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과일, 스물다섯
"아기를 낳기 위해서 결혼할 생각은 없어요, 엄마."
"얘, 너 때문에 못살겠다."
어머니가 가슴을 움켜쥔다.
"넌 이제 곧 너무 익어 나무에서 떨어지는 과일 신세가 돼. 썩은 과일을 아내로 맞이하려는 남자가 세상에 어디 있겠니?"
할머니가 실망해서 혀를 찬다.
"하지만 이제 겨우 스물다섯인걸요."
내가 항변한다.
"내가 스물다섯이었을 때는 벌써 한 남자의 아내였다. 내년이면 넌 너무 늦어지게 돼. 젊은 처녀는 부모님 말슴을 잘 들어야 한다. 부모들은 무척 현명하니까."
할머니는 신랑감을 물색하기 위해 음식점 내부를 둘러본다. 하지만 코쟁이와 가슴에 털 난 사람들뿐 마땅한 총각은 눈에 띄지 않는다.
"착실한 한국 청년을 찾아주마. 변호사도 괜찮지만 난 안정된 의사가 더 좋더구나. 기독교 신자여야 하고, 집안이 좋아야 해."
중매 시장에서 찾을 내 남편의 자격을 되뇌이는 어머니의 얼굴이 환한 미소로 밝아진다.
"멋있네요. 제가 재미도 없는 사람과 결혼하길 바라시는군요."
내가 한탄조로 말한다.
"무슨 재미?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아이고."
할머니가 또 혀를 끌끌 찬다.
"지금은 시대가 달라요, 할머니. 요새는 결혼하지 않는 독신자들도 많다구요. 전 제 인생을 즐기고 싶어요. 내 한 몸 살아가기도 벅찬데, 아이들이라니요."
"큰 문제구나. 지금 세대는 너무 자기 자신만 생각해."
어머니의 음성에서 좌절감이 뚜렷이 드러난다.
나 또한 불가사의한 극동의 먼 나라에서 길을 잃은 것은 아닌지 확인해 보기 위해 음식점을 둘러본다. 다행히 이곳은 미국이다.‘샐러드는 마음껏 드세요’라는 후한 보너스가 주어지는.
이들은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또 뒤처져 있는가. 할머니는 우리 가족이 한국을 떠날 계획을 세운 분이고, 우리를 이 샌퍼낸도 협곡(역주-미국 캘리포니아주 남서부에 있는 협곡으로 일부는 로스앤젤레스에 속함)의 다른 미국 아이들과 똑같이 키워야겠다고 생각한 분은 바로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꿈을 심어주었고, 난 백인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어머니의 말을 신봉했다.
파란 눈의 친구들이 내 역할 모델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버리고 그 애들처럼 되기 위해 이곳 소녀들의 말투와 옷차림, 그리고 태도를 그대로 따라 했다. 다른 ‘보통’십대 소녀들처럼, 나도 허벅지가 다 드러나는 짧은 치마 차림으로 응원을 하고 수업에 빠지며, 한국인의 마지막 흔적을 감추기 위해 새까만 머리를 물들이고 누런 피부를 햇볕에 태웠다.
대학 시절은 소란스러운 남녀 공동 기숙사에서 보냈고, 우애회(역주-보통 두 자 이상의 그리스어 알파벳을 모임의 이름으로 하는 대학생 단체로, 저자가 미국에서 서클 활동을 활발히 했음을 뜻함)에 입회해서 화롱했다. 게다가 나는 나의 과거는 물론, 할머니와 어머니의 과거, 그리고 순수한 한국인의 혈통을 지닌 두 분 이전의 수많은 세대들의 삶과는 전혀 다른, 틀어박히지 않은 미래에의 부푼 꿈을 품고 있었다. 넘치는 에너지에 반항적인 추종자를 거느린 거대한 할리우드의 환한 빛이 보다 더 유혹적이었다. 내게 있어 할머니와 부모님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화성인 같은 조재로, 지나치게 한국적인 분들이었다.
"너 화장이 너무 진하구나. 부드러운 색을 좀 써 보렴. 짙은 색 립스틱을 바르니까 마치 아픈 것처럼 보이잖아."
어머니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아프다고? 혀 좀 내밀어 봐라."
할머니가 자신의 혀를 내밀어 보인다.
"할머니, 지금 그렇다는 게 아니에요."
당황한 내가 투덜거린다.
"할머니 말씀이 맞다. 넌 너무 안 먹어."
이렇게 말하며 어머니가 내 앞머리를 쓸어 올려 준다. 덕분에 완벽하게 손질한 머리 모양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다.
"너무 늦었어요. 난 나예요. 두 분하고는 다르다구요."
내가 항변한다.
"뭐라구? 네가 네 어미보다 나은 줄 아니? 우리가 한국 사람인 게 창피해서 그러니?"
"아뇨, 그런 말이 아니에요."
나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코를 훌쩍거리던 어린 계집애 시절을 돌이켜본다. 그때는 너무도 두려운 존재였던 이 두 여인의 곁을 한시도 떠난 적이 없었는데.
"넌 한국인이고 언제까지고 한국 사람으로 남는 거야. 아주 훌륭한 민족이지."
할머니가 축축해진 눈가를 문지른다.
"우리가 미국인이 되길 바라지 않으신다면서 왜 미국으로 데려오신 거예요?"
오랜 침묵이 흐른 뒤에 어머니가 강인하면서도 엄숙한, 무척이나 진지한 음성으로 입을 연다.
"너희 아버지와 난 너희들을 미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고향과 우리의 생활 등 모든 것을 다 버렸다. 하지만 미국 사람이 되라고 데려온 건 아냐. 너희들은 한국인이다. 여긴 냉전도 배고픔도 잃어버릴 것도 없다. 많이 먹고, 머리 모양을 단정히 하고, 립스틱 색깔을 바꾸고, 얌전한 옷을 입으라고 말하는 걸 너희들이 지긋지긋해한다는 건 잘 알고 있어. 하지만 난 사람들이 우리의 동양적인 얼굴을 마주할 때 ‘아, 한국 여성이군. 자부심이 아주 강한 미족이지’라고 말해 주길 바란단다. 때문에 그렇게 잔소리를 하는 거란다."
양팔에 소름이 돋고 목구멍에서 무언가 뜨거운 덩어리가 치밀어 오른다. 나는 늘 우리가 자본주의의 꿈을 좇아 이곳으로 이민 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을 떠나던 그날이 생생히 떠오른다. 1968년이었다. 남동생 데이비드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고, 아버지는 일자리와 살 집을 물색하기 위해 네 달 앞서 한국을 떠난 상태였다. 그래서 어머니와 줄리 언니와 나는 한동안 할머니의 집에서 지냈다.
양쪽 눈 밑으로 검은 개울을 그리며 어머니의 뺨으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끝도 없이 사진을 찍어 대느라 어머니는 눈 화장을 고치고 가짜 속눈썹을 다시 붙여야 했다. 어느 사진에서도 할머니와 어머니는 웃고 있지 않았다. 사진기 앞에서 한국인들은 바로 그런 태도를 취한다.
비행기 입구에 서서 아래쪽의 사람들을 내려다보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는 우리를 향해 두 손을 벌린 채 다른 친척들과 약간 거리를 두고 서 있었다.
"어머니!"
어머니가 소리쳤다. 하지만 딸의 마지막 작별 인사는 할머니에게 전해지지 않은 채, 엔진 소리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탁’하고 빗장이 걸리며 문이 육중하게 닫혔다. 우리는 안에, 할머니는 바깥에 남겨진 채로, 지금 나는 이 빛바랜 광경들을 돌이켜보다 할머니와 어머니 모두 무척이나 슬퍼했었음을 깨닫는다. 두 분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떨어져 살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두 사람 사이에 바다가 가로놓이는 것이다. 서로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할머니,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눈 지 몇 날, 몇 주, 몇 달이 흘렀지만, 그때 들은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미국으로 온 게 그분들에게 희생이었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일이 없었다. 그러니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두 분이 여전히 애국가와 한국의 관습에 애착을 보이는 것도 별로 이상할 게 없는 일이다.
반면 내가 아는 한국은 황량하기만 한 곳이다. 국토는 분단되어 있고, 남자들은 이기적인 사랑을 하며(들은 바에 의하면), 여자들은 너무 일찍 결혼해서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아이를 낳는. 내가 선택한 삶은 그런 모습이 아니다.
나는 독립적인 생활과, 무엇보다 한국인 샐러리맨 남편과 아이들이 등장하지 않는, 제트족(역주-제트기로 세계 각지의 휴양지, 관광지를 유람하는 유한계급)만큼의 성공을 원한다. 하지만 애써 노력하면 할수록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두 분이 6.25를 전후해 겪은 비극이 마음에서 떠나질 않는다. 누군가가 나는 어쩔 수 없는 우리 어머니의 딸이라고 말할 일이 있었지만ㅡ 그 말이 옳다고 느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이나마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늘 내가 동양인, 아시아인인 것이 싫었다. 그래서 얼굴을 감추고 눈 모양을 꾸민다.
하지만, 할머니와 어머니는 다르다. 두 분 모두 자신의 출신을 무척 자랑스러워할 뿐 아니라 굳건한 확신을 갖고 있다. 두 분은 괴로울 정도로 나를 간섭한다. 하지만 내가 두 분에게 이끌리는 것은 바로 그 고집스러운 애국심 때문이다. 이 두 여인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알려고 하면 할수록, 내가 누구이며 어디 속해 있는가에 대한 혼돈은 커져만 간다.
그래서 난 일을 벌이기로, 내가 태어난 나라로 돌아가기로 한다. 정해진 일정도 정신적인 힘이 되어 줄 친구도 없이, 편도 항공권을 끊어 서울의 김포공항으로 날아간다. 모두가 서로를 오빠와 언니라고 부르는 이 한민족 국가에서 과연 내가 찾는 게 무엇인지도 확실히 모르는 채로.
공항에서 내리자, 외사촌을 비롯한 먼 친척들이 따뜻한 포옹으로 나를 맞아 준다. 이들의 황색 얼굴이 환한 미소로 밝아진다. 이처럼 무조건적인 애정은 감동적이다.
모두들 녹색 택시 한 대에 구겨 타고, 나는 가운데 끼어 앉는다. 기사는 혼잡한 도로를 실성한 듯 누비며 나아간다. 이곳에선 아무도 차선이나 교통 신호를 지키지 않는다. 차창 밖으로 서울이라는 도시가 쏜살같이 스쳐 지나간다.
내가 마음속으로 그렸던 것은 초가 지붕과 논, 그리고 TV프로그램 <매쉬>(역주-한국전을 배경으로 한 프로그램)에서처럼 개를 잡아먹는 전쟁 피난민들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곳은 미국의 혼잡한 여느 대도시와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지하철, 고층 빌딩, 출퇴근 시간의 교통 혼잡, 그리고 맥도널드에 이르기까지.
택시는 커다란 철 대문 앞에서 멈춰 선다. 나는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들처럼 현관 안쪽에 군하 모양의 구두를 벗어 놓는다. 결국 전통적인 관습으로부터 그렇게 멀리 벗어나 있었던 것은 아닌가 보다. 나이가 많건 적건, 여인들은 모두 부엌에서 분주하게 오가며 환영의 성찬을 준비한다. 밥과 만두국, 완자 튀김, 배추에 마늘과 고춧가루를 잔뜩 넣어 발효시킨 김치로 이루어진. 나는 배가 부르도록 먹는다. 하지만 더 먹으라고 성화다. 어머니가 뭐라고 그러셨더라? 한국에는 굶주림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시차 때문에 피곤을 느끼면서도 나는 혼자 압구정동의 인근 거리로 나선다. 여덟 시밖에 안 된 이른 시간이지만 여정을 어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염색한 머리칼은 원래의 검은색이 아니고 피부도 3도 정도 더 밝지만, 처음에 나는 이제 이들 속으로 섞여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재미 교포임을 몰라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부모와 어린아이들이 내가 입은 회색 운동복 바지를 손가락질하며 수근대고, 어떤 여인은 친구에게 내가 잠옷을 입고 있다고 귓속말을 한다. 조금은 나 자신을 의식하게 되었지만, 뭐 그렇다고 해서 낯선 풍경에 몰입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좁은 골목길에서는 일찍 일어난 사람들과 상점 주인들의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온다. 모든 색채와 냄새가 무척 낯선 동시에 친숙하게 다가온다. 불현듯 나 자신이 이방인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와 신발을 벗은 나는 남자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된다. 남자들끼리 바닥에 둥글게 모여 앉아있는, 그중에서 제일 연장자인 외당숙 옆에 내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사실 외당숙은 우리 어머니와 외사촌 남매간이지만, 나보다 한 세대 윗사람이기 때문에 그 같은 존칭으로 불러야 한다. 곧 둘째 육촌의 스물한 살 난 임신한 젊은 아내가 사과를 깎아 커다란 쟁반에 멜론과 감을 함께 담아 내온다.
외당숙이 목청을 가다듬자 잡담 소리가 잦아든다. 여인들은 일손을 멈추고 방 뒤편, 남편들의 뒤쪽에 웅크리고 앉는다. 다른 여자들은 모두 바깥쪽에 있는데, 나만 남자들과 함께 안쪽에 앉아있자니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너희 큰할머니의 손녀딸이 여기 우리 집에 오게 되어 무척 기쁘다."
외당숙이 낮고 권위적인 음성으로 말을 시작한다.
"여기 있는 동안에는 나를 외당숙이자 아버지이며 오빠이며 어머니이며 보호자로 생각하도록 해라. 보잘것없는 것이긴 하지만 내가 큰이모님을 위해서 하는 일이니까."
"큰할머니는 흔들림 없는 신념과 넓은 마음을 지닌 여인이시다. 오래전에 그분이 젊었을 때, 그분의 남편은 일본의 침략자들을 피해 가족과 함께 중국으로 가길 원하셨고 그분은 순종적으로 남편을 따랐다. 큰할머니는 그곳에서 명석한 두뇌로 거대한 아편 갑부가 되셨고, 그 덕분에 가족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은 땅을 사셨다.
자손들을 위해 그토록 넓고 비옥한 토지를 샀지만, 빨갱이들이 모든 것을 다 강탈해 가고 말았다. 큰할머니는 그런 커다란 손실에도 굴하지 않고 남은 돈으로 그와 거의 비슷한 규모의 다른 땅을 또 사셨다. 하지만 그 탐욕스러운 빨갱이들이 또다시 땅을 몰수해 갔고, 더 이상은 내줄 땅이 없어진 후에는 그분의 남편과 장남을 내놓으라고 했다. 가족 전부가 반동인 기독교인으로 낙인이 찍혀있었던 거지. 그분이 응하지 않자, 놈들은 큰할머니를 부당하게 감옥에 가두었다. 그리고 전쟁 중에 장남과 헤어지게 되고,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분의 신념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큰할머니는 더 많은 비극과 고통을 겪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여전히 모든 가족과 병들어 어렵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치료’로 힘을 주고 계시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말문이 막힌다. 어렸을 때 할머니로부터 북한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이런저런 이야기와 뻔한 전쟁 이야기를 조금 듣기는 했지만, 중국에서 살면서 아편을 팔거나 공산주의자들 때문에 감옥에 갇히고 아들과 헤어졌다는 것은 금시초문이다. 우리와 함께 살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처음 왔을 때, 촌스러운 옷차림을 한 할머니가 너무 무력하고 구식으로 보였던지라, 외당숙이 칭찬하는 이 여인이 우리 할머니라는 사실이 놀랍기만 할 뿐이다.
할머니는 운전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토스터기 하나 작동할 줄 몰랐고, 어쩌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면 부엌 바닥에 신문지 더미를 깔고 앉아 저녁 식탁에 올리려고 뒷마당에서 딴 채소를 다듬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한 벌뿐인 한복을 입고 검푸르게 멍이 들도록 자신의 몸을 때리고 있거나, 할머니는 그것을 치유를 위한 처치를 뜻하는 ‘치료’라고 불렀다. 나는 자해라고 말했지만.
"우리는 큰할머니의 손녀이자 덕화의 딸인 혜리에게서 기대하는 바가 크다."
외당숙의 목소리리는 사뭇 진지하다. 걱정스러운 마음이 든다. 이제까지의 안락한 삶에서 맞닥뜨린 가장 힘겨운 일은, 어머니가 내게 따분하기 이를 데 없는 남편감을 찾아주려는 것이므로.
이곳 한국에 있자니, 현대와 선사 시대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여성해방 운동과‘탐폰’은 아직 이곳에 상륙하지 않았으며, 여자의 가치는 아직도 남편의 지위에 의해 결정된다(난 남편이 없으니 지위가 낮다고 해야 할까). 친척 모두가 낯선 처녀를 시집보내기 위한 전투에 돌입한다.
나는 모두 일곱 식구가 방 세 개짜리 집에서 사는 외당숙네에서 기거한다. 그 일곱 식구란 외당숙의 어머니와 외당숙 내외, 그리고 두 아들과 그들의 임신한 아내들이다.
"언제든 가족을 재울 방은 있다."
불룩 튀어나온 며느리의 배를 보고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외당숙이 말한다. 나로서는 비좁은 곳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다. 나는 열일곱 살 때 부모님의 집에서 나왔으며, ‘썩은’나이인 스물다섯이 되어서도 독립적인 생활과 독자적으로 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힘겹게 투쟁하고 있다. 부모님 식대로 하자면, 나와 내 형제들은 결혼한 후에도 두 분과 한 지붕 밑에서 살아야 할 것이다. 지금 이들이 그렇게 살고 있듯이.
다른 여인들이 집안일로 바쁜 낮 동안 나는 한국어 수업을 듣고 코리아 헤럴드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친다. 처음에 내가 맡은 강좌는 그 대상이 대부분 젊은 직장인들이었으나, 내가 결혼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나자 이들은 곧 반을 옮겼다. 그래서 이제는 교육과 의료 부문에서 눈부신 활약을 할 여대생들만을 가르친다. 하지만 이 똑똑한 여성들이 자신들의 모든 것을 남편이나 더러운 기저귀와 기꺼이 맞바꾸려 하는 것은 적이 실망스러운 일이다.
"가장 중요한 책임은 가정을 위하는 것에 있지, 개인을 위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의 세대를 낳아 기르는 것은 여자인 우리의 의무예요."
다른 학생들이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의과 대학에서 인턴과정을 밟고 있는 한 여학생이 자랑스럽게 말한다.
"두 가지 일을 다 할 수도 있어요. 많은 미국 여성들이 일하는 엄마인걸요."
내가 항변한다.
"한국 여성들은 어머니와 교육자의 역할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집 밖에서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가족의 행복을 희생시킬 수는 없죠."
다른 학생이 덧붙여 말한다.
나는 할머니와 어머니를 복제해 놓은 듯한 이들의 모습에 포위되고 공격당한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 것일까? 이들 모두가 가히 종교적으로 먹어 대는 밥과 김치 때문일까?
막막한 심정이다. 완전한 외톨이가 된 듯한. 택시 기사, 환경미화원, 경비원 등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이들이 끊임없이 나의 속물적이고 서구적인 태도에 대해 훈계를 늘어놓는다. 나는 정신적으로 기진맥진해진다. 힘겨웠던 1년간의 체류 기간 동안 변한 것이라고는 굵어진 허리뿐이다. 낙심한 나는 택시에서 밖으로 내던져지거나, 남편한테 얻어맞거나, 아니면 너무 살이 쪄서 옷을 전부 못 입게 되기 전에 이 나라를 떠나기로, 그리고 나를 찾기 위한 노력을 그만두기로 한다.
빌려 온 세계 지도를 바닥에 펴놓고 뒤로 돌아서서, 운명의 여신이 이끄는 곳이 어디인지 알아보기 위해 행운의 1센트짜리 동전을 던진다. 동전은 중국에 떨어진다. 끝내 주는군. 파리 같은 유럽 문물을 보고 싶었는데.
불과 몇 시간 만에 홍콩행 비행기 표를 샀다. 계획을 포기하고 운명을 속이려 들기 전에 서둘러 친척들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그리고는 무게가 안 나가는 꼭 필요한 것들로만 신경 써서 짐을 챙긴다. 카메라, 여권, 칫솔, 패션 청바지 하나, 티셔츠 서너 장, 양모 스웨터 두장, 따듯한 겨울 외투, 운동복, 깨끗한 속옷은 충분히. 그리고 일기장 한 권.
9킬로그램짜리 가방을 등에 메고 나자, 미지의 나라로 신비한 여행을 떠날 준비가 끝났다. 두려움 같은 것은 없다. 비행기가 이륙해 서울에서 멀어지면서 안도감이 온몸을 씻어 내린다.
홍콩은 서구와 동양이 그럴듯하게 혼합된, 네온 불빛 가득한 문화의 광시곡이다. 낡고 녹슨 기차를 타고 자유의 국경을 넘어 공산 중국으로 들어가기 전에 영국식 선술집과 열기 넘치는 디스코 테크는 반갑게도 집을, 그리운 집을 연상시킨다.
풍경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홍콩의 현대식 마천루와 원색의 이층 버스가 네모난 잿빛 시멘트 건물과 수천 대의 자전거로 바뀌어 버리는 것이다. 불현듯 할머니와 어머니가 이곳 중국에서 살았던 삶이 궁금해진다. 중국말도 모르면서 두 분은 어디서 어떻게 살았을까? 중국에 온지 한 시간도 채 안 돼 구운 닭고기와 신선한 야채로 되어 있는 간단한 식사를 주문해 본다. 하지만 정작 나온 것은 기름에 튀긴 오리 고기이다.
엄청난 어려움을 겪으며 나는 방을 구하기 위해 광저우(역주-중국 광동성의 성도)에 있는 중산 대학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대화가 가능할 만큼 영어를 구사하는 ‘치케’라는 예술학과 교수의 환영을 받는다.
"한국계 미국인이라, 어쩐지 좀 달라 보이더라니."
그가 반가워서 소리친다.
"조부모님이 한때 중국에서 사신 일이 있으세요."
"그럴 거야. 많은 한국인들이 그랬으니까. 사실 난 지금까지 상하이에서 살고 있는 연로한 한국인 부부를 알고 있는걸."
귀가 번쩍 뜨인다. 아직 공산 중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 있다니.
"그분들을 만나 뵐 수 있게 도와주시겠어요?"
한국 사람들로 가득한 나라를 방금 빠져나온 마당에 한국인을 또 만나고 싶다고 부탁하다니, 나 자신도 그러한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는 종이에 주소를 베껴 적고, 뒷장에는 그 부부에게 내가 누구인지 알리는 소개장을 쓴다. 나는 고개를 깊이 숙여 그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다음 기착지는 상하이이다. 여행사의 서투른 일 처리와 경직된 관료주의 탓에 여러 차례 일정이 지연되어 사나흘을 지체한 후에야 상하이행 비행기에 오른다. 중국에서는 신속하게 되는 일이 하나도 없고, 성취 유발 동기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여행안내 책자에서 추천하는 유스 호스텔에 들어 남자 일곱과 여자 셋과 한 방을 쓴다. 시내에서 가장 싼 숙소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두가 이곳을 찾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곳에 들면 우리 같은 외로운 여행객들이 전 세계의 젊은이들과 만나 경험을 나눌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여드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가치 있는 정보를 교환하기 위함이다. 이곳에서 가장 믿음이 가고 신뢰할 만한 정보원은 바로 사람의 말이다. 이 나라는 너무도 광대해서 중국 정부조차 지역적 ‘소요’로 안전하지 못한 것이 어디인지를 다 알지 못하므로.
상하이를 여행하는 것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는 것과 같다. 어느 지역은 분명 프랑스 같고, 어느 지역은 덴마크, 그리고 다른 지역은 필라델피아 같다. 그리고 너무도 많은 사람, 사람, 사람들, 수천 명이 흔들거리는 낡은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누빈다. 관광객의 열기가 절정에 달한 디즈니랜드를 연상시킨다. 정부에서 한 부부당 아이 하나만을 허용한 것이 조금도 놀랍지 않다.
보험에도 들지 않은 자전거에 치이기 전에 치케 교수가 말한 한국인. 부부를 찾기로 한다. 또다시 운명의 여신이 나를 목적지로 인도한다. 버려진 듯한 어느 인가로 다가가자, 한 노인이 나를 목적지로 인도한다. 버려진 듯한 어느 인가로 다가가자, 한 노인이 손바닥만 한 정원을 손질하고 있다. 노인은 폭 좁은 깃을 꼿꼿이 세운, 전형적인 푸른색 인민복 차림이다. 주름진 둥그런 얼굴이 중국인처럼 보인다. 노인이 영어를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저, 여보세요."
내가 영어로 인사하며 고개를 숙이자, 그의 지친 두 눈이 나를 응시한다. 노인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그렇지만 그가 한국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에는 한국말로 다시 시도해 본다.
"실례합니다. 혹시 한국 사람이세요?"
나는 한 마디 한 마디를 분명하게 발음한다.
눈이 휘둥그레지며 노인이 들뜬 목소리로 답한다.
"아이구, 어디서 오셨수?"
"미국에서요. 치케 교수님이 소개장을 써 주셨어요."
내가 대답한다.
"들어와, 들어와요. 그렇게 먼 길을 왔다니 앉아서 좀 쉬어야 할게야. 집사람이 먹을 것을 곧 내올 테니."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노인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가 집이라고 말하는 오두막으로 따라 들어간다. 입구는 배낭을 메고 있는 내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너비이다. 두 분은 방 한 칸짜리 집에서 무척 소박하게 산다. 카펫도 깔지 않은 맨 흙바닥에 얇은 이불이 깔린 2인용 간이침대, 플라스틱 덮개를 뒤집어쓰고 있는 자그마한 탁자, 고장 난 벽시계, 연소기가 두 개 달린 이동식 난로, 그리고 입구 위쪽 벽에 걸려 있는 북한의 아름다운 산 풍경이 담긴 얼룩진 사진.
"여보, 미국에서 오신 손님께 음식을 대접해 드려야지."
웅크리고 앉아 시커먼 쇠 주전자를 닦고 있는 아내에게 노인이 말한다.
"어디서 오셨다구요?"
할머니가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새끼손가락을 들어 양쪽 귀를 파낸다.
"미국에서요."
내가 좀 더 큰 소리로 말한다.
"아이구, 귀한 한국말을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듣다니 대체 이게 얼마 만이야. 기운이 좀 남아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을 따라갔어야 하는 건데."
할머니가 한숨을 내수며 말한다.
"이제 우리가 마지막으로 남았지."
노인이 똑같이 서글픈 어조로 중얼거리더니 코를 훔친 다음 말한다.
"뭘 좀 먹은 다음에 이야기하도록 하지."
나는 노부부가 느릿느릿 오가며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본다. 영광스럽게도 깡통에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 미국산 스팸이 식탁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그 주위로 조그마한 밥공기와 구운 땅콩, 계란국, 미지근한 맥주, 그리고 별로 맵지 않은 김치가 놓여 있다. 나는 노부부를 따라 정신없이 먹는다. 충분한 대화를 나누어 만족스럽다. 두 분은 한국말을 잊은 듯 가끔은 상하이 사람들의 사투리를 섞어 쓰기도 한다.
"우리 식구는 오래전에 일본 놈들의 압제를 피해 이곳으로 왔어. 일본 헌병이 독립운동가를 색출하느라 온 마을을 뒤지고 다닐 때는 프랑스 대사관에 숨어있었지. 용감한 우리 동포틀은 만주 전역을 누비고 다녔고, 멀리 충칭(역주-중국 중앙부 쓰촨성의 양쯔강에 면한 도시로 해방 전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던 곳)까지 내려간 이들도 있었지. 일본 놈들은 음식 종류와 먹는 방식으로 중국인과 우리를 정확히 구분해 냈어. 그래서 처와 난 예절과 먹는 습관을 다시 익힐 수밖에 없었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우리는 나라의 운명이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는 채 남아있었어. 이제 38선 이남의 고향에는 가 볼 도리가 없게 됐지. 그래서 이곳에 발이 묶인 우리 같은 사람들이 모여 북한과 중국의 국경 가까운 곳에 부락을 이루고 살아온 거야."
아홉 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나는 두 분의 집을 나온다. 도시는 내 마음과는 달리 칠흑같이 어둡다. 두 분이 들려준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웅웅거린다. 먼먼 북동쪽까지 가서 한국인들이 모여 산다는 작은 부락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솟구쳐 오른다.
마음이 급했지만 또 하루를 기다린 선양(역주-중국 랴오닝성의 성도)이라는 먼 산업 도시로 가는 소형 전세 비행기에 자리를 하나 얻는다. 그곳에 도착한 다음에는 기차로 이동할 생각이다. 기체에 아직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의 상징인 붉은 망치와 낫이 흐릿하게 남아 있는 비행기는 구 소련의 전쟁 영화에나 나왔음직한 모습이다. 중국이 이 유물을 상업 여객기로 전환시킨 것이다.
내부의 복도가 너무 좁아서 비행기 뒤편의 작은 좌석에 커다란 배낭을 어렵사리 끼워 넣는다. 몇 분 후에 러시아 사람처럼 보이는 키가 몹시 큰 여인이 사방으로 뻗친 갈색 곱슬머리를 한 채 힘겹게 복도를 헤치고 들어와 내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여인은 나보다 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모습을 하고 있다.
덜컹거리는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려 이륙한 다음 구름 사이로 뛰어들 때까지, 나는 숨을 멈추고 기도문을 중얼거린다. 엔진이 곧 멎을 듯 요란한 소리를 내다. 위태로운 비행이 시작된 지 몇 분 만에 승무원이 몸의 균형을 잡으며 북경관화(역주-중국의 표준어, 공용어)로 떠들어댄다. 나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지만, 옆의 여인은 이해하는 모양이다.
"맙소사, 이거 추락하는 거 아냐."
두려운 나머지 커다란 목소리로 영어가 터져 나온다.
"아니, 영어를 하시는군요."
여인이 놀란 음성으로 말한다. 하지만 그녀의 영어를 들은 나의 놀라움과 전율에 비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리라.
"우리같이 덩치가 큰 사람들은 앞으로 옮기라는군요. 뒤쪽이 너무 무겁다구요."
우리는 씁쓸한 웃음을 주고받은 다음, 재빨리 승무원의 지시에 따른다. 이처럼 충격적인 경험으로 우리는 이내 단짝이 된다. 세상은 참 좁기도 하다. 캘리포니아 남부에 사는 두 여인이 중국 본토의 상공 어딘 가에서 이처럼 별난 여행을 함께 하게 되다니! 내가 계획을 털어놓자, 그 여인은 함께 다녀도 괜찮겠느냐고 묻는다. 그녀가 동행해 주겠다니 대환영이 아닐 수 없다. 말동무뿐 아니라 통역관이 생기는 셈이니 말이다.
마침내 비행기는 선양에 안전하게 착륙한다. 적어도 영하 10도는 될 날씨다. 너무 추워 카메라 안의 건전지가 다 얼어붙었다. 이곳 사람들은 러시아풍의 털외투와 모자로 빈틈없이 몸을 감싸고 있다. ‘리자’와 나는 몸을 떨며 쉴 곳을 찾느라 애를 쓴다. 뿌연 안개 속에서 큼직한 노란 버스가 나타나더니 요란한 소리를 내며 멈추어 선다. 운전사의 손짓에 따라 우리는 버스에 오른다. 그는 오늘 대학 기숙사의 입구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리자가 감사의 표시로 인민폐 백 원을 냈지만, 운전사는 받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배낭 속에서 오렌지빛 티셔츠를 꺼내 그에게 내민다. 운전사는 이것을 받으며 담뱃진이 배인 이를 드러내며 벙긋 웃는다.
우리는 따뜻한 방에서 정오가 넘도록 곤히 잔다. 그러고 나니 배가 너무 고파 바깥 날씨에 도전하기로 한다. 우리는 가능한 한 단단히 옷을 입고 손을 맞잡은 채 거리를 나선다. 선양의 모든 식당은 오후 두 시에서 네 시까지 문을 닫는 게 분명하다. 배는 고픈 데다 짜증이 난 우리는 성급히 달려 더 멀리까지 나아간다. 멀리 갈수록 마당에, 길가에, 그리고 손수레에 쌓아 둔 배추가 한결 더 많이 눈에 띈다.
"김치를 담는 배추 같은데."
허기로 현기증을 느끼며 내가 말한다. 갑자기 친숙한 냄새가 코를 잡아끄는 바람에 우리는 어느 골목의 모퉁이를 돌아들어 간다. 가까운 상점에서 젊은 여인이 김치를 팔고 있다. 여인의 귀엽고 동그스름한 볼에 선명한 홍조가 새겨져 있다. 일그러진 원 두 개가. 입술에는 어린애가 그린 것 같은 서투른 솜씨로 연지가 발라져 있고, 뒤쪽 벽으로는 한복을 입고 부채질을 하는 한국 여인의 모습이 담긴 낡은 1969년도 달력이 걸려 있다.
"한국 사람이세요?"
내가 한국말로 묻는다.
"네, 그래요. 당신도 한국 사람이세요?"
여인이 묻는다. 억양을 제외하면 그녀의 한국말은 거의 완벽에 가깝다. 여인은 중국말처럼 노래하듯 말한다. 처음에는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이내 적용이 된다.
"여기서 태어나셨어요?"
내가 꼬치꼬치 캐묻는다.
"네, 부모님도 조부모님도 여기서 태어나셨구요."
놀라움에 입이 딱 벌어진다. 삼대가 지났는데도 한국에서 태어난 나보다 우리 말을 더 잘하다니.
"다른 한국 사람들은 어디서 사나요?"
