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러일전쟁
일본, 세계강국으로 발돋움하다(1904년 ~ 1905년)

일본군의 기습으로 불타는 여순항
서양 아닌 국가 중에서 최초로 서양 무기를 도입해 현대전을 수행한 나라는 동양의 작은 섬나라 일본이었다. 다른 동양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서양 과학 문명과는 거리를 두고 자급자족하는 농경제 사회를 끌어오면서 외교적으로 고립정책을 사용해왔으나, 1853년 미국의 페리(Perry) 제독이 이끄는 이른바 흑선이 나타난 뒤 정치 · 경제의 대변혁과 함께 급속한 현대화 과정을 거쳐 세기말에는 일약 강대국으로 발돋움했다. 말하자면 미국 군함이 일본 현대화에 기폭제 역할을 한 셈이다.
1868년 도쿠가와 막부 정권이 문을 닫고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의 새로운 시대를 연 일본은 각 분야에 걸친 현대화에 성공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성공적인 분야는 군대였다. 일본은 1873년 징병제를 도입해 대규모 군대를 보유하게 되었고, 육군 장비와 훈련에 있어서는 독일제도를, 그리고 해군 장비와 훈련에 대하여는 영국제도를 각각 채택해 막강한 군대를 양성했다.
급속한 산업화 및 군의 현대화에 성공하고 19세기 말에 4,000만 명이 넘는 인구를 가진 일본은 서양 열강들과 같이 제국주의적인 야심을 품고 동아시아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대륙진출의 발판인 한반도에서부터 청일전쟁(1894~95)을 벌인 일본은 중국군을 격파하고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전장이었던 한반도와 요동반도를 완전히 수중에 넣지는 못했다. 러시아는 중국으로부터 철도 부설권을 획득하고 여순 항구를 임차했으며, 다른 열강들과 합세해 일본의 아시아 대륙 진출을 견제하는 데 앞장섰다.
그 후 10년 동안 만주에서 일본과 러시아는 본격적인 세력 확장 경쟁을 벌이다가 결국 1904년 2월 선전포고 없이 일본함대는 여순 항구 내의 러시아 함대를 공격함으로써 전쟁을 개시했다. 전쟁 전에 대부분의 서양인들은 어디까지나 일본이 패배하고 결국 러시아가 승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본이 중국에 대해 승리했지만, 그것은 쇠망하던 국가에 대한 승리에 불과하고 감히 서구 강국에 대하여까지 이길 수는 없으리라는 생각이었다.
군사력과 경제력으로는 러시아가 유리했으나, 이 전쟁을 수행하는 데 있어 차르 정권은 두 가지 큰 약점을 안고 있었다. 첫째, 그들은 시베리아를 넘어 만주에 군대를 투입해야 하는데, 시베리아 단선철도에 의존해야 하며 그것도 중도에 바이칼 호에서 중단되기 때문에 병력 및 물자수송이 대단히 더디고 어려웠다. 모스크바에서 여순항까지 1개 대대를 수송하는 데 약 1개월이 걸렸다. 둘째, 니콜라스 2세 정권의 부정 · 부패 · 무능 등으로 말미암아 러시아 정권은 매우 불안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반면 일본은 이 전쟁에 대한 준비를 오래전부터 철저히 해왔다. 1902년 그들은 영 · 일 조약을 맺고 만일 제3국이 개입하여 일본에 대항하는 경우에는 영국으로부터 지원을 받는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들은 25만 명의 상비군을 즉각 어느 전장에나 투입할 수 있고, 그 두 배나 되는 예비군을 동원할 수 있었다. 러시아는 바이칼 호 동쪽에 고작 10만 명이 있었고, 전쟁이 개시된 1904년 연말에야 25만 명으로 증원되었다.
이 전쟁에서 일본의 제해권 장악은 필수적인 요소였는데, 일본함대가 러시아의 극동함대보다 규모나 질 면에서 더 우수했다. 러시아의 극동함대는 본대를 여순항에 그리고 파견대를 블라디보스토크에 두고 있었으며, 유럽으로부터 발틱 함대를 증파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걸렸다.
일본은 먼저 바다를 장악하기 위한 작전으로 전쟁을 개시했다. 도고(東鄕平八郞) 제독 휘하의 주력함대는 2월 8일 저녁 여순항을 기습공격, 러시아 전함 2척과 순양함 1척을 격침하고 항구를 봉쇄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러시아 함대는 얼음에 갇혀 있었다. 이로써 일본은 쉽게 한반도를 장악하고 압록강에서 러시아인들을 몰아냈다.
이어서 일본은 청일전쟁에서처럼 여순항을 육지에서부터 점령하는 작전에 돌입했다. 이후 전쟁은 노기(乃木希典)와 오야마(大玉) 같은 뛰어난 사령관들의 지휘 아래서 일본군이 승리를 거두지만, 그 승리는 결코 쉽게 얻은 것이 아니었다. 러시아군은 강력한 요새시설을 이용하고 기관총과 자동소총 · 수류탄 · 대포 등으로 일본군의 진격을 완강하게 저지했다.
일본군은 희생을 줄이기 위해 땅을 파고들어 가는 식으로 공격하고, 주로 야간에 활동했다. 다이너마이트를 이용한 수차례의 공격에서 일본군은 52,000명이나 되는 사상자를 낸 끝에 비로소 1905년 1월 1일 여순항을 점령했다. 러시아군은 24,000명의 포로를 내고 546문의 대포를 잃었다.
한편 만주 벌판에서 진행된 요양 · 사하 · 봉천 등 전장에서도 대병력이 참호전을 실시하는 가운데 양쪽에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다. 봉천에서만 러시아군 100,000명과 일본군 70,000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병사들은 땅에 바짝 엎드려서 전진해야 하고, 막대한 화력이 쏟아부어지는 가운데 장시간 전투하다 보니 많은 희생자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실로 블로흐가 예상한 전투 양상이 아시아 전장에서도 정확하게 나타난 것이다.
로제스트벤스키 제독 휘하의 러시아 발틱 함대는 지구를 반 바퀴 도는 동안 각종 사건과 우유부단함 때문에 지체할 대로 지체하다가 극동에 도달했을 때는 여순항이 이미 함락된 뒤였다. 1905년 5월 27일 쓰시마 해협에서 기다리고 있던 도고 함대는 그곳에 발틱 함대가 나타나자 빠른 속도로 공격해서 적을 뿔뿔이 흐트러뜨리고 군함 하나하나를 철저히 격침시켰다. 쓰시마 해전은 트라팔가르 이후 해상에서의 최대 승리였다.
러시아는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중재안을 받아들여 1905년 9월 포츠머스에서 강화조약을 맺었다. 그 결과 일본은 한반도에서의 우월권과 요동반도, 그리고 사할린 남부지방을 획득하고 극동에서 확실한 패권국가로 등장했다. 한편 전쟁 패배로 인해 러시아인들의 불만은 고조되고, 국내 곳곳에서 혁명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