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류층의 두 학생 신사가 또르메스 강가를 산책하다가 허술한 차림으로 나무 밑에서 자고 있던 11세가량의 한 소년을 발견했다. 그들은 하인을 시켜 그 소년을 깨웠다. 두 신사가 소년에게 왜 이런 곳에 혼자 있는지, 고향은 어딘지를 묻자 소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소년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학비를 대 줄 만한 주인을 찾으러 대학의 도시 살라망까(1218년 스페인 최초의 대학이 설립된 교육 도시임-옮긴이)로 가던 길이었다. 신사들이 소년에게 글을 읽고 쓸 줄 아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기억력이 나빠서 자신의 고향 이름을 잊어버린 건 아니군.”
한 신사가 말했다.
“저는 성공하면 고향으로 돌아갈 때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제 고향에 대해 말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소년의 목소리는 단호하면서도 진지했다. 다른 신사가 물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성공하고 싶으냐?”
소년은 대답했다.
“저는 훌륭한 학자가 되고 싶습니다. 지식을 쌓으면 명예도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이 대답을 들은 신사들을 소년을 데려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살라망까 대학에서는 주인을 모시는 하인들에게도 공부를 시켜주었으므로 이 소년이 공부할 수 있도록 학비를 대줄 작정이었다. 소년은 자기 이름이 ‘또마스 로다하’라고 말했다. 신사들은 그 소년의 이름과 옷차림으로 봤을 때 가난한 농부의 아들일 것이라 생각했다.
소년을 데리고 살라망까로 간 두 신사는 우선 소년의 옷차림부터 말끔한 것으로 바꿔주었다. 몇 주가 지나지 않아 소년은 숨겨진 보물이 빛을 발하듯 자신의 재능을 보여주었다. 소년은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준 두 신사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학업에도 충실했을 뿐만 아니라 평소의 생활에서도 매사에 근면 성실함을 잃지 않아 신사들을 감동시켰다. 그들에게 있어 또마스 로다하는 단지 하인이 아니라 동료와 다름없을 정도로 성숙해갔다. 또마스의 총명함은 시간이 흐를수록 밝게 빛났고, 신사들과 지낸 지 8년이 되자 대학 내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는 모든 사람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그는 법학을 전공했으나 인문학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탁월한 기억력과 이해력으로 학문에 정진한 또마스는 특히 기억력이 뛰어났다.
두 신사가 공부를 마치고 고향인 안달루시아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그들은 또마스를 함께 데려갔다. 또마스는 그들과 함께 안락한 생활을 누리면서도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는 열망만은 버리지 못했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또마스는 신사들에게 살라망까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자상하고 너그러운 두 신사는 호의를 베풀어 그가 3년간 지낼 수 있는 돈을 마련해주며 허락했다.
자신을 돌봐준 은혜에 감사하며 두 신사의 고향인 스페인 남부 도시 말라가를 떠난 또마스는 안떼께라로 가는 삼브라 언덕을 내려가던 중 말을 탄 신사와 만나게 되었다. 그 신사는 군인 복장이었고 두 명의 말 탄 하인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들 일행과 합류하여 서로 목적지가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된 또마스는 그들과 동행하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또마스는 간혹 그의 총명함을 보여주게 되었고, 그 신사에게서 군인다운 당당함과 정중한 면모를 볼 수 있었다. 신사는 자기가 국왕 폐하 직속의 보병 대위이며, 그의 부관이 현재 살라망까 지역에서 신병들을 모집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군인 생활의 장점을 격찬하면서 아름다운 나폴리, 팔레르모의 안락함, 풍요로운 밀라노, 롬바르다의 향연, 이탈리아의 맛있는 음식에 대해 생생하게 말해주었다. 또한 자유로운 군인 생활과 자유분방한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를 찬양했다.
그러나 보초들이 겪는 추위라든가 적이 습격했을 때의 위험, 전쟁의 공포, 포위망 속의 굶주림, 갱도의 붕괴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의 이야기에 마음이 쏠린 우리의 주인공 또마스 로다하는 판단력을 잃기 시작했다.
돈 디에고 데 발디비아 대위는 또마스의 수려한 외모, 총명함, 쾌활함에 만족해하며 원한다면 자기와 같이 이탈리아로 가자고 권했다. 그는 또마스에게 장교 자리를 제안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부관이 곧 자리를 내놓을 것이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그에게 부관의 자리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또마스는 잠시 혼자 생각해봤다. 여러 나라를 둘러보는 것이 그렇게 나쁠 것 같지도 않았고, 이 여행을 하는 데는 길어야 3~4년 정도 걸릴 것이니, 그 후에 다시 고부를 시작해도 문제 될 것은 없으리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마치 모든 것이 그의 뜻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았다. 마음을 굳힌 또마스는 대위에게 함께 이탈리아로 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위가 제안한 깃발을 드는 부관 자리는 원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대위는 이름을 명단에 올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으며 또마스가 원하는 모든 조건을 받아들일 것을 약속하고는 부대원들에게 지급하는 보조품이나 급료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나와 대위님의 양심에 어긋나는 것이므로 부담 없이 자유롭게 가고 싶습니다.”
또마스의 대답에 대위는 약간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군인이라기보다는 성직자에 가까운 양심이군. 그러나 어쨌든 이제부터 우리는 친구요.”
그들은 그날 밤 안떼께라에 도착했고, 며칠 간은 강행군으로 막 부대 편성을 마치고 까르따헤나(스페인 동남부 지중해의 항구 도시-옮긴이)로 행군을 시작한 중대 본부가 있는 곳에 이르렀다. 그들과 다른 4개 중대는 가까이 보이는 숙소에서 숙박을 했고, 거기에서 또마스는 군인 생활의 또 다른 면을 보게 되었다. 지휘관들의 권위와 몇몇 대위들의 옹졸함, 숙사 할당 인들의 잔소리, 경리 담당자들의 횡령과 사기, 주민들의 불평, 숙사 할당표의 암거래, 신병들의 무례함, 병사들 간의 싸움, 필요 이상의 군수품 징발 등등 마침내 그의 눈에 띄고 그에게 나쁘게 보였던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또마스는 교복을 벗어버리고 군복을 입었다. 그는 가지고 있던 많은 책 가운데 ⟪성모의 시간⟫과 주석을 달지 않은 가르실라소(16세기 페트라르카 풍의 11음절 시를 처음으로 쓴 스페인 시인-옮긴이)의 시집만을 남겼다. 또마스와 군인들은 매일 다양하고 새로운 일에 부딪히며 예정보다 빨리 까르따헤나에 도착했다.
거기서 그들은 나폴리를 향하는 네 척의 전투함에 승선했다. 또마스는 선박 생활을 하면서 득실거리는 빈대, 강제 노역 수들의 도둑질, 선원들의 난폭한 성질, 생쥐들의 공격, 거친 파도 등을 경험하게 되었다. 특히 그는 레온만에서 만난 큰 돌풍과 폭풍이 두렵게 느껴졌다. 한 번은 거센 돌풍 때문에 코르시카 섬으로 방향을 바꾸어야 했고, 또 한 번은 프랑스의 뚤롱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폭풍이 부는 날엔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폭풍이 지나간 후, 일행은 밤을 꼬박 새운 까닭에 피곤해진 눈을 비비면서 젖은 옷을 그대로 아름다운 제노아시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린 그들은 먼저 교회에 들른 다음, 어느 주막에 투숙하게 되었다. 주막은 자유롭고 흥겨운 축제의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그런 분위기에 젖어 있다 보니 그들은 바다 위에서 겪은 폭풍우를 금세 잊어버렸다.
