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송강은 대군을 거느리고 항주를 떠나 부양현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보광국사 등원각은 원수 석보와 왕적 · 조중 · 온극양과 함께 패잔병을 이끌고 부양현 관문을 지키고 있다가, 목주로 사람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였다.
우승상 조사원은 지휘사 두 명으로 하여금 1만 군마를 이끌고 구원하러 가게 하였다. 정지휘사 백흠과 부지휘사 경덕은 모두 만부부당(萬夫不當)의 용맹을 지닌 자들이었다. 두 장수는 부양현에 당도하여 보광국사 등과 병력을 합쳐 산정을 점거하고 있었다.
한편, 송강의 대군은 칠리만(七里灣)에 당도하여, 수군이 마군에 앞장서서 전진하였다. 송군이 온 것을 보고 석보가 말에 올라 유성추를 지니고 벽풍도를 들고서 부양현 산정에서 내려왔다. 관승이 출전하려 하자, 여방이 소리쳤다.
“형님은 잠시 쉬고 계십시오. 제가 저놈과 몇 합 싸워 보겠습니다.”
송강이 문기 아래에서 보니, 여방이 화극을 들고 곧장 석보에게 달려들었다. 석보는 벽풍도를 휘두르며 대적하였다. 싸움이 50합에 이르자, 여방이 힘이 달리기 시작했다. 곽성이 그걸 보고 화극을 들고 달려 나가 석보를 협공하였다. 석보는 한 자루 칼로 두 화극에 맞서 싸우는데 조금도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세 장수가 한창 싸우고 있는데, 남군에서 보광국사가 급히 징을 울려 군사를 거두었다. 강 위에서 송군의 배들이 순풍을 타고 강변으로 오고 있는 것을 보고, 양쪽에서 협공 당할까 두려워 징을 울려 군사를 거둔 것이었다.
하지만 여방과 곽성은 석보를 놓아주지 않았다. 석보가 또 4~5합을 싸우고 있는데, 송군에서 주동이 쟁을 들고 달려 나와 또 협공하였다. 석보는 세 장수를 당해낼 수 없어 무기를 거두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때 송강이 채찍으로 가리키자 대군이 돌격하였다. 석보는 동려현 경계까지 후퇴하였다. 송군은 밤새도록 진격하여 백봉령을 넘어 하채하였다.
그날 밤 송강은 해진 · 해보 · 연순 · 왕왜호 · 일장청으로 하여금 1천 보군을 이끌고 동쪽 길로 가고, 이규 · 항충 · 이곤 · 번서 · 마린으로 하여금 1천 보군을 이끌고 서쪽 길로 가서 동려현의 적의 영채를 기습하게 하였다. 또 이준 · 삼완 · 동위 · 동맹 · 맹강으로 하여금 수로로 나아가 접응하게 하였다.
해진 등이 군병을 이끌고 동려현에 당도했을 때에는 이미 자정 무렵이었다. 보광국사는 석보와 군무를 의논하고 있다가 갑자기 포성을 듣고 급히 말에 올랐다. 세 길에서 불길이 치솟으며 송군이 쳐들어오는 것을 보고, 적장들은 석보를 따라 도망치기 바빴다.
온극양은 조금 늦게 말에 올라 소로로 달아나다가, 왕왜호 · 일장청과 마주쳤다. 부부가 일제히 달려들어 온극양을 사로잡았다. 이규는 항충 · 이곤 · 번서 · 마린과 함께 동려현으로 쳐들어가 적병들을 죽이고 불을 질렀다. 송강은 보고를 받고, 군병을 재촉하여 영채를 뽑고 곧장 동려현으로 가서 군마를 주둔하였다. 왕왜호와 일장청이 온극양을 바치며 공을 청하였다. 송강은 온극양을 항주의 장초토에게 보내 참수하게 하였다.
다음 날, 송강은 병력을 점검하여 수륙으로 병진하여 오룡령 아래에 당도하였다. 오룡령만 넘으면 곧 목주였다. 그때 보광국사는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오룡령에 군마를 주둔하고 있었다. 오룡령 관문은 장강(長江)에 인접하여 산이 험준하고 물살이 급했으며, 관 위에는 방어 시설이 되어 있고 아래에는 전함이 배치되어 있었다.
송강의 군마는 오룡령 아래에 주둔하고 영채를 세웠다. 송강은 이규 · 항충 · 이곤으로 하여금 5백 방패수를 이끌고 가서 길을 정탐하게 하였다. 이규 등이 오룡령 아래에 당도하자, 위에서 뇌목과 포석이 쏟아져 내려 전진할 수가 없어 돌아와 송선봉에게 보고하였다.
송강은 다시 완소이 · 맹강 · 동맹 · 동위를 보내 전선 절반을 강변에 대기시키게 하였다. 완소이는 두 부장과 함께 1백 척의 전선에 1천 수군을 태우고, 깃발을 흔들고 북을 울리며 노래를 부르면서 오룡령으로 다가갔다.
원래 오룡령 아래에는 산에 의지한 방랍의 수채(水寨)가 있었고, 수채 안에는 5백 척의 전선과 5천 명의 수군이 있었다. 수채는 절강사룡(浙江四龍)이라 불리는 네 명의 수군총관이 지키고 있었다. 옥조룡(玉爪龍) 도총관 성귀, 금린룡(錦鱗龍) 부총관 적원, 충파룡(衝波龍) 좌부관 교정, 희주룡(戲珠龍) 우부관 사복이었다. 그 네 총관은 원래 전당강의 사공이었는데, 방랍에게 투신하여 삼품직(三品職)을 받은 자들이었다.
그날 완소이 등은 배를 타고 흐름을 따라 내려가 여울을 향해 갔다. 남군 수채 안의 네 총관은 이미 그걸 알고 불을 붙일 50척의 뗏목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그 뗏목들은 큰 소나무와 삼나무를 엮은 것으로, 그 위에 건초를 쌓고 건초 안에는 유황과 염초 등의 인화물을 넣어 두었다.
완소이 · 맹강 · 동위 · 동맹은 여울을 향해 배를 저어가고 있었는데, 네 명의 수군총관이 위에서 그걸 보고서 붉은 신호 깃발을 꽂은 네 척의 쾌속선을 타고 아래로 내려왔다. 적선을 본 완소이는 수군들에게 화살을 쏘라고 명하였다. 그러자 네 척의 쾌속선은 방향을 돌려 위로 올라갔다. 완소이는 기세를 타고 추격하였다.
네 척의 쾌속선이 여울목에 닿자, 네 명의 총관은 강안으로 뛰어 올랐고 수군들도 모두 강안에 올라가 달아났다. 완소이는 여울 안의 수채에 배가 많은 것을 보고 감히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완소이가 의심하여 망설이고 있는데, 오룡령 위에서 깃발이 흔들리면서 징소리와 북소리가 울리자 불붙은 뗏목들이 순풍을 타고 여울 아래로 내려왔다. 뗏목들 뒤에는 큰 배들이 따르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장창과 갈고리를 든 수군들이 타고서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동위와 동맹은 적의 기세가 큰 것을 보고, 배를 강안에 댄 다음 배를 버리고 산을 기어 올라가 길을 찾아 본채로 돌아갔다. 완소이와 맹강은 배 위에서 적을 맞이하였다. 하지만 불붙은 뗏목이 밀려오자, 완소이는 급히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때 뗏목 뒤를 따라오던 적선에서 갈고리가 내려와 완소이를 걸었다. 완소이는 사로잡혀 욕을 당할 것이 두려워 허리에 차고 있던 요도를 뽑아 목을 찔러 죽었다.
맹강도 형세가 불리한 것을 보고 급히 물속에 뛰어들었는데, 그때 불붙은 뗏목에서 일제히 터진 화포가 투구에 맞아 머리가 으깨져 죽었다. 네 명의 수군총관이 배 위로 올라와 송군들을 마구 죽였다.
이준과 완소오 · 완소칠은 모두 뒤편 배에 있었는데, 앞의 배들이 형세가 불리한데다 적선들을 강을 따라 쳐들어오자 황급히 방향을 돌려 흐름을 따라 내려가 동려현으로 돌아갔다.
