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만영 – 매화
장석남 – 매화를 걸고
장영길 – 매화
장유정 – 매화
장유정 - 매화의 봄
장유정 – 설중매
장유정 – 청매화
장유정 – 홍매여
장인성 – 매화
장태숙 – 눈물 한 잎
전동균 – 매화, 흰빛들
전병윤 – 당신, 매화
전병조 – 춘매(春梅)
전영관 - 매화 잔혹사
정도경 – 춘풍 매화
정민기 - 섬진강 매화마을
정병근 - 눈꽃 속의 매화
정상화 – 겨울 매화 앞에서
정상화 – 매화 향기 떨어지면
정 숙 – 청매
정 숙 - 청매화
정 숙 –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
정 숙 - 청매화 피어나는 열사흘 달밤
정숙자 – 설중매
정연희 – 매화
정용진 – 설매부(雪梅賦)
정용진 – 춘매(春梅)
정 웅 – 설중매
정은정 – 매화
정일남 – 매화
정정민 – 분홍 매화
정정우 – 매화꽃이 피었습니다
정종명 – 매화가 지천인 때
정종명 – 설중매
정진규 - 순천 찬새미골 청매화
정찬열 – 망울진 청매화
정찬열 – 매화
정찬열 – 매화가 필 무렵에
정찬열 - 매화의 소망
정찬열 – 붉은 매화 망울
정찬열 - 청매화
정찬열 - 초봄날에 설중매
정해란 - 매화, 봄 터트리다
정해란 – 매화향 맑게 흔들릴 때
정형균 – 섬진강 매화
조남명 – 매화
조남명 – 춘매(春梅)
조동운 – 매화
조순자 – 설중매 향기
조승래 - 매화나무는 남겨둬요
조예린 - 매화
조용미 – 매화서(書)
조용미 – 봄, 양화소록
조용미 – 탐매행(探梅行)
조유리 – 매화가 핀다지요
조지훈 – 매화송(梅花頌)
조충생 – 매화 품은 설화
조한수 – 청매화
조향순 – 매화꽃
주근옥 – 매화
주응규 – 매화
주응규 – 설중매
지재당 강씨 – 임인 양하여
진영대 – 매화꽃
진준수 – 매화
차옥혜 – 섬진강 매화 나라에서
채 린 – 백매화
천상병 – 매화꽃
최광유 – 정매(庭梅)
최규영 – 매화꽃 피다
최두석 - 매화나무 앞에서
최두석 - 매화와 매실
최명운 - 매화
최명자 – 매화가 필 때
최문자 – 청매화
최봉희 – 황매화 사랑
최서진 – 바다 쪽으로 매화
최영윤 - 매화가 피면
최이천 - 꽃비 된 매화
최이천 – 매실 꽃이 보인다
최이천 - 매화꽃 설렘
최이천 – 매화 연가
최이천 – 매화 피던 날
최하림 - 어디서 손님이 오고 계신지
최하정 - 고목 매화나무
최호빈 – 매화
최홍연 – 매화꽃 핀 아침에
평 보 – 월매(月梅)
하영순 - 매화
하영순 – 설중매
하종오 – 풍매화
한광구 – 매화
한도훈 - 매화꽃 - 백남준을 기억하며
한도훈 – 창덕궁 만첩매화
한병진 – 매화
한병진 – 매화꽃 연정
한용운 – 매화
한용운 – 매화 예찬
한용운 – 조춘
한재선 – 매화꽃 피었네
한천희 - 매화
한휘준 – 매화 한 가지 피워 놓고
함민복 – 설중매
허정숙 – 매화 축제
홍성숙 – 매화꽃
홍신선 – 매화
홍원주 - 당나라 사람의 매화시에 화답함
홍해리 - 꽃시 – 매화부부(梅花夫婦)
홍해리 - 매화
홍해리 - 매화꽃 피고 지고
홍해리 - 매화나무에 풍경 달다
홍해리 - 매화나무 책 베고 눕다
홍해리 – 매화 피면
홍해리 – 설중매(雪中梅)
홍해리 - 설중매 앞에 서서
황금찬 – 매화나무
황금찬 - 매화(梅花)에 부치는 편지
황대승 – 홍매(자장매)
황인숙 - 매화꽃 피어 봄의 기쁨을
황인숙 - 양산 원동 매화 축재
황종권 - 매화가 필 무렵
매화
장만영
매화꽃 다진 밤에
호젓이 달이 밝다.
구부러진 가지 하나
영창에 비취나니
아리따운 사람을
멀리 보내고
빈방에 내 홀로
눈을 감아라.
비단옷 감기듯이
사늘한 바람결에
떠도는 맑은 향기
암암한 옛 양자라
아리따운 사람이
다시 오는 듯
보내고 그리는 정도
싫지 않다 하여라.
매화를 걸고
장석남
연전에 묻은 문밖 매화 등걸 들여다보니
아직 아무 기별 없어
흐린 그림자 여미고 들어와
홍매 그림을 풀어 동편 벽에 걸었다
매화는 옛사람들의 취미라는데 나는
낯이라도 씻고 앉아 옛날을 맞이할까?
왼편으로 주춤주춤 뻗은 가지엔 활짝 핀 꽃송이가 다섯
꽃망울은 셋,
꺾여서 나온 자리 되돌아보는 가지엔 넷이 벌었다
음, 음, 봉우리는 다섯
그중 나는 지금 어디쯤의 것이었으면 될 건가
되돌아볼 사랑이며
내다볼 하늘 청청한데
궁리 끝에 시린 어깰 지고 나가
매화 등걸 앞에 다시 앉는다
어스름에 저녁 종소리 가까워오듯
어둠이 오고
또 어느 눈동자가 오고
오고,
매화
장영길
기나긴 한숨으로
견디어 낸 차가운 설움
다섯 잎의 하얀 순결로
청결한 지조(志操) 되어 물들이고
임 향한 춘정(春情)은
도량(道場)에 덧없이 넘쳐나니
수줍은 얼굴 들킬세라
황급히 낙화(落花)를 어루만지는
매향(梅香)의 절개(節概)는
또다시 긴 인고(忍苦)를 마주하고
멈출 수 없는 그리움이
얼마나 큰 아련함인지
부질없는 기다림이
얼마나 큰 슬픔인지
남겨진 임은
알 수 있을까…
매화
장유정
1
설중매
차디찬 입술
도도히 꽃 피우고
눈 이슬마다 안고
네 꽃 피움은
굳은 의지 서릿발
격조 높은 도도함
같으나
아서라 님이여
그대 향기 나
나 나
꽃은 매한가지로다
2
검 대리석 기둥마다 피는 꽃가지
볼 그래 수줍듯이 피어오른다
새색시 꽃 입술 부푸는 사랑
둥그런 달빛 안고 피는 가지에
불 그래 취한 듯 그네를 탄다
불어라 훈풍아 불어라 춘풍아
붉은 입술 찬 공기를 가르네
매화꽃 연정
3
겹매화 꽃송이
보란 듯이 봄볕에 노는데
수줍듯이 실바람
간질이고 지날 때
나부끼는 향기
봄이라 좋아라
산천이 꽃 속에 묻히도다
푸른 연둣빛 잎새도
봄을 아우르며
아우성을 지른다
꽃향기 산천을 불태우고
매화의 봄
장유정
새아씨 꽃 저고리 하늘거리면
수줍듯 피는 하얀 얼굴
고운 속 눈썹이 깜빡깜빡
흐르는 향기 주체할 수가 없다
흔드는 바람 안고 피우는 도도한 요염
칼날 같은 서릿발에도 피는 꽃이여 매화여 너를 안는다
설중매
장유정
1
움트는 향기 꽃 피는 미소
눈 속 꽃이라
도도한 미소 한기 서리고
이렇듯 고이 꽃피우 메
옛 시인 묵객들 어찌 너를 좋아하지 않았겠나
휘영청 달 뜨는 밤이면
그리운 마음
꽃 속에 묻는다
몽글몽글 가지 끝마다
초연한 웃음 지울 때
봄이여 오라
천상의 날개 펴고
하얀 눈꽃에 마음 띠운다
시리도록 고운 향기 피우네
2
서리서리 눈꽃 위에
님의 향기 피어나고
찬 바람에 가시덤불
불 어이는 삭풍 안고
님이시어 삶을 위한
투쟁위에 도도하게
향기 피워 나르이네
임의 매화 한 서린 꽃
내 풍기는 지조 높은
꽃 이여 옛 시인 묵객
너를 두고 읊고 그렸으리
그대 이름 설중매
청매화
장유정
하얀 눈꽃 피는 꽃길에
그리움 기득 실리고
피어나는 송이마다 향기 내놓는다
꽃 속 서면 나도 꽃이 되고
입가에 번지는 미소
꽃향기 가득히 내게 안길 때
서리서리 눈꽃은 하얀 천사가 된다
바람 실어 나부끼는 청매화
가득 피는 꽃동산 봄날의 왈츠
홍매여
장유정
몽글몽글 꽃 가슴 안고
속눈썹을 깜빡이면
실바람 다가와서 간지라 주면
여린 눈빛으로
부끄럽다고 화들짝 얼굴 붉힌다
나는야 홍매 붉은 루주 바르고
미풍을 잡아타고 헤실헤실
꽃가마 타는 듯 낭창낭창한다.
하나둘 터지는 팝콘
걸음걸음 꽃 걸음 봄이다.
매화(梅花)
장인성
매화는 추위에서
가장 먼저 피는 꽃으로
그 향기 또한 일품이다
선비들이 좋아하는
송죽매(松竹梅)를
겨울의 세 벗이라 하여
세한삼우(歲寒三友)로 부른다
매화는 아무리 춥고 배고파도
향기만은 팔지 않는다는
여인의 절개요
올곧은 선비정신이다.
