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의 대군이 다섯 부대로 나뉘어 개주를 공격하러 출발하자, 개주의 정찰병이 개주성으로 달려가 보고했다. 개주성을 지키는 장수 유문충은 원래 녹림당 출신으로 강호에서 노략질한 금은재물을 모두 전호에게 투자하여 함께 모반을 꾀한 자였다. 송나라의 고을을 점거하고서 추밀사라는 직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삼첨양인도를 잘 썼으며, 무예가 출중하였다.
유문충은 사위장(四威將)이라 부르는 네 명의 맹장을 거느리고, 그들과 함께 개주를 지키고 있었다. 예위장(猊威將) 방경, 비위장(貔威將) 안사영, 표위장(彪威將) 저형, 웅위장(熊威將) 우옥린이었다. 또 이 네 명 위장 수하에 각각 네 명의 편장(偏將)이 있어, 도합 16명의 편장이 있었다. 양단, 곽신, 소길, 장상, 방순, 심안, 노원, 왕길, 석경, 진승, 막진, 성본, 혁인, 조홍, 석손, 상영이었다.
유문충은 그런 장수들과 3만 병력을 거느리고 개주를 지키고 있었는데, 근래에 능천과 고평을 잃었다는 것을 듣고 한편으로 관군을 맞을 준비를 하고 다른 한편으로 위승과 진녕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송군이 당도했다는 보고를 받고, 예위장 방경에게 편장 양단 · 곽신 · 소길 · 장상과 병력 5천을 이끌고 성을 나가 적을 막게 하였다. 성을 나갈 때 유문충이 방경에게 말했다.
“장군은 조심하게. 내가 곧 뒤따라 나가서 접응하겠네.”
방경이 말했다.
“추밀상공께서 분부하지 않으셔도 알고 있습니다. 저 두 성은 힘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적의 속임수에 빠진 것입니다. 제가 오늘 몇 놈이라도 죽이지 않으면, 맹세코 성으로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방경은 갑옷을 입고 말에 올라, 병력을 거느리고 동문으로 나갔다. 송군의 전대가 방경을 맞이하여 진세를 벌렸다. 북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는 가운데, 반군의 문기가 열리면서 방경이 나섰다. 네 명의 편장이 좌우를 호위하였다. 방경은 머리에 권운관(卷雲冠)을 쓰고, 몸에는 용린갑(龍鱗甲)과 푸른 비단 전포를 입고, 왼쪽 어깨에는 활을 오른쪽 어깨에는 화살을 멨다. 황종마를 타고 혼철쟁을 들고서 큰 소리로 외쳤다.
“물가에 사는 도적들아! 감히 속임수로 우리 성을 뺏을 수 있겠느냐!”
송군 진영에서 손립이 소리쳤다.
“역적을 돕는 반적아! 이제 천병이 왔는데, 아직도 죽을 줄을 모르느냐!”
손립은 말을 박차고 나가 방경에게 달려들었다. 두 장수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30여 합을 싸웠는데, 방경은 점점 힘이 달렸다. 반군 진영에서 방경이 손립을 이기지 못하는 것을 본 장상이 활을 들고 진 앞으로 나가 손립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손립이 이미 간파하고 말 머리를 돌렸지만, 화살은 말의 눈에 명중하였다. 말이 곤두서자, 손립은 땅에 내려서 쟁을 들고 방경에 맞섰다. 말은 아픔을 참지 못해 북쪽을 향해 몇 걸음 뛰다가 쓰러졌다.
장상은 자신이 쏜 화살이 손립을 쓰러뜨리지 못하자, 칼을 들고 말을 달려 싸움을 도우러 갔다. 그때 진명이 달려 나가 장상을 가로막고 싸웠다. 손립이 본진으로 돌아가 말을 바꿔 타려고 했으나, 방경이 쟁으로 계속 공격을 하여 몸을 빼낼 수가 없었다.
그걸 본 화영이 노하여 욕을 했다.
“적장이 감히 몰래 화살을 쏘았으니, 이번에는 내 화살 맛을 보아라!”
화영을 방경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화살은 바람을 뚫고 날아가 방경의 얼굴에 명중하였다. 방경은 몸을 뒤집으며 말에서 떨어졌다. 손립이 달려가서 쟁으로 끝장을 내고, 급히 말을 바꿔 타러 본진으로 돌아갔다.
장상은 진명과 싸우면서 낭아곤을 막아내기에 급급하였다. 그러다가 방경이 말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겁이 나서 점점 몰리고 있었다. 그러자 반군의 진에서 곽신이 쟁을 들고 장상을 돕기 위해 말을 박차고 나갔다. 진명을 두 장수를 대적하는 데도 전혀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 세 필의 말이 ‘丁’ 자로 벌려 서서 진 앞에서 싸움을 벌였다. 화영이 다시 두 번째 화살을 메겨 장상의 등을 향해 쏘면서 소리쳤다.
“받아라!”
유성처럼 날아간 화살은 장상의 등을 뚫고 들어가 화살촉이 가슴으로 튀어 나왔다. 장상은 투구가 벗겨지고 두 다리가 허공으로 치솟으면서 말에서 떨어졌다. 곽신은 장상이 화살에 맞는 것을 보고 파탄 난 척하면서 말을 돌려 본진을 향해 달아났다. 진명이 바짝 추격했다.
그때 손립은 이미 말을 갈아타고, 화영 · 삭초와 함께 병력을 휘몰아 적진으로 쳐들어갔다. 반군은 혼란에 빠졌고, 양단 · 곽신 · 소길은 그 기세를 당할 수가 없어 급히 퇴각하였다. 그때 반군의 뒤편에서 함성이 크게 일어났다. 방경이 실수할까 염려하여 유문충이 안사영과 우옥린에게 각각 5천 군마를 이끌고 두 길로 공격하게 한 것이었다.
화영 등 네 장수는 급히 병력을 나누어 대적하였다. 그러자 양단 · 곽신 · 소길은 병마를 돌려 다시 공격해 왔다. 반군은 삼면에서 협공을 해 왔고, 화영 등 네 장수는 힘을 다해 싸웠지만 점점 포위되어 가고 있었다.
그때 이번에는 동쪽에서 함성이 천지를 진동하면서 반군이 혼란에 빠졌다. 왼쪽에서는 동평을 비롯한 일곱 장수가, 오른쪽에서는 황신을 비롯한 일곱 장수가 일제히 돌격해 왔다. 반군은 대패하여 죽은 자가 아주 많았다. 안사영과 우옥린 등은 급히 퇴각하여 성으로 들어가, 성문을 닫아 버렸다. 송군은 성 아래까지 추격하였으나, 성 위에서 뇌목과 포석이 쏟아져 내려 퇴각하였다.
잠시 후, 송선봉의 대군이 당도하여 성에서 5리 떨어진 곳에 하채하였다. 송강은 소양에게 일러 화영의 공을 첫째로 기록하게 하였다. 홀연 한 줄기 괴상한 바람이 일어나 흙먼지를 날리며 서쪽에서 동쪽으로 불었다. 깃발들이 모두 요동치는 것이 이상하였다. 오용이 말했다.
“이런 바람이 부는 걸 보니, 오늘 밤 필시 적군이 우리 영채를 기습할 것입니다. 빨리 준비해야 합니다.”
송강이 말했다.
“이 바람은 참으로 심상치 않소.”
명을 내려, 구붕 · 등비 · 연순 · 마린은 3천 병력을 이끌고 영채 왼쪽에 매복하게 하고, 왕영 · 진달 · 양춘 · 이충은 3천 병력을 이끌고 영채 오른쪽에 매복하게 하였다. 노지심 · 무송 · 이규 · 포욱 · 항충 · 이곤은 5백 병력을 이끌고 영채 안에 매복하게 하였다. 포성을 신호로 하여 일제히 적을 공격하라고 하였다. 배정을 마치고, 송강은 등불을 밝혀 놓고 오용과 군사 일을 의논하고 있었다.
한편, 유문충은 두 장수를 잃고 군사를 점검해 보니, 2천 명을 잃었다. 장막 안에서 고민하고 있는데, 비위장 안사영이 계책을 내놓았다.
“상공께서는 마음 놓으십시오. 송강의 무리는 몇 번 승전했기 때문에 교만해져서 필시 아무런 준비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 밤 제가 병력을 이끌고 나가 적의 영채를 기습하겠습니다. 반드시 승전하여 오늘의 원수를 갚겠습니다.”
유문충이 말했다.
“장군이 가겠다면, 나도 병력을 거느리고 접응하겠소. 우옥린과 저형, 두 장수에게 성을 굳게 지키게 하겠소.”
안사영이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상공께서 친히 나서신다면, 반드시 송강을 사로잡을 것입니다.”
