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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이란 · 이라크 전쟁

99. 이란 · 이라크 전쟁

 

승자가 없는 전쟁(1980~ 1988)

 

이란 혁명 지도자 호메이니를 지지하고 있는 이란군들의 모습

 

2차 대전 이후 약 50년 동안 중동지역은 세계적 분쟁지역이 되어왔다. 정치 · 종교 · 민족적 갈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데다가 세계적 석유산지로서 강대국의 이해가 맞부딪치는 통에 그 지역에서 전쟁은 자주 발생했다. 그 가운데 이란 · 이라크 전쟁은 두 나라가 지역 패권을 놓고 싸운 각축전이었다. 이란은 페르시아 문화권을, 이라크는 아랍 문화권을 대표하는 국가이다.

전쟁의 직접적 발단은 이란이 1979년 혁명으로 혼란상태에 빠지고 급속도로 군사력 쇠퇴 현상을 보이자, 이라크의 지도자 사담 후세인이 그것을 호기로 삼고 이란을 침공한 데서 비롯되었다.

1975년 알제이 협정에서 양국 간 현안문제였던 샤트--아랍 수로 경계선을 이라크가 이란에게 유리하게 양보한 것은 군사력 열세 때문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그 수로에 대한 영유권을 되찾겠다는 것이었다. 나아가 후세인은 지역패권을 찾겠다는 야심을 실현시키고자 했다.

1980년 두 나라 국력을 비교하면 석유매장량은 비슷하나, 인구 · 영토 · 국민 총생산액 등에서 이란이 훨씬 앞섰다.

그러나 당시 군사력은 이라크 측에 기울어 있었다. 혁명 소용돌이 속에서 이란이 군대를 홀대한 데 비하여 이라크는 군비확장 정책을 강화시킨 결과였다. 육군 정규군의 경우 이란은 5년 전의 285,000명에서 150,000명으로 감축되어 있었고, 반면에 이라크는 100,000명에서 200,000명으로 배가되었다. 탱크 · 야포 · 항공기 등의 숫자는 양쪽이 엇비슷했으나, 크게 차이가 난 것은 가동률이었다. 이라크가 80%인데 비하여 이란은 50% 이하였다.

1980922일 이라크 공군은 이란 내 주요 공군기지에 대한 기습으로 전쟁을 개시했다. 6일전쟁에서 이스라엘 공군의 성공사례를 적용시켜 그들도 이란 공군을 공중 아닌 지상에서 모조리 파괴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라크 공군은 이스라엘군을 흉내낼 만한 수준이 못 되었다. 빤히 노출되어 있는 활주로도 제대로 맞추지 못할 만큼 그들의 폭격실력은 엉망이었다. 더구나 이란 공군기들은 2m 이상 두께의 특별 격납고와 콘크리트 방호벽으로 보호하고 있음으로써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침공 당일 이라크의 지상군 공격은 공군에 비해서는 훨씬 나았다. 1,300에 이르는 국경선상에서 몇 군데 돌파구를 찾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북부의 카슬에쉬린과 중앙의 메헤란을 돌파하고 남부의 석유 자원 지대인 후제스탄 지방을 침공하는 데 성공했다.

침공 일주일이 지난 928일 후세인은 일방적으로 전쟁 중단을 선언했다. 이미 영토상 목표를 획득했으므로 협상할 용의가 있다는 것이었다. 혼자서 전쟁을 개시하고 마음대로 전쟁을 끝내겠다고 한 것이다.

초전에 이란군은 패배했으나 결코 섬멸된 것은 아니었다. 이란은 협상 제의를 단호히 거절하고 장기전을 준비했다. 이후 전쟁은 8년을 끌며 여러 단계에 걸쳐 공방을 교환했다.

전쟁이 발발했을 때 세계 강대국들은 적극적 중재를 위하여 나서지 않았다. 미국 · 소련 · 중국 · 영국 · 프랑스 등은 각기 무기판매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전화(戰火)가 페르시아만으로 번지며 국제전화할 조짐을 보이자 1987년부터 유엔은 정전을 위한 중재에 나섰다. 결국 19888월 유엔이 내놓은 정전안을 수락하고 이란과 이라크는 서로를 겨눈 총부리를 내렸다.

이라크와 이란 어느 쪽도 승리하지 못하고 단지 실패와 엄청난 피해만을 낸 채 끝난 전쟁이었다. 양쪽은 합하여 약 100만 명 이상의 인명피해와 약 1조 달러 이상의 물적 피해를 입었다. 이후 양쪽은 석유 부유국에서 부채 많은 빚쟁이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전쟁은 지도자의 대전략이 적절하지 못하여 국가와 국민을 파국상태로 몰고 간 대표적 전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후세인은 과대망상증 환자였으며, 그가 제한전쟁과 단기전 개념으로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가정이었다. 군사력이 약간 우세하다고 하여 그것만으로 승리가 보장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후세인은 이란 국민들의 혁명정부에 대한 지지와 침략국에 대한 적대감과 전투의지를 너무 과소평가했었다.

이 전쟁은 가시적인 군사력만으로 상대의 전투력을 계산해서는 안 되며, 전쟁이란 시작하기보다 끝내기가 훨씬 어렵다는 진리를 거듭 일깨워준 전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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