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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죽음

Thomas mann

 

910

이제 가을이다. 여름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결코 다시는 여름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잿빛 바다는 고요하다. 슬픔을 자아내는 이슬비가 내린다. 오늘 아침 그 풍경을 보면서 나는 여름과 작별하고 가을을 맞이했다. 이제 정말로 무자비하게 다가온 나의 마흔 번째 가을을. 그리고 이번 가을은 가차 없이 그날을 데려올 것이다. 나는 이따금 그 날짜를 혼자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경건하면서도 은근히 두려운 기분으로…….

 

 

912

나는 어린 아중시온(Asuncion. 포르투갈어로 승천昇天을 의미함)과 잠깐 산책을 했다. 이 아이는 좋은 길동무이다. 말 수 없는 이 아이는 이따금 그냥 눈을 크게 뜨고 다정하게 나를 올려다본다.

우리는 크론스하펜으로 가는 해변 길을 걸어 산책했다. 그러나 우리는 한두 명 이상의 사람들과 마주치기 전 적절한 때에 다시 돌아왔다.

돌아오는 동안에 나는 내 집의 모습을 보고 기뻤다. 이 집을 선택한 게 얼마나 잘한 일인지! 이제는 풀이 시들고 비에 젖어 길의 땅이 물러진 언덕에서 나의 집은 소박하고 쓸쓸하게 잿빛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집 뒤쪽으로는 큰 길이 나 있고. 그 뒤에는 들판이 펼쳐져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에는 관심이 없다. 나는 오직 바다에만 주목할 뿐이다.

 

915

잿빛 하늘 아래 바닷가 언덕 위에 있는 이 외딴집은 마치 음산하고 신비스러운 동화 속의 집 같다. 나는 내 생의 마지막 가을에 이 집이 그런 모습이길 원한다. 그런데 오늘 오후 서재의 창가에 앉아 있을 때 비축 물품을 실은 마차가 와 있었다.

늙은 프란츠가 짐 푸는 것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래서 시끄러웠고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얼마나 내 신경을 거슬리게 했는지 모른다. 나는 짜증이 나서 몸을 떨었다. 나는 그런 일은 내가 자고 있는 이른 아침에만 하라고 명령했다. 늙은 프란츠는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명령대로 합죠. 백작님.” 그러나 그는 염증이 생긴 눈으로 겁먹은 듯 미심쩍어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가 나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가 그것을 알 리가 없지. 나는 평범함과 지루함이 나의 마지막 날들을 휘저어 놓는 것을 원치 않는다. 나는 죽음에 어떤 시민적인 것과 평범한 것이 내재 되어 있을까 봐 두렵다. 중요하고 진지하고 수수께끼 같은 바로 그날엔 내 주변이 이상하고도 기이해야 할 것이다. 1012일에는……

 

918

마지막 며칠 동안 나는 외출하지 않고 대부분의 시간을 긴 안락의자에서 보냈다. 나는 책을 많이 읽을 수도 없었다. 책을 읽을 때면 모든 신경이 나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조용히 누워 천천히 줄기차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았다.

아중시온이 자주 찾아왔다. 언젠가 그 애는 내게 꽃을 가져왔다. 그것은 그 애가 해변에서 주워온 말라비틀어진 젖은 식물 몇 줄기였다. 내가 감사의 입맞춤 하자, 아이는 내가 아프기때문이라면서 울었다. 아이의 다정하고도 애처로운 사랑이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비통하게 나를 얼마나 감동시켰던지!

 

 

921

나는 오랫동안 서재의 창가에 앉아 있었고, 아중시온은 내 무릎 위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넓은 잿빛 바다를 내다보고 있었다. 우리 뒤쪽, 높다란 하얀색 문과 딱딱한 등받이 의자들이 있는 넓은 거실에는 깊은 정적이 흘렀다. 나는 가녀린 어깨 위로 단정하게 흘러내리는 아이의 부드러운 검은 머리카락을 천천히 쓰다듬으면서 혼란스럽고 다채로웠던 나의 삶을 뒤돌아봤다. 나는 평온했던 시절, 그리고 짧지만 빛났고 행복했던 시절을 회상했다.

리사본의 빌로도 하늘 아래에서 만난 우아하고 열정적으로 애정을 표현했던 사랑스런 그 여인을 기억하는가? 그녀가 너에게 아이를 선사하고 죽은 지 12년이 지났어. 그녀의 여윈 팔은 너의 목에 감겨있었지.

어린 아중시온은 자기 엄마를 닮은 까만 눈을 가졌다. 다만 아이의 눈은 엄마의 것보다 더 지치고 더 생각이 깊어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이는 굉장히 부드럽지만 좀 새치름하게 생긴 엄마의 입을 꼭 빼닮았다. 그 입은 말을 하지 않고 아주 엷은 미소만 지을 때 가장 예쁘다.

