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자의 결여, 일본유학의 세계
일본 주자학에서 고학에 이르기까지(16세기 ~ 18세기)
그때 세계는
1773년 : 미국, 보스턴 차 사건
1776년 : 미국, 독립선언
에도시대는 전란이 끝나고 일본의 사무라이 정권 400년 만에 최초로 맞이하는 평화 시대였다. 이제 일본 사무라이 정권도 평화의 시대를 다스릴 수 있는 통치 기술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일본에서 주자학은 평화의 시대를 통치하기 위한 지배 이데올로기로서 도입되었다. 그런데 일본에서 주자학 도입은 조선과 깊은 관련 속에서 이루어졌고, 초기 내용은 퇴계학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일본에서 주자학을 창도한 후지와라 세이카(藤原惺窩, 1561~1619)는 원래 선승이었다. 그는 1590년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온 종사관 허성(許筬, 1548~1612)을 만나 주자학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 후 후지와라는 임진왜란 때 조선에서 가져간 《퇴계전서》 등 조선의 주자학 서적을 보면서 내용을 익혔고, 포로로 데려 간 강항(姜沆, 1567~1618)과 접촉하면서 그의 가르침을 받아 주자학을 창도하게 되었다.
후지와라는 제자 하야시 라잔(林羅山, 1583~1657)을 막부에 추천했고, 하야시는 막부의 공인 유학자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하야시 가(家)는 직책이 세습되는 일본의 전통에 따라, 대를 이어 막부의 공인 유학자 직을 계승했다. 일본의 유명한 주자학자 야마자키 안사이(山崎闇齋, 1618~1682)는 퇴계를 주자 이래 최고의 학자로 극찬하며 퇴계를 가미(神)로 숭배할 정도로, 초기 일본 주자학은 퇴계학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일본의 학자들은 주자학을 통해서 사회를 안정시킬 수 있는 윤리와 도덕을 얻고자 했다. 조선 주자학과 달리, 일본학자들은 천리(天理)가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야마자키 안사이는 퇴계의 경(敬)을 중심 사상으로 삼았지만, 퇴계와는 달랐다. 원래 퇴계학의 경(敬)은 하늘과 같은 인간이 되기 위한 수양법이었다. 경(敬)은 마음을 고요히 하여 외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집중하여, 인간의 마음 안에 있는 천리와 하나가 되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한편으로 퇴계학에서는 경(敬) 공부를 실천 덕목으로 겸하기도 했다. 퇴계학의 경우, 경(敬) 공부를 많이 하여 마음이 하늘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남을 공경하는 마음이 저절로 강해지게 되므로, 경(敬)을 실천 덕목으로서도 겸하게 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야마자키 안사이는 퇴계의 경(敬)에서 '천리' 회복은 제거하고, 실천 덕목으로만 이해했다. 야마자키는 경(敬)을 타인에 대한 실천 윤리인 오륜으로서 변용했다. 야마자키는 실천 윤리와 연결되어 있던 천리를 없애버린 것이다. 즉 야마자키에게 오륜은 그저 인간관계의 기본일 뿐이다. 부모에게 효하고, 임금에게 충하는 등 오륜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며 실천 덕목에 지나지 않는다. 야마자키에게 오륜은 진리와는 무관하다.
부모에게 효하는 것, 그것은 윤리 차원을 넘어서 진리와 맞닿으면서 효는 깊어진다. 더욱 절실해진다. 조선의 주자학은 그 진리(천리)를 강하게 믿었다. 그래서 조선은 '오륜'이 윤리 차원을 뛰어넘어 진리와 연결되지 않으면 안심이 안 되었다. 진리 없는 윤리로는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 조선 주자학에게 거의 본능에 가까운 확신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에 비해 야마자키는 "윤리는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윤리인 것이지, 어떻게 진리일 수 있느냐?"고 의문을 품은 것이다.
