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틀담의 꼽추(The Hunchback of Notre Dame)
Victor-Marie Hugo
제1장 광인 교황의 날
1
센 강 가운데의 시테 섬과 대학과 수도의 거리거리에서 모든 종들이 요란스레 울려 퍼진 그날의 그 소리에 파리 시민들이 잠을 깬 지가 오늘로 어언 348년 하고도 여섯 달 가량이 되었다. 그러나 이날은 결코 역사가 기억하고 있을 정도의 날은 아니었다. 그처럼 이른 아침부터 파리의 종과 시민들을 뒤흔들었던 사건 속엔 아무것도 특이한 점이 없었다.
그것은 피카르디 사람이나 부르고뉴 사람들이 공격해오는 것도 아니었고, 어떤 성스런 행렬이 지나가는 것도 아니었으며, 라스의 포도밭에서 학생들이 데모를 일으킨 것도 아니었다. 또한 파리 재판소에서 악한과 잡년들이 교수형에 처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 1482년 정월 초엿샛날에 온 파리 시민을 들뜨게 하고 있는 것은, 아득한 옛날부터 한데 합쳐져 벌어지는 민중의 축제인 그리스도 공현절과 광인절이었다. 이날은 그레브 광장에선 환희의 불꽃놀이가, 브라크 예배당에선 식목제가, 그리고 재판소에서는 연극 공연이 있기로 돼 있었다. 그 공고는 하루 전날, 크고 하얀 십자가를 가슴에 달고 자줏빛 제복을 입은, 파리 시장 나리의 부하들에 의해 네거리에서 요란스런 팡파르로 행해졌었다.
그리하여 남녀 시민들은 문들을 꼭꼭 닫아 놓고, 아침 일찍 도처에서 떼를 지어 그 세 곳 가운데 한 곳을 향해 몰려가고 있었다. 그들은 특히 재판소 거리로 몰려가고 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틀 전에 도착한 플랑드르의 사신들이 연극 공연과 대광실에서 거행될 광인 교황 선발식에 참석할 계획이라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이 대광실은 세상에서 가장 큰 방이란 명성을 얻고 있었는데도 이날 그곳에 들어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붐비는 재판소 광장은 창문에서 바라보는 구경꾼들에겐 바다 같은 인상을 주었으며, 대여섯 개의 거리가 이 바다 속으로 시시각각 새로운 사람의 물결을 쏟아 내고 있었다.
이 끊임없는 물결은 광장의 고르지 못한 유역 여기저기에, 마치 곶처럼 튀어나와 있는 집들 모서리에 부딪히고 있었다. 외침 소리와 웃음소리, 그리고 수천의 발 구르는 소리가 일대 법석을 이루었다. 때때로 그 법석과 소음은 더욱 요란스러워지고, 그 모든 군중을 큰 계단 쪽으로 밀어 올리는 물결은 역류하고 혼란에 빠지고 소용돌이치곤 했다. 질서를 잡기 위해 이따금 경찰관이 개머리판을 휘두르는가 하면, 경시청 기마대의 말이 뒷발질을 하였다.
만일 우리들 1830년대의 사람들이 상상 속에서 이 15세기의 파리 사람들 속에 끼어들어, 1482년 정월 초엿샛날 그렇게도 빽빽했던 그 거대한 재판소 안으로 밀치락달치락 곤두박질을 하면서 들어 갈 수 있다면, 그 구경거린 재미없지 않을 것이며 퍽이나 신기해 보이리라. 나는 머릿속에 한번 그 인상을 떠올려 보겠다.
우선 귀가 먹먹해지고 눈이 아찔해진다. 머리 위엔 무늬를 새긴 벽판을 붙이고, 하늘색으로 칠하고, 금빛 나리꽃 장식을 한 거대한 궁륭. 발아랜 희고 검은 대리석을 번갈아 깔아 놓은 멋진 바닥. 거기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엔 하나의 우람한 기둥, 그 다음 또 하나의 기둥, 또 다른 기둥 해서 모두 일곱 개의 기둥이 늘어서 당당히 떠받치고 있다.
실내의 사방에는 높다란 벽을 따라 문과 문, 창과 창, 기둥과 기둥 사이로 파라몽(역주:전설에 의하면 프랑스 초대 왕이라 함)을 비롯한 프랑스 역대 왕들의 조각상이 늘어서 있다. 게으른 왕들은 팔을 늘어뜨린 채 눈을 내리뜨고 있으며, 용감하고 호전적인 왕들은 씩씩하게 머리와 손을 하늘로 쳐들고 있다.
정월의 희끄무레한 햇빛이 비쳐 들어 벽을 따라 내려가고, 일곱 기둥 주위에서 맴도는 요란스런 군중이 잇달아 밀려들어오는 길쭉하고 큰방을 상상해 보라.
만일 라바약이 앙리 4세를 암살하지 않았더라면 재판소의 기록보존실에 라바약의 소송 기록이 있을 리 만무하고, 그 기록을 태우기 위해 보존실을 태우고, 기록보존실을 태우기 위해 재판소를 태울 수밖에 없었던 방화범들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1618년의 화재도 없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그 재판소는 대광실과 함께 아직도 남아 있을 것이며, 나는 독자에게 '가서 그걸 직접 보시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재판소에 관한 묘사를 할 필요가 없고, 독자는 또 이렇게 힘겹게 읽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진리를 증명해 준다. 즉 '큰 사건들은 헤아릴 수 없는 자식들을 낳는다'라는 진리다.
이 커다란 평행사변형의 양쪽 끝 중 한쪽엔 훌륭한 대리석 탁자가 놓여 있었는데, 어찌나 길고 넓고 두꺼웠던지, 당시 기록을 보면 "세상에 이런 대리석 조각은 결코 본 일이 없다"고 감탄하고 있다. 다른 한쪽 끝은 예배당이 차지하고 있는데, 거기엔 루이 11세가 성모 마리아 앞에 무릎을 끊고 있는 자기 모습을 조각해 놓게 했다.
플랑드르의 사신들과 연극에 초대된 다른 고위급들을 위해 방 중앙에, 큰 문 맞은편으로 벽에 기대어 단을 하나 세우고 금수단을 드리워 놓았으며, 깔끔한 복도의 창을 이용하여 그 단에 특별 출입구를 마련해 놓았다.
관례에 따라서 연극의 상연은 이 대리석 탁자 위에서 이루어졌다. 그러기 위해 탁자는 아침 일찍부터 준비되었다. 축제일이나 형 집행일에 한결같이 민중의 여러 즐거움을 지켜 주는 데 필요 불가결한 법원장의 네 집달관이 대리석 탁자의 네 모퉁이에 하나씩 서 있었다.
연극이 시작되려면 재판소의 큰 시계가 정오의 종을 쳐야만 했다. 연극 상연을 위해서는 너무 늦은 시간일 수도 있지만, 사절들의 형편에 맞는 시간을 택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군중들은 아침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이 한 떼의 고지식한 구경꾼들은 꼭두새벽부터 재판소 계단 앞에서 추위에 떨었다. 어떤 사람은 맨 먼저 들어가기 위해 큰 문 앞에서 밤을 새웠다고까지 말하고 있었다.
군중은 시시각각 들어차서, 마치 수위를 초과하는 물처럼 벽을 따라 불어 올랐고, 기둥들 주위와 창의 문지방, 조각들의 돋을새김 위로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숨이 막힌 그들의 아우성은 귀를 찢는 듯한 구슬픈 어조를 빚어내고 있었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플랑드르인에 대한, 시장에 대한, 법원장에 대한, 추기경에 대한, 오스트리아의 마르그리트 공주에 대한, 몽둥이를 든 집달관에 대한, 추위와 더위에 대한, 광인 교황에 대한, 기둥과 닫힌 문에 대한 불평뿐이었다.
여러 떼거리들 중에서도 특히 신나게 떠드는 한 무리의 장난꾸러기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유리창 하나를 박살낸 뒤 배짱 좋게도 높은 자리에 걸터앉아 실내의 군중과 광장의 군중을 번갈아 보면서 농담을 던지곤 했다.
"아니, 누군가 했더니 자넨 장 프롤로 뒤 물랭(역주 : 풍차간이란 뜻)이 아닌가!"
그들 중 하나가 원기둥 머리 장식에 매달려 있는 갈색 머리칼의 장난꾸러기 같은 학생에게 외쳤다.
"자네 이름은 참 잘 지어 붙였단 말이야. 왜냐하면 자네의 두 팔과 두 다리는 바람을 타고 도는 네 날개 같거든. 그래 언제부터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나?"
"벼락 맞을!"
장 물랭이 대답했다.
"네 시간도 더 됐단 말이야. 이 시간만큼은 내가 연옥에 가 치러야 할 시간에서 공제됐으면 좋겠어. 난 생트 샤펠에서 시실랴 왕의 여덟 성가 대원이 대미사의 첫 구절을 노래 부르기 시작하는 걸 들었단 말이야."
"참 멋진 성가 대원들이지. 그들의 목소리는 그들의 모자보다 더 뾰족하거든! 미사를 드리기 전에, 왕께옵서는 성 요한 나리께서 시골 말투로 라틴어를 읊조리는 걸 좋아하시는지 어떤지 알아봐야만 했을 텐데 말이야"
"임금님이 그런 미사를 꾸며 내신 건 그 망할 놈의 성가 대원들을 부려 잡숫기 위해서라오!"
창 아래쪽 군중 속에서 한 노파가 외쳤다.
"생각 좀 해보라고요! 미사 한 번 드리는 데 무려 일금 천 리부르나 쓰다니, 글쎄 그것도 가난뱅이가 시장에서 생선 판 돈을 거두어서 말이야. 세상에 원!"
"그런 말 마시오!"
고기장수 노파 옆에서 한 뚱뚱한 남자가 코를 막고 말을 시작했다.
"마땅히 정성을 바쳐야죠. 당신은 폐하께서 다시 병환이 나길 바라진 않겠죠?"
이때 기둥 꼭대기에 매달린 장 물랭이 외쳤다.
"말씀 한번 잘 하셨소, 왕실 모피 상인 나리이신 질 르코르뉘 씨!"
가엾은 모피 상인의 이름은 모든 학생들의 폭소를 자아냈다(역주 : 질 르코르뉘는 뿔 달린 익살꾼이란 뜻).
뚱보 상인은 한 마디도 대꾸하지 못하고, 사방에서 쏠리는 눈길로부터 도망치려 애쓰고 있었으나, 공연히 땀만 뻘뻘 흘릴 따름이었다. 그렇게 애를 쓸수록 나무속에 빠져들어 가는 쐐기처럼, 분노로 새빨갛게 떨리는 그 넓적한 얼굴이 어깨 속으로 더욱 깊이 기어 들어갈 뿐이었다.
이윽고 그와 마찬가지로 뚱뚱하고 땅딸막하고 존경할만한 한 인물이 나서서 그를 도왔다.
"망측한 일이구나! 학생들이 시민들에게 그렇게 지껄이다니! 옛날 같으면 네놈들을 한 다발의 회초리로 때려 준 뒤 그 회초리로 태워 죽여 버렸을 텐데!"
그러자 학생들은 일제히 아우성을 쳤다.
"아니, 누가 호통을 치신다지? 재수 없는 부엉이처럼 왜 나서실까?"
"옳지, 난 알겠어. 앙드리 뮈스니에 나리로군"
"저 양반은 대학의 네 서적 상인 가운데 한 분이야"
"자, 한바탕 법석을 떨어 주자꾸나!"
"상인 나리, 우리는 당신 책을 불사르겠다"
"영감님, 우리는 당신 여편네를 겁탈하겠다"
"그 착한 뚱보 아가씨는 싱싱하고 쾌활하거든"
"망할 녀석들 같으니라고!"
뮈스니에 나리는 우거지상이 되어 중얼거렸다. 싸움터의 지휘자인 장 물랭은 의기양양하여 계속했다.
"우리 대학의 어르신네들은 참 훌륭한 양반들이라니까! 오늘 같은 날에도 우리의 특권을 묵살하다니 원! 보시는 것처럼 도시에는 식목 축제와 기쁨의 불꽃놀이가 있고, 시테 섬엔 연극과 광인 교황이 있는데, 대학에는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학생들 가운데 하나가 외쳤다.
"총장과 선거인과 소송 대리인들을 타도하라!"
"오늘 저녁 샹 가야르에서"
또 하나가 계속했다.
"뮈스니에 나리의 책으로 기쁨의 불꽃놀이를 해야 할까 보다"
"타도하라! 뮈스니에 나리를, 권력자들과 서기들을, 신학자들을, 의사와 교회법 박사들을, 소송 대리인들을, 선거인들과 총장을!"
"세상 참 말세로구나!"
뮈스니에는 귀를 막으며 중얼거렸다.
"저기 티보 총장이 온다! 광장을 버젓이 지나가고 있지 않은가!"
창 곁에 있던 학생들 중 하나가 외쳤다. 학생들은 너나없이 일제히 광장 쪽을 바라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총장과 대학의 모든 고관들이 줄을 지어 사절단을 맞이하러 재판소 광장을 지나가고 있었다. 학생들은 창가로 몰려가서 그들이 지나가는 데 대고 마구 야유를 퍼부었다. 일행의 선두에서 걸어가는 총장이 최초의 일제 사격을 받았다.
"야아! 티보 총장님, 안녕하시오! 늙은 바보, 늙은 노름꾼이여!"
"나귀를 타고 종종걸음치는 꼴 좀 봐! 나귀의 귀때기가 저치의 귀보다 더 짧군 그래"
"하나님이 그댈 지켜 주시길! 노름과 주사위에 빠져 푸르죽죽한 납빛으로 변한 저 초췌한 얼굴!"
"어딜 그렇게 가시나, 혹시 티보토데 거리로 잠자리를 찾으러 가는 것 아냐? 악마 노름판의 총장 나리여!"
그 다음엔 다른 고관들의 차례였다.
"저 여섯 신학자들을 그 흰 법의와 더불어 타도하라!"
"거기 가는 게 신학자들이냐? 난 여섯 마리의 흰 거위인 줄 알았다오!"
"의사들을 타도하라!"
"악마가 저 독일 소송 대리인의 숨통을 눌러 줬으면 좋겠구나!"
"저건 문학사 나리들이다! 저 모든 아름다운 검정 법의를 봐라! 저 모든 아름다운 빨강 법의를 봐라!"
"저게 모두 총장 나리의 예쁘장한 꼬리를 이루고 있구나!"
"생트 죄느비에브 성당의 참사원들이 가고 있다!"
"클로드 쇼아르 신부다! 그대는 마리 지파르드를 찾고 있는 게 아냐?"
"그녀는 글라티니 거리에 있다!"
"어이, 저기 피카르디의 선거인 시몽 상갱 나리가 엉덩짝에 여편네를 태우고 간다!"
"말 탄 사람 위에 검은 걱정이 앉아 있구나!"
"대담한 시몽 나리여!"
그 동안 대학의 서적 상인 앙드리 뮈스니에는 모파 상인에게 말하고 있었다.
"분명히 말해 두지만, 이건 정녕 말세군요. 학생 놈들이 이렇게 방자하게 구는 꼴은 여태껏 본 일이 없었죠. 빌어먹을 현대의 발명품들이 모든 걸 망쳐 놓고 있어요. 대포며 세르팡틴 포며, 특히 저 독일에서 온 가증스런 발명물인 인쇄술 같은 것 말이오. 이젠 필사본도 없어지고 책도 없어졌소. 말세가 왔어요!"
이때 정오의 종소리가 울렸다.
모든 군중이 이구동성으로 수군거렸으나 학생들은 입을 다물었다. 이어서 대이동이 시작되어 발과 머리가 마구 움직이고, 온 방 안이 기침 소리와 손수건 소리로 요란스러워졌다. 저마다 준비를 갖추어 제자리를 잡고, 끼리끼리 무리를 이루었다. 그런 뒤엔 쥐죽은 듯한 고요... 사람들은 모두 목을 빼고, 입을 벌리고, 대리석 탁자 쪽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었다. 1분, 2분, 3분... 15분을 기다렸으나,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단은 여전히 텅 빈 채이고 무대는 잠잠했다. 그러는 동안 안타까움에 이어 울화증이 났다. 아직 나지막하긴 했지만 성난 말소리가 돌고 있었다.
"연극을 시작하라!" 하고 사람들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아직 기세를 부리지 못한 폭풍우가 이 군중 위에 떠돌고 있었다. 거기서 맨 먼저 섬광을 끌어낸 것은 장 물랭이었다.
"연극을 시작하라! 그리고 플랑드르놈들은 꺼져 버려라!"
그는 기둥 주위에서 뱀처럼 몸을 비틀며 힘껏 소리쳤다. 군중은 그에게 박수 갈채를 보냈다.
"우리는 당장 연극이 필요하다. 그렇잖으면 내 의견으론 희극 대신 법원장의 모가지를 매다는 게 마땅하다고 여겨진다!"
"말 잘했다. 그럼 우선 그의 네 집달관의 목부터 시작하자!"
군중의 동의와 갈채가 뒤를 이었다. 그러자 그 네 명의 가련한 사내들은 낯이 새파래져서 군중들을 바라보았다. 군중은 그들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으며, 그들과 군중 사이를 가로막은 가냘픈 나무 난간은 벌써 군중의 압력 아래 구부정하게 휘는 것이 그들에게 보였다.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잡아 죽여라! 잡아 죽여!"
사람들은 사방에서 외쳤다. 그 순간, 저쪽 계단 위의 휘장이 오르고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그것을 본 군중은 갑자기 멈칫했으며, 분노는 마술에 걸린 듯 호기심으로 변했다.
"조용히! 조용하라!"
그 사람은 무척이나 불안한 듯 사지를 떨면서 꾸벅꾸벅 절을 하며 대리석 탁자의 가장자리까지 왔는데, 군중과 가까워짐에 따라 그는 더욱 깊이 허리를 구부려 무릎을 끊는가 싶을 지경이었다.
"남녀 시민 여러분" 하고 그는 말을 꺼냈다.
"저희들은 추기경 각하 앞에서 '성모 마리아의 훌륭한 심판'이란 제목을 가진 한 편의 아름다운 우의극을 상연하게 됨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바입니다. 주피터 신의 역을 맡게 된 것은 저올시다. 추기경 각하께서는 지금 외국의 고귀하신 사절단과 동행하고 계시온데, 이 사절단은 현재 보데 성문에서 대학 총장님의 환영사를 들으시느라고 지체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추기경 각하께서 당도하시는 대로 저희들은 시작하겠습니다."
주피터 의상은 상당히 아름다워서 군중을 진정시키는데 적잖이 이바지 했다. 주피터는 검은 우단으로 덮이고 금빛 못이 박힌 쇠사슬 갑옷을 입었으며, 도금한 은단추가 달린 두건을 쓰고 있었다.
2
그러나 그 옷에 의해 만장일치로 발현된 만족과 탄성은 그 말을 듣자 스러져 갔으며, 불행히도 그가 "추기경 각하께서 당도하시는 대로 저희들은 시작하겠습니다"라는 결론에 이르렀을 때, 그 목소리는 천둥과도 같은 함성 속에 묻혀 버렸다.
"시작하라! 즉시 연극을 시작하라!"
"당장 시작하라! 그렇잖으면 배우들과 추기경을 잡아 매달겠다!"
주피터는 가엾게도 눈이 휘둥그래지고 분장한 얼굴이 더욱 새하애져서, 들고 있던 것을 떨어뜨리고 두건을 벗어 들었다. 그러고는 꾸벅꾸벅 절하고 달달 떨면서 더듬거렸다.
"추기경 각하께선... 사절단이..."
그는 뭐라고 변명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그는 마음속으로 목이 매달릴까봐 잔뜩 겁먹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다행히 어떤 사람 하나가 나타나 그를 곤경에서 구해 주었다.
나간 이쪽으로, 대리석 탁자 주위의 비어 있는 공간에 한 사나이가 서 있었지만 그때껏 아무 눈에도 띄지 않았던 것인데, 그만큼 그의 길고도 가냘픈 몸은 그가 기대고 선 원기둥에 의해 완전히 가려져 있었던 것이다. 이 키 크고 빼빼 마르고 금빛 머리칼에 얼굴은 창백하고, 이마와 뺨엔 벌써 주름살이 잡혔지만 아직은 젊고, 입엔 미소를 머금고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오래되어 헐고 윤이 나는 검은 세루 옷을 입은 사나이는 대리석 탁자 옆으로 걸어 나와선 가련한 주피터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나 상대방은 얼이 빠져 보지 못하고 있었다.
"이봐요, 주피터!"
상대방은 듣지도 못하고 있었다.
마침내 금발의 키다리는 안달이 나서, 목을 빼고 발을 구르며 외쳤다.
"미셀 지보르느!"
"누가 날 부르지?"
주피터는 잠에서 깨어난 듯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이쪽이요"
"아!"
"즉각 시작해서 군중을 만족시켜 주시오. 법원장님은 내가 책임지고 달랠 테니까. 추기경은 법원장님이 달래실 테고"
그러자 주피터는 심호흡을 하곤 계속해서 아우성치고 있는 군중에게 목청이 찢어져라 소리를 질렀다.
"시민 여러분, 즉시 시작하겠습니다!"
"좋다, 좋아!"
군중은 이렇게 외치고 귀청이 찢어질 듯 박수를 쳤으며, 주피터는 이미 휘장 아래로 들어가 버리고 없는데도, 방 안은 계속 박수갈채에 떨리고 있었다.
마치 요술이라도 부린 듯 폭풍을 잠재워 버린 그 알 수 없는 사나이는 어느새 기둥 뒤의 어두컴컴한 곳으로 되돌아가 있었는데, 구경꾼들의 맨 첫 줄에 있다가 주피터와 그의 대화하는 것을 본 두 젊은 아가씨에 의해 불려 나오지 않았던들, 그는 틀림없이 전과 같이 그곳에서 언제까지나 사람 눈에 띄지 않은 채 가만히 서 있었으리라.
"수도사님"
그녀들 중의 하나가 그에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하면서 말했다.
"얘, 가만있어, 리에나르드"
그 옆의 젊고 예쁜 여자가 나들이옷을 잘 차려 입은 탓으로 용기를 내어 말했다.
"저분은 성직자가 아니라 일반인이야. 그러니까 수도사님이라고 해선 안 되고 선생님이라 해야 하는 거야"
"선생님..."
리에나르드가 불렀다. 알 수 없는 사나이는 난간으로 다가오더니 정중히 물었다.
"왜 그러죠, 아가씨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리에나르드는 무척 당황해 말했다.
"제 옆에 있는 지스케트 라 장시에느가 선생님께 얘기하고 싶은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지스케트가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대꾸했다.
"리에나르드가 당신께 수도사님이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전 '선생님'이라고 말하는 법이라고 가르쳐 준 거예요"
두 아가씨는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을 무척 기뻐하는 듯 빙그레 웃으면서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그럼 내게 아무 하실 말씀이 없으신가요, 아가씨들?"
"네, 아무것도 없어요"
리에나르드가 말했다.
금발의 젊은 빼빼는 물러가려고 한 발을 내딛었다. 그러나 아가씨들은 사실 놓아 주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선생님"
지스케트는 급한 결심을 내린 여인과 같이 격렬한 어조로 말했다.
"그들이 저기서 하려고 하는 건 아름다울까요?"
"퍽 아름답지요, 아가씨"
이름 모를 사나이는 주저없이 활기차게 대답했다.
"그게 뭐지요?"
리에나르드가 꿈꾸는 듯한 눈을 들며 물었다.
"우의극인 '성모 마리아의 훌륭한 심판'이라는 거예요, 아가씨. 전혀 새로운, 아직 한 번도 상영되지 않은 거죠"
"그러니까 그건 이틀 전, 교황 특사가 입성하던 날에 상연한 것과는 다른 거군요. 그땐 등장인물로 세 아리따운 아가씨가 있었는데..."
"그리고 모두 발가벗은 아가씨들이죠."
젊은이가 덧붙이자 리에나르드는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다. 지스케트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교황 특사가 지나갈 때 이백 마리도 더 되는 온갖 종류의 새들을 다리 위에서 날려 보냈지. 참으로 아름다웠잖니?"
"오늘은 더 아름다울 것이오."
웃으며, 그러나 안타깝게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았던 사나이가 말했다.
"이 연극이 아름다우리라고 장담하실 수 있나요?"
"그럼요. 제가 오늘 이 연극의 작가니까요"
"정말이세요?"
아가씨들은 깜짝 놀라 물었다.
"그럼요!"
작가는 좀 뻐기면서 대꾸했다.
"다시 말하자면 두 사람이 만든 것인데, 장 마르샹은 널빤지를 톱으로 켜서 무대 장치를 맡아 했고, 저는 희곡을 지었지요. 에, 제 이름은 피에르 그랭구아르라고 하지요"
주피터가 휘장 아래로 돌아간 때부터 이 새로운 우의극의 작가가 지스케트와 리에나르드의 순진한 감탄 앞에 불쑥 이름을 밝힌 순간까지 벌써 꽤 시간이 흘렀음을 독자는 짐작하고 있으리라. 주목할 만한 점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법석을 떨던 그 모든 군중이 이젠 배우의 말을 믿고 너그럽게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우리들의 극장에서 아직도 느낄 수 있는 영원한 진리, 즉 관객으로 하여금 참을성 있게 기다리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즉시 시작한다고 관객에게 말하는 것이라는 저 영원한 진리를 증명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장 물랭은 잠자코 있지 않았다. 그는 소란 뒤에 계속된 조용한 기다림 속에 느닷없이 외쳤다.
"주피터, 성모 마리아, 악마의 어릿광대들아! 사람을 조롱하는 거냐? 연극을 시작하라! 너희들이 시작하지 않는다면 우리들이 시작하겠다!"
더 이상은 필요하지 않았다. 높고 낮은 악기들의 연주음이 곧바로 무대 장치 안쪽에서 들려 왔다. 이어 휘장이 올라갔다. 그러자 요란스레 분장하고 화장한 네 인물이 나와 무대의 가파른 사다리를 기어올라 단 위에 오른 뒤, 관객들 앞에 늘어서서 깊이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순간 음악이 뚝 멎었다. 드디어 연극이 시작되는 것이다.
네 명의 등장인물은 인사에 대한 대가로 아낌없는 박수를 받고 나서, 종교적인 정적 속에서 천천히 서시를 낭독하기 시작했는데, 이에 관해서는 더 말하지 않겠다. 사실 관중은 배우들이 지껄이는 사설보다도 더 그들의 복장에 마음이 쏠렸던 것인데, 기실 그것은 옳은 노릇이었다.
그들 네 명은 모두 반반씩 노랗고 흰 두 부분으로 된 긴 옷을 입고 있었는데, 옷감의 질밖엔 딴 차이가 없었다. 첫 번째 옷은 수단과 금은으로, 두 번째 옷은 명주로, 세 번째 옷은 양털로, 네 번째 옷은 무명베로 되어 있었다. 첫째 인물은 오른손에 칼을, 둘째 인물은 두개의 금 열쇠를, 셋째 인물은 저울을, 넷째 인물은 삽을 각각 가지고 있었는데, 이런 상징을 명백히 하기 위해 다음처럼 커다란 검은 글자가 수 놓여 있었다. 수 단 옷 아래엔 '내 이름은 귀족이다', 명주옷 아래엔 '내 이름은 성직이다', 양털 옷 아래엔 '내 이름은 상품이다', 무명 옷 아래엔 '내 이름은 농사다'.
두 남성 명사(성직과 농사)의 성은 그들의 좀 짧은 옷과 머리에 쓰고 있는 모자에 의해 어떤 판단력 있는 구경꾼들에게도 뚜렷이 감지되는 반면, 두 여성 명사(귀족과 상품)는 더 긴 옷을 입고 머리 수건을 쓰고 있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나아가 또 악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서시를 통해 농사는 상품과 결혼했고, 성직은 귀족과 결혼했다는 것을, 그리고 이 행복한 두 쌍의 부부는 아름다운 황금 돌고래(역주 : 원어인 dauphin이란 말엔 프랑스 황태자란 뜻도 있음)를 공동으로 갖고 있으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에게밖엔 그것을 주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네 명의 배우가 서로 뒤질세라 은유의 물결을 군중 위에 쏟고 있었는데, 이 군중 속에서 좀 전에 두 아가씨에게 자기 이름을 밝히는 기쁨을 억제하지 못했던 작가인 저 착한 피에르 그랭구아르의 눈과 귀와 가슴보다 더 유심히 듣고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는 기둥 뒤로 돌아가 거기서 귀를 기울이고 바라보면서 음미하고 있었다. 자기 작품의 시작을 맞아 준 호의적인 박수 갈채는 아직도 그의 마음속에 울리고 있었으며, 작가가 수많은 청중의 침묵 속에 배우의 입으로부터 바로 자신의 사상이 하나씩 하나씩 떨어지는 것을 볼 때 갖는 저 황홀한 명상과 같은 종류의 명상 속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가슴 아픈 일이지만, 이 최초의 환희는 이내 깨지고 말았다. 그랭구아르가 그 희열과 감격으로 취하게 하는 술잔에 입술을 채 갖다 대기도 전에 한 방울의 쓴맛이 거기 섞여 들었던 것이다.
누더기를 걸친 웬 거지 하나가 군중 속에 파묻혀 재미를 보지 못하고, 옆에 있는 관객들의 호주머니 속에서 아마 충분한 보상금을 발견치 못했음인지,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동냥을 얻기 위해 모두의 눈에 잘 띄는 곳에 걸터앉을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그는 서시의 첫 줄을 낭송하는 사이에, 비어 있는 단의 기둥을 이용해 슬금슬금 난간 가까이 있는 받침대까지 기어 올라가, 거기 앉아 그 누더기와, 오른팔을 덮고 있는 무서운 상처를 보이면서 군중의 주의와 동정을 끌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침묵은 아무 탈 없이 서시를 진행케 하였으며, 만일 불행하게도 학생장 물랭이 기둥 위에서 이 거지의 거동을 보지 않았던들 이렇다 할 아무런 혼란도 닥치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그 거지의 꼬락서니를 본 젊은 장난꾸러기는 미친 듯 웃어 대며 연극을 중단시키고, 모든 관객의 명상을 깨뜨리든 말든 아랑곳없이 유쾌하게 외쳤다.
"저것 봐! 저 비렁뱅이가 사업을 하시고 있네!"
개구리들이 사는 늪 속에 돌멩이를 하나 던져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모든 관객의 주의를 집중시키고 있는 판에 그런 괴상스러운 말을 던짐으로써 빚어진 효과가 어떤 것이었을지 상상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랭구아르는 마치 전기에라도 닿은 것처럼 떨었다. 연극은 중단되고, 모든 사람의 눈은 소란스레 거지 쪽을 돌아보았으나, 거지는 당황하기는 커녕 도리어 이런 사건으로 말미암아 돈푼이나 거둬들일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곤, 짐짓 처량한 몰골을 하고서 눈을 반쯤 감으며 뇌까렸다.
"제발 도와줍쇼!"
"아, 난 누구라고. 클로팽 트루유푸 아냐? 어이, 친구! 그 상처 때문에 다리까지 불편한 모양이군, 다리를 팔 위에 올려놓고 있는 걸 보니"
그렇게 말한 장 물랭은 거지가 아픈 팔로 내밀고 있는 기름 묻은 펠트 모자 속에 작은 동전 한 닢을 능란하게 던졌다. 거지는 태연스럽게 그 야유와 적선을 받고는 구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제발 도와줍쇼!"