한편, 오룡령 위에서 자기편 수군총관들이 승전하는 것을 보고 있던 보광국사와 원수 석보는 기세를 타고 병력을 이끌고 아래로 쳐들어 내려왔다. 하지만 수심이 깊고 거리도 멀어 추격하지는 못하였다. 송군은 후퇴하여 동려현으로 돌아오고, 남군도 군사를 거두어 오룡령으로 돌아갔다.
송강은 동려현 영채에 머물면서, 또 완소이와 맹강을 잃고서 슬픔에 빠졌으며 침식(寢食)도 전폐하고 몽매(夢寐)에도 불안해 하였다. 오용과 여러 장수들이 위로하였으나 소용없었다. 완소칠과 완소오가 형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송강을 찾아와 위로하였다.
“저희 형이 국가의 대사를 위해 목숨을 바쳤으니, 양산박에서 이름도 없이 죽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선봉께서는 너무 슬퍼하지 마시고, 국가 대사를 처리하십시오. 저희 형제가 반드시 복수하겠습니다.”
송강은 그 말을 듣고 안색이 조금 돌아왔다.
다음 날, 송강은 다시 군마를 점검하여 진격하고자 했는데, 오용이 간했다.
“형님! 성급하면 안 됩니다. 다시 계책을 심사숙고하여 오룡령을 넘어도 늦지 않습니다.”
그때 해진과 해보가 말했다.
“저희 형제는 원래 사냥꾼 출신이라, 산을 기어오르고 고개를 넘는 것에 익숙합니다. 저희 형제가 이곳 사냥꾼으로 변장하고 산을 기어 올라가 불을 지르면, 적병은 크게 놀라 필시 관을 버리고 달아날 것입니다.”
오용이 말했다.
“그 계책이 비록 좋기는 하나, 산이 험준하여 나아가기가 어려울 것이네. 만약 발을 헛디디기라도 한다면, 목숨을 보존하기가 어려울 것이네.”
해진과 해보가 말했다.
“저희 형제는 등주 감옥에서 나와 양산박으로 올라간 이래로 형님의 은덕을 입었습니다. 수년 동안 호걸 노릇도 해 왔고, 또 국가로부터 벼슬을 받아 비단옷을 입기도 했습니다. 오늘 조정을 위하여 분골쇄신(粉骨碎身)하고 형님의 은덕에 보답할 수 있다면, 무엇이 아깝겠습니까?”
송강이 말했다.
“아우들은 그런 흉한 소리 하지 말게. 다만 빨리 큰 공을 세워 경성으로 돌아갈 생각만 하게. 그러면 조정에서도 우리를 얕보지 못할 걸세. 자네들은 다만 진심갈력(盡心竭力)하여 국가를 위해 일하면 되네.”
해진과 해보는 호피로 된 옷을 입고 허리에 칼을 차고 강차를 들었다. 두 사람은 송강을 작별하고, 소로로 오룡령을 향해 떠났다. 그때는 저녁 8시경이었는데, 도중에 매복해 있던 적군 둘을 만나 죽이고 오룡령 아래에 당도했을 때에는 밤 10시경이 되었다. 그때 오룡령 위의 영채에서 시각을 알리는 북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은 대로로 가지 못하고 칡덩굴을 붙잡고 한 걸음씩 기어 올라갔다.
그날 밤은 달이 밝아 대낮처럼 환했다. 두 사람이 중간쯤 올라가서 오룡령 위를 올려다보니, 등불이 깜빡이는 것이 보였다. 두 사람이 관문 근처에까지 올라가 엎드려 있으려니, 위에서 새벽 2시를 알리는 북소리가 들렸다. 해진이 해보에게 가만히 속삭였다.
“밤이 짧아서 곧 날이 밝을 것 같다. 빨리 올라가야겠다.”
두 사람은 다시 칡덩굴을 붙잡고 산을 기어 올라갔다. 암벽이 구불구불한 곳을 기어 올라가 험준한 절벽에 다다랐다. 두 사람은 손발을 쉬지 않고 기어 올라가느라, 강차를 등 뒤에 묶고 있었는데 강차가 칡덩굴에 부딪혀 소리를 냈다. 그 바람에 고개 위에 있던 적병들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해진이 절벽을 오르고 있을 때, 위에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받아라!”
그러면서 갈고리가 내려와 해진의 상투를 걸었다. 해진이 급히 허리에 찬 칼을 빼들었을 때, 또 다른 갈고리가 내려와 다리를 걸었다. 해진은 당황하여 칼로 갈고리를 잘랐다. 해진은 허공에서 떨어졌다. 가련하게도 반평생을 호걸로 살아온 해진은 백 길이 넘는 절벽에서 추락하여 비명에 죽고 말았다. 절벽 아래에는 늑대 이빨 같은 바위들이 삐죽삐죽 솟아 있어, 해진의 몸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해보는 형이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급히 아래로 내려가려 했는데, 위에서 크고 작은 돌들과 화살이 칡덩굴 사이로 쏟아졌다. 가련하게도 해보 역시 오룡령 아래 칡덩굴 속에서 형과 함께 죽고 말았다.
날이 밝자, 오룡령 위에서 적병들이 내려와 해진과 해보의 시신을 고개 위로 끌고 올라가, 그냥 썩게 내버려 두었다. 정탐병이 그 사실을 알아내어 해진과 해보가 오룡령에서 죽었음을 송선봉에게 알렸다. 송강은 또 해진과 해보를 잃었음을 알고 통곡하다가 몇 번이나 혼절하였다.
송강은 관승과 화영을 불러, 병력을 점검하여 오룡령 관문을 공격하여 네 형제의 원수를 갚으라고 하였다. 오용이 간했다.
“형님! 서두르지 마십시오. 이미 죽은 사람은 모두 천명입니다. 관문을 취하려면 서둘러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신기한 묘책으로 관문을 취하고서 장병들을 내보내야 합니다.”
송강이 노하여 말했다.
“수족 같은 우리 형제 셋 중에 하나를 잃을 줄이야 누가 생각했겠나? 게다가 적병들이 우리 형제의 시신을 고개 위에 그냥 썩게 내버려 둔 것을 어찌 참을 수 있겠는가! 오늘 밤 반드시 병력을 이끌고 가서 시신을 찾아와, 관을 마련하여 장례를 지내야겠네.”
오용이 말리며 말했다.
“적병이 시신을 내버려 놓은 것도 계책입니다. 형님은 서두르지 마십시오.”
하지만 송강은 오용의 말을 듣지 않고, 즉시 3천 정병을 점검하여 관승 · 화영 · 여방 · 곽성과 함께 밤중에 진격하였다. 오룡령에 당도했을 때에는, 이미 밤 10시경이 되어 있었다. 소교가 보고하였다.
“앞에 내버려진 시신 두 구가 있는데, 아마 해진 · 해보의 시신 같습니다.”
송강이 친히 말을 달려가 보니, 두 그루 나무 사이에 장대에 끼워 놓은 두 구의 시신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나무껍질을 벗겨 낸 곳에 두 줄의 큰 글씨가 쓰여 있는데, 달빛이 어두워 읽을 수가 없었다. 송강이 등불을 켜게 하여 비추어 보니, ‘송강도 조만간 이곳에 매달릴 것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송강은 그걸 보고 크게 노하여, 나무에 걸려 있는 시신을 끌어내리게 하였다. 그때 사방에서 횃불이 밝혀지고 북소리와 징소리가 어지럽게 울리면서 수많은 군마가 포위하였다. 그리고 고개 위에서는 화살이 어지럽게 쏟아져 내렸다. 강변에서는 배 안에서 적의 수군들이 내려와 쳐들어오고 있었다.
송강이 그걸 보고 ‘아이고!’ 소리치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급히 후퇴하려고 할 때, 석보가 나타나 길을 가로막고 위에서는 등원각이 쳐들어왔다.
송강은 해진과 해보의 시신을 구하려고 오룡령에 갔다가, 석보의 계책에 빠졌다. 사방에서 복병이 일제히 일어났는데, 앞에는 석보의 군마가 뒤에는 등원각의 군마가 가로막았다. 석보가 큰 소리로 외쳤다.
“송강은 빨리 말에서 내려 항복하지 않고 또 어느 때를 기다리느냐!”
