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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라일락(꽃) ㅈ ~ ㅎ

장미숙 – 라일락 향기

장병대 – 보랏빛 라일락꽃

장석남 – 라일락의 집

장수진 – 언 라일락, 개 한 방울

장승규 – 라일락 아래에서

장 욱 – 백년 라일락

전주호 – 라일락나무 아래

정계원 – 도시의 라일락꽃

정두리 – 라일락

정민기 – 라일락이 우는 5월

정병근 – 담장 안의 라일락

정선운 – 미스김 라일락

정성수 – 라일락 꽃잎

정연복 – 라일락

정연복 – 라일락같이

정연복 – 라일락을 노래함

정연복 – 라일락이 피는 까닭

정연복 – 라일락 향기

정연복 – 라일락 향기의 기도

정연복 – 행복한 라일락

정연화 – 라일락 꽃그늘에 서서

정정민 – 라일락

정정민 – 라일락 향기

정정민 – 창백한 라일락

정진용 – 미스김 라일락

정형근 – 라일락 향기

조기호 – 고원에 피는 라일락꽃

조병화 – 라일락

조순자 – 라일락 향기

조현석 – 라일락에 갇히다

주근옥 – 수수꽃다리

주응규 – 라일락꽃

지영자 – 라일락

최대희 – 라일락 연인

최봉희 – 라일락꽃

최상훈 – 라일락꽃

최숙경 – 라일락

최예은 – 라일락

최위성 – 라일락 향기 날리며

최은주 – 라일락의 신선한 충격

최정희 – 라일락 필 때

최홍종 – 라일락 은근한 자태에

하나비 – 수수꽃다리

하은혜 – 라일락

하재일 – 라일락꽃 필 무렵

한명희 – 라일락꽃

한천희 – 라일락 사랑

한하운 – 라일락꽃

허수경 – 라일락

허정인 – 라일락

허정인 – 라일락 꽃향기

허태기 – 라일락꽃이 필 때면

홍해리 – 라일락꽃 빛 소리

황광주 – 라일락 꽃잎이 떨어지면

 

 

 

라일락 향기

장미숙

 

달빛은

온 밤길에

라일락 향을 뿌려 놓았다

 

골목 옆 집집마다

불꺼진 창 틈에도

향기를 밀어 넣는다

 

라일락 향은

내 머리카락에 배어

골목 어귀까지 따라 오다

달의 손에 끌려갔다

 

나는

사월의 밤아, 밤아, 하고

눈부신 라일락나무 아래서

그리움을 부른다

 

 

 

보랏빛 라일락 꽃

장병태

 

반짝이는 달빛과 별빛 조명 삼아

넘쳐흐르는 붉은 와인잔 거머쥐고

향락에 젖은 호숫가의 개구리들

잠 못 드는 여름밤 흔들며 아우성치는 시간

 

습한 늪지 가장자리에 웅크리고

귀를 막는 볼품없는 두꺼비

누구도 관심 둬 줄 리 없는 몰골이다

 

연잎 한 장에 얼굴 가려보지만

툭 불거진 눈두덩이 달빛 받아 수면에 떠 오르니

산책 나온 소금쟁이 놀란 가슴 부여잡고

호수 표면 흔들며 줄행랑친다

 

하늘 맑은 날 분홍색 과꽃을 만났다

햇살 받아 늘어진 너의 그림자를 던져

음습한 해초 속에서 나를 끌어당긴다

외로움은 사약(賜藥)보다 무서운 형벌임을 알았다

 

하늘빛 색동옷을 입고 바람이 전하는 노래와 함께

너와 나 서로를 의지하며 온기를 나눈다

요란한 습지에 드리워진 스산한 먹구름 걷히고

보랏빛 라일락 꽃 피어나는 순간이다

 

 

 

라일락의 집

장석남

 

저녁의 장독대에서 장을 푸는

그, 숟가락을 탁탁탁탁 두드리는 소리로써

탁탁탁탁탁탁 그 유난한 소리로써

살구나무에 내려온 하늘을 깨워

잎잎마다 사랑의 얼굴을 만드니

그 윤기를

내 허파와 심장에

부끄러운 이마에도 발라서

살아 봐야겠다고

 

저녁에 나가 아주 가늘은 달이 낮에서

저녁으로 옮겨가는 것 보고 또 저녁에서

라일락 속으로 들어가는 것 보고

내 발들을 보고

발가락들을 보고

저녁에 나가 라일락나무 속으로

할머니, 향기들을 거두어 걸어 들어가는 것 보고

꽃 다 빈 것 보고

또 발등을 보고

발등 위 흙 보고

 

 

 

언 라일락, 개 한 방울

장수진

 

1

벽장을 연다.

 

 

2

개켜진 청색 작업 복 사이에 갈색 개가 엉덩이를 푹 찔러 넣은 채 앉아 있다. 공장의 굴뚝처럼 길게 솟은 개의 목. 안개와 담배.

 

 

3

아무것도 걸려 있지 많은 옷걸이가 흔들린다.

 

 

4

난 개죠. 라일락 나무 아래에서 태어났어요. 어머니는 돌아가셨고요. 마지막으로 말씀하셨어요. 빳빳한 모자를 쓰고 책상이 있는 곳으로 가거라. 눈보라가 너를 따라올 거야. 네 머리통만 한, 그것을 잘 살펴야 해.

 

 

5

17년 동안 나는 책상에서 눈보라를 견뎠어요. 식빵만 한 갈망과 헝글어진 밤하늘을요. 이렇게 말하는 방식도 조금은 이상하죠. 어머니를 닷할 순 없을 거예요. 죽기 직전, 어머니의 몸은 아주 납작해졌어요. 누군가 땅에 그려놓은 개 같았죠.

