요.”
“그래 잘했다고 그러시던?”
“그럼 깎은 걸 뭐 별수 있나요?”
“장가도 안 가고 머릴 깎으면 쓰나. 학굔지 뭔지, 원 무슨 영문인구.”
“머리 깎어야 산술 잘한대요.”
“전에 사람들은 그래 과거한 사람도 없고, 진사 급제한 사람도 없다더라.”
“학교 공부가 서당 공부와 같은가요. 그러게 서당에서 신식 공부는 모르지요.”
윤씨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담배를 피워 문다. 이윽고 대봉이는 형걸이 방 있는 데로 걸어간다. 토방에 갓신을 벗어 놓고 방안으로 들어서면서 눈을 찔금하는데, 형걸이는 약간 혀를 빼보았다.
대봉이가 형걸이 방으로 건너가는 것을 보고 윤씨는 영창문을 닫았다. 아무래도 두 놈의 하는 품이 께름하다. 대봉이가 인사를 하는 거야 언제나 놀러 오면 하는 일이지만 머리를 갓 깎고 우정 그걸 보이듯이 토방 밑에까지 와서 나부라지게 반절을 한다든가, 그놈이 이러니저러니 말대꾸를 하는 거라든가, 또는 형걸이가 이쪽을 본 체 만 체하고 제 방으로 휭하니 들어가 버리는 품이라든가, 모두가 무슨 까닭이 있어 보인다. 그래 윤씨는 담뱃대를 놓고 마당으로 나와 신을 신고 뜰 안을 건너갔다. 아들의 방문을 드윽 열면서,
“너 점심은 어떻게 핸.”
하고 물어 본다. 대봉이는 사포를 벗고 맨 머리째, 다리를 펴고 앉아서 나팔을 닦다가, 문 여는 소리에 다리를 끌어 세우는데, 형걸이는 사포를 귀에 닿게 꼭 쓰고 다리를 세우고 앉았다가, 어머니의 낯을 바라본다.
“바뻐서 길손네 집에서 얻어먹었어요.”
“남의 집에서 그렇게 얻어먹어 버릇 하면 쓰나.”
하고 형걸이의 귀 옆을 보았다. 구레나룻에 비죽이 내밀던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고 새하얗다. 가슴이 뚱 하고 물러앉는다.
어머니의 얼굴이 갑자기 변하는 것을 보고, 형걸이는 황급히 낯을 푹 숙였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못 한다. 한참 그럭하고 섰더니, 문을 닫고 다시 안방으로 건너가 버린다. 무어라고 말할는지 도무지 생각이 엄두에 오르질 않던 것이다.
한편, 어머니가 삭발한 것을 알고도 아무 말 못 하고 건너가, 잠잠하니 소식이 없는 걸 본 형걸이는, 윤씨와는 다르지만, 역시, 그는 그대로 또한 마음이 언짢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삭발한 걸 지금 새삼스럽게 후회한다든가, 그런 마음은 터럭만치도 없다. 해야 될 것을 해버린 데 불과하다. 단지 이것 하나만이 원인이 되어, 어머니가 슬퍼한다든가 노여워한다면 손대봉이처럼 그런 걸 무시해 버려도 무방할 것 같다. 그러나 그의 삭발이 가져오는 문제는 결코 그런 것만이 아니었다.
온몸을 내던져서, 죽어라고 분풀이를 해대야만 할 곳이 어디엔가 꼭 한귀퉁이 남아 있는 것 같다. 누구를 실컷 뚜드리든가, 그러잖으면 누구한테 늘어지게 맞아 보고도 싶다. 그랬으면 한결 가슴이 후련하고 속이 시원하니 뚫릴 것 같다. 그러나 누구를 때리고, 또 누구에게 맞아야 할 것이냐. 그 대상이 그에게는 똑똑지 않았다. 간지러운 것처럼 안타깝다.
그는 대봉이가 간 뒤에, 저녁을 대강 먹어 치우고, 번듯이 방 가운데 누웠다가, 맨머리 바람으로 어머니의 눈을 피해 방을 나와 버렸다. 강에 나가 시원히 바람이라도 쏘이면 좀 나을 것 같다.
두뭇골서 흐르는 작은 개울물은 구룡교 다리로 흘러서 비류강으로 들어간다. 그는 이 개울물을 쫓아서 작은 길을 더듬어 큰 거리로 나간다. 밤은 벌써 캄캄하다. 바람이 살랑살랑 앙상한 나무를 건너간다. 달이 실낱같이 차다.
임강정(臨江亭)을 지나 강선루의 우중충한 큰 그림자를 무시무시하게 먼발로 바라보면서 그는 천추봉 있는 쪽을 향하여 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간다. 휘파람을 불어 본다. 그러면 마음이 좀 시원할 것 같다. 권학가(勸學歌)를 조자를 맞추어서 날카롭게 불어 넘겼다. 그의 휘파람 소리는 냉랭하니 괴괴한 밤하늘에 퍼져 나간다. 뒤에서 발자취 소리가 나는 것 같다. 휘파람을 멈추고 돌아보니 허연 두 여자의 그림자가 강선루 뒤 자복사 골목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곧 각담에 가리어 보이지 않는다. 승선교(乘仙橋) 밑 여울물 소리가 와― 귀에 새롭게 들려 온다. 소나기 소리 같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가는 빗소리 같기도 하다. 그는 방수성을 내려서 마른 잡초를 헤치고 강가로 나갔다. 물 있는 쪽은 더 캄캄하다. 하늘이 비친 곳만 초승달을 거꾸로 마주 그리면서 좀 희끄무레하다. 가만히 앉아 본다. 물 위에서 오는 찬 김이 머리에 시리다. 손을 담가 본다. 얼음 같다. 그걸로 머리를 적시어 본다.
그러는데 선뜻 생각이 떠오른다. 지금 탑 골목으로 가는 두 여자는 정좌수 집 사람은 아닌가. 올라가던 골목이 그곳이다. 신부가 어디 가서 숨었다가 신랑 방에 단장하고 들어가려고 지금 그의 친척집 부인네와 함께 돌아오는 길은 아닌가.
뒤를 돌아다보니 강선루의 커다란 그림자, 그리고 그 뒤에 자복사의 오뚝한 탑, 그 뒤로 인가가 있는지 없는지 그대로 꺼멓다. 정녕 정좌수의 딸, 형선이의 새색시다, 하고 생각하면서 그는 손을 털고 일어섰다.
낮에 산에서 꾼 꿈 생각이 불현듯이 솟아난다. 정좌수 딸의 녹의홍상하고 큰머리한 몸집, 두칠이 처 쌍네의 풍만한 육체, 그는 그의 가슴이 갑자기 물차관처럼 설렁거리고, 커다란 몽둥이 같은 것이, 가슴으로 뿌엿하니 치받쳐 오르는 것을 느낀다. 코에서 더운 김이 훅 하며 내솟는다. 그는 한참 멍하니 서서 제 욕망을 진정시키려고 애쓰다가, 그대로 느리게 발을 옮겨 놓으면서 다시 길 위에 나섰다.
그는 한참 뒤에 자복사 골목을 올라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잠깐 주춤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 길을 더듬어 올라가기를 멈추지는 않았다.
5
긴 거리가 끝나고 방선문을 쑥 나서면, 왼편으로 박리균네 조상 할머니 성씨의 것도 함께 끼여 있는, 다섯 여섯 낡은 비각이 서 있고, 다시 그 비각에 연달아서 맨머리만 뎅그렁한 비석이 초라하게 상판때기가 얼금덜금 더럽힌 채 두서너 개 서 있다. 그 앞은 널찍한 마당인데, 말뚝이 총총히 들어선 걸로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하루 엿새마다 벌어지는 장날, 크게 우시장이 서는 곳이다. 항용 불러서 소우전 마당이라 한다. 이 마당 한편 모서리가 뚫리어서, 공동묘지와 손우개로 통하는 작은 길이 있고, 또다시 바른쪽 언저리가 그대로 줄기차게 뻗어서, 커다란 황철나무를 서너 너덧 세운 채, 평양과 원산으로 통하는 새로 생기는 신작로와, 망지다리〔望柱橋〕에서 마주 붙고 있다.
이 밖에 허리끈 같은 가는 길이 신작로를 바른 질름을 해서 각각 두 갈래로, 하나는 돌차니고개〔咄嗟嶺〕를 넘어 평양 가는 방향으로, 또 하나는 망지고개를 바라보면서 원산 쪽으로 개울과 산을 더듬어 올라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황철나무의 푸른 눈이 터서 이파리가 파릿파릿 내발리고, 그 밑에 깔린 풀에서 포르스름한 새싹이 돋아 오르고, 아무도 모르게 누가 떠다 옮긴 진달래가 한 포기 분홍빛 꽃을 피우고 있는 따스한 어떤 날 오후도 퍽이나 기울어서, 말발굽 소리를 요란스럽게 울리면서 흰 말이 하나 방선문을 지나 날쌔게 달려오더니, 소우전 마당으로 한 바퀴 휭하니 돌아서, 신작로로 통하는 황철나무 밑을 땅에 붙듯이 휘감아돌고, 흰 먼지를 뽀얗게 날리면서 망지다리를 향하여 달아나고 있었다.
말은 구름 속을 달리듯 거침없이 달아난다. 신작로는 흰 먼지와 말발굽 소리에 휘엉켜서 멀리 가물가물하게 달아나는 흰 말과 그 위에 탄 젊은 기수를 덤덤히 바라보고 있다.
흰 말은 행인 없는 신작로를 날 듯이 달아간다. 멀리 망지다리를 왼쪽으로 휘돌면서 원산 가는 길을 잡아서, 망주산 고개를 쏜살처럼 댓바람에 스쳐 올라간다. 고개를 거반 올라갔다. 그런데 웬일일까. 말은 갑자기 요란스럽게 코를 불면서 앞발을 까맣게 들어서 하늘 허공을 들이찬다. 탔던 기수는 까풀 하고 안장에서 떠올랐으나, 말목에 몸을 딱 붙이고 능숙하니 말을 잡아 길 위에 세운다. 기수는 말꼽지를 잡아당겨서 무서운 속력으로 달아나던 말을, 길복판에다 잡아 세우려던 것이다. 뛰던 말은 그 바람에 한번 앞발을 높이 들고, 공중을 휘젓듯이 살판을 뛰려다가, 우르렁 하고 코를 불면서 길을 가로 잡고, 기수의 시키는 대로 급정지를 한 것이다. 말은 아직도 뛰던 속력이 몸에 남아서 건정건정 신작로를 짓밟으며 돌아간다. 호둘기 바람에 학생 모자를 뒷데석에 붙이고, 턱에다 끈을 맨 젊은 기수는, 말채찍과 말꼽지를 왼손에 몰아 쥐고, 바른손으로 말의 등허리를 뚜덕뚜덕 두들겨 주면서, 찐득하니 흐른 땀을 수건을 내어 문대어 준다. 말은 주인의 애무를 달게 받으면서 눈을 꺼뻑거리고 섰다. 이윽고 말 위에 탄 기수는 고개 아래턱을 내려다본다. 그곳에 삼십 장정이 소를 몰고서 작은 지름길을 더듬어 신작로로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다 어쩌실려구 그리우.”
버륵버륵 웃는, 수건을 질끈 동인 장정은 두칠이었다. 말탄 총각은 이 말엔 아무 대답도 안 한다. 그는 물론 형걸이었다.
“말 참 용하게 타시는군.”
이 말에도 대답지 않고, 형걸이는 소와 사람이 신작로 위에 오르기만 기다리고 있다.
“어데루 가나?”
“나무 실으레 삼밭이 가는 길이웨다.”
“삼밭이? 삼밭이가 삼십 린데, 이제 가믄 어떡헐라구?”
“요좀 달이 있는데. 좀 늦어선 오갔지요.”
그는 소와 두칠이가 고개를 더듬어 올라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가,
“그럼 잘 댕겨 오우.”
하고 처음으로 두칠이에게 하우를 했다. 그랬더니 두칠이는 휙 돌아보면서,
“예, 조심히 들어가시우.”
한다. 형걸이는 두칠이가 고개를 다 넘도록 그곳에 서 있다가, 이윽고 말을 지름길로 들이세웠다. 말은 앞을 굽어보며 배배 꼬인 좁은 길을 내려간다. 형걸이는 말꼽지를 느리게 잡고 뒤로 몸을 젖히듯 하면서 말이 꺼득꺼득 하는 대로 허리를 흔들거린다.
형걸이는 지금 말 위에서, 두칠이가 밤이 퍽이나 이슥해서야 집으로 돌아올 것을 생각하고 있다. 오늘은 보름이 인제 얼마 안 남았으니, 밤에는 밝은 달이 우렷하니 산과 들과 집과 강물을 밝혀 줄 것이다. 개나리와 진달래와 병꽃이 활짝 핀 밤, 나뭇가지마다 새 움을 까고, 철 이른 버들가지가 파랗게 향기를 뿜는 밤, 달에서 흐르는 이슬을 받아서 무어라고 종알거리며 피어 나오는 파란 잔디. 이 밤에 형선이는 얼마 전에 데려온 정좌수 딸과, 젊은 감격을 나눌 것이고, 두칠이의 처 쌍네는 오래간만에 해방된, 흠썩하고 탐스러운 몸을 가누지 못하여, 강물 쪽으로 향한 큰집 막간 좁은 한 칸 방에서 혼자 몸을 뒤채고 있을 것이다. 그는 혼자 있을 때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나무 실러 간 남편 두칠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까. 혹은 아무것도 생각지 않은 채, 뚫어진 창문 틈으로 숨어드는 달빛에,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가슴을 내맡기고 곤하니 잠이 들어 있을까.
말은 평지를 걷는다. 딴눈도 팔지 않고 뚜벅뚜벅 단조롭게 걸어간다. 형걸이는 비로소 눈을 들어 멀리 물이 불은 사창못과, 그 옆에 선 커다란 두 개의 황철나무 가지에 삼 년 전부터 있는 낡은 까치 둥지와, 그리고 그 뒤로 비스듬히 밭을 넘어서 보이는 학교의 운동장을 바라보며, 생각을 털고 바른손을 높이 들어 말궁둥이에 채찍을 준다. 말은 껑충 하고 뛰기 시작한다. 채찍이 또 한번 궁둥이를 휘갈기니, 말은 몸을 펴고 길 위를 날기 시작한다. 밭샛길을 더듬어서 방선문엔 들르지 않고, 산 밑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말은 단숨에 학교 운동장까지 줄달음을 쳤다.
운동장에는 형선이도 있고 길손이도 있고, 대봉이도 있다. 그 밖에도 두서넛 있었다. 그들은 활짝 두루마기와 모자를 벗어붙이고, 삼신에 들메를 깐 듯하니 한 뒤에 경주연습을 하고 있었다. 철봉 밑에 백묵으로다 땅바닥에 줄을 긋고 그 위에 바른 발을 하나씩 내짚고 있다. 발은 백묵을 타고 신호가 나기를 긴장하여 기다리고 있다. 길손이는 줄 밖에 서서 신호를 부르고, 다른 네 명이 뜀을 뛸 참이다. 철봉을 하던 이태석이도 손을 비비며 그것을 바라보고 섰다.
“하나.”
길손이는 기운 있이 불러 댄다.
“두울, 셋!”
셋 소리와 함께 네 사람은 달아난다. 길손이는 흰 줄 위에 서서 뛰어가는 경주자를 뒤로부터 바라본다. 형걸이는 말 위에서 내렸다. 말을 나무에 매고 그는 운동장으로 넘어 들어온다.
경주는, 운동장 저만큼 서 있는 황철나무를 치고 돌아오는 거다. 떨어지고 앞서고, 뒤엉키면서, 제각기 황철나무를 손뼉으로 갈기고는 그들은 되짚어 뛰어온다. 형선이가 맨 앞이다. 그 다음이 대봉이다. 나머지 두 사람은 한 칸만큼씩 떨어져 있다. 그러더니 거반 가까이 와서 대봉이가 바싹 채치는 바람에, 형선이는 입을 감물고 애를 다하나, 한 발만큼 떨어져서야 금을 넘었다.
“형선인 요좀 기운을 너머 빼서, 하하하.”
하고 태석이가 웃어 대니, 잔디 위에 펄신하니 앉아서 푸푸 하고 헐떡거리던 형선이는,
“에라 망할 자식, 내 우정 젰다.”
하고 벌떡 일어선다.
“그래, 덕분에 내가 한 번 이겼다.”
하면서 형걸이를 보고 대봉이는 눈을 찔끔한다. 형걸이는 아무 말도 안 하고, 풀판 위에서 손을 땅에다 대고 휙휙 살판을 몇 번 뛰었다. 그러고는 다시 두 팔뚝을 걷어붙이고 철봉으로 가서 윅윅 턱걸이를 몇 번 했다.