관승이 크게 노하여, 청룡도를 휘두르며 달려 나가 석보와 교전하였다. 그런데 두 장수가 미처 교전하기 전에 뒤편에서 함성이 또 일어났다. 배후에서 네 명의 수군총관이 일제히 강안으로 올라와 왕적 · 조중과 함께 고개 위에서 아래로 쳐들어오고 있었다.
화영이 급히 달려 나가 적을 가로막고 왕적과 교전하였다. 싸움이 몇 합에 이르지 않아 화영이 달아나자, 왕적과 조중이 기세를 타고 추격하였다. 그때 화영이 몸을 돌리면서 연이어 화살 두 대를 날려 두 적장을 말에서 떨어뜨렸다. 적병들은 함성만 지를 뿐 감히 앞으로 나오지 못하고, 후퇴하여 달아나기 시작했다. 네 명의 수군총관들도 왕적과 조중이 연이어 죽는 것을 보고 감히 앞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 덕분에 화영은 적을 막을 수 있었다.
그때 옆길에서 또 두 부대의 적군이 튀어 나왔다. 적장 백흠과 경덕이 이끄는 부대였다. 송군에서도 두 장수가 나갔다. 여방은 백흠과 교전하고, 곽성은 경덕과 교전하였다. 이렇게 송군은 사방에서 몰려드는 적군을 상대로 결사전을 벌였다.
송강이 당황하고 있는데, 남군의 후면에서 함성이 천지를 진동하더니 적군들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규가 항충 · 이곤과 함께 1천 보군을 이끌고 와서 석보 군마의 후방을 공격한 것이었다. 등원각이 군사를 이끌고 달려와서 구원하려고 할 때, 배후에서 노지심과 무송이 선장과 계도를 휘두르며 1천 보군을 이끌고 달려와 공격했다. 그 뒤를 따라 또 진명 · 이응 · 주동 · 연순 · 마린 · 번서 · 일장청 · 왕왜호가 각기 마군과 보군을 거느리고 쳐들어왔다.
이처럼 송군이 사방에서 석보와 등원각의 군마를 공격하여, 송강 등을 구해 동려현으로 돌아갔다. 석보도 병력을 거두어 오룡령 위로 물러갔다. 송강이 영채에 돌아와 여러 장수들을 칭찬하며 말했다.
“형제들이 구원해 주지 않았더라면, 나도 해진 · 해보와 같이 황천의 귀신이 될 뻔했네.”
오용이 말했다.
“형님이 이번에 가신 것이 제 뜻과 맞지 않았기 때문에, 실수가 있을까 염려하여 여러 장수들을 보내 구원하게 했습니다.”
송강은 감사하여 마지않았다.
한편, 오룡령 위에서 석보는 등원각과 상의하며 말했다.
“지금 송강의 병마가 동려현에 주둔하고 있는데, 만약 몰래 샛길로 고개를 넘어가게 되면 목주가 지척으로 위태롭게 됩니다. 국사께서 친히 청계현 궁궐로 가서 천자를 뵙고 군마를 더 보내달라고 요청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면 이 오룡령을 잘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등원각이 말했다.
“원수의 말씀이 옳소. 소승이 다녀오겠습니다.”
등원각은 즉시 말에 올라 목주로 가서, 우승상 조사원을 만나 말했다.
“송강의 병마가 용맹하여 그 기세를 막기가 어렵습니다. 군마가 땅을 말듯이 쳐들어오면 실수가 있을까 두렵습니다. 소승이 온 것은, 관문을 지키기 위해 장병을 더 보내달라고 요청하기 위함입니다.”
조사원은 그 말을 듣고, 등원각과 함께 청계현 방원동으로 가서 좌승상 누민중을 만나 군마를 더 보내달라는 주청을 드려 달라고 말했다.
다음 날 아침, 방랍이 대전에 오르자 좌우 두 승상이 등원각과 함께 나와 절을 올렸다. 등원각이 앞으로 나와 만세를 부른 다음 아뢰었다.
“신 원각은 성지를 받들어 태자와 함께 항주를 지키고 있었는데, 뜻밖에 송강의 군마가 용맹하게 땅을 말듯이 쳐들어와 그 기세를 막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원평사가 적을 성중으로 인도하여 항주는 함락되고, 태자는 나가서 싸우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지금 제가 원수 석보와 함께 오룡령 관문을 지키고 있는데, 근래에 송강의 네 장수를 베어 기세를 조금 올렸습니다.
송강이 지금 동려현에 주둔하고 있는데, 조만간에 몰래 샛길로 고개를 넘어 관문으로 쳐들어오면 지키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뛰어난 장수와 정예 군마를 더 보내주셔서 함께 오룡령 관문을 지키도록 해주십시오. 그러면 적을 물리치고 잃었던 성을 수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방랍이 말했다.
“이미 군병들은 각처로 다 내보냈소. 근래에 또 흡주 욱령관도 위급하다 하여, 또 수만 군병을 보내 어림군밖에 남아 있지 않소. 과인도 대궐을 지켜야 하니, 어떻게 사방으로 군사를 내보낼 수 있겠소?”
등원각이 또 아뢰었다.
“폐하께서 구원병을 보내주시지 않으면 신으로서도 어쩔 수 없습니다. 만약 송군이 오룡령을 넘어오면 목주를 어떻게 지킬 수 있겠습니까?”
좌승상 누민중이 출발하여 아뢰었다.
“저 오룡령 관문은 아주 요긴한 곳입니다. 신이 알기로 어림군은 모두 3만이니, 1만만 나누어 국사를 따라가 관문을 지키게 하십시오. 폐하께서는 밝히 살펴주십시오.”
하지만 방랍은 누민중의 말을 듣지 않고, 어림군을 오룡령으로 보내지 않았다. 그날 조회가 파하고, 대궐을 나온 누승상은 여러 관원들과 의논하여, 조승상이 거느리고 있는 목주의 군대에서 장수 하나와 5천 군사를 국사와 함께 오룡령으로 보내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등원각은 조사원과 함께 목주로 돌아와, 5천 정예 군마를 선발하여 장수 하후성과 함께 오룡령 영채로 돌아갔다.
등원각이 석보에게 사실을 얘기하자, 석보가 말했다.
“조정에서 어림군을 보내주지 않으니, 우리는 관을 지키기만 하고 출전하지 맙시다. 수군총관 네 명에게도 강변만 굳게 지키면서, 적의 배가 오면 물리치되 진격하지 말라고 해야겠습니다.”
이렇게 보광국사는 석보 · 백흠 · 경덕 · 하후성과 함께 오룡령 관문을 지키고 있었다.
한편, 송강은 장수를 잃고서 동려현에 주둔한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20여 일이 지나도록 출전하지 않고 있었는데, 홀연 탐마가 달려와 보고하였다.
“조정에서 동추밀을 보내 상을 내렸는데, 이미 항주에 당도하였습니다. 우리가 병력을 두 길로 나누었다는 것을 알고, 동추밀이 대장 왕품에게 상을 나누어주고 욱령관의 노선봉에게 보내고 동추밀은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송강은 보고를 받고, 오용과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동려현에서 20리 밖에까지 나가 영접하였다. 동추밀은 현청으로 와서 천자의 성지를 낭독하고, 장병들에게 상을 나누어주었다. 송강 등은 동추밀에게 절을 한 뒤 연회를 열어 대접하였다. 동추밀이 말했다.
“장수들을 많이 잃었다고 들었소.”
송강이 눈물을 흘리며 아뢰었다.
“예전에 조추밀을 따라 북쪽으로 가서 요나라를 정벌할 때에는 전승을 하면서 한 사람의 장수도 잃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칙명을 받들어 방랍을 토벌하러 올 때에는, 경성을 출발하기도 전에 공손승이 먼저 떠나고 또 어전에 몇 사람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진격하여 강을 건너자, 당도하는 곳마다 몇 명씩 잃었으며, 근래에는 또 8~9명의 장수들이 병이 나서 항주에 남았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전면의 오룡령을 두 번 공격하다가, 또 장수 몇 명을 잃었습니다. 산은 험준하고 수세는 급해 공격하기가 어려워, 관문을 빨리 깨뜨릴 수가 없습니다. 어찌할까 고민하고 있는 중인데, 다행히 상공께서 오셨습니다.”