이 대화는 적잖이 청중의 기분을 전환시켜 주었지만 그랭구아르는 자못 불만스러웠다. 처음에 어리둥절했다가 제정신으로 돌아온 그는, 두 훼방꾼에게 감히 경멸의 시선도 보내지 못한 채, 무대 위의 배우들에게 "계속해! 제기랄, 계속해!" 하고 숨 가쁘게 외쳤다.
이때 그는 누구 자신의 외투 자락을 잡아당기는 걸 느꼈다. 그는 좀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뒤돌아보고 애써 미소 지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스케트 라 장시에느가 그 부드러운 팔을 난간 너머로 뻗치고 그의 주의를 끌고 있었으니까.
"아저씨"
아가씨는 물었다.
"계속하게 되어요?"
"물론이죠."
그랭구아르는 성이 난 채 대답했다.
"그렇다면 설명을 좀 해주셨으면 정말 고맙겠어요..."
"그들이 말할 대사 얘긴가요?"
"그게 아니라 그들이 지금까지 말한 것 말예요"
그랭구아르는 마치 생살이 드러난 상처에 누가 소금을 뿌리기라도 한 것처럼 펄쩍 뛰어올랐다.
"이런 백치 계집애가 있나!" 그는 입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으며, 그 순간부터 지스케트는 그의 머릿속에서 지워져 버렸다.
그러는 사이 배우들은 그의 명령에 복종하였고, 관객도 다시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였으나, 그처럼 불현듯 중단된 희곡의 두 부분 사이에 이뤄진 때늦은 연결 속에 숱한 아름다움이 잃어버려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독자도 짐작하겠지만, 극중의 네 인물은 그들의 황금 돌고래를 주어 버릴 만한 적당한 사람을 찾아내지 못한 채 3대주를 쏘다닌 나머지 좀 피로해졌다. 그리하여 당시 앙부아즈에 퍽이나 우울하게 칩거한 채, 농사와 성직, 그리고 귀족과 상품이 자신을 위해 세계를 일주하고 있는 줄도 모르는 왕태자를 가지가지로 암시하면서 그 희한한 돌고래에 대해 찬사를 늘어놓았다. 즉 여기서 말하는 돌고래는 젊고 아름답고 힘이 세며, 특히 프랑스 임금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상품 아가씨와 귀족 마님 사이에 한창 옥신각신 의견 대립이 벌어지고 농사 나리가 다음과 같은 시구를 야릇하게 읊조리고 있을 때,
일찍이 숲속에서 이보다 더 의기양양한 짐승을 본 적은 없었다...
여지껏 그토록 시기에 어울리지 않게 닫혀 있던 비어 있는 단의 문이 더욱 시기에 어울리지 않게 열리고, 문지기의 우렁찬 목소리가 부르봉 추기경 나리의 도착을 알렸다.
3
애처로운 그랭구아르! 모든 커다란 쌍겹 폭죽의 폭발음도, 백 자루의 화승총의 발포도, 저 비이 탑의 이름 높은 세르팡틴 포의 소리도, 이 엄숙하고 극적인 순간에 "부르봉 추기경 나리!" 하고 문지기의 입에서 솟아난 그 말보다는 덜 가혹하게 그의 귀를 찢었으리라. 그것은 피에르 그랭구아르가 추기경을 무서워하거나 경멸하고 있었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그는 그렇게 비겁하진 않았다.
오늘날 같으면 진정한 절충주의자라고나 할 수 있을 그랭구아르는, 항시 모든 것의 한가운데에 몸을 둘 줄 알고 있고, 추기경들을 존경하면서도 이성과 자유로운 철학으로 가득 차 있는 온건하고도 민첩한 정신의 소유자들 중 한 사람이었다. 때문에 우리의 시인은 너무나 많은 교양과 너무나 해진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으므로, 자기 시 속의 숱한 암시와 특히 프랑스 폐하의 돌고래 아들에 대한 찬미가 추기경의 귀에 들어가는 것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인들의 고상한 성격 속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이기심이 아니다. 나는 시인의 실체를 열 가지의 요소로 나타낼 수 있다고 가정하거니와, 화학자가 그것을 약물 분해한다면, 이 실체는 아홉 부분의 자존심에 대해 한 부분의 이기심으로 구성돼 있음을 발견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추기경을 위해 문이 열렸을 때, 군중의 감탄의 숨결에 부풀어 오른 그랭구아르의 아홉 자존심은 무시무시하게 증대된 상태에 있었으므로, 그런 상태 아래서 필자가 좀 전에 시인의 구성 요소 속에 식별한 그 극미한 이기심의 분자는 숨 막힌 듯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그것은 실로 잔여 부분의 귀중한 성분이요, 그것 없이는 시인들이 땅에 발을 댈 수 없는 균형추인 것이다.
그랭구아르는 만장의 관객들이 자기 작품의 모든 부분에서 끝없이 솟아오르는 장광설 앞에 화석처럼 굳어져 있는 것을 느끼고 보고, 말하자면 손으로 만져 보고 있었다. 그러니 추기경의 갑작스런 왕림이 우리의 시인에게 어떤 감명을 주었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추기경의 등장은 청중을 혼란에 빠뜨렸다. 모든 사람들의 머리는 단 쪽으로 돌아갔다. 이젠 말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추기경이다! 추기경이다!"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되뇌었다. 불행한 연극은 두 번째로 중단되었다.
추기경은 단으로 진입하는 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가 청중들을 꽤 무관심한 눈으로 한번 둘러보고 있는 동안 장내는 떠들썩했다. 저마다 그를 더 잘 보려고 앞을 다투어 옆 사람의 어깨 위에 머리를 올려놓는 것이었다.
그는 과연 높으신 분이며, 그를 구경한다는 건 어떤 희극을 구경하는 것에 못지않았다. 부르봉 추기경이자 리옹의 대주교 겸 백작이며 골의 수석 대주교인 샤를르는, 국왕의 장녀와 결혼한 그의 형인 보죄의 영주 피에르로 말미암아 루이 11세와 인척간인 동시에, 그의 어머니인 아니에스 드 부르고뉴로 말미암아 샤를르 테메레르와도 친척 관계가 되었다. 그런데 그의 성격의 지배적인 특징은 신하로서의 충성이요 권세가에의 헌신이었다.
게다가 그는 호인이었다. 그는 즐거운 추기경 생활을 하고, 샬뤼오의 특산주를 마시며 흥겹게 지내고, 늙은 여자보단 예쁜 아가씨들에게 축복을 주었으며, 이런 모든 이유로 해서 파리 시민들에게 그는 매우 기분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걸어 다닐 때엔 으레 여자에게 친절하고 음탕하며 필요할 땐 지체 높은 주교와 사제들로 구성된 소수의 측근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생 제르맹 독세르의 착한 여신도들은 밤에 부르봉 대주교관의 환히 밝혀진 창 아래를 지나가면서, 그날 낮에 자기들에게 설교를 하던 그 같은 목소리들이, 야릇한 육담을 술잔 소리와 함께 뇌까리는 소리를 듣고 눈살을 찌푸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불만스러웠고, 바야흐로 교황을 선출하려 하는 이날 역시 조금도 추기경을 존경할 생각이 없었던 이 군중이, 입장 때 그를 냉대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이러한 인기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
기실 파리 사람들은 별로 앙심을 품지 않는다. 게다가 독단적으로 연극을 시작케 함으로써 착한 그들은 추기경을 이겨냈던 것이며, 이런 승리만으로도 그들에겐 충분했다. 뿐만 아니라 부르봉 추기경은 미남인데다 아름다운 붉은 법의를 멋지게 걸치고 있었는데, 그것은 모든 여성들을, 청중 중 최소한 반수는 그의 편으로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리하여 그는 들어서자 군중에 대한 저 대귀족의 세습적인 미소를 지어 인사하고, 마치 다른 것을 생각하는 듯한 표정으로 주홍빛 우단이 덮인 안락의자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오늘날 같으면 주교와 사제의 참모부라고도 부름직한 그의 수행원들이 따라 들어오자, 아래쪽 관람석에선 더욱 법석과 호기심이 일어났다. 그런 모든 것엔 숱한 말과 귀에 거슬리는 소리들이 섞여 있었다.
학생들은 상스러운 말을 마구 내뱉고 있었다. 이날은 그들의 날이며, 그들의 잔치며, 그들의 광인절이며, 서기단과 학교의 연례적인 축제였다. 이날만은 어떤 난잡한 언동도 권리가 있고 신성한 것이었다. 게다가 군중 속엔 시모노 카드르리브르, 아니스 가디드, 로비느 피에드보와 같은 미친 듯 수다스러운 여자들도 있었다. 이렇듯 좋은 날, 이렇듯 훌륭한 성직자들과 창부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는, 마음껏 욕설을 하고 하느님의 이름을 좀 저주한들 별일도 아니지 않은가?
그들은 단 위에 새로 입장한 사람들 중에서 제각기 검정 법의를, 혹은 회색 법의를, 혹은 흰 법의를, 혹은 붉은 법의를 공격했다. 장 물랭이 대담하게 공격한 것은 붉은 법의였으며, 추기경을 뻔뻔스런 눈으로 쏘아보면서 목청이 터지도록, "포도주로 가득 찬 추기경의 망토!" 하고 노래를 불렀다.
추기경은 그런 것들에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만큼 이날의 방종은 풍속화 돼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다 그 표정에도 역력히 나타났거니와 그에겐 더욱 절실한 걱정거리가 있었으니, 그것은 플랑드르의 사절단이었다. 그것은 그가 속 깊은 정치가여서가 아니며, 자기 조카딸인 마르그리트 드 부르고뉴 공주와 자기 조카인 비엔나의 황태자 샤를르와의 결혼에서 생길 수 있을 어떤 결과를 염려해서가 아니었다.
샤를르 백작이신 그가 뭔지도 모를 그 평민들을, 추기경인 그가 그 속관들을, 향연을 애호하는 프랑스인인 그가 맥주꾼인 플랑드르인들을, 그것도 군중 앞에서 환영하고 환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아닌 게 아니라 좀 가혹한 노릇이었다. 이것야말로 분명 국왕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그가 여태껏 마음에도 없이 짐짓 꾸며 보여야 했던 표정 중에서도 가장 하기 싫은 표정의 하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문지기가 우렁찬 목소리로 오스트리아공의 사절들의 도착을 알렸을 때, 그는 퍽이나 우아한 표정으로 문 쪽을 돌아보았다. 관객들 역시 그렇게 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때 오스트리아 막시밀리앙의 48명의 사신들이 샤를르 드 부르봉의 활달한 수행원들과는 대조적인 엄숙한 태도로 둘씩 들어왔다. 모두들 점잖고, 꿋꿋하고, 뻣뻣하고, 긴 비단옷을 입고, 금실로 만든 커다란 술이 달린 검은 비로드 모자를 쓰고 이었다. 요컨대 모두들 플랑드르의 착한 얼굴들, 렘브란트가 그의 '밤의 춤'의 검은 배경 위에 그토록 힘차고 장엄하게 솟아오르게 하고 있는 인물들의 유형에 속하는 그런 의젓하고 엄격한 얼굴들---모두들 이마 위에, 오스트리아의 막시밀리앙이 그의 선언문 속에서 말한 바처럼, '그들의 판단력과 경험과 충성과 용기와 정직을 전적으로 신용해 마땅한' 그런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예외자가 있었다. 그것은 약삭빠르고 교활한 얼굴, 일종의 원숭이 같은 낯짝과 외교관다운 얼굴로서, 추기경은 그의 앞으로 세 걸음 걸어 나가 깊이 절을 했었는데, 그 이름은 강 시의 참의원 겸 연금 수급자 교므 랭이었다.
교므 랭이 어떤 자인지 그 당시 알고 있는 사람은 적었다. 그는 혁명 때 같으면 사건의 표면에 뚜렷이 드러날 수도 있었겠지만, 15세기엔 지하 음모에 시종하고, 생 시몽의 말마따나 참호 속에서 사는 데 그친 희귀한 재주꾼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유럽 최고의 '참호 파는 공병'으로부터 진가를 인정받아, 루이11세와 함께 직접 음모를 꾸몄던 것이다. 이런 모든 것을 군중은 전혀 모르는 터였으므로, 이 플랑드르의 빼빼 마른 손님에게 추기경이 공손히 인사하는 것을 보곤 모두 놀라고 있었다.
4
이 빼빼 선생과 추기경이 서로 허리를 낮춰 절하고 더욱 목소리를 낮춰 몇 마디의 말을 주고받는 동안, 키가 후리후리하고 얼굴이 넓고 어깨가 건장한 사내 하나가 나타나 교므 랭과 나란히 들어오려 했다. 흡사 여우 옆에 불독이 걸어오는 듯했다. 그의 펠트 벙거지와 가죽 저고리는 주위의 비단옷 가운데서 어울리지 않았다. 문지기는 웬 마부가 길을 잘못 알고 들어오는 줄 알고 급히 그를 제지했다.
"이봐요, 들어가지 말아요!"
가죽 저고리를 입은 사내는 어깨로 그를 밀어내며 "이자가 날 어쩌자는 거지" 하고 아주 우렁찬 목소리로 말하여, 모두가 그 괴상한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성함은?"
문지기가 물었다.
"작크 코프놀"
"신분은요?"
"강 시에서 트루아 세네트란 간판을 가진 옷장수야."
문지기는 머뭇거렸다. 시장과 부시장이 온 것을 알리는 자라면 모르지만, 옷장수는 곤란했다. 추기경은 조마조마했다. 온 시민들이 듣고 보고 있었다. 이틀 전부터 추기경은 이 플랑드르의 제멋대로인 곰들을 군중 앞에 더 떳떳하게 내놓을 수 있도록 그들에게 손질하느라 애써 왔는데도, 역시 여간 버르장머리 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는 동안 교므 랭이 그 교활한 미소를 지으면서 문지기에게 다가가 나직한 소리로 소곤거렸다.
"강 시 부시장님의 서기인 작크 코프놀 나리의 성함을 고하구려."
이어서 추기경이 큰 소리로 말했다.
"문지기, 고명한 도시 강의 부시장 서기인 작크 코프놀 나리의 성함을 알리오."
그것은 실수였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교므 랭 혼자서 이 까다로운 입장을 얼버무려 버렸을 텐데, 코프놀이 추기경의 말을 들었던 것이다. 그는 벽력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아니야, 젠장맞을! 그냥 옷장수 작크 코프놀이라고 그래. 알아들었느냐, 문지기? 더 붙이지도 빼지도 마라. 젠장맞을! 옷장수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거란 말이야. 대공 전하께서는 내 물품들 가운데서 장갑을 골라 가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셨거든."
군중 속에서 웃음과 박수갈채가 터졌다. 파리에서는 야유가 곧 이해되며, 따라서 항상 칭찬을 받는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코프놀은 서민이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이 관중도 서민이었다. 따라서 그들과 그와의 사이의 공감대 형성은 신속하고 전격적이었다. 플랑드르 옷장수의 그 거만한 수작은 권위자들에게 모욕을 줌으로써 모든 하층민의 마음속에 그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켜 놓은 것이다. '지금 막 추기경에게 대항한 이 옷장수는 우리와 동등한 인간이다!' 하는 생각은, 추기경의 옷자락을 받드는 생트 죄느비에브 수도원장의 또 하위자인 법관의 집달관의 하인들에 대한 존경과 복종에 길들어 있는 불쌍한 민중들에겐 퍽 유쾌한 생각이었던 것이다.
한편 아까 서시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단의 가장자리에 와서 매달린 그 뻔뻔스런 거지는 고명하신 손님들이 도착했는데도 조금도 자리를 내놓지 않았으며, 고위 성직자들과 사신들이 단 위의 특별석 속에 빽빽이 들어차는 동안 마음 놓고 앉아 용감하게도 두 다리를 엇걸고 있었다. 무엄하기 짝이 없었으나, 사람들은 딴 데 정신이 팔려 있었으므로 처음엔 아무도 깨닫지 못했다.
거지 자신도 실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깨닫지 못하고 그저 태평스레 머리를 흔들면서 이따금 습관처럼 "한 푼 적선합쇼!"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군중 가운데 오직 그만이 코프놀과 문지기의 말다툼에 머리를 돌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미 민중이 호감을 품게 되고 모든 사람들의 눈이 쏠리고 있는 그 강 시의 옷장수 나리가 단상의 첫줄, 바로 이 거지 위에 와서 앉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플랑드르의 사신이 자기 눈 아래 자리 잡고 있는 그 건달을 살펴보고 나서, 누더기를 걸친 그 어깨 위를 툭툭 정답게 두드리는 것을 보았을 때 사람들은 적잖이 놀랐다.
거지는 돌아보았다. 순간 깜짝 놀라고, 서로 알아보고, 두 사람의 얼굴빛이 활짝 펴지는 것이었다. 그런 뒤 관객들에겐 조금도 아랑곳없이, 옷장수와 거지는 손에 손을 마주잡고 나직한 목소리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이때 단에 드리운 금수 단 위에 펼쳐진 그 누더기는 오렌지 위의 송충이 같은 인상을 주었다.
이런 해괴한 장면을 보고 사람들이 어떻게나 미친 듯 흥겨워하며 떠들어댔던지, 이윽고 추기경도 그것을 알아채기에 이르렀다. 그는 몸을 반쯤 기울였으나, 현재 있는 자리에서는 거지가 적선을 구하고 있는 줄 생각하고, 그런 철면피에 격분하여, "법원장, 저 건달을 강물 속에 던져 버리시오!"라고 외쳤다.
"아서요! 추기경 각하"
코프놀은 거지의 손을 놓지 않고 말했다.
"이분은 내 친구입니다."
추기경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옆에 있는 생트 죄느비에브의 사제 쪽으로 몸을 기울이곤 나지막이 말했다.
"마르그리트 공주가 오시는 걸 알리기 위해 대공 전하는 참 별스런 사신을 보냈단 말이야."
그러자 상대방도 언짢은 낯으로 한숨을 쉬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제 오늘날의 화법으로 말하듯이, 하나의 인상과 느낌을 수렴하는 힘을 갖고 있는 우리 독자들은, 내가 재판소의 드넓은 평행사변형의 대광실이 제공하는 광경을 뚜렷이 상상할 수 있는지 어떤지 묻는 것을 허락해 주기 바란다... 방 가운데엔 서쪽 벽에 기대어 하나의 커다랗고 화려하게 꾸며 놓은 단이 보인다. 그 안으로 하나의 조그마한 첨두형 문을 통하여 점잖은 양반들이 줄지어 들어오면 날카로운 문지기의 목소리가 차례차례 그들의 이름을 알린다. 앞쪽의 좌석엔 흰 담비 모피와 비로드와 주홍빛 피륙으로 된 모자를 쓴, 퍽 존경할 만한 위인들이 벌써 앉아 있다. 확실히 구경거리는 진기하고 구경꾼의 눈길을 충분히 모을 만했다.
그러나 저 아래 맨 끝 쪽으로, 위엔 울긋불긋한 옷을 입은 네 개의 꼭두각시가 있고 아래에도 또 다른 네 개의 꼭두각시가 있는 저 마룻장 같은 건 대체 무엇인가? 마룻장 옆에 남루한 검은 옷을 입고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는 저 사나이는 대체 누구인가? 아, 애달픈 일이로다! 사랑하는 독자여, 그것은 바로 피에르 그랭구아르와 그의 연극인 것이다.
추기경이 들어왔을 때부터 그랭구아르는 자기의 작품을 살리기 위해 활동하기를 그치지 않았었다. 우선 그는 엉거주춤해 있는 배우들에게 계속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라고 명령한 뒤, 아무도 구경치 않음을 보고 중단시켰다. 연극이 중단되는 사이 그는 발을 동동 구르고, 이리저리 날뛰면서 지스케트와 리에나르드에게 말을 걸고,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극을 계속 보도록 독려하는 것을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모두 허사였다. 이 숱한 눈길의 유일한 구심점인 추기경과 사절단의 자리에서는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또 이건 마지못해 말하거니와, 추기경이 여기에 그렇게도 야릇하게 기분 전환을 하러 왔을 때부터 연극은 관중에게 방해가 되기 시작했다고 믿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단상에서도 대리석 탁자 위에서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언제나 같은 구경거리, 즉 농사와 성직, 귀족과 상품의 갈등이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것들이 분장하고 서로 얘기하고, 말하자면 그랭구아르가 괴상망측하게 입혀 놓은 노랗고 흰 옷 아래 싸여 있는 것을 보는 것보다는, 그것들을 직접 보는 것을, 저 플랑드르의 사신들 속에, 저 성직자들 속에, 코프놀의 저고리 아래 살아서 숨쉬고 움직이고 서로 피부가 맞닿는 것을 직접 보는 걸 좋아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시인은 좀 조용해진 것을 보았을 때, 모든 것을 반전시킬 수 있을 계략을 곰곰 궁리했다. 그는 참을성 있는 얼굴을 한, 뚱뚱하고 정직해 보이는 사람 하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다시 시작하면 어떻겠습니까?"
"뭘 말이오?"
"아! 연극 말씀입니다"
"좋도록 하슈."
이런 반승낙만으로도 충분했으므로, 그랭구아르는 될수록 군중 속에 뒤섞여 들어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다시 시작하라! 다시 연극을 시작하라!"
이렇게 떠들어 대는 소리는 추기경의 귀를 잡아끌었다. "법원장!" 하고 그는 자기로부터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있는 키 크고 새까만 사람에게 말했다.
"저 악마들은 성수반 속에 빠졌나요, 저렇게 지독한 소리를 지르고 있게?"
법원장은 동시에 쥐와 새, 판사와 군인의 성향을 갖고 있는 일종의 이중 성격적 관리, 사법계의 일종의 박쥐였다. 그는 추기경 옆으로 가서, 그의 불만을 무척 두려워하면서 군중의 무례함을 더듬더듬 설명했다. 정오가 추기경 각하보다 먼저 와서 부득이 배우들은 각하를 기다리지 못하고 연극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고.
추기경은 껄껄 웃었다.
"이런 경우엔 틀림없이 대학 총장 선생도 그랬을 거야. 교므 랭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각하"
교므 랭은 대답했다.
"연극의 절반을 못 보게 된 걸 다행으로 여깁시다. 그만큼 이득을 본 셈이니까요"
"저 악당들이 연극을 계속해도 좋겠습니까?"
법원장이 조심스레 물었다.
"계속하오, 계속하오. 난 아무래도 상관없어. 난 그 동안 성무 일과서나 읽겠소."
추기경이 말하자 법원장은 단 가장자리로 나아가, 손을 흔들어 관중을 조용하게 한 뒤 외쳤다.
"시민들이여, 다시 시작하길 바라는 사람들과 그만 끝내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서 추기경 각하는 계속하길 명령하십니다."
그리하여 무대 위의 배우들은 다시 그들의 일을 시작하였고, 그랭구아르는 적어도 자기 작품의 나머지만은 들어 주게 되길 희망했다. 아, 하지만 그 희망은 그의 다른 환상과 마찬가지로 곧바로 깨어지고 말았다.
사실 군중 속에 정숙은 겨우 회복됐으나, 그랭구아르는 추기경이 계속하라는 명령을 내렸을 때 단상은 아직 완전히 차지 않았으며, 플랑드르의 사신들 뒤에 행렬의 일부를 이룬 새로운 인사들이 들어오는 걸 못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이름과 칭호가 문지기의 간헐적인 고함에 의해 장내에 던져져 대사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던 것이다. 연극이 한창일 때, 느닷없이 외치는 소리가 두 개의 운 사이와 때로는 두 개의 구절 사이에 다음과 같은 삽입구를 던지는 것을 상상해 보라.
--교회 법정 검사, 자크 샤르몰뤼 나리!
--파리 시 야경대장 사무실의 근위병, 장 드 아를레 씨!
--근위 포병대장이며 부뤼삭의 영주, 갈리오 드 즈누아락님!
연극을 계속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는 이 이상한 반주는 그랭구아르를 더욱 미치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 그는 이 연극의 흥미는 자꾸만 증가 일로에 있으므로, 작품에 필요한 것은 들어 줄 청중뿐이란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극중의 네 인물이 심히 난처한 형편에 빠져 한탄하고 있을 때, 비너스의 화신이 훌륭한 집안의 문장을 수놓은 아름다운 옷을 입고 나타났다. 그녀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에게 약속되어 있는 돌고래를 요구하러 온 것이다. 주피터의 천둥소리가 저쪽 안에서 우르르 우르르 울리는 것이 들려와, 그가 비너스를 지지하고 있음을 알려 주었다. 그리하여 여신은 바야흐로 이기려 하고 있는데, 다시 말하자면 돌고래 도련님과 결혼하려 하고 있는데, 이때 흰 능라 비단옷을 입고 손에 하나의 진주를 든 어느 계집아이가 와서 비너스와 싸웠다. 극적 변화이자 대단원이다. 그러나 그토록 많이 중단되고서야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인지 분간하기도 어려웠다. 그건 이미 볼장 다 본 것이었다. 그 깊은 뜻을 느껴 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추기경이 들어왔을 때,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한 가닥 마술의 실이 홀연히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겨 놓은 것만 같았다.
우리의 시인은 얼마나 고통스런 마음으로 자기가 쌓아올린 영광과 시의 모든 더미가 한 조각 한 조각 허물어지는 것을 보고 있었을까! 바로 이 군중이 자기의 작품을 보고 싶어 못 견딘 나머지 아까는 법원장에 대해 폭동까지 일으키려 했으니 놀라운 일이 아닌가! 그것을 보게 된 지금 사람들은 염두에도 두지 않고 있다. 그토록 뜨거운 박수갈채로 시작되었던 바로 그 연극을! 하마터면 법원장의 집달관들을 교수형에 처할 뻔하기까지 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문지기의 거친 독백은 그쳤다. 모두가 다 도착했던 터여서, 그랭구아르는 긴 숨을 쉬었다. 배우들은 씩씩하게 계속하고 있었다. 그런데 별안간 옷장수 코프놀 나리가 일어서더니, 만장의 관객들이 귀를 바짝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다음과 같은 얄미운 언사를 늘어놓는 것이 아닌가!
"파리의 시민 여러분, 우리들이 지금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지 난 알 수가 없소이다. 저기 저 구석 마룻장 위에서 사람들이 싸우려 하는 것같이 보이는데, 바로 저것이 여러분의 소위 연극이라고 하는 것인지 난 모르지만 퍽 재미가 없군요. 저자들은 혓바닥으로만 싸울 뿐, 더 이상은 아무것도 없소. 벌써 15분 전부터 이제나저제나 활극이 시작될까 기다리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군요. 이건 내가 들은 얘기하곤 다릅니다. 사람들이 내게 약속한 것은 교황을 선출하는 광인 축제였소. 강에도 역시 식의 광인 교황이라는 게 있는데, 이것에 있어선 우리도 결코 남들에게 뒤지진 않는단 말이요. 그런데 그걸 우리는 이렇게 한다오. 지금 여기서처럼 민중이 모입니다. 그런 뒤 각자 차례차례 하나의 구멍으로 대가리를 내놓고 남들에게 상을 찌푸려 보이는 거요. 그래서 가장 추악한 찡그린 얼굴을 만드는 자가 만인의 갈채를 받아 교황으로 뽑히는 것이오. 아주 재미있어요. 여러분, 우리네 방식으로 교황을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랭구아르는 뭐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리둥절하고 격분한 나머지 말이 나오질 않았다. 게다가 옷장수의 제안이 어찌나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졌던지, 그 어떤 저항도 소용없었다. 그랭구아르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5
눈 깜짝할 사이 옷장수의 제안을 실천에 옮기기 위한 만반의 준비가 갖추어졌다. 대리석 탁자 맞은편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예배소가 얼굴 찌푸리기의 무대로 선택되었다. 예배소 문 위의 둥근 유리창을 깨뜨려 동그랗게 구멍을 내고, 그곳으로 경쟁자들이 머리를 내놓기로 정해졌다. 거기에 키가 닿기 위해서는, 어디서 통을 두 개 갖다 위아래로 높이 쌓아 올려놓고 그 위로 기어 올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후보자는 남자든 여자든 모두, 찌푸린 얼굴의 인상을 순수하고 완전한 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 모습을 나타낼 때까진 얼굴을 가리고 예배소 안에 숨어 있도록 규정되었다. 몇 분 후 예배소는 경쟁자들로 가득 차고 문이 닫혔다.
옷장수는 그의 자리에서 모든 것을 지도하고 명령하고 조정하고 있었다. 그렇게 와글와글 떠들어 대는 사이, 추기경은 그랭구아르 못잖게 당황해서 용무와 만종 기도를 핑계 삼아 모든 수행원들과 더불어 물러가 버렸는데, 그가 올 때는 그렇게도 법석을 떨던 그 군중이 그가 떠날 땐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군중의 주의도 태양의 운행처럼 제 길을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얼굴 찌푸리기가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창에 나타난 상판은 눈꺼풀을 뻘겋게 까뒤집고, 아가리를 떡 벌리고, 이마는 제국 시대 경비병의 승마용 장화 마냥 쭈글쭈글 주름살이 잡혀서 어떻게나 그칠 줄 모르는 웃음을 터뜨리게 했던지, 호메로스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 모든 관객들을 신으로 알았을지도 모른다.
이어서 둘째, 셋째의 찌푸린 상판이 계속 나타나고, 뒤이어 또 하나의 상판이, 그런 뒤 또 다른 것이 연이어 나타나, 웃음소리와 즐거워서 발을 동동 구르는 소리는 더욱 요란스러워지고 있었다.
이 구경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현기증 같은 것, 거센 도취와 매혹 같은 게 깃들어 있었다. 세모꼴에서부터 사다리꼴에 이르기까지, 원뿔에서 다면체에 이르기까지, 온갖 기하학적 형태를 차례차례로 나타내는 일련의 추악한 배우들을 상상해 보라. 분노에서 음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그 온갖 표정을... 갓난애의 주름살에서부터 죽어 가는 노파의 주름살에 이르기까지!
이젠 학생도 시민도 사절도 남자도 여자도 없었다. 이미 크로팽 트루유푸도 질 르코르뉘도 로뱅 푸스팽도, 마리 카트르리브르도 없었다. 모든 것이 한통속이 되어 제멋대로 떠들어 대고 있었다. 대광실은 이제 뻔뻔스러움과 쾌활함의 거대한 도가니에 불과해졌다. 그 속에선 입마다 고함질이요, 눈마다 번쩍임이요, 얼굴마다 찌푸린 꼴이요, 사람마다 하나의 유별스런 자세였다. 차례차례 창구멍으로 와서 이를 갈아 대는 괴상망측한 얼굴들은, 마치 모두가 불 속에 짚단을 던져 넣은 듯한 효과를 빚어내는 것이었다.
"어머나 망측해라!"
"저 쌍통 좀 봐라!"
"저건 신통찮구나."
"다른 놈 나오거라!"
"저 황소 대가릴 좀 봐라! 없는 건 뿔뿐이야."
"어머나, 세상에 무슨 낯짝이 저럴까?"
"야! 그건 속임수다. 반만 내놓아선 안 돼, 임마!"
"어머 숨 막혀!"