밤 10시쯤 안사영은 편장 심안 · 노원 · 왕길 · 석경과 함께 5천 군마를 거느리고, 병사들은 가벼운 갑옷을 입고 말방울을 떼고 성을 나갔다. 군사들이 모두 함매하고 질주하여 곧장 송군의 영채 앞에 당도하여, 함성을 지르면서 일제히 영채로 돌진하였다.
그때 영채 문이 활짝 열리면서 등불이 휘황하게 밝혀졌다. 안사영은 계략에 빠졌음을 알고 급히 퇴각을 명했다. 그 순간 영채에서 포성이 울리면서 왼쪽에서는 연순 등 네 장수가, 오른쪽에서는 왕영 등 네 장수가 일제히 쳐들어왔다. 영채 안에서는 이규 등 여섯 장수가 방패수들을 이끌고 튀어나왔다.
반군은 대패하여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심안은 무송의 계도에 베어져 죽었고, 왕길은 왕영에게 죽음을 당했다. 송군은 안사영 · 노원 · 석경의 인마를 포위하였다. 반군이 위급에 처해 있었는데, 유문충이 편장 조홍 · 석손과 함께 병력을 거느리고 구원하러 왔다. 양군은 한바탕 혼전을 벌이다가 각자 병력을 철수하였다.
다음 날, 유문충이 군사를 점검해 보니, 천여 명을 잃었다. 그리고 심안과 왕길, 두 장수도 죽었음을 알게 되었다. 석손도 중상을 입어 겨우 숨만 쉬고 있는 상태였다. 유문충이 고민하고 있는데, 홀연 위승에서 사신이 명령을 가지고 왔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유문충은 황망히 말에 올라 북문을 나가 사신을 영접하였다.
사신이 성으로 들어와 명령을 전했는데, 근래에 사천감(司天監)에서 밤에 천문을 보니 강성(罡星)이 진(晉) 땅을 침범하였으니, 성을 굳게 지키라는 내용이었다. 유문충이 사신에게 말했다.
“송나라 조정에서 보낸 송강의 병마가 연이어 두 성을 깨뜨리고 이미 여기까지 당도했습니다. 어제 싸움에서 장수 다섯을 잃었습니다. 구원병이 빨리 와야만 성을 지킬 수 있습니다.”
사신이 말했다.
“제가 위승을 떠날 때만 해도 그런 소식을 듣지 못했는데, 오는 도중에 송나라 조정에서 군대를 보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유문충은 연회를 열어 사신을 대접하고 예물을 주어 전송하였다. 한편으로 뇌목과 포석, 강궁과 쇠뇌, 불화살과 화기(火器) 등을 준비하여 성을 굳게 지키면서, 구원병이 오기를 기다렸다.
한편, 연순과 왕영 등의 장수들은 영채를 기습한 적병을 물리치고 돌아왔다. 다음 날, 송강은 명을 내려, 성을 공격할 때 사용하는 기계들을 준비하라고 하였다. 임충 · 삭초 · 선찬 · 학사문은 1만 병력을 이끌고 동문을 공격하고, 서녕 · 진명 · 한도 · 팽기는 1만 병력을 이끌고 남문을 공격하고, 동평 · 양지 · 단정규 · 위정국은 1만 병력을 이끌고 서문을 공격하게 하였다. 북문은 남겨 두었는데, 만약 구원병이 오면 성안에서 적군이 나와서 양쪽으로 협공을 당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진 · 주동 · 목홍 · 마린은 5천 병력을 이끌고 동북쪽의 높은 언덕 아래에 매복하고, 황신 · 손립 · 구붕 · 등비는 5천 병력을 이끌고 서북쪽의 밀림 속에 매복하게 하였다. 만약 적이 보낸 구원병이 당도하면, 양쪽에서 협공하게 하였다. 화영 · 왕영 · 장청 · 손신 · 이립은 마군 1천을 거느리고 네 성문을 왕래하면서 정탐하게 하고, 이규 · 포욱 · 항충 · 이곤 · 유당 · 뇌횡은 보병 3백을 거느리고 화영 등과 서로 호응하게 하였다.
배정이 끝나자, 장수들은 명에 따라 떠나갔다. 송강은 노준의 · 오용 등과 함께 영채를 성 동쪽 1리 밖으로 옮기고, 이운과 탕륭에게 운제(雲梯)나 비루(飛樓) 같은 것들을 만들어 각 부대로 보내게 하였다.
한편, 임충 등 네 장수는 성 동쪽에서 운제와 비루를 성벽에 접근시켜 날랜 군사들로 하여금 기어오르게 하고, 밑에서는 함성을 질러 위세를 도왔다. 하지만 성 위에서 불화살이 메뚜기 떼처럼 쏟아져 성벽을 오르던 군사들은 피하지 못하고 화살에 맞고 떨어져 죽거나 부상을 당했다. 운제와 비루도 불에 탔다. 서문과 남문도 마찬가지였다. 연이어 6~7일을 공격했지만 성을 함락하지 못했다.
송강은 성을 함락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노준의 · 오용과 함께 남문으로 가서 군사들을 독려하였다. 그때 화영을 비롯한 다섯 장수가 서쪽에서부터 동쪽으로 가고 있었는데, 성루 위에서 우옥린이 편장 양단과 곽신을 데리고 군사들의 방어를 감독하고 있었다. 화영이 성루에 접근해 오는 것을 본 양단이 말했다.
“지난번에 저놈의 화살에 우리 장수 둘을 잃었다. 오늘은 그 원수를 갚아야겠다!”
급히 활을 들어 화영을 향해 바람처럼 화살을 날렸다. 화영은 시위소리를 듣고 몸을 뒤로 젖히면서 날아오는 화살을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그 화살을 입에 물고서, 쟁을 안장 고리에 걸고 왼손으로 활을 잡고 오른손으로 입에 물었던 화살을 메겨, 양단을 향해 쏘았다. 양단은 목줄기에 화살을 맞고 뒤로 자빠졌다.
화영이 소리쳤다.
“쥐새끼 같은 놈들이 어디 감히 화살을 날리느냐! 네놈들을 한 놈 한 놈 모조리 죽여주마!”
화영이 오른손으로 다시 화살을 꺼내 쏘려고 하자, 성루에 있던 적군들은 함성을 지르며 모두 아래로 도망쳤다. 우옥린과 곽신도 놀라서 얼굴이 흙빛이 되어 몸을 피하기에 급급하였다. 화영이 냉소하며 말했다.
“오늘에야 비로소 신전장군(神箭將軍)을 알아보겠느냐!”
송강과 노준의는 갈채하여 마지않았다. 오용이 말했다.
“형님! 우리도 화영장군과 함께 성을 돌면서 형세를 살펴봅시다.”
화영 등은 송강 · 노준의 · 오용을 호위하여 성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송강 · 노준의 · 오용은 영채로 돌아왔다. 오용은 항장 경공을 불러 개주성 안의 길에 대해 물었다. 경공이 말했다.
“유문충은 예전의 관아를 원수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 북쪽에는 사당이 몇 개 있고, 공터는 모두 풀밭입니다.”
오용은 경공의 말을 듣고서 송강과 의논한 다음, 시천과 석수를 불러 은밀하게 말했다.
“계책에 따라서 여차여차하되, 화영에게 가서 은밀히 명을 전하고 때가 되면 일을 진행하라고 하게.”
오용은 또 능진 · 해진 · 해보를 불러 3백 군사와 함께 굉천포(轟天炮)를 가지고 가서 여차여차 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노지심과 무송은 징과 북을 지닌 3백 군사를 데리고, 유당 · 양웅 · 욱보사 · 단경주는 각각 2백 군사를 데리고 횃불을 준비하여 동서남북으로 가 있다가 계책에 따라 행하도록 하였다. 대종은 동서남 세 영채로 가서 은밀히 명을 전하여, 성중에서 불길이 치솟으면 성을 공격하라고 하였다. 배정이 정해지자, 두령들은 떠나갔다.
한편, 유문충은 밤낮으로 구원병이 오기만을 기다렸지만 감감 무소식이었다. 군사들을 더 다그쳐 나무와 돌을 성 위로 운반하여 굳게 지키기만 하였다. 어느 날 황혼 무렵에 문득 북문 밖에서 함성이 천지를 진동하고 북소리와 나팔소리가 일제히 울렸다. 유문충이 북문으로 달려가 성 위로 올라가 바라보았더니, 함성과 북소리가 모두 그치고 어디에 병마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유문충이 의아해 하고 있는데, 성 남쪽에서 또 함성이 일어나고 징소리와 북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유문충은 우옥린에게 북문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남쪽으로 달려갔다. 성 위에 올라가 보니, 함성이 그치고 징소리와 북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유문충이 멀리 바라보니, 송군의 남쪽 영채에서 시각을 알리는 북소리만 은은하게 들려올 뿐 불빛도 하나 보이지 않았다.
