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
레오노라 |
까리살레스의 젊은 부인 |
스페인의 서쪽 포르투갈과의 접경에 있는 에스뜨레마두라 지방의 어느 귀족이 오랫동안 스페인의 여러 지방과 이탈리아, 플랑드르(당시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오늘날 네덜란드 땅 : 옮긴이) 등지를 돌아다니며 시간과 재산을 낭비하는 방랑 생활 끝에 세비야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미 부모님은 돌아가신데다 얼마 남지 않은 유산마저 금방 탕진해버린 그는 결국 돈도 친구도 없고, 오갈 데도 없어지자. 흔히 빈털터리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하듯이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갈 생각을 했다. 그 당시의 신대륙은 스페인 본토에서 파산한 자들의 은둔처요. 살인자들의 치외법권 지역이며, 도박사들의 도피 장소이고, 자유부인들을 유혹하는 곳이었다. 이처럼 신대륙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신분을 속이며 살아가는 피신처로 이용하는 땅이었고,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정당한 일로 찾을 뿐이었다.
마침내 함대의 제독이 임명되고, 물자들이 공급되고, 가난한 승객들을 위한 돗자리도 준비되자, 조국 스페인에 영광을 빌며 까디스 항구에서 페루를 향하여 함대가 출항했다. 범선들은 순풍을 만나서 즐거운 비명이라도 지를 듯이 신나게 내달렸다. 얼마 안 가 육지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끝없이 펼쳐지는 망망대해 대서양이 펼쳐졌다.
우리의 주인공 까리살레스는 수년 동안 방랑 생활을 하며 겪었던 수많은 위험과 지나간 삶에서 겪었던 불운한 일들을 회상하며 사색에 젖었다. 그리고 나서 앞으로 자신의 생활 방식을 바꾸기로 굳은 결심을 했다. 재산관리는 물론이고 여자관계 또한 지금까지보다 훨씬 신중한 태도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까리살레스가 지나간 일들을 떠올리는 동안 함대는 순탄한 항해를 계속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거대한 바람이 범선을 거세게 몰아붙이는 바람에 승객들은 제자리에 앉아 있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 바람에 까리살레스도 생각에만 잠겨 있을 수가 없었다. 오로지 매의 움직임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거센 바람이 조금씩 잠잠해지고 그후로 향해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무사히 카르따헤나(스페인 항구의 이름을 딴 카리브에 있는 항구 – 옮긴이) 항구에 도착했다. 까리살레스가 신대륙에 도착했을 때 그의 나이 48세였다. 그는 신대륙에 도착한 후 20년 동안 부지런히 일한 덕분에 15만 페소 이상의 큰돈을 모을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재산을 모으고 성공을 거두자 본능적으로 조국이 그리워진 그는 그토록 큰 재산을 모았던 페루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막대한 재산을 정리하여 금과 은괴로 바꾸어서 고국 스페인으로 돌아왔다. 재산만큼이나 나이가 많이 든 까리살레스는 산루까르 항구에 도착한 후 세비야에 정착했다. 그는 무심코 수첩을 꺼내서 친구들을 찾아봤으나 이미 친구들은 모두 죽고 남아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가 아는 친척들조차 대부분이 죽은 후였지만 까리살레스는 고향으로 가고 싶었다. 가난하고 궁색하여 신대륙을 향해 떠나갈 때 그는 수많은 생각으로 대서양 한가운데에서 한순간도 편안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평온한 땅 위에서 다른 이유로 고민하며 내적 갈등을 겪었다. 다시 말해서 예전에는 가난 때문에 잠을 못 이루었는데, 지금은 돈이 너무 많아서 불안했던 것이다. 그는 많은 재산을 어떻게 써야 할지, 또 어떻게 유지해나갈지 몰라 괴로웠다. 돈은 적으면 적은 만큼 많으면 많은 만큼 나름대로의 괴로움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한때 군인이었던 그는 몸에 밴 침착함으로 금괴들을 바라보면서 차분히 생각에 잠겼다. 집안에 금괴를 보관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그의 재산을 탐낼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까리살레스는 남은 여생을 풍족히 살고도 남을 정도로 재산이 넉넉했기에 위험한 요소가 많은 무역업에 다시 손을 대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의 재산을 고향에 기부하고서 남은 생애 동안 신을 의지하며 조용하고 편안하게 살고 싶었다. 또 한편으로 자신의 재산을 물려줄 만한 후손을 갖고 싶었던 까리살레스는 은근히 자신의 정력을 측정해보고서는 아직은 결혼을 해도 괜찮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러나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그는 갑자기 두려움을 느꼈고 그의 희망은 사그라졌다. 왜냐하면 그는 천성적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질투가 심한 사람이었다. 상상만으로도 질투심에 사로잡히는 그는 이런 마음 때문에 스스로도 종종 피곤해했고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다. 자신의 성격을 잘 아는 까리살레스는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운명의 힘은 그의 결심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까리살레스는 어느 날 거리를 지나다가 우연히 어느 집의 열린 창문을 쳐다보게 되었다. 창가에는 턱을 괴고 하늘을 바라보는 한 소녀가 있었다. 나이는 열서너 살쯤 되어 보였고 균형 잡힌 얼굴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미처 마음을 추스를 새도 없이 마음씨 착한 늙은이 까리살레스는 자신의 나이를 생각하지 않고 레오노라라는 나이 어린 소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골똘히 생각에 잠겨 혼자서 중얼거렸다.
‘아름다운 소녀로구나. 저런 집에 사는 걸 보니 부자는 아닌 모양이군. 아직 어려서 아무것도 모를 테니 결혼한 후 저 애를 집안에 가두어 두더라도 잘 대해준다면 별문제는 없을 거야. 내가 가르치는 것 외에 다른 문제는 알 수도 없을 것이고 무엇보다 난 아직 내 재산을 물려줄 자식을 낳을 수 있을 만큼 건강해 그녀에게 지참금이 있든 없든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 왜냐하면 난 지금 가진 재산만으로도 충분하거든. 난 그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사줄 수 있고 우린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을 거야. 그녀를 만나게 된 건 어쩌면 신이 주신 행운일지도 몰라. 나에게 주어진 행운을 붙잡아야만 해.’
수십 번 독백 끝에 결심을 굳힌 까리살리스는 며칠 후 레오노라의 부모님을 만났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았고 넉넉한 재산으로 레오노라를 행복하게 해줄 것을 약속하며 결혼을 허락해달라고 간청했다. 레오노라의 부모는 비록 가난하기는 하지만 귀족 가문의 후손으로서 어린 딸을 늙은 까리살레스와 결혼시키는 것이 옳은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까리살레스와 레오노라의 부모는 서로 헤어진 후 상대방이 말한 것에 대해 자세한 것을 수소문해봤고 모든 것이 사실임을 알게 되었다.
질투심 많은 늙은이 까리살레스는 먼저 2만 두까도(16세기 말까지 통용된 스페인 금화 – 옮긴이)를 지참금으로 내놓았다. 그의 가슴은 소녀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찼기에 아까울 것이 없었다. 마침내 레오노라의 부모는 그들의 결혼을 허락해주었다. 그토록 원하던 결혼을 할 수 있게 된 까리살레스는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무서운 질투심에 사로잡히는 걸 느꼈다. 아름다운 신부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게 된 그는 신중하고도 치밀한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그가 가장 처음으로 한 일은 아내의 옷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까리살레스는 재봉사가 아내의 옷을 만들기 위해 치수를 재는 것도 원치 않았다. 그래서 레오노라와 몸매가 비슷해 보이는 가난한 여자를 찾아서 레오노라 대신 치수를 재어 옷을 만들게 했다. 그러고 나서 그 옷을 레오노라가 입어보고 잘 맞자 그와 똑같은 치수로 나머지 옷들을 화려한 것으로 여러 벌 만들게 하였다. 신부의 부모는 자신들과 딸을 위해 정성을 다하는 훌륭한 사위를 얻게 된 것을 크나큰 행운이라 여겼다. 고작 싸구려 천으로 만든 치마와 호박직으로 만든 옷밖에 입어보지 못했던 소녀는, 너무나 아름답고 화려한 옷들을 보고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린 신부의 옷을 충분히 준비해 둔 까리살레스는 그의 아내와 다른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지 못하도록 격리시키기 위하여 집수리에 착수했다. 1만 2천 두까도나 주고 구입한 그의 집은 시내 중심가에 위치했고 정원에는 오렌지 나무와 맑은 물이 흐르는 분수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 정원에서 조차 길 밖의 풍경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길가로 향한 모든 문과 창문을 폐쇄한 노인은 그의 집 어디에서든 오로지 하늘만을 쳐다볼 수 있게 했다. 세비야에서는 대부분의 주택 구조가 거리 쪽으로 난 대문 정원 사이에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은 노새를 위한 마구간으로 만들었다. 그 위에다 헛간과 잠자는 방을 만들어 노새를 돌보는 사람이 기거하게 했는데, 그 남자는 늙은 흑인으로 남자 구실을 못하는 고자였다. 대문에서 안채로 통하는 곳에는 수녀원에서나 볼 수 있는 밀폐식 회전문(수녀원에 설치된 문과 비슷한 것으로 서로가 얼굴을 보지 못한 채 물건만을 전달하게끔 만들었다 – 옮긴이)을 설치했다. 집수리를 거의 마친 후에는 비싼 세간을 사들여 내부를 장식했다. 까리살레스가 가구나 장식 하나하나 고르는 데 세심한 신경을 쓴 덕분에 집안 분위기는 고급스럽고 품위를 잃지 않은 모습으로 자리 잡아 갔다.
까리살레스는 집안일을 돌볼 노예나 하녀를 채용하는 테도 철저한 점검을 거쳤다. 먼저 레오노라의 시중을 들도록 백인 여자 노예 네 명을 사서 얼굴에 표시를 했고, 또한 두 명의 흑인 여자 노예도 사서 집에 두었다.
집안을 드나들 가능성이 있는 인물에 있어서는 주의를 기울여 관리했다. 집안에 식품을 보급해줄 식료품 담당원과는 몇 가지 내용을 적어 계약을 맺었다. 그는 이 집에서 잠을 잘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안채의 회전문 앞까지만 출입이 가능하게 했으며, 그가 들일 물건들은 이 회전문을 통해서만 전달하게 했다. 노인은 자신의 재산 중 일부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부동산에 대한 세금을 내는 데 썼고, 일부는 은행에 넣었으며, 일부는 자신이 그냥 보관하고 있었다.
그는 집 전체의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있었다. 구입한 물건들은 자신이 직접 간수했는데 만약을 대비하여 일 년 치의 물자를 비축해 두었다.
