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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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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as mann

 

베를린과 로마 사이를 오가는 급행열차가 크지도 작지도 않은 한 기차역 안으로 들어왔을 때 날씨는 흐렸고 어둑어둑했으며 써늘했다. 플러시(plush) 천으로 만든 넓은 의자 위에 멋진 레이스 커버를 씌운 일등석 객실에서 혼자 여행하던 한 남자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의 이름은 알브레히트 판 데어 크발렌이었다. 그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입에서 맥빠진 듯한 맛을 느꼈다. 그의 육신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감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기차가 꽤 오래 달리다가 정지했고, 리드미컬하게 반복해서 끊임없이 바퀴가 구르던 소리가 멈추고 정적이 찾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고요함은 바깥의 소음들, 외치는 소리들, 각종 신호들과 묘하게도 의미심장하게 대비되었다······. 이러한 상태는 어떤 도취나 마비 상태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렸을 때와 같은 것이었다.

그동안 내내 사람의 신경이 의지하고 있었던 리듬이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신경은 극도로 혼란스럽고 방기된 상태에 빠지게 된다. 게다가 여행 중 몽롱한 상태로 자던 잠에서 깨어날 때면 이런 느낌은 더욱더 강해진다.

알브레히트 판 데어 크발렌은 몸을 쭉 뻗더니 창가로 가서 창문을 아래로 내렸다. 그는 정지해 있는 기차를 길이로 따라가면서 죽 살펴보았다. 열차의 앞쪽 우편물 차량에선 몇몇 남자들이 수하물을 싣고 내리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기관차는 여러 번 경적을 울렸고, 재채기하듯 에취 소리를 내기도 하고 꾸르륵 소리도 조금 내었다. 그러더니 소리를 멈추고 다시 조용해졌다.

움직이면서 발굽을 들어 올리고 귀를 쫑긋 세우고 애타게 출발 신호를 기다리며 그저 멈춰 서 있는 말처럼 말이다. 긴 레인코트를 입은 키가 크고 뚱뚱한 한 숙녀가 몹시 걱정스런 표정으로 엄청 무거워 보이는 여행 가방을 질질 끌면서 가고 있었다.

그녀는 한쪽 무릎으로 가방을 탁탁 치면서 줄곧 기차의 옆쪽으로 왔다 갔다 하며 움직여 갔다. 말없이, 쫓기는 듯 잔뜩 겁먹은 눈을 하고서, 특이하게도 앞으로 쑥 내민, 아주 작은 땀방울이 맺혀 있는 그녀의 윗입술은 왠지 모르게 보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대 내 사랑, 가련한 여인이여!’ 하고 판 데어 크발렌은 생각했다.

오직 당신의 윗입술이 맘에 들어 당신을 도와주고, 당신 좌석으로 안내해주고, 편안하게 해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하지만 누구나 자기 일은 자신이 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오. 지금 아무 불안해 할 것 없는 나는 여기 서서, 마치 뒤로 나자빠진 딱정벌레처럼 허둥대는 당신을 구경하고 있네요······.’

별로 크지도 않은 소박한 역의 실내에는 어스름이 번지고 있었다. 저녁인가? 아침인가? 그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가 잠을 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시간, 다섯 시간 아니면 열두 시간 잠을 잤었는지조차 전혀 확실하지 않았다. 조금도 깨지 않고, 깊은, 아주 깊은 잠을 스물네 시간, 아니 그 이상 잔 것처럼 생각되는 게 아닌가?

그는 벨벳 깃이 달린 암갈색 겨울용 반코트를 입은 신사였다. 용모로 봐선 그의 나이를 식별하기가 아주 어려웠다. 스물다섯에서 삼십 대 후반 사이쯤 될 것이라고 추정되었다. 그의 얼굴은 누르스름했다. 그러나 그의 두 눈은 숯처럼 이글이글 불타는 듯 새까맸으며, 그 주위에는 깊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이런 눈은 결코 좋을 게 없었다. 여러 의사들이, 사나이들 간의 진지하고 솔직한 대화에서, 그가 앞으로 몇 달 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해 준 바 있었다······. 말이 나온 김에 덧붙여 말하지만, 그의 검은 머리카락은 옆으로 매끈하게 가르마가 타져 있었다.

