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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바이킹족의 침공

28. 바이킹족의 침공

 

치고 달아나기전법의 명수들(8세기 ~ 11세기)

 

바이킹족이 사용한 선박

 

유럽의 민족대이동 현상은 4세기 이후 약 200년으로 끝난 것이 아니고 9~10세기에도 다시 나타났다. 샤를마뉴가 죽은 후 그의 왕국은 무너지기 시작했고, 870년에는 서프랑크 · 동프랑크 · 남프랑크, 즉 오늘날 프랑스 · 독일 · 이탈리아로 분할되었다. 서유럽이 약화되고 있을 때 아랍인과 마자르인, 그리고 바이킹족(노르만족)이 각각 남부 · 동부 · 북부에서부터 쳐들어왔다. 그 가운데서도 서유럽에 가장 심대한 타격을 준 것은 바이킹족의 침입이었다.

스칸디나비아의 바이킹족이 서유럽을 침입한 것은 처음에는 정복보다는 해적질 내지는 노략질의 성격을 띠었으나, 나중에는 그들 다수가 유린한 지역 일부에서 정착을 했다.

바이킹족은 일반적으로 작은 떼를 지어 돛과 노를 쓴 작은 배를 타고 템스강, 센 강, 루아르강 하구와 해안 일대에서 약탈을 일삼았다. 그들은 사나운 전사들로서 직속상관에 대한 충성심이 높고 기율이 엄했다. 주로 창 · · 도끼로 무장한 이들 보병은 때때로 활도 지니고 다녔다. 또한 투구 · 방패 · 가죽 갑옷 · 쇠사슬 갑옷 등을 착용했다.

그들은 치고 달아나는기습전법의 명수들이었고, 적을 잔인하게 학살했다. 이 시대의 서유럽에서는 바이킹족에 대한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

바이킹족 침입에 대해 서유럽인들은 축성과 기병대에 의존해 싸웠으나 효과적인 대응책을 찾지는 못했다. 바이킹들은 해안가의 말들을 강탈하고, 기지를 만들어 자신들의 기병대 조직을 발전시켜나갔다. 바이킹 군대의 핵심인 보병들의 용맹과 신속성에 기강이 빠진 봉건군대는 맥을 못 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세 유럽 군대를 지배한 기사들은 점점 더 사회 엘리트로 인정받고 특권계층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무기 · 전술 · 군조직 면에서 기사들이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룬 것은 없었으며, 이런 점에서는 바이킹족도 매한가지였다.

점차 세력을 키우던 바이킹족은 수백 척의 함대를 만들어 유럽 해안 일대를 점령하고, 영국으로도 그들의 정복지역을 넓혔다. 몇 세기 전 로마인들이 고트 족에게 한 것과 같이 프랑크인들은 바이킹족에게 노르망디 지방을 양보하게 되었다.

바이킹족이 그와 같이 팽창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보병으로서 용맹을 발휘하기 전에 이미 우수한 해군으로서 능력을 갖추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은 당시 최고 수준의 조선 기술을 자랑하는 배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놀랍도록 배를 잘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지금도 노르웨이 오슬로에는 바이킹이 사용한 배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고크스타트호(the Gokstadt)가 남아 있는데, 그것은 길이가 21m이고 중량 20톤이 넘는다. 떡갈나무로 만들어졌고 뱃전 위에서 용골까지는 1.8m이고 배 한가운데 약 12m 돛대가 있다. 배의 밑바닥은 편평한 판자로 깔려 있지 않고 하나의 통나무 재목으로 강력한 용골을 만든 것이 특징이며, 뱃전의 널빤지들은 물 새는 것을 막기 위하여 타르를 칠한 밧줄로 틈새를 메운 정교함을 보여주고 있다.

항해 시에는 돛을, 공격 시에는 노를 사용했다. 노는 16쌍으로, 일부는 길이가 4.9m이고 나머지는 그보다 길었으며, 각각의 노를 두 사람이 함께 저었다. 바이킹 족은 나중에는 훨씬 더 큰 배를 만들어 200명까지 타고 하루에 240를 항해하기도 했다. 음식물은 얼음이나 소금으로 저장했다.

바이킹은 언제나 근해에서 해전을 치렀고, 대개는 3단계 과정을 밟았다. 먼저 지휘관은 적정을 살피고 공격하기 좋은 위치를 선정했다. 그 후 그 장소로 은밀히 접근하여 적 함대에 일제히 화살을 쏘고 쇠뭉치나 돌멩이를 던지는 식의 공격을 퍼부었다. 마지막으로 적 선박에 쇠갈퀴를 걸어 끌어당긴 다음 백병전으로 승부를 결정지었다.

상륙 후에도 바이킹은 함대를 하나의 기지로 삼았다. 주요 수로를 따라 올라간 다음에 육지에 올라 마을과 수도원 등을 약탈했다. 그들은 갑옷과 무기를 빼앗고 주 공격무기로는 육중한 도끼를 사용하는 것을 선호했다. 그들은 적 기병이 잘 싸울 수 없는 시냇물가나 늪지대 또는 가파른 언덕에서 방패 · 벽을 만들어 일단 수비태세를 갖추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백병전으로 전환하는 것을 좋아했다. 직업적인 전사들로서 체격이 크고 건장한 그들은 장원으로부터 긴급히 출동된 군대에 대해 마치 미치광이들처럼 난폭하게 무기를 휘두름으로써 성공을 거두었다.

프랑크인과 영국인은 나중에야 바이킹 습격에 대해 적절한 대책을 찾게 되었는데 그 방법은 전혀 달랐다. 프랑크인은 주로 주요 침입로인 강 주위에 성을 건설했으며, 영국인은 기병 대신 정예 중보병을 육성했다. 그리고 바이킹을 본따 강력한 함대를 구축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사실상 이를 계기로 하여 영국은 나중에 강력한 해군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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