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놀던 아이
Lucien Duval
길
저녁 다섯 시. 겨울밤이 메츠(역주. 불란서 동북부 도시)를 덮었다. 프랑수아즈가 르노 20(역주. 불란서 제품 자동차 이름) 내 자동차에 짐 싣는 것을 도와준다. 노래공연 하러 내가 제노바(역주 이태리 도시)에 가기 때문에. 잠시, 나는 빠뜨린 것이 없도록 정신을 바짝 차린다.
무게 40킬로그램 나가는 대형 미제 증폭기인 보즈 1800. 에이치피 보즈 800개. 에이케이쥐 마이크 두 개. 마이크 받침대 두 개. 동시녹음기, 음향조정기. 전깃줄 통. 용접용 인두. 전기 퓨즈 몇 개. 디스크 300장과 가사대본 300부도 가져간다. 무엇보다도라미레 기타 두 대는 꼭 챙긴다. 자동차 안을 좀 덥게 하면 동시녹음기가 열 때문에 소리가 변질될 수 있다. 증폭기는 차안이 더워도 괜찮다. 300와트 되는 이 기계는 진짜 황소 같아서 세 시간 동안 계속 일을 시켜도 끄떡 않는다.
운전석 내 바로 앞, 계기대 윗선반에 건전지 여섯 개를 모두새것으로 갈아 끼운 나카미스키 550 녹음기를 둔다. 오늘 저녁 그것이 내게 필요할 것이다.
프랑수아즈가 풀빛 플라스틱 주머니를 오른쪽 앞좌석에 놓는다. 그 속에 밤참이 들어 있다.
말린 오얏, 바나나, 치즈가 섞인 타르틴(역주. 빵의 일종)이다. 그녀는 운전석과 옆 좌석 사이에 생수 물병을 잊지 않고 놓아둔다. 그것은 내 고향 플롱비에를레뱅(역주. 불란서 북서부의 도시)에서 나는 물이다. 친절한 아주머니.... 내 눈이 그녀에게 미소 짓는다. 내 눈시울이 축축이 젖는다.
비가 계속 내린다. 그런데도 나는 자동차를 한번 점검해본다. 헤드라이트, 미등, 깜박이, 타이어. 시동을 걸기 전에 항상 해보는 습관화된 의식이다. 출발. 저녁 7시 15분.
"아주머니,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안녕히 가세요, 신부님. 오늘발 날씨가 쌀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나누는 인사말, 이것 또한 의식이다. 따뜻한 인정이 가득담긴.
어서 떠나자, 뤼시엥(역주. 저자 자신의 이름). 나 자신을 얼른 채찍질한다. 가야 할 길이 1200 킬로미터나 되지 않느냐.
직업삼아, 밤을 누비며 노래 부르고 밤을 달려 자동차를 운전해온 스물세 해 동안, 시동이 걸려 첫 바퀴가 구를 때면 언제나 가슴 한구석엔 찌릿한 감동이 스며든다. 옛날에 내가 피정의 집으로 들어갈 때처럼 나는 나의 밤 속으로 들어간다.
먼동이 틀 때까지, 내 머리 속에 무슨 생각이 떠오를 것이가? 사실 밤, 비, 북서지방의 찬바람 따위는 도무지 관심 밖이다. 몇백만 킬로미터를 달리면서 언제나 운전대 앞에서는 지나간 일들만 되새기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앞으로 열두 시간이나 밤을 달리면서 온통 몸을 휩싸는 이 고독과 어둠이 내 영혼을 고이 두지 않을 것이다. 내 영혼은 하나씩 떠 올라오는 지난날의 수많은 이야기 조각에 짓눌러 어기적거리며 이 어둠을 빠져나올 것이다. 그러나 몸서리쳐지는 이 고독이 사물의 진실을 환하고 밝게 비추어주니 내게는 얼마나 사랑스런 것이지.
툴(역주. 불란서 북동부 도시) 까지 고속도로. 장애물이 없는 펀펀한 큰길. 나는 기어를 한 단계 더 높이다. 모터가 잘 돌아간다. 앉음새를 편안히 한다. 가끔 휘몰아치는 세찬 겨울바람 때문에 차체가 약간 흔들린다.
고독, 나는 그것을 네 살 때부터 열두 살이 될 때까지 알아버렸다. 여덟 남매 중에서 나 혼자 플롱비에르레뱅의 학교를 다녔다. 고대 로마인들이 만든 옛길을 걸어서. 그 길은, 강 건너편에 나란히 포장길이 또 하나 새로 생겨서 황폐해졌다.
한 시간을 걸어서 학교로 가는 길의고독, 친구들이 모두밖에 나가버린 텅빈 교실에서 두 시간 동안 빵과 초콜릿을 먹는 점심시간의 고독, 학교가 끝나 한 시간 동안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고독. 나는 매일 네 시간의 고독을 맛보았다.
이 고독은 내게 퍽 이로웠다. 내 어린 나이에 어울리는 나름대로의 어떤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을 내게 마련해주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때의 확신이 내 남은 여생을 위해 천천히 앙금이 가라앉도록 시간을 마련해주었기 때문에.
하느님은 착하시고 아이들에게 너그러우시다는 확신,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신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확신. 이 확신만은, 내가 몹시 불행했던 때에도(조금 후에 그 불행에 대해 말하겠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여름 길, 검은 딸기 산딸기가 어울려 풍뎅이가 노니는 길.
가을 길, 스산하게 비바람이 오가는 길, 너도밤나무, 전나무들이 머리끝을 흔들어대며 휙휙 소리 내는 음산한 길.
겨울 길, 나는 그 길 위에서 힘이 솟았고 용감했었다. 한 길씩이나 눈이 쌓인 영하 2도의 추위 속에서. 게다가 달이 환하게 밝은 밤이면 더욱 신이 나고 가슴 부풀었다. 길게 뻗어 있는 길, 꽁꽁 얼어붙은 하얀 눈, 밤, 달빛. 이것이 모두 소년의 행복이었다.
그 중에서 특히 달이. 나는 발을 멈추고 고요한 달을 씽긋 웃으며 쳐다보았다. 얼마 동안. 내가 발걸음을 옮기면 달도 함께 길을 걸었다. 내가 달음박질하면 달도 이 나무 저 나무 사이로 숨바꼭질하며 달음박질했다. 둥근 달의 평화스런 얼굴은 하루 내내 학교에서 있었던 모든 나의 시름을 잊어버리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손으로 물병을 더듬어 찾았다. 프랑수아즈가 친절하게도 준비성 있게 물병 마개를 따두었다. 한 손으로 운전하면서 한 손으로 병마개를 딴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미리 생각하고서. 차 안이 더운 또 물이 차서 입안이 시원해 상쾌하다. 왜 그런지 이유는 모르겠다. 그것은 조그마한 수수께끼. 이 세상은 큼지막한 수수께끼로 그득하지 않은가.
길이, 실오리가 뽑혀나듯 뻗쳐나간다. 내 눈앞에는 길만 보인다. 모든 삼라만상이 어둠 속에 잠겨버렸기 때문이다. 디종(역주.불란서 중동부의 도시)까지 가는 길은 휜히 알고 있다. 그 길은 눈을 감고도 갈 수 있을 만큼 낱낱이 알고 있다. 변해버린 포장 색깔이라든가, 포장의 품질이라든가, '피레스톤' 타이어 바퀴가 구를 때 들리는 음향이라든 가, 땜질하여 덮쳐 바른
아스팔트라든가, 교통구간을 구분지은 불쑥솟은 도로면이라든가, 길 가장자리의 가로수 색깔이라든가 등등. 모든 것이 내게는 너무도 친숙하다.
사실상 이런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다. 조금 후에 내가 다시 끄집어 낼 달에 얽힌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오늘밤에 중요한 것은, 내가 독자들에게 이런 비밀을 고백하는 것이다.
나는 알콜 중독자입니다. 그것은 포도주도 맥주도 어떤 술도 이제는 입에 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십오 년 전부터 지금까지.
독자들께서 끝까지 내 이야기를 참을성 있게 들어주겠다면 여러분이 모르는 길을 달리면서 제노바까지 갈 동안 이야기를 드리기로 약속하겠습니다. 암스트롱이 1969년 7월 달나라에 갔던 모험담을 들었을 때 나는 감격하고 흥분했지요. 내 이야기를 듣는다면 이상한 인간들이 살고 있는 이상한 하나의 유성을 볼 것입니다.
제노바에 도착할 때까지 여러분은 어두운 내 영혼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점차적으로 비뚤어지고 형편없이 되어서 끝내는 악마같이 되어버린(내가 보기에는 지옥에 빠진 영혼이라 생각됩니다) 그런 영혼을 볼 것입니다. 고집불통의 완고함, 예의바르고 점잖음, 스스로 나무랄 것이 없이 양심, 또는 어리석음, 이런 것들 때문에 진실이 흐려져 여러분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면 눈을 감으십시오, 귀를 막으십시오.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드십시오. 안녕히 주무시오. 샌님 어르신네들.
지옥으로 빠져드는 내리막길은 괴이하고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벗어나 구원으로 오르는 오르막길은 너무도 신기하고 가슴 설레는 감동의 길입니다.
영화관에 들어갔을 때 전등불이 하나씩 껴져 실내가 온통 암흑으로 덮이면 불안이 조성되는 것처럼,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고, 다시 밝아진 실내에서 막후 음악을 들으며 밖으로 나와 거리에 나서면 빛나는 태양이 온 누리에 가득한 것처럼.
제조바까지 운전해가면서 여러분께 변명 같은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났었던가를 말하겠습니다. 죄송스럽지만 한 가지 부탁하는 것은 모든 이야기가 사실 이었다는 것, 실지로 있었던 것을 있는 그대로 말씀드린다는 것을 믿처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어째서 하필이면 자동차 안에서 이야기를 해야 하느냐고요? 그 이유는,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사람은 이야기를 문학적으로 할 수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아무런 준비도 필요 없으며 그저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대로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긴 여행이 필요하냐고요? 시간 때문에 쫓기지 않으려고. 실제로 알콜주옥이 얼마나 느린 걸음으로 서서히 진행되는 병이가를 이해하려면 오랜 시간이 지나야 합니다. 그런데 그 병의 치유는 얼마간의 용기와 많은 겸손을 요구합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내가 잊어버리고 있었군요. 병의 치유를 위해 인내심도 또한 필요하다는 것을.
자동차 모터 속에 수정처럼 맑은 가느다란 음향이 계속 울리며 따라 다닌다.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은 순순하고 티가 없어서 나에게 용기를 북돋워준다.
"당신은 어머니 사랑을 받았습니까?"
"네, 듬뿍 받았습니다. 어린 시절, 내가 더듬어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추억은 어머니에 대한 것입니다. 그것이 몇 살 때냐고? 글세, 너무 어릴 때라 잘 모르겠습니다. 그 추억은, 조용한 집안에, 부엌에서 나막신을 신을 발자국소리가 나다가 문득 그치고 내 요람의 천으로 된 아치형 덮개 밑으로 웃음 띤 어머니의 얼굴이 보이는 것입니다. 나는 보채지 않고 언제나 조용했습니다."
"아버지도 당신을 사랑하셨나요?"
"물론입니다. 아주 귀여워하셨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내 목에 간지럼을 태우는 아버지의 굵직한 구부린 집게손가락입니다. 아버지는 내 목을 간지르면서 아기인 내 세설을 흉내 내시느라 '겔레겔레' 하셨습니다. 이 추억이 또한 멀고먼 저 옛날의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 사랑하셨습니까?"
"네, 서로 무척 사랑하셨습니다. 나는 남동생 마르셀과 같은 침대에서 잤는데 내가 자는 방에 또 다른 동생과 주무시는 아버지 침대 그리고 어린 막내둥이를 옆에 재우시는 어머니의 침대가 함께 있었습니다. '춥지 않소? 여보 귀스틴?' 귀스틴은 어머니의 이름 오귀스틴을 줄인 말입니다. 어머니의 대답은 '아니예요'라든가 '네, 추어요'였습니다. 만약 어머니가 '네, 추워요'라고 대답할 때에는 어너미가 아버지 곁으로 가서 누웠습니다. 그런 때면, 나는 아버지 어머니께서 서로 정답게 소근대는 소리를 들었습닏. 아이들이 깰까봐 음성을 조그맣게 낮추었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나는 아버지 어머니으 속삭임을 들으며 기분이 흐뭇하고 행복했습니다. 그런 연유 때문인지 부부가 화목하지 못한 것을 보면 아주 싫어합니다."
내가 알콜 중독자가 될 소지는 아무것도 없다. 어머니가 내게 용기 없고 비겁한 바탕을 주시지는 않았다. 오히려 어머니는 내게 일상생활의 훌륭한 본보기를 주셨다. 나는 어머니가 게으르게 누워 계신 것을 한 번도 본 일이 없다. 누구보다도 먼저 일어나서 부엌에 불을 지피고 나는 뭔지도 모르는 가축 먹이를 준비하셨고 일꾼들을 위해 커피를 끓였다. 아침 식탁을 모두 준비한 후 어머니는 층계참에서 사투리 로 노래하듯 우리들을 불렀다. "애들아, 일어나라. 학교 갈 시간이다."
만약 알콜 중독이 게으른 성격에서 비롯된다면, 내가 갖고 있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이 바탕은 결코 어머니 때문이 아니라. 어머니 의 날씬하고 섬세한 두 손을 생각하면 가슴 가득히 그리움이 솟는다. 어머니는 뜨개질, 베틀에 앉아 길쌈(옳아, 그 베틀은 가정용의 조그마한 것이었어.), 일주간의 빵을 만들기 위해 밀가루 반죽, "얘들아, 저리 비켜라. 여기 먼지 들어가면 안 된다" 하시면서 버터 만들기, 어머니의 갈색빛 긴 머리채를 처녀 같은 모습으로 빗질하며 곱게 머리 단장하기, 이런 것들을 히시느라 그 두 손은 돌아가시는 날까지 쉬지 않았다.
"아버지 어머니가 편협하고 고집스런 신자였는가?"
"부모님은 두 분 다 한번도 내게 하느님에 대해 말씀해본 일이 없지만 저녁이면 우리는 언제나 가족이 모여 기도하였다. 아버지는 무릎을 꿇고 의자에 팔꿈치를 얹고 두 손에 머리를 파묻어 숙인 채 기도했다. 아버지는 엘렌 누나의 기도에 응답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어머니는 늘 앉아서 막내에게 젖을 물린 채 응답했다. '지극히 인자하신 동정 마리아여 생각하소서. 어머니 슬하에 달려들어 도움을 애원하고전구를 청하고도 버림받았다 함을 일찍이 듣지 못하였나이다.' 어머니는 이 기도를 바치면서 부스럭거리며 웅성대는아이들을 밤색 눈으로 조용히 하나씩 응시했다. 그리고 나는, 정신이 반쯤은 기도하고 반쯤은 달과 노닐 생각을 하면서 행복했다. 사실 나는 우리 부모님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편협되고 완고한 그런 믿음은 평생 갖지 않았다."
우윳빛으로 환한 달을 쳐다보며 웃음짓던 이 소년이, 아버지 보호를 받으면서, 독일산 양 지키는 개, 덩치가 커다란 '삼'의 호위를받으면서, 석 자 두께의 벽으로 된견고한 집안에서 잘 자란 이 소년이 어떻게 알콜 중독자가 될 수 있는가? 그리고 또 애정의 빵을 배불리 먹고 자랐는데...
아직도 비가 내린다. 자동차 안의 난방을 줄인다. 상자 네 개에 가득 찬 디스크들이 나방장치 입구에 너무 가까워서 열기가 직접 닿아 휘어질 염려가 있다. 내 왼쪽으로, 장거리 운전기사 아저씨들이 잘 이용하는 바공 식당이 보인다. 만약 배가 고프든지 목이 마르면 거기에 들어가라. 이 식당을 놓치면 디종까지 갈 동안 다른 식당이 없다. 앞으로 30여 킬로미터까지는 길이 위험하니 속도를 줄여서 천천히 달리자.
"당신은 영리합니까?"
"내 경험으로 미루어, 그런 질문은 알콜 중독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내가 열두 살 때, 신부가되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어느 정도영글도록 아버지가 나를 브뤼셀 근처에 있는 소신학교로 보냈다. 그런데 열네 살 때 그 학교에서 나를 집으로 되돌려 보냈다. 그때가 5월이었다고 기억된다. 우리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가 우유 담긴 들통을 손에 들고 외양간에서 막 나오는 것이 보였다.
"너 돌아왔니?"
"공부시간에 떠들었다고 나를 쫓아냈어요."
"무슨 짓을 했길래?"
"자습 감독관 따귀를 때렸어요."
어머니는 꾸지람도 하지 않았고, 울지도 않았고, 야단법석도 하지 않았다. 내 얼굴을 잠시 어루만지더니 내가 잊을 수 없는 말을 했다.
"그 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우리하고 같이 집에 있어야겠구나."
어머니가 허락한 이 자유가 나의 자유의지를 강하게 하고, 나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을 한번 더 확인했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 그 다음 학기에 소신학교로 다시 돌아갔다. 그러니까 내가 알콜 중독자가 된 것은 타의에 희한 억지 성소 때문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이 학교에서, 졸업을 앞둔 2년 동안 노댕 신부님이 우리를 맡았다. 그의날카로운 지성과 약간 자유주의적인 신앙이 나를 일생 동안 비춰 주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이른 나이에 벌써 어떤 것이 참된 신자인가를 알았던 것은 노댕 신부님 덕분이다.
그리고 라틴어와 의랍어를 내가 우수하게 잘했던 것도 그 신부님이 가르쳐주셨기 때문이다. 플린르죈(역주. 그리스어 작가)이건 어떤 책도 내게는 어렵지 않았다. 문장 한 구절을 가고 학급 전체가 풀이를 못해 쩔쩔맬 때 노댕 신부님은 이렇게 말했다. "뤼시엥, 흑판에 구문을 써서 설명해라." 나는 그것에 대해 조금도 으스대지 않는다. (나에게는 좋지 못한 결점이 많았지만 자만심은 가진 적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알콜 중독자는 어쩔 수 없는 저능아라는 말은 내게 하지 말기를.
어느 날 방과 후에 신부님이 내게 말했다. "네가 불란서 고전문학을 한번 건드려보면 좋겠는데. 한 달 후면 뤼트뵈프(역주. 1285년경 불란서 풍자시인)의 '테오필의 기적'을 학교에서 공연할 예정이거든. 공원에 가서 대사를 외어라. 연기는 네가 생각해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수업시간에 빠져도 괜찮아. 요즈음 공원이 멋지게 아름다우니까."
그러니 내게 말하지 말기를. 어른들의 독재가 내 소년시절을 제멋대로 반죽해놓았다고는.
30년 후 노댕 신부님이 돌아가셨다. 일생 동안 온 마음과 온 지성을 다해 하느님을 섬기고. 나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슬퍼했다.
나의 스승들, 그렇다, 그 스승들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 노댕 신부님이다. 그분들은 내게 별로 말씀이 없어서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삶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것을 그들의 삶 자체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내게 암흑의 시기가 왔을 때 내가 갇힌 캄캄한 감방을 환히 비춰준 것은 그분들임에 틀림없다.
랑그르(역주. 불란서 중동부 도시)가 가까워진다. 자동차 모터가 유유 자저하게 가락을 한 소절 뽑아댄다. 그것은 고음 세 번째 옥타브의 '시'음이다. 나는 그 '시'음을 따라 계속 운전한다.
내 성격에서 유별난 점은 사물이나 인간을 열심히 관찰하는 것이었다.(그 후에도, 불행하게 나는 언제나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어떤 낯선 사람이 시골 농가에 왔을 때 나는 그 사람을 자세히 뜯어보았다. 반짝반짝하는 구두라든가, 쓰고 있는 모자의 생김새라든가, "여보세요, 아저씨, 아주머니..." 하는 말투라든가, 악수하려고 손을 내미는 몸짓이라든가, 입고 있는 새옷 냄새라든가. 개가 냄새를 맡아 알아내듯이 나는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하여 분간했는데 잘못 맞혀본 적이 거의 없다. 사람들을 이렇게 실망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 아닌 사물에 대한 관찰력은 내게 기쁨을 주기도 했다. 조개껍질 한 쪽, 껍질 안쪽이 진주처럼 영롱한 예쁜 조개 한 쪽을 나는 놀이용 가운 주머니 속에 몇 주일일이고 간직했다.
또한 인간 역사의 예측할 수 없는 변동에 대한 대피소같이 보이는 천문계의 조화가 나는 몹시 흥미로웠다. 천문학자 모로의 저서 세 권을 스무 번이나 탐독했다. 나중에 나는 세르바장 씨와 함께 뫼동(역주. 파리 서남쪽에 있는 교외. 이곳에 천문관측소가 있음) 너머 적도의 별들을 바라볼 것이었다.
지상에 대한 애착과 그 지상을 탈출하고 싶은 욕망, 이 두 개의 모순된 감정이 알콜, 술을 환영해 맞아들였다.
내리막길
내가 알콜 중독이라는 진단을 받기 이전, 약 1985년에서 1965년까지, 술은 나에게 퍽 기분 좋은 벗이 되었다. 술을 마시면 운전도 더 잘했고, 노래도더 잘 불렀고, 심사숙고, 반성도 더 잘했고, 기도도 더 잘했다. 술은 모든 것을 더 잘 하도록 나를 도와주었다.
지금 플롱비에르 물병이 놓여 있는 꼭 그 자리에 나는 종종 술병을 가지고 다녔다. 르발루아페르(역주. 보르도 지방 포도주) 포도주에 대한 고약한 추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물론, 여행 때마다 그 술병들을 꼭꼭 달고 다녔으니까. 내가 내던진 그 포도주의 빈병들이 고속도로 연변에 지금도 나둥그러져 있을 것이다. 파리에서 리옹, 파리에서 니스,파리에서 뮌헨, 파리에서 보르도로 가는 고속도로변에.
술은 내가 부를 노래를 작사 작곡하는 데도 나를 도와주었다. 그래서 그 노래에 향수가 어리고 분노가 스며 있고 인생살이 피곤이 있는가하면 또한 하늘 나라에 대한 소망이 깃들어 있었다. 우리가 술잔을 드는 곳에는 놀랍게도 새로운 휴머니즘이 있었다.
"내 주여, 당신은 내 마음을 위해 존재하시고,
내가 빵을 버리 것은 내 두 손을 위함이며,
철부지 어린 것은 내 분을 즐겁게 하기 위함이며,
지친 아내는 내 두 팔에 안기기 위함이며,
한 잔의 술은 내 슬픔을 달래기 위함이니...
어느덧 어김없이 다가온 계절이여,
내 그렇듯 사랑하던 계절이여,
너에게 고하노니,
'이젠 나에게 평화를 다오, 잠시나마.'
예수께서,
앞으로는 우리를 떠나시지 않으리니,
다가올 새 땅은 더욱 아름다울 것이니,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을 때
나는 꿈을 꾸리니
향연에 나들이 온 사람들처럼,
우리는 즐겁게 술을 마시리라.
그곳엔 슬픔이 없으리라."
삶에 지친 권태, 행복을 갈망하는 끊임없는 꿈, 따뜻한 인간애에 대해 바람, 술은 이런 것이면서 또한 난폭한 폭력이기도 했다.
시계를 수리하는 동안에는(한때 나는 시계공있었다) 나는 술이 필요하지 않았다. 태엽의 동력이 왜 앙크르까지 미치지 않는지 그 원인을 잘 살펴서 핀셋을 주의깊게 조종하면 되었다. 그리고 노련한 기능공 역할을 하는 나에게는 주의력과 분별판단력만 필요했지 마음에서 우러나는 감정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와는 반대로 잔인함, 어리석음, 오만함 같은 시대의 고질을 느낄 때에는, 앞날의 아름다운 세상,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 세상을 꿈꿀 때에는, 무엇보다도, 꿈과 현실이 맞닿지 않는 깊은 골짜기가 가슴 아파 목이 터져라 외치고 싶을 때에는, 술은 아주 적절한 도움이 되어주었다. 나는 그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나는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저녁 8시 30분. 방금 디종을 지났다. 고속도로 매표소가 가까워온다. 나는 보주(역주. 불란서 동북쪽에 위치한 지방) 지방의 대형 트럭을 추월하면서 아는 체하려고 슬쩍 클랙슨을 눌렀다. (물로, 앞서기 이전트럭 운전석 옆을 지나치는 순간에) 운전기사가 대답을 한다. 내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도 역시 알콜 중독자이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미칠 것 같은 감정, 그 욕망 때문이란다. 이런 감정이 어떤 것인지 이해 못하는 사람은 결코 알콜 중독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어떤 강렬한 감정이 나로 하여금 술을 마시게 했다. 그것은 하찮은 소시민들에 대한 애정이었다. 내가 타인의 비참에 동참할 수 없어서, 내가 타인의 병을 대신 앓을 수 없어서, 내가 타인의 가난을 나눌 수 없어서, 내가 타인의 고독을 메워줄 수 없어서.
나는 비참해도 나는 고독해도, 내게는예수님이 함께 계셨고 나는그분과 더불어 고비고비를 잘 넘겼으니 저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 딱한 사람들은 어찌 하리이까?
몇 백만 킬로미터의 밤거리를 따라 온 누리를 누비며 달리고 있을 때 언제나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한 가지 생각이 있었다. '지금 나는 나의 대지 위를 달린다. (나는 '대지'를 대문자로 쓴다) 대지는 보기와는 달리 대단한 직관력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잠자고 있다. 악몽을 꿀 것이다. 그들이 행복할 수만 있다면, 대지가 실망하지 않고 또 하나의 인간을 분만하기만 한다면, 이 밤 나 홀로 깨어 그들을 보살피겠다. 대지는 우리들의 폭력을 보며 울고 있다. 라헬(역주. 구약성서에 나오는 인물. 야곱의 아내로서 요셉과 베냐민의 어머니)이 살육 당하는 자식들을 보고 눈물을 흘린 것처럼 대지가 울며 탄식한다. 우리가 너무나 무지해서 대지는 병들어 앓을 것이다. 대지가, 나의 대지가 병들 것이다.'
제노바까지 갈 동안 이런 이야기만 하고 싶다.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이 간절한 소원은 나의 뇌리에서 가장 크고 주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거퍼, 연거퍼 떠나는 길,
나의 주님 나와 함께하시니,
밤을 엮어간다.
나 호로, 주님 동반하고서.
거퍼, 연커퍼 꿈을 꾸었다.
나의 주님 나와 함께하시니,
잠자는 대도시에,
행복이 깃든다.
우정에 목마른 갈증, 사람들을 비참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황소 같은 꾸준함,온갖 형태의 모든 불행과 맞서려는 천치 같은 무모함. 폭력은 바보요 모욕에 대한 용서는 가슴에서 우러나는 단 하나의 고귀함이라고 여기저기서 외쳐대기, 이런 것들이 2백만 킬로미터를 달려 마흔 나라를 돌아다닌 내 여정의 요약이다.
만약 시간이 있다면 내가 노래부르러 다녔던 여러 도시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 중에 어떤 도시는, 그 도시 이름을 말하노라면 마술에 걸린 듯 수많은 얼굴을 추억이 떠올라올 것이다.
그러나 얼굴 모습보다는 그들이 내게 했던 이야기들이 더 선명할 것이며 그들이 했던 그 이야기보다는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내게 주었던 그 다정함이 더 따뜻하게 느껴질 것이다. 리스본의 어떤 할아버지가 100년 묵은 포르토(역주. 술의 일종) 한 병을 내게 선물했던 것을 생각하면 내 입가에 그리운 미소가 버진다. 그리고 빌바오(역주. 스페인도시)에서는 검정색 옷을 걸친 자그마한 부인이 내가 떠날 무렵,차 안의자 위에 걸작 예술품인(나는 그것을알고 있다) 자명종을 놓아 주었다. 독일에서는 아데나우어 씨가 독일의 젊은이들에게 내가 준 기쁨의 보답이라면서기타를 내 손에 쥐어주었다.
그런데, 술이 이런 모든 경우마다 필요했던가? 물론이다. 술은 현명하게스리, 먼저 와서 마음이 움직이는 곳마다 따라다녔다 : 감사할때도, 기쁨이 가득할 때도, 이별이 고통스러울 때도, 귀로에서 슬퍼질때도. 물론 육체는 차츰차츰 술에 젖어들지만 영혼은 아주 느린 걸음으로 술과 결혼하여 살림을 차렸는데 이혼하여 둘이 헤어진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비가 그쳤다. 길이 물에 잠겼다. 더 천천히 이야기를 해야 하겠다. 파리 사람들의 자동차 홍수가 우리에게 밀려들어서 길이 꽉 막혔기 때문이다.
리옹에 도착. 오른쪽을 타생라드미륀을 지나 클레르몽페랑을 끼고 끝까지 간다. 봉수아르(역주. 저녁인사) 오비에르에 있는 친구들이여, 봉수아르 내 친구 마통이여. 푸르비에르(역주. 리옹 근방에 있는 유명한 굴) 굴을 지나 론강을 따라간다. 봉수아르 르네여. 봉수아르 리옹 시민이여, 여섯 번 가졋던 내 노래공연(콘서트)에 왔던 사람들이여.
알콜 중독이라는 병, 나는 이 병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 술을 마주 대했을 때 내 정신이나 내 행동에 어떤 변화가 있다는 것은 느꼈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것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병은 침침한 응달 속, 완전한 무의식 속에서 진행된다. 그 한 예가 있다.
1968년까지 나는 사무용 책상에 앉아 노래를 지었다.작사 작곡에 골몰했을 때 머리를 식히기 위해 나는 아래층에 내려가 공동 식탁용으로 비치되어 있는 맥주 한 병을 찬장에서 끄집어내어 2층 내 방으로 가져 왔다. 작곡을 하면서 계속 한 모금씩 간간히 마셨다.
가사가 완성되면 곡을 붙이느라 내 정신은 더욱 흥분된다. 그래서 또 한 모금 꿀꺽 삼킨다. 한 시간쯤 지나면 맥주병이 비낟. 그러면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염치없이 또 한 병 집어온다. 멜로디가 내 성역에 잘 맞게끔, 쉼표가잘 배치되도록 하려면 너댓 시간이 걸린다.빈 맥주병도 내 책상 옆에 두서너 개가 쌓인다.
그 다음 멜로디가 완성된 후 나는 라비냑 씨 법칙을 따라 화음 붙이는 데 정신을 쏟는다. 노래가 완성되기 전에는 쉬지 않느다. 일을 잘 끝냈다는 만족감에 젖어 자리에 누울 수 있을 때는 빈 맥주병이 대여섯 개로 늘어난다.
새로운 노래가 탄생했기 때문에 기쁨에 들떠서 일주일이 지난다. 나는 빈 맥주병 같은 것은 염두에도 없다.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그것을 들고 내려가서 빈병 담는 통 속에 넣을 것이다. 나나 청소아주머니나 빈병 때문에 신경 쓰지 않는다. 만사 척척.
그런데 그 단계가 지나 약간 심각한 때가 왔다. 이제는 처음 술병이 텅 비면 방에도 두지 않고 그 빈병을 들고 내려가서 제자리에 두고 다른 술병을 대신 들고 왔다. 이런 식으로 술병을 들고 오니 밤새껏 지나도 내 방에는 빈 술병이 단 하나뿐이었다.
이런 습관의 변화도 무의식중에 생겨 전연 깨닫지 못했다. 이것이 비정상이라고 자각한 것은 그로부터 무려 10년이 지난 뒤이다.
나로서는 당연한 여러 가지 이유에 눈이 가려 자신을 명백하게 투시하지 못했다. 많은 구실 중의 몇 가지 :
'뤼시엥, 너 공연하러 다닐 때는 좀 많이 마셔도 괜찮아. 콘서트중에 땀을 얼마나 많이 흘리는데.'
'별 것 아닌 나 자신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어. 다른 사람들이나 기쁘게 해주려고 해. 자기를 아끼려고 하지마.' 사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건강이나 세상 평판이나 등등 모두) 무관심하다는 그것이 정신적 불균형의 심한 증세라는 것을 전연 모르고 있었다.
'내가 행하는 현실적인 일들이 너무 많아 자신을 생각하고 돌아 볼 시간이 전혀 없어.' 그것을 두서없이 나열해보겠는데. 자동차를 잘 살펴 수시로 정비해야 되고, 고연여행 계획을 미리 세워야 되고, 여권을 준비해야 되고, 편지 문의에 회답을 보내야 되고, 기타 줄을 사야 되고, 공연준비 관계자를 만나야 되고, 낯선 도시들을 잘 파악해 요령 있게 처신해야 되고, 외국화폐의 환율을 미리 알아야 되고, 도시안내 지도를 사야 되고, 주교와 시장을 찾아가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드려야 되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털어놓는기막힌 사정에 적절한 위로와 충고를생각해야 되고, 어떤 동료들의 질시를 참아야 되고, 초보 작곡자들의 노래를 고쳐주어야 되고, 돈을 달라고 조르는 사람들에게 돈을 주어야 하고, 사기꾼한테는 욕지기를 뱉아야 되고, 시간을 내어 작곡을 끝내야 했고.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게 되어 죄송한데 이해 있으시기를. 1957년에서 1968년까지 나는 가엾은 인생들을 모든 힘을 다해서 보살폈다. 가난한 사람들, 병들어 앓는 사람들, 풀이 죽어 의기소침한 사람들, 푸아시, 프렌, 클레르보, 생테티엔(역주. 불란서 도시들)에 있는 감옥의 죄수들, 미망인들, 고아들, 이혼한 사람들, 노인들, 정신병자들, 환속한 신부들(아름답지 못한 낱말이지만, 나는 환속한 내 친구 르네를 무척 존경한다), 아내에게 속은 남편들.
"그럼, 그것이 알콜 중독이 된 원인인가?"
"천만에, 이런 생활이 내게 끼친 극도의 알콜 중독을 불러들인 많은 조건 중의 하나일 뿐이다."
내가 받은 수많은 편지 이야기를 기어이 하고 싶은데 용서해주시기를. 수천 통이 넘는 이 편지들이 나를 얼마나 혼란하게 하고 가슴을 무겁게 했는지 그 중 몇 통을 소개해보겠다.
"일흔두 살 되는 사람입니다. 시골에서 마누라와 살고 있지요. 하루 하루가 지겹고 지루합니다. 집사람이 침울해 있으면 나는 아내를 위해 바이올린을켜줍니다. 그런데 팔을 잘못 놀리는 통에 활이 그만 부러져버렸지요. 미안하지만 활을 한 개 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그런데 폴 뵈셰(역주. 불란서 유명한 악기점경영인) 씨에게 전화를 잊지 말고해야 한다. 바이올린 활을 그 노인에게 보내주고도 내게 청구서를 보내지 않았다. 노인네의 내게 대한 신뢰와 마찬가지로 폴 뵈셰씨의 고마운 마음씨에 내 영혼의 현이 울렸다.
"프렌 감옥에 있을 때 신부님 노래를 들었습니다. 제가 출옥하는데 돈을 좀 보내주십시오."
"저는 티도시에 있는 교수입니다. 비신자인데요, 신부님을 뵙고 싶습니다."
"저는 마다가스카르에서 일하는 선교사입니다. 지프차가 필요한데 도와주시겠습니까?"(그는 지크차를 샀다.) "건축재료 철강이 필요합니다."(그것도 샀다.)
그런데 수천 통의 이 편지 중 아직도 내가 상자가득히 보관하고 있는 편지들이 있다. 우정의 편지, 감동적인 편지, 아연하게하는 편지, 문의의 편지,용기를 돋우어주는 편지들이다. 악의에 찬 편지나, 익명의 편지나, 부당한 비난이 담긴 편지나, 광신적인 편지나, 눈물이 날 정도로 멍청한 편지는 거의 없다. 그런데도 사실 나는 울고 말았다. 이상하게도 감수성이 비정상적일 만큼 날카로워져서.
그 무렵, 나는 신문기자들이 그릇된 비평에 대해 매우 민감해 있었다. 범인에 지나지 않는 내가 비평의 당사자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비평 속에 악의와 부정직이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정하고 용감한 어머니, 조용하고 훌륭한 아버지를 가진 나는 그런 비리를 참을 수 있도록 태어나지도 않앗으며 시골집 외양간의 조용한 암소와, 헌신적이고 성실한 독일산 양치기 개와 더불어 어린 시절을 보낸 촌뜨기인 나는 그런 것을 묵인하게끔 자라지도 않았다. 몇 가지 예.
나는 조르주 브라상(역주. 불란서의 유명한 가수)과 텔레비전 인터뷰를 했었다. 그때 어떤 신문기자가 기사를 썼다.
"브라상이 기다리고 있는 작은 살롱에 위시엥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조르주.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말을 놓고 싶은데요. 청취자들을 위해서 말을 놓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끝엣말은 거짓말이다. 도대체 말도 되지 않는 소리. 브라상을 어떻게 보았다는 이야기인가. 신문기자 어른, 내가 당신 때문에 얼마나 괴로웠는지 아시오? 말이라는 것이 지껄이는 사람에 딸라 기막힌 욕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내가 당신 덕분에 처음으로 알았소.
다른 예. 신문기자들과 잡담을 나누다가, 내가 세 시간 동안 콘서트를 하는데 몸무게가 1킬로그램이나 쑥 빠질 때도 있다고 말한 일이 있었다. 그중 어떤 기자가 그 말을 꼬집었다. 만약 이 신문기자가 시간이 있어서, 프로젝터가 내리쏟는 광열 밑에서 왼쪽 손으로 기타줄을 눌러대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오른쪽 다섯 손가락으로 다섯 줄을 튕기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것을 계산기에다 계산을 해본다면 최소한 내가 흘리는 땀이 1리터가 된다는 답을 쉽게 얻을 것이다. 이 무렵에 나는 어떻게 저런 멍청이 같은 신문기자가 다 존재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 나의 덩치 큰 삼(역주. 개 이름)이여, 너는 얼마나 지혜로운가.
끝으로 또 한 가지 예.포(역주. 불란서 남서쪽 도시)에서 공연이끝나고 돌아가려는 때였는데 어떤 수녀가 나를 공박했다.
"신부님, 참 창피스럽습니다. 저는 몇 주일이나 그 일 때문에 잠을 못 잤답니다. 저는 정말 신부님에 대해서 분개했어요."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레코드 취입 리사이틀 때 셋째 판 취입 전에 신부님이 수치스런 말을 하셨어요. 신부님 입에서 그런 끔찍스런 말이 나오다니 뜻밖이었어요."
그래서 나는 셋째 판 취입이 시작될 때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찾아내려고 애써 기억을 더듬었다.
"수녀님, 내가 그때 이렇게 말했다고 기억하는데요. '저런, 수녀님들이 여기 한 사람도 없구먼.'"
"아니, 아니,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요."