 

 

6

타자의 죽음. 상실. 그런 감정을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그땐 알지 못했어요. 어머니는 먹지 않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죠. 개의 몸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인간들은 영혼을 상상하죠. 자신의 얼굴로, 장애가 없고 동식물이 아니고 벌거숭 이가 아닌, 명예로운 정상성의 연작을,

 

 

7

나는 팔을 뻗어 밤하늘을 휘저을 수 있어요. 조용하고 평온한 아름다움과 쉬운 말, 이별하는 얼굴들, 벨벳 피코트를 입은 소년의 웃깃에 내려앉은 눈송이를 떠올려요. 하지만 누군가 내게 고기를 던져준다면 나는 무섭게 뛰어올라 그것을 주둥이로 낚아챌 거예요. 턱 근육을 부르르 떨며

 

 

8

질병으로 시력을 잃은 코미디언이 토크 쇼에 나와 가장 많이 사용한 동사는 ' 보고 있어요'었어요. 부드러우면서도 웅장한 목소리였죠.

 

 

9

나는 눈보라라는 모자를 쓰고 있어요. 이 도시에 탱크와 군대가 몰려오고 젖먹이들의 가랑이가 박박 찢겨져도 나는 눈보라라는 모자를 쓴 개죠. 개새끼죠. 어떤 손을 ' 햇빛처럼'이라고 부르는지 나는 알고 있는데.

 

 

10

어머니. 나는 보고 있어요. 어머니는 머리칼을 쓸어 올리고 있군요. 입안 가득 벌과 별을 문 채

 

 

 

 

라일락 아래에서

장승규

 

리라꽃

너의 이 별호를

나는 좋아한다

 

어머니 젖냄새 같은

너의 이 향기를

나는 좋아한다

 

새벽에 각혈하듯 지는

너의 이 낙화를

나는 좋아한다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는

너의 이 긴 여운을

나는 좋아한다

 

 

 

백 년 라일락

장욱

 

두방 뜰 나직이 나 됨도 부려 놓고

하늘의 무게로 등 굽어 섰다

 

한때는 송이송이 봄 달을 이고 진 청춘

 

모든 세상의 무게가 너에게 몰려와

화관을 씌우고 꽃 갈채를 보내더니

 

계절은 돌고 돌아 늙은 줄기를 비틀어 놓았네

 

백 년을 살고 다시 백 년을 죽어도

삶은 나에게 이르러 향기가 되었지

 

세상에 빚진 것은 그리움 하나 남았네

 

 

 

라일락나무 아래

전주호

 

붉은 벽돌 계단 옆

이제 막 배냇잠에서 깨어난 라일락나무 아래

칠순의 부부가 나물을 캐고 있다.

 

“아무거시나 다 먹는 게 아니랑께요”

“어허, 소가 먹는 건 다 먹을 수 있당께 그러시네”

 

쑥, 씀바귀, 밥주걱, 풍년초, 원추리, 광대나물

들풀을 흔들어대며

칠순의 부부는

빠진 이가 다 보이도록 마주보며 합죽 웃는다.

 

“얘야, 그만 놀고 저녁 먹으렴”

어머니가 부를 때까지

한 상 거나하게 벌어진 소꿉놀이

 

뭐든 쓸어 담을 수 있는 이순(耳順)의 나이

여린 나물들을 다듬으며

한없이 어려진 노부부를 바라보는 오후

 

킬킬킬

라일락나무 아래, 정지된 작은 행복 속으로

나도 쓰윽 끼어들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도시의 라일락꽃

정계원

 

탈북한지 몇 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도시에서

라일락꽃으로 산다

 

폐동굴 깊이보다 두껍게 언 두만강을 건널 때

라일락꽃의 생은 불안으로 여울졌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

13평의 아파트에서 향기를 뿜어내는 중이다

그의 꿈은 온 세상에 울려 퍼질 분단의

아픈 노래를 부르는 일

출연료도 없이 밤무대에 섰다

목이 찢어지도록 어둠속에 고독을 묻거나

식당주방에서 낮달과 함께 저녁을 닦았다

그녀는 세상을 일직선으로 걸었다

가난이 무릎위에 서성이면

무대에 올라 목놓아 어둠을 물리치기도 한다

도시의 달이 몇 번 기울고

궁핍으로 흔들리던 시간도 오래되었다

이젠

오선지 위로 푸른 지폐들이 몰려오고

거실이 마당보다 넓은 아파트로

수만 개의 푸른 새벽이 떼 지어 몰려온다

들짐승들의 발자국이 무수히 찍힌 도시,

라일락꽃은 흔들리며 또 강철처럼 홀로 산다

 

 

 

라일락

정두리

 

가지마다 숨겨진

작은 향기 주머니

 

이름 석 자 뒤에도

묻어나는 냄새

 

향기로만

나무가 되려는 나무

 

소올솔

작은 주머니가

올을 풀어서

 

봄 하늘을

향긋하니 덮어 버렸다.

