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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멸

환멸

Thomas mann

 

고백하자면, 그 이상한 신사가 들려준 이야기는 나를 완전히 혼란에 빠뜨리고 말았다. 그날 저녁 나 자신이 느꼈던 것과 같이 다른 사람들도 그와 비슷하게 느낄 수 있도록 내가 과연 그 신사의 이야기를 지금 다시 한번 되풀이해서 옮겨놓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어쩌면 그 이야기의 효과는 전혀 알지 못하던 사람이 내게 털어놓은 그 보기 드문 솔직한 태도에서 연유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가을날 오전 전혀 알지 못하던 그 남자가 산 마르코 광장에서 처음 내 눈에 띄었던 것은 지금부터 약 두 달 전이다. 넓은 광장에는 단지 몇 안 되는 사람들만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그 경이로운 건축물, 즉 화려한 색채를 자랑하는 대성당 앞에는 가벼운 바닷바람에 여러 개의 깃발들이 펄럭거렸고, 대성당의 육중하고도 동화 같은 분위기의 외관과 황금빛 장식은 그 황홀한 명확성으로 인해 부드럽고 연푸른 하늘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대성당 정문 바로 앞에는 옥수수 모이를 뿌려 주고 있는 한 소녀 주위에 수많은 비둘기 떼가 몰려들었고, 그러는 동안 또 다른 비둘기들이 사방에서 자꾸만 날아들고 있었다······. 그것은 어디에도 비할 데 없이 밝고 축제 분위기를 풍기는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그를 만났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그의 모습은 지극히 명확하게 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중키가 될 듯 말 듯한 그는 지팡이를 허리 뒤로 해서 두 손으로 잡고서 구부정한 자세로 빠르게 걷고 있었다. 그는 뻣뻣한 검은 모자를 쓰고 밝은 색깔의 여름 외투에다 어두운 색상의 줄무늬 바지를 입고 있었다. 어떤 근거에서였는지는 몰라도 나는 그가 영국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이는 30세가량 된 것 같기도 했고, 어찌 보면 한 50세가량 되어 보이기도 했다. 약간 두툼한 코와 피곤한 듯 보이는 회색의 두 눈동자를 지닌 얼굴은 말쑥하게 면도가 되어 있었고, 입가에는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약간 실없는 미소가 끊임없이 떠돌고 있었다. 다만 그는 때때로 눈썹을 치켜세우며 무언가를 살피듯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는 이내 다시 시선을 바닥으로 깔고 혼자서 몇 마디 중얼거렸고, 고개를 가로 젓고는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그는 집요하게 광장을 위아래로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를 매일 관찰했다. 왜냐하면 그 남자는 날씨가 좋건 나쁘건, 오전이건 오후건, 늘 혼자서 늘 똑같은 유별난 몸짓으로 서른 번에서 쉰 번씩 광장을 오가는 것 외에는 다른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그 날 저녁에는 국악대의 연주가 있었다. 나는 플로리안 카페 측에서 광장 쪽으로 주욱 내어놓은 작은 테이블들 중의 하나에 앉아 있었다. 연주회가 끝난 후 그때까지 빽빽한 인파 속에 물결치듯 이리저리 몰리던 군중들이 흩어지기 시작할 무렵, 그 미지의 남자는 늘 하던 대로 정신 나간 듯한 미소를 지으며 내 옆의 한 빈 테이블에 와 앉았다.

시간이 흘러갔고 주위는 점점 더 고요해졌으며, 넓고도 멀리 내어다 놓은 모든 테이블이 텅 비게 되었다. 광장 여기저기에 아직도 어슬렁거리는 사람이 간혹 있을 뿐이었고, 광장 위에는 웅장한 평화가 내리깔렸으며, 하늘은 별들로 뒤덮였다. 산마르코 광장의 화려한 무대가 되는 정면 건물 위에는 반달이 떠 있었다.

내 옆에 있는 남자에게 등을 돌린 채 나는 신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남자를 혼자 내버려 두고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이었다. 그때 나는 그 남자에게로 반쯤 몸을 돌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아무런 인기척이 없던 그 남자가 갑자기 말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베네치아가 처음이시지요. 선생?” 그는 서투른 프랑스어로 물었다. 내가 영어로 대답하려고 애를 쓰자 그는 사투리가 전혀 없는 독일어로 말을 이어 나갔다. 나직하고 쉰 목소리였는데 그는 이 목소리에 생기를 부여하고자 자주 헛기침을 했다.