동추밀이 말했다
“금상천자께서 선봉이 큰 공을 세웠다는 것을 아시고 또 후에 장수들을 잃었다는 것을 들으시고, 나에게 대장 왕품과 조담을 데리고 가서 싸움을 도우라고 하셨소. 왕품은 상을 장병들에게 지급하기 위해 노선봉 있는 곳으로 갔소.”
동추밀은 조담을 불러 송강 등과 상견하게 하고, 함께 동려현에 머물렀다. 송강은 연회를 열어 동추밀을 대접하였다.
다음 날, 동추밀이 군마를 점검하여 오룡령 관문을 공격하려 하자, 오용이 간했다.
“상공께서는 가벼이 움직이지 마십시오. 일단 연순과 마린을 계곡 샛길로 보내 그곳에 사는 백성을 찾아 다른 샛길을 알아본 다음, 관문을 공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양면에서 협공하여 적들이 서로를 돌아보지 못하게 하면, 이 관문은 손바닥에 침 뱉는 것만큼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송강이 말했다.
“그 말이 참으로 묘하네.”
송강은 즉시 마린과 연순으로 하여금 수십 명의 군사를 이끌고 시골마을에서 백성을 찾아 길을 알아오게 하였다. 마린과 연순이 떠난 지 하루 만에 한 노인을 데리고 저녁에 돌아왔다. 송강이 물었다.
“이 노인은 누군가?”
마린이 말했다.
“이 노인은 이곳의 토박이로서, 산과 계곡의 길을 모두 알고 있다고 합니다.”
송강이 노인에게 말했다.
“노인장께서 우리에게 오룡령을 넘어가는 길을 가르쳐 주시면, 큰 상을 내리겠습니다.”
노인이 말했다.
“이 늙은이는 조상 때부터 이곳에 살았는데, 백성들은 누차 방랍에게 핍박을 당하면서도 도망칠 곳이 없습니다. 이제 다행히 천병이 왔으니, 만민이 복을 누리고 다시 태평세월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샛길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그 길로 오룡령을 넘으면 곧 동관으로, 목주가 멀지 않습니다. 동관 북문에 당도하여 서문으로 돌아가면 바로 오룡령입니다.”
송강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노인에게 은 덩어리를 상으로 주고 영채 안에 머물게 하여 술과 음식을 대접하였다.
다음 날, 송강은 동추밀에게 동려현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장수 12명을 거느리고 샛길로 나아갔다. 송강은 화영 · 진명 · 노지심 · 무송 · 대종 · 이규 · 번서 · 왕영 · 호삼랑 · 항충 · 이곤 · 능진과 함께 마보군 1만을 거느리고 노인을 따라갔다. 말은 방울을 떼고 군사들은 함매하고서 빠르게 나아갔다.
소우령에 당도하자 한 떼의 적군이 길을 가로막았다. 송강은 이규 · 항충 · 이곤으로 하여금 물리치게 하였다. 4~5백 명의 적병들은 모두 이규 등에 의해 죽거나 도망쳤다. 송강의 부대는 새벽 2시경에 동관에 당도하였다.
동관을 지키던 장수 오응성은 송군이 당도했다는 말을 듣고 막을 방도를 생각했지만, 부하가 겨우 2천밖에 되지 않으니 어떻게 대적할 수 있겠는가? 오응성은 목주로 도망쳐서 조승상에게 보고하였다.
“지금 송강의 군마가 몰래 샛길로 오룡령을 넘어 동관에 당도했습니다.”
조사원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 급히 장수들을 모아 상의하였다.
그때 송강은 포수 능진으로 하여금 연주포를 터뜨리게 하였다. 오룡령 위의 영채에 있던 석보 등은 화포 소리를 듣고 크게 놀라, 급히 백흠을 내보내 알아보게 하였다. 백흠이 군사를 이끌고 나와 보니, 송강의 깃발이 산과 들을 덮고 있었다. 백흠이 급히 오룡령으로 돌아와 보고하자, 석보가 말했다.
“조정에서 구원병을 보내주지 않았으니, 우리는 관문을 굳게 지키기만 하고 구원하러 가지 맙시다.”
등원각이 말했다.
“원수의 말씀은 옳지 않습니다. 지금 만약 구원병을 보내지 않으면, 목주는 무사할 수 없습니다. 만약 궁궐까지 잃게 되면, 우리도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원수께서 가지 않으시겠다면, 나 혼자라도 목주를 구원하러 가겠습니다.”
석보는 말릴 수가 없었다. 등원각은 5천 인마를 점검하여 선장을 들고 하후성과 함께 오룡령을 내려갔다
한편, 송강은 동관에 당도하여 목주를 공격하러 가지 않고, 먼저 오룡령 관문을 취하러 가다가 등원각과 마주쳤다. 양군이 마주치자, 등원각이 앞으로 나와 도전하였다. 화영이 그걸 보고, 송강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차여차하면 저놈을 잡을 수 있습니다.”
송강이 고개를 끄덕이고, 진명에게 분부했다. 진명이 먼저 출전하여, 등원각과 교전하다가 5~6합 만에 말을 돌려 달아나고 군사들도 각자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등원각은 진명을 내버려 두고 송강을 잡으려고 달려들었다.
송강을 호위하면서 준비하고 있던 화영은 등원각이 접근해 오는 것을 보고, 활을 당겨 등원각을 향해 쏘았다. 화살은 유성처럼 날아가 등원각의 얼굴에 정통으로 꽂혔다. 말에서 떨어진 등원각은 달려든 송군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송군이 일제히 돌격하자, 남군은 대패하였다, 하후성은 감당하지 못하고 목주로 도망쳤다. 송군은 곧장 오룡령 위로 쳐들어갔지만, 뇌목과 포석이 쏟아져 내려 더 이상 올라갈 수가 없었다. 송군은 어쩔 수 없이 후퇴하여 목주부터 공격하기로 했다.
한편, 목주로 도망친 하후성은 조승상에게 말했다.
“송군이 이미 동관을 지나 등국사를 죽이고 목주를 공격하러 오고 있습니다.”
조사원은 그 말을 듣고, 하후성과 함께 사람을 청계현으로 보내 누승상에게 알리게 하였다. 누승상은 입조하여 아뢰었다.
“지금 송군이 샛길로 나와 동관을 지나 목주를 공격하러 오고 있는데, 아주 위급합니다. 폐하께서는 빨리 군병을 파견하여 구원하십시오. 지체하면 목주를 잃게 됩니다.”
방랍은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라, 급히 전전태위(殿前太尉) 정표로 하여금 1만5천의 어림군을 점검하여 목주를 구원하러 가게 하였다. 정표가 아뢰었다.
“천사(天師)가 동행하여 접응하게 해주시면, 송강을 대적할 수 있습니다.”
방랍은 그 요청을 허락하고 영응천사(靈應天師) 포도을을 불렀다. 포도을이 와서 절을 올리자 방랍이 말했다.
“지금 송강의 병마가 과인의 땅을 침범하여, 여러 성을 함락하고 장병들을 죽였소. 송군이 목주에 당도하였으니, 천사가 도술을 써서 나라와 백성을 구하고 강산과 사직을 보존케 하시오.”
포천사가 아뢰었다.
“주상께서는 마음 놓으십시오. 빈도가 비록 재주 없지만, 흉중에 품은 학식과 폐하의 홍복으로 송강의 병마를 쓸어버리겠습니다.”
방랍은 크게 기뻐하면서 연회를 열어 대접하였다. 연회가 끝난 뒤, 포도을은 조정을 나와 정표 · 하후성과 상의하였다.
원래 포도을은 금화 산중에 살던 자로서, 어릴 때 출가하여 이단(異端)의 술법을 배웠다. 후에 방랍을 따라 모반하여, 교전할 때마다 요사한 술법으로 사람을 해쳤다. 현원혼천검(玄元混天劍)이라는 보검을 날려 백 보 밖의 사람도 맞출 수 있었다. 방랍을 도와 못된 짓을 많이 하여 영응천사라 불리게 되었다.