“대운동회 때 씨름두 할라는가 몰라.”
하고 태석이가 잔디 위에 앉으면서 말하니, 형걸이가 그 옆에 펄신하니 마주앉으면서,
“단오에 씨름을 안 할라구.”
한다.
“글쎄 대운동회하는데 어데서 할까.”
하고 형선이도 그 옆에 와 앉는다. 그는 장가를 들고서 곧 머리를 깎았다. 대봉이는 며칠 전에 두 번째 깎아서 새하얀데, 형걸이와 형선이는 머리 깎은 지가 한 달이 훨씬 넘어서 수북이 돋았다. 장가갔다 사흘 만에 돌아와서 형선이는 머리를 깎고 학교로 왔다. 그 뒤에 한 달이 지나서 곧 색시를 데려왔다. 농말이 아니라 그가 학교를 필하면, 이렇게 동무들과 노는 동안도 색시 생각이 나서 안절부절을 못 할 지경인 것이 사실인 것이다. 그러므로 늘 이겨 오던 대봉이한테, 마지막에 힘이 모자란 것을 놀려 대는 태석이의 말도, 미상불 바로 맞힌 말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대운동회는 하루믄 안 되나. 그러니 첫날은 방선문 소우전 마당에서 씨름 붙이구, 대음날은 솔밭 소재에 예펜네덜 구눌 띠우구, 사흘 째 되는 날 여기서 운동회하믄 그만 아닌가.”
형걸이는 형선이의 말을 잡아서 자상하게 설명해 들려 주듯 한다.
“글쎄 그렇게 하믄 몰라두, 씨름을 붙인다게 되믄 하루엔 아마 못 될 게라.”
형선이는 아우의 말을 별로 바로잡는 것은 아니나, 다시 좀 제 의견을 세워 보려 한다.
“안 되믄, 소재 오르는 날, 사나히들끼린 씨름 붙이믄 그만이지.”
별로 아무개에게서도 말이 없다. 형걸이는 생각난 듯이 말 있는 쪽을 잠깐 돌아본다. 그 바람에 모두 말을 바라본다. 말은 뜯어먹을 풀도 없어서 시름하니 눈만 꺼먹거리고 서 있다.
“운동회 때 어데어데서 올려넌지 몰루나, 안즉.”
하고 길손이가 손을 조끼 주머니 속에서 아무적거리며 물으니, 말을 멍하니 바라보던 대봉이가,
“작년에 페양 왔던 고장선 거반 다 올 게다. 그렇거믄 위선 페양.”
하고 넌떡 손을 들어 꼽으면서,
“쉰천, 은산, 자산, 엥유, 강세, 농강, 이것만 해두 닐급이지. 거기다가 대드리에서 올 게구, 기창이랑 아마 이런 데서두 올 게다. 강동이랑 양덕 촌놈덜두 올래나. 아마 거긴 안즉두 학교가 없는지두 몰라.”
길손이도 조끼 속에 넣은 손으로, 대봉이를 따라 손가락을 꼽아 세고 있다가, 대봉이의 말이 뚝 떨어지자,
“아야, 거 법제히 많갔넌데, 다 오믄 열한 고장이구나. 아따 인제 참 굉장하갔다.”
하고 두 손을 쫙 들어 열을 만들었다가, 다시 또 엄지손가락 하나만을 번쩍 들어 본다.
“그럼 패일날 백일장은 어떡허나.”
이렇게 형선이가 또다시 걱정을 하는 것을,
“그까짓 패일놀이 좀 번디문 어때. 대운동회가 한 달이 있으믄 올 텐데, 그때나 한번 본때 있게 해야지.”
하고 제 맘대로 할 것처럼 형걸이가 가로맡아 이야기한다.
“패일날은 백일장보다두 비류강에 등불 띄우는 게 더 보기 좋더라. 백일장은 전부 협잡이 많아서 원.”
하고 태석이도 한말 추렴에 든다.
한참 또 덤덤히 앉아 있다. 저녁해는 화줏머리 위에 너웃너웃한다. 둘러앉은 젊은 축들은 모두 저저끔 생각에 취하여 멍하니 딴 곳만 바라본다.
―형선이는 처음은 파일날 생각을 잠깐 하다가, 곧 색시 생각을 하고 있다. 저녁이 다 되었을 텐데 기다리지 않을까, 가봐야겠는데, 먼저 일어서면 놀릴 게고…….
―형걸이는 언뜻 두칠이 처 쌍네가 지금은 큰집 부엌에서 뭘 하는가, 연자간에 있는가 물을 긷는가, 물에 나가 다리를 걷어 올리고 물 속에서 빨래를 헹구지는 않는가, 이런 걸 생각하다가, 다시 대운동회할 때든가 씨름터에 다른 이는 몰라도, 그는 구경 올 수 있으려니, 두루두루 이렇게도 생각해 보고 있고…….
―대봉이는 작년 평양 대운동회에 나갔던 걸 회상하고, 그때 그 굉장하던 광경을 이 자그마한 고을 안에다 이모저모 옮겨다 놓으면서 있고…….
모두 제가끔 생각이 갈라졌는데, 길손이는 씨름이 한창 어울리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지,
“가기 전에 씨름이나 한 번씩 하자.”
하고 방정맞게 궁둥이를 털고 일어선다. 이 바람에, 모두 달콤한 생각이 깨어져서 푸수수 일어나는데, 그럭하고 생각하니 참말 씨름이라도 한 판씩 했으면 싶은 표정들이다.
이런 땐 서글서글하니 형걸이가 불쑥 잘 나선다.
“옛다, 한 판 어느 놈이구, 절구 굴리듯 해보자.”
하면서 사포를 휙 풀판에 던지고 반반한 잔디 위에 무릎을 꿇고 앉으면서, 번쩍 두 팔을 내벌린다.
“한번 어울려 볼까.”
하면서 연세가 제일 많은 태석이가 허리 괴춤을 죄면서 대선다. 길손이는 제 허리끈을 풀더니 샅타래를 만들어서 두 사람이 마주앉은 데로 던지고, 또 한 학도도 허리끈을 풀어서 형걸이를 준다.
그들은 샅타래를 바싹 올려 끼고 서로 맞붙어서 슬슬 어른다. 형걸이는 한 손으론 샅타래를 끼고, 또 한 손으론 태석이의 궁둥일 뚜덕뚜덕 뚜들겨 본다.
“아니, 이거 아즈마니가 이렇게 살지게 길러 줌뗑까?”
하고 말하니, 태석이는,
“엑키 버릇없게, 누가 그런 죄 될 말두 하나.”
하면서 일어서려고 어름어름한다.
“버릇없는 걸 볼라믄.”
이렇게 말을 해놓고, 훌떡 형걸이는 일어서면서 그 다음은,
“어르라.”
소리를 요란하게 불러 댄다. 들어 던지려고 하나, 태석이가 배를 주지 않아 맞붙지를 못하고, 그 다음 배지기를 들어 날쌔게 휙 감아 던지며,
“오눌 나죽에 아즈마니께 미안하다구 그러우.”
하고 땅에 손을 짚은 태석이를 굽어보며 손을 털고 다리를 뽑는다. 태석이는 형걸이를 바라보고 벌신벌신 웃으면서, 그대로 두 손을 땅에 짚고 궁둥일 쳐들고 앉았다.
“자, 이젠 형제끼리 한번 붙어 봐라.”
하고 대봉이가 형선이의 손을 끌고 잡아당기니, 형선이는 눈을 약간 찌푸리며,
“에라, 씨름은 무슨 씨름.”
하면서 손을 뿌리친다. 형선이의 생각을 알아채고 형걸이는 인차 모자를 쓰면서,
“저낙이나 먹으레 가자.”
하고 말 있는 길가로 뛰어간다. 형선이가 바로 집으로 가는 길이니, 그에게 말을 맡기고 자기는 곧바로 두뭇골 집으로 가면은 십상 좋겠는데, 형선이는 몸을 아껴서 본디부터 저 혼자는 말을 타지 않았다.
그래 형걸이는 그들을 뒤에 두고 말잔등으로 뛰어올랐다. 길손이 혼자서 향교 앞으로 도로 올라가고, 나머지 여럿은 쭈르니 일자로 서서 거리로 통하는 긴 길을 뭐라고 떠들어 대면서 내려오고 있다.
이들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등뒤에 남겨 놓고, 형걸이는 말 궁둥이에 채찍을 하나 주었다. 말은 네 다리를 골고루 놀리면서 건성건성 뛰기 시작한다. 피 덩치처럼 붉은 해가 십이봉을 넘느라고, 하늘과 산봉우리를 주홍빛 놀로 물들이고, 비류강 있는 앞쪽은 파르스름하던 신록이 까맣게 싸여 보인다. 형걸이는 그곳을 먼발로 바라보면서, 말 가는 대로 맡기고 있다. 말은 이윽고 우물께를 지난다. 그런데 웬일인지 뚜벅뚜벅 걸음을 늦추며 코를 한번 부르릉 불어 본다. 이 소리에 놀라 길 앞을 보니, 두칠이 처 쌍네가 양푼에 무엇을 넣어 들고, 큰길을 이리로 오다가, 두뭇골 가는 작은 길로 들어서려는 것이 보인다. 말은 하루 세 때 그에게 먹을 것을 주는 쌍네를 그곳에서 발견하고 반갑다곤지 코를 한번 불어 본 것이다. 형걸이는 생각지 않았던 곳에서 뜻밖에 쌍네를 만난 것이, 처음은 가슴이 뚱하였으나 그 다음은 적지않이 반가웠다. 쌍네는 말이 아는 체하는 것이 고맙고 반가워서, 말께 대고 발신하니 웃어 보다가 힐끗 말 위에 탄 형걸이를 쳐다보곤, 얼굴에서 황급히 웃음을 거두고 총총히 작은 길로 들어서 버린다.
말은 그대로 거리를 향하여 뛰어간다. 형걸이는 쌍네의 종종걸음을 쳐서 걸어가던 양푼 든 뒷모양과, 말을 보고 발신하니 웃다가 제 두 눈과 부딪치자 웃음을 거두던 표정과, 낡은 흰 수건으로 머리를 두른 밑으로 약간 보일락말락 하던 해에 그을지 않은 살커리가, 얼마나 희고 보드랍던가를 말 위에서 생각해보고 있었다. 말은 행길로 나섰다. 형걸이는 그 길로 곧장 외양간에 가져다가 말을 매어 두기가 싫고, 비류강을 줄기차게 건너간 승선교를 한번 건너갔다 오고 싶었으나, 불현듯이 다시 무엇을 생각하고 말이 가는 대로 내맡겨 두었다. 말은 제 외양간을 찾아갔다.
말을 외양간에 매고 사랑 앞마당을 지나는데, 중문 안뜰을 지나서 형선이 처 보부가 뒤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번끗 들여다보였다. 형걸이는 잠깐 주춤하니 서서 그의 뒷모양을 바라보듯 하였으나, 이윽고 아버지 눈에 띄지 않게 휭하니 사랑 마당을 빠져서 다시 행길로 나와 버렸다. 그는 다시 향교 길로 들어서서 지금 마주 내려오는 형선이, 대봉이 들과 인사말로 헤어지곤 곧 우물께에서 두뭇골로 가는 작은 길에 들어섰다. 해가 넘어가 버리니 갑자기 벌판 위에는 꺼머룩한 장막이 땅 위에 기어들고, 동녘만 희멀그럼하니 트여 있다. 형걸이는 외로운 길 위에서 잠시 주저앉아, 제가 생각하고 있는 일을 수습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저녁을 먹을 염도 안 하고 길 위에 앉아 있는 것이, 두뭇골로 갔던 쌍네가 돌아오는 것을 은근히 기다리고 있기 위함이란 걸, 스스로 의식하기엔 그다지 오랜 시간이 필요치는 않았다.
그는 잠깐 놀란다. 내가 진정 쌍네에게 맘을 두는 것인가. 이것을 면바로 생각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지금의 형걸이로선 겸연쩍었다. 그는 여태껏 이런 질문이 저의 속에 떠오를 기미가 엿보일 때마다, 그것을 회피하여 멀리로 도망질을 하였다. 저의 마음이 두칠이 처 쌍네에게 끌린 것이 진정에서 나온 것인지, 그것조차 그는 분간키 어려웠다. 아름답기나, 깨끗하기나, 신선함이 어이 보부를 따를 것이냐, 그러나 그는 이무 형수였다. 그를 번끗 먼발로라도 본 뒤에는, 형선이는 어떻게 복을 탄 놈이기에, 저렇도록이나 이쁘고 훌륭한 색시를 맞을 수 있었던가 하는 희미한 오기가 뒤따른다. 그러나 곧 그 생각은 쌍네의 활짝 핀 난만한 얼굴이 덮어 버리고 만다. 과연 이것은 보부를 그리워함인 때문인지, 쌍네에게 맘이 더 쏠리는 탓인지 제 마음을 종잡을 수가 없다. 종잡을 수 없는 만큼, 그대로 그런 생각이 나올 여지가 없도록, 덮어 버리려는 노력이 앞을 서는 것이다.
그는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두칠이 처는 또한 이무 두칠이 처다. 그는 남의 아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론 그는 그의 집 종이었고, 지금도 그의 집 막서리다. 어떻게도 할 수는 있으나, 그런만큼, 한편으론 창피도 하다. 이러한 여러 갈래로 벌어진 문젯거리가 쌍네를 기다리고 있는 이 어둠이 찾아든 외로운 길 위에 총총히 뿌려져 있는 것을, 그는 의식하곤가 못 하곤가 그대로 한참 동안이나 덤덤히 앉아 있을 뿐이다.
사실 그는 이런 것과는 딴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눈, 코, 입, 등골, 그리고 가슴, 저고리 속에 감춰진 채 불룩한 가슴, 이런 것을 두루두루 언뜻언뜻 머리에 떠오른 대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저편 쪽에서 희끄무레한 것이 나타났다. 이 그림자가 이쪽으로 가까이 오는 것만 알고도 그의 가슴이 울렁거리기에는 충분하였다. 그는 먼발로 어떤 희끄무레한 그림자를 발견하자, 이렇게 가슴을 두근거려 본 적이 기왕에 있었던가, 가까이 오는 그림자가 쌍네의 것인 줄을 똑똑히 알고, 길 위에 몸을 숨기고 그가 제 앞으로 다가오는 것을 이렇게 산란스런 마음으로 기다려 본 적이 지난날에 있었던가, 남의 아내, 아니 자기 집 비복, 어렸을 땐 업으라고도 하고, 끄덩이를 낚아채며 때려 대기도 한 이 종간나를 지금처럼 가눌 수 없고 종잡을 수 없는 생각으로 기다릴 날이 찾아올 것을 예상인들 한 날이 여태껏 있었던가―그러나 거의 이런 걸 생각할 나위도 없을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대로 마음이 설레는 것을 빡 눌러 버리고, 한 줄기 모든 감정을 운전하는 커다란 힘에 이끌리어, 그는 불쑥 몸을 일으키었다.
뜻하지 아니한 사나이가 불쑥 길 위에서 솟아나는 바람에, 빈 양푼을 들고, 말 여물을 누가 주었는가, 여직 말이 먹을 것을 못 받고 자기가 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지는 아니한가― 이런 얌전한 생각에 싸여서 종종걸음을 쳐오던 두칠이 처 쌍네는, 적지 않이 놀라서 거의 소리를 지를 듯 기겁을 하며 길 위에 오뚝 섰다. 그러나 길 위에서 일어난 사나이가 다른 사람 아닌 상전의 도련님, 지금 양푼에 별식이라고 설기떡을 가져다 주고 오는, 두뭇골집 도련님, 바로 그이라는 것을 발견하였을 때 쌍네의 놀람은 또 한번 더하였다.
어둠이 낯색을 희끄무레하게 감추어 버린 뒤라, 형걸이의 얼굴에 불그레하니 떠오른 상기된 표정을 알아볼 수는 없었으나, 뭐라고 이야기를 걸려고 하다가 주춤거리며 푸 내뿜는 입김이 얼마나 홧홧하니 뜨거운 것인지는 넉넉히 분간할 수 있었다. 두 눈이 벌겋게 핏줄이 내발린 것은 물론 쌍네에게는 자상하게 보이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힐끗 쳐다보는 사나이의 눈이 이상한 불길에 횃불처럼 이글이글 끓고 있어, 그는 대번에 그 눈살을 피해 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사나이의 표정이 어떠한 의사를 표시하는 것인지는 쌍네로서도 직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떠한 예상치 못했던 말이라든가 행동이, 자기의 몸 위에 떨어질 것을 고요히 기다리기나 하듯이, 쌍네는 머리를 숙이고 가만히 형걸이의 앞에 서 있다.
