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적벽대전
화공작전으로 조조의 대군 격파(208년)

유럽이 하나의 대제국을 형성하고 로마의 통치를 받던 시절, 중국은 천하통일과 군웅할거가 반복되는 가운데 잦은 왕조교체를 보이고 수많은 전쟁을 치렀다. 그러나 중국의 전쟁에 관한 기록은 유럽에 비하면 너무 조잡하고 특히 군대의 특성과 전술의 발달을 이해하기에는 어려우며, 다만 유명한 장군들의 무용과 지략에 관한 이야기로 만족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 역사에서는 221년 후한(後漢)이 멸망하고 265년 서진(西晉)이 수립되어 천하를 통일했는데, 그 중간에 해당하는 44년은 위(魏) · 촉(蜀) · 오(吳) 나라 3국이 천하를 나누어 다스린 이른바 삼국시대였다. 삼국은 세력균형을 유지하기보다는 서로 천하를 장악하기 위한 살벌한 싸움을 벌임으로써 또 하나의 전국시대를 겪었다.
중국 원 나라 말기의 유명한 장편 역사소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통칭 삼국지)는 바로 후한 말 동란 시대와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그 시대 영웅들의 싸움을 소설화한 것이다. 흔히 이 소설을 평할 때 '실7허3', 즉 사실 70%, 허구 30%라고 하는데, 그만큼 사실에 가깝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동란 시절 군웅들이 즐비하게 나타나 각축전을 벌였는데, 그 가운데서도 두각을 나타낸 자들은 조조 · 유비 · 손권 등이었다. 중원의 패자가 된 조조는 중국 북부를 완전히 통일하고 이제 천하를 통일하기 위해 대군을 이끌고 남부로 진격했다. 이에 유비는 그가 삼고지례(三顧之禮)를 다하여 맞아들인 제갈공명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으며 손권과 손을 잡고 조조의 군대에 대항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유비 · 손권 연합군이 양자강의 한 줄기인 장강을 거슬러 서쪽으로 올라가는 중에 적벽에서 조조의 군대와 충돌하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본래 남선북마(南船北馬)라는 말이 있듯이 남방인들은 배를 잘 타고 북방인들은 말을 잘 탔으므로, 조조의 군대는 특히 수전(水戰)에 약했다. 더구나 이들은 풍토에 익숙하지 않아 지쳐 있었고, 배멀미 환자들이 많이 나와 배들을 서로서로 쇠고리로 연결해 요동을 적게 하고 휴식을 취하며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한 적의 약점을 간파한 연합군은 화공(火攻)작전을 쓰기로 했다. 화공을 하려면 일정한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데, 조조의 군대는 밀집부대를 이루고 있고 바람이 동남풍이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연합군은 속도가 빠른 몇 척의 배를 골라 장작과 마른풀을 잔뜩 싣고 기름을 부은 다음 겉을 포장으로 덮고 흰 깃발을 올렸다. 그리고 마치 항복하겠다는 듯이 서서히 접근했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조조와 그의 장수들은 방심한 채 환호하기만 했다. 약 1㎞ 가까이 이르렀을 때 인솔자의 신호로 배에 불을 붙여 재빨리 돌진시키자, 조조군은 불타오르는 불배의 습격을 받고 그의 모든 배들이 삽시에 불길 속으로 묻혀버렸을 뿐만 아니라 강가의 진영까지 불바다가 되고 말았다. 무수한 인마가 불에 타고 물에 빠지고, 그와 때를 맞추어 연합군은 일제히 공격하여 조조군을 격멸했다. 조조는 간신히 패잔병을 이끌고 육로로 북쪽을 향해 패주했다.
이렇게 하여 연합군은 조조의 남방 제패의 야심을 분쇄했으며, 이 싸움을 계기로 조조의 세력은 위축되고 유비와 손권의 세력이 확장되었다. 결국 3자는 천하를 삼분하여 조조의 위나라, 유비의 촉나라, 손권의 오나라가 문자 그대로 솥발처럼 정립(鼎立)하는 삼국시대를 열었으며, 다시 그들끼리 크고 작은 싸움을 벌이다가 280년 위나라의 사마염에 의해 진(晋)나라로 통일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