유문충이 성 위에서 천천히 내려와 원수부로 가서 장병들을 점검하고 있는데, 돌연 동문 밖에서 연주포가 터지고 서쪽에서 함성이 울리고 북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유문충이 동분서주하는 사이 날이 밝았다.
송군이 다시 와서 성을 공격하다가, 밤이 되자 퇴각하였다. 그날 밤에 또 북소리와 나팔소리, 함성이 울렸다. 유문충이 말했다.
“이건 의병(疑兵)의 계책이다. 신경 쓰지 말고, 우리는 성을 굳게 지키기만 하면 된다. 저놈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자.”
홀연 동문에서 화광이 충천하면서 셀 수도 없이 많은 횃불을 들고 비루와 운제가 성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보고를 받은 유문충은 동문으로 달려가, 저형 · 석경 · 진승과 함께 군사를 감독하여 불화살과 포석 등을 쏘게 하였다.
그때 화포 소리가 산골짜기를 울리면서 성루도 흔들렸다. 성중의 군사와 주민들은 십분 놀라고 두려웠다. 이렇게 이틀 밤을 괴롭히더니, 날이 밝자 또 성을 공격했다. 군사들은 눈을 붙일 시간이 없었고, 유문충도 밤낮으로 성을 순시했다.
사흘째 되던 날, 홀연 서북쪽에서 한 떼의 깃발이 해를 가리면서 동남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리고 송군의 10여 기 초마가 나는 듯이 본채로 달려가고 있었다. 유문충은 구원병이 온 것을 알고, 우옥린에게 성을 나가 접응할 준비를 하게 하였다.
한편, 서북쪽에서 온 군마는 진녕을 지키는 전호의 아우인 삼대왕(三大王) 전표가 보낸 구원병이었다. 전표는 구원을 요청하는 개주의 문서를 받고, 부하 맹장 봉상과 왕원에게 2만 군사를 주어 구원하러 보냈던 것이다. 그들이 양성을 지나 개주를 향해 가고 있을 때, 성에서 10여 리 떨어진 곳에서 홀연 포성이 울리면서 동쪽의 높은 언덕과 서쪽의 밀림에서 두 부대가 나는 듯이 달려 나왔다. 한쪽은 사진 · 주동 · 목홍 · 마린이고, 또 한쪽은 황신 · 손립 · 구붕 · 등비였다. 8명의 맹장이 1만 웅병을 이끌고 땅을 말듯이 돌진해 왔다.
진녕병들은 비록 2만이었지만 멀리서 오느라 피곤했다. 그런데 송군은 10여 일을 매복해 있으면서 예기를 길러 양쪽에서 협공을 해 왔다. 진녕군은 대패하여 징과 북, 깃발과 창, 투구와 갑옷을 버리고 달아나기에 바빴다. 군사는 태반이 죽음을 당했고, 마필도 무수히 잃었다. 봉상과 왕원은 겨우 목숨을 건져 패잔병을 이끌고 진녕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한편, 유문충은 송군이 구원병을 가로막고 공격하는 것을 보고, 급히 우옥린으로 하여금 북문을 열고 나가 접응하게 하였다. 북문에는 공격하는 송군이 없었던 것이다. 우옥린이 병력을 이끌고 북문을 나가 조교를 건너자마자, 서쪽에서 오는 화영의 부대와 마주쳤다. 반군들이 소리쳤다.
“신전장군이 온다!”
군사들은 당황하여 급히 퇴각하여 성안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우옥린도 이미 남문에서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놀란 적이 있었기 때문에, 감히 화영과 교전하지 못하고 성안으로 물러갔다. 화영 등은 돌격하여 20여 명을 죽였지만, 더 이상 추격하지 않고 그들이 성안으로 들어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성안으로 쫓겨 들어간 반군들은 성문을 급히 닫았다.
그때 석수와 시천이 반군 복장을 하고 그들과 섞여 성으로 들어갔다. 성문을 통과한 두 사람은 소란스런 틈을 타서 골목길로 스며들었다. 골목을 돌아가니 사당이 하나 있었는데, 편액에 ‘당경토지신사(當境土地神祠)’라고 쓰여 있었다. 두 사람이 사당 안으로 들어가 보니, 한 도인이 동쪽 벽 밑에서 불을 쬐고 있었다. 도인은 군사 두 명이 사당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물었다.
“나리! 바깥소식이 어떻습니까?”
석수가 말했다.
“방금 우리가 우장군에게 불려 싸우러 나갔다가 신전장군을 만났는데, 우장군도 감히 그와 싸우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성으로 도망쳐 들어왔는데, 쫓기다 보니까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석수는 은자를 꺼내 도인에게 주면서 말했다.
“술 가진 것 있으면 두 사발만 주십시오. 추워 죽겠습니다.”
도인은 웃으면서 일어나 말했다.
“나리! 싸움의 정세가 긴급하여 신에게 바칠 향도 없는데, 무슨 술이 있겠습니까?”
도인이 은자를 돌려주려 하자, 석수가 도인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그냥 넣어 두십시오. 우리가 며칠 동안 성을 지키느라 눈을 붙일 새가 없었습니다. 오늘 밤은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 일찍 떠나겠습니다.”
도인이 손을 저어면서 말했다.
“두 분은 기분 나쁘게 듣지 마십시오. 유장군의 군령이 아주 엄하여, 조금 있으면 순찰이 올 겁니다. 만약 내가 두 분을 여기 머물게 하면, 우리 모두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시천이 말했다.
“그렇다면 다른 곳을 찾아야겠네.”
석수는 도인 옆으로 가서 함께 불을 쬐고 있었다. 시천이 사방을 둘러보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다음, 석수에게 눈짓을 했다. 석수는 몰래 패도를 뽑아 불을 쬐고 있는 도인의 뒤에서 목을 쳐 버렸다. 그리고 사당 문을 닫아걸었다. 때는 이미 저녁이 되었다.
시천이 주방을 돌아가 보니, 뒷벽에 문이 하나 있었다. 문 밖에 나가 보니 처마 밑에 짚더미가 쌓여 있었다. 시천과 석수는 짚더미를 운반해서 도인의 시체를 덮었다. 두 사람은 사당 문을 열고 뒤로 돌아가 지붕 위로 올라갔다. 두 사람이 지붕 위에 엎드려 하늘을 우러러보니 밝은 별들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사방을 한번 둘러보고 지붕에서 내려왔다.
사당 밖으로 나가 살펴보니, 왕래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두 사람을 몇 걸음 더 나아가 좌우를 살펴보았는데, 인근에 인가가 몇몇 있었지만 모두 문을 닫고 조용한 가운데 은은히 우는 소리만 들렸다. 시천이 다시 남쪽으로 걸음을 옮겨 흙담을 돌아가 보니, 아주 큰 공터가 나타났는데 마른 풀이 수십 군데 쌓여 있었다. 시천은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여기는 초료장(草料場)이 분명한데, 어째서 지키는 군사가 하나도 없을까?”
원래 성중의 장사들은 모두 성 위에 올라가 적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초료장 지킬 군사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나마 조금 남아있던 군사들조차, 송군이 구원병을 쫓아 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성은 이제 끝장이라고 생각하고서 목숨을 건지려고 각자 숨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시천과 석수는 다시 사당으로 돌아가, 불씨를 취해 도인의 시체를 덮은 풀더미부터 불을 붙였다. 그리고 초료장으로 가서 여기저기 불을 질렀다. 잠시 후 초료장에서는 불길이 활활 타올랐고 화염이 충천하였다. 사당에서도 불길이 치솟았다.
초료장 서쪽에 사는 주민들이 불이 났다는 말을 듣고 횃불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시천이 달려가서 횃불을 빼앗자, 석수가 말했다.
“우리가 가서 유원수에게 보고하겠소.”
주민들은 두 군사를 보고 의심하지 않았다. 시천은 횃불을 들고 석수와 함께 남쪽으로 달려갔다. 입으로는 원수에게 보고해야 된다고 소리치면서, 주민들의 집이 보이면 여기저기 불을 질렀다. 조용한 곳에 이르러서 횃불을 집어던지고 반군의 복장을 벗어 버린 다음, 몸을 숨겼다.
너덧 곳에서 불길이 치솟자 성안은 마치 물이 끓어오르듯 소란해졌다. 유문충은 초료장에서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보고 급히 군사들을 보내 불을 끄게 하였다.
성 밖에서는 성안에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보고, 시천과 석수가 내응한 것을 알고 힘을 다해 성을 공격했다. 송강은 오용과 함께 해진 · 해보를 데리고 성 남쪽으로 갔다. 오용이 말했다.