귀여운 내 딸 아중시온! 내가 너를 떠나야 한다는 걸 네가 안다면! 내가 아프다고 울 거니? , ‘그것이이것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것이’ 1012일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923

내가 지난 일을 회상할 수 있고 추억에 잠기는 날들은 흔치 않다. 내가 앞날만을 생각할 수 있고, 오직 이 엄청나고 끔찍한 날을, 마흔 번째 내 삶의 1012일을 기다린 지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던가!

그날은 어떠할지, 그날은 대체 어떤 모습일는지! 나는 두렵지 않다. 그러나 이 1012일은 지독하게도 천천히 다가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927

늙은 구데후스 박사가 크론스하펜에서 왔다. 그는 가로수 길로 마차를 타고 와서 아중시온과 나와 함께 두 번째 아침 식사를 했다.

움직이셔야 합니다.” 그가 닭 반 마리를 먹으면서 말했다. “백작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많이 움직이셔야 합니다. 책은 읽지 마시고, 생각도 하지 마세요! 골똘히 생각하지 마세요! 철학자이시라고 여기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하하!”

그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그의 노고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는 어린 아중시온에게도 조언을 해주었고, 당황하여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아이를 눈여겨 바라보았다. 그는 내가 먹고 있는 약 브로민의 양을 늘려야 했다. 아마도 내가 좀 많이 잘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 같았다.

 

930

9월 마지막 날이다! 이제 오래 남지 않았다. 이제 정말 오래 남지 않았다. 오후 3시다. 나는 1012일이 시작되기까지 몇 분이나 남았는지 헤아려보았다. 8.560.

어젯밤에 나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바람이 세게 불어온데다가 바다가 철썩이는 소리와 빗소리 때문이었다. 나는 누워서 시간이 흘러가게 두었다. 생각하고 또 골똘히 생각한다고? , 그건 아니다! 구데후스 박사는 나를 철학자라고 여긴다지만 내 머리는 매우 허약하다. 그래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건 오직 죽음, 죽음뿐이다!

 

102

나는 깊은 충격을 받았다. 나의 움직임에 승리의 감정이 끼어든다. 이따금, 내가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사람들이 의심과 걱정에 찬 눈으로 나를 쳐다볼 때면, 나는 사람들이 나를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나는 의심을 품고 나 스스로를 살펴봤다. , 그건 아니다! 나는 미치지 않았다.

나는 오늘 예의 프리드리히 황제의 얘기를 읽었다. 사람들은 그가 플로라()로 시작되는 곳에서 죽을 거라고 예언했다. 그러자 그는 두 도시, 플로렌츠와 플로렌티늄을 피했다. 그러나 언젠가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로렌티늄으로 갔다. 그리고 죽었다. 그는 왜 죽었을까?

예언이란 그 자체로는 별것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그 사람의 삶에 영향력을 행사하느냐 하는 것이다. 예언이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그 예언은 이미 증명된 것이며, 그 예언은 실현될 것이다. 어떻게? 바로 우리 안에서 생겨나 강해지는 예언이 외부에서 오는 예언보다 더 가치가 있지 않을까? 죽을 시점을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이 죽을 장소를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불확실한 것일까?

, 그것은 인간의 죽음 사이의 불변의 관계이지! 너의 의지와 너의 확신으로 너는 죽음의 영역을 흡입할 수 있어. 죽음이 너에게 다가서도록, 네가 생각하고 있는 그 시간에 오도록 너는 죽음을 끌어당길 수 있는 거야…….

 

 

103

안개로 둘러싸여 있어서 끝이 없어 보이는 잿빛 바다처럼, 나의 생각들이 내 앞에 펼쳐질 때면 자주 나는 사물의 연관 관계 같은 것을 보게 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것 같다.

자살이 무언가? 자발적인 죽음인가? 하지만 타의로 죽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삶의 포기와 죽음에의 귀의는 별 차이 없이 허약함에서 생긴다. 그리고 이 허약함은 항상 육체 또는 영혼, 혹은 그 둘 모두가 병든 결과이다. 인간은 그것에 동의하기 전에는 죽지 않는다…….

나는 동의했는가? 나는 아마도 동의했을 것이다. 내가 1012일에 죽지 않는다면’, 난 미쳐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05

나는 끊임없이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그 생각이 완전히 나를 사로잡는다. 언제 그리고 어디서부터 그것을 알게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지만 나는 말 할 수 없다! 나는 19살인가 20살 때 내가 40세에 꼭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 그 일이 어떤 날 일어나게 될지에 대해 나에게 집요하게 물었을 때, 나는 그날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 그날이 너무도 가까이 다가왔다. 내가 죽음의 차가운 입김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왔다.

 

 

107

바람이 더 강해졌고, 바다는 쏴쏴 소리를 내고, 빗줄기가 북을 치듯 지붕을 두드렸다. 나는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우비를 입고 해변으로 내려가서 그곳에 놓여 있는 바위 위에 앉았다.

내 뒤로 어둠과 빗속에 회색빛 집이 자리한 언덕이 있었다. 그 집에는 어린 아중시온이, 어린 내 딸 아중시온이 자고 있었다! 그리고 내 앞에 펼쳐진 바다는 칙칙한 거품을 내 발치까지 밀어내고 있었다.