"우리는 모두 이 부근에서 일하며 살고 있어요. 여기가 우리 마을이에요."
목적지에 도착했으면서도 그러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던 셈이다. 길을 안내한 것은 내 코였다. 한국 음식 을 식별해 내는 내 실력이 믿음직스럽기 그지없다. 그리고 이제는 한 입 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한국을 떠나오면서 이제 마늘과 고추는 다시는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지금은 그 맛난 양념들만 생각해도 군침이 돈다. 나는 일부러 맵고 양념을 많이 넣은 김치를 많이 산다. 젊은 여인은 돈을 받지 않는다. 입씨름을 벌이기에는 날씨가 너무 춥다.
플라스틱 그릇에 담긴 음식을 한 아름 들고 리자와 나는 고풍스러운 한국 식당에 들어가 좀 전에 산 김치와 함께 먹을 밥을 주문한다. 아직 영업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주방장이 우리의 팔짱을 끼고 난로와 가장 가까운 자리로 안내한다. 그녀는 접시와 젓가락을 내오더니 밥 두 공기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 한 바구니를 들고 온다. 양철로 된 밥공기를 꼭 쥐자, 따뜻한 열기가 얼어붙은 손가락을 녹여 준다.
성찬을 즐기는 동안, 다른 요리사들도 밥공기를 후루룩거리며 우리의 대화에 끼어든다. 가만히 뵌 모두들 상하이의 한국인 노부부처럼 먹고 있다. 밥공기를 입 가까이 가져가 젓가락으로 퍼 넣는 중국식으로, 중국은 유구한 기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므로, 일단 음식이 생기면 입으로 가져가는 데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던 탓인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먹을 것을 입술 가까이 가져갈수록 자신과 음식 사이에 다른 사람이 끼여 들 여지도 줄어드는 셈이니, 납득이 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리자의 북경관화와 나의 한국말로 우리는 충분하고도 폭넓은 대화를 나눈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았고 중국 사람처럼 먹을지언정, 이들의 내면은 완전한 한국인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한국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보면 꼭 지상 낙원에 대해 말하는 것 같다.
기운을 되찾아 바깥의 추위와 싸울 준비가 되었다. 돈을 조금 내놓았지만, 주방장이 그 우정어린 싸움에서 이겨 그 돈을 내 주머니에 넣어준다.
"말도 안 돼, 처녀가 집에 돌아가서 가족들에게 우리가 대접을 소홀히 하더라는 말을 들을 수는 없어."
그녀가 눈가까지 내려온 내 머리를 쓸어 올려 준다. 주름진 입술에 따뜻한 미소를 하나 가득 머금은 채.
집. 그러고 보니 너무 오랬동안 집을 나와 있었나 보다. 이 푸근한 여인이 불현듯 할머니와 어머니를 연상시킨다.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내 안전을 염려하고 계실. 예정에도 없이 길어진 여행의 고단함이 일시에 나를 무겁게 내리누르며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린다.
"죄송해요. 집 생각이 나서요."
감정에 복받쳐 눈물을 흘리며 내가 말한다.
"눈물 닦아. 아가씨는 지금 가족들과 함께 있는 거야. 우리는 모두가 아가씨의 형제고 자매야. 똑같은 역사, 똑같은 피를 나누고 있으니까."
"감사합니다."
여인의 친절한 말에 위안을 받은 내가 눈물을 닦으며 답한다. 그 여인은 자신이 나의 아버지요, 오빠요, 어머니이며 보호자라고 말한 외당숙처럼 진심에서 우러나는 말은 한 것이다.
리자와 나는 손에 손을 잡고 그곳을 떠난다. 우리 사이에는 거의 말이 오가지 않는다. 리자는 내 안의 무언가가 녹아내리고 있음을 눈치챘는지 생각에 잠기도록 나를 그냥 내버려 둔다. 모든 한국인에게 품었던 회한과 비통함이 말끔히 씻겨 내려간다. 주변을 둘러보고 그 풍경에 빠져들수록 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할머니나 어머니보다 반세기 후에 신천지를 발견한 똑같은 경이로움을 느끼며, 두 분과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웬 교회야?"
리;자의 놀란 목소리가 들린다.
친구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얼마 전에 세워진 듯한 교회의 첨답이 다른 집들 위로 높이 솟아올라 있다. 놀란 우리가 가까이 다가간다. 이곳은 종교가 용인되지 않는 공산주의 국가가 아닌가. 교회에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는 찬송가 소리가 울려 퍼진다. 리자와 나는 시건을 교환한다. 그녀가 나를 팔꿈치로 살짝 찔러 앞쪽으로 민다.
내부는 큼직한 우단에 그려져 있는 최후의 만찬에 이르기까지 부모님이 다니는 한인 타운의 교회와 흡사하다. 바로 그때 평범하면서도 인상 좋은 한 여인이 자신을 목사라고 소개한다.
"여자 목사이신가요?"
"왜, 안되나요?"
"왜 안 되냐구요?"
내가 따라 한다.
"우리 한국 여인들은 마음먹은 일은 무엇이든 해내요. 봐요. 그 힘이 바로 아가씨를 이곳으로 인도한 거예요."
나는 내가 우리 어머니의 딸이며 할머니의 손녀임을 처음으로 깨닫는다.
"우리는 이 교회와 학교, 그리고 시장을 세울 때 남편과 아이들과 똑같이 일했어요."
"학교와 시장이라구요? 공산국가에서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죠?"
"얘기했다시피, 우리 한국인들은 우리의 말과 문화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혁명도 우리가 사는 마을을 파괴시켜 버릴 수는 없어요."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목사님과 그 주방장 아줌마, 홍조를 띤 아가씨, 내가 가르친 학생들, 그리고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가 모두 그토록 훌륭한 여인들이며, 그러면서도 그들이 유별나지도 희귀한 존재도 아니라니. 이들은 이곳에서, 미국에서, 그리고 세걔 곳곳에서 나를 둘러싸고 있다. 우리의 문화와 관습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한국인 공동체를 만들고 가꿔 나가면서, 나는 이들과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들에 속하는 것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은 타는 듯한 갈증에 떠밀려 나는 캘리포니아로 돌아왔고, 미국인 십 대로서의 특권을 누리느라 정신없던 시절에는 단 한 번도 품어 본 적이 없던, 오랫동안 잊고 있던 이 모든 의문이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나는 굶주린 듯 할머니와 어머니의 기억 속을 헤집고 들어간다. 두 분의 삶이 프리즘을 통해 나 자신을 되돌아보다 마침내 나라는 존재에 대해 편안해진다. 한때의 공허함과 혼동은 이제 그토록 부인했던 과거와 열정적으로 끌어안을 미래로 인해 충만하다.
이제는 ‘썩은 과일’로 남지 않을 생각이다.
쥐의 해에 태어난 아이
1912년 쥐의 해 5월에 백호겸과 그의 아내 확실은 다섯 번째가 될 아이의 탄생을 고대하고 있었다. 서른 해 생일을 막 지낸 확실은 5년 전에 마지막으로 아들을 낳았었다.
확실은 오랜 산고를 치르는 동안 고통을 이기기 위해 머리 위에 드리워진 천을 힘껏 잡아당겼다. 힘없이 침구에 몸을 눕히자, 자궁이 수축하며 제 스스로 생명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을 낳을 때에도 이렇게 고통스러웠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았다. 불행히도 제 생명을 이어갈 수 있을 만큼 강인한 아이는 첫째 아들뿐이었다. 첫 딸과 줄째 아들은 백일을 조금 앞두고 세상을 떠났고, 셋째 아들은 확실히 막 희망을 갖기 시작했을 때 비극적으로 생을 마쳤다.
이토록 엄청난 고통과 불행을 겪었으면서도 그녀는 이 세상에 또 하나의 생명을 탄생시키려 하고 있었다. 아들을 여럿 낳아야 한다는 것은 그녀에게 지워진 짐, 여자의 으뜸가는 의무였다. 아들들이 남편의 제사를 지내 줄 것이고, 그럼으로써 남편은 영혼의 영생을 보장받게 될 터였다. 확실은 집안의 나지막한 제단 위에 놓아둔 벌거벗은 조그만 옥 부처를 향해 열성으로, 그리고 끊임없이 기도를 올렸다. 남편이 어마어마한 부자였으므로, 그녀는 매일 아침과 밤마다 막대한 시주를 하겠노라고 약속했다.
"아들 하나만, 아들 하나만 점지해 주십시오. 그 아기에게 좋은 옷을 입히고 보석을 갖고 놀게 하겠습니다."
확실은 염주를 맹렬히 돌리며 지쳐 쓰러질 때까지 기도했다.
마흔여덟 시간의 진통 끝에 그녀는 마침내 다섯 번째 아이를 낳았다. 강인하고 의지가 센 비범한 여자아이였다.
확실은 이 아이가 아들로 태어나기만 했더라면 대단한 인물이 됐을 거라고 생각했다. 낙담한 확실은 기저귀만 채운 아기를 맨바닥에 눕혔다. 아기의 장난감이라고는 제 손가락밖에 없었다.
이 아기에게는 아버지가 정성껏 지은 백홍용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딸자식에게는 이름조차 지어 주지 않는 집이 많았으므로, 그런 일에 그토록 마음을 쓰는 그를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호겸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백’이라는 성이 딸자식을 아버지의 집안과 연결시켜 준다고 생각했다. 결혼한 후에도 딸이 성을 바꾸지 않는 것은 모두 이들의 혈통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홍’이라는 돌림 자는 이 아기를 같은 대에 태어난 다른 남매나 사촌들과 연결시켜 줄 것이다.
보통 고위 관리나 학자들로 이루어진 지식인 집단인 양반은 아들의 이름을 지을 때 이러한 전통을 따랐다. 이 같은 방식은 김, 목, 수, 화, 토의 다섯 개 상징을 구체화한 유교 철학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름의 마지막 자인 ‘용’만이 이 아기에게 속한 것으로, 호겸은 그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홍’은 넓다는 뜻이요, ‘용’은 신비한 동물인 용을 의미했으므로.
확실은 딸의 강인함에 고무되어 다음 아기는 더 튼튼한 사내아이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또 한 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1년 후 아들을 낳았을 때, 그녀는 자신의 업이 다했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 아기는 위대한 부처님의 선물임에 틀림없었다.
더없이 행복한 나날이 흘러갔다. 그 아들은 잔치 음식을 베풀고 금반지를 선물하며 축하하는 백 일째 생일을 무사히 넘겼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어머니의 풍만하고 따뜻한 젖가슴 사이에 코를 박고 낮잠을 자던 그 아기는 갑자기. 그리고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가슴을 에이는 또 한 번의 상실에 충격을 받은 확실은 두 번 더 시도를 했고, 자궁에서 나온 아기는 두 번 다 귀청이 떨어져라 울어대는 계집애였다. 확실은 더 이상은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았다.
딸이 샛 있는 집에는 도둑도 들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딸 셋이 결혼을 하고 나면 집안에 아무것도 남아나지 않기 때문이다. 딸들은 이렇게 친정의 재산을 시댁으로 가져가는 사랑스러운 도둑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친절한 신사인 호겸은 세상의 뜬 소문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자신의 세 딸들에게서 대단한 즐거움을 얻었으므로 수선을 피우며 이들을 몹시 아꼈다. 그는 고심 끝에 이름 두 개를 더 지었고, 둘째 딸에게는 ‘넓은 가운데 아이’를 뜻하는 백홍은, 막내딸에게는 ‘넓은 셋째 아이’를 뜻하는 백홍삼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는 맏아들이 어려움이 닥치면 안전부절못하는 데 반해, 딸들이 보여주는 삶을 정복하려는 의지와 호기심에 탄성을 지르곤 했다.
여섯 살의 자유
여섯 살 때 나 백홍용은 나의 작은 왕국, 즉 나의 세계를 지배했다. 남자들의 거처를 포함한 집 안의 모든 방들이 내 탐험 대상이었다.
"홍용아, 어린 계집애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으면 못쓴다."
어머니가 이렇게 주의를 주곤 했지만, 그런 어머니조차 아버지의 편애 때문에 사소한 것이든 엄청난 것이든 내 요구를 거절하지는 못했다.
나는 널따란 단층 가옥인 우리 집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가운데에는 통로와 방으로 둘러싸인 안뜰이 위치해 있고, ‘나’자 두 개가 들어맞아 널찍한 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는, 지붕에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는 기와가 덮여 있었고 벽에는 진흙이 발라져 있었다. 가구는 별로 없어서 조그마한 상, 요와 이불을 넣어 두는 나무 장롱, 옥 부처를 올려 둔 검은색 옻칠을 한 제단이 전부였다. 모두가 바닥에 앉고 바닥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었기 때문에 이러한 생활 양식에 따라 모든 가구와 장식품이 야트막하게 만들어졌다.
방에는 부엌의 아궁이에서 인접한 방으로 열기가 전달되는 온돌이 깔려 있었고, 뽕나무로 만든 장판이라는 질긴 종이 밑에는 시멘트와 모래, 석회와 진흙, 그리고 자갈로 이루어진 층이 깔려 있었다. 콩과 소의 오줌으로 된 광택재를 종이 위에 펴 바른 다음 말리면, 장판은 노란빛으로 반들반들 윤이나 청소하기 쉽게 되었다.
"동양 전체에서 우리 민족만큼 훌륭한 바닥재를 개발한 곳은 없다. 한국인은 대단히 창조적이고 머리가 좋은 민족이다."
아버지는 이렇게 자랑을 하곤 했다.
어머니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 안의 뒤쪽, 부엌 옆에 있는 안채인 안방에서 보냈다. 남자들의 거처인 사랑방은 여인네들의 안방과 종이를 바른 미닫이식 격자문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이처럼 집 안의 구역을 분리하는 것은 남자와 여자의 삶이 서로 다름을 상징했다. 사내아이와 계집애들은 어려서부터 자신들의 성에 따라 각자의 거처에서 지내도록 교육받았다.
아버지는 집 앞쪽의 방들을 가게로 바꾸었다. 앞뒤로 열리는 커다란 문이 분주한 거리를 향해 나 있었고, 쌀과 옥수수, 기장, 땅콩, 소금에 절여 말린 생선, 과일, 채소, 설탕과 엿, 그리고 다양한 반찬들이 행인들을 유혹하며 형형색색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거리를 따라 늘어선 다른 상점에서는 손으로 짠 비단에서부터 각종 용구와 고무신에 이르기까지 온갖 것을 다 팔았다. 토끼 모양의 나라 북쪽에 위치한 도청 소재지 평양에는 싼값에 물건을 사기 위해 인근 마을과 지역에서 온 새로운 얼굴들로 매일매일 흥미진진한 모험이 펼쳐졌다.
아버지의 집에 안전하게 파묻혀 지내는 나에게는 걱정도 두려움도 없었다. 떡 먹을 궁리와 장난칠 생각에 하루가 오고 갔다. 바깥세상에서는 내가 태어나기 3년 전인 1910년 8월 29일 우리나라로 쳐들어온 일본인들 때문에 국민들이 무자비한 압제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그러한 것을 알기에 나는 너무 어리고 순진했다.
세 살 난 둘째 여동생과 나는 하루 종일 아버지의 옆구리에 착 달라붙어 사랑과 관용을 듬뿍 받으며 지냈다. 아버지는 우리를 아들만큼 사랑해서,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의 배를 곯게 하지는 않게노라고 다짐하며 맛있는 것들을 아낌없이 내주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구해 주었다. 내가 석류를 갖고 싶어 하면, 아버지는 창고에서 제일 싱싱하고 붉은 석류로 가득 채운 바구니를 건네주곤 했다.
오후에 가게 문을 닫고 나올 때면,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강 아래쪽으로 산책 가기를 좋아했다. 둘째와 막냇동생이 너무 어려 함께 갈 수 없는 게 다행이었다. 아버지는 그 먼길을 오가며 줄곧 하늘에서 사는 선녀와 여우, 호랑이와 용에 관한 흥미진진한 전설을 즐려 주었고, 따라서 그러한 때의 산책은 늘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듯했다. 집에서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는 평양을 관통하는 대동강이 흐르고 있었다. 무더운 여름날이면 고기잡이배와 나룻배들이 강을 오가며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여인네들은 강둑에서 잡담을 나누며 가족들의 빨래를 빨았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나에게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우리는 나란히 강기슭에 앉아 집에서 만든 낚싯대에 물고기가 걸리기를 몇 시간씩 기다리곤 했다. 주먹밥과 자갈, 그리고 낚싯바늘만 있으면 되었다. 이것들을 천으로 된 망에 단단히 싼 다음, 긴 낚싯대에 매서 물속으로 던져 넣었다. 그리고는 낚싯줄이 당겨지기를 끈기 있게 기다리며 서로를 벗 삼아 시간을 보냈다. 물고기가 너무 영리해서 미끼를 물지 않을 때면, 나는 아버지가 물속에 들어가 두 손을 턱 밑에 대고 파닥거리며 꽉 다문 입술 사이로 물줄기를 뿜어 내는 모습을 구경하기도 있다.
강에서 놀다 돌아오던 어느 날, 옥수수 알을 커다랗게 부풀리는 큼직하고 둥그스름한 기계에 대한 이야기를 우연히 엿듣게 되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그 놀라운 기계를 구해 달라고 졸랐고, 다음날 하인 한 명이 그 신비한 옥수수 튀기는 기계를 구하로 나갔다. 이웃집 아이들과 나는 안뜰에서 하인이 그 기계를 등에 지고 돌아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쇠로 된 커다랗고 둥근 몸체에는 옥수수를 쏟아붓는 입구가 달려 있었고, 손잡이 하나와 튼튼해 보이는 다리가 두 개 매달려 있었다. 하인이 손잡이를 돌리는 동안 기계 밑에서 나지막한 불이 타올랐고, 옥수수 알이 안에서 구르다 떨어지고 또 구르다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인은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손잡이를 점점 더 빨리 돌렸고, 온도가 높아지면서 쇠로 된 몸체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하얗게 부풀어 올라 튀어나올 옥수수를 담기 위해 입구 위로 재빨리 천 주머니를 둘렀다.
펑!
김이 피어오르는 천 주머니 속으로 수십 개의 조막손들이 들어갔다. 막 튀겨저 나온 옥수수 때문에 손가락이 시커멓게 그슬렸지만, 아무도 옥수수 쥔 손을 놓지 않았다. 부풀어 오른 옥수수는 맛만 더 좋은 게 아니라 겨울에 내리는 눈송이처럼 가볍기까지 했다. 또 한 번 튀기기 위해 주머니가 아이들 사이를 돌 때, 나는 그 주머니를 낚아채 가지고 안뜰에서 가장 외진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 주머니를 뺏으려 드는 사람이면 누구와도 맞설 작정이었다. 주먹으로 때려눕힐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덤비지 않았다. 몸집이 두 배나 되는 사내아이들조차 도전해 오지 않았다.
하인도 내 욕심을 탓하지 않고 서둘러 두 번째 옥수수를 쏟아 부었다. 나는 이번에 나오는 것도 모조리 쓸어 올 음모를 꾸미며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몇 분이 흘렀고, 온도도 다시 높아졌다. 모두가 두 손으로 귀를 틀어 막은 채 기대에 들떠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폭발음은 들리지 않았다.
"뭐가 잘못됐나 봐. 이제 어떻게 하지?"
기계의 틈새로 연기가 솟아오르자 둘째 여동생이 울음을 터뜨렸다.
당황해서 넋이 나간 하인이 재빨리 입구를 열자 검은 연기 기둥이 앞뜰을 가득 메우고 방안까지 스며들어 갔다. 다른 하인들은 연기를 내보내느라 새처럼 양팔을 펄럭이며 널찍한 집 안을 실성한 듯 뛰어다녔다.
시끄러운 소리에 불이라도 난 줄 안 아버지가 뛰어 들어왔다. 연기가 하도 자욱해서 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우리의 주의를 집중시킬 때면 늘 그러시듯 큰 소리로 목청을 가다듬었다. 아버지가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신호였다.
"무슨 일이냐?"
이내 모두가 얼어붙었다.
"무슨 일이냐?"
하인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어쩔 줄 몰라하며 두 손을 모았다. 아버지는 날카로은 표정으로 이들 하나하나의 얼굴을 오래도록 찬찬히 살폈다.
"이건 위험한 기계다. 이 기계 때문에 집안의 평화를 깨뜨릴 수는 없다."
아버지가 근엄하게 선언했다. 아버지가 일단 마음을 먹은 이상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말이 곧 법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러한 것을 알기에는 너무 어린 둘째 동생이 그 기계를 어떻게 할 거냐고 감히 아버지에게 물었다.
"없애 버려야지."
아버지가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아버지가 기계 한가운데에 도끼를 내리꽂아 반으로 쪼개 버리는 장면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았다. 금속 부스러기만 남을 때까지 아버지는 여러 차례 도끼를 휘둘렀고, 잘려 나간 그 조각들은 아무도 사고 싶어 하지 않는 이상한 조각품의 편리처럼 여러 주 동안 우리 집 안뜰에 방치되어 있었다. 현대적인 기계의 위험성과 내 이기심을 상기시켜 주면서.
의식하지도 못한 사이에 일곱 살, 여덟 살, 아홉 살 생일이 왔고 또 지나갔다. 그리고 그와 함께 내 어린 시절의 자유도 사라졌다. 나는 여자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했다. 애초에 여자로 태어난 게 잘못이었다. 집 안에 갇혀 지내야 했을 뿐 아니라, 집 안에서도 남자들과는 다른 생할을 해야 했다. 더 이상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고, 바깥 세계는 대문 틈새 만 한 크기로 줄어들어 버렸다. 가끔씩 널을 뛸 때나 목을 있는 대로 늘이고 담장 너머로 훔쳐볼 수 있을 뿐이었다.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면, 아니 무슨 일을 하게 되더라도 매번 세세한 부분까지 허락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여자라는 이유로 글을 배우게 해달라는 말은 입 밖에도 낼 수 없었다. 하기야 족보를 빼고는 종이 위에 쓰여진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는다는 것이 따분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족보는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가며 장마다 사람들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가득 쓰여 있는 신기한 책이었다. 여러 세대의 손때가 묻어 누렇게 낡은 책장들은 노인들의 팔 피부와 비슷해 보였다. 혼자 있을 때면 나는 정교한 놋쇠로 장식된 허리 높이의 나무 장롱 속으로 기어들어 가서 빛이 들어올 틈만 조금 남겨 둔 채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어머니가 집안일을 가르치려고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그곳에서 붓으로 쓴 복잡한 문자들을 훔쳐보곤 했다.
날이면 날마다 어머니는 나에게 목소리의 높낮이에서부터 차를 맛있게 끓이는 법에 이르기까지 여자의 덕목과 관련된 모든 것을 반복해서 가르쳤다. 이 모든 것은 언젠가 해야 할 아내의 의무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부지런히 따라오면 가정의 평화와 순결과 행복을 지킬 수 있을 게다."
어머니가 선언했다.
힘겨운 교육 과정이었다. 모두 다 기억하는 게 불 가능할 만큼. 어머니는 나의 혼란과 실수를 눈감아 주며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은 늘 어머니가 가장 강조하는 두가지 미덕인 순종과 순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여기서 순정이란 ‘무조건적인 순종’을 뜻했다. 나는 부모님과 장래의 남편, 그리고 시댁 식구들에게 늘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조용한 음성으로 ‘알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목소리가 담장 밖을 넘어가지 않게 해야 한다. 안 그러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단다."
어머니가 새의 속삭임 같은 작은 소리로 시범을 보였다.
"너는 명령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희생하기 위해 태어난 거야."
순종은 쉽게 이해가 갔다. 하지만 순결은 눈을 감고 금지된 미로 속을 더듬는 것 같았다. 나는 사내아이들, 심지어는 언젠가 내 남편이 될 거라고 생갹해 왔던 오빠와도 거리를 두어야 했다. 친오빠와 결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이전의 일이었다. 모든 것이 나에게는 너무 우습게만 여겨졌다. 존재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어떤 것, 나의 은밀한 부위로 할 수 있는 어떤 일을 조심해야 한다니, 처음에는 어머니가 가려야 한다고 쉴새 없이 이르는 곳이 무릎인 줄만 알았다. 열두 살에 출혈이 있기 시작한 다음에야 비로소 어머니의 말에 짐작이 갔다.
"이제 여자가 되었구나."
어머니가 미소를 지었다.
"전 죽게 되나요, 엄마?"
"아니란다. 여자에게 내리는 재앙이지. 결혼을 해서 훌륭한 아내와 며느리가 되면 피를 흘리는 그곳에서 아기가 태어난단다."
"왜 거기서 피가 나는데요?"
나는 감히 이렇게 물었다.
"그런 이상한 의문에 너무 마음 쓸 필요 없다. 위험한 짓이야."
어머니는 이렇게 간단히 대답한 다음, 혼자 사용하는 옷장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맨 아래 서랍의 및 부분에 입 밖에 내어 말해서는 안 되는, 여자들에게 필요한 물품이 감추어져 있었다.
"여기 있다."
어머니가 두껍게 접혀 있는 천 꾸러미를 건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것을 조심해서 쓰고 생리가 끝난 후에는 깨끗이 빨아 두어야 한다."
나는 나중에 비밀이 보장되는 규방으로 돌아온 다음에야 그 천 꾸러미를 풀어 보았다. 두 자 정도의 길이에 폭은 한 뼘 정도 되었다. 이것을 빨 생각을 하니 목구멍에서 심한 구역질이 넘어왔다. 겨우 기저귀나 차는 것이 여자로서의 출발이라니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또 한 번 여자로 태어난 것을 원망했다.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될까 두려운 나머지 나는 방안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몇 시간씩 두 다리를 꼭 붙인 채 앉아있기도 했다. 피 한 방울이 흘러내릴 때마다 배는 쥐어짜듯 아팠고, 두 다리는 몹시 저렸다. 나는 눈물을 쏟으며 출혈이 멈추기를 빌었다. 평생 이런 발 저림과 더러운 기저귀를 참아 낼 생각을 하니 또다시 눈물만 흘러내릴 뿐이었다.
"홍용아!"
어머니의 음성이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러한 비참함에 몸을 내던진 채 혼자 있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하인들이 득실거리는 집이어서 숨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슬픔에 잠긴 내 얼굴을 본 어머니의 못마땅한 시선이 나를 응시했다.
"아무도 네 몸에 손을 대지 않아야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거야. 평생 그곳을 지켜야 한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다른 때와 달리 부드러웠다.
나는 이전보다 더 큰 혼란을 느꼈다.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신체의 한 부위가 어떻게 그토록 소중할 수 있는지 납득이 가질 않았다. 이 모든 게 과연 무슨 뜻일까? 어른들의 잔인한 농담일까? 나는 있을 수 없는 일을 이해하는 척하며 어쨌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미덕과 여자로서의 몸가짐에 대한 가르침보다는 집안일에 대해 배우는 게 훨씬 나았다. 빗자루는 빗자루일 뿐 대야와 혼동하는 일도 없었다. 그것은 직접 만지고 보고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었으니까.
집안일 중에서는 가족들의 옷을 빠는 일이 제일 좋았고, 강가에 나가는 것을 허락받은 후부터는 그 일이 몹시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강기슭에는 옷을 두드려 빠는 데 사용되는 평평한 돌이 놓여 있었다. 제일 하기 싫은 일은 다림질처럼 인내와 기술이 요구되는 일이었다. 팔힘이 세지 않거나 시간을 잘 맞추지 못하거나 입술 힘이 세지 않으면, 다림질은 무척 버거운 일이었다.
우선 네모난 돌 위에 옷을 올려 놓은 다음 방망이 두 개로 연거푸 두드렸다. 다듬잇돌 옆의 바닥에는 작은 물 대접을 놓아 두고, 다른 한쪽에는 편편하고 시커먼 철 다리미를 숯 위에서 뜨겁게 달구었다. 고통스러운 실수의 과정을 거치며 깨달은 바에 의하면 온도를 끊임없이 살펴야 했다. 다리미가 과열되면 그 열기가 다림질하는 천을 통과해 손을 데게 되었다.
어머니가 하는 다림질은 무척 손쉬우면서도 우아해 보였다. 어머니는 물을 한 모금 머금은 다음, 단단히 오므린 입술 사이로 그 물을 옷감 위로 균등하게 뿜어냈고, 그러고 나서 주름투성이인 아버지의 바지 위로 다리미를 문질러 댔다. 하지만 내가 머금은 물은 늘 아무렇게나 흘러내려 아래턱과 옷 앞부분에 젖은 얼룩을 남기고 했다. 게다가 손놀림이 둔해서 치마와 저고리에 긴 갈색 줄무늬를 남기는 일이 잦았다. 어머니는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나에게 다림질과 요리, 옷감 짜기와 바느질을 가르치려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렇게 쓸모없는 처녀를 누가 데려가려고 할까?"
어머니가 힘없이 탄식을 토해 냈다.
바지를 번듯하게 다리고 양말을 솜씨 있게 깁지 못하는 한, 어머니의 그러한 탄식을 언젠가는 나 자신이 하게 되리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할 일이라곤 나를 못살게 구는 것밖에 없는 못마땅한 시어머니의 노여움을 사지 않기 위해 나도 더 잘해 보려고 애를 썼다.
계속되는 실수로 난처한 일을 저지르고 옷에 달갑지 않은 흔적을 수없이 남긴 후에야, 어머니는 내가 집안을 청소하는 것 같은 더 규모가 큰일에 맞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보다 큰일일수록 실수가 눈에 잘 뜨이지 않는 법이니까). 그때부터 ‘대청소의 날’에 대비하는 일은 내 차지가 되었다.
매해 봄과 가을에 한 번씩 일본인 위생 검사관이 집집마다 쳐들어가서 쓰레기와 거미줄, 곤충과 쥐를 점검했다. 그것을 일본이 벌이는 질서정연하고 깨끗한 식민지를 건설하자는 운동의 일환이었다. 이들은 한국인은 미개해서 감시를 하지 않으면 집 안을 깨끗이 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우리나라와 우리 집 안에 이들이 침입하는 것을 극도로 혐오했다. 하지만 아무리 굳게 빗장을 걸어 잠가도 이들을 막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이 검사에 대비해 온 집안 식구가 함께 일해야 했다.
솜이불은 나뭇가지에 걸어 두드렸고, 홑청은 얼룩이 없어질 때까지 삶아서 비틀어 짰다. 집에서 만든 긴 빗자루로는 거미들이 살 수 없도록 천장 구석구석에 얽히고 설켜 있는 거미줄을 제거했다.
부엌만 해도 조리대와, 진흙과 짚으로 만든 흙벽돌로 된 바닥을 빈틈없이 닦고 때우느라 적어도 열댓 번은 손이 갔다. 그러다 보면 진흙으로 주먹밥과 콩갯묵을 만들어 어머니가 쓰던 이 빠진 낡은 접시 위에 놓아 여동생에게 주며 놀던 시절이 생각났다. 그 시절에는 한 번도 밥을 태운 일이 없었는데. 검사를 통과한 집에는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대문에 승인을 뜻하는 단추 모양의 둥근 철을 못으로 박아 주었다. 통과하지 못한 집에는 빈틈없는 눈과 코와 손가락을 앞세운 검사관이 여러 차례 재방문을 하곤 했고. 이 일을 치르고 나면, 마을 사람들은 강에 모여 몸을 깨끗이 씻었다. 먼저 남자들이 목욕을 했고, 그러고 나면 우리 차례가 왔다. 해가 지면, 여인들은 마치 무슨 의식이라도 치르러 가는 듯 서로의 이름을 소리 높여 부르곤 했다. 우리는 한데 모여 3킬로미터 거리를 걸었고, 대기는 새로운 소문으로 활기를 띠었다.
모두 대야와 수건을 갖고 왔다. 우리 집은 부유한 편이었으므로 콩가루를 이용해 더러움과 때를 닦아 낼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집에서는 강둑에서 뽑은 잡초를 사용해 피부에 녹색 자국을 남기곤 했다. 녹색 물이 든 무릎과 팔꿈치는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여름의 무더위가 한풀 꺾이고 날씨가 좋을 때면 우리는 2주일에 한 번씩 대동강의 차갑고 신선한 물에 몸을 씻었다. 매주 목욕을 할 필요까지는 없었으니까. 이상하게도 강가에만 가면 품위나 수치심으로 인한 조심스러움이 모두 씻겨 내려가 버렸다. 여인들은 겹겹이 입은 저고리와 솟곳을 벗어 던지고, 아무 거리낌 없이 창백한 알몸을 서로에게 내보였다.
내 몸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다음에야 비로소 그러한 장면들에 관심이 쏠렸는데, 둥그스름하게 봉긋 솟아오르다가 움푹 들어간 그 수많은 몸뚱이들 중에는 똑같이 생긴 것이 하나도 없었다. 젊은 처녀들은 하나같이 무척 말라서, 좌골(역주-골반을 이루는 좌우 한 쌍의 뼈)과 갈비뼈가 나처럼 얇은 종이를 덮어놓은 듯 심하게 불거져 나와 있었고, 나이 든 여인들은 대개 잘 먹어서 살이 찐 풍만한 몸매를 하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너무 살이 쪄서 허리 부분이 오히려 튀어나온 자루 모양이었다. 홀쭉한 다리가 그토록 불룩한 몸뚱이를 지탱하고 있는 광경은 웃음을 자아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여인들의 두 다리 사이에 있는, 남자의 수염처럼 짤막하고 시커먼 털이 솟아나 있는 둔덕이었다.
"그렇게 빤히 쳐다보면 못쓴다."