“어데 갔더랬소.”
모든 감정을 억누르고, 겨우 이 한마디를 하느라고 형걸이는 부득부득 애를 썼다. 그러나 이 한마디 말이 지금의 형걸이의 마음을 표시하기에는 너무도 동떨어지고, 또 싱겁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이 한마디 말이 두 사람에게 동시에 이상한 어울리지 않는 어감으로 느껴진 것은, 그것이 형걸이로서는 뜻하지 아니하였던 존대의 말이었기 때문이다. 쌍네로서도 난생 처음 이러한 조심스런 말을 들어 보았다. 한편 형걸이는 제 입으로 금방 나온 말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도무지 제 말 같지가 않았다. 그는 겨우 제정신을 찾아 붙든 듯이,
“두뭇골 갔더랬어?”
하고 어인 일인 줄을 몰라 덤덤히 서 있는 쌍네에게서 눈을 돌리듯 한다. 가느다란 한숨이 나오며, 그는 비로소 감정이 한소끔 끓어 오르다 잦은 때처럼, 고요한 적막을 느끼면서 평정을 찾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한다. 그는 여유를 만들려고 마주선 데로부터 한 보를 물러선다. 다시 쌍네를 굽어보았을 때, 그는 오무라졌던 목을 들고 안심한 표정을 얼굴에 그리면서,
“두뭇골 댁에서 저녁 늦으시다구 기다리시든데요.”
하고 다시 발밑을 내려다본다. 길만 비켜 주면, 이 이해할 길 없는 장소에서, 어서 몸을 빼 달아날 것을 그의 생각은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형걸이는 그러나 쌍네의 그러한 말은 무시하듯 덮어 버리고,
“두칠인 삼밭이루 가드만, 아마 늦게야 올걸.”
하고 쌍네의 눈을 빤히 들여다본다. 땅거미가 이무 캄캄한 어둠으로 변한 속에서, 커다란 두 눈이 색시의 눈 속을 들여다보려고 눈시울을 활짝 뻗치는 것이다.
쌍네는 지금에야 비로소 형걸이의 여태껏의 수상한 행동을 알아차린 듯하여, 진정으로 부끄럼을 느꼈다. 일순간 그는 비복의 지위를 망각한, 순수한 하나의 젊은 색시인 자기를 의식한다. 그러나 곧 그는 두칠이의 아내요, 다시 두칠이는 지금 눈앞에 선 도련님네 막서리요, 자기는 여태껏 이분의 비복이던 것을 생각하고, 그 말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죽을 용기를 다하여 길을 비켜 달라는 듯이, 고개를 숙인 채 한 발자국을 나서서 바른편 개굴 쪽으로 몸을 뽑으려고 하는데, 덤석 형걸이의 커다란 팔이 그를 붙들어 버린다.
“누가 보믄 어떻게 하실라구.”
말로는 이렇게 부드럽게 건네 보면서도, 그는 팔 속에서 가슴을 밀어 던지며 파득여 보았다. 물론 그의 연약한 팔힘이 형걸이의 굳게 껴안은 가슴과 팔을 거역할 힘은 없었다. 그러고 있는 새에 형걸이의 입술은,
“밤에, 달이 넘어갈 때.”
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토막말을 조약돌처럼 배앝으면서, 낯을 돌리는 쌍네의 입술을 찾아서 더운 김을 내뿜다가, 드디어 기진한 듯이 양푼 든 팔을 늘어뜨리고, 팔 속에 파묻히고 마는 색시의 얼굴을 눈앞에 가까이 부둥켜 올린다. 한참 만에 다시 생각난 듯이,
“놔달라구요.”
하고 몸을 뒤채 보는 것을, 또 한번 얼굴을 더듬어 입술을 빼앗은 뒤에 그는 겨우 쌍네에게서 팔을 떼었다. 쌍네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형걸이의 팔 속에서 몸을 뽑더니 양푼을 한 손으로 추켜 들고 덤덤히 길을 쫓아 뛰어간다. 그는 아직도 ‘두칠이가 오기 전에’ 하던 형걸이의 목소리를 귀밑에 새록새록하니 생각하면서 큰길로 올라섰다.
겨우 발그레하니 빛을 내는, 한 귀가 으스러진 달이 얇은 구름 속을 지나가는지 길이 포근하게 희다. 쌍네는 흐르는 눈물을 씻지도 않고, 이 눈물이 자기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려는 것인지, 불행을 가져다 주려는 것인지를 분간치 못한 채, 흰길 위를 종종걸음을 쳐서 뛰어갈 뿐이다.
형걸이는 쌍네가 길 위에서 보이지 않게 되도록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쌍네가 향교 골목을 돌아서 행길 쪽으로 몸을 숨겼을 때, 그는 달을 쳐다보고, 다시 두뭇골 쪽으로 가만가만히 발을 옮겨 놓았다.
6
쌍네가 박참봉 댁에 종으로 팔려 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십삼 년 전, 그가 아홉 살 났을 때였다. 그는 이 고을서 삼십 리 서편으로, 강 둘을 건너가면, 마주 보이는 모래 언덕 위에 있는 서창(西倉)이라는 작은 부락에서, 가난한 농가의 딸로 태어났다.
쌍네 위로 딸 둘은 이미 같은 농가에 팔린 뒤였고, 그의 집에는 쌍네 밑으로 아들 둘이 있었다. 그가 팔리던 해에는 장마 뒤에 역병이 돌아서, 그의 모친은 많은 동네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떠났다. 그 전해에 가뭄이 들어서 이 지방 전체에 큰 흉년이 들었었는데, 또다시 장마에 역병까지 겹친 터이라, 가을이 되어 역병은 까라졌으나 밭에서 거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시골마다 농토를 떠나서 유리하는 방랑민이 길을 덮고, 남부여대하여 함경도나 황해도 쪽으로 이주하여 가는 부락민이 초겨울까지 끊이지 않았다. 쌍네의 집 가족도 그중의 하나였다.
아버지는 얼마 되지 않은 그릇 자박 바가지짝을 꿰어 매어 짐을 꾸려 지고, 네 살 난 놈을 그 위에 올려 앉히고 여섯 살 난 놈과 쌍네의 손목을 이끌면서, 가을도 이미 저문 시퍼렇게 흐린 날 늦은 아침에 서창을 떠나 고을로 들어왔다. 방선문 안 박성균네 마방에서 하룻밤을 쉬어서, 세월 좋다는 원산으로 사백 리 길을 떠나려는 판이다.
네 살 난 놈은 이럭저럭 짐 위에 올려 앉히고 간다 하여도, 여섯 살 난 놈과 쌍네가 연속하여 사백 리 길을 가려면 신작로도 나기 전 험한 길을, 열흘이 걸릴지 보름이 걸릴지 종잡을 바가 없다. 하루라도 바삐 가서 겨울이 닥쳐 오기 전에 자리를 잡아야 할 판인데, 열흘 동안 노비를 쓸 것조차 주머니 속에는 남아 있지 아니하다. 어디 말이나 당나귀라도 하나 얻어서 아이를 태우고 들어갔으면 싶으나, 물론 그렇게 할 돈이 있을 리 만무하다. 밤이 새도록 어린것을 눕히고 생각한 끝이, 드디어 남들이 다 그렇게 하는 한 가지 방도이었다.
짐을 덜고 노비를 장만하는 일거양득의 길, 그것은 쌍네를 종으로 파는 길밖엔 없었다. 오십이 가까운 아버지는 집을 떠날 때까지는, 결단코 이런 방도만은 취하지 않으려 하였다. 그러나 정작 삼십 리 길을 걸어서 첫날밤을 맞아 보니, 어린 세 아이를 데리고 먼길을 떠나서 오랫동안 여행을 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처사인 것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한방에서 자는 마바리꾼에게 상론했자 별 뾰족한 수가 생길 리 없다. 처음은 속으로 노염도 갔으나, 백이면 백 사람의 입이 한결같이 그 방도밖에를 생각지 못할 때, 그는 드디어 이 길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리균에게 부탁하여 종으로 쌍네를 살 사람을 수소문하였으나, 역시 지금 한창 세간을 늘리고 세력을 부리려 드는 박참봉 성권네밖에, 이런 흉년에 뭉텅이 돈을 던져 사람을 살 이는 이 고을에 있는 성싶지 않았다. 그래도 박성균이는 박참봉이 종은 무슨 얼어 빠질 종을 또 살 게냐고 가보지도 말라고 하였으나 결국은 그 집에서 맡아 버리기로 작정이 되었다. 박참봉네 집에는 벌써 나이 찬 종이, 한 집에 하나씩 있어서 별반 새로운 손이 필요치는 않았으나 한편으론 헐값으로 살 수 있는 것이고, 또 한편으로 심술궂은 박리균네가 뒤에 있다는 것을 알고 부쩍 쌍네를 데려다 두기로 채비했다. 그때 몸값이 이백 냥, 아무리 흉년이기로니 삼백 냥은 내라고 졸라 보았으나, 이제 겨우 아홉 살 난 것을 이백 냥에 싫거든 그만두라는 판에, 그만 하는 수 없이 그 값에 흥정이 된 것이다.
아버지는 작은놈을 둘러업고, 짐과 큰아이를 나귀에 싣고서 방선문 밖으로 내키지 않는 길을 떠났고, 쌍네는 그날부터 박참봉네 집에 매인 재산이 되었다.
그때 서른 살이 겨우 넘은 젊은 박참봉의 아낙은, 쌍네가 울고 앉았는 것을 처음은 위로하며 달래다가, 그 다음은 도고하게 음성을 가다듬어 훈계의 말을 한 뒤에, 박참봉은 나릿님, 자기는 마님, 아이들은 도련님이라고 부를 것을 가르치고, 나이 찬 종은 연세에 따라 형 또는 오마니라 부르라고 일러 주었다.
‘네 나이 아즉 열이 안 된 어린아이니 대소범절을 가르쳐 주거니와, 첫째는 순종, 둘째는 공경, 셋째는 저 맡은 일을 감당할 거, 이걸 잊지 말고 행실머리를 바로 가져야’ 옳다고 다시 당부하였다. 그 다음부터는 쌍네는 마음대로 울지도 못하는 신세로 되었다. 서각이나 자리 속에서 간혹 눈물을 흘리다가도 누구의 인기척이 나면, 불시에 눈물을 털고 일어서서 그린 듯이 낯색을 고쳤다.
두칠이가 절게로 오게 된 것은 쌍네가 와서 삼 년이 지난 뒤, 그러므로 지금부터 만 십 년 전의 일이 된다. 그때에 두칠이는 스물한 살의 나이 찬 총각이었다.
박참봉의 장인 되는 갱고지 전주 최씨네 작인으로 있는 김바우의 셋째 아들로 세상에 났으나, 형제가 많고 집이 가난하여 나이 차도록 장가도 들지 못하고, 거듭하는 흉작과 살림에 쪼들려서, 드디어 두칠이는 절게살이를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어엿한 부역 병모가 있고, 형제 동기가 수두룩한 몸으로, 절게살이를 떠난다는 것은 장본인으로서도 섭섭한 일이었으나, 돌이켜 생각하면 이 밖에 성가할 뾰족한 딴 수가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제 하나가 희생이 되지 않으면 그해 농사는커녕, 열 넘는 가족이 금시에 굶어 뻐드러져야 할 궁박한 형편이었다. 그래서 김바우는 최초시를 찾아가서 사연을 아뢰고 박참봉 댁에 절게를 살게 해줍시사고 간청을 대었다.
박참봉은 작금 이삼 년 동안 계속되는 흉작과 역병에 농토를 던지는 자가 부쩍 늘어서, 그 동안 한달갈이를 넘게 헐값으로 사둔 것이 있었으나, 작인의 이동이 심하고 맞차운 작인을 만나기도 힘들고 귀찮아서, 어디 절게를 몇 더 늘려서 금년부터는 자농이라도 해보려던 참인데, 두칠이 같은 장정이 제 발로 기어 들어오겠다는 것은 마침 십상이긴 하였으나,
“거 원, 장인영감이 그렇도록 부탁한 게니 두어 보기는 하겠네마는, 지금 있는 손두 남아돌아 걱정인데, 알다시피 곡가는 비싸고…….”
이렇게 한번 척 늘어져 본 뒤에, 담배를 떵떵 떨면서, 무릎을 꿇고 겁신겁신 절을 하고 있는 바우와 두칠이를, 먼발로 보는 둥 마는 둥,
“아무려나, 자농을 얼마 해서라도, 어데 내 집에 찾아 들어온 사람을 몰아낼 도리야 서는가. 하니 그 폭을 요량해서, 일일랑 부지런히 해준다믄, 뒷날이라도 해롭진 않을 테야. 농가에서 한참 곤궁할 대목이니 좁쌀이나 두어 섬 가져다가 쓰려는가.”
하고 뒷마무리를 해버렸다.
이리하여 조 두 섬을 미리 받아다 먹고, 그해 일 년은 그대로 살아 주게 마련이 되어 버린 것이다.
다음해부터는 돈 서른 냥씩을 받기로 되었다. 이 밖에 그가 박참봉 댁에서 받는 것이란 세 때의 끼니와, 두루마기 없는 겨우살이 한 벌, 이른 봄에 푸중의적삼, 단오 대목해서 희중의적삼, 여름에 베등지게, 가을에 솜바지저고리--―-이렇게 옷가지나 얻어 입고 발에 두르는 감발 두 감에, 머리에 동여맬 수건 세 채가 고작인 것이다.
이럭저럭 삼 년을 살아 보았으나 별 싹수가 보이지도 않았고, 스물두세 살의 한창인 시절을 남의 일로 허송하는 것도 생각해 보면 헤먹기 짝이 없어, 절게살이를 그만두고 갱고지로 돌아가서 농사를 도울까고도 생각해 보았고, 그의 본집에서는 그렇게 하기를 은근히 권해 보았으나 막상 사 년이 접어드는 봄이 오니 두칠이는 박참봉의 컴컴한 절게방을 떠나려 들지 않았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절게살이를 계속하면서 소처럼 되게 일만 하였다. 그에게는 미상불 딴 궁리가 없지 않진 못했던 것이다. 열여섯을 맞아 지금 한참 피어나려는 쌍네, 그를 은근히 두칠이는 탐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쌍네는 비록 비천한 몸이기는 하나, 피어나는 처녀의 마음이라, 두칠이 따위를 안중에 둘 리가 없다. 그와 나이 동갑세인 도련님으로 형준이가 있고, 그보다는 삼 년씩 아래지만 형선이와 형걸이가 있다. 종 된 몸으로 어디다 뫼를 쓰고 도련님께 마음일망정 두어 보랴마는, 뚱그렇게 맑은 그의 두 눈은 싫도록 그들을 보아 온 터이다. 이들을 익히 보아 온 처녀의 눈이, 여드름이 툭툭 튀어 올라 벌겋게 관 상판때기와, 어느 윤동짓달에 빗어라도 보았던가 싶은, 마구 땋은 머리채를 빙빙 둘러 꾹 찌르고, 무명수건을 휭휭 둘러 감아 놓은 저, 어수선한 머리빡과 때와 땀에 전 무명옷 주제에 마음이 끌린다든가 쏠린다든가 할 리는 만무한 일이었다.
어렸을 때는 하루 세 때 제법 밥상이라도 날라다 주던 것이, 나이 차면서는 면바로 그의 얼굴을 쳐들지도 않으려 들고, 밥상 같은 건 나 많은 종에게 내맡기고 두칠이의 옆에 가까이 오는 것조차 모피하였다.
그러나 쌍네는 자꾸만 커갔다. 열여덟으로 접어드니 고된 노동과 하찮은 의식(衣食)에 눌려서도, 꽃은 제 시절을 잊어버리진 않는다. 얼굴을 덮었던 솜털은 새하얀 살결에 몰려서 떨어져 벗어지고, 볼편에는 불그레한 살이 도동하니 올랐다. 쩍지는 일었을망정 입술의 색깔은 유난히 붉어지면서, 가슴은 적삼 속에서 눈에 띄게 부풀어 올랐다. 치마 밑으로 궁둥이의 뼈가, 탄력 있는 근육에 흡신하니 둘러싸였다. 인제는 누구의 눈에도 나이 찬 색시의 것으로서, 부끄러움 없을 발육을 보인 여자의 육체였다.
두칠이의, 자라나서 몸에 겨운 성욕은 마침 스물일곱의 무서운 고개를 넘고 있었다. 어느 으슥한 여름날 저녁, 두벌 기음을 늦게까지 조밭에서 매고 온 두칠이는, 제 방에서 저녁상을 받았다. 그날따라 나 많은 종은 심부름을 가고 밥상을 들고 온 것은 쌍네였다.