나는 밤새도록 바다를 내다보았다. 나는 죽음 또는 죽음 이후가 꼭 저런 모습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저쪽 세상 밖에는 끝없이 둔중하게 쏴쏴 소리를 내는 어둠이 있을 것이다. 거기서 나의 생각이나 예감이 계속 살아서 움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저 바다의 쏴쏴 소리에 영원히 귀를 기울일 것인가?

 

108

죽음이 찾아오면 나는 죽음에 고마움을 전하려 한다. 그것이 너무 일찍 실현된 것이기에 내가 더 기다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아직 짧은 가을날 사흘이 남아있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날 것이다. 마지막 순간, 그 최후의 순간에 대해 나는 얼마나 기대에 부풀어 있는지! 그것은 황홀한 순간,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달콤한 순간이어야 하지 않을까? 최고의 쾌락을 맛보는 순간이지 않을까?

아직 짧은 가을날 사흘이 남아있다. 그리고 죽음이 이곳 나의 방으로 들어설 것이다. 대체 죽음은 어떻게 처신할 것인지! 나를 벌레처럼 취급할까? 나의 목을 잡아 조를까? 아니면 손으로 내 머릿속을 후빌까? 하지만 나는 죽음이 나에게는 위대하고 아름답고 야생적 위엄을 지닌 존재라 생각한다!

 

 

109

아중시온이 내 무릎 위에 앉아 있을 때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내가 곧 어떤 식으로든 너를 떠난다면 어떨 것 같으냐? 넌 몹시 슬플까?” 그러자 아중시온은 조그만 머리를 내 가슴에 파묻고 슬피 울었다. 고통으로 내 목이 조여들었다.

그런데다 나는 열도 있었다. 내 머리는 뜨거웠고, 나는 오한으로 몸을 떨었다.

 

 

1010

그가 내 곁에 왔다. 오늘 밤 그가 내 곁에 온 것이다! 나는 그를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그런데도 나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웃기는 일이지만, 그는 마치 치과 의사처럼 행동했다! 이런 건 바로 처치해 버리는 게 상책입니다.” 그가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서 저항했다. 간단한 말로 나는 그를 쫓아냈다.

이런 건 바로 처치해 버리는 게 상책입니다!” 그 말이 어떻게 들렸던지! 그 말이 내 골수에 사무쳤다. 얼마나 담담하고, 단조롭고, 시민적이었던지! 나는 이보다 더 냉혹하고 경멸에 찬 실망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1011(11)

내가 그것을 이해하느냐고요? ! 내가 그것을 이해한다고 믿어들 주시길!

한 시간 반 전, 방에 앉아 있는데 늙은 프란츠가 내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몸을 흐느꼈다. “아가씨가.” 그가 소리쳤다. “따님이! , 빨리 와보세요!” 그래서 나는 재빨리 달려갔다.

나는 울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전율이 나를 흔들 뿐이었다. 아이는 침대에 누워있었다. 아이의 검은 머리카락이 창백하고 고통에 찬 조그마한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나는 아이 곁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곤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구데후스 박사가 왔다.

심장마비입니다.” 그가 말했다. 그는 놀라지 않은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이 무능하고 바보 같은 의사는 마치 자기는 그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행동했다!

그런데 나는? 나는 그것을 이해했는가? , 내가 아이와 단둘이 있게 되었을 때 밖에서는 빗소리와 바다의 파도 치는 소리가 들렸고, 난로의 연통 속에서 바람이 울부짖고 있었다. 그때 나는 탁자 위를 탁 쳤다. 한순간에 그것이 나에게 너무나 명백해진 것이었다! 20년 동안 나는 죽음을 끌어 당겨온 것이었다. 한 시간 안에 시작될 이 날로 말이다. 내 마음속에, 마음속 저 깊은 곳에 무엇인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이 아이를 떠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은밀히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자정이 지나도 죽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죽음은 와야만 했다! 그가 왔더라면 나는 그를 다시 쫓아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먼저 아이에게로 갔다. 그는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믿고 있는 것에 복종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귀여운 내 딸 아중시온아! 나 자신이 죽음을 너의 침대로 이끈 것일까? 내가 너를 죽인 것일까? , 섬세하고 불가사의한 일들을 표현하기엔 이건 너무 엉성하고 부족한 말들이야!

잘 가라, 내 아가! 잘 가라! 혹시 저기 바깥세상에서 너에 대한 어떤 생각에 잠기고 너에 대한 어떤 아련한 감정을 재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겠구나. 보아라! 시계 바늘이 움직이고 있고, 귀여운 너의 얼굴을 밝히고 있는 등불도 이제 곧 꺼질 테니까 말이다. 나는 작고 차가운 너의 손을 잡은 채 기다리고 있단다. 그가 곧 나에게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가 이런 건 바로 처치해 버리는 게 상책입니다.”라고 하는 말을 듣게 될 것이고, 그러면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두 눈을 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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