주의를 분산시키려고 어머니는 내 등을 더 세게 문지르곤 했다. 하지만 어떻게 쳐다보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나 역시 앞으로 그렇게 되어야 한단 말인가?
여인들은 내 주변에 쪼그리고 앉아 두 다리를 쫙 벌린 채 열심히 몸을 닦았다. 이들의 어머니는 어떤 일이 있어도, 심지어는 목욕을 할 때조차 그 부분을 숨기고 감추어야 함을 가르치지 않는 모양이었다.
여인으로 성숙해 가면서 나는 강둑에서 오가는 이야기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결혼과 출산에 대한 정보가 오고 갔다. 하지만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 벌어지는 육체적 행위에 이르면 갑자기 목소리가 작아져 은밀한 속삭임이 되었다. 나는 겨우내 주워들은 이야기의 편린들을 이리저리 꿰맞춰 보며 어서 여름이 오기를 기다렸다. 겨울에는 집 안에서 목욕을 했다. 얼어붙은 강물은 흰옷을 입고 스케이트를 타듯 강 반대편으로 건너가는 데에만 유용했으므로.
내 안의 기생충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나는 나이를 많이 먹을수록 점점 더 고분고분하지 못하고 다루기 힘들어 졌다. 한참을 더 산 후에야 나는 그것이 장 속의 기생충 때문임을 알았다. 기생충에 대한 인식이 있기 이전의 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광기를 유발하는 기생충에 감염되곤 했다. 인분이 비료로 사용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음식을 잘 씻고 충분히 익혀야 하는 것의 중요성과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 벌어지는 일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름이 돌아와 밭이 채소로 풍성해지면, 우리는 상추와 무, 양파와 고추를 밭에서 따다 아직 싱싱하게 살아있는 것을 그대로 상에 올리곤 했다. 김이 나는 뜨거운 밥 한술을 상추에 싸서 고추장을 얹어 먹는 맛은 겨우내 기다려질 만큼의 별미였다. 상추쌈을 먹으면서 나는 그 조그마한 기생충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것을 본 일도, 맛을 느낀 일도 없었다.
하지만 이내 기생충 가족들이 내 비좁은 뱃속에 자리를 잡고 무럭무럭 자라 화끈거리며 부출어 올랐다. 어머니가 이부자리를 펴 주는 밤이 되면 증상이 더 심해졌다. 곡물의 껍데기로 가득 채운 베개에 머리를 내려놓는 순간, 악마들이 내 배를 화로 삼아 불을 지피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고통이 너무 심한 나머지 나는 벌떡 일어나 어깨를 맞대고 자는 가족들의 몸에 걸려 넘어져 가며 방 주위를 빙빙 맴돌았다.
"홍용아, 그렇게 돌아다니지 좀 말아라. 얌전한 처녀는 밤에 나다니지 않는 법이다."
어머니가 꾸짖었다.
아무것도, 어머니의 위협적인 손짓도 내 한밤중의 의식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고, 가족들도 내가 그렇게 실성한 것처럼 행동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정신을 차리는 유일한 방법은 돌아다니는 것뿐이었다. 가만히 누워있으면 더 견디기 힘들었다.
어머니는 악령이 순진한 나를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하고 직접 귀신을 쫓아 버리기로 했다. 그래서 내 옷에서 옷감을 한 자락 떼어 내 악령을 속여 그 옷감에 붙어 있게 할 요량으로,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어느 나무에 그 옷감을 묶어놓았다. 선한 영혼이나 악령들 모두 자연에 붙어산다는 어머니의 주술적인 믿음에 따라.
귀신이 우리 집에서 멀리 떨어진 나무 위로 날아가 버렸다고 믿은 나는 마침내 무거운 눈거풀을 감을 수 있었다. 그리고는 널을 뛰며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꿈을 꾸었다. 치마 아래로 바람이 불었다. 점점 더 높이 뛰어오르다 마침내 주위가 고요해지더니, 귀신들이 분노로 이글거리는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나를 향해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그 귀신들이 나를 때려눕힌 다음 꼼짝 못 하게 내 몸을 덮쳤다. 그래서 나는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흥분한 어머니가 부엌으로 달려가 고기를 써는 커다란 칼을 갖고 왔다. 그 칼로 내 배를 깊숙이 찌를 게 틀림없었다. 두려움으로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버린 나는 어머니가 바로 위에서 그 시퍼런 칼날을 돌리는 동안 꼼짝없이 누워만 있었다. 어머니는 낮고 단조로운 음성으로 뜻 모를 같은 말을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읊조렸다.
"어머니, 제발 좀 그만두세요! 좋아질 거에요. 틀림없다구요!"
내가 울먹이며 사정했다.
그때 어머니의 날카로운 명령이 들렸다.
"썩 나가버려!"
어머니는 천장을 향해 양팔을 쭉 뻗었다.
그 실망스러운 액막이가 있은 후로 나는 더 이상 밤에 나돌아다니지 않았다. 광기를 안에서 삭이고 속에서 억누르는 법을 배운 것이었다. 그러자 정신이 흐릿해져서 생각을 또렷하게 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쓰레기를 태우고 옷을 빨라고 하면, 나는 옷을 태우고 쓰레기를 빨았다.
"후덕한 여인은 윗사람의 말을 거스르지 않는 법이다. 여자란 자고로 말을 많이 하지 않고 상냥하고 고분고분해야 한다."
어머니의 설교는 끝이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말소리는 귓전을 맴돌다 머릿속 어딘가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옳은 것과 그른 것, 타당함과 부당함을 구분하는 능력도 새겨 두어야 할 다른 모든 가르침과 함께 정처 없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이내 기생충이 나보다 더 크게 자라 결국은 기생충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매일 아침 잠에서 깨어나면 온몸이 오줌에 흠뻑 젖어 있곤 했다. 어머니는 내가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오줌을 싼 날은 꾸지람으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어떤 지체 있는 집안의 남자가 자기 이부자리를 적시는 처녀와 결혼하려고 하겠니? 넌 아기가 아냐. 네 어미를 골탕 먹이려고 이러는 거 다 안다. 내가 어떤 벌을 줘야 하겠니?"
어느 누구도 골탕 먹일 생각이 아니었지만, 변명해 봤자 소용없는 일이었다. 늘 어머니의 생각이 옳으니까. 그래서 하루는 음모를 꾸몄다. 가족 모드가 곤히 잠들어 있을 때, 나는 둘째 동생이 일을 저지른 것처럼 동생을 내 젖은 이부자리로 밀어 넣고, 나는 보송보송한 동생의 이부자리로 들어갔다. 동생의 이부자리가 흥건하게 젖어 있는 것을 발견한 어머니가 힘센 손으로 내 뺨을 후려쳤다. 맞은 아픔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놀라움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감히 움직이지 못한 채 뻣뻣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머니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갑자기 어머니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 후로는 다시는 그런 속임수를 시도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연이은 실수와 말썽으로 나는 어머니의 손만 보면 움츠러들었다. 그 손이 나를 마구 때리기라도 할 것처럼. 그 이후로는 맞는 일이 잦았다. 그래서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면 나는 자동적으로 웅크리며 몸을 피했다. 오래전 할머니가 어머니의 의지를 꺾었듯이, 어머니는 이번에는 내 의지를 꺾어 놓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침을 천 번이나 맞은 동생
둘째 여동생이 네 살이 되면서부터 집안을 맴돌던 즐거운 웃음소리는 뚝 끊기고 말았다. 친구들도 놀러 올 수 없었고, 아버지도 나를 데리고 강가로 나가지 않았다. 집안 공기는 무겁게 내려앉았다. 둘째 동생은 하루 종일 규방에만 있었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애는 꼼짝 못 하고 같은 자리에만 누워있었다. 그 바람에 두 팔과 다리는 활력을 잃고 허약해졌다. 자그마한 오른쪽 발은 단단히 비틀려 있었고, 위장은 바싹 오그라들어 늘 먹던 만큼의 음식도 먹지 못하는 상태였다. 목만 돌리는 것도 힘에 부쳐 했다.
몇 주 전 동생은 열이 오르며 자리에 누웠고, 어머니가 그 애의 바싹 마른 목구멍으로 약을 떠 넣어 주기가 무섭게 모두 도로 토해 버렸다. 인삼을 잔뜩 넣어 고은 닭과 고기를 아무리 먹여도 고열로 마비된 몸은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동생은 평소 몸무게의 절반으로 끔찍하게 말랐다. 앙상한 뼈에 메마른 살이 달라붙어 있었다. 동생은 먹지도 자기 몸을 추스르지도 못하는 완전히 무기력한 존재가 되었다.
아버지는 명의와 최고의 약재상들을 부르러 사람들을 보냈다. 나는 둘째 여동생이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중요한 손님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것에 질투가 나기 시작했다.
한약과 침술을 공부한 어느 유명한 한의사를 불러들여 왔다. 안뜰에서 돋아났으면 뽑아 버렸음직한 잡초 같은 쓰디쓴 약초와 머리카락만큼 얇은 침이 가득 담긴 나무 상자를 힘겹게 끌고 다니는 허약해 보이는 노인이었다. 노인은 하루종일 둘째 동생의 축 늘어진 살에 침을 꽂고, 그 끝을 앙상한 엄지와 구부정한 검지로 돌려대며 쇠약해진 그 애의 두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게 하려고 애를 썼다. 여러 번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그는 동전만 한 크기로 동그랗게 빚은 약초를 불에 붙여 동생이 몸 이곳저곳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김이 피어오르는 약초와 들큰한 인간의 체취가 뒤섞인 지독하고도 섬뜩한 냄새가 이부자리와 옷가지에 온통 스며들었다. 질투심은 눈 녹듯 사라졌다. 내 몸에 불뜸을 뜨지 않는 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천 번이나 침을 맞고 뜸을 뜨고 나자, 동생은 이전보다 더 안돼 보였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설득해 최후의 수단으로 동생의 몸에 깃들인 악귀를 몰아내 줄 무당을 불렀다. 무당이 악귀들을 위해 부채를 부치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동안, 음식과 술을 내가야 했다. 그것도 실패로 돌아가자, 그 무당은 우리가 아끼는 닭의 목을 치라고 했다. 하지만 악령들이 배가 고프지 않았거나 정성이 부족했는지, 동생의 상태는 계속 악화되어 어머니를 괴롭혔다.
"내 아이가 또 하나 죽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모든 희망을 포기한 어머니가 둘째 동생을 안뜰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맷돌 위로 데리고 갔다.
"엄마, 아파요. 아빠, 추워요."
그 애가 울부짖었다.
아버지와 하인들이 맷돌 위에 있는 동생을 데려오려고 했지만, 어머니가 모두를 물러서게 했다.
"지금 죽게 내버려 둬요. 병신 계집애가 무슨 쓸모가 있겠어요? 부모가 죽고 나면 누가 이 아이를 돌봐주겠어요? 남편도 얻지 못할 게 분명한데 말이에요."
아버지는 어머니의 말이 옳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몹시 마음이 아팠다. 둘째 동생은 언젠가 큰오빠네 가족의 짐이 될 것이었고, 끝내는 쫓겨나 거리에서 생을 마칠지도 몰랐다. 죽는 것이 더 낫고 자비로운 일이었다. 나는 동생이 뒤틀린 몸을 이끌고 맷돌에서 빠져나오려고 하는 모습을 눈을 내리뜨고 흘끔거리며 훔쳐보았다. 하지만 동생의 사투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침을 맞느라 몸이 너무 쇠약해져 있었다.
이튿날은 아침 햇살 때문에 일찍 잠이 깼지만, 어머니가 일어나 둘째 동생을 구하러 가기만을 기다리며 막내 여동생과 벽 사이에 꼼짝 않고 누워있었다. 마침내 어머니가 슬픔에 젖어 무거워진 몸을 움직였다.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고, 이부자리를 개고, 막내에게 젖을 먹이고, 부처님께 기도를 드리고, 아침 식사 준비를 감독하는 이 모든 동작들이 무척 힘겨워 보였다. 그날 아침 어머니는 맷돌이 있는 곳으로 나가지 않기 위해 하루종일 해야 할 일들을 모두 앞당겨서 했다. 그곳으로 가지 않기 위해 의지력을 총동원한 것이다.
"이제 네 동생을 묻어 주어야겠다."
어머니가 아무 표정 없는 텅 빈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는 망태기를 들고 안뜰로 향했다.
동생의 시신을 거두러 가는 게 아니라, 채소를 뜯으로 나가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동생의 몸에 손을 대자, 그 애가 눈을 떴다. 흙먼지로 얼굴은 지저분했고, 충혈된 두 눈에서는 아직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엄마."
동생이 힘없이 애원했다. 어머니는 조금 망설이다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어떻게 그럴 수가! 나는 평생 그렇게 놀란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하루종일 집 안에만 있으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그러한 명령은 부당하게 여겨졌다. 왜 내가 벌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나는 아직 걸어 다니고 양팔을 쓸 수 있는데. 심심해진 나는 나무로 된 작은 격자 창문에 조그마한 구멍을 뚫고는 어머니가 옆에 없을 때마다 둘째 동생을 훔쳐보았다.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나는 그 애가 맷돌에서 뛰어내린 다음 "나 여기 있지롱. 잡아 봐!" 하고 외치기를 바랐다.
둘째 동생이 어제 점심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음을 아는 터라, 저녁을 먹으러 가족들이 모이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양반다리를 하고 등을 꼿꼿이 세운 채 건너편의 다른 상에 앉아있는 아버지를 낮은 상 너머로 노려보았다. 아버지는 안정되고 편안해 보였다. 하지만 밥이 입술에 닿을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어서 먹어. 먹으라니까! 이 음식들을 다 버릴 수는 없잖니."
어머니가 기운 없이 재촉했다.
둘째 동생이 차가운 맷돌 위에서 떨고 있는 모습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어젯밤은 얼어죽을 만큼 추웠다. 그리고 이제 곧 또 밤이 돌아올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릇에 밥을 반쯤 남긴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모든 분노가 내게 돌아왔다.
"밥그릇을 깨끗이 비울 때까지 상에서 일어날 수 없다."
어머니가 엄하게 말했다. 나는 밥상을 들여다보며 오랫동안 그곳에 앉아있었다. 다리가 저려 왔다. 나는 이후의 일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도 않고 밥을 치마에 부어 버렸다. 어머니와 하인들이 손도 대지 않은 고기와 나물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을 내가면서 불룩해진 내 두 다리 사이를 못 보고 지나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상이 나간 다음, 나는 치마에서 조심스럽게 밥알을 떼어 주먹만 한 작은 공 모양으로 뭉쳤다. 주먹밥을 가지고 나가려는 순간, 어머니가 나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내 머리채를 끌고 가서 나를 벽에 내동댕이쳤다. 전에는 한 번도 이런 일을 당해 본 적이 없었다. 명령에 따르지 않은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돌아서서 치마 들어 올려."
뒤쪽에 웅크리고 앉은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허리를 굽히고 무릎 바로 아래까지 치맛단을 들어 올렸다. 새하얀 장딴지가 드러났다.
"더 높이!"
얇고 긴 대나무 회초리를 집어 들며 어머니가 말했다. 매질은 빠르고도 정확했다. 매번 맞을 때마다 더 아프게 느껴졌다.
"네가 부모보다 잘났다고 생각하느냐?"
어머니가 또 매질을 하며 말했다.
"죄송해요. 다시는 어머니 말씀을 어기지 않을게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나는 울먹이며 애원했다.
하지만 아무리 빌고 또 빌어도 매질은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는 자신의 고통을 내 다리에 쏟아 붓고 있었다. 할 수 있는 한 오만을 부리며 꼿꼿하게 서 있으려고 했지만, 한 번도 회초리를 맞아 본 적이 없는 터라 무릎을 가슴께로 꺾으며 바닥에 나뒹굴고 말았다.
"왜 넌 항상 삐딱하게 나가는 거냐?"
어머니는 무릎을 꿇고 옆의 바닥을 계속 후려쳤다. 흐느끼는 소리가 너무 크고 간절해서 내 울음소리인지 어머니가 내는 소리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그때 밖에서 아버지의 따뜻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만하면 됐어요."
아버지가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와 나는 아버지의 뜻밖의 출현에 놀라 울음을 그쳤다. 규방은 신성한 곳으로 남자는 들어올 수 없으므로.
아버지는 강인하고 따뜻한 두 팔로 나를 안아 올려 이부자리로 데리고 갔다. 이불을 덮어 주는 아버지의 두 눈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나는 곧 잠이 들었다. 아버지가 계속 나를 돌봐 주실 것을 믿으며. 다음날은 아주 늦게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의 야채 망태기에 담긴 둘째 동생이 움푹 파인 무덤 바닥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음식이 담긴 자그마한 상이 따로 들어왔고, 그 위에는 밥그릇과 내가 좋아하는 김치찌개가 놓여 있었다. 너무도 배가 고팠던 나는 종아리가 후들거리도록 아픈 것도 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하지만 다리를 구부릴 수가 없어서 두 다리를 상 밑으로 쭉 뻗었다. 어머니가 보시면 큰일 날 일이었다. 나는 농부처럼 얼굴을 밥그릇에 파묻고 씹지도 않은 채 성급히 삼켰다. 주린 배를 채우는 데 골몰한 나머지 어머니가 들어오는 소리도 듣지 못한 채. 눈을 들어 보니 놀랍게도 어머니가 동생을 품에 안고 있었다. 둘째 동생이 아직 살아 있다니! 이 비극적인 피조물의 모습에 마음이 누그러진 어머니가 동생을 집안으로 다시 데리고 들어온 게 틀림없었다.
생활은 다시 예전 같아지지 않았다. 둘째 동생은 불구가 되었고, 동생의 그러한 결함은 내 삶을 불구로 만들고 말았다. 내 두 다리가 동생의 다리 역할을 했다. 나는 그 애를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업고 다녔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불구인 동생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 즉 아버지의 사랑을 빼앗아 가 버렸다.
아버지는 불구인 동생을 더 아끼기 시작했고, 나는 아버지의 애정에 흠뻑 젖어 지내는 동생을 질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곤 더러운 접시와 때묻은 옷으로 가득한 대야뿐이었다. 아버지는 불구인 동생을 데리고 한때 나와 함께 했던 강으로 산책을 자주 다녔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는 동생에게 작은 배 한 척을 사 주기까지 했다.
나는 규방 밖의 계단에 앉아 두 사람이 돌아오기를 몇 시간씩 기다리곤 했다. 그 애는 행복에 겨워 환히 빛나는 시커먼 얼굴을 높이 쳐들고 아버지의 등에 업힌 채 신이 나서 돌아올 게 뻔했다.
"얼굴 좀 내놓지 말거라. 농부의 딸처럼 보이고 싶으냐?"
어머니가 나를 꾸짖었다.
"홍은이는 왜 그래도 되는 거에요?"
내가 동생의 그을린 얼굴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 애는 불구야. 그러니 무슨 해 될 게 있겠니?"
모두가 무력한 동생의 마술에 사로잡힌 것 같았다. 오빠도 그 애가 굉장히 소중한 아이나 되는 양 상냥하게 대했다. 그리고 여자들이 할 만한 기술을 한 가지 가르쳐아 한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오빠의 충고에 따라 자신의 가게 옆에 놀 수 있는 조그만 가게를 하나 지어 주었고, 동생은 그 가게에서 곡물의 무게를 달고 담배 마는 법을 배웠다.
특권을 누리게 된 동생은 점점 더 요구사항이 많아져 갔다. 그 애는 내가 제 하인이고, 자기는 내 윗사람인 것 처럼 나에게 이것저것을 명령했다. 내가 그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두 눈을 비틀며 짜며 거짓 눈물을 흘렸다. 수도 없는 연습으로 이제는 통달의 경지에 이른 기술이었다.
"홍용아. 동생 데리고 안뜰 한 바퀴만 돌아라."
어머니가 명령했다.
"너무 무겁단 말이에요."
나는 반항했다. 나를 노새와 바꾸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계집아이들을 그런 식으로 사고파는 일이 실제로 있던 시기였으므로.
그러다 나는 불구인 동생을 이용해 대문 밖으로 나가는 방법을 터득했다. 어느 해인가 유랑 극단이 우리 마을에서 공연을 했을 때, 나는 불구인 동생과 함께 액막이 공연을 보러 가도 되느냐고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는 좋다고 했다. 그래서 막냇동생과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불구인 동생을 업기로 했다. 내가 졌다.
우리는 포대기로 불구인 동생과 내 허리를 단단히 묶었다. 포대기의 끈이 연약한 내 뱃살 깊숙이 파고들었다. 붙잡을 것이라고는 얇은 가죽밖에 없는, 등뻬 업는 뱀 같은 동생의 몸의 균형을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질질 끌려오던 동생의 두 다리가 바닥으로 털썩 떨어지며 흙먼지를 일으켜 숨이 막혔다. 그 애는 나를 목졸라 죽일 것처럼 두 팔로 내 목을 단단히 휘감았다. 미끄러지지 않게 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그 애는 자꾸만 아래로 처졌고, 동생을 끌어올리면 그 애의 앙상한 가슴이 내 척추에 부딪치는 바람에 동생은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곤 했다.
"아야!"
불구인 동생이 소리를 질렀다.
"조용히 해."
내가 투덜댔다.
"아프잖아."
동생이 손톱으로 내 목을 할퀴었다.
"그만두지 못해!"
내가 용처럼 으르렁거렸다.
앞에서는 음악을 연주하는 소리가 집요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너무 들떠 기다리다 못한 막냇동생이 앞으로 달려나갔다. 나도 있는 힘을 다해 동생을 뒤따랐다.
"아야! 언니가 아프게 했다고 엄마한테 이를거야. 그러면 종아리를 때리실걸."
불구인 동생이 나를 꼬집으며 말했다.
그 애의 불평불만과 꼬집힘을 참다 못한 나는 동생을 수풀 속에 털썩 내려놓고 말았다.
"그러려면 먼저 어머니가 널 찾아야 할걸."
나는 킥킥거리고 웃으며 달아났다.
"언니, 날 여기 놓고 가지 마. 그냥 놀려 본 거야!"
동생이 내 등 뒤에 대고 고함을 쳤다.
짐을 벗어 버리니 믿을 수 없을 만큼 홀가분했다. 나는 다시 여섯 살로 돌아가 마음껏 웃고 뛰어다니며 놀았다. 무척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노점용 손수레가 거리를 가득 메웠고, 상인들은 저마다 남들보다 큰 소리를 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운 구경거리였다.
"번데기요!"
"고구마요!"
"맛있는 옥수수요!"
어머니가 칼을 들고 해보였던 곡예와는 완전히 다른 액막이 공연이었다. 배우들은 과장된 표정의 색색깔로 된 가면을 쓰고, 몸을 흔들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구성진 음성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희롱하고 유혹하고 위협하며. 이들은 바람에 밀려 옆자리로 이동하는 것처럼 두 팔을 휘저어 댔다.
남자들은 빨간 입 안이 다 보이도록 입을 한껏 벌리며 웃었고, 여인들은 작은 두 손을 부채 모양으로 펼쳐 입을 가리고 소리 죽여 웃었다. 나는 남자들처럼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 보니 불구인 동생을 어디다 내려놓았는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어떤 수풀이더라? 알 수가 없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였지만, 그중 익숙하게 느껴지는 길은 하나도 없었다. 막냇동생과 나는 눈과 귀를 총동원해 맞은편을 살피며 찬찬히 길을 훑어 내려갔다. 그때 소리 죽여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나뭇잎을 헤치고 보니, 동생은 내가 내려놓은 바로 그 자리에 있었다.
"그만 울어."
내가 동생을 때렸다. 너무 늦어 어머니가 기다리고 계실 게 분명했다. 나는 이마가 땅에 닿도록 허리를 굽히고 동생 옆에 주저앉았다. 막냇동생이 둘째를 내 등에 업혀 주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서 달렸다. 한 발 달리고, 추어올리고, "아야!"
갑자기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불구인 동생의 가는 허리가 미끄러져 내려가 자갈밭에 거꾸로 곤두박질친 것이었다. 그 애의 이마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막냇동생과 내 얼굴은 공포로 새하얗게 질렸다. 나는 벌을 받지 않기 위해 흙 한 줌을 상처에 발라 핏자국을 감추었다.
하지만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어머니의 날카로운 시선이 피로 얼룩진 상처 부위의 흙에 가서 꽂혔다. 나는 또다시 벽을 마주 보고 서서 치마를 허벅지까지 걷어 올려야 했다. 그리고는 불구인 동생을 수풀에 버려 둔 것과 거꾸로 떨어뜨린 죄 때문에 장딴지에 평소의 두 배로 회초리를 맞았다. 이튿날 나는 불구인 동생을 집 밖의 변소 뒤로 데리고 가서 그 애가 아픔을 느낄 수 있는 팔 부위를 꼬집어 주었다. 애교스러운 복수였다.
낯선 사람들끼리의 결혼
결혼은 젊은 혈기를 지닌 당사자들의 선택에 맡기기에는 너무도 중차대한 결정이다. 따라서 오빠의 신부감을 구할 중매장이가 불려 들어왔다. 게다가 결혼에는 가족들이 며느리를 맞아들이는 의식이라는 의미가 더 크기 때문에 오빠에게는 아무런 발언권도 주어지지 않았다. 설사 애정이나 사랑 같은 게 있다 하더라도 인품과 교양, 그리고 순결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오빠가 살아남은 유일한 아들이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산전수전 다 겪은 중매쟁이 노파를 극진히 대접했다. 노파는 인근 마을과 먼 지역을 가리지 않고 우리처럼 양반의 혈통을 지닌 적당한 규수를 찾아 나섰다.
"도련님은 무척 운이 좋은 분이세요. 바로 여기 우리 마을에 도련님께 잘 어울리는 아주 예쁜 규수를 물색해 놓았답니다. 엉덩이가 넓적한 걸로 봐서 자손도 많이 안겨 드릴 거구요."
노파가 눈을 찡긋거리며 말했다.
붉은 도장이 찍힌 혼서 여러 장이 오고 갔다. 신부 조상들의 이름과 신부 어머니의 성, 그 집안의 사회적 지위와 신부의 생년월일 말고는 중매쟁이의 나불거리는 혀가 전하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머니는 전해 들은 이야기에 만족했다.
"이제 점쟁이한테 가 봐야겠다. 그러면 내 아들과 그 규수가 잘 어울리는지 봐줄 테니까."
어머니는 즐거운 듯 말했다.
점쟁이는 일월성신도를 펼친 다음, 신랑과 신부의 생년월일시에 근거해 두 사람의 사주를 풀어나갔다.
"좋은 혼사입니다. 궁합이 아주 잘 맞아요."
푸짐한 사례를 받을 것을 잘 아는 그가 자신 있게 말했다.
점쟁이가 다음달로 길일을 잡아 주었고, 다른 일들도 모두 마무리되었다. 신부의 집으로 보낼 정성이 가득 담긴 보석과 옷감, 초대할 손님, 잔칫상에 올릴 맛있는 음식 등. 그리고 신부를 우리 집으로 태워 가지고 올 낡은 가마에는 색을 입히고 손을 보았다.
신부가 도착하기 사흘 전에 오빠는 아침 일찍 일어나 직접 우물에서 길어 온 물을 야트막한 대야에 가득 채운 다음, 그 대야를 조심스럽게 방바닥에 내려놓고 손과 목, 그리고 얼굴을 씻었다. 그리고는 머리를 풀어 빗은 다음 기름칠을 하고 아버지처럼 상투를 틀어 성인이 되었음을 알렸다. 말총으로 만든 혼인모와 허리띠로 성장를 하고 나자, 아들이 성인이 되었음을 축하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친척과 친구들이 모여들었고, 이내 잔치가 벌어졌다.
손님 중에 문필에 조예가 깊은 최고 연장자가 오빠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 주었다. 어린 시절에 불리던 이름은 다시는 사용되지 않을 터였다. 오빠는 아버지와 함께 제단으로 가서 조상들에게 절을 올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신부의 집으로 향했다. 제일 덩치 큰 친구가 말이 되어 함을 등에 졌다.
사흘 내내 우리 모두는 오빠가 새 신부를 데리고 돌아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마침내 사흘째 되던 날 저녁 늦게 그들이 나타났다. 노새를 탄 오빠가 일행의 맨 앞에 있었고, 진땀을 흘리는 가마꾼 여섯 명의 어깨 위에는 신부가 탄 가마가 흔들리고 있었다.
신부는 으레 중매쟁이가 허풍을 떤 만큼 ‘예쁘지’는 않은 법이라지만, 그날 저녁 우리 집으로 걸어 들어온 그 피조물은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은 남자에게조차 조금 심한 모습이었다. 신부의 얼굴은 온화하고 기품있는 인상과는 거리가 먼 데다 입술은 검붉고 두꺼웠다. 지나치게 커다랗고 둥근 눈망울은 살짝 튀어나왔고 다리를 약간 절기까지 했다.
"적어도 불구는 아니에요."
어머니가 근엄하게 말했다.
"적어도 말이야."
실망한 아버지가 되풀이해서 말했다.
"잘된 일이에요. 예쁜 며느리를 들이는 건 중요한 일이 아니에요. 며느리가 너무 예쁘면 집안 살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는 것보다 제 얼굴을 가꾸는 데 더 열심이기 마련이니까요."
어머니가 잠시 생각을 해 본 후에 말했다.
"그래, 잘된 일이야."
아버지도 따라 했다.
신방에 들어가 흰 창호지를 바른 격자 문을 뒤로 하고 단둘이 남은 오빠와 신부는 기운이 없어 보였다. 나는 호기심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남자와 여자가 한방에서 자는 모습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거처로 살짝 들어갔다가 밤늦은 시각에 내 옆자리로 돌아오는 것은 가끔 본 일이 있었지만.
아침상이 말끔히 치워진 후에 오빠가 밖으로 나왔고, 몇 분 후 새언니가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두 손을 앞으로 꼭 모아 쥔 채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전날보다 더 소원해진 것 같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른 척했지만, 나는 신부가 심한 고통을 참느라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음을 눈치챘다. 오빠가 새언니를 때린 것은 아닐까? 궁금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보아도 손이나 얼굴에 멍자국이나 매질 당한 흔적을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즉시 새언니에게 새댁으로서의 임무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거의 대부분의 집안일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한가해지리라는 생각에 행복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어머니는 남는 시간에 나에게 다른 일을 시킬 작정이었다. 나는 바느질과 뜨개질을 완벽하게 해 내야 했다.
새언니는 내 선생 노릇까지 했다. 내가 어설프게 배워 나가는 동안 새언니는 참을성 있게 내 옆자리를 지켰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처럼 실망감에 고개를 돌려버리는 일도 없어 바늘 한 땀 대충 넘어갈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그러한 상냥함에 마음을 열고 새언니를 따르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시댁 식구에게 이토록 친절하고 헌신적인 이 연약한 여인을 냉대하는 오빠가 새삼 원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성실한 며느리답게 새언니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끝도 없이 사랑하는 소중한 손자를 비롯하여 두 딸을 낳아 주었고, 남편으로서의 의무를 다한 오빠는 새언니를 멀리하고 아이들도 돌보지 않기 시작했다. 적적해진 오빠는 대신 기생들과의 쾌락에 탐닉했다. 기생들은 빼어난 외모와 모든 면에서 남자를 즐겁게 해주는 능란한 기교를 지닌 것으로 유명한 존재였다. 그들은 시인이자 음악가이고 가수이자 아첨꾼인 동시에 남자들의 벗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밤이면 밤마다 막걸리 냄새를 풍기면서 비틀거리며 들어오는 오빠에 대해 굳은 침묵으로 일관했고, 오빠가 둘째 부인을 집에 들여 앉혔을 때에도 역시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정식으로 결혼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그 여자를 그렇게 불렀다.
사실 그 여자는 진짜 기생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여자의 언니가 평양에 있는 기생집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그 집안의 체면은 땅에 떨어져 버렸다. 따라서 오빠가 우리 집에 들어와 함께 살며 자기만을 위해 헌신해 달라고 했을 때 그 여자는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지체 높은 집안의 남자에게서 받을 수 있는 최상의 제안이었으므로.
오빠가 그 여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놀랍게도 그 여자는 첫째 부인에게 없는 모든 아름다움을 한 몸에 지니고 있었다. 그때부터 그 여자는 첫째 부인의 잠자리를 대신했고, 첫째 부인이 버림받은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얼마간의 시간과 적응 과정을 거친 후에 첫째 부인과 둘째 부인, 그리고 오빠는 한 지붕 아래서 사이좋게 지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들이 행복해 하는 것과 그러한 것을 가능하게 해준 그 여자를 내심 흡족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여동생들과 나는 그 여자의 하늘하늘한 몸가짐과 달콤한 목소리에 소름이 끼쳤다. 우리는 그 여자가 꽃향기 나는 향수를 찍어 바르고 값비싼 분을 처바른 귀신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 여자는 집안을 어슬렁거리며 다니더니, 결국에는 숨을 쉬는 거대한 인형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러다가 자기가 첩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고 첫째 부인처럼 굴기 시작했다. 그 여자는 매일 아침 느지막이 자리에서 일어나 아침 시간을 허송하며 보냈고, 정성껏 차린 상을 물리자마자 목욕물을 준비시켰다.
"홍용아, 이리 와서 나 좀 도와줘."
그 여자가 나를 불렀다.
나는 오빠가 그 여자를 위해 사준 둥글고 깊은 자기 목욕통에 물을 가득 받을 수밖에 없었다(그 여자는 다른 여자들과 함께 강물에서 목욕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그 목욕통에서 몸을 씻을 수 없었다. 나는 그 여자의 요구에 따라 물의 온도와 양을 정확하게 맞춰야 했다. 넘치도록 가득 채운 찬물 세 양동이에 가득 채운 뜨거운 물 두 양동이. 더 많아도 적어도 안 되었다.