"그럼 수녀님, 그날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하지요. 보르도에서 있었던 레코드 취입 연주 때 수녀님들이 알함브라 연주회장 안에 좌석이 없엇 50여 명 되는 다른 관람객들과 같이 무대 위에 앉아 있었지요. 그래서 내가 그 수녀님들에게 짓궂게 했습니다. 그런데 막간 휴게 후 두 번째 연주 때에는 수녀님들이 전부 관람석에잘리를 잡았습니다. 나는 수녀님들이모두 좌석을 바꾼 것을 무댕 돌아왔을 때에야 알았지요. 그래서 한마디씩 빼먹기 잘하는 북쪽 루아를 사투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녀님들이 여기 한 사람도 없구먼.' 그 말밖에 한 것이 없는데요."
"아니,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요."
"그럼, 내가 무슨 말을 했지요?"
깐깐해 보이는 그 수녀가 내 옆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이렇게 말했어요. '어쩌면 이럴수가, 수녀님들이 팬티를 안 입었네.'"
맙소사, 자비하신 성모여! 나는 낭시로 돌아왔다. 포에서 가진 연주회 이후 나는 한 가지 생각으로 골똘했다. '어떻게 하면, 사람은 죽이지 않고 사람 속에 들어 있는 그 멍청이만 쏙 잡아빼어 죽일 수 있을까?'
이런 멍청이, 이런 부정직, 이런 것들 때문에 신경을 쓰느라고 내가 술을 마셔 중독이 되었던가? 아니다. 그 이유는 훨씬 더 뿌리깊다. 그렇지만 그것만 깨닫는 데는 여러 해가 걸릴 것이다.
또 한편, 정직한 사람들의 우정어린 일들이 내게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명석하고 현명한 신문기사 한 토막이 나를 감동시켰다.
"브뤼셀의 르팔레데보자르에서 열리는 콘서트에 참석하러 가면서 나는 별ㄹ로 기대를 갖지 않았다. 그런데 콘서트가 끝나 나오면서 나는 진정으로 감동했다. 사실 나는 익살스럽고 약간은 비평적인 기사를 쓰려고 계힉했었다 - 말하자면 하는님의 종, 기타 연주자, 이런 기사라면 어려운 게 아니었다 - 그런데 나는 계획과는 반대로 지금 진정한 찬사의 글을 쓰려고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어느 한곳에 아직까지 그나마 더럽혀지지 않은 곳이 있어 성실함과 신념이 존재하고 있다니, 참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성실과 신념을 고도의 경지로 이끌어 한 몸에 지니고 있는 사람이 있으나, 그가 바로 뤼시엥 씨이다. 우리는, 그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어려운 여러 난관을 홀로 극복하고 있기에 심심한 동정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가 믿고 있는 두 가지 사실을 상기할 때 우리는 마음속 깊이 그를 존경하게 된다. 그가 믿고 있는 그 두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랑'이다(1967년 12월 24일 브뤼셀 엠.에치. 기자).
나는 기사를 읽는 것이 파렴치한 일임을 알고 있다. 또 사람들이 일반적인 예의범절의 기준으로 보아 내가 악취미이며 허영스럽다고 비난하리란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예의범절을 상관치 않는다.
천만에, 내가 술을 마신 것은타인의 어리석음 때문도 아니고,콘서트의 피로 때문도 아니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듯이 애정에의 굶주림 때문도 아니며, 두 명의 의사가 이미 내게 경고를 한 바 있으므로 내가 그 병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없다.
1961년 우울증세로 제네바에 본의 아니게머물고 있을 무렵 어떤의사가 내게 말했다. "간이 좋지 않습니다. 술을 마시지 마십시오." 그런데 나는 그 의사의 말을 곧이 듣지 않았었고 그 의사의 경고를 무시해버렸다.
1963년 베이루트에서 콘서트가 끝난 후 회의 도중에 내가 술을 마시는 것을 보고 있던 어느 의사가 내게 말했다. "주의하십시오. 이 다음에 큰일납니다." 나는 그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런 말이 내 구에 들어올 수 없었다.
1964년, 이것이 눈에 두드러진 최초의 경고이다.
파리의 올림피아(역주. 마들렌 성당 옆에 위치하며 불란서의 톱 가수들이 노래하고, 인정을 받는 곳)에서, 사흘에 걸쳐 수지 않고 어려운 여건하에서 콘서트를 마친 바로 뒤였다.
첫날 콘서트가 있기 이전에 악사들과 내가 함깨 노래를 전부 맞추어 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악사들은 연습 없이 악보를 보며 바로 연주하였고 나는 그들의 연주악법을 분간해가며 동시에 노래를 부르면서 맞추어나갔다. 그래서 악사들과 내가 첫날 저녁엔 정말 진땀을 뺐었다. 그날 저녁 콘서트가 끝난 후 자정 무렵 텅 빈 올림피아 홀 안에서 우리는 "빌바오에서"라는 디스크를 다음날 저녁 팔 수 있도록 녹음을 해야만 했다. 나는 녹음이 끝난 후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새벽 네 시에 겨우 잠자리에 누웠다.
그 다음날 콘서트는 대성공이었다. 그런데 신문기자들과 친구들이 나를 둘러싸고 놓아주지를 않아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잤다.
다음날 사흘째 저녁에는 노래공연이 엉망이되었다. 나는 몸이 지칠대로지쳐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졌으며 용기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영락없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꼴이었다. (나는 한탄하지 않는다. 왜냐하년, 설명하겠다.)
어떻게 내가 그런 상태를 지탱하고 나갓던가? 나는 고집센 황소 같았다. "내가 녹초가 되어버렸으니 기가 막히지만 그래도 콘서트는 꼭 끝내고야 말겠다." 이 말은 내가 2년 동안 노래를 부르며 수백 번도 더 자신에게 되뇌인 말이지만 올림피아에서 가진 콘서트의 셋째 날 저녁만큼 필사적으로 되풀이해본 일은 한 번도 없다.
그리고 럼주를 병째 들고 마시면서 견디어냈다. 내가 럼술을 좋아해서 마신 것은 아니다. 끝까지 버텨 콘서트를 끝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바로 그 다음날 잇달아 있는 노래공연을 위해 함부르크로 가는 도중 격심한 출혈 췌장염 증세가 일어난 것이다.
쾰른까지 홍행주를 만나러 자동차를 겨우 몰고 질질 끌다시피 가다. 새벽 3시 홍행주가 나를 대하병원으로 데리고 가다. 거기서 호되게 고통을 겪다.
여담 한 가지. 이 병원에 입원한 최초의 나흘간, 나는 무엇인가 의미 있는 환각 속에 사로잡혔다. 내 병실 출입문 위에 통풍을 위한 유리창이 있었다. 내가 환각 속에서 복도의 불빛이 들어오는 그 창문으로 내게 소리치며 애원하는 수염투성이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뤼시엥 씨, 광장에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저 소리를 들어보십시오. 사람들이 자기들을 도와달라고 뤼시엥 씨에게 외치고 있습니다. 가서 도와주십시오. 그 사람들이 곧 경찰에게 학살당할 것입니다."
실지로 나는 말 탄 경찰들에게 공격받고 있는 군중이 그 털보 뒤에 있는 것을 보았다. 그 군중들은 패주하여 지리멸렬 흩어져서 아우성치고 있었다. 나는 혈관에 꽂고 있던 주사기를 빼 던지고 벌떡 일어나서 창문 위에(5층이었다) 올라가 거기서 뛰어내리려고 우뚝 섰다. 그런데 마침 거기에 공화국 보안단이 중재를 하려고 타고 온 오토바이 옆에 대기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공화국 보안단원들은 어둠 속에 있었지만오토바이 헤드라이트 불빛은 내게환히 보였다. 나는 그 사람들을 보고 연설을 하다가 욕을 하다가 조금이나마 인류애를 가지라고 설교를 했다. 내 연설 소리에 놀란 야간근무 아주머니(대단히 친절한 나이든 네델란드 여인이었다)가 방안으로 쫓아왔을 때 나는 막 뛰어내리려고 했다. 아주머니가 나를 창문에서 끌어내려 침대로 도로 눕혔다. 그 아주머니는 혈관주사를 내 팔에 다시 꽂고 내 이마 위에 산뜻한 자기 손을 얹어본 후 방에서 나갔다. 하잘것없는 내가 어이없게도 사람들을 구하겠다고 나섰으니.
그 다음날 밤, 나는 내 귓가 아주 가까이서 조그마한 어떤 여자아이 목소리를 들었다. "에리칸, 어디 있니?" 다른 여자아이 목소리가 대답했다. "응, 그레타, 나 여기 있어." 너무나 이상했다. 그래서 내가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 있다는것을 알려주려고 또 조금 전까지도아무도 없었다는 것을 내가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표시해보려고 잔기침을 했다. 그런데도 계속 말소리가 들리기에 내게 물었다.
"너희들 누구니?"
"우리들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온 두 계집아이들이에요. 우리는 도망왔어요."
"너희들 어디 있니?"
"베개 속에 숨어 있어요. 그런데 우리 여동생은 장롱 속에 있는 다를 베개 속에 숨어 있어요."
나는 베개를 더듬어보았다. 과연 베개 한쪽 귀퉁이에 볼록 튀어나온 바느질 솔기가 있었다. 그게 에리카로 생각되었다. 다른 귀퉁이에도 또 볼록한 솔기가 있었다. 그것은 그레타였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 말했다.
"지금은 내가 약간 아프지만 병이 나으면 너희들을 낭시로 데리고 가서 보살펴주마."
우리는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매니저인 내 친구 앙통이 들어왔다. 그의 음성이 내 귀청을 찢는 듯했다. 그러니까 여자아이들 목소리가 잠잠해졌다.
나는 앙통에게 말했다.
"자네 뒤에 있는 장롱 안 베개 속에 여자아이가 있다네. 오늘 저녁 자네 집에 데리고 가게. 내 배게 속에 두 여자아이들이 있으니 내일 그 아이들을 집으로 데리고 가게."
앙통이 내게 말했다.
"응, 알았네, 뤼시엥, 말대로 하겠네." 그는 베개를 보이지 않는 자리에 두려고 무조건 들고 나갔다. 잠시 후 그가 돌아왔다. "뤼시엥, 의사를 보고 왔네. 자네 병이 위독하단."
"천만에 앙통, 내일이면 다 나을걸세."
내가 세상 아이들을 늘 구하고 싶어 했으니, 참 딱할진저.
다음날 밤에는 언제나 환각 속에 빠져 있던 내가 신문기자들과 카메라를 피하려고 옷을 몽땅 벗은 채 복도를 거닐었다. 복동 초록색 휴지통이 있었다. 그 뚜껑을 들어 올렸더니 내 귀여운 딸 파트칼의 금발 머리가 보였다. 그래서 나는 "가엾은 내 딸, 가엾은 얘야" 하며 흑흑 흐느껴 몸부림쳐 울었다. 밤 당번인 네덜란드 아주머니가 흐느끼는 소리를 듣고 나와서 내 손을 잡고 자기 근무실로 데리고 갔다. 아주머니가 당번 의사에게 전화를 했다. 나는 갑자기 뭔가 호기심에 사로잡혔다. "아주머니, 어째서 아주머니 시계 위에 글자판이 없지요? 아주머니 여기가 도대체 어디지요?"
그 다음날 대녀 파스칼이 파리에서 왔다. 그래서 나는 내가 병이 들었다가는 것을 깨달았다. 파트칼과 나는 외과의(나와 동갑이었다)에게 내 복ㅂ를 개복하여 정밀히 진찰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그는 내 뱃속 우묵한 곳마다 일 리터나 되는 리터나 되는 액체가 괴어 있는 것을 알아냈다. 그 책체를 분석한 후 의사가 내게 말했다. "출혈 췌장염입니다."
친구 되는 이 외과의가 헤어지기 전에 내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이제부터 절대 금연 금주입니다." 금주, 나는 그것을 그 순간에는 귀담아들었다. 그렇지만 인간사회의 소음이 외과의의 음성을 앗아갔다. 피난민 어린이들, 집 잃은 사람들이 언제나 떼를 지어 있었기 때문에. 번민거리, 분노할 일들이 언제나 허다했기 때문에.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스위스의 루체른에서 언젠가 한번 콘서트 주선자에게 말했다. "피터. 오른쪽 옆구리가 너무 심하게 아프니 의사를 불러주십시오." 의사에게, 나는 어떤 값을 치러도 좋으니 진통이 가라앉게 직효를 볼 수 있는 약을 요구했다. "선생님, 저는 콘서트를 꼭 해야 합니다." 그는 내게 팔피움이라는 주사를 놓아주었다 콘서트는 몃지게 성공했다. 피아니스트의 반주가 의외로 특이하게 잘 어울렸다.
의사가 내게 아픈 원인이 술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던가? 천만에.
또 한 번은, 콘서트를 하러 가는 길에 르미르몽(역주. 불란서 보주 지방의 도청소재지)의 병원에 들렀다. "내 심장이 고장 난 것 같습니다."수간호사에게 말했다. 그녀는 의사를 기다리는 동안 나에게 산소 호흡기를 대주었다. 바스티엥(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독버섯 연구가로 유명한분이죠) 의사는 내가 심장의 이상이 아니라는 것을 즉시 알고서 에콰닐 주사를 내게 놓아주었다. 10분 후 나는 침대에서 저녁을 들었다.
의사가 내게 술 때문이라고 했던가? 아니다.
나는 내가 아픈 모든 원인이 전부 피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1965년, 제네바에서 출혈 때문에 사실상 입원한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술을 조금밖에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알콜로 인해 병이 생겼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의사가 알콜 중독자에게 "술을 조금만 마시십시오. 그렇지만 주의하십시오. 그럼 괜찮습니다."라고 말을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충고라고 나는 생각한다.
노래공연, 콘서트. 나는 아파가면서 그것을어떻게 해냈나? 나는 자신을채찍질했다. 나는 내 몸을 아끼지 않았다. 멋진 콘서크를 하여 사람들을 기쁘게 해야겠다는 것 이외의 어떤 것도 나는 계산하지 않았다. 그리고 콘서트를 하면서 나는 철저하게 정직했다.
정직함, 나는 그것을 콘서트의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나갔다. 건강도 그 다음의 일, 자신의 즐거움도 그 다음의 일이었다.
콘서트가 시작하기 전에 내가 술을 마셨던가? 아니다. 그럼 그 후에? 그렇다, 약간. 어떤 의미에서, 술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정신과 육체가 어떤 상태에서 알콜을 받아들이는가 즉, 술을 마시는 정신적인 태도와 육체의 건강상태가 중요한 것이다.
드디어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왔다. 1968년 6월이었는데 저녁이 되면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콘서트가 있는 날은 청중을 존경하기 때문에 그리고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에서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콘서트가 시작하기 바로 전에 아주 이상한, 전통이 약간 따르는 신경발작이 머리에서 발 끝까지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손가락 끝엗 발작이 왔다. 그런데 나는 그 손가락이 꼭 필요했다.
어느 날 저녁 뇌샤텔에서라고 기억한다. 무대 위에서 내 몸이 너무 심하게 떨려 의사를 부르지 않은 수 없었다. 의삭 내게 약 두 알을 주었다. 나는 꼭 나아야겠다는 신념을 갖고서 그 두 알을 삼켰다. 몸이 떨리던 것이 멈추었다.
의사가 말해주었던가? 그것은 알콜 때문이라고. 천만에.
이 무렵, 나는 평소와 다른 어떤 것을또 발견했다. 그것은 콘서트가 있기 한 시간전에 맥주 한 잔을 마시면 몸이 그 이상 떨리지도 않고 고통도 사라진다는 사실이었다.
"그 고통은 사람들과의 대결에서 오는 것인가?"
"아니다. 힘겨운 삶, 힘겨운 직업과의 대결에서 오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 사정을 가리지 않고 노골적으로 나에게 얘기해줄 수 있는 친구들이 없었던가? 무엇을 내가 그렇게 많이 마셨던 말인가?
사실, 나는 누아르라고 하는 좋은 친구가 있었다. 그는 미국, 캐나다, 유럽 각 지역 등 여러 곳을 나와 함께 다녔었다. 그는 옛날 노댕신부님처럼 인간의 자유의사에 대해 날카로운 감각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 내게 충고를 주는 친구가 아니었다. 누아르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이나 삶을 영위해나가는 태도에 대해 절대적인 존경을 갖고 있었다. 그는 자유인으로서 사람들이 자유롭기를 바라는 친구였다.
누아르는 그의 정확한 판단력으로, 내가 앓고 있는 이 병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이미 눈치 채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내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궁지의 저 '밑바닥'까지 떨어지지 않는 한 나를 위해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게 무엇을 강제로 시켜보아도 어떤 충고를 해보아도 논리적으로 따져보아도 내가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었다. 심연의 저 나락으로 떨어지기 전에, 결국 나 자신이 그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스스로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아래로 아래로 끌려 내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누가 원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깨닫고 원해야 한다는 이 말을 나는 무엇보다도 강조하고 싶다.)
본의 아니게 나는 누아르에게 나를 숨기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나를 신용하지 않았다.(술에 한해서만 그렇다. 그것은 확실하다.) 언젠가 콘서트에 나를 따라왔는데 그곳이 아마 오스트리아라고 기억된다. 정오가 되어 우리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점심을 먹는 동안 누아르가 잠시 화장실에 가려고 자리를 뜨자 나는 얼른 웨이터를 불러 내 맥주잔을 서둘러 비우고는 즉시 맥주 한 잔을 또 시켰다. 누아르가 돌아왔을 때 내 맥주잔의 맥주가 조금도 내려가지 않고 그가 자리를 뜰 때오 꼭 같은 정도로 담겨 있었다.
"창피하지 않았소?"
"물로 부끄러웠소."
그런데 이 모닥불을 끼얹는 것 같은 뜨거운 수치감을 식혀주는 것은 오로지 맥주를 또 한잔 더 마시고 싶다는 욕망, 그것뿐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만약 좋은 친구라도 있었더라면 저렇게는 되지 않았을 텐데." 천만에, 잘 모르시는 말씀. 내게는 누아르라는 좋은 친구가 있지 않았던가. 내가 술을 마시는 것을 그 친구도 막을 수가 없었다.
나는 오래된 좋은 친구가 또 하나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파스칼이다. 나는 파스칼이열세 살 때 그녀를 알았는데 그때 파스칼은 수녀들이 경영하는 중학교 학생이었다. 몇몇 수녀들이 그녀에게 심하게 굴고 부당하게 대했다. 내가 파스칼을 처음으로 만났을 대 그녀는 나에게 하소연했다.
나는 어린 파스칼에게 말했다. "네가 원한다면 내가 너를 내 딸로 삼아 앞으로 계속해서 너를 보살펴주겠다." 파스칼은 울고 싶던 참이라 코를 훌쩍대며 "네"하고 대답했다. 첫날부터 파스칼은 나를 "아빠"라고 불렀고 나는 그녀를 "얘야"하며 내 딸이라고 불러주었다. 그것이 30년간 오늘까지 지속되고 있다. 알콜 중독자의 또 한 가지 특징이 있다. 그들은 연약하지만 성실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후, 내가 알콜 때문에 형편없이 되었을 때 파스칼이 내가 이상야릇하게 변해버렸다고 말해주었고, 그녀의 눈에 근심이 가득 찼었는데도, 끝내 나는 그녀으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 날 - 그 일을 기억하면 가슴이 아프다 - 나는 하찮은 일로 그녀의 뺨을 때렸다. 정말 미안하다, 얘야 용서해다오. 나도 너만큼 그일 때문에 괴로웠단다.
오래된 우정에 금이 가기 시작할 무렵 병은 이미 짙어져 있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빠져나올 수 없는 악순환이 시작되었다. 술을 마시고, 뺨을 때리고,후회하고, 괴로움을 잊으려고 또 마시고, 그것을 보고 파스칼이 겁에 질리고, 그네에게 겁을 준 것이 슬펐고 그 슬픔을 잊으려고 또 마시고, 태엽이 다 풀려 끊겨버렸다. 한잔씩 마실 때마다 쓰디쓴 후회와 또 한 잔의 술이 연거푸 잇달았다.
힘은 약하지만 그래도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는 객관적인 말, 중립의 음성, 권위 있고 자격 있는 적임자의 목소리가 꼭 필요했었는데. 내 친구 누아르도 내 딸 파스칼도 객관적인 중립의 존재가 아니었다. 이 조건들이 명확하게 겸비된 경우, 인간미 있는 제삼자의 목소리가 귀를 뚫고 들어갈 수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내일 내가 이야기 하겠다.
운이 나빠서 나는 너무도 자주 여행을 했다. "위험하다, 조심해"하고 경고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한 주에 몇 번씩이나 도시를 바꾸었고, 친구들을 바꾸었고, 집을 바꾸었고, 의사를 바꾸었다.
결혼한 알콜 중독자는 그 부인이 술을 마시는 남편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설교를 한다. 그는 듣지 않고 마신다. 그렇지만 그는 술 때문에 병이 났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런데 나라는 인간은, 내가 구렁텅이로 빠져들어가고 있는 것이 술 때문이라는 것을 의식조차 못했다. 그럼 내가 바보란 말인가? 여러분, 좋을 대로 말하라. 그래도 나는 할 말이 없다.
한편에서는 이 병 때문에 너무도 수치스런 이야기들이 나에게 붙어 다녀서 예수회의 동료친구들이 감히 나에게 "그만 마셔라"는 말을 못할 지경이었다. 내 병세가 더 짙어갈수록 그들은 더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들이 입을 닫고 침묵할수록 나는 더 고독해졌다. 내가 고독해질수록 나는 더 마셨다. 내가 더 마실수록 그들은 더 두려워했다. 악순환, 뱅글뱅글 돌아가는 동그라미.
나는 동료친구들의 시선도 그 이상 더 감당할 수 없었고, 그들의 말없는 비난도 더 견딜 수 없어서 새로운 순회 콘서트를 몹시 원했다. 그러나 가서 보니 상황이 바뀌어져 내 병세를 더 악화시키기만 했다. 실망해버린 우정이 성실한 우정을 부패시켰다. 썩은 감자는 바구니의 감자 모두를 온통 망쳐놓는다.
"얼마 전까지는 일이 있었지만..."
"뭐라고요?"
어깨가 처져 수도원 집으로 돌아오니 그때가 오후 4시. 커피를 마시려고 식당부엌으로 들어갔다. 벌써 동료 세 사람이 먼저 와 있었다. 하고 있던 얘기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왁자그르르 웃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웃음소리를 딱 그치더니 모두 벙어리가 되었다. 그들의 침묵이 나를 거북하게 괴롭혔다. 나는 그들에게 아는 체 할 한 푼어치의 기력도 없었고 그들은 그들대로 내게 인사하거나 나를 자기네의 대화 속에 끼어줄 정신이 없었다.
그 후, 내가 마르티니크(역주. 불령 섬)로 공연 여행을 떠났던 이야기를 하겠다. 나는 그곳에서 고티에 씨와 뜻이 잘 맞아 일이 잘 되었다. 그러나 이틀째 밤에는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부엌에 내려가 럼주를 병째 들이켰다. 그리고 3주 동안 콘서트, 술, 콘서트....
고티에 씨, 내가 당신 몫의 술까지 마셔버린 것을 청컨대 용서하십시오. 마셔버린 빈 술병을 따지 않은 술병 뒤에 슬쩍 감추어버린 것을 용서하십시오. 더더군다나 그런 사실을 당신에게 감히 고백할 용기조차 없었던 것을 용서하십시오.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그런데 나는 안다. 첫 술병을 입에 대는 순간부터 모든 용기는, 모든 의지는 사라져버린다는 것을.
포르드프랑수(역주. 마르티니크 섬의 수도)의 달빛 아래서 나는 술을 마셨다. 개들이 달을 보고 짖어대는 소리에 귀기울이며 술병을 들었다. 당시 수도원으로 돌아오는귀로, 쓰디쓴 자기혐오와 수치감에 흐느적거리다.
밑바닥
이후부터 나는 내 방에 죽치고 엎드려서 전화기 울려도 수화기를 들지 않는다. 덧문마저 닫아버리고 폐쇄생활을 한다. 누가 문을 두드리면 겁이 나서 대답을 못하낟. 숨이 꽉 막혀서 "들어오시오"라는 말이 목에 걸리니까. 나는 발자국소리가 내 방문 앞에서 멀리 사라지기를 기다린다.
나는 내 방문에 열쇠를 걸어 잠근다. 그러고는 밤에만 방에서 나간다. 내 방은 이층에 있고 술이 들어 있는 찬장은 아래층 부엌 옆에 있다.
자정이 되면 나는 고양이 걸음으로 층계를 내려간다. 그로부터 13년 후오늘도 나는 기억한다. 층계참 바로 앞 마지막 계단이 삐그덕 소리가 나므로 누가 깰까봐 그 계단을 딛지 않고 성큼 건너뛰어야 했던 것을. 또 복도 출입문 손잡이도 삐익 소리가 나던 것을. 나는찬장 앞에 다가선다. 술병을 소리 나지 않게 가만히 열려면 병마개를 단단히 주어야 한다. 술을 목구멍으로 꿀꺽 넘긴다. 나는 찬장문을 다시 닫는다. 내 방으로 올라가려고 다섯 발자국쯤 복도를 지난다. 그러다가... 나는 찬장 앞으로 되돌아온다. 술병을 열려고 나는 병마개를 또다시 꼭 잡아 쥔다. 목구멍으로 술을 꿀꺽 삼킨다 내 방으로 가려고 복도문을 열려 할 때 갑자기 생각이 난다. 술병 담당자가 술병에 술이 반 이상 내겨간 것을 눈치 채리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남은 술을 몽땅 삼키고 빈병을 열지 않은 새 술병 뒤에 숨겨버린다.
그런 후에야 나는 내 방에 다시 돌아온다. 뼈에 사무치도록, 가슴이 아리도록 슬퍼하면서. 그런데 이 수치스런 희극이 두 시간쯤 지나 또 한 번 재연될 수도 있다. 밤이여 안녕, 내 너를 환영하노라. 다가오는 낮은 기고 지루할 것이니. 그제서야 나는 잠이 든다. 고뇌 속에 혼곤히 잠긴 채.
술이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빨리 없어지는 것을 알자 술병 담당자는 찬장문을 열쇠로 잠가버렸다. 수도원내에 감도는 비난의 공기, 침묵, 노골적인 경멸의 묵비행사, 홱 돌려버리는 시선들. 동료수사들과 나 사이에 짙은 안개가 덮여 나는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그 아픔을 잊으려 마지막 수단이 술을 마신다.
찬장물이 열쇠로 잠기었다 해도 어쨌거나 술은 마셔야 되니 나는 자동차를 몰고 왕복 120킬로미터 떨어진 메츠로 갔다.
나는 자동차를 역 구내식당의 불빛이 환하게 비치는 창문 앞에 세워둔다. 자동차 문은 닫는다. 마실 수 있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린다. 나는 서둘지 않고 들어간다. 맥주 한 잔을 시킨다. 그 다음에 두 잔.
나는 우리 집(수도원) 찬장 앞에서 하던 것과 똑같은 희극을 구내식당에서 나오기가 무섭게 또다시 되풍이한다. 말하자면 역 구내식당으로 다시 되돌아가서 맥주 한 잔, 또 한 잔을 마시는 것이었다.
"그건 미친 짓이야."
"그건 병이야."
이런 경험이 한번이라도 있었던 사람은 쉽게 이해한다. 경험은 없지만 영리한 사람은 막연하지만 어느 정도 이해한다. 그 이외 사람들은 이해할 줄도 모르고 덮어놓고 나쁘다고 비판하다.
나는 고백하지만, 도대체 내 자신이 그러는 나를 이해 못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물론 나를 이해 못했다. 다른 사람들이 이해 못한다는 그 사실을 나는 또 이해 못했다.정말 고약하기 짝이 없는 시기였다.
얼마 전부터 기이 잘 보이지 않아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다. 뤽상부를 방송에서 말한 대로 안개가 짙어져서 운전이 힘들다. 처음에는 안개가 너덜너덜한 천 조각 같았는데 지금은 유리잔에 든 우유처럼 보얗게 한 가지 색으로 바뀌었다. 순찰헌병대의 반짝이는 신호등이 전방 500킬로미터까지 안개가 짙어 기이 위험하다고 알려준다. 내가 어디쯤 왔는지 모르겠다. 오랑주(역주.불란서 동남 보클뤼즈지방수도로서 아비뇽 옆에 있음)는 이미지나갔다. 앞차와의 간격 같은 것은 신경 쓸 수도 없고 바로 눈앞의 길 위에만 온통 정신을 쏟는다. 바쁘지 않으니 천천히 운전한다. 나는 밤을 좋아한다. 원숭이 중에서 밤에만 활동하는 유일한 종인 두루쿨리스처럼. 무엇 같다고 할까....
내가 가장 괴로웠던 것은, 아마도 내게 대한 사람들의 비판을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나 혼자 이렇게 생각해보았다.
'아마 내가 술이 약간 과한 모양이야. 그렇지만 그것은 동료수사들이 너무 냉정하게 나를 대하니까 그런 것이지.' 그런데 사실은 개가 술을 너무 마셔대니까 동료들이 나를 냉정하게 대했던 것이다.
'내가 술을 약간 지나치게 마시는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그것은 수많은 콘서트 때문에 내가 지쳐서 그런거지.' 사실은 술을 마셔대서 내가 약해졌기 때문에 콘서트를 하고 나면 쉽사리 피곤했던 것이다.
'어쩌면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마실거야. 그렇지만 그것은 내게 언짢은 얼굴을 하는 우리 수도원 원장 때문이지.' 사실은 슬슬 피하기만 하고 도대체 아리송한 내 태도 때문에 원장이 얼떨떨해서 화가 났기 때문이었다.
어떤 날 밤에는 가끔, 광기가 나를 덮치는 것을 느꼈다. 새벽 2시경 나는 내 방에 바로 붙어 있는 화장실에 가려고 방을 나선다. 변기의 물을 내린다. 전깃불을 끈다. 화장실 문을 다시 닫는다. 바로 이 순간, 나는 내 동료들의 한 줄로 죽 늘어선 닫혀진 다섯 개의 방물을 본다. 그리고 그것은 선박통로의 문들이었다는 생각(차라리 확신)이 머리에 떠오른다. 참 그렇지, 퀸 메리 호 선박이야(이 역객선을 타고 내가 뉴욕에 갔던 일이 있다). 정적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왜 선박 기관이 멈추었나? 어째서 승무원이배가 멈추었다고 우리에게 알려주러 오지 않나? 왜 선창으로 파도소리가 들리다 낳나? 그때 나는 빼꼼히 열린 문틈 사이로 보이는 방이 수도원의 내 사무실 방이라는 것을 알아챈다.
내 고뇌는 점점 더 심해지기만 한다. 어째서 내 사무실을 퀸 메리 호로 옮겼나? 어째서 내게 알려주러 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나? 어째서 내 전화를 퀸 메리 호에 갖다 뒀나? 공포를 털어버리려고 나는 목구멍으로 "에헴 에헴" 소리를 낸다. 행여나 누가 문을 열어줄까 하고. 기척도 없다. 광기가 나를 엄습하기 때문에 용기를 내어 가만히 물어본다. "거기 누가 있어요?" 다음엔 좀 더 큰소리로 물어본다. "거기 누가 있어요?"
마침내 나는 문을 열고 나와 방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나는 이불 밑으로 몸을숨긴다. 더 이상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고, 더 이상 정적을 느끼지 않으려고. 내가 우리 집 수도원 내 방에 있지 않다면 참 낭패로군. 잠이나 자자. 더 이상 이 따위 생각으로 골치를 썩이지 않도록. '내가 어디 있지? 몇 시지? 내가 누구지?' 이런 의문이 없도록.
1968년 가을, 나는 종말이 가까워왔다는 것을 느꼈다. 몸에 기운이 점저 사라졌다.
콘서트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오른쪽 팔이 운전을 하다가 갑자기 마비되었다. 모든 감각이 사라졌다. 속수무책. 뻣뻣이 죽은 나뭇가지다. 200킬로미터를달리면서 핸들 아래로 왼손을 갖고 변속기어를 찾아 꺾어 바꾸었다.
집(수도원)에 돌아오자 집안에 있는 조그만 성당 안으로 잠시 기도하러 들어갔다. 나는 시편 88편을 전부 암송했다.
야훼, 내 구원의 하느님
낮이면 이 몸 당신께 부르짖고
밤이면 당신 앞에 눈물을 흘립니다.
내 기도소리 당신 앞에 이르게 하시고
내 흐느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나의 영혼이 괴로움에 휩싸였고
이 목숨은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습니다.
땅속에 묻힌 것과 다름없이 되었사오니
다 끝난 이 몸이옵니다.
살해되어 무덤에 묻힌 자와 같이
당신 기억에서 영영 사라진 자와 같이
당신 손길이 끊어진 자와도 같이
이 몸은 죽은 자들 가운데 던져졌사옵니다.
저 어둡고 깊은 곳
저 구렁 속 밑바닥에 나를 처넣으시오니
당신의 진노에 이 몸은 짓눌리고
몰아치는 물결에 뒤덮였습니다.
친지들도 나 보기가 역겨워서
멀리 떠나가게 만드셨습니다.
빠져날 길 없이 갇힌 이 몸
고생 끝에 눈마저 흐려집니다.
야훼여, 내가 날마다 주님을 부르옵고
이 두 손을 당신 향하여 들어 올립니다.
당신은 죽은 자들에게 기적을 보이시렵니까?
혼백이 일어나서 당신을 찬양합니까?
주님의 사랑을 무덤에서
주님의 미쁘심을 저승에서 이야기하겠습니까?
어둠 속에서 당신의 기적들을 알아줍니까?
망각의 나라에서 당신의 정의가 드러나겠습니까?
야훼여, 내가 당신께 부르짖고
새벽부터 당신께 호소하건만
야훼여,
어찌하여 내 영혼을 뿌리치시고
이 몸을 외면하시옵니까?
어려서부터 기를 못 펴고 고통에 눌린 이 몸
당신 앞에서 두려워 몸 둘 바를 모르옵니다.
당신의 진노가 이 몸을 휩쓸고
당신의 두려움에 까무러치게 되었습니다.
날마다 무서움이 홍수처럼 나를 에웠고
한꺼번에 밀어닥쳐 나를 덮였습니다.
이웃들과 벗들을 나에게서 멀리하셨으니
어둠만이 나의 벗이 되었습니다."
나는 내 방에 들어오자 왼손으로 방문열쇠를 걸어 잠그었다. 사흥이 지나자 오른팔을 다시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콘서트를 할 수 있었다.
이때가, 내가 정말 고통스럽게 기도하던 시기였다. 밤과 낮으로, 그렇지만 특히 밤으로. 내 머리맡에 내가 스물 살 되던 해 예수회 수사들이 준 구리로 만든 십자가 고상이 있다.
나는 어디를 가든지 이 십자가를 가지고 다녔다. 전쟁 기간에는 군복저리고 호주머니 속에 그것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흥 하고 어깨를 으쓱하지 마십시오) 나는 이 십자가 위에 천만 번이나 내 손을 얹었다. 아무 이유 없이 그저 이렇게 십자가 위에 손을 얹었다. 친구로서, 타인의 불행을 눈앞에 본 불행한 자의 반사작용으로서, 아무 요구도 없이 아무 얘기도 없이 그저 십자가 위에 수도 없이 손을 얹었다.
그렇지만 이 제스처는 대개 이런 것을 뜻했다.
"예수님, 우리는 오래 전부터 친구입니다. 당신은 나를 잘 알고 계십니다. 내가 부정직하지 않다는 것을 당신을 알고 계십니다. 내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것을 당신은 아십니다. 내가 당신의 친구임을 당신은 아십니다. 내가 내 형제들을 위해 노래 부르는 것을. 당신은 아십니다. 내가 돈도 좋아하지 않고 명예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당신은 또 알고 계십니다. 내가 늙어지고 추해지는 것을 저는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당신만 제외하고, 청컨대 비오니 저를 잊지 마옵소서."
나는 거의 먹지 않았고 거의 말을 하지 않았고 얼굴도씻지 않았다. 나는 수면제를 입에 넣고 눈을 붙였다. 나는 무엇이건 결정할 힘을 잃었다.
예를 들면 내 창문 바로 옆에가을에 떨어진 빨간 포도잎이 하나있었다. 하루에 열 번도 더 그 잎을 바깥에 던져버리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열 번도 더, 하려는 그 의지는 맥없이 늘어졌다.
낙담해 주저앉아버린다, 자신에 대한 분노가 급증한다. 행복의 갈망이 격화된다. 내 방에서 떠나고 싶고, 동료들을 떠나고 싶고, 내 나라를 떠나고 싶어진다. 간절하게 평범한 것이 싫어진다. 생활에 따르는 예절이 싫어진다. 멋진 말,재치 있는 말, 미끈한 태도가 싫어진다.지쳐 찌그러진 낯이 실어진다.
로안(역주. 불란서 중부 도시)에서, 비시(역주. 불란서 중부 도시)에서, 팔레르모(역주. 이태리 항구도시)엣, 프랑크푸르트(역주. 서독 마인강 연안에 있는 도시)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형제들, 건강한 사람들돠 더불어 나는 이 꼴 이대로 서서 노래를불렀다. 리고 나는 어느 곳을 다녔는지 더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그들에게 끊임없이말했다. "형제들이여, 불행은 존재합니다. 그렇지만 예수 또한 존재합니다."
어느 날 저녁(어디였었는지 정말 모르겠다) 콘서트를 "주께서 다시 오십니다"라는 성가로 끝을 맺었다. 그 마지막 구절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우리 모두 당신을 기다리나이다.
주께서 오시는 날
한평생 흘린 눈물
씻어주시리니.
나는 노래를 부르면서 눈을 감지않으면 안되었다. 너무 가슴이뜨거워서 눈시울이 젖어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울지 않으려고 눈을 꼭 감으니 그만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누구든지 비탄에 빠져 자포자기의 상태에 이르게 되면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그이상 더 할 수 없게 된다.
거리에 사람들이 걸어가는 것이 모두그림자가 걸어가는 것같이 보인다.길에서 어린 소녀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림자였다. 전화가 울린다. 어느 먼 나라에서 그림자가 나를 부른다. 내 방문이 열린다. 냉랭한 웃음을 띄고 그림자가나를 쳐다본다. 그림자가 무엇을 말하는지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옳아, 나는 컴컴한 숲속에서 누울 굴을 찾는 병든 짐승이다.
"도와달라고 누구를 부를 수 없었소?" "여소시오, 내 곁에 누가 있어 부른단 말이요?"
바보스런 말은 한마디도 곁들이지 않으면서 술에 대해 이야기해줄 건전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신부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근 분명히 내게 기도하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만, 그 기도만 하고 있었다.