그는 베를린에서 물론 베를린이 그의 여행의 출발지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붉은색 가죽 가방을 들고 마침 막 출발하려는 급행열차에 올라탄 것이었다. 그 후 잠을 잤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난 지금 그는 시간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으로 느꼈기에 온몸에 쾌적감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시계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는 목에 걸고 있는 가느다란 금빛 줄에 달린 작은 메달 하나만을 조끼 주머니에 넣어 갖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행복해했다. 그는 시간이라든가 요일 따위를 알고 살아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달력이 실린 수첩마저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는 꽤 오래전부터 오늘이 며칠인지, 혹은 그저 몇 월인지, 심지어는 연도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고자 하는 습관에서조차 벗어나 있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채로 남아있는 게 좋지!’ 하고 그는 생각하곤 했다.

이것이 다소 어두운 관용구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관용구에 꽤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그는 그런 종류의 모든 방해를 받지 않으려고 애를 썼기 때문에 그가 이런 무지의 상태 때문에 불편을 느끼는 일은 거의 없거나 결코 없었다.

어느 계절인지만 대강 말할 수 있어도 내게는 충분하지 않을까? 대체로 가을인가 보다!’ 하고 그는 흐릿하고 습기 찬 대합실 안을 내다보면서 생각했다. ‘그 이상은 모르겠구나! 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고 있는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자 그가 느끼고 있던 만족감이 갑자기 반가운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그렇다! 나는 나 자신이 어디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 내가 아직도 독일 안에 있는가? 그건 의심의 여지가 없어, 북부 독일인가? 그건 확실하지 않구나!’ 조금 전 그는 잠에서 덜 깨어나 아직도 멍한 눈으로, 자기가 타고 있는 객실의 창이 어느 환하게 불 밝힌 표지판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었다.

그것이 역의 이름을 나타내는 표지판 같았지만, 철자의 모양이 그의 뇌리에까지 들어오지는 않았었다. 그는 아직 잠에 취한 생태에서 차장들이 두 번인가 세 번 역의 이름을 외치는 소리를 듣긴 했었지만 그중 아무 소리도 알아듣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저곳에, 바로 저기에 아침인지 저녁인지 알 수 없는 어스름 속에 어떤 낯선 마을, 어떤 미지의 도시가 있을 것이었다······. 알브레히트 판 데어 크발렌은 좌석의 그물 선반에서 펠트 모자를 꺼내 들고 빨간 가죽 여행 가방을 움켜쥐었다.

가방의 어깨 끈은 비단으로 된 붉은 색과 흰색의 격자무늬 모포로 감싸여져 있었다. 또한 꾸러미 속으로는 은색 손잡이가 달린 우산 하나도 꽂혀 있었다. 그의 기차표가 피렌체 행이라고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객실을 나와서 검소한 시설의 대합실을 따라 걸어갔다.

그는 물품 보관소에 짐을 맡기고 나서 시가에 불을 붙이고는 지팡이도 우산도 손에 들고 있지 않았기에두 손을 외투 주머니에 넣은 채 기차역을 떠났다.

우중충하고 습기가 찼으며 사람들이 거의 없는 바깥의 광장에서는 대여섯 명의 마부들이 채찍으로 탁탁 소리를 내고 있었다. 술이 달린 모자를 쓰고, 긴 외투에 덜덜 떨면서 몸을 감싼 한 남자가 호텔 착한 남자에게로로 가실 분입니까?”하고 묻는 어조에 강세를 주면서 말했다.

판 테어 크발렌은 그에게 예의 바르게 감사의 표시만 하고 곧장 자기 갈 길을 갔다. 그와 마주친 사람들은 외투의 깃을 높이 올려놓았었다. 그래서 그도 그렇게 하고서 벨벳 깃 안에 턱을 바짝 붙인 채 시가를 피우며,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계속 걸어갔다.

그는 어느 땅딸막한 성벽 같은 것을 지나쳐 갔는데, 그것은 두 개의 육중한 탑을 하고 있는 오래된 성문이었다. 또한 그는 어느 교량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다리 난간에는 입상들이 늘어서 있었으며, 다리 아래에는 강물이 탁하게 느릿느릿 흘러가고 있었다.

길고 낡은 쪽배가 지나갔는데, 배의 후미에서 한 남자가 긴 막대로 노를 젓고 있었다. 판 데어 크발렌은 잠시 멈춰 서서 난간 위로 몸을 구부렸다. ‘이것 봐라!’ 하고 그는 생각했다. ‘강이 하나 있군. 그 강이야. 내가 이 강의 평범하던 이름을 잊은 게 마음 편하군······’ 이윽고 그는 계속 걸어갔다.