원래 정표는 무주 난계현 도두 출신이었는데, 어릴 때부터 창봉을 배워 솜씨가 좋았는데 방랍을 만나 전수태위가 되었다. 도술을 좋아하여 포도을을 스승으로 모시고 많은 술법을 배워, 싸움터에 나가면 구름 기운이 그를 따르므로 사람들이 정마군(鄭魔君)이라 불렀다.
하후성 역시 무주 산중에 살던 자였는데, 원래 사냥꾼 출신으로 강차를 잘 썼다. 조승상을 따라 목주를 지키고 있었다.
그날 세 사람이 전수부에서 상의하고 있는데, 문지기가 와서 보고하였다.
“사천태감 포문영이 찾아왔습니다.”
포도을이 찾아온 까닭을 묻자, 포문영이 말했다.
“천사께서 태위 · 장군과 함께 송군과 싸우러 간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밤에 천문을 살펴보니, 남방의 장성(將星)은 모두 빛을 잃고 송강 등의 장성은 태반이 밝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천사께서 이번에 가시면 불리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차라리 주상께 아뢰어 투항함으로써 나라의 위기를 푸는 것이 상책일 것 같습니다.”
포도을은 그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현원혼천검을 뽑아 포문영을 한칼에 두 동강 내고 말았다. 그리고 급히 문서를 써서 방랍에게 아뢰고 죄를 청하였다.
포도을은 정표를 선봉으로 삼아 전군을 거느리고 성을 나가 진격하게 하고, 자신은 중군이 되고, 하후성은 합후로 삼았다. 이렇게 군마가 목주를 구원하러 출발하였다.
한편, 송강은 목주에 당도하여 아직 공격을 개시하지 않고 있었는데, 홀연 탐마가 달려와 청계현에서 구원군이 오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송강은 보고를 받고, 왕왜호와 일장청을 보내 적을 맞이하게 하였다.
왕왜호 · 일장청 부부는 3천 군마를 이끌고 청계현으로 가다가 정표의 군마와 마주쳤다. 정표가 출전하자, 왕왜호가 나가 교전하였다. 두 장수는 아무 말 없이 싸움을 시작했다. 8~9합에 이르자, 정표가 입속으로 주문을 외면서 소리쳤다.
“가라!”
그러자 정표의 투구 위에서 한 줄기 검은 기운이 흘러나오더니, 그 속에서 금빛 갑옷을 입은 천신(天神)이 손에 항마보저(降魔寶杵)를 들고 공중에서 내려왔다. 왕왜호는 그걸 보고 깜짝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쟁법이 흐트러지면서, 정마군의 쟁에 찔려 말에서 떨어졌다.
일장청은 남편이 말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급히 쌍도를 휘두르며 구원하러 달려 나가 정표와 교전하였다. 정표는 1합도 되지 않아 말을 돌려 달아났다. 일장청은 남편의 원수를 갚기 위해 급히 추격했다. 정마군은 쟁을 안장에 걸고 포대에서 구리 벽돌을 하나 꺼내, 몸을 돌리면서 일장청을 향해 던졌다. 일장청은 얼굴에 정통으로 구리 벽돌을 맞고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가련하게도 싸움에 뛰어난 미인의 삶이 여기서 일장춘몽(一場春夢)이 되고 말았다.
정마군은 군마를 휘몰아 송군을 추격하였다. 송군은 대패하여 돌아와, 송강에게 왕왜호와 일장청이 정마군에게 죽임을 당하고 데리고 갔던 군병 태반을 잃었음을 보고하였다. 송강은 또 왕왜호와 일장청을 잃은 것을 듣고 크게 노하여, 급히 군마를 점검하여 이규 · 항충 · 이곤과 함께 5천 인마를 거느리고 나가 적을 맞이하였다.
정마군의 군마가 당도하자, 송강은 노기가 충천하여 앞으로 나가 소리쳤다.
“역적 놈이 어찌 감히 나의 두 장수를 죽였느냐!”
정표가 쟁을 들고 출전하여 송강과 싸우려 하자, 이규가 크게 노하여 쌍도끼를 들고 나는 듯이 달려 나갔다. 항충과 이곤도 방패를 들고 이규를 보호하면서 정표에게 돌진하였다. 정마군이 말을 돌려 달아나자, 세 장수가 추격하여 남군의 진 속으로 뛰어들었다. 송강은 이규를 잃을까 두려워 급히 5천 인마를 일으켜 일제히 쳐들어갔다. 남군은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송강은 징을 울려 군사를 거두었다.
항충과 이곤이 이규와 함께 돌아오는데, 갑자기 사방에서 검은 구름이 몰려들고 검은 기운이 하늘에 가득차면서 동서남북을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대낮이 마치 밤처럼 캄캄해져, 송강의 군마는 길을 잃고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송강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였다.
“나도 여기서 죽는 것인가!”
오전 10시경부터 깔리기 시작한 검은 안개가 오후 2시경이 되어서야 비로소 걷히면서 밝은 빛이 비치기 시작했는데, 그 가운데 금빛 갑옷을 입은 덩치 큰 사내들이 송강을 둘러쌌다. 송강은 그들을 보고 깜짝 놀라 땅에 쓰러지며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빨리 죽여주시오!”
감히 얼굴을 들지도 못하고 있는데, 귓가에 비바람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수하의 장병들도 모두 땅에 엎드려 죽음만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비바람이 지나가고 어떤 사람이 송강을 부축하며 말했다.
“일어나십시오!”
송강이 고개를 들고 바라보니, 앞에 한 선비가 서 있었다. 키는 7척 정도 되고 준수한 용모에 나이는 서른 정도 돼 보였는데, 마치 천상에서 내려온 사람 같았다. 송강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예를 표하고 성명을 물었다. 선비가 대답했다.
“소생은 소준이라 하며 이곳의 토박이입니다. 방랍의 13년 운수가 이제 다하여 열흘 안에 격파할 수 있다는 것을 의사(義士)께 알려드리려고 왔습니다. 소생은 그간 여러 번 의사를 위해 힘을 써 왔습니다. 지금 비록 곤란을 당했지만, 구원병이 이미 당도했다는 것을 의사께서는 알고 계십니까?”
송강이 다시 물었다.
“선생! 방랍의 운수가 13년이라 하셨는데, 언제 잡을 수 있습니까?”
선비가 손으로 미는 바람에 송강이 문득 깨어나 보니, 남가일몽(南柯一夢)이었다. 덩치 큰 사내들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실은 모두 소나무들이었다. 송강은 소리쳐서 장병들을 일으켜 세우고 빠져나갈 길을 찾게 하였다.
그때 구름과 안개가 걷히고 날씨가 맑아졌는데, 송림 바깥에서 함성이 일어났다. 송강이 군병들을 이끌고 송림 밖으로 나와 보니, 노지심과 무송이 정표와 교전하고 있었다. 무송이 두 자루 계도를 휘두르며 정표에게 달려드는 것을 본 포도을이 마상에서 현원혼천검을 뽑아 공중으로 던졌다. 칼이 날아가 무송의 왼팔을 찍었고, 무송은 피를 흘리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때 노지심이 선장을 휘두르며 달려들어 무송을 구했다. 무송의 왼팔은 칼에 찍혀 거의 끊어질 듯 달려 있었는데, 노지심이 혼천검을 뽑았다. 무송은 정신을 차리고서 자신의 왼팔이 거의 끊어진 것을 보고, 오른손으로 계도를 들어 잘라 버렸다. 송강은 군사를 불러 무송을 영채로 데려가 쉬게 하였다.
노지심은 적진 속으로 쳐들어가다가 하후성을 만나 교전하였다. 몇 합을 싸우다가, 하후성이 패하여 달아났다. 노지심이 선장을 휘두르며 적진 깊숙이 쳐들어가자, 남군은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하후성은 산림 속으로 달아났는데, 노지심은 깊은 산속까지 끝까지 추격하였다.
한편, 정마군은 다시 병력을 이끌고 송군을 추격해 왔다. 송군에서는 이규 · 항충 · 이곤이 방패 · 비도 · 표창 · 도끼 등을 들고 일제히 정마군을 공격하였다. 정마군은 세 장수를 당해내지 못하고 고개를 넘고 계곡을 건너 달아났다. 세 장수는 길도 잘 모르면서 공을 세우고자 죽을힘을 다해 계곡을 건너 정표를 바짝 추격하였다.