의사를 찾으라고? 내가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을 것이다. 그러고선 진통제나 진정제를 마구 먹였을 것이다.(그것이 아무 소용없는 짓임을 나는 체험으로 잘 알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바스티엥 의사에게 간 일이 있다. 그가 해준 유일한 처방은 내 앞에 통을 놓고 그 속에다 팔피움(역주. 진정제)을 넣어준 것이었다.처음엔 아주 좋았다. 그렇지만 별로효과가 없었다.
친구를 부르라고? 어느 날 저녁 모르방 르베스크에게 전화를 했다.
"모르방, 지긋지긋하네."
"왜 그러오? 무슨 일이 있었소."
"기력이 제로 상태요."
"그참, 어떻게 한다? (껄걸 웃더니) 신부님, 나는 하느님이 아니오." 내 친구 모르방까지도, 그렇게 꿋꿋한 모르방까지도 내게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었다.
그해, 1968년 성탄이 궁금하리라. 내가 어떻게 성탄을 보낼 수 있었는지 묻지 마시길. 나는 자정미사에서 성가를 불렀다. 틀림없이 나를 필요로 한다고 내게 말했기 때문에.
나는 중립의 인간을 부질없이 기다렸다. 객관적인, 능력 있는 적임자가 내 귀에다 대고 큰소리로 "너는 술 대문에 병이 들었다"하고 소리쳐주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헛되이 기다릴 뿐이었다. 알콜 중독이란 낱말은 건강제일주의자들에게 겁을 주어서 그들을 벙어리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런가 하면 그 낱말은 알콜 중독자들 자신에게도 지긋지긋해서 그들을 귀머리거로 만들어버리니까.
나는 공간 밖에서, 시간 밖에서 나날을 보냈다. 오로지 나에게만 충실한 듯한 단 하나의 사람에 매달려서, 내 침대 머리맡 구리십자가에 못박혀 달려 있는 저 어른에게 매달려서.
나는 한번 애를 써 노력해보았다. 예수를 힘입어 내 불행한 운명을 딛고 일어서서내 안색, 내 표정을 고쳐보려고. 나는 예수께 말했다. "불행했던 예수여, 우리는 좋은 친구입니다." 그랬더니 내게 위로가 되어 기분이 나아졌다. 그런데 5분도 채 안되어 화장실 거울 앞에서 나 혼자 이렇게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이 형편없는 작자야, 네가 예수의 좋은 친구라구?"
한번은(나의 종말이 가까웠던 때다) 내가신경이 극도로 약해져 맥이다풀려 있을 때 서글픈 일이 일어났다.
쉰 살쯤 되는 어떤 부인이우리집 수도원에 규칙적으로 와서 일을해주고 있었다. 그 부인은 소박하고 친절했다. 나는 그녀가 인생을 웬만큼 살아온 나이라 내 이야기 상대가 될 수 있으리라 믿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그 부인에게 말했다. "아주머니, 오늘 저녁에 좀 만날 수 있을까요? 일이 끝나시면 댁으로 가고 싶은데요. 조용히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녀는 하던 일을 멈추고 이상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대꾸도 없이 등을 홱 돌리고는 기분이 상했다는 표정으로 멈추었던 일을 계속했다.
나는 창피를 당해 쓰디쓴 마음으로 내 방에 다시 올라왔다. '사람들이 모두 돌았어.' 방으로 올라오는 계단을 하나하나 디디면서 나는속으로 뇌이고 또 뇌었다.'모두 미쳤어, 모두 머리가 이상하게 돌았어, 이런 사람들하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창문 옆에 떨어져 있던 그 포도잎이 마냥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나는 수첩을 들여다본다. 말트(역주. 시실리아와 아프리카 사이의 지중해 있는 섬)에서 청소년을 위한 콘서트. 불란서에서 노인들을 위한 콘서트, 수첩에 적힌 글자가 그 다음엔 읽을 수 없게 되어 있다.
바젤(역주. 스위스의 도시)에 있는 친구 폴이 나를 도와주려고 애를 썼다. 나는 그 친구한테 갔다. 그는 자기 성당 위에 콘크리트로 지은 방을 내게 주었다. 나는 그 속에 틀어박혀 엎드려 있었다. 그는 몇 번씩이나 나르 보러 왔다. 나는 그의 친절한 얼굴에 따뜻한 미소를 보았다. 그리고 조용한 음성으로 내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여보게 뤼시엥, 자네는 밤의 아이로군."
발랑시엔(역주. 불란서 북부 도시)에 있는 몇몇 친구들이 내게 친절을 베풀려고며칠씩 자기들 집에 나를 불렀다. 내가 눈을 감는 날까지 그들을 잊지 않는다는 것을 언젠가는 알아주기 바란다. 그러나 슬프케도 그들의 우정이 내게 커다란 위로는 될지언정 내 병을 고칠 수은 없었다.
그 이외의 사람들, 목에 힘주는 사람들, 자기 양식에 확신을 갖는 격언을 즐겨 지껄이는 충고자들, 그대들이여, 청컨대 부탁하노니 알콜 중독다들 앞에서 거룩한 입들을 다물어 달라. 그대들의 정신세계는 우리 세계와는 다르다. 그대들의 손가락은 너무 안으로 굽었고, 그대들의 마음은 너무 약삭빨라서 우리네 마음의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어줄 수가 없다.
1969년 2월, 나는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었다. 나는,이 꼴의 나를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또 (인색하고 냉혹하고 교활하고 돈 좋하아흔 사람들도) 더참음 수가 없었다. 이들은말끝마다 지식과 이성이란 낱말은 빼지 않고 붙이면서 사랑이란 낱말은 한 번도 입에 담을 줄 몰랐다.
그래서 나는 행복의 나라로 떠나고 싶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곁에 있는 착한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는 대지로.
밤 10시쯤, 내 딸 파스칼에게 전화르 걸었다. 그리고 얘기를 나누면서 생트롱 알약을 먹기 시작했다(극히 적은 분량일지라도 심장병 환자의 피를 유체화 시켜주는 약이다) 하루 복용량이 알약 한 개의 4분의 1인데 나는 그것을 스무 알을 먹었다. 어쩌면 더 먹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원한 이별을 앞에 두고 인간은 그 이상 더 무엇이건헤아리는 데 아무런 흥미가 없다. 생트롱 알약도, 지은 죄도, 이 속세에 머룰러 있고 싶게 하는 재미있다는 일들도.
죽는 것이 무섭지 않더냐고? 천만에. 나는, 예수께서 지상에 태어난 인간 중 가장 으뜸이시라는 것과 그는 내가 마음으로 느끼는 모든 것, 지상을 떠나고 싶은 이 심정까지도 어느 정도 이해하시리라는 것을 확힌하고 있었고 뿐만 아니라 죽음의 목전에서 나는 또다시 새롭게 그를 믿었기 때문에 무섭지 않았다.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인생은 정말 신비하다고, 인간은 도무지 아무것도 모르다고, 이 무직 점점 더 심해져서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되었다고, 생트롱알약을 먹으면서 나는 내 딸에게 내가 생각하고 있던 이런 얘기들을 들려주었다.
지난날 내가 지었던 많은 죄가 두려웠느나고? 절대로 그렇지 않았다. 커다란 소망은 모든 다른 감정들, 공포, 후회, 분노를 몽땅 집어삼킨다. 체하는 도덕가들의 웃기는 고심참담 같은 것은 나를 한 번도 감동시켜본 일이 없다. 내가 지은 죄들도 내가 베푼 덕행처럼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다. 형편없는 개자식이지만 그래도 착한 마음을 가진 지금의 나를. 그럼 내가 차분하고, 조용했었느냐고? 아니. 정반대로 기가막히게 흥분해 있었다. 이세상의 온갖 죄악이 하나도 없는, 하느님의 계획대로 '다시 세워진' 저 세상으로 바싹 가까이 다가섰다는 생각에. 마침내 악과 인간들의 바보짓, 그리고 무엇보다도스스로를 감추고 계신 하느님의 신비스럽고 불가해한 고집, 이 모든 것을 다 이해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그리고 선도 아름다움도 욕지거리 모욕을 참아주는 용서도, 또한 여태까지 먼발치에서 어렴풋하게만 알고 있던 사랑도 모두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들떠 있었다. 아, 내 사랑스런 딸 파스칼....
새벽 2시 40분. 엑스(역주. 불란서 동남부 도시)를 지나갔다. 오른쪽으로 나즉이가라않은 하늘 아래로 라르세유 시내 불빛이 떠 있다. 길이 축축이 젖어 있다. 그러나 잘 보여 운전이 수월하다. 나는 치즈빵 한 개와 밀감 두 개를 먹는다. 약간 마음이 들뜬다. 멀러서부터마구간 냄새를 맡고 걸음이 빨라지는 말처럼. 나는 약간 피곤하다. 지나간 날 들의 깊은 우물 밑바닥을 다시 들추어내자니 힘이 든다. 만약 건강 제일주의밖에 모르는꽉 막힌 사람들이 내게 충고를 준다면 관심이 없지만 알콜 중독자의 충고라면 관심이 크다.
내 생각에 어떤 사람은 "뤼시엥 씨 계속하십시오. 이야기를 이해합니다."라고 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아니, 아니, 저아직까지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습니다."하며 거부할 것 같다. 참고 기다려주십시오. 이야기를 곧 계속하겠습니다. 필수통행. 푸른 동그라미간판 위에 하얀 화살표가 보인다(역주. 교통신호 표지판의 하나로서 푸른색 동그라미 속에 하얀색으로 화살표가 있으면 화살표의 방향이 있는 그 길로만 필수적으로 통과하게 되어 있다).
그날 밤 나는 내 딸 파스칼에게 "잘 있어라"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생트롱 알약을 모두 입에 넣고 약통을 비웠다.
그랬는데 내 머리맡 벽에 걸려있는 어른께서 놀랍게도 최초의 응답을내게 하셨다. 내 친구 누아르가 노크도 없이, 말 한마디 없이 내 방에 들어왔던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 그가 그렇게 밤늦은 시간에 내 방에 와본 일은 한번도없었다. 그럼 어째서 왔나? 나는 모른다. 그렇지만 알콜 중독자인 나의 일생에는 놀라운 일들이 너무 많아서 이제는 애써 이야기하려고 하지도 않을 정도이다. 그리고 옛날에는, 나뭇가지 사이로 숨바꼭질하며 달아나는 달을 보고 감탄하곤 했던 어린 녀석이 이제는 그분의 표징에 너무놀라워 입을 멍하니 벌린 채, 만족해할 뿐이다. 내게 언제나 충실했던 신비스런 사랑의 그 표징에. 누아르가 수화기를 들고 앰뷸런스를 불렀다.
병원에서는 즉가 내게 수혈했다.(밤새껏 계속해서 했다.) 그리고 피의 응고를 정상화시키려고 비타민 케이 앰플을 내게 주입시켰다. 나는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부끄러워서? 화가 나서? 무덤덤해서? 아마, 이 모든 감정들이 조금씩은 다 섞여 있었을 것이다.
3주일 수, 수면요법을 내게 실시했다. 다른 정신병 환자들이 서로 번갈아가며 문구멍으로 이상한 짐승 같은 나를 들여다보았다. 나는 이렇게 기도했다.
"나의 하느님, 무당벌레까지도 돌보시는 하느님, 나를 버리지 마소서.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믿지 않고 오지 당신만을 믿습니다. 당신에 대해 이 이상 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일생 동안 의심 없이 당신만을 따르겠습니다.... 제발, 사람들이 문구멍으로 나를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참 좋겠습니다."
3주일 후, 내 자동차 푀조403(역주. 불라선 제품 자동차 이름)으로 나를 포함하여 네 사람이 베르사유를 향해 떠났다.
나는 핸들을 잡고 운전해 가는동안 누아르와 브랑디쿠를가 종이쪽지를잠깐씩 들여다보면서 서로 소곤거리는 것을 보았다. 이야기는 내게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감히 물어보지를 못했다. 한 가지 질문이외에는...
"어디로 가지?"
"푸케 의사에게 간다네. 두고 보게. 자네가 훨씬 나아질 걸세."
나는 반발심이 생겼다. 좋아, 계속해. 나한테는 물어보지도 않고 저희들 마음대로 하고 있군. 삼복날 개처럼 시장바닥에 나를 끌고 다니면서.
푸케 의사는 처음에 브랑디쿠르하고만 얘기했다. 그런 후 함께 왔던 동료 세 사람은 내 자동차편으로 되돌아갔다.
내 자동차는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그래도 얼마간의 애착을 갖게끔 해준 유일한 물건이다. 그리고 내가 좋아한 물건이기도했다. 자동차 안에서 나는 지껄였고기도했고 때로는 울었다. 얼마 전, 나는 그것을 타고 더 이상 좋아할 수 없는 사람들로부터 달아났었다.
병을 잃고 깨닫다
1969년 5월 2일 그날, 동료 세 사람이모두 떠나고 나는 푸케 의사와 단둘이 있게되었다. 내 눈에 그는 젊어 보였고 사람 좋아 보였으며 머리도 좋아 보였다. 그리고 태평스런 사람으로 보였는데, 이 점은, 영혼이 지칠 대로 지친 환자에게는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푸케 의사는 자기 개인병원의 간호사 두 사람을 내게 소개시켰다. 친절하게도 두 간호사는 개가 질문할 때마다 한결같이 성의를 다해 대답해주었다.(얼씨구, 그때부터 처져 있던 내 어깨가 약간 으쓱해졌다.) 두 여성이 "무슈"(역주. 남성에 대한 존칭)하고 부르면서 깍듯한 존댓말로 정중하게 대후주니 비로소 나를 되찾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짐승이 아니고 사람이었다.
처음 이틀간은 잠도 잘 잤고 별일 없이 조용히 지나갔다.
사흘째 되는 아침, 아침식사가 담긴 쟁반 위에 '첫 번째 의견서'라는 제목이 붙은 네 페이지짜리 통지서가 있었다.
푸케 의사의 환영인사와 낯선 병원에 들어와서 안정이 잘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이해한다는 구절 다음에 어떤 낱말 하나가 내 눈을 동그랗게 했다. 알콜 중독이라는 낱말이었다.
그래서 나머지 뒷말은 얼른 대강 훑어버리고 정신이 번쩍 나게 하는 이 낱말을 재빨리 또 들여다보았다. 알콜 중독. 모두가 다 그래서 그랬구나. 모이 아팠던 것도 괴로웠던 것도, 몸서리쳐지는 무서운 밤들도, 모두가 그것 때문이었구나.
내 말이 거짓으로 들리는가? 진시이다. 내게는 그것이 공포와 안도가 똑같이 섞인 너무도 놀라운 뜻밖의 사실이었다. 나는 푸케 의사의 정확한 진단 때문만이 아니라, 알콜 중독자라면 벌써 그 병명 자체도 경멸스런 것인데 오히려 그가 환자 자신을 존중해서 그 말을 얼굴에다 대고 직접 일러주지 않고 글로 써서 조용히 일러주었기 때문에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후 그가 회진하러 왔을 때 바보처럼 나는 이렇게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저 선생님.제가 알콜 중독이라고요? 그럼 제가 이상하게 아팠던거싱 전부 알콜 중독 때문이었단 말씀입니까?" 그는 조용히 웃으면서내게 분명한 어조로 대답했다. "네,그렇습니다. 알콜 중독 때문입니다." 그는 내게 폭탄을 던져놓고 물러갔다.
어째서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던가? 이 의문이 번개처럼 머리에 떠올랐다.
첫째 이유는 사실일지라도 피상적이다. 나는 재 자신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는 사실(내 생활이 너무 바쁘게 돌아갔다.) 나는 몸이 아픈 데 대해서는 이상할 정도로 잘 견디어내는 저항력을 갖고 있었는데, 나는 이 저항력을아버지에게서도 물려받았지만 특히 어머니한테서 더 많이 물려받았다.
두 번째 이유는 더 심각하다. 내가 술을 너무 마시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을 나는 스스로 부인하고 있었다. 사실상, 술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인정하나다는 것은 그 해결책(술을 마시지 않을 수 있는)이 없는 한 어려운 것이다. 알콜 중독자는 그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계속 마시게 되고 다음엔 자기 문제를 방기한 채 자기 자신에게도 감추고 남에게도 문제를 감추어버린다.
푸케 의사는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그는 문제의 해결책을 알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에 나는 내게 많은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고통 없이 순순히 인정했다.
푸케 의사는 내 머리 속을 환히 비춰주었다. 아침마다 조금씩 나누어서 들려준 그가 쓴 14장의 글에서 나는 이런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알콜 중독자는 점차적으로 서서히, 고칠 수 없는 육체적 질병으로 고통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알콜 때문에 가느이 기능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차츰차츰 치유될 수 없도록 약해져버린다. 매일 조금씩 마신 것이 체내에 쌓이다. 아무리 술의 양을줄여서 적게 마신다 해도 어느 정도의 알콜은 체내에 축적된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씩 취하지 않도록 잘 조정해서 마시면 괜찮다."라는 충고는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위험하다. 한마디로 잘라서 말하면 알콜 중독자는 결코 마셔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마시는 것은 괜찮다라고 말하는 것은 알콜 중독환자에게는 살인죄이다.)
푸케 의사가 내게 말했다. 알콜 중독자는 그뿐만 아니라 성격이나 감정의 표현이 너무 다향하게 변하고 심리적으로 뭔가 거북스런 느낌 때문에 고통을받는다. 이 거북스런 느낌은 술을 마시고 싶다는 욕망과 술을 필요로 하는 그 필요성에 기인한다. 알콜 중독자는 이 심리적인 거북한 느낌에 대해 전혀 책임이 없다. 때로는(내 경우도 마찬가지였지만) 그 심리적 불편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조차 의식하기 못한다. 나 자신의 체험에 의하면, 내가 내자신을 환하게 투시함으로써 이 뭔가 마음이 편치 않은 거북스런 느낌이 무엇인가를 알기까지 무려 5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나는 푸케 의사(나는 그를 내 친구라고부르고 싶지만 그 의사의 고마운마음씨 때문에 감히 그렇게 부를 수가 없다)으 개인병원에 3주간 입원하고 있었는데퇴원할 무렵에 가서야 진정으로 한 가지 사실, '나는 술 때문에 병이 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환자이다. 개 같은 놈도 아니요, 지지리 형편없는 녀석도 아니다. 단지 병이 들었을 뿐이다라는 이 새로운 사실은 나를 안심시켰으며 나에게긍지마저 주었다. 환자, 환자일 뿐이오. 이 말이 구에 들리시오? 여보시오 당신네들. 나를 비판하고 길에서 만나면 외면해버리고 인사를 하면 공공연하게 콧방귀 뀌고 내가 말을 더듬거리면 싹 무시하고 내가 발걸음을 헛디디면 깔보던 당신네들이여.
나는 환자이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런데도 나는 모든사람들에게, 나를 이해할 생각은 조금도 없이 싹 무시해버린 채 살아 있는 생활인의 목록에서 내 이름을 삭제해버린 사람들에게, 크게 외치고 싶었다. 그대들은 정직한 사람이 아니오라고. 알콜 중독이라는 것은 질병이지 결함, 과오가 아니다. 그것은 고통이지 즐거움이 아니다. 그것은 노예상태의 구속이지 히히거릴 장난거리가 아니다.
푸케 의사의 치료를 받은 지 3주가 다 되어갈 무렵 나는 나 자신을 올바르게 판단하기 시작했고 처음으로 뭔가 내 삶을찾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한편으로는 즐거움을 느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노아의 외투 위에(역주. 구약성서의 노아로서 그가 최초의 포도재배자이며 또 한번 술에 취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그 이야기에 근거를 둔 것인지무엇을 뜻함인지 분명치 않음) 내가 토해낸 구토물을 보는 것 겉은 어떤 수치심도 느꼈다.
내가 얼마나 부끄러웠던가
그대에겐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
그래서
마노라.
내 아침밥상에 놓아둔, 푸케 의사가 쓴 의견서의 마지막 구절은 선견지명과 우정으로 엮어졌었다.
"어떤 경우에 처하더라도, 고독하게 혼자서 질병과 싸우고 있다는 생각을 가져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진심으로 이해하고 또 돕고자 합니다. 우리가 함께 노력하면 승리할 수 있는 길을 찾을 것입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곧 뵙게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푸케 선생님, 불란서의 6백만 알콜 중독자가 당신을 만나 알게 된다면 자살자도 더는 없을 것이며 그들의 가정마다 눈물아 사라질것입니다. 그들의 아내는 남편의 또 되풀이해 술을 마시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입니다.
푸케 의사가 우리 원장에게 쓴 내게 관한 보고서를 적어보겠다.
"육체적으로는 건강상태가 양호합니다. 수면, 체중, 식욕을 모두 되찾았습니다. 심리적으로는, 지적이며 성실한 태도로 치료에 응하며 협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과게에 대해 올바르고 지성적인 분석과 비판을 하 수 있었으며 알콜의 위험성도 깨닫고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 저로서는 이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좋은 결과를 가지리라 생각됩니다."
"장래 문제에서 그는 기자직을 원하고있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해서 저의병원에 온 것이 퍽 다행스러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그가 완전히 회복하여 우리가 안심할 수 있도록, 앞으로 계속해서 규칙적으로 저의 병원에 들러주시면 좋겠습니다."
실제로 '웨스트프랑스'지와 '레스트레퓌블리캥'지가 나를 기자로 받아주어서 나는 논평을 맡아서 썼다. 나는 그들에게 감사한다. 그런데 그 병이 무엇이라는 것을 더 잘 이해하고 있는 오늘에 와서 돌이켜보면 문제의 매듭이 풀린 것은 직업을 바꾸었기 때문이 아니라 내 머리 속생각을 바꾸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직억을바꾸고, 사는 곳을 바꾸고, 여인을취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가능할 수 있었다면 나는 그렇게 했을 것이다. 문제 해결의 으뜸 열쇠는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무엇이 머리의 생각을 바꾸어주는가?
휘발유 계기판에 아직도 100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는 디젤유가 있다. 니스는 얼마 남지 않았다. 기름이 떨어질까 봐 걱정하는 것이 꼭 술병에 술이 떨어질까 봐 걱정하는 것 같다. 통속에 따로 10리터쯤 기름이 있다.
1969년 7월 나는 생활의 기쁨을 되찾았다. 그리고 암스트롱이 달 위에 인간의 발자국을 남긴 21일자를 유심히 쳐다본다. "작은 걸음이지만 인간을 위해서는 큰 걸음." 나는 임 ㄹ에 정말 감동했다. 달과 놀던 어린아이인 나는 암스트롱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낭사로 돌아온 후 나는 술을마시지 않았는데 별로 좋은 기분이아니었다. 나로 하여금 술을 마시게 하던 그 요소는 없어지지 않은 채 그대로 내게 남아 있었다.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가 또 술을 마시게 될 것 같아 고민까지 하고 있었다.
사실상,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은 고질화되어버린 하나의 습관을 깨뜨린다는 것 이상의 문제였다. 술은 습성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정신적인 요구, 필요였다. 사람이 알콜 중독자가 되는 것은 우연에 의해서 도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된다는 것을 나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럼 육체적인 필요에 의해서?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정신적인 필요 때문이라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내가 앞으로 더 이상 술을 필요로 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떻게 해야 하며,내 머릿속 사고 중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가? 전과 꼭 같은 결과를 가져오는 꼭 같은 원인, 그리고 꼭 같은 욕망, 꼭 같은 공포, 꼭 같은 분노를 일으키는 전과 꼭 같은 원인이, 전과 꼭 같이 술병 쪽으로 나를 밀어붙이려 했다.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났다.
푸케 의사를 떠난 지 2개월 9일째 되는 날, 나는 우리 집안 친척들 스무 명과 함께 자동차로 코엣키당(역주. 군인특수학교)에 장교로 있는 조카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떠났다. 신부의 여동생이 같은 날 다른 장교와 또 결혼했다.
그래서 결혼식엔 많은 손님이 왔다. 나는 군인이라는 직업과 복음서의 요구를 양립시키는 어려움에 대해 손님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몇몇 장굑 내 말을 못마땅해 했다. 그런 반응은 예측했던 것이었다. 군인은 사람들을 보호하기 때문에 봉급을 받아 살아가고, 신부인 나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사랑을 제공함으로써 의식주 해결을 하고 있다. 그것이 서로 상반되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할 필요는 있다. 저녁이 되자 우리는 춤을 추었다. 사람들은모두 기쁨에 차 있었다. 내 조카가내가 무엇인가를 쓰고 있는 테이블로 다가와 말했다. "아저씨, 우리하고 샴페인 한잔만 안 하시겠어요?"
내 머리 속에 재빨리 소용돌이가 일었다. 딱 한잔, 더도 말고 딱 한잔. 나는 내게 타일렀다. 결혼축하연 분위기에 장단을 맞추어주어야 한다, 별나게 굴어서는 안돼. 나도 저 사람들처럼 인생을 사랑한다는 걸 보여주어야 돼. 소용돌이는 몇 초 만에 끝났다. 나는 대답했다.
"암, 마시고말고."
꼬박 두 달 동안 술을 입에 대지 않았기때문에 샴페인은 내게 독한 것 같았고 또입맛이 쓴 것 같았다. 그래서 한전 더 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나는 아프지 않았. 그렇지만 나 자신에대한 신뢰심이 금방 뚝 떨어졌다. 이상한불안이 내 머릿속에 스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내게 알콜 중독이라는 병이 생긴 중요한 한 가지 원인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한잔의 샴페인을 거절함으로써 내가 감히 조카를 난처하게 할 수 없었다. 이와 같이 나는 푸케 의사에게 도움을 구함으로써 감히 그를 난처하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궁지에 몰렸다. 알콜 중독자는 원래 거절함으로써 남을 난처하게 만드는 것을 본성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 불안은 그 박자가 빨라졌다.
돌아오는 길에 어떤 마을(그 이름은 잊어버렸다)에서 가족끼리 점심을 먹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붉은 포도주 한 잔을 마셨다. 보주에서 저녁을 먹으며 붉은 포도주 한자. 다음날 낭시에서 붉은 포도주 한잔. 저녁 먹으며 붉은 포도주 한 잔. 그쯤은 괜찮습니다. 보통입니다라로 말할 것이다. 천만에. 그것은 큰 파국을 몰고 왔다.
이틀 후 클레르몽페랑(역주. 불란서 중부 도시)의 콘서트에서 점심에 한 잔, 저녁에 한 잔.
그 후, 내 수첩을 보니, "9월 30일, 로안에서 콘서트, 앓다." - "10월 14일, 브장송(역주. 불란서 중부 도시)에서 콘서트, 앓다." - "10월 17일 ,뮐루즈(역주. 불란서 동북부 도시)에서. 앓다." 그다음엔 내 수첩에 아무것도 씌어 있지 않았다.그러나 한 가지 알고 있는 것은, 어느날 점심에 붉은 포도주 두 잔, 저녁에 넉 잔을 마신 것이다.
그 결과, 모든 것이 막무가내로 되감겨버렸다. 절망, 자신에 대한 경멸, 수치심, 나는 톱니바퀴에 꽉 물려버렸다. 나는 "모던 타임즈"라는 영화의꼭두각시 찰리 채플린이 되어버렸다. 지나간 날이 되돌기 시작했다. 오히려 푸케 의사에게 가지 이전보다 더 악화되었다.
신경이 극도로 쇠약해져, 용기를 깡그리 잃어버린 후, 푸케 의사를 떠난 지 일년 만에 그에게 전화를 했다. 푸케 의사가 "오십시오"하고 내게 말했다. 자동차를 몰로 나 혼자 갔다.
그러나, 내가 처음에 입원했던 때와는 달리병세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나는내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미처 몰랐었다는 그런 구실은 이제는 어불성설이었다. 내가 술을 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나의자유의지는 어디론가 증발해버렸다. 탈출구는 오로지 죽음뿐이었다. 이때만큼 간절하게 죽고 싶어해본 적이 없었다.
푸케 의사가 우리 수도원 원장에게 보낸 편지다.
"뤼시엥 씨의 병세가 너무 걱정스럽습니다.입원 당시, 그는 너무쇠약하고, 지치고, 중독되어 있었습니다."
사실이다. 이 당시의 3주간을 회상하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아침이면 덤덤히 일어났다. 거의 먹지 않았다. 시내에 나가지 않았다. 집안을 빙빙 배회했다. 간호사를 보고도 미소 짓지 않았다. 울안에 갇힌 암소처럼 느린 걸음으로 정원을 왔다 갔다 했다.
나는 하루 내내, 특히 밤이면 더욱더 어두운 생각만 되씹고 있었다.
'너는 도저히 술을 끊을 수 없다. 뤼시 엥, 너는 죽어가고 있어. 너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싶지만 네 영혼은 화장터 장의사 일꾼같이 감각이 없어. 너는 환자들을 위호해주고 싶지? 그런데 너에겐 한 방울의 기쁨도 없다니까. 너는 인간을 사랑하고 싶지만 자기혐오 때문에 이빨만 악물고 꼼짝도 못하지 않니?' 빙해의 꽁꽁 얼어붙은 살풍경, 추위, 쓰라림.
그때를 상기하면, 지금 내가 따뜻한 르로 20차 안에서 있는데도 등이 오싹하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한 것은 사람들의 이런 동정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가엾은 뤼시엥 씨, 좋은 신부요, 민감한 사람인데, 딱하게도." 동정도 아무 소용이 없고 더군다나 용기를 주기 위한 격려도 소용이 없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것은 안개가 짙은 오늘밤에도,고독의 밑바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6백만의 알콜 중독자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알콜 중독자 내 형제들이여, 오늘밤 그대도 지난날의 나처럼 괴로워 한다면 주름살을 펴고 활짝 웃을지어다.
그대는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괴로움의 막바지에 서 있을 뿐이다. 활짝 웃어라. 원하기만 한다면 그대의 비참은 종말을 맞을 것이다.
니스가 가까워온다. 고속도로가 니스 쪽으로 완만하게 다시 내려간다. 해안 쪽으로 다시 접근한다. 표지판이 길이 넓어진다고 알려준다. 교통신호 표지판이 약간 혼란을 일으킨다. 푸른색 간판에 벌써 제노바를 예고하는 글씨가 있다. 잊을 수 없는 콘서트를 세 번 했던 니스여 잘 있거라. 봉수아르 베르나르, 봉수아르 시가지 너머 있는 시미에(역주. 장소이름)여, 봉수아르 베르뒤르(역주. 장소이름)의 극장이여, 고속도로가 언덕을 향해 다시 올라간다.
처음으로 에이.에이에 참석하다
고속도로가 언덕을 향해 다시 올라가듯 내 병도 다시 오르막길로 접어들었다.
1970년 부활절 무렵, 푸케 의사가 내게 이런 뜻의 이야기를 했다.
"베르사유에 '익명의 알콜 중독자들'이라는 그룹이 있습니다. 그들은 매 금요일마다 모임을 가집니다. 거기에 참석하시고 싶다면 모시러 올 것입니다."
나는 이런 모임에 대해 한번도 들어본 일이 없었다. 그 모임에 오는 사람들이 나늘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으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술고래들, 주정뱅이들, 허풍쟁이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속속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나보다 더 나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런 사라므들 틈에 내가 끼이고 싶지도 않았고 그런 틈바구니에 잘난 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술꾼들이 무엇인 척하며 되씹고횡설수설들, 나는 그것도 넌더리가 났다. 정치가 어떻고 경찰이 어떻고 미국 놈이 어떻고 로또(역주. 복권놀이의일종)가 어떻고, 계집들이 어떻고 신부들이 어떻고 떠들어대는 바보 같은 쇠들, 아가리를 모두 박살을 내야 된다는 둥, "자리 권리를 반드시 찾을 줄 알아야 된다"는 둥, 정부가 결국은 막걸리에다 바가지를 씌워 세금을 뜯어낸다는 둥 하는 맹꽁이 같은 열변들, 나는 이 모두가 지긋지긋했다. 더군다나 내 구세주 예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주절대는 끝없는 바보소리, 지고한 사랑을 멋대로 요리해서 히히덕거리는 잡된 소리, 이런 소리와는 맞싸울 기력조차 없었다. 나는 믿는 신자올시다. 제발, 머저리 같은 인간들, 술독에 코나 박고 있으시오. 나를 건드리지 마시오. 내 비록 이 지경으로 파김치가 되었을망정 한 오라기 긍지만은 기키고 싶소.
어쨌거나 그 사람들이 알콜 중독에 관해 내게 가르쳐줄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었다. 나는 그 그룹에 대해 며칠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만약 푸케 의사가 내게 "가셔서 그 사람들을 위로해주십시오. 그 사람들이 퍽 좋아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것이 내 천직이니까.나는 벌써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그 사람들 가운데 서 있는 나를. 잠시 조용해주십시오. 하고 우선 점잖게 한마디 한 후, 짧지만 박력 있고 적절한 연설을 하고 있는 나를.
"여러분, 저는 뤼시엥이라는 사람입니다. 제 이야기를 들어보신 일이 있지요? 이곳 시라노 영화관에서 콘서트를 했었는데 기억나십니까? 네... 그런데 여러분, 알콜 중독이라는 병은 아니, 아니, 그만 그만. 울지 마십시오. 보십시오, 자부심을 조금만이라도 가져보십시오." 그 다음엔 어쩌고저쩌고.
그렇지만 그런 모습은 잠시뿐, 영웅처럼 연설하고 있던 내가 다음 순간에 무겁고 무거운 고뇌에 짓눌려 쓰러질 듯 서 있다. 결국 나라는 인간은 이따위다. 그러니 푸케 의사도 이제는 나를 고칠 수 없다. 내가 절망적이라는 것을 의사 자신도 잘 알고 있고말고. 의사도 자신을 잃어버렸거니와 나도 자신을 잃어버렸지. 어찌됐든 푸케 의사는 다른 궁리를하고 있거든. 내가 곧 죽을 때가 된 모양이지?
이런 생각들이 강박관념이 되어 연속적으로 나를 내리눌렀다. 만약 한 사람의 알콜 중독자가 구렁텅이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면 스무 사람의 알콜 중독자도 빠져나올 수 없다. 알콜 중독자 하나에다가 알콜 중독자 스물을 더하면 알콜 중독자가 스물하나가 된다. 어이없게도 나는 이 논리가 마음에 들어 자랑스러웠다.(도대체 이런 논리가 알콜 중독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틀림없이 잘 알고 있었을 텐데 나는 그것을 고의적으로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알콜 중독자라면 며칠간, 내 머리 속을 넘실거린 생각의 물결이 어떤 것이었는지 쉽사리 이해할 것이다. 그 모임에 꼭 가야 된다. 거기 가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한번 속는 셈치고 믿어봐야 된다. 눈을 감고 외면해버려야 된다. 결룩 아무 결정도 못 내렸다.
사실상 나는 결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1970년 3월 20일. 부활절이 지나고 닷새째(내가 기억하는 한), 아름다운 묘령의 아가씨가 병원 문에서 나를 찾았다.
"크리스티안이라고 합니다. 저는 알콜 중독자에요. 원하신다면 오늘 저녁 모임에 참석하시도록 모시러 왔어요."
"감사합니다. 윗도리를 걸치고 오겠습니다." 그녀의 자동차에 들어가 앉았을 때 내 목구명이 꼭 죄었다. '저 아가씨가 알콜 중독자라고 자기 입으로 말을 했겠다.'
그녀가 천천히 운전하고 있는 동안, 나는 그녀의 한없이 고요한 얼굴을 호기심이 가득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그녀는, 말없는 시선이 상호교류를 이루며 그 상호교류는 환자가 필요로 하는 평화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가 때문에 내 염치없는 눈길을 감수했다. 그녀의 시선이 내 얼굴 위에서 흐려졌다.
그녀의 시선은 "염려마세요. 무슈"라고 흔히 하는 상투적인 뜻 없는 격려도 아니었다.
"결국, 그 연세가 되셔서..."라고 흔히 하는 상투적인 질책도 아니었다.
그녀는 보행자가 지나가도록 횡단로 앞에서 차를 멈추었다. 그녀는 다시 출발했다. 언제나 고요하게, 언제나 말없이 그리고 내게 시선을 한 번도 던지지 않고서.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내 내부에 쌓여 있던 둑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을 즉각 느꼈다. 그렇다. 고통의 둑이 수치의 둑이 고독의 둑이 무너졌다.
그 무엇보다도 고독의 둑이 무너졌다. 나는 알콜 중독이 된 젊은 여인을 처음으로 보았다. 그리고 슬프지도 않은데 울고 싶었다. 달과 놀던 어린 소년이 같은 처지의 여자 친구를 만났기 때문에.
나는 그녀를 유심히 보았다. 내가 홀로 서 있던, 모래알뿐인 삭막한 사막에서 인간의 따뜻한 파가 흐르는 한 누이를 만났다는 것이 나를 황홀하게 했기 때문에.
그 후, 14년 동안, 한 번도 더는 보지 못한, 내가 잘 모르는 아가씨여 축복 있으라. 그대를 생각하는 내 뺨에 눈물이 흐르지 않는다고 그 누가 말할 수 있으랴.
내가 되풀이해서 말한다 해도 믿기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날 리버풀(역주. 영국 항구도시)에서 번호판 54를 붙인 차(역주. 불란서 동북부 뫼르트에모젤 지방의 지역번호로서 저자가 있던 낭시 수도원 지방이며 여기서는 크리스티안의 차를 뜻함)를 적정거리를 두고서 뒤쫓아 간 일이 있었다. 그런데 크리스티안은 말 한마디 없이 내가 비탄에 잠겨 목적 없이 뒤따르는 것을 막아버렸다.
나를 황야에서 끌어내준 최초의 존재, 이름밖에 모르는, 누군지 알 수 없는 아가씨여 축복 있으라.
그 그룹이 모이는 곳에 도착했다. 이미 20여 명이 와 있었는데 늦게 들어오는 나에게는 아랑곳도 하지 않고 모두 조용히 자기 소개를 하고 있었다. "저는 장이라고 합니다. 저는 알콜 중독자입니다.", "저는 루이즈라고 합니다. 저는 알콜 중독자입니다." 모두 한결같이, 수치도 허풍도 없이 똑같이 자기 소개를 했다. 어느 누구도 나를 쳐다볼 낌새나, 위로해줄 기미가 없었다.
