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해전
거북선의 조선 기술은 서양보다 250년 앞섰다(1592년)

한산도 대첩
16세기 유럽 해전에서 우리는 갤리 선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새로이 갈레온과 범선의 시대가 개막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동시대의 동양 해전을 살펴보면 서양에서의 발전보다 훨씬 더 혁신적인 사건이 일어났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592년 조선의 이순신 장군은 세계 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을 제작하여 한반도 남쪽 바다에서 일본해군을 대파했던 것이다.
일본 정권을 장악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2년 조선을 침략했다. 조선을 거쳐 명나라까지 점령한다는 원대한 팽창정책의 첫 단계였다. 그 후 한반도는 7년 동안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빠지게 되는데, 임진(壬辰)년에 일으킨 이 전쟁을 우리는 '임진왜란'이라고 부른다.
역대로 일본을 야만시해온 한민족은 일본의 전쟁준비를 사전에 충분히 간파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쟁을 일삼고 있다가 기습적 침략을 당해 처음부터 속수무책이었다. 그 결과 조선의 정규군이라 할 수 있는 관군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20일 만에 수도 서울이 함락당하고 2개월 만에 평양까지 잃고 말았다. 그러자 조선 각 지방에서는 향토를 지키고자 의병들이 들고일어나 비정규전으로 일본군에 대항했다. 이후 전쟁은 의병들에 의한 지구전 형태를 띠게 되나 일본군은 무자비하게 전 국토를 유린하고 말았다.
육전에서 조선군이 참패하고 만 것은 기본적으로 무기에서 도저히 일본군의 상대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군은 활을 사용한 데 비해 일본군은 명중률 · 발사속도 · 살상효과 등에 있어 월등한 위력을 가진 조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일본은 포르투갈로부터 화승총 제조기술을 받아들여 조총을 제작하고 그 성능과 전술적 효율성을 높이는 데 꾸준히 노력해왔다. 물론 당시 화승총이 절대적 무기가 될 수 없었다는 점은 서양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것을 절반 정도가 보유한 군대와 그것을 전혀 구경하지도 못한 군대 간에는 사기 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육전에서 일본군이 승승장구하는 것과 달리 해전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남해안에서 일본해군에 대해 연전연승했다. 그 결과 일본해군은 서해로 진입할 길이 막혔고 육군 또한 전략적 후방이 불안하여 평양에서부터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조선정부로부터 지원요청을 받은 명나라는 서해로부터의 위협을 받지 않는 가운데 쉽게 원병을 보낼 수 있었다.
조선 · 명 연합군의 형성으로 일본군은 수세적 입장으로 바뀌었으며, 결국 그 후 전쟁은 장기화하고 쌍방 사이에 공방 및 소강상태를 거듭하다가 1598년 도요토미의 사망으로 일본군이 철군함으로써 임진왜란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당시 해전술은 주로 래밍(Ramming)과 보딩(Boarding, 배끼리 부딪치고 갑판 위에 올라 싸우는) 전술에 의존했다. 그러나 조선군 군함은 일본군에 비해 방향전환이 용이한 특징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전술적으로도 대포를 보유하고 포격을 실시함으로써 해전에서 절대적 우세를 나타냈다. 조선군의 대포는 다양했으며, 최대형의 경우 구경 17㎝, 무게 8㎏의 포탄을 4㎞까지 날릴 수 있었다. 일본군이 고작 조총이나 도검(刀劍)으로 함상 백병전을 벌이는 데만 관심을 두고 대포를 보유하지 않은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해전에서 조선군은 남해상의 합포 · 적진포 · 당포 · 한산도 · 부산포 등에서 일본군을 대파했다. 그 가운데도 가장 결정적 승리를 거둔 곳은 한산도 해전이었다.
이순신은 마치 후퇴하는 듯한 행동을 취해 적선들을 한산도 앞바다로 끌어냈다. 그리고는 그의 함대를 학이 날개를 펼친 듯이 학익진을 갖춘 다음 일제히 포격을 실시한 후에 적을 포위 · 섬멸했다. 이 해전에서 조선군은 극히 짧은 순간에 적선 66척을 격침시키는 대승을 기록했다. 수십 척의 적선을 파괴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역할을 한 무기는 물론 거북선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직접 설계하여 감독 제작한 거북선은 임진왜란 초기에 모두 3척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북선은 조선함대의 주력선인 판옥선의 평탄한 갑판 위에 아치형의 철판 덮개를 씌우고 그 위에 송곳칼들을 설치함으로써 적에 의한 보딩을 막고, 또한 사방에 난 대포구멍을 통해 포격을 실시하고 궁수들도 불붙은 화살을 날려 공격할 수 있게끔 만들어졌다. 길이 약 30m, 폭 9m, 높이 7m의 이 전함은 서양 갤리 선처럼 노를 이용하는 선박으로서 좌우에 각각 10개씩의 노를 갖추었다. 뱃머리는 거북 머리를 하고, 유황을 태워 벌어진 입으로 안개를 토하도록 하여 적을 혼란케 했다.
거북선은 여러 가지 점에서 이순신 장군의 천재성을 나타냈다. 우선 갤리 선을 보기 어려운 당시 동양에서 그는 갤리 선과 같은 원리로 항해했다. 그리고 10문의 대포로 막강한 파괴력을 발휘하고, 나아가 철갑에 의해 과감한 적진 돌파를 가능케 한 것은 그야말로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작품이었다.
해전사에서 이순신의 철갑선은 서양보다 무려 250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그가 죽은 뒤 그의 기발한 아이디어는 일단 과거 속으로 묻히고 말았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각국의 해군들은 철갑선을 제작하게 되고 그것을 주력선으로 하여 해전을 수행해왔다.
이순신 장군은 상상력이 대단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제 전쟁 수단으로 활용하여 세계 해전사에서도 빛나는 한 페이지를 장식한 위대한 제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