한편 그랭구아르는 낙심의 첫 충격을 치러 낸 뒤 서서히 침착을 되찾고 있었다. 그는 역경에 대항해서 꿋꿋이 싸웠다. "계속 하시오!" 하고 그는 세 번째로 배우들에게 말했다. 그런 뒤 대리석 탁자 앞을 성큼성큼 거닐면서, 비록 그것이 그 배은망덕한 민중에게 얼굴을 찌푸려 주는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서일 뿐이라 할지라도, 자신도 예배소의 창구멍으로 가서 얼굴을 나타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니다, 그건 떳떳한 일이 못된다. 복수는
그만두고 끝까지 싸우자. 시의 힘은 민중 위에서 큰 것이다. 나는 그들을 도로 끌어오리라. 찌푸린 얼굴이 이기느냐, 예술이 이기느냐!' 하고 입술을 깨물며 고쳐 생각했다.
하지만, 아 슬픈 일이다! 오직 그만이 자기 연극의 유일한 관객이었다. 그것은 좀 전보다도 더 나빴다. 그에겐 이제 사람들의 등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니다, 아까의 그 참을성 있는 뚱보는 여전히 무대 쪽으로 돌아서 있었다. 그랭구아르는 속으로 그 유일한 구경꾼의 성실성에 감동했다. 그는 그에게 다가가 그의 팔을 가볍게 흔들면서 말을 걸었다. 왜냐하면 이 착한 사나이는 난간에 몸을 기댄 채 잠이 들어 있었으니까.
"여보시오."
그랭구아르는 말을 꺼냈다.
"고맙습니다."
"여보시오."
뚱보는 하품을 하면서 대꾸했다.
"왜요?"
"당신이 왜 싫증나시는지 전 알고 있어요."
시인은 말을 이었다.
"저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당신은 마음대로 대사를 들으실 수가 없겠죠. 그러나 안심하십시오. 당신의 이름은 후세에 전해질 테니까요.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르노 샤토요. 파리 샤틀레 감옥의 총무로 있죠."
"당신은 여기서 시의 여신들의 유일한 대표자입니다. 이 극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좋아요!"
뚱보 관리는 잠에서 절반쯤 깨어나 대답했다. 그는 말을 이었다.
"제법 유쾌한 극이올시다"
그랭구아르는 이 칭찬만으로 만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비상한 함성과 더불어 우레 같은 박수가 터져 그들의 대화를 중단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히야! 히오! 광인 교황이 뽑혔다!"
군중은 사방에서 외쳐 댔다.
이때 그 창구멍에서 빛나고 있는 것은 과연 희한한 얼굴이었다. 그 창에 갖가지 기괴한 상판이 차례로 나타났었으나, 모두들 이 묘한 잔치로 들뜬 상상력 속에서 꾸며 낸 기괴망측한 꼴의 이상을 실현치 못한 뒤에 만장의 동의표를 얻기 위해서는 바로 저 완벽하게 찌푸린 상만이 필요했던 것이다. 코프놀 자신도 박수갈채를 보냈으며. 경쟁에 참가했던 클로팽 트루유푸도-그의 얼굴이 얼마나 고도의 추악함을 보일 수 있었는지는 신이 아신다-패배를 자인했다.
그 사면체의 코, 말발굽 같은 입, 하나의 커다란 물사마귀 아래 사라져 버리고 없는 오른쪽 눈과 더부룩한 붉은 빛 눈썹으로 가려진 조그만 왼쪽 눈, 요새의 총안 같이 여기저기 빠진 고르지 못하고 누런 이, 그 이 가운데 하나가 코끼리의 어금니처럼 뻗어 나온 그 굳어 빠진 입술, 두 갈래 난 턱, 그리고 특히 그 모든 것 위에 번져 있는 표정, 심술과 놀라움과 슬픔의 뒤섞임. 이 모든 것들에 대해 나는 독자에게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가능하다면 그 전부를 한번 상상해 보라.
박수갈채는 만장 일치였다. 사람들은 예배소 쪽으로 몰려들었다. 거기서 의기양양하게 행복한 새 광인 교황을 끌어냈다. 그러나 그 순간 사람들의 놀라움과 경탄은 절정에 달했다. 그 찌푸린 상이란 바로 그의 원래 얼굴이었던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의 신체 전부가 찌푸린 상이라 해야겠다. 붉은 머리털이 곤두선 커다란 머리통, 두 어깨 사이에 그 동산이 앞에서도 보이는 어마어마한 곱사등, 야릇하게 뒤틀려 무릎밖엔 서로 닿지 않고, 앞에서 보면 자루에서 합쳐진 반원형 낫의 두 반달처럼 생긴 허벅지와 다리의 조직, 커다란 발, 괴물 같은 손, 이 모든 기형과 더불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힘세고 날래고 씩씩한 걸음걸이-힘도 아름다움과 마찬가지로 조화에서 생겨나길 바라는 저 영원한 법칙에 있어서의 이상한 예외였다.
미친 듯 우글대는 군중들이 지금 막 떠받든 교황은 바로 그러했다. 마치 부서진 거인을 서투르게 다시 맞추어 놓은 것 같았다. 땅딸막하고, 몸집 크기가 거의 키와 맞먹고, 어느 위인의 말마따나 '밑바닥으로부터 떡 벌어진' 이 일종의 외눈 거인이 예배소 문 앞에 나타나 꿈쩍 않고 서 있을 때, 반반씩 붉고 자줏빛인데다 은빛 종루 무늬가 있는 그의 외투를 보고, 특히 그의 완전무결한 추악함을 보고서 군중들은 당장 그를 알아채곤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노틀담의 꼽추 카지모도다! 종치기 카지모도다! 애꾸눈 병신 카지모도다! 앙가발이 녀석
카지모도다! 얼씨구절씨구!"
이와 같이 이 불쌍한 인간은 골라잡을 만큼 별명이 많았다.
"아기 밴 여자들 조심하슈!" 하고 학생들은 외치는 것이었다.
"아기 배고 싶은 여자들도 조심해야지." 하고 장 물랭이 말했다.
여자들은 과연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러나 제각기 한마디씩 했다.
"에구머니! 저다지도 보기 흉한 원숭이가 어디 있담."
"못생기기도 했지만 심술도 사나워요."
"저건 악마일 거야."
"난 불행히도 노틀담 옆에 살고 있는데, 밤새도록 저 녀석이 처마의 홈통 속을 얼쩡거리는 소리를 듣는다구."
"고양이들과 함께..."
"저번 날 저녁엔 저 녀석이 우리 집 천정에 와서 내게 상판을 찌푸려 보였어. 난 그래도 사람인 줄 알고 있었지. 어떻게나 혼이 났는지."
"저 녀석은 틀림없이 악마들의 밤잔치에 가리라고 생각해. 언젠가 저 녀석이 우리 집 뒷마당에 빗자루를 놓고 갔어."
"에그, 흉측한 물건 같으니!"
반대로 남자들은 기뻐하며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이 화제의 대상인 카지모도는 여전히 예배소 문 앞에 묵묵하고 의젓하게 서서 찬탄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학생 하나가 그의 코앞으로 가서 얼굴을 바짝 대고 웃었다. 카지모도는 불시에 그의 허리띠를 잡아 열 걸음쯤 떨어진 군중 속에 내동댕이쳐 버리는 것으로 만족했다. 코프놀이 감격한 눈빛으로 그의 옆으로 갔다.
"젠장맞을! 너는 정녕코 내가 난생 처음 보는 가장 아름다운 추물이다. 넌 이곳에서와 마찬가지로 로마에서도 교황이 될 만하다!"
그렇게 말한 그는 즐거운 듯 꼽추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카지모도는 움직이지 않았다. 코프놀은 말을 이었다.
"넌 참으로 괴짜다. 난 너하고 한상 잘 차려 놓고 먹고 싶구나. 비록 수백냥의 돈이 들더라도 말이야. 넌 어떻게 생각하냐?"
카지모도는 대꾸하지 않았다.
"젠장맞을! 넌 귀가 먹었느냐?"
그는 과연 귀머거리였다. 그러나 그는 그 낙관적인 옷장수가 하는 짓에 짜증이 나기 시작하여, 무시무시하게 이를 갈면서 느닷없이 그를 향해 홱 돌아섰으므로, 플랑드르의 거한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음, 난 알겠다!"
카지모도를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마침내 기둥머리에서 내려온 장 물랭이 외쳤다.
"저건 우리 형 부주교의 종치기네. 카지모도, 잘 있었냐!"
"무슨 놈의 사람이 저래!"
카지모도에게 내던져졌던 학생이 투덜투덜 말했다.
"그가 나타나는 걸 보면 꼽추고, 걷는 걸 보면 앙가발이고, 응시하는 걸 보면 애꾸고, 얘기를 해보면 귀머거리라"
"그럼 저놈은 혓바닥으로 뭘 하는 거지?"
"말을 하고 싶을 땐 말을 해도. 종을 치느라고 귀가 먹게 됐지만 영 벙어린 아니에요"
어떤 노파가 대꾸를 했다.
그동안 모든 천민들과 거지들과 소매치기들은 학생들과 합류하여, 줄지어 서기단의 장롱으로 가서 광인 교황의 모조 관과 시시한 법의를 챙겨 왔다. 카지모도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순순하면서도 의기양양하게 그것들을 자기에게 씌우고 입히게 내버려두었다.
그런 뒤 사람들은 그를 울긋불긋하게 장식한 들것 위에 앉혔다. 광인 축제단의 열두 임원이 그것을 어깨에 메었다. 그리고 애꾸 교황이 자신의 추악한 발아래, 그 모든 아름답고 반듯하고 잘생긴 사내들의 머리를 보았을 때, 일종의 고통스럽고도 경멸적인 기쁨이 그 우울한 얼굴 위에 스물스물 피어올랐다. 요란스런 누더기의 행렬이, 관례에 따라 큰길과 네거리를 쏘다니기 전에 재판소의 산책 회랑 안을 돌기 시작했다.
6
이 모든 장면이 계속되는 동안 그랭구아르와 그의 연극이 잘 버티어 왔음을 독자에게 알려 주게 되어 필자는 기쁘게 생각한다. 배우들은 그의 격려를 받아 대사 외기를 중단치 않았으며, 그는 그걸 듣는 것을 중단치 않았었다.
그는 그 소란도 다 팔자 탓이려니 체념하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관중의 주의가 되돌아오는 때도 있으려니 하고 끝까지 해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한 희망의 빛은, 카지모도와 옷장수와 광인 교황의 소란스런 행렬이 떠들썩하게 나가는 것을 보았을 때 되살아났다. 군중은 그들을 뒤따라 허둥지둥 뛰어나갔다.
"됐다!"
이를 본 그랭구아르는 중얼거렸다. 흐리멍텅한 바보들은 다 가버리는구나...
그러나 불행히도 흐리멍텅한 바보들이란 바로 관객이었던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대광실은 텅 비어 버렸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직도 약간의 구경꾼은 남아 있었다. 어떤 이들은 흩어져 있고 또 어떤 이들은 기둥 둘레에 모여 있었는데, 모두 여자들과 늙은이, 또는 어린애들로서 유쾌한 듯 떠들고 있었다. 몇몇 학생은 여기저기 창틀에 걸터앉아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랭구아르는 생각했다.
'아직도 내 연극의 피날레를 보기에 필요한 만큼의 관객은 있다. 수는 적지만 우수한 관객, 유식한 관객이다'
한참 후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는 장면에서 가장 큰 효과를 내야 할 교향악이 울리지 않았다. 그랭구아르는 자기 악대가 광인 교황의 행렬에게 끌려가 버린 것을 알아챘다. 그는 꾹 참고서, 희곡에 관해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 한 떼의 관객 옆으로 다가갔다. 그가 들은 그들의 얘기는 이러했다.
"느무르 씨의 소유였던 나바르 관을 아세요?"
"아, 브라크 예배당 맞은편에 있지요."
"그런데 국세청은 그걸 알렉산드르 씨에게 빌려줬어요, 일년에 6리브르 8솔의 임대료로"
"아, 무척 올랐군요!"
"좋아!"
그랭구아르는 한숨을 쉬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다른 사름은 듣고 있으니까"
이때 별안간 창가에 있던 젊은 장난꾸러기 중의 하나가 외쳤다.
"라 에스메랄다다! 라 에스메랄다가 저기 광장에 있다!"
그 말은 마술과도 같은 효과를 냈다. 방 안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모두 창문으로 뛰어가 밖을 내다보려고 벽으로 기어오르면서 외쳐 댔다.
"에스메랄다! 라 에스메랄다!"
동시에 바깥에서는 요란한 박수 소리가 들려 왔다. 그랭구아르는 서글픈 듯 두 손을 마주잡으며 중얼댔다.
"무슨 뜻일까, 라 에스메랄다라는 게?"
그가 대리석 탁자 쪽을 돌아보니 연극은 중단되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주피터가 벼락을 갖고 나타나야 할 순간이었다. 그런데 주피터는 무대 아래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이었다. 시인은 성이 나서 외쳤다.
"미셀 지보르느! 거기서 뭘 해? 네가 나설 차례라면 어서 올라 가려무나!"
주피터가 대꾸했다.
"학생 하나가 사다리를 가져가 버렸는걸."
그랭구아르는 보았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고얀 놈! 그 녀석은 왜 사다리를 가져갔지?"
"라 에스메랄다를 보려고"
주피터는 울상이 되어 대답했다.
"그 녀석은, '옳지, 사다리가 있구나!' 하면서 그걸 가져가 버렸어"
그랭구아르는 체념하고 말았다. 그는 퇴각했다. 머리를 수그린 채, 그러나 마지막까지 잘 싸우고 난 장수처럼... 그리고 꾸불꾸불한 재판소 계단을 내려가면서 입 속으로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놈들은 연극을 보러 와서 전혀 보지도 않는다! 놈들은 바보 같은 사람들에게만 넋이 팔렸다. 거지 트루유푸에게, 위선자 추기경에게, 뻔뻔스런 옷장수에게, 꼽추 카지모도에게, 악마에게도! 그러나 성모 마리아님에겐 아랑곳도 하지 않았다. 얼빠진 녀석들! 그런데 나는 사람들 얼굴을 보러 와서 등밖에 못 보다니! 시인이면서 약장수의 성공도 못 얻다니! ...하기야
호메로스는 희랍의 마을을 돌아다니며 구걸했고, 오비듀스는 귀양 살다 죽었것다. 아무튼 만약 그들이 에스메랄다라고 한 말이 무슨 뜻인지 내가 알고 있다면 악마가 내 껍질을 벗겨도 좋다! 대체 그 단어는 무엇일까? 이집트말 같기도 한데 말이야... 에잇, 제기랄!"
제2장 시인과 집시 여인
1
정월엔 밤이 빨리 온다. 그랭구아르가 재판소로부터 나왔을 때 거리는 이미 어둠에 묻혀 있었다. 이 컴컴한 밤이 그는 좋았다. 한시라도 빨리 그는 컴컴하고 인적 없는 골목 어귀에 도달해 마음껏 사색에 잠기고, 철학자가 시인의 상처를 치료해 줄 수 있게 되길 바랐다.
실제로 철학은 그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왜냐하면 그는 어디서 자야 좋을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첫 연극의 시도가 어이없이 실패한 지금 그는 감히 이제껏 묵고 있던 숙소인 그르니에쉬를로 거리를 돌아갈 수가 없었다. 시장 나리가 자기 연극의 대가로 세금 징수 청부인 시르 씨에게 지불할 여섯 달치의 방세를 정중히 주리라고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인데, 그에게 빚진 여섯 달치 방세는 파리 주화 12솔이나 되는 바, 그의 짧은 바지와 속옷과 벙거지까지도 포함해 그가 이 세상에서 가진 모든 재산의 열두 배나 되는 돈이었다.
그는 생트 샤펠의 출납관 집 작은 쪽문 아래 잠시 몸을 의지하고, 파리의 길이면 어느 것이나 숙소로 골라잡을 수 있으므로 오늘 저녁은 어디로 정할까 하고 잠시 궁리한 끝에, 전번에 사바트리 거리에 있는 파리 고등법원 판사의 집 문 앞에서 나귀 타는 디딤돌 하나를 보고 그 돌이 그럴 필요가 있을 경우엔 거지나 시인을 위해 퍽 훌륭한 베개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는 이런 좋은 생각을 보내 주신 하느님께 감사했다.
그런데 오늘날까지도 건재해 있는 비에유 드라프리 거리, 바리유리 거리, 사바트리 거리, 쥐이브리 거리, 쥐이브리 거리 등 어느 것이나 엇비슷하게 닮은 그 모든 지저분한 거리들이 꾸불꾸불 통하고 있는, 시테 섬의 꼬부라진 미로에 이르기 위해 재판소 앞 광장을 막 건너가려 할 때, 그랭구아르는 광인 교황의 행렬이 역시 재판소에서 나와 횃불을 환히 켜들고 악대를 세워 와글와글 떠들면서 자기가 가는 길 가운데로 몰려드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본
그는 자존심에 입은 상처가 덧나고 아픔이 새삼 되살아나 달아났다. 연극의 실패로 말미암아 슬픔 속에 빠져 있는 그에게 이날의 축제를 회상케 하는 것은 무엇이든 마음을 격분케 하고, 상처에 피를 흘리게 했다.
그는 생 미셀 다리로 건너가려 했다. 거기서는 어린애들이 불꽃놀이 기구를 가지고 이리저리 달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불꽃이 다 뭐란 말이야!"
그랭구아르는 이렇게 뇌까리고 갑자기 퐁토 샹즈 다리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다리 어귀의 집들에는 국왕과 왕태자와 플랑드르의 마르그리트 공주를 상징하는 세 가지 깃발과, 오스트리아 공작과 보죄 전하와 부르봉 추기경과 잔느 드 프랑스 공주와 부르봉 서자 전하와, 그리고 누군지 모를 또 하나의 초상이 그려져 있는 여섯 가지의 조그만 깃발을 붙여 놓았는데, 이 모든 것들은 횃불로 환히 밝혀져 있었다.
"저걸 그린 자는 행복한 그림쟁이로군!"
그랭구아르는 크게 한숨을 쉬면서, 큰 깃발과 작은 깃발들에 등을 돌려 버렸다. 앞에 거리가 하나 있었다. 그 길이 무척 캄캄하고 왕래가 없는 것 같아서, 거기서라면 모든 축제의 메아리와 불빛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그는 그곳으로 들어갔다. 한동안 걸어갔을 때, 발이 장애물에 부딪쳐 그는 비틀거리다가 쓰러졌다. 그것은 식목제의 묘목 다발이었는데, 서기단의 사람들이 아침에 이날의 축제 의식을 위해 고등법원장의 문 앞에 갖다 놓은 것이었다. 그랭구아르는 이 새로운 훼방을 씩씩하게 참아 냈다.
그는 다시 일어나 강가에 이르렀다. 재판소를 뒤에 두고 궁궐 정원의 넓은 벽을 따라, 진흙이 발목까지 올라오는 포석을 깔지 않은 모래톱 위를 걸어 시테 섬의 서쪽 지점에 도착하여, 청동의 말과 퐁 뇌프 다리 아래 작은 섬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 작은 섬은 어둠 속에서, 그것과 그와의 사이에 흐르고 있는 희끄무레한 좁은 강물 저편에 하나의 검은 덩어리처럼 보였다. 거기엔 밤에 뱃사공이 몸을 의지하는 벌통 모양의 오두막 같은 것이 조그만 불빛에
드러나 있었다.
"그 암소 뱃사공은 팔자도 좋지!"
하고 그랭구아르는 중얼거렸다.
"너는 영광도 생각지 않고 축혼가도 짓지 않는다! 왕이며 공주들 같은 게 네겐 무슨 소용이랴! 너는 4월의 잔디밭이 네 암소들에게 뜯어먹게 해주는 마르그리트(역주:공주의 이름. 마르그리트는 식물명이기도 함) 외에 다른 마르그리는 모르고 있다! 그런데 시인인 나는 야유를 받고, 추워서 떨고, 12솔이나 빚이 있고, 신발 바닥은 환희 비쳐 보여 네 초롱에 유리로 써먹을 수 있을 지경이다. 오, 고맙다! 암소 뱃사공이여! 네 오막살이는 내 눈에 휴식을 주고, 나로 하여금 파리를 잊게 해주누나!"
그는 그 행복스런 오두막에서 느닷없이 터져 나온 커다란 쌍겹 폭죽에 의해 퍼뜩 정열적인 도취경에서 깨어났다. 그것은 암소 뱃사공이 이날의 축제에 한몫 끼여 스스로 불꽃을 쏘아 올린 것이었다. 그랭구아르는 소름이 끼쳤다.
"망할 놈의 축제 같으니! 넌 어디까지 날 따라다닐 테냐? 아, 세상에 이럴 수가! 암소 뱃사공의 집에까지도..."
그러다가 아래 센 강을 내려다본 그는 문득 무서운 유혹에 사로잡혔다.
"아, 물이 저렇게 차갑지만 않다면 기꺼이 빠져 죽으련만!"
그러자 하나의 절망적인 결심이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것은 광인 교황에서도, 거창스런 깃발에서도, 나무 다발에서도, 불꽃이나 폭죽에서도 벗어날 수 없으므로, 바로 그 축제의 한복판에 대담스레 뛰어들어 그레브 광장으로 가자는 것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적어도 거기서라면 기쁨의 화톳불에 몸을 녹일 수 있을지도 모르고, 시에서 공식적으로 식탁 위에 차려 놓았음에 틀림없는 커다란 빵 부스러기를 얻어먹을 수도 있겠지'
2
당시의 그레브 광장의 모습에 관해 말하자면, 오늘날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하나의 흔적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것은 광장 북쪽 모퉁이에 자리 잡은 매혹적인 소탑인데, 그것은 이미 그 조각물의 선명한 선에 더덕더덕 칠한 야한 물감 아래 파묻혀 있거니와, 아마도 머지않아 파리의 모든 옛 건물의 정면을 그토록 빨리 삼켜 가는 저 새 집들의 범람에 침몰돼 사라져 버릴 것이다.
루이 15세 시대의 두 낡은 건물 사이에 끼여 있는 이 가련한 소탑에 연민의 눈길을 던지지 않고는 그레브 광장을 지나치지 못할 사람들이라면, 이 소탑이 속해 있던 건물 전체를 쉽사리 머릿속에서 재구성할 수 있으리라.
그것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한쪽은 강둑에 인접하고 다른 세 쪽은 높고 침침한 일련의 집들에 둘러싸인 하나의 반듯하지 못한 사다리꼴이었다. 낮에는 거기서 다양한 건물들을 구경할 수 있었는데, 모두가 돌과 나무로 조각돼 있었다.
광장 동쪽 중앙에는 세 채의 집이 나란히 합쳐진 거대한 건물 하나가 솟아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세 가지의 이름으로 불렀는데, 이것이 그 역사와 건축 양식을 설명해 주는 터였다. 샤를르 5세가 왕태자 시절에 거기서 살았으므로 '동궁'이라고도 부르고, 시청으로도 사용되었으므로 '관청'이라고도 부르고, 일련의 굵은 원기둥이 그 건물을 떠받치고 있었으므로 '기둥집'이라고도 불렀던 것이다.
시민들은 거기에서 파리와 같은 좋은 도시에 필요한 모든 것을 발견하고 있었다. 하나님에게 기도드리기 위한 예배당, 재판을 하고 또 필요한 경우엔 궁정인을 혼내 주기 위한 변론실, 그리고 꼭대기엔 대포로 가득한 병기창 따위였다. 왜냐하면 파리 시민들은 도시의 자주권을 위해서는 어떤 경우에도 기도를 드리고 변론을 하는 것만으론 충분치 않다는 점을 알고 있었으므로, 시청 창고에 언제나 훌륭한 화승총을 보존해 두었던 것이다.
그레브 광장은, 이 광장이 불러일으키는 끔찍한 느낌과 기둥집 대신 들어선 음침한 시청으로 말미암아 오늘날까지도 풍겨 주는 저 불길한 분위기를 이미 그 당시부터 지니고 있었다. 이 포석 깔린 마당 한가운데 나란히 세워져 있던 교수대와 죄인 공시대는, 건강한 생명으로 넘쳐흐르는 숱한 인간들이 죽어간 이 숙명적인 광장-50년 뒤의 저 생 발리에 열병, 저 교수대의 공포병,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게 아니라 인간으로부터 오므로 모든 병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병인 그 열병이 엄습하게 될-에서 눈을 돌리게 하는 데 적지 않게 이바지했던 것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사형은 300년 전만 하더라도 아직은 그 쇠바퀴며 돌 교수대며 포석 바닥에 견고히 고정시켜 놓은 그 모든 형구로써 그레브 광장과 중앙 시장, 도피느 광장, 크루아 뒤 트라와르, 저 끔찍한 몽포콩, 세르장 문 밖, 플라소 샤, 생 드니 문, 보데 문, 생 자크 문 등을 가득 채워 놓고 있었는데, 사제장과 주교와 성당 참사회와 사법권을 가진 수도원장들의 교수대는 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오늘날 이 봉건시대의 낡은 유물은 그 갑옷의 모든 부분과 그 풍부한 형벌과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의 형법 제도를 차례차례 잃어버린 뒤 우리의 법률과 도시로부터 거의 추방되고, 법전에서 몰려나고, 광장에서 쫓겨나고 하여, 이제 우리의 넓은 파리에서 그레브의 불명예스런 한구석밖에 갖고 있지 못하며, 현행범으로 잡힐까 봐 늘 두려워하는 듯이 보이는, 사람 눈을 피하고 불안스러워하고 부끄러워하는 듯한 하나의 가련한 단두대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데, 이토록 그것은 성공을 거둔 뒤 재빨리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3
피에르 그랭구아르는 그레브 광장에 도착했을 때 제법 긴장되었다. 그는 퐁토 샹즈 다리의 혼잡과 그 모든 깃발을 피하기 위해 퐁토 뫼니에 다리를 지나왔었으나, 주교의 소유물인 여러 물레방아 바퀴가 지나갈 때 그에게 물을 튀겨 남루한 옷이 젖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의 연극의 실패로 더욱 떨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광장 한복판에서 훨훨 타오르고 있는 불을 향해 급히 다가갔다. 그러나 수많은 군중이 그 주위를 완전히 둘러싸고 있었다.
"망할 자식들 같으니라고!" 하고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왜냐하면 그랭구아르는 극시인답게 곧잘 독백하기를 좋아했으니까.
"저것들이 불을 가로막고 있구나! 난 정말 불이 필요한데. 내 신은 물을 들이켰고, 저 망할 놈의 주교 같으니라고! 대체 주교가 방앗간을 갖고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단 말이야! 그런데 저 멍청이들이 자리를 비켜 줄지 어디 좀 보자. 저 녀석들은 저기서 뭘 하는지 모르겠군! 음, 불을 쬐고 있군. 썩 즐거운 일이렷다! 백 다발의 나뭇단이 타는 걸 바라보고 있군."
더 가까이 가서 살펴본 즉, 빙 둘러서 있는 군중은 그저 불을 쬐기 위해 모인 것보다는 훨씬 많은 수였으며, 그렇게 구경꾼들이 몰려와 있는 것은 단지 백 다발의 나뭇단이 아름답게 타오르는 것에 끌려 온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군중과 불 사이에 비어 있는 넓은 공지에서 아가씨 하나가 춤을 추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 아가씨가 인간인지 천사인지, 아무리 그랭구아르가 회의적인 철학자요, 아이러니컬한 시인이라 할지라도 첫 순간엔 해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만큼 그 아가씨의 눈부신 모습에 매혹되었던 것이다.
아가씨는 키가 크지 않았으나 커 보였으니, 그토록 그녀의 몸매는 우뚝 솟아 있었다. 만일 낮이라면 그녀의 살갗은 저 안달루시아의 여성들은 아름다운 금빛 광택을 내고 있음에 틀림없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발 또한 안달루시아의 여성다웠을 것이, 그 발은 그 고운 신 속에서 좁은 듯하면서도 또한 편해 보였다.
아가씨는 발 아래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낡은 페르시아 양탄자 위에서 춤추고, 빙글빙글 맴돌고, 소용돌이치고 있었으며, 빙그르르 돌면서 그 반짝이는 얼굴이 사람들 앞을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커다란 검은 눈은 사람들에게 번갯불을 던지는 것이었다. 그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입을 벌린 채 응시하고 있었는데, 아닌 게 아니라 그 포동포동하고 깨끗한 두 팔로 꿀벌처럼 발랄한 그 가냘픈 허리 위에 들어올린, 방울 달린 조그만 북을 동당동당 치면서 춤추는 것을 보면, 그 주름 없는 금빛 가슴 옷이며, 부풀어 오르는 울긋불긋한 치마, 드러난 어깨, 때때로 치맛자락을 헤치고 나오는 그 섬섬한 다리, 검은 머리칼, 그리고 불길이 타오르는 그 눈과 더불어 그것은 하나의 초자연적 창조물이었다.
"정말!" 하고 그랭구아르는 중얼댔다.
"저건 불도마뱀이야. 저건 님프야, 저건 여신이야. 저건 메날레앵 산에 사는 박카스 신의 무녀야!"
이때 그 님프의 땋아 늘인 머리가 풀려, 거기 꽂혀 있던 노란 구리쇠 조각 하나가 땅에 굴러 떨어졌다.
"체, 아니군! 집시 계집애잖아" 하고 그는 말했다. 환상은 사라져 버렸다. 아가씨는 다시 춤추기 시작했다. 그녀는 땅바닥에서 두 자루의 칼을 집어 들어, 칼끝을 이마에 대곤 자기가 도는 것과는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 그건 과연 집시 여자일 따름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랭구아르가 환멸을 느꼈다 하더라도 이 광경 모두는 마력과 매력이 없지 않았으니, 기쁨의 화톳불은 강렬한 붉은 빛으로 장면을 환히 비추고, 빙 둘러서 있는 군중의 얼굴 위와 그 젊은 아가씨의 이마 위에 뛰노는 불빛은, 광장의 안쪽까지, 그리고 한편으론 돌 교수대 위에 사람들의 그림자로 흔들리는 희번한 반사광을 던졌다.
그 불빛이 주홍빛으로 물들이고 있는 수많은 얼굴 가운데, 다른 어떤 사람보다 더 춤추는 아가씨를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는 한 얼굴이 있었다. 그것은 준엄하고 침착하고 침울한 사나이의 얼굴이었다. 그 옷이 주위의 군중에 가려져 있는 이 사나이는 서른다섯 살이 넘어 보이지 않았으나, 이미 대머리여서 관자놀이에 반백의 듬성듬성한 머리칼이 겨우 몇 뭉치 있을까말까 했으며, 넓은 이마에는 주름살이 패기 시작하고 있었지만, 쑥 들어간 눈엔 비상한 젊음이, 타오르는 생명이, 깊은 정열이 깃들어 있었다. 그는 그 눈을 줄곧 집시 아가씨에게서 떼지 않고 있었는데, 그 열여섯 살의 아가씨가 모든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가운데 미친 듯 춤추고 폴딱폴딱 뛰고 있는 동안, 이 사나이의 몽상은 한층 침울해져 가는 것 같아 보였다. 때때로 미소와 한숨이 그의 입술 위에서 마주치곤 했으나, 미소는 한숨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이윽고 아가씨는 숨이 차서 춤추기를 멈추었고, 군중은 기쁜 듯 박수갈채를 보냈다.
"잘리!" 하고 그녀는 해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러자 그랭구아르는, 여지껏 보이지 않던 염소 한 마리가, 금빛 뿔과 금빛 발과 금빛 목걸이를 지닌 민첩하고 활발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희고 예쁜 염소 새기 한 마리가, 그때까지 양탄자의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주인 아가씨가 춤추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가 일어나 오는 것을 보았다. 그런 다음 그녀는 앉아서 그 방울 달린 조그만 북을 맵시도 아리땁게 염소에게 내밀었다.
