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욤 키푸르 전쟁
아랍과 이스라엘 간 전쟁(1973년)

이집트 차량들이 부교를 이용하여 수에즈 운하를 건너고 있다.
아랍과 이스라엘은 한 전쟁이 끝나면 곧 다음 전쟁을 준비함으로써 그들의 역사는 전쟁과 전쟁으로 이어졌다. 6일전쟁 후 아랍인들은 그들이 당한 굴욕을 언젠가 되갚겠다는 복수심을 달구며 지냈다.
나세르 사망 후에 이집트 대통령으로 선출된 사다트(Anwar Sadat)는 온건주의자로서 중동 평화 정착을 위하여 나름대로 노력했다. 그러나 뚜렷한 결실을 거두지 못하던 차에 이스라엘이 시나이반도에서 군을 철수시키지 않자 전쟁의 길을 택하게 되었다.
이집트는 과거 전쟁에서 드러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대대적으로 군을 개혁했다. 사회계층에 따라 장교와 사병을 구분한 과거의 방식을 버림으로써 군 내부에 존재하던 위화감을 제거했다. 6일전쟁의 교훈을 살려 수도 카이로 가까이 방공 미사일 체제를 대폭 강화하고 전차전에 대비하여 전차뿐만 아니라 대전차화기를 보강했다.
또한 수에즈 운하를 쉽게 도하할 수 있는 신형 부교와 장비를 갖추고 각종 훈련, 즉 부교 설치, 도하, 요새 파괴 훈련 등을 쉴 새 없이 반복했다. 가장 이색적인 훈련은 이스라엘이 운하 동쪽에 쌓아놓은 모래방벽을 뚫기 위한 것으로서, 80여 개의 공병부대는 훈련장에 유사한 모래방벽을 쌓아놓고 매일 두 차례에 걸쳐 고압력 펌프로 큰 구멍을 뚫는 연습을 반복했다.
6일전쟁 후 이스라엘은 점령지 시나이 반도를 확실히 장악하기 위하여 1968년 참모총장 바레브(chaim Bar-Lev)가 운하 동쪽에 모래방벽을 설치했는데, 이른바 '바레브 선'의 높은 곳은 24m에 달했다. 이스라엘은 바레브 선과 요새화한 골란 고원을 믿고 아랍 측의 전쟁준비와 위협에 대하여 대체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이는 그동안 세 차례의 큰 승리로 인한 자신들의 능력에 대한 과신과 아랍인들에 대한 멸시에서 비롯된 분위기였다. '약한 아랍군'이 먼저 공격할 리 없고, 공격해오더라도 별로 문제될 게 없다는 식이었다.
반면에 이집트와 시리아는 이번만큼은 자기들이 선제기습공격을 성공시켜 실지를 회복하겠다고 단단히 별렀다. 양국 정부는 10월 6일 동시에 공격을 개시하기로 합의했다. 이 날은 우연스럽게도 1350년 전인 623년 그 날 무함마드가 메카에 진입하여 승리하고 이슬람교를 펼치기 시작한 날이다. 또한 그 날은 유태인들에게도 욤 키푸르 일(성스러운 속죄일)로서 많은 군인들이 부대를 떠나 있기에 기습을 달성하기 좋은 날로 간주되었다.
공격시간을 정하는 데는 이집트와 시리아의 이해가 엇갈렸다. 시리아는 태양을 등지고 공격할 수 있는 아침 시간을, 같은 이유로 이집트는 석양을 희망했다. 결국 서로 간의 절충점을 찾아 14시 5분으로 정했다.
계획된 시간에 차질 없이 시나이와 골란 고원 양 전선에서 일제히 공격을 개시한 아랍군은 초기에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다. 그들은 요새화된 바레브 선과 골란 고원의 방어선을 쉽게 돌파했다.
이스라엘은 우선 기습을 당한 사실에 놀랐고, 그 다음은 아랍군의 진격속도와 전투능력에 당황했다. 아랍군이 과거와 달리 철저한 준비를 했음을 금방 느낄 수 있었다. 마지노 선이라고 자랑하던 바레브 선과 골란 고원이 여지없이 무너진 데 대하여 이스라엘군은 충격을 받았다. 각각을 수비하고 있던 1개 여단과 2개 여단 병력이 10배 이상의 적 병력으로부터 기습공격을 받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인들은 저력이 있었다. 그들은 초전의 패배로 인한 위기를 타개하고자 모든 노력을 다했으며, 결국은 전세를 역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다얀 국방상과 엘라자르 참모총장은 이스라엘 심장부에 가까운 골란 전선의 위협을 보다 심각하게 판단하고 그곳에 우선적으로 병력을 집중했다. 전략적으로도 군사력이 약한 시리아군과 먼저 싸우고 그런 다음에 이집트를 상대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이스라엘군은 7일부터 11일까지 맹공을 퍼부어 시리아군에 대한 반격에 성공했다. 시리아군은 골란 고원에 800여 대 이상의 전차를 버리고 철수했다. 그 뒤 시나이 전선을 보강한 이스라엘군은 16일 새벽에 운하를 도하하여 수에즈 시까지 진격함으로써 초전의 패배를 모두 만회하는 데 성공했다.
20일간 전투를 벌이고 휴전에 이른 이 전쟁의 결과는 수에즈 운하 동안과 골란 고원에 형성된 휴전선상에 유엔군이 주둔하는 것으로서 평온을 찾았다. 아랍 측은 초전 기습에 성공했지만 실지회복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실패했다. 또한 군사적으로는 많은 병력과 장비를 상실함으로써 엄청난 손해를 보았다.
아랍 측은 전투력이 향상되었지만 이스라엘군을 능가하지 못했으며, 전투의지와 대담성에 있어서 생존을 걸고 싸우는 이스라엘군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러나 이 전쟁을 통하여 아랍국들은 그들도 협력하여 최선을 다하여 싸웠으며, 과거처럼 굴욕적인 패배를 당하지 않았다는 데서 오히려 만족하고 민족적인 긍지를 회복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