그러면 그 여자는 물속에 들어가 눈을 반쯤 감은 미소 띤 얼굴로 만족스러운 신음 소리를 냈다. 머리도 빗지 않고 입술연지도 바르지 않고 피부는 선홍빛과 자색을 띠고 있었지만, 그 여자는 여전히 몹시도 아름다웠다. 목욕이 끝나면 그 여자는 두 팔을 허공으로 쭉 뻗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몸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닦아 달라고 했다.
그 대가로 나는 세심한 공과 시간을 들여 화장을 하는 그 여자를 바라보며 감탄할 수 있었다. 우선 아래턱을 끝으로 새하얀 분을 고르고도 두껍게 얼굴 전체에 펴 바르고, 그다음에는 봉숭아 씨와 향유와 꽃잎을 짓이겨 물과 섞었다. 나는 아무리 주의를 해도 그 불그스레한 오렌지빛 염료의 얼룩이 손 여기저기에 남았지만, 둘째 부인에게는 그런 일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 예뻐?"
칭찬해 주기를 바라며 그 여자가 물었다.
"네."
나는 이미 비대해진 그 여자의 자만심에 부채질을 하는 나 자신을 혐오하며 대답했다.
"얼마나 예쁜데?"
"아주 많이요."
나는 어서 그 여자의 입을 다물게 할 생각뿐이었다.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언니만 아니었으면 좀 더 젊었을 때 어떤 남자와도 결혼할 수 있었을 텐데. 나쁜 년 같으니라구."
그 여자는 내가 있는 자리에서만 첫째 부인을 욕했다. 그 여자는 얼굴의 결점을 감추듯 모든 이들에게 자신의 본모습을 숨겼다.
"나는 아직 어떤 남자라도 꾀어내서 내 말대로 움직이게 할 수 있어."
"그렇게 꾀어내는 것 오빠가 허락하지 않을걸요."
내가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나한테 겁줄 수 있으리라고 착각하지 마. 네 그 잘난 오빠가 누구 말을 더 믿을 거라고 생각하니? 넌 그 남자의 동생에 지나지 않지만 난 그분의 잠자리를 데워 주는 사람이야. 그 점을 잊지 마."
여자는 내 팔을 오래도록 아프게 꼬집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표정이 싹 바뀌고 목소리도 부드러워졌다.
"자, 동생. 이제 머리를 좀 빗겨 줘야지."
소란스럽던 어느 날 오후, 날카로운 음성과 함께 오랫동안 학수고대하던 순간이 드디어 찾아왔다.
"아니고! 아이고!"
규방 쪽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오빠와 첫째 부인, 그리고 동생들과 함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러 그곳으로 달려갔다.
"어른과 내가 널 우리 집에 받아들인 마당에 내 것을 훔치는 이유가 도대체 뭐냐?"
어머니의 뺨이 붉게 달아올랐고, 두 눈에서는 불꽃이 튀었다.
"훔치는 게 아니에요."
돈과 보석이 들어 있는 어머니의 함에 아직도 두 손을 넣은 채 둘째 부인이 반박하며 말했다.
오빠가 삽을 집어들고 그 여자의 머리 위로 휘둘렀다. 그렇게 한참 분노를 폭발시키다 순간 멈칫했다. 삽은 아직 허공에 머물러 있었고, 오빠의 온몸은 경련을 일으키며 심하게 떨렸다. 삽을 내리는 오빠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어머니가 한숨을 내쉬며 근엄하게 말했다.
"내가 졌다. 내 아들의 여자를 차마 벌할 수가 없구나."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또 하나의 부정이 아무런 처벌 없이 그대로 묻히려는 순간이었다. 나는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라 끝내 이렇게 내뱉고 말았다.
"그러면 내가 저 도둑을 벌줄 테야!"
용기를 낸 나에게로 모두의 시선이 와서 꽂혔다. 둘째 부인을 우리 집에서 쫓아내고 내 인생에서 영원히 몰아낼 날이 드디어 온 것이다.
"어머니가 오빠의 여자라는 이유로 저 여자를 혼내지 못하고, 오빠는 너무 정이 들어 그렇게 못하겠다면, 내가 할 수밖에요."
내가 용감하게 소리쳤다.
방 한구석으로 걸어가 내 종아리에 멍과 핏자국을 남겼던, 어머니가 쓰시던 바로 그 회초리를 집어 들 때까지 아무도 내 앞을 막아서지 못했다.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그 회초리를 움켜잡았다. 회초리를 쥐자 갑자기 힘이 솟았다. 회초리를 들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니가 앉아있는 쪽을 곁눈질하며 나를 말릴지 어떨지를 살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나를 말리지 않았고, 오빠는 내 시선을 피했다.
둘째 부인은 나보다 다섯 살 위였지만, 나는 한 손으로 그 여자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회초리로 등을 후려쳤다.
"못된 인간 같으니라고! 말썽만 일으키고!"
나는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휘! 회초리가 반으로 부러졌다.
둘째 부인은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몸을 공처럼 웅크렸다.
"아야! 아야! 아야!"
나는 머리채를 휘어잡은 손을 놓고 악마 같은 이 여자가 가능한 한 멀리 달아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 여자는 붉게 물든 손톱으로 내 팔을 헤집으며 내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 어린 년이! 짐승 같은 년! 죽여 버릴 테다!"
여자의 손톱이 더 깊이 파고들었다.
나는 발뒤꿈치를 이용해 그 여자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온 다음, 곧바로 사랑채로 뛰어들어갔고 그 여자는 "죽어! 죽어 버려! 이 짐승 같은 년아!"라고 소리치고 울부짖으며 나를 따라왔다.
영문을 모르는 아버지가 들어오다 집안을 휩쓸고 있는 소란에 깜짝 놀랐다.
"이게 지금 무슨 짓들이냐? 우리 집안은 조용해야 한다!"
아버지가 고함을 쳤다. 어머니가 황급히 아버지에게 가서 그사이에 일어난 일을 설명했다. 화를 참느라 아버지의 얼굴이 붉게 타올랐다.
"너, 이리 오너라!"
아버지가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무릎 사이에 묻고 마당으로 슬금슬금 내려가고 있는 둘째 부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대체 어떤 년이기에 이렇게 큰 소리를 지르는 게냐?"
아버지는 얼굴을 가린 채 몸을 앞뒤로 흔들고 있는 둘째 부인을 노려보았다.
"내 눈앞에서 썩 꺼져라. 집안에서 이렇게 큰 소리를 지르다니 이 무슨 교양 없는 짓이냐!"
그때 내 이름을 부르는 음성이 들렸다.
"홍용아! 이 애는 어디 있는 거야? 당장 찾아서 데려와."
"저, 저 여기 있어요."
내가 병풍 뒤에서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이 무슨 볼썽사나운 행동이냐? 너 혼 좀 나야겠다."
나는 아버지의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그날 밤 아버지와 어머니는 둘째 부인을 불러들였다. 그 여자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푹 숙이고 두 손을 얌전히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꼼짝 않고 앉아있었다. 줄곧 눈물을 흘리며. 짙은 화장에 눈물범벅이 된 얼굴은 비를 맞고 서 있는 가면처럼 보였다.
"아주 무례한 행동을 하긴 했다만, 친딸을 내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애는 우리 딸이다. 그러니 네가 지금 당장 우리 집을 나가야 평화가 유지될 수 있을 것 같구나."
아버지가 조용히 타일렀다. 여자의 음성이 크고 높아지면 재앙이 찾아온다는 말이 있었다. 성난 큰 목소리, 흥분한 목소리, 날카롭게 외치는 목소리, 모두가 금기였다.
"아들놈에게는 잠자리를 함께할 다른 여자를 찾아 줄 생각이다."
아버지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이것이 둘째 부인의 종말이었다. 그 여자는 향수 목욕도 하지 않고 이튿날 일찍 길을 떠났다. 그 순간 오빠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졌다. 고통스러워하는 오빠의 모습은 의외였다. 개인적인 상실감이야 얼마나 크든, 부모가 원하는 경우 첩을 버리는 것이 양반집 사내의 도리였다.
첫째 부인과 나는 게 조림, 갈비, 깍두기 등 오빠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상에 올림으로써 오빠의 입맛을 다시 찾아 주려고 했다. 하지만 오빠는 식욕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 같았다. 굳게 닫힌 문에 시선을 박은 채로 꼼짝 않고 앉아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아들을 살려 달라고 울면서 호소했지만 아버지는 어머니의 절규를 못 들은 척했다.
"집안에서 벌어지는 비극도 해결하지 못한다면 내가 무슨 사내대장부겠소?"
"아들을 둔 아버지지요."
어머니가 무척 고통스럽게 대답했다.
"이제는 마음을 달리 먹으실 때도 되지 않았나요, 여보?"
"나는 아들을 둔 일이 없소이다. 아직 여자의 젖가슴에서 떨어질 줄 모르는 어린 사내 녀석이 하나 있을 뿐이오. 그 녀석을 내버려 두시오."
아버지는 어머니의 간청에도 굴하지 않았다. 스무 날이 넘도록 오빠는 거의 먹지도, 자지도,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
"일어나거라!"
마침내 아버지가 침묵을 깼다.
"네 놈이 사내대장부가 아니라서 그년 없이는 못 살겠다면 일어나서 그년을 데리고 오거라. 네 팔자다. 네 목숨을 살리자니 달리 어쩔 도리가 없구나."
아버지는 두 손을 번쩍 들고 항복을 선언했다.
오빠는 그 즉시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둘째 부인을 찾으러 갔다. 그리고 삼류 기생집에서 술을 따르며 애교를 떨고 있는 그 여자를 찾아냈다. 이번에는 오빠의 마음뿐, 자신을 섬기러 들어와 주는 데 대한 어떤 근사한 선물도 약속할 수 없었다. 며칠 후 두 사람은 대문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여자는 집을 나갈 때보다 더 겸손해지지도 기가 꺾이지도 않은 모습이었고, 오빠는 속수무책으로 더 사랑에 빠져 있었다.
나는 얼마 후에야 아버지가 화가 난 진짜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내 발작적인 행동 때문도, 둘째 부인의 도둑질 때문도 아닌, 다름 아닌 오빠의 나약함 때문이었다. 제 여자를 혼내 주는 것은 남편의 도리였다. 하지만 오빠는 자신의 본분을 지키지 못함으로써 아버지를 몹시 실망시켰다. 아버지에게는 오빠가 자기 아들이 그래 주었으면 하는 진짜 남자로 보이지 않았고, 내심 내가 남자로 태어났기를 바랐다.
내게 있어 이제 더 이상 행복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발 크기보다 더 작은 고무신을 신어야 하는 미래는 불투명한 채로 남아 있었다.
나이 지긋한 신부의 사랑
생일이 오고 갔고,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덧 나는 한창때가 다 지난 스물두 살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미혼이었다. 부유한 집안의 처녀들은 대부분 벌써 결혼을 해서 시댁에 손자 두셋을 안겨 주었음 직한 나이였지만, 결혼을 하지 않은 나는 어른도 아이도 아닌 어중간한 입장이었다. 틀어 올리지 못하고 길게 땋아 늘여 붉은 리본으로 묶은 머리는 정식으로 성인이 되지 못했음을 보여 주는 징표였다.
난처했다.
나는 초조했지만, 한국 최고의 중매쟁이도 앞으로 1, 2년 내에는 내게 적당한 남편감을 찾아 주지 못하리라고 생각하며 끈기 있게 기다렸다. 남자의 손에 한번 낚아채이지도 못한 채 겨우내 가지에 남아 썩어 버리고 마는 과일 신세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의 미래를 확신하는 부모님의 느긋함에 의혹을 품어 본 일은 없었다.
혼사는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었다. 대신 나는 결혼에 대비해 상 차리기와 그 밖의 다른 일들을 부지런히 연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끝없이 흔들렸다. 나는 마음속으로 신랑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잘생긴 사람일까? 너그러운 사람일까? 나를 계속 사랑해 줄까? 나도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될까? 나는 두 눈을 감고 불가사의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부처의 살찐 배 앞에 기도를 드리며 이렇게 생각하곤 했다.
소중한 여러 달이 또 흘렀지만 남편감은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못생겨서 그런 게 틀림없었다. 어린 시절에 병을 앓아 며칠 밤의 고통 끝에 남은 얼굴의 흉터가 원망스러웠다. 또한 첫째 부인을 닮은 두껍고 시꺼먼 입술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볼품없이 납작하게 벌어진 코에서는, 귀신들이 뱃속에서 불을 지피듯 끊임없이 콧물이 흘러내렸다.
결국 나는 결혼에 대한 어리석은 생각을 모두 떨쳐 버렸다. 나는 운이 좋은 계집애야. 이 말을 되풀이할수록 기분이 좋아지길 바라며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숨을 쉴 때마다 썩은 냄새를 풍기는 사마귀가 돋아난 늙은 홀아비이거나, 아니면 잔인하게 학대를 일삼는 사람일 수도 있었다. 나는 운이 좋은 계집애야! 운이 아주 좋은 계집애라구!
오빠는 틀림없이 내가 한집에 살며 늙으신 부모님을 모실 수 있게 해줄 터였다. 편안한 친정집에 계속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위안이며 기쁨이었다. 어린 시절을 보낸 집에서 영원히 사는 것은 딸자식으로서는 감히 꿈꿀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안채에서 혼자 버선을 깁고 있을 때, 아버지가 정식으로 나를 불렀다. 어렸을 때 이후로는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다. 나는 너무도 놀라 바늘을 엄지손가락 깊숙이 찔러 넣고 말았다. 피가 솟아 나온 다음에야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햇살이 환히 비치는 안뜰을 가로질러 아버지의 방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저 왔어요, 아버지."
내가 말했다.
"들어오너라."
아버지가 내게 들어오라는 손짓을 해보이며 커다란 음성으로 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잘 어울리는 방석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나는 공손하게 문가에서 고무신을 벗은 다음, 아버지의 서재로 들어가 두 분 앞에 섰다. 아버지는 평소의 웃음기는 찾아볼 수 없는 근엄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이 순간을 평생 대비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운 마음에 몸이 떨렸다.
"홍용아, 네 얼굴을 잘 볼 수 있도록 이리 가까이 오너라."
어머니가 초조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두 분이 앉으라고 말해 주기를 바랐다. 발을 헛디뎌 폭우에 순식간에 뿌리가 뽑혀 버린 나무처럼 쓰러질 것만 같았으므로.
"네 어머니와 내가 너의 납채(역주-장가 들일 아들을 가진 집에서 색시 집으로 혼인을 청하는 의례)를 받았다."
아버지가 불쑥 말을 꺼냈다. 혼사에 대한 이야기였으므로, 아버지는 쓸데없는 말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이씨 집안 사람으로, 이름은 득필이다. 나이는 열아홉이고, 삼대독자라고 하더라."
아버지가 전해 들은 내용을 이야기했다.
삼대독자라면 아주 소중한 존재였다. 중매쟁이가 충분한 보상을 받은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내 관심을 끈 것은 열아홉이라는 그의 나이였다. 염려스럽게도 내가 세 살이나 더 많았다. 어른도 아이도 아닌 남자와 결혼해 그 남자를 성인으로 키워내야 했다. 사실 이런 유형의 결혼은 아주 흔했다. 연로한 부모들이 아직 제 엄마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열네 살짜리 신부보다는, 즉시 모든 집안일을 꾸려 나갈 수 있는 노련한 며느리를 더 원했으므로.
불현듯 이 모든 일이 무척 부당하게 여겨졌다. 부모님은 한 번도 내가 원하는 바를 물은 일이 없지 않은가.
"홍용아, 어떠냐, 마음에 드느냐?"
이게 전부였다. 무릎을 꿇고 깊숙이 감사의 절을 올려야 할지. 아니면 방안에 틀어박히거나 우물에 몸을 던져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아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나는 꼼짝 않고 그저 말없이 그곳에 서 있을 뿐이었다.
시어머니 될 사람이 같은 성씨끼리 결합하는 것은 아닌지를 확인해 보기 위해 신부 어머니의 성을 묻는, 문명을 요청해 왔다. 하지만 이처럼 정보를 주는 것은 일방적인 일이었다. 내 쪽, 신부 쪽이 신랑 쪽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모든 게 만족스러웠는지 점쟁이가 혼인 날짜를 잡았고, 그러자 어머니와 하인들은 부유한 양반집 딸에 걸맞은 혼수를 준비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다.
"제일 좋은 옷감과 보석들로만 할 거예요."
어머니가 세속적인 욕심을 드러내며 고집했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머니의 손에 더 많은 돈을 쥐어 줄 따름이었다. 나는 혼수가 푸짐할수록 시댁 식구들이 상냥해진다는 말을 들은 터라 부모님의 관대함이 무척 고마웠다.
결혼식 여러 날 전, 시댁에서는 남자 하인 두 명의 등에 함을 실려 보내왔다. 그 안에는 나무로 깍은 기러기 한 쌍과 파란색, 붉은색, 녹색의 비단 꾸러미가 들어 있었다.
"녹색은 두 젊은이가 함께 성숙해 감을 뜻한단다."
함을 풀며 어머니가 말했다.
"붉은색은 연정을 의미해. 결혼 생활이 행복하려면 연정이 있어야 하지."
둘째 부인이 덧붙였다.
어머니는 못마땅한 눈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
"그런 것일랑 너나 알고 있거라. 홍용이는 그런데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많으니까."
이번에는 어머니의 말에 동감이었다. 나는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았다.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영원한 사랑과 헌신, 그리고 평생의 반려자를 상징하는 목각 기러기 한 쌍이 마음에 들었다. 기러기 한 마리가 죽으면 그 짝도 굶어 죽는다. 나는 그때 세 살 연하의 남자와 결혼하는 데 따르는 이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홍수나 기아, 질병이 목숨을 앗아가지 않는 한 그 사람은 오래 살 것이었다. 나는 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잘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의외로 나는 친정에서의 소중한 마지막 며칠 밤을 푹 잘 수 있었다. 잠자리를 뒤숭숭하게 만드는, 뿔이 나고 송곳니를 드러낸 시어머니의 꿈도 꾸지 않은 채. 사실 나는 거의 꿈을 꾸지 않았다. 대신 이 며칠 동안 신랑의 얼굴을 그려 보았다. 어떤 때는 평범한 모습을 그렸고, 또 어떤 때는 아주 잘 봐줘서 조심스럽게 코를 살짝 올려서 빚고 입술 양끝을 위로 끌어올려 강조해 보기도 했다. 이처럼 사소한 부분이 평범한 사람을 멋진 남자로 변신시켰다.
나는 결혼식 날도 평소처럼 일어났다.
"홍용 아씨! 홍용 아씨!"
바로 문밖에서 여자 하인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이 결혼식 날이잖아요. 그러니 온몸을 깨끗이 씻으셔야 한다구요."
하인은 신이 나서 킬킬거리며 웃었다.
발바닥이 따끔거리도록 뜨거운 전율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오늘 남자가 내 알몸을 보게 되다니.
"내 남편이."
너무도 공허하게 들리는 단어였다.
"내 남편이."
나는 되풀이해서 말했다. 그 단어가 머릿속을 계속 맴돌도록.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어 신경이 쓰였다. 남들의 얘기를 조금씩 엿들은 바에 의하면, 남편이 아내의 배꼽이나...젖가슴 같은 부끄러운 곳을 만진다던데. 자기 게 있는데 내 것을 만지는 이유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불현듯 내 몸을 만져 보고 싶은 낯선 충동이 일었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나는 한 손을 들고 행동에 착수했다. 그리고는 그것이 남편의 손이라고 생각하고, 저고리 속으로 손을 넣은 다음 봉긋 솟은 젖가슴을 살짝 쓰다듬어 보았다. 따스하고 보드랍고 둥그스름했다. 둥글게 솟아올라 있어 한손에 다 들어오지도 않았다. 천천히 젖꼭지 쪽으로 조금씩 손가락을 옮겼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부드러운 젖꼭지가 단단해졌다. 나는 남편이 젖을 빠는 배고픈 아기처럼 내 젖꼭지를 빤다고 생각하며 젖꼭지를 비틀어 보았다. 하지만 젖은 나오지 않았고, 저 아래쪽의 두 다리 사이에서 낯선 긴장감 같은 것만 느껴질 뿐이었다.
손놀림은 더 대담해지고 공격적이 되었다. 나는 솟구치는 열기에 이끌려 손을 가슴 사이의 계곡을 따라 아래로 옮겼다. 그리고는 피부의 보드라운 촉감에 감탄하며 완만한 배를 따라 계속 내려갔다. 아래로, 아래로, 드디어 내 손은 검은 털이 듬성듬성 난 아래쪽에 이르렀다. 그것은 나조차도 알지 못하는 여성의 은밀한 부위를 덮어 보호해 주는 담요 같았다. 한 번 살펴보지도 무언가가 닿아본 일도 없는 곳. 움푹한 곳의 피부를 드러내면서 내 숨결은 짧고 가빠졌다. 그곳은 나의 체액으로 따뜻하고 축축해져 있었다. 아기의 엉덩이보다 더 보드랍고 다른 그 무엇보다 더 따뜻한, 예전에는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는 감촉이었다.
그때 불현듯 어떤 기억이 떠오르면서 두려움이 전신을 휩쓸고 지나갔다. 남자의 그것에 대해 떠도는 이야기가 사실일까? 여인들은 강둑에서 남자의 양다리 사이에 시든 고추처럼 매달려 있다가 잠자리에 들면 어마어마하게 커지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그것을 아내의 다리 사이에 넣고 아내의 몸 안에서 긴장을 푼다고 했다. 나는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아서 몸에서 손을 떼어 냈다.
손가락이 끈적거리고 이상한 비릿한 냄새가 나서 남들에게 들킬까 봐 겁이 났다. 목욕물이 들어오는 바람에 나는 깜짝 놀라 그 손을 등 뒤로 감췄다. 특별한 경우이기 때문에 나는 둘째 부인의 자기 목욕통을 사용했고, 이번에는 둘째 부인이 나를 도와주었다. 나는 부처처럼 꼼짝 않고 앉아서, 하인이 열심히 문지르는 동안 둘째 부인이 내 등 위로 쏟아붓는 뜨거운 물 한 방울 한 방울을 음미했다. 좀 아프기는 했지만 믿을 수 없을만큼의 상쾌함을 느끼며 목욕통에서 나왔다. 살결은 생기에 넘치는 분홍빛으로 새롭게 빛났다. 두 여인이 물기를 닦아주고, 피부 깊숙이 스며들도록 향유로 온몸을 문지르고, 마른 천으로 감싸 주는 동안, 나는 방 한가운데 알몸으로 서 있었다. 방 전체가 야릇한 꽃향기로 가득 찼다.
두 사람은 아직 천 하나만을 두르고 있는 나를 바닥에 앉혔다. 그리고는 내 머리 한가운데로 똑바로 가르마를 타고는, 하나로 땋아 늘인 머리채를 머리통 아래쪽으로 틀어 올린 다음, 결혼한 여인들만 쓰는 길다란 비녀로 고정시켰다. 머리카락이 뒤로 너무 세게 당겨지는 바람에 머리카락 하나하나가 뿌리째 뽑힐 것 같았고, 안 그래도 가는 두 눈은 평소보다 더 가늘어졌다. 머리 가죽이 통증으로 욱신거렸다. 하지만 불편함을 견디는 것에는 이미 이력이 나 있었다.
평생 처음으로 나는 둘째 부인처럼 화장을 했다. 그녀는 내 얼굴 전체에 크림을 문지르고 하얀 가루분을 펴 바르다 갑자기 턱 선에서 손놀림을 멈추었다.
"예쁜 신부가 되려면 그렇게 얼굴을 많이 움직이면 못써."
둘째 부인의 주의를 주었다.
전에 화장을 잔뜩한 둘째 부인의 얼굴이 망가지는 것을 본 일이 있던 터라 나는 그녀의 충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다음에는 봉숭아 꽃잎을 으깨 물과 섞은 염료 차례였다. 둘째 부인이 그 염료를 내 입술과 손톱에 바른 다음, 두 뺨과 이마 한가운데 점을 찍었다. 이 붉고 작은 점들이 해로운 귀신을 막아줄 것이었다.
손거울을 집어 든 나는 처음 보는 아름다운 여인이 나를 마주 보고 있는데 놀랐다.
"이 여자가 나란 말이야?"
내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바보 같은 계집애. 여자가 결혼식 날도 평소 같으면 어떻게 하니? 그러면 그건 결혼도 아니지."
둘째 부인이 낄낄거리며 웃었고, 여자 하인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킥킥거렸다.
"이 화장이 다 지워져 버린 둘째 날 아침에는 어떻게 하지?"
내가 당황해서 물었다.
"그건 나도 어쩔 수 없어. 신랑한테 술기운이 남아 있기를 바랄 수밖에."
손님들과 신랑이 곧 도착할 것이었으므로 두 여인은 서둘러 나에게 결혼 예복을 입혀 주었다. 말끔하게 다려져 있는 한복을 펼치자 손으로 직접 그린 아름다운 꽃무늬가 나타났다. 원래 어머니는 예복이나 화려한 색동 소매의 원삼 저고리와 정교한 금관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한때는 상류층 사람들만 입던 그 저고리는 이제 평민들 사이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옷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평민들이 좋아하는 원삼은 그네들이나 입어야지. 하지만 우리 집안의 딸인 너는 우아한 푸른빛 비단 한복을 입어야 한다."
어머니는 자부심으로 가득 차 바삐 일을 서둘렀다.
어머니는 뛰어난 솜씨로 완벽하게 색을 혼합하고 옷감을 마름질했다. 가슴 바로 아래까지 내려오는 짧은 저고리는 어머니의 약속대로 아름다운 푸른빛과 노란빛 비단으로 만들어졌다. 빳빳하게 풀을 먹인 V자 모양의 흰색 깃 아래쪽에는 폭이 넓고 긴 옷고름이 묶여 있었고, 소매 위쪽은 직선 모양으로, 아래쪽은 완만한 곡선 모양으로 되어 있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풍성한 치마는 선홍빛 비단으로 만들어졌고, 그 밑으로는 치마가 풍성해 보이도록 다섯 겹으로 된 무릎길이의 속치마를 입었다. 그리고 그 속치마 밑으로는 안감을 대지 않아 속이 훤히 비치는 속저고리와 속바지를 입었다. 너무 빈틈없이 몸을 감싸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 재채기만 한 번 해도 옷 전체의 솔기가 뜯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 한복도 한국의 자연과 고상한 도덕관과 조화를 잘 이루었다. 직접적으로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자다운 곡선은 비단 천에 감싸여 찾아볼 수 없었고, 모든 것을 감춰 버리고 밋밋하게 만들었다.
발에는 발가락 부분이 치켜져 올라간 솜을 댄 버선과 색동 고무신을 신었다. 고무신은 발 크기보다 작았지만 어머니는 그것을 신어야 발이 더 예뻐 보인다고 고집을 부렸다. 머리 위에는 족두리를 쓰고 짧은 천을 어깨까지 늘어뜨려 멋을 낸 다음, 머리에 야생화를 꽂았다. 어머니가 이토록 멋있는 분인지 예전에는 짐작도 못 했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어머니가 들어와 예리한 눈초리로 살폈다.
"좋구나. 이제 가도 되겠다."
어머니는 한참 동안 살펴본 다음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모두 나가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갑자기 방안이 견디기 힘들 만큼 조용해졌다. 벽들이 다가들이면서 우리 두 사람에게 서로의 거리를 좁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난처한 순간을 뒤로 하고 갑작스레 몸을 일으키더니 저고리의 고름에 매달려 있는 돈주머니를 풀렀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안의 내용물을 꺼냈다.
어머니의 손바닥 위에는 놋쇠로 된 열쇠 하나가 놓여 있었다. 어머니는 그 여래쇠를 갖고 혼자 사용하는 옷장의 빗장을 벗겼다. 문이 열렸다. 나는 잠겨 있던 그 서랍 안에 무엇이 숨겨져 있었는지 알게 되기를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맨 위 서랍에서 어머니는 길다란 직사각형 모양의 상자를 꺼냈다. 그리고는 놀랍게도 오랫동안 소중히 보관해 오던 붉은 술이 달린 장식물을 꺼내 작고 섬세한 손가락으로 그것을 내 저고리 고름에 매달아 주었다. 내 가슴은 감동으로 심하게 고동쳤다.
"이 노리개에는 십 대에 걸친 여인들의 희망이 담겨 있단다."
어머니는 목이 메었다.
나는 너무 슬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 어머니를 껴안고. 나를 많이 때리긴 했지만 미움 같은 건 남아 있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다. 어머니가 이토록 자랑스러우면서도 연약한 여인임을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이제 나는 다른 남자의 가족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다른 여인을 어머니라 부르게 될 것이었다.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머니는 나를 다시 한번 오랫동안 바라본 다음 이렇게 말했다.
"잊지 말아라, 홍용아. 여자란 모름지기 제 남편을 섬길 줄 알아야 하는 법이란다."
‘결혼식 날 웃음을 참지 못하는 신부는 딸을 낳는다’는 말이 있었다. 나는 그런 여자는 하인만도 못한 여자라는 경고를 받았다. 결혼식은 며칠씩 계속되고 친척과 이웃들이 짓궂게 놀려 대는 터라, 이것은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신랑은 정오가 되기 직전에 노새를 타고 왔다. 오전에는 친구들이 신랑의 두 다리를 대들보에 붙들어 매고 잔치를 베풀라며 그의 발바닥에 매 세례를 퍼부었을 것이다. 노새가 도착하자, 신랑을 둘러싸고 아이들이 터뜨리는 환호성이 들려왔다. 그가 들어서는 방으로 친지와 손님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신랑을 면밀히 살펴본 후에 내가 등장하기를 기다렸다.
나는 첫째 부인과 나이 지긋한 여자 하인에게 몸을 완전히 의지한 채 팔꿈치를 들어 올리고 손바닥은 아래로 숙인 이마에 모으고는, 이들이 이끄는 대로 걸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조금씩 발걸음을 떼어 놓으며 치맛단을 밟지 않으려고 고무신 끝만 내려다보았다. 방 전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모두가 놀려 댔지만, 웃음도 미소도 짓지 않고 어렵지 않게 심각한 표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누군가의 손이 내 어깨를 살짝 누르며 앉으라고 지시했다. 신랑은 옻칠을 한 나지막한 상을 앞에 두고 맞은편, 속삭이는 소리도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에 앉아있었다. 시선을 들어 이 새로운 등장인물의 얼굴을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관습에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길쭉하고 얇은 신랑의 손뿐이었다. 여인의 손처럼 잘 다듬어진 무척 아름다운 그 손은 괭이를 다루거나 땅을 일구지 않았음이 분명한, 소중히 다루어진 남자의 손이었다.
모두들 자기로 된 신라의 잔에 막걸리가 채워지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버지가 새신랑을 축하하며 첫 번째 축배를 건냈다. 아버지는 나를 이제 이씨 집안에서 살게 된, 이득필의 아내로 불렀다. 백호겸의 자여로서의 위치는 끝난 것이었다. 친정에서 나간, 백씨 집안의 여러 대에 걸친 다른 딸들처럼 나에 대한 기록도 족보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릴 터였다. 그리고 오늘 이후로 다시는 어린 시절의 이름으로 불리지 못할 것이었다. ‘이득필의 아내가 나의 새로운 호칭이었다.
손님들 모두가 정성껏 차린 음식이 놓여 있는 커다란 잔칫상 두 개에 둘러앉아 있을 때, 앞서의 가벼운 손길이 내 어깨에 와서 닿았다. 이번에는 일어나라는 소리였다. 염려하던 순간이 다가온 것이었다. 첫째 부인이 내 한쪽 팔을 잡고, 어머니가 다른 팔의 팔꿈치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두 사람은 킥킥거리는 구경꾼들 틈을 뚫고 나를 안채로 안내했다. 결혼식 내내 귓전을 울려 대던 놀림과 웃음소리가 일시에 잦아들었다. 내가 틀렸었다. 적막한 침묵이 훨씬 당황스러웠다.
결혼식 다음날 아침 오빠 방에서 느릿느릿 걸어 나오던 첫째 부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고무신이 허락하는 한 빨리 달아나고 싶었다. 하지만 어디로 갈 것인가? 절이라면 괜찮을지도 몰랐다. 나도 그들처럼 종을 울리고 향을 피우며 살 수 있을 텐데.
‘종교에 빠져 쓸데없는 소리나 지걸이는 것은 여자의 본분이 아니다. 여자의 본분은 남편을 따르는 것이다.’
아버지의 음성이 들여오는 듯했다.
방 한구석에 켜져 있는 촛불 하나가 사방의 벽과, 폭포와 숲이 수놓아져 있는 오래된 비단 병풍 위로 그림자를 두리우며 흔들거렸다. 병풍 앞쪽 바닥으로는 요가 펼쳐져 있고, 두거운 면 이불은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젖혀져 있었다. 나는 빈 벽을 마주하고 옆얼굴은 방문 쪽으로 향한 채 요의 가장자리에 앉았다. 어머니가 내 얼굴의 땀을 닦아 내고 족두리를 바로 하고 치마를 부풀리는 등 세심하게 나를 매만져 주었다.
‘치러야만 하는 일이다."
어머니가 무겁게 한숨을 내쉬며 요에서 몸을 일으켰다.
"우리를 망신시킬 일은 하지 말아라. 이제 그 사람이 네 남편이니까."