그들은 이탈리아 트레비아산 포도주의 감미로움, 몬테프라스콘산 포도주의 소중함, 카프리와 나폴리 지방의 아스페리노산 포도주의 감칠맛, 그리스의 깐디아산 포도주와 베수비우스산정의 소마 포도주의 관대함, 제노아의 싱꼬 비냐스 포도주의 위대함, 구아르나차산 포도주의 상냥함과 부드러움, 나폴리 첸톨라 포도주의 억세고 거친 맛 등을 알게 되었다. 어느 포도주에서도 로마풍의 비천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주막의 주인은 온갖 다양한 포도주 목록을 소개한 뒤 맛보기로 진품이 확실한 스페인산 마드리갈, 꼬까, 알라레호, 임뻬리알 포도주를 손님들 앞에 내놓았다. 그리고 리바다비아와 데스까르가마리아산 포도주는 물론이며, 에스끼비아스, 알라니스, 까살야, 구아달까날, 멤브리야산 포도주들도 가져왔다. 주막 주인은 그토록 다양한 종류의 포도주를 선보인 후에도 술의 신 바카스가 술 창고에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술을 그들에게 선보였다.
금발의 제노아 여인들, 신사답고 늠름한 남자들, 순금에 다이아몬드를 끼워 박은 듯 바위 구석구석에 세워진 집들이 연출해내는 도시의 아름다움에 또마스는 경탄했다.
다음날 피아몬테로 가기 위하여 모든 중대의 군인이 하선했다. 그러나 또마스는 곧장 그리로 가지 않고 제노아에서 육로로 로마와 나폴리에 들른 후, 베니스와 로레토, 밀라노를 거쳐 피아몬테에 도착하는 계획을 세웠다. 만약 모든 중대가 플랑드르로 출발하지 않는다면 그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돈 디에고 발디아 대위가 말했다.
또마스는 이틀 후에 대위와 작별했다. 그리고 5일 만에 플로렌스에 도착했다. 작지만 잘 꾸며진 도시 루카는 이탈리아의 다른 어느 곳보다 훌륭해 보였다. 그들은 스페인 사람들을 좋아했으며 사람들에게서 친절함이 느껴졌다. 또마스는 플로렌스의 깨끗한 거리와 화려한 건물들, 맑은 강, 평온한 분위기 등에 매료되었다. 그곳에서 나흘을 보낸 후, 도시 중의 도시, 세계의 중심지인 로마로 갔다.
그는 로마의 사원을 구경하고 유물들을 보며 그 웅장함에 놀랐다. 사자는 날카로운 발톱을 통하여 그 힘을 알 수 있듯이, 또마스는 로마의 위대함과 용맹함을 실감하게 되었다. 또마스는 로마의 토막 난 대리석, 반신과 전신의 조각상, 깨어진 아치, 허물어진 공중목욕탕, 웅장한 현관과 대형 원형극장, 유명하고 성스러운 강(강 언저리는 항상 물로 잠겨 있고, 매장되었던 순교자들의 시신에서 나온 유물들로 넘친다),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듯한 다리들, 이름만으로도 세계의 다른 도시들의 어느 거리보다 유명한 ‘아피아 거리’, ‘플라미니아 거리’, ‘훌리아 거리’ 등을 통해 로마의 위대함을 엿볼 수 있었다. 셀리오, 퀴리날 그리고 바티칸 도시 주변에 산재하고 있는 7대 산들 또한 마치 로마의 위엄을 나타내듯 웅장한 규모였다.
그는 추기경 회의의 권위와 교황의 위엄, 갖가지 모임과 다양한 여러 인종들을 봤다. 또마스는 모든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했다. 로마의 일곱 개의 대성당을 모두 둘러본 후 어느 사제에게 고백성사를 하기도 했으며, 교황 성하의 발에 입맞춤한 후 나폴리로 떠날 작정이었다. 당시 로마의 기후는 환절기여서 일교차가 심해 여행자들은 건강에 유의해야 했다. 또마스는 육로보다는 바다를 통해 나폴리로 가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하고 배편을 선택했다.
그는 나폴리에 도착한 후, 그 때까지도 가슴에 남아있던 로마에 대한 감동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과 감동을 느꼈다. 또마스에게 나폴리는 유럽, 아니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도시로 보였다. 거기서 그는 시칠리아로 가서 팔레르모와 레시나를 봤다. 팔레르모는 그 위치와 아름다움이 좋았고, 메시나는 항구를 비롯한 섬 전체가 마음에 들었다.
메시나는 이탈리아의 곡창지대라 불릴 만큼 농사가 잘되어 섬 전체에 풍요로운 기운이 넘쳤다. 그는 나폴리를 거쳐 다시 로마로 가서 로레토 사원을 찾았다. 그 성스러운 사원에서는 벽이나 담을 볼 수 없었다. 왜냐하면 모든 벽마다 치유의 은사를 받은 신도들이 더 이상 쓸모가 없어져 놓고 간 목발들이 빼곡히 걸려 있었으며 많은 성화가 매달려 있었고 수많은 양초 더미가 덮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성벽은 많은 사람이 성모 마리아의 기도로 하느님의 무한한 은혜를 받았음을 보여주었다. 형언할 수 없이 신성한 표정의 성모 마리아는 성벽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집 담을 무늬 있는 천으로 휘감고 자신에 대한 신앙심을 보인 자들에 대해 수많은 기적을 베풀었다. 또마스는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묵는 여관을 봤다. 그들은 하늘, 천사 그리고 성모 마리아가 잠시 살았던 거룩한 집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는 자들이었다.
그는 안코나에서 승선하여 베네치아로 갔다. 콜럼버스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이 세상에서 유일한 수상도시로 알려졌을 그 위대한 도시는 에르난 꼬르떼스 덕분에 비로소 그와 대적할 만한 경쟁자(꼬르떼스가 정복한 멕시코 아즈텍왕국의 수도인 떼노치띠뜰란을 지칭함. 호수 위에 건설된 수상도시였음-옮긴이)를 만날 수 있었다.
이 두 도시는 물 위에 건설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비슷했다. 유럽의 베네치아가 구세계의 경이로움이었다면 아메리카의 떼노치띠뜰란은 신세계의 매혹거리였다. 그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풍부한 자원, 정직한 정부 그리고 쾌적한 주변 환경을 가진 베네치아에 대해서 깊은 인상을 느꼈다. 베네치아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수없이 많은 배뿐만 아니라 전투함까지 제조할 수 있는 거대한 조선소 시설 때문이었다.
다른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많은 것으로 인해 또마스는 애초의 여행 일정을 잠시 잊어버렸는데, 그 신비로움은 마치 칼립소(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요정)의 유혹과도 같았다. 그곳에서 한 달을 보낸 뒤 페라라, 파르마, 피안센시아를 거쳐 불카노(불과 대장장이의 신-옮긴이)의 작업장이며, 프랑스 왕국의 원한이 맺힌 도시 밀라노(16세기에 프랑스는 밀라노를 차지하기 위해 스페인과 싸웠으나 실패했다-옮긴이)로 돌아갔다. 밀라노는 성당도 아름다웠지만,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추어진 풍요로운 도시였다. 거기에서 다시 아스티로 갔는데, 다음날 보병연대가 플랑드르로 행군하던 때에 도착했다.
그는 대위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동료들과 함께 플랑드르와 암베레스(이탈리아의 도시들만큼 훌륭한 도시였다), 간테와 브뤼셀을 둘러봤으며, 나라 전체가 이듬해 계획된 여름 출정을 위한 개전 태세를 갖추고 있음을 봤다. 수많은 도시를 여행하며 자신의 소망을 성취한 또마스는 공부를 마치기 위해 살라망까로 돌아갈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의 동료는 헤어지는 것이 서운했던지 계속 연락을 끊지 말 것을 부탁했고 또마스는 종종 안부 편지라도 띄울 것을 약속했다.
