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먹어야 한다
바로 내 두눈 앞에서 동안의 남편은 건장하고 품위 있는 남자로 활짝 피어났다. 근사한 새 양복 맞춤을 입은 남편은 감탄을 자아낼 만큼 멋있었다. 머리카락은 부드럽게 빛났으며 어깨는 곧고 넓었다. 그리고 창백한 피부는 깔끔하게 면도되어 있었다. 남편은 늘 암시장에서만 살 수 있는 값비싼 양 담배 냄새를 풍겼다. 그는 가슴이 저릴 만큼 매력적이었다. 품위와 광채에 있어서 그를 따라올 사람이 아무도 없을 만큼.
하지만 남편은 점차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들을 시켜 남편과 함께 놀게 하는 등 그가 시간을 보낼 방법을 궁리하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아이들이 아무리 남편을 따라도 그의 내면의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는 듯했다.
남편은 마침내 거리를 쏘다니기 시작했고, 그러던 어느 날 창문에 화려한 등을 밝힌 기생집에 발을 들여놓고 말았다. 돈이 있는 남자는 이곳에서 이국적인 차와 술을 마시고, 도박에 빠지고, 시와 노래를 즐기고, 아름다운 여자들에 파묻혀 지낼 수 있었다. 각종 재능을 연마하고 달콤한 연변을 지닌 시생들은 남자들에게 여흥과 쾌락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그날부터 남편은 일주일에 한 번, 그러다 일주일에 세 번, 그리고는 이내 매일같이 ‘미화’라는 기생 집을 규칙적으로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소중한 돈을 물 쓰듯이 써 버렸다. 남편은 아 침상을 물리자마지 집을 나갔다가 어두워진 다음에야 다른 여자의 향수 냄새를 풍기며 비틀비틀 돌아왔다. 나는 계속 눈물을 삼켰다. 조강지처로서의 운명을 받아 들이는 것이 여자에게 주어진 의무였다.
‘여자란 모름지기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서 남편에게 훌륭한 아내임을 보여주어야 하는 법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불행을 조금도 내색해서는 안 된다.’
내가 첫째 부인이 무척 불행해 보이는 이유를 묻자, 어머니가 했던 말이었다.
나는 남편이 집을 나설 때마다 이 말을 가슴에 새겼다. 그가 항상 우리의 따뜻한 잠자리로 돌아와 내 옆에 누워 주니 나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려고 노력하며. 나는 순진하게도 나에 대한 남편의 사랑이 그 어떤 유혹도 견뎌 낼 힘을 줄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비참할 만큼의 착각이었다. 아이를 낳아 주고 돈을 벌어 주는 것도 아름다운 색욕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는 내 단조로운 외모를 기생과 비교하며 내 겉모습을 찬찬히 뜯어보곤 했다. 그리고 세련되지 못하고 평범한 것을 더 이상 참지 못했다. 나 스스로도 머리카락은 거칠고 윤기가 없는데다, 눈썹은 듬성듬성 나 있고, 입술은 시커먼 빛을 띠고, 손은 거칠고, 젖가슴은 축 처져있음을 잘 아는 터라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날 밤 쪽진 머리를 풀고 있을 때 갑자기 남편이 들어왔다. 그는 못마땅한 시선을 내 머리에 고정시킨 채 오랫동안 나를 응시했다.
"머리를 자르면 괜찮아 보일 텐데."
"저 한테는 이 머리가 잘 어울려요."
내가 반항의 기미를 내 비치며 답했다.
"쪽찐 머리를 잘라 내는게 새로운 유행이오."
"하지만 늘 이렇게 머리를 틀어 올리고 살았는걸요."
"지금은 새로운 시대야. 도시에 사는 신여성들은 모두 짧은 머리를 하고 있잖소. 그 사람들은 당신이 구식이라고 생각할걸."
"저는 당신만 섬기면 돼요. 왜 내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서까지는 신경을 써야 하죠?"
"그러면 그 원숭이 꼬리 같은 것을 자르지 않겠단 말이오?"
"저한테는 이 머리가 잘 어울려요."
나는 간단하게 말을 되풀이했다.
"그렇다면 그렇게 놔두구려. 또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요. 나는 최신 스타일로 머리를 짧게 자를 테니까."
남편이 딱 잘라 말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한국을 떠나오기 전 일본 제국의 통치권자가 남자들에게 머리를 자르도록 명령한 일이 있었다. 남편은 이를 거부하고 항의의 표시로 앞머리와 구레나룻을 길게 기르고 다녔다. 그런데 이제는 허영심에서 그 모든 것을 잘라 버리겠다니. 남편은 내가 비난하기를 기다렸다가 자신을 정당화할 생각이었다. 그에게 그런 만족감을 안겨 줄 수는 없었다.
남편은 입을 삐죽 내밀고는 집 밖으로 나갔다. 몇 시간 후에 돌아온 그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양옆과 뒤쪽의 머리카락은 바짝 잘려있었고, 앞머리는 새로운 방식으로 절반가량 내려와 있었다.
"나는 영원히 촌스로운 바보로 남고 싶진 않아!"
이렇게 소리치는 그의 아랫입술이 떨렸다. 얼마나 키가 크고 성숙해졌건 남편은 여전히 나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어린아이였다. 나는 고집스럽게 그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남편의 새로운 모습에 마음이 끌렸다. 그는 더 잘생겨 보였다.
그로부터 몇 주 후에 나 역시 머리를 잘랐다. 남편이 원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귀 바로 아래쪽에 칼을 들이대자 눈물이 흘러내렸고, 비닥에 떨어져 있는 긴 머리채를 보자 내가 한 짓이 후회스러웠다. 화를 자초한 것만 같았다.
기분이 좋아진 남편은 나를 전문 미용사에게 데려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 젊은 여자는 내 머리카락을 괴롭히고 못살게 굴며, 내 머리가 자신이 언젠가 본 서양 여자의 모습과 비슷할 거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내가 더 이상 나다워 보이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말이었다. 한쪽에 가르마를 타고 나머지는 귀 뒤로 빗어 넘긴 스타일이 내 머리 모양이 될터였다.
미용사는 금속 집게로 머리카락 끝을 둥글게 말아 올렸다. 그 집게에는 뚜껑이 달린 작은 구멍이 나 있어서 그 안에 들어 있는 뜨거운 석탄 조각이 머리카락을 뜨겁게 달구었다. 그 여자는 한시도 쉬지 않고 종알대면서 손놀림은 어찌나 느린지, 머리카락이 하나하나 떨어져 내렸다. 무심한 남편은 우리가 현대적인 부부가 된다는 사실에 너무 흥분한 나머지 내가 대머리가 되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오직 남편을 위해서 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가 집에 머물러 나만을 원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하지만 그것은 헛된 희망이었다. 아름다운 여자에 대한 그의 갈망은 점점 부풀어 오를 뿐이었다. 남편을 보는 시간이 점차 줄어들었다. 여기서 한 시간, 저기서 몇 분 하는 식으로. 그렇더니 하루는 밤새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러한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잠자리에 혼자 누워 소리 없이 분을 끓였다. 너무 화가 나서 잠도 오지 않았고 안에서 질투심이 솟구쳤다. 예쁘장하게 분 칠한 기생들의 얼굴을 긁어 놓고 그년들의 다리 사이를 모조리 꿰매 버리고 싶었다.
‘기품 있는 여자는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린다.’
어머니의 말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나는 ‘기품 있는’이라는 단어가 원망스러웠다. 남편의 사랑 없이는 아무 의미도, 가치도 없는 말이었다. 나는 아직 앞날이 구 만리 같은 젊은 여자였다. 그런데도 남편의 배신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니. 왜 나는 남편과 사랑에 빠질 만큼 어리석었던 것일까? 그가 뽀얀 피부에 나무랄 데 없이 빼어난 몸매를 한 축 복받은 누구인가를 둘째 부인으로 들여 앉히는 상상을 하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때 정신없이 마음을 휘젓고 지나가는 생각에 숨이 탁 막혔다. 남편이 영원히 안 돌아온다면? 상실의 고통이 가슴 부위를 아프도록 조여 댔고, 고통 때문에 눈앞이 흐릿해져서 두 눈을 감아야 했다. 어둠 속에서도 마음의 눈으로 남편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였다. 그를 잃게 된다고 생각하자 견딜 수 없었다. 차라리 둘 다 죽어 버리는 편이 나을 듯싶었다.
나는 방안을 서성거렸다. 방은 딴 때보다 눅눅하고 외풍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아이들을 보고 싶다는 충동에 휘말려 아이들 방으로 갔다. 그리고는 조심그럽게 무릎을 꿇고 자고 있는 아이들에게 가볍게 입을 맞춰 주었다.
나는 기진맥진해진 채 텅 빈 방으로 돌아왔다. 밤의 파수꾼이 괸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높이 솟아오른 달이 서서히 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날이 밝아오면서 남편이 나타나는 대로 공격할 태세를 갖춘, 낯설고도 강인한 생명력이 몸 안에서 단단히 또아리를 틀었다. 더 이상은 가만히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후가 될 때까지 마음을 굳게 먹고 일했다. 시간은 끝없이 길게만 느껴졌지만, 나는 한시도 쉬지 않았다.
그때 계단을 올라오는 남편의 느리고도 조심스러운 발소리가 들렸다. 안도가 되는 한편 미쳐 버릴 것만 같은 심정으로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인상을 있는 대로 쓴 나는 평소보다 더 끔찍해 보였으리라. 하지만 남편의 근사한 모습을 보자, 분노는 일시에 사그라들었다.
남편은 몸에 꼭 맞는 처음 보는 옷으로 정장을 하고 있었다. 밝은 갈색모로 된 맞춤 양복 같았다. 맞춤 바지와 저고리 그리고 조끼가 근사하게 어울렸고, 조끼 안에는 목까지 단추를 채운 빳빳한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이상한 줄이 칼라 밑을 지나 목 아랫부분에서 매듭처럼 묶여 있었다. 불편해 보이긴 했지만 이상하게도 그에게는 아주 잘 어울렸다.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그가 먼저 입을 열어 주기를 바랐지만, 남편은 아무런 설명도 사과도 하지 않았다. 남편의 시선이 내 얼굴 이곳저곳을 살폈다. 시간은 몇 분씩 끄는 그에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남편이 내 뺨을 어루만지려고 손을 뻗었을 때, 나는 그의 손을 잡아 한옆으로 치워 버렸다.
내 적대감에 의기소침해진 남편은 손가락으로 모리 모양을 가다듬은 다음, 주머니에 휴지로 싼 자그마한 꾸러미를 꺼냈다. 종이를 벗겨 내자 옥과 진주를 꽃 모양으로 깎은 귀걸이 한 쌍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시 한번 분노가 솟구쳐 올랐다. 나에게 상처를 준 만큼 나도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었다. 어떻게 그는 감히 그토록 싼값에 내 용서를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나는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걸 보니까 당신 생각이 납디다."
남편이 내 시선을 피하며 힘없이 말했다.
"딴 여자와 있을 때는 제발 내 생각은 하지 말아 주세요. 난 우리 집에 첩을 들이느니 차라리 목매달아 죽고 말 거예요. 특히 그 기생년들 말이에요."
내가 언성을 높였다.
그 자리에 선 채로 고개를 떨구는 남편이 무척 측은해 보였다.
"아내를 또 들이고 싶은 생각은 없소. 내가 진실로 원하는 사람은 당신 하나뿐이오. 당신만 한 여자가 또 어디 있겠소."
그가 대답했다.
남편을 영원토록 증오하고 싶은 만큼 또한 그를 용서하고 싶기도 했다. 그날 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나는 매일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고통스러운 심정을 어찌할 수 없었다. 나는 절망적인 심정으로 배신의 고통을 완화시켜 줄 도피처를 찾았다. 심지어는 강력한 연기를 내뿜는 마약을 생각해 보기도 했으나, 마약에 희생된 수많은 이들의 길고 메마른 얼굴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일단 중독된 뒤에 돈이 없으면 그들은 아내와 아이들까지 내다 팔았다. 계집아이라 할지라도 내가 낳은 자식을 팔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무렵 나는 중국 전역을 헤매고 다니는 남편의 애정을 집에 붙잡아 두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나는 슬며시 커다란 식당을 운영해 보자고 제안했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남자는 이 여자 저 여자에 대한 흥미를 쉽게 잃어버린다. 하지만 음식에 대한 흥미만큼은 그렇지 않은 법이다. 남자란 무언가를 끊임없이 먹어야 하니까’라고.
남편이 상을 찡그리는 것으로 보아 그는 일을 하기가 싫은 모양이었다.
"이제 우리의 지위에 걸맞은 일을 해야 하지 않겠소?"
"전 당신 때문에 이 일을 하기로 했어요. 이 일이 체면 깎이는 일이라고는 생각지 마세요, 여보. 가장 저명하고 힘있는 사람들이 우리 식당에서 즐기게 될 거예요. 모두가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명소가 될 거라구요. 이 도시에서 제일 큰 식당을 소유한 사람이니 당신 이름도 유명해질 거구요."
할 말이 없어진 남편은 여러 번 혀를 찼다.
"온순한 중국 여자랑 결혼할 걸 그랬어. 한국 여자들은 너무 고집이 세고 남편에게 순종적이지 않아."
우리 결혼을 후회하는 남편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남편은 말을 계속 했다.
"당신은 남자 같은 의지의 소유자요...... 게다가 여인의 현명함도 지니고 있고. 그 일을 하고 싶다면 하도록 해요."
남편의 경박한 웃음으로 미루어 나는 그의 허락과 신임을 얻었음을 알았다.
"고마워요, 여보."
남편이 자신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 식당을 열심히 운영하리란 것을 너무도 잘 아는 내가 가벼운 비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우리가 사는 붉은 이층 벽돌집이 안성맞춤이었다. 위층은 계속 살림집으로 쓰고, 아래층에는 커다란 둥근 탁자와 의자를 가득 들여놓았다. 공간은 충분했으므로 사생활을 지키고 싶어하는 손님들을 위해 칸막이를 한 십여 개의 별실과 연회장도 하나 마련했다.
모퉁이와 기둥마다 노란 종이를 바른 등불이 밝혀졌고, 문 위쪽에 내걸린 커다란 간판에는 중국어와 일본어, 그리고 한국어로 간단히 ‘식당’이라고만 썼다. 이곳에는 식사를 할 여유가 있는 사람은 모두 환영한다는 뜻으로. 문을 열자마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음식은 아침 9시에서 10시 무렵부터 제공되었고, 취객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후에만 문을 닫았다. 이튿날 아침 포도주를 너무 많이 마셔 큰 소리로 코를 골고 있는 전날의 손님을 발견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나는 모두의 미각을 만족시킬 특별 요리를 비롯해 매일 다양한 식단을 손수 짰다. 브로콜리나 굴 소스, 그리고 오리고기 같이 이곳 사람들에게는 낯선 색다른 요리와 음식에 향을 많이 포함시켜 넣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피단은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시커먼데다 썩은 냄새를 풍겼고, 바깥은 더럽고 안은 보랏빛으로 끈끈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피단을 많이 담갔다. 유명한 요리였으니까.
게다가 이곳 사람들은 돼지기름으로 튀긴 음식을 무척 좋아했다. 튀김 요리를 하기 위해 요리사는 재료를 버무려 쇠로 된 커다랗고 시커먼 중국 냄비에 넣고 저었다. 음식이 치익거리고 지글거리면 익는 동안 기름이 사방으로 튀었다. 하루에만도 엄청난 양의 기름이 소용되었다.
도살장으로 가서 씩씩거리며 콧김을 내뿜는 돼지를 손수 고르는 일은 내 차지였다. 우리 식당을 그토록 유명하게 만든 가장 중요한 재료를 다른 사람이 고르게 할 수는 없었다. 어느 한 부분도 버릴 곳이 없었으므로 나는 돼지의 발목과 코, 그리고 배와 엉덩이 부위를 찬찬히 살폈다. 눈알을 비롯 아무것에도 손을 대지 않은 통돼지가 고챙이에 끼워져 마지막 한 방울의 기름을 커다란 통에 쏟아 부었다. 그러고 나서 그 기름이 흘러내릴 때까지 뜨거운 석탄 위에서 구워졌다. 그러고 나서 그 기름을 커다란 통에 쏟아 부었다 그러면 돼지기름은 그곳에 서 굳어 라드가 되었다.
손님들은 몇 시간씩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은젓가락을 부딪치는 소리가 내 귀에는 파닥거리는 돈 소리로 들렸다. 내가 벌인 다른 일들처럼 이 사업도 빠른 시간 안에 번창해서 매주 중국인을 더 고용해야 했다. 하지만 좋은 일꾼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들의 직업관은 한국인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도어맨은 문을 여닫는 일을 했고, 백정은 돼지와 닭의 창자를 빼는 일만 했다. 이들에게 자기 일뿐 아니라 다른 사소한 일도 함께하라고 수없이 고함을 쳤지만, 이들은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들이 생기에 넘치는 유일한 순간은 덕화가 옆에 있을 때뿐이었다. 이들은 덕화가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 맣이 받는 제 아버지의 공주님임을 잘 알고 있었다. 도어맨이 덕화의 등장을 알리면, 이들은 환호하며 덕화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곤 했다. 심지어는 덕화가 입구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도 이 위대한 영웅의 도착을 기다리는 듯 일꾼들이 문 주위에 군데군데 모여있곤 했다.
이들의 요청에 따라 덕화는 다섯 번째 생일잔치를 식당에서 치뤘다. 그때까지 그 도시에서 벌어졌던 가장 생동감 넘치고 거대한 잔치였다. 방들은 꽃과 색색깔의 종이등불로 뒤덮이고 음시과 술은 모두에게 무료로 제공되었다. 덕화의 아버지는 장수를 상징하는 특별히 긴 국수를 만들도록 했다. 이 날의 파티에 대한 소문 은 먼 곳까지 빠르게 퍼져 나갔고, 오래지 않아 적대적인 사람들까지도 우리 식당의 단골 손님이 되었다. 검은 제복을 입은 일본의 고위 관리들이 정기적으로 우리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내가 아편 사업을 원활히 하기 위해 뿌린 돈을 착복한 이들이었다.
이들에게는 요구는 모든 것을 무상으로 제공했고, 그 대가로 우리는 공급부족으로 보통 사람들은 구하기 힘든 고기와 설탕, 그리고 쌀을 충분히 쌓아둘 수 있었다.
처음에는 남편도 나도 일본 놈들의 제복만 봐도 마음이 상했다. 하지만 이내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원하던 원치 않았던 우정을 키워 나가게 된 것이다. 먹고 마시고 농담을 하고 가족 이야기를 주고 받는 동안, 자연히 오랫동안의 적들과도 가까워지게 되었다. 우리가 고국을 떠나온 이유와 완전히 모순되는 우정이 아닐 수 없었다.
어렸을 때 우리는 일본인을 증오하도록 배웠다. 그들은 침략자이자 자학적인 문화의 겁탈자였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듯이 그들 또한 우리 민족을 증오한다고 배웠다. 그들에게 한국인은 뒤쳐지고 상스러운 민족이라고 예로부터 우리 민족이 공유해온 또 다른 감정은 중국인에 대한 혐오였으며, 중국인도 우리를 싫어했다. 인접한 세나라 사이에는 이토록 엄청난 증오가 자리하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는 이 세 국가가 한 나리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불현듯 그 말에 납득이 갔다. 가장 잔인한 형제들 사이에서 벌어진다. 비뚤어진 사람은 보다 심한 증오로 모습을 바꾸므로. 그리고 사랑보다 더 강력하고 파괴적이며 동시에 더 고통스러운 감정은 다시 없으므로.
식당 운영은 처음에는 내 목포를 만족시켜 주었다. 남편은 더 이상 방황하며 은거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손님들과 잘 어울리며 술을 마셨고, 식당 주인으로서의 생활에 한동안 만족해왔다. 화장을 짙게 한 여인들이 수상한 용건으로 감히 우리 식당의 커다란 창문을 지나다니기 전까지는.
여인들은 긴 속 눈썹을 팔딱거리고 날렵한 엉덩이를 흔들어 대며 느릿느릿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몸에 착 달라붙는 비단 원피스를 입은 그들의 가슴은 풍만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남편의 시선을 사로잡았음을 알고 있었다. 여인들이 지나가고 난 다음에도 그 향수 냄새는 오래동안 남아서, 모든 남자들의 음식과 식욕에 독약처럼 번지고 이들에게 또 다른 허기를 불러일으켰다.
나는 그 여인들이 나선 것은 뚱뚱하고 개기름 흐르는 사내들 때문에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원항는 것은 내 남편이었다. 남편이 식당을 나갈 때면 나의 그의 부재를 크게 느끼곤 했다.
남편이 호색한의 습관을 되찾아 가는 보고 있자니 몹시 괴로웠다. 단골손님과 지인들이 남편의 행방을 물어오기 시작했고, 나는 슬픔을 감추고 적당히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이 집안에 다른 부인을 들이게 하느니 기둥에 밧줄을 매달아 목을 매 버리고 말 테야.’
나는 이렇게 맹세했다. 어쨌든 나는 아내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는가. 아들을 둘이나 낳아 준 데다 남편의 주머니를 금으로 가득 채워 주었으니 말이다.
질투 때문에 피부가 들쑤시듯 아팠다. 고통을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나는 문밖으로 나갔다. 남편의 뒤를 밟은 적은 없었지만 기생집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던 터라 나는 달리고 또 달렸다. 맨 앞에 있는 건물에 도착해 보니 밖으로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잠시 밖에 서서 남편이 드나들 만한 곳인지를 따져 보았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곳이었으므로 그렇다는 결론을 내렸다.
들어가기 전에 나는 이 망신스러운 꼴을 누구에게 들킬까 봐 사방을 둘러보았다. 어두침침한데다 연기가 자욱해서 눈을 가늘게 떠야 했다. 천장이 높다란 거대한 홀이었다. 벽에는 벌거벗은 여인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흰색 비단 족자가 걸려 있었다. 중앙의 연단 위에서는 아름다운 여인이 네줄로 된 현악기를 뜯으며 소프라노 노래를 부르고, 그 옆에서는 다른 여인이 장단에 맞춰 드럼을 치고 있었다. 흐릿한 불빛이 이들의 비단같은 머리결과 진주처럼 매끈한 피부를 빛내주었다.
남편이 이토록 은밀한 악의 소굴로 다시 돌아온 것이 조금도 놀랍지 않았다. 이곳에 모여 있는 여인들은 막 피어오르기 시작한 꽃봉우리 같아서 식당에서 내놓을수 있는 그 어떤 술보다도 더 사람을 취하게 만들었다.
진한 향수 냄새 사이로 욕정의 냄새가 떠돌아다녔다. 각 별실에서 즐긴 후 계단을 내려오는 부유하고 뚱뚱한 사내들의 뻔뻔스러운 미소를 보자 구역질이 났다.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을 이곳에 쏟아 부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자 그들이 혐오스러웠다. 나는 남자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며 홀을 뒤지고 다녔다. 탁자 위에 조그마한 나무 주사위를 던지며 돈을 걸고 술을 퍼마시는 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애쓰며. 그때 갑자기 심장이 꽉 조여들었다.
칸막이가 되어 있는 한쪽 구석을 보니 남편이 조그만 2인용 탁자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있는 게 아닌가. 그는 고개를 뒤로 젖힌 체 동그란 담배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자유로운 한 손으로는 날씬하고 젊은 여자를 꼭 껴안은 채, 열일곱 살 이상은 안 돼 보였다. 하지만 그 여자는 조금이라도 더 성숙해 보이기 위해 화장 연필과 입술연지로 얼굴을 꼼꼼히 손질한 상태였다. 여자는 남편에게 손으로 부채질을 해주며 새빨간 입술로는 시를 읊어 댔다. 남편은 시구 하나하나를 취한 듯 듣고 있었다.
연꽃이 사랑하는 이에게 노래를 불러 주네.
걱정거리일랑 내려놓으시고.
피곤한 짐일랑 벗어버리세요.
우리는 영원히 변치 않고
꽃을 피울 거예요.
흙탕물 속에서라도.
완전히 정신이 나갔는지, 두 사람 다 앞에 서 있는 나를 보지 못했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몽상의 세계에서 남편을 끌어내기 위해 큰소리를 쳤다.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 남편과 나, 그리고 그 여자뿐 홀 안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내가 주먹을 움켜쥐는 그 순간 그 연기와 소음,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사라졌다. 나는 꽉 다문 이빨을 드러내며 잔뜩 인상을 썼다. 내가 팔을 휘둘러 그 여자를 주먹으로 정신없이 때리는 동안 남편은 뒷문으로 빠져나가 버렸다.
"저 사람을 잡아요! 도둑이에요, 도둑이라구요!"
이 거짓말쟁이 남편들이 상처받은 아내를 돕기보다는 도둑맞은 여자를 구해줄 것임을 너무도 잘 아는 내가 소리쳤다.
나는 곧바로 남편을 따라 뛰어나갔으나 그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격분한 나는 모든 다방과 도박장을 뒤지고 다녔다. 영업을 방해받지 않은 점포가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남편을 찾지 못한 나는 발을 질질 끌며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술을 마신 데다 걱정으로 얼굴이 새빨갛게 된 채 담요 밑에 쪼그리고 있었다. 나는 즉시 남편의 온몸에 주먹질을 퍼부었다. 점점 더 세게.
"더 이상 내 마음을 찢어 놓게 놔두지 않을 거예요!"
내가 씩씩거리며 말했다. 중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옛날에 남편을 때린 여자는 남편에게서 몽둥이로 그 백 배의 매를 맞아야 했다. 가슴이 이미 찢어질 대로 찢어진 나는 그런 말에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기적의 기술을 배우다.
중국에 있는 모든 금과 아편도 내 어린 시절의 병을 고쳐주지는 못했다. 악령들이 다시 나타나 나를 괴롭혔다.
숨을 쉬기가 점점 더 힘들어졌고, 내 내장이 썩는 냄새 말고는 아무 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 한약과 액막이도 소용없어지자, 나는 남편의 충고에 따라 최후의 수단으로 기독교 선교사들이 세운 서양식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서양 사람들은 칼로 사람의 몸을 쉽게 자르고 벌리지만, 살리는 사람보다 죽이는 사람이 더 많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나는 빛이 날 정도로 깨끗하고 하얀 벽과 조용하고 질서정연한 광경에 놀랐다. 내장을 열어젖힌 채 복도에 누워있는 시체는 단 한 구도 없었다.
이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중국인 간호사가 중국말로 나를 맞으며 어느 방으로 안내했다. 이미 여덟 명의 여자 환자가 간이 침대를 모두 차지하고 누워있었다. 나 때문에 침대를 하나 더 가져와야 할 형편이었다.
간호사는 나에게 옷을 남김없이 벗은 다음 면으로 된 얇은 가운을 입으라고 했다. 형태도 모양도 없는 옷이었다.
"이 옷 입으라구요?"
내가 중국어로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규칙이에요. 의사 선생님의 진찰을 받으려면 가운을 입어야 해요."
생면 부지의 사람들 앞에서 벌거벗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어마어마한 부와 권력을 가진 여자였다. 이 간호사는 그러한 사실을 모른단 말인가? 냉담한 태도로 미루어 보건대 모르고 있는 듯했다. 이 간호사에게는 내가 갑부가 아니라, 이 방의 다른 여인들과 다를바 없는 한 사람의 환자에 지나지 않았다.