 

 

 

라일락이 우는 5월

정민기

 

라일락,

물푸레나뭇과,

연한 자주색으로 운다

잎이 지는 떨기나무,

2에서 3미터의 높이,

우는 그녀를

사람들은 다독여주기는커녕

관상용으로 즐긴다

첫사랑,

젊은 날의 추억,

라라,

자정향,

릴라,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라일락을 껴안고 눈물을 소비한다

착한 소비 동참

내 눈물방울과 그녀의 눈물방울이

포개어지자

향기가 짙어진다

눈물방울, 눈물방울

꽃잎 방울

 

 

 

담장 안의 라일락

정병근

 

나는 상심이 많은 이마로

소문처럼 설핏설핏 넘보네

너는 무슨 일로 안 보이는가

 

닫힌 대문의 인중에 들끓는 적막

담을 넘어오는 향기여,

기척 없는 방안에서

너는 무슨 예쁜 일로 골몰하는가

 

부끄럽고 위태로운 짐승 하나가

내 안에는 도사리고 있어

땀이 흥건한 손으로

어느 날은

너를 저지르고 말겠네

 

너를 생각하며 돌아오는 길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길

 

너는 내 눈에 보이지 마라

순하고 놀란 눈으로 마주치지 마라

꽃은,

네가 사는 담장 안에 피어라

 

 

 

미스김라일락

정선운

 

또각또각 앉은 창가 연유 듬뿍 넣은 커피를 마시며 연인들을 본다

하이힐을 닮은 반쪽 낮달 왜 저리 슬프게 웃을까 생각하다가

오래전 연보랏빛 스카프 목에 두르고 낮달처럼 저리 웃었을지도 몰라

생각하는 것이 다 뾰족하거나 둥근 잎사귀 시간이 물크러진 마음에 머물렀구나

함께 본 낮달이던가 낮달에 베어 아팟던가

나귀처럼 웃는 입으로 즐거운 인생을 이해해 버린 날

눌렀던 하차벨 고장 난 봄 마른 줄기는 잎이 돋지 않았다

바람은 구름을 걷고

산책길은 남아

낮달의 전염력과 그 증상에 대해

바람에 날아오른 잎사귀 뿌리 없는 슬픔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아무것

 

 

 

라일락 꽃잎

정성수

 

모년모일

시나브로 라일락 꽃잎 질 때

단칼에 마을은 점령 당했다

녹슨 철모 씌워

해는 가리워지고

번득이는 총과 칼

속살을 허공으로 찢어 날렸다

허무산(虛無山) 수박밭 기슭

끈끈한 피 소나기 쏟아져 내리고

달리던 마을

우뚝 선 채 망가졌다

젊은 날의 깃발이 내려지고

피비린내 곁에서 아무도

사랑을 꿈꾸지 않았다

그리운 이름들이 칼을 물고 누운

무덤 위에 서서

바람 흔드는 꽃이여

저 푸른 하늘 아래 쓰러진

무죄의 마을이 보이느냐?

 

 

 

라일락

정연복

 

1

봄이 한창인 4월이나

5월 늦봄

 

가지런히 균형 잡힌

네 개의 잎

 

하양이나 연보라, 진보라의

다채로운 빛깔

 

은은히 짙은 향기로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관상수.

 

원래 이름은 참 재밌게도

미스 김 라일락(Miss Kim Lilac)

 

가지에 빽빽이 달린 꽃봉오리가

오곡 중 하나인 수수 이삭과 닮아

'수수꽃다리'라는 우리말 이름도 있다네.

 

꽃말은 첫사랑의 아름다운 맹세,

순결, 혹은 젊은 날의 초상

 

향이 무척 좋은 나무라는 뜻에서

한자로는 정향(丁香)나무

 

한방에서 정향나무 꽃봉오리는

가슴앓이와 구토증을 치료하는 약재라네.

 

모양과 빛깔

쓸모를 두루 갖추고서도

 

거만 떨지 않는

수수함으로 더욱 다정히 느껴지는

 

너의 향기 맡으며

첫사랑 그 시절이 생각난다.

 

 

2

풍성히 무리 지어

서로들 몸을 비비고 있는

 

보랏빛 꽃도

더없이 아름답지만

 

말없이 풍기는

은은한 향기

 

잠시 코끝에 스치다가는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나는 꽃으로

너는 사람으로

 

이 땅에 잠깐 머물다 가는

안개 같은 생.

 

나쁜 마음일랑 먹지 말고

어두운 생각일랑 하지 말고

 

그냥 나같이

밝고 순하게 살다가

 

좋은 향기 한 줌 남기고

후회 없이 떠나는 게 어떠냐고

 

내 가슴에 대고 조용조용

속삭이는 라일락.

 

 

 

라일락같이

정연복

 

살아서

은은한 향기였던

 

라일락은 지고서도

잊히지 않는다.

 

코끝을 맴돌던

그 향기

 

오래오래

가슴속에 추억된다.

 

라일락같이 향기로운

삶을 살았던 사람

 

죽어서도

영영 못 잊힌다.

 

말없이 깊고 그윽했던

그 사람다움의 향기

 

뭇사람들의

마음속에 기억된다.

 

 

 

라일락을 노래함

정연복

 

1

네가

쥐 죽은 듯

 

그냥

가만히 있어도

 

세상 사람들은

다 안다

 

네가

라일락이란 걸.

 

허공을

휙, 스치는

 

한줄기

바람에 실려

 

사르르

사방으로 번지는

 

은은한 향기의

물결로

 

 

2

널 생각하면

코끝에 맴도는

그윽한

향기.

아직은 너의

계절이 아니지만

네 향기는

계절이 따로 없지.

몸으로는

내 곁에 없어도

네 향기는

영원한 것.

연보랏빛 고운

꽃잎도 예쁘지만

너는 정녕

영혼의 꽃이리

 

 

 

라일락이 피는 까닭

정연복

 

수수한 연보랏빛

꽃도 예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그윽한 향기

 

더욱 매력적인

라일락이

 

해마다 피는 까닭을

알고 계신지요.