그는 곧 출발하였고 당시 전운에 휩싸여 있던 파리를 들르지 않은 채 프랑스 땅을 거쳐 며칠 지나지 않아 살라망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또마스를 볼 수 없었던 친구들은 그를 보자 진심으로 환영해주었고, 그는 졸업할 때까지 친구들의 도움으로 법학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
이 무렵 한 미모의 여인이 살라망까에 도착했다. 그녀를 보러 가지 않은 학생이 없을 정도로 모두들 그녀를 한 번이라도 보려고 애썼다. 사람들은 또마스에게 그녀가 이탈리아와 플랑드르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또마스는 혹시 자기가 아는 여자가 아닐까 알아보려고 그녀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 여인은 또마스를 보자 곧 사랑에 빠졌으나 그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만약 억지로 사람들에 의해 이끌려가지 않았다면, 그녀의 집에도 결코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또마스가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여인은 가진 재산을 모두 그에게 준 다음 함께 지내게 되었다. 그러나 또마스는 공부하는 것만이 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랑을 기다리는 여인을 기쁘게 해주지 못했다. 여인은 또마스가 자기를 무시하고 멀리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바위와 같은 또마스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평범한 방법으로는 어림도 없을 거라는 결론에 도달한 그녀는 다른 방법을 찾기로 했다. 여인은 어느 아랍 여인이 준 마법의 묘약을 또마스에게 주었다. 똘레도의 마르멜로(스페인 식의 과일잼의 하나임-옮긴이)로 만들어진 그 약은 ‘사랑의 묘약’이라 불렸지만, 여러 사례들로 봐 약을 마시는 사람에게 독성을 나타낼 수도 있었기 때문에 독약이라고 부르는 편이 나았다. 여인은 또마스가 그 약을 먹기만 하면 자기를 좋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여인의 성화에 마르멜로를 먹은 또마스는 그 즉시 경련을 일으키듯 몸을 떨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바보처럼 멍한 표정으로 변했다. 그는 가까스로 기운을 차려 말을 더듬거리며 그 약이 자기를 사경에 빠뜨렸다고 말하며 약을 먹게 한 여자를 고발했다. 또마스의 소식을 들은 재판관이 여인을 찾아 나섰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챈 그녀는 이미 줄행랑을 친 후였다. 그리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또마스는 6개월 동안 병상에 있었다. 이 기간 동안 몸은 야윌대로 야위어 뼈만 남게 되었고 감각장애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의사는 그에게 가능한 모든 치료를 계속했지만, 육체적인 증상들만 나아지고 정신은 회복되지 않았다. 그는 그 당시 볼 수 있었던 광기들 중 가장 괴이한 극도의 광기에 사로잡혔다. 또마스는 자신이 유리로 되어 있다고 생각했고 누구든지 그에게 와서 큰소리를 지르면 자신을 깨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에게 가까이 오지 말 것을 부탁했다. 그는 자신의 몸 전체를 유리로 되어 있다고 굳게 믿었다.
많은 사람은 또마스가 자신을 유리라고 확신하는 것이 단지 상상일 뿐임을 알려주기 위해 그를 끌어안았다. 그들은 그가 깨지지 않았다는 것을 일러주려 했으나 그때마다 그는 소리치며 바닥에 쓰러져 기절해버렸다. 몇 시간 동안 정신을 잃고 누워 있던 또마스는 정신이 들자 제발 자기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그러고는 자신에게 말할 때는 되도록 멀리 떨어져서 하고, 자기는 육체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유리로 되었기 때문에 사물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고, 따라서 답변을 잘할 수 있으니 궁금한 것이 있으면 자기에게 질문하라고 말했다. 유리는 예민하고 섬세한 물질이므로 무거운 인간의 육체보다 훨씬 빠르고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에는 또마스의 말을 정신병자가 할 수 있는 소리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매우 총명하다는 것을 아는 어떤 사람이 그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려고 여러 가지 어려운 것을 물었는데 그는 곧 타고난 총명함으로 즉석에서 능숙하게 대답했다. 소문은 금세 퍼졌다. 대학에서 가장 학식 있는 사람들과 의학자 및 철학 교수들조차 무척 놀라워했다. 너무나 특이한 광기를 가진 인물이 그런 분별력을 가졌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모든 질문에 대해 기지와 정확성을 가지고 대답했던 것이다.
또마스는 깨지기 쉬운 자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자루 모양의 덮개를 달라고 부탁했다. 꽉 조이는 옷을 입을 때 깨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은 그가 원하는 대로 해주기로 하고는 먼저 그에게 밤색의 상의와 품이 넓은 셔츠를 주었다. 그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입었고 면으로 된 끈으로 묶었다. 그는 신발을 안 신으려고 했고, 음식은 막대기 끝에 그릇을 고정시키되 그 속에 과일로 만든 음식을 놓아달라고 부탁했다. 고기나 생선을 좋아하지 않았고 샘이나 강에서만 손으로 물을 떠 마셨다. 거리를 지날 때는 지붕을 쳐다보면서 혹시나 기와가 떨어지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여 거리의 한복판으로 걸어갔다.
여름에는 들판에서 자고 겨울에는 여관의 헛간에서 지냈다. 건초더미가 있는 헛간은 유리로 된 사람에게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최적의 침실이라고 하면서 목까지 자기 몸을 밀짚 속에 집어넣었다. 천둥이 칠 때면 수은 중독에 걸린 사람처럼 몸을 떨었다. 그러고는 들판으로 가서 폭풍우가 지날 때까지 마을로 돌아오지 않았다.
오랫동안 친구들이 그를 가두어 두었지만, 그의 증세가 심해지자 본인의 의사에 따라 마음대로 다니도록 해주었다. 그는 그를 아는 모든 사람에게 놀라움과 연민을 남긴 채 도시로 갔다. 소년들이 그를 에워쌌으나 그는 막대기로 그들을 제지 시키고 자기가 깨지지 않도록 떨어져서 말하라고 당부했다. 어떤 소년들은 심술궂게도 그의 누더기를 잡아당겼고 진짜 유리로 되었는지 보기 위해 심지어 돌을 던져 보기까지 했다. 그가 워낙 격렬하게 소리를 질러댔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괴롭히지 말도록 아이들을 꾸짖고 벌주었다.
자신을 비웃고 놀리는 소년들 때문에 몹시 지친 또마스는 어느 날 그들에게 격한 목소리로 외쳤다.
“파리처럼 집요하고, 빈대처럼 지저분하며, 벼룩처럼 물불을 가리지 않는 놈들아. 도대체 뭘 원하는 거냐! 내가 깨진 토기조각과 기와로 쌓아 만든 로마의 테스타초산(깨진 돌이나 기와로 쌓아올려진 인공산-옮긴이)인줄 아느냐?”
그가 화내면서 대답하는 것을 들으러 많은 사람이 그를 따라다녔다. 장난만 치던 소년들은 얼마 후 그의 편이 되어 무슨 말을 하는지 귀 기울여 듣곤 했다. 한번은 살라망까에 있는 한 옷가게를 지나는데 옷 파는 여인이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석사님, 당신의 불행으로 저의 마음이 아파요. 제가 울 수도 없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녀를 돌아본 또마스는 신중하게 대답했다.
“에루살렘의 여인이여, 나로 인해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들을 위해 울어라.”(루가복음 23장 28절-옮긴이)
그의 남편은 그 말을 악의로 받아들여 비꼬았다.
“유리석사 형제여, 당신은 미치광이라기보다는 구렁이와 비슷하구려.”
석사는 대답했다.
“내가 슬기롭다 해서 당신이 내게 보태준 것이라도 있소?”
하루는 매춘 굴이 된 여인숙을 지나면서 문간에 서 있던 여자들을 보고는 지옥의 여관에 묵고 있는 사탄의 노예들이라고 말했다.
한 사람이 그에게 묻기를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나서 도망가 버린 아내 때문에 매우 슬퍼하는 친구에게 어떤 충고나 위로를 해줄 수 있느냐고 하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의 원수를 집에서 나가게 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라고 하시오.”