어두운 암흑과 쑥덕공론 때문에 무서운 폭력을 휘두르는 '알콜 중독자'라는 이 낱말, 어린 시절에 들은 이야기 속ㅇ 나오는 밤의 괴물 같은 이 낱말이 "나는 보주 산골(역주. 불란서 동북부 산맥) 사람입니다.", "나는 음악가입니다."라는 말들과 꼭 같이 평범하게 되었다. '알콜 중독자'라는 그 칭호는 모든 명칭들이 전시된 회랑에 들어가 제자리를 찾아 얌전하게 앉았다. 마치, 모든 베르사유 사람들이 나는 공무원입니다. 나는 왕당파입니다. 나는 베르사유 궁전 안내자입니다. 나는 키가 1미터 80입니다. 나는 슈크루트(역주. 요리의 일종)를 좋아합니다. 하고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너무 평범해서 아무런 위험성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 머리를 꽉 메우고 있던 불멸의 어떤 것에 금이 생기더니 이윽고는 갈라져버렸다. 처음엔 수치심, 다음엔 완고함, 그 다음엔운명의 숨결을 꺼질 듯 할딱거리면서도항상 살아 있는 절망, 이 모든 것에 균열이 생겼다, 내 경우, 절망이란 놈은 더러운 짐승처럼,태어나서, 살고, 죽고, 또 끊임없이 태어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그놈이 바로 그놈이 1970년 3월 20일 바고 그날에 죽어 장례를 치렀다.
모두들 격식도 없이 샇아 순위도 없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회자가 짤막한 환영인사를 한 후 에이.에이. 요강을 읽었다.
"에이.에이. 그룹은 각자의 문제, 즉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개개인의 경험, 효고, 희망을 다 함께 서로 교환하는 남녀의 모임입니다."
나는 생각했다. '나에게 적격이다. 그것은 바로 내 문제이다.'
"에이.에이. 그룹에서는 정치나 철학이나 종교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돈이나 명성과도 상관이 없습니다."
나는 생각했다. '음, 아마도 그래서 모두를 익명인가보구나.'
"에이.에이.의 유일한 목적은 자기 자신이 술을 마시지 않을 것과 또 동시에 다른 알콜 중독자들도 술을 마시지 않도록 협조해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이.에이.는 술이 가장 큰 문제(휴우, 사실 엄청나게 큰 문제)가 되는 사람들 그리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고 결심한 사람들을 위한 모임입니다."
이 마지막 구절은 대단히 중요한 것인데도 난ㄴ 훨씬 뒤에 가서야 그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으뜸 열쇠가 되는 구절이다.
사회자는 갈색빛 조그마한 책자(나는 14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그 책의 색깔이나 그날 밤 있었던 일을 낱낱이 세밀하게 기억한다.)를 대강 이런 내용의 말을 하면서 닫았다.
"명성이나 학위나 교육이나 정치적 지위 같은 것이 우리 사이에 개입하여 우리를 분열시키지 않도록 우리는 익명을 고수합니다. 우리는 술로 인해 빚어진 불행에서 우리가 벗어나기 위해 한데 뭉쳐진 우리의 힘이 필요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씩 자기의 병에 대해 이야기할 시간이 되었다.
"저는 장이라고 합니다. 제가형편없이 전락해버린 단계를 여러분께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자기가 자살을 기도하기까지의 모든 이야기를 했다.
그럼, 그 모임 속에 있던 나는? 나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그래서 이야기하는 사람에게서 내 눈을 떼지 않았다. 두서너 번이나 나는 발언권을 구하기 위해 손을 들었다. "저도 역시 꼭 그랬습니다, 아침마다 아무것도 먹을 수가없었습니다." 내가 세 번째 손을들었을 때 사회자가 빙그레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뤼시엥 씨, 이분의 이야기가 끝난 후에 말씀하십시오."
그런데도 나는 계속해서 나 자신에게 말했다. 저 사람이 말한 것은 정말 옳아. 나 겉은 경우는, 나 같은 인간은 나 하나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저 사람도 꼭 나오 같았구나. 저 사람들도 나처럼 전락해버렸었구나. 저 사람도 한밤중에 술을 마시려고 기어나가고 술병을 감추었고. 저 사람도 이중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꼈고. 이 양반아, 뤼시엥. 이제는 내가 혼자가 아니다. '이제는 네가 혼자가 아니아.' 처음으로 알아낸 사실, '저 사람들도 나하고 꼭같다.'
두 번째 알아낸 사실은 이미 내가 느낌으로 눈치 채긴 했지만 실지로 그들은 그 이상 더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뿐만 아니라 알콜 중독자는 자신을 속일 수도 없거니와 속이지도 않았다. 비통하고 한심스런 경험담을 이야기하면서도 저렇게 평온할 수 있다는 것은 그들이 이미 비탈의 다른 쪽 즉, 오르막길이 있음을 말해주었다.
그들 중 여러 사람이 이야기를 들으며 웃었다. 그런데 나는 웃지 않았다. 너무 감동했기 때문에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술을 끊었다. 마시지 않았다. 그것이 육안으로 보였다. 그들의 눈동자는 흐릿하지 않고 건강하게 반짝였고,손이 떨리지 않았고, 음성은 탁하지않고 침착하게 맑았고, 눈길이 흔들리지 않고 조용했고 그들은 유머를 되찾고 있었다.
세 번째 발견. 진작부터 내가 가장 놀라워했던, 확증된. 틀림없는 사실은 그들이 행복하다는 것이었다. 흥분해 있는 것도 아니었고공격조로 잔소리를 하는 것도아니었고 설교를 늘어놓는 것도 아니었고 약방 감초나 만물박사 노릇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한번 기급절사를 해본 우거지상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은 날개를 접고 앉아 있는 새처럼 침착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무슨 나뭇가지에 그토록 조용히 둥지를 틀고 앉아 있는지 몰랐다.
그들은 폭풍우에 대해서, 천둥뇌우에 대해서, 눈물에 대해서, 별의 별 파선데 대해서 이야기했다. 벽난로 앞에 둘러앉아 조용히 혼곶에서의 체험담을 나누고 있는 침착한 선원들처럼.
내가 소망하는, 그 어느 곳엔가 존재하는 하늘에서 난파선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떠나온 대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서로서로 물어볼것이다."고독과 눈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이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그리고 절망이란 단어는 무슨 뜻입니까?" 아무리 박식한 학자라 할지라도 그 대답은 잘 모를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베르사유의 남녀 시민들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서 자기들이 직접 겪은 악몽 같은 얘기를 덤덤하게 나즉나즉이 이야기했다. 그들은 과거의 오점으로 얼룩져 있지 않았다. 그들은 조용히 가라앉아 있었고 순수했고 지난날에 무관심했다.
크리스티안도 차례가 와서 얘기를 했다. "저는 그리스티안이라고 합니다. 저는 알콜 중독자입니다. 별일 없이 잘 지냅니다. 이번 주는 무사하게 잘 지냈습니다."
테이블에 빙 둘러 않아 있는 순서 그대로하나씩 돌아가며 말을 했는데 내 차례가되었을 때 나는 약간 두려웠다. 내 머릿속에 이런 혼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알콜 중독이란 질병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해서 늘어놓고 다음으로 내가 불행하게도 이 모양이 되었지만 사실 나라는 사람은 그리 형편없는 존재는 아닙니다라고 말할 것이가? 그런 경우, 이 그룹에서는 쫓겨날 것이고 나는 또 혼자가 되어 고독해질 것이다. 아니면 내가 훌훌 벗어버려야 할 사실들을 있었던 그대로, 생각나는 그대로 말할 것인가?
"뤼시엥, 한마디 하고 싶지 않소?" 사회자가물었다. 맙소사, 내게 튀투아망(역주. 존댓말 대신 말을 놓는 것으로 아랫사람에게나아주 가까운 사이에서만사용한다. 알콜 중독자들 간의 대화는 전분 말을 놓고 있으나 역자의 편의상 반말과 존댓말을 번갈아 사용했다)을 해주니 친근감이 생겼다. 그리고 막아놓은 둑을 무너뜨리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네,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뤼시엥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도 알콜 중독자입니다. 소리를 내어 저의 입으로 제가 알콜 중독자라고 말하는 것은 이것이 처음입니다. 나 혼자서 속으로만 알콜 중독자라고 생각해온 것은 벌써 일 년이 되지만, 그렇지만 한 번도 입 밖으로 내어 말해본 일이 없습니다. 더구나 대중 앞에서는 말할 것도 없지요."
"뤼시엥, 대중 앞에 서 있는 게 아니요, 우리하고 같이 있는 것이지."
"저는 지금 푸케 의사의 병원에 입원하고 있습니다. 푸케 의사가 이 모임에 가보라고 내게 제의했습니다. 저는 이 이상 더살아갈 기력이 없어 죽어가고 있다고느꼈기 때문에 이 제의를 받아들였습니다. 무엇을 말씀드려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먼저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여러분이 이야기한 모든 것을 저는 이해합니다. 오늘저녁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고서 저는 약간 감동했습니다. 무슨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뤼시헹, 술을 끊고 싶소?"
"물론이지요. 벌써 일 년 전부터 그러고 싶었지만 저는 도저히 할 수가 없었습니다. 뒤죽박죽 엉망진창입니다."
목구멍이 꽉 메었다. 10초쯤 지났을까. 조금 기운이 솟았다.
"정말 지긋지긋해 몸서리가 납니다."
"위시앵. 시간은 얼마든지 있소. 당신은 이미 우리들 치료법의 열두단계 중첫 단계에 한 발을 들여놓았소. 들어보시오. 읽어드리겠소. '우리는 술앞에서 무력하다는 것과 우리인생을 스스로 영위해나갈 주도권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시인합니다.'"
"저는 술을 끊고 싶은데 도저히 안 됩니다."
"뤼시엥. 바로 그것이 그 점이병이오. 나도 역시 마찬가지였소.전에는 나도 도저히 끊을 수 없었소.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저부 다 과거엔 할 수 없었다오. 뤼시엥. 용기를 가지시오. 좀 기다려보시오. 뤼시엥."
모두 차례가 끝났을 때 사회자가 웃으며 말했다."오늘 저녁에 모두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모임을 마치면서 저와 함깨 다 같이 평화의 기도를 하시지 않겠습니까? 기도문을 지으신 분은 익명으로 되어 있지만 마르크 오렐 씨로 추정됩니다. 제 생각엔 알콜 중독자가아닌 것 같습니다. 150만 명의 에이.에이. 회원을 위해 우리 함께 암송하겠습니다."
"나의 하느님, 내가 바꿀 수 없느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을 주시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도록 용기를 주소서. 또한 지혜를 주시어 이 둘을 분별할 수 있게 하소서."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에이.에이. 회원들과 그들의 기도는 나의 3년간의 철학과 다년간에 걸친 궤변을 빙그레 웃으며 손목에 힘 하나 쓰지 않고서 빗자루로 쓸 듯이 싹 쓸어버렸다. 기도문이 독자의 구에 거슬리는가? 신경 쓰지 마시라. 에이.에이. 회원들이 그 기도를 하도록 그냥 두시라. 알콜 중독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상관이 없는 기도이니까.
어쨌거나 내가 확실하게 말하고 싶은 것은, 신자들이 저렇게 안이하게, 무심하게 기도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일이 없거니와 비신자들이 또저렇게 자유스런 태도로 조용히 기도에귀를 기울이는 것을 본 일도 없다는 것이다. 지금, 자유라는 낱말이 여러분에게 어떤 뜻으로 들리는가?
그런 다음, 사람들 모두 일어났다. 커피와 과일 주스가 있었다. 나는 처음 대하는 새로운 친구들 사이를 누비고 다니면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쉴새없이 되풀이했다. "정말 희한한 일입니다. 저는 이런 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크리스티안 옆을 지나갔다. 그녀는 처음으로 나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나는 그녀에게 감히 말을 걸지 못했다.
어떤 알콜 중독자에게 내가 말했다. "저도 술을 끊게되었으면 좋겠습니다."그는 말은 한마디도 없이 대답으로 내 어걔를 툭 쳤다. "염려 마시오. 끊을 수 있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소. 쉽게 끊을 수 있소" 등의 앞날을격려하거나 과거의 악몽을 덮어주는 상투적인 위로의 말 같은 건 한마디도 없었다. 쉽게 술을 끊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우리들의 진흙투성이 발자국이 오래도록 남아 잘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그만한 대가를 반드시 지불해야 했다.
한번쯤 이 사실은 머리에 새겨둘 만하다. 에이.에이. 그룹은 병든 동물 같은 환자들을 얼른 주저하지 않고 위로해주는 모임이 아니며 심각한 사실을 그렇지 않은 양 축소시키지도 않고, 진실을 그럴 듯한 말로 감추어버리지도 않는다는 것. 그러나 에이.에이. 그룹은 모두 모여서 자기 자신을 꿰뚫어보려고 노력하며 각자가 자기를 비추어주고 각자의 빛과 더불어 스스로 문제를 풀고 스스로 어려운 고비를 넘긴다는 것을.
격려와 우정, 이것은 에이.에이. 그룹이 아닌 사람들에게서 충분히 받았다. 그러나 내게는 한 줄기 빛, 술과 불행은 신비스런 일체임을 이해하는 빛, 이 빛이 필요했었다.
피에르(모두 모여 있을 때 나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가 푸케 병원으로 바래다주었을 때 내가 걸치고 있던 비참이라는 외투가 내 어깨에서 벗겨졌다. 우리는 자동차를 타고 오면서 웃었다. 오래 전부터 나는 이런 웃음을 잃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때 기분이 약간은 좋았음에 틀림없다. 우리가 웃은 까닭이 무엇이었는지 모르지만 하찮은 일이었을 게다.
"피에르, 내가 술을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하오?"
"뤼시엥, 다른 사람들이 하듯 따라서 해보시오."
병원 문 앞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오면서 장단이 서로 잘 맞았기 때문에 피에르는 내가 아직도 얘기하고 싶은 것이 많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한 바퀴 더 돌아주었다. 어리로 갔던가? 나는 모른다.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야기하고,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다. 막아놓았던 봇물이 터졌다. 아무것도 그것을 막지 못했다. 쓰디쓴 아픔, 자기혐오, 수치심, 이 모두가 주둔하고 있던 진지로부터 줄도망을 쳤다. 내가 누구라는 것을 피에르에게 말했던가? 천만에, 말하지 않았다.
성도 필요 없고 이름 하나면 족했다. 피에르 앞에 서 있는 뤼시엥. 나는 그를 목발로 삼아 첫걸음을 내디딘 병든 사람일 뿐이다. 그 나머지는 그에게 아무런 흥미가 없다.
우리가 또 다시 병원 문앞에 왔을 때 피에르가 내게 말했다. "진정으로 술을 끊고 싶다면 우리를 놓치지 마시오." - "왜 그런말을 하시오?" - "혼자서는 끊을 수가없기 때문이오. 모든 것을 배워야 하오. 서둘지는 마시오." - "꼭 해야 할 것이 무엇이오?" - "우리와 함께 있으시오."
상상도 못해본 저녁이었다. 맴을 돈 듯 머리가 어지러웠다. 술의 노예가 된 나, 또 다른 것의 노예(나중에야 알았다)가 된 나에게, 내가 서서히 나 자신의 주인이 되도록 충고를 주는 것이 아니라 충고가 없는 그들의 방법. 군고도 없고 토론도 없고 놀리도 없고 학설도없다. 충고가 있다면 단 하나. "술을 끊고 싶으면우리를 떠나지 말고 우리와 함께 있으시오.그러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오."
"피에르, 에이.에이. 회원들이 서로 말을 놓는 것을 보니 도무지 이상한데요."
경우에 따라 서로에게 거리감을 줄 수 있는 존댓말을 에이.에이. 회원인우리가 쓰지 않는다는 것은, 치욕 속에서 생을 끝내고 싶지 않은 우리 회둰들과 한식구가 되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가식 없는 좋은 방법이었다. 그것이 우리를 하나로 만들었다. 그 나머지, 명예, 학위, 교육, 그런 것은 손톱 밑의 때에 지나지 않았다.
나를 설득시키느라 열이 오른 리페르가 내게 말했다. "뤼시엥, 당신은 시간이 있소. 한꺼번에 스물네 시간이오."
"스물네 시간이라니 무슨 말이오?"
"왜냐하면 과거에 대한 수치나 후회 때문에 괴로워할 수 있기 때문이오. 앞날에 대한 염려도 마찬가지오. 과거나 미래에 대한 이 치사스런 마음의 동요가 또 술병을 입에다 넣어줄 수 있소. 그러니 점잖게 스물네 시간을 한꺼번에 사시오."
"이해가 잘 안 되는데오."
"서둘지 마오. 뤼시엥... 성이 아니고 이름이지요? 뤼시엥이."
"호적에 이름이 그렇게 되어 있소. 우리 형제들은 집에서 나를 애메(역주.사랑받는 사람이라는 뜻)라고 부른다오."
"참 좋습니다. 그 이름대로 자기를 사랑하시오(그는 자동차 문을 열었다) 잘 주무시오. 뤼시엥."
나는 잠시 동안 "자신을 사랑하시오"라고 했던 그의 말을 생각해보았다. 여태껏 나는 식탁 위에 차려놓은 새 생활의 계획을 본능적으로밀쳐버렸다. 그러나 나는 내 인생을다시 살기 위해 그 후 그 식탁 앞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내 방에 들어왔다. 방이 작아진 것 같았다. 내 정신적인 시야가 그만틈 넓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조금 전에 보고 들었던 것을곰곰이 되새김질하며 밤을 새웠다. 잠이 오지않았다. 나는 두 길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내 마음 한 구석에서는 내노라고 나서고 싶은, 모르는 게 없는 이론가각 겉치레 겉옷을 되찾아 입으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에이.에이. 회원들 같은 그런 사람들과 관계를 끊으라고 수천 번도 더 아우성쳤다.
어리석은 녀석아, 너의 자요를 지켜라. 이상한 사기꾼들 틈에 왜 끼어들려고 하느냐?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면 금방 소문이 나서 아려질 것이고 그러면 콘서트고 무엇이고 만사가 다 끝장이 날 텐데...
어리석은 녀석아, 자존심을 지켜라. 너의 불행을 되씹어서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 사람들이 네 번째 단계라고 말했던 것, "우리는 우리 마음의 상품목록 재고조사를 용감하게, 낱낱이 들추어 세밀히 했다. "도대체 그런 것은 필요도 없거니와 창피하기만 하고 골만 깨는 것이다. 그게 술하고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냐?"
게다가 또 무명씨들이라고? 누군지 말도 않고 학시도 숨기고 신분도 숨기고.
또 또 열두 단계는 무어냐? 나는 이미 지켜야 할 것이 수두룩한데.하느님의 십계명에, 교회가 명하는 여러 가지 법에, 또 교통법칙까지. 맙소사. 해야 된다. 안해야 된다에 넌더리가 나는데.
사실, 나를 질리게 한 가장 근본적인 것은, 나 자신을 벌거숭이로 벗겨놓고 낱낱이 나를 살피게 하는 것이었다. 여러 해 동안 축적되어 있던, 단지 밑바닥에 가라않아 있는 앙금을 모조리 휘저어 퍼내라니. 아이구. 죽여줍쇼.
술도 없이, 나의 딱한 친구, 술의 도움도 없이,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인생을 혼자서 대결하라고 하니, 그것은 불가능하게 보였다.
"뤼시엥. 어 자네 웬일이야. 술을마시지 않는다고?" 깜짝 놀라 자빠질녀석들한테 내가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자네 봤는가? 뤼시엥이 물말 들이키는 걸. 전날 술이 지나쳤던 모양이야." 이러쿵저러쿵 쑥덕거릴 사람들을 또 어떻게 감당할까...
"뤼시엥이 또 술을 끊었다네. 그렇지만 이번엔 또 얼마 동안 견딜는지 두고 봐야지." 낭시의 동료수사들(내 친구 누아르는 한마디도않겠지만)이 저마다 한마디씩 뱉아낼 것인데 그것은 또 어떻게? 아! 정말 기가 찰 노릇이다.
내 상상은 흔들리는 시계추 같았다. 내 상상이 이번에는 나를 에이.에이. 그룹의 오늘 저녁 모임으로 몰고 갔다. 그 모임, 그것은 개가 꿈에 본 것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크리스티안, 감옥살이 한 제라르, 피에르, 모두 한결같이 행복한 것을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들은 모두 똑같이 내게 말했다. 혼자서는 도저히 술을 끊을 수 없다고. 엘뤼아르(역주. 불란서 시인, 1895-1952)의 시 구정이 기억에 떠올랐다.
우리는 바라는 곳에 갈 수 없노라.
나 혼자 떨어져서는
그러나
그곳에 이를 수 있노니
둘씩 서로 손을 잡고서...
그리고 성서에도 역시 그런 말이 있다. "혼자 있고자 하는 사람에게 불행."
에이.에이. 그룹에 들어갈 것인가, 거절할 것인가, 선택의갈등 때문에 나는 피곤했다. 지붕 위 망루에 앉은 참새가 오른쪽 왼쪽으로 쉴새없이 대가리를 돌려대는 것처럼, 그런 사람들 생각지도 말자 했다가 금방 아니야, 그 모임에 들어가자 했다가. 내 명예를 지키느냐 아니면 에이.에이. 그룹이 타당성이 있다고 믿고 가입하느냐? 도대체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마음씨 고운 금발의 밤 당번 아주머니가 들어왔다. 내 방문 밑으로 불빛이 새어나온 것을 보았던 모양이다.
"뤼시엥 씨, 잠이 오지 않으세요?"
"네, 아주머니. 신경이 곤두서서요. 오늘 에이.에이. 그룹 모임에 갔었거든요. 아, 정말 병이 나으면 좋겠습니다. 아주머니."
"이메녹탈(역주. 수면제) 한 봉지 드시겠어요. 뤼시엥 씨?"
부드럽게 미소를 띄우며 그녀가 물러갔다.
에이.에이. 그룹은 평화를 갖기 위해 어떻게 무엇을 했는가? 그 사람들도 나하고 꼭 같다. 그렇지만 나하고 다른 점이 있다. 그 사람들은 평화를 지니고 있다. 무엇을 했기에? 어떻게 했기에? 무엇부터 시작했기에? 무엇을 바꾸었기에? 아무 대답도 없었다.
에이.에이. 그룹에서 우리가 헤어질 때에갈색빛 조그마한 책자를 내게준 것이 있었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내 윗도리 왼쪽 호주머니에서 그것을 찾아냈다.
"나의 하느님,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을 주시고..."
새벽이 될 무렵, 갈등의 싸움터에 평화가 깃들었다.
그다음 날, 평소처럼 목구멍이 죄이고 마음은 사기를 잃어 풀이 죽은 대신에, 어느 날엔가 나에게도 새로운 아침 해가 떠오를 수 있으리라는 것을 느꼈다. 푸케 의사가 에이.에이. 모임이 좋았었느냐고 물었다.
"네, 선생님. 좋은 성과를 얻을 것 같습니다."
나는, 나의 새로운 희망에 대해 감히 말을 못했다. 밤이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가 떠오른 것도 아닌 그런 묘한 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그것을 명확하게 구분지어 주는 것은 꼬꼬댁 날개 치며 여명을 알리는 수탉뿐이다.
벤티밀리아(역주. 제노바만에 있는 이태리도시) 세관이 가까워온다.디젤유가 다 되어간다고 계기판에 빨간 불이 켜졌다. 프랑수아즈가 준 물병이 비었다. 나는 따끈한 커피를 미시고 싶다.
"불란서식 커피를 드릴까요?" 웨이터가 내게 묻는다(말하자면 양이 많은 연한 커리를 뜻한다.)
"아니요, 이태리식 커피를 주십시오."
이슬비가 그친다. 날씨가 풀린다. 오늘밤처럼 날씨가 맑을 때면, 바다 위로, 지면 위로 불쑥 튀어나온, 제노바로 가는 고속도로 위에서 보이는, 만을 둘러싸고 있는, 불 켜진 여러 도시들의 선녀의 나라인 양 장관을 이룬다.
굴, 고가다리, 불빛, 어둠, 불빛, 더움(스무 번도더 될 성싶다), 이런 반복이 에이.에이. 그룹의 새로운 한 회원의 넋과 같이 보인다. 끊임이 없는 미소, 고뇌, 미소, 고뇌.
1970년 4월 4일, 내가 푸케의사에게 면목이 없어 간신히 고맙다는인사를 하고 그곳을 떠날 때 모험을 하러 출발하는 느낌이 들었었다. 낭시로 돌아가면서, 보이는 모든 것이 이상하고 생소했었다는 기억 이외에 어떻게 갔는지 생각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햇빛도 전과 같지 않았고 교통신호판도 전과 같지 않았다. 나는 그 간판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들이 다르게 보였다. 내가 리모나드(역주. 음료수 일종)를 마신 커피집도잘 알고 있는데 영화 필름이 모자라서 재편성한 것처럼 달랐다. 커피집에서 손님들이 서로 주고받는 대화도 백 번 이상 본 영화장면 속 인물들의 대화처럼 나는 환하게 알고 있는데 그것도 달랐다. 낭시의 길거리도 만화의 그림처럼 비현실적이었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도 그들의 눈에 아무런 표정이 없어 현실 속의 인간이 지니는 후회나 욕망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 같았다.
내가 거처하던 방까지도 내게는 낯설었다. 내 책상 위에 있는 편지까지도 정말 나하고는 상관이 없었다. 그것은 다른 뤼시엥. 이전의 뤼시엥에게 온 편지였다.
새 세계에 내디딘 첫걸음
온종일 나는 무엇을 했던가? 특별한 일은 하지 않았다. 나는 술을 막 끊기 시작한 새로운 삶에 서서히 익숙해졌다. 전에는 한 번도 쳐다보지 않던 가게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커피집(전에 한 번 금주를 시도했을 때 들어가본 일이 있는 커피집이 아닌)에 들어가서 좋은 커피를 주문했다. 커피 종류까지도 선택했다. 커피집에서 정중하게 대해주었다. 그런 정중한 태도가 정말 아쉬웠다. 생수의 상표도 몇 개가 있는지 알게 되었고 그래서 바두아(역주. 천연가스물의 상표)를 선택했다.
나는 푸케 의사에게 편지를 써서 내 마음에 어떤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를 얘기했다. 그는, 자기 고찰의 심사숙고를 계속하라면서 나에게 용기를 돋우어주는, 간결한 회답을 보냈다.
과거에 내게 어떤 일들이 일어났었던가 나는 정말 알고 싶었다. 나는 베르사유의 에이.에이. 모임에서 들었던 얘기를 끊임없이 되새김질했다. 그러면 반드시 피에르가 내게 했던 마지막 말이 기억났다. "뤼시엥, 자신을 사랑하시오."
두 달이 지난 후, 나는 다른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겠다는 옛날의광기가 되살아나서 창립된 지 얼마 안도는 에스.오.에스. 친선 그룹에 가입했다. 나는 간부회의에 몇 번 참석하여 듣기도 하고 답변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내게 위험하다는 것을 얼른 알아챘다. 나는 생베르나르(역주. 중세기 순례단이 산에서 안개에 막ㅎ 길을 잃었을 때 순례단을 인도하여 구해낸 개)가 되어보려는 괴벽성에 또 빠질 것이며, 난파선 표류인들의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위험을 느꼈다. "뤼시엥, 자신을 사랑하시오." 나는 이 말이 얼마나 현명한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를 이해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신문기자직을 가져보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68년 5월에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하여 병이 재발되었던 사실에 대해 나는 몇 가지를 썼다. 그랬더니 내가 두려워하고 있던, 감수성 많은 10대 소년 같은흥분의 도가니 속으로 휘말려들게 되었다.그래서 나는 쓰는 것을 그만두었다.
사실 나는, 금방 부서질 듯, 금방 사라질 듯한 엷은 기쁨을 느끼면서 살얼음을 딛듯 조심스레 살고 있었다.
예수회 동료수사들? 나는 그들을 보지도 않았고 말도 거의 붙이지 않았다. 내 마음은 베르사유의 에이.에이. 그룹에 가 있었다.
파리 에이.에이. 회원 20여 명을 열거하면서 그 사람들의 갖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마지막에 이런 말을 내게 했다.
"뤼시엥, 잘 알겠지만 우리 병은 우리들이 감당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문제예요. 그렇지만 단단히 결심한다면 모든 것이 원만하게 해결됩니다."
내가 에이.에이. 회둰들에게, 인생에서 술을 빼면 아무것도 없다. 인간의 자부심이라는 것은 꿈을 지니고 싶어하는 것이며 또 그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 후 내가 오래 전부터 지녀왔던 생각을 또 그들에게 이야기하면 그들의 대답은 언제나 변함이 없었다.
"술을 끊지 않고서 어떻게 자신의 계획을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오? 금주는 우선적인 절대적 조건이오. 그러나 말리지는 않겠소. 마음대로 해보시오, 뤼시엥."
그들의 침착성과 그들의 균형잡힌 태도는 내게 감명을 주었다. 캐시아주머니는 뜨개질을 하면서 나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그녀는 남자처럼 호담했고 조용했다.
어느 날 저녁 캐시 아주머니 집에 온 한 부인과 남자가 내게 말했다.
"오늘 저녁 캐도르세(역주.파리 중앙에 있는 외무부 건물)에서 모임이 있는데 가고 싶으시면...."
남자가 운전을 하고 그와 함께온 부인은 운전석 옆에 앉아서재미있게 이야기를 했다. 내가 그 사람들의 무사태평함을 느끼고, 내가 얼마나 약한가 하는 것을 느끼며, 똑같이 흘러가는 강물인데도 저 사람들은 저 건너 강가에 있어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느끼니까 그만 짙은 실망이 안개처럼 나를 에워쌌다. 부인이 내 쪽으로 몸을 돌리다가 내 눈에 눈물이 괴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내 오른손을 잡고서 앞좌석 등받이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 자기의 다른 손을 내 왼손 위에 올려놓더니 조용히 내게말했다. "염려하지 마세요,뤼시엥. 우리도 모두 그런 고비를 넘겼답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누가 나를 건너편 강가로 건너게 해 줄 것인가?'
이 두 사람이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저 건너편 평화스런 강가로.
그런데 내가 잘 모르는 이 부인의 몸짓이 이런 대답을 하는 것 같았다."우리를 떠나지 말고 우리와 함께 계세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 해도 강 건너편에 다다를 것이에요."
캐시 아주머니와 나는 8일 동안 파리에 있는 에이.에이. 그룹들을 방문했다. 각 그룹이 모두달랐다. 각처에서 모였을 뿐 아니라 부유층 서민층 할 것 없이 두루두루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마지막 방문했던 여러 에이.에이. 그룹중 어떤 모임에서(다른 그룹들처럼 마음에들었다), 내 차례가 왔을 때 나는 말했다.
"제가 이 순간에는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낭시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나는 외도리가 될 것입니다."
겉보기는 무뚝뚝한 뚱보인데 의외로 마음씨 좋은 사람이 내게 말했다. "그곳에 가도 외톨이가 아닌. 당신이 믿는 지고의 힘이 당신을 오늘 저녁이곳으로 데리고 오지 않았소? 스물네 시간을 한순간처럼 알콜을 입에 대지 않도록해보시오. 내일이면 다 해결될 것이오.하느님은 나약하지 않소."
"아, 그래요? 신자시오? 그리스도인이요?"
모두 웃어댔다. 그 뚱보는 싱긋이 미소를 지었고 캐시 아주머니는 뜨개질을 했다.
이 일을 계기로, 이 지고의 힘을 회원 각자가 각기자기 나름대로 마음에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한 사람의교리가 다른 사람의 교리가 아니라는 것,어쨌거나 회원 각자가 죽지 않기 위해 자기를 바꾸어줄 수 있는 힘을 찾아낼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 원하기만 하면 찾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에이.에이. 그룹 모임에서 내 주목을 끈 것이 또 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만 한다는 그것이다. 정치 이야기도 없고 의사 이야기도 없고건강 이야기도 없고 알콜 중독자를 위한 비용 이야기도 없고 정부 당국의 태만에 대한 이야기도 없고 아니스 향료를 섞은술이 끼치는 피해에 대한 이야기도 없고 알콜 중독자 반대선전에 대한 이야기도 없었다.
자신을 다스려야 하는 일만으로도 벌써 엄청나기 때문에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쓸 수가 없다. 그리고 틀림없이 자신을 변화시킨다는 것이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또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고 바라는 것은 때로는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지 않으려는 핑계이다.
캐시 아주머니 집에서 한 주간을 보낸 후 나는 어떤 확신을 얻어 낭시로 돌아왔다. 뤼싱엥, 너는 이제는 혼자가 아니다. 손 끝에행복을 만져본 사람들이 너를 받쳐주고 있다.그 사람들은 믿을 수가 있다.
제노바에 곧 도착할 것이다. 계속 굴이 나오고 고가 다리가 나온다. 멀리 도시의 귤빛 불빛이 보인다.
베르사유아 파리의 에이.에이. 그룹이내게 회원들이 전화번호를 주었다.내가 아직도 약해서 위험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항상 누구인지 기억은 못하면서 여하간 전화번호가 눈에 띄는 대로 전화를 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수화기를 들었다.
"장이오?"
"아, 뤼시엥. 전화 주어서 고마워요. 음성을 듣게 해주니 정말 내게 좋은 일을 해주는 거요."
"내 할 말, 사돈이 하는 것 같소. 사실 내가 필요해서 전화한 것인데요."
"아니오, 온종일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소. 뤼시엥이 구석에 혼자 처박혀서 전화도 없다면..."
또 전화기를 잡았다.
"아네트요? 뤼시엥이오."
"잠깐만 기다리세요. 남작 부인께서 안에 계신지 안 계신지 알아보겠습니다."
"여보세요, 루시엥이에요? 아네트입니다."
"남작 부인이십니까?"
"안녕하세요?"
소서을 꾸미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소설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한번은 캐시 아주머니가 내게 전화를 했다.
"뤼시엥, 내 생각에 낭시가 너무 외로운 것같아요. 금주 초기는 항상 위험합니다. 스트라스부르에 뤼시엥이 꼭 가야 되겠어요. 거기 가세요. 내가 노엘에게 전화를 해두겠어요."
그녀가 방금 말한 것. 내가 꼭 가야 한다는 이 말은, 내가 지금껏 기다리고 있던 긴급하고 절실한 격려 바로 그것이며 어쩌면 가슴에서 우러나온 명령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이끌어주기를 그렇게 간절히 바라던 그 말인 것이다. 캐시 아주머니도 다른 사람들처럼 내가 스스로 결정하도록 나의 자율권에 일임하는 것 같았다.
내가 혼자서 내 생활을 결정했다. 그러자 흐뭇한 기분에 가슴이 떨렸다. 그렇지만 나는, 나의 자율권이라는 것이 앞으로 쟁취해나가야 하는 것임을 그때에는 명백하게 의식하지 못했다.
어쨌든, 나는 자동차를 타고 스트라부르로 떠났다. 역 구내 식당에서 노엘과 만났다.
백 명이 넘는 사람들 속에서 그녀와나는 한눈에 서로를 알아보았다. 정말 신기하다.두 젊은 남녀가 서로 친구 사이인지, 애인사이인지, 약혼한 사이인지, 이미오래 전에 결혼한 사이인지 우리가 옆에서 단번에 분간해 알 듯이 나는 이 여인, 노엘이라고 부르는 알콜 중독자르 서슴지 않고 알아보았다.
"안녕하세요, 노엘." 나는 기억력이 나빠 방금 듣고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기 일쑤라 얼른 그녀의 이름만을 부르는 데도 주저했다.
"안녕하세요, 뤼시엥. 뭐 좀 마시겠어요?" 그녀의 얼굴이 반가움으로 환해졌다.
나도 역시 기뻤다. 꼭 가족을 만난 기분이었다. 많은 군중들 속에서 노엘은 나의 단 하나의 일가친척이었다.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했던가? 언제나 똑같은 얘기다.술에 대해서, 행복에 대해서, 이 두 가지 화제는 손등과 손바닥처럼 에이.에이. 회원들이 빼놓지 않고 거론하는 이야기이다.
독자께서는 그런 만남 같은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고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모든 것에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직, 배고픔, 고독, 이런 것들과 투쟁하려고애쓰다가 나는 건강을 잃었고 정신력도 잃었다. 제발 나를 가만히 버려두라, 내가 기운을 되찾을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그러면 술을 끊은 중독자가 새로운 피로써, 새로운 희망으로써 어떤 일을 하는가 머지않아 곧 알게 될 테니까.
내 인생이 중요하지 않은가? 만약 내 인생이 중요하지 않다면 독자 여러분의 인생도 역시 중요하지 않다. 물론 40억 인류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인류의 삶에 종지부를 찍는 것 외에 다른 무슨 할 일이 있겠는가?
몇 달 동안 목요일마다 자동차를 몰고 300킬로미터 떨어진 스트라스부르로 갔다. 모임을 한 번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인지 그 사람들이 알았느냐고?"
"그런 질문은 그 사람들이나 나나 모두 관심 밖의 것."
모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각자가 충분히영양을 취해 고독과 굴욕 속에서죽어가지 않도록 힘을 되찾는 것이다. 그외 다른 것은 모두 이차적인 것이다.
어느 날 나는, 어머니를 뵈러 갔다. 그동안 나는 시간이 없어서 거의 어머니를 뵈러 가지 못했다.
"어머니, 제가 많이 아팠답니다. 아주 혼이 났었지요."
어머니는 미소를 띄운 채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제가 술을 더 마실 수 없게 되었어요. 어쩔 수 없이 몸을 돌보지 않으면 안 되었답니다. 그런데 지금은 괜찮아요."
언제나 미소를 머금은 채, 언제나 말씀이 없다.
"그래서 아직까지 몇 주간은 스트라스부르에 갈거예요. 그런 다음 낭싱 그룹을 만들 생각입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드렸다. 언제나 어머니는 미소를 띠웠다. 그러다가 마침내 어머니가 내게 하신 한마디를 알아맞혀보겠는가? 네가 나아졌다니 참 다행이구나도 아니며 소문나지 않도록 조심해라, 네 이름이 더럽혀지면 되겠니도 아니었다.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상냥한 이 여인, 가장 중요한 것에만 관심을 갖는 이 여인이 내게 말했다.
"그런데 내 생각엔, 반드시 네가 그런 일을 해서 앞으로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고 믿는다."
온갖 재주를 다 겸비한 이 여인, 수확하는 농부들의 노고를 존경하기에 들에 떨어진 단 하나의 이삭도 지나치지 않고 손수 주워오시던 것을 내가 직접 눈으로보았던 이 여인, 이 여인은 내가 겪은 고통이 헛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우리 어머니와는 반대로 내가 푸케 의사에게두 번째 입원한 후 낭시의수도원으로 퇴원해서 돌아왔을 때 어느 동료가 구석진 복도에서 내게 말했다.
"음, 자네 돌아왔구먼, 다행이야. 그런데 우리 그 문제는 더 이상 말하지 말자구. 자네도 말하지 말게. 깡그리 잊어버리세." 독자 여러분. 차이점을 느끼겠는가?
우리 어머니는 진정한 크리스찬이었고 그 동료수사는 법적인 크리스찬이었다.
나는 지금 얼마나 만흔 사람들이 보보처럼 죽었는지 알고 싶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입이 두려운 나머지, 처신 잘하는 건강제일주의자들의 비판이 두려운 나머지, 궁지에 몰린 알콜 중독환자들이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탈출구는 마시고, 마시고 또마시고 그러다가 죽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노바에 도착했다. 제노바 시가지로 들어가는 교차로로 접어든다. 항구를 따라간다. 내 오른편에 정박하고 있는 배들의 반짝이는 현창에 밤거리의 사람들이 노니는 것이 비친다.