모든 것을 빈틈없이 정리했다고 여긴 까리살레스는 장인 장모댁을 찾아가서 레오노라를 데려가겠다고 말했다. 그녀의 부모는 딸을 보내면서 딸이 마치 무덤 속에 들어가기라도 하는 듯이 엄청나게 눈물을 흘렸다. 어린 신부 레오노라는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부모와 함께 엉켜 울면서 그들의 축복을 받았다.
레오노라는 부모와 헤어져 노예와 하녀들에게 둘러싸인 채 남편의 손을 꽉 잡고 새집으로 들어왔다. 집에 들어서자 까리살레스는 모두에게 일장 연설을 했다. 곧, 레오노라의 보호를 하녀들에게 맡기는데, 어느 누구도 결코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이 집에 들어올 수 없으며 설령 헛간을 지키는 늙은 흑인이라 할지라도 내실 문을 통과할 수 없게 했다.
그러고는 레오노라의 보호와 안전을 책임질 아주 신중하고 영리한 여자를 하녀 장으로 채용했다고 발표했다. 그녀에게는 레오노라의 뒷바라지뿐만 아니라 집안의 모든 일을 감독하고, 레오노라와 같은 나이인 두 명의 하녀와 노예들도 지휘 감독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레오노라와 같은 또래인 두 명의 하녀들은 레오노라를 즐겁게 해주는 것이 주된 임무였다.
까리살레스는 어린 신부와 나머지 식솔들이 요새와 같은 집에 갇힌 것을 느끼지 못하도록 모든 편의를 제공해 줄 것을 약속했다. 축제일에는 이른 새벽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시간에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모두 미사에 갈 수 있도록 약속했다. 하녀와 노예들 모두가 기꺼이 주인의 명령에 따를 것을 맹세했다. 어린 신부 또한 수줍음을 타며 고개를 숙인 채 남편이 원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을 거이며 항상 남편에게 복종할 것을 맹세했다.
이 같은 주의 사항을 일일이 열거한 후 착한 까리살레스는 자신이 꿈꾸었던 결혼 생활의 즐거움을 누리기 시작했다. 그가 집안에서만 박혀 신혼의 달콤함을 누리는 동안 레오노라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달콤하지도 그렇다고 해서 싱겁지도 않은 시간을 보냈다. 그나마 레오노라가 즐겁게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레오노라를 비롯한 집안 식솔들은 힘들여 일하지 않고도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는 행복에 빠져 집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여지도 없을 만큼 즐거운 마음으로 생활했다.
레오노라는 자신의 하녀들과 똑같은 생활을 하면서도 항상 밝은 표정으로 즐겁게 지냈다. 그녀의 나이에 어울리는 순수한 면이 기대했던 것보다 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도 결코 자신의 평화로운 가정 속으로 침투할 자는 없다고 여겼다. 노인은 아름답고 순수한 어린 신부에게 단지 무슨 선물을 할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신기한 물건은 무엇이든 간에 주문해서 어린 신부를 기쁘게 해주었다.
까리살레스가 외출을 허락한 미사 날이 되면 레오노라는 교회당에 온 부모님을 만날 수 있었다. 그녀의 부모는 남편과 앉아 있는 딸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말을 시켰다. 까리살레스는 교회당에 갈 때마다 그녀의 부모에게 많은 선물을 주었다. 그들은 자신의 딸이 감옥과 같은 집에 갇혀서 살고 있는 것이 안타깝기는 해도, 인심 후한 사위가 제공하는 수많은 선물을 받고는 딸의 행복을 빌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까리살레스의 일과는 아침에 일어나서 식료품 배달원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식료품 배달원은 그 전날 저녁에 이미 대문 앞에 준비해 놓아둔 명세서를 가져가서 다음날 공급할 물건들을 미리 준비했다. 노인은 식료품 배달원이 다녀가면 길가로 난 대문과 안뜰로 통하는 중간 문을 열쇠로 단단히 잠근 후 집을 나섰고 두 대문 사이에는 고자인 흑인 하인이 지키고 있었다.
까리살레스는 사업상 외출하는 일이 거의 드물었는데 혹시 외출하게 되더라도 짧은 시간 안에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변함없이 어린 신부와 식솔들에게 너그러웠고 풍족한 생활 여건을 갖춰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평온하고 행복한 신혼 기간이 일 년쯤 계속됐을 때 까리살레스는 어린 신부 레오노라를 죽을 때까지 데리고 살기로 결심했다.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 되어간다는 생각에 그는 자신감에 찬 태도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떤 교활한 방해꾼이 나타나서 지금까지 누려온 이들의 행복을 파괴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작가의 말 – 옮긴이)
까리살레스는 보다 확실한 안전을 위해 또 다른 예방책을 생각해냈다. 그는 자신의 집안에서는 동물까지도 수컷은 얼씬도 못하게 했다. 수컷 고양이가 수컷 생쥐를 뒤쫓는 일도 없었고, 짖어대는 개도 수컷은 없었으며, 모든 것이 암컷들 뿐이었다. 노인은 집을 지키는 야간 보초이자 경비원이었다. 그는 눈을 100개나 가긴 아르고스와 같았다. 자기 외에는 어느 누구도 결코 뜰 안으로 통하는 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친구들과 사업에 관한 대화를 나눌 때도 길가에 나가서 했다. 하다못해 방안을 장식하는 벽걸이나 커튼에 장식된 것들도 모두 암컷들이거나 꽃과 나무 그림뿐이었다. 집 전체에 정결함과 평온함과 신중함의 분위기를 풍겼다. 기나긴 겨울밤, 주인과 함께 난롯가에 앉아 재잘거리는 하녀의 이야기는 단란하고 명랑한 것뿐이었다. 음담패설을 수군거리는 하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레오노라의 눈에는 노인의 성성한 백발도 아름다운 금발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여인들에게 있어 첫사랑이란 마치 밀랍에 그림을 새겨놓듯이 마음속 깊이 아름답게 아로새겨지기 때문이다. 어린 신부는 남편의 감시가 어느 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엄격하게 느껴지기도 했으나, 자신의 생활은 모든 신혼의 신부가 겪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믿었다. 사면이 담으로 둘러싸인 집을 탈출하겠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고, 남편이 원하는 일 말고 다른 일을 하겠다는 생각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단지 미사에 가는 날에만 바깥 거리를 볼 수 있을 뿐이었는데, 그마저도 인적이 없는 새벽 시간이라서 어둠 때문에 거리의 모습을 잘 볼 수도 없었다. 세상에 이보다 더 밀폐된 수녀원은 보지 못했고, 이보다 더 은둔해있는 수녀도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려하고 걱정했던 일이 발생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세비야에는 게으르고 놀기 좋아하는 흔히 건달이라고 불리는 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각 동네에서 부유한 집안의 아들들이었는데, 하는 일이라고는 멋이나 부리고 거리를 배회하면서 달콤한 말로 여자들이나 유혹하는 그런 부류의 남자들이었다.
그들 중에 로아이사라는 멋쟁이 청년이 있었다. 그는 항상 밀폐되어있는 까리살레스의 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몹시 궁금했다. 수소문한 끝에 그 집에는 한 늙은이와 어여쁜 아내가 바깥 세계와 철저히 차단된 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무슨 꾀를 쓰든 혹은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요새와 같은 그 집에 침범하고자 하는 충동이 생겼다. 그래서 청년은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로아이사와 그 일당은 여러 차례 머리를 맞대고 협의한 끝에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냈다. 로아이사는 곧 신분을 위장하고 며칠 동안 도시를 벗어나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숨어다녔다. 그 후 깨끗한 천으로 만든 바지와 셔츠를 입고서 그 위에 다시 낡고 찢어진 옷을 껴입었다. 그 행색으로 치자면 온 도시를 뒤져도 이렇게 구질구질한 거지를 볼 수 없을 정도였다. 턱수염도 약간 깎고, 한쪽 눈은 안대로 가리고 다리 한쪽을 붕대로 꽁꽁 감고서 두 개의 지팡이에 의지하여 걷는 시늉을 냈다. 이렇게 가련한 불구자의 모습으로 변장하자 누가 봐도 감쪽같이 속아 넘어갈 만했다.
이러한 행색을 한 로아이사는 밤마다 까리살레스의 굳게 닫힌 집 문 앞에서 기도문을 외우고 있었다. 집 안쪽에는 루이스라는 흑인이 혼자 대문과 안뜰로 통하는 문 사이를 지키고 있었다. 로아이사는 문 앞에서 더럽고 줄도 끊어진 기타를 꺼내서 밝고 경쾌한 연주를 시작하며 노련한 음악가처럼 노래를 불렀다. 그가 아름다운 멜로디로 미친 듯이 로만세(15세기 스페인에서 유행한 8음절의 시 – 옮긴이)를 노래하면 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이 그의 노래를 듣기 위해 모여들었다. 노래를 하는 동안 사람들이 그를 둘러쌌다. 대문 안쪽에까지 소리가 들리자 루이스는 로아이사의 노랫소리에 끌려서 음악을 더 잘 듣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손을 내밀어 문을 열고자 했다. 본래부터 그는 음악에 대한 관심이 무척 많았었기 때문이었다. 노래를 듣던 사람들이 자리를 뜨자 로아이사는 연주를 멈추고 기타를 집어넣고서 목발을 짚고 가버렸다.
로아이사의 연주는 늙은 흑인 루이스를 위해 계속되곤 했다. 이런 연주가 며칠간 계속되자 철통같은 요새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듯 보였다. 루이스의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로아이사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밤이 되자 그는 문가에서 기타를 연주했다. 루이스가 음악 소리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느낌이 들자 문기둥에 다가간 로아이사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루이스 내가 목이 타서 노래를 못 부르겠으니 물 좀 얻어 마실 수 없소?”
“그럴 수 없어요. 내게 대문 열쇠가 없을 뿐 아니라 물을 건네줄 수 있는 공간이란 없거든요.”
루이스의 거절에도 로아이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누가 열쇠를 가졌소?”
“주인님이지요. 그분은 세상에서 가장 질투심이 많은 분이랍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당신과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아신다면 내 목숨은 당장 달아날 거예요. 그런데 나에게 물을 청하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문밖의 사람과 대화를 나누던 루이스는 궁금해졌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다리 한쪽이 불구인 가련한 자로서 착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이름으로 동냥을 하면서 살아간다오. 그 외에 내가 하는 일이란 간간이 몇몇 사랑들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타 치는 법을 가르치지. 이미 세 명의 흑인을 가르쳤는데 이들은 시장님의 노예들이었소. 나는 그들에게 축제나 놀이에서 연주하고 노래할 수 있도록 가르쳤고 그들은 나에게 사례금도 넉넉히 주었다오.”
“내가 교습을 받게 된다면 아주 좋은 보상을 해줄 텐데······. 그러나 불가능한 일이야. 주인님은 아침에 나가면서 거리로 난 대문을 꼭 잠그고, 귀가해서도 꼭 잠궈 나를 바깥 대문과 안 대문 사이에 남겨두지요.”