그는 매우 넓지도 매우 좁지도 않은 어느 가로의 보도를 한동안 곧장 걸어가다가 어디에선가 왼쪽으로 접어들었다. 저녁이었다. 전기 아크등이 켜졌고 몇 번 불빛이 깜빡거리더니 발갛게 타오르다가 쉿쉿 하는 소리를 내면서 안개 속 흐린 날을 환히 비추었다. 상점들은 닫혀 있었다.

그러니까 어느 모로 보나 가을이겠구나!’하고 판 데어 크발렌은 생각하면서 물기에 젖어서 검은빛을 띤 보도 위를 걸어갔다. 그는 덧신을 신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장화는 무척 넓고, 견고하고, 내구성이 강했으며, 그런데도 품위가 없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왼쪽으로 걸어갔다. 사람들이 급한 걸음으로 그의 곁을 지나갔다. 그들은 일하러 가거나 일터에서 돌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들의 한가운데에서 걷고 있구나!’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짐작컨대 그 어떤 사람도 겪어보지 못했을 만큼 고독하고 낯선 존재이다. 나는 직장도 없고 목표도 없다. 나는 내 몸을 지탱할 지팡이 하나도 없다. 나보다 더 의지할 곳 없고, 더 자유롭고, 더 국외자적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한테 신세지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고 나도 아무에게도 전혀 신세지지 않는다.

하느님은 한 번도 나를 비호해 주시지 않았고, 그분은 나를 전혀 모르신다. 자선의 혜택을 받지 않은 진정한 불행은 좋은 것이다. 나는 하느님께 아무것도 빚지지 않았다고 자기 자신에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이야······’

시내가 곧 끝났다. 아마도 그가 도시의 한가운데쯤에서 출발하여 시내를 가로질러 걸을 것 같았다. 그는 수목들과 고급 저택이 즐비한 교외의 어느 넓은 거리에 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오른쪽 길로 접어들어, 가스 등으로 만 불을 밝힌 거의 시골풍인 좁은 골목 서너 개를 지나고 마침내 어떤 조금 더 넓은 골목의 한 목제 대문 앞에 멈춰 섰다.

그 대문은 희미한 황색을 칠한 평범한 집의 오른쪽에 나 있었다. 그 집 자체는 완전히 불투명하고 유난히 뾰족한 아치형의 거울 유리창 때문에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그 집 대문에는 이 집 4층에 세 놓을 방 있음이라는 글이 적힌 팻말이 붙어 있었다. “그래?”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피우던 시가를 버린 후 그 대문을 지나, 이웃집 땅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판자 울타리를 따라 걸어 들어갔다. 이어서 그는 왼쪽에 있는 작은 문을 통과했고 두어 걸음 만에, 오래된 회색의 담요를 초라한 깔개로서 펼쳐놓은 현관에 이르렀다. 그러고 나서 그는 수수한 나무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각 층으로 들어가는 문들도 매우 단순했는데, 철사 그물을 쳐 놓은 우윳빛 유리창에 그 어떤 이름표 같은 것들이 붙어 있었다. 각 층의 계단참에는 석유램프가 빛을 비춰 주고 있었다. 그러나 4이것이 마지막 층이었고 이 위는 창고였다에는 계단의 좌우에 모두 출입구가 있었다. 갈색이 도는 단순한 방문들에는 이름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판 데어 크발렌은 중앙에 선 채로 황동으로 된 초인종을 당겼다······. 종이 울렸다. 그러나 안에서는 기척이 없었다. 그는 오른쪽 문을 두드려 보았다······. 길게 이어지는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한 여성이었는데, 키가 크고 깡마른 부인으로서 나이가 많고 몸이 길쭉해 보였다. 그녀는 크고 빛바랜 연보라색 리본이 달린 두건을 썼고, 고풍의 색 바랜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얼굴은 볼이 움푹 패여 야윈 새의 모습이었으며, 이마 위에는 발진이 생겼는데 무슨 이끼 같은 것이 자란 듯이 보였다. 그것은 꽤 역겨운 것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방을······.” 판 데어 크발렌이 말했다.

노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아무 말도 없이 그리고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고, 아름답고 희며 긴 손을 들어 느리고 피곤하면서도 품위 있는 몸짓으로 건너편의 왼쪽 문을 가리켰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잠시 자신의 집 안으로 들어가더니 열쇠 하나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그녀가 문을 여는 동안 그녀의 뒤에 서 있던 그는 이것 봐라!’라고 생각했다. ‘당신은 밤의 요마(妖魔) 같군. 호프만의 소설(호프만의 단편 동 후앙을 지칭) 속에 나온 인물 말이오 부인······’ 그녀는 석유램프를 걸쇠로부터 떼어 들고서, 그를 방 안에 들어서게 했다.