지나가는 자동차가 한 대도 없다. 택시도 모두 꼼짝 않고 정차하고 있다. 앞에 보이는 길이 일방통행이다. 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그 위로 불이 환히 비치는 쪽을 향해 나는 무턱대고 약간 전진한다. 길은 항구를 떠나서 위쪽으로 올라간다.
나는 조그마한 유료주차장에 다다른다. 아주 멋있는 건물의 정면에 르노 20앞부분을 향하게 하여 차를 멈춘다. 나는 이 건물이 무엇인지 모른다.
나는 목에 걸어두었던 마이크를 벗는다. 녹음기의 스위치를 끈다. 그러고 나서 광고판 판자 위에 오늘 저녁 서트 매니저의 주소를 놓는다. "제노바 시, 포르텔로 광장 1번지, 키코 키아렐라."
나는 마지막 남아 있는 대추야자 한 송이와 밀감 한 개를 먹는다.
자동차에서 나온다. 날씨가 춥지 않음. 이슬비가 안개처럼 내린다. 바다 냄새가 가까이서 풍긴다. 나는 기지개를 켠다. 무릎을 굽혔다 편다. 보도를 걸으면서 담배에 불을붙인다. 나는 이 큰 도시를 서서히 점유하낟. 15년 전부터 나를 이미 네 번이나 받아주었던 이 도시를.
정기적으로 불이 켜지는 네온사인이 손바닥만 한 광장을 파랗게 비춰준다. "메트로폴리 호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쾌락을 위해서.
자동차 안으로 다시 들어가려는 순가, 멋진 건물의 벽에 붙은 5개 국어로 쓰인 광고판이 눈에 띄었다. "외국인 차량에 한해 무료주차를 허락함." 나의 밤이 조용히 지샌다.
까칠한 양털로 된 긴 담요를 편다. 윗도리를 둘둘 말아 베개를 만든다. 자동차 유리문을 아래로 내려서 2센티쯤 여유를 둔다.
몬테카를로 라디오가 브르빌의 샹송을 방송한다. "아일랜드 대지 위의 오렌지 나무."
미터기 판에 1190킬로미터 나타나 있다. 시계는 새벽 5시 40분.
낭시의 에이.에이. 그룹 친구들이여,안녕히 주무시오. 베르나르, 쉬잔,마르쿠, 장 마리, 르네, 자네르, 폴렡, 장 피에르, 봅, 크리스티안, 줄리엣, 그리고 다른 모든 이여. 이 밤, 나의 노래, 가장 아름다운 나의 노래를 그대들을 위해 불러드리고 싶소.
대지가 새로운 슬픔으로 가득 차면
내 유랑 인생을 멈추겠노라.
바람결 딸라 세상을 달리는 방랑의 인생을.
대지가 새로운 슬픔으로 가득 차면
대지의 피로를 달래고자
대지에 기대어
딱딱한 침상에서
잠들겠노라.
땅에 귀를 기울이노라.
죽은 자들의 리베라(역주. 가톨릭에서 죽은 사람들을 위하 기도)를 듣노라.
대지의 아들이 먼지로 돌아가도
대지의 아들이 황금빛 꿈들은 노래하노니.
대지가 새로운 슬픔으로 가득 차면
그 옛날 엄마에게 기대어 귀를 기울였듯
대지에 기대어 귀를 기울이노라.
대지가 새로운 슬픔으로 가득 차면
나는 듣노라 대지의 둥근 가슴에 기대어
새로운 인간이 세상에 오심을.
"안녕히 주무세요, 프랑수아즈. 성실하고 성실한 아주머니여, 오늘도 당신의 하루가 평화롭기를.
다시 올라가다
콘서트가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다. 마르그리타 홀이 아름다웠고 음향 효과도 쉬웠다. 기술자 라도미르 씨가 나를 도와서 네 개의 스피커를 적절한 장소에 놓아주었고 고음과 저음의 밸런스를 잘 조절해주었다.
선전화면을 위해 이태릴 텔레비전 방송국 알에이아이를 오후에 들렀다. 그 다음에 이태리 신문 '일 라보로'지의 신문기자들과 인터뷰를 했다.
콘서트가 그 자체를 위한 직업 통역사가 내가 말해야 할 것을 재치 있게 통역했다. 그녀의 이름이 무엇이었던가? 옳아, 오로라라고 했다.
콘서트가 끝나고 나는 10여명 친구들과어울려 아담한 카페에서 커피를들었다. 키코 부인이 먹을 것이 든 가방과 두 개의 생수 물병을 자동차 앞좌석에 놓아두었다.
키코 씨와 그의 부인이 고속도로 진입로 입구까지 나를 앞장서서 안내해주었다.
"뤼시엥. 주의하시오. 40킬로미터만 가면 토리노와 산레모의 갈림길이나오는데 산레모로 가는 길로 들어서야 되오."
"네. 물론이지요. 키코."
"일기예보에 불란서 동부와 벨기에에 눈이 내린다고 했소."
"상관없소, 키코. 고맙소, 안녕히 계시오."
23년간 2천 번의 콘서트를 가지면서 항상 변함없이 똑같았다.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가득한 우정으로 가슴이 부풀었다
목에다 마이크를 다시 건다. 나는 나카미스키 녹음기에다 새 건전지를 넣었고 녹음테이프도 새것으로 여섯 개를 운전석 앞 선반에다 준비해두었다.
"테이프가 다 끝나 가면 갈아 넣기 바쁘지 않으시오?"
"아니오, 녹음테이프가 끝나기 5분 전에 미리 빨간 깜박이 불이 예고해주니까요."
"쉬지 않고 녹음하시오?"
"아니오. 내가 망설일 때나 어떤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좀 생각해보아야 할 때면 임시 스톱 단추를 슬쩍 건드리지요."
길에 지나가는 자동차가 거의 없다. 바람이 북쪽에서 불어온다. 어제보다는 덜 거세다. 그믐달이 동쪽에서 제노바 도시 위로 떠올랐다.잠시, 백미러 속으로 달이 보인다.그러더니, 굴속을 지날 때야 그렇지 않지만, 그믐들이, 구석차지하기 놀이를 놀고 있는 것 같은 오리온 별, 리젤 별, 그리고 베텔죄즈 별의 성좌 속에 앉아서 내 왼쪽에서 계속 나를 따라온다. 아름답다. 오리온좌 옆에 남십자성이 있다.
진실이 회복되다
내가 술의 지옥을 빠져나온 후 다음 사항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나의 용기와 끈기. 아무 쓸모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끈기 있고 용기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부탁드리지만 나를 용기 없는 비겁자라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어릴 때, 꽁꽁 얼어붙은 날, 칠흑같이 캄캄한 밤길을 걸어 혼자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용기가 있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꼭 같았다. 내가 알제리아에서 죽은 민족주의자들의 자녀를 위한 콘서트를 대규모로 팔레드샤요(역주.파리 시내 트로카데로에 있는 큰 홀)에서 사흘 도안 했을 때, 나는 용기가 있었다. 이쯤 하고 넘어갑시다. 어쨌거나 끈기 있는 용기도 쓸모가 없었으니까.
맹렬한 자책.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내가 이를 악물면서 자신을 나무랐던 것이 그 몇 번이었던가. '바보 같은 녀석, 술을 끊을테냐말테냐?' 나 이외 다른 사람들은 이런경우 성질에 못 이겨 자신의 동맥도 잘랐고 목의 혈맥도 잘랐다. 부질없는 일이었다.
자탄의 눈물. 아무 쓸모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천만에, 마찬가지. 아무 소용이 없었다. 무용지물의 치료약이란 것이 있다면 바로 그것. 그것이다. "실컷 우시오, 네. 그러면 당신에게 좋을 것이오..."누구에게 좋단 말인가? 그런 꼴을 쳐다보고 자기는 저 모양이 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라고 자위하며 하느님에게 꾸벅 절하는 사람들에게 좋단 말인가?
돈. 아무 쓸모가 없었다. 한잔 마시러 가는 길에 쭈그리고 앉아 동냥하는 거지에게동전 몇 푼 던져줄 때는 쓸모가 있겠지만. 그러나 그 돈이, 내 눈을 뒤집어놓지는 않는다.
자존심. 아무 소용이 없었다. 병째 들고 나팔 부는 내 꼴(싸구려 술병임은 물론이거니와)을 남에게 들키지 않도록, 그래도 약간은 덜 초라하게 보이고 싶은 그런 경우엔 얼마간 소용이 있었겠지만, 내가 내게 타일렀던 것이 그 몇 번이었던가. '정신 차려, 이놈아, 그래도 너는 뤼시엥이야. 수백만 사람들을 위한 뤼시엥이야.'자존심을, 자부심을 아무리 되살려도술을 끊을 수 없으니 아무 소용이 없었다.
지식. 아무 쓸모가 없었다. 푸케 의사를 만나기 이전일 때 내가 죽음의 내리막길로 치닫고 있다는 것을 이미 이해할 수 있었던 것고, 그리고 푸케 의사를 안 후 술 때문에 죽게 된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던 것에는 쓸모가 있었겠지만.
하느님께, 성인들에게 드리는 약속. 해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는가? 왜? 아무리 약속을 한들 그것을 지킬 수 없음이 명약관화한데.
기도. 기도조차도(직접적으로) 내게는 소용이없었다. 물론 내가해결책을 받아들이도록 나를 도와주는 데는 필수적으로 필요했지만. 나는 지금 와서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 하느님은 홀로 역사하지 않으시고 인간의 손, 내 형제들의 손을 빌려 일하신다는 것을.
나는 감상적으로 모든 사실을 보는 것이 아니ㅏ. 나는 내 상처를 혀로 핥듯 쓰다듬지 않는다. 단지, (술을 끊는 데) 그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을 확언하는 것뿐이다. 나는, 술 때문에 죽어간다는 게 무엇인지를 내 자신이 직접 뼈저리게 체험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처음으로 참석했던 베르사유의 그 모임에서, 회원들이 실지로 겪은 이야기와 결과적으로 나타난 사실들을 눈으로 보고 들으면서 나도 술을 끊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내가 만약 궤변을 부린다면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았다. 또 모임에 참석하다가 도중에 중단하지 않는 한, 그것을 불신하지않는 한, 내게 있어 그 모임은유일한 구제책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렇게 때문에 나는 스트라스부르의 모임에 빠지지 않고 계속 나갔다.
몇 달 동안 스트라스부르를 왕복하던 어느 날나는, 나의 체험을 낭시에 있는 알콜 중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어떤 부인이 자기가 알콜 중독자라고 내게 편지를 보냈던 것이 기억났다. 그때, 나는 직업적인 설교투의 그럴 듯한 편지를 써서 답장을 보냈었다. 그래서 그 일이 생각나 나는 내 체험을 토대삼아 그 부인에게 편지를 썼다. "아주머니, 4년 전에 아주머니께서내게 말씀하신 그 문제가 아직도 풀리지 않았다면 지금 제가 그 해결책을 드릴 수 잇을 것 같습니다."
나는 그 부인을 보러 갔다. 병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얘기해주었다. 푸케 의사 얘기도 해주었고 베르사유와 스트라스부르 얘기도 해주었다. 그렇게 열을 내어 열심히 떠들었더니 약간의 효고는 있었다(그 부인이 웃으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내게 했다)
그 부인은, 내가 과거에 알콜 중독자였다는 것, 그리고 지금은 술을 끊어 알콜 중독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그 부인은 직관력이 비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술을 끊어 병이 나았기 때문에 자기 자신도 술을 끊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알콜 중독자들은 누구나, 갈고리에 걸려 빠져나올 수 없는 진창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온갖 희망을 다 걸고서 목이 빠지게 기다린다. 그런데 에이.에이. 그룹의 치료법이란 참 바보스럽다. 그들의 치료법은 이성에 입각한 합리적인 타당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 치료법은, 근본적이며 생산에 관계되는 본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 신비하고 묘하다.
행복에 대한 절실한 바람이 완전하게 없어진 알콜 중독자라도 다른 알콜 중독자가, 자기의 손도 충분히 닿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행복의 영상을 보여주면, 그 죽어 없어진 행복의 바람이 언제든지 소생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그 방법, 그것은 정말 신비롭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다. 그뿐 아니라 바로 이 방법을 사용해서 봅 의사와 그의 친구 빌 – 둘 다 알콜 중독자였다 – 이, 당대의, 병적이리만큼 따지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반박적인 이론을 무시한 채 160만 에이.에이. 회원으로 구성된 4만 개의 연쇄 그룹을 시작했었다. 창피스런 일이다. 숫자가 그렇게 많다니, 그러나 놀라운 일이 아닌가, 그 방법이 그것이라니.
술을 끊지 못하고 계속 마시는중독자가 에이.에이.의 치료법이 무엇인지 알고싶어 해서 내가 그에게 설명해주면 실망하기 일쑤다. "어떻게 그 치료 이 도움이 될 수 있단 말인가" 하고 이해를 못한다. 그러면 나는 언제나 똑같은 대답을 한다. "저도 역시 이해를 못합니다... 그러나 노력해보십시오. 보러 오십시오. 그저 보기만 해도 좋으니 오셔서 참석만 하십시오."
환자 앞에서 에이.에이. 회원들은 회복의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따져 설명해주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은 이렇게 권유할 뿐이다. "눈으로 직접 보러 오십시오. 에이.에이. 회원들의 아직도 아물지 않고 피가 흐르고 있는 상처를 직접 손으로 만져보러 오시오."
나, 뤼시엥으로 말하면, 나를 죽게 했던 여러 원인도 이론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었고 나를 소생시켜준 여러 동기도 이론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었다. 에이.에이.그룹이 구제방법은 눈과 귀로 들은 것만을 믿는다. 알콜 중독이란 병은 논리적으로 이치에 맞는 것이 아니며 그 병의 회복 역시 마찬가지다.
"테레즈와 함께 당신은 에이.에이. 모임을 어디서 가졌습니까?"
"커피집에서. 낭시의 오뒤리에브르에 있는 옹벨르라는 커피집에서."
그렇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그 모임을 가졌다. 카운터에서는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술꾼이 술을 병째 마셔대고 우리 곁에서는 전자오락을 하고 있는 그런 곳에서.
우리라고 말해보았자 술을 끊은 중독자는 둘뿐이었지만 우리는 스무명 앞에서 진지했다. 갈색빛 작은 책자(베르사유 모임에서 내가 맏았던 것이다)를 끄집어내어 모임을 시작했다.
"당신들 둘이서?"
"네."
"우스운데요."
"그렇습니다."
첫 단계를 읽었다. "나는 술 앞에서 무력하다. 그래서 나는 내 인새을 스스로 영위해나갈 자제력을 잃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전락했던 경우를 들어 이것을 설명했다.
"그런 건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 천만에, 그렇지 않았다. 나는그것을 말할 필요가 있었다.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오늘의 나를 어지럽히는 지난날의 불미스런 많고 많은 사건에서 나를 해방시키기 위해. 병째 술을 목구멍으로 넘기던 내짓거리, 밤에 비틀걸음을 안 걸으려던 더 우스운 걸음걸이, 48시간 동안 알자스(역주. 불란서 북부지방) 포도주 한 상자를 몽땅 마셔버린 일, 내차에 혹을 만들어놓은 사람들을 닦아세우던 내 태도, 새벽3시에 내가 어디에다 차를주차시켰는지 몰라 찾아 헤매던 일, 개혁을 도모하는 한바탕 연설을 자동차 안에서 혼자 떠든 일.
"그런 이야기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우리가 모두 같이 웃기 위새서죠. 그게 병을 고쳐주는 방법이지요. 그게 수치심을 낫게 해줍니다."
"테레즈도 웃었습니까?"
물론 웃었다. 나도 웃었다. 나는 그녀를 위해 비틀걸음을 직접 몸짓을해가며 보여주었다 우리 옆에서 싸구려 술을 찔끔찔끔 마시고 있던 사람들이 약간 놀라 쳐다보았다. 왜냐하면 내가 일어서서 층층대 난간에다 손을 짚어가며 온통 몸으로 얼굴로 흉내를 내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우리들에게 커피를 날라다 주던 웨이터가 세 차례 커피를 가져왔을 때 아는 체를 했다.
"모두 재미있게 노시는 것 같습니다."
"네. 재미있게 놉니다. 우리는 모두 개과천선한 알콜 중독자입니다."
자신을 대단한 인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지극히 행복할 숭 있어서 허리가 끊어지게 웃어댈 수 있다. 자신의 불행을 엄청난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할 수만있다면) 지극히 행복할 수 있어서 어려움을 견디기 쉬울 것이다.
또 한 번은, 내가 미국 디트로이트 대학교에서 했던 나의 부끄러운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날 밤, 나는 냉장고 속에 있는 맥주를 마시려고 또다시 일어났다. 밤이너무 조용해서는 나는 숨소리마저 죽이며 난간을 슬슬 더듬으면서 엄청나게 긴 층층대를 내려갔다. 계단을 다 내려가서 보니 유리 달린 큰 출입문이 바깥쪽에손잡이가 없었다. 그리고 용수철이 달린 이문은, 그대로 두면 도로 닫혀지게 되어 있어서 한번 닫히고 나면 바깥에서는 다시 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테레즈가 웃음을 띄우기 시작했다. 뭔가가기억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그 문이 닫혀지지 않도록 버팀개를 해두려고 내 실내화 한 짝을 벗어서 끼워두었다. 그런 후 커다란 냉장고 앞으로 살그머니 갔다. 맥주 한 병을 꺼냈다. 그런데 무엇이 얼씬하기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둠 속에서 자세히 보니 잿빛 나는 조그마한 고양이란 놈인데 어디로 들어왔는지 알 수 없지만, 아 이 녀석이 내가 벗어 놓은 실내화를 갖고 놀기 시작했다.(테레즈가바로 그때 웃음을 참지 못해 코로 숨을 죽이면서 킥킥 웃기 시작했다.) 나는 고양이를 쫓아내려고 쉭 쉭 했는데도 그놈은 집고양이가 되어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얼른그놈한테 달려갔는데 맙소사 빨리 뛰기는 해야겠는데 발소리는 낼 수 없고 기가 차서. 맥주 한 병을 마음 놓고 마시기 위해 고양이란 놈을 팔에다 단단히 끼고서 꼭 붙잡았었다.
이런 시시한 얘기는 말하기가 좋다. 왜냐하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우리 둘은 알콜 중독자의 상황을 즉각 이해하니까.
"결국, 그것을 고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첫 단계라는 것이 그것입니까?"
아니다. 고백성사에서는 고백신부님이 우리를 판단하다. 그것은 성사이기 때문에 당연히 신부님이 우리를 판단했다. 고백신부님은하느님을 대변하기 때문에우리는 고백성사의 죄상에 대해 반드시 쩔쩔매도록 아파하고 죄스럽게 느껴야 한다.
고백성사에서는, 거의 언제나 남에게 나쁜 일을 저질렀노라고 한다. 그런데 에이.에이. 그룹에서는 나쁜 일을 자신에게 저질렀노라고 하낟.
나는, 나를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은 얘기를 테레즈에게 들려준 일이 있다.
알프스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어는 날 저녁거기서 몇 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으로 맥주를 마시러 갔다. 나는 수도원 원장과 인류 장래에 대한 중요한 과제를 두고 서로 토론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자정이 되어서야 생제르베로 내려오다가 자동차 앞 오른쪽 흙받이 날개를 바위에 부딪쳤다.
다음날 아침, 내 친구가 내게 말했다. "너 어젯밤에 사고를 냈지?"
"아니." - "오른쪽 흙받이 날개가 짜부러졌던데." - "저 차를 빌려간 젊은 애들이 그랬을 거야." "내가 풀밭에서 차 열쇠를 주웠는데." 나는 말이 꽉 막혀버렸다. 나는이 사건에서 누구에게 나쁜 짓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나를 신뢰하는 이상적인 친구를 배신했다는 데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 테레즈는 그런 느낌을 잘 이해하기에 바다처럼 넓은 어머니 같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그녀는 브르타뉴 사람이다)
마음의 난파를 솔직히 전부 털어놓을 수 있는사람은 그 다음 날부터 즉시 가벼운돛을 달고 새로이 항해를 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썩은 새끼에 발목 매어놓듯, 인기니, 품위니, 자만이니, 명예니, 이런 형편 없은 것들에 매여 있었다면 나는 내 바보짓 때문에 옴짝달싹 못하고 죽었을 것이며 내 장례식 관구에는 가짜 보석이 주렁주렁 장식되었을 것이다.
"나는 술 앞에서 무려합니다." 어떤 알콜 중독자에겐 이 사실을 인정하는데 몇 달이 걸린다. 성공률도 높지만 실패율도 높다. 어떤 여인이 이렇게 말한다(이것은 내 상상이지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오늘 저녁, 제가 여기에 오기는 왔지만 알콜 중독자는 아닙니다. 저의 담당의사가 이 모임에 가보라고 해서 왔습니다. 의사가 말하기를저의 신진대사가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그렇지만 그 신진대사를 바꾸기만 하면 괜찮답니다. 또 저의 신경이 날카로워졌는데, 그것은 신경 안정제를 복용하면 된답니다. 그런데 사실은, 제가 신경이 예민하게 된 것은 저의 남편이 늘 나를 감시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저보고 하는 말이제가 술을 너무 마신다는 거예요. 그렇지만저는 남편보다 덜 마시거든도. 아이들까지도 저를 이상하게 본답니다. 그래서 제가 부르면 달아납니다. 그렇지만 그건 남편이 그렇게 시켰기 때문이지요. 어머니 되는 저에겐 참 못할 짓이에요. 내 마음이 아프답니다. 모두 저에게 등을 돌리니 살 맛이 없습니다." 그 여인은 한 시간 동안 이런 얘기만 했고 한 달 동안 모임에 와서, 이런 식의 이야기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왜냐하면 알콜 중독이라는 그 말에, 그 사실에 겁을 집어먹어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회원들은, 항상 조용하고 인내심이 있으며 차분한 우정이 가득하다. 어떤 알콜 중독자가 불신하고 있음이 확실한 경우에도 우정을베푼다. 불신은 고뇌의 내리박길로 더내려가게 한다. 틀림없다.
그런데 한번은 처음으로 참석한 사람이 이런 말을 한 일이 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꽉 물렸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안 되는 걸요. 저는제재소를 경영하는데 8일전에 우리 집사람이, 톱 위에 갖다놓은 마분지 상자를 봤습니다. 그 상자에다 대문짝만한 글씨로 우리 집사람이 써놓았어요. '술병이 한번만 더 눈에띄는 날에는 당장 이혼선언.'" 레이몽 씨, 염려마시오, 당신은 누워서 떡먹기요. 그는 제깍 술을 끊었다. 그리고 8년이 흘렀다.
또 어떤 사람은 알콜 중독이라는 말을 슬쩍 피했다. "저의 이름은 클로드인데, 저는 병이 들었습니다." 병, 비슷한 말이기는 하다. 그러나 알콜 중독자라 말과는 거리가 멀다. 알콜 중독자라는 말은 환자를 순하게 만들어 길들기 쉽게 한다.그 말을 입으로 뱉어내는 날, 그것을인정하는 그날은 우리 모두에게 기쁨의 날, 축하의 잔칫날이 된다.
테레즈에게 내가 "나는 알콜 중독자입니다."라고 말을 하면서 처음에는,축제날에 느낄 수 있는 약간의 짜증을 섞어 말을 했다. 그 후에는 침착하게 가라앉은 태도로 말했었다. 왜냐하면 알콜 중독자라는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에. 또 입으로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상처의 가장자리를 절제수술해주는 것과 같았기 때문에. 반복함으로써 내게 더욱 이롭기 때문에.
에프알3(역주. 불라선 텔레비전 방송)에서 지방특유 프로그램을 토의하러 왔을 때 낭시의 커피집에서 모임을 가졌었다(거기에 나도 있었다) 건배하려는 순간에나는 내 앞에 놓은 맥주를 보았다. "맥주입니까?" 사양하겠습니다. 술은 마시지 않습니다. 저는 알콜 중독자입니다." 나는 스스럼없이 사실을 이야기했는데 모두 농담으로 듣고웃었다. 그래서 연유를 설명했더니 열심히 듣고서 감격해했다. 알콜 중독자가 자신의 죄수복을 치켜들어 보여준다는 것은 해로운 일이 아니다.
어떤 알콜 중독자는 풍족한 생활 때문에, 받은 교육 때문에, 너무 망가져서 무엇이든 믿지를 않는다. 다른 알콜 중독자의 체험하지도 신임을 못한다. 자신의 불행 속에 밀폐되어 격리된 채 움직일 줄 모른다. 드물기는 하지만 그런 경우가 있다.
또 어떤 알콜 중독자는 머리가 돌대가리라, 얼마나망가졌던지 자신이 병이 들었다는 것조차도 모르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부인의 손에 끌려 할 수없이 두서너 번 나타났다가는 으레 자취를 감춘다. 이런 경우도 역시 흔하지는 않다.
다른 알콜 중독자를 구하려는 불 같은 정렬
둘이서 모인 지 두 달이 다 되어갈 무렵, 테레즈와 나는제3의 환자를 우리에게 가입시키고 싶은 생각이 났다.
우리는 그것이 쉬우리라고 상상했다. 왜냐하면 23만 명의 주민 중 알콜 중독자가 1만 8천 명이나 된다는 것을 아고 있었기 때문이다. 1만 8천명 가운데서 한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용이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210호 택시 기사가 알콜 중독자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개종한 새 신자들처럼 그 기사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우리는 중앙병원 앞에 있는 택시기사 식당에서 그를 찾아냈다. 창유리로 210호 기사가 주문한 요리를 입이 터지도록 먹는 것이 보였다. 그는 먹고 마셨다. 그런데 식사보다 술을 더 들지 않았다. 테레즈와 나는 서로 쳐다보았다. 몰상식하게 그를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아서.
한번은, 어떤 시계 상인이 알콜 중독자라는말을 들었다. 우리는 그시계상점으로 갔다. 우리는 시계 제조에 대해 얘기했다. 우리는 커피를 마셨고 알콜 중독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고 서로 존경했고 그리고 헤어졌다.
테레즈와 나는 바로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독환자는 그들이 기진맥진하여 어쩔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에야 우리들에게 온다. 그러나 바로 그때를 아는 것은 환자 혼자뿐이다.
그 증거로 이런 사실이 있다. 환자의 누이가알려주어서 퐁타무송(역주. 불란서 동북부에 있는 도시)에 알콜 중독자를 보러 갔다. 환자와 그의 어머니가 있었다. 그 어머니가 커피를 대접했고 나는 나의 알콜 중독에 관한 얘기를 했다. 어머니도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환자 당사자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도 어쨌든 그 환자는 나하고 에이.에이. 모임에 가겠다고 했다.
우리가 떠나려고 하는데 그의 어머니가 환자를 소리쳐 불렀다. "얘, 너 모자(역주. 학생이나 선원들이 쓰는 챙 달린 모자를 말함)는? 새 모자를 쓰고 가라." 그는 어깨를 한번 들썩 올리더니 떠나려고 했다. 어머니가 뒤따라 쫓아오더니위엄을 부리며 어거지로 새 모자를씌워주었다. 곧 죽어가는 ㅁ당에 새 모자라니! 그는 어린애처럼씌워주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조합의책임자로 있는 마흔 살 되는 그 환자가꼭 애기 같았다. 모임에서 그는 말했다."여기서는 모두 술 얘기만 너무 하십니다." 그에게 있어 선택은 이미 완료되어 있었다. 그는 벌써 죽어 있었다. 그로부터 두 달 후에 실지로 그는 죽었다. 어째서 독자는 내가 그를 위해 울기를 바라는가? 내가 나의 알콜 중독 앞에서 무력하다면 타인의 알콜 중독 앞에서는 훨씬 더 무력하다. 나는 그 환자의 어머니에 대해 약간 화가 났다.자기 아들이 스스로 삶을 영위하도록혼자 두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에이.에이. 회원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술을 끊고 싶어 하는 바람이다. 그게 분명한가? 다음의 예는 그렇지 않음을 보여준다.
나는 40세 되는 남자, 노엘을 보러 갔다.
"안녕하십니까, 노엘. 술 때문에 당신이 문제거리가 있다고 부인께서 무척 걱정을 하시기에 제가 왔습니다."
"아, 네. 제가 말이지요, 네.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만 사실 제가 스스로 끊고 싶어 하지오."
"참 다행입니다. 저는 사실, 도저히 스스로 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에이.에이. 모임을 보러 갔었지요."
"아, 네. 네. 네. 저는 술을 끊고 싶습니다." 그러더니 그는 팔뚝에 불끈 세운 근육을 손으로 보여주었다.
"네. 네. 그렇습니다. 저이는 술을 끊고 싶어 한답니다." 그의 부인이 말했다.
노엘은 아리덴(역주. 불란서 동부에 있는 산)에서 우유를 실은 트럭을 몰고 가다가 사고를 냈다. 내가 그를 다시 만났을 때 나도 역시 403(역주. 자동차 푖를 말함)을 몰고 가다가 사고를 낸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럴 수 있지요. 그런데 저는 술을 끊고 싶답니다."
그는 그 다음에 204(역주. 자동차 푀조를말함)를 몰고 가다가 사고를냈다. 다음엔 자전거를 샀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전선주를들이박으면서 넘어졌다. 그 다음에 또넘어졌는데 그때는 자전거도 타고 있지 않았다. 지금 그는 뇌의 혈액순환에 이상이 생겨서 병원신세를 지고 있다. 그는 내게 술을 끊고 싶어 한다는 말을 이제는 더 못한다.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기 때문에.
어떤 중독환자에게는 술을 끊고 싶다는 바람이 더디 온다. 어떤 환자에게는 일찍 온다. 어떤 경우엔 그런 바람이 헌번도 오지 않는다. 지쳐버린 그들의 가엾은 몸에 평화가 있기를. 영원히 고요를 향해 떠나간 그들의 영혼에 평화가 있기를. 너무도 기이하다. 정말 모를 일이다.
우리와 함께 같은 목적지를 향해 걸어갈 한 사람의 환자를 찾아내는데 이와같이 헛된 수고를 수없이 했다. 벼랑 위에 서서,불가항력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떠내려가는인생들을 멀거니 바라본다는 것은 정말 어지럽고 괴로운일이다. 그 익사자들은 자기네를 구해줄수 있는 이 말 한마디 "내가 술을 너무 마십니다. 나를 도와주시오." 이 쉬운 한마디를 왜 하지 않는지.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우리의 형제가 될 알콜 중독자 한 사람을 3개월의수소문 끝에 찾아냈다. 그는 15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살았다.
"사회복지사업에서 당신들이 오신다는 것을 미리알려주었습니다. 커피를 드시겠습니까? 저는 리코레(역주. 강한 커피)를 하겠습니다." (그는 리코레를 계속 마셨다.)
그는 문에 띄게 멋을 내었다. 머리손질도 잘했고멋지고 하얀 색의 와이셔츠를 입었고 면도도 깨끗이 했다. 그런데 리코레를 준비하는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는 자리에 앉더니 우리들에게 말했다. "자. 건배합시다. 우리들의건강을 위해서." 나는 그가 긴장이 탁 풀린 것처럼 이상하게 웃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그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웃음을 띄운 채 우리말을 들었고 지적인 질문을 했다. 테레즈도 그에게 질문을 했는데 솔직하게 대답했다.
"샤를, 혼자서 술을 마십니까?"
"네."
"여기 술병이 있습니까?"
그는 웃으면서 술병을 숨겨둔 곳을 보여주었다.
"혼자 사세요?"
"네."
"그럼 술병을 당신 자신한테 감추는 거예요?"
"저는 희한한 동물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의 미소는 수수께끼 같았다.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가없었다. 헤어지는 순간에 가서야 그 수수께끼가 풀렸다. 내게 하직 악수를 하면서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늘은 붉게 물들었습니다." 잠시 후 내가 대꾸했다. "날씨는 아름다울 것입니다." 그가 덧붙였다. "1959년 니스." 그의 어투가 감격해하면서도 재미있어 보였다.
자동차에 탔을 때 내가 테레즈에게 말했다. "조금전에 둘이서 말했던 것이 내가 지은 샹송의 첫 구절이오. 1959년에 니스에서 내가 했던 콘서트 때 그사람이 내가 부르는 샹송을 들었던 것 같소."
그후, 우리는 세 사람이 되어 "우리는 술 앞에서 무력합니다."라고 말하게 되었다. 말뿐만 아니라 실지로 우리 세 사람이 중독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1970년 바로 이 해가 저물어갈 때 한 해를 회고하면서 내 수첩을 열어보니 콘서트를 가졌던 도시 이름이 모두 적혀 있었다. 전부 불란서 국내도시였다. 이 두 사람, 새로운 친구를 너무 멀리 떠나 외국까지 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무렵, 콘서트 때마다 알콜 중독이란 질병에대해 몇 마디씩 했다. 이제는 청중들이내가 왜 그때 그런 얘기를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콘서트를 끝내고 돌아올 때마다, 나는 언제나 끊임없이 그 친구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이른 새벽마다잊지 않고 샤를을 전화로 깨워서 안부를 물었다. 그의 부엌은 밤새도록 불이 밝혀져 있었다. 내가 언제든지 들를 수 있도록.
그리고 또 수첩에 몇 사람의 주소가 적혀 있어싿. 모두 모임에 관해, 병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잠깐 와달라고 부탁했던 사람들이다.이런 가정방문은 별 효가도 없이오히려 위험했다. 에이.에이. 모임의 분위기가 주는 잔잔한평온을 그 사람들이 맛볼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세 시간 동안에 환자가 자신의 사애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이야기할 수는 없는 거니까. 또 가끔 환자 아닌 사람이 그 자리에서 자기 자랑을 하려 하니까("아시겠지만 우리 집사람으로 말하면, 아이가 셋에다 남편까지..") 당사자끼리 해결해야 할 문제에제삼자가 끼어들어 유익하기란 드문 일이다.
우리가 시내에 들어와서 모임을 가졌을 때 빛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던 몇몇 환자들이 왔다. 우리는 우리의 보잘것없는 체험 외에는 그들에게 줄 것이 없었다. 재산? 우리 셋 중 그것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을 목적하고 온 사람들은 또다시 오지 않았다. 그러나 용기? 그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서로 돕고자 하는 소망과 의지력은 대단했다. 우리들 중 하나가 위험에 빠지면 필사적으로 옹호했다. 앞 뒤 따질 사이 없이 본능적이었다. 그 예가 있다.
어느 날 어떤 에이.에이. 회원이 우리를 알기 전에 약간 어리석은 짓을 해서 재판정에 서게 되었다. 피고인 에이.에이. 회원의 변호사가 우리에게 도움을 청했다. 내가 가장 수다쟁이였기 때문에 동료들의 대표로 나가서 말을 했다. "재판장님, 오늘 법정에 선 자크는 저와(내 이름을 말했다) 똑같은 알콜 중독 환자입니다. 만약 재판장님께서 그의 집행유예를 폐지하고 징역을 언도하신다면 저 사람은 획복될 수 없이 병이 더 악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저 사람이 우리와 함께 있도록 해주신다면 온전한 이전의 젊은이로 되돌아가서 훌륭한 시민이 될 것입니다. 재판장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알콜 중독이라는 병이 무엇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병은..."
자크가 석방되었다. 출감 시 담당변호사가 우리에게 왓다. "나는 이 때까지 한 번도 이런 일을 본 일이 없습니다. 정말 축하합니다." 나는 그가 진실로 감격했다는 것을 우리와 악수를 나눌 때 알았다. 그 변호사는 말하기를, 사람이 한 동지를 자기 곁에 두려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자신의 명성과 인기를 헌신짝처럼 던져버리는 것은 처음 보았다고 했다. 그 변호사가 몰랐던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그 금고병은 내가 살아남기 위해 내게 필요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우리가 함께 뭉치면 우리는 술을 끊을 수 있게되고 사게 된다. 우리가 하나씩 떨어져 혼자가 되면 술을 끊을 수 없고 죽게 된다. 살아 있는 체험이 이 사실을 우리에게 증명한다.
우리가 함께 모이는 것은 우리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해서이다.
알콜 중독자들이 에이.에이. 그룹 모임에 오는 것은 남에게선을 베풀기 위해서도 아니고, 자기 아내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아버지로서 자식들을 위해서도 아니고, 하느님을 직접적으로 기쁘게 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예수회의 명예를 구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중독환자들이 에이.에이. 그룹에 철썩 들러붙는 것은... 죽지 않기 위한 그것. 단 한 가지. 죽지 않기 위한 것이 전부이다.
알콜, 술의 위력이란 내게는(우리에게는) 얼마나무서운지, 그보다 더 크고더 근본적이고 더 무서운 위력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대항할 수가 없업다. 승리할 수 있는 위력, 그것은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이교도적인 힘, 동물적인 힘, 원시 기독교적인 힘, 무어라고 이름 붙여도 좋다. 어쨌거나 그것은 나로 하여금 술을 마시지 않게 할 수 있는 유일의 것이었다.
우리가 법정에 옹호하러 갔던 것이 그 친구를 위해서였던가? 아니다. 이 사실에 독자가 가슴이 아프다면 죄송하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 법정에 갔고 에이.에이. 그룹이 계속 존속하기 위해 갔고 내가 죽지 않으려고 갔다.
내가 술을 끊기 시작할 무렵, 한번은낭시에서 더 극적인 일이 있었다.사회복지사업의 150명 위원이 알콜 중독을 방지하기 위해 복지사업에서 할 수 있는 시책을 토의하게 되었다. (그 토의 중에 한번은 알콜 중독자라는 말 대신 '미친 녀석들'이라고 하는 말이 내게 들렸다.) 나는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이 문제에있어 병들지 않으신 분들을 둘로나눌 수 있다고 보았다. 즉,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낟. "알콜 중독자들을 가두어두기만 하면 된다. (미친 사람들이나 죄인에게 입히는) 구속복을 입히기만 하면 된다. 주사를 놓기만 하면 된다. 하기만 하면 된다." 하기만 하면 된다. 하기만 하면 된다. 하기만 하면 된다...
또 다른 사람들은 다행스럽게도, 알콜 중독이라는 병이 단순한 것이 아니며 그 해결책 역시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고 감금한다고 그 병을 낫게 할 수도 없는 것이며 복지사업이나 환자의 가족들이 그들에게 잘못을 저지르고있다는 것도 알았다. 이런위원들이 압도적으로 더 많았다.
나에게 한 시간의 발언권을 주었다. 두서없이 말을 했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모두 했다.
