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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6일 전쟁

94. 6일 전쟁

 

이스라엘의 전격전 승리(1967)

 

승리 후 베들레헴 거리를 걷고 있는 이스라엘 국방상 다얀

 

이스라엘은 독립전쟁(1948~49)과 수에즈 전쟁(1956) 같은 큰 전쟁에서 승리했으나 그렇다고 결코 평화를 보장받은 것은 아니었다. 아랍국들은 자기들 땅에 새로 들어선 유태인 국가의 존재를 인정하려 하지 않고 언젠가는 군사적 패배를 만회하리라고 별렀다.

수에즈 전쟁 후 이스라엘과 아랍국들은 아슬아슬하고 불안한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1967년 이집트 대통령 나세르가 시나이 반도에 주둔한 유엔군을 내몰아내고 일방적으로 티란 해협을 봉쇄한 다음에 이스라엘 선박의 통과를 금지시켰다. 이로써 두 나라는 다시 전쟁을 맞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이번에도 '전쟁이 불가피하다면 상대가 공격하기 전에 먼저 공격한다'는 예방전쟁 개념의 작전계획을 세웠다.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는 이집트 · 요르단 · 시리아를 차례로 공격하되, 승리의 관건은 가장 중요한 목표인 이집트군을 격파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이스라엘은 이 전쟁에서 196765일부터 단 6일 만에 세 나라 군대를 차례로 격파하고 대승을 거둠으로써 '6일 전쟁'이란 이름의 신화를 남겼다. 그런데 6일 가운데서도 첫날 공격 개시 3시간 동안의 기습에서 승리는 이미 결정된 거나 다름없었다.

이스라엘군은 65일 월요일 아침 출근 시간에 이집트 비행장들에 대한 공습으로 공격을 개시했다. 이집트군이 조기 경보장치 작동을 잠깐 끄고 조종사들이 전혀 긴장하지 않은 상태에 있던 시간이었다.

나일강 안개가 막 걷히는 시간에 이스라엘 공군기들은 이집트 상공에 나타나서 이집트 공군기지를 무자비하게 폭격했다. 이집트 공군기들은 숫자가 더 많으면서도 공중전을 전개하기 전에 이미 대부분이 지상에서 파괴되고 말았다.

이집트가 23개 레이더 기지를 갖고 있고 지중해에는 미국과 소련해군들이 있었는데도 이스라엘 공군기들이 전혀 노출되지 않고 카이로 상공에 나타난 사실에 대해 사람들은 레이더 망을 무력화시키는 특수무기를 개발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적은 무기가 아닌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 이룬 것이었다. 공군사령관 호드 준장은 기습으로 2시간 내에 적 공군력을 분쇄하려는 도박에 대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감을 갖고 작전을 지휘했고, 정예 조종사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작전을 수행했던 것이다. 그들은 레이더망을 피하기 위해 지중해로 멀리 우회했으며, 해상 50m 저공비행을 했다.

이스라엘군은 잘 선정된 11개 비행기지 활주로를 우선적으로 폭파하고, 그 뒤 항공기와 기타 시설물들을 차례로 폭파했다. 각 목표에 대하여 16대의 항공기를 할당하여 지속적인 폭격을 퍼부었는데, 1차 공격을 마치고 복귀하여 다시 출격하는 데는 1시간밖에 걸리지 많았다. 이집트군이 대항해 본 무기로는 SAM-2 미사일이 있었지만, 그것도 이스라엘군이 미사일 기지들을 찾아내 폭격을 함으로써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스라엘 공군은 3시간 만에 이집트 공군을 완전 궤멸시키고 그 후 마찬가지 방법으로 요르단과 시리아 공군기지를 파괴함으로써 하루 만에 제공권을 완벽히 장악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지상군이 진격하여 승리를 거두는 일인데, 이스라엘 지상군은 공군 못지않게 잘 싸웠다. 그들이 보유한 전차는 이집트가 보유한 소련제 전차보다 성능이 뒤떨어졌으나 훈련으로 그것을 극복했으며 운용 및 정비기술에서는 훨씬 앞서 있었다.

더구나 이집트군은 장교와 병사들 간에 정치 · 사회 · 교육적 배경이 달라서 서로 융화를 이루지 못했다. 이집트 군대의 상하 간에 깔린 깊은 불신 덕분에 이스라엘은 상대적 이점을 누렸다.

역전의 전차부대 지휘관인 탈(Israel Tal) · 샤론(Ariel Sharon) · 요페(Avraham Yoffe) 3총사는 총 600여 대의 전차를 이끌고 시나이반도를 누볐다. 이스라엘 지상군은 14일간이나 무선 교신을 일절 중단했다가 65일 새벽 공격 명령이 하달되면서야 무선을 개방했다. 그들은 그날 밤 공수부대까지 투입하여 과감한 공격을 편 끝에 3일 만에 시나이 반도를 모두 점령하고 수에즈 운하에 이르렀다. 그날 저녁 나세르는 항복했다. 요르단은 그 전날에 이미 항복했고 골란 고원에서 시리아군도 결국 유엔이 제시한 휴전안에 동의했다.

전쟁 결과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 수에즈 운하의 동안, 골란 고원 등을 점령함으로써 본래 땅의 거의 6배에 달하는 새로운 땅을 획득했다. 그 가운데 일부는 나중에 내놓게 되지만, 그러고도 국경지역에 거대한 완충지역을 확보함으로써 안전을 보장받게 되었다.

병력 규모와 무기에서 결코 우세하지 않은 이스라엘 군대가 남긴 6일전쟁의 신화에 대하여 프랑스의 유명한 전략 이론가 앙드르 보프르 장군은 "적극적 공세 행동과 기습, 결단과 속도, 항공력, 지휘관들의 우수한 작전 능력, 병참지원 체계, 그리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신전력에 의한 승리"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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