이런 경향은 야마자키에게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일본에서 천리는 양명학과 고학(중국, 조선에서는 실학)에서 더욱 이탈하고 소멸되어 나타난다. 원래 양명학과 고학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중국이나 조선에서도 모두 주자학이 지니는 지나친 관념성의 폐단을 지적하며 나온 학문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주자학이 조선 왕조 500년의 정신적 근거로서 발달했기 때문에 그 폐단이 더욱 심했다. 정치적 억압이 하늘을 빌미로 정당화되기도 하고, 주자학적 명분이 정권 유지의 도구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경험적 현실이 주자학의 지나친 사변주의로 인해 무시되었다. 그렇지만 중국과 조선의 경우, 변하지 않는 본래의 세계인 '이(理, 天理)'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일본의 양명학과 고학은 주자학의 사변주의를 비판하면서, 이전보다 더욱 확실하게 천리를 탈락시키는 과정으로 일관한다.
양명학자 구마자와 반잔(熊澤蕃山, 1619~1691)은 인간 존재의 근본으로 육체적 요소를 제시한다. 그리고 천리를 하늘의 차원이 아니라, 인간의 차원에서 이해한다. 결국 하늘(천리)처럼 섬겨야 할 대상을 임금과 부모로 구체화하고, 오륜(五倫, 군신유의, 장유유서, 부부유별, 붕우유신)을 최고의 가치로 격상하였다.
고학은 말 그대로 주자학을 부정하고 공맹의 고학으로 돌아갈 것을 주창한 학문이다. 고학자들은 양명학자들보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천리를 분명히 부정한다. 고학의 창시자 이토 진사이(伊藤仁齊, 1627~1705)는 "만물은 천지 사이에 저절로 생물이 생겨나는 것이지, 천리라고 하는 것이 먼저 있어서 작용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토에게 퇴계학의 경(敬)은 타인을 공경하는 윤리학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더 나아가 고학자들은 인간의 열정과 욕망, 현실을 강력하게 인정하게 된다. 야마카 소코(山鹿素行)에 따르면 "인간의 열정과 욕망은 증오되어야 할 그 무엇이 아니다. ······ 사람의 욕망을 없애버리면 이미 사람이 아니며, 마치 기왓장이나 돌과 같다"고 한다.
오규 소라이(荻生徂徠, 1666~1728)에 이르면 천리는 완전히 제거되고, 성인의 도만을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천리가 제거된 성인의 도란 어떤 것인가? 오규에게 성인은 무언가를 만든 자이며, 결국 현실의 정치 지배자, 도쿠가와 쇼군이 성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천리가 제거되고 나면 현실이 강하게 대두하는 것이다.

오규 소라이
유학자인 오규는 천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천리가 제거되면 현실이 강하게 대두한다. 그의 사상은 보편자가 탈락하는 일본유학의 세계를 명백하게 알게 해준다.
일본에서 양명학으로부터 고학에 이르는 발전 과정에는 사실 주자학에 의해 지나치게 무시되던 욕망과 현실에 대한 진지한 탐색이 있었다. 이는 중국과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중국과 한국은 천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천리가 제거되어, 욕망과 현실이 강하게 나왔고, 오규 소라이에 이르러서는 성인을 현실의 지배자인 쇼군이라 간주했다.
일본 주자학에서 양명학, 고학에 이르기까지 일본 유학은 천리가 소멸 · 탈락되는 과정을 거쳤음을 보였다. 이는 불교가 신도 속에 흡수되면서 불교의 철학성이 탈락되어, 하나의 마법적 신으로 수용된 것과 비슷하다. 일본은 영원한 것, 절대적인 것, 우주 만물의 궁극적인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점에 대해 관심이 적음을 볼 수 있다. 일본이 낳은 대학자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 1914~1996)는 "일본은 절대자, 보편자 등이 있는 외래 사상을 용납 못하고, 일본적으로 변용시킨다"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일본에는 무엇인가 집요하게 저음으로 흐르면서 절대자, 보편자 등과 같은 외래 사상을 부서뜨린다. 마루야마는 집요하게 흐르는 그것을 '집요 저음'이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