그때 계곡 서쪽에서 3천 군마가 튀어나와 송군을 절단하였다. 항충이 급히 돌아섰을 때 이미 양쪽에서 두 장수가 길을 가로막았다. 항충이 이규와 이곤을 불렀지만, 두 사람은 이미 정표를 추격하여 계곡에 들어선 뒤였다. 그런데 생각 밖으로 계곡물이 깊어 이곤은 발을 헛디뎌 계곡물에 빠졌는데, 적군이 난사한 화살에 맞아 죽고 말았다.
항충은 급하게 언덕으로 뛰어 올랐지만, 밧줄에 걸려 넘어지면서 적군들의 난도질에 곤죽이 되고 말았다. 이곤과 항충이 비록 영웅이라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가련하게도 여기서 끝장나고 말았다.
이규만 혼자서 깊은 산속으로 정표를 추격해 갔는데, 계곡 옆에 있던 적군들이 뒤를 따라 기습해 왔다. 반 리를 채 못 갔는데 배후에서 함성이 일어나면서, 화영 · 진명 · 번서가 군사를 이끌고 와서 남군을 물리치고 이규를 구하여 돌아왔다. 그런데 노지심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여러 장수들이 돌아와, 정마군을 추격하여 계곡을 넘어 갔다가 항충과 이곤을 잃고 이규만 구하여 돌아왔다고 보고하자, 송강은 통곡하여 마지않았다. 군병을 점검해 보니, 많은 군사를 잃은 데다 노지심은 보이지 않았으며, 무송은 왼팔을 잃었다.
송강이 통곡하고 있는데, 탐마가 와서 보고하였다.
“군사 오용이 관승 · 이응 · 주동 · 연순 · 마린과 함께 1만 군병을 이끌고 수로를 따라 당도했습니다.”
송강은 오용 등을 맞이하여 오게 된 사정을 물었다. 오용이 대답했다.
“동추밀을 수행하는 군마와 대장 왕품, 조담, 그리고 도독 유광세가 거느린 인마가 이미 오룡령 아래에 당도하였습니다. 그래서 여방 · 곽성 · 배선 · 장경 · 채복 · 채경 · 두흥 · 욱보사와 수군두령 이준 · 완소오 · 완소칠 · 동위 · 동맹 등 13명을 그곳에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저를 따라 이곳으로 접응하러 왔습니다.”
송강이 말했다.
“또 장수들을 잃고 무송은 폐인이 되었으며, 노지심은 행방을 알 수 없네. 그러니 내가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오용이 위로하며 말했다.
“형님은 마음을 넓게 가지십시오. 이제야말로 방랍을 사로잡을 때입니다. 국가의 대사가 중요하니, 귀한 몸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송강이 소나무들을 가리키며 꿈속의 일을 얘기하자, 오용이 말했다.
“그처럼 영험한 꿈을 꾸셨다면, 이곳 어딘가에 있는 사당의 신령이 나타나 형님을 보우해 준 것이 아닐까요?”
송강이 말했다.
“군사의 말이 옳네. 산에 같이 가서 찾아보세.”
오용이 송강과 함께 산속으로 걸어 들어갔는데, 화살이 날아갈 거리의 절반도 채 못 가서 송림 속에 사당이 하나 보였다. 편액에 금빛 글씨로 ‘오룡신묘(烏龍神廟)’라고 쓰여 있었다. 송강은 오용과 함께 사당 안으로 들어가 신상(神像)을 보고 깜짝 놀랐다. 흙으로 빚은 용군(龍君) 신상이 꿈속에서 본 바로 그 사람이었던 것이다. 송강은 재배하고 감사 인사를 올렸다.
“신성하신 용군께서 구해 주신 은혜를 아직 보답하지 못하였습니다. 신령께서는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방랍을 평정하면 조정에 상주하여 사당을 중건하고 성호(聖號)를 봉하도록 하겠습니다.”
송강과 오용이 절을 하고 계단을 내려와 비석을 읽어 보니, 이 사당에 모신 신은 당나라 때의 진사(進士)인 소준이었다. 그는 과거에 응시했다가 낙방하자 강에 빠져 죽었는데, 천제(天帝)께서 그 충직함을 가련히 여겨 용신(龍神)으로 삼았다고 하였다. 그곳의 백성들이 바람을 빌면 바람이 불고 비를 빌면 비가 왔기 때문에, 이렇게 사당을 세우고 사시(四時)로 제사를 지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송강은 검은 돼지와 흰 양을 잡아 제사를 지냈다. 사당을 나와서 다시 자세히 보니, 주위의 소나무들이 꿈속에 나타났다는 것이 참으로 기이하였다. 지금도 엄주(嚴州) 북문밖에 오룡대왕(烏龍大王)의 사당이 있고 만송림(萬松林)이란 곳도 있다.
송강은 영채로 돌아와 오용과 목주를 공격할 계책을 상의하였다. 밤중까지 앉아 있다가 피곤해서, 송강은 잠시 책상에 엎드려 있었는데 누군가 와서 보고했다.
“소선비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송강은 벌떡 일어나 장막을 나가 영접하였다. 소용군(邵龍君)이 길게 읍을 하고서 송강에게 말했다.
“어제 만약 소생이 구해 드리지 않았다면, 의사께서는 소나무를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포도을의 요술에 걸려 사로잡혔을 겁니다. 좀 전에 제사를 지내주신 것에 깊이 감동하여 이렇게 감사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목주는 내일 깨뜨릴 수 있을 것이고, 방랍은 13일 내로 사로잡을 것입니다.”
송강은 그를 장막 안으로 청하여 다시 물어보려고 했는데, 홀연 바람소리에 문득 깨어나 보니 또 꿈이었다. 송강이 급히 오용을 불러 꿈 얘기를 하자, 오용이 말했다.
“용군이 그처럼 현몽하셨으니, 내일 진격하여 목주를 공격하십시다.”
송강이 말했다.
“그 말이 옳네!”
날이 밝자 군령을 내려, 대군을 점검하여 목주를 공격했다. 연순과 마린으로 하여금 오룡령으로 가는 큰 길을 지키게 하고, 관승 · 화영 · 진명 · 주동으로 하여금 목주로 가서 북문을 공격하게 하였다. 그리고 능진으로 하여금 화포 아홉 상자를 가지고 가서 성중으로 쏘게 하였다. 화포가 성중으로 날아들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흔들리며 산이 요동치는 듯하였다. 성중의 군마들은 놀라서 혼이 달아나는 듯하여 싸우기도 전에 혼란에 빠졌다.
한편, 포천사와 정마군의 후군은 노지심에게 공격당해 흩어졌고 하후성은 노지심에게 쫓겼는데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포천사와 정마군의 군마는 성중으로 들어가 있었는데, 두 사람은 우승상 조사원, 참정 심수, 첨서 환일, 원수 담고, 수장(守將) 오응성 등과 상의하였다.
“송군이 당도했는데, 어떻게 성을 구할 수 있겠소?”
조사원이 말했다.
“예로부터, 적병이 성 아래에 당도하면 결사적으로 싸우지 않으면 성을 구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성이 깨뜨려지면 모두 사로잡히고 말 것이니, 일이 위급하게 되었습니다. 모두 나가서 싸웁시다!”
정마군은 담고 · 오응성과 아장 10여 명과 함께 정병 1만을 이끌고 성을 나가 송강과 대적하였다. 송강은 군마를 화살이 날아가는 거리 절반 정도까지 후퇴시켜 적군이 진을 벌릴 수 있게 양보하였다. 포천사와 조승상 · 심참정 · 환첨서는 성루에 앉아 바라보고 있었다.
정마군이 쟁을 들고 출전하자, 송강의 진에서는 관승이 청룡도를 휘두르며 달려 나와 정표와 교전하였다. 두 장수가 교전한 지 몇 합 되지 않았는데, 정표는 관승을 당해낼 수 없어 이리저리 피하면서 막아내기에 급급하였다.