음악을 배울 수 있다면 말에 귀가 솔깃해진 루이스는 경계심도 갖지 않고 묻는 말에 꼬박꼬박 대답을 해주었다.
“맙소사!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지요? 기타 수업을 위하여 며칠 저녁만 내가 집안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면 보름 안에 당신은 어느 곳에서나 부끄럽지 않게 연주할 만큼 기타를 잘 다루게 될 거요. 왜냐하면 나는 기타를 가르치는데 뛰어난 재주가 있을 뿐 아니라, 당신 같은 흑인들은 훌륭한 소질을 지녔다고 들었기 때문이오. 더욱이 당신의 낭랑한 목소리로 미루어 아주 훌륭하게 노래를 잘할 거요.”
뿌듯해진 루이스가 대꾸했다.
“노래라면 나도 좀 일가견이 있지요. 그러나 노랫가락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혼동될 때가 많아요. 예를 들면 ‘비너스의 별’과 ‘푸른 초원으로’ 같은 경우인데······.”
“바로 그런 것들이 내가 가르칠 수 있는 노래들이오. 왜냐하면 아랍인 아빈다라에스와 아름다운 하리파 여인과의 사랑 얘기를 나는 다 알고 있으니까(15세기 무렵 스페인에서 불리던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 – 옮긴이). 그리고 위대한 알렉산드리아의 토무니메요 제왕의 이야기도 다 외워서 가곡 풍으로 멋들어지게 노래한다오. 그리고 포르투갈 사람들까지 경탄하게 하지. 나는 아주 쉽게 가르칠 수 있기에 설사 당신이 빨리 배우지 못한다 해도 나같이 모든 종류의 기타에 정통한 음악가를 만나게 되면 당신은 단숨에 많은 양의 소금을 먹는 것과 같이 될 것이오.”
이 말에 흑인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당신을 집 안으로 들어오게 할 방안이 없으니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좋은 방법이 있소. 당신에게 밀랍을 줄 테니 주인의 열쇠를 빼내 와서 거기에다가 열쇠를 찍으면 본이 떠질 게 아니오. 그러고 나서 내 친구 중에 열쇠공을 하는 녀석에게 열쇠를 만들게 할 테니까 그러면 한밤중에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고 신대륙의 후안 사제(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성직자 – 옮긴이)보다도 기타를 더 잘 칠 수 있도록 만들어주겠소. 당신과 같이 좋은 목소리를 갖고서도 기타 연주를 못해서 썩히기에는 아쉬움이 크오. 루이스 형제여,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목소리가 기타나 오르간 혹은 하프를 다루지 못하여 그 진가를 잃게 된다고 생각해보구려. 그러나 당신의 목소리에 잘 어울리는 것은 기타요. 기타는 가장 다루기 쉽고 값도 저렴하니까 말이요.”
로아이사의 끈질긴 설득에 흑인 하인 루이스의 마음이 조금씩 움직였다.
“당신의 말에 공감합니다. 그러나 불가능합니다. 내 손에 결코 열쇠가 들어올 수 없어요. 주인님은 낮에는 열쇠를 내려놓지 않고, 밤에는 베개 밑에 두고 잠을 자니까요.”
“만일 당신이 훌륭한 악사가 되고 싶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봅시다. 그러나 만일 그럴 생각이 없다면 더 이상의 충고는 하지 않겠소.”
“내게 의욕이 없다고요? 악사가 되기만 한다면 그것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럴 거요. 그럼 내가 말한 대로 하기 바라오. 우선 기둥 밑에 있는 흙을 약간 파서 틈새를 만들어요. 그 밑으로 장도리와 망치를 넘겨줄 테니 그것으로 밤중에 쉽게 문고리의 못을 뽑은 후, 주인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그 자리를 얇은 판으로 가려두구려, 그래서 내가 집안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당신 숙소에 함께 숨어서 재빨리 내 임무를 마치겠소. 먹을 음식에 관해서는 걱정하지 마시오. 나는 8일 이상 먹을 양식을 가져가겠소. 내가 굶고 지내지 않도록 도와줄 친구들도 있소.”
“음식이라고요? 아무 걱정마세요. 주인님이 주시는 음식만으로도 그리고 노예들이 남겨주는 음식만으로도 새로이 두 사람 이상이 먹고도 남지요. 당신이 말한 망치와 장도리를 주세요. 이 기둥 밑에 구멍을 팔 테니까요. 그러고 나서 다시 덮어 두겠어요. 문고리를 떼어내기 위해 망치질을 해도 주인님은 여기서 멀리 떨어져 주무시니 기적이 아니고서는 소리를 듣지 못할 겁니다.”
마침내 루이스는 로아이사와 그 일당이 꾸민 계략에 넘어가고 있었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오늘부터 이틀 안에 우리의 목표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져다주겠소. 그런데 찐득찐득한 음식은 먹지 마시오. 왜냐하면 고운 목소리를 내는 데 해가 될 테니까.”
“어떤 것도 포도주만큼 목소리를 쉬게 하지는 못하지요.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나는 포도주 마시는 것만은 중단할 수 없어요.”
“하느님도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루이스, 술을 마셔요. 마시더라도 적당히 마시는 포도주는 아무런 해가 없으니까.”
“나는 언제나 적당히 마시지요. 지금 여기 2리터짜리 항아리가 있는데 주인님 모르게 여자 노예들이 포도주를 가득 채워주지요. 그리고 식료품 배달원이 가죽 주머니를 가져다주어서 거기에도 포도주를 정확히 2리터나 채우지요. 항아리의 것만으로도 부족해서요.”
“목이 건조하면 제대로 노래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보기에 그것은 문제가 안 될 것 같소.”
“당신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집 안으로 들어오기 위한 물건을 가져올 때까지라도 저녁마다 와서 노래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요.”
“어떻게 안 오겠소. 지금 당장 새로운 노래를 해주겠소.”
“제발 그렇게 해주세요. 제발 지금이라도 노래하는 것을 멈추지 마세요. 기분 좋게 잠들게 말입니다. 나는 비록 가난하지만, 사례금은 부자보다도 훨씬 더 많이 지불할 사람이란 걸 알아주십시오.”
“동감이오. 내가 당신을 가르치는 만큼 보답을 하시오. 지금 이 순간에는 이 노랫가락을 듣겠지만, 내가 집안에 들어가게 되면 더 훌륭한 노래를 들을 수 있을 것이오.”
“빨리 그런 시간이 왔으면······.”
루이스를 설득하는 데 성공한 로아이사는 한참 동안의 대화를 마치자 짤막한 로만세를 한 곡 멋지게 노래했고, 흑인은 너무 기분이 흡족하여 문을 여는 시간이 가까워지는 것도 잊었다.
로아이사는 문간에서 재빨리 연주를 끝내고 나오자마자 가볍게 목발을 움직여서 그의 동료들에게로 갔다. 일의 시작이 좋다는 것을 알리고 기대한 대로 좋은 결과가 예상된다고 장담했다. 로아이사는 흑인 하인 루이스와 약속한 일들을 말했고 며칠 후까지 어떤 못이라도 빼낼 수 있는 도구를 구하기로 했다.
로아이사는 루이스에게 음악을 연주해주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로아이사가 넘겨줄 물건을 받을 구멍을 파는 데 소홀히 하지 않았는데,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고서는 구멍을 알아볼 수 없었다.
둘째 날 저녁에 로아이사는 흑인에게 장도리와 망치를 주었고, 루이스는 그것을 시험해봤다. 다른 도구 없이 못들이 뽑혔으며, 그는 자물쇠가 달린 문고리를 손에 들고서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의 음악 선생님이자 오르페우스(하프 소리로 초목, 동물, 바위를 매혹 시켰다는 트라키아의 시인 – 옮긴이)인 그를 집안으로 맞이했다. 두 개의 목발을 짚고 누더기 차림에다 발에 붕대를 감은 모습을 보고 흑인은 놀랐다. 그러나 눈에는 안대를 하지 않은 채, 훌륭한 제자가 될 루이스를 포옹하고 그의 얼굴에 키스를 했다. 그는 자루 속에 잘 준비해온 포도주 가죽 주머니와 통조림 상자와 달콤한 사탕들을 흑인에게 주었다.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목발을 치워버리면서 날쌔게 공중제비를 돌자 흑인 루이스는 감탄했다. 로아이사가 흑인에게 말했다.
“친구여, 나는 사실 진짜로 절름발이가 아니오. 속임수일 뿐이오, 이 덕에 나는 하느님의 자비를 구실로 구걸을 해서 살았고, 음악을 연주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았소. 이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약삭빠르게 살아야 하오. 속임수를 쓰지 않으면 굶어 죽을지도 모르지. 우리들의 우정 속에서 그것을 보게 될 거요.”
“그렇겠지요. 그러나 이 문고리를 눈치채지 못하게 제자리에 놓읍시다.”
기타를 배우고 싶다는 욕심에 로아이사를 들어오게 한 루이스는 내심 걱정이 되어 주의를 기울였다.
“좋소.”
로아이사는 그의 충고에 따랐다. 로아이사가 부대 자루에서 못을 꺼내 요술을 부리듯 자물쇠 고리를 감쪽같이 제자리에 다시 고정시키자 루이스는 매우 기뻐했다. 로아이사는 흑인의 거처로 올라가서 아주 편하게 자리를 잡았다.
흑인 문지기 루이스가 촛불을 붙이자마자 로아이사는 기타를 꺼내서 매우 조용히 부드럽게 연주를 시작했다. 가련한 흑인은 정신을 잃고서 멍하니 듣고 있었다. 그는 잠시 기타를 연주하고서 밤참을 꺼내어 흑인에게 주었다. 그리고 느긋하게 포도주를 마셨는데 음악보다 포도주가 더 흑인 문지기의 정신을 잃게 만들었다. 그런 다음에야 흑인 루이스가 교습을 받도록 했다. 가련한 흑인은 술기운이 잔뜩 올라 기타 줄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그러나 로아이사는 이러한 행동에도 흑인이 최소한 두 개의 음조는 안다고 믿게 했다. 흑인이 그렇게 믿도록 하는 편이 좋았다. 그는 밤새도록 줄도 제대로 맞지 않는 불협화음의 기타를 연주했다.
두 사람은 새벽녘에 잠시 눈을 붙였다. 새벽 6시에 까리살레스 주인이 내려와서 중간 문을 열었고 길 쪽의 대문도 열었다. 그리고 식료품 배달원을 기다리자 얼마 안 있어 왔는데 회전문을 통해 음식을 전해주고서는 가버렸다. 주인은 노새에게 보리를 주기 위해서 흑인 하인에게 내려오라고 했으며 그에게도 식량 배급을 주고는 두 개의 문을 걸어 잠그고 나가 버렸다. 주인이 길가 쪽의 대문이 잘못된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자 로아이사와 흑인 몹시 기뻐했다.