그 옆에 있던 사람이 의외라는 듯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부인을 찾지 말아야 한다는 건가요?”
“그렇소. 도망간 부인을 찾는다는 것은 계속 불명예를 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오.”
석사의 대답을 들은 사람은 이번엔 자기의 경우를 예로 들어 질문했다.
“그렇다면 제가 아내와 화목하게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번에도 석사의 대답은 막힘이 없었다.
“아내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오.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주도록 하시오. 그리고 아내가 가정의 모든 일을 명령하게 하시오. 그러나 그녀가 당신에게 명령하게 하지는 마시오.”
한 소년이 석사를 찾아왔다.
“유리석사님. 저는 아버지가 제게 매질을 할 때면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석사는 소년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형 집행인이 하는 매질은 단지 모욕감을 줄 뿐이지만 부모가 자식에게 매질을 하는 것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것이란다.”
유리석사는 교회 입구에 있다가 조상 대대로 그리스도 교도로서 칭송받던 한 농부가 교화로 들어가는 것을 봤다. 그리고 그의 뒤를 따라서 첫 번째 사람만큼 그렇게 훌륭하지 않은 개종한 기독교인이 들어갔다. 유리석사는 농부에게 크게 외쳤다.
“일요일이여, 토요일이 지나기를 기다려라.”(일요일은 기독교인의 안식일이며, 토요일은 유대인의 안식 일이다-옮긴이)
유리석사는 갖가지 직업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곤 했는데 학교 선생님들에 대해서는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세상 근심에 젖지 않은 순수한 천사들과 함께 지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뚜쟁이 여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녀들도 별개의 사람들이 아니라 단지 우리의 이웃들이라고 대답했다.
그의 광기와 해박한 지식, 지혜로운 대답에 관한 명성은 온까스띠야 지방으로 퍼졌다. 궁정에 있던 왕족이나 고관대작들까지도 그 소식을 듣게 되어 그를 만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살라망까에 있는 한 기사에게 그를 데려오도록 했다. 유리석사를 찾아낸 기사는 정중하게 제안했다.
“궁정에서 높으신 분이 유리석사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궁정으로 가시지요.”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저는 내성적인 성격에다가 아첨할 줄도 모르기 때문에 궁정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유리석사는 거절했지만, 기사의 간곡한 부탁에 궁정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가사는 그를 궁정으로 데려가기 위해 철저한 준비를 했다. 먼저 나귀가 양쪽으로 메고 가는 밀짚으로 만든 운반용 바구니 속에다 유리석사를 집어넣었다. 마치 유리그릇처럼 자신을 운반해가는 것으로 믿게끔 밀짚 사이에는 몇 개의 유리를 넣었다. 그리고 다른 쪽 바구니에는 균형을 유지하도록 돌을 넣어서 양쪽의 무게를 동일하게 만들었다. 밤이 되어 바야돌리드(마드리드 북부의 부르고스로 가는 길에 있는 도시. 1601~1606년 사이에 스페인의 수도-옮긴이)에 도착했고, 그를 데려오라고 한 왕자의 집에 와서야 그를 꺼내 주었다. 왕자는 유리석사를 반갑게 맞았다.
“유리석사, 잘 오셨소. 오시는 길은 어떠셨습니까? 건강은 또 어떠십니까?”
“교수대로 가는 길처럼 만사가 끝나는 것만 아니라면 나쁜 길이 어디 있겠습니까? 건강은 보통입니다. 내 맥박이 두뇌와 더불어 뛰고 있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다음날 유리석사는 새장의 횟대에 있는 새매류와 기타 조류들을 보면서 매사냥은 왕족이나 고관대작들처럼 지체 높으신 분들에게 어울린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경고하기를 그 사냥의 즐거움 때문에 2천 배나 수익이 좋은 집세를 날려버릴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토끼사냥은 매우 즐겁지만 길들인 사냥개와 함께 라면 사냥의 묘미를 더욱 느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왕자는 그의 광기를 좋아했고 그가 도시로 나가도록 해주었다. 짓궂은 소년들이 그에게 나쁜 짓을 못 하도록 보호자도 한 사람 붙여주었다. 유리석사에 대한 소문은 6일 만에 온 수도에 퍼졌고 가는 곳마다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였다. 그는 사람들이 질문할 때마다 지혜롭고 명쾌한 대답을 해주었다. 한 학생이 유리석사가 모든 것에 재능이 있는 듯 보여 혹시 시인이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이제까지 그렇게 우둔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다.”
유리석사의 대답에 소년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우둔하며 행복하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나쁜 시인이 될 만큼 우둔하지도, 좋은 시인이 될 만큼 행복하지도 않았다는 뜻이란다.”
유리석사의 대답을 함께 듣고 있던 다른 학생이 시인들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묻자. 학문에 대해선 많은 평가를 하지만 시인들에 대해선 어떤 평가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많은 시인 중에서 훌륭한 시인은 극소수라고 말했지만, 구체적인 이름은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에 관한 학문은 존중하고 찬양하는데 그 이유는 이 세상의 모든 학문이 그 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유리석사는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고 도움이 되며 유익하고 즐겁고 놀라움으로 가득한 훌륭한 작품이 바로 시라고 덧붙였다.
“훌륭한 시인으로 평가되는 기준을 나는 잘 알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오비디우스의 시들이 기억나기 때문이오.
예전에는 시인들이 신과 왕에게 기쁨을 주었으며.
훌륭한 노래에는 큰 상금이 주어졌네.
그리하여 그 당시 시민들은 존경과 명성을 얻었으며
그리고 대개는 부를 향유 하였네.
플라톤이 시인들을 신들의 통역자라고 불렀듯이 나는 그들의 높은 자질을 잊을 수 없소. 그 시인들에 대해 오비디우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소.
우리들 속에 신이 있고 그에 의해 우리는 흥분된다.
그는 또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보고 신의 총애를 받는 예언자 시인들이라고 하지요.
이것은 훌륭한 시인들에게 하는 말이오. 나쁜 시인들은 수다쟁이라고 하지요. 이런 자들을 두고 세상의 바보이며 무지한 자들이라고 하지 않소?”
유리석사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 시인이 처음으로 소네트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그를 둘러싼 관중에게 다음과 같은 양해를 구하지요. ‘어젯밤 우연히 제가 만든 소네트를 들어보십시오. 제 생각에는 아무 가치도 없지만 제가 알지 못하는 어떤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입술을 씰룩이고 양미간을 찡그리면서 호주머니를 뒤져서 때 묻고 반쯤 찢어진 수많은 종이 속에서 그가 낭송하고 싶은 종이를 꺼내어 마침내 달콤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읽어내려갑니다. 그런데 만일 듣는 사람들이 막돼먹은 놈들이거나 무식한 자들이라 그를 칭찬하지 않는다면 다음과 같이 말하죠.
‘여러분, 소네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까? 아니면 제가 그대들에게 잘 낭독하지 못했습니까? 다시 한번 낭송해드리죠. 여러분들, 좀 더 귀 기울여주십시오. 제가 진심으로 말하건대 이 소네트는 들어볼 가치가 있거든요.’