"잘리!"
그녀는 염소를 향해 물었다.
"지금이 무슨 달이니?"
그러자 염소는 앞발을 들어 북을 한 번 쳤다. 과연 지금은 1월이었다. 군중은 환성을 내질렀다.
"잘리!" 하고 아가씨는 또 북을 다른 쪽으로 돌리면서 말했다.
"오늘은 며칠이지?"
그러자 잘리는 그 조그만 금빛 발을 들어 북을 여섯 번 치는 것이었다.
"잘리!" 하고 집시 아가씨는 다시금 북을 새로 돌려 놓으면서 말을 계속했다.
"지금 몇 시지?"
잘리는 일곱 번을 쳤다. 그와 동시에 광장의 큰 시계가 일곱 시를 알리는 종을 울렸다. 구경꾼들은 감탄해 마지않았다.
"이건 마술이야"
군중 속에서 한 음산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집시 아가씨로부터 눈을 떼지 않고 있었던 그 대머리 사나이의 목소리였다.
여자는 몸을 바르르 떨며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 순간 박수갈채가 터져 그 음침한 소음을 지워 버렸다. 그 박수 소리는 아가씨의 머릿속에서도 그 언짢은 음성을 완전히 씻어 버렸으므로, 그녀는 다시금 염소에게 질문을 했다.
"잘리, 성축절에 시의 기마대장 기샤르 그랑 나리는 어떻게 하지?"
잘리는 뒷발만으로 일어서서 매애매애 울며 어찌나 점잖게 걷기 시작했던지, 둘러서 구경꾼들은 모두 기마대장의 타산적인 신앙심에 관한 그 풍자적인 흉내에 폭소를 터뜨렸다.
"잘리!"
아가씨는 자꾸만 커져 가는 성공에 용기를 얻어 말을 이었다.
"교회 법정 검사인 자크 샤르몰뤼 나리는 어떻게 설교하지?"
염소는 엉덩이를 깔고 앉아 매애매애 울기 시작하면서 어찌나 기묘하게 앞발을 흔드는지, 그 서투른 프랑스어와 라틴어를 제외하곤 억양도 태도도 자크 샤르몰뤼를 고스란히 닮아 있었다. 군중은 더욱 박수갈채를 보냈다.
"신성 모독이다!"
대머리 사나이가 또 외쳤다. 집시 아가씨는 다시 한 번 돌아보았다.
"어머머!"
그녀는 말했다.
"그 얄미운 사내잖아!"
그러곤 아랫입술을 쑥 내밀어 버릇인 양 입을 삐쭉거리고, 발꿈치로 뱅그르르 돌고 군중들의 적선을 방울 달린 북 속에 받아 모으기 시작했다. 작은 동전, 큰 동전, 뱅패 동전, 독수리 동전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갑자기 아가씨는 그랭구아르 앞을 지나갔다. 그랭구아르가 엉겹결에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으므로 그녀는 걸음을 멈췄다.
"제기랄!"
시인은 자기 호주머니의 밑바닥에서 현실을, 다시 말하자면 텅 비어 있음을 발견하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아리따운 아가씨는 거기 그냥 선 채, 그 커다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면서 그에게 북을 내밀곤 기다리고 있었다.
그랭구아르는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만약 주머니 속에 돈이 있었더라면 그는 틀림없이 그것을 아가씨에게 주었을 것이었으나, 그랭구아르는 한 푼도 갖고 있지 않았다. 이 때 뜻하지 않은 일이 그를 도왔다.
"사라져 버리지 못하겠느냐, 이 보헤미아의 메뚜기야!"
날카롭게 외치는 목소리 하나가 광장의 가장 컴컴한 구석에서 터져 나왔다. 아가씨는 소스라쳐 돌아보았다. 그것은 대머리 사내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건 여자의 목소리, 믿음 깊지만 심술궂은 목소리였다. 집시 아가씨를 무섭게 한 그 고함 소리는 그곳을 얼씬거리고 있던 한 떼의 어린이들을 기쁘게 만들었다.
"저건 투르 롤랑 탑의 은자다" 하고 그들은 요란하게 웃으면서 외쳤다.
"무섭게 으르렁대고 있다! 저 늙은이 저녁밥을 안 먹었나? 시의 식탁에 뭐고 남은 게 있으면 갖다 주자!"
모두들 소위 '기둥집' 쪽으로 뛰어갔다.
그랭구아르는 춤추는 아가씨가 당황한 틈을 타서 줄행랑을 쳤다. 그는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 자기 역시 저녁을 먹지 않았다는 생각이 났다. 그래서 그는 재빨리 식탁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개구쟁이들이 그보다 더 좋은 다리를 가지고 있어서, 그가 도착했을 때 그들은 이미 식탁을 깨끗이 치워 버렸다. 딱딱한 빵 한 조각 남아 있지 않았다. 이제 그곳 벽 위에는 마티외 비테르느가 그려 놓은 몇 송이의 가느다란 나리꽃만이 몇 줄기의 장미와 뒤섞여 있을 뿐이었다. 우울한 저녁 식탁이었다. 저녁밥을 먹지 않고 잔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지만, 저녁밥을 먹지 않는다는 것과 어디서 자야 할지를 모른다는 것은 더욱더 유쾌하지 못한 노릇이다. 그랭구아르가 바로 그런 입장에 빠져 있었다. 빵도 없고 집도 없었다. 그는 사방에서 자연적인 욕구에 쫓기고 있었으며, 그 욕구가 무척 까다로움을 발견하고 있었다.
오래 전부터 그는 다음과 같은 진리를 발견하고 있었다. 즉, 주피터는 염세증 발작이 진행 중일 때 인간을 창조했으며, 현인은 평생 그의 운명이 그의 철학을 계엄령 하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그랭구아르로 말하자면, 이렇게도 완전한 봉쇄를 여지껏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밥통이 항복의 종을 울리는 소리를 듣고 있었으며, 기구한 팔자가 자신의 철학에 기아 전술을 쓴다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우울한 사색 속에 자꾸만 빠져들어 가고 있을 때, 감미롭기 그지없으면서도 이상야릇한 노랫소리가 들려와 그는 퍼뜩 몽상에서 깨어났다. 그 예쁜 집시 처녀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그녀의 춤과 같고 그녀의 아름다움과 같았다. 그것은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매혹이었다. 그 어떤 경쾌하고 맑고 낭랑하고 훨훨 나는 것이라고나 할까. 그것은 끊임없이 피어나는 것, 선율, 뜻하지 않은 억양, 그리고 날카로움이 섞인 단순한 구절, 그리고 꾀꼬리도 당황케 했을 조화로움을 잃지 않은 음계의 비약, 또 그녀의 젖가슴처럼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는 옥타브의 부드러운 물결침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은 천태만상으로, 가장 자유스런 영감으로부터 가장 우아한 품위에 이르기까지, 자기가 부르는 노래의 온갖 변화를 따르고 있었다.
아가씨가 부르는 노랫말은 그랭구아르가 모르는 언어였고, 또 그녀 자신도 모르는 듯한 것이, 그녀가 노래에 주고 있는 표정은 가사의 뜻과 거의 맞지가 않았다. 그리하여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다음의 시 구절은 미칠 듯 즐거운 것이었다.
그들은 값진 상자 하나를 기둥 속에서 발견했다네.
그 안엔 무서운 얼굴들이 그려진 새로운 군기들이 들어 있었네.
아라비아의 기사들이 꿈쩍도 못하리 만큼 칼을 차고 있었네.
잘 나가는 강철 활들을...
노래를 듣고 있던 그랭구아르는 자기 눈에 물방울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녀의 노래는 무엇보다 기쁨을 나타내고 있었으며, 그녀는 새처럼 고요하게 노래하고 있는 중이었다.
집시 아가씨의 노래는 그랭구아르의 몽상을 흐려 놓았으나, 그것은 백조가 물을 흐려 놓는 것과 같았다. 그는 그녀의 노래를 만사를 잊고 황홀하게 듣고 있었다. 그가 스스로 괴로움을 느끼지 않은 것은 몇 시간 이래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너무 짧았다. 아가씨의 춤을 중단케 했던 것과 같은 여자의 목소리가 노래를 중단시킨 것이다.
"아가릴 못 닥치겠느냐, 지옥의 매미야?"
여자는 광장의 컴컴한 구석 쪽에서 외쳤다. 가엾은 매미는 부르던 노래를 뚝 그쳤다. 그랭구아르는 귀를 막고 외쳤다.
"빌어먹을 이 바진 톱 같으니라고, 바이올린을 부숴 놓다니!"
그 동안 다른 구경꾼들도 투덜거리고 있었다.
"뒈져라, 망할 년 같으니!" 하고 말하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었다. 그리고 만일 숱한 거리를 쏘다닌 뒤 바로 이대 횃불을 켜 와글와글 떠들면서 그레브 광장으로 쏟아져 나오는 광인 교황의 행렬에 그들의 주의가 쏠리지 않았더라면, 흥을 망친 그 노파는 집시 아가씨를 공격한 탓으로 맞아 죽었을지도 모른다.
재판소에서 떠난 이 행렬은 도중에 차츰 짜여지고, 파리에 사는 모든 불량배며 한가로운 도둑놈들과 부랑자들로 불어나 있었으므로, 그것이 광장에 도착했을 땐 어마어마했다.
그 군중의 한복판엔, 서기단의 임원들이 많은 촛불로 밝혀진 들것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그리고 이 들것 위에서는 법의를 입고 지팡이를 짚고 관을 쓴, 새로 뽑힌 광인 교황이, 노틀담의 종치기 꼽추 카지모도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재판소에서 광장에 이르는 동안 카지모도의 추악한 얼굴이 어느 정도로 자랑과 행복감으로 반짝이게 되었는지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는 여태껏 모욕과 자기 처지에 대한 경멸과 자기 몸에 대한 혐오감밖에 몰랐었다. 그러므로 귀머거리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가 미움을 받음으로써 자기 역시 미워하고 있는 그 군중의 박수갈채를 진짜 교황처럼 즐기고 있었다. 자기의 백성이 미치광이들과 병신패들과 도둑놈들과 비렁뱅이들의 무리라 할지라도 무슨 상관이랴! 그래도 그것은 백성임에 변함이 없고 자기는 임금인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 모든 야릇한 환호를, 그 모든 우롱적인 존경을 정말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군중의 그 존경과 환호 속엔 매우 현실적인 두려움도 약간 섞여 있었다는 것을 말해 두지 않으면 안 되겠다. 왜냐하면 이 꼽추는 단단하니까. 왜냐하면 이 앙가발이는 날쌔니까. 왜냐하면 이 귀머거리는 심술궂으니까. 결국 이 세 가지 점이 조롱을 완화시켰던 것이다.
게다가 이 새로 뽑힌 광인 교황이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과 자신의 자아내 주는 감정을 스스로 이해하고 있으리라곤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다. 이 추악한 육체 속에 깃들인 정신은 그 자체가 필연적으로 어떤 불완전하고 희미한 것을 갖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때 그가 느끼고 있었던 것은 매우 막연하고 흐리멍덩하고 몽롱한 것이었다. 다만 기쁨이 드러나 보이고 자랑이 넘쳐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이 음울하고 불행한 얼굴 주위엔 반짝임이 보였다.
그랬으므로, 그렇게 반도취 상태에 잠겨 있는 카지모도가 '기둥집' 앞을 의기 양양히 지나가고 있을 때, 난데없이 군중 속에서 한 사나이가 뛰어나와 격분한 듯 그의 손으로부터 광인 교황의 표지인 그 금빛 나무지팡이를 빼앗는 것을 본 사람들은 무척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대담함 인물은 바로 대머리 사나이, 조금 전에 아가씨의 구경꾼들 틈에 섞여 있다가, 위험과 증오의 말로 가엾은 아가씨를 오싹하게 만들었던 장본인이었다. 그는 성직자의 옷을 입고 있었다. 그가 군중 속에서 나왔을 때, 그때까지 전혀 보질 못하고 있었던 그랭구아르는 곧장 알아보았다. 그는 깜짝 놀라 외쳤다.
"저분은 동 클로드 프롤로 부주교님이 아닌가! 대관절 그가 이 흉측한 꼽추에게 무슨 볼일이 있단 말인가? 그는 잡아먹히고 말지 않을까?"
그러자 과연 무서운 비명 소리가 났다. 그 무시무시한 카지모도가 들것에서 뛰어내렸고, 여자들은 그가 부주교를 해치는 것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돌렸다.
그는 부주교 옆으로 폴딱 뛰어가 그를 바라보며 무릎을 끊었다. 신부는 그의 머리에 씌워진 관을 홱 벗겨 내고, 지팡이를 잡아 부러뜨리고, 그 번득거리는 법의를 찢어 버렸다.
카지모도는 여전히 무릎을 끊은 채 고개를 수그리고 두 손을 마주잡고 있었다. 그런 뒤 그들 사이엔 신호와 몸짓의 이상한 대화가 벌어졌다. 왜냐하면 어느 쪽에서도 말은 하지 않고 있었으니까.
부주교는 성을 내며 윽박지르면서 명령하는 것 같았고, 카지모도는 엎드려서 공손한 태도로 애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카지모도는 엄지손가락 하나로도 그를 으깨 버릴 수 있었으리라.
이윽고 부주교는 카지모도의 억센 어깨를 사정없이 잡아 흔들더니 일어나서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카지모도는 일어섰다. 그러자 떼거리들은, 처음엔 어리둥절하다가 정신을 차려, 그처럼 갑자기 옥좌에서 쫓겨난 자기들의 교황을 지키려 했다.
카지모도는 부주교 앞에 서서 굵직한 두 주먹을 휘둘러 보이고, 성난 호랑이처럼 이빨을 으드득 갈면서 덤비는 자들을 쏘아보았다. 부주교는 평소의 침울하고 엄격한 태도로 되돌아가, 카지모도에게 몸짓을 하곤 말없이 물러갔다. 카지모도는 급히 군중을 분산시키면서 부주교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들이 군중을 헤치고 광장을 지나갈 때 한가로이 구경하던 떼거리들이 그들을 따라가려고 했다. 그러자 카지모도는 뒤로 돌아, 뒷걸음질 치며 부주교를 따라갔다. 땅딸막한 키에 험상궂고 괴물 같은 몰골로 팔다리를 힘껏 놀리고, 멧돼지 같은 이빨을 하고 들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면서.
사람들은 단지 그 두 사람이, 감히 아무도 뒤쫓을 수 없는 컴컴하고 좁은 거리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4
한편 그랭구아르는 무턱대고 집시 아가씨를 뒤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가 염소와 함께 쿠텔르리 거리로 가는 것을 보았다. 그도 그쪽으로 갔다.
파리의 거리 철학자인 그랭구아르는, 미녀 뒤를 정처가 어딘지도 모르고 따라가는 것처럼 공상에 좋은 건 아무것도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자기 자유 의지의 그런 자의적인 포기 속엔, 저도 모르는 사이 또 하나의 다른 변덕에 자리를 내주곤 하는 그런 변덕 속엔, 끈기 없는 자주성과 맹목적인 복종과의 혼합이, 근본적으로 절충적이고 우유부단하고 복합적이며 모든 극단의 끝을 쥔 채 끊임없이 인간의 모든 성향들의 중간에 매달려서 그것들을 상호 중화시키는 정신의 소유자인 그랭구아르가 좋아하는 자유와 예속 사이의 그 어떤 것이 있었다. 만일 그랭구아르가 우리 시대에 살고 있다면 고전주의자와 낭만주의자의 꼭 중간을 차지하리라.
이것은 그랭구아르가 곧잘 하는 일이거니와, 그처럼 거리에서 행인(특히 여자 행인)의 뒤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어디서 자야 할지 모를 때가 가장 좋은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골똘히 생각에 잠겨 그 아가씨의 뒤를 따랐다. 아가씨는 걸음을 재촉하고, 그 예쁜 염소에게 종종걸음을 치게 하면서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거나, 이날 문을 열어 놓은 유일한 가게인 술집들의 문이 닫히는 것을 보곤 하였다.
우리 시인은 대충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쨌든, 저 여자는 어디고 잘 데가 있음에 틀림없다. 보헤미아 여자들은 인정이 있다고 했어...'
그는 가냘프고 섬세하고 귀여운 그 두 개의 피조물의 조그만 발을, 예쁜 자태를, 맵시 있는 거동을 감탄해 바라보면서 그들을 서로 혼동할 지경이었다. 서로 사이가 좋고 친한 점으로 보아서는 둘 모두 아가씨인 듯싶었고, 날쌔고 능란하게 사뿐사뿐 걸어가는 모습으로 보아서는 둘 모두 염소인 듯싶었다.
거리는 어느덧 캄캄해지고 인적이 뜸해져 갔다. 소등의 종도 이미 오래 전에 울려서, 이젠 매우 드물게 밖엔 행인을 볼 수 없고, 창에서도 불빛을 볼 수 없게 되기 시작했다.
그랭구아르는 그 아가씨의 뒤를 다라 옛날의 생 지노상 묘지 주변에 있는, 고양이가 헝클어 놓은 실타래 같은 골목길의 착잡한 미로로 들어갔다.
"이 거리들은 도무지 조리가 없구나."
끊임없이 같은 곳으로 되돌아오곤 하는 그 무수한 길을 헤매면서 그랭구아르는 그렇게 중얼거렸으나, 그런 길도 아가씨는 훤히 알고 있는 모양으로 서슴지 않고 더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얼마 전부터 그는 아가씨의 주의를 끌었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듯 여러 번 그를 돌아보았으며, 심지어 한 번은 걸음을 뚝 멈추더니, 문이 방긋 열린 빵집에서 새어 나오는 한 줄기 불빛을 이용해 그를 위아래로 유심히 훑어보았는데, 그랭구아르는 그녀가 그렇게 살펴본 다음 자신에게 입을 좀 삐쭉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런 뒤 그녀는 지나쳐 버렸다.
그녀가 그처럼 귀엽게 입을 삐쭉거리는 것을 보고 그랭구아르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아리땁게 얼굴을 찡그린 데엔 틀림없이 멸시와 조소가 담겨 있을 것이라고. 그리하여 그는 머리를 수그리고 포석을 세면서 좀 더 멀찌감치 떨어져 아가씨를 뒤따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길모퉁이에 이르러 그녀가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갑자기 그녀의 날카로운 고함 소리가 들려 왔다. 그는 걸음을 서둘렀다.
거리는 캄캄했다. 그러나 기름을 빨아올린 솜뭉치가, 길모퉁이에 있는 성모 마리아상 밑의 쇠장 안에서 타고 있었으므로, 그랭구아르는 그 아가씨가 웬 두 사내의 팔속에서 버둥거리는가 하면, 사내들은 그녀가 지르는 고함을 막으려고 애쓰고 있음을 알아볼 수 있었다. 가엾은 염소 새끼는 질겁하여 뿔을 수그리면서 매애매애 울었다.
"여보시오, 야경대 양반들!"
그랭구아르는 고함을 지르며 용감하게 다가갔다. 아가씨를 붙잡고 있던 사내들 중 하나가 이쪽으로 돌아보았다. 그것은 천만 뜻밖에도 카지모도의 무시무시한 얼굴이었다. 그랭구아르는 도망치지는 않았으나, 한 걸음도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카지모도가 다가와서 손등으로 한 번 쳐 그를 포도 위 네 걸음쯤 떨어진 곳에 던져 놓고는, 자신의 한쪽 팔위에 명주 목도리처럼 착 휘어진 아가씨를 가지고서 어둠 속으로 재빨리 들어가 버렸다. 그의 공범자는 그를 따라가고, 가엾은 염소는 매애매애 슬피 울면서 그들의 뒤를 쫓아가고 있었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불행한 집시 아가씨는 가까스로 외치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거기 멈춰라, 몹쓸 놈들아! 그리고 그 여자를 이리 내놓아라!"
난데없이 옆 네거리에서 쑥 튀어나온 기병 하나가 벽력같이 외쳤다. 그것은 장검을 손에 들고 완전 무장한 친위 헌병대의 어떤 중대장이었다.
그는 어리둥절해 있는 카지모도의 팔에서 아가씨를 빼내 자기 말안장 위에 옆으로 앉혔는데, 그 무시무시한 꼽추가 놀람에서 깨어나 자신의 약탈물을 되뺏으려고 달려드는 순간, 자기네들의 대장 뒤를 바짝 따라오던 열 대여섯 명의 헌병들이 긴 칼을 손에 쥐고 나타났다.
카지모도는 포위되고 체포되어 꽁꽁 묶였다. 그는 거품을 튀기며 으르렁거리고 물어뜯고 했는데, 만일 이때가 대낮이었다면, 격분으로 말미암아 더욱 흉악해진 그 얼굴만 보고도 순찰대는 모조리 뺑소니쳐 버렸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밤인 까닭에 그의 가장 무서운 무기인 추악함은 힘을 잃고 있었다. 그의 동행자는 싸우는 틈을 타서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집시 아가씨는 기병대장의 안장 위에서 맵시도 아리땁게 몸을 일으켜 두 손을 젊은이의 양어깨 위에 올려놓고, 그 잘생긴 용모와 그가 자기에게 베풀어 준 구원을 무척 기뻐하는 듯 한참 동안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런 뒤 그녀는 먼저 침묵을 깨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한결 부드럽게 해 그에게 말했다.
"성함을 뭐라고 하시나요, 훌륭하신 나리?"
"난 페뷔스 드 샤토페르 중대장입니다, 미인 아가씨!"
그는 몸을 반듯이 일으키면서 대답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페뷔스 중대장이 군대식으로 콧수염을 쓰다듬어 올리는 동안, 땅바닥에 떨어지는 화살처럼 말 아래로 빠져 내려갔다. 이어서 반딧불처럼 사라져 버렸다.
"이런 젠장맞을... 이런 병신보다 저 계집을 붙잡아 놓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중대장은 카지모도의 포승줄을 꼭 죄어 매게 하면서 말했다.
헌병 하나가 대꾸했다.
"별수 있나요, 대장님? 꾀꼬리는 날아가고 두더지만 남았습니다."
5
그랭구아르는 길모퉁이에 나가떨어진 채 정신을 잃고 있었다. 그는 처음 한동안 일종의 비몽사몽 상태에 빠져 있었는데, 그것은 포근한 맛이 없지 않았으며, 집시 아가씨와 염소의 경쾌한 모습이 카지모도의 묵직한 주먹과 뒤범벅돼 꿈결같이 어른거리는 것이었다.
그런 상태는 그러나 조금밖에 계속되니 않았다. 포석과 접촉한 신체 부분에 꽤 차가운 느낌이 들어 퍼뜩 깨어 현실로 되돌아왔다. 그제서야 그는 자기가 진창 한가운데에 있음을 깨달았다.
"망할 놈의 곱사등이 같으니라고!"
그는 입속으로 중얼거리곤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 정신이 얼떨떨하고 많이 다쳐 있었으므로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손은 자유로웠으므로 그는 코를 막고 체념에 빠졌다.
파리의 진창은 유난스레 고약한 냄새가 난다. 그것은 많은 휘발성 아질산염을 포함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니콜라 프라멜 선생과 연금술사들의 의견이기도 한 것이다.
'연금술사'란 단어가 불현듯 그의 머릿속에 클로드 프롤로의 생각을 떠오르게 했다. 그는 아까 언뜻 보던 그 납치 장면이, 집시 아가씨가 두 사내 사이에서 몸부림치고 있던 일이며 카지모도에게 동행자가 있었던 일이 생각났으며, 클로드 부주교의 우울하고 준엄한 얼굴이 어렴풋이 추억 속을 스쳐 갔다.
그렇다면 해괴한 일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고는 그러한 사실에 입각하여 추측의 환상적인 건물을 쌓아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다시 한 번 현실로 돌아와서 "아니 이러! 몸이 얼어붙은 것 같구나!" 하고 외쳤다.
아닌 게 아니라 그곳은 점점 더 견뎌 내기 어려워져 가고 있었다. 질퍽거리는 물의 분자 하나하나가 그랭구아르의 엉덩이에서 발산되는 열의 분자를 빼앗아가, 그의 몸뚱이 온도와 진창의 온도 사이엔 균형이 잡혀 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그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귀찮은 일 하나가 닥쳤다. 한떼의 어린이-부랑아라는 영원한 이름 아래 어느 시대에나 파리의 거리를 쏘다니는 맨발의 거친 꼬마 장난꾸러기-들이, 이웃 사람들이 자고 있는 것은 아랑곳도 없다는 듯 마구 웃고 떠들어 대면서 그랭구아르가 뻗어 있는 네거리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뭔지 알 수 없는 보기 흉한 부대 같은 것을 뒤에 끌고 있었는데, 그들의 나막신 소리는 죽은 사람도 절반쯤 일어났다.
"어이, 어이!" 하고 글들은 목청이 찢어지도록 내지르는 것이었다.
"길모퉁이의 철물장수 무봉 영감이 죽었다. 여기 그 영감의 짚방석이 있다. 이걸로 기쁨의 화톳불을 피우자꾸나!"
그러고는 그랭구아르가 있는 줄도 모르고 옆에 와서는 바로 그 짚방석을 던지는 게 아닌가! 그와 동시에 그들 중 하나가 한 주먹의 짚을 쥐고 불을 붙였다.
"이런 빌어먹을! 난 이제 너무 뜨거워질 게 아닌가?"
하고 그랭구아르는 중얼거렸다. 위기의 순간이었다. 그는 바야흐로 불과 불 사이에 사로잡힐 지경이었다. 그는 안간힘을 썼으며, 마침내 일어나자 개구쟁이들에게 짚방석을 되던지곤 줄행랑을 쳤다.
"철물장수가 되살아났다!" 하고 그들은 그들대로 뺑소니를 쳐 버렸다.
짚방석만이 이 난장판의 주인공으로 남았다. 르 쥐즈 신부가 확언하는 바에 따르면, 다음날 이 지역의 성직자들이 성대한 예식을 갖춰 그것을 주워다가 생트 오포르티느 성당의 보물 박물관에 갖다 놓음으로써, 그 성당지기는 1789년까지 이 모콩세유 거리 모퉁이의 성모 마리아상의 위대한 기적-1482년 정월 초엿새와 이레 사이의 그 기념할 만한 날 밤에 거기 존재해 있기만 함으로써, 악마에게 집을 주기 위해 죽으면서 심술궂게도 자기 넋을 그 짚방석 속에 감추었던 무봉 영감으로부터 마귀를 쫓아 버린 기적-을 가지고 꽤 좋은 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한편 다리야 날 살리라고 달려가면서 거리의 숱한 모서리에 머리를 찧고, 수없이 진창을 뛰어넘고, 숱한 막다른 골목과 네거리를 건너고, 중앙 시장의 온갖 미로를 지나 달아날 구멍을 샅샅이 뒤진 뒤 우리 시인은 뚝 걸음을 멈추었으니, 첫째는 숨이 찼기 때문이요, 둘째는 그의 머릿속에 불쑥 솟아오른 딜레마에 의해 덜미를 잡혔기 때문이다.
"피에르 그랭구아르 선생!" 하고 그는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으면서 자신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그대는 지금 철딱서니 없는 애처럼 달리고 있는 것 같군. 그 장난꾸러기 녀석들은 그대가 그들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대를 두려워하진 않았다. 그대가 북쪽으로 달아나고 있는 동안 그들의 나막신 소리가 남쪽으로 달아나는 것을 그대는 들은 것 같단 말이야. 그렇다면 두 가지 중 한 가지다. 그들은 어쩌면 달아나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런 경우 그들이 경황 중에 잊어버리고 갔을 것임에 틀림없는 그 짚방석이야말로 그대가 오는 아침부터
찾아다닌 바로 그 친절한 잠자리로써, 성모 마리아께서 그대를 위해 기적적으로 보내 주신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 녀석들은 달아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경우 그들은 짚방석에
불쏘시개를 갖다 놓았을 것인 바, 그야말로 그대가 기뻐하며 옷을 말리고 몸을 녹이기에 필요한 게 아니겠는가? 잠자리든 불이든 간에 짚방석은 하늘의 선물이니, 그대가 그토록 찾고 있는 것을 뒤에다 놓아 두고 꼬부랑길에서 달아난다는 건 미친 짓이다"
그리고 그는 오던 길을 되돌아가면서, 사냥개처럼 코를 벌름거리고 귀를 쫑긋 세워 방향을 가늠하고 이리저리 뒤지면서 짚방석을 다시 찾아내려고 애썼다. 그러나 섭섭하게도 허사였다. 있는 것이라곤 막다른 골목과 갈라진 길뿐이어서, 그는 그 한복판에서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끊임없이 머무적거리고 있었다.
"제기랄 놈의 떼거리들 같으니라고!"
이렇게 욕설을 하고 나니 마음이 좀 가벼워졌으며, 게다가 마침 하나의 길고 좁은 골목길 끝에서 불그스름한 불빛 같은 것을 보았을 때, 그는 마침내 사기가 치솟았다.
"햐, 고마워라! 저기서 내 짚방석이 불타고 있네."
그는 다가갔다. 경사지고 진흙투성이고 기울어져 가는 긴 골목길 안으로 겨우 몇 걸음 들어갔을 때, 그는 이상한 것을 보았다. 그 골목엔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니었다. 여기저기에 길을 따라, 뭔지 알 수 없는 막연한 물체들이 기어가고 있었는데, 마치 밤중에 목동의 불을 향해 풀잎에서 풀잎으로 기어가는 둔중한 벌레들처럼 모두들 길 끝에서 흔들리고 있는 불빛을 향해 가고 있었다.
자기 호주머니의 위치를 느끼지 않는 것처럼 모험을 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그랭구아르는 계속 걸어 느릿느릿 기어가는 그 애벌레 같은 것들의 한 놈에게 곧 따라붙었다. 가까이 가 보니 그것은 상처를 입어 두 다리밖에 없는 무슨 벌레처럼, 두 손으로 폴딱폴딱 뛰어가는 한 불행한 앉은뱅이였다. 우리의 시인이 이 사람의 낯짝을 가진 거미 같은 것 옆을 지나가는 순간, 그것은 그를 향해 처량한 소리를 냈다.
"적선 좀 하세요, 나리! 적선 좀 하세요!"
"악마에게나 잡혀 가거라, 이 녀석아"
그랭구아르는 이렇게 말하곤 지나쳐 버렸다. 그는 그 얼쩡거리는 물체들 중의 다른 것 하나를 살펴봤다. 그것은 절름발이에다가 곰배팔이 병신인데, 어떻게나 그 정도가 심한지, 그를 떠받쳐 주고 있는 나무다리의 복잡한 장치가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랭구아르는 고상하고 고전적인 비교를 곧잘 하는지라, 머릿속에서 그를 불카의 살아 있는 삼각대에다 비교했다.
이 살아 있는 삼각대는 지나가는 그에게 인사를 했는데, 자기 모자를 턱 높이에 갖다 멈추면서 시인의 귀에다 입을 대고 외쳤다.
"기사 나리, 빵 한 조각만 살 돈을...!"
"귀에 거슬리는 말이로군. 이 녀석이 그 말의 뜻을 알고 있다면 나보다도 행복한 놈이렸다."
그는 중얼거리다가 갑작스런 연상이 떠올라 자기 이마를 탁 쳤다.
'그런데 대체 그들이 오늘 아침에 에스메랄다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이었을까?'