주인이 외출한 후 흑인이 기타를 낚아채어 연주를 시작했고 모든 하녀가 그 음악을 들었다. 그러자 여인들이 회전문 사이로 질문을 던졌다.
“루이스, 이게 무슨 소리야? 언제부터 기타가 있었지? 아니면 누가 준 거야?”
“누가 주었냐고?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악사가 주셨지. 그리고 단 6일 만에 6천 개 이상의 음을 나에게 가르쳐준다고 했어.”
“그 악사는 어디 있는데?”
질문을 한 것은 하녀 장이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지. 악사에 대한 수줍음이나 주인님께 대한 두려움만 없다면, 아마 당신들에게도 가르쳐주실 거야. 당신도 그분을 보면 좋아하게 될걸.”
루이스는 한껏 기분이 고조되었고 하녀장도 더욱 궁금해졌다.
“어디 가면 우리가 그분을 볼 수 있을까? 이 집에는 주인님 말고는 결코 어떤 남자도 들어오지 못하는데······.”
“좋아. 그분이 나에게 짧은 시일 내에 음악을 가르쳐주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말해줄 수 없어.”
루이스의 말이 거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하녀 장은 그를 비웃는 투로 말했다.
“물론 그렇겠지. 어느 귀신이 당신에게 기타를 가르쳐줄까. 그리고 누가 쉽게 음악가를 집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네.”
“계속해 보라구. 곧 당신도 음악을 듣고 그를 보게 될 거니까.”
“힘들걸. 왜냐하면 한길 쪽으로는 사람을 보거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창문이 하나도 없잖아.”
다른 하녀 중 한 명이 말했다.
“좋아. 만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한 가지 방법이 있지. 다만 모두가 입만 다물어준다면.”
“루이스, 우리가 비밀을 누설할까 봐 두려워? 우리는 잠자코 있을 거야. 왜냐하면 솔직히 나는 음악 소리를 듣고 좋아서 죽을 뻔했어. 이 집에 우리들이 감금된 이후로 우리는 새 울음소리조차 제대로 들어 보지 못했잖아.”
다른 하녀가 루이스를 달래듯이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루이스와 하녀들의 얘기를 엿듣고 있던 로아이사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모든 일이 자기 뜻대로 되어가는 듯 보였고 행운은 그의 뜻대로 모든 것을 인도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루이스에게서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후에 여인들은 그 자리를 떠났다. 대화를 마친 루이스도 주인이 돌아와서 하녀들과 이야기하는 장면을 들키게 될까 두려워서 곧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기타 교습을 받고 싶었으나 주인이 들을까 봐 낮에는 감히 연주를 하지 못했다. 주인은 자주 이곳을 드나들었고 습관대로 문이란 문은 다 걸어 잠그고 집을 폐쇄했다. 그날 내실 쪽 문을 통해 음식을 건네받던 루이스는 한 흑인 여자 노예에게 약속을 지키겠노라고 말하며 노래가 듣고 싶다면 주인님이 잠든 후, 모두 회전문 앞으로 오라고 일러주었다. 루이스는 자신이 한 약속 때문에 로아이사에게 연주를 부탁했고 기다리던 로아이사는 기꺼이 노래와 연주를 하겠노라고 대답했다. 로아이사는 루이스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줄 것을 부탁받았는데 그것도 수락했다.
루이스는 감사와 만족의 표시로 그를 포옹하고 얼굴에 입맞춤을 했다. 그날 로아이사에게는 마치 집에서 밥을 먹는 것처럼 좋은 식사가 제공되었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좋은 음식들이 제공되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집에는 변변한 음식 거리가 없을 테니까.
저녁이 된 후 자정 무렵에 내실 쪽 문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흑인 루이스는 모두가 도착한 것을 보고서 음악가를 부르며 잘 조율된 기타를 갖고 헛간에서 함께 내려왔다. 루이스는 모두 몇 명이나 왔는지 하녀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주인마님만 빼고 모두 왔다고 대답했는데, 마님은 주인님과 잠자리에 있다고 했다. 로아이사는 아쉬웠지만 이제 자신의 계획이 시작일 뿐이라 생각하며 흑인의 마음을 만족시키기로 했다. 연주는 흑인을 황홀하게 했고 여인들의 넋을 잃게 만들었다.
‘내 마음 애처로워라’(16세기 말 스페인에서 유행하던 대중적인 춤곡 – 옮긴이)와 당시 유행하던 ‘사라반다’(16~17세기 스페인풍의 피카레스크 춤 – 옮긴이)의 귀신 같은 연주를 듣고서 하녀들이 느낀 감정을 내가(작가를 지칭함 – 옮긴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춤을 추면 늙지 않고, 마음이 산산조각 나지 않는 젊은 여인은 없다. 그야말로 모두가 벙어리가 되어 입을 다물었다. 로아이사는 짧은 민요를 노래했고, 그것은 하녀들의 취향에 맞는 노래였다. 노래에 취해 있던 하녀들은 신비스러운 음악가가 누구인지를 루이스에게 물었다. 그러자 세비야의 거지 세계에서 가장 멋지고 품위 있는 가난한 거지라고 대답했다.
그 여자들은 이제는 음악가를 볼 수 있는 행운을 달라고 간청했으며 보름 동안 집 안에 머물러 달라고 요청했다. 그동안 그들은 악사를 환대할 것이며 필요한 것은 모두 제공하겠다고 했다. 그를 집 안에 숨기기 위해 어떤 방안이 있느냐고 물었다. 대답이 없던 루이스는 음악가를 볼 수 있도록 문에 작은 구멍을 내고는 밀랍으로 막아놓겠다고 하고는 음악가를 집에 숨겨 두는 일은 자신이 하겠다고 했다.
로아이사는 가난한 거지의 차림새에서는 나올 수 없는 훌륭한 언변으로 앞으로 계속 음악을 들려주겠노라고 말했다. 하녀들은 다음날 밤에도 이곳에 와주기를 간청하며 주인마님도 함께 모시고 오겠다고 했다. 덧붙여 늙은 주인님은 깊은 잠을 자지 못하는데 이것은 나이가 많아서가 아니라 질투심 때문이라 말했다. 그러자 로아이사는 모두가 늙은 주인님을 걱정하지 않고 노래를 마음 놓고 듣기 원한다면, 오랫동안 깊은 잠에 빠지도록 포도주에 탈 수면제를 주겠다고 말했다.
“하느님 맙소사! 그게 사실이라면 이런 행운이 소리 소문도 없이 우리에게 굴러들어올 수 있나! 그 수면제는 주인님을 잠재우는 약이 아니라 우리 모두와 가련한 마님 레오노라에게는 생명의 약이 될 겁니다. 주인마님은 한순간도 음지든 양지든 바깥세상에 나가지 못하고 자리를 뜨지도 못하니까요! 아, 내 영혼의 주인이신 로아이사님! 그 수면제를 가져올 수 있도록 제발 하느님이 당신에게 은총을 베푸시기를! 제발 하루속히 그것을 가져오세요. 제가 포도주에 수면제를 타서 술을 따를 테니까요. 그래서 주인님이 3일 밤낮을 잠들게 해주소서! 그동안 우리는 광명을 맞을 거예요.”
신비로운 음악에 빠진 한 하녀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수면제를 가져오리다. 그 약은 깊은 잠에만 빠뜨릴 뿐 그것을 먹은 이에게 어떤 해로움도 나쁜 일도 없다오.”
모든 하녀는 하루속히 그 약을 가져오도록 간청했고, 로아이사는 흔쾌히 대답했다. 천공기로 내실 쪽 문에 구멍을 만들면 주인마님도 모셔오겠다는 약속을 한 하녀들은 이내 그 자리를 떠났다. 루이스는 새벽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음악 교습을 받길 원했다. 로아이사는 그를 가르치면서 지금까지 가르친 제자들 중에서 가장 좋은 목소리를 가졌다고 흑인을 추어 세웠다. 순진한 흑인은 어찌할지를 몰라 했다.
로아이사의 친구들은 저녁 시간에 거리로 난 대문 앞에 와서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로아이사가 필요로 하는 것을 알기 위해 찾아왔다. 서로 간에 약속한 신호로 로아이사는 문에 다가갔고 기둥 밑 틈새를 통해 친구들에게 간단한 요구 사항을 적은 쪽지를 넘겨주었다. 그는 까리살레스를 잠재울 수 있는 수면제 가루약 같은 것을 구해 줄 것을 부탁했다. 친구들은 수면제를 줄 만한 의사 친구가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러고는 그의 계획이 잘 추진되도록 성의껏 돕겠노라고 그를 격려한 후 다음 날 저녁에 다시 올 것을 약속하고 작별했다.
다음 날 저녁이 되었다. 비둘기 떼처럼 하녀들이 기타 연주를 듣기 위해 모였다. 하녀들과 함께 순진한 마님 레오노라도 왔는데, 그녀는 남편이 깰까 봐 두려워 떨고 있었다. 사실 두려움 때문에 그녀는 오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하녀들 특히 하녀 장이 감미로운 음악과 가난한 음악가의 늠름한 외모에 대해 수없이 칭찬을 하자. 순진무구한 신부는 설득당해서 결코 지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오게 된 것이다.
사실 하녀도 악사를 보지 못했으면서 그를 압살론(다윗의 셋째 아들로 부친에게 거역하여 피살됨 – 옮긴이)과 오르페우스보다도 더 훌륭하다고 찬양했던 것이다. 그녀들이 내실 쪽 문에 뚫어놓은 구멍을 통해 처음으로 로아이사의 모습을 봤을 때, 그는 더 이상 초라하고 더러운 거지꼴을 하고 있지 않았다. 뱃사람들이 입는 황갈색의 호박직으로 된 바지와 금색 그물 조끼 그리고 금색 비단으로 만든 두건에다 레이스 편물로 짠 화려한 목장식이 달린 옷을 입고 있었는데, 이는 모두 그가 기회가 오면 옷을 바꿔 입기 위해서 자신의 짐꾸러미에 미리 준비해온 것들이었다.
그는 젊고 잘 생기고 훌륭하게 차려입은 신사였다. 모두 늙은 주인만 오랫동안 봐오다가 젊은 청년을 보자 천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문구멍을 통해 차례로 그를 쳐다봤는데, 여인들이 청년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흑인 문지기는 촛불을 켜서 로아이사의 몸을 아래위로 비추기까지 했다. 갓 데려온 흑인 여자 노예들까지 모든 여인이 젊은 악사를 보고 나자, 그는 기타를 잡고서 그날 저녁 최고로 감미로운 노래를 불렀다. 젊은 하녀나 늙은 하녀 모두가 넋을 잃고 음악을 들었으며 하녀들은 주인에 대한 두려움도 잊었다. 모두가 구멍을 통해 음악가를 보는 대신 좀 더 가까이에서 직접 보며 음악을 듣기 위해 그를 내실 쪽으로 들어오게 할 방안을 흑인에게 요구했다. 그러나 레오노라 주인마님만은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혼을 괴롭히는 일이며, 따라서 지금처럼 구멍을 통해 그를 보고 연주를 듣는 것이 명예를 손상시킬 위험도 없고 안전하다면서 반대했다.
