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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제정 로마 시대의 군대

19. 제정 로마 시대의 군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BC 27~ AD 476)

 

국경을 침범한 게르만족을 참수하고 있는 로마 군인들의 모습

 

기원전 27년 카이사르의 조카 손자 옥타비아누스가 로마를 지배하게 되었을 때 그는 자신에 대해 사람들이 '1 시민'이라고 불러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원로원은 그에게 '존엄한 자'라는 뜻의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와 함께 절대적인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사실상 그는 황제의 지위를 누리고 제정 로마 시대의 테이프를 끊었다.

아우구스투스는 군 지휘권을 장악한 다음에 군대에 일련의 중대개혁을 단행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공화정 쇠퇴기의 부패를 정리함으로써 국민들로부터 광범한 지지를 받았다. 그의 치세는 약 2세기 동안 팍스 로마나, 즉 로마 평화기를 이끌었다.

그는 공화정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 가운데 약 60개의 로마 군단을 28개로 줄이는 개편작업을 벌였다. 168,000명의 병력 규모였다. 그는 과거 장군들이 제멋대로 임시 군대를 모집하는, 비경제적이면서 정치적으로도 위험했던 그러한 관행을 중단시켰다. 어떠한 군인도 자신이 아닌 다른 장군에게 충성하는 일을 제도적으로 막았다. 그는 직업적 상비군 제도를 도입하고 자신이 직접 관장하는 국가재정으로 군인들에게 보수를 지급했다. 순전히 로마 시민으로 구성되어 20년 복무한 직업적 중보병이었던 이 상비군은 국경수비의 골간을 담당했다.

그러나 방대한 국경선 수비를 시민 출신 군에만 맡기기에는 인구가 부족했다. 서기 14년경 로마 시민은 500만 명이었다. 아우구스투스는 로마 군단 정도의 병력 규모를 갖는 외인 보조부대를 따로 편성했다. 주로 정복지역에서 경보병 · 기병 · 궁병 등 각 병종에서 우수한 사람들을 모집, 편성한 그들은 로마 군단 병사들보다는 적은 액수의 급료를 받았으나, 명예롭게 제대하는 경우 로마 시민의 지위를 획득하는 특전을 부여받았다. 사실상 나중에 이들 후예들은 로마 군단으로부터 전수한 기술을 바탕으로 하여 로마가 망한 뒤 신흥 민족국가들을 수립하는 데 중심 세력이 되었다.

여하튼 아우구스투스가 창설한 약 30만 명의 상비군은 모두 급료를 받고, 통일된 복장을 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행군하며, 영국의 스코틀랜드에서부터 라인 강, 다뉴브 강, 그리고 시리아로 이어지는 광대한 국경선을 수비했다. 훈련은 주로 완전무장한 채 행군하며, 행군이 끝나면 진지를 구축하는 식으로 이루어지고, 엄격한 군기를 유지하는 전통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 시절 변방 지역 수비태세는 공화정 때에 비해 향상되었지만 결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 국경지역이 위협을 받는 경우 예비대가 없기 때문에 다른 국경 지역으로부터 지원 병력을 파견해야 하고, 따라서 만일 여러 곳에서 동시 침입이 있게 되면 속수무책이었다는 점이다. 중앙 예비대 보유에 대해 아우구스투스는 정권 장악에 악용될 가능성을 우려하여 철저히 반대하고, 전 병력을 국경지역에 배치하는 선방어 위주의 국방 개념만 갖고 있었다. 그러한 허술한 개념에도 불구하고 다행스럽게도 그는 두 군데 이상에서 적 침입을 받은 적이 없었다.

중앙에는 다만 소수의 정예 근위부대를 편성하여 왕실과 로마 도시를 방어하도록 했다. 10,000명으로 구성된 근위대 근무는 높은 급료와 좋은 주거시설을 제공받고, 또한 권력층과 가까이 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일반군인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아우구스투스 후계자들은 아우구스투스의 정책을 그대로 유지시키고 큰 전쟁 없이 국경지역을 성공적으로 방호했다. 13대 황제(117~138) 하드리아누스는 더 이상 제국의 영토를 확장시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기존의 경계선을 영구적으로 요새화하는 작업을 실시했다. 로마군은 대대적인 장성을 쌓고 완전히 요새수비에만 의존하는 군대로 변했다. 이제 군대는 전사들의 전통적인 모습은 모두 사라지고 마치 경찰처럼 변질되었으며, 활발한 이동보다는 주로 한 곳에 주둔하고, 군사적 업무보다는 엉뚱한 데 관심을 쏟아 점차 무기력해져 갔다.

변방 지역에서 오래 근무하는 동안 군인들은 점차 지방민이 되고 제대 후에도 그곳에 안주하는 경향이 높아졌다. 수도 로마를 한 번도 구경하지 못한 병사들이 나오고, 신병들은 주로 지방민이나 외인들로 충원되면서 로마 군단은 이전의 가장 자랑스러운 시민단체로서의 특성을 상실해갔다. 로마 시민들은 변방지역에서 별로 희망 없이 지내야 하고 점차 인기가 떨어지는 군대의 지원을 꺼리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군대는 외인 군대화했다. 그러나 국경수비대가 이민족으로 구성되어 곧 로마가 멸망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들은 자기들이 점령한 국경 지역에서 결코 후퇴하지 않고 제국을 지키는 데 충실했다. 그러나 약 2세기 후 제국이 완전히 무너지는 것을 보고 기존 점령지를 중심으로 각각 나라를 일으키게 되었다.

보병 위주로 편성된 로마 군단이 쇠퇴한 데 비해 공병은 장성과 도로를 건설하면서 토목공사 기술을 크게 발전시켰다. 특히 로마에서부터 장성에 이르는 보급로 건설을 대대적으로 벌임으로써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게 되었다. 이때 총길이가 28에 이르는 도로 건설은 로마 공병이 이룬 찬란한 업적이다.

그러나 장성이란 그 자체만으로 영토를 보호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것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국방개념은 많은 허점을 안게 된다. 진시황제의 만리장성이 그러했고, 2차대전 이전 프랑스의 마지노선이 그러했다. 하드리아누스가 건설한 로마제국 장성도 로마 시민들과 로마군의 상무정신을 앗아감으로써 결국 외침을 막지 못하고, 이후 로마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곧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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