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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영국 전투

77. 영국 전투

 

레이더의 위력 과시(1940)

 

전투기를 향해 달려가는 영국공군 조종사들

영국전쟁은 히틀러의 최우선 과제였다.

 

히틀러가 벨기에 · 네덜란드 · 룩셈부르크 등 세 중립국을 침공한 510일 바로 그날, 영국에서는 체임벌린이 실각하고 후임 수상에 윈스턴 처칠이 취임했다. 처칠은 1케르크 재앙 이후 영국인들이 한데 뭉치고 투지를 갖도록 한 위대한 지도자이자 대웅변가였다.

 

우리는 좌절하지도 패배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는 끝까지 나아갈 것이다. 우리는 프랑스에서, 바다에서, 공중에서 싸울 것이고···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영국을 지킬 것이다. 우리는 해안에서, 상륙지에서, 들판과 도시에서, 산에서 싸울 것이며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노르웨이로부터 프랑스까지 서부 유럽을 점령한 히틀러는 72일 군 수뇌부에 영국 침공계획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독일은 영국 해안에서 대규모 상륙작전을 전개하기에 앞서 제해권과 제공권을 장악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병력과 물자가 영국해협을 건널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영국해군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독일은 먼저 우세한 공군에 의한 공중전으로 승리를 거두고자 했다.

독일이 작전 가능한 항공기 2,000여 대를 보유하고 있었던 데 비해 영국 항공기는 그 반도 못 미치는 900대였다. 영국은 1,700문의 고사포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것으로 전 해안선과 전국을 지킬 수는 없었다. 독일은 우세한 항공력을 이용해 집중공격을 가할 장소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항공기는 아직 취약한 점들이 많았고 폭격 방법도 아직 실험단계에 있었다. 독일군 폭격기는 대부분 1~2톤 정도의 폭탄을 탑재하는 쌍발 비행기였으며, 폴란드와 프랑스에서의 실전경험으로 적 전투기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영국 전투기 허리케인(Hurricane)과 스핏파이어(Spitfire)는 독일 전투기 메서슈미트(Messerschmitt)보다 속도는 약간 느리지만 작전행동 능력은 더 나았다. 독일 폭격기는 느리고 방호능력이 뒤떨어져서 전투기의 엄호를 받아야 하는데, 바로 이 점이 독일공군의 큰 약점이었다. 한편 영국공군의 확실한 이점은 레이더 경보망을 통하여 적 항공기 출현을 미리 탐지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1930년대에 왓슨-와트(R. A. Watson-Watt) 등 영국 과학자들에 의해 개발되기 시작한 레이더는 처음으로 전장에서 이용되고 공중 방어전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독일공군 사령관 괴링(Hermann Goering)에게는 1케르크 철수작전을 막지 못해 히틀러로부터 들었던 질책을 만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 그러나 다우딩(Hugh Dowding) 휘하의 영국군 전투기 사령부는 레이더 · 전투기 · 탐조등 · 고사포 등의 운영체계를 원활히 유지하면서 독일군 공격에 말려들지 않았다.

813일 제1단계 작전을 개시한 독일 폭격기는 전투기의 엄호를 받으면서 주로 영국해안 표적들을 폭격했다. 16~18일 공중전에서 독일군은 영국군이 95대를 잃은 데 비해 236대의 항공기를 상실했다. 영국공군은 항공기가 격추되어도 낙하산으로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어 반드시 조종사까지 잃지는 않았으며, 또한 후방에서 항공기 생산에 박차를 가해 손실을 보충할 수 있었다.

824일부터 96일까지의 제2단계에서 독일군은 런던 부근의 전투기 기지와 보급시설들을 집중 폭격했다. 그러나 항공기 손실은 286:380대로서 역시 영국군보다 더 컸다.

독일군은 제3단계에서는 공격 방향을 런던으로 돌렸다. 히틀러는 영국공군의 베를린 공습에 대해 보복하고자 '멸종작전'이란 말을 쓰면서 런던에 대한 맹폭을 지시했다. 그들은 엄청난 양의 폭탄을 주야로 퍼부어 도시를 크게 파괴시켰다. 그러나 공중전에서 독일은 영국보다 훨씬 많은 항공기를 상실하게 됨으로써 이제 더 이상 손실을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히틀러는 영국에 대한 지상군 침공을 10월로 미루었다가 다시 이듬해 봄으로 연기한다고 했다가는 완전히 취소해버렸다. 전쟁에서 처음으로 실패를 맛본 것이다. 그는 공중전에서 지상의 전격전과 같은 수준의 전술을 발전시키지 못했음을 크게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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