 

나의 꽃향기를

맡는 사람들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내면이

더 아름다운 사람

 

꽃마음 꽃영혼의

행복한 사람이 되라고

 

 

 

라일락 향기

정연복

 

1

라일락꽃 앞에 서서

가만히 눈 감으면

 

꽃은 보이지 않아도

코끝에 맴도는 향기.

 

그냥 이대로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가슴속

깊이 파고든다.

 

온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의 태양 나의 애인이여

 

너에게서도

똑같은 향기가 난다.

 

 

2

밝게 웃는

얼굴도 무척 예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너의 향기

 

은은히 짙으면서도

품위 있다.

 

너의 마음

너의 영혼

 

얼마나 긴 세월

가꾸고 다듬었기에

 

이다지도

좋은 향기가 나는 걸까.

 

 

3

길을 걷다가

한순간 스쳐도

 

문득

숨이 멎을 만큼

 

그윽한

너의 향기인데

 

이렇게

좋은 향기

 

가까이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의 마음

그들의 영혼

 

꽃향기로

물들어가리

 

 

4

라일락

향기를 맡을 땐

가만히

눈을 감아요

실눈이라도

뜨지 말고

두 눈을

꼭 감아요

그러면

참 신기하죠?

잠시

시각을 잃고서

후각에만

마음을 쓰면

그윽한 꽃향기

더욱 짙어

코끝을 맴돌아

가슴속까지

사르르

파고드는 듯

 

 

5

연보랏빛 꽃도

눈에 쏙 들어오지만

겉모양보다 더 매혹적인

은은히 짙은 향기로 이름난

라일락

 

일년 열두 달 중에 하필이면

라일락 피는 5월에

그분이 너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은

 

목련이나 장미처럼

눈부신 겉의 화려함보다는

보이지 않는 고운 심성으로

송이송이 사랑꽃 피워

 

네 발길이 닿는 모든 곳

너와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살아 있음의 기쁨과 행복을 전하는

그윽한 향기 되라는 뜻이려니,

 

해마다 라일락꽃은 피고 지더라도

왠지 라일락 같은 느낌의 너는

우리의 마음속에

아름다운 사람으로 길이 남으리

 

 

 

라일락 향기의 기도

정연복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바람을 타고

흘러 흘러서

 

사방팔방

세상으로 흩어져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은은한

라일락 향기처럼

 

자꾸만 뭘

움켜쥐려는

 

욕심과

안달을 떨쳐버리고

 

혹시 내게 있는

좋은 것을

 

세상 속으로

흘려보내는

 

선한 영향력의

삶을 살게 하소서

 

 

 

행복한 라일락

정연복

 

눈에

보이지 않는

은은한

꽃향기가

눈에 보이는

모양과 빛깔보다

더 사랑받는

라일락

너는 참

행복한 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과 빛깔이

사라져도

아련한

꽃향기는

사계절

코끝에 맴도는

영원한 추억과

사랑의 꽃

 

 

 

라일락 꽃그늘에 서서

정연화

 

꽃물결 이루는 4월의

맑고 화창한 봄날에

사색의 뜰을 거니는 여인

 

보랏빛 라일락의

은은한 향기에 취해

숨을 크게 들이마십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코끝 가까이

꽃을 끌어당겨도 봅니다

 

첫사랑의 향기인가요

잊지 못할

추억의 옛 향기인가요

 

소녀도 아닌데

라일락이 피면

언제나 마음이 설레요

가슴이 뛰어요

 

하늘거리는 라일락

꽃그늘에 서서

보랏빛 연정으로

수줍게 그대를 그립니다

 

 

 

라일락

정정민

 

라일락 동원은

마른 가지뿐이었다

그 어디에도

없어

숨겨둔 그리움 새라도

찾아들까 안쓰러웠는데

4월 어느 날

초록잎 펼쳐

자신의 가지를 감추더니

보라색 꽃을 피워냈다

얼마나 속으로 그리우면

타버린 가슴 향기로 내놓을까

작은 창름 비집고

방안에 가득하다

노래도 저 향기 같아

'못 이룬 사연

임에게 갔으면

 

 

 

라일락 향기

정정민

 

햇살 눈 부신 4월의 뜰

아름다운 자태 고운 빛깔

향기로운 꽃

여기저기 피었습니다

내 마음은

가장 향기로운 꽃을 찾는 나비

이제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숨을 더 이상 들이쉴 수 없는

육신의 한계에 이르러도

멈추고 쉽지 않은 당신의 체취

차라리 이대로 잠들고 싶습니다

깨어나지 않겠습니다.

 

 

 

창백한 라일락

정정민

 

천왕산 자락

하얀 십자가 불빛 은은한

마을 교회는

밤새도록 향기에 젖는다

 

담벼락 옆

봄이면 피는 라일락 때문이다.

어디 교회뿐이라

초등학교도 온 마을도 젖는다

 

십자가 빛 따라

에움길 지나가며

덩달아 흠뻑 젖는 마음

마우 때문

꽃향기 좋아했던 그녀 때문

향기 나는 교회에

같이 가자더니

이젠 없다

하얗게 질린 늙은 라일락뿐.

 

 

 

미스킴라일락

정진용

 

아가야 삼십 년 만에 널 안는다. 밤꽃 향기 자욱하던 네가 아이 엄마 되었구나. 네 모습 낯익은 듯 낯설다. 이 땅의 꽃과 다른 너를 홀로 기를 수 없어 너를 보냈단다

그래요. 나는 히아신스, 데이지, 튤립 가득한 꽃밭에서 꽃술 까맣게 자랐어요. 나를 둘러싼 꽃과 어울리는 꿈틀꿈틀 이름 얻었지만 나는 황달 진한 모자이크 조각이었어요.

