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1차대전 공중전
영국공군 독립(1918년)

포커 아인데커 (Fokker Eindecker)
아인데커 전투기가 창공을 지배했었던 시기는 훗날 포커의 징벌(Fokker Scourge)이라고 불렸다.
1차대전은 땅과 바다 외에 공중에서도 싸우기 시작한 최초의 전쟁이었다. 전쟁 전부터 이미 개발된 비행선과 항공기가 처음에는 정찰 및 항공사진 촬영용으로 이용되었으나, 나중에는 부대 · 철도 요충지 · 공장 · 도시 등을 폭격하고 나아가 적 항공기를 공격하는 데 이용되었다.
전쟁 전에는 공군력 발전에 가장 앞선 나라가 프랑스였으나, 전쟁 중에는 독일과 영국이 보다 더 큰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대전 중 항공기는 별로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주로 지상전을 돕는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렀다. 초창기 항공기의 기계적 결함과 조종술 및 운용전술의 미숙으로 독립적인 공중작전을 전개할 정도까지 발전을 이루지는 못했다.
최초의 공중전이 발생한 1914년 10월 5일부터 1915년 7월 중순까지 프랑스 조종사들은 독일 항공기 8대를 격추시켰는데, 주무기는 칼빈 총이었다. 기관총을 장착한 최초의 항공기인 네덜란드 제 항공기 포커(Fokker)가 1915년 4월에 등장한 후 공중전 규모는 훨씬 커졌다. 전쟁 중 각국은 끊임없이 항공기 개발 노력을 펼친 결과 프랑스 50종, 영국 40종, 독일 30종, 이탈리아 30종, 그리고 미국은 9종을 생산했다.
1916년까지는 대체로 독일이 제공권을 장악했다. 그들은 항공기의 전술대형을 상당히 발전시켰으며, 비행선 '체펠린(Zeppelin)'을 이용해 영국 본토에 대한 장거리 폭격에 성공했다. 폭격은 주로 런던을 공습해 영국인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데 목적을 두었다. 1916년 9월 2일 14척의 비행선은 런던 상공에 나타나 수백 톤의 폭탄을 투하함으로써 수백 명의 시민들을 사망케 하고 일부 공장들에 상당기간 조업중단을 하게 한 피해를 입혔다. 그 후 공습을 계속했으나 예상한 만큼의 큰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영국인들은 사이렌 경고로 미리 대피할 줄을 알게 되고 또한 대공화기와 전투기를 이용해 체펠린을 공격함으로써 독일의 폭격을 잘 막아냈다.
런던 공습은 영국인들에게 큰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으로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니지만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영국 국민들과 정부는 공중으로부터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제공권을 장악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 모종의 과감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또한 적 도시를 보복 폭격해야 한다는 심리도 갖게 되었다.
이를 기화로 하여 영국공군은 1918년에 독립을 이루었다. 영국정부는 과거 육군과 해군에 따로따로 종속되어 있던 항공대를 한데 묶어서 육 · 해군과 동격의 공군을 창설하고 공군력의 규모를 대폭 확장시켰다. 그리하여 영국은 30만 명의 병력과 3만 대의 항공기를 보유한 세계 최강의 공군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1918년에 이르자 연합군 공군력은 독일군을 완전히 압도했다. 그들은 지상군에 대해 주로 기총소사로 지원하며 큰 활약을 했다. 이때 미육군 항공대장 미첼(Billy Mitchell) 대령도 샤토 티에리(Chateau Thierry) 전장에서 1,500대의 항공기를 투입해 보병작전을 지원했었다.
동시에 영국공군은 야전의 육군 지휘관으로부터 독립해 폭격기를 독일 후방의 전략 시설을 폭격하는 데 가끔 사용하곤 했다. 그러나 그와 같이 공군을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개념을 제대로 활용하기 전에 대전은 끝나고 말았다. 영국공군이 독립을 이룬 후에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주로 지상군을 지원하는 데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은 초대 사령관이었던 트렌챠드(Sir Hugh Trenchard)가 과거 그의 상관이었던 영국육군 원정군 사령관 헤이그(Sir Douglas Haig)의 요구를 너무 충실히 들어주었던 데에도 기인했다.
독일은 체펠린 외에 전략 폭격기로 장거리 대형 폭격기인 고타스(Gothas)를 개발해 런던과 파리에 대한 공습용으로 주로 사용했다. 그리고 해안 방어용으로도 이용했다. 그러나 1918년 독일 항공기 생산은 일부 항공자재의 수입원인 미국으로부터 수입이 중단됨으로써 막대한 차질을 빚었다. 전쟁 중 독일의 항공기 총생산량은 48,000대였는데, 이는 프랑스의 51,000대보다 적으며, 영국에 비해서는 훨씬 뒤떨어진 수준이었다.
만일 1차대전이 1919년까지 연장되었더라면 연합군은 공중에서 우세한 공군력을 최대로 이용하고 또한 지상에서는 전차를 이용해 승리했으리라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1차대전은 전차와 항공기, 그리고 이 두 가지 현대무기를 잘 결합시키는 전술이 미래의 전쟁에서 결정적 수단이 되리라는 점을 충분히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