그는 새로운 몸짓과 어조로 다시 낭송하는 겁니다. 그러고 나면 그 자들은 서로 자기들끼리 헐뜯고 싸우지요. 순종의 혈통 좋은 개를 보고 시비를 걸며 짖어대는 똥개들을 보고,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시의 진정한 광채를 빛나게 하는 훌륭하고 뛰어난 시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험담하는 자들에 대해 제가 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혐오하며 엄숙한 척하는 무식꾼들 틈에서도 시인들은 번잡한 일상사에서 시를 통해 위안과 즐거움을 추구하고 기막힌 위트와 수고한 기상을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또한 권력만을 추구하고 왕에게 아첨을 일삼는 무식한 무리들에 대해서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다시 사람들은 왜 대부분의 시인들이 가난한가 물었다. 유리석사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들 스스로 가난을 원한다고 할 수 있소. 그들이 종종 매우 부유한 여인들이 가져오는 기회를 이용할 줄 안다면, 부자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오. 그 여인들은 황금의 머리칼, 윤기 나는 은으로 된 이마, 녹색 에메랄드 눈, 상아의 이빨, 산호의 입 그리고 투명한 수정의 목덜미를 가지고 있소. 게다가 그녀들이 눈물을 흘릴 때마다 진주 방울이 떨어져요. 또한 아무리 메마르고 척박한 땅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발길이 닿기만 하면 바로 자스민과 장미를 피어나게 하며, 호흡을 할 때마다 순수한 호박과 사향을 내뿜는다오. 이 모든 것은 그들이 얼마나 풍요로운가를 보여주는 증거들이오.”
유리석사는 이 밖에도 나쁜 시인의 종류에 대해 언급했고 훌륭한 시인들에 대해서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하루는 그가 성 프란시스코 거리에서 솜씨가 형편없는 그림을 보고 난 뒤 훌륭한 화가들은 자연을 모방하지만 나쁜 화가들은 자연을 토해낸다고 말했다.
유리석사는 어느 날 몸이 깨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서점으로 들어가 서적상에게 말했다.
“만약 한 가지 결점만 없다면, 이 작업은 할 만한데.”
서적상은 그 결점이 뭔지 궁금해졌다.
“서적상이 출판권을 살 때 아첨을 하고서는 저자에게 1.500권을 인쇄한다고 하고 3천 권을 인쇄하여 팔다가 저자가 그것을 알게 되어 자비로 출판한다고 하면, 서적상은 저자에게 비난과 조롱을 퍼붓기 때문이오.”
날이 저물자 사형 선고를 받은 죄수 6명이 광장을 지나갔다.
“제일 앞에 있는 자는 도둑놈이오.” 관원은 큰소리로 죄수들의 죄목을 차례대로 외쳤다.
“물러서시오, 형제들이여.”
관원이 “제일 뒤쪽에 있는·····.” 이라고 하자 유리석사는 말했다.
“뒤쪽에 있는 놈이라면 애들 볼기짝밖에 없지 그래.”(작가의 말장난으로, 죄수들 행렬 끝에 있는 것은 그 뒤를 쫓아다니는 아이들의 엉덩이라는 의미임-옮긴이)
한 청년이 말했다.
“유리석사님, 내일 한 포주를 매질하기 위해 끌어낸다고 합니다.”
“포주를 매질하는 것보다는 마차를 매질해야겠지.”(당시 스페인에는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서 마차를 이용하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이는 많은 비판을 불러일으켰다-옮긴이)
그곳에 손가마를 끄는 사람이 있었다.
“석사님 저희들에게 하실 말씀은 없으십니까?”
“없소. 다만 당신들은 고백성사를 듣는 신부보다도 이 세상의 죄악들에 대해 잘 알고 있소. 그러나 차이는 있지. 신부는 알아낸 죄를 비밀에 붙이지만 그대들은 알아낸 죄를 선술집에 떠벌리곤 하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석사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곳에 있던 노새 몰이꾼이 제법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박식한 석사님, 저희는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며, 나라에 필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저희에 대해서는 거의 하실 말이 없으리라 생각됩니다만.”
석사의 대답은 길게 이어졌다.
“주인의 덕망은 하인의 덕망을 드러낸다. 그러니 누구를 섬기고 있는지에 따라 그의 덕망을 알게 될 것이다. 너희들은 이 땅에 존재하는 가장 걸레 같은 놈들이다. 내 몸이 유리가 되기 전에 한 번은 노새를 빌려 타고 여행을 다니면서 노새 몰이꾼에게 인간의 온갖 형태의 허물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니 노새 몰이꾼들이야말로 뚜쟁이 아니면 소매치기 그것도 아니면 양아치 같은 놈들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만일 그들의 주인(노새에 태워 가는 손님을 주인이라 표현했다면)이 흐물흐물한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바가지를 씌우려 한다. 노새에 탄 손님들이 만약 외국인들이라면 무엇이든 훔치려 하고, 학생들이라면 욕설을 내뱉곤 한다. 종교인이라면 증오를 하며 군인들이면 벌벌 떤다. 이들과 선원들, 짐 마차꾼, 마부들은 그들에게 유일하게 나타나는 특이한 생활 방식을 가지고 있다.
짐 마차꾼은 노새의 안장에서 마차의 머리 부분까지의 1.5미터 거리의 공간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다. 시간의 절반은 노래하고 나머지 절반은 증오한다. 그들은 ‘비켜들 나시오.’하고 외치면서 지나간다. 만약 그들이 진흙탕에 빠진 바퀴를 꺼내야 할 경우, 세 마리의 노새의 힘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욕지거리를 하면서 힘을 얻으려 한다.
선원들은 지독하고 예의가 없는 놈들이다. 배에서 사용하는 말밖에 모른다. 바다가 잔잔할 때에는 부지런하지만, 폭풍우 속에서는 게을러진다. 폭풍우가 닥치면 명령하는 놈은 많지만 복종하는 놈은 거의 없다. 그들을 구원해줄 신은 그들의 짐 궤짝과 양식이고, 승객들이 뱃멀미하는 것을 보는 것이 그들의 낙인 것이다.
마부들은 침대와 이혼하고 안장과 결혼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부지런하고 재빠르기 때문에 길은 잃어버리지 않지만 영혼은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들의 음악은 맷돌 소리이며, 양념은 배고픔이요.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건초를 주기 위한 것이요, 미사를 보면서는 어떤 말도 귀에 담지 않는다.”
대답이 끝날 때쯤 유리석사는 약국 입구에 서 있었다. 그는 약국 주인에게 말했다.
“당신은 건전한 직업을 가지고 계시군요. 등잔 기름을 쓰지만 않는다면요.”
“내가 등잔 기름과 무슨 관계가 있죠?”
“어떤 때 약용 기름이 부족하면 가까이에 있는 등유 기름으로 그것을 보충하죠. 그렇게 하면 세상에서 제아무리 훌륭한 의사라도 그 신용은 하루아침에 똥값이 되지요.”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의사가 처방해 준 것이 약국에 없더라도 그걸 숨기고 그와 비슷한 효능을 가진 약으로 조제하지요. 잘못 조제된 약은 제대로 만들어진 약과는 정반대의 효과를 낸다오.”
어느 사람이 의사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유리석사에게 물었다.
“의사를 존경하여라. 너를 돌봐주는 사람이요. 또한 주님께서 만드신 사람이기 때문이다. 병을 고치는 힘은 지극히 높으신 분으로부터 오며 의사는 왕으로부터 예물을 받는다. 의사는 그의 의술만으로 높은 지위를 얻으며 고관들로부터도 존경받는다. 주님께서 약초를 땅에 나게 하셨으니 지혜로운 사람은 그러한 것도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그의 대답은 계속되었다.
“이는 집회서에서 의술과 좋은 의사에 대해 말한 것인데 나쁜 의사들은 이와 정반대의 부류라고 보면 된다. 왜냐하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피해를 끼칠 수 있으며 그들만큼 나라에 해를 끼치는 사람들도 없기 때문이다. 재판관은 판결을 뒤집거나 지연시킬 수 있고 변호사는 자신의 이익 때문에 우리의 부당한 요구를 변호한다. 상인은 우리들의 재산을 갉아먹는다. 결국 우리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사람은 우리에게 어떤 해를 줄 수 있다. 그러나 누구도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우리의 목숨을 빼앗아갈 수는 없다.