"협조해 주시지 않으면 제가 강제로 입힐 수밖에요."
간호사가 약간 위협적인 어조로 말했다.
간호사에게 강제로 옷을 벗기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서 등을 돌리고 선 다음 옷을 벗었다. 뼛속까지 사무치게 부끄러웠다. 나는 그 간호사가 어떤 남자와 함께 돌아와 내가 탄 침대를 수술실로 끌고 갈 때까지, 시트를 망토처럼 어깨에 두른 채 간이침대의 모서리에 앉아있었다.
여태까지 본 중에 제일 키가 큰 서양 남자를 보자 입이 딱 벌어졌다. 병원의 문과 천장이 그토록 높은 이유가 비로소 납득이 갔다. 그의 머리칼은 남편처럼 짧았는데, 위쪽에는 그것마저 듬성듬성 나 있었다. 코끝 한가운데가 엉덩이 모양으로 쏙 들어간 것만 빼면 그의 길고 곧은 코는 내코 두 개를 한데 합쳐 빚어놓은 것 같았다. 우묵하게 들어간 눈망울은 무척 큰 데다 밝고 푸른 빛을 냈다.
그는 수박만큼이나 큰 손을 내게 내밀었다. 손도 얼굴처럼 분홍빛이었다. 나는 커다란 눈과 분홍빛 피부를 한 다른 사람들이 이 의식을 행하는 것을 보아온 터라,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내가 한 손을 내밀자, 그는 내 손을 잡고 재빨리 아래위로 세 번 흔들었다. 그의 힘센 손이 내 손을 삼켜 버린 것 같았다. 저렇게 무시무시하게 큰 손을 가지고 어떻게 의사가 될 수 있었는지 의아했다.
"겁내지 마세요. 당신을 도와주려는 것이니까요."
벌새라기보다는 까마귀의 단조로운 억양에 가까웠지만, 그가 이곳 사람들의 말을 너무 쉽게 하는 바람에 나는 북경관화를 입 밖에 꺼내기가 난처했다. 그는 앞으로의 계획을 열심히 늘어 놓았다.겁나게도 그는 내 코의 염증을 도려낼 생각이었다. 그는 그 염증 때문에 눈에서는 눈물이 나고 귀에서는 웅웅거리는 소리가 나게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미 여러 차례의 수술을 성공적으로 집도했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간호사가 나를 수술대 위에 눕힌 다음, 내 코 위에 천을 덮었다. 몇 분 만에 나는 편안한 잠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의식을 잃기 전에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것은, 최면에 걸리게 할 듯한 환한 빛이 내 얼굴을 비추던 것과 날카로운 도구들이 부딪치며 내는 금속성 소음이었다.
깨어나 보니 놀랍게도 한나절이 다 지나 있었고, 나는 다른 방으로 옮겨져 있었다. 얼굴에는 붕대가 잔뜩 감겨 있었지만, 미간에 가벼운 압박감뿐 다른 통증은 없었다. 나는 나중에야 의사가 내 윗입술을 자르고 코 위로 얼굴 가죽을 벗겨 낸 다음, 염증 부위를 긁어냈음을 알았다. 그러고 나니 윗입술과 잇몸 사이가 꿰매져 있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혀가 어쩌다 실밥에 가 닿을 때마다 구역질이 났다. 한 달 후에 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붕대를 풀기 위해 다시 병원으로 갔다.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의사가 내 콧대를 없애 납작하게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남편의 마음이 완전히 돌아설까 두려워 집으로 가기가 망설여졌다. 얼굴 한가운데 있어 눈에 이렇게 잘 뜨이는 것을 어떻게 감춘단 말인가?
나는 용기를 내서 집으로 갔다. 남편의 반응을 상상만 해보아도 담요 밑으로 숨고 싶었다. 하지만 용기를 잃기 전에 바로 남편에게로 갔다.
그가 나를 찬찬히 살피더니 아프지 않냐고 물었다.
"아뇨. 통증은 문제가 안 돼요. 이제 완전히 추한 여자가 될까 봐 그게 두려울 뿐이에요."
내가 모기만 한 소리로 우물거리며 말했다. 속눈썹 사이로 눈물이 번져 나왔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눈 주위의 상처는 곧 나을 거고, 그러고 나면 본래의 당신 모습으로 돌아가게 될 거요."
그가 재빨리 내 불안감을 누그러뜨려 주었다.
수술을 하고 나자, 서양 의사의 말대로 콧물은 더 이상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한국의 음식을 푸짐하게 준비해 가족과 함께 성대한 축하연을 벌이기로 했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의 독특한 방식대로 갖가지 양념을 섞고 추가하면서 모든 음식을 손수 마련했다. 이내 온 가족이 먹을 충분하고도 맛 좋은 음식이 준비되었다. 나는 모두가 감탄하며 식탁 주변으로 모여드는 모습을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한 사람 한 사람 수저를 들고 오징어채, 갈비구이, 소꼬리찜, 두부볶음, 고사리, 그리고 나박김치를 열심히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더니 하나하나 얼굴을 찡그리며 음식을 뱉어내는 것이 아닌가.
"뭐가 잘못됐나요?"
내가 언짢은 표정으로 물었다.
남편은 기침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너무 짜, 모든 게 너무 짜다구."
"어떻게 된 거죠? 양념은 내가 직접 넣었는데."
당황한 내가 물었다.
나는 그때 수술로 후각이 마비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날 이후로 모든 음식의 맛이 밋밋하게 느껴졌다.
나는 건강한 삶을 위해 최후의 희망으로 선택했던 서양 의술에 의한 치료에 실패했다. 수술로 후각만 잃은것이 아니라, 건강도 점차 악화되어갔다. 겉은 멀쩡해 보였지만, 속은 급속도로 악화되어 일찍 죽는 것밖에 별도리가 없는 듯했다. 게다가 실망스럽게도 매일 아침 변기에서 또다시 피와 꿈틀거리는 기생충까지 보게 되었다. 그 기생충들 때문에 위가 부풀어 오르는 게 틀림없었다.
나는 완전한 절망 상태에서 다시 그 서양 의사를 찾아갔고, 임신이라는 진단은 받았다.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아기를 내 몸에서 키울 만큼 건강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리고 내 생각이 옳았다. 아기는 겨우 석 달 만에 바깥세상으로 나왔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충분치 않았는지 또 아기가 생겼고, 이전처럼 아기는 스스로 자궁에서 미끄러져 나와 요강 속으로 떨어져 들어갔다. 아기 둘을 더 잃은 것이었다. 나는 소리 없이 흐느꼈다. 남편은 여전히 또 씨를 뿌렸다. 나는 그 조그만 아기가 내 자궁의 안쪽벽에 잘 붙어 있는지 하루도 빠짐없이 걱정했다.
"조금만 더 안에 있어라. 네 생명을 위해 싸워야 한다. 가족들이 열렬히 환영해 줄 테니. 꼭 붙들어라. 꼭 붙들어. 꼭......."
나는 아기를 살살 달랬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었는지 아기는 뱃속에 꼭 붙어 있다가 필요한 기간을 모두 채우고 안전하게 세상에 태어났다.
‘좋음( )’을 뜻하는 한자는 왼쪽의 여자와 오른쪽의 아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제 아들을 셋이나 둔 나는 이 아기에게 건삼, 즉 건강한 셋째 하는 이름을 지어 주기로 했다, 나는 아기에게 젖을 먹일 유모를 고용했다. 뺨이 분홍색인데다가 가슴이 풍만했기 때문에 그 중국 여인을 고른 것이었다. 나는 유모의 두 아들이 부러웠다. 지저분했지만 적당히 통통하고 혈색도 무척 좋아 보였다.
"내 아기가 배고파할 때는 언제든지 유모 아이들보다 먼저 먹여 주었으면 좋겠어."
내가 분명히 말했다.
"우리 애들이 울더라도 언제나 마님 아기 먼저 젖을 먹이겠어요."
유모가 한국말로 날 안심시켜 주었다.
유모가 나를 흡족하게 해주려고 열심히 노력한 탓에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내 아기가 유모의 젖꼭지를 빨고 유모의 품 안에서 자는 걸 알면서도 질투심이 생기지 않는 게 놀라웠다. 나는 아기를 한동안 유모에게 맡겼다가 젖을 떼고 난 다음에는 내 젖가슴을 갖고 놀게 할 생각이었다.
나는 유모가 자발적으로 자신의 말을 지킬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돈을 주었다. 가느다란 유모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어떤 유모가 받을 수 있는 것보다 후한 금액이었지만, 그녀의 젖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아기가 튼튼하고 건강하게 자려면 다시 후사하리다."
내가 약속했다.
하지만 남편은 불만이었다.
"아기에게는 제 엄마의 젖을 먹이는 게 더 낫지 않겠소?"
그가 낙담해서 말했다.
"건삼이가 목숨을 부지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서요."
나는 숨을 몰아쉰 다음, 무척 힘들게 말을 이었다.
"건일이가 저렇게 몸이 약한 건 내 젖을 먹었기 때문이라구요. 내 몸속에 있는 병을 모조리 빨아먹었으니까요. 난 저 애가 저렇게까지 고통스러워하는 걸 차마 볼 수가 없어요. 내가 그렇게 한 것을 날이면 날마다 후회한다구요."
어머니로서 인정하기 힘든 일이긴 했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둘째 아들은 실하게 자라지 못하고 허약했다. 자그마한 두 손과 발에 피가 몰려 부풀어 오르면 피부는 짙은 자줏빛이 되었고, 그럴 때면 몸 전체가 아팠다. 살이 너무 차갑기 때문에 몇 시간이고 계속 울어 대는 가엾은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는 것은 너무도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아이를 비단 담요로 겹겹이 싸서 집안에서 제일 따뜻한 곳에 뉘어 주는 일뿐이었다.
"당신이 좋을 대로 하구려."
남편이 동의해 주었다.
그 중국 여인은 자신의 약속을 모두 지켰다. 건삼이는 내가 낳은 아이들 중에서 제일 튼튼하고 건강했다. 넓은 짐에서 우로를 두고 있으니 편했다. 하지만 유모에게는 좀 알 수 없는 구석이 있었다. 계단 쪽으로 귀를 쫑긋 세우고 있으면 종종 한동안 무언가를 치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도대체 뭘 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알아보러 이층으로 올라가기만 하면 그 박수 소리는 멈추었다. 처음에는 내 아들을 때리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아기의 몸을 빈틈없이 살펴보았다. 하지만 학대를 한 흔적은 없었다. 무언가를 치는 그 소리는 점차 집안의 다른 소리들에 묻혀갔고, 나는 그 일을 완전히 잊고 말았다.
누런 흙먼지와 시커먼 연기를 일으키는 먹구름이 바람과 함께 몰려와 집안의 모든 틈과 열린 문 사이로 휘몰아쳐 들어오던 캄캄한 어느 날 아침, 나는 그만 넘어졌고 여태까지 겪어본 중에서 가장 심한 고통으로 쩔쩔맸다.
"용운이 아버지를 모시고 오게. 그 서양 병원에 가 봐야겠으니."
내가 숨이 차서 헐떡거리며 말했다.
"제가 낫게 해드릴게요."
유모가 나섰다.
"어리석은 소리. 난 자네 젖을 먹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네."
"제 젖으로가 아니라 두 손으로 마님을 고쳐 드릴게요."
"자네 손으로 나를 고친다구? 자네는 평범한 농부의 아내가 아닌가?"
"맞습니다. 우리는 평범한 농부예요. 하지만 남자와 여자 모두가 다 장수하지요. 올해 시할아버님께서 여든아홉 번째 생신을 맞으세요."
"나는 그렇게까지 늙고 허약한 몸으로 오래 살고 싶지 않네."
"하지만 자제분들이 혼인을 하고 손주가 태어나는 것을 볼 만큼은 오래 살고 싶으시겠죠, 그렇지 않나요?"
나는 통증으로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이렇게 말했다.
"내 머리 위에서 칼을 돌리며 부처님을 부르거나, 아니면 그 칼로 내 몸을 베려고 그러지?"
"둘 다 아니에요. 두 손만 있으면 된다는 제 말을 믿으세요."
"난 우리 가족뿐 아무도 믿지 않아. 왜냐하면 난 엄청난 부자니까....... 하지만 한번 날 치료해 보게. 자네 말이 틀리면 그에 해당하는 응분의 결과가 있을걸세."
유모는 재빨리 자리를 마련한 다음 나를 앞에 눕혔다, 몇 분간 실랑이를 벌이다가 나는 저고리와 치마의 끈을 풀고 유모가 시키는 대로 옷을 가슴 부위까지 끌어올렸다.
유모는 내 생각대로 박수를 치는게 아니라, 대신 내 아랫배 부위의 피부를 손바닥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속도가 빨라지고 힘이 실릴수록 다친 부위에 와 닿는 유로의 손바닥도 더 뜨겁게 느껴졌다. 겁도 나고 아프기도 했지만 유모는 다른 한 손과 두 다리로 나를 꼼짝 못 하게 내리눌렀다. 그녀는 손에 어떤 신비한 힘 같은 것이 생겨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더 힘을 주어 가며 계속 내 몸을 세게 내리쳤다.
나는 꼬박 두 시간 동안 그러한 고문을 견뎌 냈다. 마침내 유모가 나를 놓아주었을 때는 얼얼한 뿐 더 이상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말문이 막혔다. 배 위에는 검푸른 자국이 띠 모양으로 새겨져 있었다. 나에게 이런 짓을 하다니, 유모를 호되게 꾸짖어 쫓아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내 기분을 알아챈 유모가 먼저 자취를 감추었다. 나는 매일 유모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몽둥이로 유모를 때려 줄 작정이었다. 사흘째 되던 날에는 통증이 말끔히 가셨고, 남편조차 내가 아침에 잠자리에서 너무 쉽게 일어난다고 말할 정도였다.
"용운이 엄마, 다시 한번 수술을 받느니 유모의 방식대로 해보는 게 어떻겠소? 다음번 수술에는 운이 좋지 않을 수도 있고 말이야. 만일 당신이 죽으면 아이들과 나는 어떻게 하란 말이요?"
남편의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며칠을 더 망설인 후에야 유모의 남편이 일하는 밭으로 사람을 보냈다. 그곳에서 유모가 남편과 나란히 밭을 갈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았다.
"자네가 손으로 하는 그걸 뭐라고 부르는가?"
여전히 화가 나서 이를 악문 채 내가 날카로운 어조로 물었다.
"치료예요."
"그렇다면 자네의 그 치료는 어떤 작용을 하는 거지?"
"마님의 서양 의사한테 갔을 때 그 의사는 문제 부위는 도려냈지만 원인을 치료하지는 못했어요. 저는 항상 지압으로 원인을 치료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아 왔어요. 그리고 그 원인은 바로 피의 순환에 있다는 가르침두요. 서양 의학은 환자로 하여금 다 나았다고 믿게 함으로써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켜요."
나는 유모가 계속해서 정맥을 휘도는 피에 대해 말하는 것을 주의 깊게 들었다.
"피는 생명의 양식이에요. 물처럼 막힘 없이 흘러야 하는 것이죠. 피가 더러워지거나 탁해지면 혈액 순환이 느려지고 그러다가 결국에는 꽉 막히고 말아요. 그 결과 나쁜 피가 표면으로 올라와서 멍이 되죠. 그렇게 되고 나면 피가 깨끗해져서 온몸을 더 쉽게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자네는 피가 원인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피가 몸 전체를 돌아다니니까 온몸을 빈틈없이 때려야 한단 말인가?"
"그럴 필요는 없어요. 심장으로 모든 피가 지나니까요. 심장은 하늘이 주신 여과 장치고, 치료는 그 여과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장애물을 없애는 데 도움을 주죠. 그게 바로 심장과 목 주변이 치료에 반드시 포함되는 이유예요."
몇 가지 신비한 이유로, 나는 마침내 유모의 이상한 치료 방법을 신뢰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유모가 내 심장 주위의 비만해진 살을 때리는 동안, 아무 말 없이 고통을 견디어 냈다. 유모는 검지와 중지로 살을 꼬집어 양쪽 젖꼭지 끝에서부터 부채 모양으로 펼쳐지는 붉고 긴 자국을 냈다. 그리고 목 주위에는 아래턱 끝에서부터 쇄골 아랫부분으로 낯선 목걸이 모양을 그리며 이어지는 평행선이 생겨났다.
유모는 해가 지자마자 치료를 멈추었다. 온 집안의 사람들이 밤의 휴식에 들어가야 할 때였다. 부풀어 오른 유모의 두 손이 가늘게 떨렸다. 나는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밤에 잘 쉬어 두라고 말했다. 유모는 건삼이에게 젖을 먹일 때 말고는 여러 주일 동안 열심히 나를 치료해 주었다.
이렇게 집중적인 치료를 맡은 지 한 달 만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더 강인해지고 키도 더 커진 듯한 느낌이 들었을 뿐 아니라, 계속되는 통증으로 웅크리고 있는 일도 없어졌다. 기생충 때문에 열이 오르고 타 붙는 듯한 느낌도 완전히 사라졌다. 건강의 샘물을 막 찾아낸 듯했다. 전에는 내 몸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곤 쾌락의 물결과 출산의 후유증뿐이었다. 이제는 유모의 치료법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다.
"날 좀 가르쳐 주게."
내가 부탁했다.
"가르쳐 드릴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두 손으로 시작하시면 돼요."
나는 유모의 간단한 충고대로 심장과 목 주변을 중심으로 이곳을 때리고 저곳을 꼬집으며 나 자신에 대한 치료를 시작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몸의 다른 부위에도 시도해 보기 시작했다. 마치 기적처럼 내가 주무를 모든 부위의 피부가 더 단단해지고 활기를 띠며 탄력이 생기고 젊어졌다.
나는 이러한 발견을 가족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내 첫 번째 환자였던 남편은 큰 소리로 욕을 퍼부으며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이들은 내 힘센 손 밑에서 비명을 지르며 발길질을 해댔다. 남편이 아이들만큼도 못 참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랬으면 내 일이 한결 쉬워졌을 터인데.
그 끔찍했던 8년을 버틴 막냇동생
8년 동안 끔찍한 결혼 생활을 한 막내 여동생은 어린 아들과 두 딸을 데리고 사기와 도둑질을 일삼는 남편의 집을 나왔다. 동생이 보잘것없는 소지품을 가방에 챙겨 넣는 동안, 시어머니는 말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아무런 애정도 유대 관계도 없었기 때문에 잡고 싶지도 않았던 것이다.
동생이 우리 집 현관에 나타난 날 아침, 식당에서는 큰 소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요리사가 사용하는 커다란 중국 냄비에서 거대한 불꽃이 너울거렸고, 당황한 직원들은 실성한 듯 뛰어다녔다. 이러한 혼란의 와중에서 나는 막냇동생과 어린 세 조카들과 맞닥뜨렸다.
동생은 남자 같은 내 머리와 몸에 딱 붙는 중국 의상, 그리고 반짝이는 금귀걸이를 보고 놀랐다. 쉬저우에서의 세월이 우리를 바꾸어 놓은 것이었다. 우리는 조금씩 중국인이 되어 갔다. 심지어는 밥을 먹을 때도 밥공기를 들어 입에 대고 중국 사람처럼 먹었다. 말만 하지 않고 있으면, 쉽게 중국인 취급을 받을 정도였다.
"언니 맞아?"
"그럼."
나는 동생을 안심시킨 다음, "내 남편은 어디 있이?" 하고 물었다. 동생의 남편이 이 정신없는 상황에 휩쓸려 들어간 것은 아닌지 둘러보며.
"그 인간을 떠나왔어."
동생이 차분하게 말했다.
"그건 네가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니야."
"난 그런 놈 필요 없어."
동생은 입에 더러운 맛이라도 남는 듯 노여움에 겨워 쉽게 이 말을 내뱉었다.
나는 놀라서 머리가 어찔했다. 이런 창피스러운 이야기를 누가 들은 것은 아닐까?
"남편의 집을 나온 여자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법이야.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남편에게로 돌아가야지."
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싫어. 그놈한테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
"정말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남편이 없는 여자는 아무런 권리도 없는 부랑자 신세가 되는거야. 여자는 남편과 아들을 통해서만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거라구."
"난 그 끔찍한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테야."
동생이 턱을 높이 쳐들었다.
동생이 무척 가엾었다. 불구인 동생도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데, 막냇동생은 그렇지 못하다니. 동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동생 남편이 기생이나 도박에 탐닉한 것 이상으로 나쁜 짓을 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정 그렇다면 그렇게 해라. 네 마음이 돌아설 것 같지 않구나. 우리와 함께 여기서 지내도록 하자꾸나."
"언니나 언니 가족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는 않아. 아이들과 내가 살 만한 곳을 찾아볼 테야."
"짐이라니!"
나는 모욕당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 가족은 어마어마한 부자야. 우리 식당과 내가 하고 있는 이 보석이 안 보이니? 우리는 우리 가족과 너희 식구들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도 충분히 먹여 살릴 수 있다구."
"난 내 힘으로 살고 싶어. 일자리를 구해서 내 아이들을 직접 부양할 테야. 그래야만 자유로울 수 있어."
"자유, 자유! 자유가 아이들한테 밥을 먹여 주니? 어떻게 아이들을 먹여 살리려고 그래?"
"옷을 만들어서 이익을 조금만 남기고 팔 테야."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우리 모두에게 강제로 바느질하는 법을 가르쳤고, 우리 모두, 특이 막냇동생은 바느질하기를 몹시 싫어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무슨 일이든, 심지어는 바느질까지도 기꺼이 하겠다니.
"그렇다면 가게는 내가 차려 줄게. 반드시 그래야 해."
결국 동생은 도움을 받는 데 동의했다. 막냇동생에게는 나와 불구 동생의 피에 흐르는 것과 똑같은, 완고할 만큼의 오만함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 애가 그렇게 하는 게 무척 힘든 일임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아들 같은 당당한 자존심을 심어 주는 아버지를 못마땅해했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점이야말로 동생으로 하여금 자신의 인생을 다시 설계하는 탄성을 부여해 준 힘이었다.
나는 동생을 가까운 곳에 두려고 길 아래쪽에 방 두 개짜리 집을 한 채 샀다. 그리고는 동생에게 재봉틀과 많은 양의 옷감을 사 주고, 식당과 아편 사업을 하면서 알게 된 친구들을 손님으로 소개시켜 주었다.
동생의 바느질 솜씨는 내놓고 자랑할 정도는 못 되었지만, 그 애가 직접 만든 솜을 댄 겨울 비단 외투는 꽤 인기를 끌었다. 밑단이 바닥을 스칠 만큼 긴 것 말고는 예로부터 소매가 둥근 한국의 저고리 모양을 본뜬 외투였다. 동생은 보온효과를 높이기 위해 우리 식당 바닥에서 쓸어 간 닭과 거위의 털로 외투에 줄을 두르는 총명함을 보였다.
매주 동생은 점점 더 많은 깃털 자루를 회수해 갔다. 나는 동생의 주문량이 늘어나고 그 애의 정신 건강이 회복되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운 고국으로 돌아오다
제 아이에게 먹일 닭 한 마리를 훔친 대가로 목이 잘린 여인을 목격한 날, 나는 정의가 불완전하며 때로는 부당할 수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에요! 오늘이 바로 그날이라구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소식이 퍼져 나갔다. 인근에 사는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흥분한 채 신경을 곤두세었고, 시내에 사는 이들과 마을 사람들은 소란스러운 이유를 직접 알아보러 몰려나왔다. 막냇동생도 열에 들떴다. 동생은 아들을 등에 업고 두 딸은 양손에 하나씩 잡은 채로 나를 데리러 왔다.
"빨리 나와, 언니 오늘이 바로 그 참수형이 있는 날이잖아!"
내가 그 소식을 모르고 있는 줄 아는지 동생이 마구 소리를 질러 댔다.
"할 일이 너무 많아."
나는 거짓말을 했다.
"시간은 얼마 안 걸릴 거야. 빨리 가야 돼. 안 그러면 못 본다구."
호기심에 떠밀린 나는 동생을 따라 시내 한복판으로 갔다. 이른 아침 햇살을 받으며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와 기다리고 있었고, 무슨 큰 잔치라도 난 듯 아이들까지 데리고 나온 부모도 있었다. 어린 사내아이들은 잘 알지 못하는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를 기다리며 부모에게 단단히 매달려 있었다. 우는 아기를 달래는 부모도 있었다.
어쩌다 보니 나는 앞줄에 서 있었다. 손목을 등 뒤에서 삼베 끈으로 묶인 채 무릎을 꿇고 앉은 다섯 남자가 보였다. 남자들 앞쪽으로 방금 판 무덤이 있었고, 그 양쪽으로는 옆구리에 긴 칼을 찬 일본 헌병이 서 있었다. 헌병 우두머리는 높다란 흰 말 위에 앉아있었고, 십대로 보이는 젊은 청년이 말고삐를 꼭 쥐고 있었다. 그 청년도 다른 사람들처럼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태도로 미루어 보아 우리 민족임을 알 수 있었다. 이 청년 같은 한국인들은 일본 사람보다 더 잔인했다. 그들은 조국을 보리고 일본에 헌신했으며, 우리 민족에게 등을 돌리고 일본 헌병들보다 더 광적으로 독립운동가들을 추적했다.
"저들을 처형하여 천황폐하께 반역한 죄의 대가가 어떤 것인지를 여러분에게 경고하자 한다‥‥‥."
우두머리가 선포했다. 처형될 이들의 어머니와 아내가 아들과 남편이 있는 앞으로 달려 나가 그들의 이름을 울부짖으며 발치에 쓰러졌다. 헌병이 달려가 그 여인들을 일으켜서는 군중 쪽으로 거칠게 떠밀었다.
모두가 우리 민족이었으므로 아느 얼굴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처음에는 매 맞아 부풀어 오른 얼굴 때문에 모두가 똑같아 보였으나, 한 사람 한 사람 살펴나가다 보니 놀랍게 도 여자가 한 명 섞여 있었다. 남장을 한 데다 숱한 멍 자국과 칼자국으로 감추어져 있었지만, 그 여인은 대담한 태도로 오히려 다른 남자들보다 더 시선을 끌었다.
도대체 무슨 죽을 죄를 진 여자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한 순간, 우두머리가 그들의 죄목을 공표했다. 메마른 그의 음성이 혐오스러웠다.
"죄인‥‥‥반역죄‥‥독립운동가‥‥‥따라서‥‥‥사형을 선고한다‥‥‥법에 따라‥‥‥대일본제국‥‥‥천황 폐하의 이름으로‥‥‥죄인‥‥‥절도‥‥‥."
지나치게 공식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통에 그의 말을 다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저 극악무도한 인간이 거짓말을 하고 있군 그래."
어떤 구경꾼이 옆 사람에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저 여자는 독립운동가가 아니야. 제 아이에게 먹일 닭 한 마리를 훔친 죄밖에 없는걸. 안 그럴 어머니가 어디 있겠어?"