굵은 맹패치마로 아랫도리를 두르고, 말라 올라붙은 베등지게가 하이얀 살을 그대로 내놓았다. 밥상을 그의 앞에 놓으려 할 제, 상에는 통히 정신이 없는 두칠이는 눈으로는 푹 수그린 쌍네의 가리마를, 그리고 두 손으론, 상 언저리를 잡은 쌍네의 활짝 걷어붙인 두 팔을 덥석 붙들었다. 상은 그런대로 방바닥 위에 고이 놓였으나, 벌떡 일어서는 두칠이의 무릎이 갓짠지 냉국을 밀어 엎었다. 성난 짐승처럼 두 팔이 쌍네의 웃통을 낚아채려 들 때, 쌍네는 발로 문턱을 벗디디고, 찰거머리 같은 사나이의 손을 털어 버리려 든다. 냉국물이 쏟아져서 발등을 적시고, 이어서 잎숟가락이 그릇에 부딪쳐서 왱가당거리며 소리를 내었으나, 두칠이의 귀에는 들릴 염도 안 했다. 무서운 힘으로, 버둥거리는 쌍네의 몸을 방안으로 끌어들이려고 하는데 인기척이 났다. 잡았던 손을 놓는 바람에 쌍네는 토방에 뒤로 나가자빠지고, 두칠이는 십 리 길이나 뛴 것처럼 숨을 헐떡이며 컴컴한 방안에 넘어져 버렸다.
“아니 쌍네가 왜 이러니.”
하는 나직한 목소리가 늙은 종의 말소린 것이 분명할 때에, 두칠이는 다소 안심하였다. 이러한 사연의 내용을 알아차리고 뜰 안에서도 아무 말이 없다. 쌍네는 늙은 종의 옆에서 어깨춤을 훌쩍훌쩍 추면서 어청어청 부엌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이 일이 있은 다음부터는 누구의 눈에도 띄리만큼, 두칠이의 앞에 나서기를 쌍네는 꺼렸다. 한번 그가 밀마당질을 하려 두서넛 일꾼과 방선문께를 갔는데, 쌍네더러 점심밥 광주리를 여다 주라니까, 그는 상전마님의 명령인데도 불구하고 한참이나 부엌에서 주춤거렸다. 쌍네를 가엾어하는 늙은 종이, 제가 간다고 나서는 바람에 별일은 없었으나, 박참봉의 아낙은 그때부터 두칠이를 꺼려하는 쌍네의 태도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박참봉은, 두칠이가 고된 일에 불평도 없이, 육칠 년 동안이란 긴 세월을 소처럼 근직하게 일해 내려온 것이, 자라나는 쌍네에게 맘을 둔 탓이라고 넘겨짚어 오는 데가 퍽이나 오래였다. 그러므로 마누라 최씨가,
“두칠이란 놈이 쌍네보고 무슨 장난을 쳤는지, 밭에 점심도 안 가지고 갈랍네다레.”
하고 알려 바칠 때, 입에 물었던 담뱃대를 빼물고,
“두칠이 나이 얼마 안 해 삼십이 아닌가.”
하고 대답했을 뿐이었다. 다시 입에 담뱃대를 물고, 뻐금뻐금 연기를 내뿜는 박참봉의 옆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의 마누라는 지금 말로는 안 하지만 속으론 영감이 ‘참 그러고 보니 쌍네가 오래지 않어 스물이 되는구만’ 하고 어쩌면 새삼스럽게 활짝 피는 쌍네의 팡파짐한 궁둥이께를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를 게라고 선뜻 생각해 보고 얼굴이 좀 붉어졌다. 그러나 마누라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안방으로 물러가 버렸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작은 사건이 마누라의 눈에 띄었다. 맏아들 형준이가 삭명 경주 김씨의 집으로 장가를 들던 날, 쌍네가 아침밥도 안 먹었고, 밤이 이슥해선 뒤뜰 안 벌통 앞에서 시름없이 는지 한숨을 짚는지 멍해 앉았더라는 게다.
형준이가 장가를 들자 곧 색시를 데려왔으니 부부간 의가 나쁜 처지도 아닌 바엔, 쌍네가 아무리 공연한 생각을 품어 보았자 이러니저러니 말썽이 일어날 리도 없었으나 한 해를 넘어 열아홉이 된 몸짓을, 가만히 눈붙여 보매 쌍네의 얼굴이 점점 남의 눈에 띌 만큼 아름다워지는 것이 사사모사로 일을 저지를 위험성이 없지도 않았다.
맏아들은 그대로 아무 일 없다 쳐도, 장차 형선이와 형걸이가 장성해 가고, 또 한편으론 돈 모으는 재미에 작은댁 이외에는 딴 염을 못내었던 영감도, 아니할 말로, 이제부터는 어떻게 몸을 가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이 뻗치니 한시라도 빨리 묘방을 써야 될 것처럼, 그리고 꼭 아들이나 영감이 그런 잘못된 골로 빠지고야 말 것처럼, 갑작스레 생각이 들고 말았다. 그래서 두루두루 혼자 궁리한 끝에 얻은 것이 한 가지 지혜였다.
그런 어떤 날 오라비 되는 최관술이가 사랑에 온 것을 조용히 안방으로 불러들였다. 관술이는 그때 동학인가 뭔가를 믿기 시작한다고 처음 서울 출입을 하기 비롯할 무렵인데, 매부 되는 박참봉에게 개화사상과 동학을 깨우쳐 드린다고 자주 사랑에 발길을 하던 때이다.
“두칠이를 우리집 쌍네에게 장가들이는 게 어떨까 해서 의논하는 말인데, 주사는 어떻게 생각이 감마.”
하고 누이가 물으니, 삭발하고 개화경을 낀 관술이는, 그때는 아직 갓을 쓰고 다녔는데, 한번 버릇처럼 갓끈과 수염을 만져 보고는,
“개화사상은 서학이나 동학이나를 물론하고 모두 비복을 해방하라는 주장이올시다. 그러니 쌍네가 낳는 계집 자식을 일후에 다시 종으로 잡아 둘 생각만 없으시다면야, 물론 그렇게 하시는 게 지당한 일이올시다. 그런데 원 형님이 들으실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공손히 누이에게 말한다.
“거야 임자 형님도, 두칠이가 쌍네에게 맘을 두고, 고된 일도 아무말 없이 십 년 가까운 세월을 이 집이서 지내 온 걸 알고 계시니까.”
이렇게 말하기는 하였으나 관술이 누이 최씨는 속으론 물론,
‘영감이야 반대하든 말든, 어서 두칠이와 쌍네를 부부를 만들어 줘야 모든 일이 안심이 된다. 만약에 이 말에 반대를 놓을 지경이면, 그 이면이 아무튼 구린 게 분명하니, 무슨 이유를 붙여서라도 뜻대로 작정을 지어야만 할 게다. 가령 마지막에는 쌍네가 형준이에게 맘을 두었던 게 이러저러한 걸로 보아 틀림없는 일이니, 지금은 장가들어 얼마 되지도 않으니 딴맘을 먹을 새도 없을 게로되, 계집의 맘이란 꼭 두부 모를 뜨게 하는 고양이의 도굿과 같아서, 이대로 내버려두었다가는 집안에 백 년의 화를 남길는지도 모를 게라든가, 쌍네의 생김새가 계집애로서 영악하고도 간사스러워, 종차론 형선이와 형걸이에게도 어떤 한갓 되지 않은 행실머리질을 할 염려도 없지 않아 있다든가―어떻든 간에 영감이 깨우쳐 알도록은 있는 말 없는 말을 다 해서라도, 이 일만은 작정을 보아 둬야 한다.’
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도록 주밀스레 갈피갈피 생각하고 궁리해 둔 걸 채 털어놓기도 전에, 박참봉은 마누라 최씨의 의견을 그대로 단마디에 좇아 외려 마음이 께름칙했다. 요렇게 반갑게 대답이 나올 리도 만무하고, 다굿통이 센 영감이 많은 돈을 먹여서 사놓은 재산을, 이렇게 대수롭잖이 놓아 줄 이치가 없는데, 혹은 속으로 무슨 딴속을 차려 볼 생각이 있지는 않은가. 두루두루 되새겨 보아도 그럴 법한 생각이 도무지 머리에 떠오르질 않는다.
“개화문명이 모두 그렇다고 하니 시세에도 좇을 겸, 아니할 말로 아이들도 나이 차서 장성해 가는데, 종차로 무슨 실수를 저질러 놓을는지도 염려가 되고요, 이모저모 그렇게 하는 것이 십상일 것 같애서 권해 본 말씀이웨다으레.”
하고 최씨는 다시 한번 다져 놓은 뒤에 뒷일을 자상하게 상론해 두었다.
박참봉 내외의 생각이 일치하고도 또 얼마를 그대로 지낸 뒤에, 하루는 두칠이가 노는 날을 택하여, 박참봉은 사랑으로 그를 불러다 앉히고,
“네 나이 내년이면 스물아홉이니 오래잖아 삼십이야. 네가 내 집이 온 지도 팔 년이 됐으니 인제는 성가를 할 나이 아닌가. 너는 잊었는지 모르지만, 내가 너보고 처음 해둔 말도 있지 안한가, 일만 부지런히 할 지경이면 뒷날 결단코 해롭겐 안 할 테라고. 그래 어떤가, 네 맘만 내킨다고 보면 쌍네도 이왕 나이 차랐으니.”
여기서 좀 말을 끊고 두칠이의 낯짝을 바라보니, 그의 얼굴엔 기쁜 표정이 가득하였으나 그 커다란 입을 벌신하니 웃어 보이며,
“나릿님 처분에 다시 이를 말씀이 있습너니까.”
하고 굽신 머리를 굽혀 절을 할 뿐이다. 두칠이의 얼굴에 떠오르는 감출 수 없는 즐거움을 넌지시 바라보고,
“네 처 될 년으로 말할 지경이면, 아홉 살에 제 애비가 원산으로 가면서 내게다 맽긴 것인데 그때 한참 바른 돈에 적지 않은 금액을 지애비 손에 들려 주었더란 말일세. 그러고 보니 오늘날 그 이자를 따진다고 들어도 수천금에 이를 것이야. 하나, 내가 너에게 그렇게 야박수레 굴 생각은 없어 (이 대목에서 약간 긴장했던 두칠이의 얼굴에 안심의 빛이 돌며, 또 한번 굽신 허리를 굽히고 두 손을 무릎 위에서 맞부비어 본다.) 또 하나 너에게 말해 둘 건, 년에게서 나오는 소생이 만약 딸자식이고 볼 지경이면, 고것이 고대로 내 집에 메우는 것이 되는 건 여태껏 내려오는 관습이로되, 내 생각하는 바가 따로 있어, 종차론 그런 풍속을 없이 할 생각이니, 아들을 낳건 딸을 낳건 그건 너희들 맘대로 기르란 말이세. 금년은 이대로 지내고 내년 추수나 치른 뒤에 머리나 올려 주고, 물역 쪽 막간을 맡아서 살아 보게나 그래.”
이 말이 끝난 다음 두칠이는 코가 땅바닥에 닿도록 절을 하고 제방으로 물러 나왔다. 절게로부터 막서리로 되는 것이 기쁜 게 아니다. 인제 누가 뭐래도 그 탐스런 쌍네가 제 것이 될 테니 그것이 기쁜 것이다.
그러나 그 이튿날 쉬 저녁때쯤 해서 사랑에서 물러 나온 쌍네는, 두칠이와는 반대로 두 눈에 눈물이 어리어서 그대로 서각으로 뛰어갔다. 아무도 없는 재통에서 그는 한참 동안을 울어 보았다. 울어 보니 무슨 소용이랴. 좋건 글렀건 내년 가을이면 그는 두칠이의 아내가 되고 마는 것이다. 먼 데로 도망을 가거나, 목숨을 끊어 강에 던지거나, 비상을 먹고 살을 썩이든가 해버리기 전에는 울어 보나 버둥거려 보나, 그는 두칠이의 아내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뜻에 합당한 남편이라면 종신을 종으로 지낸다고서 무슨 원한이 남으랴, 그 남편이 절게면 어떻고, 생기는 딸자식이 대를 이어 종살이를 한단들 무슨 유한이 있을 거냐―더구나 종간나보다 막서리의 처가 얼마나 훌륭한 지윈지, 절게보다 막서리가 얼마나 월등한 지벌인지, 쌍네에게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막서리가 된다 해도 하는 일, 당하는 일은 매한가지가 아닐 거냐, 그럴 바엔 마음에나 내키는 사나이와 한세상 살아 보고 싶은 것만이 단 한 가지의 소원이었다. 마음에 내키는 사나이 아니면 안 된다고 작정한 사나이라도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저 두칠이에게만은, 징그럽고 구질구질하여 마음이 도무지 끌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신세타령을 한다고 든다면, 아예 당초에 그의 아버지가 그를 종으로 팔았을 때부터, 일은 이렇게 되기로 마련이 된 것이 아니냐. 지금 이 지경이 되어서 이러니저러니 조밥이다 쌀밥이다 하고 가리려 드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쌍네는 그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박참봉이 하는 말에 푹 머리를 수그린 채 아무 대꾸도 못 하고 사랑을 물러 나온 것이다.
일은 작정한 대로 가혹하게 실행이 된다. 그리하여 그 이듬해 가을에는, 쌍네는 두칠이의 아내가 되어, 박참봉네 큰집 물역 쪽으로 있는 막간방에서, 두칠이의 오랫동안 막혀 쌓였던 정욕의 가엾은 대상이 되어 버렸다.
우렷한 달빛이 창에 훤하다. 두칠이 처 쌍네는 비류강 쪽으로 향한 막간방에 혼자 자리도 안 깔고 번듯이 누워 있다.
그는 두뭇골 댁에 설기떡을 갖다 두고 오던 길에, 형걸이를 길 위에서 만나 뜻하지 않았던 변을 당하고, 한참 동안은 흐르는 눈물을 씻지도 않고 그대로 종종걸음쳐서 행길로 나왔다. 물역 쪽으로 난 뒷대문으로 돌아서 저희 방을 옆으로 보며, 그는 안뜰을 지나 부엌으로 들어왔다.
“어떻게 이리 늦었느냐”는 말에, 두뭇골서 베 도투마리 감는 걸 잠깐 도와 주고 온 탓이라고 거짓말을 할 만치, 그때에는 벌써 가라앉은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방안에서 그 말을 듣던 최씨는,
“심부럼 간 사람을 잡아 놓구 일을 시키문 어쩌자는 겐가.”