“제가 전에 봤더니, 이곳 성벽이 좀 낮습니다.”
오용은 진명 등을 불러 비루를 성벽 가까이 대게 하고, 해진과 해보에게 말했다.
“적들의 간담이 서늘해지고 군사들도 이미 지쳤을 것이니, 형제들은 힘을 다해 성을 올라가게.”
해진은 박도를 차고 비루로 올라가 성벽을 뛰어넘었다. 그 뒤를 따라 해보도 성벽을 올라갔다. 두 사람은 함성을 지르며 박도를 휘둘러 마구 베어 넘겼다. 성 위의 군사들은 본래 피곤한데다가 해진과 해보가 너무 흉맹하게 설쳐대는 것을 보고 놀라고 두려워 모두 성 아래로 달아나 버렸다.
저형은 두 사람이 성 위에 올라온 것을 보고 쟁을 들고 달려들었다. 10여 합을 싸우다가 해보가 박도로 저형을 찌르자, 해진이 달려들어 머리를 베어 버렸다. 그때는 송군 가운데 성 위로 올라온 군사가 이미 백여 명이 되었다. 해진과 해보가 앞장서서 성 아래로 달려가며 소리쳤다.
“올라오는 놈은 모조리 고깃덩이로 만들어버릴 거다!”
군사들이 석경과 진승을 죽이고 성문을 지키던 군사들을 모두 베고 성문을 빼앗았다. 조교를 내리자 서녕을 비롯한 장수들이 병력을 이끌고 성안으로 돌격해 왔다. 서녕은 한도와 함께 병력을 이끌고 동문으로 달려갔다. 안사영은 버티지 못하고 서녕의 쟁에 찔려 죽었다. 서녕은 동문을 열어 임충 등을 성안으로 불러들였다. 진명은 팽기와 함께 서문을 빼앗아 동평 등을 성안으로 불러들였다. 막진 · 혁인 · 조홍은 난군 가운데서 죽음을 당했다. 시체가 거리에 가득했고, 흐르는 피가 개울을 이루었다.
유문충은 성문이 모두 빼앗긴 것을 보고 말에 올라 성을 포기하고 우옥린과 함께 2백여 명을 거느리고 북문을 나가 도주하였다. 1리를 채 못 갔는데, 어둠 속에서 흑선풍 이규와 화화상 노지심이 튀어나와 길을 가로막았다.
유문충은 개주성을 잃고 성을 나가 우옥린 · 곽신 · 성본 · 상영의 보호를 받으며 달려가다가, 이규와 노지심을 만났다. 이규가 큰 소리로 외쳤다.
“우리가 송선봉의 명을 받고 너희 좆같은 놈들을 기다린 지 오래다!”
이규가 쌍도끼를 휘두르며 달려들어 곽신과 상영을 베었다. 유문충은 깜짝 놀라 혼이 달아난 듯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노지심의 선장에 맞아 투구와 머리가 한꺼번에 박살이 났다. 2백여 명의 군사들도 모조리 죽음을 당하고, 우옥린과 성본만 겨우 목숨을 건져 달아났다. 노지심이 말했다.
“저 당나귀 같은 두 놈은 살려두자! 저놈들이 가서 보고하도록 해 주자.”
세 적장의 수급을 자르고 말과 갑옷 등을 노획하여 성으로 돌아갔다.
한편, 송강은 대군을 거느리고 개주성으로 들어가, 명령을 내려 먼저 불부터 끄게 하고 주민을 해치지 못하게 하였다. 장수들이 모두 와서 공을 바쳤다. 송선봉은 군사들을 시켜 적장의 수급을 각 성문에 내걸게 하고, 날이 밝자 방을 내걸어 백성을 안무하였다.
삼군의 인마를 모두 개주성으로 불러들여 주둔하게 하고, 장병들에게 상을 내리고 위로하였다. 공적부에 석수 · 시천 · 해진 · 해보의 공을 둘째로 올리게 하였다.
송강은 표문을 써서 개주를 얻었음을 조정에 알리고, 창고에 있는 금은보화를 동경으로 보냈다. 그리고 따로 숙태위에게 서신을 써 보냈다.
때는 섣달도 끝나갈 무렵이었다. 송강은 군무를 처리하느라 사나흘이 지났는데, 홀연 장청이 병이 나아 안도전과 함께 왔다. 송강은 기뻐하며 말했다.
“잘됐네! 내일은 선화 5년 첫날이니, 모두 모이도록 하세.”
다음 날 날이 밝자, 장수들은 모두 관복으로 갈아입었다. 송강은 형제들을 인솔하여 대궐을 향해 하례를 올렸다. 다섯 번 절하고 세 번의 고두례(叩頭禮)를 마친 다음, 관복을 벗고 붉은 비단 전포로 갈아입었다.
92명의 두령과 새로 항복한 경공이 나란히 서서 송강에게 절을 올렸다. 송선봉은 연석을 마련하여 새해를 경축하는 연회를 열었다.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송강에게 잔을 올리고 축수하였다. 술이 몇 순배 돈 다음, 송강이 장수들에게 말했다.
“여러 형제들이 노력한 덕분에 세 성을 되찾았소. 또 설날을 맞이하여 이렇게 모두 모여 즐기는 것이 참으로 오랜만이오. 다만 공손승 · 호연작 · 관승과 수군두령 이준 등 8명, 능천을 지키고 있는 시진과 이응, 고평을 지키고 있는 사진과 목홍, 이렇게 15명 형제가 이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구려.”
송강은 군중의 두목과 2백여 명의 군역을 불러 각각 따로 상을 내리고, 양고기와 술을 가지고 위주 · 능천 · 고평에 있는 두령들에게 갖다 주고 아울러 승첩을 전하게 하였다. 분부가 미처 끝나기 전에 세 곳의 성을 지키고 있는 두령들이 보낸 사자들이 당도하여 말을 전했다.
“선봉의 명을 받들어 성을 지키고 있느라 직접 가서 세배 드리지 못하는 것을 용서하십시오.”
송강은 크게 기뻐하면서 말했다.
“이렇게 소식을 들으니, 형제들을 직접 본 것이나 다름없네.”
사자들에게 상을 내리고, 형제들과 마음껏 마시다가 잔뜩 취하여 해산하였다.
다음 날, 송선봉은 동쪽 교외로 봄맞이 나갈 준비를 하였다. 그날 자정은 입춘 절기가 되는 날이었다. 그날 밤 동북풍이 불면서 짙은 구름이 깔리더니 함박눈이 내렸다. 다음 날 두령들이 일어나 보니, 온 세상이 은빛으로 변해 있었다.
지문성(地文星) 소양이 두령들에게 말했다.
“이 눈꽃에도 여러 가지 이름이 있습니다. 꽃잎이 하나인 것은 봉아(蜂兒), 둘인 것은 아모(鵝毛), 셋인 것은 찬삼(攢三), 넷인 것은 취사(聚四), 다섯인 것은 매화(梅花), 여섯인 것은 육출(六出)이라 합니다. 눈은 본래 음기(陰氣)가 응결한 것으로, 육출이 되는 까닭은 음수(陰數)에 응하기 때문입니다. 입춘 이후에는 모두 매화 아래만 내리고 육출은 내리지 않습니다. 오늘은 입춘인데 아직 겨울과 봄이 바뀌는 때라서 다섯인 것도 있고 여섯인 것도 있네요.”
그 말을 들은 악화가 처마 밖으로 나가 검은 옷소매에 떨어지는 눈을 받아 자세히 보니 진짜로 눈꽃의 잎이 여섯 개인 것도 있고 다섯 개인 것도 있었다. 악화가 연달아 소리쳤다.
“과연! 과연!”
사람들이 모두 둘러서서 보고 있는데, 이규의 더운 콧김 때문에 눈이 모두 녹아 버렸다. 사람들은 모두 크게 웃었다. 웃음소리에 놀란 송선봉이 다가와서 물었다.
“형제들은 뭣 때문에 그렇게 웃는가?”
사람들이 말했다.
“눈꽃을 보고 있었는데, 흑선풍의 콧김이 모두 녹여 버렸습니다.”
송강도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의춘포에 술자리를 마련해 두라고 분부해 두었소. 형제들은 모두 가서 즐기도록 합시다.”
원래 개주성 동쪽에 의춘포라는 곳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우향정(雨香亭)이라는 정자가 있고 그 앞에 노송나무 · 측백나무 · 소나무 · 매화나무가 몇 그루 서 있었다. 그날 저녁 두령들은 우향정에서 웃고 떠들며 술잔을 나누었다. 노는 사이에 어느덧 날이 저물어 등불을 켰다. 송강은 취흥이 올라 지난날의 어려웠던 일을 얘기했다.