 

아가야, 너는 어떤 미국인이 가져간 이 땅의 정향나무처럼 줄기, 꽃잎, 빛깔 향기 다 다른 꽃 속에서 혈혈 섬으로 살았겠지. 미안하다. 엄만 이 말밖에 못 하겠구나. 정말 미안하다.

내 얼굴은 라일락이고 내 몸엔 수수꽃다리 수액 흐르지만 온전하진 않았어요. 나는 참나리 닮은 릴리처럼, 패랭이 핏줄 연연한 카네이션처럼 어정쩡 살았어요.

 

이 땅에 철마다 피는 꽃 따라 널 생각했단다. 해마다 지는 꽃잎만큼 할 말이 쌓였지만 막상 네 앞에선 아무 말도 못 하겠구나. 아가야. 내 아가야. 너는 있는 그대로 너란다.

내가 엄마를 그리워하듯 엄마도 그럴 거라 믿었어요. 엄마가 믿은 것처럼 언젠가 엄마를 만날 것이라고 숯덩이 가슴 더욱 까맣도록 믿었어요. 엄마 나 때문에 울지 말아요.

 

아가야, 너는 수수꽃다리 외탁하지 않았어도 예쁘단다. 라일락 빼 쏘지 않았어도 예쁘단다. 살아보면 어떻게든 살아지는 걸 때늦게 알았단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아가야.

스쳐 지나가는 사람에겐 모든 게 아름답지요. 미스킴라일락도 그리 여겼으면 싶어요. 엄마가 날 생각하듯 나도 엄마를 사랑하니까요. 사랑해요. 엄마, 엄마…….

 

 

 

 

라일락 향기

정형근

 

보랏빛 수수꽃 다리

라일락꽃 오묘한 향이

눈 흘기며 봄을 부른다

​

연분홍 꽃잎 고고함이

촉촉한 물결에 갇힌 채

봄비에 흐느껴 운다

​

유혹의 아쉬움에 향기

부끄러워 입술 내밀면

가슴속을 후비는 그리움

​

임 향한 둘만의 블루스

즐거웠던 봄날의 추억은

꽃잎이 보낸 편지 한 통

​

햇살 쏟아지는 날이면

예쁜 꽃으로 다시 피어나

또다시 입맞춤 부르겠지

 

 

 

고원에 피는 라일락꽃

조기호

 

달보다 높이 뜬 고원의 봄에도 라일락꽃은 피었다

ㄱ자로 굽은 할머니와 쪽 찐 머리 젊은 여인의 하숙집 마당에도

한 그루 라일락 나무가 자라서 봄이면 꽃향기를 피웠는데

라일락꽃이 눈물 나게 피는 깊은 밤이면 뼈저리게 흐느끼는 속울음의 긴 파장이

우표딱지만큼 뚫린 알전등 구멍으로 벽을 건너 해일처럼 밀려왔으나

아침이면 가르마도 반듯이 날달걀을 밥 속에 숨긴 밥상을 조신하게 마루에 놓고 간다

라일락꽃이 지던 어느 날 감쪽 같이 쪽 찐 머리를 풀어버린 여인도 지고

제 살붙이 어린 두 남매를 팽개치고 하숙하던 산간수 따라갔다는데

허우적거리는 늙은 시어미와 생떼같은 자식새끼가 무거운 인생이던가

하현달보다 더 높은 고원에 봄날은 또다시 와서 라일락은 피었는데

쪽찐 머리 청상과부 며느리는 기별조차 없었다

 

 

 

라일락

조병화

 

당신, 라일락 꽃이 한창이요

이 향기 혼자 맡고 있노라니

왈칵, 당신 그리워지오

 

당신은 늘 그렇게 멀리 있소

그리워한들 당신이 알 리 없겠지만

그리운 사람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족하오

 

어차피 인생은

서로서로 떨어져 있는거

떨어져 있게 마련

 

그리움 또한 그러한 것이려니

그리운 사람은 항상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련가

 

당신, 지금 이 곳은

라일락 꽃으로 숨이차오

 

 

 

라일락 향기

조순자

 

1

누구를 연모하던

그리움이런가

라일락 향기 감미롭다

 

보랏빛 수수 다래 꽃

소담하게 피어나

그리움의 강 출렁인다

 

처마 끝에 찾아든 제비

새집 지을 때 라일락

희망의 향기 코끝을 적신다

 

그리운 사람 기다리는 이

지치고 허기진 영혼 속에

강물처럼 흘러드는 라일락 향기

 

 

2

순결한 하얀빛으로

고고한 보랏빛으로

소담하게 핀 라일락꽃이

 

청잣빛 하늘 아래에서

매혹적인 천연의 향기를

사방 천지에 풍겨 날린다

 

만고풍상을 이겨낸

어두운 밤의 파수꾼이

승리의 이야기 전해주듯

 

라일락꽃 천연적인 향기가

어둠 속에서도 아주 멀리까지

날아가 자신만의 향기를 전한다.

 

 

3

순결한 하얀빛

어머니 마음 같고

은은한 보랏빛

아버지 미소 같아

닮고 싶은데

청잣빛 하늘만 보인다.

 

비바람 거센 들녘에서

알곡 지게 영근

수수 이삭 원추화서처럼

소담한 라일락꽃이

향긋한 향기를 풍긴다

 

어두운 밤의 파수꾼처럼

만고풍상을 이겨낸

삶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저 신비한 향기는

라일락꽃 고뇌의 향기다.

 

송이송이 진한 향기를

가슴에 쓸어 모으기까지

얼마만큼의

아픈 시련을 견뎌냈을까?

라일락꽃 향기가 퍼져간다.