그는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러나 세 번째로 어떤 것이 그의 길을 가로막았다. 이것은 어떤 것이라기보다도 오히려 어떤 사람으로서 바로 소경이었다. 이 수염 난 얼굴의 조그만 소경은 주위의 공간에서 지팡이로 노를 젓고, 한 마리의 큰 개에게 끌려가면서 야릇한 어조로 콧소리를 내어 말했다.
"도와주십쇼!"
"거 참 반갑군! 내 얼굴이 무척 적선을 잘하는 사람 같아 보이는 모양이지. 내 주머니는 바싹 말라 있는데 이렇게 모두들 내게 동냥을 구하는 걸 보면. 여보게나(그러면서 그는 소경 쪽으로 돌아섰다), 지난 주에 나는 내 마지막 셔츠를 팔았다네."
그렇게 말한 그는 소경에게 등을 돌리고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소경도 그와 동시에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으며, 별안간 앉은뱅이도 곰배팔이도 역시나 주발 소리와 포석 위에 목발 소리를 요란스레 내면서 부랴부랴 따라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가엾은 그랭구아르를 밀치락달치락 쫓아오면서 그들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도와줍쇼!" 하고 소경은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적선을...!" 하고 앉은뱅이도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절름발이는 "빵 한 조각만!" 하고 되풀이하면서 목청을 높이는 것이었다.
그랭구아르는 달리기 시작했다. 소경도 달렸다. 앉은뱅이도 달렸다. 절름발이도 달렸다. 그랭구아르가 골목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앉은뱅이와 소경과 절름발이들이 더욱더 그의 주위에 득실거렸으며, 그리고 곰배팔이들과 애꾸눈들과 상처투성이의 문둥이들이 여기저기 집에서 나오거나 인접한 거리에서 나오고, 혹은 지하실의 환기창에서 나와서는, 아우성을 치고 고함을 지르고 으르렁거렸다. 모두들 절뚝절뚝 불빛 쪽으로 몰려들고 비 온 뒤의 괄태충처럼 진창 속에서 뒹굴고 있었다.
그랭구아르는 여전히 그 세 명에게 쫓기면서, 이러다간 장차 어떻게 될지 짐작도 못한 채, 잔뜩 겁을 집어먹곤 사람들 틈을 걸어갔다. 절름발이들을 돌고, 앉은뱅이들을 건너뛰고, 한 떼의 득실거리는 문둥이들 속에 발이 얽혀 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오던 길로 되돌아가 볼까 하는 생각도 났으나,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그 모든 무리들이 뒤를 막고 있는데다가 그 세 거지가 꽉 붙잡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별수 없이 계속 걸었다. 그 막아 낼 수 없는 물결에 떠밀림과 동시에, 이 모든 것을 일종의 악몽처럼 여기게 해주는 현기증과 공포심에 떠밀리면서.
그는 마침내 거리의 맨 끝에 다다랐다. 그 거리는 널찍한 광장으로 나왔는데, 거기에는 여기저기 흩어져 보이는 수천의 불빛이 흐릿한 밤안개 속에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랭구아르는 자기 다리의 속력에 의해 매달린 세 명의 병신 유령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광장으로 뛰어들었다.
"어딜 가는 거야, 이 사람아!"
절름발이는 목발을 던지면서 외치곤, 파리의 길바닥에서는 여태껏 정상으로 걸어 보지 않았을 그 싱싱한 두 다리로 그의 뒤를 쫓아왔다. 그러는 동안 앉은뱅이는 두 발로 일어서서 그랭구아르의 머리에 무거운 쇠그릇을 씌우고, 소경은 타오르는 듯한 눈으로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여기가 어디죠?"
겁이 난 시인은 물었다.
"흐흐흐, 기적궁이다."
어느새 다가와 있던 네 번째 유령이 대답했다.
"정말이지 소경들이 눈으로 보고 절름발이들이 달음질치는 건 나도 똑똑히 보고 있지만, 그럼 구세주는 어디 있소?"
그들은 이 어눌한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음산한 웃음만 터뜨렸다. 가엾은 시인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과연 그 이름도 무서운 기적궁에 와 있었던 것이다. 어엿한 사람이 이런 시간에 기적궁에 들어온 일은 일찍이 한 번도 없었다. 감히 여기 들어온 경찰관이나 법원 관할의 헌병들은 산산조각이 되어 꺼져 버리던 마술적인 지역. 도둑놈들의 도시, 파리의 얼굴에 붙어 있는 보기 흉한 사마귀. 수도의 거리엔 으레 언제나 넘쳐흘러 있게 마련인 저 죄악과 구걸과 방랑의 개골창이 아침이면 거기서 흘러나오고 밤이면 거기로 되돌아와 괴어서 썩는 시궁창. 집시, 땡땡이 수도사, 타락한 학생, 외국의 모든 무뢰한들이, 우상 숭배자 등 모든 종교의 무뢰한들이, 위장한 상처투성이가 되어 가지고 낮에는 거지 행세를 하는가 하면 밤엔 불한당으로 변하는 거짓의 지역. 한 마디로 말해 도둑질과 매음과 폭력이 파리의 길바닥 위에서 연출하는 저 영원한 연극의 모든 배우들이 이 시대에 옷을 입고 벗는 거대한 갱의실.
당시 파리의 모든 광장이 그러했듯, 그것은 포석도 제대로 깔리지 않은 고르지 못한 광막한 지대였다. 여기저기서 불이 타고 있는데, 그 주위엔 이상한 떼가 득실거리고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은 왔다 갔다 하면서 소리 지르는 것이었다.
날카로운 웃음소리와, 어린애들의 울음소리, 그리고 여자들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 군중의 손이며 머리들이 환히 빛나는 배경 위에 새카맣게 드러나 온갖 괴이한 몸짓을 그려 냈다. 불빛이 커다랗고 일정치 않은 그림자에 섞여서 흔들리고 있는 땅 위에, 때때로 사람 같은 개 한 마리가 지나가는가 하면, 개와 같은 사람 하나가 지나가곤 하는 것이 보였다. 남자도, 여자도, 짐승도, 나이도, 병도, 모든 것이 함께 섞여지고 겹쳐지고 어울려 있었다.
그랭구아르는 당황한 가운데도, 흔들거리는 희미한 불빛으로 그 거대한 광장 주위에 낡은 집들이 보기에도 흉하게 빙 둘러서 있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저마다 한두 개씩 뚫려져 있는 채광창으로 불빛이 보이는, 쪼그라지고 오그라진 그 케케묵은 집들의 정면은, 어둠 속에서 기괴하게 찌푸린 얼굴을 하고 둘러서서 눈을 깜박거리며 악마들의 야회를 바라보는 늙은 여자들의 커다란 머리처럼 여겨졌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새로운 세계, 여태까지 들어보지도 못한, 기괴망측한 파충류의, 개미의, 환상적인 미지의 새로운 세계와도 같았다.
그랭구아르는 더욱더 겁이 나고, 마치 세 개의 집게 같은 그 세 명의 거지들에게 붙잡히고, 자기 주위에서 물결치고 짖어 대는 한 떼의 다른 얼굴들로 귀가 멍해져서 침착을 되찾으려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은 허사였다. 그의 기억과 생각의 줄은 끊어져 버렸으며, 모든 것을 의심하고, 자기가 보는 것과 느끼는 것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여, 끝내 다음과 같은 풀 수 없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이었다 -'내가 존재하므로 저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저것이 존재하므로 내가 존재하는 것일까?'
이때 또록또록한 고함 소리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소란스런 군중 속에서 솟아올랐다.
"그놈을 대왕님께 끌고 가자!"
그러자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찬성을 표했다.
그는 끌려갔다. 서로 앞을 다퉈 그에게 덤벼들었다. 그러자 그 세 거지는 그를 놓지 않고, "이건 우리 거야!" 하고 부르짖으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를 뺏아 내는 것이었다.
그 끔찍한 광장을 가로질러 갈 때 시인의 현기증은 문득 사라졌다. 몇 걸음 걸어간 끝에 그에겐 현실감이 되돌아왔다. 그는 그곳 분위기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처음 순간엔 그의 시인다운 머리로부터, 아니 차라리 그의 텅 빈 위장으로부터 일종의 연기가 솟아올라 사물들과 그의 사이에 퍼져서, 그것들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악몽의 안개 속으로밖에는-모든 윤곽을 떨게 하고, 모든 형태를 찌푸리게 하고, 사물들을 터무니없이 큰 집단으로 보이게 하고, 물건들을 괴물로, 인간들을 유령으로 잡아 늘여 놓는 저 꿈의 암흑 속에서밖에는-보이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그런 환각에 이어 시나브로 보다 덜 착란 되고 보다 덜 확대되는 시각이 생겼다. 현실은 그의 주위에 나타나 눈에 부딪히고 발에 부딪혀, 그가 처음에 자기를 둘러싸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 무서운 극시를 산산이 찢어 놓았다.
그는 자신이 무대가 아니라 진창 속을 걸어가고 있고, 악마들이 아니라 도둑놈들과 팔꿈치를 맞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자기의 영혼이 아니라 생명이 문제되고 있다는 사실을(왜냐하면 강도와 양민 사이에 그렇게도 효과적으로 위치하는 저 귀중한 중재자인 돈주머니가 그에겐 없었으므로) 깨닫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마침내 그 수라장을 더 자세히 더 침착하게 살펴봄으로써, 그는 악마들의 연회에서 술집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기적궁은 기실 하나의 술집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것은 포도주와 동시에 피로 새빨간 불한당의 술집이었다.
6
누더기를 걸친 호송대가 마침내 그를 목적한 장소에 갖다 놓았을 때 그랭구아르의 눈앞에 나타난 광경은 다시없이 범속하고 적나라한 현실이었다.
하나의 커다란 둥근 포석 위에서 활활 타오르며 그 불꽃으로 지금은 비어 있는 삼발이의 다리를 새빨갛게 달구고 있는 커다란 화톳불 주위에는, 낡아빠진 탁자 몇 개가 여기저기에 평행 되도록 가지런히 놓는다거나 그렇진 않더라도 적어도 너무 엉뚱한 각도로 교차되지 않도록 보살핀다거나 하는 기하학적 배려는 털끝만큼도 없이 아무렇게나 세워져 있었다. 또 탁자들 위에는 포도주와 맥주가 철철 흐르는 몇 개의 항아리가 번들거리고 있었으며, 그 항아리들 주위엔 불과 술로 주홍빛이 된 취한 얼굴들이 무수히 모여 있었다. 그들 중 배가 불룩 나오고 쾌활한 얼굴을 한 사내 하나는 뒤룩뒤룩 살찐 논다니 하나를 요란스럽게 껴안은 채였다.
가짜 병신 하나는 휘파람을 불면서 자기의 가짜 상처의 붕대를 푼 뒤, 아침부터 친친 동여매고 있던, 멀쩡하고 튼튼한 무릎의 저림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그 맞은편에는 곰배팔이 하나가 앉아서, 애기똥풀과 쇠피를 가지고 다음날의 병신꼴을 준비하고 있었다. 탁자 두엇쯤 떨어진 곳에서는 순례자의 옷차림을 한 거지가 콧소리를 내며 성 여왕의 애가를 더듬더듬 외고 있었다.
딴 곳에서는 젊은이 하나가 늙은이로부터 간질병 교습을 받는 판인데, 그 늙은이는 그에게 비누 조각을 깨물어서 거품을 내는 기술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또 그 옆에서는 수종 환자 하나가 제 몸의 부기를 빼면서, 같은 탁자에서 그날 저녁에 훔쳐 온 어린애 하나를 갖고 서로 다투는 너댓 명의 도둑년들에게 코를 막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도처에서 너털웃음이 터져 나왔다. 난잡한 노랫소리도 들렸으며, 옆 사람 말은 듣지도 않고 저마다 욕지거리와 육담을 뇌까리면서 제 잇속만 차리고 있었다. 항아리들이 부딪치고, 항아리가 부딪칠 땐 싸움이 벌어지고, 이 빠진 항아리에 누더기가 찍찍 찢어지곤 했다.
커다란 개 한 마리가 꼬리를 깔고 앉아 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린애들 몇이 이 잔치판에 섞여 있었다. 훔쳐 온 아이는 소리를 지르면서 울어 댔다. 또 네 살짜리의 커다란 사내애 하나는 높은 벤치 위에 다리를 대롱거리며 말없이 앉아 있는데, 그 턱은 탁자에 닿아 있었다. 세 번째 아이는 초에서 흘러내리는 녹은 덩이를 손가락으로 탁자 위에 엄숙하게 벌여 놓고 있는 중이었다. 마지막으로 조그만 녀석 하나는 진흙 속에 쭈그리고 앉아 솥 안에 거의 파묻히다시피 되어서는 그 솥을 기와 조각으로 긁고 있었는데, 그 소리를 들으면 음악가는 기절을 하리라.
통 하나가 불 옆에 있고 거지 하나가 그 통 위에 앉았는데, 그것은 즉 옥좌에 임하신 와인 셈이었다. 그랭구아르를 붙잡은 세 거지가 그를 이 통 앞으로 끌고 갔다. 그러자 그 어린애가 들어 있는 솥의 소리를 제외하고는 한동안 법석은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그랭구아르는 숨도 못 쉬고 고개도 들지 못했다.
"사나이여, 네 모자를 벗어라"
그를 붙잡은 세 불한당 중의 하나가 웅얼거렸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 채 깨닫기도 전에 다른 불한당 하나가 그의 모자를 잡아 벗겨 버렸다. 보잘것없는 벙거지였음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햇볕 쬐는 날이나 비 오는 날엔 아직 쓸모가 있었던 것이다. 그랭구아르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는 동안 왕은 앉아 있는 통 위에서 아래쪽으로 말을 던졌다.
"이 악당은 뭐냐?"
위협으로 말미암아 거세게 발음되긴 했으나, 그 목소리를 들었을 때 그랭구아르는, 바로 오늘 아침 청중 속에서 "적선 좀 하슈!" 하고 콧소리를 냄으로써 자신의 연극에 최초의 타격을 가했던 그 목소리가 생각났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과연 그것은 클로팽 트루유푸였다.
클로팽은 왕의 표지를 달곤 있었지만, 누더기를 더 걸치거나 덜 걸치고 있진 않았다. 그의 팔에 있던 상처는 이미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그는 당시 순경들이 군중을 몰아세우는 데 쓰던, 불라유라고 불리는 흰 가죽 회초리 하나를 손에 쥐고 있었으며, 머리엔 위가 좁고 테를 두른 일종의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그것이 어린애의 모자인지 왕관이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엇비슷했다.
그러는 동안 그랭구아르는 무슨 까닭인지 몰라도, 기적궁의 황이 바로 그 대광실의 밉살스런 거지였음을 알아보곤 좀 희망을 되찾아 더듬더듬 말했다.
"나리... 각하... 폐하...,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군요."
"각하든 폐하든 친구든 너 좋을 대로 부르려무나. 그러나 빨리 해라. 네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무슨 할 말이 있느냐?"
"저는 오늘 아침에..."
"이런 제기랄! 네 이름을 말하라. 그밖엔 아무것도 필요 없다. 내 말 들으라. 지금 넌 세 분의 강력한 군주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나 클로팽 트루유푸, 이 왕국의 최고 통수권자인 나와, 저기 머리에 걸레를 두르고 계시는 저 뚱뚱한 양반, 우리 세 사람은 너의 판사다. 너는 우리 왕국의 특권을 침해했다. 네가 야바위꾼이나 골골꾼이나 불거지가 아니라면, 다시 말해 일반인의 말로 도둑놈이나 거지나 떠돌이가 아니라면, 너는 벌을 받아야 한다. 네 신분을 밝혀라. 어서 네 무죄를 증명하라"
"아! 슬픈 일이오만 저는 그런 명예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전 시인이올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거지왕은 우리의 시인의 말을 마치게 두지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널 교수형에 처하겠다... 선량한 시민 나리들이여! 그대들이 그대들의 나라에서 우리의 선량한 시민들을 다루듯, 우린 그대들의 시민을 우리나라에서 다룬다. 그 법률이 고약하다면 그건 너희들의 탓 탓이다. 때때로 저 삼목줄 위에 양민의 찡그린 낯을 볼 필요가 있다. 그건 삼목줄의 명예가 될 것이다... 자, 친구, 저 아가씨들에게 네 누더기를 기꺼이 나눠 줘라. 그들이 술을 마시도록 네 지갑을 줘라. 네가 무슨 종교 의식을 올려야겠다면, 저기 저 사발 속에 우리가 생 피에르 성당에서 훔친 썩 좋은 돌 하느님 하나가 있다. 그의 머리 위에 네 넋을 던지도록 사 분간을 주겠다."
판결은 무시무시했다.
"대왕 및 상감마마"
그랭구아르는 침착하게 말했다(어떻게 된 일인지 그는 이제 꿋꿋한 태도로 되돌아와 단호한 어조로 말하고 있었다).
"여러분께서는 이 점을 생각하시지 않았습니다. 제 이름은 피에르 구랭구아르란 시인으로서, 오늘 아침 재판소의 대광실에서 상연한 우의극의 작가입니다"
"아! 선생, 그게 당신이었어!" 하고 클로팽은 말했다.
"나도 거기 있었지, 제기랄! 그런데 친구, 네가 오늘 아침 우리를 싫증나게 했다고 해서, 그게 오늘 저녁에 교수형을 안 받아도 좋다는 이유가 될까?"
"시인이 거지 틈에 끼여서는 안 된다는 법이 있나요? 방랑자 이솝도 그랬고, 걸객 호메로스도 그랬고, 도둑 메르큐리스도 그랬으며..."
클로팽은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넌 그 알아들을 수 없는 헛소리로 우릴 어리둥절하게 만들 요량이구나. 하지만 어림없다. 너무 사양 말고 네 목을 내놓아라!"
"죄송합니다. 위대한 대왕님"
그랭구아르는 한치도 양보하지 않기 위해 대꾸했다.
"이건 그럴 필요가 있습니다. 잠시 제 말씀을 들어 주세요... 제 말을 듣지 않곤 제게 선고를 내릴 수 없습니다..."
그의 불행한 목소리는 사방에서 나는 소음으로 거의 묻혀 있었다. 그 어린 사내애가 어느 때보다도 더 열심히 손을 긁고 있었으며, 설상가상으로 방금 한 노파가 새빨갛게 단 삼발이 위에 기름으로 가득 찬 프라이팬 하나를 갖다 놓아, 기름이 마치 어릿광대 뒤를 쫓아가는 한떼의 어린애들이 떠드는 것같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거지왕은 두 고위층과 잠시 의논을 한 것 같았다. 그런 뒤 그는 날카롭게 외쳤다.
"좀 조용들 해라!"
그런데도 솥과 프라이팬이 자기 말을 듣지 않고 여전히 그 이중창을 계속했으므로 그는 앉아 있던 동에서 뛰어 내려가, 솥을 힘껏 걷어찼는데, 그것은 어린애와 더불어 열 발짝쯤 굴러갔고, 프라이팬을 걷어차자, 그 기름은 불 속에 깡그리 쏟아져 버렸지만, 그는 어린애의 숨막힌 울음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제 저녁밥이 아름다운 하얀 불꽃으로 변해 버린 그 노파의 투덜거림에도 아랑곳없이, 다시 의젓하게 자기 옥좌로 올라갔다.
"들어라!"
그는 자신의 딱딱한 손으로 보기도 흉한 자기 턱을 쓰다듬으면서 그랭구아르에게 말했다.
"네가 교수형을 면할 이유란 없다. 그게 네게 불쾌해 보이는 건 사실이겠지. 너희들 시민들은 그것에 익숙하질 못하니까. 어쨌든 우린 네게 나쁜 짓은 하지 않는다. 당분간 네가 곤경을 모면할 수 있는 방도를 주겠다... 넌 우리 패에 들어오겠냐?"
목숨이 자신으로부터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체념하기 시작하고 있던 그랭구아르에게 그 제안이 어떤 감명을 주었을지 독자는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열정적으로 생명을 붙잡고 늘어졌다.
"물론, 그렇게 하고말고요!"
"그래, 넌 소매치기단에 가입하는 데 동의한단 말이지?"
"네,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 왕국의 시민이 되는 거지?"
"네, 왕국의 시민이 되겠나이다."
"진정으로?"
"진정으로!"
"그래도 역시, 넌 교수형을 면치 못하리라는 걸 주의해 둔다"
"뭐라고요?"
시인은 눈이 동그랗게 되어 외쳤다.
"다만 넌 나중에 교수형을 당할 것이다. 보다 더 격식을 갖춰, 진짜 파리시의 비용으로, 훌륭한 돌 교수대에서, 양민들에 의해서 말이다. 그건 위안이 될 것이다"
"지당하신 말씀이올시다."
그랭구아르는 순순히 대답했다.
"저는 거지요, 이 왕국의 시민이요, 소매치기요, 뭐든 대왕께서 바라는 대로 되겠나이다. 그리고 위대한 나랏님이시여, 저는 진작부터 그 모든 것이었나이다. 왜냐하면 전 철학자이니까요. 폐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철학은 모든 사물을 포함하고 있으며, 철학자는 모든 인간을 포함하고 있으니까요"
거지왕은 눈살을 찌푸렸다.
"날 누구로 아느냐? 넌 지금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거냐? 난 이제 도둑질은 하지 않는다. 난 그걸 초월하고 있다. 난 사람을 죽인다. 목 치기, 그건 한다만, 소매치기 따위는 않는다 말이야!"
"황송합니다, 각하"
"악당아! 그래, 넌 거지가 되겠단 말이지?"
"물론입니다"
시인은 공손히 대답했다.
"되겠다고 해서 전부 되는 게 아니다. 선의라는 건 스프에 양파를 하나 더 넣어 주는 게 아니며, 천국에 가는 데밖엔 쓸모가 없는 거다. 그런데 천국과 현실은 다르다. 현실 속에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네가 어떤 일에 쓸모가 있다는 걸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되겠으니, 저 마네킨의 주머니를 뒤져라"
"뭐든 원하시는 대로 하겠나이다"
클로팽이 신호를 하자, 몇몇 패들이 둘러섰던 자리에서 떠났다가 잠시 후 되돌아왔다. 그들은 말뚝 두 개를 가져왔는데, 그 아래쪽 끝엔 각각 두 개의 주걱 모양의 뼈대가 달려 쉽사리 말뚝이 땅 위에 서도록 되어 있었다. 그들은 두 말뚝의 뒤쪽 끝에다 들보 하나를 가로질러 놓았다. 그리하여 그것은 매우 훌륭한 하나의 교수대가 되었다.
이제 아무것도 모자라는 건 없었으며, 들보 아래엔 밧줄까지도 보기 좋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결국 저들은 어떻게 하겠다는 걸까?' 하고 그랭구아르는 적이 걱정되어 속으로 생각했다. 같은 순간 방울 소리가 울림으로써 그의 불안도 끝장이 났다.
거지들이 하나의 마네킨 목을 밧줄로 매달아 놓은 것인데, 그것은 일종의 새를 쫓는 허수아비로서, 빨간 옷을 걸쳐 놓았고, 서른 마리의 나귀 목에라도 달 수 있을 만큼 숱한 방울과 작은 종들이 매달려 있었다. 그 수많은 방울들이 밧줄이 흔들림에 따라 잠시 떨리더니 점차 희미해져 마침내 완전히 소리도 나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게 되었다. 클로팽은 그랭구아르에게 마네킨 아래 놓인 비틀거리는 낡은 의자 하나를 가리키며 명령했다.
"저 위로 올라가라"
"이런 맙소사!"
그랭구아르는 못마땅하다는 듯 말했다.
"목뼈가 부러지겠군요. 저 의자는 심하게 절름거려요"
"올라가!"
클로팽이 다시 명령했다. 그랭구아르는 별수 없이 의자 위로 올라갔는데, 머리와 팔이 다소 흔들거리긴 했으나 마침내 중심을 찾기에 이르렀다.
"자, 이젠 오른쪽 발을 왼쪽 다리에 감고 왼쪽 발끝으로 서라"
"오, 각하! 기어코 제 팔이나 다리가 부러지는 걸 보고 싶으신가요?"
"여보게 친구, 넌 너무나 말이 많아. 한 마디로 말해
이렇게 하면 되는 거다. 내가 아까 말한 것처럼, 왼쪽 발끝으로 서라. 그렇게 하면 마네킨의 호주머니에 손이 닿을 것이다. 주머니를 뒤져 거기 있는 지갑을 꺼내라. 그래서 내가 그 모든 일을 방울 소리가 나지 않게 해내면 넌 거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린 여드레 동안 너를 후려치기만 하면 될 것이다"
"오! 제발 그렇게는 안 되길! 만일 제가 방울 소리를 나게 한다면?"
"그럼 넌 교수형이야. 알겠나?"
"아니오, 각하. 난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제 이익은 뭡니까? 이런 경우엔 교수형을 당하고 저런 경우엔 맞는다면..."
"거지가 된다는 건 어떻고? 그게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야? 네 몸뚱이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너를 때린다는 건 바로 이익인 것이다."
"대단히 감사하군요."
"자, 빨리 하자. 마네킨을 뒤져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경고하는데, 단 하나의 방울 소리라도 들리면 넌 마네킨 자리에 매달려야 한다."
떼거리들은 두목의 말에 박수갈채를 보내고 교수대 주위에 빙 둘러섰는데, 그들이 어떻게나 잔인하게 웃어 댔던지, 그랭구아르는 그들이 너무나도 즐거워하고 있으므로 정녕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이제 그에겐 자기에게 강요된 그 무시무시한 시험에 성공한다는 가냘픈 기회를 제외하곤 아무런 희망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그 기회를 잡기로 결심했으나, 바야흐로 자기가 주머니를 털려고 하는 마네킨에게 먼저 열렬한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조그만 구리쇠의 혓바닥을 가진 수천의 방울 하나하나가 그에겐 모두 입을 벌리고 쉬익쉬익 소리를 내며 물려고 드는 독사들의 주둥이 같아 보였다.
"오, 내 목숨이 저 방울들 중에서도 가장 작은 방울의 가장 작은 떨림에 달렸다니...!"
그는 두 손을 마주잡고 중얼거렸다.
그러나 아무런 유예도 핑계도 있을 수 없음을 알고 그는 단단히 각오를 했다. 그는 오른발을 왼발에 감고, 왼쪽 발끝으로 서서 팔을 뻗쳤다. 그러나 마네킨에 손이 닿는 순간, 한 발밖에 딛지 않은 그의 몸뚱어리는 세 발밖에 없는 의자 위에서 비틀거렸다. 그는 반사적으로 마네킨에 기대려다가 그만 균형을 잃고 땅바닥으로 떨어졌는데, 마네킨은 그의 손의 압력에 못 이겨 처음엔 뱅글뱅글 돌다가 두 말뚝 사이에서 장엄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동시에 수천 개의 방울이 떨리는 숙명적인 소리에 그는 귀가 먹먹했다.
"망했구나!"
그는 떨어지면서 외치곤 얼굴을 땅바닥에 댄 채 죽은 듯 있었다.
그러는 동안 그의 머리 위에서는 거지들의 악마 같은 웃음소리가,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하는 거지왕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저 악당을 일으켜 호되게 목을 달아매라!"
그는 일어났다. 사람들은 이미 그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 마네킨을 벗겨 내고 있었다. 놈들은 이어서 그를 의자 위에 올려 세웠다. 클로팽이 그에게 와서 목에 밧줄을 걸고 툭툭 어깨를 두드렸다.
"안녕, 친구요! 넌 이제 빠져나갈 길이 없다"
그랭구아르는 슬며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아무런 희망도 없었다. 모두들 웃고 있었다.
"벨비뉴 레투알, 가로장 위로 기어올라가라."
왕이 한 거대한 거지에게 말하자, 그는 옆에서 나와 가로지른 들보 위로 날쌔게 올라갔다. 그랭구아르는 잠시 후 눈을 들었는데, 그가 자기 머리 위의 가로장 위에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온몸에 소름이 쭉 끼쳤다.
"자, 이젠,"
클로팽 트루유푸는 말을 이었다.
"내가 손바닥을 치면 즉시 앙드리 루즈 너는 의자를 무릎으로 차서 땅바닥에 쓰러뜨려라.
프랑수아 샹트, 넌 저 악당의 두 발에 매달려라. 그리고 벨비뉴, 넌 저 녀석의 어깨 위에 뛰어내려라. 셋이 모두 한꺼번에 해야 한다! 알아들었느냐?"
클로팽은 마치 세 마리의 거미가 한 마리의 파리에 달려들려는 것처럼 그랭구아르에게 덤벼들려고 하는 세 명의 부하들을 바라보았다. 클로팽이 불길 밖의 포도 넝쿨 몇 가지를 태연히 발끝으로 불 속에 밀어 넣고 있는 동안, 우리의 가엾은 수형자는 무시무시한 일순간을 체험했다.
"다들 됐느냐?"
거지왕은 큰 소리로 묻곤, 손뼉을 치려고 손을 폈다. 일 초만 더 있었더라도 끝장이 났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불현듯 무슨 생각이 떠오른 듯 손을 멈추었다.
"아, 잠깐!" 하고 그는 말을 꺼냈다.
"깜박 잊어버리고 있었다. 우린 관습상 한 사내의 목을 매달기 전에 그를 갖고자 하는 계집이 있는가 어떤가 물어 보기로 돼 있다. 빼빼야, 이게 네 마지막 기회다. 넌 계집 거지와 결혼하거나 그렇잖으면 밧줄과 결혼해야 된다."
독자에겐 이 보헤미아식의 율법이 상당히 신기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오늘날까지 영국의 옛 법률 속에는 자세히 적혀 보존되고 있는 바이다.
그랭구아르는 숨을 크게 쉬었다. 그는 반시간 이래 두 번째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감히 그것에 지나치게 기대를 걸 수가 없었다. 다시 통 위로 올라간 클로팽이 외쳤다.
"여봐라! 계집들아, 암컷들아, 너희들 중 마녀로부터 암고양이에 이르기까지, 이 떨거지를 갖고 싶은 화냥년이 있느냐? 어이, 콜레트 샤로니! 엘리자베스 투루뱅! 시모느 조두이느! 라 롱그! 미셀즈나유! 마리 피에드부! 롱 죠레유! 마트리느 지로루! 얘, 이자보 티에리! 와서 봐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내다! 이걸 누가 갖고 싶으냐?"
이런 비참한 상태에 빠져 있는 그랭구아르는 그다지 탐스럽지 못했음에 틀림없다. 계집 거지들은 그런 제의를 시시하게 여겼다. 불행한 시인은 그녀들이 이렇게 대꾸하는 소리를 들었다.
"싫어요! 싫어! 그놈의 목을 매달아요. 그럼 모든 여자들에게 즐거움이 될 거요"
그러나 그 가운데 세 여자가 어슬렁거리며 나와 그의 냄새를 맡으려 했다. 첫째 여자는 얼굴이 네모진 뚱뚱한 계집애였다. 그녀는 철학자의 처량한 옷차림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 남루한 윗도리는 헐어 빠져서 밤 굽는 냄비보다 더 많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계집애는 낯을 찌푸렸다.
둘째 여자는 늙고 검고 쪼글쪼글하며, 기적궁에서도 눈에 거슬릴 만큼 추물이었는데, 그랭구아르의 주위를 빙 돌았다. 그 여자가 자기를 갖고자 하지 않을까 싶어 그는 거의 몸을 떨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 여잔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건 너무 말라 빠졌군." 하고 그 자리를 떠나가 버렸다.
