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30년전쟁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 사이의 최종전쟁(1618년 ~ 1648년)

30년 전쟁의 하일라이트 중의 하나였던 바우첸(Bautzen)의 공성과 파괴. 바우첸은 독일 동부, 체코와의 접경지대에 있는 성읍이다.
17세기 전반기 유럽의 대전 30년전쟁은 처음에는 같은 크리스트교인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의 전쟁으로 시작되었으나, 나중에는 전쟁 당사국 간에 명확한 구분이 어렵고 거미줄처럼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 싸우는 전쟁으로 변하고 말았다. 주무대는 독일이었으며, 전쟁 결과 프랑스와 스웨덴의 승리, 그리고 합스부르크 세력의 패배에 따른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유럽 지도는 크게 바뀌게 되었다.
뛰어난 장군이었던 구스타프가 1632년 죽은 다음 30년전쟁의 여러 전장에서는 어느 누구도 명쾌한 승리를 얻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상태를 끌기만 했다. 작센과 기타 프로테스탄트 국가들이 가톨릭 편에 가세하는가 하면, 프랑스가 같은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에 선전포고함으로써 종교적 선을 긋기가 어려워지고, 각국 간 적대 및 동맹관계는 복잡하면서도 자주 바뀌었다.
전쟁 기간이 길어서 주요 역할을 한 인물들도 여러 차례 바뀌었다. 베른하르트 · 베이너 · 페르디난트 2세 · 조지 윌리엄 · 리슐리외 등이 주무대에서 활약하다가 후기에는 마자랭 · 톨스텐선 · 앙지앵 · 튀렌 등으로 교체되었다. 대체로 1639년 이후부터는 프랑스와 스웨덴이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을 제압했다. 프랑스의 튀렌은 전술적으로 화력과 기동을 잘 결합시킨 위대한 전략가로서의 명성을 떨쳤다.
수많은 전투를 거치고 평화협상을 위한 노력 끝에 전쟁은 대단원의 막을 내렸는데, 가장 이익을 본 나라는 프랑스였다. 프랑스는 국경을 피레네 산맥과 라인 강 일부까지 확장하고 유럽에서 가장 강한 군대를 보유하게 되었다. 독일 내 여러 공국들은 그들 상호 간 또는 외국과 동맹을 맺고 독자적 역사를 갖게 되었다. 이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오스트리아의 통치자에 불과한 존재가 되었다. 독일에서 브란덴부르크 · 프로이센이 강대해지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30년전쟁 중 대규모 군대가 독일 전역에 걸쳐 작전을 펼쳤기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받은 것은 독일인들이었다. 전국토가 황폐화되고 학살과 질병이 난무했다. 군기 빠진 군대가 지나갈 때마다 약탈 · 강간 · 방화 · 살인이 그치지 않았다. 토머스 홉스가 '역겹고 짐승 같고 덧없었다'고 표현한 대로 당시 사람들의 삶은 힘들었다.
독일 내에서 모두 8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보헤미아 인구가 1618년에는 200만 명이었으나, 1648년에는 70만 명으로 줄었다. 절반가량의 가옥이 소실되고 양과 우마 등 가축은 모두 사라졌다. 사람들은 기아로 허덕이고 거지와 부랑자들이 득시글거렸다. 그래도 군대는 안전했기 때문에 수많은 여자들과 어린이들이 부대를 따라다녔다. 군인 아내들은 창녀나 집시 족으로 전락했다. 30년전쟁은 전쟁사에서 참혹하기로 손꼽히는 전쟁이다.
30년전쟁은 종교전쟁으로서 최종적인 것은 아니지만,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 사이의 공식적인 전쟁으로서는 마지막 전쟁이었다. 독일 내에서 30년간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은 서로 상대방을 말살시키려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서로 지치고 절망한 나머지 서로 관용을 베푸는 식으로 끝났다. 두 종파 간의 오랜 싸움은 종교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가져오고, 신앙의 자유를 개인의 권리로 인정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