그것은 갈색 마루를 깐 작고 천장이 낮은 방이었다. 하지만 벽들은 꼭대기까지 짚단 색깔의 돗자리로 뒤덮여 있었다. 뒷벽의 오른쪽 창에는 길고 늘씬한 주름이 잡힌 모슬린 커튼이 쳐져 있었다. 옆방으로 통하는 하얀 문은 오른쪽에 있었다.

노부인은 문을 열고 램프를 위로 들어 올렸다. 그 방은 형편없이 황량했으며, 랙칠을 한 담홍색 등나무 의자 세 개가 마치 생크림 위의 딸기처럼 아무 장식품도 걸어놓지 않은 그 방의 하얀 벽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옷장 한 개, 거울을 포함한 세면대 하나······, 엄청나게 육중한 마호가니 제품인 침대는 방의 한 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신가요?”하고 노부인이 물으면서 아름답고 긴 흰 손을 이마 위의 이끼처럼 자란 흉터 있는 데로 살짝 가져갔다······. 그녀가 마치 단지 실수로 그런 말을 한 것 같았고, 그녀가 마치 지금 이 순간에 걸맞은 보다 일반적인 표현을 생각해 낼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녀는 즉시 덧붙여 말했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아닙니다. 그런 건 전혀 없습니다.” 판 데어 크발렌이 대답했다. “방들이 꽤 기발하게 꾸며졌네요. 제가 방을 빌리겠습니다······. 누군가가 제 짐을 기차역에서 가져다 주었으면 좋겠는데요. 이건 보관증입니다. 그리고 침대와 보조 탁자를 정돈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집 열쇠와 층 열쇠는 지금 바로 주시고요······. 또 수건 몇 장도 마련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약간 차림새를 고치고, 식사하러 시내에 갔다가 나중에 돌아오고 싶군요.”

그는 가방에서 니켈을 입힌 세면도구 통을 꺼내고 거기서 비누를 꺼낸 다음 세면대에서 얼굴과 손을 씻기 시작했다. 사이사이에 그는 바깥으로 심하게 볼록하게 튀어 나간 유리창을 통해 저 아래로 가스등 불빛에 싸인 지저분한 교외 거리들, 아크 등들과 고급 저택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수건으로 손을 닦으면서 옷장 있는 데로 건너갔다. 그것은 갈색으로 착색된 네모난 물건으로서 꼭대기 부분에 왕관이 소박하게 장식되어 있고 약간 흔들거리는 상태였다. 그 가구는 오른쪽 옆벽의 중앙에 있었고, 또한 또 하나의 하얀 문이 있는 벽감 안에 딱 들어맞게 서 있었다.

그 하얀 문은 아마도 바깥 계단에서 큰 문과 중간 문을 통해서 들어 올 수 있는 방들과 통해 있을 것이었다. ‘세상에! 가구를 이렇게 희한하게 배치해 놓다니!’하고 판 데어 크발렌은 생각했다. ‘이 옷장은 마치 이 문이 있는 벽감을 위해 제작된 것처럼 벽감에 딱 들어맞는구나!······’

그는 옷장 문을 열었다······. 옷장은 완전히 비어 있었다. 그 천장에는 여러 줄의 옷걸이 고리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튼튼한 가구의 뒷면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뒷면은 잿빛 천으로, 즉 견고하고 평범한 마대 조각으로 막아 두었으며, 그 천의 네 귀가 못 또는 압정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판 데어 크발렌은 옷장 문을 닫은 뒤 모자를 쓰고, 외투 깃을 다시 세우고는 촛불을 끄고 집을 나섰다. 그는 앞쪽 방을 통과하며 걷는 동안 자신의 발자국 소리 사이사이로 옆방, 즉 예의 다른 방들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것을 들은 것이 같았다. 그것은 낮고 맑은 금속음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 들은 소리가 아니었던지 아주 불확실했다. ‘마치 은 대야 속으로 금반지가 떨어지는 소리 같은데!’하고 그는 바깥 방문을 잠그면서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계단을 내려가 집을 떠났으며 시내로 다시 되돌아가는 길로 들어섰다.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에서 그는 불을 훤히 밝혀놓은 레스토랑에 들어섰고, 앞쪽에 있는 테이블 중에서 한 곳에 자리를 잡고 모든 세상에 등을 돌린 채 앉았다. 그는 살짝 구운 빵을 곁들인 허브 스프, 계란을 얹은 비프스테이크, 설탕에 절인 과일과 포도주, 초록색이 도는 고르곤졸라 치즈 한 조각과 배 반쪽을 먹었다.