하고 혼자 두뭇골 작은댁을 나무라고 있었다. 말이나 노새나 당나귀나 소의 여물들은 어찌 됐는가고 물었더니, 늙은 종이 전부 갖다 주었다고 한다. 그래 쌍네는, 떡 한 그릇과 두칠이가 오거든 주라고 밥과 오가리 찌개와 김치를 함지에 얻어 이고, 제 방으로 돌아왔다. 좁은 부엌에 함지째 놓아 두고 그는 그대로 방안에 들어왔다. 저녁 생각이고 뭐고 도무지 배가 고픈 것 같지가 않다. 가슴이 금시에 울렁거리다가도 얼마 전에 길 위에서 당한 일이 꿈은 아니었던가, 내가 미쳐서 어느 귀신에게 홀렸던 거나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면, 영락없이 그리 된 일임에 틀림없는 것도 같아서, 가슴은 철썩 물러앉고 낯에서 피가 쭉 밑으로 흘러 버려서 가벼운 현기증조차 느껴지는 것이다. 사실 꿈에도 당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그와 동갑 되는 맏도련님 형준이가 삭명으로 장가를 드는 날 밥도 안 먹고 밤에는 뒤뜰에 있는 벌통 앞에서 한숨을 짚었다는 것이, 그 뒤 늙은 종이나 작인의 마누라들간에 한갓 되지도 않은 주둥아리의 군입심감이 되었다고 하나, 그거라고 별로 도련님에게 마음이 달떴던 때문도 아니었다. 다른 집 따라 없이 열여덟이 되도록 도련님들의 혼사를 지내지 않는 이 댁 풍속이, 남들은 이러니저러니 시비질을 하지만, 어느 겨를에 시집이고 뭐이고 가마 탈 세월이 올 것 같지도 않은 쌍네에게는, 상전의 도련님이 아직 장가갈 염도 안 하는데, 하여 적지 않이 위안이 되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 위안조차 형준이의 혼사로 인해 부서지고 말았으니, 그러잖아도 마음이 산란스러워 참을 수 없는 낫세에, 한숨이나 눈물이 나와 솟구쳐 오르지 않을 리 만무였다. 대체, 저를 이 고장에다 내버려두고 원산 쪽으로 살 길을 찾아 길을 떠나간 지가 십 년이 되었건만, 생사의 소식조차 전하지 않는 아버지와 어린 동생들은,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죽어 뻐드러져 흙이 되어 버렸는지, 귀신이 되어 어느 허공에 실 끊어진 종이연 모양으로 너풀거리고 있는지, 궁금하다기보다 그립고, 그립다기보다 안타깝고, 안타깝다고 가슴을 부여뜯을 땐, 우선 눈물이 낯을 적셔 버린 뒤이었다. 나를 어쩌라고 이 구덩이에 몰아넣고―이렇게 원한까지가 뒤섞이면 이런 세상 한평생 살아가느니 오히려 목숨을 끊어 자결을 해버림만 같지 못하다는 욕된 생각까지 들게 되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을 겨우 진정하고 마음을 수습하노라니, 아침밥도 굶었던 것이요, 밤이 으슥해선 뒤뜰 안에 혼자 앉아 시름없는 세월도 보냈던 것이다. 도련님의 품에 안긴 꿈이라니, 어느 하늘에 머리를 솟구고 무엄하게도 입 밖엔들 낼 수 있을 것이냐. 그렇던 그것이 얼마 전에 꿈도 아닌 생시에, 도련님 중에서도 가장 미츳하고 깨끗한 두뭇골 도련님과, 어엿하니 길 위에서 벌어졌다니, 귀신에 홀렸다는 생각을 가짐도 과시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하여도 꿈은 아니었다. 눈을 바로 뜨고 창문을 바라본다. 창살 구멍이 저렇게 똑똑히 보이고, 그 틈으로 하늘 중천에 한 모가 이지러진 보름 가까운 달이, 물 같은 달빛을 뿌리고 있는 것이 저렇도록 분명히 보이는데, 귀신에 홀렸다는 건 더구나 안 될 말이다. 혀를 내어 입술을 빨아 본다. 아직도 쌍긋한 두뭇골 도련님의 침맛이 남아 있다. 불보다 더 따가운 도련님의 입술이, 볼때기와 인등께를 미칠 듯이 돌아가다, 겨우 제 입술을 찾았을 때에 느꼈던 감격이, 아직도 이 몸에 남아 있다. 꿈은 결코 아니었다. ‘달이 넘어갈 때’ 하는 도련님의 더운 입김과 함께 배앝은 말이 생각힌다. 그는 불현듯이 물역 쪽으로 통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대문에 이르기 전 저만큼에, 나지막한 가시울타리가 있고 작은 문이 달려 있다. 필시 도련님이 오신다면, 물역 쪽으로 돌아서 뽕밭 머리를 지나 이 울타리 문으로 들어올 게다. 아직 두칠이가 나무를 싣고 돌아오지 않았으므로 바깥 큰대문이 열려 있으나 그 문을 지나자면 사랑 마당과 외양간을 지나고 서각 뒷목을 돌아와야 이곳에 이를 것이니, 남몰래 이 방을 밖에서 찾아들자면 물역 쪽, 이 울타리께로 오는 것이 가장 곧바르고 틀림이 없다. 안으로 통하는 외짝문이 있으나, 그것은 다시 부엌을 넘어서야 바깥 뜰 안으로 통할 수 있다.
그는 버선발로 뛰어나가 걸렸던 울타리 문을, 밖에서 밀면 수이 열릴 수 있도록 빗장을 뽑아 놓았다. 달을 쳐다보니 십이봉 위에 아직도 두 발만큼이나 떨어져 걸려 있다. 저놈이 진 때라면, 두칠이가 올 때일 텐데, 하고 무심코 생각하고 나니 자기가 과연 도련님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방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고 아랫목에 아무것도 깔지 않은 채, 번듯이 드러누웠다. 두칠이 생각이 난다. 그가 매일처럼 고된 몸도 돌아보지 않고, 달게 구는 것이 그렇도록이나 싫던 쌍네로서, 도련님을 맞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이왕부터 마련되어 있어서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비천한 몸이기로니, 그리고 두칠에 대한 애정은 있거나 없거나, 자기는 남의 아내 된 몸이 아니냐. 생각을 돌이켜보면, 생뚱한 총각에게, 입술을 뺏기고 품에 안겼던 것만 해도 죄스럽고 원통한 일인데, 그는 제 스스로 남편 아닌 딴 사나이가 찾아들라고 문을 열어 주고 있지는 아니한가.
그러나 그는 다시 일어나서 문을 걸러 나가려곤 하지 않았다. 길 도중에서 남편인 두칠이가 무슨 이변이라도 만나서 새벽녘에나 돌아오면, 아니 그대로 삼밭 농막에서 밤을 새고 동녘이 훤히 터서야 돌아오면은―이렇게 그의 마음 한 귀퉁이에선 은근한 기원을 올리고 있는 것이 사실인 것이다. 그는 부질없고, 거추장스럽고, 찌껍찌근한 다른 생각은 일체 하지 않기로 기를 쓴다. 단 하나 도련님과 길 위에서 만나서 헤어지던 대목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되풀이해 보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덥벅덥벅 좁은 길을 양푼을 들고 걸어오던 것과, 길 가운데서 불쑥 허연 것이 솟아오를 때 기겁을 하여 놀랐던 것과, 그것이 뜻하지 아니한 두뭇골 도련님인 데 또 한번 가슴이 놀라고 거진 소리를 지르려다 그 다음은 어쩐지 몹시 부끄러운 생각이 들던 것과―여기까지는 대충대충 빨리 생각을 채치고, 도련님이 그에게 존대의 말을 엉겁결에 건네던 고비에서부터는, 될수록 느리게 발걸음을 쓸데없는 곳에서 마실을 시키면서 끌어 오다가, 입을 맞춘 뒤에 몸을 뽑아, 달이 구름장을 지나가는 우렷한 길 위를, 종종걸음을 치며 까닭 모를 눈물을 흘리던 고팽이까지를 그는 양껏 향락해 보는 것이다. 이것을 되풀이하여 싫증이 나기 전에 도련님의 발자취 소리가 뽕밭 머리에서 들려 오기만 한다면, 그 뒤에는 두칠이 따위가 소를 몰고 돌아오든 말든, 아무 계관이 없을 게라고까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는 여태껏 무수하니 두칠이와 잠자리를 같이하였고, 머리 올린 지 반 년 만에 유산까지를 치른 경험이 있지만서도 이렇게 도련님의 애무를 상상해 보고 있을 때엔, 마치 아무개에게도 몸을 허락한 적이 없고, 고이고이 싸두어서 누구 하나 손끝도 얼씬 못 한 처녀인 것처럼 자기가 생각되는 것이다. 사실 길을 막고 물어볼 말로, 시집이라고 든 지 달로 쳐서 일 년 하고도 반년 동안, 한 번인들 이러한 감격에 몸을 맡겨 본 적이 있었던가 싶었다.
두 손을 들어서 가슴을 눌러 본다. 제 가슴을 제 팔로 꽉 껴안아도 본다. 그러나 엉겁결에 한 손에 양푼을 든 채 도련님께 껴안겼을 때와 같은, 벅차고도 울렁거리던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좀처럼 솟아나지는 않는다. 그는 푸 한숨을 짚고 몸을 뒤챈다.
어느 동안에 창문 있는 쪽이 어둑어둑해져 갔다. 울렁거리는 가슴을 가누지 못하며 창을 바라보니, 달이 산봉우리 뒤로 거지반 떨어져 간다. 그는 두 팔로 낯을 꽉 가리고, 이 일을 어찌할까냐고 고함을 지를 듯 안타까워한다. 그것은 달이 떨어지니 인젠 곧 도련님이 올 게라는 두려움 섞인 심리의 발작인지, 넘어가는 달을 잡아 두고 싶은 간지러운 희망의 표시인지, 그로서도 도무지 종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뿔싸, 사랑 쪽으로 난 큰대문이 활짝 열리는 소리가 나며, 확실히 두칠이의 말소리로 이라 쩌쩌 하는 소 모는 소리, 큰 나무 바리가 대문 문설주에 싹 하고 대이는 소리조차 똑똑히 들린다.
두칠이가 왔다. 도련님은 아니 오고 두칠이가 왔다―이 생각이 그의 머리에 뚜렷하니 새겨질 때 쌍네는 머리에서 손을 떼며, 꿈에서 깬 듯 ‘잘됐다’ 하고 가느다란 한숨을 짚었다. 두칠이는 오락가락 육십 리 길을 소를 몰며 다녀오고도, 아무런 불평 없이 사랑 마당에서 나무만 부리고 있다.
쌍네는 가만히 일어나서 컴컴한 방 가운데 잠시 서보았다. 뗑해진 머리를 두 손으로 부둥켜 들고 또 한 번,
“이르게 오길 잘했다.”
하고 소리가 나도록 중얼대어 보았다.
7
한 달 전에 부임해 온 문우성(文宇誠) 선생에게서 산술을 배우고 나면, 고등과 일학년의 오늘 학과는 그것으로 마지막이 된다. 그러나 매일처럼 하학한 뒤에 한 번씩 전교 생도가 정영근 교사의 지휘로 시행하는, 대운동회 목표의 연합체조 연습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래서 형걸이는 책보를 끼고 이십 명 가까운 학도들과 교실을 나와서 곧 운동장으로 내려간다. 고등과 일학년 학도 중에는 머리를 안 깎은 총각 학도는 대여섯 되었으나, 상투를 틀고 초립을 쓴 학도는 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윗학년으로 올라가면 나이 찬 새서방이 많아서, 이들은 관을 썼거나 또는 초립이나 갓을 썼다.
학교에서는 머리채를 땋아 늘어뜨린 총각은 물론, 이렇게 상투를 튼 장성한 학도들에 대하여, 벌써부터 삭발을 장려해 왔고, 더구나 대운동회까지는 될수록 전교 학도가 모두 머리를 깎아야 한다고 훈계할 때마다 주의해 내려왔는데 아직까지도 머리를 그대로 둔 자가 상당히 많았다. 이들은 연합체조에 참가하기를 꺼렸다. 사실 이들 중에는 고을서 몇십 리씩 떨어져 있는 시골서 상당한 한문 공부를 치른 삼십 가까운 청년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공부를 끝내면 연합체조를 피하여 그대로 교실에 남아 버리든가, 날씨가 좋은 날은 산으로 가든가 해버리는 수가 많았다.
정교사는 이러한 학도들의 태도를 가장 엄격하게 다스리기를 주장해 왔으나, 너무 심하게 취급하고 보면, 그렇지 않아도 수효가 적은 학교가 달아나 버릴 염려가 있으므로, 방임주의를 써오는 것이 학교의 정책이다.
교실에서 운동장으로 오는 길에, 손대봉이가 한 반 학도 두서넛과 삼송정 쪽에서 내려오는 것과 맞대었다. 그들은 한 시간 전에 공부를 끝마치고 산에서 시간을 기다리다가, 연합체조 연습에 참가하기 위하여 지금 운동장으로 내려오는 길이다. 형걸이를 보더니 대봉이는 두어 발자국 뜀을 뛰듯 하여 그의 옆으로 오면서,
“갈 때에 쟁고 구경 함께 가자.”
하고 형걸이의 등에 손을 얹듯 한다. 형걸네 큰집, 알기 쉽게 말하면 박참봉네 거릿집 행길 건넛집은 이칠성이네 집이다. 그가 평양서 며칠 전에 자행거(自行車)를 사왔다는 것은, 이 고을 안에 하루 동안도 안 걸려서 쫙 소문이 퍼졌다. 그래서 어제 그제, 그 집 앞에는 광대나 잔치패가 왔을 때처럼, 사람들이 꼬이고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칠성이는 박참봉네 근방에 살면서 이모저모로 그의 그늘을 입는 터이라, 자행거를 사 온 이튿날, 곧 그놈을 밀고 그 집 사랑 뜰 안으로 와서 온 가족에게 구경을 시켰다. 그때엔 형걸이도 있었고, 물론 안부인네들도 일부러 중대문을 닫아건 뒤에, 문틈으로 자행거를 놀리는 놀라운 광경을 내어다보았었다.
대봉이는 처음 칠성이네가 자행거를 사왔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그까짓 쟁고 같은 걸 뭐 별게라고들 파리떼처럼 꼬여드는가, 작년에 평양 갔을 때 자기는 그런 쟁고를 잔나비가 나뭇가지 위에 놀듯이 재주 있게 타고 노는 걸 봤는데, 칠성이쯤이야 인제 겨우 길이나 섬기나마나 할 정도일 게니, 그까짓 게 뭐 구경거리가 되느냐고 동무들께 호통을 뽑았었는데, 며칠을 지나니 먼발로만 휙 보고 온 자행거의 실물이 보고 싶고, 또 그때 평양서 보기에 반들반들하고 복잡하던, 그놈 자행거의 기곗속 된 모양을 손으로 만져 보고 싶어서, 어제오늘은 적이 안달증이 났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은근히 그의 입맛이 당기는 데가 있다. 그건 얼마 전에 평양서 얻어 온 칠성이의 마누라를 어쩌면 또 한 번 볼 수 있을는지도 모를 게라고, 그래서 그야말로 뽕도 딸 겸 님도 볼 겸이다.
그런데 듣는 말에 어제 아침부터 칠성이는 문을 닫아걸고 자행거 구경을 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은 조사하노라고 사람들이 꼬여들면, 연방안장도 두드려 보고, 또 종도 울려 보고, 발디디개를 횅횅 돌려도 보고, 흥에 겨운 때는 그놈을 타고 삐툴삐툴하면서 길 위를 한바퀴 돌아보기도 했는데, 한 사나흘 계속하니 그 다음은 이 일이 시끄러워졌다. 그는 본시 도붓돌이를, 어렸을 때는 상자나 멧산자 보따리를 지고 다니면서, 그 뒤 좀 돈푼이나 모아서는 당나귀로, 이 부근 몇 고장 장날을 빙빙 돌던 것이, 이즈음 일 년 동안 좌전으로 돌려 앉고 이어 평양 출입을 자주 하면서, 가까이는 세매끼장사라고 제법 반찬, 미역, 쌀가마니 등속을 갖다 놓았다. 제 말로는 이왕 신작로도 났으니 이놈을 타고 바삐 평양 내왕을 할 참으로 이 자행거를 사왔다는 것인데 며칠 동안 이걸로 인해 장사도 못 하고 분주히 돌아가다, 생각하니 공연한 짓 같아서, 그 다음부터는 일체 구경을 안 시키기로 한 것이다. 가령, 돈 회계를 좀 하려고 문서 책을 펴놓고 주먹구구를 하는데도 아이놈들이 와서는,
“쟁고 구경 합세다.”
부처끼리 깨가 쏟아지게 맞상을 하고, 짠지외다 고등어외다 하고 서로 입맛을 다셔 가며 저녁을 먹는데도 아이놈들이,
“쟁고 좀 봅세다으레.”
하고 해게를 먹인다. 이놈을 겪어 나가기가 시끄러워, 누구 말마따나 돈이라도 받고 구경을 시킬까 하고도 생각해 보았다가, 그대로 ‘쟁고 못쓰게 됐다’고 고장을 빙자하여 헛청간에 고이 세워 두어 버린 것이다. 그러니 대봉이의 낯이나 세력으로는 이놈의 자행거를 구경할 수가 없다. 형선이가 누구보다도 십상 일등이겠으나 그와는 사이가 좀 좋질 않고, 그래 아삼륙으로 친한 형걸이의 덕을 입자는 판이다.
“난두 타는 걸 보니 안즉 될 날 멀었데. 네가 평양서 잰내비 놀리듯 하는 걸 본 눈으루 본다문야, 구역이 나서 견데 배기겠나.”
이러고서 형걸이는 대봉이를 놀려먹는다.
“내가 안타까이 보고푸단 건 아닌데, 길손인가 누구 말인가를 들은 즉슨 암만 봐두 새것 같지두 않구, 꼭 남이 쓰다 낡은 것 같다대그려. 그래 그런 것두 살펴볼 겸, 또 어물어물하다 우리 그놈 좀 얻어 가지굴랑 한번 타는 걸 배와 두는 것도 십상이 아닌가.”
“누가 빌려 준다덩가. 지금 아마 제 여편네하고 둘을 놓구서, 어느 걸 빌리겠냐구 물으면 여편네를 내놓면 내놨지 쟁고는 안 될 판인데.”
그러나 형걸이 자신도 자행거를 얻어서 배우자는 말엔 귀가 으쓱했다. 말을 타고 몰아치는 맛도 장쾌한 일이거니와, 쇠로 만든 두 바퀴 달린 요놈의 기계에 난뜨럭 올라앉아, 횅횅 둘러서 제비처럼 날아다니는 맛이란 더없이 기막힐 듯싶다. 그래서 어떻게 참 대봉이 말마따나, 그 자행거를 좀 얻어 탈 묘한 방책은 없을 건가 해서 궁리를 하면서 걷고 있는데,
“그깐 놈 쟁고 싫다믄 여편네두 좋지.”