어머니가 냉정하게 한 마디 덧붙였다. 나는 문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어머니를 무기력하게 바라보았다. 울부짖으며 나가지 말아 달라고 사정하고 싶었다. 그때 어머니가 애원하는 내 눈을 쳐다보고 싶지 않은 듯 나에게 등을 돌린 채로 약간 고개를 돌렸다.
"눈을 꼭 감고 있거라."
어머니가 주의를 주었다.
회오리바람이 머릿속을 휩쓸고 지나갔다. 나는 다가오는 밤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생각해 보며 손을 꼭 그러쥐었다. 계집애가 아니라 여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간단하고 고통이 없으면 좋으련만.
나는 꼿꼿이 앉은 채로 초조하게 기다렸다. 밖에서는 나도 없는데 내 결혼식에 축하하며 덕담을 주고받는 남자들과 여자들, 그리고 아이들의 흥겨운 이야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건배 또 건배, 목쉰 음성들이 신랑에게 술잔을 더 받으라고 외쳐 댔다. 기다리고 있자니 낮 동안의 피로로 머리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깜박 잠이 들고 말았다.
문이 살짝 열리는 소리를 듣고 놀라서 깰 때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앉은 채로 자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모든 의혹과 두려움이 일시에 되살아났다. 신랑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방안을 오가는 가벼운 발자국 소리는 똑똑히 들렸다. 그가 내 뒤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는 짐작이 드는 순간 갑자기 숨이 막혔다. 그는 가까이, 그것도 무척 가까이 있었다. 그가 풍기는 술 냄새가 내 코털을 간질일 정도로. 그의 두 눈이 아래위로 오가며 내 뒷목과 몸 전체를 찬찬히 살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냥 할 일만 하세요.’
나는 이렇게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또 한 번 관습의 힘에 밀려 순종적인 태도로 기다렸다.
마침내 그가 내 어깨 위에 가냘픈 손을 올려놓더니 내 몸을 자기 쪽으로 돌린 다음,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나는 용기를 내서 시선을 조금 들었다. 그랬더니 그의 입이 눈에 들어왔다. 붉고 흠잡을 데 없는 모양이었고, 말끔하게 면도되어 있는 입술 주위의 피부는 부드러워 보였다. 호기심에 떠밀린 나는 자제심을 읽고 눈을 들어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이 사람이 내 신랑이란 말인가? 이번만은 중매쟁이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오똑하게 솟은 강인해 보이는 콧날, 쌍꺼풀 진 크고 둥근 눈, 높이 올라붙은 광대뼈, 활 모양의 진한 눈썹, 앞니 하나 빠지지 않은 고른 치아, 무척 잘생긴 얼굴이었다.
우리는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며 얼굴을 마주한 채 앉아있었다. 옷을 벗기는 것은 신랑의 몫이었다. 신랑이 신부의 족두리를 벗기고 고름을 풀고 버선 한 짝을 벗기는 동안 신부는 꼼짝 않고 앉아있어야 했다. 그는 겁이 나는지 서투르게 힘을 들이다가 검고 긴 내 머리카락 몇 올을 족두리와 함께 뽑고 말았다. 옷고름에 이르러서는 멈칫하더니 한 손을 뒤로 뺐다. 그가 겁에 질려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가 두려워하고 있음을 안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겁이 나지 않았다.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둘 수만은 없었다. 빨리 자신감을 되찾아 주어 그가 자신의 의무를 잘 이행할 수 있게 해주어야 했다. 이것은 결혼식 손님들에게 가장 큰 구경거리로, 모두들 창호지 문에 구멍을 뚫고 들여다보고 있을 터였다. 그가 나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없었다. 나는 살짝 훌쩍거리는 소리를 내고, 잠시 후에 또 한 번 훌쩍거렸다. 내 간단한 계획은 아주 효과적이었다. 나 또한 두려워하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그에게 용기를 준 것이었다.
그다음에 벌어질 일에 대해 알려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얇은 속치마 하나 말고는 아무것도 입은 게 없는 나는 그가 하나씩 옷을 벗는 동안 이불을 턱밑까지 단단히 끌어 덮고 누워있었다. 그는 먼저 버선을 벗은 다음, 푸른빛과 선홍빛의 저고리를 벗었다. 마지막으로 헐렁한 비단 바지의 대님을 풀고 허리띠를 끄르자, 바지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나의 시선은 그의 양다리 사이에 매달려 있는 남성에 고정되었다. 어둠 때문에 잘못 보았기를 바라며 눈을 힘껏 깜빡여 보았다. 다시 한번 눈을 감았다 떴지만 그것은 변함없이 그곳에 매달려 있었다.
소곤소곤 오가던 그것에 대한 소문은 모두 사실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상하게도 그 아래쪽에는 똑같은 검은 털이 나 있었다. 나에게로 걸어오는 동안 그것은 흐느적거리며 양쪽으로 흔들렸다. 불구인 여동생의 다리처럼 부러졌거나 아니면 죽어 있는 것 같았다.
무슨 이유가 있거나 열정 때문이 아니라, 외워 두었던 대로 그가 내 위에 몸을 눕혔다. 그의 몸은 축축했다. 내 몸은 단단하게 굳었고, 팔과 다리의 연결부위는 얼어붙은 듯 뻣뻣해졌다. 그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내 두 다리 사이로 두 손을 집어 놓고는 그곳을 잡아당긴 다음 넓게 벌렸다. 그리고 그의 그것을 내 허벅지 위에 대고 문질렀다. 그러자 매번 움직일 때마다 마치 무언가를 찾는 듯 그것은 더 길어지고 단단해졌다. 그가 그것을 내 몸속을 찔러 넣었을 때, 나는 너무도 의외의 상황에 놀라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눈을 꼭 감고 있거라’
머릿속에서 어머니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그가 아래위로, 또 아래위로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는 동안 나는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그의 움직임이 빨라질수록 내 몸은 찢어져 나가며 더 넓게 열렸다.
‘비명소리를 내서는 안 돼. 용기를 내야지.’
나는 이렇게 다짐했다.
나능 입술을 꼭 깨물었다. 피의 비릿한 맛 때문에 구역질이 났다. 그때 뜻밖에도 그가 동작을 멈추었다. 신음소리를 내며 몇 차례 몸을 떠는 그 옆에 꼼짝않고 누었다. 죽은 것 같았다.
‘내가 이 사람을 죽였구나! 내가 이 사람을 죽였어!’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어디론가 숨어 버리고 싶었다.
나는 그가 무슨 말, 어떤 말이라도 좀 해주기를 바라며 오랫동안 꼼짝않고 누워 있었다. 그러다 더 이상 누워만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감각이 없어진 내 다리 하나가 그의 몸 아래에 깔려 있었다. 몸을 빼낼 수 없게 된 나는 울음을 삼키느라 애를 썼다.
"음......"
길게 코를 골더니 그가 희미한 신음 소리를 냈다.
그의 입 가까이에 귀를 갖다 대자 내 뺨에 그의 숨결이 느껴졌다. 자고 있었다! 안도의 웃음이 흘러 나왔다. 이제 살았다.
끔찍한 결합이었다. 어머니라 하더라도. 그리고 아무리 노력했어도 나에게 이 일을 대비시키지는 못했으리라. 내가 한 가장 끔찍한 상상보다 더 끔찍했다. 얼마나 기괴하고 야마적인 일인가. 짐승보다 나을 게 없었다.
나는 밤새도록 미약한 통증의 흔적에 시달렸다. 피를 흘리고 온몸이 부은 데다 수치심으로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신랑이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그의 곁을 빠져 나왔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와 상냥하게 말을 해야 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의 일부는 영원히 달라졌고, 얼룩진 이불이 그것을 여실히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
나는 어린 동생들의 호기심 가득한 눈초리를 피했다. 동생들은 내가 들려줄 대답, 은밀한 대답을 기다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고통스러운 마음을 어느 누구와도 나누지 못한 채 나는 혼자서만 끙끙 앓았다. 사흘이 지나갔고, 시댁에서는 나를 새집으로 데리고 갈 가마를 보내왔다.
나는 다시 몸을 씻고 옷을 차려입고 화장을 했다. 규방에 마지막으로 서 있자니, 깊은 슬픔이 밀려들었다. 언제 다시 이 정든 방을 찾아올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순전히 시어머니의 자비 하나에 달린 문제였다. 가능한 한 빨리 그분의 성격을 파악해야 했다. 나는 부지런히 일하고 순종함으로써 그분의 애정을 얻어낼 작정이었다. 하지만 며느리가 아무리 진심으로 공손히 절을 올리고 바느질 담이 아무리 작아도, 결코 넘어가지 않는 시어머니도 있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나이 든 여인들이 다음 세대로 물려주는 것은 혹독함과 잔인함이었다.
앞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환한 햇살 아래서 남편의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머리를 들어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또 한 번 대담한 호기심이 경직된 관습을 누르고 승리를 거두었다. 신랑이 노새에서 내리다가 발을 헛디뎌 엉덩방아를 찧는 순간, 나는 눈을 내리뜬 채로 그 장면을 훔쳐보았다. 동안의 신랑은 자세를 바로 하고 엉덩이의 먼지를 털며 사람들을 따라 웃었다.
안쪽에서는 모든 잔치 준비가 끝나 있었다. 내가 지참금으로 가져간 푸짐한 혼수는 즉시 나지막한 상 위에 전시되었다. 시댁 식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어머니가 손수 바느질해 만든 옷들은 깔끔한 자태를 드러내며 펼쳐졌고, 아버지가 중국에서 사들여 온 고급 비단 천과 이불은 부유함을 과시하며 빛났다. 하지만 가장 값비싼 선물은 금과 옥으로 만든 귀걸이와 팔지, 반지, 그리고 길고 짧은 목걸이로 가득한 보석이 박혀 있는 함이었다. 나는 시댁 식구들이 아버지의 후한 마음을 고맙게 받아들여 새로운 하인인 나를 잘 대해 주기를 바랐다.
나는 즉시 가족들 앞으로 불려 나갔다. 안방의 윗목으로 가자, 연로한 노인과 온화해 보이는 남자, 그리고 그의 아내가 호사스러운 비단옷을 입고 방석 위에 앉아있었다.
"내 하나밖에 없는 손자의 처로구나. 이리 앞으로 오너라."
시할머니가 손짓하며 나를 불럿다. 가는 두눈이 날카로워 보였다.
"가까이, 더 가까이 오너라. 널 좀 잘 볼 수 있게 말이다."
시할머니가 닦고 있던 조그마한 은장도를 살짝 내리치며 말했다.
이들은 큰 소리로 내 키와 몸무게, 납작한 코와 얼굴 생김새, 두 손의 크기, 엉덩이의 펌퍼짐한 정도를 하나하나 점검해 나갔다. 그렇게 모두의 앞에 서 있자니 곧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득필아, 네 신부 옆에 가서 서 보아라. 내 이 늙은 눈으로 너희가 잘 어울리는지 한번 봐야겠구나."
시할머니가 말했다.
우리는 그 노인의 움푹 들어간 날카로운 눈앞에 나란히 섰다. 노인은 우리가 낳을 자손을 그려 보고 있었다.
"너희 둘 다 책임이 무겁다. 난 앞으로 1년 이내에 증손주가 태어나기를 기대하고 있으니 말이다."
시할머니가 두 눈썹을 모으며 찡그렸다. 내가 그러한 의무를 다할 때까지 그것은 그분에게도 나에게도 무거운 짐이 될 것이었다.
"보세요. 신랑이 할머니가 바라시는 증손주를 안겨 드리려고 무진 애를 쓸 테니까요. 신랑이 새 신부한테서 눈을 떼지 못하는걸요!"
한 남자가 재미있다는 듯 소리쳤다.
순간 나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신랑의 무례함에 화가 치밀었다. 어떻게 이 사람은 가족과 이웃들이 아 보는 앞에서 나를 이렇게 난처하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갑자기 신랑이 미워졌다. 하지만 이것이 내가 부모님과 동생들 곁을 떠나온 이후에 그가 저지른 유일한 잘못이었다.
"좋은 징조다. 곧 아기를 안아 볼 수 있겠구나. 하지만 그전에 할 일은 해야지. 폐백을 올리도록 해라."
시할머니의 말에 따라 우리는 상 앞에 앉았고, 나는 두 손으로 공손히 막걸리를 따라 신랑에게 올렸다. 그리고는 그가 막걸리를 마시는 동안 술잔을 입술에 대고 있었다. 그런 다음에는 내가 그에게 고개를 살짝 돌린 채로 그 쓴 술을 한 모금 삼켰다. 술은 텅 빈 위장을 다라내려가며 불타올랐다. 내가 꾹 참고 억지로 술을 삼키자 모두들 기뻐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이렇게 결혼 서약을 했다.
우리는 나란히 일어섰다. 시댁 식구들 앞에서 천천히 절을 하는 동안 두 다리가 걷잡을 수 없이 후들거렸다. 양반다리를 하고 처음에는 엉덩이가, 그다음에는 이마가 바닥에 닿을 때까지 몸을 숙이고 또 숙여야 했다. 그런 힘든 일에 익숙해지려면 몇 주 동안 연습이 필요할 터였다.
신랑은 내 옆에서 절을 했다. 그는 두 손등을 이마에서 마주하고 무릎을 꿇은 다음, 나에게 바닥에 닿을 때까지 고개를 숙였지만 나보다는 힘이 덜 드는 동작이었다. 모든 시댁 어른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자기들 몫의 절을 받을 때까지 우리는 일서섰다 몸을 굽혔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어른들께 절을 드리고 나서는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한 채 마지막으로 절을 했다.
두껍게 바른 분을 뚫고 땀이 송글송글 맺혔고, 목과 등으로도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그러고 나서 시댁 식구들 앞에 앉자, 그분들이 대추와 밤을 내 치마 위로 던져 주었다. 많이 잡을수록 아이도 많이 낳고 좋은 일도 많이 생길 터였다. 나는 겨우 다섯 개를 잡았다.
이제 차려진 음식을 먹을 차례였다. 신랑이 고개를 젖히고 술 한 잔을 단숨에 비우는 것을 보니 놀라웠다. 친척들과 친구들에 둘러싸인 그는 더 활기 있고 자신감에 넘쳐 보였다. 그가 얼마나 바보스러운 짓을 하든 모두들 다른 젊은이들보다 그를 더 편애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반대로 나는 술을 목구멍과 내장으로 흘려 넣기 전에 잠시 동안 입에 물고 시간을 끌며 천천히 마셨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술이 묽어지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 연로한 여인이 부여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 신방으로 안내되기 전에 결혼식 날 나오는 국수를 조금 먹을 수 있었다. 나는 취한 신랑이 술을 더 주고받는 동안 또 캄캄한 방에서 그를 기다렸다. 그는 술 냄새를 풍기며 비틀거리면서 들어왔다. 그의 모습을 보자, 온몸의 근육이 단단하게 굳었다. 그의 검붉은 얼굴 위로 노란 촛불이 흔들리는 바람에 그는 무척 무서워 보였다. 그 특유의 수줍어하는 미소가 나를 덮칠 준비가 되었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한발 한발 다가왔다. 내가 신속하고 민첩하게 움직이지 않았던들 그는 그 커다란 몸집으로 나를 내리눌렀으리라.
"다쳤어요?"
내 몸이 그의 몸에 닿지 않게 하려고 애쓰면서 나는 그를 진정시켰다.
천만다행으로 그는 고개를 꺾고 옷을 다 입은 채로 정신을 잃었다. 나는 신랑의 옷을 벗긴 다음 이불을 덮어 주었다. 그리고 아침에는 그가 나를 또 한 번 정복했다고 믿게 해주었다.
이 모든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동생들과 한방을 썼었는데, 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여자로 태어난 것일까? 나는 한동안 이 같은 의문에 시달렸지만, 내가 이 집에 들어온 것이 신랑의 잘못때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같은 부당한 혼인에서 그 또한 나 같은 피해자였다. 나는 그때 그에게는 아무 악의도 없음을 깨달았다. 사실 그에게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애정도, 그 어떤 감정도, 아무것도.
시어머니는 나를 깨워 바로 아침 식사 준비를 마겼다.
"무엇보다 내 아들의 입맛에 맞게 요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애는 순한 음식을 싫어한다. 양념을 알맞게 넣어야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는 법이다. 지금부터 익히도록 해라."
이처럼 간단한 이야기만 들은 상태에서 나는 부엌으로 떠밀려 들어갔다. 그리고 처음 몇 주 동안은 그곳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썰고, 분량을 재고, 썩고, 그리고 요리법을 시험해 보면서. 나는 새벽 다섯 시부터 집안 식구들이 모두 잠들 때까지 노예처럼 일했다.
아궁이에 다시 불을 지펴 차가워진 구들장을 데우는 일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잠에서 깨어나면 갓 차려진 따뜻한 밥상을 받을 것임을 아는 다른 식구들이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 동안, 나는 일을 시작했다. 음식을 만들면 세심한 준비를 해야 했다. 게다가 식단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밥을 빼고는 상을 차릴 수가 없었다. 너무 중요해서 식사를 밥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밥을 짓는 솜씨에 따라 여자들은 칭찬을 받기도 하고 꾸중을 듣기도 했다.
어렸을 때 친청 어머니는 바가지에 물을 가득 채운 다음, 쌀을 힘껏 문질러가며 일곱 번에서 열번 정도 씻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뽀얀 쌀뜨물이 맑아지고 쌀이 젖은 진주처럼 햐얗게 빛난 후에 물의 양을 맞추어야 했다. 의사가 약을 조제하듯 정확하게.
일단 밥을 앉히고 나면, 부지런히 다른 음식을 준비했다. 하지만 한쪽 눈과 코는 끓어오르는 가마솥에 고정시켜야 했다. 깝박 졸다 밥 타는 냄새에 잠이 깨서 시어머니의 노한 얼굴을 대하게 될까 봐 여간 걱정이 아니었다. 나는 마침내 어머니가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고 회최리를 든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 고슬고슬한 밥과 얌전한 바느질, 말끔하게 다린 저고리와 순정이 내가 먹고 자고 약간의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이유였다.
상에는 늘 시댁 식구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올렸다. 수저와 젓가락만 사용하면 되도록 모든 재료를 잘게 썰어서, 식구들이 먹는 동안 나는 안도감에 젖어 음식을 씹고 삼키는 커다란 소리를 들으며 이불을 갰다. 칭찬은 아예 기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소리를 들으면 모두가 만족스러워함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시아버지가 젓가락을 상에 내려놓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것은 식사가 끝났음을 알리는 공공연한 방법이었다. 그러고 나면 바로 상을 부엌으로 내왔다. 그리고는 부엌에 앉아 남들의 눈을 피해 가며 남은 음식을 먹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면 설거지를 하고, 방바닥을 닦고, 옷을 빨고, 가구에 쌓인 먼지를 닦고, 버선을 깁고, 집안을 손봐야 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반나절이 지나고 또 쌀을 씻어야 하는 정오가 되어 있었다. 이 모든 힘겨운 일은 그날의 마지막 설거지를 마치고 그릇을 정리해서 넣을 때까지 끝도 없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일단 해가 지고 나면, 미신 덕분에 잠시 쉴 수 있었다. 어두워진 후에 다듬이질 소리가 들리면 집안의 노인이 죽는다는 말이 있었으므로. 하지만 추위가 닥쳐오면서 이내 밤에도 쉴 수가 없었다. 추운 겨울밤 내내 온돌바닥의 온기를 살피는 것이 내 일이었으므로.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줄곧 땀을 흘려 웃옷이 어깨에 착 달라붙었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집 안으로 나르느라. 양동이를 쥐는 양 손바닥의 손가락 바로 아랫부분에는 콩알만 한 굳은살이 여러 개 박혔다. 나는 지쳐서 기진맥진했지만 쉬지 않고 일했다. 나는 이내 향수병을 털어 버렸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았으므로, 무언가를 생각할 기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뚜렷하게 떠오르던 부모님과 동생들의 얼굴이 차츰 희미해져 갔다. 평생동안 시댁 식구를 위해 봉사하려고 이곳에 와 있는 것만 같았다.
여러 달이 지나면서, 아침 일찍 일어나는 새벽은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내 동작을 하나하나 살피는 시어머니도 시할머니도 없는 완벽하게 혼자인 시간, 생각에 빠져들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남편에 대한 생각이 점차 늘어갔다.
결혼 생활에서 사랑이나 정 같은 것을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마음 깊은 곳에서 사랑이 자라남을 깨닫고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의 사랑은 고슬고슬한 밥에 대한 짤막하고 갑작스러운 칭찬에서 시작되어 나중에는 내 부드러운 머릿결에 대한 칭찬으로까지 이어져 나갔다.
"여자한테 그런 칭찬을 퍼붓는 것은 좋지 않단다. 그러면 여자가 약점을 잡아 널 마음대로 하려고 드는 법이니까. 감정은 눌러 두어야 한다. 안 그러면 교양 없다는 말을 듣게 된단다. 여자는 남자의 동반자가 아니야."
시어머니가 신랑에게 눈살을 찌푸렸다.
"알겠습니다. 어머니 말씀대로 할게요."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가끔 시어머니의 예리한 귀가 사정거리를 벗어날 때마다 그는 어머니의 말을 어겼다.
"당신 음식 솜씨 때문에 큰일 나겠어요. 너무 살이 쪄서 옷을 못 입게 될 것 같아요."
그는 시선을 약간 비낀 채 밋밋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흥분을 감추고, 그런 찬사를 들을 자격이 없다는 듯 겸손한 태도들 꾸며 보였다. 그래야 그런 말을 다시 들을 수 있을 테니까.
"저는 그런 칭찬을 받을 자격이 없어요. 음식을 잘 못 하는걸요. 그리고 만일 살이 쪄서 옷을 못 입게 된다면, 새옷을 지어 드릴 수 있으니 영광이겠는걸요."
나도 똑같이 밋밋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게 당신이 원하는 거라면 내 있는 힘을 다해 살을 찌우리라.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소."
그가 진진하게 덧붙였다.
이 모든 것이 놀랄 만큼 낯설었다. 나는 남자로부터 그런 칭찬을 받는데 익숙하지 않았고, 애정을 그처럼 드러내는 것이 부도덕한 일로 여겨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매번 그러한 애정의 표현을 음미했다. 그를 상냥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그의 시증을 열심히 드는 것이었다. 나는 신랑의 옷을 그가 좋아하는 모양으로 접은 다음, 향기로운 꽃잎과 함께 넣어 두었다. 그리고 고기나 생선 한두 조각을 더 넣음으로써 그가 좋아하는 반찬을 맛있게 만드는 법도 터득했다. 나는 단지 그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이 모든 일을 했다.
평생 처음으로 나는 외모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 몸을 씻을 때마다 알몸을 거울에 비추어 보며 내가 변함없는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는지를 살피곤 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남편의 손길은 가히 마술에 가까웠다. 그의 품에 안겨 다가오는 방을 보낼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낮 동안의 힘든 일을 거뜬히 견뎌 낼 수 있었다. 원초적이고 어찌할 수 없는 웃음이 온몸을 휩쓸며 솟아올라 전신을 욕망으로 가득 채웠다. 나는 신랑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심스럽게 이러한 감정을 억눌렀다. 그가 바보 같은 여자와 결혼했다고 생각할까 봐 두려웠다.
저녁 늦은 시간이 되면 조바심으로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나는 그가 매일 밤 조금씩 더 일찍 잠자리로 들어가는 모습을 곁눈질로 훔쳐보았다. 하지만 불행히도 노인 세분이 그를 따라 하지 않으면, 세분이 잠자리에 들기를 기다린 후에야 마음 놓고 우리 방으로 갈 수 있었다.
그의 잠자리 옆에 있는 작은 상 위에 놓인 촛불이 늘 나를 비춰 주었다. 그가 옷을 벗는 내 모습을 바라보는 동안 나는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그의 눈망울이 몹시 불편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내가 서둘러 저고리를 벗고 치마를 내리는 모습이 사랑스럽게 보이는 듯했다.
"왜 그렇게 서둘러요? 난 촛불 아래서 당신이 옷 벗는 모습을 보는게 즐거운데. 아름다운 광경이에요."
"당신이 탐닉하게 놔 둘 수 없는 모습이니까요."
나는 얇고 하얀 속치마만을 입고 그의 위쪽에 선 채 어렵사리 대답했다.
"두고 봅시다."
그의 시선이 내 벗은 어깨로 와서 꽂혔다.
"두고 보자구요."
나는 보드라운 면 이부자리 위의 그의 옆자리로 서둘러 기어가며 동의했다. 그는 벌써 하의를 다 벗은 상태였다. 단 한 번도 나를 가져 주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이미 단단해져 있는 그의 몸이 준비가 되었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가 얼마나 절박하게 나를 원하고 필요로 하는지를 잘 아는 터라 나 역시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가 나를 가까이 끌어당겨 내 머리에서 나는 향기로운 냄새를 맡았다. 나는 그가 여자에게서 나는 냄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었으므로 향유를 꼼꼼히 바르곤 했다.
그가 내 몸 위를 구르는 동안 나는 장난스럽게 저항을 했다. 그의 하체는 전적으로 내 몸에 실려 있었지만 상체는 두 팔을 이용해 들고 있었다. 그의 전신은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했다. 그가 내 얼굴에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숨을 막히게 하는 뜨거운 입맞춤이었다. 나 역시 그를 삼켜 버리고 소유해 버리고 싶었지만 그러한 욕망을 애써 멈추었다. 그러면 몹시 화가 났다. 그는 뾰족하게 내밀어진 내 입술을 보고 미소 지으며, 나 역시 그와 몹시 사랑을 나누고 싶어 함을 확인하고는 만족해했다.
그는 한 손으로 내 두 팔을 살짝 들어 머리 위로 올린 다음, 다른 한 손으로는 노련하게 속치마 앞을 더듬어서 끈을 풀러 젖가슴을 드러냈다. 팽팽한 긴장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그의 단순한 손놀림도 엄청난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더 이상은 저항하고 싶지 않아 나는 머리를 베개 위로 떨어뜨렸다. 어찌할 수 없는 황홀경으로 등이 아팠고, 모든 움직임과 소리는 크게 증폭되었다. 그의 길고 가는 손가락이 아래로 내려와 속치마를 엉덩이 위로 높이 걷어 올렸다. 그때 그의 몸이 내 안으로 들어옴을, 그리고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내가 숨을 멈추고 있음을 깨달았다.
일단 그의 남성이 커지기 시작하면 모든 경계심이 일시에 무너져 내렸다. 이제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규칙적인 움직임에 따른 쾌락만이 있을 뿐. 경련이 온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나는 그러한 경련의 의미도 모른 채 쾌락을 붙잡아 두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았다. 내 몸은 그의 리듬에 익숙해졌고, 그의 요구에만 응답할 것이었다. 불길이 치솟는 것 같았고,피부가 불타올랐다. 신음소리를 내고 싶었다. 우리는 하나가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더 가까이 더 단단히 상대를 끌어안았다. 그가 신음소리를 냈다. 나도 신음했다. 나는 그가 내 안으로 쏟아져 들어옴을 느꼈다. 자신의 온기로 나를 흠뻑 적시며.
그가 내 가슴 위로 무너져 내렸고, 그의 심장이 내 갈비뼈 위에서 고동쳤다. 어둠 속에 그렇게 누워있을 때 천사 같은 그의 음성이 들렸다.
"너무 행복해서 잠들기가 아까운걸"
어둠 속에서 무척 가깝게 느껴지는 그의 숨결이 우리 두 사람을 차분하게 진정시켜 주었다. 나는 그의 따뜻한 품에 푹 파묻혀 밤이 늦도록 그가 들려주는 재미있는 전설이나 한 번도 들어 본 일 없는 신기한 이야기를 듣곤 했다.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안기고 응석 부리기를 좋아하는 어린아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이제 이야기 좀 해봅시다. 당신의 그 비밀스러운 머릿속에는 대체 무슨 생각이 들어 있는 거요?"
그가 내 머리를 지그시 눌렀다. 그는 늘 내 생각을 자신에게 들려주도록 부추겼다.
"당산이 훨씬 더 말을 잘하고, 당신 이야기가 훨씬 더 재미있는걸요."
나는 그가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바라며 수줍게 대답했다.
"당신 생각을 알면 기쁠거요."
"말할 만한 가치가 있는게 하나도 없는걸요"
"당신 생각을 들려주는 걸 부끄러워해서는 안 돼요. 당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것이 내게는 대단한 가치가 있는 거니까. 나는 내 아내의 몸을 아는 만큼 아내의 아름다운 마음에 대해서도 알고 싶단 말이오."
"내 마음은 쓸데없이 복잡하기만 해요. 어렸을때부터 그래 왔어요."
"그 말은 사실이 아니오. 난 당신의 영혼이 무척 넓다는 걸 알아요. 당신 마음도 틀림없이 그럴 거요."
"여자의 마음이 너무 넓으면 그것도 문제인걸요?"
"왜 그렇지?"
"왜냐하면...그러면 집안이 엉망이 될 테니까요. 목소리를 내는 사람도 하나, 주인도 한 명만 있어야 하잖아요."
나는 어머니의 말을 인용했다.
"글 말은 맞소. 하지만 당신은 두 개의 생각이 합쳐지면 더 나은 해결방벙과 더 현명한 지혜가 나올 것이라 생각하진 않소?"
"글쎄요...."
나는 그의 물음에 대해 생각해 보느라 잠시 말을 끊고 머뭇거렸다.
"두 마음이 똑같은 목표를 갖고 있다면 그렇겠죠."
그는 무척 현명했다. 나는 몇 마디 질문만으로 내 마음을 활짝 열게 만든 사람을 한 번도 만난 일이 없었다. 그와 같은 사람의 아내가 된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두 눈을 감고 꿈을 꿀 채비를 했다. 어떤 꿈도 내가 지금 살고 있는 현실을 따라오지는 못하겠지만.
나의 작은 고추
남편은 내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고된 일을 하는 데 필요한 힘과 용기를 주었다. 나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를 위해서도 나는 시어머니의 인정을 받으려고 노력했다. 내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경우, 시어머니는 나를 치욕스럽게 쫓아내고 남편의 안사람 자리를 박탈할 권리를 갖고 있었다.
남편의 곁을 지키기로 결심한 나는 아침 한 시간 더 빨리 잠자리에서 일어나 일찌감치 하루 일을 시작했다. 시어머니 자신이 깨닫기도 전에 그분이 원하는 모든 사항을 미리 예측하는 습관을 들이자, 시어머니의 잔소리는 차츰 사라져갔다. 그리고 아주 드문 경우이긴 했지만, 시어머니의 음성에 일말의 애정이 담겨 있을 때도 있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아들의 마음을 빼앗아 간 나를 용서해 주었다. 나는 온순하게 길들여졌고, 시어머니의 사랑을 얻게 되었다. 집안은 마침내 평화를 되찾았다.
하지만 그러한 평화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밤잠을 자던 중 뜻밖에 세상을 떠났고, 몇 달 후 시아버지도 그 뒤를 따랐다. 노인들한테서는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 남자가 먼저 죽더라도 여자는 장남의 집에서 편안하게 오래도록 살지만, 여자가 먼저 죽으면 남자의 수명은 대개 무척 짧아지기 마련이다.
남편과 나는 그로부터 3년 동안 거칠고 흰 삼베옷을 입고 두 분의 죽음을 애도했다. 죽음을 뜻하는 흰옷을 입었지만 별로 슬프지는 않았다. 하지만 관습에 따르려면 억지로 눈물을 흘리며 큰 소리로 곡을 해야 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부끄러운 짓임을 알면서도, 나는 집안에서 제일 높은 여인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는 기쁨에 사로잡혀 있었다. 시댁의 조상들이 못된 생각을 하는 나를 벌절 것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한 채.
시할머니가 긴 동면에서 깨어나 내 손이 닿기도 전에 고삐를 낚아채 갔다. 시할머니는 쓰디쓴 슬픔에 잠겨 있었고, 매일 아침 잠에서 깨어나면 자신이 하나뿐인 아들보다 더 오래 살아 있음을 깨닫고는 더더울 진한 슬픔에 빠져들었다.
아무리 성심껏 모셔도 그분을 조금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었다. 그리고 그분은 자신의 권위로 나를 꺾으려고 했다. 시할머니가 불호령을 내릴 때마다 나는 그분이 시킨 일을 해내느라 이리저리 정신없이 뛰어다녀야 했다.
"넌 쓸모없고 게으른 년이야. 네가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바람에 내 손자가 얼마나 약해졌는지 좀 보란 말이다."
남편의 영양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곡식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시할머니는 매일의 식단을 감독했다. 하루에 한 번씩 지팡이를 짚고 곳간으로 들어가서 쌀이 얼마나 쌓여 있는지를 점검했고, 도살된 돼지와 닭의 숫자도 아주 빈틈없이 계산해 두었다. 긴장감으로 속이 뒤틀릴 것 같았다. 곳간에는 쌀과 기장, 보리와 옥수수, 그리고 콩으로 넘쳐 났지만 우리는 잘 먹지 못하는 농부들처럼 먹을 수밖에 없었다.
"어리석은 년. 곡식이 하늘에서 거저 떨어지는 줄 아느냐? 밥도 좀 덜 짓고, 고기도 좀 덜 썰고, 차도 좀 덜 따르란 말이다."
시할머니는 내가 자제심을 지키느라 머리가 욱신거릴 때까지 고함을 질러댔다.