전부 처음 보시는 것인가요? 기대를 충족시키는가요? 아니면 혹시 그 이상인가요? ! 이렇게 아름다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셨단 말인가요? 정말인가요? 단지 행복하고 부러워할 만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만은 아니겠지요? !”

그는 뒤로 몸을 기대더니 눈을 빠르게 깜박거리며 뭐라 설명할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관찰하는 것이었다.

잠시 말 없는 시간이 찾아왔고 그것이 오래 지속되었다. 이 이상한 대화를 어떻게 이어 나가야 할지 내가 다시 일어나려고 하자 그가 조급하게 몸을 앞으로 가져오면서 말했다.

선생, 당신은 환멸이란 것이 무엇인지 아시오?” 하고 그는 두 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자기 몸을 거기에 의지하면서 나지막하면서도 절박하게 물었다.

사소하고 개별적인 실패나 실수를 말하는 게 아니라 큰 환멸, 일반적인 환멸 말이오. 모든 것이 인생 전체가 우리에게 마련해 놓고 있는 그런 환멸 말이오. 분명 선생은 알지 못할 거요, 하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 환멸이라는 것과 사귀며 돌아다녔고, 이것이 나를 외롭고 불행하고 약간 이상한 인간으로 만들어 놓았어요. 나도 이 사실을 부정하지 않아요.

선생이 나의 이 말을 어떻게 벌써 이해할 수 있겠소? 하지만 부탁하건대, 내 이야기에 2분만 귀를 기울여 준다면 아마도 이해하게 되실 것이오.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 빨리 이야기해 버리는 것이 상책일 테니까 말이요······.

먼저 언급해 두고 싶습니다만, 나는 아주 작은 도시에서 자랐소. 목사관에서 말이오. 목사관의 지나치게 청결한 공간들에서는 고풍스러운 열정이 넘치는 학자적 낙관주의가 지배하고 있었소. 그리고 그 안에서는 설교단의 수사학이 풍기는 독특한 공기를 들이마셔야 했지요. 선과 악, 미와 추()와 같은 위대한 단어들이 풍기는 공기 말이오. 아마도 이런 말들이, 아니, 오직 이 말들만이 나의 고통의 원인이 될 것이므로 나는 이런 말들을 몹시 증오하오.

인생이란 내게는 온통 그런 거창한 말들로 이루어져 있었소. 그런 말들이 내 속에서 불러일으킨 거창하고도 실체 없는 예감들을 제외하면 내가 인생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오. 나는 사람들로부터는 신적인 선과 소름끼치는 악마적인 것을 기대했고, 인생으로부터는 황홀한 미와 섬뜩한 추를 기대했소.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대한 갈망이 나를 가득 채우게 되었소. 광막한 현실에 대한 깊고 불안에 가득 찬 동경, 어떤 종류든 간에 체험을 하고 싶다는 동경, 도취경으로 인도하는 굉장한 행복을 향한 동경, 말할 수도 없고 예감할 수도 없는 무시무시한 고통에 대한 동경에 사로잡히게 되었지요.

선생, 나는 내 인생에서 최초로 느낀 환멸을 슬프도록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소. 당신이 알아주기 바라는 것은, 이 환멸의 본질이 결코 어떤 아름다운 희망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불행이 시작되었다는 데 있다는 사실이오. 아직 내가 어렸을 적 일이었소만, 어느 날 밤중에 내 아버지의 집에 불이 났다오. 불길은 은밀하고도 고약하게 빨리 번져서 조그만 한 층 전체를 태우고 내 방문 앞까지 이르렀고, 계단 역시 금방 화염에 휩싸이게 될 지경이었소. 불을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은 나였소. 내 기억에 의하면, 나는 온 집안을 뛰어다니며 몇 번이고 이 한마디를 외쳤소. ‘불이야! 불이야! 나는 지금도 그 말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소. 그리고 어떤 감정이 그 말 밑바닥에 숨어 있었는지도 알고 있소. 비록 당시에는 그 감정을 의식했던 것은 아니지만 말이오. 아무튼 나는 이렇게 느꼈소. ‘이것이 화재로구나. 이제 내가 그것을 경험하는구나! 그런데 화재는 이것보다 더 끔찍한 것이 아닐까? 겨우 이게 다야······?’