머리에 검은 두건을 뒤집어쓴 건장한 사내가 앞으로 걸어 나왔고, 그의 긴 칼이 번쩍 빛을 냈다. 사내가 병째로 술을 들이키는 동안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허리에 찬 칼집에서 칼을 뽑아 그 위에 침을 뱉는 순간, 내 가슴은 두 방망이질을 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죄수의 이름이 불려졌고,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 사람이 무릎으로 기어 앞으로 나왔다. 사형집행인이 눈가리개를 내밀었지만 그는 그것을 거부했고 침착하고 품위 있는 태도를 유지했다. 은밀하게 기도문을 읊느라 입술을 달싹이는 그의 얼굴 위로 칼 그림자가 너울거렸다. 하지만 기도를 채 끝내기도 전에 긴 칼이 그 사람을 내리쳤다. 두건을 쓴 사형집행인은 어떤 광기도 주저함도 없이 남자의 머리를 내리쳐 그의 젊은 생명을 끝내 버리고 말았다. 그의 머리통은 한 번, 두 번, 세 번 구른 다음 구덩이 안으로 굴러떨어졌다. 군중에게 피가 튀면서 거대한 소요가 일었다.
남자들의 머리가 하나하나 떨어져 내리고 그 여인의 차례가 되었다. 여인도 똑같은 자세로 기어 나왔다. 마지막으로 사형집행인을 싸늘하게 바라보는 여인의 두 눈에만 일말의 감정이 담겨 있을 따름이었다.
"엄마! 엄마!"
계집아이는 자기를 붙잡고 있는 손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을 쳤다.
여인의 아랫입술이 떨렸고, 이제 침착한 모습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었다. 여인은 손목을 묶고 있는 끈을 풀려고 발버둥 쳤다. 헌병 두 명이 앞으로 나와 여인의 고개를 강제로 숙였다. 창백한 뺨에 피가 몰려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사형집행인도 조금 전보다는 침착함을 잃은 듯했다. 칼을 내리치는 그의 두 손이 떨리는 바람에 칼끝이 빗나가며 여인의 목 한쪽만이 베어져 나갔다. 큼직한 상처에서 샘물처럼 피가 솟구쳤다. 그는 재빨리 칼을 다시 치켜들고 여인의 비참한 삶을 끝내 주었다. 내 얼굴과 저고리에도 피가 몇 방울 튀었고, 한 방울은 입 안으로 튀어 들어왔다. 구역질이 나오려고 했지만, 나는 그 피를 억지로 삼켰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진 나는 고개를 돌려 버리고 말았다. 왜 우리 한국인들은 제 나라를 잃어버리고 이런 낯선 곳에서 이 같은 고통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마지막 머리가 떨어져 나간 후 대학살의 축제는 사실상 끝이 났고, 희생자의 가족들은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머리를 잘렸다고 해서 형벌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머리를 한데 모아 쌓은 다음, 그 위에는 그들의 죄목을 과장해서 써 붙인 나무 말뚝이 세워졌다. 그들의 머리는 낮에는 종일 대로를 따라 전시되었으며, 밤에는 머리와 몸통을 연결해 얕은 무덤에 넣은 다음 되는 대로 흙이라도 조금 뿌리려는 이들의 손길을 피해 자물쇠를 잠궈 보관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감정을 더 이상 억제할 수가 없어서 거리 여기저기에 대고 구역질을 했다. 죽음의 병적인 냄새를 내 몸에서 말끔히 씻어 내고 싶었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그 몸통 없는 머리와 공포로 부릅뜬 두 눈, 그리고 축 눌어져 흙을 핥는 혀를 결코 잊을 수 없으리라. 울고 싶었지만 너무 두려운 나머지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며칠 후 나는 그 어린 계집아이의 운명에 대해 알게 되었다. 닭 한 마리를 훔쳤다가 자신을 체포한 경찰에게 뇌물을 준 죄로 어머니를 잃은 그 가엾은 아이때문에 가슴이 아렸다. 뇌물이라면 나도 매일 주었지 않은가. 목숨을 부지하기에는 뇌물의 양이 턱없이 적었음이 틀림없었다. 고아가 된 그 아이를 맡겠다고 나설 만큼 대담한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그 아이는 돌을 쌓아 만든 둥그런 원 안에 들어가 기둥에 묶였다. 그리고는 그곳에 굶주린 개 여러 마리를 풀어 놓았다. 계집아이의 조그마한 흰옷은 무참히 찢겨 나가고 개들이 아이의 보드라운 살을 씹어 먹었다고 한다. 그때는 정말 울지 않을 수 없었다.
들큰한 피비린내가 주변을 맴돌며 일상생활의 고통스러운 모순을 끊임없이 일깨워 주었다. 나는 적들을 친구로 삼았다. 그런데 전쟁에서 패한 이들은 상하이와 난징(역주-南京, 중국 장쑤성의 성도, 양쯔강에 면한 도시), 한커우(역주-韓口, 중국 후베이성의 양쯔강에 면한 항구 도시)와 충칭, 그리고 만주 전역에서 무고한 양민들을 대상으로 대학살극을 벌였다.
나는 중국으로 추방된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을 은밀히 지원했고, 이들 전투대원들이 들를 때마다 음식과 금을 후하게 내놓았다. 하지만 이들은 발걸음이 너무 잦았고, 늘 어두워진 후에만 나타났다. 이들이 돈에 욕심이 있음을 이내 알아챌 수 있었다. 독립운동을 위해 기부하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더 이상 누구를 믿어야 할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이곳에서는 일본인뿐 아니라 친구나 같은 동포도 적이었다. 이곳 역시 안전하지 않았다.
손발이 잘린 몸통과 피로 얼룩진 작은 흰옷이 나무하는, 유혈이 낭자한 악몽이 계속되었다. 악몽은 점점 더 심해져서 급기야 가족들의 머리통이 구덩이로 굴러떨어지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가족들의 죄는 곧 나의 죄였다. 그 헌병 우두머리가 나를 ‘아편 부인’이라고 불렸다. 나는 남편과 아이들에게로 달려가려고 애를 썼지만, 있는 힘을 다해 달려도 늘 제자리였다. 그때 사형집행인의 손이 나를 스치며 가족들의 피로 흠뻑 젖은 내 한쪽 귀가 땅으로 떨어졌다. 눈을 꼭 감았지만 그래도 내 머리 위로 높이 쳐들어진 그 칼만은 또렷이 보였다. 칼날은 무디고 녹이 슬어 있었으며, 칼끝에서는 사형집행인의 침이 방울져 떨어져 내렸다. 칼끝이 내 목을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드는 밤도 있었다.
이런 꿈들을 꾸며 나는 결국 고향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음을, 우리의 재산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안전을 진심으로 염려해 주는 이들과 함께 살아야 함을 깨달았다.
"여보, 이곳을 떠나서 우리나라로 돌아가요."
"살기는 여기가 더 낫지 않소."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여기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예요. 한국으로 돌아가면 최소한 가족들 곁에 있을 수 있잖아요. 가족들을 본 지가 너무 오래됐어요. 친정아버지와 오빠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게 한이 돼요. 그래서 이제는 친정어머니와 시할머니의 임종을 꼭 지켜 드리고 싶어요."
그리움이 너무 절실했는지 목구멍이 아파왔다. 여태까지는 남편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감정을 숨겨 왔지만, 친정아버지의 부고는 나에게 크나큰 영향을 주었다. 아버지는 폐가 나빠져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바람에 마지막 몇 달 동안 엄청난 고통을 겪으셨다. 우리나라에만 있었더라고 아버지를 치료해서 낫게 해드릴 수 있었을 것을. 하지만 아버지가 그토록 좋아하던 저고리를 입고 상투에 갓을 쓰고 묻혔음을 알고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아버지 연배의 다른 노인들은 압박감에 못 이겨 상투를 잘랐지만, 아버지는 끝까지 상투 머리를 지켰다. 그것이 자신의 모든 것, 즉 한국 남자임을 상징했으므로. 우리들, 한국 사람들의 모습은 그러했다. 한국인들은 살아 있는 친척을 보살피고, 고인을 추모하는 것을 당연한 도리로 여겼다.
남편은 내가 얼마나 크게 상심하고 있는지를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는 내가 한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후 이렇게 대답했다.
"늘 그렇듯이 당신이 옳아요, 여보. 우리의 의무를 일깨워 줘서 고맙소."
"고마워요."
가슴을 조이는 듯한 느낌을 털어 내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사시던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소. 누님네 가족들이 계속 할머님을 모시고 그 집에서 살게 놔둡시다. 지난 몇 년 동안 호사스러운 생활에 익숙해졌어요. 널찍한 땅을 사서 그곳에 우리가 살 새집을 지읍시다. 두 배로 넓고 근사하게 말이오."
"좋을 대로 하세요."
나는 남편의 기분을 맞춰 주기 위해 동의를 표했다.
"남한에는 넓은 땅이 많다던데요. 그러면 그곳에 집을 지을까요?"
"농장을 사서 작물을 심을 수도 있어요. 앞으로는 넓은 땅이 많은 남한이 유망하다고들 하던걸요. 땅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아요. 틀림없이 가격도 많이 오를 거구요."
"당신이 잘못 들었구려. 남한 땅은 쓸모없는 땅이라 아무것도 자라나지 않소. 하지만 북한에는 중공업이 발달하고 광산도 많지 않소. 평양 근처에 적당한 곳을 찾아보기로 합시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남편과 논쟁을 벌여 봤자 아무 소용이 없음을 깨달았다. 나이가 들면서 그는 내 고집스러움을 똑같이 닮아 갔다.
"당신 생각이 정 그렇다면 평양 근처로 해요."
나는 가능한 한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어 남편에게 양보했다.
"이달 말에 내가 나가서 우리가 살만한 집을 한번 찾아보리다."
다소 지나치게 들뜬 음성으로 남편이 말했다.
"한두 달 이상은 안 걸릴거요. 중요한 일을 하러 가는 거니까 서둘러 일을 처리할 수는 없잖소."
남편이 대답했다. 남편이 떠나던 날 아침은 물론, 그가 집을 비운 시간 내내 걱정스러운 마음이 떠나질 않았다. 그는 석 달하고도 일주일이 지나서야 돌아왔다. 가방은 텅 비어 있었고 땅이나 집문서 같은 것도 없었다. 경솔하게도 남편은 세월이 가는 것도 자신의 임무도 잊은 채, 중국 북부와 만주, 그리고 한국의 기생집을 오가며 돈을 다 써 버린 것이었다. 질투가 나기보다는 견딜 수 없을 만큼 화가 치밀었다. 그가 가지고 간 돈은 한 마을 전체와 집안을 가득 채울 하인을 사고도 남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미 다 써 버린 돈을 놓고 화를 내고 말고 할 겨를이 없었다.
한국이 해방된다는 소문이 점차 현실성을 띠던 때라 빨리 땅을 사야 했다. 미국, 중국, 영국의 세 강대국이 1943년 12월 1일 카이로 선언에서 한국의 독립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선언을 했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일본의 패망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하던 터라 가슴속에서 희망이 솟구쳤다. 나는 그로부터 두세 달 뒤에 건삼이를 등에 업고 직접 길을 나섰다. 여자 혼자 엄청난 돈을 지니고 있으면 위험했으므로.
나는 기차를 타고 압록강을 건너 아름다운 우리의 조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림 같은 산을 따라 내려갔다. 평안남도 중화군의 돌산동 부근을 지날 때, 아침 햇살이 하늘에 불을 지핀 듯 빛났는데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장관이었다. 바로 이곳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인 한국의 정수를 보았다. 바로 내가 찾고 있던 곳을 발견한 셈이었다. 우리가 땅속에 묻히고 나중에도 이곳에서 남편의 후손, 우리들이 손자들이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자손 대대로 살아가리라. 이러한 생각으로 나는 사방 40리에 이르는 그곳의 땅을 모두 샀다. 사방으로 닿는 곳 모두가 우리 땅이었다.
나는 내가 한 일에 만족해하며 8월 초순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로부터 정확히 1년 후인 1945년 8월 6일과 9일,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믿어지지 않는 소식이 빠르게 퍼져 나갔고, 한국 동포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기쁨에 겨운 울음을 터뜨렸다. 우리에게 돌아갈 나라가 생기다니! 우리의 조국을 되찾게 되다니!
그날 나는 예치되어있는 돈을 찾으러 여러 은행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은행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남편과 나는 은행 문이 다시 열리기를 기다리지 않기로 했고 대신 바닥과 벽, 그리고 천장에 숨겨 둔 재산을 모두 꺼냈다.
그날 밤늦게 우리는 지폐 더미 한가운데 서서 금액이 큰 화폐를 조심스럽게 골라낸 다음 금덩이와 함께 싸고, 안전하게 국경을 건널 수 없는 것들은 집안의 비밀 장소에 다시 숨겨 두었다. 적어도 우리 손으로는 결코 다시 세어 볼 수 없을 터였다 이튿날 아침,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일어나 서둘러 기차역으로 갔다. 그날 기차표를 사야 했다. 매표소는 몰려드는 사람들로 넘쳐 났다. 사실상 쉬저우에 있는 한국인 모두가 고국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었다. 흥분한 목소리와 욕설밖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떠밀기 한판 경쟁이 벌어졌다. 사람들 틈에서 자리를 확보하느라고 있는 힘을 다하다 보니 온몸이 눌려 공기가 다 빠져나가 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나는 더 뒤쪽으로 밀려났다.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새까만 머리의 군중들 틈에서 제일 키가 크고 힘이 세 보이는 사람을 찾았다. 조금 떨어진 한 옆에서 오리 한 마리를 통째로 물어뜯고 있는 남자가 눈에 띄었다.
나는 그의 주의를 끌기 위해 소리쳤다.
"여보세요, 표 열 장만 사주세요."
"직접 사시구려. 내가 바쁜 게 안 보이시나?"
나는 그에게 겁을 먹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부탁을 들어주시면 우리 식당에서 양껏 드실 수 있을 만큼의 오리고기와 그밖에 먹고 싶어 하시는 걸 모두 드릴게요."
사내는 인파를 뚫고 나아갔다. 그가 나를 데리고 맨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사람들이 옆으로 밀려났다 괜찮은 생각이 아닐 수 없었다. 고작 구운 오리 다섯 마리와 밥 일곱 공기, 얌(역주- 마과에 속하는 만생 식물, 동남아시아 · 오세아니아 등지의 고온 다습한 지역에서 식용으로 재배) 세 개, 그리고 참외 두 개가 들어간 비용의 전부였으니, 썩 괜찮은 거래인 셈이었다.
나는 표 네 장을 주려고 맨 먼저 막냇동생네 집으로 달려갔다. 동생은 여느 때처럼 열심히 재봉틀에 매달려 있었다.
"이거 받아. 꼭 필요한 것만 챙겨가지고 빨리 기차역에서 만나자."
내가 동생의 코앞에 표를 펼쳐 보였다.
"돈 낭비하지 마. 난 여기 남을 테야."
"말도 안 되는 소리, 우리나라를 다시 찾았어. 돌아가도 위험하지 않다니까."
"난 여기 있을 테야."
"여긴 네 조국이 아니고, 넌 중국 사람도 아니잖아. 우리와 함께 돌아가자니까."
나는 표를 동생의 손에 쥐어 주며 한참을 설득했다.
"다시는 그 끔찍한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언니한테 말했을 텐데. 그 쓰레기가 같은 사기꾼 남편도 이곳에 있는 한 날 찾지 못할 거야."
"연로하신 우리 어머니는 어떻게 하구? 아버지와 오빠가 세상을 떠난 지금 어머니 곁을 지켜 드리는 게 우리의 도리야."
"어머니는 너와 아이들을 걱정하고 계셔. 더 이상 어머니를 걱정시켜 드려셔는 안 돼."
"어머니께 우리는 잘 지내고 있다고 전해줘."
동생은 다시 바느질을 시작했다. 나는 동생이 다시 잘 생각해 보고 역으로 나오기를 바라며 표를 놓아둔 채로 그 집을 나왔다.
나는 쉬지 않고 달려서 집으로 왔다. 도착해 보니 짐을 모두 꾸리고 떠날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남편은 우리 가족과 짐을 기차역까지 실어다 줄 인력거를 여러 개 확보해 두었다. 커다란 붉은 벽돌집과 식당을 두고 떠나는데 아무런 미련도 남지 않았다. 나에게 그곳은 잠시 빌린 땅에 서 있는 집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은 인력거가 움직이며 집에서 멀어지자 성숙한 곳이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벌써 대단한 인파가 모여 있었다. 그리고는 헤어지게 될까 겁이 나 꼭 붙어 있었다.
가까스로 기차에 오른 우리는 바닥에 빈자리를 발견했다. 기차가 앞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그날 처음으로 서글픈 상실감이 밀려들었다. 막냇동생과 조카들을 두고 떠나더니. 승강장에서 정신없이 동생을 찾았지만 동생은 끝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나는 몇 시간 동안 동생 생각만 했다.
그 비좁은 공간에서는 생각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남편과 나는 서로를 받침대 삼아 등을 맞대고 끼여 앉았다. 어린 두 아들은 우리 두 사람의 무릎 위에 눕히고, 용운이와 덕화는 서로에게 몸을 기댄 채 이마를 맞대고 비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나는 친오빠와 경험해 보지 못했던 두 아이의 친밀한 관계에 감탄하며 그들을 지켜보았다. 오누이의 사이가 좋아 마음이 흡족했다. 두 아이가 서로에게 활력을 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어린 두 아들은 비좁은 공간에서 자주 했는지, 어린애 특유의 생기를 잃고 잠이 들었다 깼다 하며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냈다.
움직일 일이라곤 먹는 것과 화장실에 가는 게 전부었다. 용변을 보려는 사람들로 통로가 터져 나갈 것 같았다. 나는 줄이 아무리 기어도 대의치 않았다. 두 다리를 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니까. 사람들은 대부분 질서정연하게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지만, 방광이 약한 이들은 앞으로 달려 나가기도 했다. 한 시간이나 그 이상을 기다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불행히더 그러한 긴 기다림 끝에 찾아오는 것은 실망감이었다. 후각이 마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코를 찌르는 인분의 악취가 입맛을 싹 가시게 했다. 배설물의 흔적이 바닥과 문의 손잡이, 그리고 밀폐된 칸막이 안의 사방 벽을 뒤덮고 있었다.
전에도 기차를 타 보았던 나는 찢어낸 종이를 여러 장 준비해 갖고 있었지만, 다른 이들은 손수건을 이용한 다음 그것을 빨아 의자 등받이에 걸어서 말렸다. 밑을 닦을 오래된 신문지조차 가져오지 못한 이들은 벽에 자신들의 고동색 지문을 남겨놓았다. 움직이는 철로가 아래로 들여다보이는 두 다리 사이의 커다랗고 둥근 구멍 말고는 환기창 하나 없었다. 웅크리고 앉아있다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진 것을 막아줄 것이라곤 두 다리의 근육뿐이었다.
압록강에서 갑자기 기차가 멈추어 섰다. 국경을 넘을 수 없다고 했다. 기차에서 내려 두 발로 다리를 건너는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조국의 산하를 보고 환호성을 지르며 울부짖었다. 나는 아름다운 우리 국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내려다보았다. 용운이와 덕화, 큰 아이들은 이곳을 떠날 때 너무 어려서 그때의 기억이 중국의 이미지에 의해 다 지워진 상태였고, 중국 땅에서 태어난 작은 두 아이는 우리나라 땅을 처음 밟는 것이었다. 나는 감정이 복받쳐 올라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아들을 셋씩이나 둔 건강한 네 아이의 어머니이자 부유한 여인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다니. 고향으로!
우리는 한국의 산악 지대 사이로 우리를 안전하게 실어다 줄 다른 기차에 올랐다. 본청 시에 이르자, 연료를 채워 넣기 위해 기차가 역에서 잠시 멎었다. 아이들은 새로운 풍경을 보러 나가게 해달라고 졸아ㅆ다. 아이들의 애원하는 얼굴이 얼마나 귀여웠던지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
"내보내 주도록 합시다. 우리의 아름다운 국토를 직접 볼 수 있도록 말이오."
"너무 위험해요. 길을 잃을지도 모르잖아요."
"우리는 지금 조국에 와 있어요. 아이들에게 구경시켜 줍시다."
남편이 이렇게 말하며 아이들 하나하나의 손에 동전을 쥐어 주었다.
"당신이 아이들 버릇을 망쳐 놓겠어요."
하지만 내 목소리는 기쁨으로 밝았다.
"왜 그러면 안 돼요? 우리 애들은 이 정도는 괜찮아."
아이들은 사탕을 살 생각에 신이 나서 키득거리며 돈을 쳐다보았다.
"조심해라. 철로 가까이 있다가 기적소리가 나면 동아와야 해."
내가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네 엄마."
아이들이 즐겁게 합창하며 기차에서 뛰어내려 노점상의 수레를 살펴보기 위해 종종걸음을 쳤다. 나는 아이들의 검은 머리가 인파에 완전히 파묻힐 때까지 할 수 있는 한 오랫동안 그들을 지켜보았다. 첫 번째 기적 소리가 커다랗게 울려 퍼졌지만,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냉정함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당혹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나는 기차에서 뛰어내려 아이들을 찾으러 다녔고, 혹시 아이들을 놓칠까 봐 역 전체를 샅샅이 뒤졌다.
긴 승강장 끝에 이르렀을 때, 긴 칼과 휘장을 벗어 던진 일본 군인들의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철로 가장자리를 따라 앉아서 패배를 슬퍼하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들의 좌절한 얼굴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 사람 한 사람 술병을 비운 그들은 빈 병을 바닥에 내리친 다음, 그 날카롭고 뾰족한 병 끝으로 자신들의 배를 쑤셨다.
겁이 난 나는 기차로 돌아왔다. 모두가 손을잡고 하나가 되어 돌고 있는 신이 난 한국인들의 거대한 인파 속에 우리 가족의 모습이 보였다.
"드디어."
어떤 목소리가 외치자,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따라 하며 손을 흔들었다.
"용운이 아빠, 무슨 일이에요?"
"해방이야! 일본이 항복했다구."
귀가 의심스러웠다. 1945년 8월 15일, 바로 그날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35년간의 식민 통치가 막을 내린 것이었다.
"만세!"
수백 명의 음성이 하나된 외침이 점점 더 커지면서 작은 기차가 떠내려갈 것만 같았다.
"만세! 만세!"
만 년을 의미하는 이 말보다 우리의 전신과 민족혼을 더 잘 표현해 주는 말은 없었다. 이 말은 새로운 내일과 새로이 해방된 이들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만세!"
기쁨에 넘쳐 나도 이들에 합류했다. 평생동안 그렇게 큰소리를 지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믿어지지 않았다.
기차에 있던 한국인들은 신이 나서 일본 사람들을 때리고 그들을 의자에서 끌어내 강제로 지붕으로 올려보내기 시작했다. 루이 옆에 있던 신사도 심하게 발에 걷어 채인 다음 자리에어 쫓겨났다. 가방에서 사탕을 꺼내 우리 아이들에게 준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덕화는 걷잡을 수 없이 슬프게 흐느꼈다.
"덕화야, 조용히 하고 그만 울어."
남편이 아이를 달래려고 애섰지만 덕화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그 애가 더 오래 흐느낄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마치 반역자라도 되는 양 우리를 노려봤다.
"아, 왜놈의 동조자시로구먼!"
성난 목소리가 덕화에게 다가왔다.
나는 덕화의 안전이 염려되어 즉시 행동에 돌입했다.
"바보 같은 계집애, 네가 우리를 망신 주는 거냐!"
나는 무섭게 말한 다음, 모두가 다 볼 수 있도록 한 손을 높이 쳐들어 딸아이의 얼굴을 세게 후려쳤다. 아이를 때리는 것은 고통스러웠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는 덕화가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그 일본인 신사의 친절함 이면의 것은 볼 수도 없고 알지도 못함을 잘 알고 있었다.
생애 거의 대부분의 나날을 덕화는 일본인 관리와 군인들 틈에서 지냈고, 하루도 빠짐없이 그들이 베푸는 호의를 누렸다. 그러한 아이가 바로 그들이 자신의 압제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람들에게 우리의 안전을 지켜 주고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어 준 일본인들과 함께 살아서 그렇다고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 어느 쪽도 서로를 이해할 수 없으니 필요한 일. 내가 해야 할 일을 한 것이었다. 즉 사람들에게 우리의 애국심을 보여주어야 했다. 사람들은 다시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덕화는 두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오랫동안 소리 죽여 울었다.
"네가 사람들 앞에서 동정심을 보이면 우리 모두가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되는 거야. 이제 네가 아무리 울어도 그 신사를 구할 수는 없단다."
내가 덕화의 귀에 대고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지만, 덕화는 얼굴을 들고 나를 쳐다보려 하지 않았다.
"예쁜 아가씨 눈물을 그쳐요. 오늘은 경사스러운 날이에요."
남편은 늘 덕화를 기분좋게 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남편은 쌀부대를 네모 모양으로 열 개를 잘라 그 하나하나에 태극기를 그렸다. 검은 숯으로 길고 짧은 선을 그리고 가운데에는 음과 양으로 나뉘어진 원을 그려 넣음으로써 남편은 제일 먼저 만들어진 것을 이제 울음을 그친 덕화에게 준 다음 나머지는 승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다른 사람들이 더 달라고 사정하는 바람에 내가 비단 속치마를 벗어 사각형으로 자른 다음 남편에게 건넸다. 머지않아 창문마다 사람들의 손에 손에 태극기가 물결쳤다.
처음으로 남자와 여자 그리고 노인과 아이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서로를 껴안았다. 뜨거운 애국심의 물결이 우리를 하나로 이어 주었다. 그때 느닷없이 사람들이 너무도 오랫동안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우리 민족의 전통 민요인 아리랑을 큰 소리로 합창하기 시작했다.
너무 많은 승객을 실은 기차가 가파른 길을 오르느라 가쁜 숨을 몰아쉴 때면 우리는 몇 번이고 기차에서 내려 철길을 따라 걸어야 했다. 철길 주변에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 민족 고유의 의상인 한복을 입고 만세를 외쳐대고 있었다. 사람들은 일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입었던 우중충한 옷을 벗어 던지고 눈처럼 흰옷의 자태를 자랑스럽게 뽐냈다. 기차가 지나는 곳마다 사람들의 펄럭이는 옷소매가 우리의 귀환을 반겨주었다. 눈부신 광경이었다. 얼마나 모순적인 일인가. 일본군을 위해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한국인에 대한 혹사와 강제 노역의 상징인 이 철로가 해방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다름 아닌 태극기를 보란 듯이 실어 나르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가족들과 함께 새로운 땅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완벽하기 이를 데 없는 생활을 꾸려가기 시작했다. 정말 행복한 한때였다. 우리는 집안에서든 집 밖에서든 아무 옷이나 입고 아무런 행동이나 하고 드러내 놓고 우리말을 하는 자유를 마음껏 누렸다.
38선 이북에서는 소련군이 우리의 문화를 지키도록 도와줄 것이었고 남한에서는 미국이 우리 민족을 도와줄 터였다. 우리는 우리 민족을 해방시켜 준 이들을 믿고 신뢰했으므로 이들을 열렬히 환영했다. 하지만 그때는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누군가의 손놀림 한 번으로 그어진 이 가상의 선이 비극적으로 우리 국토를 영원히 분단시키고 1277년에 이르는 유구한 통일의 역사를 파괴해 버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것은 일본인들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우리는 이전에 지주가 살던 집으로 이사했다. 높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어 소작인들이 수확하는 모습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성 같은 집이었다. 뿐만 아니라 방마다 우리의 비위를 맞춰 줄 하인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남편은 왕 나는 왕비로서 우리 가족은 동화 같은 삶을 살았다. 우리가 최고의 지배자였으므로 우리의 왕국 안에서 사는 이들에게는 우리의 법이 절대적이었다. 우리는 농부들에게서 세금을 거둬들였고, 이들이 수확한 곡물로 풍족하게 살았다. 나는 어린 시절의 한가한 생활을 고대했었다. 그리고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그리고 왕비로서 사는 삶은 또 한 번 충분한 행복감을 안겨주었다.