“나는 본래 운성현의 작은 벼슬아치로서 큰 죄를 범했는데, 여러 형제들이 창칼의 위험 속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나를 구해 주었소. 강주에서 대종 형제와 함께 사형장에 끌려갔을 때는 거의 죽은 귀신이 다 되었었소. 그런데 오늘 이렇게 나라의 신하가 되어 나라를 위해 힘을 쓰고 있으니,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참으로 꿈만 같소!”
송강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대종과 화영을 비롯하여 어려움을 함께 겪었던 형제들도 그 말을 듣고 모두 눈물을 흘렸다.
그때 이규는 술을 많이 마셔 아주 취해 있었는데, 두령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눈꺼풀이 점점 내려오면서 두 팔을 베고 잠이 들었다. 잠이 들면서 문득 생각했다.
“바깥에는 눈이 아직 그치지 않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잠에 빠져 들었다. 그런데 몸을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자신이 정자 밖으로 나와 있는 것 같았다. 정자 밖을 살펴보다가 이상해서 혼자 중얼거렸다.
“원래 눈이 안 왔는데, 그냥 안에만 앉아 있었구나! 어디 저쪽으로 한번 가 봐야겠다.”
이규는 의춘포를 떠나 잠깐 사이에 성 밖으로 나왔는데, 문득 생각이 났다.
“아차! 도끼를 깜빡 잊고 안 가져왔구나!”
그리고는 손으로 허리춤을 더듬어보니, 도끼가 꽂혀 있었다. 남북도 분간하지 못한 채 무작정 앞으로 걸어가다 보니, 앞에 높은 산이 하나 나타났다. 잠깐 사이에 산 앞에 당도했는데, 산속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머리에는 접힌 두건을 쓰고 몸에는 담황색 도포를 입었는데, 이규에게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
“장군께서 산보를 하시려면 이 산을 돌아가 보십시오. 마음에 드는 곳이 있을 것입니다.”
이규가 말했다.
“형씨! 이 산 이름이 뭡니까?”
“이 산은 천지령(天池嶺)입니다. 장군께서 산보하고 돌아오시면, 여기서 다시 뵙겠습니다.”
이규가 그 사람의 말대로 산을 돌아가 보았더니, 홀연 길옆에 장원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장원 안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이규가 안으로 들어가 보니, 10여 명의 사람들이 손에 곤봉과 무기를 들고 집안의 가구와 집기들을 때려 부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 가운데 덩치 큰 한 사내가 욕을 퍼부었다.
“늙은 소 같은 놈아! 빨리 딸을 내놓아 내 아내로 삼게 해라. 그러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아니’라는 말이 한 마디라도 나온다면, 너희들을 모조리 죽여 버릴 것이다!”
장원으로 들어가서 그 말을 들은 이규는 가슴 속에서 불길이 치솟고 입에서 연기가 날 것만 같이 소리쳤다.
“이 좆같은 놈아! 어째서 남의 딸을 강제로 뺏으려 하느냐?”
그 사내가 소리쳤다.
“우리가 저 늙은이에게 딸을 달라고 하는데, 네놈이 왜 간섭이냐!”
이규는 크게 노하여 도끼를 뽑아 들고 휘둘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도끼를 한번 휘둘렀는데 두세 명이 쓰러졌다. 나머지가 달아나자, 이규가 쫓아가면서 도끼를 계속 휘둘러 거의 다 베어 버렸다. 땅바닥에는 시체가 가득해졌고, 단 한 사람만 도망쳤다.
이규가 안으로 들어가려고 보니, 대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이규가 대문을 발로 걷어차고 들어가 보니, 백발노인이 노파와 함께 울고 있었다. 노인은 이규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소리쳤다.
“아이고! 또 왔네!”
이규가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길을 가다가 억울한 일이 있는 것 같아서 들어와 보았습니다. 앞에 있던 좆같은 놈들은 내가 모조리 죽여 버렸으니, 나와서 보십시오.”
노인은 벌벌 떨면서 밖으로 나와 보고서, 이규를 붙잡고 말했다.
“비록 나쁜 놈들을 죽이긴 했지만, 나도 연루되어 관아에 끌려가게 생겼습니다.”
이규가 웃으며 말했다.
“어르신은 이 시커먼 놈이 누군지 모르시는구먼. 나는 양산박의 흑선풍 이규올시다. 지금 송공명 형님과 함께 조칙을 받들어 전호를 토벌하고 있는데, 성중에서 술을 마시다가 갑갑해서 산보를 나왔습니다. 그까짓 좆같은 놈들 몇 천 명을 죽인들 누가 막을 수 있겠소!”
노인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장군께서는 안으로 들어가셔서 좌정하시지요.”
이규가 안으로 들어가 보니, 탁자 위에 술과 안주가 차려져 있었다. 노인은 이규를 윗자리에 앉히고 술잔에 술을 가득 따라 두 손으로 올리면서 말했다.
“장군께서 제 딸을 구해 주셨으니, 이 잔을 받으십시오.”
이규가 잔을 받아 마시자, 노인은 또 한 잔을 권했다. 잇따라 너덧 잔을 마시고 있는데, 좀 전에 울고 있던 노파가 젊은 여자를 데리고 나와 두 손을 마주잡고 복을 빌면서 말했다.
“장군께서는 송선봉의 부하이시고 또 이렇게 뛰어나시니, 못 생겼다고 버리지 않으시면 제 딸을 장군의 배필로 드리고 싶습니다.”
이규는 그 말을 듣자, 벌떡 일어나 말했다.
“이 더러운 것들아! 내가 너희 딸을 취하려고 저 좆같은 놈들을 죽인 줄 아느냐? 주둥아리 닥쳐라!”
발로 탁자를 차서 엎어 버리고 문 밖으로 나왔다. 그때 한쪽에서 표범처럼 생긴 덩치 큰 사내가 나타나 박도를 들고 이규에게 달려들며 소리쳤다.
“야! 시커먼 도적놈아! 달아나지 마라! 우리 형제들을 어째서 모두 죽였느냐? 우리는 저 집의 딸을 원했을 뿐인데, 왜 네가 간섭하느냐?”
이규는 크게 노하여 도끼를 휘두르며 맞서 싸웠다. 20여 합을 싸우다가 사내는 당해내지 못하고, 도끼를 밀쳐내고 박도를 끌면서 나는 듯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규가 사내를 바짝 추격하여 숲을 통과하자, 갑자기 눈앞에 궁전이 나타났다. 사내는 궁전 앞에 당도하자, 박도를 내던지고 사람들 틈에 섞여 버렸다. 사내가 보이지 않아 이규가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대전 위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이규는 무례한 짓을 하지 마라! 들어와서 천자를 알현하라!”
이규는 문득 깨달았다.
“여기가 문덕전이구나! 지난번에 송공명 형님을 따라 와 본 적이 있어. 바로 황제가 계신 곳이군.”
전상에서 또 말이 들렸다.
“이규는 빨리 엎드려라!”
이규는 도끼를 감추고 앞을 올려다보니, 황제가 저 멀리 전상에 앉아 있는데 많은 관원들이 배열하고 있었다. 이규는 단정한 태도로 세 번 절을 올리고 나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아차! 절을 한번 빼 먹었구나!”
천자가 물었다.
“조금 전에 너는 왜 많은 사람을 죽였느냐?”
이규는 무릎을 꿇고 말했다.
“그놈들이 강제로 남의 딸을 빼앗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신이 분노하여 죽였습니다.”
천자가 말했다.
“이규는 억울한 일을 보고 나쁜 놈들을 없앴구나. 그 의기와 용기가 가상하여 죄를 사면하고 치전장군(值殿將軍)으로 삼겠노라.”
이규는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생각했다.
“원래 황제는 이렇게 밝으신 분이었구나!”
연달아 10여 번 머리를 조아리고 나서 일어나 대전 아래에 시립하였다.
잠시 후, 채경 · 동관 · 양전 · 고구가 반열에서 나와 엎드려 아뢰었다.
“지금 송강이 병마를 거느리고 전호를 토벌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전진하지 않고 머물러 앉아서 종일 술만 마시고 있습니다. 황상께서는 그의 죄를 다스리십시오.”
이규는 그 말을 듣자 가슴 속에서 불같은 분노가 3천 길이나 치솟아 참고 있을 수가 없었다. 쌍도끼를 들고 달려 나가, 한 번에 한 놈씩 네 놈의 머리를 모조리 잘라 버리고 큰 소리로 외쳤다.
“황제께서는 이 간신 놈들의 말을 듣지 마십시오. 우리 송공명 형님은 이미 연이어 세 성을 깨뜨리고, 지금 개주에 주둔하여 곧 출병하려고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속일 수 있단 말입니까?”