하고 대봉이는 여전히 딴 변두리에서 흥얼거리며 따라온다.
그러나 그들은 벌써 운동장 가운데 들어와 있었고, 이어서 나팔 소리가 나고, 정교사가 채찍을 들고 뛰어나오는 바람에, 학년을 따라 바삐 나란히를 해야 할 판이었다.
‘추립’ 하고 호령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가로세로 술렁술렁 뛰어가며 제자리를 찾느라고 바쁘면서도, 아직 대봉이와 형걸이는 각각 자행거와 연줄을 가진 생각에 머리를 묻고 있었다.
그러므로 ‘기척, 우로 나란히, 내렛, 번호, 우향 앞으로 갓!’을 빨랑빨랑 해치우고, 종대 사열 행진에서 횡대로 변하는 대목을 몇 번인가 되풀이하면서, 한 반 시간 동안 운동장을 빙빙 돌아 행진을 하는 것으로 오늘의 체조연습이 끝났을 때에, 그들은 인차 칠성이네 집으로 달려갔다.
대봉이는 밖에 서서 잠깐 기다리고, 형걸이만 흠없는 집이라고 덥벅덥벅 안으로 들어가며,
“칠성이네 형님 있수궤.”
하고 제법 존대를 해서 부른다.
“촌에 가구 없이요.”
하는 부인네 말소리가 나더니 이어서,
“나오셌소.”
하고 형걸이에게 인사를 한다. 안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밖에서 이렇게 섰을 게 아니라, 좀 능청맞지만 따라 들어가야 할 게라고, 대봉이도 어슬렁어슬렁 형걸이의 뒤로 대섰다. 젊은 부인네는 방문을 열고, 한 발은 문턱에 얹고 왼손으로 문설주를 쥐고 서서 형걸이와 이야기를 하려다가, 웬 한 모를 총각이 어슬렁거리고 들어서는 바람에 잠시 감추듯 하다가,
“아니, 머, 칠성이네 형이 안 계신가.”
하고 이쪽에서 묻는 바람에, 다시 얼굴을 문 밖으로 엿뵈면서,
“촌에 가시오.”
하고 또 한번 대답하곤, 이번에는 낯을 감출 염도 아니한다.
“그럼 이거 안됐네그려.”
하고 대봉이가 형걸이를 바라보면서 눈을 한번 찔끔한다.
“글쎄.”
하고 대봉이에게 대답한 뒤에, 두 총각은 안방을 향하여 일시에 벌신하니 웃었다. 이 웃음에 색시도 따라 웃을 듯하다가, 다시 무슨 일로 그러느냐고 묻는 게 인사라고 생각했는지, 뭐라고 입술을 날름거려 하는 것을 형걸이는 인차,
“아즈마니, 그런 게 아니라요.”
하고 한 발자국 안뜰로 들어선다.
“나는, 머, 우리 사랑 마당에서 쟁고 놀리는 걸 봤으니께루, 또 볼것두 없는데 저 손대봉이가, 아즈마닌 모르시는지 모르지만 이 아레 손장이네 자제 되는 이예요. 그래 저 사람이 쟁고가 첨인데 좀 구경시켜 달라구, 그래서 둘이 왔던 길이웨다으레. 그런데 형님이 없으니 머, 일은 다 틀렸지요.”
하고 뒤를 돌아다보면서,
“아무려나 자네가 신수는 나쁠세. 며칠이 되두룩 안 와 보구설랑, 똑 안 계실 때 온당께 그게 무슨 얼어붙을 운수란 말인가.”
하고 지정머릴 친 뒤에,
“그래, 머 먼 길 떠나셨나요.”
하고 이번에는 색시에게 묻는다. 형걸이가 드물게 볼 만큼 제법 주워 섬기는 게 희한하고 또 한편으로 이놈 혼자서 잘 해먹누나 하는 심술도 나는 터라, 어느새에 대봉이는 형걸이의 옆에 와서 빤히 색시의 얼굴을 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속으로,
‘자행거 열 번 타느니 이 재미가 십상이다. 이왕이면 가지런히 마루에 나라니 앉어서 이야기나 했으면…….’
이런 걸 생각하고 있는데,
“알메〔卵山〕루 아침 떠났으니 일을 보구래도 아마 내일 저녁에나 오실가 부외다. 그러나저러나 쟁고 구경이야 머 주인 없다구 못 하실 게 있겠소. 저 헛간에 딜여 세우구 보재기를 씌워 놨으니께루, 가만 계시소.”
쪼루루 부엌으로 돌아 내려가는 품이 신을 끌고 나올 모양이다. 대봉이는 형걸이를 보고 한번 혀를 날름해 보인다.
“괜찮다.”
그러나 형걸이는, 자행거를 보는 게 괜찮다는 겐지, 색시 얼굴이 괜찮다는 겐지 잘 분간하지 못했다. 오히려 형걸이는 이때에 잠깐 두칠이 처 쌍네를 연상하였다. 어차피 자행거 얻어 타기는 파이다. 자행거나 만지면서 남의 여편네와 잡소리를 흥얼거리는 것도 그다지 입맛이 당기진 않았고, 그럴 바엔 길 위에서 한번 간단한 포옹이 있은 뒤에 한 달이 넘도록, 조용한 기회나마 붙들지 못한 채 내려오는 쌍네의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싶던 것이다. 그래서 칠성이 아내가 부엌에서 나오기 전에,
“쟁고는 다 탔다. 난 간다.”
하고 나직하니 말하니,
“쟁고보담 색시가 좋다.”
하면서 대봉이는 또 한번 눈을 찔끔한다. 칠성이 처는 누런 삼신 낡은 것을, 뒤축을 질끈 눌러서 끌고, 맨발을 하얗게 벗은 채 부엌에서 뜰 안으로 나오면서,
“온, 쟁곤지 뭔지를 신주 때가리 모시듯 하니…….”
하고 콧구멍을 발름발름해 본다. 젊은 총각들에게 미상불 악의를 갖지는 않는다는 표적일 게다.
“이거 온 여러 가지루 안됐습네다.”
하고 대봉이가 가로맡아 인사를 하니, 그는 붉은 갑사댕기를 뻣드럭하니 빼어 올린, 커다란 머리를 수건도 안 쓰고 흔들거리며 아무 말 없이 헛간문을 열고 들어간다. 헛간 안에서는 소금 냄새, 미역 냄새, 반찬 비린내―이런 게 함께 엉켜서 적지 않이 코를 울려 대는데, 대봉이는 색시의 뒤에 이어 대서면서, 그의 궁둥이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뜰 가운데 남아 있던 형걸이는 빨랫줄에 걸린 여편네의 속옷다리를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다가,
“그럼 천천히 구경하구 나오게, 난 집에 가서 말을 끌구 나올게…….”
하고 혼자서 대문으로 뛰어나가니, 대봉이는,
“아, 같이 나가지 어드르나구 그러나.”
하고 황황히 서두르는 척했으나, 속으론,
‘일은 십상 잘 된다. 그놈두 눈칫밥은 안 먹구 살게 생겼는걸.’
하고 은근히 기뻐하였다. 그렇다고 대봉이가 금방 아무도 없는 이 헛간 속에서 남의 집 부인에게 어떻게 나쁜 행동이나 뭐, 그런 걸 저질러 보려는 건 아니다.
대봉이는 이무 시집간 손위의 누이와 단 두 동기간이니, 말하자면 그는 손장이의 독자다. 독자라고 귀해하기는 다른 집 자식들의 몇 배 더했으나, 그리 부자는 되지 못한 때문에 그다지 훌륭한 곳에 대봉이의 혼처를 정하지는 못했다. 밀양 박가, 그중에 박리균네가 그래도 양반이라고 그는 마방을 하는 리균이 동생 성균이의 맏딸, 지금 열아홉 나는 금네〔金女〕와 혼사를 작정하였다. 벌써 폐백도 끝나고 초여름이 오면 장가를 들 판인데, 금년 열여덟 살째 잡히는 그는 그 집에 장가드는 걸 그다지 달가워하진 않는다. 그 집이 공연한 양반 타령뿐으로 실속은 아무것도 없는 건달판인 것도 그리 반갑지 않은 조건이었으나, 그보다도 금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동네가 같으므로 몇 년 전까지도 그는 금네를 눈 익히 보아 올 수 있었다. 질쿠냉이를 잘한다는 소문과 마방인 때문인지 음식솜씨가 놀랍다는 칭송이 자자하다고 하나, 대봉이에게 그런 건 다 매력이 되진 못한다. 오히려 무명하고, 명주 짜고, 물레질하는 그런 질쿠냉이를 잘한다든가, 그런 것보다는, 언문이라도 몇 자 안다든가, 아니 통히 그런 것보다도, 얼굴이 얌전하고 살커리나 흠석하다면야 별 불만이 없을 것 같다.
금년이 열아홉이니 한창 피어나는 연세라, 이삼 년 전과는 물론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대봉이는, 그가 이 년 전에 마지막으로 박리균네 국숫집 부엌에서 금네를 본 기억이 지금껏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그때 본 바로는 바짝 말라서 살커리는 바르고, 얼굴엔 핏기 하나 없는데 웬한 여드름인가 붉지도 않은 차랍 같은 게 게적지근히 깔려 있던 것이다. 저런 걸 뭣이 얻어 가려나 하고 속으로 은근히 그의 남편 될 사람을 동정했었는데, 그 남편 될 사람이 바로 손대봉이 자기여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 중매쟁이가 왔다 갔을 때, 그는 어머니에게 ‘난 장가 안 간다’고 한번 제겨 보았으나, 그러잖아도 장가가 늦었는데 그게 무슨 수작이냐고 단댓바람에 코를 떼였다. 그때에 털어놓고, ‘두꺼비 잔등 같은 그 따위 상판때기를 한 체니는 죽어도 싫다’고 선후를 가려 자상하니 말했더라면 좋았을 걸, 그대로 장가만 안 간다고 제겨 보았으니 될 리가 없다. 어머니가 친히 선을 보고 와서 혼자말처럼 하는 말이,
“볼따구니에 살 달린 건 미욱해 못쓰는 법이니라, 목이 좀 행금하구 볼편이 가든하야, 상냥하구 영리해서 웃어룬 공경두 잘하는 법이니라. 게다가 자대는 바르구, 난하지 않구, 질쿠냉이랑 임석시세가 일등가니, 예서 더 좋은 혼처는 구할래야 없을 게다. 아무려나 대봉산 신령님의 덕을 끝끝내 입는가 부다.”
하고 마지막에는, 가을쯤 잔치를 치른 뒤, 새 곡식이 나면 양덕 대탕지 뒷산 산신령께 떡말 어치나 해가지골랑, 치성을 드리러 가야겠다고까지 말하고 앉았었다.
어떤 때는 색시가 막연히 그리워서 장가간다는 게 그리 싫지도 않았으나, 흠썩한 남의 색시나 처녀를 보면 금네를 데리고 일평생을 지낼 생각이 한심했다. 방선문께를 지날 땐, 인제는 처삼촌이 된다고, 박리균이가 눌러 논 국수에 점심을 먹고 가라고 그를 불러들이는 게 또 하나 질색이었다. 한번 마지못해 따라 들어갔더니 박참봉네 음해질과, 또 노상 외는 ‘성씨는 박귀성의 처니 성논산의 장녀라’를 되풀이하면서 집안 자랑을 해대는 것과, 안 했으면 좋을 걸 끝으론 조카딸 금네의 자랑까지 늘어놓는 데는, 아닌게아니라 학질을 뗄 뻔하였다. 그래 그 다음부터는 그 집 앞을 피해서 물역으로 다니든가, 간혹 할 수 없을 때 붙들리면, 지금 막 점심을 먹고, 술을 빼면서 오는 참이라고 거짓말을 하였다.
어떻든 금네에게 장가들기는 싫은데, 바싹 우겨서 싫다는 소리도 못 하고, 한편으론 타고난 성질로 탐스런 색시라도 보면, 진수작이라도 하면서 지정머리를 쳐보고 싶은 것이다.
지금 칠성이 처가 자행거 위에 덮었던 보자기를 잡아 젖히니, 아래 위를 한번 훑어보면서,
“그놈 참 묘하겐 생겼군.”
하고 안장을 툭툭 두드려 보고, 다시 핸들을 손끝으로 만져 본 뒤에,
“요놈이 아마 종이지요.”
하고 동글납작한 흰 쇠로 된 놈을 이리저리 바라보노라니, 색시는 기쁘드룸한 표정으로 만족하니 서 있다가, 필시 이 총각은 종을 울릴 줄 모르는 모양이라고, 가만히 바른손을 얹어 따르릉 한번 고놈을 틀어 보았다. 대봉이는 짐짓 놀라는 척하며,
“이크 이게 무슨 소리웨까. 아니, 거 참, 그 속에서 요란한 소리두 납네다. 그래 이 안장에 올라앉아, 이놈으루 길을 잡아 섬기면서, 가끔 개새끼나 사람이나를 만나면 요놈을 째르릉 하구 울려 댄단 말입지요. 허허― 참.”
그러고 나선 또 발디디개와 사슬 있는 쪽을 살펴보고, 바퀴를 손끝으로 눌러도 본다.
“아마 칠성이 형님은 잘 타지요.”
하고 색시의 얼굴을 쳐다보니,
“머, 갖에 사온 게 잘 탈 새 있나요.”
하면서 또 발신하니 웃는다.
“오늘 아침 알메루 가셨다면서 왜 쟁골 안 타구 가셨나. 오라 길이 사나우니.”
“그럼은요. 길두 사납구, 또 험한 길에 잘 타지두 못하는 어른이 실수하믄 어떡해요. 그래서 인제 평양 갈 때나 타신대요.”
여기까지 오고 보니 인젠 별로 더 할 말도 없다. 그만 잘 구경했노라고 인사의 말이나 하고 나와 버린다든가, 퇴짜 맞을 걸 각오하고 라도 한번 길에서 타보았으면 싶다구 염치없이 대들어 보든가 할밖에 없는데, 그래서 그는 또 한번 자세히 자행거를 살펴보는 척하다가,
“아즈마니 댁이 평양이시란데 어데신가요.”
하고 물어 본다.
“사창마당이에요.”
“사창마당? 오라 그럼 바루 설수당꼴 맞은쪽인가요.”
하고 들은 풍월로 대붕이가 집어 섬기니,
“아니 피양엘 갔더랬나요.”
하고 칠성이 처는 놀라는 듯하면서도 반겨하는 표정이다.
“머, 작년에 한 번 운동회 때 갔더랬시요. 그때 쟁고를 보기는 했는데.”
이 소리를 듣더니 칠성이 처는 손잔등으로 입을 가리며,
“애걔 망칙해라, 그런 걸 종을 못 친다구.”
하고 웃어 본다.
“보기나 했지 실자루 만져야 봤이야지요.”
하고 대봉이도 따라 웃는다.
“거 칠성이 형님이 여간 본때가 있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하고 이번엔 혼자말처럼 푸념을 치면서,
“피양 아즈머니 넌뜨럭 얻어 오더니, 이번엔 또 쟁골 사오구, 좌우간 이 고을선 뭐이던간, 일등이구 처음이닝께루.”
칠성이 처는 이 말엔 좀 낯이 발개지면서,
“온 벨소릴 다 합네다. 그까짓 나 같은 거나 평양서 줘다가 뭘 하겠소. 괜하니 평양물만 디려 놓지.”
“아니 왜요. 온 난두 가봤지만, 평양이라구 아즈머니보담 인물 나은 이 어데 또 있습뗑까.”
이 총각이 기어이 나를 놀리려 든다고 생각하면서도 속으론 결코 불쾌치는 않아서,
“그까짓 촌에 와서 썩기야.”
하면서 한탄조로 나온다.