 

 

 

라일락에 갇히다

조현석

 

나서기보다 들어오기 위한 것이 문(門)이지

나가지 않고서야 되돌아올 수 없는 법이지

둥근 방 하나쯤 만들겠다고 엄동(嚴冬)에 결심했지

얼음장에서 자라난 향기는 차디찬 슬픔의 늪이지

 

오월 어느 하루 꽃잎 열자 날아든 벌과 나비들

갇힌 몸이었기에 부러움에 시샘할 수밖에 없었지

살랑거리는 수술 꽃밥과 암술 머리로 끌어올려져

내뿜어지는 향기 천지사방 흩어져 훨훨 날아갔지

지상으로 하늘로 강과 바다로 가없이 퍼져 나갔지

새벽 지나 한낮 가고 어스름조차 오는 줄 몰랐지

깜깜한 밤중 되어서야 밑씨는 악몽을 꾸게 되지

무미건조, 무색무취한 겨울밤만 되풀이되는 꿈!

 

떠돌고 떠돌다 밀폐된 씨방에 꼼짝없이 갇혀버리지

옥죄어오는 공명(孔鳴)의 고독만 갉아 대고 갉아 댔지

목마른 봄밤 지나 첫닭 울 때 또 자유를 찾아 나서지

들어오기보다 나서기 위한 것 또한 문(門)이니까

 

 

 

수수꽃다리

주근옥

 

수수꽃다리

보고 있노라면 배가 고파요

 

향기에 그늘 겹쳐

혼자라도 귀가 시려요

 

아시죠 당신은 이 자리가

왜 서늘한가, 흔들거리는가를

 

수수꽃다리

잡고 있노라면 가슴 저려요

 

 

 

라일락꽃

주응규

 

어느 틈에 오셨는지

짙은 그리움의 향기로

마음 울려 놓으시네

 

어디선가 애절히 부르는

귀에 익은 목소리

뒤돌아보면

소녀는 간데없고

 

먼 날의 첫사랑이

설핏한 추억만이 흐르네

라일락 꽃향기에

새포름히 피어나시네

 

달콤한 향기에 드리워진

새큼한 풋사랑이

가슴속에 노닐고 계시네.

 

* 새포름히 : 산뜻하게 파르스름하다.

 

 

 

라일락

지영자

 

사랑하는 이여!

라일락꽃이 한창이에요

 

보랏빛 향기에 취하여

눈을 감아보세요

 

걷잡을 수 없는 희열

젊은 날들이 떠올라요

 

우리 손잡고

라일락 피는 꽃길을 걸었던

돌아올 수 없는 날들이

꽃문열고 어서 오라 손짓해요.

 

 

 

라일락 연인

최대희

 

향기는 자석이다

그대 얼굴인 양

꽃을 들여다보고

그대가 부는 하모니카 소리인 양

휘파람새 소리 듣고 있노라니

향기 한 아름 안고 와

웃고 서 있는

그대

 

 

 

라일락꽃

최봉희

 

꽃바람 너울 따라

신나게 달려가면

 

보랏빛 그대 향기

내 사랑 꽃이 핀다

 

내 곁에

그대가 있어

먼저 피는 그 향기

 

 

 

라일락꽃

최상훈

 

이슬 매달린 꽃잎사구는

인녘의 눈물입니꺼

 

땡가암 질러사아도 안올긴대

향기에 험뻑 젖은 꽃잎사구는

인녘이 대기 슬푼 곡조로

 

라일락꽃 그윽하게 잦아드는 향기

어매가턴 웃음

눈알 마주치몬

나도 마 따라 웃음을 배우는기라

 

저리 아슴히 따라로 추억

온몸띠에 솟아나는 기리움

널짜진 꽃잎사구가치

가심만 아려온다아이가

 

 

 

라일락

최숙경

 

장맛비 같은 봄비가

우두둑 한바탕 쏟아지고 나면

그 자리에

아주 옛날의 이야기처럼

묻어 두고 싶은 이름이 떨어져 내린다

창문으로 오월의 향기가

예고 없이 들어와

밤은 더 검게 짙어지고

그저 아프다고 아프다고만 해야지

 

일시 정지된 시간 안에 있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차라리 나은지도 모른다

추억은 옛날인데

라일락 향기는 시간이 갈수록 짙어져

비 젖은 흙냄새 습한 공기 속에서

내게로 너에게로 펴져

슬픈 액자 속에 가두고 있다

 

 

 

라일락

최예은

 

솔솔 불어오는 푸르름이 펄럭이는 봄날

도심의 숲길 사이에 별 무리가 내려앉은 듯한

너는 내 가슴속 사랑의 불씨가 되었다

화려한 자태와 발길 머물게 하는 향기

너의 그윽한 몸짓은 나를 황홀하게 했다

보랏빛 부케로 곱게 치장한 너

그리움 젖은 눈망울로 아롱진다

부드러운 입술은 아린 향기로 차오르고

애달픈 몸짓은 못다 푼 해후의 설렘으로 다가온다

꽃등을 밝혀든 너의 고운 발걸음

봄날, 너의 축제는 시작되었다

 

 

 

라일락 향기 날리며

최위성

 

오는 봄에 토라진

세찬 비바람 딴지 걸어도

꽃을 피운 별꽃 라일락

 

잎 사이로 연보랏빛

풋풋한 열정 못 견뎌

봄의 향기 띄운다

 

수수꽃다리 정든 이름 대신

바다 건너 다녀온 것이

무예 그리 원죄라고

라일락 낯선 이름표 달았나

 

하지만 꿈과 희망

향기도 태깔도 으뜸이라

꽃향기처럼 조용히 다가와

학창시절 살갑던 그 친구

 

떠나고 한참 뒤에야 알았다

커피 향보다 짙은 그대 향기

그 후 가슴에 쌓인 그리움

해마다 청순한 꽃은 피는데

순진무구한 하얀 꽃이든

첫사랑 연보랏빛이든

사랑은 그렇게 왔다 갔는가?