이규가 네 대신을 죽이는 것을 본 문무관원들이 이규를 잡으려 하자, 이규가 쌍도끼를 들어 보이며 소리쳤다.
“감히 날 잡으려는 놈은, 이 네 놈같이 될 것이다!”
관원들은 감히 덤벼들지 못하고 있었다. 이규는 껄껄껄 웃으며 말했다.
“통쾌하다! 통쾌해! 이 네 놈의 간신들을 끝장내 버렸으니, 얼른 송공명 형님께 가서 알려야지.”
이규가 성큼성큼 걸어서 궁전을 나와 보니, 문득 앞에 산이 나타났다. 가만히 살펴보니, 아까 전에 선비를 만났던 산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선비가 산 앞에 서 있다가 이규를 맞이하며 웃으며 말했다.
“장군께서는 잘 놀다 오셨습니까?”
이규가 말했다.
“형씨께서 잘 가르쳐주셔서, 방금 간신 네 놈을 죽였습니다.”
선비가 웃으며 말했다.
“그랬군요! 나는 분주와 심주 사이에 살고 있는데, 근래에 우연히 이곳으로 놀러 왔다가 장군 등이 마음에 충의를 품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장군께 긴요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지금 송선봉께서 전호를 토벌하러 오셨는데, 내가 열 글자로 된 요결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대로 하면 전호를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장군은 잘 기억하셨다가, 송선봉에게 알려 주십시오.”
그리고는 이규에게 요결을 읊어 주었다.
“요이전호족 수해경시족(要夷田虎族 須諧瓊矢鏃)”
‘전호의 무리를 평정하려면 반드시 경시족과 화합해야 한다.’는 그 말을, 선비는 대여섯번 읊었다. 이규도 왠지 그 말을 이해할 것 같기도 하여 열 글자를 잘 기억했다. 선비는 다시 숲속을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노파 한 분이 숲속에 앉아 있습니다.”
이규가 몸을 돌려 보는 사이에, 선비는 사라져 버렸다. 이규가 혼자 말했다.
“그 사람, 빠르기도 하네! 어쨌든 숲속에 누가 있는지 가 보자.”
이규가 숲속으로 들어가 보니, 과연 한 노파가 앉아 있었다. 이규가 가까이 다가가 보니, 바로 자기 어머니였다. 눈을 감은 채 조용히 푸른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이규가 다가가 어머니를 끌어안고 말했다.
“엄마! 그동안 얼마나 고생하셨소? 철우는 엄마가 호랑이한테 잡아먹힌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여기 있었네!”
어머니가 말했다.
“얘야! 나는 원래 호랑이한테 잡아먹히지 않았다.”
이규는 울면서 말했다.
“철우가 이제 초안을 받아서 진짜 관원이 됐어요. 송공명 형님이 북쪽 성에 주둔하고 있으니, 철우가 엄마를 업고 성으로 모시고 갈게요.”
얘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큰 소리가 울리면서, 숲속에서 얼룩무늬의 맹호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맹호는 크게 포효하더니 꼬리를 흔들면서 달려들었다. 깜짝 놀란 이규는 도끼를 들어 맹호를 내리쳤다. 있는 힘껏 내리쳤는데, 도끼는 허공을 가르면서 이규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런데 고꾸라진 곳이 의춘포 우향정의 탁자 위였다.
송강은 형제들과 지난날의 일을 한창 얘기하고 있었다. 처음에 이규가 탁자에 엎드려 졸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었다. 그런데 갑자기 큰 소리가 났다. 이규가 자고 있다가 두 손으로 탁자를 내리쳐 사발과 접시들이 다 엎어지고 국물이 튀어 두 소매가 다 젖었는데, 입으로는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엄마! 호랑이가 달아났어!”
순간 이규가 두 눈을 뜨고 둘러보니, 등불이 휘황하게 밝혀져 있는 가운데 형제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규가 말했다.
“쳇! 꿈이었구나! 그래도 통쾌하다!”
두령들이 모두 웃으면서 말했다.
“무슨 꿈인데, 그렇게 기분이 좋은가?”
이규는 먼저 꿈에 어머니를 본 것부터 얘기했다. 어머니는 원래 돌아가시지 않았고, 그래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호랑이가 덤벼들었다는 얘기를 했다. 두령들은 모두 탄식하였다. 이규가 나쁜 놈들을 죽이고 술상을 발로 차 엎은 얘기를 하자, 곁에 있던 노지심 · 무송 · 석수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
“통쾌하군!”
이규가 웃으며 말했다.
“더 통쾌한 일이 있소!”
이규가 채경 · 동관 · 양전 · 고구 네 간신을 죽인 일을 얘기하자, 모두 박수를 치면서 일제히 소리쳤다.
“통쾌하다! 통쾌해! 그런 꿈은 꿀 만 하네!”
송강이 말했다.
“형제들! 그만 하게. 꿈속 얘기는 중요한 게 아니네.”
이규는 한창 얘기에 흥에 올라 소매를 걷고 주먹을 쥐면서 말했다.
“그만하라고요? 참으로 일생에 이렇게 통쾌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 기이한 일이 있었습니다. 꿈에 나타난 선비가 나한테 ‘전호의 무리를 평정하려면 반드시 경시족과 화합해야 한다.’는 요결을 일러주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이 열 자가 전호를 격파할 수 있는 요결이라고 했습니다. 나더러 잘 기억했다가 송선봉께 전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송강과 오용도 그게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그때 안도전이 ‘경시족’이라는 세 글자를 듣고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는데, 몰우전 장청이 눈짓을 했다. 안도전은 미소를 띠면서 입을 다물었다. 오용이 말했다.
“그 꿈이 제법 기이하구먼. 눈이 그치면 진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렇게 술자리를 파하고 모두 자러 갔다.
다음 날 눈이 그치자, 송강은 노준의 · 오학구와 의논하여 병력을 두 길로 나누어 동서로 진격하기로 하였다. 동쪽 길은 호관을 넘어 소덕 · 노성 · 유사를 취하고 적의 소굴 뒤를 돌아 큰 골짜기를 따라가 임현에 당도하여 병력을 합치기로 하였다. 서쪽 길은 진녕을 취하고 곽산으로 나가 분양을 취하고 분휴 · 평요 · 기현을 지나 위승의 서북쪽으로 가서 임현에 당도하여 병력을 합치기로 하였다. 그런 다음에 위승을 취하고 전호를 사로잡는다는 계획이었다.
양로의 부대는 다음과 같이 배정하였다. 정선봉 송강은 장수 47명을 거느린다. 군사 오용과 임충 · 삭초 · 서녕 · 손립 · 장청 · 대종 · 주동 · 번서 · 이규 · 노지심 · 무송 · 포욱 · 항충 · 이곤 · 단정규 · 위정국 · 마린 · 연순 · 해진 · 해보 · 송청 · 왕영 · 호삼랑 · 손신 · 고대수 · 능진 · 탕륭 · 이운 · 유당 · 연청 · 맹강 · 왕정륙 · 채복 · 채경 · 주귀 · 배선 · 소양 · 장경 · 악화 · 김대견 · 안도전 · 욱보사 · 황보단 · 후건 · 단경주 · 시천, 그리고 하북의 항장 경공이었다.
부선봉 노준의는 장수 40명을 거느린다. 군사 주무와 진명 · 양지 · 황신 · 구붕 · 등비 · 뇌횡 · 여방 · 곽성 · 선찬 · 학사문 · 한도 · 팽기 · 목춘 · 초정 · 정천수 · 양웅 · 석수 · 추연 · 추윤 · 장청 · 손이랑 · 이립 · 진달 · 양춘 · 이충 · 공명 · 공량 · 양림 · 주통 · 석용 · 두천 · 송만 · 정득손 · 공왕 · 도종왕 · 조정 · 설영 · 주부 · 백승이었다.
배정을 마친 다음 송강은 다시 노준의와 상의하였다.
“이제 여기서 병력을 나누어 동서로 진격할 건데, 아우는 어느 쪽으로 가겠는가?”
노준의가 말했다.
“장병을 파견하는 것은 형님의 엄명을 따를 뿐입니다. 어찌 감히 제가 선택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천명을 한번 봐야겠네. 부대를 둘로 나누는 것은 결정했으니, 어디로 갈지는 제비를 뽑아 결정하도록 하세.”
배선을 불러 동 · 서 양쪽의 제비를 만들게 하고, 송강과 노준의는 분향하고 기도한 다음 송강이 먼저 제비를 뽑았다.
송강이 제비를 뽑아 보니, 동쪽이었다. 그러면 노준의는 당연히 서쪽이 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화영 · 동평 · 시은 · 두흥은 남아 2만 병력을 거느리고 개주를 지키기로 하였다.