그러다 우리의 성이 기초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소련인들이 조선 공산당을 정부에 앉혀 통치를 떠맡긴 것이었다. 1946년 2월 소련 정부는 소위 인민위원회를 이끌 위원장으로 유명한 독립운동가인 김일성을 선택했다. 신화적인 영웅인 김일성은 잿빛 머리를 흩날리는 육십 대로 알려져 있었지만, 새 지도자는 겨우 삼십 대 초반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공산주의를 지지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의 전 재산을 요구했다. 그해 3월 토지개혁령이 선포되어 전에는 일본인과 친일파, 민족 반역자, 교회, 그리고 지주들의 소유였던 모든 공장과 기업들이 정부에 의해 압수당했다가 재분배되었다. 그리고 이 범주에 속하지는 않지만 공산 정부의 눈에 탐탁지 않은 이들은 모두 반공산주의자로 몰렸다.
말할 필요도 없이 반공산주의자의 범주에 속한 우리는 이곳에서 산 지 불과 1년 만에 사방 40리에 이르는 소중한 땅을 모두 빼앗기고 말았다. 하루 만에 다 가져가 버린 것이었다. 북한의 대부분의 땅이 농토였으므로, 이것이 바로 새로운 정부의 수립 취지 중 하나라고 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손실을 받아들이고 다시 시작할 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우리는 중국에서 몰래 들여온 남은 돈으로 땅을 또 사들였다. 절경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우리 소유의 땅이긴 했다.
하지만 그곳에 자리를 잡기도 전에 우리는 또 땅을 빼앗기고 말았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더 이상은 아무것도 납득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는 되찾았지만 고향을 간 곳이 없었다. 인민위원회는 우리의 재산을 땅 없는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하지만 땅문서는 인민위원회가 갖고 있었다. 국가만 이 땅을 소유할 권리가 있다고 했다. 이들 농부들은 열성적으로 정부에 협조했지만, 열심히 일하면 일할수록 더 많은 세금을 바쳐야 했다. 이제 이들은 개혁 전보다 더 심한 경제적 궁핍에 시달렸다.
오래지 않아 많은 이전 지주들과 농부들, 그리고 도시민들이 새 삶을 찾아 38선을 넘었다. 1945년 말부터에는 소련 주둔군이 휴전선을 지키기 시작했지만, 1947년 말까지는 여전히 남한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남편은 북한을 떠나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내 바람과는 달리 우리 가족을 시댁으로 다시 데리고 들어갔다. 그는 상황이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고집스럽게 간직하고 있었다.
시할머니를 시누이에게 맡기고 중국으로 떠난 지 8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였다. 오랜만에 옛 거리를 따라 걷다 보니 많은 변화가 눈에 띄었다. 이전에 일본인들이 세운 상점과 건물들은 이제 텅 비어 있었다.
대문에 당도한 순간 그동안 집이 깨끗하게 잘 관리되어 왔음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몇 년 동안 충실히 보낸 돈으로 우리가 없는 동안 시할머니와 집안 식구들이 풍족히 먹고 살았을 터였다. 안에는 창백한 얼굴을 한 노인 한 사람이 시할머니와 함께 안뜰에 앉아있었다. 의외였다. 시할머니가 그 나이에 결혼이라도 했단 말인가.
"형님 저 노인은 누구세요?"
내가 물었다.
"아, 할머님의 사촌 동생이셔. 2년 전부터 이 집에서 우리와 함께 살고 계시지."
시누이가 알려 주었다.
시작은 할아버지는 시할머니보다 열세 살이나 어린 일흔다섯이었지만, 시할머니보다 더 늙어 보였다. 두 분은 나이가 많아서인지 과거를 온전히 기억하지 못했다. 더 가엾은 분은 시할머니였다. 그분은 이제 손자나 증손자도 알아보지 못했고, 마음을 쓰는 일이라곤 자신의 작은 은장도를 닦아 윤을 내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은장도를 닦다 싫증이 나면 집안에 소란을 일으키곤 했다.
열두 식구 모두가 유일하게 불을 떼는 안방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으므로 시누이와 가족들이 서울로 떠나면서 집안의 평화가 깨지기 시작했다. 시할머니는 노발대발했고, 우리 아이들이 눈에 띄기만 했도 불같이 역정을 냈다.
"내 손주들은 어디 있는거냐!"
시할머니가 이빨 빠진 턱을 부딪쳐 딱딱 소리를 냈다.
"여기 있잖아요. 할머님."
"얘들이 우리 집에서 무얼 하고 있는 거냐? 이 작은 개새끼들이 누구냔 말이다!"
"이 얘들을 그렇게 부르시면 안 되죠."
내가 솟구치는 화를 애써 참으며 아이들을 보호했다.
"개새끼! 개새끼! 내가 이 애들을 다 죽여서 먹어 버릴 테다."
시할머니는 이렇게 말하며 아이들의 살을 움켜 잡았다.
나는 시할머니와 끝없이 다툼을 벌였지만 그분의 말투는 조금도 고와지지 않았고 따라서 집안은 전쟁터가 되어 버렸다. 시할머니는 집 밖에 있는 변소를 사용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과 나는 그분을 똥할머니라고 불렀다. 똥할머니는 우리가 모두 방에서 나가기를 일부러 기다렸다가 용변을 본 다음 맨 엉덩이를 이리저리 끌고 다녀 둥근 배설물을 뜨거운 온돌방에 따뜻하게 데워 놓곤 했다. 악취가 너무 심해서 집 안 구석구석을 찬 공기로 환기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은 이러한 다툼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남은 돈을 술로 탕진했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술을 마셨다. 나는 노쇠한 두 노인을 다른 식구들로부터 격리시켰다. 시할머니는 집의 가장 안쪽에 있는 방으로 옮긴 다음 문에는 빗장을 달아 잠갔다. 시작은 할아버지도 감금해두려고 했지만 그분은 아직 문의 빗장을 열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었다.
"사악한 갈보 같은 년."
시작은 할아버지가 두 손으로 내 머리를 세게 때렸다.
"조용히 하세요. 어리석은 늙은이 같으니라고. 안 그러면 우물에 던져 버리겠어요."
내가 겁을 주었다.
"넌 그렇게 못해!"
시작은할아버지가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더니 내가 아끼는 접시 하나를 자신의 대머리에 부딪혀 깼다. 이마로 피가 흘러내렸다.
"날 우물에 던져 넣겠다니 안 돼 안 돼고 말고."
시작은 할아버지가 깨어진 유리 조각을 허공에 휘두르며 나를 위협했다. 그러더니 해일 같은 울음을 터뜨렸다. 뺨으로 피가 흘러내려 빨간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다. 정신착란을 일으킨 것만 같은 시작은할아버지의 모습은 대담한 편인 나에게도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시작은할아버지를 그냥 내버려 두었다. 하지만 내 의식에는 시작은할아버지도 똥할머니도 존재하지 않았고 더 이상 두 분을 목욕시켜 드리지도 몸단장을 해드리지도 않았다. 나는 두 부의 냄새 나고 심술 궂은 모습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싶었다. 겉껍데기만 남은 채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이 두 노인이 땅에 묻힐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때가 오면 시신 위로 흙을 높이 쌓아 올려 그 가엾은 영혼들이 빠져 나와 우리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할 생각이었다.
‘내가 왜 내 아이들을 잡아먹겠다고 하는 양반들의 뒤치다꺼리를 등이 휘도록 해야 하는 걸까?’
며칠이 가고 몇 주일이 가도 똥할머니의 날카로운 음성은 사그라들지 않고 벽을 통해 울려 퍼졌다.
영혼에도 일용할 양식을
어린 시절에는 향 냄새를 맡으며 하루를 맞이했다. 어머니는 옥 부처 앞에 꼿꼿이 앉아 염주를 돌리며 오랫동안 같은 염불을 반복해서 외웠다. 어머니는 향이 빨갛게 타올랐다 스러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리를 지키곤 했다. 스러져 가는 재가 부서지면 좋지 않은 일이 찾아든다는 얘기가 있었으므로.
나 역시 다른 무엇보다 두려움에서 염불을 외웠다. 내게 있어 종교란 불길한 징조와 악령 그리고 귀신이 전부였다. 나는 악령들이 나를 떠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소원을 한 가지 빌 때마다 백 번씩 절을 해야 했으므로 너무 많은 것을 빌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어머니가 다니는 절의 스님들이 그렇게 기운 없고 야위어 보이는 것도 하나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떤 면에서는 종교라고도 할 수 있는 유교의 윤리 규범을 신봉했다. 터무니없는 미신은 아내와 딸들이 믿는 것으로 족했다. 아버지는 미신. 특히 백인들의 신을 믿지 않았고 자신들의 백인 신을 이민족에게 설파하고 다니는 코가 큰 기독교 선교사들을 경멸했다. 그들은 부자와 가난한 자 그리고 남자와 여자를 구분 짓는 우리의 사회 제도를 근본적으로 위협했다. 그들은 성서에서 평등을 약속했으며 무료로 열리는 주일학교에서 그 방법을 가르쳤다.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는 상놈과 여자들에게 자신의 불행한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최초로 제공한 셈이었다.
"그놈들은 상스러운 오랑캐고 우리는 교양 있는 민족이다. 그건 짐승들의 종교야. 그렇지 않다면 고놈들 만이 왜 그렇게 조잡하게 들리겠느냐?"
아버지가 경고했다.
친정을 떠난 지 한참이 되었어도 나는 코 큰 사람들에 대한 아버지의 경고를 마음에 단단히 새기고 있었고, 누군가 코쟁이라고 소리를 지를 때마다 마음의 빗장을 굳게 닫아걸었다. 그들 중 하나가 우리와 같은 사람인 체하며 우리 집 대문을 두드릴 때까지 나는 그들과 거리를 두려고 애를 썼다.
그 사람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여인으로 창전리 교회의 권사님이었다. 흰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머리를 단단히 쪽쪄서 표정이 풍부한 네모진 얼굴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말끔히 손질되고 깨끗하긴 했지만 솔기를 따라 천을 대고 기운 옷을 입고 있었다. 또한 가죽 장정의 까만 책을 가슴께에서 단단히 쥐고 목에는 섬세한 줄의 금 십자가 목걸이를 매달고 있었다. 그것은 기독교인의 상징이었으며, 그 권사님은 선택된 자신의 종교에 대한 믿을 널리 전파하는 사명을 띠고 있었다.
바보 같으니.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어리석은 자만이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법이다. 게다가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니. 그 누더기 같은 옷에 만족하라니.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하는가. 남편도 아닌 외국 사내에게 헌신하기 위해서? 권사님의 태도는 내 호기심을 자극하는 동시에 나를 괴롭혔다. 그녀는 엄숙한 태도와 여운 얼굴을 한 스님들과는 달리 선의에 넘쳤으며, 늘 긍정적이고 친절한 말만 했다. 따라서 나는 그녀에게 별로 신뢰가 가지 않았다.
"용운이 어머니 계세요?"
권사님의 다정한 음성이 안뜰로 들려왔다.
나는 커다란 김치 항아리 뒤로 낮게 몸을 웅크렸고 덕화가 대문에서 권사님을 막아섰다.
"어머니는 집에 안 계세요. 마을 끝에 있는 시장에 가셨어요."
내가 덕화에게 말하라고 시킨 대로였다.
"언제 돌아오실까?"
권사님이 물었다. 밝은 목소리였다.
"보통은 밤이 돼야 돌아오세요."
덕화가 대답했다.
"그러면 어머니께 다시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리렴."
권사님은 온화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다음 일요일에도, 그다음 일요일에도 또 그다음 일요일에도 그 달갑지 않은 집요함으로부터 벗어날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용운이 어머니!"
"일이 있어서 또 나가셨는데요."
덕화가 사과했다.
"그러면 어머니를 기다려야겠다."
권사님이 말했다.
"하지만 어두워진 다음에 돌아오시면 어떻게 하죠?"
덕화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예쁜 집이로구나."
권사님의 음성이 더 가까워졌다.
나는 항아리 더미 뒤에 말없이 앉아있었다. 권사님과 매주 숨바꼭질을 하게 되면서부터 아예 그곳에 작은 의자를 갖다 놓았었다.
"어머! 용운이 어머니, 거기 계시네."
권사님의 목소리가 내 머리 위에서 울려 퍼졌다. 나를 찾아낸 것이었다.
"함께 가실까요?"
권사님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말씀은 고맙지만 전 권사님이 모시는 하나님뿐 아니라 다른 어떤 신에게도 할애할 시간이 없어요. 아이들을 챙겨 먹여야 하니까요.
"훌륭한 여인이세요. 하지만 몸에만 양식을 주어서는 안 돼요. 영혼에도 일용할 양식을 주어야죠."
"하지만 당신네 기독교는 짐승들의 종교인 걸요."
"용운이 어머니에게는 제가 짐승으로 보여요?"
"아니오."
내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우리의 하나님은 상랑과 정의를 가르치는 분이세요. 그분을 통해서 전 그분의 모든 창조물을 사랑하게 되었죠."
"전 아무나 닥치는 대로 사랑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건 갈보들이나 하는 짓이에요."
"하나님의 이름을 부인하는 사람보다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영접한 매춘부가 훨씬 더 나아요."
"그럼 제가 갈보만도 못하다는 거에요?"
내가 성이 나서 물었다.
"전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요. 용운이 어머니가 그렇게 말했지."
"우리 집에서 나가요."
"사실은 두려우면서 화난 체하지 말아요. 저도 한때는 용운이 어머니랑 똑같았어요."
권사님의 음성은 나와는 달리 침착하고 절도가 있었다.
"저는 당신도 당신의 종교도 두렵지 않아요."
"그러면 저랑 같이 가요."
완전한 절망에 빠진 나는 그녀를 따라 나섰다. 교회로 들어가는 길은 지붕 꼭대기와 나무 위로 올라간 사람들로 붐볐다. 모두 그 유명한 김익도 목사의 설교를 들으러 온 사람들이었다.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먼 지방에서 온 사람들도 꽤 되었다.
날카로운 끝부분이 각기 땅과 하늘 그리고 양쪽 바다를 찌르고 있는 높이 걸려 있는 십자가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오랜 세월 동안 나에게 교차되어 있는 이 두 막대는 유혹과 수입되어 들어온 타락을 상징했다. 그런데 이제 이 거머리 같은 여인이 나를 그 해로운 독극물에 감염시키려 하고 있었다.
나는 내심 어렸을 때 들은 것 같은 무시무시하게 늘어진 입술ㄹ에 딱 벌어진 콧구멍 그리고 뿔이 달린 도깨비 같은 끔찍한 귀신의 모습을 보게 되나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신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을 한 창문과 합창단 의자들 그리고 놋쇠로 만든 십자가가 보일 뿐이었다. 당황스럽게도 권사님은 나를 맨 앞자리로 데리고 갔다. 주위 사람들은 남자고 여자고 할 것 없이 모두가 머리를 가슴에 박고 눈을 감은 채 앉아있었다. 이 사람들은 지금 자고 있는 것일까. 아니었다. 입술을 달싹거리고 있었다.
김 목사가 연단으로 나오는 동안 뒤쪽에서부터 사람들의 음성이 높아졌고 김목사가 입은 검은 가운은 공기를 머금고 부풀어 있었다.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이 남자가 천국으로 가는 지름길을 알고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를 비추어 주는 후광 하나 없다니. 사십 대 초반의 여느 남자와 다를 바 없는 모습에 약간 살이 쪄 있었다. 그는 겨드랑이에서 검고 작은 성경책을 꺼내 사랑스러운 듯 가볍게 친 다음 그 책을 연단 위에 내려놓았다. 그 밖의 것이라곤 그가 가끔씩 홀짝거리는 보리차 한 잔이 전부였다.
"기도합시다."
그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그가 두 팔을 위로 넓게 벌리자 신자들이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나는 사람들의 얼굴을 구경하고 누구 실신하는 사람은 없는지 살펴보기 위해 눈을 뻔히 뜨고 있었다. 감사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그의 음성이 예배당을 압도했다.
"아멘."
그가 기도를 마치자 모든 이들이 그 말을 따라 했다.
그날 오전 내내 나는 김 목사가 열변을 토하며 말하는 풍성한 갈색 수염을 기른 예수 그리스도라는 신비한 남자에 대해 들었다. 어쨌거나 그 사람의 어머니는 처녀이고 내가 지은 죄 때문에 죽었다고 했다. 직접 아기를 낳아 본 나로서는 그러한 일이 불가능하게 여겨졌다.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가.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창문에 더 관심이 쏠릴 뿐이었다. 보석 같은 색색깔의 광선들이 바닥에서 어지러이 춤을 추어 댔다.
교회를 나올 때 권사님이 물었다.
"뭔가 좀 달라진 듯한 느낌이 드나요?"
"그렇다고 말씀드릴 수 없겠는걸요."
나는 하품을 했다.
"죽어서 천당에 가고 싶지 않아요?"
"죽으면, 죽는다면 땅속밖에 또 갈 곳이 어디 있겠어요. 죽음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구요.
나는 이제 권사님을 마지막으로 보는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권사님은 내 영혼을 구하기로 마음먹었고 따라서 다음 주에도 나를 끌고 교회당 맨 앞자리로 갔다. 지난번처럼 형형색색의 광선에 마음이 쏠렸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닿아 오죠?"
교회를 나서면서 권사님이 물었다.
"아뇨."
내가 대답했다.
"초조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하나님께서 예비한 시간이 있으니까 그리고...."
"하지만 전 그분에게 내드릴 시간이 없는 걸요."
내가 권사님의 말을 딱 잘라 버렸다.
"다시는 절 부르러 오지 않으셨으면 해요."
하지만 다음주 일요일 나는 또 그 교회에 그리고 권사님 옆에 앉아있었다. 권사님의 굳은 결심과 나약한 나 자신에 대한 혐오로 괴로워하며 왜 하필 나인가? 왜 권사님은 하필이면 나를 전도하려고 이토록 열심히란 말인가?
그날 아침은 구름이 잔뜩 끼어 해를 가리는 바람에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도 볼 수 없었다. 나는 무언가 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기를 기대하며 지루함에 지쳐 교회 내부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김 목사의 목소리가 커졌다 작아졌고, 신도들의 흐느낌과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신도들에게 마법을 건 듯했다. 나는 짓궂게도 그의 목소리가 갈라져 나오기를 바라며 재미 삼아 그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잘 들어 보니 그는 무식한 농부의 아들이 아니라 교양있는 사람이었다. 기독교인들은 하층민 출신이라고 생각해 오던 터였다. 그의 언변이 상당히 좋은 데 혼란을 느낀 나는 더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김 목사의 온화한 지혜와 선의가 저항심을 가라앉혀 주었다. 그는 악령을 부르지도 귀신에 대해 언급하지도 않았다. 대신 열성적으로 그리고 성실하게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가 새까만 책에서 인용하는 모든 구절은 정신을 고양시키고 어리석음을 일깨워 주는 말들이었다. 그의 설교에 내 귀가 트였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활할 수 있게 되었고 우리의 죄를 사함받은 것입니다."
그가 열변을 토했다.
전에 들은 것과 똑같은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심오한 뜻을 음미하며 다시 그러한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내 안의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차가운 가슴을 어루만지고 달래 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질투와 부정직함 그리고 욕망과 오만으로 가득했던 35년의 세월이 눈앞에 펼쳐졌고 과거의 내 모습과 다른 사람들에게 저지른 잘못이 한눈에 보였다. 가슴이 답답해져서 내가 진 짐을 벗어 버리고 싶었다. 이 예수라는 분이 나를 도와주어야 할 것만 같았다. 내가 구원해달라고 기도한 그 순간 눈부신 햇살이 교회당 바닥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듯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김 목사 앞으로 나가 있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죄인입니다."
내가 울부짖으며 말했다. 그가 연단에서 내려와 내 이마를 쓰다듬었다. 비참함과 죄악으로 가득한 나에게도 온 세상을 뒤흔들며 하나님의 은총이 그를 통해 내게로 흘러들어왔고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과 갖가지 모습의 동물들 그리고 낯선 창조물로 가득한 대양이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수많은 목격자들을 앞에 두고 그 곳 하나님의 전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했다. 나는 무릎을 꿇고 불구인 여동생을 풀숲에 버린 일 아편을 취급한 일 돈을 탐욕스럽게 쌓아둔 일 기생을 질투했던 일 똥할머니를 가두어두고 시작은할아버지를 위협했던 일 등을 고백했다. 족히 몇 시간은 운 것 같았다. 두 눈과 코에서 엄청난 양의 짜디짠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저의 죄를 사하여 주십시오. 저의 죄를 사하여 주십시오."
나는 회개했다.
"하나님은 이미 당신을 용서하셨습니다."
평생토록 의식의 정화와 자유를 체험한 이 복된 순간보다 더 행복했던 적은 없었다. 나는 욕망과 유혹과 탐욕 그리고 나 자신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었다. 그보다 더 생생히 살아 있는 듯한 느낌도 더 축복받은 느낌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예전의 나는 이미 오래전에 나 자신 말고는 어느 누구에게도 진정한 연민을 느낄 능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부와 권력에 마음이 뒤틀려 내가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충만했다. 너무도 간절히 천당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데에는 하나님의 크신 뜻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막 대해 왔던 버려진 두 노인을 잘 보살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도착하고 난 후에도 내 얼굴은 여전히 홍조를 띠고 있었고 피는 새로운 힘으로 끓어올랐다. 나는 똥할머니를 버려두었던 안채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천장 구석에는 거미줄이 드리워져 있었고, 정오를 불과 두세 시간 넘긴 시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방에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오래전에 등잔불을 치워버리고 시할머니의 고함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창문을 닫아걸어 놓았으므로. 자신의 배설물을 뒤집어쓴 짐승 같은 인간이 어둠 속에 웅크린 채 잠들어 있었다. 그 쇠약한 노인을 보자 회한의 고통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나는 어둡고 더러운 감에서 똥할머니를 데리고 나와 따뜻한 물이 있는 물웅덩이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그 창백한 얼굴을 다시 알아볼 수 있을 때까지 정성을 다해서 똥할머니를 씻겼다. 겨우 몇가닥의 헝클어진 긴 잿빛 머리카락이 머리통에 달라붙어 있었고 오그라든 입속에는 이빨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시할머니에게 내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좋은 면 속치마를 입히고 질 좋은 덮개를 잘라 기저귀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는 살타래 같아진 시할머니의 근육을 주무르며 용서를 빌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어 있었다. 시할머니는 미로 같은 자신의 의식 속에서 길을 잃은 상태였다.
"아파 아파."
시할머니가 바싹 말라붙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어린아이처럼 아랫입술을 빨았다 혀는 작게 오그라들어 있었다. 여러 해 동안 하도 많은 욕을 퍼부어 그렇게 되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제 그러한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용서했으므로 그날 밤 나는 두 노인을 아랫목에 눕혔다. 남편과 아이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쳐디보았다.
"할머니와 작은할아버지께 그렇게 정성을 다하는 이유가 대체 뭐요. 남편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물었다."
"예수를 만났거든요."
내가 대답했다.
남편은 마치 내가 일 잃은 개라도 만났다고 말한 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지만 나는 남편이 무언가 물어오기를 기다렸다. 지난 몇 년 동안 기생이나 남편의 폭음 그리고 내 심한 말버릇을 놓고 다툴 때가 아니면 우리 사이에는 거의 말이 오가지 않았다. 나 자신을 위해 기도한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남편을 내게로 돌려보내 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매일 밤 나와 함께 있었지만 나는 그 사람이 그리웠다.
나는 그렇게 끝도 없는 두 노인의 시중을 들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하도록 시켰다. 얘들아 똥할머니 어깨 좀 주물러 드려 그러면 맛있는 거 사 줄게. 나는 이렇게 아이들을 먹을 것으로 달랬다. 싫어요. 우리를 튀겨서 먹어 버릴 거에요. 건일이가 울었다. 이리 와서 좀 보렴. 이빨이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너희들을 먹겠니. 싫어요. 아이들은 이렇게 반항하며 달아나 버렸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효과가 없어서 결국 나 혼자 두 노인을 보살펴야 했다. 두 분이 잠들기 전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이들의 귀에 대고 기억을 더듬어 가며 지난번의 설교 내용을 들려주기도 했다. 죽음이 육신을 빼앗아 가버리기 전에 조금이라도 이들의 영혼과 교류하기로 결심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머니 젖보다 더 달콤해요."
똥할머니가 아직 반응을 보이는 유일한 대상이 먹을 것이었으므로 나는 시할머니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음식을 예로 들었다. 어쩌다가 한숨이나 "아파, 아파."하는 똑같은 반응을 보일 뿐이었지만.
마침내 시할머니는 십계명 중 가운데 항목인 ‘도둑질하지 말지어다’라는 말을 따라 했다.
"목사님을 모셔 오너라."
시할머니가 내 손을 잡으며 기운 없이 말했다. 작고 여윈 손가락은 차갑게 메말라 있었다.
"녜, 아침에 모시고 올게요."
시할머니는 잠시 숨을 멈추고 기능이 좋지 못한 폐에 공기를 가득 채운 다음 말했다.
"내일은 너무 늦다. 나 죽는다, 홍용아."
나는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뜨거운 덩어리를 삼켰다. 전에는 한 번도 내 이름을 부른 적이 없었다.
"말도 안 되요. 이제 막 저희 곁으로 돌아오셨는걸요."
"제발, 때가 됐다니까."
시어머니의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여보, 할머니 말씀대로 해드려야겠어요."
내가 자고 있는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할머니가 자신이 돌아가실 때를 어떻게 안단 말이야."
"제발요, 여보, 할머니 원대로 해드려요."
나는 남편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애원하고 또 애원했고, 그는 마침내 어깨를 구부정하게 구부린 채 밖으로 나갔다. 남편이 없는 동안 나는 시할머니의 머리를 내 무릎으로 받쳐 주었다.
"좀 쉬세요. 목사님이 곧 오실 거예요."
"천당이라는 곳을 본 일이 있냐?"
시할머니가 이렇게 묻는 이유가 짐작이 갔다. 평생동안 육신을 지니고 살아왔는데, 이제 죽음이 닥치면 그 육신이 자신을 저버리는 것이었다. 시할머니는 미지의 상황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근사한 곳이에요. 고통도 두려움도 외로움도 없는 곳이죠."
내가 들은 대로 반복해서 말하였다.
시할머니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물었다.
"누구나 갈 수 있냐?"
"그럼요, 천국의 문은 그곳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늘 열려 있어요."
내가 시할머니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래...... 그래....... 그런 곳에 가보고 싶구나."
시할머니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오랫동안 두 눈을 감고 꼼짝않고 누워있었다. 돌아가신 건 아닌지 염려스러웠다. 그때 가까워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은 시할머니의 눈꺼풀이 가볍게 떨렸다. 김 목사가 앞장서서 들어왔고, 남편이 다음으로 들어오고, 구릿빛 얼굴을 한 김 목사의 아내가 그 뒤를 따랐다. 목사 부부는 겨드랑이 밑에 나란히 성경책을 끼고 있었다.