 

상실한 일상에 서글퍼하다

하루해 짧은 어스름녘에

더러는 눈시울에 이슬 맺힌다

 

 

 

라일락의 신선한 충격

최은주

 

자기최면도 필요할 때가 있 듯

 

나는 행복하다는 인식의 전환은

어느 한순간에 올 때가 있다.

 

꽃이 핀 걸 반가워하는 나이가 있듯

지금, 이 순간 나는 꽃으로 피어 행복하다.

 

" 너를 보는 나 "

" 지금 꽃을 피운 너처럼"

 

 

 

라일락 필 때

최정희

 

비에 젖는 것을 좋아한다

때때로 잎새들은

미친 바람에

꽃송이 떨어지는 사월에도

봄비는 온다

젖은 나뭇가지 옹이에

봉긋이 눈 풀린 새싹

아지랑이 숨결로

잎새들의 봄 치장이 붐빈 다

상처로 흔들린 뜨락

실비에 마음도 젖어

씻어낸 풀잎끼리 소곤댄다

급기야 보랏빛

짙은 향기를 피어낸다

 

 

 

라일락 은근한 자태에

최홍종

 

향기에 도취 되어 흠흠 거리다

동네 담장 안쪽에 수줍게 피었을 때는

그냥 지나치고 본체만체 내몰라하다

그 은은한 자태와

젊은 날의 추억에 잠겨

코끝에 은근히 제법 향기가 스친다.

여염집 소박한 아주머니 치맛자락처럼

활엽수 그렇게 넓지도 않은 넓적한 얼굴이

수줍음 많은 그나마 평범한 잎사귀들이

봄바람에 살랑거릴 때엔

무심히 관심도 없이 스치는 눈으로 보았다.

피어난 연보라 하얀 꽃송이는 작은 아기자기한

물푸레나무과 수수꽃다리속에 속한단다

이름도 예쁘고 모두가 다 소박하여

화관은 깔때기모양이고 끝이 네 갈래로 나누어진 것이

연한 보라색 향기가 부끄럽게 진하다

알고보고 냄새 맡으니 쉽게 괄시할 처지가 아닌 것을..

 

 

 

수수꽃다리

하나비

 

둥근달 한 마리

학에 아련한 생각

간절 바람 소녀

사이에 뉘고 지난날

 

솔바람 소리

돌아오는 길에

흰 꽃비 내리고

수수꽃다리 그늘처럼

 

시간은 흘러서

학령에 한가로움 닿고

홍곡 눈보다 희어진

홍안에 저 학처럼

 

아픈 연분으로 가슴

미여 아리는 만고절색

쳐다보면 산처럼

학 같은 무비일색

 

인연 형태처럼

절세미인

질언거색깊으면

초록동색처럼 스밀 때

 

한 색즉시공밑

돌아오는 일에는

나는 아린 천향국색

회한 눈물 납니다

 

하얀 수건에 등잔을 닦고

소담한 불을 밝혀서 평조화가

머리 숙인 오늘 밤에는

아름다운 상양고무 생각난다

 

 

 

라일락

하은혜

 

1

아직은 찬바람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초사월의 아침에

 

무심결처럼 만나는 그녀!

 

여린 몸매에

수줍게 미소 지을 때면

 

여학교 때 그녀처럼

살포시 패이는 볼우물 입가에서

퍼지던 새침한 향기

 

라일락꽃을 좋아한다며

수줍게 미소 짓던 연보랏빛 그녀가

더 그리워지는 날이다

 

 

2

꽃샘바람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초 사월 아침에

무심결처럼 만나는 그녀

 

가녀린 몸매

살포시 패는 볼우물 입가에

퍼지는 새침한 향기가

여학교 때 그녀를 닮았다

 

라일락 꽃을 좋아한다며

수줍게 미소 짓던

연보랏빛 그녀가

사뭇 그리워지는 날이다

 

 

3

이렇게 라일락이 피어나는 날이면

내 마음의 한켠에서 함께 피어나는 그녀

 

여리여리한 몸매에, 수줍게 미소 지을 때

살짝 패이는 볼우물의 입가에서

은은히 퍼지던 새침한 향기 ..

 

라일락을 좋아한다며

살포시 웃던, 연보랏빛 그녀

 

 

4

가던 발길을 멈추게 하는

새침한 듯

감미로운 이 향기는

 

누구일까?

뒤돌아 헤아려보니

 

큰 나무 뒤에서 살포시 미소 짓는

연보랏빛의 실루엣...

 

아!

지난해 만났던 그녀가 아닌가

일 년 만의 해후이다

 

한걸음 떨어져 바라보아도

그리움 때문일까

 

가슴속에서

기억속에서

다시 피어나는 그녀

 

그 향기는

이미 치명적으로 자라나

 

심쿵!