셋째 여자는 꽤 젊고 그다지 추하지 않은 아가씨였다.
"저를 살려 주세요!" 하고 이 가련한 시인은 나직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아가씨는 측은해 하는 듯 한참 그를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수그리고, 자기 치마에 주름을 잡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는 눈으로 그녀의 일거일동을 살피고 있었다. 그것은 마지막 희망의 빛이었던 것이다. 이윽고 아가씨는 "안 돼" 하고 말했다.
"그랬다간 교므 롱그가 나를 때릴 거야"
그 여자도 군중 속으로 돌아갔다.
클로팽은 통 위에 일어서서, 모두가 흥겨워 하는 가운데 경매장 집달관의 말투를 흉내 내어 외쳤다.
"그래, 아무도 원하지 않는단 말이지? 하나, 둘, 셋!"
그런 다음 그는 교수대 쪽으로 돌아서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사형 집행자들이 그랭구아르 옆으로 갔다. 바로 이때 고함 소리 하나가 떼거리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라 에스메랄다다! 라 에스메랄다다!"
그랭구아르는 바르르 떨며 소리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군중이 갈라지며, 하나의 맑고 눈부신 얼굴에게 길을 열어 주었다. 그것은 춤추던 집시 아가씨였다.
이 세상에서도 보기 드문 아가씨는 기적궁 안에서까지도 그 매력과 아름다움의 힘을 미치고 있는 것 같았다. 남녀 패들은 그녀가 걸어 나오는 양옆에 조용히 늘어서 있었으며, 그들의 사나운 얼굴은 그녀를 바라보며 환히 밝아져 가고 있었다.
에스메랄다는 사뿐사뿐 걸어 우리의 시인 옆으로 갔다. 그녀의 예쁜 염소가 그 뒤를 따랐다. 그녀는 그랭구아르를 잠시 바라보더니,
"이 남자의 목을 매다시려는 거예요?" 하고 클로팽에게 정색하고 물었다.
"그렇다, 누이여, 네가 저 녀석을 남편으로 삼지 않는다면..."
거지왕의 대답에 아가씨는 아랫입술을 귀엽게 좀 삐죽거리더니 이윽고 말했다.
"내가 갖겠어요."
그랭구아르는 이때, 자기는 아침부터 하나의 꿈만을 꾸고 있었는데, 이것은 그 계속이라고 확신했다.
운명의 급변은 상냥하긴 했지만 과연 급격하였다. 거지들은 목줄을 끄르고 시인을 의자에서 내려오게 했다. 그리고 늙은 고위층이 한 마디의 말도 없이 찰흙 항아리 하나를 가져왔다. 집시 아가씨는 그것을 받아 그랭구아르에게 내밀었다.
"이걸 땅바닥에 던지세요."
항아리는 깨어져서 네 조각이 났다. 그러자 노인은 그들의 이마 위에 손을 올려놓고 말했다.
"형제여, 이 여자는 네 아내다. 누이여, 이 남자는 네 남편이다, 앞으로 사 년 동안...!"
7
잠시 후 우리의 시인은 천장이 낮고 잘 닫혀 있는 조그만 방 안에 와서, 바로 옆에 매달려 있는 찬장에서 몇 가지 빌려다 놓기만 하면 될 것 같은 식탁 앞에 앉아 좋은 잠자리를 기대하면서, 어여쁜 아가씨를 마주 보고 있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진짜 동화책에 나오는 인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가씨는 그에게 아무런 주의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왔다 갔다 하면서, 의자를 아무렇게나 옮겨 놓기도 하고, 염소와 얘길 나누는가 하면, 이따금 입을 삐쭉거리기도 했다. 이윽고 그녀는 탁자 옆에 와 앉았으므로 그랭구아르는 마음껏 쳐다볼 수가 있었다.
더욱더 몽상 속으로 빠져들어 가면서 '바로 이것이다!' 하고 시인은 생각하는 것이었다.
'라 에스메랄다란 바로 요거다! 거리의 무희! 천사 같은 여인! 대견하고도 하찮은 것! 오늘 아침 내 연극에 마지막 타격을 준 건 바로 이 여자다. 오늘 저녁에 내 목숨을 건진 것 역시 이 여자다. 참으로 아리따운 여자! 나를 이렇게 뺏어 온 것을 보면 나를 미칠 듯 사랑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이런 생각을 머릿속에 품고 그는 아가씨 옆으로 다가갔는데, 그 태도가 어찌나 절도 있으면서 애교가 흐르는지 그녀는 뒷걸음질을 치며 입술을 움직였다.
"대체 저더러 어쩌라는 거예요?"
"그걸 내게 물을 수 있어요, 사랑스런 에스메랄다?"
그랭구아르는 이렇게 대답했는데. 그것이 어찌나 정열적인 어조였던지 스스로 자기 말소리에 놀랐다.
예쁜 아가씨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슨 말씀인지 전 모르겠어요."
"아니, 무슨 말씀을! 난 당신의 것이 아닌가요, 정다운 아가씨? 그리고 당신은 나의 것이 아닌가요?"
그러면서 그는 순진하게 그녀의 허리를 잡았다. 아가씨의 가슴 옷은 헝겊처럼 스스로 그의 손 안에 떨어졌다. 그러자 그녀는 방 저쪽 끝으로 폴짝 뛰어가 몸을 구부리더니, 그것이 언제 어디서 나왔는지 그랭구아르가 미처 볼 겨를도 없는 사이에, 손에 조그만 비수를 집어 들고 다시 몸을 일으켰는데, 입술이 퍼럴 정도로 성이 나고, 뺨은 능금처럼 빨갛고, 눈동자는 번개같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동시에 흰 염소는 그녀 앞으로 와서, 두 개의 매우 뾰족한 금빛의 예쁜 뿔이 솟아 있는 전투적인 이마를 그랭구아르에게 들이댔다.
우리 시인은 당황한 눈으로 염소와 아가씨를 번갈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당신도 참 배짱 좋은 사내군요!"
아가씨가 침묵을 깨뜨렸다.
"미안합니다, 아가씨"
그랭구아르는 빙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그럼 왜 나를 남편으로 삼았지요?"
"당신의 목이 매달리게 내버려 둬야만 했을까요?"
"그렇다면,"
시인은 사랑의 기대에 실망을 느끼며 말하였다.
"당신이 나와 결혼한 건 나를 살려 내겠다는 뜻밖엔 없었단 말이죠?"
"그럼 무슨 딴 생각을 가졌기를 바라세요?"
그랭구아르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 동안에도 에스메랄다의 비수와 염소의 뿔은 여전히 방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에스메랄다 아가씨,"
시인은 말했다.
"타협합시다. 난 법원 서기가 아니니 당신이 시장 나리의 금지령을 무시하고 이렇게 단도를 들고 있다고 해서 부질없이 소송을 하진 않겠어요. 그렇지만 당신도 모르고 있진 않을 거요. 노엘 레스크립뱅이 단검을 휴대했다고 해서 일 주일 전에 파리 주화 10솔의 벌금형을 받은 사실을. 그런데 그건 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고, 난 요점만 말하겠소. 난 당신의 허가와 승낙 없이는 당신에게 접근하지 않겠다는 걸 내 시에 걸고 당신께 맹세하겠어요... 그러나 저녁밥은 좀 주시오"
잠시 아가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멸시하는 듯 입을 삐쭉거리고, 새 새끼처럼 머리를 치켜들고는 깔깔 웃었는데, 그 예쁘장한 비수는 나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벌이 어디다 그 침을 감추는지 그랭구아르는 보지도 못한 사이에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잠시 후 탁자 위에는 흑빵 한 덩어리와 비계 한 조각과 쭈글쭈글한 사과 몇 개, 그리고 한 병의 맥주가 놓여 있었다. 그랭구아르는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그의 포크와 사기 접시가 요란스럽게 딸각거리는 소릴 들어 보면, 그의 모든 욕정은 식욕으로 변해 버린 듯했다.
아가씨는 그 앞에 있는 듯 때때로 자기 생각에 미소 지으면서, 한편 그 보드라운 손으로는 자기 무릎 사이에 끼어 있는 염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타오르는 양초 불이 그 탐식과 몽상의 장면을 환히 밝혀 주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뱃속의 첫 울음소리가 가라앉자 그랭구아르는 이제 사과 한 개밖에 남지 않은 사실을 보고 겉으로나마 다소 부끄러움을 느꼈다.
"당신은 안 드시겠소, 에스메랄다 아가씨?"
그녀는 머릴 흔들어 안 먹겠다고 대답하고, 생각에 잠긴 눈을 들어 방위의 둥근 천장을 응시했다.
'제기랄, 이 여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랭구아르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목소리를 돋우어 불렀다.
"아가씨!"
그녀는 이 소리를 들은 것 같지 않았다. 그는 더욱 큰 소리로 계속했다.
"에스메랄다 아가씨!"
헛수고였다. 처녀의 정신은 딴 데 가 있어서, 그랭구아르의 목소리는 그것을 되돌아오게 할 만한 힘이 없었다. 이때 다행히 염소가 도와주었다.
"왜 그래, 잘리?"
아가씨는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 크게 말했다.
"배가 고프대요"
그랭구아르는 대화를 시작하게 된 것을 무척 기뻐하며 말했다.
에스메랄다는 빵을 부스러뜨리기 시작했고, 잘리는 그녀의 손바닥 안에서 귀엽게 먹고 있었다. 그랭구아르는 그녀가 다시 몽상에 잠길 틈을 주지 않고 용기를 내 미묘한 질문 하나를 던졌다.
"그러니까 나를 남편으로 삼을 생각은 없단 말이죠?"
처녀는 뚫어지게 그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네"
"애인으로?"
그랭구아르는 다시 말을 꺼냈다. 그녀는 또 입술을 삐쭉거리곤 대답했다.
"싫어요."
"친구로는?"
그녀는 그를 한참 바라다보고 곰곰 생각하고 나서 말했다.
"그건 가능하겠죠."
"우정이 무엇인지 아세요?"
"네"
집시 아가씨는 또박또박 대답했다.
"그것은 오누이가 되는 것, 두 넋이 서로 섞여 들지 않고 마주 닿는 것이죠."
"그럼 사랑이란?"
"오, 사랑이란!"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눈은 빛나고 있었다.
"그건 둘이면서도 하나가 되는 거예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하나의 천사 속에 서로 섞여 드는 거예요."
이 거리의 춤추는 여인이 이렇게 말했을 때, 그 아름다움은 이상하게도 그랭구아르의 가슴을 쳤다. 그녀의 장밋빛 입술은 빙그레 미소 짓고 있었고, 그 맑은 이마는 마치 숨결 아래 흐려지는 거울과 같이 때로 어떤 생각 아래 흐려지곤 했으며, 그 내리깐 검은 속눈썹에서는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일종의 빛이 솟아 나와, 라파엘이 그 후 처녀성과 모성의 신비로운 교차점에서 발견했던 저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그녀의 옆모습에 주고 있었다.
그랭구아르는 그럼에도 역시 계속했다.
"그럼 당신 마음에 들기 위해서는 어떡하면 될까요?"
"남자가 돼야만 해요"
"아니, 그렇다면 난 뭔가요?"
"남자라면 머리에 투구를 쓰고, 손에 칼을 쥐고, 뒤꿈치엔 금박차를 달고 있는 거예요"
"쯧, 말이 없으면 남자가 아니란 말이군.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나요?"
그러자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유별난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곧 알게 될 거예요"
"왜 오늘 저녁엔 모르나요?... 왜 나는 안 되나요?"
그녀는 정색을 하고 그를 힐끔 보았다.
"난 나를 지켜 줄 수 있는 남자밖엔 사랑할 수가 없을 거예요."
그랭구아르는 얼굴이 빨개지고 가슴이 뜨끔했다. 그것은 분명 이 아가씨가 두 시간 전 그 위태로운 처지에 빠졌을 때 조금밖에 도와주지 못한 것을 암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날 저녁의 다른 사건들로 말미암아 사라졌었던 그 기억이 되돌아와 그는 자기 이마를 탁 쳤다.
"아참, 맨 먼저 얘길 해야 했을 텐데 그만... 아가씨, 용서해요. 그래 어떻게 해서 카지모도의 손아귀에서 빠져 나오셨지요?"
이 질문은 집시 아가씨를 떨게 했다.
"오! 끔찍한 꼽추 같으니라고!"
그녀는 두 손 안에 얼굴을 파묻곤 심한 추위에 떨듯 와들와들 떨었다.
"참으로 끔찍스런 놈이죠! 그놈이 왜 당신 뒤를 쫓았는지 아시나요?"
"모르겠어요. 한데 당신도 제 뒤를 따라오셨는데, 당신은 왜 따라오셨죠?"
"정말," 하고 그랭구아르는 대답했다.
"나도 모르겠어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랭구아르는 포크를 가지고 탁자를 긁고 있었다. 아가씨는 이젠 생글생글 웃으면서 벽 너머로 무엇인가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기쁨에 찬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얼마 후 그녀는 별안간 노래를 뚝 그치고 잘리를 쓰다듬었다.
"당신은 참 예쁜 짐승을 갖고 있군요."
그랭구아르가 말을 붙였다.
"제 동생이에요"
"사람들은 왜 당신을 라 에스메랄다라고 부르나요?"
"전 몰라요."
"그래요?"
그녀는 사슬로 꿰어 목에 걸고 있던 갸름한 작은 주머니를 가슴에서 꺼냈다. 그 주머니에서는 강력한 장뇌 향기가 풍겼다. 그것은 초록빛 명주로 되어 있고, 그 한복판에 에메랄드를 모방한 한 알의 굵은 초록빛 우리 세공품이 달려 있었다.
"아마 이것 때문일지도 몰라요'
그랭구아르는 그 주머니를 만지려고 했다. 그녀는 뒤로 물러섰다.
"만지진 마세요. 이건 부적인데, 만지면 마력이 훼손되거나, 당신에게 마력이 생겨요"
시인의 호기심은 점점 커졌다.
"누가 그걸 당신에게 주었지요?"
그녀는 자기 입술 위에 손가락을 가만히 갖다 대곤 부적을 품안에 감추었다.
"라 에스메랄다는 어느 나라 말이에요?"
"이집트 말이라 생각해요"
"당신은 프랑스 태생이 아니군요?"
"전 몰라요"
"부모님은 계십니까?"
대답 대신 그녀는 옛 노랫가락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 아빤 수새라오,
우리 엄만 암새라오.
난 거룻배 없이도 물을 건너요,
난 돛배 없이도 물을 건너요.
"그래, 프랑스엔 몇 살 때 오셨나요?"
"아주 어려서요."
"파리엔?"
"작년에. 우리들이 파팔 성문으로 들어올 때 저는 꾀꼬리가 쏜살같이 공중을 날아가는 걸 보았어요. 팔월 그믐께였죠. 전 그걸 보고 올 겨울은 지독히 춥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그랬어요." 하고 그랭구아르는 아가씨가 그렇게 격의 없이 얘기하기 시작하는 것을 기쁘게 여기면서 말했다.
"난 이 겨울은 손가락을 불면서 지냈거든요."
"호호호..."
"아까 그 노인은 누구죠?"
"우리 부족의 어른이셔요."
"그래서 우릴 결혼시켜 주었군요?"
그녀는 버릇처럼 또 입술을 귀엽게 삐쭉거리곤 말했다.
"전 당신 이름조차도 몰라요"
"내 이름요? 알고 싶다면 가르쳐 드리죠. 피에르 그랭구아르예요"
"전 그보다도 더 아름다운 이름을 하나 알고 있어요."
"나쁜 사람이로군! 그러나 상관없어요. 당신에게 화를 내진 않겠어요. 당신이 나를 더 잘 알게 되면 아마 날 사랑하게 되실 거예요. 그리고 당신이 내게 그렇게 흉금을 터놓고 얘길 하셨으니 나도 얘기를 좀 해야겠군요... 그러니까 우선 내가 고네스의 공증인 사무소 소속 징세 청부인의 아들이라는 걸 아셔야겠죠. 이십 년 전, 파리가 포위되었을 때 우리 아버지는 부르고뉴 군사들에게 목 졸려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피카르디 군사들에게 배를 찔려 돌아가셨지요. 난 여섯 살 때 고아가 되었는데, 그때 내 발에 신바닥이라고 하는 것은 파리의 포석밖에 없었죠. 내가 어떻게 여섯 살 때부터 열여섯 살까지의 세월을 지내 왔는지 모르겠어요. 여기서 한 과일장수 여자가 내게 자두 하나를 던져 주는가 하면, 저기선 빵장수가 빵 껍질을 던져 주곤 했어요. 겨울엔 상스 대주교관의 현관 아래서 햇볕을 쬐고 지지요. 군인도 되어 봤지만 난 그렇게 용감하질 못했어요. 수도사도 되어 봤지만 난 충분히 신앙심이 깊질 못했어요. 그리고 난 또 술을 잘 못 마시거든요. 난 학교 선생이 될 소질이 더 많이 있었어요. 내가 글을 읽을 줄 몰랐던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건 이유가 되지 않아요. 난 얼마쯤 지난 뒤 나 자신은 무엇에도 뭔가가 모자란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내가 아무것에도 쓸모없다는 걸 알곤 기꺼이 시인이 되었지요. 그건 떠돌아다니는 사람이라면 언제라도 가질 수 있는 직업이고, 남의 것을 도둑질 하는 것보다는 나은 거죠. 다행히 난 어느 날 노틀담의 부주교님인 클로드프롤로를 만났어요. 그분은 내게 관심을 가져 주었는데, 오늘날 내가 라틴어를 알고, 스콜라 철학에도, 신학에도, 음률학에도, 또 저 지혜 중의 지혜인 연금술에도 무식하지 않을 만큼 학자가 된 건 그 양반 덕택이지요. 보시다시피 난 시시한 신랑감이 아녜요. 난 여러 가지 재미있는 곡예를 알고 있으니까 당신 염소에게 그걸 가르쳐 주겠어요. 예를 들면, 그 물방아들이 뫼니에 다리를 건너가는 행인에게 내내 물을 튀기는 저 망할 놈의 위선자 파리의 주교를 흉내 내는 짓이라든지 말요. 그리고 또 내 연극은
만약 그 값을 정당하게 치러 준다면 내게 많은 주화를 가져다 줄 거예요. 끝으로 나는 당신이 명령하시는 대로 받들겠어요. 난 당신 좋을 대로 살아가려고 각오하고 있어요. 그렇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신다면 부부간으로, 그보다 더 좋다고 생각하신다면 남매간으로 말예요."
그랭구아르는 입을 다물고 자기 장광설의 효과를 기다렸다. 아가씨는 가만히 땅바닥을 응시하고 있다가 나직한 목소리로 물어 왔다.
"페뷔스란 무슨 뜻이에요?"
그랭구아르는 자신의 연설과 그 질문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지 잘 알진 못했으나, 자기의 박식을 과시하는 것이 싫지는 않았다.
"그건 태양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예요."
"태양!" 하고 아가씨는 탄성을 질렀다.
"그건 아주 미남의 사수였던 신의 이름이죠."
그랭구아르는 덧붙였다.
"신이라고요!"
되묻는 아가씨의 어조 속엔 생각에 잠긴 듯한 정열적인 것이 있었다.
이때 그녀의 팔찌 하나가 풀려 땅에 떨어졌다. 그랭구아르는 그것을 집으려고 허리를 구부렸다. 그가 다시 허리를 폈을 때 아가씨와 염소는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이어서 빗장 소리가 들렸다.
"아, 슬프다! 그런데 내게 침대라도 하나 남겨 놓고 갔을까?"
우리의 철학자는 방 안을 빙 둘러보았다. 잠을 자기에 알맞는 가구라곤 좀 기다란 나무 상자 하나밖에 없었는데, 그것도 그 뚜껑이 닫혀 있었으므로 그랭구아르가 그 위에 드러누웠을 땐, 미크 로메가스(역주:볼테르의 단편 소설의 주인공. 키가
80리에 달하는 거인)가 알프스 산 위에 드러누웠을 때 느꼈을 감각과 비슷한 느낌을 그에게 가져다주었다.
우리 시인은 자신을 될수록 거기에 잘 적응시키면서 말했다.
"체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건 참 이상한 결혼 첫날밤이구나. 항아리를 깨뜨리는 이 결혼식엔 그 어떤 순진하고도 시대에 뒤떨어진 점이 있었어."
제3장 노틀담 성당
1
파리의 노틀담 성당은 오늘날에도 역시 장엄하고 숭고한 건물이리라. 그러나 그것이 낡아 가면서도 계속 아름다운 자기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해도, 세월과 인간들이 동시에 이 훌륭한 건축물에 입힌 무수한 풍화와 훼손 앞에서 한숨을 쉬지 않고 분개하지 않기란 어려운 노릇이다.
만일 이 옛 성당에 가해진 무수한 파괴의 흔적들을 독자와 함께 하나하나 살펴볼 틈이 있다면, 세월의 몫은 하찮은 것이고, 최악의 것은 인간, 특히 건축 예술가들의 몫임을 알 것이다.
노틀담의 연대기 저자들의 말마따나, 그 큰 덩치로 말미암아 구경꾼에게 두려움을 던지는 이 장엄한 대성당을 보러 갈 때, 지금도 아직 볼 수 있는 그대로의 정면으로 경건하게 돌아가 보자.
오늘날 이 정면엔 세 가지의 중요한 것이 결핍되어 있다. 우선 옛날엔 그것을 땅바닥 위에 높이 솟아 올리고 있었던 열한 층의 계단이며, 다음엔 세 현관문의 벽 앞을 차지하고 있었던 조각상들의 아래쪽 계열, 그리고 이층 화랑을 튼튼히 받쳐 주고 있는, 실드베르로부터 시작해 필립 위귀스트에 이르기까지 '제국의 능금'을 손에 잡고 있는 저 옛날 프랑스 역대 왕의 28개 조각상의 위쪽 계열이다.
계단으로 말하자면, 세월의 불가항력적인 흐름이 시테 섬의 지면 높이를 서서히 높임으로써 그것을 사라져 버리게 했다. 그러나 파리 거리의 팽창로로 이 장엄한 건물의 높이를 더해 주고 있던 그 열한 층계를 하나씩 하나씩 먹어 삼키게 하면서도, 세월은 이 성당에서 뺏어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아마 그것에 주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건축물의 낡음을 그 아름다움의 나이로 변화시켜 주는 저 세기의 검은 빛깔을 이 정면에 펼쳐 준 것은 바로 세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 그 두 줄의 조각상들을 없애 버렸는가? 누가 그 벽 앞을 비워 버렸는가? 누가 그 중앙 현관 복판에다 새로운 절충식 첨두홍예를 뚫어 놓았는가? 누가 감히 비스코르네트의 아라비아식 장식 옆에 루이 15세식 조각을 한 그 멋없이 둔중한 문을 끼워 넣었는가?-인간들이다. 현대의 소위 건축 예술가들이다.
그리고 우리 선조들이 경탄의 눈으로 저 현관 정면의 장미꽃과 성당 뒤쪽의 첨두홍예 사이를 바라보던 그 빛깔 짙은 그림 유리 대신 누가 저 싸늘한 흰 유리를 갈아 끼워 놓았는가? 그리고 16세기의 성가대 대장은, 우리의 파괴적인 대주교들이 그 아름다운 노란 물감으로 그들의 대성당을 칠해 놓은 것을 본다면 대체 뭐라고 말할까? 그는 옛날에 망나니가 죄인의 집들을 바로 그런 빛깔을 가지고 칠했었다는 사실을 회상하리라. 그는 이 성스러운 장소가 더럽혀졌다고 생각하곤 달아나 버리리라!
대개 어느 나라에서나, 특히 프랑스에서는 중세의 고귀한 예술이 그렇게 취급돼 왔던 것이다. 그 파괴에 관해 세 가지 방식을 분간할 수 있겠는데, 그 세 가지가 모두 저마다 다른 깊이로 그것에 상처를 입혔으나, 첫째 세월은 눈에 띄지 않게 여기저기 표면에 구멍을 내고 도처에 녹을 슬게 했고, 둘째 정치적, 종교적 혁명들은 그 자체의 성질이 맹목이요 분노인지라 소란스레 달려들어 그 조각물과 세공품의 풍부한 복장을 찢고, 그 둥근 창들을 도려내고, 그 아라비아식 장식과 작은 조각들의 목걸이를 부숴뜨리고, 혹은 자기들의 주교관을 위해 혹은 자기들의 왕관을 위해 그 조각상들을 뽑아 내 버렸으며, 끝으로 갈수록 기괴망측해지고 어리석어진 유행이 있으니, 건축 양식의 필연적인 타락 과정에 있어 르네상스의 무정부주의적인 화려한 탈선으로부터 비롯해 가지가지의 유행이 범람했다.
유행은 혁명보다 더 많은 해독을 끼쳤다. 유행은 뿌리째 뽑아내고, 예술의 뼈대를 침식하고, 형식에 있어서나 상징에 있어서나 논리에 있어서나 미에 있어서나, 건물을 무너뜨리고 베고 자르고 죽여 놓았다. 그런 뒤 유행은 그것을 고쳐 만들었는데, 세월이나 혁명은 적어도 그런 야욕은 없었던 것이다. 유행은 높은 감식안이란 허영적 이름 아래 고딕 건축물의 상처 위에다가 그 시시껄렁한 일시적 장신구를, 그 대리석 리본과 그 금속의 술을 갖다 댔다.
다시 말하거니와, 이러한 건축물들은 예술가나 고고학자나 역사가에 있어서 조금도 흥미 없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이 명시해 주고, 또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인도의 거대한 탑들이 명시해 주는 것으로 보아, 건축술이란 것이 얼마나 원시적인가 하는 사실을 그것들은 느끼게 해주며, 건축술의 최대의 산물은 개인적인 작품이라기보다 더욱 사회적인 작품이요, 천재적인 사람들이 내던져 놓은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고통 겪은 민중들의 아이요, 한 국민이 남겨 놓은 유산이요, 기나긴 세월이 이룩해 놓는 퇴적물이요, 인간 사회의 계속적인 발산물의 침전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해준다.
세월의 물결 하나하나가 그의 충적토를 쌓아올리고, 민족 하나하나가 건물 위에 그의 널판을 올려놓고, 개인 하나 하나가 그의 돌을 가져다 놓는 것이다. 꿀벌들도 그렇게 하고, 해리들도 그렇게 하고, 인간들도 그렇게 하는 것이다.
2
이 성당이 15세기엔 지니고 있었으나, 오늘날엔 없어진 대부분의 아름다움은 대충 지적했으나, 한 가지 중요한 점을 빠뜨렸으니, 그것은 당시 성당의 탑 위에서 바라보는 파리의 풍경이다.
종탑의 두꺼운 벽 속에 수직으로 뚫려 있는 어두컴컴한 나선 계단을 오랫동안 더듬어 올라간 뒤, 마침내 햇빛과 공기가 넘쳐흐르는 두 개의 지붕들 중 하나 위로 나오면, 눈 아래 단번에 드넓게 펼쳐지는 경관은 과연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파리는 누구나 알다시피, 하나의 요람과 같은 꼴을 하고 있는 저 시테라는 옛 섬 안에서 태어났다. 이 섬의 모래사장이 그 최초의 성벽이요, 센 강은 그 최초의 방비호였다.
파리는 그 남쪽과 북쪽에 각각 하나씩 두 개의 다리와, 동시에 그 성문이자 요새이기도 했던 오른쪽 강둑의 그랑 샤틀레와 왼쪽 강둑의 프티 샤틀레의 두 교두보를 갖고서 수백 년간 섬의 상태로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가 첫 왕가의 역대왕 이후, 파리는 그 섬 안에서 너무 좁아 몸을 돌릴 수 없게 되자 물을 건넜다. 그리하여 그랑 샤틀레를 넘어서고 프티 샤틀레를 넘어서서, 담과 탑으로 된 최초의 성이 센 강 양쪽에서 들판을 베어 먹기 시작했다. 집들의 물결은 차츰차츰 도심지에서 바깥으로 밀려나와, 이 성벽에서 넘쳐흐르고, 그것을 갉아먹고 헐어뜨리고 지워 버린다.
1367년 이후 도시는 성 밖에 퍼질 대로 퍼져, 특히 오른쪽 강둑에서는 새로운 울타리가 필요해진다. 샤를르 5세가 그것을 세운다. 그러나 파리 같은 도시는 끊임없이 커져갈 뿐이다. 그런 도시들 외엔 수도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한 나라의 지리적, 정치적, 지적 경사면의 끝이, 한 국민의 모든 자연적 경사면의 끝이 와 닿는 깔때기이다. 그것은 이를테면 문화의 우물, 그리고 또 한 국가에 있어서의 상업, 공업, 학문, 인구, 모든 정력과 생명과 영혼이 한 방울 한 방울, 한 시대 한 시대씩 스며들어 괴는 하수도이다.
15세기까지만 해도 파리는 제각기 다른 모습과 특수성, 풍속과 습관, 특권, 그리고 역사를 지닌 서로 판이하게 구별된 세 개의 도시, 즉 시테와 대학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시테는 섬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가장 작지만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어, 다른 두 도시의 어머니격으로, 이런 비유가 허용된다면 마치 성장한 두 명의 아름다운 딸 사이에 끼인 조그만 노파처럼 그 두 도시 사이에 끼어 있었다. 대학은 센 강 왼쪽 둑을 덮고 있었는데, 투르넬로부터 네슬 탑까지에 걸쳤으니, 오늘날의 파리로 말하자면 포도주 시장으로부터 조폐국에까지 해당된다. 수도는 파리의 세 부분 중 가장 컸는데, 오른쪽 강둑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 강둑은 여러 군데 끊어지긴 했지만, 비이 탑으로부터 부아 탑까지 센 강을 따라 달리고 있었으니, 오늘날로 말하자면 공설 곡물 창고가 있는 지점으로부터 튈르리 정원이 있는 지점까지 걸쳐 있었던 것이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파리의 이 세 개의 큰 부분은 각각 하나의 도시였지만, 너무나 특수해 홀로는 완전할 수 없는 하나의 도시, 다른 두 도시 없인 견딜 수가 없는 하나의 도시였다. 그러므로 제각기 판이한 세 가지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시테엔 성당이 많았고, 수도엔 저택이 많았고, 대학엔 학교가 많이 있었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구역 관할의 복잡함 속에 총체적인 것만을 들면, 섬은 주교의 소관이고, 오른쪽 강둑은 행정 장관의 소관이고, 왼쪽 강둑은 대학 총장의 소관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전체 위에, 시의 관리가 아니라 조정의 관리인 파리 시장이 있었다. 시테는 노틀담을 갖고 있었고, 수도는 루브르 궁과 시청을 갖고 있었고, 대학은 소르본을 갖고 있었다.
그러면 이러한 전체가 1482년에 노틀담의 탑 위에서 내려다보았을 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었을까?