젖먹이 막내를 포함한 가족 모두가 시할머니 주위에 모였다. 김 목사가 성경에서 긴 구절을 하나 찾아 읽었고, 그런 다음에도 시할머니의 영혼이 육신을 빠져나가기를 기다리며 밤늦도록 입을 모아 찬송가를 불렀다. 하지만 시할머니는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러자 피곤에 지친 그 부부도 하품을 하며 마지막 말씀을 전한 다음 자리를 떴다.
"보구려. 할머니는 돌아가시지 않는다고 했잖소. 제정신이 아니라서 그런 거요."
남편이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잠자리에 누웠다.
"당신이 옳았어요."
내가 남편 곁에 누운 아이들의 이불을 덮어 주며 사과했다.
자정이 가까워지자 시할머니가 중얼거리며 머리를 흔들면서 빙빙 돌리기 시작했다. 나는 시할머니 곁에 앉아 차가운 천으로 눈썹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 주었다. 시할머니가 시커먼 두 눈을 부릅떴다. 눈을 들여다보니 공허함, 즉 죽음의 징후가 서려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가족들을 깨웠다.
"시할머니가 돌아가세요."
내가 소리쳤다.
"그분은 우리보다 오래 사실 거야."
남편이 소래로 눈을 문질러 잠을 쫓으며 투덜거렸다.
"엄마, 증조할머니가 뭘 보고 계시는 거에요?"
덕화가 물었다.
시할머니는 마치 멋진 무언가가 그곳에 있는 듯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흐릿했던 눈망울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시할머니의 두 눈은 갑자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맑고 총명해 보였다. 시할머니가 텅 빈 공간을 끌어안으며 두 팔을 허우적거렸다.
"천사야!"
시할머니가 앞으로 손가락을 휘저으며 소리쳤다.
"천사들이 머리 위에서 춤을 추고 있어. 내 손을 잡으려고 한다구."
우리 눈에는 어른거리는 호롱불 그림자만 보일 뿐이었다. 그때 시할머니가 몸을 일으켰다.
"그래. 내 손을 잡아야지."
시할머니는 영혼의 문이 활짝 열리고 자유롭게 날아오를 준비가 된 듯 생전의 마지막 말을 했다. 그러더니 텅 비고 시든 육신이 아래로 축 처졌다. 미간의 주름살이 펴졌다. 너무 고요했다. 시할머니는 웃음기를 머금은 두 눈을 여전히 크게 뜬 채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날 밤으로 시신을 내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마지막으로 시할머니와 함께 잤다.
나는 이튿날 일찍 일어났다. 장례를 치르려면 준비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다면 장례 절차도 상당히 달랐을 터였다. 예전 같으면 집안에 재앙이 닥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서둘러 시신에 액막이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죽은 사람의 육신에서 악령이 빠져 나오지 않음을 아는 터라, 나는 안심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장례식을 준비했다.
시할머니의 몸을 씻기다 보니 치마 밑에 동전 주머니가 감추어져 있었고, 그 안에는 시할머니가 그토록 닦아 윤을 내던 은장도가 들어 있었다. 제정신이 아니면서도 줄곧 이것을 소중히 간직해온 것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은장도는 눈부신 빛을 발하고 있었다. 흐릿한 변색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누가 시할머니를 위해 이 은장도를 닦아 드린 건 아닌지 의아했다. 그래서 아이들과 남편에게 물어보았지만, 모두들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타당한 해답을 찾을수록, 시할머니가 정말로 천사들과 춤을 추었다는 확신만 굳어질 뿐이었다.
고집스런 나의 딸 덕화
시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나도 나 자신의 죽음을 더 가까이 느끼게 되었지만, 아직은 그 무엇이든 해 낼 자신이 있었다. 심지어는 글을 배우는 것까지도. 그것은 아버지의 굳은 신념에 반하는 열망이었다.
"후덕한 여인은 열장이 채 안 되는 접시도 제대로 세지 못하는 법이다."
이 말은 아버지가 좋아하는 격언이었다.
어떤 처벌이나 비웃음에 대한 두려움도 배움을 향한 열망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나는 열심히 교회에 나갔고, 그곳의 신자들도 나를 반겨 주었다. 그곳에는 내가 여자라는 이유로 싸워야 할 어떤 장벽이나 장애물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교회에서 책 한 권과 연필 한 자루를 받았다.
나는 성경 공부를 하면서 읽고 쓰는 법을 배웠다. 가능한 모든 정신력을 집중해야 했지만 나는 깨끗한 물을 삼키듯 단어들을 삼키며 지극히 기쁜 마음으로 귀를 기울였다. 이내 한글의 열 개 모음과 열네 개 자음을 암기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간단한 문자는 오래전에 세종대왕이 만든 독창적인 글이었다. 복잡한 한문을 이해하는 사람은 소수의 특권층에 불가하였으므로 노비까지 포함한 모든 백성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그의 희망이었다. 그 자신이 학자이기도 한 세종대왕은 음성학의 원리를 연구하여 인간의 목소리로 낼 수 있는 모든 소리를 표기할 수 있는 한글의 스물네 개 자모를 직접 고안해 내었다. 그분은 분명 천국에 계실 테니 언젠가는 직접 감사의 말을 전할 계획이었다.
단어들이 직접 입에서 줄줄 흘러나왔고 나는 집안에서든 거리에서든 큰 소리로 책을 읽었다. 내 혀에서 문장들이 굴러 나오는 게 얼마나 신기했던지. 나는 성경책과 공책이 너무도 자랑스러워서 모두가 잘 볼 수 있도록 늘 이것들을 갖고 근 십 리에 이르는 교회까지 걸어 다녔다. 어떤 문장이나 인용구, 또는 친구나 꽃의 이름을 적어두고 싶을 때 공책이 곁에 없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러한 문자 놀이는 끝이 없었다.
나는 매일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공책에 쓴 것을 다시 읽고 그 풍부한 교훈을 음미하며 성경을 공부했다. 그곳에는 모두가 읽을 수 있도록 사랑의 메시지가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하나님은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자녀를 똑같이 귀하게 여기셨다. 평생 처음으로 나는 아내도, 어머니도, 여자도 아닌 단순히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사실에 진정한 만족을 느꼈다. 사람으로 테어났음에.
이러한 깨달음은 내 삶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남편은 미쳤다고 하면서 모든 재산을 밖으로 내가는 나를 막아섰다. 하지만 나는 미친게 아니라 무한히 행복했다. 나는 마와 면으로 수수히 입을망정, 내가 준 비단 옷과 솜을 댄 따뜻한 외투를 입은 여인들이 지나다니는 것을 보면 무척 기뻤다.
나는 무언가를 남에게 주는 게 정말이지 좋았다. 내가 집으로 무언가를 들여온 것은 딱 한 번 뿐이었다. 어느 날 아침 교회로 가는 길에 이상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콘크리트 스레기통이 귀신에라도 들린 듯이 웅얼거리고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밑에서는 얼음이 깨지는 커다란 소리가 났다. 내가 그렇게 조심조심 다가가 뚜껑에 손을 대는 순간, 쇠로 된 쓰레기통이 활짝 열렸다. 나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쓰레기 더미 사이로 조그마한 발 하나가 삐죽 솟아 나와 있었다. 들여다보니 열두 살이나 열세 살이 채 안 된 어린 계집아이의 발이었다. 그 아이는 더러움 쓰레기 더미 사이에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야!"
내가 나와 있는 아이의 발을 꼬집었다.
"너 거기서 뭐 하는 거니?"
나는 그 계집아이가 유치한 장난을 하고 있는 줄로 알고 엄한 말투로 물었다.
"자고 있어요."
"왜 그 속에서 자는데?"
"전 매일 밤 여기서 자요. 뚜껑 좀 닫아 주세요."
감기로 코가 막힌 소리였다.
"가엾어라. 몸이 얼 텐데. 나와서 네 얼굴 좀 보여주겠니?"
나는 더 상냥하게 말하며 그 아이에게 한 손을 내밀었다.
아이는 우선 내 얼굴을 쳐다본 다음 손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잠시 생각해 본 후에 내 손을 잡았다. 거칠고 작았지만, 이전에도 여러 번 내 손에 닿은 적이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손이었다. 그러더니 그 아이가 허리를 굽힌 채로 몸을 떨면서 내 앞에 섰다.
"똑바로 서 보렴."
내가 말했다. 하지만 아이는 등 뒤의 커다란 혹 때문에 몸을 펴지 못했다. 나는 그때 어쩔 수 없이 등을 구부리고 서 있는 이 아이가 버려진 아이임을 깨달았다.
"제발 때리지 마세요. 다시는 여기서 자지 않을게요."
아이가 애원했다.
"내가 아무도 널 때리지 못하게 할게. 이름이 뭐니?"
"민아에요."
"아주 예쁜 이름이구나."
"제가 직접 지었어요."
"민아야. 내가 널 먹여 살릴 수는 없지만, 나를 따라가서 함께 살면 따뜻하고 깨끗한 잠자리는 줄 수 있단다."
"아줌마를 따라가면요?"
아래로 처져있던 아이의 눈꺼풀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
"그럼."
"아줌마랑 같이, 아줌마네 집으로요?"
"그래. 나랑 같이 우리 집으로."
나는 되풀이해서 말했다.
"하지만 그 전에 가야 할 곳이 있단다."
나는 민아를 데리고 교회에 가서 인도를 구하는 기도를 했고, 그동안 아이를 난로 옆에 앉혀 놓았다. 하지만 평소에 착하던 사람들까지 뒷말을 늘어놓았고, 코를 실룩거리며 불쾌감을 나타내었다. 남편의 반응이 두렵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 부디 저들을 용서하소서. 그리고 남편이 무슨 말을 하든 그 또한 용서하소서. 남편이 우리의 새로운 가족을 거부할 것만 같습니다. 제게 힘을 주십시오. 아멘."
나는 이렇게 기도했다.
"이제 집으로 가는 거에요?"
아이의 검고 커다란 눈이 희망으로 반짝였다.
"아직은 안 돼."
냄새나는 아이를 그대로 가족들 앞으로 데려갈 수는 없었다. 나는 우선 때를 깨끗이 씻어낼 수 있는 공중목욕탕으로 민아를 데리고 갔다. 여인들이 커다란 탕 주변에 웅크리고 앉아 서로의 등을 밀어주고 있었다. 아침 식사로 김치에 콩나물밥을 느긋하게 즐기는 여자도 있었다.
몸부림치며 발길질을 하는 것으로 보아 민아는 한 번도 목욕을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하물며 목욕용 수건이 피부에 닿는 느낌을 알 리가 없었다.
"이제 준비가 다 되었구나."
내가 갈기갈기 찢어진 옷감의 여기저기를 옷핀으로 고정시킨, 누더기 같은 민아의 옷을 바라보며 말했다. 늘어진 부분을 떼어 내려 하자, 민아가 혀를 삐죽 내밀었다. 그래서 그 이상한 옷차림을 그냥 놔둘 수밖에 없었다.
예상했듯이 민아에 대한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왜 거지를 우리 집으로 데려오신 거예요?"
덕화가 우는 소리를 했다.
"방이 없잖소."
남편이 말했다.
"우리 집에는 항상 방이 있어요."
내가 상냥하게 대답했다.
"엄마, 얘 누구야?"
용운이가 물었다.
"네 새 여동생이야. 이 애가 어린 동생들을 보살펴 줄거다."
"어떻게요? 동생들을 등에 업지도 못하는걸요."
덕화가 힐난하듯이 민아의 혹을 가리키며 말했다.
"다른 방법으로 보살피면 되지."
"난 이 애가 싫어요. 옷에서 썩는 냄새가 나잖아요."
덕화가 입을 삐죽댔다.
"냄새는 안 나게 할 수 있잖니."
"내 옷은 하나도 안 줄 거예요."
"덕화야. 언니와 나누어 갖는 법을 배워야지."
"이 애는 우리 언니가 아닌걸요."
"그만해 둬!"
내가 혀를 차며 단호하게 말했다.
"이 애는 네 언니야. 그리고 내가 널 사랑하듯이 너도 이 아이를 사랑해야 해."
나를 오래동안 바라보던 덕화가 눈물을 떨구었다. 그리고 울음을 참을 수 없게 되자, 외투도 입지 않은 채 겨울밤 속으로 달려 나갔다. 뒤쫓아가서 따뜻한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오고 싶었지만, 절망감을 스스로 풀어버리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것은 곱사등이 계집아이 때문에 생긴 절망감이 아니라, 가난과 추위를 강요받은 데서 온 감정이었다. 한 시간 후에 덕화가 돌아왔다. 걷잡을 수 없이 이빨을 떨면서.
"이제 이 추위에서 밖에서 사는 게 어떤 건지 알았을 게다."
나는 덕화를 따뜻하게 안아주며 말했다.
민아가 우리 가족이 되는 일은 쉽지 않았고 끊임없는 불평이 뒤따랐다. 아이들은 민아 옆에서 자려 하지 않았다. 덕화는 싫어했지만, 나는 민아를 우리 둘 사이에 눕혔다. 아침이면 우리는 추위에 몸을 떨며 깨어나곤 했다. 미닫이문은 어느새 열려 있었고, 모두가 함께 덮는 솜이불은 차 내려진 상태였다. 민아는 차가운 공기가 들어오는 바깥쪽으로 머리를 두고 누워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거리를 떠돌며 살아온 탓에 민아는 뜨거운 온돌 바닥을 견디지 못했다.
결국 민아는 헌신적인 노력으로 가족들, 특히 민아가 성심성의껏 돌보는 어린 두 아들의 호의를 얻어냈다. 민아는 총명하게도 그 아이들을 제 편으로 만든 다음 늘 데리고 다녔다. 그리고 누가 물을 한 잔 달라거나, 머리를 빗어 달라거나, 노래를 불러 달라고 하면 기꺼이 그렇게 해 주었다. 민아를 처음 만난 장소를 가족들이 알게 되었지만, 그것 역시 문제거 되지 않았다. 민아가 한 가족이 된 데 용기를 얻은 나는 뒤이어 또 다른 가족을 받아들였다.
이웃에 손수레를 끄는 정씨라는 깡마른 남자가 있었다. 자주 우리 집 앞을 지나는 정씨는 고철로 된 가위를 부딪쳐 리듬감 있는 소리를 내며 일을 달라고 애원했다. 늘 절박한 음성이었다.
"일을 주세요. 일을 주세요. 어떤 일이든요. 일을 해 드릴 게요."
당시에는 정씨같은 거지들이 많았다. 한때는 지주였고 존경받고 지체 높은 위치에 있던 이들이 지금은 누더기를 걸친 거지가 되어 있었다.
집이 없었으므로 부인과 두 아들도 정씨를 따라다녔다. 내가 정씨네 가족에게 방 하나를 내 주겠다고 하자,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친형도 우리를 내쫓는 마당에 왜 부인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잘해 주시는 거죠?"
"조건이 한 가지 있어요. 매주 일요일 가족들을 다 데리고 우리와 함께 교회에 가야 해요."
"부인도 저 기독교인들 중 한 명이신가요?"
정씨가 먼 곳에 있는 뾰족탑을 가리켜 보였다.
"그래요."
내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렇게 하겠다면 정씨와 정씨네 가족을 내 집에서 환영할게요. 여기서 공짜로 지내세요."
"공짜로요?"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에요. 그분이 정씨를 이곳으로 보내신 데는 다 이유가 있어요."
정씨는 눈썹을 치켜올리고 두 손으로 힘없이 허리를 받친 채 잠시 말이 없었다.
"음."
그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다면 그 제안을 받아들이겠어요."
정씨는 즉시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보잘것없는 세간을 싸가지고 와서 시할머니가 계시던 안채로 들어갔다. 남편의 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왜 당신은 거지를 끝도 없이 받아들이는 거요? 우리 아이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예요. 그 사람들이 없이 지내는 걸 못 본 척할 수는 없어요. 가진 것은 많지 않지만, 더 불행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지 못할 정도는 아니잖아요."
"불행한 사람은 바로 나요. 나는 남편에 순종하지 않는 아내와 함께 사는 운명을 타고 난 사람이란 말이요. 당신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은 나를 괴롭히기 위해서요."
"그렇지 않아요."
"내가 가족들을 이곳 북한으로 데려온 데 대해 당신이 날 원망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소. 당신은 남한에 땅을 사자고 했으니, 우리 땅을 잃은 것은 나 때문이라고 날 탓하고 있지 않소."
"우리가 아직 함께 살고 있는 한 난 아무것도 원망하지 않아요."
"거짓말 마시오. 당신은 내가 필요 없는 사람이야. 한 전도 나를 필요로 했던 적이 없다구."
마지막으로 술을 마신 지가 꽤 되었기 때문인지 그의 목소리는 메마른 데다 잠겨 있었다. 우리의 지갑이 비어 버렸듯이 남편의 영혼도 텅 비어 있었다.
비탄에 잠긴 남편을 교회로 인도하려고 그토록 애쓴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다. 민아와 정씨의 구원을 통해 남편도 구원할 수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그러한 믿음을 굳게 다지며 우리 집을 다른 사람들에게 개방했다.
남편을 제외한 모두가 예배를 드리러 가는 일요일 말고는 정씨를 거의 볼 수 없었고, 그는 일요일에도 예배를 마치는 대로 손수레를 끌고 일을 찾아 나섰다. 그 가엾은 사내는 한시도 쉬지 않았다. 어느 날 오후 일이 있어 나가려다 보니 정씨가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죽을 것만 같아."
정씨가 한탄을 늘어놓았다.
먹을 것만 있으면 남편의 고통이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었는지 당황한 정씨의 아내가 부엌으로 황급히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는 삶은 달걀을 남편의 입에 털어 넣으며 "드세요. 드세요. 당신 너무 말랐어요."라고 말했다.
놀랍게도 정씨는 자신이 앉아있던 바로 그 의자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정씨의 아내는 비명을 지르며 머리카락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제 머리통을 치며 밖으로 뛰어나갔다. 동아와 보니 정씨의 아내는 자신의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문밖에 나와 둥글게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나를 보자 그녀가 큰 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했다.
"내 남편이, 그 사람이 죽었어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정씨의 아내가 내 손을 움켜잡으며 더 큰 소리로 울어 댔다.
"확실해요?"
그녀가 머리를 아래위로 흔들어 댔다.
"그 사람을 좀 더 잘 먹였어야 하는 건데. 너무 부실하게 먹였어요. 그 착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아이들에게 주는 바람에......"
정씨의 아내가 거품을 토해 냈다.
"정씨 있는 데로 갑시다."
내가 그녀에게 앞장 서라는 몸짓을 해 보였다.
정씨의 아내가 내 손을 뿌리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싫어요! 난 못 가요."
"정씨는 내 남편이 아니라 당신 남편이에요."
내가 화를 냈지만 정씨의 아내는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혼자 가 보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정씨가 안뜰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는 두 손을 무릎 위에 얹은 채 머리를 가슴에 박고 앉아있었다. 나는 가까이 다가
가서 정씨의 어깨를 살짝 쳤다.
"아저씨, 일어나세요, 아저씨."
내가 조그마한 소리로 말했다.
반응이 없었다. 정씨의 머리를 잡아당기자, 생명이 떠나고 난 힘없는 머리가 뒤로 축 늘어졌다.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놀랍게도 소리를 지른 사람은 바로 나였다. 수염이 꺼칠한 턱은 하늘을 향해 치켜올려지고, 입술 사이에는 아직도 삶은 달걀이 잔뜩 들어 있었다. 참 끔찍한 죽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싼 달걀이 아깝다는 생각과 함께.
밤늦게 집에 돌아온 남편이 의자에 앉아 죽어 있는 정씨의 발에 걸려 넘어졌다.
"이게 대체 뭐야?!"
남편이 고함을 쳤다.
"정씨가 세상을 떠났어요."
"그런데 왜 여기 앉아있는 거요?"
"미신을 믿는 정씨의 아내가 집 안으로 들어와서 남편의 시신을 거두려 하지 않아요."
나는 이렇게 대답한 다음, 남편에게 그의 외투를 하나 팔아 관을 사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우리 집을 거지들과 함께 쓰라고 하더니 이제는 내 몸에서 옷을 벗겨 그 거지들에게 주려는 거요?"
남편이 이 말을 내뱉으며 너무 화를 내는 바람에 침이 튀어 그의 아래턱으로 툭 떨어졌다.
"최소한 관 하나는 사 줄 수 있잖아요. 모든 사람에게는 제대로 묻힐 가치가 있는 거라구요."
"당장 그 사람을 끌어내요! 데리고 나가라구."
남편이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날 밤 나는 두려움에 떠는 아이들과 남편을 잠자리에 눕힌 다음, 다시 안뜰로 나갔다. 정씨가 여전히 앉아있는 의자 밑으로 소변이 질척하게 고여 있었다. 나는 남편이 또 걸려 넘어지기 전에 재빨리 그곳을 치웠다. 이튿날 아침 일찍 나는 남편의 맞춤 가죽구두 한 켤레를 치마 밑에 숨겨 가지고 몰래 집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는 시장으로 달려가서 살 사람을 물색했다. 좋은 물건이라고 감탄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적당한 가격을 지불할 만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사기 전에 한번 신어 봅시다."
어떤 마른 남자가 제안을 했다. 그가 성급하게 걷어 올리는 바짓단 아래로 허연 맨발이 드러났다.
"일단 구두를 신은 다음에 도망가지 않으리라는 걸 어떻게 믿죠?"
내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구두를 신어 보지 않으면 잘 맞는지 안 맞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제가 보면 알아요. 내 남편의 발과 똑같은 크기네요."
남자는 몸을 돌려 가 버릴 것처럼 하더니 다시 한번 나를 쳐다보았다.
"골치 아픈 아낙네로구만, 자, 이 돈 받아요."
그의 손바닥에 동전 서너 개가 놓여 있었다. 그것이 한나절 동안 받은 유일한 제안이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구두를 팔았다. 그리고 그 돈으로 서둘러 망치질을 한 듯한, 윤을 내지 않은 평범한 나무관을 하나 샀다.
관을 가지고 집에 동아와 보니 정씨는 바싹 마른 데다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정씨를 관에 눕히려고 해보았지만 그의 몸은 의자 모양으로 굳어 있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이 없었다. 흔들의자를 반듯하게 펴려고 애쓰는 것과 똑같았다. 다리를 내리누르면 머리가 올라 왔고, 가슴을 누르면 무릎이 내 배를 쳤다. 결국 뼈를 몇 개 부러뜨린 후에야 정씨를 반듯하게 눕힐 수가 있었다. 그리고는 장례식 도중에 뚜껑을 열고 튀어나오지 못하도록 못을 몇 개 더 박았다.
"가엾은 사람, 천당에 가지 못할거야."
내가 정씨의 얼굴에 새겨져 있던 놀란 듯한 표정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알아요, 엄마?"
덕화가 물었다.
"죽음이 코앞에 닥친 사람들은 두렵기 때문에 살려고 발버둥을 친단다. 기독교인들만이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하지. 저세상에서 무엇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지를 잘 아니까."
며칠이 지나자 온 집안에 정씨의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정씨의 아내는 죽은 남편의 영정을 껴안고 끝없이 울었다.
"아이구, 아이구, 남편의 지친 영혼이 이 집 주변을 맴돌고 있어요. 우리를 병들게 하고 재앙을 내리려고 온 거에요. 느낌이 전해져 오는걸요. 무당을 불러다가 굿을 해야 한다구요."
"그 말도 안 되는 의식을 믿는 게 우리 교리에 위배 된다는 걸 잊었어요?"
내가 정씨 부인을 일깨워 주었다.
"무당이 옷을 갖춰 입고 북을 치며 춤춰야 해요. 죽은 남편의 영혼을 위로해서 저 세상으로 보낼 사람은 무당밖에 없다구요."
"그렇게 할 수는 없어요."
내가 단호하게 말했다.
정씨의 아내는 그날로 짐을 싸서 작별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아이들을 데리고 안채에서 나갔다. 정 씨가 앉은 채로 죽었던 의자마저 챙겨서 한편으로는 그렇게 가 버린 게 다행스럽기도 했다. 정씨의 혼백이 우리 집을 떠돌고 있다는 말을 여러 차례 들은 남편은 그 말을 떨쳐 버리지 못해 급기야 헛것을 보기까지 했다.
"그 사람이 여기 있어. 정씨가 돌아왔다니까."
남편이 겁에 질려 중얼거렸다. 그는 정씨의 혼령을 떠나보내기 위해 집안 곳곳에 메주콩을 뿌려 놓기도 했다.
"썩 나가거라."
남편이 아까운 메주콩을 허비하며 신경질적으로 고함을 쳤다.
"썩 나가. 썩 나가. 나가라니까. 나가라구."
이렇게 소리치는 남편의 목과 관자놀이의 정맥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여보, 제발 저와 함께 기도드려요."
내가 사정했다.
"당신은 당신 교회에 나가 당신의 신을 믿구려. 나는 내 유일한 신인 주신을 믿을 테니까."
남편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나는 남편을 몹시 사랑했지만 내 사랑만으로는 충분치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남편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들여 속세에 대한 탐닉을 치유 받아야 했다.
"아이구. 더 이상은 못 참겠다."
느닷없이 남편이 목이 쉬어 갈라진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그는 폭발 직전이었다. 남편은 한 손을 떨리는 입술에 갖다 대고 마음을 진정하려고, 눈물을 참으려고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 작고 가혹한 세상을 지배하는 엄청난 슬픔이 그를 가장 비참한 지경으로 몰고 갔다. 술이나 아름다운 여인이 주는 위안도 더 이상 남편의 슬픔을 잠재우지 못했다.
한때는 자부심에 넘치고 품위 있던 이 남자가 지금은 여느 사내와 다르지 않은 옷차림을 하고 흐느껴 우는 것을 보니 가슴이 미어질 것만 같았다. 남편은 두 무릎을 끌어안은 태아 같은 자세로 마루에 웅크리고 있었다. 흐느낌은 계속되면 점점 더 커졌다. 그러고 있는 남편을 보니 딱 한 번 보았던 친정 부모님의 우는 모습이 떠올랐다.
남편은 울고 또 울었고 나는 그가 원하는 만큼 울도록 내버려 두었다. 내내 말없이 지켜보고만 있던 나는 남편이 피곤에 겨워 쓰러진 후에야 비로소 그의 곁으로 갔다. 그리고는 남편이 놀라지 않도록 작은 물소리로 말했다.
"저 여기 있어요. 여보."
내 목소리를 들은 남편이 자신의 머리를 내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그래서 나는 남편을 두 팔로 감싸 안아 달래 주었다. 나는 술에 취하는 것을 혐오했지만 이번만은 남편의 괴로움을 달래 줄 술이 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한테 마음을 여세요. 그러면 귀 기울여 주시고 당신의 고통을 덜어 주실 거예요."
남편이 마침내 눈을 뜨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양놈들의 신이 어떻게 내 고통을 이해한단 말이오. 그 사람들이 우리를 침략한 자들이란 걸 잊었소. 그것이 어떤 종교이든 왜 우리가 그자들의 종교에 굴복해야 한단 말이오."
그리고는 못이 박힌 손으로 두 눈을 문질렀다.
"그분은 실재하시고 모든 이들에게 속해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스도를 영접하세요. 그러면 당신의 영혼을 괴롭히는 그 탐욕스러운 육신에서 벗어나 영혼의 자유를 얻게 될 거예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러면 당신은 구원받지 못해요. 이승에서의 삶은 불확실해요. 우리 모두 곧 죽게 될지도 몰라요. 하지만 당신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아이들과 천국에서 만날 수 있게 된다구요."