한편 대봉이를 칠성이네 집에 남겨 둔 채 행길을 건너서 큰집 대문을 들어선 형걸이는, 오른손 쪽으로 보이는 사랑방 윗목에 선 고기잡이꾼 평양 영감이 그물코를 꿰매고 앉았고, 아버지는 아랫목 문갑 앞에서 커다란 주판알을 따지며 치부책을 뒤적거리고 있는 걸 보고는, 이어 중대문 앞을 지나 연자간으로 돌아가 보았다. 연자간에는 처맸던 헝겊을 눈에서 벗기고 맷돌을 끌다가 그대로 서서 마른 여물을 먹고 섰는 노새가 코를 벌심거리고 있다. 노새를 몰고 쌀을 뒤채 놓던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없다. 쌀이 멍석과 멕함지에 담긴 채로 재지풍이 앞에 버려져 있고, 키와 채 같은 게 그대로 흩어져 있는 걸로 보아, 금방까지 일을 하다가 짐승에게 마른 여물을 주고, 자기는 어디 잠깐 물을 먹으러 부엌으로 가거나, 그렇지 않으면 오줌이라도 누러 간 게 분명하였다. 쌍네가 돌아올 때까지 이곳에 섰을까, 그러나 그는 일부러 보고 싶어 찾아온 것처럼 보이는 건 싫었다. 역시 말 외양간으로 돌아가서 말을 보고 오는 길에 우연히 들른 것처럼 하는 게 자연스러울 것 같다. 그래서 발길을 돌려 외양간으로 가려는데 발자국 소리가 등뒤에서 난다. 쌍넨가 하고 돌이켜 보았더니, 열두 살 난 누이동생 보패였다.
“오라바니 왜 여기 세인.”
내심을 들킨 것 같아 좀 부끄러웠으나,
“말 오양간에 가던 길이다.”
하고 그대로 가던 길을 내처 걷는다. 외양간에는 당나귀는 없고 흰말이 혼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형걸이는 한참 그곳에 서서 말을 바라보고 있다. 이윽고 쌍네가 연자간으로 나왔는지 보패와 이야기하는 소리가 도란도란 들린다. 그는 그대로 돌아서서 연자간으로 왔다.
“당나귀는 어짼.”
하고 딱히 누구에게라고 없이 물어 본다.
“두칠이가 타구서 보항〔步行〕가서.”
하고 쌍네의 옆에 섰던 보패가 대답하니,
“어데 멀리루?”
하고 재처 물어 본다. 이렇게 물어 놓고 쌍네를 보았으나, 그는 얼굴이 발개져서 공연히 좁쌀 멍석만 뒤채고 있었다. 형걸이도 자기의 묻는 말이 품고 있는 내용에 생각이 미쳐서 잠깐 주춤하였다. 그래서 이야기를 딴 곳으로 돌릴 양으로,
“작은오래비 뭘 하던?”
하고 또 한번 물어 보았다.
“몰라, 작은형님 방에서 뭘 하는지.”
“작은형님은 뭐 하던?”
하고 이번엔 좀 탈선된 질문이긴 하나 보부를 물어 본다.
“작은형님은―”
하고 들고 섰던 빗자루로 맷돌이 지나간 뒤를 한번 쓸어 올리고,
“작은형님은 아마 성경책을 보든가, 바느질을 하든가 그러구 있겠지.”
“성경책?”
“그럼. 예수책 말이야. 찬미책 말구 또 하나 두꺼운 거 있지 않네.”
형걸이는 잠깐 덤덤히 서 있다.
“머 작은형님은 예수를 믿는다던?”
하고 좀 있다가 물으니, 보패는 비를 놓고 멍석귀로 나앉아서 쌀장난을 하면서,
“내가 한번 물어 봤더니 믿지는 않는대. 믿는 사람은 이방 사람관 혼사 안 한다는데.”
하고 제법 자즈레하니 이야기를 꺼내려 든다. 그래서 형걸이도 기독학교를 좀 다녀서 예수교 문제는 다소 알면서도, 보패의 이야기를 듣느라고 짐짓,
“이방이라니 무슨 말인가.”
하고 물어 본다.
“이방두 몰라, 예수 안 믿는 사람, 이방 사람들, 것두 몰라.”
하고 보패는 생글생글 웃는다.
“그럼 예수를 믿는 사람이드면 우리집과 혼사를 안 할 텐데 이방 사람덜끼리가 돼서 혼사를 지냈단 말이구나.”
하니 쌍네가 이 말에 처음 발신하니 웃는다.
“그래 또 맏오라바닌 뭐 하던?”
“맏오라바닌 낮잠 자구, 맏형님은 애기 젖 먹이구.”
모두 늘어진 상팔자로다 하고 형걸이는 생각했으나, 물론 말로는 내지 않았다.
“작은오래비 오눌 너보구 멜하지 않던?”
하고 또다시 물으니,
“멜하긴 뭘, 학교 댕기란 거? 아버지가 알지 누가 아나.”
그러더니 무엇을 생각했는지 홀딱 일어서서,
“그럼, 난 해지기 전에 앞집 탄실이하구 둘이 가갔다.”
하고 중대문께로 뛰어간다.
“아니 어델 간단 말이가.”
하고 뒤에서 물어도, 보패는 대답지 않고 치맛바람을 내며 뛰어만 간다. 멍석에서 멕함지에 조를 옮겨 담다가 남매끼리 주고받던 말끝을 받아서,
“산나물 뜯으러 같이 가자구 그러는 걸, 일 때문에 어데 갈 수가 있어야지요.”
하고 쌍네가 별로 형걸이에게 대답하는 말 같지 않게 끝을 우물거리고 만다. 대답해 줄 생각으로 시작은 해놓았으나, 도련님과 단둘이 있는 것을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설레던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설렁거리긴 형걸이도 매일반이었다. 달 전에 길 위에서 잠깐 동안 감격을 나눈 뒤 얼굴만은 가끔 마주볼 기회가 있었으나, 단둘이서 말을 주고받긴 이번이 처음이다.
둘은 한참 동안 이상스런 분위기를 몸과 마음에 느끼면서 덤덤히 서 있었다.
다 찧어진 쌀을 퍼다가 재지풍이에 옮기고, 새로이 조를 퍼 넘겨야 할 텐데, 도련님의 두 눈이 볼때기에 따가워서 도무지 옴짝달싹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는 멕함지에 붙듯이 쪼그리고 앉아서, 공연한 쌀만 모았다 폈다 하고 있다. 한참 만에 형걸이의 기침 소리가 난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게다 하고 귀를 기울이는데,
“보항을 어데로 갔어?”
하고 좀 떨리는 목소리다.
“한 이틀 걸리는 먼 길이래요.”
겨우 이 말을 대답했는데, 사랑 마당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형걸이는 지금 아버지와 사랑 마룻전에서 이야기를 하고 섰는 것이 손대봉인 것을 알았다.
“그럼 말궁이 있는 데 가보겠습네다.”
하는 대봉이 말소리는 쌍네도 들었다. 이 바람에 쌍네는 훌쩍 일어나서 연자매께로 가서 노새를 세우고, 이어서 비와 바가지를 들고 맷돌 뒤로 돌아갔다.
“여기서 뭘 하구 섰나.”
하고 대봉이가 싱글싱글 웃으며 형걸이의 등뒤에 선다.
“노새는 연자망질하구, 당나귀는 어데 촌에 가구, 흰말밖엔 없는데, 그래 쟁고는 어떻게 좀 얻어 탄?”
형걸이는 본정신으로 돌아와서 대봉이를 마주본다.
“쟁고, 쟁고를 타긴 어떻게 타, 말이나 끌구 방선문께 나가자. 그놈이나 좀 타보게.”
이윽고 형걸이와 대봉이는 말궁이 있는 데로 갔다. 형걸이가 외양간으로 들어가서 말을 풀어 내다 대봉이에게 꼽지를 잡히고, 자기는 안장을 꺼내다가 등허리에 얹는다. 끈을 말 배통이에 깡듯하니 추켜 매고 말꼽지를 받아 잡는데, 대봉이는 나직한 목소리로,
“얘, 밤에 칠성이네 집에 놀래 가자. 가만히 보니 칠성이 처가 적적해하길래 우리 둘이 밤에 마실간다구 했다.”
대봉이의 추근추근스럽고 붙임성스러운 데 어처구니가 없어서, 형걸이는 벌신벌신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을 뻔히 쳐다보고 있었으나 이윽고,
“난 싫다. 안 갈란다.”
하고 대답해 버린다.
“왜, 무슨 일이 생겐? 누구 오늘 밤 오라는 이래두 있던?”
이 말엔 아무 대답도 안 하고 형걸이는 흰말을 마당 가운데로 내 세웠다.
8
한가한 게 지나치면 권태로 된다. 호랑이라도 잡을 한포락에, 제가맡은 일이라고 특히 지정된 것이 없고, 긴긴 해를 집안 구석에서 빙빙 돌기란 하루 이틀은 몰라도, 그것이 몇 달이고 몇 해고 기약 없이 계속되면, 어쩔 수 없는 권태로 되어 젊은 육체를 늘어지게 휘감고 돈다.
형준이는 스물이 넘어 두 해로 접어드는 한창인 시절에 별로 할 것이 없다.
이따금씩 말을 타고 농막을 돌아보는 것과, 추수 때에 타작하는 데를 좇아서 따라 도는 것과, 평양 영감을 동무해서 가끔 고기사냥을 가는 것과, 그리고 마음이 내키면 겨울에 매사냥에 한몫 끼여 싸다니는 것, 이것이 그의 일 년 동안에 하는 전부의 일이다.
그러나 추수 때에 농막을 찾아 타곡한 것을 나누러 다닌다든지 장마 뒤에 밭을 돌아보는 것 같은 것도, 결코 그의 혼자서 맡은 전임이 아니었다. 이것을 하기 위하여 따로 사람을 두었다. 그러므로 일이 바빠서 손이 모자랄 때, 그는 마음이 내키면 말을 타고 소풍 삼아 나가 보는 것이다.
이런 것조차 제가 책임진 일이 아니고 보니, 그 밖의 집안 가도에 관계되는 일은 하나도 그의 간섭밖에 놓이지 않은 것이 없다. 해도 좋고, 안 해도 괜찮은 일, 장난삼아 심심풀이로 하는 일, 이것은 젊은 사람의 정력을 이끌어들일 만한 힘을 갖고 있진 못하다.
세간살이의 한 부분을 맡아서 해나간다든가, 땅이면 땅, 돈이면 돈, 장사면 장사, 무엇이든가 제가 어느 정도까지 자유로 조처할 수 있는 어떠한 업이 있어야 할 것인데, 박참봉은 아직 장남인 형준이에게 그것을 허락지 않았다. 자기의 그 시절을 회상하다 보면 형준이의 연세가 부족하다든가 그렇진 않을 것인데, 어딘가 아직도 앳되게 보이는 게 호락호락하고 위태위태하고, 또 한편 아들에게 일을 맡기기엔 박참봉의 연세가 너무 젊다. 지금 갓마흔, 아무리 많은 일에 몸을 잠가도 남아 돌아가는 정력과 궁리를, 유치한 아들에게 의지할 필요가 없었다.
박참봉이 스물 안짝에 가도 범절을 맡아서 치러 나가고, 다시 그만한 어린 낫세로 기울어진 살림을 부둥켜 세운 데는, 시대나, 또는 박참봉의 성격이나, 그런 것이 적지 않게 관계되었겠지만, 그의 부친 되는 박순일이가 일찍부터 집안일을 돌보지 않고, 사시장철 집을 비우고 재산의 탕진에만 정열을 써버린 탓에, 소시에 벌써 크고 작은 모든 일에 스스로 단련을 치른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형준이는 본시 성격이 박참봉 같지 않은 데다, 환경과 경우가 그의 아버지와는 판이하다. 그는 아버지가 하다가 남은 사소한 일에, 심심풀이로 손을 댄다든가 하는 외에 별 일거리가 없는데, 그것조차 밑으로 비복, 절게, 막서리가 수둑하니 있어서, 그의 할 일이란 아무것도 없어진다.
형준이가 만약 장남이 아니고, 집안을 계승할 책임이 있는 종자(宗子)가 아니라면, 농막을 한부분 갈라 받아 세간을 낸다든가, 무슨 딴 일을 시켜서 살림을 새로이 배설해 줄 도리도 있을 것인데, 처지가 그렇게 된 터라, 그는 어차피 이 집을 떠날 수는 없는 팔자였다.
그런 데다가 첫째 형준이는 돈을 자유로 쓰지 못한다. 제 몫이라고 도맡아서 들이고 내는 것이 없으니, 한 푼 돈이라도 소용될 대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타서 써야만 한다. 먹고 입는 것이 하나도 부족됨이 없고, 또 저 혼자 독립된 것이 아닌 데다가, 밖으로부터 사들여야 할 것이 거의 하나도 없는 탓으로 별반 용돈이라고 소용이 없다. 한편 술이나 딴 장난에 취미를 갖지 못한 때문에, 여태까지 돈이라고는 필요치도 않던 것이다.
그가 유족한 집 장남으로 태어나서 상당한 연세에 이르도록, 주색이나 잡기에 빠지지 않은 데는 아직 그의 아내에 대한 애정이 권태기에 들어가지 않은 것도 한 가지 이유가 되겠지만, 함께 어울릴 동무로서 맞차운 이가 없었다는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아버지가 나이 아직 사십 줄에 있는 만큼 형준이보다 조금 나이 지긋한 사람은 모두 아버지의 친구요, 그보다 조금 처져 붙으면 곧 형선이와 형걸이의 친구들이다. 그래 그와 동년갑에 맞차운 동무가 있어서, 같이 어울려 다녀야 할 것인데, 다행히 그런 작자가 아직까지 없었다. 그는 밤이 아무리 무료하고 적적하여도, 제 집 밖으로 나갈 줄을 몰랐다.
그러나 이무 색시를 얻은 지도 사오 년이 지난 뒤라, 결혼 당시의 단꿈도 식어 버리고 벌써 아들 하나 딸 하나의 어미가 된 그의 아내는, 사나이의 변함없는 정열의 대상이나 매력이나가 되기에는, 이모저모로 부족한 느낌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땐땐하던 근육이 탄력이 없어지고, 젖은 본시부터 밑으로 처져 붙어 커다란 박참외 같은 것이 아이를 둘씩 기르는 동안에 훨씬 더 모양 없이 늘어지고, 밑배와 한가지로 포동포동하고 매끈하던 젖가죽에는 살이 터서 번득번득하는 줄기가 지고 얼룩이 졌다. 눈썹과 머리카락이 유난히 엷어지고, 이들도 볼편에 살이 빠져서 좀 나온 듯하다. 게다가 맏며느리 노릇 하랴, 아이들에게 시달리랴 하여, 밤이면 실꾸리도 몇 개 못 걸고 곯아떨어져서, 남편의 애무도 때로는 시끄러울 때가 있는지, 별로 만족해하는 기색이 없다. 형준이는 이 봄을 맞이하면서 확실히 자기의 심경이 변하는 것을 느끼는 것 같았다. 마음이 지향 없이 달뜨는 것 같고, 공연히 싱숭생숭한 것 같으면서 어떤 때는 가슴속에 잔인스럽고 포악한 발동이 치밀어 오르는 것처럼 막연하니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의 심경이 무엇을 요구함인지를 확실히 종잡지 못하는 그는, 얼마 전에 생각다 못해서 나카니시 상점과 칠성이네 세매끼장사와 용구네 과자방을 예로 들어서 자기도 이러한 여러 저자를 도합한 것만한 커다란 잡화상을 벌여 보겠다고 아버지에게 상론하였으나, 아직 이르다고 승낙을 받지 못했다. 장사라는 직업을 천직으로 삼는 것이 이르다는 것인지 형준이가 그러한 것에 손을 대는 것이 이르다는 것인지, 형준이는 한참 동안 아버지의 말뜻을 몰라서 쭈그리고 앉았는데,
“장사라는 게 우리의 못 할 업이라구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하나 건넛집 칠성이나 나카니시와 어울려서 가게를 벌이기에는 이모저모로 시기가 안즉 일러. 또 칠성이에게 돈 융통해 준 게 있으니 그 애 하는 걸 당분간 보아 가는 것이 위선 상책이야.”
박참봉은 아직도 모든 영업이나 장사를 대금(貸金)으로 얽어 두는 것을 가장 현명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돈변을 놓은 이상엔, 밭이거나 집이거나 장사거나 언제든지 필요한 때는 내 것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칠성이의 장사는 내 장사나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장차 잡화까지를 널리 벌여놓게 될는지도 모르나, 무섭게 불어 나가는 돈 이자 앞에 그의 상점이 얼마나 견뎌 나갈는지는 볼 만한 거라고 그는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자를 실컷 뽑아먹다가 낚아챌 수도 있는 것이요, 그대로 두면 이는 이대로 먹고 그의 은인까지 되는 것이다. 남에게 머리를 굽히며 손수 나가 장사를 벌일 필요가 없다고, 그가 굳이 생각하는 것도 까닭이 없음은 아니었다.
형준이는 아버지가 저녁을 먹고 두뭇골 집으로 가버린 뒤에 사랑에 불을 켜고 잠시 아버지가 앉았던 보료 위에 우두커니 앉아 보았다. 문갑과 벽장에는 쇠를 채워 버렸다. 박참봉은 문서는 대개로 큰집 사랑 벽장과 문갑 속에 넣어 두고, 현금은 두뭇골 집 사랑에 붙은 골방 깊숙이 간직해 둔다. 그러나 그가 방을 나가 버릴 때엔 어느 곳에든가 굳이 자물쇠를 잠가 두는 것이었다.