그 꼭대기 위에 숨을 헐떡거리며 도착한 구경꾼에게 그것은 맨 먼저 눈부신 지붕과 굴뚝과 거리와 다리와 광장의 종루들이었다.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눈을 사로잡는 것이었다. 깎아지른 듯하고 뾰족뾰족한 지붕, 성벽 모퉁이에 매달린 소탑, 11세기의 피라미드식 석조 건물, 성당의 단정하게 네모진 탑, 둥근 탑... 눈길은 오랫동안 그 미궁 속에 깊숙하게 잠겨 드는데, 거기엔 저마다 나름의 독창성과 특성과 동기와 아름다움이 없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앞면에 칠과 조각을 하고, 뼈대가 바깥으로 불거지고, 문이 반궁륭형이고, 위층들이 앞으로 튀어나온 작디작은 가옥으로부터, 당시는 탑이 즐비했던 장엄한 루브르 궁에 이르기까지, 예술에서 오지 않은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3
이 얘기가 일어나고 있는 때로부터 16년 전의 일이었다. 그 해의 부활절 후 첫 일요일 아침 미사가 끝난 뒤였다. 노틀담 성당엔, 성 크리스토프의 조각상을 허물어 버릴 생각을 한 이래로 기사 앙트완 데제사르 나리의 돌로 새긴 얼굴이 무릎 끊고 마주 바라보고 있던 그 독실한 상자의 '커다란 그림'의 맞은편 왼쪽 성당 앞뜰에 박아 놓은 침대틀 위에 웬 살아 있는 물체 하나가 놓여 있었다. 세상 사람들의 자비심에 맡기기 위해 버린 아이들을 이 침대틀 위에 갖다 놓는 것은 관례가 돼 있었다. 원하는 사람은 거기서 아이들을 주워 가는 것이었다. 침대틀 앞엔 동냥돈을 넣기 위한 구리 접시 하나가 있었다.
1467년 부활절 후 첫 일요일 아침에 그 침대틀 위에 누워 있는 일종의 생물 같은 것은, 그 주위에 몰려들어 있던 꽤 많은 군중의 호기심을 비상하게 끌었다. 군중은 대부분 여성들이었으며 대개가 늙은 여자였다.
첫째 줄에서 침대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는 여자들 중 넷은, 회색 겉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무슨 종교 단체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란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존경할 만한 네 부인의 이름을 후세에 전해서는 안 될 까닭이 없다. 그들의 이름은 아니스 라 에르므, 잔느 드 다르므, 앙리에트 라 골티엘, 고셸 라 비올레트였다. 네 여자 모두 과부이며, 또한 모두 에티엔 오르리 예배당의 착한 부인네들로서, 강론을 들으러 오기 위해 원장의 허가를 얻어 외출한 것이었다.
"이게 도대체 뭐죠, 언니?"
아니스는, 그토록 많은 사람이 바라보고 있는 데 질겁하여 나무 침대 위에서 몸을 비틀며 우는 그 버려진 조그만 생물을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그러자 나머지 여자들도 제각기 감상을 털어놓았다.
"이러다간 우린 장차 어떻게 된다지. 사람들이 이제 어린애를 이 모양으로 만들어 내다면?"
"난 어린애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이건 어린애가 아녜요."
"이건 원숭이가 되다 만 거군요?"
"저 우는 소리에 성가 대원도 귀가 아프겠어."
"내 생각엔 이건 짐승이야. 유대교도가 암퇘지하고 만들어 놓은 거야. 요컨대 물에나 불에 던져 버려야 할 거예요."
"에구머니나, 끔찍스러! 저기, 강을 내려가다 골목길 아래쪽으로, 주교님 댁 바로 옆에 있는 고아원의 그 가엾은 유모들에게 젖을 먹이라고 누가 이 새끼 괴물을 가져다 줄 사람은 없을까! 나 같으면 차라리 흡혈귀에게 젖을 빨리겠어."
"어쩜 저렇게도 순진할까. 그래 언니는 보면 몰라요. 이 새끼 괴물이 적어도 네 살은 되었다는 걸. 이 앤 언니의 젖꼭지 보담 꼬치구이를 더 먹고 싶어 하겠수."
아닌 게 아니라, 이 새끼 괴물은 갓 낳은 게 아니었다(필자 자신도 뭐라고 달리 부르기란 퍽 난처하다). 그것은 무척 울룩불룩하고 꿈틀거리는 조그만 덩어리였는데, 당시 파리의 주교이던 샤르티에 씨의 이름 첫 글자를 박은 베자루 속에다 머리만 나오게 넣어 놓은 것이었다. 거기 보이는 것이라곤 붉은 더벅머리와 한 개의 눈, 입, 그리고 이빨뿐이었다. 눈은 울고 있고, 입은 외치고 있었으며, 이는 물어뜯으려고만 하는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이 자루 속에서 버둥거리고 있어서, 끊임없이 주위에 모여들어 자꾸 불어 가기만 하는 군중은 그것을 보고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다.
알로이즈 드 공들로리에라는 부유한 귀부인이 여섯 살쯤 된 예쁜 계집애 하나를 손에 잡고 머리쓰개의 끝에 기다란 베일을 늘어뜨린 채 그 침대틀 앞을 지나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그 가엾은 생물을 잠깐 들여다보는 동안, 명주와 우단 옷으로 몸을 감싼 귀여운 소녀 플뢰르 드 리스 공들로리에는 예쁜 손가락으로 침대틀에 항상 붙어 있는 '업동이'란 게시판 글자를 한자 한자 더듬어 읽고 있었다.
"정말 난 여기다 어린애만 갖다 놓는 줄 알았는데..." 하고 귀부인은 불쾌한 듯 외면하며 말했다.
그녀는 등을 돌리며 접시 속에 플로린짜리 은전 한 닢을 던졌는데, 그것이 동전들 속에서 울려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지게 했다.
잠시 후, 대법원장인 로베르 미스트리콜이 한쪽 팔엔 커다란 미사 경본을 다른 팔엔 아내를, 그렇게 해 자기 양쪽에 천상과 지상의 두 규제자를 끼고서 지나갔다.
"주운 아이라!" 하고 그는 그 물체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서 말했다.
"이건 정녕 플레제토 강의 다리에서 주운 거렷다"
"저건 눈이 하나밖에 없군" 하고 그의 아내가 지적했다.
"다른 쪽 눈 위엔 물사마귀뿐이고."
"그건 사마귀가 아니오."
대법원장 나리는 엄숙하게 대꾸했다.
"그건 달걀인데, 그 속엔 또 똑같이 생긴 달걀 하나의 악마가 들어 있고, 그 속엔 또 다른 조그만 달걀 하나가 있는데 이 달걀도 다른 또 하나의 마귀를 갖고 있고, 또 거기도 내내 마찬가지요"
"그걸 어떻게 아셔요?"
"난 정확히 알고 있소."
"대법원장님, 이 소위 업동이란 것으로 뭘 예언할 수 있나요?"
고셸이 물었다.
"세상에도 무서운 불행이 닥쳐올 것이오."
"아, 하나님 맙소사!"
한 노파가 소리쳤다.
"지난해엔 대단한 괴질이 있었고, 또 영국군이 아르플뢰로 대거 상륙해 오리란 소문이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난 파리의 선량한 시민들을 위해서 저 마술사는 널빤지 위보단 장작개비 위에 갖다 뉘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에요."
잔느가 외쳤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개비 위에 말예요!"
노파가 덧붙였다.
얼마 전부터 한 젊은 신부가 그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준엄한 얼굴, 넓은 이마, 깊숙한 눈의 소유자였다. 그는 말없이 군중을 헤치고 와선 그 '새끼 마술사'를 살펴보곤 손을 뻗쳤다.
"내가 이 애를 가져다 기르리다."
신부는 이렇게 말하고 그 애를 자기 옷 속에 싸서 가져갔다. 군중은 놀란 눈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그는 잠시 후 당시 성당에서 수도원 경내로 통하던 붉은 문 안으로 사라졌다.
처음의 놀라움이 가시자 잔느가 작게 속삭였다.
"내가 진작 말하지 않던가요, 언니. 저 젊은 신부 클로드 프롤로는 마법사라고요"
사실 클로드 프롤로는 평범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전세기의 타당찮은 말로써 '무차별하게 높은 평민 계급'이라고도 부르고, '작은 귀족 계급'이라고도 부르던 저 중간 가문의 한 집안에 속해 있었다. 이 집안은 파클레 형제로부터 티르샤즈의 봉토를 상속받았었는데, 그 봉토는 파리 주교의 소관이었으며 그것의 21가호는 13세기에 판사 앞에서 수많은 소송 거리가 되었다.
클로드는 어릴 때부터 이미 부모들에 의해 성직자가 되도록 결정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라틴어 읽기를 가르쳤으며, 눈을 수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하도록 길렀다. 아주 어려서부터 그의 아버지는 그를 대학 내의 토르시 학교에 가두었다. 그는 그곳에서 미사 독경과 독서로 자라난 것이다.
실제로 그는 침울하고 성실한 아이로서 열심히 공부했다. 놀 때에도 큰소리를 지르지 않았고, 푸아르 거리의 법석판에도 그닥 섞여 들지 않았으며, 연대기 작가들이 '대학의 여섯 번째 소동'이란 제목 아래 기록하고 있는 저 1463년의 폭동에도 전혀 가담치 않았다. 그는 또 가난한 학생들이 망토를 걸치고 다닌다고 해서 그들을 비웃는다거나, 도르망 학교의 장학생들이 까까머리에 청록색과 청색과 자주색의 삼색 나사 외투를 입고 있다고 해서 놀리는 일도 좀처럼 없었다.
반면 그는 생장 드 보베 거리의 크고 작은 학교에 부지런히 출석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열여섯 살 때 이 젊은 성직자 지망생은 신비 신학에 있어서 성당의 한 신부에 대하여, 율법 신학 시험에 있어서 공의회의 한 신부에 대하여, 그리고 스콜라 신학 시험에 있어서 소르본의 한 박사에 대하여 각각 자신의 설을 주장할 수가 있었다.
신학 수업을 마친 뒤 그는 교령에 뛰어들었다. 그는 '판결집'에서 '샤를르마뉴 법령집'으로 손을 뻗쳤다. 그리고 학문욕에 불타 차례차례로 여러 교황령집을, 이스팔의 주교 테오도르의 교령집을, 윔스의 주교 뷰샤르의 교령집을, 샤르트르의 주교 이브의 교령집을, 그런 뒤엔 갸를르마뉴의 법령집에 계속된 그라티앵의 교령집을, 그 다음엔 또 그레고리 9세의 교령집을, 그 다음엔 오노리우스3세의 유명한 교서집을 탐독했다. 그는 테오도르 주교가 618년에 열고 그레고리 교황이 닫은 시대인, 저 중세의 혼돈 속에 투쟁해서 실시된 민법과 교회법의
방대하고 소란스러웠던 시대를 스스로 밝히고 그것에 정통하였다.
교령을 소화한 다음 그는 의학과 학예에 달려들었다. 그는 약용 식물학과 향초 약학을 연구했으며, 열병과 타박상과 농양의 전문의가 되었다. 또한 그는 학예의 모든 학사와 석사와 박사 학위 과정을 이수했다. 그리고 당시 사람들이 좀처럼 드나들지 않은 세전당인 라틴어와 희랍어와 히브리어 등의 언어를 공부했다. 그는 실로 모든 학문을 다 담으려는 정열에 불타 있었다. 이 젊은이에게 있어 인생은 단 하나의 목적, 즉 안다는 것밖엔 없는 것 같았다.
1466년 여름의 무더위로 인해 저 무서운 페스트가 창궐하여 자리의 자작령에서 4만의 인명을 앗아갔고, 특히 티르샤프 거리에선 이 역병의 피해가 크다는 소문이 대학에 퍼져 있었다. 바로 그곳, 그들의 봉토 한가운데엔 클로드의 부모들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젊은 학생은 매우 놀라 부모의 집으로 달려갔다. 방에 들어가 보니,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미 죽어 있었다. 배내옷에 싸인 아주 어린 동생 하나가 요람 속에 버려진 채 울고 있었다. 가족 중 클로드에게 남아 있는 것은 그뿐이었다.
젊은이는 어린애를 안고 생각에 잠겨 나왔다. 여태껏 그는 학문 속에서밖에 살지 않았는데, 이젠 인생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었다. 젊은 나이에 형이 되고 가장이 된 그는 무참하게도 학문의 몽상에서 세상의 현실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이 어린 자신의 동생에 대해 열성을 다하였다. 아직 책밖엔 사랑하지 않았던 그에게 있어, 이 인간에 대한 애정이란 참으로 이상하고도 즐거운 것이었다. 그는, 이 세상엔 소르본의 사색과 호메로스의 시와는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인간은 애정을 필요로 하고 애정과 사랑 없는 인생은 메마르고 시끄럽고 날카로운 톱니바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생 장은 아직 젖먹던 때 어머니를 여의였던 것이므로 클로드는 자상한 유모를 대주었다. 티르샤프의 봉토 외에는 그는 장티의 사각탑에 속하는 물랭의 봉토를 아버지로부터 상속받고 있었다. 그것은 비세트르 성 근처의 한 언덕 위에 있는 방앗간이었다. 거기 방앗간 안주인이 귀여운 어린애 하나를 기르고 있었는데, 그곳은 대학에서 멀지 않았다. 클로드는 그 여자에게 직접 어린 동생 장을 안아다 주었다.
이때부터 그는 자신에겐 짊어지고 다녀야 할 짐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인생을 아주 진지하게 생각했다. 동생을 생각하는 것은 기쁨이 되었을 뿐 아니라, 그의 학문의 목적도 되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책임진 한 사람의 장래를 위해 자신을 송두리째 바치기로 각오하고, 자기 동생의 행복과 출세 외엔 다른 아내나 어린애를 결코 안 갖겠다고 결심했다.
그의 재능과 학문, 그리고 파리 주교의 직속 부하라는 신분으로 인해 성당의 문들은 그에게 활짝 열려 있었다. 그는 스무 살 때 교황청의 특별인가에 의해 신부가 되고, 노틀담의 가장 젊은 전속 신부로서 거기에선 느지막이 미사를 드리기 때문에 '게으른 사람들의 제단'이라 부르는 제단을 관리케 되었다.
그의 학자로서의 명성은 수도원에서 민중에게로 전해졌고, 그 당시엔 흔히 있던 일이지만, 그런 명성은 민중 사이에서 마법사란 평판으로 변해 갔다. 그가 그토록 증오의 대상이 되고 있던 그 불쌍한 '괴물'에게 다가간 것은, 자기가 죽으면 사랑하는 어린 장도 역시 저렇게 비참하게 널빤지 위에 던져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현듯 머리에 떠오른 환상과 그리고 삶의 모든 것이 한꺼번에 가슴 속에 밀어닥쳤기 때문이다.
그가 이윽고 어린애를 자루에서 꺼내 본즉, 과연 그것은 보통의 기형아가 아니었다. 이 가엾은 애는 왼쪽 눈 위에 물사마귀가 하나 있고, 머리는 어깨 속으로 들어가 있고, 등뼈는 활처럼 휘었고, 가슴뼈는 툭 불거져 나왔고, 다리들은 비틀려 있었으며, 무슨 말을 더듬거리고 있는지 알 순 없었지만 그가 지르는 소리는 어떤 힘을 나타내고 있었다.
젊은 신부의 동정심은 그 추악함으로 말미암아 더욱 커졌으며, 장래에 어린 장이 어떤 과오를 범하더라도 이 적선이 그 곁에 머물러 있도록, 그는 동생을 위해 이 아이를 기를 것을 가슴 속으로 맹세했다.
그는 아이에게 영세를 주고 카지모도란 이름을 붙였는데, 그건 그것으로써 그를 주운 날을 나타내고도 싶었거니와, 또한 그런 이름에 의해 이 가엾은 어린 생물이 얼마나 불완전하며 얼마나 생기다 만 정도였는가를 특징짓고도 싶어서였다.(역주:카지모도는 부활절 후의 첫 일요일을 의미하며, 그날 미사의 첫 구절은 '갓 낳은 어린애들처럼'이란 말로 시작한다)
4
그리하여 1482년엔 카지모도는 성인이 되었다. 그는 몇 년 전부터 노틀담 성당의 종치기가 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그의 양부인 클로드 프롤로 덕택이요, 클로드 프롤로는 조자스의 부주교가 되어 있었는데 그건 그의 종주인 루이 드 보몽 나리 덕택이요, 루이 드 보몽은 교므 샤르티에가 죽자 1472년에 파리의 주교가 되었는데, 그것은 하느님의 덕택으로 루이 11세 왕의 이발사가 된 올리비에르 댕이라는 그의 보호자 덕분이었다. 그래서 카지모도는 노틀담의 종치기였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이 종치기를 성당에 맺어 주는 뭔가 알 수 없는 밀접한 유대가 생겨났다. 그 알 수 없는 출생과 기형적인 체격이란 이중의 숙명에 의해 영원히 이 세상과 격리되고, 어려서부터 그 이중의 건너뛸 수 없는 원 속에 갇히게 된 가련하고 불쌍한 사내는, 이 세상에서 자기를 그늘 속에 맞아들여 준 성당의 벽 너머로는 아무것도 보지 않도록 길들어 버렸다. 노틀담은 그가 자라나고 커 감에 따라, 그에게 있어 차례차례로, 달걀이었고 보금자리였고 집이었고 세계였다.
그리고 확실히 이 피창조물과 이 건물 사이엔 일종의 신비스런 조화 같은 것이 있었다. 아주 어렸을 적 그가 그 궁륭의 어둠 아래 꾸불꾸불 폴딱폴딱 뛰어다닐 때면, 정녕 괴물 같은 얼굴에 짐승 같은 모습을 하고 있던 그는, 마치 그 로마식 원기둥 머리와 그림자가 온갖 야릇한 형상을 던지고 있는 그 축축하고 컴컴한 돌바닥을 기어 다니는 뱀과 같았다.
훗날 그가 처음으로 종탑 끈에 기계적으로 매달려 종을 흔들었을 때, 그것은 비로소 말문이 열려 얘기를 하기 시작하는 어린애 같은 인상을 그의 양아버지인 클로드에게 주었다.
그리하여 늘 대성당의 방향으로 자라 가고, 거기서 살고 자고, 거의 한 번도 거기서 나가지 않고, 줄곧 그 신비로운 압력을 받으면서, 시나브로 그는 그것을 닮아 가고 그 속에 틀어박혀, 마침내 그것의 일부를 이루기에 이르렀다. 그의 툭툭 불거진 각은 건물의 움푹움푹 들어간 각에 끼어 박혀, 그는 이 건물의 입주자일 뿐 아니라 그 자연적인 내용물이기도 한 듯했다.
카지모도는 그 안 깊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한 군데도 없었고, 그 위 높이 올라가지 않은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그는 다만 조각의 우툴두툴한 것을 이용해서 정면의 온갖 지점에까지 기어 올라가는 일이 허다했다. 그 종탑들, 마치 수직의 벽을 기어 다니는 도마뱀처럼 그가 그 바깥 표면을 기어 다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었던 그 두 개의 거대한 쌍둥이같이 높고 험하고 무서운 종탑도, 그에겐 아무런 현기증도 공포감도 아찔아찔한 전율도 주지 않았다.
그의 육체만이 성당을 따라 형성된 게 아니라 그의 영혼 또한 그러했다. 그 넋이 어떤 상태에 있었으며 어떤 관습이 붙었던가, 그리고 그 굳어진 외피 아래서, 그 야성적인 생활 속에서 어떤 형태를 띠게 되었던가는 규정하기가 어렵겠다. 카지모도는 태어날 때부터 애꾸에다 꼽추에다 절름발이였다. 클로드가 그에게 말하기를 가르치기에 이른 것은 이만저만한 수고와 인내의 결과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 가엾은 병신에게는 하나의 숙명이 붙어 있었다. 열네 살에 노틀담의 종치기가 된 그에게는 또 하나의 새로운 불구가 찾아와 그를 완전무결한 것으로 만들어 주었으니, 종들이 그의 고막을 찢어 결국엔 귀머거리가 되었던 것이다. 자연이 여태껏 세상을 향해 그에게 빠끔이 열어 놓았던 하나의 문이 느닷없이 영원히 닫혀 버린 셈이었다.
이 문이 닫히면서 아직 카지모도의 넋 속에 스며들어 있었던 단 한 줄기의 우울증은 그의 신체와 마찬가지로 고칠 수 없는 완전한 것이 되어 버렸다. 마지못해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됐을 때도 그의 혀는 굳어져 어둔하니, 마치 돌쩌귀가 녹슨 문과도 같았다.
정신이란 잘못된 육체 속에서도 위축됨이 확실하다. 카지모도는 자기 내부에서 자신의 형상대로 생긴 한 넋이 맹목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을 뚜렷이 느끼진 않았다. 물체의 인상은 그의 생각에 도달하기 전에 상당한 굴절을 받는 것이었다. 그의 두뇌는 하나의 특수한 중간이어서, 그것을 통과하는 관념들은 모두 비틀어져 가지고 나오는 거였다.
그의 불행의 두 번째 결과는 그를 심술궂게 만드는 것이었다. 사실 그는 심술궂었다. 왜냐하면 사귐성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가 사귐성이 없는 것은 그가 추악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도 비상하게 발달된 힘은 그가 심술궂게 된 또 하나의 이유였다. "힘센 아이는 심술궂다"라고 홉스는 말했었다.
그에게 있어 심술궂음은 아마 천성적인 건 아니었을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 그가 첫발을 내딛었을 때부터 그는 자기 자신을 느꼈고, 다음엔 야유 당하고 모욕을 당하고 배척당했었다. 인간의 말은 그에겐 항상 조롱이거나 저주였다. 그는 자라나면서 자기 주위에서 증오밖에 발견치 못했다. 그는 그 모든 사람들의 심술궂음을 배워 왔다.
어쨌든 성당만으로도 그에겐 충분했다. 성당은 적어도 그의 눈앞에서 웃음을 터뜨리지 않았으며, 그에 대해 조용하고 친절한 눈으로밖엔 보지 않았다. 그는 때때로 성당 내부의 조각상들 중 하나 앞에 웅크리고 앉아 호젓이 그와 더불어 얘기하느라고 몇 시간이고 보내기도 했다. 만약 뜻밖에 누가 오면 마치 세레나데를 부르다가 들킨 연인처럼 달아나 버리는 것이었다.
그가 이 어머니 같은 건물 속에서 무엇보다 사랑한 것은, 그리고 병신의 넋을 깨워 동굴 속에서 그렇게도 비참스레 오므리고 있던 그 가엾은 날개를 펴게 해준 것은, 다름 아니라 종탑들이었다. 그는 그것들을 사랑하고, 그것들을 애무하고, 그것들에게 얘기하고, 그것들을 이해하고 있었다. 종은 그에게 있어 마치 그가 기른 새들이 그를 위해서밖엔 노래하지 않는 그러한 새장과도 같았다. 그의 귀를 먹게 한 것이 바로 이종들이었지만, 어머니들은 흔히 자기들을 가장 괴롭힌 자식을 가장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들만이 그가 아직 들을 수 있는 유일한 목소리였음은 사실이다.
종들을 크게 울리는 날 그의 기쁨이 어떠했을지는 좀처럼 상상하기 어렵다. 부주교가 그를 놓아 주며 "자!" 하고 말하면, 그는 종탑의 나선 계단을 다른 사람이 내려온 것보다 더 빨리 오르는 것이었다. 그는 헐레벌떡거리며 큰 종의 공중의 방 속에 들어가, 명상과 애정 속에서 잠시 들여다본 다음 조용조용 말을 걸고, 마치 바야흐로 장거리를 뛰게 하려는 말을 대하듯 손으로 어루만지는 것이었다. 그는 장차 종이 하게 될 수고에 대해 가엾어 하였다.
카지모도는 종을 친 후 미친 듯 울음을 터뜨린다. 그러는 동안 종의 움직임은 한결 빨라지고, 그것이 더 넓은 각을 오고 감에 따라 카지모도의 눈도 더욱 크게 열려 불타오른다. 이윽고 종소리가 크게 울리기 시작하고, 온 탑이 흔들리고, 뼈대도 납덩어리도, 모든 것이 기초의 반석에서부터 탑 꼭대기의 장식에 이르기까지 한꺼번에 우렁우렁 울린다. 그러면 카지모도는 커다란 거품을 내면서 끓어오르고,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며 탑과 더불어 머리에서 발끝까지 떤다. 종은 미친 듯 날뛰며, 수리 밖에서도 들리는 폭풍 같은 숨결이 쏟아져 나오는 그 청동의 아가리를 탑의 양쪽 안벽에 번갈아 열어 보인다. 카지모도는 그 떡 벌린 아가리 앞으로 가고, 웅크리고, 종이 돌아오면 다시 일어서고, 그 요란스런 숨결을 들이마시고, 저기 아래 까마득한 점처럼 군중이 우글거리는 깊은 광장과 시시각각 자기 귓속에 와 우렁거리는 그 거대한 구리 혀를 번갈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에게 들리는 유일한 소리였고, 그에 있어 온 세상의 고요를 깨뜨리는 유일한 소리였다. 갑자기 종의 광란이 그를 사로잡아, 그의 눈은 이상한 빛을 띠고, 마치 거미가 파리를 기다리듯 느닷없이 그 위에 맹렬히 뛰어든다. 그리하여 심연 위에 매달리고 무시무시한 종의 흔들림 속에 던져진 그는 청동 괴물의 귀를 붙잡고, 두 무릎으로 그 여자를 껴안고, 두 뒤꿈치로 그녀에게 박차를 가하고, 전신의 충격과 무게로 더욱더 맹렬히 울리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탑은 흔들리고, 그는 고함지르고 이를 갈며, 그의 붉은 머리털은 곤두서고, 그 가슴은 대장간의 풀무 같은 소릴 내고, 눈은 불꽃을 던지고 괴물 같은 종은 그의 아래에서 헐떡거리며 울곤 하는 것이었는데 그럴 때 그건 이미 노틀담의 종도 카지모도도 아니고 다만 하나의 꿈, 하나의 폭풍이었다.
이 비상한 존재가 있음으로 해서 성당 내엔 온통 뭔지 알 수 없는 생명의 숨결이 감도는 듯했다. 적어도 민중의 말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노틀담의 모든 돌에 생명을 주고, 낡은 성당의 깊은 속까지 고동치게 하는 일종의 신비로운 발산물이 그에게서 풍겨 나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사실 이 성당은 그의 손아래서는 온순한 여자 같아서, 그것은 자기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그의 뜻을 기다리고 있었고, 마치 친밀한 수호신에 의해서처럼 카지모도에 의해 소유 당하고 충만돼 있었다.
그는 거기 어디에나 있었고 이 대건물의 모든 지점에서 갖가지로 활약하고 있었다. 때론 그 종탑들 중의 한 꼭대기 위에 기묘한 난쟁이 하나가 기어올라 꾸불꾸불 돌아다니곤 하는 것을 사람들은 볼 수가 있었는데, 그것은 새집에서 까마귀를 끄집어내는 카지모도였다. 또 때론 성당의 캄캄한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물상과 부딪치는 수가 있는데, 그것은 생각하는 카지모도였다. 흔히 밤중에 기괴한 형상 하나가 종탑 꼭대기를 장식한 가냘픈 난간 위를 얼쩡거리는 것을 보는 수가 있는데, 그것도 역시 노틀담의 꼽추였다. 그럴 때면, 이웃 여자들의 말에 의하건데, 온 성당이 어떤 환상적이고 초자연적이고 무시무시한 것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카지모도가 남들에 대한 악의와 증오에서 제외하여, 그의 대성당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사랑하고 있는 한 인간이 있었으니, 그것은 즉 클로드 프롤로였다.
그것은 단순한 일이었다. 클로드는 그를 맞아들여 양자로 삼았고, 그를 먹여 살리고 길러 주었던 것이다. 또한 클로드는 그에게 말하고 쓰고 읽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클로드는 그에게 종치기를 시켰으니, 그것은 줄리엣을 로미오에게 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카지모도의 고마움은 깊고 열렬하고 끝이 없었으며, 비록 그의 양아버지의 얼굴은 흔히 안개가 끼고 준엄하며, 그 말은 보통 짧고 무뚝뚝하고 고압적이었다고 할지라도, 그는 결코 일순간도 그 고마움을 저버리는 일이 없었다. 이 부주교는 카지모도의 속에 가장 순종하는 노예를, 가장 온순한 하인을 지니고 있었다.
5
1482년 카지모도는 스무 살 가량 되었고, 클로드 프롤로는 서른여섯 살 가량 되었으니, 하나는 컸고 또 하나는 늙은 셈이었다. 클로드 프롤로는 이제 한 철부지의 자애로운 보호자였고, 많은 것을 알기도 하고 많은 것을 모르기도 하는 몽상적인 철학자였다. 그는 엄격하고 근엄하고 침울한 신부였고, 영혼의 책임자였으며, 조자스의 부주교님이었다.
그는 위압적이고 우울한 인물이어서 생각에 잠겨 위엄 있게 팔짱을 끼고, 얼굴이라고는 그 훌렁 벗겨진 커다란 이마밖엔 안 보일 정도로 머리를 가슴 위에 푹 수그리고서 성가대석을 천천히 지나갈 때면, 성가대의 어린이들이며 성가대 교관들이며 노틀담의 서기들은 그 앞에서 경직되고 마는 것이었다.
클로드 프롤로는 학문도 어린 동생의 교육도 포기하지 않고 있었으니, 그것은 그의 인생의 이대 관심사였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그 즐거운 일들에 약간의 고난이 섞여 들었다. 어린 장 프롤로-그가 자라난 곳의 이름으로 인해 장 프롤로 뒤 물랭이라고도 불리거니와-는 클로드가 그에게 들어서게 하고팠던 방향으로 커 가질 않았던 것이다.
형은 동생이 온순하고 경건하고 박학하고 훌륭한 학생이 되길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동생은 마치 정원사의 노력을 어기고 공기와 햇빛이 오는 쪽으로 끈덕지게 돌아가는 저 어린나무들처럼, 무성하고 울창한 아름다운 가지들을 나태와 무지와 방탕 쪽으로밖엔 뻗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때때로 장에게 매우 준엄하고 긴 설교를 하였는데, 장은 그것을 대담스레 받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설교가 지나가 버린 뒤면 그는 또 태연스레 그 반란과 엉뚱한 짓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 모든 것으로부터, 인간에 대한 애정 면에서 몹시 슬퍼지고 실망한 클로드는 더욱 열정적으로 학문의 품속에 뛰어들었다. 이 학문이라는 누이는 적어도 사람을 맞대 놓고 비웃지도 않으며, 때론 좀 실속 없는 돈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자기를 돌본 수고에 대해 언제나 대가를 지불해 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더욱더 학자가 되고, 또 그와 동시에 그 필연적인 결과로 성직자로서 더욱 엄격해지고, 인간으로서는 더욱더 우울해졌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인간 지식의 합법적인 것을 다 규명한 뒤 그는 불법적인 것 속에 과감히 뛰어 들어갔다고 한다. 그는 차례차례로 지혜의 나무 열매를 모두 맛보고 나서 마침내 금단의 과실을 물어뜯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는 종종 1466년의 페스트에 희생된 사람들과 그의 부모가 묻혀 있던 생지노상 묘지를 찾아가곤 했는데, 그는 그 묘소의 십자가보다도, 바로 옆에 세워진 니콜라 플라멜과 그 아내의 무덤에 가득 차 있는 이상한 형상들에 훨씬 더 경건한 태도를 보이는 것 같았다.
분명한 것은, 사람들은 종종 그가 롱바르 거리로 걸어 내려가 에크리뱅 거리와 마리보 거리의 모퉁이를 이루고 있는 작은 집으로 슬그머니 들어가는 걸 보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니콜라 플라멜이 지은 집으로, 그가 거기서 죽은 후 사뭇 폐가가 되어 이미 허물어지기 시작했었는데, 그토록 모든 나라에서 온 수많은 연금술사들과 화금석 탐구자들이 자기 이름을 거기 새기는 것만으로 벽을 헐어뜨린 것이었다.
