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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춘추전국시대의 전쟁

8. 춘추전국시대의 전쟁

 

수준 높은 전법 구사(BC 770~ BC 221)

 

진시황릉의 병마용

전국시대 전사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세계전쟁사가 대부분 서양 위주로 기술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도 예외가 아니다. 그렇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가장 먼저 손꼽을 수 있는 것은 자료 문제를 들 수 있다. 서양 자료는 비교적 풍부하고 상세한 기록을 담고 있는 데 반해, 동양 자료는 빈약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동양 자료는 전쟁기록은 많지만 '싸움이 있었다'는 식으로 간단히 기록되어 있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싸웠는가에 대하여 생략된 부분이 너무 많다는 것이 한계다. 더구나 동양문화는 서양문화와 달리 각 나라와의 활발한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각국의 전쟁사는 자국 아닌 다른 국가 사람들의 관심까지 크게 끌지는 못했다.

그 결과 충분한 실증과 토론을 거치지 못한 동양 전쟁사는 별로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는 편이다. 또한 과학과 기술혁명 이후 전쟁과 군대는 서양에 기원을 둔 아이디어들이 판을 쳐왔고, 오늘날 그 현상은 더 두드러져 결국 서양 전쟁사가 더 중시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고대 중국은 고대 이집트 · 페르시아 · 그리스 등보다 더 문화수준이 높았던 국가였다. 특히 춘추전국시대(BC770~221)의 중국문화는 과학의 발달이 세계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된 근세 이전까지를 역사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도덕 · 정치 · 군사 · 사회생활 등에 관한 학술 및 예술의 발달은 눈부셨다. 공자 · 맹자 등 제자백가(諸子百家)들의 사회사상이 이 시대에 다 나왔다. 그래서 이후 중국은 그 시대를 앞서는 문화창조가 어려워 모든 사회생활에 보수적인 성향을 띠게 되었다고 역설적으로 말하는 역사가들도 있다.

고대 중국인들에게 있어 중국 전체 땅덩어리는 국가가 아닌 세계였다. 그래서 '천하(天下)'라고 불렀다. 천하 내에는 여러 제후국(諸侯國)들이 난립했다. 제후국들 간에는 수시로 분쟁과 통합 또는 분열이 일어났으며, 그 결과 제후국 숫자는 시대별로 달랐다. 강자가 등장하여 천하를 통일하면 한 나라를 이루고, 다시 분열되면 여러 나라로 나뉘었다. 그래서 고대 중국역사를 보면 왕조의 잦은 교체로 얼룩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춘추전국시대는 약 550년에 걸친 기간으로서 고대 중국의 큰 변혁시대였다. ()이 천하를 통일하고 중앙집권체제를 시작하기 전까지의 봉건적 제후들이 군웅할거했던 과도기였다. 이 시대는 다시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로 나뉜다. 춘추시대(BC770~403) 초기 제후국은 140여 국이나 되었으나, 계속 통합하면서 감소되더니 전국시대에 들어서서는 진() · () · () · () · () · () · () 7국으로 재편되었다.

춘추시대의 전쟁방법은 거의 같은 시대의 서양에서 유행하던 방법과 유사했다. 주로 제후나 장수들이 전투용 마차를 타고 들판에서 싸웠으며, 전차 1량에 30인의 보병이 붙었지만 그들의 역할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당시는 청동기시대로서, 제한된 구리 생산량 때문에 장수들만 장검을 휴대하고 싸웠다. 이때 전투는 일반적으로 짧은 시간 내에 끝나고, 결과에 따라 제후국들 간의 합병이 잇따랐다.

전국시대에 7강국 간 전쟁은 보다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전쟁이 그칠 날이 없었고, 적과 우방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며 싸웠기 때문에 극히 혼란스러웠다. 이들이 철제무기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보병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철이 생산되었을 때 초기에는 주로 농구(農具)로 이용했으나 차츰 무기로 사용했다. 보병들은 철로 만든 장창과 방패를 휴대하고 철제 화살촉을 이용했다.

전투양상은 전투용 마차를 타고 싸우는 전차전으로부터 보병전으로 바뀌고 그 규모도 훨씬 커졌다. 들판뿐만 아니라 산간 지역에서도 싸웠다. 그러나 중국 보병은 서양 보병처럼 중무장하지도 않았고, 방진 대형을 취하지도 않았다. 비교적 가볍게 무장하고 지형에 따라 다양한 대형으로 싸웠다. 그리고 기습을 많이 실시하고 여러 가지 전법을 구사했다. 당시 서양에서는 전법이 매우 단순했던 데 비해 중국인들은 이미 상당한 수준의 전술을 구사하고 있었다. 특히 적을 기만, 유인하는 기술에 있어서는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

동서양은 문화수준에 큰 차이가 나는 만큼 전법에서도 차이가 컸다. 서양에서 주 공격무기는 창이었으나 동양에서는 활이었다. 서양 전사들은 정면 대결을 벌이고 죽을 때까지 싸우는 직접적인 전투를 좋아하고, 동양인들은 바로 맞부딪치기보다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화살을 날리며 적을 쇠진시켜 패배시키는 전술을 선호했다.

전국시대의 전쟁은 각국이 20만 명 이상의 대규모 군대를 동원했다. 전국시대 말기 진()나라가 조()나라 군대를 격파했을 때는 조나라 병사 40만 명을 생매장했다고 하는데, 그 정도로 대규모의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각국 제후들은 스스로 왕을 자칭하고 천하를 평정하기 위한 전쟁을 계속했다. 고대 중국이 통일되기 전의 대내전이었다. 결국 내전 끝에 진나라가 천하를 제패했다. 진나라는 어느 나라보다도 정치개혁과 부국강병책 추진을 훌륭하게 실시하고 천하를 통일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후 진나라는 봉건제도를 해체한 후 중앙집권체제를 채택하여 절대권력자인 황제가 천하를 마음대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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