단지 의사들만이 처방전만으로 우리를 두려움 없이 죽일 수 있다. 죽으면 바로 땅속으로 사람을 묻기 때문에 그들의 범행은 밝혀지지 않는다. 내가 지금과 같이 유리로 되지 않고, 육신을 가진 사람이었을 때, 어떤 사람이 처음에 진찰을 해준 의사를 고발한 적이 있다. 그 이유는 두 번째 진찰을 한 의사가 병을 고쳤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나흘째 되던 날, 천 번째 의사가 두 번째 의사가 처방을 맡긴 약국을 찾아와서는, 그가 예전에 돌봤던 환자는 어떤가 하고 약사에게 물었다. 그는 또 다른 의사가 설사약을 처방해주지 않았는가라고 물었다. 약사는 다음날 환자가 먹어야 하는 설사약 처방전이 있다고 대답했다.
그는 그것을 보여달라고 하여 처방전 끝에 다음과 같이 씌여진 것을 봤다. ‘새벽에 약을 복용할 것.’ 이를 보고 의사가 말했지. ‘엉덩이나 빨아라’라는 말만 없으면 참 좋았을 텐데. 왜냐하면 너무 질퍽하거든.”(스페인어로 ‘새벽에’라는 뜻을 가진 단어는 ‘엉덩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옮긴이)
유리석사는 그 외에도 모든 직업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많은 사람이 그의 뒤를 따라다녔다. 그러나 만약 그의 보호자가 그를 지키지 않는다면 소년들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또 질문을 던졌다.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잠을 자라. 잠을 잘 때는 모두가 평등하니까.”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 물었다.
“2년 전부터 구애를 하고 있는 여인과 데이트를 하고 싶은데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와 함께 말을 타고 떠나라. 도시 밖으로 나갈 때까지 동행하면 그녀와 함께 나가는 것이 될 터이니.”(스페인어로 ‘나가다’라는 동사는 ‘데이트하다’라는 뜻도 포함한다-옮긴이)
한번은 유리석사가 있던 곳 앞으로 판사가 지나갔다. 그는 형사 사건이 일어난 곳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많은 사람과 두 명의 경찰을 데리고 갔다. 유리석사는 판사를 보며 이야기했다.
“저 판사는 그의 권한으로 건드릴 수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기 위해 가슴속에는 살모사, 허리에는 소형 권총, 손에는 번갯불을 지니고 있다고 나는 확신할 수 있소. 한 번은 판사인 내 친구 하나가 범죄 사건을 맡았는데 범인이 저지른 죄질에 비해 상식을 넘는 가혹한 판결을 하여, 나는 그에게 왜 그렇게 잔인한 판결을 내렸는지 물었소.
그가 말하기를 범인이 상고를 하게 되면 상고심을 맡은 판사들이 범인이 저지른 죄에 합당한 판결을 내리면서 자비로움을 과시할 기회를 주기 위해 그랬다는 것이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편이 더 나았을 거라고 대답했소. 애초에 적당한 형을 내린다면 그를 올바르고 정확한 판사라 생각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오.”
많은 사람으로 둘러싸인 채 항상 유리석사의 말을 듣고 있던, 변호사 복장을 한 그의 친지가 한 사람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석사라고 불렀다. 그 사람이 말로만 석사일 뿐 대학교육을 받지 않은 가짜 석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유리석사는 이렇게 말했다.
“친구여, 당신의 학위증을 수사님들이 보지 못하게 하시오. 안 그러면 그걸 장물인 줄 알고 집어가 버릴 테니까.”
“우리 잘 좀 지냅시다. 유리석사님. 당신도 아시다시피 나는 높고 심오한 지식을 지닌 사람입니다.”
“당신은 학문의 탄탈로(아프리카 열대에 사는 긴 다리와 목을 가진 새의 일종-옮긴이)요. 높이는 올라갔으나 학문의 깊이에는 도달하지 못했구려.”
유리석사의 명쾌한 답변에 가짜 학사는 기가 죽었다.
하루는 어느 재단사의 가게에 당도하여 빈둥빈둥 놀고 있는 재단사를 봤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구원의 길에 계시는군요.”
“무슨 얘기입니까?”
“무슨 얘기냐구요? 당신이 할 일이 없다는 것은 곧 거짓말을 할 기회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거짓말을 못하는 재단사는 불행해지죠. 놀라운 점은 이 세상에 속임수를 쓰는 재단사는 수없이 많지만 정직하게 옷을 만드는 사람은 이 업종에서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거요.”
재단사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자 그는 구두 제조공에 대해서 말했다. 그의 생각에 구두 제조공은 나쁜 구두를 결코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만약 신발을 신은 사람에게 작아서 불편하다면 두 시간 동안 구두를 잡아당겨 샌들보다 더 넓게 하면 될 것이라고 말할 것이고, 만약 크게 보이면 통풍 때문에 그래야 한다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서기 일을 하는 재치 있는 청년이 끊임없이 질문을 하며 유리석사를 들볶았다. 청년은 종종 마을의 새로운 소식을 그에게 알려주었다.
유리석사는 어떤 문제이든 그가 질문하는 대로 대답해주었기 때문이다. 한 번은 그가 교수형을 선고받은 한 환전상이 감옥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유리석사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망나니에 의해 교수형에 처하기 전에 스스로 죽음을 서두른 것은 매우 잘한 일이지.”
성 프란시스코 거리에 제노아인들이 무리를 지어 있었다. 그쪽을 지날 때 그들 중 한 명이 유리석사를 불렀다.
“유리석사님, 이쪽으로 오세요. 저희들에게 얘기 좀 들려주세요.”
“싫소. 돈 계산만 하는 제노아인들은 상대하고 싶지 않으니까.”(그 당시 제노아인들은 스페인에서 대부분의 은행업을 장악하고 있었다. 계산이 빠른 제노아인들에 대한 작가의 은근한 야유가 담겨있다-옮긴이)
한번은 아주 못생긴 딸을 보석으로 야단스럽게 치장한 옷을 입혀서 데리고 가는 어느 가게 여주인과 마주쳤다. 유리석사는 그녀에게 말했다.
“산책할 수 있게 딸을 아주 잘 포장했군.”
유리석사는 또 케이크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그들이 죄의식을 느끼지 않은 채 속임수 놀이를 한 지 오래되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단지 그들의 의지와 마음에 따라서 4마라베디짜리를 2마라베디짜리로 만들고, 8마다베디짜리를 4마라베디짜리로 만들며, 반 레알짜리는 8마라베디짜리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스페인 1831년 2마라베디의 주화, 1847년 8마라베디의 주화
유리석사는 무대 뒤편에서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굉장히 나쁘게 말했다.
“그들은 역마살이 낀 자들이며 신성한 것을 천박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그 이유는 무대에 서는 인형을 움직여 신앙심을 웃음거리로 만들기도 하며, 심지어는 신·구약 성서에 나오는 모든 인물을 자루 속에 처박아 놓고는 그것을 깔고 앉아 주점이나 선술집에서 먹고 마시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라에서 왜 그들의 공연을 금지시키지 않고 추방하지 않는지 놀라울 뿐이다.”
한번은 왕자처럼 옷을 입은 코미디언이 있는 곳을 우연히 지나게 된 유리석사가 그를 보며 말했다.
“나는 저자가 얼굴에 가루를 뒤집어쓰고 안쪽이 양털로 된 옷을 입고 무대에 나오는 걸 본 적이 있는데, 극장 밖에만 나서면 줄곧 촌티 나는 시골 귀족 행세를 하며 다니는군.”
어떤 사람이 대답했다.
“그건 틀림없는 것 같아요. 가문 좋은 시골 귀족 출신의 코미디언들이 많으니까요.”
