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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중세 시대 성곽 건설과 종심방어의 발전

23. 중세 시대 성곽 건설과 종심방어의 발전

 

중세 1,000년은 성곽시대였다(4세기 ~ 14세기)

 

로마 시대 성곽인 아빌라성 안쪽 가운데 우뚝 솟은 회색 건물은 아빌라 대성당이다.

 

과거 유명한 역사가들은 세계사의 주요 흐름을 어디까지나 그리스 · 로마 문명 중심의 시각에서 이해했다. 그리하여 시대를 구분할 때 그 문명의 몰락 이전을 '고대', 부흥 이후를 '근대', 그리고 그 중간을 '중세'라고 불렀는데 오늘날 역사가들도 이런 구분을 대체로 따르고 있다.

아드리아노플 싸움, 로마제국의 분열, 또는 서로마제국의 멸망이 있었던 4,5세기 때부터 14,5세기의 르네상스 때까지 약 1,000년간의 중세 시대에 대해 흔히 암흑시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역사를 인본주의적 고전 문화와 공화주의적 정치 발전 선상에서 보면 암흑시대라는 말이 맞을지 모른다. 또한 군사적으로도 전투에 다수가 참여하는 보병 위주로 보면 그럴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한 시대를 너무 단순한 각도에서만 살펴보아서는 안 된다. 중세시대는 기독교 문화 · 봉건제도 · 과학기술 · 항해술 등에서 큰 발전이 있었다. 군사 분야에서는 그리스 방진이나 로마 군단과 같은 것은 사라졌지만, 핵심적인 전략 전술 개념이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며, 특히 도시를 방호하기 위한 성곽 건설과 그것을 중심으로 한 종심 방어체제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3~5세기에 로마인들은 도로 및 항구건설과 도시성곽 축성에 온 힘을 쏟아 부었고, 그 후에는 모든 도시를 요새화하고 그것을 기초로 종심방어 위주의 대전략을 수립했는데, 이 전략으로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첫째 각 거점에 기동 야전군을 확보하고 적 기동과 보급선에 위협을 가할 수 있고, 둘째 적이 도시를 둘러싸고 공성전을 전개하려 하면 주력군을 출동시키고 도시를 '모루'로 삼아 적을 격멸하는 것이었다.

로마의 요새들은 그 견고함과 전략적 위치 때문에 함락시키는 데는 엄청난 병력과 공성 장비, 그리고 수 개월간 야영에 필요한 장비 및 보급품 확보가 필수적이었다.

훈족의 용맹스러운 지도자 아틸라(Attila)가 직업적인 기병들을 데리고 유럽 곳곳을 누비고 다녔지만, 451년 갈리아 지방 침입에서 실패하고 만 것은 로마군의 종심방어에 당했기 때문이었다. 아틸라는 요새화된 도시를 공략하느라 보급품을 소진하고 그 뒤 올리언스를 포위하는데, 이때 로마 장군 아에티우스(Aetius)가 구원군을 이끌고 와서 훈족을 격퇴했다.

이와 같이 중세 유럽의 전쟁에서 도시 포위, 구원, 전투, 포위군 퇴각은 약 1,000년 동안을 지배하는 양상이 되었다. 이러한 공성전을 통해 로마의 공격과 방어전술은 널리 보급되고 게르만족들은 체계적인 전법을 익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축성술도 배우고 그들 도시를 요새화했다.

로마 황제들은 튼튼한 돌벽 성곽에 싸인 도시들을 지키고, 동시에 어느 국경에서도 적의 대규모 침입이 있을 때 그것을 격퇴하며, 그리고 공성전에서 이기기 위하여 평상시에 대군을 육성했다. 서기 300, 435,000명이었던 로마군은 430년 무렵에는 645,000명으로 증가했다. 더구나 서로마제국 해체 이후 여러 종류의 게르만족들은 각각 정착지에서 2~3만 명이 넘는 군대를 따로 보유함으로써 유럽 전체의 군대는 전보다 훨씬 증대되었다.

또 다른 큰 변화는 군인과 민간인의 엄격한 구별이 점차 어렵게 되어가는 현상이었다. 적으로부터 빼앗은 지역이 보조부대 군인에게 할당되고, 그 대신 군역을 치름으로써 군인 농부이면서 농부 군인들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또한 406년 호노리우스(Flavius Honorius) 황제는 노예들의 전투 참여를 허용함으로써 그 구별은 더욱 어렵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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