남편은 일어나 앉더니 내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죽은 후에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나도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소. 당신과 떨어져 있고 싶지 않단 말이오."
남편은 우리가 곧 헤어지기라도 할 것처럼 서글프게 말했다.
"당신이 기독교 신자가 되면 아무도 우리를 떼어놓지 못해요. 영원히 말이에요."
"그렇다면 기독교 신자가 되리다."
나는 몸이 더워지는 것을 느꼈다. 잃어버렸다가 이렇게 되찾은 사랑으로 우리의 유대는 더욱 굳건해졌고 과거의 쓰라림은 기쁨으로 밝아졌다. 게다가 남편은 몸을 씻고 머리를 빗어 넘겨 잘생긴 얼굴과 총명한 눈망울을 드러내며 매무새를 단정히 하기 시작했다. 두 눈에서 한동안 잃어버렸던 빛이 되살아났다.
일요일에 제일 먼저 일어나 교회 갈 준비를 하는 사람은 늘 남편이었다. 그는 열성으로 성경을 공부했다 그리고 귀를 기울여 주는 사람만 있으면 누구든 붙잡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구언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전기가 흐르는 둣한 그의 열정으로 많은 신자들이 생겨났고 가족들의 신앙심도 끊임없이 고취시켜 주었다.
나는 우리의 영혼을 고양시키기 위해 남편이 직접 그린 그리스도의 초상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치렁치렁한 머리칼과 넓은 이마까지 세부적인 부분이 무척이나 사실적이었던 그것은 어떤 값비싼 보석보다 더 소중한 남편이 내게 준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 그림 옆이나 주변에는 아무것도 걸어 두지 않았다. 게다가 그림을 완성한 지 이레째 되는 날마다 경이로운 일이 벌어졌다. 마치 그리스도의 얼굴이 살아나기라도 하듯 그림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아버지의 열의에 고무된 큰 아이 둘도 하나님의 모범적인 자녀가 되려고 노력했다. 두 아이의 신앙심을 따라올 아이들이 없을 정도였다. 남편은 아이들의 모범적인 행동 때문에 신자들로부터 많은 칭찬을 받았다.
하나님에 대한 아이들의 믿음은 굳건했지만 나는 이 아이들이 공산주의자들 때문에 흔들리게 될까 두려웠다. 내 아이들을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자들에게 넘기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결정인지 생각해 보았다. 의식교육으로 사고방식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들의 선전이 이미 많은 성인들의 생각을 왜곡시켜 놓은 사태였다. 그 사탕발림한 약속 이면에 숨어있는 진실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제거해 버림으로써.
덕화가 계속 학교에 다니겠다고 고집을 부리지만 않았어도 나는 그 애를 안전한 부엌에 가두어 둘 작정이었다. 우리 같은 신자들은 주요한 표적이었다. 역사적인 일이지만 1948년 북한의 인민헌법은 종교적인 믿음과 그 의식을 행할 권리를 인정했다. 그러자 초등학교 학생들까지 포함된 모든 신자들이 여기저기서 모습을 드러냈다.
새로 추대된 김일성 수상의 총천연색 사진이 각 교실 앞에 내걸리고 일제히 그에 대한 충성을 노래하고 맹세하던 어느 날 열 명의 관리들이 연필과 종이를 들고 예고 없이 모든 교실을 돌았다. 그들의 임무는 기독교를 믿는 학행들을 빠짐없이 색출해 내는 것이었다.
"하나님을 믿는 학생은 손을 들어 봐요."
덕화의 담임 선생님이 말했다.
60명의 학생들 중 덕화를 포함한 39명이 손을 들었다. 이들의 이름은 종이에 기록되었고 또 선생님의 기억에 새겨졌다. 그러고 나자 그들은 교실로 들어올 때처럼 질서정연하게 한 줄로 줄을 지어 나갔다. 발자국 소리까지 완벽하게 일치했다. 선생님은 마지막 관리가 모퉁이를 돌기를 기다렸다가 그제서야 문을 닫았다. 나무 의자 끝에 걸터앉은 학생들이 놀라서 몸을 움찔했다.
"하나님을 믿더라도 다시는 손을 들어서는 안 돼. 하나님은 똑같이 믿되 손은 들지 않는 거야."
선생님의 목소리는 비장했다.
"네 선생님."
학생들이 입을 맞춰 대답했다.
다음 날 아침 똑같은 관리 열 명이 종이와 연필을 들고 신속하게 교실로 들어왔다. 이들은 그 테 안경 너머로 두 눈을 번뜩이며 더 위협적인 태도를 보였다.
선생님은 어린 학생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하나님을 믿는 학생은 손을 들어 봐요."
이번에는 덕화와 남자아이 한 명 이렇게 용감한 두 학생만 손을 들었다. 선생님은 믿을 수가 없었다. 또 이들의 이름이 적혀졌다. 선생님은 관리들이 교실에서 나갈 때까지 화를 참느라 자신의 책상 뒤에 굳은 자세로 서 있었다. 선생님이 꼼짝 않고 있자 교실 안이 술렁거렸다. 아이들은 모두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다. 선생님은 날쌘 동작으로 덕화와 그 남자아이의 귀를 잡아채 가지고 자신의 사무실로 끌고 갔다. 선생님의 얼굴이 별안간 호랑이처럼 변했다. 그동안 상냥한 가면을 쓰고 있었던 것처럼.
"너희 둘은 제일 똑똑한 학생이다. 너희가 학교에서 쫓겨나면 난 너무 괴로울 거야. 너희 부모님도 무척 당황하실 거고."
선생님은 은밀한 꾀를 짜냈다.
"난 너희 둘이 곧 정신을 차릴 거라는 걸 알고 있다. 너의 둘도 계속 학교에 다니고 싶지?"
"네 학교에 다니고 싶어요."
남자아이가 우물거리며 말했다.
"그럼 그래야지."
선생님이 웃으며 그 아이를 제자리로 돌려보냈다. 그런 다음 덕화에게로 돌아섰다.
"너는?"
그녀는 자신감에 넘쳐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전 그렇게 못해요."
덕화가 대답했다.
"그렇게 못하겠다는 게 대체 무슨 뜻이냐?"
선생님이 고함을 쳤다. 하지만 이내 냉정함을 되찾았다.
"알겠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 다음 두 팔을 양옆에 붙이고 서 있는 덕화의 뒤로 서서히 다가갔다.
"덕화야 넌 지금 네 나이 때의 나와 너무 많이 닮았어. 너 역시 남들을 이끌기 위해 태어난 것 같구나. 널 도와주마. 내일 네가 손을 들지 않으면 널 학급 반장을 시켜 주마. 그리고 네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하는 말인데 난 네가 기말고사를 치르지 않게 해줄 수도 있어. 내년에 3년 장학금을 받고 곧바로 제일 좋은 중학교에 들어가게 해줄 수도 있고 말이야. 단지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
열한 살인 덕화는 힘겨운 결단을 내려야 했다. 덕화는 하나님 다음으로 공부를 사랑한 아이였다. 유혹이 너무 강렬했든지 덕화가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엄마 어떻게 하죠. 선생님께서 내가 손만 안 들면 제일 좋은 중학교에 3년 장학금을 받고 들어가게 해주신다는데."
덕화가 한숨을 내쉬었다.
덕화는 절망에 빠져 있었다. 제 아버지와 내가 올해 학비도 겨우 냈음을 잘 알고 있던 터였다. 우리의 최우선의 책임 최우선 순위는 장남에게 있었다. 당연히 용운이를 교육시키는 게 우선이었다.
"그렇지 않다. 하나님만이 너에게 그러한 일을 약속하실 수 있고 또 쉽게 그러한 것을 빼앗아 가실 수도 있단다. 네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한 손을 들고 안 들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말해 주고 싶구나. 하지만 그건 그릇된 일이다."
"선생님이 너무 단호하세요. 저 혼자서 그분과 싸울 수는 없어요."
"선생님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단다. 그분은 마지막 때에 널 심판할 사람이 아니니까. 하나님은 네가 내 이름을 부인하면 나도 네 이름을 기억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내일 손을 들어야 할 때가 오면 똑바로 들도록 해라. 하나님을 믿으려무나. 그분이 널 보호해 주실 테니."
덕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충고가 최선의 해결책인지 가늠해 보는 듯했다.
"그렇게 하도록 노력해 볼게요."
마침내 덕화가 약속했다.
"안돼. 덕화야. 최선을 다해야만 해."
덕화는 가지런히 자른 앞머리 밑으로 두 눈을 감추며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튿날 아침 나는 특별히 덕화에게 입히려고 분홍색과 파란색 실로 짠 스웨터를 골랐다. 내가 그 애를 감싸 안고 힘을 주고 있음을 느끼기를 바라면서. 나는 가장 힘겨운 시련에 맞서기 위해 집을 나서는 아이를 무기력하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마지막 남은 목표물을 일소해 버리기 위해 연필을 치켜든 사격대가 걸어 들어왔을 때 모든 시선이 일제히 덕화를 향했다. 덕화는 두 손을 책상 위에 올려놓은 채 의자 끝에 똑바로 앉아있었다. 선생님이 목을 가다듬었고 학생들은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선생님이 턱에 너무 힘을 주는 바람에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지만 그 무시무시한 질문을 또렷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하나님을 믿는 학생은."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문장을 다 끝내기도 전에 덕화의 열기 어린 손 때문에 갑자기 말을 멈추어야 했다. 덕화는 똑바로 정면을 응시한 채 한 팔로 귀를 누르며 하늘을 향해 곧게 뻗었다. 선생님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덕화는 이번에는 머리채를 잡힌 채로 또 한 번 사무실로 끌려갔다. 선생님은 생전 처음 듣는 욕설과 악담을 퍼부었다. 그 같은 시련을 겪으면서도 덕화는 내내 똑바로 서서 대담하게 선생님을 마주 보았다.
"북한 전체에서 너 같은 계집애는 하나밖에 없을 거다."
선생님이 두 손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으르렁댔다.
예기치 않은 칭찬에 덕화는 얼굴 하나 가득 미소를 지었고 그 미소는 선생님의 분노에 불을 붙였다.
뭣 때문에 그렇게 기분이 좋은 거냐. 내가 지금당장 그 웃음을 네 얼굴에서 사라지게 해주마. 널 보니 옷에까지도 십자가가 그려져 있구나.
선생님의 말이 맞았다. 덕화의 분홍빛 스웨터에는 수평으로 뻗은 파란 허리띠에 앞쪽으로 수직선이 내려쳐져 있었다.
그 순간 덕화의 귀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너 덕화는 무척 훌륭하구나. 내가 오늘 이후로 널 아끼고 보호해 주겠다."
하나님은 덕화에게 이렇게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지키셨다. 중학교에 진학할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해 전국에서 시험이 치러졌을 때 하나님은 덕화를 굽어살피셨다. 다른 학행들은 책에 너무 몰두해 지쳐 병이 났지만 덕화만은 건강하고 활기로 넘쳤다.
시험을 치르던 날 모든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무작위로 수험 번호를 배정받았다. 이들은 한 수험장에서 다음 수험장으로 바삐 오가야 했다. 긴장한 학생들은 마지막 순간에도 억지로 무언가를 외우느라 책에 코를 파묻고 있었고 덕화 역시 그랬다. 하지만 마치 기적처럼 덕화가 들어간 모든 시험장에서 시험관들은 그 애가 바로 몇 분 전에 본 그 문제를 구두로 물어왔다. 시험관이 질문을 던지면 덕화는 외워 둔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있다가 즉시 정답으로 응답하곤 했다.
일주일 후에 가족 모두가 덕화의 점수를 보러 학교로 갔다. 우리는 모두 조마조마했지만 덕화는 그렇지 않았다. 덕화가 너무 자신만만해 해서 자랑한 만큼의 점수가 나오지 않으면 그 애가 실망하게 될까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다행히 그리고 자랑스럽게도 덕화는 최고 점수를 받은 학생에 속했다. 나는 그때 하나님이 덕화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계심을 깨달았다.
여동생과 달리 용운이는 보다 더 온화하고 유순한 성품을 갖고 있었다. 그 애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골똘히 생각하는 축복받은 의식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이러한 축복은 일면 거추장스러운 것이기도 했다. 용운이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모든 불의에 대해 지나치게 많은 생각을 했고 인민위원회로부터 배신당했다고 생각했다. 그 애는 열심히 기도하며 정의가 싹트기를 기다렸지만 암흑만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어둠이 용운이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가 그 애의 눈부시고 천진하던 웃음을 앗아가 버렸다. 용운이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토록 온화한 성품을 지닌 내 아들이 법을 어긴 것이었다. 그 애는 자신이 다니는 고등학교의 학생들을 규합해 우리의 영도자 김일성에 대항하는 시위대를 조직했다. 시위대는 그 혐오스러운 폭군의 얼굴을 붉은빛으로 난도질한 그림이 그려진 피켓을 들고 교정을 돌았다.
"김일성은 물러가라. 김일성은 물러가라. 우리의 진정한 영도자는 예수 그리스도시다."
학생들은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외쳤다.
그날 늦게 무를 썰던 나는 용운이가 높다란 대문턱에 걸려 넘어지는 것을 보았다. 갈기갈기 찢낀 아이의 모습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찢어진 상의는 겨우 몸에 붙어 있었고 그 아래 피부에는 매질 당한 자국이 길게 나 있었다. 피부가 찢겨져 나간 곳에서는 시뻘건 피가 흘러내렸다. 아주 끔찍한 매질이었다. 나는 치마에 걸려 넘어지며 용운이에게로 급히 달려갔다.
"용운아. 누가 이랬니?"
할 말은 분명히 마음속에 담고 있었지만 용운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용운이는 내 얼굴을 응시한 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아버지처럼 검고 큰 눈망울이었다. 하지만 훨씬 더 깊이가 있었다.
"무슨 일이냐?"
내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신은 하나님 한 분이시고 그분은 우리의 수상이 아니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그놈들이 내가 들고 있던 피켓으로 날 때렸어요."
나는 용운이를 꼭 끌어안았다. 용운이는 분노의 눈물을 흘리며 이를 악물었다. 공포감이 온몸으로 힙쓸고 지나갔다. 공산주의자들이 용운이를 체포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기독교를 믿는 정치인과 지도자들은 모두 탄압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예배를 보는 것은 여전히 용인되었다.
나는 당국에 도전하는 행위가 된다 할지라도 내 아들을 안전하게 지키겠노라고 맹세했다.
전쟁. 전쟁. 전쟁.
1950년 봉, 38선 이북에서의 삶은 모든 면에서 악화 일로를 걷고 있었다. 잘 먹고, 안락하게 살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개인적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희망이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대로마다 어린 병사들을 실을 군 트럭이 정신없이 달리고, 기차역마다 남쪽으로 향하는 병사들로 가득한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민들은 무지했고, 정보는 통제되었다. 그리고 신문에서는 남한이 북한을 공격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것처럼 속이기 위한 선전에 열을 올렸다. 속임수와 의혹이 난무하는 이제와는 전혀 다른 낯선 나라에 살고 있는 것 같았다.
1950년 6월 25일,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이데올로기의 충돌 때문에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민족이 둘로 갈라진 그날을 결코 잊지 못하리라.
그 일요일 아침, 가족들과 나는 여느 때처럼 예배를 참석했다. 오전 9시 30분경 예배 시작을 알리는 찬송가 사이사이에 밖에서 들려오는 분노의 외침이 섞여들었다. 처음에는 교회가 습격을 당하게 된 줄만 알았다. 다른 사람들도 같은 결론을 내렸는지 모든 신도들이 술렁거리며 고개를 돌려 뒤쪽의 이중문을 바라보았다. 김 목사마저도 생각의 갈피를 잃었는지 말이 엉켜 들고 있었다. 설교가 중단되자마자 나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보러 옆문으로 빠져나왔다. 밖은 거리로 몰려나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상인들은 그릇을 깨고 과일과 고식을 떨어뜨리며 손수레를 서로 부딪쳤다. 길 잃은 아이들은 엄마를 찾으며 울부짖었고 어머니들은 잃어버린 아이를 고함쳐 불렀으며 가축들은 우리 속에서 이리저리 내달았다. 완전히 혼란 그 자체였다.
몇 미터 밖에서 한 남자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갈팡질팡하는 사람들과 부딪치며 그 남자에게로 달려갔다.
"아저씨. 왜 그러세요?"
"끔찍합니다. 누가 감히 생각이나 했겠어요."
"뭘 말인가요."
내가 남자를 재촉했다.
"남한의 형제와 자매들이 우리 북한으로 쳐들어왔답니다."
남자가 무겁게 입을 뗐다.
"그럴 리가. 거짓말이죠.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 주세요."
내가 채근했지만 남자는 다시 얼굴을 파묻을 뿐이었다.
나는 다시 거리를 따라 내려오다 처음 만난 학생을 붙잡았다. 상의에 두 줄로 단추가 달린 짙은 감색 대학생 교복에 공산당 모자를 쓴 남학생이었다.
"학생. 대체 무슨 일이야."
내가 애원하듯 물었다.
"이승만 독재 괴뢰 정권이 우리나라로 쳐들어왔습니다."
학생은 이렇게 외친 다음 똑같은 교복을 입은 젊은 청년과 여성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들은 애국가를 부르며 불끈 쥔 주먹을 높이 쳐들고 행군했다.
나는 몸이 너무 떨려 노래를 부를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고 심지어는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 말이 과연 사실일까. 나는 똑바로 선 채로 두 눈을 감고 조용히 기도를 올렸다.
"아버지 지금 이순간이 악몽이게 하소서."
바로 그때 누군가의 손이 내 어깨를 움켜잡았다. 나를 데리러 나온 남편이었다. 남편에게로 몸을 돌리자 그도 나처럼 음울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우리 민족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여보."
내가 물었다.
"나도 모르겠소."
남편이 힘없이 답했다.
내가 기대한 것은 그런 대답이 아니었다. 나는 남편이 용감한 사람이기를 진정한 사내이기를 그리고 우리 가족을 이끌어 줄 사람이기를 바랐다.
"우리의 지도자께서 라디오에 나왔습니다."
어느 여학생이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들이 라디오를 찾아 공공건물과 학교로 몰려들었다. 남편과 나도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방송을 듣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서 달렸다. 용운이와 덕화가 앞장을 섰다. 우리는 휴대용 라디오 하나를 둘러싸고 귀를 쫑긋 세운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는 은행으로 들어갔다. 아이의 울음소리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때 평양방송의 뉴스가 흘러나왔다.
"김일성 수상께서 직접(조선의 인민들에게 보내는 전문)을 발표하십니다."
그가 우리의 운명에 대해 얘기하는 동안 우리는 모두 꼼짝 않고 귀를 기울였다. 그는 우리 쪽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불렀다. 너무 딱딱하고 군사적인 용어라서 머리털이 곤두섰다.
남한의 괴뢰 도당들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제안한 평화 통일의 모든 방법을 거부하고 감히 군사적 침공을 자행하였습니다.
악몽이 아닌 현실이었다. 그날 오전 11시에 북한은 전쟁을 선포했다. 전쟁...전쟁...전쟁.
우리는 남한이 38선 이북의 해주 지역을 공격해 우리 쪽을 전쟁으로 끌어들임에 따라 우리 편도 반격에 나서게 되었다고 들었다. 나는 한 나라 안에서 형제들끼리 싸워야 하는 이유를 하나님께 묻고 또 물었다. 코쟁이인 미국 야만인들에게 조종당하는 남한 동포가 가엾었다. 하지만 동시에 배신감과 분노가 치밀어오르기도 했다. 나도 주먹을 움켜쥐고 분연히 일어서고 싶었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가족들과 함께 우리 집이 전쟁의 화염에 휩싸일 때를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코앞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말았다. 하늘이 산산조각 나며 우리 모두를 덮칠 것처럼 머리 위로 무시무시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것은 하늘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무자비하게 폭탄을 떨어뜨리는 제트기와 폭격기가 내는 소리였다. 폭탄 하나하나가 윙 소리를 내며 떨어져 땅에 부딪치는 순간 천지가 진동하며 대폭발이 일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바닥에 웅크린 채 얼굴을 가렸다. 펑. 펑. 펑. 대지가 흔들리고 또 흔들렸다. 펑. 펑.
마지막 폭탄이 떨어지고 비행기 엔진의 끔찍한 폭음이 남쪽의 지평선으로 멀어질 때까지 우리는 그렇게 웅크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 더 벌어질까 두려워 꼼짝도 하지 못한 채.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만 더 이상의 진동도 폭격도 없었다. 그때 기분 나쁜 정적을 뚫고 길고 선명한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비틀거리며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겼다.
"다 끝난 거예요?"
아이들이 울먹이며 물었다.
"아냐"
우리가 사는 곳이 인민 정부의 수도임을 잘 아는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 그리고 내 말이 옳았다. 우리는 이내 귀를 찢는 듯한 공습경보 사이렌 소리에 익숙해졌다. 우리가 사는 곳은 끊임없이 공격받았다. 뉴스에서는 우리 편의 손실과 사망자 수를 실제보다 줄여서 보도했다. 모두들 우리 쪽이 승리하고 있다는 의심스러운 정보만을 대할 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사상자 수와 파괴된 규모가 엄청나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비행기들은 저공 비행하며 광산과 발전소 산업 시설과 철도 그리고 다리를 폭파했다.
군대에서는 사망자와 부상자의 자리를 메울 새로운 지원자를 찾아 시골 마을부터 뒤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젊었건 늙었건 남자들은 모조리 인민군으로 끌려가 통일을 위해 투쟁해야 했다. 몇 세 이상 몇 세 이하라고 하는 나이의 제한도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모든 가정이 남편과 아들들을 전선으로 내보내야 했다. 잔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떤 여자가 감히 그 같은 희생을 불사하겠는가. 다른 남자들은 전쟁터로 나갔지만 나는 남편과 용운이를 집 안의 이불 더미 아래 숨겼다. 몇백 명씩 때로는 삼삼오오 짝을 지은 남자들이 마을을 빠져나갔다.
숨어 있는 데 지진 남편은 무료한 시간을 보낼 만한 무언가 뜻있는 일을 하고 싶어 했다. 그러더니 혼자서 집사님의 위험천만한 제안을 수락하고 말았다. 줄어드는 신도를 대상으로 비밀 성경 모임을 조직하는 제 남편의 임무였다. 나는 자랑스러움과 당혹감 사이에서 가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남들은 자신들의 가정과 목숨을 지키기 위해 신앙을 저버리는 판이었지만, 남편의 영혼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나는 남편의 일을 돕고 싶은 동시에 그러한 임무에서 그를 끌어내고 싶기도 했다.
기독교가 공산주의의 존립 자체를 위협했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들은 기독교인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우리는 절대적인 유일신을 믿었지만 공산주의자들은 절대적이고 유일한 최고 권력자를 신봉했다. 따라서 교회 지도자들은 모두 투옥되었다. 인민 헌법에 규정된 종교의 자유는 이제 완전히 웃기는 이야기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나도 다른 많은 이들처럼 남쪽으로 달아나고 싶었다. 공산주의자들이 증오스러웠다. 하지만 아무리 사정해도 남편은 희망을 버리지도 신도들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 또 임신이 되었다. 이번에는 남편도 그다지 기뻐하지 않았다. 먹여 살려야 할 입이 또 하나 는다는 생각에 감정이 폭발한 그는 주먹으로 벽을 쳐서 손가락이 몇 개 부러지기도 했다.
"또 아기라니. 당신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어떻게 그 아기를 먹여 살려야 하냐구. 이 정신없는 사람아.
남편은 다시 벽을 쳤다."
나도 아기를 남편 탓으로 돌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나는 남편이 화를 내는 진정한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는 아기를 원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오히려 간절히 원했다.
나는 끊임없이 걱정에 시달렸다. 배가 나올수록 도망갈 기회는 줄어드는 셈이었다. 다음에 떨어지는 폭탄이 우리를 날려 버릴까 봐 걱정스러웠고 몇 년 전 조카네 가족과 함께 38선을 넘어 남쪽으로 이주한 연로한 친정어머니도 걱정되었고 전쟁이 일어난 뒤로는 소식 한번 듣지 못한 동생들도 걱정스러웠다. 나는 걱정을 하고 또 했다.
몇 주가 지나자 남편은 뒤에 남은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이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거의 움직일 수 없었다. 아기는 꼬밖 아홉 달 동안 뱃속에서 자랐다. 딸아이가 몸부림치며 세상에 나왔을 때 남편은 무거운 중압감에 시달리다 위험한 거리로 말도 없이 나가 버렸다. 나는 아기의 조그만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남편을 너무 닮아 더 마음이 아팠다. 그의 씁쓸한 표정까지도 닮아 있었다. 자신이 원치 않는 아기임을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조바심 내며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곧 밤이 되었고, 다음날 또 다음날이 밝았다. 남편은 사흘째 되던 날 밤에야 돌아왔다. 하지만 다른 네 아이의 경우와 달리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도 묻지 않았다. 생명은 전시에 별로 소중하지 않은 법이다. 그러한 마당에 성별 따위가 중요할 리 없었다.
"여보, 제발 아기에게 이름 좀 지어 주세요."
그렇게 되면 남편과 아기가 조금이라도 가까워질까 하는 희망에서 내가 이렇게 사정했다.
남편은 아무 말도 없었다. 아기를 품에 안지도 어르지도 않은 채, 이름도 없는 갓난아기 옆에 잠자코 앉아있을 뿐이었다. 태어낮 지 두 주가 지난 뒤에야 아기는 이름을 얻었다. 큰 은혜를 뜻하는 이덕혜였다. 무척 좋은 이름이었지만 우리는 그 이름을 거의 부르지 않았다. 가족들은 힘겨운 현실을 이기고 살아남지 못할 경우데 대비해서 덕혜를 그저 아기라고만 불렀다.
살기가 점점 더 힘들어졌다. 대문은 굳게 닫히고, 상점은 간판을 내리고 문을 널빤지로 막았으며, 시장의 진열대에서는 먹을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 푸른빛을 자랑하던 논은 버려져 누렇게 죽어 갔고, 몸을 굽히고 괭이로 땅을 일구는 농부들도, 대나무 막대에 매단 무거운 나무 물통을 어깨에 걸머지고 아버지 옆에서 땀을 흘리는 아이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바로 안으로 뛰어 들어갈 채비를 갖춘 채 말없이 대문 앞에서 놀았다. 더 이상은 농담도 오가지 않았고, 낯선 이가 나타나면 겁부터 냈으며, 친구 사이에서도 터놓고 이야기하기를 꺼렸다.
나는 문밖에서 수상한 소리가 날 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웠다. 비밀경찰이 아닐까? 언젠가 남편과 용운이 때문에 비밀경찰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문을 두드리는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들이 그냥 돌아가 버리기를 바라며 두려움에 떨면서 안으로 뛰어들었다.
"이득필 씨 안에 있습니까? 이득필 씨!"
처음 듣는 목쉰 음성이 대문을 넘어 들어왔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소리 없이 돌아섰다. 남편과 용운이가 이불 뒤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공포에 질린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세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이득필 씨, 안에 있습니까?!"