······하기야 그것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었소. 집 전체가 불에 다 타 버려 내려앉았고, 가족 모두가 최악의 위험에서 간신히 벗어나 목숨을 건질 수 있었으니까 말이오. 그리고 나 자신은 그 화재로 인해 상당한 부상을 입기까지 했소. 그런데 내 환상이 이 사건을 미리 짐작하고 있어서 내가 우리 집 화재를 실제보다 더 끔찍하게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고 말한다면 그건 옳지 않은 말일 것이오. 그러나 무엇인가 훨씬 더 끔찍한 것에 대한 막연한 예감과 형체 없는 관념이 내 마음속에 살아 숨 쉬고 있었고, 그러한 예감이나 관념과 비교해보면 현실이 내게는 너무 무미건조하게 느껴진 것도 사실이오. 그 화재는 나의 최초의 커다란 경험이었소. 즉 내 속의 어떤 무서운 희망이 그 화재로 인해 환멸을 맛보았던 거지요.

겁낼 건 없소. 내가 느낀 환멸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계속 보고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다만 이런 것만 얘기하는 것으로 족하오. 즉 내가 인생에 대해 광대하게 기대했던 것들을 수많은 책에서 불행한 열성을 기울여 섭취했다는 것이오. 바로 시인들의 작품이었지요. , 그렇지만 나는 그 시인들을 미워하게 되었소. 그들이 가진 거창한 말들을 벽이란 벽에 모조리 써 놓고 싶어 하고, 베수비오 화산에 솟아 올라있는 삼나무로 그 말들을 하늘 가득히 그려 넣으려 했던 시인들 말이오. 그런데 나는 그들의 거창한 말 하나하나가 모두 거짓말 내지 비웃음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었소!

환희에 찬 시인들은 이렇게 노래 불렀소. ‘언어는 빈곤한 것, , 언어는 초라한 것!’이라고 말이오. 그런데 아니었소. 선생! 언어란 내가 보기에 풍부한 것이었소. 그것도 인생의 빈약함과 한계에 비하면 넘쳐흐를 정도로 풍부한 것이었소. 고통도 그 한계가 있지요. 육체적 고통이라면 기절할 때 그럴 테고, 정신적 고통이라면 둔감 속에서 그럴 테지요. 행복이라고 다를 것은 없지요! 그런데 인간의 전달 욕구는 이 한계를 뛰어넘어 신화에 나오는 류트(만돌린과 비슷한 작은 현악기) 처럼 거짓말을 지어내는 소리를 고안해낸 것이오.

나한테 문제가 있는 걸까요? 거창한 어떤 말들의 작용이 단지 나한테만, 척수를 타고 내려가 전혀 존재하지도 않는 여러 가지 체험에 대한 예감을 불러일으키는 걸까요?

나는 그 유명한 인생 속으로 탐험해 나아갔소. 내 거대한 예감들에 상응하는 체험을 하겠다는 열망을 듬뿍 안고서 말이오. 맹세코 말하지만, 그런 체험이 내게 주어지지는 않았소! 나는 사방을 떠돌아다니며 지구상의 가장 이름난 고장들을 찾아다녔고 인간들이 위대한 말들로 춤추듯 야단법석을 떠는 많은 예술 작품 앞에 서 있기도 하였소. 그 앞에 서서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지요. 참 아름답구나. 하지만 더 아름다워야 하지 않을까? 이게 다란 말인가?

나는 실제 사실에 대한 감각이 없소. 어쩌면 그것이 좋은 설명이 될지 모르겠소. 언젠가 한 번은 이 세상 어디선가 난 산중의 깊고 좁은 협곡 앞에 서 본 일이 있었소. 암벽은 나무 하나 없이 수직으로 깎아지른 듯했고. 아래에는 계곡물이 바위를 휘감고 세차게 흘러가고 있었소.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생각했소. 여기서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의 많은 경험으로 스스로 이렇게 대답했지요. 만일 그런 일이 생긴다면 떨어지면서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겠지. ‘이제 너는 떨어지고 있구나. 이건 사실이야! 그런데 이게 대체 왜 겨우 이것뿐인가?’

나도 내 의견을 한마디쯤 말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경험을 쌓았다는 사실을 믿어 주시겠소? 수년 전에 나는 한 여자 아이를 사랑했소. 여리고 매우 고운 여자였지요. 내 손으로 그녀를 이끌며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소. 하지만 그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소. 그건 놀라운 일이 아니었소. 다른 남자가 그녀를 보호하고 있었던 거요·····. 세상에 이보다 더 고통스러운 경험이 있겠소? 관능적 쾌락과 무섭도록 뒤섞인 이 쓰라린 비애보다 더 괴로운 일이 어디 있겠소? 나는 수많은 밤을 뜬눈으로 누워 있었지요. 그런데 이 모든 것보다 더 슬프고 괴로운 것은 늘 다음과 같은 생각이었소. 이건 크나큰 고통이다! 지금 나는 그것을 겪고 있다! 그런데 이게 대체 왜 겨우 이것뿐인가?