“무슨 명예요? 명예는 우리도 가지고 있어요. 마님은 늙은 주인님과 함께 갇혀 있으시지요. 그러나 우리도 좀 즐길 수 있게 해줘야지요. 주인님의 명예는 우리에게는 고통과 괴로움만 더할 뿐이니까요.”
레오노라에게 말한 것은 하녀 장이었다. 그 말을 들은 로아이사가 말했다.
“숙녀님들, 저는 창살 없는 감옥에서 인생을 썩히고 있는 여러분에게 영혼과 생명을 바쳐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우리 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건대. 저는 순박하고 단순하며 복종적인, 천성이 착한 사람이기에 저 자신에게 명령하는 것 외에 다른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만일 당신들이 ‘선생님, 여기 앉으시지요. 선생님, 이리로 오시지요.’라고 말하신다면 저는 가장 잘 길들여진 개처럼 행동할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하신다고 치더라도 이곳으로 어떻게 들어올 수가 있나요?”
레오노라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방법을 말씀드리지요. 여러분들은 중간에 있는 내실 쪽 문의 열쇠를 밀랍에 본을 뜨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내일 저녁에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만들어 올 테니까요.”
“열쇠를 빼낸다고요? 그건 마스터키이기 때문에 집의 모든 문을 열 수 있어요.”
한 하녀가 대답했다. 레오노라는 로아이사가 알아둘 것이 있음을 지적했다.
“그러나 우선 선생님이 집안으로 들어 오면, 우리가 원하는 노래와 연주를 하는 것 외에 아무 짓도 하지 말 것과 지정한 장소에만 조용히 머물러 있겠다고 맹세해야 합니다.”
“맹세하지요.”
로아이사는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맹세는 아무 가치가 없어요. 적어도 당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십자가에 맹세하며, 우리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십자가에 입맞춤을 해야 해요.”
“아버지의 이름으로 맹세합니다. 이 십자가에 나의 천박한 입술로 입맞춤을 합니다.”
그는 레오노라가 원하는 대로 바로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두 손가락으로 십자가를 긋고, 세 번 키스했다.
“자, 그러면 됐어요. 선생님, 모든 것 중 가장 중요한 수면제를 가져오는 것을 잊지 마세요.”
다른 하녀가 로아이사에게 당부를 하고는 모두들 그 자리를 떠났다.
그날 저녁의 대화는 이 정도로 끝났는데 모두가 만족했다. 로아이사의 계획은 순풍에 돛단 듯이 진행되었는데, 새벽 2시가 지난 그 시간에 로아이사는 늘 하던 대로 피리 소리로 친구들을 불러 그들에게 쪽지를 전달했다. 그는 까리살레스 노인을 잠재우기 위한 수면제와 다른 주문 물건을 가져오도록 부탁했다. 로아이사는 친구들에게 마스터키 얘기도 했다. 그러자 그들은 로아이사에게 다음 날 저녁 가루약이나 혹은 연고로 된 수면제를 가져오겠다고 했으며, 연고는 관자놀이와 팔목에 바르면 그 부위에 식초를 발라서 깨우기 전까지는 이틀 동안은 잠들어 있을 거라고 말했다. 로아이사는 열쇠를 밀랍으로 본을 떠주면 복사해달라고 부탁하고서 서로 작별을 했다. 로아이사와 흑인은 새벽녘이 다 되어서 잠시 눈을 붙였는데 로아이사는 열쇠를 약속한 대로 빼내 올 수 있기를 간절히 원했다. 시간은 기대한 것보다 더디고 늦게 흐르는 것 같았지만, 모든 것은 계획대로 움직였다. 마침내 그가 원하던 결과에 다다랐다.
저녁이 되자 늙은 하녀, 어린 하녀 흑인, 백인 등 집안의 하녀들 모두가 문으로 모여들었다. 왜냐하면 모두들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곳에서 악사를 보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오노라는 오지 못했다. 악사가 그녀에 대해 묻자, 그녀는 지금 남편과 잠자리에 들었는데, 늙은 노인이 방문을 잠그고 자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노인은 문을 잠그고 난 후, 열쇠를 베개 밑에 놓고 잠을 잤다. 그래서 그가 잠들면 레오노라가 열쇠를 훔쳐 미리 준비해 두었던 밀랍에 본을 뜬 후 고양이들이 다니는 작은 구멍을 통해 열쇠 본을 넘겨줄 것이라고 했다.
로아이사는 노인의 주도면밀함에 경탄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그의 욕망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문으로 달려가서 부탁했던 수면제 연고 병을 건네줄 친구를 만났다. 로아이사는 그것을 받아들고 말하길 곧 열쇠 본을 줄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내실 쪽 문으로 돌아와서는 그가 집에 들어오는 것을 가장 원하고 있는 하녀 장에게 수면제의 효능을 말해주고, 노인이 느끼지 못하도록 조심해서 수면제를 바르라고 당부하며 수면제 병을 주인 마님에게 가져다주라고 했다. 하녀 장은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하녀 장이 고양이 구멍에 가서 들여다보니 땅바닥에 완전히 엎드려서 수면제 병을 기다리고 있는 레오노라 마님을 발견했다. 하녀 장도 고양이 구멍 앞에서 똑같은 방법으로 엎드렸다. 그러고 나서 마님 귀에 대고 수면제를 가져왔으니 약 효력을 시험해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레오노라는 수면제를 받은 후 하녀 장에게 남편의 열쇠를 훔칠 수가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노인이 늘 하는 것처럼 열쇠를 베개 밑에 두고서 잠을 자는 게 아니라, 침대 매트리스 밑에 두고서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그가 말한 대로 수면제가 효능이 있다면 원할 때는 언제든지 열쇠를 꺼낼 수 있을 것이므로 굳이 밀랍에 탁본을 뜰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녀 장은 주인에게 수면제를 발라야 하기 때문에 그건 나중에 말하자고 했고, 우선 수면제가 어떻게 효능을 발휘하는지 보자고 말했다.
이 사실을 로아이사에게 말하려고 하녀 장은 다시 돌아왔다. 사태를 파악한 그는 열쇠를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에게 그냥 가라고 말하고 나서 그 역시 돌아왔다. 레오노라는 떨리는 손으로 조용히 거의 숨을 쉬지도 못하고서, 질투심 많은 남편에게 수면제를 조심스럽게 바르려고 마음을 먹었다. 마침내 콧구멍에 수면제를 발랐다. 노인은 벌벌 떠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열쇠를 훔칠 때 노인이 붙잡을 것만 같아 거의 죽을 지경이었다. 결국, 최선을 다해서 필요하다고 말한 부위에 전부 수면제를 발랐는데, 마치 시체를 매장하기 위해 염을 한 것처럼 보였다.
아편 성분을 함유한 수면제 연고는 바로 효능을 발휘했다. 왜냐하면 노인이 코를 어찌나 크게 골던지 거리에서조차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레오노라의 귀에는 그 소리가 악사가 연주하는 소리보다 조화로운 음악 소리로 들렸다. 그녀는 아직 자기가 듣고 있는 코 고는 소리를 믿지 못하고서, 노인에게 가까이 가서는 조금 흔들어보고, 그가 잠에서 깨어나는지 다시 한번 좀 더 세게 흔들어봤다. 완전히 곯아떨어진 것을 확인한 후, 문에 있는 고양이 구멍으로 가서는 처음보다는 높은 목소리로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는 하녀 장을 불러 말했다.
“주인님이 죽은 사람보다 더 깊은 잠에 빠져 있으니 축하해 줘.”
“그러면 마님, 무엇 때문에 열쇠 훔치길 망설입니까? 지금 악사가 한 시간 이상이나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열쇠를 가지러 가니까 기다려.”
침대로 돌아온 레오노라는 매트리스 사이로 손을 넣어 노인이 눈치 못 채게 열쇠를 꺼냈다. 열쇠를 손에 쥐고서는 기뻐 펄쩍펄쩍 뛰었다. 곧바로 문을 열고, 이 세상에서 가장 기뻐할 하녀 장에게 열쇠를 주었다.
여기서 일을 그만둘 수가 없었기 때문에 레오노라는 악사에게 문을 열어주고서 그자를 데리고 오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을 실행하기 전에 다시 한번 악사에게 그녀들이 시키는 대로만 행동할 것이라는 맹세를 받게 했다. 만약 다시 한번 분명하게 다짐하지 않으면 어떤 경우라도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당부했다. 하녀 장은 레오노라를 안심시켰다.
“그렇게 하겠어요. 악사는 맹세하고 또 맹세하고, 여섯 번 십자가에 입맞추지 않으면 들어올 수 없게 할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규칙을 정하지는 마라. 십자가에 입 맞추라는 것은 그가 원하는 만큼만 하도록 해. 그러나 자기 부모님의 목숨과 전 재산을 걸고 맹세하는지 잘 봐라. 그렇게 해야 우리는 안전할 수 있고, 그렇게 바라던 노래하고 연주하는 것을 실컷 들을 수가 있게 될 거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가는 날이 새겠구나.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가거라.”
레오노라의 말을 들은 하녀 장은 치마를 걷어붙이고,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날렵함으로 모든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문가로 갔다. 그녀가 가져온 열쇠를 그들에게 보여 주자. 모든 사람이 기뻐서 만세를 부르며 환호했다. 그리고 수면제에 취해 자고 있는 노인을 보니, 그들이 원할 때는 언제나 열쇠를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아. 복사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자 모두들 더욱더 환호했다.
“그러면 하녀 장 님, 문을 열고서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는 악사를 들어오게 하여 음악을 즐기도록 합시다!”
하녀 중의 하나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연주를 보기 전에 더 급한 것이 있다. 지난번처럼 맹세하는 것을 봐야 한다.”
노예들 중 한 명이 대답했다.
“그는 아주 선한 사람이어서 맹세는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하녀 장은 드디어 문을 열었고, 반쯤 연 상태에서 문구멍으로 모든 것을 듣고 있던 로아이사를 불렀다. 그는 문가로 다가와서는 불쑥 들어오려고 했다. 그러자 하녀 장이 손으로 가슴을 막으면서 말했다.