초엿새 길일에 송강과 노준의가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홀연 보고가 들어왔다. 개주에 속한 양성과 심수 두 현이 전호의 괴롭힘에 못 이겨 부득이 투항했었는데, 이제 천병이 왔다는 것을 알고 군인들과 주민들이 양성을 지키던 장수 구부와 심수를 지키던 장수 진개를 포박하여 끌고 왔다는 것이었다. 두 현의 어르신들이 백성을 이끌고 양을 끌고 술을 지고서 성을 바치러 왔다.
송선봉은 크게 기뻐하면서 두 현의 군인들과 주민들에게 크게 상을 내리고 방을 내걸어 위무하였다. 송선봉은 구부과 진개가 천병이 왔음을 알고도 속히 귀순하지 않은 죄를 물어, 즉시 참수하여 군기(軍旗)에 제사지냄으로써 반적들에게 경고를 보냈다.
양로의 대군이 북문을 나가자, 화영 등은 술을 마련하여 전송하였다. 송강은 잔을 들고 화영에게 말했다.
“아우의 위엄이 적군을 진동하였으니, 이 성을 지키기에 충분할 걸세. 지금 이 성은 오직 북쪽에서만 적이 쳐들어올 수 있으니, 만약 적병이 오면 마땅히 기습하여 간담이 서늘하도록 만들게. 그러면 적들이 감히 남쪽을 엿보지 못할 것이네.”
화영 등은 ‘예’ 대답하고서 명을 받았다. 송강은 또 잔을 들어 노준의에게 말했다.
“출병하는 오늘 이미 양성과 심수에서 포로를 바쳤으니, 그 두 곳은 이미 평정되었네. 아우는 곧장 진녕으로 쳐들어가 속히 큰 공을 세우도록 하게. 반적의 괴수 전호를 사로잡아 조정의 은혜에 보답하고 우리 함께 부귀를 누리도록 하세.”
노준의가 말했다.
“형님의 위엄 덕분에 두 곳이 싸우지도 않고 복속하였습니다. 이미 엄명을 받들었는데, 어찌 감히 힘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송강은 전에 허관충에게서 받은 지도를 소양을 시켜 베껴 둔 것을 노준의에게 주었다.
정선봉 송강은 병력을 세 부대로 나누었다. 임충 · 삭초 · 서녕 · 장청은 1만 병력을 거느리고 전대가 되고, 손립 · 주동 · 연순 · 마린 · 단정규 · 위정국 · 탕륭 · 이운은 1만 병력을 거느리고 후대가 되었으며, 송강은 오용과 함께 나머지 장수들과 3만 병력을 거느리고 중군이 되었다. 세 부대 5만 군사가 동북쪽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부선봉 노준의는 송강과 화영 등을 작별하고 40명의 장수와 5만 군병을 거느리고 서북쪽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화영 · 동평 · 시은 · 두흥은 송강과 노준의를 전별하고 성으로 돌아갔다. 화영은 명을 내려, 성 북쪽 5리 밖에 영채를 두 개 세우고 시은과 두흥으로 하여금 각각 병력 5천을 거느리고 강궁과 쇠뇌 및 여러 가지 화기(火器)들을 설치하고서 적을 막게 하였다. 또 동서 양쪽 길에 기병(奇兵)을 매복시켜 두었다.
한편, 고평에는 사진과 목홍이, 능천에는 이응과 시진이, 위주에는 공손승 · 관승 · 호연작이 각각 지키고 있었다.
한편, 송선봉의 세 부대는 개주를 떠나 약 30리쯤 갔는데, 송강이 말 위에서 바라보니 앞에 산이 하나 보였다. 산에 점점 접근하면서 보니, 산의 형세가 다른 산과는 같지 않았다. 그때 이규가 손가락으로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형님! 저 산 풍경이 지난번에 꿈에서 본 산과 똑같습니다.”
송강이 항장 경공을 불러 물었다.
“자네는 이곳에 오래 살았으니까, 필시 이 산을 잘 알겠지. 허관충의 지도에 의하면 개주성 동쪽에 방산이 있는데, 천지령이라고 불린다고 했네.”
이규가 말했다.
“꿈속에서 선비가 천지령이라고 했는데, 제가 깜빡 잊었습니다.”
경공이 말했다.
“이 산이 바로 천지령입니다. 벼랑이 마치 성곽과 같아서 옛날 사람들이 피난처로 삼던 곳입니다. 근래에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산 위에 이상한 일이 있다고 합니다. 밤중에 벼랑에서 붉은 빛이 나오는 경우가 자주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무꾼들이 벼랑에 다가가면 기이한 향내가 코를 찌른다고 합니다.”
송강은 그 말을 듣고서 말했다.
“그렇다면, 이규의 꿈과 부합하네.”
그날 송강의 군대는 60리를 가서 영채를 세우고 쉬었다. 그리고 다음 날 호관(壺關)에서 남쪽으로 5리 떨어진 곳에 당도하여 다시 영채를 세웠다.
한편, 호관은 산의 동쪽 기슭에 있었는데, 산의 형세가 항아리 같아서, 한(漢)나라 때 이곳에 관문을 설치하면서 호관이라고 불렀었다. 이 산 동쪽에 포독산이 있는데, 호관이 있는 산기슭과 이어져 있었다. 이렇게 호관은 두 산의 가운데 있으면서 소덕성에서 남쪽으로 80리 떨어진 곳에 있어, 소덕을 지키는 험준한 관문이었던 것이다.
이 호관은 전호 수하의 맹장 8명과 정병 3만이 지키고 있었다. 맹장 8명은, 산사기 · 육휘 · 사정 · 오성 · 중량 · 운종무 · 오숙 · 축경이었다.
산사기는 원래 심주의 부호 아들이었는데, 힘이 세고 창봉을 잘 썼다. 사람을 죽이고 형벌을 받을까 두려워 전호의 부하가 되었는데, 적을 막는 데 공을 세워 가짜 병마도감의 직을 받았다. 무게 40근이 되는 혼철곤(渾鐵棍)을 사용했는데, 무예가 뛰어났다.
전호는 조정에서 송강의 병마를 보냈다는 것을 듣고, 특별히 정병 1만을 선발하여 산사기에게 주고 소덕으로 보내 육휘 등과 협동하여 호관을 지키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호관에서의 모든 일은 자신에게 아뢸 필요 없이 알아서 행하라고 하였다.
산사기는 호관에 당도하여, 개주를 이미 잃었다는 것을 알고서 송군이 필시 호관을 취하러 올 것임을 짐작하였다. 그래서 매일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말을 잘 먹여 적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송군이 이미 관문 남쪽 5리 지점에 영채를 세웠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산사기는 마군 1만을 점검하여, 사정 · 축경 · 중량과 함께 갑옷을 입고 말을 타고서 병력을 거느리고 관문을 나가 송군과 대치하였다.
양측에서 활과 쇠뇌를 쏘아 사정권 밖에 진을 벌렸다. 양진에서 북을 울리고 깃발을 흔들었는데, 북쪽 진의 문기가 열리면서 산사기가 나와 소리쳤다.
“물가의 도적놈들아! 어찌 감히 우리 강토를 침범하느냐!”
송군 진영에서는 표자두 임충이 앞으로 나와 소리쳤다.
“역적을 돕는 필부야! 천병이 당도했는데, 어찌 항거하느냐!”
임충이 장팔사모를 들고 말을 박차 곧장 산사기에게 돌진했다. 두 장수가 가운데서 맞붙었다. 양군이 함성을 지르는 가운데, 두 말이 서로 얽히고 네 개의 팔과 여덟 개의 발굽이 어지럽게 엇갈렸다. 싸움이 50여 합에 이르렀는데 승부가 나지 않았다. 임충은 마음속으로 갈채를 보냈다.
축경은 산사기가 이기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말을 박차고 칼을 휘두르며 싸움을 도우러 달려 나갔다. 그러자 몰우전 장청이 달려 나가 가로막았다. 네 말이 진 앞에서 두 쌍을 이루어 싸움을 벌였다. 장청은 축경과 20여 합을 싸우다가 힘이 달려 말을 박차고 달아났다. 축경이 말을 몰아 추격하는데, 장청이 쟁을 안장에 꽂고 비단 주머니에서 돌을 꺼내 몸을 돌리면서 축경의 얼굴을 향해 던지며 소리쳤다.
“받아라!”
축경은 날아온 돌에 콧잔등을 맞고 선혈을 흘리며 말에서 떨어졌다. 장청이 말을 돌려 쟁으로 축경을 찌르려고 달려가자, 북쪽 진에서 사정과 중량이 달려 나와 축경을 구해 갔다. 관문 위에서는 자기편 장수가 말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산사기도 실수할까 염려하여 징을 울려 군사를 거두었다.
송강 역시 징을 울려 병력을 거두고, 오용과 상의하며 말했다.
