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미국 · 스페인 전쟁
미국의 카리브해와 태평양 진출(1898년)

마닐라 만에서 승리한 듀이 제독의 기함 볼티모어
남북전쟁이 끝난 1865년 이후, 미국 정규군 규모는 계속 감축되어 25,000명으로 축소되었다. 군대의 임무는 42개 주에 흩어져 주둔하면서 단순히 요새를 수비하고 서부 변방지대에서는 정부의 인디언 격리정책을 집행하고 그들의 간헐적 습격을 막는 일 정도에 불과했다.
미국은 지속적인 철도개발과 서부 확장 정책으로 인디언 땅을 모두 점령해가면서 서쪽에 이른바 ‘프론티어(Frontier, 경계선)’가 사라지게 되고, 또한 19세기 말경 산업력이 충분히 강대국 수준에 오르게 되자, 미국 각계는 다른 나라처럼 식민지를 거느려야 한다는 제국주의적인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머핸(A. T. Mahan, 1840~1914)1)의 주장이 한층 더 불을 지폈고, 언론들은 보다 적극적인 대외정책으로 제국주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식의 논설들을 서슴없이 내놓았다.
평화적인 하와이 합병은 미국의 태평양 진출을 용이하게 했다. 그러나 대서양으로 진출하는 데 있어서 그 관문인 카리브해의 장악은 미국인들이 아직 이루지 못한 숙원사업이었다.
1898년 미국 전함 메인(Maine)호가 쿠바의 아바나 항구에서 격침당한 사건이 발생하자, 이를 기화로 미국 내에서는 순식간에 스페인 세력을 미국 근해에서 축출하자는 여론이 전국을 휩쓸었다. 미국은 다른 전쟁에서와 마찬가지로 전혀 전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개전했다. 미 · 서 전쟁은 이렇게 발발했다. 28,000명의 정규군 외에 다른 병력이 없었던 육군은 전쟁 선포 후에야 지원군을 모집하고 원정군을 편성하기 시작했다. 다만 미국이 확신한 것은 그동안의 해군 육성 프로그램 덕택에 미해군이 쿠바 근해의 스페인 해군에 비해 월등하게 우세하다는 점이었다.
스페인의 세르베라 제독은 4척의 장갑 순양함과 3척의 수뢰정을 거느리고 쿠바의 산티아고에 머물러 있었다. 그가 산티아고에 남아서 해안방어에 몰두하는 동안 미해군은 전략적으로 훨씬 중요한 기동을 취할 수 있었다. 미 해군은 관타나모 만을 쉽게 점령하고 그곳을 전진기지로 하여 해상을 장악했다. 7월 1일부터 미군은 1개 군단 규모가 산티아고에 상륙작전을 실시해 14일에는 그곳을 완전히 점령했다. 스페인 측 지상군 약 36,000명은 산티아고를 수비하고 있었으나, 이틀 만에 거의 전 해군을 잃고 고립무원 상태에서 2주일 만에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
그 후 8월 미군은 푸에르토리코를 점령함으로써 카리브 해에서의 전쟁을 마감했다.
한편 개전과 동시에 홍콩에 머물러 있었던 듀이(George Dewey) 제독 휘하의 해군파견대는 미해군차관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의 명령을 받고 마닐라의 스페인 해군기지를 기습 공격했다. 그는 4월 30일 야간공격으로 쉽게 마닐라 만을 장악하고 스페인 군함을 모두 격파했다. 지상군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는 제7군단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8월 14일에야 마닐라를 함락시키고 전쟁을 종결지었다.
미국 · 스페인전쟁 결과 미국은 일약 새로운 강대국으로 급부상한 반면 스페인은 지는 해가 되고 말았다. 미국은 괌 · 푸에르토리코 · 필리핀 등 식민지와 보호령의 쿠바를 얻게 됨으로써 마한의 소원대로 카리브 해를 미국의 호수로 소유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태평양 너머 아시아까지 세력을 뻗치게 된 것이다.
전후 1902년까지 필리핀에서는 아기날도(Emilio Aguinaldo)를 지도자로 하는 민족세력이 무장 독립운동을 일으킴에 따라 미국은 그것을 진정시키는 데 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필리핀인들은 낮에는 미국통치자들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고 밤에는 게릴라 활동을 전개하는 식으로 미국통치에 저항했다. 미군들은 그들이 장악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마을에서도 매일 싸워야 했고, 본국에서는 반제국주의자들로부터 극심한 비판을 받아야 했다.
미국은 평정작전의 일환으로써 10만 명에 이르는 필리핀인들을 고용하고 10조 달러나 되는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다. 제국주의는 이익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책임과 비용을 수반한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었다. 또한 직업군인들에게는 고국을 떠나 제국을 지키기 위한 해외근무가 필수적인 중요한 경력이 되었다.
머핸(A.T.Mahan, 1840~1914) : 미국의 군인 · 역사가, 저서 《역사에 미친 해군력의 영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