재빨리 생각을 정리한 나는 남편과 용운이에게 더 깊이 숨으라고 손짓했다. 그리고는 서둘러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옷매무새를 흩트린 다음 쇠로 된 빗장을 벗겼다. 상반된 체격의 두 남자가 양쪽에 서 있었다. 키가 작고 잘생긴 쪽이 입을 열었다. 그의 음성은 뜻밖에 낮고 거칠었다.
"실례합니다만, 여기가 이득필 씨 댁입니까? 우리는 절친한 친구들인데요."
그는 이렇게 물으며 두 눈으로는 내 뒤쪽의 안뜰을 두리번거렸다.
"지금 안 계시는데요."
나는 막 잠에서 깬 것처럼 하품을 하며 말했다.
"이거, 참."
그 사내가 실망한 듯 혀를 찼다.
"어디서 오셨는데요?"
내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물었다.
"우리 가족은 중국에서 아주머니댁 가까이에 살았었습니다. 저는 피성칠입니다. 그 좋은 친구가 제 얘기를 하지 않았다니 뜻밖인데요."
사내는 마치 사실인 것처럼 말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그런 사람은 생각나지 않았고, 얼굴을 아무리 뚫어지게 쳐다보아도 기억이 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이렇게 물었다.
"우리가 충청에서 살 때 바깥양반을 알고 지내셨다구요?"
"맞습니다. 거기죠"
거짓말이었다. 우리 집은 쉬저우에 있었다. 내가 오히려 그 사내를 속인 셈이었다.
"아, 그러시다면 들어오세요. 남편은 오늘 아침 일찍 일을 찾으러 나갔어요. 바로 들어오지는 않겠지만 괜찮으시다면 안에서 남편을 기다리도록 하세요."
내가 사랑방 쪽을 가리키며 공손하게 말했다.
키 작은 사내는 생각에 잠겨 양미간을 찡그리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목을 길게 빼고 이쪽저쪽을 살피며 겨우 몇 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남편의 흔적을 찾았다.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두 남자가 인사를 하며 물러났다.
"그 친구에게 제가 오늘 밤늦게 들르겠다고 전해 주십시오."
"그러세요. 그렇게 전할게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두 사람이 한참 거리를 따라 내려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빗장을 걸어 잠갔다.
"지금 나가면 안전해요."
내가 담요를 흔들며 말했다.
"남편은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일어났다."
"여보, 당신 제정신이오? 그 사람들한테 들어오라니? 들어와서 기다리면 어쩔뻔했소?"
남편이 신선한 공기를 마시느라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난 겁나지 않았어요. 눈빛으로도 목소리로도 당신의 존재를 누설하지 않았다구요. 당신은 안전해요."
우리 모두는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1초 1초가 지날수록 위험이 다가오고 있었다. 남편이 집 밖으로 몰래 나갈 수 있는 방도를 찾아야 했다. 지금 당장은 용운이는 안전했다. 그 사내들이 용운이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으므로.
"당신은 그 사람들이 다시 오기 전에 빨리 도망가야 해요. 다음번에는 그렇게 친절하게 나오지 않을 거라구요."
"가족을 버리고 도망갈 수는 없소. 난 가장이오."
"우리는 괜찮을 거예요. 그 사람들이 원하는 건 당신이라구요."
"아이들이 내가 겁쟁이라고 생각할 거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당신을 도망가서 숨어야 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들은 아버지가 살아 있기를 바라니까요."
남편은 마지못해 동의 했다. 우리는 한데 모여 헤어져 지낼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했다. 전에도 여러 차례 이 같은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내심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나는 예전처럼 남편이 기생집에서 오래 놀다 오는 것일 뿐이라고 애써 자위했다. 죽으므로 남편을 빼앗기는 것보다는 다른 여인들과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한결 덜 고통스러웠다. 기생들과 있을 때는 적어도 매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는가. 하지만 죽음은 마지막이었다.
나는 꾀를 조금 내서 남편을 나이 든 농부로 변장시켰다. 남편은 커다란 잿빛 외투에 펑퍼짐한 바지를 입고, 짚신을 신고, 챙이 넓은 밀짚모자를 쓴 다음 지팡이를 짚었다. 발을 질질 끌며 걷는 즉흥 연기도 그럴 둣해 보였다. 하지만 남편의 말끔하고 앳된 얼굴이 마음에 걸렸다.
"덕화야, 밀가루하고 돼지기름 좀 가져오렴"
내가 말했다.
"지금 먹을 것을 준비할 시간이 어디 있소."
남편이 나를 나무랐다.
"먹을 것을 만드는 게 아니니 안심하세요."
덕화가 마지막으로 남은 밀가루 부대와 돼지기름을 가져왔다. 특별한 경우에 대비해 아껴 준 것이었다. 바로 지금 때가 온 것이었다. 나는 우선 돼지기름을 남편의 눈썹과 눈, 뺨과 턱에 펴 바른 다음, 그 위에 하얀 밀가루를 덧칠했다. 그러고 나니 환한 밖으로 나갈 채비가 다 되었다.
나는 남편을 뒷문으로 데리고 갔다. 그는 거리를 살짝 내다본 다음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왔다. 말은 없었지만 나는 남편의 생각을 알 수 잇었다. 그 또한 내 마음을 읽고 있다는 것도.
"우리는 다시 만날 거요. 여보."
남편이 두 팔로 나를 껴안았다. 면 저고리를 통해 그의 따스한 감촉이 전해져 왔다. 잠시 동안 진한 부부애를 느낀 다음 나는 뒤로 물러섰다.
"안전이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돌아오지 마세요. 당신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니까 다 알아서 하실 테지만 말이에요."
내가 냉정하게 말했다. 남편이 나를 잊지 못하도록 무언가 사랑스러운 말은 하고 싶었지만, 나는 평생 분별있고 강인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배웠고, 지금또 그러한 역할을 해내야 했다.
"당신은 늘 만족스러울 만큼 날 보살펴 주었소. 난 당신 같은 사람의 남편 될 자격이 없는 인간인데 말이오."
남편이 미소를 지었다.
"당신, 지금 보니 어리석은 사람이군요."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남편의 그 매력적인 웃음을 멀리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편이 훨씬 낫소."
남편이 손가락으로 내 입술을 어루만진 다음 마을의 동쪽 끝에 있는 깊은 산속으로 길을 떠났다. 그는 산비탈의 컴컴하고 축축한 동굴과 땅굴 속에서 앞으로의 몇 주일을 보내게 될 터였다. 남쪽에서 날아오는 대포를 피해 두더지처럼 땅속에 몸을 웅크린 채로.
그날 온종일 나는 들짐승처럼 쫓겨 다니는, 춥고 배고프고 몸은 엉망진창이 된 남편의 환영에 시달렸다. 그러한 환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불필요한 집안일에 마음을 돌리려고도 해보았지만, 앞으로 벌어질 일에서 마음이 떠나질 않았다.
같은 날, 두 번째로 대문을 두드리는 커다란 소리가 집 안의 침묵을 깼다. 제발, 제 남편이게 하소서.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렇게 빌며 서둘러 안뜰을 가로질러 갔다. 그리고는 희망을 잔뜩 품은 채로 조심스럽게 누구냐고 물었다.
"이득필 씨 있습니까?"
키 작은 사내의 섬뜩하고 낮은 음성이었다.
키가 훤칠한 젊은 청년이 된 용운이가 뒤쪽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것을 보자 맥박이 정신없이 뛰기 시작했다.
"덕화야, 오빠를 뒷문으로 내보낸 다음에 문을 닫으렴."
내가 다급하게 속삭였다. 용운이가 안전하게 사라진 것을 확인한 나는 빗장을 벗겼다. 아까처럼 두 사내가 사방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죄송해서 어쩌죠. 남편이 방금 나갔는데요. 두 분을 굉장히 만나 보고 싶어 했는데."
"어디로 갔습니까?"
키 작은 사내의 음성이 의심으로 가늘게 떨렸다.
"남편은 하루 종일 기다렸어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요즘에는 일을 구하려면 시내 밖의 먼 곳까지도 나가 봐야 하니까요."
"언제 돌아올 것 같습니까?"
나는 옷소매에서 찢어진 종이를 한 장 꺼내 두 사내에게 내밀었다.
"정신없는 아낙네 같으니라구. 남편이 이 편지를 드리라고 한 것을 깜빡 잊을 뻔했네요."
키 작은 사내가 종이를 낚아채 갔다. 그 바람에 종이의 모서리가 내 손가락을 스쳤다.
"일을 찾으러 시내 밖으로 나간다네. 돌아오는 대로 만날 수 있기를."
사내는 나를 때리기라도 할 것처럼 한 마디 한 마디를 큰 소리로 읽었다.
"우리가 그토록 먼 곳에서 남편을 찾아왔다고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성미가 급했다.
"저는 안사람일 뿐입니다. 남편한테 가라 마라 할 수는 없는 일이죠."
내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내 연기에 설득력이 없었는지 두 사내는 별안간 모든 가식을 벗어 던지고 공무에 임하는 경찰의 험악한 인상으로 돌아갔다.
"당신 남편이 시위를 주도하고 반역적인 모임을 조직했다는 정보를 입수했어."
거짓 죄명을 대며 그 사내가 말했다.
"거짓말이에요. 남편은 조국을 무척 사랑해요."
"어떤 정부를 말하는 거야?"
"우리나라요."
나는 모호하게 대답을 흐렸다.
"그렇다면 여기 남아 자신을 변호하지 않는 이유가 대체 뭐야?"
"남편의 편지를 읽으셨잖아요? 일을 구하러 나갔다니까요."
"우리를 속이려 들지 마. 그러면 죄값을 톡톡히 치르게 될 테니까."
바로 그때 덕화가 아기를 품에 안고 앞으로 나왔다.
"집 안으로 들어가!"
내 고함 소리는 다소 지나치게 겁에 질려 있었다.
"거기 그대로 서 있어!"
사내의 목소리가 내 목소리를 압도했다.
덕화가 발걸음을 떼 놓으려다 멈칫했다.
"괜찮다, 덕화야. 이 분이 하라시는 대로 하렴. 우리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으니까."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는 두 사내에게 내가 떨고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재빨리 입술을 꽉 물었다.
"그것만이 아냐. 장남은 어디 있어? 이용운이 말이야."
사내가 옷깃을 바로 세웠다.
사내의 불쾌한 음성이 아들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을 듣는 순간 심장이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북쪽에 사시는 고모 댁에 갔는데요. 용운이 고모부가 참전하는 바람에 용운이가 함께 있어 주었으면 하셔서요."
내가 말했다.
"당신 실수했나 본데, 서울은 남쪽에 있어."
사내가 손가락을 들어 남쪽을 가리켰다.
"저, 저는 ..... 무슨 얘기를 하시는지 모르겠는데요...."
한때 여인들의 방패막이가 되어 주었던 보호의 장벽은 전쟁으로 인해 다 무너져 버린 상태였다. 두 사내에게 반역자는 아무런 권리도 성별도 없는 존재였다. 제정신이 아닌 이들에게 나는 벌을 받아 마땅한 국가적 죄인이었다.
"이 쌍년한테 맛을 좀 보여줘라. 우리가 바보가 아니라는 걸 좀 보여주라구."
키 작은 사내가 키 큰 사내에게 명령했다.
키 큰 사내가 앞으로 나와 내 두 팔을 덥석 잡더니 등 뒤에서 사정없이 비틀었다. 그리고 무릎으로 등을 밀어내 얼굴을 흙바닥에 대고 문질렀다. 엄청난 아픔이었다. 하지만 더 괴로운 것은 나 때문에 울부짖는 덕화의 비명 소리였다.
"엄마! 엄마!"
누나의 외침 소리를 들은 어린 두 아들이 무슨 일인지 알아보러 아장거리며걸어 나왔다. 세 아이는 입을 다문 채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서 있었다.
"얘들아. 안으로 들어가! 들어가라구...."
나는 실성한 듯 소리를 질러 댔다.
단단한 가죽 군화가 내 뒷목을 짓밟으며 얼굴을 흙바닥에 비벼 대는 바람에 더 이상은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일어낫!"
사내는 또 다른 욕설을 퍼부었지만 무슨 소리인지 들리지 않았다. 나는 정신 나간 듯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 아이들과 내 목숨을 구해 줄 만한 완벽한 변명. 그럴듯한 구실을 필사적으로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혀가 말을 듣지 않았다.
"너한테 명령했잖아. 이 쌍년아."
사내가 내 갈비뼈를 차고 또 찼다.
아픔으로 기가 꺾인 내가 몸을 일으키려고 해보았지만, 사내의 군화 뒤꿈치가 등을 더 세게 누를 뿐이었다.
"일어나란 말이얏!"
"무엇이든 다 가져가세요. 중국에서 가져온 값비싼 비단이 있습니다. 다 가져가셔도 됩니다!"
마침내 내가 애원했다.
비싸다는 말이 사내들의 흥미를 끌었다.
"어디 한번 보여 봐!"
키 작은 사내가 몸을 숙여 내 귀에 대고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다시 몸을 차이기 전에 손가락으로 땅을 긁으며 있는 힘을 다해서 기었다. 그리고는 비틀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가 숨겨 두었던 하나뿐인 비단 꾸러미를 꺼냈다.
"여기 있어요. 가져가세요. 가지세요. 이제 당신들 거예요. 우리를 이대로 두고 가세요."
내가 두 팔로 화려한 비단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키 작은 사내가 못 박힌 손가락으로 옷감을 만지며 가치를 가늠해 보았다.
"이거 말고 또 뭘 숨겨 두었나?"
사내가 내 머리카락을 한 줌 움켜쥔 다음 고개를 뒤로 젖혔다.
"나머지는 어디 있냐니까?"
"이게 다예요."
나는 숨을 헐떡였다.
"우리가 직접 확인해 봐야겠다."
사내는 옷장과 장롱 속을 발로 쑤셔 대며 군홧발로 집 안을 헤집고 다녔다. 그는 끊임없는 손길로 낡아빠진, 가죽 제본이 된 성경책을 발견하고는 그것을 집어 들어 표시되어 있던 쪽을 펼쳤다.
"기독교인이시로군."
사내가 이렇게 내뱉으며 소중한 책장을 찢어내기 시작했다. 말문이 막혔다. 내 살이 찢겨져 나가는 것만 같았다. 사내의 얼굴에는 사악한 즐거움 같은 것이 서려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제아무리 대단한 뇌물도 나를 구해 주지 못할 것임을 깨달았다.
"그년을 끌고 가."
"제발, 젖먹이 아기가 있어요. 제가 없으면 살지 못할 거예요."
내가 사내의 발밑에 엎드려 빌었다.
키 작은 사내가 길게 째진 눈으로 무기력하고 조그마한 아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똑바로 쳐다보다 차갑게 내뱉었다.
"이 애는 어쨌든 죽게 돼 있어."
아기를 살리려면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발로 차고 있는 대로 소리를 지르며 온 힘을 다해 저항했다. 하지만 두 사내를 당할 수는 없었다. 이들은 나를 끌고 갔다. 두 무릎이 땅에 긁히며 길에 살점과 핏자국을 남겼다.
우리는 경찰서에 도착했다. 나를 울창한 산속 어딘가로 끌고 가서 버릴 것만 같았다. 경찰서에서 나는 삼베로 두 손을 묶이고 갖고 있던 물건은 모두 몰수당했다. 옷을 그대로 입혀 두는 것만도 다행이었다. 그리고는 좁은 복도를 지나 넓직한 심문실로 끌려갔다. 잡혀 온 사람들이 벌써 두 줄로 길게 늘어선 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더러운 제복을 입은 간수가 앞에 서서 경찰봉을 연달아 두드려 댔다.
"남자는 이쪽!"
그가 명령했다. 여느 때 같으면 따라 하기 쉬운 말이었지만 그때는 마음이 너무 어수선했던 터라 다른 줄에 가서 서고 말았다.
"반항하고 싶냐?"
간수가 경찰봉을 자신의 손바닥에 대고 탁탁 쳤다. 놀라서 주위를 살펴보니 내가 남자들의 줄에 서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얼굴을 가린 채 서둘러 여자들의 줄 뒤쪽으로 가서 섰다.
기다림은 끝이 없었다. 모두가 간수의 곤봉에 얻어맞을까 봐 두려움에 떨었다. 마침내 내가 맨 앞에 서게 되었다. 내 이름이 불려졌을 때에는 안도감과 공포감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심문실로 들어서는 서너 발자국이 내 생애 마지막 걸음이 될 것만 같았다. 매부리코를 한 키 작은 경관이 낡은 책상을 앞에 두고 앉아있었다.
"당신, 이승만 동조자야?"
표정만큼 단조로운 음성이었다.
"전 아무것도 모릅니다. 평범한 아낙입니다."
내가 대답했다.
경관을 꼼짝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은 채로 내 발언을 느리고도 힘들게 적어나갔다.
"당신 남편과 큰아들은 어디 있지?"
"모릅니다."
나는 또 사실을 숨겼다.
"어디다 그자들을 숨겼냐니까? 공모자가 누구야? 또 어떤 죄를 저질렀나? 우리 정부에 대해 저지른 반역죄를 모두 털어놓으란 말이야."
그의 심문은 똑같이 건조한 음성으로 쉴새 없이 퍼부어졌다.
"저는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저는 정치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게다가 제가 저질렀다고 부당하게 몰아붙이는 그 모든 죄를 저지를 기력도 없는 몸입니다."
"우리에게 협조하지 않는 반역자들을 어떻게 하는지 아나?"
경관이 겁을 주었다. 하지만 남편과 용운이가 있는 곳을 밝힐 수는 없었다.
"무섭지 않나?"
"무섭습니다. 하지만 죽는 것은 두렵지 않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죽인다면 바로 천당으로 갈 테니까요."
"어리석은 년. 종교를 믿는 것은 위험천만한 짓이다. 그자들을 추종하면 그들의 고통도 함께 이어받게 된다."
심문은 몇 분을 넘기지 않았다. 하지만 영원처럼 길게만 느껴진 시간이었다. 하나님이 굽어살피고 계신지, 경관은 내 몸에는 손가락 하나 대지 않았고 발길질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는 줄곧 자리를 지켰다.
예상대로 죄가 인정된 나는 실성한 듯한 여자들로 가득한 감방으로 끌려갔다. 잿빛 복도를 따라 서둘러 걷다 보니 양쪽으로 감방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사방은 조용했고, 우리의 발자국 소리만 벽을 울릴 뿐이었다.
감방은 이미 죄수들로 가득 찬 상태였고, 철창 사이로 손들이 빠져나와 있었다. 간수가 곤봉을 세게 치자 나와 있던 손들이 쑥 들어갔다. 문이 열렸고, 우리는 들어가라는 명령을 받았다.
"들어갓!"
간수가 말했다. 단순하고 흔히 들을 수 있는 지시였지만, 그것은 내가 여태까지 받은 최악의 명령이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육중한 철문을 들어서자 코앞에서 문이 닫혔다. 자유를 감금하는 소리가 울리는 순간 숨을 쉬기가 곤란해졌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따가운 시선들이 느껴졌다. 머리 뒤쪽이 타들어 가며 구멍이 나 버릴 것만 같았다. 몸을 돌려 수감자들을 마주 보기가 겁났다. 하지만 어차피 그들을 피할 수는 없었다.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는 시간 동안 함께 갇혀 있어야 할 테니까.
"하나님. 제발 이들이 상냥하기를."
나는 이렇게 기도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눈에 들어온 것은 모든 믿음을 잃어버린 여인들의 얼굴이었다.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얼굴들.
"따라와."
처음 듣는 음성이 명령했다.
감방 제일 안쪽으로 끌려 들어가자, 대소변이 썩는 냄새에 숨이 막혔다. 양동이를 얇은 판자 네 개로 둘러싼 곳이 변소였다. 이 참혹한 여자 감방에서 제일 신참인 내가 가장 나쁜 자리에 앉아야 했다. 이곳에서는 나이가 사회적 신분이 아니라 수감 시간에 근거해 우두머리가 결정되었다. 이 지옥 같은 곳에 오래 남아 있을수록 더 많은 권력을 누리는 셈이었다.
"아줌마, 제 옆에 앉으세요."
얌전해 보이는 소녀가 소리는 내지 않고 입술만 움직여 말했다.
"고맙구나."
내 손바닥을 소녀의 손바닥에 대고 비비며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속삭였다. 이 정도의 보잘것없는 호의만으로도 소녀는 제 몸을 바싹 대 오며 금세 내게 달라붙었다. 소녀의 머리 위쪽으로는 새치가 듬성듬성 나 있었다. 힘겨운 시련으로 머리칼이 일찍 센 게 틀림없었다. 소녀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더니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 버렸다.
나는 옆 눈으로 흘끌흘끔 주위를 둘러보았다. 더러운 옷을 입고 머리에는 기름때가 잔뜩 낀 우두머리 수감자가 반쯤 편안한 자세로 벽에 등을 기댄 채 쉬고 있었다. 나 같은 신참은 상상할 수도 없는 특권이었다. 불현듯 언제까지 이곳에 있어야 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그 변소조차 그다지 혐오스럽지 않게 느껴졌다. 누군가 변소를 사용할 때마다 모두가 그 사람이 어떤 일을 보는지 알 수 있었다. 배관도 수세 시설도 뚜껑도 없었으므로. 배설물은 양동이 안에서 하루하루 썩어 갈 뿐이었다.
창문도 없는 어둠침침한 방에 앉아있다 보니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았다. 천장의 구멍에 매달린 알 전구 하나가 손바닥만한 곳을 비출 뿐이었고, 음식 수레가 굴러오는 것으로 새벽임을 짐작해야 했다.
식사는 기장 찌꺼기로 된 죽이었다. 뒤쪽에 있는 나한테까지 전해져 온 죽은 반만 남아 있었다. 정신이 멀쩡한 인간들이라면 어떻게 이런 쓰레기를 줄 수 있단 말인가? 전날 정오 이후로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지만 두 번째 모금은 차마 삼킬 수가 없었다. 나는 한입 음미해 가며 손가락을 빨아 대는 이들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나는 무릎 위에 놓인 죽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다른 여인들도 탐욕스러운 눈으로 내 죽을 응시했다. 보나 마나 머리에 기름때가 낀 그 우두머리 수감자의 차지일 터였다. 다른 여인들이 그 수감자를 그토록 두려워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었다. 윗입술 부근에 털이 난 데다 뻐드렁니여서 사나운 호랑이라기보다는 줄무늬 다람쥐처럼 보였다. 나는 그 여자한테 겁을 먹지 않기로 했다. 내가 그 죽 그릇을 앞에 앉아있는 어느 할머니에게 건네자, 그 할머니는 새파랗게 질려 줄무늬 다람쥐 쪽을 살피며 바싹 마른 손가락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할머니, 이거 직접 드시지 않으면 변소로 쓰는 저 양동이에 쏟아 버릴 거예요."
나는 할머니를 안심시키려고 팔을 어루만져 주었다. 누군가 정상적인 목소리로 말하는 게 너무 이상했든지 모든 귀가 일제히 내게로 쏠렸다.
"조용히 못 해!"
간수가 초소에서 걸어 나와 우리에게 물 한 양동이를 퍼부었다.
기장 죽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모두들 머리 숨기기에 바빴다. 몸이 물에 젖어 폐렴에 걸릴 위험을 무릅쓸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므로. 기온이 떨어지고 아무것도 덮지 못한 채 자야 하는 밤이 되면 특히 폐렴에 걸리기가 쉬웠다. 이가 들끓는 누더기 같은 옷 말고는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로부터 엉덩이를 감쌀 담요 한 장, 이불 하나 없었으므로.
신참인 나는 잠잘 때마다 더 편안한 자세로 앉아 보기 위해 온몸을 꿈틀대야 했다. 처음 이틀 밤은 복도를 응시한 채 철창 너머의 삶을 꿈꾸며 줄곧 몽롱한 상태로 깨어 있었기 때문에 괴로운 줄 몰랐었다. 사흘째 되던 날 아침에는 양까지 보잘것없는 기장 죽에서 곰팡이 냄새가 나고 돌과 흙이 섞여 있어도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내 몫으로 돌아온 것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먹어 치웠다.
불행히도 하루 세 끼 식사의 효력은 불과 몇 분밖에 지속되지 않았다. 나머지 시간 동안에는 억지로 다른 생각을 해야 했다. 나는 흙을 편편하게 다졌다가 흐트려뜨리고, 디시 편편하게 다지고를 반복하는 옆자리의 어린 소녀를 몇 시간씩 지켜보았다. 소녀는 멍한 표정으로 그 일에 몰두해 있어서 내가 뚫어질 듯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싫증이 났다. 굳어져 있는 입술을 풀고 싶은, 말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저들이 우리에게 내린 가장 고통스러운 형벌은 침묵이었다. 그러니 내면에 쌓인 근심을 풀어낼 길이 없었다. 미쳐 버리기 전에 아무 말이나 해야 했다. 그래서 주변의 여인들과 몸짓으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우리는 손바닥과 검지손가락을 이용해 서로의 이름과 자녀의 수, 그리고 의심받고 있는 죄명을 교환함으로써 소리로 표현하지 못하는 모든 의미를 손과 얼굴, 그리고 발로 무척 새롭고도 다양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남들의 죄에 비해 보건대 내 죄는 엄청난 것인 듯했다.
몸짓 언어를 통해 전쟁에 대한 궁금증도 풀 수 있었다. 38선을 먼저 넘은 것은 북한이었다. 그 동안 우리측이 침략자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었다. 또 속은 셈이었다. 나는 감옥에서의 그 긴긴 시간 동안 그 이유를 따져 보았다. 왜 그렇게까지 증오하는 것일까? 권력이라는 것은 과연 그토록 엄청난 고난을 치르면서까지 얻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나는 공상을 하면서 입을 한껏 벌리고 엄마의 젖꼭지를 찾는 아기를 그려 보았다. 두려웠다.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높이 쳐들고 예수의 이름을 소리쳐 부르고 싶은 마음이 너무도 간절했다. 하지만 기도를 하다 적발되면 간수가 외딴곳으로 유배시켜 버리거나, 아니면 다른 기독교인들과 나란히 총살형에 처해 버릴 터였다. 나는 아이들을 위해 이승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과 하늘에서의 영원한 삶 사이에서 방황했다.
갖가지 생각이 영혼을 무겁게 내리눌렀다. 나는 극도로 의기소침해졌다. 믿음이 약해졌기 때문이었다. 진정으로 순수한 믿음을 갖고 있었더라면,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모든 어려움을 행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텐데. 나 자신이 그렇지 못함을 깨달은 나는 점점 더 깊은 절망 속으로 침몰해 들어갔다.
나는 마침내 육신의 생명이 위험에 처하는 한이 있더라도, 두려움이 내 믿음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리기 전에 기도를 드리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무릎을 꿇고 두 손바닥을 맞댔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나는 커다란 소리로 기도를 올렸다. 하지만 공습경보 사이렌 때문에 중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간수들은 대피소로 달려갔고 폭탄과 기관총의 굉음이 우리가 갇혀 있는 감옥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근방으로 퍼부어졌다. 모든 소요가 가라앉자 머리끝까지 화가 난 간수들이 우리에게 남한의 갈보들이라는 욕을 퍼부으며 돌아왔다.
나는 이러한 소란을 기도는 비교적 안전한 밤에만 하라는 신의 계시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모두가 잠든 후에 두 손을 마주하고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하나님은 내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 기적적으로 덕화가 아기를 안고 나타난 것이었다. 덕화는 아기의 상태가 걱정스러운 나머지 폭탄을 피해 가며 줄곧 이십 리나 되는 먼 길을 걸어온 것이었다.
