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핵무기와 제한전쟁
핵 시대의 평화와 불안(1945년 ~)

히로시마 원폭 투하의 순간
냉전시대에 미국과 소련은 두 나라가 초강대국이어서 두 나라 간의 전쟁을 억제해온 것은 아니었다. 다른 시대였다면 미국과 소련 체제의 엄청난 차이와 대립 및 불신은 큰 전쟁을 일으키고도 남았을 것이다. 두 국가 간 또는 양대 진영 간에 큰 전쟁을 막는 데 크게 기여해온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양국이 갖고 있는 가공스런 핵무기였다.
2차대전 중 독일 · 영국 · 미국 과학자들은 각국이 치열하게 무기개발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핵폭탄 제조를 위한 프로젝트를 모두 비밀리에 진행시켰다. 그 가운데서 미국인들이 최초로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은 그것을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처음으로 사용하고, 두 번째 폭탄을 3일 후 나가사키에 다시 투하했다. 이에 일본은 항복을 하고 2차대전은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이제 미래의 전쟁에서 핵무기가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리하여 강대국들은 모두 다 핵무기 개발 경쟁에 뛰어들었으며, 특히 미국과 소련은 서로 상대방의 새로운 발명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엄청난 예산과 노력을 경주했다.
소련은 미국보다 4년 뒤 1949년에 원폭을 보유하게 되었다. 과학자들은 원자폭탄보다도 더 강력한 것을 개발하려는 노력을 계속해 미국은 1952년에, 그리고 소련은 1953년에 각각 수소폭탄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영국 · 프랑스 · 중국 등이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고 그밖에 잠재적 핵보유국은 계속 늘어났다. 가상 적국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데 우리는 가만있어야 되겠는가? 바로 이 논리에 의해 각국은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펼쳐왔다.
한편, 이제 기존 핵보유국들은 더 이상 핵무기 확산을 방치하면 핵전의 위험성은 더욱 증대되고 온 지구가 핵전으로 멸망할지도 모르겠다는 걱정들을 떨칠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핵보유국들에게는 점차 그 숫자를 감축시켜나가도록 하고 비보유국들에게는 핵개발을 금지시키기 위한 국제적 노력을 펼치고 있다.
핵시대의 세계는 핵 보유국가와 보유하지 않은 국가 간에 존재하는 갈등과 불신을 해결하고 동시에 핵 감축을 달성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다행히도 핵보유국들은 지금까지 핵무기를 군사적으로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핵전을 억제하는 데 성공했다.
핵무기는 너무 가공스런 파괴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군사적 가치를 상실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를 사용하여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지구를 파괴시킬 정도가 되는 것은 전쟁에서 합리적 무기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중간 크기의 수소폭탄, 즉 3.5메가톤 하나면 2차대전 전 기간 중에 연합군이 유럽과 태평양 지역에 투하한 총 폭탄의 무게인 350만 톤에 해당하는 폭발력을 지닌다. 만일 이 폭탄이 대도시 중간에 투하되었다고 상상해보자. 깊이 100m 이상, 지름 1㎞ 이상의 구덩이가 생기고, 이어 치솟는 불덩어리의 지름은 6.4㎞에 이르고 불덩어리 속의 온도는 섭씨 4,400도가 넘을 것이다. 따라서 그 지역 안의 모든 것은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다 녹아버리고 약 30㎞ 거리 밖까지 화재에 휩싸여 황폐화되며 수백만 명의 사상자를 내게 될 것이다. 또한 낙진이 바람을 타고 주위로 퍼지게 되면 추가적인 사상자의 숫자가 엄청나게 될 것이다.
이러한 파멸을 초래하는 핵무기에 대한 공포에도 불구하고 핵국가들은 다른 핵국가가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핵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미국과 소련을 비롯한 몇몇 나라들은 핵무기를 갖고 있으면서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 최고의 자제력을 보임으로써 지금까지 핵전을 예방하는 데 성공해왔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초강대국 간의 직접적인 무력충돌이 없는 대신에 세계 곳곳에서는 핵시대 이전과 전혀 다름없이 재래식 무기를 사용하는 지역분쟁이 계속되어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핵시대의 제한전쟁'을 경험해왔다. 그러한 지역분쟁은 강대국들 의사와 관계없이 발발하기도 하지만, 통상 교전국들은 강대국의 이해관계와 복잡하게 얽혀서 싸워왔으며, 대부분의 경우에는 강대국의 정치적 또는 군사적 개입에 의해 전쟁 종결을 이루곤 했다. 핵시대에 제한전쟁 발발을 방지하지 못했으나, 강대국들은 그러한 전쟁이 잘못되어 세계대전으로 확대되거나 또는 핵전으로 치닫는 것을 예방하는 데는 성공해왔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