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히다스페스 강 전투
인도의 코끼리 부대를 이기다(BC 326년)

히다스페스 강에서 양측이 포진하고 있는 모습
페르시아를 정복한 후 알렉산드로스는 통일 그리스 및 페르시아의 왕이 아니라 아시아의 왕이 되고자 했다. 그는 페르시아 동북부 지방 박트리아 공주인 록사네와 결혼하고, 기원전 327년에는 카이바르 고개를 넘어 인도를 정복하기 위해 나섰다. 이미 중단할 줄 모르는 정복자가 되어버린 그는 마치 지구 끝까지 정복하려는 듯 커다란 야욕에 빠져 있었다.
펀자브 지방에 들어선 그는 인더스강 지류인 히다스페스 강에서 그의 진군을 막는 인도의 포로스 왕과 일전을 치르는 상황에 처했다. 키가 210㎝가 넘는 거인 포로스는 보병 30,000명, 기병 4,000명, 전투용 마차 300대, 코끼리 200마리를 보유하고 있었다. 인도에서 알렉산드로스의 총병력은 75,000명 정도였으나, 기원전 326년 히다스페스 강에서 그가 지휘할 수 있는 병력은 보병 15,000명과 기병 5,000명에 불과했다.
포로스군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먼저 히다스페스강을 건너야 하는데, 강은 깊고 물살도 빨랐다. 더구나 코끼리들은 상당히 위협적인 존재였다. 알렉산드로스의 말들이 그들을 보고 놀라 뗏목 위에서 뛰쳐나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직접 강을 건너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알렉산드로스는 적을 속이는 계략을 쓰기로 했다. 먼저 기병대로 하여금 매일 강변을 오르내리며 곧 도하작전을 취할 태세를 보였다. 그때마다 포로스는 코끼리를 움직여 대비하더니 며칠 뒤에는 더 이상 속지 않겠다는 듯이 자신의 진영에 그대로 머물렀다. 또한 알렉산드로스는 역정보 작전을 펴 강물이 얕아질 때까지 도하작전을 연기한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그 밖에 자신과 같은 옷을 입힌 병사를 포로스가 볼 수 있는 곳에 고정시켜 포로스가 딴 곳에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다가 그는 폭풍우 치는 날 밤을 이용해 주력을 이끌고 북쪽 17마일 지점으로 이동, 그동안 준비한 장비를 이용해 드디어 도하했다. 이튿날 아침 도하소식을 들은 포로스가 병력을 보내 수비하도록 지시했을 때는 이미 때늦은 상태였다. 포로스는 원 위치에서의 도하를 막기 위해 일부 부대만 남겨놓고 주력으로 하여금 알렉산드로스 군을 향하도록 했다.
포로스군은 알렉산드로스 군을 수적으로는 능가했으나 기습을 당한 상황에서 서둘러야 했으며, 알렉산드로스는 그러한 인도군의 약점을 최대한 활용했다. 그는 우선 우익의 우세한 기병을 이끌고 포로스의 기병과 전투용 마차를 격파했다. 그러는 동안 부하 장수 코에노스로 하여금 좌익 기병을 이끌고 인도군 배후를 공격하도록 했다. 또한 척후병으로 하여금 코끼리를 모는 병사들을 쏘아 떨어뜨리게 했다.
알렉산드로스의 기병은 인도의 기병을 코끼리 부대가 위치한 곳까지 몰아붙였으며, 그러자 공간이 좁은 상태에서 코끼리들이 이리저리 선회하면서 인도군 보병들을 짓밟는 사태가 빚어졌다. 그 후 인도군은 마케도니아군의 기병과 보병들이 사용하는 장창에 맥없이 무너지고 너도나도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포로스도 부상당한 채 붙잡혔다. 그는 알렉산드로스 앞에 끌려와서 "어떤 대우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왕으로 대우해달라"고 대답했다. 그 대답에 감명받은 알렉산드로스는 그를 왕으로 복귀시키고 곧 친구로 만들었다.
그리스에서 인도까지 약 18,000㎞를 진군한 알렉산드로스는 갠지스 강 계곡에 진입하기 전에 대원정을 마쳤다. 끝도 없고 낯설기만 한 두려운 땅으로 들어가는 데 대해 병사들이 모두 지쳐 있었고 너무나 고향을 그리워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진군을 중단하고 귀환 길에 나섰다. 귀환하는 도중 기원전 323년 그는 바빌론에서 병사했다.
33세의 짧은 인생을 누렸지만 알렉산드로스는 군사적으로 세계사에 가장 위대한 장군으로 평가될 만한 업적을 남겼다. 그것은 모두 그의 사려 깊은 계획, 신속 과감한 결단력, 뛰어난 전략, 정교한 전술, 그리고 비범한 리더십으로 이루어낸 것이었다. 정치 · 경제 · 문화적으로도 그의 대원정은 고대세계에 새로운 시대를 여는 이정표를 세웠다. 그는 70개국 이상의 도시국가들을 정복하면서 헬레니즘 문명과 아시아 문명을 융합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