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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기병 훈련과 등자의 출현

24. 기병 훈련과 등자의 출현

 

기병 발전의 기폭제(8세기)

 

중세 시대 군사적 대변화 가운데 하나는 전장에서 중보병대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기병대가 메운 것이다.

 

고대 페르시아군과 마케도니아군이 잘 훈련된 기병대를 이용한 데 비해 로마군은 주로 중장보병을 활용하고 기병에 대하여는 그 가치를 크게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정 말기 로마인들은 게르만 기병대로부터 잦은 습격과 장거리 무기(투창 · · 투석기 등)에 의한 공격을 받으면서 보병 백병전의 효력이 줄어들게 됨에 따라 기병대와 경보병의 비율을 점차 증가시켜나갔다. 그러다가 서로마제국 멸망 후 수립된 서유럽의 많은 게르만 국가들과 동로마제국은 기병대 위주로 군대를 편성하여 전쟁을 수행했다.

기병대 전술의 근간은 말의 기동성과 기마병의 용감성을 활용하여 기동 · 기습 · 측면공격 · 돌격을 실시하는 것이었다. 군대는 과거 로마 군단 시절 보병을 강훈련시킨 것처럼 이제 정예 기병대를 만들기 위해 맹훈련을 실시했다.

기병의 주무기는 창 · · 활이었다. 창은 그리스 때부터 계속 발전되어 왔는데, 대략 3m 길이로서 서기 4세기 무렵은 창끝에 작은 못을 단 것을 사용했고, 카롤링 왕조 때는 날개 달린 창을 개발하여 적을 찌르고 쉽게 낚아챌 수 있게 했다. 기병들은 창과 함께 70~80길이의 양날 칼을 보유했는데, 그것은 창 · 투창 · 활보다는 덜 이용되는 편이었다.

중세 시대 무기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유럽의 기병들도 아시아인들처럼 활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활쏘기 연습을 하여 나중에는 페르시아나 아시리아의 궁병을 능가할 정도로 기량을 갖추게 되었다.

동로마제국 기병 가운데는 용병이 많았는데, 경기병대 궁술병은 주로 훈족, 알란(Alans), 아바르(Avars), 불가르(Bulgars)족 등 아시아인계 종족으로부터 선발하고, 창과 투창을 사용하는 중기병대는 흑해와 다뉴브강 지역에 살던 게르만 족으로부터 선발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로마 기병대는 점차 구별 없이 중기병화하고, 모든 기병이 갑옷과 방패로 무장하며 창 · 투창 · · 활 가운데 전문적인 무기나 또는 이 모두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맹훈련을 실시했다.

창을 휴대한 기병은 말에서 신속히 내려서 보병처럼 싸우고, 다시 말을 타야 하는 경우에는 신속히 안장 위로 올라탔다. 그들은 말을 잘 타고, 다양한 무기를 사용하며, 또한 보병처럼 싸워야 했기 때문에 융통성 있는 전투태세를 갖추기 위해서 자연히 오랜 훈련이 필요했다.

카롤링 왕조의 로타르 왕 때 성직자이며 학자였던 라바누스(Rabanus)는 기병 훈련제도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목마를 겨울에는 지붕 있는 시설 내에, 여름에는 야지에 설치하고, 신병들은 처음에는 비무장으로, 그다음에는 방패와 칼을 휴대하고, 마지막으로는 큰 장대 무기를 들고 말 타는 연습을 반복했다. 그들은 말 좌우측과 후방 어느 방향에서도 자유자재로 말을 타고 내리며 또한 칼을 칼집에 넣지 않고도 뛰어 타고 내릴 수 있도록 철저한 훈련을 받았다.”

 

그런데 기병의 기량 향상에 획기적 전환점을 이루게 된 것은 훈련보다는 8세기 초에 등자(Stirrup)를 이용할 수 있으면서부터였다. 이전까지 기병은 말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말 등에 몸을 바싹 밀착시키는 데 온 신경을 썼기 때문에 말 위에서 큰 동작을 취하기가 극히 어려웠다. 그러나 등자를 이용하면서는 안정된 상태에서 자신 있는 자세를 취하고, 어떠한 무기도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속도를 내 달릴 수 있게 되었다.

등자가 본래 언제 어디서 발명되었는지에 대하여는 불확실하나 기원전 1세기 인도 기병이 사용한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이것이 서쪽으로 전래되어 서유럽 기병들도 뒤늦게 활용하게 된 것이다.

기병이 고대 전투용 마차를 대신하고 코끼리가 별 효용이 없게 된 이래 등자의 출현은 강력한 장비로서 기병, 특히 중기병을 발전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어느 종족보다도 프랑크 족은 등자의 가치를 크게 인정하고 무적의 중기병대를 양성하여 프랑크 제국을 일으켰다. 9세기경 비잔틴 제국 군대는 그들이 두려워하는 프랑크 족 중기병대의 침입을 받을 때는 적과 직접 싸우는 대신 시간을 오래 끌면서 적 보급선을 방해하는 전략을 택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결론을 매번 내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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