내가 선생에게 나의 행복에 관한 이야기도 해 드릴 필요가 있겠소? 이렇게 말하는 것은 행복 역시 나도 맛보았지만 내게 환멸을 주었기 때문이오·····. 그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소. 그런 모든 이야기들은 평범한 사례들이어서, 나에게 환멸을 안겨주고 다시 환멸을 안겨주고, 또다시 환멸을 안겨주는 것이 바로 전체 인생, 일반적 인생이며, 평범하고 흥미 없고 무미건조하게 진행되는 인생이라는 것을 선생에게 명백하게 인식시켜 주지 못할 것입니다.

젊은 베르터는 언젠가 이런 글을 썼소. 인간이란 무엇인가? 반신(半神)으로 칭송받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가장 힘을 필요로 하는 바로 순간에 그 힘이 모자라는 존재가 아닐까? 기쁨을 맛보고 하늘로 날아오르려고 할 때나 고통을 맛보고 좌절하려 할 때, 이 두 경우에 다 바로 그 순간에 저지당하는 존재가 아닐까? , 그가 무한한 충만감 속에서 무아경을 동경하는 바로 그 순간 그는 또다시 둔감하고 냉철한 의식으로 되돌려지는 존재가 아닐까?’

나는 바다를 처음으로 보았던 날을 자주 생각하오. 바다는 크지요, 또 바다는 넓지요. 나의 눈길은 해변에서부터 먼바다 쪽으로 향하면서 해방되기를 희망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그 뒤에는 수평선이 있었소. 왜 수평선 같은 것이 있겠소? 나는 인생으로부터 무한한 것을 기대해 왔거든요.

혹시 내 시야가 다른 사람들의 시야보다 더 좁은 것일까요? 앞에서 말했다시피, 나는 내가 실제 사실에 대한 감각이 없다고 말했소. 어쩌면 내게는 그런 감각이 너무 많은 것일까요? 아니면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너무 일찍 포기하는 인간일까요? 너무 빨리 만족하는 인간일까요? 내가 행복과 고통을 가장 낮은 정도에서만, 아주 묽은 상태에서만 아는 인간일까요?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소. 그리고 나는 인간을 믿지 않소. 인생에 직면하여 시인들의 거창한 말에 동의하는 사람을 믿지 않소. 그건 비겁함이고 거짓이오! 말이 나온 김에 하는 말이지만, 선생, 선생은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나요? 허영심이 너무나도 강하고 다른 사람들한테 존경과 은밀한 질투를 너무나도 받고 싶어서 행복의 위대한 말들만 체험했고 고통의 말들은 체험을 못했다고 떠들어 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말이오.

날이 어두워졌소. 게다가 선생은 내 이야기를 거의 귀담아듣지도 않고 있소. 그 때문에 나는 오늘 다시 한번 나 자신한테라도 고백하고 싶소. 나도, 나 자신도 역시, 한때는 나와 다른 사람들 앞에서 행복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그런 인간들과 함께 거짓말을 하려고 시도했소. 하지만 그런 허영심이 붕괴된 지도 벌써 몇 해가 지났소. 지금의 나는 외롭고, 불행하고, 약간 기인처럼 되었소. 그것을 부인하지는 않겠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총총한 밤하늘의 별을 관찰하는 것이오. 이 지상과 인생에서 눈을 돌리는 데에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어디 있겠소? 그렇다면 내가 최소한 나의 예감들을 간직하려 마음을 쓰는 것이 어쩌면 용서받을 만한 일이 아니겠소? 환멸이라는 고통스러운 찌꺼기를 맛보지 않고 내 위대한 예감 속에서 현실이 훤히 떠오르는 그런 해방된 인생을 꿈꾸는 것 말입니다. 수평선이라는 것이 더는 없는 인생을 꿈꾸는 것 말입니다·····.

나는 그런 인생을 꿈꾸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소. , 그런데 나는 죽음도, 이 마지막 환멸도, 이미 너무 자세히 알고 있소. ‘, 이게 죽음인가?’ 하고 내 인생 마지막 순간에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오. ‘이제 내가 죽음을 체험하고 있구나! 그런데 이게 대체 왜 겨우 이것뿐인가?’

선생, 이제 광장이 추워졌네요. 이걸 느낄 능력은 내게 아직 있군, 허허!

, 그럼, 작별 인사를 드립니다. 아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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