포도을이 성루에서 바라보고 있다가 요술을 부렸다. 입속으로 주문을 외우면서 소리쳤다.
“가라!”
그러면서 입김을 내불자, 정마군의 머리 위에서 한 줄기 검은 기운이 피어오르더니 그 속에서 금빛 갑옷을 입은 신인이 손에 항마보저를 들고 나타나 공중에서 공격해 왔다. 남군의 대오 속에서도 검은 구름이 피어올랐다.
송강은 그걸 보고, 혼세마왕 번서를 불러 도술을 부리게 하는 한편, 자신도 천서에 쓰여 있는 바람을 격파하는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관승의 투구 위에서 한 줄기 흰 구름이 피어오르고 그 속에서 한 신장(神將)이 나타났다. 머리털은 붉고 얼굴은 파랗고, 눈은 푸르고 이빨은 뾰족했는데, 검은 용을 타고 손에는 철추를 들고 있었다. 신장은 정마군의 머리 위에 있는 신인에게로 달려가 교전하였다.
아래에서는 양군이 함성을 지르는 가운데, 두 장수가 교전하였다. 싸움이 몇 합 되지 않아, 위에서는 오룡을 탄 신장이 금빛 갑옷의 신인을 물리치고, 아래에서는 관승이 한칼에 정마군을 베어 말에서 떨어뜨렸다.
포도을은 송군 속에서 바람이 일어나고 우레가 울리는 것을 보고 급히 몸을 일으켰는데, 그때 능진이 쏜 굉천포의 포탄에 맞아 머리와 몸뚱아리가 박살이 나고 말았다. 남군은 대패하였고, 송군은 기세를 타고 목주로 쳐들어갔다.
주동은 원수 담고를 쟁으로 찔러 말에서 떨어뜨리고, 이응은 칼을 날려 오응성을 죽였다. 목주성에서는 포천사가 화포에 맞아 박살나는 것을 보고 남군들은 모두 성 아래로 내려가 도망쳤다. 송강의 군마는 성중으로 쇄도하여 여러 장수들이 조승상 · 심참정 · 환첨서를 사로잡고 나머지 아장들을 닥치는 대로 모두 죽여 버렸다.
송강이 입성하여 먼저 방랍의 행궁을 불태우고, 그곳에 있던 황금과 비단은 삼군의 장병들에게 상으로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방을 내붙여 백성들을 안무하였다. 아직 인마를 점검하기 전이었는데, 탐마가 달려와 보고하였다.
“서문쪽 오룡령 위에서 마린이 적장 백흠의 표창에 맞아 말에서 떨어졌는데 석보가 달려와 한칼에 두 동강을 내고 말았다. 연순이 그걸 보고 달려 나가다가 또 석보가 던진 유성추에 맞아 죽었습니다. 석보는 승전하자 기세를 타고 군사를 이끌고 이곳으로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송강은 또 연순과 마린이 죽었다는 것을 듣고 가슴을 부여잡고 통곡하다가, 급히 관승 · 화영 · 진명 · 주동을 내보내 석보와 백흠을 물리치고 오룡령 관문을 취하게 하였다.
관승 등 네 장수는 병력을 이끌고 오룡령 위로 쳐들어가다가, 석보의 군마와 마주쳤다. 관승이 마상에서 소리쳤다.
“적장은 어찌 감히 나의 형제를 죽였느냐!”
석보는 관승을 보고는 싸울 마음이 없어져 오룡령 위로 후퇴하고, 백흠을 내보내 관승과 싸우게 하였다. 두 장수가 교전한 지 10합이 되지 않았는데, 오룡령 위에서 급히 징을 울려 군사를 거두었다. 관승이 추격하지 않았는데, 오룡령 위의 군병들은 절로 혼란을 일으켰다.
원래 석보가 오룡령 동쪽만 바라보고 싸우면서 서쪽을 방비하지 않아, 동추밀이 거느린 인마가 오룡령 위로 쳐들어온 것이었다. 송군 대장 왕품은 남군의 지휘사 경덕과 싸워 10합 만에 경덕을 베어 말에서 떨어뜨렸다. 여방과 곽성은 앞장서서 오룡령 위로 달려 올라갔다. 그런데 산정에서 큰 바위가 굴러떨어져 곽성은 말과 함께 바위에 치여 죽고 말았다.
오룡령 동쪽의 관승은 오룡령 위가 크게 혼란해진 것을 보고, 서쪽에서 송군이 고개 위로 올라왔음을 알고 급히 장수들을 불러 일제히 위로 쳐들어갔다. 양면에서 협공하여, 오룡령 위에서는 혼전이 벌어졌다.
여방은 백흠을 맞이하여 싸웠다. 싸움이 3합이 되지 않아 백흠이 쟁으로 찌르자, 여방이 피하면서 백흠의 쟁이 여방의 겨드랑이 아래 끼게 되었다. 여방의 화극도 백흠에게 붙잡혔다. 두 장수는 무기를 버리고 말 위에서 서로 붙잡고 싸우게 되었다. 원래 두 사람이 싸우고 있는 고개는 험준한 곳이어서 두 말이 서 있기에도 어려운 곳이었다. 그런데 두 장수가 서로 붙잡고 힘을 쓰자, 뜻밖에 사람과 말이 모두 고개 아래로 굴러떨어져 죽고 말았다.
관승 등 여러 장수들이 오룡령 위에 올라와 보니, 양면에서 송군이 모두 오룡령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석보는 양면 어느 쪽으로도 달아날 길이 없자, 사로잡혀 욕을 당할 것이 두려워 벽풍도로 자신의 목을 찔러 자결하였다. 관승 등 여러 장수들은 오룡령 관문을 탈취하고서 송선봉에게 사람을 보내 알렸다.
강변 수채에 있던 4명의 수군총관들은 오룡령을 잃고 목주가 함락되는 것을 보고, 모두 배를 버리고 강안으로 올라가 달아났다. 하지만 성귀와 사복은 백성들에게 사로잡혀 목주로 압송되어왔고 적원과 교정은 어디로 달아났는지 알 수 없었다.
송군의 대군이 목주로 오자, 송강은 성을 나가 영접하였다. 동추밀과 유도독이 입성한 다음 방을 내붙여 백성을 안무하고 생업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남군의 투항자는 부지기수였다. 송강은 창고의 식량을 풀어 백성들에게 나누어주고,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 다시 양민이 되게 하였다.
송강은 수군총관 성귀와 사복의 배를 갈라 심장을 꺼내, 완소이와 맹강 및 오룡령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혼령을 위해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이준 등 수군장수들로 하여금 배를 거느리고 가서 역적의 앞잡이 노릇을 한 가짜 관원들을 붙잡아 장초토에게 압송하게 하였다. 송강은 또 여방과 곽성이 죽은 것을 알고, 슬퍼하여 마지않았다. 병력을 움직이지 않고, 노선봉의 병마가 당도하면 함께 청계현을 공격하기로 하였다.
한편, 부선봉 노준의는 항주에서 병력을 나눈 후 3만 인마를 거느리고 28명의 장수들과 함께 산길로 전왕(錢王)의 옛 도읍이었던 임안진을 지나 욱령관 앞에 당도하였다.
욱령관을 지키는 장수는 방랍 수하의 방만춘이었다. 그는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의 명궁(名弓)으로 유명한 양유기에 빗대어 소양유기(小養由基)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었는데, 방랍이 다스리는 강남 지역에서는 활을 제일 잘 쏘는 자였다.
방만춘은 2명의 부장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하나는 뇌형이고 하나는 계직이었다. 이 두 부장은 모두 7~8백 근의 힘을 들여야 당길 수 있는 강한 쇠뇌를 잘 쏘고 질려골타(蒺藜骨朵)라는 무기를 사용하였다. 그들의 수하에는 5천 인마가 있었다. 세 적장은 욱령관을 지키고 있다가 송군의 부선봉 노준의가 군사를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 대적할 기계 등을 준비하고 기다렸다.
한편, 노선봉은 군마가 욱령관에 다가가자, 먼저 사진 · 석수 · 진달 · 양춘 · 이충 · 설영으로 하여금 3천 보군을 이끌고 앞서 나가 정탐하게 하였다. 사진 등 여섯 장수는 말을 탔고 나머지 군사들은 모두 보행이었다. 관문 아래 당도하여 보니, 적군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사진은 의심이 들어 장수들과 상의하는 사이에, 어느덧 관문 앞에 당도하였다.