유리석사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사실이오. 그러나 소극에서는 아무 쓸모 없는 것이 바로 좋은 가문 출신의 사람들이오. 물론 점잖고 막힘없는 언변을 가진 신사들이 필요하지요. 또한 그들은 얼굴에 땀을 흘려가며 대사를 암기하면서 힘든 일을 해서 밥벌이를 하지요. 집시들의 흉내를 내며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주막에서 주막으로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밤을 지새웁니다. 왜냐하면 타인들의 즐거움에 그들의 행복이 있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줄곧 그들의 작품을 광장에서 만인에게 공개하여 공연하므로 어떤 사람도 속이지 않지요. 극단장의 업무는 믿기 어려운 만큼 많으며, 걱정은 항상 따라다니지요. 연말에 채권자들이 소송을 걸 만큼 빚을 지지 않기 위해 돈을 많이 벌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시 피어나는 꽃이나 가로수, 휴식처럼, 그들은 이 나라에 필요한 존재인 것이오.”
유리석사는 계속해서 자신의 한 친구 얘기를 소개했다. 그에 의하면 여배우 혼자서 왕비, 요정, 여신, 하녀, 목동 그리고 심지어는 시종과 마부 노릇까지 해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누군가 그에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그는 어린이들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아버지, 안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시고 오히려 철부지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께서 원하신 뜻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제게 맡겨주셨습니다. 아버지 밖에는 아들을 아는 이가 없고 아들과 또 그가 아버지를 계시하려고 택한 사람들밖에는 아버지를 아는 이가 없습니다.”(마태복음 11장 25~27절-옮긴이)
한번은 검술가에 대해 말했다.
“검술가들은 학문이나 기예의 스승이다. 그들은 적들의 돌발적인 행동이나 사고에 대해 한 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 정확한 몸놀림을 보여주어야 한다.”
유리석사는 수염을 염색한 자들에게 왠지 모를 적의를 갖고 있었다. 한 번은 그 앞에서 두 명의 남자가 싸우고 있었다. 한 명은 포르투갈인으로 그는 지나치게 염색한 까스띠야인의 수염을 붙들고 늘어지면서 말했다.
“네 놈 수염에 또다시 염삭을 해주마.”
옆에 있던 유리석사가 끼어들었다.
“여보시오, 염삭이 아니라 염색이오.”
한번은 한 사람이 염색을 잘못한 탓에 수염이 얼룩덜룩하자 유리석사는 그에게 쓰레기 하치장에서 자란 수염을 가졌다고 비꼬았다. 또 한 번은 어떤 사람이 수염을 제대로 다듬지 않아 반은 흰색이고 반은 검은색이 된 것을 보고 그에게 아무하고도 싸움에 말려들지 말라고 충고했다. 왜냐하면 상대방이 그에게 꼭 수염 색깔처럼 지조 없이 거짓말을 한다고 대들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유리석사의 이야기는 지칠 줄을 몰랐다.
“분별력이 있고 이해심 많은 한 여인이 부모님의 뜻에 따라 백발의 노인과 결혼을 하기로 했습니다. 약혼식 전날 밤 이 노인은 요르단강으로 목욕하러 가지 않고(할머니들이 말하듯), 아초산염이 들어 있는 기다란 유리병이 있는 곳으로 갔지요. 그는 아초산염으로 소금보다도 더 하얗던 수염을 석탄보다도 더 검은색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약혼식을 거행할 시간이 되었고, 노인이 수염을 염색한 것을 알게 된 여인이 부모에게 말하기를 다른 사람은 싫으니 전에 그녀에게 보여준 그 신랑감을 데려오라고 했지요. 그녀의 부모는 앞에 있는 사람이 바로 그들이 선보인 신랑감이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그것을 부인했고, 전에 보여준 신랑감은 장중하고 백발이 성성한 남자였다는 것을 증명해 줄 증인들을 데려왔습니다. 여인이 지금의 남자는 백발이 없으니 처음의 그 사람이 아니며 곧 이 결혼은 사기라고 주장했지요. 결국 염색 한 번 잘못한 탓에 그 혼사는 깨지고 말았지요.”
유리석사는 주막의 주모들에 대해서도 흰머리를 염색한 사람들과 똑같은 적대감을 갖고 있었다. 그녀들의 호들갑, 수의 같은 옷차림, 추근거림, 잔소리 그리고 가난뱅이 생활에 대해 늘어놓았다. 게다가 그녀들은 유리석사가 잘 먹지 않는 것에 대해 흉을 보고 현기증을 잘 일으키는 것, 그의 말투 그리고 그의 쓸모없음과 허황됨에 대해 쑥덕거려 그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한 사람이 나서서 그에게 말했다.
“유리석사님, 저는 당신이 많은 직업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은 하실 말씀이 많을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한 번도 법원 서기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이에 대해 유리석사는 대답했다.
“비록 내가 유리로 되었지만 속세의 흐름과 함께 가도록 나를 놔들 만큼 깨지기 쉽지는 않소. 내가 보기에는 험담가들에게는 문법서요, 음악가들에게는 악보 같은 존재가 바로 법원 서기들이오. 그 이유는 모든 학문이 문법을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고, 모든 음악가는 먼저 음을 흥얼거려야 하듯이 가시 같은 독설을 뱉어내는 욕쟁이들은 먼저 법원 서기, 경찰 그리고 치안관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곤 하지요. 이 중에 만약 법원 서기만 없다고 해도 핍박받고 쫓기는 신세에 놓인 진리가 이 세상에 가득 넘쳐날 것이오. 그래서 집회서에서도 이렇게 말하지 않소? 인간의 성공은 주님 손에 달렸으니 통치자의 영예는 곧 주님의 영광이다.(집회서 10장 5절-옮긴이)
법원 서기는 공인이며, 판사는 법원 서기 없이 편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없소. 법원 서기들은 자유로워야 하며 노예나 노예의 자식이 아니어야 합니다. 사생아나 어떤 천한 피가 섞이지 않은 적자여야 합니다. 친분이나 원한 관계, 이익 또는 손해에 따라 해동한다면 그들이 진실된 그리스도교의 양심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라 볼 수 없습니다.
만약 그들이 모든 것을 잘하고 있다면 왜 사람들이 스페인에 있는 2천 명 이상의 법원 서기들이 마치 포도원에서 포도를 훔쳐 가듯이 돈을 거두어간다고 생각하겠습니까? 나를 포함해서 어떤 누구도 그것을 믿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쨌든 간에 질서 있는 국가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죠. 만약 지나친 권리를 지닌다면 또한 많은 희생을 하는 것도 사실이지요. 따라서 극과 극 사이에서 중용을 택해 그들로 하여금 각자 임무를 적절히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지요.”
경찰에 대해서도 유리석사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경찰에 대해서 적의를 갖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누구를 체포하거나 재산을 빼앗거나 또는 누군가를 감시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니까요.”
그는 또한 검사들이나 변호사들의 나태와 무지를 비난했다. 그들을 의사들과 비교하면서 의사가 환자를 고치거나 못 고치거나 돈을 챙기듯이, 검사와 변호사들 역시 소송에 이기거나 지거나 돈을 버는 것은 똑같다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이 질문했다.
“어디가 가장 좋은 땅입니까?”
“감사히 여기는 땅이지.”
그 남자는 다시 물었다.
“그걸 물은 것이 아니라, 어디가 가장 좋은 고장입니까? 바야돌리드입니까, 아니면 마드리드입니까?”
“마드리드는 양극단이 좋고, 바야돌리드는 중간이 좋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마드리드는 하늘과 땅이 좋고, 바야돌리드는 소택지가 많다는 뜻이야.”
유리석사는 한 남자가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바야돌리드로 이사 온 어떤 부인이 병이 났는데 물이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유리석사가 끼어들었다.
“만약 질투가 많아서 병이 들었다면 차라리 대지에 먹혀버리는 것이 낳을지도 모르지.”(스페인어로 ‘물이 바뀌었다’라는 표현을 직역하면, ‘땅이 그 사람을 먹어버렸다’라는 뜻이 되므로 이를 이용한 말장난-옮긴이)
걸어 다니는 음악가들과 우체부들에 대해서는 제한된 희망과 운명을 가진 자들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우체부는 말을 타고 다녔으면 할 것이고, 음악가는 궁정의 악사가 되기를 기대할 테니까.