나의 심장마저 점령해버린다

 

 

 

라일락꽃 필 무렵

하재일

 

햇빛에 젖은

이 세상의 구석진 골목마다

추억은 발산되고 있다

낯선 집 앞에서

누군가 서성대고 있다

나는 뚜렷한 형체를 구하였으나

아무도 내게 말 건네지 않았고

더군다나 끌어안아 주지도 않았다

낡은 정신이 기댄 언덕 위론

노상 흰 구름만 지나가고

간혹 지난밤 흘린 울음 같은

빗방울이 몇 가닥 뿌려졌다

발돋움하여 넘겨다보면 높은 담장

어느 낯선 집 앞에서

한 사내가 서성대고 있다

그저 기웃기웃, 문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라일락꽃

한명희

 

따사로운 햇살

미풍의 노래 감미롭던 날

아침을 달려온 구름도

손에 손잡고

뜨락의 흐드러진

꽃향에 취해 몽롱한데

 

여심은

꽃가지 몇 개 꺾어

질박한 항아리에 꽂아 두니

감빛 항아리와 연보라 꽃

촌 각시인 양 고와서

 

벙글벙글 꽃 따라 웃다가

흥에 겨운 붓 놀이로

한 폭 그림 꽃밭에 펼쳐지고

 

감성 깊은 여인 나비 등 타고

라일락 꽃 흐드러진 교정으로 날아가

개여울 닮은 사람 불러 꽃그늘에 앉는다

 

 

 

라일락 사랑

한천희

 

그 집

담장에 라일락 꽂이 피는 날

고백하려 했습니다

 

라일락 그 향기 짙어지고

아름다운 보랏빛 유혹이

그녀는 꽃처럼 아름다워 지만

고백하지 못했습니다

 

그집 앞

가로등에 비쳐지는 라일락꽃 아래

그녀가 앉아 달을 보고 있을 때

고백하려 했습니다.

 

라일락 그 꽃이 별처럼 빛나고

그녀는 밤하늘 달처럼 밝았지만

고백하지 못했습니다.

 

고백치 못한 세월에

떠난 여인 있어

 

라일락 향기를

맡지 못하고

라일락꽃을

기억치 못합니다.

 

 

 

라일락꽃

한하운

 

라일락꽃

밤하늘의 은별 금별

은하수 흐르는 별

 

날이 새면

땅 위의

성좌(星座) 흐르는 별

 

별들이 꽃핀

라일락꽃

 

별

라일락꽃

소녀의 눈

 

눈물겹도록 귀여운 눈

눈동자

반짝이는

 

사랑

사랑이 너무 진한

라일락꽃

 

 

 

라일락

허수경

 

라일락

어떡하지,

이 봄을 아리게

살아버리려면?

​

신나게 웃는 거야, 라일락

내 생애의 봄날 다정의 얼굴로

날 속인 모든 바람을 향해

신나게 웃으면서 몰락하는 거야

​

스크랩북 안에 든 오래된 사진이

정말 죽어버리는 것에 대하여

웃어버리는 거야, 라일락,

아주 웃어버리는 거야

​

공중에서 향기의 나비들이 와서

더운 숨을 내쉬던 시간처럼 웃네

라일락, 웃다가 지네

나의 라일락

 

 

 

라일락

허정인

 

라일락

너는

나무이며

꽂이며

향기 바람이다

 

에전부터

지금까지

한자리에서

곧고도 우아한

고목이 되었구나

 

자주색

꽃봉우리는

보랏빛 띤

분홍색으로 피다

흰빛으로 눈부시더라

 

너는

향기 바람,

향기로 다가와

두 눈을 감긴 채

내 넋을 빼내지

 

아주 오래전부터

봄이면

나는

첫사랑 설렘으로

네게 머문다

 

네 앞에 서면

모든 시름이

향기 바람 되어

자유로우며

행복하기에.

 

 

 

라일락 꽃향기

허정인

 

라일락

꽃나무 아래에서

울었더니

눈물에서 향내가 났어요

 

겹겹

지나온 세월

슬픔도 잊었건만

 

그 향기를 못잊어

사월이면

라일락 꽃을 기다립니다

 

분홍색

보라색

천사들 분 냄새

라일락 꽃!

 

오늘은 그립던

그 향기

라일락 꽃나무 아래에서

웃습니다

 

아아!

내 웃음에서

그때 그 향내가 납니다.

 

 

 

라일락꽃이 필 때면

허태기

 

라일락꽃이 필 때면

보라 빛 몽우리에 새겨놓은

젊은 날의 추억들이

달콤한 향기로 피어오르네

하얀 세라복 사이로

꽃 봉오리처럼

봉긋한 그녀 젖가슴은

사랑으로 가득하였고

부드러운 입술은

뜨거운 믿음이었네

풋풋한 살 내음은

라일락 향기처럼

싱그러웠고

그녀의 작은 숨결은

자장가처럼 편안했었네

라일락꽃이 질 무렵

그녀는 떠났지만

라일락 나무 아래에서

그녀를 기다렸네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아있어

라일락 꽃이 만발할 때면

풋사랑의 향기가

지난날의 푸른 꿈으로

아련히 묻어나네.

 

 

 

라일락꽃 빛 소리

홍해리

 

아스팔트 위

기진한

아지랭이

벅찬 신열로

자주꽃 속을 넘나드는

금빛새

종종종

자릴 옮기며

피고 있다

꽃술마다

오르는 불길

모닥불에 묻히는 하늘

불을 지피는

여학생들의

발뒤꿈치

하얀 어질머리 가락

꽃사태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암내같은

한 다발씩의

어지러움

아픈

개화(開花)

 

 

 

라일락 꽃잎이 떨어지면

황광주

 

바람은 의미 없는 발걸음을 하지만

뜨거운 가슴으로 다가오는 당신은

오늘도 나의 빈자리에 눈이 멀도록

향기로운 입맞춤을 한다

 

따가운 햇살이 나뭇잎에 부서지고

초록 그늘 위로 라일락 꽃잎 떨어지면

당신의 빈자리에 마주 선 못난이는

바보 같은 그리움을 왈칵 쏟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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