"저는 알콜 중독자입니다. 쾌락을 위해 술을 마신 나쁜 인간은 아닙니다. 여러분들에 대해서 반발적이었지만 나 자신에 대해서도 마차가지였습니다. 저는 저의 자동차를 과속으로 몰아 속도위반을 했지만 일반적으로 인생을, 일상생활을존경합니다. 특히 여러분들의 생활과인생을 존경합니다. 저는 성미가 괴팍했지만...운운."
여성위원들의 대다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떤 부인이 물었다. "말씀하신 그 방법으로 어떻게 병이 나을 수 있습니까?"
"아직까지 저는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제가 술을 끊은 것이 겨우 6개월밖에 안되니까요. 그러나 앞으로 계속해서 배울 것입니다. 금요일 마다 우리는 모여서 자기 속에 있는 잘못을 깨닫도록 훈련합니다. 그리고 과거에 우리가 저질렀던 잘못은 물론이구요. 행복이라는 것, 깨끗하다는 것을 되풀이해서 재교육 받지요. 시간도 오래 걸리거니와 무척 힘이 듭니다."
알콜 중독자에 대한 동정과 이해의 분위기가 회장 안을 감돌더니 숙연한 침묵이 흘렀다. (고집 세고 까다롭고 사나운 한부인만 제외하고서. 사춘기소년처럼 민감한 알콜 중독자는 그런 부인이 누구인가 금방 알아본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알고 있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나는 위원들을 이해시키고 싶은 일념에 불타 있었다. "우리는 모두 환자입니다. 부탁드립니다. 그 점을 이해해주십시오."
"잘될 겁니다." 까다로운 그 여자위원이 한마디 던졌다.
"아닙니다. 우리는 여러분들이 고생하시는 것도 더 참을 수 없고 또 여러분들을 더 고생시키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럼 당신 부인은 뭐라고 말합니까?" 내가 누구인지 그 여자위원은 알고 있으면서 나를 당황하게 하려고 물었다.
"저는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의 대녀 파스칼은 오래 전부터 나를 용서했습니다."
회합이 끝난 후 내 질녀가(르미르몽(역주. 불란서 북서지방 도시)에서 사회복지사업 여성위원으로 있다.) 내게 말했다. "아저씨, 참 잘하셨어요." 그러나 한편 그 까다로운 부인은 몇몇 위원들을 선동하여 이렇게 말했다. "수치스런 일이에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수치스런 일이에요."
여성위원님, 수치스럽다니 무엇이 수치스럽습니까?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이 병은 오직 증오 때문에 회복이 지연됩니다.
이런 사회복지 모임이 있는 첫 달부터나는 한 가지 시실을 알게되었다. 이 질병에만 과오를 책임 지우는 것을 옳지 않음. 많은 사람들이 일부의 책임을 져야 한다. 알콜 중독 환자라는 이 사회악은 집단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아픔을 진정시키기 위해 쉬운 길만 찾는 환자 자신, 환자를 거칠게 다루는 남편이나 아내 그리고 가족들, 환자의 용기를 없앰으로써약한 인간으로 만드는 어머니, 환자가좋아하지 않는 직장에다 팽개쳐놓는 아버지, 환자를 멸시하여 백안시하는 친척들, 환자의 조상들, 환자의 본당 신부, 뒤꼭지에서 쑥덕대는 마을사람들, 환자의 이웃들, 환자의 군대 상관,싸구려 술을 계속 팔아대는 선전광고, 시대를 좀먹는 주위 환경, 평화를교란하는 전쟁의 시끄러운 소리, 협박적인 국세청, 환자를 구역질나게 한는 직업, 환자에게서 삶의 기쁨을 앗아가는 실직, 환자가 가장 견디기 힘든 멸시, 2버브의 부정의,행정관리들의 도도한 태도, 환자를 등쳐먹는상인, 맥주병을 더 보태어 계산하는 술집(내가 이런 일을 당했다),동침을 거부하는 환자의 소견머리 없는 아내, 환자를 거칠게 다루는 사회복지위원, 환자의 오토바이를 깔보는 이웃의 씨엑스(역주. 불란서 회사의 호화판 자동차) 호화자, 환자의 간을 더듬어봐 놓고도 말이 없는 의사, 토끼장 같은 성냥곽 아파트를 지어놓는 건축가, 저임금 노동자를 깔보는 돈 좋아하는 인기배우들, 겸손을 모욕하는 훈장소유자, 평화의 비둘기를 후들겨 쫓는 호전가들, 이런 모든 인간들이 대지에 악취를 풍긴다.
여성위원님, 되려 수치스런 위원님, 부탁하오니, 시대의 사회악에 당신께서도 한몫의 책임이 있음을 정직하게 시인해주십시오.
여러 가지 감정에 대한 자아극복
6개월 단주. 너무 잦은 콘서트, 모든 일을 지나치게 열심히 하낟. 극도의 피로, 그룹 모임에 지나치게 열중 그리고 너무 분주한 나날.
이런 여건 속에서는 하찮은 일을 갖고도 내가 술을 다시 마실 수 있는 충분한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콘서트 중에 전기 퓨즈가 끊겨서 깜깜해진다든가, 여행 도중에 자동차 기어가 갑자기 말을 안 듣는다든가, 왜 동료에게 잘 대해주지 못했던가 하는 아픈 후회감이라든가,어떤 동료의 가시 같은 눈초리라든가, 네거리 가게에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사람을 마구 밀어붙이는 인간이라든가, 콘서트 중에 계속 비웃듯이 나를 쳐다보는 입술이 얄팍한 남자라든가 하는 일들 말이다.
요약하자면, 이런 것들은 시시껄걸 하다고 자각해야 되고 또 그런 것들을 가슴에 두지 말고 말로 지껄여서 입 밖으로 내뱉아버려야 한다. 최소한의 자의식이 필요하다. 음악이 내게 속삭이는 이야기에 조금씩은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멜로디가 슬퍼질 때는 슬프다고 말해야 한다.
슬프고 언짢은 감정만 위험스런 것이 아니다. 기분 좋은 감정도 마찬가지다.
1974년 11월 6일 목요일, 다섯 번의 멋진 콘서트를 랭스(역주. 불란서 동북부 지방 도시)에서 마지막으로 끝냈다. 오후 6시경 저녁 먹으러 역으로 갔다 웨이터가 인사를 하며 "뤼시엥 씨지요? 누구신지 알고 있습니다. 저녁 드시겠습니까, 마에스트로?(웨이터는 이태리 사람이었다) 제가 서비스 해드리겠습니다. 30분만 기다리십시오." 나느 기분이 몹시 좋았고 배도 고팠다.
그때 "슈크루트(역주. 양배추로 만든 요리의 일종) 집 - 맥주 한 컵 무료제공" 이라고 붙여놓은 것이 눈에 띈다. 어리석게도 혼자 궁리해본다. 슈크루트는 나한테 좋은 거다. 먹음직스럽고 영양가도 많고, 소화가 잘 되니 노래 부를 때 부담스럽지 않고. 맥주없이도 먹을 수 있고, 맥주 한 컵 정도는 마셔도 괜찮을 건데. 맥주가 가득 찬 유리컵 위로 흘러넘치는 하얀 거품을 혓바닥으로 살짝살짝 핥고 있는 나를상상해본다. 저녁을 기다리면 반 시간동안 내내 맥주 한 컵이 뱅글뱅글 내 머리 맴돌았다. 코를 킁킁대며 생선 주위를 못 떠나는 개처럼. 드디어 환상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렸다.
"저 슈크루트하고 페리에(역주. 가스가 섞인 생수) 한 병 주십시오."
"네, 알았습니다."
술을 다시 마실 수 있는 재발병 위험성의 또다른 한 가지는 '어쩌면 나는 알콜 중독자가 아닐 것이다'라는 생각이다. 완전 단주 8개월이 지난 후까지도 내가 다른 사람들과 틀린 게 무엇이냐 하는 생각이 계소 나를 떠나지 않는다. 나도다른 사람들처럼 이제는 틀림없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처럼 꼿꼿하게 서 있고, 다른 사람들처럼 직업도 있고, 다른 사람들처럼 신문도 읽고, 3월 27일 럭비시합도 구경하러 갈 것이고, 그러니 내가 다른사람들과 꼭 같지 틀릴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뤼시엥 너는 스타니슬라스 광장(스타니슬라스 대극장 바로 옆에 있다)의 커피집에 들어가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처럼 시청 건물을 보고 감탄도 하는 거야. 너는 하이네켄 맥주를 망설이지도, 겁내지도 말고 속으로 씨름, 싸움도 하지 말고 주문해서 한잔 쭈욱 들이킨 후에 다른 사람들처럼 맥주 값을 치르면 돼
그러나 5분도 못가서 너는 무서운 고민에 빠진다. 그늘진 숲속은 더 짙은 그늘로 캄캄해질 것이며 그 안에서 너는 길을 잃고 절망에 빠진다. 천만에, 뤼시엥, 너는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단 말이야.
최후로 내가 술을 다시 마셨던 일. 랭스에 있는 어떤 부인이 내게 전화를 했다.
"저의 바깥주인이 술을 끊도록 도와두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인께서 원하시기만 한다면야 제가 도와드리지요. 잠깐 전화를 바꿔주시겠습니까?"
"지금 집에서 없습니다. 곧 돌아올 것입니다."
"나는 랭스로 달려갔다(역주. 낭시에서 랭스까지 206킬로미터떨어져 있다.) 부인만 집에 있고 남편은 담배 사러 밖에 나가고 없다. 남편이 들어왔다. 나를 보고도 시큰둥하다. 쳐다보지도 않고 내게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다. 자기 부인이 있는 데서는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내 차에 태우고 낭시로 가면서 얼른 내 이야기를들려주고 알콜 중독에 관한 내 얘기도 해주었다. 놀라운 것은 그 사람이 도무지 반응이 없는 것이었다. 어쩌다 하는 말은 "그 참 안 됐군요" 아니면 "혼나셨습니다요" 라든가 또 "친구가한 녀석 있는데 하루 저녁에 글쎄 꼬냑 열다섯 병에 리카르 다섯병을 거뜬하게 해치웠답니다. 얼마나근사합니까!" 이런 식이다. 내가 겪었던 고통을 지껄여보았자 들은 둥 만 둥이다. 때때로 자동차 계기판을 들여다보면서 "요놈의 바늘이 1분에 6500번 돌 수 있나요?" 한다.
나는 약간 벙벙해져서 갈피를 못 잡았다. 그는 걸핏하면 내 말을 가로막다시피 했다. "야, 커브입니다. 중안선 같은 것 싹 무시하고 달리는 게 멋지지요."대음주가들의 최고기록 따위에나 귀가 솔깃하지 알콜 중독이 병이라는 그런 이야기는 아무 흥미가 없는 것이다. 그가 부탁이 있다고 하기에 들어보니 어이가 없어 맥이 쑥 빠진다. "낭시에 엽서를 사러 갈 수 없을까요? 친구 녀석들한테 보내고 싶은데. 스타 니슬라스 광장 사진이 있는 걸 보내고 싶거든요. 데려다 주시겠소?" 나는 냄비 속에 물이 끓듯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낭시에 도착하자 내 침실 옆방에 침대를 마련해놓고 케셀(역주. 불란서 작가이자 신문기자, 1898~1979)의 '무명의 알콜 중독자들 에이.에이.와 더불어'라는 책을 읽어보라고 주었다. 엷은 요행을 바라면서.
나는 잠을 설쳤다. 그가 어찌나 기침을 캑캑거리며 세게 하던지 옆방이나 위층의 동료들을 깨울까봐 겁이 났다. '저 사람은 알콜 중독자가 아니다. 진짜 알콜 중독자는 기침도 조용히 하고 다른 사람들을 귀찮게 하지도 않는다'하고나는 생각했다. 20분쯤 지나니까 기침을뚝 그치더니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았다. 그 사람과 나 자신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다.
기차표를 사서 그를 보낼 수도 있었는데 굳이 내가 운전해서 랭스로 다시 데리고 갔다. 랭스로 운전해 가는 동안 씁쓸한 과거가 되살아났다.
비 내리는 어느 날 밤 새벽 2시경의 일이다. 디종(역주.불란서 중동부 지방 도시)을 벗어나는 길목에서, 레인코트 속에 몸을 웅크린무임 승객 두사람을 태워주었다. 그들이차안에 올라탔을 때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것을 알았다. 두 여자는 벙어리처럼 멍하게 앉아 있었는데 멍청해 보이기도 하고 고집이 세어 보이기도 했다. 나는발랑스(역주. 불란서 남부 지방 도시)에서 오는 길이라 피곤했기 때문에 말을 붙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낭시에 도착했을 대 어디서 내리겠느냐고 물었더니 "메츠"라고 했다.(역주. 낭시는 저자의 수도원이 있는 곳이며 메츠는 거기서 56킬로미터 떨어진 다른 도시이다. 그리고 발랑스에서 낭시까지는 504킬로미터의 거리이다.)
그래서 메츠까지 가서 파랗고 빨간 네온등이 켜 있는 나이트클럽 앞에 내려주었다. 그 여자들은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바보처럼 킬킬 웃어대며 가버렸다. 낭시로 되돌아오면서 기분이 몹시 언짢았다. '세상에 얼빠진 맹추들도 다 있구나'하고 생각하니 가슴이 쓰렸다. 내 눈에는 얼빠진 맹추가 그녀들이지만 그 여자들의 눈에는 내가 얼빠진 맹추로 보였을 것이다.
랭스로 그 알콜 중독자를 다시 데리고 오면서 곰곰이 지나간 날들을되새겨보았더니 그 남자에 대한 분노는 가셔버리고 오히려 자신에 대한 실망이 너무커서 울음이 나왔다. '뤼시엥, 너는 그 여자들을 데려다 주었을 때도 혼자 화를 냈는데 이번에도 또 화를 내고 있으니 여태껏 나아진 게 아무것도 없구나.'
내 마음을 간신히 달래가며 그 남자 집에 도착했다.
"우리 집주인이 좀 나아졌습니까?" 부인이 내게 물었다.
"아닙니다."
그 사람을 랭스에 내려놓고 낭시로 되돌아오는 길에 비트리르크랑수아를 지나갔다. 그곳 르노 자동차 정비소 바로 옆 길모퉁이에 커피집이 있었다.
뜨거운 차를 한잔 마시려고 들어갔는데 이상하게도 나는출입문 바로 옆 좌석에 앉았다. 마치 얼른 그 자리를 떠나기 위한 준비태세를 갖추려는 것처럼.
내 옆자리에 조그마한 소년이 숙제를 하고 있기에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
웨이트레스가 다가왔을 때 나는 내가 맥주를 주문하고 있는 것을 의식했다.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웠지만맥주컵을 들어 마셔버렸다.마셨다는 괴로움을 지워버리려고 맥주 한 잔을 또 청했다. 마셔도 그 괴로움이 지워지지 않기 때문에 맥주를 또 청했다.
조그마한 그 소년에게 인사 한마디 없이 훌쩍 밖으로 나왔다. 싱싱하게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의 기쁨에서 쫓겨났다고 생각하면서.
100킬로미터를 미치광이처럼 달렸다.핸들이니 기어를 멋대로다루면서 자동차를 몰아보았자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내 희망을 박탈한 살인자는 꼭 찾아내야 했다. 그 살인자가 호언장담이라는 것일까? 분명히 그보다 더 나쁜 놈일 것이다.
툴에 오니 늦은 시간인데도 선술집에 네온이 켜 있었다. 안으로 들어갔다.행복을 갈망하던 내 희망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나는 메츠까지 갔다. 그곳에 내가 아는 젊은 여인이 있었다.
"아주머니, 잠을 깨워서 죄송합니다. 저는 지쳐 있습니다. 자신이 부끄러워서 나를 숨기고 싶습니다."
"들어오세요. 따끈하게 커피를 끓여드릴게요. 잠자리도 마련해드리겠습니다. 마음 놓으시고 편히 쉬세요." 그녀는 내가 낭시의 내 방에서 혼자 이겨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알콜 중독자에겐 눈에 익은 집안이 역겨울 때가 더러 있다. 이런 때면훌쩍 떠나보는 것이 훨씬 낫다. 13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깨끗이 다려진 홑이불에서 풍기던 라벤더 꽃향기를 코끝에 느낀다.
프랑수아즈(그렇다. 그때의 아주머니가 그녀였다)는 아침에 강의를 하러 나가면서 가까운 친구를 보내어 나를 위해 아침상을 차려주게 했다. 내 침대 머리맡 낮은 탁자에 편지 쪽지가 놓여 있었다. "편히 쉬세요. 저의 집에 얼마든지 계셔도 좋습니다."
그녀가 저녁에 돌아왔을 때 그녀는 내게 미소를 지었다. 내가 곧 회복되리라는 것을 나보다 먼저 알았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내가 프랑수아즈에게 이렇게 말한 일이 있었다. "혹시 내가 어느 날 환자를 데리고 온다면 그 사람을 쉬게 해주고, 잘 먹도록 음식을 주고 그리고 천천히 회복하도록 가만히 놔두는 것이 그를 위한 최상의 치료법일거예요."
그런데 그 환자가 보로 나 자신이 되었다. 그녀는 언젠가 내가 말했던 것을 그대로 따랐다. 그러나 그녀에게 그런 조언이 필요했을까? 그녀는 본능적으로 인생에 필요한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뛰어나게 아름답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아니다. 하느님께서 알콜 중독자를 구하시려고 계획하실 때 그에게 의지력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아한 인정을 주신다는 것을 나는 지금 알고 있다.
이튿날 그녀가 외출한 후 메모쪽지가 또 놓여 잇는 것을 보았다. "안녕하세요. 오늘 저녁 낭시에 에이.에이.모임이 있답니다." 그녀는 자기 사인 대신에 꽃 한송이를 그려놓았고 내 테이블 위에는 한 송이 장미를 꽂아두었다.
그래서 나는 그 모임에 가서 최근에 내가 다시 술을 마셨던 이야기를 모두 했다. 그 모임을 주관하던 테레즈가 답변을 했는데 내가 기대하던 말이었다.
"뤼시엥. 그것은 어제의 일입니다.어제라는 것은 이제 존재하지않습니다. 오늘 당신은 술을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기뻐하세요. 당신은 지금 우리와 함께 있기때문에 아무런 위험이 없습니다. 내일은 아직도 내일입니다."
발랑스 가까이 왔는 데로 해가 뜨지 않았다. 희끗희끗 날리는 눈발은 길 가장자리에 떨어지기도 전에 녹았다. 여섯 시간 후에는 메츠에 닿을 것이다. 키코 부인이 내게 맛있는 것을 주었다. 그것은 진한 커피와 설탕을 입힌 네모난 초콜릿이다.
"마지막으로 술을 다시 마신 후 실망하지 않았는가?"
"술을 다시 마신 기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이상은 없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는 항상 불안했다. 앞으로 술을 결코 마시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나는 몰랐다. 알고 있는 것은 에이.에이.의 열두 가지 방법을 바보처럼 따르는 것뿐이었다."
"에이.에이.모임에 참석하면서도 술을 또다시 마시는 환자들이 많은가?"
"그중 50%는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고 조용히 살다가 죽는다. 25%는 나처럼 몇 번씩 술을 다시 마시다가 깨끗이 술을 끊고 완쾌된다. 나머지 25%는 완전히 술을 끊지는 못해도 우리와 함께 있으면서 어쨌거나 모든 것이 차츰 호전되어 드디어 행복하게 된다."
우리는 에이.에이.를 이탈해버린 알콜 중독자들을 종종 길에서 보았는데 모두 눈은 푹 꺼지고 수염은 텁수룩하고 얼굴은 반점출혈이 되어무섭게 늙어버렷다. 어느 날길가에서 우리를 떠난 어떤 환자와 마주쳤을 때 그 사람 눈에도 눈물이 글썽거렸고 내 눈에도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 중에 어쩐 환자들을 나는 한겨울에 만났는데, 다가오는 새봄에 다시는 더 저들을 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폐렴이나 영양실조로 죽어가거나 익사체로 발견된다. 그들이 땅에 묻힐 때 애통하게 울어주는 아내 한 사람도 없다. 참으로 잔인하다. 나는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겠다. 그러다가는 내가 불면증에 걸릴 위험이 있으니까. 그렇지만 그들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나를 위해 좋은 일을 한 가지해주었다. 저렇게는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내게 주었으니까.
"술을 다시 마시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가능한 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행복해지는 것이다."
"행복해지려면?"
"살아가는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용기
이제 나는 술에 대해서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술에 대한 강박관념, 술에 대한 공포는 점차적으로 사라졌으며 술이 나에게 필요없는 것이 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덧붙여 이야기할 것이 더는 없기 때문에.
그러나 내 일생 동안 저지른각양 각색의 악은 자각해야만 한다.어슴푸레한 내 기억 속에서 질질 꼬리를 물고 다니는 자질구레한, 헤아릴 수 없는 오점들을. 시시때때로 부상하여, 해가 흘러도 내 발걸음을 무겁게 하는 오물들을.
내 기억 속의 과거는, 어린 시절 보주농가의 계단 밑에 있던 오래된 낡은 벽장같았다. 우리 아버지는 가끔 우리들에게 그 벽장에 가서 무엇을 갖고 오라고 하셨다. 그 안에는, 괴상망측한 물건들,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들, 낡아빠진 것들, 일터에서 주운 것들, 짐승 살점 같은 것이 붙어 있는 퍼렇게 곰팡이가 쓴 가죽제품들, 이런 것들이 들어 있었다. 어떤 것은 도대체 무엇이라고 부르는 것들인지 몰랐기 때문에 기괴망측해서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벽장 안이 어두컴컴해서 그것들을 알아보기조차 힘들었다.
내 머리 속의 벽장도 꼭 그와 같이 괴상한 것들로 가득 찼었다. 어떤 자물쇠도 어렴풋한 기억들이 벽장문을 열고 기어 나오는 것을 잠그지 못했다. 나의 수치스럽고 진저리나는 일들, 나는 감히 그것들을 정면으로 마주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가장 쉬워 보이는여덟째 단계를 시도했다. "우리는우리가 해를 끼친 사람들의 명단을 만들어 그들에게 용서를 구하기로 결심했다."
예수회의 나의 동료들, 나는 그들에게 해를 끼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동료들을 상스럽거나 우해 없이도, 과격하게나 잘난 체하거나 수치스럽게도 대하지 않았다.
사실은 동료들이 우애가 없었고 동료들이내 시시한 개인적인 성공(나의진정한 세 친구만은 내가 그런 성공에 무관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을 질투했다. 그리고 내 알콜 중독이 표면화되어 세상에 알려졌을 때 그들은 내게 대한 얼마간의 앙갚음으로 자기네 생활을 더 규칙적으로 규모 있게 했다.
내가 알콜 중독에 걸렸던 것 그리고 내가 그들과 다르게 행동함으로써 그들을 불쾌하게 했던 것 이런 것을 용서해달라고 동료들에게 말했을 때 그들은 예의 상투적인, 우애 있는 대답을 내게 했다. "뭐 별일도 아닌데, 지나간 일이요. 자 담배 들겠소?"
그 동료들 중 딱 한 사람만이 여러 번 나에게 솔직한 말을 했다."그래 사실이오, 당신 술병 때문에 얼마나 골치를 썪였는지 말도 마시오." 미안하다. 그러나 이 말은 번번이 꼬록 소리만 한번 내고는 파문도 없이 가라앉아 나의 고요를 깨뜨리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 안에는 에이.에이.의 위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단순한 한마디, "용서를 바랍니다."가 부끄러움의 쇠사슬을 탁 끊어놓았다. 그러자 다른 모든 쇠사슬이 저절로 와르르 떨어져나갔다.
나는 낭시에서 2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커피집 여주인을 만나러 갔다.
"커피를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주머니 다름 아니고 보시다시피제가 이제는 맥주를 마시지 않습니다. 1년 전부터 술을 끊었습니다. 참으로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훨씬 낫습니다. 아주머니께 용서를 청하고 싶은데요. 가끔 여기서 제가 술값보다 더 마신 적이 틀림없이 있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여주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소매를 걷어 올려 보여주었다.(내 생각에 왼쪼이다.) 숫자를 새긴 퍼런 문신이었다.
"지금 보신 것처럼 저는 강제수용을 당했었지요. 그러나 거기서 빠져나오는 데 당신보다는 고생이 덜했었다고 생각됩니다. 술이란 정말 힘든 일인데..."
내가 떠날 때 여주인은 커피값을 계산하지 않으려 했다. 나는 흐뭇했다.진실로 인생을 살아본 사람은 중독이 무엇인가를 잘 안다.
나의 대녀 파스칼에게 편지를 썼다. 답장이 왔다."아버지, 아버지께서 병이 나셨던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었어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은 모두 잊었답니다. 저는 옛날 나자렛에서 보았던 그때의 아버지를 되찾았습니다." 나자렛은 파스칼이 다닌 중학교 이름이다.
나는 시내 한복판에 있는 커피집에 들어갔다. 늘 그렇듯이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계산대에 기대어서 샬 리가 내 주문을 받으러 오기를 기다렸다.
"샬리,디아볼로망트(역주.리모나드에 박하시럽을 탄 음료수)를 주게."
"맥주 안 드시겠어요?"
"아니, 이제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네. 나는 알콜 중독자이거든."
"알콜 중독자? 농담하시는 거예요?"
"아니. 아니. 사실이네. 나는 알콜 중독자야. 그런데 용서해주게. 가끔 내가 술을 더 마셨는데..."
"아닙니다. 일콜중독자가 아닙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모두에게 물어보십시오. 아무도 그 말을 곧이 듣지 않을 겁니다."
"아니, 그렇지 않네."
"천만에, 장에게 물어보십시오. 장, 이리 좀 와보세요. 뤼시엥 씨가 자기가 알콜 중독자라고 하는데 일 좀 와보세요."
"아니, 아니, 사실이요."
"아 참, 주인아저씨, 잠깐만 일 좀 오시라니까요."
진짜로 배꼽 쥐고 웃을 일이다. 세상이 거꾸로 돌다니, 알콜 중독자 자신이 자기를 중독자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것이 정상이거늘 여기에는 남인 샬리가 그것을 부인하고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양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샬리에게, 장에게, 커피점 주인에게, 내가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양보했다.
"네, 여러분들 말씀이 맞습닏. 나는 알콜 중독자가 아닙니다. 디아볼로망트를 주십시오."
"디아볼로망트를 마시니까 알콜 중독자가 아니지요."
내가 잘 모르는 어떤 부인이 우리들 이야기에 끼어들고 싶은 눈치더니 말참견을 했다.
"무슈, 당신은 알콜 중독자가 아닙니다. 저는요, 저의 아저씨 되시는 분이 진짜 알콜 중독자였답니다. 그런데 그분은 노란 눈동자가 하얗게 되었었지요. 사실 그랬어요. 눈 밑에는 주름주머니가 생겼었지요. 거기 거기 말예요. 만져지세여?"
"그렇지만, 전에는 저도 주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아니예요. 눈 밑에 주름주머니는 없어지지 않는답니다."
"네, 네,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알콜 중독자가 아닙니다..."
한번은, 툴루즈에서 콘서트가 끝난 후 지배인에게 이런 말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용서해주시오. 옛날에 콘서트가 끝난 후 술을 너무 마셔서 말썽부렸던 것을 용서해주시오." 커피가 준비될 동안 그 문제에 대해 계속 이야기했다. 지배인은 새벽1시경에 카르카손(역주. 불란서 서남쪽에 있는 도시)으로 가는 길까지 나를 전송했다. 길가에서 우리가 헤어지기 전에 나는 그에게 시편 88편을 암송해주었다.
"야훼여 내 구원의 하느님, 낮이면 이 몸 당신께 부르짖고 밤이면 당신 앞에 눈물을 흘립니다.."
그는 나를 껴안고 작별을 하며 내게 말했다. "당신은 비싼 값을 이미 치렀소. 그래서 지금은 그 대가로 평화를 누리고 있지 않소?"
어째서 이 여덟 번째 단계가 필요한가?
자신의 뒤에 불결한 것을 하나도 남기지 않기 위하여, 우정이 무에서 재출발할 수 있기 위하여,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청명하게 맑게 하기 위하여.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 지나간 일을 말끔히 치우고 깨긋한 식탁에서 인생의 향연을 갖기 위해서.
술은 내 영혼을 슬프게 했고, 불투명하게 했고, 둔하게 했다. 둔하게, 바로 그 말이 어울린다. 내 영혼을 둔하고 활기 없게 했다.
우주천체에는 '검은 함정'이 있다(나는 그것을'과학과 생활'이라는 잡지에서 읽었다.) 빛을 발하고 있는 별등이나 은하수까지도 수천 년을지나면서 그 자체가 쌓여 굳어져서너무 무겁기 때문에 그것들이 발하던 빛이 별이나 은하수의 덩어리에 흡수되어 더 이상 빛을 발할 수 없게 된다. 그 빛들은 영원히 꺼져버렸다.
알콜 중독은 나를 무겁고 슬프고 빛 없는 인간으로 만들었다. 다른 사람에게 용서를 청하면서 내부의 빛이 다시 나타났다.
용서를 청하면서, 나는 땅에 엎드려 슬슬 빌붙는 개가 되지 않았다. 나는 타인에 대한 공포에서, 나에 대한 비나의 공포에서 해방되었다. 나는 내 일생 처음으로 타인의 평가가 아닌 나 스스로의 평가에 대해 감식력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참으로 묘해 설명하기가 곤란하다.
술은 나을 마음 약한 인간으로 만들어 굽실거리게 했지만, 용서를 청하면서, 나는 이전의 꿋꿋한 단정한 모습을 되찾았다. 그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그것은 역설 같다. 그것은 뚱딴지같다. 그것은 일사적인 것이다. 어떻게 말해도 괜찮다. 어쨌든, 그것은 나의 체험에서 얻은 사실이다. "스스로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만약 여러분이 이해할 수 없다면 직접 경험해보라. 아니면 입을 다물라. 내가 타인의 평가나 타인의 관심에 등을 돌림으로써, 타인의 평가나 관심이 내게 해줄 수 없었던 그 무엇을 나는 신비스럽게도 나 스스로 하게 되었다. 그 무엇이란, 내가 나를 다시 평가하게 되었고 내가 나를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앙리 칼레는 그의 말년에 이렇게 썼다. "나를 흔들지 마십시오, 눈물이 가득히 괴어 있습니다." 나는 그를 이해할 것 같다. 그전에 내가 이와 비슷한 말을 내 친구들에게 했기 때문에. 이제 나는 울지 않는다. 이제 나는 울고 싶지 않다. 이제 나는 울 일도 없다.
내가 여덟 번째 방법을 실천하기 위하여 얼마간의 용기가 내게 꼭 필요했던 일이 한번 있었다. 그 얘기는 이렇다.
1968년 5월경, 알콜과 여러 가지 일들 때문에 내 머리가 복잡해 부글부글했을 때 어느 커피집에 들어갔다(항구의 커피집인데 그곳에 트럭무게를다는 기계가 있었다.) 나는 맥주한잔 마시러 그 집에 어쩌다 들렀었지만 주인이 불친절해서 그리 자주 가지는않았다. 그날 저녁에는, 한두 잔 백포도주까지 겹쳐서 더 마셨었다. 나는 많이 떠들었고 불손했고 흥분했다. 주인이 마침내 내게 말했다. "술주정 그만해,이 얼간아." 정말 나는 견딜 수가없었다. 그가 가시 돋친 차분한 어조로 말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이런 일이 있은 지 3년 후 나는 자동차를 트럭 무게를 다는 기계 옆에 세우 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커피 주십시오."
그는 일고 있던 지방신문'레스트레퓌블리캥'에서 눈을 떼더니 단번에 나를 기억했다. 그는 커다란 손(소꿉장난 하는 아이들처럼 통통하게 살찐 손)으로 조그맣고 까만 커피잔을 내 앞에 놓았다.
"지난번에 제가 잘못했습니다."
"아, 기억나는군요." 그리고 읽던 신문을 다시 집어들기 전에 그는 덧붙였다. "술을 마실 줄 모르면 마셔서는 안 되오."
그 사람에게 설명해보았자 소용이 없다. 나는 묵묵히 커피를 마셨다. 그러나 출발하려고 시동을 걸면서 혼자 생각했다. '잘됐어, 가엾은 녀석 뤼시엥아.' 음료수 종류를 바꾸니 친구의 부류도 바뀐다는 것을 깨달았고 따라서 나에겐 더 유익했다.
병들 수 없는 건강제일주의자의 세계와 알콜 중독자의 세계가 각각 따로 있는데 이 두 세계는 서로 합해지기 힘들다.
상상할 수 없었던 평화가 내 영역으로 밀려오기 시작했다. 공포, 후회, 수치, 이 모든 것이 발밑에서 말라 죽기 시작했다.
"스스로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불가해한 이 말이 친숙하게 되었다.
정오. 리오 시내로 들어갔다. 자동차들 때문에 길이 상당히 막히고 있다. 갈라르드의 친구를 보러 갈 생각인데 내가 그리 달가운 손님은 아닐 게다. 이일 저일, 머리속이 너무 복잡하다. 내 자동차 옆에 있던, 무선전신기를 휴대한 자동차 기사가, 내가 입술을 달싹거리며 말하는 것을 보고서 나를 자기 동료로 오해하기에, 내 집게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며 지금 내가 녹음 중이라는 시늉을 했다.
푸케 의사가 어느 부부(그 중 한 사람은 알콜 중독자다)에게 앞 뒤 따지기 싸움을 그만두라고 요구한 일이 있다. 그런 요구는 그다지 나쁘지는 않지만 별 효과는 없는 것 같다. 에이.에이. 그룹이 요구하는 것은 훨씬 더 근본적이며 철저하다. 용서를 구하는 것은, 권휘, 오만, 옹고집, 악의와의 인연을 말살시키는 데 우선적이다. 이런 것들과의 인연이 말살되면 진실과의 인연이 이루어진다. 진실은 이런 것들이다.
"내가 무자비한 난폭했던 것은 사실이다. 내가 이직까지 너를 사랑하고 싶은 것도 역시 사실이다. 네가 잘했다고 믿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잘못을 저질렀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난폭하게 서로 싸운 것도 사실이다. 내가 죄가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너는 죄가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어느 날 브르타뉴 근방에서 에이.에이.회원 한 사람이 마을을 본당신부님에게 여덟 번째 단계를 실천하러 가는 데 동반해달라고 내게 부탁했다.
"신분님, 저는 알콜 중독자입니다. 이제는 술을 끊었습니다. 신분님께 용서를 구하러 왔습니다. 저는 광장에서 커피집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로 내게 용서를 청하시오?"
"신부님이 성당 현관에서 집게로 자전거를 해체하고 계실 때 총으로 신부님을 딱 겨누고 '빵빵빵'했기 때문이지요.(이 집이 돌로 지은 집이 되어 소리가 울려 시끄러웠습니다.)"
"총을 갖고?"
"결국..., 빗자루를 거꾸로 쥐고 총 흉내를 냈습니다."
"아, 그랬소? '빵빵' 소리는 내가 못 들었고, '꼬록 꼬록'하는 소리는 들었지요." 신부님이 웃었다.
"그 소리도 제가 냈지요. 둘 다 제가 했답니다."
"참 이상하오. 그런데 왜 그런 소리는 냈소?"
"거기 있던 손님들을 웃기려고요."
"그럼, 그 말은 왜 하러 왔소?"
"왜냐하면, 저 자신을 위해서인데요, 저에게 좋기 때문입니다."
신부님 시중을 드는 은발의 할머니가 반쯤 열린 대문 사이로 빠끔히 내다보았다. 이야기를 듣고서, 이 괴상한 사람을 좀더 가가이서 보고 싶었던 것이다. 신부님을골려놓고 용서를 청하러 온 남자가 어떻게 생겼나 하고.
이 여덟 번째 방법을 실천한 에이.에이. 회원은 전부 개선되어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병이 완치되었다. 어떤 종류의 병들인지 순서는 없지만 정확하게 병명을 대겠다. 허여, 오만, 폭력, 밀고, 얼굴 내고 싶어하는 취미, 지나친 몸치장이다. 이런 병들 때문에 많은 불행이 찾아온다.
행복이 전달되다
열두 번째 단계. "우리는 우리의 체험을 다른 알콜 중독자에게 전달했다."
나는 내 병이 나으리라는 확신, 그리고 랭스에서 내가 겪은 불행이 똬시 되풀이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갖기 시작했다.
내가 왜 중독환자들을 환영해 불러들이는가? 나 자신을 위해서. 나의 단주를 확고부동하게 해주는 에이.에이. 그룹을 더 확대하기 위해서이다. 내 기쁨을 증언하는 증인을 더 많게 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사람이 행복하도록 내가 도와주었다는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환자가 완저히 의욕을 잃은 상태라면?"
"그래도 희망이 있습니다."
이 환자의 경우 내게 전화를 한 사람은 그의 부인이었다.
"오십시오. 나를 데리러 낭시까지 오지 마십시오. 제가 콜롱베 출구에 있는 토탈 주유소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그들은 약속한 시간에 도착했다. 부인이운전을 하고 왔다. 그녀는 복슬강아지를안고 차에서 내렸다. 부인이 이야기를 했다. 남자는 10미터쯤 떨어져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지루하다는 것을 알리려는 건지, 아내의 푸념에 귀를 막는 건지, 나하고는 아무 볼일이 없다는 걸 과시하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자동차릐 번호판을 보니 그들은 멀리서 왔다.부인이 필요 없는 감언이설을 늘어놓는 통에 시간을 뺏겼다. 나는 그 남자에게 관심이 갔다. 그는 꽤 젊었다. 밤이 깊어갔다.
"자크, 당신은 나하고 같이 내 차에 타고 가고 부인께서는 나를 따라 오십시오. 메츠에 있는 푸랑수아즈 집으로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메츠에 부인은 데려다주고 돌아오면서 우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우리에겐 시간이 많았다. 우리는 신경을 곤두세우지도 않았고 쓸데없는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희망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과, 이제는 자기 자신이 술에 진저리가 났기 때문에 술을 끊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빨아놓은 깨끗한 시트를 내침대에다 깔았다. 베개에는 푸른색 베갯잇을덮어씌우고, 나 자신을 위해서는 공기 매트에다 바람을 넣어서 책상 옆에다 폈다.
"시장하시오?" 배가 고프지 않았다.
"목이 마르시오? 친징 버찌 술이 있소. 마음대로 마셔도 좋소. 크로낭부르(역주. 독일맥주) 마시고 싶소?" 그는 전부 거절했다.
그는 내 팔걸이의자에 주저앉는다. 육체도 영혼도 똑같이 병들어 지쳐 있다.
나는 내 이야기를, 내 병을, 그가 거짓말할 기회를 갖지 못하도록 쉬지 않고 계속 지껄일 것이다.
이런 경우에 어떤 환자들은 그래도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런데 말예요, 무슈, 저는 리옹에 있는 수도원에서 자랐습니다. 아시겠지만, 집사람은 아주 독실한 신자랍니다. 아시겠지만 저는 신앙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나는,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문제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태도를 보인다. 또 어떤 환자는 내게 이렇게 말한다.