눈물 한 잎
장태숙
1월에 만개한 매화나무 아래서
필사적으로 꿈틀거리며 힘겹게 꽃잎 연
지친 무게를 보는데
실핏줄 툭툭 불거진 꽃술은 한파 견딘 심장에서
불꽃처럼 튕겨 나온 무언의 신열인데
단단한 살갗 뚫고 저리 환한 눈물 피웠는데
눈물 한 잎
팔랑, 떨어지며 공중에 길을 냈는데
공기의 출렁거림이 낸 시간만큼 느린 속도로
공중의 길이 비스듬한 곡선으로 열렸는데
매화나무 깊은 눈이 잠시 우두망찰 보고 있었는데
찰나에 상처 많은 바람이 속절없이 지우고 갔는데
그길,
사라진 길에서
갓 뽑힌 비릿한 깃털 냄새가 났는데
가지 많은 내 몸에서도
열꽃 같은 눈물이 피기 시작하는데
매화, 흰빛들
전동균
뒤뜰 매화나무에
어린 하늘이 내려와 배냇짓하며
잘 놀다 간 며칠 뒤
끝이 뾰족한 둥근 잎보다 먼저
꽃이 피어서,
몸과 마음이 어긋나는 세상의
길 위로 날아가는
흰 빛들
아픈 생의 비밀을 안고 망명하는
망명하다가 끝내 되돌아와
제자리를 지키는
저 흰 빛의
저 간절한 향기 속에는
죄 짓고 살아온 날들의 차디찬 바람과
지금 막 사랑을 배우는 여자의
덧니 반짝이는 웃음소리
한밤중에 읽은 책들의
고요한 메아리가
여울물 줄기처럼 찰랑대며
흘러와 흘러와
새끼를 낳듯 몇 알
풋열매들을
드넓은 공중의 빈 가지에 걸어두는 것을
점자처럼 더듬어 읽는다
당신, 매화
전병윤
달빛은 또 수틀 위에
매화나무 본을 떠놓고
노목(老木) 상처 깊은 속까지
제 빛살로 한 뜸 한 뜸 놓고 있습니다
세월을 늘어뜨린
영기(靈氣) 맺힌 꽃눈이
반짝, 윤회를 꿈꾸면서
"겨울이 추울수록 향은 맑고
달빛이 밝을수록 꽃은 희다"고 말합니다
오늘 달빛 씻어
당신 어깨에 걸어놓고 갑니다
꽃 가슴 여민 당신 앞에 설 때면
세월이 부끄러워 이젠
때 묻은 속옷 벗어 던지겠습니다.
춘매(春梅)
전병조
못났구나 흐드러지게도
하얀 눈발 소복소복 단장한
한겨울 숲속에서나 피었을 걸
대동강의 물줄기 엎어지면 코닿을 데
관악산 마루턱에
눈꽃이나 되어 흩어질 걸
사랑은 시시해
세상에 군자라고 불리우는 이들
운치깨나 앞세우며 고상한 척 떠들지만
벗겨보면 똥보다 못한 것들
봄도 안된 뜨락에서 나를 꺽던
머슴놈의 사랑보다 못한 것들
우리 한번 껴안아 볼까
껴안아 볼까?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말
몸으로 몸으로 부딧히기 전에는 믿을 수 없어
매춘하는 기녀들의 치맛자락만도 못한 것들
우리 한번 껴안아 볼까
껴안아 볼까?
개나리 복사꽃
시간을 훔치는 봄날이 오기 전에 우리
한번 껴안아 볼까
껴안아 볼까?
매화 잔혹사
전영관
몸을 씻은 선녀가 제일 먼저 입는 옷
현혹에 취해 뛰어드는 자들을 잡아들이려고
지옥문이 아름다운 것
권력을 남용해 음란까지 자행한 자들은
탱자나무 무성한 방에 갇혔다
유소녀를 추행한 수컷들은 거세해서
시집가는 제 딸의 분합(盆盒)에
나비 인편(鱗片)을 채우는 일을 시켰다
평생 곱씹는 형벌인 것이다
꽃잎 하나 떨어져도 봄빛은 줄어드는데*
봄볕에 몸이 느꺼워 향기를 팔았다가
한량의 매화병풍에 그림으로 갇힌 나는
어느 탐관오리 애첩의 속살거림을
채록하는 시인이 되었다
어린 무희의 일복(衵服)을 벗기는 취객같이
명지바람 는적거리는 봄날의 전설이었다
정인의 배신에 피눈물 흘렸다면 흑매(黑梅)
어려서 거웃이 없으면 백매(白梅)라 불렸다
손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화르르, 냉수를 끼얹은 알몸
* 杜甫, 曲江二首
춘풍 매화
정도경
늘씬한 날개
해맑은 눈동자
기름 바른 제비 몸매
연초록색 옷 입고
매화 당 뜨락 찾아와
색깔 나는 봄 말하는 춘풍
빨갛게 윤기 오르는 살결
앗 뜨거 - 앗 뜨거
엷은 속옷 갈아입는 매화
옆구리 간질이다
발바닥 간질이다
마음속 간질이다
맨살 드러낸 꽃말
색깔 말 봄 냄새에
꽃잎 치마 펼쳐 호들갑 떠는
기생의 색
기생의 피
기생의 넋
섬진강 매화마을
정민기
무얼 그리 잘못했는지, 다그치는 호통 소리에
소년은 그만 눈물 한줄기 봄비처럼
싱그럽게 흘리고 있었지요
늦은 눈이 헐레벌떡 그치고 난 후였어요
섬진강 물줄기 꿈틀거리더니
이내, 앞만 보고 줄행랑만 치고 있네요
매화 가지로 만든 회초리 한 방에
매화 꽃잎 뿔뿔이 흩어지듯 지고 말았네요
여기는 섬진강 서쪽 백운산의 푸른
치맛자락 펄럭이는 언덕에 있는 매화마을인데요
해마다 봄소식을 먼저 알려주고 있어요
미처 녹지 못한 눈처럼 백설로 만발해
소년의 울음으로 수만 수천 아우성을 지르네요
수줍은 소년의 걸음으로 섬진강교를 건너면
소녀처럼 우윳빛 이를 보이며, 히죽히죽
짓궂게 웃는 매화나무가 별처럼 참 많았지요
섬진강 매화로를 달리는
포근한 봄바람 소리가 들리시지 않나요?
만개한 웃음 지기 전에 서둘러 웃음 찾아서
섬진강 매화마을로 떠나보시지 않으시려나요
눈꽃 속의 매화
정병근
눈이 내리는 겨울밤
하얀 눈꽃이 춤을 추며
매화꽃은 눈속에 숨어 있다
맑은 하늘 아래 피어난
매화꽃은 눈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만든다
한 겨울 밤의 눈꽃속에
매화꽃은 희망의 상징이다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물들여주고
눈꽃 속의 매화는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과 희망을 노래한다
그리고 새로운 꿈을 알린다.
겨울 매화 앞에서
정상화
봄은 아직도 저 멀리 있는데
곡괭이로 힘껏 내리쳐도
팅겨 나오는 언 땅 깊은 어둠의
침묵 속에서 가는 뿌리 떨며
밀어 올린 가지 끝에 피어난
그리움 하나
어느 누가 사랑을 위해 목숨 건
의연한 길 걸을 수 있을까
심장을 멈추고 눈을 바라보다
향기에 꼬임 당한
깊은 입맞춤의 뜨거움으로
겨울이 녹고 있다
매화 향기 떨어지면
정상화
잘 잤을까
밥은 먹었을까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가슴에서 흐르는 파장이
눈빛을 타고 뚝뚝 떨어진다
내가 사랑하면 뭘 해
나를 사랑해 줘야지
아무것도 아닌 것에 설레고
제제한 것에 상처 받고
사소한 것들에 뒤척이는 밤
살아온 다른 세상이 만나
서로를 강요하면 이별
다름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소중히 생각하면 사랑
잘해야지
한 번 돌아선 마음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니까
그게 여자의 마음이니까
청매
정숙
긴 겨울 고인 눈물이 발효되어 흘리는 향기인가
승무를 추는 고깔에 아스라이 달빛이 앉아
청상의 두 볼을 파르라니 물들인다
청매화
정숙
이월도 되기 전
향을 내뱉기 시작하는
저 다급
겨우내 바람의 징채에 얼마나 두드려 맞고
차가운 불길에 담금질 당했는지
바람이 지나치게 빠르고 장엄하게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했는지
아픔,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리다가
어느새 그 리듬에 젖어 귀 기울이다가
마침내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을
향으로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
정숙
청매화 다투어 피는 달밤
거울을 보며 머리카락 비비꼬다가
젊은 날 그렸던 그림을
다시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고작 A4 용지 두 장 크기 한지에
이리도 많은 꿈을 그려 넣었었구나
흰 물감으로 연꽃과 연밥들을 지우다 보면
그때 그 욕심들이 양심에 걸린다
새와 나비들도 먹물로 지워버린다
흉한 상처의 얼룩들만 남는 세월,
그 무게에 짓눌린 나의 한지는
달빛도 스러진 봄밤을 하얗게 지새운다
그래도 다 못 지워 슬픈 눈빛으로
입술 달싹거리는 나부상,
노랑나비와 청승맞은 달빛을
바라봐야만 하는 봄밤
청매화 피어나는 열사흘 달밤
정숙
거울을 보며 물안개빛 머리카락 비비 꼬아 돌리다가
젊은 날 그려두었던 그림을 다시 살펴본다
겨우 원고지 두 장짜리 크기의 한지에
참 많은 꿈 그려 넣었구나
새하얀 물감으로 붉은 연꽃송이들과 연밥들 지워보다가
걷잡을 수 없던 욕심들, 양심에 걸린다
진한 먹물로 그 많은 새와 나비들 마구 지워버린다
흉한 상처로 온통 얼룩자국만 남는 나의 세월들
그 흔적 무게에 짓눌린 나의 한지는
달빛도 지나 가버린 어두운 봄밤을 지새우는데
그래도 미련이 다 지워버리지 못한
창백한 나부상은 슬픈 눈빛으로 도톰한 입술 달싹거린다
노오란 나비 한 마리와
청승스런 봄 달빛 그윽히 바라보면서
설중매
정숙자
황진이(黃眞伊)
마음 깎던
그 밤이 이 밤인가
밀어도 움쩍 않는
이 밤이 그 밤인가
매화!
정연희
난
당신을 보면 가슴이 아려온다오!
삭풍 부는 밤에
호롱불 켜놓고 인두로 다려낸
연자주 옷고름 풀어내리며
긴긴밤을 홀로 지새우는
외로움 때문인가요?