계산을 하고 외투를 입는 동안, 그는 러시아제 궐련을 두세 모금 피웠다. 그러고 나서 시가에 불을 붙이고는 걷기 시작했다. 그는 거리를 약간 어슬렁거리다가 그 교외로 돌아가는 자신의 갈 길을 찾아내고는 서두르지 않고 그 길을 되돌아왔다.

판데어 크발렌이 집 현관문을 열고 어두컴컴한 계단을 올라갈 때 거울 유리창을 한 그 집은 완전히 어둠과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그는 작은 성냥불로 앞을 비추며 올라갔다. 4층에서 그의 방으로 들어가는 왼쪽의 갈색 문을 열었다.

그가 외투와 모자를 안락의자 위에 내려놓고 나서 큰 책상 위의 램프에 불을 붙이자, 그곳에서 그의 여행 가방과 우산이 꽂힌 여행용 꾸러미가 보였다. 그는 모포 꾸러미를 풀어서 코냑 한 병을 꺼내 들었으며, 가죽 가방에서 작은 잔을 꺼냈다.

그리고 시가를 마저 피우는 동안 팔걸이의자에 앉은 채 가끔 한 모금씩 마셨다. ‘기분 좋구먼!’ 하고 그는 생각했다. ‘이 세상에 그래도 코냑이 있다는 게 말이야······.’

그러고 나서 그는 침실로 건너가 보조 탁자 위의 양초에 불을 붙이고, 건너편의 램프를 끈 뒤에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는 크게 눈에 띄지 않지만 내구성이 있는 회색 양복을 침대 곁의 빨간 의자 위에 하나씩 올려놓았다.

하지만 이윽고 그가 바지 멜빵을 풀었을 때, 아직 안락의자 위에 놓여 있을 모자와 외투가 생각났다. 그는 그것들을 가져왔고 옷장 문을 열었다······. 그는 뒤로 한걸음 물러서며, 한 손으로 자기 뒤 침대의 네 모서리들을 장식하고 있는 진홍색의 크고 둥근 마호가니 장식들 중의 하나를 붙잡았다.

장식이 없는 흰 벽돌, 즉 담홍색 랙칠을 한 등나무 의자들을 마치 생크림 위의 딸기처럼 유난히 드러나 보이게 만드는 그 벽들은 흔들리는 촛불의 빛을 받으며 서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 문이 할짝 열린 옷장 그것은 텅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그 안에 서 있었다.

어떤 형상, 어떤 존재였는데, 너무나 우아해서 알브레히트 판 데어 크발렌의 가슴이 일순 멈추었다가 이윽고 다시 충만하고 느긋하며 부드러운 박동과 함께 계속 뛰었다······.

그 형상은 완전한 나체였고, 가늘고 여린 한쪽 팔을 위로 들고 있었는데 이때 집게손가락으로는 옷장의 천정에 붙은 옷걸이를 잡고 있었다.

그녀의 긴 갈색 머리카락은 어린애의 어깨 같은 그녀의 두 어깨 위에 물결치듯 드리워져 있었고, 그 어깨는 보는 사람이 그저 흐느낌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을 만큼 우아한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그녀의 길쭉하고 검은 두 눈에 촛불 빛이 반사되고 있었다······.

그녀의 입은 약간 큰 편이었지만, 며칠 간의 고통 끝에 사람의 이마에 와 닿는 몽마(夢魔)의 입술처럼 달콤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 그녀는 두 발뒤꿈치를 바짝 붙이고 있었고, 그녀의 날씬한 두 다리는 서로 달라붙어 있었다······.

알브레히트 판 데어 크발렌은 손으로 눈을 부비고 보았다······. 그리고 그는 저 아래 오른쪽 구석에 그 회색 마대 조각이 옷장 뒤의 벽에서부터 툭 떨어져 나뒹굴고 있는 것도 보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하고 그가 말했다······. “들어오시지 않겠소······ 뭐라고 말해야 맞을는지······? 이리로 나오시지 않겠소? 코냑 한 잔 드시지 않겠소? 반 잔이라도······?” 그러나 그는 이 말에 대해 아무런 대답도 기대하지 않았고, 사실 아무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그녀의 가늘고 반짝이는 두 눈은 너무나도 검었기 때문에 아무런 표정도 없었고 수수께끼 같아서 속을 알 수 없었으며 아무 표정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 두 눈은 그를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고정된 목표도 없이 모호해서 마치 그를 보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네게 이야기를 들려줄까?” 갑자기 그녀가 조용하고도 분명하지 않은 소리로 말했다.