"저는 비외르반(역주. 리오의 교외)의 공장감독입니다. 우리 남편은 기술자구요. 저는 전파탐지기의 책임자예요. 내가 그리스에 있던 해... 등등." 한마디로 말하면 그 사람들은 내게 잘 보이려고 애쓴다. 그 이유는 자기 자신이 수치와 슬픔에 짓눌려 녹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크는 한마디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눈으로 보는 듯 그의 마음을 알 수 있었고 자크가 느끼는 자기혐오를 밑바닥까지 알 수 있었다. 그는 팔걸이의자에 그대로 앉아 있고 나는 책상 위의 전등만 남기고 불을 껐다. 나는 자크에 대해, 그도 틀림없이 느끼고있을 따뜻한 정을 느꼈다. (알콜 중독자는 즉시 그것을 감지한다.)
그 다음 나는 나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완전한 신뢰를 갖고서. 왜냐하면 그가 나를 결코 배반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경험에 비추어 알기 때문이다. 슬픔이 섞이지 않은 담담한 어조로 내가 겪었던 최악의 일, 최대의수모, 가장 쓰라렸던 아픔을이야기한다. 내게서 자랑거리가 될 것은 한마디도 비치치 않는다. 그러면 상대방도 꼭 같이 자랑거리를 내놓을 테니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 속에는, 그의 고독의 문을 때려 부수고 싶은 욕망, 그의 침묵의 벽을 뒤엎고 싶은 욕망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그가 내 말을 듣고 이해하기를 바란다. 내가 자크와 같다는 것, 그리고 자크도 나와 같음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나는 시계를 벗어 테이블 위에 놓는다.
"자크, 지금 9시오. 한 시간동안 마시지 않기로 해봅싣."자크는 아무 말이 없다.(반대로 어떤 환자는 내게 말했다. "한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오. 어쨌든 그 정도도 못 참을 만큼 다 된 것은 아니오.")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그의 태도와 시선은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있는지 내게 말해준다. 나는 그의 불가침성과 그의 불신이 허물어지는 것을 본다. 나는 부끄러움도 없이, 속임수도 없이, 조용하게, 그러나 솔직하게 숨김없이 말한다. 진실은 그를 구출할 것이다. 자크도 역시 구출될 것이다.
약속한 한 시간이 다 되자 나는 그에게 묻는다."목마르오?" "아닙니다." 참 이상하다. 술을 마시고 싶은 욕망이 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사라져버린다. 왜 그렇게 되는지 그것은 이해하려고 애 쓸 필요는 없다.
술 안 마시기 세 시간째로 접어든다. 알프스에서 있었던 내 자동차 사고에 자크가 관심을 보인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가 말한다. 이 자백이 그의 첫 단계의 시작이다. 성공이다. 얼마나 기쁜지, 솔직하게 진실을 말하고 싶은 나의 열정이 부쩍 늘어난다. 그때 내가, 내 무죄를 꾸미려고 어떻게 거짓말을 둘러댔었던가 하는진실, 내가 얼버무린 거짓말에내 자신이 어떻게 옭아매였던가 또 내가 어떻게 기억력을 상실했던가 그래서 내가 콘서틀 가질 도시 이름을 잊어버릴까봐 종이에다 어떤 식으로 기록했었던가하는 그 진실, 결국 말하자면,내가 지금까지 녹음해서 독자에게 들려준 모든 진실, 그 이야기들을 부끄러움 없이 남의 말 하듯 잔잔한 어조로 그에게 송두리째 풀어놓았다.
네 시간째로 들어간다. "목마르오?" "아닙니다."
"자크, 이리 와보게. 내가 한밤중에 술을 마시려고 어떻게 했었는지 보여주겠네."
나는 앞장서서 자동타임 스위치를 눌러 전등을 켠다. 고양이 걸음으로 살금살금 계단을 내려간다. 마지막 계단을 세 개 남겨놓은 곳에서 나는 그를 돌아보며 삐걱 소리가 나는 이 계단을 건너디디라고 일러준다. 그는 순순히 내가 하는 대로 따라한다.
나는 벽장문을 조심스레 연다. 자물통이 낡아서 덜거덕거리기 때문이다. 나는 술병 마개를 삐익 소리가 나지 않도록 딴다. 술을 미친 듯 마시던 모습까지, 안 마신 양 속임수를 썼던 술책까지 재연한다.
내가 연기를 하는 동안 자크는? 소리를죽이고 웃고 있다. 나는 그에게 속삭인다."이런 짓을 하는 사람이 불란서에 6백만 명이 있소." 자크가 듣더니 마음을 놓는 것 같다.
관객이 여지일 경우, 자기의 모습인 양 환각에 사로잡혀 수치심 때문에 가끔 고개를 숙이며 운다.
이 코미디는 자크를 주먹으로 한 대 툭 치면서 끝났다. "자크, 녀석, 올라가세."
다섯 시간째. 나는 그에게 베르사유와 크리스티안 그리고 에이.에이.에 처음으로 참석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가 어떻게 갈색빛 책자를 읽었던가, 그리고 내가 나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어떻게 가질 수 있었던가도 이야기했다.
"피곤하오?" 그는 깨끗이 깔아놓은 침대에 누웠다. 나는 잠시 기도하러 기도실로 내려갔다. 기도할 때, 나는 나의 전능하신 분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진다. 대화를 나눌 때면, 나는 차라리 그분 곁에 말없이 머물고 싶어진다. 그분 역시 내 곁에 가까이 계시고자 하신다. 전능하신 분과 자크 그리고 나, 우리는 공모자가 되어 행복하다.
나는 수정 유리잔과 비텔(역주. 불란서 생수의 하나)물병을 그의 곁에 둔다. 아마,벌써 잠이 든 모양이다. 불빛이 자크의 눈에 부시지 않도록 나는 전기 삿갓의 방향을 돌린다. 종이를 끄집어내어 몇 자 적는다.
"자크, 잘 자게. 과거는 죽었다는 것, 그리고 내일은 아지 오지 않았고, 오늘은 자네가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마음속에 평화를 간직하게. 자네는 '형편없는 놈'이 아니네. 물을 많이 마시게. 9시에 나를 깨워주게. 집 앞에 담배 가게가 있고 그 옆에조그마한 커피집이 있으니 들어가서 커피를 들게. 농담하며 놀게나."(5년 후, 자크는 이 쪽지를 내게 보여주었다. 언제나 지갑 속에 간직하고 있었다면서.)
이튿날 아침 깨어보니 자크의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가 담배를 사러 갔었지요. 옆에 이쓴 커피집에서 커피를 마셨습니다. 맥주를 마시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물론이다. 알콜 중독자의 솔직한 자기 소개를 다른 알콜 중독자에게 평화를 되찾아준다.)
그날 저녘 우리는 에이.에이. 모임에 참석하러 메츠로 갔다. 그는 약간 불안해했다. 그러나 말할 차례가 돌아오니 다른 사람들처럼 이야기했다. "저는 자크입니다. 저는 알콜 중독자입니다. 저는 뤼시엥과 같이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틀림없다. 그가 말하고 싶다는 것은...
온종일, 그는 핑계를 찾으려고 애썼으니까.
"뤼시엥,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술을 마신 것은 내 직업 때문이라는 것을. 비외르반의 아틀리에에서..."
"자크, 구실을 찾으려고 애쓰지 말게.처음에는 대개 잘못 생각하고 모두다 언제든지 이유를 찾는다네. 내가 술을 마신 것은 개가하는 일이 너무 고달프기 때문이다. 내가결혼을 잘못했기 때문이다. 직업장에서 몸을 덥게 하려고... 니스에서 너무 더워 몸을 식히려고... 나는 북쪽에 살기 때문에. 나는 남쪽에 살기 때문에. 나는 술에 잘 견디기 때문에. 나는 무엇이든지 저항력이 없어서. 나는 집에 자식이 너무 많아서. 나는 자식이 하나도 없어서. 나는 외판원이라 많은 사람을 대하기 때문에. 나는 숲속에서 나무 절단기와 나밖에 없기 때문에. 나는 괜찮게 생긴 편이라 여자들이 너무 따라서.. 나는 귀가 불쑥 튀어나와서 너무 못생겼기 때문에 여자들이 따르지 않아서... 자크, 이런 모든 이유가 전부 거짓이라네. 자신을 속이는 구실이란 말이네. 자신을 움츠리지도 말고 궤변ㄷ 부리지 말게. 몇 년이 자나면 자네는 더 분명하게 알게 될 것이라네. 진정한 이유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깊은 곳에 숨어 있다네."
자크와 나는 우리 수도원에서 내 동료들과 같이 식사를 했다. 동료들이 늘 자크와 함께 있었고 어떤 동료들은 신중하고 친절하게 글를 대했다. 식사를 할 동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에이.에이.모임에서 들었던 것을 심사숙고했고 시키는 대로 따라했다. 그는 자신의 부서지기 쉬운 희망을 자신의 침묵 속에 덮어두었다. 바람에 꺼질 듯 나부기는 촛불을 손바닥으로 막아주듯이.
사흘째 저녁, 그가 떠나는 날이다. 나는 자크와, 강아지를 안고 있는 그의 부인을 콜롱베의 진입로까지, 내가 사흘 전에 그들을 처음으로 만났던 그 자리까지 데려다주었다. 자크의 부인과 작별의 악수를 했다.
자크에게 악수를 하려고 손을 내밀었더니 그가 내 곁으로 다가와서 나를 껴안는다. 그의 부인이 깜짝 놀라 쳐다본다. 내가 그이 귀에다 소근댔다. "웃으며 살게."
자크가 말안장에 오르려고 등자에 한 발을 올려놓았다. 그의 승마여향은 5년이 걸렸다(역주. 5년 후에 술을 끊게 되었다는 뜻)
낭시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와 감탄으로 가슴이 뿌듯했다. 이 역설적인 사실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나는 비천한 인가이외다.
인류의 폭력에 내맡겨진,
천하고 버림받은 인간이외다.
그런데
나라는 인가, 이 비천한 놈이
이런 인물과 똑같으오.
귀머거리는 듣게 하고
장님은 눈뜨게 하고
절름발이는 걷게 하고
문둥이는 깨끗이 낫게 하는
위인과 내가 같으오.
나라는 인간은 비천하지만.
키르케고르의 이 구절은 사실상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술을 끊을 알콜 중독자에게도 역시 약간은 적용된다.
명백하게 알고 싶은 욕망
여러 달이 지나자 나는, 나르 매혹하는 이 네 번째 단계를 더 세밀하게 알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이것이 나의 인생의 압통점에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았기때문이다. 에이.에이.그룹의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용감하고 치밀하게 우리 자신의 정신적, 도의적 재고조사에 착수했다."
그렇다. 마음속 은신처의 문을 조금이나마 열기 위해서, 그 속에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용기이다.
에이.에이.그룹이 없었다면(이 사실은 내가 아무리 되뇌어도 못다할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아예 마음속 은시처의 문에 빗장을 걸어 잠그고 도망가려 했을 것이다.
내가 어리석은 짓을 얼마나 했나, 그 해위를 헤아리는 것이 예는 문제가 아니다. 사실 그런 행동은 숫자상 한계가 있다. 알콜이라는 독을품은 꽃이 피어날 수 있는 정신적,심리적 풍토를 아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불안저의 풍토이다. 그리고 그것은 유년 시절부터 시작된다.
생활의 불안도 아니고 육체적인 고통의불안도 아니고 초등학생의, 먼 통학 길의 추위에 대한 불안도 아니고 끈으로 묶은 내 초 나막신에 대한 불안도 아니다.
그런 불안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오히려 나는, 잘 웃으시는 우리 어머니의 안정감을, 우리 아버지의 굳건함을, 여부우(글, 옳아,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처럼 아름답고 순한 눈을 가진 우리 암소의 부드러움을, 양들의 온순함을 물려받았다. 우리 집은 위험이 없고 너무나 안전하여 어떤 문도 열쇠를 걸어 잠그지 않았다. (열쇠라는 것이 없었다. 독일산 양치기 개만 있으면 됐으니까.)
내가 겁냈던 것은 생활 그 자체가 아니었다.이웃집의 초상도 아니었고 우리 사촌 집에 있었던 화재도 아니었고(그 집 아이들, 사촌들을 반갑게 모두 맞아들였었다.) 우리 밀밭을 엉망으로 뒤엎은 폭풍우도 아니었다. 이런 것들은 한 인간을 알콜 중독자로 만들 수 없다. 그리고 사람의 영혼을 해치지 않는다.
내가 무서웠던 것은 생활이 아니었다. 그것은 도회지였다. 무엇보다도도회지의 이상야릇한 것 들이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학교 변소에 변기용 물통이 있었다. 나는 거기에 달려 있는 쇠사슬 줄이 당기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도 그 줄을 잡아당기는 것이 무서웠다. 나는 물이 쏴 하고 내려오는 소리나 물이 끊임없이 좔좔 흘러내리는 것이나 모두 껌뻑 질리도록 무서웠다. 물이란 넓은 목장으로 자유롭게 흘러가는 것인데 그 물이 가엾게도 반쯤 녹이 슨 통 속에 갇혀 있다는 이상한 생각을 했다. 물통에는 "돼지 치는 사람"이라는 상표가 있었다. 돼지 치는 사람과 이 물통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아무 관계가 없다. 돼지를 씻어주기 위해 물이필요한 것 외에는. 가엾게도 물이 갇혀 있다는 이상한 생각은 왜 했을까? 그 당시 우리 집에 두 개의 커다란 옹달샘이 있었는데 1740년이라고 새겨진 주춧돌이 놓인 그때부터 지금까지 밤낮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우리 집이나 주위환경에 없었던것들이면 무엇이나 내 눈에괴이하고 위협적으로 보였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대해 이야기할 때면(매주금요일마다 에이.에이.모임에서) '불안정'이라는 낱말이 빠짐없이 입에 올랐다. 그러면 에이.에이. 회원들은 머리를 끄덕였는데 "무슨 말인지 알겠소" 하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 때, 나는 운이 나쁘게도하필이면 시골 아이들을 좋아하지않는 사람을 선생님으로 모시게 되었다. 내 친구들은 나를 퍽 좋아했는데 우리 선생님은 시골뜨기인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어린 내가 8킬로미터나 되는 겨울 길을걸어서 통학을 해도 기특하다든가 하는 용기를 주는 말 한마디 한 적이 없었다. 어린소년의 가느다란 다리에는 8킬로미터가 짧은 길이 아니다.
선생님이 내게 무관심한 것을 어린 나는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선생님에게 반항하려고 공부를 하지 않았다. 덕분에언제든지 우리 학급에서 꼴찌를 해등수가 42등이었다. 영하 30도로 내려갔던 1982년 겨울만은 예외였다. 그때 나는 38등을 했는데 그 이유는 네 아이가 유행성 감기를 앓았기 때문이다. 38등을 해서 아버지가 몹시 기뻐하셨는데 죄송하게도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봄이 돌아와 다음 학기가 되자 나는 도로 미끄러져 제자리로 돌아가 42등을 했으니까.
알콜 중독자들의 유년 시절을 샅샅이 뒤져보면(거의 반드시) 어른들이 자기네 연륜의 권위를 남용해서 생긴 이야기들이 있게 마련이다.
선생님은 오후 자습시간(그는 감시만 했다)이끝나면 나보고 손짓으로 명령했다. 그것은이런 뜻이었다. "가서 더운 물 한 병 가져와." 선생님이 자기 손을 더운 물에 담그고 매니큐어로 잘 다듬어진 손톱을 손질하면서 열심히 씻는 것을 보면화통이 터졌고 창피했다. 바로 같은 시간에 암소의 젖을 짜고 계실 우리 어머니의 두 손이 머리에 떠오르기 때문이었다. 나는 남자가 매끈하게 손을 다듬은 것을 보면 싫어했다. 특히 그 남자가 고맙다는 말을 할 줄 모르는 그런 사람이면 더 싫었다. 왜냐하면 우리 선생님이 나에게 한 번도 고맙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신사께서 반드르하게 차리는 예의는 우리 집안이 지키는 예의와는 달랐다. 이상야릇하고 불안했다.
더욱더 이상야릇한 것은, 특히 나를 겁나게 하는 사람들이었다. 어느 날 선생님이 교리문답 책을 사오라고 우리들에게 말했다. 나는 손에다 내게 있던 동전을 쥐고서 랭보 서점에 갔다. 책가게 안에서 좋은 냄새가 났다.(그루풀의 향긋한냄새와는 달랐다.) 그리고 책들이 전부새 책이었다.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번쩍거리는 안경을 쓴 키 큰 아저씨가 내게 물었다.
"얘, 너 뭘 찾니?"
"교리문답 책 주세요." 나는 구리빛 동전을 한움큼 쥐고 있던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그랬더니, 그는 고약한 비웃음(아이들이 그런 것은 더 잘 느낀다. 정말 아이들 말을 믿어도된다)을 입가에 띄우더니, 그 입술에서 말을 뱉았다.
"그래, 너 요걸 갖고 천당에 가려고 하니?"
나는 당황해서 말문이 꽉 막혀 그만 눈에서 눈물부터 나왔다.
"아, 네. 아저씨."
어른이 어린아이를 이런 식으로 공격하면 아이는 그 무안을 결코 잊어버릴 수 없이, 자라서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마저 무의식중에 거부하게 된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달이떠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겠다. 만약 달이하늘 위에 떠 있었다면 나는 틀림없이 슬픈 눈으로 쳐다보았을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어머니 마음이 상하실 것이기에, 아버지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당장 마을로 내려가셔서 그 아저씨에게 따귀를 한 대 먹이실 것이기에. 나는이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나 혼자간직하고 있었다. '어째서 어른이 되면저렇게 나쁠 수 있을까?' 혼자 머리를 갸우뚱거리면서. 이상야릇하고 불안했다.
같은 무렵이다. 나는 데르발 씨의 식품가게 진열장(그 시기에는 식품가게에서 온갖 것들을 다 팔았다.)에 있는 파란 빛깔의 손전등을 보았다. 그 진열장 앞을 지날 때마다 그 손전등을 쳐다보았다.
'밤이 길어지는 가을이 될 때까지 손전등이 팔리지 않고 있다면...' 나 혼자 생각했다. 가을이 되어 수확하고 남은 포도를 거두어들이는데 내가심부름을 많이 했기 때문에 손전등을살 만큼 돈이 생겼다.
"손전등 사고 싶습니다."
"어는 것 말이니?"
"파란 색 손전등을 주세요."
주인아저씨가 그 손전등을 집더니 걸레로 한번 문지르고는 전구를 끼웠다. 아저씨가 손전등에 불이 켜지도록 만지는 것을 보면서나는 너무 기뻐 사실로 믿어지지않았다. 전구를 나사로 꼭 죈 후에 그는 먼저 건전지를 골랐다. 그런데, 그런데, 맙소사, 전지통에 알맞은 커다란 건전지 대신 통에 반도 차지 않는 조그만 거전지를 집었다. 통 안에 많지도 않는 건전지가 그 안에서 왔다 갔다 하니까 움직이지 않도록 신문지를 뭉쳐서 빈 곳을 메웠다. 그러나 접촉이 잘 안 되었다. 그러니까 그는 신문지를 도 집어넣었다. 그래도 여전히 전지알이 움직였다. 마침내 그는 속에 있던 건전지와 신문지를 전부 끄집어내고는 구리로 된 접촉 스위치를 비틀어 휘게 한 다음 빼냈던 것을 다시 집어넣었다.
"자, 됐다. 얘야, 이걸 너무 흔들지 마라. 그런데 불이 잘 안 오면 조금 흔들어줘라."
집으로 돌아올 때 어두워진 길에서 나는 미친 애처럼 손전등을 갖고 장난을 했다. 내 학생작업복 앞치마 주머니에 그걸 집어넣고서 천에 환히 비치는 불빛을 보았다. 또 손바닥을 전등 위에다 갖다 댔더니 손바닥이 장밋빛으로 빨개져 깜짝 놀랐다. 또 그것을 길바닥 위에 놓고 10미터쯤 뒷걸음으로 물러났더니 내 쪽으로 뻗어오는 삼각형 불빛이 너무나 멋있어서 나는 감탄했다. 그러더니 그만 불이 가버렸다.
이야기의 요점은? 이야기의 요점, 그것은 가게 아저씨가 어린아이의 신뢰심을 죽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는 오래도록 혼자 생각했다. '어른이 되면 어떻게 해서 정직하지 않은가?'
어린 시절의 이런 일들을 들여다보면 내 병의 원인이 이미 씨앗을 뿌렸다. 부모 곁에서 변함없는 애정을 충분히 받고 자란 이 어린아이는 어른들과의 접촉에서 자신의 행복을 노략질 당했다. 그러니까 아이에게는 출구가 두 가지밖에 없다.
즉 모든 마찰을 피하기 위해 그런 사람들을 인정한다면 아이는 자라서 짐승처럼 잔인하게 되어 가능한 한 독재적인 인간이 될 것이다.
또는 그런 사람들이 그런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그런데 내 경우에, 결론을 얻는 데 네 시간이 걸렸다.) 자신과는 상관없는 것으로 돌려버리고 아이는 달의 애정 속에서 달과 더불어 장난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똑같은 이 지구덩이 위에 최소한 두 개의 다른 세계가 존재함은 분명하다.
이 두 세계의 경계선에, 그들의 유례없는 행위를 참고 견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나의 알콜 중독이 흘러갈 수 있는 도랑이 있다. 나의 알콜 중독은 자아방위 조처의 반사작용이며 도주의 반사작용이다. 도주, 도주, 도주, 달에게 도주했다. 술한테 도망갔다.
어느 6월 아침, 학교에 지각을 하게 되었다. 선생님이 꾸짖을 생각을 하니 무서워서 늑장을 부렸더니 더 늦어졌다. 그래서 클로동 농장을 지나자 숲속으로 깊숙히 들어가서 학교를 까먹었다. 우리 고향 지방 사투리로 말하듯 '여유 꼬리'를 만들었다(역주. 학교수업을 빼먹는다는 뜻인 듯함) 도회지 사람들을, 건방진 우리 선생님을 피해 멀리 나와 있으니 얼마나 마음이 편하던지.
어머니는 내 책가방에 점심 도시락으로 빵과 초콜렛을 넣어주었다. 그때는 풍뎅이가 날아다니는 계절이었다. 풍뎅이와 나는 서로 어울려 장난치며 재미있게 놀았다. 온종일, 그리고 일주일 내내.
학교를 까먹고 도망 나와서 매일 똑같은 짓을 했다.
선생님은 내게 벌을 주었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뉘우치지 않았다.
"당신은 학교를 빼먹은 데 대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천만에 말씀. 그것이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졸업 날이 왔다. 졸업장을 못 받은 아이는 나 하나뿐이었다. 나는 다른 아이들의 학부모들과 성적표를 들여다보는 학생들 속에 끼어 있었다. 우리 선생님은 거기에 섞여서 축하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학부모들이 아니꼽게도 우리 선생님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선생님이 내게 가까이 오는 것을 보았다.
"너 졸업장은 못 받았지만 그래도 할 말은 있겠지? 넌 앞길이 창창하니까 그만해도 괜찮다. 그게 전부 네 잘못은 아니지." 우리 아버지가 거기 계셨더라면 내게 이렇게 말했을 것인데.
그 대신 선생님은 학부모도 없이 혼자 있는 아이에게, 졸업장을 못받아 이미 슬픔에 젖어 있는 아이에게 말했다. "너 이 녀석, 졸업장 못 받았지. 그럴 줄 알았다." 내 마음속 저 깊숙한 곳은 기뻐서 웃고 있었다. 손이 계집애 같은 우리 선생님과 번쩍거리는 안경을 쓴 책가게 아저씨와 내 꿈을 짓뭉개놓은 식품점 아저씨들을 훌훌 떠날 수 있었기 때문에. 내가 그들을 더 보지 않아도 되니까.
나는 마지막으로, 울퉁불퉁하게 포장이 되어서 내 나막신(그 다음엔 내 구두)을 다 닳게 만든 로마식 도로를 걸어갔다. 그러나 나는 이 통학 길에 대해서는 아무 원한이 없었다. 나는 혼자서 이 길과 더불어 많은 시간도 더 보냈었다. 내가 사람들한테서 당하고 참아왔던 것과 내가 바라던 세상을 꿈꾸고 있던 것과의 경계선에 파여 있는 도랑은 이때부터 이미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통학 길에는 아무 원한이 없었다. 왜냐하면 알콜 중독자가 되는 것은 사물 때문이 아니라 인간들 때문에 되는 것이니까.
이런 이야기들을 입 밖으로 뱉아내니까 마음이 가볍고 즐겁다. 내 기억 속에서 이것을 뽑아내어 버리니까 그 당시의 괴로움을 참을 수 있게 된다. 이 이야기들은, 나의 용기를 갉아먹고 쏠아대던 자기네의 이빨을 잃어버린다. 꼭 새앙쥐 같다. 방 안을 환하게 밝히기만 하면 생쥐들은 달아나니까.
내가, 다정한 우리 어머니를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내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한번도 말씀으로 가르치신 일은 없다)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을 가르쳐주셨지만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가르쳐주시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그렇다고 나를 미워하라고는 가르치시지 않았다.
오늘에 와서 나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사랑, 나 자신에 대한 사랑, 이 세 가지 사랑은 똑같이 강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을 사랑하지 않고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맹목적이며 편협되고 고집스런 신앙이다.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고서(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인간을 사랑하는 것은 정신의 부조리며 모순이다.
타인을 사랑하지 않고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착한 사람들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폭력이 그나마 살아 남은 사람들의 목을 졸라 죽일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서 인간을,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의 질병이다. 이 질병은 인간을 술로 이끌어간다.
술을 끊은 지 어언 14년, 지금에 와서나는 알고 있다. 나의 행복은 조화 있게 균형 잡힌이 세 가지 사랑에 기인한다는 것을.
불안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된다.
인간을, 타인을 사랑하겠다는 욕망을 갖고서나는 열여덟 살에 예수회 수도원에들어갔다. 나는 수련소에서 나의 형제 수사들과 함께 사는 것이 몹시 즐거웠다. 그러나 수도원 원장이 달에 얽힌 내 이야기와 사물의 감추어진 면에 대한 나의 이야기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해서 섭섭했다. 내 생각에, 그는 종교문제에 한해서는 좋은 도매상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 2년 동안의 수련기간은 슬프고 불안한 기쁨의 기간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정신적인, 교훈적인 권위로써 나에게 공포심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하느님의이름으로 명령했다. 그러나 내 속에 계신 나의 하느님은 수도원 원장님과똑같은 것을 나에게 명령하시지 않았다. 상호간의 몰이해였으며 전적인 몰이해였다.
우리 아버지께서 나의 수련기 시절, 나를 면회하러 오셨을 때 원장 신부님이 우리들과 함께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정원을 거닐면서 그는 우리 아버지 팔을 자기 팔 밑에다 꼈다. "에 그런데 뤼시엥 아버님", 그는 우리 아버지 손을 탁탁 두드리면서 말을 꺼냈다. 그런데 다정하게 보이는 신부님의 이 행동이 왠지 나에겐, 상대의 호감을 사기 위한 의도적인 것으로 생각되어 좋지 않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우리아버지에게 말을 하고 싶었다."원장신부님의 말을 듣지 마십시오. 그 사람은 나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우리 같은 사람을 이해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는 한마디도 못했다. 원장신부님은 우리 아버지에게도 정신적인 권위자였기 때문이다.
나는 분명 '정신적'이라고 말했다. 나는 원장신부님의 명령이 지닌 권위 외의 다른 모든 명령이 지닌 권위는 아무것도 무섭지 안핟. 내속에 한쪽 눈은 잠자고 있는 무정부주의자가있다. 나는 재산도, 나의 동기생 주교들도, 군대의 나의 사령관도 무서워해본 일이 결코 없다.(나는 사령관에게 고약한 쌍욕을 해서 15일간 영창생활을 했다)
그러나 우리 원장신부님은 정신적인 권위,그가 제것인 양 가로챈 하느님의권위를 행사했고, 나는 다만 미소 지으시는, 해방시켜주시는(나는 그렇게 느껴진다) 예수님의 권위만을 인정했다.
몇 년이 지난 후 내 친구 브라상이 '부아뒤노르'(역주. '북쪽의 소리'라는 뜻) 신문에서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기를 "나는 신앙이 없다.그러나 그런 나 자신이 옳다고는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뤼시엥은 신앙이 있다. 그러나 그도 또한 그런 자기 자신을 옳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우리 원장신부님은 내 말을 꼬투리 잡아 말썽을 일으켰다. 내 말이라고는 했지만 사실상 그것은 브라상이 도식적으로 아주 간략하게 갖다 붙인 것일 뿐이었다. 그런데 원장신부님은 그것이 진실 여부를 가려보지도 않고서 문제화했다.
2년의 수련기가 지난 후 서원 날이 다가왔다. 원장신부님이 나의 서원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또 한 번, 나 자 낙제생이 되어 외톨이로 떨어졌다. 그러나 나는 어린아이처럼 순종했다.
그래서 나는 구리로 된 고상(바로 이 십자가가 내 침대 머리맡에 걸려 있다)을 군복에 고이 간직하고서 시리아로 떠났다. 혼자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멋졌다. 또 한 번 나는 알레프(역주. 시리아의 도시)의 성채 위로 달이 지는 것을 쳐다보았다. 내 나이 스무 살이었다.
내가 불란서로 돌아왔을 때 수도원 원장이 왜 내가 자원해서 시리아로 떠났는가를 물었다. 나는 감히 원장에게 솔직하게 대답을못했다. "왜냐하면 저는 원장님의권위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원장님과 저는 서로 수만 리 떨어져 있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이다. 소심하고 겁이 나니까 경계심이 생긴다. 경계심이 생기니 그 자리를 피하게 된다. 피해서 도망가니 경계심, 불신은 더 커지게 마련이다.
예수회 수도원에서 신학 공부(과거의 이단설에 대해 정확한 논쟁을 할수 있도록 내게 가르쳐 주었으나 현대의 온갖 증상을 풀이하는 데는 별 것이 아니었다)를 4년 한 후, 나는 수련기 3년째에 들어갔다. 관구장의 허락을 받으면 어떤 학생들은수련기의 마지막 해를 외국에 나가서 공부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영어를 완전하게 하기 위해 관구장에게 영국으로 보내달라고 청했다. 그는 내게 아무 말도 없이 거절했다. 또 한 번 나 혼자 당했다. 지금은 내가 거부당한 이유를 알고 있는데, 그것은 비스트로(역주. 속어로서 커피와 술을파는 싸구려 선술집 같은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데는 영어가 필요없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모욕을 당해 자존심이 상했고 말할 수 없이 상처를 입었다.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내게 다른 방법으로 길을 열어주셨다. 나는 영국에서, 미국에서, 일을 하며 산 영어를 배웠다.
방금 비스트로라고 얘기했는데 내가 이런 장소에서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중요한 인생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의 인생의 두 해를 보낸 것은 사실이다. 나는 거기서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을 배웠고 사람들이 신앙을 갖는다는 것이어렵다는 것도 배웠다. 나뿐 아니라 내가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도 거기서 배웠다. 자신의 신앙에 대해 겸손하게 털어놓는 신부를 존경하는 것을.
내가 만든 샹송(나는 나의 기쁨과 피곤을 모두 노래에실었다)을 부를 수 있는 요행이 우연한 기회에 왔다. 1959년 나는 관구장 신부님으로부터 너무 냉혹한 편지를 받았다. "바라건대 오전 8시 이후에는 미사에 참여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이 조처는 당신이 예수회에 계속 머물 수 있는, 내가 제시하는 절대적인 조건이니 잘 알아서 처신하시오." 그때는 이미 그의 허락을 받고서 유럽 네 구석을 누비며 수많은 콘서트를 하던시기였다. 나의 의식구조와 그의 의식구조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이해결핍의 담벼락은 자꾸만 더 놓이 올라갔다.
나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라틴어로 된 구절을 읽고 또 읽었다.
"만약 너의 양심의 명령이, 너의 윗사람의 명령과 충돌을 일으킨다면 순종해야 하는 쪽은 너의 양심의 명령이다."
지금의 나는, 이 이해결핍의 담벼락을 종교의 법이라는 커다란 대포로 헐어버리려 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라는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행복의 네잎 클로버를 입에 물고서(역주. 천하태평, 유유자적을 뜻함.) 그 담벼락을 우회한다.
나는 연주여행을 하기 위해 오토바이가 필요했다. 새로 부임하신 관구장 신부님께 청했더니 그것을 사라고 허락하셨다. 나는 운전면허(자동차 운전까지)를 받았기 때문에 250스포르(역주. 대형 오토바이의 하나)를 샀다.
오토바이를 수도원 뜰에 두었을 때 원장신부님이 곤란한 표정으로 오토바이를 살피고 있는 것이 내 눈에 띄었다.
"이게 오토바이요?"
"네. 퀼뷔테 모터(역주.특수 모터), 22마력입니다."
"퀼뷔테?.. 그런데 관구장 신부님은 자네보고 모터가 달린 자전거를 사라고 허락했네."
"아닙니다. 오토바이입니다."
"관구장 신부님께 편지로 문으해야겠군."(그는아주 세련된 불어로 말을했다. 일평생 그것만 연습했으니까.)
"제가 사실대로 말씀드렸다는 것을 믿으셔도 됩니다."
오토바이와 모터가 달린 자전거와의 차이점도 모르는 어른을 원장으로 모시고 있으니 얼마나 유감스런 일이냐?
"그럼 지금쯤은 그분이 그 차이점을 아시오?"
"아실 겁니다. 그런데 돌아가셨소."
"믿어지지 않는 일이오. 당신은 변명할 수 없었소?"
"그분들은 하느님의 권위로 말씀하셨소. 거역한다는 것은 어려웠소."
"그분들이 당신을 짓눌러 으깬다는 것을 그분들이 알고 있었어?"
"아니오. 나는 그분들이 거북했고 그분들은 나를 거북해했소. 내가 나를 인정하고 또 그분들을, 약간의 익살을 섞어가며 인정하기 위해 나는 술이라는 탈출구가 필요했소."
그러나 그 당시 나는, 그분들 옆에서 오들오들 떠는 산토끼처럼 불안했기 때문에 그리고 샹송을 부르는 나의 활동에 그분들이 무관심하기 때문에 그리고 샹송을 부르는 나의 활동에 그분들이 무관심하기 때문에 고민하며 괴로워했다. 예를 들면, 모스크바와 바르샤바에서 사람들이 내가 작사 작곡한 샹송을 부르고 있는데(나는 에스에이엘이엠(역주. 에술가협회)의 보고서를 보고 그 사실을 알았다.) 내가 있는 우리 수도원의 원장님께서는 내 샹송의 단 하나의 가사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발육부진아처럼 나 자신이 위축되어 있었기 때문에 괴로웠는데 다른 사람들마저도 나를 미숙아로 취급했다. 그것이 사실임을 다음 이야기가 밝혀준다.
1958년 4월,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했기 때문에 지쳐 있었다. 밤, 비, 바람, 눈이 나는 지긋지긋 했었다. 나는 두 번이나 오토바이와 넘어지는 바람에 기타를 두 개나 부숴 먹었다. 어느 날 식탁에서 나와 같이 앉아 있는 동료들에게 말했다.
"2마력짜리라도 좋으니 자동차를 한 대 살 수 있으면 좋겠는데..."
전부 침묵. 한 형제수사가 커피를 따라준다. 모두 말없이 설탕을 넣는다. 나는 내 자랑을 하려던 것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기 때문에 한마디 더했다.
"디스크가 팔릴 것인데, 그 돈이며..." 거의 전부가 왁 하고 웃음보를 터뜨렸다. 커피를 따라주던 형제수사가 바로 내 코앞에서, 금빛 송곳니를 드러내며 입술에 조소를 띄는 것을 내 눈으로 목격했다. 내 머리 속이 수모와 슬픔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당신은 대항할 수 없었소?"
"아니오. 바로 그것이, 그것이 나의 병이었소."
"그렇지만 당신은 돈을 많이 벌었었지요?"
"거의 백억 프랑(역주. 십조 원 이상에 해당할 것임)이 될 거요."
"당신은 그것을 알고 있었소?"
"아니오. 내게 계산서를 주지 않았소."
어디쯤 왔는지 모르고 있었는데 디종의 톨게이트가 눈앞에 있다. 표를내느라 차창 밖으로 손을 내미니 차가운 북풍이 손끝에 느껴진다. 유리로 된 감방 같은 통 속에 앉아 있던 아저씨가 햇빛이 너무 부시니까 눈을 반쯤 감는다. 매표소 지붕은 응달진 북쪽으로 깨끗한 가루눈이 덮여 있다. 다시 출발한다. 오후 2시 10분. 아직도 245킬로미터가 남았다. "나의 하느님,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일들을 조용히 받아들이게 해수소서."
여러 해를 두고 곰곰이 잘생각해보았는데(물론 에이.에이. 그룹과 함께) 내직업, 노래 부르는 이 일은 내 병의 원인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명백하게 알게 되었다. 여행의 피로도 물론이요. 콘서트 때문에 긴장하는 신경의 피로도 물론 상관이 없었다.
사람들 역시 나의 병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명백하게 알게 되었다. 수도원 원장의 이해부족이나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내 후원자(디종에서)나 금빛 송곳니의 내 동료의 조소(낭시에서) 모두 상관이 없었다.
평온을 찾지 못한 환자는 때때로 자기의 병을 합리화하려고 이유를 찾는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원인은 나에게 있다. 나는 나를 방어할 줄 모른다. 나는 용기가 부족하다. 나는 내 권리를 모른다. 잽싸게 말대꾸할 줄도 모른다. 나는 좋지 못한 직업을 택했다. 등등..." 이와 같은 자기 비난은 사람을 자살로 이끌고 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비난한다.
"내 주인 때문이다. 내 마누라 때문이다. 내 의사 때문이다, 상황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페르노(역주.싸구려 술의 하나) 술 광고 때문이다, 등등." 이런 식의 타인에 대한 비난이나 원망은 사람을 살인으로 끌고 갈 수 있다. 이런 일은 매일 일어나는 일이다.
사실상 이 병에는 죄인이 없다. 나, 뤼시엥. 내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것은 죄가 아니다. 내가 꿈꾸는 그 세상을 이룩할 수 없는 것도 죄가 아니다.
"지금의, 있는 그대로의 이 세상에 만족하십시오."
"내가 만약 행복한 세상을 꿈꾸지 않는다면 나는 그런 세상을 만들지 못할 것이다."
"어째서 당신은 그런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하시오?"
"내가 그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 일 이외에는 하고 싶은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요. 나는 그런 인간이오."