나는 하루에 세번씩 시할머니의 속바지에 꿰매 붙인 속주머니에 든 열쇠를 달라고 애원해야 했다. 그러면 시할머니는 매번 곳간까지 나를 따라와서 쌀자루에서 쌀을 퍼내는 나를 어깨 너머로 흘끔거렸다. 나는 다른 한 손으로 바닥을 조심스럽게 쓸며 쌀을 흘리지 않았는지 확인한 다음, 얇은 대나무 살로 짠 바가지에 그 쌀을 옮겨 담았다.
"넌 어떻게 그렇게 조심성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냐. 내 귀중한 쌀을 낭비하다니."
시할머니는 굽은 손가락으로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닥의 작은 알갱이를 가리켰다. 그러면 나는 무릎을 꿇고 흘린 곡식 한 알을 찾곤 했다.
나는 절약하고 없이 지내는 법을 배웠다. 내 몫의 음식은 더 보잘것없었지만 나는 시할머니의 밥그릇에 내 밥을 퍼 담았다. 시할머니가 더 오래 살기를 바라서가 아니었다. 모든 식량을 내가 다 먹어 치운다고 할까 봐 겁이 나서였다. 통통했던 손가락은 점점 마르고 가늘어져 뼈와 근육이 두드러져 보였다. 그런 꼴이 된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나는 우묵하게 들어간 배의 주름과 툭 튀어나온 골반뼈를 남편이 보지 못하도록 갖은 노력을 다했다. 그가 내게 욕망을 느끼지 못한다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뒤늦게 옷을 벗는 습관을 들였다.
시할머니와 남편이 빨리 잠자리에 드는 밤이면 나는 종종 늦은 시각에 부엌에 숨어들곤 했다. 그리고는 굶주린 짐승처럼 어둠 속에서 남은 음식을 찾아 헤맸다.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토막난 닭뼈나 시든 배추 줄기를 빨고 있노라면 친정집에서 키우던 가축들 생각이 났다. 어머니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다란 가마솥에 밥을 지었고, 고추장을 풀어 끓인 맛있는 국에는 곡간에서 나온 채소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젖가락 부딪치는 소리, 후루룩거리는 소리, 그리고 기운찬 트림 소리뿐 식사 중에 대화는 거의 오가지 않았다.
먹고 버린 닭뼈와 시든 채소만으로는 오랫동안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도 힘을 길러야 했고, 그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이, 즉 아들을 여럿 낳는 것뿐이었다. 아들을 여럿 낳고 나면 지위와 특권, 그리고 권위가 따라오리라. 뿐만 아니라 시할머니 나이 때에는 아들과 손자들의 재롱을 누리고 싶은 법이다.
결혼한 지 거의 1년이 다 되어 갔지만 아직 태기가 없었으므로 나는 부처님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살찐 대머리 사내에게 별다른 믿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다시 한번 부처님에게 의존했다. 이내 누군가가 나의 기도를 들어주었다.
처음에는 어렸을 때 앓던 병 때문에 배가 부풀어 오르고 속이 불편한 줄만 알았다. 먹을 것에 대한 말만 들어도 구역질이 났고, 걱정을 많이 해서 눈 아레에는 시커먼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시할머니가 친정에 가서 몸조리를 하라고 했다. 친절한 마음에서가 아니라 내 병이 옮는 것을 막으려는 염려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대문에서 나를 반겼다. 집을 떠난 지 열두 달밖에 안 됐지만, 어머니의 머리는 더 하얘지고 얼굴도 더 늙어 보이는 듯했다. 어머니의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미루어 나 역시 나이가 많이 들어 보임이 분명했다. 어머니의 얼굴에서는 또 다른 걱정거리도 읽을 수 있었다. 어머니는 남편이 나를 내쫓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렇게 불쑥 찾아오다니, 이 서방은 어떻게 지내니?"
어머니가 암시를 주며 물었다.
"아주 잘 있어요. 빨리 돌아가서 남편의 시중을 들어야 해요."
내가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그러자 어머니의 미간에 잡혔던 주름이 이내 사라졌다.
"이리 오너라, 어떻게 지내는지 얘기 좀 들려다오."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때 말고는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 순간 어머니가 내 상처와 고통을 어루만져 주기를 바라는 여섯 살로 돌아갔다. 어머니가 내 뺨을 살짝 어루만지는 바람에 참고 참았던 감정의 봇물이 터지고 말았다.
"어머니 전 죽으려나 봐요. 그 옛날의 그 귀신들이 못된 일을 마무리 지으려고 다시 찾아왔나 봐요."
나는 눈물을 흘리며 그 지독했던 배고픔과 이제는 먹을 것만 생각해도 갑자기 몸이 아파진다는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전에 지내던 방에 둘만 남게 되자, 어머니는 더 열심히 내 병에 대해 물었다.
"월경을 마지막으로 한 게 언제냐?"
"월경이요?"
나는 대답하기 전에 한동안 이 느닷없는 물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아서 몇 주나 지났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할 때가 지난 것 같은데요."
어머니가 애정을 가득 담아 내 손을 두드렸다.
"아기가 생겼구나."
할머니가 된다는 생각에 어머니의 표정이 환해졌다.
"어디 배 좀 한 번 보자꾸나."
어머니는 풍성한 치마 속에 감추어져 있던 내 불룩한 배를 자세히 살피더니 깃털처럼 가벼운 손길로 배를 쓰다듬었다.
"사내아이다. 확실해."
어머니가 단언했다.
"어떻게 아세요. 어머니?"
나는 그 말이 사실이기를 바라며 물었다.
"자, 봐라. 아기가 꽤 아래쪽에 붙어 있는 데다 젖꼭지가 흙빛 같은 갈색이잖니. 그게 내가 보는 방법인데, 언제나 틀림이 없단다."
내 안에서 조그만 생명이 자라고 있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새로운 보호본능이 솟구쳤다. 나는 이 기쁨을 남편과 함께하고 싶어 그 길로 바로 시댁으로 돌아갔다. 가면서 내내 어떻게 말을 ㄲ거낼 것인지를 궁리했다. 색다르면서도 완벽한 말을 그때 남편이 나처럼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신이 아직 어린 티를 다 벗지 못한 상태였으니까. 자신에게 쏠리던 관심을 다른 존재와 나누어야 한다는 생각에 남편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일단 집에 돌아온 나는 남편의 품에 안길 수 있는 밤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는 네가 없는 동안의 외로웠던 밤에 대해 털어놓으며 열정적으로 나를 껴안았다. 그 순간 나는 그가 우리 아기에게 충분하고도 넘치는 사랑을 품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기를 달래는 남편의 모습을 그려 보자 기쁨의 눈물이 솟구쳤다.
"당신을 너무 세게 안았소?"
그가 초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에요."
내가 턱을 어루만지며 그를 안심시켜 주었다.
"당신을 다시 안게 되니 마음이 너무 급했나 보오. 당신이 얼마나 섬세한 사람인지를 잊어버렸으니 말이오."
"아파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너무 기뻐서 흘리는 눈물이에요. 몇달 후에 당신 품안에 다른 생명, 우리 아기를 안게 될 거예요."
"확실하오.? 아기라구? 사실이란 말이지?"
그는 짐심으로 놀라며 소리쳤다.
그때부터 우리의 모든 생각, 모든 대화는 태어날 아기에 관한 것뿐이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소식을 듣고도 시할머니의 고약한 성격은 나아지지 않았다. 집안일은 여전히 내 차지였다.
지저분한 일이나 가축을 죽이는 것 같은 일은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리고 내가 곳간에서 꺼내 오는 식량의 양에 대해서더 덜 인색하게 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먹을 것에 대한 갈망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이제 토끼 고기, 오징어, 게, 달걀, 복숭아, 오리고기, 닭고기를 비롯한 많은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나는 복숭아와 닭고기를 무척 좋아했지만, 보풀이 일고 오톨오톨한 피부를 가진 아기가 태어나기를 원치는 않았으므로 그 엄격한 금기를 모두 지켰다.
임신한 지 다섯 달이 되었을 때, 무슨 노력을 하거나 행동을 취한 것도 아닌데 뱃속에서 기적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 바느질을 하거나 음식을 만드는 동안 내 몸이 조그마한 손과 완벽한 발가락, 두 눈과 두 귀를 가진 완벽한 한 인간을 만들어 내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테동을 느꼈을 때, 나는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아."
나는 숨을 몰아 쉬었다.
"무슨 일이오?"
남편이 내게로 달려왔다.
"아기요., 아기가 움직여요."
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아파?"
아무것도 모르는 그가 물었다.
"아뇨.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아플리가 있나요."
나는 남편의 순진함에 감동하며 그를 안심시켜 주었다.
그는 내가 느낀 경이로움을 함께 하고 싶어 하는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래서 나는 그의 한 손을 내 둥글고 팽팽한 배 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기다렸고, 친밀감을 주는 그 순간에 압도되며 깜짝 놀랐다. 그가 내 배 위에 손바닥을 댔을 때, 아기가 또 한 번 움직였음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의 손길을 느끼고 깨어난 것 같았다.
남편은 축축한 두 손으로 부풀어 오른 내 젖가슴에서부터 툭 튀어나온 배꼽까지를 거침없이 더듬었다. 자신이 뿌린 씨앗이 자라고 있음을 아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손길이었다. 이곳저곳을 만져 보던 그의 두 손이 완만하게 부풀어 오른 내 배를 지긋이 눌렀다. 나는 남편이 나를 원함을, 그의 두 눈이 욕망으로 불타오르고 있음을 느꼈다. 하지만 아기는 그 같은 행위를 원치 않는 듯 저항의 표시로 더 세차게 발길질을 했다. 남편과 나는 실망스러운 미소를 주고받았다. 그리고는 아기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욕망을 접어 두었다.
산달이 가까워올수록 날씬한 몸매는 아기로 인해 점점 부풀어 올랐다. 등이 아프고, 발목이 붓고, 방광은 팽팽했다. 나는 충혈된 젖가슴을 감싸느라 앞쪽으로 두 팔을 겹친 채 기우뚱거리며 걸었다. 살짝 부딪치기만 해도 유액이 흘러나왔다. 이 같은 불편함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기는 흡족해하며 자궁 속을 이리저리 오가는 듯했다.
그중에서도 제일 힘든 것은 남편과 함께 쓰는 얇은 요 위에서 조금이라도 편한 자세를 취하느라 애를 써야 하는 밤 시간이었다. 솜이불은 딱딱한 온돌바닥의 완충제 역할을 충분히 해내지 못했다. 엎드려 자면 아기가 깔릴 것 같았고, 등을 바닥에 대고 누우면 내가 아기의 무게에 눌렸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쪽저쪽으로 돌아눕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돌아눕기도 힘이 들었다.
결국 고기 써는 칼을 가져다 내 손으로 이 무거운 짐을 도려내는 끔찍한 상상을 하고 있을 때 첫 번째 진통이 시작되었다. 배 부위의 모든 근육이 주먹을 꼭 쥔 것처럼 수축했다가 풀어졌다. 때가 된 것이었다. 남편은 해산일 여러 주 전에 친정으로 가라고 애원했지만, 내가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그의 곁에 더 머무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길을 밝히려면 내가 당신 앞에 타야겠소."
남편이 나를 안아 가마에 태우며 안심시켜 주었다.
"아야!"
입에서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또 "아야!"이번에는 더 크고 절망적인 소리였다. 남편 앞에서 고통을 숨기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남편을 걱정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이이이!"
나는 덫에 걸린 사람처럼 허우적거리며 남편의 손을 움켜 잡았다.
"그렇게 아프오?"
"약한 모습을 보여서 죄송해요."
"아니오. 당신은 나보다 훨씬 더 용감하오. 당신은 내 아이를 낳는 고귀한 일을 하고 있소. 여보, 사랑하오."
고통에 잠긴 그의 두 눈이 있는 힘을 다해 나를 위로하며 내 얼굴을 마주 보았다.
친정에 도착했을 때는 어머니가 출산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였다. 첫째 부인과 둘째 부인이 내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잡아 주고 얼굴에서 흐르는 땀을 닦아 주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불구인 동생과 막냇동생은 이 고통스러운 장면을 볼 자격이 없었고, 남편과 아버지의 접근도 금지되었다.
나는 수십 년 전 이 집을 지을 때 만들어진 나무 자리 위에 누웠다. 내가 태어난 곳에서 나 자신이 새로운 자식을 낳는 것이었다.
배 양옆의 근육이 수축하기 시작하면 배 모양이 변하면서 낯설고 율동적인 방식으로 진통이 진행되었다. 두 다리 사이에서 미지근한 양수가 세차게 흘러 나와 속치마로 쏟아져 내렸다. 양수에서는 뜨거운 피 냄새가 났다. 나는 악다문 이빨 사이로 헐떡거리며 숨을 쉬었고, 머리카락 속으로 땀방울이 솟아올랐다. 배가 비틀리며 수축이 절정에 달했을 때, 어머니는 소리를 지르지 못하도록 내 입에 나무 막대기를 물려 주었다. 통증이 가시자마자 근육이 이완되면서 다시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토록 좁은 입구로 다 큰 아기가 과연 빠져 나올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어머니의 차가운 손이 내 다리 사이를 오가며 문지르고, 자궁구가 열린 정도를 가늠해 보느라 어머니가 나의 그곳을 만지고 손을 집어넣어도 부끄럽다거나 소름끼치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다음번 통증이 올 때 있는 힘을 다해야 하니까 편안히 쉬려고 노력하거라."
어머니가 노련하게 나를 이끌었다.
나는 두 눈을 꼭 감고 입술을 단단히 다문 채 다음 수축을 기다렸다. 가장 심한 수축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으므로!
"힘을 줘요, 힘을 줘요!"
첫째 부인이 내 손을 비틀었다.
"못하겠어요."
흐느껴 울며 내가 말했다.
"있는 힘을 다해서 밀어내라."
어머니의 당부였다.
어쩔 수 없이 힘을 주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고, 너무 힘을 주었기 때문인지 머리 양쪽의 정맥이 터질 듯 고동쳤다.
"다시, 힘을 줘! 힘을 주라구!"
어머니가 내 두 다리 사이에서 고개를 들며 나를 재촉했다.
"못하겠어요. 너무 아파요."
내가 숨을 헐떡거리며 말했다.
"힘을 주라니까!"
어머니의 음성이 더 다급해졌다.
나는 다시 한번 나무 막대를 악 물며 힘을 주었다.
"머리가 보인다! 거의 다 나왔어."
안도감에서 터져 나오는 어머니의 웃음 소리가 들렸다.
아기의 동그란 머리가 골반 뼈를 밀어내며 여는, 아래쪽이 가득 찬 듯한 느낌이 들었다. 뜨겁게 달구어진 쇠로 아래쪽을 태우듯 고통은 극에 달했다. 나는 막대를 더 세게 물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힘을 주었다. 아기가 고대하고 있던 어머니의 품에 안겼다. 무척 고통스럽고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가냘프지만 맹렬한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즉시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사내아이다! 손자야."
어머니가 웃음 가득한 얼굴로 외쳤다.
아내로서의 가장 중요한 의무를 다한 셈이었다. 아기가 내 가슴 위로 놓여졌고, 기쁨이 밀려들었다. 아기가 그렇게 누워있으니 우리의 심장이 함께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기는 내가 엄마임을 즉시 알아보는 듯했다. 나는 아기가 자궁 속에 있을 때만큼 안전하다는 느낌을 갖도록, 아기를 더 꼭 끌어안아 주었다.
두터운 잿빛 태지와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아기는 예뻤고, 무척 조용하면서도 평화로워 보였다. 제 할머니가 입과 코와 귀를 면 솜으로 닦아 주는 동안에도 아기는 몸부림치지 않았다. 제 아버지의 미끈한 피부와 내 침착한 성격을 닮았음을 이내 알 수 있었다.
어머니가 아기의 배 한가운데 매달려 있는 긴 탯줄에 칼을 갖다 댔을 때 나는 적잖이 당황했고, 아기의 소중한 생명이 걱정스러운 나머지 갑작스럽게 힘이 솟구침을 느꼈다.
"가만히 있어요. 모두가 태어나는 대로 어머니와 연결된 탯줄을 잘라야 하니까요."
이러한 것을 잘 알고 있는 첫째 부인이 말했다.
나는 어머니가 실로 단단히 묶어 매듭을 지은 다음, 아기의 생명선을 자르는 모습을 경이로움 속에서 지켜보았다. 이제 아기는 저 혼자 힘으로 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서 분리되어 나간 것은 아니었다. 내 살과 피로 되어 있으니까.
"가만히 있거라. 좀 아플 게다."
어머니가 주의를 주었다.
어머니는 오른손을 손목까지 내 몸 깊숙이 집어넣은 다음, 산후 배출물인 태반을 끄집어냈다. 상처 부위에는 소금을 뿌렸지만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아기가 잠을 자는 동안 나는 아기의 손가락과 발가락 하나하나를 내 것과 비교하며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 이마의 넓이로는 지성을 가늠해 보고, 눈이 큰지, 두 귀가 똑같이 생겼는지, 귓불은 넓은지를 살폈다. 다행스럽게도 아기는 완벽했고, 나는 곧 잠에 곯아떨어졌다.
내가 자고 있는 동안 밤은 물러가고 조용히 아침이 찾아왔다. 나는 어리둥절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 옆에 작고 소중한 존재가 누워있는 것만 빼고는 모든 게 평소대로였다. 내가 자는 동안 여인들이 바닥에 묻은 핏자국을 말끔히 닦고 산후 배출물을 모두 치운 게 틀림없었다.
금빛 비단 담요에 쌓여 잇는 아기는 천사 같았다. 아기의 입술에 손가락을 살짝 물렸다. 아기는 본능적으로 빨아 대기 시작했다. 아기에게로 흰 눈이 쏟아지는 것처럼 깨끗하고 새하얀 젖이었다.
내가 일어난 것을 처음 본 사람은 첫째 부인이었다. 올케언니는 남편이 시할머니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러 서둘러 집으로 갔다고 말해 주었다.
"하지만 신경 쓸 것 없어요. 오늘 아침 환한 표정으로 돌아왔으니까요. 아가씨 남편은 참 좋은 사람이에요. 오직 아가씨한테만 충실하니까요. 아무리 사람이 좋아도 그러기는 참 힘든데 말이에요."
올케언니가 차분하게 말했다. 갑자기 내가 누리는 모든 행운이 죄스럽게 여겨졌다. 운명의 바람이 조금만 다르게 불었어도 내가 바로 그녀일 수 있었으므로.
"남편한테 잘하고 아들을 많이 낳아 주세요."
나 역시 같은 바람을 갖고 있었다. 남편에게 아들을 안겨 주고 또 안겨주는 꿈을 꾼 밤도 많았고, 방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아들들의 잠자리를 줄지어 펴주는 상상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 아기의 머리가 좁은 산도로 빠져 나오는 게 어떤 것인지 끔찍한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둘째 부인을 데리고 올게요. 그 사람이 아가씨에게 남편을 맞이할 단장을 해드릴 거예요. 여자를 더 예뻐 보이게 하는 기술은 그쪽이 한결 나으니까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였지만 질투나 악의가 배어 있지는 않았다.
통증으로 아직 몸이 좋지 않았지만, 나는 머리를 감은 다음 곱게 빗어 내렸다. 잠시 후에 채비를 완벽히 갖춘 둘째 부인이 들어왔다. 아기를 낳느라 흘린 땀을 씻어 낸 다음, 그녀는 얼굴에 분을 바르고 붉은 칠을 하라고 나를 설득했다.
"물론 아기 아빠한테 예쁘게 보이고 싶을거야."
그녀는 또다시 내 얼굴에 분칠을 하며 나를 귀찮게 했다. 하지만 화장을 마친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은 듯했다.
"붉은 칠을 좀 더 해야 할까?"
둘째 부인이 무의식 중에 집게손가락으로 자신의 코끝을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좋은데 뭘 그래요. 나 같은 얼굴은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구요."
내가 거절했다.
"맞아, 맞아, 나는 최선을 다했다구."
둘째 부인이 나에게 조그마한 손거울을 건네주었고, 나는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뺨이 있던 자리에 붉은 얼룩이 두 개 찍혀 있는, 납작하고 허연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준비됐니?"
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물었다.
준비는 전혀 안 된 상태였지만, 더 이상 남편을 기다리게 할 수 없어 마지 못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냐."
어머니가 웃으며 남편을 데리고 들어왔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수염은 덥수룩하게 자라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남편에 대한 사랑이 솟구쳐 올랐다. 아직 정신이 조금 흐릿하긴 했지만, 자랑스러움을 감추느라 남편이 얼굴에 힘을 잔뜩 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예쁜 천에 쌓인 선물 보따리를 품에 안고 있었다.
"내 아들과 산모는 괜찮은가요?"
남편이 낮고 건조한 음성으로 물었다. 하지만 눈빛에는 우리가 함께 나누곤 했던,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친밀감이 서려 있었다.
"아주 좋아요."
우리를 바라보는 눈을 의식하며 내가 간단히 대답했다.
"할머니가 당신과 우리의 아들을 위해 이것을 보내셨쇼."
그가 이렇게 말하며 나에게 보따리를 내밀었다.
우리 두 사람만 있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나는 이 여인들이 그가 가져온 보따리의 내용물을 보고 싶어함을 알고 있었다. 안에는 아기 옷 여러 벌과 기장 가루에 향기로운 쑥잎을 넣어 버무린 떡이 들어 있었다. 시할머니의 너그러움이 조금은 놀라웠다. 하지만 지금은 인색하게 굴 때가 아니었다. 이씨 집안의 장손이 태어났으니 말이다.
시할머니의 호의에 만족한 어머니와 첫째 부인, 그리고 둘째 부인이 우리 둘만 있는 방의 문을 닫고 다른 방으로 물러갔다. 일단 둘만 남게 되자, 두 사람 다 부끄러움을 느꼈다. 남편은 내게서 살짝 몸을 돌려 무심하게 아침 해를 바라보는 척했다. 환한 창틀 때문에 그의 작은 움직임 하나도 두드러져 보였다. 그가 쑥스러워하며 조심스럽게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두 사람 다 잘 잤어야 하는데."
그의 음성이 평소같이 부드러워졌다.
"그럼요. 아주 잘 잤어요."
재가 조그맣게 대답했다. 나는 남편에게 우리 아들이 얼마나 총명하고 근사한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 아기가 제 아버지처럼 사랑스럽고 상냥하게 자라길 바란다는 이야기도.
"아기를 안아 보고 싶죠?"
"손놀림이 서툴러서 말이야."
내 말에 그가 뒤로 주춤 물러났다.
"당신 손길은 아주 부드러워요. 그러니 염려 없다구요."
"당신한테 영원한 빚을 졌오. 이토록 축복받은 느낌이 들고 행복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오. 이제 하인을 시켜 당신에게 먹을 것을 좀 갖다 주라고 해야겠구려. 내 아들의 엄마인 당신이 기운을 차려야 하니 말이오."
남편은 밖으로 나가더니 곧 쟁반에 미역국을 받쳐 가지고 들어왔다. 그가 손수 들고 온 것이었다. 남편이 내 무릎 위에 쟁반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미역국은 모든 산모가 먹는 음식으로, 필요한 영양분을 제공해 줄 뿐 아니라 젖이 잘 나오는 데도 도움을 주었다. 나에게 더 이상의 애정을 보여 줄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남편이 소저를 들고 그 위의 음식을 입김으로 식힌 다음 나에게 직접 먹여 주었다. 그 순간 나는 그를 절대적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열정과는 다른, 육체를 뛰어넘는 사랑으로 늙은 다음까지도 오랫동안 꽃 피어날 것이었다.
아이를 낳고 사흘이 지난 후에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직 온몸이 쑤셨지만, 그래도 아들을 안고 친정 집을 처음으로 구경시켜 주었다. 소나무 가지에 마른 붉은 고추를 꼬아 만든 줄이 눈에 잘 띄는 대문 위쪽에 걸린 채로 사내아이가 태어났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평생 처음으로 나는 여자로 태어난 것이, 그리고 어머니가 된 것이 자랑스러웠다.
나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미역국을 먹어 치우며 이후로도 백 일 동안을 친정에서 지냈다. 처음 일주일 동안은 아기도 나도 손님을 만날 수 없었다. 그 기간은 갓 태어난 아기가 액운과 악귀에 특히 약할 때였으므로. 하지만 나는 내 아들이 강인한 아이임을 알 고 있었다.
아기는 젖을 충분히 먹으며 무럭무럭 자랐고, 용운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내 이름의 ‘용’자처럼 그 한자는 힘센 용을 의미했고, ‘운’은 하늘의 구름을 뜻했다. 구름은 아주 높은 곳에 있으니 어떤 사람이나 귀신도 해를 끼치지 못할 것이요, 또한 고결해서 어떤 사악함도 미치지 못할 것이었다. 나는 그 이름이 마음에 꼭 들었다. 웅대한 의미와 발음, 그리고 한국인의 유산과 아기를 처음이자 유일하게 연결시켜 주는 것이기도 했으므로. 일본의 식민 통치자들이 일본식 이름을 쓰도록 강요하기 시작할 때였다. 따라서 안전한 집 안에서가 아니면 아기의 이름을 입 밖에 낼 수 없었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다나카 다케오’라고 불러야 했다.
이 몇 달 동안 아기와 나는 한 번도 떨어져 지낸 적이 없었다. 우리는 함께 먹고, 함께 놀고, 함게 목욕하고, 그리고 함께 잤다. 아기가 자라 내 애정에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나는 내 안에서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성격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인내심과 온화함, 그리고 잘 웃는 것이었다.
용운이는 무사히 백일을 넘겼고, 이제 아기를 남들에게 선보일 때가 되었다. 우리는 가족과 이웃의 도움으로 백일잔치와 돌잔치를 치렀다. 돌을 지내고 나니 용운이는 두 살이 되었다. 아기가 태어나면서 한 살을 먹는 것이 우리의 관습이므로.
부모님, 특히 아버지는 자랑스러운 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아버지가 아이들의 웃음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모습 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무릎 위에 손자를 앉히고 어르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고운 한복을 입고 있는 실제 크기의 인형 같아서, 잘 차려진 잔칫상 뒤에 앉기보다는 그 위에 올라앉아야 할 것 같았다. 용운이는 색동저고리를 입고 앙증맞은 검은 신발과 모자도 썼다. 게다가 통통한 손가락에는 부유한 친지들이 선물한 순금 반지를 여러 개 끼고 있었다.
용운이가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은 모두 내 작은 보물을 쓰다듬으로 속삭였다. 손님들이 제 동그란 배를 찌르고 홍조 띤 통통한 뺨을 꼬집어도 아기는 잠자코 있었다.
"정말 순한 아이야!"
누군가 소리쳤다.
"총명한 아기인걸!"
다른 사람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나도 아기의 앞에 놓여 있는 다양한 음식과 물건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웃었다. 아기가 붓이나 책을 집으면 나중에 학자가 되는 것이었고, 돈이나 쌀을 집으면 부자가 됨을 의미했다. 칼을 집으면 위대한 장군이 될 것이었고, 실 꾸러미를 집어들면 장수할 것임을 뜻했다. 용운이가 집어 든 것은 책이었다.
"내가 학자가 될 거라고 했지."
조금 전의 그 사람이 큰소리를 쳤다.
어머니가 되었다는 자랑스러움에 가슴이 터져 나갈 것만 같았다. 아기를 향한 사랑은 무조건적인 것이었다. 아기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까지 바칠 정도로.
사랑이라는 이름의 자전거
불구가 된 동생은 아홉 살 때 또 한 번 죽음과 싸워야 했다. 체온이 위험할 정도로 높이 올라가고 작고 붉은 반점이 온몸에 돋아났다. 동생은 며칠 동안 자리에 누워 땀 범벅이 된 채 온몸을 마구 긁어 댔다. 마침내 열이 내렸을 때 그 애의 얼굴은 피가 뒤엉긴 딱지로 뒤덮였다. 그리고 그 딱지는 끝내 얼굴에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깊고 흉한 상처를 남겼다.
"이 가엾은 아이에게 무슨 일이 더 일어날 수 있을까?
어머니가 한탄을 했다. 하지만 불구인 동생은 자라면서 자신의 운명을 탓하지도, 자신은 할 수 없는데 자매들에게는 가능한 일을 질투하지도 않았다. 어렸을 때는 불평을 터뜨리며 울곤 했지만 이제 더 이상은 그러지 않았다.
동생의 스물한 살 생일이 다가오자,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애의 불확실한 미래를 놓고 고민했다.
"이 애가 꼭 결혼을 해서 늘그막에 자신을 돌봐 줄 아들을 하나 낳아야 할 텐데 말이오. 우리가 세상을 떠나 더 이상 이 애를 보살펴 줄 수 없을 때, 제 오빠의 집에서 유령처럼 늙어 가게 할 수는 없지 않소."
아버지의 결론이었다.
"어떤 남자나 가족이 혼자 힘으로는 집 밖에도 나가지도 못하고 얼굴까지 저렇게 얽은 아이를 며느리로 받아들이겠어요?"
어머니가 절망에 빠져 혀를 세 번 찼다.
"당신은 당신 남편이 어마어마한 부자라는 사실을 잊고 있구려."
아버지가 큰소리를 쳤다.
아버지는 혼기 찬 아들을 둔 선량한 가족을 알아봐 주는 중매쟁이에게 후한 보상을 약속했다. 아버지는 신랑이 장남이든 둘째든 셋째든 그것은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 중매쟁이의 일이 한결 수월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나서는 가족이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자신의 아들을 쓸모없는 신부에게 보내 희생시키려 하지 않았다. 따라서 아버지의 요구사항은 더 적어졌고, 중매쟁이에게 부모가 돌아가신 가난한 신랑감을 알아보라고 했다. 간섭하는 어머니가 있는 남자보다는 혼자 사는 남자가 더 마음이 넓고 따라서 더 쉽게 제안에 응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게다가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해 상당한 지참금까지 제안했다.
하지만 그러한 상대를 찾은 것은 바로 아버지 자신이었다. 그 사람은 이따금씩 우리 집 안뜰에서 하인처럼 일하던 남자였다. 나이는 스무 살이고 성은 박씨였는데 놀랍게도 그의 조상은 한때 양반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전통적인 양반의 지위를 나타내는 품위와 위엄을 유지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소위 몰락한 양반인 잔반이 되어 있었지만.
혼사 이야기가 처음 오고 간 것은 아버지가 연료로 쓸 마른 잎을 안뜰에 쌓아두고 있는 그 남자를 보았을 때였다. 박씨는 쉬지 않고 끊임없이 일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거처에서 문틀 사이로 한동안 살펴본 다음 그에게 다가갔다.
"자네 성이 박씨지, 그렇지?"
"네......네......그런데요."
남자가 놀라서 말을 더듬었다.
"자네가 땔감 쌓아 두는 것을 지켜보았네, 그런데......."
"어르신을 실망시켜 드렸다면 더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아버지의 말을 가로막으며 그 사람이 불쑥 입을 열었다.
"착한 사람 같으니. 난 잘못을 탓하려고 나온 게 아니라네. 나에게는 무척 중요한 어떤 일을 제안해 볼까 해서 나왔네. 나는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을 높이 평가하거든."
"감사합니다, 주인 나리. 하지만 새경은 충분히 주고 계신걸요. 주인 나리의 호의가 아니라면 제 유일한 가족인 이모할머니와 저는 오늘 밤 당장 굶게 될 겁니다."
그가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가족이 이모할머니 한 사람뿐이라는 말을 들은 아버지는 제대로 신랑감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자네에게 땅과 그 위의 집과 그 집을 가득 채울 식량을 주겠네. 내 둘째 딸과 결혼하겠다고만 하면 다시는 다른 사람의 집에서 하인처럼 일하지 않아도 되네."
아버지는 단숨에 이렇게 말한 다음 한 마디 덧붙였다.
"하지만 우선 내 딸에 대해 알려 줄 것이 있네. 나는 정직한 사람이니까. 그 애는 예쁜 것과는 거리가 멀다네. 하지만 그 점은 자네한테는 큰 상관이 없을걸세. 부유한 사내만이 그런 사치를 누릴 수 있으니까. 게다가 네 살 때 열병을 앓아서 두 다리를 못쓴다네. 이제 알겠나. 자네 생각은 어떤가?"
박씨는 이모할머니와 함께 사는 허름한 오두막을 떠올렸다.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안흔 나무로 된 텅 빈 방과 바람이 불면 바닥의 틈으로 새어들어오는 흙먼지 생각이 났다. 그는 더 지체하지 않고 즉시 대답했다.
"저는 어르신에게 빚을 졌습니다. 따님에게 충실한 남편이 될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이야기는 끝났네. 그 애를 데려가게. 좋은 아니니까 순종적인 아내가 되어 줄걸세."
아버지가 말했다.
혼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아버지는 온갖 복잡한 절차와 형식을 모두 뛰어넘고 당사자와 직접 이야기를 했다.
결혼식 날 신랑은 볼품없이 바느질해서 겨우 몸만 가린, 회색 면으로 된 한복을 입고 나타났다. 시커멓게 탄 평범한 얼굴이었다. 예식에 모인 사람들도 관습에 맞지 않게 단출해서, 두 사람의 결합을 지켜보기 위해 모인 하객들은 가까운 외당숙과 이모, 그리고 사촌들뿐이었다. 신부를 보고 가장 놀랑 사람은 다름 아닌 신랑이었다. 신랑은 아버지 말대로 못생긴 절름발이를 예상했었다. 하지만 고급스러운 붉은 능라(역주-무늬를 두드러지게 짠 비단) 치마에 샛노란 저고리를 입은 동생의 모습은 눈부셨다. 그날은 분을 잔뜩 발라서 콧등에 난 휴한 상처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이번만은 그 애도 완전한 한 사람의 여인이었다. 모두가 치마 밑에 감추어져 있는 그 애의 마비된 두 다리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버지가 큰 소리로 목청을 가다듬었고, 그러자 여인들의 들뜬 수다 소리가 일시에 잦아들었다.