“하느님과 내 양심을 걸고 맹세컨대, 마님을 제외하고 이 집 문 안에 있는 모든 여자는 어머니가 우리들을 낳아준 대로 처녀라는 것을 당신은 아셔야 해요. 그리고 나로 말하자면 겉으로 보기에는 40대로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서른에서 두 달 반이 부족합니다. 비록 내가 늙고, 옹색하고, 빈궁하고, 혐오스럽게 보일지라도 세월을 탓하지는 않습니다. 겨우 두 번, 세 번, 네 번 노래를 듣는 것 때문에 여기에 갇힌 채 순결을 잃는다는 것은 합당하지 못합니다. 여기 있는 흑인 노예 기오마르까지도 처녀니까요. 그래서 당신은 집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맹세해야 합니다. 당신에게 요구하는 것이 심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들로서는 당신이 시도하는 것보다 더 큰 모험을 하고 있다는 걸 생각해 주세요. 그리고 당신이 선의를 지니고 왔다면, 돈을 잘 갚는 사람은 저당 잡히는 것이 고통스럽지 않듯이, 맹세하는 것도 고통스럽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하녀 중 한 명이 덧붙였다.
“마리알론소 하녀 장 님, 지당하고도 지당하신 말씀이에요. 신중한 사람으로서 또한 모든 사물이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본분을 지키듯 만약 당신이 맹세를 하지 않는다면 이 문으로 들어올 수 없습니다.”
이들의 말을 듣고 있던 신중치 못한 흑인 노예 기오마르가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맹세를 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모든 악마와 함께라도 그냥 들어오십시오. 맹세보다 더한 것을 해도 여기에 일단 들어오고 나면 모조리 잊어버릴 테니까요.”
로아이사는 마리알론소 하녀 장의 장황한 충고를 조용히 듣고, 한참 안정을 취한 후 위엄은 갖춰 대꾸했다.
“확신하건대, 나의 형제자매들이여, 나의 의도는 과거에도 현재도 미래에도 내 힘이 닿는 한 당신들에게 즐거움과 만족을 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나에게 청하는 맹세를 마지 못해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 말을 믿어 주기 바랍니다. 나의 인격을 걸고 말하건대 내 말이 곧 보증을 서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싸구려 천으로 만든 치마 속에 값비싼 속옷을 입고, 누추한 옷을 입은 자가 술을 잘 마신다는 건 당신들도 알 겁니다(사람을 겉으로 봐서는 알 수 없다는 뜻 – 옮긴이). 그러나 모든 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선한 기독교인으로서 그리고 건전한 청년으로서 더욱더 성스럽고 긴 맹세를 하겠습니다. 성 리바노산의 입구와 출구에 맹세하고, 거인 피에라브라스(12세기 프랑스의 무훈시[武勳詩]에 나오는 사라센의 거인으로 샤를르마뉴 황제의 기사 올리비에와 싸워 기독교로 개종함 – 옮긴이)의 죽음과 샤를르마뉴 황제의 진정한 역사가 포함하고 있는 모든 것에 걸고 맹세합니다. 나는 내가 하는 맹세를 조금도 어기지 않을 것이며 여러분들의 조그마한 명령까지도 지킬 것입니다. 내가 다른 짓을 하거나 하려고 마음먹기라도 한다면, 모든 일은 없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주의 깊게 듣고 있던 하녀들 중의 한 명이 큰 소리로 말을 가로막을 때까지, 로아이사는 확실한 맹세를 했다.
“당신의 맹세는 돌맹이까지도 감동시킬 것 같아요. 당신으로 하여금 맹세를 더 하게 한다면, 내가 나쁜 사람이 될 것 같군요. 지금 한 맹세만으로 달나라에 있는 깊은 동굴에라도 들어갈 수 있겠지요.”
그러고는 악사의 통 넓은 바지자락을 잡고서 그를 내실 쪽으로 안내했다. 모든 하녀가 그를 둥그렇게 에워쌌다. 그리고 늙은 주인 영감이 잠자고 있는 방에서 기다리고 있을 마님에게로 악사를 데리고 갔다. 악사가 들어왔다고 심부름꾼이 말하자 당황한 마님은 악사가 맹세를 했는지 물어봤다. 그러자 하녀는 자신도 생전 처음 보는 방식으로 악사가 맹세를 했다고 대답했다.
“그가 맹세를 했다면 우리는 그것을 위안으로 삼아야지, 아! 그에게 맹세하라고 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순진한 레오노라는 맹세를 했다는 말에 불안했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러는 동안 흑인 문지기와 흑인 노예 기오마르가 악사를 촛불로 비추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모이고 악사는 가운데에 서 있었다. 로아이사가 레오노라를 보고 손에 입맞춤하기 위해 무릎을 구부리는 자세를 취했다. 그녀는 조용히 일어나라는 표시를 했다. 모든 사람은 늙은 주인이 들을까 두려워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벙어리처럼 있었다. 로아이사가 그들에게 말하길 노인에게 바른 수면 연고가 가지고 있는 효능은, 목숨을 빼앗지는 않아도 거의 죽은 사람과 같으니 큰 소리로 말해도 좋다고 했다. 옆에 있던 레오노라가 호응을 해주었다.
“나도 그 말을 믿어, 만약 그렇지 않다면, 잠결에 뒤치락거리며 스무 번이나 더 깼을 걸, 내가 수면제를 바르고 난 후엔 짐승처럼 코를 골고 있어.”
“그럼요. 자, 이제 여기 있는 악사가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으며 즐길 수 있게 모두들 바깥쪽 거실로 갑시다.”
“가자. 그러나 주인님이 깨어나면 우리에게 알려줄 사람이 필요하니 기오마르는 이곳에 보초로 남아 있어라.”
레오노라의 말에 기오마르가 중얼거렸다.
‘흑인인 나는 이곳에 남기고, 백인들은 모두가 가버리네. 하느님 저들을 용서하옵소서!’
흑인 노예만 거기 남기고 다른 사람들은 화려한 무대가 있는 방으로 갔다. 악사를 가운데 세우고서 모두들 앉았다. 그리고 하녀 장 마리알론소는 촛불을 들고서 악사의 생김생김을 샅샅이 훑어봤다. 누군가 한 명이 말했다.
“아! 얼마나 잘생긴 얼굴인가! 곱슬곱슬한 앞머리 또한 너무나 잘 어울리는구나!”
다른 하녀는 말하기를,
“아, 새하얗게 드러난 저 치아는 흰 편도나무(아몬드 나무) 열매보다 더 아름다운걸!”
하녀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아, 저 맑은 눈동자는 마치 에메랄드 같아! 아무리 봐도 싫증이 안 날 것 같아!”
어느 하녀는 악사의 입을 칭송하고, 다른 하녀는 발에 찬사를 보냈다. 모두들 악사를 해부하듯이 자세히 보면서 한마디씩 했다. 오로지 레오노라만 조용히 앉아 그를 관찰했다. 그는 그녀의 남편보다 키가 좀 더 큰 것처럼 보였다.
이때 하녀 장은 세비야에서 유행하고 있는 민요 몇 곡을 기타를 치며 노래해달라고 간청하면서 흑인이 가지고 있던 기타를 로아이사의 손에 건네주었다.
어머니가, 나의 어머니가
나를 감시하신다.
모두들 일어나서 춤추기 시작했다. 하녀 장은 민요들을 알고 있었고 흥겨운 목소리로 즐겁게 노래했다.
어머니가, 나의 어머니가,
나를 감시하신다.
만일 내가 나를 지키지 못하면,
어머니가 나를 지키지는 못할 거야.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하면
의욕은 더 커지는 법,
이것이 아주 타당하다고
글로도 써 있어요.
감금되어 있으면
사랑은 무한정 커지는 법,
그래서 저를 감금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을 거예요.
만일 내가 나를 지키지 못하면,
어머니가 나를 지키지는 못할 거예요.
만일 내 의지가 스스로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면.
두려움이나 안락함을 주어서
나를 지키지는 못할 거예요.
어머니가 이해하지 못할
행운을 찾을 때까지,
나는 죽음을 불사하면서
감금을 부수어버릴 거예요.
만일 내가 나를 지키지 못하면,
어머니가 나를 지키지는 못할 거예요.
악사의 노래가 이어지고 하녀 장과 하녀들은 노래에 맞춰 둥그렇게 원을 그리면서 춤을 추었다. 바로 그때 망을 보고 있던 기오마르가 당황한 표정으로 달려왔다. 그녀는 마치 학질에 걸린 사람처럼 팔과 다리를 떨면서, 겁에 질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님, 주인 나리께서 깨어나셨어요. 마님, 주인 나리께서 깨어나, 이리로 오고 있어요!”
마당에 아무렇게나 뿌려진 먹이를 마음 놓고 먹던 비둘기 떼가 엽총 소리에 기겁해서 갈피를 못 잡고 놀라 하늘로 날아가는 광경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춤추던 하녀들이 기오마르가 가져온 갑작스러운 소식에 소스라치게 놀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어떤 건지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각자 나름대로의 핑계거리를 생각하면서, 이쪽저쪽 다락과 구석으로 숨기 위해 흩어졌다. 로아이사만 혼자 남아서 기타 연주와 노래하는 것을 멈추고 당혹감으로 가득 차 어찌할 줄을 몰랐다.
레오노라는 당황하여 손을 비비틀었고 하녀 장 마리알론소는 자책감으로 자기 볼을 때렸다. 모든 사람이 혼돈과 경악 그리고 공포에 휩싸였다. 가장 간교하고 영악한 하녀 장은 악사에게 자기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했다. 레오노라와 하녀 장은 주인님에게 발견되어도 그리 이상하지 않은 장소인 거실에 남아 있기로 했다.
로아이사가 숨은 후에, 하녀 장은 주인님이 오는지 인기척을 듣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나 아무 기척이 없자, 다시 용기를 내어 살금살금 주인님이 자고 있던 방으로 가서는 좀 전과 마찬가지로 코를 골고 있는 것을 봤다. 깊이 잠든 거라고 확신한 하녀 장은 치마를 걷어 올리고 마님에게 주인님이 계속 잠에 골아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리려고, 단숨에 달려왔다.
하녀 장은 행운이 그녀에게 준 좋은 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먼저 악사가 지을 안도의 표정을 상상했다. 그래서 그를 부르러 가는 동안 레오노라 마님에게는 거실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하녀 장은 수면 연고를 바르고 자던 노인에 대한 소식을 기다리며 혼돈과 실의에 빠져 있을 악사가 있는 방으로 갔다. 악사는 수면 연고를 저주했다. 친구들을 믿고 까리살레스 노인에게 수면 연고를 바르기 전에 다른 사람에게 먼저 시험을 해보지 않았던 부주의에 대한 후회를 했다.
그가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하녀 장이 도착해서 그에게 노인이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으며 계속 잘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악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마리알론소가 그에게 하는 유혹의 말들을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진행했던 애초의 계획을 수정해서 마님을 유혹하는 데 하녀 장을 낚시 바늘로 이용할 것을 내심 작정했다. 이들 두 사람이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집안의 이곳저곳에 숨어 있던 다른 하녀들은 자기 주인이 깨어났다는 것이 사실인지 보기 위해 다시 돌아왔다. 모든 것이 고요함에 묻혀 있는 것을 보고 마님을 내버려 뒀던 거실에 도착해서는, 주인님이 계속 자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들이 악사와 하녀 장에 대해 묻자, 마님은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말해주었다. 모든 여인은 자신들이 돌아올 때처럼 조용히 악사와 하녀 장 두 사람의 얘기를 엿듣기 위해 문 앞으로 갔다.