해거름엔 오시려나
사립문 열어놓고
목이 긴 여인되어
춘설이 날리니
이제사 오시는 당신을
맞이하려
흰 눈썹 곱게 단장하고
입술에는 앵두를 물었다오
설매부(雪梅賦)
정용진
조춘잔설(早春殘雪)이
산록에 차가운데
매화 옛 등걸
눈망울이 슬프다.
봄, 나비도
늦잠이 깊었거니
게으른 시인의
시심(詩心)을 일깨우는
설중매(雪中梅)의 고고한 자태여.
올곧은 선비의
지조(志操)로 운 천품이
호문목(好文木)으로 버텨 서서
이 아침
필력(筆力)이 미진(未盡)한
내 서창(書窓)에도
지사고심(志士高心)의
설향(雪香)이 따사롭다.
춘매(春梅)
정용진
지루한 겨울잠
뜬눈으로 지새우고
앞산 잔설(殘雪)이
토해내는
매서운 서릿발에
화사하게 웃고 섰는
춘매(春梅) 옛 등걸
갈 것이 가고 나면
올 것이 못 올 것인가
게으른 선비의
늦잠을 일깨우는
그윽한 향
손 시린 호문목(好文木)
올해도
글 읽는 소리
고을 가득 넘치오라.
설중매
정웅
봄맞이 앞장서서
길을 터놓나 싶더니
꽃샘추위[春寒]를 몰랐으렷다!
눈 송이송이, 살갑기
벌 나비만 못할까마는,
속내[花心]가 민망하기는
좀, 그렇지?
진달래 산수유 개나리
주춤하지 않겠나?
눈[雪]인사는 받자구요.
눈으로, 매화 방긋
매화
정은정
누가 울어 저리도 아프게 하였을까
오늘은 누가 웃어 터질 듯한 몸짓일까
차가운 겨울자락을 무엇으로 이겼을꼬
흰빛으로 단장하고 마음을 씻고 있는
향기마저 여물어 먼 곳까지 싱그럽다
내 맘에 묵은 망상도 한결 풋풋하여라
매화
정일남
설산에 뿌리내린 고독이여
발끝이 저려오는 오한이여
인내 하나로 순간이 백년에 닿아있다
별빛이 눈속에 묻혀 떨고 있을 때
빙점을 녹인 네 핏줄에
숨차게 오르내린 체온이
다섯 개의 꽃잎을 열게 했다
네 척추와 목을 후려치는 눈바람에
절[節]과 고결을 잃지 않은 몸매
분매를 터뜨린 너의 힘도
대기오염에는 너무 약했던 것
분홍 매화
정정민
수줍어
아미숙인 저 색시
춘풍도 부끄럽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기어이 터져나온 미소
양광은
춘정마저 깨우나 봐!
매화꽃이 피었습니다
정정우
매화꽃을 보다가 문득 당신이
생각나서 꽃망울이 흐려집니다.
무척 야위시고 기력이 쇠하여 당신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꽃샘바람 소리만 들림니다.
매화꽃은 해마다 붉게 피고 남으로
갔던 철새들도 철마다 돌아오고
개울가에 나무들은 가지마다 움이 트는데
한번간 세월은 돌아 올줄 모름니다.
매화꽃이 아무리 곱고
담장에 백목련이 화사하게 밝아도
당신이 늙고 목소리에 힘이 없어
꽃샘바람의 심술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그래도 당신이 살아 있어서 참 행복합니다.
그곳에 살고 계신다 생각하니
꽃샘바람은 목화솜같이 부드럽고
매화꽃이 참 곱기만 합니다.
매화가 지천인 때
정종명
칼날 같은 외나무다리를 건너온 계절
귀 쫑긋 세우고 훈풍 염탐하던 매화
너그러운 바람을 느낀 촉수
앞다투어 가지 끝에 아침 이슬 같은
봉우리 조롱조롱 입에 물었다
아침 태양에 몸을 데운 매화 일제히
함성을 지르듯 입을 열고 진한 향
허공에 날려 벌을 초대 초례상 차렸다
이 골짝 저 골짝 눈길 가는 곳마다
홍매 청매 매화가 지천인 때.
설중매
정종명
한 시절 기다림에 지친 설중매
선하품 하다 입이 찢어져
핏빛 물들이고
찬 바람 시샘에 입 가리고
용쓰다 소리 없이 새어 나온
꽃 향기에 겨우내 굶주린
일벌 떼 몰려와 벌린 잔치
소문난 잔치 먹을 게 없다고
배 채우지 못한 벌떼들
이집저집 몰려다니며
윙윙 노래하다 떠나네.
순천 찬새미골 청매화
정진규
너를 원천 봉쇄로 흡입한 빨판들이
이젠 안심하고 모두 몸을 열고 있었다
염치도 없이 모두 들키고 있었다
염치도 없이,
상처의 새살들이
도돌 무늬로 만져 지었다
허공 가득 상기(上氣)되어 상감(象嵌)되고 있었다
이제는 꽃일 뿐이었다
망울진 청매화
정찬열
혹한의 계절도
용케도 견디고 봄을 맞는다.
넘어질까? 삼발 목에 기대고선
검푸른 줄기마다 돋은 가지에
철 이른 봄소식
오가는 객들을 사로잡는 청매화
발걸음을 멎는 것은 반가움일까?
이 봄! 당신을 향한 청 매화나무
청록색 가지 하늘 아래
애달픈 산새 소리 함께 하며 보낸 계절
나뭇잎보다 꽃망울이 급한가 보다
가지마다 방그레 망울이 맺어
봉오리 터질 때면. 꽃잎은
난형에 일부다처(一父 多妻) 꽃술이
송이송이 꽃망울 터뜨릴 듯 하면서
동풍(東風) 부는 바람 따라 알 수가 있다.
심술 꾼 눈바람은
처녀 봄 매화꽃에 머물다 가려 하고
어제 내린 새우(細雨)에 망울 커진 청매화
전령 수 너를 보며 새뜻한 봄을 담아 가리다.
매화
정찬열
벌, 나비
기다리는 그리움
동지섣달 목전에서
휘몰아치는 설한풍에
고개를 흔든다.
붙잡지 못한 세월에
처연하던 흔들림도
기다림에 양보하듯이
꽃망울을 맺었나?
골바람 부는 골에서
편서풍의 동정에
소망하던 임 그림자
소담하게 꽃불 키워서
샛말갛고 봉긋하게
임을 향한 매화꽃 터뜨린다
매화가 필 무렵에
정찬열
삭풍이 불어
나목을 뒤흔들고
따스한 햇볕 아래
잠든 개구리 몽상에 취해
눈뜰 채비에 화들짝 깨어난다.
따스한 봄바람은
봄을 재촉하는 마중물 되어
움켜쥔 뿌리로 맨몸으로 달려와
피어나려는 꽃소식에
봄맞이 전령을 시기하는 것일까
어이하여 가로막는
봄을 기다리는 매화의 꿈을
심술로 낚아채 가려는 시샘은
시린 바람 설원에 매화가 움츠린다.
개구리 실눈 뜨는
경칩도 지났는데
수은주 끌어내리는 매서운 삭풍은
깨어나지 않은 매화에
찬 서리 시샘하며 하얀 면사포를 씌운다.
매화의 소망
정찬열
새봄을
기다리는 그리움
경칩 절기 목전에서
휘몰아치는 설한풍에
고개 저은 강인한 생명력
붙잡지 못한 세월에
처연하던 흔들림에도
기다림에 양보하듯이
길을 열어 꽃망울을 맺었나?
아침뜸 저녁뜸
높새바람 이겨내고
터트린 곱고 고운 꽃망울
위기 속에 키운 담력으로
광야에 부는 골에서
편서풍의 동정에서 견디고
소망하던 붉은 사랑에 그림자
양지쪽 꽃길에 정분 살려
소망을 외쳐 불러 봉긋한 여운
소담하게 매화 향기 터트린다.
붉은 매화 망울
정찬열
매서운 찬바람에
코끝을 스치는 바람
매섭던 겨울날의 끝자락
망울져 피어오르는
붉은 입술 내 미려는
헐벗은 앙상한 나뭇가지
시선 끄는 양지바른 언덕길
단아하면서
요염한 자태로 부풀어
찌든 도심에서 보약으로
가든 발걸음 멈추게 한다
가깝게 다가가서
그의 자태를 탐하려 하니
터질 듯 웃는 시선을
그 마음 몽땅 나에게 준다.
등에 서린 땀방울도
모두를 빼앗겨 버린
봄소식 전하는 붉은 꽃망울
설한풍 이겨내고
붉은 망울 서 있는 자태에
가는 발걸음 붙잡히고 말았다
머지않아 피어날 그 자태에
청매화
정찬열
철 이른 봄소식
오가는 객들을 발길 잡는 청매화
발걸음을 멎는 것은 반가움일까?
이 봄! 초봄을 향한 청매화 자태
매서운 계절도
용케도 견디고 봄을 맞는다.
넘어질라, 삼발 목에 기대고선
검은색 가지 끝에 청록색 푸른 줄기
삭풍에 푸른 가지
애달픈 산새 소리 차갑게 보낸 계절
잎눈보다 꽃망울이 급한가 보다
가지마다 돋아나 방긋 웃는 꽃망울
꽃봉오리 벙긋하면
꽃잎은 난형에 숱한 꽃술이
송이송이 꽃망울 터트릴 듯하면서
부는 동풍(東風) 삭임 바람 봄빛에 풀어놓고
잠을 깬 설한풍(雪寒風)은
처녀 봄 매화꽃에 머물다 가려 하니
어제 내린 가랑비에 망울 커진 청매화
피어난 꽃망울 너는 화사한 봄의 전령 화
초봄날에 설중매
정찬열
쌀쌀한 추위와
햇빛 한 줌
찾는 듯 찾을 듯
나뭇가지 사이를
햇살이 찾아온 날
부딪히고 얼어붙는 길목
하늘이 열릴 것 같아서
꽃향기 퍼지지 못하더라도
살아남기 위한 시련에도
매섭게 찾아든 봄바람에
붉은 설중매 몸 흔든다.
누군가 쫓는 것도 아닌데
부푼 꽃망울에
봄이 오는 햇살에 맡기고
퇴계 선생의
매화사랑 말씀이
마음속에 깊이 스미고
바람 부는 소리에
놀란 상념 꿰맞추는가?