"저와 제 아내의 계획대로 단출한 예식을 준비했습니다. 따라서 신랑과 신부가 절을 하는 것은 생략하겠습니다."
바로 그 순간 얼굴이 시커먼 신랑이 벌떡 일어섰다.
"장인어른께 감히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하려 하니 부디 허락해 주십시오."
그가 고개를 숙인 채로 단호하게 말했다.
아버지는 앞에 우뚝 서 있는 사위에게 동의의 뜻을 표했다. 하지만 신랑의 이모할머니는 화가 나서 어쩔 줄을 몰랐다. 신랑을 밀어내며 그녀가 반대했다.
"나는 병신의 가족한테 절하는 친척을 둔 일이 없다."
가난도 그녀의 자부심을 꺾어 놓지 못한 게 분명했다.
"전 해야겠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마에 손등을 갖다 대고 무릎을 꿇은 다음, 몸을 깊이 숙여 이마를 바닥에 붙인 채로 한동안 있었다. 반대의 표시로 고개를 돌려 버린 신랑의 이모할머니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말없이 공감하며 이 장면을 지켜보았다.
두 사람은 사흘 뒤에 새로 마련한 집으로 돌아갔다. 아내의 의무를 제대로 할 수 없는 불구인 동생을 위해 어머니는 음식을 할 하녀와 집안일을 할 하인 한 사람을 딸려서 보냈고, 아버지는 새로 맞은 사위에게 장사를 시작해 보라고 말했다. 박씨는 이런 아버지의 금전적인 후원으로 접시와 겁, 그리고 장식물과 특이한 조각품을 파는 그릇 가게를 열었다. 박씨의 헌신적인 노력과 부지런함으로 가게는 날로 번창했다. 그는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일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늘 시간을 내서 선물과 재미있는 일로 동생을 기쁘게 해주었다.
그는 종종 사탕과 새 옷감으로 동생을 놀래주곤 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한 푼도 쓰지 않았다. 그의 애정으로 동생의 얼굴에서 생기가 피어났다. 하지만 그가 동생에게 준 가장 특별한 선물은 자전거였다. 바퀴살이 두어 개 굽거나 빠지고, 녹이 슬어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의자에 띠가 감겨 있는 자전거이긴 했지만, 그는 핸들에 종을 달고, 튼튼한 널빤지를 구해다 의자를 하나 더 만들었다. 그리고 동생이 편히 앉을 수 있도록 그 널빤지 위에 솜 방석을 깔았다.
"이제 당신을 어디로든 데리고 갈 수 있소."
그가 기뻐하며 말했다.
"이게 뭐예요?"
"타는 기계요. 오늘 당신한테 세상을 구경시켜 주리다."
동생을 안아 방석 의자에 앉히며 그가 말했다.
"떨어지면 어저죠?"
아래쪽의 흙바닥을 내려다보며 겁에 질린 동생이 물었다.
"날 꼭 잡아요. 그러면 안전할 테니까."
그가 동생을 안심시켰다.
동생은 남편의 말에 따라 그의 등에 바싹 달라붙었고, 그러고 나니 남편이 페달을 더 힘차게 더 멀리 밟을수록 그의 숨결이 거칠어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불구였기 때문에 동생이 보지 못했던 광경들을 가리켰고, 그제서야 비로소 동생은 언덕과 볏짚단, 숲과 들꽃들을 볼 수 있었다.
그날 이후로 두 사람은 자주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다. 처음에는 동생이 몇 번 떨어져 살갗이 까지고 상처가 나는 바람에 그를 놀라게 했지만, 곧 동생은 자전거가 회전하는 대로 몸을 움직이는 법을 터득해 나중에는 두 사람이 발견한 호젓하고 푸르른 계곡에 펼쳐 놓을 소풍 가방을 안고 가기까지 했다. 두 사람은 끊임없이 모양이 바뀌는 구름 아래 바싹 붙어 앉아 몇 시간이고 아기를 갖는 꿈에 젖어 들었다.
가능하든 그렇지 않든 그러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불구인 동생의 납작한 배에 아기가 생겼다. 처음에는 믿지 않은 이들이 많았지만,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동생의 배는 평소의 배로 부풀어올랐다. 그 애가 꼼짝 못할 지경이 되자, 마음씨 좋은 남편이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그 애를 등에 업고 다녔다.
해산일을 한 달 앞두고, 그는 동생을 자전거에 태워 친정으로 데려다주었다. 어머니의 자구이 너무 좁았는지 아기는 일찍부터 심하게 팔다리를 뻗대었다.
"때가 되었네."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 다음 사위를 돌려보냈다.
불구인 동생이 최초의 비명을 지르자마자 별로 힘도 주지 않았는데도 아기가 쑥 빠져 나왔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어머니가 젖은 두 손을 모아 잡으며 말했다.
"여자아이야!"
즐거운 함성이 온 집안을 울렸다. 불구인 동생이 아기를 낳았다는 사실에 압도된 나머지 아무도 아기가 계집아이라는 데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고는 거의 말이 없는 동생의 남편이 쉴새 없이 웃고 떠들어 댔다.
"아기다! 아기다! 아기야!"
그는 이 사실을 실감해 보려는 듯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즉시 페달을 밟아 집으로 돌아간 자랑스러운 아버지는 숯과 소나무 가지를 꼬아 만는 줄을 대문에 내걸어 딸의 탄생을 널리 알렸다.
나의 행복을 나누어 줄 수만 있다면
제일 어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응석받이로 자란 막냇동생은 결혼 후 많은 불행을 겪었다. 어느 날 친정아버지의 가게에 낯선 사내가 불쑥 나타났다. 둥글넓적한 얼굴에 펑퍼짐한 코, 쭉 찢어진 입에 실눈을 하고 있는 사내였다. 열린 문틈으로 막냇동생을 본 사내는 대담하게 그 애에게 다가갔다.
"이 댁의 어른과 사업 이야기를 좀 하러 왔는데, 지금 댁에 계십니까?"
그가 앞에 서 있는 젊은 여자를 곁눈질하며 물었다.
"아버지와 오빠는 강에 나가셨고, 어머니는 안채에서 주무시는데요."
"그렇다면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사내는 이렇게 말한 다음, 가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집에 도착한 아버지와 오빠는 손 베개를 하고 과일 통 사이에 사지를 뻗고 드러누워 큰 소리로 코를 고는, 얼굴이 둥그런 사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게 무슨 짓이오!"
아버지의 음성이 분노로 떨렸다.
낯선 사내가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말씀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자신의 혼서를 직접 내밀며 그가 말했다.
"저는 어르신 큰따님 이웃 사람의 친구입니다. 아직 혼약을 하지 않은 셋째 따님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버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그 따님을 제 아내로 맞이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내가 얼굴이 둥그런 낯선 사내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아버지는 시댁으로 사람을 찾느라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어쨌거나 나는 전갈을 보냈다.
"아버지, 홍삼이에게 맞는 배필을 아직 못 찾으셨다면 그 사람을 한 번 고려해 보시는 게 어떻겠어요. 그 애도 이제 때가 된 것 같은데요."
하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자기 자신의 결혼 문제를 그토록 오만불손하게 꺼낸이 낯선 사내에 대해 확신이 서질 않았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소개장을 들려 그 사내의 집으로 보냈다. 몇 주 후 붉은 도장이 찍힌 두번째 혼서가 함과 함께 도착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 혼사는 거의 성사된 것이나 다름없는걸."
아버지가 마지못해 인정했다.
막냇동생은 그 사내와의 첫 만남을 떠올리며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아내가 된다는 사실에 몸을 떨었다. 사내의 탁하고 시커먼 눈동자와 넓적한 얼굴을 생각하면 괴로웠다.
"얼굴이 접시처럼 둥글넓적한 남자를 어떻게 섬기고 살란 말씀이세요?"
막냇동생이 반대했다.
"살결이 그렇게 팽팽하니 그 사람은 주름살이 생기지 않을게다."
어머니는 좋게 말하려 애를 쓰며, 그 점이 마치 좋은 남편의 조건이기라도 한 듯 이렇게 덧붙였다.
"아버지 말씀이 그 사람은 보통 사람보다 키가 크다고 하시더구나."
"난 결혼 안 할래오."
막냇동생은 부끄러움도 모른 채 반대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이 없었다. 함은 이미 받은 태였고, 아버지의 명예가 걸려 있었다. 결혼식 날까지 동생은 발작을 일으키며 울부짖었다. 가엾은 그 광경을 보니 내 결혼식 날이 생각났다. 나는 눈이 벌겋게 부어오르지는 않았지만, 온갖 끔찍한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하긴 마찬가지였다. 동생에게 내 행복한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어 희망을 주고 싶었다.
사람과 말의 거대한 행렬이 새로 살 집으로 떠나는 동생의 가마를 호위했다. 아버지는 그 정도의 혼수면 동생의 기분을 풀어 주고 안도감과 기쁨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며, 혼수를 운반할 남자 하인을 별도로 불렀다.
시댁에 들어서는 순간, 막냇동생은 부자라고 한 그의 말이 거짓임을 바로 깨달았다. 남편은 혼례를 치르자마자 얼마 안 되는 가산을 술로 탕진하기 시작했다. 그는 독한 술의 힘을 빌어 쉽게 끓어오르는 성마른 성격을 지닌 심술궂은 어머니에게서 달아나곤 했다. 막냇동생은 남편의 눈이 그토록 탁하고 흐릿한 이유를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오랫동안의 방탕하고 무절제한 생활로 인간다운 기품을 모두 잃은 것이었다. 동생의 시댁에서는 사랑과 평화를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었다.
몇 달 동안 동생은 남편의 얼굴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는 한참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막냇동생은 그가 자신의 몸 위에 올라타기보다는 다른 여인들과 함께 지내는 게 더 나았으므로 남편이 집에 들어오지 않는 편이 더 좋았다. 그가 친밀감을 내보이면 동생은 멀찌감치 달아났다. 어느 정도 이러한 사실을 눈치챈 그는 돈주머니를 채우러 집에 들어올 때마다 아내에게 잠자리를 요구했다. 그는 아내가 자신을 혐오한다는 사실에 만족감을 느꼈다.
이처럼 암울한 때에 동생을 위안해 준 유일한 생각은 그가 일찍 죽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그가 자신의 몸에서 일을 치르고 나면 동생은 아이를 갖지 않으려고 강박적으로 몸을 씻어 냈다. 그러고 나면 그는 동생의 지참금을 더 많이 챙겨 가지고 다시 집을 나갔다.
집에 남편이 없다고 해서 생활이 덜 비참한 것은 아니었다. 막냇동생은 이내 시어머니 뿌리 깊은 악한 본성을 감지했다. 시어머니는 막냇동생에게 줄어드는 지참금만큼의 가치를 부여했다. 탐욕스러운 그 여인은 보석을 감추어 두었다며 계속 동생을 꾸짖었다. 하지만 사실은 결혼 비녀를 포함해 동생이 자신의 몫으로 가져온 모든 폐물을 이미 시어머니가 훔쳐 간 상태였다. 지참금이 바닥나자 꾸짖음과 잔소리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
‘너 이제 아무 쓸모가 없다. 내 식량을 먹고 제가 싼 똥 위에서 구르는 돼지보다 나을 게 없다. 최소한 돼지는 살이 찌면 목을 짤라 저녁 밥상에라도 올릴 수 있지."
그 여자는 뾰족한 검지손가락으로 동생의 뺨을 찔렀다.
"네가 쓸모있는 이유는 친정아버지의 재산 때문이다. 가서 값비싼 보석함을 가져오너라. 내 말대로 하든지 그렇게 못하겠다면 죽어 버리든지 마음대로 해라."
감정이 메말라 버린 막냇동생은 끝내 시어머니의 명을 따라 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동생의 비참함을 알게 된 아버지는 즉시 밖으로 나가 보석으로 만들어진 근사한 보석함을 사 가지고 돌아왔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그래도 화를 냈다.
"나를 모욕하는구나! 내가 바보인 줄 아느냐? 나는 좀 먹은 나무에 번드르르하게 칠을 한 이따위 것이 아니라 순금으로 만들어진 보석함을 바랐다. 썩 나가거라!"
그래서 막냇동생은 수치심에 휩싸인 채 다시 친정으로 갔다. 그리고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순금으로 된 보석함을 사 달라고 사정했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자수정과 황수정, 그리고 옥으로 장식된 자신의 보석함을 기꺼이 내놓았다. 두 손에 번쩍이는 선물을 받아 든 그 노인은 그래도 만족하지 못해 중얼거렸으나, 이내 그것을 가지고 나가 숨겨 버렸다.
그 후로 당분간 시어머니는 막냇동생을 덜 괴롭혔고, 방향을 돌려 친정으로 온 과부가 된 딸과 손자에게 심술을 부렸다. 딸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매번 엄청난 분노를 퍼부어 댔다. 어머니가 무자비하게 꾸짖는 동안, 딸은 두 팔로 머리를 감싼 채 웅크리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막냇동생이 일어나 보니 시누이가 사라지고 없었다. 옷 세 벌과 부러진 머리 빗 하나만 갖고 아직 자고 있는 아들을 남겨 둔 채 집을 나가버린 것이었다. 격노한 시어머니는 방구석으로 도망가서 쪼그리고 있는 아무것도 모르는 손자를 무자비하게 때리며 화를 발산했다. 동생은 울고 있는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려고 하다가 시어머니의 회초리에 등을 세게 얻어맞았다.
"저 귀찮은 어린놈은 쥐새끼가 먹고 남긴 것만 먹어야 해. 내가 왜 제 어미도 버린 바보를 돌봐야 한단 말이야?"
시어머니가 욕을 하며 말했다.
막냇동생은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그리고는 보리차를 한 주전자 끓여 그 노인에게 갖다 바쳤다. 시어머니가 컵을 비우는 즉시 동생은 잔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는 시어머니가 게걸스럽게 마시는 모습을 바라보며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렸다. 한 시간 후에 노인은 요에서 몸을 일으켜 비틀거리며 집 밖으로 나갔다. 막냇동생이 노리던 일이었다. 치마 주름 사이에 숨겨 두었던 밥 한 줌을 아이에게 줄 기회가 온 것이었다. 아이의 부르튼 입에 밥을 넣어 주자, 아이는 멍하니 동생을 바라보았다. 외할머니에게서 있는 대로 욕을 얻어먹은 그 아이는 호의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시누이에게서 자신의 아들을 보내 달라는 전갈이 왔다. 봉투 속에는 아이가 안전하게 오는 데 필요한 돈이 들어 있었다. 시어머니는 편지를 돼지우리 속으로 던져 넣었다. 편지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는 돼지를 바라보는 시어머니의 얼굴이 사악한 기쁨으로 빛났다. 어머니의 편지가 그렇게 없어지는 것을 본 아이는 급속도로 상태가 나빠졌다. 희망이 사라진 것이었다. 이내 어둠과 외로움의 지옥에 갇힌 아이는 아무것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상심한 여린 심장이 멈추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그런데도 그날 시어머니는 뽐내듯 웃고 있었다.
아들의 부음을 전해 들은 시누이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한동안 집 밖의 흙길에 무릎을 꿇고 손가락으로 땅을 마구 파헤쳤다. 그리고는 저주에 저주를 거듭 퍼부으며 집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기름때 진 더러운 얼굴로 눈물이 흘러내렸고, 상처 입은 동물의 신음 같은 소리로 흐느끼고 있었다.
"죽어! 죽어! 이 못된 할망구야!"
그녀가 소리쳤다.
시어머니는 왼쪽 콧구멍 밑에 있는 보기 흉한 사마귀에서 자라난 긴 털을 꼬며 비단 방석 위에 태연하게 앉아있었다. 막냇동생은 이처럼 사악한 피를 물려받은 아이는 낳지 않겠다고 맹세했지만, 끝내 비극은 벌어지고 말았다. 다섯 번째로 집을 찾은 남편이 술에 취한 검붉은 얼굴에 고통스러움을 숨친 채 집 안으로 숨어 들어왔다. 이 잠자리에서 저 잠자리로 옮겨 다니다가 그곳에 병이 옮은 것이었다. 그의 부정을 말해 주는 명백한 증거인 셈이었다. 그는 그 지경이 되어서 자기를 돌봐 줄 수밖에 없는 유일한 여인에게로 돌아왔다.
병이 다 나을 때까지 오랫동안 집에 머물던 그가 끝내 자신의 더러운 씨를 뿌리고 말았다. 막냇동생은 그가 방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는 미친 듯이 돌진해 나무 문틀을 비틀어서 부숴 버렸다. 동생은 그의 몸을 막아 보려고 두 팔과 다리를 단단히 오그린 채 발버둥쳤지만, 그래도 그는 동생을 강제로 겁탈했다.
남편의 아이를 가졌음을 안 동생은 아기를 지워 버리려고 했다. 바닥에 몸을 던지고, 배를 꼬지고, 곰팡이 난 음식을 먹고, 심지어는 때가 되기 전에 낳아 버리려고도 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기는 더 크고 강인하게 자랄 뿐이었다.
시어머니는 예정일 몇 주 전에 막냇동생을 친정으로 보냈다. 친정을 마지막으로 찾은 지 2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다. 그 정든 대문을 들어서기 전까지 동생은 자신의 슬픔과 불행을 진정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어머니와 슬픔을 함께하기 위해 줄곧 속에서 눈물을 억눌러 왔으므로, 하지만 어머니는 막내딸로 인해 이미 속으로 눈물짓고 있었다.
막냇동생은 힘겹게 아기를 낳았다. 아기는 불행한 운명을 마주하지 않으려는 듯 어머니의 자궁 속을 여러 시간 동안 헤매고 다녔다. 마침내 자정 무렵, 포동포동한 작은 계집애가 울음을 터뜨렸다. 예쁜 얼굴은 아니었다. 제 아버지를 닮아 둥그런 얼굴과 가는 실눈을 하고 있었다.
"이 아이에게는 기술을 가르쳐야겠다."
어머니는 아무도 이런 얼굴의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듣기 좋게 하려고 노력했다.
이 말을 들은 막냇동생은 생각했다.
내가 온 힘을 다해서 이 아이를 사량해 주어야겠다. 제 어머니도 소중히 하지 않는 아이를 누가 사랑해 주겠는가?
아기의 아버지는 떡과 옷을 싸 들고 산모와 아기를 보러 와서는 어떤 상인과 벌이는 사업 이야기를 청산유수로 늘어놓은 다음, 그 핑계를 대고 나가 버렸다.
"무슨 사업인데요?"
동생이 물었다.
"에이, 아녀자는 그런 일에 신경 쓰는게 아니야."
그가 불쑥 답했다.
‘보나마나 어떤 여자와 벌이는 일이겠지.’
동생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동생이 꼬박 백 일간 친정에 머무르는 동안, 그가 아내와 딸을 보러 온 것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여자의 성스러운 의무
배가 다 들어가기도 전에 나는 또 임신을 했다. 아들을 하나 더 얻게 된다는 기쁨으로 출산 때의 고통은 흐릿하게 잊혀졌다. 나는 아들을 둘이나 셋 더 낳고 싶었다. 그러고 나서는 이기적인 마음에 딸도 하나 태어나기를 바랐다. 여자들에게는 집안일을 도울 딸이 하나 있어야 하니까.
나는 첫째를 가졌을 때처럼 막달까지 쉬지 않고 일했다. 낙엽이 지기 시작했고, 겨울을 날 준비를 하려면 친정으로 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겨울옷을 짓고, 연료를 쌓아두고, 지붕을 손보고, 김장을 담가야 했다. 나는 1년 중에서 김장을 담글 때가 제일 좋았다. 한반도의 여인들이 갈고 닦아온 자신의 솜씨를 선보일 절호의 기회이므로.
김치를 담그는 것은 신경이 많이 쓰이는 일이었다. 소금에 절여 양념을 버무린 배추는 매번 상에 오르는, 밥 다음가는 가장 중요한 음식이었으므로, 아버지는 일단 김치의 독한 냄새를 맡고 입에 침이 고이지 않으면 그 김치는 먹을 가치가 없다고 말하곤 했다. 엄청난 분량의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 소금, 그리고 다른 양념들을 섞어 특유의 맛을 내야 하는 데다, 긴 겨울을 나려면 많은 양을 담가야 했다.
자르고 씻고 소금에 절여지기를 기다리는 배추와 무 더미가 안뜰 한가운데 한 길가량의 높이로 쌓여 있었다. 나는 김치를 넣어 겨우내 땅속에 묻어 둘 갸름하고 키 큰 항아리를 무리해서 닦다가 뱃속의 아기 무게 때문에 균형을 잃고 바닥에 배를 부딪치며 쓰러지고 말았다. 통증의 물결이 배 깊은 곳까지 휩쓸고 지나가며 모든 근육이 수축되었다.
당황한 남편이 밖으로 달려나가 이웃에 하나뿐인 의사를 데리고 들어왔다. 이빨에 새까만 담뱃진이 끼인 그 남자가 나를 살펴보았다.
"겁낼 것 없소이다. 아기는 아직 살아 있어요.‘
그가 내 얼굴로 역한 숨을 내쉬며 진단했다.
나는 아기가 죽었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이레를 기다리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남편은 친정으로 가서 아기를 낳아야 한다고 우겼지만, 나는 집안에 산파를 한 사람 들였다. 친정어머니에게 사산한 아기를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첫아이 대와 똑같이 극심하게 고통스러운 산고를 겪으며 나는 잔인한 희망이 솟구침을 느꼈다. 하루하고도 반나절이 지난 후에야 첫딸의 머리가 빠져 나왔다. 고약한 죽음의 악취가 진동했다. 대마 자루에 아기를 넣어 사는 산파의 얼굴에서는 두려움도 충격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내 안의 무엇인가가 남김없이 찢겨져 나가는 듯했다. 나는 그 아기를 품에 안고 딱 한 번만 얼굴을 보고 싶었다.
"제발 한 번만 보게 해주세요.‘
내가 기운 없이 말했다.
"왜 쓸데없이 자신을 괴롭히려고 해요? 이 아기에게는 아무것도 해줄 게 없어요. 계집아이이니 다행이지 뭐유."
"제발 아기를 좀 주세요."
산파는 생명이 끊긴 대무 꾸러미를 내 품에 안기며 못마땅한 듯 혀를 찼다. 내가 대마를 젖혔다. 벌써 머리가 새카맣게 자란, 커다란 아기였다. 나는 그 차디찬 살을 따뜻하게 해주려고 아기를 가슴 위에 올려놓고 힘껏 껴안아 주었다. 가엾은, 가엾은 우리 아기.
"데려가세요."
마침내 내가 말했다.
산파는 그렇게 해주었다. 그날 밤, 어둠이 깃든 방에서 나는 아들을 잃은 것처럼 슬피 울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1939년, 마침내 또 임신이 되었고, 남편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어렸을 때 함깨 놀 남매가 누나 한 사람밖에 없었던 터라, 남편은 늘 집 안을 아이들로 가득 채우는 게 꿈이었다. 남편의 고집에 못 이겨 나는 해산일 두 달 전에 남편의 보호를 받으며 운이와 함께 친정으로 갔다. 지난번의 불행한 일로 남편이 다소 지나치게 과보호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었지만, 연로한 부모님은 우리의 때 이른 도착을 반겨 주었다. 두 분은 손자가 옆에 있을 때면 어린 아기가 되곤 했다.
때가 되자 집안 전체가 행동에 착수했다. 세 딸을 출가시킨 아버지와 어머니는 여러 해 동안 충분한 경험을 쌓은 터였고, 하인들과 집안 식구들도 단련되어 아기를 낳는 데 효율적인 손발 역할을 능숙하게 해냈다. 남자들은 사랑채로 물러나 소식을 기다렸고, 아기 낳는 일이 자신의 영역에 속하는 여인들은 안채로 모여들었다.
나는 몇 달 동안 꽃이 아닌 호랑이의 꿈을 생생하게 꾸었다. 따라서 태어날 아기가 사내아이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산을 하고 보디 다리 사이에서 나온 것은 고집 불통의 계집아이였다. 앞서 두 번의 경험도 이토록 고집이 센 아이와 맞서 싸우는 데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아기는 첫 번째 자궁 수축 때부터 자신의 진면목을 과시하려고 작정한 듯했다. 다시 힘을 줄 때까지도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그리고는 내가 완전히 지쳐 나가떨어졌을 때 자신의 힘으로 세상에 나오려고 했다. 그애는 잡아당기거나 밀어내지 않았는데도 온전히 제 힘으로 이 세상에 나왔다. 나는 그때 내 딸 ‘다나카 카츄코’, 우리가 은밀히 지어 놓은 이름인 이덕화의 주인이야말로 진정한 생존자임을 알 수 있었다. 큰 꽃이라는 이름이 완벽하게 들어맞은, 이 아이는 일본 침략자들의 잔혹한 통치하에서도 무럭무럭 자라 꽃을 활짝 피울 것이었다.
살아 있는 한국인이기 위해 중국으로
나는 통통하고 명랑한 두 아이와 함께 새벽에 일어나 음식을 만들고 집안을 청소하고 남편의 칭찬을 듣는 생활이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우리 세 사람은 충분히 행복한 반면, 남편은 늘 불안에 떨었다.
남편은 우리 민족의 순수한 혈통과 고유한 문화와 전통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자부심 강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당시 1939년 무렵에는 한반도 전체가 완전한 일본화라는 목표 아래 억압받고 있었다. 일본인들은 모든 상점과 정부 기관에서 사용되는 국가의 공식 언어에서 한국어를 제외시켜 버렸다. 그리고 그 이듬해에는 학생들도 제2의 국어로서조차 한국어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학교에서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공식 언어로만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쳤다.
남편은 식민 침략자들의 올가미가 일거수일투족을 조이고 드는 도시로 자주 나가곤 했다. 경찰서와 파출소마다 이웃들이 인질로 잡혀 있었고, 정복을 한 일본 헌병은 저항하는 사람은 누구든 자신이 차고 있는 긴 칼로 내려칠 기세로 거리를 오가고 있었다. 쇠로 된 군화 바닥의 절걱거리는 소리는 고로 두려움의 상징이었다.
이 무렵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자발적으로 모인 정신대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젊은 처녀들을 군대로 몰아간 것이었다. 일본에서 이들은 말 그대로 ‘몸을 주는 집단’이라는 뜻의 ‘세이시다이’로 통했다. 머릿수를 채우라는 명령을 받은 시청에서는 젊은 딸을 둔 각 가정으로 통지서를 보냈다. 남편은 젊은 처녀들을 전선으로 보내는 진짜 이유를 따져 보았다.
어느 무덥고 습한 여름날 오후, 아이들과 내가 신선한 그늘에 앉아 쉬고 있을 때 남편이 안뜰로 뛰어들어왔다. 어린 딸아이를 바라보는 남편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무슨 일이에요. 여보?"
내가 물었다.
"그놈들이 내 딸아이를 데려가게 할 수는 없어."
남편은 이를 갈았다.
"누가 이 애를 데려간 데요?"
내가 고함을 질렀다.
"우리 아이들이 영원히 안심하고 우리도 자유롭게 살려면 이곳을 떠날 수밖에 없소."
"여기가 우리 고향인걸요."
"그 짐승 같은 놈들이 우리 땅을 더럽히고, 우리 광산을 파헤치고, 우리 곡식을 훔쳐 가고, 우리 여인들을 겁탈하는 한 우리한테 고향은 없는 거요."
"어디로 가는데요?"
내가 당황해서 물었다.
"중국."
"중국이라구요!"
숨이 막혔다.
"하지만 가족들은 모두 이곳에 있으니 우리는 외톨이가 될 거예요. 우리끼리 어떻게 살죠?"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벌써 그곳에 자리를 잡고 있소."
"거기도 일본 놈들이 있다던데요. 이미 만주에서 중국 본토까지 세력을 넓혔데요."
"그렇지만 중국 땅은 굉장히 넓소. 내놓고 우리말을 하며내서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거요. 장사를 할 수도 있고 말이오. 여기서는 종보다 나을 게 없지 않소."
"시할머님은 어쩌죠? 너무 연로하셔서 먼 길은 가지 못하실 텐데."
나는 남편의 마음을 돌릴 만한 모든 구실을 붙잡고 늘어졌다.
"누님한테 가족을 데리고 이곳으로 와서 할머님을 보살펴 드리라고 할 작정이오. 내가 부탁하면 그렇게 해줄 거요."
"만일......"
나는 필사적으로 다른 이유를 찾았지만, 남편은 무척 심각한 음성으로 내 말을 가로막았다.
"여보, 제발, 나는 다시 자유의 맛을 느끼고 싶소. 나도 당신만큼 우리나라를 사랑하오. 바로 그 때문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야 하는 거라오. 중국에서라면 우리 아이들이 어쩔 수 없이 지어 준 그 야만인의 이름이 아니라 진짜 한국 이름을 들으며 자랄 수 있을 것이오."
그러니 내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 땅을 떠나는 것이 한국인이 되기 위한 길이라면 가야 할 터였다.
남편은 우리 가족이 살 만한 곳을 물색하기 위해 먼저 길을 떠났고, 두세 달 후에 상하이와 베이징 사이에 있는 쉬저우(중국 장쑤성 북부의 도시)라는 도시로 기차를 타고 오라는 전보가 날아왔다. 남편은 아주 적은 돈으로 집을 한 채 샀다. 이전의 주인이 전쟁을 피해 버리다시피 달아난 집이었다. 그런 곳에서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을 기를 생각이란 말인가?
가족 전체가 뿌리째 뽑혀 미지의 나라로 간다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다. 그때까지 내가 다닌 가장 먼 길은 친정에서 시댁까지였다. 이제 태어난 곳에서 사는 게 아니라 고향을 떠나 무수한 언덕과 산, 그리고 강을 건너는 것이었다. 나이가 들면 가족들에 둘러싸여 결국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리라고 생각해 오던 터였다. 불현듯 절망적인 외로움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그러한 감정을 접어 두었다. 해야 할 일이 무척 많았으므로, 시누이의 가족이 들어와 시할머니를 모시게 하려면 정리해야 할 것이 많았다.
나는 며칠 동안 집 안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니며 시누이의 가족들이 편히 지낼 수 있도록 가구를 닦고 빨래를 말끔하게 하고 이부자리를 보송보송하게 말렸다. 그동안 집안 살림을 잘해 온 것에 자부심을 느끼던 터라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다.
네 식구에 소가 한 마리 딸린 시누이의 가족이 곧 도착했다. 시할머니는 친딸이 돌아와 내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 기쁜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내 소유의 집에서 살게 된다는 생각에 사실은 나도 내심 기뻤으므로. 집안일을 넘겨주는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바람에 떠나는 날짜를 앞당겼다. 남편은 우리가 좀 더 늦게 오기를 바랐지만, 나는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용운이와 덕화와 나는 큰절을 올리고 작별을 고했다.
기차역에 처음 나간 나는 놀라운 것을 목격했다. 불을 내뿜는 기계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쇠로 된 그 괴물을 직접 보고 나자 심각한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뱀처럼 몸을 뒤틀며 미끄러지듯 달려오는 괴물의 주둥이에서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사람도 있었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단단히 껴안은 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기 위해 잠시 기다렸다. 천둥 같은 소리가 더 가까이 다가오자, 줄줄이 연결되어있는 긴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앞에는 황소도 사람도 없었고, 맨 앞의 상자가 다른 상자들을 이끌고 있었다.
괴물은 커다란 소리와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서서히 멈추어 섰다. 용감한 사람들이 앞장서서 올라탔고, 등받이를 꼿꼿이 세운 나무 의자들이 양옆으로 줄을 지어 서 있었다. 그리고 그사이로는 좁은 통로가 나 있었다. 커다란 짐가방이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 바람에 일단 아이들만 의자에 앉혀야 했다.
쇠로 된 뱀은 날카로운 기적 소리에 놀라 다시 깨어났고, 바퀴가 움직이며 구르기 시작했다. 기차는 옴몸을 흔들고 으르렁거리며 한국의 높은 산들 사이를 아슬아슬하고도 쏜살같이 지나쳐 지평선을 가르며 정신없이 내달렸다.
남자들과 너무 가까이 있어서, 이들의 손과 어깨와 발이 가끔씩 몸에 와 닿는 것이 느껴졌지만 달리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말이 이끌지도 않는 이상한 긴 상자를 타면, 낯선 남자의 발이 몸에 와 닿더라는 말을 일주일 전에만 들었어도 믿지 못하며 얼굴을 붉혔으리라. 하지만 놀랍게도 이제 그러한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기차의 진동으로 몸을 떠는 사람들 틈 속에서 나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음을 깨달았다.
우리는 만주와 맞닿아 있는 신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넜다. 많은 한국인들이 우리나라의 국경 근처에서 살기 위해 압록강 바로 이북으로 이사했지만, 남편은 중국 본토로 더 깊이 들어가는 편이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1905년 러시아가 러일전쟁에 패한 이후로 일본인들도 만주 지역으로 속속 들어오고 있었으므로.
쉬저우역에 내리자, 용운이가 기차역 가장자리로 달려가 행인들을 구경했다. 포장도로를 따라 사람들이 벽돌과 석탄,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두부가 실린 외바퀴 손수레를 밀려 지나갔고, 길 양쪽에서는 온갖 유형의 사람들이 서로를 밀쳐 대며 바삐 서두르고 있었다.
