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일본의 진주만 기습
미 태평양함대 무력화(1941년)

공습을 받고 불타오르고 있는 미 전함들
독일의 전격전 군대가 프랑스를 함락시키고 서유럽 일대를 석권하던 틈을 이용해, 일본은 1941년 7월 인도차이나반도를 점령했다.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들이 대 일본 경제제재 조치를 취하자, 일본은 그에 맞서 전쟁을 일으켰던 것이다.
1941년 후반기 일본은 아시아에서 서양세력들을 내쫓기 좋은 여건하에 있었다. 독일에 점령된 네덜란드는 무력하고 영국은 아시아에 주의를 돌릴 여력이 없었다. 영국해군의 활동 지역은 너무 넓었고, 더욱이 미 해군도 상당수의 배를 태평양에서 대서양으로 옮긴 상태에 있었다.
기계화전의 원동력인 연료 부족을 늘 걱정해온 일본 정부는 이 기회를 이용해 1차적으로 무방비 상태에 놓인 동남아시아 자원지대를 확보하고자 했다.
1931~41년 중 일본해군은 함대 수를 두 배로 늘리고 낡은 배를 현대화했다. 그리하여 전함 10척, 항공모함 10척, 순양함 38척, 구축함 112척, 그리고 잠수함 65척을 보유하게 되었다. 함정들은 서양 열강들과 비교해 손색이 없고 항공모함은 전투기와 폭격기 70여 대를 실을 수 있었다. 육군은 51개 사단을 보유했다. 정규군 총 병력 약 75만 명이었다. 공군이 별도로 독립되어 있지는 않았으나, 육군과 해군은 각각 1,500대와 3,300대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일본군은 중국에서 귀중한 전투경험을 쌓아왔으며 전장에서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는 그들의 군국주의적인 희생정신은 가장 큰 강점이었다.
침공을 지연할 경우에 전쟁비축물자가 점차 고갈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조기 개전을 주장한 육군상 도조 히데키가 10월 16일 수상에 부임했다. 드디어 일본 정부는 전쟁 개시를 결의하고 12월 2일 전군에 공격명령을 하달했다. 일본의 계획은 전략적 목표들을 신속히 강타해 그것들을 확보한 다음에는 평화협상을 추진해 전쟁을 끝낸다는 것이었다.
1941년 12월 7일(일본시간 12월 8일) 일본은 선전포고 없이 진주만과 필리핀 · 말레이반도를 동시에 공격했다. 진주만을 공격한 목적은 결코 그곳을 점령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으며, 다만 미 태평양함대를 무력화시킴으로써 제한된 시간 내에 동남아시아 일대를 쉽게 장악하기 위해서였다.
진주만의 미 태평양함대는 전혀 예상치 못하고 있다가 완벽한 기습공격을 당했다. 총 450대의 항공기를 실은 6척의 일본 항공모함은 감쪽같이 하와이 가까이에 접근해 진주만을 공습, 한나절도 못되어 태평양함대를 박살냈다. 정박해 있던 7척의 미국 전함 가운데 5척이 격침되고, 200여 대의 항공기가 지상에서 파괴되었다.
맥아더 장군이 있었던 필리핀에서도 공습을 받고 미 해군기지가 크게 파괴되어 약 절반가량의 항공기 손실을 입었다. 그런가 하면 싱가포르에서 영국군도 공습을 받고 삽시간에 공군력이 초토화되고, 반도 근해에서 두 전함이 격침되었다. 그밖에 괌, 웨이크 도, 홍콩 등에서 연합군 기지들이 잇따라 파괴되었다.
단숨에 연합군 해군력을 격파한 일본은 그들이 바라는 대로 말레이 · 필리핀 ·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에 상륙작전을 실시하고 그곳들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2월 15일 싱가포르에서 영국군 수비대는 항복하고, 4월 9일 필리핀의 바타안 반도에서 저항했던 미군 수비대도 항복했으며, 3월 8일 인도네시아도 완전히 점령되었다.
세계 곳곳에 분산되어 있는 미국과 영국 해군력을 전부 격멸한 것은 아니지만, 태평양에서 일본군은 침공 후 약 5개월 동안 최강으로 군림했다. 그들은 적 전함 5척, 항공모함 1척, 순양함 2척, 구축함 7척을 격침시켰고, 그들 군함은 연합군으로부터 단 한 척의 격침은커녕 손상조차 입지 않음으로써 해전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다. 육전에서도 약 25만 명의 연합군 포로(영미군보다 그들 지휘를 받은 아시아인이 훨씬 많음)를 획득했다. 일본은 1억이 넘는 인구를 갖는 점령지를 지배했다. 이와 같이 엄청난 결과를 얻는 데 지불된 대가는 15,000명의 희생에 불과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에서 그들이 노린 목표를 차지하는 데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점령지역을 계속 확보할 수 있는가, 과연 그들이 계산한 대로 협상으로 전쟁을 조기에 끝낼 수 있는가였다. 일으키는 것보다 끝내기가 훨씬 어려운 것이 전쟁의 속성이다. 미국이나 영국과 같이 잠재력이 강한 나라가 초기의 패배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정치적 타협에 쉽게 응해주리라고 계산한 것은 일본정부의 중대한 오판이었다. 연합군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패배를 만회해야 한다는 방침을 결의하고 반격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태평양전쟁은 결코 조기에 끝날 수 없는 전쟁으로 확대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