기승을 부리는 찬바람
늦은 봄에
내린 눈이 염려되어
관능에 몸서리치는
저 청아한 몸짓이여
매화, 봄 터트리다
정해란
겨우내 뒤척이던 긴 그리움
하얀 동토 맨발로 건너와
산모퉁이 데워준 봄의 입김
등 돌린 먼 세월도 밝게 켜니
봄하늘 하르르 터지고 맙니다
마음도 향기 따라 터지고 맙니다
매화향 맑게 흔들릴 때
정해란
창가 매화 몇 송이
바람 불 때마다
향도 따라 맑게 흔들려
지나간 그림자 불러 세운다
살아 못다 핀 애절한 사랑
삶과 죽음의 그 먼 거리*에서
서로 마주 보고 핀 꽃송이들
어두운 동토(凍土), 희미해지는 의식 속
가늘지만 깊숙한 햇빛만 모았기에
이리 밝게 눈 떴는가
그리움만 키워 가던 인고의 끝
가장 먼저 봄날 켜는
어미 나무(梅) 되어
지상의 모든 봄 꽃
피어날 시기 깨워주는 매화(梅花)
마음 떠나 빈 바람만 남은 가지
부서질 것 같은 향기만 남으니
휘파람 새 울음 끝에 단조로 고여
막힌 계절의 포구 열어 주려나
언 마음 구석마다 풀어 주려나
* 전설 : 약혼녀의 죽음을 슬퍼하며 약혼자가 눈물 흘린 자리에 매화나무가 자랐고 그곳에 휘파람 새가 울고 있었다는 전설이 있음.
섬진강 매화
정형균
구례 하동
굽이쳐 돌고 도는
섬진강 맑은 물
졸졸 흘러 산 갈미봉 능선 아래
하얀 꽃마을
광양시 다압면 마을
매화 꽃향기
그윽한 청매실 고향이네
홍매화 활짝 웃고
노란 산수유 방그레
하얀 꽃 노란 꽃
강줄기 자락에 향기 순산하네
다압면 하늘에
종달새 노래 부르고
강변 매화 축제 아름다워라.
매화
조남명
삼동 추위를
견디어 낸
어린 매화
볼쏙 내민
꽃봉오리는
갑작스런 꽃샘추위에
움츠린다
해마다
시샘을 당하면서
그리 급했는가
본디
향기를 팔지 않는 꽃이여!
그 절개와
지조는 어쩔 수가 없구나.
춘매(春梅)
조남명
담장 밑
매화나무
삼 동(三 冬)이
길디길어
새벽녘
모두 몰래
꽃망울 볼록 터서
새봄을 알리렸더니
우수(雨水) 추위가
기별 없이 찾아와
내춘(來春)을 막는구려.
매화
조동운
1
매서운 추위에
눈속의 여인
이렇게도 추운 엄동설한에
맞서는 당신의 용기
박수 보내드립니다
봄이 머지 않았음을 느껴 봅니다
꽃이 눈처럼 하얗게 쌓였는데
희망과 용기를 주는 매화님
사랑해요 고맙습니다
2
눈 속의 아름다움 인연
눈보라 치는 한겨울 백옥새처럼
새하얀 여인처럼
그윽한 향기를 품어내네
그간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나
엄동설한의 추위에도 맞서는 너의 기질
대단하구나!
머지않아 봄소식이 온다는 것을
미리 짐작하겠네
설중매 향기
조순자
설풍 속 찬 기운 뚫고서
고매하고 당당하게 피었다
백설이 만건곤할 제 홍매 백매 황매
참따랗게 피어나 향기를 발한다
여리디여린 꽃 입술 열어
빵긋 웃음으로 일러준다
춥다고 제 할 일 못 하랴
설원 속의 고혹한 향기 심원하다.
매화나무는 남겨둬요
조승래
비에 젖은 매화꽃 연분홍 꽃비 마중물 되어 땅속으로 스며들면
모시 망토 접어 절창할 가슴도 달아올라 거사 준비하려고요
잡초 다 뽑아 버리겠다고 그 나무까지 뽑아버린다면
나는 무엇을 타고 올라가서 우화(羽化)를 하나요
100살에도 꽃 피워 일생이 청춘인데 더불어
뿌리를 잡고 기다린 수많은 날은 어디서 찾아야 하나요
꽃가지 없이 피워야 할 노래라면
영원히 땅속에 묻고나 말지요
매화
조예린
내 가슴은
고목 한 주
쩡 - 하고 태가 간
동천(凍天)의 달을
숨 쉰다,
암암한 향기
함구(緘口)의
다 썩은 마음 둥치에
실낱처럼 살아 오르는
봄
봄의 기억
매화서(書)
조용미
몰라보게 수척해졌다
여러 해 먼 길 찾아와 그 아래 서 있다 돌아오곤 했던
한 그루 매화나무
멀리서 보기에도 야위었다
한 해 거른 사이 가지가 잘려나가고
듬성듬성 빈 곳이 많아지다니
허연 버짐이 멍처럼 덮였다
근처 어린 매화는 많이도 꽃을 피웠는데
내 아는 오래된 나무는
대낮에도 어둑한 그늘에 든 것처럼
환한 기운이 사라졌다
꽃잎이 희끗희끗 겨우 돋아나 있다
내후년쯤 다시 오면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
안아볼 수 있을까
나무가 나의 병을 근심한 걸까
내 얼굴 어두워
어떤 마음의 작용으로
나무와 나는
같은 기와 색을 가지게 된 걸까
매화와 나는 밝은 그늘이 필요하다
천천히 바라볼 운명이
필요하다
고요한 색들은 어디서 오는 걸까
왜 향기를 데리고 오는 걸까 왜 마음에 와서
꽃받침처럼 겹쳐지는 걸까
봄, 양화소록
조용미
올봄 하릴없이 옥매 두 그루 심었습니다
꽃 필 때 보자는 헛된 약속 같은 것이 없는 봄도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군요
내 사는 곳 근처 개울가의 복사꽃 활짝 피어 봄빛 어지러운데
당신은 잘 지내나요
나를 내내 붙들고 있는 꽃 핀 복숭아나무는 흰 나비까지 불러들입니다
당신은 잘 지냅니다
복사꽃이 지는데 당신은 잘 지냅니다 봄날이 가는데 당신은 잘 지냅니다
아슬아슬 잘 지냅니다
가는 봄 휘영하여 홍매 두 그루 또 심어봅니다
나의 뜰에 매화 가득하겠습니다
탐매행(探梅行)
조용미
한 조각 꽃잎이 떨어져도 봄빛은 줄어드는 것을*
병중(病中) 매화를 보러 나선다
매화 보려면 아픈 것일까
해마다
매화 피면 몸이 먼저 안다
정당매, 남명매, 남사리 홍매 보고
백운산 자락 지나 해남 간다
차밭에 드문드문 심은 1년생 백매를 근심하는 스님
20년 전 심으셨다는 저 홍매도
내 탐매행에 넣을까
매화 한 잎 띄워놓고
물고기 바라보며 혼자 암자를 지키는 한나절
초당 방문 앞을 어른거리는 매화향에
겨우 몸을 일으킨다
암향(暗香)에 병(病)이 깊어가는 것인가
매화나무에 흰 나비가
꽃잎인 듯 나비인 듯
날아다닌다
* 두보의 시에서 인용.
매화가 핀다지요
조유리
누가 어깨에 두 손을 살며시 얹었다 내려놓은 것처럼
매화가 핀다지요
저녁이 가도록 닿을 수 없는 거기 어디쯤
겨울 무에 고여 있던 바람이 흰 물감으로 흩뿌려져
먼 곳이 가까이 그려질 때가 있으니 그 무렵
매화가 핀다지요
나는 생각을 말해도 그려지지 않는 그림을 그립니다
어떤 얼굴도 떠오르지 않는 순간
슬프고 아름다운 글자들이 보이고
물가를 거닐다 발목을 베인 것처럼
그네를 타다 노을 속으로 타 들어간 것처럼
매화가 핀다지요
오래 전 불 꺼진 저녁 윗목에서
눈 언저리 붉어지도록
겹겹 생각들이 문장을 이루지 못하고
완강한 고요 속에서
간신히 귀를 열면 뭉텅뭉텅
미치도록 사무친 매화가 핀다지요
매화송(梅花頌)
조지훈
매화꽃 다 진 밤에
호젓이 달이 밝다
구부러진 가지 하나
영창에 비치나니
아리따운 사람을
멀리 보내고
빈 방에 내 홀로
눈을 감아라
비단옷 감기듯이
사늘한 바람결에
떠도는 맑은 향기
암암한 옛 양자라
아리따운 사람이
다시 오는 듯
보내고 그리는 정은
싫지 않다 하여라
매화 품은 설화
조충생
엄중 설한도 아닌데
피다만 매화 꽃 위에
설화가 피었구나
꽃잎도 피기 전에
흰 꽃잎 노란 꽃술에
눈 화관을 쓰고
시집가는 게
슬펐는지 한 줌 햇살에
눈물을 저리도 흘릴까
춘삼월 고운 빛에
흰빛을 머금고 활짝 웃는 날
사랑하는 임을 위해
내 몸 떨구겠지..
청매화
조한수
청보리색 가지에
연초록빛 감도는 꽃잎
파아란 하늘로
향기가 피어오른다
서리와 눈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포시 드러내는
하얀 잇바디*
말조차 건넬 수 없는
맑고 고결한 자태는
새악시 보다 더
사랑옵다*
* 잇바디 : 치열(齒列) 이가 죽 박혀 있는 열(列)의 생김새
* 사랑옵다 : 생김새나 행동이 사랑을 느낄 정도로 귀엽다.