처녀들은 팔짱을 끼고 다녔고, 소매 없는 검정 외투에 엷은 회색 비단옷을 입고 앞머리털은 밀어 버리고 뒤쪽으로 머리를 땋아 늘인 부유한 상인들은 유유자적하며 도박장을 들락거렸다. 몸에 꼭 맞는 옷에 조그맣고 검은 구두를 신은 신여성들은 상점을 기웃거렸다. 그리고 혼잡한 교통과 소란스러움을 뚫고 이 모든 인파 사이로 자전거가 능숙하고도 신속하게 오갔다. 모든 게 너무 낯설기만 했다. 이미 다 자리가 잡혀 있는 곳에 불필요하고도 낯선 존재 하나가 비집고 끼여든 것만 같았다.
이곳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키가 컸고, 내가 본 자그마한 일본인들에 비하면 거인에 가까웠다. 사람들한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대로 흰색 한복을 입은 나와 아이들을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몇몇 용감한 이들은 가까이 다가오기도 했지만,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거리를 살피며 탈것을 찾았다. 땀에 절은 인력거꾼들이 여기저기서 인력거를 끌고 다녔다. 나는 누구 한 사람 멈추어 주기를 바라며 한 손을 높이 들어 허공에서 흔들었다. 하지만 모두들 오만한 눈길로 쳐다보고는 휙 지나가 버렸다. 높이 쌓아 놓은 짐이 그 이유인 듯했다. 나에게는 그들을 유혹할 중국 돈이 없었다. 속바지에 꿰매 만든 비밀주머니에 엔화만 들어 있을 뿐이었다. 거리 한복판에서 치마를 걷어붙이고 속바지에 손을 집어넣으면 음란해 보일 터였다.
마침내 인내심이 바닥난 나는 어느 인력거의 뒤쪽에 짐을 던져 넣었다. 얼굴이 시커먼 인력거꾼이 화를 벌컥 내며 일어섰다. 땀과 먼지로 뒤범벅된 가죽만 남은 얼굴이 커다란 주름을 그리며 일그러졌고, 그 일그러진 입에서 날카로우면서도 리듬감 있는 말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나는 꼼짝않고 버티고 서 있었다. 그는 양옆으로 고개를 맹렬하게 흔들며 더 큰 소리를 질러 댔다. 어떤 언어권에서라도 이해할 수 있는 동작이었다. 하지만 내가 고집스럽게 그이 항의를 무시하자, 그는 마침내 잠잠해졌다. 그래서 그에게 굵은 한자로 주소가 적힌 남편의 편지를 내밀었다.
우리는 혼잡한 거리르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집들은 절만큼이나 크고, 거리에는 친정 아버지가 하던 것과 흡사한 가게가 줄지어 서 있는 거대한 도시였다. 반짝이는 상점의 유리창 안에는 마음을 끄는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많은 상점들의 문 위쪽에는 알록달록한 긴 비단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엷은 금빛 수염을 기른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 보는 백인 오랑캐였다. 우뚝 솟아 있는 것처럼 키가 큰 그 남자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별나고 이상해 보였다. 그러자 문득 나는 이곳에 있어도 그 백인만큼 이상해 보이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보다 부풀어 오른 치마를 입고 발가락 부분이 치켜 올라간 고무신을 신긴 했지만, 검은 머리에 누런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
뜻밖에도 인력거꾼은 커다란 벽돌집 앞에서 멈추어 섰다. 남편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는 수준 높은 취향과 감각을 가진 사람임을 알았어야 했다. 남편이 현관에서 나와 인력거꾼에서 후한 품삯을 주었다. 그는 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의 손길이 그리웠지만, 우리는 부부간에도 예의를 지키는 시대에 살고 있었다. 따라서 너무도 사랑하는 남자를 향한 내 마음을 애써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우리를 쳐다보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의식하고는 조심스럽게 말을 골라서 했다.
"여보, 잘 왔소. 정말 잘 왔소."
남편은 아들을 품에 안고 빙빙 돌고, 덕화에게는 몸을 굽혀 재미있는 표정을 지어 보인 다음, 내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의 뜨거운 입김이 목을 스치자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집이 마음에 드오?"
남편이 흥분한 어조로 물었다.
"좋은 집인걸요."
내가 이렇게 대답하자, 그가 기쁨에 겨워 벙글거렸다.
"이리 와요. 안을 구경해야지. 안은 더 근사하다오."
이층집은 한 번도 본 일이 없었다. 아래층은 널찍했고, 뒤쪽으로는 각방으로 통하는 문이 여러 개 달려 있었다.
"이 계단 위에 집이 또 한 채 있소. 허공에서 잠을 자다니 얼마나 가슴 떨리는 일이오."
남편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전 차라리 여기 아래층에서 잘래요."
"아직 이층은 안 보이잖소. 보고 나면 마음이 달라질거요. 내 장담한다니까."
그는 나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남편에게는 무척 중대한 일이었으므로, 나는 마지못해 삐걱거리는 좁다란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처음에는 무척 쉬었지만 나중에는 힘이 들었다. 게다가 얼마 후에 또 그곳을 걸어 내려가야 하다니. 이층은 아래층만큼 넓었다. 그리고 뒤편으로 갈수록 더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열려 있는 창문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고 그냥 지나쳤더라면, 내 발이 허공에 둥둥 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했으리라.
남편의 말은 사실이었다. 우리나라와 달리 이곳 중국에는 자유의 바람이 불고 있었고, 너무도 많은 사람들로 들끓기 때문인지, 일상생활에서는 일본의 영향을 거의 느낄 수 없었다.
최근의 다른 한국인 정착민들처럼 남편도 장사를 하고 싶어 했다. 한국의 관습을 지키며 독자적으로 평화롭게 살고 자 하는 이들 정착민들은 똘똘 뭉쳐 한인 공동체를 번영시켜 나갔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미 많은 이들이 중국에 동화되어 있었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모국어라도 되는 양 북경관화를 사용했다. 남편이 어서 재산을 모아야 하루바삐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친정 부모님과 동생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라도 어서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나는 자아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헛되이 머리를 짜내는 남편을 여러 주 동안 말없이 지켜보았다. 비난할 사람은 남편이 아님을 잘 알면서도 나는 그가 빨리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 괴로웠다. 그는 평생 하인과 여인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따라서 내가 남편을 유도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침매 내가 이렇게 말했다.
"여보, 이 집은 두 채나 마찬가지예요. 우리 식구가 위층과 아래증에 드문드문 흩어져 지내자니 좀 외로운 것 같아요. 몇 시간 동안이나 용운이를 찾지 못한 적도 많았어요. 숨을 수 있는 방이 너무 많으니까요. 아래층에 참기름 가게를 열면 좀 덜 외롭지 않을까요?"
나는 세부적인 사항까지 계획을 세워 둔 다음에 이렇게 제안했다.
"제 생각에 돈을 벌기에는 참기름 장사가 제일인 것 같아요. 시장에 아무리 비싼 값으로 내놓아도 사람들은 참기름을 사가니까요. 물기가 오르거나 전쟁이 일어나도 음식은 해 먹어야 하잖아요."
놀란 남편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당신이 행동하는 것에 비해 머리에 많은 생각이 들어 있다는 건 늘 알고 있었소. 왜 이토록 오랫동안 나에게 당신 생각을 털어놓지 않은 거요?"
"전에는 남자들의 일에 관한 한 되도록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아녀자의 도리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여기 와서 시장을 돌아다니다 보니 저 같은 여자들도 남편과 나란히 일을 하고 있더라구요. 그 여자들이 땀 흘려 일하는 것을 보니 저도 똑같이 적극적으로 당신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날 도와주겠다고, 당신이 말이야?"
남편이 놀려 대며 말했다.
"제가 못 할 거라고 생각한다 해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아요. 집안 살림을 하는 게 여자의 의무니까요. 제 본분을 넘어서는 말을 했다면 죄송해요."
마음이 상한 내가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이 못 한다고?.....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일이 없소."
그는 잠시 동안 말을 멈추고 생각을 정리했다.
"당신이 내 아내가 된 후 지금까지, 당신은 단 한 번도 날 실망시킬까 걱정스럽긴 하지만. 당신이 원한다면 참기름 장사를 해 보도록 하리다."
시선을 내리깔며 남편이 말했다.
아버지가 세 살 연하인 남자와의 겨래혼 이야기를 처음 꺼냈을 때, 나는 내 앞날이 힘겨우리라고 생각했다. 남자와 여자의 결합이라기보다는 엄마와 아들의 결합에 가까우니 해야 할 일은 많고 애정은 별로 생겨나지 않으리라고 예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내 나이가 더 많은 것이 다행스러웠다. 남편이 어리기 때문에 내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으므로. 엄격한 관습도 그에게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내가 자신의 안사람, 아녀자에 지나지 않을 뿐인데도 그는 나를 존중해 주었다.
"당신은 실패하지 않아요. 내가 절대로 그렇게 놔두지 않을 테니까요."
이렇게 확신을 주자, 그는 갑자기 용기를 얻었다.
내 의사를 아무 거리낌 없이 표현한 것은 여섯 살 때가 마지막이었다. 머릿속에서 다양한 생각들이 떠오르도록 놔두는 것이 신기하게만 여겨졌다. 몇 년 동안 어머니의 혹독한 가르침을 받느라 자유로운 사고가 어려울 때에도 일단 허락하기만 하면 맣은 생각들이 떠오르곤 했다.
참깨 자루를 사들이느라 혈안이 된 남편과 나는 생기가 넘치는 현란한 시장 안을 헤매고 다녔다.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갈망은 채워지지 않았다. 손바닥만 한 상점에서 과일과 채소, 계란, 혀를 날름거리는 뱀과 꼬꼬댁거리는 닭, 짖어 대는 개, 그리고 그 밖에도 울부짖는 많은 가축들을 팔았다. 동물들은 발디딜 틈도 없는 우리 안에서 쉴새 없이 울어 댔다.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쇠로 된 밥공기와 젓가락을 들고 색다르고도 다양한 물건들을 살피며 걷고 있었다. 어떤 상인의 손수레에서는 대나무 꼬치에 끼운 튀긴 닭발이 지글거렸고, 다른 손수레에서는 포자 만두가, 또 다른 곳에서는 국수가 끓고 있었다. 배고픈 손님들이 공기를 입술에 대고 군데군데 웅크리고 앉아 젓가락을 삽처럼 놀리며 입으로 음식을 퍼 넣고 있었다. 이곳에는 민족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았다. 먹을 것이 있고 거래가 이루어지는 곳이면, 어디든 쉽게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역시 돈의 위력은 대단했다. 우리는 말이 이끄는 수레를 참깨 자루로 가득 채웠다.
예상대로 우리는 참기름을 팔아 빠르게 사업을 키워 나갔다. 아래층에는 이내 참기름 통이 가득 쌓였고, 깻묵은 비료로 팔 생각으로 따로 쌓아두었다. 이제 노랫소리 같은 중국말을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된 남편은 베이징과 충칭 같은 인근 대도시로 참기름을 팔러 다니기 시작했다. 남편은 매번 손수레를 가득 채워 가지고 나갔지만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우리가 금덩이라도 파는 것처럼 극진히 대우했다.
머지않아 널빤지로 된 마룻바닥 밑의 빈 공간마다 동전과 지폐로 가득 찬 자루가 들어찼고, 그 위를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게다가 다시 아기가 생겨 너무 기뻤다. 하지만 이번에는 임신한 사실을 복잡한 심정으로 받아들였다. 아기를 낳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임은 잘 알고 있었지만, 이전의 두 아이 때처럼 아기의 탄생에만 마음이 쓰이지는 않았다. 나는 옷을 지어 놓지도, 태어날 아기에 대한 꿈에 젖지도 않았다. 대신 다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과 내 몸에서 빨리 이 무거운 짐을 벗어 버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다른 여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전에는 아기를 낳고, 먹고, 자고, 사랑을 하는 것으로 만족했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더 많은 것을 갈망했다.
첫번째 진통이 왔을 때, 나는 아기를 낳는 침대에 누워 재빨리 자세를 취한 다음, 이 시련을 잘 견뎌 내겠다고 다짐했다. 또다시 어머니의 도움 없이 아기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친정어머니의 손자를 받을 산파가 왔을 때 조금도 친밀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 때문이 아닐 어머니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곳에 있어야 할 사람은 바로 어머니였으므로.
두세 시간 정도의 짧은 진통 후에 나는 도 한 번 둘째 아들을 얻는 승리를 거두었다. 남편은 유교식 작명 방법과는 상관없이 그 아이의 이름을 건강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건일’이라고 지어 주었다. 아기는 또 잠을 자려는 듯 하품을 하며 나왔다. 그래서 아기를 가슴 위에 눕혀서 재웠다. 얼마간 시간이 흘렀을 때, 커다란 소리를 듣고 아기가 잠에서 깨어났다. 소란을 일으킨 사람을 막 꾸짖으려고 할 때, 문틈으로 친숙한 미역국 냄새가 스며들어왔다.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때 남편이 쟁반을 받쳐 들고 발끝을 세운 채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편으로 엄청난 부자가 되다
나는 둘째 아들의 백일을 치르고 난 후에 방에서 나와 일터로 복귀했다. 하루만 더 쉬어도 몸살이 날 것만 같았다. 사실 아기를 낳은 그 날로 침대에서 일어나고 싶었지만, 남편이 나를 막아섰다. 잠자리를 지키고 누워있어야 하는 것은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참기름 장사로 돌아온 지 한 달이 지나자 지루해지기 시작했고, 갑자기 벌어들이는 돈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많이 벌수록 우리가 가진 재산은 하찮아 보였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것, 참기름보다 더 인기 있는 것을 찾아 헤맸다.
그때 아편이라는 백색 가루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암시장에서는 작은 파이프를 하나 채울 만한 양도 엄청난 가격에 팔렸다. 하지만 한국에서처럼 아편 거래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일본이었다. 일본인이 제조하면, 한국인이 팔고, 중국인이 소비했다. 아편 밀수나 아편 거래는 위험한 일이어서 잡힌 사람들은 감옥에 갇히거나 매를 맞았고, 쥐도 새도 모르게 증발해 버리는 일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아편을 한번 팔아 보기로 했다.
중국 상인들을 상대로 밀수를 하는, 이웃에 사는 한국 여인이 어느 날 일하러 가는 길에 우리 벽돌집을 지나쳤다. 나는 그 기회를 이용해서 그 여인에게 접근했다.
"그 가루 파는 일을 도와 드리고 싶은데요."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여인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대답도 없이 계속 걷기만 했다. 여인은 오랫동안 기운차게 걸었다. 나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여인을 뒤따랐다. 그 여인은 내가 매일 식료품을 사는 시장 한가운데로 들어섰다. 여기란 말인가? 실망스러웠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음침한 곳을 예상하고 있었으므로.
혼잡한 통로를 따라 나아가고 있을 때, 옆의 한 남자가 자신의 빈 쇠공기에 대고 젓가락을 리듬감 있게 두드려 댔다. 그리고는 인도가 끊어지는 시장 끝에 도달할 때까지 줄곧 우리 주변을 맴돌았다. 나는 한국인 구역을 한참이나 벗어나도록 좁다란 길을 따라 혼자 그 여인을 뒤쫓았다.
창문마다 긴 막대에 빨래가 널려 있었고, 그 때문에 흙과 쓰레기로 뒤덮이고 석탄 가루가 날리는 길에서 그나마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흔들의자에 앉은 몸집이 큰 여인이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두차례 침을 뱉은 다음, 엄지손가락을 한쪽 콧구멍을 청소했다.
나는 어린아이들이 흙투성이의 웃옷을 입고 새까만 발로 오가는 것을 두 눈으로 보면서도 그런 광경이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아이들은 내가 입은 흰색 한복을 가리키며 나를 놀려 대기 시작했다. 좀 나이가 든 어느 사내아이가 내 치마를 움켜잡자 다른 아이들도 그 소년을 따라했다. 다른 무엇보다 겁이 난 내가 한국말로 고함을 쳤지만, 아이들은 더 큰 소리로 웃어 댈 뿐이었다. 그때 몸집이 큰 여자가 소리를 질렀고, 아이들은 일제히 집 안으로 숨어 버렸다. 나는 그 여자에게 고맙다는 말도 못 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어떤 골목이나 현관으로 모습을 감추기 전에 뒤따르던 여인을 찾아야 했으므로.
마침내 목적지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여인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여인은 거의 들리지 않는 소리로 들어가려는 집의 문을 두드렸다. 문은 여인의 몸이 겨우 비집고 들어갈 만큼만 열렸다. 그리고는 내가 들어가기도 전에 닫히고 말았다. 나는 심호흡을 한 다음, 머리 모양을 가다듬고 살짝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누가 그 소리를 들었는지 의심을 잔뜩 품은 눈이 나를 살짝 내다보았다.
"왜 그러시오?"
남자의 갈라지 목소리였다.
"아편 주세요."
내가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잘못 찾아왔소. 우리 주인님은 당신이 말하는 그런 가루를 갖고 있지 않소."
"문으로 들어가는 여자 봤어요. 주인님 만나게 해줘요. 그냥은 안 가요."
나는 노랫소리 같은 억양을 제대로 구사해서 그가 내 말을 이해하기를 바라며 단호하게 말했다.
문은 내 면전에서 쾅 닫혔다. 하마터면 코가 날아갈 뻔했다. 하지만 잠시 후에 다시 열렸다.
"빨리 들어오시오."
나는 그의 안내에 따라 연기로 가득한 어둠침침한 방에서 기다렸다. 한 노인이 바닥에 사지를 뻗고 드러누워 의식과 황홀경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노인 옆의 긴 의자 위에는 아편이 가득 채워진 긴 대나무 대가 작은 등불 위에서 타오르고 있었고, 그곳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방안을 달콤한 냄새로 가득 채웠다.
다섯 살도 안 돼 보이는 어린 계집아이가 노인의 머리맡에 앉아, 한 손을 휘휘 저으며 피리를 좇았다. 늙고 쇠약한 육신이 아편을 더 요구할 때마다 계집아이는 은으로 된 이쑤시개로 끓어오르는 아편대를 쑤셨고, 그러면 노인은 메마른 입술을 벌려 아편은 자기로 된 둥근 용기를 거쳐 노인의 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노인은 가능한 한 오랫동안 숨을 들이켰다. 하지만 너무 과했는지 숨이 끊어질 듯 기침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조금 진정이 되면 그 쭈글쭈글한 누런 손으로 검은 아편을 더 가져다 엄지와 검지로 꾹꾹 눌러 공 모양으로 만들었다. 나는 나 자신은 물론 남편도 결코 아편을 피우지 못하게 결코 아편을 피우지 못하게 하리라고 다짐했다. 단 한 번이라도.
기다리고 있자니, 어떤 마른 남자가 어린 아들을 품에 안고 들어왔다. 사내아이는 바짓가랑이 부분이 터진 바지를 입고 있었다. 아버지가 아이를 내려놓자, 아이는 즉시 제 할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갔다. 아이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벌어진 틈으로 조그마한 고추가 들락거렸다.
그 남자가 나를 뒷방으로 데리고 갈 때까지 나는 계속 그곳에 서 있었다. 별써 몇몇 여인들이 대기 중이었다. 성공적으로 만주 국경을 넘고 일본인 관할의 파출소를 무사 통과해 아편을 숨겨 가지고 온 이들이었다. 여인들은 아편으로 가득 찬 불룩하고 긴 고무 튜브를 들고 한 사람 한 사람 칸막이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 고무 튜브를 은밀한 부위 속에 감추고 담을 뛰어넘은 여자들도 있었다. 생각만 해도 얼굴이 달아오르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고무 튜브를 받은 남자가 여인들에게 돈주머니를 건넸고, 여인들은 옷매무시를 바로 하고 사라졌다. 아편을 한데 모은 남자가 입이 찢어질 듯 웃었다. 남자의 앞니 네 개가 추한 모습으로 잘려 있었다. 그러자 비교적 호감이 가는 얼굴에서 사악한 얼굴로 순간 인상이 바뀌었다. 내가 숨을 몰아쉬자 그가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던 듯했다. 그 남자는 나를 쓸 것인가를 고민하며 머리를 긁어 댔다.
"아편 주세요."
그가 결정을 내리기 전에 내가 큰 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내가 당신을 믿을 수 있지?"
그가 물었다. 하지만 목소리에 날카로움은 묻어 있지 않았다.
"전 더 많이 배달할 수 있어요. 아주 많이."
"아, 그래요? 그러다 두 배로 쉽게 잡힐 텐데?"
"아니에요. 쉬워요."
그가 나를 시험하고 있음을 알고 나는 큰소리를 쳤다.
이 말을 듣고 그는 나에게 금으로 가득 찬 가방을 건네 다음, 최초의 밀수를 향해 내 등을 떠밀었다. 중국 밖에서 거래를 할 때는 금이 최상의 화폐였다. 일부 지역에서만 유통되는 돈은 코를 풀거나 밑을 닦는, 단 두 가지 용도로만 사용됐으므로.
나는 둘째 아들을 데리고 기차역에서 생면 부지의 한국 여인과 합류했다. 나는 아이를 등에 업고 나갔다. 남편은 위의 두 아이와 함께 집에 남아 슬리퍼를 신은 채 손을 흔들었다. 우리는 좋게 헤어지지 못했다. 이미 일을 하기로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떠나지 말라고 나를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설득해도 소용이 없자, 그는 발을 구르며 길을 막아섰다. 나는 처음으로 남편의 말에 따르지 않았고, 그는 기가 꺽인 표정을 지었다. 내가 남편의 남자다움을 꺾어 버린 셈이었다.
나는 무사히 기차에 올랐다. 닥치는 대로 승객을 검사하던 일본 헌병이 우리 두 사람은 건너뛰더니, 애꿎게도 뒤쪽에 하릴없이 서 있던 남학생을 괴롭혔다. 학생은 독립운동가로 몰리고 있었다. 학생이 혐의를 부인하자, 헌병은 개머리판으로 학생의 등을 때려 억지로 의자에 주저앉혔다.
나는 쉬운 임무를 맡았다. 그렇게 갔다 돌아오는 것만도 대담함을 알아보는 좋은 시험이었다. 처음 기차를 탔을 때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였지만, 나에게는 길게만 느껴지는 여정이었다. 우리는 운 좋게도 여러 역에서 있었던 현병의 검문을 피할 수 있었다. 그렇게 국경을 엄은 다음에는 인력거를 타고 한적한 공장으로 갔다. 그 공장에는 고무장갑을 끼고 솜 마스크를 한 사람들이 여기저기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나는 밀가루처럼 희고 고운 가루로 되어 있는 상당한 분량의 아편을 샀다. 공장에서 바로 나온 검고 끈끈한 설탕 같은 것을 예상했었지만 동료가 현대적인 공정을 거친 아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해 주었다.
나는 신문으로 깔때기 모양을 만들어 긴 고무 튜브 열 개를 가득 채웠다. 나는 다리 사이에 아편을 넣을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대신 양쪽 젖가슴 밑에 튜브 세 개를 대고 끈으로 단단히 묶었다. 한때는 모유로 풍만했던 젖가슴이 일찍이 말라붙어 납작했으므로 아편을 숨기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다른 튜브 네 개는 모자 속에 말아 넣고 핀으로 머리에 고정시켰다. 그렇게 한 다음 한복을 입고 건일이를 등에 업은 다음, 일본식으로 동여맸다. 완벽했다. 한국식으로 앞가슴 부위를 모두 가리는 포대기로 아기를 업었다가는 젖가슴이 눌려 튜브가 터져 버릴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가슴 부위에서 교차하는 어깨끈을 사용했다. 이중으로 안전장치를 한 셈이었다.
기차역에서 동료와 나는 추가 예방 조치를 취했다. 한 사람이 잡힐 경우에 대비해 우리는 일단 헤어졌다. 나는 등을 구부리고 식량 자루를 질질 끌며 기차 계단에 올랐다. 일본 헌병이 느릿느릿 움직이는 나를 끈기 있게 지켜보았다. 일단 계단 꼭대기에 오르자, 그는 내 어깨를 움켜 잡은 다음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두려움으로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움직이란 말이다! 너 때문에 줄이 지체되고 있잖아. 뒤로 가!"
그는 내가 귀머거리인 줄 알았는지 큰 소리로 고함을 쳤다.
안도한 나는 숨을 몰아쉬며 비틀비틀 뒤쪽으로 갔다. 그리고는 동료가 그 무례한 헌병을 무사통과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맨 뒷좌석의 창문 쪽에 끼여 앉았다. 동료의 얼굴을 보기가 괴로웠다. 실패할 것만 같았다. 원숭이처럼 불룩 튀어나온 두 눈이 죄책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잔뜩 찡그려 치켜뜬 두 눈 때문에 손질하지 않은 짙은 눈썹도 같은 모양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저 검문을 통과해야 할 텐데......
놀랍게도 헌병은 지나가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그녀가 내 쪽으로 오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바로 그 자리에서 고꾸라질 것만 같았다. 무릎을 구부리고 두 팔은 양쪽으로 무겁게 떨군 채 머리를 앞뒤로 흔들어 대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동료에게 다가가서 팔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집으로 오는 동안 줄곧 그녀를 부축했다.
그 마른 남자의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에게 흠 하나 없는 튜브 여덟 개를 건넸고, 그는 엄청난 분량의 아편을 손바닥에 놓고 들여다보더니 대가로 돈주머니를 내밀었다. 액수를 세어 보고 싶었지만, 승리의 기쁨을 남편과 함께 하기 위해 그러한 욕망을 꾹 눌러 참았다. 그것은 또한 화해의 몸짓이기도 했으므로.
집에 돌아온 나는 남편과 부드러운 어조로 대화를 나누었다. 마음을 놓았음이 분명한데도 남편은 예상과는 달리 뒤로 움츠러드는 듯했다. 하지만 그러한 느낌은 접어 둔 채 나는 신이 나서 그에게 돈주머니를 열어 보라고 말했다. 주머니에는 기차 삯과 여분의 돈이 조금 들어 있을 따름이었다. 나는 무척 화가 났지만 모자 속에 둔 아편 튜브 두 개로 마음을 달랬다.
나는 중개인 역할을 할 중국인을 한 사람 고용했다. 내가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복경관화는 몇 마디에 불과했으므로, 그 사람이 구매자를 확보하는 역할을 했다. 우리 두 사람 모두 오랫동안 대화를 나눌 만큼 상대방의 언어를 잘 구사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즉시 내가 하려는 거래의 목적을 알아채고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도 이해했다.
그는 부모님과 조부모님, 형제들과 수많은 조카, 조카딸들이 함께 사는 한 친구의 집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 가족은 내가 가진 아편을 모두 샀다 그 짧은 순간에 나는 한 달동안 참기름 장사를 해서 벌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마음이 혹할 만큼 쉽게만 생각되는 일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국경을 또 한 번 넘을 계획을 꾸몄다. 남편이 이번에는 자기 차례라고 우겼다.
"여보, 정말 이 일을 하고 싶어서 그래요?"
내가 남편의 안전을 염려하며 물었다.
"아녀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는 더 잘 할 수 있고 말고."
남편이 거만한 태도로 뽐내며 말했다.
그가 자신의 명예를 되찾고 싶어함을 잘아는 터라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과 나는 문가에 서서 기차역 쪽으로 걸어가는 남편을 배웅했다. 바지와 저고리로 안감에 꿰매 넣은 금 때문에 남편의 몸무게는 한참이나 더 나가 보였다.
두 주가 지났고, 나는 아이들과 함께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걱정이 된 나는 그를 위험에 빠뜨린 나 자신을 원망했다. 먹고 싶지도 자고 싶지도 않았고 끔직하고 무시무시한 생각에 몰려 최악의 사태를 상상했다. 남편이 잡혀서 고문을 받고 있으면 어쩐다지? 강도가 아편을 노리고 남편을 죽였으면 어쩌지? 나는 철저한 외로움과 무기력함을 느꼈다. 두려움을 진정시켜 줄 만한 해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마침내 일본 헌병이 보낸 사람이 우리집으로 찾아와서 전갈을 전했다. 그 문서에는 남편이 체포되었으며 석방시키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적혀 있었다. 나는 모아 두었던 돈 거의 전부를 갖고 덕화와 함께 서둘러 남편을 찾아갔다. 덕화의 귀여운 얼굴을 보면 남편의 기분이 좀 나아질 것이었으므로. 우리 셋은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왔고 남편의 몸무게는 9킬로그램이나 빠져 있었다. 나중에 우리 두 사람은 남편은 돈을 관리 하는데 더 재능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단 생활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자 나는 머리를 쉴새 없이 굴리며 재산을 두 배, 세 배로 늘릴 더 안전하고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에 완벽한 방법이 떠올랐다. 정규 교육은 조금도 받지 못했지만, 나는 나 자신이 똑똑하며 사업에 타고난 수완이 있음을 깨달았다.
"용운이 아버지 우리 아편 도매를 한번 해봐요."
내가 용기 있게 선포했다.
나는 은밀한 연줄을 통해 중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일본인 제조업자로부터 많은 양의 아편을 직접 인수할 계획을 꾸몄다. 그것을 한국 상인에게 되팔면 소매가의 1퍼센트를 벌어들일 수 있을 터였다. 같은 민족끼리는 의사소통이 자유로웠으므로 그편이 훨씬 쉬웠다. 북경관화를 몰라서 사기를 당할까 봐 걱정을 필요도 없었다.
나는 매달 한 번씩 마을 전체를 몰락시킬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아편을 가지고 기차에 올랐다. 아래 부분에 아편을 넣은, 철로 된 점심 도시락으로 밀수를 감행했다. 아편위에 얇은 종이를 깔고, 그 위에는 밥과 생선과 불고기를 덮었다 내가 탄 수레가 수많은 헌병 초소와 검문소를 무사통과할 때마다 나는 그것이 기발한 착상이라고 생각했다.
집에 도착하고 나면 아편에서 생선 비린내와 마늘 냄새가 났다. 나는 그 냄새를 없애기 위해 아편 가루에 싸구려 향수를 뿌린다음 쇠로 된 커다란 물통 두 개에 그 가루를 펴서 말렸다. 그러한 작업이 끝나고 나면 긴 고무장갑을 끼고 넓적한 천을 동여매 코와 입을 막았다. 한 번에 너무 많은 백색 가루를 들이 마시면 바닥에 쓰러져 망각의 안개 속을 헤매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하지만 바닥에 떨어진 미세한 가루를 핥은 쥐들이 수십 마리끼리 밖으로 기어 나오곤 했다. 쥐들은 난폭해서 방안을 몇 차례 이리저리 쏘다니다 끝내는 지쳐 잠이 들곤 했다. 쥐들이 잠이 들면 나는 쇠로 된 납작한 냄비로 쥐를 때려잡았다. 사방의 벽과 신발, 그리고 머리카락 속을 포함해 쥐의 피가 튀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나는 나 자신은 물론 가족들에게도 결코 이 달콤한 독가루를 피우지 못하게 하리라고 재삼 다짐했다. 많은 이들이 이들의 부유함을 시기했으므로, 잠자고 있는 동안 우리 가족의 머리도 이 쥐들처럼 깨질지 몰라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아편 가루가 다 마르고 나면 비타민제와 설탕, 그리고 가끔은 밀가루를 섞어 넣기도 했다. 재산은 곧 두 배가 되었고, 우리 가족이 평생 쓰고도 남을 만큼의 돈을 벌어 들였다. 모든 틈과 구멍, 그리고 널판지 아래마다 돈이 넘쳐났다. 발밑과 머리 위, 그리고 잠자리 속에서도.
우리는 자정이 지난 시간에만 돈을 세며 가짜 돈과 진짜 돈을 가려냈다. 시간이 좀 지나자 가짜와 진짜는 쉽게 구분이 갔다. 가짜 돈은 더 두꺼운 종이를 사용했고, 오래 만지고 있으면 손에 잉크가 묻어났다. 진짜 돈은 보관해 두거나 믿을 만한 인편이 있을 때마다 평양으로 보냈다. 시누이와 가족들이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 또한 연로한 친정 부모님의 노후를 책임질 계획도 세웠다. 오빠가 두 분을 편안하게 모시리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부모님이 자주 염려되었다.
남편의 제안에 따라 우리는 덕화의 일본식 이름과 한국 이름으로 그 도시 주변의 여러 은행에 돈을 분산 예치 시켰다. 어린 소녀로는 덕화가 중국 전체에서 제일 돈이 많은 아이일 터였다. 그다음에는 친구들의 이름을 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방법은 손해가 컸다. 우리가 그러한 음모를 알아채기도 전에 이들이 자신의 명의로 된 계좌를 털어 달아나 버렸다. 또 어떤 때에는 생면부지의 사람이 은행으로 들어와 바른 이름을 댄 다음, 제대로 된 증빙 서류 하나 없이 우리 돈을 찾아 달아난 일도 있었다.
"우리한테서 돈을 훔쳐 갈 만큼 대담한 인간이라면, 그대로 주어 버립시다. 그래도 우리 가족이 아직까지는 제일 가는 부자니까요."
하지만 남편은 그러한 도둑질을 가볍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우리의 재산을 훔쳐 가는 사람들에게 그토록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혐오했다. 궁극적인 적은 경찰이었다. 나 자신과 가족을 위험에서 구하려면 신속한 조치를 취해야 했다.
돈이 우리를 이 같은 궁지에 몰아넣었다면 우리를 구해 줄 것 또한 다름 아닌 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말단 순사에서부터 군인, 그리고 정부 고위 관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을 매수했고, 조금이라도 매수할 필요가 있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든 돈을 내주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곧 일본 정부의 사적인 보호를 받게 되었다. 나와 내 가족은 안전했고, 사업은 나날이 번창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