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철의 장막과 냉전
미 · 소 양 진영의 냉전시대 돌입(1945년 ~ 1989년)

2차대전 때 스탈린의 의중을 꿰뚫어본 처칠은 루스벨트에게 여러 차례 발칸 반도와 동부 유럽을 염두에 두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루스벨트는 처칠의 제의를 묵살하고 오직 서부 유럽에 관심을 두었으며,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독일 심장부를 향해 진격할 때도 동쪽에서부터 진격해오는 소련군과의 극적인 베를린 상봉을 연출하기 위해 속도를 조절했다.
루스벨트는 1945년 4월 사망하고, 5월 8일 독일과의 전쟁이 끝날 당시의 미국 대통령은 트루먼이었다. 처칠은 협상 테이블에서 소련과 대치한 서부연합국의 상황에 대해 트루먼 대통령에게 5월 12일 전보를 보냈다.
“서부 연합국 앞에는 '철의 장막'이 내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장막 뒤에서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철의 장막’이란 말은 이때 처음 등장했다. 공개적으로 그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1946년 3월 5일 처칠이 미국을 방문해 연설했을 때였다.
“발트해의 슈체친에서부터 아드리아해의 트리에스테까지 '철의 장막'이 쳐져 있다.”
연합국은 힘을 합쳐 1945년 히틀러와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일으킨 2차대전을 종식시켰으나, 곧바로 세계는 '철의 장막'을 경계로 하여 둘로 나뉘어졌다. 그리하여 소련이 해체된 1989년까지 세계에서 발생한 대부분의 전쟁은 공산주의와 자유주의(또는 자본주의)의 양대 체제 간의 긴장과 대립에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비롯된 것이다.
1945년 가을부터 사람들은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을 중심으로 하는 양진영 간에 새로 팽배하기 시작한 긴장 상태를 표현하면서 '냉전(Cold War)'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우리는 그 후 1989년까지를 '냉전시대'라고 흔히 불러왔다.
엄격한 의미에서 전쟁은 무력 충돌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군사적으로 '냉전'이란 용어는 성립할 수가 없다. 다만 인간들의 언어문화가 경쟁 · 대립 · 긴장 등을 강조해 ‘경제전쟁’, ‘교육전쟁’ ‘정보전쟁’, ‘과학전쟁’ 등이라고 표현하면서 ‘냉전’이란 용어도 사용하게 된 것이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냉전'은 전쟁이 아닌 평화다. 그것은 평화시대에 사용되는 말이며 결코 전시에 쓰이는 말이 아니다.
주로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냉전은 주도되었는데, 그들은 전쟁을 하지 않고도 목적을 달성하는 선전 · 선동 · 모략 · 비방 등 이념전과 심리전을 전개하는 데 있어서 특별한 솜씨를 보이고 적대 국가들을 괴롭혀왔다. 그들은 파업 · 폭동 · 혁명 · 정부전복 등을 통해 공산정권과 위성국을 수립하는 데 열중하며, 냉전시대에 공산주의 전성기를 누렸다.
냉전시대에 무력을 사용하는 전통적인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는가?
냉전시대를 이끌어온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 그리고 양 진영에 속한 주요 동맹국간에는 전쟁이 없었다. 2차대전 이후 강대국들은 상호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고 전쟁을 예방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2차대전과 같은 대규모의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 뿐 작은 국가들 간에, 또는 작은 국가와 큰 국가 간에, 또는 큰 국가가 배후에서 조종하거나 지원하는 등 다양한 성격과 방법에 의한 전쟁은 수없이 발생했다.
양대 진영에 속하지 않는 소위 제3세계 내 작은 국가들은 과거 유럽 제국들에 대해 식민지 해방전쟁을 통해 독립을 찾았다. 새로 독립한 국가들 간에는 국경분쟁이 발생하고 또한 신생국들은 엄청난 내전을 겪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 두 초강대국은 거의 빠짐없이 관여하고 과거 제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도 관여한 경우가 많았다. 작은 국가들 간 전쟁은 흔히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복잡하게 전개되었다. 그들이 개입함으로써 협상에 이르기도 하고 때로는 단시간에 끝나지 않고 장기간으로 흐르기도 했다. 강대국들은 군사력을 직접 파견해 보호국을 돕기도 했으나, 일반적으로는 자금조달이나 무기 지원으로 도와주며, 자기들의 이데올로기와 체제를 지키도록 하는 대리전을 치르게 했다. 또 어떤 경우는 무기를 수출하고 돈을 벌어들이는 데만 관심을 쏟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