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모르가르텐 전투
보병이 기병을 무너뜨리다(1315년)

스위스의 창보병들
13세기 말까지 유럽인들 가운데서 십자군 원정의 값진 군사적 교훈, 즉 승리를 위해서는 보병과 기병의 긴밀한 공조체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제대로 깨달은 이는 드물었다. 유럽 내에서 여전히 중기병이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4세기에 들어서자 약 1,000년간 맹위를 떨친 기병의 몰락을 의미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창병 또는 궁수들로 구성된 보병이 기병과의 싸움에서 이기는가 하면, 대포 지원을 받은 보병이 기병을 무찌름으로써 전술상 대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유럽의 중기병이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첫 번째 사건은 1315년 모르가르텐(Morgarten) 전투에서 일어났다. 기병 위주로 편성된 오스트리아 원정군은 농민으로 이루어진 스위스의 창병들에게 마치 푸줏간의 고기처럼 도륙당했다. 스위스군 2,000명과 오스트리아군 5,000명 간의 소규모 충돌이었으나, 이 전투는 보병이 기병을 무너뜨린, 전쟁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스위스 보병은 과거로 돌아가 마케도니아 방진과 같은 대형을 유지하면서 싸운, 당시 유럽에서는 유별난 군대였다. 그러나 그러한 고전적 대형만으로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특수성은 오히려 그들이 사용한 주무기였던 미늘창(halberd)에 있었다. 2.4m 길이의 이 창은 머리에 날카로운 못과 낫 및 갈고리를 달고 있어 적을 찌르고, 베고, 끌어내리는 3중 기능을 발휘했다.
스위스 보병은 산악인들로서 유난히 팔 힘이 좋아, 미늘창을 적 기병에게 내리치고 갑옷과 투구를 절단한 다음 힘차게 끌어내렸다. 또한 그들은 최고의 기강과 단결력을 보이며 아무리 이상한 지형에서도 밀집대형을 공고히 유지한 채 잘 싸웠다. 기병에 둘러싸인 상태에서는 서로 등과 등을 맞댄 이른바 '고슴도치' 대형을 유지하고는 미늘창을 사용해 용맹스럽게 싸웠다.
1315년 11월 오스트리아군 지휘관 레오폴트 대공(Duke Leopold)은 스위스군을 향해 알프스 산맥의 좁고 비탈진 길에서 정찰을 실시하지 않은 채 앞으로 전진만 했다. 그러던 중 전위의 기마병들은 스위스군이 설치해놓은 돌무더기 장애물을 발견하자, 그것을 치우기 위해 말에서 내렸다. 이는 보병이 할 일이었지만, 그들은 맨 후미에 따라오고 있었기 때문에 별 도리가 없었다. 바로 그 순간 도로 상단 숲속에 매복해 있던 스위스군은 준비한 돌과 통나무를 일제히 굴러내린 다음 보병 밀집대형을 진출시켰다. 기습을 받은 오스트리아군의 선두부대는 사정없이 미늘창에 도륙되었고, 영문도 모른 채 후속하여 도착한 부대들도 좁은 공간에서 기동성을 상실한 채 우왕좌왕하다가 미늘창 공격을 당했다. 도망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어떤 기마병은 무시무시한 미늘창에 맞아죽느니 차라리 인접한 호수에 뛰어들어 자살하기도 했다.
수적으로 우세한 기병이 적절히 무장되고 잘 훈련된 보병에게 완패한 이 전투 후에도 유럽인들은 기병의 쇠퇴를 인정하려 하지 않고, 패배의 원인을 불리한 지형과 무능한 지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스위스 보병은 1339년 라우펜(Laupen)의 보다 활짝 트인 전장에서도 봉건영주들의 기병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보병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100명의 기병은 1,000명의 보병보다 값지다’는 중세의 유행어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스위스 보병은 전투에서 돌파할 수 없는, 억센 털을 세운 고슴도치와 같은 막강한 방어력을 과시했을 뿐만 아니라, 민첩한 기동성을 갖고서 공격을 할 때도 매우 효과적이었다. 그들은 전투대형으로 집단행군을 하고, 군악에 보조를 맞추어 행군한 최초의 현대식 군대였다.
스위스 보병은 약 150년 정도 서유럽의 다른 나라로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특별히 위대한 지휘관이 없는데도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전술체계로 매번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절한 패배를 당하지 않고 과학기술 진보에 따르는 심각한 도전을 받아보지 않은 사실이 스위스 인들에게는 오히려 방심의 요인이 되었다. 그들은 더 이상 전법 발전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전술적 승리를 전략적인 것으로 연결하지 못해 주도적인 정치세력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그 대신 스위스 보병들은 유럽 여러 곳에서 용병으로 활약했다. 그것도 유럽 군대가 전반적으로 보다 효율적인 군사제도와 유능한 지휘관을 겸비하고 화약무기를 사용하기 시작함으로써 자연히 스위스군의 전술체계는 인기를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