‘궁정 여인들’이라 불리는 여인들에 대해서는 모두 혹은 대개가 ‘건강’보다는 ‘예절’을 더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궁정 여인’이라는 스페인 어휘는 ‘예절’과 ‘건강’이라는 두 단어를 합성한 것인데, 이것을 재미있게 풍자함-옮긴이)
하루는 교회에 있을 때, 같은 시각에 노인을 땅에 묻고 아이에게 세례를 주며, 한 여인의 빈소가 차려진 것을 봤다. 유리석사는 교회를 전쟁터라고 말했다.
“늙은이는 죽어가고, 어린아이는 승리하고, 여인들은 개선을 하는구나.”
한번은 장수말벌이 그의 목을 찔렀다. 그는 자기 몸이 깨지지 않도록 그것을 흔들어 털지 않았지만 불평했다. 한 사람이 만약 몸이 유리로 되었다면, 장수말벌이 어떻게 느껴지느냐고 묻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장수말벌은 험담가임에 틀림없어, 험담가의 혀와 입은 유리가 아니라 청동으로 된 몸뚱이라도 허물어지게 만들 수 있으니까.”
그가 있는 곳으로 한 뚱뚱한 수도사가 지나갈 때 한 청중이 말했다.
“윤리적인 신부가 될 수는 없겠군.”(스페인어로 ‘윤리적인’ 것과 ‘깡마른’은 똑같이 발음되므로 이를 이용한 말장난-옮긴이)
유리석사는 화를 내며 말했다.
“그를 놀리지 마라. 누구든지 성령이 말씀하신 ‘너희들은 나의 성유를 받은 자들을 만지지 말 것이며 나의 예언자들에게 해를 끼치지 마라.’ 하는 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유리석사는 계속 열을 내며 말했다. 교회에서 최근 몇 년간 성인으로 추앙되었던 많은 성자 중 어느 누구도 아무개 장군이나 아무개 대신, 백작, 공작이라고 불리지 않았으며, 모두가 디에고 신부님, 하신또 신부님, 라이문도 신부님 등으로 불리었다. 모두가 성직자나 수도사였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종교는 하늘의 아랑후에스(마드리드 근교에 위치한 스페인 왕가의 여름 궁전으로서 아름답기로 유명하다-옮긴이)이며, 그 열매는 언제나 하느님의 식탁에 놓여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리석사는 험담가들의 말이 독수리의 깃털과 같다고 말했다. 그 주위에 모이는 다른 새들의 깃털까지 갉아내고 더럽힌다는 것이다.
도박장 주인과 도박꾼들에 대해서는 불가사의한 놈들이라고 말했다.
“도박장 주인은 칼만 안 들었지, 강도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판에 따라 들어오는 개평을 노리면서 누가 잃건 따건 간에 판수를 늘려 수입을 챙길 생각만 하기 때문이다.”
그는 밤새 노름을 하여 돈을 잃고 분개하면서도 상대방이 도망가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입을 열지 않고 있는 도박꾼의 인내심을 찬양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유리석사는 더불어 두 사람이 하는 카드나 백 점을 먼저 얻는 사람이 이기는 백점치기 등 간단한 도박 외에는 자기 집에서 그 어떤 도박도 허락하지 않는 정직한 도박장 주인의 양심을 칭찬했다. 그 도박장 주인은 비록 월말에 수입은 더 적게 나올지라도 일순간에 재산을 탕진하게 하는 악질적인 종류의 도박은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유리석사 또마스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다가오거나 만지려할 때 비명을 지르기도 하지만 이런저런 질문에 모두 답해주었다. 그가 스스로 유리로 생각한 후, 보인 여러 가지 생활 방식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미치광이라 생각했지만, 한편으로 그가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 중의 하나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유리석사의 병은 2년 정도 지속되었다. 그러던 중 벙어리들을 말하게 하고, 정신병자를 치료하는 등 특별한 지식과 은총을 가지고 있던 성 헤로니모의 수도사가 유리석사의 치료를 맡게 되었다. 수도사는 순진한 자비심에 의해 유리석사를 치료해 완치시켜 그의 이성, 이해력 그리고 사고를 되찾게 해주었다.
수도사는 그가 건강해지자 그에게 학자처럼 옷을 입혀 수도로 다시 돌아가게 했다. 수도는 그가 미쳤을 때 보여준 것처럼 제정신이 돌아온 것을 보여줌으로써 그의 직업을 이용하여 유명해질 수 있는 곳이었다.
그의 이름은 이제 로다하가 아닌 루에다 석사가 되었다. 수도 바야돌리드에 도착하자마자 청년들이 그를 알아봤다. 그러나 과거와는 너무 다른 복장을 한 그를 보자, 사람들은 감히 그에게 소리치거나 질문을 할 수가 없었다. 그를 따라다녔고 서로 수근거렸다.
“이 자가 바로 미친 유리석사 아닌가?”
“그자가 틀림없어. 제정신이 돌아온 모양이야.”
“하지만 잘 차려입은 미치광이일지도 몰라. 그에게 뭔가 물어보자구. 그래서 궁금증을 풀어보자구.”
유리석사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묵묵히 듣고 있었으나 정신이 나갔을 때보다 더 혼란스럽고 난처해짐을 느꼈다.
유리석사에 대한 소문은 금세 널리 퍼졌고 그가 궁정에 이르기도 전에 그의 뒤에는 2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석좌교수보다 많은 수행자를 거느린 그가 구정의 뜰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이 그를 둘러쌌다.
유리석사는 시람들을 둘러보며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여러분들, 나는 유리석사입니다. 그러나 옛날의 유리석사가 아니라 지금은 루에다 석사입니다. 하늘의 뜻인지 세상의 번잡한 사건과 불행들로 나는 정신을 잃었었지만, 하느님의 자비로 다시 제정신을 찾게 되었지요. 여러분들은 내가 미쳤을 때 말했던 것들을 제정신이 든 이후로도 말하고 행할 것임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실라망까에서 법학을 공부했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가난을 이겨내며 열심히 공부했고, 순수한 노력만으로 진정한 수석의 자리인 2등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만약 나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면 나는 죽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부디 하느님의 자비로 바라건대, 나를 따라다니되 치근덕거리지 말고 내가 미쳤을 때 이르렀던 현자의 경지를 제정신이 든 지금 상실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광장에서 여러분들이 내게 질문했던 것들을 이제는 내 집에서 하십시오. 지금까지 즉흥적으로 당신들에게 대답했던 것들을 다시금 깊이 생각하여 성의 있는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모두들 그의 말을 듣고 난 뒤 몇 사람은 자리를 떴다. 그를 하루 종일 쫓아다니던 사람들보다 다소 줄어든 동행자들과 함께 그는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도 나가 봤으나 똑같았다. 다른 설교를 했으나 별 소용이 없었다. 그는 많은 것을 잃고 돈도 벌지 못했다. 굶어 죽을 지경이 되자 그는 마침내 궁정을 포기하고 군인의 길을 가기 위해 플랑드르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왜냐하면 자신의 재능을 더 이상 발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궁정을 떠날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 위대한 도시여! 너는 청운의 꿈을 품은 대담한 자들의 가슴에 희망을 불어넣고 덕망 있는 소심한 자들을 의기소침하게 하더니, 후안무치한 사기꾼들은 배불리 먹여 살리고 겸손한 인격자들은 굶겨 죽이는구나.”
이 말을 남기고 그는 플랑드르로 떠났다. 학문으로 빛나기 시작했던 그의 삶은 좋은 친구였던 발디비아 대위와 함께 그곳에서 용맹스러운 무인으로서 불멸화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이 세상을 떠나면서 덕망과 용맹을 겸비한 군인의 명성을 남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