한참 그럭하고 앉아 있는데 마당에서 바깥 큰대문 잠그는 소리가 들린다.
“거 누구.”
하고 위엄 있게 불러 보니,
“저올세다.”
쌍네의 나직한 목소리가 대답한다. 문을 잠그는 소리가 난 뒤에 밖에서는 잠시 아무 기척이 없다. 무슨 호령이나 분부나가 들릴까 하여 잠깐을 그럭하고 서서, 쇠고리에 손을 얹은 채 기다려 보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에서는 다시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등잔불이 창문에 붉을 뿐이다.
동안이 퍽 떠서야 댓돌을 내려서는 좀 높직한 쿵 하는 소리와, 마당을 지나가는 신발 끄는 소리가 들려 왔다. 발소리는 점점 멀어 가더니 이윽고 없어져 버린다. 서각 위를 돌아 물역 쪽으로 쌍네는 제 방에 돌아가 버린 것이다.
형준이는 잠시 동안을 더 그럭하고 보료 위에 앉아 있다. 그는 막연히 지금 쌍네가 대문을 잠근 것으로 연줄이 닿아,
‘인젠 오눌 밤중으로 내 집에 둘어올 사람은 없겠구나.’
하고 생각해 본다.
‘두칠이는 돈을 받으러 회창으로 보행을 갔다.’
그는 다시 두칠이가 보행 떠나던 것을 회상한다. 바로 어제 저녁 이맘때, 박참봉은 저녁상을 물린 뒤 두칠이를 불러다 앉히고, 회창으로 보행갈 것을 말한 뒤에,
“보행전(步行錢)으론 스무 냥을 적었다. 길두 사납구 나귀도 놀구 있으니 그놈을 타구 일쯔감치 떠나거라. 꼭 이번엔 받어 들고야 오랬다구서, 당나귀를 들이매구 너는 아랫목에 가 자빠져 누웠거라. 그런 괘씸한 놈이 안 있나. 사람을 속여두 분수가 있지. 요즘 사푼 변이 어디 있다구, 생색을 해준 것두 모르굴랑.”
이렇게 말하면서도 기둥뿌리를 뽑아서래도 이번엔 꼭 돈을 받아 갖고 오라고 당부한다. 이튿날, 즉 오늘 아침 동이 훤히 터서 쌍네가 나귀 멩이를 들고 나더니 해가 불쑥 치밀자 두칠이는 바깥 큰대문으로 나귀를 내세우고 회창을 향하여 떠나갔다.
‘이틀, 어쩌면 삼사 일 걸릴는지두 모르겠다.’
형준이는 훌쩍 일어나서 문을 모두 걸쇠로 돌려 닫고 불을 껐다. 평양 영감 방으로 가보니 그는 아침 일찍이 자리를 치러 나가 보겠다고 중얼거리며 그물을 꿰매고 있었다.
“피양 영감 장기나 한번 둡세.”
하니 허리가 좀 꼬부라지고 머리에는 거의 허옇게 된 상투를 고치 송이만큼 댕글하니 세워 놓은 영감은, 그물을 놓고 뒤꼍에서 장기판과 쪽이 든 구럭을 내놓는다.
그러나 장기를 절반도 안 두어서 곧 형준이는 싫증이 났다. 본시 얼마 두고 싶어서 시작한 장기도 아니다. 멍하니 빈 사랑에 혼자 달랑하니 앉았기도 멋쩍고, 그렇다고 어디 바람을 쐬러 나갈 만한 곳도 없고, 제 방으로 돌아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자니 마음이 생숭해서 발길이 내치지를 않는다. 그런데다가 그는 지금 오랫동안 생각만 해 오던 것이 오늘 밤을 기약하여 벌어질 것 같은 막연한 생각이 그의 마음속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시각이 올 때까지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시간을 허비해야만 한다. 평양 영감을 도와 그물코를 꿰맬까 했다가, 장기판을 보고서 그래도 두어볼까 하는 한갓 되지 않은 생각으로 장기쪽을 손에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평양 영감은 그렇지 않았다. 오늘 밤 안으로 그물을 고쳐 놓고 일찌감치 자릿속에 들었다가, 아침 새벽에 강으로 가려고 될수록 재빠르게 손을 놀리던 때에 서방님이 들어와서 한참 물끄러미 섰더니 장기를 두자고 하는 것이다. 처음엔 이 양반이 남 바빠서 이러는데 한가한 작자들이 나무 그늘에서 팔자 푸념을 하노라고 두는 장기는 어이자고― 이렇게 좀 내심에 끌리지 않는 걸 할 수 없이 시작은 했었으나, 오십이 넘어 육십이 가깝도록 취미라곤 장기 두는 것밖에 없는 그로서는 정작 두어 가니 바짝 입맛이 당기던 것이다. 그래 어둑시근한 등잔불 밑에서 장기판을 보살피느라구 눈을 잔뜩 찌푸리고 말 가는 길, 차 가는 줄, 뛰어넘는 포, 엇비듬히 덮치는 상, 졸망구니 귀사와 졸병들을 빈틈없이 쫓아가고 있는데, 서방님이란 이가 어이 된 일인지 뻔한 것을 덤뻑덤뻑 먹히는 채 내버려두는 것이다.
찻길에다 말을 내세운다든가, 불과 한 수만 앞일을 생각하면 빤한 곳에도 정신없이 중한 포를 염나들게 마련이든가, 도무지 장기판에 정신이 있는 성싶지가 않다.
“장운이.”
하면, 뒷일을 생각지도 않고 그대로,
“멍훈.”
하고 아무렇게나 막고 마는 것이다. 그래 너무 패가 기울어지는 것도 외려 재미가 없어,
“아니 서방님 찻길이 아니웨까.”
하고 말을 가르쳐 주기도 했는데,
“에히 손에 잡히질 않으니 그만둡세.”
하고 아직도 말쪽이 많이 남아 있는 걸 장기쪽으로 헝클어 버리고, 번뜻이 양손을 뒤로 의지하여 노전 위에 기대 버리고 만다.
“왜 자미가 없쉥까.”
하고 평양 영감은 약간 웃어 볼 뿐이다. 하나하나 장기쪽을 구럭에 넣어 제자리에 걸어 놓고 장기판을 뒷바람에 세우더니 다시 그물틀을 끌어다 댓바늘만 놀리고 있다. 그는 서방님이 번뜻이 누워서, 아무것도 바르지 않고 갈빗대처럼 서까래가 까맣게 보이는 흙매질한 천장을,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는 것을 마음에 생각지도 않는지 통히 그쪽으론 눈도 팔지 않으면서 그리고 조금 전에 하던 일을 중단하고 서방님과 장기를 두던 것도 솔챙히 잊어버린 듯이, 꿰어진 그물코만 고르고 앉아 있다. 머리는 희나 얼굴은 몇 해째 해에 그을려서 까마룩하니 탔다. 붉은 낡은 궤를 하나 물매질한 뒷바람벽 앞에 댕그러니 놓고, 그 위에 영감이 덮는 얇은 요와 이불이 땀에 전 목침과 베개와 함께 올라앉았다. 네대틀 그물이 걸려 있고 여름에 쓰는 삿갓이 하나 걸려 있을 뿐 그러한 가운데 그물틀을 무릎 앞에 놓고 평양 영감이 그림처럼 고요하게 앉아 있는 것이다. 그러한 공기와 분위기 속에 형준이는 오래 누워 있을 수 없었다. 영감내가 홀아비내와 섞여서 나고, 거기에 물비린내와 생선 냄새까지 풍긴다. 초조한 젊은 마음이 이러한 풍경 속에 누워 있으면 속만 더 질식할 듯이 답답하다.
형준이는 평양 영감 방에서 나와 제 방으로 갔다. 제 방에 들어오기 전에 그는 맞은 방에서 형선이와 제수가 불을 켜놓은 채, 형선이는 책을 읽고 제수는 버선코라도 꿰매는지, 혹은 둘이 다 무슨 책을 읽고 누웠는지 이따금씩 도란도란하는 나지막한 말소리가 들려 오는 것을 잠깐 귀를 기울여 듣고 섰다가, 이윽고 큰 안방을 바라본다. 형식이와 보패는 잠이 든 모양이나 불이 아직 발갛게 켜져 있다. 물레질을 붕붕 하고 있는 것은 늙은 종이기 분명한데 어머니도 나직이 기침 소리가 나는 걸 보면 무슨 톱명주를 뽑고 있든가 바느질에 손을 대고 있든가 하는 모양이다.
―아직 밤이 이르다.
그는 제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랫목에 딸자식을 끼고 누워서 아내는 불을 켜놓은 채 잠이 든 모양이다. 그 다음 자리에서 성기란 놈도 자고 있는데 형준이의 자리는 윗목에 깔아 놓아 두었다.
형준이가 들어오는 바람에 아내는 자던 눈을 뜨고 눈이 시어서 잠시 방 가운데 선 남편의 얼굴을 쳐다보았으나, 그대로 눈시울을 두어번 비비고 다시 아이께로 몸을 돌린다. 물렸던 젖을 별안간에 뽑는 통에 아이가 끙끙거린 때문이다. 무어라고 입 안으로 둥얼둥얼 아이를 달래다가 저도 마저 잠에 취해 버린다.
형준이는 제자리에 가 앉아서 아내의 자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럭하고 앉았기가 무료해서 그는 담배를 붙여 물었다. 몇 모금도 못 빨았는데, 가운데서 자던 성기가 담뱃내에 기침을 콜럭콜럭 깃는다. 그래서 그는 다시 담배를 끄고 방싯하니 문을 열어 연기를 뽑았다.
그는 옷을 입은 채 자리에 누워 본다. 건넌방에서 나던 물레질 소리도 그쳤다. 형선이 방에서 들려 오던 도란도란하던 말소리도 없어졌다. 아이들의 숨소리에 섞여서 아내의 코고는 소리가 들려 올 뿐.
형준이는 불을 껐다. 캄캄하다. 뜰 안도 까맣다. 방마다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든가 보다. 캄캄한 속에 혼자 누워 있으면, 여태껏 흐리멍덩하니 생각되던 것이 눈앞에 벌어지기 시작한다―두칠이 처 쌍네, 얼굴, 가슴, 궁둥이.
형준이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으나, 방문은 소리 안 나게 열었다. 가만히 방문을 닫고도 그는 토방 위에서 한참을 그럭하고 서 있다가, 방안에서 여전히 숨소리와 코고는 소리가 들려 오는 것을 알고야 이윽고 뜰 아래 내려섰다.
마루 밑에서 자던 검정개가 뿌르르 기어나오더니, 형준이 앞에서 꼬리를 설레설레 젓는다.
‘끼 개’ 하고 나직이 꾸짖으니 개는 형준이 앞에서 물러섰으나, 중문께로 헐럭시며 달아난다. 혹 깊이 잠이 들지 못한 이가 있어, 제 인기척에 놀라 눈에 띄지나 않을까 저어하여, 방 앞을 지날 때는 형준이 쪽에서 짐짓 나직이 기침을 한다.
그는 중대문께로 가서 소리나지 않게 빗장을 뽑고, 몸 하나가 겨우 나갈 만치 문을 열었다. 좀더 활짝 열어 젖히면 빼그득 하는 귀 째는 소리가 들려 오는 것을 알고 있는 때문이다. 개도 주인의 뜻을 받아, 살짝 문틈으로 몸을 뽑고 사랑 마당 가운데로 뛰어갔다가, 다시 형준이 옆으로 달려오면서 나직이 코를 쿵쿵거린다.
“끼 개.”
“끼 개.”
이렇게 꾸짖어서 개를 달래 놓은 뒤에, 그는 서각 뒤를 돌아 외양간 옆을 지나서 물역 뒷대문께로 가만가만히 발을 옮겨 놓았다.
캄캄한 가운데서도 별이 총총 박힌 하늘은 희끄무레하게 트여서, 그것이 십이봉의 웃줄웃줄한 봉우리에까지 잇닿았다. 그는 수숫대 바자에 손을 얹고 잠시 그곳에 서 있었다. 저만큼 굳이 닫은 뒷대문이 있고, 그것과 잇대어서 두칠이가 사는 막간방 부엌이 있다. 그 방안에 지금 쌍네가 혼자 곤하니 잠이 들어 누웠을 것을 생각해 본다.
드디어 형준이는 이렇게 바자를 짚고 주저거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가진다. 무슨 큰 결심을 한 듯이 용감 있게 덥벅덥벅 걸어간다. 그러나 방이 가까워 오매 다시 발소리는 낮아지고 걸음은 떠졌다.
이윽고 그는 부엌문 앞에 서 있다. 인제는 문걸쇠에 손을 대고 그놈을 낚아채고 들어가서 다시 한번 샛문을 열면은 그만이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하고 간단한 행동이 생각대로 되질 않는다. 몇 번을 주저하고, 몇 번을 더 걸쇠에 손을 대었다 떼었다 하다가, 팔에다 힘을 넣어 잡아당겨 보았으나, 뜻밖에 안으로 문이 걸렸다.
아뿔싸. 그는 손을 떼고 잠시를 또 그럭하고 서서 마음을 진정해 본다. 벌써 그때엔 가슴이 한소끔 끓어 올랐다가, 뿌엿한 것만이 묵중하니 남고, 낯에선 피가 쭉 흘러내릴 때였다.
어째서 문을 잠갔을까.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언제나 이렇게 문을 안으로 잠그고 자는지도 알 수 없었다. 만일 장근 이렇게 문을 잠가 두진 않는다 해도, 두칠이도 없는 때라 휙 문을 닫고 들어가던 김에 그대로 덜컥 문걸쇠를 돌쩌귀에 얹어 논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니까 문이 걸려 있다는 걸 괴이하게 생각할 것도 없고, 두어 번 덜강덜강 흔들어 보다가,
‘이, 부엌문 열어라’ 하고 나직이 분부를 내리면 그만일 게다. 그러면 아무리 깊이 든 잠이라도 푸시시하니 눈을 뜨고, 잠시는 누구가 이 아닌밤중에 문을 열라고 이러는 것일까 하고 수상히 생각해 볼 것이나, 곧 덜렁거리는 소리는 부엌문이라는 걸 알 것이고, 이어서 문 열라고 분부하는 이는 상전 댁의 누구라는 거, 아니 목소리로 보아 그이가 맏서방님이라는 걸 알 것이다. 그러면 곧 고의 다리를 끼고 치마를 두르고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보스락거리느라고 바빠할 때 자기는 또 한 번,
‘어서 문 열어라’ 하고 재우치면, 거의 넘어질 듯이 덤비면서 문을 열 것이다. 그때엔 아무 말 말고 따라 부엌으로 들어가, 그의 손목을 잡고 방안으로 들어가서 그럭하고, 또 그럭하고, 그러면은 될 것이다. 이렇게 두루두루 생각해 보고 문을 낚아채 흔들려고 하는데, 도란도란 말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형준이는 처음 제 심장의 고동 소리에 제가 놀란 거나 아닌가 하여 주춤했으나, 그것과는 달리 제 가슴에서는 달락달락하는 맥 뛰는 소리가 여지껏 들리고 있다. 그러면? 혹시 쌍네가 잠꼬대를 하면서 중얼거린 게나 아닌가. 그래서 다시 귀를 기울여 보는데 벌써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어디서 또 달려오는지, 검정개가 발뿌리에서 설레댄다. 뒷발로 개를 뿌리치면서 손을 문걸쇠에 갖다 대는데, 이번에는 확실히 사나이의 음성이 방안으로부터 들려 온다. 뭐라는 소린지는 몰라도 짤막한 말로, 그건 똑똑히 사나이의 음성이었다. 그렇다면 그 음성이 누구의 것일까? 두칠이의 것이 아닌 건 뻔하다.
두칠이가 아니라면 이 방안에 쌍네와 함께 캄캄한 속에 불도 안 켜고 드러누워 있는 사나이는 대체 누구일 것이냐.
잠깐 동안 그 자리에 서 있다가, 형준이는 이 방 앞에 처음 찾아올 때와 다른 목표로 그의 마음을 돌려잡아 버렸다. 그는 몇 발자국 물러섰다가, 발소리를 짐짓 크게 구르면서 뒷대문께로 돌아가서 빗장을 뽑고 강역으로 통한 토방으로 돌아섰다. 목소리를 가다듬어 쌍네에게 호령을 하려 하는데, 문은 오히려 방안으로부터 열리고 캄캄한 속에서 젊은 사나이가 불쑥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