무리 속에는 흑인 노예 기오마르와 흑인 문지기도 있었다. 주인이 깨어났다는 말을 들은 흑인 문지기 루이스는 그동안 기타를 껴안고 헛간에 숨어 허름한 침대보를 뒤집어쓰고 겁에 질린 채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고 있는 사이에도 그는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기타 줄을 계속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하녀들은 문틈으로 간교한 하녀 장이 악사를 사랑의 유혹으로 구슬리는 소리를 듣고서, 제각기 상스러운 이름을 그녀에게 붙여주었다. 마녀, 야만인, 변덕쟁이 등······ 존경스러운 사람에게는 사용하지 않는 지시어와 형용사를 써서 늙은 마리알론소의 이름 대신 불렀다. 그러나 듣는 사람에게 더욱더 웃음을 자아내는 것은 포르투갈 출신으로 스페인어에 완벽하지 못한 흑인 노예 기오마르의 말이었는데, 욕지거리를 퍼붓는 재미가 유달리 독특했다. 결국 악사와 하녀 장 두 사람의 대화는 먼저 마님을 그의 뜻대로 넘겨줄 때에 기꺼이 이에 상응하는 보답을 한다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악사가 원하는 사랑을 하녀 장이 성사시켜주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하녀 장은 쉽게 포기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녀가 악사의 영혼과 뼛속까지 사무친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도와준다는 조건으로 엄청난 대가를 약속받았기 때문이었다. 하녀 장은 악사를 놔두고 우선 마님을 설득하기 위해 방을 나왔다. 모든 하녀가 문을 에워싸고 있는 것을 본 하녀 장은 모두들 방으로 돌아가라고 말하고는 다음 날 저녁에는 놀라는 일 없이 음악을 즐길 시간을 갖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녀 장은 혼자 있기를 원한다는 것을 눈치챈 일행은 모두가 그녀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수가 없었기에 아쉬운 마음으로 각자의 처소로 돌아갔다. 하녀들이 가버리자 하녀 장은 여러 날 동안 연구한 듯한 로아이사의 주도면밀한 계획과 의지를 실행에 옮기고자 거실로 달려갔다. 그녀는 젊은 악사의 친절함과 용기, 활달함과 우아함에 대해 떠벌렸다.
그리고 레오노라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비밀과 지속적인 즐거움을 지켜주마고 다짐했다. 늙은 노인의 포옹보다 젊은이의 포옹이 얼마나 더 기쁨을 주는지도 묘사했다. 마치 악마가 그녀의 혀에 권능을 부여한 듯, 하녀 장의 수사법은 다채롭게 펼쳐져 순진하고 단순한 레오노라의 여린 가슴뿐만 아니라 단단한 대리석으로 만든 심장이라도 녹여버릴 정도였다.
조심스러운 미덕을 깨뜨리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못된 하녀 장! 주인의 방과 거실의 권위를 위해 차려입은 길고 화려한 의복! 그녀는 자신의 본연의 의무를 저버리고 반대로 탈선하고 있구나! 하녀 장이 설득하고 회유한 끝에, 마침내 레오노라가 항복했다. 레오노라는 속아 넘어가고 패배했다. 자신의 명예는 아예 포기해버린 듯이 잠을 자고 있는 까리살레스의 온갖 신중한 예방책도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하녀 장은 눈물을 머금은 어린 마님의 손을 잡고서, 거의 강제로 로아이사가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그녀가 들어가자 문을 닫고 나오면서, 악마의 사악한 웃음으로 그들을 축복했다. 그들만이 잠긴 방안에 남게 되었다. 하녀 장은 자기 방에서 잠을 자지 않고, 강요된 사랑의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나 며칠 저녁 내내 자지도 쉬지도 못한 것 때문에 피곤이 겹쳐 거실에서 깜빡 잠이 들어버렸다.
빈틈없는 주의, 염려, 경고, 설득, 높은 담들, 남자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그림자조차도 들어올 수 없었던 집안, 빈틈없이 굳건한 문, 두꺼운 벽, 햇빛도 들어올 수 없는 창문, 철저한 잠금장치, 레오노라에게 주었던 많은 지참금, 매일 같이 주어지는 선물들, 모든 하녀와 노예들에게 베푼 호의, 그들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것을 부족함이 없이 해주었는데 무엇이 부족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때야말로 까리살레스에게 질문할 좋을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마냥 잠을 잤기 때문에 그에게 질문해도 소용이 없었다. 만약 그가 질문을 듣고 혹시라도 대답한다면, 어깨를 움츠리고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다음과 같이 답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태하고 위험한 청년의 간교함과 하녀 장의 교활함에 설득당한 어린 소녀의 부주의가 합쳐져서 내가 믿던 것이 뿌리째 쓰러져버렸구나!”
하느님은 그런 적들이 활개 치고 다니도록 놓아두셨다. 그들에 대항해서 방어할 수 있는 신중함의 방패도 그들의 목을 자를 수 있는 단호한 칼도 없다.
그러나 이런 사태에도 불구하고 레오노라는 드높은 용기를 발휘하여 간교한 사기꾼의 천박한 힘에 대항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로아이사가 아무리 설득을 해도 레오노라는 굴복하지 않았다. 그는 결국 지쳐 잠이 들었고 레오노라 또한 위기를 넘기기는 했지만 몹시 피곤했던 탓에 곧 잠이 들고 말았다.
이때 깊은 잠에 빠져 있던 까리살레스가 순간적으로 누군가의 명령을 받은 것처럼 깨어났다. 습관처럼 침대 여기저기를 더듬어봤으나 그의 사랑하는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놀란 그는 날렵하게 몸을 움직여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침실 어디에서도 자신의 아내를 찾을 수 없었던 까리살레스는 방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매트리스 사이에 놓여 있던 열쇠를 찾았다. 그것조차 없다는 것을 알고서 그는 이성을 잃었다. 그러나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서 복도로 나갔다. 거기서 다른 사람이 인기척을 느끼지 못하도록 조심스레 걸어가서는 하녀 장이 자고 있는 곳에 도착했다. 거실에는 하녀 장 혼자만 자고 있을 뿐 아내는 없었다. 하녀 장의 방으로 간 그는 결코 보기를 원치 않았던 장면을 보고야 말았다. 수면 연고가 그들에게 약효를 발휘한 듯 레오노라와 로아이사가 사랑하는 연인들처럼 자연스럽게 뒤엉켜 잠을 자고 있었다.
까리살레스 노인은 자신이 본 기막힌 광경에 숨이 곧 멈추는 것 같았다. 목소리는 입천장에 달라붙고, 팔은 실신한 것처럼 늘어지고, 차디찬 대리석상처럼 온몸이 굳어갔다. 거센 분노뿐만 아니라 거의 죽을 듯 영혼이 타올라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무기가 있다면 그들이 저지른 엄청난 부정행위에 상응할 만한 복수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는 칼을 가지러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그를 분노케 한 두 원수들의 피를 가지고, 아니 집안의 모든 사람의 피를 가지고 얼룩진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고 싶었다. 그러나 노인은 가슴을 짓누르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이내 기절하여 침대 위에 쓰러졌다.
다음 날이 밝았다. 서로의 몸이 엉킨 줄도 모르고 잠들었던 레오노라와 로아이사에게도 해가 비쳤다. 마리알론소는 잠에서 깨어 자신의 방으로 가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는 것을 알고 저녁까지 놔두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날이 샌 것을 알고 잠에서 깬 레오노라가 소동을 벌였다. 자신의 부주의를 자탄하며, 요사스러운 하녀 장을 저주했다. 그리하여 두 여인은 함께 놀란 발걸음으로 늙은 노인이 자고 있는 곳으로 갔다. 제발 아직 코를 골면서 자고 있기를 하늘에 기도드렸다. 침대 위가 조용한 것을 알고는, 수면 연고가 아직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둘은 기뻐서 서로 껴안았다. 레오노라는 남편에게 가서 팔을 잡고 식초를 씻지 않고서도 원래 상태로 깨어나는지를 보기 위해 이쪽저쪽으로 남편의 몸을 돌려봤다. 그러자 졸도했던 까리살레스가 제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쉬면서, 탄식하는 목소리로 무기력하게 말했다.
“불쌍한 내 신세여, 내 인생에 슬픈 종말이 닥쳐왔구나!”
레오노라는 자기 남편이 한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잠에서 깨어난 그가 말하는 것을 보고, 원래 생각했던 것만큼 수면 연고의 효능이 지속되지 못한 것을 알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느낌을 받은 그녀는 그에게 다가가 가까이 얼굴을 대고 꼭 껴안으면서 말했다.
“무슨 일이 있으세요? 제가 보기에 탄식하고 계시는 것 같아요.”
불행한 노인은 원수(자기 부인을 칭함 – 옮긴이)의 달콤한 목소리를 듣고 간신히 눈을 뜨고는 넋 빠진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눈썹도 움직이지 않고 뚫어져라, 그녀를 쳐다보던 노인은 말했다.
“여보!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심장에 크나큰 압박감을 느끼고 있소,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소. 죽기 전에 보고 싶으니까 당신 부모님들을 오시라고 해주오.”
레오노라는 남편의 말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지 않았고 그가 명령한 대로 부모님을 부르러 흑인 문지기를 보냈다. 그러고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처럼 부드럽게 남편을 껴안고 사랑스러운 말로 기분이 어떤지를 물어봤다. 그녀는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애정을 표현한 적이 없었다. 그에게 표현하는 말이나 애정어린 손길은 창으로 영혼을 찌르는 것 같아 까리살레스는 그녀의 모습을 넋을 잃고 쳐다봤다.
하녀 장은 중요한 사실은 감춘 채 집안 하녀들과 로아이사에게 주인님의 병환에 대해 말했다. 흑인 문지기 루이스가 마님의 부모님을 모시러 나갈 때 거리 쪽의 대문을 닫으라는 평상시의 명령조차 잊어버린 것으로 봐 중병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편 딸을 결혼시킨 후 아무도 그 집에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었는데 갑작스러운 전갈을 받은 레오노라의 부모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모두들 주인님이 불편한 심기를 보이는 진정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조용히 입을 다물고 일손을 놓고 있었다. 주인님이 얼마나 깊고 고통스럽게 한숨을 순간순간 내쉬었는지, 한숨을 쉴 때마다 영혼이 그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이 보였다.
이 같은 모습을 보고서 레오노라는 울었고, 노인은 그녀의 눈물이 거짓이라고 생각되어 실성한 사람처럼 희죽희죽 웃었다.