매화꽃
조향순
해 저문 잠이
잎자루 잘라놓은 날
오래 떨다 물 비친
매화꽃 나무에 가 볼일이다
제 마음 드나들면서
연이 닿기까지
꽃잎 날리지 못하고
숨죽여 울었을 가엾은 사랑
꽃자루에 담아둔 눈물샘
한 열 개 꺼내 놓은 뒤
인자한 봄날
아릿한 봄빛
매화나무 아래서
당신도 나도
함께 울어 볼 일이다
매화
주근옥
매사가 껄끄럽고
두려울 때
하늘을 바라보자
속이 타서 피가 밭을 때
속을 까서 뒤집어 뵈고 싶을 때
뒷짐 지고 울안을 맴돌자
말로 몸짓으로 통하지 않는 사람아
너는 오죽 답답하랴만
남은 것은 잔지러질 일뿐이느니
손가락에 불을 켜고
외발로 서서
매화 꽃송이로나 눈을 뜨자
매화(梅花)
주응규
1
삭풍에도 미세하게 묻어나는
봄바람을 동박새가 물고 와서
매화나무 가지마다 널어두네
매화 낭자 달빛에 감아 땋은
머리채 끝에 꽃댕기 물들이면
임 향한 마음인 줄 알련마는
임이시여 어이한 까닭으로
모른 체 딴청을 피우시나
아릿한 가슴에 처연히 응고되어
설화(雪花)에 봉긋이 멍울 맺혀
마음결 알알솟솟이
샛말갛게 꽃망울 터트리네.
2
임 향한 긴긴 그리움이
삭풍에 흔들리다
섣달그믐날
세찬 눈보라 속에서
꽃물 들었나
오랜 기다림 끝에
터트린 눈물이
처연히 응고되어
꽃망울 맺었나
산란히 휘젓는 먼빛에
임 그림자 비쳐들면
꽃불을 소담스레 놓아
임 맞으려나.
설중매
주응규
임은 아직 먼발치에서
더딘 걸음 오시는데
엄동설한 모진 시샘에도
언 몸 처연히 꽃망울 져
방시레 임 기다리시네!
시린 달빛에 어리는
하얀 웨딩드레스 면사포
다소곳이 단장하고
수줍은 듯 붉힌
청순가련한 자태 눈부셔라
애간장 녹이는 그윽한 향
맵찬 바람에 실어
임 어여 오시라
발걸음 재촉하시네.
임인 양하여
지재당 강씨
임인 양 매화 가지 얼싸 잡으니
그 얼굴 물결간이 티 하나 없네,
시사(詩思)로 여위었을 맑은 뼈대여!
오두막 눈보라에도 가난한 줄 몰라라!
-그리운 그 임인가 하여 덥석 잡은 매화 가지!
그 물결같이 맑은 여윈 뼈대!
풍설에 부대끼는 가난 속에서도
오히려 흐뭇한 이 행복감!
매화꽃
진영대
못 보던 개 한 마리 드나들며 철망을 사이에 두고 얼마나 물고 빠는지,
나무막대기를 집어 던지면 문밖에 숨어 있다가 다시 와서 어슬렁거렸다
발톱에 피가 나도록 철망을 긁어대더니 어느 날부턴가 보이지 않았다
철망에 묻은 피를 핥고 있는 백구, 안됐다
싶어 목줄을 느슨하게 묶어 매실나무에 매어놓았다
낑낑대서 나가보니 목줄이 나무 밑동에 칭칭 감겨 있었다
얼마나 문질러댔는지 나무 밑동이 반질반질했다 목줄을 잡아당기자 힘없이 빠져나왔다
매화꽃 막 피고 있었다
매화
진준수
동장군 한파 속에
잎보다 먼저 피는
선비의 굳은 절개
이등은 필요 없어
쭉 뻗은 황금빛 수염
흰나비의 날갯짓
섬진강 매화 나라에서
차옥혜
지리산 등성이엔 아직도 눈이 쌓였는데
섬진강 산자락마다 매화가 떼로 몰려와
허공에 입맞추며
평화 평화 평화
평화 춤을 춘다.
뺨에 스치는 바람은 아직도 쌀쌀한데
섬진강 마을마다
청매화 홍매화 폭포처럼 쏟아져
사랑 사랑 사랑
사랑이란 말 몸으로 쓴다.
재첩국 한 그릇 마시다
섬진강을 바라보니
강물에도 매화들이 몸을 씻으며
평화와 사랑을 노래한다.
종일토록 매화 나라 헤매다 보니
어느덧 매화가 된 내게
섬진강이 고요히 흘러든다.
세계의 전쟁터가
매화 나라만 같아라.
백매화
채린
오랜 기다림에 붉도록
응어리진 멍울 낟알을
한 알 두 알 먹고 자라
희디흰 창백한 눈을 맞춥니다
마주 보는 거리보다
뭇 서리에 지쳐 잠이 들고
옹골찬 미소를 남기며
떨어진 별의 그림자를 잰 거리가 멉니다
이제야
깨달음의 묘미가
머리에 있지 않고
작고 작은 가슴속에 살고 있음도 압니다
무수히 피어나는 계절 피해
홀로 난간에 기대어 선 외로움이
더 큰 사랑을 위한 다른 선택임을 알기에
스스로 살을 하얗게 태워 짙은 향을 뿌립니다
매화꽃
천상병
뜰에 매화꽃이 탐스럽게 피었다
옛날의 시인들이
매화꽃 시를 많이 읊었으니
나도 한 편 쓸까 합니다
하얀 꽃송이가 하도 매력이 있어
보기만 하여서는 안 되겠기에
매화꽃과 친구가 되고 싶구나!
지금은 92년 4월 30일인데
봄을 매화꽃 혼자서
만끽하고 있는가 싶구나 !
한들한들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이
천사와도 같구나!
오래 꽃피어서 나를 달래다오
정매(庭梅)
최광유
비단처럼 곱고 서리처럼 빛이 나서
이웃까지 비추니
뜰 한구석에서 섣달의 봄을 독차지 했구나
번화한 가지 반쯤 떨어져 단장이 거의 스러진 듯
갠 눈이 갓 녹아 눈물 새로 머금었네
찬 그림자는 나직이 금정의 해를 가리웠고
싸늘한 향내는 가벼이 옥창의 먼지를 감췄구나
내 고향 시냇가 몇 그루
서쪽으로 만리길 떠난 사람 기다리리
매화꽃 피다
최규영
새벽 찬바람
시린 달빛에
아직은 숨조차 힘겨운데
매화 얼굴 붉히며
다소곳 가슴 하나 여민다.
가지마다 내뿜는 숨결에는
보이지 않는 정열인지
들리지 않는 아픔인지
웃음 가득 다가오는 미소에는
향기만 한아름 가득하니
활짝 웃는 매화에 마음 하나 피웠다.
옷 벗어 씻긴 흔적 속에
거친 숨결 잠재우고
나에게 찾아와 춤추니
나도 이제 그만
매화에 입 맞추며 향기에 취해 본다.
매화나무 앞에서
최두석
봄꽃 병그는 창덕궁 안
수백 년 묵은 매화나무 앞에서
임진왜란 뒤 명나라에서 보내왔다는
매화나무 앞에서
꽃을 꽃으로만 순수하게
보지 못하는 나는 난시일까
매화가 눈 속에 핀다는 말은
이 따스한 봄날에 분명
사대부의 사치에 지나지 않아
누군가 야유했듯
화양동에 송시열의 유언으로 지었다는 만동묘
만동묘를 받들던 정신의 생생한
상징처럼 보인다
이제 만동묘는
제사 지내는 자 발이 끊겼으되
매화나무는 시대와 전혀 무관한 듯
꽃술을 내밀고 향내를 풍기며
우아하게 온몸으로
관광 나온 양키들의 카메라 세례를 받고 있다
매화와 매실
최두석
선암사 노스님께
꽃이 좋은지 열매가 좋은지 물으니
꽃은 열매를 맺으려 핀다지만
열매는 꽃을 피우려 익는다고 한다
매실을 보며 매화의 향내를 맡고
매화를 보며 매실의 신맛을 느낀다고 한다.
꽃구경 온 객도 웃으며 말한다
매실을 어릴 적에는 약으로 알고
자라서는 술로 알았으나
봄을 부르는 매화 향내를 맡고부터는
봄에는 매화나무라고 부르고
여름에는 매실나무라고 부른다고 한다.
매화
최명운
폭풍 한설 견디며
얇은 날개 달고 피운
고귀한 매화
널 만나니 기쁨이 최고구나
네가 왔으니
무거운 겨울은 갔도다
네가 다가왔으니
꽃피는 춘삼월 내일이구나
고맙다
수고했다
감사하다
이렇게 봄을 주었으니
기다린 보람 꽃물결이다.
매화가 필 때
최명조
어머니는 말을 잃어 버리셨다
나와 헤어진 후로 35년 전부터 나는 아직까지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어머니가 우리와 헤어져 이사 간 지도 35년째다
내가 차를 가지고 찾아가지 않으면
오지도 가지도 못하고
오늘도 난 아버지와 아내와 어머니를 찾아 왔다
좋으면서도 오늘도 말이 없는 내 어머니
늘 나는 혼자 도 넋두리를 늘어 놓는다
이거 해줘
저거 들어줘
나는 어머니한테만 오면 어리광을 부리는 35년 전 아들로 돌아가 버리고
오늘은 어머니 집 옆 매화나무가 하얀 꽃을 피웠다
그 옛날 내게 웃으시던 온화한 웃음처럼 나를 바라본다
동백나무의 꽃 한 송이가 떨어지지 않고 피어있는 이유를 나는 모르겠다
어머니 머리 위엔 파아란 풀 하나가 자라고 있다
나는 차마 뽑지 않았다
그 옛날 쪽머리 뒤로 꽂았던 비녀가 생각이 나서 그냥 두었다
긴 겨울이 가고 만난 어머니와의 만남
나는 또 돌아서 운다
35년 전 헤어진 그날처럼
어머니도 말이 없고
아버지도 말이 없고
아무도 말을 못한다
속으로만 울고 있다
다 그렇게
청매화
최문자
'꽃과 살얼음 사이에서 목 놓아 울어야 청매화가 태어난다' 라고 저는 읽습니다.