그룹의 신비스런 힘
두 번째 단계. "우리에게 있는 지고의 힘이 우리를 건전한 본 정신으로 돌아오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세 번째 단계. "우리는 각자 마음속에 품고있는 각자의 하느님께 우리 인생의 배려와 인도를 의뢰했다."
내가 술을 끊은 지 약 3년 지났을 때 나는 이 두 가지 단계에 접하고 싶었다. 나는 과거에 철학 3년, 신학 5년을 공부했지만 학자들의 하느님이다. 신학자들의 하느님은 내가 어제 이야기한 슬픔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죽어갈 때 두 팔을 오므리고 팔짱끼고 있었다. 내 군복 주머니에 있던 십자고상, 내 방의 벽에 걸려 있는 십자고상은, 나의 죽음 앞에서는 기꺼이 도와주었지만, 나의 삶 앞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우여곡절 끝에 십자고상 앞으로 다시 돌아왔다. 나는 그것을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모든 알콜 중독자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내게 내밀어지는 구원의널빤지는 모두 붙들고 늘어졌다. 내 친구들이, 내 윗사람들이, 내 의사들이 모두 내 곁에서 말해주었다.
나는 두 번이나 입원하여 요양, 치료를 받았다.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나는 열 명도 더 되는 의사들을 만나보았는데 그들은 내게 충고와 약을 주었고 또 개중에는 아무 말도 없는 의사도 있었다.
결혼한 알콜 중독자들은 자기 부인이나 할머니나 장모가 용기를 돋우어주고 격려했다. 또 다른 알콜 중독자들은 자기의 고용주로부터 동료들로부터 격려를 받았고 뿐만 아니라 자기의 본당 신부님도, 심지어는 비스트로의 주인까지도 격려해주었다.
우리 환자 중 어떤 이는 첫영성체 때의 하느님께 기도하기도 했다. 우리는 너무도 불행하여 반미치광이가 되어 있었다. 때로는 하느님을 원망하고 모독하는 언사도내뱉았다. 어쨌든 우리는 요행을 바랐다.
우리는 자신을 한탄하다가 천국을 그리다가 끝내는 무덤의 영원한 평화, 죽음의 안식을 시도해보았다.
우리는 술을 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신화적인 무훈담으로 우리의 가치를 높이려 애썼다. 내 생각에 그 무훈담이란 비스트로에서 우리가 지껄여댄 소설 줄거리의 해설이다. 우리는 우리 부인이 '미스 우니버스'였었다라든가 우리 과장님은 과장들 중에서 가장 마음씨가 좋았다든가 하는 우리들의 꿈속으로 피신해 버렸다.
그러나 질병은 항상 악화되어 마시고 또 마시게 하는 바보 같은 짓, 또 다른 바보짓을 낳게 하는 바보짓을 연속시켰다. 쳇바퀴 돌리는다람쥐가 돌리고 돌리고 또돌리다가 너무 빨라져서 끝내는 숨이 목에 차 "아, 이제는 지쳤다"하고 뱉아내듯이. 숨이 멎고, 시간이 멎고, 생명이 멎는다.
바로 이런, 숨이 멎는 순간에, 우리는 이병에 대해서 이런 것을 알았다.
용기도 아무 소용이 없노라.
의지도 아무 소용이 없노라.
자신에 대한 폭력도 아무 소용이 없노라.
자신에 대한 증오도 아무 소용이 없노라.
격려도 아무 소용이 없노라.
지식도 아무 소용이 없노라.
재산도 아무 소용이 없노라.
영광도 아무 소용이 없노라.
학문도 아무 소용이 없노라.
자격증, 학위도 아무 소용이 없노라.
기도, 나는 애썼으나, 소용이 없노라.(언뜻 보기에는.)
우리는 설복되지 않는 한 마셨으며 또 설복되었다 해도 계속 마셨다.
내 대녀 파스칼의 본명축일을 위해 나는 술을 끊고 싶었는데 계속 마셨다. 아기 예수께서 오신 성탄날을 위해 나는 술을 끊고 싶었는데 계속 마셨다.
푸케 의사가 말했다. "알콜 중독자는 술을 끊을 수 있는 자유의지를 잃어버렸다."(내 말은 못 믿는다 하더라도 그 의사의 말은 믿으십시오.)
내가 보았던 환각 속에서, 내 의식의 가엾은 대가리가 입을 벌려 내게 말하는 것을 나는 들었다. "그러니까 술을 그만 마셔." 나는 도저히 술을 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내 친구 누아르가 나에게 술을 끊으라는 말을 결코 하지 않은 것이 당연했다. 알콜 중독 환자가 아닌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이해했다 해도 지치지 않고 우리에게 설교할 것이며 자기네 눈물을 닦기 위하여 손수건을 꺼낼 것이다.(만약 우리를 아직도 사랑한다면 우리들의 눈물도 닦기 위하여.) 그리고 우리가 평화롭게 죽도록 내버려둘 것이다. 그 외의 다른 모든 행위는 불합리할 것이다.
그런데 내가 스스로 풀 수 없었고 아무도 풀어줄 수 없었던 문제의 그 매듭을 아무런 억지 없이 에이.에이. 그룹이 풀어주었다.
에이.에이. 그룹이 어떤 방법으로,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했는가를 요약하라고 한다면 나는, 그것은 우정이다라고 말하겠다. 특별한 품질의 우정,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내가 보지 못했던 우정, 그렇기 때문에 이 우정은.
무쌍하고 진기하다. 말하자면 이 세상의 어떤 애정보다 더 탁월하다. 내 대녀 파스칼의 애정보다는, 우리 어머니의 애정보다도, 누아르의, 모르방르베스크의, 르발루아의, 프랑수아즈의, 천문학자 세르바장 씨의 우정보다도 더 뛰어나다. 이 우정은.
사랑스럽다. 알콜 중독 환자는 아름다움을지니고 있으며 불가해한 매력을지니고 있다. 누가, 무엇이, 몇 달 동안 스트라스부르로 달려가게 했던가? 그때 나는, 우리 어머니를 잊고 있었다. 내 귀여운 누이 크리스티안, 너는 아름다웠다. 너를 잊지 못할 것이다. 낭시에서 암으로 떠나버린 내 귀여운 누이 폴레트, 너는 사랑스러웠고 착했었다. 나는 너를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 에이.에이. 그룹의 이 우정은 공간을 초월하고 죽을을 초월한다. 그리고 또 이 우정은.
정중하다. 나는 정중하지 못한 것에 정말 질려버렸다. 친구들의 쑥덕공론이나 매정스런 거절에, 선술집 카운터의 조소에, 비웃음에, 같은 처지의 술친구랍시고 어깨 위에 척 걸치는 맥 빠진 팔뚝에, 정치 부로커들의 썩은 내가 풀풀 나는 숨결에 질려버렸다. 그리고브스트로 주인이 내게 쏘아내던 말이 또다시 생각난다. "술주정그만해, 이 얼간아." 아물지 않은,피 흐르는 상처에 된 소금을 치는 것 같다.
에이.에이.그룹 회원들은 다른 회원에 대한 존경과 우의의 표시로 몸치장을 단정히 한다. 남자들은 면도를 깨끗이 하고 여성회원들은 머리손질과 화장을 잊지 않는다. 그러나 곤드레만드레 술걸레가 되어 되는 대로 옷차림을 하고 와도 우리는 모두 환영한다. 에이.에이.그룹 회원들은 캉브론(역주. 캉브론 장군이 영국을 모욕하는 말을 했다는 데서 유래되어 모욕적인 언사를 뜻한다고 함)의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자기 자랑도 하지 않는다. 훈장 받을 일도 없는, 잿빛 생활을 여러 해 동안 해온 사람들을 아끼기 때문이다. 남의 동정을 사려고 눈 밑에 침을 발라가며 건성 울음을 울지 않는다. 우리들의 슬기가 마침내는, 움이 돋아난다는 것을 그들은 믿기 때문에 회원들은 충고를 주지 않는다. 회원들은 누가 하늘에 달이 네모졌다고 말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술이 바보 같은 소리를 지껄이게 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환자가 남의 관심을 끄는 짓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에이.에이.그룹의 우정은.
이해력이 있고 관대하다. 이야기가 끝나기전에 회원들은 이미 이야기가어떻게 끝날 것인지 안다. 누가 흥분하면 회원들의 평화가 흥분한 이의 앙갚음을 무장해제 시킨다. 누가 갈보집에 갔다 왔다 하면 그들은 침 뱉는 표정으로 외면하지 않는다.누가 술을 끊었다가 다시 마셔서 병이 재발하면 회원들은 우정으로 이해는 하되 그 환자를 위로해주면서 자기는 잘난 체 점잔빼지 않는다. 회원의 반수가 모두 겪어 본 사람들이라누가 하느님께 기도를 해도 이해하고 하느님을 모독해도 역시 이해한다. 누가 자기 여편네를죽여도 회원들은 말을 않는다. 방 안에천장이 세 가지 색깔로 보인다고 하면 관습에 따라 검사해보지만 말은 않는다. 에이.에이.그룹의 우정은 아무것도 비난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용서하고 모든 것을 이해한다. 또 이 우정은.
성실하다. 우리가 한 번, 술을 다시 마셔서 병을재발시켜도, 백 번을 거듭해 병을 재발시켜도 그룹은 언제나 변함없이 거지, 그 자리에 있다. 문은저녁 8시 30분까지 열려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날개로 혼자서 날아보려고 잠시 그들을 떠나도 회원들은 말이 없다. 우리가 실패하여 다시 돌아오며 살찐 암소를 잡아환영하되 우리의 변명 따위에는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다 잘 알고 있으니까.) 우리가 우리의 비열한 행위를 이야기하면 우리들이 신중해지도록 종이로 종이배를 만들며 침묵한다. 우정은 떠나가버린 사람들 위에 영원히 머문다. 참을성 있게 빛을 기다리지 못해 자살해버린 장, 술때문에 죽은 자크, 자살할가스통, 메츠의 고속도로에서 술에 취해 죽은 클레레트, 평온 속에 떠나간프랑수아. 그룹은 모임을 시작할 때 항상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부른다. 이 우정은.
움직인다. 이 우정은 살아 움직인다. 그리고 정말 신비스럽다. 나는, 어떤 환자라도 모임에 꾸준히 참석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면 무엇엔가 끌려서 하루라도, 단 한 번이라도 빠지는 경우를 본 일이 없다. 우리의 바람이 2년이나 걸려 이루어진 일이 있다. 어느 날, 우리는 어떤 여인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알았다. "저는 폴레트라고 합니다. 저는 알콜 중독자입니다. 저는 이 주간에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룹의 활동은 표면적으로는 이체에 닿지 않는, 논리에 대한 도전이다. 가끔 박식한 사람들이 우리에게 말한다. "그것은 간단합니다. 에이.에이.그룹은 집단적인 힘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 "아, 그래요?" - "네, 그렇습니다. 그룹의 힘에 의지하지요." "그래서요?" - "그러니까 한 사람이 갖고 있는 힘보다는 백 사람의 힘이 훨씬 더 큽니다." -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이 질병은 다른질병에 비해 공포나 심리나 취약성, 그리고비난 또 그 이외의 것도 백배나 더심합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우리는질병의 최중심부, 바로 그 급소를 찌른다. 왜냐하면 에이.에이.그룹 치료방법의 핵심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스물다섯 살 된 피에르, 4년간 정신요양원에 있었고 열일곱가지 중 독해소 치료를 받았고 몇달 동안 알콜 중독으로 길거리를 헤맸던 피에로가 숨이 넘어가기 1보 직전에 우리에게 왔다. 그는 즉각 술을 끊었다. 애쓰지도 않았고 약도 먹지 않았고 다시 병이 재발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15년이 지났다. 이것은 하나의 책으로 쓸 수 있는 이야기이며 살아 움직이는 에이.에이.그룹의 실례이다. 이 우정은.
포괄적이다. 나는 알콜 중독자들의 형제이다. 알콜 중독 여인들의 형제이며 젊은이들의 형제이며, 노인네의, 가난한 사람들의, 부유한 사람들의, 독일인의, 폴라드인의, 미국 사람의, 말없는 늙은이들의, 겉늙은 청년의, 완고한 신자의, 무신론자의, 학자의, 고지식한 사람의, 말라깽이 명태의(나 같은), 간호사의, 알콜 중독에 걸린 의사(물로 곶감이다)의, 사회주의자의, 공산주의자의 (고만, 고만 합시다. 그래도 모자라오?) 형제이다. 우리를 뭉쳐놓는 그것은, 술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려는 염원이며, 그 염원은 우리를 분리시키는 어떤 것보다도 훨씬 더강하다. 그 무엇도 우리를 떼어놓지 못한다. 내가 한 가지 잊었다. 우리 가운데 죽은 사람의 무덤을 파주는 알콜 중독자가 있는데 오늘 그가 파는 무덤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우정은.
쾌활하고 유머가 가득하다. 이 우정은한쪽 눈을 깜박하며 윙크를 잊지않고 고통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우스개도 잘 한다. 르네가 이야기를 했다. 술을 도저히 끊을 수 없어서 약을 먹고 죽으려고 쥐약통을 찾다가 집게손가락을 다쳐피가 났다. 5분 동안이나 반창고를찾았다. "피를 닦아주려고 말이유, 허허."
요약해 말하자면, 좋은 것은 빠짐없이 갖추고 있는 이우정을, 우리는 지고의 힘, 경험에 의한 살아 있는 힘이라고 부르는데 그 힘은 주상적인 개념처럼 맥 빠진 것이 아니다.
이 힘은 친절하고 정중하고 신중하고 성실하고 참을성 있고 이해력 있고 포괄적이고 활동적이고 신비스럽다. 또 하나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그 힘은 개개 환자에게서 독립되어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신이라고 부른다. 왜? 그렇게 부르지 못할 게 뭔가?
이 신이라는 낱말은 갓 들어온알콜 중독자에게 귀에 거슬리는 말일 수있다. 바로 이 우정에 대한 체험이 없기 때문이다. 이 낱말은 거슬릴 수 있다. 왜냐하면, 세기가 흐르면서 이 낱말은, 인간들의 이해결핍에 책임이 있으며 패거리 싸움에도, 증오에도, 피에도, 전쟁에도, 복수에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이 단어는 금기가 되었다. 특히 불란서에서, 난폭한 인간들의 전쟁을 좋아하는 인간들의 허영이 머리끝까지 찬 인간들의, 거꾸로 뒤집힌 성스런 이야기만 지껄이는 바보들의 잘못 때문이다.
이 낱말이 신입 에이.에이.회원에게 거슬릴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자기 곁에 있던 신자들에게서 희망하던, 우애는 도움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까닭으로 신입회원은, 위풍당당하고, 아득히 멀기만 하고, 거만하고, 형 집행을 좋아하고, 아무 쓸모가 없고, 교만이 두꺼비 배처럼 팽팽하게 터질 듯 차 있는 신을 지긋지긋하게 싫어한다. 이런 신은 자유로운 사람들을 내동댕이친다. 이 사람들이 옳은데도.
신이라는 낱말이 거슬릴 수 있다. 그러나 술을 완전히 끊게 되고 마음에 평화가 깃들어 자유를 누리게 되면(모든 분양에서) 단주에성공한 알콜 중독자는 이 우정을작은 활자로 일반화시키지 않고, 선선히 큰 활자로 교유명사화 시킨다.
내게 있어 구세주라고 부르고 싶은 이는 예수님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나를, 반미치광이 상태에서 그리고 죽음에서 구해주셨기 때문이다.
알콜 중독을 모르시는 건강한 이들이여, 하느님에 대해무엇을 아십니까? 하느님은 당신네들을 어떤 것으로부터도 구해내시지 않았소.
당신네들은 언제나 스스로 만족하고 있지 않소? 당신들이 하느님께 에스.오.에스.를 치는 수고를, 당신네들의 재산, 당신네들의 버젓한 명성, 당신네들의 끄떡없는 건강, 그리고 당신네들의 배꼽 쥐게 웃기는 경칭들이 대신해주지 않소?
모든 것을 몽땅 잃어버린 우리들로 말하면, 우리는 어찌 됐든 요행을 바라고(그 하느님이든 혹은 다른 하느님이든) 하느님을, 신을 목이 쉬도록 불렀었다.
사실상, 직접 겪은 체험, 그것이 딱 들어맞는, 제격의 열쇠였고 유일무이한 열쇠였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미칠 것 같은 분노와 무력 때문에 질식된 채 꼼짝없이 갇혀 있던 그 무서운 감방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해준 열쇠였다.
"그것은 약간, 너무 쉬운 것 같습니다."
"무엇이 쉽다는 말입니까?"
아, 그렇다. 에이.에이.그룹은 토마 사도처럼 손으로 만져본 것만 믿는다. 우리는 절망을 손가락으로 만져보았다. 우리를 절망으로부터 탈출시켜준 힘, 우리는 그 힘도우리 손가락으로 만져보았다.
하느님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분이 아니다. 하느님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찾고 있는 그곳에 있지 않다. 하느님에게는 사람들이 상상하는 고집이 없다. 하느님은 구름 속에 뜬 것처럼 멍하지도 않다.
성녀 막달레나는 하느님을 산지기라고 생각한 일이 잇다. 사도들은 유령으로 착각한 일이 있다. 베드로는 고기잡이 전문가라고 생각했다. 가엾은 나는교리 속에서, 바르바라 셀라랑 식의 삼단논법 속에서 하느님을 찾았다. 사실,하느님은 병든 사람들 한가운데 평화롭게정답게 앉아 계셨는데.
나는 모임에서, 하느님에 대해 한번도말해본 적이 없다. 그럴필요가 없었다. 하느님은 바로 여기 계셨다. "보브나 자네트가 나를 사랑하듯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누구든지, 내가 르네나 폴레트를 사랑하듯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느님에게서 나고 하느님을 알고 있다." 누구든지..라니, 그럼 불라선 사람이낙, 푸에고 제도(역주. 남아메리카 남단의 제도)사람인가? 그것은 이 세상의 사랑할 줄 아는 모든 사람을 말한다.
새벽 3시 10분전, 바공 식당에 들어간다. 나는 커피를 마실 것이다. 장거리 트럭운전기사 두 사람이 아직도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끝내지 않고 있다. 그 기사들의 시중을 드는 여인은 이 식당의 여주인임에 틀림없다. 나는 그 여인을 잘 모른다. 나는 언제나 한밤중에 지나가니까. 나는 여주인에게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셔요. 하는 인사만 하고 나온다. 깜박 잊고 그 여인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에 왜 불을 밝히지 않았나 하고. 내 이야기를 어서 끝내고 싶어 못 견디겠다.
끝내기 위한 자유
인간이라는 동물이 캄캄한 통로를 통하여 확실치 않은 어렴풋한 경험으로 신앙에까지 도달하는 데 있어 과학이 그 통로를 더 잘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과학에게 감사를 표한다.
그러나 정신적(다른 적당한 형용사를 찾을 수 없다) 자유를 향한 신앙의 길, 그길을 개척하는 것은 각자에게 달렸다. 본디 그것은 개인적인 것이다. 우리들을 앞서간 성인들이나 시인들이나 가난에 찌들지 않은 겸손한 사람들의 수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런 사람들은 무더기처럼 많은 것이 아니다.
돈 많은 사람들, 허풍쟁이들, 어깨에 힘주는 사람들, 훈장 받는 사람들, 콧대 높은 사람들, 오랫동안 나를 무서움에 떨게 하던사람들, 이런 모든 사람들은 인류를한 치도 앞으로 나가게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인류를 단세표의 계열 속으로 후퇴시킨다. 그들은 어떤 계열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조차도 모른다.
알콜 중독에서 빠져나오면서 내게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던 것 중 최악의 일은 내가 이런 사람들의 세계로 다시 들어가 이런 사람들처럼 된다는 것이었다. 나의 유년 시절에 사람들이 말했던 것처럼 '일반적인 사회생활'로 다시 들어가는 것이었다. 푸케 의사 병원에서 퇴원할 때 사람들이 이렇게 부탁한 적이 있다. "이제는 술을 끊었으니까 우리처럼 되어서 우리처럼 사시오."
그러나 나는, 당신네처럼 살 수 없소. 당신네가 좋아서 혹하는 것이 나에게는 딱 질색이오. 당신네가 아 하고 감동하는 것에 나는 감각이 없소. 당신네가 흥분해서 떠드는 일에 나는 냉랭해지오. 당신네는 좋다고 웃어대는 그것을 나는 가끔 이해할 수 없소. 당신네는 겁이 나서 후들 후들 떠는데 나는 하품이 나오.
당신들의 돈? 나는 좋아하지 않소.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내가 군대에 있을 때 일당 30상팀(역주. 약 40원에 해당) 이외에는 돈을만져본 적이 없다. 돈은나의 희망의 공기를 빨아 마시기 때문에 나는 돈을 증오한다.
고독? 나는 내 어린 시절부터 고독을 나의 사랑하는 누이라고 불렀다.
배고픔? 나는, 나를 반갑게 맞아줄 형제가 낭시에 50명이나 있다.
질병? 나는 병에 익숙하다. 내 형제들이 나를 보러 병원으로 온다.
중상모략? 나는 당신네들의 판단을 증오한다. 내 형제들이 매주 나를 위로하며 포옹한다.
죽음? 사람들이 눈물 없는 국화꽃을 내 무덤에 놓아줄 것이다.
불의? 아직도 내 화를 돋울 수 있는 유일하게 치사스런 놈이다. 그렇지만 참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모든 것은 다 보상될 것이다.
나는 에이.에이.그룹 회원만이 인간답다고주장하지 않는다. 나는 우리를훨씬 능가하는 수백 명의 사람다운 사람들을 알고 있다. 쉽게 예를 들자면 노댕 신부님을 알콜의 통로 같은 것은 거칠 필요조차 없었다. 그는 위대한인간이었고 그의 치수는 자로 잴수 없을 만큼 높았으므로 우리는 난관을 겪고서야 깨달았던 것을 그는 힘도 안 들이고 이해하였다. 그리고 또 아루페 신부님, 예수회의 나의 지도신부이며 오랫동안 동경대학의 총장이었던 그 신부님은 희귀한 분으로서 세상과 사람들을 잘 안다. 그는 술이 필요 없었다. 그러나 그분은 모세의 불타는 가시덤불 옆에서 알려지지 않은 진실에 영원히 귀를 기울이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인자하신 우리 어머니 마리 테레즈 오귀스틴 시모냉은 1년에 딱 한번 마리 브리자르(역주. 니스에서 생산되는 술)를 한잔만 마셨다(물론 마리 브리자를 본사에서 술을 어머니께 보냈다.) 우리 어머니는 수많은 박사들보다 더 올바른 견해와 사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지만 당신은 술에 미련을 가질 것이죠?"
"다시는, 생각조차 하지 않소."
"그렇지만 한 잔쯤 또 마실 수 있지 않소?"
"오늘은 마시지 않지요."
우리들 인간이라는 족속은 진실로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어느 날 기차를 탔다.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신사 한 사람이 찻간에 들어왔다. 훈장을 달았고 혈색이 좋았고 머리는 짧게 잘 깎았고 잘 빗질했고 향수를 몸에 뿌렸다. 외투를 벗고 나자 그는 거울을 슬쩍(그런데 왜 슬쩍이냐?) 한번 쳐다본후 자리에 앉더니 경마신문을 들여다보았다. 과거의 나 같은 조그마한 남자아이가 두 개나 되는 신사의 훈장에 홀려서 정신없이 쳐다보았다. 훈장 하나는 윗도리에 달았고하나는 외투에 달았다. 무슨 메달인지겉이 보이게끔 달았던가요? 물론, 그렇구말구지요. 그런데 나는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저 양반에겐 훈장이 술과 같다. 그리고 훈장은 매츠 역까지 120킬로미터를 달리는 동안 양반의 우중충했던 잿빛 과거를 페인트칠해서 장식해준다. 공작새는 꼬리를부채같이 펴서 아양을 떨고신사 어른께서는 훈장 단 가슴을 점잖게 내밀고, 둘 다 과시가 필요하다.
술을 끊고 에이.에이. 그룹 회원을 만나면서부터 나는 내명함, 내 가치를 이마에다 갖다 붙일 필요가 없었다. 나의 가치란, 내 괴로움의 심도와 내 꿈의 고도을 알고 있는 에이.에이.그룹 회원들로부터 온다. 기차칸에 있던 그 신사는 틀림없이 비참의 깊이도 꿈의 높이도 갖고 있지 않았다. 높낮이가 없이 납작했다. 그건 뻔한 사실이다. 신사의 몸짓이나눈짓이나 척하는 태도나, 그 중 한 가지만 보아도 넉넉히 짐작이 갔다. 그것은 명약관화했다.
나는 몇 달 전에 '알콜 중독된 마약중독자의 헌장'을 읽었다. 내가 보기에는 병의 진행관정이 모두 정확한 것 같았고 다시 회복되는 과정도 거의 그랬다. '개인적인 위신에 대한 우려'라는 것만 제외하고선. 여기서 마라는 우려나 근심을, 나는 알콜 중독이 되기 이전에나 이후에나 한번도 해본 일이 없었다. 사실 나는 알콜에대한 순종을 거부하지 못해서 알콜에 순종했었고그 결과, 그 후로는 내가 다른 사람의 판단에 굴종했을 뿐이지 개인적인 위신에 대한우려를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들의 칭찬도 추구하지 않았다.
옛날에 나는, 내 콘서트에 참석한 나의(?) 청중에게말했다. "저는 여러분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도록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기 위하여 힘껏 노력하겠습니다." 1970년 이래 지금까지 나는 그 말을 일체 하지 않는다. 그 대신 나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인생에 있어 중요한 일들만을 생각할 것을 여러분께 약속하겠습니다. 저는 이제 여러분의 고견을 중요하게 생가하지 않습니다." 극장 맨 뒷줄에 있던 어떤 신사가 "호! 호!"하고 소리 질렀다. 나는 소리를 못 지르게 말을 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언제나 무료로 노래를 부릅니다. 돈과 신앙은 별로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알콜 중독자 때문에 당신에게 난처한 일이 있었소?"
"네, 그 사람들이 에이.에이.그룹의 회원이되기 전에는 그랬지요. 그러나 그사람들이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 것은 항상 그들의 탓만은 아닙니다." 알콜 중독이 되지 않은 건강한 사람들이 때로는 알콜 중독 환자보다 더 알콜 중독을 무서워한다.
나는 어떤 부인과 그 남편 되는 사람을 만난 일이 있다.
"보세요, 뤼시엥 씨. 우리 집 바깥주인이 이제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은 지 3년이 되었어요. 술을 끊는 데 에이.에이. 그룹이 필요없었답니다. 저 양반 좀 쳐다보십시오. 여보, 이리 와요. 뤼시엥 씨에게 인사드려요. 가가이와요. 겁내지 말아요. 혈색이 얼마나좋은지 한번 보세요. 이제는 우리집에 술병이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감시합니다. 바깥주인도 제가 감시하는 것을 찬성하지요. 여보, 그렇지 않아요? 당신도 내 말이 맞다고 생각하지요? 우리는 언제든지 뜻이 맞지요. 제가 저이의 직업을 바꾸게 했지요. 지금은 집에서 30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가끔 저는 저이가 퇴근할 때 데리러 갑니다. 저이는 커피를 마시러 커피집(역주.술도 함께 판다)에도 들어가지 않으려 합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커피집이 있는데도, 여보 그렇지 않아요? 커피 마실 생각도 안 나지요?"
"저분은 행복하신가요?"
"네, 제가 보기는 그렇습니다. 틀림없을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뤼시엥 씨, 그 전에는 저이가 울었어요. 사람들 앞에서도 울었답니다. 왜 울었는지 저는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울었어요. 커피집에 앉아서도 울었으니까요. 지금은요. 적어도 저이가 우는 것을 보지 못하니까요."
그 사람이 우는 것만 못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도전혀 볼 수 없었다. 그는 자기 차고에서 목을 매달았다. 자신이 일할 때 사용하던 응급수리용 쇠줄을 가지고.
알콜 중독자가 술의 시궁창까지 떨어지면 절망의 극을 맛보게 되고 그 지경에서 빠져나오게 되면 역으로 희열의 극을 맛보게 되는데, 아마 그런 연유로 술을 끊은 알콜 중독자는 전과는 다른 인간의 모형으로 바뀌는 것 같다. 상처투성이의 그저 그런 모형으로.
인간은, 자기가 꿈꾸던 것을 결국 실현한다고 나는 믿는다.
어린 소년이, 담임선생님 때문에 눈에 눈물이 괴었을 때, 책방 주인이순진한 꼬마천사를 놀려 먹었을 때, 식품가게 주인이 꼬마가 어둡고 외로운 통학길에서 즐길 기쁨을온통 망쳐놓았을 때, 달을 쳐다보며 지녔었던 꿈, 그리고 사람이 사람에게 무자비하지 않으리라는,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으리라는, 연약한 어깨에는 무거운 짐도 가벼워질 수 있으리라는, 청년이 품었던그 꿈이 한갓 꿈이 아니라 지금 오늘에 와서 실지로 이루어진 것이다. 에이.에이. 그룹 덕분으로.
내게 술을 마시게 했던 꿈, 그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없어 괴로웠기에 지난날엔 술을 마셨었다. 그러나 그 꿈이 이루어진 지금 내게는 술이 필요 없으며 마시지 않는다.
어린 꼬마가 꿈을 지녔던 것이 정말 옳았다. 왜? 술을 끊은 어른이 그 꿈을 실현했으니까. 그리고 그 어른은 행복하게 늙어간다.
모든 내 인생이 주축이 여기에 있다.
상처받은 짐승의 단말마의 고통을 겪었던나, 그가 오늘은 미래의 인류라는공기를 호흡한다. 다시 말해서 모든 인간이 서로 사랑하게 되면 바로 그날, 모두 서로 사랑하는 그날,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새로운 세계가 그에게 열린다는 말이다. 기다리십시오, 그날을.
나의 일상생활이 모두 흥미롭다. 매일 르 몽드(역주. 불란서 일간신문)를 읽는다. 나는 음식 맛을 잘 아는 미식가로 아니면서 토요일마다 실리는 라 레이니에르(역주. 불란서 요리사)의 요리 기사끼리 읽는다. 매달 빠짐없이 과학과 미래라는 월간지도 읽고 머리를 써가며 과학과 생명이라는 퀴즈풀이도 한다. 역사는 흥미 있다. 그래서 역사와 관계되는 여러 가지 잡지를 읽는다. 그 이외 또 많은 책을 읽는다.
내가 술을 마시던 때에는 죽음의 공포가 내 인생을 망쳐놓았었다. 술을 끊게 되면서,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인생의 진미를 다시 찾았다. 이것은 미미한 겸손의 행위에서 비롯되었다. "저의 이름은 뤼시엥입니다. 저는 알콜 중독자입니다."
오늘의 나에겐, 서로 말을 놓는 관구장 신부님이 계신다. 서로 믿기에 서로 종경하기에 서로 말을 놓는다. 나의 웃어른들이, 내가 기다리다 지쳐 맥이 다 풀릴 때까지, 못 들은 척 내 청을 무시했던 때가 그 언제였던가?
예수회 수도원의 동료들도 모두 친절하게 대해준다. 이해해주고 농담도 나눈다. 그리고 내 알콜 중독이 빚은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준다. 동료들이 고개를 돌려 나를 외면했던 때가 그 언제였던가?
지금도 내가 가끔 슬퍼하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갖가지 악에, 고통에, 전쟁에, 거짓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제는 더 울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내가 늙어가는 마당에) 오늘도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저의 이름은 뤼시엥입니다. 저는 알콜 중독자입니다."
그래서 나는 독재자가 "내 이름은 모모입니다.나는 남을 고문하는 사람이며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이며 거짓말쟁이입니다."라고 고백 할 날을 꿈꾸어본다. 남을 멸시하기 일쑤인 인간이 다음과 같이 말할 날도 꿈꾸어본다. "내 이름은 모모입니다. 나는 만물박사로서 약방에 감초처럼 끼이지 않는 데가 없고 거만하며 돈을 좋아하는 노랭이입니다." 아직도 또 꿈이 있소? 네. 있지요.
왜냐하면, 행복에 대한 우리들의 갈망을 시들어버렸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그 행복에 대한 갈망은 영원히 살아 있기 때문에.
알콜 중독자는 겉보기와는 달리 정신적으로 깊은 데가 있다. 만약 그들이 불법행위를 저지른다면 그것은, 자신을 위한, 타인을 위한 분노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침울하다면 그것은 슬픔 때문이다. 그들이 분노하고 슬퍼하는 것은 그들이 꿈과 행동을 일치시킬 수 없고, 꿈과 현실을 일치시킬 수 없는 까닭이다.
그 병의 기질은 내가 이야기한그대로이다. 그 병은 수수께끼이다.지금은 내가 그것을 안다. 그 병의 본질을 몰랐기 때문에(어떻게 사람들이 알 수 있었으랴?) 의사들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이 병의 고통된 본질은 알콜 중독자들간의 특이하고 유일한 우정에 의해 녹아 없어진다.
메츠 북쪽에 도착. 나는 차를 천천히 몬다. 그대 메츠를 떠나기 싫어서.
내가 나의 일생을 전부 되돌아보는 것도이것이 처음이며 또 그것을 나를모르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처음이다. 그런데 알콜 중독자는 타인을 어쩔 수 없이 신임하고야 만다. 왜냐하면, 그들의 이상이 타인들도 대지의 아들들(만약 신자라면 하느님이 아들들)이라고 말해주는 까닭에.
"그것은 신비스럽습니까?"
"네. 그것은 신비스럽습니다."
신비스럽다는 것, 그것은 말하자면 달의 숨겨진 얼굴, 사물의 감추어진 면을 볼 수 있는 능력이다. 자, 얘기를 들어보십시오. 얼마전, 밤 12시경, 길에서 손을들고 서 있는 무임승객을 태웠다. 그를 태우고 운전해가다가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다. 그런데 갑자기 하느님은 이 무임승객도 사랑하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곁에 있는 마흐무드 (그는 알제리아 사람이었다)가 하느님의 친구라는생각, 또 그는 예수님의형제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예수님의 형제였다면 나는 실지로 예수님처럼 그를 사랑해야 된다.내 얘기가 시시합니까? 그런데 신비스럽다는 것을설명하자니 말이 길어졌는데요.결국 그것이 신비스럽다는 것이다. 많은 알콜 중독자는 그것을 이해한다. 그것에 대해 설명은 못한다. 해도 이해는 한다.
나는 8번 자리에 차를 세운다. 엔진을 끈다. 갑자기 조용하다. 따뜻하게 두꺼운 옷을 입은 사람들을 쳐다본다. 귀여운 뮈리엘이 빨간 외투를 걸치고 옆에 있는 커피집에서 나온다. 그녀가 커피집 위층에 있는 남자 친구를 부른다.
미터기 계기판은 2412킬로미터를 기록하고 있다. 시계는 오후 4시 35분. 카세트 열두 개를 스코틀랜드식 무늬가 있는 가방에 넣는다. 내 인생의 모든 무거운 짐이다 풀어놓아서 후련하다. 진실이 자유를 얻었다.
나는 나카미스키 녹음기를 검은 플라스틱 덮개 달리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내 자동차 앞을 지나면서 고마운 뜻인 양 차 위에 한번 손을 얹어보고 그 옆을 떠난다. 우리 아버지도 말, 비셰트에게 만족하셨을 때 이렇게 하셨었다. 동물들도 틀림없이 희로애락을 느낀다. 사물은 인간이 빌려준 감수성을 갖고 있다.
나는 프랑수아즈의 아파트에 들어가낟. 하얀 보로 덮인 식탁 위엔 꽃과 쪽지가 놓여 있다.
"존경하올 신부님
여행하시는 동안 줄곧 생각했습니다.
카세트를 갖고 오셨습니까?
콘서트는 잘 하셨는지요?
가스레인지 위에 야채 수프가 있습니다. 오늘 낮에 만들었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차의 짐은 제가 내리겠습니다."
사인 대신에 꽃 한 송이가 그려져 있다. 그것은 14년 전부터 그녀가 해온 관례... 관례. 그보다는 훨씬 더한 것이다.
책상 위에 있는 붉은 삿갓의 커다란 전등이 침심을 이미 환하게 밝히고 있다. 침대에는 잠자리가 마련되어 있고. 깨끗한 시트에는 정성들인 다리미질 자국이 뚜렷하게 보인다. 침대 머리맡 작은 탁자 위에 붉은 장미 한 송이가 꽂혀 있다. 나 혼자만을 위해서.
완전한 고요 속에 불안이란 그림자도 없다. 오래, 오래 전 여기까지 나를 끌고 왔던 고뇌와 슬픔이 모두 어디로 떠났는가? 맑고 고요한 이 평화는 어떻게 왔는가? 그리고 하느님을 믿는 신앙은?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 그런 건 이제 중요하지 않다 잠이나 자자.
나는 성경을 집어 들고 읽는다.
"빛은 부드럽고 상쾌하다. 그리고 빛은 태양을 쳐다보는 눈을 즐겁게 한다. 인간이 오래도록 살아도 해마다 얻는 바가 있어도, 캄캄하고 암담한날들이 수없이 많음을 항상 되풀이 기억한다 해도 그 모든 것은 허영이로다.
젊은이여, 젊음을 즐겨라. 그리고 너의 소년, 소녀 시절에 행복하여라. 네 마음의 길을 쫓아 따르고 네 눈의 원하는 바를 따르라
너의 가슴에서 슬픔을 멀리하고 너의몸에서 아픔을 멀리하라. 그러나 청춘과윤기 나는 검은 머리의 계절은 허영이다. 너는 너의 젊은 날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불행한 날들, '나는 그때를 싫어합니다.'라고 네가 훗날 말하게 될 그런 날들이 이르기 전에. 그리고 태양과 빛이, 달과 별들이 흐려져 어두워지기 전에.
보라. 집 지키는 문지기가 벌벌떠는 때를, 튼튼한 장정들의등이 굽어지는 때를, 아낙네들이 절구공이를 손에서 놓는 때를, 창문으로 해가 기울어지고, 길가에 대문이 닫히는 까닭에. 맷돌 가는 소리가 그쳤을 때, 새들의지저귐이 그쳤을 때, 노랫소리가잠잠해졌을 때, 그때 사람들은 비탈진 오솔길이 싫어지고 큰길은 무서워진다.
편도나무는 꽃을 피우고 메뚜기는 포식하고 가시양각초는 열매를 맺고, 인간은 영원한 곳으로 길을 떠나고 곡하는 여인들이 어느 틈엔가 상여를 따른다.
은실이 느슨해지기 전에, 황금 등잔이 부서지기 전에, 물동이가 샘가에서 깨어지기 전에, 도르래 밧줄이 우물 안에서 끊어지기 전에, 먼지는 그대가 왔던 대지로 돌아가기 전에, 숨결을 그대를 주신 하느님께로 돌아가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