끝으로 분명한 것은, 부주교는 두 종탑 중 그레브 광장 쪽을 바라보는 탑 속의 종이 있는 바로 옆에 조그만 독방 하나를 꾸며 놓고 있었는데, 그것은 극도로 비밀을 지켜, 사람들 말에 의하면 그의 허가 없이는 어떤 사람도, 주교라 할지라도 들어갈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 독방 속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으나, 밤이면 종탑 뒤쪽에 뚫린 하나의 조그만 채광창에 간헐적인 기묘한 붉은 불빛이 일정한 짧은 간격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곤 하는 것을 사람들은 시테 섬의 모래사장에서 종종 보았는데, 그 불빛은 풀무의 헐떡거리는 숨결을 따르는 것 같았고 등불보다 오히려 무슨 불꽃에서 오는 것 같았다. 어둠 속에 그 높은 곳에서 보이는 그런 불빛은 퍽 괴이한 인상을 주므로, 늙은 아낙네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하였다. - "저것 봐, 부주교가 숨을 쉰다."
그리고 늙어 가면서 그의 학문 속엔 심연이 형성되었는가 하면, 그 가슴 속에서도 역시 심연이 형성되었다. 적어도 얼굴을 살펴볼 때 거기엔 검은 구름을 통해서밖엔 그의 넋이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없었던 것으로 보아 사람들이 그렇게 믿는 것은 당연했다.
늘 수그리고 있는 머리, 한숨으로 늘 들어 올려지는 가슴, 그것은 대체 어떻게 된 까닭일까? 그 찌푸린 두 눈썹이 싸우려 드는 두 마리의 소처럼 접근하는 바로 그런 순간 무슨 은밀한 생각이 그토록 씁쓸히 그의 입으로 하여금 미소 짓게 하는 것이었을까? 어찌하여 그 남아 있는 머리털은 벌써 희끗희끗한 것일까? 이따금 눈길 속에서 터지는 그 내부의 불이 무엇이길래 그토록 그의 눈은 벽난로에 뚫린 구멍과도 같았을까?
이런 격심한 정신적인 불안의 징후는 이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 시기에 특히 고도로 강렬해졌다. 성당 안에 홀로 있는 그를 보고 성가대의 소년이 무서워서 달아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더욱 엄격해져 갔고, 성격상으로나 직업상으로나 항상 여자들을 멀리하고 있었으며, 어느 때보다도 더 그들을 미워하는 것 같았다. 비단 치맛자락이 살랑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그는 망토의 두건을 눈 위로 푹 내리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보헤미아 여자와 집시들에 대한 그의 증오는 얼마 전부터 더 심해진 것 같았다. 그는 특별히 집시 여자들이 성당 앞 광장에 와서 춤추고 북치는 것을 금지하는 포고를 내리도록 주교에게 청원했고, 또한 염소나 돼지나 양 등을 가지고 요망스런 짓을 한 공범자로서 화형이나 교수형에 처해진 남녀 마술사들의 예를 모으기 위해, 그때부터 성당 재판소의 곰팡이 슨 고문서를 모조리 조사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부주교와 종치기는 대성당 부근의 시민들로부터 별로 사랑 받진 못하고 있었다. 클로드와 카지모도가 같이 외출하여, 노틀담의 비좁고 침침하고 싸늘한 거리를 함께, 하인은 주인 뒤를 따라 걸어가는 것을 사람들이 볼 때면, 악담이며 비꼬는 노래며 모욕적인 야유가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어떤 땐 당돌한 장난꾸러기가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 자칫 잘못하다간 뼈가 부러져 나갈 위험을 무릅쓰고 카지모도의 곱사등에 바늘을 꽂는 것이었다. 또 어떤 땐 예쁜 아가씨가 난잡하고도 뻔뻔스럽게, 부주교의 검은 법의를 스쳐 가면서 그의 코 밑에 향기를 풍기는 것이었다. 또 때론 한 떼의 노파들이 대문 앞 계단 위의 어둠 속에 즐비하게 웅크리고 앉았다가, 부주교와 종치기가 지나갈 때면 "흥, 저것 봐! 하나는 넋이, 또 하나는 몸뚱이가 잘도 생겨 먹었어!" 하고 뇌까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신부와 종치기는 그런 욕설을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쳐 버렸다. 그 모든 유쾌한 말들을 알아듣기엔 카지모도는 너무나 귀가 먹었고, 클로드는 너무나 몽상에 잠겨 있었던 것이다.
6
클로드의 명성은 멀리 퍼졌다. 그리하여 그 무렵 그는 방문 하나를 받게 되었는데, 그는 그 추억을 오래도록 간직했다.
어느 날 저녁, 그가 일을 마치고 성당의 독방으로 막 돌아온 참이었다. 이 독방은 한쪽 구석에 치워 놓은 꽤 수상한 일종의 분말로 가득 찬 몇 개의 유리병을 제외하고는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물론 여기저기 벽 위에 써 붙여 놓은 것들이 있었으나, 그것은 훌륭한 저자들의 책에서 뽑아 낸, 학문이나 신앙에 관한 금언이었다.
부주교는 필사본이 가득 쌓인 커다란 궤 앞 구리등 불빛 아래에 앉아 있었다. 그는 오노리우스 도당의 저서를 활짝 펴 놓고 그 위에 팔꿈치를 짚고서 한 권의 인쇄된 2절판의 책을 깊은 명상에 잠겨 뒤적거리고 있었다. 이 책은 그가 막 가져온 것으로서, 그의 독방 안에 있는 유일한 인쇄물이었다. 그가 한참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누가 문을 두드렸다.
"누구요?" 하고 이 학자는 뼈를 물어뜯다가 방해 당한 개와 같은 목소리로 낮게 외쳤다. 그러자 바깥에서 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당신 친구인 자크 쿠악티에요."
클로드는 가서 문을 열었다. 그것은 과연 국왕의 주치의였는데, 그는 쉰 살쯤 된 인물로서, 그 무뚝뚝한 표정을 완화시키고 있는 것이라곤 오직 그 교활한 눈뿐이었다. 또 하나의 사내가 그 옆에 서 있었다. 두 사람이 다 회색 모피로 안을 댄 긴 가운을 빈틈없이 입고, 같은 빛깔의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들의 손은 소매 밑에 가려지고 발은 가운 밑에 가려지고, 눈은 모자 밑에 가려져 있었다.
"이건 하느님이 도우신 거군요. 이런 시간에 이토록 고귀하신 방문을 받게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습니다."
부주교는 그들을 안으로 안내하며, 의사로부터 그의 동반자에게로 불안하고 탐색하는 듯한 시선을 돌렸다.
"동 클로드 프롤로님과 같은 대학자를 찾아뵙게 되어 그저 기꺼울 뿐입니다."
쿠악티에 의사는 대답했는데, 그의 프랑슈콩테 지방 사투리로 인해 말은 땅바닥에 끌리는 가운 자락처럼 장엄하게 끌렸다. 그리하여 의사와 부주교 사이엔 관례에 따라 이 시대 학자들 간의 대화 앞에서 으레 교환되게 마련이었던 축하의 말이 시작되었다.
"쿠악티에 박사, 조카이신 피에르 베르세께서 주교가 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무척 기뻤습니다. 지금 그 분은 아미앵의 주교로 계시는지요?"
"네, 그게 다 하느님의 은혜 덕택이죠."
"크리스마스에 원장님께서 회계원 여러분들의 선두에 서 계실 때의 모습은 참으로 위풍당당하시더군요."
"부원장이죠. 슬픈 일이지만 아직 그밖에 안 되었어요"
"생 탕드레 거리에 짓고 계신 호화로운 주택은 이제 얼마나 진척되었나요? 그것은 루브르 궁전과 같더군요."
"참 슬픈 일이지만, 그 모든 공사엔 엄청난 비용이 든답니다. 건물이 세워져 가는 데 따라 저는 파산할 지경이외다."
"설마 그럴 리야 있겠습니까. 형무소와 대법원에서의 수입이 있고, 그 모든 건물과 푸줏간과 노점과 수도원의 단층집들로부터 수입이 있지 않습니까? 그야 썩 좋은 젖소에서 젖을 짜내는 것과 진배없을 텐데요."
"푸아시의 내 영지에서는 금년에 아무 수입도 없었다오."
"그렇지만 트리엘과 생 자므와 앙 레이의 통행세는 여전하겠지요?"
"그건 백 몇십 리브로쯤 되지만, 파리 주화도 아닌 걸요"
"박사께선 또 국왕 고문관이란 벼슬을 갖고 계시잖습니까. 그건 고종 수입이겠지요."
"그렇죠. 그러나 그 빌어먹을 폴리니 장원은 평균하여 금화 육십 에퀴의 수입도 채 안 되거든요."
클로드가 쿠악티에게 보내는 찬사 속엔, 속인의 막대한 치부를 희롱하는 한 우월하고 불행한 사나이의 은근히 야유하는 듯한 신랄한 어조, 저 우울하고 잔인한 미소가 담겨 있었다.
"그런데 참!" 하고 문득 클로드는 외쳤다.
"댁의 환자이신 폐하께서는 요즘 어떠십니까?"
"폐하께선 충분한 보수를 지불하시지 않습니다."
의사는 자신의 동행자에게 곁눈질을 하면서 대답했다.
"그렇게 생각하오, 쿠악티에?"
동행자가 불쑥 물었다. 놀라움과 비난의 어조로 한 그 말에, 부주교의 주의는 이 알 수 없는 인물로 되돌아갔는데, 사실 그 사내가 방 안에 들어온 후 부주교는 한순간도 그로부터 눈을 완전히 뗀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쿠악티에가 다음과 같이 말했을 때 부주교의 표정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런데 동 클로드님, 당신의 명성을 듣고 만나 보시고 싶어하는 교우 한 분을 모시고 왔답니다."
부주교는 쿠악티에의 동행자를 예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알 수 없는 사나이의 눈썹 아래서 그가 발견한 것은 역시 자기 못잖게 날카로이 경계하는 듯한 눈초리였다.
희미한 등불 빛으로 판단하는 한, 그는 예순 살 가량 된 노인으로, 키는 중키였고 꽤 약하고 노쇠한 것 같았다. 그 얼굴의 윤곽은 평민 같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강력하고 준엄한 모습이었고, 그 눈동자는 동굴 안쪽에서 반짝이는 불빛처럼 깊숙이 휘어진 반달 같은 눈썹 아래서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장중한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부주교님의 명성은 저에게까지 들려 왔지요. 그래서 그 고견을 듣고 싶었던 겁니다. 저는 학자님들 방에 들어가기 전에 신을 벗는 한 보잘것없는 시골 양반에 불과합니다. 제 이름은 투랑조라고 합니다."
부주교는 그 어떤 강력하고 진지한 것 앞에 자기가 있음을 감지했다. 그는 높은 지성의 직관력에 의해 투랑조의 모피 달린 모자 아래서 역시나 못지않은 하나의 높은 지성을 간파했으며, 그 장중한 얼굴을 바라봄에 따라, 쿠악타에의 존재가 그의 침울한 얼굴 위에 퍼져 오르게 했던 그 빈정거리는 조소의 빛은 밤의 지평선에 사라져 가는 석양빛처럼 차츰차츰 스러져 갔다.
그는 말없이 우울한 얼굴로 자신의 커다란 안락의자에 다시 앉고, 탁자 위의 여느 때와 같은 자리에 다시 팔꿈치를 짚고, 손으로 이마를 받쳤다. 잠시 명상에 잠기고 난 그는 두 손님에게 앉으라고 손짓하곤, 투랑조에게 말을 걸었다.
"나리께서는 제 의견을 들으러 오셨다고 했는데, 무엇에 관해선지요?"
"저는 병자입니다. 부주교님은 위대한 의술가라고들 하기에, 조언을 듣고 싶어 온 거지요."
부주교는 잠시 명상에 잠긴 듯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투랑조님, 돌아보십시오. 그러면 제 대답이 모두 벽에 씌어 있는 것을 보실 겁니다."
투랑조가 그의 말대로 돌아본즉, 다음과 같은 문장이 벽에 새겨져 있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의학은 몽상의 딸이니라."
의사 쿠악티에는 자기 동행인의 질문을 듣고 분노했는데, 동 클로드의 대답을 듣고는 더욱 분개했다. 그는 투랑조의 귀에 얼굴을 기울이고, 부주교에겐 들리지 않을 만큼 나직한 소리로 말했다.
"이건 미친 놈이라고 진작 여쭙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만나 보시러 하시다니!"
"그야 이 미친 놈의 말이 옳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야, 자크 박사!"
그러자 의사는 쌀쌀하게 부주교에게 말을 건넸다.
"당신은 재빨리 일을 해치우는군요, 클로드님. 그리고 원숭이가 개암 따윈 아랑곳도 않듯 히포크라테스엔 아랑곳도 않으시는군요. 의학이 몽상이라고! 그래 당신은 피에 미치는 미약의 영향이나 살에 미치는 고약의 영향을 부인하시는군요! 병자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영원한 약학을 당신은 부인하시는군요!"
"저는 병자도 약학도 부인하지 않아요. 제가 부인하는 건 의사입니다"
"그렇다면 물방울이 내부의 수포진이라는 것도, 대포의 상처에 구운 생쥐를 붙여 치료한다는 것도, 젊은 피를 적당히 주사해서 늙은 혈관에 젊음을 돌려 준다는 것도 모두 사실이 아니군요."
"어떤 것에 관해서는 저는 저 나름의 생각을 갖는 거지요."
부주교는 조금도 흥분하지 않고 대답했다. 쿠악티에는 성이 나서 얼굴이 새빨개졌다. 투랑조가 한동안 잠자코 있다가 입을 열었다.
"클로드 선생, 저는 참 난처합니다 그려. 저는 선생께 의논을 두 가지 하려고 했던 것인데, 하나는 제 건강에 대한 진단이고, 또 하나는 제 운명에 대한 판단이었지요."
"선생님의 생각이 그러셨다면, 계단을 올라오시느라 헐떡거리지 말 걸 그랬군요. 전 의학을 믿지 않아요. 그리고 점성술 또한 믿지 않습니다."
"정말인가요!"
"별빛 하나 하나가 한 인간의 머리와 결부되는 실이라고 상상하다니 말도 안 됩니다!"
"그럼 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
부주교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다음과 같이 대답했는데, 그 미소는 마치 그 대답을 부인하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하느님을 믿습니다."
"존경하는 선생님, 당신이 그렇게 훌륭한 종교를 지니고 계시는 걸 보니 전 마음속으로 퍽 기쁩니다. 그러나 당신은 이제 학문을 믿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도 위대한 학자이신가요?"
부주교는 투랑조의 눈을 보았는데, 열정의 빛이 그의 흐릿하던 눈동자 속에 타올랐다.
"아니올시다. 저는 학문을 부인하진 않습니다... 저는 동굴의 숱한 갈래 길에서 납작 엎드려 손톱을 땅에 박고 오래오래 기어 다닌 나머지 마침내 저 앞 멀리 어두컴컴한 지점에서 하나의 빛을, 하나의 불꽃을, 아마도 참을성 있고 슬기로운 사람들이 거기서 하느님을 뜻밖에 발견한 눈부신 중앙 실험실의 불빛일지도 모를 어떤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 결국 당신은 무엇을 진실하고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연금술입니다."
쿠악티에가 곧 반박했다.
"부주교님, 연금술도 물론 제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의학과 점성술을 모독하시는 까닭은 뭡니까?"
"잠깐만요! 당신의 방법은 어느 것도 진실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반면 연금술은 갖가지의 발견을 했소. 나리는 다음과 같은 결과들에 이의를 내세우시렵니까? 땅 아래에 천 년 동안 갇혀 있는 얼음은 바위 수정으로 변해 가고 있습니다. 납은 모든 금속들의 선조입니다. 납은 각각 이백 년의 기간만 있으면 차례차례로 납 상태에서 적비소 상태로, 적비소에서 주석으로, 주석에서 은으로 옮아갑니다. 이런 것들은 사실이 아닙니까?"
"나도 연금술을 공부했는데, 난 단언하거니와..."
성급한 부주교는 그가 말을 마치게 두지 않았다.
"나도 의학과 점성술과 연금술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오직 여기에만 진리가 있어요.(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궤 위에서 앞서 말한 그 분말로 가득 찬 유리병을 집었다) 오직 여기에만 빛이 있어요! 히포크라테스, 그건 꿈이오. 우라니아, 그것도 꿈이오. 헤르메스, 그건 사상이오. 금, 그건 태양이며, 금을 만든다는 건 신이 되는 것이오. 그것만이 유일한 학문이오. 허무, 허무... 인체는 암흑이요, 천체도 암흑입니다!"
그러더니 그는 강력하고 영감을 받은 듯한 태도로 안락의자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투랑조는 잠자코 그를 지켜보았다. 쿠악티에는 그를 비웃으려고 애쓰고, 약간 어깨를 들먹거리며 나지막하게 "미친 놈" 하고 뇌까렸다.
"그래서 그 신묘한 목표에 도달하셨소? 금을 만드셨소?"
투랑조가 별안간 말했다.
"만일 제가 금을 만들었다면,"
부주교는 곰곰 생각하는 사람처럼 한 마디 한 마디 천천히 대답했다.
"프랑스의 왕은 루이라는 분이 아니라 클로드라는 사람이 될 것이오... 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담?"
부주교는 말을 계속했으나, 이제 자신의 생각에밖엔 대답하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렇지가 못하다. 난 아직도 기고 있다. 난 지하도의 조약돌에 무르팍을 벗기고 있다. 언뜻언뜻 볼 뿐 자세히 들여다보진 못한다! 난 읽는 것이 아니라 한자 한자 주워 읽을 뿐이다!"
투랑조는 벌써 오래 전부터 클로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된 것 같았다. 그는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이거야 원! 대관절 당신이 읽는 것이란 뭔가요?"
"이것이 그 중의 하나입니다"
부주교는 이렇게 말하곤 독방의 창을 열면서 거대한 노틀담 성당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성당은 별이 총총한 하늘 위에 그 두 개의 탑과 돌의 옆구리와 괴물 같은 궁둥이의 검은 그림자를 우뚝 솟아 올리고 있어, 마치 시내 한복판에 앉아 있는 두 개의 머리를 가진 한 거대한 스핑크스와도 같았다.
부주교는 한동안 말없이 그 거창한 건물을 바라보고 있다가, 한숨지으면서 오른손을 자기 책상 위에 펼쳐 놓은 인쇄된 책 쪽으로, 왼손을 노틀담 쪽으로 뻗치고, 책에서 성당으로 슬픈 눈을 옮기며 외쳤다.
"아, 슬프도다... 이것이 저것을 죽이리라!"
그는 깊은 명상 속에 여전히 잠겨 있는 것 같았으며, 유명한 누렌 베르크 출판사에서 나온 책 위에 둘째손가락을 구부려 짚고 있었다. 그 뒤 그는 또 다음과 같은 신비로운 말을 했다.
"오, 슬프도다! 작은 것들이 큰 것들 뒤에 온다... 이빨이 덩어리를 물리친다... 나일강의
쥐가 악어를 죽인다... 책은 건물을 죽이리라!"
수도원의 소등 신호가 울릴 때 자크 박사는 자기 동행자에게 아주 나지막한 목소리로 또 같은 말을 되뇌었다.
"이건 미친놈입니다."
이에 대해 그 동행자도 이번엔,
"그런 것 같구려" 하고 대답했다.
이제 어떤 외부인도 수도원 안에 머물러 있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투랑조는 부주교와 작별하면서 말했다.
"나는 학자들과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들을 사랑하며, 당신을 무척 존경하고 있소. 내일 투르넬 궁으로 와서 생 마르탱 드 투르의 사제를 찾아 주오."
부주교는 투랑조란 방문객이 어떤 인물이라는 것을 마침내 깨닫고, 생 마르탱 드 투르의 기록집에 있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회상하면서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생 마르탱의 사제, 즉 프랑스 국왕은 성당 참사원의 관습을 따르며, 성 베난티우스가 갖는 조그만 성직록을 가지며, 재무관 자리에 앉는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이때부터 부주교는 국왕이 파리에 올 때엔 자주 회견을 했고, 그의 신임은 국왕을 몹시 거칠게 다루는 의사 쿠악티에를 능가했다고 한다.
7
"이것이 저것을 죽이리라. 책은 건물을 죽이리라"라는 부주교의 수수께끼 같은 말은 대체 무슨 뜻일까?
필자의 판단으로는, 그것은 두 가지의 면을 갖고 있다. 그것은 첫째, 신부로서의 사상이었다. 그것은 하나의 새로운 기구인 구텐베르그의 빛나는 인쇄기에 대한 성직자의 두려움과 놀람이었다. 그것은 인쇄된 말에 놀라는 강론과 필사본이요, 지껄여진 말과 씌어진 말이었다. 천사 레지옹이 그의 육백만 날개를 펴는 것을 보는 한 참새의 당황과도 비슷한 그 무엇이었다. 그것은 해방된 인류가 벌써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고, 미래에 지성이 서서히 신앙을
무너뜨리고, 여론이 믿음의 자리를 빼앗고, 세계가 로마를 뒤흔드는 것을 보는 예언자의 외침이었다. 그것은 '인쇄기가 성당을 죽이리라'는 것을 뜻하고 있었다.
두 번째는, 인류의 사상이 형식을 바꾸면서 바야흐로 그 표현 방법을 바꾸게 될 것이고, 각 세대의 주요한 생각은 이제 같은 재료와 같은 방식으론 기록되지 않을 것이며, 그렇게도 견고하고 영속적인 돌의 책은 바야흐로 한결 더 견고하고 영속적인 종이의 책에 자리를 내놓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었다. 그것은 '인쇄술이 건축술을 죽이리라'는 뜻이었다.
실로 유사 이래 15세기에 이르기까지 건축술은 인류의 위대한 책이요, 힘에 있어서나 지성에 있어서나 간에, 그 여러 발전 단계에 걸쳐 인간의 중요한 표현이었다.
최초의 인간들의 기억력이 스스로 과중함을 느꼈을 때, 인류의 기억의 짐이 너무나도 무거워지고 혼잡해져 고정되지 않은 벌거숭이의 말이 도중에 기억을 잃을 염려가 있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가장 뚜렷이 보이도록, 가장 영구적임과 동시에 가장 자연스런 방식으로 땅 위에 옮겨 써 놓았었다.
최초의 건축물은 '쇠가 닿지 않은' 바윗덩이에 불과했다. 건축물은 모든 글자와 마찬가지로 시작됐다. 사람들은 하나의 돌을 세웠으니 그것은 하나의 글자였고, 글자마다 하나의 상형 문자였으며, 하나하나의 상형 문자 위에, 마치 원기둥 위 기둥머리처럼 한 무리의 관념들이 놓였다. 최초의 인간들은 온 지상의 도처에서 같은 시기에 그렇게 했던 것이다.
전설은 상징을 낳고, 상징 이래 전통은 마치 잎사귀 아래 나무줄기처럼 사라져 갔으며, 인류가 믿고 있던 그 모든 상징은 더더욱 커져 가고 불어 가고 엇갈려 가고 얽혀 가서, 초기의 건축물은 이제 그것을 담기에 충분치 못하게 돼 도처에서 그것이 넘쳐흘렀으니, 이 건축물들은 아직도 그것들과 마찬가지로 단순하고, 땅 위에 벌거숭이로 누워 있는 원시적 전통을 간신히 표현하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상징은 건물 속에서 온전히 피어날 필요가 있었다.
건축물은 이때 인간의 사상과 더불어 발달하고, 수천의 머리와 수천의 팔을 가진 거인이 되고, 영원하고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 볼 수 있는 형태 아래 그 모든 유동적인 상징을 고착시켜 놓았다. 힘의 상징인 데달루스가 측정하고 있는 동안, 지성의 상징인 올페우시가 노래하고 있는 동안, 하나의 글자인 기둥과 하나의 음절인 홍예와 하나의 낱말인 각뿔은 기하학의 법칙과 시의 법칙에 의해 동시에 움직여져, 서로 한데 어울리고 섞여지고, 내려가고 올라가고, 땅 위에 나란히 놓여지고 공중에 층층이 겹쳐져, 마침내 그것들은 한 시대의 생각의 구슬 아래 솔로몬의 신전과 같은 놀라운 건물이기도 한 책들을 썼다.
근본 사상인 하느님의 말씀은 다만 이 모든 건물들의 안쪽에만이 아니라 그 형태 속에도 있었다. 그 동심원적 울타리의 하나하나 위에서 성직자들은 표현되어 눈에 나타난 하느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힌두스탄의 가장 태고적 파고다로부터 쾰른의 대성당에 이르기까지, 건축술은 인류의 위대한 문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실이어서, 비단 종교적 상징만이 아니라 인류의 사상이 그 거대한 책 속에 자신의 몫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문화는 신정으로 시작되고 민주주의로 끝난다. 통일의 뒤에 오는 이 자유의 법칙은 건축 속에 기록돼 있다.
그 예로서 중세를 들어 보자. 중세는 우리에게 보다 가까우므로 보다 똑똑히 보이기 때문이다.
교황적 통일의 확고한 상형 문자인 저 신비로운 로마식 건축술이 처음엔 혼돈 속에서 솟아나는 사람들이 듣고, 다음엔 기독교의 숨결 아래 조금씩 조금씩 솟아오르는 것을 본다. 사실 당시의 모든 사상은 로마의 양식 속에 씌어져 있다. 사람들은 거기에서 곳곳에 권위를, 통일성을, 침투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을 느낀다. 곳곳에 성직자를 느끼되 결코 인간을 느끼진 않으며, 곳곳에 특권 계급을 느끼되 결코 민중을 느끼진 않는다.
그러나 십자군이 도착한다. 그것은 커다란 하나의 민중 운동인데, 어떤 커다란 민중 운동도 그 원인과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그 마지막 앙금으로부터 으레 자유정신을 발산시키기 마련이다. 바야흐로 새로운 것들이 나타나려 한다. 별안간 농민 폭동과 반란과 동맹들이 휘몰아치는 격동 시대가 열린다. 권위는 흔들리고 통일은 깨어졌으며, 유럽의 모습이 바뀌어졌다.
그러자 또한 건축의 모습도 바뀌어졌다. 문화와 마찬가지로 건축술은 책장을 넘겼고, 시대의 새 정신은 그 논술 아래 책장을 쓸 수 있도록 준비돼 있음을 발견한다. 옛날엔 그렇게도 독단적인 건물이었던 그 대성당 자체도 이후론 시민과 자유에 의해 침범되어, 성직자로부터 빠져나가 예술가의 세력 아래 떨어진다.
예술가는 그것을 제멋대로 세운다. 신화여, 신비여, 안녕! 여기 있는 것은 환상과 변덕뿐이다. 성직자가 그의 교회당과 제단을 갖고 있는 한 그는 아무런 할 말도 없다. 사면의 벽은 예술가의 것이다. 건축의 책은 이제 성스런 종교에, 로마에 속하지 않는다. 그것은 상상력과 시와 민중의 것이다. 민중의 재능과 독창력은 주교들이 했던 일을 한다. 각 민족은 지나가면서 그 역사를 책 위에 쓴다.
모든 신정적 건축의 일반적 성격은 불변성, 진보의 혐오, 전통적인 선의 보존, 상징의 불가해한 변화를 갖고 있는 자연과 인간의 모든 양상의 변함없는 주름이다. 그것은 비밀스런 전언에 통한 사람들만이 판독할 수 있는 난해한 책이다. 게다가 모든 형태가(기형마저도) 여기서는 하나의 뜻을 갖고 있어서 그것을 신성한 것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이 건축에 있어서는 교리의 엄격함이 화석처럼 돌 위에 퍼져 있다.
반대로 민중의 건축물의 일반적 성격은 다양성, 진보성, 독창성, 풍만함, 항구적인 움직임이다. 이 건축은 이미 충분히 종교에서 떠나 있으므로, 자체의 아름다움을 생각하고 보살피며 끊임없이 그 장식을 바꿀 수 있다.
15세기엔 모든 것이 변한다. 인간의 사상은 건축보다 더 견고하고 내구력이 있을 뿐 아니라 더 단순하고 용이한 하나의 방법을 발견한다. 건축물은 실각한다. 올페우스의 돌글자에 이어 구텐베르그의 납글자가 오게 된다.
책은 정녕 건물을 죽이려 한다.
인쇄술의 발명은 역사상 가장 놀라운 사건이다. 그것은 근본 혁명이다. 인류의 표현 양식이 전적으로 새로워지고, 인간의 사상이 하나의 형태를 버리고 다른 형태를 취하는 것이다.
인쇄술이라는 형태 아래 사상은 어느 때보다 더욱 불멸의 것이 되었다. 그것은 날아다니고, 붙잡을 수 없고 파괴할 수 없다. 그것이 공기에 섞여 든다. 건축의 전성기엔 그것은 산이 되어 강력하게 한 시대와 한 장소를 점령하고 있었다. 이제 그것은 한 떼의 새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지고 동시에 모든 공간의 점을 차지한다.
홍수가 온다 하더라도, 산은 물결 아래 사라져 버릴지언정 새들은 역시 날것이며, 대홍수의 표면에 단 한 척의 방주라도 떠 있다면 새들은 거기 앉아 배와 더불어 맑은 날을 볼 것이며, 그 혼돈 속에서 솟아나올 새로운 세계는 눈을 뜨고서 삼켜져 버린 세계의 사상이 자기 위해 살아 날개를 펴고 둥둥 떠돌아다니는 것을 보리라.
인쇄술이 발명된 때부터 건축술이 차츰차츰 얼마나 여위어 가고 오그라져 가고 발가벗겨져 가고 있는가를 보라. 물은 줄어들고 진은 잦아들고 시대와 국민들의 생각은 건축에서 얼마나 물러가고 있는가! 출판은 아직 나약하여, 강력한 건축의 잉여 생명력을 우려먹을 뿐이다. 그러나 16세기부터는 건축술의 병은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이미 사회를 잘 표현치 못하게 되고, 고전 예술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쇠퇴를 사람들은 르네상스라 부른다. 그러나 화려한 쇠퇴이다.
건축술이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예술에 불과해지자, 그것이 이미 종합 예술이 아니게 되자마자, 그것은 다른 예술들을 붙잡는 힘을 잃게 되었다. 그러므로 다른 예술들은 해방돼 저마다 갈 길을 간다. 고립은 모든 것을 키워 주어, 조각술은 조상술이 되고, 판화는 회화가 되고, 돌림 곡조는 음악이 된다. 마치 하나의 제국이 그 황제 알렉산더가 죽자 해체돼 그 지방들이 왕국이 되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라파엘, 미켈란젤로의 저 눈부신 16세기의 찬란함이 태어난다.
예술과 동시에 사상도 곳곳에서 해방된다. 16세기는 종교적 통일을 깨뜨린다. 인쇄술 이전이라면 종교 개혁은 교회 분리에 불과했을 터이나 인쇄술이 그것을 혁명으로 만들었다.
건축술이 쇠퇴함에 따라 인쇄술은 점점 진전하고 커져 갔다. 인간의 머리가 건물에 소비하고 있던 힘을 이후로는 책에 소비한다. 그리하여 16세기부터 쇠퇴하는 건축술의 수준까지 자란 인쇄술은 세계에 한 위대한 문학적 세기의 향연을 주기에 충분할 만큼 권위를 지니고 의기 양양히 확고부동한 자리를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