이때 레오노라의 부모님이 도착했다. 거리로 향한 대문과 내실 문이 열려 있고, 집이 적막과 슬픔에 둘러싸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무슨 큰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면서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들은 사위 방으로 갔고, 위에서 말한 대로 두 사람 모두 눈물을 흘리면서 부인의 손을 잡고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는 사위를 발견했다. 레오노라는 남편이 그렇게 눈물을 흘리는 것을 이전에는 결코 보지 못했었다. 노인은 그녀가 거짓으로 슬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로 인해 자신도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부모가 들어오자 까리살레스는 그들에게 말했다.
“당신들만 여기 남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내방에서 나가라. 그러나 마리알론소는 남아라.”
그리하여 다섯 명만 방에 남아 있게 되었다. 까리살레스 노인은 다른 사람이 먼저 말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눈물을 닦으면서 차분한 목소리로 그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내가 당신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진실을 믿게 하기 위해서는 굳이 증거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일 년 한 달 오 일 아홉 시간 전에 당신의 사랑하는 딸을 합법적인 아내로 나에게 넘겨주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랑과 얼마나 큰 선의로 대했는가는, 건망증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라면 잘 알 것입니다. 또한 얼마나 많은 지참금을 주었는지도 알고 있지요. 그것은 같은 조건의 부자와 결혼시킬 수 있는 세 배 이상의 지참금이었지요. 동시에 그녀가 원했던 모든 옷을 입혀주고 장식해주고 그녀에게 어울리는 것을 모두 해주었던 정성을 기억해야 합니다. 더도 말도 덜도 말고 나의 원래 천성과 최악에 대한 경멸로 인하여 왜 내가 죽어야 하는지를 볼 것입니다. 나이가 많은 탓에 세상의 여러 가지 이상한 사건들을 경험했던 나는 내가 선택했고 당신들이 건네주었던 이 보물(부인을 지칭함 – 옮긴이)을 가능한 한 신중하게 지키기를 원했습니다. 이 집의 담을 높이 올렸고, 거리로 향한 창문들을 막아버렸으며, 모든 문의 잠금장치를 이중으로 하고, 수녀원처럼 밀폐된 회전문을 설치하고, 입에서 남자의 그림자나 남자 이름을 가진 모든 것을 영원히 추방했습니다. 여자 하인들과 여자 노예들에게 그녀를 시중들게 하고, 하녀들이나 그녀가 나에게 요구하는 모든 것을 거부하지 않았지요. 그녀를 나와 동등하게 대했고, 그녀에게 나의 가장 비밀스러운 생각도 말했습니다. 또 그녀에게 나의 모든 재산을 건네주었소. 차분히 생각해봐도, 이 모든 것은 내가 힘들여 쟁취한 사랑을 편안히 즐기며 살아가기 위해서였고 또한 일종의 질투심에 대한 공포가 내 생각에 들어올 수 있는 틈을 주지 않으려고 했던 내 노력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으로는 신의 의지가 원하는 처벌을 피할 수가 없었나 봅니다. 내 기대에서 어긋나, 내 자신이 스스로 목숨을 빼앗아가는 독약의 제조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신들 모두가 내 입을 쳐다보며 멍해 있는 것을 보고서, 나는 수천 단어로도 말할 수 없는 것을 한 단어로 말하고 이 이야기를 결론 지으려고 합니다. 말하자면 내가 말하고 실행해온 이 모든 것은 오늘 새벽에 나의 평온과 내 삶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태어난 이 여자가 역겨운 냄새가 나는 하녀 장의 방에 아직 감금되어 있는 잘생긴 젊은 녀석의 팔에 안겨 자고 있는 것을 보는 순간 끝나버렸습니다.”
까리살레스의 이 마지막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레오노라의 심장은 움츠러들었고 곧장 남편의 무릎에 쓰러져 실신했다. 마리알론소는 안색이 창백해졌고 레오노라의 부모는 목에 돌덩이라도 걸린 듯 말문을 열지 못했다. 하지만 까리살레스는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며 말했다.
“이런 모욕에 대해 내가 취하고자 하는 복수는 평상적으로 행해지는 복수가 아니고 또 그렇게 될 수도 없습니다. 내가 애초부터 극단적인 행동을 택했던 것처럼, 그렇게 이번 복수 또한 극단적인 방법으로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나 자신을 이 죄악의 가장 큰 책임자로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소녀의 15세라는 나이와 나의 80세에 가까운 나이(소녀와 노인의 나이를 작가가 혼동한 듯함 – 옮긴이)가 서로 하나로 조화를 이룰 수도 없으며 평온함도 있을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스스로 죽을 집을 짓는 누에와 같은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레오노라를 나무라진 않겠습니다. 아, 나쁜 꼬임에 넘어가 버린 소녀여!”
그는 이렇게 말하고는 몸을 숙여 실신한 레오노라의 얼굴에 키스를 했다.
“말하건대, 너를 탓하지 않겠다. 교활한 늙은 하녀 장의 꼬드김과 사랑에 홀린 젊은이의 몇 년도 못 가서 매장될 사랑의 언약이 재주를 부려 이렇게 된 것일 뿐이야. 그러나 모든 사람은 내가 너를 사랑했던 의지와 신뢰의 가치를 눈으로 봤어. 그래서 내 인생의 이 마지막 순간에 모범적으로 세상에 기억될 수 있도록 호의가 아닌, 전례 없이 바보 같은 방법으로 복수를 하고 싶구나. 그래서 나는 내 유서를 새로 작성하기 위해 공증인 한 명을 불러오게 하고 싶구나. 그 유언장에 나는 레오노라에게 지참금을 두 배로 올려줄 것과 내가 나의 삶을 마감한 후에 그녀의 의지대로 이 가련한 늙은 백발이 결코 노여움을 표시하지 않았던 그 젊은이와 결혼하기를 바라는 바이오. 그러면 결혼해 사는 동안에 내가 얼마나 그대를 사랑했는지, 그대를 기쁘게 하는 것 외에는 한 발자국도 다른 곳으로 이탈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오. 내가 죽은 후에라도 그 같은 마음은 변함이 없을 것이오. 내 마음이 진실이기 때문에 나는 그대가 그토록 원하는 청년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나의 나머지 재산은 자선 사업에 기부할 생각이오. 아울러 여러분, 당신들에게는 주어진 삶을 정직하게 살아간다는 조건하에 재산을 분배하여 줄 것이오. 내 마음속에 있는 열정이 나를 압박하여 전속력으로 내 목숨의 행보를 단축시키기 때문에 공증인이 빨리 도착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말한 후, 그는 실신하여 레오노라 바로 옆으로 쓰러졌으며 두 사람의 얼굴이 하나로 겹쳐졌다. 사랑하는 딸과 사위를 바라보고 있던 그녀의 부모에게 이 광경은 얼마나 기이하고 애처롭게 느껴졌을까! 못된 하녀 장은 주인마님의 부모가 그녀에게 가할 질책을 가만히 기다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방에서 빠져나와 로아이사에게 가서 자초지종을 말했다. 그리고 그에게 집에서 바로 떠날 것을 귀띔했다. 아울러 이미 방해받을 어떤 문도 열쇠도 없어져 버렸기 때문에 흑인 루이스를 통해서 그에게 일의 경과를 꼭 알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로아이사는 그러한 새로운 소식들을 접하고 감격했으며, 하녀 장의 충고를 따르기 위해 다시 허름하게 옷을 차려입고, 기이하고 믿기 힘든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그의 친구들에게 알리러 나갔다.
레오노라와 까리살레스가 옮겨지는 동안, 레오노라의 아버지는 그의 친구인 공증인을 불러오게 했으며, 이 공증인은 딸과 사위가 다시 의식을 되찾을 시점에 정확히 도착했다. 까리살레스는 이미 말했던 대로 유언을 시작했다. 먼저 레오노라에게 자신이 죽거든 그 젊은이와 결혼할 것을 간청했고 진실된 사랑의 마음에서 하는 유언임을 강조했을 뿐, 그는 레오노라의 잘못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밝히지 않았다. 옆에서 그의 말을 듣고 있던 레오노라는 남편의 발밑에 엎드렸다가 이내 그의 가슴에 그녀의 몸을 갖다 대면서 말했다.
“나의 주인이시며, 나의 모든 영광이시여. 당신은 오래오래 사셔야 합니다. 당신은 제 말을 믿지 않으시겠지만 사실 저는 불순한 생각만으로 당신의 명예를 더럽게 했을 분입니다.”
레오노라는 그 사건의 진실을 상세히 말하고 용서를 청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의 혀가 제대로 움직여 주지를 않았으며, 또다시 기절해버렸다. 가련한 늙은 남편은 그렇게 쓰러진 레오노라를 껴안았고 그녀의 부모도 그녀를 껴안았다. 모두들 너무나 가슴 아프게 울었기 때문에 유언을 위해 왔던 공증인도 그들을 따라서 울었다. 그 유언장에서 노인은 모든 하녀가 먹고살 수 있도록 해주었으며, 노예들과 흑인 루이스는 자유로운 몸이 되게 했으나 위선자 마리알론소 하녀 장에게만은 봉급 이외에는 어떤 것도 남겨주지 않았다. 그러나 어떻게 되었건 간에 슬픔과 고통이 노인을 짓눌러, 결국 7일째 되던 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레오노라는 부유하지만, 눈물에 젖어 사는 과부가 되었다. 로아이사는 이미 알고 있었던 대로 까리살레스 노인이 유언장에서 레오노라와 자신이 결혼하도록 허락한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레오노라가 일주일 만에 그 도시에서 가장 밀폐된 수녀원 중의 하나로 들어가 수녀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로아이사는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매우 고통스러워 신대륙으로 떠나 버렸다. 레오노라의 부모는 슬프기 그지없었지만, 그들의 사위가 유언장으로 자신들에게 남기고 간 재산을 생각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하녀들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유언의 내용으로 위안을 삼았으며, 노예들은 자유를 얻은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그러나 저주받은 하녀 장은 그녀의 모든 사악한 생각으로 인해 신세를 망쳤으며 가난뱅이가 되었다.
인간에게 자유로워지려는 의지가 있을 때에는 열쇠와 굳건한 문 그리고 집의 담은 그리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과 수녀처럼 검은색 치마와 머리에 흰 수건을 쓴 뚜쟁이 여인들의 유혹 앞에서 나이 어린 젊은 여인들은 더 이상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을 본보기와 거울로 삼으며 나는(작가 자신을 기리킨다 – 옮긴이) 이 이야기를 끝내고자 한다. 단지 내가 알 수 없는 것은 그 사건에서 레오노라 자신이 질투심 많은 남편에게 자신은 결백하며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것을 해명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에 있어서 왜 더 많은 노력을 하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아마도 당혹감이 그녀의 혀를 움직여주지 않았고, 남편이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는 바람에 그녀는 자신의 용서를 청할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