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아프가니스탄 전쟁
소련군이 무자헤딘들에게 고전하다(1979년 ~ 1989년)

아프가니스탄 게릴라 무자헤딘들의 모습
1979년 소련이 침공해 일어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미 · 소 냉전시대에 소련이 치른 마지막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여러 가지로 베트남전에서 미국이 실패한 경우와 유사한 경험을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정학적으로 소련에게 아프가니스탄은 중동 및 인도양으로 진출하는 통로에 위치한 중요한 곳이어서 그들은 제정 러시아 시대 이래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하려 애써왔다. 한편 아프가니스탄은 때로는 소련에 의존하고 때로는 중립정책을 사용하면서 나라의 독립을 지켜 왔다.
1978년 4월 쿠데타로 집권한 타라키는 친소정권을 수립했다. 그러나 그는 혼란 정국을 안정시키지 못하고 반대세력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다. 서방측 지원 중단과 정치 및 경제 혼란은 국민 불안과 반정부 운동을 점증시키고 그에 따라 타라키 정권은 억압정책을 사용함으로써 악순환은 계속되었다.
9월 타라키를 살해하고 집권한 하피줄라 아민은 '아프가니스탄의 티토'를 자처하면서 소련의 내정간섭을 비난했다. 이때 소련은 아민 정권이 타라키 정권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데다가 만일 분위기가 돌변하여 극단적인 반소 이슬람교정권이 수립된다고 하면 그동안 그들이 아프가니스탄에다 투자한 노력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것을 우려하고 직접 무력행사에 나서게 되었다. 1956년 헝가리, 그리고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할 때와 거의 같은 동기였다.
12월 24일 저녁 소련군은 카불 공항에 공수부대를 투하하고 이어서 국경지역에서 6개 보병사단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토록 했다.
공수부대 가운데 KGB 요원들로 구성된 코만도 부대는 아프가니스탄 군복을 입고 침투했다. 그들은 아민을 살해하고 충성스런 친소주의자 카르말을 내세워 꼭두각시 정권을 수립토록 했다. 소련군에 동조하지 않는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에 대하여 모두 무장해제 시키고 반군에 대하여는 직접 소탕작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후 소련군은 미군이 베트남에서 게릴라들을 소탕하려다 실패한 것과 비슷한 전철을 밟게 되었다.
만 9년 4개월 동안 게릴라전에 말려든 소련군 규모는 가장 많은 병력을 투입했을 때는 135,000명에 이르고, 거기에 아프가니스탄 정규군 3만여 명이 가세하여 10만여 명의 반군을 상대로 하여 싸웠다.
소련군은 T-72 전차와 최신형 무장헬기 등을 사용했으나 원시적 장비를 사용하는 게릴라들을 소탕하는 데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게릴라들은 자신들을 '무자헤딘'이라고 불렀다. 이슬람의 자유전사(自由戰士)라는 의미였다. 무자헤딘들은 여러 개 세력으로 난립되어 있으나 종교적으로는 대체로 결속되어 있었다.
무자헤딘들은 공공시설을 파괴하고 정부 요인들과 비밀경찰조직인 KHAD의 끄나풀들을 살해했다. 그리고 소련군에 협력하는 자들에 대하여 테러를 가했다. 그들은 영국제와 중국제 소총을 휴대했으며, 기관총 · 박격포 · 대전차로켓 등을 보유했다. 미국 · 중국 · 파키스탄 등으로부터 받은 원조액수가 연간 6억 달러에 이르렀다. 사실상 그들에 대한 최대의 무기 공급원은 소련군과 정부군이었다. 그들이 보유한 무기의 약 80%가 적으로부터 탈취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무자헤딘의 가장 큰 강점은 전투의지가 대단히 높고 외세에 대항하여 싸우는 뚜렷한 명분이 있어 국민들로부터 큰 지지를 받았던 점이었다.
한편 소련군은 게릴라전과 산악전에 대한 경험과 준비부족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주로 유럽에서 정규군끼리 부딪치는 싸움에 맞추어 훈련을 받아온 소련군은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복잡한 전투 환경에서 요구되는 임기응변 능력과 창의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
전투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사기가 떨어진 소련군 병사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끝없는 게릴라전에 대한 불평불만이 만연되고 전투공포증 또는 알코올 중독환자가 늘어만 갔다. 또한 무기와 탄약을 팔아 마약을 구입하는 자들도 있었으며, 마약중독자가 본국에 귀국하여 범죄소굴에 빠지는 등 사회문제까지 일으켰다.
소련은 결국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은 끝이 없으며 승리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1988년에는 철군의 길을 모색했다. 아무리 현대무기로 무장된 군대도 국민 지지를 받지 못하는 편에 서서 대게릴라전을 수행해서는 승리할 수 없었던 것이다.
1988년 4월 15일 제네바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소련군은 그해 5월부터 이듬해 2월 15일까지 단계적으로 철군을 함으로써 9년 동안 국력을 낭비하고 체면만 손상시킨 소모전을 종식시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