환상에 사로잡힌 것만 같았다. 복도의 불빛이 너무 흐릿해서 뚜렷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덕화가 철창을 향해 똑바로 걸어와 그 사이로 이마를 들이민 다음에야 비로소 내가 실성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엄마. 엄마, 여기 계세요?"
안절부절못하며 덕화가 나를 찾았다.
"덕화야, 엄마 여기 있다!"
내가 속삭임으로 답했다. 하지만 들리는 것은 숨소리뿐이었다. 일어나려고 했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근육이 당겨 비틀거리며 기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덕화야, 엄마 여기 있다!"
내가 똑같이 쉰 소리를 내며 좀 더 크게 속삭였다. 이번에는 두 사람 다 내 목소리를 알아들었다.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아기가 울기 시작했고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으니 젖꼭지 주위로 축축한 원을 그리며 젖이 돌기 시작했다. 두 개의 병에서 코르크 마개가 터져 나오려는 것 같았다.
"아기의 귀, 아기의 귀가!"
덕화가 동생의 작은 귀를 두 손으로 감싸며 웅얼거렸다.
당황한 나는 철창 사이로 두 팔을 뻗어 아기를 안았다. 그리고는 정신없이 상처가 있는지를 살폈다.
"덕화야, 아기는 무사하구나. 아기는 괜찮아."
내가 딸 아이를 안심시켜 주었다. 하지만 덕화는 여전히 괴로운 표정이었다.
"전 두 눈을 감고 할 수 있는 한 오랫동안 숨을 참았어요. 그래도 폭탄 소리가 너무 컸어요, 엄마."
"왜 네 귀는 막지 않고?"
나는 이렇게 물은 다음 또다시 물었다.
"왜 네 귀는 막지 않았냐구?"
"......손이 두 개밖에 없으니까요."
나는 그제서야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덕화가 자신의 청력을 희생했음을 깨달았다.
"잘했다."
감정이 복받쳐 목이 메이는 바람에 겨우 이 말만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었더라도 고마운 심정을 다 표현할 수는 없었으리라.
나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저고리를 풀어 창살 사이로 아기를 안은 채 젖을 먹였다. 뻘겋게 녹슨 창살이 아기의 머리에 닿지 않도록 애를 쓰면서. 처음에 아기는 모든 것을 다 잊어버렸는지 둥글고 검은 젖꼭지를 밀어냈다. 그 가엾은 어린것이 빨 것은 제 손가락밖에 없었던 듯 아기의 손가락은 온통 쭈글쭈글하게 주름이 잡히고 변색되어 있었다.
나는 아기의 축 늘어진 입안으로 젖을 몇 방울 떨어뜨려 아기를 달래며 다시 한번 시도해 보았다. 달콤하고 따뜻한 젖 맛을 본 아기의 입이 젖꼭지를 단단히 물었다. 그리고는 양쪽 가슴의 젖이 다 마르고 젖꼭지가 아프도록 오랫동안 젖을 빨았다. 우리는 둘 다 흡족했다.
"언제 집에 오세요?"
덕화가 애원하듯 물었다.
"모른다."
나는 사실대로 대답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내가 돌아갈 때까지 내 자리를 대신하겠다고 약속해다오."
그리고는 오른쪽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약속할게요."
덕화가 제 새끼손가락을 걸며 약속을 지킬 것을 맹세했다.
나는 덕화가 나이는 어리지만 내 몫을 잘 해낼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이런 훌륭한 말로 축복을 내려주신 하나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렸다.
그날부터 덕화는 비행기의 공습을 피해 점심때면 아기에게 젖을 먹이러 왔다. 오가는 길이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덕화의 용기 하나에 아기의 생존이 달려있는 상황이었다. 한 아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두 아이를 위험한 상황에 몰아넣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는 어머니로서 내리기 불가능한 결단이었다. 어떤 아이를 더 우선시해야 하는가를 어떻게 선택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했다. 최종적인 결단을 내린 것은 덕화였다.
나는 매일 젖먹이는 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걱정거리는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스무날하고도 아흐레가 지났건만 석방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모든 소리와 냄새 그리고 움직임에 신경을 곤두세우기 시작했고 감방에 모여 있는 사람들도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밤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릴 만한 공간조차 없었다. 갑자기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는 상태가 되였다. 내가 최소한 약간의 동정이나 자비도 받을 수 없는 인간이란 말인가.
‘난 짐승이 아니다!’
이렇게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철저한 절망 속에 빠진 나는 네발로 기어 혼자 살 수 있는 변소 칸막이 속으로 들어갔다. 이 혐오스러운 네모진 관속이 나의 안식처였다. 소리 없이 촛불이 타는 냄새 대신 배설물 냄새가 코를 찔렀다.
"사랑하는 하나님 지금은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 자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제는 단 하루도 더 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는 하루가 몇 년처럼 느껴집니다. 제게 희망의 징후를 보여 주시고 당신의 계획을 알려 주십시오. 이 끔찍한 곳에서 나갈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겠습니다......"
이튿날 아침 누가 내 몸을 세차게 두드리는 바람에 신기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그렇게 웅크리고 있었다.
"온종일 여기 있을 거야?"
줄무늬 다람쥐가 속삭였다.
나는 행복한 몽상에 젖은 채 밖으로 나왔다. 하나님이 내게 꿈으로 응답해 주신 것이었다. 나를 잊지 않고 있다고.
"난 집으로 갈 거야."
나는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외쳤다. 내가 하나님의 역사를 증언하는 동안은 곤봉으로부터 보호해 주실 것이었으므로 그리고 그분은 정말로 그렇게 해주셨다. 보초를 서는 간수는 내내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어떻게 알아?"
이 사람 저 사람이 회의적으로 들어왔다.
"꿈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천사 같은 음성이 들렸다. ‘백홍용씨 나와 함께 가요.’ 그러시더라구. 나는 그 조용한 목소리에 이끌려 어느 여인에게로 갔지. 온통 하얀 망토 같은 옷을 입고 있는 권사님이셨어. 권사님이 또 ‘이리로 오세요.’하고 부르시길래 그 분을 따라 캄캄한 굴로 들어갔지. 그 안은 칠흑같이 어두웠지만 권사님이 ‘날 믿으세요.’라고 하셔서 그분을 믿었어 두 팔을 앞으로 뻗어야만 겨우 길을 가늠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권사님의 목소리가 유일한 안내자였지 하지만 겁이 나지는 않았어. 굴속으로 더 깊이 걸어 들어가자 저 끝에서 밝은 빛이 보이는 거야 그 빛에 도달해 보니 내가 아름다운 계곡 위에 서 있더라구. 너무 비현실적 일만큼 아름다워서 세세한 부분까지 붓으로 흐릿하게 그려 놓은 것 같았어. 산등성이에는 눈이 덮여 있고 언덕은 에메랄드 같은 초록빛인데다 그 아래에는 태고적의 호수가 자리 잡고 있었지 너무도 신선해서 폐가 넓어지고 타는 듯한 오렌지빛 하늘이 내 영혼을 드높여 주는 것만 같았어. ‘들어와요.’ 권사님이 드넓고 푸른 물을 가르키며 말씀하셨어. 나는 수영을 할 줄 몰라 뒷걸음질 쳤지 내가 머뭇거리는 것을 눈치챈 권사님이 앞장서서 걸어 들어가셨어. 호수 표면에 권사님의 내면의 광채가 비치더니 호수 한 가운데로 떠가시는 동안에도 내내 사라지지 않더군. ‘안전해요.’ 권사님의 달콤한 음성이 내 머릿속에서 들려왔어. 물이 너무 맑고 깨끗해서 빛나는 내 모습이 그대로 비치더군. 나는 물이 차갑지 않은지를 살피면서 한발 한발 걸어 들어갔지 물의 온도는 완벽했어. 그래서 목덜미까지 물에 잠기도록 그렇게 계속해서 걸어 들어갔지. 신선한 냉기가 모공으로 스며들어 온갖 근심 걱정을 말끔히 씻어 주더군 ‘당신은 자유로워요.’"
이야기가 계속되면서 감옥 안은 흥분으로 술렁거렸다. 믿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회의적인 눈길로 쳐다보았다.
"저 여자가 꾸며 낸 얘기야."
줄무늬 다람쥐가 킬킬거렸다.
"마음대로 지껄여 난 집으로 가게 될 테니까."
"왜 네가 제일 먼저 풀려나야 하는 거야? 여기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나는 거의 1년이 다 되어 가는걸."
다른 여인이 말했다.
"난 아홉 달 됐어."
"난 다섯 달......"
모두들 자기가 갇혀 있었던 기간을 읊어댔다.
"변소 간 하나님 얘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어. 지금 당장 기도나 한번 드려 볼까나."
줄무늬 다람쥐가 칸막이 쪽으로 기어가서 기도하는 흉내를 냈다.
간수가 깰까봐 움찔거리면서도 감방 안에는 작은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믿음이 없는 이 여인들이 가엾었다. 이런 곳에서 생명을 부지시켜 주는 것은 믿음밖에 없지만 그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덕화가 아기를 안고 왔다.
"곧 집으로 간다. 옷가지와 쌀을 조금 싸 두거라. 아버지를 찾으러 가야 하니까."
내가 덕화에게 말했다.
"어떻게 아세요, 엄마?"
"그냥 안다. 넌 착한 애니까. 내 말대로만 하거라."
내 말을 믿는 사람이나 그날 오후는 모두가 기대 속에서 보냈다. 하지만 세 시 무렵까지도 내가 석방된다는 이야기는 들려 오지 않았다. 결국 희망을 가졌던 몇 안 되는 사람들조차 실망해서 날 외면해 버리고 말았다. 기다림에 지친 몇 시간이 더 흘렀다. 황혼 무렵에는 나 역시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꿈에 모든 희망을 걸고 그것을 떠벌릴 정도로 어리석었던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문제는 바로 이거야. 네 변소 간 하나님 귀에 똥이 잔뜩 들어차 있다는거."
줄무늬 다람쥐가 차서 넘치는 양동이 쪽으로 기어가며 말했다.
모두가 더 큰 허탈감에 빠지며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영원히 잠에서 깨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피곤함을 느꼈다. 머리를 바닥에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이대로 잠이 들어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할 것 같았다. 피곤하고, 피곤하고, 또 피곤했다. 바로 그때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서 내 이름이 들려왔다.
"백홍용!"
그 소리는 되풀이되지 않았다.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백홍용, 앞으로 나왓!"
"아줌마를 부르는데요."
어린 소녀가 내 어깨를 흔들었다.
꿈이 아니었다. 정말로 간수의 음성이었다. 믿어지지 않아 입이 딱 벌어졌다. 여인들은 무엇인가를 꺼내 정신없이 끄적거렸다.
"남편한테 내가 아직 살아있다고 꼭 좀 전해 줘요."
젊은 여인이 종이에 흘려 쓴 주소를 내밀며 애원했다.
"이걸 연로하신 부모님께 좀 전해 주세요."
내 손에 쪽지를 쥐어주며 다른 여인 사정했다. 부탁의 행렬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앞으로 나아가서 보니 두 손에 이름과 주소들이 잔뜩 쥐어져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접어 소매 속으로 안전하게 밀어 넣었다.
"든든한 빽줄이 누구야?"
줄무늬 다람쥐가 씩씩거렸다.
나는 그 여자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쳐다보며 간단히 대꾸했다.
"기독교인한테 어떻게 공산당의 연줄이 있겠어. 예수님이 유일한 구원자시지."
다시 심문실로 안내되어 나가는 동안 가슴이 방망이질을 쳤다. 볼에 디룩디룩 살이 찐 냉담한 표정의 한 남자가 서류를 내밀며 서명을 하라고 했다. 너무 살이 쪄서 숨쉬기조차 힘들어 보였다. 우리에게 지급되는 식량을 혼자 다 먹어 치운 게 틀림없었다.
"뭐라고 서명을 하죠?"
깨알 같은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 내가 물었다. 너무 오랫동안 어둠에 익숙해져 있던 탓이었다.
"집에 가고 싶어, 안 가고 싶어?"
그 관리가 물었다.
무엇보다 집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서류에 서명을 했다. 글씨가 보이지 않는 게 차라리 다행스러웠다. 이름을 거짓으로 쓴 것이 들통날까 봐 나는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밖에는 비가 퍼붓고 있었다. 반가운 비였다. 나는 얼굴과 욱신거리는 두 눈 위로 떨어져 내리는 빗방울을 즐거운 마음으로 맞았다. 거리에는 예전보다 다니는 사람이 훨씬 적었다. 부당하게 감에 갇힌 지 30일 만에 나는 쉬지 않고 달려 집으로 왔다. 하지만 아이들과 시작은할아버지는 예상 밖의 태도를 보였다. 모두들 내 앞에 뻣뻣하게 선 채로 점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내 옷차림을 살펴보니 비에 젖어 마로 된 치마저고리가 투명해져 있었다.
"엄마, 옷이 다 젖었어요."
덕화가 얼굴을 붉혔다.
"근사하지 않니. 꿈속에서와 똑같은 모습이란다."
나는 이빨을 다드러내며 큰 소리로 웃었다.
하지만 비 때문에 소매에 넣어 둔 쪽지들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기쁨은 사라졌다. 버려진 가엾은 여인들. 가족들이 그들을 찾기나 할까?
나는 두 팔을 벌려 아이들과 헤어져 있던 오랜 시간 동안 가슴속에 묻어 놓았던 절박한 심정 그대로 이들을 하나하나 끌어안았다. 그러고 나서 모기장 속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아기에게로 건너갔다. 그때 아기 바로 옆에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늙고 지저분한 거지가 앉아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빈 과일 바구니에서 과도를 집어들고 노련한 암살자처럼 그 침입자에게로 기어갔다. 과도를 한 번 휘둘러 사내의 수염을 베여 버린 다음 칼끝을 재빨리 사내의 목 밑에 갖다 댔다.
"엄마!"
아이들이 비명을 질렀고 용운이가 내 손을 움켜잡았다.
"당신 우리 집에서 뭐하고 있는 거야?"
내가 사내의 정체를 물었다.
"날 이렇게 맞이하기요?"
수염 난 사내가 빙긋 웃었다.
"허튼 수작 마!"
"하나뿐인 아내가 지아비의 얼굴을 잊어버렸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요?"
칼이 남편의 뺨을 살짝 스치며 내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지듯 떨어졌다. 이번에는 변장을 하지 않았는데도 나이가 들어 보였다.
"왜 이렇게 빨리 돌아왔어요? 아직은 안전하지 않단 말이에요."
내가 고통스러운 심정으로 물었다.
"이제 나 자신으로 돌아갈 거요. 왜 나 대신 아내와 아이들이 고통을 겪어야 한단 말이오?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더 필요한 법이요 나 하나만 살려는 것은 이기적인 생각이었소."
"아니에요. 그건 내 생각이었잖아요. 당신이 우리보다 더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구요. 숨어 있던 곳으로 돌아가세요."
내가 남편의 말을 가로막았다.
"놀란 쥐새끼처럼 좁은 구멍 속에 숨어 사느니 차라리 사내답게 죽겠소. 인간은 땅속에서는 살 수 없단 말이오. 게다가 그놈들이 당신을 다시 해친다고 생각하면 견딜 수 없소. 당신 얼굴이......"
제대로 아물지도 않고 변색되여 버린 상처 부위를 손으로 어루만지는 남편의 음성이 낮게 가라앉았다.
"내 얼굴일랑 걱정말아요. 원래 매끄러운 피부도 아니었고 아름답고 섬세한 몸매도 못 되었는걸요. 애초부터 그랬는데 그놈들이 망쳐 놓고 말고 할 게 뭐 있겠어요?"
내가 수줍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렇지 않소. 내가 가장 원하는 사람은 바로 당신이요."
남편이 끼어들며 말했다.
나는 얼굴이 뜨겁게 타오름을 느꼈다. 설사 굉장한 거짓말쟁이라고 할지라도 남편은 그토록 다정한 사람이었다. 30일 동안 곰팡이 난 밥과 묽은 기장 죽만 먹은 나는 축 처진 피부에 뼈만 남은 해골일 뿐 더 이상은 여자가 아니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면서 나는 너무 기뻐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감옥에서 이 순간을 얼마나 자주 그려 보았던가. 아이들이 나직하게 코 고는 소리 청결한 흰색 잠옷. 솜을 두툼하게 댄 요. 몸을 있는 대로 뻗어도 될 만큼 넓은 방. 그리고 물론 내 옆에 몸을 웅크린채 누워 있는 남편. 나는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고 세 들어 사는 아낙이 깨우지만 않았어도 이틀 동안은 꼬박 잘 수 있었을 터였다.
남편은 이들 가족을 정씨네가 살던 안채로 들이는 데 반대했었다. 그 착한 아낙의 남편이 인민군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그는 인민군에 자원입대한 우리가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아주머니, 저예요. 여기 세 들어 사는 사람의 안사람이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그 여자를 맞아들였다. 우리는 손을 맞잡았다.
"시간이 없어요. 제 남편이 돌아와 모두 여기 있는 걸 보기 전에 도망치셔야 해요. 부끄럽지만 아주머니 가족을 고발한 사람은 바로 제 남편이에요."
"아줌마 남편이라구요?"
나는 깜짝 놀랐다. 우리의 신앙이 베푼 호의로 그 사람이 공산주의로부터 멀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남편의 경고에 귀를 기울였어야 했다.
아낙은 진정 미안한 낯빛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제가 바깥 양반한테 아주머니네 남편을 고발하지 말아 달라고 사정사정했는 데도 정말 죄송하게 됐어요."
"우리는 벌써 그 양반을 용서했어요."
내가 그 여자를 안심시켰다.
"고마워요. 하지만 지금 당장 몸을 피하세요. 남편은 틀림없이 아주머니를 다시 고발할 거예요."
"조심할게요."
"제발 서두르세요. 그 사람이 제가 없어진 걸 알아채기 전에 돌아가야 해요."
의논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어디로 갈 것인가? 그리고 누가 가야 하나? 이번에는 전 가족이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오랫동안 기도를 드린 후에 우리는 마침내 예전에 몰수 당한 땅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충직한 소작인들이 숨겨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나는 짐을 서너 가지 꾸렸다. 남편의 값비싼 양모 외투 세 벌과 마지막 남은 비단 꾸러미, 담요, 가져갈 수 있는 최대한의 식량, 그리고 떼어 놓고 싶지 않은 장신구 몇 개.
나는 어린 네 아이들과 민아 그리고 시작은할아버지와 함께 먼저 집을 빠져나왔고 남편과 용운이는 어두운 골목길과 뒷길을 통해 우리를 뒤따랐다. 우리는 두 사람을 볼 수 없었지만 남편과 용운이는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곧 달아날 채비를 깆춘 채 계속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는 한참을 걸어 길게 펼쳐져 있는 황폐해진 논을 지났다. 한때는 나무와 꽂이 무성하게 자라고 동물들로 들끊던 곳이 이제는 파편과 대포 껍질로 뒤덮여 있었다.
도착하고 보니 몇 안 되는 가구만이 버려진 땅을 지키고 있었다. 우리는 텅 빈 오두막을 뒤지고 완전히 불타거나 쓰러지지 않은 곳을 찾았다. 우리 땅의 북동쪽 모퉁이에 제법 살 만한 집이 있었다. 주인은 아무나 들어와 살지 못하도록 문짝을 모조리 떼어 버리고 양동이는 우물에 던져 넣고 나머지는 그대로 남겨두고 떠나 버렸다.
10월 초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마을 사람들은 수백명의 북한 병사들이 후퇴하는 광경을 목격했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9월 중순에 유엔군은 인천 상륙작전으로 남한의 수도 서울을 재탈환했다. 그리고는 그곳에서부터 38선을 넘어 평양을 향해 진격해 들어왔다. 많은 북한 병사들이 변통으로 만든 목발과 서로의 몸에 의지해 절름거리며 후퇴했고 대규모의 부대는 이제 제멋대로 흩어진 상태였다. 그들은 불과 두세 달 전까지만 해도 유엔군과 남한군을 한반도 끝까지 몰고 갔었다.
남편은 환호성을 지르고 값비싼 비단으로 수많은 태극기를 만들었다. 그럴 가치는 충분했다. 유엔군이 들어왔을 때 지붕마다 태극기가 펄럭인다면 우리 마을사람들이 그들과 한편임을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얼마나 우리의 태극기가 그리웠던가. 인민위원회는 1948년 새로운 국기를 채택했다. 위와 아래 부분의 가장자리에 얇고 흰선을 두른 붉은색 깃발이었다. 그렇게 형편없는 모양의 깃발이 우리의 빛나는 태극기를 대신한다는 것은 우리 민족과 국가에 대한 모독이었다.
태극기에는 이상적인 사회의 본질이 구현되어 있다. 음과 양으로 나뉘어진 가운데 원은 하늘과 땅 선과 악 남자와 여자 어둠과 빛 삶과 죽음의 영원한 이원성을 상징하고 네 모퉁이의 길고 짧은 선들은 강자가 약자를 보호해야 함을 뜻한다. 가치가 덜한 것이 더 중한 것을 보호해야 하며 선은 선에 이끌리고 악은 인내로 견디어야 함을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는 전쟁으로 이러한 가르침을 저버릴 수밖에 없었다. 강자가 약자 소중한 것과 덜 소중한 것 선과 악은 서로를 해치며 서로 죽고 죽였다.
붉은색 푸른색 검은색 흰색의 대담한 색채로 빛나는 태극기가 우리를 해방시켜 줄 군인을 환영하며 머리 위 높은 곳에서 바람에 나부꼈다. 이들은 10월 18일 평양을 함락한 다음 한반도와 만주의 경계선을 향해 계속 북쪽으로 진격했다.
이들이 다시 모습을 나타낸 것은 11월 말이었다. 이번에는 10월 25일 압록강을 넘은 40만 중공군의 진군에 쫓겨 정신없이 퇴각하고 있었다.
길고 긴 중공군 부대의 행렬이 우리 마을을 지나갔다. 많은 이들이 솜을 두툼하게 댄 황갈색 외투에 붉은 별이 그려진 챙 모자를 쓰고 등짐을 지고 소총을 메고 있었다. 태극기를 본 공산주의 자들이 곧장 우리집 대문으로 향했다. 놀란 마을 사람들은 남한에 등을 돌리고 이미 태극기를 내린 뒤였다. 다행히 어떤 어린 학생이 우리에게 적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 주었다.
죽음의 경주가 시작되었다. 이제 생각뿐 변장을 할 시간도 없었다. 나는 남편에게 집을 떠나 안전한 남쪽으로 가라고 애원했다. 남편은 모두가 함께 가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시작은할아버지가 너무 연로해서 먼길을 가는 것은 무리였다. 남편은 마지못해 한 번 더 도망치기로 했다.
"도망다니는 건 언제나 나구려."
남편이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싼 채 한동안 그대로 있어 주었다. 달콤한 순간이었다.
"당신이 돌아올 때까지 여기 있겠어요. 맹세코 그렇게 할 거예요."
"만약 이번에 내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웃어 보이려고 했지만, 남편의 목소리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그러면 당신을 찾아 온 세상을 뒤지고 다닐 거예요."
나는 이렇게 말했고, 우리 둘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내 대답이 만족스러웠다. 진심을 털어놓지 않고는 남편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감정을 숨겨서 득이 될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내 모든 것인 남편에게 상처를 줄 뿐.
"내 사랑은 당신뿐이에요."
내가 말했다.
"내 사랑은 당신뿐이에요."
그리고는 다시 한번 그 말을 반복했다.
"고맙소. 이제 떠나야겠구려."
나는 그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두 번째 이별이라고 해서 더 수월하지는 않았다. 사실 가슴은 더 찢어지는 듯했다. 왠지 오랫동안 남편을 보지 못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 남편이 남긴 자식들을 보니 외로움이 조금 가셨다.
용운이는 특히 남편을 많이 닮았다. 열여섯 살인 그 애는 이미 남편 키를 훌쩍 넘어선데다 각이 지고 검게 탄 얼굴이었지만 아직 완숙한 성인이라기보다는 어린 티가 남아 있었다. 용운이는 좀 마른 편이었지만 체격은 아주 좋았다. 나는 그런 아들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 애의 눈과 입가에 우수가 서려 있었다. 요즘은 늘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용운이는 전쟁을 겪으면서 나이에 비해 성숙해졌다.
"어머니 저도 가야겠어요."
내가 말려 주기를 바라는 듯 용운이는 목소리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말을 내뱉었다.
"알겠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전부였다. 나는 안심이 되는 동시에 죽을 것만 같았다. 고향과 가족을 사랑하는 내 장남이 이곳에서 살 수 없기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언제 떠날 생각이냐?"
내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일 밤 교회에서 만난 두 선배와 함께요."
"그 학생 이름이 뭔데?"
학생들의 이름을 알아 두어야 했다.
"김봉환하고 김대건이오. 김목사님의 아들이에요."
"어디까지 갈건데?"
"이 전쟁으로부터 안전한 만큼 멀리요."
"언제 돌아올 거니?"
나는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것을 느꼈다.
"총에 맞아 쓰러질 것을 겁내지 말고 거리에서 당당히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을 때요."
"알겠다."
그 날밤 더 이상의 말은 오가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해가 밝아 오는 이른 시간에 나는 옷가지와 아들에게 들려 보낼 여분의 식량을 넣어 짐을 꾸렸다. 차갑고 굳은 표정으로 고통스러운 마음을 감추려고 몸부림쳤지만 짐 꾸러미를 건네는 두 손이 떨리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어머니 안녕히 계세요."
용운이의 목소리는 더 가라앉아있었다.
가장 끔찍한 악몽에서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이었다. 나는 용운의 얼굴 구석구석을 마음에 담아 두고 싶었다. 크고 둥근 두 눈과 두툼한 눈꺼풀 곧게 뻗은 코 분홍빛으로 부풀어 오른 입술 어렸을 때처럼 용운이를 포근한 두 팔로 안아 주지 못하고 뻣뻣하게 서 있는 내가 얼마나 미웠던가 용운이는 이제 청년이 다 되어 있었다. 따라서 두 눈으로 아들을 어루만질 수밖에 없었다.
용운이가 시작은할아버지와 어린 동생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동안 나는 온 힘을 다해 나 자신을 지탱해야 했다. 우리 가족이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음을 이해할 만큼 성장한 것은 덕화와 민아뿐이었다.
"제발 몸 성히 돌아와다오. 여기서 널 기다릴 테니까."
겨우 하루 전에 용운이 아버지의 다짐을 받았듯이 나는 용운이에게도 같은 다짐을 했다.
용운이가 가고 난 다음에도 나는 오랫동안 대문을 열어 두었다. 대문을 닫으면 모든 게 끝나 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마당으로 내려가 벽에 등을 기댄 채 주저앉았다. 눈물이 차오르는 두 눈에 힘을 잔뜩 준 채로 나는 용운이가 힘든 길을 떠났음을 가슴으로 느꼈다. 가장 커다란 폭탄보다 더 무겁고 위험한 길임을 나는 무고한 생명들에게 이토록 엄청난 희생을 강요하는 전쟁의 부당함과 덧없음을 소리 높여 외치고 싶었다. 그 일이 있던 날 밤도 그리고 날개가 부러진 내 천사의 얼굴도 결코 잊지 못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