들려줘······.” 그가 대답했다.

그는 앉은 자세로 침대 가장자리에 푹 주저앉아 있었다. 외투가 그의 무릎 위에 올려져 있었고, 그의 서로 겹쳐진 두 손이 그 위에 놓여 있었다. 그의 입은 약간 벌린 채였으며, 그의 눈은 반쯤 감겨있었다. 하지만 피는 따뜻하고 부드럽게 약동하며 그의 몸을 돌고 있었고, 그의 귀에는 나지막이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옷장 속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 위로 세운 한쪽 무릎을 연약한 두 팔로 감싸고, 다른 쪽 다리는 옷장 바깥으로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녀의 작은 가슴은 팔의 윗부분 때문에 눌렸고, 바짝 죄인 무릎의 피부는 반짝거렸다. 그녀는 이야기했다······. 양초의 불꽃이 소리 없는 춤을 추는 동안, 그녀는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두 사람이 황야를 걸어가고 있었는데, 그녀의 머리가 그의 한쪽 어깨 위에 놓여 있었어. 약초들이 강하게 향기를 풍겼으나, 흐릿한 저녁 안개가 벌써 땅에서 올라오고 있었지.’ 이렇게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정말 비길 데 없이 경쾌하고 달콤하게 운이 잘 맞는 시구들이 가끔 등장했는데, 그것은 우리가 이따금 열에 들뜬 밤에 반쯤 잠든 상태에서 겪곤 하는 그런 일이었다. 그러나 이야기의 끝은 좋지 않았다.

그 끝은 너무나 슬펐는데, 두 사람이 절대 떨어질 수 없다는 듯이 서로를 껴안은 상태에서 입술을 서로 포갠 채 한 사람이 큼직한 칼로 다른 한 사람의 혁대 위의 몸통을 찌른 것이었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이야기가 끝이 났다.

그리고 그녀는 한없이 조용하고 겸손한 몸짓으로 일어서서는, 옷장 아래에 굴러떨어져 있던 그 회색의 천, 즉 옷장의 뒷면을 채우고 있었던 그 마대 천의 오른쪽 위를 살짝 들어 올리는 것이었다. 그런 뒤에 그녀는 더는 거기에 없었다.

이제부터 그는 매일 저녁마다 옷장에서 그녀를 발견했고, 그녀가 들여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얼마나 많은 저녁이었을까? 며칠, 몇 주 혹은 몇 달을 그는 그 방에, 그리고 그 도시에 머물렀을까?

여기에 숫자가 답으로 나온들 그것은 아무에게도 쓸모가 없을 것이다. 대체 누가 그 초라한 숫자를 반기겠는가······? 그리고 우리는 알브레히트 판 데어 크발렌이 여러 의사들로부터 더 이상 여러 달을 인정받지 못했음을 알고 있다.

그녀는 그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위안이 없이 슬픈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들은 달콤한 짐이 가슴 위에 내려앉았고, 가슴을 더 천천히, 더 황홀하게 뛰게 했다. 그는 자주 자기 자신을 잊었다······. 그의 내면에서는 피가 끓어올랐고, 그는 그녀를 향해 두 손을 뻗었으며, 그녀는 그에게 저항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윽고 그는 여러 저녁에 걸쳐 옷장 안에서 그녀를 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돌아왔을 때에도 여러 저녁 동안 아무런 이야기도 들려주지 않다가, 그가 또다시 자기 자신을 잊게 되면 그녀는 서서히 다시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런 일이 지속된 것인지······. 누가 그걸 알겠는가? 알브레히트 판 데어 크발렌이 예의 저 오후에 도대체 실제로 잠에서 깨어나기는 했는지, 그리고 그 미지의 도시로 가기는 했는지, 누가 그걸 분명히 알까?

오히려 그가 일등석 객실 안에서 잠을 자면서 남아있었던 것은 아닌지, 그리하여 그가 베를린로마행 급행열차를 탄 채 엄청난 속도로 수많은 산을 넘어 수송된 것은 아닌지?

우리들 중의 누가 감히 이 질문에 확실하게 그리고 스스로 책임을 지면서 어떤 대답을 하겠다고 나서고 싶겠는가? 그것은 매우 불확실하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채로 남아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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