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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제국주의와 식민지 전쟁

61. 제국주의와 식민지 전쟁

 

산업혁명 이후 식민지 쟁탈전(1871~ 1914)

 

19세기 말 독일 에센에 위치한 '크루프' 무기 제조회사에서 대포를 대량생산하고 있다.

 

1871~1914년의 기간은 유럽에서는 평화의 시대였으나 유럽 밖은 식민지 전쟁이 극에 달한 시대였다. 비스마르크의 훌륭한 외교정책 덕분에 유럽은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으나, 그 평화는 불안한 것이었다.

유럽 열강들은 대부분 고도의 산업혁명과 경제성장을 이루고 난 뒤 그 성장의 배출구를 해외에서 찾으며 식민지 쟁탈전을 벌였다. 기본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최대로 추구하고자 하는 민족주의적 감정은 각국의 식민지 확장정책인 이른바 제국주의 정책에 최대의 지지를 보냈다. 사상적으로도 찰스 다윈(Charles Darwin)종의 기원에 영향을 받아 약육강식’, ‘적자생존’, ‘사회진화론등 매우 공격적인 주장들이 판을 치던 시대였다.

19세기 말 4반세기 동안 유럽 인구는 10년마다 10% 이상씩 증가했고, 산업화는 가속화되어 그 기간에 생산고는 4배 이상 늘어났다. 전기산업 · 화학산업 등 신산업이 등장하고 내연 엔진과 같은 새로운 동력원이 나타났다. 또한 알루미늄, 공기 압축 타이어, 무선전신 등이 새로 등장했다. 군비산업도 급신장하여 세계적인 무기제조회사 암스트롱(Armstrong), 크루프(Krupp), 크뢰조(Creusot) 등 거대 회사가 부상했다.

어느 열강도 다른 나라가 강해지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다. 새로운 위력적인 무기를 개발하고 무기 생산력을 신장시키기 위한 경쟁은 가속화되고, 전략철도 건설과 군 규모 확장을 위한 경쟁 또한 뜨겁게 불이 붙었다.

영국과 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프로이센 · 프랑스 전쟁의 영향을 받아 독일식 징병제도를 채택했다. 그리하여 유럽 대륙 내 4대 강국이었던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헝가리, 러시아는 각각 전시에 동원 가능한 병력이 평균 300만 명이나 되었다. 병력 · 장비 · 조직 등에 있어 유럽 대륙의 군대는 점차 동화되어갔다. 참모제도도 독일 것을 도입하고 참모장의 권한을 확장했으며 교육 및 훈련도 강화했다.

그와 같이 내부적으로 큰 긴장이 고조되어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열강들은 일단 전쟁을 기피한 것이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외부의 제국주의적 투기장에다 내부의 긴장을 방출하고, 약소 원주민들을 우선 상대하고 강자끼리의 싸움은 다음으로 미루고 보자는 식이었다. 그리고 열강들은 이탈리아와 독일 통일 문제 때문에 중단된 해외진출정책을 다시 속개하자는 분위기에 빠져 있었다.

유럽인들에게 주요 배출구가 된 곳은 아시아 · 아프리카 · 발칸 반도였다. 그 가운데 아시아 무대에서는 유럽 세력에 미국과 일본도 끼어들었다. 식민지 쟁탈전에 참여한 나라는 영국 · 프랑스 · 러시아 · 네덜란드 · 포르투갈 · 독일 · 이탈리아 · 벨기에 · 스페인 · 미국 · 일본 등 11개국이었고, 이 가운데 영국 · 프랑스 · 러시아는 일찍부터 꾸준히 식민지를 확장해왔고, 독일 · 이탈리아 · 벨기에 · 미국 · 일본 등은 뒤늦게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든 나라였다.

제국주의 정책은 경제적 · 전략적 이유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민족 정서적으로도 국가의 영광과 위신을 신장한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지녔다. 제국주의 정책을 구현하기 위해 전면에 나서는 자들은 상인 · 군 장교 · 탐험가 · 선교사 · 언론인 · 정치가 등이었으나, 그들이 반드시 적극적인 제국주의자들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가들이 분명히 제국주의를 조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일반대중들이 제국주의에 대해 큰 갈채를 보냈다는 것이었다. 이는 본질적으로 민족주의적인 감정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전략가들의 경우 식민지에서 해군기지 · 인력자원 · 전략자원 등을 추구함으로써 다음 전쟁에 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그러한 전쟁은 장기전을 구상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주로 단기 결전주의자들이었던 유럽 전략가들은 제국주의 정책을 그렇게 적극적으로 주장하지는 않았다. 다만 해군 전략가들은 머핸의 저서 해군력이 역사에 미친 영향(1890)의 출간을 계기로 각국의 식민제국을 보호하기 위해 대규모 전투함대를 보유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제국주의 정책 지지에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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