“오늘 적장을 하나 쓰러뜨렸으니, 적의 예기가 다소 꺾였을 것이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산세가 험준하고 관문이 견고하니, 어떤 계책을 써야 격파할 수 있겠소?”
임충이 말했다.
“내일 관문을 두드려 싸움을 걸어 적장 한 놈을 죽이고서, 형제들이 힘을 다해 공격합시다.”
오용이 말했다.
“장군은 서두르지 마시오! 손무자(孫武子)가 말하기를, ‘이길 수 없으면 지키고, 이길 수 있으면 공격하라.’고 했습니다. 지금 적을 이길 수 없으니 우리는 마땅히 지켜야 하고, 적을 이길 수 있을 때 공격해야 합니다.”
송강이 말했다.
“군사의 말이 옳소.”
다음 날, 임충과 장청이 송선봉에게 와서 병력을 이끌고 나가 싸움을 걸겠다고 하자, 송강이 분부했다.
“싸움에 이기더라도 함부로 관으로 쳐들어가지는 말게.”
송강은 또 서녕과 삭초에게 병력을 이끌고 가서 접응하라고 명하였다.
임충과 장청은 5천 군마를 이끌고 관 아래로 가서 깃발을 흔들고 북을 울리면서 욕을 퍼부어 싸움을 걸었다. 아침부터 정오까지 싸움을 걸었지만, 관 위에서는 아무런 동정이 보이지 않았다. 임충과 장청이 막 영채로 돌아가려고 할 때, 갑자기 관 안에서 포성이 울리면서 관문이 활짝 열렸다. 산사기가 오숙 · 사정 · 오성 · 중량과 함께 병력 2만을 거느리고 돌격해 나왔다.
임충이 장청에게 말했다.
“적군이 우리가 피로한 틈을 타서 공격하는데, 우리도 힘을 다해 진격하세.”
후대인 삭초와 서녕도 병력을 이끌고 일제히 쳐들어갔다. 양군은 진을 벌리고 아무런 말도 없이 싸움을 시작했다. 임충은 오숙과 싸우고, 산사기가 출전하자 장청이 쟁을 들고 맞붙었다. 오성과 사정이 함께 출전하자, 삭초가 도끼를 휘두르며 둘을 대적하였다.
양군이 함성을 지르는 가운데, 일곱 필의 말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살기가 번뜩였다. 싸움이 한창 무르익었을 때, 표자두 임충이 큰 소리를 지르면서 장팔사모로 오숙을 찔러 말에서 떨어뜨렸다. 오성과 사정은 삭초와 싸우다가 힘이 달렸는데, 오숙이 말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사정이 급히 파탄 난 척하며 본진을 향해 달아났다. 오성은 사정이 달아는 것을 보고 도끼를 밀쳐내고 달아나려고 했는데, 삭초의 도끼에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산사기는 두 장수가 죽는 것을 보고 말을 돌려 본진으로 달아났는데, 장청이 추격하면서 돌을 던졌다. 날아간 돌은 산사기의 투구를 맞춰 ‘쨍’ 소리가 났다. 깜짝 놀란 산사기는 안장에 바짝 엎드려 달아났다. 중량도 급히 병력을 이끌고 관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임충이 가로막고 공격하여 반군은 대패하였다. 산사기는 병력을 이끌고 관으로 들어가 관문을 굳게 닫았다.
임충 등은 곧장 관 아래까지 돌격하였으나, 관 위에서 화살과 돌이 마구 쏟아져 더 이상 진격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 임충이 왼팔에 화살을 맞는 바람에 병력을 철수하여 영채로 돌아왔다. 송강은 안도전에게 임충의 상처를 치료하게 하였는데, 다행히 갑옷이 두꺼워 중상을 입지는 않았다.
한편, 산사기는 관으로 올라가 군사를 점검해 보니, 병사 2천여 명과 장수 둘을 잃었다. 산사기는 부하들과 상의하여, 사람을 진왕(晉王)이 있는 위승으로 보내 구원을 요청하였다. 송군의 병사들이 강하고 장수들이 용맹하여 대적하기 어려우므로, 좋은 장수를 더 보내주어 관을 지킬 수 있게 해달라고 하였다.
산사기는 다른 한편 포독산을 지키는 장수 당빈 · 문중용 · 최야와 밀약하여, 정병을 이끌고 몰래 포독산 동쪽으로 나와서 송군의 배후를 공격하게 하였다. 날짜를 약정하고 포를 터뜨려 신호하기로 하였으며, 그때 자신들이 병력을 이끌고 관에서 나가 양로에서 협공하면 반드시 전승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계획이 정해지자 관을 굳게 지키면서, 당빈에게서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한편, 송선봉은 호관이 험준하여 급히 깨뜨릴 수 없어 대치한 지 보름이 넘게 지나갔다. 어느 날 송강이 장막 안에서 고민하고 있는데, 홀연 위주를 지키는 관승이2 보낸 사자가 밀서를 가지고 왔다. 송강은 오용과 함께 황급히 밀서를 읽어 보았다.
포독산 산채의 주인 당빈은 원래 포동의 군관이었는데, 사람이 용감하고 강직하며 저와 형제의 의를 맺은 사이입니다. 권세가의 모함을 받자 분노하여 원수를 죽이는 바람에 관아에 체포될 위기에 처하자, 포동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가 양산박에 투신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포독산을 지나다가 도적들의 기습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빈은 포독산 두목 문중용 · 최야와 싸우게 되었는데, 두 사람은 당빈을 이기지 못하자 산으로 청하여 산채의 주인으로 받들었습니다.
작년에 전호가 호관을 빼앗고 당빈에게 투항을 강요했습니다. 당빈은 본래 전호에게 투항할 뜻이 없었지만, 형세가 고립되어 어쩔 수 없이 투항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포독산에 머물면서 호관과 기각(犄角)을 이루어 남쪽에서 오는 조정의 군대를 방어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근래에 제가 위주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듣고, 새해 첫날 당빈은 혼자 몰래 위주로 찾아와서 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오래전부터 송공명 형님의 충의를 연모해 왔으며, 조정에 귀순하여 형님의 휘하에서 공을 세워 속죄하고 싶다고 합니다.
저는 혼자서 당빈과 함께 포독산으로 가서 문중용과 최야를 만났는데, 두 사람 다 시원한 성격에 옹졸한 태도가 조금도 없었습니다. 두 사람 역시 귀순할 뜻이 있어, 기회를 봐서 호관을 바쳐 형님을 뵙는 예물로 삼겠다고 밀약하였습니다.
송강은 밀서를 상세히 읽고 나서 오용과 상의하여, 병력을 움직이지 않고 호관의 동정을 지켜 본 후에 계책을 세우기로 하였다.
한편, 산사기가 당빈에게 보냈던 군인이 돌아와 보고하였다.
“요즘은 달이 대낮처럼 밝으니, 그믐이 되기를 기다려 출병해야만 적에게 들키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산사기가 말했다.
“그 말이 옳다.”
그 후로 10여 일이 지나도록, 송군은 공격해 오지 않았다. 어느 날 홀연 당빈이 몇 기를 거느리고 포독산에서 호관으로 오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잠시 후 당빈이 호관에 당도하여 산사기에게 인사하였다. 당빈이 말했다.
“오늘 밤 자정에 문중용과 최야가 병력 1만을 이끌고 몰래 포독산 동쪽으로 나갈 것입니다. 군사들은 가벼운 갑옷을 입고 말은 방울을 떼고서, 해 뜰 무렵이면 송군의 영채 뒤편에 당도할 것입니다. 여기서도 준비하고 있다가, 그때 관을 나가 접응하면 됩니다.”
산사기는 기뻐하며 말했다.
“양쪽에서 협공하면, 송군은 반드시 패할 것이다!”
산사기는 술을 내어 당빈을 대접하였다.
그날 저녁, 당빈이 관 위에서 아래를 살펴보다가 말했다.
“이상한데? 별빛 아래 보니, 관 밖에서 누군가 우리를 염탐하고 있는 것 같은데…”
당빈은 곁을 따르던 군사의 전통에서 화살 두 개를 꺼내 관 밖으로 쏘았다.
그때 관 밖에는 진짜로 몇몇 군졸들이 송선봉의 명을 받고 어둠 속에서 몰래 관에서의 소식을 염탐하고 있었다. 당빈이 쏜 화살이 한 군졸의 오른쪽 허벅지에 맞았다. 화살에 맞은 곳이 아프기는 했지만, 화살촉이 없었다. 군졸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화살을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화살촉에 비단이 여러 겹 감겨 있었다. 군졸은 뭔가 다른 사정이 있음을 알고, 나는 듯이 영채로 달려가 송선봉에게 보고하였다.