그리고 너무 아름다워서 거기서 그만 목이 메어
제 설음들이 다 나와 버려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황매화 사랑
최봉희
봄 한창 무르익어
햇볕 든 한 구석에
빛나는 초록 잎새
샛노란 꽃 피었네
잎새와 함께 피는 꽃
기다리는 그 사랑
초록잎 싱그러운
길 따라 걸어가면
노란꽃 흐드러진
둘레길 함께 걷다
살포시 그리움 찾아
두 손 잡은 사랑꽃
함께 한 푸른 숲길
가슴을 맞댄 추억
달빛이 어린 하늘
그리운 밤을 걷다
오롯이 꿈꾸는 사랑
그대 향한 기다림
바다 쪽으로 매화
최서진
파도를 넘는다
매화가 핀다
구름은 자주 매화를 서성인다
바다 쪽으로 꽃 목이 흔들린다
절벽으로 귀가 설렌다
불에 스친 적 있는 얼굴로
매화가 피면
최영윤
엄동설한 매서운 바람
떠나기도 전에
무엇이 그리 급하여서
서둘러 오셨는가?
깊은 겨울잠 털어내고
소복 갈아입고 나서는 길
흩날리는 싱그러운 향기에
벌 나비 떼 모여들면
봄은 시샘하며 다가온다.
시련의 고통도 지나가는 순간일 뿐
남녘의 훈풍이 다다르기도 전에
기다리다 지쳐 옷고름 풀어 젖히니
얼어붙은 가슴은 그 향기에
눈 녹은 듯 사라지네.
청아한 달빛 치맛자락에 내려앉아
불어오는 바람결에 흩날리니
아! 나도 그대와 함께 부서져
봄바람에 실려 가고 싶어라.
임이시여 어서 와서
매화 한두 잎 따다가
따끈한 찻잔에 띄워놓고
지난 얘기 나누고 싶구려.
꽃비 된 매화
최이천
눈 속에 몽니 부리듯 피었다가
강냉이 팝콘처럼 보이고
눈처럼 휘날려 마당에
쌓여있는 매화 꽃잎 속에
속세와 정토가 교감한다.
매화 피고 지는 꽃비 속에
겨울과 봄이 담긴 바구니
피고 지는 운명의 시간을 담아
삶과 이별을 나눔 한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떨어지는
깨끗한 자리 비움. 욕심 없는
모습을 쳐다보며
맑은 마음 받아본다.
고결한 매화 닮아가 보자
정결한 꽃잎 되어
신선처럼 살다 바람인 듯
그림자 없이 날아가련다
매실 꽃이 보인다
최이천
봄에 온 편지 매화
실가지에 작은 꽃
고고한 모양에 마음 준다.
엄동설한 이겨내고
꽃잎 내미는 힘은
봄의 자랑입니다
작은 꽃잎에 눈을 맞추고
바람에 나부끼는 율동에
내 마음도 함께 춤춘다.
매화야 봄의 전령사
산과들 대지에
희소식 되었단다
나목에 연둣빛 첫사랑
알려주는 매화꽃 편지
보내련다.
목 빼고 기다리던 봄소식
매화는 봄을 옷으로 입고
바람의 호위를 받는구나!
귀엽고 작은 너의 뒤에
온 세상을 덮을 파란 군대가
진군하는 광경
빨강 심장이 벌렁거린다
매화꽃 설렘
최이천
봄이 오는 길섶에
설렘 안은 매화꽃
방긋이 웃어준다.
설한풍에 시린 볼 감싸고
매화꽃 바라보니
파란 하늘 흰 구름 떠간다.
실눈 뜨던 꽃망울
톡 터져 꽃잎으로 인사하네
야들한 꽃 잎새에 마음
설레어 흥분한다.
봄을 이끌어 오는
여린 꽃 매화
동장군 쫓아내는
용감한 기상에 경례합니다
봄의 밴드를 컨덕터 하는 매화
오선지에 박자를
심어 살리는 율동에
봄의 광경 스크린 된다.
엄동설한 긴긴밤을
움츠려 견딘 것이
봄 광장 매화 컨덕터
너를 보기 위해서였으니
보람되고 자랑스럽다
매화 연가
최이천
시리고 아파도
꽃으로 태어난다면
참을게요
흔들고 밀어내도
꽃으로 핀다면
견딜 거예요
바람이 주는
시련에 속지 말고
기다리면 꽃으로
피어납니다
내 멋에 웃어보는
오늘은 살맛 나는
기운에 바람 안고
춤을 추었어요
밀고 때리고 흔들어도
참고 견디는 매화는
동장군 이긴 승리에
화사한 꽃이 되어
저토록 아름답게 피었습니다
매화 피던 날
최이천
춥다
이렇게 추운 날
얇은 옷 입고 웃고 있네.
아담하게 피어 있는 자태
고드름 비웃고
봄 이불 덥고 솔잎에 인사
계절에 죽지 않고
청송으로 남아 손 잡아주는
임의 향기에 매화 용기 얻어요.
이제 동장군 물리치는
첨병으로 살아서
종달새 부르고
진달래 모셔와
이른 새벽 새싹 잠 깨워
기운 받은 산과 들
푸르게 파랗게 옷 입혀 드리리다.
어디서 손님이 오고 계신지
최하림
문호리로 이사 간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아산(雅山) 선생님이 보내주신 매화가 연 이태 눈을 틔운 것으로 그치더니 올해는 동지를 앞두고 꽃들이 활짝 피었다 향기가 복도로 퍼져나갔다 아내는 층계참에 쭈그려 앉고 나는 창가에 앉았다 바람이 부는지 창밖에서는 구름이 이동하고 또 이동했다 마음을 갈앉으려고 나는 청소기로 거실과 복도를 서너 차례 민 뒤 이층으로 올라가 책들을 정리했다 책상 위에 한 권 한 권 제 자리에 꽂고 있는 동안에도 어디 먼 데서 손님이 오고 계신지 마음이 흔들리고 유리창들도 덜커덩거렸다
고목 매화나무
최하정
수백 살은 너끈히 넘었을 매화나무
가파른 산비탈에서 동녘 해를 바라본다
의연한 자태로 메마른 가지 끝에
향긋한 꽃망울이 봉긋이 맺혔다
험난한 비바람과 눈보라 속에서도
아름드리 거대한 몸을 사리지 않고
매년 아름다운 꽃을 피워 낸 기쁨의 세월
밑동이 검게 파여 썩어가더라도
앞으로도 모진 세월을 묵묵히 견디며
화사한 꽃을 피우길 간절히 염원한다
자연의 섭리에 감사하며
남은 내 삶도 고목 매화나무처럼 살아가련다.
매화
최호빈
매화 몇 송이가 피었고
마침내
그 말이 빠져나가고야 말았다
뭔가 할 일이 있겠지,
난 이렇게 혼자 생각하며
창밖의 매화로 눈을 돌렸다
눈송이가 살포시,
아스팔트 위를
구르다 말았다
시간은 침묵을 원했다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한숨을 쉬었고
뒤늦게 말을 따라갔다
말은 잠시 그녀 앞에 멈췄다
말은 늘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되돌아온 적은 없었다
하나의 사건이 일어난 것도 사실이고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 두 사실이 스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
그 말의 소유주가 된 그녀가
창밖의 매화로 눈을 돌렸다
빛과 어둠 사이에 걸쳐 있는
매화가
알 수 없는 부드러움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그녀의 입에 매화가 피고 있었다
매화꽃 핀 아침에
최홍연
꿈에도
당신 그리워
아침부터 눈이 내리고
순정 품은
매화 꽃망울마다
붉은 정념 가득한데
찬바람 맞으며
눈이 내린 후에는
사랑이 올까
봄을 시샘하는
골목길에서
오늘도 너를 꿈꾼다
월매(月梅)
평보
밝은 달 투영되는
활짝 핀 매화
꽃잎마다 전설처럼
사연이 있어
이 한밤 깊은 정담
이어지는데
꽃술은 여인의 눈썹 같이
향기 그윽해
첫눈처럼 나리는
꽃잎의 속삭임
순결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매화
하영순
봄볕에
맺은 사랑
가지마다 걸어 놓고
잔설이 스러지니
입춘에
눈을 떴나
임 그려
타는 정이
바람결에 살랑살랑
아닌 척 돌아서서
눈물은
왜 흘려
설중매
하영순
눈 속에 핀다고
설중매라 하지만
매화야
네 혼자
일찍 눈 뜨고 일어나서
눈 벼락을 맞니
참았다
다른 낭개*
꽃 피고 잎 필적에
같이 피면
동무하고 좋을 것을
* 낭개 : 나무 경남지방 방언
풍매화
하종오
떠돈들 어떠리 떨어진들 어떠리
언제든지 떨어지면 움 돋겠지
진달래가 골백 송이 흐득흐득 울어도
풍매화는 바람 따라 날아다닌다
골짝에 죽어 있는 메아리를 살려내고
벌목꾼이 버리고 간 도끼소리 찾아내고
땅꾼이 잃어버린 휘파람도 찾아내어
그 덧없는 소리들 데불고 무얼 하는지
풍매화는 이곳저곳 기웃거린다
혼자서 싹틀 힘도 없으면서
어디든지 뿌리내리면 숲이 이뤄지겠지
풍매화는 득의양양 산맥을 날아다니지만
대포알 묻힌 땅 버릴 수 없고
녹슨 철조망 무심히 바라볼 수만 없어
머뭇거리니 마침내 바람도 잠잠해진다
이제는 묻혀야지, 몸 바쳐야 할 자리는 여기
매화
한광구
창가에 놓아둔 분재에서
오늘 비로소 벙그는 꽃 한 송이
뭐라고 하시는지
다만 그윽한 향기를 사방으로 여네
이쪽 길인가요?
아직 추운 하늘문을 열면
햇살일 찬바람에 떨며 앞서가고
어디쯤에 당신은 중얼거리시나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씀 하나가
매화꽃으로 피었네요
매화꽃으로 피었네요
이쪽 길이 맞나요?
매화꽃 - 백남준을 기억하며
한도훈
봄날 이른 아침
휘파람새 눈물이 매화꽃에 떨어져
이슬이 되었다
아침이슬, 그 세계엔
바이올린을 끌고 가는 한 사내가 보이고
더 깊이 들어갈수록
이슬의 집 마당은 깊어
산머루주 차갑게 익어가는데
어디 벗이 있어
인생 향기 술향기에 더불어 취할꼬
휘파람새여!
다시는 매화꽃을 찾지 마라
부서진 피아노 음결을 따라
찬 얼음덩이 엉덩이에 깔고
한평생 떠돌이로 살아도
매화 향기는 팔지 않았다는 그가
휘파람새 우는 봄날,
서울 랩소디로 한강을 수놓는다
창덕궁 만첩매화
한도훈
꽃에게도 낭떠러지가 있다.