고개를 들어 보니, 관문 위에 수놓은 흰 비단깃발이 세워져 있고 그 아래에 소양유기 방만춘이 서 있었다. 방만춘은 사진 등을 보고 크게 웃으며 말했다.
“너희 도적놈들은 양산박에나 처박혀 있을 것이지, 뭣 하러 송조의 초안을 받아들였느냐? 그리고 어찌 감히 우리 국토까지 침범하여 호걸인 척하고 있느냐! 너희들은 소양유기의 이름을 들어본 적 있느냐? 네놈들 중에 소이광 화영이란 놈이 있다고 들었는데, 나와서 나랑 활을 겨루어보자. 네놈들에게 먼저 나의 신전(神箭)을 구경시켜 주마.”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바람을 가르며 화살이 날아와 사진을 맞혀 말에서 떨어뜨렸다. 다섯 장수가 일제히 앞으로 나와 급히 사진을 구하여 돌아왔다. 그때 산정에서 징소리가 울리면서 좌우 양옆 송림 속에서 일제히 화살이 쏟아졌다. 다섯 장수는 사진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각자 달아났다.
산허리를 돌아가는데, 앞의 산언덕 양변에서 뇌형과 계직이 쇠뇌를 비 오듯 쏘아댔다. 여섯 장수가 모두 영웅이었지만, 쏟아지는 화살을 피할 수는 없었다. 가련하게도 양산박의 여섯 장수의 삶은 이곳에서 남가일몽이 되고 말았다. 사진 · 석수 · 진달 · 양춘 · 이충 · 설영 여섯 사람은 한 명도 빠져나가지 못하고 모두 관 아래에서 화살에 맞아 죽고 말았던 것이다.
3천 명의 보졸들은 겨우 백여 명만 도망쳐서, 노선봉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였다. 노선봉은 크게 놀라 마치 얼빠진 사람처럼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신기군사 주무가 진달과 양춘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다가 노선봉에게 간하였다.
“선봉께서는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그러시다 큰일을 그르치겠습니다. 다른 계책을 생각해내 관문을 탈취하고 적장을 참하여 이 원수를 갚아야 합니다.”
노준의가 말했다.
“송공명 형님이 나에게 많은 장수들을 배정해 주었는데, 이번에 한 번도 이겨 보지 못하고 먼저 여섯 장수와 3천 군졸을 잃고 겨우 백여 명만 돌아왔으니, 어떻게 흡주로 가서 형님을 뵐 수 있겠는가?”
“옛사람이 말하기를, ‘천시(天時)는 지리(地利)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人和)만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중원의 산동과 하북 사람들이라, 수전에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리를 잃었던 것입니다. 본처의 주민들을 찾아 길을 인도하게 해야 이곳의 굽이진 산길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군사의 말이 옳네. 누구를 보내 길을 정탐하게 하는 것이 좋겠는가?”
“저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고상조 시천을 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는 처마 밑이나 벽도 탈 줄 아니까, 산속에서도 길을 잘 찾을 겁니다.”
노준의는 즉시 시천을 불러 명을 내렸다. 시천은 마른 양식을 가지고 요도를 차고 영채를 떠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길을 찾느라 한나절을 헤매다가 날이 저물었는데, 멀리서 등불이 하나 빛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시천이 혼자 말했다.
“등불이 있는 곳에 필시 인가가 있을 것이다.”
캄캄한 가운데를 더듬어 가면서 등불이 켜진 곳으로 가 보니, 작은 암자 안에서 불빛이 새나오고 있었다. 시천이 암자 앞으로 가서 안쪽을 살펴보니, 노승이 앉아서 불경을 읽고 있었다. 시천이 방문을 두드리자, 노승이 어린 행자를 시켜 문을 열어주었다. 시천이 방안으로 들어가 절을 하자, 노승이 말했다.
“손님은 절하지 마시오. 지금 천군만마(千軍萬馬)가 싸우고 있는 곳에 어떻게 오셨소?”
시천이 말했다.
“사부님께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양산박 송강의 부하 편장인 시천이라 합니다. 지금 성지를 받들어 방랍을 토벌하러 왔는데, 뜻밖에 어젯밤 욱령관을 지키는 적장의 화살에 맞아 우리 장수 여섯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관을 넘을 계책이 없어, 저를 보내 관을 넘을 샛길을 찾아보게 하였습니다. 지금 깊은 산과 넓은 들을 지나 이곳까지 왔으니, 사부님께서 저희에게 샛길을 가르쳐주셔서 몰래 이 관을 넘을 수 있게 해주시면 두터이 보답하겠습니다.‘
“이곳 백성들은 방랍의 핍박을 받아 원한을 품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이 노승 역시 이곳 백성들의 시주로 양식을 공급받아 살아왔습니다만, 지금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도망쳐 버렸습니다. 노승은 달리 갈 데가 없어, 여기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다행히 천병이 당도하였으니, 만민의 복입니다. 장군께서 역적을 토벌하러 오셨다니, 백성을 위하여 해악을 제거해 주십시오. 적들이 알게 될까 봐 두려우니, 많은 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 이제 천병이 당도하여 장군을 보냈다고 하니, 몇 말씀 드리겠습니다. 여기서는 관을 넘어가는 길이 없고, 서산 고개로 가면 관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샛길이 있습니다. 그런데 근래에 적들이 그 길을 차단하여 성벽을 쌓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됩니다.”
“사부님! 그 샛길을 통해 관으로 올라가면, 적의 영채에 당도하게 됩니까?”
“그 샛길로 가면 곧바로 방만춘 영채의 뒤편에 이르고, 고개를 내려가면 관을 지나가는 길이 나옵니다. 그런데 적들이 큰 바위를 쌓아 길을 차단하였으니, 지나가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괜찮습니다. 길이 있기만 하다면, 차단했다 하더라도 어떻게 조치할 수 있습니다. 이제 길을 알았으니 저는 돌아가서 주장께 보고하고, 나중에 다시 와서 사례하겠습니다.”
“장군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빈승이 얘기했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저도 세밀한 사람입니다. 사부님에 대해서는 감히 말하지 않겠습니다.”
시천은 노승을 작별하고 영채로 돌아가 노선봉에게 보고하였다. 노준의는 그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군사 주무를 청하여 관을 취할 계책을 의논하였다. 주무가 말했다.
“그런 길이 있다면, 욱령관을 얻는 것은 손바닥에 침 뱉는 만큼이나 쉬운 일입니다. 다시 한 사람을 시천과 함께 보내 큰일을 행하게 해야 합니다.”
시천이 말했다.
“군사께서는 무슨 큰일을 시키려 하십니까?”
주무가 말했다.
“제일 요긴한 일이 불을 지르고 화포를 터뜨리는 것일세. 자네들은 화포와 인화물 등을 가지고 적의 영채 배후로 가서 불을 지르고 화포를 터뜨리게. 그게 바로 자네들이 해야 할 큰일이네.”
시천이 말했다.
“단지 불을 지르고 화포를 터뜨리는 일 외에 다른 일이 없다면, 다른 사람과 함께 갈 필요 없이 저 혼자만 가도 됩니다. 다른 사람을 데리고 갔다가, 처마 밑이나 벽을 타는 저를 따라오지 못해 도리어 일을 그르칠까 염려됩니다. 그런데 제가 그런 일을 하면, 군사께서는 어떻게 관을 오르실 겁니까?”
주무가 말했다.
“그건 쉬운 일이네. 적병들이 매복해 있다 하더라도, 그냥 밀고 가면 되네. 적들이 매복해 있건 말건, 숲이 조밀한 곳을 만나면 불을 질러 태워 버릴 거야. 그러면 비록 매복해 있다 하더라도 무방하네.”
시천이 말했다.
“군사의 고견이 아주 분명하십니다!”
시천은 인화물을 챙기고 등에 화포를 지고서 노선봉을 작별하고 떠났다. 노준의는 군졸에게 은자 20냥과 쌀 한 섬을 지고 시천을 따라가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