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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대서양 해전

81. 대서양 해전

 

독일의 잠수함 작전(1941)

 

독일군 잠수함 U-565

 

히틀러는 1940년 영국에 대한 공중전을 시작함과 동시에 영국에 대한 전면 해안봉쇄를 선포했다. 그러나 독일 해군력은 봉쇄망을 유지할 만큼 강하지도 않았고 영국해협을 장악하지도 못했다.

대체로 바다에서 독일의 공격수단은 잠수함 · 전함 · 폭격기 등 세 가지였는데, 가장 위력적인 것은 잠수함 공격이었다.

해군력 구축을 소홀히 했던 독일은 소규모의 해전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초기에 그들은 잠수함보다는 전함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19415월 대서양 해전에 처녀 출전한 전함 비스마르크(Bismarck) 호가 격침된 데다가 독일 상선들의 항해가 어려워지고 무역에서 심각한 타격을 받자 잠수함 공격을 대대적으로 펼치기 시작했다.

전 전쟁 기간 중 연합국과 중립국 선박이 입은 손실은 독일 U-보트 공격에 의한 것이 수상 함정 공격으로 입은 것보다 약 두 배였다. 특히 1942년도에 U-보트 공격으로 인한 손실은 절정에 이르렀으며, 전 기간 손실의 1/3에 해당했다. 전체적으로 U-보트에 의한 손실은 1차대전 때보다 300만 톤이 많은 1,400만 톤이었다.

독일은 잠수함 작전을 대부분은 대서양 항로에서 전개했지만, 인도양 · 지중해 · 아르항겔스크 항로 등에서도 가끔 잠수함 공격을 가했다. 특히 아르항겔스크 항로에서 선박이 격침되는 경우에는 얼음조각으로 말미암아 선원들이 거의 구출되지 못했다.

초기에 독일이 잠수함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것처럼 영국해군은 이미 1차대전 때 사용한 바 있는 호송선단의 가치를 망각했다. 그리하여 호송선단을 강화하지 못하고 너무 적은 숫자의 호위함들에 의존한 관계로 이리떼처럼 공격하는 독일 잠수함들에 대해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1942년 가을 이후부터 연합군은 효과적인 대 잠수함 방책을 찾아내고 해전을 유리하게 수행하기 시작했다. 영국군은 레이더를 통해 잠수함 위치를 탐지한 다음 공군력을 이용해 해군과 공군이 합동작전을 전개함으로써 잠수함과 독일함정들을 격침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찰 항공기의 활발한 활동으로 잠수함들은 바다 속 깊이 잠겨 있어야 했다.

미국이 참전했을 때 독일 잠수함들은 미국 연안에 무방비 상태의 선박들을 마음 놓고 공격했다. 그러나 미국 지상에서부터 날아오는 항공기의 공격을 받으면서부터는 대서양 중앙으로 후퇴하고, 점차 해공군력의 열세를 느끼기 시작하면서 독일은 잠수함을 노르웨이와 북아프리카 근해로 불러들여 방어에 치중했다.

연합군은 194211월 가장 많은 선박 손실을 입었으나, 그 달을 분기점으로 하여 새로 생산되는 선박 숫자가 손실되는 숫자를 초월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생산속도는 연합군 호송선단을 대폭 강화시켰다. 한편 독일의 경우에는 대조적으로 19435월중 U-보트가 41척 격침된 데 비해 26척밖에 생산하지 못했다.

19441월 히틀러는 레더(Erich Raeder) 제독을 보직해임하고 잠수함 전문가인 되니츠(Karl Doenitz) 제독을 해군총사령관에 임명했다. 되니츠는 잠수함 전술을 발전시키고 1944년에는 어느 해보다 많은 U-보트를 생산해냈지만 이미 전세가 기울어진 뒤였다. 상대적으로 연합군은 훨씬 더 많은 선박과 우세한 해군력 및 공군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연합군은 각 호송선단이 잠수함을 탐지하고 추격하는 데 충분한 호위함들을 확보했다. 또한 수십 척의 소형 항공모함이 호송선단에 가세함으로써 자체 공군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독일 잠수함은 연합군 호위함 · 폭격기 · 기뢰 등에 의해 격침되고, 일부는 연합군 잠수함 공격을 받고 격침되기도 했다.

1차 대전 때와 마찬가지로 2차 대전에서 독일 잠수함전은 연합국 상선을 파괴하고 연합국 전쟁 수행 능력에 큰 타격을 주었다. 그러나 연합군 후방에서 특히 미국에서 무서운 속도로 생산해내는 선박 생산량과 호송선단을 당하지 못해 결국 또다시 패배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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