알싸한 꽃놀이에
기가 죽고 피가 마르는데
꽃그늘에 누워
방귀나 풍풍 뀌며
콧구멍이나 쑤시는 너!
허공조차 소름 돋게 하는
만첩매화 매력에 푹 빠져
한걸음씩 다가갈 때
보랏빛 제비꽃은
고개 꺾어 비명소리 높인다
맨몸으로 꽃은 서 있는데
가시 돋친 시선들은
꽃잎에게만 향하고
검은 줄기나 땅밑 뿌리에게도
한번쯤 인사치레 할 법도 한데
꽃술에 코뚜레 꿰어
목에 걸고 다니기 바쁘다
창덕궁 담벼락에 기댄
생강나무 꽃에게나
노란 양지꽃에겐 눈길도 주지 않아
꽃에게도 서열이 있다
매화
한병진
매화꽃의
화사한 눈물로
봄을 상처 주지마라
눈바람속 외로움이
꽃피었다 한들
울음끝이 아님을 알고 있다
버림받은 계절내내
절규로 피멍진 모습을 이겨내고
붉은 심장을 오려내 피었을지라도
벌써 너는
추락을 준비하며 울고 있구나
십여일 짧은 날을
응어리진 가슴을 열었기로
봄굿마당
색색 옷감걸친 무당춤으로
겨울 한맺힘도 녹았을 것이다
매화꽃이 떨구어 질때 쯤
겨울 서럽던 눈물마져 흘렸겠지만
짧은 봄날이였을지라도
헐벗은 나목속에 감추어 둔
섧디 섧은 섧음도 피고 졌을 것이다.
매화꽃 연정
한병진
매화꽃 지지 마라
하얀 꽃잎 떨어지면
꽃 즈려밟고 뒤돌아설
봄 여인의 눈물 볼까 두렵다
꽃이 아름다울 때
머잖아 시들거라고
세월을 붙들고 있었지만
봄 여인 뒷모습이 멀어지고 있었다
세월이 뭉뚱그려 스쳐가고
거울속 낯선 모습 보았지만
매화꽃이 필 때마다
봄 여인의 사랑을 되찾고 있었다
어느 봄날
잊지 못한 음성 들려왔을 때
매화꽃 핀 그날 밤처럼
봄 여인 삼십 년이 달려올 거라 했다
매화꽃 피면
뜨거웠던 기다림으로
세월을 몽땅 밀치고 나면
봄 여인의 연정이 사나이 눈물에 젖을 것이다.
매화
한용운
看盡百花正可愛 從橫芳草踏煙霞
一樹寒梅將不得 其如滿地風雲何
어여뿐 온갖 꽃 모두 보았고 안개 속 꽃다운 풀 모두 밟았네
그래도 매화는 찾을 수가 없는데 땅에는 눈보라만 가득하니 이를 어쩌랴
매화 예찬
한용운
又古人梅題下不作五古余有好奇心試(우고인매제하부작오고여유호기심시금)?
梅花何處在 雪裡多江村(매화하처재 설리다강촌)
今生寒永骨 前身白玉魂(금생한빙골 전신백옥혼)
形容晝亦奇 精神夜不昏(형용주역기 정신야불혼)
長風散鐵笛 暖日入禪園(장풍산철적 난일입선원)
三春詩句冷 遙夜酒盃溫(삼춘시구랭 요야주배온)
白何帶夜月 紅堪對朝暾(백하대야월 홍감대조돈)
幽人抱孤賞 耐寒不掩門(유인포고상 내한불엄문)
江南事蒼黃 莫向梅友言(강남사창황 막향매우언)
人間知已少 相對倒深尊(인간지이소 상대도심존)
매화를 반가이 만나려거든
그대여, 눈 쌓인 강촌(江村)으로 오게.
저렇게 얼음 같은 뼈대이거니
전생(前生)에는 백옥(白玉)의 넋이었던가.
낮에 보면 낮대로 기이한 모습,
밤이라 그 마음이야 어두워지랴.
긴 바람 피리 타고 멀리 번지고
따스한 날 선방(禪房)으로 스미는 향기!
매화로 하여 봄인데도 시구에는 냉기 어리고
따스한 술잔 들며 긴긴 밤 새우는 것.
하이얀 꽃잎 언제나 달빛을 띠고
붉은 그것 아침 햇살 바라보는 듯
그윽한 선비 있어 사랑하노니
날씨가 차갑다 문을 닫으랴.
강남의 어지러운 다소의 일은
아예, 매화에겐 말하지 말라.
세상에 지기(知己)가 어디 흔한가.
매화를 상대하여 이 밤 취하리.
조춘
한용운
이른 봄 작은 언덕 쌓인 눈을 저어 마소.
제 아무리 차다기로 돋는 움을 어이하리.
봄옷을 새로 지어 가신 님께 보내고자.
새 봄이 오단 말가 매화야 물어 보자.
눈바람에 막힌 길을 제 어이 오단 말가.
매화는 말이 없고 봉오리만 맺더라.
봄 동산 눈이 녹아 꽃뿌리를 적시도다.
찬 바람에 못 견디던 어여쁜 꽃나무야.
간 겨울 내리던 눈이 봄의 사도(使徒)이니라.
매화꽃 피었네
한재선
밤새
매화 나뭇가지 토닥이며
봄비가 내렸네
빗소리 자장가 삼아
오랫만에 단잠을 잤네
잠 못 이뤄
시린 가슴 뒤적이며
움츠러들던
그 긴 어둠을 밀어내고
뽀얀 꽃잎 들어 올리고 있네
열린
창문 사이로
한 줄 그은 꽃잎 바람
커피 내리는 찻물에 걸려
머그잔 위로 매화꽃 피었네
녹녹해진
내 마음에도
꽃씨 한 알 틔워
꽃향기 피어난다면
나비와 꽃잎 출렁이겠네
매화
한천희
영하의 겨울 속
매화는 꽂을 피워야 했다
찬바람이 피지 마라 울어도
매화는 피어나고 있었다
월백에 빛나는 하얀 절개를
백설이 내려앉자 감싸안고
겨울을 지키려 해도
사계의 뜨거운 가슴은
봄을 기다리고
잠자던 너의 기억을 깨워
동토의 대지에
피어진 매화꽃은
만물을 깨워야 하는구나
매화 한 가지 피워 놓고
한휘준
머무르고 싶었다
그대 차디찬 뜨락에서
바람 한 점
되어서라도
그대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부드러운 입술 향기
살짝 머금어
봉긋한
가슴을 맴돌고 돌아
온몸에 소름 돋아나듯
솟아오르는
발칙한 그리움이여
은하의 별들이
밤새 쏟아져 내렸나
백설 분분한 겨울 끝자락
봄은 저만치서
기별조차 없는데
가지마다 열꽃으로 피는
그대 아련한 미소
매화나무 가지 끝에 어여쁜
어여쁜 꽃봉오리 되었다
머무르고 싶었다
그대 차디찬 뜨락에서
바람 한 점 되어
연분홍 매화 한 가지
피워내면서라도
설중매
함민복
당신 그리는 마음 그림자
아무 곳에나 내릴 수 없어
눈 위에 피었습니다
꽃 피라고
마음 흔들어 주었으니
당신인가요
흔들리는
마음마저 보여 주었으니
사랑인가요
보세요
내 향기도 당신 닮아
둥그렇게 휘었습니다
매화 축제
허정숙
바쁜 단장하여 봄 마중 간다
매화는 함박웃음 짓고 하얀 꽃 모자에
눈부신 파티복 입고 나를 반기고
망울 맺힌 가지는 지휘자 되고
산들 살랑 바람은 비발디 사계 중
봄을 연주한다
파티장 사랑 마주하고 백옥 순수함과
어우러져 홍 매화도 열정에 빠져
봄의 왈츠에 흠뻑 취하여 춤을 추고
무대에 오케스트라 관현악 연주는
무려 익어가고 꽃들의 축제는
매화 꽃잎을 뿌리며 깊어져만 간다
매화꽃
홍성숙
젊은 여자가
밤마다 달을 품고 잠이 들면
별들의 속삭임은 온통 부러움이였다
늙은 남자가
밤마다 바다를 안고 뒹굴면
꽃들의 치장은 마냥 행복이였다
시곗바늘이 꽃으로 피고
별꽃이 사랑으로 활짝 웃으면
그날 밤 그날의 행복이
젊은 여자와 늙은 남자의 인생 저울에
피고 피고 또 피고
지고 지고 또 지고
매화
홍신선
뒷방 벽에 똥이나 척척 이겨 바르듯
제 몸 엉덩이나 바짓가랑이에
얼어터진 꽃 몇 방울
민망하게 묻히고 선
치의(緇衣·검은 승려복)마저 나달나달 해진 오 척 단구의
매화 등걸
그동안 몸으로 꽃 열더니
이제는 똥칠인 듯
항문으로 여는가
모처럼 아파트 담벼락에 해바라기하고 선
그에게서
이념의 마비에서 풀린 송장을 발견한다
가진 것 없을수록 사람이 얼마나 고강해지는가를 발견한다
머지않아 앞산들
물렁뼈 닳은 무릎걸음으로 다가앉기 시작하리라
응결된 내상들 화농해 쏟아져 나오듯
나날이 녹음들 쏟으리라
당나라 사람의 매화시에 화답함
홍원주
이 겨울에 너 홀로
봄을 맞았니?
성긴 가지 끝엔 달빛 푸른데,
건듯 바람 일면 향기 좋아라.
아름다운 네 모습, 눈 속에 핀 꽃
唐人梅花
洪原周
獨擅春光早,
疎枝帶月斜.
隨風暗香動,
玉樹雪中花
꽃시 – 매화부부(梅花夫婦)
홍해리
남편은 파르라니 하이얀 다섯 개의 상아질 이빨로 웃고
아내는 붉고 고운 혓바닥 다섯 장으로 피어 있네.
선한 눈 마주보며 손잡은 채
뜨겁디뜨건 울음만 속으로 속으로 황홀하니 삼키더니,
얼어붙은 뼈마디 달그락거리는
한겨울의 곤비를 한 자리에 모아 놓고,
은빛 꿈 분홍빛 꿈으로
구석구석 지친 이들의 살을 어루만져 주며,
천상으로부터 무수한 꽃잎 꽃잎을 흩날리게 하노니,
천지간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노래여 노래여 매화로다.
반짝반짝!
매화
홍해리
7. 8월 매화는 임신 중
입덧을 하느라 잎이 말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눈빛도 말려
언 눈 속 이른 봄 잔치는 잔치
삼복에 부른 배 기미가 피어
말린 잎 흔들다 잠이 든 고요.
매화꽃 피고 지고
홍해리
심학규가 왕비인 딸 청이 앞에서
눈을 끔쩍끔쩍하다 번쩍 세상을 보듯
매화나무가 겨우내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있다
빈자일등(貧者一燈)이 아니라
천 등 만 등이 하나 둘 켜지면서
가지마다 암향(暗香)이 맑고 푸르다
다글다글 꽃봉오리가 내뿜는 기운으로
어질어질 어질머리가 났다
계집이 죽었는지
자식이 죽었는지
뒷산에서 구성지게 울어 쌓는 멧비둘기
봄날이 나울나울 기울고 있다
시인은 매화꽃이 두근두근댄다고 했다
꽃 터지는 소리가 그만 절창이라고 했다
한 사내를 사랑한 여인의 가슴이
삼복(三伏)염천(炎天)이어서
두향(杜香)이는 죽어서도 천년을
매화꽃 싸늘하게 피우고 있다.
매화나무에 풍경 달다
홍해리
거저 듣는 새소리 고마워
매화 가지에 방울을 걸어 주었다
흔들의자에 앉아
바람이 그윽한 화엄의 경을 펼친다
매화의 분홍빛 눈은 이미 감겨지고
연둣빛 귀를 파릇파릇 열고 있다
매화에 없는 악보를 풍경치듯
하나 하나 옮겨놓고 있는
붕어가 콕콕 쪼고 톡톡 치며
하늘의 노래를 시나브로 풀어 놓고 있다
바람이 물고기를 타고 춤을 추는
매화 사타구니에서 울리는 종소리에
가지마다 많은 열매가 열리겠다
올해는 매실이 더욱 튼실하겠다
매화나무 책 베고 눕다
홍해리
겨우내 성찰한 걸 수화로 던지던 성자 매화나무
초록의 새장이 되어 온몸을 내어 주었다
새벽 참새 떼가 재재거리며 수다를 떨다 가고
아침 까치 몇 마리 방문해 구화가 요란하더니
나무속에 몸을 감춘 새 한 마리
끼역끼역, 찌익찌익, 찌릭찌릭! 신호를 보낸다
‘다 소용없다, 하릴없다!’는 뜻인가
내 귀는 오독으로 멀리 트여 황홀하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는데
고요의 바다를 항해하는 한 잎의 배
죄 되지 않을까 문득 하늘을 본다
창공으로 날아오르는 입술들, 혓바닥들
천의 방언으로 천지가 팽팽하다, 푸르다
나무의 심장은 은백색 영혼의 날개를 달아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언어의 자궁인 푸른 잎들
땡볕이 좋다고 금빛으로 반짝이고 있다
파다하니 뱉는 언어가 금방 고갈되었는지
적막이 낭자하게 나무를 감싸안는다
아직까지 매달려 있는 탱탱한 열매 몇 알
적멸로 씻은 말 몇 마디 풀어내려는지
푸른 혓바닥을 열심히 날름대고 있다
바람의 말, 비의 말, 빛의 말들
호리고 감치는 품이 말끔하다 했는데
눈물에 젖었다 말랐는지 제법 가락이 붙었다
그때,
바로 뒷산에서 휘파람새가 화려하게 울고
우체부 아저씨가 다녀가셨다
전신마취를 한 듯한, 적요로운, 오후 3시.
매화 피면
홍해리
1
하늘을 열기 위해
우주를 삼킨
네 눈에 모은 빛으로.
이 겨울
우리의 빈혈을
다수웁게 덥히면.
은은히 들려오는
피리소리
천상에서 내리고,
마주하고
나누는
넉넉한 달빛으로,
자기잔에
넘치는
마알간 술빛,
허기로
달래보는
이 계절의 위안이여!
2
매화 피면 찬 하늘에 피리 소리
가슴속에 절을 짓고, 달 빛을 맞네
달빛 젖어 흔들리는 빛나는 소멸
피리구멍마다 맨살의 무지개 피네
설중매(雪中梅)
홍해리
창밖, 소리 없이 눈 쌓일 때
방안, 매화,
소문 없이 눈 트네
몇 생(生)을 닦고 닦아
만나는 연(緣)인지
젖 먹던 힘까지, 뽀얗게
칼날 같은 긴, 겨울밤
묵언(默言)으로 피우는
한 점 수묵(水墨)
고승,
사미니,
한 몸이나
서로 보며 보지 못하고
적멸(寂滅), 바르르, 떠는
황홀한 보궁(寶宮)이네.
설중매 앞에 서서
홍해리
1
수억 광년을 잠자던 별들이
싸늘한 영혼으로 터뜨리는
하얀 불꽃이다
2
싸락눈 같은 창백한 속삭임
새벽 4시의
무명(無明)
3
별똥별의
추락
화사한, 화사한
마침표
4
천상의 문양
가지마다
청청백백
청허(淸虛)로다
5
청천벽력 같은
투명한
불꽃 앞에
그냥 죄스럽다
마냥 부끄럽다
매화나무
황금찬
봄은 언제나 그렇듯이
늙고 병든 매화나무에도
찾아 왔었다.
말라가던
가지에도 매화 몇 송이
피어났다.
물 오른
버드나무 가지에
새파란 생명의 잎이
솟아나고 있다.
반갑고
온혜로운 봄이여
늙은 매화나무는
독백하고.
같은 봄이지만
나는 젊어가는데
매화나무는 늙어가네
버드나무의 발림이다.
가을이 없고
봄만 오기에
즈믄 해를
젊은 줄만 알았다네 -.
매화(梅花)에 부치는 편지
황금찬
함경남도 원산 명석동 15(咸鏡南道 元山, 明石洞 一五)번지
우수절(雨水節)이었는데
농무(濃霧) 속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새벽 두 시 반(半)이나, 세 시였을 것이다
뜰악 매화 나무 옆에서
맏딸 년을 안은 아내와 이별을 했다.
『당신이 가면 어떻게 살지요?』
『남편의 구실을 못 해 미안하오』
『비가 오는데 그만 들어가요, 몸이나 조심해야지』
『큰 소리로 해선 안 돼요, 그리고 제 근심은 마세요』
『딸년이나 잘 기르오』
아내는 통 말이 없다.
나는 몇 걸음 걷다 돌아섰다.
세 살 난 딸년은 매화 가지를 잡고 놓지 않았다.
어제 같은데 13년이다.
이제는 보고 싶지도 않다.
만나면 무섭기만 하리라.
매화나무는 그 뜰에 지금도 서 있을까
있다면 얼마나 컸을까
열다섯 살 났을 내 딸년의
두 길은 컸겠지
그리고 이 봄에도 꽃이 피는가
당신은 그 집에 살고 있지 않을 것이오
그러나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왜 이리 무서워질까요
고향(故鄕)이면서 천애(天涯)의 땅
매화(梅花).
오양깐에서 잠자던 송아지는
어디로 끌려갔을까
홍매(자장매)
황대승
영축산 입춘 바람에
치맛자락 얄랑인 게
부끄러웠나
마을 홍 씨네 딸내미
얼굴 붉어졌네
매화꽃 피어 봄의 기쁨을
황인숙
동김해 건설 고등학교
봄의 햇살이 넘실대는 뜨락에
고목의 매화꽃들이 멋스럽게
예쁘게 피어서 유혹 한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봄에 꽃피울 준비를
아름다움의 옷으로 멋스럽게 치장하고
연못 옆 뜨락에서 수즙 게 피어난 매화꽃
멋 스러움 을 발산 하는
사진작가 들과 매화의 향기를
느끼기 위해 찿아온 사람들 작품 속에 담으려고
꽃잎 몇 잎에 카메라를 조준하고
찍어대는 카매라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
관광차를 대절해서 몰려오는
매화꽃향기에 취한 벌떼들
매화 꽃의 아름다움
멋스러움에 취한 듯 찍고 또 찍고
매화꽃 피어있는 뜰에
벌떼들로 득실거리고
매화꽃 잎 열어
봄의 기쁨을 안겨주네
양산 원동 매화 축재
황인숙
원동 매화꽃 단지
해마다 수즙은 듯 피어
봄의 희열을 안겨주는
매화꽃 축재로 다가오는
몰려오는 인파
매화꽃 축재를 즐기려는
차량들의 긴 행렬
길거리에 주차를 하고 몰려오는 인파들
겨우 네 잠재웠던 마음을
봄의 향연을 느끼고 싶어서 찾아드는
원동축재에 오면 국수는 꼭 먹어야 한다고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려
매화향기 가득한 뜰에 앉아
국수 한 양품 부침개 한 조각
매화향기도 음미 하면서 먹으니
맛이 진국이네 잔치 분위기
하얗게 피어 설국의 나라에 온 듯
홍매화도 몇 구루 피어나
전율을 타고 퍼지는 향기
봄날의 축재로 모두다 사진작가다
멋진 매화의 꽃잎을
사진에 담으려고 찍고 또 찍고
화신으로 다가오는
매화꽃에 반해 찾아온 발걸음들이
꽃의 향연으로 봄날의 축재로
꽃의 궁전 뜰의 화려함에 흡족한 듯하다
매화가 필 무렵
황종권
싸락싸락 파도를 삭힌 홍어가 첫울음을 터트린다
항아리엔 볏짚이 있어 홍어도
겨울도 얼지 않았다
매화꽃 환한 어느 날 저녁
잡어선에서 막 돌아온 사내 하나
홍어삼합을 가지런히 이빨도 없이
콧김 뿜으며 먹고 있었다
핏기 없던 얼굴이 자욱하다
마당 한쪽의 매화나무와
고양이도 작은 명상에 잠기고 있다
젓가락처럼 실눈 뜬 달이
막걸리 잔으로 뛰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